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단풍
    2025-12-21
    검색기록 지우기
  • 워싱턴포스트
    2025-12-21
    검색기록 지우기
  • 취업자
    2025-12-21
    검색기록 지우기
  • 공공기관장
    2025-12-21
    검색기록 지우기
  • 분리수거
    2025-12-2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673
  • [길섶에서] 위로/황수정 논설위원

    오랜만에 공원길을 걷는다. 낙엽 요란했던 어느 주말 이후 근 두달 만이다. 계산 빨라 얇은 마음 아니었나. 나무들 잎 다 지고, 소매 시려졌다고 끊었던 발길. 유록색의 봄, 진청의 여름, 오색단풍의 가을을 한 푼 내놓지 않고 받아 누리기만 바빴으면서. 빈털터리 숲길이라고 괄시했던 내 염치, 바닥이 보인다. 내 속 들여다볼 마음 없는 겨울나무들이라 편하다. 저 먼저 안면을 바꾼 척 눈 감고 섰다. 텅 빈 가지로 당분간 정체불명이다. 이 모퉁이에서 매미가 찢어져라 울었으니 칠엽수, 맥문동 꽃대를 초가을까지 발밑에 깔았던 이것은 조팝나무, 벤치 아래로 도토리를 던지던 저것은 갈참나무. 기억의 관성으로 알아봐 주든 말든 나무는 일 없다. 눈 감은 나무들한테서 한 수 배운다. 초록을 다투던 아우성, 덜 거둔 열매의 자책을 접은 완전평화의 시간. 새 계절을 기다리며 조용히 패를 섞는 익명의 시간. 칠엽수가 갈참나무에게 내가 더 푸르지 않았느냐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그저 위안의 시간. 묵은해의 마지막 날. 빈 마음 빈 그릇이 돼 본다. 겨울나무 아래에 섰다고 봄이 급할 일 없다. 그만하면 됐다, 잘 버텼다, 위로 먼저 해줄 시간이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 [新국토기행] 강원 홍천군

    [新국토기행] 강원 홍천군

    강원 홍천군은 면적이 1819.7㎢로 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넓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홍천강을 거슬러 황포돛배가 오갔고, 대동미 창고가 있어 중부지역 동서를 아울러 문물이 모이던 유서 깊은 곳이다. 그래서 곳곳에 보물 같은 유적지와 전설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홍천은 전형적인 산촌문화를 간직한 농촌이다. 굽이굽이 시원하게 홍천을 감싸고 흐르는 400여리 홍천강은 서울 등 수도권에서 차량으로 30~40분대 거리에 놓이며 사계절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강줄기와 산맥을 따라 월인석보가 발견된 수타사와 정희왕후의 태가 봉안됐다는 공작산, 명당자리에 묘를 써 중국의 임금이 됐다는 전설이 깃든 가리산, 여덟 봉우리마다 스토리를 간직한 팔봉산과 대명 비발디파크, 세계적 무희 최승희의 우물터, 정감록 고서에 명당으로 소개되는 삼둔오가리와 삼봉약수, 살둔산장 등 오롯한 이야기들이 피어난다. 깊은 자연 속에 보물처럼 숨겨져 있는 홍천을 찾아 지난 한 해의 버거웠던 짐을 내려놓고 새해 설계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볼거리] ●국보 월인석보 품은 공작산 수타사… 석가의 삶 되짚다 해발 887m인 공작산 정상에서는 홍천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세가 공작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같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사계절 풍광이 아름다워 전국에서 관광객과 가족형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조선 정희왕후의 태가 봉안돼 있다는 명산이기도 하다.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고 기암절벽과 분재 모양의 노송군락, 눈 덮인 겨울 산도 일품이다. 산 끝자락에 천 년 고찰 수타사가 자리잡고 있다. 신라 성덕왕 때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됐다고 전해진다. 대적광전 팔작지붕과 1670년에 만든 동종, 고려 후기에 세워진 3층 석탑이 잘 보존돼 있다. 보물 제745호 월인석보를 비롯해 대적광전, 범종, 후불탱화, 홍우당부도 등 수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영서 내륙의 최고 고찰이다. 수타사 경내 자리한 수타사성보박물관은 수타사가 소장한 보물 월인석보와 영산회상도, 지왕시왕도와 관세음보살상 사리함 등 문화재를 보관·전시하고 있다. ●100만명 발길 닿은 공작산 생태숲… 자연을 거닐다 공작산 생태숲은 ‘힐링의 고장’ 홍천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2009년 개장 이래 100만명 이상이 찾았다. 서울 등 수도권으로부터 차량으로 1시간 30분 거리에 놓여, 근교 산림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 천 년 고찰 수타사를 중심으로 163㏊의 넓은 산림에 다양한 종류의 수목과 화초류가 심어져 있다. 생태체험 관찰로, 수생식물원이 조성돼 있을 뿐 아니라 치유쉼터, 명상공간, 숲속교실 등 다양한 구성으로 심신의 피로를 푸는 힐링 명소로 자리잡았다. 생태숲 교육관, 수생식물원, 소나무 광장, 숲 관찰로, 숲속치유쉼터 등이 있다. 수십여 종의 야생화와 수목 등이 심어져 있다. 다양한 포유류, 조류, 양서류 등을 현장에서 만나볼 수 있는 생태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숲 해설사에게 직접 수타사와 생태숲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숲에 대한 이해도 넓힐 수 있다. 연중 무료 운영된다. 수타사계곡을 굽이치는 덕치천 물길과 넓은 암반, 큼직큼직한 소(沼)들도 장관이다. ●철분과 불소 가득 담은 가칠봉 삼봉약수… 치유를 마시다 가칠봉은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려 태고의 원시림을 간직한 산으로 전나무와 활엽수가 어우러진 산이다. 이 산자락에 유명한 삼봉약수가 있다. 가칠봉, 사삼봉, 응복산 세 봉우리 가운데 위치해 있다 해서 삼봉약수로 불린다. 수질이 우수해 한국의 명수 100선에 선정됐다. 사이다 같이 톡 쏘는 맛의 약수는 빈혈, 당뇨병, 신경통, 위장병에 특히 효험이 있다고 해 전국에서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실개울을 낀 산기슭의 바위틈 3곳의 구멍에서 샘솟는 삼봉약수는 지름과 깊이가 모두 30㎝ 안팎이다. 구멍마다 솟는 약수가 저마다 독특한 맛을 내고 있다. 약수 주변은 숲이 울창하고 풍광이 뛰어나 머물며 요양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삼봉자연휴양림은 산장, 등산로, 삼림욕장, 오토캠핑장 등 휴양을 위한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여름엔 약수터 옆 키큰이깔나무 숲 그늘이 시원하고, 가을엔 주위의 깊은 숲에 오색 단풍이 운치를 더한다. ●8개 암봉과 홍천강 휘도는 팔봉산… 자연의 보물 그리다 해발 327.4m로 산세가 아담하고 기암과 절벽 사이로 등산로가 있어 등산의 묘미가 짜릿하다. 팔봉산을 안고 흐르는 홍천강 맑은 물과 백사장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절경이 특징이다. 봉우리마다 바위 위에 올려진 수석처럼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 천연의 전시장을 방불하게 한다. 저마다 독특한 봉우리 모양을 형상화해 많은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다. 산세가 나지막해 가족단위의 산행에 좋다. 산 아래 강에서는 메기, 쏘가리 등 민물고기를 낚을 수 있고 관광지 안에 체육시설물이 있어 단체 관광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봄과 가을에는 등산객들이, 여름철은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홍천강을 낀 넓은 백사장은 피서철 야영하기에 좋은 곳이다. ●열두 산골 서곡마을·이야기 골프길… 추억을 말하다 서곡마을은 안실, 여창, 밧실, 덕탄골, 샛가람골, 논틀골, 선바위골, 도반골, 말무덤골, 물안골, 절골, 괘석골 등 12개 산골 동네로 형성돼 있다. 이 산골 동네를 잇는 이야기 둘레길을 만들어 ‘이야기 골프길’이라 했다. 골프 코스 개념을 접목해 만든 이야기 골프길은 4개의 구간으로, 전체 길이는 8.317㎞에 이른다. 18개 지점에 길 안내 표지물이 세워져 있다. 길 주변에 있는 99개의 명소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걸을 수 있게 구성됐다. 걸으면서 다음 지점까지 몇 걸음으로 갈 수 있을 것인지를 정하고 걸어, 목표지점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잘 맞췄는가를 만보기로 비교해 보는 게임을 할 수 있는 골프코스 개념의 길이다. 자기의 보폭을 통해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걷기운동에 도움을 주는 길이 이야기 골프길이다. ●가리산 레포츠파크 플라잉 짚·서바이벌… 모험을 떠나다 힐링과 체험, 모험과 스릴을 함께할 수 있는 가리산 레포츠파크가 지난 8월 운영에 들어갔다. 꿈에 그린 전원도시 홍천을 슬로건으로 관광도시로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마련된 레포츠 파크에는 플라잉 짚, 포레스트 어드벤처, 서바이벌 체험장 등이 있다.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즐기는 가리산 플라잉 짚은 길이 969m, 7개 라인으로 구성된 시설로 동력 없이 탑승자의 무게와 낙차에 따라 빠른 속도를 체험할 수 있다. 별도 훈련 없이 남녀노소 안전하게 즐길 수 있다. 나무와 지주대 사이에 와이어를 설치하고 탑승자와 연결된 간단한 트롤리를 와이어에 걸어 빠른 속도로 반대편으로 활강하는 익스트림 스포츠이다. [먹을거리] ●참나무 향 ‘양지말화로숯불구이’ 홍천의 대표적 먹거리로 양지말 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10여집의 화로구이촌이 형성돼 명소로 자리잡았다. 고추장, 된장, 벌꿀 등 15~20가지 양념으로 돼지 숯불구이를 버무려 낸다.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없고 참나무 숯불에 구워 미식가는 물론 아이들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래서 화로숯불구이촌은 홍천에 가면 꼭 들려야 하는 맛집이다. 홍천더덕과 함께 구워 먹으면 더욱 일품이다. ●원조의 맛 ‘닭갈비와 막국수’ 홍천사람들은 닭갈비와 막국수는 원래 홍천이 원조라고 주장한다. 50~60년 역사를 간직한 태화닭갈비, 옥수닭갈비 등 20여곳의 닭갈비집들이 향토음식점으로 알려져 미식가들의 입맛을 자극한다. 닭갈비와 더불어 막국수도 홍천 산골마을에서 시작했다는 건강 웰빙음식이다. ●6년근 인삼을 먹은 ‘인삼 송어회’ 홍천만의 특화된 송어를 개발하기 위해 6년근 홍천인삼을 먹인 송어가 일품이다. 전국은 물론 홍천에서도 쉽게 맛볼 수 없는 홍천인삼송어 회와 매운탕은 별미 중의 별미로 꼽힌다. 일반 송어에 비해 육질이 단단하고 고소한 맛으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인삼을 먹이는 만큼 양식장에서 무항생제로 키워 건강에 좋다. 특히 양식 첫해에 나온 햇송어를 최고로 친다. ●메밀전병 브랜드 ‘홍총떡’ 국내산 메밀가루로 만든 촌떡을 브랜드화시켜 홍천 전통시장에서 항상 언제든지 맛볼 수 있는 전통 건강음식이다. 메밀전에 소를 넣고 말아서 만든 전병은 매콤 달콤한 고향 음식으로 택배로 배송까지 돼 전국에서 주문할 수 있다. ●고급육의 차별화 된 홍천 한우 ‘늘푸름’ 늘푸름은 최고급 홍천한우 브랜드로 유명하다. 늘푸름 홍천한우는 ‘청정한우 브랜드부문’에서 인지도와 대표성·만족도·충성도·글로벌 경쟁력·브랜드 종합 호감도에서 모두 상위권을 기록하며 3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홍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新국토기행] 경기 안산시

