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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씨 비자금­5·18 문제/김호진 고려대교수 신문로포럼 조찬강연

    ◎국민은 「정치적 해결」 바라지 않는다/역사적 소명의식 갖고 진실규명·과거청산을 「신문로 포럼」은 29일 상오 소피텔 앰배서더 호텔에서 조찬 강연회를 개최했다.이날 강연회에서 김호진고려대교수가 「5·6공 청산과 새 시대의 개막」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내용을 요약한다. 비자금 사건과 5·18광주민주화항쟁 탄압사건은 그동안 지배세력에 의해 은폐되어온 군부권위주의의 원죄적 모순이요 치부이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발전과 역사발전을 원천적으로 왜곡시켜온 역기능 요인이었다.따라서 이 두 사건을 극명하게 처리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미래사는 결코 바르게 전개될 수 없을 것이다.말할 것도 없이 이 두 사건이 사법적인 단죄의 대상이 된 것은 역사의 필연이요 당위이다.통치권과 무력을 악용하여 역사와 민의를 배반하고 정의를 유린했던 당사자들이 사법적 심판을 받게 된 것은 그들의 당연한 업보이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로서는 이 사건의 처리문제가 엄청난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다.그러나 김영삼 정부가 이 두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김영삼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와 역사적 평가가 달라질 것이다.무엇보다 다음 세가지 점이 주목된다. 첫째,김영삼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개혁정책이 진정으로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고자 하는 소명의식에서 출발한 것인지,아니면 정파적 이해와 집권기반 구축에 입각한 것인지가 판가름 날 것이다. 둘째,총선과 대선에서 이기느냐 아니면 패하느냐가 결정난다.달리 말하면 개혁주의와 문민주의의 맥을 이어 나가느냐 못하느냐가 결판난다. 셋째,사법정의와 정치정의를 구현함으로써 개혁정치의 이상을 현실세계에 정착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 이 세가지 테제는 김대통령과 국민과 한국역사의 공통된 테제이다.그리고 이 테제의 실현여부는 전적으로 김영삼대통령의 의지와 리더십에 달려있다. 김대통령은 이 두 사건을 다룸에 있어 정치주의를 떠나 역사주의의 입장을 취해야 한다.정치적인 고려를 초월해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다는 역사적 소명의식으로 접근해야 국민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으며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도 이기는 길이다.만약 김대통령이 정치적 명분주의와 상징주의에 빠진다거나 현실주의에 사로잡힌다면 또 다시6·27 지방선거와 같은 정치적 좌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선 김대통령은 왜 국민들이 비자금사건과 5·18문제에 그토록 천착하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그리고 이 문제에 관한한 국민들은 결코 정치적 해결이나 어떤 미봉책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5·6공청산작업이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그리고 그 대상은 두 전직대통령과 친정세력 뿐만 아니라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비자금과 5·18문제에 연루된 사람은 모두 의법처리되어야 하며 정치적 접근을 지양하고 엄정한 사법적 접근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엄정하게 다스리는 것이 정도이다. 결론적으로 김대통령은 이번 기회를 수구부패세력을 철저히 단죄하고 정리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세력과 정치문화를 창출하는 대전환의 분기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비자금 파문 조속 매듭”/장기화로 중기 큰 피해/기협 성명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의 장기화로 중소기업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며 29일 비자금사건의 조속한 마무리를 촉구했다. 기협중앙회는 이날 「비자금파문에 대한 중소기업의 입장」이라는 성명서를 통해 한국경제가 비자금파문에 휘말려 방향감을 잃은채 1개월이 넘도록 표류함으로써 체감경기가 악화됐고 사채시장마저 얼어붙어 중소기업들은 어려움을 맞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과거 비자금 제공이 뇌물로 간주돼 모두 단죄의 대상이 되면서 대기업의 경영활동이 크게 위축됐으며 그로인한 1차적 피해는 중소기업이었다면서 이번 사건이 최소한의 희생속에서 빠른 시일내에 매듭지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 이영희 여의도연소장 국민대 정치대학원 특강

    ◎“「5·18」 단죄해야 정치 선진화 이룩”/「노씨 비자금」 보수세력 정치재기음모 노출/이젠 때묻지 않은 새 세대가 정치 주도할때 민자당 부설 정책연구기관인 여의도연구소 이영희 소장은 28일 국민대 정치대학원 초청특강에서 「한국정치의 선진화와 개혁과제」란 주제강연을 통해 『김영삼 대통령의 5·18특별법 제정조치는 구시대를 청산하고 새시대의 틀을 새롭게 만들겠다는 의지와 결단』이라고 강조했다.다음은 이소장의 주제강연요지. 5·18특별법 제정조치는 현실정치의 차원을 떠나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 평가해야 한다.5·18단죄가 성공해야 수구세력이 완전히 퇴장하고 정치선진화의 역사적 토양이 만들어진다. 과거 3당합당은 문민정부 출현을 위해 불가피했다.김대중씨의 평민당 창당과 민주세력의 분열로 기존 집권세력을 완전배제한 문민정부 수립은 어려웠다.이후 「태생적 한계」라는 비난에도 문민정부는 금융실명제·정치자금단절 등 역사적 개혁조치를 과감히 수행했다.민주화과정에 협력한 보상으로 5·16,5·18세력의 처벌을 유예,역사의 평가에 맡겼고 국정에도 참여시켰다.5·18불기소와 구여세력의 사면복권조치도 그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보수화의 논리가 득세,여야 할 것 없이 보수세력과 결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수구세력이 재결집하여 정치적으로 재기하려는 시도마저 나타났다.때마침 노태우씨 비자금사건이 터져 부정부패의 실상이 드러나고 수구세력의 숨겨진 음모가 발견된 것이다.따라서 5·18단죄방침에서 보이는 역사 바로잡기와 당명개칭을 통한 민자당의 새출발방침은 역사의 방향을 개혁으로 바로잡는 것이다.국민의 요구와 야당의 주장을 수용한 특별법 제정은 「태생적 한계」를 초월한 결단이다. 속죄하고 자숙해야 할 쿠데타세력이 위헌·약속파기 운운하며 반발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행동이다.야당이 「깜짝쇼」라고 비판하지만 전격적 방법이 아니고 결단이 가능한가.「정국흐리기」라지만 비자금사건이 과연 물 건너간 것인가.「정국주도용」이라고 비꼬지만 집권당으로서 당연한 행동이 아닌가.야당도 수구세력의 결집을 막고 개혁의 길로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협력해야 한다.일부에선 『왜 이제 와서…』라고 의혹을 제기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최후의 시기다.『정치적 배신,토사구팽,민정계 축출용』이라지만 이는 역사관과 평가척도의 부재에서 비롯된 잘못된 인식이다.이번 조치는 자기 살을 베는 일대 결단이며,결과적으로 현대판 트로이목마식 정치전략이다. 대통령이 구속되는 나라는 정치보복의 나라가 아니라 법이 있는 나라를 뜻한다.정치가 법의 아래에 위치하는 진정한 법치주의의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낙후한 한국정치의 선진화를 위한 일대 도약의 계기를 만들었으니 이제 때묻지 않은,때가 덜 묻은 새세대가 중심이 돼 정치를 주도해야 한다.
  • 여·야 헌재 「시효만료」 결정설에 촉각

