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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콤한 사이언스] 부모 나쁜 식습관 아이에게 전달된다

    아빠와 엄마가 단것을 좋아하고 기름진 음식을 즐겨 먹는다면 이런 식습관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돼 비만과 당뇨를 쉽게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독일 헬름홀츠연구회 소속 실험유전학연구소와 계산생물학연구소 공동연구팀은 “부모가 햄버거나 피자같이 열량은 높지만 영양가는 낮은 음식을 즐겨 먹는다면 그 식습관이 정자와 난자를 통해 아이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유전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지네틱스’ 14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생쥐를 3개 그룹으로 나눠 6주 동안 각각 고지방식, 저지방식, 표준식단으로 먹이를 줬다. 예상대로 고지방식을 섭취한 생쥐들은 비만과 당뇨 현상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각 그룹에서 각각 난자와 정자를 채취해 인공수정을 시킨 다음 정상적인 대리모 생쥐에게 착상시켰다. 이렇게 태어난 새끼 생쥐들이 성장한 후 고지방식을 먹였는데, 비만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새끼가 저지방식이나 표준식단을 먹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새끼보다 체중 증가 속도가 더 빠르고 당뇨도 쉽게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뚱뚱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암컷 새끼는 비만 가능성이 높고 수컷 새끼는 당뇨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발견했다. 또 아버지 식생활보다 어머니의 식단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도 밝혀냈다. 실험유전학연구소 요하네스 베커 박사는 “고지방식을 섭취한 생쥐에게서 나온 난자와 정자가 만날 경우 새끼의 비만과 당뇨 가능성이 현저하게 커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비만 부모에게서 태어난 새끼가 정상적인 식단에 노출됐을 때도 체중이 증가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건강을 부탁해] 임신 중 ‘2인분’ 먹으면 안되는 이유

    [건강을 부탁해] 임신 중 ‘2인분’ 먹으면 안되는 이유

    여성들이 일생에서 단 몇 차례, 다이어트의 압박에서 ‘해제’되는 시기가 있다. 바로 임신 기간이다. 이 기간이 되면 상당수의 여성들은 뱃속의 아기를 고려해 ‘2인분’의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이러한 습관이 태어날 아기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브리스톨대학과 엑서터대학 공동 연구진은 출산을 경험한 여성 3만 명과 이들이 낳은 아이의 건강상태를 분석한 18건의 연구에 활용된 자료를 분석했다. 연구 자료에 기록된 여성들은 1929~2013년 아이를 출생했으며, 유럽과 미국, 호주 등지에서 거주했다. 연구진은 이 기간 동안 연구 대상 여성들의 임신중 체질량지수(BMI)와 혈당, 체지방량과 혈압 및 이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의 몸무게를 분석했다. 그 결과 임신 중 음식 섭취량이 많은 여성은 혈당이 높고, 혈압이 낮은 공통적인 특징을 보였다. 또 태어난 아이들은 평균보다 몸집이 크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 중 혈당 섭취가 높은 경우 몸집이 큰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반면, 임신 중 고혈압인 여성은 평균보다 몸집이 작은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뿐만 아니라 산모의 혈중 지질(혈관에 쌓이는 지방이나 콜레스테롤 성분) 역시 과체중 신생아 출산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를 이끈 엑서터대학의 레이첼 프리시 박사는 “지나치게 크게 혹은 작게 태어나는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제2형 당뇨 등에 노출될 위험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양한 시기와 국가를 망라한 이번 연구는 임신을 앞두고 있거나 임신 중인 여성이 태어날 아기의 건강을 위해 어떤 관리를 해야 하는지 알려준다”면서 “임신 중에도 적당한 양의 음식을 섭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결과는 세계적 의학저널인 ‘JAMA‘(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최신호에 실렸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서울 흥천사 감로왕도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서울 흥천사 감로왕도

    감로탱(甘露幀)은 외래 종교인 불교를 한국인들이 얼마나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신앙했는지 보여 주는 불교 회화이다. 전생에 지은 죄에 따라 육도윤회(六道輪廻)에 고통받는 중생이 구제 과정을 거쳐 극락에 이른다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감로탱 중생이 구제 통해 극락 이른다는 내용 감로탱화, 감로도, 감로왕도라고도 부르는데, 일반적으로 과거-현재-미래가 인과관계로 연결되는 3단 구성으로 그려졌다. 아래부터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헤매는 중생도 단이슬(甘露)이 상징하는 풍성한 음식이 베풀어진 의식을 거치고 나면 부처가 머물고 있는 세계로 올라설 수 있음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감로탱은 목련존자가 아귀도에 빠져 고통받는 어머니를 구하려 도움을 청하자 부처가 가르쳐 준 방법을 담은 그림이다. 부처의 가르침대로 산천에 떠도는 외로운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수륙재나 조상을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우란분재에서 쓰였다. 이렇듯 경전 내용을 의식용 그림으로 재창조한 독창적인 그림이 불교가 극심한 탄압을 받던 조선시대 꽃을 피웠다는 것은 흥미롭다. 제작 연대가 가장 빠른 것은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에 있는 약산사 감로탱(1589)이다. 감로탱은 하단의 육도윤회상이 조성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풍속화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1939년 조성된 서울 돈암동 흥천사 감로왕도는 특히 일제강점기 사회상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흥천사는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무덤인 정릉의 원찰이다. 공주 마곡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계룡산파 화맥(畵脈)의 보응 문성(普應 文性)과 그의 제자인 남산 병문(南山 炳文)이 그렸다. 두 화승은 기존의 감로왕도 도상을 바탕으로 당시의 핵심적 사회상을 서양화법으로 과감하게 담아냈다. 남산 병문은 사회주의 문화예술 운동에 가담한 것으로도 알려진다. 한국 현대 미술의 1세대 조각가로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가동맹)를 주도한 김복진과도 교류했다. 1949년 출범한 불교미술연구회에 미술부장으로 참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6.25전쟁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흥천사 감로왕도 1939년 현실에 맞게 재해석 당시는 중일전쟁이 한창이었고, 일본이 1941년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하기 직전이었다. 두 화승은 이 언저리의 시대상을 먹선으로 분할한 31개의 화면에 담았다. 전투함이 돌진하고 전투기가 날아가는 가운데 엄청난 위력을 가진 포탄이 여기저기서 터지는가 하면, 육군은 기세등등하게 탱크를 앞세우고 상대 진영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다. 지옥도 빠져 고통받는 중생의 모습이 바로 이럴 것이다. 일제가 남산에 세운 조선신궁과 침략의 본거지 통감부의 모습도 사실적으로 담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설치된 통감부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총독부로 바뀌었으니 당대의 모습은 아니다. 자동차 여행, 기차가 다니는 어촌, 코끼리 서커스단, 전당포, 전신주 공사, 전화 거는 모습, 스케이트 타는 모습 등 이전 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문물의 양상도 펼쳐진다. 흥천사 감로왕도는 최근까지 전쟁 장면이 담긴 몇몇 장면은 호분칠을 하고 흰 종이로 가려놓기도 했다. 지난해 불교중앙박물관 전시회에서는 종이를 모두 떼어냈지만 하단의 오른쪽 맨 아래 장총을 둘러메고 일렬로 행진하는 일본군의 모습은 호분칠이 짙어 흐릿하게 보일 정도다. 흥천사 감로왕도에 담긴 새로운 사회상은 이 그림을 한때 일제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목적을 가진 불화(佛畵)로 분류하게 만든 이유가 됐다. 하지만 최근에는 당대 삶의 모습을 가감 없이 투영한 이 그림을 20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불교 회화의 하나로 재평가하는 분위기다. 서울시는 이 그림이 보존 및 활용 가치가 큰 근대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 등록문화재 지정을 최근 문화재청에 요청했다고 한다. 글 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전투병과 첫 女장군 송명순 예비역 준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전투병과 첫 女장군 송명순 예비역 준장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송명순(58) 예비역 준장은 아담한 체구에 밝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겸손한 모습을 보여 줬던 그는 인터뷰 며칠 후 메일 한 통을 보내왔다. 당초 거부했던 인터뷰를 수락하게 된 이유였다. “전역을 하고 보니 지금 이 시간에도 전후방 각지에서 열심히 복무하고 있을 후배들에게 해 준 게 없더군요. 선배의 말 한마디지만 사랑하는 여군 후배들이 조금이나마 힘을 내고 희망을 품었으면 싶네요. 오늘부터 봄 날씨라는 예보가 있더군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너 거기서 군인들한테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해 주는 건 아니지?” 1980년 2월 대학(영남대 정치외교학과 76학번) 졸업식 날, 간호장교 시험에 붙었다는 친구에게 나름대로 유머러스한 인사랍시고 건넨 말이었지만 딱히 농담이라고만 하기도 어려웠다. 내 머릿속의 여군에 대한 인식이 딱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여자도 장교가 될 수 있구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던 그해 12월 초였다. 대구 중구의 맥화랑에서 친구를 만나고 나오는데 옆 건물 담벼락 게시판에 ‘여군 장교 모집’ 공고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화랑 옆에 있는 게 대구지방병무청이란 걸 그때 비로소 알게 됐다. 간호학과에 들어간 친구가 떠올랐다. 호기심에 빼꼼히 상담실 문을 열었다. 여군 부사관이 반갑게 맞았다. 그는 나를 앉혀 놓고 장장 3시간에 걸쳐 여군이 되면 뭐가 좋은지를 설명했다.(여군 장교 지원자가 없다 보니 모집에 성공하면 담당자에게 따로 수당을 준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그러나 여군에 지원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평생 통제된 생활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그냥 일어서려는데 담당자가 너무도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붙잡았다. 결국 지원 신청서를 쓰고 나왔다. ‘시험 보러 안 가면 그만일 텐데,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건 오산이었다. -다음날부터 집 전화기에 불이 났다. 병무청 담당자였다. 처음에는 “훌륭한 결심을 왜 바꾸셨느냐”로 시작하더니 내가 완강하게 버티자 “지원을 취소하면 헌병대 군인들이 데리러 갈 수밖에 없다”로 거의 협박조로 변했다. 하지만 막판의 한마디가 나의 오기에 불을 댕겼다. “경쟁률이 10대1입니다. 우수한 인재가 이렇게 많이 지원한 건 처음인데 붙는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일단 시험이나 한번 보시죠.” 지금 생각해 보면 별말도 아닌데, 그때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1981년 1월 초 대구역에서 서울행 군용열차에 올랐다. 시험 장소는 용산 국방부 근처의 여군훈련소. 집에는 친구들 만나러 간다고 둘러댔다. 첫날밤을 간호장교 친구 집에서 묵었다. “명순이 넌 정말로 못 할 일이야. 숨 막히는 상명하복 문화를 너 같은 성격에 행여….” 아침에 일어나니 친구는 이미 출근했고, 머리맡에 고향 갈 차비와 함께 쪽지가 놓여 있었다. ‘명순아, 아직도 안 늦었어. 지금이 마지막 기회야.’ 나는 돈을 챙겨 넣고 시험장으로 갔다. 시험은 필기, 면접, 체력검정으로 나뉘어 2박 3일간 이어졌다. -시험에 붙긴 했는데, 새로운 걱정이 밀려왔다. 아버지에게야 어떻게든 이해를 구할 수 있겠지만 어머니는 당최 자신이 없었다. 합격 사실을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저절로 들통이 나고 말았다. 기무대에서 신원조회를 위해 집에 전화를 몇 차례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집에 없었다. 매번 어머니가 받으셨는데 딸 찾는 남자 목소리가 1주일 정도 이어지자 “대체 무슨 일로 그러느냐”고 물으시게 됐다 “따님이 여군 장교 시험에 합격해서 신원조회차 전화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전화도 못 끊은 채 혼절하셨다. -아버지께서 우리 4남매를 집합시켰다. 당시 큰오빠는 한국전력 고리원전에서 일하고 있었고, 둘째 오빠와 여동생은 대구에서 대학에 다녔다. 전원 반대였다. “군인이 얼마나 힘든데 여자가 군대를 가냐.” 큰오빠가 가장 심하게 반대했다. “오빠, 합격하고도 입대를 안 하면 행정 기록에 평생 빨간 줄 같은 거 남는대.” 군인 출신인 아버지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둘러대다니. 드디어 아버지가 말문을 열었다. “명순이는 어릴 때부터 아들 같은 딸이었다. 충분히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내가 못 간 길을 네가 가겠다고 한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다.” 그러나 어머니는 달랐다. 평생을 바랐던 ‘교사 딸’에 대한 미련을 내가 소령 계급장을 달 때까지도 버리지 못하셨다. -육군 공병이었던 아버지는 6개월마다 교량 하나씩을 짓고 부대를 옮겼다. 강원 횡성에서 태어난 나의 어릴 적 추억이 이곳저곳에 다양하게 남아 있는 이유다. 어머니는 이런 환경을 탐탁지 않아 하셨다. 우리들 교육 때문이었다. 8남매 중 맏이로서 동생들을 책임지느라 많이 못 배운 게 평생의 한이 된 분이셨다. 4남매만큼은 안정적으로 공부를 시키고 싶어 하셨다. “여보, 군인 그만두고 고향으로 가서 장사라도 합시다.” 아버지는 어머니 말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분이셨다.(아버지는 2013년 암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아내를 그리워하다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게 1965년, 내가 일곱 살 때였다. -나는 경북 경주의 작은 동네에서 ‘가게 하는 집 딸’로 통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면서 110m 허들 육상선수로 꽤 소질을 인정받았고, 공부도 남에게 뒤지지 않았다. 중3 어느 날 대구 경북여고에서 누군가 집으로 찾아왔다. 어머니에게 “따님을 육상선수로 스카웃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 명순이가 시험으로도 그 학교 충분히 갈 수 있는데 운동 특기생으로 보낼 이유가 있나요.” 어머니의 바람에는 내가 얌전히 자라 교사가 되는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된 뒤부터는 그런 어머니에게 실망을 안기는 일이 잦아졌다. 딸을 통해 못다 한 꿈을 이루려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다. 사춘기의 열병 같은 것이었다. 딱히 이렇다 할 말썽을 피운 건 아니었지만 빈둥거리는 시간이 늘었고, 성적이 그에 비례해 곤두박질했다. 경북대 영문과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저 대학 안 가고 돈 벌래요. 오빠들 등록금 대기도 빠듯하잖아요.” 경제적으로 부담이 컸던 아버지가 내심 좋아하실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10년, 20년 지나 봐라. 여자들 사회활동이 얼마나 활발해질 텐데…. 절대로 안 될 말이야.” 아버지가 손수 후기대학인 영남대의 지원서를 받아 오셨다. 아버지의 선견지명은 그대로 통했다. 여군 장교 지원 조건이 ‘4년제 대학 졸업자’였으니 말이다. -기함하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1981년 3월 용산 여군훈련소에 입소했고, 그날부터 후회가 시작됐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간호장교 친구의 만류가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올랐다. 구보 등 고된 훈련은 둘째치고 음식이 입에 안 맞아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40㎏ 언저리의 체중으로 그 힘든 훈련들을 견뎌내야 했다. -틀에 박힌 생활, 충성심과 국가관 교육 등 모든 것이 낯설었다. 학생대장(소령)이 수양록(일기)을 점검할 때면 매일같이 빨간 줄이 죽죽 그어졌다. ‘군대를 선택하길 참 잘했다’ 같은 식으로 써야 하는데 내 수양록에는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다’와 같은 군대 금기어들이 수두룩했다. ‘이렇게 쓰면 훈련소에서 내보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일부러 그렇게 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선택한 길, 스스로 책임진다”는 각오가 차츰 커져 갔다. -1981년 9월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임관을 했다. 상관들은 우리들 20명에게 “외출할 때 버스 타지 말고 택시를 타라”고 했다. 군복 입은 여군, 특히나 위관급 계급장을 단 여자 장교는 동물원 원숭이만큼이나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1982년 육군본부에 배치됐다. 주한 외국대사관의 군인들을 상대하는 무관 연락장교를 맡았는데, 정문을 지키는 의장대 군인들이 외국대사관 군인들의 출입을 막는 일이 잦았다. 어느 날 화가 나서 중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경비소대장에게 달려가 마구 따졌다. 그도 지지 않았다. “감히 소위가 중위에게 하극상을 하나?” “우리가 지금 계급으로 일하는 거예요?” 그때의 중위가 지금의 남편이다. 3년 연애를 하고 결혼했는데 양쪽 집안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똑같이 결혼 상대가 ‘군인’이라는 이유였다. 남편은 2011년 중령으로 예편했다. -1983년 4월 미국 텍사스 공군기지 안에 있던 영어전문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는 내가 이후 통역 등 영어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군대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 뒤 내가 세운 원칙은 “기존의 여군 선배들이 걸었던 ‘여군의 길’은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남자와 같은 능력을 갖춰야 기회가 온다고 생각했는데 그 전기는 1990년 여군병과가 사라져 내가 보병병과로 편입되면서 찾아왔다. 더 많은 보직을 경험할 수 있었다. 1992년부터 1년 4개월간 특전사 여군을 지휘했다. 대테러팀, 고공강하팀, 패러글라이딩팀에 소속돼 고공 낙하산과 래펠을 탔다. 가슴에 ‘공수 윙마크’를 달았다. -“여군대대를 없애 주십시오. 250명 부사관에게 고유의 병과를 부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육군본부 여군대대장(중령)으로 근무하던 1999년, 육군참모차장에게 나는 강한 어조로 건의했다. 당시 육군본부 내 남자 사병과 여군 부사관 간에 차별이 너무 심했다. 남자 사병들에게는 정신교육을 없애고 PC방까지 만들어 주면서 여군에 대해서는 계급이 더 높은데도 취침 때까지 정신교육에 점호를 시켰다. 사병들은 대학을 다니다 온 우수한 인재들이 많고 여군 부사관들은 전문대나 고등학교 출신이 많다는 편견도 크게 작용했다. 여군 부사관이 사병의 복사 심부름을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러다 보니 사병들이 여군 부사관을 무시하고 경례도 하지 않았다. 너무 화가 났다. ‘우리 여군 부사관들이 고작 행정 보조나 하려고, 차 심부름이나 하려고 들어온 게 아니지 않은가.’ -얼마 후 점호가 사라지고 야근도 탄력적으로 바뀌었다. 3년 후에는 여군대대가 없어졌다. 각자 병과를 받아 각 부대로 흩어졌다. 그동안의 편안한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일부 여군 부사관들은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지금은 전방 어느 부대에도 여군이 있다. 여군대대가 아직까지 존속했다면 여군 1만명 시대(올 연말 1만 490명 예상)가 이렇게 빨리 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1년 말 한미연합사령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중령으로서 한미연합사에 배속된 첫 여군이 됐다. 대령 진급 후 2006년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연대장을 맡았는데, 이때 7명의 연대장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2007년 대구 2작전사령부의 작전처 민사심리전과장으로 가면서 ‘민군작전’(안정화 작전)에 발을 들였다. 북한과의 전쟁 상황에서 한·미 연합군이 북으로 진입하게 되면 북한 주민을 어떻게 관리할지 계획을 세우는 작전이었다. 당시 한국군은 전투에서의 승리에만 관심이 있었지만 이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여러 나라에 진주한 경험이 있는 미군은 민군 작전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전투에 이겨도 전쟁에 질 수 있다”는 개념을 이때 갖게 됐다. 그 경력을 인정받아 2010년 여군 최초로 합동참모본부에 발을 디뎠는데, 이 경험이 장군 진급으로 이어진 결정적인 이유라고 믿는다. -2011년 1월 1일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차장을 맡으면서 여성 처음으로 ‘별’을 달았다. 아이들에게 큰절을 했다. 부모가 1년마다 가방을 싸는 군인이니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도 못 했는데, 미안하고 고마웠다. 2014년 가을부터 대구가톨릭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국가안보론과 리더십 수업을 하는데, 아무래도 많이 받는 질문은 남성 중심의 조직에서 어떻게 장군까지 올라갔느냐는 것이다. 매번 답은 똑같다. “내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했고 여성의 능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인 세상의 변화, 조금씩 유연해진 군 조직,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빚어낸 결과입니다. 후배 여군들에게는 ‘여성성을 버리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꼭 필요하다면 모를까 공연히 남자 대 여자로 겨루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회는 결국 공생이고 상생이니까요.” 김태균 사회부장 windsea@seoul.co.kr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송명순 예비역 육군 준장은 국내 최초의 전투병과 여성 장군이다. 간호병과에서는 2001년 첫 여성 장군이 나왔지만 실제 전투와 작전을 수행하는 여군으로는 2010년 12월 별을 단 송명순 장군이 처음이다. 1981년 장교로 임관해 32년간 육군본부, 특전사령부, 작전사령부, 한미연합사령부 등을 두루 거친 뒤 2012년 12월 국방정보본부 해외정보차장을 끝으로 전역했다. 육본 여군대대장 시절 스스로 여군대대의 해산을 상부에 건의해 관철시킴으로써 잡다한 행정업무의 굴레에 갇혀 있던 여군들을 야전 현장으로 이끌어냈다. 이를 통해 ‘여군 1만명 시대’를 앞당기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부터 대구가톨릭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1958년 강원 횡성 출생 ▲경북여고·영남대 정치외교학과·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1군사령부·특전사령부 여군대장 ▲육군정보학교 영어학 교관 ▲육군 비서실 대외의전장교·여군대대장·여군담당관 ▲육군훈련소 제25교육연대장 ▲제2작전사령부 민사심리전과장 ▲한미연합사 민군작전계획과장·민군작전처장
  • [알쏭달쏭+]다이어트 때 매일 체중계 위에? 1주일에 한 번만? (연구)