    [新국토기행] 경기 안산시

    경기 안산시는 수도권의 보물섬이다.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즐비한 데다 서울에서 차량으로 1시간 거리에 있어 수도권 나들이객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시화방조제와 대부해송길, 풍도, 탄도 바닷길, 안산갈대습지공원, 다문화거리, 동주염전 등 안산 9경을 눈여겨볼 만하다. 안산 출신으로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성호 이익 선생을 비롯해 조선시대 대표 풍속화가인 단원 김홍도, 소설 상록수로 유명한 최용신 선생의 계몽사상 등 다양한 학문과 문화·예술의 전통을 가진 곳이다. 인근에 인천국제공항과 평택항, 경부고속철도역사가 있고 수도권 전철망을 비롯해 서해안 고속도로, 서울외곽순환도로, 영동고속도로 등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춘 곳이어서 접근성이 용이하다. 안산시는 대부도를 중심으로 한 관광 인프라를 대한민국 최고의 보물섬으로 조성한다는 ‘보물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어 그야말로 국내 대표 관광지로 비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볼거리>> 안산 여행의 중심은 단연 대부도이다. 안산의 하와이로 불리는 대부도는 시화방조제로 연결돼 육지가 된 섬이지만 아직도 섬이 가진 낭만과 서정이 곳곳에 남아 있는 곳이다. 대부도를 방문한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필수 코스가 시화조력발전소이다. ●‘안산의 하와이’ 대부도 필수 코스 시화조력발전소 2011년 완공된 세계 최대 규모로 연간 50만명이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한다. 연간 31만 5000t의 이산화탄소를 절감하는 효과가 있다. 조력발전은 하루 두 번 밀물 때 발생하는 수차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청정에너지를 말한다. 시화호는 최고 9m의 조수간만 차가 있어 국내에서 조력발전의 최적지로 평가받는다. 티라이트 공원은 발전소를 조성할 때 발생한 토사를 이용해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진 해상공원으로 여가공간, 휴식공간, 편의공간 등 약 15만㎡ 규모로 조성됐다. 휴게소는 식당과 카페 등이 있고 2층에는 전망대가 있어 시원한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조력문화관은 조력발전의 원리를 알아볼 수 있는 과학체험 학습공간으로 아이들은 물론 어른에게도 볼만한 구경거리다. 지난해 6월 개장한 75m 높이의 전망대는 시화호와 서해를 조망할 수 있는 안산의 랜드마크로 연간 150만명이 찾는 관광 명소로 자리잡았다. (032)890-6520. ●대부도 해안선 따라 걷는 대부해솔길 제주올레길처럼 대부도의 해안선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구성됐다. 대부관광안내소에서 시작해 구봉도, 대부남동, 선감도, 탄도항을 거쳐 대송단지까지 연결돼 있다. 대부도 전체를 빙 둘러 걷는 해솔길은 대부도라는 섬이 가진 특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전체 길이 74㎞, 7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으며 특히 방아머리에서 돈지섬안길까지 이어지는 구간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개미허리 다리’로 연결된 ‘낙조전망대’는 바닷길 산책의 즐거움과 함께 붉게 물드는 아름다운 낙조까지 감상할 수 있다. 1899-1720. ●1953년부터 재래 방식으로 최상급 소금 채취하는 동주염전 단원구 동주길 대동초등학교에서 대부황금로를 따라 선감도 방향으로 가다 보면 ‘바람과 태양, 하늘 그리고 소금’ 등 자연이 함께 어우러지는 ‘동주염전’이 있다. 1953년부터 염전을 시작해 지금까지 재래 방식을 고집해 소금을 채취하고 있다. 동주 천일염에는 특별한 비밀이 있다고 한다. 갯벌 위에 옹기판을 깔아 생산하는데 옹기 사이 틈을 통해 갯벌과 소금이 만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이 틈으로 중금속과 같이 인체의 나쁜 성분은 갯벌이 흡수하고 대신 갯벌이 가진 미네랄과 같은 좋은 성분은 소금이 흡수한다. 이처럼 최상급 천일염을 생산한다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한 ‘염전 체험학습’을 운영하고 있다. (032)886-0900. ●사진작가가 사랑하는 섬 탄도… 누에섬 풍력발전기도 장관 탄도는 대부도 본 섬과 선감도, 불도에 이어 네 번째로 큰 섬이다. 누에섬 등대전망대가 자랑거리다. 최대 높이 8m 내외로 밀물과 썰물이 하루 두 차례씩 드나든다. 이때 바다가 갈라지며 길이 드러나는 현상과 서해안의 낙조는 장관을 연출하기 때문에 사진작가와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대부해솔길 제6코스에 해당하는 탄도항에는 안산어촌민속박물관과 누에섬 등대전망대가 있다. 가족단위 낚시를 즐기는 여행객들도 많이 찾는다. 바닷길을 통해 누에섬에 가다 보면 연간 1300여 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하는 국내 최초(2009년 완공)의 750㎾급 풍력발전기 3기도 만날 수 있다. 1899-1720. ●‘최고의 포토존’ 구봉도 낙조전망대·작지만 아름다운 섬 풍도 구봉도 끝자락에 있는 낙조전망대로 구봉도를 대표하는 구조물이다. ‘석양을 가슴에 담다’라는 뜻을 가진 동그란 띠와 석양 모양의 구조물 사이로 보이는 석양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서해안 낙조를 즐길 수 있는 대부도 최고의 포토존으로 손꼽히고 있다. 1899-1720. 방아머리선착장에서 여객선을 타고 1시간 30분가량 가면 넓이 1.84㎢, 해안선 5㎞의 조그마한 풍도를 만날 수 있다. 풍도라는 이름 때문에 바람이 많으리라 생각하지만 풍도는 단풍나무가 많아 풍도(楓島)라고 불린다. 우럭·노래미·야생화·몽돌이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1899-1720. ●외국 이색문화 체험할 수 있는 ‘국경 없는 마을’ 다문화거리 아시안 문화권의 음식점이 늘어선 이곳은 여기가 과연 한국일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이국적인 장소이다. 외국의 이색적인 문화를 체험해 보고 싶다면 이곳을 찾으면 된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몽골, 베트남 등 60여개국 6만여 외국인의 생활공간으로 2009년 다문화마을특구로 지정됐다. 일명 ‘국경 없는 마을’로 통하며 다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031)481-2232. ●노적봉공원 인공폭포·국내 최대 규모 안산갈대습지공원 노적봉공원 내에 설치된 인공폭포는 국내 최대의 장엄한 폭포수와 음악분수, 인공암벽 등을 갖추고 있다. 공원에는 장미원과 철쭉원, 야외결혼식장 등 다양한 볼거리·즐길거리 장소도 마련돼 시민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안산갈대습지공원은 시화호로 유입되는 지천의 수질 개선을 위해 조성한 104만㎡의 국내 최대 규모 인공습지 공원으로 나무다리와 옥상전망대, 조류관찰대가 있다. ●‘한국의 무라노’ 유리섬박물관·음악이 흐르는 정문규미술관 한국의 무라노를 꿈꾸는 유리섬박물관은 대부도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유리 공예품을 세계 전역으로 수출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이탈리아 무라노섬이 모델이다. 2012년 4만 3000㎡ 공간에 복합문화체험공간으로 문을 열었다.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한 유리조각공원이다. 현대 유리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유리 작가들이 눈앞에서 직접 작품을 만드는 공예시연장 등 다채로운 볼거리로 가득하다. (032)885-6262. 정문규미술관은 원로작가가 운영하는 곳으로 음악과 미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1관은 단체나 개인이 대관할 수 있으며 제2관은 정문규 작가의 상설전시관으로 마련돼 있다. 1층에 있는 갤러리카페 ‘아르페지오네’에서는 수준급의 오디오시스템을 갖추고 고음질의 음악을 제공하고 있다. 매년 3월부터 12월까지 작은 음악회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032)881-2753.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먹거리>> 안산에서는 무엇을 먹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곳곳에 13개 음식거리를 조성해 언제든 지역을 대표하는 다양한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다. ●‘방아머리 먹거리타운’ 바지락 칼국수 대부도 제일 북쪽에 있는 음식문화시범거리로 바지락칼국수가 대표 음식이다. 커다란 솥에다 지척에 널린 바지락을 넣어 칼국수를 끓여 먹던 풍습이 육지와 연결되면서 소문이 났고, 지금의 바지락칼국수 거리가 생겨났다. 이곳에선 활어회나 조개구이도 인기지만 식당마다 간장게장과 바지락고추장찌개 등 향토 음식을 개발해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댕이골 전통음식거리’ 비빔국수·유기농 쌈밥·두부요리 1990년대부터 전통음식을 주 메뉴로 하는 음식점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조성된 사동의 먹자골목이다. 댕이골은 처녀의 댕기모양을 한 마을 지형에서 따온 이름이다. 30년 전통의 비빔국수에서부터 20여종의 유기농 쌈밥, 가마솥에 끓여 만든 두부요리, 송어, 시골밥상, 갈치조림, 매운 소갈비찜, 추어탕, 곤드레밥 등 먹거리 천국이다. ●‘다문화음식거리’ 중국식 호떡·파파야 샐러드·나시고랭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이 산다는 원곡동은 세계음식백화점으로 불린다. 6만여명의 외국인이 모여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을 위한 음식점들이 생겨났다. 외국에 가지 않고도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어서 주말에는 내국인 미식가들도 많이 찾는다. 다문화음식거리에서는 외국인들이 직영하는 100여곳의 음식점이 성업 중이다. 지하철 4호선 안산역 앞에서 원곡본동 주민센터까지 500여m에 이르는 구간에 밀집해 있다. 거리의 명물이 된 꽈배기빵과 중국식 호떡, 만두, 월병을 맛볼 때면 여기가 중국인가 싶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태국음식점에서는 파파야 샐러드 ‘쏨땀’, 매운 돼지고기덮밥 ‘팟카파오무’, 볶음 국수 ‘팟타이’, 볶음밥 ‘까오팟푸’를 맛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볶음밥 ‘나시고랭’이나 꼬치 요리인 ‘사테가이’, 인도의 ‘난’과 ‘커리’, 베트남 쌀국수 ‘퍼’ 등도 입맛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본오동에서는 양푼홍합탕, 신석기 숯불고기, 창고 곱창집, 장단콩 청국장, 곤드레수제비집 등이 인기다. 상록수역 1번 출구에서부터 최용수기념관까지 먹자골목이 형성돼 있다. 선부동 먹자골목에서는 전국 3대 짬뽕이라는 중국집이 유명하다. 바닷가재에서부터 회까지 해산물종합세트를 먹을 수 있는 횟집도 있고 활전복회, 몽골리안 숯불바비큐, 쪽갈비, 두루치기 등을 선택할 수도 있다. ●‘송호맛길’ 산채 정식·감자옹심이·메밀 막국수·굴튀김 안산 사람 치고 ‘송호맛길’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 한식부터 중식, 일식까지 없는 게 없다. 고향의 정감이 담긴 산채 정식부터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강원도식 감자옹심이와 메밀 막국수, 삼대를 잇는 두부요리, 굴튀김과 굴국밥 등도 인기 품목이다. 성포동은 조선시대 배가 드나드는 포구가 있던 곳이다. 이곳에서 영업 중인 횟집의 생선구이는 점심 메뉴로 손색없으며 불고기 백반과 통큰 냉면을 맛보려는 미식가도 많이 찾는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4] 까치밥, 똘레랑스 그리고 정신건강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24] 까치밥, 똘레랑스 그리고 정신건강

    한 때 우리 사회에서 ‘똘레랑스(Tolerance)’라는 말이 회자됐었지요. 프랑스 사람들이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이 아닌 타자, 자기 것이 아닌 다른 문화과 관습을 능동적으로 포용한다는 것인데, 저는 오래 전 홍세화씨의 책에서 이 말을 실감나게 접했습니다. 이 말을 아름답게 기억하는 것은 이타적인 삶, 타자를 위한 배려가 부럽기도 했고, 그렇게 너그러운 그들의 삶에 자꾸 낯설게만 투영되는 ‘나’와 ‘내 주변’의 옹색한 현실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의 이런 생각이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유럽의 강대국들이 전세계에 이식시킨 패권적 이념에 길들여진 식민적 속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국을 ‘신사의 나라’로 여기지도 않고, 프랑스 문화가 재밌을지언정 우월하다고 믿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국부(國富)나 인종적 특성이 부러운 게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그들의 열린 자세가 부럽고, 그로부터 발원한 그들의 치열하면서도 자유분방하고, 발랄하면서도 격조가 있는 삶의 자세를 부러워합니다. 아마 그런 그들의 삶이 상당 부분 똘레랑스와 결부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게 필자의 생각입니다.  ●가지지 못한 자의 아름다운 나눔 언제부턴가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매몰되어 살아 왔습니다. 그 정도가 지나쳐 톨레랑스의 가치를 알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문명 밖의 문명’처럼 낯설거나 이질적으로 비치기도 할 것입니다. ‘나만 좋으면 된다’거나 ‘항상 내가 우선’이라는 이 몰염치한 습속은 일제 암흑기와 한국전쟁 등 독하지 않으면 살아 남기 어려운 핍진한 환경을 헤쳐나오면서 체득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바둑의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먼저 내 말을 살린 뒤 상대방의 말을 공격하라)’라는 격언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명도생부터 해야 했으니, 그 참담한 삶 속에서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옛말에서 보듯, 항상 궁핍하고 불안정한 일상 속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챙겨야 했고, 그렇게 아등바등 뺏고, 감추며 살았지만 쌀독은 항상 비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들 했으니, 그런 터수에 언감생심 무언가를 베풀면서 사는 여유를 갖는다는 게 호사이고 꿈일 뿐이었지요. 그렇다고 우리네 삶이 똘레랑스와 전혀 무관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니, 우리 조상들은 유럽의 똘레랑스보다 훨씬 본원적인 베풂을 알았고, 그런 가치를 존중했습니다. 가진 자의 시혜보다 가지지 못한 자의 배려가 더 아름다운 것은 먹고 쓰고 남은 것을 덜어 주는 것이 아니라 당장의 허기와 필요를 덜어야 하는 일이고, 최소한의 자기 몫을 쪼개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고, 그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이는 개국 이래 단 한번도 국통이 끊이지 않았던 장구한 역사가 증언하는 사실입니다. 시골집 뒤란의 늙은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까치밥’은 또 어떻습니까.  ●‘오로지 주고자 했던’ 까치밥의 철학 ‘초록이 지쳐 단풍 들더니’ 가을이 깊어져 갑니다. 이슬이 서리로 변하면서 이내 살풍경한 겨울이 되어 온 산야를 흰눈이 뒤덮을 무렵이면 텅 비어 삭막한 풍경 가운데에다 마치 누군가 작심하고 붉은 물감으로 방점이라도 찍어놓은 듯 선연한 붉음이 눈길을 끌곤 했지요. 바로 까치밥입니다. 가을걷이의 마지막은 감을 따 갈무리하는 것인데, 개량되기 전의 예전 감은 겉이 붉어보여도 속살을 베어물면 여간 떫지 않았습니다. 그걸 따모아 항아리나 석작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가 달디 단 홍시가 되면 하나씩 꺼내 먹곤 했던, 요긴한 겨울 군입거리였지요. 요즘의 개량종 단감과 달리 예전의 토종 감나무는 집안의 조왕신 같은 것이어서 크게 키워 비바람을 막고, 시원한 그늘도 드리우며, 먼 동구밖에서 봐도 한 눈에 우리 집임을 아는 장소성까지 부여했으니 감나무가 바로 산이고, 정자이며, 스카이라인이고, 랜드마크였지요. 스무 척, 서른 척 키를 키운 탓에 감을 딸 때면 큰 가지를 타고 올라가 간짓대로 투덕거리곤 했는데, 해거리를 하지 않을 때는 워낙 많이 열려 그걸 따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정신없이 따다 보면 어느 새 가지가 텅 비고, 꼭대기 가지 끝에 잔챙이 감이 서른 개, 마흔 개씩 남습니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그건 까치밥하자. 그만 내려와라”시며 일을 매조졌지요. 아닌 게 아니라 날이 추워 먹거리가 마땅찮으면 까치가 가지 끝에 내려앉아 남은 감을 쪼곤 했는데, 그래서 까치밥이라고 불렀겠지요. 찬서리에 익어서 더 붉어진 까치밥이 얼음 들어 푸르딩딩한 하늘을 배경으로 매달린 모습을 보노라면 문득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곤 했는데, 그런 느꺼운 마음이 미물에게라도 뭔가를 베풀 수 있다는 은전의 여유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까치를 위해 가지 끝에 감을 남겨두는 일은 어떤 강제나 규율도 없이 온전히 스스로 결정하는 있이었는데, 지금보다 훨씬 궁핍하게 살았던 예전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표도 나지 않게 그런 덕성을 실천함으로써 스스로의 체온을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 하루 끼니 걱정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빈 콩밭에 ‘참새 몫’으로 수수목을 남겨두거나, 대보름날 정성껏 무친 나무새를 이것 저것 바가지에 덜어 소에게 먹일 턱이 없지요. 까치든, 소든 사람에 견주면 하찮은 미물이고 축생인데도 말이지요. 우리의 핏속에는 미물일지라도 곁에 머무는 것이면 무엇이든 챙기고 걱정해주는 미덕이 있었습니다. 제 목구멍으로 무엇을 넘겼는지도 모를 궁핍 속에서 살면서 그런 짓이 가당키나 하냐고 생각한다면 조상들의 정신세계를 더 찬찬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들이 넉넉하지 못한 것도 맞고, 그래서 짜디 짠 자반 한입 못 먹어보고 해를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걸 그다지 아쉽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말처럼 살림이 요족해 육고기를 줄창 먹고 살았다면 간사한 입맛이 남아 ‘땡기기라도’ 했겠지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원래의 삶이 안빈(安貧)에 길들여진 탓에 배만 채울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했지요. ‘사흘 고기맛을 못 보면 소증 난다’는 말은 덜 떨어진 권문세가의 논다니들 말이지, 하냥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살았던 사람들의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까치 같은 미물까지 챙기며 살았으니 그걸 먼 유럽의 똘레랑스와 견준다는 게 오히려 이상합니다. 유럽의 똘레랑스가 관습과 제도의 결과라면, 우리의 나눔은 태생적인 끌림의 결과이니까요. 예전에 흔했던 보시(布施)는 어떻습니까. 불교의 수행법으로, 베푸는 모든 행위를 이르는 보시는 불가에서 이타정신(利他精神)의 정점으로 이해합니다. 더러는 보시를 복을 받기 위해 하는 ‘이기적인 이타’라고도 보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설령 보시를 하면서 되받을 일을 생각했더라도, 그 복이라는 게 실체도 없고, 아무도 담보할 수 없는 불확실한 대가여서 거기에 기대 자기 것을 나눌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보다는 자기 것을 나누면서 스스로 위로받기 위해 ‘복’을 생각했다는 게 현실적이지요. 마찬가지로 까치밥 역시 ‘오로지 주고자 했던’ 아가페적인 나눔의 실천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서구의 똘레랑스 정신을 ‘우리는 갖지 못한 포용이자 관용’이라고 부러워만 할 일은 아니지요.  ●정신 건강 혹은 영혼의 안식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프랑스의 똘레랑스는 1789년의 대혁명 이후에 사회적 통합을 위해 주창한 근대화의 기제 속에서 체화된 개념인데, 우리의 그것은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작용하지 않은 자연발생적 정서였고, 또 모르긴 해도 자연의 모든 것에 정령이 깃든다는 원시 토테미즘과도 무관하지 않을 터이니 비록 우리의 정서가 반듯하게 각이 잡혀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단들 제도적 산물인 똘레랑스와 같은 선에서 견준다는 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 까치밥을 보면서 궁핍하지만 영혼이 건강하게 사는 지혜를 배웁니다. 지혜라고 했지만, 대단한 사유나 거창한 논리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그냥 물이 흐르듯, 아니면 밥 먹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마음의 부름에 따르면 되는 일이고, 거기에 대단한 결심이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지요. 필자가 어렸을 때의 경험입니다. 유월 더운 날, 온가족이 나서 산비탈 보리밭에서 보리를 베고 있었지요. 거진 다 베어갈 무렵, 갑자기 까투리 한 마리가 요란하게 꿩꿩 거리며 나대는 게 아니겠습니까. 시골에 흔한 게 꿩이라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았는데, 그 때 할머니가 허리를 펴시더니 “오늘은 여기서 손 털자”고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직 베지 못한 보리가 예닐곱 평이나 남았는데 마치자는 말에 다들 의아해 하자 할머니는 “저 쪽에 새끼를 쳐놨길래 꿩이 저 난리지”라며 “한 이레면 새끼 데불고 나갈테니 그 때 와서 마저 베면 된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으시더군요. 집안 어른 말씀에 가타부타할 수도 없어 그렇게 일을 마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 보리밭에 다녀 오신 아버지가 “꿩이 산으로 갔는지 둥지가 비었더라. 내일 가서 남은 보리 정리하면 되겠다”고 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돌이켜 생각하면, 할머니는 그 일을 통해 우리에게 두 가지를 가르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하찮은 꿩이라도 새끼를 거느릴 때는 해코지해서는 안 된다는 공생의 철학이 하나이고, 보리밭 어름에서 꿩이 우짖는 걸 보고 사연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가 둘입니다. 보리야 며칠 뒤에 베어도 축날 일이 없으니 흔쾌히 그리 한 것이지만, 그렇더라도 나 아닌 남을 생각하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할머니와 어머니는 김장김치나 간장·된장 등을 넉넉하게 준비해 이웃들과 나누기도 했는데, 그렇게 나눈 뒤에는 항상 “전답이 넉넉치 않아 가을이라고 거둔 것도 없을텐데, 겅개라도 좀 나누니 맘 편하다”며 기꺼워들 하셨지요. 그래선지 할머니는 그 시절의 여건을 생각하면 무병장수하셨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집안 일을 하시는 등 강건하셨습니다. 그게 어디 제 할머니만의 일이겠습니까. 살림이나 품성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확실히 예전에는 다들 그렇게 나누고, 살피며 살았습니다. 그런 삶은 확실히 건강했습니다. 필자가 낳고 자란 마을이 100여호 쯤 됐는데, 치매를 겪은 노인은 딱 두 사람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더러는 ‘노망’이니 ‘망령’이니 수근대기도 했지만, 삼이웃이 너나 없이 돈독했고, 우애가 깊었지요. 그러니 온 마을이 떵떵거릴 만큼 크게 잘 사는 집은 없었어도 굶주릴 일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오고가다 마주치면 살갑게들 인사를 나눴고, 철부지들이라도 위, 아래를 알았습니다. 쌀독이 비면 아무 집에나 찾아가 손을 벌렸고, 장날이 되어 뭐든 돈을 바꾸면 식량을 곧 되갚았습니다. 농투산이들 사이에 흔한 물꼬싸움을 해도 악다구니가 없었습니다. 늙수그레한 노친네들이 다툴 일 없도록 거중조정을 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러는 앓거나 다치기도 했지만,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요절한 누구를 빼고는 흉변이랄 게 거의 없었습니다. 그 시절엔 다들 가난을 팔자라고 여겼으니 유리걸식하는 처지만 아니라면 그걸 딱히 불행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차고 넘치지는 않았지만, 욕심이 없으니 많든 적든 자기 처지가 요족하다고 여기며 살았고, 그런 중에 서로 보듬고 나누었으니 심화를 끓이거나 안달복달할 일도 없었지요. ●“당신은 건강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지금이야 ‘칠십 청춘’이라고들 하지만, 예전에는 태어나 육십갑자를 다 채우고 맞는 환갑이 흔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환갑잔치는 놀이판이기도 했지만 혈족들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평생 농삿일로 허리가 굽은 채 환갑을 맞은 마을 어르신이 말합니다. “내가 육십평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일이다. 한눈 안 팔고 살아 전답도 장만했고, 자식 대학도 보냈는데, 그러느라 허리는 휘고 낯바닥은 감탕이 되었지만 못 살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헤프지도 않았지만, 필요할 땐 인심도 쓰면서 산 덕분에 죽어서 연옥은 면할 듯도 하고…”. 그 어르신은 술로 목을 축인 뒤 말을 이어갑니다. “나야 배우지 못해 세상의 이치를 알 턱이 없지만, 사는 게 별것 아니다. 혼자 사는 세상이란 없으니 형제끼리는 우애로, 이웃끼리는 정으로 살믄 될 일이다. 죽고 사는 것이야 인력으로 어쩔 수 없으니 그건 걱정할 것 없고, ‘나 하나 잘하믄 세상이 다 좋은 것이다’고 믿고 살았는데, 진짜로 내가 그렇게 살았는지는 나보다 식솔들과 이웃 지기들이 더 잘 알 일이다.” 건강하게 사는 많은 조건들 중에서 당신은 무엇을 첫 손에 꼽겠습니까. 물론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 주관적인 판단이 있을 뿐이지요. 무섭다는 암도 피하고 싶고, 암 아니라도 안 아프고 살기를 바라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죽을 때까지 자기 몸 자기가 건사하기를 바랄 것이고, 또 어떤 부류는 돈 좀 많이 모아 쭈글거리지 않은 노후를 보내고 싶어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 옳고, 부러운 바람이지만 저는 여기에 한 가지만 보태고 싶습니다. 스스로 가진 능력 이상을 거머쥐려는 욕심은 좀 덜고, 가진 것 조금이라도 떼어서 베풀며 살았으면 하는 소망이 그것입니다. 물론 의무감으로 할 일은 아니고, 떼돈 들여 큰 일을 벌이자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어버이가 그러셨듯이 감나무 가지 끝에 까치밥 몇 알 남겨두거나 꿩의 처지를 살펴 보리 베는 일 며칠 늦춰주는 그런 일을 하며 살자는 뜻입니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자기 배만 채우려 하지 않고 욕심을 덜어내는 일이며, 자기 주장만 하지 않고 이기의 벽을 허무는 일이며, 좀 번거롭더라도 남의 처지나 형편에도 한번쯤 따뜻한 눈길을 주는 배려입니다. 빨갛게 언 발가락을 털어가며 겨울을 나야 하는 까치 등속의 미물에 대해 갖는 측은지심이 어디 불가(佛家)만의 가르침이겠습니까. 그 사소하다 못해 하찮기까지 한 까치밥에서 서구의 똘레랑스에는 없는 ‘우리다운 나눔과 배려’의 원천을 봅니다. 그럴 수 있다면 조금씩 베풀면서 남들의 따뜻한 시선 속에 머무는 것, 그리고 편안한 자기 위안을 얻는 것, 그런 삶이 건강한 삶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정신세계가 강퍅하지 않고 풍요로워서 갈수록 환자가 늘어난다는 우울증이나 착란, 도착 그리고 치매까지도 사회적 유병률이 훨씬 낮아질 것이고, 그런 변화가 우리들 개개인의 건강으로 확인되지 않겠습니까. 병이야 의사가 고치는 것이지만, 병문(病門)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니까요. 베풀며 산다고, 여유롭게 산다고 모든 병마를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신의 세계만큼은 훨씬 정갈하고 넉넉해질 것이며, 그렇게 살다보면 흔히 말하는 세상의 번뇌와도 조금은 멀어지게 되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병마도 피할 수 있어 우리의 삶이 더 따뜻하고 안온할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마음의 병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양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jeshim@seoul.co.kr
  • [최동호 새벽을 열며] 소녀들이 세운 소녀상과 윤동주 시비

