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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정뉴스]

    ●전국기초의회 의원들 성명 발표 국회가 지방의원 수를 현재보다 20% 줄이고 정당공천제,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는 데 대해 전국 지방의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시군구자치구의회 의원들은 29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지방의회 및 지방의원에 관한 제도 개선안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방의원들은 “국회가 지방의원의 유급제 도입을 전제로 지방의원 정수를 20% 축소하고 이를 위해 중선거구제도, 정당공천, 비례대표제 등을 도입키로 한 것은 정치적 야합에 의한 것으로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지방분권, 정부혁신으로 지방의 역할이 크게 증대되고 있는 지방화시대에 지방의원 수를 줄이는 것은 지방의회의 견제기능을 포기하고 지방자치를 부정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기초지방의원에 정당공천과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는 것은 지방자치를 중앙정치화하려는 것으로 지방화 시대를 크게 역행하는 처사라며 현행제도의 유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재창(서울 강남구의회의장) 전국시군구의회의장협의회장은 “국회의 이번 지방정치제도 개선안은 지방자치 정신을 근본부터 부정하고 주민의사를 거부하는 반민주적인 작태다.”고 비난했다.●수도분할저지 범국민 규탄대회 가져 서울시의회(의장 임동규)는 지난 30일 오후 4시 서울역광장에서 ‘수도분할저지를 위한 범국민 규탄대회’를 가졌다. 지난 15일 헌법재판소에 청구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법에 대한 헌법소원의 당위성을 홍보하기 위해 수도이전반대 국민연합과 공동으로 개최한 것으로, 25개 자치구의회 의원 및 주민 3000여명이 참여해 서울시 을지로별관까지 가두행진도 펼쳤다.●관악구의회 정례회 서울 관악구의회는 1일부터 제130회 정례회를 개회한다. 이번 1차 정례회에서는 2004회계연도 세입·세출결산 및 예비비지출 승인의 건 등을 심사 처리할 예정이다.●중구의회 행정사무감사 서울 중구의회(의장 김동학)는 지난 달 29일부터 오는5일까지 집행부의 예산 및 사업실태에 대한 행정사무감사를 상임위원회별로 실시한다.6일에는 3차 본회의를 열어 보건소 수가조례 개정안, 사회복지협의체 운영조례안, 장사 등에 관한 조례안, 주차장 설치 및 관리조례 개정안, 그리고 조례정비특별위원회 위원 증원 및 활동기간 연장 등 안건을 처리하고 폐회한다.●종로구의회 정례회 서울 종로구의회는 1일부터 13일까지 제152회 정례회(2005년도 제1차)를 개최한다.●강서구 신낙형 의원에 청소년지도위서 감사패 서울 강서구의회 신낙형(발산1동) 의원은 발산1동 청소년 지도위원회로부터 지역사회 발전과 청소년 복지 및 선도에 기여한 공로로 감사패를 수상했다. 신 의원은 강서구 외발산동 레미콘공장 이전 설치 저지를 위해 삭발 및 8일간 단식을 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중랑구의회 정례회 서울 중랑구의회는 4일까지 제120회 정례회를 개최한다. 구세 조례안·구 공무원 정원 등과 관련된 조례안을 개정하고 2005년도 행정사무감사를 벌인다.