    [알쏭달쏭+]다이어트 때 매일 체중계 위에? 1주일에 한 번만? (연구)

    현대인의 숙명, 다이어트는 집집마다 체중계를 필수용품을 두게 했다. 먹는 음식마다 열량을 따져보고, 걸핏하면 체중계 위에 올라가서 일희일비하는 모습은 늘상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다이어트의 진정한 효과를 거두고자 한다면 조급함을 거두고 체중계를 잠시 방구석으로 미뤄두라는 조언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대해 매일 몸무게를 재는 것이 다이어트에 더욱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와 관심이 모아진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7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칼리지 연구진이 12개월간 참가자 148명을 추적 조사하고 위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최근 미국심장협회(AHA) 회의에서 이 연구결과를 발표한 연구진은 “다이어트(식이요법)와 운동은 체중 감량의 핵심 요소이긴 하지만, 자기 체중을 매일 확인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변화된 행동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해도 체중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면 체중 확인을 통해 추가적인 변화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체중 확인이 사람들에게 실제로 체중 감량의 필요성을 더 느끼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이 체중 확인하는 패턴에 따라 우선 세 그룹으로 분류했다. 첫 번째 그룹은 1주에 최소 6일은 자기 체중을 확인한 사람들로, 이들은 일관성 있게 자기 체중을 확인한 사람들이었다. 두 번째 그룹은 1주에 4, 5일간 체중 확인을 했었지만 추후 1주에 2일로 체중 확인이 줄어든 사람들이며, 마지막 그룹에는 첫 주에 5, 6일은 체중 확인을 했지만 이후 1주에 단 한 번도 체중 확인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포함됐다. 또한 연구진은 6~12개월간 참가자들이 과제를 마치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기 평가인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을 평가하게 했다. 이때 참가자들은 다양한 조건에서 먹는 것을 피하기 위한 자신의 ‘자신감’도 평가해야 했다. 조건으로는 참가자의 감정이 부정적일 때나 음식이 먹을 기회가 생겼을 때, 주의의 압박, 신체적인 불편, 긍정적인 활동 등이 포함됐다. 그 결과, 일관성 있게 자기 체중을 확인한 그룹이 총점뿐만 아니라 다섯 가지 조건 모두에서 현저하게 점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다른 두 그룹은 시간이 흘러도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연구는 지속해서 자기 체중을 확인하고 체중 감량을 시도한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은 물론 과식을 유발하는 상황에 더 잘 대처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또 이 연구는 정기적으로 자기 체중을 확인하는 사람은 자신의 다이어트에 자신감을 더 느끼고 과식을 더 방지할 가능성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연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자세히 검토한 미국 컬럼비아대의 행동 영양학자인 희원 리 그레이 박사는 “다이어트와 신체 활동만 하기보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체중이 어떻게 변하는지 이해할 수 있으면 체중 확인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이 자기 체중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레이 박사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체중을 잴 때 자신의 식습관에 대해 더 자신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런 사람은 자기 행동에서 몇 가지 유형을 수정하면 체중이 바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레이 박사는 “자기 체중 확인은 효율적일 수 있지만, 체중을 너무 많이 감량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꽃잎이 살랑, 봄마중 떠난 내 마음도 살랑

    [우리동네 흥겨운 축제] 꽃잎이 살랑, 봄마중 떠난 내 마음도 살랑

    ‘섬진강을 따라 매화여행을 떠나 보자.’ 봄의 전령사인 매화가 하얀 눈송이처럼 온 세상에 흩날리는 제19회 광양 매화축제가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 펼쳐진다. 바짝 마른 밤색 나뭇가지에 물이 올라 연둣빛 새순이 막 돋아나기 시작할 무렵에 전라도 섬진강 매화마을에서는 매화가 하얀 꽃망울을 하나둘 터뜨려 오는 20일쯤 절정을 이룬다. 특히 축제장인 다압면 섬진마을은 3월 중순쯤부터 말 그대로 매화의 하얀 꽃잎들이 바람에 날려 함박눈이 내린 듯 온 마을을 뒤덮으니 ‘설국’이 따로 없다. 이 마을 언덕에 올라가면 하얀 매화꽃 너머로 푸른 물고기의 은빛 비늘처럼 펄떡거리는 섬진강의 물결이 더해져 평생 잊을 수 없는 봄날이 펼쳐지게 된다. 섬진강 매화축제는 전국에서 가장 빨리 열리는 봄꽃 축제로 유명하다. 춥고 긴 겨울을 이겨내고 열리는 전국 첫 꽃축제이다 보니 서울 등 수도권에서까지 찾아온 상춘객들로 북적댄다. 매년 100만명 이상이 찾아오는 전국의 대표 꽃축제로 자리잡았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전남도 대표 축제로 선정됐다. 김휘석 광양매화축제위원회 위원장은 “새봄을 맞아 매년 전국에서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라며 “평화·화해·행운·관용·인내 등 5가지 뜻이 있는 매화에 심취하는 축제가 되도록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다압면에 매화가 심어진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1931년이다. 광양 출신인 김오천씨가 16살인 1918년부터 일본 규슈 탄광인 다가와시에서 13년 동안 광부로 일한 뒤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매실 묘목 5000그루를 가져와 심은 게 계기가 됐다. 1988년 작고한 김씨는 일본에서 매실이 좋은 것을 알았던 터라 매화나무 확대에 지속적으로 정성을 쏟았다. 7㏊의 산비탈 농장 청매실농원을 가꾸는 홍쌍리 여사가 큰며느리다. 빛 광(光), 햇볕 양(陽)의 광양은 일조량이 많아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먼저 매화가 피고, 먼저 매실을 수확하는 곳이다. 5월 말이면 매실이 나온다. 매실의 장점이 알려지면서 700여명의 주민도 매화 심기에 합세했다. 2000년 드라마 ‘허준’의 영향으로 매실이 국민적으로 인기를 끌자 재배량이 급속히 증가했다. 2011년까지 거의 매년 매화를 심었다. 재배 면적이 늘어나면서 광양은 지난해 1만여t을 생산하는 등 전국 최고 매실 수확량을 자랑하고 있다. ‘광양 매화’는 2006년부터 두 차례에 걸쳐 북한 개성공단에 500여 그루를 심어 남북에서 함께 피우는 꽃이라는 상징성도 있다. 축제장인 매화단지는 500㏊에서 15만 그루 이상의 홍매화, 백매화가 만개해 붉고 하얀 세상을 느끼게 한다. 조선의 선비들이 사랑한 매화 향기가 가슴속까지 파고들어 몸과 마음에 힐링감도 선사한다. 매화마을은 그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꽃길을 걸으며 영화 ‘취화선’, 드라마 ‘다모’의 기억을 꺼내보는 것도 매화축제의 즐거움이다. 2500여개의 장독이 놓인 장독대와 청매실농원 뒤 왕대숲은 사진과 영상으로 누구나 한 번쯤 접해 봤을 풍경으로 또 다른 아름다움을 준다. 광양시는 올해 19번째인 전국의 대표적인 봄꽃 축제를 위해 준비 작업에 한창이다. 올해 광양 매화축제는 쾌적한 잔치 분위기 조성을 위해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꽃구경을 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교통지도, 화장실 등 편의시설 확충과 안내서비스에 주력하고 있다. 혼잡을 피하고자 다양한 공연 및 행사를 진상면, 진월면, 광양읍, 중마동, 금호동 등에서 분산 개최한다. 인근 지자체와 화합 행사도 마련했다. 개막 첫날인 18일에는 구례군과 하동군, 광양시 주민 300여명이 참여하는 ‘용지 큰줄다리기 영호남 화합행사’가 남도대교에서 열린다. 이를 통해 영호남이 함께하는 대동축제로 거듭난다는 방침이다. 이날 읍내에 있는 문화예술회관에서는 ‘신춘음악회와 ‘제6회 남해성 판소리 경연대회’도 열린다. 19일과 20일에는 ‘여수·순천·광양시립예술단 교류공연’ 등으로 축제를 광역화하는 등 이웃 도시 간 상생 협력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또 추억의 교복체험, 엽서를 써서 부치면 1년 후에 배달되는 느림보 우체통, 궁중 한복체험 등 새로운 체험행사도 준비했다. 총 43개 각종 공연과 전시, 체험행사 등 축제 콘셉트에 맞는 행사들로 꾸며졌다. 전국 사진 촬영대회도 열린다. 올해부터는 주차 회전율을 높이고 집중화되는 차량을 분산시키고자 처음으로 매화주차장이 유료화된다. 단 주차장 이용료(중·소형 3000원, 대형 1만원)만큼의 쿠폰으로 되돌려줘 축제장 내 지정 음식점이나 특산품 구입 시 사용 가능하도록 했다. 매화주차장을 제외한 나머지 주차장은 모두 무료로 개방된다. 주말에는 교통체증 해소와 관광객들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고자 광양읍에서 중마동을 거쳐 행사장과 망덕포구에서 축제장까지 오가는 셔틀버스도 운행한다. 시는 매년 반복돼 관광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노점상, 야시장(품바) 등 불법행위를 원천 차단하고자 관계부서 합동 불법행위 단속반을 운영하기로 했다. 환경 정비와 화장실 청결관리 등 깨끗한 축제 만들기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정현복 시장은 “매화축제 덕분에 매실 농가들의 판로 개척에도 도움이 된다”며 “영호남 화합의 중심지에서 열리는 축제인 만큼 국민 통합과 화합에 기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주요 관광지와 연계한 1박2일 체류형 축제를 위한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느랭이골 빛축제 등 관광지와 연계 느랭이골 자연리조트(광양시 다압면 신원리 산125)에서는 오는 12일부터 광양선샤인 빛축제(부제 동화의 나라)가 열린다. 리조트 내 조형물과 나무에 1430만개의 LED 전구를 감아 화려하게 밤을 수놓는 빛의 향연이다. 일몰 시각부터 밤 10시까지 색다른 화려함을 감상할 수 있다. 또 매화축제 기간에 오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순신대교 야간 점등이 이뤄진다. 특히 시는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1박2일 광양 여행코스’를 소개해 보고 먹고 머무는 충분한 여행이 되도록 세심한 안내도 하고 있다. 남해 바다와 인근 지자체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봉산 전망대, 재첩·벚굴과 연계한 진월 망덕포구, 광양 불고기 특화거리 등이 자세히 기재돼 있다. 축제 관련 전화 응대 시에도 광양 여행코스를 추천해 주는 등 체류형 관광객 유치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캠핑족 맞이를 위해 축제장 인근 메아리 캠핑장과 백학동 캠핑장, 백운산 자연휴양림도 예약 접수를 시작했다. 인근 민박업소도 봄꽃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또 광양읍에 있는 호텔부루나는 깔끔해서 가족단위 투숙객들이 묵기 좋도록 꾸며져 있다. ●재첩·벚굴·숯불고기 ‘맛난 여행’ 꽃놀이도 식후경이라 매화꽃 구경을 하느라 고파진 배는 광양의 유명 음식으로 달래면 된다. 재첩회는 비빔밥의 일종으로 재첩을 매콤새콤한 양념으로 버무린 뒤 밥에 올려 비벼 먹는다. 재첩의 육즙과 양념의 조화가 봄 미각을 깨운다. 재첩국은 시원하고 맑은 국물로 여행자의 고된 피로를 녹인다. 섬진강과 광양만이 만나는 곳에서 나는 광양 재첩은 굵기가 큰 것으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광양에서만 채취되는 벚굴도 유명하다. 벚굴은 봄철 섬진강 하류에서만 자라기 때문에 매화축제에 들르면 반드시 먹어 봐야 하는 별미다. 1~4월이 제철인 벚굴은 강 속에서 먹이를 먹으려고 입을 벌리고 있을 때 벚나무에 벚꽃이 핀 것처럼 하얗고 아름답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크기도 일반 굴에 비해 보통 10배가 크다. 모두 자연산이다. 이런 재첩과 벚굴은 진월면 망덕포구 일대 횟집타운과 다압면 인근 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축제장을 벗어나 광양 시내로 들어오면 입에 살살 녹는 불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광양불고기는 얇게 썬 고기에 양념을 즉석에서 버무리고 청동화로에 참숯을 피워 구리 석쇠에 구워낸 지역 대표음식이다. 부드러운 육질과 풍부한 육즙에 젓가락을 놓을 수 없다. 광양읍 서천변 불고기 특화거리 일대 식당이 모두 유명하다. 글 사진 광양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37] 좋은 식습관이 정말 암을 예방해줄까

