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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이 있어 올해도 따뜻했네

    그들이 있어 올해도 따뜻했네

    세밑 찬바람을 막아 주는 건 두꺼운 외투도, 따뜻한 난로도 아니다. 온 세상을 밝게 만들어 주는 것은 이웃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다. 성탄절인 25일 꽁꽁 언 서민들의 마음을 훈훈하게한 ‘두 명의 천사’를 만나 봤다. 자신보다 남을 위해 일하는 이들처럼 우리도 지금부터 이웃 사랑을 실천해 보는 것은 어떨까.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전진상 의원에는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하얀 가운을 걸친 한 남자가 나타난다. 벌써 29년째다. 이 남자는 시장의 영세 상인과 서울에서 쫓겨난 철거민, 노숙자 등이 환자의 대부분인 이 병원에서 한 주도 빠짐없이 뇌종양과 뇌출혈, 뇌기형 등의 질병을 무료로 치료하고 있다. 주인공은 가난한 환자들로부터 ‘하얀 옷 입은 천사’로 불리는 건국대병원 신경외과 고영초(54) 교수다. “대학 시절 가톨릭 의료단체에서 서울 난곡동 달동네 봉사활동을 하다가 자연스레 이곳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이후 군 복무 시절을 빼고 계속 봉사활동을 해왔죠.” 신부가 꿈이었던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고 교수는 대학시절 도시빈민운동을 하던 김혜경 민주노동당 전 대표를 만나면서 국제 가톨릭 의료단체인 국제형제회(AFI)가 세운 이 병원을 알게 됐다. 엑스선과 내시경, 초음파와 뇌검사 등 서민들이 쉽게 받기 힘든 검사로 속병을 살피고 검사가 마땅치 않으면 직접 자신이 일하는 병원으로 데려와 수술 치료까지 해준다. 봉사의 세월이 길다 보니 애틋한 사연도 적지 않다.20여년 전 14살이던 한 아이가 손바닥만 한 크기로 자란 뇌종양을 안고 시력을 거의 잃은 채 찾아왔다. 수술로 더이상 병 진행은 막았지만 안타깝게도 아이는 시력을 잃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그 아이를 잊고 지내던 고 교수에게 최근 한 시각장애인 안마사가 찾아와 안마를 해주겠다고 손을 뻗었다. 바로 20년 전 그 아이가 어엿한 성인이 돼 스스로 찾아온 것이었다. 또 14년 전 역시 악성 뇌종양 수술을 받고 최근까지 생을 연장해 오다 결국 숨진 미경이도 고 교수의 뇌리에 선명하다. 당시 수술로 급한 생명을 건진 미경이는 며칠 뒤 가방을 하나 내밀었다. 가방에는 종이학 1000마리가 담겨 있었다. 미경이는 뇌종양으로 시력을 잃었지만 꿋꿋하게 종이학 접기를 배워 고 교수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봉사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머뭇거리지 말고 나서 보세요. 봉사를 마치고 기지개를 켤 때 뭉친 근육이 풀어지는 쾌감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압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여자에겐 관심없는 총각 배우재벌(俳優財閥)

    여자에겐 관심없는 총각 배우재벌(俳優財閥)

    여자처럼 예쁜 이런 얼굴이 그런 사나이다운 일을 할 수 있었구나-생각하자마자 「마론·브란도」의 그 단단하고 거친 얼굴이 이성훈(李星勳·29)씨의 여상(女相) 위에 겹친다. 과묵한 점에서도 그렇다. 1백50㎞로 「오토바이」를 모든 「드릴」을 비롯, 모든 「드릴」있는 일을 즐긴다는 점에서는 「제임즈·딘」이다. 자동차 부속품의 기름을 온통 손과 가슴에 칠해온 또하나의 「자이언트」의 주인공. 고(高)3때 부친(父親) 돌아가시자 학교다니며 차부속(車部屬)팔아 고교 3년때부터 자동차 부속품이라는 쇳덩어리를 자기의 삶처럼 어루만지고, 주무르고, 들어 올리고, 짊어진 이야기는 아닌게 아니라 선명한 영화 「신」처럼 「리얼」하다. 3남4녀중 장남이고 중앙(中央)고 3년때 아버지를 여의고 그래서 아버지가 하던 자동차 부속품상 「만흥상회」를 떠맡고 서강대(西江大) 독문(獨文)학과를 마칠 때까지 줄곧 쇳덩어리와 공부를 짊어 지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주무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막막하더군요』 그러나 계속 막막해 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그렇죠, 고등학교때부터 기술적인 걸 배웠어요. 상품의 가치를 판별하는 법도 배웠지요. 갑자기 돌아가셨으니까 유언도 못하셨는데 평소에 저한테 죽 일러오셨읍니다. 사람은 노력해야 한다고요. 돈은 들어오면 놓치지 말아라. 조금 한눈을 팔면 다른 데로 샌다. 돈은 자기가 버는 게 아니라 남이 벌어준다.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어려서는 몸이 약했으므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육상 야구 축구 배구 등 운동이라면 거의 다하게 되었고, 거의 「프로」에 가까운 실력이어서 선수권을 가진 종목도 있고 그리고 합기도가 3단.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무역해 놓은 물건이 있어서 바탕은 허약한 편이 아니었어요. GMC 회사에서 「베베루비뇽」「샤도우」같은 부속을 수입해서 7~8배 남겼죠』 대학 2년때 미8군으로부터 부속품을 불하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쇠와 땀에 얽힌 싸움의 「드라머」가 보인다. 당시 미8군에서 고철을 불하한다고 하면 거기에 미친 사람들은 머리를 싸매고 몰려들었다. 불하라고 하지만 실은 중간 업자들의 농간에 의해서 버리다시피 하는 고철의 매매행위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야바위 입찰경매라는 것으로 떠들썩하기도했다. 『저는 중간 상인을 피하고 미군과 직접 상대했어요.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대령이었어요. 외국인과 사귀려면 역시 머리에 좀 든게 있어야겠더군요』 미군(美軍) 고철 불하(拂下)받으려고 두달동안 설득끝에 성공 『그때 그 대령은 제가 학생으로서 뭘 해보겠다고 애쓰는데 대해 무척 감동했어요. 잘보였죠. 두달동안을 매일 쫓아 다녔읍니다. 불하 면장을 받아 가지고 어머니와 같이 동두천 미군부대로 갔어요』 불하 받은 부속은 GMC「데우」 2백대분. GMC 20대로 운반해야 할 양이었다. 10대씩 두번 날라다가 창고에 쌓았다. 『처음에 GMC 10대를 끌고 어머니와 함께 맨 앞차의 운전석에 앉아 나오는데 검문소에서 차를 세워요. 무조건 다 내려 놓으라는 거예요. 일단 내려놓고 조사하자는 거죠. 그때는 모두 먹자판이었거든요. 처음에는 몰라서 돈 많이 버렸어요. 돈 뭉치를 창 밖으로 던지고 떠나오니까 아무 말도 못하고 멀거니 서서 바라보고 있더군요』 두번째 10대를 끄고 나올때는 꾀를 냈다. 『돈 안 아까운 사람 어디 있어요? 더구나 피땀 흘려 번돈인데 말이죠. 누구나 땀 흘려 번 돈은 막 뿌리지 못해요.두번째는 앞차에 다른 사람을 태웠어요. 10대에 모두 다른 사람을 태우고 맨 앞 사람이 이렇게 말하도록 했죠. 주인이 맨 뒤에서 돈을 뿌리며 온다. 주인과 상의해라. 10대가 다 통과하고 나서 나는 다른 차를 타고 지나왔죠. 검문소에서는 허, 하고 입만 벌리고 있더군요』 창고에 쌓아놓고 상점에는 「샘플」만 몇 개 갖다놓았다. 『그때 미제 「데우」라면 수요에 따르지 못했어요. 「샘플」본 사람들이 몇 대분 달라고 하면 그 사람을 차에 태워 창고있는 데로 갔죠. 2백대분을 1년에 다 팔았어요. 그 뒤로는 큰 몫이 없었죠. 대기업들이 치고 들어오니 당해낼 도리가 없었어요. 그래서 직접 전방 미군부대 폐차장으로 나갔죠』 벌떼처럼 달려드는 깡패 쫓으려다 수 없이 몸다쳐 중간 「브로커」를 이용했다. 어떤 물건이 있는데 값은 얼마고 어떤 줄을 타야 된다는 등의 정보를 얻는 것이다. 대학 3학년때. 『「트럭」에다 싣고 나오면 그곳 깡패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었어요. 차가 떴다 하면 2백~3백명이 몰려들어 길을 막는 거예요. 기계 하나 뽑아서 떨어뜨려봤자 그 많은 사람들의 배를 채울 수는 없지 않아요? 그 사람들도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러는 거였으니까… 차를 세워 놓고는 사방에서 차 위로 기어오르는 거예요』 그 벌떼를 막기 위해 이씨는 쇳덩어리 위에 앉아서 왔고 기어오기 시작하면 쇠뭉치를 들고 「트럭」위 울퉁불퉁 제멋대로 실려 있는 쇳덩어리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이 쪽을 막으면 저 쪽에서 기어 오르고 걷잡을 수 없었어요. 제 다리에 상처가 많은데 그때 쇠에 부딪히고 까지고 한거죠. 다리 살이 칼로 찔러도 안 들어가요』 쇳덩이에 부딪히고 깨어지다가 쇳덩어리가 된 다리의 살. 그 때 상점에서 손수레를 끄는 영감님이 차 위에서 같이 이리 뛰고 저리 뛰었는데 상점에 도착해서 쇠를 운반하다가 머리가 깨져 입원뒤 일을 못하고 있다. 충분히 보살펴 주지못해 마음 아프단다. 학교 공부가 궁금하다. 『지금도 책상 서랍 열어보면 빙긋이 웃어요. 독일 「괴테·유니버시티」에서 온 초청장이 거기 들어 있거든요. 곽복록 선생이 거기 가 계실때 보내주신 거예요. 초청장 보고 빙긋 웃는 이유는 지금보다 더 잘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 때문이죠』 독일유학 제철기술 배우고 싶었는데 경영학과 법학을 집에서 혼자 공부하기도 했는데 한양대(漢陽大) 법과에 2년 다니기도 했다. 『독일 간다면 철의 강도를 조절하는 기술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녹인 쇠를 약품 처리해서 굽는 과정의 온도 조절이 제일 중요해요』 『일본의 「도요다」같은 회사에서 무역하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나는 일본놈들 하고는 장사 안하기로 했어요. 차라리 「양키」 것을 훔쳐낼 지언정 일본놈들 하고 할 생각은 없어요. 우리나라도 미군들 폐차된 부속품 훔쳐내는거 권장 했으면 합니다. 권장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일본놈들은 「오끼나와」의 미군부대에서 훔쳐내는 거 권장할 뿐만 아니라 「에스코트」까지 해준대요. 훔쳐낸 물건 쓰면서 자기네 것은 외국에 수출합니다. 일본놈들 돈 벌기위한 계략은 치사할 정도예요. 「덤프·트럭」만 해도 67연도 형 부속은 68년에 안만듭니다. 1년 지나면 부속품 형을 바꿔버려요. 그러니까 67년에 산 차는 1년만에 못쓰게 되는 거죠. 폐차 시키지 않으면 새로운 형의 부속을 다시 사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부속을 계속 팔아먹어요. 저는 그게 메스꺼워서 형이 바뀌는데 따라 내가 개조해요. 그래서 새「트럭」이 나와도 쓸 수 있도록 합니다. 구형 부속으로 못쓰고 버릴 바에야 개조해서 쓰도록 하는 것이 「달러」를 버는 길입니다. 요새 거리에 「기모노」차림의 일본인들이 상당히 많이 눈에 띄는데, 그 사람들 보면 침뱉어 주고 싶을 정도로 미워요』 현재 금강상회는 신진6「톤」반, 쌍(雙)「덤프」5「톤」반, 「이스트·덤프」등의 「덤프·트럭」부속품을 주로 취급한다. 연간 유통자금은 1억원. 무교동에 미도 「빌딩」(6층)도 가지고 있다. 공장도 세울 계획. 새영화에서 문희(文姬)와 주연(主演) 밑바닥부터 배워 제작(製作)도 최근에는 『그여자에게 옷을 입혀라』라는 영화에 문희와 함께 주연으로 등장, 촬영을 끝마쳤는데 5월15일께 개봉할 예정이다. 『「액션」물을 하고 싶어요. 영화의 밑바닥부터 배워서 차차 제작에도 손을 대고 싶습니다』 이번 『그 여자…』에서도 「오토바이」를 십분 활용했는데, 이씨는 「오토바이」선수권을 가지고 있고 요즈음에도 김포가도를 1백50「킬로」로 달리는 「엑스퍼트」. 앞으로는 「스카이·다이빙」도 하고 싶은데 그런 「드릴」있는 것과는 전혀 먼 낚시도 한다. 오늘이 있기까지 어머니의 힘이 컸다고 강조하는 이성훈씨는 「가톨릭」신자. 일이 바쁘다 보니까 지금은 성당에 못나가고 있지만. 총각인데,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단다. 『정말 관심이 없어요, 정말』 불고기 15인분을 먹는 대식가. [선데이서울 70년 5월 3일호 제3권 18호 통권 제 83호]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산동네 ‘40년 연탄배달’ 김성수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산동네 ‘40년 연탄배달’ 김성수씨