    [최동호 새벽을 열며] 소녀들이 세운 소녀상과 윤동주 시비

    서울 정동의 프란치스코 교육관 앞에 소녀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소녀상을 세웠다는 보도를 접하고 일본으로 갔다.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에 세워진 윤동주 시비에 묵념하고 처음으로 그 시비가 세워진 경유를 듣게 됐다. 윤동주 시비는 우리의 광복 50주년이자 일본의 종전 50주년인 1995년 도시샤대학 교정에 건립됐다. 이 시비 건립을 허용한 일본 대학 관계자는 종전 50주년을 맞아 무언가 의미 있는 행사를 하고자 했고 자신들의 나라에서 희생당한 윤동주 시비를 세워 그것을 기념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이는 도시샤대학의 건학 이념인 ‘양심’과 일치하는 것이다. 지난 2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거론됐다고 하는데 아베 신조 총리는 ‘전쟁과 상관없는 일본의 미래 세대에게 위안부 문제로 짐을 남겨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했다고 한다. 소녀상이 최초로 세워진 일본대사관의 앞의 소녀상 철거가 위안부 문제 해결의 선결 조건이라고 말했다고 일본 신문들은 보도했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의 두 가지 얼굴을 본다. 하나는 양심의 얼굴이요, 다른 하나는 비양심의 얼굴이다.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이 무언가 그들의 마음에 걸린다는 점이다. 아베의 정치적 발언에서 우리는 어떤 진실한 고백을 들을 수 없다. 오히려 종전 50주년을 기념해 윤동주 시비를 건립하게 한 도시샤대학 관계자들에게서 양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대학 관계자들도 드러내 놓고 양심을 고백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행동으로 그들의 과오를 인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일본 도처에서 만들어지는 것도 이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양심의 목소리는 정치가의 목소리보다 작을 수 있지만 그 목소리는 역사를 통해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전해지는 까닭에 불멸의 생명력을 갖는다. 흥미로운 것은 자발적으로 소녀상을 세운 여고생들의 발언이다. 이화여고 윤소정양의 “우리나라가 한 역사의 잘못은 우리 세대가 안고 가는 게 맞는 거잖아요. 다른 나라 사람이 해줄 문제인가요”라는 반문은 위안부 문제 해결의 능동적인 주체가 누구인가를 깨우쳐 주고 있다. 이는 분명히 남의 문제가 아니다. 권영서양은 “지금도 제대로 사죄를 안 하는 게 미래 세대에게 더 짐이 될 걸요.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지금 매듭을 풀지 않으면 언젠가는 독이 돼서 날아올 거예요”라고 말했는데, 이는 정치인들의 회피성 말장난의 핵심을 찌르는 발언이다. 이 문제는 사죄하지 않으려는 아베에게 억지로라도 사죄를 받아 내는 것으로 정치인의 책임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은 일본인들도 소녀상의 존재를 보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무언가 창피한 일이고 이를 미래 세대에게 전해 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말뚝을 박는다든가 미국에 세워진 소녀상을 철거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하는 일들은 그들에게도 양심상 꺼리지 않을 수 없는 문제가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이 역사를 날조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위안부의 강제 동원과 무자비한 수탈은 이미 역사적 사실로 입증된 일이다. 일본군 위안부는 한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중국, 필리핀 등 동아시아 전체에서 대략 20만명의 일본군 위안부가 동원됐다고 한다. 유엔 인권위원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를 촉구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아베는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얼버무리고 있고, 그를 지지하는 극우 세력은 일본을 다시 군국주의로 치닫게 하고 있다. 단풍이 바람에 날리는 늦가을 일본대사관 앞을 거닐면서 비에 젖은 소녀상을 다시 바라본다. 전쟁의 과오를 사죄하지 않고 제국주의의 부활을 외치는 일본은 결국 머지않은 미래에 파국을 맞이할 것이다. 이것은 20세기 역사의 교훈이다. 아베가 이 역사의 교훈을 모른다고 한다면 소녀상을 건립한 여고생들에게 물어보거나 윤동주 시비 앞에 서서 양심의 소리를 들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 경남대 석좌교수·시인
  • 1500년 봉분 사잇길, 거스른 시간에 위로가 흘렀다

    1500년 봉분 사잇길, 거스른 시간에 위로가 흘렀다

    대구시가 새 관광상품을 내놨다. 이른바 ‘명품관광코스’다. 대구의 대표 관광지를 기본 삼아 대중교통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들을 지역별, 테마별로 묶은 것이다. 대구명품관광코스는 모두 세 개다. 팔공산힐링코스, 모노레일 도심관광코스, 그리고 안동·경주와 연계된 광역관광코스 등이다. 그 가운데 만추의 서정 가득한 팔공산힐링코스를 돌아봤다. 팔공산힐링코스는 팔공산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을 연계한 4개의 코스로 나뉜다. 동화사 중심의 1코스와 불로동 고분군, 도동측백나무숲, 평광동사과마을로 구성된 2코스, 누구나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설이 전해 오는 갓바위 부처 중심의 3코스, 그리고 수태골과 팔공산 케이블카로 이어지는 4코스 등으로 팔공산의 맛과 멋을 한껏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한데 일반 관광객의 경우 코스를 따라 돌기보다 개별 여행지를 ‘콕 집어’ 도는 게 더 경제적이지 않을까 판단된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불로동 고분군(사적 제262호)이다. 5~6세기 고(古)신라 때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1938년 일본 학자가 발견한 이후 1964년 경북대박물관이 추가 발굴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삼국시대 토기 360점이 출토됐고 철촉·철모와 금속·옥석류 등 187점이 발굴됐다. 현재 남은 봉분은 212기다. 213, 214호 고분은 최근 멸실돼 사라졌다. 근대 이후 공동묘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 군데군데 일반 묘가 남아 있다. 고분은 앞에 돌로 번호를 새겨 뒀다. 번호 대신 이름이 적힌 것은 공동묘지에서 이장하지 않은 묘다. 큰 봉분은 지름 20m, 높이 4m에 이른다. 작은 봉분은 어른 키보다 낮은 경우도 있다. 고분 사이로 오솔길이 나 있다. 1500년은 족히 넘는 시간이 머무는 공간 사이를 자박자박 걷는 맛이 각별하다. ‘죽은 왕들의 도시’ 경북 고령의 고분군에 견줄 만하다. 실제 고령 고분군과 경주 대릉원, 그리고 불로동 고분군의 형성 시기가 비슷하다고 한다. 대구를 대표하는 대가람인 동화사는 493년 창건됐다. 당시 이름은 유가사였으나 832년 중창할 때 절집 주변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해 동화사로 고쳐 불렀다. 가장 큰 볼거리는 통일약사여래대불이다. 300t 원석으로 제작됐다. 1992년 완공된 약사여래대불은 높이가 17m로 미얀마 정부가 기증한 부처님 진신사리 2과가 모셔져 있다. 보물 제1563호로 지정된 대웅전도 웅장하다. 성보박물관의 사명대사 초상(1505호), 봉황문 앞 절벽의 마애여래좌상(243호) 등 동화사 경내에 있는 11점의 보물만 찾아봐도 훌륭한 테마여행이 될 듯하다. 단산지는 숲으로 둘러싸인 호젓한 저수지다. 물가를 따라 3.5㎞ 거리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단산지 입구에 조성된 봉무공원은 배구, 테니스, 배드민턴 등 체육 시설을 갖춘 레포츠 공원이다. 나비생태학습관도 있어 대구 시민이 즐겨 찾는다. 신숭겸장군유적지는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이 전사한 파군재(破軍峴) 일대에 조성돼 있다. 신숭겸은 927년 팔공대첩 당시 후백제군에 포위된 왕건을 돕기 위해 그의 옷으로 갈아입고 싸우다 대신 전사했다. 왕건은 이 틈을 타 장졸로 변장한 뒤 포위망을 벗어났다. 이후 왕건은 신숭겸이 전사한 자리에 순절단(殉節壇) 등을 지어 그의 명복을 빌었다. 이경숙 문화관광해설사는 “팔공산(八公山)이라는 이름도 팔공대첩 때 여덟 공신이 전사했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전했다. 북지장사는 대구에서 처음으로 불교가 유입된 절집으로 알려져 있다. 남지장사와 더불어 동화사의 말사를 이루고 있다. 북지장사는 소박한 절집도 일품이지만 무엇보다 들머리가 빼어나다. 1.3㎞ 정도 솔숲이 이어져 있는데, 흔히 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로 꼽힌다. 숲길 위엔 ‘솔갈비’(갈잎·소나무잎의 현지 사투리)가 가득하다. 산길 전체가 연한 초콜릿으로 뒤덮인 듯하다. 침엽수가 떨군 낙엽이 활엽수 못지않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요즘 팔공산 일대는 단풍이 절정이다. 파군재에서 파계사 삼거리, 동화사 삼거리를 거쳐 다시 파군재로 돌아오는 여정이 으뜸으로 꼽힌다. 이 밖에 모노레일 관광코스는 지난 4월 개통한 모노레일(도시철도 3호선) 경유 지역을 중심으로 구성된 도심관광코스다. 앞산전망대와 수성못 등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야경투어코스, 대구사격장과 이월드 등 활동적인 코스로 구성된 체험여행코스, 서문시장과 안지랑곱창골목 등 대구의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는 미식여행코스 등으로 세분화된다. 대중교통으로 대구를 여행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광역관광코스는 대구 인근의 경주, 안동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코스다. 근대에서 신라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대구~경주 시간여행코스, 도시와 바다를 아우르는 대구~경주 풍경여행코스, 삼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엮은 대구~안동 역사여행코스, 다양한 체험거리로 가득한 대구~안동 체험여행코스 등 총 4코스로 구성됐다. 대구 남쪽의 도동서원(사적 488호)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코스다. 한훤당 김굉필을 향사하는 서원이다. 우리나라 5대 서원의 하나로 꼽힌다. 도동서원은 소수서원 등 전국 9개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다. 지난 9월 현장 실사를 거쳐 내년 6월에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될 예정이다. 이미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기 때문에 공식 등재는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고 있다. 1604~1605년쯤 세워진 도동서원은 원형이 잘 살아있다. 한국전쟁 등 모진 풍파에 시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청 등 지속적인 수리가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400년 전 모습 그대로다. 서원에서 꼭 봐야 할 게 몇 가지 있다. 송은석 문화관광해설사가 꼽은 것들이다. 먼저 서원 들머리의 은행나무다. 키 25m, 둘레 8.7m의 노거수다. 도동서원이 들어설 때 함께 식재됐으니, 400여 성상을 한자리에 서서 서원의 역사를 지켜본 셈이다. 늙은 나무가 주는 풍경의 깊이는 크기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다. 둘째는 건물 곳곳에 숨겨진 거북이, 용머리 등의 석물들이다. 석공들이 장난삼아 새겨 놓은 것들이라고 한다. 엄숙한 서원에서 해학적인 조각들을 보는 게 참 이채롭다. 셋째는 중심 건물인 중정당의 기단부 돌들이다. 모양도 빛깔도 제각각이다. 도동서원을 지을 당시 전국의 유생들이 서원 건립에 보태라며 보내온 돌을 건축자재로 썼기 때문이다. 이들의 정성이 여태껏 건물을 떠받들고 있는 셈이다. 넷째는 환주문(喚主門)이다. 내 안의 주인을 부르는 문이란 뜻이다. 이 문을 드나들며 자신 내면에 있는 천부의 심성을 늘 일깨우라는 주문을 담고 있다. 한데 출입문 노릇을 하는 것에 견줘 높이가 지나치게 낮다. 169㎝밖에 되지 않는다. 머리에 갓이나 유건 등을 썼을 경우 열에 아홉은 머리를 숙여야 한다. 자신을 낮추라는 이 뜻, 누구라도 금방 눈치챌 터다. 다섯째는 상지(上紙)다. 중정당 기둥 윗부분을 흰 창호지로 둘렀다. 동방오현 중 수장을 모셨다는 자부심의 표현으로, 국내 서원 가운데 유일한 형태라고 한다. 여섯째는 문종이다. 보통 한국은 문 안쪽에, 일본은 문 바깥에 문종이를 붙인다. 한데 중정당 강당 쪽으로 난 문의 경우 문종이가 밖에 붙어 있다. 이 탓에 왜색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송 해설사는 “문종이에 대한 우리의 기준 가운데 하나가 중요한 쪽을 향해 붙인다는 것”이라며 “중정당의 경우 학습 공간이 생활 공간보다 중요하다는 뜻에서 강당 쪽, 그러니까 문밖에 문종이를 붙였다”고 설명했다. 글 사진 대구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3) →가는 길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도동분기점에서 익산포항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팔공 나들목으로 나온다. 중앙고속도로의 경우 금호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로 갈아타야 한다. 도동서원을 먼저 보겠다면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 나들목으로 나와야 한다. 이어 1093번 지방도로를 따라 구지·창녕 쪽으로 가다 18번 지방도, 1번 지방도를 번갈아 타면 된다. →맛집 산중(982-0077)은 들깨를 재료로 만든 음식들로 이름난 집이다. 팔공산 케이블카 오르는 길에 있다. 왕거미식당(427-6380)은 ‘뭉티기’(소고기 육회)와 ‘오드레기’(소 대동맥)를 잘한다. 대구 중심의 국채보상로에 있다. 규모가 적은 데다 사람들이 몰리는 까닭에 예약은 받지 않는다.
  • 눈앞의 장관만 봤니 하늘위 가을도 보자

