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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자체별 규제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 한다

    지자체별 규제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 한다

    “행정규제 개선은 돈을 들이지 않고 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안전행정부는 10일 ‘제5차 지방규제 개선위원회’를 열고 지방자치단체 규제 개선 실행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이처럼 밝힌 유정복 안행부 장관은 “지자체 규제는 중앙 부처보다 규제의 범위는 작지만 국민이 직접 필요한 사항을 다루고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규제 개선 사례를 살펴보면 서울 종로에 있는 봉제공장은 원단폐기물을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리는데 봉투 값이 부담이었다. 월 30만~40만원에 이르는 쓰레기봉투 값은 경기침체로 수익이 떨어진 봉제업체엔 큰돈이었는데, 환경부와 종로구가 나서 문제를 해결했다. 환경부는 훈령을 개정해 원단폐기물을 재활용 가능 자원에 포함했고, 종로구는 이에 따라 원단폐기물 재활용 사업을 하기로 했다. ‘부산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부산 감천문화마을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도시민박업’을 금지한 법규 때문에 관광객 유치에 애로를 겪었다. 이 마을은 주거 지역이라 관광호텔이나 호스텔과 같은 숙박업소를 새로 짓는 것이 어려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관광진흥법 시행령을 개정해 마을기업과 같은 지역공동체 사업을 운영하면 도시민박업 시설에서 내국인 관광객도 숙식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피란민이 모여 살던 달동네였다가 형형색색의 지붕과 골목, 이야기가 있는 관광지로 변모한 감천문화마을에서 앞으로 내국인도 편하게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안행부는 기업들이 지자체별로 규제를 한눈에 비교·확인할 수 있도록 오는 6월까지 ‘지방규제 지도정보’ 시스템을 구축한다. 또 자발적인 규제 개선과 기업이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위한 지자체별 ‘기업활력지수’도 9월까지 개발해 공개할 예정이다. 광역시·도에는 ‘지방규제 신고센터’를 설치하고, 여기에 신고된 애로 사항은 ‘규제애로 사전심의제’를 통해 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된다. 이날 안행부는 규제 완화 실적이 우수한 지자체 26곳과 기업의 애로 사항을 개선해 투자 활성화에 이바지한 지자체 공무원 등 12명에게 ‘섬김이 대상’을 시상했다. 수상자인 오흥석(49)씨는 경북 구미시 투자통상과 행정7급 공무원이다. 그는 도시관리계획 등에 부딪혀 생산시설이나 기숙사, 공장 증설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문제 해결에 나서 모두 2조 4350억원의 투자와 5600여명의 고용을 창출했다. 같은 상 수상자인 권영규(57·경남 창녕군 경제도시실 서기관)씨도 농어촌공사, 낙동강유역청, 주민들과 여러 차례 협의를 통해 기업의 공장용지를 확보했다. 보상업무를 대행하고, 묘를 이장해 타이어 생산공장 설립에 따른 인허가 기간을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하기도 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광주 달동네 ‘발산마을’ 예술인촌으로 탈바꿈

    광주시내 대표적 달동네 지구인 서구 양동 발산마을이 예술인촌으로 탈바꿈한다. 7일 광주시에 따르면 양동 발산마을 공·폐가 21가구를 매입하거나 장기 임대해 개인창작공간과 공동작업장 등을 갖춘 예술인촌으로 만들기로 했다. 시는 이곳에 게스트하우스와 예술인촌 운영·관리를 위한 예술마을지원센터를 구축하고, 입주한 예술인들을 위해 방범용 폐쇄회로(CC)TV, 도시가스, 소방도로 등 도시 기반을 확충하기로 했다. 시는 이들 공·폐가 매입 비용(1동당 1억 5000만원)과 리모델링 비용 등을 감안하면 20억~30억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안에 착공해 2018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또 발산 예술인촌을 비롯해 동구 궁동, 서구 서창동, 남구 양림동, 북구 각화동 시화마을 등으로 예술인촌을 확대 조성해 나갈 방침이다. 시는 이를 위해 가칭 ‘광주예술마을 육성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입주작가 창작공방 구입자금을 저리로 융자하는 등 다양한 행·재정적 지원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30일(목) 지상파 하이라이트

    ■생명 최전선(KBS1 밤 10시 55분) 12월의 한산한 오후. 중년의 남자가 응급실에 실려 왔다. 일을 하다 쓰러졌다는 47세 천명호씨는 황급히 CT 촬영에 들어갔다. 확인 결과는 뇌출혈. 출혈 부위는 우리 몸의 심장과 호흡 기능을 관장하는 뇌의 뿌리 부분, 뇌교라는 곳이었다. 한편 응급실에 도착한 아내 유주연씨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설 특집 투혼(KBS2 오후 6시 10분) 연예인 1명과 일반인 1명이 팀을 결성해 토너먼트 형식으로 닭싸움 대결을 벌이는 서바이벌이 시작된다. 이경규와 KBS 조우종 아나운서가 진행을 맡았다. 출연자로는 ‘샤이니’ 민호, ‘B1A4’ 바로, 김창렬, 윤형빈, 유민상, 박성광, 얼짱 파이터 송가연, 개그우먼 김혜선 등 총 8개 팀 16명이 경기에 참여한다. ■설 특집 2014년 아이돌 육상·양궁·풋살·컬링 선수권대회 1부(MBC 오후 5시 30분) 설을 맞아 250여명의 아이돌이 육상, 양궁을 비롯해 풋살, 그리고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컬링까지 네 가지 종목으로 대결을 벌인다. 진행은 전현무와 신동, 김성주, 이병진이 한다. 해설위원으로는 육상 윤여춘, 양궁 윤혜영, 풋살 이창환이 나선다. ■은밀하게 위대하게(SBS 밤 8시 40분) 북한에서는 혁명전사, 남한에선 간첩. 들개로 태어나 괴물로 길러진 그들이 남파됐다. 어이없게도 달동네 바보, 가수 지망생, 고등학생으로 위장해 기다리지만 명령은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전달되는 명령도 없이 시간만 흘러가고, 남한 생활에 익숙해 갈 때쯤 그들에게 예상 못한 은밀하고 위대한 임무가 내려진다. ■생활의 비법(EBS 오전 9시 20분) 생활 속 특별한 노하우를 가진 사람들을 초대해 그들만의 기발한 비법을 들어본다. 이번 시간에는 수십 년 흡연 습관을 버리고 금연에 성공한 이야기로, 매번 작심삼일이 되어 버리는 금연 계획에 실패하지 않을 비법이 공개된다. 과연 수십 년 흡연 인생을 마치고 금연 인생을 사는 김낙연씨와 김시흥씨의 금연 성공 비법은 무엇일까. ■설날특집 참 예쁜 당신(OBS 밤 10시 45분) 어려운 시련 속에서도 운명에 굴하지 않고 역경을 이겨내는 우리 이웃의 감동적인 삶을 옴니버스로 담았다. ‘인생의 굴곡을 함께 이겨낸 부부의 사랑’과 ‘어머니의 끝없는 자식 사랑’을 주제로 전한다. 그중 못 말리는 한량 임기추 할아버지와 해녀 출신 살림꾼 고춘화 할머니의 동고동락 65년 에피소드를 공개한다.
  • 여전히 패배한 편에 여전히 빈손이지만 팔순 시인은 말한다…그래도 행복하다고

    여전히 패배한 편에 여전히 빈손이지만 팔순 시인은 말한다…그래도 행복하다고

    ‘아무래도 나는 늘 음지에 서 있었던 것 같다/개선하는 씨름꾼을 따라가며 환호하는 대신/패배한 장사 편에 서서 주먹을 부르쥐었고/몇십만이 모이는 유세장을 마다하고/코흘리개만 모아놓은 초라한 후보 앞에서 갈채했다/그래서 나는 늘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나는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나는 그러면서 행복했고/사람 사는 게 다 그러려니 여겼다//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큰 손이 있다고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평생 쓰러진 것들을 위무했던 시인은 팔순에 이르러서도 낮게 엎드린 사람들의 등을 쓸어준다. 6년 만에 낸 열한 번째 시집 ‘사진관집 이층’(창비)에서 신경림(79) 시인은 여전히 빈손으로도, 패배한 편에 서서도 행복한 삶이었노라고 노래한다. 기교 하나 없는 서정적인 시어들에 59년 시력(詩歷)의 깊이와 무게가 담담하게 실려 있다. “얼마 남지 않은 내일에 대한 꿈도 꾸고 내가 사라지고 없을 세상에 대한 꿈도 꾼다. 때로는 그 꿈이 허황하게도 내 지난날에 대한 재구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시인의 꿈 목록에 가장 먼저 올라 있는 이들은 가족이다. 시에서 그는 치매로 아들도 못 알아보던 할머니, 중풍으로 다리를 절던 아버지, 일찍 사별한 아내 등 이제는 맨살을 부비지 못하는 그리운 얼굴들을 불러 모은다. ‘가난한 아내의 기침 소리 속에 산다/도시락을 싸며 가난한 자기보다 더 가난한 내가 불쌍해/눈에 그렁그렁 고인 아내의 눈물과 더불어 산다.’(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나는) 지독한 가난의 기억에 진저리 치면서도 시인은 시곗바늘을 자꾸만 그 시절로 돌린다. 지금도 경기 안양시 비산동 달동네에,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산 일번지에, 아버지와 가난한 아내와 아내보다 더 가난한 내가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움이 꿈과 현실의 경계마저 지우는 셈이다. “서러운 행복과 애잔한 아름다움을 담고 있는 시집”이라는 박성우 시인의 추천사가 더없이 들어맞는 시편들이다. ‘통금에 쫓겨 헐레벌떡 돌아오면 늦도록 기다리다/문을 따주던 아버지의 앙상한 손이 싫다./중풍으로 저는 다리가 싫고/죽은 아내의 체취가 밴 달빛이 싫다./지금도 꿈속에서 찾아가는, 어쩌다 그리워서 찾아가는/어쩌면 다시는 헤어나지 못한다는,/헤어나도 언젠가 다시 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던,/나의 마흔이 싫다.’(나의 마흔, 봄) 고 민병산 선생이 인사동 카페에 남긴 글씨 한 폭은 위로와 타박을 동시에 안기며 시인의 평생을 곱씹어 보게 한다. ‘歲月靑松老/그만하면 꽤 버텼다고?/歲月靑松老/이제 뭘 더 바라느냐고?/세상에 만 예순해를 살다 간 그의 글씨 한폭이/아니, 삐딱하니 모자를 쓴 그가/그뒤로도 스무해나 더 살고 있는 나를/위로도 하고 나무라기도 하면서 걸려 있다/바보로 사는 게 더 어려웠다는 걸/아직도 모르겠느냐면서.’(세월청송로) 어느덧 ‘황홀한 윤무에 끼여 빙빙 돌아갈 날’(윤무)을 넘겨다보는 황혼에 이른 시인. 눈은 흐려지고 귀는 멀어 가지만 순리를 순정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형형하게 빛난다. ‘다시 느티나무가 커진 눈에/세상이 너무 아름다웠다./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멀어져/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아름다웠다.’(다시 느티나무가)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생명의 窓] 양극화, 과학도 무너지게 한다/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

