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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목마다 왕벚꽃을 피우리라”

    “골목마다 왕벚꽃을 피우리라”

    영등포구 신길6동 우성아파트에서 삼성아파트 사이 ‘벚꽃길’과 인접한 이면도로 5곳에 총 연장 1.3㎞의 그린웨이(Greenway)가 조성된다. 19일 영등포구에 따르면 벚꽃길은 너비 8m의 이면도로로 1991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왕벚나무 150그루를 도로 양쪽에 심고 가꿔 지역의 명소로 자리 잡은 곳이다. 특히 매년 4월이면 지역주민들이 함께하는 벚꽃축제가 열려 서울의 대표적인 꽃길로 선정되기도 했다. 구는 벚꽃 길을 중심으로 주변 도로 5곳에 총 사업비 13억 5000만원을 투입해 오는 6월까지 그린웨이 조성 공사에 들어간다. 도로를 둘러싼 아파트 및 학교 담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녹지와 화단을 조성한다. 가로수를 따라 들어서는 화단에는 소나무, 배롱나무, 왕벚나무, 자작나무 등 31종의 관목류와 구절초, 돌단풍, 맥문동 등 20종의 초화가 식재된다. 전체 폭 8m 중 3m를 보도로 만들어 인근주민들이 쾌적하게 산책을 즐길 수 있게 한다. 또 그린웨이 안에서 차량들이 속력을 낼 수 없도록 직선인 차도를 곡선으로 바꾸고 사고 방지턱도 설치한다. 한편 거리 중앙에는 벽천을 이용한 친수공간을 만들고, 보행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편의시설과 운동시설을 설치할 계획이다. 구 관계자는 “주민들의 관심과 사랑이 답답하고 삭막한 거리를 벚꽃이 가득한 길로 바꿔놓았다.”면서 “서울 속 명소로 누구나 한번 걷고 싶은 길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후끈후끈’ 온천 여행 떠나볼까

    ‘후끈후끈’ 온천 여행 떠나볼까

    유난히 길었던 설 연휴. 일상으로 복귀는 했지만, 주부는 물론 남편과 아이들까지도 이른바 ‘명절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연휴 기간 중 흐트러진 가족들의 생체리듬을 회복하기 위해 온천을 찾아가면 어떨까. 요즘 온천은 ‘몸만 지지는´ 수준에서 벗어나 물놀이 테마파크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찬바람을 맞으며 두한족열(頭寒足熱·머리는 차게 발은 덥게 함)의 묘미를 맛보는 노천 스파는 겨울이 제격. 게다가 바로 눈 앞에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면 명절 피로쯤은 저만치 달아나 버리고 만다. ■바다가 보이는 노천 스파·온천 ▲솔비치 아쿠아월드(강원 양양) 오산해수욕장을 품고 있는 대명 쏠비치 ‘아쿠아월드´는 동해의 만경창파를 바라보며 노천욕을 즐길 수 있는 곳. 스파존과 레저존, 마르테라피존 등 3개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야외 레저존. 몇발짝만 걸으면 곧바로 오산해수욕장의 파란 바다와 연결된다. 스파존은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바다를 바라보며 실내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각종 워터 마사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마르테라피존의 유럽식 테라피 프로그램은 효소·사운드 테라피 등을 기본으로 5가지 순서로 운영된다. 아쿠아월드 겨울철 입장료는 어른 2만 2000원, 어린이 1만 7000원.www.daemyungresort.com,1588-4888. ▲오션캐슬 선셋 스파(충남 안면도) 해넘이 풍경이 고운 꽃지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오션캐슬 아쿠아월드에서도 노천·실내 스파를 함께 즐길 수 있다. 지난해 터진 태안 기름 유출사고에도 불구하고 노천 스파에서 바라보는 안면도 겨울바다는 여전히 아름답다. 노천의 ‘선셋스파´는 유황 해수가 공급되는 바데풀을 중심으로 오션뷰스파, 홍송탕 등 10여종의 이벤트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셋스파 입구에 ‘체온유지실´이 마련돼 있어 추운 날씨에도 부담이 덜하다. ‘파라디움´은 실내 스파 시설이다. 별도의 독립공간에 총 10대의 자쿠지가 설치됐다. 사우나+노천 선셋스파 어른 2만원, 사우나+노천 선셋스파+파라디움 2인 5만원.www.oceancastle.com,(041)671-7000. ▲남해 힐튼 골프&스파 리조트 ‘더 스파´(경남 남해) 넓은 통유리를 통해 쏟아지는 남해의 절경을 감상하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찜질방을 현대식으로 꾸민 ‘핫존´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마사지 테라피 프로그램도 운영한다.150개의 스위트룸과 20동의 빌라 대부분이 오션뷰(ocean-view)란 것이 자랑. 개인 자쿠지가 설치된 객실 욕조에서도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더 스파´ 이용료는 어른 1만 3200원, 어린이 6600원. 커플이라면 2월 말까지 운영되는 ‘두 릴렉스 패키지´를 고려할 만하다. 디럭스 스위트 룸 1박+조식+엘레미스 스파 테라피 2인 41만 9000원부터.www.hiltonnamhae.com,(055)860-0100. ▲파라다이스 호텔 옥외온천(부산) TV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부산의 명소. 수온이 40∼44℃에 달하는 5개의 온천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아늑한 분위기에서 온천과 수영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오륙도와 동백섬은 물론, 날씨가 좋을 때는 쓰시마섬까지 볼 수 있다. 입장료 3만 8500원.3월31일까지 판매하는 호텔 숙박 패키지는 14만 5000원(주중, 도심측 기준)부터.www.paradisehotel.co.kr,(051)742-2121. ■신나는 물놀이도 OK! ▲설악워터피아(강원 속초) 2800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대형 테마온천.49℃ 중탄산나트륨 온천수가 하루 3000t씩 솟아나 늘 수량이 풍부하다. 요즘은 눈덮인 설악의 절경을 감상하며 노천욕을 즐길 수 있다. 도풀과 워터 슬라이더, 설악의 계곡을 닮은 유수풀, 운동과 오락을 겸하는 액션스파 등 다양한 물놀이 시설들은 겨울철에도 쉬지 않고 돌아간다. 어른 당일권 4만 6000원. 리조트 투숙객은 20% 할인. 온라인 예매나 할인 쿠폰, 이동통신사 및 제휴 카드를 이용하면 20∼40%까지 할인된다. 이달 말까지 한화리조트설악에서 1박하며 워터피아(2인)를 이용할 수 있는 패키지를 주중 11만 8000원, 주말 13만 9000원에 판매한다.www.seorak waterpia.co.kr,(033)635-7711. ▲스파 그린랜드(경기 퇴촌) ‘유럽식 스파백화점´이라 일컬어지는 곳. 자연휴양림속에 자리잡고 있다. 다양한 테마탕과 스파 시설이 자랑이다. 특히 물안마 수(水)치료 시설인 실내 대형 바데풀이 눈길을 끈다. 설 음식 장만하느라 허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한 주부들에게 제격일 듯하다. 주중 어른 2만 3000원(주말 2만 8000원), 어린이 주중 1만 5000원(주말 2만원).www.spagreenland.co.kr,(031)760-5700. ▲아산 스파비스(충남 아산) 수치료 바데풀을 국내에 처음 소개한 곳이다. 한겨울에도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노천 온천풀은 물론, 유아풀과 어린이 슬라이드 등 다양한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다. 건강지도사를 따라 수중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푸는 프로그램 등을 마련해 ‘종합 보양 온천´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어른 2만 2000원(주말 2만 5000원), 어린이 1만 4000원(주말 1만 8000원).www.spavis.co.kr,(041)539-2080. ▲산정호수 한화콘도(경기 포천) 명성산 기슭에 자리잡은 산정호수 한화콘도 노천탕은 단풍나무와 대나무가 있는 겨울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탕에 들어가 푸른하늘을 보면 제법 자연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루 4750t의 약알칼리성 온천수가 나와 수량이 풍부하다. 온천과 연결된 수영장은 금·토·일만 운영한다. 이용료는 어른 7000원(수영장 9000원), 어린이 5000원(수영장 7000원). 수영장 요금으로 온천도 함께 이용할 수 있다. 한화리조트 산정호수 1박+온천사우나 2인+조식뷔페 2인 패키지(일∼목)를 9만 9000원에 판매하고 있다.www.hanwharesort.co.kr,(031)534-5500.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쇼핑플러스]

    ●한강 시민공원 매점이 3월까지 세븐일레븐으로 간판을 바꿔 단다. 광나루진달래점 등 9개점은 지난달 31일 세븐일레븐 간판을 달았다. 나머지 5개 매점도 다음달까지는 세븐일레븐 간판을 건다. 세븐일레븐은 지난해 말 서울시로부터 한강 매점 개선사업자로 선정됐다. ●풀무원은 중화풍 만두요리인 새우완탕수프를 출시했다. 넓고 하늘하늘한 만두피가 특징인 완탕을 육수에 끓여 국물과 같이 먹는 만두의 일종.2인분용은 4200원,1인분용인 컵 타입은 2500원이다. ●오뚜기는 뜨거운 물만 넣어 바로 먹는 컵스프 3종을 선보였다. 콘크림, 단호박크림, 브로콜리크림 등 3가지 맛이다.18g 3개가 한 묶음으로 1500원. ●동서식품은 포스트 홀앤올 든든한 단호박 후레이크를 출시했다. 현미, 통밀 등 통곡물(62%)을 위주로 호박씨(10%), 단호박분말(4%) 등이 들어 갔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350g 4550원,500g 5850원. ●허쉬는 허쉬 스페셜 다크를 출시했다. 퓨어 다크, 모카 다크, 오렌지 다크 3가지 맛이다.3종을 한 데 묶어 밸런타인데이 선물용으로 스페셜 다크 스페셜 패키지도 내놓았다. 낱개 가격은 1200원(50g), 스페셜 패키지는 3600원(150g)이다. ●애경의 화장품브랜드 마리끌레르에서 남성용 화장품 마리끌레르 퍼퓸 쁘아 옴므를 출시했다. 향수 개념의 스킨케어로 토너(160㎖)와 에멀젼(140㎖) 2종으로 이뤄졌다. 각각 1만 8000원이다. ●유니레버 도브에서 뷰티 모이스처 크림 라인을 내놓았다. 도브 뷰티 모이스처 핸드크림(75g,4900원), 도브 카밍 나이트 핸드크림(75g,4900원), 도브 실크 글로우 바디크림(300g,1만 3000원) 등이다. ●동화자연마루는 2008년형 신제품 강화마루 플로렌을 출시했다. 마루 폭을 종전 제품(190㎜)보다 얇은 156㎜로 줄였다. 참나무, 호두나무, 벚나무, 단풍나무 등 4가지 수종을 중심으로 총 15개 패턴이 나온다.3.3㎡(1평)당 9만원대다.
  • 중랑천 생태 특별관리

    중랑천 생태 특별관리

    서울 중랑천에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단풍잎돼지풀 등 귀화식물이 급증, 생태계에 비상이 걸렸다. 서울시는 23일 중랑천 약 20㎞ 구간을 조사한 결과, 총 37과 113종의 서식식물 가운데 외래 귀화식물이 17과 42종으로 전체의 37.2%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귀화식물이란 원래 생육하지 않은 지역에서 자연적, 인위적인 원인에 의해 유입돼 야생화된 식물을 말한다. 중랑천의 주요 귀화식물로는 가중나무와 족제비싸리,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미국가막살이, 개망초, 망초 등이다. 이중 가중나무, 환삼덩굴, 단풍잎돼지풀, 돼지풀 등은 고유종의 생육을 방해하는 등 기존의 생태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실제 전체 조사 지역중 돼지풀은 56%, 단풍잎돼지풀은 79%에서 발견됐다. 돼지풀과 단풍잎돼지풀은 꽃이 피면 꽃가루가 비염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생명력이 워낙 강해 제초작업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또 환삼덩굴은 아직 생태계 교란 야생식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식물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어 억제대책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희곡당선작] 별방/이양구