    눈앞의 장관만 봤니 하늘위 가을도 보자

    갱 영화 ‘밀러스 크로싱’의 첫 장면. 조붓한 숲길을 따라 주인공이 걷고 있다. 그의 시선은 숲 위 쪽에 고정돼 있다. 만추에 이른 나무들. 누렇게 물든 나무 끝에 파란 하늘이 걸려 있다. 이 장면 보자니 머리가 띵하다. 여태 본 적 없는 신선한 카메라 앵글 때문이다. 숲에 들면 늘 앞만 봤다. 머리 들어 나무 위 세상을 보려 한 적은 사실 드물다. 늘 가던 숲도 시각을 바꾸면 다르게 보인다.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그걸 말하려는 것이지 싶다. 어느덧 가을도 끝자락. 가을 보내는 의식 치르기 딱 좋은 곳이 대전에 있다. 장태산 메타세쿼이아 숲이다. 초록의 서슬 퍼랬던 메타세쿼이아가 ‘단풍 엔딩’의 끝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가을 가기 전 그 숲 찾거든 부디 머리 들어 하늘 한 번 바라볼 일이다. ‘밀러스 크로싱’은 저 유명한 코언 형제 작품이다. 경쟁작 ‘대부 3’에 밀려 고전하긴 했지만, 1990년 미국 개봉 당시 갱 영화의 수작으로 평가 받았던 영화다. ‘밀러스 크로싱’은 갱들의 은어로 ‘배신자의 처단 장소’를 뜻한다. 보스의 여자를 사랑한 2인자, 결말이야 뻔하다. 하지만 오해는 마시라. 휴양림은 영화처럼 어둡지 않다. 외려 영화가 그랬듯 ‘반전’의 풍경들을 여기저기 안배해 뒀다. 곳곳이 ‘인증샷’ 찍을 곳이고, 연인끼리 밀어를 속삭일 만한 곳도 수두룩하다. 장태산 휴양림 가는 길은 시골 외갓집을 찾아가는 것처럼 고즈넉하다. 소똥 냄새 가득한 들판도 지나고 가을색 윤슬 빛나는 저수지도 만난다. 그 길 끝에서 만난 숲.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갈색 옷 갈아입고 이방인을 맞고 있다. 숲에 들면 객의 마음은 들뜬다. 어딜 먼저 찾아야 하나.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라. 당신은 그저 바람이 일러주는 대로 따라만 가면 된다. 휴양림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메타세쿼이아 숲이다. 산자락 어디서든 메타세쿼이아가 펼쳐둔 수직세상과 만나게 된다. 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선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과는 또다른 느낌이다. 이 모습 보고 입 벌려 경탄하지 않을 사람은 아마 묵언수행 중인 스님뿐이지 싶다. 메타세쿼이아 숲은 1973년 한 독림가가 사재를 털어 조성했다. 1991년 국내 최초 민간휴양림으로 지정받았으나, 경영난 탓에 경매에 넘겨졌고, 2002년 대전시가 이를 매입해 운영하고 있다. 현재 휴양림에서 자라고 있는 메타세쿼이아는 6000그루가 넘는다. 가장 키가 큰 나무는 38m(2012년 기준)에 이른다고 한다. 메타세쿼이아는 산소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루당 약 70㎏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300㎏이 넘는 탄소도 저장한다고 한다. 그러니 이들이 내뿜는 공기의 양은 또 얼마나 많을까. 굳이 피톤치드 운운하지 않아도 숲에 들면 단박에 알게 된다. 숲 안 공기가 얼마나 달고 맑은지 말이다. 숲속 벤치에 큰 대자로 누으니 그제야 메타세쿼이아의 전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짙은 갈색으로 변한 메타세쿼이아 잎이 가을꽃을 닮았다. 바람 한 줄기 불면 참빗 닮은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밀러스 크로싱’ 가는 길도 딱 이랬다. 장태산 휴양림의 명물은 ‘숲속 어드벤처’다. 새의 눈높이에서 숲을 볼 수 있게 만든 구조물이다. 숲속 어드벤처는 에코 로드와 스카이 타워로 구성됐다. 에코 로드는 나무 사이에 철재로 만든 산책로다. 나무의 3분의2쯤 되는 15~17m 높이를 따라 조성돼 ‘중층의 숲’을 체험할 수 있다. 폭은 1.8m 안팎. 전체 길이는 556m다. 에코 로드 끝은 스카이 타워다. 철골 구조의 원형 전망대다. 높이는 27m. 아파트 7층 높이다. 철골로 만들어진 탓에 사람들이 오갈 때마다 진동이 느껴진다. 혹시 와락 품에 안겨 오는 ‘여친’을 기대한다면 난간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 보시라. 오금이 저리는 스릴을 맛볼 수 있다. 장태산을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전체 길이는 10.2㎞로 다소 길다. 가급적 길이가 짧은 휴양림 등산로(3.2㎞)를 따라 돌아보길 권한다. 이마저도 길다면 관리사무소에서 산림문화휴양관 쪽으로 올라 형제바위를 돌아본 뒤 내려오는 코스도 있다. 이 경우 1~2시간 정도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등산이 싫더라도 형제바위까지는 다녀와야 한다. 스카이 타워보다 더 멋진 전경과 마주할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된비알이라 다소 품은 들지만, 20분 안팎이면 충분히 오를 수 있다. 글 사진 대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장태산 휴양림(www.jangtaesan.or.kr)은 입장료와 주차료를 받지 않는다. 휴양림 내에선 취사 금지다. 오토캠핑장이나 바비큐 시설도 없다. 간이 매점은 있다. 도시락을 싸가거나 휴양림 초입의 식당에서 해결해야 한다. 휴양림에서 숙박도 할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매달 1일 밤 12시부터 예약을 받는데, 워낙 인기가 많아 방 구하기가 쉽지 않다. 숲 체험 학습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역시 홈페이지에서 접수한다. 애완동물은 데려갈 수 없다. 관리사무실 (042)270-7883.
  • [新국토기행] 전북 진안

    [新국토기행] 전북 진안

    전북 진안군은 산과 물의 고장이다. 노령산맥 동쪽 사면과 소백산맥 서쪽 사면 사이에 자리잡은 고원지대다. 전체 면적 789.11㎢의 77.4%인 611.09㎢가 산림이다. 해발고도 500m의 진안고원은 호남의 지붕, 남한의 개마고원으로 불린다. 산과 호수가 어우러져 경관이 빼어나고 오염되지 않은 청정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교통망이 확충되기 전에는 전국 최고의 오지로 분류됐지만 최근 들어서는 최고의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숲을 이용한 환경성 질환 치유 산업과 고랭지 농업, 관광산업이 발달했다. 섬진강 발원지로 사계절 맑은 물이 흐르는 것도 진안의 자랑이다. 11개 읍·면, 인구 2만 7000명의 전형적인 산촌이지만 홍삼을 비롯한 약용작물 재배로 소득이 높고 정주 여건이 확충돼 귀농 귀촌 1번지로 떠오르고 있다. 볼거리 >> ●신비한 전설의 마이산·탑사 둘러본 뒤 ‘홍삼스파’ 마이산(馬耳山)은 세계 최고 여행 안내서인 ‘미슐랭 그린가이드’ 한국 편에서 만점인 별 3개를 받은 여행 명소다. 해발 686m의 암마이봉과 680m의 수마이봉으로 이뤄졌다. 멀리서 보면 말 귀 모양을 닮은 신비한 형상이다. 잔잔한 능선을 박차고 나온 한 쌍의 봉우리는 9000~1억년 전 퇴적분지에 자갈, 모래, 진흙이 쌓여 형성된 역암층으로 추정된다. 신라시대 때부터 나라에서 제향을 올리는 명산이었다. 표면에는 차별침식으로 벌집처럼 움푹 파인 타포니군이 발달해 있다. 봄이면 수령 30년생의 산벚나무들이 늘어선 2.5㎞의 진입로가 장관을 이룬다. 진안군은 환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마이산을 둘러볼 수 있는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 중이다. 마이산의 또 다른 압권은 탑사라는 사찰 내 돌탑군이다. 주탑인 천지탑을 중심으로 높고 낮은 탑 80여기가 늘어서 있다. 1800년대 후반 이갑용 처사가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뿔형과 일자형의 석탑은 자연석을 생긴 모양 그대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것이다. 태풍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는 신비함을 간직하고 있다. 마이산 북부주차장 입구에는 2009년 홍삼스파가 들어섰다. 홍삼물에 몸을 담그고 홍삼팩을 할 수 있는 힐링 시설이다. 홍삼 한방에 음양오행 프로그램을 가미한 국내 유일의 스파테라피존이다. ●물안개 그윽한 호남 최대 규모 용담댐·64.6㎞ 드라이브 코스 용담댐은 호남 지역 최대 다목적 댐이다. 저수량 8억 1500만t 규모로 소양댐, 충주댐, 안동댐, 대청댐에 이어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 100만명의 전북도민에게 하루 135만t의 생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댐 건설 과정에서 진안읍 등 6개 읍·면 3300만㎡가 수몰되는 아픔을 겪었으나 거대한 호수가 진안을 상징하는 새로운 관광 자원이 됐다. 호반 곳곳에 수몰된 실향민들의 향수를 달래 주기 위한 망향의 동산이 조성돼 있다. 댐을 일주하는 64.6㎞의 도로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힌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와 주변의 아름다운 산들이 어우러지는 몽환적인 풍광이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다. 물 맑은 용담호에서 갓 잡아 올린 물고기로 끓인 매운탕, 어죽 등을 조리하는 맛집도 즐비하다. 용담댐 공원에는 물과 사람의 관계를 알려주는 물 홍보관이 있다. ●기암괴석 9개 봉우리 구봉산… 물 마르지 않는 물탕골계곡 진안군 정천면에서 운일암반일암으로 가노라면 왼쪽으로 뾰족하게 솟구친 아홉 개의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설악산 공룡계곡을 축소한 형태다. 기암괴석의 바위산으로 경관이 뛰어나다. 1봉이 해발 656m이고 마지막 봉우리인 9봉이 해발 1002m로 암봉을 오르내릴 때마다 경이로운 풍광이 발아래 펼쳐진다. 독특한 산세, 단풍과 설경, 운해의 명소로 전국에서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4봉과 5봉을 연결하는 국내 최장 무주탑 방식 구름다리(100m)가 지난 9월 완공돼 주말이면 7000여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물탕골계곡은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절경이다. 남동쪽 기슭에는 875년 창건한 천황사가 자리잡고 있다. ●원시림이 울창한 운장산 오르면 마이산·지리산 한눈에 운장산(해발 1126m)은 노령산맥의 주 능선을 이루는 최고봉이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이 잘 보존돼 있다. 이 일대에서 해발 고도가 가장 높아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뛰어나다. 북쪽으로 대둔산과 계룡산, 동으로는 덕유산국립공원, 남으로는 마이산과 지리산이 눈에 들어온다. 능선에는 기암괴석과 산죽이 많고 산허리에서는 감나무가 많이 재배된다. 계곡과 활엽수림의 오색단풍이 아름다워 등산객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다. 정상은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령을 이룬다. 주변 마을들은 토종꿀, 토종닭, 흑염소 등을 생산해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기암괴석 사이 사계절 투명한 계류가 흐르는 운일암반일암 사계절 투명한 계류가 흐르는 청정 관광지다. 손때 묻지 않은 깨끗한 계곡으로 유명하다. 운일암(雲日巖)은 주변을 오가는 것은 구름과 해뿐이라는 뜻이고 반일암(半日巖)은 햇빛이 반나절밖에 비치지 않을 만큼 깊은 계곡이란 뜻이다. 여름에도 발이 시릴 정도로 시원한 계곡물이 흐른다. 크고 작은 기암괴석 사이를 흐르는 계류는 소(沼)를 이뤄 물놀이하기에 적당하다. 진안군이 주변에 전망대, 야영장, 현수교, 담수보, 체육시설 등을 설치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먹거리 >> ●평균 해발 400m 고원지대에서 자란 진안홍삼 진안홍삼은 정관장 등의 대기업 제품이 장악하고 있는 홍삼시장에서 존재감을 인정받은 특산품이다. 진안홍삼은 평균 해발 400m 고원지대에서 자란 진안삼을 원료로 한다. 진안삼은 일교차가 큰 기후와 무공해 청정 산림 토양 속에서 자라 영양 성분이 우수하다. 홍삼 가공용으로 최상급 품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사질양토에서 맑고 푸른 기운을 머금고 자란 진안삼은 사포닌 함유량이 타지산보다 월등히 높다. 진안홍삼은 원료삼으로 100% 진안삼을 사용하고 다른 한약재 등의 첨가물이 전혀 없다는 점을 내세운다. 특히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홍삼 명인 송화수씨가 탄생한 지역이라는 점에서 진안홍삼은 다른 제품과의 차별화를 시도한다. 홍삼 제품 군수품질인증제 실시, 홍삼연구소의 체계적인 품질 관리 등도 진안홍삼의 명성을 높이는 주요인이다. 2008년 설립된 진안홍삼연구소는 국내 유일의 홍삼연구소로 인삼 재배에서부터 생산, 가공까지 체계적인 품질 관리를 해 주고 있다. 진안홍삼의 성분 분석을 비롯해 응용 제품 개발, 품질 관리 기술 개발,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 표준홍삼가공기술 개발 등을 통해 진안홍삼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12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진안홍삼 군수품질인증제는 소비자 신뢰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진안 지역 118개 홍삼 제조 업체가 생산하는 제품 가운데 40개만이 엄격한 심사를 거쳐 품질인증을 획득했다. 전국 유일의 홍삼특구는 올해 홍삼 부문 브랜드 대상을 받았고 창조경제 친환경 부문 대상도 수상했다. 프로축구 K리그 챔피언에 오른 전북현대모터스 축구단 선수들이 진안홍삼을 복용하며 체력을 유지한다는 소문이 나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 최근에는 대만에 수출됐다. ●청정 고원에서 길러 담백하고 구수한 흑돼지 삼겹살 진안 흑돼지는 털 색깔이 검은 버크셔종이다. 일교차가 큰 고원지대에서 사육해 육질이 치밀한 것이 특징이다. 담백하고 구수한 맛을 자랑한다. ‘깜도야’라는 진안 고유의 상표로 널리 알려졌다. 지난해 축산물품질평가원에서 1등급 품질을 인정받았다. 흑돼지 삼겹살은 비계와 살이 세 겹으로 촘촘히 구성돼 있어 부드러우면서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열량이 낮은 대신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아 맛과 영양이 뛰어나다. 인, 칼륨, 메티오닌 등이 풍부해 성장 발육, 빈혈 예방, 간장 보호 효과가 뛰어나다. 흑돼지 고기는 비계층을 통째로 썰어 석쇠에 올려놓고 굵은 소금을 훌훌 뿌려 굽거나 비스듬히 경사진 무쇠 솥뚜껑에 기름이 적당히 흘러내리도록 구워야 제맛이다. 육즙이 풍부한 목살도 인기가 많다. ●고랭지 기후·토질 덕분에 맛·향 독특한 명품 더덕 진안 더덕은 맛과 향이 강하고 독특한 명품이다. 고랭지의 기후와 토질은 조직이 치밀하면서 풍미가 좋은 더덕을 생산하는 데 최적의 여건을 제공한다. 인삼과 비슷한 사포닌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사삼으로 불린다. 해열·해독 작용을 하고 콜레스테롤을 낮추며 폐와 비장, 신장을 튼튼하게 해 주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삼을 수확하고 난 뒤 후작으로 재배하는 경우가 많다. 진안에서는 더덕을 심을 밭에 옥수수를 먼저 심어 수확하지 않고 갈아엎어 땅심을 기른 뒤 더덕을 재배한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무공해 재배를 하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더덕은 뿌리를 주로 식용하지만 줄기도 버리지 않는다. 5~6월에 어린잎과 덩굴, 줄기 끝 부분을 채취해 나물 무침을 만들거나 생식으로 식사에 곁들이면 그윽한 더덕 냄새가 입맛을 돋운다. 고추장 양념을 해 매콤하게 구운 더덕구이도 섬유질이 풍부해 식감이 좋고 쌉싸래하면서도 향긋한 고유의 향이 일품이다. ●완전 무공해 표고버섯 표고버섯은 진안고원의 자연이 키워낸 완전 무공해 자연식품이다. 산림자원이 풍부한 고랭지에서 생산돼 육질이 두껍고 부드러우면서 쫄깃해 최고의 명물로 꼽힌다. 120명의 농민이 130만 본을 재배하고 있다. 진안군이 재배시설, 표고목, 저온저장고, 가공 기계 등을 지원해 품질 고급화에 주력하고 있다. 진안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생명의 窓] 11월의 가을 편지/이재무 시인

