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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멕시코, 쿠바대사 추방키로

    |멕시코시티 연합|중남미에서는 유일하게 쿠바와 외교관계를 끊은 적이 없는 멕시코가 쿠바와 외교단절 일보 직전까지 가는 등 양국 관계가 전례없이 급랭하고 있다. 이번 일은 멕시코가 유엔인권위 대 쿠바 결의안에 찬성하자, 멕시코 야당 거물 측근 비리를 둘러싼 이른바 ‘비디오 게이트’는 멕시코 연방정부의 야당 탄압을 위한 ‘조작극’이라는 쿠바 정부의 성명이 나오면서 촉발됐다. 루이스 에르네스토 데르베스 멕시코 외무장관은 2일 오후 기자회견을 통해 쿠바 주재 자국 대사를 소환하는 동시에 자국 주재 쿠바 대사를 멕시코에서 추방키로 결정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데르베스 장관은 또 자국 주재 쿠바 대사관의 정치담당 고문을 ‘기피인물’로 규정했다며 당장 멕시코를 떠나라고 밝혔다. 데르베스 장관은 자국 정부가 쿠바와 외교관계를 완전히 중단하지는 않아도 양국간 관계를 대리대사(공사)급 수준으로 낮추었다면서,양국의 대사들은 48시간 안으로 본국으로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 서울 강남 아파트 얼어붙는다

    서울 강남 아파트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주택거래신고제가 실시된 강남·강동·송파·성남 분당 지역은 아예 거래가 멈췄다.4곳에서 1주일새 거래된 아파트는 9건에 불과했다. 아파트값 거품도 빠지기 시작,4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특히 집값 상승을 이끌었던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값이 호가 기준으로 한 채당 2000만∼3000만원 떨어졌다.비수기철을 맞아 본격적인 주택 시장 침체의 서곡으로 보인다. ●신고지역,거래 실종 2일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주택거래신고지역이 시행된 지난달 26일 이후 신고 건수는 강남구 1건,송파구 4건,강동구 3건,성남 분당구 1건에 그쳤다.양도소득세와 상속·증여세 부과의 기준이 되는 기준시가가 4월 30일부터 평균 6.7% 오른다는 발표가 나온 29일에만 6건이 신고됐다.증여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서둘러 신고한 것으로 분석됐다. 전세권이나 근저당이 설정돼 있는 등 채무관계가 있는 ‘부담부증여’거래로 확인됐다. 신고제 시행 이전 1주일 동안 구별로 평균 수백건의 검인계약 신청이 있었던 것에 비해 일반 아파트 거래는 완전히 끊겼다고 보아도 된다. 김태호 부동산랜드 사장은 “간혹 나타나는 실수요자도 거래가 노출을 꺼리는 바람에 계약이 성사되지 않고 있다.”면서 “비수기에 접어들면서 아파트 시장은 침체로 빠져들 것 같다.”고 전망했다. ●재건축 아파트 거품 제거 징조 신고지역에서는 아파트 거래가 완전히 끊기고 호가도 급락했다. 신고지역 가운데 아파트값 내림세가 눈에 띄는 곳은 송파구로 1주일새 0.57% 떨어졌다.특히 이 지역 재건축 아파트값은 무려 1.6% 빠졌다.저층 소형 재건축 아파트값의 거품이 조금씩 제거되고 있는 조짐이다.잠실 일대 재건축 아파트는 호가 기준으로 가구당 2000만∼3000만원 떨어졌다.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 아파트도 1주일새 2000만원 가량 떨어졌다.일반 아파트값도 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압구정동 신현대 51평형 주민들은 2000만∼2500만원 값을 내려 매물로 내놓고 있다. 럭키공인 관계자는 “집주인들이 가격을 낮춰 급매물을 내놓기 시작했지만 값 문의 전화만 이따금 걸려올 뿐 거래는 ‘제로’상태”라고 말했다.실수요 위주로 거래되던 분당 아파트 시장도 거래 단절과 가격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김혜현 부동산114 팀장은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이어져 아파트값은 당분간 약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화제의 사이트] 패밀리 21(www.family21.or.kr)

    온가족이 함께 즐기는 가족포털사이트 ‘패밀리 21’(www.family21.or.kr)이 문을 열었다. 이 사이트는 ‘가정 경영의 주체’인 주부들의 커뮤니티인 ‘주부21넷’(www.jubu21.net)을 확대한 것으로, 가족 사이의 유대를 강화하고 자녀 세대의 정보활용을 지원해 건전한 정보사회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먼저 ‘패밀리 투게더’ 코너에서는 회원들이 직접 촬영한 동영상을 보여주는 ‘가족 방송국’이 눈에 띈다.집에 핀 꽃 풍경,애완견 ‘순심이’의 모습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낯익은 모습을 통해 평범하고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들이 게재되고 있다.‘가족 홈 갤러리’에서는 가족 단위로 만든 홈페이지를 소개하고 있고,‘패밀리 한마당’은 가족 사진과 자랑 글로 구성돼 있다. 이어 ‘콘텐츠 채널’ 코너에서는 레저,육아,교육,재테크 등 가족 생활에 꼭 필요한 정보를 교환한다.다음으로 ‘IT세상’ 메뉴에서는 자녀들이 음란물을 접하지 않게 하는 방법 등 정보화 문제에 대한 상담과 IT 소식 등을 만나볼 수 있다.‘이벤트 존’에서는 편지쓰기 대회,백일장,정보퀴즈 대회 등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은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가족 단위의 네트워크를 구축,가족간의 대화 단절 등 사회병리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장택동기자 taecks@˝
  • [토요일 아침에] 인간은 부모를 선택한다/권도갑 원불교 도봉교당 주임 교무

    예부터 “효는 백가지 행동의 근원이다.”고 하였다.이는 효도가 인간 삶의 근본이 된다는 뜻이다.불효를 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인연 간의 갈등이 많으며,하는 일이 잘 열리지 않고,삶에 고통과 괴로움이 계속 찾아온다.예를 들면 나무가 뿌리와 기운이 막히면 성장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과 같다.부모는 인생이라는 나무의 중요한 뿌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놀랍게도 부모와의 관계에서 아픔이 많다.자식의 눈에 부모의 삶이 원만하지 못할 때,화목하지 못하거나 불만 등이 있을 때에 자연히 부모와의 기운이 단절되고 원망하게 된다.부모의 삶이 나에게 이득을 주는 것이 없다고 여긴다.이럴 때 마음속으로 “나에게 해준 것이 무엇인가?”하고 생각한다.“심지어는 왜 나를 낳았는가?”하고 원망하기도 한다.이렇게 하여 부모와 갈등하고 불효하게 되며,천륜을 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효도해야 한다고 하면서 찾아뵙고 용돈을 드리고,여행을 보내드리곤 한다.그러나 마음으로 깊은 은혜를 느끼며 정성을 다하여 모시는 일을 하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또한 진심으로 효도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여기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를 하나 해보려 한다.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식을 낳는다는 것 때문에 자식의 삶을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가 모든 것을 당연히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자녀들은 이렇게 말한다.“왜 나를 이렇게 길렀는가?” “ 왜 나에게 더 잘 해주지 않는가?” 이는 자기 존재의 책임을 부모에게 지우고 자신을 위해 정성을 다해 길러준 부모에게 오히려 원망과 불평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이로 하여 몸과 마음이 아프고,인간관계에 갈등하며,부부간에 불화하고,자식이 불효하는 괴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깊이 유념해야 한다.우리가 이 생에 태어났을 때,우리는 자신의 성장에 꼭 필요한 부모를 스스로 선택하여 태어났다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나에게 가장 적합한 부모와 그 환경을 내가 원하여 인연 맺은 것이다. 그러므로 내 존재의 책임은 부모가 아니고 나 자신인 것이다.깨달음을 얻은 분들은 이런 사실을 자주 말씀하시었다.소태산 대종사는 죽은 영혼을 위해 축원하는 법문에서 “영가가 평소 짓던 바에 즐겨하여 애착이 많이 있는 데로 좇아 그 육신을 받게 되나니.”라 하시어 자기 몸을 받는 주체가 바로 자신임을 말씀하셨다.또한 원불교의 경전인 대종경 천도품 36장에 보면 “인도 수생의 부모를 정할 때에도”라고 하여 구체적으로 부모는 자신이 선택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셨다. 이제 자신의 탄생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우리가 이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게 될 때 부모에 대한 일체의 원망은 한 순간에 녹게 된다. 지금까지 부모와의 관계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모두 자신이 책임을 지게 된다.그러면 천륜이 바로 세워지고 마음에 철이 들며,함께 삶의 문제들이 하나하나 열려갈 것이다. 부모와의 문제로 갈등하고 고민하며,아픔이 많은 사람들은 이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부모는 내가 선택하여 태어난다는 사실을 수용하면 나는 내 삶을 책임지는 당당한 주인이 된다.그리고 하는 일에 자신감을 얻고,어려운 매듭들이 쉽게 풀려 가는 소중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아! 이처럼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권도갑 원불교 도봉교당 주임 교무˝
  • [집중탐구 5黨의 ‘길’]③한나라당 (상) 정체성 논란- ‘재창당’ 갑론을박