  • [윔블던테니스] 샤라포바 윔블던 4강 선착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프랑스의 ‘3국 대결’로 압축된 테니스 시즌 세번째 메이저대회의 여자 8강전.‘요정’이 가장 먼저 4강 코트를 밟았다. 디펜딩 챔피언 마리아 샤라포바(2번시드·러시아)가 28일 영국 런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벌어진 윔블던테니스 여자 단식 4회전에서 자국 동료 나디아 폐트로바(8번시드)를 2-0으로 제압하고 준결승에 선착했다.1회전부터 완승을 거듭, 거침없는 연승 행진을 벌인 샤라포바는 이로써 대회 2연패 고지에 바짝 다가섰다. 잔디코트에서만 22연승째.4차례의 경기에서 단 17게임만 상대에게 내주는 등 지난해보다 한층 촘촘해진 수비도 뽐냈다. ‘프랑스의 자존심’ 아멜리 모레스모(3번시드)도 강력한 ‘서브 앤드 발리’를 앞세워 지난해 프랑스오픈 챔피언 아나스타샤 미스키나(9번시드·러시아)를 2-0으로 물리치고 4강에 합류,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의 희망을 부풀렸다. 지난 2002년 이후 네번째 밟은 메이저대회 준결승. 앞서 남자부 16강전에서는 ‘황제’ 로저 페더러(톱시드·스위스)가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23번시드·스페인)을 3-0으로 일축, 대회 3연패와 메이저 통산 5번째 타이틀에 한 발 더 내디뎠다.‘광서버’ 앤디 로딕(미국)도 에이스 12개를 폭발시키며 기예르모 코리아(아르헨티나)를 3-0으로 제압,8강에 올랐다. 주니어 남자 단식에 출전한 김선용(18·4번시드)은 2회전에서 복병 압둘라 마그다스(쿠웨이트)에게 1-2로 패해 탈락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사립학교법 개정안 또 연기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처리되지 못한 채 오는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갔다. 지난해 10월 교육위원회에서 처음 논의된 이후 만 8개월 동안 표류하고 있다. 쟁점은 하나다. 사학재단의 이사회를 어떻게 구성하느냐 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사학 비리를 막으려면 모든 사학재단 이사회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은 문제가 있는 사학에 대해서만 외부 인사를 참여시켜야 한다며 날카롭게 맞서고 있다. 본회의에는 상정도 하지 못했다.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는 사학과 반(反)사학 단체로 갈려 막판 세 대결을 펼쳤다. 참교육학부모회와 교수노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으로 구성된 ‘민주적 사립학교법 개정과 부패사학 척결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는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여야 합의에 의한 개정이 불가능한 만큼 의장이 직권상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사학단체들은 같은 시간 여의도 63빌딩에서 6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사학 분야 투명사회 협약체결 및 다짐대회’를 열고 개정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하프타임] 김경아, 브라질오픈 탁구 우승

    여자탁구 간판스타 김경아(대한항공·세계10위)가 2005브라질오픈 정상에 올랐다. 김경아는 27일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여자단식 결승에서 세계11위 빅토리아 파블로비치(벨로루시)에 4-2(7-11 12-10 8-11 11-8 11-4 11-9) 짜릿한 역전우승을 일궈냈다. 이달초 열린 코리아오픈에 이어 시즌 2번째이자 개인통산 4번째 오픈대회 단식 챔피언에 올랐다.
  • ‘적녹연대’ 첫 발진… 새만금·천성산 아픔 호소

    ‘적녹연대’ 첫 발진… 새만금·천성산 아픔 호소

