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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부디 계속해주세요(문소리 외 9명 지음, 마음산책 펴냄) 배우 문소리와 일본 영화감독 니시카와 미와, 소설가 김중혁과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요리후지 분페이 등 한·일 문화인 10명이 자신의 작업 방식과 예술가로서의 고민에 대해 대담한 내용을 묶었다. 280쪽. 1만 4500원. 나는 계속 걷기로 했다(거칠부 지음, 궁리 펴냄) 서른아홉, 17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걷기 시작한 지은이가 183일간 네팔 히말라야 2165㎞를 한국인 최초로 횡단종주한 기록을 담았다. 396쪽. 1만 8000원. 그림으로 읽는 유럽의 난민(케이트 에번스 지음, 황승구 옮김, 푸른지식 펴냄) 유럽의 대표적인 난민촌인 프랑스 칼레 난민촌이 철거되기 직전까지 직접 자원봉사를 한 저자가 쓰레기가 가득한 열악한 위생 환경부터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난민들의 아픈 과거 등을 옮겼다. 2016년 영국작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존 로런스 상 수상작이다. 184쪽. 1만 8000원. 음식과 전쟁(톰 닐론 지음, 신유진 옮김, 루아크 펴냄) 고문서 수집가인 저자가 레모네이드와 페스트, 카리브해의 식인 문화, 페이스트리를 둘러싼 멕시코와 프랑스의 갈등 등 인류 역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음식 에피소드를 120여장의 일러스트와 함께 풀어낸다. 228쪽. 2만 4000원. 고문서 반납 여행(아미노 요시히코 지음, 김시덕 옮김, 글항아리 펴냄) 1950년대 일본 사회사 연구를 위해 전국 농어촌에 잠들어 있던 고문서를 수집했던 아미노 요시히코 전 가나가와대 교수가 50여년에 걸쳐 이 문서들을 반납한 여정을 기록했다. 264쪽. 1만 4000원. 아이는 누가 길러요(서이슬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선천성 희소 질환인 클리펠 트레노네이 증후군을 앓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아이를 관찰하며 얻은 깨달음과 ‘돌봄 책임’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글을 담은 에세이. 288쪽. 1만 4000원.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평생 ‘울울한 삶’을 산 지식인… 생육신으로 절개를 지키다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평생 ‘울울한 삶’을 산 지식인… 생육신으로 절개를 지키다

    생후 8개월 만에 글을 알고 세 살에 시를 짓고 다섯 살 때 ‘중용’, ‘대학’에 통달해 신동으로 불렸던 사람. 이런 기이한 재주를 세종 임금이 전해 듣고 직접 불러 시험하고 ‘뒷날 크게 쓰겠노라’ 다짐했던 사람. 그러나 평생 울분과 방랑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다 충청도 허름한 절간에서 생을 마감했던 사람. 우리 한문소설의 명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은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그가 쓸쓸한 삶을 살게 된 계기는 거듭된 가정사의 참극으로 지쳐 가던 중 접한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사건이었다. 불의의 소식을 들은 젊고 순수했던 21세 김시습은 문을 걸어 잠근 채 몇 날 며칠을 통곡했다. 그러다 돌연 서책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나서 승려의 행색으로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영월로 쫓아 보낸 뒤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의 반인륜적 행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국을 방랑하던 끝자락, 경주 금오산 용장사에서 한동안 지내며 금오신화를 지었다. 그리고는 “뒷날 반드시 나, 김시습을 알아줄 자가 있으리라”면서 그 책을 석실에 감췄다. 당대 현실과 화해할 수 없던 자신의 고뇌, 그리고 한번도 펼쳐보지 못했던 자신의 꿈을 기이한 이야기에 은밀하게 담아두었음을 짐작게 하는 일화이다. 그런 점에서 금오신화는 울울한 삶을 살아간 한 중세 비판적 지식인의 소설적 독백이라 일컬을 만하다. 우리는 지금 그의 바람처럼, 그의 이름과 삶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산사를 전전하던 자의 자기 초상 평생 전국을 전전하며 지내던 김시습은 충청도 홍산 무량사에서 59세를 일기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런 최후는 자신이 젊은 시절 썼던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너무도 닮았다. 소설 속 주인공들도 모두 깊은 산속으로 홀연 자취를 감춰 버리거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삶을 마감했는데, 김시습은 자신의 비극적 최후를 젊은 시절부터 그렇게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궁벽한 산사에 몸을 의탁하고 지내며 자신의 초라한 몰골을 직접 그림으로 그린 뒤, 거기에 다음과 같은 찬시를 적어두기도 했다. 나의 초상에 쓰다(自寫眞贊) 俯視李賀(부시이하) 이하(李賀)도 내려 볼 만큼 優於海東(우어해동) 조선에서 최고라고들 했지. 騰名譽(등명만예) 높은 명성과 헛된 칭찬 於爾孰逢(어이숙봉) 네게 어찌 걸맞겠는가. 爾形至(이형지묘) 네 형체는 지극히 작고 爾言大閒(이언대동) 네 언사는 너무도 오활하네. 宜爾置之(의이치지) 너를 두어야 할 곳은 丘壑之中(구학지중) 이런 산골짝이 마땅하도다. 흔히 이백을 ‘적선’(謫仙)으로 부르듯, 당나라 시인 이하는 ‘귀재’(鬼才)로 불리던 천재 시인이었다. 김시습은 찬시 첫머리에서 당시 사람들이 자신을 ‘오세 신동’으로 부르며, 그런 이하와 견주었던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아름다운 과거였다. 하지만 이하가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처럼 그 자신도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음에도 세상에 한번도 쓰이지 못한 자신의 현실에 몸서리치고 있다. 깊은 자괴, 아니 자조와 자기 경멸이 뼛속까지 배어들었다. 실제로 김시습의 문집 ‘매월당집’에는 이런 소외된 자의 울울한 심경을 담아낸 작품이 많다.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라고는 오로지 시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의 “마음이 세상살이와 어긋나기만 하니, 시를 빼놓으면 즐길 것이 없다네(心與事相反, 除詩無以娛).”라는 고백은 결코 허투가 아니었다. 불의에 영합하지 않고 평생 방외인, 곧 ‘아웃사이더’로 살아간다는 것은 혹독한 일이었다. 물론 그런 대가를 치러낸 덕분에 지금 우리는 그를 생육신(生六臣)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지만.#서울로 복귀한 또 다른 삶의 면모 김시습을 기억하는 우리 대부분은 머리를 깎고 승려의 복색을 한 채, 평생 산사를 전전했던 행적만을 주목한다. 그러나 김시습은 삶의 가장 중요한 장년기에 서울의 저잣거리를 누비며 다니기도 했다. 그가 38세 때인 성종 3년(1472년)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 49세 때인 성종 14년(1483년) 다시 관동으로 떠날 때까지다. 이 12년 동안 수락산에 거처를 정해 놓고 종종 도성으로 내려와 당대 인물들과 교유했다. 어린 시절 교분이 있던 서거정, 김수온과 같은 고관대작도 만났지만, 진정 마음으로 교유한 부류는 자기보다 스무 살쯤 어린 젊은 선비들이었다. 그들 중 가장 절친했던 남효온은 그런 사실을 ‘사우명행록’에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사람들은 김시습의 행동을 위태롭게 여기고는 교유하던 자들이 모두 절교하고 왕래하지 않았다. 그러자 홀로 저잣거리의 미치광이 같은 자들과 놀다가 술에 취해 길가에 쓰러져 자기도 하고, 바보처럼 웃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뒤에 설악산에 들어가기도 하고 춘천 산에서 살기도 하여 드나듦에 일정함이 없었으니 사람들이 그 종말을 알지 못했다. 그가 좋아한 사람은 이정은, 우선언, 안응세 그리고 나 남효온이다.” 남효온은 김시습이 영의정 정창손의 행차를 만나자 길거리에서 “너 같은 놈은 벼슬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소리쳤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모두 위태롭게 여겨 절교할 만하지만, 이정은, 우선언, 안응세, 남효온 등과는 절친하게 지냈다. 이들은 모두 20대의 젊은이들이다. 수양대군 왕위 찬탈을 용납할 수 없어 서울을 떠났던, 바로 그 혈기 왕성한 나이들이었다. 김시습은 그런 맑고 순수한 그들에게 자신이 20대 때 목도한 반인륜적인 비화를 들려줬다. 성종대의 젊은 신진사류들이 세조대의 일그러진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분투를 시작하는 결정적 계기도 생겼다. 김시습보다 스무 살 어린 남효온은 성종 9년(1497년) 스물다섯 나이에 단종의 생모인 소릉을 복위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림으로써, 모두 침묵하고 있던 세조의 행태를 역사 무대 위로 끄집어냈다. 또한 역적의 이름으로 죽어간 인물들을 충절의 인물로 복권하기 위해 ‘육신전’을 짓기도 했다. 그 대가로 남효온 또한 김시습처럼 평생 전국을 떠돌며 울울한 삶을 살게 된다. 이처럼 김시습은 승려의 행색으로 산사에 숨어 살며 은둔의 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아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대정신을 당대 젊은이들과 함께 벼려가기도 했다. 뒷날, 선조 임금의 분부를 받아 ‘김시습전’을 지은 율곡 이이는 그런 면모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는 절의를 세우고 윤기를 붙들어서 그의 뜻은 일월과 그 빛을 다투게 되고, 그의 풍성을 듣는 이는 나약한 사람도 용동하게 되니, ‘백세의 스승’이라 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애석한 것은 김시습의 영특한 자질로써 학문과 실천을 갈고 쌓았더라면, 그가 이룬 것은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율곡은 김시습을 미친 자가 아니라 ‘백세의 스승’으로 마음에 간직했다. 실제로 김시습은 서울로 복귀해 지내다 환속해 머리를 기르고 결혼도 하며, 유자의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굳게 다짐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그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김시습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승려의 행색으로 관동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꼿꼿한 삶의 자세 덕분에 그가 서울을 떠났다 해도 결코 감춰질 수 없었다. 그 뒤로도 많은 지식인이 그를 추모했던 까닭이다.#마음은 유자, 자취는 불자(心儒跡佛) 율곡은 김시습의 삶을 ‘심유적불’(心儒跡佛)이라는 네 글자로 집약했다. 마음은 유자였지만, 불자의 행적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실제로 김시습은 승려 생활을 하면서도 머리는 깎았지만, 수염은 깎지 않았다. 그 이유를 “머리를 깎은 것은 세상을 피하기 위함이요, 수염을 남겨둔 것은 장부의 뜻을 드러내기 위함”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김시습은 유교와 불교의 삶을 함께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도교의 세계에도 조예가 깊었다. 유·불·도에 정통했기에 많은 사람이 그를 다양한 사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자유인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김시습의 그런 삶은 그 어디에도 심신을 잠시도 누이지 못했던, 극심한 방황의 흔적으로 읽는 게 올바른 독법일 것이다. 정출헌 한국고전번역원 밀양분원장·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매월당집’은 김시습 사후 이자가 첫 유고 수집…선조의 명으로 총 23권 9책 발간 남효온은 ‘사우명행록’에서 “그가 지은 시문은 수만 편이 되는데,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바람에 거의 모두 흩어져 없어졌다. 조정의 신하들과 선배들이 혹 그의 글을 절취해 마치 자신의 작품인 양 하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작품을 도적질해 갔던 것이다. 실제로 김시습의 시문을 그의 사후, 그를 존중하던 이자가 중종 16년(1521년) 여기저기 흩어진 유고를 수습해 겨우 3권으로 묶을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박상, 윤춘년 등이 꾸준히 모아 가며 정식 간행했다고 하는데, 현재 그 매월당집은 사라지고 없다. 지금 전해지는 매월당집은 선조 16년(1583년) 임금의 명을 받아 경진자 활자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분량은 총 23권 9책으로, 시집이 15권이고 문집이 8권이다. 매월당집 서두에는 이산해가 쓴 서문과 이이가 쓴 ‘김시습전’이 실렸다. 1927년 후손이 김시습 관련 기록을 부록으로 덧붙여 신활자로 간행하기도 했다. 1979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5책으로 번역·출간했다.
  • [단독] ‘천형 낙인’ 한센병 환자 5년 뒤 사라진다

