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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열전 4번째 작품 ‘블랙버드’

    연극열전 4번째 작품 ‘블랙버드’

    “충격이죠?”“상당히” 15년 만에 만난 남녀. 대화는 짧고 겉돌고 공격적이고 방어적이다. 우나(추상미)와 레이(최정우)는 15년 전 성관계를 가졌다. 당시 우나는 열두살, 레이는 마흔살이었다. 대학로 연극열전 네번째 작품인 ‘블랙버드’(5월25일까지·동숭아트센터 소극장)는 영국의 신예작가 데이비드 해로워의 신작. 작년 로렌스 올리비에 베스트 희곡상을 받은 작품이다. ‘새장에 갇힌 새’라는 뜻의 ‘블랙버드’는 불편한 진실을 따라가게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극은 두 질문 사이의 탐색전이다.‘둘은 서로 사랑했을까’ 혹은 ‘남자는 소녀를 추행했을까’. 우연히 잡지에서 레이를 발견한 우나는 그를 찾아 한걸음에 달려온다.15년전 아동강간범으로 6년형을 살고 나온 레이는 ‘그 일’에서 벗어나려 이름까지 바꿨다. 반면 우나는 아직까지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분노를 꾸역꾸역 삼켜온 여자와 상황을 피해보려는 남자. 서로 다른 기억을 쫓아가보는 두 사람은 팽팽한 신경전과 속사포 같은 대사로 한시간 반을 꼬박 침 삼키게 한다. 무대는 너절한 사무실. 햄버거 포장지에 먹다버린 빵, 초코바 껍질이 나뒹군다. 레이에게 버려진 우나, 정상적인 삶의 영역에서 내던져진 레이의 ‘쓰레기 같은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품이다. 나직하게 시작해 격정으로 터지는 추상미의 파급력과 최정우의 노련한 안정감이 균형을 이룬다. ‘블랙버드’는 충격적인 반전(?)이 있다고 예고해 왔다. 그러나 관객에 따라 반전은 반전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가치관과 작품 해독에 달린 문제다. 극은 씁쓸한 의문부호만 남기고 철컹, 닫힌다. 매주 수요일은 배우연출과의 대화가 있는 ‘수다데이’.2일 밤 공연이 끝나자 10여명이 넘는 관객들이 손을 들었다. 한 여성관객이 “요즘 소아성애가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인데 이 연극에서 주는 메시지가 뭐냐.”고 묻자 이영석 연출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번졌다. 이 연출은 “그건 레이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답했다.“사회적으로 레이는 성추행범이지만 둘에겐 사랑일 수 있어요. 사회적 단죄가 들어오면서 둘이 서로 증오하게끔 재사회화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배우 정철우씨의 말대로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민감할 수도 있는 문제작이다.(02)766-6007.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25년간 1℃ 상승했는데 지구온난화?

    25년간 1℃ 상승했는데 지구온난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54년의 미래를 다루고 있다. 범죄가 일어나기 전 예측해 단죄하는 ‘프리크라임’은 범죄 없는 완벽한 세상을 만들고 있다. 프리크라임을 구성하는 세 명의 예지자들의 의견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다. 그러나 세 사람 중 두 사람의 의견이 같다면 나머지 한 사람의 의견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소수의 의견)로 무시된다. 영화는 전체를 위한 편의성이라는 이름으로 묻혀지는 소수의 의견이 때론 옳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확한 대처 위해서는 소수의견에도 관심을 2008년 현재 전 세계 최고의 화두는 단연 ‘지구온난화’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증가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구온난화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대의 재앙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인류멸망’을 이끌어낼 무시무시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과학자들은 지구온난화의 위험이 실제 과학적 사실보다 훨씬 과대포장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기상청의 한 관계자는 “지구온난화에 인류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은 분명히 심각할 정도로 부풀려져 있다.”면서 “다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 이같은 사실을 용기내서 말할 학자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는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환경단체와 운동가를 상대로 한 소송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머무르고 있지만 정확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는 ‘위험을 과대 포장’하는 것보다 ‘정확한 사실 파악’이 우선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최대의 일기예보 전문 회사 ‘웨더 채널’ 설립자인 존 콜만은 최근 전 미국 부통령이자 환경운동가인 앨 고어를 사기혐의로 고소했다. 그는 “지난 25년간 고작 1도의 기온변화가 있었고 지난 겨울은 엄청나게 추웠다.”면서 “이산화탄소는 10만개의 공기 입자 중 겨우 38개를 구성할 뿐인데 마치 전체인 것처럼 오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수 미디어가 지구 온난화 주장만 보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송을 통한 법적 공방은 지구 온난화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밝혔다. 저명한 기상학자이기도 한 콜만은 고소장과 동시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지구온난화를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마이클 만의 1999년 보고서는 명백한 오류”라며 “지난 1000년간 1990년대가 가장 더웠고, 그 중 1998년의 온도가 최고였다는 만의 결론은 그가 제시한 연구결과와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또 미항공우주국(NASA)이 1840년 이후 매년 발표하고 있는 ‘역사상 가장 더웠던 해’ 기록에 따르면 역대 10위까지의 해 중 1990년대는 세 차례,21세기 이후에는 단 한 차례밖에 없었다. 이는 인간이 지속적으로 지구온난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불가능한 결과라고 콜만은 설명했다. CNN 진행자인 글렌 벡 역시 “지구온난화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사건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고어의 ‘불편한 진실’을 패러디한 제목의 베스트셀러 ‘불편한 책’을 통해 “기상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면 직장에서 해고당할 것으로 생각하고 침묵하고 있다.”면서 “반론에 대한 언로가 막혀 있고, 만약 제기하면 마녀사냥식 공격에 당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英법원 ‘불편한 진실´ 9가지 오류있다고 판결 지구온난화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고어에게 2007년 노벨평화상을 안긴 영화 겸 베스트셀러 ‘불편한 진실’을 둘러싼 논란도 한창이다. 일각에서는 고어가 직접 출연한 영화 ‘불편한 진실’이 기후에 대해 지나치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는 점을 들어 노벨상과 아카데미 다큐멘터리상을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불편한 진실과 관련된 논란은 영화상영 당시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영화를 지구온난화 교재로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고어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교사협회에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는 교육용으로 사용할 수 없다.”며 사양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영국 법원은 영화 내용상 오류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아 주목을 받았다. 영국 고등법원의 마이클 버튼 판사는 “영화가 지구온난화를 다루는 데 있어 9가지 잘못된 점이 있고, 이 중 상당수는 고어 자신의 관점을 지지하기 위해 과장되고 기우적인 맥락에서 나타났다.”며 “영화를 중등학교에서 교육자료의 일부로 사용할 수 있지만, 일방적인 관점을 상쇄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과 함께 제공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은 영화에 대해(괄호안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 ▲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가 인간이 만든 지구온난화로 인해 물에 잠기게 될 것(침수로 인해 사람들이 대피한 사실 없음) ▲멕시코 만류를 통해 따뜻한 해수가 북대서양을 건너 서유럽으로 순환하는 해양 컨베이어를 마비시킬 것(IPCC 보고서에 따르면 순환 벨트가 정지하는 것은 불가능함) ▲65만년 동안 이산화탄소의 증가와 온도변화에 대한 두 개의 그래프가 완전히 일치(두 개의 그래프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며 많은 변수가 존재함) ▲킬리만자로 만년설이 사라진 것은 온난화 때문(다른 원인들이 밝혀지고 있음) ▲차드호가 마른 것은 지구 온난화의 대표적인 예(차드호는 인구증가와 목초, 지역적인 기후변화로 말랐음) ▲허리케인 카타리나는 지구 온난화로 발생(뒷받침할 증거 없음) ▲북극곰이 얼음을 찾기 위해 먼 거리를 헤엄치다가 바다에 빠져 죽고 있음(실제로는 폭풍으로 인해 물에 빠져 죽은 북극곰 네 마리가 발견됐을 뿐) ▲지구 온난화로 전 세계의 모든 산호초가 탈색됐음(산호초 탈색은 과도한 어업행위, 오염 등으로 인한 것) 등을 들고 있다. 특히 버튼 판사는 “고어가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가까운 시일내에 해수면이 6m 이상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과학자들에 따르면 이같은 일은 최소한 1000년 이상 지금과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사설] ‘삼성 떡값’ 명단 조건없이 공개하라