    최근 서울 여의도와 신촌에서 각각 이채로운 만남이 이뤄졌다.‘환경과 노동’이 오랜 반목을 접고 공생의 길, 공존의 가치를 모색하는가 하면 ‘환경과 여성’은 서로 보듬고 위로하며 각자에게 힘을 보태는 행사를 가졌다. 환경과 노동 그리고 여성은 우리 사회의 이른바 ‘약자 그룹’이다. 환경·생태적 가치는 개발 이데올로기에 맞서 점차 세를 키워가는 듯하지만 아직은 힘이 크게 달리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노동과 여성 또한 사회 시스템 안에서 여전히 종속변수에 머물고 있다. 요컨대, 이들 3자는 주류의 반열에 합류하지 못한 채 변방에 머물고 있는 셈이다. 비록 약자끼리의 회동이었지만, 이번 모임에선 기성권력에 대항한 새로운 힘이 창출될 가능성도 내비쳤다. ●에너지 체제 전환 공동모색 환경과 노동은 지난 22일 여의도 국회의사당 내 헌정기념관에서 손을 맞잡았다. 환경단체와 단위노동조합 등 10개 단체가 ‘노동과 환경의 연대를 통한 에너지체제 전환 국제 심포지엄’을 열고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에너지네트워크)라는 공동기구를 출범시킨 것. 노동자의 붉은 머리띠와 환경단체의 녹색운동이 결합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등장한 ‘적녹연대’다. 환경운동 진영에선 환경운동연합과 에너지대안센터 등이, 노동단체로는 한국수력원자력노조와 한국발전산업노조 등이 참여했다. 에너지네트워크는 현재 정부와 국회 등에서 논의 중인 에너지체제 개편방안 등을 놓고 공동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에너지네트워크의 출범은 지난해 9월부터 모색됐다. 그 동안 때로는 경원시하고, 때로는 충돌 국면까지 치달은 과거사에 대한 화해를 시도하며 10개월여 준비 끝에 태동한 것이다. 실제 양자 대립의 사례는 적지 않다. 환경운동연합이 김포매립지 용도변경을 반대하자 당시 동아건설 노조가 극구 반발하거나, 민주노총이 새만금 사업반대 입장에 선 환경단체를 지지하자 사업 주체인 농업기반공사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이필렬 에너지대안센터 대표는 이런 대립의 이유를 상대방에 대한 비하적 인식에서 찾고 있다.“분배정의를 통한 빈곤의 해결이 더 시급한데, 환경운동은 배부른 사람들의 유희”라거나 “개발·성장을 통한 부의 확대에는 동의하면서 단지 분배정의만 외친다면 (노동진영도)환경파괴적 성격을 지닌 셈”이라는 시각이 맞서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날 출범식은 “그 동안 물과 기름처럼 따로 움직였던 게 사실”이라는 자기 고백으로 시작되기도 했다. 에너지네트워크는 현재 논의 중인 에너지기본법 제정에 초점을 맞추어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정부는 기후변화협약과 관련한 교토의정서의 발효와 고유가 등 사태에 대한 절대적 에너지 수입국으로서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에너지기본법 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한 상태인데,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인 에너지 수급구조 실현 ▲에너지 산업에 시장경쟁 요소 도입 ▲국가에너지위원회 설치 등이 법안의 골자다. 환경단체는 이 가운데 ‘산업자원부 중심의 에너지 정책 고착화’를, 노동단체는 ‘시장경쟁 요소의 도입’을 반대하며 이를 막기 위한 공동 행동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정부 제출안에 대한 반대라는 대원칙 아래 구체적 대안도 마련하고 있지만 이들의 연대가 순탄하게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각론에서의 이견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화석연료와 원자력의 비중을 낮추는 방안 등에 대해선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문제와 원전 확대, 재생가능에너지 보급 등 구체적 사안에선 상당한 견해차이가 존재해 이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필렬 대표는 이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원자력발전을 언제 없앨 것인가라는 시점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는 “에너지 전환을 통해 지속가능한 에너지 체제의 확립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은 이 시점을 공동으로 찾아나가야 한다.”면서 “독일의 사례처럼 30년 혹은 50년 안에 원자력 발전을 없앨 수 있는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그리고 그 기간 안에 햇빛과 바람 등 대체에너지 도입이 가능한지 등을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여성과 만난 새만금과 천성산 같은 날, 이화여대에서는 ‘환경과 여성’이 어우러졌다.