    [단독] ‘천형 낙인’ 한센병 환자 5년 뒤 사라진다

    고령화·적극적 감염예방 일환 활동성 환자 작년 125명으로 ‘나균’ 신규 환자 3명으로 감소5년 뒤 한센병 환자가 국내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출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환자 고령화와 적극적인 감염 예방 정책의 영향이다. 고려시대부터 현대까지 800년이 넘도록 주변의 따돌림과 비난, 공권력의 폭압을 피해 숨어 살다시피한 환자들의 고통스러운 역사가 저무는 것이다. 6일 서울대 평화통일연구원이 최근 질병관리본부에 제출한 ‘한센병 관리 개선방안 마련’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한센병 환자로 부르는 ‘활동성 환자’는 2001년 581명에서 지난해 125명으로 줄었다. 활동성 환자는 한센사업대상자(한센인)의 1%에 불과하다. 나균에 감염된 신규 활동성 환자는 2005년 15명에서 지난해 3명으로 감소했다. 정근식 평화통일연구원장은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22년에는 활동성 환자가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센병 감염 경험이 있는 전체 한센인도 2001년 1만 7712명에서 지난해 1만 33명으로 급감했다. 지난해 기준 한센인 평균 연령은 76세다. 70세 이상의 비율이 71%로 20년 뒤면 현재 한센인의 대부분이 사망할 것으로 예측됐다. 한센인은 대부분 소록도에 거주하는 것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지난해 말 기준 60.3%가 자신의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정착마을은 31.2%, 소록도 등 한센생활시설에 거주하는 비율은 8.5%다. 소록도병원에 거주하는 한센인은 511명이다. 해마다 사망하는 한센인은 평균 500명에 이르러 한센생활시설 입소자도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눈썹이 빠지고 피부와 근육이 문드러지는 증상 때문에 한센병 환자들은 늘 사회의 차별과 폭력에 시달렸다. 특히 일제는 소록도에 환자들을 몰아넣고 평생 격리, 강제 단종수술, 감금실 운영 등 ‘증오의 역사’를 이어 갔다. 소록도에 환자가 많을 때는 6000명이 넘을 정도였다. 해방 이후인 1954년과 1963년 전염병 예방법 개정을 통해 강제 격리가 폐지되고 정착마을이 활성화됐지만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아픔은 지금도 완전히 아물지 않았다. 현재는 70대 이상 고령자가 대부분이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다. 2016년 조사에서 한센인 정착마을 거주자의 70.9%가 기초생활수급자이고 9.9%만 경제적으로 독립한 것으로 분석됐다. 정착마을 한센인 3명 중 1명꼴로 가장 큰 어려움은 ‘빈곤’이라고 답했다. 인권침해 요소가 있는 정책의 개선도 필요하다. 정 원장에 따르면 과거 한센병 유병률이 높았던 시기에 만들어진 ‘부랑 한센인 수용’ 정책도 여전히 남아 있다. 정 원장은 “‘2017 한센사업지침’에는 과거 한센인 강제 송환의 근거가 됐던 ‘부랑 한센사업대상자 선도 및 이송’ 항목이 여전히 포함돼 있다”며 “고령화라는 한센인의 특성에 맞게 일상생활을 위한 생활복지적 모델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단독] 한국GM ‘매몰비용’ 협력사에 떠넘긴다

    한국GM이 이미 납품받은 자동차 부품을 반품 처리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군산공장 폐쇄 비용을 협력업체에 떠넘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협력업체들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GM이 물어야 할 매몰 비용을 협력업체에 전가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은 최근 군산공장에서 조립하던 ‘크루즈’와 ‘올란도’의 부품을 협력업체와 자사 새만금 물류창고로 반출하는 등 공장 폐쇄 작업에 본격 돌입했다. 군산공장 관계자는 “설 연휴 이후 돈 되는 부품은 모두 군산공장 밖으로 빼라는 지시가 내려졌다”면서 “엔진 등 부평이나 창원공장에서 쓸 수 있는 일부 제품은 물류창고로 보내지만, 나머지는 모두 협력업체로 반품 중”이라고 말했다. 한국GM은 공장 폐쇄를 기정사실화하는 일련의 조치가 노조를 지극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듯 ‘새달까지 반송 작업을 가능한 한 빠르고 조용하게 마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력업체들은 ‘반품은 손실 떠넘기기’라며 반발한다. 한 협력업체 사장은 “이미 납품받은 부품을 도로 가져가라는 건 부품 관련 손해를 완전히 협력사에 전가하는 행위”라면서 “후폭풍은 2·3차 납품업체의 연쇄도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보통 완성차업체는 1차 협력업체로부터 부품을 받으면 어음을 끊어 주거나 한 달 후쯤 대금 결제를 해 준다. 해당 자금은 이후 반제품을 납품한 2·3차 협력업체로 들어간다. 반품을 하면 결국 모든 자금의 흐름이 막힐 수밖에 없다. 완성차 업계에서도 이미 납품을 마친 부품까지 반품하는 건 상도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입을 모은다. 완성차 업계 임원은 “이미 군산공장의 생산량이 준 상태고 단종 후 8년간 애프터서비스용 부품을 의무로 비축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잉여 부품 때문에 한국GM에 돌아갈 피해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면서 “하지만 협력업체 입장에서 회사의 존폐를 걱정할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GM은 계약서에 따른 조치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GM 관계자는 “구매 계약서에 환불에 대한 단서조항이 들어 있고 이에 맞춰 반품 조치하는 것”이라면서 “법적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연기돌’ 블락비 비범, 첫 연극 도전...“응원해주고 함께해준 분들 감사”

    ‘연기돌’ 블락비 비범, 첫 연극 도전...“응원해주고 함께해준 분들 감사”

    그룹 블락비 비범이 첫 연극에 도전한 후기를 전했다.25일 그룹 블락비 멤버 비범(29·이민혁)이 SNS를 통해 연극 ‘여도’에 도전한 소감을 밝혔다. 비범은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저의 처음을 응원해주시고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여도 #단종 #BBC”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공개된 사진에는 비범이 연극 ‘여도’의 커튼콜에서 관객에게 인사하는 모습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팬들과 인증샷이 담겨있다. 비범은 명품추리사극 ‘여도’에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불안정한 정세 속에 살아가는 인물 단종 역을 맡았다. 비범은 이번 연극을 통해 성숙하고 진정성 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비범은 이날 소속사 세븐시즌스를 통해 “첫 연기도전이었는데 잘 마무리한 것 같다. 후련하기도 하고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사진=비범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문화올림픽 ‘대박’…평창 찾은 외국인, 강원도에 반하다