    [생명의 窓] 양극화, 과학도 무너지게 한다/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

    몰입과 집중을 요구하는 과학의 특성상 과학자는 대부분 원래 세상일에 관심이 없다. 그런 과학자들이 요즘 둘만 모이면 세상 돌아가는 걱정뿐이다. 연구비 이야기다. 불황이라 온 국민이 살기 어려운데 ‘연구비’ 타령이냐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연구비는 당장 추위에 떠는 달동네 독거노인들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 국민의 세금이기에 꼭 더 이야기해야겠다. 과학은 냉정하게 말해 ‘돈을 넣어 지식을 만드는 과정이다.’ 지난 20여년간 한국의 과학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우리의 경제력이 커지면서 연구개발(R&D) 예산 규모도 늘고 과학자 수와 연구 능력도 향상된 덕분이다. 과학자들은 부족한 여건이지만 연구하고 대학원생을 교육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상황이 심각하게 바뀌었다. 과학 연구의 주축인 대학의 과학자들이 단 몇 달 후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실험 재료비 때문에 수천만원씩 빚이 있는 연구실도 부지기수다. 우리나라의 올해 R&D 예산이 17조원에 이르고 국민총생산(GNP) 대비 R&D 예산이 세계 2위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이는 정부가 R&D 예산을 집행하는 과학기술 정책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극명한 이유는 2012년에 시작된 기초과학연구원(IBS)이다. 출범 때부터 대규모 예산으로 기존 연구가 위축될 것으로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으나 정책에는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 정부는 이 사업으로 기존 연구비가 줄어드는 일은 결코 없다고 했으나 말뿐이었다. 지난해 대부분의 정부 연구과제 선정 비율은 7% 내외였다. 또 이렇게 치열한 연구과제의 평균 연구비는 1억원 정도로 이런 과제가 최소 2개 있어야 연구실 운영이 가능하다. 반면 기초과학연구원의 한 과제에는 1년에 50억~100억원을 쓴다. 연구원 25~50명이 걱정 없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금액이다. 정부의 연구과제 지원 양극화가 정말 심각한 수준이다. 양극화 정책의 근본 이유는 주요 정책결정자들의 ‘노벨상 병’이라고 불리는 가시적 업적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 때문이다. 소위 노벨상이 가능할 몇몇 분야, 몇몇 연구만 과감한 투자로 집중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소규모 연구 지원을 대폭 축소해 대학의 연구 기반이 무너지는 상태에서 엄청난 액수의 연구비가 몇몇 개인에게 집중되는 정책은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키우는 데는 성공적일 수 있어도 과학을 육성하는 정책은 될 수 없다. 과학은 어떤 연구가 어떤 성과를 가져올지 예측할 수 없기에 다양한 분야의 튼튼한 기반이 전제조건이다. 또 대학 연구실이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한 석·박사 연구 인력을 배출할 때, 몇몇 과학자의 성공적인 연구로 한국 과학의 수준이 높아질 수는 없다. 그 좋은 예가 과학에서만 1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이다. 일본은 과학자가 소규모라도 오랜 세월 한 가지 주제에 몰입해 연구할 수 있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집행하고 있다. 과학에서 조급증과 업적주의는 긴 안목에서 독이다. 한국 과학계는 아직 세계적으로 약자고 기반도 허약하다. 여기에 양극화로 지난 세월 어렵게 다져온 과학기반이 무너질까 두렵다. 더 늦기 전 정부가 과학정책에 대해 고민하고 방향을 선회하기를 간곡히 소망한다.
  • 제빵왕 김탁구가 살던 그곳, 순천 드라마세트장이 뜬다

    제빵왕 김탁구가 살던 그곳, 순천 드라마세트장이 뜬다

    전남 순천 드라마촬영장이 각광을 받고 있다. 지난해까지 SBS ‘사랑과 야망’, ‘자이언트’, MBC ‘에덴의 동쪽’, ‘빛과 그림자’, KBS ‘제빵왕 김탁구’ 등 수많은 작품이 이곳에서 만들어져 선보였다. 15일부터 방영될 KBS2 수목 드라마 ‘감격시대’의 주 촬영지로 섭외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드라마 내용은 1930년대 상하이와 신의주를 무대로 사랑과 우정, 애국과 욕망에 아파한 선 굵은 남자들의 이야기다. 감격시대는 15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투자한 초대형 프로젝트로 KBS의 2014년 최고의 기대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총 24부작 중 순천드라마촬영장에서 10회 이상 촬영될 전망이다. 이곳은 영화촬영장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박보영, 이종석 주연의 영화 ‘피끓는 청춘’이 순천드라마촬영장의 순양극장, 동래국밥 등을 배경으로 촬영돼 이달 말 개봉될 예정이다. 이 외에도 2~3개 영화 제작사 등과 영화촬영을 협의하고 있다. 순천 드라마촬영장은 1950~1970년대 순천 읍내거리, 서울 변두리와 달동네를 재현한 곳으로 추억의 모습을 간직한 장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또 ‘추억으로 가는 작은 음악회’ 등 문화예술 상설공연을 통해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시 관계자는 “내년에는 추억이 샘솟는 드라마촬영장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후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등 즐길거리와 먹거리, 체험시설 등을 더욱 확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김광석, 그는 갔습니다…우리는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김광석, 그는 갔습니다…우리는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대통령실 경호부장 정학은 어느 날 도서관에서 낡은 책에 새겨진 글귀를 발견한다. “무영 왔다감, 그녀 왔다감.” 20년 전 청와대 경호원으로 정학과 함께 첫발을 디딘 동기 무영은 그가 경호하던 ‘그녀’와 함께 사라졌다. 한 번도 수석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무영의 존재는 정학에게 늘 콤플렉스였다. 20년간 가슴에 묻어두었던 친구의 실종을 다시 마주한 정학은 그리움과 원망을 노래에 담아 부른다. “잊어야 한다면/ 잊혀지면 좋겠어/ 부질없는 아픔과/ 이별할 수 있도록”(뮤지컬 ‘그날들’) #어머니의 유골을 모신 납골당에 갔던 준혁은 착잡한 마음에 진아에게 전화한다. 둘은 달동네 철거촌에 살던 시절부터 풋풋한 감정을 키워 왔던 사이다. 진아는 기타를 들고 어린 시절 돌아가신 아버지가 좋아했던 김광석의 ‘거리에서’를 부른다. 어두운 밤 버스에 몸을 싣고 차창 밖을 바라보던 준혁은 어머니를 떠올리자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tvN 시트콤 ‘감자별 2013QR3’) 대중문화계가 ‘김광석’으로 뜨겁다. 뮤지컬과 드라마는 그의 노래로 사랑과 이별, 그리움과 회한의 정서를 담아낸다. 예능프로그램에서는 내로라하는 노래꾼들이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재해석해 부른다. 김광석이 태어난 지 50년이 되는 2014년 그의 노래는 그 자체로, 또는 새로운 콘텐츠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1990년대 복고 열풍과 3040세대의 추억앓이를 넘어섰다. 대중문화계 김광석 열풍의 출발은 뮤지컬계였다. 김광석의 노래를 바탕으로 한 주크박스 뮤지컬이 지금까지 세 편이나 만들어졌다. 박진감 넘치는 추리극 ‘그날들’과 첫사랑의 아픈 기억을 그린 ‘디셈버’는 대극장 뮤지컬로 흥행에 성공했다. 이들 작품보다 앞선 2012년 11월 대구에서 첫선을 보인 소극장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입소문을 타고 남은 2주치 티켓이 모두 동났다. 여기에 방송가가 가세했다. 지난해 8월 MBC ‘다큐 스페셜’이 김광석을 조명했고, tvN ‘응답하라 1994’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재현하면서 김광석의 콘서트 실황과 음악을 활용했다. JTBC ‘히든싱어2’와 KBS 2TV ‘불후의 명곡2’는 이례적으로 고인인 그의 특집 방송을 꾸몄다. 그의 노래가 시대를 불문하고 호소력을 갖는 이유 중 하나는 서사성이다. 군 입대를 앞두고 ‘이등병의 편지’를 듣고 삶이 힘에 겨울 때 ‘일어나’를 듣듯이, 살면서 부딪히는 갖가지 굴곡과 감정들을 담은 가사는 세대와 연령을 넘나들며 감정을 몰입하게 만든다.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권미강 팀장은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 노래 한 곡마다 그에 맞는 상황과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를 정도”라면서 “첫사랑, 군입대, 서른 살 등 일상 생활에서 겪는 각자의 이야기가 가사에 담겨 있어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낀다”고 말했다. 때문에 대중문화계에서 그의 노래는 1990년대를 소환하는 장치에 그치지 않는다. 뮤지컬 ‘그날들’은 김광석의 노래를 청와대 경호실에서 펼쳐지는 추리극과 사라진 친구에 대한 회한으로 변주했다. tvN ‘응답하라 1994’는 극의 배경이 2000년대로 접어들어서도 짝사랑의 감정은 ‘사랑했지만’(1991년 곡)을 배경음악으로 선택해 그려냈다. 또 좋은 가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김광석의 힘은 그가 가진 ‘위로’와 ‘소통’의 정서에 있다. 강태규 대중음악평론가는 “그의 보컬에는 우리 내면의 결핍을 채워 주는 무언가가 있다”면서 “친구가 위로해주듯 진심으로 다가오는 표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설명했다. 권 팀장은 “방송 출연을 마다하고 소극장에서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노래한 그의 정신은 시대를 뛰어넘어 빛을 발한다”고 말했다. 생전의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1020세대들도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부른다. 지난 6일 서울 학전블루소극장에서 열린 ‘김광석 따라부르기 대회’에는 적잖은 20대들이 참가했다. 동아방송대 재학생과 졸업생 4명이 뭉쳐 우승한 ‘빨간의자’의 전수경(25)씨는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노래를 따라 들으면서 김광석의 노래를 듣게 됐다”면서 “한 구절 한 구절에 담겨 있는 진심은 10대 때와 20대 때가 다르게 다가온다. 30대가 되면 또 다르게 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고독사’라는 어두운 주제 뮤지컬로 정면 돌파했죠