    한나라당 해산 및 신당 창당론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다.논쟁은 4·15 총선 후 불거진 정체성 논란과 엇비슷하다.정체성 논란은 ‘그대로 우’,‘중도 우’,‘좌로 이동’ 등 삼각기류로 전개되고 있다.신당 창당론 역시 ‘그대로 한나라’,‘적당히 새나라’,‘완전 새나라’ 등 세 갈래다. 박세일 당선자가 공식 제기한 해산 및 신당 창당론을 놓고 29일 당선자 연찬회에서는 부정적인 기류가 우세했다.하지만 ‘제2창당’의 필요성에는 대부분이 공감했다.6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향후 격론을 예고한다. 영남권,보수 성향의 의원들은 대부분 ‘그대로 한나라’의 입장을 보였다. 박희태(경남 남해·하동) 의원은 “총선을 통해 국민들의 심판을 받고,다시 거듭나려 하는데 지금 새 당을 만들면 국민들이 뭐라고 하겠느냐.”고 난색을 표시했다.이상득(경북 포항남·울릉) 의원은 “대선에서 2번 지고 살아남은 역사적인 정당”이라며 “뿌리까지 흔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안택수(대구 북을) 의원은 “지금껏 쌓아온 한나라당을 완전 청산하자는 것은 성급하다.”고 말했다.권철현(부산 사상) 의원은 “재창당은 선거 전에 했어야 할 일”이라고 일축했다.이방호(경남 사천) 의원은 “부정부패와 단절을 선언하고 개혁조치도 취해가고 있어 재창당 이유가 없다.”고 반대했다.박계동(서울 송파을) 당선자는 “당명 개정은 형식적인 문제”라며 “과거의 과오도 함께 안고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명을 바꾸는 ‘완전 새나라’에 손을 들어준 당선자들은 많지 않다.소장파인 남경필(경기 수원팔달) 의원은 “법률적 청산안은 현실적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며 “재창당 수준의 당 혁신을 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말했다.원희룡(서울 양천갑) 의원은 “이름까지도 바꾸자는 논의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무성(부산 남을) 의원은 “지난번 재창당을 요구했을 때 안풍(安風)자금 환수소송을 염두에 두고 모든 당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 그 고리로부터 자유로워지자는 부분도 있었다.”며 “박 당선자도 이를 고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일부 동조했다. 해산을 통한 신당 창당이 아니라 당명 정도를 개정하는 ‘이름만 새나라’를 지지하는 당선자들도 일부 있었다.박형준(부산 수영) 당선자는 “신당 창당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당명이나 정강·정책의 개정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권영세(서울 영등포 을) 의원은 “재창당의 취지는 맞으나 실행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범(서울 중) 당선자는 “재창당 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이름 바꾸는 것들은 더 논의가 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박대출기자 dcpark@˝
  • 한나라 ‘재창당’ 공론화

    한나라당이 4·15총선 이후 진로를 논의하려고 개최한 당선자 연찬회에서 신당 창당론이 공식 제기됐다.특히 이를 둘러싼 찬반 논쟁은 총선 뒤 불거진 당 정체성 논란과 비슷한 형태로 전개돼 귀추가 주목된다. 총선 때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박세일 당선자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연찬회에서 “과거 부정적 이미지와의 단절과 미래를 위한 선택을 통해 미래희망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6월 전당대회에서의 제2창당 필요성을 주장했다. 박 당선자는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면서 첫째로는 “한나라당을 법률적으로 해산하고 전면적으로 새로운 정당을 창당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청산위원회를 발족한 뒤 창당준비위를 구성하고,원내대표를 17대 교섭단체 등록과 함께 선출하는 실천방안도 내놨다. 박 당선자는 두 번째 방안으로 “법률적 단절을 하지 않으면서 전당대회에서 당명,당 강령,정강정책,당헌 당규 등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는 것”을 제안했다. 박 당선자는 이어 “6월 전대에서 선진화를 위한 새 강령 및 정강정책을 채택해야 한다.”며 “새로운 당명을 구상할 때도 선진(先進)이란 용어가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당선자는 당 정체성과 관련,“민중민주주의 내지 포퓰리즘,경제에의 과도한 국가 개입,성장없는 분배 지상주의,자주를 앞세운 동맹과 국제 연대의 무시 등 잘못된 생각들과 이론적으로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희태·김용갑 의원 등 영남권 의원들이나 보수성향의 중진 의원들은 “과거와의 절연이나 당의 해산은 있을 수 없다.”며 반대했다. 반면 홍준표 의원은 “선진한국당 등으로 당명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찬성했다.남경필 의원과 박형준 당선자 등 일부 소장파들은 “재창당 수준으로 당을 혁신하자는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표는 인사말에서 “이것이 옳고,저것이 그르다는 것은 안 된다는 생각”이라며 “과거,현재,미래를 나눠 선택하는 게 아니라 모두 아우르며 공존해야 한다.”고 대결양상을 빚고 있는 당 정체성 논란을 경계했다. 한편 한나라당은 이날 당선자 121명 전원의 자산을 다음달 말까지 금융기관에 신탁하기로 했다. 박대출기자 dcpark@seoul.co.kr˝
  • 기업 총수 이미지 변신 ‘가속’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이미지 변신이 가속화되고 있다. 기업 행사에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사회 봉사활동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마치 세상과 단절된 ‘은둔지’에서 ‘양지’로 나오는 모습이다.CEO들의 이같은 변화는 검찰의 정치 비자금 수사 이후 부쩍 잦아지고 있다.반 기업 정서를 해소하고 기업 브랜드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기업들도 CEO의 이미지가 마케팅 활동에 상당한 영양을 끼친다는 판단아래 ‘CEO PI(President Identity·최고경영자 이미지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 활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수단이 기업의 메세나(문화·예술 지원)운동.금호아시아나그룹과 CJ가 적극적이다.금호는 박성용 명예회장이 지난해 한국기업메세나협의회 회장을 맡으면서 이 운동을 강화하고 있다.금호는 전 임직원들이 차량에 ‘I♥ 메세나’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배지를 착용하는 등 적극 동참하고 있다.CJ도 최근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2년간 10억원 지원을 발표하기도 했다. CEO들의 사회 봉사활동도 활발하다.보통 연말연시 1회성 행사에 그쳤던 CEO들의 봉사활동 참여가 상시 체제로 바뀌어 가고 있다.포스코 이구택 회장은 지난달 두 차례에 걸쳐 1일 봉사에 참여했다.서울의 ‘아름다운 가게’ 안국점에서 물품을 설명하고 판매했을 뿐 아니라 충북 청원군의 폭설 피해 현장에서 일손을 거들기도 했다.이 회장은 “앞으로도 임직원과 함께 소외된 계층과 이웃의 어려움을 나누는 자원 봉사활동을 기업문화 차원으로 정착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SK그룹도 PI작업이 활발하다.최태원 회장은 최근 창립 51주년을 맞아 사회공헌을 ‘3대 변화과제’ 가운데 하나로 꼽을 정도로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에 많은 관심을 내비쳤다.최 회장은 분식회계 사태 이후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해 투명경영 알리기에도 적극적이다.지난 22일 울산공장에서 열렸던 SK㈜의 첫 ‘지방 이사회’와 국내 기업 최초로 사외이사의 사무실을 마련하고 이사회 사무국을 설치한 것 등도 투명경영의 일환이다.그동안 외부행사 참여를 자제했던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도 지난 22일 인하대 개교 50주년 행사에 참여하는 등 나들이가 활발해지고 있다. 김경두기자 golders@
  • [사설] 北 폭발사고 인도지원 서둘러라