    문화올림픽 ‘대박’…평창 찾은 외국인, 강원도에 반하다

    평창올림픽 관련 문화행사들이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강원도는 12일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열리는 다양한 ‘문화올림픽’ 행사들이 해외 언론의 관심과 호평 속에 연일 매진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강원도는 이날 강릉 씨마크호텔 미디어센터에서 국내외 언론이 테마 공연 ‘천년향’ 의상과 ‘단종 국장’ 전통 의상을 접할 수 있는 포토행사를 가졌다. 강원도가 주는 ‘영감’(靈感)을 주제로 한 문화올림픽의 주요 프로그램은 평화와 화합, 협력과 상생 등 올림픽의 주요 가치를 담고 있다. 특히 강원도 전통문화와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독창적이고 이색적인 문화 행사에 국내외 언론이 관심을 보이며 많은 관객들이 강원도를 찾고 있다. 실제 이달 3일 개막부터 12일 현재까지 문화올림픽 행사에 1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았다. 케이팝 월드 페스타 같은 대형 공연은 티켓 판매 개시와 동시에 매진됐다. 천년향, 아트 온 스테이지, 파이어 아트 페스타, 청산별곡 등 공연과 전시의 모든 프로그램이 흥행을 이어 가고 있다. ‘천년향’은 첫 공연부터 연일 매진이다. 천년향은 한국 전통의 미와 강원도의 아름다운 자연, 세계인들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상생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호응을 얻고있다. 강원도의 아름다운 자연을 다채로운 조명으로 표현하며 관객을 극에 참여시키는 이머시브 쇼(Immersive show) 형식을 갖춘 점도 눈길을 끈다. 일반 관객, 언론, 각국 대사 등 다양한 관객층은 이러한 공연의 메시지에 공감하고, 눈을 뗄 수 없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한국 의상에 매료됐다는 평이다. 문화올림픽 프로그램 가운데 초반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은 또 다른 행사는 ‘파이어 아트페스타 2018 헌화가(獻火歌)’다. 파이어 아트페스타는 강원도의 대표적 관광 명소인 경포해변을 무대로, 동해의 일출 등 자연과 생명력을 형상화한 대형 설치미술을 전시하는 프로그램이다. 문화올림픽 개막을 알리는 전야 행사로 하루 먼저 시작된 파이어 아트페스타는 문화올림픽의 상징적인 답사 코스로 떠오르며 일반인 관람은 물론 해외 언론의 취재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미국 NBC는 경포해변 행사장을 찾아 전시 작품을 취재하고 소원 쓰기에 참여했다. 영국의 주요 언론인 가디언, 텔레그래프에서도 해변의 이색적이고 의미 있는 전시 풍경을 사진과 함께 다뤘다. 취재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채널에 작품 사진을 올리며 관심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파이어 아트페스타는 올림픽 기간인 오는 25일까지 경포해변에서 계속된다. 이와 함께 문화올림픽을 맞아 강릉에서 400여명 이상이 참여하는 단종 국장 행렬이 재현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강원 대표 전통 프로그램인 단종 국장 재현은 이날 강릉 단오공원~대도호부 관아까지 1.3㎞ 구간에 걸쳐 진행된 데 이어 22일 한 차례 더 펼쳐진다. 김태욱 강원도 문화올림픽 총감독은 “문화올림픽 행사들은 올림픽의 정신과 현 시대상을 반영하는 동시에 강원도만이 가진 문화적 자산을 바탕으로 탄생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라면서 “이번 문화올림픽을 통해 우리의 문화적 가치와 역량을 세계에 보여 주고 강원도가 문화의 도시로 세계에 기억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화올림픽의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www.culture2018.com)와 올림픽특별콜센터(1330)를 통해 알 수 있다. 글 사진 강릉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화성 전곡항에 해상케이블카와 함께 수변공원 조성

    화성 전곡항에 해상케이블카와 함께 수변공원 조성

    경기 화성시 전곡항 주변에 3만 6000㎡ 규모의 수변공원이 조성된다. 화성시는 5일 시청 접견실에서 동명기술공단종합건축사사무소와 이런 내용의 업무협약을 체결했다.협약에 따라 동명 측은 53억원을 들여 전곡항 뒤편 고렴산 주변에 광장, 초화원, 수변산책로, 쉼터, 주차장 등을 갖춘 공원을 조성해 시에 기부채납하고 나서 직접 운영을 맡게 된다. 공사는 올 5월에 착공해 내년 12월 준공될 예정이다. 전곡항 수변공원은 동명 측이 추진하는 제부도 해상케이블카 조성 사업과 연계해 추진된다. 동명 측은 지난해 4월 14일 민자 42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제부도와 전곡항까지 2.15㎞에 이르는 국내 최장 해상케이블카를 건설하는 내용의 협약을 화성시와 체결하고 개발절차를 진행중이다. 동명측은 2020년까지 제부도와 전곡항에 각각 승ㆍ하차가 가능한 정류장과 시간당 약 1500명을 수송할 수 있는 8인승 곤돌라 54대를 설치할 계획이다. 특히 바닥과 벽이 투명한 크리스탈 케빈 형식의 곤돌라는 바다 위 30m 상공에서 왕복 20분 동안 제부모세길, 전곡항 요트, 누에섬, 해상풍력, 서해 낙조 등 서해안 조망을 제공할 예정이다. 시는 제부도 해상케이블카로 연간 60만 명 이상의 탑승객을 유치해 고용창출효과와 더불어 기존 관광자원들과 연계로 2020년 한해 약 7000억 원 이상의 경제유발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날 협약식에서 채인석 시장은 “해양경관을 보호하면서 시민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선사할 수 있도록 전곡항 수변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다양한 관광 콘텐츠 개발을 통해 서해안 관광벨트 구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한센인 문제, 한·일 과거사 중 유일한 해결 의의”

    “한센인 문제, 한·일 과거사 중 유일한 해결 의의”

    “10년 넘게 함께 고생한 동료 변호사들에게 미안했는데 작은 보답이 된 것 같아 다행입니다. 좀더 많은 변호사가 공익 활동에 관심을 두고 참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30일 사단법인 법조언론인클럽 ‘올해의 법조인상’을 수상한 한센인권변호인단 단장 박영립(65) 변호사는 “모두 안 되는 일이라고 했고, 나도 승소하리란 기대는 없었지만 한센인들을 직접 만나고 나니 돕지 않을 수 없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센인과의 인연은 2004년 5월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을 맡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센인 인권 침해 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아낸 일본 변호사들이 한국의 한센인도 돕겠다며 대한변협을 찾아온 것이다. 박 변호사는 “일본 변호사들도 관심을 갖는데 한센인에 대해 무지한 것이 부끄러웠다”고 돌이켰다. 그러면서 “처음 한센병에 대해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판결을 받기까지 2~3년이면 끝날 줄 알았다”면서 “한센인 단체에서도 회의적이었지만 우리가 열의를 보이자 도와줬다”고 덧붙였다. 소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60명에 달하던 변호사들은 12명으로 줄었다. 박 단장과 김성기, 김준우, 박종강, 서중희, 양정숙, 이영기, 이정일, 장철우, 조영선, 최용근, 한석종 변호사로 구성된 변호인단은 일제 정책으로 고통당한 한센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보상을 이끌어냈고, 한국 정부로부터도 배상받았다.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에서 보상과 배상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했다. 처음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관련 법이 없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이후 일본 변호사, 시민단체, 언론 등의 도움으로 한국인도 보상받을 수 있도록 일본 법이 개정됐지만, 공식 문서가 없어 증명할 길이 없었다. 결국 변호사들이 팀을 꾸려 주말마다 소록도 등 전국에 흩어져 있는 한센인 정착촌을 돌며 설명회를 열고, 한 달에 5~10명씩 직접 만나 진술서를 작성했다. 일제 당시 한센인 정착촌에 강제억류됐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교회 교적부, 학교 학적부 등 관련 자료를 모두 뒤졌다. 결국 피해자 590명이 일본 정부에서 1인당 1억원을 받을 수 있었다. 박 변호사는 “변호사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가 합심해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입법청원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며 “한국, 일본, 대만 3국 국민 50만명이 서명운동하는 등 3국의 힘을 합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해방 이후 한국 정부는 한센인들에게 단종과 낙태수술 등을 강요했다. 정부는 2007년 보상법을 제정해 의료비만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박 변호사는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법원은 538명에 대해 1인당 3000만~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박 단장은 한센인 문제가 한국과 일본 양국의 과거사 문제 중 유일하게 해결된 점에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위안부나 강제징용 문제도 변호사, 시민단체, 언론 등이 다양하게 합심해 한국 정부와 힘을 합쳐 일본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며 “한센인 문제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결국 해냈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日 장애인 강제불임 ‘우생보호법’ 피해자 국가 상대 첫 손배소

    일본의 반인권적 악법이었던 ‘우생보호법’(優生保護法)에 따라 강제로 불임 수술을 당했던 60대 여성이 법원에 국가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948년부터 1996년 사이 이 법으로 인해 강제 불임수술을 받은 사람은 전국에 걸쳐 1만 6475명에 이르지만, 국가 대상 손배소는 처음이다. 30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미야기현에 사는 한 여성(61)은 이날 “강제 불임수술이 개인의 존엄과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된다”며 국가를 상대로 1100만엔(약 1억 1000만원)을 청구하는 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이 여성은 15세 때인 1972년 12월 ‘유전성 정신박약’을 이유로 난관을 묶는 불임수술을 강제로 받았다. 수술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이 여성은 1987년쯤 난소 조직이 유착하는 난소낭종 진단을 받고 오른쪽 난소를 제거해야 했고, 이를 이유로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로부터 파혼까지 당했다. 여성 측 변호인단은 “자신의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헌법 13조에 보장된 자기 결정권과 행복 추구권 등이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우생보호법은 독일 나치정권 때 실시됐던 ‘단종법’을 본뜬 ‘국민우생법’이 모태로, 국가가 ‘불량한 후손의 출생 방지’를 내걸고 지적·정신 장애인들에 대해 강제 불임수술을 인정한 악법이었다. 특히 수술을 강제할 때 신체의 구속이나 마취, 기망까지 인정했다. 이번에 소송이 제기된 미야기현의 경우 1963~1981년 수술 기록이 남아 있는 남녀 859명 중 52%는 수술 당시 미성년자였다. 9세밖에 안 된 여아도 수술대에 올랐던 기록이 있다. 그러다 1996년 이 법이 모체보호법으로 개정되면서 장애인 불임수술 항목이 삭제됐다. 김태균 기자 windsea@seoul.co.kr
  • [커버스토리] 소록도, 아픔 품은 100년史… 희망 품는 200년史