    암을 두려운 질병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줄곳 회자되는 금언이 바로 ‘좋은 식습관으로 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음식을 찾아 나서고, 좋은 식습관을 체화하기 위해 고민들도 합니다. 이런 가운데 생겨난 새로운 풍조를 반영해 ‘힐링 푸드(Healing Food)’나 ‘웰빙 푸드(Well-being Food)’ 같은 개념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헷갈리는 일들이 뒤를 이었습니다. 암은 타고난 기질, 즉 유전적인 소인이 문제라는 인식입니다. 많은 저명 학자들이 유전학적·분자생물학적 근거와 함께 이런 논지를 폈습니다. 이런 논리를 의학계에서는 정설로 인정합니다. 암은 발현 통로가 어디든 유전적인 소인이 유력한 발병 원인이라는 것이지요. 실제로 의료계에서 제시하는 수많은 암 관련 자료나 정보에는 어김없이 ‘가족력’이라는 게 거론됩니다. 간단하게 말해 ‘당신의 가족 중에 누군가가 특정 암을 앓은 전력이 있다면, 당연히 당신도 그 암의 위험군에 포함된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환자들은 진단 과정에서부터 위험군으로 분류됩니다. 혈통을 따라 유전적 소인이 작용하기 때문에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찰·관리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의료 소비자들은 이 대목에서 혼란을 겪습니다. “좋은 식습관이 암을 예방해 준다고 해서 좋다는 것만 골라 먹었는데, 헛물만 켠 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좀 막연하지만 “좋은 식습관이 유전적 소인까지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줄 꺼야”라고 믿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혼란을 일소할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 이 글은 대한암예방학회(회장 김나영)의 결정과 권고를 근거로 쓴 것임을 밝힙니다. 또, 광범위한 암을 모두 다룰 수 없어 음식과 가장 깊은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대장암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참고로, 대한암예방학회는 1996년에 설립된 전문 학회로, 암 예방과 관련된 기초 및 임상과 관련된 연구자들이 모인 공신력 있는 단체입니다. ‘암 예방을 통해 국민건강 증진에 이바지한다’는 미션(Mission)만 봐도 이 학회의 정체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식습관이다” 에둘러 갈 것 없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래도 식습관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지난 2000년 미국 하버드 의대는 자체적으로 수행한 연구 결과를 근거로 ‘70% 이상의 대장암이 식습관 및 생활습관을 개선함으로써 예방이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버드 의대는 이어 2009년에 ‘대장암 예방 모델연구 결과, 생활습관이 좋지 않은 여성은 생활습관이 좋은 여성에 비해 대장암에 노출될 위험성이 4배 이상 높았다’고 발표했습니다. 대장암 발병군에서 70%나 예방이 가능하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는 연구 결과입니다. 미국 대장암 환자 10명 중 7명은 환자 자신의 가족력과 상관없이 식습관과 생활습관을 바꿈으로써 대장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나머지 3명이 유전성에 따른 불가피한 발병이었음을 인정(물론 연구 결과에 이런 내용이 포함되었는 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한다 하더라도 대장암 예방에 있어 바른 식습관과 생활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늠하게 하는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나 미국은 전 세계를 통틀어 대장암으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는 나라이며, 대장암 연구 분야에서도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많은 임상 실적으로 가진 나라입니다. 우리가 대장암을 말할 때 위험요인으로 자주 거론하는 ‘서구식 식생활’이란 바로 미국인의 일반적인 식생활을 의미합니다. 즉, 과다한 붉은 살코기 섭취, 패스트푸드 등 인스턴트 음식에 대한 높은 의존도, 권고 기준치를 훨씬 넘어선 당분 및 나트륨 섭취와 지나친 흰 밀가루 사용 등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이런 문제 때문에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해 암 연구 및 진단·치료를 위한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한 나라이기도 합니다.미국에서 수행된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여기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식습관은 그렇다 하더라도 생활습관을 바꿔서 사는 게 가능한 일이냐고 반문할 사람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생활습관의 개선이 자신이 살아온 삶 자체를 개조하는 그런 큰 변화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먹는 음식(섭취한 총열량)에 비해 크게 부족한 운동량을 늘리라거나 식사나 수면 패턴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라는 정도이니까요. 미국 등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우리 나라에서 좋은 식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지출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나친 상업주의의 폐해일 수도 있고, 일단 몸에 좋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식품은 하나 같이 너무 비싸니까요.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몰라서가 아니라 엄두가 안 나서 뻔히 보이는 좋은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일도 많습니다. 좋은 식습관의 기본인 ‘좋은 음식’을 두고 더러는 “돈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호사”라고 시덥잖게 받아들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배추나 시금치, 토마토만 해도 그렇습니다. 생산자는 생산 원가도 못 받는다고 아우성인데, 소비자들은 비싸서 못 먹겠다고 볼멘 소리들입니다. 이유는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유통 마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거 돈 좀 되겠다 싶으면 유통업체들이 과점을 한 뒤 비싼 이문을 붙여 시장에 푸는 것이지요. 그래서 ‘직구’라는 방식이 부각되고 있지만 아직은 규모가 유통 혁명으로 이어질 수준은 아닙니다. 그러니 정부가 나서 유통 단계도 줄이고, 지나친 유통 마진도 규제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여기에도 ‘자유’나 ‘자본주의’의 논리가 개입되는 모양입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들은 흔히 ‘자유’를 ‘내 맘대로’라고 해석하고, ‘자본주의’를 ‘돈 놓고 돈 먹는 게임’으로 아니까요. 하지만 틈새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만 발품을 팔면 유통마진이 쏙 빠진 ‘꽤나 좋은 식재료’를 만날 수 있습니다. 필자의 경우 주거지에서 가까운 둔촌동 재래시장이나 성남 모란시장, 양평 재래장 등을 자주 갑니다. 요새는 대형 마트에 밀려 갈수록 규모가 줄고, 그래서 거래되는 품목도 제한적이지만 철 바뀔 때마다 당기는 체철 식재료는 싸게 구할 수 있습니다. 또 대형 마트라도 다 같지는 않습니다. 거기도 들여다 보면 ‘번개 세일’ 등 틈새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도리없는 일입니다. 당장은 좋은 음식을 위해 좀 더 많은 수고를 할애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장암을 이기는 좋은 식생활이란 대한암예방학회의 권고에 따르면 ‘대장암을 이길 수 있는 식생활’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과식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식 자체가 대장암 발병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는 없지만, 과식이 비만을 초래해 대장암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장암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체중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과식을 경계하라는 뜻이지요. 다음은, 밥의 문제입니다. 밥은 한국인의 주식이지만, 최근에는 이런 전통 주식 패턴이 빠르게 해체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빵과 패스트푸드 등 밀가루 제품이 밥의 자리를 대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밥이나 빵을 먹을 때는 최소한의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주식 원료는 고탄수화물식이어서 자칫 혈당의 변화를 초래하기 쉽고, 이런 혈당 문제는 당뇨병으로 이어져 비단 대장암 뿐만 아니라 갖가지 부작용을 초래니까요. 따라서 밥이나 빵을 먹을 때는 백미 대신 현미나 잡곡을 먹는 게 좋습니다. 현미밥이나 통밀빵을 먹는 방식인데, 이런 음식은 식감이 떨어지지만, 확실히 탄수화물 섭취량은 줄여 주고, 식이섬유 섭취량을 늘려줍니다. 이런 섭생을 ‘당지수가 낮은 탄수화물 섭취’라고 합니다. 당지수란, 탄수화물을 섭취한 뒤 체내에 흡수되는 속도를 감안해서 당질의 질을 비교할 수 있도록 수치화한 것입니다. 당지수가 높은 식품을 섭취하면 체내에서 혈당 수치를 빠르게 올려 2차적으로 대장암 발병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 채소와 해조류, 버섯류를 자주 먹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짜지 않게 조리한 야채를 자주 먹으면 양질의 식이섬유와 비타민, 칼슘을 비롯한 무기염류 섭취량이 늘어나 장 건강은 물론 인체 대사활동에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과일도 대표적인 권장 식품이므로 매일 적정량을 먹어줘야 합니다. 단, 과일은 생과일 상태로 먹는 것이 좋으며, 한 번에, 한 가지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한 가지 짚고 갈 것은, 채소와 과일의 경우 대장암과의 연관성이 최종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인식은 대장암 예방에 나쁠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질환에서 이런 식료품이 보이는 유효성을 감안할 때 과일과 채소가 유익하다고 판단할 근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바람직한 섭생을 말할 때마다 강조하지만, 가능한 쇠고기·돼지고기와 햄·베이컨·소세지 등 육가공식품의 섭취량을 제한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신 닭고기와 생선·두부 등을 먹으면 육류 섭취 제한에 따른 단백질 부족분을 충분히 보충할 수 있습니다. 육가공식품의 문제는 붉은 살코기를 많이 먹는다는 생각조차 없이 많이 섭취하게 하기도 하지만, 가공 과정에서 지나치게 많은 나트륨이 들어갈 뿐 아니라 착색제와 보존제, 합성 향료 등 많은 첨가물이 들어가 자칫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최근 소세지 등 육가공식품의 섭취를 제한해야 한다고 밝혔다가 전 세계 육가공 단체 등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만, 그 발표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붉은 살코기를 아주 안 먹고 살 수는 없는데, 적당한 양을 먹더라도 먹는 방법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고기를 구워서 먹을 때 가능하다면 숯불로 굽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또, 타지 않게 조리해 먹어야 합니다. 아시겠지만 단백질을 비롯한 육류는 고온에서 탈 때 발암물질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땅콩이나 호두, 잣 등 견과류를 매일 조금씩 먹어주면 좋습니다. 견과류에는 불포화지방산, 섬유소, 각종 미네랄 등 영양소가 풍부해 대장암 예방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견과류도 과다하게 섭취하면 고지혈증이 심해지고 체중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사실, 지금과 같은 영양학이 정립되기 전에도 견과류는 좋은 식품으로 꼽혔습니다. 특정 영양 성분을 생각했던 건 아니고, 껍질이 딱딱한 과실류는 땅의 정기를 한껏 품어서 먹으면 기를 축적할 수 있다고 믿었던 까닭이지요. 어느 새 대장암 위험국가가 된 한국 우리 나라에서 대장암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많았던 위암이 감소 추세인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2010년 전국 암 발생률을 보면 남성 암의 경우 위암에 이어 대장암이 2위에 올라 있습니다. 여성 암도 갑상선암과 유방암에 이어 3위에 오를만큼 빈발합니다. 이런 대장암의 위험인자로는 고지방·고열량식과 육류가 꼽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서양식이 대장에 좋은 섭생이 아니라는 점은 자명합니다. 반면, 한식은 고섬유식이어서 대장암의 발생 빈도를 낮춰주는데, 문제는 갈수록 한식의 식탁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수많은 건강상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이 알게, 모르게 서구형 식단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나라에서 대장암 발생률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 현상이 식생활의 서구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시겠지만, 대장암은 대표적인 서구형 암이었습니다. 불과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임상 사례가 많지 않아서 우리 나라에서는 대장암 연구조차 힘들었습니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희귀했는데,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3대 암에 들어있으니, 그동안 우리의 먹거리와 섭생이 어떻게 바뀌었는 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장암은 무엇을 먹느냐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물론 유전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앞에서 거론한 식생활과 대장암의 밀접한 관련성을 이로써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개최된 대한암예방학회에서 이정은 숙명여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영양학 측면에서의 대장암 예방을 주제로 한 연구를 통해 이런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교수는 대장암 발생율을 높이는 확정적인 요인으로는 붉은 살코기와 가공육, 복부비만과 남성의 음주를 들었고, 가능성이 높은 요인으로는 여성의 음주를 꼽았습니다. 반대로 대장암의 발생율을 낮추는데 유효성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식품으로는 마늘과 우유, 칼슘을 명시했습니다. 이 연구 결과 분석에서도 앞서 거론한 문제는 거듭 확인이 됩니다. 밥이든, 빵이든 다 탄수화물의 주요 공급원이지만, 이 두 가지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밥을 먹을 때 필요한 반찬류에는 채소류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빵과 함께 먹는 식품은 주로 치즈, 버터 등 유제품이나 단 맛이 강한 잼류이지요. 같은 탄수화물 창고이면서도 밥과 빵을 달리 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건강 상의 관점에서는 빵보다 밥이 우위에 있다는 뜻입니다. 확실히 빵류는 밥보다 간편하게 식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적당하게 가미해 입맛을 돋우기에도 좋습니다. 빵의 선호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은 더 편하고 싶고, 입맛 당기는 대로 음식을 취하려는 현대인의 취향이나 욕구를 반영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이 현상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 나라에서 치솟고 있는 대장암 발생율이 당장 떨어질 것으로는 보지 않습니다. 그들이 우려하는 식생활의 문제가 단기간에 개선될 것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건강을 걱정한다면, 먹고 싶은 것만 먹어서는 곤란합니다. 먹어줘야 되는 것을 먹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냐고요?” 만약 누군가가 “그래서 어쩌라는 말이야”라고 반문한다면, 정답은 이미 수도 없이 나와있다고 설명할 도리 밖에 없습니다. 개개인의 실천의 문제일 뿐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앞서 서구형 식단이 문제라고 지적했지만, 이를 서양 사람들이 먹는 모든 음식이 문제라고 인식해서는 곤란합니다. 거기에도 틀림없이 건강한 식단이라는 게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걸 즐겨 먹습니다. 그 쪽의 문제는 이런 각성이 일어나기 전의 식단을 말하는데, 그런 식단은 채소류에 비해 기형적으로 육류가 많고, 짤 뿐더러 햄버거 등 패스트푸드 의존도가 상상 이상으로 높습니다. 이런 식단의 문제를 간파한 뒤 서구인들이 주목한 것이 바로 지중해 식단(Mediterranean diet)입니다. 붉은 살코기의 양을 최대한 줄인 대신 싱싱한 해산물과 야채, 과일, 발효식품과 올리브유가 어우러진 식단인데, 이런 추이를 반영해 개선·개량한 식단이 ‘DASH(Dietary Approaches Stop Hypertension diet)’입니다. 또 미국 정부에서도 따로 ‘미국 건강식사 지표(Healthy Eating Index)’라는 걸 만들어 보급하고 있는데, 핵심 내용은 육류 섭취량의 제한 및 저지방 육류 섭취 권장, 나트륨 섭취량의 저감, 채소와 과일 섭취량 확대, 패스트푸드와 지나친 당류 섭취 제한 등입니다. 당연히 국내에서도 수 없이 많은 웰빙 식단이 만들어 졌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개가 상업적 이해와 관련이 있어 선뜻 취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좋은 식단을 만드는 수고를 감내하자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이 대장암을 예방한다는 사실, 비단 대장암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암을 예방하는데 있어 좋은 식단의 순기능이 확인된 마당에 이를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 좋은 식단이 꼭 비싼 비용을 치르는 것도 아닙니다. 육류 섭취를 제한하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붉은 살코기를 어떤 식품으로 대체해도 상대적으로 경제적입니다. 또 야채나 과일도 비싼 것만을 고집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과의 때깔이 좋다고 맛까지 좋은 것은 아닙니다. 품질 등급을 정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영양 분석이 아니라 겉모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불량식품만 아니라면, 그래서 모든 식품을 백화점에서만 구입해야 한다는 편견을 갖지만 않는다면 쌀과 밀가루의 구입 비용을 적절히 줄이는 대신 이를 유효성이 검증된 다른 식품 구입에 사용하게 되는만큼 식단을 바꾼다고 당장 가계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요. 암은 무섭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예방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 일상적으로 암의 공포감에만 주목해 스스로 위축되고 주눅 들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예방책을 수용해 건강을 얻으려는 의지와 노력이 더 중요합니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강조하는 결론을 다시 한번 짚습니다. ‘좋은 음식을 바로 먹는 좋은 식습관은 암을 예방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대장암이 그렇지만, 다른 암에도 두루 적용되는 중요한 원칙입니다. jeshim@seoul.co.kr
  • “살 빼려면 매일 몸무게 재야 한다” (美 연구)