    북한 평북 용천에서 22일 발생한 열차 폭발사고로 대규모 인명 및 경제 피해가 발생했다.북한 당국은 23일 현재 사고 발생조차 발표하지 않고 있지만 사고 발생 18시간 후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에서도 검은 연기가 솟고 있다는 영국 BBC방송의 보도나,54명이 죽고 1200명이 부상당했다는 국제적십자사 관계자의 말은 적지 않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용천역 반경 500m 일대가 폐허로 변했다거나 사상자가 수천명에 이를지 모른다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어 우려를 더해 준다. 북한의 대형 재난에 대해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한다.경제적으로나,대외 관계에 있어서나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 당국으로서는 대형 재난을 수습하는 데 커다란 곤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빠른 피해 수습과 복구를 바라마지 않는다. 정부도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을 서두르기 바란다.이를 위해 우선 자세한 사고원인과 피해 규모,필요로 하는 지원 내역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아울러 북한측에 우리의 지원 의사를 밝히고,북한측이 수용하는 대로 적절한 지원이 이뤄지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추기 바란다.재난 지원의 생명은 신속성이다.1995년 일본 고베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문민정부는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지원물자를 보냈다.피해 지역에 속속 도착하는 한국의 지원물자는 일본인과 재일동포 이재민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으며,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데 적지않이 이바지했다.신속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북한측과 접촉을 강화하기 바란다. 끝으로 북한 당국은 피해 정보를 공개하고 지원을 받아들이는 데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사고 직후 중국과의 국경을 폐쇄하고 국제 전화까지 단절시켰다는 일부 보도도 있지만,부상자를 살리고 이재민을 돕는 게 무엇보다 급한 일이다.정치는 정치이고,인도적 지원은 인도적 지원인 만큼 북한 당국은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로부터의 지원을 받아들이는 데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3)여자라는 이름의 논개(下)

    논개가 왜장을 죽이고 자신도 투신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됐다.그런데 왜장 기다 마코베의 죽음이 있은 뒤 진주성에 주둔하던 왜적들이 스스로 진주를 떠나자 진주사람들은 이를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논개의 혼이 왜적들을 물리친 것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그리하여 남강 기슭 맨바닥에 조촐하게 제상을 차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올렸다. 진주 사람들이 보기로는 진주는 물론 조선 모두를 돌아보아도 민중들의 가슴에 응어리져 있는 국가와 유생 관리들에 대한 미움과 원한을 씻어내고 위로해 주는 사람으로 논개만 한 이가 없었다.민중들이 비록 무지하고 빈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인정과 의리,사람과 하늘 사이에 있어야 할 생명존중과 함께 사는 이치를 알고 실천하는 것으로 치자면 양반관료들보다 훨씬 나았다.양반관료들은 자기 이익과 편리를 지키기 위해 민중들이 글 배우는 것을 막고,토지를 소유하지 못하게 했으며,끝없는 의무와 복종만을 강요하는 법과 제도를 휘둘러 왔었다. 더욱이 임진왜란이 터진 뒤로 보여 준 양반관료들의 비겁함과 무능은 극치를 이루었고,그런 자들을 믿고 의지하면서 그날까지 살아 온 것을 후회했다.공자 맹자며 유학이며 성리학,향교 서당이며,정승 판서 따위가 그토록 치사하고 졸렬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왜적이 쳐들어오자 양반관료들은 우마차에다 금은보배와 첩실까지 챙겨 싣고는 깊은 산중으로 도망쳤다.오도 가도 못하고 남은 민중들은 고스란히 왜적들에게 유린당했다.그때 논개라는 기생이 왜장을 죽이고,놀란 왜적들이 황망히 진주성을 버리고 도망가자 진주는 금방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그 공적은 단연코 논개에게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그래서 남강 기슭에다 제상을 차려 놓고 울면서 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민중의 마음이었다.솔직하고 진솔한 예절이었다.이런 광경을 서울에서 내려 온 암행어사가 보았다.진주성 전투가 남긴 가장 감동적인 사건이자 양반관료들에 대한 묵시적 항거이기도 한 이 사건은 곧 정부에 전해졌지만 정부에서는 묵살해버렸다.부끄러웠기 때문이리라. ●도망치기 바빴던 양반들 버젓이 공신에… 그 후 진주성 전투에 대한 논공행상이 있었다.그런데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진주성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온갖 핑계로 다른 곳에 있던 양반관료들과 도망가서 숨어 있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돌아온 양반들이 공신으로 오른 반면,전라도에서 의병으로 와 죽은 이들의 이름은 아예 들먹이지도 않은 것이다.몇 몇 대표급 전라도 의병장들은 전쟁공훈자로 이름이 올랐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모두 제외되었다.게다가 하나같이 남자들뿐이었다. 화려한 직함과 함께 사당에 위패가 모셔지고,봄 가을로 나라에서 장만한 제물을 차려 놓고 제사를 올렸다.어떤 때에는 왕이 손수 지은 축문이 내려지기도 했다.진주사람들이 보기로는 당연히 논개의 이름도 공훈자 반열에 올라야 하고,사당을 짓고 제수도 내려주는 것이 온당한 처사라고 여겼지만 유생들이 장악하고 있는 조정에서는 어느 누구도 논개의 이름을 거론하는 자 없었다.험한 말로 개나 소도 훈장을 받는데 어찌하여 논개를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느냐는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민중들의 서운함 안에는 그동안 국가로부터 천시당하고 억압받았으며 수탈과 능멸로 고통받아온 자신들의 불만도 들어 있었다. 그때부터 논개가 죽은 날만 되면 진주사람들이 남강가에 모여서 성대한 제사를 올리기 시작했다.그 잘난 남자들은 위패 위에 올라서 사당의 향내를 맡으며 국가가 내린 제물을 받았다.논개는 민중 개개인들이 장만한,소박하지만 진실이 어린 조촐한 제물들을 받았다.제상이 없을 때도 있었다.강가 모래 위에다 거적을 깔고 그 위에다 제물을 진설했다.유교 예절에 따른 제상 배열이 아니라 민중들이 마음대로 차린 제상이었다.향로 대신 모래를 모아서 향을 피웠다.제사에는 수백 명의 제관들이 참여했다.그들 어느 누구도 논개의 형제나 친인척이 되는 이는 없었다.논개를 안다거나 만나본 사람도 없었다.다만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다.그런데도 제 부모 형제의 제사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엄숙했다.누가 참석하라고 지시한 것도 아니었다.논개의 죽음에 감동한 민중들 스스로가 제관이 된 것이다. ●진주 민중 146년간 탄원… 영조때 사액내려 제사가 끝난 뒤엔 논개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토론이 벌어졌다.대표자가 뽑히고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도 만들어졌다.대표자 중에는 정식(1683∼1746) 같은 선비도 있었다.그를 중심으로 한 비대위에서는 먼저 진주목사와 경상우병사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이렇게 시작된 탄원서는 그 뒤로 대를 이으면서 계속되었다. 진주목사나 경상우병사로 부임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 탄원서로 골머리를 앓았다.참으로 집요하게 계속되는 탄원서 중에는 가끔 비변사나 왕에게까지 전달된 적도 있었다.그러나 묵살로 일관했다.진주사람들도 오기가 있었다.끝까지 가보자며 탄원서를 쉬임없이 올렸고,그때마다 새롭고 놀라운 사실들을 추가시켰다.그러기를 146년 동안이나 계속했다. 결국 조선 정부에서도 더는 논개의 공적을 묵살할 수 없었다.그리하여 1740년(영조16) 정부에서는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란 사액(賜額)을 내려 논개의 공적을 공식화했다.죽은 지 146년 만에 사당이 지어지고,위패가 모셔져 눈비 맞으며 강가에서 민중들이 모시던 제사가 소원을 이룬 것이다. 그 후 진주목사 정현석은 논개의 삶이 지닌 역사적 큰 뜻을 기려서 ‘의암별제(義岩別祭)’라는 매우 소중한 제례의식을 창안하여 논개의 삶을 기림과 동시에 진주사람들의 끈질기고 뜨거운 논개 사랑을 예술로 승화시킨 행사를 만들었다. 의암별제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단순한 제사의식이 아니라 조선의 넋과 멋을 모두 담고 있는 악(樂),가(歌),무(舞)를 근간으로 3일 밤낮 계속되는 화려하고 장엄한 대제전으로서 민족예술을 지향했다는 점이다.또한 논개의 죽음이 지닌 자유정신과 혁명성을 담아내기 위해 제사가 끝난 뒤 사흘 밤낮으로 뒤풀이가 벌어지는데,사방에서 몰려든 인파가 남강가에서 축제를 벌였다.이리하여 의암별제는 진주 특유의 풍류가 되었고 문화잔치였으며 전국 최초의 예술행사의 전형이 되기도 했다. ●성계옥 선생 82년 만에 ‘의암별제’ 재현 이렇듯 품격과 재미를 균형있게 구비한 의암별제를 통하여 논개 정신의 불멸성을 민중 속에 심어오던 이 예술행사는 한일병합 이후 총독부로부터 조선민족주의 선전 행사로 지목되어 탄압받다가 끝내 금지되었다.의암별제를 주도했던 진주기생들은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촉석루에 숨어들어 제사를 모시기도 했다.발각당한 기생들은 고문을 받아 의암별제 명맥이 끊어졌다.그 뒤 나이 든 기생들은 해마다 제사 때가 되면 촉석루 대신 의암에 올라 주먹으로 바위를 치면서 절규하기도 했다. 의암별제는 단절된 지 82년 만인 1992년에 성계옥 선생에 의하여 재현되어 다시 볼 수 있게 된,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식의 제사의식을 겸한 예술의 한 형식이다. 이렇듯 논개는 진주사람이나 전북 장수인들만의 논개가 아니라 한국인의 가슴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조선의 마음이다.논개의 근대성은 오늘날 한국 여성들의 진취성과 도전정신의 원류이자 성차별의 시대상을 온 몸으로 극복해 낸 한국여성의 전설이다.혼자서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여럿이서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눈 앞의 이익을 좇는 삶은 이웃의 삶까지 더럽힌다는 역사적 교훈을 오늘에 다시 되새기게 한다.‘여성을 바로 보지 못하면 인간의 미래는 어둡다.’는 명제를 우리에게 안겨 준 논개. 올 봄 진주에는 논개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축제가 열린다.사랑하는 사람들이여,논개를 만나거든 물어보시라.누가 논개를 죽었다고 하는지.˝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3)여자라는 이름의 논개(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3)여자라는 이름의 논개(下)