    [생명의 窓] 11월의 가을 편지/이재무 시인

    십일월을 사랑하리/곡물이 떠난 전답과 배추가 떠난 텃밭과/과일이 떠난 과수원은 불쑥 불쑥 늙어 가리/산은 쇄골을 드러내고 강물은 여위어 가리/마당가 지푸라기가 얼고 새벽 들판 살얼음에/ 별이 반짝이고 문득 추억처럼/첫눈이 찾아와 눈시울을 적시리/죄가 투명하게 비치고/ 영혼이 맑아지는 십일월을 나는 사랑하리 - 졸시, ‘십일월’, 전문 달빛 화면에 자판을 두들겨 대던 귀뚜라미도 탈고했는지 울음 그친 지 오래고, 그토록 빼곡하게 들어찼던 가을이 하나둘 산하를 빠져나가는 십일월은 이래저래 오는 것보다 가는 것들이 더 자주 눈에 밟혀 괜스레 마음 스산해지는 달입니다. 그늘이 고여 어두워지는 골짜기에서 갓 태어난 바람은 자신이 지난 자리에 소소하게 족적을 남깁니다. 맑고 시린 물이 산과 하늘을 품어 쉴 새 없이 흘러가는 계곡에 와서 나는 문장 연습을 하다 돌아오고는 합니다. 십일월은 의붓자식 같은 달입니다. 시월과 십이월 사이에 엉거주춤 낀 십일월엔 난방도 안 들어오고 선뜻 내복 입기도 애매해서 일 년 중 삼월과 함께 가장 춥게 밤을 보내야 하는 달입니다. 더러 가다 행사가 있기는 하지만 메인은 시월이나 십이월에 다 빼앗기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허드레 행사나 치르게 되는 달입니다. 괄호 같은, 부록 같은, 본문의 각주 같은 달입니다. 산과 강에 깊게 쇄골이 드러나는 달입니다. 저녁 땅거미 혹은 어스름과 가장 잘 어울리는 달입니다. 물속 돌처럼 공기가 단단해지는 저녁 공원 벤치에 앉아 뿌리 근처로 내려앉는 이파리들을 긁어모아 부어오른 발등을 덮어 봅니다. 바람결에 위태롭게 그네를 타던 홍자색 열매 하나가 자진하듯 가지를 떠나 보도블록 틈새로 얼굴을 뭉개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생산이 없기는 나 또한 마찬가지여서 한여름 밤 수은등에 몰려든 날벌레들의 날갯짓처럼 붕, 붕, 붕 시간의 낭비로 분주했을 뿐 진리에 닿지 않는 날들뿐이었습니다. 소용에 닿지 않는 무위의 나날들이 나를 더욱 지치게 하고 우울감에 젖게 합니다. 죄가 투명해지고 나는 마른 손으로 까칠해진 얼굴을 몇 번이고 버릇처럼 쓸어 봅니다. 단풍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그녀들은 목 놓아 울려고 길고 긴 초록의 터널을 무심하게 걸어왔습니다. 붉은 추억으로 남은 여자들이 어깨 들썩이며 신명나게 울음의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눈치코치 보지 않고 안으로, 안으로 고이 쟁여 온 울음의 꾸러미들을 꾸역꾸역 꺼내 놓은 뒤 명태처럼 잘 마른 몸들을 또 한기 속으로 밀어 넣을 것입니다. 한 보름 그렇게 가을을 활활 울고 나면 닦아 놓은 놋주발인 양 하늘도 황홀하게 윤이 날 것입니다. 십일월은 억새꽃의 달이기도 합니다. 맑고 푸르고 높고 밝은 하늘을 푹 적셔서 숯불 다리미가 다녀간 광목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능선 일대에 한 획, 한 획 능란하게 일필휘지하는 수만 자루의 붓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지랑이 어지러운 이른 봄부터 서리 내리는 늦가을까지 울퉁불퉁 맨발로 걸어온 한해살이를 그렇게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쓰고 나면 바람이 와서 지우고 쓰고 나면 또 바람이 와서 지우고 있습니다. 공중을 나는, 눈 밝은 새들이 따라 읽다가 때마침 마려운 똥으로 억새꽃들이 써 대는 문장에 쉼표와 마침표를 찍기도 합니다. 만 권의 책을 읽고도 시끄러운 사람의 생애를 도리질 치며 거듭 부인하는 하늘 아래 가장 두꺼운 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온으로 몸이 추워지는 십일월 나는 영혼의 방에 주황빛 불을 켜 두겠습니다.
  • 단풍과 ‘썸’ 타다

    단풍과 ‘썸’ 타다

    제주에도 단풍 명소가 있을까. 물론 있다. ‘육지부’ 단풍 명소들의 명성이 워낙 떠르르하다보니 그저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천왕사, 어리목 등 제주의 단풍 명소들은 대개 한라산 자락에 깃들어 있다. 그 가운데 이맘때 가장 빼어난 곳을 꼽으라면 단연 천아계곡이다. 현지인들 조차 잘 모를 만큼 덜 알려진 곳이다. 제주 단풍은 수수하다. 시뻘겋다기보다 노란빛이거나 노란빛과 붉은빛의 중간 언저리가 대부분이다. 제주 단풍은 천천히 들고 오래간다. 비록 한라산 영실기암의 단풍은 졌지만 산 아래 단풍은 이제부터 절정이다. 이른바 ‘중산간’이라 불리는 한라산 600~800m 고지 일대에 ‘한라산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한라산을 빙 돌아가는 원형의 숲길로, 길이는 80㎞쯤 된다. 한라산 국유림 일대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병참로, 이른바 ‘하치카키 도로’와 임도 등을 활용해 만들었다. 그중 한 구간이 ‘천아숲길’이다. 돌오름에서 천아오름을 연결하는 10.9㎞짜리 코스다. 천아계곡은 이 ‘천아숲길’의 초입에 있다. ●물 대신 돌이 흐르는 ‘천아계곡’ 단풍 일품 ‘천아’의 옛 이름은 참나무를 뜻하는 ‘진목’이다. 참나무는 제주 사투리로 ‘처낭’ ‘처남’ 등으로 불리는데 천아란 이름은 바로 이 사투리가 변해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숲은 이름에 걸맞게 참나무가 주를 이룬다. 여기에 단풍나무 등의 낙엽활엽수들이 어우러진 모양새다. 천아계곡이라고는 하지만 물은 흐르지 않는다. 제주 특유의 ‘무수내’다. 계곡수가 흘러야 할 자리엔 무수히 많은 돌이 흐른다. ‘돌의 강’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다. 단풍숲은 무수내 너머에 펼쳐져 있다. 울긋불긋한 단풍이 그야말로 절정이다. 흰빛의 돌과 어우러지니 그 자태가 더욱 도드라진다. 내장산으로 대표되는 ‘육지부’의 단풍이 붉고 현란하다면 노란빛이 강한 제주 단풍은 시골 처녀처럼 수수하다. 천아계곡은 현지인들도 잘 모를 만큼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찾아가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내비게이션에서도 검색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주변까지 찾아가겠다고 내비게이션에 천아오름을 입력하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우선 천아수원지를 찾는 게 관건이다. 1100도로를 따라 어승생 삼거리까지 간 뒤 우회전해 중문 어리목 방향으로 좀 더 올라간다. 일방통행길이 끝날 무렵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이곳이 천아수원지 입구로, 740번 버스가 서는 곳이다. 이 버스정류장 오른쪽으로 난 작은 길이 들머리다. 차 한 대 지나갈 정도의 도로를 따라 2.2㎞ 정도 들어간다. ‘대체 얼마나 더 들어가야 되나’ 생각이 들 정도로 가다 보면 오래된 철문이 나오고 길이 끝난다. 철문 오른쪽 숲길을 따라 100m쯤 더 내려가면 너른 주차장이 나온다. 여기가 천아계곡이다. 계곡에서 천아오름까지는 10.9㎞다. 원점 회귀하려면 최소 6~7시간 이상 잡아야 하는 긴 코스다. 계곡 입구 안내판에도 오후 2시 이후 입산은 금지한다고 적혀 있다. 트레킹이 아닌 단풍 감상이 목적이라면 이 일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돌의 강’을 따라 오르내리며 제주 특유의 가을 풍경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천왕사 풍경에 흠뻑… 석굴암도 있어요 천왕사 주변 단풍도 볼 만하다. 천아계곡에서 제주시 방향으로 가다 충혼탑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면 된다. 삼나무가 짙은 숲그늘을 이룬 길을 따라 1㎞ 남짓 올라가면 천왕사다. 이 일대는 대부분 노란 단풍들이다. 삼나무 너머, 계곡 너머로 노란 물결이 일렁이는 듯하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천왕사 대웅전 일대다. 수백년 묵은 고목들이 세월의 두께만큼이나 깊은 가을 풍경을 펼쳐내고 있다. 이 숲에 ‘별책부록’ 같은 곳이 있다. 석굴암이다. 경주 석굴암과 견주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동명의 암자인데, 적요한 산길에서 만나는 가을 풍경만큼은 제법 운치 있다. 충혼탑 주차장에서 조붓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석굴암이다. 암자까지 왕복 세 시간 정도 소요된다. 기왕 중산간을 찾았다면 어리목계곡까지 둘러보는 게 순리다. 천아계곡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다. 어리목 광장과 계곡 주변의 굵은 나무들이 단풍 옷으로 갈아입었다. ●‘환상 숲’ 곶자왈… 숲 해설가와 함께 산책을 곶자왈에서도 수수한 가을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곶자왈은 ‘화산 활동으로 분출된 용암류(熔岩流)가 분포한 지대에 형성된 숲’이다. 쉽게 말해 용암이 굳은 ‘빌레’ 위에 형성된 숲이다. 봄에야 낙엽이 진다고 할 정도로 계절의 순환이 더디게 느껴지는 곳이지만 숲에 들면 붉은 단풍과 늘 푸른 상록활엽수들이 어우러진 이국적인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환상숲 곶자왈에선 숲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며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유료로 운영되는 곳으로 대략 1시간 정도면 둘러볼 수 있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있다. ‘꿀팁’ 하나. 주변 눈치 안 보고 조용하게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켄싱턴 제주 호텔이다. ‘뮤지엄 호텔’을 지향하는 만큼 다양한 종류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게다가 무료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느긋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유난히 긴 진입로를 지나 호텔에 들면 사진작가 배병우의 미디어아트 ‘소나무’가 객을 맞는다. 중앙 로비에 들면 입이 떡 벌어진다. 중국 도예가 주러겅(朱耕)의 도자 벽화 ‘생명’이 벽면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다. 높이가 28m에 달하는 초대형 도예 작품이다. 예술적 아름다움은 차치하고라도 그 방대한 규모가 놀랍다. 한 층 위엔 정열적인 붉은 도자벽이 전시돼 있다. 같은 작가의 작품 ‘하늘과 물의 이미지’로 제주의 희망을 표현했다. 국내 대표적 달항아리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박부원의 도자기, 제주의 산천을 담은 김병국의 사진 작품, 중국 유명 작가 자하오이와 티에양의 그림도 전시돼 있다. 이처럼 호텔 로비와 복도, 갤러리마다 유명 작가들의 그림과 미디어아트 작품이 전시돼 있는데, 그 수가 200여 점에 이른다. 갤러리 투어(064-735-8971)도 진행한다. 시간 맞춰 가면 전문 큐레이터가 동행해 작품을 설명해 준다. 글 사진 제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서울 핫 플레이스] 가을을 머금은 호수, 도시가 품은 여백