    어릴 적, 철부지 꼬마는 차갑게 내리는 눈발에도 아랑곳없이 동네 아이들과 연탄재를 발로 차며 놀았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어둠이 몰려와 등을 떠밀었을 때야 귀가했으므로 몸은 꽁꽁 얼어버렸다. 기다리던 어머니는 야단 대신 얼음장처럼 찬 손을 어루만지며 “얘야, 연탄불에 고구마 올려놨다.”고 하셨다. 이뿐이랴. 겨울은 시계바늘을 과거로 돌려 추억의 창고문을 자주 열게 한다. 문득, 창밖에 내리는 하얀 눈을 보면서 ‘도라지 위스키의 낭만’처럼 지금쯤 어디에서 ‘나만큼 늙어가고 있을’ 아련한 첫사랑도 떠오른다.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이 몰아쳐도 ‘찹쌀떡∼, 메밀묵∼’ 소리에 화들짝 일어나 침을 삼키며 달려나갔던 정겨운 광경이 새삼 그려진다. 또 있다. 요즘 같은 날씨에 가장 생각난다. 힌트, 두 단어로 표현된다. 하숙집 아랫목을 따뜻하게 덥혀주고 애인처럼 정성으로 돌봐주면 활활 불꽃을 피운다. 다 타고 재가 되면 동네 언덕길에 산산이 으깨어져 등꼬부라진 할머니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안전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시 한편이 있다.‘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인이 연탄재를 통해 타성에 젖어 살아가는 속물성과 허위를 준열하게 질타하고 있음이다. 아울러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장 되는 것’이며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이면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는 것’이라고 했다. 맞다.‘연탄’이다. 추운 겨울날 따뜻한 온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연탄 한 장은 어떤 보석보다 값진 것이다. 없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추위란 뼛속까지 에이기에 연탄 한장에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수도 있음이다. ‘연탄배달의 기수’ 김성수(65)씨.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에서 40년째 연탄배달로 생활하고 있다. 열아홉 구멍 숭숭 뚫린 시커먼 연탄 수십장씩 지게에 올려놓고 달동네 언덕을 숨이 차도록 오르락 내리락 해왔다. 독거 노인 등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결코 지게를 내려놓지 못한 세월이지만, 겨울의 강을 건너야 할 사람에게 스스로 얼음판이 되어준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산타’의 길을 걸어왔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지난주, 때마침 영하 6도의 추운 날씨였다. 서울 이대 앞 전철역에서 옛날 대흥극장 쪽으로 향했다. 신협건물을 끼고 우측으로 돌아서자 가파른 언덕길이 나온다. 휴대전화로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조금만 더 올라오란다. 좁은 언덕길 양쪽에는 구멍가게,00양장점,00상회,00쌀집 등의 간판이 즐비해 1960년대의 흑백필름을 연상케 했다. 언덕 아랫길만 하더라도 외래어간판들로 북적대는 거리가 아닌가.10분여를 더 걸었더니 언덕 꼭대기 한편에 ‘三표연탄’이라는 글자가 전봇대에 메달려 있고 그 옆에 시커먼 판자로 가려진 연탄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이때였다. 골목길에서 잠바차림에 모자쓴 아저씨가 걸어나왔다. 직감으로 “김 선생님이시죠?”라고 했더니 씩 웃는다.“배달은 언제 나가세요.”라고 물었다. “오후에 할머니 혼자 사는 집에 열댓장만 갖다 주면 된다.”고 했다. 만난 시간이 오전 10시여서 혹 아침 식사를 했느냐고 하자 고개를 가로젓는다.“선생님, 시장하신 것 같은데 순대집 가서 막걸리나 한잔 하시죠.”라는 말에 비로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인터뷰 장소를 인근 순대집으로 옮겼다. 막걸리 한잔을 쭉 들이켠 김씨는 “이 동네 누구 집에 숟가락 젓가락 몇개 있는 거 다 알아유.”라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입을 열었다.1980년대까지만 해도 초겨울이면 월동준비 1순위로 집집마다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연탄을 들여놨으니 ‘누구집 강아지 이름’까지 손바닥 보듯 했을 터. 올 겨울 연탄 배달량이 얼마나 됐는지 궁금했다.“신수동, 창천동, 염리동 일대에 할머니들만 사는 곳에 2200장을 보냈시유.” 대한적십자사의 주문으로 200장씩 모두 열한 집에 보냈단다. 연탄 한 장당 가격이 370원. 또 장당 이문(利文), 즉 배달료가 70원이라고 하니 올 겨울 14만여원이 주머니에 들어온 셈이다. 작년 이맘때 7000장을 배달한 것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하루 200장은 배달혀야 먹고 살아유.”라며 또 한잔의 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켠다. 점점 시름이 깊어진다. “이 동네에는 연탄 쓰는 집이 30가구 정도 돼유. 그런데 구의원이나 정치인, 여러 단체 등에서 공장에서 연탄을 다량으로 싸게 구입해 없는 집, 있는 집 할 것 없이 다 돌립니다. 어떤 집에는 부모 자식 돈버는 부잣집인데도 쌀이며 연탄까지 갖다 줘유. 진짜 없는 집은 배가 고픈디 말이여유. 정부에서 하는 일이 왜 그런디유?” 김씨는 안양에 있는 연탄공장에서 타이탄트럭 한 대분(1200장)을 받으면 창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노고산동과 인근 독거노인들이 사는 집 위주로 배달해오며 생계를 꾸려오고 있다. 연탄배달 외에는 주로 라면박스 같은 것을 주워다가 고물상에 내다 판다. 박스 1㎏에 40원을 받으니 리어카 하나 가득해 봐야 겨우 4000원을 받는 셈. 리어카를 채우려면 일주일은 돌아다녀야 한다.“우리 집 말여유? 혼자 세들어 살지유. 외풍도 세고 비도 줄줄 새는 그런 집이여유.” 결혼 얘기가 나오자 잠시 창밖을 응시한다. 빈 속에 막걸리 몇잔 들이켜서인지 어느새 눈이 젖어 있었다.“고생 고생 해서 번 돈, 아이들 엄마가 어느날 훌쩍 다 갖고 도망가 버렸어유. 그때 아내를 찾으려고 1년 동안 실성하다시피 지낸 것 외에는 연탄배달만 줄곧 해왔시유.” 김씨는 충남 천안시 성환읍에서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많은 식구들이 논농사 12마지기에 의지하기엔 벅찼다. 그래서 대홍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가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하자 함께 상경했다. 그는 스무살 무렵 곧바로 5사단 현역으로 자원입대했다.3년 동안 군복무를 마친 후에는 서울 신촌 인근의 건재상에서 장당 30원을 받는 벽돌배달 일을 했다. 당시 라면 한 봉지에 16원, 막걸리 한 주전자에 30원 하던 시절이었다. 스물다섯 살 되던 1966년에 지금의 노고산동으로 옮겨 한 기와집 추녀 끝에 조그마한 연탄가게를 마련했다. 이어 리어카를 장만하고 지게를 만들어 본격적인 ‘시커먼(?) 인생길’로 뛰어들었다. 당시에는 동네에서 한달 3만장씩 팔았다. 특히 연대와 이대, 이대부고 등 주변 학교에 배달을 맡아 그럭저럭 돈벌이도 괜찮았다. 박정희 정권 때 정부시책으로 가구당 연탄 50장씩 할당하는 카드제가 실시되던 시기였다. 결혼도 이 무렵에 했다. 하지만 막내딸이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인 1978년 어느날 아내가 집을 나가버렸던 것.“지나가는 버스만 쳐다봐도 아내가 탄 줄 알고 막 쫓아가고 했시유.” 시련을 딛고 다시 연탄배달에 전념했다. 결국 한때 삼표, 삼천리, 대성, 한일연탄 등 여러 연탄집들이 경쟁적으로 있었지만 기름보일러, 가스보일러들이 대대적으로 보급되면서 다들 사라지고 삼표연탄만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해오게 됐다. “얼마 전 구청에서 오라고 해서 갔더니 자동차가 몇대냐 직원은 몇명이냐고 합디다. 그래서 ‘리어카 한대와 지게 하나.’라구 했지유. 저는 살아오면서 쓸데없는(나쁜) 일은 한번도 안했는데 자꾸 이상한 쪽으로 물어봐유.” 주위에서 속이거나 힘들게 해도 싫증 한번 내보지 않았다는 김씨. 또 매서운 산동네의 겨울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40년 동안 한결같이 새벽 4시에 일어나 고단한 하루를 시작했다. 딸 둘을 키워 시집보내고 지금은 무자식처럼 외롭게 산다. 워낙 가난해서 누가 버린 옷과 양말을 주워다 입고 신어도,‘연탄 한장 갖다 주세요.’라는 말에 항상 위안을 삼으며 살아왔다. “배고픈 거 하늘이 알겠어유, 땅이 알겠어유.” 침묵이 흘렀다. 잔주름 가득한 이마가 할말 많다는 듯 위아래로 미동한다. 그것도 잠시, 김씨는 또한번 씩 하고 웃더니 손을 툭툭 털며 일어선다. km@seoul.co.kr
  • 꿈과 인생을 재혼에 걸고

