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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델 박둘선의 영화 음식 이야기] 상처 입은 영혼 위한 ‘붉은 위로’ 한 가닥

    [모델 박둘선의 영화 음식 이야기] 상처 입은 영혼 위한 ‘붉은 위로’ 한 가닥

    영화 ‘사랑의 레시피’(원제 No Reservation)에서 엄마를 교통사고로 잃은 10대 소녀 조이의 입맛을 사로잡은 요리는 포모도로 스파게티였다. 자신을 기르게 된 유명한 요리사 이모 케이트(캐서린 제타 존스)의 고급스러운 요리를 거부하던 조이는 이모 밑에서 일하는 요리사 닉(아론 애크하트)이 무심한 척 만들어 툭 건네준 이 스파게티를 먹고 그 음식점 주방의 ‘가족’이 된다. 학교 수업이 끝난 뒤 주방에 와 일을 거들기도 하고 닉을 주말에 집으로 초대해 함께 요리를 하는 등 조이의 존재로 케이트와 닉은 가정을 이룬다. 뻔한 이야기 구도이지만, 상대에 대한 생각과 애정이 담긴 요리가 닫힌 마음을 열 수 있다는 현실의 평범한 진리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음식 영화라 눈에 띄는 요리가 많이 나오지만 오랫동안 머리에 남는 요리가 스파게티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거다. 포모도로 스파게티는 파스타에서도 가장 기본적인 파스타다. 양파와 토마토소스 두 가지로 맛을 낸다. 양파를 잘게 썰면서 한 번쯤은 눈이 매워 고생한 기억들이 있다. 서울요리학원의 박용규 강사는 양파를 덜 맵게 써는 요령을 알려줬다. 양파를 보면 겉면에 얇은 실선이 있다. 이 실선을 따라 칼집을 먼저 낸 뒤 양파를 다지듯이 썰어내면 눈이 별로 맵지 않았다. 토마토소스는 시중에서 파는 소스 제품을 쓰는 것이 편하긴 하다. 하지만 좀 더 맛있게 스파게티를 만드는 방법은 토마토홀이나 토마토페이스트를 쓰는 것이다. 토마토홀은 토마토를 통째로 삶아 껍질만 벗긴 채 토마토 주스에 넣어둔 것이다. 토마토페이스트는 잘 익은 토마토에서 껍질, 씨 등을 없앤 과육이나 액즙을 졸여 만든 토마토 퓨레를 농축한 것이다. 완숙 토마토가 있다면 토마토를 살짝 데쳐 함께 쓰면 씹는 감이 더욱 살아난다. 박 강사는 토마토홀에 양파와 마늘을 넣는 방식을 택했다. 완숙 토마토와 방울토마토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준비해뒀다. 토마토소스를 만들 때 닭 육수를 써서 맛을 더 깊게 할 수도 있다. 이 때 드라이한 적포도주를 조금 넣어 잡냄새를 잡아준다. 시중에는 조리용 적포도주가 팩으로 나와 있다. 박 강사는 단 포도주만 아니면 괜찮다고 답했다. 닭 육수가 없다면 스파게티 삶은 물(면수)을 써도 된다. 박 강사는 냉장고에 보관할 경우 소스를 다소 싱겁게 해두라고 조언했다. 냉장고에서 간이 조금 바뀌기 때문이다. 스파게티를 삶는 시간은 포장지에 나와 있는 대로 하는 것이 좋다. 간혹 ‘알단테’라는 표시가 있는데 이 경우는 씹었을 때 가운데에 심이 느껴진다. 외국에서는 가끔 이렇게도 요리를 하나 국내에선 덜 익은 파스타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한다. 물에 소금을 조금 넣어 끓인 뒤 스파게티를 넣고 가끔 저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면이 냄비 바닥에 들러붙어 타는 경우가 생긴다. 면을 건져내서 올리브유를 코팅하듯이 입혀준다. 한번에 먹을 양만큼씩 말아서 냉장고에 3일 정도 보관할 수 있다. 스파게티는 얼마나 많이 빨리 치대느냐가 중요하다. 박 강사는 치대는 중간중간 쉬곤 했다. 저으면 온도가 내려가기 때문이다. 다시 재료가 끓으면 다시 치대는 방식으로 프라이팬에서 3분 정도 볶았다. 마지막으로 그릇에 담기. 박 강사는 뜨거운 음식은 따뜻한 그릇에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리가 된 스파게티를 담고 올리브유 중에서도 엑스트라 버진 몇 방울과 파마산 치즈, 바질을 얹었다. 맛난 향기가 강하게 올라왔다. 재료를 볶아서 맛과 향 내기, 소스 치대기에 이어 스파게티의 3번째 단계인 맛과 향 더하기가 끝났다. 고개를 들지 않고 뚝딱 먹어버릴 원조 스파게티 한 그릇이 완성됐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부산서 또 콜레라… 공포 확산

    최근 필리핀 여행을 다녀온 부산 지역의 A(47)씨가 콜레라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돼 국내 콜레라 환자는 모두 4명으로 늘었다. 콜레라 환자들의 정확한 감염원이나 감염 경로가 확정되지 않아 ‘콜레라 공포’가 확산되는 양상이다. 4일 질병관리본부 등에 따르면 최근 경남 거제에서 발생한 3명의 환자는 치명률이 1% 미만으로 알려진 ‘엘토르’(El Tor)형 콜레라에 감염됐다. 1963년 이후 국내 감염자는 대부분 엘토르형 콜레라균에 노출됐고 2001년 경북 영천에서 162명이 집단 감염돼 4명이 사망한 이후 단 1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는 “엘토르형 콜레라는 50명 중 1명 이하만 구토와 설사로 인한 심한 탈수 증상을 경험할 정도로 불현성(감염돼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높다”며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고 수액 치료만 적절히 해도 사망할 위험은 없다고 봐도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3일 감염자로 확인된 A씨는 지난달 24~28일 필리핀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확인돼 해외 감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다만 엘토르형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콜레라는 고온다습한 여름철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1963년부터 2006년까지 월별 콜레라 환자 발생 건수를 분석한 결과 9월이 정점인 것으로 밝혀졌다. 10월까지도 환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콜레라 감염을 예방하려면 생활 속 위생규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음식을 만들기 전과 배변 뒤 반드시 30초 이상 손을 씻고 물과 음식물은 가급적 끓이거나 익혀서 먹어야 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박정 의원 “올레길·갈맷길 넘어 조국 사랑 온몸으로 느끼게 ‘국토순례’ 지원법 발의”

    박정 의원 “올레길·갈맷길 넘어 조국 사랑 온몸으로 느끼게 ‘국토순례’ 지원법 발의”

     누구나 한 번쯤 배낭 하나 등에 메고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눈에 담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국토순례를 떠나는 꿈을 꾸지 않을까. 더불어민주당 박정 의원은 남녀노소 구분없이 ‘국토순례’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지원하는 내용의 ‘국토순례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고 2일 밝혔다.  이 제정안은 국민 누구나 쉽게 국토순례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도록 국가와 지자체가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국토순례 지원 사업의 방향 설정과 국토순례 지원에 관한 기본계획·연도별 시행계획의 수립에 관한 사항 등을 심의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에 국토순례지원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국토순례 지원을 위해 관계 중앙행정기관장과 미리 협의한 뒤 국토순례지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5년마다 국토순례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 또 국가와 지자체가 국민의 국토순례 의욕을 고취시키고 국토순례에 대한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국토순례 권장 주간을 설정하게 한 것이 제정안의 주요 내용이다. 박 의원이 제정안을 제출하게 된 데는 북한접경지역으로 군사시설이 집중된 데다 낙후됐다는 이미지의 경기 파주가 그의 지역구라는 영향이 컸다. 그는 “태어나고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이 땅의 가치와 본연의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직면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토순례 지원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의인이나 위인들이 걸었던 숭고한 뜻을 답사하도록 권하기도 하고, 통일과 평화의 중요성도 깨닫게 하고, 무엇보다 국민 저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정신적 성숙의 계기가 돼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제정안이 통과되면 국내여행 활성화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박 의원은 “해외여행을 가는 국민이 비약적으로 늘었는데 평생 살아갈 조국의 산하와 지리에는 정작 단편적으로만 안다”면서 “많은 이들에게 조국의 산과 강과 마을 이모저모를 가까이 접하면서 관습, 유적, 인심, 풍물, 음식, 특색 등에 대한 견문을 넓힐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불타는 하늘 불타는 바다…그 사이의 섬