    [커버스토리] 소록도, 아픔 품은 100년史… 희망 품는 200년史

    한 세기 가까이 격리·억압의 공간… 섬 전체가 병원… 2009년 소록대교로 삶의 모습 변화… 한센인 511명 평균 나이 75.5세지난 16일 국립 소록도병원 100년사 ‘한센병 그리고 사람, 100년의 성찰’이 발간됐다. 개원 100주년(2016년)에 내지 못하고 두 해를 넘겼다. 풀어낼 이야기가 많아서였을까. 이유를 듣고자 소록도를 찾았다. 지난 19일 찾은 섬은 아무 일 없었단 듯 조용했다. 서울 서초구 호남선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고속버스로 5시간 걸려 전남 고흥 녹동버스터미널에 도착한 뒤 차로 15분 정도 이동했다. 이곳은 섬 전체가 병원이다. 예전엔 한센인과 직원들만 오갈 수 있었다. 지금은 소록도 중앙공원과 한센병박물관 정도를 일반인에게도 개방한다. 자원봉사자들에 한해 한센인들이 사는 마을까지 허용한다. 한센병박물관은 병원 본관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2016년 개원 100주년을 기념해 지어진 이곳에선 아직 새 건물의 냄새가 났다. 이곳에서 조명래 학예사에게 대뜸 “(책 발간이) 왜 늦었습니까”라고 물었다. “더 잘하려다 보니 그랬다.” 그가 웃으며 답했다. ●한센인에 대한 학살 ‘84인 학살사건’ 한 세기 가깝도록 소록도는 격리와 억압의 공간이었다. 그만큼 사연도 많다. ‘84인 학살사건’도 그중 하나다. 1945년 해방 직후 치안공백 상태에서 병원 내부 갈등이 직원과 한센인 갈등으로 번졌다. 당시 병원 직원들은 자신들이 끌어들인 외부 치안대와 함께 한센인 84명을 끔찍하게 살해했다. 나중에 밝혀진 희생자까지 공식 사망자만 85명이다.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건 반년 정도가 지나서다. 진상조사가 이뤄졌지만 직원들을 면직하는 데 그쳤다. 제대로 된 피해보상은 없었다. 2002년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이 시작됐다. 이들이 묻혔던 자리에 ‘애한의 추모비’가 세워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5년에야 이 사건을 직원들에 의한 한센인 학살사건으로 규정했다. 관련 피해보상법은 2007년 마련됐다. 한센인들의 인권보상 이야기는 1996년도에 편찬된 ‘소록도 80년사’에는 담기 어려웠다. 2000년대에 이르러서야 소록도가 우리 사회를 향해 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00년사 편찬에서는 이런 부분이 강조됐다.소록도로 들어가는 첫 관문 ‘소록대교’는 10년 전만 해도 어색한 풍경이었다. 2009년 소록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전남 고흥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야 했다. 배가 운행하는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격리의 상징인 소록도에 연륙교가 놓인 것은 여느 다리가 갖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원래 이곳은 한 번 들어오면 죽어서밖에 나가지 못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젠 누구나 자유로이 이곳을 드나들 수 있다. 박물관 소속으로 이번 100년사 편찬 작업을 한 강의원 소록도병원 주무관은 소록대교를 이곳의 가장 큰 변화라고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소록도는 한센인들만의 공간이었습니다. 소설 제목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말처럼요. 다리가 놓이고 삶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세상을 향해 열리게 됐달까요.”●한센인들을 괴롭히는 건 한센병이 아닌 ‘세월’ 한센인들은 ‘본병객병’이라는 말을 쓴다. 본병(本病)은 한센병을 뜻하고 객병(客病)은 그 이외의 병을 뜻한다. 현재 소록도에서 본병을 앓는 환자는 극히 드물다. 1982년 도입된 병형별 다제요법(MDT)으로 한센병은 거의 종결됐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높은 완치율을 보였다. 소록도에 가장 환자가 많았을 땐 6254명에 육박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기준 소록도병원에 등록된 한센인은 511명이며 이 중에서 활동성 한센병 환자는 한 명도 없다. 신체변형으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고령으로 노환을 앓는 한센인이 대부분이다. 소록도병원 환자 평균연령은 75.5세다. 이제 한센인들을 괴롭히는 건 본병이 아닌 객병과 세월이다. 소록도에선 환자가 환자를 돌봤다. 환자가 5000~6000명에 이를 때에도 이들을 치료할 의사는 10명도 채 되지 않을 만큼 의료인력이 부족했다. 한센인 중에는 “소록도에 수십년 살았는데 의사선생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증언한 이도 있다. 1949년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녹산의학강습소’는 시험을 통해 우수한 환자를 선발해 2~3년 동안 기초 의학지식을 가르쳐 의료조무원으로 양성했다. 의과대학을 졸업한 정식 의사는 아니지만, 소록도에선 이들이 의사 역할을 도맡았다. 1952년 1기 졸업생 16명이 배출됐고 1971년 7기 졸업생은 45명이었다. 여기서 의학을 배운 뒤 섬을 나가 더 공부해서 실제로 의사가 된 사람도 있다. 의학강습소는 당시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커다란 배움의 기회였던 셈이다.●“소록도엔 아이가 없고 무덤이 없다” “소록도엔 두 가지가 없다”는 말이 있다. 아이와 무덤이다. 한센병이 유전된다는 오해로 소록도에선 오랜 시간 정관·낙태수술이 자행됐다. 이 때문에 어린아이가 없다. 또 오랜 섬 생활로 육지 가족과 인연이 끊겨 이곳에서 죽은 이들을 기억해 줄 무덤이 없다. 소록도에서 생을 마감한 한센인 유골은 본관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만령당’으로 간다. 이곳에 안치된 유골은 10년이 지나면 만령당 뒤에 있는 봉분에 합장한다. 매년 10월 넷째 주 목요일에 합동 추도식이 열린다. 조 학예사는 이곳을 소록도에서 가장 뜻깊은 장소로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소록도병원엔 입원하는 사람만 있습니다. 퇴원은 어쩌면 불가능하죠. 한센인은 죽음으로써 이 섬을 떠납니다.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기에, 우리가 기억해 드려야 하는 거죠.” 섬 전체가 병원인 소록도에서 병원장의 역할은 중요하다. 원장이 펴는 정책에 따라 생활양식이 바뀌기 때문이다. “소록도 역사는 원장들의 역사”라는 말까지 나온다. 해방 이후 최초 한국인 병원장이었던 김형태 전 원장은 억압 일색이었던 소록도 분위기를 확 바꿨다. 이때부터 주민자치회가 결성됐으며 직원 지대와 병사 지대를 나누던 철조망이 사라졌다. 차기 원장 때 부활하지만, 이때 한센인들에게 큰 고통을 안겼던 단종수술도 폐지했다. 정관·임신중절수술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건 1990년대 이후다. 김 전 원장 시기 소록도에선 일제의 관리체계가 무너졌으며 민주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 1961년 5·16 군사정변과 함께 현역 군의관 조창원 대령이 제14대 원장으로 부임했다.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 이청준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에 나오는 조백헌 대령의 실제 모델이다. 그는 한센병이 다 나은 환자들의 사회복귀를 위해 ‘오마도 간척사업’을 계획했다. 이 사업으로 조성된 330만평의 농토에서 경작하며 살 수 있을 거라 한센인들은 기대했다. 삽·괭이 같은 원시적 도구에 한 달 30원이라는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한센인들은 공사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인근 고흥 주민들의 사업 반대와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1964년 7월 사업권이 전남도로 이관됐다. 이에 따라 한센인들의 꿈도 같이 좌절됐다. 공사에 참여했던 한센인들은 6개월간 밀린 임금도 받지 못했다. 소록도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아이폰X, 판매 부진으로 조기 단종…신제품 3종 예상”

    “아이폰X, 판매 부진으로 조기 단종…신제품 3종 예상”

    애플의 아이폰 10주년 기념작인 ‘아이폰X’(아이폰 텐)이 판매 부진으로 조기 단종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22일 맥루머스 등 해외 IT 매체 등에 따르면 애플 소식에 정통한 KGI증권 궈밍치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아이폰X 조기단종설’을 주장했다. 궈밍치는 “아이폰X 출하량이 1분기에 1800만대, 2분기에 1300만대에 그칠 것”이라면서 “1분기 2000만~3000만대, 2분기 1500만~2000만대로 추정한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는 양”이라고 밝혔다. 그는 “올해 중반 아이폰X은 단종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궈밍치는 아이폰X의 부진 원인으로 예상에 못 미친 중국 시장 수요를 꼽았다. 중국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애플리케이션들이 아이폰X의 ‘노치 디자인’에 최적화되지 않아 아이폰8 플러스 등 다른 모델에 비해 큰 디스플레이의 장점이 부각되지 못 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비싼 가격도 진입 장벽이 됐다는 분석이다. 궈밍치는 애플이 아이폰X을 조기 단종하고 하반기에 세 가지 신제품을 출시한 것으로 예상했다. 궈밍치가 예상한 신제품은 아이폰X과 비슷한 5.8인치 OLED 모델, 아이폰X 플러스 격인 6.5인치 OLED 모델, 중저가인 6.1인치 LCD 모델이다. 그는 “이 모델들은 모두 아이폰X에 사용된 풀스크린 노치 디자인과 트루뎁스 카메라를 적용한 제품이 될 것”이라면서 “6.5인치 OLED 모델과 6.1인치 LCD 모델이 애플의 중국 점유율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을 내놨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새로운 바나나에 적응할 준비 되셨나요?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새로운 바나나에 적응할 준비 되셨나요?

