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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雨요일’도 잊은 ‘은륜 행렬’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상쾌하고, 건강을 다질 수 있어 좋았습니다.” 2일 자전거로 출근한 경남 창원시 공무원들은 전용도로가 단절되고, 높은 턱 등 장애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괜찮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자전거로 출근한 공무원은 150여명으로 당초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절반의 성공은 거뒀다. 이날이 자녀들의 개학일인 데다 출근시간에 비가 내렸던 점을 감안하면 호응도가 높았던 것으로 자체 분석했다. 창원시는 자전거 타기 활성화를 위해 통근거리가 3㎞ 이내인 공무원은 의무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고,3㎞ 이상이면 권장하고 있다. 전체 공무원 1491명 중 3㎞ 이내 통근자가 786명이며,3㎞ 이상은 705명으로 파악됐다. 자전거 출·퇴근제가 처음 시행된 이날 오전 8시를 넘어서자 공무원들의 자전거 행렬이 이어졌다. 같은 시각 출근길 시민들은 시청으로 들어가는 자전거행렬에 시선을 모았다. 잠시 후 8시20분쯤 비가 내리기 시작, 상당수가 옷이 흠뻑 젖었지만 크게 불만스러워하지는 않았다. 강영모(55) 기획과장과 이말순(52) 여성가족과장 부부는 나란히 자전거로 출근했다. 이 과장은 “자전거를 타며 포근한 봄 기운을 직접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출근길에 비를 맞은 박완수(51) 시장은 “도중에 비가 내려 그대로 맞았다.”며 “비가 올 때를 대비, 우의를 준비하고 특히 노면이 미끄러워 안전사고에 대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안삼두(52) 행정과장은 “오늘 비가 오는 바람에 자전거로 출근한 공무원은 예상보다 적었다.”면서 “앞으로 자전거 타기를 지속적으로 권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日 역사적 진실 존중·실천 필요” 노대통령 3·1절 기념사

    노무현 대통령은 1일 ‘제88주년 3·1절 기념식’에서 참석, 기념사에서 “우리는 일본과 사이좋은 이웃이 되기를 원한다.”면서 “경제·문화 등에서 이미 단절하기 어려운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혔다.3·1절 메시지는 예년처럼 일본을 겨냥한 원칙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완곡한 표현에서 보듯 비판 수위가 한층 낮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는 등 한·일관계를 악화시키지 않는 점을 감안한 수위 조절인 듯싶다. 노 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무엇보다 역사적 진실을 존중하는 태도와 이를 뒷받침하는 실천이 필요하다.”면서 “역사교과서, 일본군 위안부, 야스쿠니 신사참배 같은 문제는 성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양심과 국제사회에서 보편성을 인정받고 있는 선례를 따라 성의를 다해주기를 바란다.”면서 “이것이 국제사회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는 길이 될 것”이라며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아직도 일본의 일부 자치단체는 러일전쟁 당시 무력으로 독도를 강탈한 날을 기념하고 있다.”면서 “일부에서는 지난날의 과오를 부정하는 발언을 하고 나아가서는 역사를 그릇되게 가르치는 일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이제는 우리 국력과 역사의 대세에 대한 확신을 갖고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앞장서 이끌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광통교 다리밟기 81년만에 부활

    청계천 광통교의 다리밟기 행사가 81년만에 부활한다. 중구는 서울의 대표적인 정월대보름 행사였던 광통교 다리밟기 전통을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오는 4일 다리밟기 재현과 민속 세시풍속을 체험할 수 있는 놀이 한마당을 꾸민다고 11일 밝혔다. ‘서울 육백년사’에 따르면 일정한 격식을 갖춘 다리밟기 놀이가 중단된 것은 1925년. 이후 광교와 수표교에서 간헐적으로 다리밟기가 이뤄지다가 1950년대부터 아예 사라졌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문화말살정책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중구는 청계천 복원으로 광통교도 새 모습을 갖춤에 따라 단절된 다리밟기 행사를 복원하기 위해 광통교다리밟기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전문가들로부터 고증을 받았다. 이날 오후 1시부터 광통교 및 주변 지역에서는 세시풍속 한마당이 열린다. 서울 도심에서 제기차기, 윳놀이, 떡매치기, 소망고치기, 팽이치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오후 5시에는 다리밟기 기념식이 열린다. 이어 ‘광통교→광교→광통교→모전교→광통교’ 코스의 1㎞ 구간에서 다리밟기가 진행된다. 쥐불놀이, 강강술래와 함께 불꽃놀이도 펼쳐진다. 주변에는 먹거리 장터도 마련돼 조선시대 ‘답교 놀이’ 풍경이 재현된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월드이슈] 프랑스 겨울축제 ‘니스 카니발’ 현장을 가다

