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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평무 이현자씨(이세기의 인물탐구:162)

    ◎45년간 전통무용 외길 걷는 ‘명무’/“춤꾼은 춤으로…” 정중동속 현란한 춤사위 매혹적/육순넘긴 나이에도 스승 섬기는 일편단심은 극진 ‘태평무’는 어떤 춤인가.‘태평’이라는 큼직한 수식때문에 얼핏 궁중정재로 착각하기 십상이다.그러나 탐스러운 큰 머리에 떨잠,색동을 달아지은 화려한 녹원삼속에 당의를 입고 왕과 왕비,태평성대를 축원하는 춤이긴 하지만 정재와는 다르다.이 춤은 전설적인 명무이던 한성준옹이 1920년대 경기무속중 진쇠장단에 맞춰 끌어낸 것으로 손녀인 한영숙과 제자이던 강선영에게 전수되었고 지금은 강선영의 후계자인 이현자가 이어받고 있다. ○93년에 준문화재 올라 ‘태평무’는 지난 88년 12월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된 후 이현자는 긴 조교생활과 이수자 전수조교를 거쳐 93년에 준문화재에 올랐다.같은 스승에게 배운 춤이면서도 한영숙의 춤은 깨끗하고 단정한 데 비해 강선영의 춤사위는 눈부시게 화려하여 방만한 거드름이 곳곳에 뿌려진다.잔걸음과 겹걸음,남치마를 슬쩍 걷어올릴때 홍치마가 드러나는 순간은 어떤 춤에서도 느낄수 없는 ‘경이감의 극치’로서 느린 동작에선 우아한 정중동의 절도를 지키고 잦은 장단에서는 멋과 흥과 교태가 번쩍인다.이현자의 춤은 스승으로부터의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폭이 넓고 화사하여 현대에 맞춘 새로운 구성으로 꾸며지고 있다. 이현자.그의 인내심과 미동이 없는 ‘일편단심’은 무용계에서는 ‘바위같은 과묵’으로 통한다.멀리서 지켜보노라면 육십을 넘긴 나이에도 스승을 받들어 앞세우는 자세가 언제나 반듯하고 정성스럽다.풍문여고 1학년때인 15세에 강선영 고전무용연구소에 들어와서 만 45년동안 단한번도 낯을 붉힌 적이 없고 스승에 대한 존경과 충성심은 날이 갈수록 극진한 것으로 소문나 있다. 당시 학교연극에서 필요한 춤사위를 배우러 다가 창가에 앉아있던 스승을 보고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 줄 알았고 막상‘승무’를 보자 ‘한눈에 경도되어’ 스승의 춤추는 모습을 한번이라도 더 바라보기 위해 연구소에 다니게된 경우이다.실제로 그는 다른 예술가들처럼 춤에 대한 재능을 타고났거나 집안에서춤을 가르치려는 열의를 보인 사람은 없었다. 순서울토박이로 어릴때는 공업연구소에 다니던 부친(이춘만씨)덕분에 어려움 모르고 자랐고 부친 타계후 어머니 혼자서 딸만 넷을 키우는 힘겨운 사춘기를 보냈다. 그래서 집이 있는 성북동에서 안국동의 학교,다시 학교에서 을지로에 있던 연구소에까지 걸어다니면서 돈을 모아 레슨비를 충당했다.스승에게 배운지 3년만에 연구생들을 지도하면서 뒤늦게 ‘태평무’를 배우게 됐으나 가락을 익히고 발짓을 소화하는 데만 수년이 걸렸다. ○75년 개인무용단 운영 고교졸업후 스승의 조교로 남아 그는 연구소에서 발디딤과 발구르는 동작연습으로 밤을 지새울 때가 많았다. 이후 연구소가 을지로 3가와 7가,광화문과 서대문에서 홍은동에 정착하기까지 그는 스승의 그림자가 되어 검무 장검무 즉흥무와 무당춤을 섭력했고 지난 59년에 원각사에서 첫 무용발표회,75년에는 자신의 무용단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언제나 스승이 먼저이고 그의 일은 뒷전으로 미루었다. 그의 활동을 지켜본 무용평론가 정병호씨는 ‘한국전통무용을 잇는 수많은 후계자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너그러운 인간성과 심오한 예술성이 돋보이는 이현자의 춤은 큰 키때문에 태평무만의 멋을 시원하게 살린다’고 호평했다.그러나 어떤 찬사에도 불구하고 ‘일평생 내 스승의 춤만이라도 제대로 배우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고 했고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는 없다’고 호평을 사양하려 들었다. 스승인 강선영씨의 제자사랑도 친부모이상으로 다감하여 자신을 대신할사람은 ‘이현자밖에 없다’는 것이며 지난 77년 ‘무용한국’ 창간10주년 기념공연과 80년 춤지도자공연에 이현자를 내세워 춤추게했고 ‘무대를 꽉 채우는 풍성함과 능란감의 매혹’이라는 평을 이끌어 냈다.그때 스승이 무대뒤로 찾아와 ‘참으로 잘추었다’는 칭찬한마디가 어떤 찬사에도 비교할 수 없이 ‘너무나 기뻐서 하늘로 날아갈 듯’하다던 이현자의 감동은 누구나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35년만에 개인발표회 심성이 곱고 착한 만큼 그의 지난 세월은 시련과 파란곡절의 중첩이었다.1주일이면 4,5일씩 스승댁이나 연구소에 머물러도군소리 한마디 없었던 부군(최이영씨)이 지난 84년 사업실패로 앓다가 타계하자 그는 혼자서 가족 생계를 꾸려나갈 수 밖에 없었다.어떻게 살아갈지 앞길이 막막할 때 스승은 곁에서 ‘나역시 수많은 고초를 혼자서 겪었다’고 끝없이 격려하면서 용기와 힘을 주었다.덕분에 자녀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킬 수있었고 위로 남매는 결혼,지금은 차녀(보경·일본유학중)차남(원준·명지대)과 살고있다. 요즘도 스승의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것을 확인해야만 그는 성북구 동선동에 있는 자신의 연구소로 돌아온다.‘춤추는 사람은 춤으로 말한다’는 신조를 굳건히 지키면서 중요무형문화재공연과 ‘명무전’공연에 참가하고 얼룩진 세월에 시달려 그동안 연기해오던 개인발표회를 실로 35년만인 지난해 겨울에 선보였다.무용계는 ‘과연 스승을 능가하는 무르익은 춤’으로 최대의 극찬을 보냈으나 그때도 그는 ‘스승의 후계자’라는 자리만으로도 ‘이 세상의 어떤 행운과도 바꾸지 않는다’고 겸손을 잃지 않았다.‘배우기 힘들지만 배우지 않으면 안될 춤을 스승 가까이에서 배울 수 있었고 그런 큰 스승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그의 춤은 스승이 계셨기 때문에 한층 ‘내실’을 다질수 있었다고 강조하기를 잊지않았다. 흰버선발이 겹걸음으로 디딜 때,그리고 긴소매를 슬쩍 들어올려 어깨에 얹었다가 뿌리칠 때의 흔들림속에서 그의 춤의 한끝은 언제부턴가 눈부신 광채가 장식되고 ‘정중정’속에서도 예술의 연륜이 묻어나는 ‘현묘의 동’을 절묘하게 춤춘다.지금 가장 정상에서 능라금수를 수놓는 시기로서 그는 비로소 춤인생에서의 태평성대를 맞고있다. □연보 ▲1936년 서울출생 ▲1951년 강선영고전무용연구소 입소이후 현재까지 무용단 경영 ▲1955년 풍문여고졸업 ▲1956년 ‘태평무’사사, 풍문여고및 경기여고 무용강사 ▲1958년 이현자고전무용학원개설 ▲1959년 제1회무용발표회(원각사) ▲1960년 제2회 무용발표회 ▲1962년 이현자무용발표회(국립극장) ▲1963년 미국‘세계민속예술제’참가 ▲1965­67년 이대강사 ▲198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이수자 선정 ▲1990년 ‘태평무’전수조교 ▲1993년 중요무형문화재 ‘태평무’후보지정,대악회이사,강선영춤 55주년 기념공연,대전엑스포공연 ▲1996년 LA공연 및 ‘태평무’ 지부 선정,KBS전통무용 심사위원 ▲1997년 이현자무용공연(경복궁), 동아무용콩쿠르·전국국악제·서울시립무용단·인천시립무용단 심사위원,이대및 한성대출강.일본 고베와 미국 시카고 등 수회공연, 한국예총 예술문화대상(97년)
  • 국민회의 ‘차기정권 과제’ 의원세미나 주제발표 요지