    꿈과 인생을 재혼에 걸고

    떳떳하게 재혼하리라 나는 다시 한번 결혼할 작정이다. 나의 여성적인 부분은 비록 외과의에 의해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일지언정 멀쩡하게 제 구실을 하도록 만들어졌고 그 구실때문에 나는 충분하게 만족한 마음을 만끽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 자신에게 있어서나 내 친구들에게 있어서 나는 한 사람의 여성이다. 판사가 뭐라고 하든 말든 나는 여성이라는 얘기다. 그 판결때문에 나는 꿈, 나의 미래를, 또 나의 평생을 수포로 돌릴 수야 없지 않겠는가. 만일 내가 지금 고려중인 재심(再審)에서 이기지 못하는 날에는 나를 여인으로 인정해 줄 것 같은 「프랑스」나 그밖에 다른 나라에 가볼까 한다. 사실 나는 외국에 가는 것은 질색이다. 나는 내 나름대로 영국을 사랑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여성으로서 살아갈 수가 없다면 사랑하는 영국을 체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처럼 천신만고해서 얻은 나의 여성, 여인으로서의 신분, 인생, 기쁨을 어떻게 버릴 마음이 생길 것인가. 나는 결혼해서 아이를 양자로 얻어 시골에서 살았으면 한다. 요리솜씨엔 자신있어 나는 아마 좋은 아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남성이 어떤 방면에 흥미를 갖는지 어떤 점을 못마땅해 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꽤 알뜰한 주부가 될 자신도 있다. 바느질은 얼마 익숙하지 않지만 나는 요리라면 초일류인데다가 특히 「스페인」식 생선요리 솜씨는 일품이다. 열네명쯤의 「디너·파티」를 자주 열어온 솜씨다. 이런 「파티」때 나는 요리를 전부 맡아서 음식 칭찬을 듣곤 했다. 나의 장래 남편은 몹시 유별난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나와 결혼함으로써 그는 무척 여러가지 문제에 맞부딪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에게 유별난 남성취향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이미 몇명의 남성과 정사(情事)를 가졌지만 그 한사람 한 사람이 다른 「타이프」였다. 단지 나에게 있어서 남성이란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느낌은 있다. 그러면서도 무척 「터프」해야만 할 것이다. 그는 비열한 욕을 먹고도 꾹 참을 줄 아는 남성이어야 할테니까. 다정다감한 이가 좋아 「섹스」의 정신적인 기쁨은 육체적인 면보다 훨씬 나에게 소중한 것이다. 참된 기쁨이란 몇달동안이나 서로 상대방의 욕구에 응하고 동조하곤 하면서 한 남성을 알고 난 다음 비로소 생기는 것이 아닐까. 남성에 따라서는 이렇게 화합 할 수가 없는경우도 없지 않다. 그런 남자들은 너무나 둔감하고 게다가 자기중심이기까지 해서 만일 그런 남자와 결혼한다면 말할 수 없이 불행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 세상 어디엔가 매력적인 남성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다정하고 「터프」하고 「센시티브」한 인품에, 남의 말에는 눈 하나 깜짝 않는 용감한 남성, 그러나 나는 나의 이상인 이 남성과 빨리 만나고 싶지 않다. 지금 같아서는 남성과의 교제조차도 성가실 지경이니까. 지금 상태로라면 나의 남성교제는 동성애가 돼버리니까 말이다. 정말이지 법률적인 입장이란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를 증명하기 위해 나는 어떤 바보짓이라도 해버리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다. 지금의 문제는 돈벌이 내가 교도소에 들어갈 만한 범행을 저지른다면 나는 남자감방에 수용될지, 여자쪽에 수용될지…. 나라에 따라서는 나를 완전한 여성으로 받아들이는 곳도 있다. 단지 영국의 법률만이 문제인 것 같다. 내 재심청구는 1년안에 받아 들여질 가망이 지금은 없다. 그동안 나는 돈을 벌지 않으면 안되는 어려운 형편이 돼 있다. 새로운 사업을 하나 벌일 작정이다. 「데스몬드·모간」이라는 오래 된 친구와 「레스토랑」을 하나 차릴 작정이다. 그는 요리장이 되고 나는 지배인이 되는 것이다. 굉장히 재미있는 「레스토랑」을 만들어 보겠다. 가게 전체에 손님을 약 1백명 수용할 수 있도록 하고 「카운터」에 30명쯤이나 빙 둘러 앉아 술을 마실 수 있는 호화찬란한 「칵테일·코너」도 만들 작정이다. 그러면 나는 매일밤 성대한 「칵테일·파티」를 열고 있는 기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개점날이 여간 기다려 지지 않는다. 야심은 여자로 사는것 나는 전에 「레스토랑」을 경영한 일도 있고 TV에 출연한 일도 있고 해서 대중의 눈이 쏠려오는 것 같은데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나의 가장 큰 야심은 내가 여자답게 살고 그리고 한 사람의 여자임을 세상에 증명하는 것뿐이니까. 나와 만나서 얘기를 해 본 사람은 누구나 문제 없이 나를 여성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해 준다. 그러니까 내 몸만 보여 주면 모두들 믿어주려니 싶어 지는 것이다. 언젠가 「피터·오툴」이랑 「오마·샤리프」와「나이트·클럽」에 앉아 있었는데 가까이 앉아 있던 두 사람의 친구들과 싸움이 붙었다. 보다 못해 내가 나서서 중재를 했더니 곧 화해가 되었다. 그걸 보고 있던 「오마·샤리프」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에이프릴」, 당신은 보통 여자일 뿐만이 아니고 정말 훌륭한 「레이디」야.』 나는 이 말이 무척 기뻤다. 그렇게 되는 것이 내가 진심으로 바라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다. 멋있고 우아한 「레이디」가 되고 싶다. 여자와 결혼해서 혹은 「호모」인 남자와 같이 살면서 괴상한 짓을 하면서 사는 괴물이 되고 싶지는 않다. 조심하고 현명한 아내, 가정주부가 되고 싶은 것이다. <끝> [선데이서울 70년 4월 26일호 제3권 17호 통권 제 82호]
  • “수원 화성 복원 서둘러야”