    논개가 왜장을 죽이고 자신도 투신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됐다.그런데 왜장 기다 마코베의 죽음이 있은 뒤 진주성에 주둔하던 왜적들이 스스로 진주를 떠나자 진주사람들은 이를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논개의 혼이 왜적들을 물리친 것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그리하여 남강 기슭 맨바닥에 조촐하게 제상을 차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올렸다. 진주 사람들이 보기로는 진주는 물론 조선 모두를 돌아보아도 민중들의 가슴에 응어리져 있는 국가와 유생 관리들에 대한 미움과 원한을 씻어내고 위로해 주는 사람으로 논개만 한 이가 없었다.민중들이 비록 무지하고 빈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할 인정과 의리,사람과 하늘 사이에 있어야 할 생명존중과 함께 사는 이치를 알고 실천하는 것으로 치자면 양반관료들보다 훨씬 나았다.양반관료들은 자기 이익과 편리를 지키기 위해 민중들이 글 배우는 것을 막고,토지를 소유하지 못하게 했으며,끝없는 의무와 복종만을 강요하는 법과 제도를 휘둘러 왔었다. 더욱이 임진왜란이 터진 뒤로 보여 준 양반관료들의 비겁함과 무능은 극치를 이루었고,그런 자들을 믿고 의지하면서 그날까지 살아 온 것을 후회했다.공자 맹자며 유학이며 성리학,향교 서당이며,정승 판서 따위가 그토록 치사하고 졸렬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왜적이 쳐들어오자 양반관료들은 우마차에다 금은보배와 첩실까지 챙겨 싣고는 깊은 산중으로 도망쳤다.오도 가도 못하고 남은 민중들은 고스란히 왜적들에게 유린당했다.그때 논개라는 기생이 왜장을 죽이고,놀란 왜적들이 황망히 진주성을 버리고 도망가자 진주는 금방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다.그 공적은 단연코 논개에게 돌아가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그래서 남강 기슭에다 제상을 차려 놓고 울면서 절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이 민중의 마음이었다.솔직하고 진솔한 예절이었다.이런 광경을 서울에서 내려 온 암행어사가 보았다.진주성 전투가 남긴 가장 감동적인 사건이자 양반관료들에 대한 묵시적 항거이기도 한 이 사건은 곧 정부에 전해졌지만 정부에서는 묵살해버렸다.부끄러웠기 때문이리라. ●도망치기 바빴던 양반들 버젓이 공신에… 그 후 진주성 전투에 대한 논공행상이 있었다.그런데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진주성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온갖 핑계로 다른 곳에 있던 양반관료들과 도망가서 숨어 있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돌아온 양반들이 공신으로 오른 반면,전라도에서 의병으로 와 죽은 이들의 이름은 아예 들먹이지도 않은 것이다.몇 몇 대표급 전라도 의병장들은 전쟁공훈자로 이름이 올랐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모두 제외되었다.게다가 하나같이 남자들뿐이었다. 화려한 직함과 함께 사당에 위패가 모셔지고,봄 가을로 나라에서 장만한 제물을 차려 놓고 제사를 올렸다.어떤 때에는 왕이 손수 지은 축문이 내려지기도 했다.진주사람들이 보기로는 당연히 논개의 이름도 공훈자 반열에 올라야 하고,사당을 짓고 제수도 내려주는 것이 온당한 처사라고 여겼지만 유생들이 장악하고 있는 조정에서는 어느 누구도 논개의 이름을 거론하는 자 없었다.험한 말로 개나 소도 훈장을 받는데 어찌하여 논개를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느냐는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민중들의 서운함 안에는 그동안 국가로부터 천시당하고 억압받았으며 수탈과 능멸로 고통받아온 자신들의 불만도 들어 있었다. 그때부터 논개가 죽은 날만 되면 진주사람들이 남강가에 모여서 성대한 제사를 올리기 시작했다.그 잘난 남자들은 위패 위에 올라서 사당의 향내를 맡으며 국가가 내린 제물을 받았다.논개는 민중 개개인들이 장만한,소박하지만 진실이 어린 조촐한 제물들을 받았다.제상이 없을 때도 있었다.강가 모래 위에다 거적을 깔고 그 위에다 제물을 진설했다.유교 예절에 따른 제상 배열이 아니라 민중들이 마음대로 차린 제상이었다.향로 대신 모래를 모아서 향을 피웠다.제사에는 수백 명의 제관들이 참여했다.그들 어느 누구도 논개의 형제나 친인척이 되는 이는 없었다.논개를 안다거나 만나본 사람도 없었다.다만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다.그런데도 제 부모 형제의 제사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엄숙했다.누가 참석하라고 지시한 것도 아니었다.논개의 죽음에 감동한 민중들 스스로가 제관이 된 것이다. ●진주 민중 146년간 탄원… 영조때 사액내려 제사가 끝난 뒤엔 논개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토론이 벌어졌다.대표자가 뽑히고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도 만들어졌다.대표자 중에는 정식(1683∼1746) 같은 선비도 있었다.그를 중심으로 한 비대위에서는 먼저 진주목사와 경상우병사에게 탄원서를 제출했다.이렇게 시작된 탄원서는 그 뒤로 대를 이으면서 계속되었다. 진주목사나 경상우병사로 부임하는 사람은 누구든 이 탄원서로 골머리를 앓았다.참으로 집요하게 계속되는 탄원서 중에는 가끔 비변사나 왕에게까지 전달된 적도 있었다.그러나 묵살로 일관했다.진주사람들도 오기가 있었다.끝까지 가보자며 탄원서를 쉬임없이 올렸고,그때마다 새롭고 놀라운 사실들을 추가시켰다.그러기를 146년 동안이나 계속했다. 결국 조선 정부에서도 더는 논개의 공적을 묵살할 수 없었다.그리하여 1740년(영조16) 정부에서는 ‘의기논개지문(義妓論介之門)’이란 사액(賜額)을 내려 논개의 공적을 공식화했다.죽은 지 146년 만에 사당이 지어지고,위패가 모셔져 눈비 맞으며 강가에서 민중들이 모시던 제사가 소원을 이룬 것이다. 그 후 진주목사 정현석은 논개의 삶이 지닌 역사적 큰 뜻을 기려서 ‘의암별제(義岩別祭)’라는 매우 소중한 제례의식을 창안하여 논개의 삶을 기림과 동시에 진주사람들의 끈질기고 뜨거운 논개 사랑을 예술로 승화시킨 행사를 만들었다. 의암별제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단순한 제사의식이 아니라 조선의 넋과 멋을 모두 담고 있는 악(樂),가(歌),무(舞)를 근간으로 3일 밤낮 계속되는 화려하고 장엄한 대제전으로서 민족예술을 지향했다는 점이다.또한 논개의 죽음이 지닌 자유정신과 혁명성을 담아내기 위해 제사가 끝난 뒤 사흘 밤낮으로 뒤풀이가 벌어지는데,사방에서 몰려든 인파가 남강가에서 축제를 벌였다.이리하여 의암별제는 진주 특유의 풍류가 되었고 문화잔치였으며 전국 최초의 예술행사의 전형이 되기도 했다. ●성계옥 선생 82년 만에 ‘의암별제’ 재현 이렇듯 품격과 재미를 균형있게 구비한 의암별제를 통하여 논개 정신의 불멸성을 민중 속에 심어오던 이 예술행사는 한일병합 이후 총독부로부터 조선민족주의 선전 행사로 지목되어 탄압받다가 끝내 금지되었다.의암별제를 주도했던 진주기생들은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촉석루에 숨어들어 제사를 모시기도 했다.발각당한 기생들은 고문을 받아 의암별제 명맥이 끊어졌다.그 뒤 나이 든 기생들은 해마다 제사 때가 되면 촉석루 대신 의암에 올라 주먹으로 바위를 치면서 절규하기도 했다. 의암별제는 단절된 지 82년 만인 1992년에 성계옥 선생에 의하여 재현되어 다시 볼 수 있게 된,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형식의 제사의식을 겸한 예술의 한 형식이다. 이렇듯 논개는 진주사람이나 전북 장수인들만의 논개가 아니라 한국인의 가슴 속에서 자라나고 있는 조선의 마음이다.논개의 근대성은 오늘날 한국 여성들의 진취성과 도전정신의 원류이자 성차별의 시대상을 온 몸으로 극복해 낸 한국여성의 전설이다.혼자서 꾸는 꿈은 꿈으로 끝나지만 여럿이서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눈 앞의 이익을 좇는 삶은 이웃의 삶까지 더럽힌다는 역사적 교훈을 오늘에 다시 되새기게 한다.‘여성을 바로 보지 못하면 인간의 미래는 어둡다.’는 명제를 우리에게 안겨 준 논개. 올 봄 진주에는 논개를 새롭게 이해하기 위한 축제가 열린다.사랑하는 사람들이여,논개를 만나거든 물어보시라.누가 논개를 죽었다고 하는지.
  • [조성완의 생생러브]5억대 1 뚫은 ‘난 놈’