    [서울신문 신춘문예-희곡당선작] 별방/이양구

    등장인물 남자, 여자, 아들, 모(母), 부(父) 배경 단풍이 절정에 이른 가을, 오후, 외딴 산 속, 폐가, 마당 한가운데 튀어나온 바위 하나, 지붕과 마당·헛간에 낙엽 1 남자가 마당으로 들어온다. 고요히 폐가를 바라본다. 천천히 걸어가서 봉당에 앉는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여자와 아들이 들어온다. 여자 : 아이구 다리야… 이 먼 데를 오자고…. 남자 : …. 아들 : 평소에 운동 좀 하세요. 많이 걸어야 건강하대잖아요. 요샌 웰빙이라고 다들 일부러도 많이 걸어요.(다리를 주물러 주며) 미국에서도 저녁만 되면 파크에 조깅하러 나온 사람들 많아요. 세상이 아무리 살기 좋아지면 뭐해요, 내 몸이 건강해야지. 여자 : 우리 아들 미국 갔다 오더니 유식해졌네. 그래도 건강하자고 이 산골을 오니? 남자 : …. 아들 : 좋은데요… 아버진 여기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니신 거예요? 남자 : …. 여자 : 그 놈의 별방, 별방, 술만 먹으면 말 안 하디? 아들 : 별방… 아버지 회사 이름… 이 동네 이름에서 따오신 거예요? 남자 : …. 여자 : 뭐 좋은 기억이라고… 이 산 구석에서 살았던 기억을 잊고 싶지 않대나 뭐래나. 저래 뵈두 니 아버지가 감상적인 데가 있다. 아들 : 자기 뿌리를 잊지 않는 건 좋은 거죠. 전 미국에 가 있으니까 도리어 조국에 대해서 생각하게 돼요. 나를 있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요. 엄마는 어린 시절이 그립지 않으세요? 여자 :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이 뭐 그리울 게 있어. 그런 건 빨리 잊어버려야지. 먹고 살기도 바쁜데. 쓸 데 없는 생각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아들 : …아버지. 별방이 무슨 뜻이에요? 남자 : …. 아들 : 별… 방… 떨어져 있다는 뜻인가? 어쨌든 느낌이 좋아요. 왠지 별이 내려와 쉴 것 같은… 아랫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단풍 한 장 줍는다) …아버지. 아까부터 왜 그렇게 말이 없으세요? 무슨 걱정이라도…. 남자 : …조금 피곤해서. 여자 : 그렇게 한 번 와 보자더니. 와 봐야 뭐 있어. 그냥 폐가지. 근처에서 놀다 가자니까. 기어이 끌고 와서는… 다리만 아프지.…어머니도 어떻게 이런 데서 사셨을까…. 아들 : 할머니 할아버지 살아 계셨으면 같이 오고 좋았을 텐데…. 남자 : …. 여자, 뒤란으로 간다. 여자 : (소리) 웬 우물이래… 어머 대추 좀 봐. 아들, 뒤란으로 들어갔다 나온다. 손에는 대추 몇 알. 아들 : 이것 좀 드세요. 달아요. 남자 : …. 남자, 먹는다. 아들 : 달죠? 남자 : 그래…. 아들 : 어렸을 땐 많이 드셨겠네요. 남자 : 가을마다…. 여자, 나온다. 가방을 뒤진다. 아들 : 뭐 찾으세요? 여자 : …. 아들 : …놔두세요. 다람쥐들 먹게. 여자 : 두면 뭐해, 어차피 썩을 거. 아들 : 엄마…. 여자 : 시장 가서 사려고 해 봐. 얼마어친데. 여자, 두리번거리더니 막대기도 찾아서 뒤란으로 간다. 아들 : 엄마… 짐승 먹게 둬요…. 아들, 뒤란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남자 :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휴가 왔습니다. 아들이 미국 유학 갔다가 잠시 귀국해서요. 가족끼리 단풍 구경 왔습니다. 예… 우리가 고비 한 두 번 넘겼나요… 곧 결제하겠습니다. 아들 : 누구…? 남자 : 거래처. 결제해 달라고. 아들 : …요새 건설 경기 많이 안 좋다던데. 남자 : 밥걱정은 안한다. 아들 : …중견 건설회사 몇 개 무너졌다고. 남자 : 아버진 아직 괜찮아…. 아들 : …. 아들, 바위로. 바위를 발로 툭툭 찬다. 아들 : 마당 한가운데 바위라니… 흉물스럽게. 이거 왜 안 뽑았어요? 남자 : 생각보다 뿌리가 깊어. 아들 : 뽑아 봤어요? 남자 : 할아버지가. 너무 깊어서 다시 덮었대. 아들 : 어디… (뽑으려고 한다. 바위는 끄떡없다) 정말이네. 남자 : …. 아들, 바위에 걸터앉는다. 침묵 아들, 뭔가를 발견했다. 헛간 쪽으로 걸어간다. 동화책을 줍는다. 아들 : (툭툭 턴다) 동화책이에요… 전래동화.(넘겨본다) 아버지 건데요….5의 1 박상철…. 남자, 다가온다. 아들 : 기억나요? 남자 : …. 아들 : …. 남자 : …할아버지가 사다 주신 거야. 아들 : …. 남자 : …. 남자 봉당에 앉는다. 아들도 옆에 앉는다. 아들, 책을 읽는다. 뒤란에서 대추 터는 소리. 아들 : …밑줄이 있어요. 남자 : …. 아들 : (읽는다) 바위를 들추자 눈앞이 훤히 트이며 별세계가 펼쳐졌다… (뒤진다) 여기도 있어요. 눈을 떠보니 어느새 별세계에 와 있었다… 별세계… 별방… 별세계란 뜻이에요? 남자, 동화책을 받아서 넘겨본다. 아들, 바위로. 아들 : 어디, 다시 한 번. 힘을 준다. 꿈쩍 않는다. 남자가 온다. 아들 : 해보시게요? 남자, 바위로. 남자가 힘을 주려고 할 때 여자의 비명. 여자가 뛰어온다. 아들, 여자에게. 아들 : 왜요? 여자 : 쥐…. 아들 : 난 또…. 남자 : …. 여자 : 흰쥐였어…. 남자 : …. 아들 : 흰쥐가 이런 데? 남자 : …. 여자 : 여보. 남자 : …. 여자 : 뭐 해요? 아들 : 그게… 동화책. 여자 : 동화책? 아들 : 아버지가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에… 바위를 들추면… 남자가 바위를 힘껏 들춘다. 갑자기 쏟아져 나오는 백색의 햇살. 차차 빛이 사라지며 시간과 공간이 응고된다. 남자 : (소리) 밤마다 꿈을 꿨어. 자고 있으면 누가 날 자꾸 깨워. 일어나 보면 흰쥐가 한 마리 서 있어.…따라가 보면 하얀 길이야. 사위는 캄캄한데 멀리서 불빛이 한 점 보여… 어릴 때 학교 갔다 늦게 올 때면 엄마가 처마 밑에 달아놓고 나를 기다리던 불빛 같아… 엄마가 있나 싶어 걸어가면 자꾸만 내가 녹아내려서… 더 걸을 수가 없었어… 내 가슴 한 복판에 얼음처럼 꽁꽁 얼어 있던 것이 자꾸만 녹아내려서…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어… 눈을 뜨면 나는 이 바위 앞에 와 있었어… 여기서 누가 날 부르는 것 같아서 오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어…. 남자, 쓰러진다. 암전 2 밤 같은 장소 남자가 바위 앞에 쓰러져 있다. 흰 옷을 입은 모가 방에서 나온다. 모 : …누구? 남자 : …. 모, 다가온다. 모 : …누구세요? 모, 깨운다. 남자, 정신을 차린다. 모 : …괜찮으세요? 남자 : 여보…? 모 : …. 남자 : 승우는…. 모 : …. 남자 : …우리 아들 못 보셨나요?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모 : 누구… 같이 오셨어요? 남자 : 예… 아들하고 아내하고…. 다들 어디 갔나요? 모 : 못 봤어요. 소리가 나서 나와 보니까… 이렇게…. 남자 : 소리가 나서…. 모 : 예… 큰 소리가 났어요…. 남자, 주위를 둘러본다. 남자 : 그럼… 여기 계셨단 말인가요? 모 : 예… 우리 집이니까…. 남자 : 우리집… 그럼 아직도 사람이… 분명히 폐가였는데…. 모 : 폐가였어요. 그런데 바깥양반이…. 남자, 주변을 돌며 찾는다. 남자 : (큰소리로) 여보… 승우야…. 모, 화급히 남자에게 다가가서 모 : 애기가… 남자 : …. 모 : 애기가 깨요…. 남자 : …. 모 : 방에 애기가 있어요. 남자, 방문을 열어본다. 남자 : …방금까지 여긴 아무도 없었는데…. 모 : (근심) 애기가… 남자 : 예…. 남자, 집밖으로. 돌아와서 뒤란으로 갔다가 다시 마당으로. 손에 대추 한 알. 대추알을 씹어본다. 남자 : 그대로야…. 남자, 돌로 간다. 뽑으려고 한다. 안 된다. 남자 : 이걸 들었는데… 이걸…. 다시 힘을 준다. 모 : 안 뽑혀요. 바깥양반도 뽑으려고 했다가… 뿌리가 너무 깊어서…. 남자 : …뿌리가 너무 깊어서…. 남자, 모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모 : …왜? 남자,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난 듯 헛간으로. 뒤란으로. 다시 돌아온다. 다시 한 번 모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봉당에 가서 쓰러지듯 앉는다. 남자, 고개를 숙인 채 긴 침묵. 모, 부엌으로 가서 냉수 한 그릇 떠 온다. 모 : 이거…. 남자, 모를 빤히 바라본다. 냉수를 받아서 마신다. 한동안 말이 없다. 남자 : 이 물 맛… 기억나요. 어떻게 잊겠어요…. 모 : …. 남자 : …흰쥐를 따라서 왔었어요…. 모 : …. 남자 : 밤마다… 여길 왔어요…. 모 : …. 남자 : 꿈을 꿨죠…. 모 : …. 남자 : 어쩌면 이것도 꿈일지도 모르죠…. 모 : …. 남자 : …믿지 못하시겠지만… 전 아주 먼 데서 왔어요…. 모 : 먼 곳… 어디? 남자 : …아주 먼 데요…. 모 : …. 남자, 모에게 그릇을 준다. 모 그릇을 가지고 부엌으로. 남자, 마당을 거닌다. 모가 나온다. 남자 : 아버지는… 아니, 바깥 분은요? 모 : …아직 산에요…. 남자 : 그러시겠죠… 오늘도 찬합에 술빵을 넣어서 가셨나요? 모 : 그걸 어떻게? 남자 : 달이 중천은 지나야 돌아오시겠죠…. 모 : …. 남자 : …당신은 상철일 재워놓고 처마밑에 앉아서 기다리셨을 테고…. 모 : 어떻게 우리 애 이름을? 남자 : …. 모 : …누구세요? 남자 : 절 보세요. 모 : …. 남자 : 자세히 보세요. 누굴 닮았는지…. 모, 남자에게 가까이. 남자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모 : (떨림) 닮았어요… 아버님? 남자 : …그런가요? …아버지도 할아버지를 닮았을 테니까…. 모 : …. 남자 : …. 모 : 그렇지만 아버님은 돌아가셨어요… 형제도 없으시고…. 남자 : …. 모 : 누구세요? 남자, 마당을 걷는다. 남자 : …저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어요. 이게 꿈이 아니라면… 아니, 꿈이라 해도… 당신이 지금 내 눈앞에 있고… 당신이 꾸는 꿈이든 내가 꾸는 꿈이든…. 모 : …. 남자 : …간절히 바랐어요. 꿈이어도 좋으니까… 꼭 한 번 어머니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요…. 남자, 모를 본다. 남자 : 늙으신 어머니 대신, 이렇게 젊은… 우리 어머니를 만나다니…. 모 : …. 남자 : …어릴 적 아버지가 사다 주신 동화책 속에나 나오는 얘기가… 애기 적 나를 키우는 어머니를 만나다니…. 남자, 바위로. 돌을 들추려고 한다. 바위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남자, 다시 힘을 준다. 모, 남자에게 다가온다. 모 : …그러니까, 당신이 내 아들이란 말인가요? 남자 : …어머니께서 오십 년 넘게,…십년 전에 돌아가셨으니까… 사십 년 넘게 키운 아들이… (다시 돌에 힘을 준다) …이걸 들추고…. 남자, 안간힘을 쓰다가 넘어진다. 모 : …. 남자 : …. 모, 남자를 본다. 침묵 모 : …밤마다 같은 꿈을 꿨어요…. 남자 : …. 모 : …놀라서 잠을 깨면… 포대기에 싸둔 애기가 사라지고 없었어요… 문밖에서 애기 울음소리가 났어요…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애기가 먼 길 다녀온 사람처럼 지친 어깨로 서 있었어요….…얼굴이 늙어 있었어요…. 남자 : …. 모 : 늙은 애기가… 밤마다 찾아와서… 잘못했다고, 잘못했다고… 빌었어요…. 말도 못하는 우리 상철이가…. 남자 : …. 모 : …어떻게 이런 일이…. 침묵 모 : …그게 사실인가요? 남자 : …. 모 : …상철이가 빌었어요… 용서해 달라고…. 남자 : …. 모 : …돈이 필요했다고.…아니면 식구들 데리고 자기가 죽었을 거라고…. 남자 : …. 모 : …우리 상철이가…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끔찍한 짓을… 모, 손으로 입을 막는다. 모, 남자 옆에 쓰러지듯 앉는다. 침묵 모 : …애들은 몇이나 돼요? 남자 : …. 모 : …몇이나 돼요? 남자 : 하나…. 모 : …공부는 잘 해요? 남자 : …. 모 : …건강하고? 남자 : …. 침묵 모, 남자 쪽으로. 모 : …손 한 번만 잡아 봐도 돼요? 남자 : …. 모, 천천히 손을 내밀어 조심스럽게 손을 잡는다. 모 : …이상해요.…정말 내 아들인 것 같아요…. 모, 남자의 손을 더 따뜻하게 쓰다듬어 준다. 천천히 머리로, 어깨로. 남자, 벌떡 일어선다. 헛간으로. 도끼를 찾아서 쥔다. 남자, 방으로 뛴다. 모 : 안 돼! 남자, 문 앞에서 멈춘다. 모 : …그 애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겠어요…. 그 애를 죽이는 건 나를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남자 : …. 모 : (손을 내민다) …어서. 남자 : …. 모 : 이리…. 침묵 모 : 어서…. 남자, 도끼를 떨어뜨린다. 모, 남자에게 다가온다. 도끼를 들고 밖으로. 남자, 힘없이 주저앉는다. 모, 빈손으로 돌아온다. 침묵 모 : …진지는? 남자 : …. 모 : …들어가세요. 남자 : …. 모 : …시장하실 텐데…. 남자 : …. 모 : 어서…. 모, 부엌으로. 주루막을 둘러멘 부(父) 들어온다. 남자와 부, 마주본다. 모, 나온다. 세 사람, 그 자리에. 암전 3 방안 호롱불 켜져 있고 세 사람 밥상에 둘러앉아 있다. 한쪽에는 포대기에 덮여 잠든 애기. 부 : …잡수세요…. 남자 : …말씀을…. 부 : …. 모 : …. 남자 : 말씀을 낮추셔야…. 부 : 그래도 어떻게…. 남자 : …. 모, 젓가락으로 더덕을 집어서 남자에게. 모 : …이것 좀…. 남자 : 이 귀한 걸…. 남자, 더덕을 집어서 모에게. 다시 한 젓가락 집어서 부에게. 모 : …. 남자 : …내다 파시지…. 부 : 또 캐면 되니까…. 부, 한 젓가락 집어서 남자에게. 남자 : …돌아가면 매일 먹을 텐데…. 남자, 한 젓가락 집어서 모에게. 모 : …. 남자 : …이보다 더 좋은 것도 매일 먹으니까…. 모 : …. 남자 : …고기도 매일…. 모 : …. 모, 남자에게 한 젓가락. 남자 : …. 부 : 귀한 손님인데…. 모 : 어서…. 남자, 망설이다가 한 입 떠 넣는다. 남자 : …두 분도…. 부 : …. 모 : …. 남자 : 두 분이 드셔야 저도…. 부모 : …. 부모 각자 한 숟가락씩 뜬다. 모, 숟가락을 놓는다. 남자 :…. 모 : 입맛이…. 침묵 남자, 수저를 놓는다. 부, 밥상을 옆으로 치운다. 침묵 남자, 지갑을 꺼낸다. 지폐를 꺼낸다. 부모, 손사래. 남자 : 전… 돌아가면 또 있으니까…. 남자, 다시 건넨다. 실랑이. 부, 돈을 받는다. 돈을 들여다보다 방바닥에 내려놓는다. 남자 : …. 모, 남편 가까이 와서 돈을 내려다본다. 모 : …. 부 : …. 남자, 돈을 다시 지갑 속으로. 침묵 남자 : …정말 그리 가면 돌아갈 수 있을까요? 부 : …가보기는 해야지요…. 모 : 옛날에도 그 굴로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고…. 남자 : …. 부 : …온 뜻이 있으면 가는 뜻도 있을 테니…. 모 : …. 부, 일어선다. 부 : …한시라도 빨리…. 남자, 엉거주춤 일어선다. 모, 따라서 일어선다. 부 : 당신은…. 모, 애기 옆으로. 남자 : …어머니…. 남자, 절한다. 모, 어정쩡한 자세로 맞절. 남자, 일어선다. 남자 : 그럼…. 모 : …저기. 남자 : …. 모, 보따리를 내민다. 모 : 이걸…. 남자 : …. 모 : …승우를 만나면…. 남자 : …. 모, 남자의 손을 잡아준다. 모 : …다 잊고… 남자 : …. 모 : …우린 괜찮으니까…. 남자 : …. 모 : …승우를 생각해서…. 부와 남자 밖으로. 모, 마당으로 나와 둘이 사라진 쪽을 본다. 암전 4 같은 장소 황혼 여자와 아들 마당에. 남자, 집밖에서 들어온다. 보따리를 들었다. 여자 : 여보…. 아들 : 아버지. 남자 : …. 여자 : 어떻게 된 거예요? 남자 : …. 여자 : …당신 얼굴이… 머리에 웬 흰머리가? 남자 : …. 여자 : 그건 웬 보따리예요? 남자 : …. 여자, 보따리를 푼다. 더덕, 약초 등. 여자 : …이게 얼마어치야? 남자 : …. 여자 : 어떻게 된 거예요? 남자 : …어머니가…. 여자 : …. 남자 : 나… 당신한테 할 말이…. 아들 : …. 여자 : …. 남자 : …십년 전… 어머니 아버지 그 사고…. 여자 : 여보. 아들 : …. 남자 : 사실은…. 여자 : 여보! 아들 : …. 침묵 여자 : …너는 먼저 내려가. 아들 : …. 여자 : 어서. 아들 : 아버지. 하실 말씀이…. 여자 : 내려가라고. 아들 : …. 여자 : 아버지랑 내려갈 테니까. 아들, 밖으로. 남자 : …못 믿겠지만…. 여자 : 지나간 일이에요. 남자 : …. 여자 : 잊어요. 남자 : 당신…? 침묵 여자 :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았어요…. 남자 : …. 여자 : 그렇게라도 살아야 했으니까…. 남자 : …. 여자 : 우리 여길 떠나요. 남자 : …. 여자 : …승우가 있잖아요. 남자 : …. 여자 : 먼저 내려가 있을 게요. 남자 : …. 여자, 보따리를 챙겨서 밖으로. 남자 그 자리에. 남자, 마당 한 가운데 튀어나온, 바위를 본다. 막
  • [서울신문 신춘문예-시당선작] 가벼운 산/이선애