    [월드이슈] 프랑스 겨울축제 ‘니스 카니발’ 현장을 가다

    |니스 이종수특파원|‘고엽’의 시인 자크 프레베르는 “축제는 계속된다….”고 노래했다. 그의 시처럼 지구촌은 1년 내내 축제가 거의 끊이지 않는다. 봄·여름·가을에는 연극, 영화, 마임, 길거리 연극제, 현대·고전 무용과 음악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된 축제와 페스티벌이 방문객을 유혹한다. 겨울이 되어도 ‘인류의 열정’은 끝나지 않는다. 유럽·남미 등 곳곳에서 카니발로 흥분을 이어가면서 대중들은 늘 ‘일상의 전복’을 꿈꾼다. 중세시대에 시작돼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프랑스 니스 카니발(2월16일∼3월5일) 현장을 가봤다. 프랑스 남쪽 니스의 쪽빛 바다가 카니발 열기로 뜨겁다. 브라질의 리우, 이탈리아의 베니스 카니발 등과 함께 세계 3대 카니발로 불리는 니스 카니발이 지난 16일(현지시간) 개막됐다.7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근대적 형태의 카니발로는 123회를 맞은 니스 카니발은 올해의 왕(인물)으로 ‘럭비복장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을 선정했다. ●‘올해의 왕´ 자크시라크 대통령 선정 개막 첫날. 저녁 8시부터 관람객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7시30분부터 개막식인 ‘왕의 도착’을 위해 교통이 통제된 상태다. 9시가 되자 해안가에 만든 관람석은 벌써 꽉 찼다. 축제에 참여한 네 그룹의 학생들이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관객들 앞에서 흥을 돋운다. 이들이 신명난 음악 속에 군무를 펼치자 관람객 어깨도 들썩거렸다. 9시30분이 되자 거대한 시라크 대통령 인형을 태운 마차가 움직였다. 화려한 조명이 켜지면서 환호성이 터진다.17일 동안 도시를 ‘흥분의 난장(亂場)’으로 만들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그 앞에 다양한 색상의 옷을 입은 선무단 1000여명이 열정적 춤을 추며 행진했다. 흥을 못이긴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춘다. 반대편 거리의 방문객들도 신명난 모습이다. 여기저기서 봄브(실 모양의 고체 스프레이)와 콩페티(종이꽃가루)가 날린다. 순간을 담으려는 듯 플래시도 쉼없이 터진다. 아이 둘을 데리고 영국에서 왔다는 주부 빅토리아는 “영국 카니발보다 더 재미있다.”며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흥분의 30분이 지났다.‘열기의 밤’이 저물고 있다. 그러나 열정을 식히지 못한 부부나 연인들은 거리에서 춤을 추면서 ‘그들만의 잔치’를 즐기고 있다. 니스시 공무원이라는 스코르시파 부인은 “일상생활에 눌린 흥을 발산하는 잔치”라며 “개막식이 짧은 게 늘 아쉽다.”고 말한다. 이어 “알롱 당세(춤을 춥시다).”라며 남편 손을 끌고 춤을 이어갔다. ●벨기에·덴마크 거리극단도 참여 지난 27일. 카니발의 백미인 ‘꽃 전투’가 펼쳐지는 산책로 ‘프롬나드 데 장글레’가 꽃밭으로 변했다. 화훼장식가 20명이 자기가 만든 ‘꽃수레’를 다듬느라 여념이 없다. 수레에는 화사하게 분장한 1인 혹은 2인의 모델들이 다양한 국적의 옷을 입고 있다. 오후 2시30분이 되자 열기가 고조된다. 아를에서 온 8명의 기마대가 꽃마차 행렬의 길을 열어준다. 체코 군악대, 벨기에 마법사단 등도 따라온다. 그 뒤를 브라질·아프리카·아시아 복장을 한 무희들이 민속춤을 추면서 열기를 고조시킨다. 마침내 관객들의 환성 속에 20대의 마차가 움직였다. 관람석을 지나면서 이들은 미모사꽃 등을 던진다. 두번째 거리를 돌 때는 수레에 장식된 모든 꽃을 던진다. 관객들도 내려와 꽃받기에 여념이 없다. 역사학자이자 카니발 조직위원인 안 시드로(50)는 “이 지역 전통 행사 가운데 하나인 ‘꽃 전투’를 재현한 것인데, 요즘엔 그냥 관객에게 던지기만 한다.”며 “세계에서 유일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밤 9시가 되자 15만개의 전구가 메세나 광장을 밝혔다. 카니발의 하이라이트인 ‘빛의 행렬’이 시작된 것. 조직위가 선정한 20명의 인물을 닮은 거대한 인형을 태운 수레 20대가 관객들 앞을 지나갔다. 올해 왕인 시라크 대통령의 마스크를 비롯, 집권당 대선 후보 니콜라 사르코지,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을 풍자한 대형 인형도 보인다. 그 앞을 덴마크·벨기에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거리극단과 뮤지컬단이 재주를 뽐낸다. 광장을 한바퀴 돈 이들은 관객 속으로 들어와 함께 어울렸다. 배우와 관객이 하나가 되고 무대가 따로 없는 순간이다. 대형 인형 퍼레이드와 전시회, 길거리 퍼포먼스와 공연 등이 재연되면서 잔치는 5일까지 계속된다. vielee@seoul.co.kr ■ 세계의 겨울 축제 어떤게 있나 |니스 이종수특파원|일상생활과 단절하려는 인간의 ‘끼’는 겨울에도 쉬지 않는다. 세계 각국에서 카니발 등 크고 작은 축제가 펼쳐진다. 부활절 40일 전인 사순절 금욕기간 전에 고기를 먹어치우며 지배층을 조롱하고 억눌린 욕망을 분출하는 풍습에서 비롯한 카니발은 원래 종교적 색채가 강했으나 이후 점차 세속화됐다. 대표적인 것은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 화려한 의상의 무용수와 휘황찬란한 퍼레이드, 흥겨운 삼바 음악과 춤이 특징이다. 주로 2월 말부터 3월 초 사이에 4일 동안 열리는데 새벽까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축제를 벌인다. 브라질 국민들은 리우 카니발을 즐기기 위해 1년을 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모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축제다. 지난 20일 막을 내린 이탈리아의 베니스 카니발도 세계적 명성을 자랑한다. 일명 ‘가면축제’로 불릴 만큼 다양한 모양의 가면을 쓰고 화려한 의상을 입은 인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또 산마르코 광장을 비롯, 거리와 골목마다 무도회와 뮤지컬, 연극, 춤 등이 펼쳐진다. 이밖에 프랑스의 샤랑트, 벨기에 뱅슈 등 유럽의 크고 작은 도시에서 카니발이 이어진다. 카니발은 아니지만 2월의 대표적 축제로 프랑스 남부 망통의 레몬 축제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또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2월 말부터 8일 동안 열리는 ‘꽃송이 세기 축제’와 1월 말∼2월 초에 열리는 ‘카니발 드 퀘벡’도 이색적인 잔치다. 아시아의 겨울 축제로는 지난 24일 시작한 ‘타이완 등불축제’,3월에 시작하는 인도의 ‘구디 파드마 축제’ 등이 있다. vielee@seoul.co.kr ■ 베르나르 모렐 조직위원장 인터뷰 “말하고 싶은 것 풍자… 자유정신 구현” |니스 이종수특파원|“현대는 자유의 시대입니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풍자하고 싶은 것을 풍자할 수 있죠. 여기에 니스 카니발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니스 카니발의 베르나르 모렐(60) 조직위원장. 성공적인 행사를 위해 정신없이 분주한 그를 27일 니스 관광사무국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올해 니스 카니발의 인물인 ‘스크럼을 짠 거대한 왕’에 대해 “프랑스의 올해 주요 행사는 세계 럭비대회와 대통령 선거다. 공통점이 있다. 승리를 위해 전력투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 이벤트를 아우르는 게 올해 니스 카니발의 주제라고 말했다. 특히 시라크 대통령 인형에 대해 “그의 인형을 잘 봐라. 웃고 있지 않으냐. 어떤 상황에서도 웃으면서 ‘좋은 게 좋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그의 근거없는 낙관주의를 꼬집은 것이다. 카니발을 찾은 사람들은 저 모습을 보고 원없이 웃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이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베니스 카니발,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카니발과는 다른 니스 카니발만의 독창성을 물어보았다.“베니스는 전통적이고 연륜이 오래됐다. 우리보다 유명하고 세련됐다. 리우 카니발은 열정적인 게 특징이다. 반면 니스 카니발은 비판과 미학정신이 결합됐다. 그래서 해마다 주제를 정할 때 고심한다. 또 모든 프로그램이 거리와 광장에서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준비기간을 물었더니 “1년 내내”라고 말한다. 이어 “카니발이 끝나자마자 내년 준비에 돌입한다.”며 “거의 세 달은 겨울잠을 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조직 정비, 다음해 주제선정 등 정신없이 바쁘다.”고 했다. 이어 “올해도 프랑스와 외국의 유명한 만평가들이 60점의 작품을 보내왔다.”며 은근히 자부심을 드러낸다. 이 가운데 20작품을 선정해 대형 인형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시라크 대통령은 물론 니콜라 사르코지, 세골렌 루아얄 등 유력 대선 후보들도 포함됐다. 이들의 대형 마스크를 태운 마차가 조명 속에 행렬하는 프로그램이 니스 카니발의 백미 가운데 하나다. 니스 카니발의 예산은 500만유로(약 60억원). 입장권 등 자체 수입 200만유로를 확보하고 나머지는 니스시가 주로 지원하고 소액의 후원금이 보태진다. vielee@seoul.co.kr
  • 남북 장관급회담 개막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이 27일 3박4일 일정으로 평양에서 시작됐다. 이번 회담은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직후 부산에서 열린 제19차 장관급회담 이후 7개월 만에 재개됐다. 나아가 북핵 6자회담 ‘2·13합의´ 이후 처음 열리는 남북 고위급 회담이라는 점에서 한동안 단절됐던 남북관계 정상화 및 북한의 비핵화 이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남측 수석대표인 이재정 통일부 장관 등 대표단 50명은 이날 오후 아시아나 전세기편으로 김포공항을 출발, 서해 직항로를 통해 평양에 도착했다. 북측 차석대표인 주동찬 민경협 부위원장 등의 영접을 받은 남측 대표단은 숙소인 고려호텔로 이동했으며, 이 장관은 북측 단장인 권호웅 내각책임참사와 만나 환담을 나눴다. 이 장관은 “밑에 얼음 있는 땅을 잘 디뎌가면서 회담을 하면 잘 될 듯하다.”고 말했고, 권 참사는 “봄이 오고 겨울이 갔다고 해서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한다.”며 “북남관계 특성상 민족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측 대표단은 이어 지난해 10월 이후 공식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북측 박봉주 내각총리가 양각도 국제호텔에서 주최한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평양공동취재단·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정부, 중유 5만t 지원절차 착수

    정부는 북핵 ‘2·13합의’에 따라 북측에 제공할 중유 5만t을 지원하기 위한 비용을 남북협력기금에서 지출키로 하는 등 준비 절차에 착수했다. 5만t 지원에 드는 비용은 중유에 함유된 유황 비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수송비를 합쳐 20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 양창석 대변인은 26일 이런 방침을 밝히고 “오늘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보고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또 북핵 6자회담의 ‘2·13합의’의 비핵화 초기조치가 이행돼야 쌀·비료 등 대북 지원 절차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27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평양에서 열리는 제20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쌀·비료 등의 지원이 결정되더라도 비핵화 초기조치 이행기간인 4월 중순까지는 쌀·비료 등이 북측에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2·13합의에 따른 북핵 초기단계 조치가 이뤄져야 대북 쌀·비료 등 지원 절차가 진행되는 것”이라며 “비료는 적십자사를 통해 지원하는 것이고, 쌀도 구체적인 지원 내용은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경추위)에서 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쌀·비료 등의 지원 문제를 넘어 핵문제 해결과 함께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적십자회담 및 경추위, 군사회담 등을 정상가동하고 장관급회담은 정례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대북지원은 6자회담 진전과 남북관계 진전 상황, 국민의 이해 등을 감안해 순차적이고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며 “특히 장관급회담이 제 역할을 해서 비핵화 조치를 가속화시키는 등 6자회담과 남북회담이 서로 선순환적으로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날 ‘20차 북남상급회담, 단절된 관계 정상화 토의’라는 기사에서 이번 회담에서 참관지 제한 철폐 등 상대방 체제를 인정하는 문제가 중요 의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남북장관급회담 재개에 발맞춰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다음 달 1일부터 2박3일간 방미,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외교장관회담을 갖고 2·13합의 이행방안 등에 대해 협의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서울광장] 7% 성장이라는 신기루/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7% 성장이라는 신기루/우득정 논설위원