    불타는 하늘 불타는 바다…그 사이의 섬

    수많은 사람과 사연들을 실은 배가 전북 부안의 격포항을 떠나 바다 위를 힘차게 내달린다. 행선지는 위도다. 배 오른쪽으로 임수도가 떠 있다. 섬 주변의 조류 흐름이 유난히 거칠다는 곳. 1993년 서해페리호 침몰사고의 아픔이 잠긴 곳이자 심청전에 등장하는 인당수(인천 백령도와 장산곶의 중간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야기가 전해오는 곳이다. 위도는 변산반도 격포항에서 서쪽으로 14㎞ 남짓 떨어져 있다. 쾌속선으로 40여분 거리다. 섬엔 아픈 기억이 여전하다. 서해훼리호 외에도 일제강점기인 1931년 한 해 동안 세 차례나 섬을 강타한 태풍에 500여척의 어선이 수장된 일도 있다. 하지만 짙게 드리운 그 기억들을 한꺼풀 걷어내면, 섬은 그제야 제 진면목을 드러낸다. ●흑산도·연평도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조기 파시로 이름 높던 곳 위도(蝟島)는 한자 표현 그대로 고슴도치(蝟) 섬이다. 섬의 모습이 고슴도치를 닮았다는 이도 있고, 바람에 견디기 위해 작달막한 체구에 삐죽 솟은 모양으로 자란 소나무가 고슴도치의 털을 닮아 그리 부른다는 이도 있다. 위도를 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차를 타고 일주도로를 달리는 것이다. 최근엔 자전거로 돌아보는 동호인들도 꽤 늘었다. 섬을 도는 공영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한데 단 한 대뿐이어서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게 단점이다. 섬 일주도로는 총 27㎞ 정도다. 왕복 2차선 길이어서 어디든 수월하게 갈 수 있다. 들머리는 카페리가 닿는 파장금항이다. 예서 북서쪽 바닷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는 게 일반적이다. 위도는 흑산도, 연평도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조기 파시로 이름 높던 곳이다. 위도 남쪽 바다는 조기잡이로 이름난 칠산어장.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수백 척의 어선이 조기와 삼치를 잡기 위해 몰려와 파장금항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 덕에 파장금 앞의 밥섬(식도)까지 정박한 배들이 늘어섰고, 주민들이 배를 다리 삼아 두 섬을 오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여태 전한다. 돈과 사람이 몰리다 보니 포구도 덩달아 흥청댔다. 당시 파장금항엔 뱃사람들에게 술 따위를 파는 여성이 600명에서 많게는 1000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니 뱃사람들과 술집 여인네들 사이에 오죽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사랑에 빠진 술집 여인과 함께 도망치다 걸려 몸값 물어주고 만신창이가 된 이가 적지 않았고, 죽자 사자 소란 피우는 이들은 발부리에 차이는 돌만큼 허다했다. 이런 사연들을 기억하고 있는 술집 쪽방 골목이 지금도 파장금항 마을 뒤쪽에 그대로, 혹은 반쯤 허물어진 채 남아 있다. ●너른 소금벌 많다는 마을 벌금리… 얇은 돌판 켜켜이 쌓인 검은 해안 절벽 파장금항에서 일주도로를 따라가다 가장 먼저 만나는 마을이 벌금이다. 너른 소금벌이 많아 벌금이라 했다는데, 이처럼 위도 곳곳엔 정겨운 순우리말 이름의 마을들이 여태 남아 있다. 유달리 깊숙하게 파였다고 해서 깊은금, 섬에선 드물게 논이 있었다는 논금, 개펄에 대나무살을 엮어 세워 고기를 잡았다던 살막금, 개펄 너머 마을인 개들넘 등이 그렇다. 벌금리 마을 안쪽의 포구에서 옛 여객선터미널 쪽으로 가다 보면 얇은 돌판이 겹겹이 쌓인 검은 해안 절벽이 펼쳐진다. 현지인들이 ‘위도의 채석강’이라 부르는 용머리 해안으로 수만권의 책을 쌓아 올린 듯하다는 격포 채석강의 자태를 빼닮았다. 터미널 건물 앞으로 난 시멘트길은 두 개의 작은 바위섬까지 이어진다. 현지인들이 오재미라 부르는 곳이다.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인 바위섬의 기세가 장하다. 이처럼 범상하지 않은 모양새 때문인지 무속인들이 즐겨 굿판을 벌이기도 한다. 촛불에 그을린 자국 등 섬 여기저기에 치성의 흔적들도 역력하다. 벌금항에서 오른쪽으로 난 작은 시멘트 다리를 건너면 정금도다. 장희빈의 숙부가 이 섬에서 귀양살이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벌금리에서 고개를 넘으면 위도 해수욕장이다. 깊숙한 만 안에 펼쳐진 거무튀튀한 모래밭이 인상적이다. 해변의 모래는 단단하기로 이름났다. 차 바퀴가 안 빠질 정도란다. 해변 뒤 모래언덕에 위도상사화 꽃밭이 조성돼 있다. 상사화(相思花)는 꽃이 잎을 못 보고 잎도 꽃을 못 본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초가을 무렵 피는 꽃무릇을 상사화라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둘은 개화 시기나 모양새가 다소 다르다. 위도에는 유독 꽃잎이 하얀 상사화가 자생한다. 그래서 ‘위도상사화’라는 이름을 따로 가졌고 학명 첫머리에도 영문으로 ‘Korea’가 표기된다. 주민들은 위도상사화를 ‘모모릿대’라고 부른다. 고구마 줄기 닮은 꽃대를 무치면 어지간한 나물보다 맛이 뛰어나다고 한다. ●유달리 깊숙하게 휘어진 만 ‘깊은금’… 영화 ‘해안선’ 촬영지 ‘논금’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유달리 깊숙하게 휘어진 만이 나온다. 깊은금이다. 고슴도치의 자궁에 해당되는 곳. 해변은 모래가 아니다. 잘고 납작한 깻돌 일색이다. 이 때문에 밟는 느낌이나, 파도에 부딪치는 소리가 모래해변과 사뭇 다르다. 깊은금에서 복주머니 모양의 미영금으로 넘어가면 바닷가 절벽 옆에 서 있는 물개바위를 볼 수 있다. 미영금 지나면 논금이다. 해안은 역시 깻돌이다. 뱀대가리를 닮았다는 사두혈과 내·외조도 등 섬들이 고즈넉하게 어우러져 있다. 이 풍경 덕에 영화 ‘해안선’과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논금을 지나 산자락을 힘차게 오르면 살막금이다. 대나무 등으로 만든 살을 바다에 세워 물때를 이용해 고기를 잡던 곳이다. 지금도 강태공들이 즐겨 찾는 포인트 중 하나다. 살막금 언덕 일대도 위도상사화 군락지다. 해넘이 때 특히 아름다운 풍경을 선보인다. 붉게 달궈진 해가 바로 앞의 거륜도와 멀리 내·외조도 일대를 물들이며 바다로 잠긴다. 대리는 위도띠뱃놀이(국가무형문화재 82-3)의 본고장이다. 해마다 정월이면 띠로 만든 배를 띄우며 풍어와 안녕을 비는 굿판을 벌인다. 대리마을 윗자락의 ‘위도 띠뱃놀이 전수관’에 들르면 풍어와 마을의 안녕을 빌던 민속놀이의 원형을 접할 수 있다. 이어 한 굽이 더 돌아가면 치도리가 나오고 큰딴치도와 작은딴치도가 모습을 드러낸다. 면사무소 앞에 있는 위도관아(전북도유형문화재 101호)는 꼭 둘러보는 게 좋겠다. 섬 지방을 통틀어 유일하게 남은 조선 시대 관청 건물이다. 이제 루너티큐, 월광병 환자가 될 시간이다. 사실 위도를 찾은 것도 곱게 핀 상사화 보며 달빛 기행 즐기자는 뜻이었다. 보름달은 휘영청 떠올랐는데 사위는 여전이 붉다. 너무 가뭄이 심해 달도 붉게 타들어 가는 듯하다. 썰물은 섬과 섬이 연결되는 시간이다. 딴달래도, 큰딴치도, 작은딴치도 등 작은 섬들이 연결돼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마치 또 다른 세상이 열린 듯하다. 검푸른 바다 위로는 하얀 달빛이 쏟아진다. 바다는 그 빛을 고스란히 은파로 되살려 낸다. 달빛과 바다가 어우러진 위도는 그래서 더 멋들어지다. 글 사진 부안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3) →가는 길:대원카페리와 파장금카페리가 주말과 공휴일 기준 하루 여덟 차례(07시 55분·09시 15분·10시 35분·11시 55분·13시 15분·14시 35분·15시 55분·17시 15분 출발, 10월 31일까지) 격포항과 위도 파장금항을 오간다. 평일엔 여섯 차례로 준다. 뱃삯은 어른 기준 격포 8300원, 위도 5000원. 차는 편도 1만 8000원(승용차는 쏘나타, SUV는 투싼 기준)이다. 주말에는 ‘승선 정체’가 생길 때도 있다. 승용차를 가져갈 경우 나올 때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격포항여객터미널 581-1997. 위도 내 공영버스와 택시는 각각 한 대다. 배 시간에 맞춰 운행된다. 위도버스 기사인 백은기씨는 문화관광해설사도 겸하고 있다. 010-3658-3875. →잘 곳:숙박과 음식점을 겸한 펜션들이 대부분이다. 아리울펜션(582-1655)은 살막금 언덕 위에 있다. 거륜도 너머로 빼어난 저물녘 풍경이 펼쳐진다. 위도상사화 군락지가 펜션 바로 아래 있다. 지난 2011년, ‘섬마을 연주회’ 차 들른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배우 윤정희 부부가 묵어갔다고 해서 입소문 난 집이다. 하수오백숙, 갑오징어철판구이 등 독특한 요리를 맛깔나게 낸다. 생선회도 신선하고 감국발효액상차도 맛이 깊다. 치도리 쪽에는 쉐백(584-7000) 날마펜션(583-0949)이 있다. 난바다를 향한 언덕 위에 세워져 전망이 시원하다. 음식점을 겸한 민박은 파장금항 주변에 많다.
  •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1. 서른, 잔치는 끝났나?

    [이슬기의 러브앤더시티] #1. 서른, 잔치는 끝났나?

    스무 살, 갓 상경한 꼬맹이는 십여 년 전 나온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로 연애를 배웠다. 드라마 속 ‘캐리’처럼 프라다 VIP가 된다거나, 마놀로 블라닉은 못 신고 살지만 뉴욕 맨하튼이나 서울이나 사람 사는 모양새가 별 반 다르지 않다는 것 만은 알게 되었다. 서른 즈음에 쓰는 좌충우돌 여자 이야기, ‘러브 앤 더 시티’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감히 입에 올리기도 무시무시한 시가 있다. 2005년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노처녀’ 김삼순의 나이는 30세였다.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속 여주인공 은수는 이렇게 말했었다. “스물아홉 가을, 나는 갓난아이에게 홍역 예방접종을 맞히는 엄마의 심정으로 스스로를 다독였었다. 와라! 서른살, 맞서 싸워주마. 절대 지지는 않을 테다.” 서른을 향한 무시무시한 경고는 차고도 넘친다. 그런데 서른, 정말 말처럼 잔치는 끝났나? 서른을 딱 넉 달 앞두고, ‘그것이 알고 싶었다’. ◆ 윤종신이 부릅니다. 서른 되도록 원룸에서 살지 몰랐었어~♬ 각종 단톡방과 개인톡으로, 이 달로 29.7세쯤 접어든 88둥이들에게 서른에 관한 질문들을 던져 봤다. 짜 맞춘듯 남자 다섯, 여자 다섯 딱 10명이 성실한 대답을 보내 왔고(실제로 짜맞췄다), 그 결과를 여기에 공개한다. 단 10명 조사한 것이기에 신뢰도는 낮고 표본오차는 크다. “서른이 두렵니?”라고 묻자 10명 중 5명이 ‘약간 두렵다’고 했다. 다음으로 ‘그냥 그렇다’(20%)와 ‘별로 두렵지 않다’(20%), ‘아예 두렵지 않다’(10%) 순이었다. ‘약간 두렵다’를 선택한 5명 중 3명은 “서른이 되면 무엇인가는 돼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돼 있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갖는 사회적 통념에 걸맞지 않는 자신의 미성숙을 탓한 것. 열심히살면좋은날도오겠지(女)는 “서른이면 어른으로서 자리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겨우 4개월후 내가 그런 모습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안 그럴 것 같다.”며 머리를 쥐어 뜯었다. 정작 자신은 ‘그냥 그렇다’를 선택한 핑크바트(男)는 “삼십살이 변화가 어렵거나 늦은 나이로 인식되기 때문에 지금의 상태가 서른이 되면 ‘크게 변하지 않을거다’ 혹은 ‘변하기 어렵거나 비슷한 수준에서 변할거다’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보임”이라고 자못 어른스럽게 대꾸했다. ‘미성숙’은 비단 정신만 뜻하는 것은 아니다. 더 현실적인 것은 ‘돈’이다. 5평 남짓한 신림동 원룸에 기거하는 신림동촉새(男)는 “어렸을 때는 내가 서른 되도록 원룸에서 살게 될 거란 상상조차 못했다”고 했다. 이어 “결혼을 생각해야할 나이지만 돈이 없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임”이라고 슬프게 읊조렸다. 그러나 예상외로 ‘별로 두렵지 않다’, ‘아예 두렵지 않다’는 의견들도 만만찮게 많았다. “서른이라고 뭐 별거냐 사람 사는 게 다 매한가지”. 이노키오(男)는 “22에서 23이 되는것이나 26에서 27이 되는것이나 29에서 30이 되는 것이나 똑같은 거라고 생각한다”며 “그것이 그것”이라는 의견을 펼쳤다. 서른이 두려운 이유로 “노처녀 or 노총각으로 접어드는 것 같아서”라는 의견은 1표, 나왔다. 10여년 전의 삼순이가 서글프게, 이제 더 이상 서른이 ‘노(老)’를 가름하는 잣대는 아니지 싶었다. ◆ “여자 나이 서른이면 소개팅도 잘 안들어와~” 정말? 서른에 대해 궁금한 것 한 가지. 언니들이 주구장창 말하는 “서른 되면 소개팅도 잘 안들어와. 지금 실컷해~” 다. 여자 나이 서른이 되면 정말로 소개팅이 줄어들까? 단톡방에 미끼를 던졌더니 남녀 할 것 없이 ‘덥석’ 물었다. 소개팅 뿐 아니라 확실히 서른줄의 연애에 대해 여자들은 생각이 많았다. 이전보다 ‘재고 따지고 할 것’이라는 것. “내가 맞이할 서른의 연애는 어떤 모습일 것 같나?” 라는 질문에 “다툼이 줄어들고 대신 눈치보기와 경우의 수 계산이 늘어나는 연애”(용호동류샤샤), “이십대 때 보다 재고 따지는 게 많아서 설렐 수 있을지 걱정”(얘쁜이) 등의 의견이 있었다. 반면 남자들은 서른이라는 나이의 연애에 별다른 방점을 두고 있지 않는 듯 하다. 잃어버린십년(29·男)은 “한 개인의 생물학적 연령은 관계에 있어서의 인격적 성숙도와 무관하므로 크게 변하지 않음”이라고 했다. 신림동촉새는 “씀씀이가 커져 그나마 좀 더 비싼 음식을 먹고 비싼 선물을 사줄 수는 있겠지만 모두 20대때 하던 것들의 ‘압축적 반복’”이라고 했다. 시크한 열심히살면좋은날도오겠지(29·女)는 ‘내 서른 살의 연애는 어떨 것 같나?’ 라는 질문에 “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 그래서,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들은 중 가장 흥미로웠던 서른 개론은 이것이었다. 올해 서른 하나, 내년 이면 서른 둘을 맞는 이미조녜보스인망고공쥬는 “실제로 서른은 서른 한 살부터”라는 이론을 폈다. “우리 스무살 때 생각해 보면 갓 대학생이 돼서 대학생 리듬에 적응하기 바쁘잖아. 서른에도 갓 30대가 돼서 적응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본인이 서른인 걸 자각을 못해. 31살 때부터야 자기가 서른인 걸 자기도 아는 거야.” 더이상 이립(而立)이라는 거창한 말이 수식하는 ‘서른’은 아니지만, 여전히 30대로 굴절돼 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그제나 지금이나 존재한다. 그러나 곧 ‘설은 서른’을 맞을 29세들에게 말하자면 ‘잔치는 끝났다’는 시집이 나온 것은 1994년.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이다. 그 새 평균 수명도 1995년 73.53세에서 2014년 82.40세로 무려 8.87세나(!) 늘었다. 그 시대의 서른을 지금은 8.87세를 더해서 38.87세다. 게다가 시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시인의 의도일랑 제쳐두고, 알아서 해석해보자.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新전원일기] 원주 ‘고니골’ 조영준 대표