    태풍 나리가 지나간 뒤, 아름드리 굴참나무 등산로를 막고 누워 있다. 오만상 찌푸리며 어두운 땅속을 누비던 뿌리 그만 하늘 향해 들려져 있다. 이젠 좀 웃어 보라며 햇살이 셔터를 누른다. 어정쩡한 포즈로 쓰러져 있는 나무는 바쁘다. 지하 단칸방 개미며 굼벵이 어린 식구들 불러 모아 한 됫박씩 햇살 들려 이주를 시킨다. 서어나무, 당단풍나무, 노각나무 사이로 기울어진 채 한 잎 두 잎 진창으로 꿈을 박고 있는 굴참나무 제 뼈를 깎고 피를 말려 숲을 짓기 시작한다. 생살이 찢겨 있는 굴참나무, 그에게서는 고통의 향기가 난다. 살가죽의 요철이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탁한 밥장수 할머니의 손등만 같다. 끝내 허리를 펴지 못하는 굴참나무가 세로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굴참나무가 쓰러진 것은 태풍 나리 때문이 아니다. 나무는 지금 저 스스로 살신성인하는 중이다, 하늘 가까이 뿌리를 심기 위해.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우유의식/홍희정

    홈쇼핑 채널에서는 석류 즙에 대한 소개가 한창이었다. 쇼 호스트는 활기찬 하이 톤의 목소리로 석류의 장점을 연신 강조했다. 중년의 여자 탤런트가 과장된 몸짓으로 와인 잔에 석류 즙을 따라 부었다. 살포시 눈을 감은 채 석류 즙을 마시는 그녀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며 텔레비전 화면에 가득 찼다. 고개까지 젖히며 잔을 비운 그녀는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거꾸로 든 빈 잔을 머리 위로 올리고 흔들어 보였다. 누군가가 입 꼬리를 옆으로 잡아당긴 것처럼 웃는 그녀의 얼굴은 의욕이 넘쳐 보였다. 활기찬 그녀와는 달리 나는 젖은 빨래처럼 팔, 다리를 늘어뜨린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판단력이 사라진 채 멍하니 텔레비전만 바라볼 뿐이었다. 내 머리는 우주를 떠받들고 있는 듯 무거웠다. 눈은 가물가물해서 자꾸만 시야가 흐려졌다. 나는 당장이라도 텔레비전을 끄고 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끄고 나면 그나마 남아 있던 잠의 꼬리마저 도망쳐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꿈을 꾸는 것이 두려워 쉽게 잠들지 못했고, 그것이 불면증으로 이어진 케이스였다. 며칠 전에 들른 병원에서는 언제나 그랬듯이 심리적인 문제일 거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나는 적정량의 수면제로만으로는 잠이 오지 않았고 그나마 처방 받은 수면제도 다 먹어 버린 지 오래였다. 철이 들면서부터 나는 늘 같은 꿈에 시달려 왔다. 사실 그것은 꿈이기 이전에 오래전 내가 겪은 일이었다. 나와 동생은 이불도 깔리지 않은 방에 함께 누워 있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낮에 비를 너무 많이 맞고 돌아다닌 우리는 온몸이 젖은 채였다. 동생은 어디가 아픈지 자꾸 기침을 했지만 나는 너무나 피곤해서 눈을 뜨지 못했다. 동생을 돌볼 사람이 나뿐이라는 사실도 버겁게만 느껴졌다. 한참 동안 계속되던 동생의 기침 소리가 갑자기 커지더니 이내 작아졌다. 그제서야 나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방안은 너무 캄캄해서 동생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더듬거리며 동생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손끝에 닿는 동생의 얼굴이 얼음처럼 차가웠다. 동생이 죽은 뒤로 나는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방안 구석에 서 있는 지금의 내가, 동생의 얼굴을 더듬는 어린 나를 바라보는 꿈이었다. 그리고 꿈의 마지막에는 항상 어린 내가 지금의 나를 날카롭게 응시했다. 그때마다 나는 번뜩이는 어린 나의 시선에 몸이 굳어 버렸다. 잠에서 깨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여 보아도 온몸이 꽁꽁 묶인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꿈속의 장면을 떠올리던 나는 늘어뜨린 팔, 다리가 굳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휴대폰을 열어 화면에 나오는 홈쇼핑 주문 전화번호를 눌렀다. 자동주문 전화는 1번, 상담주문 전화는 2번이라는 안내 멘트가 끝나기도 전에 나는 2번 버튼을 힘껏 눌렀다. 버튼을 누르는 내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상담원과 연결이 되자 나는 주저하지 않고 상품을 주문했다. 나의 신용카드 번호와 주소를 확인하는 상담원의 목소리에 나의 손은 떨림을 멈추었다. 하지만 주문을 마치고 휴대폰을 닫자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웃음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껐다. 그리고 바닥에 있던 옷가지를 주워 입고 무언가에 도망치듯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새벽 3시의 주택가 골목은 고요했다. 가로등 불빛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이 꺼져 있었다. 건너편 동네의 아파트를 바라보니 드문드문 불이 켜 있는 창문들의 모양이 무표정한 이모티콘처럼 보였다. 나는 어디로 걸어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평소처럼 집 근처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캄캄한 골목에 내가 신은 슬리퍼 소리가 타박타박 울렸다. 목적지도 없이, 그것도 새벽 3시란 시간에 동네를 어슬렁대는 것은 짝사랑에 빠졌을 때처럼 나의 감정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다. 나는 문득 외롭기도 했다가 갑자기 서럽기도 했다가 느닷없이 의욕이 생기기도 했다가 결국엔 허무하기도 했다가 나중엔 내 자신이 우스워졌다. 괜히 나온 것 같아 후회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운 좋게 잠이 든다 해도 반복될 꿈이 두려웠다. 나는 항상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순간까지 가서야 눈을 뜨곤 했다. 꿈에서 깨고 나면 나는 깨어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늦은 새벽까지 내 전화를 받아주던 친구들도 하나 둘 떨어져 나가 이젠 전화를 걸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홈쇼핑을 보며 상담전화를 걸어 물건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주문하는 물건이 무엇인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깨어 있는 누군가와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었다. 열 평 남짓한 나의 원룸은 홈쇼핑으로 주문한 물건들이 뜯지도 않은 상자 채 쌓여 가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저만치 불이 켜진 편의점 간판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갑자기 나는 깨어 있는 누군가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슬리퍼 바닥이 땅에 부딪치며 나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결국 나는 편의점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편의점의 문을 힘주어 열자 전자음의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높은 톤의 음악소리는 단순하지만 날카로웠다. 카운터 쪽을 바라보니 아르바이트 생인 듯한 남자가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졸고 있었다. 편의점에는 그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나는 냉장 코너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우유와 삼각 김밥과 오렌지주스를 차례로 한 번씩 들어 올렸다 다시 내려놓았다. 식욕이 없어서인지 머릿속이 멍하기만 했다. 나는 결국 캔 커피를 집어 들고 카운터로 갔다. 잠을 자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언제나처럼 그것밖에는 마시고 싶은 것이 없었다. 나는 계산대로 걸어가 캔 커피를 올려 놓았다. 그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캔 커피를 들었다가 조금 거칠게 카운터에 다시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깨어날 줄을 몰랐다. 그가 자는 모습에 나는 자꾸만 불안해졌다. 그를 깨우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캔 커피만 만지작거렸다. 차가운 캔 위에 맺힌 물방울이 나의 손을 적셨다. 당장이라도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고 싶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의 어깨가 아닌 나의 가슴께로 젖은 손을 가져갔다. 평소에 나는 누군가가 잠든 모습을 보면 명치끝이 답답해지곤 했다.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이 숨마저 얕게 쉬고 죽은 듯이 잠을 잘 때면 동생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뚜껑을 덮어 버린 커다란 항아리에 갇힌 것처럼 두려움에 휩싸였다. 때문에 장소에 상관없이 누군가가 자는 모습을 보면 참지 못하고 깨운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지하철에서도 도서관에서도 유독 미동도 하지 않고 잠든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황급히 그들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잠에서 깬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거나 몹시 화를 냈다. 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얼굴을 돌리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아도 어느새 상대의 어깨를 흔드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이번에도 나는 혹시 그가 숨을 쉬지 않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초조한 마음에 그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다행이 그의 가슴은 호흡에 따라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움직임에 나는 막혔던 숨이 터지듯 안도했다. 나는 그를 조금 더 가까이서 관찰했다.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저절로 반쯤 벌어진 입주변이 하얗게 부르터 있었다. 하지만 유난히 힘차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그의 호흡만은 의욕이 넘치는 듯 활기차게 느껴졌다. 힘차고도 부드럽고도 성실한 호흡이었다. 나는 캔 커피 따위는 잊어버린 채 한참 동안 그의 자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심각한 꿈을 꾸는지 미간을 찌푸리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말로 잠꼬대를 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활기차고 부지런한 모습으로 자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나도 모르게 카운터에 손을 집고 서서 그의 얼굴 가까이 내 얼굴을 가져갔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코로 공기가 듬뿍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의 코끝에 천천히 손가락을 가져갔다. 들락날락하는 공기가 나의 손끝을 부드럽게 간지럼 태웠다. 그것은 새끼 고양이가 엉킨 실타래를 풀며 장난을 치듯 따뜻하고 평온한 기분이 들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감긴 그의 눈꺼풀 안쪽에서 눈동자가 움직이며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제서야 나는 그에게 너무 가까이 가 있던 자신에게 놀랐다. 그가 갑자기 깨기라도 한다면 곤란한 상황이 될 게 뻔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고였다. 나는 황급히 편의점 문 쪽으로 걸어갔다. 편의점 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곤하게 자고 있는 그가 몹시 부러웠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잡이를 잡은 나의 손끝에 미련이 남아 있었다. 나는 최대한 천천히 문을 밀었다. 그때 문이 열리면서 전자음의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그가 나를 보며 말했다. -어. 어서 오세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인사말부터 한 그는 들어오는 게 아닌 나가려는 자세의 내 모습을 보고 의아스러워하는 듯했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를 바라보았다. 의심받을 행동을 한 건 없지만 왠지 마음이 불편했다. 망설이던 나는 그를 향해 말했다. -들어오려던 게 아니라 막 나가려던 참인데…… 별로 살 게 없어서요. 새벽 3시에 일부러 편의점을 찾아온 사람이 하는 말로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지만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듯 그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불필요한 말이 자꾸 나왔다. -캔 커피를 사려고 했는데 자는 모습이 너무 피곤해 보여서요. 그는 손등으로 눈을 비비더니 웃으며 말했다. -깨우셔도 되는데 그랬네요. 지금 계산해 드릴게요. 그제서야 나는 캔 커피를 카운터에 그대로 놔둔 것이 생각났다. 할 수 없이 카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에게 카운터에 올려져 있던 캔 커피를 건네었다. 그러자 바코드를 찍으며 그가 말했다. -밤에 이런 거 좋지 않아요. 그는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담담하면서도 진심이 담긴 듯한 목소리는 그가 자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돈을 꺼낼 생각은 못하고 그의 정수리만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어 쑥스러운 듯 웃는 그의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가 캔 커피의 바코드를 한 번 더 찍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에 캔 커피를 가져다 넣고 우유 두 개를 꺼내 왔다. 그는 입구를 조금 연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작동 버튼을 눌렀다. 나는 그가 하는 행동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전자레인지가 멈추었고 그는 따끈해진 우유 팩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는 우유 팩을 손에 쥔 채 편의점에서 함께 아침을 맞았다. 그는 전에도 가끔 캔 커피를 사러 온 나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횟수가 반복될수록 늦은 새벽에 커피를 사는 내가 의아스러웠다고도 했다. 커피를 마시며 편의점을 나가는 내 뒷모습이 이상하게 마음에 쓰였었다며 웃는 그의 얼굴이 성실해 보였다.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그 웃음을 믿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웃는 얼굴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그가 힘차게 숨을 쉬며 자던 모습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는 나에게 밤에 커피를 마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궁금한 것을 순수하게 물어볼 수 있는 그의 태도도 잠든 그의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나는 커피와 상관없이 어차피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내 말은 들은 그가 자신은 밤에 실컷 잘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밤에 일하고 낮에 잘 수밖에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그가 야간에만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햇빛 알레르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이나 저녁의 햇빛 정도야 괜찮았지만 그때를 제외한 시간에는 피부가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했다. 햇빛을 받으면 피부에 빨간 반점이 생기며 참을 수 없이 따가워져서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나는 주변에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본 적은 있었지만 그만큼 심한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살갗이 찢어지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짐작을 하기가 힘들었다. 그 뒤로 나는 새벽 3시면 매일 편의점에 들렀다. 그런 시간들이 한 달쯤 지나자 우리는 함께 잠드는 사이가 되었다. 아침 6시에 그는 퇴근을 하면서 항상 우유 두 개를 들고 내가 사는 원룸으로 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편한 식사로 차가운 우유를 마시는 시간에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마셨다. 매일 반복되는 행동은 우리에게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우리는 그것을 ‘우유 의식’이라고 부르며 웃곤 했다. 불면증이었던 나도 그와 함께 ‘우유 의식’을 하고 나면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비록 보통 사람들이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런 건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만이라도 좋으니 죽은 듯이 자고 싶었던 때와 비교하면 호사스러운 시간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잠자리에 누우면 언제나 상대보다 늦게 잠이 들었었다. 그리고 상대가 곤하게 자는 모습을 보면 애정이 생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지곤 했다.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느낌에 가슴이 아려왔다. 상대도 언젠가는 사라질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우울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달랐다. 그는 언제나 내가 잠들 때까지 깨어 있어 주었다. 싱글 침대 위에서 그와 꼭 붙어 있으면 힘차게 뛰는 그의 심장소리가 나에게 전해졌다. 규칙적인 그의 심장박동과 나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나는 안도하며 잠이 들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잠에서 깬 내가 불안함에 황급히 그를 찾으면 그는 항상 씩씩한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그런 그의 곁에서는 신기하게도 나는 꿈을 꾸지 않고 잘 수 있었다. 가끔 미세한 불안함이 고개를 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호흡에 따라 힘차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그의 가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힘차고도 부드럽고도 성실하게 숨을 쉬며 자는 그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그가 나의 원룸에 찾아오기 시작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나는 백화점에 가서 두 개의 머그잔을 구입했다. 우유팩도 나쁘진 않았지만 머그잔에 담아서 데운 우유는 온기가 더 지속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머그잔에 담긴 우유를 마시며 나는 그에게 아르바이트를 줄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는 웃으며 그러겠다고 했다. 그는 일주일 중 네 번의 밤엔 아르바이트를 했고 세 번의 밤엔 나와 데이트를 했다. 그와 함께 하는 데이트는 해가 없을 때만 가능했으므로 우리가 집을 나설 때는 언제나 밤이었다. 우리는 아무도 없는 캄캄한 공원을 걷기도 했고, 모든 상점이 문을 닫은 명동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배가 고프면 24시간 문을 여는 기사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다리가 아프면 비디오 방에 가서 영화를 보았고, 때때로 PC방에서 서로에게 총을 쏘는 게임도 했고, 찜질 방에 가서 구운 계란을 먹기도 했다. 