    지난 22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에게 7% 성장 가능성을 캐물었다.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가 공약으로 내건 7% 성장의 허구성을 이 총재의 입을 빌려 공격하겠다는 의도였던 것 같다. 이에 이 총재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예봉을 피해갔다. 하지만 속내는 ‘불가능하다.’로 봐야 한다. 성장률을 7%로 끌어올리려면 생산성과 노동력 증가가 뒷받침돼야 하지만 단기간에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올해 대통령선거전에서 7% 성장이 경제분야의 으뜸 화두가 될 것 같다.7% 성장 공약을 내세웠다가 4년 평균 4.2%의 성적밖에 올리지 못한 노무현 정부는 “5% 이상은 어렵다.”고 단언한다.‘나는 7%로 유권자들을 속였지만 더 이상 속이지 말라.’는 얘기다. 하지만 대선주자들로서는 7% 성장 공약을 도로 물리기란 불가능하다.7% 성장에는 과거 고도성장에 대한 유권자들의 향수와 더불어 참여정부의 경제 실정에 대한 질타, 희망의 메시지가 함께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7%의 성장은 가능할까.7% 성장은 현재 4.5∼5% 수준인 잠재성장률을 7%로 끌어올린다는 뜻이다. 어떤 경제학자들은 자본과 기술, 노동 등 생산요소별 투입량을 조금만 높이면 잠재성장력을 7%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본투자 증가율을 3%포인트, 경제활동참가율을 2%포인트 높이고 민간소비를 지금보다 2%만 늘리면 가능하다는 계산서를 제시한다. 어떤 이는 규제를 풀어 5대 그룹이 쌓아둔 현금성 자산 20조원 중 3분의1만 투자하도록 한다면 성장률을 1%포인트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서비스분야의 규제 완화를 해법으로 제시하는 측도 있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 역시 이러한 산술적 계산을 근거로 7% 공약을 장담하는 듯하다. 하지만 산술공식과 경제 현실은 별개다. 산술공식대로 성장률이 현실화되려면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수많은 정책이 입법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테면 대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고 투자하지 않는 것은 마땅한 수익모델을 찾지 못하는데다, 경영권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기업의 수익모델을 보장해주려면 수도권집중 규제를 비롯, 환경·노동시장 등 각종 규제를 풀어주어야 한다. 또 경영권 위협에서 해방시키려면 출자총액제한제, 재벌소유 금융사의 의결권 제한 등 모든 재벌규제를 백지화해야 한다. 그리고 경제활동참가율을 높이려면 먼저 양질의 일자리가 공급돼야 한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결고리가 단절되면서 성장과 일자리의 함수관계는 갈수록 희박해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과거의 도식에 따라 5% 성장이면 35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했으나 신규 일자리는 30만개를 밑돌았다. 이밖에 서비스분야 규제 완화는 교육평준화, 의료사업 영리화 등과 맞물려 있다. 결국 7% 성장의 열쇠는 정책내용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정책이 빠진 리더십 강화나 규제완화, 정부 규모 축소, 감세 등의 주장은 한마디로 유권자를 현혹하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따라서 대선주자들은 어떤 법을 개정해 기업의 투자를 유도할 것인지 정책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전문가 집단도 정책의 현실성 여부를 따져야지 숫자놀음으로 신기루에 편승하려 해선 안 된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살림살이 여전히 ‘팍팍’

    살림살이 여전히 ‘팍팍’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데, 왜 가정경제의 주름은 펴지지 않을까.” 40대 회사원 김모씨의 의문이다.4인 가족의 가장인 김씨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라는 것은, 연간 8만달러(7520만원, 환율 940원)의 수입이 생기는 것으로 단순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의 명목수입은 몇년째 4000만∼5000만원에 고정돼 있다. 최근 김씨처럼 거시경제지표의 호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림살이가 팍팍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 5%를 달성했지만, 실제 소득이 늘어나지 않은 탓이다. 이유가 뭘까. ●유가상승으로 교역조건 나빠져 이에 대해 안길효 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국민소득팀장은 “국민총생산(GDP)과 국민총소득(GNI)의 괴리에서 발생하고, 그 괴리는 국제유가의 상승으로 교역조건이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경제활동의 정의에 따르면 국민총생산과 국민총소득은 일치해야 한다. 실제 2002년 GDP와 GNI는 모두 7.0% 성장했다. 그후 두 거시경제지표는 괴리가 발생해 2005년에는 GDP(4.0% 성장)와 GNI(0.5% 성장)에 큰 차이가 발생했다. 이 차이에 대해 안 팀장은 “수출상품의 가격은 낮아진 반면 고유가로 수입단가가 크게 오르면서 최악의 교역조건이 매년 갱신되고 있다. 즉, 교역조건의 악화로 2001년 이래로 무역손실 규모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는 탓”이라고 설명했다. 안 팀장은 “지난해 말부터 유가가 안정되고 있어서 지난해 GNI 성장률은 2.1∼2.2%가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편 전체 GDP의 10∼15%를 차지하는 공공행정서비스와 국방서비스의 확대도 실질 GNI를 낮추는 요인이다. ●수출·내수 연결고리 단절 수출의 호조가 내수로 연결되지 못하는 사회환경을 원인으로 찾기도 한다. 과거에는 수출호조가 투자·고용을 촉진시키고, 이것이 소비의 증가로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그 연관관계가 약화됐다. 한국은행 조사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16년간 수출은 8.3배 늘었지만, 내수는 겨우 2.03배 늘었다. 임호열 한은 구미경제팀장은 “수출과 내수의 비연결성이 독일·일본보다도 더 심화된 형태”라고 지적했다. 독일은 비슷한 기간에 수출이 2.4배, 내수는 19% 증가했고, 일본은 2001년 이래 수출은 51%, 내수는 4% 성장했다. 연계 약화는 설비의 자동화, 생산시설의 해외이전, 중간재의 해외조달 등으로 고용창출의 효과가 사라진 탓이다. 독일의 경우 1990년부터 2005년까지 제조업의 생산이 20% 늘었지만 고용은 40% 감소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16년간 제조업 생산성은 3.8배가 늘었지만, 고용은 13% 감소했다. 고용수 한은 아주경제팀장은 “수출호조가 내수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전통 소매업·음식숙박업 등 서비스 산업의 생산성이 높아져야 하고, 노동시장이 유연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제거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문화마당] 아버지의 2월/최동호 고려대 국문과 교수 시인

    여느 해보다 따뜻한 2월이 왔다 간다. 설날이 지나가고 새 학기가 다가온다. 졸업생들이 사회로 나오고 신입생들이 학교로 들어가려고 준비한다. 세상이 아무리 소란해도 젊은 세대들은 겨울의 얼어붙은 밭에서 새순이 돋듯이 솟아나온다. 설날의 미덕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가족을 통해 자기를 되새겨 보고 새로운 활력을 되찾는 데 있다. 그런데 가족의 중심에 서야 할 아버지의 자리는 축소되고 없어져버린 것 같다. 아버지의 처진 어깨가 유난히 커 보인다. 어머니의 자리가 좀더 커진 것 같지만 그 또한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자리일 것이다. 산업사회가 대가족제도를 붕괴시켰고 디지털 사회가 핵가족마저 붕괴시키고 나면, 인간 존재는 가족이라는 끈을 잃어버리고 낱개의 존재로 고독하고 음울하게 살아갈 것이다.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되고 우울증이 심화되며 자살률이 급증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2006년도 노벨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의 수상 기념연설 ‘아버지의 가죽가방’은 전세계인을 잔잔하게 감동시킨 바 있다. 젊은 시절 문학 지망생이었지만 별 볼 일 없는 문인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가죽가방으로부터 그의 문학이 유래했다고 그는 말했다. 가족을 부양하느라고 자신의 뜻을 접고 파지에 가까운 글을 가죽가방에 남기고 간 아버지의 유언은 파묵에게 삼류 문사로 세상을 살다 갈 수 없는 분명한 이유가 되었다. 남의 글을 아류적으로 추종하는 한 제대로 된 작가가 될 수 없다는 깨달음은 파묵이 아버지로부터 받은 커다란 유산이었다. 아버지 없는 아들은 없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미 아버지가 새로운 세대의 전범이 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새로운 세대는 전 시대와의 단절을 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전 시대의 교훈을 질료로 삼지 않은 전진이란 불가능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전 시대와 단절된 전진은 일시적으로 가능할지는 몰라도 언제나 더 큰 대가를 치러왔다는 것이 인류사의 교훈이다. 2월을 보내면서 고형렬 시인의 시집 ‘밤 미시령’을 다시 읽어 보았다. 여러 시 중에서 ‘명태여, 이 시만 남았다’가 인상적이었다. 겨울방학을 보내고 개학이 다가오는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명태를 구워 먹던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라 그도 또한 아들과 더불어 명태를 구워 먹으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아버지가 되려고 아들을 불러 앉히고 그 중태를 죽죽 찢어 입에 넣어주었다. 그 황태 간 있던 곳에서 눈냄새가 나고 납설수 냄새도 나자 아버지 냄새가 났다. 슬프다기보다 50년 신춘에 이렇게 건태 뜯어 먹는 버릇도 아버지를 닮았으니, 아들도 나를 닮을 것이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대에 이런 이야기는 시인의 추억 속에서나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가고 시인도 가고 나면 그의 말대로 시만 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이 친구처럼 명태를 구워 먹는 기억이 없다면 우리들의 삶은 아주 삭막하게 단절될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첨단을 간다고 하더라도, 아니 디지털 시대의 첨단을 가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친구처럼 함께 사는 삶이 필요하다. 누구나 스스로 존재하는 독자적 개체이지만 그 독자성은 가족 구성원을 중심으로 방사적인 그물망을 구성하고 있다. 그 그물망이 조금이라도 훼손된다면 정서적·개체적 중심도 흔들리게 된다. 아버지만 존재하고 아들은 없던 권위주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의 젊은 세대가 결코 행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버지 없는 젊은 아들만의 시대는 그보다 더 불행한 시대일 것이다. 아버지를 부정하라. 그러기 위해 눈 냄새 나는 아버지의 잘잘못을 제대로 배우라. 최동호 고려대 국문과 교수 시인
  • [병자호란 다시 읽기] (6) 임진왜란,누르하치,그리고 조선 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6) 임진왜란,누르하치,그리고 조선 Ⅲ