    ◎송자 명지대 총장/경제위기 원인과 극복 방안/실용주의적 정치인이 필요한 시대 국민회의는 17일 상오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김대중 대통령당선자 등 당지도부와 소속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차기 정권의 과제를 모색하는 세미나를 개최했다.이날 세미나에서 송자 명지대 총장과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각각 ‘경제위기 원인과 극복방안’과 ‘역사적 전환기의 집권 여당의 과제’를 주제로 차기정권의 국정운영방향을 제시했다.이들의 강연을 요약한다. 새정부와 국민회의가 향후 5년간 반드시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고 이루겠다는 생각을 말아야 한다.야당이 여당이 된 것은 혁명이 아니라 진화의 과정으로 생각해야 한다.여당아 됐다고 조급히 업적을 쌓으려 하지 말고 자손만대에 물려줄 대한민국의 역사의 터를 잡아놓는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이제 철저하게 실용주의적인 정치인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도그마에 빠진 사람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는 시대다.국민회의 의원들이 야당이었을 때 무슨 말을 했는지,무어라 약속했는지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중요한 것은 미래이기 때문에 미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일관된 정책추진이 중요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책의 일관성과 일관된 추진이 필요하다.다른 말로하면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투자자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척도는 예측 가능성이다.따라서 좋은 정책을 펼친다는 이유로 정책을 다시 바꾸는 것보다는 나쁜 정책이라도 일관되게 밀고 가는 것이 좋다. 이제 여당이 된 만큼 타협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타협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모두 잘되기 위해 돕는 것’이다.영국은 블레어총리가 18년 만에 노동당 집권시대를 열었지만 옛 노동당으로 돌아가겠다는 따위의 얘기는 않고 있다.다만 대처전총리의 기반위에서 새정책을 추진하겠다는 하고 있다. 인사는 만사다.장관 하나를 바꾼다고 달라지지 않는다.관료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샌드위치 속의 고기와 야채 가 중요하듯이 공무원내부의 국장이나 과장을 움직이게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된다.여당의원도 미국 등 외국에 가면 장관만 만나지 말고 실무자를 만나서 일을도모해야 한다. ○조급한 업적쌓기는 금물 정치인들이 대한민국의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국민들이 정치인을 보고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정치인들이나 먼저 잘하지’라는 국민들의 생각을 떨쳐내야 하기 때문이다.김대중 대통령당선자가 당선후 첫 인터뷰에서 ‘기업천국을 만들겠다”고 말한데 강한 인상을 받았다.21세기는 정치인의 시대가 아니라 경영자의 시대다.경영자들이 종업원에 의한 종업원을 위한 종업원의 정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일할 수있을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장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대한민국의 교육을 바꿔 놓아야 한다.미국대학의 총장들은 미국대학이 살아있는한 미국은 2등을 하지 않는다고 자부한다.교육도 민영화해야 한다.새것이 안나오는 대학은 그야말로 별볼일 없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전환기 집권 여당의 과제/‘민주적 시장경제’를 개혁 지침으로 김대중 정부는 선거를 통한 건국후 최초의 정권교체로 진정한 국민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절차적 수준에서 민주주의를 완성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김대중 정부는 그러나 앞 정권에 비해 경제주권에 있어서 심대한 제약을 받고 있다.다만 이 위기는 새 정부를 위해 커다란 가능성이기도 하다. 한국은 세계화에 순응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세계금융자본이 주도하는 국제주의적 규범과 체제를 그대로 따라서는 안된다.한국적 모델을 발전시켜 한국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김당선자가 제시한 ‘민주적 시장경제’개념을 개혁의 가이드라인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부패 청산·맑은 정치 실현을 ‘민주적 시장경제’는 첫째 정부가 시장원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시장 경쟁이 생산적일 수 있도록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해야 하며 정부가 시장에서의 약자를 적극 보호해야 한다.아울러 IMF체제에 따른 고통분담에 관해 타협을 해야 한다.노사정협의체제를 통한 사회협약의 창출은 IMF체제하의 한국에서의 새로운 발전모델이라 할 수 있다. 향후 집권여당의 과제는 우선 부패의 청산과 청정정치의 실현이다.다만 정치개혁론이 국회의원수를 줄이는 식의 정치축소론으로연결되어서는 안된다.둘째 절제와 금욕이 요구된다.집권초기의 원칙과 단심을 견지하려는 도덕적 자세가 필요하다.김영삼 정부하의 민주계의 실패,한보사태,김현철 비리사건으로부터 무겁게 배워야 한다. 부패로부터,청탁으로부터,사연으로부터의 자유는 집권엘리트들이 견지해야 할 자세이다.셋째,정책정당으로 변화해야 한다.대통령과 청와대만이 주도하는 개혁이 되지 않아야 한다.넷째,시민사회와의 연계강화를 통해 당의 대중화,개방화가 필요하다.다섯째,정부와 국민,국가와 시민사회간 교량역할을 해야 한다.여섯째,당이 수렴한 여론을 당정이 정책화하고 이를 정부가 집행하며 책임은 당정이 함께 지는 당정관계가 요구된다.일곱째,국민회의와 자민련간 연대 유지 노력이 중요하다. 두 당의 균열은 보수적 기득세력과 야당의 공격으로 지지기반의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여덟째,의원 빼가기와 같은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민사회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국민지지를 창출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아홉째,시민단체 등 비정부기구(NGO)의 정치참여를 확대하는 참여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열째,하의상달식 의사결정구조,주요공직후보 및 당직의 실질경선,지구당의 기능전환 등 당내 민주주의의 강화가 요구된다. ○세계화속 한국적 대안을 새정부의 개혁노선은 실패할 가능성과 장애요인이 곳곳에 있다.무엇보다 구조적 제약이 크다.새정부는 사실상의 연립정부이며,의회는 보수야당이 압도적 다수를 점하는 여소야대이다.재벌개혁은 성과가 불투명하고 노동이 참여하는 사회협약은 언제 파기될 지 모른다.또 대통령이 너무 많은 권력과 결정의 구심점이 돼 자칫 직무수행에 있어서 과부하의 위험성이 있다.유능한 보좌진들에게 권위를 위임하고 역할을 분산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 의병 제대 심사 강화/연내 복심제로 변경/국방부 방침

    군 복무중 각종 질병으로 조기 전역하는 ‘의병 제대자’심사가 강화된다. 국방부는 9일 의병 제대제도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올해안에 현행 단심제인 심사절차를 복심제로 바꾸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의병제대를 하려면 우선 치료중인 군병원의 의무조사위원회 결정을 거친 다음 담당 전문의와 다른 병원의 군의관,상급부대 관계자 등이 참가하는 2심을 통과해야 한다.
  • 신윤복 ‘미인도’의 여인(한국인의 얼굴:126)

    ◎넓은 이마·초롱초롱한 눈망울/옷고름 매만지는 자태 선정적 조선시대 미인도는 풍속화속에 자리잡았다. 조선 후기의 여인들 얼굴을 빌려 완성한 미인도는 물론 얼굴이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를 그린 그림이다.사녀도따위의 여인 그림도 넓은 의미로보면 미인도에 속한다. 그러나 18세기에 활약한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과 같은 풍속화가들의 그림이 미인도로 자리매김 되었다. 미인도는 신비롭고도 고상한 운치를 말하는 신운이 풍겨야 제격이다.그리고 내면세계가 우러나는 내태와 미모에서 오는 외태도 미인도가 갖추어야 할 요건이다.그러니까 얼굴이 곱고 예쁘다고만 해서 다 미인으로 보지는 않았다.누구인가를 무척이나 그리는 정감어린 속내가 어려야 미인이라는 논리가 미인도의 개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혜원 신윤복은 ‘미인도’를 그려놓고 ‘가슴속에 감춘 온갖 봄 기운을 붓끝으로 전신했다’는 글귀를 붙였다.봄은 정을 쏟아붓고 싶은 여인네 속마음이다.그 발정까지 끄집어내 그렸다고해서 혜원은 전신이라는 말을 썼다.그는 비록 그림이라할지라도 화폭에 가만히 들어앉은 여인을 그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그래서 와락 끌어안으면 품속을 파고 들 그런 동적인 미인을 육감적으로 그려냈다. 혜원 그림의 미인은 깔끔하게 빗은 머리를 땋아서 틀어올린 트레머리 가채를 썼다.트레머리끝에 매달린 자주색 댕기와 귀밑 살적머리가 애교스러운 여인은 목이 길다.그 길다란 목뒤로 돋아난 실머리가 감칠맛나게 휘어서 흘려내렸다.애초부터 팔등신미인을 그리고자 했던터라 혜원은 얼굴과 목을 조화롭게 인배했다.그래서 고고한 미인으로 묘사되었다. 미인 이마는 넓다.그 아래로 초생달같은 가는 실눈썹이 깨끗한데,크지 않은 눈에 총명한 기운이 감돈다. 그러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골똘한 마음이 어렸다.화장은 엷으나 볼에 탄력이 붙어 빈약하지 않은 얼굴에 동그스레한 콧방울이 피어올랐다.그 아래 작은 입술이 야무지다.귀를 보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미인은 일편단심 한 남정네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삼회장 저고리를 입은 미인의 가슴은 그리 풍만한 편은 못 되어 저고리섭이얌전하다.그럼에도 옷고름을 다 매듭짓지 않은채 한 쪽 고름을 왼손 엄지에 끼어 자긋이 눌렀다.기다리는 마음이 초조해서 일까….오른손으로는 가슴에 달아맨 삼작노리개를 매만지고 있다.왼쪽 겨드랑이로 삐죽 늘어진 붉은색 띠가 왼쪽 치마 단 밑으로 고개를 내민 버선발과 더불어 선정적이다.시체말로 섹시해 보인다.
  • 북한지역 고려유적 첫공개/KBS ‘일요스페셜’…만월대도 영상복원