그와 데이트를 하며 나는 밤에도 깨어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예전에도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나에게 추상적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밤에도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구체적인 느낌을 갖게 되었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밤에는 예전에 홈쇼핑에서 주문했던 물건들을 함께 뜯어보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껍질째 넣어도 무엇이든 주스가 된다던 주서기에 파인애플을 통째로 넣고 갈아보기도 하고, 소나기가 와도 완벽한 방수가 된다던 등산화를 신고 샤워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하루에 한 포씩 먹으면 좋다는 석류 즙을 한꺼번에 누가 더 많이 먹나 내기를 한 적도 있었다. 그는 13포째 봉지를 뜯다가 포기를 했다. 그리고 26포의 석류 즙을 마시고 27번째 봉지를 뜯는 나를 필사적으로 말렸다. 말리는 그의 모습이 우스워서 나는 일부러 3포를 더 마셨다. 여름인데도 반팔 옷을 입지 못하는 그가 나를 말리며 진땀을 뺐다. 그는 햇빛 알레르기 때문에 언제나 긴 팔과 긴 바지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녔다. 심지어 잠을 잘 때도 긴 옷을 벗지 않았다. 그런 그가 안쓰러워 나는 원룸에 있는 단 하나의 창문에 까만 도화지를 꼼꼼히 붙였다. 하지만 그는 긴 옷을 입는 게 습관이 되어서 피부를 내놓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저 그가 편하게 자는 걸 바랐으므로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피부끼리 닿는 부드러운 감촉도 좋을 테지만 뽀송한 면 티에서 느껴지는 감촉도 좋았다. 우리가 편히 잠들 수만 있다면 나는 어떤 감촉이라도 상관없었다. 매일매일이 한결같이 흘러갔다. 그가 퇴근을 하는 아침이면 나는 식탁 위에 두 개의 머그잔을 올려놓고 그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있으면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처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우유 의식’을 하며 예전에 내가 잠들지 못했던 이유를 말해 주기로 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 더블 침대를 하나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가 편하게 자는 것을 바라면서도 미세하지만 집요하게 느껴지는 불안감에 침대 구입을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나자 그의 귀가가 더욱 기다려졌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벌써 도착했을 그가 오지 않고 있었다. 시계는 6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기에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불안했다. 그는 휴대폰이 없어서 내가 연락을 할 방법도 없었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이 지속되자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나 역시 그와 지내는 동안 그에게 전화연락을 할 일 따위는 생긴 적이 없었다. 그는 성실했고 한결같았다. 그런 그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 가볼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별 일 아닐 것이라고 밀려오는 불안감을 외면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사정이 생길 수도 있다고 나 자신을 다독거렸다. 그러나 습관이란 무서웠다.7시까지 깨어 있던 나는 불안함과 나른함에 결국 선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예전에 내가 꾸었던 꿈과는 달랐다. 그와 내가 함께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그는 나에게 등을 보인 채 누워 있었다. 항상 내가 잠들 때까지 나를 안아주던 그였는데 이상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동그랗게 구부려진 그의 등에 몸을 꼭 붙이고 그의 겨드랑이 사이로 나의 팔을 집어 넣었다. 그리고 크고 단단한 그의 등에 귀를 대었다. 나는 숨을 쉴 때마다 커다랗게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그의 등과 가슴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그의 등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딱딱할 뿐이었다. 나는 팔을 좀 더 뻗어 그의 왼쪽 가슴에 손바닥을 대보았다. 힘차게 뛰어야 할 그의 심장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당황스럽고 무서워 그를 깨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 눈에 눈물이 차 올라 그의 모습이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뒤틀려 보였다. 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의 어깨를 잡아 힘껏 내 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그의 몸이 내 쪽을 향하면서 창백하다 못해 투명해진 얼굴이 툭 하고 침대위로 떨어졌다. 아니 그것은 얼굴이 아니고 가면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표정이 떨어져 버린 그의 얼굴로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그의 얼굴이 아닌 동생의 얼굴이 있었다. 나도 처음 들어보는 날카로운 괴성이 나의 뱃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왔다. 잠에서 깬 나는 한참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감긴 눈이 뜨거웠고 목구멍이 찢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흘릴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내가 겨우 눈을 떴을 때 여전히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오전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식탁 위의 머그잔은 아까 내가 놓아둔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몹시 불안해졌다. 편의점에 가보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다. 물에 젖은 듯 무거워진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자꾸만 다리가 휘청거려서 신발을 신는 데 한참이 걸렸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가 디지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평소처럼 그가 현관으로 들어섰다. 분명히 내 앞에 서 있었지만 나는 그가 유령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그를 힘껏 밀어버렸다. 무방비 상태였던 그는 휘청거리더니 넘어지고 말았다. 반은 어리둥절하고 반은 미안한 듯한 표정으로 그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많이 걱정했냐고 말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아직 꿈의 잔상에서 깨지 못한 나는 그의 손길을 거칠게 쳐냈다. 교대할 아르바이트 생이 늦게 오는 바람에 편의점을 비울 수가 없어서 늦었다는 그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의심의 독이 내 몸을 가득 채웠다. 나는 식탁으로 걸어가 그의 머그잔을 밀쳐 버렸다. -당신 말 따위 믿지 않아. 그의 머그잔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어지면서 머그잔의 손잡이가 깨져 버렸다.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말하던 그도 주춤하는 듯했다. 그의 태도가 나를 더욱 동요하게 만들었다. 내 몸은 마비가 되는 것처럼 뻣뻣해져 왔다. -남겨진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당신이 알기나 해! 나도 모르는 말이 내게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그를 향해서 하는 말인지 오랫동안 꿈속에 나타난 동생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식탁을 집고 있는 내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때 그가 떨고 있는 나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았다. 그의 손은 가을 단풍잎처럼 빨갛게 변해 있었다. 순간 나는 햇빛 알레르기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머니에 넣고 달리려니까 빨리 달릴 수가 없어서…… 느릿한 그의 말에 나는 누군가의 농담에 받아칠 말을 찾지 못하는 사람처럼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는 손 때문에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에게 살갗이 찢어지는 아픔은 물론이고 더 큰 상처까지 준 것 같아 고통스러웠다. 그 일이 있은 뒤에도 그의 생활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일주일의 네 번의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세 번의 밤은 나와 함께 보냈다. 달라진 거라곤 아침 6시가 되어도 누워 있기만 하는 나를 대신해 그가 머그잔에 우유를 담아 데우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작은 침대에 그와 몸을 붙이고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그의 면 티에서 더 이상 아무런 촉감도 느낄 수 없었다. 꼭 붙어 있는 우리의 몸 사이로 무언가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만 같아 숨이 막혔다. 그가 나를 꼭 안을수록 내 마음은 줄을 놓쳐 버린 풍선처럼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그의 품에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그런 나 때문에 그도 잠을 자지 못했다. 그는 점점 야위어갔다. 하지만 나는 그를 위해서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새벽 3시의 골목과 같은 침묵이 우리 사이에 계속되고 있었다. 머그잔을 앞에 놓고 마주 보고 있어도 온몸이 땀에 젖도록 서로를 붙인 채 밤을 새 보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아르바이트가 없을 땐 예전에 갔던 밤의 장소에 나를 데리고 가기도 했지만 나는 어디를 가도 무표정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번에는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하며 내 앞에 석류 즙이 가득 담긴 상자를 끌고 왔다. 나는 그가 내 손에 쥐여 주는 석류 즙 봉지를 멍청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시작, 이라고 힘차게 외친 그는 정말 누군가와 경쟁이라도 하듯 빠르게 봉지를 비워 가기 시작했다. 그는 봉지를 제대로 뜯을 새도 없이 허겁지겁 석류 즙을 마시기 시작했다. 거칠게 봉지를 뜯는 그의 손에 석류 즙이 이리저리 튀었다. 그가 즐겨 입는 하얀 티 위로 석류 즙이 흘러내렸다. 주변에 쌓이는 빈 봉지가 늘어갈수록 그의 옷이 점점 더 붉어졌다. 나는 그가 쥐여 준 봉지를 손에 쥔 채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석류 즙을 마시던 그가 갑자기 ‘컥’ 하는 소리와 함께 마신 것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석류 즙을 비운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모든 것이 쏟아져 나왔다. 방바닥은 물론이고 그의 얼굴과 몸 전체가 붉게 물들어 갔다. 그 모습은 마치 붉은 노을 앞에선 그를 연상하게 했다. 그는 언젠가 나에게 바깥에서 마지막으로 노을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두 팔을 벌린 채 저물어 가는 햇빛을 마음껏 받고 있는 그를 상상했다. 한 번도 본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볼 수 없는 장면이 내 앞에 있는 그의 모습과 겹쳐졌다. 나는 그의 자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처럼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에서 갑자기 무언가가 흘러내렸다. 그것은 얼굴 위로 튄 석류 즙에 섞여 잔인하리만큼 아름답고 투명한 붉은색이 되어 흘렀다. 하지만 그는 눈물을 닦을 새도 없이 계속해서 석류 즙을 토해 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그는 더 이상 나를 위해 애쓰지 않았다. 며칠 뒤 출근을 한다고 나간 그는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당연한 듯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어쩌면 나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가 내미는 손을 잡았어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는 모습이 성실하기만 한 그에게 차마 내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이야기를 꺼내고 나면 이해 받고 싶어질까 봐 두려웠다. 나는 그에게 그럴 자격이 없었다. 매일 ‘우유 의식’을 함께해 준 그에게 조금도 마음을 열지 않았던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오늘도 같은 꿈이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잡으며 주체할 수 없이 온몸이 떨려 왔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쳐 버리고 싶었다. 떠날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 하지만 나는 결국 머무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나는 그의 어깨를 힘껏 내 쪽으로 돌렸다. 수십 번도 넘게 반복한 행동이었지만 나는 숨이 막혀 왔다. 그러자 그의 얼굴, 동생의 얼굴 그리고 어린 나의 얼굴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그것들을 껴안고 싶은 마음과는 다르게 필사적으로 피할 뿐이었다. 손을 내저으며 최대한 몸을 작게 웅크렸다. 모든 상황이 잔인했다. 하지만 그들이 잔인한 것인지 내가 잔인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잠에서 깼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캄캄한 방안은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작은 창문 위 까만 도화지는 조금의 틈도 없이 꼼꼼하게 붙어 있었다. 마치 내 자신을 보는 것 같은 생각에 나는 다시 숨이 막혀 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여름 바람이 훅하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시계를 보니 저녁 6시였다. 나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한때 이곳에는 머그잔에 담긴 우유처럼 온기가 가득 찼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없는 일주일간 홈쇼핑에서 주문한 상품들이 방안을 채우고 있을 뿐이었다. 뜯지도 않은 상자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공허함은 커지기만 했다. 나는 식탁으로 걸어가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머그잔을 감싸 쥐었다. 손잡이가 없는 그의 머그잔에 담긴 우유가 찰랑거렸다. 아침에 따라놓은 우유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나는 그가 떠난 뒤에도 매일 ‘우유 의식’을 거르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몫의 우유를 다 마신 뒤에도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그러나 혼자 하는 ‘우유 의식’을 멈출 용기도 나에겐 없었다. 나는 ‘우유 의식’을 하고 나면 억지로라도 침대에 누워 잠이 오길 기다렸다. 그 기다림 끝에 잠이 들면 매일 같은 꿈을 꾸었다. 등을 보이고 누운 그를 꿈속에서 보았는데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면서도 매번 두려웠다. 그와 지내는 동안의 ‘우유 의식’은 나의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는 버팀목이었지만 이제 그것은 나의 삶을 조여 오는 올가미가 되어 있었다. 나는 갑자기 방안의 공기마저 쌀쌀하게 느껴졌다. 황급히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에는 두 명의 쇼 호스트와 한 명의 여자 탤런트가 하이 톤의 목소리로 석류 즙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석류가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과 폴리페놀 성분이 피부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들이 하는 말 중 몇 가지 반복되는 단어만이 띄엄띄엄 들릴 뿐이었다. 석류, 비타민C, 여성, 남성, 남녀노소, 온 가족, 활기찬, 여성,95%, 에스트로겐, 무이자 3개월, 온 가족, 활기찬, 하루 한 포, 석류, 매일 아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휴대폰을 열어 홈쇼핑의 상담 전화번호를 눌렀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통화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에서 경쾌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음악은 내가 그의 자는 모습을 처음 보았던 날 편의점 문이 열리며 흐르던 음악소리를 떠올리게 했다. 상담원이 전화를 받으며 말했다. 정성을 다하겠습니다.○○홈쇼핑입니다. 나는 가슴이 먹먹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상담원은 잠깐의 시간을 두고 나에게 다시 말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방송중인 석류 즙을 구매하시겠습니까? 나는 간신히 목소리를 짜내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안녕하세요. 나의 인사에 그녀는 반복되는 말을 다시 건네었다. 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나는 그녀를 향해 질문했다. 석류 즙 한 포에 몇 개의 석류가 들어있나요? 네, 고객님. 한 포에 두 개 정도의 석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그녀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물었다. 석류는 국내산인가요? 그녀는 조금 당황하는 듯했지만 일관된 톤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최고급 이란산 석류를 사용합니다. 나는 그녀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한참 동안 질문을 계속했다. 나의 질문이 계속될수록 그녀의 말투는 빨라졌고 대답은 짧아졌다. 나의 마지막 질문에 그녀는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한 상품정보를 참조한 뒤 다시 전화를 달라고 말했다. 더 이상 그녀는 나의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석류 즙을 주문하겠다고 말하자 그녀는 나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수화기 너머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매우 빠르고 강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와 나 사이의 흐르는 침묵을 견딜 수가 없었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혹시 저 기억하세요? 여러 번 구매했었는데. 그러자 그녀가 상냥하지만 기계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감사합니다.○○○ 고객님께서는 석류 즙 재구매 고객이시므로 만원의 할인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나는 상담원의 말에 휴대폰을 놓친 채 일주일간 참아 왔던 울음을 터트렸다.
  • 한우도 브랜드 시대

