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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의 사회면] 판잣집과 달동네 <상>

    [그때의 사회면] 판잣집과 달동네 <상>

    가수 남인수가 휴전 이듬해인 1954년 발표한 ‘이별의 부산정거장’ 속의 판잣집은 피란민의 애환과 고난을 말해준다. 고향을 잃고 집을 잃은 사람들은 그곳을 터전으로 해서 다시 삶을 이어 갈 수 있었다. 40여년 전만 해도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는 온통 판잣집으로 뒤덮이다시피 했다. 6·25 전쟁 후 집을 잃은 사람들과 북한 피란민들에게는 판잣집이나 움막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일제 강점기에도 무허가 불량주택이 있었다. 땅에 흙담을 만든 뒤 그 위에 가마니나 거적을 덮은 것으로 토막으로 불렸으며 그 속에 사는 사람은 토막민이라고 했다. 유치진의 희곡 ‘토막’은 바로 일제하 토막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소재로 한 희곡이다. 판잣집은 판자와 나무로 만든 집이었다. 판자촌의 생활은 비참했다. 말이 집이지 겨우 비바람만 피할 수 있을 정도로 허술했다. 불법 가옥이어서 전기도 제대로 공급되지 않았다. 우물은 물론이고 화장실까지 공동으로 썼다. 전쟁이 터지면서 200만명에 가까운 이북 동포들이 월남하고 농어촌 주민들이 상경하면서 서울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쟁 이후의 혼란 속에 판자촌은 걷잡을 수 없이 생겨났다. 서울의 청계천 주변과 용산 해방촌, 금호동 등에 집중적으로 생겼다. 해방촌은 최초의 판자촌이다. 해방촌은 해방(광복)을 전후해서 생겨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행정구역상으로는 서울 용산구 용산동 2가 일대다. 광복 후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들이 먼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전쟁 이후 월남한 동포들이 합류하면서 수만 명이 거주하는 거대한 판자촌이 형성됐다. 38도선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38 따라지’라고 했다. 따라지는 화투에서 한 끗을 의미하는데 하찮은 인생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낮춰 불렀다. 청계천 양쪽에도 판자촌이 형성됐다. 수표교까지는 판잣집이 없었지만 종로 3가 근처부터 하류 쪽으로 판자촌이 길게 띠를 이루고 있었다. 대폿집과 철물점, 보신탕집도 판잣집이었다. 도시 미관을 해치고 화재가 자주 발생함에 따라 불법 판잣집을 마냥 묵인해 줄 수도 없었다. 정부는 우선 간선도로 주변의 판잣집을 자진 철거하도록 유도했다. 미관보다 더 큰 문제는 화재였다. 판잣집의 재료가 기름칠한 종이와 나무였으므로 화재에는 무방비였다.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은 한 집에서 불이 날라치면 수십, 수백 가구가 동시에 불탔다. 그러나 자진 철거는커녕 도리어 더 불어나고 매매행위까지 공공연하게 발생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판잣집을 전부 철거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1955년 무렵이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그해 6월 무렵 자진 철거한 판잣집은 9322가구이며 철거 대상 판잣집은 6만 가구에 이르고 있다. 사진은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판자촌 화재(1972년 1월 5일). 손성진 논설실장 sonsj@seoul.co.kr
  • 수지, 또 1억 원 기부… 끊임없는 선행 ‘기부 천사’

    수지, 또 1억 원 기부… 끊임없는 선행 ‘기부 천사’

    가수 겸 배우 수지가 생명나눔실천본부에 1억원을 기부했다. 18일 생명나눔실천본부에 따르면 수지는 지난 14일 생명존중문화 확산 운동과 환자 치료비 지원 사업을 위해 생명나눔실천운동본부에 후원금 1억 원을 전달했다. 앞서 수지는 지난해 12월 생명나눔실천본부가 달동네 백사마을 주민들에게 솜이불을 전달한 제3회 따뜻한 정 나누기 행사에도 기부금을 전달했다. 이외에도 수지는 백혈병, 소아암 등 난치병 환자들을 위해 기부활동을 펼쳐온 바 있다. 특히 수지는 2015년에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 791번째 회원이 되기도 했다. 한편 수지는 지난 1월 솔로 데뷔 앨범 ‘Yes? No?’를 발매했으며, SBS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가제)에서 이종석과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사진=더팩트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자연의 순수함을 추구하는 백중기 서양화 개인전 열려

    자연의 순수함을 추구하는 백중기 서양화 개인전 열려

    서양화가 백중기의 제19회 개인전이 새달 4일까지 서울 인사동 희수갤러리에서 열린다. 강원 영월에서 자연을 대상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백 화백의 이번 전시에는 동강의 절경인 어라연을 그린 ‘어라연’(193*112cm)을 비롯. ‘홍매 2’(120*60cm) 등 20여 점의 최근작들을 선보이고 있다. 두터운 마티에르 기법으로 유화 물감을 나이프로 켜켜이 찍어 그린 풍경들은 작가가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가보지 않은 길’을 추구하는 작업정신을 보여준다. 산간 작업실에서 두문불출하던 작가는 작년과 금년 초, 바다가 있는 도시로 스케치 여행을 떠났다. 작품 ‘동피랑’(145*97cm)은 통영 중앙어시장 뒷산 달동네마을, 벽화마을로 유명한 동피랑(동쪽 벼랑 위의 마을)을 그린 것인데, 그는 동피랑을 관람자들에게 정겨운 우리 이웃마을로 재탄생시켜 놓았다. 지붕 위에 ‘순정다방’ 간판이 걸린 한적한 시골 길가의 외딴집, 하얀 메밀꽃밭으로 둘러싸인 산간 집, 석양에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붉은 빛으로 뒤덮인 풍력기가 있는 바닷가 풍경 등이 보는 이들의 눈을 매료시킨다. 백 화백은 작업노트를 통해 “내 옆에는 늘 어린 꼬마아이가 있다. 그 아이의 얼굴은 산속 맑은 시냇물에 어린 달님 같고, 여린 몸은 신 새벽에 처음 우는 종달새의 몸짓을 닮았다”면서 “내 그림은 이 아이의 몸짓과 소망하는 꿈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그의 작업은 자신의 분신이기도 한 ‘꼬마아이’처럼 늘 티 없이 맑은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을 추구하고 있다. 또 밤하늘에 무수히 떠있는 별을 헤며 숲속 오솔길을 걸으면서 자연과 교감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경형 주필 khlee@seoul.co.kr
  • 서울 구석구석 복지 들고 “찾동이가 찾아갑니다”

    서울 구석구석 복지 들고 “찾동이가 찾아갑니다”

    기동성 높여 위기 상황 대처서울시 복지전용 차량인 분홍색 ‘찾동이’가 본격적으로 빈곤위기 가구를 찾아간다. 서울시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현장 복지전용 차량인 ‘찾동이’를 이달 말 17개 자치구 171개 동에 배치한다고 22일 밝혔다. 지난해 7월 은평구 응암2동에 시범적으로 복지전용 차량 한 대를 배치해 운행한 바 있지만 ‘찾동이’라는 이름으로 주민들을 방문하는 건 처음이다. 시는 ‘달동네’ 등 걸어서 다니기 힘든 지역과 저소득층 밀집지역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내년에는 24개 자치구 342개 동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찾동 복지플래너 등이 현장을 방문할 때 도보 이동을 하면 최대 4시간이 소요되는 실정이라 전용 차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찾동이를 이용하면 더 많은 곳을 방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원물품이나 의료장비 등을 싣고 가서 위기 상황에 적기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 지난해 은평구에서는 복지플래너와 방문간호사가 재개발 철거 예정지역을 찾아갔다가 당뇨 쇼크사 직전인 어르신을 급히 찾동이에 태워 응급실로 옮기기도 했다. 서울시 찾동은 오는 7월부터 24개 구 342개 동에서 시행된다. 지난해 18개 구 283개 동에서 6개 구 59개 동이 확대됐다. 찾동은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려고 서울시가 도입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따뜻한 마을공동체를 형성할 때까지 찾동 혁신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공동변소·연탄가게·솜틀집… 고단한 시절 멈춘 곳