    비자금 조성 등 삼성관련 각종 의혹을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이명박 정부에도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고위층 인사가 많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그는 새 정부에서 임명한 일부 국무위원과 청와대 고위직 인사를 그 대상으로 지목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인사파동 끝에 힘겹게 출범한 새 정부는 또다시 곤경에 처하게 된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10월 말 50억원대의 비자금 조성을 시작으로 4차례에 걸쳐 ‘삼성 떡값’을 받았다는 전·현직 검찰 고위인사 3명 공개, 비자금으로 해외 고가 미술품 구입, 권력기관에 대한 전방위 로비 등 ‘메가톤급’ 의혹들을 폭로한 바 있다. 김 변호사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떡값수수 명단 공개라는 카드를 꺼내든 것은 특검 수사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권력기관 로비 의혹에 대한 단죄를 기대하기엔 특검 수사가 지나칠 정도로 미온적이라는 게 이들의 불만이다. 반면 특검은 수사에 착수하기엔 구체적인 증거가 미흡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뇌물을 주고받은 양쪽 당사자가 모두 부인할 것이 뻔한 상황에서 섣불리 단죄에 나섰다가는 특검 수사 전체를 불신하는 역풍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삼성 떡값’ 명단 공개를 둘러싼 소모적인 공방을 이젠 끝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선 김 변호사와 사제단은 조건없이 명단을 공개해야 한다. 특히 김 변호사 등은 지난해 11월5일 3차 폭로기자회견 때 “사태 진전을 봐가며 떡값 수수 판·검사 등의 명단을 비롯해 각종 증거자료를 공개하겠다.”고 한 약속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더이상 군불 때기 식의 엄포만 놓을 게 아니라 떳떳하게 명단을 공개하고 확보한 증거자료가 있다면 특검에 모두 제출해야 한다. 특검 수사 결과를 예단하고 공개 시기를 저울질하는 것은 ‘정략적인 행위’로 오해받을 수 있다. 결단을 기대한다.
  • [여성&남성] 간통죄 논란, 당신의 생각은