    ‘고독사’라는 어두운 주제 뮤지컬로 정면 돌파했죠

    무대에는 구청 사회복지과 공무원의 책상과 전화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무연고 사망자 담당 공무원인 40대 여성 독고정순은 홀로 죽어간 이들의 시신을 찾아갈 가족을 찾는 데 매달리고,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낙하산’ 직원 서산과 티격태격한다.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신정동 CJ아지트에서 열린 창작뮤지컬 ‘어차피 혼자’의 낭독공연 현장. 동화나 소설 속 판타지와는 거리가 먼 이 뮤지컬에 관객들이 얼마나 호응할까 싶던 순간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인공들의 남모를 가족사와 상처가 하나둘씩 드러나던 대목에서였다. ‘어차피 혼자’는 2005년 초연 후 ‘힐링 뮤지컬’로 장수하고 있는 창작뮤지컬 ‘빨래’의 추민주 작가 겸 연출과 민찬홍 작곡가가 또 한번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작품으로 준비한 ‘빨래’는 이들에게 각종 뮤지컬 시상식의 작사·작곡과 극본상을 안겼다. ‘빨래’를 통해 달동네 소시민들의 삶을 따뜻하게 보듬었던 이들은 ‘어차피 혼자’에서 ‘고독사’라는 어두운 주제를 정면으로 조명했다. 추민주 1인 가구가 늘면서 혼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 없었어요.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사회적 조건은 좋지 않고, 저 역시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보장된 미래가 없거든요. 민찬홍 지난봄, 추 작가가 저에게 ‘고독사’라는 주제를 제안했을 때는 이를 뮤지컬이라는 양식으로 담아내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참신한 주제라서 끌렸어요. 제가 오히려 “이거로 하자”고 강하게 추천했죠. 추 시청, 구청의 홈페이지에서 무연고 사망자 공고문을 찾아봤어요. 공고문의 설명 한두 줄에서 행간을 읽어가기 시작했죠. 또 구청의 무연고 사망 담당자들을 인터뷰했어요. 감정을 절제하고 일하시는 분, 눈물이 많으신 분…. 많은 이야기 속에서 ‘독고정순’이라는 인물을 찾아내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또 ‘찾아갈 사람이 있지만 찾아가지 않는다’, ‘찾아가지 않는 이유는 개인사지만 그 개인사를 만드는 건 사회다’라는 걸 알게 됐어요. 민 음악에서는 다양한 장르와 리듬, 색다른 소리를 많이 차용해 아기자기하고 밝게 풀어가려고 했습니다. 어두운 소재지만 대본을 보면 밝은 면도 많거든요. 낭독 공연으로 본 ‘어차피 혼자’는 전반적으로 어둡고 묵직했다. 가난과 외로움, 삶과 죽음을 지극히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야기는 뮤지컬에서 기대하기 마련인 판타지와 로맨스, 코믹의 요소들을 보란 듯 모두 비켜간다. 추 어두운 부분을 피해갈 생각은 없어요. ‘정면 돌파’도 필요하죠. 젊은 관객들이 피하고 싶은 주제를 내 이야기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민 뮤지컬이라는 장르 위에서 “이 주제가 괜찮을까?” 하고 고민하진 않았어요. 좋은 작품은 관객이 자기 삶과 가깝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결국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루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추 사람들에겐 판타지가 필요하지만 한편으로는 피하고 싶은 주제도 생각해야 해요. 뮤지컬은 이야기를 정서적으로 전달합니다. 무거운 주제도 뮤지컬을 통해서라면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요. 사실 ‘빨래’에서처럼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장면을 넣고 싶었는데 이번 낭독공연을 준비하면서는 시간이 부족했어요. 본 공연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앞으로 젊은 관객들과의 접점을 찾고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을 버무려낼 계획이다. 여러 인물들이 함께 부르는 극적인 곡들도 추가된다. 보다 밝고 유쾌해진 ‘어차피 혼자’를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추 작가와 작곡가가 부부라면 저희는 ‘10년차 부부’랄까요?(웃음) 곡을 쓸 시간을 충분히 못 줬는데도 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신뢰해 준 민 작곡가는 저와 썩 괜찮은 파트너입니다. 민 저는 극이 나오면 음악을 붙이지만, 극을 만드는 건 추 작가의 외로운 작업입니다. 험난했을 텐데 큰 고비를 잘 넘겨줬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공무원도 중장년도 多 함께 놀아야 제맛”

    “공무원도 중장년도 多 함께 놀아야 제맛”

    공무원 대 홍대 문화. 스테레오 타입으로 따지자면 딱 상극이다. 규정과 의전에 살고 죽는 공무원과 그런 것 따위는 시원하게 어겨 줘야 박수받는 예술 사이의 간격이란 그렇다. 늘 으르렁댄다. 그런데 22일 만난 장종환(59) 서울 마포구 서교동장은 다르다. 홍대 앞의 ‘큰형님’이자 ‘큰오빠’다. 나이에, 공무원스러운 정장에, 단정한 외모까지 전형적인 간부 공무원이다. 스스로도 ‘범생이’로 살아온 인생이라며 웃는다. ‘엉터리 밴드’를 만들어 기타 연주에 노래까지 불렀다지만 그건 흥을 돋우려 잠깐 했을 뿐이다. 그런데 어쩌다 ‘큰형님’ ‘큰오빠’가 됐을까. 계기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다. “월드컵을 계기로 홍대 문화가 널리 알려지면서 문화에 대한 얘기들이 정말 많이 나왔죠. 그걸 어떻게든 잘 살려 보고 싶었습니다.” 이 화두는 ‘공무원도 사람이다’와도 통한다. “공무원에 대해 흔히 하는 얘기들이 정말 듣기 싫었고요. 그 때문에라도 공무원들이 공무원보다는 일반인들과 더 열심히 놀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 함께 놀자’ 판을 벌였다. 홍대 문화가 너무 젊은 쪽으로 기운다 싶어 중장년층도 낄 수 있게 ‘나이 없는 날’과 ‘손맛 나는 날’을 만들었다. 배곯고 다니는 젊은 음악인들에게 어른들은 음식을 해 주고 젊은이들은 보답 공연을 했다. 재주꾼이 많이 모였으니 ‘강공장’도 만들었다. 이름 그대로 강의, 공연, 장터가 한데 어우러졌다. 자기 재주를 가르쳐 주고 남의 재주를 배우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이러다 보니 ‘홍대 앞 문화예술인회의’가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 예술인에게 주던 ‘홍대예술상’을 공무원으로서는 유일하게 받기도 했다. “예술 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상을 받으려니 기분이 묘하더라”며 웃었다. 다 함께 놀자 판이 결국 요즘 유행하는 마을공동체 사업이다. 개인적으로는 염리동장 때의 경험이 가장 강렬하다. “뉴타운으로 옛 마을이 없어진다고 해서 옛 기억을 모아두고 싶었습니다.” ‘염리창조마을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작업은 달동네 염리동의 일상사를 기록해 두고 솔트 카페를 만들었으며 염리동의 오래된 마을 얘기인 ‘소금장수 황부자’를 연극으로 부활시켜 주민 참여 무대를 성사시켰다. “숨어 있던 끼를 부려놓을 곳만 찾아줬을 뿐인데” 지금도 그 사업들이 아주 잘 진행되고 있어 뿌듯하다는 게 장 동장의 말이다. 그런 그가 정년퇴직을 앞두고 그간의 경험을 한데 모아 ‘도시에서 마을을 꿈꾸다’(상상박물관 펴냄)를 펴냈다. “마을공동체니 뭐니 하는 것들은 거창한 게 아니라 결국 우리 동네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산다는 말입니다.” 컴백할 일이 있을까.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꼭 찾아보겠습니다. 하하하.”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20대부터 겨울 달동네에 12년째 ‘온기’… 연탄 배달부 장희남씨

    [김문이 만난사람] 20대부터 겨울 달동네에 12년째 ‘온기’… 연탄 배달부 장희남씨

    ‘연탄의 일생’이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시 한 구절이 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그러면서 시인 안도현은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 팔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언덕길을 오르는 것이라네’라고 읊었다. 그렇다. 연탄을 실은 트럭들은 어디론가 찾아가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온기가 돼 준다. 또 온몸을 불태운 연탄재는 눈 내려 미끄러운 이른 아침에 마음 놓고 걸어갈 길을 만들어 주고는 생을 마감한다. 장희남(40)씨는 이러한 온기를 트럭에 싣고 연탄 배달을 하느라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요즘 연탄을 찾는 사람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달동네와 삶의 외진 곳에서 한 장의 연탄이라도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밤낮없이 찾아간다. 20대 후반 나이 때부터 시작해 12년째 ‘온기 배달’을 하고 있다. 흔히 연탄 배달부라고 하면 50대 이후이거나 ‘실직한 아버지’의 몫으로 여기기 십상인데 어떻게 팔팔한 20대 나이 때부터 흔들림 없이 일을 해 왔을까. 지난 3일 오전 서울 강동구 길동의 한 길가에서 그를 만났다. 원래는 서울에서 하나뿐인 이문동 연탄공장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연탄을 실은 트럭이 길동 화훼단지에 배달을 나갔다가 갑자기 고장 나는 바람에 인터뷰 장소가 급히 변경됐다. 배터리 교체를 위해 작업을 하던 장씨와 잠시 인사를 나누면서 트럭이 자주 고장 나는지 물었다. “무거운 중량의 연탄을 싣다 보니 차가 자주 고장 납니다. 연탄 한장 무게가 3.5㎏입니다. 연탄을 한 차에 가득 실으면 보통 2000장 정도 되는데 무게가 7t 넘게 나갑니다. 하루에 여러 차례 실으니까 차에 무리가 많이 가죠. 또 연탄 배달을 하는 곳은 경사가 심한 달동네라든가 도로 포장이 잘 안 된 곳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각종 부속이 금방 노후돼 고장이 자주 납니다.” 그래서 약간의 이상 신호만 있으면 바로바로 수리해야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장씨는 말한다. 예를 들어 7t이 넘는 연탄을 적재한 트럭이 홍제동이나 상계동의 빙판길을 올라가다가 중간에 멈춰 서 버리면 자칫 뒤로 미끄러질 위험이 있어 바짝 긴장을 하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올라간다고 했다. 작년에도 달동네 빙판 경사길을 올라가다가 골목에서 튀어나온 자가용 때문에 중간에 멈춰 선 아찔한 순간이 있었단다. 또 한 번은 차바퀴가 맨홀 뚜껑에 걸리면서 차체가 기울어져 2000장의 연탄이 길바닥에 쏟아져 버린 경우도 있었다. 차바퀴를 빼내고 깨진 연탄재를 손과 삽으로 다 주워 담느라 하루 일을 고스란히 망쳤다. 연탄 배달을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은 또 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연탄은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나오는데요, 그걸 실을 때가 힘이 듭니다. 다른 연탄차들이 뒤에 계속 기다리고 있어서 최대한 빨리 실어야 하거든요. 한 차 싣는 데 보통 30~40분 걸립니다. 연탄을 4장씩 가슴으로 안아서 차에 싣는데 한 번도 허리를 펼 수가 없어 육체적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에 많게는 3~5트럭분(연탄 1만장 정도)을 실으니 허리가 멀쩡한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 허리 디스크 진통 주사를 맞아 가며 일을 한다고 말한다. 또 영하의 추운 날씨에는 연탄이 얼음덩어리처럼 꽁꽁 얼어 버려 운반하는 데 고충이 더 많다는 것이다. “보통 연탄을 연탄집게로 한 손에 4장씩 집어서 고객님들 창고에 적재합니다. 연탄은 겨울 한철에 때는 거라서 보통 500~1000장씩 주문합니다. 그것도 연탄 창고가 차에서 가까우면 좋은데 도로 사정이 열악한 달동네가 많다 보니 계단을 수백번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그러고 나면 눈이 펑펑 오는 날씨에도 온몸이 땀범벅이 됩니다. 마음속으로 달관의 자세를 유지해야 반복적으로 해낼 수 있지요.” 연탄 주문량은 지난해보다 다소 늘어나고 있는 추세란다. 그 이유에 대해 “경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기름보일러에서 연탄보일러로 교체하는 가정도 많고, 또 영업 매장이나 사무실에서도 전기요금 부담으로 인해 온풍기를 연탄난로로 바꾸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고 나름대로 분석을 했다. 연탄 주문은 가정집, 식당, 회사, 공장, 화원 등으로 다양하며 지역별로는 도심과 외곽 지역, 농·산촌, 섬마을 등에서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가끔 ‘사랑의 연탄’을 주문하는 경우에는 신 나게 달려간단다. 그동안 연탄 배달을 하면서 생긴 인연이나 에피소드가 많겠다는 생각에 몇 가지 사례를 들려 달라고 했다. “고객 한분 한분이 인연이자 에피소드입니다. 전화로 어느 동네의 어떤 할아버지, 어떤 미용실 누나라고 하면 저는 금방 알아챕니다. 연탄 주문하시는 분들은 대문을 활짝 열고 배달을 맡기시는 거라서 서로의 신뢰로 치자면 다른 배달 업종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연탄은 새까만 물건이지만 단순한 연탄이 아닌 정을 배달한다고 생각합니다. 연탄 때는 분들 대부분이 어려운 서민층이지만 잘사는 사람들보다 인심이 훨씬 좋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서울 변두리 쪽방에서 혼자 기거하는 할머니가 고생한다며 새로 밥을 짓고 뜨끈한 된장국을 끓여 주던 모습은 매년 겨울이면 생각난다고 말한다. 또 자신의 밭에서 자란 배추로 직접 김장을 담갔다고 하면서 김치를 한 통 싸 주는 아주머니, 귀한 약초를 선물하면서 힘내라고 격려하는 할머니 등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12년 세월만큼이나 많다고 했다. 하지만 씁쓸한 경험도 있다. 연탄이 더럽다고 피해 가는 사람도 있고 점심 먹으러 식당에 가면 연탄가루 묻은 신발과 옷 때문에 냉대를 받기도 했다. 어떤 계기로 연탄 배달을 했을까. 솔직하고 털털하게 털어놓는다. “청소년기에는 방황을 많이 했고 학업은 등한시해서 대학은 못 갔어요. 20대 초반까지 어영부영 이런 일, 저런 일 기웃거리다가 20대 중반쯤 시설물 유지 보수 업종에서 일을 했습니다. 철없을 때라 얼마 벌지 못한 돈도 유흥비로 많이 썼죠. 그렇게 정신 못 차리고 있다가 29살 때부터 연탄 배달 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됐습니다.” 원래 작은아버지가 연탄 배달업을 꾸준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아버지가 병에 걸렸다. 화물차 운전을 하던 아버지가 나서서 연탄 배달 일을 도왔다. 그러나 아버지 역시 몸이 성한 상태가 아니었다. 이때부터 장씨도 연탄공장에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 뛰쳐나가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부모님과 작은아버지를 생각하고 연탄 일 하나라도 제대로 해 보자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연탄 배달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너무 피곤해서 고속도로 한편 길가에 차를 세워 놓고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지요. 꿈에 작은아버지가 나타나서 ‘희남이 너 연탄 일 잘 배워서 열심히 벌고 아껴 써라’고 말씀하시고는 사라지셨어요. 놀라 잠에서 깼는데 잠시 후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작은아버지의 유언을 따라서라도 꾸준히 연탄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지요.” 그의 하루 일과를 들여다본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연탄공장으로 출근해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순번을 기다리다가 트럭에 연탄을 싣고 미리 약속된 장소로 배달을 나간다. 도로 정체가 생기는 출근 시간 때를 피해야 한 곳이라도 더 배달을 할 수 있다. 배달을 마치면 다시 공장에 와서 연탄을 싣고 배달을 나간다. 식사는 제때 해 본 적이 없다. 퇴근은 밤 10~11시다. 입은 옷은 모두 연탄가루로 새까맣다. 집에 돌아와 목욕하고 늦은 식사를 하고 거래 장부를 정리하면 밤 12시가 된다. “연탄은 사치품이 아니라 생필품입니다. 연탄을 늦게 배달하면 병약한 노인이 추위에 돌아가실 수도 있고, 영업을 못 하는 분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배달 약속은 최대한 목숨처럼 지켜야 합니다. 연탄 시즌에는 잠을 편히 자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착실히 돈을 벌어 지난 8월에는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부인에 대해서는 “생활력이 강하고 부족한 부분을 많이 채워 주는 사람이다. 바쁠 때면 연탄 배달까지 도와준다”며 웃었다. 연탄 배달 일을 하지 않는 여름에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건물 외벽, 다리 등의 금이 간 곳, 옥상 같은 곳의 보수나 방수 공사 등을 한다. 그런데 요즘 건축 경기가 나빠 사정이 좋지 않다”고 대답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연탄 배달을 하게 된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돈도 벌고 마음속으로 느끼고 얻은 것도 많으니까요. 겨울철이 다가오면 힘든 일이 또 시작되는구나 하는 마음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합니다.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가 이런 말을 하죠. ‘화투패를 들면 혈액 순환이 쫙 된다’고. 연탄집게로 연탄을 들면 생기가 돌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은평 두꺼비하우징 산새마을 경관대상 특별상