    [명인·명물을 찾아서] 공동변소·연탄가게·솜틀집… 고단한 시절 멈춘 곳

    온 나라가 잘살아 보겠다며 땀 흘렸던 1960~1970년대. 굶주린 배를 부여잡기 일쑤였던 그 시절,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의 삶은 혹독했다. 지금은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며 한잔 술에 호기롭게 말하지만 당시는 춥고 황량하기만 했다. 한편으론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리움과 추억으로 회자된다. ‘달동네’는 도시 빈민들의 상징적인 주거 공간이었다. 가파른 언덕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는 판잣집들은 값싼 주거지인 동시에 생존의 공동체였다.달동네란 이름은 마을이 높은 산자락에 위치해 달이 잘 보인다 해서 붙여졌다. 혹은 고단한 삶 때문에 달을 바라보며 출퇴근했기에 그리 불렸다는 말도 나온다. 지금은 대개 재개발로 흔적을 찾아보기 쉽지 않지만, 인천에 지난 시절 달동네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곳이 있어 찾아갔다. 인천 동구 송현동에 위치한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은 1960~1970년대 달동네 사람들의 생활상을 테마로 한 체험 중심 박물관이다. 수도국산(水道局山)은 동구 동인천역 뒤에 있는 산이다. 개항기 이후 일본인들이 인천 중구 지역을 차지하자 그곳에 살던 조선인들이 수도국산으로 쫓겨나면서 산자락 주거지가 탄생했다. 그 후 6·25전쟁 피란민과 산업화 시기 실업자들이 몰려들어 18만 1500㎡ 규모인 동네에 3000여 가구가 모둠살이를 시작했다. 수도국산 박물관은 과거의 흔적과 기억을 모아 실제 달동네 터 꼭대기에 2005년 10월 건립됐다. 박물관을 향해 언덕을 오르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히지만 정상에선 인천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여 과거와 현재를 데자뷔하는 듯하다. 박물관은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이 층으로 나뉘어 있다. 관람 순서가 정해져 있지는 않다. 제1전시실은 990㎡ 규모로 영화 세트장처럼 과거 달동네 모습을 실감 나게 재현한 공간이다. 어두컴컴한 실내 공간 안에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연탄가게, 구멍가게, 이발소, 솜틀집 등이 자리한다. 구멍가게에는 예전에 인기를 끌던 과자와 음료수가 진열돼 있고 솜틀집에서는 마네킹이 솜을 틀고 있다. 여럿이 사용했던 공동구역의 공동수도와 공동변소는 금방이라도 악취가 올라올 것처럼 현실감 있게 묘사해 놓았다. 달동네는 여러 가구가 수도나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당연했다. 줄을 서서 물을 길었고, 아침저녁으론 화장실 앞에서 문을 두드리며 재촉하는 게 흔한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달동네는 이웃관계가 지속되는 공동체였다. 옆집 담벼락이 우리 집 담벼락이기도 했고 TV가 있는 집으로 동네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곳 전시실에는 그런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 낸 가정집의 모습도 보인다. 좁은 쪽방 안에는 진짜 사람처럼 마네킹들이 TV 앞에 모여 김일의 레슬링을 관람하고 앉아 있다. 흑백 TV에서는 김일의 실제 레슬링 경기 영상이 재생돼 현실감을 더해 준다. “이야 김일이다, 김일!” 지난 15일 전시장을 관람하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발길을 멈추고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마치 생중계를 보는 것처럼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하다가 경기가 끝나자 웃음을 머금으며 발길을 돌렸다. 아마 예전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함께 온 손자는 이런 광경이 어리둥절한 눈치다. 요즘 아이들은 달동네 생활상에 공감하기 힘들겠지만 다양한 체험을 통해 그 시절을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전시실 내 곳곳에는 물지게 체험, 연탄불 갈아보기, 주사위 놀이 등 체험코너가 마련돼 있다. 또한 골목에 놓여 있는 터치스크린 컴퓨터를 누르면 전문 작가들이 촬영한 달동네 모습부터 실제 달동네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다. 기성세대에게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아이들에게는 잠시나마 부모의 삶을 느끼게 해 세대 간을 이어 주는 장소다. 2층 제2전시실로 올라가면 추억 어린 상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 상점들은 실제로 인천을 대표했던 가게를 본떠서 재현해 놓았다. 가장 먼저 1971년부터 영업했던 ‘우리사진관’이 있다. 사진관 안에는 1970~1980년대에 촬영한 사진들이 비치돼 있고 옛 교복과 교련복을 직접 입어볼 수 있다. 그 옆은 ‘미담다방’이다. 미담다방은 동인천역 축현파출소 옆에 있었던 다방으로 1960년대부터 인천의 명소였다. 공간이 크지는 않지만, 옛 다방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푹신한 다방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눌 수 있고 한쪽에는 LP 판이 빼곡한 뮤직박스가 있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다방 앞에는 인천 토박이라면 대개 들어본 바 있는 ‘송림양장점’과 ‘창영문구’가 자리잡고 있다. 기획전시실에서는 달동네박물관의 11번째 기획 특별전인 ‘추억 속 우리집에 가다’를 오는 5월 28일까지 개최한다. 특별전은 지역 주민들이 기증한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았기에 의미를 더한다. 실제 살림살이로 쓰던 드레스 재봉틀부터 타자기, 라디오, 선풍기 등이 오랜 세월을 간직한 채 전시돼 있다. 이 가운데는 1950년대부터 동구 금곡동 배다리에 위치했던 ‘20세기 약방’에 관한 자료를 기증받아 마련된 공간도 있다. 박물관 관람의 종착점은 ‘추억의 구멍가게’다.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옛 과자와 기념품, 만화책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관람료는 어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5~12세) 500원이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월요일은 휴관한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살림남’ 김정태, 눈물 흘리며 어머니 떠올려 “죽을 때 까지 못 잊을 것”

    ‘살림남’ 김정태, 눈물 흘리며 어머니 떠올려 “죽을 때 까지 못 잊을 것”

    배우 김정태가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 지난 31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살림하는 남자들’에서는 배우 김정태가 어머니와 관련된 추억을 꺼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김정태는 “오늘 출연진들을 데리러 부산역에 마중을 나갔을 때 전에 어머니와 살던 달동네가 있었다. 그 쪽을 지나오는데 옛날 생각이 많이 나더라”며 말문을 열었다. 김정태는 과거 어머니와 함께 간경화를 앓았던 사실을 고백하며 “간이 좋지 않아서 의사가 영화 촬영을 나가는 것을 말렸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어머니가 체크카드에 돈이 있으니까 찾아 가라고 하더라. 카드에는 여섯 가족 전재산으로 3만원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배우를 하겠다는 철없는 아들에게 3만원을 주고는 뒤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더라. 죽을 때 까지 (그 모습을) 못 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상황에서 돌아가셨으면 ‘나이가 드셨으니까’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좀 덜 아팠을 텐데, 너무 힘들게 살다 가셔서 (마음이 아프다). 나와 똑같은 병이었는데 어머니는 나를 고쳐서 살게 해주시고, 어머니는 돌아가셨다는 게 너무 가슴 아프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사진=KBS2 ‘살림하는 남자들’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당선 소감] 문학은 상상의 세계로 나를 인도해 주는 길잡이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당선 소감] 문학은 상상의 세계로 나를 인도해 주는 길잡이

    고교 시절 나의 꿈은 양치기였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에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해적이 되고 싶었으며 광부가 되어 금광을 찾아 떠나고 싶었다. 모두 유아적 상상력에서 비롯된 꿈들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되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 둘 떠올려 보자면 정말 끝이 없을 것 같다. 이 가운데 비교적 오랜 시간 간직한 꿈이 양치기였는데, 나름대로 현실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조금 웃음이 난다. 돌이켜 보면 내 마음속에 이러한 낯설고 막연한 꿈들을 심어줬던 건 문학이었다. 내 손을 잡고 매번 나를 가장 먼 곳으로 데려갔던 것도 문학이었다. 사실은 꽤 오랫동안 잊어버린 채 지내고 있었다. 세상과 멀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거나 새로움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붙들고 있었던 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분명 양치기를 꿈꾸던 그 때의 두근거림을 기억한다. 아직 가보고 싶은 곳이 많다. 실제로는 드넓은 초원도 양떼도 본 적이 없지만 다시 한 번 믿고 싶다. 시가 나를 그곳으로 데려가기를. 다음주면 이사를 하게 된다. 2년간 살았던 달동네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고 한다. 모두가 떠난 집 앞 골목길에 버려진 가구들이 즐비하다. 익숙한 것들을 버리는 건 참 힘들다. 그러나 어쩌면 삶은 존재보다 더 많은 부재로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곁에 있어준 사람들과 떠난 사람 모두에게 감사하다. 저를 호명해 주신 황현산, 정끝별 교수님 감사드립니다. 오랜 세월 제게 시가 되어 주신 이천호 선생님 그립습니다. 아낌없는 사랑을 주시는 박찬일 교수님, 블랙러시안 같은 오양진 교수님 감사합니다. 이수명 선생님 감사합니다. 늘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부모님과 듬직한 동생 우람이, 나의 피비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1990년 경북 구미 출생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재학
  • 관 같던 고시원 탈출 …월세 나눠 내며 情도 나눠 “삶의 의지가 생겼다”

    관 같던 고시원 탈출 …월세 나눠 내며 情도 나눠 “삶의 의지가 생겼다”

    “돈 없고 가족도 없는 음식 배달원을 누가 챙겨 주나요. 하지만 ‘대안 고시원’에 있을 때는 입주자들과 형, 동생처럼 함께 고기를 구워 먹었죠. 지금은 일 때문에 거처를 옮겼지만 그 기억이 떠나질 않아 자주 들릅니다.” ●30평 공간 7명이 25만원씩 분담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대안주거협동조합 1호점에서 만난 전모(60)씨가 이곳을 찾는 이유다. 그는 야식집의 야간 운영을 맡아 가게에서 숙식을 하기 전까지 이곳에 살았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꼭 얼굴을 비친다”는 전씨는 “고시원에서 지낼 때는 소음을 참으며 관 같은 좁은 방에서 하루를 죽이는 기분이었는데, 여기서 사람답게 사는 것을 경험했다”고 떠올렸다. 대안 고시원은 홀로 사는 저소득층들이 참여한 대안주거협동조합이 만든 곳이다. 지난해 10월 연세대 주거복지시스템연구단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대안 고시원 1호가 생겼다. 30평 남짓한 사무실을 조합원들이 함께 마련한 보증금 2000만원에 빌렸다. 3~4평 정도 되는 조합원의 개인 공간은 석고보드로 벽을 만들어 나누었다. 부엌은 공동으로 쓴다. 이들이 합쳐 내는 월세·공과금은 월 25만원 안팎이다. ●“귤 한 봉지도 나눠 먹는 정 생겨” 입주자들은 고시원에 비해 저렴한 가격이나 넓은 공간도 좋지만 무엇보다 삶의 의지를 키울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달 전 입주한 최모(62)씨는 “단순히 먹고 자는 걸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을 두고 쉴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3개월 전 이곳에 왔다는 벤처기업 사장 최모(54)씨도 “처음에는 눈 붙일 곳이면 된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왔는데, 귤 한 봉지를 사와도 옆방에 나눠 주는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며 “우리 사회의 가구 형태도 다양해졌으니 이런 대안주거공간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대문에 4호점 계약 앞둬 대안 고시원은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2·3호점에 이어 서대문구에 4호점 계약을 앞두고 있다. 오는 18일에 시공비를 마련하기 위해 후원주점을 연다. 박철수 조합 이사장은 “서울에만 7000~8000개의 고시원이 있고 통상 고시원 한 곳에 40명 정도가 거주하니 고시원 인구가 약 30만명인 셈”이라며 “공실인 사무실을 빌려 주거공간을 마련하면 건물주도 수입을 얻고 주거 취약계층의 주거권도 보장된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도시 개발로 달동네가 사라지자 주거 취약층은 이웃 공동체를 이룰 권리도 박탈당하고 단절된 공간인 고시원으로 떠나야 했다”며 “이들을 ‘복지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경제주체로서 일어설 수 있게 정책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막돼먹은 영애씨 15’ 라미란, 달동네 신혼집 어땠나? “옷 팔아 반찬 사먹어”