    몇 년 전부터 바나나의 멸종에 관한 이야기가 주변에서 끊이질 않았다. 일 년 내내 마트와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데다 질량에 비해 가격이 싼 과일인 바나나가 멸종된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멸종’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숲속의 고귀한 식물만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싸고 흔한 바나나가 숲속 어느 자생식물의 멸종 속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현재 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아메리카 숲속 야생 바나나 나무의 열매와는 형태가 다르다. 야생의 바나나는 과육 안에 검정 씨앗이 촘촘히 박혀 있고 과실 크기도 작기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고, 여러 육성 과정을 거친 후 우리는 비로소 현재 형태의, 씨앗이 거의 없고 크기도 큰 캐번디시(Cavendish) 바나나를 먹게 됐다.어느새 인류가 재배하는 바나나의 80%는 캐번디시 바나나가 되었다. 당도가 높아 맛있는 데다 천천히 익기 때문에 수확 후에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말하자면 세계 곳곳에 수출하기 좋은 국제적 작물인 캐번디시는 육성된 이래 세계 최고의 바나나로 불려 왔다. 다른 품종들을 왜 육성하지 않았겠느냐마는 사람들은 그중 가격도 싸고 당도도 높은 이 품종만을 소비했고, 결국 모든 재배농가가 바나나 중 가장 돈이 되는 캐번디시 품종만을 재배해 온 것이다. 바나나란 곧 캐번디시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그런데 이 세계 최고의 바나나, 캐번디시가 현재 아프리카와 아시아, 호주, 중동의 농작물을 없애고 있는 곰팡이의 위협을 받고 있다. 품종 개량된 원예종은 원종보다 유전적으로 약해 바이러스와 해충에 늘 취약하고, 푸사리움 옥시스포룸(Fusarium Oxysporum)이란 이 곰팡이는 바나나를 검게 만들어 식물 자체를 죽이고 있다. 그리고 이 곰팡이는 우리나라에서 수입하는 재배지의 바나나까지 위협한다. 바나나는 40년 전에도 지금 이 사태와 비슷한 일을 겪은 바 있다. 1950년대 세계는 현재의 캐번디시처럼 그로미셸(Gros Michel)이란 품종의 바나나를 재배했으나, 캐번디시를 없애고 있는, 같은 곰팡이의 위협으로 그로미셸은 재배가 중단되었고, 후에 그로미셸을 대신할 캐번디시 바나나가 나타났다. 문제는 이 일을 겪은 후에도 인류가 그 많은 바나나 중 캐번디시 한 품종만을 재배한 데 있다. 캐번디시 바나나만이 아닌 다른 품종도 재배했다면 캐번디시가 멸종되더라도 다른 품종이 그 자리를 대체해 바나나 자체가 멸종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유전자 다양성의 열쇠를 갖고 있는 야생의 원종 바나나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먹을 때 식감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씨앗을 없앤 덕에 바나나 나무는 스스로 번식을 하지 못하게 됐고, 인간에 의한 접목의 방식으로만 번식할 수 있다. 번식의 기능을 상실한 생물이라니. 오로지 인간의 식량으로서만 존재하는 무생물과 다름없어진 셈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바나나가 없으면 망고나 파인애플을 먹으면 되죠. 나는 원래 바나나를 안 좋아했어요.” 나 역시 특별히 바나나를 편애했던 것도, 바나나 없이 삶을 사는 데에 지장도 없지만 이 사태에 주목하는 이유는 바나나의 멸종은 비단 바나나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쌀이나 밀, 또 우리나라 대부분의 요리에 들어가는 고추, 파, 마늘이 바나나처럼 바이러스에 걸린다면? 이들이 멸종 위기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1840년대 아일랜드에서는 아일랜드의 척박한 토양에 맞는 감자 한 품종을 육성해 대대적으로 재배했고, 아일랜드의 모든 농가가 이 품종의 감자만을 재배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감자잎마름병이 나타나면서 감자 대기근이 시작되었다. 이를 주식으로 먹던 아일랜드는 긴박한 식량난에 처해 5년간 인구의 3분의1이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이를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이라 하며, 단종 재배의 위험성을 알리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그래서 인류는 다양한 품종을 육성한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주식부터 과일, 채소, 화훼식물까지. 우리나라가 작물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1970년대 이후, 연구자들이 우리 국민에게 꼭 필요한 쌀을 시작으로 고추, 마늘과 같은 주요 작물부터 육성해 보급하는 데 힘을 쏟은 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니 쌀과 고추가, 또 마늘이 (당장은) 멸종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도 식물학자들이 파푸아뉴기니의 정글에서 질병에 저항력이 있는 캐번디시 변종 바나나를 찾고 있듯이, 많은 연구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식물을 수집하고, 기록하고, 연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바나나는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는 분명 이 바나나를 대체할 또 다른 바나나를 발견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우리는 곧 새로운 바나나의 맛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다.
  • [인사]

    ■국방부 ◇과장급 보임△군구조·국방운영개혁추진실 자원관리개혁담당관 천승현△군사보좌관실 의전담당관 성기욱△기획조정실 사이버정책담당관 홍순정△기획조정실 계획예산총괄담당관 김신숙△군공항이전사업단 이전기획과장 석헌수 ■방위사업청 △획득기반과장 곽장호△수출진흥과장 조준현△장갑차사업팀장 윤여철△조달기획팀장 박용도△장비규격팀장 서홍철△국제가격검증팀장 이명△원가총괄팀장 손은주△함정항공원가분석팀장 안철용 ■안전보건공단 ◇실장급 승진△직업건강실장 김현석△산업안전보건교육원 교수실 산업보건교육부장 최성원△산업안전보건교육원 교수실 건설경영교육부장 정안태△산업안전보건인증원장 김봉호△부산지역본부 교육센터소장 서용문△부산지역본부 기술지원국장 이성주△중부지역본부 김남두 ■KB금융지주 ◇승진△시너지추진부장 조경희△리스크관리부장 염홍선△비서실장 이정수△그룹인재개발센터장 전효성△사회공헌문화부장 문혜숙△재무기획부 팀장(부서장 대우) 정민수△이사회사무국장 직무대행 최석문△모델검증유닛장(부서장 대우) 김지언△ IT기획부장 김용택 ■KB국민은행 ◇부장 승진△구조화금융2 빈중일△기술금융 이경률△디지털금융 이영근△정보개발 장정환△글로벌추진 장지규△데이터분석 최종진◇센터장 승진△서창종합금융 김종혁△대출실행 목연중△오창종합금융 송용훈△부산PB 송재섭△송도PB 유명근△녹산공단종합금융 최성욱 ■수출입은행 ◇승진△인프라금융부장 권원협△해양기업금융실장 정경석△정보시스템부장 이영미△준법법무실장 정석찬△창원지점장 강봉석△전주지점장 정현수△타슈켄트사무소장 송오순△뉴욕사무소장 이동훈△인사부 소속 부장(연수) 김수현 이영희◇전보△인사부(인재개발원장) 이병창△플랜트금융부장 이상헌△서비스산업금융부장 김형준△중소중견금융1부(천안수출중소기업지원센터장) 신유근△중소중견금융2부장 모창희△해양프로젝트금융부장 정순영△기업구조혁신실장 안종혁△기업개선부장 유연갑△경협지원실장 이재홍△경협사업1부장 홍성훈△경협사업2부장 장익환△남북협력총괄부장 이성준△남북경협실장 조양현△남북교류협력실장 이형주△자금시장단장 이진균△국제투자실장 정두화△해외인프라수주·투자지원센터장 백태준△심사평가단장 김경자△해외경제연구소장 이승건△비서실장 조용민△홍보실장 이원균△부산지점장 홍기철△광주지점장 이영태△인천지점장 이경호△수원지점장 서석형△구미출장소장 김관△여수출장소장 심재선△수은베트남리스금융회사 사장 이태균△성동조선해양 경영관리단장 김영석△대선조선 경영관리단장 조장래 ■포스코대우 ◇전무(P9) 승진△북미지역총괄 겸 미국무역법인장 고재린△일본지역총괄 겸 일본무역법인장 이경하◇상무(P8) 승진△중앙아시아지역총괄 겸 타시켄트지사장 지병환△철강원료사업실장 신수철△자원탐사실장 조준수◇상무보(P7) 승진△방콕지사장 유삼△상해무역법인장 박현열△자동차부품2그룹장 이창훈△시추생산그룹장 이정환△경영전략그룹장 박정빈△러시아지역총괄 겸 모스크바지사장 허성형△PT.BIA법인장 공병선△알제리지사장 이원재◇전무(P9) 신규선임△HR지원실장 최종진◇상무(P8) 신규선임△투자관리실장 최은주△스테인리스사업실장 손광주◇상무보(P7) 신규선임△에너지조선강재실장 김봉남△홍보그룹장 홍진숙 ■롯데지주 ◇승진△사장 이봉철△전무 남익우 이종현 김현옥△상무 오성수 정영철 손희영 이병희△상무보A 김원재 이재홍△상무보B 신재열 이규철 김민아 김성식 ■롯데쇼핑 ◇승진△상무 이호설 김대수 우주희 김응걸 이상무△상무보A 박주혁 나연 박상영 김혜영 이제관 조영준 임재철 강헌서 안종윤 오희성 이기욱△상무보B 황경호 안대준 구성회 이진우 박중구 김재범 이정혜 구창모 이은승 권혁인 신영주 송민 박성훈 김재철 윤회진 ■롯데장학복지재단 ◇승진△상무 백운성 ■호텔롯데 ◇승진△상무 강성태 김보준 조종식△상무보A 전혜진 김주남 최원기△상무보B 홍성준 심희승 이정민 김인식 박상일 ■롯데칠성음료 ◇승진△상무 정찬우 김원국△상무보A 나한채 이덕용 서민재△상무보B 이종곤 여철호 여명랑 이창환 강호영 이남철 정성주 ■롯데하이마트 ◇승진△상무 박재욱 문주석△상무보A 김경선△상무보B 이태종 박수용 박왕근 ■롯데물산 ◇승진△상무 박노경△상무보B 노희웅 ■코리아세븐 ◇승진△상무 최정환△상무보B 이우식 ■롯데정보통신 ◇승진△상무 오광우△상무보A 허성일 성정훈△상무보B 김성환 박종표 ■현대정보기술 ◇승진△상무보A 김광영 ■롯데알미늄 ◇승진△상무보A 최연수△상무보B 이채현 이상원 김태룡 ■롯데멤버스 ◇승진△상무보B 오상우 황윤희 ■롯데MCC ◇승진△상무보B 김상명 ■롯데홈쇼핑 ◇승진△전무 황범석△상무 추동우△상무보A 전성율 정윤상 ■롯데푸드 ◇승진△상무 경원수△상무보A 정성호 김상태△상무보B 박태진 권기정 ■롯데카드 ◇승진△전무 박두환△상무 김종극△상무보A 명제선△상무보B 홍정일 이창주 김지나 ■롯데캐피탈 ◇승진△전무 고정욱△상무보A 김종석△상무보B 안승찬 ■롯데손해보험 ◇승진△전무 김도한△상무 김동은△상무보A 김재필△상무보B 고성인 김민호 김종영 ■롯데지알에스 ◇승진△상무 김대현△상무보B 강형희 송종은 ■롯데제과 ◇승진△상무 조정훈 정연강 손정식 Mieke Callebaut△상무보A 김현덕 박경섭 최성철△상무보B 김대원 황성욱 이정훈 박균열 최진아 ■롯데중앙연구소 ◇승진△상무보A 전진경△상무보B 최정민 ■롯데정밀화학 ◇승진△전무 정경문△상무보A 강상호 주우현△상무보B 박병진 김상원 고국환 ■롯데비피화학 ◇승진△상무 정동환 ■롯데첨단소재 ◇승진△상무 최영호 이동주 박진현△상무보A 김대중△상무보B 최철우 박강열 김민우 ■롯데렌탈 ◇승진△전무 이훈기△상무보A 최창희 남승현△상무보B 허균 이준규 김경봉 ■이비카드 ◇승진△상무보A 정진환 ■롯데자산개발 ◇승진△상무 오일근△상무보A 김건하△상무보B 김태성 심영우 ■롯데닷컴 ◇승진△상무보A 윤상선△상무보B 박광석 이재훈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 ◇승진△상무 최세환△상무보A 하순철△상무보B 이세철 ■롯데미래전략연구소 ◇승진△상무 신광철
  • 양심 좀먹은 애플