    1405년 퉁밍거티무르가 입조(入朝)해 건주위도지휘사에 임명된 이래 명의 여진족에 대한 포섭작업은 가속이 붙었다. 영락제(永樂帝)는 1409년 흑룡강, 우수리강 유역의 광활한 지역을 총괄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노아간도사(奴兒干都司)라는 기관을 설치했다. 퉁밍거티무르를 비롯한 여진족 추장들은 노아간도사 아래 편제된 수많은 위소(衛所)들의 장(長)으로 임명돼 명의 신하가 되었다. 명은 위소 우두머리의 임명과 위소 상호간의 분쟁에는 개입했지만 위소의 통치는 여진족의 자율에 맡기는 체제를 만들었다. 만주에 대한 명의 지배는 점차 확고해져갔다. 이제 조선이 ‘고구려의 고토’ 만주를 수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명 견제하의 조선-여진관계 영락제가 만주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고히 했던 뒤에도 조선과 여진의 관계가 단절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조선은 여전히 오도리, 오랑캐, 우디캐 등 여진 종족들과 밀접한 관계를 지속했다. 여진인들은 조선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한양에 와서 조공했다. 조선은 입조했던 추장들에게 벼슬을 내리고, 회사(回賜)라는 명목으로 각종 물자를 제공했다. 태조부터 성종(成宗) 때까지 여진족들의 조공 횟수는 거의 1100차례에 이를 정도로 많았다. 여진족 가운데는 아예 조선에 귀화를 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조선은 귀화한 여진인들을 향화인(向化人)이라 부르며, 그들을 내지로 이주시켜 집과 땅 등의 생활기반을 제공했다. 조선은 1406년 경원(慶源)에 무역소(貿易所)를 설치해 여진족들과의 교역을 허용했다. 여진족들은 말, 모피, 진주 등 자신들의 특산물을 가져와서 면포, 소금, 솥, 농기구, 소(耕牛) 등을 바꿔갔다. 주로 수렵이나 유목에 종사하다가 점차 농경의 필요성에 눈떠 가고 있던 여진족들에게 조선에서 구입한 소나 농기구는 매우 소중했다. 조선과 여진 사이의 이같은 교류가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일찍부터 조선과 여진의 교섭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명은 1458년(세조 4), 건주좌위 도독 동창(童倉)이 조선에서 벼슬을 받았던 사실을 알게 되자 양자의 접촉을 엄금했다. 하지만 여진족들은 경제적으로 이득이 컸던 조선과의 관계를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다. 조선 또한 여진족들을 일종의 ‘울타리’로 생각했고, 그들을 초무(招撫)하여 몽골 침략 이래 보전하지 못했던 북방영토를 회복하고자 했다. 세종 연간 사군(四郡)과 육진(六鎭)을 설치해 압록강, 두만강 이남의 강역을 확보했던 것은 그같은 노력의 결실이었다. 조선은 또한 여진을 회유하여 스스로를 ‘상국’으로 자부하며 문화적 우월의식을 나타냈다.‘조선의 문물(文物)과 교화(敎化)를 사모하여 귀화한 여진인’을 뜻하는 ‘향화인’이란 말 속에 그같은 의식이 담겨 있었다. ●왜란시 절감한 누르하치의 위협 16세기 이후 여진족에 대한 조선의 관심은 15세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명이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하고 조선의 여진 접근을 견제했던 영향이 컸다. 또 여진세력 자체가 조선 안보에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다. 이성량(李成梁)이 활약하던 16세기 후반까지는 여진족 내부에서 조선을 위협할 만한 유력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기껏 두만강 부근의 여진족들이 간헐적으로 침략하여 변경을 소란하게 하는 정도였다. 16세기 후반 선조대에 이르러 조선의 권력은 사림파(士林派)에게 돌아갔다.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지향하던 그들은 ‘고구려 고토의 회복’과 같은 대외적 팽창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명에 대해 공손히 사대(事大)만 잘하면 대외적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여진이나 일본은 그저 교화시켜야 할, 조선보다 한 단계 낮은 ‘야만족’일 뿐이었다. 그런 그들이 당시 한창 세력을 떨치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나 누르하치에 대해 정확한 정보나 인식을 가질 리 없었다. 정확하지 못한 대외인식의 귀결은 먼저 임진왜란으로 나타났다. 1592년 9월, 누르하치의 원병 파견 제의를 받은 조선이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은 이야기한 바 있다. 충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조선에 들어왔던 명군 지휘관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누르하치 군대의 ‘위력’을 이야기했다. ‘그들 기마군단의 위력은 가공할 만하다. 일본군에게 밀리면 도주하면 되지만, 누르하치 군에게는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선조와 조정은 바짝 긴장했다. 그 와중에 1595년(선조 28), 산삼을 캐기 위해 평안도 위원(渭原)으로 잠입했던 건주 여진인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들이 조선 영내에서 소를 훔쳐가자 위원 군수 김대축(金大畜)이 여진인을 사로잡아 죽인 것이었다. 조선 조정은 이 사건 때문에 누르하치가 침략해 오지나 않을까 우려했다. 실제로 누르하치가 격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같은 해 10월, 선조는 신료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올 수 없었다. 모든 역량을 동원해 일본군과 맞서고 있는 현실에서 서북변 방어는 거의 방치돼 있었다. 그렇다고 남방의 병력을 빼서 서북쪽으로 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신충일(申忠一) 허투알라로 보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조선은 고육지책을 생각해냈다. 명의 권위를 빌려 누르하치의 침략을 견제한다는 복안이었다. 그 계책은 병조판서 이덕형(李德馨)이 주도했다. 이덕형은 명나라 장수 호대수(胡大受)를 움직였다. 호대수의 참모 여희원(余希元)을 건주여진 지역으로 들여보내 누르하치를 선유(宣諭)하도록 했다. 조선 관원에게도 중국인 옷을 입혀 동행시켰다. 1595년 11월, 여희원은 누르하치의 부장(副將)을 만나 여진인들이 조선 영내로 잠입한 것을 힐책하고, 조선에 보복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조선은 여희원을 통해 응급조치를 취한 후 다양한 대책을 마련했다. 선조는 누르하치를 회유하기 위해 비단을 제공하고, 이후 산삼을 캐기 위해 넘어오는 여진인을 죽이지 말라고 지시했다. 또 그들의 침략에 대비해 들판을 완전히 비우고 성에 들어가 방어하는 청야책(淸野策)을 연구할 것을 강조했다. 조선은 나아가 남부주부(南部主簿) 신충일(申忠一)이란 인물을 허투알라로 들여보냈다. 조선인의 눈으로 누르하치 진영의 상황을 직접 정탐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조처였다. 신충일은 1596년 1월, 허투알라를 다녀온 뒤 선조에게 상세한 보고서를 올렸다. 유명한 건주기정도기(建州紀程圖記)가 그것이다. 이는 오늘날 청 초기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사료로서 평가받고 있다. 신충일의 보고서를 본 뒤 선조는 “천지의 기세가 바뀌고 있다.”며 탄식했다. 이어 신료들에게 누르하치와의 충돌을 피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거듭 촉구했다. 북쪽의 ‘오랑캐’, 남쪽의 ‘왜구’ 이른바 북로남왜(北虜南倭)에 의해 포위된 조선의 현실을 새삼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정세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해 임진왜란을 불렀던 것은 과오였지만, 선조 정권의 누르하치에 대한 대책은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누르하치를 견제할 만한 자체 역량이 없는 현실에서 명의 권위를 이용하고, 그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높이 살 만하다. 임진왜란이라는 커다란 위기를 겪으면서 역설적이지만 조선은 외교적 감각을 키웠던 것이다. 6자회담이 어렵사리 타결됐지만 동북아 평화를 위해 아직 갈길이 먼 오늘날, 선조대의 누르하치 정책은 소중하게 돌아보아야 할 역사의 거울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로또 수천억 ‘수수료분쟁’ 협상 끊긴채 표류