    ‘막돼먹은 영애씨 15’ 라미란, 달동네 신혼집 어땠나? “옷 팔아 반찬 사먹어”

    ‘막돼먹은 영애씨 15’ 라미란이 화제다. 배우 라미란은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스탠포드호텔에서 열린 tvN ‘막돼먹은 영애씨 15’ 제작발표회에 참석했다. 이에 최근 라미란이 KBS 2TV ‘언니들의 슬램덩크’에서 달동네 신혼집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라미란은 도배부터 인테리어까지 자신이 직접 다 했던 자신의 신혼집에 멤버들을 데리고 방문했다. 산중턱에 있는 라미란의 신혼집에 힘겹게 올라간 멤버들은 그 시절 이야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허름한 신혼집에서 라미란은 자신의 무명 시절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라미란은 “임신한 몸으로 안 입는 옷을 들고 나가 팔아 돈을 벌어 반찬을 사먹었다”고 말해 멤버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한편 라미란과 김현숙이 등장하는 ‘막돼먹은 영애씨 15’는 주인공 영애 씨의 공감백배 이야기가 더 화끈하게 펼쳐진다. 오는 31일 밤 11시 첫 방송된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흥미롭고 놀라운 스타일”…‘혼자’ 메인 예고편

    “흥미롭고 놀라운 스타일”…‘혼자’ 메인 예고편

    “기존의 서사 방식을 파괴하는, 대담하고 빼어난 작품” 영화 ‘혼자’에 대한 미국 영화전문지 트위치필름의 평이다. 스크린데일리는 “독창적인 내러티브 구성, 흥미롭고 놀라운 스타일”이라고 극찬했다. 이렇게 언론의 호평을 이끌어내는 영화 ‘혼자’가 메인 예고편을 공개해 눈길을 끈다. ‘혼자’는 달동네를 배경으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던 한 남자가 우연히 건너편 옥상에서 벌어진 살해 현장을 목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예고편에는 한낮에 일어난 살인과 거친 액션 장면이 긴장감을 높인다. 또 매번 같은 장소에서 나체로 눈을 뜨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궁금케 한다. 장편 데뷔작 ‘물고기’로 신선한 연출력을 선보인 박홍민 감독의 두 번째 작품 ‘혼자’는 오는 11월 24일 개봉 예정이다. 청소년 관람불가. 사진 영상=인디스토리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서울시의회 김광수의원-수암봉사단이 쓴 ‘노원구 양지마을의 희망일기’

    서울시의회 김광수의원-수암봉사단이 쓴 ‘노원구 양지마을의 희망일기’

    서울의 동북쪽 노원구 끝자락에 동막골이 있고 그곳에는 양지마을과 희망촌, 그리고 합동마을이 있다. 40년 전부터 마을이 형성된 이곳은 옛 추억만 남아 있고 홀로 살아가는 노인들이 주인이 되어 있다. 양지마을과 희망촌, 그리고 합동마을은 서울에서 보기 드물게 달동네로 남아 있으며 상계뉴타운 바람과 함께 투기의 대상이 되어 외지인들이 소유를 하고 있으며, 지금은 빈집으로 많이 남아 있어 마을은 빛을 잃고 흉가로 점점 변해 가고 있다. 이런 양지마을에 빛을 밝히고 기쁨과 희망을 안겨 주었다.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광수 의원(국민의당, 노원5)은 수암사랑나눔이봉사단(단장 김갑수)과 함께 3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매주 일요일 마다 청소를 하고 어려운 가정을 찾아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양지마을은 쉽게 환경이 바뀌지는 않았다. 한쪽에서는 열심히 치우고 다른 한쪽에서는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특히 음식물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려서 썩은 냄새는 차마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양지마을에 변화가 시작됐다. 마을 한 가운데에 100여평의 면적에 30~40년 된 묶은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나 어느 누구도 치울 것을 생각조차 못했다. 그러나 김 의원과 봉사단은 지난 3월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 5일에 걸쳐 깨끗이 정비를 했다. 그리고 주민들은 마음에 변화가 생겨 더 이상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 이곳에서 처리한 양은 자그마치 1.5톤 트럭 3대와 대형 마대자루 280개가 되었다. 지금 그 자리에는 엄청난 노력과 정성을 쏟아 나무와 꽃이 자리를 잡았고 나비가 날아오고 새들이 지저귀는 나비정원이 조성됐다. 이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고 주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또 다른 고민이 있었다. 언덕으로 형성된 긴 골목길의 열악한 환경은 늘 고민거리였다. 또 다시 결심을 하고 엊그제 이틀(24일, 25일)동안에 팔을 걷어 올렸다. 우선 주민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곳이 너무 지저분하고 관리가 안 되어 동네가 흉흉해 보이니 정비를 하겠습니다. 그러니 치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하고. 승낙을 받고 대략 200m 넘는 높은 언덕의 골목길에 있는 잡쓰레기와 지저분한 천막 등을 모두 철거하고 국화꽃을 놓아두니 밤이 되었고, 골목길은 마치 멋진 카페 거리와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24일 작업을 마쳤다. 25일은 10시부터 중요한 작업이 시작되었다. 사전에 흰색으로 칠을 한 벽면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화가가 와서 밑그림을 그려 주었고 봉사단원들은 붓을 들기 시작했다. 하나 둘씩 작품이 만들어졌다. 이곳저곳에서 웃음과 환호가 터졌다. 나비가 그려지고 꽃이 그려지고 참으로 신비로운 시간이었다. 주민들은 벽화를 보면서 “너무 좋아요. 정말 좋아요” 하며 어쩔 줄 몰랐다. 모든 벽면의 작업을 마치니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김 의원과 수암사랑나눔이봉사단은 마을에 빛을 밝혔으며, 지역 주민에게는 기쁨과 희망을 안겨 주었다. 주민들은 “힘이 들어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살맛나는 마을을 만들어 주니 너무나도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를 했다. 봉사단 김갑수 단장은 웃음을 띠며 함께 고생한 단원님들에게 고마움을 표했으며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변할 줄은 몰랐다” 라고 했다. 일을 마친 김광수 시의원은 “지역주민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는 환한 모습을 보게 되어 무엇보다도 기쁘고, 마을 주민이 마음을 열고 함께 해 주어서 정말 감사하다“ 라고 했다. 한편 양지마을 나비정원에서는 28일 10시에 민간주도의 깨끗한 마을가꾸기 ‘행복 홀씨 입양사업’협약식이 진행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부부가 붕어빵·떡볶이 팔아 장학금 주는 ‘천사표 동구청장’

    [자치단체장 25시] 부부가 붕어빵·떡볶이 팔아 장학금 주는 ‘천사표 동구청장’