    ‘마이키 이야기’라는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남자주인공(존 트라볼타)의 몸을 떠난 수많은 정자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여성의 난자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희화적으로 묘사된 부분이 있다.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앞으로 돌진하던 정자들이 서로 맞는 길인지물어보는 장면에서는 유달리 크게 웃어,비디오를 같이 보던 아들이 바보같다고 쳐다보기도 했다.학창시절 미팅때 시사성 주제 때는 시무룩하게 있다가 두개골(일명 해골)이야기만 나오면 즐거이 떠들던 그 친숙함이,‘정자’를 만나면서 비뇨기과의사에게도 감동을 주었나 보다. 보통 사정 때마다 2억∼5억마리의 정자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데,결국 난자에 골인하는 정자는 하나뿐이라니 그 성공률은 로또 당첨보다도 어렵고,감격은 올림픽 금메달보다 크다 하겠다.가장 건강하고 헤엄을 잘 치는 놈(사실 여자도 정자에서 만들어지므로 남성 인칭대명사를 쓰는 게 좀 그렇지만…)이 골인할 확률이 높다는 것도 보다 나은 혈통을 이어가라는 하느님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아기를 못 갖는 불임부부 중 정자가 제구실을 못하는 경우가 35% 정도로 알려져 있다.만들어지는 숫자가 적거나,달리기를 잘 못하거나,비정상적인 모양으로 태어나 제구실을 못 하거나,심지어 아빠 몸 밖으로 나가는 배출통로 어딘가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특히 가장 많은 원인으로 알려지는 ‘정계정맥류’ 환자에게서는 정자를 만드는 기능이 방해를 받은 흔적(stress pattern)이 역력한 이른바 ‘부실한 정자’들이 자주 관찰된다.정자 수 자체가 줄어들어 빈도가 떨어지고,정자의 운동성이 떨어져 난자까지 힘차게 헤엄쳐 가는 정자의 수가 현격하게 줄어든 모습을 보이거나,심지어는 정자를 방해하는 항체까지 있어 정자와 난자 사이에 ‘단절의 벽’이 되고 있다.이런 환자들은 우선 수술치료를 거쳐 정자의 회복을 기대해야 한다. 그렇다면,어떻게 해야 건강한 정자수를 늘려,보다 건강한 수정란이 되고,나아가 튼실한 아기가 될 수 있을까? 우선 정자의 공장인 ‘고환’이 일을 잘하는지 확인해 방해 요소를 제거하고 원활하게 일할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또 신체질환은 비뇨기과 의사들에게 일임하고,편하게 먹고 자면서 인체 면역계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도 중요하다. 성관계 패턴에 대한 훈련도 필요하다.임신이 안 된다고 무턱대고 자주 하려고 덤비다간,가뜩이나 불완전한 정자 제조공정에 문제가 생겨 더 많은 불량품을 양산하기 쉽다.일정 기간 충분히 쉬었다가 여성의 배란기(월경 14일 전쯤이니까 정상이라면 월경 첫날로부터 약 2주후)에 맞춰 집중포격(?)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또 관계 전에 충분한 전희로 여성을 준비시켜야 정자가 헤엄치기 좋은 수영장이 만들어지고,덩달아 좋은 정자들이 멋지게 수영실력을 발휘하게 된다. 명동이윤수비뇨기과 공동원장˝
  • [꼬불 꼬불 뒷골목] 제주의 ‘원조명동’ 칠성로