    로또 수천억 ‘수수료분쟁’ 협상 끊긴채 표류

    정부와 로또복권 사업자인 코리아로터리서비스(KLS)의 수천억원대 복권 수수료 분쟁이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소송 결과에 따라 정부가 4600억여원을 물어주는 초유의 사태가 올 수 있음에도 정부측은 상대방의 불성실한 태도만 탓하며 벼랑끝 작전을 고집하고 있는 것. 사태의 심각성은 현재 정부와 KLS측의 협상 채널이 완전히 끊어져 있다는 데 있다. 지난 12월 판결 뒤에도 양측은 협상 테이블에 한번도 앉지 못했다. 자칫 협상 한번 못한 채 소송이 진행돼 엄청난 국고손실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KLS는 지난해 12월 복권 수수료 일부에 대한 청구 소송 1심에서 승소한 데 이어 최근 나머지 금액인 4458억원을 지급하라고 국민은행(정부 수탁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KLS는 로또복권 관련 장비 및 전국 네트워크 설치운영 등 기술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시스템사업자다. 문제의 발단은 2002년 12월 로또복권 도입 당시 국민은행이 KLS측과 지나친 고율(9.5%)의 수수료 약정을 체결하면서부터다. 복권 판매액이 예상을 크게 웃돌면서 수수료 수익이 많아지자 정부는 2004년 4월 수수료율 최고한도를 4.9%로 조정 고시했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이 대폭 깎아 3.15%만 지급했고,KLS측은 불복, 소송을 낸 것이다. KLS측이 추가 소송을 낸 것은 1심 승소 이후에도 전혀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데다, 수수료 청구소송의 시효가 4월에 만료되기 때문이다. 양측은 외형적으로는 협상을 강조하면서도, 구체적 협상안을 전혀 내놓지 않고 있다. 협상 채널 단절의 책임을 상대에게만 돌리기 바쁘다. 김범수 KLS 전무는 13일 “꼭 승소를 통해 수수료를 모두 받아내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협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소송과 함께 법원에 조정신청을 낸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복권위 입장은 다르다. 복권위 관계자는 “KLS가 협상을 운운하면서도 협상안을 한번도 내놓지 않았다. 현재 추가 소송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중이다.”고 말했다. 양측 모두 상대방이 먼저 협상안을 내놓길 기다리며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은행도 속이 타는 것은 마찬가지다. 소송의 실질적 당사자는 정부와 KLS이지만, 수탁기관으로서 피소자인 국민은행 이름으로 소송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 국민은행 관계자는 “소송결과에 따른 정산 문제, 피소로 인한 은행 평판 등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또 “소송에 의해 정부가 수천억원의 복권기금을 물어주는 사태가 와선 안 된다.”면서 “일단 대화의 채널을 트는 게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인천 계양산 개발·경인운하사업 싸고 주민-시민단체 ‘갈등’

    지역개발 등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주민과 시민단체가 주장을 달리하며 대립 구도를 형성하는 사례가 많다. 주민과 시민단체들이 견해와 행동을 함께했던 과거와는 자못 다른 양상이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가 ‘정체성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또한 시민운동이 진화하며 본연의 자리를 찾고 있다는 상반된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인천의 대표적 현안인 계양산 개발과 경인운하사업 등에서 시민단체와 주민들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롯데건설이 인천 계양산 자락인 목상·다남동 일대 75만평을 골프장·테마파크 등으로 개발하려 하자 인천녹색연합 등 인천지역 45개 시민단체는 ‘계양산 골프장저지 인천시민대책위원회’를 발족한 뒤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진귀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시민들이 즐겨찾는 계양산에 특정인들을 위한 골프장을 건설하는 것은 시민의 환경권을 박탈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영세농업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인근 주민 대부분은 고용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들어 개발에 찬성하고 있다. 이들은 “개발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는 누구를 위한 시민단체냐.”고 비난한다. 지난 7일 인천 계양구 주최로 열린 설명회에서는 시민단체 회원들과 주민들이 몸싸움을 하기도 했다. 경인운하도 시민단체와 주민들간에 뚜렷한 대립 구도가 형성돼 있다. 시민단체들은 경인운하가 건설되면 지역이 남북으로 단절되고 한강과 쓰레기매립지의 오염물질 유입에 의한 부영양화로 생태환경이 악화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인천, 부천, 김포 등 굴포천유역 주민들은 경인운하가 굴포천유역의 상습 홍수피해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수도권 신항만 화물수요를 흡수해 물류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민단체와 주민 대표는 경인운하에 대한 사회적 합의기구인 ‘굴포천유역지속발전가능협의회’에서도 각각 찬반을 대표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2003년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된 인천 논현지구에서는 주민과 시민단체가 입장 차이로 갈등을 겪다 결국에는 갈라서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이처럼 주민과 시민단체가 대립하는 사례가 빈발하는 것은 주민들이 실익을 추구하는 데 비해, 시민단체는 명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하대 이재욱 교수는 “주민들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비전과 경제적 효과 등에 관심을 갖고 있으나 시민단체는 이상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를 조명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시민단체가 진화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전체적인 관점에서 폭넓게 사태를 파악하고, 외국의 사례연구 등을 통해 글로벌적인 시각을 갖춰 시민운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과 시민단체가 ‘엇박자’ 행보를 보이는 데 대해 시민단체의 ‘정체성 위기’라는 지적도 있다. 시민단체측은 그러나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천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주민들은 보상이나 지가상승 등 개별적·우선적 이익에 주안점을 두는 반면 시민단체는 환경훼손 등으로 야기될 전체시민 피해 등 전체적·장기적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기 때문에 견해와 행동이 다를 수도 있다.”면서 “궁극적으로는 주민들이 시민단체의 입장과 역할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시민단체 정체성 위기

    지역개발 등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주민과 시민단체가 주장을 달리하며 대립 구도를 형성하는 사례가 많다. 주민과 시민단체들이 견해와 행동을 함께했던 과거와는 자못 다른 양상이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가 ‘정체성 위기’를 맞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또한 시민운동이 진화하며 본연의 자리를 찾고 있다는 상반된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인천의 대표적 현안인 계양산 개발과 경인운하사업 등에서 시민단체와 주민들은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롯데건설이 인천 계양산 자락인 목상·다남동 일대 75만평을 골프장·테마파크 등으로 개발하려 하자 인천녹색연합 등 인천지역 45개 시민단체는 ‘계양산 골프장저지 인천시민대책위원회’를 발족한 뒤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진귀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시민들이 즐겨찾는 계양산에 특정인들을 위한 골프장을 건설하는 것은 시민의 환경권을 박탈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영세농업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인근 주민 대부분은 고용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들어 개발에 찬성하고 있다.이들은 “개발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는 누구를 위한 시민단체냐.”고 비난한다. 지난 7일 인천 계양구 주최로 열린 설명회에서는 시민단체 회원들과 주민들이 몸싸움을 하기도 했다. 경인운하도 시민단체와 주민들간에 뚜렷한 대립 구도가 형성돼 있다. 시민단체들은 경인운하가 건설되면 지역이 남북으로 단절되고 한강과 쓰레기매립지의 오염물질 유입에 의한 부영양화로 생태환경이 악화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인천, 부천, 김포 등 굴포천유역 주민들은 경인운하가 굴포천유역의 상습 홍수피해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수도권 신항만 화물수요를 흡수해 물류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민단체와 주민 대표는 경인운하에 대한 사회적 합의기구인 ‘굴포천유역지속발전가능협의회’에서도 각각 찬반을 대표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2003년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된 인천 논현지구에서는 주민과 시민단체가 입장 차이로 갈등을 겪다 결국에는 갈라서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이처럼 주민과 시민단체가 대립하는 사례가 빈발하는 것은 주민들이 실익을 추구하는 데 비해, 시민단체는 명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인하대 이재욱 교수는 “주민들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비전과 경제적 효과 등에 관심을 갖고 있으나 시민단체는 이상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를 조명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시민단체가 진화하기 위해서는 현실과 전체적인 관점에서 폭넓게 사태를 파악하고, 외국의 사례연구 등을 통해 글로벌적인 시각을 갖춰 시민운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과 시민단체가 ‘엇박자’ 행보를 보이는 데 대해 시민단체의 ‘정체성 위기’라는 지적도 있다. 시민단체측은 그러나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천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는 “주민들은 보상이나 지가상승 등 개별적·우선적 이익에 주안점을 두는 반면 시민단체는 환경훼손 등으로 야기될 전체시민 피해 등 전체적·장기적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기 때문에 견해와 행동이 다를 수도 있다.”면서 “궁극적으로는 주민들이 시민단체의 입장과 역할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탈당정국 어디로] ‘盧의 脫춤’ 어떻게…