    2014년 7월 취임한 이흥수(56) 인천 동구청장은 이듬해 첫날 구내식당을 폐쇄했다. 600여명에 달하는 구청 직원들이 주변 식당에서 식사하면 인천 구도심 가운데 가장 낙후된 동구의 상권 활성화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일부 직원들이 불편을 호소했지만 “그래도 공무원이 서민보다 형편이 나으니 고통을 분담하자”고 설득했다. 음식점 업주들이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나선 것은 물론이다. 이 구청장 스스로도 지역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있다. 가급적 구청에서 멀리 떨어지고 장사가 잘되지 않는 곳을 이용한다. 지난 16일에는 비빔밥을, 17일에는 불낙전골을, 인터뷰가 이뤄진 18일에는 삼계탕을 들었다. 그는 구청장이 되기 전에도 서민적인 음식을 좋아했다. 2014년 서울신문이 펴낸 단체장 인명록을 보면 이 구청장이 좋아하는 음식은 김밥과 떡볶이로 돼 있다. 전국 자치단체장 가운데 기호 음식으로 이런 종류를 꼽은 단체장은 이 구청장이 유일하다. 그는 지금도 가끔 단골 분식점을 찾는다. 이 구청장은 취임 후 ‘꿈드림’ 장학회를 만들어 130억원을 조성했다. 이 기금을 활용해 지난해 10월 동구에 사는 고등학교 1학년생 전체(494명)에게 장학금 45만원을 지급했다. 올해는 고등학교 1학년생뿐 아니라 대학교 1학년생까지 확대해 대학생의 경우 1인당 50만원을 지원했다.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한 것은 전국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 구청장도 직접 장학금 기금 조성에 참여하고 있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는 동인천역 광장에서 붕어빵 장사를 한다. 붕어빵 달인에게 기술을 배워 맛이 좋은 데다 취지가 알려져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본래 가격보다 많은 돈을 놓고 가는 이들도 있어 하루 평균 150만∼170만원의 매상을 올린다. 부인 조명순(54)씨도 남편의 뜻에 동참해 옆에서 떡볶이를 판다. 부부가 번 돈은 모두 장학기금으로 기탁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 구청장 부부는 더위가 기승을 부린 20일에도 동인천역 광장으로 나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장사해 200여만원 벌었다. 앞서 17일 오전 11시에는 동구통장연합회 등 3개 단체가 구청을 찾아와 장학금을 기탁했다. 재정이 풍부하다고 보기 어려운 단체들이다. 이 같은 상황은 동구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달동네박물관이 있고,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생생하게 다룬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낙후된 지역이다. 인천의 대표적인 구도심으로 행정구역 상당 부분이 재개발·재건축 대상일 정도로 주택의 노후화가 심각하다. 개발 열풍이 몰아쳤을 당시 외지인들이 매입한 집들이 흉가로 방치돼 있기도 하다.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부동산경기 침체로 인천지역 다른 자치단체들과 마찬가지로 고전하고 있다. 이 구청장은 “구도심은 신도심보다 개발비용이 2배 이상 소요돼 민간업체들이 쉽게 달려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와중에 지난 2월 송림초등학교 주변 4곳이 국토교통부로부터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 연계형 사업지구로 선정되는 쾌거를 올렸다. 6곳을 신청했는데 4곳이 선정돼 대박 수준이다. 구 측은 이들 지역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시작으로 1960∼197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주거지를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이 구청장은 “이 사업을 통해 낙후된 주택들이 재정비돼 동구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뉴스테이 사업 효과로 도시 개발은 물론 경제 활성화에도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행정력을 집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구청장은 동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구도심이라는 말 대신 원도심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한다. 인천 문물의 상당부분이 동구에서 태동해 인천 전체 인구가 50만명이던 시절 동구 인구가 2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현재 동구 인구는 7만명에 불과하지만 동구에 호적을 둔 인구는 44만명이다. 그래서인지 동구를 가리켜 ‘인천의 정신적 모태이자 발상지’라고 강조한다. 이 구청장은 “인천 출신 정치인이나 학자·운동선수·연예인의 절반이 동구 출신”이라며 이러한 전통을 살려 자신의 임기 중 ‘그 옛날’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솔직히 말해 도시 발전 차원에서 신도시를 따라잡을 수 없겠지만 구민들의 자존심만큼은 동구가 인천의 중심지였던 때로 되돌리고 싶습니다.” 이 구청장은 ‘떠나가는 동구’가 아닌 ‘찾아오는 동구’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문화관광벨트화를 꼽았다. 이 사업의 핵심으로 동인천역 광장을 언급했다. 그는 “인천에는 여러 역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동인천역 광장은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일 수 있는 장소”라며 “지난해부터 이곳에서 각종 축제와 나눔장터가 열리고 스케이트장·발광다이오드(LED)전광판 등을 조성, 젊음이 넘치고 활력 있는 광장으로 바뀌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밝혔다. 유동인구가 4만명에 달하는 동인천역에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만들면 주변 상권이 살아나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된다는 설명이다. 송림아뜨렛길과 달동네박물관도 같은 맥락에서 조명되고 있다. 수년간 방치된 지하보도였던 송림아뜨렛길은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됐으며, 달동네박물관은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을 정도로 명물이 됐다. 그는 “구청장에 부임했을 때부터 노력했던 관광벨트화 사업의 성과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면서 “개별적인 관광자원을 연계하면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자체가 단순히 민원처리나 하는 행정서비스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래서 여건이 어렵더라도 주민들이 먹고사는 데 도움을 주는 적극적인 역할을 직원들에게 주문한다. “우리 구가 더이상 낙후되고 침체된 구도심이 아닌, 비전과 경쟁력이 있는 도시로 거듭나 주민들이 동구에서 거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미지 쇄신을 위해 구 명칭을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동구라는 명칭은 방위 개념에 맞지 않을뿐더러 전국 광역자치단체에 동구라는 지명이 6개나 있어 혼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시 브랜드와 이미지를 창출하는 차원에서도 구 명칭을 바꿔야 된다는 생각에서 인천시와 함께 명칭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구민들을 대상으로 새 명칭을 공모한 결과 ‘화도진구’ 선호도가 가장 높았다. 화도진은 구한 말 인천 최초의 군사방어기지가 있던 곳으로 화도진공원에서는 27년째 화도진축제가 열리고 있다. 인천시 및 행정자치부와의 협의를 거쳐 내년 7월부터 이 명칭을 사용할 방침이다. 이 구청장은 “구 명칭이 변경되면 침체된 도시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역동적인 미래도시로 거듭나는 데 발판이 될 것”이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그는 “동구에 많은 변화가 오기 시작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지속적인 도전과 열정으로 주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소외계층을 위한 질 좋은 일자리, 재미와 맛이 있는 야시장, 꽃마을 만들기 등 작지만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행정력을 발휘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육군3사관학교 女생도 선발에 산부인과 기록 요구…인권침해 논란

    육군3사관학교 女생도 선발에 산부인과 기록 요구…인권침해 논란

    육군3사관학교가 여생도 선발 과정에서 산부인과 수술 기록까지 요구한 것으로 드러나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25일 YTN에 따르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서영교(서울 중랑갑) 의원은 육군3사관학교의 입학을 위한 최종 3차 면접 시 제출해야 할 첨부서류 중 하나인 ‘건강생활설문지’를 분석한 결과 산부인과 수술 기록이 포함됐고, 이같은 항목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건강생활설문지에 기재된 개인 및 주변 환경 분야의 첫 질문은 ‘달동네나 유흥업소 밀집지역 및 우범지역 등에서 살고 있다’ 여부였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중학교에 다녀보지 못했다’를 묻고 있다. ‘어머니가 사회활동을 하고 월수입이 200만 원이 넘는다’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이밖에 부모가 바람을 피우거나 도박을 하는지 등, 질문 대부분이 부정적인 내용이다. 이에 대해 서 의원은 “기타 설문의 내용을 검토 시 ‘아니다’라고 답변해 총점이 낮아야 건강생활을 했다는 증명이 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어머니가 사회활동을 하지 않고, 월수입이 200만 원이 넘지 않는 것이 건강생활이라고 보이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여성지원자에 한해 산부인과 검진결과를 제출하게 한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제기됐다. 자궁 초음파와 임신 반응검사 외에 과거 수술기록까지 요구하고 있어 인권침해적 요소라는 지적이다. 서 의원은 “만 25세 이하 미혼여성으로 한정된 3사관학교 여성 지원자들에게 산부인과 수술 전력이란 임신중절 등 사생활이 개입된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군 생활을 잘 수행해 나갈 수 있는지 판단하기 위한 근거로 보기에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인권 침해적 요소가 많은 질문이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서 의원은 “부모의 학력, 어머니의 사회생활 여부, 부모님의 조실부모 여부가 건강생활이라고 판단하는 근거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이같은 설문을 고칠 것을 촉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에너지 빈곤층 위한 폭염 대책 시급하다

    전국이 보름 넘게 찜통이다. 입추가 지났는데도 연일 폭염주의보가 이어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지난달 22일 이후 단 이틀만 빼고는 매일 밤 열대야 현상이 나타났다. 1973년 이후 열대야 발생 일수는 두 번째로 많은 해로 기록된다. 밤잠을 설치게 하는 기록적인 더위에 시민 건강에도 전례 없는 비상이 걸렸다. 열사병, 열탈진 등 온열병 환자 수는 두 달 남짓 동안 1000명을 넘었다. 이 가운데 10명은 목숨을 잃었다. 이쯤 되면 손 놓고 기록만 세고 있을 단순 폭염이 아닌 것이다. 이런 이상 고온 속에 하루를 일년보다 더 힘겹게 넘겨야 하는 이들은 에너지 빈곤층이다. 에너지 빈곤층은 소득의 10% 이상을 냉난방비로 써야 하는 계층으로 전국에 약 150만 가구가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만 해도 이들은 전체 가구의 10%를 웃돈다. 이들의 60%는 10평도 안 되는 좁은 집에 살고 있으며, 80%는 선풍기에만 의존해야 한다고 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가구의 대부분이 70세 이상 노인이라는 것이다. 빈곤층 독거 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등 취약 계층에게는 폭염이 재난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폭염은 태풍이나 홍수보다 인명 피해를 더 많이 내는 기상재해로 분류된다. 한국기상학회는 최고 기온이 35도를 넘는 날에는 60대 이상의 사망자 비율이 68%까지 늘어난다고 경고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경로당이나 복지관, 주민센터 등을 무더위 쉼터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취약 계층을 챙기는 작업은 서둘러야 마땅할 서민지원 정책이다. 자칫 그런 배려조차 받지 못하고 방치된 쪽방촌이나 달동네의 빈곤층은 없는지 더욱 세심히 살펴야 한다. 거동이 불편해 온종일 집안에만 머물면서도 전기요금이 겁나 선풍기조차 마음 놓고 틀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니 걱정이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한반도의 여름철 폭염은 앞으로도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고 봄과 가을이 짧아지는 아열대성 기후로의 변화를 해마다 피부로 실감하고 있다. 폭염 대비책을 지자체에만 맡겨 둘 일이 아니라 이제는 정부 차원에서도 고민해야 한다. 정부가 빈곤층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에너지 바우처 제도부터 손질돼야 한다. 겨울철 난방연료 지원으로만 국한하지 말고 당장 내년부터라도 여름철 냉방비 지원으로 범위를 확대할 일이다.
  • [자치단체장 25시] 김홍섭 인천 중구청장