    제주시 칠성로는 동쪽으로 산지천 입구 성안보석에서 서쪽으로 개성연출미용학원까지 약 1.5㎞ 구간이다.일제 강점기 때부터 근대적 형태의 상점이 들어서 제주상권의 원조로 알려진 칠성로는 80년대까지만 해도 제주의 ‘명동’이었다.이 곳에 가면 아무거나 먹고 살 수 있었고 구할 수 있었다. 광복 후 제주 최초의 다방 ‘파리원’이 들어선 곳도,유명 잡화점 ‘갑자옥’이 자리했던 곳도 이곳이며,인쇄소의 효시인 제주인쇄소와 최초의 목욕탕인 일출목욕탕,최초의 사진관인 월광사,최초의 서점인 우생당도 이 곳 언저리에 터잡았다. 1969년 제주 최초의 병원급 민간 의료기관인 나사로병원이 개설된 곳도,1973년 제주 최초의 백화점인 아리랑백화점이 들어섰던 곳도 바로 칠성로다.동백·은성·금성·금탑·이어도·무지개·청탑·정·정원 등 다방 10여개가 몰린 탓에 모든 약속도 주로 칠성로에서 이뤄졌다. 이러한 ‘최초’ 기록들은 칠성로가 산지항과 관청지역인 관덕정 광장과의 연결도로로 하루 유동인구가 1만명에 육박하리 만큼 장사 잘 되는 ‘노다지 장소’였기 때문이다.일등 상가로의 지위뿐 아니라 1951년 1·4후퇴 직후에는 피란온 문화·예술인들의 사랑채로 이용되면서 제주의 문화·예술을 꽃피운 장소로도 유명하다. 제주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최현식(79)씨는 “피란 문인들 가운데 ‘백치 아다다’의 계용묵,아동문학가 장수철,청록파 시인 박목월,그리고 김상일·이희철·김영삼·문덕수·김성환·함동선 등은 수시로 칠성로 동백다방과 우생당서점에서 제주 문인들과 시낭송회와 문학작품합평회,문학의 밤을 열어 4·3 여파로 단절의 세월을 보내고 있던 도내 문학도들에게 새로운 관심과 열정을 일깨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택지개발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 시작한 90년대 들어 거주지와 상권이 신제주와 광양지역으로 분산되면서 칠성로는 이전의 화려한 빛을 뒤로 한 채 쇠락하기 시작했고,더구나 97년 외환위기에 몰리면서는 떠나는 상인들까지 생기는 공동화(空洞化)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지금은 골목 아닌 골목으로 변한 이곳에서 소매업 95곳,오락문화 16곳,음식업 21곳 등이 하루 2만명 정도의 유동인구를 상대로 영업 중이다.이 중에서도 핵심을 이루는 매장은 옷가게인 의류점들로 데코·라코스떼·이동수·아스트라·휠라·닥스·온앤온·줄리앙·블루페페·비키·지오다노·조이너스 등 익히 알려진 중고가 의류 브랜드 매장에서부터 ‘영캐주얼’‘무료입장’ 등 중저가 매장까지 57개 매장이 안간힘을 다해가며 버티고 있다. 금강제화 강남한(56) 사장은 “멀지 않은 곳에 이마트·월드밸리 등 대형 할인매장이 들어서고,공항과 부두에 내국인 면세점까지 생겨 칠성로 상인들에게 버거운 상대는 한둘이 아니다.”라고 푸념했다. 무너져 가는 상가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지난 99년 6월 상가대표 120명이 ‘칠성동번영회’를 조직했고 지난해 12월에는 이들을 포함한 200여 상인들이 ‘칠성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을 만들어 자생의 길을 모색하고 있으나 쉽게 풀리지 않는 눈치다. 김영식(53) 조합이사장은 “제주도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추진하려는 쇼핑아웃렛 사업이 지역상인들을 자극해 서로 단결하는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 고객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쇼핑할 수 있도록 주차공간을 확보하고 산지천-칠성로-제주목관아지에 이르는 야간쇼핑거리를 조성하는 등 상권부활 운동을 적극 전개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양상호 탐라대 건축학과 교수는 “칠성로가 과거의 번성을 되찾으려면 열린공간,쾌적한 쇼핑환경으로의 특징있는 탈바꿈이 급선무”라며 “5∼6m의 좁은 가로폭에 비해 양쪽 건물 높이가 높아 가로공간 폐쇄감이 과다하고,점포 건물이 대지 경계선까지 들어차 도로와의 관계에서 여유가 없으며,점포간 간격이 밀집돼 가로외관 리듬이 결여되고 간판까지 난립해 열린공간은 전혀 없는 상태”라고 칠성로를 설명했다. 그러나 칠성로에는 다른 지역이 갖지 못한 여러 소중한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비록 시간은 흘렀어도 개인적인 추억과 꿈,도시민의 애환,크고 작은 만남과 모임 등 여러 과거가 애잔하게 서려 있는 곳이 바로 칠성로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썰렁한 horror 볼까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도플갱어’와 잇따른 회고전 등으로 국내팬층을 넓혀가고 있는 일본의 대표감독 구로사와 기요시.23일 그의 최근작 2편이 동시에 개봉한다.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쌓고 허물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구로사와 감독의 작풍(作風)을 엿볼 수 있다. ●강령(降靈) “그는 뭐든지 만들었다.그런 말로 영화사에 기억됐으면 좋겠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공포영화 ‘강령’은 그런 그의 고집을 그대로 뒷받침해준다.영화는 세계적 스타감독의 수작으로 호평받기보다는 적당히 오락성을 갖춘 평범한 공포영화로 기억됨직하다.고정된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다양한 주제와 형식에 도전한다는 점이 구로사와 감독의 매력인 듯하다. 음향효과 일을 하는 사토(야쿠쇼 고지)의 아내 준코(후부키 준)에게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내는 신통력이 있다.사토는 그런 아내를 불편해 하기는커녕 친구처럼 자상하게 배려해준다.평화가 깨지기 시작한 건 사토가 숲으로 소리 채집을 다녀온 뒤부터.숲에서 유괴범에게 쫓기던 여자아이가 작업상자로 뛰어들고,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사토는 엉뚱하게 유괴범으로 몰릴 위기에 처한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쑥 준코의 눈에만 보이는 귀신들,혼령이 나타나기 직전 바람이 일고 사물이 흔들리는 음산한 전조 등 다분히 동양적인 공포코드로 채워졌다.낭자한 피,날카로운 비명 등 시청각적인 자극에 기대는 할리우드식 공포를 싱겁게 여기는 관객들에겐 만족스러운 긴장을 안길 듯하다.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데도 부부가 여자아이의 존재를 끝까지 숨기다 아이를 죽이고 마는 상황은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일본의 국민배우 야쿠쇼 고지의 안정감있는 연기 덕분에 그나마 그런 억지설정들의 결함이 많이 가려졌다. ●밝은 미래 ‘밝은 미래’는 감독 자신이 20대에 맞닥뜨린 꿈과 좌절을 담담한 화면으로 반추한 자전적인 영화다. 세탁공장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는 니무라(오다기리 조)는 꿈속의 미래는 항상 밝아보인다는 이유로 잠자기를 좋아하는 스물네살의 청년이다.함께 일하는 세살 위의 마모루(아사노 다다노부)와 친해지면서 그의 집에서 키우는 해파리에 관심을 갖게 된다. 두 청년의 나른한 일상에 초점이 맞춰진 굴곡없는 드라마가 지루할 관객도 있겠다.번번이 제멋대로인 사장이 마모루를 해고한 즈음부터 영화는 분위기 반전을 꾀한다.사장의 일가족을 살해한 마모루가 감옥에 수감된 지 얼마뒤 자살하자 홀로 남겨진 니무라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상실감과 단절감에 방황하는 청춘의 자화상을 차분한 어조로 그려냈다.음악을 들으며 세상의 소리에 귀를 막고 볼링장,오락실을 들락거리는 무료한 청춘에 조금씩 동정심이 싹틀 즈음 영화는 한줄기 희망의 빛을 화면 위에 흩뿌린다.도심 강물에 떠내려가는 분홍빛 해파리떼,그들을 쫓아가는 니무라가 빚어내는 몽환적 분위기는 “다 괜찮다.”며 청춘의 상처를 쓸어주는 듯하다. 아사노 다다노부는 ‘피크닉’‘고하토’‘자토이치’ 등 일본 대표감독들의 작품에 단골로 출연해온 인기배우. 황수정기자 sjh@˝
  • [김영희 이혼클리닉] ‘기러기 아빠’ 자신 없는데…

    초등학교 5학년,중학교 1학년생인 두 아들을 둔 아빠입니다.아내가 두 아들을 뉴질랜드로 조기유학을 보내자고 해서 매일 싸웁니다.아이들과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 살 자신이 없지만,아이들 장래를 생각하면 유학을 보내고도 싶습니다.어쩌면 좋을까요? 박기성 박기성씨,정부가 조기유학 가이드라인을 부모가 동반한다는 전제로 미국은 초등학교 3년생부터,캐나다는 초등학교 1년생부터 유학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의하면 2002학년도에 국외교육기관에서 수학하기 위해 출국한 학생이 초등생 3464명,중학생 3301명,고교생 3367명으로 모두 1만 132명입니다.이 숫자는 부모의 해외연수 동반 자녀를 뺀 순수 해외유학생이고,해외근무·이민 동행 자녀까지 합하면 2만 8126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작년에 초등학생 1만 5000여명이 자퇴를 했는데 대부분의 사유가 해외유학이라고 하니 ‘조기유학 열풍’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1990년대 시작된 조기유학은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 불만을 느낀 부모들이 사교육비로 들어가는 엄청난 지출을 덜어 보기 위해서,혹은 교육 시스템이 선진국이 훨씬 우수하다는 인식과 세계 공용어가 된 영어를 익히고 좋은 환경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 것 같습니다만 부작용도 심각하답니다.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떠나는 학생이 대부분이지만 말썽 많은 자식을 ‘도피유학’시키는 부모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유학 간 일부 학생 중 언어소통과 그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공부는 뒷전이고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니며 유흥과 마약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지자 엄마가 자녀를 지키기 위해 따라가면서 이산가족이 늘고 있습니다.아내와 자녀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생활비와 학비를 대느라 헌신적인 뒷받침을 하며 홀로 외롭게 사는 아빠를 ‘기러기아빠’라고 부른다지요.하지만 가족이 몇년씩 떨어져 살다 보면 점차 단절되고,부부도 어느 한쪽 마음이 변하여 가정파탄이 되는 경우가 느는 추세입니다.‘신종 이산가족’의 비극이지요. 얼마 전 매스컴을 통해서 우리는 박원희 학생의 자랑스러운 소식을 들었습니다.박원희 여학생은 민족사관고를 2년 만에 수석 졸업하고,하버드·프린스턴·스탠퍼드 등 미국 10대 명문대학으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았다는데,놀라운 것은 그녀가 해외거주 경험이 없으면서도 미국 현지 학생들도 어렵다는 논술과목에서 800점 만점을 받았고,SATⅡ도 거의 전 과목에서 만점에 가까운 성적이었다는데,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기성씨,두 아들을 뉴질랜드로 조기유학 보내려는 부인과 매일 부부싸움을 한다면,두분 다 자식사랑 때문이겠지만 ‘넘치는 것은 부족함’만 못합니다.조기유학은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는 어린 나이에는 오히려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외국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인 아이들이 훗날 사고의 차이로 부모와 갈등을 겪게 되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을 수 있습니다. 기성씨,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부부는 떨어져 살지 않아야 합니다.다투면서라도 몸으로 마음으로 부딪치며 사는 게 바람직하지요.‘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고 ‘죽을 만큼 부부싸움을 했어도,한 이불 덮고 자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이제 한참 자식사랑,아내사랑이 넘칠 나이에 모두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서 날마다 가족을 그리워하며 외롭게 살아야 할 만큼 조기유학이 시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하나를 얻기 위해 열을 잃게 되는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많은 기러기 아빠들의 불행이 무엇인가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곁에서 말로 행동으로 가르치는 인성교육은 자녀의 인격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줍니다.또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을 쏟아줄 수 있는 시기도 항상 있는 게 아니랍니다.반듯한 자녀를 키우기 위해선 반듯한 부모가 버팀목이 되어 곁에서 지켜줘야지요.기성씨 부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김영희 이혼클리닉] ‘기러기 아빠’ 자신 없는데…

