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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op 셀러]끈적이는 밤 ‘열대야 상품’의 유혹

    [Top 셀러]끈적이는 밤 ‘열대야 상품’의 유혹

    열대야 현상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지속되고 있다.밤이 돼도 기온이 떨어지기는 커녕 후텁지근한 무더운 날씨가 계속돼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내려 온몸이 끈적거린다.끈적거리는 몸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열대야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즘 백화점과 할인점,인터넷 쇼핑몰에는 열대야를 이기는 ‘열대야 상품’이 대거 등장해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최종건 신세계 이마트 바이어는 “본격적으로 열대야 현상이 시작되면서 끈적거리는 몸을 뽀송뽀송하게 해주는 까끌까끌한 느낌을 주고 몸에 달라붙지 않는 소재로 만든 상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최근들어 시원한 느낌을 주는 대자리나 베개,대나무 소재의 카시트 등을 찾는 소비자들이 평소보다 20∼30%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침구·언더웨어·아로마용품 각광 백화점·할인점·인터넷 쇼핑몰에 선보이고 있는 ‘열대야 상품’은 크게 여름철 인테리어 소품과 침구,아로마용품·언더웨어 등으로 나뉜다.여름철 인테리어소품은 단풍자리와 오크자리,대자리,화문석 등이 있다.단풍자리는 단풍나무 소재로 만들어 탄성과 내구성이 좋고,오크자리는 원목 자체가 시원한 느낌을 준다.대자리는 변형이 없고 끈적끈적거림이 없어 깔고 누으면 온몸이 시원해진다.화문석은 강화에서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 품질 만족도가 높다. 침구는 마나 삼베 제품이 주종.수분 흡수와 발산이 빠르고 열 전도성이 좋아 서늘하다.하지만 피부에 닿는 감촉이 뻣뻣하고 탄력성이 없어 구김이 잘 가는 단점이 있다.이런 단점이 싫으면 부드러우면서도 시원한 감촉이 느껴지는 인조견이나,오돌토돌하게 가공해 까슬까슬한 느낌을 주는 지지미(순면) 제품이 좋다. 아로마용품은 허브에서 추출한 아로마향을 들이마셔 심신이 편안해져 숙면을 도와준다.스트레스 및 불면증 해소에 효과적인 라벤더향 보디클렌저·로션,아로마 입욕제·가습기 등이 대표적이다.더위를 쫓아주는 여름 언더웨어는 마 등 천연소재를 사용해 까슬까슬하고 통풍성이 좋아 청량하다. ●왕골 3단 접단자리 3만 9000원 롯데백화점은 마 소재 침구세트(매트리스커버+이불커버+베개 2개) 39만원,지지미 소재 침구세트 43만원,라벤더향 보디클렌저와 로션 각 2만 2000원,마 소재 언더웨어 상·하의세트(남성용) 4만 6000∼5만원,단풍자리 15만∼75만원,화문석을 50만∼80만원에 내놓았다. 신세계백화점은 아로마오일 1만 2000원∼1만 4000원,숙면에 도움을 주는 라벤더·캐모마일·로즈마리 허브차를 1만 3000∼1만 5000원에 판매한다.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은 천연 수면제로 불리는 장미주스와 오디원액 각각 6만∼9만원,아로마오일 9000원∼3만원,아로마오일 램프세트 2만 9000원,전용 가습기를 8만∼9만원에 판매한다. 갤러리아백화점 콩코스점은 라벤더향 에센셜 오일 2만 8000원,아로마양초 4만 3000원,더운 날씨로 뜨거워진 피부에 바르면 시원한 느낌을 주는 버베나 쿨스틱을 3만 7000원에 선보였다.애경백화점은 삼베이불 2만 9000원,왕골 3단 접단자리를 3만 9000원에 판매한다.행복한세상은 아로마 램프세트 2만 3000∼2만 5000원,대자리를 3만 5000∼12만 8000원에 판다. 이마트는 오크자리 30만∼50만원,참나무나 단풍나무를 압축한 압축자리 10만∼20만원,자동차 대나무·왕골·청대 카시트를 7800원∼3만 1000원에 선보였다.롯데마트는 모시·삼베 침구세트 5만∼9만 9000원,나무자리·대자리를 5만 9000∼55만원에 내놓았다.삼성 테스코 홈플러스는 마·삼베 침구세트 2만 9800원,마·삼베 이불을 2만 7500∼4만 3000원에 판매한다. ●모시패드 더블 1만 5000원대 킴스클럽은 침대자리 1만 3000∼1만 7000원,삼베 카펫 3만 9000원,CJ몰은 인조 모시 침구세트 4만 4900∼9만 9000원,대자리 세트 4만 9000원,인터파크는 대자리 1만 9800원,모시패드 더블 1만 5000원을 내놓았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인조섬유 소재 인테리어 소품 인기 이번 여름철 인테리어 소품은 가격이 저렴하지만 시원한 느낌을 주는 인조섬유 제품이 떠오르고 있다.이경우 홈플러스 가정용품팀 바이어는 “불황으로 값이 싸면서도 느낌은 마 소재와 같이 까끌까끌한 인조섬유가 각광을 받고 있다.”며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잔꽃무늬나 화이트,베이지색 계열에 줄 무늬로 포인트를 준 단순한 무늬가 유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열대야 용품을 고르는 요령은 대자리의 경우 겉대로만 만들어진 상품을 고르되,쪽과 쪽 사이에 PVC 이음줄이 단단하고 테두리 마무리가 잘 돼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패드는 피부에 직접 닿기 때문에 면제품이 좋고,가능하면 2개를 구입해 번갈아 사용하는 것이 좋다.
  • [Top 셀러]끈적이는 밤 ‘열대야 상품’의 유혹

    열대야 현상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지속되고 있다.밤이 돼도 기온이 떨어지기는 커녕 후텁지근한 무더운 날씨가 계속돼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내려 온몸이 끈적거린다.끈적거리는 몸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열대야를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즘 백화점과 할인점,인터넷 쇼핑몰에는 열대야를 이기는 ‘열대야 상품’이 대거 등장해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최종건 신세계 이마트 바이어는 “본격적으로 열대야 현상이 시작되면서 끈적거리는 몸을 뽀송뽀송하게 해주는 까끌까끌한 느낌을 주고 몸에 달라붙지 않는 소재로 만든 상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며 “최근들어 시원한 느낌을 주는 대자리나 베개,대나무 소재의 카시트 등을 찾는 소비자들이 평소보다 20∼30%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침구·언더웨어·아로마용품 각광 백화점·할인점·인터넷 쇼핑몰에 선보이고 있는 ‘열대야 상품’은 크게 여름철 인테리어 소품과 침구,아로마용품·언더웨어 등으로 나뉜다.여름철 인테리어소품은 단풍자리와 오크자리,대자리,화문석 등이 있다.단풍자리는 단풍나무 소재로 만들어 탄성과 내구성이 좋고,오크자리는 원목 자체가 시원한 느낌을 준다.대자리는 변형이 없고 끈적끈적거림이 없어 깔고 누으면 온몸이 시원해진다.화문석은 강화에서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 품질 만족도가 높다. 침구는 마나 삼베 제품이 주종.수분 흡수와 발산이 빠르고 열 전도성이 좋아 서늘하다.하지만 피부에 닿는 감촉이 뻣뻣하고 탄력성이 없어 구김이 잘 가는 단점이 있다.이런 단점이 싫으면 부드러우면서도 시원한 감촉이 느껴지는 인조견이나,오돌토돌하게 가공해 까슬까슬한 느낌을 주는 지지미(순면) 제품이 좋다. 아로마용품은 허브에서 추출한 아로마향을 들이마셔 심신이 편안해져 숙면을 도와준다.스트레스 및 불면증 해소에 효과적인 라벤더향 보디클렌저·로션,아로마 입욕제·가습기 등이 대표적이다.더위를 쫓아주는 여름 언더웨어는 마 등 천연소재를 사용해 까슬까슬하고 통풍성이 좋아 청량하다. ●왕골 3단 접단자리 3만 9000원 롯데백화점은 마 소재 침구세트(매트리스커버+이불커버+베개 2개) 39만원,지지미 소재 침구세트 43만원,라벤더향 보디클렌저와 로션 각 2만 2000원,마 소재 언더웨어 상·하의세트(남성용) 4만 6000∼5만원,단풍자리 15만∼75만원,화문석을 50만∼80만원에 내놓았다. 신세계백화점은 아로마오일 1만 2000원∼1만 4000원,숙면에 도움을 주는 라벤더·캐모마일·로즈마리 허브차를 1만 3000∼1만 5000원에 판매한다.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은 천연 수면제로 불리는 장미주스와 오디원액 각각 6만∼9만원,아로마오일 9000원∼3만원,아로마오일 램프세트 2만 9000원,전용 가습기를 8만∼9만원에 판매한다. 갤러리아백화점 콩코스점은 라벤더향 에센셜 오일 2만 8000원,아로마양초 4만 3000원,더운 날씨로 뜨거워진 피부에 바르면 시원한 느낌을 주는 버베나 쿨스틱을 3만 7000원에 선보였다.애경백화점은 삼베이불 2만 9000원,왕골 3단 접단자리를 3만 9000원에 판매한다.행복한세상은 아로마 램프세트 2만 3000∼2만 5000원,대자리를 3만 5000∼12만 8000원에 판다. 이마트는 오크자리 30만∼50만원,참나무나 단풍나무를 압축한 압축자리 10만∼20만원,자동차 대나무·왕골·청대 카시트를 7800원∼3만 1000원에 선보였다.롯데마트는 모시·삼베 침구세트 5만∼9만 9000원,나무자리·대자리를 5만 9000∼55만원에 내놓았다.삼성 테스코 홈플러스는 마·삼베 침구세트 2만 9800원,마·삼베 이불을 2만 7500∼4만 3000원에 판매한다. ●모시패드 더블 1만 5000원대 킴스클럽은 침대자리 1만 3000∼1만 7000원,삼베 카펫 3만 9000원,CJ몰은 인조 모시 침구세트 4만 4900∼9만 9000원,대자리 세트 4만 9000원,인터파크는 대자리 1만 9800원,모시패드 더블 1만 5000원을 내놓았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인조섬유 소재 인테리어 소품 인기 이번 여름철 인테리어 소품은 가격이 저렴하지만 시원한 느낌을 주는 인조섬유 제품이 떠오르고 있다.이경우 홈플러스 가정용품팀 바이어는 “불황으로 값이 싸면서도 느낌은 마 소재와 같이 까끌까끌한 인조섬유가 각광을 받고 있다.”며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잔꽃무늬나 화이트,베이지색 계열에 줄 무늬로 포인트를 준 단순한 무늬가 유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열대야 용품을 고르는 요령은 대자리의 경우 겉대로만 만들어진 상품을 고르되,쪽과 쪽 사이에 PVC 이음줄이 단단하고 테두리 마무리가 잘 돼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패드는 피부에 직접 닿기 때문에 면제품이 좋고,가능하면 2개를 구입해 번갈아 사용하는 것이 좋다.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7) 두타연의 물안개