    [자치단체장 25시] 김홍섭 인천 중구청장

    김홍섭(67) 인천 중구청장만큼 ‘입지전적’이라는 말과 들어맞는 단체장은 흔치 않다. 김 구청장은 영종도의 가난한 농가 7남매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조그만 농토를 일구었지만 3남 4녀를 키우기에는 궁핍하기 그지없었다. 장남으로서 책임감을 느낀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중퇴하고 동생들 학비를 대고자 염전·공장 등에서 노동자 생활을 했다. 일을 하면서 익힌 경험을 토대로 가마니를 짜 염전에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했으나 마대가 등장하면서 빚만 잔뜩 졌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생필품을 인천의 섬 등에 유통하는 일을 해 제법 큰 돈을 벌었다. 이 돈을 모두 투자해 1980년대에 연안부두에 목욕탕을 열었다. 영업이 시원찮았다. 고민하던 그는 오래전 월미도에 있었다는 조탕을 떠올렸다. 국내 최초로 해수탕을 만들어 보겠다고 각오했다. 인하공대로 가서 해수 성분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을 의뢰,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질이 좋고 특이한 느낌을 주는 해수탕을 개발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해수탕은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됐다. 1990년대 초에는 월미도에서 놀이기구 사업을 펼쳐 상당한 부를 축적했다. 김 구청장은 늘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쳐도 열심히 궁리하면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해결책이 나온다”고 말한다. 이런 인생 역정 덕분인지 그는 누구보다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안다. 이는 자연스레 소외 계층을 배려하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그가 2000년 중구청장에 처음 당선된 이후 한결같이 유지해 온 행정철학이다. 인천의 대표적인 달동네였던 인현동 쪽방촌과 북성동 새우젓 거리를 말끔한 공동주택으로 변모시키는 등 김 구청장은 열정적으로 펼친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펼쳤다. 이런 일까지 있었다. 구청장에 당선된 직후인 2000년 7월 첫 봉급 전액을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기부했다. “나는 먹고살 만하니 봉급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는 의도였다. 뜻밖에 선거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2006년 기부를 중단했다. ●근대문화시설·관광 만나면 일자리 창출 김 구청장은 낙후한 중구가 발전할 해법으로 관광을 제시했다. 그는 놀이기구 사업 전문성을 인정받아 유럽에 초청받아 갔는데 이때 관광이 유럽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 지역의 문화를 접하고 사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관광의 진수라는 것도 깨달았다. 이때의 경험은 중구에 산재해 있는 근대문화시설을 관광과 접목시키면 예산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김 구청장이 인천항 내항 개방과 재개발에 치중하는 것은 민원 해결과 관광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천항은 1883년 제물포항으로 개항한 이래 번성기를 누리며 우리나라 관문 역할을 해 왔다. 하지만 원목, 고철 등을 하역·운반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분진, 소음, 교통문제 등으로 주민들은 환경 피해는 물론 생존권까지 위협받아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김 구청장은 인천항 내항이 재개발되면 인근 차이나타운 및 월미관광특구와 연계된 친수·문화·상업 공간으로 탈바꿈돼 지역경제의 틀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내항을 전면 개방하겠다는 애초 약속과는 달리 지난 4월 1일 8부두 일부만을 개방했다. ●“1~8부두 전체 개방돼야 종합적 투자” 김 구청장은 “8부두 일부를 개방하는 것만으로는 관광과 연계된 복합시설을 설치하기에 부족하다”면서 “1∼8부두 전체가 개방돼야 종합적·체계적인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항의 기능은 남항·북항·송도 신항 등의 외항으로 이전하면 되며, 실제로도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라며 “인천을 동남아 비즈니스 관문으로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김 구청장은 인천시에 대한 쓴소리도 주저하지 않았다. “내항 개발이 이뤄지면 뛰어난 입지 때문에 서울 명동, 남대문, 동대문에 버금가는 상업·관광 기능을 할 수 있다”면서 “시가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관광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인천항을 부산항과 견줘 분석하기도 했다. 그는 “부산 북항은 태평양과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국제적인 관문 도시로 발전하고자 정부 지원을 받아 153만㎡에 8조 519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개발하고 있다”면서 “인천의 경쟁력은 결코 부산에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13억 인구의 중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고 세계 최고의 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이 자리 잡아 잠재력이 무한하다”고 강조했다. ●‘유커 겨냥’ 한중무역유통단지 추진 김 구청장은 중구의 비전을 창출하기 위해 중국을 주목하고 있다. ‘큰손’으로 부상하는 중국인들이 들어오는 관문인 중구의 입지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둥북아 허브를 지향하는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중국 시장이 중구뿐 아니라 인천의 경제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세부적인 계획을 위해 항동에 중국 무역상을 타깃으로 하는 한중무역유통단지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서울 강서유통단지사업협동조합과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원도심인 신포·신흥동은 쇼핑, 숙박, 먹거리, 볼거리를 다양하게 제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일자리 창출과 내수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구상이다. “중국 관광객들이 인천을 찾았을 때 편하게 먹고 자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인천공항 환승객을 위한 다양한 관광상품 개발에도 힘쓰겠습니다.” 김 구청장은 “기본적으로 항공으로 1∼2시간 거리에 있는 중국 도시를 겨냥하고 장기적으로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까지 커버할 수 있는 시설들이 들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의 경제적·문화적 위상이 높아진 만큼 일단 인프라가 구축되면 주변 국가 관광객·무역상들이 찾아올 것”이라며 “공항과 항만을 통해 들어오는 외국인들을 바라만 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을 붙잡을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관광·레저, 국제 비즈니스, 해양문화, 갑문·역사영역 등을 기본 주제를 꼽았다. 여기에는 해양문화·관광산업과 연계된 벤처기업 유치, 해양 스포츠 등 테마관광, 여객 편의시설 기능을 갖춘 휴식공간, 전시·무역공간, 다양한 형태의 숙박시설 등이 포함된다. 한마디로 무역과 관광, 해양레저를 아우르는 복합벨트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송도에 개발 치중… 영종도는 소외돼” 김 구청장은 경제자유구역 지정 이후 개발이 지지부진한 영종도 문제도 거론했다. “정부가 20조원 투자 등 거창한 청사진을 제시하며 2003년 영종도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했지만 영종하늘도시를 조성한 것 외에는 지금까지 한 일이 없다”면서 “개발이 송도에 치중돼 있고 영종도는 소외돼 주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정작 외국인들이 들어오는 곳은 영종도인데 외국인 발을 묶을 만한 시설이 없으니 도착하자마자 서울로 가는 것 아니겠으냐”고 반문했다.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적극적 지원 계획도 밝혔다. 김 구청장은 “취약 계층에 대한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과 지역 특성에 맞는 사회적기업을 발굴해 육성하겠다”면서 “여성,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복지시설 운영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우리 사회 미래의 등대 사회적경제] “사회적기업에 직접 투자 않고 자생 도와요”

    [우리 사회 미래의 등대 사회적경제] “사회적기업에 직접 투자 않고 자생 도와요”

    “착한 소비가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은애 서울시 사회적경제 지원센터장은 21일 “서울시 사회적경제는 도입 시기나 내용, 수준에서 결코 북유럽 도시 등에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2013년 1월 처음 사회적경제 지원센터가 설립됐을 때만 해도 현재의 절반 수준이었던 서울시의 사회적경제 규모는 사회적기업 444개, 마을기업 108개, 협동조합 2468개 등 모두 3020개로 급격하게 늘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을 정책적으로 밀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사회적경제 국내의 30% 서울시는 대한민국 전체 사회적경제의 약 30%를 차지한다. 정부의 예산 지원이 없으면 당장 이들 기업이나 조합이 무너질 것이란 우려도 있었지만 시는 사회적경제에 직접적으로 돈을 투자하지는 않았다. 대신 사회적기업이 자생력을 가질 수 있도록 판로와 시장 개척 등 통합컨설팅을 하고, 사회적경제 아카데미를 운영해 전문인력을 양성했다. 이 센터장은 우리 사회에 사회적경제가 빠르게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대규모 고용시대에서 고용 없는 저성장시대로 변하면서 새로운 고용 창구로 사회적경제를 들여왔다는 것이다.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 2012년 협동조합 기본법이 비교적 빨리 제정된 것은 취약계층에 대한 고용창구 개발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형성됐기 때문이다. 사회적기업 육성법은 노무현 정부 때 진보적인 그룹이 대안 차원에서 만들었다. 협동조합법은 유엔이 2012년을 세계 협동조합의 해로 제정하면서 보수적인 새누리당 의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취약층 계속 고용 비율 62% 수준 20대 국회에서는 사회적경제 기본법 제정을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에서도 추진하고 있다. 사회적경제 기본법은 정부의 사회적경제 구매 활성화와 기금 마련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목표다. 유엔에서 협동조합의 가치를 퍼뜨리기 전인 1970~80년대 신협, 생협, 빈민탁아, 성폭력 상담소 등 사회적기업의 원형이 될 만한 활동이 서울에도 존재했다고 이 센터장은 설명했다. “1970년부터 진보 활동가들이 봉제공장이나 달동네로 들어가 사회적경제의 한국적 원형을 만들었죠.” 서울시 사회적기업의 평균 매출은 재작년 12억원, 지난해 14억원으로 증가세다. 소비자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은 사회적경제의 과제다. 정당하게 원자재값과 임금을 다 지불하기 때문에 비싸다는 반응도 있다. 장애인을 고용한 기업이 많아 제품의 품질을 개선하는 데도 분명히 한계가 있다. “아무리 일자리가 중요해도 시민들이 피해를 입으면 안 되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은 질이 떨어지면 과감하게 퇴출해야 한다고 이 센터장은 잘라 말했다. 실제 사회적경제의 60%는 소비자 한 명 한 명을 직접 만나는 대면서비스를 제공한다. 만약 신뢰할 수 없는 행위가 벌어지면 소비자의 거부감은 영리기업보다 훨씬 심할 수밖에 없다. 취약계층을 계속 고용하는 비율도 62%에 이른다. 처음 사회적기업법이 제정됐을 때 정부의 재정지원이 끊기면 기업이 사라질 것이란 우려는 많이 희석됐다. 좋은 사회적기업은 잘 살아남았다. ●윤리적 소비는 경제민주화로 이어져 마지막으로 그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부탁했다. “번듯해 보이는 대기업 제품만 쓸 게 아니라 우리 남편이 실직하면 일자리가 될 만한 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밥도 사먹고, 옷을 사는 윤리적인 소비를 하면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진 사회에서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아이돌 없어도… 박수받는 ‘NO 스타’ 뮤지컬