    [여성&남성] 간통죄 논란, 당신의 생각은

    ‘간통죄´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법이 왜 개인의 이불 속 생활까지 재단하나.´란 의견도 옳게 들리고,‘결혼으로 이룬 가정이 있는데 개인의 성적(性的) 자기 결정권만 따질 수 있느냐.´는 주장도 합당하게 들린다. 하지만 모든 제도가 존재 그 자체에서 이미 당위성을 담보로 가지듯, 아직 우리 사회에선 간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 강하게 낙인찍혀 있다. 최근 탤런트 옥소리(40·여)가 ‘간통은 개인간 민사일 뿐 형사처벌은 위헌´이라며 법원에 위헌심판 제청을 신청하자 누리꾼 사이에서 옥소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높은 게 현실이다. 여성과 남성, 그들이 생각하는 ‘간통죄´에 대한 다르고도 같은 생각을 들어봤다. ■ 외도 상처는 지구 종말과도 같아…처벌 당연 ● 결혼은 엄연한 법적 약속 결혼 30년차 주부 이모(55)씨는 배우자의 외도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지구의 종말이 오는 기분일 것”이라고 표현했다. 결혼은 한 사람과의 엄연한 법적 약속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범법행위로 상대에게 물질적·정신적인 손해를 입혔다면 당연히 형사처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게 이씨의 견해다. 이씨는 남편이 몰래 외도했다면 “‘배우자를 벌할 권리와 의무’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형사고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고 하지만 어떤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해도 이미 한 사람과 가정을 이루겠다고 약속한 사람에게는 죄일 수밖에 없지요. 그게 결혼 관계에 내 인생 모두를 바쳤던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기 때문에 민사 배상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봐요.” 미혼의 회사원 이모(29)씨도 간통은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본다. 여전히 ‘일부일처제’가 법제화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 간통은 그 기본적인 룰을 깬 것이기 때문이다.‘법을 위반했으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한다.’는 명제를 따라야 사회 전체가 평온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사랑 자체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간통으로 가정이 깨지고, 가정 문제가 사회적 파장으로 연결된다면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만 미래의 배우자가 외도를 했다면 고소할 생각이냐는 물음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간통으로 고소하려면 이혼을 전제로 해야 하잖아요. 그건 너무 힘든 결정일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배우자가 외도를 한 ‘강도’에 따라 결정이 좌우될 것 같아요.” 결혼 24년차인 전문직 최모(47)씨는 “사랑은 죄가 아니지만 불륜은 죄”라는 말로 화두를 꺼냈다. 결혼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나 타인에 대한 연애 감정을 구속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제도라는 게 최씨의 생각이다. 때문에 최씨 역시 남편이 결혼식 때 굳게 맹세한 ‘서약’을 어기면 당연히 간통죄로 고소할 예정이다.“한 이불을 덮고 자는 남편과는 사랑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어기지 않기 위해 욕망을 억제하자는 약속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가는 대로 모든 걸 해버린다면, 세상은 결국 이기적인 생각만으로 가득 차지 않을까요.” ● 감성으론 ‘철창행’, 이성으론 ‘민사해결’ 미혼의 전문직 김모(29)씨는 간통이란 화두를 떠올리면 머릿속에서 ‘이성’과 ‘감성’이 마구 충돌한다. 사실 사귀고 있는 남자가 다른 여자친구를 만나는 것만 봐도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화가 나는데, 결혼까지 한 사람이 다른 여자와 외도한다는 건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상처’다. 하지만 그를 ‘형사 처벌로 철창에까지 보내야 하느냐.’고 곰곰이 생각해 보면 고개가 좌우로 흔들린다.“남편이 형사 처벌받는다고 해서 상처받은 제 마음이 치유되겠습니까.” 결혼 3년차 회사원 최모(32)씨는 “결혼은 두 사람간의 계약관계일 뿐”이라고 말했다. 계약을 파기한 것에 대한 민사 책임은 가능하지만 물건을 훔치거나 사람을 물리적으로 다치게 하는 형사 사건과는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는 게 최씨의 지적이다. 때문에 현재의 남편이 외도를 하더라도 ‘내 것만큼 소중한 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고소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있다.“분명 결혼계약에서 상대에 대한 신의성실의 의무를 위배한 책임은 있죠. 다만 그건 계약위반에 대한 비난과 배상으로 충분히 조정할 수 있다고 봐요.” ● 간통 형사처벌은 구시대의 산물일 뿐 미혼의 회사원 김모(28)씨에게 간통은 ‘당사자끼리 뺨 때리고 끝내면 되는, 지극히 남녀 개인간의 문제’다. 때문에 간통에 대한 형사법 적용은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본다. 만약 미래의 배우자가 외도를 저지른다면 김씨는 위자료를 왕창 뜯어내고 ‘쿨하게’ 이혼으로 관계를 정리할 예정이다. “형사처벌 문제와는 별도로, 만약 마음이 떠나 다른 사람에게로 사랑이 옮겨 갔다면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지금 배우자에게 알리고 관계를 정리한 뒤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게 순서라고 봐요. 배우자를 속이고 관계를 유지하는 건, 지금 관계를 잃지 않은 상태에서 덤으로 관계를 얻고 싶은 욕심이거나, 욕 먹고 싶지 않은 비겁함 정도겠죠.” 곧 결혼을 앞둔 회사원 신모(27)씨 역시 “국가가 개인의 연애와 결혼 문제에 간섭할 자격이 어디 있느냐.”는 반문으로 말을 꺼냈다. 배우자가 있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과 연애한다면 ‘마음의 죄’는 될 수 있지만 국가나 사회가 그를 단죄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사실 지금 간통죄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미래의 남편이 외도를 저지른다면 감정적으로 열이 뻗친 상태에서 형사고소라는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되려 그렇기 때문에 고소가 남발될 우려도 있고 그에 따른 공권력 낭비도 걱정이니 빨리 간통죄가 폐지됐으면 좋겠네요.”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형법의 잣대로 개인 이불까지 들추다니… ● “옥소리씨 잘했어요” 최근 탤런트 옥소리씨가 간통죄 위헌심판 제청을 했다는 소식에 직장인 김모(29)씨는 손바닥을 쳤다. 간통죄가 우리 헌정사의 ‘수치 중의 수치’라고 주장하는 김씨는 간통죄 존폐논란이 다시 도마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김씨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간통죄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매우 창피한 일입니다. 법이 사생활을 하나하나 통제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과 다를 바가 없잖아요.” 김씨는 간통죄가 1970∼80년대 군부 독재시절의 잔재라고 믿고 있다. 간통죄가 존재하는 한 개개인의 ‘성(性)의 자유’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지금이 군부 독재시절인가요. 밤에 통행을 금지시키고, 경찰이 가위를 들고 다니며 장발족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과 다를 게 전혀 없죠. 법이란 이름으로 개인의 이불을 들춰 가며 검사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생활 침해입니다.” 직장인 송모(27)씨도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개인의 성생활을 법으로 다루는 현실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전통이 짧다는 것을 방증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간통죄입니다. 개인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강한 국가’ 이데올로기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송씨는 지금 나오고 있는 간통죄 논란을 보면 과거 군부 독재시절의 ‘야간 통행금지 폐지 논란’이 떠오른다고 말한다.“과거 군부 정권이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야간 통금이라고 합니다. 민주화가 진행되고 통금을 폐지한다는 주장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이 반대했죠. 통금을 없애면 사회질서가 문란해질 것이란 게 주된 논리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한심한 주장이잖아요.” 송씨는 지금의 간통죄 폐지 논란도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만일 간통죄가 폐지되고 시간이 흐르면 야간통금처럼 ‘터무니없는 법’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 간통죄가 여성보호 장치? 일부 남성은 여성의 권리가 상승된 현실에서 간통죄의 ‘여성보호’ 효과는 거의 상실됐다고 말한다. 대학원생 박모(27)씨는 간통죄를 더 이상 존치시킬 이유가 없다며 이렇게 말한다.“간통죄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가 강하잖아요. 아무래도 남성의 외도 비율이 높고 여성은 이로 인해 실질적 피해를 많이 봤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아 달라졌습니다. 여성의 사회·경제적 위치가 예전에 비해 많이 향상된 이 시점에 굳이 간통죄를 유지할 이유가 없는 거죠.” 고시생 김모(28)씨도 비슷한 주장을 내놓았다. 남녀평등이 상당 부분 이뤄진 상황에서 간통죄의 명분 자체가 이미 사라졌다는 것이다.“일각에서는 ‘여성 상위시대’라는 말도 나오잖아요. 이제 여성도 배우자의 외도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있고요. 그럼에도 남의 가정사를 법의 힘에 빗대 해결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일부 남성은 아직도 남녀가 불평등하기 때문에 간통죄를 폐지해야 한다며 반론을 폈다. 직장인 이모(26)씨는 간통죄가 오히려 남성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고 있다고 주장한다.“요즘 간통죄로 남성이 여성을 고소하는 일이 여성이 남성을 고소하는 일보다 더 많다는 통계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아직 남성의 외도와 여성의 외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남성이 외도를 하면 ‘남자가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다소 관용적인 분위기가 있지만 여성은 아니죠. 제 주변에도 남편의 외도를 그냥 넘기는 아내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의 외도는 쉽게 넘기지 않죠. 간통죄는 남성이 여성을 탄압하기 위해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 “민법으로도 충분히 해결 가능” 일부 남성은 간통죄의 ‘여성보호’라는 취지에는 찬성하지만 형법을 적용시키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지적한다. 개인의 사생활 문제를 형법에 적용시킨다는 사실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므로 법적 보완을 통해 해결하자는 논리다. 고시생 김모(27)씨는 ‘여성보호’의 취지는 형법이 아닌 민법으로 살려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만일 배우자의 외도로 인해 피해를 봤다면 손해배상 등의 민법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지 형법을 적용시켜 ‘콩밥’ 먹일 필요는 없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사생활 문제를 형법을 적용해 판단한다는 것은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일입니다. 민법을 통하면 사생활 문제의 한계는 물론 여성 보호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직장인 성모(28)씨의 생각도 비슷하다. 성씨는 간통죄의 취지가 ‘외도한 배우자에게 일방적으로 이혼 당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굳이 형법을 적용시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간통죄의 취지가 잘못됐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충분히 민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형법으로 해결하다 보니 사생활 침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사설] 외자 유치와 불법 단죄는 별개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카드를 인수·합병할 당시 인위적으로 주가를 조작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법원은 이에 따라 증권거래법 위반죄 등으로 불구속기소된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하는 한편 주가조작에 가담한 외환은행 법인과 대주주인 LSF-KEB홀딩스SCA에 각각 25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번 판결로 론스타의 불법성이 다시 부각됨에 따라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사건 때처럼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문제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의 경우 대법원까지 다툼이 예상되는 데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체를 무효화할 수 있는 헐값 매각의혹사건에 대한 재판이 따로 진행 중이어서 최종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금융감독위원회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 박탈을 유보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번 판결로 무죄를 주장해온 론스타는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당장 오는 4월까지 HSBC은행에 외환은행을 매각하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사건은 우리에게도 ‘공짜 점심은 없다.’는 값비싼 교훈을 남겼다. 애국심에 편승해 ‘먹튀’ 여론을 부추겼지만 론스타에 가해지는 실질적인 손실은 없었다. 도리어 한국이 국제자본시장에서 ‘국수주의가 득세하는 나라’로 각인시켰을 따름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자본에 국적을 따지는 소아병에서 벗어나야 한다. 불법은 단죄하되 외국인 투자에는 마음을 활짝 열어야 한다.
  • 孫 ‘호남 달래기’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표가 22일 광주를 방문해 ‘호남 달래기’에 나섰다. 대표 취임 후 첫 방문이다. 손 대표는 이날 광주시당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특정한 권역이나 그룹을 획일적으로 단죄하는 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 ‘호남 물갈이론’ 등으로 술렁이는 호남권 의원들을 다독이기 위한 발언으로 보인다. 손 대표는 “현역 물갈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책임질 사람은 책임져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하지만 좀더 품격 높은 언어로 우리 자신을 규정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물갈이한다. 몇 퍼센트 한다. 이런 걸 쇄신이고 민심이라고 한다면 그건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구 민주당 ‘8인 모임’ 소속의 정균환 최고위원 등이 호남지역 공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호남에서 쇄신과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야 하고 두 사람이 전권을 행사한다는 건 그런 취지에 어긋난다.”고 단언했다. 손 대표는 공천 심사위 구성에 대해 “객관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독립적 공천심사위를 구성하기 위해 사회적 신망과 존경을 받는 외부인사를 영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의 불만은 여전했다. 호남지역의 한 의원은 “좀 서운한 느낌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밝힌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으냐.”고 했다. 그러나 “아직 공천기구 구성이 마무리되지 않았으니 일단 지켜보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날 손 대표의 첫 광주 방문에는 강금실·유인태·박홍수·김상희·박명광 최고위원과 김효석 원내대표 등 통합신당 지도부가 총출동했다.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사설] ‘BBK 특검’ 성패 수사협조에 달렸다

    헌법재판소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겨냥한 ‘BBK 특검법’에 대해 동행명령제를 제외하고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지난 7일 임명된 정호영 특검은 오는 14일부터 최장 40일간 검찰이 무혐의 결정을 내린 의혹을 비롯, 이 당선인과 관련된 광범위한 의혹을 다시 수사하게 된다.‘BBK 특검’은 지난 대선뿐 아니라 오는 4월의 총선 전략과 맞물려 정치권이 사생결단식 대결을 벌였던 사안이다. 대통합민주신당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수사검사에 대해 사상 초유의 탄핵 발의를 하고 ‘위헌’ 논란 속에서도 특검법을 강행처리한 이유다. 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가 검찰수사의 대상이 되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특검 수사의 대상이 된 것은 이유야 어찌됐든 불행이다. 실체적 진실과 상관없이 의혹 부풀리기식 대립이 지속되다 보니 자금추적 등 증거에 의거해 내놓은 검찰의 수사결과도 불신의 대상이 됐다. 특검법에 대한 찬반 양론이 아직도 팽팽한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우리는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위헌시비에는 종지부를 찍은 만큼 더 이상 정치적인 판단과 해석은 삼갔으면 한다. 정 특검은 단기간내 특검법이 규정한 모든 의혹을 명확하게 해소하기란 쉽지 않겠지만 실체 규명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기 바란다. 강제수사 수단인 동행명령제의 위헌 결정으로 특검 수사의 부실화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를 불식시키려면 참고인의 자발적인 수사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 당선인은 새 정부 출범 이전에 깨끗이 털고 가라는 국민적 여망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친인척 등 사건관련자들에게 수사에 적극 응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특검이 요구한다면 이 당선인 자신도 특검의 직접조사에 흔쾌히 응해야 한다. 이는 이 당선인측이 공언한 ‘공작정치 단죄’와는 별개의 문제다. 검찰 역시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특검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 [이용원 칼럼] 교육개혁 ‘학생’이 중심이다