    ‘쏴아아…,찌르르‘ 강원도 양구군 민간인통제선을 가로질러 금강산 장안사를 향해 오르는 길은 폭포와 이름모를 풀벌레,새소리 화음이 절묘하다.포연이 사라지고 사람의 인적이 끊긴지 51년.한국전쟁의 최대 격전지로 풀 한 포기 온전히 남지 않았던 곳이 울창한 밀림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양구에서 장안사까지 걸어서 반나절이면 족했던 그 길은 맑게 흐르는 수입천을 따라 왕성한 생명의 숨소리로 가득하다. 비포장 초입 길섶부터 신갈나무 군락지가 눈이 멀게 뻗어 있고 철책선을 앞두고 중간쯤에 이르면 두타연 폭포가 시원스레 물길을 가른다.폭포와 물안개 속에 떠있는 바위마다 돌단풍과 물이끼가 파랗게 수를 놓았고 검푸른 소(沼)에는 열목어,금강모치,쉬리 등 우리나라 대표적인 냉수성 어종이 터 잡은지 오래다. ●열목어 등 냉수성 어종 천국 용틀임치며 폭포를 만드는 물길 덕분에 물 속 용존산소가 풍부해 물고기가 살기에는 그만이다.주변에 나무가 울창하고 습지가 잘 발달해 있어 곤충 등 먹잇감이 풍부한 것도 물고기가 살기에 더없이 좋다. 두타연 일대는 휴전 직전까지 밀고 밀리던 격전지로,모든 것이 초토화된 이후 새롭게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어서 전문가들의 관심이 큰 곳이다.전쟁 이후 사람들의 간섭 없이 만들어진 2차 식생지역으로 신갈나무,개박달나무,물푸레나무,느릅나무,신나무,찔레나무 등이 밀림처럼 빼곡하다. 다래나무 덩굴까지 어우러져 멀리서 보면 수입천을 따라 형성된 숲 전체가 뭉게구름처럼 몽실거린다.하천가에서 우점종(優占種·일정 범위 안의 식물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 종)이 된 활엽수가 독특한 식생을 이룬 모습이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잘 자라는 소나무는 바위가 많은 주변지역으로 밀려나 초라하게 명맥을 이어오고 있을 뿐이다. ●신갈나무 활엽수림 군락지 형성 산등성이와 암벽 지역마다 군락을 이룬 신갈나무는 하천변 모래에까지 씨를 날려 왕성한 번식력을 보여주고 있다.1∼2㎝ 크기의 앙증맞은 신갈나무 작은 새싹들이 발그스레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있다.두타연 상류 오목오목 파인 바위그릇마다 물참나무 도토리 껍질이 수북하다.다람쥐와 청설모 등 작은 포유류가 왕성하게 번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두타연에서 수입천 물길을 따라 북쪽으로 구불구불 1시간쯤 걸었을까….한약재로 귀하게 쓰이는 황벽나무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염료로 쓰이거나 위장병에 특효이다 보니 이제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희귀나무가 되어버린 종(種)이다. 이곳 두타연에서는 지뢰가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며 자연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폭포 옆 습지에는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오리나무·신나무가 자라고,평지에는 초창기 군부대에서 심었을 아까시나무가 씨앗을 날려 울창하다.초본류는 원추리와 돌단풍,나리,오이풀,그늘사초,산거울 등 우리 주변에서 낯익은 것들이 대부분이다.갈대를 닮은 달뿌리풀이 게릴라 전법으로 물가를 찾아 뻗어나가며 왕성한 번식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습지에는 ‘큰방울새란(蘭)’ 서식 ‘큰방울새란’처럼 흔치 않은 종도 발견된다.두타연 부근 지 바위 틈에 네댓 송이씩 올망졸망 자라는 큰방울새란은 수줍은 여인의 모습 그대로다.7∼8㎝ 안팎의 가녀린 몸에 새끼손톱만한 두세 개의 작은 잎새를 달고 진분홍의 꽃술을 연분홍과 흰색 꽃잎으로 감싸며 함초롬히 피어낸 한 송이씩의 꽃이라니….여린 몸집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짙다.환경오염이 안된 청정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난이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두타연 인근,수백미터는 족히 넘게 발달된 습지는 건강한 하천을 유지시켜주는 원천이 되고 있다.생물들의 중간 완충지대로 각종 미생물과 곤충이 있고 강도래,날도래 등이 서식하며 물고기의 풍부한 먹이 서식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길따라 두타연 상류로 이어진 물줄기 돌웅덩이마다 올챙이가 떼지어 퇴적된 나뭇잎 사이로 숨바꼭질한다.육식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면서 건강한 하천의 전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수입천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너럭바위와 돌을 타고 흐르며 붉은색,청색,녹색으로 알록달록 기막힌 장관을 연출한다.두타연의 열목어처럼 수입천을 거슬러 금강산 장안사를 돌아보는 그날은 언제나 올는지…. 양구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전문가 칼럼 두타연은 산골 중에서도 산골이다.동해를 막고 서 있는 향로봉(1296m),마산(1052m),설악산(1708m)의 산줄기를 넘고,인북천을 건넌 다음에도 매봉(1290m),가칠봉(1242m),대암산(1304m)을 넘어야 볼 수 있다.서해의 기운은 이보다 더 멀리 있다.연백평야를 지나 임진강을 건넌 다음,한북정맥을 넘어서 북한강을 건너고,어은산(1277m) 백석산(1142m)을 지나야 비로소 두타연에 이를 수 있다. 두타연은 불교식 이름에서 풍기듯 주변 경관도 신비롭다.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의 신비함은 말할 것도 없고,깎아지른 듯한 암벽에서 수직으로 자라는 소나무,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물결을 고르고 있는 웅덩이,그리고 이어지는 여울과 소의 반복….이런 조건은 두타연을 우리나라에서 냉수성 어종의 물고기들이 가장 다양한 곳으로 만들었다.금강모치·쉬리·배가사리·돌상어·새코미꾸리·미유기·꺽지 등과 같은 한국 고유종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대륙의 변천사를 말해주는 열목어도 많다.특히 중간에 있는 낮은 폭포는 두타연 상류와 하류의 물고기들을 나누는 경계가 된다.열목어 등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종류는 상류에서도 발견되는 반면 작은 어종은 하류에서만 발견된다. 이렇듯 폭포와 못이 어울리며 키워낸 많은 어류는 물까치와 같은 새들도 불러모은다.큰방울새란 등 아름다운 난초가 자라는 습지도 다양한 생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붉은배새매(천연기념물 323호),까막딱다구리(천연기념물 242호)도 날아든다.하지만 두타연은 주변 산세가 험해 뭇 생물들의 난잡한 접근은 금한다.어떻게 보면 산이 아니라 거대한 암벽으로 병풍을 쳐놓은 듯하다.이와 같은 경관 조건은 오지로서의 지리 조건과 함께 다양한 생물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준다.산양(천연기념물 217호)의 피난처가 되고,독수리 부리를 닮은 암봉에서는 독수리(천연기념물 243호) 가족들이 놀다 간다.또한 이 부근에는 숲 속을 날아다니는 포유류인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328호)도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또 금강산 가는 길목에 위치해,벌써 양구군에서는 해마다 다양한 이벤트로 두타연을 소개하는 행사를 벌인다.하지만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훼손하면 차라리 소개하지 않는 것만 못할 것이다.두타연을 살리는 지혜로운 대안을 기대해 본다. 신준환 박사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장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7) 두타연의 물안개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7) 두타연의 물안개

    ‘쏴아아…,찌르르‘ 강원도 양구군 민간인통제선을 가로질러 금강산 장안사를 향해 오르는 길은 폭포와 이름모를 풀벌레,새소리 화음이 절묘하다.포연이 사라지고 사람의 인적이 끊긴지 51년.한국전쟁의 최대 격전지로 풀 한 포기 온전히 남지 않았던 곳이 울창한 밀림으로 다시 살아난 것이다.양구에서 장안사까지 걸어서 반나절이면 족했던 그 길은 맑게 흐르는 수입천을 따라 왕성한 생명의 숨소리로 가득하다. 비포장 초입 길섶부터 신갈나무 군락지가 눈이 멀게 뻗어 있고 철책선을 앞두고 중간쯤에 이르면 두타연 폭포가 시원스레 물길을 가른다.폭포와 물안개 속에 떠있는 바위마다 돌단풍과 물이끼가 파랗게 수를 놓았고 검푸른 소(沼)에는 열목어,금강모치,쉬리 등 우리나라 대표적인 냉수성 어종이 터 잡은지 오래다. ●열목어 등 냉수성 어종 천국 용틀임치며 폭포를 만드는 물길 덕분에 물 속 용존산소가 풍부해 물고기가 살기에는 그만이다.주변에 나무가 울창하고 습지가 잘 발달해 있어 곤충 등 먹잇감이 풍부한 것도 물고기가 살기에 더없이 좋다. 두타연 일대는 휴전 직전까지 밀고 밀리던 격전지로,모든 것이 초토화된 이후 새롭게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어서 전문가들의 관심이 큰 곳이다.전쟁 이후 사람들의 간섭 없이 만들어진 2차 식생지역으로 신갈나무,개박달나무,물푸레나무,느릅나무,신나무,찔레나무 등이 밀림처럼 빼곡하다. 다래나무 덩굴까지 어우러져 멀리서 보면 수입천을 따라 형성된 숲 전체가 뭉게구름처럼 몽실거린다.하천가에서 우점종(優占種·일정 범위 안의 식물 가운데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한 종)이 된 활엽수가 독특한 식생을 이룬 모습이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잘 자라는 소나무는 바위가 많은 주변지역으로 밀려나 초라하게 명맥을 이어오고 있을 뿐이다. ●신갈나무 활엽수림 군락지 형성 산등성이와 암벽 지역마다 군락을 이룬 신갈나무는 하천변 모래에까지 씨를 날려 왕성한 번식력을 보여주고 있다.1∼2㎝ 크기의 앙증맞은 신갈나무 작은 새싹들이 발그스레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고 있다.두타연 상류 오목오목 파인 바위그릇마다 물참나무 도토리 껍질이 수북하다.다람쥐와 청설모 등 작은 포유류가 왕성하게 번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두타연에서 수입천 물길을 따라 북쪽으로 구불구불 1시간쯤 걸었을까….한약재로 귀하게 쓰이는 황벽나무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염료로 쓰이거나 위장병에 특효이다 보니 이제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희귀나무가 되어버린 종(種)이다. 이곳 두타연에서는 지뢰가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며 자연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폭포 옆 습지에는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오리나무·신나무가 자라고,평지에는 초창기 군부대에서 심었을 아까시나무가 씨앗을 날려 울창하다.초본류는 원추리와 돌단풍,나리,오이풀,그늘사초,산거울 등 우리 주변에서 낯익은 것들이 대부분이다.갈대를 닮은 달뿌리풀이 게릴라 전법으로 물가를 찾아 뻗어나가며 왕성한 번식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습지에는 ‘큰방울새란(蘭)’ 서식 ‘큰방울새란’처럼 흔치 않은 종도 발견된다.두타연 부근 지 바위 틈에 네댓 송이씩 올망졸망 자라는 큰방울새란은 수줍은 여인의 모습 그대로다.7∼8㎝ 안팎의 가녀린 몸에 새끼손톱만한 두세 개의 작은 잎새를 달고 진분홍의 꽃술을 연분홍과 흰색 꽃잎으로 감싸며 함초롬히 피어낸 한 송이씩의 꽃이라니….여린 몸집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가 짙다.환경오염이 안된 청정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난이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두타연 인근,수백미터는 족히 넘게 발달된 습지는 건강한 하천을 유지시켜주는 원천이 되고 있다.생물들의 중간 완충지대로 각종 미생물과 곤충이 있고 강도래,날도래 등이 서식하며 물고기의 풍부한 먹이 서식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길따라 두타연 상류로 이어진 물줄기 돌웅덩이마다 올챙이가 떼지어 퇴적된 나뭇잎 사이로 숨바꼭질한다.육식 물고기들의 먹이가 되면서 건강한 하천의 전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수입천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너럭바위와 돌을 타고 흐르며 붉은색,청색,녹색으로 알록달록 기막힌 장관을 연출한다.두타연의 열목어처럼 수입천을 거슬러 금강산 장안사를 돌아보는 그날은 언제나 올는지…. 양구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전문가 칼럼 두타연은 산골 중에서도 산골이다.동해를 막고 서 있는 향로봉(1296m),마산(1052m),설악산(1708m)의 산줄기를 넘고,인북천을 건넌 다음에도 매봉(1290m),가칠봉(1242m),대암산(1304m)을 넘어야 볼 수 있다.서해의 기운은 이보다 더 멀리 있다.연백평야를 지나 임진강을 건넌 다음,한북정맥을 넘어서 북한강을 건너고,어은산(1277m) 백석산(1142m)을 지나야 비로소 두타연에 이를 수 있다. 두타연은 불교식 이름에서 풍기듯 주변 경관도 신비롭다.바위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의 신비함은 말할 것도 없고,깎아지른 듯한 암벽에서 수직으로 자라는 소나무,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물결을 고르고 있는 웅덩이,그리고 이어지는 여울과 소의 반복….이런 조건은 두타연을 우리나라에서 냉수성 어종의 물고기들이 가장 다양한 곳으로 만들었다.금강모치·쉬리·배가사리·돌상어·새코미꾸리·미유기·꺽지 등과 같은 한국 고유종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대륙의 변천사를 말해주는 열목어도 많다.특히 중간에 있는 낮은 폭포는 두타연 상류와 하류의 물고기들을 나누는 경계가 된다.열목어 등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종류는 상류에서도 발견되는 반면 작은 어종은 하류에서만 발견된다. 이렇듯 폭포와 못이 어울리며 키워낸 많은 어류는 물까치와 같은 새들도 불러모은다.큰방울새란 등 아름다운 난초가 자라는 습지도 다양한 생태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붉은배새매(천연기념물 323호),까막딱다구리(천연기념물 242호)도 날아든다.하지만 두타연은 주변 산세가 험해 뭇 생물들의 난잡한 접근은 금한다.어떻게 보면 산이 아니라 거대한 암벽으로 병풍을 쳐놓은 듯하다.이와 같은 경관 조건은 오지로서의 지리 조건과 함께 다양한 생물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준다.산양(천연기념물 217호)의 피난처가 되고,독수리 부리를 닮은 암봉에서는 독수리(천연기념물 243호) 가족들이 놀다 간다.또한 이 부근에는 숲 속을 날아다니는 포유류인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328호)도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또 금강산 가는 길목에 위치해,벌써 양구군에서는 해마다 다양한 이벤트로 두타연을 소개하는 행사를 벌인다.하지만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훼손하면 차라리 소개하지 않는 것만 못할 것이다.두타연을 살리는 지혜로운 대안을 기대해 본다. 신준환 박사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장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4) 창공의 자유, 저어새를 찾아서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4) 창공의 자유, 저어새를 찾아서