    한우도 브랜드 시대

    한우도 브랜드 시대가 열렸다. 쇠고기 수입 개방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된 한우 브랜드화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아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잇따라 개발되고 있다. 이들 브랜드 한우는 육질이 부드럽고 고유의 맛이 뛰어나며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뿌리를 내려 높은 값에 팔리고 있다. 또 자치단체와 농민들이 과학적인 품질관리를 함으로써 인지도를 높여나가고 있다. 강원도는 산지가 많고 일교차가 큰 지역 특색을 살려 일찍이 한우 브랜드를 개발한 지역이다. ●횡성한우·장수한우 등 다양 횡성군과 횡성축협은 국내 최초로 한우 비육 사업을 추진했다.‘횡성한우’는 2007 전국 축산물 브랜드경진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한우 대표 브랜드다. 횡성군 지역 1758농가에서 2만 2000여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일교차가 큰 해발 100∼800m에 이르는 청정 고랭지에서 사육하기 때문에 한우 고유의 풍미가 높다. 강원도에는 이밖에도 평창군의 ‘대관령한우’, 홍천 ‘늘푸름한우’, 영동지역 7개 시·군 광역브랜드인 ‘한우령’ 등이 있다. 또 춘천·화천·철원·양구·인재 등 5개 시·군은 ‘하이록’이라는 공동브랜드를 만들었고 원주에서는 ‘치악산한우’가 생산되고 있다. 전북지역에서는 산간부인 장수군에서 생산되는 ‘장수 한우’가 유명하다. 고급육 생산으로 한·미 FTA 파고를 넘는 수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장수 한우는 철저한 품질관리와 유통관리로 유명 백화점과 대형 할인마트 등에서만 구입이 가능하다. 전북도내 6개 축협이 연합해 만든 광역 브랜드인 ‘참예우’도 자리를 잡았다. 정읍시를 대표하는 ‘단풍미인한우’와 김제·정읍지역에서 청보리를 먹여 기른 ‘총체보리한우’ 역시 고품질 한우로 소비자의 인기를 끌고 있다. 전남지역은 담양군의 ‘대숲 맑은물 한우’,‘지리산 순한 한우’, 함평군의 ‘천지한우’, 영암군 ‘매력한우’ 등이 높은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다. 울산시농업기술센터는 울산 북구 시례동 축산 농가에서 생산되는 한우에 대해 최고급 브랜드 사업을 추진해 ‘무룡산영한우’라는 상표로 출시하고 있다. 시농업기술센터는 2006년 6월 상표출원을 하고 출하·포장·유통관리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한다. 울주군과 울산축협은 최고급 육질로 인정받고 있는 언양읍과 두동면 봉계리 일원에서 생산되는 언양·봉계 한우를 내년부터 ‘햇토우랑’이라는 브랜드로 출시한다. ●과학적 품질관리로 명성 브랜드 한우는 송아지에서부터 출하될때까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사양 관리를 하고 있다. 순수 혈통의 송아지를 확보하기 위해 원종 한우 관리를 하고 있다. 또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을 원료로 한 특수 사료를 먹이기도 한다. 강원도 ‘횡성한우’는 어미소가 되기 전에는 조사료를 먹여 골격과 소화기관을 발달시키고 다 자라면 배합사료를 먹여 근육을 발달시킨다. 출하 전에는 고열량 사료를 먹여 지방함량을 높인다. 생후 28∼30개월이면 650㎏ 이상 자라도록 한다. 도축 후에는 4∼6일간 숙성 기간을 거쳐 맛이 가장 좋을 때 시판한다. 전북 ‘장수한우’는 우수한 한우 원종을 관리하기 위해 ‘송아지 이력제’를 도입했다. 사람의 호적등본처럼 모든 한우의 이력을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다.‘장수한우클러스터사업단’은 배합사료와 조사료를 적절히 배합해 소의 성장과 비육에 알맞은 사료를 특별 제작해 사육단계별로 공급한다. 전북도는 사양관리통일, 사료통일, 종축통일 등 ‘3통’을 충족시켜야 공인된 한우 브랜드로 인정하고 있다. 울산 ’무룡산영한우’는 초음파를 이용해 생체판정 과정을 거쳐 육질이 가장 좋을 때 출하한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51) 중인 지식인들이 꿈꾸었던 인왕산 공동체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51) 중인 지식인들이 꿈꾸었던 인왕산 공동체

    중인들은 한 집안에서 같은 직업을 이어받으며 배타적인 기득권을 누렸다. 어려서부터 가정교사를 들여놓고 잡과 시험공부를 시켰으며, 자기네들끼리 추천하여 정원을 나눠 가졌다. 혼인도 같은 직업끼리 했다. 그렇지만 이웃과 어울려 즐길 줄도 알았다. 한 마을에서 자라며 같은 서당에서 공부하다보면 형제 이상의 우정이 생겨,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혼이 중심이었던 옥계사(玉溪社) 동인들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자고 계를 꾸렸으며, 장혼의 서당에서 글을 배웠던 장지완의 친구들도 형제처럼 밤낮 머리를 맞대고 지냈다. ●공동체의 규범인 사헌을 정하다 인왕산에서 태어난 장혼의 친구들이 1786년 7월16일에 옥계(玉溪) 청풍정사에 모여 시사(詩社)를 결성한 이야기는 제1회에 소개했는데, 이들은 옥계사의 정관이라고 할 수 있는 사헌(社憲)을 정해 공동체를 만들었다.22조 가운데 몇 조목만 살펴보아도, 이들이 꿈꾸었던 인왕산 공동체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1. 우리는 이 계()를 결상하면서, 문사(文詞)로써 모이고 신의(信義)로써 맺는다. 그러기에 세속 사람들이 말하는 계(契)와는 아주 다르다. 그러나 만약에 자본이 없다면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각기 한 꿰미씩의 동전을 내어서 일을 성취할 기반으로 삼는다. 이자돈을 불리는 것은 다섯 닢의 이율로 정한다. 1. 여러 동인들 가운데 우리의 맹약을 어기는 사람이 있으면 내어는다. 그래도 끝까지 뉘우치지 않으면 길이길이 외인(外人)으로 만든다. 1. 한 달에 한번씩 모여 노는데, 반드시 대보름, 봄과 가을의 사일(社日), 삼짇날, 초파일, 단오날, 유두(流頭), 칠석, 중양절, 오일(午日), 동지, 섣달 그믐으로 정하여 행한다. 낮과 밤을 정하는 것은 그때가 되어 여론에 따른다. 회계나 모임을 알리는 글은 다른 사람들이 보거나 듣지 못하게 한다. 1. 시회(詩會) 때마다 만약 시를 짓지 못하면 상벌(上罰)을 베푼다. 1. 우리 동인들이 정원에서 모이는 모습이나 산수(山水) 속에서 노니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내어, 이야깃거리로 삼는다. 1. 우리 동인들 가운데 만약 부모나 형제의 상을 당하게 되면 한 냥씩 부의(賻儀)하고, 종이와 초로 정을 표시한다. 자식이 어려서 죽게 되면 술로써 위로한다. 집안에 상을 당하게 되면 성 밖까지 나가서 위로하며, 반드시 만사(輓詞)를 짓되 그 정을 속이지 않아야 한다. 만장군은 각기 건장한 종 한명씩을 내어 놓는다. 1.(벼슬을 얻어) 출사례(出仕禮)를 치를 때에는 후박(厚薄)에 따라 세 등급으로 한다. 상등은 무명 3필, 중등은 2필, 하등은 1필로 한다. 돈으로 대신 바칠 때는 두 냥씩 바친다. 1. 여러 동인들 가운데 상을 당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날로 각기 비석 한씩을 내어 세운다. 장례 하루 전까지 여러 동인들이 각기 만사(輓詞) 한 수씩을 지어 상가로 보내며, 만장군을 그날 저녁밥 먹은 뒤에 보내되 각기 만장을 가지고 가게 한다. 상가 근처에서 명령을 기다리게 하되, 상여가 떠날 때에 검속하는 사람이 없어서는 안되니, 여러 동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무덤 아래까지 이끌고 간다. 장례가 끝난 뒤에 신주를 모시고 돌아올 때에도 따라오되, 마세전(馬貰錢)은 거리가 멀고 가까움에 따라 곗돈 가운데서 지급한다. 1. 여러 동인들 가운데 기복(朞服)이나 대공복(大功服)의 상복을 입게 되는 사람이 있으면, 상복을 처음 입는 날 모두 함께 찾아가서 위문한다. ●인왕산 기슭, 옥계와 필운대 사이에 모여 살다 천수경이 옥계로 먼저 이사오자, 장혼이 찾아와 시를 지었다. “예전 내 나이 열예닐곱 때에/이곳에 놀러오지 않은 날이 없었지./바윗돌 하나 시냇물 하나도 모두 내 것이었고/골짜기 터럭까지도 모두 눈에 익었었지./오며 가며 언제나 잊지 못해/시냇가 바위 위에다 몇 간 집을 지으려 했었지./그대는 젊은 나이로 세상에서 숨어 살 생각을 즐겨/나보다 먼저 좋은 곳을 골랐네그려./내 어찌 평생동안 허덕이며 사느라고/이제껏 먹을 것 따라다느니라 겨를이 없었나./싸리 울타리 서쪽에 남은 땅이 있으니/이제부턴 그대 가까이서 함께 살려네./이 다음에 세 오솔길을 마련하게 되면/구름 속에 누워서 솔방울과 밤톨로 배 불리세나.” 어릴 적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이웃에 살았는데, 이들의 서재 이름은 다음과 같다. 천수경:송석원(松石園) 장 혼:이이엄(而已), 다 허물어진 집 세 간뿐. 임득명:송월시헌(松月詩軒), 이웃에 지덕구가 살았다. 이경연:옥계정사(玉溪精舍). 적취원(積翠園)은 아들 이정린에게 물려주었다. 김낙서:일섭원(日涉園). 아들 김희령에게 물려주었다. 왕 태:옥경산방(玉磬山房). 뒷날 육각현으로 이사갔다. 이들은 인왕산 친구들끼리 모이면서,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은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그랬기에 남들이 보지 못하게 통문을 돌렸으며, 한때 동인이었더라도 일단 쫓겨나면 외인(外人)으로 취급했다. 이들의 계()는 진나라 시인 왕희지의 난정수계(蘭亭修)를 본뜬 문학적 모임이지만, 계(契)의 성격을 살려 기금을 모으고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였다. 이들의 직업은 다양해서 만호(차좌일), 규장각 서리(김낙서, 임득명, 김의현, 박윤묵), 승정원 서리(이양필), 비변사 서리(서경창), 훈장(천수경, 장혼), 술집 중노미(왕태) 등이었는데, 시 짓기 좋아하고 술을 좋아한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들은 보고 싶을 때마다 이웃 집에 찾아가 시를 짓고 술을 마셨다. 그러나 직장 일에 얽매이다보니 자주 만날 수 없어, 일년에 며칠을 미리 정해 놓고 만났다.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날마다 이들이 모여 시를 짓고 놀았던 것을 보면, 이들은 친척보다 옥계사 동인들과 더 친밀하게 지냈음을 알 수 있다. ●일년 열두달의 모임터 이들은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그날 할 일도 정했는데, 사자성어로 표현했다. 이들이 정한 ‘옥계사 십이승’은 다음과 같다. 7월. 단풍 든 산기슭의 수계(楓麓修) 8월. 국화 핀 뜨락의 단란한 모임(菊園團會) 2월. 높은 산에 올라가 꽃구경하기(登高賞華) 6월. 시냇가에서 갓끈 씻기(臨流濯纓) 1월. 한길에 나가 달구경하며 다리밟기(街橋步月) 4월. 성루에 올라가 초파일 등불 구경하기(城臺觀燈) 3월. 한강 정자에 나가 맑은 바람 쐬기(江淸遊) 9월. 산속 절간에서의 그윽한 약속(山寺幽約) 10월. 눈속에 마주앉아 술 데우기(雪裏對炙) 11월. 매화나무 아래에서 술항아리 열기(梅下開酌) 5월. 밤비에 더위 식히기(夜雨納凉) 12월. 섣닫 그믐날 밤새우기(臘寒守歲) 이들은 이따금 인왕산을 벗어나기도 했는데, 이들이 정한 우선 순위를 보면 역시 단풍 든 가을과 꽃 피는 봄의 모임을 좋아하고, 눈 내리는 겨울이나 더운 여름은 덜 좋아했다. 모일 때마다 자신들이 노니는 모습을 시로 짓고 그림으로 그렸는데,1786년 7월의 모임에서는 12승에 해당되는 달마다 동인들이 1수씩 시를 지었다. 이때 편집한 ‘옥계사(玉溪社)’ 수계첩에는 모두 156편의 시가 실리고, 겸재 정선의 제자인 임득명의 그림이 2월,1월,9월,10월의 시 앞에 실려 있다. ●인왕산 10경을 선정하고 그림 그려 즐기다 이들은 참석자 숫자만큼 수계첩을 만들어서 나누어 가졌는데,1786년 7월16일의 수계첩은 당시 가장 연장자였던 최창규의 소장본이 삼성출판박물관에 남아 있으며,1791년 유두(流頭)의 ‘옥계아집첩’은 김의현의 소장본이 한독의약박물관에 남아 있다. 갑자년(1804) 명단에 세상을 떠난 선배들 이름이 보이지 않더니, 무인년(1818) 수계첩에는 송석원 주인 천수경의 이름마저 명단에 보이지 않는다. 영국 대영도서관에 소장된 무인년 수계첩에는 임득명이 그린 옥계십경(玉溪十景)이 실려 있다. 경치가 아름답다는 것은 주관적인 평가인데, 아름다운 경치의 숫자를 정해놓고 하나하나 의미를 찾아내는 예술적 작업이 바로 팔경(八景), 또는 십경(十景)의 선정이다. 팔경이나 십경 앞에서 시인들은 시를 짓고, 화가는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이 경치에는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까지 포함된다.‘아름다운 나무의 무성한 그늘(嘉木繁陰)’은 한여름의 인왕산 모습이고,‘깊은 눈속의 이웃집(數隣深雪)’은 겨울의 인왕산 모습이다. 인왕산은 하나이지만, 철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옥계 외나무다리를 건너 이웃 친구를 찾아가는 시인의 모습에서 인왕산의 문기(文氣)를 엿볼 수 있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Local] 정선5일장 100억대 소득 창출