‘2005년 세계여성학대회’에서였는데, 사회적 갈등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두 개 국책사업에 대해 여성들이 당사자로 나와 세계 여성들에게 실상을 전했다. 경부고속전철 천성산 관통터널 문제와 관련해선 지율 스님이, 새만금 간척사업에선 전북 부안 계화도 갯벌에서 네 명의 조개잡이 여성이 참여했다. 먼저 지율 스님은 ‘에코-페미니스트(eco-feminist·생태여성주의자) 활동의 사회적 영향, 지율 스님의 경우’란 세션에 나와 단식 등 자기 경험을 털어놓으며 생태여성주의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남성과 다른 관점으로 이 사회를 보는 것 자체가 여성의 힘이며, 여성의 정치ㆍ사회적 진출은 그런 점에서 의미있는 일”이라는 소회를 폈다. 지율 스님은 “천성산 도롱뇽이라는 작은 생명체에 관대하지 못한 사회에서 문제를 푸는 답은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에게 있다. 환경운동은 여성의 몫”이라고도 했다. 새만금 갯벌의 여성 어민들은 개발사업으로 위기에 처한 여성들의 피폐한 삶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계화도에서 맨손으로 조개를 잡아 생계를 이어올 수 있었지만,“이제는 갯벌이 썩어가고 있고, 삶의 터전도 사라져 가고 있다.”고 절박하게 호소했다. 유기화씨는 ‘생태적 위기와 조개잡이 여성’이란 주제의 세션에 나와 “언제부턴가 갯벌에 썩은 내가 나기 시작했다. 밑바닥을 파보면 이미 시커멓게 변해 버렸다. 일을 하다가도 코를 틀어막아야 할 정도”라며, 변해가는 갯벌의 실상을 전했다. 그러면서 “방조제를 막기 전엔 한 달에 250만원은 벌었는데, 요즘엔 100만원도 안된다. 방조제가 막히면 뭘 먹고 살지 막막한 상태”라고 부르짖었다.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전북대 함한희 교수는 “맨손으로 조개를 잡을 수 있는 갯벌은 여성들에게 남성들과 동등한 (직업적)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라면서 “결과적으로 간척지 조성은 특히 여성들의 생계기반을 빼앗게 되고 만다.”고 지적했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생태계의 파괴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면 환경과 여성은 서로 어떤 관계를 설정해야 하나.23일 총회에서 발표자로 나선 이레네 당켈만 라드바우대학 지속가능한개발프로그램 위원장의 언급은 이런 점에서 시사적이다.“환경운동은 인간의 얼굴을 보여줘야 한다. 환경파괴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그것이 언젠가는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을 때는 이미 너무 늦은 상태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환경정책에 소외받고 있는 여성들을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 환경정책이 양성평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위해선 (환경정책의)성별 분석이 필요하고 여성들이 환경정책에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윔블던테니스] 4회전 샤라포바 진출·세레나 탈락

    ‘요정’과 ‘흑진주’의 운명은 16강 길목에서 갈렸다. 마리아 샤라포바(러시아)가 26일 영국 런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벌어진 윔블던테니스(총상금 185억원) 여자 단식 3회전에서 카트리나 스레보트닉(슬로바키아)을 2-0으로 가볍게 물리치고 16강이 겨루는 4회전에 선착했다. 1년 전 이 대회 우승으로 단숨에 스타 반열에 올라선 샤라포바는 나탈리 데키(16번시드·프랑스)와 8강 티켓을 놓고 겨룬다.2003년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버밍엄대회 2회전에서 한 차례 승리한 적이 있어 일단 샤라포바의 우세. 반면 윔블던 두 차례와 올해 호주오픈을 포함, 무려 일곱 차례나 메이저대회 정상에 섰던 세레나 윌리엄스(미국)는 31살의 ‘노장’ 질 크레이버스(미국)에 0-2로 져 16강 진출이 좌절됐다.3회전 이전 탈락은 1999년 대회 이후 처음. 