    [이용원 칼럼] 교육개혁 ‘학생’이 중심이다

    올가을 이후 진행된 각급 입시에서도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월30일 치른 경기 지역의 외국어고 공동 입시를 앞두고 김포외고에서 시험문제가 사전 유출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김포·명지·안양외고 응시생 63명이 합격을 취소당했다. 경기교육청은 해당 학생들이 시험문제를 사전에 보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 없이 문제를 빼낸 학원에 적을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단죄했다. 이어 지난 7일 2008학년도 수능 성적이 공개된 뒤로는 일선학교와 학원가가 일대 혼란에 빠졌다. 난이도를 적절히 조절했다는 교육당국의 발표와는 달리 수리 가 영역에서는 한 문제를 틀리고도 2등급을 받은 학생이 속출했다. 과목별 점수의 합계에서 10∼20점 앞섰지만 등급 합산에서는 더 낮은 평가가 나오는 역전 현상 또한 발생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1점차로 등급이 갈리는 데다, 등급이 유일한 수능 기준이기에 학생들이 점수에 더욱 목매게 됐다는 점이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물리Ⅱ 과목에서 복수정답까지 등장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측이 진즉에 제기된 수험생의 이의를 어물쩍 넘기려다 여론 압박에 못이겨 뒤늦게 잘못을 인정한 것이다. 그 때문에 수시 합격생 추가 선정, 정시모집 기한 연장 등 대학입시 일정은 뒤틀어졌고, 물리Ⅱ 과목의 상위 등급자가 늘어난 데 따른 상대적 불이익을 주장하는 불만의 소리는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시험문제 유출, 등급제 발표 후의 대혼란, 수능 복수정답 인정 등은 모두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 ‘사건’들은 발생 원인, 처리 과정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학생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김포외고 사건에서는 경기교육청이 선의의 피해자를 가려내 구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무더기로 합격 취소 처분을 내린 뒤 구제 여부는 법원 판결로 가리겠다고 결정했다. 교실에서 누군가가 물건을 잃어버리면, 학급 학생 전체를 경찰에 고발하고, 아이들이 무슨 일을 겪든 나 몰라라 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태이다. 아울러 교육감을 비롯해 그 누구도 이 사태에 책임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수능 성적을 표준점수·백분위 없이 등급으로만 제시하는 단순등급제도 그동안 숱한 우려와 반대를 무시하고 교육당국이 밀어붙였다. 그 결과 학업 성취보다는 일정부분 운에 좌우된 성적표를 들고 학생·학부모·교사들이 갈피를 못 잡는데도 교육부는 그것이 새 제도의 목표라며 태연하기만 하다. 더욱이 복수정답 인정 과정에서는 수능 직후 수험생의 문제제기를 묵살하고 성적을 발표한 한참 뒤에야 재채점을 하는 바람에 혼란을 자초했다. 이 또한 처음부터 수험생 입장을 고려했더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제도건 행정이건 학생보다는 교육당국자, 교육자들 위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학생은 그저 그들을 먹여살리는 들러리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다양한 교육개혁안이 나오고 있다. 자율형사립고 100곳, 기숙형공립고 150곳, 마이스터고를 50곳 설립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구체적 계획이 어떻든 가장 중요한 건 새 제도는 학생을 들러리가 아닌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학생들 입장에 서서 학생들을 십분 배려한 정책만이 곯을 대로 곯은 한국 교육을 되살릴 수 있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서울광장] ‘괴물 부모’ 시대/황성기 논설위원

    [서울광장] ‘괴물 부모’ 시대/황성기 논설위원

    일본 후쿠오카 지방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중인 재판. 초등학생 부모가 담임 교사와 후쿠오카시를 상대로 5800만엔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 소송이다. 교사의 폭행, 폭언으로 아이에게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생겨났다며 원고측이 책임을 물은 사건이다. 교육 소송으로는 초유의 청구액으로 이목을 끈 사건의 발단은 교사의 가정방문이었다. 어머니는 아이의 학교 생활, 성격을 화제로 얘기를 나누다가 느닷없이 아이의 증조부가 미국인이라고 자랑한다. 며칠 뒤 학교측은 부모들의 항의방문을 받는다. 교사가 “더러운 피가 섞여 있다.”는 폭언과 동시에 체벌을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아이에 대한 따돌림이 극에 달해 ‘너같은 것은 죽어’라고 자살을 암시하는 말까지 듣고는 아이가 PTSD에 걸렸다며 소송을 제기한다. 소송 전부터 신문, 방송, 주간지에서 일제히 혼혈을 차별하는 ‘살인 교사’라는 보도가 잇달았다. 원고측에 500명의 변호인이 붙었다. 그러나 공판이 진행되면서 원고의 주장은 가짜임이 드러난다. 사건의 단초가 된 미국인 혈통부터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교실에서의 체벌, 자살 강요도 원고측이 지어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PTSD도 실은 교사를 매도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린 의료진이 원고측 주장만으로 판단해 내린 오진이었다. 교사는 명예를 회복했지만 이미 단죄를 받은 뒤였다. 일본에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몬스터 페어런츠(괴물 부모)’현상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이웃나라 얘기만이 아니다. 우리도 괴물 부모의 증식이 눈앞에 닥쳤다. 초등학생 학부모가 아이를 차별대우한다며 수업시간에 교사를 때리거나, 중학생 학부모가 아들을 때린 학생을 교무실로 불러내 보복 폭행한 사건은 얼마 전 일어난 일들이다. 학교에 찾아와 폭언을 일삼고, 교원신분을 약점 잡아 무고하거나 협박하며 사표를 종용하고 주먹을 휘두르는 부모들. 학부모의 횡포가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교사가 감추고 학교도 상급기관의 질책이 두려워 쉬쉬하기에 급급하다. 후쿠오카 사건도 진실과는 관계없이 일단 덮고 보자는 학교의 보신주의가 일을 키웠다. 괴물 부모가 설치기 딱 좋은 환경인 셈이다. 오갈 데 없이 몰린 교사들이 찾는 곳은 교육청도, 학교도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에는 고문변호사가 6명이나 있지만 일선 교사의 상담 실적은 없다. 교원단체를 찾아 은밀하게 대책을 호소하는데 그 사례가 폭증 추세다. 한국교총이 집계한 지난해 교권침해 사건은 전년보다 71% 증가한 179건이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자기 방어를 위해 배상 보험에 드는 교사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도쿄 공립교 교사의 3분의1이 괴물 부모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소송비용보험´에 가입했을 정도다. 괴물 교사와 더불어 괴물 부모도 늘어날 것이다. 한자녀 가구의 증가, 판치는 이기주의, 탈권위 시대에 학교는 더 이상 ‘선생님’을 지키는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사어(死語)가 된 스승의 수난시대. 일본 정부는 괴물 부모 대처를 변호사, 카운슬러 등 전문가에게 맡기는 ‘외부위탁’을 내년부터 10개 교육위원회에서 실시하기로 했다. 예산의 80%를 나랏돈으로 댄다고 한다. 교육권과 교권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교사에게만 뒷감당을 맡겨서는 좋은 교육이 이뤄질 리 없다. 늦기 전에 교육당국이 대책을 세울 일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선택2007 D-19] 박근혜 “BBK 발표뒤 유세 계속할지 판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9일 이명박 후보 지원유세를 계속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 “검찰이 (BBK 수사결과) 발표를 하면 그때 보고 또 판단할 일”이라고 말해 주목된다. 이회창 후보의 무소속 출마를 “정도가 아니다.”고 평가해 이명박 후보를 지원했던 그가 이같은 언급을 하자 한나라당은 술렁이는 분위기다. 수사 결과에 따라 입장을 철회할 수 있다는 뉘앙스로도 읽혀지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측은 진의를 파악하느라 비상이 걸렸다. 이회창 후보측은 “물꼬가 터졌다.”며 고무된 분위기다. 여기에 곽성문 의원이 이날 탈당을 선언하면서 “추가로 탈당할 의원이 몇 분 있다.”고 말해 기름에 불을 끼얹는 형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은 모친인 고 육영수 여사의 82주기 생일을 맞아 열린 숭모제에서 나왔다. 검찰 수사에 대해 “BBK 문제는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다. 특히 “사실 관계를 한 점 의혹 없이 밝히고, 그에 따라 국민이 판단하실 일”이라고 덧붙였다. 비록 ‘수사발표를 보고 나서’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상황에 따라 입장을 바꿀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명박 후보에게 ‘불미스러운 결과’가 나온다면 원칙과 신뢰·도덕성을 중시하는 그가 어떤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유세 중단은 물론이고, 지지 철회가 그중 하나로 거론된다. 한 핵심 측근은 “말씀 그대로 받아들여 달라. 원칙을 말한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친박(親朴) 의원들의 움직임은 분주해졌다.“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는 게 핵심 의원의 설명이다. 그는 “수사결과 이명박 후보의 심각한 거짓말이나 불법이 드러나면 박 전 대표를 포함해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 그리고 이런 상황에 문제의식을 갖는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치열한 격론의 장이 열려 어떤 식으로든 의사 표시를 하게 될 거란 얘기다. 공교롭게도 곽 의원의 탈당이 겹쳐 묘한 분위기가 형성됐다.3∼4명이 탈당할 것이란 소문도 돈다. 곽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후보에 의한 정권교체는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이회창 후보를 대안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경선의 승자가 패자를 단죄하려는 오만한 태도와 승자독식을 당연시하는 독선적 자세는 자신에게 큰 좌절을 가져다 줬다.”며 ‘이 후보가 자초한 탈당’임을 주장했다. 곽 의원은 “신상에 관한 문제라 말하기 곤란하지만 뜻을 같이하는 분이 몇 분 있고, 다음 주에 정치상황에 따라 몇 분이 동참하리라고 본다.”고 공개적으로 거론해 이 후보측을 긴장케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측 내부에서는 일단 검찰이 새달 4,5일쯤 어떤 결과를 내놓는지를 보자는 의견이 많다. 김무성 최고위원은 “박 전 대표의 발언이 꼭 당장 ‘정도가 아닌’ 쪽(이회창 후보)으로 간다는 말은 아니지 않으냐. 추가 탈당설도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이종현의 나이스샷] 골프의 기본 ‘에티켓’