    [新전원일기] 원주 ‘고니골’ 조영준 대표

    답답한 도시를 벗어나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는 일은 큰 즐거움이다. 우리나라 산천의 모습과 정서, 고향의 맛과 시골 사람들의 정,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일어서는 사람을 붙잡고 각종 야채들을 신문지에 싸서 둘둘 말아주던 아줌마들, 집 앞 나무에서 감이며 밤이며 바로 따서 가방에 찔러 넣어주던 이장님, 주름진 손을 흔들며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던 촌부와 노모의 모습, 반가운 손님 왔다며 온 동네 사람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돼지 잡아 잔치 벌인 일 등. 나에게 각인된 농촌은 그런 구수한 정이고 따뜻한 마음이며 흐뭇한 기억이다. 그래서일까. 흙을 만지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스스럼없이 다가가진다. 마치 몇 번 만난 사람처럼 인사를 나누게 된다. 자연과 마주하고, 그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들은 정직하고 진실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이번에도 예외는 없었다. # 친환경 무농약 뽕… 잠든 양잠산업 깨우다 강원 원주시 고산리에 위치한 고니골 농장은 옛 지명 ‘곤의골’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곤의골 마을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천주교 교우 가족들이 피신해 정착한 곳으로 ‘곤란을 당했지만 의롭게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저는 곤의골에서 태어나서 쭉 이곳에서 자랐어요. 농장 이름을 ‘고니골’로 붙인 것도 그 이유에서죠. ‘곤의골’ 발음이 어려워서 소리가 나는 대로 상호를 바꿨더니 ‘고니’라는 새를 키우는 곳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들 때문에 처음 3년은 답변하느라 고생했어요. 하하하” 울림이 좋은 목소리를 가진 조영준(57) 대표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10만평 규모의 고니골 농장은 국내 유일의 양잠테마단지로 120년 동안 4대째 양잠을 지켜온 가족 기업이다. 4대째 가업을 잇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게다가 양잠은 한때 사양길에 접어들어 꽤 오랜 시간 주춤했던 농업 아닌가. 하지만 조 대표는 단 한번도 자신의 길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버지 일을 도와서 할 때도 농사일이 힘들다거나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농부가 내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아요.” 고니골 농장은 3만평 규모의 친환경 무농약 인증 뽕나무를 재배하고 누에가루, 누에환, 누에 비누, 뽕잎환, 뽕잎차, 뽕잎나물, 뽕잎진액, 뽕잎비누, 오디잼, 오디진액 등 다양한 가공식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6차 산업을 수백년 전부터 했다고 봐야 해요. 자, 보세요. 콩을 심으면 1차 산업이죠. 메주를 쑤어서 장을 담그면 2차 산업이고, 그걸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으면 3차 산업이에요. 단지 기존에 있는 걸 끄집어내서 특정한 이름을 붙여주질 못했던 것뿐이에요.” 백번 맞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그도 1995년에 시작한 ‘뽕잎음식 무료 시식회’로 이미 오래전에 6차 산업에 발을 디딘 셈이다. 그렇게 출발한 무료 시식회는 ‘고니골 농장 고객 만남의 날’이라는 좀 더 멋진 타이틀을 달고 매년 7월 넷째 주 토요일에 열린다. 올해로 벌써 27번째 생일을 맞았다. 남녀노소 누구나 누에와 뽕잎으로 만든 다양한 음식을 무료로 먹으며 건강한 맛을 즐기고 누에, 고치, 뽕잎을 직접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다. “처음에는 농장을 알리기 위해서 재미로 시작한 일이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1년에 한번씩 고객을 초청해서 정성껏 대접하는 것만큼 좋은 홍보 전략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에요.” 이 행사 덕에 고니골 농장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향토산업 육성 사업으로 30억원을 지원받아 지금의 양잠테마단지로 거듭 태어날 수 있었다. 조 대표는 지역에 흩어져 있던 13개의 양잠 농가를 모아서 법인을 만들었다. 사라져 가는 양잠산업을 살리고 지역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셈이다. # 누에도 사람도 뽕잎을, 자연을 만끽하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뽕 따러 가셔야죠.” 조 대표가 건네준 시원한 뽕뿌리 달인 물을 한 입에 털어 마시고 따라나섰다. 뽕밭으로 가는 길에 나의 눈을 잡아끈 것은 수령이 120년 된 할배 뽕나무였다. 이곳에 있는 뽕나무 중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나무로 농장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상징이라고 한다. 마치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1982년에 심기 시작했다는 뽕밭은 녹차 밭처럼 고랑을 사이에 두고 정갈하게 심겨 있었다. 이제 녀석들은 누에들이 도착하면 영양 가득한 최고의 식사거리가 될 것이다. 5월 중순과 8월 중순, 1년에 두 번 개미누에 160만 마리가 고니골 농장에 들어온다. 누에는 워낙 예민해서 밥 끓이는 냄새, 찌개 냄새조차도 심하면 금세 죽어 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농장에 강아지는 고사하고 병아리 한 마리도 키우지 않는다. 누에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누에가 잠을 네 번 자고 5령기에 접어들면 하루에 먹어치우는 뽕잎 양이 어마어마하다. 160만 마리가 하루에 먹어 치우는 뽕잎의 양이 대략 2t 정도가 된다. 2000평의 뽕밭을 이틀에 끝내는 꼴이다. 누에의 식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배꼽시계’가 정오를 알렸다. 조 대표는 농장 안에 있는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100여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식당은 농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다 함께 식사하는 곳이다. 음식은 자연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했다. 최근 10년간 먹은 적이 없는 뽕잎 나물은 맛이 기가 막혔다. 뽕잎을 넣고 삶았다는 돼지고기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고기를 삶을 때 뽕잎을 넣으면 고기가 부드러워지고 기름 성분을 제거해 줘요. 뽕잎이 지방을 분해하는 역할을 하거든요. 게다가 고기 맛도 한결 더 살려주죠. 그거 아세요. 원주의 대표 음식이 뽕잎황태밥이에요. 아, 그걸 맛보셔야 하는데” 뽕나무는 잎부터, 가지, 뿌리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는 효자 작물이다. 뽕잎은 가루와 환과 나물로, 가지는 밥, 국, 찌개를 만들 때 함께 넣어 끓이면 음식의 맛을 더욱 살려주며, 뿌리는 달여 마시면 잇몸 염증에 효능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조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뽕잎으로 친환경 인증을 받아낸 장본인이다. 사람들에게 뽕잎을 야채로 인지시키고 좀 더 쉽게 식탁에 올릴 수 있도록 건조 뽕잎나물과 냉동 뽕잎나물을 만들어 한 살림에 납품하고 있다. 물론 뽕잎과 누에로 만든 가공식품도 함께 말이다. # 옥수수 밭에서도 살아남은 뽕… 희망을 배우다 1960~70년대 중반 전성기를 누리던 양잠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자 친구들도 하나둘씩 고향을 떠났다. 누에를 키우던 농가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뽕나무를 캐내 버리고 돈이 되는 특용 작물로 옮겨 갔다. 하지만 아버지와 형은 도리어 2만 그루의 뽕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모두가 등을 돌리는 사양산업을 끌고 간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조 대표가 군대를 제대한 후 먼저 한 일은 형이 심어놓은 2만 그루의 뽕나무를 도끼로 찍어내는 일이었다. 결국 현실 앞에 가업의 의지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형이 고향을 떠나고 뽕나무 2만 그루를 심느라 떠안은 빚은 고스란히 조 대표의 몫이 되었다. 한겨울인데다 산골짜기다 보니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낼 수도 없었다. 아버지와 조 대표 는 단둘이서 2만 그루나 되는 뽕나무를 도끼로 모두 베어 불태워 버렸다. 베어내고 남은 뿌리에는 제초제를 뿌렸다. 뿌리까지 모두 죽였으니 3대를 지켜온 뽕나무와는 이젠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연이 선물한 생명의 힘은 강했다. 그 이듬해 봄이 되니,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뽕나무 뿌리에서 싹이 올라온 것이다. 그는 또다시 제초제를 뿌렸다. 싹이 또 올라오면 또다시 제초제 뿌리기를 수차례. 그리고는 고랑마다 옥수수를 심었다. 뽕나무를 키우던 3만평 땅에도 콩, 팥 등 잡곡농사를 지었다. 뽕나무는 마음에서 아예 지워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그를 불렀다. “영준아, 옥수수 밭으로 올라오너라.” 조 대표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옥수수를 심은 밭인데 어느새 자란 뽕나무가 옥수수보다 더 높이 자라 있는 게 아닌가. “보통 옥수수가 2m 50㎝ 정도 자라거든요. 그런데 뽕나무가 햇빛을 보려고 살기 위해 뚫고 올라온 거죠. 옥수수를 수확하고 나니까 완전히 뽕밭인 거예요. 예전보다 더 튼튼하게 올라왔더라고요. 그 생명력에 감동을 받았죠. 그렇게 자연으로부터 배웠어요. 자신과 싸워 이기는 방법에 대해서.” 사람 사이에 인연이 있듯이, 조 대표와 뽕나무는 어쩌면 숙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뽕나무에서 배운 강인한 생명력이 그의 마음을 돌아서게 한 것이다. 때마침 잡곡농사 때문에 농약 중독증에 걸린 그에게 농약을 멀리해야 하는 양잠만큼 적합한 농사는 없었다. 그때부터 그는 본격적인 양잠산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했다. 이제 고니골 농장은 연간 2만명 이상이 찾아오는 즐거운 테마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생산, 가공, 유통, 체험으로 발생하는 연간 매출이 4억원이나 된다. 오랜 시간 그 어떤 반대와 시련에도 포기하지 않고 뽕나무밭을 지켜온 조 대표의 한결같은 의지 때문이리라. # LED 400만개 ‘빛의 나라’… 미래를 가꾸다 고니골 농장에 어둠이 깔리면 생명의 숲은 ‘빛의 나라’로 변신한다. 지난해 처음 시도한 불빛 축제가 성공의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가져왔다. 조 대표는 10만평에 400만개의 각종 발광다이오드(LED)와 대형 조형물, 그리고 레이저를 설치해 겨울밤 내내 환상적인 야경을 선사했다. 끊임없이 새로운 체험을 만들어 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조 대표의 도전정신이 또 한번의 홈런을 날린 것이다. “‘겨울에도 우리 농장을 찾게 할 수 없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됐어요. 그래서 조사를 했는데 겨울에 빛 축제를 하는 곳이 없는 거예요. 그래 이거다. 제대로 한번 해 보자 결심하게 된 거죠.” 마을 입구부터 시작되는 1만 송이 LED 장미길부터, 100m 사랑의 터널, 은하수처럼 빛나는 뽕나무 밭은 사람들을 또 다른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산골짜기에서 마을 사람들의 일자리를 걱정하던 17살 소년은 이제 원주를 대표하는 체험테마단지의 수장이 됐다. 고니골 농장의 빛 축제도 지역을 빛내는 겨울철 대표 축제가 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올겨울, LED 빛으로 물들 고니골 농장의 모습이 궁금하다. 따뜻한 뽕잎 차 한 잔과 함께 그 불빛들을 바라보며 마음에도 따뜻한 불이 켜질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글쓴이 방송작가 한정원 ‘6시 내고향’, ‘생방송 투데이’, ‘주주클럽’, ‘TV내무반 신고합니다’, ‘기분 좋은 날’, ‘여유만만’ 등 다수의 TV 프로그램 참여. ‘지식인의 서재’, ‘CEO의 서재’, ‘명사들의 문장강화’, ‘명인명촌’ 등 출간.
  • [新전원일기] 연매출 24억 수출 효자… 쌀빵, 히트다 히트