    새란 새는 ‘학섬’에 죄다 모인 것 같았다.섬 동쪽 가장자리를 반쯤은 덮다시피하며 빼곡히 앉아 있다.여럿이 어우러져 춤 추듯 창공을 오르내리기도 한다.군무(群舞)가 가히 장관이다.푸덕이는 날갯짓 소리,쉼없이 지저귀는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뭍으로 전해져 온다.‘뱀섬’엔 뱀은 보이지 않고 새와 새소리만 그득할 뿐이다. ●유도에 나타난 저어새 학섬이라고도,뱀섬이라고도 불리는 유도(留島)는 경기도 김포와 북한의 개풍군을 양옆에 껴안고 흐르는 한강 하구에 동그마니 떠있다.유도는 이렇듯 새들이 머무르는 쉼터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일 게다.1996년까지 인근 주민에게조차 있는 듯,없는 듯 여겨져 왔지만 그해 여름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해병대 안내장교는 “폭우에 휩쓸려 떠내려 온 북한 소가 이 섬에 닿아 서너달 꼼짝없이 갇혀 지냈다.결국 우리 군이 ‘유도 상륙’을 북한에 통보한 뒤 구출해냈다.”고 설명한다.김포·강화 북부의 한강은 남북한 어느 쪽도 맘대로 드나들지 못하는,서로의 발이 묶인 곳이다.비록 휴전선은 그어지지 않았지만 삼엄하긴 뭍의 비무장지대(DMZ)와 마찬가지다. 6월 8일 아침 나절,김포 북부의 해병대 ‘유도소대’ 막사를 돌아 초소 앞으로 다가섰다.꼬불꼬불 길게 이어진 철책선이 발치에 엎드리면서 시원스레 시야가 트이고,한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난생 처음 들어보는 새들의 합창에 귀마저 대뜸 열렸다.400m 남짓 떨어진 유도에서 보내오는 소리다.와글와글인지,지절지절인지 걸맞는 의성어가 떠올려지지 않는다.그저 오묘할밖에….초병들의 관측용 대형 망원경을 받아들었다.지천으로 깔린 새들이 비로소 형체를 갖추며 눈에 들어온다.족히 수천마리는 됨직하다.가마우지,백로,왜가리,괭이갈매기….새떼들이 너나 구별없이 한데 모여 섬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서울 도심을 벗어난 지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다들 어느덧 눈에 익숙해진 녀석들이다.몇분이나 지났을까,망원경이 ‘행운’을 포착했다.여느 것들과는 모습이 한결 다른,낯선 녀석이 나타난 것이다. ●익살로 감춘 비장미 저어새(천연기념물 제205호)였다.하나,둘,셋… 녀석들은 유유히 섬 주위를 활강하면서,바윗돌 위에 우뚝 선 채로,부리를 맞부딪칠 것처럼 서로를 가까이 한 채,그렇게 10여마리나 발견됐다.‘유도에서 저어새를 볼 수 있다.’는 사전정보를 챙기지 못한 취재팀으로선 전혀 뜻밖의 만남이었다.녀석은 익살스러운 구석이 있다.주걱 모양의 긴 부리 생김새가 그렇고,이름 또한 재미 있다.부리를 좌우로 저어,저어가며 먹이를 잡는 통에 붙여졌다.예전엔 가리새로도 불렸다.조상들 눈에는 주걱부리가 쟁기로 비쳤던 모양이다. 하지만 녀석은 해학으로 비장미를 가렸을 뿐이다.세계를 통틀어 고작 1200여마리 정도만 생존해 있을 뿐이다.나라 안팎의 멸종위기종 조류 목록에 어김없이 이름이 오른 희귀종이다.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은 “10년 이내에 멸종될 확률이 80% 가량”으로 진단하기도 한다.‘근본적으로’ 위태로운 삶을 부지하고 있는 저어새가 최후의 번식처로 삼은 곳은 강화 남부지역과 석도,볼음도 등 서해바다 무인도와 그 일대에 펼쳐진 강화갯벌(천연기념물 419호)이다.이곳을 삶터로 택한 이유는 뭘까. “저어새는 20㎝ 정도의 긴 부리를 물속에 집어넣어 좌우로 흔들면서 먹이를 낚아챕니다.그러기 위해선 물 깊이가 비교적 얕은 갯벌이나 강어귀가 적당하지요.광활한 강화갯벌과 서해 무인도(비무장지대 일대)는 그런 점에서 생존환경을 잘 갖추고 있습니다.무엇보다 개발로 인한 생태계 교란이 상대적으로 덜 진행되었으니까요.”(환경운동연합 김경원 국장) 이를테면 남북간 군사적 대치로 인해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것이 저어새의 생명을 지탱하고 있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한번 더 뒤집으면,지구상에서 가장 번창한 종(種)인 사람이 저어새를 절박한 처지로 몰아갔다는 얘기다.김 국장의 설명은 이어졌다.“저어새는 아직도 미지(未知)의 대상입니다.몇살까지 사는지,어떻게 번식하는지 생태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지요.저어새 보호에 대한 인류의 책임은 남북한이 가장 크게 떠안아야 마땅합니다.공동 생태조사 등 남북간 환경협력이 절실합니다.” 녀석들이 지금처럼 한반도의 외진 구석뿐 아니라 더 넓은 창공을 자유롭게 누비는 날을 고대해 본다.‘시한부 생명’이란 우려를 말끔히 씻어낸 채로…. 김포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전문가 칼럼 생태학적으로 비무장지대의 심벌을 꼽으라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능선에는 신갈나무와 소나무요,골짜기에는 버드나무·신나무·오리나무가 어울려 사는 습지라 할 것이다.그리고 이곳저곳에 밀려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아까시나무.이렇듯 비무장지대는 하나의 얼굴로 다가오지 않는다.신갈나무와 소나무는 군사 활동의 결과로 삐뚤빼뚤 왜소한 모습이지만,습지는 기름지고 넓게 자리잡고 있다.일반인들의 접근이 통제된다지만 외래식물인 아까시나무도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으로 알려진 돼지풀과 단풍잎돼지풀은 비무장지대 부근에서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이렇게 보면,자연과 인간의 영향력이 극단적으로 교차되는 자리,이것이 비무장지대의 모습이다. 동물 중에서 가장 흔하게 눈에 띄고 널리 분포하는 것은 고라니다.그런데 고라니가 비무장지대에 이렇게 많다는 것은 숲이 울창해야 할 곳이 훼손되고 풀밭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한편으론 비무장지대와 인접지역의 수계(水系)에는 우리나라 민물고기의 고유종과 희귀종이 많다.이는 그만큼 골짜기를 따라서는 자연성이 크게 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비무장지대는 자연적인 곳만은 아니고 군사활동과 같은 광범위한 인간의 영향 아래 자연의 힘이 살아나는 자리라는 것을 말해준다. 비무장지대는 이 외에도 피난처의 역할도 한다.민통선 이남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저어새나 산양도 비무장지대에 오면 제법 볼 수 있다.피난처가 되기 때문이다.산양의 힘차게 뻗은 뿔보다 무서움을 타는 듯한 큰 눈망울이 먼저 보이는 건 이런 까닭일 것이다. 그러면 역사적으로는 비무장지대를 어떻게 봐야 할까?비무장지대는 신화의 시대에는 소통의 자리였고,삼국시대에는 외세를 막아야 할 울타리이면서 동시에 밖으로 뻗어 나가야 할 통로였다.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수도가 바뀌는 축이었으면서도,국가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지금은 자연을 지킬 울타리이면서 남북이 소통해야 할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비무장지대의 모습은 곧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다.훼손이 진행되면서도 자연이 살아나는 자리는,역사적인 흐름과 자연적인 계통을 모르고는 제대로 보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서는 배운다는 자세가 중요하다.역사와 자연 앞에 물어보자.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막아야 할 것인가? 신준환 박사·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장
  • [그섬에 가고 싶다] 울릉도

    [그섬에 가고 싶다] 울릉도

    우리나라 동해를 지키는 울릉도.막내섬 독도와 함께 어린 형제 중 ‘나름대로 의젓한’ 형같은 섬이다. 수 십 미터 깊이의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바닷물,솜씨좋은 조각가도 흉내낼 수 없게 만들어진 절벽과 바위,원시림에 가까운 울창한 산림 등 태고적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울릉도는 강원도 묵호항에서 3시간이나 가야한다.그것도 국내에서 제일 빠르다는 한겨레호를 타고 시속 90㎞로 달리서 말이다. 동쪽 먼 ‘점’같은 섬은 멀∼다. ‘울렁 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라는 노랫말처럼 배멀미를 느낄 쯤에 도동항이 눈에 들어온다.을릉도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괭이갈매기였다.수백 마리의 갈매기 떼가 ‘끼룩끼룩’소리를 내며 뭍에서 온 사람들에게 인사한다.또한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선한 공기가 ‘울릉도’임을 실감케 한다. 예로부터 울릉도를 ‘3무5다의 섬’이라 한다.‘도둑과 뱀 그리고 공해’가 없어서 3무(無)이고 풀·바람·맑은 물·향나무·미인이 많다고 5다(多)라고 한다.그만큼 울릉도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 생긴 말이다. 도동항은 이 섬에 제일 큰 항이며 여객선터미널이 있어 모든 관광객들이 이곳을 통해서 울릉도를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다. 울릉도 관광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첫째가 육로관광이다.24인승 미니버스나 갤로퍼 택시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섬을 일주하는 것이다.둘째가 유람선을 타고 섬을 일주하는 것.세째가 성인봉 트래킹이다. 먼저 관광버스에 올라 육로관광에 나섰다.전화 안내원처럼 헤드셋을 낀 운전수 김병수(49)씨가 마이크를 통해 인사한다.“지금부터 4시간을 버스로 관광합니다.도로가 험해 강원도 베테랑 운전수도 운전을 못하고 걸어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그러니까 손잡이를 꼭 잡으세요.”라고 말하며 출발했다.말대로 길은 험하했다.30∼40도의 경사길은 기본이고 S자 모양,심지어는 8자 모양의 길이 이어졌 다.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곡예를 하는 것 같다. 바닷가 쪽으로 나서자 탄성이 절로 나온다.사동을 지나 가두봉 등대를 보며 코너를 돌자 바다위에 거대한 거북바위가 나타나고 그 뒤에는 산 한쪽면이 국수를 말리는 모양 또는 비파모양으로 보이는 비파산이 뽐내고 서 있다.사자를 닮은 사자바위,우산국 우해왕이 신라의 이사부에게 항복을 결심하고 벗어 던진 투구가 바위로 변했다는 투구바위… 정말 자연의 신비로움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태하등대에 도착할 쯤에 해가 진다.바다와 섬 전체가 붉게 물든다.‘아름답다’는 생각도 잠시 카메라를 꺼내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로 찰칵찰칵 기계음만이 들렸다. 시시각각 변하는 낙조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기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기후변화가 심한 울릉도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날은 1년에 50일이 채 안된다고 한다. 이밖에도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인 ‘나리분지’,‘너와집’,‘투막집’,바위에 구멍이 린 ‘공암’,여름에도 찬 바람이 나오는 ‘풍혈’,성인봉 골짜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아름다운 ‘봉래폭포’,동남동녀(童男童女)2명의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성하신당’ 등 육로관광으로 돌아보는 곳은 다양하다. 버스관광은 1인당 1만 5000원.(054)791-7020.택시일주는 보통 5시간 정도 소요되며 요금은 8만원.(054)791-2315.랜터카는 울릉도 전체에 10대가 있는데 24시간 기준으로 10만원이다.(054)791-2240 도동항에서 유람선으로 섬을 돌아보는 해상관광은 편안하게 울릉도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공암,신선암 등 크고 작은 바위섬들과 해안절벽을 돌아본다.새우깡 한 봉지는 필수 준비물이다.유람선 뒤를 쫓아 오는 갈매기들이 새우깡을 공중에서 받아먹는 묘기를 부리기 때문이다.섬일주에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정도.하루에 2번,오전 9시,오후 4시 출발한다.요금은 성인 1만 3000원,소인 6500원이다.(054)791-4468 성인봉 트레킹 코스는 3가지.성인봉은 해발 984m로 낮은 것 같지만 초입부터 걸어야하기 때문에 4시간 이상 소요돼 힘든다.하지만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을 통과해 보면 그 수고가 아깝지않다. 오는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울릉도 오징어 축제’가 열린다.오징어 요리 경연대회,오징어 조업 승선 체험,오징어 맨손으로 잡기,호박엿 늘리기 등 체험 행사와 불꽃놀이,노래공연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해삼·전복·약소 입들이 술렁술렁 울릉도는 먹을거리가 다양한 편이다.해삼,전복 등 어패류와 오징어,방어 등이 풍부하다.더덕과 삼나물,명이 등 산나물이 많이 난다. 특히 명이(茗荑)는 산마늘의 일종으로 잎을 먹는데 독특한 냄새와 매운 맛이 난다.주로 김치나 장아찌로 만들어 먹는데 맛이 일품이다. 또한 ‘울릉도 더덕’은 크기에 따라 1㎏에 1만∼3만원 수준으로 가격이 매우 싸다.하지만 더덕이 갖는 특유의 향은 없다. 도동항 근처 ‘99식당’(054-791-2287)의 ‘약초해장국’은 사골을 푹 곤 물에 물엉겅퀴,어성초,토란 등의 약재를 넣고 끓이는데 일품이다.가격은 6000원.10여가지 맛있는 밑반찬은 남도의 맛이다.홍합밥,오징어 불고기 등도 맛있다. 나리분지의 ‘나리촌’(054-791-6082)은 푸짐하고 맛깔스럽다.더덕무침과 삼나물회가 한 접시당 1만원,더덕파전은 5000원이다.마당에 있는 커다란 섬벗나무 그늘에서 바람을 맞으며 씨앗동동주를 마시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씨앗동동주는 천궁과 더덕을 넣어 만든 것으로 뒤끝이 깨끗하다.한 동이에 7000원. 또한 자생목초를 먹고 자란 소를 울릉도에서는 ‘약소’라고 부른다.약소에는 약초의 특유한 향과 맛이 배어 불고기를 해서 먹으면 맛이 색다르다. 산채비빔밥도 유명하다.섬부지갱이,고비,삼나물을 비롯해 명이,전호 등을 넣고 고추장에 비벼먹는다. ■ 정들면 못떠나는 정들포 울릉도의 일주도로,울릉읍 내수전에서 북면 석포리까지 4㎞ 구간은 길이 없다.해안 절벽과 험한 산세 때문이다.보통 관광객들은 해돋이가 아름다운 내수전 전망대에서 발길을 돌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에 주민들만 아는 길이 숨어있다.원시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이 길은 2시간 정도의 트레킹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마을이 아름다워 금방 정이 들고 떠날 때는 눈물이 나온다고 해서 ‘정들포’(지금은 석포라고 불린다).내수전에서 그 정들포까지,6㎞ 정도 호젓한 산길이 있다.오르막길은 거의 없고 산허리를 감싸돌며 아름다운 동해바다와 숨바꼭질을 하듯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들포 가는 길은 ‘자연식물원’이다.길바닥에는 푸른 이끼가,길섶에는 진초록의 고사리 잎,섬노루귀,섬바디 등이 가득하다.나무 또한 벽오동,섬단풍나무,너도밤나무 등이 ‘쭉쭉빵빵’ 자태를 뽐내고 있다.심호흡을 하면 온갖 풀과 나무 향기가 몸속에서 빨려 들어간다.억만금을 준다고 이렇게 신선한 공기를 살 수 있을까. 이렇게 걷다가 목이 마르면 가만히 서서 귀를 귀울여보자.어디선가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그 물을 그냥 마시면 된다.너무 차가워 손이 시리다.1시간 정도 걸으면 약간의 오르막이 시작되고 산 중턱에 이정표가 나온다.여기서 와달리 방향으로 가면 된다.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려가면 조그마한 마을 정들포가 나온다. 이곳은 아직까지 관광상품으로 개발되지 않은 곳이라 더 좋다.양진수(016-535-3739)씨에게 문의하면 도움받을 수 있다. ■독도·죽도도 가보자 ●독도는 오는 10월 말까지 매일 오전 8시와 오후 2시30분에 도동항에서 출발한다.아쉽게 독도에 직접 갈 수 없는 경우에도 울릉동에선 눈으로,마음으로 독도를 실컷 느낄 수 있다.4시간30분 정도 소요되며 승선료는 3만 7500원이다.(054)791-8111 ●죽도는 울릉도 저동항에서 동북쪽으로 4㎞ 지점에 위치한 섬으로 현재 단 한 가구가 살고 있다.물이 없어 빗물을 받아 사용한다고 한다.섬을 울릉군에서 관리하고 있다.도동항에서 죽도까지는 15분 정도 배를 타고 간다.보통 오전 8시,10시,11시30분,오후 4시에 죽도로 들어가는 배가 있고 사람들을 내려주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싣고 나온다.승선료는 대인 1만원,소인 5000원.죽도 입장료는 대인 1200원,소인 600원.(054)791-4488. ●도동약수공원은 빈혈,생리장애,류머티스성 질환에 좋은 탄산수가 자랑이다.물맛이 찝찔하며 톡 쏘는 맛이다.앞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독도전망대’(해발 495m)에 오른다.도동항이 한눈에 들어오고 밤에는 오징어잡이배들이 밤바다를 수놓는 색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대인 6500원,소인 5500원 (054)791-7160). 주변에 ‘독도박물관’과 ‘향토사료관’도 있다. ■ 이렇게 가세요 ●숙소 깨끗한 숙박시설이 부족했던 울릉도에 최근에 대아호텔(02-518-5000)이 문을 열었다.135실 규모의 방갈로형 호텔로 객실이나 베란다에서 바닷가를 감상할 수 있다.8월22일까지 한실을 12만원,양실을 13만원에 판매한다. 이밖에 북면 공암부근에 황토방으로 유명한 ‘추산일가’(054-791-7788),울릉비취호텔(054-791-2335) 등이 있다. ●울릉도 가는 길 울릉도로 가는 배는 동해(묵호)와 포항,후포에서 탈 수 있다. 묵호에서는 3월부터 10월까지 매일 오전 10시에 출발한다.가격은 편도 4만 1500원. 포항에서는 매일 오전 10시 출발한다.편도 5만 1100원.차량을 가지고 갈 수 있다.소형차는 왕복 25만원,중형차는 30만원 선이다.단 울릉도에는 LPG충전소가 없다. 후포는 부정기적으로 운항한다. 기상조건이나 계절에 따라 운항시간이 자주 바뀌므로 대아여행사(02-514-6766)로 문의하는 것이 좋다. ●울릉도 패키지 상품 울릉도는 패키지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교통이나 숙박 등 개인적으로 움직이기 쉽지 않다.일반 버스노선도 3개로 제한되어 있고 그나마 1시간에 한번씩 다닌다.또한 택시비가 비싸 자신만의 스케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울릉닷컴’에서는 삼색·호박·햇살투어와 독도 스페셜 등 다양한 주제로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다.추산일가나 대아호텔 등에서 잠을 자고 약소불고기,명이나물 쌈밥,오징어 더덕구이 등을 먹을 수 있는 고급상품으로 약간 값이 비싸다.2박 3일에 33만원에서 36만원선.1544-7644,www.outdoor7.com. 비타민여행사(02-736-9111),대아여행사(02-514-6766) 등은 2박 3일에 28만원 선.
  • [창간 100년 DMZ 51년 생태계-그 빛과 그림자] 전문가칼럼