    ◎강경­신축대응 엇갈려 수위조절 부심­민자/“처벌대상자 제약 소지있다” 재고 촉구­야권 여야는 28일 헌법재판소가 5·18 불기소처분 헌법소원에 대해 내란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지자 정치권의 특별법제정 및 관련자처리 방향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며 대책마련에 부산했다. ▷민자당◁ 헌재가 전두환·노태우씨의 12·12군사반란죄 공소시효 만이 남아 있다는 의견인 것으로 전해지자 위헌시비를 막기 위해 특별법안 내용과 수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과 「확실한」 입법을 해야 한다는 적극론이 동시에 표출됐다. 김윤환대표는 『헌재가 해석한 공소시효 범위를 넘는 규정을 특별법에 담았다가는 위헌판정을 받을 위험성이 있고,그렇다고 헌재해석으로도 가능한 전·노씨의 군사반란죄 처벌 만을 규정하는 법이라면 의미가 없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럼에도 과거의 헌정파괴에 대한 단죄의지 및 절차를 명확히 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내용을 담기 위해 특별법은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강삼재사무총장은 이날 광명갑지구당 대회에서 「회기내 특별법 제정,주동자 의법처리」를 거듭 강조했다. 「5·18특별법 제정 기초위원회」의 현경대 위원장도 『공소시효 기산점에 대한 헌재의 판단 등은 존중해야 겠지만 헌재의 결정이 입법의 무용론으로 비약돼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이날 열린 기초위에서도 『사실관계에 대한 헌재의 해석과 입법상 미비점을 보완하려는 특별법 추진 움직임은 별개』라는 의견이 다수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맥락에서 전·노씨 뿐 아니라 다른 관련자도 반란죄 공범으로 5·6공때 시효진행이 중단됐고 지금도 기소가 가능하다는 적극론도 제기됐다.헌법부칙에 내란죄 등의 공소시효 중단 또는 시효배제 규정을 넣지 않더라도 특별법에 이를 반영,위헌성 판단을 받아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내란죄에 대해 헌재가 법률적으로는 시효만료 견해를 취하더라도 이를 결정문 본문에 담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제아래 「5·6공 때는 내란죄 기소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점을 특별법에 간접적으로 담아 시효중단 및 기소가능성을 남겨두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형법불소급 원칙은 범죄의 종류와 형을 다루는 실체법에만 적용될 뿐 공소시효 등 절차에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헌재의 해석으로 입법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는 후문이다. ▷야권◁ 공소권 없음이 부당하다는 결정에 『당연하다』는 표정이다.그러나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해석에 대해 국민회의와 민주당은 『대통령 재임 중에는 시효가 정지된다』고 반발하며 헌재가 최종선고를 연기해 줄 것을 신청했다.반면 자민련은 『헌재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수긍했다. 국민회의는 내란죄의 수괴가 정권을 장악한 5,6공은 공소가 불가능했던 만큼 전·노씨의 재임중 공소시효는 정지된다는 논리다.공소시효가 끝났다는 것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가 아닌 경우 대통령은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 84조의 문구에 헌재가 지나치게 집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민회의는 또 공소시효의 기산점을 최규하 전대통령이 하야한 80년 8월15일이 아닌 『6·29선언 이후 직선제개헌이 완료된 시점』(변정수 고문)이나 『비상계엄령이 해제된 81년 1월24일』(박상천 의원)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헌재의 결정은 처벌대상을 특정인에 한정시키는 것이라며 관련자 전원의 사법처리를 주장했다.율사출신인 강수림·장기욱 의원은 『내란죄의 공소시효는 끝났고 군사반란죄의 공소시효도 전·노씨만 적용할 수 있다는 결정은 처벌대상을 제약할 소지가 있다』며 『내란죄와 군사반란죄의 공소시효가 관련자 전원에게 아직 유효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민련은 공소시효와 관련,『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이다.동시에 『소급입법은 절대로 안된다』며 전·노씨를 내란죄로 처벌하지 못해도 군사반란죄로 처벌하면 된다는 입장이다.이경우 나머지 관련자는 공소시효가 완료돼 처벌이 불가능해진다.박준병 의원 등 당내 5·18 관련자를 보호하려는 배려로 풀이된다.
  • 민자 새 당명 내주중 확정/당분간 가칭 사용

    민자당의 김윤환 대표위원은 27일 5·18특별법 제정에 따른 관련자 의법처리와 관련,『과거정권에서 일한 분 가운데 쿠데타 및 부정축재와 관련 없이 문민정부에 참여한 모든 분은 당연히 국정운영에 동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표는 이날 상오 확대당직자회에서 『김영삼총재의 결단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세우자는 충정의 발로』라면서 『그러나 이것은 지난 역사와의 단절이 아니라 쿠데타와 부정축재에 대한 단죄』라고 말했다. 한편 민자당은 내주에 당무회의를 소집,새로운 당명을 확정하고 내년 1월중순 이후로 예정된 전국위원회 개최 때까지 가칭당명을 사용키로 했다.
  • 5·18 특별법­현 기초위원장 회견

    ◎당시 형법 적용하는 처벌절차 마련/공소시효 기산일 해석 입법에 반영/시효연장은 형벌불소급 원칙 위배 민자당의 「5·18특별법」기초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현경대의원은 26일 『헌법이 규정한 소급입법 금지원칙을 위배하지 않고도 쿠데타라는 반역사적 불법행위를 단죄할 수 있는 합리적 근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현위원장은 이날 지역구인 제주도에서 기자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현위원장은 먼저 『특별법이 범죄에 대한 새로운 처벌규정을 신설하는 차원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4·19 직후 2공화국헌법처럼 부칙에 특정행위에 대한 처벌규정을 신설하는 소급입법은 개헌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특별법이 분명 12·12 군사반란과 5·17내란,5·18내란목적살인죄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당시의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법』이라고 말했다.따라서 28일 첫 회의를 여는 기초위원회의 활동도 야당과 재야법조계·시민단체등에서 제기해온 5·18관련 법안내용을 포함,쿠데타 사범들을 기소할 수 있는 절차,특히 공소시효 문제에 그 초점이 있다는 것이다. 내란죄를 기소할 수 있는 공소시효는 형법상 15년이지만 5·18특별법에서는 이를 2년 또는 5년 연장하자는 주장도 당내에서는 없지 않다.그러나 현위원장은 『시효연장 자체가 형벌불소급과 관련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그보다는 『공소시효 기간이 시작되는 시점,즉 내란행위가 종료되는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 하는 해석상의 문제를 입법에 반영,논란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5·17내란의 완성시점(시효 기산점)에 대해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최규하 전 대통령 하야(80년 8월16일) ▲전두환씨의 대통령 취임(81년 3월3일) ▲국보위 활동종료(81년 4월10일)등 3가지로 견해가 갈려 있다.현위원장은 이 가운데 『81년 3월설과 4월설을 택하면 공소시효는 96년 3월과 4월까지 각각 15년간 인정이 되므로 지금도 기소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현위원장은 이와 함께 전두환·노태우씨의 재임기간동안 공소시효 진행이 중단된다는 법조계와 학계 일부의 주장을 수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음을 밝혔다.그는 『내란죄의 주역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동안은 공소제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공소시효 기간을 따질때 이들의 재임기간 만큼을 추가해 계산하는 방안도 검토중』이라고 했다.여기에는 「대통령은 내란·외환죄를 제외하고는 재직중의 범죄로 임기중 소추되지 않는다」는 헌법규정을 문자대로만 해석,내란죄등은 재임중에도 공소시효가 진행된다는 반론도 있다.그러나 현위원장은 『불필요한 소추공세로부터 재직중의 대통령을 보호하자는 취지일 뿐인 조항을 공소시효 중단론에 대한 반대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야당측의 특별검사제 도입에 대해서는 현위원장은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민자당은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와 법체계,우리 법률문화에의 부적합성』등을 들어 이미 반대를 당론으로 정해 놓았다.적용대상 범죄를 5·17뿐 아니라 헌정파괴 사범 일반과 반인륜적 범죄등으로 확대하자는 새정치국민회의측 주장에 대해서도 현위원장은 『이번 특별법은 어디까지나 5·17등에 대한 단죄가목적』임을 상기시킨뒤 『일반적인 헌정파괴사범은 형법상 내란죄등으로 처벌하면 되지 특별법의 일반법화는 입법권의 남용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반대했다.
  • 「5·17」 주도자만 처벌/단순 명령이행 군인은 제외/김 대통령

    ◎관련자 전원 처단 요구/국민회의 5·18특별법 제정과 관련,특별검사제 도입과 처벌대상의 범위를 놓고 여야의 견해차가 커 입법과정에서 적지않은 마찰을 빚을 전망이다. 특히 처벌대상과 관련,민자당은 5·17 쿠데타와 5·18 광주학살을 직접 주도한 인물로 국한‘범위를 최소화할 방침인 반면 국민회의는 관련자 전원을 사법조치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입법단계에서부터 처벌범위를 놓고 진통이 예상된다. 김영삼 대통령은 25일 청와대로 민자당 김윤환대표위원을 불러 『특별법 제정의 정치적 의미는 5·17 쿠데타 및 5·18 학살과 단절하며 5·6공 비리 및 정치 악습과의 단절을 의미한다』고 강조하고 『따라서 5·6공 출신으로 문민정부에 참여한 인사와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12·12및 5·18 관련자에 대한 처벌을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과 박준병 의원(자민련)등 주모자 및 수혜자로 최소화하고 문민정부에 참여한 5·6공 출신인사는 정치적으로 동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여권의 한소식통은 『5·17쿠데타와 관련,이를 기획하거나 실행한 수괴가 아니고 군 명령계통 선상에서 단순히 명령을 이행한 군인들은 5·18특별법 처리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따라서 현재 군문에 몸담고 있는 현역군인들은 5·18 특별법 단죄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국민회의의 김대중총재는 26일 경기도 고양갑지구당 창당대회에서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뿐 아니라 집단학살 관련자 전원을 빠짐없이 재판에 회부,엄중처단해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 「반인류 범죄」 처벌에 시효없다/과거청산 외국선 어떻게 했나