    은평구가 2011년부터 추진 중인 두꺼비하우징 시범 사업 ‘산새마을 마을 만들기’가 제3회 대한민국 경관대상 특별상을 받았다. 국토교통부 주관으로 우수 경관 사례를 발굴, 홍보하고 지역 경관을 향상시키는 취지의 상이다. 은평구는 특별상 분야에 ‘이웃과 함께 만들어 살기 좋은 행복+산새 마을’을 주제로 응모했다. 두꺼비하우징 사업은 주거 환경 개선 및 마을공동체 형성을 위한 것이다. 아파트 위주의 획일적인 전면 철거 방식에서 벗어나 기존 마을을 보존하고 주민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과거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로 불렸던 신사동을 대상으로 한 두꺼비하우징 시범 사업은 공동체 회복을 토대로 지역 내 생산과 소비가 이뤄지는 경제적 재생에 대해 높은 점수를 얻었다. 각종 사회문제 해결과 쾌적한 보행 환경 개선을 위한 도로 및 계단과 옹벽 정비, 안전한 마을 조성을 위한 보안등 조도 개선 및 방범용 폐쇄회로(CC)TV 설치, 자연 친화적인 마을을 위한 텃밭 조성 및 공간 식재를 거쳐 말처럼 산새마을로 거듭났다. 도시재생사업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구 관계자는 “수상을 계기로 서울형 마을 만들기의 모델로 자리매김하도록 애쓰겠다”고 말했다. 최복순 주민 대표도 “은평구와 함께 두꺼비하우징 사업을 시행해 마을 경관을 가꾼 것뿐 아니라 주민 화합을 이루고 살기 좋은 마을로 변화한 데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기사님들 연탄셔틀 5만장… 이웃사랑 ‘후끈’

    기사님들 연탄셔틀 5만장… 이웃사랑 ‘후끈’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조선 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 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안도현 시인은 ‘연탄 한 장’에서 이렇게 읊었다. 생활이 어려운 이들에게 따뜻한 겨울을 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게 연탄이다. 연탄 한 장은 단순한 연탄이 아니라 반가운 선물이기도 하다.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이 3일 서울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 ‘중계본동 104마을’에 연탄 5만장을 건넸다. 1000가구 가운데 600여가구가 난방용 연탄을 사용하는 곳이다. 유한철 이사장 등 임직원 30명은 직접 손수레와 지게를 이용해 연탄을 날랐다. 우선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 영세 독거노인, 조손 가정 등 10가구에 200장씩 2000장을 직접 배달했다. 333가구가 따뜻한 겨울을 지낼 수 있다. 조합이 연탄 나눔에 나서기는 처음이다. 밥상공동체복지재단 서울연탄은행의 ‘따뜻한 겨울나기 사랑의 연탄 300만장 보내기 운동’에 후원이 저조하다는 얘기를 듣고서다. 조합은 이를 계기로 앞으로 서울연탄은행과 함께 사회공헌사업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조합 관계자는 “혹한기를 앞두고 후원 부족으로 연탄을 제때 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한편 2004년 설립된 서울연탄은행은 지금껏 20만가구에 사랑의 연탄 2800장을 지원했다. 또 연탄 보일러 교체사업, 에너지 빈곤층 가구 조사, 지원 가구 심의, 사랑의 쌀 나눔, 영세 어르신 나들이, 신나는 지역아동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국내여행 | [trekking seoul] 가을, 서울을 거닐다