    양심 좀먹은 애플

    구형 아이폰 강제 성능 저하 1년여 만에 사과했지만 “오해”라며 발뺌미국 애플이 28일(현지시간) ‘구형 아이폰 고의 성능 저하’ 논란에 대해 결국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고의로 성능을 떨어뜨렸다는 것은 여전히 “오해”라는 태도다. 배터리 교체비용 지원 등 수습책도 내놨지만 고객 눈높이에 못 미치는 데다 ‘잘못은 없지만 사과한다’는 식이어서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비슷한 ‘배터리 게이트’를 겪은 삼성전자의 수습 행보와 사뭇 대조된다. 애플은 이날 홈페이지에 “구형 배터리를 가진 아이폰의 성능처리 방법과 그 과정을 전달한 방식에 대한 고객들의 피드백(반응)을 들었다. 사용자를 실망시켰다는 것을 알고 있고 사과한다”는 글을 띄웠다. 그러나 고의 성능 저하는 “오해”라고 일축했다. 애플은 “우리는 결코 제품 수명을 의도적으로 단축하거나 사용자 환경을 저하해 고객 업그레이드를 유도하지 않았다”면서 “모든 충전식 배터리는 화학적 수명이 다해 가면 효율성이 떨어져 일부 상황에서 기기가 스스로 꺼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애플은 후속 조치로 배터리 교체 비용을 새해 1월부터 개당 79달러에서 29달러로 50달러(약 5만 3000원)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새 배터리로 교체할 필요가 있는지 알려 주는 운영체제(iOS)도 업데이트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부 소비자들은 “성능을 떨어뜨려 놓고 배터리 마진까지 챙기냐”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집단소송도 세계 각국으로 확산돼 가는 양상이다. 앞서 미국에서는 애플의 시가총액을 웃도는 9999억 달러(약 1076조원) 배상 요구 집단소송이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에 제기됐다. 국내에서 법무법인 한누리가 진행하는 소송은 이날 현재 신청자가 3만 4000명을 넘어섰다. 애플이 자사 고객의 로열티(충성도)가 유난히 강하다는 점을 믿고 안이하다 못해 오만하게 대처한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이러한 애플의 대응은 삼성전자의 발 빠른 대처와 비교된다. 지난해 8월 야심차게 내놓은 신제품 ‘갤럭시노트7’의 발화 사례가 처음 접수되자 삼성은 8일 만에 배터리 결함을 공식 시인하고, 전량 리콜(교환)에 들어갔다. 10월에는 끝내 단종을 결심하고 생산을 아예 중단했다. 갤럭시노트7을 갖고 있는 소비자가 후속작인 노트8로 바꾸면 기존 할부금의 50%를 면제해 주기로 하고 ‘갤럭시S8’ 등 신제품도 서둘러 내놨다. 여세를 몰아 새해 2월에는 스페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신작 ‘갤럭시S9’을 공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정보기술(IT) 업계 관계자는 “삼성은 제조상 결함으로 인한 안전 문제였고 애플은 운영체제 업데이트 과정의 고의적인 성능 저하 의혹이라는 점에서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신뢰 회복을 풀어 가는 방식에 차이가 극명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보다 47% 늘어난 1200억원대 월급봉투를 챙긴다. 블룸버그통신은 팀 쿡이 2017 회계연도 기준 933만 달러의 인센티브와 급여 306만 달러, 주식상여금 8920만 달러 등 총 1억 200만 달러(약 1286억원)를 벌어들였다고 전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차업계 새바람 주역 되려던 ‘바람’ 있었지만…수요 예측·포지셔닝 실패로 결국 역사속으로 매년 자동차 시장에는 신차들이 쏟아지지만 아쉽게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차들도 적지 않다. 회사 입장에서 개발 비용에 수천억원이 들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내놓은 자식 같은 차를 단종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더 큰 손해를 막기 위해 단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제학적 계산이 숨어 있다. 자동차 회사들이 단종을 결정하는 가장 큰 이유는 판매 부진 때문이다. 통상 신차가 나오면 해당 세그먼트(세분화된 시장)를 꾸준히 공략하기 위해 2~3년 반 사이에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는 등 상품성을 개선하는 부분 변경(페이스 리프트) 모델을 선보인다. 또 5~6년 사이 신차 수준의 풀체인지 모델을 선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 역시 수천억원에 달한다. 때문에 2년 이내에 해당 세그먼트에서 수요가 사라지거나 회사의 전략이 바뀐 경우 이후 추가 비용 발생으로 인한 손해를 막으려면 단종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이달 말을 끝으로 생산을 중단하기로 한 현대자동차의 ‘아슬란’은 전자에 해당한다. 대형 고급 세단 ‘아슬란’은 현대차가 ‘제네시스’와 ‘그랜저’ 사이의 수요를 공략하기 위해 2014년 10월 내놓은 차로 출시 당시 법인시장을 공략하면서 한때 ‘임원차’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출시 첫해에 신차 효과로 월평균 1000대를 기록했을 뿐 올 들어 월평균 40대 이하 수준으로 저조한 판매를 보이면서 결국 3년 2개월 만에 단종됐다. 아슬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잘못된 수요 예측이 꼽힌다. 최상급 모델인 제네시스와 그랜저의 중간인 준대형 시장을 노렸지만 애매한 위치로 수요가 창출되지 못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랜저를 변형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성능 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수요 예측을 잘못해 위치가 어정쩡했다”면서 “준대형 시장에서 2015년 출시된 기아자동차 ‘K7’이 인기를 끌면서 추격을 허용한 것도 원인”이라고 말했다. 대형 세단 시장에서 전륜을 선택한 것도 패착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동차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형 세단은 후륜 구동이 대세인데 전륜 구동인 ‘아슬란’은 후륜 구동의 안락하고 고급스러운 승차감을 경험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쌍용자동차도 올해 말까지 ‘체어맨W’의 생산을 마무리하고 내년 3월부터는 판매 역시 중단할 방침이다. 1997년 1세대 체어맨을 출시한 지 20년 만의 일이다. 체어맨은 1997년 쌍용차가 메르세데스벤츠와 기술 제휴를 맺고 4년간 4500억원을 투입해 만든 대형 세단이다. 2000년대 말까지 연간 1만대를 웃도는 판매량으로 고급차 시장을 주도했다. 2008년에 2세대 모델인 ‘체어맨W’를 출시했다. ‘원조 회장님 차’로 삼성전자의 이재용 부회장이 2015년부터 업무용 차량으로 ‘체어맨 W’를 애용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판매량이 매월 50대 수준으로 떨어지고 올해 11월까지 내수 517대, 수출 1대가 판매되는 데 그쳤다. 쌍용자동차는 ‘작전상 후퇴’라고 말한다. 당장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생산에 집중하면서 향후 ‘체어맨’의 브랜드 활용 방안을 세울 계획이다. 쌍용차 관계자는 ?“당분간 SUV 생산에 집중해 70% 수준인 평택 공장의 가동을 정상 궤도에 진입시키고 나서 체어맨의 브랜드 활용 및 투자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한국GM도 2015년 8월 ‘그랜저’의 대항마로 야심 차게 선보인 ‘알페온’을 단종시키고 ‘임팔라’로 수입 대체한 바 있다. 임팔라는 2010년 출시 당시 신차 효과로 한 달에 1만 2000대까지 팔렸지만 결국 준대형 시장에서 그랜저의 아성을 뛰어넘지 못했다. 최근 한국GM이 내년 초 중형 SUV 시장에 ‘에퀴녹스’를 출시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동급이던 ‘캡티바’의 단종설도 나오고 있다. 한국 GM 관계자는 “알페온은 그랜저에, 캡티바는 소렌토에 막히는 등 현대·기아차 중심의 시장이 워낙 견고해 판매 부진을 겪었다”면서 “생산을 일시 중단한 적은 있지만, 단종은 향후 고객 수요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은 고객에 대한 철저한 분석 없이 자사의 상품 교체 주기와 수명, 추가 비용 등 경제적 판단만을 고려해 생산할수록 단종이라는 뼈아픈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닛산은 엔지니어들이 원하는 차, 도요타는 고객이 좋아하는 차를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 시장에서 승리한 것은 도요타”라면서 “결국 회사가 아닌 고객들이 원하는 차를 만들어야 단종 없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차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업계의 평범한 진리”라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빅스비 지원·지문 인식·Pay… 잘나가는 ‘가성비 甲’ 중저가폰