    “수원 화성 복원 서둘러야”

    세계문화유산인 경기도 수원의 ‘화성’을 옛 모습대로 복원하는 ‘화성성역화’사업 및 관련 법안 처리가 장기화하면서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정조때 축조 7일 수원시와 시의회에 따르면 한나라당 남경필(수원 팔달구) 의원과 열린우리당 심재덕(수원 장안구) 의원은 정조대왕 당시 축조된 화성을 국책사업으로 복원하겠다는 선거공약에 따라 2004년말 각각 ‘세계문화유산의 보존 및 정비에 관한 법률(안)’과 ‘화성복원 및 보존에 관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 법안은 화성 복원을 위한 국비지원의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야당안은 화성을 포함해 석굴암·불국사·해인사 등 세계문화유산 모두를 국가 차원에서 보존·정비하는 내용인데 반해 여당안은 화성 복원만을 주장하고 있다. ●국비지원 절실한 수원시 ‘애간장´ 이같은 여·야간의 입장 차이로 법안은 2년째 표류하고 있어 국비 지원이 절실한 수원시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수원시는 구시가지에 있는 길이 5.74㎞의 화성과 성곽내 40만평을 오는 2020년까지 정조대왕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화성 성역화’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예산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로·공원 등을 제외한 20만평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1조 4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한데 지원되는 정부예산은 연간 5억∼10억원에 불과하다. 자체예산으로 매년 500억원을 마련해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재산권 행사를 못하는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다. 성곽 주변 지역은 오래전부터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재산권 제약을 받아왔는데 화성성역화 사업으로 더욱 강화된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안·팔달동 지역은 토지 수용대상에서도 제외돼 주민들이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토지수용 제외지역 층수제한등 완화해주오” 수원시의회 명규환(팔달·남향·신안·인계동) 의원은 “이들 지역에서는 2층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는 등 강력한 건축규제를 받고 있어 주민들이 고충을 겪고 있다.”며 “보상이 이뤄질 수 없다면 건축물 제한을 3층으로 완화하거나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해 도로·녹지공간 등 도시기반시설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수원시와 시의회는 “화성이 국책사업으로 복원·보전되기 위해서는 국회에 제출된 세계문화유산의 보존 및 정비에 관한 법률안이 빨리 통과돼야 한다.”며 초당적인 협조를 촉구했다. 김용서 수원시장은 “예산부족으로 사업이 늦어지면서 주민들이 재산권 행사를 못하는 등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국가적으로 소중한 화성이 옛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편 남경필 의원은 최근 심재덕 의원과 자신이 발의한 두 법안이 통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경기도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송건영 경기도 문화관광국장은 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남 의원측에서 이같은 의견을 밝혔다.”며 “통합 입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도 자체적으로 관련 조례를 제정해 화성복원사업에 대산 도 예산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수원 화성 복원 서둘러야”

    “수원 화성 복원 서둘러야”

    세계문화유산인 경기도 수원의 ‘화성’을 옛 모습대로 복원하는 ‘화성성역화’사업 및 관련 법안 처리가 장기화하면서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정조때 축조 7일 수원시와 시의회에 따르면 한나라당 남경필(수원 팔달구) 의원과 열린우리당 심재덕(수원 장안구) 의원은 정조대왕 당시 축조된 화성을 국책사업으로 복원하겠다는 선거공약에 따라 2004년말 각각 ‘세계문화유산의 보존 및 정비에 관한 법률(안)’과 ‘화성복원 및 보존에 관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 법안은 화성 복원을 위한 국비지원의 법적 근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야당안은 화성을 포함해 석굴암·불국사·해인사 등 세계문화유산 모두를 국가 차원에서 보존·정비하는 내용인데 반해 여당안은 화성 복원만을 주장하고 있다. ●국비지원 절실한 수원시 ‘애간장´ 이같은 여·야간의 입장 차이로 법안은 2년째 표류하고 있어 국비 지원이 절실한 수원시의 애간장을 태우고 있다. 수원시는 구시가지에 있는 길이 5.74㎞의 화성과 성곽내 40만평을 오는 2020년까지 정조대왕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화성 성역화’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예산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로·공원 등을 제외한 20만평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1조 4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한데 지원되는 정부예산은 연간 5억∼10억원에 불과하다. 자체예산으로 매년 500억원을 마련해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실정이다. 재산권 행사를 못하는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다. 성곽 주변 지역은 오래전부터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재산권 제약을 받아왔는데 화성성역화 사업으로 더욱 강화된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안·팔달동 지역은 토지 수용대상에서도 제외돼 주민들이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토지수용 제외지역 층수제한등 완화해주오” 수원시의회 명규환(팔달·남향·신안·인계동) 의원은 “이들 지역에서는 2층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는 등 강력한 건축규제를 받고 있어 주민들이 고충을 겪고 있다.”며 “보상이 이뤄질 수 없다면 건축물 제한을 3층으로 완화하거나 주거환경개선사업을 통해 도로·녹지공간 등 도시기반시설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수원시와 시의회는 “화성이 국책사업으로 복원·보전되기 위해서는 국회에 제출된 세계문화유산의 보존 및 정비에 관한 법률안이 빨리 통과돼야 한다.”며 초당적인 협조를 촉구했다. 김용서 수원시장은 “예산부족으로 사업이 늦어지면서 주민들이 재산권 행사를 못하는 등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국가적으로 소중한 화성이 옛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편 남경필 의원은 최근 심재덕 의원과 자신이 발의한 두 법안이 통합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을 경기도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송건영 경기도 문화관광국장은 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 “남 의원측에서 이같은 의견을 밝혔다.”며 “통합 입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도 자체적으로 관련 조례를 제정해 화성복원사업에 대산 도 예산을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부산 동구, 내년부터 한곳서 모든 지원