    북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는 가운데 KBS-1TV ‘일요스페셜’이 현재 북한지역에 남아있는 고려왕조의 유적과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살필수 있는 프로그램 ‘분단후 첫 공개­한눈에 보는 고려유물’을 선보인다.16일 하오 8시. 한 중국동포가 북한당국의 협조를 얻어 3년여에 걸쳐 북한 전역을 다니며 촬영한 내용을 담은 것으로 말로만 듣던 북한내 희귀 문화재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고려 태조인 왕건의 묘 내부가 최초로 공개돼 무덤안에 있는 십이지상 조각과 세한삼우도가 선보인다.또 1천년전에 사라진 고려 왕궁 만월대를 현재 남아있는 터와 옛 문헌들을 참조해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영상복원하며,기원(AD)4세기에 만들어진 고구려 안악3호 고분의 장대한 내부벽화를 통해 1천500년전 왕실과 일반 서민의 생활풍속을 조명한다. 898년에 지어져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는 성불사 응진전의 화려한 단청도 볼거리.1천년 이상을 견뎌온 고려의 건축술과 미술을 감상할 수 있다.이어 고려시대의 축성방법과 구조 등을 천리장성을 중심으로살펴보고 컴퓨터그래픽을 통해 천리장성의 모습도 재현한다. 이밖에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현지 화면과 옛 문헌을 통해 다시 엮어보는 코너도 마련하며,고려조 마지막 충신 정몽주가 단심가를 부르며 쓰러진 선죽교를 찾아 아직도 선혈이 남아 있다는 충절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KBS는 단순히 미공개 자료를 소개한다는 차원을 넘어 고려왕조의 탄생에서부터 멸망까지 시대별·사건별로 문화재와 유적을 이야기로 엮어 이해를 돕도록 했다.이를 위해 이호관 북한문화재 전문위원과 이원복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이 도움말을 보탰다.
  • 인명구조견(외언내언)

    개가 영특하다는 것은 개를 둘러싼 수많은 일화들이 이를 증명한다.외국에 가면 시각장애인을 안내하는 골든 리트리버를 어렵지않게 볼 수 있다.개는 또 척추장애자의 휠체어를 끌어줄 뿐만아니라 전화를 받거나 음료수를 가져오고 장을 봐오기도 한다.셰퍼드는 세겹으로 포장된 곰인형의 뱃속에서 대마초나 폭탄장치를 찾아내고 알프스지방의 세인트버나드는 인명구조견으로 명성이 드높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보다 차라리 마음을 알 수 있는 개가 낫다는 말은 공연한 헛소리가 아니다.전서울대 김경탁 교수의 ‘견의 윤리’는 제 새끼를 귀엽다고 핥아주는 천성은 인간의 부자유친과 닮았고 주인을 보고 짖지 않는 불폐기주는 임금과 신하사이의 의를 지니며 젊은개가 늙은개를 상대로 싸우지 않는 것은 장유유서,하나가 짖기 시작하면 온동네가 다같이 호응하는 일폐군응은 붕우유신에 비유된다고 했다.인간에 대한 개의 희생정신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은 고려때 학자인 최자의 ‘보한집’에 나온다.주인이 술취해 길에 쓰러져 잠든 동안에 들불이 번지기 시작하자 주인이 불에 탈 것을 염려하여 냇물에 몸을 적셔 주인을 살려내고 죽은 ‘견분곡’이 그것이다.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콘라드 로렌츠는 “개는 만일 주인이 죽으면 적어도 1년이상 자신을 보호해줄수 있는 어떤 다른 대상도 찾지 않는다”고 했다.실제로 일본 도쿄대 유노 이사부로교수의 애견 하치코는 아침마다 시부야역까지 교수를 전송하고 저녁이면 역으로 마중나오곤했으나 교수가 학교에서 과로로 숨진 줄도 모르고 9년간이나 역에서 기다리다 죽었다.당시 개의 수명에 비쳐볼때 하치코는 죽을 때까지 주인을 기다린 셈이다. 이번에 젊은 생명을 구해낸 3살짜리 셰퍼드 ‘번개’는 국제공인 1급자격증을 딴 인명구조견으로 승용차를 몰고 커브길을 달리다 계곡에 떨어져 죽을뻔한 대학생을 극적으로 살려냈다.인간보다 후각이 1만배,청각 40배이상에다 인간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복종은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일편단심의 차원이다.
  • 인도 아잔타(세계 문화유산 순례:41)

    ◎승려들이 700년 쪼고 다듬은 석굴 ‘장관’/말굴모양의 600m… 30개 동굴 조성/화려한 벽화로 장식… 호화궁전 방불 세계적인 불교예술의 보고 아잔타의 불가사의는 장자가 꾸었다는 호접몽(호접몽)의 고사에 견줄만했다.현기증이 날만큼 까마득한 자연암벽을 뚫고 들어가 오직 불은만을 생각하며 700년 이상 깎고 다듬어 만든 종교적 신앙심의 결정체.그 앞에서의 벅찬 감흥은 사물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경지 바로 그것이었다. 아잔타 석굴은 기원전 2세기 무렵부터 기원후 7세기경에 걸쳐 조성됐다.이 석굴은 하마터면 영원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했다.8세기에 들어 불교가 쇠퇴하면서 그만 정글에 묻힌채 1천년 이상 방치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그런 아잔타 석굴에 한 영국군 장교가 ‘환생’의 기쁨을 안겨줬다.1819년 인도 중부 데칸고원 일대에서 호랑이 사냥에 나섰던 존 스미스라는 영국군 기병대 장교가 그 장본인이다.야생 넝쿨속을 더듬던 그는 암벽 사이에서 동굴을 하나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다.동굴 안에는 휘황찬란한 채색벽화와 각종 조상들이 그득했다.그는 주위에 그런 동굴들이 온통 무리를 지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또 한번 놀랐다.그렇게 아잔타 석굴은 긴 역사의 잠에서 깨어났다. ○기원전 2세기부터 ‘시공’ 아잔타 석굴은 인도 중부의 고도 아우랑가바드에서 북동쪽으로 100여㎞ 떨어져 있다.아잔타로 가는 교통요지인 아우랑가바드에는 아잔타행 지역버스가 하루 네차례씩 다닌다.30루피의 요금을 주고 버스를 탔다.버스는 데칸고원의 앙가슴을 파고들었다.고원의 뜨거운 땅기운과 쏟아지는 햇살,거무틔틔한 면화토가 이국정취를 자극했다.3시간 가량 달렸을까.버스는 아잔타 석굴로 올라가는 입구앞 정류장에 멈춰섰다. 데칸의 품안을 흐르는 와그라 강 협곡을 따라 늘어서 있는 아잔타 석굴은 말발굽처럼 구부러진 모습이었다.아잔타 석굴은 모두 30개에 이른다.장장 600m에 걸쳐 있는 이 거대한 석굴군에는 편의상 입구에서부터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다.그러나 그것은 연대기적인 순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아잔타 석굴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1번 굴이다.버스정류장 앞 돌계단에서 1번 굴까지는 불과 200m 거리다.허위단심으로 층층대에 오르니 왠 건장한 장정 둘이 옷깃을 잡아 당겼다.인도의 1인승 가마 ‘팰런킨’(palanquin)을 타라는 것이었다.집요한 그들의 손길을 간신히 뿌리치고 1번 굴까지 걸었다. 그 1번 굴은 6세기경에 만들어졌다.돌에서 채취한 자연물감으로 그렸다는 화려한 프레스코 벽화들로 장식돼 마치 호화궁전 같았다.이 벽화들은 세월에 절어 선연한 빛은 잃었지만 살아 숨쉬는듯 생동감이 넘쳤다.그중에서도 뒷 복도 왼쪽에 있는 ‘보디사트바 파드마파니’라는 보살그림은 단연 압권이었다.오른손에 연꽃을 한송이 들고 있다고 해서 지연화보살화로도 불리는 이 벽화는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그린 일본 법륭사의 금당벽화를 쏙 빼닮았다.기품있는 표정과 자연스레 흘러내린 곡선의 아름다움은 신조지교란 말을 실감케 했다. ○1819년 영군장교가 발견 아잔타 석굴은 기원전 2세기경부터 1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전기동굴과 5세기 중엽부터 7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후기동굴로 나뉜다.연대순으로 보아 가장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2세기경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10번 석굴이다.전기 동굴은 이른바 무불상시대에 조성돼 본당에 불상을 모시지 않았다.대신 중앙에 거대한 돔을 연화대위에 두었다.좌우에는 회랑형식으로 기둥을 깎아 놓아 통로로 삼았다.10번 석굴은 ‘차이티야’,곧 불사리탑인 스투파를 모신 탑원식 예불당이다. 차이티야가 불당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동굴이라면 ‘비하라’,곧 승원식 동굴은 승려가 살기 위해 만든 요사채 형식의 동굴이다.이 양식을 대표하는 것이 12번 석굴이다.굴안에는 바위를 쪼아 만든 한평 남짓한 방들이 10여개나 벌집처럼 들어 앉았다.다리를 겨우 뻣고 눕기에도 비좁은 방안에는 돌침대까지 마련됐다.고양이 이마빼기만한 이 숨막히는 방에서 어떻게 살았을까.선정삼매에 빠져 수행정진하는 옛 선승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잔타의 벽화는 석가세존의 전생담인 ‘자타카(jataka)’와 그의 일생에서 소재를 취한 것들이 대부분이다.아잔타에서 가장 큰 비하라 동굴인 4번 석굴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28개의 기둥에 의해 실내가 지탱되어 있는 이 굴에서는 무엇보다 팔상도가 그려진 벽화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팔상도는 석가세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일생동안 드러낸 여덟가지의 변상을 다룬 그림이다.싯다르타 태자 시절의 궁중생활이며 당시의 상가,악기,동물 등에 대한 묘사가 더할나위 없이 섬세했다.16번 석굴에서는 부처의 이복동생 난다의 아내 순다리가 남편의 출가수행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가 주목을 끌었다.이른바 ‘죽어가는 공주’ 벽화다. ○불당·요사채 형식 동굴 아잔타 석굴 벽화 중에서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것은 17번 굴의 벽화다.탁발하고 카필라성으로 돌아온 부처를 맞이하는 야소다라 왕비와 아들 라후라 왕자의 애처러운 표정이 그대로 눈에 잡혔다.아잔타 석굴답사에서 결코 빼놓을수 없는 그림 하나가 더 있다면 열반상일 것이다.26번 석굴 출입구 왼쪽에는 길이가 7m에 이르는 인도 최대의 열반상이 누워 있다.오른손을 베개 삼아 평온하게 누운 부처의 얼굴에 청정무구한 불국정토의 상이 겹쳐졌다.오! 아잔타여.
  • ‘눈물의 시인’ 노천명 당당한 자리매김