    국내여행 | [trekking seoul] 가을, 서울을 거닐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서울의 길은 매번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제주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이 늘 먼저였다. 하지만 더는 미루지 말자. 걷기 좋은 가을이 아닌가. 성곽길 + 홍제동 서울의 어제와 오늘을 걷다팔도 각지의 명산마다 둘레길 조성이 한창인가 싶더니 서울에서도 새로운 길이 조성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홍제동 개미마을에서부터 인왕산 성곽길까지, 서울의 어제와 오늘이 녹아 있는 길을 걸었다.도심 속에서 자연을 만나다 성곽길 성곽길의 존재는 낯설지 않다. 북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을 잇는 18km의 길로 삼청동, 성북동의 맛집을 찾으러 갔다가 한번쯤 스쳐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본격적인 도보여행을 떠나야 할 이유가 있다.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북한산 성곽길이 개방되고, 인왕산 성곽길도 새로운 모습으로 복원됐다. 서울시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목표로 성곽길을 차례로 정비하고 있다. 서울에 살면서도 서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과정을 직접 확인하는 것은 꽤 의미 있는 일이리라. 게다가 성곽길을 오르는 일은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다. 서울이 서울이기 이전, ‘한양’으로 불리던 시절 말이다. 도심 한복판에 14세기 한양 도성을 품고 산다는 것은, 집 안 가장 좋은 자리에 가족사진을 걸어두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뿌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현재의 서울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로 연결된다. 성곽길은 걷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성곽길이 자리잡은 능선은 아무리 높아도 400m를 넘는 곳이 없다. 북악산과 인왕산이 300m, 남산이 200m이고 낙산은 100m에 불과하다. 반나절, 아니 2시간만 할애하면 충분하다. 현재 성곽길은 총 4구간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이번에 오른 길은 가장 최근에 복구를 마친 인왕산 성곽길이다. 정상은 해발 338m로 성곽길이 있는 산 중에서는 북한산 다음으로 높다. 정상을 향해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점점 도시는 멀어지고 자연이 가까워진다. 인왕산 정상에 다다르면 도시는 어느덧 아득해진다. 서울의 상징이 사방에 펼쳐져 있다. 청와대와 남산 타워,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 물줄기는 물론이고 도심을 감싼 관악산, 북한산, 남산 등도 조망할 수 있다. 꼬불꼬불 휘어진 성곽길 너머로 자연과 도심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 무심히 발걸음을 옮기며 마주한 성곽길이 인왕산 풍경 속에 녹아들며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선을 만들어낸다.▶travie info 성곽길 4구간의 총 거리는 6km이지만 복원된 성곽을 오롯이 걸으려면 자하문에서부터 사직터널까지 걷는 게 좋다. 자하문~사직터널 길은 약 3.5km로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사직터널에서 출발할 경우,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사직로를 따라 도보로 10분, 자하문에서 출발할 경우,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0212, 1020, 7022번 버스로 환승, 자하문고개 정류장에서 하차한다.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 홍제동 개미마을 인왕산 성곽길에 오르는 다른 길도 있다. 지하철 3호선 홍제역에서 시작하는 길이다. 좀 의아할 수 있겠다. 홍제역은 인왕산 양끝점인 사직터널, 자하문 중 어느 곳과도 가깝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인왕산 등산로를 따라 30분~1시간 정도 산행을 해야 성곽길에 합류할 수 있다. 산책처럼 걷기에는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하나,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 홍제동 개미마을을 보기 위해서다. 개미마을은 소위 달동네라 불리는 마을이다. 한국전쟁 이후 임시 거처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 인왕산 자락에 천막을 치고 살았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미국 서부 인디언 같아 ‘인디언촌’이라고도 불렸다. 물론 지금은 천막이 사라지고 마을의 이름도 바뀌었지만 여전히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 중 하나다. 임시 거처 대신 판잣집이 들어서고 얼기설기 얽힌 전깃줄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다. 그러던 마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한 기업의 후원으로 마을 담벼락에 크고 작은 벽화를 그리게 된 것이다. 경사진 마을 벽을 따라 집 지키는 강아지, 시들지 않는 해바라기, 낮에도 밝게 빛나는 밤하늘이 수놓아졌다. 주민들이 내다놓은 화분, 꽃무늬 계단은 벽화와 절묘하게 어울렸다. 마을에 대한 소문은 입에서 입을 타고 흘러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결국 이 마을을 바꾸어 놓은 건 재개발이 아닌 ‘예술’이었다. 개미마을은 최근 영화 <7번방의 선물>에 등장하면서 영화 촬영 명소로 주목받기도 했다. 그러나 마을이 유명해졌다고 해서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여전히 슈퍼는 하나뿐이고(마을 초입 버스정류장의 동래슈퍼가 유일한 상점이다), 마을버스가 아니면 오고가기 힘든 곳이다. 관광객이 몰리면서 주민들은 불편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요한 개미마을을 떠나며 생각한다. 우리는 단지 잠시 그곳을 들른 이방인일 뿐이라고. 개미마을 찾아가기 3호선 홍제역 2번 출구에서 07번 마을버스 타고 종점 하차▶travie info 개미마을에서 성곽길 오르기 개미마을 끝에 서면 인왕산 등산로가 나타난다. 인왕산 정상으로 오르는 초입이다. 인왕산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이뤄져 있고 가파른 바위도 많다. 산행 내내 기묘한 암벽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소나무 숲의 정경을 관람할 수 있다. 절정은 정상 부근에서 온다. 인왕산의 상징이기도 한 기차바위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압권이다. 사진촬영이 금지된 청와대 부근과 그 너머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경리단길 + 팔각정 서울의 밤, 불야성의 틈새를 찾아서밤이 길어졌다. 불야성의 도시는 점점 더 밝고 소란스러워지고 있다. 진정 도심에서는 고요하게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없을까. 거대한 인파가 파도처럼 치고 빠지는 종로와 이태원에서 감히 그런 공간을 찾아보았다. 이 번잡스러운 도시의 틈새를.팔각정 달빛기행 달빛기행이라는 것이 있다. 달이 꽉 찬 보름 무렵에 서울 4대 고궁을 활보하며 야경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엄청난 인파가 몰리는 탓에 고즈넉한 야경 감상은 말할 것도 없고 표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9월부터 10월까지 열리는 창경궁 달빛기행은 1분 만에 표가 매진됐다고 한다. 이쯤 되면 나만의 달빛기행을 개척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야경을 만끽할 수 있는 팔각정은 어떨까. 북악스카이웨이를 따라 올라가며 드라이브를 하고 팔각정에서 야경을 즐기는 코스는 최고의 데이트로 꼽힌다. 팔각정에 오르면 탁 트인 시야로 서울의 야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구불구불 긴 도로를 거슬러 올라온 뒤라 도심이 제법 멀어져 있다. 망원경을 한번 잡으면 한동안 손에서 떼지 못하는 이유다. 특별한 추억을 남기고 싶다면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넣어 보는 것도 좋다. 이곳에서 담은 추억이 1년 후 시간의 세례를 거쳐 도착하게 될 것이다. 팔각정에 이르기 전 부암동에서의 데이트는 덤이다. 부암동에는 아기자기한 카페에서부터 색색의 손만두로 유명한 ‘자하손만두’ 등 가볼 만한 곳이 지천이다. 그러나 행여 소화를 시키겠다는 마음으로 북악스카이웨이를 걸어 오르겠다고 했다간 도중에 오도가도 못하고 후회하기 십상이다. 특히 밤에는 길이 제법 어둑어둑하니 차량을 이용할 것. 여백의 야경이 주는 맛 경리단 길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소월길’이었다. 고요한 밤 여유롭게 산책하기 원한다면 이 길만한 곳도 없다. 남산 하얏트 호텔에서 경리단 길로 내려가기 전에 잠시 들르면 좋다. 꼼데가르송 건물 옆 나무데크를 따라 소월길에 오르면, 빽빽한 나무 사이 좁다란 길이 이어진다. 인적도 드물고 소리도 차단되어 마치 세상과 격리된 기분마저 든다. 드문드문 보이는 가로등만이 불빛의 전부. 마치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처럼 이질적이고도 환상적이다. 그러다가 길을 빠져 나오면 시원하게 쭉쭉 뻗은 6차선 도로에서 차들의 불빛이 일렁인다. 여기서 내리막을 따라 내려가며 경리단 길로 진입할 수 있다. 경리단 길에는 오래전부터 이곳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던 ‘가야랑’이 있다. 마을버스 정류장의 이름이 됐을 정도로 전통 있는 집이다. 지금은 전라도식 한정식을 내놓는 ‘호남정’으로 바뀌었지만 각종 세계 음식점 사이에서 한정식을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맞은 편 ‘비스테카’도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정평이 난 곳이다. 비스테카는 이탈리아어로 ‘스테이크’라는 뜻이다. 특히 이곳의 디저트인 티라미스는 맛있기로 유명해 이 티라미스만 백화점 식품관에서 판매한다. 한식이든 양식이든 배불리 먹고 난 뒤엔 야경을 즐길 차례다. 비스테카에서 조금 아래 위치한 마을버스 정류장에 서면 해방촌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옹기종기 모인 주택가의 불빛은 화려하지도 눈부시지도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래도록 바라볼 수 있다. 가만히 그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오랜 시간 무수한 곡절을 겪어 온 해방촌 마을의 이야기가 속닥거리는 것만 같다. 연남동 둘레길 발견하는 골목의 재미그 어느 곳보다 소박한 동네가 있다. 스스로 ‘둘레길’이라는 이름을 단, 연희동의 남쪽 연남동이다. 홍대에는 없는 이야기, 둘레여서 더 매력적인 연남동 골목을 구석구석 기웃거려 보자.얼마 전부터 들려오는 소식. 홍대 앞 예술가들이 떠나고 있다.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인근 상수동, 합정동으로 둥지를 옮기고 있다. 연남동도 그중 하나다. 크고 화려한 건물 대신 그들이 선택한 곳은 골목 사이사이의 작은 건물들이다. 세탁소 옆에 갤러리가, 주택가 사이에 비누공방이, 문 닫은 재래시장 건물에 카페가 문을 열었다. 시장 골목의 착한 커피 커피 리브레 ‘착한 커피집’으로 유명한 곳이다. 조그맣게 세운 입간판을 제외하면 간판도 없다. 미닫이로 된 낡은 뒷문에는 ‘혼수이불’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고 한약방에서 약재를 보관하던 수납장은 원두 진열대가 됐다. 아이스커피든 우유가 들어간 커피든 가격은 4,000원으로 동일하고 원두를 사면 그나마도 무료다. 주인장이 직접 산지에서 커피를 사와 ‘공정무역’을 실천하고 있으니 착한 커피집이 맞다. 인테리어나 홍보에서 거품을 뺀 대신 커피 맛은 발군이다. 특히 향긋한 원두 향미를 잘 살려낸 카페라떼가 추천 메뉴. 영업시간 오후 1시~오후 9시 휴무 매주 월요일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연남동 227-1 문의 02-334-0615허름해서 더 매력적인 툭툭 누들타이 툭툭 누들타이는 홍대 인근 거주자들이 입을 모아 추천하는 곳이다. 어두컴컴한 실내 천장에 커다란 팬이 돌아가고 있고, 오픈 키친에서는 태국인 주방장들이 요리에 열중해 있다. 적당히 허름한 테이블과 의자는 태국 여행의 기억을 불러오기 충분하다. 인기 메뉴인 팟타이에 라오맥주를 곁들이면 최상의 궁합이 될 것이다. 이곳에서는 태국 요리에 쓰이는 소스도 판매한다. 팟타이 9,000원, 뿌님 팟퐁커리 2만4,000원. 영업시간 낮 12시~밤 11시 휴무 매주 월요일, 매월 세 번째 일요일 주소 서울 마포구 연남동 227-37 B1 문의 070-4407-5130227-17번지로 GO! 피노키오책방+은나비공방 동진시장 골목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한 세탁소, 그 뒤편에 재미있는 공간이 있다. 북디자이너의 작업실 ‘형태와 내용 사이’, 동네 책방 ‘피노키오’, 액세서리 가게 ‘은나비공방’이다. 이 세 가게가 모여 있는 건물이 바로 227-17번지다. 그중에서도 그래픽 노블과 그림책만을 판매하는 피노키오책방은 연남동 주민들의 사랑방 같은 곳. 만화방에는 없고, 서점에서는 비닐에 싸여 있어서 읽을 수 없었던 책들을 이곳에서는 마음껏 읽을 수 있다. 심지어 아예 바닥에서 편하게 읽으라고 인조잔디를 깔아놓았다. 은나비공방은 상담과 예약이 필요하다. 주로 은을 이용해 주문 제작하는 이곳은 철저히 사전주문으로 제작되며, 홍대 프리마켓에서도 판매하고 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227-17 문의 피노키오책방 070-4025-9186, 은나비공방 070-8627-9254 낮술 한잔 할까요 토끼바 동진시장 골목에 채 진입하기 전, 토끼바라는 이름의 독특한 가게가 있다. 풀네임은 ‘토끼바: 바닥병 가끔은 제정신’. 수상한 이름의 기원은 두 주인장에게서 나온 것. 홍대에서 각기 ‘바닥’과 ‘병’이라는 가게를 운영했던 그들이 연남동과 연희동으로 자리를 옮겨 ‘토끼바’와 ‘가끔은 제정신’을 운영했다. 그 이름들을 다 갖다 붙여 만든 게 지금의 토끼바다. 간판 밑에는 아무렇게나 써 놓은 ‘낮술’ 두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낮술 마시고 거나하게 취해 벌러덩 드러누워도 전혀 눈치볼 필요가 없다. 호프냉장시스템을 도입하여 언제나 신선한 맥주를 제공한다. 다크에일의 이름은 ‘몸’. 바이젠 맥주의 이름은 ‘마음’이다. 하우스맥주 6,000원, 안주 1만원대. 영업시간 오후 1시~밤 12시 주소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383-93 문의 010-9838-5768 메뉴판 없는 레스토랑 Grammo “예약은 필수, 메뉴는 날마다 다릅니다.” 이탈리안 파스타, 프렌치 가정식, 스페인 오믈렛 등 유럽 가정식을 기반에 둔 그람모 키친은 메뉴판이 없다. 그날의 메뉴는 SNS를 통해 공지한다. 당일의 신선한 재료를 기반으로 메뉴를 결정하고, 재료가 떨어지면 더 이상 만들지 않기 때문. 식전에는 파티셰가 직접 구운 호밀빵과 오렌지꽁포트를 제공한다. 감자 뇨끼(파스타의 일종)를 주문하니 “강원도에 계신 아버지께서 직접 재배한 감자 100%로 만든 뇨끼”라고 알려준다. 평일에는 단품 요리만, 월요일에는 르 꼬르동 블루 출신의 최병구 셰프의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다. 런치 코스는 2가지 메인요리, 디너 코스는 3가지 메인요리가 제공된다. 1만9,000원, 꼬꼬뱅 2만2,000원.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9시 주소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239-29 문의 010-5146-3030짜장면 없는 중국집 연남동 차이나타운 예전에도 연남동은 그리 낯선 동네는 아니었다. 화교들이 운영하는 중식당이 작은 차이나타운을 이루고 있어 대만식, 중국식 가정식을 맛보기 위해 알음알음 찾아오는 동네였다. ‘락락’, ‘향미’, ‘하하’, ‘띵하우’ 등은 2대, 3대에 걸쳐 제대로 된 ‘요리’를 선보인다. 대만식 우육탕면을 맛보고 싶다면 향미로,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군만두가 당긴다면 하하로, 식사 후 간단히 한잔 하고 싶을 때는 저녁에만 띵하우로 향하면 된다. 정식 요리는 1만원대며, 간단히 맛을 보고 싶을 때는 5,000원 미만의 요리를 시키면 술안주로 적당하다.커피의 맛, 책의 향기 The Story Book Cafe 연남동 주민센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문을 연 지 갓 한 달된 북카페가 있다. 카페에 들어서면 ‘더 클래식 세계문학전집’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미르컴퍼니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카페로 모든 책을 50%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 수도 있다. 자기계발서, 인문서적, 여행 에세이 등도 꽂혀 있지만 문학서적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말소리도 음악도 거슬리지 않는 편안한 공간이어서 세계문학 전집을 독파해 보겠다는 야심을 실현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메리카노 2,900원. 영업시간 평일 오전 9시~밤 10시30분, 주말 낮 12시~밤 10시 주소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 239-18 오색 지하보도의 변신 연남지하보도 연남동보다 더 낱낱이 파헤쳐 보고 싶다면 연남지하보도에서 길을 시작할 것. 어둡고 칙칙한 지하보도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아기자기한 벽화가 여행자를 맞아들인다. 지하보도를 지나 연남동 주민센터까지 산책하듯 걸어간다. 초행이어도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다. 방향이 아리송해질 무렵이면 작은 카페들이 나타나 이정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연남동에는 한적한 동네를 예쁘게 수놓는 카페들이 퐁당퐁당 자리하고 있다. 지하보도의 약도를 떠올리며 골목을 헤매는 것도 좋다.글·사진 Travie writer 전은경
  • [사설] 불교계 화합 이뤄 ‘자비 연탄’의 뜻 이어가길