    빅스비 지원·지문 인식·Pay… 잘나가는 ‘가성비 甲’ 중저가폰

    출고가 20만~50만원대 형성 고화질 카메라·고속 충전까지 1020세대·5060세대서 인기100만원대 초고가 휴대전화 시대가 열린 속에서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중저가 휴대전화 역시 올해 소리 없이 선전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통상 중저가폰은 거의 광고를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통신사와 단말기 제조사 매출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통신사별로 자체 출시하는 전용폰도 지난해부터 기대 이상 실적을 내면서 마케팅이 강화되는 추세다. 학생은 물론 실버 세대까지 멀티미디어 기능을 갖춘 휴대전화를 찾고 있는 데다 고가 휴대전화에서나 볼 수 있는 고성능 카메라와 지불(페이) 기능 등 성능이 업그레이드된 것도 중저가폰 인기 비결로 꼽힌다. 프리미엄폰의 과도한 가격 인플레 현상에 대한 소비자들의 경고 신호라는 분석도 나온다. SK텔레콤 관계자는 “통신사마다 자체 전용폰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전체 매출 중 중저가폰의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고 전했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삼성 ‘J5·A5’ 시리즈, LG ‘스타일러스2’·‘X500’ 등 중저가폰의 올해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30%가량 증가했다.삼성전자 관계자는 “2015년 중저가폰 비중이 전체 휴대전화 출고량의 40%를 넘어섰고 계속 올라가는 추세”라면서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로 인한 측면이 크긴 하지만 새해에도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상반기 출시된 프리미엄 스마트폰 갤럭시8의 국내 하루 판매량이 8000대가량인데, 중저가폰 ‘갤럭시J 시리즈’(J3·J5·J7)를 합치면 이와 거의 비슷하다”면서 “올해 J시리즈 돌풍이 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7월 출시된 ‘갤럭시J5 2017’은 30만원대의 낮은 가격에, 슈퍼아몰레드(AMOLED) 디스플레이의 고화질, 1300만 화소 후면 카메라 장착 등 중저가폰 중에서도 ‘가성비 갑’이라는 평을 들었다. 업계 관계자는 “중저가폰은 제조사 입장에서는 주력 기종이 아니다. 때문에 광고나 마케팅을 거의 하지 않는다”면서 “통신사나 제조사가 구체적인 판매실적을 공개하진 않지만 올해 중저가폰 실적은 분명 주목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가 국내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도 프리미엄폰인 아이폰 시리즈만 내놓는 애플과 달리 중저가 라인까지 모델을 다변화한 전략 덕분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통신사 전용폰의 경우, 기획 단계부터 통신사의 요구 사항이 반영되기 때문에 가성비를 더욱 끌어올릴 수 있는 측면이 있다. SK텔레콤이 지난 7월 단독 출시한 ‘갤럭시A7 2017’(출고가 58만 8500원)은 중저가형 모델 중 최초로 인공지능 서비스 ‘빅스비 홈’(Bixby Home)을 지원한다. 방수·방진 및 지문 인식 기능도 갖췄다. 최근에도 하루 평균 1500여대씩 팔리는 스테디셀러다. 20만원대의 5.5인치 대화면 ‘갤럭시 와이드2’는 지난달 SK텔레콤의 스마트폰 판매 순위에서 ‘갤럭시노트8’, ‘갤럭시S8·S8+’ 등 프리미엄 제품에 이어 4위에 올랐을 정도다. 이른바 ‘실버 서퍼’(Silver Surfer·디지털 기기에 능숙한 고령층)로 불리는 5060세대 고객층에서 특히 인기다.KT는 삼성페이와 지문인식 기능을 지원하는 30만원대 ‘갤럭시J7 2017’을 단독 선보였다. 전면부에 발광다이오드(LED) 플래시, 1300만화소 카메라를 얹어 ‘셀카’ 기능을 특화했다. 지문 인식과 온·오프라인 결제가 가능한 삼성페이 기능을 새로 넣은 게 주효했다는 게 자체 분석이다. 화웨이사와 함께 얼마 전 내놓은 ‘비와이(Be Y)폰2’(출고가 39만 6000원)는 10~20대를 겨냥한 휴대전화다. 더 커진 카메라 센서와 고속 충전 기능, 지문인식센서 등이 눈에 띈다.LG유플러스 단독 모델인 ‘갤럭시J3 2017’(출고가 27만 5000원)은 전작인 2016년형에 비해 성능이 크게 개선됐다. 애플리케이션 실행속도가 빨라졌고, 저장공간(1616GB)도 2배 커졌다. 동영상과 사진 보관량이 많아진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산물이다. 가장 실속형인 ‘LG X300’(출고가 25만 3000원)도 1300만화소 후면 카메라로 동급 대비 우수한 카메라 성능을 갖췄다. 요금제와 상관없이 22만원 지원금 및 매장 추가 지원금을 받으면 공짜로 살 수 있다. LG유플러스는 국내 통신사 최초로 중저가폰이 대부분인 알뜰폰 고객에게도 자사 멤버십 혜택을 이달부터 주고 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삼성전자 ‘갤럭시’ 7년 연속 최고 브랜드 선정

    삼성전자 ‘갤럭시’ 7년 연속 최고 브랜드 선정

    2위 이마트·3위 네이버 차지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브랜드 ‘갤럭시’가 7년 연속 우리나라 최고 브랜드로 선정됐다. 브랜드 가치 평가회사인 브랜드스탁이 3일 발표한 ‘2017 대한민국 100대 브랜드’에 따르면 삼성전자 갤럭시는 평가지수 936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갤럭시노트7’ 단종 사태로 악재를 맞았던 갤럭시는 올해 2위 이마트(913.2점)와 격차를 벌리며 7년째 1위 자리를 지켰다. 브랜드스탁은 “하드웨어 완성도, 혁신 동력으로 스마트폰 시장의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했다. 3위는 네이버였고 이어 카카오톡, KB국민은행, 인천공항, 롯데월드 어드벤처, 신라면, 신한카드, 구글 등 순으로 톱10에 이름을 올렸다. SK텔레콤, 롯데백화점, 대한항공, 참이슬, 하이마트, 제주삼다수, KTX, 에버랜드 등 업종별 대표 브랜드들도 높은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30년만에 람보르기니가 선보이는 SUV ‘우루스’

    30년만에 람보르기니가 선보이는 SUV ‘우루스’

    슈퍼카 업체 람보르기니가 브랜드 최초의 SUV 모델 ‘우루스’(Urus)의 공식 티저 영상을 최근 공개했다. 우루스는 스포츠카의 디자인과 성능, SUV의 실용성을 갖춘 모델로, 1986년 출시돼 1993년 단종된 ‘LM002’ 이후 람보르기니가 30년 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SUV다. 이번에 공개된 영상에는 우루스가 지닌 지형 선택 구동 모듈 스트라다와 스포츠, 코르사 등 기본 주행 모드 외에도 모래와 눈, 진흙길에 대응하는 사비아, 네브, 테라 모드 주행 모습이 담겨 있다. 우루스는 내달 4일 람보르기니 본사가 위치한 이탈리아 산타가타 볼로냐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사진·영상=Lamborghini/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단종 복위 꿈꿨던 금성대군… 순흥서 스러져 ‘산신령’으로 남다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단종 복위 꿈꿨던 금성대군… 순흥서 스러져 ‘산신령’으로 남다