    [新전원일기] 연매출 24억 수출 효자… 쌀빵, 히트다 히트

    아버지라는 이름은 냄새로 온다. 시큼하고 눅눅하고 그러면서도 따뜻하고 구수한 냄새. 새벽 별 같기도 하고 노을 같기도 한 냄새. 아버지의 등에 코를 묻고 있으면 냄새가 나를 둘러싸 그 세계 속에서 언제까지나 안전하리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가족을 업고 사느라 아버지의 등은 굽고 작아졌지만 냄새는 여전하다. 나는 여전히 아버지의 등에 코를 묻고, 냄새를 들이마시고, 고달픔을 위로받는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라앉고 세상이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이 있다면 아버지의 냄새일 것이다. 또 하나 있다. 빵 냄새. 길을 걸을 때 어디에선가 빵 굽는 냄새가 흘러나오면 저절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냄새만으로도 입안에 가득 침이 고이고 시장기가 돈다. 하얀 반죽이 화덕 속에서 서서히 부풀어 오르며 갈색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냥 지나치기란 어렵다. 단순히 식욕을 자극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냄새에 배어 있는 것들 때문이다. 온기와 온정과 향수 같은 것들 말이다. #‘글루텐 알레르기’는 이제 안녕 빵은 간식으로서도 그렇지만 식사 대용으로도 훌륭하다. 여러 가지 토핑을 얹어 근사한 식사를 마련할 수 있고, 계란 프라이 하나만 끼워 넣어도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종류가 많아서인지 몰라도 빵을 싫어한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안타까운 것은 밀가루에 들어 있는 글루텐 성분으로 인해 빵을 먹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 글루텐은 보리나 밀 등에 함유된 불용성 단백질로 몇 가지 단백질이 혼합된 것이다. 글루텐이 갖고 있는 끈기로 인해 빵의 점성을 유지할 수 있고 식감과 맛이 향상되기도 하는데,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소화 장애나 피부 질환 등을 유발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특히 아토피 피부염 환자에게 글루텐은 독이나 마찬가지다.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도 빵은 그림 속의 떡일 뿐이다. “몇 해 전에 스캇 존슨이라는 16세 소년이 과민성 쇼크로 사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고 3일을 넘기지 못했는데, 알고 보니 유제품이 들어간 팬케이크 때문이었어요. 유제품이 첨가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먹었다는데 판매하는 분이 실수를 했던 거지요. 유제품도 그렇고 글루텐도 그렇고 단순히 몸에 이상을 가져올 뿐 아니라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위험도 있습니다.” 이은창(51) 쁘띠아미 대표가 순수 쌀빵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은 소화장애나 피부질환을 걱정하지 않고 모두가 빵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쌀에 관한 한 자신이 있었다. 정보기술(IT) 업체를 운영하다가 30대에 뇌경색으로 일을 놓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쌀눈이 남아 있는 쌀을 꾸준히 먹고부터 뇌경색 증세가 호전된 것이다. 그때부터 이 대표는 쌀에 몰두했다.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발표된 논문을 찾아가며 쌀에 대해 공부했고 3년의 연구 끝에 쌀눈을 남겨두는 도정 기계까지 개발했다. 쌀눈에는 비타민, 미네랄, 아미노산 등 우리 몸에 필요한 5대 영양소가 다량으로 함유돼 있다. 또한 가바(GABA) 성분과 비타민 B1, B2, B6, 옥사코사놀, 알파토코페롤, 감마오리자놀, 리놀렌산, 베타시스테롤, 라이신 등이 들어 있어 항암 효과, 항산화 기능, 면역기능 향상, 콜레스테롤 감소, 노화 방지, 치매 예방 등에 효과적이다. 글루텐과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도 쌀빵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결정했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니 난감했다. 빵이라고는 만들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빵을, 그것도 쌀빵을 만든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본인 스스로도 의구심이 들었다. 시중에 쌀빵이 나와 있기는 했지만 글루텐을 15% 이상 함유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글루텐 없이 빵을 만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2008년부터 1년여에 걸쳐 전국의 제빵장과 기능장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지만 원하는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09년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졌다. 이 대표가 운영하던 쌀 동호회 회원 중 하나가 이 대표를 찾아왔던 것이다. 그는 쌀가루만으로 쌀빵을 만들어 보이겠다고 장담했다. 처음에는 코웃음 쳤다. 내로라하는 기능장들도 실패한 것을 아마추어가 성공시킬 수 있으리라고는 아무래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몸집도 작고 나이도 어려 보였는데 눈빛만은 거침이 없고 생생했다.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대책 없이 믿고 싶어지게 만드는 눈빛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그에게 쌀가루를 건넸다. 그리고 다음날 그가 쌀빵을 들고 나타났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걸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 이 대표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다시 만들어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그때부터 이 대표의 ‘프러포즈’가 시작됐다. 그리고 일주일에 3번, 1년의 구애 끝에 그가 손을 들었다. 이 대표의 삼고초려에 백기를 든 이가 바로 지금의 공동 대표 최지연(32·여)씨다. #최고품종 쌀과 천연 재료와의 만남 쁘띠아미의 쌀빵이라고 하면 ‘100% 쌀빵’, ‘글루텐프리(free)’, ‘건강’ 등 단어가 떠오른다. 쁘띠아미의 쌀빵 외에도 시중에 유통되는 것들이 많지만 쁘띠아미 쌀빵은 뭔가 다르다. 다른 업체에서는 일반미와 4~5년 묵은 정부미를 사용하는 데 비해 쁘띠아미에서는 ‘삼광’이라는 최고품종 쌀과 햅쌀만을 사용해 빵을 만든다. 가공용이 아니라 밥상용 쌀을 사용하는 것도, 글루텐을 전혀 첨가하지 않는 것도 쁘띠아미의 자랑이다. 당연히 가격이 두 배 넘게 차이가 나지만 쁘띠아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를 고수하고 있다. 쌀 외에도 식품첨가물 대신 천연 재료를 사용해 ‘웰빙 건강빵’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빵에 들어가는 재료에만 신경을 쓰는 건 아닙니다. 정기적으로 제품 영양 성분과 자가 품질을 검사하고 있는데, 그 비용 또한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거기다 저희는 제약회사용 제분기를 사용하고 있거든요. 제분할 때 온도가 높아지면 맛이 떨어지고, 가루도 될수록 미세하게 제분해야 하니까요. 당연히 제품 단가가 오를 수밖에 없지만 고객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요.”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별도의 마케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아이가 아무런 탈 없이 빵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유일하게 걱정 안 하고 먹을 수 있는 건 쁘띠아미 쌀빵뿐이에요”. 부모들의 바람이 모이고 쁘띠아미 덕에 그 바람이 이뤄졌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지방은 물론이고 해외에서까지 주문이 들어온다. 초기 연 매출 1억원에서 불과 6년 만에 24억원 정도로 증가했다. 경기 남양주에 위치한 쁘띠아미 본사와 공장 외에, 수원과 성남에도 매장을 확장하는 등 몸집도 제법 커졌다. “성남 매장에는 쌀빵 체험장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원하는 재료를 이용해 자신의 손으로 직접 빵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거든요. 똑같은 재료로, 똑같은 빵을 만들었는데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이에요. 빵을 만드는 데도 저마다의 개성이 반영된다고나 할까요. 재미있는 건 연인들은 주로 하트 모양의 빵을 만든다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그들의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오래도록 행복했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사랑을 듬뿍 담아 만든 빵이 그 가교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 체험장 만든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 건강에 아무리 좋다고 해도 맛이 없으면 쌀빵을 찾는 사람들도 줄어들 게 뻔하다. 그런데 쁘띠아미의 쌀빵은 글루텐프리임에도 불구하고 밀가루빵의 식감과 맛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쫀득쫀득하고 고소하다. 달기도 하다. 자극적인 단맛이 아니라 입안으로 은은하게 퍼지는 단맛이다. 아버지의 냄새처럼 그윽하고 고소하고 아늑하다. 가족을 등에 업고 일평생 묵묵하게 살아온 아버지처럼, 내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빵을 만들어서일까. #해외로 수출하는 쌀빵 지난 4월 6일 농촌진흥청에서 기술지원본부를 출범시키는 자리에 쁘띠아미도 함께했다. 정부에서 프리미엄 쌀 가공식품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글로벌 농식품 수출 효자 품목으로 지정해 해외에 적극 홍보하는 자리였다. 입소문을 타고 쁘띠아미 쌀빵의 우수성이 알려지자 정부도 농업의 ‘6차 산업’ 성공 사례로 주목했던 것이다. 이후 미국과 중국, 일본에서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밥보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추세이고, 쌀빵과 관련해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쁘띠아미처럼 100% 글루텐프리 빵을 만들지는 못한다. 당연히 글루텐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 쁘띠아미의 쌀빵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미 쁘띠아미의 흑미식빵이 일본에 진출한 상태이고 미국과는 수출 협약이 진행되고 있다. 조만간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 현지에서도 쁘띠아미의 쌀빵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알레르기 없는 아이스크림 출시 현대인은 스트레스를 피해 갈 수 없다. 다만 운동이나 음악 감상, 야외 활동 등 각자의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밖에. 그중에서 가장 손쉽고 즐거운 일 중 하나가 단 음식을 섭취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단 음식 하면 아이스크림을 빼놓을 수 없다. 당신이 만약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떨까. 스트레스에 하나를 더 얹는 셈이 되지나 않을까. 특히나 어린 아이의 경우 아이스크림을 먹지 못한다는 것은 삶의 즐거움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일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쁘띠아미는 유제품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지난해 초부터 쌀아이스크림을 출시했다. 현재 플레인 아이스크림부터 시작해 초콜릿, 오렌지, 체리, 흑미, 블루베리 등 12종이 출시된 상태다. 물론 쁘띠아미 아이스크림에는 주재료 외에 우유와 계란, 설탕과 식품첨가물이 전혀 함유돼 있지 않다. 새삼 먹거리의 중요성을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먹거리를 단지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쁘띠아미의 한길 행보가 무척 반갑다. 아버지처럼 묵묵하게, 가족을 아끼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내내 한길을 걸어갈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글쓴이 소설가 진연주 200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방’(房)으로 등단. 2015년 ㈜문학동네에서 장편소설 ‘코케인’ 출간.
  • 日여행 마니아들이 도쿄나 오사카보다 더 손꼽는 힐링 여행지는?

    日여행 마니아들이 도쿄나 오사카보다 더 손꼽는 힐링 여행지는?

    여름 휴가 시즌에 다음 달 추석 황금 연휴까지 이어지면서 인천공항과 여행사는 연일 호황을 맞고 있다. 유난히 무더운 한국의 찜통 더위도 피하고 업무와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휴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빌어 해외로 떠나는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 테러 위협 등 국외 정세가 어지러운 탓에 비교적 가까운 곳을 택하는 여행객이 늘면서 온천, 맛있는 음식, 다양한 축제 등 즐길 거리가 풍성한 일본 여행 문의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도쿄나 오사카보다 조용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으면서도 관광, 휴식까지 알찬 여행이 가능한 사가현은 예전부터 여행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힐링 여행지로 손꼽힌다. 인천공항에서 티웨이항공 직항을 이용하면 1시간 20분이면 닿는 거리여서 주말을 이용해 방문하기도 부담스럽지 않다. 그 중에서도 지난 4월 12일 첫 운행을 시작한 ‘사가공항 투어버스’는 렌터카나 리무진 택시에 비해 저렴하면서도 JR패스보다 편리해 한국인 이용객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다. 특히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운행돼 맞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사가공항 투어버스는 티웨이항공 직항 운항일인 화·금·일요일(2016년 8월 기준)에 이용할 수 있으며 편도 비용은 5000원, 왕복 비용은 8000원이다. 단, 100% 사전 예약제로 운행하기 때문에 하나투어, 모두투어, 여행박사, 인터파크투어, 온라인투어, 내일투어, 료칸클럽, 이오스여행사, 큐슈로, 엔타비 글로벌 등 주요 여행사를 통해 미리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또한 사가현은 여행자들의 편의를 돕고 의사소통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관광 애플리케이션인 ‘DOGANSHITATO’와 24시간 한국어 지원이 가능한 콜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DOGANSHITATO’는 사가현 내 관광지와 숙박시설 정보, 먹을 거리 안내, 온천, 쇼핑 정보는 물론 GPS 정보를 기반으로 한 가까운 와이파이존, 환전소, ATM 검색도 가능해 여행 중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 중국어, 타이어 등을 지원하는 24시간 콜센터를 통하면 쉽고 빠르게 통역과 교통정보 안내, 관광 안내 등을 받을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다이어트를 응원합니다 …사진으로 보는 100㎉ 음식들

    다이어트를 응원합니다 …사진으로 보는 100㎉ 음식들

    체중 조절을 위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 중 하나는 한 번에 섭취하는 칼로리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하지만 음식을 육안으로 보는 것만으로 정확한 칼로리를 짐작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음식 전문채널 ‘푸드 네트워크’가 100㎉에 해당하는 음식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사진들을 온라인으로 공개해 눈길을 끈다. 음식의 종류에 따라 100㎉를 만족하는 양은 크게 다르다. 체다치즈의 경우 단 두 조각만으로 100㎉에 달하지만 라즈베리는 말 그대로 100개를 먹어야 같은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다. 생각보다 칼로리가 적은 음식들도 있다. 소금이 첨가되지 않은 프레첼의 경우 100㎉ 만큼 섭취하려면 21개를 먹어야 한다. 반대로 마늘은 칼로리가 적을 것 같지만 프레첼과 유사하게 22개를 먹으면 100㎉를 채우게 된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냉장고에 절대로 넣으면 안 되는 음식을 아시나요?

    냉장고에 절대로 넣으면 안 되는 음식을 아시나요?