    ◎유럽/나치전범 86년까지 6,479명 단죄­독일/2차대전 유태인 학살 투비에 종신형­프랑스 집단학살등의 반인류 범죄를 처벌하는데는 시한이 없다.특히 2차대전당시 인류를 학살하고 괴롭힌 전범들에 대해서는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세계 곳곳에서 단죄를 받고 있다. 반인류범 처벌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뉘른베르크 국제군사법정.미·영·불·소 등 4개국이 2차대전 전범자들을 처벌할 목적으로 지난 45년 11월20일 개설한 이 특별법정은 지난 20일로 개설 50주년을 맞았다. 뉘른베르크법정이 열리자 히틀러의 측근인 헤스를 비롯해 24명의 나치 지도급인사를 처벌됐으며 46년 10월1일까지 1년 가까이 4백8명의 전범들이 법정에 서야만 했다. 독일은 특히 56년부터 루드스비히에 나치전범연구소를 세워 전쟁자료를 추적,구체적 죄목을 입증해 전범을 꾸준히 처벌해왔다.이에따라 86년까지 모두 6천4백79명이 날카로운 법의 심판을 받았고 이중 12명이 사형이 선고됐고 1백60명은 종신형,나머지 6천1백9명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7천5백명 정도의 나치전범이 아르헨티나·브라질·파라과이 등지에 불안에 떨면서 숨어지내고 있다.그러나 이들을 찾아내 처벌하려는 노력은 세계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어 시한이 걸리기는 해도 법의 심판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유엔은 반인류범을 집단학살은 물론이고 정치·종교·인종적인 이유에서 학대하거나 약탈행위·암살·포로나 인질을 괴롭히는 등의 행위로 규정한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도 이같은 반인류범을 시한없이 끝까지 추적하고 있다.프랑스는 64년12월 반인류범죄에 대해서는 시효를 적용치 않는다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지난해엔 형법을 개정해 집단학살범에 대해서는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에 처한다고 명시했다. 프랑스에서 전범으로 처벌받은 대표적인 인물은 폴 투비에.투비에는 리옹 등지에서 나치 비밀경찰에 협조해 유태인 추방과 학살등에 관여한 혐의로 45년9월 열린 궐석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잠적해 버렸다.사면을 받는 등 우역곡절을 겪기는 했지만 결국 89년 붙잡혀 지난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또 유태인 어린이50여명을 학살한 클라우스 바르비도 반인류적인 행위자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리옹지역의 게슈타포 지휘자였던 바르비는 52년 궐석재판을 받았다가 지난 83년 붙잡혀 4년뒤 종신형을 받았다. 스페인도 15년 동안의 작업 끝에 최근 인권 학대 등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뉘른베르크 특별법정 이후에도 반인류범을 처벌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유엔은 93년 결의안 808조에 따라 유고내전에 대한 특별법정을 헤이그에 설치,전쟁을 일으킨 주범들을 처벌하고 있다.또 르완다내전에 대한 국제법정이 지난해 탄자니아의 아루샤에 설치돼 집단학살의 책임자들에 단죄를 가하고 있다. 이런 법정들은 특정사안을 다루는 특별법정이지만 항구적인 법정도 있다.유엔 사법재판소는 45년 헤이그에 설치된 항구법정이고 유럽연합(EU)은 51년 룩셈부르크에 사법재판소를 두고 있다.EU는 이것도 모자라 59년 스트라스부르에 인권법정을 마련해 반인류범에 대한 강한 처벌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의회,67년 군부행위 쿠데타 규정 특별재판서 주모자들 무죄징역 그리스의 쿠데타주모자 처벌은 비교적 순조롭고 철저하게 이루어졌다.2차대전 종전과 함께 부활된 왕정을 무너뜨리고 군부가 실권을 장악한 것은 67년.쿠데타 주역은 예오리오스 파파도풀로스 대령이 이끄는 영관급장교 24명.이들은 콘스탄틴 2세를 폐위시킨 뒤 68년 독재헌법을 마련,7년간의 군사정권이 계속됐다. 74년 키프로스사태가 군사정권 몰락에 크게 작용했다.키프로스공화국내 터키계 주민과 그리스계 주민 사이에 주도권 쟁탈을 놓고 벌어진 유혈사태에 그리스군을 파병하기 위해 군정실권자들이 총동원령을 내리자 그동안의 독재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했고 일부 군장성과 민간정치인들도 합세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명목상 군정대통령을 맡고 있던 기지키스 장군이 7월22일 야당지도자들과 민선 이양에 합의했다.당황한 군정측은 군대를 동원,아테네시를 포위하는 무력위협에 나섰고 시내 의사당 앞에 군정에 반대하는 수십만 시민이 모여 일촉즉발의 대치상태를 연출했다.결국 대세에 굴복한 군정측이 3일만에 손을 들었고 7월24일 파리에 망명했던 야당지도자 콘스탄티노스 카라만리스가 금의환양했다. 그해 11월 총리직에 오른 카라만리스는 곧바로 67년 쿠데타주역들을 재판에 회부했다.75년초 의회는 67년 군부행위를 쿠데타로 규정하는 결의안 채택과 함께 특별법을 제정했다.군정기간중 60여명이 독재에 항거하다 숨졌고 수천명이 부상당했음이 재판을 통해 밝혀졌다.같은해 8월 끝난 특별재판에서 쿠데타주모자인 파파도풀로스와 마카레조스에게는 사형이 선고됐고 여타 주모자들에게 최고 사형에서 최하 25년의 중형이 선고됐다.이후 사형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으나 쿠데타주역들은 지금도 복역중이다. ◎남미/쿠데타 집권 전대통령 등 법정에­아르헨/인권탄압자 사면조건 범죄고백 받아­칠레 ▷아르헨티나◁ 76년4월 이자벨리타 페론 대통령을 내쫓고 정권을 잡은 군부는 라울 알폰신 민선대통령이 취임하는 83년12월에 이르기까지 최소 1만3천여명의 동족을 좌파타도의 슬로건 아래 납치·살해(실종 9천여명 포함)했다.알폰신 대통령은 취임 즉시 군 최고지도층 절반을 은퇴시키는 군개혁을 실시한 뒤 군부가 민정이양 4개월전 제정한 과거 10년간 군·경의 정치범죄에 대한 소급 사면법을 폐기,쿠데타주도의 혁명평의회 장군들을 군사재판에 회부했다. 쿠데타 장군들의 재판은 85년4월 시작돼 12월 혁명후 첫대통령 비델라 장군과 마세라 제독(종신형) 등 5명이 형을 받았고 4명은 석방됐다.포클랜드전쟁(82년) 당시의 갈티에리 대통령 등 3인혁명위원에 대한 재판은 따로 열려 갈티에리는 12년형을 받았다.그러나 알폰신정부는 87년 부분사면법을 통과시켜 인권침해 혐의로 기소된 3백70명의 군·경중 40명의 고위직을 제외한 나머지를 석방했다. 89년7월 취임한 카를로스 메넴 새 대통령은 이전 페론당으로서 군부에게 학대를 받기도 했지만 군부집권시의 좌파대상 「추악한 전쟁」이나 민정 이후 쿠데타기도에 연루된 2백10명의 장교·하사관들을 89년10월 사면했다.그리고 90년12월 2차 대통령사면령을 통해 군부정권 1,2번째 대통령인 비델라,비올라 장군및 마세라제독 등 군부지도자들을 「국민화합」을 이유로 석방했다. 당시 「추악한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 두명이 올 2월과 4월에 약물에 마취된 좌파인사들을 비행기에서 바다로 떨어뜨리는데 일조했다고 최초로 고백하기도 했으나 1만여 동포살해의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못하고 있다. ▷칠레◁ 세계최초의 민선 사회주의자 대통령인 아옌데를 살해하고 73년9월 정권을 잡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은 국민투표 신임미달(43%)로 90년3월 파트리시오 아일윈 민선대통령에게 정권을 이양했으나 자신이 오는 97년까지 육군참모총장에 재직할 수 있도록 했다.앞서 군부는 80년 헌법개정을 통해 자신들의 73∼78년 좌파대상 정치범죄를 일괄사면시켰으며 민정이양하면서 상원의 5분의1을 임명하는 권한을 가졌다. 지난 17년간의 군부독재 아래서 자행된 인권탄압 범죄를 법적으로 처리할 힘이 부족한 민선정부는 90년4월 「진실과 화해 전국위원회」를 구성,가해자에게 사면을 조건으로 범죄고백을 받고,모든 피해를 확인·적시하는 문서작성에 들어갔다.91년3월 아일윈대통령은 2천2백79명의 정치박해 사망자에 관한 1천쪽 분량의 보고서 완성을 TV방송을 통해 발표하면서 「국민화합」을 강조했다.여기서 피해자는 인적사항을 명확히 기록했으나 가해자는 이름 대신 소속기관을 거명하는데 그쳤다.칠레의 이같은 과거청산 방식은 동유럽,남미,남아공 등 14개국이 모방하는 세계적 모델로 예시되곤 한다. 한편 76년 미 워싱턴에서 전외무장관을 살해한 범죄는 군부의 사면법에서도 제외되었는데 92년11월 장기조사 결과 군부의 정치탄압 실행기관인 국가정보국 소행으로 밝혀졌고 당시 국장인 콘트레라스 퇴임장군과 참모장 에스피노사 현준장은 각각 7,6년형을 선고받았다.이 선고는 올 5월 최고법원에서 확정되었지만 피노체트 장군과 장교들은 콘트레라스 장군을 해군병원으로 피신시켜 에스피노사 준장만 현재 수감중이다. ◎남아공/「진실 및 화합을 위한 위원회」 창설/과거 인종차별 범죄행위 조사키로 지난 7월20일 넬슨 만델라 남아공대통령은 「진실및 화합을 위한 위원회」를 창설한다는 법안에 서명했다.만델라는 이 위원회가 흑백 인종차별 정책 아래 저질러진 숱한 인권탄압 등 국가의 주도 아래 벌어진 범죄들을 조사·단죄하기 위해 창설되며 창설 후 18개월간의 한시적 활동을 통해 인종차별 정책 아래 저질러진 모든 범죄행위들을 철저히 조사,남아공의 어두운 과거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새 출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아공국민들은 대부분 이 위원회의 활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인종차별정책에 따른 피해가 많은 국민들의 가슴에 상처를 남겨놓았기 때문이다.현재 남아공의 연정을 이루고 있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나 국민당도 모두 겉으로는 이 위원회의 취지에 찬성하고 지지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그러나 실제로 이들 정치인들이 이 위원회의 활동을 전폭 지지할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과거의 범죄행위들이 정말로 철저히 파헤쳐지면 과거의 백인 소수정부를 이끌었던 데 클레르크 부통령의 국민당측은 물론 만델라 대통령의 ANC측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실제로 일부 관측통들은과거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가져올 정치적 대가가 도덕적인 사기 앙양에 비해 훨씬 클 것이라며 과거의 범죄행위가 어디까지 파헤쳐질 수 있을 것인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범죄가 밝혀지더라도 처벌에 있어 어떤 예외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만델라 대통령은 『진실만이 과거를 잠재울 수 있다』며 과거의 범죄행위를 밝혀내는데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 5·18 특별법­청와대 다음 구상