    [탈당정국 어디로] ‘盧의 脫춤’ 어떻게…

    열린우리당 탈당 사태와 여권 분화의 향배를 결정짓는 데는 몇가지 요인이 있다. 노선과 지역기반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상수’ 요인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향후 노 대통령과 여당내 주요 세력의 관계 재정립이 시도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여권은 천정배 의원을 축으로 한 개별탈당파와 김한길 의원의 집단탈당파 및 열린우리당 잔류파 등 세 그룹으로 형성돼 있다. 노 대통령의 여당에 대한 직접적 영향력 행사와 탈당 여부에 따라 향후 정치지형이 밑그림을 드러낼 전망이다. 지난 6일 열린우리당을 집단탈당한 그룹의 속사정을 들춰 보면 ‘노무현 대통령과의 단절’이 담겨 있다. 탈당 명분이나 마찬가지다. 탈당 이후 노 대통령이 제시한 정치적 화두와 각종 개혁입법에 대한 비협조 및 의도적 차별화가 예상된다. 정치컨설팅업체 폴컴의 이경헌 이사는 “노 대통령의 장악대상이 축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가능하다. 하지만 역으로 보면 이들의 탈당으로 노 대통령의 조기 당적정리를 위한 조건은 자동 소멸됐다고 봐야 한다. 노 대통령은 지난 6일 열린우리당 개헌특위 초청오찬에서 “당에 걸림돌이 되면 당적 분리를 하겠다.”고 했다. 정계개편과 관련지어 보면 “당을 쪼개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라는 말에서 보듯 여전히 열린우리당 중심의 흡수통합에 대한 암시를 강하게 주고 있다. 게다가 이달말 개헌발의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당장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흡입될 수밖에 없다. 전당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안정적 정계개편이 이루어지면 노 대통령의 입지는 굳어질 개연성이 크다. 한나라당도 이제 원내 제1당이 된 만큼 개헌에 대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이는 당내 내부 논쟁과 대선후보간 치열한 투쟁을 촉발시킬 요인으로 작동할 것이다. 탈당의 공을 당으로 넘긴 상태에서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가 이날 노 대통령의 탈당 시기에 대해 “본격적인 대통합 노력이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3∼4월이 적당할 것 같다.”고 말한 것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데스크시각] 탈당 감상법/박현갑 정치부 차장

    100년 정당을 기치로 창당했던 열린우리당이 6일 23명의 집단탈당으로 사실상 쪼개졌다. 지역구도 타파와 전국정당 건설, 정치개혁을 위해 구 정치세력에 머리채를 잡혀가며 어렵게 창당한 지 3년3개월여 만의 일이다. 이날 당 지도부 회의에서는 집단탈당에 대한 자책감과 울분의 목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렸다.“정치는 그래도 명분, 그래야 미래가 있다. 탈당하신 분들이 원칙과 명분에 충실했는지 국민들께서 앞으로 냉정하게 판단할 거다.”(김근태 의장),“100년 정당의 꿈이 무산되는 순간이나 자괴감과 자책감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문희상 의원). 3년여 전 창당과정이 떠오른다. 당시에도 구 민주당 세력과 열린우리당의 모태가 된 국민통합신당을 창당하려는 탈당세력과의 갈등이 첨예했다. 탈당논의과정서 구주류에 탈당파 일원이던 이미경 의원은 머리채를 낚아 채였다. 이처럼 갖은 진통 끝에 창당했기에 열린우리당에 대한 기대는 컸다.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은 정치권이 갖고 있던 기득권 포기에 있었다. 지구당 폐지 및 정치자금 투명화 등 선거조직 중심의 대립형 정당구조 대신 정책중심조직의 경쟁형 원내정당화, 기간당원제로 대변되는 하향식 비(非) 자발적 구조에서 상향식 자발적 정치구조를 지향했다. 한마디로 낡은 정치와의 단절과 극복을 추구했었다. 하지만 민생과 맞지 않는 개혁드라이브로 여론이 등을 돌리면서 자신들이 세운 집을 스스로 뛰쳐 나가는 막다른 코너로 몰리는 상황을 맞고 있다. 집권여당 스스로 와해되는 이 모습을 국민들은 어떻게 기억할까? 정치는 대의명분과 시대정신,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국민의 가슴을 파고드는 명분, 시대를 이끌 수 있는 통찰력, 이를 일관되게 실천하는 모습이 필요한 것이다. 탈당의원들의 시대정신과 명분은 무엇인가? “우리는 열린우리당이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기득권을 선도적으로 포기함으로써 국민통합 신당의 밀알이 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참회와 반성의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탈당 의원들의 변이다. 포기하는 기득권이 무엇인지를 묻자 “…”(최용규 의원),“당원의 권리와 의무”(이종걸 의원)라는 답이 돌아왔다. 명쾌하지 않다. 오히려 “고민과 충정을 이해하나 기득권 포기가 아니라 당적 포기일 뿐”이라는 우상호 대변인 논평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이들이 추구하려는 ‘국민통합신당’은 현 여당의 정책지향점과 무엇이 다른가? 아직 구체적 밑그림은 없다. 탈당을 주도한 김한길 전 원내대표는 “10일부터 가질 예정인 워크숍에서 교섭단체의 명칭과 원칙 등 큰 그림이 그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적 좌표는 ‘중도개혁세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탈당의 변에서 “모든 중도개혁세력과 함께 통합신당을 창조해 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열린우리당의 현 지향점과 같다. 때문에 이번 탈당이 정치적 결단이 아닌 내년 총선을 앞둔 생존대책일 뿐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여당에 다행이라면 “대통합의 바다에서 만나자.”며 정동영 전 의장이나 문희상 의원이 탈당파들에게 던지는 정치적 수사에서 드러나듯 열린우리당 의원들이나 탈당파 모두 현재의 열린우리당으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 때문에 야당에서는 ‘비·반(非·反)한나라당 연대’,‘기획탈당’ 등을 거론하며 경계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배지 수준이 유권자 수준이라고 한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지난 3년 동안의 국정혼란을 학습한 경험이 있다. 여권이 이러한 전철을 되밟는다면 기대하던 대통합은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eagleduo@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 조선백자 달항아리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 조선백자 달항아리