    초등학교 5학년,중학교 1학년생인 두 아들을 둔 아빠입니다.아내가 두 아들을 뉴질랜드로 조기유학을 보내자고 해서 매일 싸웁니다.아이들과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 살 자신이 없지만,아이들 장래를 생각하면 유학을 보내고도 싶습니다.어쩌면 좋을까요? 박기성 박기성씨,정부가 조기유학 가이드라인을 부모가 동반한다는 전제로 미국은 초등학교 3년생부터,캐나다는 초등학교 1년생부터 유학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한국교육개발원 통계에 의하면 2002학년도에 국외교육기관에서 수학하기 위해 출국한 학생이 초등생 3464명,중학생 3301명,고교생 3367명으로 모두 1만 132명입니다.이 숫자는 부모의 해외연수 동반 자녀를 뺀 순수 해외유학생이고,해외근무·이민 동행 자녀까지 합하면 2만 8126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작년에 초등학생 1만 5000여명이 자퇴를 했는데 대부분의 사유가 해외유학이라고 하니 ‘조기유학 열풍’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1990년대 시작된 조기유학은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 불만을 느낀 부모들이 사교육비로 들어가는 엄청난 지출을 덜어 보기 위해서,혹은 교육 시스템이 선진국이 훨씬 우수하다는 인식과 세계 공용어가 된 영어를 익히고 좋은 환경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 것 같습니다만 부작용도 심각하답니다.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떠나는 학생이 대부분이지만 말썽 많은 자식을 ‘도피유학’시키는 부모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유학 간 일부 학생 중 언어소통과 그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공부는 뒷전이고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려 다니며 유흥과 마약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지자 엄마가 자녀를 지키기 위해 따라가면서 이산가족이 늘고 있습니다.아내와 자녀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생활비와 학비를 대느라 헌신적인 뒷받침을 하며 홀로 외롭게 사는 아빠를 ‘기러기아빠’라고 부른다지요.하지만 가족이 몇년씩 떨어져 살다 보면 점차 단절되고,부부도 어느 한쪽 마음이 변하여 가정파탄이 되는 경우가 느는 추세입니다.‘신종 이산가족’의 비극이지요. 얼마 전 매스컴을 통해서 우리는 박원희 학생의 자랑스러운 소식을 들었습니다.박원희 여학생은 민족사관고를 2년 만에 수석 졸업하고,하버드·프린스턴·스탠퍼드 등 미국 10대 명문대학으로부터 합격통지서를 받았다는데,놀라운 것은 그녀가 해외거주 경험이 없으면서도 미국 현지 학생들도 어렵다는 논술과목에서 800점 만점을 받았고,SATⅡ도 거의 전 과목에서 만점에 가까운 성적이었다는데,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기성씨,두 아들을 뉴질랜드로 조기유학 보내려는 부인과 매일 부부싸움을 한다면,두분 다 자식사랑 때문이겠지만 ‘넘치는 것은 부족함’만 못합니다.조기유학은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는 어린 나이에는 오히려 나쁜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외국문화를 빠르게 받아들인 아이들이 훗날 사고의 차이로 부모와 갈등을 겪게 되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을 수 있습니다. 기성씨,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부부는 떨어져 살지 않아야 합니다.다투면서라도 몸으로 마음으로 부딪치며 사는 게 바람직하지요.‘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고 ‘죽을 만큼 부부싸움을 했어도,한 이불 덮고 자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이제 한참 자식사랑,아내사랑이 넘칠 나이에 모두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서 날마다 가족을 그리워하며 외롭게 살아야 할 만큼 조기유학이 시급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하나를 얻기 위해 열을 잃게 되는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많은 기러기 아빠들의 불행이 무엇인가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곁에서 말로 행동으로 가르치는 인성교육은 자녀의 인격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줍니다.또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을 쏟아줄 수 있는 시기도 항상 있는 게 아니랍니다.반듯한 자녀를 키우기 위해선 반듯한 부모가 버팀목이 되어 곁에서 지켜줘야지요.기성씨 부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4·15 한국의 선택] “투사에서 선량으로”

    민노당 약진 ‘정치사의 사건’ 민주노동당은 총선에서 세 가지 기록을 만들어냈다.사상 처음으로 원내에 진출한 데다,그것도 두 자릿수 가까운 의석을 확보했으며,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에 이어 제3당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그래서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은 한국정치사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진보정당을 바랐던 뜨거운 민심 민주노동당이 총선에서 약진한 것은 부정부패,지역주의,수구냉전의식,특권의식 등과 단절된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국민의 열망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보수 일색이던 정치권이 좌우의 목소리를 내는 새로운 환경으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영세 선대위원장은 “민심이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먼저 요구하는 등 분명한 변화흐름을 목격했다.”면서 “국민들의 정치 염증과 새 정치에 대한 기대는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었고,민주노동당에 ‘마지막 희망’같은 것을 기대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노동자 출신,농민 출신 국회의원이 ‘집단적’으로 나오는 것 자체가 국민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다.그동안 소외됐던 노동자·농민·서민들의 목소리가 정책 생산과 입법 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기대된다.민주노동당 소속 의원들은 공약에 따라 노동자 평균임금 180만원만 받는다. 의원의 불체포특권,면책특권도 부정부패,비리와 관련되면 포기한다.주변 사람들의 청탁,민원을 대변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 번 비례대표로 당선되면 다음 선거에서는 반드시 지역구로 나가야 한다. 이들은 ‘국회 파수꾼’ 역할을 자임한다.국회는 소위나 상임위의 토론내용은 기록하지 않거나 속기록을 공개하지 않기 일쑤였다.설령 정치권의 야합이 있더라도 국민들은 의혹만 가질 뿐,내용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하지만 투명한 의정활동을 강조하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상임위에 포진한다면 국민들은 직접 들여다보는 듯한 효과를 갖고,기존 정치권은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개혁·진보정책 추진 가속화 민주노동당의 두 자릿수 의석 확보로 사회 개혁은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민주노동당의 부유세,무상교육·무상의료 등 진보 정책의 목소리가 커질 것 같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진보 쌍두마차’ 권영길·단병호 ‘진보정치’와 ‘노동운동가’가 17대 국회로 들어간다. 경남 창원을의 권영길 당선자는 전국언론노조연맹(현 전국언론노조) 초대 위원장을 거쳐 ‘국민승리21’의 대통령선거 후보,민주노동당 대표를 지내며 불가능할 것 같았던 진보정당의 여의도 진입을 만든 ‘진보정당 대표선수’다.비례대표 2번 단병호 당선자는 전국노동자협의회 건설 시기부터 민주노총까지 8년여의 시간을 위원장을 맡으면서 노동운동을 이끌어온 ‘대한민국 대표 노동자’다. 권 당선자는 1941년 전깃불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경남 산청의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그의 아버지는 ‘빨치산’이었다.열 살때 주검으로 맞은,기억조차 희미한 아버지였다.경남고 시절 야학을 했고,서울대 농대에 가서 농민과 민중의 삶 문제에 눈을 뜨면서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서울신문 기자생활,파리특파원 생활을 하면서도 그의 관심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 하나였다. 분단과 전쟁이 할퀸 그의 상처에는 훨씬 성숙해진 새 살이 돋았다.수많은 논쟁과 이론,말과 말들이 서로에게 상처내기 일쑤인 노동운동 속에서 과묵한 권 당선자는 포용과 통합의 ‘어머니형 지도자’로 평가된다.지난 87년 언노련을 만들 때,노동운동 경험이 일천한 그를 앞다퉈 지도자로 옹립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민주노총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이러한 그의 진솔함과 소박함은 단병호 당선자 역시 마찬가지다. 여섯 차례의 구속,다섯 차례의 수배 등 8년 5개월 동안 구속수배 생활을 거친 ‘과격한 투사’의 이미지와는 달리 단 당선자는 내성적이고 진솔한 성격의 소유자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학교 빼먹기를 밥먹듯해’ 포항 동지상고를 중퇴한 것이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아 두고두고 죄송스럽다는 단 당선자는 10만원 남짓의 임금을 받으며 하루 12시간 맞교대의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로 몇 년을 살며 참혹한 현실에 눈을 떴다. 이후 17년 동안 그를 빼고 한국노동운동을 얘기할 수 없고,‘빨간 머리띠’로 상징되는 강성의 노동운동가인 그였다. 박록삼기자 ■조봉암선생 진보당 창당 민주노동당은 17대 원내 진출에 성공함으로써 ‘2008년 제1야당,2012년 집권’이라는 원대한 프로젝트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줬다. 진보정당 건설의 역사는 50년의 세월이 흐른 유구한 과제다.지난 56년 진보당이 만들어졌다가 조봉암 선생의 구속·사형 이후 해체됐다. 그뒤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며 진보정당을 향한 몸부림은 본격화됐다.87년 1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백기완 후보를 지지했던 진보진영(이른바 ‘백선본’)은 대선 뒤 각각 민중의 당과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했고,90년 4월 민중당을 만들었지만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해체됐다. 대신 당시 지도부였던 이우재·김문수·이재오·장기표씨 등이 신한국당으로 입당하는 부끄러운 기록만 남겼다. 씨를 뿌린 것은 민주노동당의 전신(前身)인 ‘국민승리 21’이었다.97년 창당된 국민승리 21은 권영길 민노총 위원장을 대통령선거 후보로 내세워 29만여표(1.3%)를 얻었다.2000년 창당된 민주노동당은 그해 16대 총선에서 21곳에 후보를 냈다.김종철 대변인은 “노동자,농민들이 20년 동안 전국 각지에서 켜켜이 쌓아온 진보정당을 향한 노력과 시행착오,새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이 한국정치의 수준을 여기까지 밀어올렸다.”고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 ˝
  • [Funny 머니] 中과 수교하면 나라도 세운다?