    ◎“제2의 건국… 정치판 「쇄신태풍」 예고/당 조직 축소 등 「돈 안드는 정치」강구/개혁세력 대폭 수열… 분위기 일신도 김영삼 대통령은 이번주 특별한 정치일정을 예정하고 있지 않다.「5·18특별법」이라는 메가톤급 조치를 취했으므로 당분간 정치권의 움직임을 지켜볼 수도 있다.그러나 김대통령이 조용히 있으리라는 전망은 많지 않다.특유의 「몰아치기」를 계속,「구시대 정치행태」와의 단절을 주도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지금의 관심사는 「5·17」주모자의 사법처리 절차와 범위다.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12·12와 5·18에 대해서는 검찰이 기초조사를 충분히 해놓은 상태』라면서 『공소시효 논란만 정리된다면 짧은 시일안에 관련자 기소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올 정기국회 회기안에 특별법이 제정되면 연내 수사에 착수,연초에는 사법처리가 이뤄지는등 신속한 절차가 예상된다.민자당이 내년 1월중순쯤 전국위원회를 열고 면모를 일신하려는 것도 이같은 일정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생각된다. 처벌 대상은 김대통령이 김윤환 민자당대표에게 밝혔듯 「5·17쿠데타와 5·18광주학살을 직접 주도한 인물」에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은 사법처리가 확실한 듯싶지만 나머지 인물에 대해 속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다.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5·17쿠데타로 확실한 수혜를 입은 군출신만 처벌될 것이며 단순히 명령을 이행하고 계속 군에 남은 인사는 특별법의 단죄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전대통령의 부정축재 사건과 마찬가지로 검찰이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소명의식 아래 독자적인 수사와 기소를 진행시키는 게 바람직하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야당에서는 특별검사제 도입을 주장하지만 이는 상황을 잘 모르는 소치라는 게 청와대측의 설명이다.한 고위관계자는 『검찰은 12·12가 쿠데타라고 결론을 내렸고 5·18 학살의 진상도 상당부분 규명했다』면서 『다만 공소권이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미루고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검찰에 다시 맡기더라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미흡함이 없다는 지적이다. 「5·18특별법」제정은 김대통령이추구하는 정치개혁과 정치판 물갈이,지역감정 타파의 서곡일 뿐이라고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설명했다.김대통령은 「5·18특별법」제정방침을 밝히면서 「제2의 건국 심정」을 피력했다.개혁조치가 정치판 전체와 국정운영 전반에 이를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우선 민자당을 환골탈태시켜 정치개혁 추진에 앞장세우려는 것 같다.당명 변경을 계기로 「YS 신당」창당의 각오로 당체질을 바꾸도록 주문하고 있다.조직및 당운영체계가 대대적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개혁세력이 다수 수혈돼 당의 전반적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민자당의 변화를 지도체제 개편 등으로 좁게 해석하지 말라』면서 『돈 안드는 정치를 위한 근본 방안들이 강구되고 있다』고 말해 조직을 바탕으로 한 기존의 여당체제가 획기적으로 바뀔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국회의원 선거구제 변경도 주목대상이다.현재 선거구의 인구편차가 6대1까지 벌어져 있다.헌법재판소는 곧 이의 위헌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위헌심판이 난다면 변화가 불가피하다.여권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면서 인구편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지역구 분할을 재조정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그러나 민주당을 중심으로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 주장도 끊이지 않고 있어 선거구제 전환 논란이 본격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잘못된 역사」 사법적 단죄/5·18특별법­김 대통령 결단배경

    ◎5·6공 퇴진… 정치권 대폭적 물갈이/지역감정 해소… 정치행태 변화 유도 김영삼 대통령이 정국을 풀어나가기 위한 정면돌파에 나섰다.23일 민자당의 당명을 「버리도록」 지시한데 이어 5·18특별법 제정 결단을 내림으로써 본격적 과거청산,역사 바로잡기에 나선 것이다. 군사정권의 피해자이기도 한 김대통령은 평소 5공과 광주문제를 역사적으로 분명히 정리해야만 현실정치의 해묵은 굴절이 해소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그 대표적 병폐가 지역감정에서 유래한 지역당,지역패권 정치라고 보았다. 김대통령은 「5·18」을 지역감정을 증폭시킨 원인의 하나로 지목해 왔다.특별법 제정으로 5·18문제가 풀리면 지역감정의 양상,그리고 정당의 성격이나 투표행태도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 김대통령은 그동안 『특별법을 제정해 5·18관련자를 재조사하라』는 야당과 사회 일각의 요구에 대해 답변을 피한채 그 역사적 당위성과 소급입법의 문제점 등에 관해 심사숙고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김대통령은 특히 노태우씨 부정축재사건이 터지면서 『역사와 대화하는 심정』으로 대응책을 강구해 왔다.결국 노씨의 부도덕성이 백일하에 드러나 전직대통령의 구속이라는 전무후무한 상황이 전개되면서 김대통령은 3당합당을 포함한 과거를 완전 청산키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노씨 사건이 김대통령에게 5·18의 불법성과 신군부 세력의 부도덕성을 돌이켜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노씨등의 사법처리,민자당 당명개칭,그리고 12·12와 5·18 재수사 및 관련자 사법처리라는 절차로 과거청산을 매듭짓는 대역사에 나선 것이다. 아울러 김대통령은 노씨사건이 비생산적인 정쟁의 양상을 보임에 따라 이를 차단하고 아울러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정치 개혁으로 정국 분위기를 이끌어 가야한다는 판단에서 특별법제정 처방을 택한 것으로 풀이 된다. 다만 6공에서도 5·18의 해결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그러나 국회 청문회 끝에 여야 4당에 의한 「정치적 타협」으로 종료됐었다.김대통령은 「철저한 사법적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목소리가 아직도 높음을 감안,정치적 해결을 넘어사법적 처리까지 가는 특별법 제정을 택한 것이다. 5·18을 역사적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군사문화의 잔재를 확실히 턴다는 의미도 지닌다.5·18 특별법 제정에 이어 진상규명이 진행되면 정치판에서는 대대적 물갈이,그리고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여야를 막론,5·18을 통해 부상한 정치세력은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서게 될 것이다.아울러 5·18의 한이 뭉쳐진 호남지역의 정치적 정서도 완화되고 아울러 이를 바탕한 지역당 현상이나 특정 지도자의 끈질긴 영향력도 쇠퇴기에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문민정부의 실명제 실시와 각 분야의 사정 등 경제·사회적 개혁에 이어 「구시대정치」의 청산을 알리는 김대통령의 정치개혁이 이제 본격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이 여권의 시각이다. ◎김 대통령 여당총장 지시 전문/5·17쿠데타로 국민명예 실추 5·17쿠데타는 국가와 국민의 명예를 국내외에 실추시킴은 물론 민족의 자존심을 한없이 손상시켜 우리 모두를 슬프게 했다.국가 최후의 보루로서 조국과 민족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선량한 군인의 명예를 더럽혔다.따라서 쿠데타를 일으켜 국민에게 수많은 고통과 슬픔을 안겨준 당사자들의 처리를 위해 5·18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5·18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이 땅에 정의와 진실,그리고 법이 살아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기회가 되도록 하겠다. ◎김 대통령 청와대수석회의 지시 전문/정의·법 살아있다는 것 보여줄터 이 나라에 정의와 진실,그리고 법이 살아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한다.군사쿠데타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군의 명예를 짓밟는 일로서,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되거나 용납될 수 없다. 군사쿠데타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매우 부끄러운 역사이고 비극중의 비극으로서 그런 불행이 다시는 되풀이돼서는 안된다. 나는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제2의 건국을 하는 심정으로 결단을 내린 것이다.국가와 국민의 장래를 위해 사심없이 이 문제를 다룰 것이다.정의와 진실,법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철두철미하게 진실을 다루어야 한다.책임 있는 사람은 법에 의해 다뤄져야 한다.
  • 「5·18특별법」 검찰·법무부 표정