    강원 정선지역의 정선5일장이 100억원대의 소득창출 효과를 거두며 지역경제를 살리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11일 정선군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11월까지 정선5일장과 주말장터 등이 모두 64차례 열리면서 관광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7.7% 늘어난 17만 1365명이 방문했다. 이들 관광객은 1인당 평균 6만 820원을 지출, 모두 104억 2200만원에 달하는 지역 소득창출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집계됐다. 또 산나물철과 하계휴가철, 가을단풍철 등 3차례의 관광성수기 기간 중에는 관광열차 운행과 연계, 매주 토·일요일 개장한 주말장터에 2만 3971명이 다녀간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관광객이 늘어난 이유는 정선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는 테마장터 조성, 패키지 관광 프로그램 등 정선만의 특색 있는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제공되고 신토불이 상인인증제 및 품질관리위원회 운영 등 고객만족서비스 체계가 확립됐기 때문으로 분석됐다.정선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서울신문·서울시의회 11월 의정모니터] “지하철 승강기 위치표시 허술”

    [서울신문·서울시의회 11월 의정모니터] “지하철 승강기 위치표시 허술”

    서울신문과 서울시의회가 함께 추진한 ‘11월의 의정모니터’는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초입에 걸친 계절감을 반영해 관광, 산책 등 여가 즐기기에 대한 것이 유독 많았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부족한 환경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시민이 직접 참여해 의견을 올리는 만큼 실생활의 불편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생생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신문과 서울시의회는 지난달 30일까지 제시된 의견 70건 중 16건을 우수의견으로 뽑았다. ●찾고 싶고, 걷고 싶은 거리를 정순애(51·양천구 목6동)씨는 “운치와 낭만을 더하기 위해 조성하는 낙엽거리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지속적인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서 “너도 나도 흉내내듯 이벤트적인 낙엽거리 지정이 아니라 실제 추억과 낭만을 쌓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이를 위해 ▲낙엽이 흩날려 지저분해지지 않도록 차량 운행이 많은 곳은 제외 ▲나무가 잘 가꾸어지고 일정한 수령 이상인 나무가 자라는 곳을 지정 ▲고궁이나 공원 근처 특색있는 거리를 지정 ▲낙엽을 은행·단풍·플라타너스 등 종류별 테마거리로 조성할 것 등을 제안했다. 유경선(46·중랑구 망우2동)씨는 지하철 5∼8호선 전차안에 역 근처 문화공간 등을 소개한 안내도가 있지만 실제로 이 안내도만으로는 소개된 지역을 찾아가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유씨는 “안내도가 현실과 다른 점이 있고, 실제로 해당되는 역에서는 더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 없다.”면서 어디서나 쉽게 명소를 찾아갈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도인채(56·동작구 대방동)씨는 광화문의 시티투어 관광버스 매표소와 관광안내소를 통합해 관광 정보도 얻고 버스를 기다리는 장소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서울이 관광의 중심지가 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활 편의를 높여주세요 휠체어를 타는 윤희경(40·노원구 하계1동)씨는 낙엽이 쌓이거나 눈이 소복이 내린 아름다운 길을 즐기지 못했다. 보도블록이 잘 다듬어지지 않아 심하게 덜컹거리기 때문이다. 윤씨는 “도로포장이 잘못되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허리와 엉덩이에 심한 통증을 갖게 되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엄마와 아기에게도 불편하다.”면서 세심한 배려를 주문했다. 김금순(42·종로구 누상동)씨도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어느 지하철을 가도 승강기가 설치돼 있어 노약자, 임신부, 장애인 등의 불편이 해소됐지만 위치 표시가 허술해 헛걸음을 하기 일쑤”라면서 “승강기 설치 장소를 화살표나 번호, 약도 등에 상세히 기재해달라.”고 요청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초겨울에 꽃피우는 식물들

    [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초겨울에 꽃피우는 식물들

    단풍조차 모두 스러지고 겨울의 문턱에 다다른 요즈음에도 꽃을 피우는 식물들이 있다. 이 늦깎이 꽃들은 분명히 가을꽃으로서 수선화, 박달목서, 상동나무, 동백나무, 한란, 비파나무, 보리밥나무 같은 겨울꽃과는 구별된다. 이들은 수은주가 영하 가까이 떨어지고 첫눈이 내리기도 하는 날씨에 꽃을 피워 우리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이맘때 꽃을 피우는 식물은 두 부류다. 하나는 평범한 가을꽃이지만 꽃이 피는 기간 자체가 길어서 늦게까지 꽃을 피우는 것들이고, 다른 하나는 가을꽃 중에서 가장 늦게 꽃을 피우는 종류들로 늦가을이 개화기인 식물들이다. 이고들빼기, 갯쑥부쟁이, 꽃향유, 물매화 등이 개화기가 긴 식물에 속하고 산국, 감국, 털머위 등은 태생적으로 늦가을에 꽃이 피는 식물이라 할 수 있다. 남부지방 해안에 자라는 상록성 식물인 털머위는 늦가을에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는데, 이맘때 울릉도에 가면 이 식물이 섬 전체를 노랗게 물들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주도 해안에서는 감국이나 갯쑥부쟁이를 12월 중순까지 볼 수 있다.‘올인’이라는 드라마 촬영으로 더욱 유명해진 성산일출봉 부근의 섭지코지 같은 곳을 찾아가면 해안에서 무리를 지어 꽃을 피운 감국과 갯쑥부쟁이를 만날 수 있다. 제주도나 울릉도와는 달리 원래부터 따뜻한 곳이라 할 수 없는 서울에서도 이맘때 꽃을 피운 식물들이 발견된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온난화 영향이라기보다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인 서울의 열섬현상 때문이다. 난방, 자동차 배기가스 등으로 인해 서울은 주변의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도가 높은 것이다. 왕벚나무 개화기가 충남 아산보다 1주일 이상 빨라진 것은 10년도 넘게 지속돼온 현상이다. 남부지방 원산의 왕대나무가 잘 자라고, 아열대 식물인 파초일엽을 화단에 심어도 죽지 않고 자란다. 며칠 전 서울의 대모산 자락에서 그 증거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나도바랭이새, 털물별아재비, 고마리, 쇠별꽃, 까마중, 개망초, 개여뀌, 서양등골나물, 미국가막사리, 환삼덩굴 등 10여 종의 식물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산자락의 마을 근처에서 늦가을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피우고 있어 절기가 헷갈릴 정도였다. 이들 가운데 많은 것들이 귀화식물로서 논과 밭에서는 강력한 잡초가 되고, 자연에서는 토종식물을 위협하는 생태계 교란자가 된다. 털별꽃아재비라고도 불리는 털물별아재비는 초여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꽃을 피우며 번식하는 한해살이 귀화식물이다. 열대 아메리카 원산으로 1970년대에 처음 발견된 이래, 매우 빠른 속도로 전국에 퍼지고 있는 잡초다. 북미 원산의 귀화식물인 서양등골나물은 야생동식물보호법에 의해 생태계위해외래종으로 지정된 식물이다. 서울의 야트막한 산은 물론이고 녹지대에는 어디에나 들어와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다. 생태계가 안정되면 더 이상 발을 붙이지 못하는 한해살이 귀화식물들과는 달리, 서양등골나물은 여러해살이풀로서 생태계 내에서 자신의 확실한 지위를 차지하고 생육지를 넓혀가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북미 원산의 미국가막살이도 하천이나 계곡 주변의 습지를 점령하여 다른 토종식물들을 밀어내고 있다. 이처럼 늦게까지 꽃을 피워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하는 귀화식물들은 세력을 급속도로 넓혀가며 우리 국토를 잠식해 가고 있다. 겨울의 문턱에 다다른 이맘때에 서울에서 꽃이 핀 식물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경계할 일이다. 따뜻하게 변한 서울, 지구온난화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인식해야 한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Zoom in 서울] 서울 가로수 다양해진다

    [Zoom in 서울] 서울 가로수 다양해진다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가 대부분인 서울의 가로수가 다양해진다. 특히 함부로 가로수를 훼손하면 최고 1000만원까지 벌금을 물린다. 서울시는 20일 가로수 수종(樹種)을 다양화하고 가로수 모양을 아름답게 가꾸는 ‘가로수 조성·관리 개선 기본계획’을 수립, 추진하고 관련 조례도 개정한다고 밝혔다. ●세검정∼진관외동 등 16개 구간 35㎞도 우선 ‘가로수 10대 시범가로’를 지정, 단계적으로 바꿔 나간다는 계획이다. 10대 시범가로는 ▲율곡로 회화나무 ▲강남대로 침엽수 ▲영동대로 느티나무 ▲경인로 중국단풍 ▲동1,2로 느티나무 ▲남부순환로 메타세쿼이아 ▲신촌로 목련 ▲왕산로 복자기 ▲한강로 대왕참나무 ▲수색로 벚나무 등이다. 시 관계자는 “서울의 가로수는 48종 28만여 그루지만 75%인 21만여 그루가 은행나무(42.2%)와 플라타너스(32.8%)”라면서 “다양한 수종을 통해 역사성과 지역성을 갖춘 거리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시는 또 현재 도로정비를 진행 중이거나 도로를 신설할 예정인 세검정∼진관외동 구간 도로 5.6㎞ 등 16개 구간 35㎞도 수종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또 매년 2000그루씩 모두 2만 4000그루의 가로수를 더 심는다. 가로수 사이에 키 작은 나무 등을 심는 ‘띠녹지’를 연간 10∼25㎞씩 320㎞에 걸쳐 조성하기로 했다. 특히 가로수를 무단으로 훼손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건교부와 함께 관련 법규 개정을 추진 중이다. ●가로수 훼손시 벌금 최고 1000만원 또 가로수를 바꿀 때는 자치단체가 조성계획을 수립한 뒤 주민의견 청취 등을 거쳐 심의안 작성·제출하면 서울시 도시공원위원회에서 심의 후 시행하도록 가로수종 선정방식을 개선하기로 했다. 이밖에 옹벽이나 고가도로 등의 구조물을 지을 때 설계 단계부터 구조물을 녹화하도록 협조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가지치기에 참여하는 인력이 교육용 동영상과 현장실습을 통한 교육을 이수토록 해 무분별한 가지치기도 막는다. 푸른도시국 최광빈 조경과장은 “자치구들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가지를 마구 쳐내 가로수가 흉물스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연간 35억원을 자치구에 지원하고 가지 치는 교육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수능 수험생 모여라”

    “수능 수험생 모여라”

    “수능 스트레스 떨쳐요.” 지방자치단체 등이 수능이 끝난 고3생들을 위해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울산시는 내년 2월28일까지 ‘고3학생 문화로 모시기 운동’을 추진한다. 시는 이와 관련,20∼22일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고3생을 초청해 오페라 ‘사랑의 묘약’ 특별공연을 한다. 울산시·울산상공회의소·시교육청이 공동 주최하며 공연단이 학교를 찾아가 공연하는 ‘스쿨 콘서트’를 26일부터 다음달 28일까지 개최한다. 또 울산시문화예술회관과 북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각종 문화행사에 고3학생들을 무료로 초청한다. 현대중공업은 고3생을 대상으로 20일부터 12월 말까지 세계 최대 조선소 견학 행사를 한다. 해당 학교에는 회사 차량을 지원하고 기념품·간식을 제공한다. 이 날까지 23개 학교(9200여명)가 견학 신청을 했다. 신청학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부산시 각 구청은 수능시험이 끝난 직후부터 내년 1월 말까지 청소년수련관을 개방해 동아리경연대회, 실용음악강좌, 만화제작체험 등 청소년을 위한 다양한 교육·여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구시립예술단의 국악단(19일)·합창단(21일)·극단(26일)·교향악단(30일) 등 4개 악단도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고3생을 위한 특별공연을 한다. 경북 경주청소년수련관도 오는 23일 실내체육관에서 지역 고3생·교사·학부모 등 3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고3 청소년 축제’를 개최한다. 포항청소년수련관은 각계 전문가를 강사로 초청해 고3생들에게 ▲멋진 사람으로의 이미지 디자인 ▲청소년 경제 특강 ▲화성남(男)·금성녀(女)의 사랑 이야기 ▲청소년의 리더십과 비전 등을 주제로 강의를 하는 ‘청소년 사회 적응 프로그램’을 20∼30일 운영한다. 전남 순천시는 고3생을 대상으로 우리고장 둘러보기 행사를 한다.20일까지 행사 참가를 희망하는 학교를 접수받아 수송버스 임대비와 1인당 3000원씩 간식비를 지원한다. 주요 견학지역은 갈대숲과 어우러진 낙조가 절경인 순천만,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선암사, 전통민속마을 낙안읍성, 조계산 등이다. 전국종합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19일 TV 하이라이트]