    기온이 높아지는 여름철에는 음식이 상하기 쉽다. 제대로 냉장고에 보관하지 않으면 식중독에 걸릴 수도 있다. 그런 만큼 식품은 항상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하지만, 그중에는 냉장고에 넣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최근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냉장고에 절대로 넣으면 안 되는 음식’을 소개했다. 날이 더워지면 ‘음식을 최대한 신선하게 유지하겠다’는 생각에 뭐든지 냉장고에 넣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음식을 차갑게 하는 것과 신선함을 유지하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예를 들어, 아보카도와 토마토, 멜론, 케이크(일부 제외), 꿀 등은 냉장고보다 찬장에 두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또한 그중에는 커피 가루와 양파처럼 냉장고에 넣으면 다른 음식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다. 더워지면 냉장고에 음식과 음료를 너무 많이 보관하는 경향이 있지만 식품에 따라 실온에 뒀을 때 수명이 더 길어진다. 다음은 미국의 유명 소비자 정보 조사기관 겸 잡지인 ‘굿 하우스키핑 인스티튜트’가 공개한 ‘냉장고에 넣지 말아야 할 음식 9가지’로, 그에 관한 적절한 보관 방법을 소개한다. 1. 빵=냉장고에 넣으면 건조가 빨라진다. 구매할 때 받은 전용 비닐 포장 채로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보관하라. 단 냉장고에 보관해야 하는 것도 있으니 주의하라. 2. 양파=냉장고에 넣어두면 그 냄새로 다른 음식이 상하게 된다. 건조하고 통풍이 잘되는 어두운 곳에 보관한다. 3. 마늘=습기를 흡수해 물컹물컹해지고 싹이 나거나 곰팡이가 생기기 쉬우니 건조하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보관한다. 4. 아보카도=조기 숙성을 피하려면 밀봉하지 않은 갈색 봉투에 넣어둔다. 빨리 숙성하려면 과일용 그릇에 바나나와 함께 보관한다. 5. 토마토=차게 하면 차게 할수록 토마토 본래의 맛을 잃고 만다. 최고의 맛을 즐기기 위해서는 실온에서 보관하는 것이 좋다. 6. 꿀=그대로 둬도 품질이 떨어지지 않으므로 찬장에 넣어두면 된다. 7. 케이크=크림으로 만든 케이크를 제외하고는 밀폐 용기에 넣어둬도 변하지 않는다. 8. 멜론=자르지 않은 것은 냉장고에 넣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자른 것이라면, 랩에 싸서 냉장고에 보관하라. 9. 커피=냉장 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커피는 냉장고 안의 음식 냄새를 흡수해 버린다. 따라서 밀폐 용기에 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음식 재료도 그에 맞는 보관 방법과 장소가 있다. 앞서 말한 식품 9가지가 냉장고 안에 있다면 가능한 한 빨리 보관 방법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진=굿 하우스키핑 인스티튜트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막국수, 향토 음식에서 국민메뉴로

    [김석동의 한끼 식사 행복] 막국수, 향토 음식에서 국민메뉴로

    막국수는 메밀이 많이 나는 강원도의 향토 음식이다. 원래는 메밀가루를 반죽하여 칼국수처럼 얇게 밀고 칼로 썰어 면을 만들어서 끓는 물에 삶은 후 식힌 다음 김치 국물에 말아 먹거나 매운 양념장에 비벼 먹었던 음식이다. 지금은 메밀가루에 밀가루나 전분 등을 섞어서 반죽한 후에 기계 국수틀에서 눌러 뽑아 사리를 만들기 때문에 예전보다는 더 쫄깃한 면발을 즐길 수 있다. 면 위에 양념을 더하고 지역 특성에 따라 김치, 오이, 삶은 계란, 가자미, 명태, 닭고기, 김, 깨 등 다양한 고명을 얹는다. 국물은 동치미 국물 또는 소뼈, 멸치 등으로 고아낸 육수를 사용하거나 섞어 쓰기도 한다. 그대로 먹으면 비빔막국수, 육수를 부으면 물막국수가 된다. 막국수를 주 메뉴로 하면서 면을 만드는 국수틀이 있으면 대체로 기본에 충실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집이다. 그래도 굳이 더 맛을 따진다면 이름난 집들이 있다. 막국수 하면 춘천 막국수가 떠오를 정도로 막국수의 역사는 강원도 일대에서 시작되었다. ‘샘밭 막국수’는 춘천의 3대 막국수집으로 꼽히는 막국수계 원조 명가 중 하나로 3대가 46년째 이어 오고 있다. 메밀을 많이 쓰고 전분이 아닌 곡식을 섞어 메밀향이 좋다. 여기에 열무김치를 곁들이면 시원하게 한 끼를 즐길 수 있다. 사골을 우려내어 동치미 국물과 섞은 육수가 일품으로, 그 맛을 못 잊어 그쪽으로 갈 일이 있을 때는 조금 돌더라도 들렀던 집이다. 멀리서 오는 단골손님이라고 해서 기념으로 막국수 대접을 선물 받은 적도 있다. 서울에도 진출해서 서초동에 지인이 경영하는 ‘샘밭 막국수’가 등장했다. 춘천 막국수집의 할머니가 재료를 갖고 직접 다니면서 맛을 지도했다고 한다. 을지로4가역 좁은 골목 안쪽에 또 다른 막국수 명가 ‘춘천산골막국수’가 자리잡고 있다. 1952년 춘천에서 개업해서 서울로 이사 왔다. 전분을 섞어 면을 쫄깃하게 뽑아 낸다. 메밀 함량을 더 높이고 싶어도 식감을 즐기는 손님들이 꺼려해 예전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고명으로 얹어 주는 매콤한 닭무침은 막국수와 궁합이 잘 맞는다. 큰 주전자에 주는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부어 먹으면 제격이다. 막국수 외에도 미리 주문해야 하는 토종닭을 비롯해 감자전, 닭무침 등 메뉴가 다양해 싸고 맛있게 손님 접대를 할 수 있다. 단, 저녁때는 엄청 왁자지껄한 분위기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서울 통인동 서촌에 ‘잘빠진메밀’이라는 자그마한 지하 막국수집이 등장해서 마니아들을 즐겁게 한다. 메밀, 물, 소금만 써서 젊은 주인(민성훈)이 직접 반죽하는 100% 메밀면을 쓴다. 메밀은 제분한 지 2주일을 넘기지 않는다. 육수는 메밀, 채소, 사골을 각각 끓여 깊은 맛을 낸다. 비법은 강원도 양양의 유명한 막국수집에서 사장이 직접 배워 왔다고 한다. 이제 내공 있는 막국수집들이 동네마다 생겨나고 있다. 막국수의 고유한 풍미를 보여 주고 있는 서민 식당들이 전국 곳곳에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덧 막국수는 강원도 향토 음식에서 한국인이 즐겨 찾는 대표 음식의 하나가 됐다.
  • [新국토기행] 천년 역사 품은 ‘호남의 한양’… 나주, 古都의 낭만 흐른다

    [新국토기행] 천년 역사 품은 ‘호남의 한양’… 나주, 古都의 낭만 흐른다

    전남 나주시는 우리나라 4대 강의 하나인 영산강이 시가지를 관통하고, 광주 산업권의 근교로 목포, 함평, 무안, 영암, 강진, 해남군 등 10개 시·군의 관문인 교통의 중심지다. 국난을 극복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선열이 많이 배출됐다. 임진왜란 의병장 김천일 선생과 조선의 석학 신숙주의 태생지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로 유명하다. 고려의 건국에도 토대 역할을 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의 부인은 나주 출신 오씨가문의 딸로 그가 낳은 아들은 2대왕 혜종이다. 왕건은 나주 오씨 세력과 손을 잡고부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나주는 전국 12개 주요도시에 목이 생길 때 나주목이 돼 구한말까지 1000여년 동안 큰 도시의 지위를 이어갔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천년목사 고을’로 불린다. 전라도 명칭이 ‘전주’와 ‘나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유래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의 향기와 자연의 감동이 살아 숨 쉬는 ‘호남의 천년고도’로 알려졌다. 나주는 영산강 고대문화의 중심지로 풍요한 맛과 멋, 여유를 주는 고장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도시의 지세가 한양과 비슷하다고 적었던 나주는 당시 한양 구경하기가 힘든 전라도 백성들에게 ‘나주읍성에 가면 한양 갔다 온 것과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은 서울’로 불렸다. 이 같은 역사문화도시인 나주는 금천·산포면 일대에 한국전력공사 등 14개 공공기관이 들어선 ‘빛가람 혁신도시’가 건설돼 호남권 중심도시로 재도약한다. 서울 용산역에서 나주역까지 KTX로 1시간 30분 정도 걸려 수도권 등지 관광객들이 역사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가족 단위로 부담 없이 찾아온다. >>볼거리 ●영산강 추억 실은 ‘황포돛배’ 황포돛배는 바닷물이 영산강 물길을 따라 오르내리던 시절 과거 영산강 물길을 이용해 쌀, 소금, 미역, 홍어 등 생필품을 실어 나르던 황토로 물들인 돛을 단 배를 말한다. 영산강 황포돛배는 육로교통이 발달한 데다 1976년 상류에 댐이 들어서고 영산강 하굿둑이 만들어지자 1977년 마지막 배가 떠난 후 자취를 감췄다. 2008년 30여년 만에 웅장하고 위엄 있는 옛 모습 그대로 부활한 황포돛배는 추억을 싣고 영산강을 오르내린다. 영산강변을 따라 자연경관을 보면서 물살을 가르는 황포돛배 체험은 자연이 주는 큰 선물이다. 옛 목선을 그대로 재현한 빛가람 1호와 2호, 한옥 지붕이 멋스러운 나주호, 발굴된 고려시대 배 조각을 복원해 놓은 왕건호, 빠르게 물살을 가르는 영산강호까지 황포돛배 투어가 풍성하다. 영산강 비단 물결을 따라 유람하는 황포돛배투어는 나주 여행의 백미다. 영산강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돛배를 타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의 해설사가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놓고 미끄러지듯 배는 강을 거슬러 오르며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좋은 일 생기는 한옥 체험 ‘목사내아’ 나주목은 전남도를 관할하는 중심고을이었다. 전라도 최고의 곡창지대인 나주 일대를 관장하는 나주목사 자리는 조정의 정3품 당상관이 맡던 고위직이었다. 10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목사가 한양에서 나주로 내려왔다. 고려와 조선시대 때 나주목사로 내려온 중앙관리가 살던 살림집이 나주목사내아다. 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사람이 살지 않으면서 훼손되자 한옥체험 공간으로 리모델링해서 ‘금학헌’으로 이름 지었고 명소로 자리잡았다. 목사내아는 정적인 문화재에서 관광객이 직접 숙박을 통해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바뀌었다. 특히 나주목사 중에서 존경을 받았던 유석증 목사와 김성일 목사의 이름을 딴 특별한 방을 마련했는데 이곳에서 숙박을 한 뒤에는 좋은 일들이 생겨서 소원을 이루는 명당으로도 유명하다. ●체험부터 전시까지 ‘천연 염색박물관’ 나주는 예로부터 비단 직조 기술과 쪽 염색이 발달한 곳으로 오늘날에도 샛골나이와 염색장이라는 인간문화재가 활동하는 천연염색 문화의 중심지다. 영산강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리적 환경 덕에 쪽과 뽕나무를 재배하기에 좋았던 게 큰 이유다. 이러한 장점을 최대한 살려 건립한 천연염색 문화관은 다양한 전시와 교육, 염색 체험을 통해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계승 발전하고자 노력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천연염색 문화를 알 수 있는 장소다. 200명이 동시에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체험관과 세미나실, 연구실 등을 갖췄다. 어린이 등 가족 단위 체험을 위한 상설 체험장을 운영, 천연염색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천연염색 상품을 전시, 판매하는 공방도 있다. ●고대왕국 반남고분군·복암리 고분군 반남고분군은 나주시 반남군 자미산(98m)을 중심으로 낮은 구릉지에 산재해 있다. 신촌리 8호분, 덕산리 14호분, 대안리 12호분 등 총 34호분으로 이뤄졌다. 이곳에는 대형 옹관고분 수십 기가 분포한다. 대형 옹관고분이란 지상에 분구를 쌓고 분구 속에 시신을 안치한 커다란 옹(항아리)을 매장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고구려의 적석총, 백제의 석실분,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의 석곽묘 등과 구별되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회의 독특한 고분 양식이다. 대형 옹관고분은 기원전 3세기부터 6세기까지 4세기 동안 영산강 유역에서 크게 유행했다. 3세기쯤에는 옹관 절반을 지하에 묻는 반지하식이었으나 4세기 중반부터는 지상식으로 발전하며 이때에는 분구의 규모가 훨씬 대형화돼 그 규모가 40~50m에 이른다. 또 1996년 인근에서 발견된 총 4기의 복암리 고분군도 신비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복암리 고분군 중 제일 큰 3호분은 도굴을 당하지 않아 금동신발, 은제장식, 환두대도 등의 유물이 나왔다. 40여기의 다양한 묘가 한 봉분 안에 촘촘히 조성돼 일명 아파트 고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반남면 고분로에 세워진 국립나주박물관은 신촌리 9호분 금동관을 비롯해 출토된 유물 1500여점을 전시한다. ●드라마 ‘주몽’의 감동 영상테마파크 나주시 공산면 일대 14만㎡의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나주 영상테마파크는 35억원을 투입해 특화한 영상촬영지다. 드라마 ‘주몽’ 촬영지로 유명한 이곳은 옛 고구려의 모습을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입구에 들어서면 그동안 이곳에서 촬영한 드라마 및 영화에 출연했던 송일국, 한혜진, 전광렬, 이계인, 진희경, 최정원, 정진영, 김정화, 오윤아 등 주연배우의 핸드 프린팅과 출연 사진을 배너로 표현한 ‘스타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테마파크 안에 들어가 고구려궁 맞은편에 있는 성루에 올라서면 S자로 굽이치는 영산강과 넓게 펼쳐진 다야뜰을 볼 수 있어 막혀 있는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청량감을 맛볼 수 있다. 2005년 건립 후 100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다녀갔다. 초가집으로 조성됐던 저잣거리를 너와 형태로 개조해 천연염색, 죽물, 소목, 한과, 한지, 비누, 점토공예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공방으로 조성했다. 세트장 입구에는 ‘삼족오의 비상’ 조형물과 광장이 조성됐고, 망루와 누각·성문 주변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실내 스튜디오 한쪽에는 밀레, 고흐, 뭉크, 마티스, 클림트, 신윤복, 김홍도 등 국내외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그대로 실사(實寫)한 그림을 내건 명화미술관이 있다. 규모가 방대해 테마파크를 제대로 돌아보려면 1시간 정도 걸린다. 나주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먹거리 ●맑고 담백한 국물 ‘나주곰탕’ 소뼈를 고아 낸 물에 소고기, 양지와 내장을 썰어 넣은 뒤 다시 푹 고아서 낸 국물로, 맑고 담백한 맛으로 유명하다. 윤기가 자르르한 나주쌀밥을 넣어 먹는 나주곰탕은 이제는 전 국민의 영양식으로 자리잡았다. 곰탕은 어디나 있지만 나주곰탕은 다른 지역에서 넘볼 수 없는 독특한 맛으로 유명하다. 흔히 곰탕 하면 우윳빛 뽀얀 국물을 떠올리지만 나주곰탕은 국물이 말갛다. 색깔부터 다르다. 소뼈를 우려내는 일반 곰탕과 달리 소뼈를 적게 넣고 양지나 사태 등 좋은 고기를 삶아 육수를 내 맛이 짜지 않고 개운하다. 소고기는 단백질과 양질의 지방이 풍부하며 소뼈에서 우러난 풍부한 칼슘이 성장기 아이들과 여자들의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 나주곰탕은 고기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 무, 파, 마늘 등을 많이 넣기 때문에 비타민과 무기질도 충분한 영양식이 된다. 나주답사1번지인 금성관 인근에 곰탕거리가 조성돼 있다. 하얀집, 노안곰탕, 남평할매곰탕, 제일곰탕 등 전통 있는 음식점이 많이 있다. ●임금님 진상품 ‘나주배’ 나주는 배로 유명한 고장이다. 예로부터 임금께 올리는 진상품이었다는 기록(1454년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우수성을 오래전부터 인정받았다. 2400여 농가가 매년 6만여t을 생산해 1200억원의 수익을 올린다. 영산강 유역 양질의 토양과 연평균 기온 14도 내외 최적의 기후조건, 오랜 경험으로 축적된 기술로 재배해 향이 좋고 당도가 높다. 연하고 부드러우며 과즙이 많고 색깔이 고운 게 특징이다. 전국에서 배 수확이 가장 빨라 추석 제수용품으로 나주배 생산량의 절반가량이 출하된다. 이때 전국으로 유통되는 배의 대부분이 나주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인들의 입맛도 잡으면서 미국, 대만, 베트남 등지로 수출된다. 지난해 미국에 1530t이 팔렸다. ●세상만사 좋을시구 ‘영산포 홍어’ 영산포는 홍어의 고장이다. 영산포 선창가 일대에는 홍어 전문점 30여곳이 성업 중이다. 톡 쏘는 홍어에 잘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곁들이면 유명한 홍어삼합이 된다. 여기에 막걸리 한잔이면 ‘세상만사 좋을시구’가 절로 나온다. 과거에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가 영산강을 따라 올라오는 일주일간 자연 발효되면서 독특한 맛의 홍어가 됐다. 지금은 웰빙식품으로도 많이 알려진 전라도 대표 음식이다. 홍어는 홍어회와 홍어무침, 홍어찜, 홍어탕 그리고 나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홍어애보릿국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참으로 이것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 버리는 맛의 혁명이다.” 소설가 황석영이 홍어를 처음 먹어본 후 토해낸 말이다. ●미꾸라지 먹고 자란 ‘구진포 장어’ 영산포를 지나 다시면 회진마을로 가는 길목에 구진포가 있다. 구진포는 영산강 뱃길이 끊기기 전까지 사람들과 물건을 실어 나르던 나루터였다. 구진포 장어는 구진포가 번성하던 시절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포구 주변에서 잘 잡히면서 유명해졌다. 특히 구진포 장어는 미꾸라지를 먹고 자라 맛이 뛰어나고 건강에도 좋다. 장어는 민물에서 살지만 산란을 위해 바다로 나가고 부화한 장어들이 민물로 들어온다. 포구는 기능을 잃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옛맛이 그리워 구진포 장어집을 찾는다. 1940년대부터 들어선 장어 음식점들로 장어구이촌이 형성, 지금도 구진포 도로변에는 고소한 냄새가 끊이지 않는다. 나주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ICT, 농부가 되다] 육즙도 살린 야채 버거 ‘임파서블’… 지구 지속가능성 열다