    부산 동구, 내년부터 한곳서 모든 지원

    “물리치료도 받고 컴퓨터도 배우고 너무 너무 좋아요….” 부산 동구 수정동에 살고 있는 김모(68) 할머니는 매일 오전 10시쯤이면 어김없이 이웃 동구노인종합복지회관을 찾는다. 이곳에서 친구들을 만나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며 어느새 하루가 훌쩍 저문다. 지난 2000년 문을 연 동구노인종합복지회관에서는 수지침강좌, 컴퓨터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은 물론, 체육시설과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한 물리치료실, 휴식공간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춰 놓아 하루 600여명이 찾고 있다. 속칭 ‘초량동 달동네’에 사는 이모(17)군은 동생과 함께 매일 집으로 배달되는 따끈따끈한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한다. 동구청이 복지회관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결식아동 도시락 지원’사업 덕분이다. 김군처럼 도시락 지원을 받는 결식아동은 500여명에 달한다. 부산 동구청(구청장 정현옥)은 부산에서 노인 인구와 저소득층 인구가 가장 높은 구이다. 인구 11만여명 중 13%인 1만 3500여명이 65세 이상인 고령층이며 저소득층인 기초수급대상가구가 4333가구 7491명(6.9%)으로 부산 16개 구·군 가운데 가장 높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과 노인 등이 다른 구·군에 비해 많은 탓에 전체 예산 중 3분의1 이상을 사회 복지분야에 지원하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과 노인 및 아동복지 분야 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최근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2006년 지방자치단체 복지종합 평가’에서 ‘최우수구’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전국 236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종합부문 최우수 지자체는 부산 동구청을 포함,13개가 선정됐으며 부산지역에서는 동구가 유일하게 뽑혔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각 지자체에서 실시한 복지사업 실적을 토대로 복지총괄, 복지행정 혁신, 노인·아동·장애인, 저소득층, 의료급여, 지역복지계획 등 8개 분야에 대해 평가했다. 평가 대상은 ▲광역시·군 포함 74개 지역 ▲중소도시 75개 지역 ▲군 77개 지역 등 3분류로 나눠 평가를 실시했다. 광역시는 ‘가·나·다·라’ 4개 그룹으로 나눴다. ‘라’(재정자립도 평균 26.2%, 인구 평균 16만여명)군에 속한 동구는 최우수인 A(100점 기준 60점 이상 )등급’을 받았다. 복지총괄 분야, 노인복지분야, 아동복지분야, 저소득층 분야에서 ‘A등급’을, 복지행정혁신과 의료급여분야 ‘B(우수)등급, 장애인복지분야 에서 ‘C(보통)등급’을 각각 획득했다. 복지부로부터 특별지원금 1억 2000만원을 받게 된다. 정 구청장은 “내년에는 한곳에서 모든 복지시설을 지원할 수 있는 ‘원스톱 복지 서비스 시스템’을 도입,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美금융기관 사이버테러 비상

    미국 금융기관에 사이버테러 경보가 울렸다. 알-카에다와 관련 있는 테러단체의 협박때문이다. BBC는 1일 미 국토안보부의 발표를 인용해 미 주식시장과 은행 등 금융기관의 데이터베이스 및 웹사이트에 대한 알-카에다의 공격 협박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데이터베이스를 해킹, 저장된 정보를 삭제하고 주식과 은행 등 금융 온라인 시스템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경제 활동을 마비시키겠다는 으름장이다. 특히 “1일부터 한 달동안 ‘서비스거부(DoS)’ 등의 방법으로 사이버테러를 감행하겠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이 단체는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 있는 미군 수용소의 포로 학대에 대한 보복조치 등을 이유로 들었다. 조애나 곤잘러스 국토안보부 대변인은 “안보부 컴퓨터 비상대기팀이 이같은 경고를 이날 미국 전역의 각 금융기관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위협이 실제로 얼마만큼 심각하고 현실화될지의 여부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 구체적으로 어떤 단체인지 등도 밝히지 않았다. 미 금융시장은 이같은 협박에 별다른 동요없이 비교적 담담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토안보부 등 관련부처와 ‘핫라인’을 열어놓고 전문가들을 대기시켜 놓는 등 해킹 공격에 대비하고 있다.9·11 테러 이후 사이버테러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게 이뤄져 온 것이 크게 동요하지 않는 주요 이유였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내 집앞 눈 안치웠다간 ‘큰 코’

    내 집앞 눈 안치웠다간 ‘큰 코’

    올 겨울부터는 집이나 가게 앞 도로에 쌓인 눈을 집 주인 등이 의무적으로 치워야 한다. 눈을 치우지 않는다고 과태료 등을 물지는 않지만 길을 지나던 행인이 다친다면 민사소송을 통해 치료비를 물 수도 있다. 관리사무소에서 눈을 치우는 아파트와 달리 단독이 주 대상이 될 전망이어서 달동네 등 단독주택 거주자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눈치우기는 실제 거주자 몫 서울시는 지난해 7월 자연재해대책법의 개정으로 건축물 관리자의 건축물 주변 제설·제빙작업이 의무화됨에 따라 ‘건축물 관리자의 제설·제빙에 관한 조례’를 지난 7월 제정, 올 겨울부터 적용한다고 16일 밝혔다. 서울시 조례는 얼기 전에 눈을 치워야 하는 도로의 범위를 우선 차량통행 위주의 간선도로는 시와 자치구가 맡도록 했다. 그러나 사람이 다니는 보도와 좁은 이면도로는 주민이 치워야 한다. 눈을 치워야 하는 범위는 보도의 경우 건물을 둘러싼 길 전부이고 보행자 전용도로는 건물 출입구 앞의 폭 1m 구간이다. 낮에 내린 눈은 눈이 그친 때로부터 4시간 이내, 밤에 내린 눈은 다음날 오전 11시까지 치워야 한다. 다만 하루에 내린 눈의 양이 10㎝ 이상이라면 눈이 그친 때로부터 24시간 이내에 눈과 얼음을 치워야 한다. 특히 제설·제빙 책임은 건물의 소유자가 건물 안에 살고 있다면 소유자→점유자→관리자의 순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소유자가 거주하지 않으면 점유자→관리자→소유자 순이다. ●첫 눈 내리면 눈치우기 행사 건물의 소유자 또는 점유자에게 우선 책임이 있다는 의미는 누군가 그 건물 앞을 지나다 눈에 미끄러져 다쳐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면 우선적으로 손해배상의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미국 뉴욕, 캐나다 토론토, 중국 베이징 등 외국 도시는 제설·제빙의 책임을 법으로 정하고 위반하면 과태료 등을 부과함으로써 우리나라보다 더 강력한 책임을 묻는다. 서울시는 내년 3월15일까지 4개월 동안을 겨울철 종합대책기간으로 정했다. 제설대책본부(726-2310∼38)를 종합방재센터 상황실에 설치하고 24시간 가동한다. 제설장비 934대, 염화칼슘 99만565포대, 모래 3952㎡, 소금 24만 2895포대 등을 확보하고 강설 초기 신속히 투입할 방침이다. 금천구는 주민 스스로 눈 치우기에 나서는 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첫 눈이 내리면 전 공무원이 달려 들어 청사 주변의 눈 치우기 행사를 하기로 했다. 홍보물을 제작해 조례 제정을 알리는 캠페인도 하기로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눈이 내리면 크고 작은 사고 때문에 책임소재를 놓고 다툼이 발생하는데, 조례는 주민의식을 높이면서 눈 청소에 대한 기준을 정했다는 의미를 지녔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퇴직앞둔 日남편 ‘연금 분할’ 공포

    퇴직앞둔 日남편 ‘연금 분할’ 공포

    |도쿄 이춘규특파원|정년을 앞둔 일본 남성들이 퇴직금 분할에 이어 연금 분할 공포에 벌벌 기고 있다. 내년 4월부터 시행되는 ‘부부 후생연금 분할제’를 앞두고 황혼이혼을 벼르는 부인들이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가 시행된 뒤 이혼하면 배우자에게 후생연금의 최대 절반까지 나눠줘야 한다. 후생연금은 직장생활을 해 온 퇴직자들에게 주는 연금의 한 형태다. 연금 분할제도는 여성의 노후를 보장한다는 목적으로 도입됐으나, 황혼이혼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올 정도로 중·노년층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남편 퇴직금을 나눠 갖기 위해 남편 퇴직때까지 이혼을 미루는 부인들이 적잖은 가운데 연금 분할 제도의 시행을 기다리며 이혼을 미루는 부인들이 늘고 있다는 현지 언론의 지적이다. 일본 사회보험청은 지난달 2일부터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이혼할 경우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을 추산해주는 서비스를 개시했다. 그 결과 1개월동안 방문이나 전화, 팩스 등으로 관련 문제를 상담한 건수는 6283건에 달했다. 그 가운데 방문 상담자의 80%대는 여성이었다. 아울러 10월 말까지 한 달동안 분할 연금액 추산 결과를 통지해달라고 청구한 사람은 모두 1353명으로, 이 가운데 89%가 여성이었다. 부인들이 제도 시행을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혼시 연금 분할에서 불리한 입장이던 전업 주부들의 높은 관심을 보여준 결과”라고 언론들은 해석했다. 일본의 연금 분할제도는 남편이 연금보험료를 납부한 데는 아내도 기여한 바가 크기 때문에 연금을 나눠갖는 것은 당연하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연금 분할제도에 따라 내년 4월 이후 이혼하는 부부의 경우 당사자가 2년 이내에 분할을 청구하면 결혼한 기간에 비례해 후생연금의 일부를 받게 된다. 전업 주부로 가사에만 종사한 여성의 경우 최대 절반을 갖게 된다. 일본의 이혼 건수는 지난해 약 26만 2000건으로, 절정기였던 2002년에 비해 2만 8000건이 줄어드는 등 수년간 감소 경향을 보였다. 이는 실업률 하락의 영향으로 분석되지만 이혼 감소세가 시작된 시기가 연금 분할제가 구체적으로 논의되던 시기와 겹쳐있어 연금분할을 노려 이혼을 미루는 사례가 많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연금 분할제도에 대해 상당수 전문가는 오히려 ‘가난을 나눠갖는 제도’라고 우려하며 이혼한 여성의 생활 수준이 떨어질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taein@seoul.co.kr
  • 학교폭력에 ‘다친 가슴’ 엄마품서도 ‘닫힌 말문’