    ◎검찰 불언으로 이어질까 당혹·놀라움/“공소권 없음” 결정 당시로선 최선 강조/특별검사제 도입문제엔 상반된 반응 검찰과 헌법재판소는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민자당이 5·18 특별법 제정방침을 밝히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특별법에 담길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특히 검찰은 지난 7월19일 이 사건에 대한 공식 수사발표를 통해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등 사건 관련자 전원을 불기소 처분(공소권 없음)한 당사자이기 때문에 특별법 제정지시가 검찰의 불신으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모습이었다. ○…최병국 대검 공안부장은 『5·18 관련자들을 처벌하라는 국민들의 소리가 높아 대통령이 이같은 결단을 내린 것이 아니겠느냐』고 평가하면서 『헌법재판소가 5·18 불기소처분 취소결정을 내리면 특별법을 제정하지 않아도 되는데…』라고 당혹감을 표시. 그는 『5·18은 새로운 헌법질서를 창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내란여부에 대한 판단없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공소권 없음이라는 결정을 내렸으나 헌재가 「심사대상이 된다」고 결정하면 언제든지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고 피력. 5·18 사건의 수사 주임검사였던 장륜석 인천지검 차장은 『공소권 없음결정이 신군부의 집권을 합리화하고 면죄부를 줬다는 주장이 있으나 검찰의 결정은 오히려 신군부의 집권과정 등에서 나타난 불법성을 적나라하게 확인,역사앞에 단죄한 측면이 강하다』고 소개. 그는 『그러나 현행법의 법리 때문에 유무죄 판단을 유보하고 처벌을 하지 못했다』며 『검찰은 항상 현행법을 적용하는 것이지 특별법을 제정할 것까지 미리 상정,결정을 내리지는 않는다』며 당시 검찰의 결정이 최선이었음을 강조. 검찰 관계자들은 『이번 특별법에 특별검사제가 도입될 경우 검찰의 존립기반 마저 뒤흔드는 사태가 올 것』이라며 민감한 반응.그러나 다른 검찰관계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 특별검사가 수사를 맡아 하면 검찰이 짐을 덜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상반된 반응을 나타내기도. ○…법무부는 특별법이 의원입법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많으나 정부의 안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
  • 「깨끗한 정치 정착 어떻게…」 최한수 건국대교수 주제발표

    ◎“국회권한 강화… 권력형 비리 견제해야”/현행 공천제 개선… 선거공영제 더 확대를 21세기정책연구원(원장 서상목 의원)은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깨끗한 정치,어떻게 정착시킬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갖는다.이날 토론회에는 최한수 건국대교수가 주제발표를 하며 민자당의 최재욱·국민회의 박실 의원,임좌순 중앙선관위선거관리실장,유재현 경실련사무총장,윤정석 중앙대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석한다.다음은 최교수가 미리 배포한 주제발표요지다. 대통령이 5년간 5천억원이상의 돈을 거둬들이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그에 대한 제제도 없었다는 것은 우선 구조적인 문제다.깨끗한 정치는 새로 집을 짓기 위해 벽돌을 쌓아야 하는 근원적이고 장기적인 처방과 우선 기존의 집을 보수하는 단기적 처방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현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정치인의 자정결의가 요구된다.정치인은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는 자정결의를 하고 유권자는 혼탁선거를 배격하고 정치인으로부터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지 않겠다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미상당한 성과를 거둔 관권선거배격이 제1의 물결이었다면,정치권의 자정결의를 제2의 물결,관료사회및 시민사회의 자정운동을 제3의 물결로 삼아 한국정치를 개혁해야 한다.이러한 정치개혁을 촉진시키기 위해 가칭 「국민사회교육원」을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식혁명과 함께 제도개혁도 뒤따라야 한다.첫째,권력형 부정부패를 견제할 수 있도록 국회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국회가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당의원이 자율성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당의 1인자에 의해 의원의 정치적 운명이 좌우되는 현행 공천제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또한 국회의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국회내에 예산회계와 정책의 심사분석을 전담하는 전문부서를 설립,의원의 의정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둘째,정부의 정책이 대통령에 의해 좌우되거나 권력핵심부 인사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도록 제도화해야 한다.특히 총리의 권한이 강화되야 한다.「재경원」소속의 예산관할권을 총리에게 이관하고 「총리임기제」를 도입하는 것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셋째,검찰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검찰이 권력형 비리나 정치사건을 다루는 데는 「태생적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검찰이 권력형 범죄에 대해 성역 없이 단죄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넷째,선거공영제를 확대해 입후보자가 선거비용을 개별적으로 지출할 수 있는 여지를 최소화해야 한다.선거공영제의 효과적인 정착이 이뤄진다면 선거구제의 확대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왜냐하면 선거구가 크면 클수록 후보자가 유권자를 개별접촉하는 선거운동방식은 효율성이 낮아지고 그만큼 깨끗한 선거풍토가 정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정치자금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국고보조금의 축소,지정기탁금제및 쿠퐁제의 폐지,후원회제도의 활성화,정당의 차별성강화 및 당원납부제도의 활성화등을 추진해야 한다. 끝으로 정당의 체중감량과 운영개선이 필요하다.우리나라 정당의 조직구조는 행정구조와 병렬적으로 이뤄져 있다.정당구조를 국회중심으로 개편해 정당은 감량하고 국회는 몸무게를 늘려야 한다.
  • 이제 판도라의 상자를 열자/임현진 서울대 교수(일요일 아침에)

    요즈음 우리 현실정치를 한마디로 개판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정치를 스포츠에 비유한다면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 정치는 더이상 스포츠가 아니다.그것은 피를 부르는 난투에 불과하다. 민자당과 국민회의가 92년 대선자금의 공개를 둘러싸고 서로 「너죽고 나살자」는 식으로 이전투구하는 모습에서 굳이 정명」을 들먹이기 전에 최소한의 양식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이렇듯이 국민을 우롱하는 기성 정치권의 후안무치한 작태에 신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노태우 전 대통령의 권력형 부정축재사건으로 부실공화국에다 부패공화국이란 명예스럽지 못한 타이틀을 또하나 지니게 된 우리로서 뼈를 깎는 자성과 자정의 노력을 해도 모자라다고 본다.지금 민심은 들끓고 있다.사회지도층에 대한 신뢰도도 땅에 떨어져 있다.부정부패를 단순히 천민형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속성이라고 변명하기엔 우리 사회가 썩어도 너무 썩어 있다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결국 이번 비자금정국은 체제자체의 정당성 위기로까지 전개될 소지를 안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제기된다. 동양사상에서 왕도정치는 도덕정치,패도정치는 권력정치의 의미를 지닌다.그런데 우리 정치의 현주소는 여전히 패도정치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세사람의 지역맹주에 의한 정벌이 정당기능을 대신하고 있는 실정에서 대권쟁탈을 위한 음해와 모략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진정한 정치쇄신을 위해서 철저한 「정벌파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노태우씨의 구속으로 이어진 「비자금 드라마」는 한 사람의 국민된 관람자의 입장에서 볼 때 픽션으로는 짜임새가 빈약하고 논픽션이라기에는 진실성이 떨어진다.헌정사상 초유로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수감되었다고 해서 여야 지도자들의 지난날 정치자금을 둘러싼 모든 의혹이 일단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바야흐로 우리는 정경유착아래 이루어져 온 금권정치의 실체를 밝혀야 할 출발점에 서 있다. 권력무상,사필귀정,인과응보.이 몇마디로 촌철살인한다고 비자금 드라마는 종막을 고할 수 없다.불법축재사건은 국가원수를 지낸 일 개인의 단죄로 끝내기엔 나라의 망신이며 국민의 수치이기 때문이다.노태우씨는 구속되기에 앞서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반성은 커녕 기업인의 분발과 정치인의 화합을 구하는 아리송한 발언을 했다.이번 사건의 경과를 지켜보면서 두가지 점에서 석연치 않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첫째로 노태우씨 일가의 비리가 관계 당국에 의해 일찌감치 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에 와서야 문제화되었는가 하는 점이다.이것은 결국 지난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민자당이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방책으로 불법축재사건을 이용하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을 불러일으켜 준다.실제로 이번 사건은 구시대의 정치악습을 제거한다는 명분을 갖지만 종국적으로 김대중씨와 김종필씨의 동반퇴진을 겨냥한 김영삼대통령의 세대교체론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현 정부가 5·18 헌정유린 세력에 대해서 면책을 해 준 마당에 유독 비자금사건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데 3김 사이의 파워게임의 냄새를 맡게 된다. 둘째로 권력형 부정축재를 근절하기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먹이사슬을 구성하고 있는 정·관·경 유착관계를 타파하여야 한다는 점이다.이번 사건이 노태우씨 개인의 불법행위로 축소되어서는 결코 안된다.권력과 이권의 결탁이 이루어지는 배경에는 항시 비정상적인 정권창출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5,6공 정치자금의 「원조」에 대한 수사없이 비자금의 기성 정치권 유입을 마무리하려는 정부의 태도는 지극히 편파적이다.성역없는 사정이 법치와 제도에 의해서 이루어져야만 문민정부로서 자격을 공인받을 수 있다. 이제 청와대는 「불명예의 전당」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야 한다.현재의 난마처럼 얽힌 정치자금 정국을 풀기 위해서는 김영삼대통령이 솔선해서 허물과 치부를 정정당당하게 열어 보임으로써 알렉산더대왕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그리고 여야의 썩은 정치인들은 국민과 역사앞에 석고대죄하는 자세로 심판을 자청해야 한다.
  • 정치드라마의 역기능(사설)