    [ICT, 농부가 되다] 육즙도 살린 야채 버거 ‘임파서블’… 지구 지속가능성 열다

    미국은 인구 증가로 인한 자원 고갈 등 지구의 위기를 고민하며 스마트팜을 대안으로 여긴다. 21세기에도 지속가능한 지구 생태계를 만드는 데 스마트팜이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유럽의 스마트팜 업체들이 사람의 손길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마트팜을 연구하는 것과 달리 이곳에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점이 새로웠다. ●육류의 미래 보여주는 ‘임파서블 푸즈’ 지금 미국 뉴욕은 한인 스타 요리사 데이비드 장(39·한국 이름 장석호)이 지난달 말 선보인 ‘임파서블 버거’(impossible burger)’ 열풍이 거세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 버거를 맛보려고 맨해튼 첼시에 있는 그의 레스토랑 ‘모모푸쿠’(세계 최초 컵라면 개발자인 ‘안도 모모후쿠’에서 따온 이름) 앞에 줄을 선 시민들의 사진과 버거를 받아들고 자랑스레 먹고 있는 ‘셀카 인증샷’들이 하루에도 수백 건씩 올라온다. 현지 언론들도 맨해튼 터줏대감인 ‘셰이크쉑’(Shake Shack·일명 쉑쉑버거)과 비교하며 인기를 실감케 하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임파서블 버거는 데이비드 장이 순식물성 원료로 육류와 똑같은 맛을 내는 인조고기 업체 ‘임파서블 푸즈’(Impossible foods)와 협업해 출시한 12달러(약 1만 3000원)짜리 버거 세트다. 단순히 야채와 콩으로 고기와 비슷하게 만든 게 아니라 고기를 분자 수준까지 분석해 소고기 패티의 맛과 냄새, 핏물, 씹는 느낌, 먹는 소리까지 그대로 재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데이비드 장이 육식을 하는 사람들도 고기 대신 먹을 수 있도록 ‘피 흘리는 채식 버거’를 내놨다”고 전했다. 식물성 버거 열풍의 주역이자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농업·식품 스마트업인 ‘임파서블 푸즈’를 찾았다. 정보기술(IT) 혁신의 요람인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회사는 미국 스탠퍼드대 생화학과 교수 출신 패트릭 브라운(62)이 세운 벤처 회사다. 임파서블 버거는 이 회사가 5년 넘게 100여명의 연구자들이 총동원돼 개발한 첫 제품이다. 한국계 최고업무책임자(COO)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데이비드 리가 기자를 반갑게 맞으며 직접 버거를 만들어 줬다. 패티를 굽는 소리가 정말 실제 소고기와 똑같았다. 먹기 좋게 자른 패티를 베어 무니 맛도 일반 버거와 같았다. 우리나라에서도 판매되는 이른바 ‘콩고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리 CFO는 “햄버거는 건강과 환경에 나쁜 음식이라는 개념 자체를 바꾸려고 만든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인류는 이제 햄버거라는 최종 산물의 품질만 살펴야 하는 게 아니라 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동물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물이나 토지가 얼마나 소비되는지, 가축 사육 과정에서 온실가스 등이 얼마나 발생하는지까지 모두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현재 미국에선 임파서블 푸즈처럼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대안식품 스타트업으로 식물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닭고기를 만드는 ‘비욘드 미트’, 계란 대신 완두콩과 수수로 마요네즈와 쿠키 등을 생산하는 ‘햄튼 크릭’ 등이 각광받고 있다. ●도심 재생까지 고민하는 ‘에어로팜’ 요즘 미국 동부 지역에서 가장 주목받는 도시농업 스타트업인 ‘에어로팜’을 방문하려 뉴욕과 인접한 뉴저지주 뉴왁의 한 공업단지를 찾았다. 회사에서 알려준 주소대로 가 보니 너무도 황폐해 버려진 듯한 조그만 공장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지난 4월 영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가 직접 다녀간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스마트팜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공장 안에 들어가 보니 약 10m 높이의 실내에 7단으로 설치된 재배대에서 잎채소들이 가득 자라고 있었고 수십명의 직원들이 갓 재배한 상추 등 샐러드를 따거나 온·습도를 조절하며 활발하게 움직였다. 이 회사의 공동창업자 겸 최고마케팅경영자(CMO) 마크 오시마는 “이곳은 과거 맥주 공장과 청소년 서바이벌 게임장 등으로 이용되다 방치되던 곳”이라면서 “폐공장터 등에 스마트팜을 지어 죽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도 우리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에어로팜은 2004년 공동창업자이자 뉴요커인 데이비드 로젠버그 최고경영자(CEO)와 오시마가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도 야채를 키워 보자”며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햇빛 대신 발광다이오드(LED) 빛을 이용하고 식물의 뿌리를 물에 담가 기르는 수경재배 대신 뿌리에 영양분을 섞은 스프레이를 뿌려 키우는 방식을 처음 도입했다. 일반 노지 지배와 비교해 물 사용량을 95%까지 줄였고 연간 생산량도 70배 이상 늘렸다. 지금은 한 해 약 45~50t 정도를 생산하며 판매 가격은 소매용 박스 1개당 3.99달러(약 4400원)로 일반 제품과 같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맛을 내는 빛의 파장과 온도, 습도 등을 찾아내 수경재배의 단점인 맛이 없다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했다고 로젠버그 CEO가 자신했다.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는 각종 데이터 수치들은 에어로팜의 최고 기밀이다. 오시마 CMO는 직접 따 온 채소들을 보여 주며 기자에게 시식을 권했다. 일반 채소에 비해 풋내가 거의 없어 소스 없이 먹기에도 부담이 없었다. 그는 “뉴욕의 유명 요리사들에게 주기적으로 시식을 의뢰해 최적의 맛을 찾아낸다”면서 “비빔밥으로 유명한 뉴욕의 유명 한식당들도 우리의 주요 고객”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버려진 땅에 공장을 짓는 정책은 계속될 것”이라면서 “채소를 따는 단순 노무직에서부터 공장 운영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아이비리그 출신 엔지니어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일자리가 동시에 만들어지는 것도 스마트팜의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글 사진 뉴왁·실리콘밸리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남산 유린한 日 흔적·실향민 삶 담긴 해방촌, 근대부터 해방후까지… 겹겹이 쌓여 온 역사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남산 유린한 日 흔적·실향민 삶 담긴 해방촌, 근대부터 해방후까지… 겹겹이 쌓여 온 역사