    불교계에서는 그제 의미 있는 행사가 하나 있었다. 한국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의 자승 총무원장 등이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인 홍제동 개미마을을 찾아 홀몸노인을 비롯한 소외층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쌀과 연탄을 나눈 것이다. 자승 스님을 비롯한 종단 인사들은 하루종일 ‘자비 쌀’ 290포대와 ‘자비 연탄’ 2만 4000장을 산동네 구석구석에 배달했다. 자승 스님이 조계종 총무원장의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우리나라 불교계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 초심을 잃지 않도록 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겠다는 뜻이었다고 한다. 자승 스님은 그동안에도 부모의 이혼이나 학교 폭력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돌보고, 다문화 가정과 탈북자 가정을 보살피며 소외된 노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불교계의 역량을 모으는 역할에 앞장섰다. 종교가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종교계의 헌신적인 보살핌은 특히 어려웠던 시절 우리 사회를 지탱케 하는 결정적 힘이었다. 불교는 물론 기독교와 천주교를 비롯한 우리나라 종교 전체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국가 전체가 빈곤에 허덕이던 시대에서 벗어났다고 종교가 할 일이 적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종교는 이제 소외층의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심리적 좌절감마저 보듬어야 하는 이중과제를 떠안게 됐다. 그런 점에서 1000만명이 넘는 신자를 포용하고 있는 최대 종교의 지도자가 ‘종교의 사회적 책임’과 ‘자비나눔의 실천’을 강조하면서 쌀과 연탄을 나르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상징적이다. 국민 모두의 동참을 호소하는 메시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기대가 크지만 걱정도 적지 않다. 불교계의 화합이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계율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 속세(俗世)에서도 고개를 돌릴 만한 뉴스가 산중에서 잇따라 들려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는 총무원장 선출 과정에서도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럴수록 새로운 4년의 총무원장 임기가 시작된 지금이야말로 불교계가 화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믿는다. 그렇게 사회적 공헌의 실천에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보일 때 불교는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종교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이웃과 온기를 나누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뜻이 아닌가. 세상을 ‘자비 쌀’로 배부르게 하고, ‘자비 연탄’으로 따뜻하게 하는 날을 기대해 본다.
  •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2부] “보고타는 투자의 보고… 외국과 합작 사업 산적… 지하철 건설 등 대기 중”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2부] “보고타는 투자의 보고… 외국과 합작 사업 산적… 지하철 건설 등 대기 중”

    지하철부터 경전철까지 콜롬비아의 보고타는 여전히 구축해야 할 교통 인프라가 많다. 한정된 국가 예산이나 시 예산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만큼 외국 기업이나 자본과 손잡아야 할 일도 많다. 시 당국 스스로 “보고타는 투자의 보고”라고 말하는 이유다. 그만큼 우리 기업엔 기회의 땅이다. 한국계 기업과는 첫 번째로 동반관계를 맺게 된 보고타시 교통인프라 담당국장 마르타 콘스탄사 코로나도를 만나 봤다. →보고타시 교통사업의 우선순위는. -첫째는 더 나은 도보 환경이다. 2011년 설문조사 결과 여전히 40% 이상의 시민이 걸어서 출퇴근한다고 답했다. 경제 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도 많다. 300㎞에 달하는 자전거 도로를 정비해야 한다. 인도 위에 있는 자전거 도로를 차도로 옮기고 자전거 주차장과 대여소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향후 계획 중인 대중교통 사업은. -장기적으로 지하철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2021년 완공을 목표로 27㎞ 구간에 대한 지질조사를 진행 중이다. 중장기 계획으로 경전철을 만드는 것도 있다. 교통 환경이 좋지 않은 달동네를 위해 케이블카를 건설하는 것도 구상 중이다. →계획 중인 교통 인프라는 LG CNS가 구축하는 교통카드 시스템과 연계되나. -물론이다. 일단 지상철과 버스, 계획 중인 지하철과 경전철까지 카드 통합을 염두에 두고 있다. 시민이 카드 한 장으로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현재 지하철은 지상철의 확장과 도시 교통 흐름의 대동맥을 만드는 방식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일반 버스(조날버스)는 이 두 가지 교통수단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보조 수단으로 경전철 역시 진행 중이다. →예산이 많이 들 것으로 보이는데. -콜롬비아는 시나 정부가 자체 해결할 수 있는 예산이 부족하다. 일례로 지하철 사업에만 6조 페소(약 3조 4200억)라는 예산이 필요하다. 급한 돈은 중앙정부의 미래 예산을 당겨 쓰는 방법으로 할 예정이다. 함께 할 사업은 많다. 지하철도 아직 공사를 맡을 회사가 정해지지 않았다. 사업이 구체화되면 공개입찰을 할 계획이다. →한국 등 투자를 계획 중인 외국 기업 등에 당부하고 싶은 것은. -콜롬비아에서는 개발 계획은 많지만 예산이 적어 외국 기업에 큰 기회를 많이 준다. 주된 사업 방식은 민간 기업 투자로 정부가 함께 개발사업을 하는 PPP(Public Private Partnership) 방식이다. 최근 경전철 부문에 대해 프랑스 업체가 투자 계획을 밝혀 왔다. 1차 사업에만 1조 5000억 페소(약 8550억원)가 드는 큰 규모다. 중국도 전기택시 부문과 버스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글로벌 업체가 참고했으면 한다. 보고타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시트콤 원조’ 이순재·노주현이 선사하는 더 강력한 웃음폭탄

    ‘시트콤 원조’ 이순재·노주현이 선사하는 더 강력한 웃음폭탄

    어느 날 감자 모양의 이상한 행성이 지구에 날아온다. 지구 크기의 반만 한 ‘감자별’이 달처럼 하늘에 둥둥 떠 있고 전 세계는 혼란에 빠진다. 중견 기업의 대표도, 파워블로거 주부도, 억척스러운 알바 소녀도 지구에 닥친 위기 앞에서 일상이 송두리째 바뀐다. 하지만 독특한 성격과 넘치는 에너지로 무장한 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기에 대처하면서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들을 만들어낸다. 23일 처음 전파를 타는 케이블채널 tvN의 시트콤 ‘감자별 2013QR3’은 MBC ‘하이킥’ 시리즈를 만든 김병욱 PD의 신작이자 지상파에서 사라진 시트콤의 화려한 부활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중견 완구회사 ㈜콩콩과 서울 평창동의 저택, 재개발지역의 달동네에서 제각각 살아가는 인물들은 혼란 속에서 좌충우돌하면서 서로 얽히고 부딪친다. 김 PD는 ‘순풍산부인과’를 시작으로 ‘웬만하면 이들을 막을 수 없다’, ‘하이킥’ 시리즈 등 우리나라 대표 시트콤들을 만든 시트콤의 거장. 그의 작품들은 가족을 중심으로 한 코미디와 청춘 멜로 사이를 오간다. 특히 ‘지붕뚫고 하이킥’과 ‘하이킥-짧은 다리의 역습’이 각각 비극을 암시하는 결말과 청년실업을 주제로 한 암울한 분위기로 시트콤 고유의 웃음을 잃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김 PD는 “‘감자별’은 코미디와 멜로가 섞여 있다”면서도 “이번에는 재미 위주로 만들었고 특히 초반에는 코미디가 많다”고 밝혔다. 둥글기보다 울퉁불퉁하고 행로도 짐작할 수 없는 ‘감자별’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을 상징한다. 이름 모를 행성의 불시착이라는 독특한 초반 설정은 보다 참신하고 기발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려는 시도로 보인다. 인물들의 캐릭터 역시 복합적이다. ㈜콩콩의 대표이사인 노수동(노주현)은 전립선 비대증을 앓는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이며 그의 아버지 노송(이순재)은 13살 강아지를 애지중지하며 술과 여자를 밝힌다. 변덕의 끝판왕 노수영(서예지), 억척스러운 알바 소녀 나진아(하연수), 모든 대화를 반어법으로 하는 한국의 스티브 잡스 홍혜성(여진구) 등도 정형화되지 않은 인물들이다. 이순재(‘하이킥’), 노주현(‘웬만해선 이들을 막을 수 없다’) 등 김 PD와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의 검증된 시트콤 연기가 기대감을 키운다. 또 tvN ‘몬스타’에서 속을 알 수 없는 4차원 소녀를 연기한 하연수와 나이답지 않은 눈물 연기로 호평을 받아온 여진구, 이번 작품이 사실상 데뷔작인 신예 서예지를 비롯해 모든 게 두 박자 느린 가난한 기타리스트로 연기 신고식을 치르는 가수 장기하의 시트콤 도전도 주목할 만하다. 총 120부작으로 매주 월~목요일 오후 9시 15분에 방송된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서울광장] 박 시장이 구룡마을 개발 제1원칙 포기한 이유는?/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박 시장이 구룡마을 개발 제1원칙 포기한 이유는?/최광숙 논설위원