    아이돌 없어도… 박수받는 ‘NO 스타’ 뮤지컬

    ‘뉴시즈·난쟁이들·빨래’ 등 각광 ‘스타 마케팅’ 변화 여부에 주목 “작품이 스타 키우는 길로 가야” “이름 있는 배우들이 한 명도 없어 처음엔 망설였는데, 보기를 진짜 잘했어. 배우들 연기가 정말 열정적이야. 공연 내내 엄청난 힘이 느껴져. 내용도 좋고.” 지난 26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대극장. 뮤지컬 ‘뉴시즈’를 본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뉴시즈’는 19세기 말 뉴욕을 배경으로, 거리 위의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10대 신문팔이 소년들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뮤지컬계에서 생소한 20대 남자 배우들이 무대를 꽉 채운다. 인지도 높은 배우들이 없는데도 관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작품성과 무명 배우들의 넘치는 힘이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스타 배우들을 앞세운 뮤지컬이 홍수를 이루는 가운데, 유명 배우 없이 철저히 작품으로만 승부를 거는 뮤지컬들이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NO 스타’ 뮤지컬의 조용한 혁명이 뮤지컬 시장의 변화를 이끌지 주목된다. 대학로 소극장에서도 무명 배우들의 작품이 각광을 받고 있다. ‘난쟁이들’(다음달 26일까지, 대학로 TOM 1관)과 ‘빨래’(내년 2월 26일까지, 동양예술극장 1관)가 쌍두마차를 형성하며 관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난쟁이들’은 동화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공주’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비튼 작품으로, 독특함과 재기발랄함으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빨래’는 서울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비정규직, 이주노동자 등 서민들의 팍팍한 인생살이와 웃음, 눈물을 담은 작품으로, 대학로 대표 창작 뮤지컬로 꼽힌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결국은 작품성”이라며 “배우는 작품의 한 요소에 불과하다. ‘난쟁이들’, ‘빨래’ 등은 좋은 작품은 유명 배우가 아니라 내용, 볼거리, 음악 등 다양한 요소가 결정한다는 걸 입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연계 안팎에선 국내 뮤지컬 시장이 ‘스타 마케팅’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관객들도 출연 배우들을 보고 티켓을 구매하는 경향이 짙다. 때문에 대극장 뮤지컬 흥행공식에도 이런 흐름이 반영돼 있다. ‘티켓 파워’가 있는 젊은 남자 배우들이 3~4명 꼭 출연한다. 김준수, 조승우, 홍광호, 류정한, 엄기준 등을 비롯해 아이돌 가수를 끼워 넣는 식이다. ‘에드거 앨런 포’, ‘마타하리’, ‘삼총사’, ‘잭 더 리퍼’ 등 수두룩하다. 공연계 관계자들은 “국내에선 스타 없이 흥행에 성공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 대극장 공연은 작품 구상 초기부터 스타 마케팅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스타 없인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뮤지컬 시장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선 스타에서 작품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 시장에선 인기 배우들 작품도 흥행하지만 무명 배우들 작품이 훨씬 더 많이 호평을 받고 있고 무명 신인도 꾸준히 발굴되고 있다. ‘킨키부츠’의 배우 빌리 포터처럼 오랜 무명 생활을 하던 배우가 작품을 통해 스타가 되는 시스템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뮤지컬평론가 원종원 순천향대 교수는 “현재는 스타 배우를 앞세워 단기간에 수입을 올리려는 게 일반화돼 있는데, 스타 없는 뮤지컬의 몇몇 성공 사례들이 나오면 우리 시장도 급속하게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세계 시장에선 뮤지컬을 보는 데 스타 배우에게 절대적인 가치를 두지 않는다”며 “작품이 새로운 스타를 발굴하는 쪽으로 바뀌어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공연리뷰] 연극 ‘장수상회’

    [공연리뷰] 연극 ‘장수상회’

    집안에 치매 노인이 있으면 가족들이 웃을 날이 없다고 한다. 언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기에 잠시도 쉴 틈이 없다. 가족 간 책임을 떠넘기며 고성이 오가다 종국엔 요양원에 맡겨진다. 연극 ‘장수상회’는 이런 현실과 멀찍이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 한편의 동화를 펼쳐낸다. 치매를 황혼의 사랑으로 아름답게 버무렸는데 현실에선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서사가 역설적으로 가족의 의미를 더더욱 되새기게 한다. ‘김성칠’(백일섭 분)은 70대 치매 노인이다. 하루하루 옛 기억을 잃더니 아내, 아들, 딸마저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자신이 달동네 구멍가게인 ‘장수상회’ 점장이라는 사실만 기억한다. 어느 날 그런 성칠 앞에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은 여인 ‘임금님’(김지숙 분)이 나타난다. 금님은 장수상회에 딸린 창고를 개조해 꽃집을 연다. 성칠은 첫눈에 반하지만 마음과는 정반대로 행동한다. 금님에게 못되게 굴고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다정다감하게 다가오는 금님에게 성칠도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둘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여생을 함께하기로 한다. 두 노인의 닭살 돋는 연애는 웃음을 자아내게 했고, 오해로 성칠이 금님 곁을 떠날 땐 마음이 짠했다. 미키마우스 머리띠를 한 성칠이 커다란 곰 인형을 어깨에 짊어지고 걷는 모습은 로맨틱하기까지 했다. 이 작품이 이처럼 두 노인의 연애에만 초점을 맞췄다면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지 못하고, 젊은 관객들에게도 외면받았을 듯하다. 극에 생명을 불어넣고 오래도록 감동의 여운을 맴돌게 한 건 전적으로 후반부의 반전이다. 성칠과 금님, 장수상회 김 사장, 금님의 딸, 이들을 둘러싼 비밀이 벗겨지면서 감동이 몰아쳤다. 초반에 미용사로 소개된 박양의 변신이 가장 신선했다. 막이 내린 뒤에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묵직함이 지속됐다. 연극은 계속 묻고 있었다. 당신의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장수상회’는 지난해 4월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겼다. 시공간의 제약에도 영화를 뛰어넘는 감동의 도가니가 연출됐다. 23년 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한 노장 백일섭과 김지숙의 열연 덕택이다. 오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4만~6만원. (02)929-1010.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곡진한 이야기가 된 피난살이…부산 초량 이바구길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곡진한 이야기가 된 피난살이…부산 초량 이바구길