    생태학적으로 비무장지대의 심벌을 꼽으라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능선에는 신갈나무와 소나무요,골짜기에는 버드나무·신나무·오리나무가 어울려 사는 습지라 할 것이다.그리고 이곳저곳에 밀려나지 않고 버티고 있는 아까시나무.이렇듯 비무장지대는 하나의 얼굴로 다가오지 않는다.신갈나무와 소나무는 군사 활동의 결과로 삐뚤빼뚤 왜소한 모습이지만,습지는 기름지고 넓게 자리잡고 있다.일반인들의 접근이 통제된다지만 외래식물인 아까시나무도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것으로 알려진 돼지풀과 단풍잎돼지풀은 비무장지대 부근에서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이렇게 보면,자연과 인간의 영향력이 극단적으로 교차되는 자리,이것이 비무장지대의 모습이다. 동물 중에서 가장 흔하게 눈에 띄고 널리 분포하는 것은 고라니다.그런데 고라니가 비무장지대에 이렇게 많다는 것은 숲이 울창해야 할 곳이 훼손되고 풀밭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한편으론 비무장지대와 인접지역의 수계(水系)에는 우리나라 민물고기의 고유종과 희귀종이 많다.이는 그만큼 골짜기를 따라서는 자연성이 크게 살아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비무장지대는 자연적인 곳만은 아니고 군사활동과 같은 광범위한 인간의 영향 아래 자연의 힘이 살아나는 자리라는 것을 말해준다. 비무장지대는 이 외에도 피난처의 역할도 한다.민통선 이남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저어새나 산양도 비무장지대에 오면 제법 볼 수 있다.피난처가 되기 때문이다.산양의 힘차게 뻗은 뿔보다 무서움을 타는 듯한 큰 눈망울이 먼저 보이는 건 이런 까닭일 것이다. 그러면 역사적으로는 비무장지대를 어떻게 봐야 할까?비무장지대는 신화의 시대에는 소통의 자리였고,삼국시대에는 외세를 막아야 할 울타리이면서 동시에 밖으로 뻗어 나가야 할 통로였다.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수도가 바뀌는 축이었으면서도,국가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지금은 자연을 지킬 울타리이면서 남북이 소통해야 할 자리이기도 하다. 이런 비무장지대의 모습은 곧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고 있다.훼손이 진행되면서도 자연이 살아나는 자리는,역사적인 흐름과 자연적인 계통을 모르고는 제대로 보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변화무쌍한 자연 앞에서는 배운다는 자세가 중요하다.역사와 자연 앞에 물어보자.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막아야 할 것인가? 신준환 박사·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태과장 ˝
  • [그섬에 가고 싶다] 울릉도

    우리나라 동해를 지키는 울릉도.막내섬 독도와 함께 어린 형제 중 ‘나름대로 의젓한’ 형같은 섬이다. 수 십 미터 깊이의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바닷물,솜씨좋은 조각가도 흉내낼 수 없게 만들어진 절벽과 바위,원시림에 가까운 울창한 산림 등 태고적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울릉도는 강원도 묵호항에서 3시간이나 가야한다.그것도 국내에서 제일 빠르다는 한겨레호를 타고 시속 90㎞로 달리서 말이다. 동쪽 먼 ‘점’같은 섬은 멀∼다. ‘울렁 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라는 노랫말처럼 배멀미를 느낄 쯤에 도동항이 눈에 들어온다.을릉도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괭이갈매기였다.수백 마리의 갈매기 떼가 ‘끼룩끼룩’소리를 내며 뭍에서 온 사람들에게 인사한다.또한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선한 공기가 ‘울릉도’임을 실감케 한다. 예로부터 울릉도를 ‘3무5다의 섬’이라 한다.‘도둑과 뱀 그리고 공해’가 없어서 3무(無)이고 풀·바람·맑은 물·향나무·미인이 많다고 5다(多)라고 한다.그만큼 울릉도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 생긴 말이다. 도동항은 이 섬에 제일 큰 항이며 여객선터미널이 있어 모든 관광객들이 이곳을 통해서 울릉도를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다. 울릉도 관광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첫째가 육로관광이다.24인승 미니버스나 갤로퍼 택시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섬을 일주하는 것이다.둘째가 유람선을 타고 섬을 일주하는 것.세째가 성인봉 트래킹이다. 먼저 관광버스에 올라 육로관광에 나섰다.전화 안내원처럼 헤드셋을 낀 운전수 김병수(49)씨가 마이크를 통해 인사한다.“지금부터 4시간을 버스로 관광합니다.도로가 험해 강원도 베테랑 운전수도 운전을 못하고 걸어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그러니까 손잡이를 꼭 잡으세요.”라고 말하며 출발했다.말대로 길은 험하했다.30∼40도의 경사길은 기본이고 S자 모양,심지어는 8자 모양의 길이 이어졌 다.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곡예를 하는 것 같다. 바닷가 쪽으로 나서자 탄성이 절로 나온다.사동을 지나 가두봉 등대를 보며 코너를 돌자 바다위에 거대한 거북바위가 나타나고 그 뒤에는 산 한쪽면이 국수를 말리는 모양 또는 비파모양으로 보이는 비파산이 뽐내고 서 있다.사자를 닮은 사자바위,우산국 우해왕이 신라의 이사부에게 항복을 결심하고 벗어 던진 투구가 바위로 변했다는 투구바위… 정말 자연의 신비로움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태하등대에 도착할 쯤에 해가 진다.바다와 섬 전체가 붉게 물든다.‘아름답다’는 생각도 잠시 카메라를 꺼내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로 찰칵찰칵 기계음만이 들렸다. 시시각각 변하는 낙조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기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기후변화가 심한 울릉도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날은 1년에 50일이 채 안된다고 한다. 이밖에도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인 ‘나리분지’,‘너와집’,‘투막집’,바위에 구멍이 린 ‘공암’,여름에도 찬 바람이 나오는 ‘풍혈’,성인봉 골짜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아름다운 ‘봉래폭포’,동남동녀(童男童女)2명의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성하신당’ 등 육로관광으로 돌아보는 곳은 다양하다. 버스관광은 1인당 1만 5000원.(054)791-7020.택시일주는 보통 5시간 정도 소요되며 요금은 8만원.(054)791-2315.랜터카는 울릉도 전체에 10대가 있는데 24시간 기준으로 10만원이다.(054)791-2240 도동항에서 유람선으로 섬을 돌아보는 해상관광은 편안하게 울릉도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공암,신선암 등 크고 작은 바위섬들과 해안절벽을 돌아본다.새우깡 한 봉지는 필수 준비물이다.유람선 뒤를 쫓아 오는 갈매기들이 새우깡을 공중에서 받아먹는 묘기를 부리기 때문이다.섬일주에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정도.하루에 2번,오전 9시,오후 4시 출발한다.요금은 성인 1만 3000원,소인 6500원이다.(054)791-4468 성인봉 트레킹 코스는 3가지.성인봉은 해발 984m로 낮은 것 같지만 초입부터 걸어야하기 때문에 4시간 이상 소요돼 힘든다.하지만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을 통과해 보면 그 수고가 아깝지않다. 오는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울릉도 오징어 축제’가 열린다.오징어 요리 경연대회,오징어 조업 승선 체험,오징어 맨손으로 잡기,호박엿 늘리기 등 체험 행사와 불꽃놀이,노래공연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해삼·전복·약소 입들이 술렁술렁 울릉도는 먹을거리가 다양한 편이다.해삼,전복 등 어패류와 오징어,방어 등이 풍부하다.더덕과 삼나물,명이 등 산나물이 많이 난다. 특히 명이(茗荑)는 산마늘의 일종으로 잎을 먹는데 독특한 냄새와 매운 맛이 난다.주로 김치나 장아찌로 만들어 먹는데 맛이 일품이다. 또한 ‘울릉도 더덕’은 크기에 따라 1㎏에 1만∼3만원 수준으로 가격이 매우 싸다.하지만 더덕이 갖는 특유의 향은 없다. 도동항 근처 ‘99식당’(054-791-2287)의 ‘약초해장국’은 사골을 푹 곤 물에 물엉겅퀴,어성초,토란 등의 약재를 넣고 끓이는데 일품이다.가격은 6000원.10여가지 맛있는 밑반찬은 남도의 맛이다.홍합밥,오징어 불고기 등도 맛있다. 나리분지의 ‘나리촌’(054-791-6082)은 푸짐하고 맛깔스럽다.더덕무침과 삼나물회가 한 접시당 1만원,더덕파전은 5000원이다.마당에 있는 커다란 섬벗나무 그늘에서 바람을 맞으며 씨앗동동주를 마시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씨앗동동주는 천궁과 더덕을 넣어 만든 것으로 뒤끝이 깨끗하다.한 동이에 7000원. 또한 자생목초를 먹고 자란 소를 울릉도에서는 ‘약소’라고 부른다.약소에는 약초의 특유한 향과 맛이 배어 불고기를 해서 먹으면 맛이 색다르다. 산채비빔밥도 유명하다.섬부지갱이,고비,삼나물을 비롯해 명이,전호 등을 넣고 고추장에 비벼먹는다. ■ 정들면 못떠나는 정들포 울릉도의 일주도로,울릉읍 내수전에서 북면 석포리까지 4㎞ 구간은 길이 없다.해안 절벽과 험한 산세 때문이다.보통 관광객들은 해돋이가 아름다운 내수전 전망대에서 발길을 돌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에 주민들만 아는 길이 숨어있다.원시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이 길은 2시간 정도의 트레킹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마을이 아름다워 금방 정이 들고 떠날 때는 눈물이 나온다고 해서 ‘정들포’(지금은 석포라고 불린다).내수전에서 그 정들포까지,6㎞ 정도 호젓한 산길이 있다.오르막길은 거의 없고 산허리를 감싸돌며 아름다운 동해바다와 숨바꼭질을 하듯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들포 가는 길은 ‘자연식물원’이다.길바닥에는 푸른 이끼가,길섶에는 진초록의 고사리 잎,섬노루귀,섬바디 등이 가득하다.나무 또한 벽오동,섬단풍나무,너도밤나무 등이 ‘쭉쭉빵빵’ 자태를 뽐내고 있다.심호흡을 하면 온갖 풀과 나무 향기가 몸속에서 빨려 들어간다.억만금을 준다고 이렇게 신선한 공기를 살 수 있을까. 이렇게 걷다가 목이 마르면 가만히 서서 귀를 귀울여보자.어디선가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그 물을 그냥 마시면 된다.너무 차가워 손이 시리다.1시간 정도 걸으면 약간의 오르막이 시작되고 산 중턱에 이정표가 나온다.여기서 와달리 방향으로 가면 된다.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려가면 조그마한 마을 정들포가 나온다. 이곳은 아직까지 관광상품으로 개발되지 않은 곳이라 더 좋다.양진수(016-535-3739)씨에게 문의하면 도움받을 수 있다. ■독도·죽도도 가보자 ●독도는 오는 10월 말까지 매일 오전 8시와 오후 2시30분에 도동항에서 출발한다.아쉽게 독도에 직접 갈 수 없는 경우에도 울릉동에선 눈으로,마음으로 독도를 실컷 느낄 수 있다.4시간30분 정도 소요되며 승선료는 3만 7500원이다.(054)791-8111 ●죽도는 울릉도 저동항에서 동북쪽으로 4㎞ 지점에 위치한 섬으로 현재 단 한 가구가 살고 있다.물이 없어 빗물을 받아 사용한다고 한다.섬을 울릉군에서 관리하고 있다.도동항에서 죽도까지는 15분 정도 배를 타고 간다.보통 오전 8시,10시,11시30분,오후 4시에 죽도로 들어가는 배가 있고 사람들을 내려주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싣고 나온다.승선료는 대인 1만원,소인 5000원.죽도 입장료는 대인 1200원,소인 600원.(054)791-4488. ●도동약수공원은 빈혈,생리장애,류머티스성 질환에 좋은 탄산수가 자랑이다.물맛이 찝찔하며 톡 쏘는 맛이다.앞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독도전망대’(해발 495m)에 오른다.도동항이 한눈에 들어오고 밤에는 오징어잡이배들이 밤바다를 수놓는 색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대인 6500원,소인 5500원 (054)791-7160). 주변에 ‘독도박물관’과 ‘향토사료관’도 있다. ■ 이렇게 가세요 ●숙소 깨끗한 숙박시설이 부족했던 울릉도에 최근에 대아호텔(02-518-5000)이 문을 열었다.135실 규모의 방갈로형 호텔로 객실이나 베란다에서 바닷가를 감상할 수 있다.8월22일까지 한실을 12만원,양실을 13만원에 판매한다. 이밖에 북면 공암부근에 황토방으로 유명한 ‘추산일가’(054-791-7788),울릉비취호텔(054-791-2335) 등이 있다. ●울릉도 가는 길 울릉도로 가는 배는 동해(묵호)와 포항,후포에서 탈 수 있다. 묵호에서는 3월부터 10월까지 매일 오전 10시에 출발한다.가격은 편도 4만 1500원. 포항에서는 매일 오전 10시 출발한다.편도 5만 1100원.차량을 가지고 갈 수 있다.소형차는 왕복 25만원,중형차는 30만원 선이다.단 울릉도에는 LPG충전소가 없다. 후포는 부정기적으로 운항한다. 기상조건이나 계절에 따라 운항시간이 자주 바뀌므로 대아여행사(02-514-6766)로 문의하는 것이 좋다. ●울릉도 패키지 상품 울릉도는 패키지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교통이나 숙박 등 개인적으로 움직이기 쉽지 않다.일반 버스노선도 3개로 제한되어 있고 그나마 1시간에 한번씩 다닌다.또한 택시비가 비싸 자신만의 스케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울릉닷컴’에서는 삼색·호박·햇살투어와 독도 스페셜 등 다양한 주제로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다.추산일가나 대아호텔 등에서 잠을 자고 약소불고기,명이나물 쌈밥,오징어 더덕구이 등을 먹을 수 있는 고급상품으로 약간 값이 비싸다.2박 3일에 33만원에서 36만원선.1544-7644,www.outdoor7.com. 비타민여행사(02-736-9111),대아여행사(02-514-6766) 등은 2박 3일에 28만원 선.˝
  • 길 위에서 쓴 편지/허만하 글