    조선백자 달항아리는 요즘 한국의 문화재를 대표하는 스타로 톡톡히 대접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베네딕트수도원의 독일인 신부 안드레아 에카르트가 1928년 완성한 최초의 한국 미술통사(通史)인 ‘조선미술사’에는 아예 언급조차 되어 있지 않더군요.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을 강조할 때 흔히 인용되는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한국과 그 예술’의 신판(1954)에도 막상 달항아리를 뜻하는 대호(大壺)를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오만한 풍정(風情)이 아니라 쓸쓸한 자태’라고 했을 뿐입니다. 갈수록 달항아리 열풍이 거세지도록 만든 공은 1950∼1960년대 일찌감치 그 예술성에 눈뜬 김환기 화백이나 최순우 선생에게 먼저 돌려야 합니다. 여기에 20세기 후반기 이후 국내외를 막론한 급격한 산업화도 자연미 그 자체인 달항아리에는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조선의 도자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무너지다시피 했습니다.17세기 후반 철화백자가 나타난 것도 청화백자의 재료인 페르시아산 청화안료가 수입되지 못하자, 철사(鐵砂)안료로 대용한 결과입니다. 달항아리도 이 시기에 금사리에서 시작됐다고 합니다. 지금의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으로, 퇴촌에서 들어가자면 분원리로 넘어가는 고개 못미쳐 오른쪽에 있는 동네입니다. 금사리에는 분원리로 옮겨가기 전, 왕실에 그릇을 공급하는 사옹원의 분원(分院)이 있었습니다. 조선 후기 사옹원 분원은 정원이 380명에 이르고,28개 직급 체계로 완벽하게 나눠진 분업조직이었습니다. 당연히 ‘국영 도자기 공장’인 금사리에서 장인 한둘의 안목으로 달항아리와 같이 완전히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것입니다. 이쯤되면 달항아리는 ‘조선왕조의 국책사업’으로 탄생시킨 성과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최순우 선생의 말씀처럼 달항아리가 갖고 있는 ‘폭넓은 흰빛과 부정형의 원이 그려 주는 무심한 아름다움’도 국가적인 차원의 사업으로 빚어냈다는 뜻입니다. 달항아리가 세계 도자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독특합니다. 최건 광주관요박물관장은 “중국의 징더전(景德津)이 명·청대에 걸쳐 도자기 수출의 중심지가 되고, 일본도 조선 도공이 가세하면서 임진왜란 이후 수출국으로 부상했지만, 문양이나 모양 등에서 주문자인 유럽이나 페르시아의 취향을 수용하다 보니 결국 쇠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더군요. 역설적으로 달항아리의 예술성은 세계시장과 소통하지 못한 단절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글로벌 스탠더드’에서 소외된 상태에서 국가적 역량을 기울여 조선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최고조에 이르게 한 것이 곧 달항아리라고 해석할 수 있겠지요.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글_ 장영희 그림_ 유준재 <샘터>의 오랜 독자들은 나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2003년 12월 ‘아름다운 빚’이라는 글로 나는 당시 4년간 연재하던 ‘새벽의 창’을 닫았다. 그리고 꼭 3년 만에 나는 이렇게 다시 나타났다. ‘다시 나타났다’는 말을 쓰니 정말 홀연히 바람처럼 사라졌다가 불현듯 모습을 드러낸 느낌이 드는데, 어쩌면 나의 ‘공백기’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인지도 모른다. 그리 짧지도, 그렇다고 그다지 긴 시간도 아닌 3년. 젊은 사람들에게 3년은 인생의 드라마를 창출할 만큼 긴 시간이다. 새로 군대에 간 남학생이 전역할 만한 시간이고 새 신부가 아기 둘을 낳을 만한 시간이고, 신참 사원이 잘하면 대리가 될 수 있는 시간이고, 아, 그리고 우리 학생들을 보면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아픈 이별을 하고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하기에도 충분한 세월일 만큼, 3년이라는 기간은 의미심장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나이에 3년이란 세월은 그렇지 않다. 신상에 무슨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기보다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설정된 삶의 자리가 그냥 ‘조금 더’ 깊어지는 기간이다. ‘조금 더’ 늙어가서 ‘조금 더’ 눈가에 주름살이 잡히고 ‘조금 더’ 내 살아가는 모습에 길들여지고, ‘조금 더’ 포기하고 ‘조금 더’ 집착의 끈을 놓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샘터>에서 사라졌던 지난 3년 동안 나는 내 인생의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 칼럼을 닫고 나서 얼마 후에 나는 척추암 선고를 받고 2004년 9월 8일 갑작스레 병원에 입원했고, 2006년 5월, 도합 스물네 번의 항암치료를 마칠 때까지,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나는 긴긴 투병생활로 보냈다. 돌아보면 그 긴 터널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새삼 신기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지난 3년이 마치 꿈을 꾼 듯, 희끄무레한 안개에 휩싸인 듯, 선명하게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통증 때문에 돌아눕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던 일,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백혈구 수치 때문에 애타 하던 일, 온몸에 링거 줄 떼고 샤워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일, 방사선치료 때문에 식도가 타서 물 한 모금 넘기는 것이 고통스러워 밥그릇만 봐도 헛구역질하던 일, 그런 일들은 마치 의도적 기억상실증처럼 내 기억 한편의 망각의 세계에 들어가서 가끔씩 구태여 끄집어내야 잠깐씩 회생되는 파편일 뿐이다. 그 세월은 단지 가슴 뻐근한 그리움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네 면의 회벽에 둘러싸인 방에 세상과 단절되어 있으면서 나는 바깥세상이 그리웠다. 밤에 눈을 감고 있을라치면 밖에서 들리는 연고전 연습의 함성소리, 그 생명의 힘이 부러웠고,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아래 드넓은 공간, 그 속을 마음대로 걸을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그리웠고,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늦어서 허둥대며 학교 가서 가르치는, 그 김빠진 일상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그리고 그런 모든 일상--바쁘게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을, 그렇게 아름다운 일을, 그렇게 소중한 일을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행하고 있는 바깥세상 사람들이 끝없이 질투 나고 부러웠다. 하루는 저녁 무렵에 TV를 보는데 유명한 보쌈집을 소개하는 프로가 방영되었다. 보쌈 만드는 과정을 소개한 다음, 손님 중 어느 중년 남자가 목젖이 보일 정도로 입을 한껏 크게 벌리고 큰 보쌈을 입에 가득 넣고 씹어서 꿀꺽 삼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상갓집에 가면 보통 육개장, 송편, 전 등, 자금자금한 음식들이 나오고 상추쌈이나 갈비찜처럼 큰 덩어리 음식은 나오지 않는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상갓집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먹는 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련을 남긴 채 이 세상을 하직하고 이제는 아무리 하찮은 음식일지라도 하나도 먹을 수 없는 망자 앞에서 보란 듯이 입을 크게 쩍 벌리고 어적어적 먹는 것은 무언의 횡포라는 것이다. 그만큼 나도 보쌈을 먹고자 입을 크게 벌리는 그 남자의 탐스러운 식탐, 꿀꺽 삼키고 나서 그의 얼굴에 감도는 그 찬란한 희열, 그 숭고한 삶의 증거에 지독한 박탈감을 느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바깥세상으로 다시 나가리라. 그리고 저 치열하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리라. 그리고 난 이렇게 다시 나타났다. 나의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강단으로 돌아왔고, 아침에 밥 먹고 늦어서 허겁지겁 학교 가는 내 일상으로 돌아왔고, 목젖이 보이게 입을 크게 벌리고 보쌈도 먹고 상추쌈도 먹고 갈비찜도 먹는다. 뿐인가, 2007년의 시작과 함께 그동안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렇게 3년 전에 끝냈던 ‘새벽 창가에서’ 칼럼까지 다시 시작한다. ‘어부’라는 시에서 김종삼 시인은 말했다. “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인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중략)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 맞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하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새해에는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갈 것이다.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만난 <샘터> 독자들과 함께 삶의 그 많은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장영희_ 서강대 영문과 교수입니다. 번역자이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수필집 <내 생애 단 한 번>에 이어, 문학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는 믿음을 나누고자 <문학의 숲을 거닐다> <생일> <축복>을 펴냈습니다. 월간<샘터>2007.1
  • 前정권 부동산정책 비판 ‘논란’

    국정홍보처가 29일부터 자체 인터넷 사이트인 국정브리핑을 통해 ‘부동산 정책사(史)’를 연재한다.지난 67년부터 올해 ‘1·11 대책’에 이르는 40년간의 정책을 망라한다.역대 정권과의 부동산 정책 차별화 시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기존 정권에 대해 ‘대증요법’식으로 쏟아낸 정책이라며 싸잡아 비판해 논란이 예상된다. 29일 실린 첫회는 “‘부동산 신호등’ 세우기 40년 걸렸다.’는 제목으로 돼 있다.88 서울올림픽 직후인 6공화국, 문민정부 출범 초기,IMF 외환위기 직후인 국민의 정부 시절의 부동산 정책 실패 사례를 일일이 열거하며 비난했다. 이어 “냉온탕을 오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국민에게 ‘때가 되면 바뀌는 것’이란 잘못된 인식을 심어줬고, 규제강화와 완화의 반복으로 ‘부동산 10년 주기설’이라는 세간의 공식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험난한 오디세이’,‘개발연대의 패러다임’,‘잘못된 관행’,‘숱한 저항과 좌절, 유혹의 역사’,‘70년대까지 우리나라에는 주택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등으로 원색적인 표현까지 동원했다. 특히 98년 양도세 대폭 인하 방침 발표 이후 분양가 전면 자율화 등 부동산 규제 완화에 대해선 “가격폭락과 거래단절로 침체에 빠진 부동산 시장을 하루 아침에 과열로 바꿔놓은 첫 단추”라며 국민의 정부에도 비판을 가했다.“부동산 시장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과 안정화에 대해 침묵했다.”며 언론의 책임도 거론했다. 반면 참여정부에 대해서는 “부동산 시장이라는 얽히고 설킨 도로에 제대로 된 신호등을 세우고 투기소득 숨을 곳을 없애는데 40년 돌아왔다.”며 의미를 부여했다.“부동산 세제 정상화와 거래 투명화 등 제도적 인프라를 처음 내놓은 점은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자화자찬도 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기고] ‘3不’ 없애야 저출산 해결된다/김장중 정보와 컨설팅 대표·행정학 박사

    인구감소로 고심하던 프랑스가 10여년째 대대적인 출산장려정책을 편 결과, 유럽 최고의 출산율 국가가 됐다는 최근 보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출산 및 양육 환경은 매우 ‘불안’하다. 불확실한 미래와 낮은 사회적 신뢰, 성장 둔화와 청년실업, 과다한 교육비에 부동산값 폭등, 여성의 가사노동 전담 등 한국적 특수상황 때문이다. 또 3대(代)가 함께 살거나 자녀가 셋 이상이면 일상생활에 많은 ‘불편’이 따른다. 방 많은 집을 구하기 어렵고 가족 나들이도 쉽지 않다. 키우고 가르치기도 힘들어 가정의 경쟁력이 그만큼 떨어진다. 특히 직장여성들은 출산에 따른 경력 단절로 경쟁에서 ‘불리’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결혼을 늦추거나 아예 하지 않으며, 결혼해도 아기를 적게 낳는 것이다. 이 결과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저출산·고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다. 지난해 8월 정부는 2020년까지 장기비전 아래, 제1차 기본계획인 ‘새로마지플랜 2010’을 발표했다. 향후 5년간 무려 35조원을 투입하며, 지자체들도 전담조직을 두어 다양한 출산지원시책을 펼친다. 하지만 출산 장애요인을 제거하여 정책의 효과성을 높이기에는 아직도 역부족이다. 특히 출산력을 가진 젊은 세대들에게 정부 시책이 확실히 와 닿지 않고, 출산 동기를 유발할 만큼 획기적이지도 않다.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조차 “출산장려금은 효과가 없고 신세대들은 1000만원을 줘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다. 출산장려를 위해서는 일과 가정의 양립, 가사노동에 남녀 공동 참여, 출산과 양육의 사회적 책임 강화 등 출산친화적 환경 조성이 급선무다. 또 경제 활성화로 일자리를 창출해 젊은이들에게 자립과 안정감을 주고, 교육비와 집값 부담을 더는 것도 중요하다. 이에 더하여 출산과 양육으로 인해 ‘불안’ ‘불편’ ‘불리’하지 않는 사회로 전환되기 위해 다음과 같은 획기적 대안이 필요하다. 먼저, 편안한 육아환경 조성을 위한 주거구조 개선과 인프라 구축이다. 아이들이 많거나 부모님의 육아도움이 필요한 가정에는 복층형 아파트(1+1/2형)를 저렴하게 분양(임대)하고 세제 혜택을 주자. 또 아파트 1층에 공동육아시설을 설치하고, 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을 ‘육아도우미’로 활용하자. 둘째, 다자녀가정에 승합차 구입비 할인과 세제 혜택이다. 이제 자동차는 필수 생활수단이자 ‘이동하는 안방’이기에, 편안한 가족이동권이 중요하다. 셋째, 기혼자나 다자녀부모를 우대하는 인사제도 실시다. 공직부터 기혼자나 자녀가 많은 사람을 우선 채용하고 일정 인원을 뽑는 채용목표제를 적용하자. 부부의 근무지 인접 조정은 물론, 동일 조건일 때는 승진우선권을 주자. 넷째, 다자녀를 둔 여성엘리트의 공직추천 확대다. 프랑스 대통령후보 루아얄 여사(네 자녀)는 환경부장관이던 38세 때 갓 낳은 셋째를 안고 카메라 앞에 나타나 출산 붐을 일으켰다.5남매 엄마임을 늘 자랑하는 펠로시 여사는 36세 때 주지사 후보자 선거홍보물에 우표 붙이는 일부터 시작해 미국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이 됐다. 다섯째, 다자녀가정에 상속세 및 증여세의 역진(逆進)적 인하다. 출산율이 저조한 고학력·고소득층의 출산을 촉진하고 인구의 질 향상에 기여한다. 부의 자연스러운 재분배를 통해 사회적 안정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아울러 ‘부부 및 부모교육’ 의무화, 다자녀 가정에 대한 ‘할인 쿠폰’ 발급,‘농어촌 이주지원’도 필요하다. 특히 여성의 생애 경로를 변화시키는 정책과 제도 구축은 가장 저렴하면서도 확실한 대안이 될 수 있다. 학업→취업→결혼→출산→휴직의 현행 구조가 결혼→출산→육아→취업으로 전환된다면, 양육과 사회참여 둘 다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장중 정보와 컨설팅 대표·행정학 박사
  • [HAPPY KOREA] 분당·남양주·일산 3곳 도시생활