    ◎시선집 ‘사슴’ 산문·소설집 ‘나비’ 출간/현대 여성시사에 남긴 족적 재조명 ‘남색 치마 반회장 저고리로 외롭게 살다간 사슴의 시인’ ‘태어날 때부터 고독했던 여자’ ‘잦아드는 눈물의 시인’‘한국의 마리 로랑생’….시인 노천명을 둘러싼 수사들은 그가 남긴 몇장의 빛바랜 흑백사진 만큼이나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1938년 첫 시집 ‘산호림’으로 화려하게 문단에 입성,‘창변’‘별을 쳐다보며’‘사슴의 노래’등의 시집을 내며 한국 현대여성시사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노천명.그러나 그의 문학은 우리 문학사의 이면에 매몰된 채 오독되거나 혹은 폄하되어 왔다.최근 솔출판사에서 펴낸 노천명 전집 ‘사슴’과 ‘나비’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노천명 문학에 대한 정당한 자리매김을 시도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노천명은 일제 말기의 친일시 파문이나 한국전쟁중의 부역행위 등 시대의 어둠속에서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굴절된 모습을 보였다.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그의 시는 한국 여성시의 출발을 논하는 이정표가 된다는 점에서문학적으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이번에 펴낸 노천명 전집은 특히 유실위기에 처한 그의 시들을 찾아 복원,노천명 문학 특유의 애상의 미학을 살필수 있도록 해 주목된다. 우리의 분단문학사를 극복하는데 있어 노천명의 시가 차지하는 시사적 위치는 각별하다.절제된 민족 고유어와 자유율에 바탕을 둔 전통리듬의 섬세한 재생,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문 황해도 방언과 정서의 시적 수용 등은 노천명 문학만의 미덕이기 때문이다.시선집인 ‘사슴’은 이미 나온 초간본들을 텍스트로 삼았다.수록작품은 ‘슬픈 그림’‘황마차’‘옥촉서’‘야제조’‘푸른 오월’‘수수 깜부기’‘하일산중’‘비련송’ 등 180여편.‘나비’는 산문과 소설 모음집이다.특히 ‘광인’‘나의 신생활 계획’‘내 가정의 과학화’‘백년제가 돌아오는 시인 찰스 램’‘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남자다’ 등 5편의 수필과 ‘일편단심’‘닭 쫓던 개’ 등 2편의 소설은 처음으로 발굴 소개되는 작품이어서 눈길을 끈다. ‘나비’에 실린 100여편의 산문을 통해 독자들은 노천명의 흔들리는심상풍경을 고스란히 엿볼수 있다.한 예로 그는 평생 독신을 고집했고 고독벽을 지녔다.그러나 그의 독신은 ‘산나물 같은 사람’을 찾지 못한데 따른 결과인지도 모른다.〈…산나물 같은 사람은 어디 없을까.모두가 억세고 꾸부러지고 벌레가 먹고 어떤 자는 가시까지 돋쳐 있다.어디 산나물 같은 사람은 없을까.〉 그가 부산의 한 피서지에서 쓴 ‘산나물’이란 제목의 글은 시인의 존재론적인 비극을 그대로 드러낸다.1912년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나 1957년 46세의 나이에 재생불능성 빈혈로 세상을 떠난 노천명의 문학은 곧바로 한국 현대문학사의 ‘슬픈 상징’이다.
  • 장관경조금 5만원의 의미(사설)

    장차관은 5만원,그 아래는 3만원,또 그아래는 2만원에서 1만원을 넘지않게 정했다고 한다.정부가 마련한 「공직사회 부조금」기준이다. 이웃의 경조사에 부조금을 내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므로 국무회의에서까지 그 상한선을 논의할 일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의 부조관행은 가정경제의 차원을 넘어 국가경제의 문제로까지 대두될 지경에 이르렀으므로 이런 방안도 모색해볼만하다고 생각한다. 공직사회의 관행기준은 공직자에게 직접 적용되는 효과도 크지만 일반 시민에게 제시하는 기준으로도 중요하다.『나라에서도 그러는데 우리도 그러자』는 떳떳한 명분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내는 사람만 아니라 받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기준이다.부조란 상호성을 띤 관행이므로 받고나면 『언젠가 갚아야 하는 빚』이게 마련이다. 문제는 이런 기준이 실천되게 하는 일이다.우리에게는 경조금에 얽힌 다소 이상한 심리적 현상이 있다.『어쩐지 째째한 것같아서…』분수에 안맞게 조금씩 인플레이션화하는 것이다.그것을 억제하는 역할로도 공직사회의 경조금 상한선은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오늘날의 부음관행의 확대에 대해서도 공직사회가 기준을 제한했으면 좋겠다.장인·장모의 상까지를 친상 범위에 넣는 일은 타당하지만 조부모나 형제간까지 알리는 새로운 관행이 슬슬 번져가는 일은 곤란하다. 그러므로 경조금의 상한선과 함께 대상의 기준도 정하는 것이 마땅하다.부조는 원래 뇌물의 편법으로 이용될 소지를 지니고 있다.부조범위를 확대하는 일도 그런 혐의를 느끼게 한다. 근원적으로는 경조사가 집안의 세를 과시하고 체면을 나타내는 기준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습성을 깨는데 공직사회가 앞장서야 한다.과다혼수의 악습도 이런 사회적 집단심리에 연원한다.모든 생활관행이 합리적인 흐름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시급하고 긴요한 일이다.
  • 문명속의 불만/지그문트 프로이트(화제의 책)

    ◎사회 제반문제에 대한 논문 모음집 「문명의 문제」를 평생의 관심사로 삼았던 오스트리아 모라비아 태생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1856∼1939가 자신의 인생과 연구업적을 정리하면서 주목하게 된 사회 제반문제에 관해 쓴 논문모음집.본능의 요구와 문명의 제약 사이의 대립관계를 다룬 「문명속의 불만」을 비롯,「문명적 성도덕과 현대인의 신경병」「전쟁과 죽음에 관한 고찰」「집단심리학과 자아분석」「환상의 미래」「왜 전쟁인가?」 등 6편의 글이 실렸다. 프로이트는 『문명은 인간의 두가지 본능,즉 죽음의 본능(파괴본능)과 에로스적인 본능(성본능)을 필연적으로 방해할 수 밖에 없고,이런 방해가 낳는 죄의식은 모든 문명이 치러야 하는 대가이기 때문에 자연과 문명의 화해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그는 또 『종교는 「인류의 강박신경증」이며,신에 대한 믿음은 유아적 무력함의 보편적 상태가 신화적으로 재현된 것』이라고 강조한다.열린책들,김석희 옮김,1만2천500원.
  • “시·도지사 교육감 임명제 반대”/교육감협

    ◎교육 자주성·정치중립성 위반 전국 시·도 교육감들은 18일 대전시교육청에서 협의회를 갖고 최근 정부와 신한국당이 추진중인 시·도지사의 교육감 임명제 반대입장을 표명했다. 시·도 교육감들은 이날 『최근 정부와 신한국당이 당정협의회에서 시·도 교육감을 시·도지사가 시·도의회의 동의를 거쳐 임명토록 한 것은 헌법에 명시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에 위배된다』며 『현행 방식대로 교육위원회에서 선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교육자치법은 교육자치의 정신을 살리는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하며 교육위원회와 지방자치의회의 예산안과 조례 등 각종 교육안건에 대한 이중심의제도 단심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와 함께 『대학 수능시험은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시험일자를 현행보다 늦추고 시험관리도 대학이 직접 하도록 해줄 것』을 교육부 등에 건의했다.
  • 4차례 입북·80여회 정보 보고/남파간첩 정수일 어떤활동 했나