    19세기 프랑스의 천재 시인 아르튀르 랭보는 시인을 ‘견자(見者)’에 비유했다.모든 감각을 열어서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현상 너머의 본질을 캐는 통찰력을 시인의 주요 덕목으로 강조한 것.허만하 시인의 ‘길 위에서 쓴 편지’(솔 펴냄)는 이런 통찰력이 잘 스며들어 있는 산문집이다. 허 시인은 지난 1999년 30년 만에 두번째 시집 ‘비는 수직으로 죽는다’를 낸 뒤 문명과 역사에 대한 혜안이 담긴 시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이산문학상·청마문학상 등을 수상했다.그에게 따라 다니는 수식어 ‘깊이 생각하는 시인’‘부박한 문학적 속도전에 대한 저항’ 등의 찬사는 그가 지닌 사유의 깊이를 반영하는데,이 경지는 시 뿐만 아니라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등 산문집에도 잘 녹아 있다.풍부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뿜어내는 다상량(多商量)으로 유명한 그의 산문은 한층 여유있고 그윽하다. 시인은 “끊임없이 미지(未知)의 길 위에 서고 시시각각 새로운 감수성으로 세계를 받아들이고 싶었다.”는 바람을 담아 길을 나선다.계절의 변화를 따라다니며 강원도,남해,제주도 등지를 걷는다.유명 사찰에서부터 이름없는 산골·바닷가 마을 등 구석구석을 구도자처럼 순례하며 길어 올린 사색의 편린을 39편의 글로 묶었다. ‘시의 길’이기도 한 그 길 위에서 시인은 길과 묻고 대답한다.때로는 한시에서 읽은 지명을 찾아가 얼굴도 모르는 그 시인의 모습을 얹어 공상에 잠긴다.또 추사 김정희의 귀양길을 더듬으며 고결한 예술정신을 추념하기도 하고 이름없는 촌로들의 지혜에서 시심(詩心)을 배운다.굴을 까는 아주머니에게서 갯내가 물씬거리는 ‘현장의 동사(動詞)’를 배우기도 한다.경북 김천 부항재 어귀를 지나다 한 늙은이에게 그 고장 단풍에 대해 물었다가 “산은 움직이지 않는다.가을이 저 혼자 찾아 왔다 떠나는 것이지.”라는 대답을 듣고 그 말의 무게에 놀라 “그가 진짜 시인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잠시 멍했던 경험도 들려준다. 산문집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시인의 통찰력은 그의 ‘시원(詩源)’을 잘 보여준다.남들이 매화를 보고 봄의 생명력을 찬양할 때 시인은 홀로 ‘황갈색 겨울’의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예찬한다. 또 오지(奧地)라는 말에서 “아름다움이 스스로를 숨기고 있는 향기”를 맡고 하동 땅 대숲 바람소리에서는 “변경에서 시를 쓰는 외로움을 맑은 긍지로 삼으라는 귀띔”을 듣는다.사진가인 관조 스님과 시인이 찍은 사진이 글의 향기를 더해준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김보일의 영화 속 수능잡기]‘트루먼쇼’

    자,인터넷으로 금강산을 구경하자.말로만 듣던 금강산,맑은 계곡물에 가슴이 시원타.금강산에 설치된 CCTV는 쉼 없이 돌아가며 금강산의 이모저모를 보여준다.앉아서도 금강산을 느낄 수 있으니 바로 이런 것이 인터넷 혁명이요,이런 시대가 테크노피아 아닌가? 아,그런데 CCTV에 비친 저 사람이 누구지? 저 분은 바로 2학년 때,우리 담임 선생님?! 인터넷으로 금강산을 여행하시는 선생님을 볼 수 있다니.그런데 선생님 옆에서 즐겁게 웃고 있는 저 여자분은 누구지? 내 기억으로는 분명 사모님은 아닌데.어째 수상타.안되겠다.이 화면을 캡처해서 e메일로 친구들에게 보내 물어보자고.“얘들아,선생님 곁에 계시는 분 사모님 맞냐?” 오우,선생님의 사생활이 여지없이 학생들에게 드러나는 순간이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자분은 선생님의 처제란다.오마이갓,그 파일이 인터넷으로 퍼졌을 때,동창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으윽,선생님이 저러실 수가,얼마나 욕을 했는데….) 어떤 구청에서 CCTV를 설치했다.고궁의 아름다운 모습도 보여주고,가을 산의 단풍도 보여주니 얼마나 좋은가.게다가 주민들의 생동감 있는 삶도 보여주고,범죄도 막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그러나 CCTV는 인권보호 차원에서 당장 철거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초상권은 사적 공간에서의 권리만큼 강하게 지켜지지는 못하는 측면이 있지만 보호돼야 할 권리임은 분명하다는 것.쉽게 말해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을 권리가 내게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드러내고 싶은 부분도 있고,감추고 싶은 부분도 있다.내 생활의 모든 것이 타인의 시선 앞에 남김없이 드러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끔찍한 일이다.방문을 걸어 잠그고 옷을 훌러덩 벗고 춤을 춘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사생활이니 남이 간섭할 것은 없다.문제는 나의 행위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때다.나의 사생활이 타인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도 그것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나의 삶,그 모두가 하나의 ‘쇼’였다면 어떨까.내 생활의 모두를 타인이 보면서 즐기고 있다면 어떨까.몰래 카메라가 도처에서 작동하며 나의 생활을 남김없이 세계에 생중계를 한다면 어떨까.암만 생각해도 영화 ‘트루먼쇼’의 현실은 끔찍하다.모든 렌즈여,나를 함부로 찍지 마라. 서울 배문고 교사 desert44@hitel.net˝
  • [김보일의 영화 속 수능잡기]‘트루먼쇼’

    자,인터넷으로 금강산을 구경하자.말로만 듣던 금강산,맑은 계곡물에 가슴이 시원타.금강산에 설치된 CCTV는 쉼 없이 돌아가며 금강산의 이모저모를 보여준다.앉아서도 금강산을 느낄 수 있으니 바로 이런 것이 인터넷 혁명이요,이런 시대가 테크노피아 아닌가? 아,그런데 CCTV에 비친 저 사람이 누구지? 저 분은 바로 2학년 때,우리 담임 선생님?! 인터넷으로 금강산을 여행하시는 선생님을 볼 수 있다니.그런데 선생님 옆에서 즐겁게 웃고 있는 저 여자분은 누구지? 내 기억으로는 분명 사모님은 아닌데.어째 수상타.안되겠다.이 화면을 캡처해서 e메일로 친구들에게 보내 물어보자고.“얘들아,선생님 곁에 계시는 분 사모님 맞냐?” 오우,선생님의 사생활이 여지없이 학생들에게 드러나는 순간이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자분은 선생님의 처제란다.오마이갓,그 파일이 인터넷으로 퍼졌을 때,동창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으윽,선생님이 저러실 수가,얼마나 욕을 했는데….) 어떤 구청에서 CCTV를 설치했다.고궁의 아름다운 모습도 보여주고,가을 산의 단풍도 보여주니 얼마나 좋은가.게다가 주민들의 생동감 있는 삶도 보여주고,범죄도 막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그러나 CCTV는 인권보호 차원에서 당장 철거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공공장소에서의 초상권은 사적 공간에서의 권리만큼 강하게 지켜지지는 못하는 측면이 있지만 보호돼야 할 권리임은 분명하다는 것.쉽게 말해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을 권리가 내게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드러내고 싶은 부분도 있고,감추고 싶은 부분도 있다.내 생활의 모든 것이 타인의 시선 앞에 남김없이 드러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끔찍한 일이다.방문을 걸어 잠그고 옷을 훌러덩 벗고 춤을 춘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사생활이니 남이 간섭할 것은 없다.문제는 나의 행위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때다.나의 사생활이 타인에게 어떠한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도 그것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나의 삶,그 모두가 하나의 ‘쇼’였다면 어떨까.내 생활의 모두를 타인이 보면서 즐기고 있다면 어떨까.몰래 카메라가 도처에서 작동하며 나의 생활을 남김없이 세계에 생중계를 한다면 어떨까.암만 생각해도 영화 ‘트루먼쇼’의 현실은 끔찍하다.모든 렌즈여,나를 함부로 찍지 마라. 서울 배문고 교사 desert44@hitel.net
  • 금강산 당일치기관광 출발~

    금강산 당일치기관광 출발~

    금강산이 더 가까워졌다.지난 98년 동해항∼장전항 해로 코스로 시작된 금강산 관광이,속초∼고성항 해로 관광,2박3일 및 1박2일 육로관광에 이어 마침내 당일 코스로 이루어지게 된 것.7월 초 본격 시작에 앞서 15일 진행된 당일 시범관광을 다녀왔다. “아침에 들어갔다가 저녁에 나온단 말이야?세상 많이 좋아졌네.” 지난 15일 이른 아침 동해 남북출입사무소 앞.금강산 당일 시범관광에 나선 이들의 표정엔 설레임이 역력하다. 남측 출입사무소에서의 수속은 그야말로 속전속결.신분확인과 세관 검사,검색대 통과까지,200명 이상이 한꺼번에 몰렸음에도 채 15분도 안 걸린다. 다시 관광버스에 올라 북쪽으로 향했다.남방한계선까지 가는 길은 굴곡이 심하고 험하다.본격적인 당일 관광을 앞두고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물샐틈 없는 3중 철책으로 이루어진 남방한계선 앞에 서니 엄연한 남북 분단 현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길 양편 비무장지대는 관목숲이 우거져 마치 초록 카펫을 깔아놓은 것 같다.버스 밖에 드문드문 서서 ‘혹시 사진이라도 찍지 않을까’하고 감시하는 인민군들의 눈초리가 날카롭다. 북방한계선을 지나자 북측 군인들이 차를 세우고 버스에 올라온다.인원이 맞는지,위험한 물품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내려간다.여기부터 입국 심사가 이루어지는 장전항까지 가는 길은 일사천리다.길 오른쪽으로 멀찌감치 금강산의 암봉들이 줄을 선 가운데,길 양편은 평탄한 벌판이다.남쪽에선 이미 20여년 전 자취를 감춘 일소가 여기저기서 밭을 간다. 논밭 군데군데서 일손을 멈춘 채 이야기를 나누는 여인네들,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물끄러미 남측의 관광버스를 구경하는 아이들까지,바쁜 기색은 없고 그저 느릿한 일상이 느껴진다. 고성항에서의 입국심사는 여전히 까다로워,40∼50분쯤 걸리는 것같다.시간이 오래 지체되다 보니 관광객들도 지루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심사를 모두 끝낸 시간은 오전 9시40분.남측의 출입사무소에 7시20분경 도착했으니 출입국 절차와 잠깐의 이동시간까지 모두 2시간20분쯤 걸린 셈이다. 산행코스는 온정각에서 갈린다.구룡연,만물상,세존봉,삼일포·해금강 등 4개의 개방코스중에서 구룡연 코스를 택했다.이곳부터 구룡연 산행이 시작되는 곳까지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간다. 옥류동을 거쳐 구룡연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은 금강산 계곡길의 백미다.외금강의 3대 절경이라는 구룡연과 옥류동,만물상 중 2개를 품고 있는 곳. 휴게소격인 목란관을 지나자 산행이 본격 시작된다.계곡 반대편으로 하관음봉,중관음봉,상관음봉이 차례로 이어지고,암벽에 인위적으로 분재를 꼽아놓은 듯한 소나무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옥류동 못미쳐 등산로 왼쪽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바위에 사람들이 몰려 물을 받고 있다.산삼과 녹용물이 흘러내린다는 ‘삼록수’다.물이 바위를 따라 얇게 펴진 채 내려오기 때문에 물을 받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넓적한 나뭇잎을 대고 끝을 오무려 물병 주둥이를 갖다대니 훨씬 수월하다.한모금 마셔보니 뭐랄까,산삼 녹용까지는 몰라도 약초 뿌리 냄새가 제법 나는 것같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다리 앞에 젊은 북한 여성이 좌판을 깔아놓고 ‘호객행위’에 여념이 없다. “오이 하나 먹고 가시라요,조선엿도 맛이 아주 좋아요.” 예상치 못했던 생경한 풍경에 사람들이 신기한 듯 모여 있다.좌판위 물건은 오이와 과일,엿,음료수 등 7∼8가지가 전부. 물어보니 한 달 전쯤부터 이같은 좌판이 생겼다고 한다.재미있는 것은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아가씨들이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적극적으로 호객을 한다는 것.사진을 한 장 찍자고 하니 “봉사중엔 절대 사진 찍을 수 없다.”며 완강히 거부한다. 옥류동은 그야말로 신선이 노닐 만한 선경이다.완만한 경사를 이룬 바위를 따라 흘러내리는 계류가 마치 비단폭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흘러내린 물이 모인 에메랄드 빛의 옥류담은 너무 맑고 투명해 눈이 시릴 정도. 이곳저곳의 비경을 사진에 담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했나보다.시계를 보니 돌아갈 시간이 촉박해 구룡연은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바쁜 당일관광이라고 해도 온정리의 온천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입장료(12달러)는 다소 비싸지만,비싼 값을 하는 게 금강산온천이다.산행뒤 온천욕을 하며 맛보는 청량감은 표현이 어려울 만큼 시원하다. 이곳 온천수는 용출 지표수 온도가 70도에 이르는데,이는 남북한의 온천중 최고라고 한다.노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눈 앞에 펼쳐진 금강의 비경을 감상하는 것은 금강산 여행자만의 특권이다. 글 금강산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세존봉................. 구룡연.... 옥류동.... 만물상........ 굽이.. 굽........ 이 해금강.... 삼일포.......... 온정리 노천온천에 풍.....덩.. 풍..덩 금강산 당일관광은 6월말이나 7월초에 일반 관광객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된다.이에 따라 19일부터 시작된 1박2일 관광 및 이미 시행중인 2박3일 관광까지 3가지 일정별로 선택이 가능하게 됐다. 오전 7시 남측 CIQ를 출발해 금강산 코스(구룡연,만물상 중 선택)를 돌아본 뒤 온천욕 후 오후 5시에 북측 CIQ를 출발해 돌아오는 일정이다. 요금은 성인 12만원,초중고생 9만원.하지만 당분간 성인은 9만 9000원,초중고생은 7만 9000원의 특별요금을 받을 예정이다.상품을 판매하는 현대아산측은 대진항 인근의 금강산콘도를 출발해 DMZ를 넘어 금강산을 돌아본 뒤 다시 콘도까지 돌아오는 일정까지만 책임진다. 따라서 콘도까지의 교통편은 여행사의 연계상품을 이용하거나 본인이 직접 차를 몰고 가야 한다.온천욕(12달러)과 식사(온정각내 한식부페,10달러) 비용은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당일 관광은 하루에 금강산의 비경을 맛보고 돌아올 수 있다는 매력은 있지만 여전히 까다로운 출입국 절차가 풀어야 할 숙제다.시범관광에 나서보니 남과 북의 출입국 절차와 DMZ 통과에 왕복 4시간 정도가 소요됐다.일정이 빠듯한 당일 관광에선 시간 낭비가 지나치다.관광객들이 금강산 일원의 특정구역만 오갈 수 있는 현실을 감안해 북한측이 출입국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야 관광객이 몰릴 것 같다. 1박2일 상품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19일 시작됐다.지난 3월과 4월 두차례 시범관광을 실시한 결과 관광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는 것이 현대아산측의 설명이다.우선 토·일요일 주 2회 출발하며,방학이 시작되면 매일 출발하게 된다.요금은 호텔해금강이나 금강펜션타운에 묵을 경우 23만원(7∼8월 기준),초중고생이 학생 야영장을 이용하면 9만 5000원에서 12만원.현재 시행중인 2박3일 관광은 매일 출발할 수 있다.요금은 해금강호텔이나 펜션에 묵을 경우 35만원.휴가 성수기(7월24일부터 8월 초순까지)는 39만원,단풍철엔 44만원이다.콘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빌리지에 묵으면 26만∼38만원. 출발일 기준 10일 전에 현대아산 영업부나 금강산관광 대리점에 예약해야 한다. (02)3669-3000,www.mtkumgang.com.
  • 금강산 당일치기관광 출발~