    [HAPPY KOREA] 분당·남양주·일산 3곳 도시생활

    누구나 인정할 만한 살기 좋은 지역이 없다고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장점을 살리면 언제든 탄생할 수 있는 게 살기 좋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분당 시범단지,‘여성·아이들을 위한 곳’ 신도시라는 개념조차 없었던 1980년대 말 정부의 수도권 5대 신도시 개발계획에 따라 ‘모델 하우스’ 개념의 시범단지가 우선 조성됐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1동 시범단지 주민들은 20여년이 지난 지금,‘여성들을 위한 천국’으로 단지를 표현한다. 분당 시범단지는 대단위 주거지에 대한 도시설계제도가 처음으로 적용된 곳이다. 천편일률적인 판상형 아파트단지의 틀을 깨고,5∼30층짜리 저층 및 고층 아파트가 조화롭게 지어졌다. 28만평으로 작지 않은 규모지만, 동서남북을 잇는 녹지 간선과 보행자 전용도로가 시범단지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차량용 도로와 보행자 구간은 서로 격리돼 있다. 동사무소·우체국·소방서·파출소·초중고교 등 공공시설, 쇼핑센터·병의원 등 편의시설은 단지 중앙에 배치돼 접근이 쉽다. 인근 지하철 분당선 서현역을 중심으로는 각종 상업시설도 들어서 있다. 이경숙(47·여)씨는 “편리한 여건 때문에 1991년 첫 입주자들이 지금까지 상당수 남아 있으며, 제2의 고향으로 여겨 전·출입도 적은 편”이라면서 “특히 여성들과 아이들이 살기에는 천국”이라고 말했다.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분당 시범단지가 ‘건강한 환경’보다 ‘보기 좋은 환경’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지적이다. 단지 주변에는 중앙공원과 자연녹지 등이 있지만,4차선·8차선 도로에 가로막혀 단지와 단절돼 있다. 이처럼 도시 및 공간배치 계획을 어떻게 세우고, 실천하느냐가 주민들의 삶의 질을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남양주 평내아파트, 문화가 살아야 아파트가 산다 아파트에서 ‘이웃사촌’은 어색한 표현일 수 있다. 폐쇄성이 원인이다. 하지만 경기 남양주시 평내동 평내금호어울림아파트 주민 4000여명에게는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들이 있다. 김진문 주민자치회장은 “대부분의 아파트는 단지만 있을 뿐, 문화는 없다.”면서 “아파트 문화가 살려면 공유공간이 필요하며, 공간에 걸맞은 프로그램도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곳 주차장은 모두 지하로 내려갔다. 지상은 주민들이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꾸며졌다. 단지 중앙에 각종 행사를 열 수 있는 이벤트광장을 비롯, 쌈지공원·수영장·노천카페·야외운동실 등이 마련돼 있다. 피로티(건물 전체 또는 일부를 지상에서 들어올려 만들어지는 공간 또는 기둥)는 화랑처럼 예술작품으로 채워졌다. 주민들은 정기 음악회·영화제·시화전 등 공유공간을 활용할 프로그램을 스스로 만들었다. 단지내 도서관과 유아원, 어린이집 등을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비영리로 직접 운영하고 있다. 김씨는 “주말이면 단지는 주민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떠들썩하다.”면서 “문화가 생기면 주민들의 정서를 변화시키고, 자연스레 이웃간 예의범절도 지키는 것 같다.”며 미소지었다. ●일산 전원주택단지,“아파트 쏠림현상은 딴세상 얘기” 전국적으로 이른바 ‘잘나가는’ 지역은 십중팔구 아파트단지나 주상복합아파트다. 같은 맥락에서 아파트에 대한 ‘쏠림현상’이 심화되고 있지만,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1동 전원주택단지 주민들에게는 ‘딴세상’ 얘기다. 박선자(67·여)씨는 “주택단지 대부분은 도시 외곽에 있어 편의시설 이용 등에 불편한 점이 많지만, 이곳은 일산의 중심”이라면서 “아파트 선호현상을 깨려면 주택단지의 주변환경부터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발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은 이곳은 드라마 촬영장소 등으로 각광받는 명소다.70∼90평 단위로 지어진 단독주택 어느 것 하나 같은 모양이 없다. 주택지 골목길이 주차장처럼 변했지만, 이곳은 5가구별로 공동주차장을 마련해 도로 위에 세워진 차량을 찾아보기 어렵다. 인근에는 국립암센터, 마두시립도서관, 일산동구청, 지하철 3호선 정발산역 등이 자리잡고 있다.1995년부터 입주가 이뤄진 이후 지금은 일산의 ‘베벌리 힐스’로 통한다. 박씨는 “전원생활과 도시생활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면서 “4대가 함께 살았는데, 아파트였다면 공간구조상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단지 조성 초창기만 해도 노년층이 많았다. 지금은 일정 수준 부와 명성을 이룬 30∼40대 중상류층이 주축이다. 마을이 젊어지면서 주민간 의견교환을 위해 인터넷 카페를 운영하고, 마을청소도 주민들의 몫이 됐다. 이미화(42·여)씨는 “주택은 관리가 어렵다고 말하지만, 분위기 등을 내 손으로 직접 바꿀 수 있어 힘든 게 아니라 즐거운 일”이라면서 “관리비용도 아파트에 비해 많은 편이 아니라, 이곳을 떠나 아파트로 이사했던 이웃들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성남·고양·남양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살기좋은 마을요? “도시에선 글쎄…” “도시에 있는 살기 좋은 마을이나 동네를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도시계획 및 건축 관련 전문가 10여명에게 이같은 질문을 던졌지만, 선뜻 답변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몰라서가 아니라,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살기 좋은 지역의 요건으로는 ▲일자리 등 경제적 환경 ▲교통 등 기반시설의 편리성 ▲교육·의료·문화·복지 등 생활인프라 접근성 ▲주민 상호간 교류 가능성 ▲주변 자연환경과의 조화 등이 꼽힌다. 하지만 이같은 요건을 두루 갖춘 마을이나 동네는 현재로선 드물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대부분의 신도시가 도로와 같은 기반시설 위주로 도시계획이 세워져 세부적인 공간계획은 미흡하거나 중복되는 측면도 많다.”면서 “심지어 민간에서 개발을 주도하는 경우 기반시설이 있는 곳에 주택단지를 만드는 ‘무임승차’도 많아, 결국 기반시설 부족현상을 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도시는 신도시보다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전문가는 “현재 도시재개발은 헌집을 헐고 새집을 짓는 형태의 물리적 환경만 바꾸는 수준이며, 지역공동체 등 사회적 환경은 오히려 악화된다.”면서 “도시재개발보다 도시재생이라는 차원에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마스터플랜을 어떻게 세우느냐 보다는, 실제로 계획을 얼마나 충실하게 따르느냐가 더욱 중요한 시점”이라면서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는 없는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는 활동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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