    최근 교육계를 뒤흔들고 있는 김포외국어고 시험지 유출사건은 한국 사교육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만약 일련의 사건이 미국이나 일본에서 일어났다면 문교부 장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을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들을 합격시키고 보자는 속성교육이 가져온 결과다. 기본을 무시한 속성교육의 폐단은 골프에서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끝난 KLPGA 대회를 관전하다 보기 민망한 장면을 자주 목격했다.1m짜리 퍼트가 홀에 들어가지 않자 퍼터로 그린을 쿵하고 내리치는 선수, 좋지 않은 성적 때문에 부모에게 심하게 꾸중 듣는 선수, 그리고 캐디에게 클럽을 던지다시피 하는 선수 등등. 해서는 안 될 부끄러운 모습들이다. 심지어 올해 한 남자대회에서 모 프로의 어머니는 생방송 중에 볼을 못 친다며 자기 아들에게 심하게 욕설을 퍼붓는 화면이 그대로 방송을 타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적도 있다. 프로는 행동 하나하나가 곧 자신의 상품성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과 언행은 방송 카메라와 갤러리의 눈을 통해 평가의 잣대가 된다. 일반 골퍼들 역시 기본을 무시하기는 마찬가지다. 골프에서 가장 강조되는 에티켓과 론 룰을 지키지 않고 있다. 얼마 전 제일CC는 법을 통해 ‘불량 골퍼’들을 ‘단죄’한 적이 있다. 캐디들에게 강제추행과 모욕, 협박 등의 행위를 하고 심지어 문자메시지를 통해 골프장을 모욕하는 등 운영을 방해했음이 인정돼 현시세가 아닌 입회금만 돌려주고 퇴출키로 했다. 최근 각 골프장마다 클럽챔피언대회가 한창이다. 클럽챔피언은 회원이 꿈꾸는 가장 영광스러운 타이틀이다. 그러다보니 참가 선수들 사이에 말다툼이 나고 조직폭력배를 끌어들여 법정까지 가는 사태도 심심찮게 이어진다. 과정은 생략된 채 결과만을 인정하는 우리의 잘못된 문화 때문이다.‘빨리빨리’ 문화가 컴퓨터나 휴대전화의 발전을 가져왔지만 반대로 기본과 과정을 무시하는 속성문화를 조장했다. 올시즌 상금 6억원과 함께 8승을 기록한 신지애는 “골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스탠스, 즉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많은 골퍼들이 어떻게 하면 슬라이스와 훅이 나지 않느냐고 물어오는데 70∼80%는 스탠스를 잘못 잡고 있다.”고도 했다. 골프를 잘 치기 위한 기술적인 습득도 중요하지만 골프를 잘 치게 해주는 스탠스부터 먼저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스탠스는 바로 기본이다. 골프장에 나갈 때 얼마나 룰을 잘 지키고 에티켓에 충실한지, 그리고 티박스에 설 때 과연 ‘기본’을 잊고 있지나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레저신문 편집국장 huskylee1226@yahoo.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45)모문룡의 죽음과 파장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45)모문룡의 죽음과 파장 Ⅱ