    ◎교수신분 이용 각계지도층인물 접촉/군사시설­한미관계 등 고급정보 수집/매주 이슬람사원 기도… “북은 본점” 등 암호 사용 국내에 입국한 간첩 정수일은 외국인 교수로 완벽하게 위장했으며 간첩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독실한 이슬람교 신자로 행세하며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이슬람 사원의 정기예배에 빠지지 않았다.철저한 신분위장을 위해 사용한 가명도 「앗신」「김성철」「베닐」「왕청」「조혁」등 9개나 된다. 정은 처음에 일부러 어눌한 한국어를 구사,주위를 속였다.단국대 교수로 재직할 때는 재미있고 학점도 후한 외국인교수로 인기를 끌었다.6개국어에 능통하고 연구실에 밤늦게 남아 공부하는 교수로도 알려졌다. 전국 대학 아랍어과 교수 모임인 「한국이슬람학회」와 단국대 사학과 박사과정 출신자들로 구성된 「동서사학회」 등에 가입하는 등 활동영역을 넓혀갔다.통장에 든 1억1천3백만원은 국내에서 착실하게 모은 돈이다.이슬람문화 비평가로 인정받아 국내 일간지에 칼럼을 게재하고 방송에도 출연했다. 정계·학계·언론계·군사분야 등 각계 전문가들과 학생들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았다.이들과의 접촉 및 국내 출판물 등을 통해 입수한 각종 정보를 분석,지금까지 80여차례에 걸쳐 보고했다. 지난 1월까지는 중국 북경과 심양의 사서함을 공작거점으로 삼아 보고했다.영문으로 작성한 편지 뒷면에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은서시약」을 사용해 암호로 보고내용을 작성했다. 휴전선 부근 군사시설의 사진 및 무기도입 정보를 비롯,「체육부장관 노태우가 차기 대통령이 될 것」(84·5),「신상옥은 11·30 마유미 영화 촬영차 오지리에 갈 것임」(89·10) 등의 내용도 보고했다.90년대에 들어서는 「전민련에서 진보정당 분리」「비운동권 30% 대학생회 구성」 등 재야·학생 운동권의 움직임도 전했다. 보고할 때는 사전 약속에 따라 대통령을 「회장」,국무총리는 「부회장」,안기부장은 「총사장」,북조선을 「본점」,남조선을 「대리점」으로 표현하는 등 대용어를 썼다.북경은 「방콕」,국회는 「교회」라고 했다. 지난 2월부터는 북한의 지시에 따라 팩스를 이용해 보고했다.「외무장관미·중국 방문은 각국과 북한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것임」(96·3) 등 한반도 정세와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보고 전문에는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일편단심 충성을 다짐함」 등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에 대한 충성의 표현을 담았다. 87년 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4차례에 걸쳐 중국 등을 통해 입북,암호표,독약앰플 등 간첩장비와 공작금 1만8천달러를 지급받아 돌아왔다. 대남공작의 공을 인정받아 「조국통일상」을 받았다.〈김경운 기자〉 ◎성장 배경·침투경로/중국 길림성 태생… 63년 북한 귀환/연대어학당서 배울 필요없는 한국어 수강 간첩 정수일은 1934년 11월 중국 길림성 연길현 지신구 대흥촌에서 태어났다.3남2녀 중 장남.부모는 함북 명천에서 농사를 짓다 일제시절 가난 때문에 중국으로 이주했다. 연변 고급중학교를 거쳐 북경대학 아랍어과를 졸업했다.학업 성적이 뛰어나 55년 9월부터 3년 동안 이집트 카이로대에 유학,아랍어 문학을 전공했다. 이어 58년 9월부터 63년 2월까지 중국 외교부 연구관,모로코주재 중국대사관의 2등서기관으로 근무하다 63년 6월 북한으로 귀환했다. 10여년간 평양외국어대 아랍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김일성의 주변에서 아랍어 통역을 맡기도 했다. 74년 9월 「대외정보 조사부」 공작원으로 발탁돼 4년5개월 동안 체력훈련과 침투·사격훈련 등을 받았다. 전문공작원 교육을 마치자 79년 1월 평양을 출발,레바논의 베이루트에 도착,북한 대사관 및 「레바논·조선 친선협회」의 도움으로 유럽으로 이주한 실존인물 「무하마드 칸수」(당시 33세)라는 이름으로 국적을 취득한다.레바논에서는 당시 내전의 혼란 때문에 국적을 취득하기가 수월했다.베이루트 아랍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79년 12월 「국적세탁」을 위해 유학생을 가장,튀니지에 입국해 국적을 취득하려 했으나 호적 관계법이 잘 정비돼 어렵다고 판단,포기했다.호주·인도네시아·파푸아뉴기니·말레이시아 등지에서 국적 취득을 시도하지만 실패했다. 83년 4월 필리핀에서 레바논인 선교사와 필리핀 여성의 아들인 것처럼 속여 국적을 취득했다. 이어 말레이시아로 건너가 말레이대학에서 한국어과 교수 김모씨에게 접근,『한국어를 더 배우고 싶다』며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입학 허가를 받는다. 84년 4월29일 필리핀 유학생 신분으로 국내에 잠입,장기적인 국내 거점 확보에 들어갔다. 북한에는 「모란봉 극단」 안무지도원인 처 박광숙(61세)과 평양시당 선전국 홍보원인 미란(33),중앙통신사 기자인 달미(31),무역회사에 근무하는 소나(30) 등 세딸이 살고 있다.맏사위는 평양자연과학원 연구원인 김유성(33)이고,둘째 사위는 「28촬영소」배우인 김철(33)이다.막내딸도 지난해 결혼했다. 하지만 신분위장을 위해 88년 종합병원 간호사 윤모씨(45세)와 결혼했다.자녀는 없다.〈김경운 기자〉
  • 과세적부심제 주요 내용/문답풀이

    ◎자동과세·강세집행·탈세 혐의땐 통지안해/세액고지후 이의신청땐 심사청구만 가능/고지전 심사제와 달리 심사결과 개별 통지 ―모든 세금에 대해 결정전 통지를 하나. ▲그렇지 않다.세무조사 없이 자동 과세하는 경우와 결정을 늦추면 세금징수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에는 하지 않는다.예컨대 전기 실적을 기준으로 소득세 중간 예납세액을 고지하거나 부가가치세 예정 납부세액을 고지하는 경우,자진신고는 했으나 납부는 하지 않은 세액을 고지하는 경우,납세자가 강제집행을 받거나 조세를 포탈하고자 하는 경우가 있을 때 등은 통지하지 않는다.그러나 세무조사를 받은 경우에는 반드시 결정전에 고지한다. ―일단 세금이 결정돼 고지된 이후에 이의가 있을 때도 적부심을 청구할 수 있나. ▲청구할 수 없다.세금고지후 이의가 있으면 60일 안에 국세기본법에 의한 불복제도인 심사청구를 해야 한다. ―적부심은 어디에 청구하나. ▲결정전 통지서를 보낸 세무서나 지방청에 해야한다. ―세무서나 지방청의 적부심 결정 내용에 이의가 있으면 국세청에재심을 청구할 수 있나. ▲일반적으로는 단심이다.그러나 이의를 제기한 쟁점이 법령 해석과 관련이 있으면 재심 청구가 가능하다.사실 판단에 관한 사항은 재심 대상이 아니다. ―법령 해석과 관련된 사항을 1심을 거치지 않고 바로 국세청에 심사를 요청할 수 있나. ▲할 수 있다.또 세무서의 적부심사 과정에서 법령 해석에 관한 사항이라고 판단되면 납세자의 요청이 없더라도 세무서 재량으로 본청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적부심의 결정에 이의가 있으면 국세심판소에 심판을 청구하거나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나. ▲할 수 없다.국세심판이나 행정소송은 확정된 세금의 적법여부를 따지는 제도이다.적부심은 세금이 확정되기 이전단계에서의 구제절차이다. ▲적부심청구서와 해명자료 등을 서면으로 제출하면 되며 수수료는 없다. ―적부심을 청구하면 세금고지는 언제 하나. ▲적부심이 끝난뒤 그 결과에 따라 처리한다.따라서 적부심을 청구하면 적부심이 종료되기 전에는 고지하지 않는다. ―종래의 고지전 심사제와 다른 점은. ▲적부심은세무관서에 설치되는 심사위원회에서 결정하고 납세자에게 의견진술권을 준다.그러나 고지전 심사제는 조사담당과에서 검토해 서장이 채택여부를 결정한다.또한 적부심은 재심제도가 있고 심사 결과를 납세자에게 통지하나 고지전 심사제는 이런 제도가 없다.〈손성진 기자〉
  • 과세적부심제 새달 시행/세무조사·세금 내역 등 납세자에 사전통보