    [서울 핫 플레이스] 가을을 머금은 호수, 도시가 품은 여백

    2015년 가을의 끝자락이다. 서울은 이번 주말에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 ‘아~ 벌써 가을이 지나갔나. 아직 단풍 구경도 못했는데…’라고 자조 섞인 혼잣말을 내뱉는 청춘이나 ‘회사 일에 치여 눈 떠보니 가을이 끝났구나’라는 중년에게 서울 잠실 석촌호수를 권한다. 차량으로 지나가다 본 석촌호수와 오색 물결의 나무 사이로 뒹구는 낙엽을 밟으며 걸어 본 석촌호수는 같지만 전혀 다른 곳이었다. 주변에 브런치를 즐길 수 있는 카페와 방이먹자골목의 맛집에서 느끼는 식도락의 즐거움에 제2롯데월드 쇼핑몰에서 저렴하면서 멋스러운 스카프 하나 걸치고 간다면 올가을의 호사를 다 누린 것이다. 이번 주말 피곤하다고 ‘방콕’(방에 콕)하지 말고 도심에서 마지막 가을 나들이를 떠나 보자. [어디까지 가봤니] 가을이 아름다운 서울의 인공호수인 석촌호수. 지금 가을의 향기가 샤넬 NO5 향수보다 그윽하다. 호수 주변 둘레길은 평일임에도 가을을 즐기러 온 사람들도 북적인다. 제2롯데월드가 일부 개장하면서 중국 관광객 등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명소로 떠올랐다. 중국 관광객 뤄샤오이(24·베이징)는 “석촌호수의 가을 풍경은 정말 예쁘다”면서 “쇼핑과 먹거리, 아름다운 호수가 어우러진 잠실 주변이 명동이나 압구정보다 훨씬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한강 정비때 생긴 둘레 2.5㎞ 인공호수 최근 사회적 이슈로 언론에 많이 오르내리면서 ‘이름’은 친숙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석촌호수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석촌호수의 면적은 21만 7850㎡이며 둘레 길이는 2.5㎞이다. 지금은 아파트로 가득 채워졌지만 석촌호수 북쪽 잠실벌에는 원래 나루터가 있었다. 당시 서울과 경상도, 전라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광진교 밑에서부터 잠실야구장까지 지금 석촌호수를 지나는 송파강과 신천강을 이루는 샛강도 있었다. 1969년 한강 본류 정비에 착수하면서 샛강을 메운 이후 일부 남겨 놓았다. 바로 그곳이 석촌호수로 변신한 것이다. 당시 메워서 만든 땅이 현재의 잠실동과 신천동이다. 1981년 호수 주변에 녹지와 산책로, 쉼터 등이 들어서면서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동안 수질 악화와 악취로 외면받기도 했으나 2001년부터 송파구가 석촌호수를 명소화 사업 대상지로 선정, 수질 개선과 편의시설 확충 등을 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송파대로 기점으로 동호와 서호로 갈려 석촌호수는 송파대로가 만들어지면서 동호와 서호로 나눴다. 현재 동호는 송파관광정보센터 등 시민 휴식 공간으로 꾸며졌다. 서호는 ‘끼~악~’ 하는 비명이 나오는 자이로드롭으로 대표되는 롯데월드 매직아일랜드가 차지하고 있다. [어디까지 맛 봤니] ●야외서 즐기는 브런치의 멋 ‘카페 거리’ 석촌호수의 가을은 멋진 풍경뿐 아니라 맛난 음식도 많다. 가을에 어울리는 브런치와 진한 커피 향이 좋은 카페들이 즐비한 카페 거리로 가 보자. 석촌호수를 중심으로 제2롯데월드와 반대쪽에는 유럽처럼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20여곳의 카페가 줄지어 있다. 일명 카페 거리다. 2009년 디자인서울거리로 지정되면서 옥외 영업이 허용됐다. 그래서 유럽 도시처럼 야외 테라스를 갖춘 카페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카페 코마’, ‘코니퀸즈’, ‘엘루체’, ‘릴리움커피’, ‘엘루체’ 등 저마다 독특한 인테리어와 맛있는 커피 등으로 낭만 고객을 유혹한다. 브런치 카페로 유명한 ‘호수베이커리 카페’는 바로 석촌호수 가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천연 발효 빵과 풍성한 샐러드가 나오는 호수샐러드(1만 4000원)가 유명하다. 또 ‘드라페’는 1만 2000원에서 2만 5000원 사이에서 브런치나 스파게티,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야외테라스도 좋고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동호 쪽 송파관광정보센터 1층에 있는 ‘J카페앤 레스토랑’도 석촌호수의 가을을 바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카페 쪽에선 커피와 간단한 음료 등을 마시거나 테이크아웃할 수 있다. 레스토랑에서는 피자와 스파게티 등 식사를 할 수 있다. 가격은 1만 90000원에서 2만 50000원 선이다. 점심보다는 석촌호수의 가을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저녁을 추천한다. 피규어 카페로 유명한 ‘고고스’도 가볼 만하다. 아이언맨과 배트맨, 헐크 등 대형 피규어뿐 아니라 아기자기한 피규어 등이 가득해 아이들이 특히 좋아한다. 커피와 간단한 핫도그(7000원대)를 즐길 수 있다. ●200여개 음식점 밀집한 ‘방이먹자골목’ 방이먹자골목도 들러볼 만하다. 450m 거리 양편과 사이 골목 등에 음식점 200여개가 밀집해 있다. 일식부터 ‘신선설농탕’ 등 유명 식당 체인과 크고 작은 술집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쌀쌀해진 가을밤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술 한잔하기 ‘딱’이다. 크고 작은 식당이 많지만 같은 자리에서 19년째 순댓국을 파는 ‘한양 순대국집’은 테이블 6개의 작은 식당이지만 국물 맛이 끝내 준다. 큼지막하게 자른 머리 고기 등도 푸짐하다. 순댓국 7000원. 먹자골목 뒤편에 있는 ‘송파 생태전문’의 시원한 국물도 빼놓을 수 없다. 한소끔 끓이면 주인장이 기술 좋게 뼈를 발라내 준다. 생태, 대구탕 각각 1만 2000원. 동태탕 7000원이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최진철 U-17 대표팀 감독 “리더십? 오글오글 애정 표현도 하면서 저부터 달라졌죠”

    최진철 U-17 대표팀 감독 “리더십? 오글오글 애정 표현도 하면서 저부터 달라졌죠”

    “지도자가 되니 생각하고 준비할 게 너무 많습니다. 스트레스를 딱히 풀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담배를) 하루 한 갑을 태웁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 처음으로 무실점 16강 진출을 일군 최진철(44) 17세 이하(U-17) 대표팀 감독을 지난 5일 경기 파주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만났다. 단풍이 곱게 물든 나무 그늘에서 밝게 웃어 보이는 그의 눈망울이 사슴의 그것을 닮았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고 생각할 찰나, 그의 미소에 쓸쓸함이랄까 외로움 같은 느낌이 번졌다. 9일 아침 7시 나이지리아-말리의 결승만 남은 2015 칠레 U-17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경우의 수 없이, 그것도 두 경기 만에 16강행을 확정하고 끝내 조별리그 무실점, 조 1위로 16강에 오른 그와 대표팀이 귀국하자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 이날 낮부터 점심 짬만 빼고 1시간씩 매체별 인터뷰가 이어지던 참이었다. 그는 힘들다며 담배 한 개비만 피우고 인터뷰를 진행하면 안 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최 감독은 “지도자를 하면 선수로 뛰던 때보다 시간이 많이 날 것 같다고 아내에게 말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또 애써 웃어 보였다. 지난 9월 수원 콘티넨털컵에서 부진했던 대표팀을 이끌고 출국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귀국과 그 뒤 풍경에 얼떨떨해하면서도 스스로를 달뜨지 않게 다독이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수원에서 우리 팀의 성적이 좋지 않았으니 당연히 아들딸의 표정도 안 좋았다. 그런데 귀국한 날 아파트 마당에 들어섰더니 아이들이 내려와 짐을 들어주겠다며 대기하고 있어서 내심 뿌듯했다”고 돌아봤다. 그가 이끄는 어린 태극전사들은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사이 브라질과 기니를 상대로 전혀 꿀리지 않는 경기력을 선보이며 거푸 승리했다. 변화의 원동력은 그 또래 중에서도 가장 톡톡 튄다는 이승우(바르셀로나 B)를 숨은 조연으로 내려앉히고 하나의 팀으로 묶어 낸 최 감독의 지도력이었다. 그러나 그는 특별할 게 없다고 했다. 2년여 전 처음 선수들을 만나 늘 한결같은 마음가짐으로 잔정(情)을 쏟았다고 했다. “아이들이 이해할 때까지 끊임없이 얘기하고 때로는 화도 내고 욕도 했다. 그러면서도 제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애정 표현이나 스킨십도 해 가면서 저 자신부터 변화시켜 나갔다”고 그 과정을 돌아봤다. 이어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게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나이대, 질풍노도의 아이들 아니겠는가. “카톡 채팅방을 만들어 아이들과 문자를 주고받고, 사랑한다고 하트도 보내고 그랬어요. 이제 감독 일도 그만뒀으니 이런 문자도 그만 보내려고 해요.” 칠레 현지에서 대표팀의 잔일을 챙겼던 이재철 대한축구협회 대리는 최 감독에 대해 “과묵하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목표를 향해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라고 정리했다. 그러면서도 최 감독이 코칭스태프는 물론 트레이너나 의무 담당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반영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했다고 전했다. 장외룡 축구협회 기술분과 부위원장의 조언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그 과정에 실수도 있었다. 벨기에전 전력 분석이었다. 조별리그 세 경기의 동영상을 구했는데 1, 2차전은 그라운드 전체를 살펴볼 수 있었지만 3차전은 그렇지 못했다. 공을 갖고 있는 선수 위주로 찍힌 중계 동영상을 보고 전체를 파악하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최 감독은 “다른 누구의 탓을 할 것 없이 내가 가장 부족했다. 선수들이 조별리그를 마치고 벨기에전을 준비할 때까지 시간이 넉넉해 분위기를 다잡았어야 했는데 관광을 하는 등 풀어져 버렸다. 내가 그때 왜 조금 더 다잡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다. 나 스스로 상황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기자가 위로한답시고 벨기에전 후반은 오세훈을 공격으로 끌어올리는 등 최 감독의 의중대로 경기가 풀렸다고 본다고 하자 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승부차기까지 안 가려고 수비를 올렸다가 선제골을 내주고 추가골을 먹은 것도 오세훈이 적절한 수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번 대회에서 일을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언제 들었느냐고 묻자 “미국에서의 두 차례 평가전에서도 아이들의 경기력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체력 싸움에 자신 있었고 칠레에 가서 한두 경기만 무실점으로 버텨 내면 기회가 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이들밖에 믿을 데가 없었다. 그래서 무실점을 누누이 강조했다”고 털어놓았다. 스스로 어떤 점을 가장 아쉽게 생각할까. “아이들에게 진심 어린 격려를 하는 데 조금 인색했지 않았나 생각한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한다. 그래서 욕을 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 그렇게 했다. 아이들이 실실 웃기에 이 방법이 통하나 싶어 계속했더니 어느 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정색을 하며 얘기하더라. 그래서 고쳤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귀국한 뒤 대표팀을 해산하면서 그는 ‘너희들의 값진 경험을 그대로 흘려보내선 안 된다. 그걸 체득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등에 나가면 요리사를 데려가는 것과 달리 U-17 대표팀은 김치도 챙겨 가지 못했다. 칠레에서도 겨우 들고 간 포장 김으로 파스타를 싸서 먹고 이재철 대리가 교민에게 얻은 김치로 찌개를 끓여 집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정도였다. 최 감독은 “그런 것보다 연령별 대표팀이 더 많은 국제대회에 나가 빠르게 변하는 각국의 발전 속도를 체득할 수 있도록 협회가 지원하는 게 더 중요하고 간절하다”고 강조했다. 주변에서는 최 감독을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렇다 할 취미나 여가 보내는 방법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당분간 축구협회 전임 지도자로서 정몽규 협회장의 역점 프로젝트인 ‘골든에이지’ 활동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했다. 골든에이지는 축구 기술 습득이 가장 잘되는 11~15세 선수들을 발굴해 이를 연령별 대표팀으로 수혈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대표팀의 수문장 안준수가 발탁된 것도 이런 시스템 덕에 가능했다. 최 감독은 “전국을 크게 다섯 권역으로 나눈 뒤 이를 다시 몇 개 지역으로 쪼개 경기를 지켜보며 재능 있는 선수들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일에 매진하면서 세미나 같은 데 다니며 열심히 축구를 공부할 생각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프로축구팀도 지휘해 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최진철 감독은 ▲1971년 3월 26일 전남 진도 ▲187㎝ 77㎏ ▲오현고-숭실대 대학원 ▲1996~2008년 프로축구 전북 현대 ▲1997년 브라질과의 친선경기로 A매치 데뷔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 ▲2006 독일월드컵 붕대 투혼 ▲2008년 강원 FC 수비코치 ▲2012년~ 대한축구협회 전임지도자 ▲2015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 17세 이하 청소년대표팀 감독
  • 최진철 “지도자 되니 정말 힘들어 담배 한 갑”

    최진철 “지도자 되니 정말 힘들어 담배 한 갑”

     “지도자가 되니 생각하고 준비할 게 너무 많더라. 스트레스를 딱히 풀 길이 없어 어쩔 수 없이 하루 한 갑을 태웁니다.”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에 참가했던 한국의 모든 연령별 대표팀을 통틀어 최고의 성적을 내고 돌아온 최진철(44) 17세 이하(U-17) 대표팀 감독을 지난 5일 경기 파주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만났다. 단풍이 곱게 물든 나무 그늘에서 밝게 웃어 보이는 그의 눈망울이 사슴의 그것을 닮았는지 예전에 미처 몰랐다고 생각할 찰나, 그의 미소에 쓸쓸함이랄까 외로움 같은 느낌이 번졌다.  9일 아침 7시 나이지리아-말리의 결승만 남은 2015 칠레 U-17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경우의 수 없이, 그것도 두 경기 만에 16강행을 확정하고 끝내 조별리그 무실점, 조 1위로 오른 그와 대표팀이 귀국하자 인터뷰 요청이 이어져 이날 낮부터 점심 짬만 빼고 1시간씩 매체별 인터뷰가 이어지던 참이었다. 그는 힘들다며 한 개피만 피우고 인터뷰를 진행하면 안되겠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최진철 감독은 “지도자를 하면 선수로 뛰던 때보다 시간이 많이 날 것 같다고 아내에게 말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또 애써 웃어 보였다.  지난 9월 수원 콘티넨탈컵에서 부진했던 대표팀을 이끌고 출국했을 때와 완전 달라진 귀국과 그 뒤 풍경에 얼떨떨해 하면서도 스스로를 달뜨지 않게 다독이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수원에서 우리 팀의 성적이 좋지 않았으니 당연히 아들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귀국한 날 아파트 마당에 들어섰더니 아이들이 내려와 짐을 들어주겠다고 대기하고 있어서 내심 뿌듯했다”고 돌아봤다.  왜 안 그렇겠는가? 어린 태극전사들은 불과 한달도 안되는 사이 브라질과 기니를 상대로 전혀 꿇리지 않는 경기력을 선보이며 거푸 이겨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가?  변화의 원동력은 그 또래 중에서도 가장 톡톡 튄다는 이승우(바르셀로나 B)를 숨은 조연으로 내려앉히고 하나의 팀으로 묶어낸 최 감독의 지도력이었다.  그러나 그는 특별할 게 없다고 했다. 2년여 전 처음 선수들을 만나 늘 한결같은 마음가짐으로 잔 정(情)을 쏟았다고 했다. “아이들이 이해할 때까지 끊임없이 얘기하고 때로는 화도 내고 욕도 했어요. 그러면서도 제 성격에 어울리지 않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애정 표현이나 스킨십도 해가면서 저 자신부터 변화시켜나갔다”고 그 과정을 돌아봤다. 이어 “스스로 생각해도 내가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게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나이대, 질풍노도의 아이들 아니겠는가?  “카톡 채팅방을 만들어 아이들과 문자도 주고받고, 사랑한다고 하트도 보내고 그랬어요. 이제 감독 일도 그만 뒀으니 그만 두려고 한다.”  칠레 현지에서 대표팀의 잔일을 챙겼던 이재철 대한축구협회 대리는 최 감독이 “과묵하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생각하는 목표를 향해 고집스럽게 밀고 나아가는 스타일”이라고 정리했다. 그러면서도 최 감독이 코칭 스태프는 물론 트레이너나 의무 담당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반영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했다고 전했다. 장외룡 축구협회 기술분과 부위원장의 조언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그 과정에 실수도 있었다. 벨기에전 전력 분석이었다. 조별리그 세 경기의 동영상을 구했는데 1, 2차전은 그라운드 전체를 살펴볼 수 있었지만 3차전은 그렇지 못했다. 공을 갖고 있는 선수 위주로 찍힌 중계 동영상을 보고 전체를 파악하는 우를 범했던 것이다.  최 감독은 “다른 누구의 탓을 할 것 없이 내가 가장 부족했다. 선수들이 조별리그를 마치고 벨기에전을 준비할 때까지 시간이 넉넉해 분위기를 다잡았어야 했는데 관광을 하는 등 풀어져 버렸다. 내가 그때 왜 조금 더 다잡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다. 나 스스로 상황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기자가 위로한답시고 벨기에전 후반은 오세훈을 공격으로 끌어올리는 등 최 감독의 의중대로 경기가 풀렸다고 본다고 하자 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승부차기까지 안 가려고 수비를 올렸다가 선제골을 내주고 추가골을 먹은 것도 오세훈이 적절한 수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번 대회에서 일을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언제 들었느냐고 묻자 “미국에서의 두 차례 평가전에서도 아이들의 경기력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체력 싸움에 자신 있었고 칠레 가서 한두 경기만 무실점으로 버텨내면 기회가 온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이들 밖에 믿을 데가 없었다. 그래서 무실점을 누누이 강조했다”고 털어놓았다.  스스로 어떤 점을 가장 아쉽게 생각할까? “아이들에게 진심어린 격려를 하는 데 조금 인색했지 않았나 생각한다.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한다. 그래서 욕을 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 그렇게 했다. 아이들이 실실 웃어 이 방법이 통하나 싶어 계속했더니 아이들이 어느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정색을 하며 얘기하더라. 그래서 고쳤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귀국한 뒤 대표팀을 해산하면서 그는 ‘너희들의 값진 경험을 그대로 흘려보내선 안된다. 그걸 체득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했다.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등에 나가면 요리사를 데려가는 것과 달리 U-17 대표팀은 김치도 챙겨 들고 가지 못했다. 칠레에서도 겨우 들고 간 포장 김으로 파스타를 싸서 먹고 이재철 대리가 교민에게 얻은 김치로 찌개를 끓여 집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정도였다.  최 감독은 “그런 것보다 연령별 대표팀이 더 많은 국제대회에 나가 빠르게 변하는 각국의 발전 속도를 체득할 수 있도록 협회가 지원하는 게 더 중요하고 간절하다”고 강조했다.  주변에서는 최 감독을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렇다 할 취미나 여가 보내는 방법도 잘 모르기 때문.  그는 당분간 축구협회 전임지도자로서 정몽규 협회장의 역점 프로젝트인 골든에이지 활동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했다. 골든에이지는 축구기술 습득이 가장 잘 되는 11~15세 선수들을 발굴해 이를 연령별 대표팀으로 수혈하는 역할을 한다. 이번 대표팀의 수문장 안준수가 발탁된 것도 이런 시스템 덕에 가능했다. 최 감독은 “전국을 크게 다섯 권역으로 나눈 뒤 이를 다시 몇개 지역으로 쪼개 경기를 지켜보며 재능있는 선수들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일에 매진하면서 세미나 같은 데 다니며 열심히 축구를 공부할 생각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프로축구 팀을 지휘해보고도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최진철 감독의 얘기 가운데 지면에 실리지 못한 네 가지를 정리해본다.    ▲히딩크 감독과의 인연  전북 구단에서 뛸 때 원정 경기를 마치고 전주 숙소로 복귀하던 중 대전 유성을 지날 때쯤 조윤환 감독이 누군가를 통해 거스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연락을 받고는 “너 내려” 그랬다. 국가대표팀이 유성에 있으니 그리로 가라고 했다. 고속도로에서 내리니 황당했다. 당시 서른하나로 적지 않은 나이였고 1997년 브라질과의 친선경기로 A매치를 신고했지만 주전과는 거리가 멀었던 행보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최 감독은 “한 번 리저브 설움을 겪어봐서 쉽지 않았지만 마음을 굳게 먹었는데 그게 축구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돌아봤다.    ▲붕대 투혼의 뒤안  2006 독일월드컵 때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대표팀에 돌아온 최진철은 후배들 몰래 링거를 맞으며 백의종군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최 감독은 “그 때 나만 링거를 맞은 건 아니었다”며 불편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일부에서는 그가 2002 한·일월드컵 때 상대 선수들에게 팔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등 거친 축구를 했다고 꼬집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 어린 선수들과 진정 마음을 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려고 심리학 강의를 들을 정도로 매사에 늘 진지하고 꼼꼼한 그다.    ▲인터넷 댓글은 사절  최 감독은 인터뷰 초반 수원 콘티넨탈컵 이후 인터넷 댓글을 잘 보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다만 이런 얘기는 했다. “우리나라에는 전술·전략가들이 너무 많다. 그들이 말하는 전술, 전략 같은 것들이 정말 그렇게 의미있는가 생각이 든다. 그 분들을 한 자리에 모아 한번 함께 얘기해봤으면, 그런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최 감독의 가족사  최 감독의 이날 코디는 부인이 했다고 했다. 이제 U-17 대표팀과 헤어졌으니 가족들부터 자신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부인은 늘상 그가 집에 들어오면 “언제 다시 나가느냐’고 묻기부터 한단다. 애정 표시를 한다며 아들딸에게 뽀뽀해달라고 하면 딸은 그런대로 받아주는데 아들은 자신을 닮아서인지 영 아니라며 웃는 바보아빠였다.  
  • 양백지간 숨 넘어 갈 비경… 경북 영주 고치령·마구령