    모문룡은 쌍도로 향하면서 엄청난 수의 병력을 대동했다. 수백 척의 선박에 2만 8000명의 병력을 싣고 갔다고 한다. 말하자면 3만명 가까운 경호원을 대동한 셈이다. 원숭환으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았을 때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북경 조정과 조선, 그리고 후금 사이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던 그는 분위기 파악의 귀재였다. 하지만 수만명의 경호원들도 모문룡의 목숨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원숭환은 그만큼 치밀하게 모문룡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12가지 죄악 들어 모문룡 단죄 모문룡은 1629년 5월26일 쌍도에 도착했다.6월3일 모문룡은 술자리를 마련하여 원숭환을 초청했다. 술자리가 깊어가자 원숭환은 모문룡에게 ‘공이 이제 나이가 들었는데 어찌 병권을 내놓고 향리로 돌아가지 않느냐?’며 은근히 은퇴를 종용했다. 모문룡은 ‘내가 귀향하지 못하는 것은 요사(遼事)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응수했다. 그러면서 그는 ‘요사가 끝나면 조선을 기습하여 차지하겠다.’고 떠벌렸다. 평소 조선에 대해 품고 있던 솔직한 생각을 원숭환 앞에서 토로한 것이다. 두 사람은 6월5일에도 만났다. 원숭환은 자신의 휘하와 모문룡이 거느리고 온 병사들에게 활쏘기 시합을 시켰다. 그리고 섬의 산꼭대기에 설치해 둔 장막으로 모문룡을 불렀다. 장막 부근에는 복병을 배치하여 모문룡 부하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장막에서 원숭환은 앞으로 자신이 동강진을 직접 챙기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동강향부(東江餉部)라는 것을 만들어 영원으로부터 군량을 공급하되 그 회계 내역을 엄격히 감시하겠다는 내용을 통고했다. 이윽고 원숭환은 부하들에게 모문룡을 포박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모두 12가지의 죄악을 들어 모문룡을 질책했다.‘병마(兵馬)와 전량(錢糧)을 사용하면서 전혀 감사를 받지 않은 죄’,‘제대로 적과 싸우지 않았으면서도 공을 세웠다고 황제를 속인 죄’,‘사사로이 시장을 열어 오랑캐와 내통한 죄’,‘상인들을 약탈하여 장물을 쌓아두고 스스로 도적이 된 죄’,‘부하와 여염의 부녀자들을 빼앗아 첩을 삼고 음행을 일삼은 죄’,‘위충현을 아비처럼 섬기고 환관배들과 결탁한 죄’,‘진(陣)을 연 지 8년이 지났지만 한 뼘의 땅도 수복하지 못하고 관망한 죄’ 등이 그것이었다. 결국 엄당(奄黨)의 비호 아래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밀수 왕초’가 되어 흥청망청 ‘해외 천자’처럼 군림했던 과오에 대한 단죄였던 셈이다. 모문룡은 겁에 질려 말도 못했다고 한다. 원숭환은 북경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면서 “신이 문룡을 주벌하는 것은 삼군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함입니다. 신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폐하께서 또한 문룡을 죽인 죄로 저를 주벌하실 것입니다.”라고 외쳤다. 이어 상방검을 뽑아 모문룡의 목을 베었다. 수많은 모문룡의 부하들이 장막 아래 있었지만 그들도 겁에 질려 엎드린 채 감히 위쪽을 쳐다보지 못했다. 원숭환의 일갈이 추상 같은 데다 워낙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원, 목벤 후 예를 갖춰 장사 치러줘 이튿날 원숭환은 예를 갖춰 모문룡의 장사를 치러 주었다. 그는 제문에서 “어제 그대를 죽인 것은 조정의 대법(大法)을 밝힌 것이고 오늘 그대를 제사함은 동료의 사정(私情)에서 나온 것”이라며 눈물을 뿌렸다. 자신이 모문룡을 죽인 것이 결코 사사로운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원숭환은 모문룡을 처단하면서 황제로부터 재가를 받지 않았다. 모문룡 같은 ‘거물’을 황제의 허락도 없이 처단한 것은 분명 엄청난 문제였다. 실제 원숭환은 모문룡을 군법에 따라 처리했다고 강조했지만 그 배후에는 치열했던 당쟁의 여파가 자리잡고 있었다. 모문룡의 죽음과 관련하여 당시 민간에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떠돌고 있었다. 모문룡의 생일을 맞아 어떤 사람이 그에게 수장(壽帳)을 보냈다고 한다. 수장이란 오늘날로 치면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축하 ‘카드’에 해당한다. 수장에는 당시 명의 대학자이자 문장가인 진계유(陳繼儒)와 역시 석학이자 화가로도 잘 알려진 동기창(董其昌)이 쓴 글이 들어 있었다. 모문룡은 수장에 대한 답례로 동기창에게는 인삼 1근을, 진계유에게는 인삼 반 근을 보냈는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진계유는 모문룡이 자신을 경시한 데 분노하여 깊이 유감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자신의 문인 원숭환이 계요경략( 遼經略)으로 승진하자 진계유는 “터럭 하나(一毛)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하는 것이 어떤가?”라고 권유했다는 것이다.‘일모’란 물론 모문룡을 가리키는 것이다. 원숭환이 모문룡을 처단하는 데는 대학사(大學士) 전용석(錢龍錫)의 입김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전용석은 동림당(東林黨) 계열의 문신으로 천계 연간 예부시랑(禮部侍郞)까지 올랐지만 위충현의 눈 밖에 남으로써 벼슬에서 쫓겨났던 인물이다. 숭정제가 즉위하면서 조정으로 복귀한 전용석은 위충현 실각 이후 엄당(奄黨)을 제거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담당했다. 전용석의 고향 선배였던 진계유는 전용석에게도 ‘일모를 제거하여 천하를 이롭게 하라.’고 풍유(諷諭)했다고 한다. 전용석은 그 말의 뜻을 알지 못한 채 북경으로 돌아왔는데, 얼마 후 문인 원숭환이 그에게 ‘모문룡 처리’ 문제를 자문했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일모 제거’의 뜻을 간파한 전용석은 원숭환의 ‘거사’에 동의했다. 요컨대 원숭환이 모문룡을 제거하는 과정에는 천계 연간 명 조정에서 빚어졌던 동림당과 엄당 사이의 격렬한 상쟁과 복수의 여파가 자리잡고 있었다. 환관들의 당파인 엄당에 대한 혐오가, 그들과 밀착되어 있던 모문룡의 죽음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엄당의 잔여 세력들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들도 동림당에 대한 복수의 기회를 엿보게 된다. 뒤에서 다시 서술하겠지만, 그들의 복수는 원숭환의 비명횡사라는 비극적인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조선, 후금정벌 파병 요구에 고심 원숭환이 모문룡을 제거한 것은 조선에 어떤 영향을 남겼는가? 청북 지역을 자신의 앞마당처럼 횡행하면서 징색을 일삼았던 그가 사라진 것은 일견 긍정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다. 원숭환은 모문룡을 처단한 직후 조선에 편지를 보냈다. 그는 편지에서 모문룡을 처단하게 된 전말을 설명하고, 과거 모문룡과 부하들이 조선에 끼쳤던 피해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동강진의 명군이 조선에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제는 그 다음의 언급이었다. 원숭환은 후금을 공격하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조선도 병력을 동원하여 같이 협공하라고 종용했다. 그것은 상황이 급변한 것을 의미했다. 원숭환은 모문룡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물이었다.‘요동 수복’을 공언하면서 뒤로 피하기만 했던 모문룡과는 달리 원숭환은 ‘오랑캐를 제거하고 요동을 수복하는 것’을 비원(悲願)처럼 가슴에 새기고 있는 장수였다. 그는 철두철미한 ‘중화(中華) 민족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조선에 협공하라고 요구한 것은 결코 범상한 문제가 아니었다. 모문룡은, 조선이 그의 욕심을 일정 부분 채워주기만 하면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대충 넘어갔다. 자신이 후금과 군사적 대결을 벌일 의지가 없는지라 조선에 대해서도 싸우자는 시늉만 할 뿐 후금과의 결전을 강요하지 않았다. 비록 사회경제적으로는 괴로웠지만 조선은 그 와중에서 후금을 자극하지 않고 군사적 대결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원숭환은 달랐다. 실제 원숭환의 편지를 받았을 때 조선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최명길은, 원숭환이 당장 군대를 보내라고 요구한 것이 아닌 만큼 마치 시기에 맞춰 파병할 것처럼 답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민 끝에 조정은 원숭환에게 답서를 보냈다.‘명의 은혜를 잊지 않았지만 몹시 피폐한 처지에 있다.’는 것,‘어쩔 수 없이 후금과 화친했지만 명이 후금을 정벌할 때는 돕겠다.’는 내용을 완곡하게 담았다. 모문룡은 죽었지만 조선은 또 다른 선택의 기로로 내몰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누가 이들을 단죄하나…

    병무청이 가짜 미국 대학 입학허가서와 재학증명서를 이용해 병역을 기피한 해외 유학생 17명을 적발, 조만간 검찰에 고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병무청 관계자는 4일 “미국에 체류 중인 병역의무 대상자 가운데 180여명이 가짜 입학허가서나 재학증명서를 제출해 병역을 기피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자체 감사를 벌인 결과 17명이 혐의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병무청은 이들의 혐의 사실이 확정되면 검찰 고발과 함께 국외여행 허가를 취소할 계획이다. 지난 3월 병무청에 제보된 자료에는 병역기피 의혹 유학생 186명의 명단이 있었지만 조사결과 이름이 일치하지 않거나 정상적인 서류를 제출한 경우, 이미 입영을 한 사람 등이 섞여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제보 내용은 검찰에도 입수돼 서울 중앙지검 외사과가 이 사건을 수사 중이다. 특히 서류 위조 과정에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소재 유학원이 개입했고, 병역 의무자들로부터 위조 서류를 받은 LA총영사관 직원이 이를 묵인, 병무청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병무청은 그동안 해외에 체류 중인 병역의무 대상자들이 재외 공관을 통해 현지 대학의 입학허가서나 재학증명서류를 제출하면 별다른 검증절차 없이 병역을 연기해줘 왔다. 병무청 관계자는 이번 사건에 유명 병원장과 대학교수, 대기업 상사 주재원 등 사회지도층 아들들이 포함돼 있다는 일부 보도와 관련,“병적 자료에는 병역대상자의 정보만 담겨 있기 때문에 부모의 직업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한편 LA총영사관측은 “올해 초 현지 채용 행정원이 LA 소재 모 유학원이 위조한 미국 대학 재학증명서 등을 근거로 병무청에 국외여행허가 기간 연장과 미국 내 체류 자격(유학 비자)을 얻는 과정에 연루됐다는 제보를 접수한 바 있다.”며 “자체 조사를 실시해 이 행정원의 업무처리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지난 3월 해고했다.”고 밝혔다. 김미경 이세영기자 chaplin7@seoul.co.kr
  • [단독] 단죄할 이들이 이런데…