세계랭킹 85위의 크레이버스는 WTA 통산 1승에 불과하고 윔블던에서는 두 차례의 2회전 진출이 최고 성적이었지만 ‘거함’을 침몰시키며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16강에 오르는 감격을 맛봤다. 다니엘라 한투코바(슬로바키아)를 2-0으로 꺾은 세레나의 언니 비너스(14번시드)는 16강 코트에서 크레이버스와 동생의 ‘복수전’을 펼친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7) 대마도에서 이키까지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7) 대마도에서 이키까지

    너무 가까우면 상대를 깊게 알 수도 있지만 뜻밖에 전혀 모를 수도 있다. 대마도(‘쓰시마’라는 현지 표기 대신 용어의 역사성을 고려해 대마도로 쓴다.)와 한국의 관계가 그렇다. 누구나 아침 6시 서울역에서 KTX를 타면 8시40분에 부산역에 내려 10시30분에 출발하는 대마도행 페리를 탈 수 있다. 불과 1시간30분이면 하타가쓰항에 도착해 점심을 먹을 수 있으니 서울에서 흑산도 가는 것보다도 빠르다. 날씨만 맑으면 당연히 대마도가 육안으로 보이며, 반대로 대마도 최북단 와니우라에서는 불야성을 이룬 한국의 남해안이 지척에 보인다. 거리만 가까운 것일까? 역사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대마도는 우리와 ‘하나’가 아닐까. ●부산서 1시간30분… 너무도 가까운 섬 많은 사람들이 대마도는 알지만 이키(壹岐)에 관해서는 거의 무관심하다. 이키는 한반도에서 대마도를 거쳐 규슈로 가는 징검다리였으며, 일본 입장에서 보자면 한반도는 물론 중국 대륙으로 들어가는 관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문화의 흔적이 강력하게 남아 있는 섬들임에도 두 섬의 정체성이 어쩌면 이리도 다른지! 대마도가 한반도에 밀착되어 있다면 이키는 보다 일본적인 곳이다. 대마도 스스로도 조선과 일본 양쪽에 모두 걸친 속국, 혹은 일본 본토와는 전혀 다른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다. 문화사적으로 대마도가 비일본적이라는 사실은 역사적 정체성이 한반도에도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마도에서 한반도 문화를 모두 걸러낸다면 남는 게 거의 없을 것이다. 대마도가 오늘처럼 확고하게 일본 본토에 속하게 된 것은 메이지 정부가 대한(對韓)외교권을 중앙 정부로 가져가 이를 일본 정부에 편입시킨 결과일 뿐이다. 대마도는 국제법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일본 땅이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나 심정적으로는 우리와 더욱 가깝다. 대마도 서쪽 해안은 가히 한국 쓰레기들의 종합 전시장이다. 우리나라의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가 이곳 서쪽으로 모인다는 사실은 옛적 표류민 표착의 단서가 된다. 한반도 동남부에서 표류를 해도 자연스럽게 대마도에 닿곤 했으니 신라인 박제상이 이곳에서 죽은 것도 실은 이같은 교류사의 내역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백제나 신라식 산성이 존재함은 대마도의 선주민들 다수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었음을 뜻한다. 그래서 동국여지승람에 ‘대마도는 옛날에 우리 계림에 속해 있었는데 언제부터 왜인들의 소굴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조선에서는 대마도가 우리 주권 하에 복속된 섬은 아닐지라도 조선 영토의 일부로 보기도 했다. 지방에 내려보내는 경차관을 대마도에 파견했는가 하면 대마도 사람들이 수직왜인이 되어 조선의 벼슬과 녹봉도 받았다. 일찍이 고려 조정은 대마도주에게 구당관(勾當官)과 만호(萬戶), 즉 변방과 수상교통의 요충지를 책임진 관직을 내렸다. ●주민들 다수가 한반도에서 건너가 일본 본토인들 입장에서는 대마도가 한반도에 가깝다는 주장에 대해 거북스러움을 느낄 터이지만, 정작 역사시대의 일본인들 스스로가 대마도를 별종의 섬으로 간주하여 본토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보았다. 오늘날도 대마도는 ‘국경의 섬’식으로 인식돼 대륙에 맞서는 자위대 기지가 곳곳에 위치하는 전략적 가치만 인정받을 뿐 대단히 낙후되어 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나가사키현에 붙어서 소외받을 바에는 차라리 부산시 영도구에 붙어서 잘 살아보자는 농담도 나온다. 