    양백지간 숨 넘어 갈 비경… 경북 영주 고치령·마구령

    흔히 ‘양백지간’(兩白之間)이라 부른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를 일컫는 표현이다. 큰 산 두 개가 포개진 곳이니 당연히 고개도 많을 수밖에. 그 가운데 경북 영주에 멋진 고개가 숨어 있다. 고치령(古峙嶺·770m)과 마구령(馬驅嶺·820m)이다. 죽령옛길 등 유명한 길을 두고 굳이 생경한 산골짝을 찾으라는 이유? 첫째, 덜 알려져 한적하다. 둘째, 정상까지 찻길이 나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셋째, 고갯길 따라 꼬리치는 단풍이 빼어나다. ■ ‘고개’ 소백과 태백 사이 그 어디쯤 붉은 빛 얼굴 빼꼼히 내밀어 영주에서 충북 단양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은 크게 세 곳이다. 첫 번째는 저 유명한 죽령이다. 영남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으로 향하던 관문이다. 죽령에서 동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면 고치령이다. 여기가 두 번째로, 소백과 태백을 나누는 고갯마루다. 세 번째는 가장 동쪽의 마구령이다. 주로 단양, 강원 영월 쪽의 민초들이 영주 부석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다. 예부터 길이 험해 주로 등산객들만 알음알음 찾던 곳인데, 길이 좋아진 지금도 찾는 이 드문 건 마찬가지다. 경북의 오지로 꼽히는 영주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지역이니 별로 볼 게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한데 오해다. 길은 조붓하고, 숲을 휘감는 공기는 달다. 이즈음 붉게 물든 고갯길은 ‘자체발광’의 경승지다. 그뿐이랴. 고개를 내려서면 부석사, 소수서원 등 영주의 대표 볼거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 굽이돌아 가는 길 그 어디쯤 산신령 된 금성대군 계실까 고치령은 단산면 좌석리가 들머리다. 부석사 못미쳐 소백산 연화동 계곡 바로 옆으로 옛길이 놓여 있다. 고개를 넘으면 마락리, 조금 더 가면 단양 영춘면이다. 길 자체로만 보자면 마구령 쪽이 더 현란하다. 굽돌아가는 길의 모양새도 그렇고, 단풍나무 개체수도 많다. 한데 고개를 넘는 운치는 고치령이 한결 낫다. 좌석리 지나 정상까지 5㎞ 정도 숲과 계곡이 펼쳐져 있다. 길은 유순하고 차량도 뜸해 적요하기 그지없다. 11월 중순께면 누렇게 물든 낙엽송이 그림처럼 아름답다고 한다. 아직 일러 초록빛이 대부분이지만, 그마저도 아름답다. 고치령 정상에는 산령각이 세워져 있다. 태백산 산신령이 됐다는 단종과 소백산 산신령이 된 금성대군을 함께 모신 곳이다. 이 고개 따라 순흥에 유배됐던 금성대군의 단종복위 운동도 숨 가쁘게 진행됐을 터다. 고치령 너머는 마락리다. 말이 떨어질 정도로 비탈이 심하다 해서 이름지어 졌다. 이즈음 마락리는 단풍이 절정이다. 마락리를 벗어나면 단양 영춘면 의풍리다. 정감록에 십승지지(十勝之地)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곳. 강원 영월과 충북 단양, 경북 영주가 이 마을 인근에서 경계를 맞대고 있다. ■ 벼랑을 휘돌아 그 어디쯤 한 깃든 불길이 타오른다 마구령은 부석사 인근 임곡리에서 남대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장사치들이 말을 몰고 다녔던 고개라 마구령이라고 불린다. 현지 주민들은 ‘매기재’라고도 부른다. 경사가 급해 논을 매는 것처럼 오르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이름만큼 고갯길은 험하다. 길은 좁고 발밑으로 깎아지른 벼랑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한데 풍경은 참 곱다. 한 굽이 돌 때마다 단풍나무가 마중을 나오고, 두 굽이 돌 때면 울울창창한 낙엽송 숲이 배웅하자며 나선다. 남대리에 들면 주막거리를 알리는 커다란 표지석이 눈에 띈다. 마구령을 넘어다니던 선비며 장사치들이 쉬어 가던 주막들이 이 일대에 꽤 많았다는 뜻일 터다. 오래전 주막 봉놋방에 모여 앉아 술추렴을 벌였을 장돌뱅이들과 땔감이며 약초 등을 이고 진 촌무지렁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임곡리 쪽에 다 쓰러져 가는 옛집이 한 채 남아 있다. 옛 주막 건물이라고 하는데, 진위는 불분명하다. 영주까지 가서 단종 복위운동의 붉은 발자취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순흥에서 부석사 쪽으로 가다 단곡교 건너기 직전에 좌회전해 단곡2리 마을로 가다 보면 두레골 서낭당이 나온다. 이 숲에 금성대군을 모신 신당이 있다. 신당 안에 금성대군의 피가 묻은 돌이 있다고 한다. 순흥 사람들은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신당에서 수소를 잡아 제를 올린다. 금성대군의 포한이 깃들어서인지 주변보다 훨씬 붉은 단풍숲과 마주할 수 있다. 글 사진 영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54)] →가는 길: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을 나오자마자 우회전, 첫 번째 네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하면 부석사 가는 931번 지방도이다. 부석사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 단산면 옥대리 삼거리에서 좌석리 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하면 고치령 길이다. 고치령 정상을 넘어서면 비포장길이다. 다소 울퉁불퉁한데 승용차도 그리 어렵지 않게 지날 수 있다. 마구령은 고치령에 견줘 한결 낫다. 고치령에서 마락리로 내려선 뒤 단양 의풍리에서 우회전해 935번 지방도로 갈아탄 뒤 곧장 가면 된다. 순흥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부석면사무소 지나 부석4거리에서 좌회전해 올라가다, 두봉교에서 콩세계과학관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해 곧장 올라가면 마구령이다. 한데 여정의 효율성으로 따지자면 고치령, 마구령 순으로 돌아보는 게 순리다. →맛집:순흥 쪽에선 묵밥이 유명하다. 이웃한 봉화 등에서 생산된 메밀로 묵을 만들어 낸다. 도회지 묵밥처럼 미끌거리거나 입에서 겉도는 듯한 식감이 덜하다. 순흥묵집(632-2028)은 소수서원 방향 주유소 옆, 전통묵집(634-4614)은 순흥면사무소 인근에 있다. 주전부리는 기지떡이 좋겠다. 기지떡은 흔히 술떡이라고 불리는 ‘증편’의 사투리다. 술로 반죽한 멥쌀가루를 찐 뒤 대추 등 고명을 얹었다. 순흥기지떡(631-2929)이 이름났다. 순흥사거리 초입에 있다. 부석사 관광단지 내 종점식당(633-3606)은 산채비빔밥으로 이름난 집이다. →잘 곳:풍기 쪽에 깔끔한 모텔들이 많다. 풍기관광호텔(637-8800), 코리아나호텔(633-4445) 등이 깨끗하다. 여정의 피로는 소백산풍기온천(604-1700)에서 푸는 게 좋겠다.
  • 단풍이 물든 덕수궁

    단풍이 물든 덕수궁

    6일 서울 서소문별관에서 시민들이 단풍이 물든 덕수궁을 바라보고 있다.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아이~ 좋아” 우리동네] 자연 친화력 ‘쑥’

    ‘숲 체험, 멀리 가지 말고 동작구로 오세요’ 동작구에 처음으로 유아숲 체험장이 문을 열면서 지역 어린이들의 사랑방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구가 어린이들이 자연과 느낄 수 있도록 인공물을 최소화한 놀이터로 꾸몄기 때문이다. 동작구는 3일 서달산 입구에 ‘서달산 유아숲 체험장’을 새롭게 단장하고 주민들에게 개방했다고 밝혔다. 유아숲은 어린이들을 위한 생태놀이터로 동작구에서는 처음으로 생겼다. 서달산은 현충근린공원에 있는 해발 179m의 나지막한 산이다. 동작충효길 등 주변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고, 이용과 접근도 편리하다. 구 관계자는 “청솔모와 다람쥐 등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 아이들의 생태 놀이터로 적격”이라고 설명했다. 3500㎡ 규모의 유아숲은 각종 체험거리가 가득하다. 나뭇가지를 이용해 인디언집을 만들어보는 ‘나무인디언집’을 비롯해, ‘나무토막쌓기’, ‘숲속오두막’ 등 자연을 소재로 한 다양한 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나무의 나이테를 관찰하며 노는 ‘나이테 놀이터’, ‘통나무 징검다리’ 등 부모와 아이가 함께 체험하는 시설도 있다. 체험장 한편에는 쉼터가 있고 주변에는 단풍나무, 화살나무, 사철나무 등을 심었다. 이달부터 내년 2월까지 주민들에게 시설을 무료로 개방하고, 내년 3월부터는 ‘숲체험 보조교사’를 선발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유아숲 조성에는 지역 유치원 원장과 숲 해설가들이 참여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은 “앞으로 체험 프로그램도 알차게 준비해 아이들이 신나게 즐기고 또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석촌호수·위례성·올림픽공원 도심에서 만나는 가을의 절정

    석촌호수·위례성·올림픽공원 도심에서 만나는 가을의 절정

    깊어가는 가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하지만, 시간과 주머니 사정으로 망설이고 있다면 송파구에서 추천한 가을길로 떠나보자. 올림픽공원에서 석촌호수를 잇는 서울의 로맨틱 거리로 말이다. 송파구는 2일 석촌호수길과 위례성길, 올림픽공원 등 3곳을 가을거리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먼저 석촌호수는 송파나루터가 있던 자리에 한강매립사업으로 만들어진 둘레 2.5㎞의 호수공원이다.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담뿍 눈에 담을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데, 가을이면 호수 주변을 에워싼 왕벚나무들이 봄꽃보다 화려한 오색을 뿜어내 가족과 친구, 연인들이 즐겨 찾는 서울 도심의 명소 중 하나다. 또 석촌호수 동쪽 카페거리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호수경관을 즐길 수 있는 테라스형 카페가 즐비해 한적한 가을 풍경을 만끽하기엔 안성맞춤이다. 두 번째가 노란 은행길이 수북한 위례성길이다. 몽촌토성역 올림픽공원 입구에서 장미정원 쪽으로 1.4㎞ 이어진 위례성길에는 노란 양탄자가 깔렸다. 양편으로 늘어선 은행나무에 떨어진 낙엽들이다. 노란 은행나무잎을 사뿐히 밟으며 걷다 보면 200여점의 세계적인 조각 작품들과 조경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조각공원과 소마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또 소마미술관 가까이에 자리한 한성백제박물관은 해양강국이었던 백제의 의지를 담아 배모양을 하고 있다. 자연친화적인 건물 모습과 어우러지는 확 트인 야외 휴식공간이 함께 자리하는데, 500여년간 백제의 수도였던 송파 곳곳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 가을 명소는 아시안게임과(1986년) 서울올림픽(1988년)을 위해 만들어진 480만㎡(축구장의 600여배)의 드넓은 공원과 올림픽기념 조형물, 야외 조각작품들 그리고 평화의 광장은 2인용 자전거를 빌려 공원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에 그만인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다. 올림픽공원을 뒤로하고 곰말다리를 건너면 그 유명한 ‘나 홀로 나무’가 나온다. 박춘희 송파구청장은 “꼭 멀리 가지 않아도 송파구에는 가을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멋진 곳이 많다”면서 “남녀노소 모든 시민들이 편안하고 즐거운 가을 나들이를 할 수 있도록 각종 편의시설 등을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세계문화유산 등재 1년…‘남한산성’의 가을