    사법연수원이 병역특례 비리에 연루된 연수원생에 대해 징계를 하지 않기로 결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4일 사법연수원에 따르면 병역특례업체에 편입해 근무를 하지 않고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대가로 금품을 건넨 현 사법연수원생 A(34·연수원 37기)씨에 대해 징계위원회를 열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연수원 관계자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6월 서울 동부지검으로부터 사실 통보받은 뒤 철저히 검토했으나, 연수원 임용 전의 행적에 대해 연수원이 처벌할 수는 없다.”면서 “특히 공무원 신분인 사법연수원생의 경우,‘공무원 재직 이전의 비리행위는 징계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를 적용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조인에게 누구보다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데, 이런 결정이 나온 것에 대해 도덕적 비난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면서 “4개월 넘게 검토해 법에 따라 내린 결정인 만큼 존중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내년 연수원을 수료하는 A씨는 법조인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됐으며, 현역복무 제한 연령인 만 30세가 넘어 ‘공익 법무관’으로 3년간 복무하면 병역 의무도 이행하게 된다. A씨는 2003년 1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서울의 한 IT업체에 편입해 근무를 하지 않고 사법고시를 준비할 수 있도록 A씨의 누나가 이 업체에 4000만원을 건네 지난 6월 동부지검에 적발됐고, 검찰은 병무청에 재입대를 위한 행정처분을 요구했다. 당시 동부지검은 “고도의 도덕심이 요구되는 법조인이 병역을 회피하고자 비리를 저지른 것이 무척 실망스럽다. 우리 법조인 내부의 과오라도 국민들께 알려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말했고, 사법연수원도 “만일 혐의가 인정되면 10∼20명으로 구성된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위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었다. 7년째 사법시험을 준비 중인 이모(26)씨는 “비리 때문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인데, 임용 전과 후의 혐의를 나눠 적용시킨 것은 법을 너무 단순하게 해석한 것 같다.”면서 “사법연수원이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입영을 연기하고 6년째 사법시험을 준비 중인 김모(26)씨는 “상당수 수험생이 병역 연기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연수원의 결정은 ‘비리를 저질러도 법조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판결 고민돼 물어본 사람만도 100명…”

    “비난 여론을 모두 감수하겠습니다. 이번 판결의 정당성에 확신이 있습니다.” 6일 정몽구 현대차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 후 집무실에서 만난 서울고법 이재홍(51·사시19회) 수석부장판사의 얼굴엔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말해주듯 피곤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판결에 대해 묻자 “판결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이 있다.”며 미소를 띠었다. 이 부장판사는 “경제가 살아야 국민들이 살고 국민들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면서 집행유예 선고 이유를 밝혔다. 정 회장에 대한 집행유예로 많은 비난을 받지 않겠냐는 질문에 그는 “판결 선고 때까지 고민은 많았지만 모든 것은 재판부가 떠안고 갈 문제다. 판결에 후회는 없다.”고 굳은 신념을 보였다. 그는 정 회장 사건을 담당한 뒤 출퇴근 길에도 고민을 했단다.“어떻게 판결해야 할지를 물어본 사람이 100명도 넘는다. 택시기사, 식당 아주머니 등등.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정 회장 같은 경제인은 국익을 위해 풀어줘야 한다고 대답했다.”면서 그간 혼자만의 여론조사 결과를 털어놓았다. 그는 또 법원의 젊은 판사들은 정 회장에 대한 형량에 매우 센 의견을 냈다고 귀띔했다.“정 회장 사건을 물어보자 젊은 판사들은 6대4 비율로 실형의견이 많았다. 이유는 법원의 권위와 화이트칼라범죄 엄단이었다. 그래서 더 많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렇지만 그는 ‘실형만이 사법부의 권위를 세우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이번 판결로 나타났다는 뜻을 비쳤다. 이어 “국민들이 보게 될 8400억원 투자에 따른 이익과 정몽구 한 사람에 대한 단죄 중 국민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인 사회공헌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법원 내에서 ‘천사표’ 부장으로 통한다. 그러나 법정에 들어서면 누구보다 법리에 밝고 강단 있는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도 법조계에 정평이 나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日海에 화려한 휴가 풍파

    심의조 경남 합천군수와 ‘화려한 휴가’를…. 최근 영화 ‘화려한 휴가’가 인기를 끌면서 잠잠하던 경남 합천의 ‘일해공원’ 논란에 다시 불이 붙었다. ‘새천년 생명의 숲’을 일해공원으로 바꾼 합천군청 홈페이지에는 이 영화를 관람한 네티즌의 항의 글이 봇물을 이루고 있으며, 천주교 정의사회구현 마산교구 사제단도 이를 비난하고 나섰다. ●천주교 사제단 “합천군수와 영화 함께 보자.” 마산교구 사제단은 7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천년 생명의 숲을 일해공원으로 변경한 합천군을 비난했다. 사제단은 이를 강행한 심의조 합천군수와 이를 찬성한 합천군의회 의원들이 이 영화를 관람하고 반성할 수 있도록 영화표 11장을 구입해 등기로 발송했다고 밝혔다.9일 오후 7시10분 창원CGV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관람권이다. 백남해 신부는 “학살 원흉의 아호가 새겨진 공원에서 우리 아이들이 뛰어노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보며 살고 있는 우리들은 참으로 불행하다.”고 밝혔다. 이 영화가 개봉된 지난달 26일 이후 합천군청 홈페이지는 일해공원을 비난하는 네티즌들의 글로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네티즌 최모씨는 “합천은 역사의 단죄를 아직 다 받지 못한 자를 옹호하는 곳으로 오명을 영원히 갖게 될 것이고 우리의 자녀와 청소년들은 그 오명의 역사에 혼란스러워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토론공간인 ‘아고라’에도 반대 의견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네티즌 ‘어린작가’는 “세상 어느 나라가 한쪽에서는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로 국민들을 아프게 만들고, 다른 쪽에서는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죄 없는 국민을 죽인 원흉을 기념하기 위해 공원을 만들겠는가.”라고 비난했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일해공원 개명 철회 서명운동’도 이 영화가 개봉된 이후 다시 탄력을 받아 반대의견을 올린 네티즌이 2만명을 돌파했다. 일해공원 반대 경남대책위는 이달 중순 합천군이 지난달 설치한 ‘일해공원 안내표지판’ 철거를 위한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경남대책위는 지난 3일 일해공원 안내 표지판 철거를 요구하는 공문을 합천군에 보냈다.9일에는 합천군민을 대상으로 ‘화려한 휴가 함께보기’ 운동을 벌일 예정이며, 영화 제작사와 협의해 상영 기간이 끝나면 일해공원에서의 상영도 추진키로 했다. 이에 앞서 5·18 유족단체인 ‘오월어머니회’는 6일 광주 동구 장동에 있는 ‘오월어머니회’ 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사모(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대표 등에게 ‘화려한 휴가’를 함께 보고 공개 토론을 할 것을 제의했다. 오월어머니회 관계자는 “9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단성사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예정이며 전사모쪽의 답변이나 반응이 없더라도 영화 감상은 예정대로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사모는 ‘화려한 휴가’ 비난 인터넷 카페 ‘전사모’ 자유게시판에는 영화 ‘화려한 휴가’를 비난하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전사모는 오는 19일 합천 일해공원에서 여름철 정기모임을 갖고, 공원을 청소하면서 전 전 대통령의 업적을 홍보한 뒤 생가를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문화마당] ‘6월 항쟁’ 이후/김태성 호서대 중어중국학과 겸임교수