    서울시 전역에는 372개의 미래유산이 지정돼 있다. 4대문 안과 성저십리(성 밖 4㎞ 이내)에 많이 분포해 있지만, 서울 사방에 고루 흩어져 있다. 미래유산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다음 세대에 전달할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모든 자산을 의미한다. 서울 사람들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 온 공동의 기억과 감성이다. 서울시는 서울신문, 문화지평과 함께 기존 미래유산에 대한 보존과 홍보를 위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오는 9월 10일 김성수 가옥, 북촌 한옥 밀집 지역, 헌법재판소 백송(박규수 집터) 등 서울미래유산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가는 ‘북촌길 탐방’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세 번째 시간은 명동에서 시작해 남산 옆구리를 타고 넘어 해방촌을 거쳐 숙대입구역에서 마무리했다. 이번 역사탐방의 핵심은 남산과 해방촌이다. 남산에는 한양공원비, 남산도서관 등 미래유산이 있다. 해방촌은 해방교회 근처인 용산구 신흥로 11나길 22 일대를 중심으로 집단거주 지역이 모두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108계단도 미래유산이다. 이 탐방 코스에서는 일제강점기, 미군정 등 해방전후사와 근대화의 흔적을 퇴적층처럼 볼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날 해설은 손안나 서울미래유산 해설사가 맡았다. 손 해설사는 “저는 ‘히스토’(Histo)라는 휴먼 벤처기업을 운영하며, 아이들과 답사를 하면서 역사 교육을 할 때 내재한 잠재력이 개발된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박광규 해설사는 답사 시작부터 끝까지 안전을 책임졌다. 서울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 위원인 권기봉 작가도 3차 답사에 동행했다. 권 작가는 ‘서울을 거닐면 사라져 가는 역사를 만나다’, ‘다시 서울을 걷다’ 등의 저서를 통해 서울의 과거에서 미래의 방향성을 찾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틈틈이 답사단에 합류하겠다고도 했다. 비공식 해설사 한 명이 더 생긴 것처럼 든든하다. 권 작가는 “급격히 변해 가는 서울에서 ‘지금의 우리’는 아직 깊은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지라도 다음 세대들이 ‘지금 우리 시대의 치열했던 풍경’을 톺아보고 비전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유산을 발굴해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발걸음”이라고 함께한 취지를 설명했다. 답사단은 명동역 인근 작은 공원에서 모여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의 취지와 코스를 설명들은 뒤 출발했다. 일행은 30m 정도 걷다가 퍼시픽호텔 옆에 멈춰 섰다. 호텔 안에는 한영양복점이란 서울미래유산이 있다. 서울에는 4개의 양복점이 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중구에 있는 종로양복점, 해창양복점과 은평구에 있는 청기와양복점 등이다. 이곳은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나 멋쟁이 ‘모던보이’들의 단골이었다. 한영양복점은 1932년 중구 남대문로1가 201번지에서 박정재라는 사람이 창업했다. 이 거리 500m 일대에서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70년대 초 무렵까지 35개 업체가 성행했다. 한영양복점은 이후 몇 차례 주인이 바뀌다가 2011년 현 대표인 김길수씨가 지금 위치인 호텔 안에서 개업했다. 주인은 바뀌었으나 같은 상호로 같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운영한 이유로 미래유산에 선정됐다. 퍼시픽호텔 왼쪽, 행정구역상 도로명인 퇴계로 20길은 ‘재미로(路)’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명동역에서 서울애니메이션센터까지 450m 길을 오래된 만화부터 최근 웹툰까지 주제로 꾸미면서 붙여진 것이다. 재미로를 거쳐 남산순환도로로 올라서면 그 유명한 남산케이블카가 나온다. 남산케이블카는 한국삭도공업주식회사가 1962년부터 운영하는 미래유산 시설이다. 남산케이블카를 지나면 도로변에 동그마니 커다란 비석 하나가 놓여 있다. 한자로 ‘漢陽公園’(한양공원)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한양공원은 1876년 강화도조약에 따른 개항 이후 서울에 사는 일본인들이 증가하면서 일본 거류민단이 1897년 현 숭의여자대 자리에 왜성대공원(倭城大公園)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 일대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주둔했던 곳이란 명목을 내세웠는데 1908년에 토지를 대여받아 1910년 3월 개원했다. 일본 거류민단은 이 공원에 남산대신궁을 세웠다. 1918년 조선총독부가 조선신궁을 건설해 ‘경성신사’로 이름을 바꾸면서 한양공원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경성신사는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이면 ‘남촌의 작은 일본 마을’처럼 보였다고 한다. 당시 이 풍경을 담은 엽서도 찍어 냈다. 이런 이유로 1980년대 이후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았다. 한양공원 전면 글씨는 고종 황제의 어필인데 표석은 1912년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일 강제 합병이 된 지 2년 뒤에 고종은 왜 하필 한양공원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비석 뒷면에는 공원 조성에 기여한 사람들로 추정되는 명단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훼손돼 알아볼 수 없다. 탐방에 참여한 시민 신자용(33)씨가 “누가 왜 명단 부분을 쪼아서 훼손시켰냐”고 묻자 손 해설사는 “기부자 명단일 경우 친일 행적으로 드러날까 두려워서 당대나 후손이 한 짓이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어머니와 함께 나온 대학생 왕규원(21)씨는 “한양공원비 뒷면이 깨져서 정확한 기록을 알 수 없는 부분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 비석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가 2002년 케이블카 승강장 인근 풀숲에서 극적으로 발견됐다. 손 해설사는 “남산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민족 정기의 중심 역할을 했다”며 “일본은 일제강점기 때 이러한 남산을 일본화하면서 훼손했다”고 설명했다. 한양공원비 건너편에는 지구촌민속교육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 계단은 일명 ‘삼순이 계단’이다. TV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탤런트 현빈과 김선아가 키스하며 해피엔딩을 맺은 곳이다. 지구촌민속교육박물관은 1970년 육영재단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회관이다. 머릿돌에는 ‘1970. 5. 5 육영수’라고 적혀 있다. 개관 3일 만에 문을 닫았는데 이유는 하루에 3만명이란 예상치 못한 입장객이 몰렸던 탓이다. 1974년에는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전환했다가 지금은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과 지구촌민속교육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손 해설사는 “이 건물 앞 일대에는 조선시대 전통 제당인 국사당이 있었는데 일제가 조선신궁을 세우면서 인왕산으로 옮겼다”며 “이는 한마디로 조선 개국의 정신을 보여 주는 상징적 건물을 없애는 말살 정책의 일환이었다”고 설명했다. 조선신궁 터 앞에는 결연한 표정의 안중근 의사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남산에는 경복궁이 내려다보인다는 이유로 일제가 조선신궁을 비롯해 경성호국신사, 왜성대총독부청사, 총독 관저 등을 지었다. 이들을 모두 제압하듯 안 의사의 동상이 서 있는 모습이 더 의연해 보이는 것은 이 장소가 지닌 의미 탓이다. 손 해설사가 돌발 퀴즈를 냈다. 의사(義士)와 열사(烈士),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차이가 무엇인지. 일상에서 쉽게 듣고 쓰는 말이지만 답을 아는 사람은 없다. 손 해설사는 “모두 일제에 항거한 것은 같지만, 의사는 무력으로, 열사는 비무장으로 대항한 인물을 뜻하고, 순국선열은 일제에 목숨을 잃은 분들이고, 애국지사는 자연사한 분들”이라고 정리했다. 남산순환도로를 걸어 내려오다 만나는 남산도서관은 시립도서관이다. 역시 미래유산이다. 1922년 10월 5일 명동에서 경성부립도서관으로 개관한 후 1964년 12월 31일 현재 건물이 신축돼 옮겨졌다. ‘동장 이봉천 기적비(記蹟碑)’가 해방촌으로 들어선 답사단을 가장 먼저 반겼다. 실향민이었던 그는 1955년 해방촌 초대 동장이 된 후 관가의 도움 없이 지역 기반시설을 확충했다. 주민들은 그의 공로를 기록하기 위해 기적비를 세웠다. 권 작가는 “해방촌은 한국전쟁 이후 가진 것 없이 남쪽으로 내려온 피란민들과 전쟁 중 사망한 군경의 처자식을 위한 보금자리였다는 점에서 ‘소수자를 위한 인큐베이터’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흥시장에 들어서자 소설가 김치(44)씨는 “이곳이 아트마켓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좋은데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일제가 남산을 유린하기 위해 만든 경성호국신사는 터를 정확하게 찾을 수 없다. 다만 신사에 오르내리기 위해 만들었을 108계단을 근거로 위치를 어림짐작하게 하고 있다. 108계단에는 2012년 해방촌 예술마을 사업이 시작되면서 벽화와 조형물이 설치됐지만, 지금은 관리가 안 돼 퇴색하고 있다. 서울시는 108계단을 1960~70년대 해방촌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장소라는 이유로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후암동 쪽으로 들어서자 ‘성의사’란 단출한 2층 건물이 눈에 띈다. 1953년 개업한 가운 판매점이다. 주로 교회 성가대 가운을 취급한다. 좀더 내려가니 ‘T. 본 스테이크’라고 간판을 단 음식점 ‘황해’가 나왔다. 1973년 개업한 부대찌개·스테이크 전문점이다. 정순자 대표는 “이 동네 부대찌개, 스테이크 원조는 우리 집인데 돈 주고 TV 나가는 것이 싫어서 안 했더니 주변 다른 집이 원조로 둔갑했다”며 “서울미래유산 현판도 번거로워 안 했는데 이번 기회에 꼭 달아 달라”고 부탁했다. 서울시 관련 부서 공무원이 동행한 덕분에 조만간 현판이 설치될 전망이다. 손 해설사는 중화요리 식당으로 미래유산에 지정된 덕순루를 마지막으로 설명을 마쳤다. 답사 내내 내리던 비가 거짓말처럼 갰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모바일 픽!] 사진으로 보는 100㎉ 음식들…당신이 먹은 건?

    [모바일 픽!] 사진으로 보는 100㎉ 음식들…당신이 먹은 건?

    체중 조절을 위해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 중 하나는 한 번에 섭취하는 칼로리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다. 하지만 음식을 육안으로 보는 것만으로 정확한 칼로리를 짐작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음식 전문채널 ‘푸드 네트워크’가 100㎉에 해당하는 음식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한 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사진들을 온라인으로 공개해 눈길을 끈다. 음식의 종류에 따라 100㎉를 만족하는 양은 크게 다르다. 체다치즈의 경우 단 두 조각만으로 100㎉에 달하지만 라즈베리는 말 그대로 100개를 먹어야 같은 칼로리를 섭취할 수 있다. 생각보다 칼로리가 적은 음식들도 있다. 소금이 첨가되지 않은 프레첼의 경우 100㎉ 만큼 섭취하려면 21개를 먹어야 한다. 반대로 마늘은 칼로리가 적을 것 같지만 프레첼과 유사하게 22개를 먹으면 100㎉를 채우게 된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첫 金 안긴 한국인 지도자… 베트남은 축제 분위기

    첫 金 안긴 한국인 지도자… 베트남은 축제 분위기

    전자표적도 없던 열악한 환경 선수들 인천에 데려와 훈련 부임 2년 만에 기적 만들어 호앙엔 50년치 연봉 보너스 “감독님 감사합니다.” 리우올림픽 개막 첫날인 7일 베트남 올림픽 역사가 새로 쓰여졌다. 베트남의 호앙쑤안빈(42)이 올림픽 사격 센터에서 열린 10m 공기권총 결선에서 기적 같은 금 총성을 울렸다. 호앙은 이 종목 2연패를 노리던 진종오를 5위, 진종오의 대항마로 여겨졌던 팡웨이(중국)를 동메달로 밀어낸 뒤 브라질 홈팬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은 우 펠리페 알메이다(202.1점)마저 제쳤다. 그가 작성한 202.5점은 올림픽 신기록이다. 베트남이 올림픽에서 금을 딴 것은 처음이다. 베트남은 1952년 헬싱키 대회부터 2012년 런던 대회까지 모두 14차례나 올림픽 무대에 나섰지만 단 한 차례도 금을 수확하지 못했다. 베트남은 호앙의 첫 금 소식에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국영방송 VTV는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베트남 국가가 울려 퍼졌고 제일 높은 곳에 국기가 게양됐다. 베트남 스포츠의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흥분했다. 은구엔은곡티엔 문화스포츠관광장관은 메시지를 보내 “이번 금메달은 수백만 국민을 기쁘게 했다. 뛰어난 정신력을 갖춘 선수와 코치 덕에 역사적인 결과를 만들었다”고 격려했다. AFP통신은 호앙이 정부로부터 현금 10만 달러의 포상금을 받을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통산은 “베트남 직장인 평균 연봉이 2100달러”라며 “50년치 연봉을 보너스로 받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이 60년 만에 이룬 쾌거인 만큼 현지에서는 포상금 액수를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호앙의 금메달 뒤에는 한국인 지도자 박충건(50) 감독이 있었다. 한국 국가대표 후보팀 전담 감독, 경북체육회 감독 등을 지낸 그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베트남 사격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다. 호앙은 금메달을 딴 뒤 박 감독을 한국어로 “감독님”이라고 부른 뒤 “매우 행복하다. 한국사람들에게도 매우 감사하다. 한국은 정말 좋은 친구”라며 환하게 웃었다. 스포츠 저변이 약한 베트남은 이번 리우에 23명의 선수를 파견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박 감독은 한국에서 한국식 훈련으로 베트남 사격팀에 변화를 몰고 왔다. 박 감독은 “베트남은 사격 수준이 낮은 데다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에서 사용하는 전자 표적도 없었다”면서 “인천연맹 등의 도움으로 인천에서 자주 훈련한 것이 힘이 됐다”고 말했다. 다행히 베트남 선수들은 한국에서 훈련하는 것은 물론 한국의 음식과 문화도 좋아했다고 강조했다. 박 감독은 자신이 지도한 선수가 금메달을 따 기쁘다면서도 “내가 조명을 받아서는 안 된다. 부담스럽다”며 자신에게 쏠린 관심에 손사래를 쳤다. 이어 “진종오와는 특별한 인연이 없지만 세계 최고 총잡이인 그가 메달을 못 딴 것은 아쉽다”고 덧붙였다. 결국 박 감독의 작품 1호는 호앙인 셈이다. 호앙은 현역 장교로 2006년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0m 공기권총 세계 6위의 정상급 선수다. 지난해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사격연맹(ISSF) 월드컵에서 은메달까지 거머쥐었다. 정상 등극에 늘 한 뼘 모자랐던 그였지만 박 감독의 조련 덕에 조국 올림픽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퇴직 공포… 40대부터 줄서는 재취업 컨설팅