    아이들의 괴롭힘을 못 견디겠다며 집을 나갔던 초등학생이 사흘 만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컵라면으로 끼니… 병원복도서 새우잠 지난 9일 학교폭력을 이유로 가출했던 서울 노원구 모 초등학교 6학년 김모(12)군이 12일 0시30분쯤 집앞에서 발견됐다. 김군의 아버지(45)는 “집으로 수신자 부담 전화가 걸려와 받아 보니 ‘엄마’를 부르며 흐느껴 우는 소리가 나다 끊어졌다. 아들이 돈이 떨어지고 추워 집 근처로 왔을 거라고 생각해 찾아 나섰다가 집앞에서 발견했다.”고 말했다. 김군은 사흘동안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병원복도 등에서 새우잠을 잔 것으로 알려졌다. 김군은 현재 집 근처 병원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다. 김군은 9일 오후 3시40분쯤 ‘같은 학교 아이들이 계속 괴롭힌다. 졸업식 전까지 몸을 만들어 돌아와 해볼 수 있는 만큼 해보겠다.’는 내용 등이 적힌 메모장을 자기 방에 남기고 가출했다.메모에는 ‘몇달동안 다른 반 아이들이 나를 놀이터로 끌고 가 싸움을 걸고 무릎을 꿇게 한 뒤 이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경찰, 학교폭력 실제 여부 수사 착수 경찰 관계자는 “김군이 심한 정신적 상처를 받아 가출 이후 행적에 대해 부모에게조차 말문을 닫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조만간 김군이 안정을 찾는 대로 실제 학교 폭력이 있었는지에 대해 수사할 계획이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음악은 자신의 내부와 주파수 맞아야 감동”

    김문경(34) 특허청 약품화학심사팀 심사관은 직업과 취미 사이에서 ‘이중생활’을 한다. 그는 국내에도 많은 마니아를 갖고 있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1860∼1911)에 대한 연구로 정평이 난 음악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김씨는 2004년 3월 ‘방랑과 뿔피리’라는 부제로 ‘구스타프 말러’ 첫권을 펴낸 데 이어 2005년 9월 ‘황금시대’라는 부제로 2부를 출간했고 현재는 3부 ‘대지의 노래’를 준비하고 있다. 말러 전문가이지만, 강요는 하지 않는다. 그는 “음악은 자신의 내부와 주파수가 맞아야 감동을 느끼지 그렇지 않으면 소음이 된다.”면서 “혹 누군가 말러에 관심이 있어 문의하면 추천은 해준다.”고 말했다. 김 심사관이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았단 말러를 만난 것은 중학교 시절. 그는 “클래식은 지루하고 딱딱하다고 생각했는데 라디오에서 그의 교향곡 1번 ‘타이탄’을 듣고는 혼이 나갔다.”고 회상했다. 음반과 책, 악보를 수집해 독학하는 등 식지 않을 것 같던 열정은 사회생활로 한때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제약회사에서 6년 동안의 연구원 생활을 접고 2002년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 다시 말러에 대한 ‘갈증’이 찾아왔다. 그는 당시 “스폰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고 했다. 이후 공연 프로그램 해설과 기고, 강연, 저술 등 말러 전문가로 왕성하게 활동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음악 활동은 취미생활의 저변을 넓힌 것이지 다른 의미는 없다.”며 웃었다. 그는 지난달 일종의 클래식 입문서랄 수 있는 ‘클래식으로 읽는 인생’을 펴냈다. 음악 일변도의 해설이 아니라 문학과 미술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쉽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이다. 관련 음반 및 영상물을 추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음악 얘기에는 거침없던 그도 공직으로 화제가 넘어가자 새내기 사무관의 티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그는 지난 3월 약학박사학위를 받자마자 특허청의 특채에 응시했다. 그는 “솔직히 심사업무에 매력을 느꼈다.”면서 “지식을 활용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점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새 음반을 평하고 명반을 추천하는 일과 심사관 업무는 공통점이 많다며 직무에 대한 자신감도 감추지 않았다. 김 심사관은 한달동안의 교육을 마친 뒤 현재 공동심사를 맡고 있다. 단독 심사를 맡기까지는 좀 더 시일이 필요하다. 그는 “업무능력을 향상시켜 심사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면서 “음악칼럼니스트는 취미생활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14회 반달동요대상에 신귀복씨

    신귀복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부회장이 한국어린이문화예술원에서 수여하는 제14회 반달동요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상식은 15일 오후 5시 서울교육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 “17년간 ‘사랑의 광택’ 내왔죠”

    “17년간 ‘사랑의 광택’ 내왔죠”

    “힘들게 살다 보니 어려운 이웃이 더 잘 보이더군요.” 관악구 구두수선 사업장 연합단체 ‘관악녹지회’(회장 강규홍)가 17년 동안 ‘일일 사랑의 구두닦이’ 행사를 해오고 있어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녹지회가 이웃돕기를 시작한 것은 1990년. 한 회원이 모임에서 “술만 마시지 말고 좋은 일도 해 보자.”고 제안하면서부터다. 달동네 난곡이 가까운 데다 대부분 어려운 환경속에서 구두닦이를 시작한 터라 회원들은 금세 의기투합했다. 강 회장은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고 구두닦이를 시작한 회원들은 소년소녀가장을 볼 때마다 마음이 더 아팠다.”면서 “신명나게 이웃돕기를 준비했다.”고 회상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11살 때부터 구두닦이를 시작하거나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해져 구두닦이를 배운 회원들은 이웃의 고통을 자기 고통처럼 나누고 싶어했다. 이들은 일일 구두닦이 행사를 벌여 수익금 전액을 소년소녀가장과 무의탁 독거노인에게 전달하기로 했다. 대상자 선정은 구청에 맡겼다. 그해 9월 ‘사랑의 구두를 닦아 드립니다’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첫 행사를 열었다. 그리고 올해까지 9400여만원을 모아 이웃에게 전달했다. 지난 2일 개최한 올 행사에서는 201만 5000원이 모였다. 구두수선 사업장 47곳에서 800여켤레(한 켤레 2500원)의 구두를 닦은 셈이다. 강 회장은 “행사 날짜를 기억하고 스스로 찾아오는 손님도 생겼다.”면서 “어려운 이웃을 대신해 도와 달라며 성금함에 5000원,1만원을 넣기도 한다.”고 말했다. 앞서 도움을 받은 소년소녀가장들도 음료수를 들고 이날 사업장을 찾아온다. “넉넉한 사람만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라도 마음만 있으면 이웃에게 손 내밀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한국시장서 자존심 구긴 도요타

    한국시장서 자존심 구긴 도요타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한국시장에 야심차게 내놓은 하이브리드차가 하루에 평균 한대꼴도 안 팔려 ‘자존심’을 구겼다. 반면, 이런저런 결함이 자꾸 발견돼 올 들어 리콜(자발적 소환 수리) 대수는 벌써 3000대에 육박한다. 본국인 일본에서의 판매도 계속 감소세다. ●출시 두달동안 51대 계약 그쳐 하이브리드차에 관한 한 세계에서 가장 앞서간다고 자부하는 도요타이지만 한국시장에서는 영 맥을 못 추고 있다. 판매량이 다른 모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국도요타가 국내 시장에 ‘럭셔리 하이브리드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를 표방하며 ‘렉서스 RX400h’를 팔기 시작한 것은 지난 9월1일. 출시날짜(20일)보다 거의 3주 먼저 계약을 받기 시작했지만 10월말까지 두달동안 겨우 51대 계약에 그쳤다. 하루에 평균 한대도 못판 셈이다. 도요타의 인기 차종인 RX350이 한달에 40∼50대의 계약고를 올리는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게다가 똑같이 ‘럭셔리 SUV’를 앞세웠던 국산차 베라크루즈(현대)가 일주일새 무려 701대나 팔려나간 점을 감안하면,RX400h의 명성은 더욱 무색해진다. 도요타측은 RX400h가 기름은 덜 들면서도 힘이 좋다고 강조했었다. 실제 공인연비는 ℓ당 12.9㎞로 가솔린 모델인 RX350(8.9㎞/ℓ)보다 낫다. 힘은 272마력으로 비슷하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브리드차의 성능이나 애프터서비스(AS)에 대해 아직은 불안감이 상존해 있어 국내에서 뿌리내리기는 시기상조의 감이 있다.”고 풀이했다. 한국도요타측은 “하이브리드차가 국내 소비자들에게 아직 생소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전하는 셈”이라고 애써 자평했다. ●일본내 판매도 감소세 일본자동차판매자협회(JADA)가 지난 1일 발표한 ‘10월 자동차 판매 현황’에 따르면, 도요타는 총 12만 6217대를 팔아 지난해 같은 달보다 6.6% 줄었다. 일본 자동차업계 전체가 16개월 연속 감소세에 놓여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업계 평균치(-6.2%)를 웃도는 감소세다. 같은 달 미국에서는 18만 9011대를 팔아 1년 전보다 9.2% 증가했다. 하지만 30만대 이상을 판매한 제너럴모터스(GM)의 증가세(22%)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렉서스도 2.9%(2만 4006대) 증가에 그쳤다. ●꺼지지 않는 ‘리콜 비상등’ 최근 잇단 리콜 사태로 ‘비상’이 걸린 가운데, 국내서도 올 들어 9월말 현재 리콜대수는 3000대에 육박하고 있다. 건설교통부가 1일 공표한 ‘3·4분기(7∼9월) 자동차 리콜 현황’에 따르면 한국도요타는 8월초에 렉서스 RX330 1863대를 리콜했다. 운전석 아래의 바닥 카펫을 고정하는 커버가 빠져 가속페달과 접촉할 위험이 높아서였다. 앞서 IS250,GS430 등 주력모델도 안전띠와 에어백 결함으로 리콜했었다. 도요타는 국내 수입차 순위(등록대수 기준)에서도 9월에 메르세데스-벤츠에 1위 자리를 빼앗겼다.10월 들어서도 같은 일본차인 닛산 인피니티의 G35 돌풍이 거세 재탈환이 확실치 않다. 곧 발표될 10월 성적표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데스크시각] 북한과 중국사이/이석우 국제부 부장급