    6월10일을 전후하여 모든 매체들이 일제히 6월 항쟁에 관한 보도를 쏟아냈다, 올해로 벌써 20주년이 된 데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터라 그 의미는 훨씬 더 새로웠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불과 이틀이 지나면서 모든 매체에서 ‘6월 항쟁’ 관련 기사는 사라졌고 이와 동시에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민주운동의 열기는 이내 사라져 갔다.6월 항쟁의 본질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규명과 사후처리는 올해도 변함없이 유보되었다. 사실,6월 항쟁뿐만 아니라 보다 철저한 규명과 정리가 필요한 대부분의 중요한 역사사건에 관한 기억이 일회성 연중행사로 그쳐버리면서 역사의 박제가 되고 있다. 일제 청산이 그랬고 박정희의 뒤를 이은 전두환, 노태우의 군부독재에 대한 처리가 그랬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진정한 역사 제자리 찾기의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불의한 역사사건에 대한 평가에 사뭇 이상한 잣대를 사용해 왔다. 정치인들은 ‘화해’라는 이름으로 부도덕한 죄인들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민중은 정치인들이 떠들어대는 현실의 부분적인 개량에 너무 쉽게 분노를 잠재웠다. 조선시대였다면 구족(九族)을 멸해야 했을 대역죄가 ‘화해’의 이름으로 대충 처리되었고 자국 군대를 동원하여 무고한 백성들을 무수히 살상하고 총칼로 정권을 찬탈한, 말 그대로 ‘극악무도한’ 정권모리배들이 ‘성공한 쿠데타’라는 이상한 논리로 정당화되면서 면죄부를 얻었다. 이들에 대한 단죄는 이른바 정치 ‘보복’이라는 허구적 논리에 밀려 차단되고 말았다. 법치국가에서 사리사욕을 위해 무고한 살상을 통해 정권을 잡은 자들에 대한 단죄는 응당한 사법행위이다. 정당한 사법행위가 정치적 보복으로 간주될 소지가 있다고 해서 이를 포기한다면, 사법권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불의한 권력과 야합하면서 이를 ‘화해’라는 말로 포장하는 것이 위선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것이 위선이란 말인가? 이러한 정치적 왜곡의 결과 항상 정의와 평등이 부족했던 우리 사회에는 이미 도덕이란 것이 사라졌고 국민들은 가치관을 상실했다. 시비와 선악의 기준이 없어진 것이다. 대한민국의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한 탕 잘해서 큰 돈을 버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는 이미 하나의 타성으로 굳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모두들 증권투자나 부동산투기, 복권 등으로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리고 있고, 적은 수입에도 성실하게 일터를 지키는 사람들은 오히려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고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 어떤 사회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언론의 자유와 예배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와 공포로부터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우리 사회는 수십 년 동안 지속된 인내와 투쟁을 통해 이제야 비로소 이 네 가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형식 민주주의의 실현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형식으로 살아질 수 있는 것인가? 안타깝게도 정의와 평등이 부족한 우리 사회의 모습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독재권력 대신 자본이라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권력에 의해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고, 놀랍게도 이 나라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희생된 항일 투사들과 민주 인사들의 후손 및 가족들이 이 왜곡된 경제현실에 또다시 희생양이 되고 있다. 광주학살의 원흉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부정한 돈으로 부족함 없이 잘살고 있는 이 땅에서 자유와 독립을 위해 몸 바쳐 싸운 사람들과 그 가족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적절한 평가와 보상은커녕 지독한 가난과 상실감으로 분노하고 있다면 현실적 민주화, 진정한 역사정의의 실현은 언제나 가능할 것인가? 김태성 호서대 중어중국학과 겸임교수
  • [열린세상] 연좌제의 망령을 경계하며…/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열린세상] 연좌제의 망령을 경계하며…/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연좌제란 어떤 사람이 특정 사건과 관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범인과 혈연적, 즉 유전적으로 관련이 있다하여 연대 책임을 묻는 봉건시대의 처벌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산주의 사상에 관련해서는 광범위하게 연좌제를 실시하여 선량한 사람들을 울리고 그들의 미래를 짓밟은 적이 많았다. 다행히도 민주화와 더불어 매카시즘적 반공주의가 그 세력을 잃으며 연좌제는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 가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연좌제적 의식이 우리 시민들과 지도자들에게 아직도 뿌리 깊게 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통령 선거 때면 조상 문제가 단골 메뉴이다. 과거 어떤 대통령 후보들에 대해서는 “어머니가 한국인이 아니다.”,“출생지가 일본이다.” 등에 대한 소문이 돌았었다. 박근혜씨에 대해서는 ‘독재자의 딸’이라는 것 자체가 공격의 소재가 된다. 박근혜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폭압정치를 지지하거나 아버지의 후광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 모를까, 그의 여식이라는 이유로 공격받는 것은 온당치 않은 일이다. 지난번 서울대 총장 선거 때는 한 후보의 할아버지에 대한 친일 논쟁이 있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문명국가에서 왜 이런 것들이 상대방의 흠집을 내는데 사용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얼마 전 버지니아 공대 총기 사건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연좌제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정신질환이 있는 교포 한 사람이 벌인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유감을 표시하고 언론도 뭔가 사과해야 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한국의 대미 수출에 대해 염려하는 예측까지 있었다. 한국계 이민자 한 사람이 벌인 사건에 대해 전 국민이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가 마치 전체주의 사회에 사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최근 친일행위자들의 재산에 대한 환수조치 발표가 있었다. 좀 더 정확히 얘기하면 친일분자들이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받은 토지를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비록 60여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국가의 기강을 살리는 것은 물론, 독립 투쟁에 몸을 바친 의인들과 그 후손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후세에 교훈이 되는 조치가 되리라 본다. 그러나 그 과정은 최소한의 상식을 지키며 진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작성하고 있는 친일파 후손들에 대한 가계도가 공개될 때 어떤 결과가 있을지 감안하면 이에 대해 극도의 주의를 필요로 한다. 친일파 자손들은 그들의 조상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나이가 40세인 시민이 그의 3대 할아버지쯤 되는 사람이 친일파였다는 사실 때문에 90여년이 지난 현재 사회적으로 지탄받거나 불이익을 당한다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근대국가가 아닐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민족정기를 중요시 여기는 모 국회의원의 아버지가 일제하에서 헌병이었다는 것이나 모 인사의 조상이 동학혁명의 원인제공자인 고부군수라는 사실이 이들을 비아냥대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 좌우를 막론하고 상대방을 조상의 행적과 연루하여 공격하는 비열한 행위는 없어야 한다. 역사 바로잡기를 감정적으로 처리하면, 그 때 사용된 단죄의 칼날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고, 현재는 과거의 유령이 지배하게 될지 모른다. 대한민국에서는 조상이 누구든,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든, 집안이 아무리 가난하든, 본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사회의 최고 명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어야 한다. 시민들은 이런 나라를 사랑할 것이고,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몸을 바쳐 지킬 것이다. 연좌제적 사고방식은 정부나 제도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온 시민이 선진 문화인이 되어 척결해야 할 원시적 씨족사회의 잔재이다. 김선영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 “학생운동하며 만화 배워… 짐 덜었다”

    “짐 하나를 내려놓은 느낌입니다. 꼭 해야지 하고 다짐했던 것을 끝냈으니까요.” 5·18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만화 ‘26년’(전3권, 문학세계 펴냄)을 낸 만화가 강풀(33)씨는 15일 이런 소감을 밝혔다.그는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학생운동을 하면서 만화를 배웠고 그 정신을 사회에 나와서도 잊고 싶지 않았다.”면서 “내가 갖고 싶은 직업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의 접점이 ‘26년’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인터넷(미디어다음)으로도 연재됐던 이 작품은 1980년 5·18 당시 계엄군이었던 사람과, 희생된 시민군의 자녀가 암살을 통해 당시 최고책임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단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 구상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전재산 29만원’ 발언이 계기가 됐다.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고 아직도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데 그 말을 듣고 그가 뉘우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재미있게 그리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회당 100쪽이 넘어가는 분량 때문에 육체적 소모가 심했고 재미있게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것이 어려움으로 다가왔다.연합뉴스
  • YS ‘5·18 감사패’ 받는다

    YS ‘5·18 감사패’ 받는다

    5·18기념재단,5·18 유족회 등 5월 단체는 14일 “5·18 주간인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을 광주로 초청, 감사패를 전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광주에 도착,5·18묘지를 참배한 뒤 감사패를 받고 5·18단체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정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두차례 묘지 참배에 나섰으나 5월단체와 남총련 학생들이 ‘3당합당’을 이유로 저지해 무산됐다. 한나라당 지역화합발전 특별위원장인 정의화 의원은 “김 전 대통령 측에서 22일 광주방문에 동행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며 김 전 대통령의 광주방문 사실을 확인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임기 중인 1995년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 피해자 배상과 기념사업, 국가기념일 제정,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5월 가해자들’에 대한 사법적 단죄 등을 통해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1993년 특별담화를 통해 현재의 5·18 묘지의 성역화 사업을 주도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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