    금강산이 더 가까워졌다.지난 98년 동해항∼장전항 해로 코스로 시작된 금강산 관광이,속초∼고성항 해로 관광,2박3일 및 1박2일 육로관광에 이어 마침내 당일 코스로 이루어지게 된 것.7월 초 본격 시작에 앞서 15일 진행된 당일 시범관광을 다녀왔다. “아침에 들어갔다가 저녁에 나온단 말이야?세상 많이 좋아졌네.” 지난 15일 이른 아침 동해 남북출입사무소 앞.금강산 당일 시범관광에 나선 이들의 표정엔 설레임이 역력하다. 남측 출입사무소에서의 수속은 그야말로 속전속결.신분확인과 세관 검사,검색대 통과까지,200명 이상이 한꺼번에 몰렸음에도 채 15분도 안 걸린다. 다시 관광버스에 올라 북쪽으로 향했다.남방한계선까지 가는 길은 굴곡이 심하고 험하다.본격적인 당일 관광을 앞두고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물샐틈 없는 3중 철책으로 이루어진 남방한계선 앞에 서니 엄연한 남북 분단 현실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길 양편 비무장지대는 관목숲이 우거져 마치 초록 카펫을 깔아놓은 것 같다.버스 밖에 드문드문 서서 ‘혹시 사진이라도 찍지 않을까’하고 감시하는 인민군들의 눈초리가 날카롭다. 북방한계선을 지나자 북측 군인들이 차를 세우고 버스에 올라온다.인원이 맞는지,위험한 물품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내려간다.여기부터 입국 심사가 이루어지는 장전항까지 가는 길은 일사천리다.길 오른쪽으로 멀찌감치 금강산의 암봉들이 줄을 선 가운데,길 양편은 평탄한 벌판이다.남쪽에선 이미 20여년 전 자취를 감춘 일소가 여기저기서 밭을 간다. 논밭 군데군데서 일손을 멈춘 채 이야기를 나누는 여인네들,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물끄러미 남측의 관광버스를 구경하는 아이들까지,바쁜 기색은 없고 그저 느릿한 일상이 느껴진다. 고성항에서의 입국심사는 여전히 까다로워,40∼50분쯤 걸리는 것같다.시간이 오래 지체되다 보니 관광객들도 지루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심사를 모두 끝낸 시간은 오전 9시40분.남측의 출입사무소에 7시20분경 도착했으니 출입국 절차와 잠깐의 이동시간까지 모두 2시간20분쯤 걸린 셈이다. 산행코스는 온정각에서 갈린다.구룡연,만물상,세존봉,삼일포·해금강 등 4개의 개방코스중에서 구룡연 코스를 택했다.이곳부터 구룡연 산행이 시작되는 곳까지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간다. 옥류동을 거쳐 구룡연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은 금강산 계곡길의 백미다.외금강의 3대 절경이라는 구룡연과 옥류동,만물상 중 2개를 품고 있는 곳. 휴게소격인 목란관을 지나자 산행이 본격 시작된다.계곡 반대편으로 하관음봉,중관음봉,상관음봉이 차례로 이어지고,암벽에 인위적으로 분재를 꼽아놓은 듯한 소나무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옥류동 못미쳐 등산로 왼쪽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바위에 사람들이 몰려 물을 받고 있다.산삼과 녹용물이 흘러내린다는 ‘삼록수’다.물이 바위를 따라 얇게 펴진 채 내려오기 때문에 물을 받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넓적한 나뭇잎을 대고 끝을 오무려 물병 주둥이를 갖다대니 훨씬 수월하다.한모금 마셔보니 뭐랄까,산삼 녹용까지는 몰라도 약초 뿌리 냄새가 제법 나는 것같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다리 앞에 젊은 북한 여성이 좌판을 깔아놓고 ‘호객행위’에 여념이 없다. “오이 하나 먹고 가시라요,조선엿도 맛이 아주 좋아요.” 예상치 못했던 생경한 풍경에 사람들이 신기한 듯 모여 있다.좌판위 물건은 오이와 과일,엿,음료수 등 7∼8가지가 전부. 물어보니 한 달 전쯤부터 이같은 좌판이 생겼다고 한다.재미있는 것은 인센티브제를 도입해 아가씨들이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적극적으로 호객을 한다는 것.사진을 한 장 찍자고 하니 “봉사중엔 절대 사진 찍을 수 없다.”며 완강히 거부한다. 옥류동은 그야말로 신선이 노닐 만한 선경이다.완만한 경사를 이룬 바위를 따라 흘러내리는 계류가 마치 비단폭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흘러내린 물이 모인 에메랄드 빛의 옥류담은 너무 맑고 투명해 눈이 시릴 정도. 이곳저곳의 비경을 사진에 담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소비했나보다.시계를 보니 돌아갈 시간이 촉박해 구룡연은 포기하고 발길을 돌렸다. 바쁜 당일관광이라고 해도 온정리의 온천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입장료(12달러)는 다소 비싸지만,비싼 값을 하는 게 금강산온천이다.산행뒤 온천욕을 하며 맛보는 청량감은 표현이 어려울 만큼 시원하다. 이곳 온천수는 용출 지표수 온도가 70도에 이르는데,이는 남북한의 온천중 최고라고 한다.노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눈 앞에 펼쳐진 금강의 비경을 감상하는 것은 금강산 여행자만의 특권이다. 글 금강산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세존봉................. 구룡연.... 옥류동.... 만물상........ 굽이.. 굽........ 이 해금강.... 삼일포.......... 온정리 노천온천에 풍.....덩.. 풍..덩 금강산 당일관광은 6월말이나 7월초에 일반 관광객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된다.이에 따라 19일부터 시작된 1박2일 관광 및 이미 시행중인 2박3일 관광까지 3가지 일정별로 선택이 가능하게 됐다. 오전 7시 남측 CIQ를 출발해 금강산 코스(구룡연,만물상 중 선택)를 돌아본 뒤 온천욕 후 오후 5시에 북측 CIQ를 출발해 돌아오는 일정이다. 요금은 성인 12만원,초중고생 9만원.하지만 당분간 성인은 9만 9000원,초중고생은 7만 9000원의 특별요금을 받을 예정이다.상품을 판매하는 현대아산측은 대진항 인근의 금강산콘도를 출발해 DMZ를 넘어 금강산을 돌아본 뒤 다시 콘도까지 돌아오는 일정까지만 책임진다. 따라서 콘도까지의 교통편은 여행사의 연계상품을 이용하거나 본인이 직접 차를 몰고 가야 한다.온천욕(12달러)과 식사(온정각내 한식부페,10달러) 비용은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당일 관광은 하루에 금강산의 비경을 맛보고 돌아올 수 있다는 매력은 있지만 여전히 까다로운 출입국 절차가 풀어야 할 숙제다.시범관광에 나서보니 남과 북의 출입국 절차와 DMZ 통과에 왕복 4시간 정도가 소요됐다.일정이 빠듯한 당일 관광에선 시간 낭비가 지나치다.관광객들이 금강산 일원의 특정구역만 오갈 수 있는 현실을 감안해 북한측이 출입국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야 관광객이 몰릴 것 같다. 1박2일 상품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19일 시작됐다.지난 3월과 4월 두차례 시범관광을 실시한 결과 관광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는 것이 현대아산측의 설명이다.우선 토·일요일 주 2회 출발하며,방학이 시작되면 매일 출발하게 된다.요금은 호텔해금강이나 금강펜션타운에 묵을 경우 23만원(7∼8월 기준),초중고생이 학생 야영장을 이용하면 9만 5000원에서 12만원.현재 시행중인 2박3일 관광은 매일 출발할 수 있다.요금은 해금강호텔이나 펜션에 묵을 경우 35만원.휴가 성수기(7월24일부터 8월 초순까지)는 39만원,단풍철엔 44만원이다.콘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빌리지에 묵으면 26만∼38만원. 출발일 기준 10일 전에 현대아산 영업부나 금강산관광 대리점에 예약해야 한다. (02)3669-3000,www.mtkumgang.com.˝
  • ‘도심공원’ 구청, 바람쐬러 가자

    회사원 이상대(44)씨는 친구,거래처 관계자들과의 약속장소로 서울시청 뒤뜰을 자주 이용한다.직장이 인근 무교동인 데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꽃들이 만발한 정원에 편안히 쉴 수 있는 벤치도 많아 만남의 장소로는 그만이다.더구나 서울광장의 잔디밭을 걸으며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 광장의 분수와 덕수궁의 수문장 교대식,금요음악회 등 볼거리도 쏠쏠해 만나는 상대방도 아주 만족해 한다.이씨처럼 시청이나 구청 등 행정관서를 만남의 장소나,쉼터로 활용하는 시민들이 부쩍 늘고 있다.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 바람’과 주민 곁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가려는 ‘서비스정신’이 어우러져 일선 구청이 문화·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라도 찾을수 있어 왕십리에 위치한 성동구청 광장에는 작은 연못 크기의 분수대가 주민들을 유혹한다.화려하지 않지만 시원한 물줄기를 뿜으며 일상에 지친 주민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는다.주변에는 사방으로 돌벤치가 있어 편하게 앉아 사색도 할 수 있다.‘야외무지개 분수광장’으로 불리며 24시간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특히 3∼4m 떨어진 지점에는 200석 규모의 문화마당도 자리하고 있어 크고 작은 행사장으로 그만이다. 지난달 새 청사 개청과 함께 ‘호프데이’,‘구청장과의 대화’ 등 1개월동안 계속된 축하행사의 주무대로 활용되면서 주민들의 뇌리에 휴식·문화공간으로 각인됐다. ●새들이 지저귀는 푸른쉼터 광진구청은 40∼50년생 단풍나무,은행나무 등 1000여그루의 나무숲으로 에워싸여 있다.8년 전 청사 담장을 허물고 조성한 숲이다.1000여평에 달하는 숲속에는 딸기,보리 등 도심 속에서는 보기 어려운 농작물과 식물,꽃들이 풍성하다.공작새,참새,십자매 등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찾는 이에게 자연을 전한다.한편에는 어릴적 시골에서나 볼 수 있었던 원두막도 만들어져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도 인기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숲 여기저기에는 철봉과 역기 등 간단한 운동기구들도 설치된 데다 140m에 달하는 산책로에는 맨발지압보도까지 마련돼 주민들은 이곳을 ‘푸른 쉼터’로 부른다.손녀와 함께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황영심(자양동·65) 할머니는 “은행나무가 우거진 산책로를 걷다보면 수목원이 부럽지 않다.”고 자랑했다. ●음악이 흐르는 풍경 도봉구청의 지하 1층에 마련된 ‘실내 아트리움’은 전용면적 131평의 넓은 공간이 푸른 대나무와 실내분수 등으로 꾸며져 있다.특히 이곳에서는 매주 화요일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플루트와 클래식기타로 ‘정오음악회’가 열려 주민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하고 있다.광진구청의 푸른쉼터에도 잔잔한 음악이 하루종일 흐른다.야외 스피커가 설치돼 음악을 통해 지역주민들에게는 친근한 이미지를,직원들에게는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서울시청 뒤뜰에서는 금요일마다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아마추어 재즈그룹에서부터 경찰악단,서울시향 등 전문 음악인들이 펼치는 수준높은 연주와 노래로 문턱높은 관청의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오히려 도심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 서초구청은 주말이면 벼룩시장으로 변신한다.평소 주민들의 휴식공간이나 청소년들의 농구장 등으로 사용되던 구청광장이 주말이면 어김없이 상인들과 주민들로 꽉찬다.물건을 사고팔고,바꾸려는 주민들이 5000명이 넘을 정도로 시골 장터를 방불케 한다.이에 비해 도봉구청은 좀더 우아한 멋을 즐길 수 있다.지하 2층,지상 16층이나 되는 최신식 건물 맨 위층에는 ‘스카이라운지’가 있다.주민들은 외식장소로 이곳을 찾아 한눈에 들어오는 도봉산,북한산,수락산,중랑천,동부간선도로 등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전망을 즐긴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8) 남한산성에 숨겨진 이야기