    ●와신상담(EBS 오후 8시50분) 부차는 오나라 종묘 밖에서 월나라인을 모욕한다. 또한 오나라 조상 앞에서 구천이 무릎을 꿇지 않자 군졸들을 시켜 구천을 제압한 후 그를 강제로 고개 숙이게 만든다. 오자서는 구천을 죽이자고 청하지만, 부차는 철저하게 신복을 받아내고 말겠다며 그의 청을 거절하고, 백비마저 부차의 편에 선다.   ●창사46주년 특별기획드라마 `이산´(MBC 오후 9시55분) 화완은 울부짖으며 `산에게 탕약을 중단하라는 명을 거둬주라´고 호소한다. 화완은 하루만 말미를 달라며 만약 하루 안에 차도가 없으면 자신의 목을 내놓겠다고 말한다. 한편 정순은 정후겸에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박초를 도성 밖에 집결시켜 두라고 명한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35분) 이스라엘의 한 어린이 심장재단은 인종이나 종교를 초월해 심장수술이 필요한 개발도상국 어린이들을 선정해 수술해주는 인도적 사업을 펼치고 있다. 적대적인 이스라엘과 아랍국 사이에 이런 교류가 이뤄지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어린이 심장재단은 지난 4년간 35명의 이라크 아이들을 수술했다.   ●그 여자가 무서워(SBS 오후 7시20분) 신성그룹에서 영림은 승미에게 전화를 걸어 준철의 안부를 묻게 된다. 승미는 모른다며 준철이 영림 대신 끌려간 건 사실이고, 잠을 깬 준철은 지갑이며 휴대전화 모두를 잃어버렸다는 것도 들려준다. 한편, 은애는 백회장에게 영림을 불러와서 궁금한 점을 물어보겠냐고 넌지시 건네는데….   ●가요무대(KBS1 오후 10시) 제 빛을 다해가는 단풍잎과 우수수 떨어진 낙엽으로 가득한 거리. 완연한 가을의 정서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가을날의 애달픈 사랑을 노래한 한국가요의 고전 `짝사랑´을 설운도의 목소리로 들어본다. 문희옥 `낙엽이 가는 길´, 김상배 `마지막 잎새´, 한혜진 `갈색추억´ 등도 감상해 본다.   ●미녀들의 수다(KBS2 오후 11시5분) 따루가 이번 주 맨 앞자리에서 시청자를 찾아간다.“예쁘고 잘빠진 애들만 앞에 앉는다.”는 솔직당당한 발언이 방송에 나간 후 “따루를 앞자리에 앉혀달라.”는 시청자들의 의견에 앞자리로 이동하게 된 것. 정작 앞자리에 앉자 따루는 ‘에바 자밀라 리에’와 같은 줄에 앉아 비교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 [환경·생명] 외래식물 ‘단풍잎 돼지풀’ 비무장지대 생태계 위협

    [환경·생명] 외래식물 ‘단풍잎 돼지풀’ 비무장지대 생태계 위협

    외래 식물인 단풍잎돼지풀이 서북부 접경지역 들판을 뒤덮었다. 도로·하천은 물론 농지와 주택가까지 온통 단풍잎돼지풀이다. 단풍잎돼지풀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토종 식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겼다. 지자체가 깎고, 뽑고, 불태우는 등 안간힘을 써보지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번졌다. 민통선 이북까지 번져 DMZ(비무장지대) 생태계 피괴도 우려된다. 국가 차원의 외래 식물 제거 대책이 절실하다. ●임진강 둑은 ‘단풍잎돼지풀 천국´ 경기 파주시 적성면 주월리 임진강 둑.2㎞ 정도의 둑에 토종 식물은 한 포기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단풍잎돼지풀이 점령했다. 둑에 오르자 3∼4m까지 자란 돼지풀이 발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서리를 맞아 말랐지만 아직도 껄끄럽고 억세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정도다. 멀리서 보면 임진강 둑은 마치 단풍잎돼지풀 숲 같다. 파주∼전곡 37번 도로 주변에도 온통 돼지풀이다. 도로를 만들면서 깎은 경사지와 흙을 쌓은 곳이라면 예외없이 불청객이 자라고 있다. 한두 포기가 아닌 군락을 이루고 있어 손으로는 제거하기 힘들 정도다. 임진강에서 떨어진 구읍리 설마천은 파주시가 올 여름 돼지풀을 깎은 곳이다. 얼마나 많았던지 깎아놓은 돼지풀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민통선 안에도 단풍잎돼지풀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진동면 전진교 건너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는 도로 주변에도 여기저기 단풍잎돼지풀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다른 식물들은 서리를 맞아 말라비틀어졌지만 양지바른 곳에 난 단풍잎돼지풀은 쌩쌩하다. 민통선 안 진동면 동파리 해마루촌. 환경부가 지정한 자연생태우수마을이다. 하지만 생태우수마을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마을 입구 길가와 습지 주변에는 여지없이 단풍잎돼지풀이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다. 돼지풀이 자라는 곳에는 억새와 같은 토종 식물은 비집고 들어가지 못한다. 판문점 입구 통일촌 길가에도 단풍잎돼지풀이 자라고 있다. 풀씨가 DMZ로 날아갈 경우 토종 식물 생태계 파괴는 불 보듯 뻔하다. 하루 빨리 ‘단풍잎돼지풀 제거 작전’을 세워야 접경지역 토종 식물을 보호할 수 있다. 박우용 파주시 환경보전과장은 “단풍잎돼지풀은 번식력이 워낙 강하고 키가 큰 데다 가지가 많아 햇빛을 가려 다른 식물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과장은 “뽑아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번져 주요 하천 주변에서 예초기로 깎아내고 있지만 번식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며 국가 차원의 대책을 호소했다. ●천적이 없어 전국으로 번식 단풍잎돼지풀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 군수물자에 섞여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1970년대부터 번지기 시작, 파주·연천·포천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최근에는 성남 분당 등 경기 이남과 강원, 대전, 부산 등으로도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1년생 식물로 번식력이 워낙 강해 한번 발아한 곳에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씨앗은 휴면성이 강해 발아 환경이 나쁘면 싹을 틔우지 않고 때를 기다렸다가 싹을 틔운다.3∼5년이 지나도 씨앗이 썩지 않는다. 토종 식물보다 싹을 늦게 틔우고도 성장 속도는 되레 빠르다. 대개 집단을 이루는데, 다른 식물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피도(被度·식물 군집에서 지표면을 차지하는 비율)를 유지하는 게 특징. 즉, 밀도가 높으면 가지를 치지 않고 줄기를 가늘게 모아 밀도를 높인다. 싹이 튼 개체가 적으면 줄기를 굵게 하고 가지를 쳐서 햇빛을 가려 다른 식물의 침입을 막는다. 물기가 적은 길가나 척박한 땅에서는 1∼2m 정도 자라지만 하천 주변에서는 3∼4m까지 자란다. 잎이 단풍잎처럼 3∼5개로 갈라졌는데 거센 털과 뾰족한 씨앗을 갖고 있다. 초식 동물이 싫어하는 냄새를 풍겨 동물 먹이로도 사용하지 못한다. 뿌리에서는 다른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타감(他感)물질을 내뿜는다. 국립환경과학원 길지현 박사는 “천적이 없어 씨앗이 떨어진 곳에서는 종 다양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결국 생태계를 무너뜨린다.”고 지적했다. ●4년 이상 집중해 제거해야 효과 단풍잎돼지풀은 꽃가루병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잡초다. 알레르기성 비염, 기관지 천식, 결막염, 피부 가려움증을 일으킨다. 꽃가루는 봄보다 7월 이후 11월까지 더 많아 환절기병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특히 접경지역은 군부대가 많아 집단 피해도 우려된다. 하지만 단풍잎돼지풀 제거는 시늉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뿌리를 뽑아 말린 뒤 태워 없애야 하지만 분포 면적이 워낙 넓고 개체수도 많아 대부분 깎아버리기에 급급하다. 민간 환경단체나 군부대 등이 지원하지만 1회성 행사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돼지풀을 없애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5월경 어린 돼지풀은 뿌리를 뽑아버리고 성장기에는 두 세차례 깎아내고 마르면 태워버리는 입체적인 제거 대책이 필요하다. 기회주의적인 발아능력을 감안, 적어도 4년 이상 계속해야 제거된다. 파주 글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국내 외래식물 현황·피해 달맞이꽃, 단풍잎돼지풀, 개망초…. 이름만 들으면 예쁜 토종 식물같지만 사실은 외래식물이다. 우리 땅에 자라고 있는 외래식물은 40과(科),287종이나 된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이 외래식물 현황 조사를 시작한 1995년에는 198종에 지나지 않았으나 89종이 늘어났다.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지면 외래식물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서양등골나물, 털물참새피, 물참새피, 도깨비가지 등 6종은 야생동식물보호법에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야생식물로 분류됐다. 사람 몸에 해를 끼치거나 번식력이 강해 토종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식물이다. 쇠채아재비, 나도독미나리, 캐나다엉겅퀴, 서양금혼초 양미역취, 미국미역취 등은 번식이 워낙 빨라 생태계 파괴를 위협하고 있다. 서양금혼초는 80년대 제주도에 들어온 뒤 서산, 영광 등 서부내륙으로 번지고 있다. 한번 번지면 다른 풀이 자라라지 못해 초지 조성을 방해하는 식물이다. 양미역취와 미국미역취도 하천식생을 교란시키는 외래식물이다. 단풍잎돼지풀과 마찬가지로 집단 서식지에서는 토종 식물이 자라지 못한다. 국제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외래식물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농산물과 목재 등 다양한 상품에 묻어 들어온다. 외래식물 유입 경로와 정확한 분포 조사를 실시하고 제거 방안을 마련해야 토종 식물을 지키고 생태계 파괴를 막을 수 있다. 동시에 외래식물 위해성 연구도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열린세상] 늦가을 부여를 유람하다/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열린세상] 늦가을 부여를 유람하다/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단풍이 끝물에 접어든 지난 주말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사비의 자리인 충남 부여를 찾았다. 나잇살이나 든 은행나무는 유독 가지를 더 흔들어 빛깔 바랜 이파리를 부러 털어낸 참이었을까. 그렇게 은행잎이 마구 쏟아져내리는 주말이었다. 한 시절을 인문학 분야 학술에만 매달려 글을 쓴 몇몇 후배와 동행을 했으니, 그런대로 그림도 괜찮았다. 어떤 일거리를 딱히 찍은 여행이 아니었던 터라, 굳이 길을 재촉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한나절이 실하게 기울어서야 백마강 건너 규암이라는 부여 땅에 다다랐다. 서기 577년 백제 위덕왕이 절을 지은 사연을 분명하게 적은 새김글씨(銘文·명문) 사리기 세트를 발굴한 왕흥사터가 바로 규암에 있다. 그러고 보면, 문화유적학과 등을 거느린 한국전통문화학교가 일찍 규암에 자리잡은 까닭을 알아차릴 만하다. 왕흥사를 삼국사기 기록보다 3년이나 앞서 위덕왕이 창건했고, 죽은 왕자를 위해 지었다는 새김글씨 내용은 얼마전 크게 매스컴을 탔다. 이는 고고학이 거둔 빛나는 학술적 성과가 틀림없다. 그러나 고고학과 역사학이 충돌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아직은 문헌사학에 매달려야 하는 역사학을 뒷받침할 인문학끼리의 협력적 보완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1971년 공주에서 발굴한 백제 무령왕릉이 한국고대사에서 아리송한 부분을 메웠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어떻든 백제 무왕이 뒷날 위덕왕의 원찰(願刹)인 왕흥사 법회에 참석할 때는 강 건너 규암 쪽에 먼저 합장한 다음 나룻배를 타고, 백마강을 건넜다는 이야기가 역사에 나온다. 그 나루터를 약간 비켜 지금은 백제대교가 덩그렁 지나간다. 우리 일행은 이미 백마강을 건넜다는 핑계로 규암에서 하룻밤을 묵을 요량을 대고, 이웃 무량사 유람에 나섰다. 노루꼬리만도 못한 늦가을 짧은 해가 도량 뒷자락 만수산 산마루를 걸터앉기가 무섭게 산 그림자가 저무는 해를 냉큼 삼켜버렸다. 그리고 삼태기처럼 생긴 무량사 골짜기에 이내 어둠이 깔렸다. 이 좋은 날, 어찌 술 한잔을 걸치지 않으랴. 무량사 들머리에 문을 연 대폿집을 찾아들었다. 감칠맛 나는 약주 서너 옹배기를 술꾼 셋이서 게 눈 감추듯 비웠다. 그러나 무량사에 주석한 동안 나무열매로 술을 빚어 늘 마시면서, 도도한 시심을 펼쳤다는 조선 중기의 진묵(震默) 스님 주량을 따라잡지는 못했을 것이다. 규암으로 나와 고고학 연구자들의 무슨 세미나를 위해 개방한 한국전통문화학교 외빈 숙소에서 업어가도 모를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천성이 온화하기로 소문난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이종철 박사는 작취미성의 술꾼들을 훌몰아 성흥산성으로 끌어냈다. 위사좌평 백가가 동성왕을 시해한 모반의 자리였고, 백제부흥군의 우두머리 괴실복신이 활약한 근거지였다고 한다. 날이 활짝 개었을 때는 백강 하구 군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는 성흥산성의 바람은 상쾌하다 못해 곧 달았다. 이왕 나선 김에 국립부여박물관이 소장한 백제금동향로를 구경하지 못하면, 필경 후회할 것이라는 이 총장의 성화를 뿌리치지 못했다. 문화재를 전담하던 대기자 시절에도 실물을 만나지 못한 ‘앉은뱅이 기사’를 썼거니와, 실은 부여박물관에 들른 적이 없다. 그런데 박물관 전시실 동선을 따라 돌면서 깜짝 놀랐다. 조명이 밝은 진열장에서 좀 떨어진 어두컴컴한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올망졸망한 아이들의 빛나는 눈동자와 부닥친 것이다. 박물관 큐레이터인지, 또는 인솔교사인지는 모른다. 어떻든 그들의 설명을 주시하는 수많은 눈동자를 만나는 순간 울컥 솟아오른 감격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인문학적 요소를 다분히 함축한 박물관에서 실사구시의 진리를 일찍 터득한 아이들 표정을 빌려 학문의 장래를 보았다.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 경북 상주 남장 곶감마을