    「공화국」시리즈로 이어지는 MBC의 「제4공화국」과 야심적으로 경쟁에 뛰어든 SBS의 「코리아게이트」가 전직대통령 비자금파동과 맞물려 크게 히트를 하고 있다.근세사를 다룬 정치극은 많은 시청자가 선호한다.게다가 우리의 현대사에는 온갖 극적요인이 가득하여 생소재 상태로도 재미있다.야사에 극적 흥미의 향신료까지 가미되면 더욱 재미있게 마련이다. 드라마가 재미있는 것은 나쁘지 않다.혼란되고 각박하고 메마른 현실에 지친 현대인에게 한편의 재미있는 드라마는 정서의 휴식과 긴장해소에 신선한 자극을 준다.다만 다른 한편으로 많은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음에 사려가 미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시청자들은 실록드라마를 사실 그자체로 믿는다.드라마적 흥미를 위해 어느정도 각색도 하고 픽션화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입힌 재미의 당의정에 현혹되어 더욱 사실로 믿는 것이다.어떤 목적이 개입되어 사시적인 굴절을 기도해도 진상처럼 먹혀들고 시청률 경쟁이나 또는 시청자들의 관심에 야합하여 특정방향으로 이끌어도 그대로 따라간다.방송극이 만들면 무능한 범부가 영웅도 되고,죄인도 될 수 있는 것이다.그런 전능한 힘에 도취되어 사실고증을 외면하고 오히려 사실에 대해 무책임한 왜곡을 한다면 얼마나 큰 잘못을 남길지 모른다. 더구나 한쪽은 재갈이 물려진 상태고 다른 한쪽은 과장되게 발언할 수 있는 상황에서 흑백논리로 단죄하는 방식의 픽션은 매우 위험한 결과도 가져올 것이다.픽션이되 사실과 같은 픽션을 그리기 위해 역사의 바다를 찾아 헤매는 것이 실록제작의 노력이다. 천박하게 사실을 희화화하여 현실을 냉소하는 드라마는 사람들의 마음을 집단으로 황폐화할 수 있다. 용서하기 싫은 주인공이라도 사실에 입각한 인간의 모습은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를 몽땅 진흙처럼 이겨대는 방식으로는 위로도 희망도 못 얻는다.
  • 정치사적 의미와 파장(노 전대통령 구속 이후 대변혁 온다:1)

    ◎정경유착·금권정치 “조종”/35년 비리구조 인적·제도적 청산촉진/돈안쓰는 깨끗한 정치 새출발 계기로 전직 대통령의 구속은 단순한 개인의 독직사건이라기보다 지난 61년 5·16 쿠데타 이래 35년간 우리 정치를 멍들게 했던 정경유착·금권정치의 종막을 헌정사에 기록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국민의 직선으로 뽑혀 5년 임기를 마친지 채 3년도 안된 노태우씨의 구속은 최초의 전직대통령 구속이란 점에서,그리고 국민에 대한 배신의 규모가 수천억원이란 점에서도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이 사건은 한 개인의 어리석은 물욕과 검은 양심이란 전직대통령의 독직사건일 수만은 없다.그보다는 지난 30년 한국정치가 기본적으로 기업과 권력간 검은 고리를 바탕으로 한 「구조적 비리」위에 영위돼 왔다는 더욱 근본적 문제를 백일하에 드러낸 것으로 파악된다. 노태우 전대통령의 부정축재에 따른 구속수감은 비리대통령에 대한 사법적 처리를 1차적으로 매듭짓는 것이지만,정치권에는 새정치,정경유착이 척결된 돈 안쓰는 깨끗한 정치의 구현을 향한 인적·제도적 일대 개혁을 예고하는 것이다.이것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단계적으로 단행된 공직자 재산등록 및 공개,금융 및 부동산실명제,선거법개정등 일련의 개혁조치가 「막바지 정치적 혁명단계」에 돌입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정치권과 재벌기업의 유착은 지난 35년간 한국정치를 지배해 온 「필요악」적 공생관계였다.3공,5공 역대 군사정권은 정통성 부족을 메우기 위해 대국민,대야관계에서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 사용해야 했다.그리고 당근으로 항상 엄청난 돈을 필요로 했다.대통령의 입장에서 「통치행위」를 정당화하고 정당 운영등을 위해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이 소요됐다.특히 선거를 치르기 위해 돈은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박정희·전두환 전대통령,그리고 직선으로 뽑혔으나 「12·12의 원죄」가 있는 노씨 3대에 걸쳐 공통적으로 통제경제와 행정규제를 수단으로 대기업들에게 손을 벌려왔다.정부의 정책결정 하나로 특정 재벌그룹이 몇천억을 벌거나 손해보거나 하는 일은 보통이었고 따라서 대기업이 청와대에돈을 주는 일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거의 자연스런 관행이 되다시피 했었다.노씨 구속이 단순히 단죄차원을 넘어서 정치사적으로 새로운 개혁을 예고하는 획기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음성적인 정치자금 수수의 「제도화」가 반드시 불식돼야 할 한국정치의 숙제임을 파악한 김대통령이 취임 제일성으로 『기업들로부터 단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부터 오늘과 같은 정치권의 개혁태풍은 예고됐던 셈이다. 전임 대통령을 구속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김대통령은 이달 들어 취임 이래 처음으로 연 2주째 청남대를 찾는 장고를 거듭했다.그 결과 나온 수습 수순은 특유의 정석인 「정면돌파 방식」이었다는 점이다.김대통령은 그동안 「문민정부의 도덕성」 「법 앞에 만인의 평등」을 여러차례 강조했다.또 민자당내 민주계의 핵심인 강삼재 사무총장은 「구시대 청산」 「구시대 정치인의 청산」을 후속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YS 정치개혁의 방향은 어느 정도 자명해진다.비리구조의 정치와 과감히 단절하고,인적·제도적 정치개혁을 구현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인적 개혁과 관련,민자당 강총장은 그동안 『구태의 정치지도자들은 스스로 진퇴를 결정하라』(9일),『적과 내통해 돈을 받은 정치지도자들은 거취를 스스로 결정하라』(13일)며 연일 융단폭격을 통해 야당의 김대중·김종필씨에게 퇴진을 촉구했다.인적 청산의 대상에는 야당뿐 아니라 여당도 포함될 전망이다.검찰이 이번 비자금 파문을 조사한 결과 야권 지도자와 여권 정치인들에게도 상당한 자금이 흘러들어갔다는 증거들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비자금 태풍은 정치판의 대대적 물갈이,특히 야당가의 세대교체 바람을 가속화할 것이 예상된다. 인적 개혁에 이어 제도개혁은 노씨 구속에 따른 정치개혁을 마무리하는 수순이다.통합선거법·정치자금법·정당법 등의 개정을 통해 검은 돈의 거래를 원천적으로 막고 돈이 들지 않는 선거와 정당운영을 이룩하는 등 제도적 개혁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 대대적인 개혁으로 가자(사설)

    정부가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사건을 계기로 정경유착을 단절하기 위한 정치 경제 행정부문의 개혁을 추진한다는 방침아래 월말까지 법적 제도적 개혁프로그램을 마련키로 한 것은 본질적인 접근으로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한달이 가깝도록 모두가 한숨이나 쉬고 울분만 터뜨리기보다 과거를 성찰하여 교훈을 찾고 근본적인 해결에 지혜를 모으는 것이 성숙하고 올바른 대응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건의 수사와 처벌은 엄정히 해나가는 한편으로 이홍구국무총리의 다짐대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는 것은 이번 사건을 제도적으로 수습하는 길이 될 것이다.우리는 그러한 일대개혁이 개혁드라이브의 강화로 이어지기를 바란다.정부와 경제계는 물론,정치권과 국민모두가 참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 실효성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이 기업들로부터 뇌물이나 불법자금을 거두어 정치를 하고 축재를 해온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관행을 타파하는 일은 보통 각오와 노력으로 될 일이 아니다.정신혁명을 수행하는 비상한 의지가 없이는 한 세대에 걸친 악습의 청산과 부패의 정화는 기대하기 어렵다.큰 사건의 마무리과정에서 거론되는 통상적인 수습과는 다른 차원에서 적어도 역사와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의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부의 계획에는 이총리가 시사한 바와 같이 정부의 규제완화와 공정거래강화등 경제계의 관행과 구조의 근본개혁과 법적 제도적 보완,그리고 국민의식개혁과 참여확대방안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이러한 정부의 노력과 아울러 정치권의 제도개혁노력은 필수적이다.음성적 정치자금조달의 금지와 처벌을 위한 정치자금법개정,돈 안드는 선거를 위한 선거법보완등 제도개선을 서둘러야 한다. 정치권은 자기단죄와 참회의 의지를 가지고 국고보조금의 축소등 실질적으로 돈을 덜쓰는 정치를 만들어가는 제도개혁을 국회가 끝나기전에 해야 한다.정쟁과 관계없이 정부와 여당이 조속히 머리를 맞대고 공청회도 하고 법안도 손질하는 등의 작업을 벌여야 한다.
  • 서울신문 발굴 「55년 당 중앙위 결정서」를 보고(전문가 진단)