    경기도 광주 땅에 있는 남한산(南漢山)의 남한산성은 오늘날 서울 사람들에게는 다소 흥청거리는 유원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에는 주로 군대생활 중 과오를 범한 사람들을 격리 수용하는 뜻으로 ‘남한산성 간다.’는 말이 졸병들 사이에서 회자된 적도 있었다.실제로 서울 사람들은 휴일이나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여러 종류의 모임을 갖거나 특별한 만남을 위하여 남한산성 일대에 들어 서 있는 유흥 음식점을 많이 이용한다. 울창한 숲,사방으로 툭 트인 주변 풍광과 높다란 성벽 아래로 이어진 산길,군데군데 남아 있는 사찰들,천주교도 박해 현장,숲속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봄철의 연록색 숲과 가을철의 불타는 단풍은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남한산은 서울분지를 끼고 동쪽 지맥인 수락산 불암산과 동남으로 이어져 있고,서울의 북쪽 북한산과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지형이다. 삼국시대 때부터 천연요새지에 성을 쌓아왔기 때문에 산성(山城)의 산으로 잘 알려져 왔는데,신라가 백제 정복 후인 672년 기존하던 산성을 손보아 주장산성(晝長山城)이라 불렀다.이것이 오늘날 남한산성의 밑그림인 셈이다.본격적인 군사요새로서 서울의 임금까지 피신하여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기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1624년(인조2)부터 2년 동안 대대적인 성벽 공사를 하고 난 뒤부터였다. ●1626년 日·청 침략대비 위해 축성 1626년(인조4)에 전혀 새로운 산성으로 완성된 남한산성은,1592년부터 7년여 동안이나 혹독한 일본군의 침략에 대한 때늦은 반성과 북쪽에서 무섭게 확장되고 있는 청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따라서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쌓은 어떤 성보다 국가가 위급할 때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게되리라는 판단에 따라서 쌓은 요새였다. 이같이 중요한 군사시설을 설치하면서 조선 정부는 그 책임을 엉뚱하게도 당시의 군인이나 전문가들이 아닌 승려들에게 떠맡겼다.승려들이 사찰에서 종교적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요새를 만드는 중노동판에 끌려나와서 노예처럼 돌을 나르고 성벽을 쌓았다는 사실은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비밀이자 조선 성리학 이데올로기가 낳은 종교탄압의 역사였다.이런 사실에 대하여 ‘인조실록’과 ‘정조실록’은 매우 상세하게 당시 사정을 기록하여 전하고 있다. 인조(仁祖) 임금은 남한산성을 쌓기 위하여 승려들을 강제 동원해야 한다는 대신들의 주장을 따랐다.정부의 모든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유생들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서울 방위를 맞게 될 남한산성을 새로 쌓아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유생들 자신과 그들 자식들을 성 쌓는 일에 내보낼 수는 없었다.군인과 승려들을 동원시키되 비용을 줄이고 불평을 없애기 위해서는 군인보다 승려들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군인을 내보낼 경우에는 필요한 양식과 자재를 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모두 국가에서 책임져야 했다.또한 군인 중에는 양반 사대부와 끈이 닿는 사람도 있어서 온갖 청탁과 압력이 들어오게 마련이어서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승려들이라면 문제는 간단했다.불교와 승려는 유교 이념인 충(忠)과 효(孝)를 부정하는 중죄인이기 때문에 승려들은 아무리 학대하고 짓밟아도 괜찮다고 판단했다.승려들을 강제동원시키면서 각자 먹을 식량을 스스로 마련하게 하고,성 쌓는 데 드는 장비와 비용도 알아서 준비하도록 명령하면 그만이었다. 그 무엇보다 유생들의 관심을 끈 것은 성쌓기에 동원된 승려들이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혼신을 기울여 일을 하기 때문에 작업 능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었다.승려들은 어느 곳에서든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했다.불교 계율을 위배하지 않는 한 중생을 위하는 일을 하는 것은 곧 진정한 보살정신의 실천이며 자기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어차피 먹는 일은 하루 두 끼니면 족한 것이 승려의 계율이었다.아침에는 죽을 조금만 먹고,정오 무렵에는 허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음식만 먹으면 족했다.오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옷과 잠자리는 수행에 지장이 되고,세상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한 괜찮았다.넝마 조각을 걸쳐도 되고,칼날 위에서 자도 괜찮았다.이런 배경으로 전국의 승려들이 동원되었다.승려들을 지휘하여 성벽 쌓는 일을 총책임지도록 하는 인물이 필요했다.적임자로 떠오른 사람이 각성(覺性·1575∼1660)이라는 승려였다.인조는 각성에게 8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란 직위를 주면서 조선의 모든 승려들을 동원하여 성을 쌓으라고 명령했다.‘총섭’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위기를 구한 서산대사에게 선조 임금이 승군의 총지휘를 부탁하면서 내렸던 데 기원을 둔 것이다. 남한산성 쌓는 공사가 시작되자 8도도총섭에 임명된 각성은 각 도마다 승려 숫자를 배정하고 정해진 날짜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공문을 각 도의 관찰사에게 보냈다.그러자 유생들이 즉각 반발했다.감히 승려 따위가 유생인 관찰사에게 명령하듯 한다는 것이었다.승려와 불교에 대한 차별의식과 유생의 자존심 때문이었다.유생들의 거듭되는 반대 앞에서 인조는 괴로워했다.언제는 승려들에게 책임을 맡기자고 하더니,이제 와서는 승려들은 노동만 하고 지휘는 유생들이 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이렇듯 유생들의 불교에 대한 증오심과 승려들을 탄압하려는 지속적인 편견 속에서 남한산성 공사는 강행되었다. 전국의 승려들은 말없이 공사를 해나갔다.만약 승려들이 이를 거부하면 농민들이 대신 끌려나와야 할 것이고,그리되면 가난한 농민들의 고통은 더욱 더 커질 것임은 분명했다.승려들은 이같은 미래의 일들까지 고려하면서 묵묵히 성 쌓는 일로 수행을 대신했다. ●유생들 불교 증오… 승려탄압 계속 성 안에는 장차 산성수비에 필요한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 9개의 사찰도 지었다.망월사,옥정사,개원사,한흥사,국청사,장경사,천주사,동림사,영원사였는데,개원사는 도총섭이 머무는 지휘소였고 나머지는 전국에서 온 승군들 숙소로 썼다. 2년 동안의 쉼 없는 공사 끝에 성이 완성되었다.그동안 공사에 나온 승려들 중에는 질병과 배고픔 또는 사고 등으로 죽어간 사람이 적지 않았다.남한산성 곳곳에서는 죽은 승려들의 주검을 화장시키는 연기가 피어올랐고,비참하게 죽은 도반의 기구한 생애를 슬퍼하는 승려들의 염불 목탁소리가 거의 날마다 들려왔다.그렇게 성이 완공되고 나자 다시 문제가 생겼다.남한산성을 지키는 일이었다.유생들은 다시 승려들에게 남한산성 수비를 맡기자고 했다.그러면서 수비에 임하는 승려들로 하여금 수비에 필요한 식량,의복,땔감,의약품 등을 승려들의 책임으로 떠맡겨 버리자고 했다.결국 조선의 정치를 완전히 장악한 유생들의 뜻대로 결정되었다.식량은 군인들에게 먹이기 위해 농민들로부터 징수한 것을 나눠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불교탄압 정책을 밀어 붙여온 강경파 유생들은 그것마저도 나눠줄 수 없다고 결정했다.결국 남한산성을 수비하기 위해 승군(僧軍)이 조직되었다.각 도마다 승군으로 나갈 승려 숫자가 배당되었다.일 년에 여섯 차례씩 교대해야 하는 승려들은 식량,옷,약 등 생활비 전액을 승려 자신이 마련해서 두 달 동안 남한산성에 머물러야 했다.남한산성에 나가는 일을 번상(番上)한다고 불렀다. 큰 절은 4∼5명,작은 절은 1∼2명 씩의 승려를 내보내야 했다.한 명의 행장을 꾸리는 데 약 100금(金)이 들었다.결국 한 사찰에서 해마다 400∼500금의 비용을 책임지게 되자 그 폐단은 점점 커졌다.폐단이 커지자 승군이 직접 서울로 오는 대신 한 사람마다 돈 16냥을 내고,정부는 그 돈으로 사람을 사서 성을 지키도록 하는 ‘의승방번전(義僧防番錢)’이란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2년공사… 城곳곳에 승려 火葬 연기 그러나 이 돈 역시 극단적인 탄압을 받으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사찰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형벌이었다.승려들에게는 심각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뒷날 북한산성까지 승려들을 수탈하여 수비부담을 지우게 되자 전국의 사찰은 차츰 폐허로 변해갔다.의승방번전 부담을 견디다 못해 사찰의 재산을 처분하면서까지 의무를 다했지만 갈수록 중압감이 커지자 승려들은 머리를 기르고 환속해 버렸다. 이같은 제도는 결국 불교를 쇠퇴하게 하고 승려들을 세속으로 달아나게 만들었다.그런데도 1626년에 시작된 이 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계속되면서 승려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고,조선에서 불교가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한 유생들의 종교탄압이었다.그후 조선 유생들은 조선이 일본의 노예국이 되는 데 앞장을 섰고 일본은 조선 불교를 철저하게 파괴했다.남한산성의 저 짙은 녹음 속에는 270여년간 계속된 종교탄압 정책 아래서 신음하던 승려들의,인간이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처절한 외침이 묻어 있을 것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8) 남한산성에 숨겨진 이야기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8) 남한산성에 숨겨진 이야기

    경기도 광주 땅에 있는 남한산(南漢山)의 남한산성은 오늘날 서울 사람들에게는 다소 흥청거리는 유원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그리고 그리 멀지 않은 지난날에는 주로 군대생활 중 과오를 범한 사람들을 격리 수용하는 뜻으로 ‘남한산성 간다.’는 말이 졸병들 사이에서 회자된 적도 있었다.실제로 서울 사람들은 휴일이나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여러 종류의 모임을 갖거나 특별한 만남을 위하여 남한산성 일대에 들어 서 있는 유흥 음식점을 많이 이용한다. 울창한 숲,사방으로 툭 트인 주변 풍광과 높다란 성벽 아래로 이어진 산길,군데군데 남아 있는 사찰들,천주교도 박해 현장,숲속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봄철의 연록색 숲과 가을철의 불타는 단풍은 훌륭한 관광자원이다. 남한산은 서울분지를 끼고 동쪽 지맥인 수락산 불암산과 동남으로 이어져 있고,서울의 북쪽 북한산과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지형이다. 삼국시대 때부터 천연요새지에 성을 쌓아왔기 때문에 산성(山城)의 산으로 잘 알려져 왔는데,신라가 백제 정복 후인 672년 기존하던 산성을 손보아 주장산성(晝長山城)이라 불렀다.이것이 오늘날 남한산성의 밑그림인 셈이다.본격적인 군사요새로서 서울의 임금까지 피신하여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기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은 1624년(인조2)부터 2년 동안 대대적인 성벽 공사를 하고 난 뒤부터였다. ●1626년 日·청 침략대비 위해 축성 1626년(인조4)에 전혀 새로운 산성으로 완성된 남한산성은,1592년부터 7년여 동안이나 혹독한 일본군의 침략에 대한 때늦은 반성과 북쪽에서 무섭게 확장되고 있는 청나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따라서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에 쌓은 어떤 성보다 국가가 위급할 때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 역할을 하게되리라는 판단에 따라서 쌓은 요새였다. 이같이 중요한 군사시설을 설치하면서 조선 정부는 그 책임을 엉뚱하게도 당시의 군인이나 전문가들이 아닌 승려들에게 떠맡겼다.승려들이 사찰에서 종교적 수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군사요새를 만드는 중노동판에 끌려나와서 노예처럼 돌을 나르고 성벽을 쌓았다는 사실은 대부분 한국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비밀이자 조선 성리학 이데올로기가 낳은 종교탄압의 역사였다.이런 사실에 대하여 ‘인조실록’과 ‘정조실록’은 매우 상세하게 당시 사정을 기록하여 전하고 있다. 인조(仁祖) 임금은 남한산성을 쌓기 위하여 승려들을 강제 동원해야 한다는 대신들의 주장을 따랐다.정부의 모든 조직을 담당하고 있는 유생들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하자 서울 방위를 맞게 될 남한산성을 새로 쌓아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유생들 자신과 그들 자식들을 성 쌓는 일에 내보낼 수는 없었다.군인과 승려들을 동원시키되 비용을 줄이고 불평을 없애기 위해서는 군인보다 승려들이 더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군인을 내보낼 경우에는 필요한 양식과 자재를 구하는 데 드는 비용을 모두 국가에서 책임져야 했다.또한 군인 중에는 양반 사대부와 끈이 닿는 사람도 있어서 온갖 청탁과 압력이 들어오게 마련이어서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승려들이라면 문제는 간단했다.불교와 승려는 유교 이념인 충(忠)과 효(孝)를 부정하는 중죄인이기 때문에 승려들은 아무리 학대하고 짓밟아도 괜찮다고 판단했다.승려들을 강제동원시키면서 각자 먹을 식량을 스스로 마련하게 하고,성 쌓는 데 드는 장비와 비용도 알아서 준비하도록 명령하면 그만이었다. 그 무엇보다 유생들의 관심을 끈 것은 성쌓기에 동원된 승려들이 자신들의 몸을 돌보지 않고 혼신을 기울여 일을 하기 때문에 작업 능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었다.승려들은 어느 곳에서든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했다.불교 계율을 위배하지 않는 한 중생을 위하는 일을 하는 것은 곧 진정한 보살정신의 실천이며 자기 수행의 한 방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어차피 먹는 일은 하루 두 끼니면 족한 것이 승려의 계율이었다.아침에는 죽을 조금만 먹고,정오 무렵에는 허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음식만 먹으면 족했다.오후에는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옷과 잠자리는 수행에 지장이 되고,세상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한 괜찮았다.넝마 조각을 걸쳐도 되고,칼날 위에서 자도 괜찮았다.이런 배경으로 전국의 승려들이 동원되었다.승려들을 지휘하여 성벽 쌓는 일을 총책임지도록 하는 인물이 필요했다.적임자로 떠오른 사람이 각성(覺性·1575∼1660)이라는 승려였다.인조는 각성에게 8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란 직위를 주면서 조선의 모든 승려들을 동원하여 성을 쌓으라고 명령했다.‘총섭’이란 이름은 임진왜란 때 조선의 위기를 구한 서산대사에게 선조 임금이 승군의 총지휘를 부탁하면서 내렸던 데 기원을 둔 것이다. 남한산성 쌓는 공사가 시작되자 8도도총섭에 임명된 각성은 각 도마다 승려 숫자를 배정하고 정해진 날짜에 도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공문을 각 도의 관찰사에게 보냈다.그러자 유생들이 즉각 반발했다.감히 승려 따위가 유생인 관찰사에게 명령하듯 한다는 것이었다.승려와 불교에 대한 차별의식과 유생의 자존심 때문이었다.유생들의 거듭되는 반대 앞에서 인조는 괴로워했다.언제는 승려들에게 책임을 맡기자고 하더니,이제 와서는 승려들은 노동만 하고 지휘는 유생들이 하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이렇듯 유생들의 불교에 대한 증오심과 승려들을 탄압하려는 지속적인 편견 속에서 남한산성 공사는 강행되었다. 전국의 승려들은 말없이 공사를 해나갔다.만약 승려들이 이를 거부하면 농민들이 대신 끌려나와야 할 것이고,그리되면 가난한 농민들의 고통은 더욱 더 커질 것임은 분명했다.승려들은 이같은 미래의 일들까지 고려하면서 묵묵히 성 쌓는 일로 수행을 대신했다. ●유생들 불교 증오… 승려탄압 계속 성 안에는 장차 산성수비에 필요한 건물로 사용하기 위해 9개의 사찰도 지었다.망월사,옥정사,개원사,한흥사,국청사,장경사,천주사,동림사,영원사였는데,개원사는 도총섭이 머무는 지휘소였고 나머지는 전국에서 온 승군들 숙소로 썼다. 2년 동안의 쉼 없는 공사 끝에 성이 완성되었다.그동안 공사에 나온 승려들 중에는 질병과 배고픔 또는 사고 등으로 죽어간 사람이 적지 않았다.남한산성 곳곳에서는 죽은 승려들의 주검을 화장시키는 연기가 피어올랐고,비참하게 죽은 도반의 기구한 생애를 슬퍼하는 승려들의 염불 목탁소리가 거의 날마다 들려왔다.그렇게 성이 완공되고 나자 다시 문제가 생겼다.남한산성을 지키는 일이었다.유생들은 다시 승려들에게 남한산성 수비를 맡기자고 했다.그러면서 수비에 임하는 승려들로 하여금 수비에 필요한 식량,의복,땔감,의약품 등을 승려들의 책임으로 떠맡겨 버리자고 했다.결국 조선의 정치를 완전히 장악한 유생들의 뜻대로 결정되었다.식량은 군인들에게 먹이기 위해 농민들로부터 징수한 것을 나눠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불교탄압 정책을 밀어 붙여온 강경파 유생들은 그것마저도 나눠줄 수 없다고 결정했다.결국 남한산성을 수비하기 위해 승군(僧軍)이 조직되었다.각 도마다 승군으로 나갈 승려 숫자가 배당되었다.일 년에 여섯 차례씩 교대해야 하는 승려들은 식량,옷,약 등 생활비 전액을 승려 자신이 마련해서 두 달 동안 남한산성에 머물러야 했다.남한산성에 나가는 일을 번상(番上)한다고 불렀다. 큰 절은 4∼5명,작은 절은 1∼2명 씩의 승려를 내보내야 했다.한 명의 행장을 꾸리는 데 약 100금(金)이 들었다.결국 한 사찰에서 해마다 400∼500금의 비용을 책임지게 되자 그 폐단은 점점 커졌다.폐단이 커지자 승군이 직접 서울로 오는 대신 한 사람마다 돈 16냥을 내고,정부는 그 돈으로 사람을 사서 성을 지키도록 하는 ‘의승방번전(義僧防番錢)’이란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다. ●2년공사… 城곳곳에 승려 火葬 연기 그러나 이 돈 역시 극단적인 탄압을 받으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사찰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형벌이었다.승려들에게는 심각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뒷날 북한산성까지 승려들을 수탈하여 수비부담을 지우게 되자 전국의 사찰은 차츰 폐허로 변해갔다.의승방번전 부담을 견디다 못해 사찰의 재산을 처분하면서까지 의무를 다했지만 갈수록 중압감이 커지자 승려들은 머리를 기르고 환속해 버렸다. 이같은 제도는 결국 불교를 쇠퇴하게 하고 승려들을 세속으로 달아나게 만들었다.그런데도 1626년에 시작된 이 제도는 1894년 갑오경장 때까지 계속되면서 승려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고,조선에서 불교가 다시는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한 유생들의 종교탄압이었다.그후 조선 유생들은 조선이 일본의 노예국이 되는 데 앞장을 섰고 일본은 조선 불교를 철저하게 파괴했다.남한산성의 저 짙은 녹음 속에는 270여년간 계속된 종교탄압 정책 아래서 신음하던 승려들의,인간이 인간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처절한 외침이 묻어 있을 것이다.
  • [서울의 숲]남산공원