    경북 상주 남장 곶감마을

    익어가는 가을을 맛으로 느끼기에 감만큼 좋은 것이 있을까. 가지가 휘도록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샛노랗게 물들 때면 시골마을 집집마다 감을 수확해 곶감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떫은 감을 따고 깎아 가을바람에 말리는 등 열 번의 손길을 거치면, 시린 겨울 우는 아이의 울음을 뚝 그치게 할 맛깔스러운 곶감으로 탄생한다. 장대 끝에 걸린 감을 바라보는 농민의 얼굴에, 곶감을 만들기 위해 감을 다듬는 동네 아낙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환하게 가을 햇살이 맺혀졌다. 국내 최고(最古), 최대의 곶감마을 경북 상주의 남장마을을 돌아 보았다. # 전래동화 ‘호랑이와 곶감´ 주무대 상주는 곶감과 누에고치, 그리고 쌀 등의 특산물 덕에 예로부터 삼백(三白)의 고장으로 일컬어졌다. 특히 곶감의 맛은 아주 유명해서, 달디 단 곶감에 ‘감동먹은’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그린 전래동화 ‘호랑이와 곶감’의 주무대가 되기도 했다. 굳이 일러 주지 않아도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큼 남장마을은 주황색 옷을 입은 강렬한 자태로 이방인을 맞았다. 마을 어귀에서 만난 농가 감타래에 매달린 수만개의 감에 시선을 빼앗긴 것은 당연지사. 마을 안으로 들어갈수록 탄성 또한 늘어갔다. 맑은 공기 속에서 가을 햇볕과 차단된 채 말랑말랑하게 익어가는 수십만개의 곶감이 전율스럽기까지 하다. 감은 사실 사과나 복숭아처럼 쉽게 생산되는 과일이 아니다.10년된 나무에서도 몇 개 안 열리는 경우가 흔하다. 남장마을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이처럼 경제성이 떨어지는 작물을 심게 되었을까. 김창근(42) 청년회장은 “60∼70년 된 나무가 대부분이니, 아버지의 아버지대에서 감나무를 심었던 거지요. 주변이 온통 야산인 데다, 예전부터 풍양 조씨 땅과 절집 땅을 빼면 농작물을 키울 변변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감나무를 심기 시작했다고 생각돼요.”라고 설명했다.30년 전쯤 남장마을 곶감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얻기 시작하면서 이 마을 58가구 중 45가구에서 곶감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100동(1동은 1만개) 이상 생산하는 농가도 5∼6가구에 이른다. 여느 농촌의 경우 60대가 ‘청년’ 소리를 들을 만큼 고령화가 문제지만 이곳만은 예외다. 남장마을 2구에만 40대 이하가 30명이고, 귀농청년도 서너명 된다. # 절집 뒷산에서도 곶감은 익어가고 현재 마을 대부분의 나무에서 감이 수확된 상태. 하지만 ‘까치밥’만은 넉넉하게 남겨 두었다. 곶감 만드는 작업은 10월 중순∼11월 하순까지 이어진다. 떫은 맛이 있을 때 수확을 해서 두 달 정도 건조를 하면 곶감이 된다. 요즘엔 반건시(곶감이 되기 전 말랑말랑하게 만든 것)를 많이 찾아 25일 정도 건조한 다음, 출하하는 경우도 많다. 남장마을 대부분의 농가에서 곶감을 파는데, 올해 말린 반건시 외에는 작년 것이다. 올해 말린 곶감은 대부분 성탄절 즈음에 출하된다. 수십만개의 곶감이 익어가는 대규모 건조장을 둘러본 다음, 붉게 타들어 가는 감나무 사이를 산책하는 것도 별미. 남장마을 초입의 자전거박물관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봐도 좋겠다. 마을 위편으로 오르면 노악산(725m)의 품에 안겨 있는 상주 최고(最古)의 고찰, 남장사(南長寺)와 만난다. 신라 흥덕왕 7년(832)에 창건된 유서깊은 사찰. 한국 최초의 범패(불교음악) 보급지이며,‘보광전 목각탱’‘철불좌상’ 등 불가의 보물들이 보존된 곳이다. 남장사 진입로엔 지금 늦가을 정취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단풍과 낙엽에 취해 걷다 보면 이내 용머리 기둥, 까치발 다리 모습의 일주문에 이른다. 남장마을 수호신으로 떠받들여지는 석장승(민속자료 제33호)을 만나는 것도 이 부근. 키 186㎝로 기골이 장대한 데다, 부리부리한 왕방울 눈은 심술궂게 치켜 올라가 있고, 입 양쪽으로 송곳니가 삐져 나와 있어 여간 험악한 몰골이 아니다. 애써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가만 들여다 보면 친근감이 들고 살포시 웃음도 배어 나온다. 상주시청 문화관광과 (054)530-6062, 산림과 곶감담당 530-6325, 상주곶감발전연합회 536-0907. # 하늘이 스스로 내려온 경천대 상주의 또다른 자랑거리 중 하나가 경천대(警天臺)다. 깎아지른 절벽과 우거진 송림이 어우러진 빼어난 풍광에 하늘도 감탄했다는 곳이다. 소박, 담백하면서도 유장한 아름다움이 그려진 ‘동양화’와 마주하면,‘하늘이 스스로 내려왔다’해서 붙여진 자천대 (自天臺)라는 또 다른 이름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경천대로 오르는 길은 어린이 차지다. 규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기구들은 거의 다 갖추고 있다. 주말이면 상주는 물론, 경북 인근지역에서 찾아온 가족 나들이객들로 만원을 이룬다.3단계 낙차의 인공폭포도 인기 만점. 경천대 주변과 푸른 비단처럼 흘러가는 낙동강을 보려면 전망대까지는 올라야 한다. 쭉쭉 뻗은 소나무숲길을 따라 아이들과 손잡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근의 무우정에서 바라보는 경천대도 색다른 맛을 자아낸다. 경천대관리사무소 (054)536-7040. #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여주분기점→중부내륙고속도로→상주 나들목→25번 국도 보은 방면→상주시내→남장마을. # 맛집 상주시청 맞은편, 상주여자중학교 후문 쪽 ‘참 별난 버섯집´은 이름처럼 별난 숫총각버섯탕으로 유명하다. 한우 고기로 낸 육수가 시원하다. 황금버섯 등 특이한 버섯도 맛볼 수 있다.5000원.(054)536-7745.2일,7일 장이 서는 중앙시장 중간쯤의 ‘햇살해장국’에서는 해장국과 비빔밥을 2000원, 칼국수를 2500원에 팔고 있다. 장이 서지 않는 날도 영업한다.536-6861. # 인근 관광명소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성주봉자연휴양림(seongjubong.sangju.go.kr)은 상주시민들이 즐겨 찾는 삼림욕장.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다.541-6512. 남장마을 초입의 상주자전거박물관은 목마에 바퀴를 단 독일 19세기 초기 자전거 ‘드라이지네´부터 첨단 자동변속 자전거까지 자전거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 자전거 모양의 건물 등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어 자녀와 함께 둘러보기에 좋다.534-4973. 상주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30·끝)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30·끝)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산 아래로 낙동강이 흐르고 산세가 수려하여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불렸다. 일찍이 퇴계선생이 노래한 36개 봉우리 외에 각종 기암괴석과 수십개에 이르는 동굴로도 유명한 산. 경북 봉화군에 위치한 청량산이다.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는 청량산이 보이는 데서 오른쪽으로 낙동강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경계를 이룬 곳이다. 산 뒤 북쪽에 마을이 있어 북곡리라 불렀다. 서너 아름의 한그루 고목이 북곡리의 오랜 역사를 넌지시 알려준다. 마을입구에서 바라본 청량산은 황홀하다. 해마다 수많은 산꾼들이 다투어 찾아간다는 청량산. 그 빼어난 산세가 손에 닿을 듯 눈앞에 펼쳐진다. “금강산의 일부를 떼어다 청량산 한 줄기를 만들어 놓았다.”는 전설에 걸맞을 만큼 조각한 듯한 수려한 산세에 흠뻑 취해 정신을 놓고 있을 즈음…. 마치 병풍속에서 사람들이 걸어나오듯 단풍계곡사이에서 지게를 짊어진 노부부가 나타났다. 땔감을 진 부부는 70줄의 나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젊은이 못지않은 혈색이다. 마을까지 길안내를 자청하는 권혁재(70)씨를 따라 낙엽의 융단을 밟으며 20여분을 걸었다. 큰 재를 넘어가는 골이라 하여 ‘한티마을’로도 불리는 곳.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항상 촛불과 호롱불이 준비되어 있는 아담한 집 한 채. 내부는 주인을 닮아 정갈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멧돼지 가족들이 한꺼번에 무리지어 앞마당에 왔다 갈 때가 종종 있심다.” 새벽에 소피를 보러 나왔다가 감나무밑에서 조그만 플래시 불빛 같은 멧돼지 눈과 두눈이 마주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손전등으로 두어번 껐다 켰다 했더이만 고개를 돌리고 슬며시 도망가삐대.” 20여년전까지만 해도 7가구가 모여 살았던 이곳엔 현재 집터와 논밭은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고 권씨 부부가 사는 집이 유일하다. 집 앞에는 한티약수라 부르는 샘물이 있다. “옛날에 문둥병이가 이 물을 먹고 나았다지요.” 옻독이나 어지간한 피부병, 웬만한 속앓이에 특효란다.‘만병통치약’이다.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권씨도 한때는 도회지 생활을 했단다. 건강이 안 좋아져서 다시 고향으로 왔다.“약수만 마시고서 속병을 고쳤심다.” 모시고 사는 노모(97)가 아직도 설거지를 손수 할 정도로 근력이 좋은 것은 모두 ‘물’ 때문이라며 약수자랑이 끝이 없다. 물 한잔을 얻어 마신 후 1년의 반을 얼어있다는 ‘얼음달폭포’로 향했다. 산이 깊어서 응달이 많은 탓이다. 이곳을 가자면 본 마을인 ‘윗뒤실’을 거쳐야 한다. 마을에 북두칠성의 형상을 한 ‘칠성바위’와 ‘말 바위’가 있어 ‘두실’이라 하다가 훗날 ‘뒤실’로 바뀌었단다. 마을길 외딴 농가 뒤로 수렛길이 이어진다. 포장길과 비포장길이 번갈아 이어지는 산길에는 계절에 걸맞지 않은 야생화가 빼곡하게 피어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뒤돌아보는 남쪽에는 청량산의 멋진 산세가 늦가을 빛에 눈부시다. 알 수 없는 그리움이 가슴속에서 뭉게뭉게 일어난다. 윗뒤실 마을에서 12대째 살고 있는 박주원(68)씨.“밀양박씨 청재공(淸齊公)파 후손이 400여년전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실패하자 의주에서 자결을 했지요.” 그 후손들이 몸을 피해 이곳 봉화땅으로 와서 첫 입주자가 되었단다. “겨울에는 눈길에 막혀 한달 내내 옴싹을 몬해요.” 산골마을의 겨우살이 준비에 벌써부터 마음이 바쁜 듯했다. 고랭지의 청정지역. 특히 밤낮의 일교차가 크고 일조량이 풍부하여 과수에는 천혜의 조건이다.6·25전쟁이 나기 전만 해도 대추농사가 잘돼서 부자동네 소릴 들으며 80가구나 살았던 곳이다. “청량산전투에서 국군과 공비들이 사흘 낮밤으로 전투를 벌여 마을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아잉교.” 그후 하나둘 고향을 떠나서 현재는 20명의 주민만이 마을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김진태(81)씨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당뇨에 좋다는 야콘 농사를 하고 있다.“이제는 마… 나이를 묵어서 팔러가는기 더 힘든기라.” 그래도 이방인에게 대접할 것이 없다며 미안해한다.“우리 야콘 좀 잡숴봐요.” 부인인 김점례(78)할머니가 건네주는 야콘조각을 한입 베어 물었다. 상큼한 ‘봉화인심’이 묻어 나오는 듯하다. 자연의 넉넉한 인심이다. 마음이 절로 구부러져서 무욕(無慾)이 되는 곳. 그리움, 정다움, 순박함을 간직한 산골마을. 보듬고 껴안고 어루만지며 지켜야 할 우리네 ‘삶의 원형´을 만날 수가 있었다. 사진·글 이언탁 기자 utl@seoul.co.kr
  • 서울 명소 3곳 새단장

    서울 명소 3곳 새단장

    한때 지역 주민의 사랑을 받다가 잊혀져 가던 서울의 지역 명소가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강북의 드림랜드, 상암동 월드컵공원, 대학로 등이 대표적인 곳이다. 서울시와 자치구는 최근 이들 지역의 주변을 깨끗하게 다시 단장하고 공원 규모를 늘리기 위해 사업비도 대폭 지원하고 있다. ●30일간 강북녹지공원 공모 서울시는 12일부터 강북구 ‘드림랜드’ 일대의 초대형 체험·테마 공원 조성안을 공모한다고 11일 밝혔다. 드림랜드 주변 90만 5278㎡는 2013년까지 2단계에 걸쳐 녹지 공원으로 탈바꿈한다. 드림랜드는 1987년에 문을 열어 강북에서 대표적인 놀이공원으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면서 시설이 낡아도 재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흉물로 변했다. 시는 이곳에 숲으로 둘러싸인 산책로, 수변공원, 산업과학체험관, 태양열전망대, 야외공연장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공모는 다음달 11일까지 일반 시민과 전문가·대학생 부문으로 나눠 진행된다. 시민은 공원 조성의 기본 방향, 희망 시설 등의 아이디어를 서울시청과 강북·도봉·성북·노원·중랑·동대문 등 6개 구청 홈페이지에 올리면 된다. 전문가·대학생은 기본 구상안, 건축 디자인, 공원 다자인을 작품 제출 서식에 맞춰 강북대형공원사업반(02-460-2989)에 제출하면 된다. ●월드컵공원 단풍철 정취 물씬 ‘쓰레기산’으로 외면받던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공원도 단풍철 정취에 취할 수 있는 명소로 변신했다. 우선 평화공원의 전시장(423㎡)에서는 난지도가 생태·환경공원으로 바뀌는 과정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이 평화공원 광장에서 자건거를 탈 동안 어른들은 난지연못과 수변테크에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피크장에서 도시락을 꺼내 먹을 수도 있다. 하늘공원(19만㎡)으로 오르는 길은 알록달록한 단풍에 탄성이 절로 나는 길이다. 중간의 하늘다리는 ‘베스트 포토존’. 공원 정상까지 하늘계단으로 빨리 갈 수 있고, 하늘길(20∼30분 소요)로 천천히 돌아갈 수도 있다. 오르막길에는 영화에 나오는 듯한 환상적인 가로수길이 나온다.‘메타세콰이어길’에는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이의 메타세콰이어 850여그루가 1㎞에 걸쳐 펼쳐져 있다. 어른 키보다 큰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억새밭도 만난다. ●대학로 향락문화→공연예술로 젊음의 거리로 각광받던 대학로는 몇해 전부터 임대료 상승을 견기지 못한 소극장들이 쫓겨나면서 공연문화의 멋을 상실했다. 대신 유흥업소들이 늘면서 향락문화만 만연한 상태다. 서울시는 지난 10일 서울연극센터의 개관을 계기로 ‘대학로 부활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공연예술의 인프라 확충을 위해 2009년까지 마로니에공원 지하에 300∼500석 규모의 중극장과 연습실을 건립한다. 내년 8월 개관하는 복합문화공간을 저렴한 공연장으로 제공하고 이미 운영 중인 대학로 연습실 4곳과 남산창작센터 연습실 2곳의 활용도 늘리기로 했다. 내년 유휴시설에 ‘아트팩토리’를 건립, 창작공간으로 사용한다. 공연물 육성을 위해 ▲우수한 순수예술작 제작에 10억원 ▲사랑티켓 사업 40억원→45억원 확대 ▲대학로 종합축제 프로그램에 1억 4000만원 지원 ▲소공연장의 안전시설 개선비용 10억원 지원 등을 펼친다. 서울시 관계자는 “외면받던 곳을 다시 개발하고 사랑받는 곳으로 바꿈으로써 1석2조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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