    ◎고지전 이의신청 받아 적정여부 심사/심사위서 4주이내 처리 내달 15일부터 세무조사결과와 과세할 내용을 납세자에게 미리 알려주고 이의가 있으면 신청을 받아 고지전에 적정여부를 심사하는 「과세적부심」제가 도입된다. 따라서 지금까지 서면 또는 실지등의 세무조사를 받은 납세자도 과세결정전에 자신의 입장을 해명할 기회를 갖게 됐다. 국세청은 22일 림채주청장 주재로 세정선진화기획위원회(위원장 박경상 차장) 1차 전체회의를 열어 내달 15일부터 이같은 내용의 과세적부심제도를 시행키로 결정했다.이달중 훈령으로 과세적부심사규정을 제정한다. 국세청은 과세적부심의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과세결정이 내려진 뒤 이의를 신청하는 심사청구처럼 세무조사 관련서류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도 주기로 했다. 납세자는 과세할 내용을 사전통보받은 후 이의가 있으면 먼저 2주이내에 해당세무관서에 과세의 적정성 여부를 가려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세무서나 지방국세청 등 해당세무관서는 납세자의 적부심요청을 받으면 곧바로 세무서장과 외부 조세전문가 등 5∼7명으로 구성되는 적부심사위원회를 열어 4주이내에 처리하도록 했다.원칙적으로 단심제이나 법령해석사항은 재심제이며 재심은 국세청이 맡는다. 재심청구는 납세자와 세무서 모두 할 수 있으며 1심을 생략하고 바로 재심을 요청해도 된다.국세청은 재심청구를 받으면 즉시 적부재심사위원회를 열고 역시 4주내에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 국세청은 이와 함께 올해 안에 충북 음성,충남 아산·금산,경북 봉화·청송 등에 세무서의 지서나 주재관을 신설하기로 했다. 그리고 조세민원이 급증하는 신흥개발지역에 상설세무상담실을 설치하며 오는 7월부터는 고지세금 자동안내시스템(ACS)을 시범도입한다.〈김병헌 기자〉
  • 멕시코서 태권도장 운영 문대원 관장(세계속의 한국인:2)

    ◎남미에 「한국 얼」 심기 26년/유단자 심사땐 한국역사 관련 논문 필수로/사재털어 한글학교 설립… 대사관에 기증도 『차렷,묵념.국기에 경례』 『관장님께 큰 절』 아즈텍문명의 나라,선인장의 나라,낭만적인 서반아기질이 한데 어우러진 지구 반대편의 나라 멕시코.해발 2400m의 고원에 위치한 그 수도 멕시코시티 남부 누에보 레온거리의 허름한 한 2층건물에서 거침없이 새어나오는 한국말은 세계속의 한국을 새삼 실감케 했다. 오늘은 두달에 한번씩 있는 승급심사날.하얀 태권도복에 검은색부터 흰색까지 빨강·파랑·노랑색등 제각각의 띠를 두르고 두주먹을 불끈 쥔 멕시코 청소년의 파란 눈망울에는 한국말로 된 태권도용어가 하나도 낯설지 않았다. 멕시코인에게 「그랑 마에스트로」로 통하는 문대원(52)관장이 중앙에 자리를 잡자 사범의 구령으로 간단한 의식이 치러진 뒤 바로 심사가 시작됐다.오늘 심사대상은 어린이 22명,성인 14명으로 모두 36명. 사범의 한국말 구령에 따라 먼저 어린이가 급별로 나와 기본동작을 선보이고 다음에는 둘씩대련을 한다.2시간 가까이 심사가 계속되는 동안 체육관 안에 꽉 들어찬 부모도 덩달아 손에 땀을 쥐었다. 심사가 모두 끝난 뒤 문관장은 개개인을 호명하며 지적사항을 알려줬다.이어서 부모를 향해 『단을 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청소년이 이같이 절도 있고 예와 도를 중시하는 태도를 학교에서나 가정에서나 자신의 습관으로 가질 때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함께 가질 수 있습니다.이는 개인성장에 큰 도움은 물론 멕시코 장래에 큰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역설하자 힘센 박수가 쏟아졌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호르헤 페레스군(12·코메르슈중학교 2년)은 『심사때 연습한대로 동작이 나오지 않았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번에 빨강띠를 따면 내년에는 단심사에 도전할 텐데…』라며 아쉬워했다.4년째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페레스군의 동생 빅터군(8·루돌프국교 4년)과 누나 아리아드나양(13·코메르슈중3)도 함께 심사를 봤다. 이 삼남매의 심사과정을 지켜본 엄마 마르탈루 솔리스씨(38)는 『애들이 태권도를 배우면서부터 몸도건강해지고 어른에 대한 예의도 발라졌으며 학교성적도 올라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그녀는 『요즘 아빠도 배우러 다니고 있다』면서 자신도 배울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심사에는 이 도장 출신의 유단자 선배 10여명이 나와 후배의 심사를 도와주고 멋진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다.청원경찰학교의 사범을 맡고 있다는 선배 에드와르도 샤릭 델리오씨(29·2단)는 『개인방어목적으로 시작했으나 문관장이 주는 신뢰감과 그에 대한 존경심에서 태권도에 깊이 빠져들게 됐다』고 입문경위를 설명했다. 문씨가 멕시코땅에 발디뎌 태권도를 처음 전파하기 시작한 것은 19 69년5월.그로부터 2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태권도는 멕시코시티의 46개 도장을 포함,32개주 전역에 1백84개의 도장과 3만여명에 달하는 인구를 가진 대중스포츠로 성장했다.70년대까지만 해도 멕시코 전역을 휩쓸고 있던 일본의 가라데 열풍을 완전히 잠재운 것은 태권도의 우월성에 문씨의 성실성이 보태져 멕시코인에게 참정신운동으로 큰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멕시코인에게 태권도는 바로 한국을 의미하고 그 정신은 한국의 정신을 의미한다.이는 문씨가 제자를 키우며 유달리 태권도의 역사와 기본정신을 강조했기 때문이다.유단자 심사 때는 운동 이외에 반드시 한국의 역사및 정신에 관한 논문제출과 1백시간 봉사를 필수로 해온 그의 엄격하고 독특한 교습법이 유단자에게 한국을 어버이의 나라로 자연스럽게 심어왔다. 문씨는 그동안 멕시코 대통령경호실과 육군사관학교·경찰청 등의 교관을 지내면서 많은 제자를 키워 그들이 오늘날 국회의원을 비롯,장관·주지사 등 멕시코정부내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등 멕시코 지도층을 지한파로 이끄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문씨가 83년 창설,13년째를 맞고 있는 멕시코 태권도 전국대회인 「대원문컵대회」는 단순한 체육경기가 아니라 멕시코인의 전국축제형태로 발전해가고 있다.32개주 대표가 제각기 다른 도복을 입고 출전,고향의 명예를 걸고 한판 승부를 가리는 이 대회는 창작품세로 우열을 가리기 때문에 매년 독창적인 품세가 개발되며 또 각종 호신술을 음악에 맞춘 율동으로 공연하는등 많은 볼거리 때문에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멕시코에 태권도를 전파하기 시작한 지 4년만인 73년 서울태권도세계대회에 처녀출전한 멕시코팀을 3위에 입상케 하는등 문씨의 헌신적인 노력은 멕시코정부당국의 주선으로 그에게 6년만에 국적을 취득케 하는 이변을 낳기도 했다.원래 멕시코정부의 이민불허정책 때문에 30∼40년을 멕시코에 살아도 국적을 얻기 힘든 현실을 감안할 때 그의 국적취득은 주변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문씨가 그동안 멕시코정부당국이나 민간단체등으로부터 받은 표창장이나 감사장은 수를 헤아릴 수가 없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지난해 멕시코 국회에서 받은 표창장이다.「지난 25년동안 이 사회에 모범된 사회인을 배출하는 데 애쓴 공로」라고 밝혀진 표창이유는 그에게 지난 세월 어려움에 대한 보상을 의미했다. 문씨는 이같은 자신의 활동에는 국악을 전공한 부인 정한희(42)씨의 내조의 힘이 컸다고 강조했다.인간문화재 23호 가야금병창 박귀희선생의 제자로 국내 무대에서 활약하던 정씨는 82년 결혼후에는 멕시코인과 교민에게 국악공연등을 통해 한국의 얼을 소개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정씨는 남편이 주관하는 대형 태권도대회의 중간에 국악공연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멕시코의 국제문화행사나 교민행사등에 자비를 들여서까지 참여하는 열성을 보이고 있으며 후진양성을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충남 합덕이 고향인 문씨는 대전중·홍성고를 거쳐 경희대 정외과 2년 재학중이던 62년 미국 텍사스대학의 교환교수로 가게된 부친을 따라 미국에 이주했다.이스턴 텍사스대 프리엔지니어링스쿨에서 전공을 건축학으로 바꿨으며 후에 텍사스공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중학교때 태권도를 시작,고등학교 2학년때 유단자가 되기는 했으나 문씨가 태권도인생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미국에 가서도 5년이 지난 67년이었다.그전까지는 태권도에 호기심을 갖는 친구의 권유로 교내에 「블랙벨트 문」 태권도클럽을 만들어 가르치는 정도였다.그 무렵 휴스턴에서 태권도도장을 운영하고 있던 미국인 친구가 마약으로갑자기 도장을 떠나 하는 수 없이 도장을 떠맡게 되면서 인생항로가 바뀌게 됐다. 멕시코에 오게 된 것은 휴스턴에서 도장을 운영하던중 멕시코 가라데도장측의 초청으로 몇차례 멕시코시티를 방문하면서 그 진지한 분위기와 멕시코인의 열의에 마음이 끌려서였다.69년 멕시코의 가라데도장에 사범으로 초빙돼온 문씨가 처음 시도한 것은 일본인 전임사범이 만들어 놓은 일본색을 없애는 작업이었다.중앙에 걸린 일장기를 태극기로 바꾸고 사범이 앉던 높은 단을 치워 사범과 수강생이 같은 높이에 서게 했다.그리고 일본말투성이로 돼 있는 운동용어를 스페인말과 한국말 혼용으로 바꿨다. 문씨의 문하생은 다음 해부터 각종 대회를 휩쓸었고 국내대회는 물론 세계대회에서까지 입상,멕시코의 국위를 선양케 되자 태권도에 대한 인식은 날로 새로워졌다.그러나 당초 5년 뒤 파트너로 지위를 격상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도장주가 지키지 않자 74년 문씨는 독자적으로 「태권도 무덕관」 도장을 차리게 됐으며 그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씨는 교민사회에 대한 애착또한 남달라 그동안 교민회장을 두차례 역임했으며 사재를 털어 한글학교를 만들어 스쿨버스 2대와 함께 대사관에 기증하기까지 했다.1년내내 전국의 도장을 돌며 심사를 봐주는등 매일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는 문씨는 이제 자신의 소망을 태권도와 한국고전무용을 가르치는 조그마한 학교를 설립하는 데 두고 오늘도 열심히 뛰고 있다.
  • 허탈한 노씨 경호원들/김환용 사회부 기자(현장)