    “살 빼려면 매일 몸무게 재야 한다” (美 연구)

    매일 몸무게를 재야 살 빼는 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미국 보스턴칼리지 연구진은 12개월간 참가자 148명을 추적 조사하고 위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 미국심장협회(AHA) 회의에서 이 연구결과를 발표한 연구진은 “다이어트(식이요법)와 운동은 체중 감량의 핵심 요소이긴 하지만, 자기 체중을 매일 확인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변화된 행동이 몸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해도 체중이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면 체중 확인을 통해 추가적인 변화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 연구는 정기적으로 자기 체중을 확인하는 사람은 자신의 다이어트에 자신감을 더 느끼고 과식을 더 방지할 가능성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연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지만, 자세히 검토한 미국 컬럼비아대의 행동 영양학자인 희원 리 그레이 박사는 “다이어트와 신체 활동만 하기보다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체중이 어떻게 변하는지 이해할 수 있으면 체중 확인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이 자기 체중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체중 확인이 사람들에게 실제로 체중 감량의 필요성을 더 느끼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이 체중 확인하는 패턴에 따라 우선 세 그룹으로 분류했다. 첫 번째 그룹은 1주에 최소 6일은 자기 체중을 확인한 사람들로, 이들은 일관성 있게 자기 체중을 확인한 사람들이었다. 두 번째 그룹은 1주에 4, 5일간 체중 확인을 했었지만 추후 1주에 2일로 체중 확인이 줄어든 사람들이며, 마지막 그룹에는 1주에 5, 6일은 체중 확인을 했지만 이후 1주에 단 한 번도 체중 확인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포함됐다. 또한 연구진은 6~12개월간 참가자들이 과제를 마치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기 평가인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을 평가하게 했다. 이때 참가자들은 다양한 조건에서 먹는 것을 피하기 위한 자신의 ‘자신감’도 평가해야 했다. 조건으로는 참가자의 감정이 부정적일 때나 음식이 먹을 기회가 생겼을 때, 주의의 압박, 신체적인 불편, 긍정적인 활동 등이 포함됐다. 이렇게 해서 ‘자기 효능감’의 등급과 각 조건에 관한 점수를 합산해 총점을 매겼다. 그 결과, 일관성 있게 자기 체중을 확인한 그룹이 총점뿐만 아니라 다섯 가지 조건 모두에서 현저하게 점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다른 두 그룹은 시간이 흘러도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연구는 지속해서 자기 체중을 확인하고 체중 감량을 시도한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은 물론 과식을 유발하는 상황에 더 잘 대처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대해 그레이 박사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체중을 잴 때 자신의 식습관에 대해 더 자신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런 사람은 자기 행동에서 몇 가지 유형을 수정하면 체중이 바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체중 확인을 통한 자기 조절은 자신의 자기 효능감과 자신감을 높이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그레이 박사는 “자기 체중 확인은 효율적일 수 있지만, 체중을 너무 많이 감량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체중을 수시로 확인하는 것은 좋지만 당신이 극단적인 칼로리 제한 등의 다이어트를 하게 된다면 장기적으로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매일 한 줌의 견과류, 체중 대신 수명 늘려” (하버드大 연구)

    “매일 한 줌의 견과류, 체중 대신 수명 늘려” (하버드大 연구)

    매일 견과류를 한 줌씩 먹으면 체중 대신 수명이 늘어나는 것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일주일에 5일 이상 동안 견과류를 한 줌(약 30g)씩 섭취하면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 연구에서는 견과류 섭취로 암이나 심장 질환, 호흡기 질환의 발병 가능성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여성의 경우에는 1주에 견과류를 단 두 줌만 섭취하는 것으로도 1주에 4시간 조깅한 것과 같은 수명 연장 효과가 있는 것도 확인됐다. 연구진은 1주에 5일 이상 매일 땅콩버터를 한 큰 숟가락씩 섭취한 여성은 1주에 1회 이하 섭취한 여성보다 심장마비 등의 위험이 거의 절반 가까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1주에 땅콩버터를 한 큰 숟가락 이상 섭취한 청소년 여성은 유방암 위험 지표가 되는 가슴 안에 덩어리가 생길 가능성도 현저하게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견과류에 지방이 함유돼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지금까지 진행된 견과류와 체중에 관한 약 20차례의 임상 시험에서는 단 한 건도 우리 생각과 달리 체중이 증가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에 한두 줌의 견과류를 먹은 사람들은 체중 증가가 거의 없거나 체중이 전혀 늘지 않았고 심지어 체중이 감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예컨대 한 연구에서는 3개월간 매일 피스타치오 120알 씩 섭취한 참가자들은 몸무게가 0.02kg도 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3만 칼로리에 달하는 지방이 사라질 수 있었던 것일까. 한 가지 이론으로 연구진은 사라진 칼로리의 10%는 견과류의 세포벽이 잘 흡수되지 못하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또 견과류는 다른 어떤 음식보다 포만감을 빨리 느끼게 해 음식을 덜 먹게 하는 것에서 남은 칼로리의 70%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칼로리 20%는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견과류에 신진대사를 높이는 능력이 있어 견과류를 섭취하게 되면 몸에서 지방을 더 많이 태우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실제로 일반 식단을 섭취한 사람들은 8시간 안에 섭취한 지방의 약 20g을 연소했지만 같은 식단에 호두를 포함하자 이들은 지방의 약 31g을 연소했다고 한다. 사진=ⓒ포토리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다이어트할 때일수록 꼭 먹어야할 음식 6가지

    다이어트할 때일수록 꼭 먹어야할 음식 6가지

    효과적인 다이어트를 위해선 적게 먹는 것만큼이나 적절한 음식을 골라 먹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식품 중, 체중감소에 효과적인 것은 무엇이 있을까?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지난 26일(현지시간) 영양식품 기업 뉴트리센터와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신 영양학자 마릴린 글렌빌 박사의 조언을 인용 ‘건강한 체중 감량을 도와줄 식품’을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1. 계피(시나몬)계피는 혈당 수치의 정상화 및 안정화를 도와준다. 혈당 수치가 안정되면 포만감이 지속되는 동시에 단 음식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어 식사 조절에 도움이 된다. 또한 계피는 음식 분해를 도와 소화를 원활하게 만드는 기능도 지니고 있다. 2. 고추(칠리)고추를 먹으면 체온이 올라가고 땀이 난다. 이것은 고추에 포함된 캡사이신 성분 때문으로, ‘식사에 의한 열 발생’(DIT·diet-induced thermogenesis) 현상이라고 불린다. DIT는 칼로리 연소 유도 효과가 있어 체중 감량을 도와준다. 3. 녹차녹차에 다량 함유돼있는 EGCG 등의 항산화물질은 신진대사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즉, 지방 연소과정을 촉진해 신체가 사용할 에너지를 증대시킨다는 의미로, 이는 체중 감량에 도움을 줄 수 있다. 4. 커피카페인은 신진대사를 3~11% 증가시키는 효과를 지닌다. 또한 비만인 사람의 경우 지방연소 과정을 최대 10%, 마른 사람의 경우 29% 까지 강화하는 효과가 확인된 바 있다. 다만 이러한 효과는 신체가 카페인에 익숙해질수록 경감될 가능성이 있다.이와 더불어 커피에 함유된 크로로겐산이 글루코스(포도당)의 체내흡수를 감소시킨다는 사실 또한 드러났다. 5. 달걀달걀에는 루테인과 제아잔틴 등의 항산화물질이 많이 포함돼 신진대사량 증가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또한 포만감을 오랜 시간 유지시켜주기 때문에 식사량 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도움을 준다. 6. 현미현미는 쌀밥보다 섬유질, 단백질 등의 영양소가 더 많을 뿐만 아니라 당부하지수(Glycemic Load·혈당지수와 탄수화물량을 곱한 뒤 100으로 나눠 산출하는 수치)가 더 낮아 체중감량과 혈당 균형 유지에 기여한다. 매일 밥을 먹는 한국인들은 GL수치가 높은 쌀밥보다는 현미를 섭취하는 편이 다이어트에 훨씬 유리할 수 있다. 사진=퍼블릭 도메인/ⓒ포토리아(맨 아래)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36] 닭서리의 건강학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36] 닭서리의 건강학