    숲여행 참가자 홍지승(11)양은 “식물에 대한 설명 뿐만 아니라 남산과 관련된 역사 등이 자세해서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남산식물원에서 서울타워까지 올라가는 계단은 시민들이 애용하는 산책로다.제법 가파른 계단의 연속이지만 15분 정도 걸어가면 서울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팔각정에 도달한다.하지만 1·3주 일요일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남산 숲 여행’에서는 이 구간이 2시간의 대장정으로 훌쩍 늘어난다.늘상 보던 나무와 풀도 숲 해설가의 입을 거치면 생소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숲해설가 이희교(62)씨는 “기록에 따르면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조선 태종때 경기도 장병 3000여명이 20일동안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많이 훼손됐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1991∼1997년 ‘남산제모습찾기’ 사업을 통해 소나무 1만 8357그루를 심었으며 남산에서 소나무가 차지하는 비율은 23%에 이른다.남산은 동서 길이가 2.7㎞ 남북은 2.1㎞이며 면적은 약 90만평이다.이씨는 또 “열매가 까만 쉬나무는 호롱불에 쓰이는 기름을 짤 수 있다.”면서 “남산에 책을 많이 읽는 선비들이 다수 살았던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산에는 식물 361종과 나무 191종 등 모두 85과 280속 552종이 모여있다.대표적인 수종으로는 소나무,잣나무,신갈,아까시,팥배,산벚나무 등이 있으며 활엽수종이 77%,침엽수종이 23%를 차지하고 있다.풀종류는 남산제비꽃,고사리류,단풍취,억새,맥문동 등이 자라고 있다.최근 외래초본인 서양등골나물이 급속도로 번식,고유 수종의 보존대책이 절실한 실정이다. 이씨는 “흔히 아카시아라고 불리는 아까시는 꿀을 생산하는 밀원식물로 남산의 대표적인 수종”이라면서 “하지만 유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는 뿌리가 무덤을 파헤친다고 해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숲 여행이 중반을 넘어 잠시 지루해지자 이씨는 나뭇잎 하나를 따서 씹어볼 것을 권유했다.시민들이 쓰다고 답하자 이씨는 “‘사랑의 쓴 맛’이라는 꽃말을 가진 라일락”이라면서 “한 외국인이 ‘미스김 라일락’이라는 개량종을 만들어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고 덧붙였다. 숲여행 참가자 홍지승(11)양은 “지난해 서오릉 숲 여행에도 가봤는데 맨발걷기 등이 있어서 좋았다.”면서 “식물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남산과 관련된 역사 등이 자세해서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웹서핑을 하다 우연히 알게돼 참가했다는 윤정금(35·여)씨는 “아이들 교육에 그만”이라고 추천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조성완의 생생러브]잠 못드는 밤

    남산타워나 63빌딩에서 바라보면 서울의 야경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빽빽한 고층 건물들의 불빛들도 멋져 보이고,한강을 따라 늘어선 가로등과 자동차 헤드라이트들도 낭만 있어 보인다.간간이 보이는 교회의 십자가도 단풍나무 낙엽들처럼 색의 조화로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낮에 보이는 모습은 조금 다르다.들쑥날쑥한 고층빌딩들은 무질서해 보이기도 하고,강변도로를 따라 늘어선 차들은 시원하게 달리지 못하고 교통체증에 짜증만 나며,심지어 교회 십자가들도 동네마다 너무 많아 보이기도 한다.이처럼 밤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모든 허물을 덮어주고,낭만적으로 보이게 하는 마력이 있는가 보다. 밤의 신비는 경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어려서 대소변 가리기를 배우면서 조금 자주 소변을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2∼3시간마다 꼭꼭 화장실을 다니는 성인들이라도 밤에 잠을 자면 6∼7시간 동안 한번도 깨지 않을 수 있다.이는 잠자는 동안 소변을 적게 만들어 주는 ‘항이뇨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며,잠 잘 자라고 주신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런데,여러 이유로 소변이 마려워 자다가도 몇 번씩 깨는 증상을 ‘야간뇨’라고 하며,더불어 낮에도 소변을 자주 보고 급박뇨(소변이 마려우면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아 참지 못하는 증상)가 심한 증상과 동반된다면 ‘과민성방광’이라고 한다.이러한 증상은 호르몬의 대사가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보통 남자는 전립선 이상,여자는 방광 자체의 기능 이상으로 인해 생기는 방광의 이차변화로 생기는 경우가 많다. 잠자다 말고 2∼3번 이상 깨게 되면 깊게 잠들지 못하고 다음날에도 피로를 느끼게 되며,여러 날 계속 반복되면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짜증을 내는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야간뇨를 줄이기 위해서는 원인질환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므로,소변이 마려운 상태로 병원을 찾아 남성은 전립선검사를, 여성은 방광기능검사를 받아 보아야 한다.전립선 질환은 약물치료나 수술치료로 나아지고,방광기능이상은 약물치료나 대증요법으로 호전된다. 그리고 원인과 상관없이 도움이 되는 비결이 있는데,초저녁에 물이나 과일 등을 삼가고,낮잠은 피하며 여건이 된다면 반신욕을 자주 하는 것이 좋다. 명동이윤수비뇨기과 공동원장˝
  • 서울 도심서 만나는 ‘황해도 굿판’

    우리 전래의 무속이면서도 여간해선 접하기 힘든 굿판을 서울 한복판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다. 국립국악원이 ‘한국문화의 원형찾기’ 첫 무대로 오는 15일부터 17일까지 국악원 야외무대 별맞이터에서 펼치는 ‘황해도 꽃맞이굿 33거리’가 그 무대.인천지역 황해도굿보존회인 ‘한뜻계’에 속한 8명의 만신들이 황해도 지방의 정통 꽃맞이굿을 3일간 이어서 펼치는 보기 드문 무대다.‘꽃맞이굿’은 봄철에 무당이 자신이 모시는 신을 대접하기 위해 벌이던 굿으로 가을에는 ‘햇곡맞이’‘신곡맞이’,또는 ‘단풍맞이’라고 부른다. 이번 굿판은 여러 면에서 독특하다.일반적인 정통 꽃맞이 굿거리를 기본틀로 하되 박선옥 김매물 등 전국적으로 이름난 황해도 만신들의 고유한 굿거리를 한데 모아 총 33거리로 구성했다.이중에는 학계나 외부에 잘 알려져 있지 않거나 타지방과는 다른 특성을 갖는 굿거리들이 여럿 포함돼 관심을 모은다. 특히 셋째날 ‘호살량굿’은 박선옥 만신이 유일하게 전승하고 있는 황해도 굿거리.호랑이에게 먹혀 죽은 원귀들을 풀어 먹이는 굿거리이다.강신무 계열 굿의 가장 큰 특징인 ‘작두타기’를 두번 하는 것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첫째날에는 돼지를 잡기 전에 타는 ‘소작두’,둘째날에는 돼지를 잡은 뒤 타는 ‘육작두’를 선보인다. 공연 형식으로 재구성하지 않고,보통 굿당이나 무당집에서 펼쳐지는 굿판 그대로 재현하는 것 역시 드문 시도.동이 트기 전 굿을 시작하는 관습대로 첫째날인 15일 오전 7시부터 ‘신청울림’으로 굿판을 시작한 뒤 끝나는 시간을 정하지 않은 채 3일간 무박으로 이어진다. 민족음악학 박사인 서마리아(미국 워싱턴주립대)교수가 일반인과 외국인 관객들을 위해 해설 및 통역을 맡는다.서 교수는 “한국 무속신앙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은 무척 크다.”면서 “우리 관객들도 굿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행사기획에 참여한 박흥주 굿연구소장은 “일반인에게 굿을 원형 그대로,또 각 만신들의 굿거리를 합동으로 보여주는 무대라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설명했다.3일간의 굿판은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02)580-3300. 이순녀기자 coral@˝
  • [발언대] ‘등산문화’ 이대로 좋은가/최진규

    지난 주말,모처럼 화창한 날씨를 맞아 가족과 함께 인근에 있는 산을 찾았다.등반로 주변에는 겨우내 움츠렸던 초목들이 하나둘 기지개를 펴며 싱그러운 봄소식을 전하고 있었다.물 오른 나뭇가지에는 봉긋한 새순이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고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에는 이름 모를 풀이 무성하게 짙어오며 향기로운 숲속에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맑게 울려퍼졌다.계절을 바꿔 입은 자연은 생명의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마침 일요일이라,산으로 향하는 길에는 단풍의 물결처럼 형형색색의 옷으로 차려입은 등산객들로 가득했다.최근 체험학습을 강조하는 학교교육의 영향 탓인지 자녀들과 함께 산을 찾은 부모들도 꽤 많았다.모처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마음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등산로 주변에는 타인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자리잡고 앉아 음식물을 먹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힘든 산행 끝에 가까스로 정상 부근에 도달하자 이번에는 마치 무슨 동네 잔치라도 벌어진 듯,각종 음식물을 펼쳐놓고 자리를 차지해버린 단체 등산객들로 인해 제대로 쉴 곳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의 불편은 안중에도 없는 듯 오로지 나만 즐겁고 편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앉아있는 사람들의 주변에는 버려진 음식물 찌꺼기를 비롯한 각종 쓰레기들이 실종된 양심처럼 나뒹굴고 있었다.버리는 사람은 있어도 줍는 사람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산행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릴 여유도 없이 서둘러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행여나 학교에서 자연을 보호하고,공중 예절을 지켜야 한다고 배웠을 아이들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주5일 근무제가 확대 시행되면서 자녀들과 함께 산을 찾고있는 가족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지금과 같은 ‘등산문화’라면 환경오염은 차치하고라도 부모를 따라나선 자녀들의 ‘정신건강’마저 위협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늘어나는 등산 수요만큼 등산 의식의 변화도 요구된다.진정 산이 좋아 산을 찾는 사람이라면 음식물 반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거나 아니면 지정된 장소에서만 음식물을 먹도록 하는 선진국의 수준 높은 ‘등산문화’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최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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