    세계문화유산 등재 1년…‘남한산성’의 가을

    단풍이 중부 지방 일대까지 내려왔다. 먼 강원의 산을 찾기 힘들었던 사람들에겐 근교의 숲길을 찾아 움직이기 좋을 때다. 이맘때라면 경기 광주의 남한산성이 제격이다. 성곽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는 데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멀지 않다. 치열했던 역사의 흔적이 오롯하고, 단풍 빛깔도 제법 곱다. 게다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지 딱 1년째다. 이쯤 되면 찾아갈 명분도 그럴싸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한산성이 깃든 곳은 중부면이었다. 이게 남한산성면으로 바뀌었다. 지난 16일 일이다. 주민 96%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명칭을 바꿨다.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남한산성이 백숙 먹고 노는 곳쯤으로 평가절하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 같은 조치가 얼마나 실효를 얻을지 걱정이 앞선다. 남한산성 들머리가 붉다. 8㎞에 이르는 진입로의 나무들이 죄다 단풍으로 물들었다. 남한산성 주변을 흐르는 오전리 계곡, 불당골 계곡, 검북리 계곡 등을 따라 들어갈수록 가을 풍경도 깊어진다. 북한산성에 견주자면 남한산성은 서울의 남쪽을 지키는 산성이다. 통일신라 문무왕(672년) 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해 조선 인조 2년(1624)에 축성 공사를 시작해 2년 뒤 완공했다. 성벽 둘레는 11.76㎞. 성벽 외부는 급경사인 데 반해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넓은 분지 형태다. 주민들이 머물거나 전쟁 등 유사시에 농성하기 맞춤한 구조다. ●병자호란 아픔 지켜 본 나무들, 그 위로 내려앉은 단풍의 향연 남한산성에는 단풍보다 붉은 처절한 역사가 깃들었다. 1637년 1월 30일 조선 16대 임금 인조가 산성 서문(西門)을 나서 한강 동쪽 삼전도(현재 서울 송파구 삼전동 일대)로 간다. 청 태종 앞에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기 위해서다. 청나라 10만 대군의 공격을 피해 남한산성에서 농성한 지 47일 만의 일이다. 인조의 항복으로 병자호란(1636~1637)은 일단락된다. 그 치욕의 순간들이 풀 한 포기, 벽돌 하나하나에 맺혀 있다. 산성은 삼국시대 이래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침입을 막아낸 현장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의 거점이었다. 남한산성 탐방 코스는 모두 5개다. 거리도 4㎞부터 8㎞까지 다양하다. 소요 시간은 1시간 30분~3시간 20분 안팎이어서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가장 대중적인 코스는 산성로터리→전승문(북문)→우익문(서문)→수어장대→영춘정→지화문(남문) 순으로 돌아본 뒤 다시 산성로터리로 내려오는 코스다. 거리는 5㎞, 1시간 50분 정도 소요된다. 산성로터리에서 영월정으로 오른 뒤, 숭렬전→수어장대→우익문(서문)→국청사를 지나 산성로터리로 돌아오는 코스도 사람들이 많이 걷는다. 4㎞,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된다. 산성로터리를 들머리 삼을 경우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이 행궁이다. 왕의 임시거처 노릇을 했던 곳. 조선의 행궁 가운데 종묘와 사직을 둔 곳은 남한산성 행궁이 유일하다. 규모는 작아도 임금이 늘 머물던 법궁 못지않은 시설을 갖췄다는 뜻이다. 전쟁 등 유사시엔 임시수도 역할도 수행했다. 실제 병자호란(1636년) 때 인조가 남한산성 행궁에서 47일간 머물며 항전했다. 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등 여러 임금들이 여주, 이천 등의 능행길에 행궁을 들러 갔다. 행궁은 순조 때인 1805년까지 증축을 거듭했다. 이후 1907년 일본의 군대 해산령과 함께 허물어졌다가 2002년부터 10년간 복원 공사를 벌인 끝에 2012년 완공했다. 행궁 복원 도중 행궁터와 산성터 등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초대형 기와와 건물지가 확인되기도 했다. 정문인 한남루를 지나면 숱하게 많은 전각들과 만난다. 초입의 침괘정, 연못이 있는 지수당 등 볼거리가 많다. ●산성 걷기 들머리로 남문 인기… 서문 앞 언덕은 ‘서울 전망’ 최고 포인트 가장 많은 이들이 산성 걷기 들머리로 삼는 곳은 남문(南門)이자 정문인 지화문이다. 1636년 12월 14일 새벽 도성을 버린 인조의 행렬이 들어갔던 문이다. 남문을 찾는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중국 관광객들이다. 우리와 달리 전승의 기억을 갖고 와서인지 표정들이 밝다. 성벽은 능선을 타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진다. 흙길을 걷고 돌계단도 오른다. 영춘정이 첫 번째 풍경 전망대다. 팔각정이라고도 불리는데, 원래 남문 아래 있던 것을 옮겨 지은 것이다. 이어 수어장대(守禦將臺). 산성 안에 남은 건물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장수가 휘하 장졸들을 지휘하기 위해 높은 곳에 세운 건물을 장대라 부른다. 산성 안에는 총 다섯 개의 장대가 있었다. 이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게 현재의 수어장대다. 건물은 2층이다. 기단 위에 자리잡은 자태가 옹골차다. 오래전 장대 위에서 호령하던 장수의 굵은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듯하다. 수어장대 옆 보호각엔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영조가 병자호란의 시련을 잊지 말자며 지은 글이다. 수어장대에서 15분쯤 더 가면 서문(우익문)이다. 서문 앞 언덕은 남한산성 최고의 전망 포인트다. 서울 시내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청계산, 관악산, 대모산, 남산, 북악산, 북한산, 아차산, 도봉산 등 수많은 명산을 헤아리기 숨가쁘다. 야경 명소로도 꼽힌다. 평일에도 서울 야경을 보기 위해 서문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광주에서 꼭 돌아봐야 할 명소 몇 곳 더 소개하자. 경안천 생태습지공원은 1973년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일대 농지와 저지대가 습지로 변한 곳이다. 강변을 따라 2㎞에 이르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가을 향 맡으며 자박자박 걷기 좋다. 산책로 주변엔 소나무, 왕벚나무, 단풍나무, 감나무, 왕버들, 선버들 등이 우거져 있다. 연 밭 위로는 목재 데크를 조성해 뒀다. 철새 조망대도 있다. 겨울 철새들이 본격적으로 도래하기 시작하면 큰고니 등 다양한 철새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남종면, 남한산성면, 퇴촌면 등 광주시 일대는 조선시대부터 도자기 생산지로 유명했다. 조선 영조 28년 궁중 음식을 담당하던 사옹원의 분원이 광주에 설치된 이후 약 130년간 285곳의 가마터가 이 일대에서 번창했다고 한다. 옛 분원초등학교 폐교사를 리모델링해 2003년 개관한 분원백자자료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조선 도자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경기도자박물관도 조선 5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순백자, 청화백자 등 조선시대 관요에서 생산된 전통 도자기와 그 전통을 계승하는 현재 작가들의 작품 등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분원백자자료관 인근의 박물관 얼굴도 돌아볼 만하다. 연극 연출가 김정옥 대표가 40여년간 수집해 온 석인, 목각인형 등과 여러 나라의 인형 등 다양한 얼굴 조각 1000여점이 전시돼 있다. 글 사진 광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31) → 가는 길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양재 나들목으로 나가 헌인릉, 세곡동, 복정사거리 등을 차례로 지나면 남한산성 남문이다.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하겠다면 경안 나들목으로 나가 광지원을 지나면 남한산성 동문이다. 주말 고속도로 정체가 심할 경우 하남 나들목으로 나가 국도를 따라가는 방법도 있다. 지하철 5호선 마천역 1번 출구로 나가면 곧 남한산성 등산로다. 서문까지 1시간쯤 걸린다.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www.ggnhss.or.kr) 777-7500. → 맛집 남한산성 위 산성리 마을에 닭·오리 백숙거리가 조성돼 있다. 행복한 식탁(797-5299)이 많이 알려졌다. 산성에서 좀 떨어진 불당리 낙선재(746-3003)는 깔끔한 한정식이 자랑이다. 두 집 모두 맛 못지않게 업소 분위기가 그윽하다. 남종면 등 경안천 쪽엔 민물 매운탕집이 많다. 분원붕어찜(옛 강촌매운탕·767-9055, 1011) 등이 많이 알려졌다. → 잘 곳 도척면 곤지암 리조트(1661-8787)는 가족 단위로 묵기 좋다. 스키장을 비롯해 스파, 레스토랑, 전시장 등 다양한 시설이 들어찼다. 요즘엔 화담숲을 돌아볼 만하다. 모노레일을 타고 오를 수 있다. 남한산성과 팔당호 주변 등에 펜션, 모텔 등도 많다.
  • 가을보다 깊다, 장인의 시간

    가을보다 깊다, 장인의 시간

    나라 안에는 독특한 기술을 가진 장인들이 많다. 한과에 예술혼을 불어넣고, 소리를 통해 절제의 미학을 선사하는 등 자신만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이다. 가을을 맞아 이들을 찾아가는 여정을 계획하는 건 어떨까. 한국관광공사가 ‘전통문화탐방-장인을 찾아서’를 테마로 11월에 가볼 만한 곳을 추천했다. 맛과 멋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들이다. ●절제와 느림의 미학-여창가곡 조순자 명인 가곡(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은 45자 내외 시조를 국악 관현악 반주에 맞춰 10여분 동안 노래하는 성악곡이다. 조선 시대 풍류방에서 선비나 중인 가객이 불렀다. 시조, 가사와 함께 정가(正歌)로 분류되며, 셋 중 가장 예술성이 뛰어난 장르로 꼽힌다. 남창과 여창으로 나뉘는데,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조순자 명인은 2006년 경남 창원에 가곡전수관을 설립, 평생을 가곡 전승과 보급에 힘써왔다.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저녁에 가곡, 기악 독주와 합주, 창작극 등으로 구성된 국악 공연도 마련한다. 상상길, 창동예술촌 등과 연계하면 창원 여정이 한결 더 풍성해진다. 창동복희집과 고려당은 지역민의 추억과 향수를 달래주는 맛집이다. 옛 마산의 술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오동동 통술골목과 마산어시장이 창동과 가깝다. 여행의 피로는 마금산원탕에서 풀면 좋다. 가곡전수관 (055)221-0109. ●4대째 방짜수저의 가업을 잇다-김우찬 전수조교 김우찬 전수조교는 방짜수저 제작의 외길 인생을 걷는 젊은 장인이다. 16세 때 아버지에게 방짜수저 만드는 일을 배운 뒤 지금까지 가업을 잇고 있다. 쇳덩이를 두드리고 펴서 만드는 방짜수저는 모든 과정이 수작업이다. 40여 가지 도구로 사흘 동안 두드리고 깎아야 수저 한 벌이 탄생한다. 매화와 연꽃, 대나무를 새긴 방짜수저를 보면 그 아름다움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작업실은 강원 강릉 입암동에 있다. 율곡 이이가 태어난 오죽헌, 한옥의 멋을 고스란히 간직한 선교장은 지금 가을 운치로 가득하다. 안목해변 커피거리도 가을 강릉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 아이와 함께라면 다양한 전통 공예 체험을 할 수 있는 강릉예술창작인촌도 들러 봄직하다. 강릉시 관광과 (033)640-5420. ●한과에 예술혼을 불어넣다-한과명장 김규흔 한과는 우리의 전통 과자다. 유과, 약과, 정과, 다식 등 종류가 많고 맛도 다양하다. 김규흔 명장은 한과 만들기에 평생을 바친 국가 지정 전통 한과 제조 기능 명인이다. 대한민국 한과명장 1호(약과 분야)다. 유년 시절 먹었던 한과의 제작 방식 그대로 정직하게 한과를 만들고 있다. 천편일률적이던 한과 모양에도 변화를 줬다. 연꽃 모양, 마름모꼴 등 새로운 약과를 개발했다. 한과의 세계화를 위해 경기 포천에 한과문화박물관도 개원했다. 여기서 한과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주변 산정호수는 북한 김일성이 별장을 마련해 경치를 즐긴 곳인 만큼 가을 풍경이 뛰어나다. 둘레길을 걸으며 붉은 단풍이 가득 담긴 호수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허브아일랜드는 달콤한 허브 향이 가득한 테마파크다. 국립수목원 인근의 더파크아프리카뮤지엄에서는 아프리카인의 일생과 생활 문화를 관람하고, 하루 두 번 선보이는 아프리카 전통 민속춤도 관람할 수 있다. 한가원 (031)533-8121. ●4대 160년을 이어온 옹기 장인-황충길 명장 미세한 공기구멍이 있는 옹기. 장을 발효시키고, 김치 맛을 오래 유지시키며, 곡식을 상하지 않게 저장하고, 음식이 잘 식지 않는 ‘살아 있는’ 그릇이다. 충남 예산의 황충길 명장은 3대째 전통 기법 그대로 옹기를 빚고 있다. 아들이 20년 가까이 함께하고 있으니 4대, 160년에 이르는 장수 가업이다. 1990년대 들어 옹기 수요가 줄면서 문 닫는 옹기점이 많았으나, 냉장고용 김칫독을 발명해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천연 재료를 숙성시킨 잿물로 아름답게 구운 명장의 옹기가 가을 햇살에 따사로이 빛난다. 천연기념물 제199호 황새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예산황새공원, 서예의 대가 추사 김정희가 태어나고 자란 김정희 고택, 천년 고찰의 멋과 위엄을 갖춘 수덕사, 한옥에서 운치 있는 하룻밤을 보내는 교촌한옥문화체험관 등 예산은 역사와 전통문화의 멋을 만끽하는 여행지다. 전통예산옹기 (041)332-9888. ●종주국을 뛰어넘은 옥공예 대가-장주원 옥장 장주원(중요무형문화재 제100호) 옥장은 옥공예 종주국으로 꼽히는 중국에서도 인정한 대가다. 전남 목포의 옥공예전시관에는 그가 오랜 세월 정성을 다해 만든 수많은 작품이 전시돼 있다. 수십 년 동안 옥과 함께해 온 장인의 고집스러운 인생이 엿보인다. 전시관 위쪽 판매관에서 다양한 옥 장신구도 판매한다. 인근의 목포문학관은 목포를 대표하는 문학인 4인(박화성, 김우진, 김현, 차범석)을 집중 조명한 4인 복합 문학관이다. 목포 갓바위 문화타운 끝자락에는 ‘목포의 아이콘’ 갓바위가 있다. 가족 나들이 코스라면 입암산 둘레길을 추천한다. 제철 별미로는 목포 5미(味) 가운데 하나인 세발낙지가 꼽힌다. 연포탕으로 즐길 수 있다. 목포의 독특한 맛을 원한다면 홍어삼합이 제격이다. 밤바다를 수놓는 목포 춤추는 바다분수도 놓치지 말자. 목포시 관광과 (061)270-8432. ●각궁을 넘어 활의 문화를 짓다-궁장 권무석 권무석(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3호) 궁장 집안은 약 300년 전 조선 숙종 때부터 경북 예천에서 각궁을 만들었다. 권 궁장이 12대, 아들 오정씨가 13대째다. 권 궁장은 어릴 때부터 각궁 만드는 일을 도왔다. 그러다 16세 때 집을 나가 우체국 공무원, 버스 기사로 살았다. “활의 대가 끊겼다”는 형 영호씨의 말을 듣고 고심하다가, 37세에 다시 활 만드는 길로 들어섰다. 권 궁장은 각궁 제작에만 머물지 않았다. 전통 활쏘기 기능 보유자인 고 장석후 장인에게 전통 사법을 배웠고, ‘국궁의 교범’이라는 책도 냈다. 1994년 국궁문화대축제를 기획했으며, 육군사관학교와 경찰대학에서 궁도를 가르쳤다. 권 궁장에게 각궁을 만드는 일은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정신을 지키고 보존하는 일이다. 서울무형문화재 돈화문 교육전시장 (02)741-1303.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새달 1일 양재천 단풍길 걷기 축제

    강남구가 다음달 1일 단풍이 물든 양재천에서 ‘7540 단풍길 걷기 축제’를 연다고 28일 밝혔다. 양재천 영동6교 남단 광장에서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하는 이번 행사는 일주일에 5번, 하루 40분 이상 걷기를 실천하자는 7540운동의 하나다. 주민 등 1000여명이 참여한다. 걷기 코스는 양재천 영동6교 남단 광장에서 대치중학교 앞 보행자 육교까지 왕복 5㎞ 구간이다. 구는 올바른 걷기 자세 교육을 하고 독서캠페인, 예술 공연, 길거리 공연 등 다양한 행사도 준비했다. 대회 이후에는 행운권 추첨을 통해 상품도 전달한다. 대회 참가 신청은 걷기연합회 홈페이지(www.gangnamwalking.co.kr)에서 할 수 있고 당일 현장 접수도 가능하다. 한편 인터넷 설문조사를 통해 양재천 경치 중 8경을 선정했는데 양재천 징검다리, 양재천 벚꽃길, 상단 은행나무길, 물놀이장, 보행자교 위 전경, 여울쉼터, 벼농사학습장, 영동3교 수변부 데크 등이다. 특히 양재천 벚꽃길과 은행나무길은 단풍이 한창이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