    지금이야 그런 짓(?)을 했다가는 당장에 절도 혐의로 잡혀가겠지만, 옛날에 닭서리는 겨울을 나는 일종의 ‘동과의례(冬過儀禮)’였습니다. 비록 지금처럼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생활공동체로서의 이해와 결속이 단단했고, 인심이 순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요. 또 지금처럼 기업형으로 닭을 기르는 양계가 아니라 일용할 고기를 얻고, 달걀을 얻기 위해 집집마다 닭을 길렀던 까닭에 거기에서 얻는 이득도 과외의 소득이라 여겼습니다. 지금이야 시장이나 마트에 가면 지천에 널린 게 달걀이지만 예전에는 달걀이 제법 근사한 선물로 취급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집마당에서 암수탉이 어우러져 낳는 유정란은 요즘의 그것보다 크고 맛도 좋았는데, 이걸 열 개씩 모아 지푸라기로 엮은 것을 한 줄로 쳤습니다. 그걸 장터에 가져가 돈을 바꾸기도 했고, 만만한 곳에는 선사품으로 전하기도 한 것이지요.  달걀로 소통했던 사회 달걀이 무슨 선물이 되느냐고 여길 사람도 있겠지만, 제조업이 낙후해 물산이랄 것도 없었던 60∼70년대에는 달걀 한 줄이면 탄원서를 대신 작성해 준 읍내 행정서사나 면서기에게는 뇌물이라는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뭔가 대가를 치렀다는 생각이 드는 답례품이었고, 부잡한 아이들 학교로 불러모아 가르치시는 고마운 선생님에게 드리는 스승의 날 선물도 달걀 한 줄이었습니다. ‘달걀 두 줄이면 쌀이 한 말’이라는 당시의 통념이 이걸 입증합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딸아이 혼례 후 시댁으로 보내는 신부의 이바지에도 석작에 차곡차곡 쌓아 넣은 달걀과 닭을 통째로 곱게 삶은 닭이 빠지지 않았는데, 석작에 들어가는 달걀이 좋이 쉰 개는 되었던 터라 혹여 깨어질까봐 집검불을 치대 부드럽게 만들어서 달걀을 하나 하나 싸 넣던 이웃 어르신의 자상한 모습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이미 세상에 안 계신 분이지만.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필자가 살던 마을에서 학교까지는 비포장 신작로를 따라 10리 길이었습니다. 6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길을 밟아 학교를 다녔는데, 시골 국민학교 전교생이 물경 1000명을 헤아렸고, 우리 마을에도 1∼6학년 학생이 어림잡아 40∼50명은 되었을 것입니다. 날 좋을 때면 끼리끼리 까불면서 오가는 길이 그다지 멀지 않았는데,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리면 그 길을 오가기가 정말 곤욕이었습니다. 황당한 얘기지만, 그 때는 우산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거든요. 비가 내리면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학교 앞 우체국이며 방앗간 추녀 밑에서 우두망찰하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는데, 쾌재를 부를 횡재는 마침 지나가는 버스가 그 많은 아이들을 태워주는 일이었습니다. 하루에 고작 예닐곱 번 오가는 시골 버스 기사의 선심이 어린 아이들의 동심에 온기가 된 것이지요. 운전 기사는 마을 앞에 차를 세워 애들을 모두 내려주었는데, 그 때는 한바탕 소란이 입니다. 애들이 저마다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내리니까요. 마을 사람들은 얼굴에 마마 자국이 있는 그 기사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마을 이장이 하루는 동네 사람들 뜻을 모아 마을앞 정류장에서 그 기사가 모는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표하기 위해서였는데, 그 때 이장이 건넨 것도 달걀 한 줄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달걀은 요즘과 확실히 달랐고, 그런 달걀을 생산하는 것이 닭이었으니, 그게 ‘한 마리’라고 찍어서 쉽게 주문해 먹은 요즘의 치킨과는 다를 수밖에 없지 않았겠습니까. 생산성을 처음 가르쳐 준 닭 그리고 달걀 다른 가축과 달리 닭은 키우고 번식시키는 일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달걀을 열댓개 모았다가 알 낳는 둥지에 깔아놓으면 암탉이 알아서 그걸 품어 병아리가 깨곤 했지요. 이른 봄에 그렇게 알을 깔아두면 날이 풀리는 봄날 쯤 마당을 노란 병아리들이 누비고 다녔는데,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병아리떼 종종종 봄나들이 갑니다’하는 동요만 불러봐도 그런 풍경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그런 닭을 키우고, 달걀을 모으는 일은 애들 몫이었습니다. 아침에 닭장 문을 열어 닭들을 풀어놓고, 때맞춰 모이를 주고, 해거름에 다시 닭장으로 불러들이는 일이야 시골 애들은 누구나 하는 일이었지요. 한낮에 암탉이 닭장에서 홰를 치고 나서면 달걀을 낳았다는 것도 애들이 다 아는 일입니다. 막 낳은 달걀을 거머쥐면 느껴지던 따뜻한 온기도 참 좋았습니다. 그렇게 달걀을 모으고, 모은 달걀이 다시 돈이 되고, 인사치레가 되고, 병아리가 되는 이 기막힌 생산성의 선순환과 상생의 가치를 시골 아이들은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체득하게 됩니다. 그들에게 닭은 단순한 먹거리 이상의 존재였다는 뜻입니다. 지나칠 수 없는 사실은, 그런 닭이 또한 훌륭한 육류 공급원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아시다시피 닭고기는 쇠고기, 돼지고기 등 이른바 ‘붉은 살코기’와는 다른 ‘흰 살코기’, 즉 육류 중에서는 효용 대비 부작용이 가장 적은 고기로 꼽힙니다. 단백질의 경우 일반적으로 닭고기(가슴살)에는 23.0g이, 쇠고기 우둔살에는 22.3g, 쇠고기 안심에는 21.0g, 돼지고기 안심에는 14.1g이 함유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방은 닭고기 1.2g, 쇠고기 우둔 4.6g, 안심 7.1g, 돼지고기 13.2g 정도입니다. 얼른 봐도 닭고기가 사람에게 유용한 단백질 함량은 가장 많고, 지방 함량은 가장 적은 양질의 육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왜 싼 닭이 비싼 쇠고기, 돼지고기보다 훨씬 만족도가 높은 지를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고기 맛을 잊어버린 사람들의 ‘동과의례’ 그 닭이 ‘서리’라는 ‘동과의례’의 중심이었던 이유도 금방 납득이 되지 않습니까. 봄부터 가을까지 애, 어른 없이 농삿일에 내몰리느라 힘들게 지내고 맞는 겨울은 ‘농한기’였습니다. 농촌에서는 제법 한가한 철이라는 뜻이지요. 겨울 농한기가 되면 치르는 관행적인 습속이 있습니다. 눈 덮인 산골짜기를 훑는 토끼몰이나 마을 사람들이 추렴해 돼지를 잡는 일이 그런 일인데, 여기에 닭서리가 빠지지 않습니다. 돼지는 심심파적으로 삼기엔 너무 크고, 토끼몰이야 재수가 좋아야 한 마리 잡히는 것이니 그 중 확실한 것이 닭서리일 밖에요. 그렇다고 산적질 하듯 아무 집이나 난입하는 것은 아닙니다. 네오 내오 없이 다 삼이웃인데 낯뜨거운 짓을 할 수는 없지요. 서리 대상을 꼽을 때 가장 맞춤한 방법은 또래 동무를 꼬드겨 그 집 닭을 서리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까닭이 있습니다. 유순한 농경민족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떼지어 출몰하는 화적과 외침에 의한 전쟁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낮은 토담을 높여 성벽을 쌓는 건 정서에 부합하지 않고, 누군가가 밤새워 불침번을 설 수도 없으니 집집마다 똥개를 키워 밤낮 없이 집을 지키는 파수로 삼았습니다. 아시겠지만, 그 똥개가 볼품은 없어도 주인 섬기는 충성심 하나만은 대단합니다. 밤중에 이웃에 마실 한번 가려 해도 왈왈대는 똥개 때문에 주인이 몇 번씩 달래야 진정을 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니 개 무서운 줄 모르고 닭서리하겠다고 대들었다가는 십중팔구 낭패를 겪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요. 그러나 그 집 아들이 서리꾼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제 주인이 한 걸음 먼저 들어가 똥개를 달래고, 그 틈에 한 놈이 닭장 속으로 기어들어가 닭 한 마리 낚아채 나오기란 식은 죽 먹기지요. 그렇다고 물색없이 덤벙거리다가는 산통 깨기 쉽습니다. 닭이 의외로 겁이 많아 조심해야 합니다. 한겨울 찬 손으로 거머쥐려다가 닭이 놀라 푸드덕거리기라도 하면 큰일입니다. 그러니 미리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따뜻하게 덥혀둬야 합니다. 닭을 거머쥘 때도 마치 그림자처럼 다가가 양손으로 목덜미와 날개죽지를 잽싸게 싸잡아 횃대에서 들어내립니다. 이 순간에 버벅대다간 다른 닭들이 놀라 순식간에 야단법석이 벌어지기 때문이지요. 날개죽지와 목덜미를 한 손에 거머쥐면 끝입니다. 손에 들린 닭이야 발버등을 쳐봐야 소리가 날 일도 없고, 목덜미가 잡혀 옴짝달싹 못하니까요. 남은 일은 미리 점 찍어둔 골짜기로 줄행랑을 놓는 일입니다.  잡식의 운명 ‘육탐’ 이제 호궤할 일만 남았습니다. 사람들 이목이 미치지 않는 골짜기로 들어가 꽝꽝 언 소나무 가지를 툭툭 꺾어모아 불을 지핀 뒤 불땀이 달아오를 때 잉걸불 속에 닭을 묻어두고 히히낙락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닭털이 불길에 오그라붙어서 불길 속에 그렇게 던져둬도 살이 타는 법이 없습니다. 속살이 먹을만 하게 익었겠다 싶을 때 꺼내 부지깽이로 툭툭 터럭만 털어내면 먹음직스럽게 익은 뽀얀 속살이 이내 드러나니까요. 남들 눈길 피해 서리 하는 떠꺼머리들이 손 날랜 숙수가 아니니 솜씨 부릴 일도 없습니다. 죽죽 찢어낸 살집을 깨소금에 찍어 나눠 먹은 뒤 입 씻고 돌아서면 그만입니다. 다음 날, 친구 집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밤에 족제비가 들었는지 살오른 씨암탉이 종적도 없다”면서 어른들이 입맛을 다시면 친구 녀석은 “족제비 그걸 가만 둬서는 안 되겠다”고 넉살 좋게 맞장구를 쳤을 것입니다. 잘 사네, 못 사네 해도 농투산이들이 겪는 가장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는 육류 섭취량이 절대 부족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뼈 빠지게 일을 하지만 힘의 원천인 지방과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해 살집이 쪼르그라들 수 밖에 없고, 그러니 그럴 나이가 아닌 데도 주름이 자글자글 겉늙어보였습니다. 농사 짓고 산다고 맛있는 걸 분별 못할 리는 없습니다. 그들도 쇠고기, 돼지고기가 먹고 싶지만, 읍내 푸줏간까지 나가 통 크게 쌈지를 열 엄두가 안 나니 그냥 고봉밥에 김치로 주린 배를 채우고 맙니다. 그런 사람들이 겨울 농한기에 동네 사랑에 모여 노닥거리다가 입 맞춰서 닭 한 마리 서리하는 일은 흔했고, 설령 닭을 잃어버렸다 해도 그걸 크게 문제 삼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살 오른 암탉 한마리 해치우고 나면 얼굴에 기름이 오릅니다. 아침까지도 뱃골이 든든한 게 ‘이래서 고기, 고기 하는구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이야 조석으로 고기 먹는 게 일상이라 ‘못 먹어서 얼굴에 버짐 필’ 일도 없고, ‘고기 맛 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 소증 걸린 지 오래’라는 푸념을 뱉을 일도 없지만, 예전에는 항용 하는 말이 ‘이밥에 고기’였습니다. 쌀밥에 고기 한번 실컷 먹는 게 또한 일상의 바람이기도 해서 명절 앞두고 부침개 지져낸다고 번철에 올린 돼지기름 닳아서 풍기는 냄새만 맡아도 회가 동하곤 했습니다.  섭생의 균형을 위한 원초적 일탈 ‘닭서리’ 그 시절엔 고기를 통해 얻는 모든 영양소가 결핍 상태이니 누구라도 고기에 ‘껄떡신’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육류 섭취를 제한하라는 둥, 동물성 지방을 줄여야 한다는 둥 그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말들을 하지만, 너무 잘 먹어서 문제가 된 ‘식탁 혁명’이 완성된 것도 실은 20∼30년 전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명색 잡식의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 줄창 곡류와 채소류만 먹다가 가끔 고기를 탐한다고 이상할 것은 없는 일입니다. 가장 좋은 섭생은 음식을 균형 있게 먹는 것입니다. 좋다고 줄창 고기만 먹을 일도 아니고, 싫다고 아예 채소류를 외면하고 살 일도 아닙니다. 이 균형이 깨어지면 당장이야 표가 나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고장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의 몸이지요. 요즘 흔히 듣는 ‘잘 먹고 잘 살아서 생긴 병’이 꽤나 됩니다. 비만이 그렇고, 고혈압과 고지혈증이 그렇고, 당뇨도 많은 경우 췌장 혹사가 원인입니다. 이런 질환에 노출된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바로 그 섭생 균형이 깨져 있음은 보지 않아도 아는 일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먹고 싶은 것’을 먹지만, 여기에 ‘먹어줘야 하는 것’을 더해야 건강한 식생활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지요. 이제는 추억으로 남아있는 닭서리도 살펴보면 ‘균형 있는 섭생’을 향한 원초적인 욕구의 발현이었고, 거기에서 비롯된 우리 식의 일탈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욕구가 사회적 관점에서 권장할 미덕은 아닐지라도 관용의 틀 안에서 ‘그럴 수도 있는 일’로 통용되었고, 그런 섭생의 균형 추구가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돼 ‘끈질긴 생명력’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jeshim@seoul.co.kr
  • 먹으면 빠진다?…체중감량 도움 되는 음식들

    먹으면 빠진다?…체중감량 도움 되는 음식들

    효과적인 다이어트를 위해선 적게 먹는 것만큼이나 적절한 음식을 골라 먹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식품 중, 체중감소에 효과적인 것은 무엇이 있을까?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이 지난 26일(현지시간) 영양식품 기업 뉴트리센터와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신 영양학자 마릴린 글렌빌 박사의 조언을 인용 ‘건강한 체중 감량을 도와줄 식품’을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1. 계피(시나몬)계피는 혈당 수치의 정상화 및 안정화를 도와준다. 혈당 수치가 안정되면 포만감이 지속되는 동시에 단 음식에 대한 욕구가 줄어들어 식사 조절에 도움이 된다. 또한 계피는 음식 분해를 도와 소화를 원활하게 만드는 기능도 지니고 있다. 2. 고추(칠리)고추를 먹으면 체온이 올라가고 땀이 난다. 이것은 고추에 포함된 캡사이신 성분 때문으로, ‘식사에 의한 열 발생’(DIT·diet-induced thermogenesis) 현상이라고 불린다. DIT는 칼로리 연소 유도 효과가 있어 체중 감량을 도와준다. 3. 녹차녹차에 다량 함유돼있는 EGCG 등의 항산화물질은 신진대사를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진다. 즉, 지방 연소과정을 촉진해 신체가 사용할 에너지를 증대시킨다는 의미로, 이는 체중 감량에 도움을 줄 수 있다. 4. 커피카페인은 신진대사를 3~11% 증가시키는 효과를 지닌다. 또한 비만인 사람의 경우 지방연소 과정을 최대 10%, 마른 사람의 경우 29% 까지 강화하는 효과가 확인된 바 있다. 다만 이러한 효과는 신체가 카페인에 익숙해질수록 경감될 가능성이 있다.이와 더불어 커피에 함유된 크로로겐산이 글루코스(포도당)의 체내흡수를 감소시킨다는 사실 또한 드러났다. 5. 달걀달걀에는 루테인과 제아잔틴 등의 항산화물질이 많이 포함돼 신진대사량 증가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또한 포만감을 오랜 시간 유지시켜주기 때문에 식사량 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점도 도움을 준다. 6. 현미현미는 쌀밥보다 섬유질, 단백질 등의 영양소가 더 많을 뿐만 아니라 당부하지수(Glycemic Load·혈당지수와 탄수화물량을 곱한 뒤 100으로 나눠 산출하는 수치)가 더 낮아 체중감량과 혈당 균형 유지에 기여한다. 매일 밥을 먹는 한국인들은 GL수치가 높은 쌀밥보다는 현미를 섭취하는 편이 다이어트에 훨씬 유리할 수 있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영상] ‘필리버스터’ 도중 방청객 퇴장 위기…이학영 의원의 일침

    [영상] ‘필리버스터’ 도중 방청객 퇴장 위기…이학영 의원의 일침

     ‘테러방지법’을 막기 위한 야당 의원들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방청객이 토론 도중 제지를 당해 논란이 빚어졌다. 필리버스터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시민들의 방청도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필리버스터를 직접 지켜보던 방청객이 의원들의 발언에 반응을 보였다는 이유로 제지당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28일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토론을 진행하던 중 국회 방호과 직원이 방청객을 제지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와 관련, 은수미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방금 방청하던 시민 한 분이 박수 쳤다고 방호과 직원에게 끌려 나가는 일이 발생한 듯”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단상에 서서 이 의원은 토론을 하던 중 정면에서 보이는 방청객을 향해 “자, 우리 방호과 직원님 방청석에 조용히 하실 테니까 그냥 두세요. 그냥 앉아 계시게 하세요”라며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이 의원은 “우리의 주인 되신 분들이 앉아계십니다. 그 분들은 세금을 낸 주인들이십니다”라면서 “방호과 직원 여러분, 여러분은 주인을 모시고 있는 겁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방청객이) 박수 치지 않았습니다.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라면서 토론 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았음을 거듭 강조했다. 이 의원의 발언에도 제지가 이어지자 이 의원은 “의원님 한 분 가서 말려주세요. 방청하게 해주세요”, “신체에 해를 가하지 마세요. 그냥 조용히 앉아 계시게 하세요”라고 당부했다.   방청객이 퇴장을 당하게 되는 것은 국회 방청규칙에 따른 지침이다. 국회 방청규칙 제14조(방청객의 준수사항) 에 따르면 ‘▲모자, 외투를 착용하지 못한다 ▲보자기·기타 부피가 있는 물품을 휴대하지 못한다 ▲음식 또는 끽연을 하지 못한다 ▲신문 기타 서적류를 열독하지 못한다 ▲회의장의 언론에 대하여 가부(可否)의 의견을 표시하거나 박수를 하지 못한다 ▲소리를 내거나 떠들지 말아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국회 관계자는 “해당 방청객에게 사전에도 방청 규칙을 설명했고, 의원들을 향해 고성을 쳐서 주의를 준 뒤 퇴장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의원들이 ‘방호과 직원’이라고 표현한 것은 국회 의회경호담당관실 소속의 국회 경위들이었다. 이밖에도 관행적으로 의자에 양복 상의를 벗어놓는 것, 다리를 꼬거나 하는 등의 삐딱한 자세로 앉는 등의 ‘예의에 어긋난 행위’도 제재를 받기도 한다. 모두 의정 활동에 방해되는 행동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의원들의 발언에 고성을 친다거나 박수를 연달아 치는 등의 행위는 방해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모자나 외투 착용, 다리를 꼬거나 양복의 상의를 입지 않는 것 등의 규정은 국회의 권위와 특권의식이 지나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돼 왔지만 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절박한 초보맘들 울면서 SOS “우리 아기 먹일 젖이 안 나와…”