    압록강 너머 신의주를 마주보고 있는 중국의 국경도시 단둥(丹東)에는 ‘항미원조(抗美援朝)기념관’이 우뚝 서 있다. 중국의 1950년 한국전 참전을 정당화하고 북한과 중국 사이의 동맹과 우의를 강조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기념관 이름 그대로 ‘(침략자)미국에 대항해 조선(북한)을 돕는다’는 주제로 각종 사진, 자료 등이 전시되어 있다. 베이징 중심거리 창안다제(長安大街) 서편의 국방부 청사 옆에 위치한 군사박물관에도 ‘항미원조 전시관’이 있다. 이곳의 주제도 단둥 항미원조 기념관과 다르지 않다. 각종 비밀서류와 사진자료, 당시 사용됐던 무기와 병사들의 소지품들, 중국군이 유엔군 공습을 피해 한반도 곳곳에 만들었던 지하동굴 모형이 눈에 띈다. 전시관 가운데에는 3∼4m 길이의 한반도 지도가 동판으로 제작돼 바닥에 고정돼 있다. 중국군의 이동 경로와 주요 격전지 등이 새겨져 있다. 관람객들이 서울, 대전 등이 표시된 지도를 밟고 다니며 즐거워하는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전쟁이 끝난 지 20∼30년후에 태어난 젊은 중국인들도 대부분 ‘항미원조’의 대의명분을 의심치 않는다. 그들은 “참전으로 한반도에서 침략자를 몰아낼 수 있었다.”며 자랑스러운 역사로 여긴다.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도움을 받고도 고마워조차 않는다며 분개하는 사람들이 많다.“중국의 희생으로 얻어낸 승리인데도 북한은 자기 힘으로만 승리했다는 식이다.”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중국인들을 많이 봤다. 항미원조를 둘러싼 ‘주체의 북한’에 대한 중국인들의 ‘배은망덕’의 느낌만큼 ‘김정일의 북한’에 대한 태도도 상상 외로 부정적이다. 공산주의 간판 아래서도 시장경제를 꽃피우고 있는 중국인들은 국민을 굶겨죽이는 ‘부자세습왕조’를 놓고 “40년전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보다 더 심한 것 같다.”고 혀를 찬다. 북한의 배은망덕을 탓하는 개인 감정이나 시대착오적 집단이란 일반 국민의 황당한 느낌속에서도 김정일정권에 대한 중국의 ‘보살핌’은 각별하다. 혈맹의 기억과 유대는 사라졌어도 전략적 이해는 오히려 강해진 까닭이다. 그런 중국이 “북한을 세게 몰아붙여 6자회담 복귀를 결정하게 했다.”는 소식들이 나왔다. 뉴욕타임스 등은 지난주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압박을 위해 9월 한달동안 원유 공급을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같은 이야기들은 전반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핵 실험뒤 중국의 대북 압력들을 1일자 워싱턴포스트(WP)는 “김정일 정권을 보호하려는 중국의 전략”이라고 분석했다.6자회담 재개로 미국과 국제사회의 강경 대응을 차단, 북한 붕괴를 막겠다는 뜻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런 조치로 중국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에게서 감사의 말까지 들었다. “중국이 미국의 ‘하청’을 받아 북핵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중·미 협조는 두드러졌고 중국 중재속에 6자 회담의 틀을 유지해 왔다. 항미원조의 전쟁 상대 미국과 동상이몽(同床異夢)속에서도 중국은 북핵 사태가 악화되지 않게 수위를 조절하며 중재자로서 입지도 높였다. 고속성장과 초강대국으로 가는 길에 북한 때문에 발목 잡히지 않으려는 터라 무리한 해결보다는 북핵의 안정적 관리와 한반도 현상 유지에 중국은 더 무게를 둔다. 한반도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질서재편을 경계하는 중국에는 북핵 문제는 도전이자 기회이고 미국에 대한 유용한 카드다. 북한에 대한 압박과 지원, 미국에 대한 협력과 견제사이의 미묘한 균형잡기를 통해 중국은 북핵 위기 와중에서 한반도·동북아 균형자로서 입지를 다졌다. 북한도 이같은 중국 입장을 최대한 역이용하고 있고 ‘북핵 위기’는 북·중 두나라를 전통적 혈맹과 전략적 동반자, 후견인과 피보호자, 이해충돌 당사국 사이를 오가게 하고 있다. 이석우 국제부 부장급 jun88@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구필화가 한미순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구필화가 한미순씨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다. 스물아홉살 처녀였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월의 어느날,200통의 청첩장을 한아름 받았다. 신부 아무개, 가만히 보니 자신의 이름이었다.11월18일이라는 결혼 날짜도 박혀 있었다. 한 남자의 프로포즈였다. 처녀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곧 ‘그래, 이 남자와 결혼하자.’고 마음먹었다.5일 후였다. 처녀는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을 잃었다. 한달 후에 가까스로 깨어나보니 자신의 몸은 온데간데 없었다. 미동도 할 수 없는 전신마비, 지옥보다 더한 고통의 삶이 시작됐다.22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입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 ‘가난하면 어떠랴/예쁘지 아니하면 어떠랴/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살고 싶어서/뒤엉킨 잔가지 잘라내고/호화로운 부귀영화도 싫어/단순하여 성숙하다/발가벗은 순백의 영혼은/채워주실 여백을 남겨두고∼’ 시인이자 구필(口筆)화가로 잘 알려진 한미순(51)씨. 그동안 입으로 처절하게 토해낸 시집과 수필집만 다섯권, 또 이빨이 아프도록, 시리도록 그려낸 그림을 모아 두번의 개인전까지 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살면서 오로지 한 조각 삶의 빛을 밝히며 살아왔다. 사지가 멀쩡한 사람조차 이루기 힘든, 전신마비 장애인이 해낸 결과물들이기에 세상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함이요 아름다움이다. 한씨는 오는 11월1일 구원의 빛을 또 한번 밝힌다. 자신의 세번째 개인전(서울 인사동 인사갤러리,7일까지)을 여는 것. 첫번째 서양화전이자 8년만의 일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그래서 전시 제목을 ‘자연과 삶의 숨소리’라고 했다. 지난 26일 오전 서울 거여동의 한 아파트. 초인종을 눌렀더니 “그냥 들어오세요.”라는 소리가 문 밖으로 희미하게 들려온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쪽 방이에요.”라는 목소리가 가냘프게 다가왔다. 소리나는 쪽으로 갔더니 병원에서 볼 수 있는 1인용 침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서 한씨는 휠체어에 의지해 컴퓨터 자판을 어렵게 누르고 있었다. 손을 쓸 수 없으니 입에 문 붓대를 사용했다. 한씨는 ‘종료 버튼’을 막 누르고 나서야 “어서 오세요.”라고 손님을 맞이했다. 그러면서 휠체어 바퀴에 달린 브레이크를 풀어달라고 했다. 도우미 아줌마의 행방을 물었더니 방금 전 미장원에 갔단다. 혹시 휠체어가 움직일까봐 아줌마가 브레이크를 잠그고 외출했음을 직감했다. 문득 건강한 게 오히려 민망스러워진다. 잠시 사진 포즈를 취해달라고 요청했다.“오른손을 오른쪽으로 옮겨주세요.” 손가락 피부가 약간 창백했으나 나이에 비해 무척 고와보였다.“전시 준비하느라 요즘 무척 바쁘시지요.”라고 했다. 지체없이 돌아온 대답이 “뭐, 입만 바빠요. 여기저기 전화하느라, 가볼 수도 없고….”였다. 이때였다. 전화벨이 울렸다.“저기 전화 좀 갔다줄래요.” 무선 전화기를 들고 와 한씨의 귀에 대주었다. 한 2분쯤 통화했을까. 팔이 약간 불편해짐을 느낀다.‘20년 넘게 전신마비로 살아온 고통은 정말 오죽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제 그림은 손을 입으로 대신하는 삶이지요. 삶은 그림으로 승화시키는 예술이고요. 처음에는 한국화였지만 이번 전시는 서양화입니다.” 한국화에서 서양화로 방향을 틀게 된 까닭이 도우미에게 부담을 덜 주기 위해서라는 설명은 정말 의외였다. 하긴 누군가가 옆에서 물감칠해주고 붓을 입에 물려줘야 비로소 그림을 그릴 수 있으니 말이다. 도우미들도 처음에는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대부분 짜증을 내더란다.8년동안 개인전을 열지 못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고 덧붙인다. 이번 전시에는 주변과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평범한 풍경, 즉 꽃·소나무·물·벼·사람 등을 소재로 했다. 그 안에 살아 있는 예쁘고, 맑고, 고요하고, 향기로운 느낌을 캔버스에 살려 오래도록 곁에 붙잡아두어 아름다운 삶의 합창을 하고 싶어서였다. 전시작품은 모두 38점. 미술평론가 정재규씨는 “입에다 붓을 물고 물감들을 배합해 사물의 형태를 형상화하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참으로 정신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면서 “소나무 그림에서는 풍파를 이겨낸 그의 강인함이 배어 있고, 고개 숙인 벼이삭에서는 열매의 성숙함을 엿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원근감과 음양의 심도있는 구사는 감상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전시 팸플릿을 통해 설명한다. “교통사고는 한순간에 척수손상 사지마비로 손과 발, 전신을 꽁꽁 결박했지요. 입에 붓을 물고 그리는 그림은 캄캄한 세상에서 한줄기 빛이자 유일한 자유였습니다.” 화제를 바꿨다. 가을날씨가 좋은데 바람쐬러 가끔 나가느냐고 물었다.“도우미 아줌마 눈치봐야지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연 한토막 들려준다. 수년 전 상도동 지하방에 살 때였다. 극동방송을 통해 도우미를 요청했다. 스물한살의 앳된 처녀가 왔다. 하지만 하루만에 한씨를 방치해놓고 사라졌다. 소변이 마려웠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누워서 소리치는 일뿐이었다.“사람 살려요.”라고 거듭 외쳤다. 물론 전화도 걸 수 없다. 결국 죽기 직전 119요원에 의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이후 도우미는 자신에게 하늘 같은 존재였다. 한씨는 한 달에 한 번 도우미 도움으로 ‘기독문학회’ 모임에 나가는 것이 유일한 외출이다. 또 매년 9월 거창고교 예술제에 초대받아 지방나들이를 한다. 자신의 자전 에세이를 읽은 거창고 교장선생의 배려 덕분이다. 이때마다 자연의 아름다움, 또 이웃과 더불어 함께 살아야 할 가치를 소중하게 느끼고 돌아온다. 한씨는 1989년 세계 구족화가 협회에 가입했다. 리히텐슈타인에 본부가 있으며 현재 전세계 회원은 모두 500명. 이중 한국인 정회원은 5명이다. 한씨는 이 협회에서 받는 돈으로 겨우 생활하고 있다. 그나마 돈푼을 아끼고 아껴 이번 전시비용을 충당했다. 한씨의 고향은 충남 부여. 가난한 농가의 2남3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장학생으로 중학을 입학했지만 가난 때문에 고교진학을 포기했다.20세에 서울로 올라와 달동네에 혼자 살면서 모 전자회사에 취직했다. 배움의 열정을 버리지 못해 8개월동안 열심히 공부해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이어 선생님이 되고 싶어 방송통신대 초등교육과를 졸업했다. 그러던 84년 10월 결혼과 학교 선생, 피아노 교습소 운영 등 새로운 삶의 의욕으로 꽉 차 있을 무렵에 교통사고로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고 말았다. 소망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단 하루만이라도 남의 도움 없이 살아보는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가슴이 따뜻한 도우미와 평생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작품활동도 저절로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애써 웃었다. “전시 끝나면 이빨 치료를 해야 돼요. 그동안 손 역할을 하느라 많이 망가졌거든요.” km@seoul.co.kr
  • [사회플러스] ‘우행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한국토지공사는 11일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장면 속에 토공을 비방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나와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제작사와 배급사를 상대로 영화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토공은 신청서에서 “영화 시작 35분쯤 달동네를 묘사하는 장면에서 ‘때려잡자 토지공사 각성하라.’라고 크게 쓰인 현수막이 정지화면으로 4∼5초 동안 상영돼 기업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치고 명예를 중대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코앞도 안보였는데…새 희망으로 눈부셔요