    ◎“목숨보다 소중히 지켰는데 범죄자라니…”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16일 하오 노씨의 연희동 자택 분위기는 한미디로 참담했다.창졸간에 몰락한 권세가 집안의 모습 그대로였다.집밖에 진을 친 보도진의 발걸음만 바삐 움직일 뿐 무거운 침묵이 집안 전체를 짓눌렀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경호실소속 경호원들의 착잡해 하는 모습은 「권력무상」「권불십년」이라는 「오늘의 현실」을 거듭 곱씹게 했다.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연희동에 배치된 청와대 경호팀은 모두 20여명.3교대로 7명 가량씩 노전대통령 주변을 지켜왔다.상당수는 대통령 재직시절부터 노씨를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던 사람들이다. 노씨의 안전을 위해선 목숨을 초개처럼 버려야 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그러나 생명보다 귀중하게 받들던 「주군」은 한순간 부정축재자로 낙인 찍혀 영어의 몸이 되고 말았다.마음속 충격이야 접어두더라도 임무 수행의 대상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노씨의 구속에 대한 이들의 반응에는 허탈감,동정심,배신감 등 이율배반의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한 중견 경호원은 『노전대통령의 검찰출두 때 경호를 하면서도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지만 설마 구속까지 되겠느냐 하는 기대를 끝내 버리지 못했다』고 실토,경호원들의 어지러운 심경을 대변했다. 경호원들은 스스로를 「쇠붙이 인생」이라고 비하하기도 한다.임무 특성상 총과 칼을 가까이 할 수 밖에 없음을 빗댄 표현이다.다른 경호원은 『일반인들이 보내는 곱지 않은 시선도 대통령의 안전이 곧 나라의 안전이라는 사명감 하나로 이겨낼 수 있었는데 그토록 믿었던 대통령이 뇌물을 받아 돈벌이나 한 범죄자라니…』라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 또 다른 경호원은 『주어진 일이니 묵묵히 할 뿐』이라며 애써 감정표현을 자제했다.그의 얼굴 한켠에는 「자랑스런 전직대통령」에 대한 간절한 소망이 짙게 배어 있었다. 노씨의 연희동 자택에는 이날도 방문객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수확의 때를 놓친채 정원에 매달려 있는 붉은 감들이 경호원들의 「단심」인양 쓸쓸하게만 보였다.
  • 나라 걱정(일언내언)

    한 밤중 적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높게 지은 수루에 홀로 앉아 지은 이순신장군의 옛시조는 누구에게나 장군의 절절한 우국의 참 마음을 가슴뭉클하게 느끼게끔 해준다.개성의 선죽교를 피로 물들게 한 정몽주의 단심가 『이몸이 죽고 죽어…』에서도 나라와 나랏님에 대한 충정을 잘 읽을 수 있다.서릿발 같은 대한남아의 기개를 온 세상에 알리고 이국땅 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몸가짐과 말한마디는 적국인 일본사람들까지 크게 감동시켜 존경심이 우러나게 한,애국혼이 가득 담긴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들어 때를 만난듯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는 노태우전대통령 비자금사건 관련의 「나라걱정」 말들은 고소를 금할 수 없게한다.특히 오랫동안 지도자계층의 지위를 누려왔던 정·재계인사들의 나라걱정은 유별난 데가 있다. 노전대통령이 구속직전에 『여론따라 수사하면 나라가 불행해진다』고 한데 대해 국민들은 『그러면 여론과 반대로 하면 나라가 행복해진다는 것인가』하고 자칫 혼돈속에 빠져들수도 있다. 김대중 국민회의총재를 김구 선생에비유,20억원받은 것이 마치 구국의 큰뜻에 따른 것으로 미화시킨 아전인수와 견강부회의 엉뚱한 나라걱정도 있었다. 재벌총수들은 툭하면 『나라경제가 위험하다』며 진심으로 걱정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독과점하고 있는 국민경제를 볼모로 은연중에 압력을 가해 사법처리등의 불똥이 튀어오는 것을 막으려 하는 것인지 저의가 불분명한 반응을 보여줬다. 이러한 지도자급인사들의 나라걱정 발언은 본말이 뒤집힌 것으로 받아들이는게 요즘 국민정서임은 부인하기 힘들다.『나라걱정하기 전에 자신부터 바로잡는 일을 걱정해야 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또 국민들에게 엄청난 나라걱정의 과제를 안겨준 그들에게 과연 걱정의 자격이 있는가 반문한다.이제부터라도 부끄러움을 알아서 「나라걱정」을 남발하지 말 것이다.
  • 초겨울 평단 윤후명씨 작품 주목

    ◎「작가세계」·「문학동네」 등 문예지서 특집 마련/외국여행 다룬 「하얀배」·「돈황의 사랑」 대표작/문학배경 해외로 확대… 자아발견 과정 조명 작가 윤후명씨(49)가 요즘 화제다.지난 67년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한뒤 시와 소설을 오가며 어느덧 중진대열에 들어선 그가 새삼 비평가들의 「주 공략대상」으로 떠올랐다.도마위에 오른 그에겐 싫은 소리도 들리지만 작품의 의미를 다시 캐묻는 진지한 관심이 높다. 그는 자기가 엿본 삶의 쓸쓸함으로 누구보다 독특한 사설을 풀어온 작가로 꼽힌다.아지랑이같이 나른한 글월의 행간엔 서정적 울림이 깊이 감춰져 있었다.하지만 그뿐,사실주의가 휩쓸던 풍토에서 그같은 작품이 주류는 아니었다. 그러던 그가 90년대 들어 뜻밖에 주목받고 있다.글쓰기의 환경이 크게 바뀐 가운데 내밀히 중얼거리는 그의 문체,일상에서 훌쩍 벗어나려는 이국취향 등이 새시대의 징후로 읽히기 때문.특히 우리 문학 배경의 해외확대에 발맞춰 외국기행을 다룬 그의 작품들이 부쩍 눈길을 끌고 있다. 계간 「작가세계」 겨울호는 윤후명 특집을 마련,작품세계의 전모를 조감한다.평론가 양진오씨는 여기서 「여행하는 영혼과 여행의 소설」이라는 글을 통해 그의 기행소설이 어떻게 변모해왔는지를 살핀다.또 「문학동네」겨울호에 실린 이광호씨의 비평 「돌아오지 않는 항해­우리 시대 여행소설에 대한 단상」은 윤씨의 작품을 김인숙·윤대녕 등 최근의 여행소설과 나란히 놓고 시대적 공통의미를 밝히려 하고 있다. 양씨에 따르면 작가의 여행은 「나」의 재발견 과정이다.과거 「돈황의 사랑」「누란의 사랑」 등에서 관념만으로 여행해온 작가는 최근의 「여우사냥」「북회귀선을 넘어서」,특히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작 「하얀배」 등으로 오면서 실제여행에 나서는데 더욱 중요한 것은 이때 「나」의 사고가 탈바꿈한다는 것.앞선 소설에서 「나」가 존재의 어쩔 수 없는 소멸로 기울었다면 근작들에선 단절을 넘어선 우주적 통합까지 내닫게 됐다는 진단이다. 변화의 양태야 어떻든 「나­중심주의」에 기울어있는 그의 소설이 새롭게 각광받는 까닭은 뭘까?그것은 윤후명 소설이 지워져가던 「자아」를 복권했기 때문이라고 양씨는 말한다.즉 계층·계급·민족 등에 밀려 푸대접받던 자아에 계속 매달려온 그의 「단심」이 달라진 사회 분위기에서 평가되고 있다는 것. 양씨가 작가의 근작에서 연대감과 생존을 회복하는 계기를 보는데 견줘 이씨는 그의 소설을 모든것이 하나의 환상과 이미지로 떨어지는 현대의 운명으로 읽는다.이씨에 의하면 현대의 여행소설은 각고의 고난을 뚫고 성장해서 돌아오는 「오디세이아」에서와는 달리 귀환을 기약할 수 없는 「위험한」 표랑이다.중앙아시아 여행에서 우연히 마주친 조선족과 모국어를 주고받는 풍광을 신비적으로 그린 단편 「하얀배」는 얼핏 민족정체성의 회복을 말하는것 같지만 퇴색해가는 모국어와 조선족의 위상에서 차라리 위기감의 표출로 읽힌다.이씨는 윤후명소설이 이같이 흔들림과 생채기투성이인 현대인의 운명에 기꺼이 몸을 맡기는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과 의미가 크다고 분석한다.
  • 학원 폭력의 심각성/이윤호 경기대 교정학과교수(일요일 아침에)