    ◎북 권력층 비리 입증 첫 자료/전쟁중 후방의 기강 해이도 확인 북한정권의 수립과정과 그 지도층을 평가한 연구는 주요한 연구주제이기 때문에 이미 국내외에서 적지않은 양의 성과가 출판되었다.그러나 북한과 관련한 주제는 사실의 확인을 포함한 기초작업이 아직도 상당히 필요하다.특히 1차사료의 발굴과 정리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지금까지 북한의 공식간행물 이외의 1차사료는 한국전쟁 시기 미군이 입수한 이른바 「노획문서」가 거의 전부였다.「노획문서」는 현재 RG242로 분류되어 위싱턴 근교의 수트랜드에 보관되어 있다.연구자들은 이 자료들을 이용하여 북한정권 형성기의 많은 문제들에 관한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전쟁이후 시기의 자료를 새롭게 발굴하여 이 방면 연구자들이 겪는 공통의 어려움을 타개할 수는 없을까.북한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위해 의무적이기도 한 이 물음에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이번에 그 실마리를 제공했다. 「노획문서」를 제외한 북한관련 1차사료는 구소련과 동구권에서 찾을 수있다는 것이다.북한과 이 지역은 오래동안 우호적이었고,외교관과 연구자를 포함한 다양한 왕래가 있었다.또 북한정권의 형성에 참가했다가 뒷날 망명한 사람들도 이 지역에서 살았다.따라서 그들에 의한 계통적인 자료수집도 가능했다. 이번에 발굴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12월 전원회의 결정서」는 우리가 갖고 있던 기왕의 인식과 이해를 부분적 또는 전체적으로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 가치를 지닌 것이다.북한 노동당은 창당이후 공고화를 위한 투쟁을 계속해 왔다.그것은 유일지도체제의 수립과정이기도 했다.북한의 공산주의자만큼 자기 당의 조직·사상적 기초와 단결을 강조한 경우는 역사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북한에서 대부분의 당내투쟁은 「반종파주의」를 원칙으로 제기되고,해결되었다.대표적인 사례로 1955년 12월에 개최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12월 전원회의에서 박일우가 「종파주의자」로 낙인찍혀 축출되었다.이것은 1956년 3월로 예정된 노동당 제3차 대회를 앞두고 김일성 1인중심 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편황해도당 위원장이었던 김열에 대한 자료들은 당시 북한 정치의 특성이나 요인및 그들의 부패한 생활상까지를 처음으로 소상하게 설명해 주는 귀중한 1차사료라고 할 수 있다.1인 절대권력자의 지배하에 있는 북한 내부의 정치부패와 인권유린의 단면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본래 정치권력과 관련된 부패는 그 증거를 포착하기가 대단히 어렵다.자료에 의하면 북한당국은 김열의 행동을 개인의 가치,신념,생활태도등 과 관련한 사회적 일탈행위로만 단죄한다.그러나 한 사회의 권력형 비리는 대부분 제도적 취약성을 이용하여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탐욕을 채우는 행위인 것이다.우리는 김열을 통해 당시 북한사회 내부의 기강해이,당의 경제활동 독점으로 인한 부패 소지및 관리능력의 부재등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 김일성 1인체제 구축(새로 쓰는 한국현대사:44)