    '참 부산은 눈두 안 온다 잉, 눈두. 이북 말이다. 눈 오문 말이다…잉. 야하, 눈 보구 싶다, 눈이.’ 한국 문단의 대표적 분단작가인 이호철(84)의 작품 ‘탈향(脫鄕. 1955)’의 마지막 문장 일부다. 함경남도 원산 출신인 그는 1950년 인민군으로 6·25동란에 참전했다가 월남한 경험 때문인지 ‘실향(失鄕)’이라는 표현 대신 ‘탈향(脫鄕)’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을 발표했다. 이 작품에서 그토록 이북의 눈을 그리워하는, 초량 부두 노동자 ‘하원’은 산꼭대기에 판잣집을 짓는 게 꿈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늘 고향의 함박눈을 그리워할 것이다. 이런 저런 사연으로 지어진, 그 때의 산꼭대기 판잣집들이 ‘이바구’길 전설의 시작이고, 끝인 셈이다. 6·25동란 때 부산으로 피난 온 사람들의 소박한 꿈들이 모여 만들어진 동네 위치가 바로 영주동, 초량동, 수정동으로 이어지는 산복도로 주변이었다. 어느덧 세월은 이들이 만들어 낸 ‘이바구(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산[山]의 배[腹] 중턱을 지나는 도로’라는 뜻의 산복도로가 다시금 부산 원도심 골목 여행의 신(新) 르네상스를 열고 있다. ● 구(舊) 백제병원 괴담은 이제 그만!! 초량(草粱)은 다시 바빠지고 있다. 부산의 도시재생 선도사업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부산역 앞 차이나타운과 더불어 새로운 원도심 골목 투어의 중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곳 일대가 북항재개발사업과 맞물려 '신(新) 르네상스 지역'이라고도 불린다. ‘이바구길’, 이름을 누가 붙였는지 혹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단히 자극적이며 부산(釜山)스럽다. 여하튼 달동네 좁은 길을 한 번에 스타 관광지로 만들어버린 작명 실력이니, 누구인지 이름 갖다 붙이는 재주는 분명 예사스럽지 않다. 이바구길은 부산역으로 유입되는 관광객들이 ‘가깝다’라는 이유로, 가벼이 다가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냥 부산역 앞, 길만 건너면 된다. 불과 1년 만에 1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갔으니, 이 정도면 블록버스터 급은 못 되어도 손익분기점 가뿐히 넘긴 저예산 독립영화처럼 맘은 편한 상태이다. 그리고 지금의 관심이 조금은 어리둥절하다. 불과 1.5㎞ 내외의 짧은 골목길이 무언가 일을 낼 조짐이다. 이바구길은 구 백제병원-남선창고 옛터-초량교회-인물담장거리-이바구 정거장-168계단-모노레일-김민부 전망대-이바구 공작소-장기려 더 나눔센터-유치환의 우체통-까꼬막 게스트하우스-올레길-천지삐까리 마을카페로 이어진다. 원래 이바구길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말 그대로 제각각 ‘이바구 한 트럭씩’ 쏟아낼 정도의 삶의 이력을 지닌 고령자들이 많다. 부산은 65세 고령자 비중이 인구의 13%가 넘는 고령화 도시이다. 이 중에서 부산 동구를 중심으로 한 원도심은 고령자 비율이 더더욱 높아서 그동안 부산 시민들 사이에서도 ‘할배, 할매 동네’라고 불린 것이 사실이다. 이런 시기에 '2014년 융·복합 노인일자리사업'의 일환으로 이바구길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대박이다. 매주 토·일요일에 운행하는 '산복도로 투어버스'는 이미 2주 전에 예약을 해야 할 노릇이고, 자전거 투어는 한없이 기다려야 할 상황이다. 이곳 어르신들 표현대로 관광객들은 어디선가 ‘꾸역꾸역 천지 삐까리로’ 몰려오고 있다. 이바구길의 시작은 구(舊)백제병원에서 시작한다. 시작으로서는 가장 걸맞는 건물이다. 겉모습만 보지 말고 반드시 들어가 보는 것이 좋다. 지금 이 건물은 한 가구 디자인 전문회사가 임대하여 디자인 쇼룸으로 사용하면서 커피와 각종 간단한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다. 내부는 흡사 베트남 하노이의 낡은, 그리고 철거를 앞둔 프랑스식 건물 느낌이다. 1920년대의 벽돌 골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구(舊)백제병원은 1927년 2월, 12월에 개별로 건립된 두동이 하나로 합쳐진 건물로 내부 평면이 사각형, 마름모꼴 형태이다. 최초 건립되었던 1, 2, 3층에는 목조계단과 장식, 디테일 등 목재로 마감된 원형이 잘 남아 있어서 현재 영화 촬영장소로 사용이 되기도 한다.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 종합병원으로 서양의료진까지 있었던, 20, 30년대 이름을 날리던 곳으로 당시 부산부립병원, 철도병원과 함께 지역에서 중요한 의료기관 건물이자, 근대 의료사적으로 가치도 있는 등록문화재이다. 그러나 이 공간은 병원괴담이라는 영화를 찍어도 될 만큼의 괴담이 많았다. '돈 없는 환자는 죽여서 옥상에 보관한다', '지하에 감옥이 있어 밤마다 원혼이 떠돈다'는 등의 악성 루머로 인해 병원은 심각한 경영난을 겪게 되고 결국 병원문을 닫게 되었다는 것이 거의 모든 부산 시민들이 알고 있는 바이다. 그런데 실제 이 건물에 거주하는 세입자 변상률(74)씨는 항간의 괴소문에 대하여 어처구니 없어한다. 원래 이 건물은 한국인 의사 최용해씨가 일본인 아내를 맞이하면서 장인이 부산에 지어준 건물이며, 이후 최용해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다시 장인이 거두어간 건물이라는 것이다. 이후 봉래각이라는 중국집으로, 일본 아까즈까부대의 장교숙소로, 귀국한 학도병을 위한 치안대 건물로, 신세계 예식장, 탁구장으로 용도 변경을 하면서 지금까지 용케도 잘 버티어 왔다. 말 그대로 ‘입이 여럿이면 쇠도 녹인다’라는 속담이 들어맞는 비운의 건물이다. 백제병원을 돌아, 남선창고의 옛터, 담장갤러리를 돌면 부산 동구 출신의 유명인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유치환· 이경규, 박칼린, 나훈아, 이윤택·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담장 반대편에는 1892년 한강 이남 최초의 교회인 초량교회가 있다. 이 곳에서 안창호 선생의 예배와 신사참배 반대 운동 등 부산 지역 항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또한 1951년 4월 29일 이승만 대통령이 예배를 본 교회이기도 하다. ● 168계단에 모노레일이 - ‘이바구’가 한 가득 초량 교회를 뒤로 하고 20m남짓 앞으로 나아가면 바로 168계단이 있다. 168계단은 그동안 이바구길 체험객들에게는 차마고도(茶馬古道)와 진배없는 곳이었다. 만약 스위스였다면 분명 최고급 난이도 슬로프였을터. 경사가 33도! 바로 이 난코스 중의 난코스, 부산 동구 산복도로 초량 168 계단길에 8인승 모노레일이 놓이고 있다. 공사비 총 31억 원을 투입해 길이 60m, 폭 7m짜리 모노레일이 6월 중순 운행을 목표로 설치 중이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프로젝트 중 '초량168계단 산복 희망길 조성 사업'은 가장 주요한 핵심 사업 중의 하나였고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되었다. 168 계단을 오르면 부산시내의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김민부 전망대가 나온다. 김민부 전망대를 지나면 이제 오리지날 산복도로를 만나게 된다. 이 곳에서 우리는 부산역 건너편 훤한 태평양을 맘껏 내려볼 수 있다. 압권이다. 경치가 파노라마 버전이다. 본격적인 이바구길의 주무대가 열린다. 이바구공작소, 장기려기념관 『더 나눔』, 유치환 우체통, 까꼬막 카페, 이바구 정거장, 168도.시.락.국, 6.25 막걸리, 도심 민박인 이바구 충전소, 까꼬막 전망대를 지나는 동안 이바구길 2시간의 시간은 훌쩍 지난다. 이바구 정거장을 위탁 운영하고 있는 ‘소울아띠’의 류은영(41) 대표는 ‘주민들과 공무원들이 합심하여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이바구길에 거주하는 옛 삶의 기록을 좀 더 많이 남겨 단순한 볼거리 관광이 아니라 훌륭한 스토리텔링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 되기를 희망했다. 여행은 눈으로만, 입맛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귀로도 하고 코로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애시당초 이바구길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만들어진 길이다. 볼 것이 없다고 타박하는 것은 어리석다. 살기 위해 허둥지둥 뛰어 다녔던, 고단한 거리를 이제 사람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순서대로 걸어가는 풍경이 낯설기도 하다. 애달픈 삶의 흔적들이 묻어나는 길과 계단들은 사뭇 다른 풍광과 ‘이바구’를 전달해준다. <초량 이바구길에 대한 여행 20문답> - 아래 질문은 실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만든 20문답입니다. 1. 부산에 가면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인가요? - 이번에 부산 여행이 12번째이고, 부산역 출발 기차 시간이 3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면 도보 여행을. 그러나 이바구길 자전거 투어를 하게 된다면 일부러라도 체험해보길. 2. 누구와 함께 가면 좋을까요? - 길이 대단히 가파르다. 따라서, 무릎이나 관절이 성하지 않은 분들은 불편할 수도 있다. 약간 높은 뒷동산 동네를 다녀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누구라도 가면 만족할 듯. 풍광이 예술이다. 3. 교통편은 어때요? - 대단히 편리하다. 부산역 앞 횡단보도 투썸 플레이스 골목으로 그냥 걸어 올라가면 된다. - 산복도로로 접근하려면 38, 86, 186, 190 동일파크맨션 정류장 하차(공휴일에는 333번 운행)하여 이바구 공작소에서 시작하면 된다. 다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다. - 해당홈페이지주소 : http://2bagu.co.kr/user/abt/map.do 4. 인근 편의시설, 주차장 등의 시설환경은 괜찮은가요 ? - 도보로 이동하는 것이 제일 낫다. 자동차 진입이 되지 않는 골목이 많다. - 이바구길에서 운영하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을 적극 추천하다. 제일 나은 방법이다. - 자전거문의 : 부산역광장 홍보부스에서 티켓 발매 후 탑승 . - 운행시간 : 오전 10시 ~ 오후 4시 (월요일 및 우천시 휴무) - 운행코스 : 코스분리 없이 1개 코스로 운영 (소요시간 : 1시간 정도) ▷ CU편의점 → 백제병원 → 남선창고 → 초량2동 주민센터 → 한중우호센터 → 초1새마을금고 → 이바구담장 → 소림사 뒷길 → 죽림공동체 → 168도시락국 → 이바구충전소 → 이바구공작소 → 금수사 → 유치환우체통(반환점) → 이바구충전소 → 168도시락국 → 소림사 → 초량1동주민센터(동화문) → 패루광장 → 삼국지벽화 → 외국인거리 → 종착지 5. 유명세에 비하여 실제 모습은 어때요? - 아직은 정비가 더 필요하다. 모노레일이 완성되면 본격적인 관광지로서 역할 수행이 가능할 듯. 6. 여행객 응대 수준은 어떤가요? - 공무원들이나 길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경우는 대개 친절하지만, 아직도 불만이 있는 주민이 많은 것도 사실. 주민들끼리 해결해야할 문제도 많아 보인다. 기자가 이바구길 투어시 목격한, 검은 한복을 입은 도인(?) 할머니의 욕설은 가히 전설로 남아도 될 만큼 강렬했다. 욕할매 수준은 애교 수준이다. 부산은 원래 험한 바닷가 도시라는 것을 깜빡했다. 7. 여행지가 지니고 있는 전문성은 어떠한가요? 공부를 많이 하고 가야 하나요? 조심할 것이 있나요? - 그냥 피난민들이 만든 옛 도심 골목길이다. 다만, 부산의 피난민 역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면 좋다. 8. 전체 여행 경비는? - 이 곳에는 노인 일자리 사업장으로 168 도시락, 625막걸리, 게스트하우스인 이바구충전소가 있다. 동네 주민이 운영하는 곳이어서 가성비는 최강이다. 특히 도시락집에서 판매하는 시락국과 도시락은 꼭 먹어보길. 9. 가장 감탄하는 점은 어떤 것인가요? - 경치, 부산이 다 내려다 보이는 경치. 그리고 이 높은 곳을 오르내리는 노인분들의 건강한 다리. 정말 가파르다. 10. 아쉬운 점이 있다면? - 시작단계여서 무언가 어수선하다. 정학한 동선을 안내하는 표지판이나 이야기들이 더 많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래도 부족한 가운데서 열심히 노력하는 공무원들이나 주민들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11. 운영진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 수익사업이 더 이루어지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마땅히 쉴 공간이 잘 안내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최대한 자전거를 늘릴 수록 이바구길은 성공할 듯. 12. 홈페이지 주소는? - 이바구길 http://2bagu.co.kr/user/main/main.do 13. 꼭 추천하고픈 공간이나 체험활동은? - 무조건 자전거 투어. 자전거가 8대 뿐이다. 빨리 신청하자. 14. 여행을 비추하고픈 사람과 이유는? - 부산역 기차 출발시간에 쫓기는 분이나 고소 공포증이 있으신 분들. 15. 먹거리 정보와 식당 정보는? - 168 도시락과 625 막걸리외에도 동네 작은 식당들이 많다. 이바구길 입구 왼편이 인천 차이나타운에 버금가는 부산 차이나타운 맛거리이다. 16. 어떤 코스를 도는 것이 좋을까요? 추천코스는? - 구 백제병원에서 시작해서 위로 올라가는 코스가 제일 낫다. 17. 도움되는 사이트? - 소설가 이호철씨의 네이버 캐스트(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83&contents_id=27299) 피난민과 전쟁세대의 삶에 대한 진지한 관찰이 필요하다. 18. 부산에 이와 유사한 다른 공간도 있나요? - 원래 부산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감천문화마을이 골목 투어의 원류이다. 초량 이바구길외에도 호랭이이바구길, 부산이바구길이 인접해있다. 19. 숙소정보는? - 이왕 온 것이니 이바구길에서 운영하는 이바구충천소나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20. 총평 및 당부사항 - 현재 점점 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가고 있다. 좀 더 전문화된 관광지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김민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경치 하나로 이 모든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 부산 전경을 바라보는 풍광은 진정 최강임!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자치단체장 25시] 빈민에겐 ‘엄마’… 軍 통합훈련장 건립 반대엔 ‘전사’