    절박한 초보맘들 울면서 SOS “우리 아기 먹일 젖이 안 나와…”

    모유(母乳)는 신생아가 작은 몸을 지탱할 양분이자 엄마의 사랑과 보호를 확인받는 ‘음식 이상의 음식’이다. 단백질과 무기질이 많고 탄수화물과 지방은 적다는 영양학적 이점에 더해 면역 성분 또한 풍부하다. 엄마들이 소중한 아기에게 자신의 젖을 물리고 싶어하는 이유다. 하지만 모든 엄마에게 가능한 일은 아니어서 젖이 부족한 여성들은 다른 기관이나 개인 등을 통해 모유를 구해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안전성이 확보돼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 30대 여성은 “인터넷을 통해 다른 신생아 엄마로부터 모유를 샀는데, 건강한지 어떤지 확인할 길이 없어 결국 아기에게 먹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이런 엄마들을 위해 모유은행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는 모유은행이 2곳뿐이다. 대학병원으로는 강동경희대학교가 유일하다. 이곳의 하루를 통해 모유가 어떻게 기증되고 관리되고 제공되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지난 22일 오전 9시 서울 강동구 동남로 강동경희대학병원 모자보건센터 모유은행. 40㎡(12평) 남짓한 사무실은 끊임없이 걸려오는 문의전화로 조용할 틈이 없었다. 김인영(41) 간호사는 “한 번에 가공할 수 있는 모유의 양이 한정돼 있는데, 달라는 분들은 너무 많아서 20병(37주 미만 미숙아용·1병=120㏄)을 신청해도 절반밖에 못 주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30분간 전화 응대를 하던 김 간호사는 보조직원 박현경(41)씨와 모유를 살균하기 위해 헤어캡, 멸균복, 마스크, 장갑, 신발캡 등으로 ‘완전무장’을 했다. 김 간호사는 “오늘은 모유 1만 5000㏄를 저온 살균할 것”이라고 말하며 기증시점부터 4일간 이어지는 준비 과정을 설명했다. “모유는 비닐팩에 밀봉해 냉동 상태로 기증되는데, 엄마 몸에서 나온지 3개월 이상 지났거나 포장이 훼손된 모유, 냉동되지 않은 경우는 폐기처분합니다. 잘 관리된 모유는 성분 검사를 통해 ‘미숙아’용과 ‘만삭아’용으로 나누죠. 분류 작업에만 꼬박 하루가 걸리죠. 분류작업을 거친 모유는 영하 20도 이하에서 냉동 보관합니다.” 이날 모유 보관용 냉동고의 온도계는 영하 31.7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냉동한 모유는 3일간 냉장고(영상 3도)에서 천천히 해동을 한다. 열을 가하거나 실온에서 녹이면 모유에 세균이 번식할 우려가 있다. 김 간호사는 “4일의 준비를 거치고, 저온 살균 등 여러 단계의 가공을 하고, 안전성 검사까지 마치면 모유를 산모에게 보내는데, 전체 1주일이 걸린다”고 말했다. 오전 10시 김 간호사가 슬러시 상태로 해동된 모유팩 수십개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겉면에는 유축날짜(기증자가 모유를 담은 날짜)와 산모의 간단한 신상 정보가 적혀 있었다. 김 간호사는 박씨가 건네주는 모유팩을 개봉해 3ℓ 용량의 삼각 플라스크 5개에 담았다. 각각의 플라스크에 산모 2~3명의 모유를 섞었다. 모유마다 영양성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잠시만요, 멸균복을 다시 갈아입어야 해서요. 모유는 멸균이 생명이거든요.” 옷을 갈아입은 김 간호사는 자외선 소독기(UV조명)가 설치된 실험대에서 플라스크의 모유를 120㏄ 크기의 유리병에 나누어 담았다. 오전 11시 모유가 담긴 유리병을 30개씩 저온살균 기계에 넣었다. 하나의 플라스크에서 나온 유리병들은 반드시 한 묶음으로 넣어야 한다. 나중에 위생 등 문제가 생기면 역추적을 하기 위해서다. 살균기계 안에 증류수 10ℓ를 병의 목 부분까지 잠기도록 채운 뒤 62.5도에서 30분간 기계를 가동했다. 기계는 병을 좌우로 계속 흔들어 유리병에 담긴 모유 전체가 같은 온도를 유지하도록 했다. 살균은 한 번에 1시간 정도가 걸렸다. 이날은 5차례 살균을 했기 때문에 김 간호사는 5시간 동안 기계 앞을 지켰다. “기계가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지 수시로 살펴봐야 해요. 한눈팔다가 기증받은 소중한 모유가 못 쓰게 돼 버릴 수 있거든요.” 점심은 박씨와 교대로 사무실 밖에 잠깐 나가 샌드위치를 먹으며 때웠다. 통상 매주 2차례 살균을 할 때마다 되풀이되는 일이라고 김 간호사는 말했다. 오후 1시, 상담 전화가 걸려 왔다. 쌍둥이 자녀를 둔 엄마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새어 나왔다. 모유가 나오지 않아 분유를 먹였는데 아기가 온몸으로 거부하는 상태라고 했다. 그 엄마는 “무심하게 ‘분유를 계속 먹여 보라’고 말하는 남편이 야속하다”고 말했다. 김 간호사는 15분 정도 산모의 푸념을 들으며 달랬다. “아이가 걱정된다고 울면서 전화하는 초보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실 거예요. 이런 경우 분유 알레르기인지, 분유 거부반응인지 의사와 상담하고 필요하면 모유은행에 신청하도록 설명해 줍니다.” 살균을 마친 모유 중 일부는 샘플로 추출해 진단병리실에서 48시간 동안 안전성 검사를 하고 나머지는 아이스큐브에 담아 급속 냉각한다. 샘플에서 병원균이 검출되지 않아야 모유를 필요한 산모에게 보낸다. 모유의 유통기한은 샘플이 안전성 진단을 받은 날로부터 ‘6개월’이다. 만약 샘플에서 병원균이 검출되면 해당 모유는 전부 폐기한다. 우리나라에서 대학병원급의 큰 병원이 운영하는 모유은행은 이곳뿐이라 신청이 몰린다. 모유은행을 처음 설립했던 2007년 228ℓ에 불과했던 공급량은 지난해 1447ℓ로 6배 이상이 됐다. 하지만 신청량이 워낙 많아 안타까운 엄마들의 바람을 다 들어주지는 못하고 있다. 미숙아, 분유 알레르기 판정을 받은 신생아, 산모가 항암치료 등의 이유로 모유수유를 할 수 없는 경우 등 다양한 이유로 신청이 들어온다. 이곳에 모유를 신청하려면 담당의사의 소견서가 필요하다. 통상 12개월 이하의 영아에게 우선권이 있다. 120㏄병에 담긴 미숙아 모유는 3200원, 150㏄병에 담긴 만삭아 모유는 3700원이다. 지난주부터 모유은행을 이용하고 있는 최윤실(39·여)씨는 “쌍둥이 딸이 미숙아라서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모유를 먹고 잘 자라고 있어 기증자와 병원 측에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김은혜(30·여)씨가 어떻게 하면 기증할 수 있는지를 알고 싶다며 모유은행에 전화를 걸어왔다. 김씨는 “생후 26일 된 아이가 태어난 지 이틀 만에 횡격막 수술로 병원에 입원했다”며 “아픈 아이를 보니 다른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기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증자 이산희(33·여)씨는 “기증을 하고 싶어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데 오히려 기증을 할수 있는 것을 감사히 여긴다”고 말했다. 기증은 아기를 낳은 지 12개월 이내인 산모만 신청할 수 있다. 직전 6개월 내 실시한 간염·매독·에이즈 등에 대한 혈액검사 결과지와 동의서를 제출하면 기증 심사를 받을 수 있다. 소아과 전문의, 산부인과 전문의, 조산사, 간호사 등 7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 중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기증을 할수 없다. 심사를 통과한 기증자는 냉매와 모유팩 등이 들어 있는 전용 택배 박스를 받게 된다. 한 박스에 모유 5000㏄ 정도를 담을 수 있다. 기증자는 1~2개월간 모유를 모아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모유은행으로 보내면 된다. 모유은행 측은 최근 유행하는 온라인 모유 거래를 우려했다. 박은영 모유은행장은 “제공자의 병력을 확인할 수 없고 모유의 전달 과정에서 병균에 감염될 위험이 높아 개인 거래는 절대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는 이를 제재하거나 감독할 시스템이 없다. 그는 “무엇보다 남은 모유는 다시 냉동해도 세균 번식이 지속되기 때문에 절대로 재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배종우 모자보건센터장은 “모유의 공급은 신생아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라며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서라도 산모들의 현실적인 고민에 대해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사진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지난해 소비성향 역대 최저… 실질소비 마이너스

    지난해 소비성향 역대 최저… 실질소비 마이너스

      실질 소비는 ‘마이너스’ 성장…고령화·경기불안에 지갑 닫아  지난해 가계의 평균 소비성향(소득에 대한 소비의 비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비성향이 떨어졌다는 것은 가계가 지갑을 닫았다는 뜻이다. 가계소득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폭으로 증가한 상황에서 불안한 경기와 노후 걱정 때문에 돈을 못써 생긴 ‘불황형 흑자’인 셈이다.  자영업자 사업소득 첫 ‘마이너스’ 통계청이 26일 발표한 ‘2015년 가계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37만3000원으로 전년보다 1.6% 증가했다. 가계동향은 전국 8700개 표본가구가 기록한 가계부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조사된다.  지난해 가계소득 증가 폭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가 있었던 2009년(1.2%) 이후 6년 만에 가장 낮은 것이다. 물가를 고려한 실질 소득은 0.9% 늘어나는 데 그쳤다. 월급쟁이들이 벌어들인 근로소득은 1.6% 증가했으나 자영업자들의 사정이 나빠지면서 연간 사업소득(-1.9%)이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지난해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가 자영업자들에게 큰 타격을 줬다. 가게 문을 열어놓아도 손에 쥐는 돈이 줄어들자 지난해 동안 자영업자 8만9000명이 줄었다. 5년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었다.  저소득층 생계급여가 오르고 근로·자녀장려금 지급이 확대되면서 이전소득(생산활동을 하지 않아도 정부가 무상으로 주는 소득)은 9.4% 증가했다.  소득 증가율이 둔화하자 소비심리도 위축됐다.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은 256만3000원으로 0.5% 늘었다. 역대 가장 낮은 증가 폭이다. 실질 소비지출은 아예 0.2% 감소했다.  소득보다 소비 증가율이 낮다 보니 연간 소비성향은 2003년 관련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71.9%로 떨어졌다. 월 100만원을 버는 가구(가처분소득 기준)가 71만9000원만 쓰고 28만1000원을 저축했단 의미다.  가계의 평균소비성향은 2011년부터 5년 연속 하락했다. 소비성향 하락과 동시에 가계 흑자율(28.1%)은 최대치로 올랐다.  소득이 늘었다기보다는 벌어들인 만큼 소비하지 않아 나타난 ‘불황형 흑자’로 분석된다.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100만원의 흑자가 났지만 이를 쓰지 않고 그대로 남겨뒀다고도 볼 수 없다.주택담보대출 원금 상환,자산 구입 등에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가계 흑자가 늘어나니 적자가구의 비중 역시 사상 최저치인 21%를 기록했다. 소비성향 하락의 원인은 계층별,소득 수준별로 다른 것으로 분석된다.  경기 둔화의 영향으로 소비심리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상황에서 중산층은 고령화에 따른 노후 대비를 위해,저소득층은 빚 부담 때문에 지갑을 닫고 있다.  취업이 잘 안 되는 청년층도 돈을 쓰기가 어렵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국제금융연구실장은 “내수 부진이 반영돼 소비성향이 계속해서 낮아지는 것”이라며 “소비성향 하락은 불확실한 경제 상황,인구구조 변화에 기인하고 있어 당분간 전환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령화,청년실업 등 구조적인 문제가 계속해서 내수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셈이다. 가계는 주거,식료품비와 같이 꼭 필요한 지출만 선별적으로 늘리고 있다. 지난해 가계는 주거·수도·광열에 월 평균 27만7000원을 썼다.이 부문 지출은 전년보다 4.8% 증가했다.역대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유가가 떨어져 주거용 연료비(-5.7%) 지출은 감소했지만,월세 가구 비중이 늘며 실제 주거비가 1년 새 20.8%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식료품·비주류 음료 지출은 매달 35만4000원꼴로 0.8% 늘었다. 육류(6.7%)와 채소·가공품(4.3%) 지출이 증가해서다. 보건비 지출은 월평균 17만4000원으로 3.6%,음식·숙박은 33만9000원으로 1.4% 늘었다. 담배 가격 상승 때문에 주류·담배 지출(월평균 3만3000원)이 18.8%로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나타냈다.  반면 의류·신발 지출은 월평균 16만2000원으로 전년보다 4.4% 줄었다. 유가 하락으로 연료비가 감소하면서 교통비도 월평균 32만2000원으로 3.7% 감소했다.  통신비(14만8000원),교육비(28만3000원) 지출은 각각 1.7%,0.4% 감소했다. 각종 세금,연금,사회보험료가 포함되는 비소비지출은 81만원으로 전년보다 0.7% 증가했다. 저금리 기조로 이자비용(-5.9%)이 줄었지만 주택 거래량이 늘면서 취득세가 증가해 비경상조세(9.5%)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가계동향 조사상 소득격차는 계속해서 좁혀지고 있다. 소득 5분위 배율은 2015년 4.22배로 조사돼 2003년 전국 단위 통계 작성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소득 5분위 배율은 소득이 가장 높은 5분위(상위 20%) 소득을 가장 낮은 1분위(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배율이다. 이 배율이 작을수록 소득격차가 적다는 것을 뜻한다.  소득 5분위 배율은 2008년 4.98배로 정점을 찍고 지속적으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김보경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최근 들어 기초연금,공적연금 등 정부의 이전 지출이 늘어나고 경기 둔화로 고소득층의 사업소득 증가율이 낮아져 소득 5분위 배율이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1분위에서 증가 폭이 4.9%로 가장 컸고 5분위가 0.6%로 가장 낮았다. 소비지출 증가율은 1분위(2.1%),4분위(2.3%)의 증가 폭이 컸고 5분위는 1.3% 감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양지비상에듀 대입정규반 모집 마감! ‘2017 수능 대비 돌입’

    양지비상에듀 대입정규반 모집 마감! ‘2017 수능 대비 돌입’