그 농담이 농담으로만 여겨지지 않음은 웬일일까.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이키 관광상품을 개척한 범주항공의 신우진 차장은 “이키에는 주로 후쿠오카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지만 대마도는 일본인보다 한국인 관광객들로 생계를 꾸려 간다.”고 통계 수치까지 제시한다. 대마도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어 기본 단어를 구사할 수 있으니 이는 근래의 일이 아니다. 대마도 역사자료관에는 외국에서 만들어진 본격 한국어 교재가 있다. 한국문화를 흡수하기 위한 방책으로 한국어를 전문적으로 학습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증거다. 대마도는 남북이 81㎞에 이른다. 작은 섬이라고 여기는 일반의 인식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미국 밑에 쿠바가 있듯이 한반도 코밑에 거대한 섬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한·일간 절묘한 곳에 자리잡은 대마도에 왜구가 득실거리기라도 할라치면 한반도는 밤잠을 못이루었던 것이다. ●만성적 식량부족으로 왜구들 극성 대마도는 한마디로 ‘먹고살기 힘든 섬’이다. 북쪽 히타카쓰항에서 남쪽 이즈하라까지 근 2시간여 거리를 달려 보지만 보이는 것은 산뿐이다. 섬이라기보다는 그냥 바다에 산들이 떠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배고픈 사람들이라 눈 앞에 건너다 보이는 조선을 바라보며 해적질을 꿈꾸었던 게 무리는 아니다. 대마도의 이름난 사찰마다 조선에서 얻어온, 정확하게 말해 약탈해 온 불상이나 범종들이 한두 개씩은 놓여 있다. 이키의 안국사에는 한반도에서 전래한 팔만대장경 초판본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약탈품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섬이라는 고립된 조건 속에서 고귀한 문화유산들이 멸실되지 않고 남아 전하는 것이다. 조선 정부는 대마도에 일정한 식량을 공급하고, 무역을 허락하며, 왜관을 열어 회유함으로써 왜구의 고통을 덜고자 했다. 대마도는 부족한 식량을 조선을 통해 해결하는 반면 일본 본토와 조선 사이에서 조정능력을 발휘하여 자신들의 생존권을 유지했다. 오랫동안 대마도는 에도 바쿠후를 대리하여 대한 외교를 수행했다. 대리인이라고는 하나 사실상 막중한 권한을 가지고 바쿠후와 한반도 사이에서 능수능란한 중재 역할을 하면서 자신들의 이득을 챙겼다. 일종의 생존전략인바, 그들은 양자 사이의 중개무역으로 이윤을 냈으며, 그 수입으로 먹고살았다. 이런 탓에 임진왜란 이후에 일시적으로 한·일간 국교가 단절되어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은 이들도 대마도민들이었다. 현재 나가사키현에 속한 대마도와 이키는 히라도(平戶)와 더불어 왜구의 본거지였다. 태종 때 대마도정벌에 나선 이종무 장군의 아소만 소탕작전도 왜구를 청소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소만을 바라보니 왜 이 장군이 한달여 동안 그토록 많은 피해를 입어가면서도 왜구를 소탕하지 못했던가가 자명해진다. 한마디로 천혜의 요새다. 섬들이 은하수의 별처럼 흩어져 있어 섬 사이로 신출귀몰한다면 강력한 대군도 왜구 몇을 감당하기 어려운 요충지다. 이키와 히라도에서 출발한 왜구들은 이곳 대마도 왜구와 연합작전을 펼치기도 하며 끊임없이 한반도의 해안을 침탈해 댔으니 고려와 명나라가 왜구 때문에 망했다는 말도 절반은 진실에 가깝다. ●전쟁과 평화 교차하는 ‘국경의 섬´ 그런데 일본의 후소샤판 교과서에는 ‘왜구란 조선반도 및 중국 대륙 연안에 출몰했던 해적집단을 뜻한다. 그들 중에는 일본인 외에 조선인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왜곡하고 있다. 왜구는 대마도, 이키제도와 히라도 등을 포함해 세토나이카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역의 해적 및 악당들로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 최근 들어 왜구의 구성을 국적이나 민족을 넘어선 차원의 인간집단으로 파악하려는 시각은 당시의 현실과 동떨어진 가공된 역사상일 뿐이다. 