    [자치단체장 25시] 빈민에겐 ‘엄마’… 軍 통합훈련장 건립 반대엔 ‘전사’

    홍미영(61) 인천 부평구청장의 삶은 ‘소외된 사람들과 동행’으로 집약된다. 정치인들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을 보란 듯이 드러내지만 ‘말의 향연’에 그치는 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홍 구청장은 살아온 과정으로 얼마나 치열하고 한결같이 약자의 편에서 실재했는지를 증빙하고 있다. 서울이 고향인 그는 사업하던 아버지와 어머니 슬하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사회학과에 입학한 그는 1학년 때 서울 중랑천 뚝방촌에 빈민 봉사활동을 나갔다가 큰 충격을 받는다. 지저분한 공동 화장실은 물론 최소한의 주거환경을 갖추지 못한 곳에서 아이들은 신발도 없이 맨발로 뛰어다녔다. 아이들의 부모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현실을 목도하면서 사회구조가 불평등하다는 사실에 눈을 떴다. ‘금수저’로 태어나 ‘흙수저’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삶을 꿈꾸는 계기가 됐다. “다들 부모 덕에 어느 정도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제 생각이 철없음을 절감했다”고 그는 회상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받은 몫이 이 사회에서 덜 가진 다른 사람들이 받아야 할 몫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 그 인식은 더 받은 몫을 사회에 돌려줘야겠다는 성찰로 이어졌고, 60이 넘어선 지금까지 이를 실천하는 삶이 됐다. 육아와 노동을 병행하는 빈민 여성들에게서 한국사회의 모순이 집약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1983년 일곱 살, 다섯 살배기 딸 둘을 데리고 인천 동구 만석동으로 이사 왔다. 서울토박이가 서울을 떠나 인천 부둣가 판자촌에 살기로 한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이후 인천 최초 비영리 공부방인 ‘큰물공부방’을 차렸다. 엄마들이 조개·굴을 캐거나 공장 일을 하러 나간 사이 지저분한 골목과 어두운 방에 방치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그의 차지였다. 모든 게 어려운 상황이었다. 공부방이 자리를 잡아가던 중 만석동 판자촌이 철거되자 인천의 또 다른 달동네인 부평구 십정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방 두 칸짜리 전셋집을 얻어 한 방은 유아놀이방, 다른 방은 초등학생 공부방을 운영했다. 도시빈민과 같은 삶을 살아야 그들을 주체로 세우는 빈민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공부방은 후배들에게 맡기고 공장을 다니거나 우유 배달, 가내 부업을 하는 평범한 아줌마로 변신했다. 거리에서 시위하는 것보다 더 치열한 ‘운동권’이었던 셈이다. 주민들과 지역모임을 만들어 산동네 쓰레기수거, 가로등·공중전화 설치, 상하수도 정비 등을 논의하는 한편 동네신문을 찍고 주민자치회, 바자회 등을 주도하면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던 그에게 ‘정치’는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하자 주민들과 공부방 교사들, 자원봉사자들이 구의원 출마를 권유했다. 낙후된 십정동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동네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출마해야 한다며 등을 떠밀었다. 그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신뢰에 힘입어 십정동으로 이사 온 지 5년 만에 당시 인천 최다 득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인천 북구(현 부평구) 의원에 당선된다. 한국여성운동의 대모였던 고(故) 박영숙 한국여성재단 이사장은 “초대 기초의원선거 유세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당시의 감동을 절대 잊을 수 없다. 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구체적인 문제를 소상하게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실천방안을 또박또박 제시함으로써 유권자의 갈채를 받았다. 참다운 의미에서의 생활정치인 탄생이 확실시되는 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홍 구청장의 구의원 활동이 소외된 자들을 대변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음은 물론이다. 역량과 진정성을 인정받은 그는 재선 인천시의원과 17대 국회의원을 거쳐 재선 구청장이 됐다. 그래서 지방자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는 여전히 가난한 자들의 이웃이다. 한국 정치인들은 체급(?)이 올라가면 초심을 벗어나기가 다반사지만, 홍 구청장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등식이다. “지방자치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된 ‘생활자치’ 영역이란 철학을 가지고 주민들의 일상적인 문제를 세심하게 살피고 해결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부평구는 요즘 통합예비군훈련장 문제로 시끄럽다. 국방부가 산곡동에 통합훈련장을 만들어 인천 주안·계양·공촌·신공촌훈련장은 물론 경기 부천과 김포에 있는 훈련장까지 합치는 방안을 추진하자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통합훈련장 예정지 반경 3㎞ 이내에 20여만명이 거주하고 31개의 유치원 및 초·중·고가 밀집해 있다. 주민들은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벌여 지금까지 24만명이 서명을 했다. 부평구는 인천시에 대체부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시는 마땅한 대체부지를 찾기 어려운 데다 부지를 확보하더라도 마찬가지로 인근 주민들의 반대가 예상된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국방부 역시 애매한 태도를 보인다. 홍 구청장은 “현재 14개의 군부대가 부평지역 330만㎡를 점유해 군부대 이전이 시급한 상황에서 통합예비군훈련장까지 들어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부평4동에 있는 미군부대 ‘캠프 마켓’ 이전을 서두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대가 경기 평택으로 이전하는 방안은 수년 전 결정됐으나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홍 구청장의 마음은 다급하다. 홍 구청장은 부대가 이전하면 공원 외에 풍물전시관 등 문화역사공연장을 만들겠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캠프 마켓은 일반 군부대가 아니라 빵을 만들어 전국 미군부대에 공급하는 일종의 군수기지인데 예정보다 이전이 늦어져 2018년쯤 이전이 완료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승만의 독재정치에서 희생된 ‘1950년대 진보정치’의 대명사 조봉암 선생의 동상을 만들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조봉암은 부평을 기반으로 했던 정치인으로 이곳에서 국회의원을 두 번이나 지내고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다. 부평을 가로지르는 굴포천과 그 주변을 생태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것도 홍 구청장이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굴포천은 인천가족공원(부평동)에서 시작해 계양구, 경기 부천·김포를 거쳐 한강까지 흐르는 서부 수도권의 대표적인 하천이다. 구는 인천가족공원부터 부평구청까지 3.4㎞에 대한 단계적 개발을 시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굴포천 복원과 연계되는 국비사업에 응모, 3개 분야에서 870억원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홍 구청장은 “사람 사는 곳에 물길이 있다는 것은 큰 복”이라며 “굴포천 복원으로 30여 전 물놀이를 하고 물고기를 잡던 시냇물을 재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낙후지역이 많은 부평에서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사업도 가속도가 붙고 있다. 수많은 재개발사업이 부동산경기 침체로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대안으로 떠오른 뉴스테이는 사업 속도가 빠르고 재정착 주민들에게 혜택이 많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청천2구역과 십정2구역인데 2019년 말쯤 입주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홍 구청장의 행정 화두는 단연 서민경제 활성화다. 서민들이 많이 사는 곳의 자치단체장으로서의 운명이기도 하겠지만, 평생을 약자의 편에서 살아온 만큼 당연한 행정철학이기도 하다. 홍 구청장은 “부평은 대체로 못사는 지역이지만 소통을 잘하는 공동체이고, 역동적이면서 민주주의적 자질이 강한 시민들로 가득하다”면서 “단체장이 풀뿌리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제공하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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