    최근 친한 후배랑 통화를 하는데 그가 지나가듯 한마디 던졌다. “서울시가 구룡마을을 개발한다는데, 뭔가 잘못된 것 같아.” 그 후배는 강남 최대의 달동네인 구룡마을 인근에 산다. 뭐가 잘못된 거라는 얘기인지 궁금해 기사 검색을 해 봤다. 구룡마을 개발 방식을 둘러싸고 서울시와 강남구가 첨예한 이견 대립으로 인터넷을 달구고 있었다. 서울시는 토지 수용을 통한 공영개발과 민간개발이 가능한 환지(換地)방식을 같이 도입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강남구는 토지주의 막대한 개발이익과 부동산 투기 등을 우려해 완전 공영개발로 가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최근 “토지수용 예산이 부족해 환지가 필요하다 것은 지나가던 황소도 웃을 일”이라는 공개 서한을 박원순 시장에게 보낸 바 있다. 공영개발은 개발 예정인 민간 토지를 수용해 지주에게 보상하는 방식이고, 환지방식은 토지 소유주가 개발 비용 일부를 대는 대신 해당 개발지 땅을 받아 자기 의사에 따라 개발하는 것이다. 무허가 판자촌인 구룡마을의 개발 논란이 일 때 서울시가 제시한 부동의 제1원칙은 ‘100% 공영개발’이었다. ‘강남의 허파’인 대모산과 구룡산 자락에 위치한 구룡마을은 자연녹지와 공원 지역으로 묶여 있어 개발 자체가 안 되는 곳이지만, 판자촌 정비라는 불가피한 이유로 개발이 필요하다면 그 개발 이익은 공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더구나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 땅이라 민간개발이 허용되면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하지만 박 시장은 무슨 연유인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011년 4월 확정한 완전 공영개발 방식을 포기했다. 박 시장도 취임 직후에는 개발이익 사유화에 대한 특혜 방지 및 외부 투기세력 차단 등을 위해 공영개발 방식을 지지했지만, 지난해 6월 돌연 민간개발 방식인 환지방식을 추가하기로 입장을 바꾸었다. 박 시장 입장에서는 ‘오세훈표’ 개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몰라도 민간개발 방식의 도입은 문제가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구룡마을 토지 소유자는 100여명에 이르는데, 이 중 한 사람이 전체 면적의 45% 정도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민간개발 방식이 도입되면 그에게 엄청난 개발 이익이 돌아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강남구 관계자는 “이 대지주는 토지 수용 방식이면 양도세 900여억원을 내야 하지만 환지방식은 양도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고 했다. 개발이익에 세금까지 안 낸다면 “서민을 위한다는 박 시장이 돈 있는 자를 더 배불리는 정책을 편다”는 지적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한 서울시 관계자도 “한 사람에게 과도하게 개발 이익이 가면 특혜 시비가 일 수 있다”고 했다. 환지방식이 도시계획의 근간을 흔드는 것도 문제다. 녹지와 공원 지역인 구룡마을을 개발 가능한 대지로 환지해 준다면 나쁜 선례가 돼 다른 녹지 및 공원 지역 등을 훼손하는 길을 터줄 수 있다. 환지방식은 서울시의 작은 규모 사업에 도입된 적은 있어도 대형 개발 사업에 도입되는 것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그런 점에서 강남의 세곡보금자리 등 완전 공영개발 방식을 택한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서울시는 “전면 공영개발 방식은 시행자인 SH공사의 채무가 심각한 상황에서 대상 토지 전부를 매입하기 어려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강남구는 “개발 지역에 짓는 아파트의 35% 정도만 분양해도 8000여억원이 들어오기 때문에 토지수용비를 충당하는 것은 물론 수천억원의 잉여 개발이익이 발생한다”고 반박한다. 평생 시민운동가로 공공 이익을 위해 일했다고 자부하는 박 시장이 집 없는 서민이 아닌 토지 소유주들의 손을 들어 주는 것 같아 좀 의아스럽다. 자신이 추구해 온 가치와 정반대인 정책 결정이 혹여 내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SH공사의 부채 규모를 줄이려는 등의 꼼수는 아닌지 의혹의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bori@seoul.co.kr
  • 남남북녀 연애소설로 포장된 묵직한 위로

    남남북녀 연애소설로 포장된 묵직한 위로

    탈북자 성옥의 첫 번째 집은 북한의 ‘하모니카 집’이었다. 여덟 세대가 웅숭그리고 있는 건물의 맨 끝 집. 겨우내 추녀 아래 매단 명태를 마르는 족족 떼어 먹던 집. 추레하지만 성옥에겐 엄마가 사는 그리움의 공간이다. 성옥의 두 번째 집은 서울 달동네의 반지하방이다. 내 집인데도 ‘혼자’라는 절망과 무망(無望)이 덮쳐 오는 배반의 공간이다. 그런 그녀가 꿈꾸는 세 번째 집을 그려 주겠다는 남자가 등장한다. 이경자(65)의 새 장편 ‘세번째 집’(문학동네)에서다. ‘세번째 집’은 죽음과 맞닿아 본 적이 있는 여자 성옥과 집을 짓는 남자 인호가 교감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탈북 여성과 남한 남자의 연애 소설로 압축하는 것은 성급하다. 탈북자의 전형을 되풀이하는 소설은 더더욱 아니다. 실제 한 탈북 여성을 모델로 한 성옥이라는 인물의 내면으로 침잠해 북한, 탈북자에 대한 편견을 걷어 낸다. 3대에 걸친 성옥의 가족사를 통해 개인의 삶을 옭아매는 질곡 같은 현대사도 꿰뚫는다. 일제 시절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일본 후쿠오카 탄광으로 징용된 할아버지, 일본 규슈의 모지항에서 태어나 북송선을 타고 북한으로 옮겨 간 아버지, 북한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나 남한으로 탈출한 성옥. 저마다 고향을 달리하며 조센징, 귀국자, 탈북자라는 꼬리표에 휘둘려 온 비운의 3대다. 작가는 지난 3년간 탈북자 수십명과의 인터뷰, 자료 조사에 매달려 인물들을 세심하게 조형해 냈다. 압록강을 거친 주인공의 탈북 경로와 할아버지, 아버지의 흔적이 깃든 일본 후쿠오카까지 답사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북한자료관을 제집처럼 오가며 김정일 신년사, 북한 교과서, 북한 영화 등으로 탈북자들에게 스며든 이념과 체제의 정서를 체감했다. 탈북자라는 소재는 작가의 전작을 부감해 보면 낯설지 않다. ‘사랑과 상처’(1998)는 식민 시절부터 분단 직후인 1932~1960년을, ‘순이’(2010)는 휴전되던 해인 1953년을 배경으로 했다. 작가는 “고향이 이번 소설을 키워 낸 뿌리”라고 했다. “제 고향이 강원도 양양이에요. 38선 이북이라 북한 지역이었다가 전쟁 나고 휴전이 되면서 남한이 된 땅, 소위 수복지구죠. 이로 인해 제 무의식 속에는 이념 때문에 삶이 박살 나 본 이들의 상처와 슬픔이 스며들어 있었던 거죠.” 그간 차별받는 여성, 이념 때문에 삶이 무너진 이들의 상처에 천착했던 작가는 ‘세번째 집’을 통해 문학관의 변화도 보여줬다. “40대까지는 제 주장을 강하게 발현하고 독자를 긴장시키는 소설을 썼어요. 나이가 들면서는 어떤 이념, 체제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것 그 자체보다 더 귀한 건 없다 싶더군요. 그래서 소설가는 독자를 이롭게 하고 위로하는 몫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문학관이 바뀌었어요. 누가 먹어도 탈이 안 나는 음식처럼요.” ‘이성의 호기심을 넘어 그리고 본능의 깊은 켜들을 지나쳐, 성옥의 생의 원형질 같은 것으로 자신의 혼이 스며드는 느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수복지구 기념관의 도면을 상상할 때 성옥의 불행과 슬픔과 고통이 상징부호처럼 느껴지곤 했다.’(63쪽) 건축가 인호는 수복지구 기념관을 지으면서 슬픔을 배태한 성옥의 삶의 경로를 쓰다듬는다. “인호는 우리가 북한, 탈북자에게 가졌으면 하는 태도와 감정을 지닌 인물”이라는 작가의 설명처럼 남녀 관계에 갇히지 않고 인류애로 나아가는 성숙함이 돋보인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커버스토리-대중문화 시장 주무르는 ‘스마트 팬덤’] 흥행 부진한 스타 다독이는 팬… 호텔방 몰카 찍어 괴롭히는 광팬