    ◎전후 복구­외교정책 싸고 소련파­연안파 대립/56년 「8월 종파사건」 계기 본격 숙청… 59년 완료 북한 김일성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노동당 내 경쟁 파벌들을 차례대로 숙청,50년대 말쯤에는 일인 집권체제를 구축했다.주체이론으로 무장한 김일성 유일지도체제는 북한을 세계에서 유례없는 공산독재 국가로 만들었다.이는 김일성이 사망한 뒤에도 그의 아들 김정일에게 계승돼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북한 노동당에는 원래 김일성이 이끄는 빨치산파를 비롯,국내파(남로당계)·소련파·연안파 등 주요 파벌이 넷 있었다.이 가운데 박헌영·이승엽 등으로 구성된 국내파는 한국전쟁 말기 이미 숙청돼 휴전 직후 형식적인 재판을 통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따라서 전후 김일성이 권력강화를 위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는 소련파와 연안파가 남았다. 노동당내 권력투쟁은 1955년에 접어들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여기에는 김일성의 권력욕이 물론 주요 동기였지만 전후 경제복구와 외교정책을 둘러싼 파벌간 노선 갈등도 적잖게 작용했다.김일성은 한국전이 끝나자 먼저 경제건설에 주력했다.김일성은 휴전협정 조인 다음날인 1953년 7월28일 라디오방송에서 『전쟁은 조선인민의 승리』라고 자화자찬한 다음 가장 시급한 과제로 『전쟁으로 파괴된 경제를 하루빨리 복구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들었다. 실제로 김일성은 중공업 우선의 「3개년 경제 계획」과 농업 집단화 등 경제개발에 한동안 힘을 쏟았다.또 소련·중국·몽골과 동구권 등 「사회주의 형제국」들을 순방하며 경제원조를 요청하는 외교활동을 벌였다.그러나 연안파와 소련파는 중공업 우선,농업집단화를 앞세운 경제복구가 북한 실정에 맞지 않는다며 반대했다.소련은 또 농업집단화가 중국의 인민공사제도를 흉내낸 잘못된 제도라고 비판했다. 이 무렵 스탈린 사망­흐루시초프 등장에 따라 기존의 국제관계에 변화가 일어난 점도 파벌 대립을 재촉했다.중국에 등을 대고 있는 연안파는 연안파대로,소련과 밀접한 소련파는 소련파대로 변화를 자기 파벌에 유리하게 작용시키려고 애썼다. 당연히 김일성과 반대파 사이에는 어느쪽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제대로 따르는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김일성은 이즈음 방어논리로 주체이론을 새로 내놓는다.1955년 4월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은 연설을 통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북한의 구체적 상황에 연결해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기계적 수용과 적용을 피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밝혔다.이에 대해 정치학자인 단국대 김학준 이사장은 『주체이론의 싹을 1940년대 말에 찾을 수도 있지만 늦어도 이 때 김일성 연설에서는 충분히 발견된다』고 그의 저서에서 기술했다. ○스탈린 사후 위기몰려 김일성은 이같은 이론을 무기로 먼저 연안파인 박일우(초대 내무상이자 당시 체신상)와 방호산(한국전 때 군단장)을 숙청했다.그해 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12월 전원회의」에서는 당 중앙위원겸 조직위원인 소련파 김열의 죄상을 대대적으로 폭로하는 한편 같은 파 지도자인 박창옥(부수상겸 국가계획 위원장)에게도 칼날을 겨누었다.김열은 비록 황해도당위원장 재직시 비리가 문제됐지만 결국은 개인비리를 숙청무기로 사용한 것이었다. 19 56년 김일성은 중대한 도전을 받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오히려 권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았다.2월 14∼25일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흐루시초프는 스탈린격하운동과 함께 집단지도체제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했다.더불어 미국 등 자본주의 국가와의 평화공존을 제창하고 나섰다.이는 일인독재를 추구하면서 그 바탕을 「반미」에 두고 있는 김일성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흐름이었다. 56년 4월 조선노동당 제3차 대회가 열렸다.이 자리에 소련에서는 정치국 정위원이자 서기국 서기인 브레즈네프가 참석,흐루시초프가 제시한 새 노선을 북한이 충실하게 따를 것을 촉구했다.김일성은 이를 받아들이지도,그렇다고 소련의 비위를 거슬리지도 않은 어중간한 연설을 했다. 그해 8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연안파와 소련파는 힘을 합쳐 김일성에게 도전했다.연안파 최창익(부수상겸 재무상)이 중공업우선 정책은 주민에게 고통만을 준다며 먼저 비판의 포문을 연데 이어 상업상 윤공흠은 김일성의 개인숭배를 비난했다.박창옥 등 소련파들도 나서 김일성 1인독재를 비판하면서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김두봉 57년 직위박탈 그러나 북한 노동당에서 「8월 종파사건」으로 부르는 이 사태는 김일성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김일성이 노동당 3차 대회에서 중앙위원 대부분을 이미 친위세력으로 바꾼 상황에서 윤공흠 등 연안파는 지지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체포됐다.사건은 곧 국제문제로 비화한다.윤공흠 등이 감시소홀을 틈타 중국으로 달아났기 때문이다.중국과 소련은 즉각 개입해 김일성에게 압력을 가했다.김일성은 죄지은 연안파·소련파 지도자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일단 굽히고 들어가 원래 직책에 복귀시켰다.그러나 김일성은 이들을 끝내 숙청하고 말았다. 「8월 종파사건」은 아직 그 실상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일부 연구자들은 연안파가 김일성제거 계획을 조직적으로 세웠다고 주장한다.무혈쿠데타를 노렸다는 것이다.윤공흠 등이 김일성을 전원회의에서 비판한 뒤 그 죄과를 들어 기소하기로 했지만 김일성측에게 이 정보가 새나가 오히려 역습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힘을 잃은 반대파들을 숙청하는 일은 절차만 남았을 뿐이었다.연안파의 우두머리 김두봉은 북한의 국가원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자리를 19 57년 9월 박탈당했다. 이들의 운명은 그뒤 어떻게 됐을까.김두봉은 쫓겨날 때 68세였다.1년가량 사상개조 교육을 받았지만 「개전의 정이 없어」다시 산골 협동농장으로 추방된 그는 1960년 또는 61년에 숨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인은 병사와 피살설이 있다. 김일성은 이어 공산당원 한집이 네집을 감시하는 이른바 「5호담당제」를 1958년 7월부터 실시했다.곧이어 12월부터 일반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숙청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였다.또 김일성의 빨치산운동을 항일독립운동에서 유일한 정통으로 내세운 역사조작에 손댄 것은 1959년의 일이다.이로써 30년 넘게 계속돼온 김일성독재체제가 완결된 것이다. ◎서울신문 특별취재반 발굴­노동당 중앙위회의 결정서/소련파 거물 김열 부패로 몰아 숙청/김일성의 정적 제거하는과정 보여줘/북 노동당 간부… 6·25때 대민착취 극심 북한 김일성이 한국전쟁후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은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이러한 상황에서 김일성이 정적을 숙청한 과정을 보여주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12월 전원회의 결정서」를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최근 모스크바에서 입수했다.1955년 12월에 열린 이 회의 결정서는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이 문서는 12월 2∼3일 진행된 전원회의에서 위원장 임해의 보고와 이에 따른 토론에서 내린 결정을 당 중앙위원회가 「절대비밀」로 분류,그달 25일 고위직 인사들에게 한정 발송한 것으로 돼 있다.내용은 황해도당위원장을 지낸 당 중앙위원겸 조직위원 김열의 부패한 생활상을 폭로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김열은 김일성에 맞선 소련파의 유력한 인물이다.그는 한국전쟁 때 황해도당위원장을 지내면서 직위를 이용,방탕과 사치가 극에 이를만한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그는 강제·억압·기만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성 30여명의 정조를 유린한 것으로 기록됐다.그 가운데는 여중생까지 포함됐다. 이와 함께 갖은 명목으로 크고작은 잔치를 벌였던 김열은 당의 시설물들을 향락에 이용했다는 사실도 폭로됐다.이를 위해 횡령도 서슴지 않았다고 이 문서는 덧붙였다.그는 후방에서 거둬 전선으로 보내는 성금 2백53만여원을 비롯 1천여만원을 불법 조성해 모두 탕진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그리고 김열은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그를 비판하는 당 간부들에게 구실을 붙여 강등시키거나 쫓아냈으며 아첨하는 사람들만을 중용했다고 노동당 중앙위원회는 비판했다. 김열에 대한 노동당의 단죄에 정적 숙청의 의미가 없지 않더라도 자료에서 드러난 노동당 간부의 부패상은 북한 사회의 또다른 면을 보여줬다.한국전 당시 남한에서도 후방의 퇴폐 분위기가 문제된 것처럼 북한의 권력층도 전쟁을 틈타 백성에게 갖은 횡포를 부렸음이 밝혀진 것이다.북한이 남한보다 더욱 획일적인 사회임을 감안하면 그 정도 역시 훨씬 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 역사의 전환점에서/이필상 고려대교수·경영학(일요일 아침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관련 비리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몇만원을 들고 손을 떨어야 하는 서민들로서는 배신감으로 분노가 크다.그러나 실제로 5천억원이 넘는 비자금때문에 국민이 입은 피해는 얼마나 큰 것인가.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현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터뜨리는 감정적 분노보다는 독재비리의 본질을 파악하여 단죄를 내리고 역사발전의 새로운 전환을 꾀하는 냉정한 이성이다. 과거 30년동안 독재권력과 재벌기업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면서 국민의 삶의 기반인 각종 산업과 국책사업들을 자신들의 이권으로 만들고 부당한 축재를 했다.따라서 일부 특권계층에 부가 부당하게 집중하고 막상 나라의 주인인 일반국민들은 피해계층으로 강요받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번 사건은 그대로 지나칠 수 없는 중대사안으로 비자금실체의 전모를 밝히고 관련자들을 성역없이 사법처리해야 한다.그러나 이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어두운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강구하는 것이다.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필요한 조치가 정치풍토 개혁이다.그동안 우리나라 정치는 권력만 잡으면 엄청난 돈을 버는 수익성 사업이었다.결국 정치가 국민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국민의 재산을 빼앗는 비리행위였다.앞으로 선거제도를 고쳐 돈 한푼 안들여도 능력과 명망있는 인사가 당선되도록 해야 한다.특히 선거운영을 완전 공영제로 바꾸어 선거의 객관성과 공명성을 보장해야 한다. 정경유착비리를 척결하기 위해서 또한 필요한 조치가 경제흐름을 투명하게 만들어 비리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다.이런 견지에서 절실한 것이 금융실명제의 강화이다. 금융실명제를 보완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조치가 예금비밀보장제도 개선이다.현행 금융실명제는 지나친 예금비밀보호로 사실상 비리의 보호막역할을 하고 있다.엄연한 범법사실의 혐의가 있는 경우 공적 사정기관이 감독과 사정활동에 필요한 금융거래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비밀보호규정을 완화해야 한다. 금융실명제의 실시에도 불구하고 지하음성거래와 돈세탁이 성행하고 지하경제비리가 계속 만연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차명거래가 금융기관의 묵인내지 주선아래 여전히 허용되고 있기 때문이다.이번에 문제가 된 노태우전대통령의 비자금도 신한은행이 돈세탁을 해주어 차명형태로 예금해 놓았던 것이다.차명거래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으로 향후 금융기관을 통하는 모든 차명거래를 불법화하고 위반시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거래자도 엄한 벌칙을 과해야 한다. 금융실명제의 또다른 보완조치로 일정금액이상의 대규모 금융거래시 자금사용용도와 출처를 밝히게 하는 돈세탁 방지규정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아직도 우리사회에는 실명을 가장한 뇌물수수,음성자금거래 등이 만연하고 있다.또 국제화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에도 마약거래 등 국제적인 지하자금이 흘러들 가능성이 높다. 돈줄을 주인인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경제개혁이 금융독립이다.그동안 무슨 일이 있어도 돈줄을 놓을 수 없다는 정치권력의 독재적 속성때문에 관치금융이 뿌리를 뻗고 금융산업이 권력형 비리의 온상이 되었다.이제 국민경제에 새로운 발전의 장을 열기 위해서 문민정부는 중앙은행의 중립화등 과감한 금융독립을 서둘러야 한다. 경제를 비리의 수렁에서 건져내는데 필요한 경제개혁으로 또한 필요한 것이 세제개혁이다.우리나라의 경우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면 비정상일 만큼 세무비리가 많다.여기서 세무조사가 통치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흔했다.공평한 세제가 경제정의의 중요한 축인 만큼 과감한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어떤 경제개혁보다 중요한 것이 정부의 인허가권과 규제를 전면 철폐하여 경제를 정경유착의 인질상태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현재 우리경제는 거미줄 같은 인허가권과 규제의 사슬에 묶여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어렵다.경제가 인허가권과 규제의 속박에서 벗어나야 자생적인 발전체제를 갖추고 권력의 부당한 지배를 거부할 수 있다.
  • 숨길일이 아니다(사설)

    헌정사상 처음으로 검찰에 소환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사에 대단히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주었음은 심히 유감스런 일이다.검찰이 근거를 대면서 비자금 조성경위나 사용처 등을 추궁해도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답할 수 없다』는 등 부인과 회피로 일관했다는 것은 보통의 피의자보다도 나을 게 없다.우리는 노씨가 역사와 국민앞에 진실을 숨김없이 밝히고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음을 인식하기 바란다. 그자신 역사의 평가와 법의 심판을 달게 받겠다고 해놓고 막상 법앞에서는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것은 단순히 피의자의 묵비권으로 이해될 일이 아니다.많은 국민들은 그래도 대통령을 지낸 사람은 무엇인가 보통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부정축재의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명예심이나 품위와 같은 최소한의 덕목은 보여줄 것으로 한가닥 희망을 가졌다고 보아야 한다.5천억원 비자금의 충격만 해도 주체하기 어려워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국민들도 적지않았을 것이다.그를 믿고대통령으로 뽑아 국정을 맡겼던 국민들의 자존심에 대한 철저한 배신은 또다른 죄를 짓는 것이다. 노씨는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애국하는 길인가를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국가의 불행을 막기위해 진상을 다 밝힐 수 없다는 말의 진의를 믿는다 하더라도 그동안의 개혁과 변화로 고양된 우리 사회의 도덕성과 민주적 안정성에 비추어 그가 입을 연다해서 국가적 파국이 올 것이 없다.그런 걱정은 우리 국민의 성숙한 분별력을 무시하는 기우이다.오히려 그런 그 무엇을 무기로 삼아 자신의 죄값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속셈으로밖에 보이지않을 것이다. 권력자란 아무리 잘하고 나와도 국민과 역사에 빚을 지게 마련이다.하루속히 부정축재의 전모와 선거자금을 포함한 모든 사실을 참회하는 심정으로 고백하고 법에 따른 단죄를 구하는 것만이 만분의 일이라도 빚을 갚는 길이다.그렇지 않으면 구속 등 검찰의 강압수사를 불러올 것임을 그는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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