여기에는 왜구 근거지는 북규슈 지역의 도서 연안이고, 발생 원인도 일본 내의 정치적 혼란에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회피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왜구의 시대에 이어 이번에는 임진왜란의 주역으로 다시금 대마도와 이키가 등장한다. 강항은 간양록에서 ‘이번 전란의 꼬투리는 대마도주 소오(宗義智)의 수작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고니시 유키나카(少西行長)의 딸 마리아가 바로 이 소오의 아내였다. 조선 침략의 선봉장이 된 고니시의 출병에는 조선말을 잘하는 대마도 사람 8000여명이 동원된다. 웬만한 남자들은 전부 동원됐다.‘전쟁이 끝나자 남자는 없고 과부들만 들끓어 대를 이을 수 없었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 이키도 대규모 병사를 내어 한반도에 출병했다. 과거의 왜구들이 왜군으로 변신한 것이다. ●조선통신사 맞이하는 기착지… 친선의 가교로 전쟁이 끝나고 조선통신사의 왕래가 재개되자 다시금 대마도와 이키는 한반도에서 오는 귀한 문화사절단을 맞이하는 기착지로 변신한다. 수백명에 이르는 조선통신사는 그 자체가 한반도의 선진문물을 전하는 통로였다. 조선정부는 성심성의껏 사신을 조직하였으며, 대마도와 이키 등지의 번주들도 최선을 다해 이들을 맞았다. 대마도와 이키는 조선통신사를 통한 친선과 교류의 장이었지만 때로는 왜구의 본거지로 역사의 굴절을 계속했다. 이키의 아름다운 ‘원숭이바위’가 있는 곳에는 2차대전 당시의 포대가 있으며, 대마도에도 거대한 지하포대가 있다.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은 아소만 일대에 군함을 잠복시켜 놓고 반세키(万關)운하를 통해 러시아함대를 기습·괴멸시켰다. 근래 대마도에서는 러일전쟁 100주년을 기념한답시고 곳곳에 러일 친선을 기원하는 전승비를 세웠다. 명분은 친선이겠지만 본래 목적은 딴 곳에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니 이처럼 일본은 대마도인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대마도를 자국 본토와는 달리 오로지 ‘국경의 섬’으로 만들어가는 중이다. 대마도와 이키는 한·일 간의 친선을 돋우는 징검다리도, 침략의 가교도 될 수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최익현 선생이 단식 끝에 절명했을 때, 대마도 사람들은 선생의 유해를 지극정성으로 이즈하라의 슈젠지(修善寺)에 모셨다. 이키에는 해방되던 해, 꿈에 그리던 조국을 향해 귀환선에 몸을 실었다가 집단 수장된 우리 동포 160명을 애도하는 비가 한국쪽 바다를 향해 서 있다. 또 와니우라 포구의 팔각정 형태의 한국 전망대에는 1703년 무려 112명의 역관사들이 조난당해 생을 마친 사실을 기록한 비석도 서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딛고 바다가 국제교류의 장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진실된 한일교류의 징검다리되어야 17세기 대(代)의 외교관으로 한국말에 능통했던 아메노모리 효슈의 말처럼 대마도와 이키는 진정한 ‘친선교류’의 징검다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한반도의 수많은 백성들이 죽어 가고, 문화재가 불타 버렸지만, 강제 동원되어 이 전쟁에 참가해야 했던 대마도나 이키의 백성들도 운명은 비슷했다. 조선통신사가 오고 갔듯이 이제 한·일간의 해양 네트워크는 더이상 침탈의 역사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러일전쟁 100주년,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국을 꺾었다.’는 자부심과 승리의 기분을 지금껏 향유하려고 드는 한 국제사회에서 그들이 ‘소인배’라는 비난과 지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21년 전인 1984년. 당시 서울신문사에서 대마도와 이키의 역사·고고·미술·민속·언어·물질문화 등을 망라한 보고서를 냈던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바다를 통해 일본을 제대로 알고자 하는 목적의 대마도·이키 답사가 21년 만에 다시 서울신문 지면에서 재현된 셈이다. 일본인들에게는 발틱함대를 괴멸시킨 러일전쟁 승전 100주년 기념의 해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을사늑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친선의 바다인가, 침탈의 바다인가.’ 그 난해한 화두를 대마도와 이키에서 다시 곱씹어 본다.