    [커버스토리-대중문화 시장 주무르는 ‘스마트 팬덤’] 흥행 부진한 스타 다독이는 팬… 호텔방 몰카 찍어 괴롭히는 광팬

    ‘팬은 스타를 닮아간다.’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이 요즘 입을 모으는 말이다. 스타의 성향에 따라 팬덤의 성격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고, 가수나 배우 등 장르에 따라 팬덤의 활동 영역도 다르다. ‘스마트 팬덤’으로 팬들의 정보교류가 빨라지고 욕구도 그만큼 더 다양해졌다. 연예기획사에서는 팬들만 관리하는 팬매니저나 팬 관리 부서를 따로 두고 이들의 요구에 발빠르게 대처한다. 빅뱅, 2NE1 등 개성 강한 아티스트들을 둔 YG 소속 가수들의 공연장에 가면 유독 예술적 성향이 강한 팬들이 몰려든다. YG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는 “나이대는 10대부터 다양하지만 패션에 관심이 많고 예술적 성향이 짙은 팬들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개인적이고 자유분방한 팬들은 스타의 위기 앞에서는 한마음으로 뭉친다. 2011년 빅뱅은 대성의 교통사고로 중대 위기에 직면했다. 이때 빅뱅의 팬들은 똘똘 뭉쳐 이들이 MTV 유럽뮤직어워드에서 한국 최초로 수상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황민희 YG 과장은 “당시 전 세계의 팬들이 합심해 네티즌 투표에 참여했고, 빅뱅은 압도적인 표 차이로 북미 대표였던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수상으로 멤버들은 컴백에 큰 힘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스타와 팬덤은 함께 성숙해 가는 공생 관계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와 봉사활동을 함께 하면서 사회 공헌의 의미를 배워 나간다. 대부분의 기부나 봉사활동은 스타들의 권유나 그들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10~20대 팬층이 두꺼운 아이돌 그룹 비스트가 대표적이다. 윤두준이 ‘일밤-단비’에서 아프리카에 우물을 지어주는 봉사 활동에 참여하자 그의 팬들은 이후에도 꾸준히 아프리카 봉사 활동에 나섰고, 양요섭은 평소 팀 내에서도 소아암 어린이 돕기 활동에 앞장서 ‘개념 아이돌’로 불린다. 특히 양요섭은 최근 방송된 KBS 2TV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에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팔찌를 차고 나왔고 한순간에 팔찌를 구입하려는 팬들이 몰려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빅뱅의 멤버인 태양과 지드래곤은 자신들의 생일을 앞두고 SNS에 “마음만 고맙게 받겠다. 대신 좋은 일에 써달라”며 사회 기부를 독려하기도 한다. 팬덤은 젊은 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이돌 가수나 배우의 경우 20~40대 팬들이 폭넓게 포진해 있고 이들의 세심한 활동이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상당한 주부 팬까지 확보한 이들은 스마트 기기의 발달로 더욱 세심하고 적극적인 팬덤으로 든든한 지원군을 자처한다. 가수 김범수는 콘서트를 앞두고 ‘겟 올라잇 서포터즈’를 모집했는데 10명 정원에 수백명이 몰려들었다. 30~40대 누님 팬들이 몰렸고 이들은 직접 SNS를 배워 김범수의 공연 소식 등을 리트위트하는 열성을 보였다. 재력을 갖춘 50~60대 팬덤도 영향력이 크다. 한 대형 가수의 소속사 관계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신보를 수십장 사서 직원들에게 돌리는 사장님이나 판매가 부진한 시야 장애석을 단체 구입해 직원들의 문화 체험 기회로 삼아 일석이조를 노리는 기업 회장님도 있다”고 귀띔했다. 배우들의 팬덤은 작품을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가수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다. 하지만 세 과시보다는 직접적인 도움을 주려는 실속형 팬들이 많다. 영화배우들의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스타의 영화가 개봉되면 첫주에 관객수를 올려주기 위해 영화관을 통째로빌려 작품을 관람하는 전술을 구사하기도 한다. 배우의 작품이 흥행에 실패하거나 스타의 공백기가 길어질 때도 팬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준기의 팬들은 그의 군 제대 후 컴백작 ‘아랑사또전’이 예상보다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는데도 달동네에 연탄나르기 봉사활동을 함께 하며 끈끈한 유대감을 자랑했다. 비의 팬클럽은 그의 입대 중에도 데뷔일에 맞춰 언론사에 떡을 돌렸다. 걸그룹 원더걸스의 팬덤은 친언니나 가족처럼 다정다감한 것이 특징이다. 소속사 관계자는 “국내활동 공백기에도 온라인 중심으로 활동하며 원더걸스 멤버들을 응원해 준다”고 말했다. 배우에게만 팬덤이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상어’의 경우 이례적으로 연출자인 박찬홍 감독의 팬클럽이 움직였다. 이들은 박 감독의 캐리커처가 그려진 단체 티셔츠와 도시락, 음료 등을 들고 촬영 현장을 찾았다. 박 감독의 전작 ‘부활’ ‘마왕’을 거치며 10년 넘게 인연을 맺어온 팬들이다. 이들은 촬영장 주변과 화장실 청소까지 도맡았다. 드라마 관계자는 “감독의 작품을 변함없이 응원하는 팬들이 있어 정말 고맙고 힘이 났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런 날엔 피로가 싹 풀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똑똑해진 팬덤에는 그늘도 있다. 팬덤이 진화한 만큼 부정적 파급력도 커졌다. 팬덤 내부에서도 자정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보다는 스타에 대한 맹목적 애정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한 스타배우의 소속사 관계자는 “배우 A의 팬들이 드라마에 함께 출연한 다른 배우에 대한 비방글을 올려 피해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한 아이돌 그룹이 해외에서 불성실한 인터뷰로 논란이 되자 한 극성팬이 “온라인에서 이 그룹에 대한 자살 서명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허위 글을 올려 동정론을 이끌어 내려 했던 것도 단적인 예다. 팬덤 간의 소모적인 싸움도 반복된다. 다양한 아이돌 그룹이 동시에 출연하는 대형 콘서트의 경우 좌석 경쟁 때문에 상호 비방전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행사 뒤에는 트위터 등 온라인을 통해 “B그룹의 팬들이 C그룹의 팬을 무차별 폭행했다더라”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기도 한다. 한 아이돌 그룹 소속사 관계자는 “어떤 작품이 물망에 올랐더라도 회사 내부적인 스케줄에 따라 출연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회사로 전화를 걸어 경쟁 팀과 비교하면서 출연 여부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막무가내형 팬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인터넷상에서 비대해진 팬덤의 영향력 행사로 시장이 왜곡될 우려도 있다. Mnet 아시아 뮤직 어워드, 서울 드라마 어워즈 같은 시상식의 투표 참여 등에 특정 팬덤의 조작 논란이 반복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의 순위 선정 기준에 유튜브 동영상 조회수가 포함되면서 논란은 점차 가열되고 있다. 해외의 팬덤도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저작권 침해다. 자체 자막 제작을 통한 드라마 공유에만 열을 내면서 저작권이나 공식 수입 자료 등은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과 태국에서 유통 중인 국산 콘텐츠 가운데 음악과 영화의 불법 콘텐츠 비율은 90%를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한 남성 배우의 소속사 대표는 “해외에서 상대배우 매니저나 보조 출연자로 둔갑해 나타나기도 하고 호텔에 수술용 내시경을 몰래 카메라로 넣는 사생팬이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및 일본 팬들 등 사생팬들도 비슷한 양상으로 변해가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The city lives by remembering)고 미국의 시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읊었지만, 서울은 600년 고도의 기억이 별로 없다. 마치 신흥도시 같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통에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일제강점기 도읍에 대한 자취는 강제적으로 지워졌다. 조선총독부-경성시청-남산 조선 신궁을 상징 축선으로 하는 식민 도시로 치장됐다. 한국 전쟁통에 그나마 남은 것 대부분이 파괴됐다.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시대의 무지막지한 개발 광풍을 타고 또 한 번 뭉개졌다. 역사의 향기는 흩어졌다. 한강 이남으로 영역을 확대한 서울은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새로 건설된 신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대문 안에는 표지석만 어지럽게 남았을 뿐이다. 전쟁과 대사건은 도시를 재건한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폭격을 앞둔 맥아더는 “원래 도시란 천재지변이나 전쟁을 겪고 나면 그전에 비해 몇 곱절 더 크고 좋은 새 도시로 부흥된다. 미국이 재건을 도울 것이니 서울은 앞으로 이상적인 현대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실제 1644년 대화재로 도시의 80%가 타 버린 영국 런던은 옥스퍼드대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교수에 의해 오늘의 런던으로 재건됐다. 일본 도쿄도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잿더미가 됐지만 탁월한 도시계획가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도쿄시장의 주도로 세계 도시계획 사상 유례가 없는 시가지 개조를 통해 새로 태어났다. 런던과 도쿄는 세계대전으로 또 한 번 타격을 입었지만, 옛 도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의 재건은 성공작일까? 서울을 역동적인 현대 도시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역사 도시로 평가하기엔 머쓱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꽤 혼란스럽다. 서울은 네 번 결정적인 상처를 입었다. 16세기 일본과 중국 군대에 의해 약탈당했으며, 근대 일제강점기엔 성곽을 허물고, 상징 축을 강제로 바꾸는 방법으로 도시 형태가 조작됐다. 한국전쟁기 유엔군과 한국군의 청야(淸野)작전(적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농작물이나 건물 등 지상에 있는 것들을 말끔히 없애는 작전)을 통해 철저하게 파괴됐다. 1960~70년대 우리 손으로 남은 문화재를 헐어서 치워 버렸다. 맥아더의 말처럼 기회는 있었다. 1952년 전후 복구 차원의 첫 도시계획안을 마련하면서 세종로 등 39개의 큰길을 확장하거나 신설하고, 광화문광장·서울시청광장·남대문광장 등 19개의 광장을 만드는 과감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재정부족 등을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처럼 구도심(사대문 안)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사대문 밖이나 강남 신시가지를 개발하겠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 ‘광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서울 집중이 기회를 날려 버렸다. 집중을 막으려고 온갖 정책을 동원했지만 약효가 듣지 않았다. 해방 전후 100만명대였던 서울 인구는 1966년 380만명, 1970년 540만명을 넘어서더니 1990년 1000만명을 돌파해 버렸다. 수도 서울 행정은 집 지을 땅을 확보하고, 도로를 넓히고, 교통수단을 늘리고, 수돗물을 공급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에 매달렸다. 만약 그때 인구의 서울 집중을 막을 수 있었더라면 서울은 한가롭게 전차가 다니며,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정겨운 기와집이 빼곡한 도시로 남았을 것이다. 한강과 북한산이 주는 자연의 세례를 맘껏 누리는, 풍광이 뛰어난 성곽 도시로 유지됐을 것이다. 1950년대 서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손정목 전 시립대 교수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를 기본으로 사대문 밖 풍경을 상상해 보자. 동쪽으로 동대문을 나서면 신설동 큰 길가까지 집이 들어 차 있지만, 바깥은 논밭 천지다. 신당동에 집이 드문드문했을 뿐 금호동·옥수동 일대는 산이었다. 왕십리를 지나 한양대 일대는 미나리꽝이었고 성동교의 나무다리가 삐꺽거렸다. 남쪽 한강대교에 이르는 동빙고동과 서빙고동 주민은 1000명 안팎이었고, 원효로 일대는 대부분 논밭이었다. 노량진, 상도동, 대방동, 영등포는 큰 길가조차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연출했다. 서쪽으로 신촌을 지나 마포 전차 종점을 벗어나면 벌거숭이 산과 논밭이 펼쳐졌다. 동북쪽은 미아리고개, 서북쪽은 독립문과 현저동이 경계였다. 지금의 강남·서초·송파·강동·강서·관악·구로·금천·도봉·노원·은평구 등은 모두 경기도였다. 서울의 고층 건물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최고층 건물은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8층짜리 반도호텔이었다. 이웃 조선호텔과 한국은행 모두 일제가 남긴 건물이었다. 1955년에 종로 사거리에 2층짜리 신신백화점이 신축됐고, 1957년 광화문 사거리와 을지로 1가에 3층짜리 국제극장과 5층짜리 개풍빌딩이 각각 들어섰다. 1958년 남대문에 7층짜리 그랜드호텔이 문을 열자 구경 인파가 몰렸다. 당시 서울 도심부의 평균 층 높이는 2층이 채 되지 않았다. 도심부를 고층화하려고 주요 간선도로변의 건물 높이를 3~5층 이상으로 정할 정도였다. ‘한강의 기적’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 약 20년간의 고도성장기를 일컫는다. 이 기간 서울은 경천동지할 변화를 겪는다. 서울의 공간 변화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15년간 거의 이뤄졌다. 주택지·도로·상하수도·지하철 등 현대 서울의 하부구조가 이때 거의 갖춰졌다.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자의 ‘분부’를 이행한 김현옥·양택식·구자춘이라는 3명의 ‘충복’ 서울시장이 재직한 기간과 일치한다. 서울의 얼개는 박 대통령의 구상과 지시에 의해 거의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이 세워졌다. 서울의 균형 발전을 꾀하려고 사대문 안에 집중된 입법·사법·행정부의 기능을 분산시키려는 계획이 눈에 띈다. 입법부는 남서울(강남·서초구), 사법부는 영등포, 행정부는 용산 일대, 세종로 지역은 대통령 관저 및 직속기관 배치 지역으로 정했다. 지금 와서 보면 입법부와 사법부의 입지가 맞교환됐고, 서울시청이 용산으로 옮겨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교통계획을 보면 서울역~청량리(1호선), 서소문~을지로~성동(2호선), 갈현동~종로2가~을지로2가~퇴계로~천호동(3호선), 우이동~종로4가~퇴계로~말죽거리(4호선) 등의 지하철 4개 노선 건설계획이 잡혀 있다. 10년 뒤 구자춘 시장에 의해 2호선이 을지로와 영등포~영동을 잇는 순환선으로 변경되는 등 엄청난 노선 변화가 일어났지만, 지하철 4개 노선에 대한 기본 구상이었다. 이 밖에 4개 순환선과 14개 방사선을 간선도로망으로 7개의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계획과 노면 전차는 철거하고 광화문 사거리와 시청 앞 광장에는 지하차도를 만들고, 시청 앞 광장 지하는 지하도시화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도심 재개발과 강남·송파 등 남서울개발, 뚝섬·창동·망우 등 동서울개발, 불광·성산·김포·시흥지구의 서서울개발 등 신시가지개발 계획이 들어 있다. 1년 예산이 170억원에 불과한 서울시가 20년 앞을 내다보고 인구 500만명을 예상해 3235억원의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언론으로부터 ‘즉흥계획’ ‘실현성 없는 독단’ ‘재무계획 없는 무지개’ 등등 융단폭격을 맞았다. 그러나 격변의 15년 중 7년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지내며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한 손정목 전 교수는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최초의 기본계획이었다는 점, 도심부 재개발이니 고도지구, 미관지구 개념이 도입돼 일반에 공개됐다는 점, 70~80년대 전국 모든 도시가 수립한 도시계획의 모델이 됐다는 점 등에서 의미가 있다”고 회고했다. 불완전하나마 서울시 장기계획의 틀이 된 것이 사실이다. 일제 말기인 1940년부터 1965년까지 서울은 잠자는 도시였다. 1937년 중·일 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이 터져 건축자재를 구할 수 없었고, 한국전쟁이 이어지면서 건축 행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건물이 목조건물 수명 30년을 다한 상태였다. 장충동, 신당동 일대와 남대문로, 충무로, 을지로 등 일본인 주거지에 정원이 딸린 일본식 저택과 주택이 밀집해 있었다. 가회동·명륜동·동숭동·북아현동 일대에는 한옥촌이 빼곡하게 형성돼 있었다. 마포, 왕십리, 동대문을 벗어난 지역은 논밭이었다. 사대문 안과 독립문, 신촌, 신설동, 돈암동, 신당동, 용산이 서울의 전부였다. 노면 전차 노선을 기준으로 보면 동쪽으로 청량리·왕십리, 남쪽으로 노량진·신길동·영등포, 서쪽으로 마포·신촌, 서북쪽으로 독립문, 동북쪽으로 돈암동 전차 종점까지가 서울이었다. 지방에서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의 주거인 무허가 판잣집이 도심에서 가까운 하천변이나 산비탈을 차지했다. 1966년 당시 13만여채의 판잣집이 서울 곳곳에 달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서울은 개발행 특급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의 폭풍전야였다. j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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