    수능이 9개월 남짓 남은 지금,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남자기숙학원 양지비상에듀는 대입정규반 개강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현재 대입정규반은 모집 마감됐으며 결원생 예약대기자만을 소수 모집 중에 있다. 특히 대입정규반은 4년 연속 마감을 기록할 정도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엿볼 수 있었다. 양지비상에듀는 10년 전통의 남학생기숙학원으로 알려져 있다. 한창 이성에 관심이 많이 가는 나이이기 때문에 이성과 함께 공부하기 보단 남자들끼리 학습하는 것이 훨씬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함께 생활하는 동안 강한 유대감이 형성되는 것은 물론 서로 자극제 역할을 하며 학습능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입정규반을 포함한 모든 수업은 소수정예로 실시된다. 한 반당 정원을 30명 이내로 제한해 다른 곳과의 차별성을 띄고 있다. 소수 인원으로 수업을 할 경우 전체적인 학습 분위기는 물론 선생님이 학생 개개인을 조금 더 밀착관리 할 수 있기에 나타나는 장점은 더욱 다양한 편이다. 기초가 부족한 학생의 경우는 ‘국영수 특강시스템’과 ‘수학을 뽀개는 남자(일명 수뽀남)’ 프로그램을 통해 주요과목에 대한 집중학습이 실시된다. 평소 부족했던 부분을 이번 대입정규반을 통해 보완할 수 있으며 수능에 대한 자신감까지 높여 성적향상의 꿈을 이룰 수 있다. 수능 대비에 있어서는 일일 학습확인도 중요하기 때문에 양지비상에듀기숙학원에서는 1:1 학습매니저 시스템을 진행한다. 학습계획서 작성과 점검은 물론 수험생활에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해 학습효율을 극대화 시키고 있다. 한편 기숙학원 등록금에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에게는 ‘더 드림(The Dream)’ 장학제도를 통해 여러 가지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더드림 장학제도는 크게 수능 평가원(9월) 우수장학과 학생부 우수장학으로 나뉘며, 국 수 영 과탐(2) 중 2개영역 백분위 평균 및 3개년 성적표를 적용해 기준에 따라 매월 30만원에서 최대 100만원의 금액을 절감할 수 있다. 기타 혜택은 물론 입학 후 장학제도까지 갖춰져 있기 때문에 등록 전 후, 자신은 어디에 속하는지 확인해볼 필요성이 있다. 교육기간 동안에 사용하게 될 숙소는 기본 2인실과 4인실로 갖춰져 있다. 개인 1층 침대 사용 및 개별 냉난방을 통해 숙면을 취할 수 있으며 화장실과 샤워장도 따로 구비돼 학생들의 편의를 돕고 있다. 식당 역시 주기적인 친절교육과 위생교육을 통해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있으며 남자기숙학원답게 영양에 신경을 써 학생들의 기본체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매주 주말에는 체육시간을 마련해 학생들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학원 내에 잔디 축구장, 농구장, 헬스장 등의 운동 시설이 갖춰져 있어 운동량이 적을 수 밖에 없는 수험생들을 위해 체력증진 및 스트레스 해소의 기회가 되고 있다. 학원 관계자는 “많은 학생들의 관심 속에 대입정규반이 성공적으로 개강해 현재는 결원생 예약대기자 접수 중”이라며 “힘들 수 있는 시기에 학생 옆에서 든든한 동반자로 성적향상의 꿈을 함께 이루겠다”고 전했다. 양지비상에듀기숙학원의 모든 수업 과정 및 모집 절차는 홈페이지(www.man-visang.com)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전화(031-321-6199) 및 방문을 통해서도 문의 가능하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달콤살벌한 맛짱] 화이트와인 젤리·오렌지 젤리

    [달콤살벌한 맛짱] 화이트와인 젤리·오렌지 젤리

    어릴 적 ‘제리뽀’ 여남은 개를 몇 분 만에 해치워 버리곤 했지만, 젤리를 직접 만들어야겠단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았다. 물컹하며 쫀득한 젤리의 질감은 천연 재료와 거리가 멀어 보였고, 마치 우주식량을 먹는 기분으로 젤리를 맛보았다. 조리대가 아닌 공장에서 만들어야 제격인 음식 같다는 선입견이 강했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서울요리학원에서 두 번째 베이킹 도전에 나선 홍희경 기자와 여섯 번째 도전으로 마음만은 파티시에 못지않은 김진아 기자가 다소 비장하게 조리대에 섰다. 착각이었다. 소 연골 조직에서 얻는 젤라틴을 비롯해 모든 재료는 천연 성분이었고 재료 준비와 냉동실에서 굳히는 시간을 제외하고 젤리 만들기에 순수 투입되는 시간은 10여분에 불과했다. 재료를 섞어 끓인 뒤 다양한 재료를 넣어 섞는 과정이 몇 차례 반복됐다. 재료를 넣고 한 김 쉬고 다른 재료를 넣고 또 한 김 쉬는 과정은 경쾌하며 유쾌했다. 5살 쌍둥이를 둔 홍 기자의 입에서 “아이들과 같이 만들기 딱 좋은 베이킹”이란 말이 나왔다. 재료가 신선할수록, 공정에 정성을 쏟을수록 젤리의 풍미는 좋아진다. 오렌지젤리를 만들 때 오렌지 착즙 주스보다 오렌지즙을 직접 짜서 쓰는 게 좋은 이유다. 특히 열처리를 한 오렌지 주스는 젤리로 만들 때 잘 뭉쳐지지 않으니 사용하면 안 된다. 4~5개의 오렌지를 바닥에 몇 번 굴린 뒤 반을 갈라 크게 십(十)자 모양을 내고 즙을 내 준다. 여기에 깨끗이 씻은 오렌지 1개의 껍질을 긁어내 만드는 제스트를 섞고 전화당(물엿)과 향을 더하기 위한 바닐라빈을 넣고 끓인다. 전체적으로 바글바글 끓으면, 불을 끄고 설탕과 펙틴을 섞는다. 펙틴은 젤라틴과 마찬가지로 젤리를 굳히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만든 오렌지 베이스는 손등에 떨어뜨렸을 때 흐르지 않고 봉긋하게 솟을 정도의 점도를 지녀야 한다. 묽다면 더 끓이면 된다. 오렌지 베이스를 한 김 식힌 뒤 젤라틴을 넣어 섞는데, 얇은 판 형태의 젤라틴을 미리 찬물에 격자로 넣어 둬 흐물흐물하게 만들어서 쓴다. 젤라틴을 넣은 뒤 다시 한 김 식혀 30~40도가 되면 적당한 그릇에 담아 냉동실에서 굳혀 준다. 화이트와인젤리 역시 재료를 섞고 기다리는 과정을 반복해 만든다. 화이트와인을 끓여 알코올을 날려 준 뒤 설탕을 넣고 섞는다. 이어 판젤라틴, 물을 차례로 넣는다. 화이트와인 베이스는 오렌지 베이스보다 수분이 많아 액체 상태로 냉동실에 들어갔다 반고체 상태로 나오는 변화의 과정이 좀더 명확하게 드러났다. 두 기자의 대결 성패는 미묘한 대목에서 갈렸다. 전 과정을 가르친 박지현 서울요리학원 강사는 홍 기자에게 9점을, 김 기자에게 8점을 줬다. 김 기자의 젤리 표면에 미세한 기포가 형성돼 1점이 깎였다. 박 강사는 “한 김 충분히 식기 전에 젤리를 굳힐 그릇에 따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기자는 젤리를 굳히기 전에 기포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두 번이나 채에 걸렀지만 이미 생긴 기포를 없애기는 쉽지 않았다. 두 기자의 젤리 모두 질감과 맛이 비슷했다. 오렌지 천연의 맛, 화이트와인 고유의 풍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탱글탱글 완벽 변신한 줄 알았더니 재료의 맛을 정직하게 품고 있는 디저트가 젤리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수강 문의는 서울요리학원 (www.seoulcooking.net, 02-766-1044~5)
  • [스타뷰] “주꾸미볶음 좋아요” 귀화 선수 마이크 테스트위드

    [스타뷰] “주꾸미볶음 좋아요” 귀화 선수 마이크 테스트위드

    “주꾸미볶음, 불고기비빔밥, 김치제육을 좋아합니다.” 경기 안양에 있는 한라 아이스하키단의 홈구장에서 지난 17일 만난 마이크 테스트위드(29·한국명 강태산)에게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음식 이름을 읊었다. 미국 출신이 먹기에는 너무 매운 음식들이 아니냐고 재차 묻자 그는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 시즌이 끝나고 여름 때 미국에 가 있으면 김치 생각이 절실히 나곤 했다”며 “한국에서 생활한 지 올해로 3년째인데 음식도 맛있고 이제는 여기가 고향이 된 느낌이다. 한국어 공부도 계속하고 있다”고 말한 뒤 빙그레 웃었다. 주꾸미볶음을 좋아하고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테스트위드는 지난해 3월 귀화를 해 진짜 한국인이 됐다. 미국 콜로라도에서 태어난 테스트위드가 아이스하키 선수로 한국까지 오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6살 때부터 한국과 인연을 맺어 왔다. 당시 테스트위드에게 처음으로 아이스하키를 가르쳐 준 사람이 부산 출신으로 미국에 입양돼 2006년 토리노동계올림픽 프리스타일 스키 남자 모굴에서 동메달을 따낸 토비 도슨(38)이었다. 당시 아이스하키에도 재능을 보였던 도슨은 이웃에 살고 있던 테스트위드에게 종종 운동을 가르쳐 주곤 했다. 테스트위드는 스틱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가 도슨에게 아이스하키를 배웠고 그 매력에 푹 빠져 결국 프로 선수의 길을 택했다. “제가 지금 한국에 살고 있고 토비 도슨도 한국 모굴스키 국가대표 코치를 맡으면서 한국에 거주 중인 것이 무척 신기합니다. 요즘은 동계 시즌이고 도슨에게 최근 아기가 생겨 자주는 못 보지만 그래도 종종 시간이 되면 얼굴을 마주하곤 합니다. 만나면 아이스하키 얘기를 주고받거나 고향 소식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의 하부리그인 아메리칸하키리그(AHL)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테스트위드는 에이전트의 권유로 2013년 안양 한라에 온 뒤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거듭났다. 그는 데뷔 시즌에 27골을 기록하며 아이스하키 아시아리그 득점 랭킹 5위에 올랐으며 2014~15시즌에는 당시 팀 내 최다인 29골을 몰아넣었다. 한국·일본·중국·러시아팀 등 총 9팀이 참가한 아시아리그 2015~16시즌에는 지금까지 34골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다. 34골은 2005~06시즌 송동환(36)이 기록한 31골을 뛰어넘는 한라 구단 역사상 단일 시즌 최다 득점이다. 테스트위드의 활약에 힘입어 한라도 승점 108점으로 리그 1위를 질주하고 있다. 테스트위드는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수상이 탐나지 않느냐는 물음에 손사래를 치며 “어떤 선수든 MVP를 받으면 영광이겠지만 나에겐 정규리그 1위를 달성하고 이후 플레이오프에서 통합우승을 하는 게 더 큰 성취라고 생각한다”며 “개인 수상보다는 팀 성적만 생각하고 있다. 우리 팀은 올해 충분히 우승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힘주어 답했다. 테스트위드의 활약은 귀화를 통해 국가대표팀에 승선한 뒤에도 이어졌다. 그는 지난해 4월 네덜란드에서 있었던 2015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B 경기에서 4골 4어시스트로 활약하며 한국이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아이스하키는 성적에 따라 국가별 등급이 나뉘는데 한국 대표팀은 당시 승리로 디비전1 그룹A(상위 두 번째 단계)로 승격했다. 세계랭킹은 5년 전보다 10계단이나 오른 23위가 됐다. 지난 12~13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2016 유로 아시아하키챌린지에서는 세계랭킹 11위의 노르웨이에 1-3, 15위 덴마크에는 0-2로 패배했지만 나름대로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테스트위드는 당시 경기를 떠올리며 “덴마크까지 가는 것이 매우 긴 여정이었고 시차가 굉장히 컸음에도 이 정도면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고 생각한다”며 “이제는 다른 강팀들과 싸워도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에 귀화 선수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가대표팀에서는 4명의 귀화 선수(브락 라던스키·브라이언 영·마이클 스위프트·테스트위드)가 뛰고 있으며 대한체육회가 지난달 특별귀화 추천을 의결해 법무부의 최종 결정만 남은 에릭 리건(28·미국)과 맷 달튼(30·캐나다)까지 합류하면 파란 눈의 대표팀 선수는 총 6명으로 늘어난다. 귀화 선수의 증가로 한국 선수들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테스트위드는 “나는 귀화 선수들이 한국 대표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북미 출신인 선수들이 자국 리그에서 뛰었던 경험이나 자신만의 기술들을 한국 선수들과 공유하며 대표팀을 더욱 발전하게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귀화 선수는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많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본은 1998년 나가노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복수국적 선수 8명을 대표팀에 기용했고 이탈리아도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캐나다와 미국 출신 선수 11명을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이제 테스트위드의 눈길은 2년 앞으로 다가온 평창동계올림픽으로 향하고 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동계올림픽에 진출한 적이 없었던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개최국 자격으로 평창동계올림픽에 나서게 됐다. 한국 대표팀은 아이스하키 세계 최강국인 캐나다, 세계랭킹 6위 체코, 7위 스위스와 한 조에 속해 험난한 여정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테스트위드는 “평창동계올림픽에는 당연히 출전하고 싶다. 아직 기간이 좀 남았는데 그때까지 기량을 더욱 발전시켜 동료 선수들과 함께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테스트위드는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냐는 마지막 질문에 “한국의 어린 선수들이 나의 플레이를 보면서 하키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부흥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던 선수로 남고 싶다”고 답하며 눈을 반짝였다. 강하고 큰 산이라는 의미가 좋아 자신의 한국 이름을 강태산(姜太山)으로 택한 테스트위드가 한국 아이스하키에 태산 같은 족적을 남길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마이크 테스트위드는 ▲1987년 2월 5일 미국 콜로라도 출생 ▲196㎝, 95㎏ ▲2006~2010년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디비전1 콜로라도대학(134경기 44골 27어시스트) ▲2010~2013년 아메리칸하키리그(AHL) 애디론댁 팬텀스(161경기 32골 38어시스트) ▲2013~현재 안양 한라 아이스하키단(136경기 94골 87어시스트 기록 중) ▲2015년 3월 체육 분야 우수 인재 특별귀화(한국명 강태산)
  • 창업재단 설립·기업 실무 인증… ‘산학협력’ 새 모델 충남대

    창업재단 설립·기업 실무 인증… ‘산학협력’ 새 모델 충남대

    기술 인증 통해 직업 현장 능력 보증 원천기술 바탕 기술이전료 5배 늘어 충남대 행정학과 4학년 김동준(22)씨는 지난해 10월 학교 인근에 특이한 음식점을 열었다. ‘비밀’(Bee Meal)이라는 간판을 단 이 음식점은 대전 지역 조리 관련 학과 학생이나 예비 창업자들이 주방을 공유하면서 각자 음식을 만들어 팔아 보도록 하는 공간이다.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고 무분별한 창업의 위험을 줄여 주기 위한 아이디어다. 지금까지 1200만원어치 넘게 팔렸다. 이는 김씨가 2014년 교육부의 지원으로 설립된 충남대 산학협력선도대학육성사업단(링크사업단·LINC)에 들어가 창업 동아리 활동을 한 끝에 일군 결실이다. 링크는 지난해 김씨의 아이디어를 우수 아이템으로 선정해 400만원의 투자금을 유치해 줬고, 김씨는 이 돈으로 창업했다. 산학협력의 새로운 모델로 충남대가 떠오르고 있다. 기업의 요구에 맞는 실무형 인재 양성에 충실해 취업률을 크게 높이고 여기에 사업화 마인드를 심어 주는 교육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창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충남대 링크사업단은 학과와 별도로 기술 인증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17일 밝혔다. 대학이 쌓아 온 이론과 원천 기술에다 기업 현장의 실무를 융합한 과정이다. 충남대 졸업생에 대한 기업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실무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사업단은 이론 및 실습 시험을 치러 합격하면 인증서를 줌으로써 학생의 실력을 보증하고 있다. 링크사업단 김정기 교수는 “기업의 전문가가 멘토로 나서 교육도 한다”고 말했다. 사업단은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캡스톤디자인’ 과정도 만들었다. 아이디어를 판매하는 옥션도 지난해 도입했다.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이 인삼잎에서 희귀 사포닌을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공동 개발해 관련 업체에 8000만원을 받고 이전시켜 미국에 2만 달러어치를 수출하는 성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충남대는 2억~3억원에 그치던 기술이전료가 지난해 13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2013년 링크사업단이 출범하면서 연구에서 산학협력 중심으로 대학 체질을 바꾼 결과다. 김 교수는 “당초 연구·개발(R&D) 중심 대학이어서 원천 기술이 풍부했던 게 링크사업단이 뛰어난 성과를 올린 밑거름이 됐다”며 “대학이 기술이전료 부분을 전국 대학 중 가장 높게 교원 평가에 반영하면서 교수들이 기술 개발에 발 벗고 나선 것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송규용(약학과 교수) 링크사업단장은 “지난 1월 국내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학생창업재단을 설립해 미래 기술 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다”며 “충남대가 충청권 산학협력대의 허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두 타이완 기록자의 일기①그 여자의 일기,남쪽의 이야기를 들려줘-타이베이