    타이완과 중국 중 어느 나라를 국가로 선택할까.이들 두 나라의 경쟁적인 ‘원조 외교’가 소국(小國)들에는 커다란 돈벌이 기회가 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최근호에 따르면, 도미니카연방은 지난달 31일 타이완과의 외교를 단절하고 중국과 수교했다.이로써 중국을 대표하는 합법적 정부로 중국이 아닌 타이완을 인정하는 국가는 26개국으로 줄었다. 중국과의 수교 대가는 불과 1억 2200만달러(1393억원)다.그러나 이는 도미니카연방의 무려 5년치 세입의 3분의1이 넘는 규모며 국민 1인당 1750달러에 달한다.도미니카연방의 인구는 7만명이다.루스벨트 스커릿 총리는 이 돈을 운동장·도로·학교·병원 건설에 쓰겠다고 밝혔다. 1983년 타이완을 선택한 뒤 마음을 바꾸기까지 21년동안 타이완으로부터 받은 것은 경찰순찰차나 식량 등 소규모 원조였다.스커릿 총리는 타이완에는 매우 고맙지만 “국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변심’ 사유를 밝혔다. 중국의 원조가 자그마한 나라 하나를 세울 수도 있다.서인도제도 세인트 키츠에 속한 인구 1만명의 네비스는 독립을 원한다.국민투표가 올 하반기로 예정돼 있는데 중국이 도미니카연방에 지원한 돈(1억 2200만달러)을 준다면 독립도 가능하다.이처럼 경제침체기에 놓인 타이완 대신 빠르게 경제가 성장하는 중국으로 돌아선 국가들이 점점 늘고 있다.발칸반도의 소국 마케도니아가 2001년 6월 중국과 수교했고 태평양의 나우루,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등이 뒤를 따랐다.카리브해서는 바하마,세인트 루시아 등이 97년 베이징을 택했다.반면 태평양의 키리바시는 지난해 타이완을 선택,눈길을 끌었다. 전경하기자˝
  • [국제플러스] 리비아 “북한과 무기거래 안할것”

    |뉴욕 연합|리비아는 대량살상무기 자진 해체 선언을 이행하기 위해 현재 보유중인 스커드 B 미사일들을 개조해 사거리를 단축하고 북한과 모든 군사적 거래도 단절할 것을 미국 관리들에게 약속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11일 보도했다.신문은 미국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리비아가 최근 미국 및 영국 관리들과의 협의에서 미ㆍ영이 제기한 이같은 요구를 받아들이는 한편 이 같은 방침을 공개천명할 것을 다짐했다고 전했다.리비아는 또 스커드 B 미사일의 ‘되돌릴 수 없는’ 개조를 검증받기 위해 미국과 영국 관리들의 점검을 허용할 것이라는 의사도 표명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미국은 그동안 리비아가 테러에 대한 지원을 종식하고 인근 국가들을 위협하는 기존의 무기들을 해체하지 않는 한 리비아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 [이라크 ‘제2전쟁’] 수니파 거점 팔루자 반미 저항 심장부로

    ‘이라크인들이여 팔루자로 가자.’무슬림 중 수니파의 거점인 팔루자가 반미 저항의 심장부로 부각되면서 팔루자로 향하는 길에는 대미 항전 대열에 가세하려는 이라크인들로 붐빈다.바그다드 서쪽 팔루자에서는 지난주까지만 해도 적대적이었던 수니파와 시아파 이라크인들이 한마음이 돼 반미항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한명의 미군이라도 더 죽여 미군을 이라크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는,오랜만에 공동의 목표를 갖게 됐다. 외신들에 따르면 자신들도 먹을 것이 부족한 시아파 이라크인들이 식량과 의약품을 거둬 팔루자로 보내고 있다.미군 봉쇄로 5일째 외부와 단절된 팔루자는 식량과 식수가 떨어지고 전기마저 끊겼다.사람들은 총에 맞을까봐 길거리에 나뒹구는 시신마저 거두지도 못하고 있다.바그다드의 사원 주위는 헌혈하려는 이라크인들로 장사진이다.시아파니 수니파니 따지는 이는 없다. 뉴욕타임스는 9일 이라크 주둔 미군의 말을 인용,현재 팔루자에서는 무크타다 알 사드르가 이끄는 과격 시아파민병대 메흐디와 급진 수니파인 모하메드 군대가 느슨한 형태의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있다고 전했다.팔루자시에 잠입한 시아파 무장세력들은 지도부로부터 동족을 도우라는 명령이 내려왔다고 말해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전투기를 동원한 공습으로 팔루자시의 4분의1을 탈환한 미군은 수니파 무장세력들을 색출하기 위해 집집마다 이슬람 사원마다 돌며 탐문조사를 실시,반미 감정을 부채질하고 있다. 카타르의 위성방송 알자지라 인터넷판은 8일 팔루자시가 1968년 확전의 전기가 된 설날 대공격 직후 베트남 시내에서 펼쳐진 게릴라전을 연상시킨다고 보도했다.미 해병대는 얼굴없는 적에 노출돼 언제 어디서 날아드는 총탄이나 포탄에 맞을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전했다. 김균미기자˝
  • [총선 D-6] 부산 부산진갑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불렸던 부산에서도 보수적인 정서가 지배적인 곳이다.다른 지역보다 탄핵 정국의 영향도 덜한 편이었다.‘박근혜 효과’에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이 겹치면서 승자가 누가 될지 예측할 수 없는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현역 김병호 후보를,열린우리당은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조영동 후보를 각각 내세웠다.김 후보와 조 후보가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두 후보 모두 승리를 자신하는 등 박빙의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 김 후보는 부산 국제일보를 거쳐,KBS에 몸담았던 ‘언론인 30년’ 경력을 강조하고 있다.IMF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 운동을 추진했던 주역이라는 점도 부각시키고 있다.이번 선거에서는 “부산진갑을 한국 정치의 1번지로 승격시키고,지역구를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에 맞서는 조 후보도 언론인 출신으로 부산일보 편집국장을 거쳐 참여정부 국정홍보처장을 역임했다.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힘 있는 여당후보론’을 펼치고 있다.정치 개혁을 위해서 국회의원이 불체포특권 등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밖에도 자민련 신봉환 후보와 민주노동당 이성우 후보가 도전장을 냈다.신 후보는 “내각제로 권력구조를 개편,1인 독재를 막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 후보는 “부유세를 신설하고 무상교육·의료서비스를 신설하겠다.”며 서민층 공략에 나섰다. 박지연기자 anne02@ ●조영동 후보가 본 김병호 후보 -장점 언론인으로서 30년,대학의 학자로 3년 경력을 바탕으로 희망적인 정치에 앞장서고자 했던 노력을 높이 사고 싶다.소탈하고 인품 있는 성격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일을 추진할 때 기획력도 뛰어나다.특히 그동안 지역사회를 위해 애쓴 공로를 인정하고 싶다.언론인으로서,경영인으로서,관리자로서의 자질이 뛰어난 언론계의 선배로서도 존경한다. -단점 지금 이 시대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국민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가치의 실현이다.그러나 김 후보는 중앙당으로부터 불법 대선자금을 받아 부패정치의 동조자가 됐다.또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주도한 구태정치를 답습했다.이처럼 정치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정치를 실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김병호 후보가 본 조영동 후보 -장점 ‘경륜’을 장점으로 꼽고 싶다.국정홍보처장으로 발탁될 수 있었던 능력도 돋보인다.또 조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라는 점도 지역구에서는 장점으로 받아들여진다.아무래도 정부에 ‘힘’이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조 후보가 구체적으로 사업을 많이 유치할 수 있다고 공언하지는 않았지만 유권자 사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단점 일처리 스타일을 지적하고 싶다.조 후보는 조직 장악력이 부족한 것 같다.국정홍보처장을 지냈을 때는 말 실수로 설화(舌禍)도 겪었다.지역구와도 별 연관이 없다.부산상고 출신이라는 것 빼고는 연고가 없지 않으냐.지역구를 잘 모르니까 국회의원이 된다 해도 어떻게 현안을 처리할지도 난감할 것이다.대통령의 후배라는 점도 너무 부각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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