    최근 검찰청의 「자녀 안심하고 학교 보내기운동」이라는 캠페인을 보면서 불안 때문에 부모가 학생을 승용차로 등·하교시켜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경험했다.어린 학생이 거듭되는 폭력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사건에서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쉽게 엿볼 수 있었다. 이처럼 학생을 위협하는 사례가 소설가 이문열의 소설속에 등장하는 「석태」와 같은 많은 「우리의 일그러진 영웅」을 양산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우선 청소년의 심리적 특성과 사회적 현실에서 한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다.각종 대중매체와 생활환경의 퇴폐향락적 요소는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한다.그들에게는 오직 공부밖에는 할 것이 없고 또 해서도 안되며,학교 외에는 갈 곳이 없고 가서도 안되는 상황에서 욕구를 건전하게 분출하기는커녕 억압받고 강요만 받는 청소년의 현실이 청소년기의 또 다른 특성인 단기쾌락주의와 상호작용한다.이것이 청소년의 심각한 욕구불만이라는 상승효과를 초래하게 되고 욕구불만은 청소년의 공격성을 불러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청소년을 건전한 사회인으로 육성보호해야 할 주요한 사회화기관이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핵가족화의 심화는 물론이고 이혼 등으로 인한 가정의 물리적 결손과 가족간의 갈등 등 내적 결손은 가정이 가족간의 공동의 생활의 장이 될 수 없게 했다.현대인의 바쁜 생활은 「집」은 있으나 「가정」은 없다는 현대가정의 침실화를 초래했다.이는 가정의 교육적 기능을 손상시켰다. 더구나 아이에 대한 지나친 과보호는 모든 아이가 자신을 「왕자님」·「공주님」으로 생각케 하여 자신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모든 것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적 성향을 갖게 했다.다른 사람을 자신을 위한 수단이지 결코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로 생각지 않게 만들었다. 우리사회에 팽배한 학벌위주의 관행은 학교가 전인교육의 장이 아니라 성적이라는 단순한 잣대로 다수의 학생을 문제아요 인생의 낙오자로 만들었다.이들은 오로지 성적만이 성공의 척도인 가정과 학교사회로부터 소외되고 버림받는 존재가 됐다. 좌절감과 열등감에 사로잡힌채 상처받은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때로는 폭력에 호소하게도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 소외받은 학생이 어쩔 수 없이 가정과 학교를 이탈하여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어울려서 일종의 「패거리의식」과 문화를 형성한다는 사실이다.「패거리문화」는 패거리를 통하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소속감을 느끼는 등 청소년으로 하여금 도피의 환상과 신기루를 쫓게 했다. 문제는 「패거리문화」가 곧 이들 청소년의 집단적 배회를 전제로 하여 집단심리에 기초한 쾌락과 모험을 추구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더구나 학교의 처벌위주의 관행은 문제학생의 격리에만 매달려서 이들을 길거리로 내몰았고 수많은 유흥접객업소는 이들의 좋은 도피처가 되어 오갈 데 없고 할 일 없는 이들의 패거리문화를 더욱 조장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특히 우리사회에 팽배한 각종 퇴폐향락문화는 이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고 유혹,청소년을 쾌락의 노예로 만들어 중독된 쾌락추구를 위하여 동료를 갈취하고 폭력을 행사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학교주변의폭력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먼저 우리는 이들을 문제아라는 가해자적 입장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가정·학교·사회문제의 피해자로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대부분의 청소년문제가 사회적 환경에 영향받은 바 크고 이러한 환경은 곧 기성세대와 사회의 책임이지 자신의 기본적 권익마저도 대변할 수 없는 청소년이 만들어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이를 위해서 우리는 청소년에게 잃어버린 가정과 가족을 되찾아 주어야 한다. 학교 또한 철저한 경쟁심만을 부추기는 입시와 성적위주의 교육관행에서 벗어나 전인교육의 장이 되어야 하며,낙오자를 처벌하여 내몰기보다는 그들에게도 성공을 경험할 수 있는 대안적 보상을 마련하고 처벌보다는 보호를 중시하는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청소년의 잘못된 호기심과 쾌락을 부추기는 각종 퇴폐향락적 사회분위기와 환경도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더불어 청소년의 잘못된 「패거리문화」를 시정하기 위해서 청소년이 그들의 욕구를 건전하게 분출할 수 있도록 건전한 할 「거리」와 갈 「곳」과 할 「시간」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지역별로 일종의 지역사회센터나 청소년문화센터 등을 설치해 자격 있는 청소년지도사의 관리하에 자원봉사자와 학교의 협조를 받아 운영함으로써 청소년활동과 교육상담의 거점으로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무엇보다 학교·학부모·지역사회·청소년기관과 단체등이 함께 학교주변의 환경을 감시하고 피해학생의 신고나 상담도 할 수 있는 시민운동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 「9·9절」 행사 김정일에 충성 다짐(북녘 뉴스라인)

    【내외】 북한은 9일 정권수립 47주를 맞아 다채로운 경축행사를 갖는 대신 각지 김일성상징물에 대한 대대적인 참배·헌화행사를 진행하면서 김일성·김정일에 대한 「충성불변」을 다짐하는데 주력했다. 북한은 이날 아침부터 평양 만수대언덕의 김일성동상 앞에서 당·정기관 및 사회단체 간부들과 군장병,근로자,청소년·학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규모 헌화행사를 갖고 『김정일의 두리에 철통같이 뭉쳐 해와 달이 다하도록 김정일만을 일편단심 받들고 따를 결의를 다졌다』고 중앙방송이 보도했다. 또한 부주석 이종옥·박성철·김병식등 당·정·군 고위간부들은 그룹별로 나뉘어 휴전협정 40주를 기념해 세워진 전승기념탑을 비롯해 혁명열사릉·애국열사릉을 찾아 화환을 증정한데 이어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했다고 북한방송들은 전했다. ◎조총련,대북지원 강화키로 【내외】 조총련은 북한의 정권수립 47주년(9월9일)을 맞아 중앙 보고대회,김정일에게 보내는 전문 등을 통해 대북 지원사업 강화를 다짐했다. 조총련은 지난 8일 도쿄에서 의장 한덕수,책임 부의장 허종만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 보고대회를 개최하고 『조총련 조직을 김정일의 사상과 영도에 충직한 일심단결된 대오로,애국애족의 기치밑에 굳게 뭉친 공화국(북한)의 해외 공민단체로 더욱 강화 발전시킬 것』을 역설했다고 중앙방송이 9일 보도했다. 조총련 중앙 상임위원회는 또 김정일에 보내는 축하문을 통해 『내나라 내조국을 더욱 부강 발전시키는 위업에 모든 힘과 지혜,애국열성을 다바쳐 나가겠다』면서 북한의 홍수피해에 대한 「전 동포적」 지원사업 등을 다짐했다. ◎김정일,「안전부」 활동 강화 촉구 【내외】 김정일이 최근 정무원 사회안전부에 『사회안전부 일꾼들은 적대분자들에 대해 무서운 맹수가 돼야 한다』며 체제불만세력 색출과 치안유지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노동당기관지 노동신문 최근호는 사회안전부의 역할과 활동을 강조한 김정일의 이같은 발언내용을 보도하면서 『전체 사회안전원들이 주민들에 대해서는 순한 양이 되고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는 참다운 충복이 돼야 하지만 적대세력에게는 무서운 맹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수피해 보도에 이중적 태도 【내외】 북한이 최근 집중호우에 따른 유례없는 홍수피해 보도와 관련,대내외적으로 계속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어 주목된다. 내외통신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8월중 홍수피해 규모에 대해 해외로 타전되는 중앙통신을 통해서는 이례적일 만큼 비교적 상세히 보도한 반면에 주민들이 청취하는 중앙방송을 통해서는 오히려 서해갑문등 홍수방지시설의 역할로 집중호우에도 끄떡없이 버틸수 있었다며 김일성·김정일의 「업적」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지난 8월말 방북,홍수피해 상황을 조사했던 스위스 외무부대표단의 조사활동이나 2일의 유엔조사단 평양도착 사실도 대외보도를 취급하는 중앙통신과 평양방송만을 통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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