    두 타이완 기록자의 일기①그 여자의 일기,남쪽의 이야기를 들려줘-타이베이

    두 사람이 나섰다. 타이완 방방곡곡을 훑으며 각개전투를 펼치고 나니 크고 작은 것 모두 버릴 게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기록한다. 두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은 타이완의 얼굴을. 타이완은 어떤 곳일까 공식명칭은 ‘중화민국’이다. 우리나라 3분의 1 정도 크기의 섬나라다. 인구는 약 2,300만명, 수도 타이베이와 함께 가오슝, 타이중, 타이난이 4대 도시로 불린다. 16세기까지는 말레이계 원주민들이 타이완 전역에 분포해 살았으나, 1624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지금의 타이난에 거점을 두고 중국의 한족들을 모집해 토지개간을 시작하면서부터 한족들이 유입됐다. 네덜란드가 타이완을 관할하던 1644년, 만주족이 명나라를 침입하자 한족들이 전쟁을 피해 타이완으로 대거 들어왔다. 1661년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수세에 밀린 명나라가 2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타이완에 상륙해 네덜란드인을 몰아냈다. 이때부터 타이완은 중국인의 섬이 되었다. 1683년 타이완은 다시 청나라에 정복되어, 청나라의 22번째 성으로 편입되었다. 1895년부터 50년 동안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타이완을 식민지배했다. 1945년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전하자 다시 중국국민당이 타이완을 관할하기 시작했다. 1949년 중국 공산당과의 내전에 패한 국민당의 장제스 총통이 그해 12월7일 타이완으로 ‘중화민국’의 정부를 이전함으로써 지금의 타이완이 됐다.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넘어올 당시 중국 자금성 뒤편의 고궁박물원에 안치되어 있던 수많은 국보급 유물들을 가져 왔는데, 중국의 역사를 아우르는 그 진귀한 유물들이 현재 중국이 아닌 타이완의 고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타이완 인구의 84%는 일제강점기 이전에 유입된 한족 ‘본성인’, 14%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유입된 한족 ‘외성인’, 나머지 2%는 한족이 유입되기 이전인 16세기까지 섬에 살고 있었던 ‘말레이계 원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레이계 원주민은 아직도 타이완의 고산지역에서 고유의 언어와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중국 본토의 중화요리는 모두 타이완에 있다’는 말이 있는데, 중국 전역의 요리사들이 다양한 경로로 타이완에 유입된 까닭이다.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덕에 타이완에 가면 다양한 중국 전통요리들을 맛볼 수 있다. ●그 여자의 일기 남쪽의 이야기를 들려줘 오롯한 자유의 시간이 주어졌다. 욕심을 내서 타이베이는 물론 남부 도시 가오슝까지 들렀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듯 구석구석 관심을 가져보고 꼼꼼히 소식을 경청했다. 타이완은 여전히 다정하고 속이 깊은 친구였다. 역시, 내가 눈썰미가 있다니까. ●타이베이 켜켜이 쌓인 시간의 결을 어루만지다 보면 지금까지 알아 왔던 타이베이 말고, 또 다른 타이베이가 보인다. 언제든지 이야기를 쏟아낼 준비가 돼 있다. 콕, 찌르기만 한다면. ▶옛 거리에 움트는 새싹들 디화지에DihuaStreet 아마도 사람들은 조금 덜 꾸미고, 덜 복잡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있나 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흥행은 바로 그런 감성을 자극했던 것이 아닐까. 희한하게도 타이완에 발을 디디면 멀지 않은 과거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우리의 과거 모습들이 타이완 곳곳에서 엿보이기 때문일 테다. 세련되지 않아도 소박한 옷차림, 숨기는 것이 없는 날것의 표정. 타이완을 여행하며 보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번잡한 관광지 대신 도시의 외진 곳으로 숨어들었다. 유리로 마감한 신식 건물들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한눈에 보기에도 낡은 2~3층의 건물이 골목을 이루기 시작했다. 디화지에다. 1850년경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디화지에는 과거 타이완의 경제 중심지였다고. 각종 허브, 직물, 차 등을 파는 골목이었단다. 당시의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은 덕에 시간 여행을 하는 듯 황홀한 기분에 젖어들게 된다.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듯 아직도 디화지에 골목 곳곳에는 타이완의 각종 전통 먹거리, 직물을 파는 곳들이 남아 있다. 사람을 모으는 호객꾼의 소리는 낡은 건물 사이를 넘나들며 생기를 북돋는다. 가장 번성했던 19세기를 지나면서 디화지에의 화양연화는 지나갔다. 그러나 주름이 패었을지언정 여전히 생기로운 빛을 띠는 것은 왜일까? 정답은 낡은 땅에 찾아와 깃든 젊은이들에게 있다. 디화지에에는 빛 바랜 건물에 어울리지 않을 법한 멋진 카페와 갤러리, 편집숍들이 꽁꽁 숨어 있다. 바쁜 걸음으로 재촉한다면 절대 볼 수 없을지 모른다. 화려한 간판을 내건 것도 아니요, 나만 잘났다고 뽐내는 모양도 아니다. 옛 거리에 살갑게 녹아들어 그저 ‘디화지에’ 같기 때문이다. 이곳에 새로 생긴 숍들만 모은 지도가 빽빽하다. 겨우 2년 남짓한 시간에 만들어진 것이다. 젊은 예술가들이 디화지에에 모이게 된 것은 다름 아니다. 옛 건물이 가득한데다 개발이 늦어지면서 임대료가 저렴했기 때문. 프로젝트처럼 하나의 업체가 주도해 여러 건물에 숍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고, 개별적으로 카페나 갤러리를 운영하기도 한단다. 건물 중앙을 비워둔 ‘ㅁ’자 형 전통 가옥에는 그래서 각 모서리별로 각양각색의 숍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함정에 갇힌 것처럼 하나의 건물을 다 돌고 나오면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만다. 물론 지갑이 홀쭉해지는 정도도 머문 시간에 정비례한다. 아트야드Art Yard세다이그룹Sedai Group이 디화지에가 속한 다다오청 지역의 활성화를 위해 만든 복합공간. 지난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아트야드가 꾸며지기 시작해 지금 막 기반을 잡았다. 디화지에 거리 곳곳에 아트야드에 속한 총 5개 건물이 운영되고 있다. 소소한 잡화를 파는 숍과 강연장이 운영되는 시아오이청小藝埕 · Xiăo yì chéng, 타이완 전통 예술을 재해석하는 숍이 모인 민이청民藝埕 · Mín yì chéng, 아티스트의 개별 숍이 모여 있는 종이청眾藝埕 · Zhòng yì chéng, 전시회와 강의가 열리는 시에이청學藝埕 · Xué yì chéng, 예술가의 안뜰을 표방한 리안이청聯藝埕 · Lián yì chéng 등이 그것이다. 각각 서점, 갤러리, 카페 등 여러 개의 숍이 입주해 있다.www.artyard.tw 플라이시fleisch타이완에서 난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커피를 내리는 레스토랑. 공정한 방식으로 재료를 공수해 농민에게는 알찬 수익을, 소비자에게는 신선한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주방을 개방해 어떻게 음식이 만들어지는지 공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방식에 공감하는 방문객들이 3층 건물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톤다운 된 내부 인테리어가 주는 편안함이 일품. 각종 미디어에 소개된 유명 레스토랑이기도 하다. No. 76, Section 1, Dihua St, Datong District, Taipei City www.fleisch.com.tw +886 2 2556 2526 프로그카페Frog Cafe나무로 만들어진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프로그숍Frog Shop이 카페의 형식을 빌렸다. 엽서나 달력, 작은 사무용품을 전시하는 공간과 카페로 이뤄져 있는데, 디화지에 메인 거리의 입구에 자리하고 있어 항상 붐비는 편. 간단한 식사도 즐길 수 있어 다음 여행을 위한 기력을 보충할 수 있다. No. 13, Section 1, Dihua St, Datong District, Taipei City shop.frogfree.com +886 2 2555 2125 ▶그들이 사는 세상 다다오청DaDaoCheng 디화지에의 정겨움은 바로 인접한 다다오청 항구로 이어진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여행자들이 한강공원에 오면 이런 기분일까. 타이베이의 메인 선착장인 다다오청에는 여가를 즐기기 위해 나온 가족과 연인들이 한 가득이다. 앳된 얼굴을 한 연인들부터, 노모와 아이까지 나선 대가족도 있다. 타이베이 어딘가에서 밥을 짓고 사는 사람들, 진짜 그들의 생활 안에 녹아들 수 있을 것만 같다. ‘땡땡’ 작은 종을 울리며 아이스크림을 파는 사람,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키는 사람도 있다. 쉴 새 없이 휙휙 지나가는 것은 자전거다. 어디서나 자전거를 즐긴다는 타이완 사람들의 생활이 그대로 느껴지는 전경이다. 다다오청 한쪽에는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는 자전거 대여소가 마련돼 있다. 교통카드만 있으면 자전거 빌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강 너머를 천천히 바라보며 즐기기에는 자전거만한 것도 없겠다. ▶홀로 남은 외딴 섬의 변신 보피리아오BoPiLiao MRT 룽산쓰역을 나서자 사방에서 울리는 번잡한 소음이 귓속으로 파고 든다. 타이베이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다 보니 언제 와도 사람이 많다. 기도를 올리러 찾아온 주민들부터 사진을 찍기 바쁜 관광객까지, 어디에 시선을 둬도 위엄 있는 룽산쓰의 자태보다 사람이 먼저 들어온다. 룽산쓰를 한 바퀴 빙 돌고 발길을 틀었다. 진짜 목적은 보피리아오다. 룽산쓰 오른편으로 딱 한 블록만 걸으면 금세 보피리아오를 발견할 수 있다. 붉은 벽돌로 쌓은 2층 건물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 간판도 없고 표지판도 찾기 어렵지만 주변 상가 지역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마치 보피리아오만 동떨어진 시간에 놓여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보피리아오의 역사는 200년 전 후기 청나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보피리아오 일대는 망카Mangka지구와 구팅Guting지구를 잇는 교통 중심지로 번성했었다고. 일제 식민지 시절을 거치며 인근의 옛 건물들은 모두 새로 개발되어 서양식으로 변모했지만, 어쩐 이유에서인지 보피리아오만은 그대로 남게 됐단다. 우여곡절 끝에 홀로 남아서인지 외딴 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희끗희끗한 벽돌색마저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겨우 한 블록 차이인데 사람이 바글바글하던 룽산쓰와는 달리 보피리아오는 한적하기 그지없다. 아치형 터널을 지나다 보니 한쪽에서 피아노 연주가 들려온다. 보피리아오의 한 구역에서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 연주에 맞춰 성악가의 목소리도 울려퍼졌다. 보피리아오의 희끗희끗한 벽돌이 돋보이는 조용한 거리에는 근대 타이완의 역사를 체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육관, 공연 및 전시가 이뤄지는 공간 등이 다양하게 자리하고 있다. 여행자에겐 훌륭한 포토존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군사 주거지, 따뜻한 남쪽이 되다 쓰쓰난춘SiSi Nan Cun 우연히 발견한 샘터는 그것이 크건 작건 반갑고 사랑스럽기 마련이다. 쓰쓰난춘이 그랬다. 기대보다 작은 규모에 과연 잘 찾아온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지만, 고층 빌딩 옆에서도 기죽지 않는 존재감을 뽐낸다. 우선 외형 때문이다. 타이베이101이 한 발짝 거리에서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서 있고, 그 주변에도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다. 쓰쓰난춘은 1층 높이의 2층 건물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낮고 작았다. 하지만 외형만으로 존재를 파악하는 것은 경솔하다. 건물 곳곳에 숨은 보석 같은 가게들, 매주 주말마다 열리는 플리마켓은 쓰쓰난춘이 진짜 ‘따뜻’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한다. 한가한 평소의 모습과 달리 주말만 되면 북적이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매주 주말 오후 1시부터 작은 액세서리부터 옷, 먹거리, 문구까지 다양한 숍이 쓰쓰난춘 중앙 광장에 빼곡하게 들어선다. 이곳은 지난 1949~1960년대 중국에서 넘어온 중화민국의 군인들과 그 가족들이 모여 살던 지역이었다. 100만명이 거주할 정도로 규모가 컸지만, 시간이 가면서 거주하던 군인들이 은퇴하고 사회로 돌아가면서 점점 영향력이 축소되기 시작했다고. 그리고 지금은 단 몇동의 건물만 남아 이색 관광지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회색 시멘트 벽 그대로 남은 건물은 빨강, 노랑, 초록 등 원색으로 문과 창틀에 포인트를 줬다. 낡고 바랜 느낌이지만 그런대로 사랑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좁은 벽과 벽 사이를 지나다 보면 자연스레 과거 이곳에서의 삶이 그려진다. 옛 흔적을 모아 둔 전시관에서는 그 상상이 좀 더 구체화될지도 모르겠다. 굿초스Good Cho’s타이완 ‘로컬 푸드’가 총집합했다. 장류, 조미료, 커피, 화장품까지 모두 모인 이곳은 쓰쓰난춘에 입점한 가장 큰 숍이다. 특히 주방에서 바로 만들어 내는 베이글의 인기가 뜨겁다고. 그 명성을 못 들어본 자라도 굿초스에 들어서자마자 풍겨 오는 고소한 빵냄새 때문에 베이글을 사게 될지 모른다. 종류도 수십가지에 달해서 고르는 재미도 쏠쏠한데, 다만 중국어를 하지 못한다면 직감으로 고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함정. No. 54, Songqin St, Xinyi District, Taipei City +886 2 2758 2609 미도리Midori역시나 로컬 푸드를 이용하는 아이스크림 숍이다. 방부제 등 인체에 유해한 화학 제품을 사용하지 않은 것도 미도리의 특징. 그래서인지 아이스크림의 색이 연하고 부드럽다. 관찰 결과 굿초스에서 베이글을 먹고 미도리에서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이 쓰쓰난춘의 메인 코스가 분명하다. 콘이나 컵 중 선택할 수 있다. No. 50, Songqin St, Xinyi District, Taipei City 에디터 고서령 기자 글·사진 차민경 기자, Travie writer 김봉수 취재협조 내일투어 02-6262-5000타이완관광청 www.taiwan.net.tw, 브이에어 www.flyvair.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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