    순흥(順興)은 오늘날 경상북도 영주시의 일개 면(面)일 뿐이다. 하지만 순흥의 역사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삼국시대 순흥은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지대였다. 고구려는 장수왕 시절 죽령을 넘어 영주 일대까지 장악했다. 죽령을 사이에 두고 영주와 이웃한 충청북도 단양에 고구려 온달장군의 전설이 어린 온달산성이 남아 있는 것도 이런 역사와 관계가 있다.순흥에 고구려의 장례 풍습을 보여주는 벽화고분이 남아 있는 것도 그렇다. 풍경화를 방불케 하는 연꽃 그림은 일본 미술에도 영향을 미친 고구려 특유의 표현이라고 한다. 가까운 부석사의 창건설화도 그렇다. ‘삼국유사’에는 의상대사의 부석사 창건을 방해하는 ‘500명이 도둑’이 보이는데, 학계는 이들을 신라에 협력하지 않은 고구려계 주민으로 본다. 고구려 통치 시대 순흥은 급벌산군(及伐山郡)이었다. 이후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이 급산군(及山郡)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고려는 흥주(興州), 순안현(順安縣), 순흥부(順興府)로 잇따라 개칭했다. 순흥은 조선 초기 전국 75개 도호부의 하나였다. 하지만 1457년(세조 3) 도호부는 폐지되고 땅덩어리는 풍기·봉화·영주 세 고을로 분산됐다. 정축지변(丁丑之變)이라는 사건 때문이었다.오늘날 영주의 양대(兩大) 문화유산이라면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꼽아야 할 것이다. 이 고장의 유교문화와 불교문화를 상징한다. 이들을 돌아보려면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을 이용하게 마련이다. 풍기는 인삼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이맘때 찾으면 사과가 지천이다. 풍기에서 소수서원이 있는 순흥을 거쳐 부석사에 이르는 길은 문화유산 순례길이다. 순흥 벽화고분도 이 길 주변에 있다. ●역적의 땅 된 순흥, 이름마저 200년간 사라져 소수서원에서 나와 부석사로 방향을 잡으면 곧바로 왼쪽에 금성대군신단(錦城大君神壇)이 보인다. 그냥 지나치기 일쑤지만, 잠시 둘러보기를 권한다. ‘역적의 땅’이 되어 순흥이라는 이름마저 200년 넘게 사라지게 했던 역사가 담겨 있다. 정축지변이란 금성대군이 주도하고 순흥부사 이보흠이 뒷받침한 단종 복위 운동과 뒤따른 대학살 사건을 이른다. 세종은 6명의 부인과 18남 4녀의 자녀를 두었다. 정비인 소현왕후 심씨와 사이에는 8남 2녀가 있었다. 첫째가 세종의 보위를 이은 문종이고 둘째가 문종의 맏아들인 어린 조카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 곧 세조다. 안평대군, 임영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 평원대군, 영응대군이 뒤를 이었다. 그러니 금성대군은 세종의 여섯 번째 적자(嫡子)다.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금성대군에 앞서 목숨을 잃은 형제는 안평대군이었다. 시문(詩文)과 서화(書畵)에 능했던 안평대군은 문종 시절 조정의 실력자 역할을 하면서 김종서를 비롯한 주요 문신과 가까웠으니 수양대군과는 라이벌이었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킨 1453년 반역을 도모했다는 구실로 유배지 교동도에서 사사(賜死)한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금성대군은 단종의 측근을 제거하려는 수양대군의 뜻에 따라 1455년 오늘날의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 철원을 아우르는 삭녕에 유배된 데 이어 경기도 광주(廣州)로 이배된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넘겨받은 해다. 이듬해 성삼문·박팽년·하위지·이개·유성원·유응부 등이 단종 복위를 노리다 실패한다. 이른바 사육신(死六臣)이다. 이미 노산군으로 강봉(降封)된 단종은 1457년 영월로 유배되는데, 이때 금성대군도 순흥에 위리안치된다. 금성대군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는 데는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가 도움이 된다. ‘공이 순흥부에 이르러 이보흠과 마주하여 눈물을 흘리고 산호 갓끈을 주었다. 드디어 주변 지역 인사와 몰래 결탁하여 상왕(上王)을 복위시킬 계획을 하고 이보흠을 불러 좌우를 물리고서 격문(檄文)을 기초하게 하였는데, 순흥의 관노(官奴)가 벽에 숨어 들은 뒤 공의 시녀와 교통하여 초안을 훔쳐 달아났다.… 공과 이보흠이 잡혀 죽었고, 지역과 주변 인사 중 사형에 연좌된 자도 많았다.’ 금성대군은 순흥에서 의거를 일으키면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도 선비들이 대거 뜻을 같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 영월 청령포에서 노산대군을 모셔와 다시 임금으로 세우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강원도 영월과 경상도 순흥은 심리적 거리가 멀지 않다. 비록 좁은 산길이지만, 태백산이 끝나고 소백산이 시작되는 곳에 고치령이 있다. 이 고개 정상에는 산령각(山靈閣)이 있다. 단종과 금성대군을 태백산 산신과 소백산 산신으로 각각 모셨다. 역사를 민중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 금성대군은 안동부 관아에서 사사됐다. 시신이 어떻게 처리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무덤도 없다. 순흥에는 금성대군이 피를 흘리며 죽은 자리에 신단을 세웠다는 전설이 있지만, 전설일 뿐이다. 순흥이 복읍된 것은 숙종 시절이다. 이후 금성대군신단은 1719년(숙종 45) 설치했고 1742년(영조 18) 정비했다고 한다. 신단은 품(品) 자 형태로 3개의 단을 설치했다. 가운데가 금성대군, 왼쪽이 이보흠, 오른쪽이 순절의사를 기린다. 금성대군성인신단지비(錦城大君成仁神壇之碑)라고 새긴 비석도 세웠다. 금성대군과 이보흠은 물론 화를 입은 사람들 모두를 추모하는 제단이라 할 수 있다. 금성대군의 아들 이맹한은 충청도 청주에 유배됐다. 이후 중종 시절인 1519년 함종군에 복작되며 명예회복이 이루어진다. 충북 청주 미원면 대신리에는 금성대군 제단(祭壇)이 있다. 그를 정점으로 하는 전주 이씨 금성대군파 묘역이다. 제단 오른쪽에는 부인 전주 최씨의 무덤이 있다. 합장묘라는 상징성을 부여한 것이다.●충북 진천·영월에도 금성대군 사당·위패 보존 청주 제단에서 자동차로 20~30뿐쯤 걸리는 충북 진천 초평면 용기리에는 금성대군의 사당인 청당사(靑塘祠)가 있다. 사당을 지은 시절에는 진천이 아닌 청안 땅이었다. 영조 16년(1740) 세웠지만, 흥선대원군이 훼철한 것을 1974년 중건했다고 한다. 충북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주변은 정리되지 않았고, 쓸쓸한 느낌마저 든다. 금성대군은 단종의 무덤인 영월 장릉의 배식단(配食壇)에도 배향되어 있다. 정단(正壇) 32인과 별단(別壇) 236인 등 268인의 위패를 봉안한 제단이다. 금성대군의 위패는 육종영(六宗英)의 일원으로 정단에 봉안되어 있다. 육종영은 안평대군을 비롯한 여섯 종친을 뜻한다. 고치령 산령각에서 보듯 금성대군은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더욱 각광받았다. 서울과 경기 지역에도 금성대군을 모신 여러 곳의 굿당이 있었다. 이 가운데 서울 은평뉴타운 한복판의 금성당은 한때 사라질 위기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금성당 건물은 샤머니즘박물관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해마다 5월이면 금성당제도 열린다. 지하의 금성대군도 자신이 ‘아파트 타운 축제’의 주인공이 될 줄은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장은석 기자의 호갱 탈출] 단종된 車부품 8년 보유해야…없을 땐 보상금

    [장은석 기자의 호갱 탈출] 단종된 車부품 8년 보유해야…없을 땐 보상금

    차종 달라도 호환·중고부품 가능… 중고차 구입시 단종 여부 확인을지난해 중고차를 산 직장인 A씨는 최근 차가 고장 나서 가까운 정비소에 갔다가 너무 황당한 말을 들었습니다. 차가 단종돼 부품이 없어서 차를 고칠 수가 없다는 겁니다. A씨는 “차를 한참 더 타야 하는데 부품이 없다니 말이 되냐”고 물어봤지만 정비소 직원은 “7년 전에 단종된 차량이어서 우리는 갖고 있는 부품이 없으니 제조회사에 물어보세요”라고 하네요. A씨는 바로 차량 제조회사에 전화해 부품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업체에서도 “단종된 차량이고 해당 부품은 현재 재고가 없어서 당장 수리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과연 A씨는 고장 난 차를 고치지 못하고, 아무런 보상도 못 받을까요? 10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차량이 단종돼 부품이 없어서 차를 수리하지 못하는 소비자 피해가 종종 발생한다고 합니다. 중고차를 산 소비자들이 이런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죠. 소비자 분쟁 해결기준에서는 자동차의 ‘부품 보유 기간’을 8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제조회사가 차량 생산을 중단한 시점으로부터 최소한 8년 동안은 부품을 보유해야 한다는 거죠. 양종석 소비자원 자동차팀 차장은 “정비소에서 부품이 없어서 수리가 불가능하다고 하면 소비자가 직접 차량 제조회사에 수리를 요구할 수 있다”면서 “제조회사의 부품 재고를 파악할 수 있는 직영 서비스센터에 수리를 요청해도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원에 따르면 국내외 차량 제조회사 중에서 단종된 지 8년이 지나지 않은 차량인데도 부품을 생산·보유하지 않는 업체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럴 때는 소비자가 바로 수리를 받을 수 없는데요. 제조회사가 부품을 새로 만들어 수리할 때까지 소비자가 타고 다닐 수 있는 다른 차량을 제공해야 합니다. 제조회사가 새 부품을 만들지 못하는 등 해당 차량의 부품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유사 부품을 쓸 수도 있습니다. 차종은 다르지만 서로 호환되는 부품이죠. 다만 유사 부품을 사용해 수리했을 때 차량의 성능과 품질에 전혀 하자가 없어야 합니다. 제조회사가 유사 부품도 제공하기 어렵다면 소비자에게 중고 부품이라도 찾아서 수리해 줘야 하죠. 만약 제조회사가 유사·중고 부품도 구하지 못하는 등 어떤 방법으로도 차를 수리해줄 수 없다면 소비자에게 차량의 잔존가치를 따져서 보상금을 줘야 합니다. 중고차는 보험가액이나 중고 시세 등이 보상액으로 인정된다고 하네요. 이와 같은 피해를 예방하려면 중고차를 살 때 무조건 싸다고 구입하지 말고 단종된 차량인지 꼭 확인해야 합니다. 판매업자가 소비자에게 주는 ‘중고차 성능·상태점검기록부’도 100% 신뢰하면 안 됩니다. 기록부에는 엔진·변속기·동력전달장치·조행장치·연료장치 등의 상태가 적혀 있어서 점검 항목이 많아 보이지만, 자동차 부품이 워낙 많기 때문에 알고 보면 점검 대상이 적은 편입니다. 또 점검이 차를 세워둔 상태에서 시동만 걸고 진행되기 때문에 운전 중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까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양 차장은 “중고차는 특성상 수리하면서 탈 수밖에 없지만 엔진과 변속기 등 주요 부품은 반드시 소비자가 직접 상태를 점검하고 구입해야 한다”면서 “차량 소음이 이상하면 엔진에, 차가 앞으로 나가는 느낌이 다른 차들과 다르다면 변속기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차를 사기 전에 시운전을 꼭 해봐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자동차뿐만 아니라 다른 제품들도 부품 보유 기간이 정해져 있고, 자동차와 비슷한 방식으로 수리·보상받을 수 있습니다. TV와 냉장고의 부품 보유 기간은 자동차와 같은 8년이고, 보일러·에어컨·전자레인지·정수기·가습기·제습기·전기청소기 등은 7년입니다. 세탁기·전기(가스)오븐·비데·가스레인지·전기압력밥솥·안마의자 등은 6년, 내비게이션·카메라·난로·전기장판·선풍기 등은 5년이죠. PC 및 주변기기와 노트북·스마트폰·MP3는 4년, 전기면도기·전기조리기기·헤어드라이어 등은 3년입니다. es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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