    퇴직 공포… 40대부터 줄서는 재취업 컨설팅

    “자식들이 아직 대학생이라” “퇴직하면 인간관계 끊길라” 55~79세 61% “더 일하고파” 상당수 비정규직 처우 개선 필요 #1 포항에 거주하는 임옥녀(54·여)씨는 30여년간 대기업 고객상담팀에서 근무하다 2013년 퇴직했다. 자녀들이 이미 독립해 경제적인 부담은 적었지만 집에만 있으려니 무력감이 몰려왔다. 임씨는 곧바로 구직 활동에 나섰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탄탄한 스펙이 오히려 장애가 됐다. 눈을 낮춰 지원해도 “대기업 다니신 분이 이런 일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느냐”며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결국 임씨는 경력을 포기했다. 지난해 4월 인근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촬영·편집해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동영상 선생님’으로 취직했다. 1년 반 만의 재취업이었다. ‘장년인턴’으로 입사했는데 석 달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기쁨도 맛봤다. 임씨는 “보수와 관계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는 게 보람 있고 기쁘다”고 말했다. #2 증권회사에 다니다 2013년에 퇴직한 이모(60)씨는 변변한 퇴직 후 계획 없이 사회에 나왔다가 취업시장의 냉혹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씨는 “퇴직 후 첫 8개월 동안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약 30곳의 일자리에 지원했는데, 단 한 번도 면접 기회조차 얻질 못했다”고 털어놨다. 금융권 종사자들은 전문 기술이 있는 게 아니라 주로 관리직군에 몸담았던 경우가 많은데, 관리 업무는 일자리 자체가 적은 데다 특별히 금융업계 종사자를 우대하지도 않아 구직시장에서 경쟁력이 낮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현재 이씨는 지난 6월부터 경기도 일대의 사회적기업 경영을 모니터링하는 일을 맡고 있다. 모니터링 건당 8만원가량의 수고비를 받는 형태이다 보니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고작 50여만원이다. 이씨는 “아직 아들 둘이 대학생이라 결혼도 지원해 줘야 할 텐데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기대수명 증가로 중장년층 인구가 늘어나고 불경기가 지속되면서 퇴직 후 재취업 시장이 붐비고 있다. 중장년층의 재취업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는 셈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만 55~79세 성인 중 장래에도 일하기를 희망한다고 답한 비율은 61.2%에 이른다.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의 최성희 책임 컨설턴트는 “최근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사무직군의 재취업 희망자가 급속하게 늘고 있는 추세”라며 “전문 기술이 없는 사무직은 업무 경력을 특화시키기 어려워 미리 전직을 준비하지 않으면 재취업에 난항을 겪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퇴직 후의 삶을 준비하는 연령대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센터는 올해 중장년층 생애설계 프로그램 대상 연령 기준을 기존 만 50세에서 만 45세 이상으로 훌쩍 낮췄다. 최 컨설턴트는 “40대 중반은 한창 현업에서 활발히 활동할 때라 시간을 내기 쉽지 않은데도 참여율이 의외로 높다”고 전했다. 특히 금융권 종사자들은 재취업이 어려워 전담 프로그램이 따로 신설될 정도다. 금전적인 부분이 중장년층 재취업 욕구의 유일한 동기는 아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중장년층은 재취업 희망 이유로 ‘생활비에 보탬’(58.0%)에 이어 ‘일하는 즐거움’(34.9%)을 꼽았다. 퇴직 후 인간관계 단절에 대한 두려움도 구직 활동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대기업에서 2014년 퇴직한 김모(61)씨는 “퇴직 후 인간관계가 단절되는 기분이 들면서 가벼운 우울증까지 왔다”며 “사회에서 내가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기분을 느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청은 지난해부터 퇴직 예정 직원들을 대상으로 요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외부 강사를 초빙해 6주 동안 주 1회 2시간씩 요리 수업을 진행한다. 간단한 반찬부터 멕시코·지중해 요리까지 세계 각국의 음식 조리법을 배울 수 있다. 올해 초 퇴직한 신시섭(60) 국장도 지난해 8월 요리교실을 수강했다. 신 국장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소위 ‘퇴직하면 마누라 눈칫밥 먹어야 한다’는 두려움이 있는데, 요리를 배우면서 가족들과 관계도 돈독해지고 새로운 취미도 생겼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한편 재취업 일자리의 절대적인 양뿐 아니라 질에 대한 고민이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조건 일자리를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시장을 유연화해 중장년층이 경력이나 능력을 보일 기회조차 차단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지난주 저녁손님 겨우 두번 받았다”… 폐업 위기 ‘寒정식’집

    “지난주 저녁손님 겨우 두번 받았다”… 폐업 위기 ‘寒정식’집

    시행도 전에 감찰 소문 파다 “예약 별따기는 옛말” 개점휴업 “1만원 낙지·반찬·인건비하면 3만원 단가 맞추는 건 불가능” “실상 모르고 법 만들어” 울분 “이번 주 저녁에 손님 받은 날이 딱 이틀이었어요. 이 정도면 그나마 괜찮은 겁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로 시끄러워지면서 일주일 내내 저녁 손님 하나 없이 개점휴업을 할 때가 부지기수입니다.” 지난 29일 저녁에 찾은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뒤편의 ‘한정식촌(村)’은 썰렁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했다. 정부중앙청사와 서울경찰청 등 주변에 정부기관과 관공서가 많아 공무원들의 접대 장소로 유명한 이곳은 한때 경기가 좋을 때는 삼삼오오 짝을 이룬 손님들이 늦은 밤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불콰한 얼굴로 쏟아져 나왔다. 10년 전 이곳에 터를 잡은 한정식집 ‘양지’의 김명애(61·여) 사장은 “인사동에서 20년, 내자동에서 10년간 한정식집을 운영했는데 어려운 시기에도 문화를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이겨냈다”며 “이번에도 버티는 데까지는 버텨 볼 생각이지만 올해만 지인이 셋이나 한정식 집을 접었다”고 말했다. 그는 “3만원 이하 메뉴를 내긴 해야 하는데 술값도 포함해야 한다니 될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금요일 저녁이지만 김씨의 말대로 골목은 썰렁했다. 오가는 사람은 드물었고 식당들은 손님 하나 없이 썰렁했다. ‘일감’이 없는 종업원들은 방 한쪽에 모여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한 종업원은 “세종시 이전 후 손님이 좀 줄기는 했지만 올해 초만 해도 목요일과 금요일에 당일 예약은 엄두도 못낼 만큼 사람으로 북적였다”고 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려면 아직 2개월은 남았지만 감찰 쪽에서 한정식집을 대상으로 사전 점검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공무원들은 위축된 상태다. 한 공무원은 “내 돈이든, 네 돈이든 시범케이스로 걸리지 않으려면 절대 가지 말아야 할 3곳이 있다. 한정식집, 골프장, 호텔식당이다. 괜히 오해 살 짓을 할 필요는 없지 않냐”고 전했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장사한 ‘신안촌’ 이금심(70·여) 사장은 “김영란씨는 3만원짜리 저녁밥 먹고 다녔느냐고 묻고 싶다”며 “좋은 음식에는 그만한 가격이 붙는 게 이치인데 1만원짜리 국내산 낙지에 기본 반찬, 인건비까지 주고 3만원에 단가를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우리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만 10명입니다. 10집이 먹고산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식당이 문 닫으면 이 사람들 졸지에 실업자 되는 겁니다. 그 가족들은 또 어떡하라는 겁니까.” 최근 한정식집을 인수한 A(40·여)씨는 “뇌물 주고받는 건 처벌하는 게 당연하지만 음식값까지 일일이 정해 놓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서민들이 도리어 피해를 보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비싼 도심에서 80년대 기준인 3만원으로 가격을 맞추라니 법을 만드신 분들이 실상을 전혀 모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단품 메뉴를 내놓는 방안과 인원 수와 상관없이 한 상에 일정 금액을 받는 식으로 가격을 맞추는 방안을 두고 고민 중”이라며 “업종을 변경하려면 한옥 스타일로 꾸며 놓은 인테리어를 다 바꿔야 하는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엄두도 못 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한정식집 사장 B(60·여)씨는 “식당을 내놓아 봐야 요즘 같은 불경기에 들어온다는 사람도 없고, 다른 장사를 할 뾰족한 방법도 없으니 일단 기다려 보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법이 개정될 가능성도 있다던데, 하염없이 그것만 기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안 되면 조만간 대문 앞에 ‘2만 9900원’이라고 크게 써 붙여 놓아야죠.”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커버스토리] “빌린 배로 출전하지만 카누 새 역사 저희가 쓸게요”

    [커버스토리] “빌린 배로 출전하지만 카누 새 역사 저희가 쓸게요”

    “카누를 한다고 하면 커피 브랜드 ‘카누’를 떠올리시더라고요.” 카누 스프린트 1인승과 2인승 200m 경기에 출전하는 조광희(왼쪽·23·울산시청)는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카누 국가대표 선수단의 출정식에서 ‘비인기 종목의 설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2인승 200m에 나가는 최민규(오른쪽·24·부산시 강서구청)는 “카누와 조정을 헷갈려 하는 사람들도 많다”며 “올림픽을 통해 어떤 종목인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거들었다. 수억원의 연봉을 받고 1년에도 몇 개씩이나 광고를 찍는 스포츠 선수들이 많아진 요즘이지만 조광희와 최민규의 바람은 소박했다. 조국의 명예를 위해 죽자 살자 구슬땀을 흘리는 카누 선수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카누 대표팀의 현실은 열악하다. 대표팀에는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전용 배가 없다. 각자 소속 실업팀에서 가져온 배들뿐이다. 이마저도 최신식이 아니어서 카누 제작사 넬로에서 새 배를 빌려쓰곤 한다. 이번 올림픽도 빌린 배로 출전할 계획이다. 최민규는 “2인승의 경우에는 지난 4일 포르투갈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뒤 배가 없어 2주가량 훈련을 못했다. 넬로에 찾아가 직접 배를 빌린 뒤에야 훈련을 재개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대한카누연맹도 안타까운 현실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매년 빠듯한 예산으로 살림을 꾸리고 있는 연맹으로선 1척에 600만원(1인승)에서 1000만원(2인승)가량인 배를 구입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국가대표팀으로 뛰고 있는 선수가 여러 명인데다가 그 선수들이 계속 바뀌어서 각자 체형에 맞는 배를 매번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조광희와 최민규는 묵묵히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조광희는 “배가 정지돼 있는 상태에서 누가 가속도를 빨리 붙이느냐에 따라 순위가 달라진다. 스타트가 느린 게 약점이었는데 전지훈련에서 보완을 해서 많이 괜찮아진 것 같다”며 “지금은 배 밑에다가 테니스공이나 수건을 달아 노를 젖는 훈련을 하고 있다. 1인승 배가 12㎏정도인데 공을 하나만 달아도 엄청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두 선수의 호흡은 잘 맞느냐’는 질문에 최민규는 “광희와는 알고 지낸 지가 7~8년 정도 된다”며 “2인승 팀을 이룬 것은 작년부터다. 방도 같이 쓰고 있고 훈련을 계속하다 보니 1년에 300일 정도나 함께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들의 목표는 결선(A파이널)에 진출하는 것이다. 한국 카누는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단 한번도 결선까지 오른 적이 없었다. 최민규는 “경기를 하다 보면 마지막 지점에서 너무 힘들곤 하는데 이번에는 그 고통을 이겨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조광희는 “첫 올림픽 출전인 만큼 좋은 성적을 내고 돌아오겠다”고 강조했다. 한국 카누 역사를 새로 쓰길 목표로 하는 둘은 경북 안동 수상훈련센터에서 마무리 훈련을 한 뒤 8월 5일 결전의 땅 리우로 넘어간다. 카누 2인승 200m 경기는 17~18일에, 1인승은 19~20일에 열릴 예정이다. 글 사진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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