    코앞도 안보였는데…새 희망으로 눈부셔요

    “코앞도 제대로 안 보이니 연탄 구멍을 잘못 맞추는 일이 허다했지요.” 1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새빛안과병원 강남분원에서 백내장 무료수술을 받은 정경열(69) 할머니는 “그냥 안 보이는 대로 살아야겠거니 하고 지레 포기했었는데…이런 기회가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서울신문이 창간 102주년을 맞아 새빛안과병원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무료 백내장 시술 행사를 통해 어두운 세상에서 불편을 겪어야 했던 소외계층들이 빛을 찾고 있다. 정 할머니는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8번째 주인공이다. 정 할머니의 백내장 수술은 매우 우연한 기회에 이뤄졌다. 사실 서울 노원구의 추천을 받아 1차 시술 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이웃집에 살고 있는 허련(70) 할아버지였다. 하지만 앞이 뿌옇게 보여 백내장이 심한 줄로만 알았던 허 할아버지의 병은 ‘익상편’으로 확인됐다. 미세먼지나 자외선 등의 자극으로 인해 눈 흰자에 살이 차오르는 것으로 ‘백태’로 알려져 있다. 정작 백내장 진단을 받은 것은 허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 병원을 함께 찾은 정 할머니였다. 안과에 온 김에 받아보자고 한 검사에서 양쪽 눈 모두 백내장이 심한 상태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정 할머니는 백내장뿐 아니라 좌우 시력이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고도근시로 오랫동안 고생을 해오던 터였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인 정 할머니는 노원구 중계본동 달동네에서 월세 10만원짜리 단칸방에 혼자 살고 있다. 신발 한 켤레 들여놓을 곳 없는 3평짜리 방에 살며 연탄 한 장도 사회단체의 지원을 받아 겨우 겨울을 나는 형편이었다. 아파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엄두를 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날 왼쪽 눈에 백내장 초음파 유화술을 받은 정 할머니는 “일전에 안과를 갔을 때 백내장일지도 모른다는 진단만 받았고, 그저 노안이 심해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면서 “이제 수술을 받았으니 더이상 버스를 눈앞에 두고도 놓치는 일은 없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서울신문과 새빛안과병원의 도움으로 지난달 25일 왼쪽 눈의 익상편 수술을 받은 허 할아버지도 기초생활수급권자로 형편이 여의치 않아 병원에 가지도 못했었다. 허 할아버지는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5년 넘게 입원해 있다가 세상을 떠난 부인의 병수발을 하느라 재산을 모두 잃은 채 혼자 살고 있다. 정확한 병명조차 알지 못한 채 고생했던 허 할아버지는 “눈앞이 뿌옇게 보여서 항상 몸상태도 안 좋고 길 가다가 움푹 파인 곳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는데, 수술을 받고 난 뒤 너무 잘 보여 신기할 정도”라고 좋아했다. “우연한 기회에 큰 도움을 받게 돼 어떻게 다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처럼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에게 이런 좋은 기회가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어 더 밝은 세상을 보게 된 두 노인의 얼굴에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가 번졌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OPEC 6개국 “하루 100만배럴 감산”

    석유수출국기구(OPEC) 6개 회원국이 하루 100만배럴의 원유 감산에 합의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9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OPEC 전 회원국 감산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날 감산 소식이 전해지자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는 곧바로 유가가 배럴당 60달러를 돌파했다.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중질유(WTI)의 시세는 이날 오전 배럴당 42센트 오른 60.18달러를 기록했다. 레비 아주오누마 OPEC 대변인은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리비아, 알제리, 쿠웨이트,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등 6개 회원국이 자발적으로 감산에 합의했고, 즉시 시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6개 회원국의 감산 규모는 OPEC 회원국 전체가 9월 한달동안 생산한 2960만배럴의 3.4%에 이른다. 앞서 에드먼드 다우코루 OPEC 의장은 8일 회원국 석유장관들에게 유가 안정에 대한 결의를 과시하기 위해 즉각 감산 조치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OPEC 전체 11개 회원국이 감산을 공식 결정하게 되면 이는 2004년 4월 이후 처음이다. 현재 OPEC이 밝힌 공식 일일 최대 산유량은 2800만배럴이다. 이에 따라 로이터는 OPEC이 이날 회원국 전체 감산안을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고 제기했다. 또 오는 18∼19일 빈에서 특별 각료회담이 소집될 것으로 점쳐진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에 호응하는 것은 (OPEC이) 유가 안정을 적극 원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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