  • [윔블던테니스] 페더러 “3연패 문제없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가 윔블던 3연패를 향해 줄달음쳤다. 한국 여자테니스의 희망 조윤정(26·세계랭킹 86위)은 2회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페더러는 23일 영국 런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벌어진 올시즌 세번째 메이저대회인 윔블던테니스(총상금 185억원) 남자 단식 2회전에서 첫 본선 무대를 밟은 이보 미나르(체코)를 3-0으로 가볍게 제치고 32강이 겨루는 3회전에 안착했다. 올해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에서 7승을 거두고 잔디코트에서만 31연승의 상승세로 윔블던 연속 세번째 타이틀을 벼르고 있는 톱시드의 페더러는 3회전에서 25번시드의 니콜라스 키퍼와 16강 티켓을 다툰다. 더블폴트는 1개에 그친 반면 에이스는 무려 9개나 상대 코트에 내리꽂았다. 한편 조윤정은 23일 런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벌어진 대회 2회전에서 카타리나 스레보트닉(슬로베니아·랭킹 57위)에게 0-2(5-7 4-6)로 패해 3회전 진출이 좌절됐다. 톱시드의 린제이 대븐포트와 마리아 샤라포바(랭킹 2위)가 각각 제이미 잭슨, 카라탄체바를 2-0으로 완파한 것을 비롯, 아멜리 모레스모(프랑스) 킴 클리스터스(벨기에) 아나스타샤 미스키나(러시아) 등 상위 시드권자들이 무더기로 3회전에 올랐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이라크 전쟁중 범죄’ 우리가 밝힌다

    ‘이라크 전쟁중 범죄’ 우리가 밝힌다

    이라크 점령 3년째를 맞아 미국과 동맹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범죄와 부당행위를 심판하기 위한 ‘이라크 국제전범재판’에 한국 민간대표단이 참가한다. ‘이라크 국제전범재판 한국참가단’은 23일부터 닷새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20여개국 평화운동가가 참석하는 가운데 열리는 이라크 국제전범재판에 한국 민간대표단 16명이 참가한다고 밝혔다. 국제전범재판은 23일 개막식에 이어 24일부터 나흘간 국제법과 국제기관의 역할·각국 정부의 책임, 이라크 침략과 점령, 지구적 안보 환경과 미래의 대안 등을 주제로 세계 곳곳에서 다룬 이라크에 대한 법적·윤리적 범죄의 평결을 최종 정리한다. 쟁점은 ▲이라크 전쟁의 불법성과 불합리성 ▲전쟁 및 점령기간에 저지른 연합군의 범죄행위 ▲전쟁발발을 막지 못한 국가와 국제정치기구의 책임 ▲공범자로서 미디어와 정보기관의 책임 ▲정치·경제적 의도로 일으킨 전쟁의 결과 등 5가지이다. 아룬다티 로이(작가)가 양심배심원단 대표로서 이번 재판을 대변하고 데니스 할리데이(전 유엔 사무총장 보좌관)·리처드 포크(유네스코 평화상 수상자) 등이 배심원으로 참가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58일간 파병철회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해온 김재복 수사가 양심배심원단에 참가하며, 박기범(동화작가)·최병수(민중미술 화가)씨 등 반전평화운동가 15명이 이스탄불 법정에 참가한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실시한 한국의 이라크 전범재판운동의 결과를 알리며, 설치미술 작품(최병수 작)을 전시해 이라크 점령 종식과 평화를 갈구하는 행사도 개최할 예정이다. ‘이라크 국제전범재판’은 2003년 5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국제회의 참가자들이 이라크 국제전범재판을 개최하자는 선언문을 채택한 뒤 같은 해 6월 열린 ‘평화와 인권을 위한 유럽네트워크 회의’에서 기획단이 구성되면서 구체화됐다. 이후 국제조정위원회에서 법정프로젝트의 개념과 형식·목적 등을 정한 뒤 지난해부터 각국에서 시작돼 23일 이스탄불에서 최종 법정을 열게 됐다. 연합
  • [윔블던테니스] 이형택 “아깝다 32강”

    한국 남자테니스의 간판 이형택(29·삼성증권)이 윔블던테니스 3회전 티켓을 눈앞에서 놓쳤다. 세계 랭킹 67위의 이형택은 22일 영국 런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벌어진 시즌 세번째 메이저대회인 윔블던테니스(총상금 185억원) 남자 단식 2회전에서 ‘클레이코트의 마술사’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16위·스페인)와 3시간 가까운 풀세트 접전을 벌였지만 아깝게 2-3으로 져 32강이 겨루는 3회전 진출에 실패했다. 지난 2002년 2회전 진출이 최고 성적이던 이형택은 2년만에 네번째 본선에 진출한 이번 대회에서 첫 32강에 도전했지만 막판 페레로의 페이스에 말려 무릎을 꿇었다. 서비스와 리시브가 난조에 빠진 데다 에이스 개수에서도 2-3으로 밀려 첫 세트를 내준 이형택은 2,3세트를 거푸 잡아내며 역전에 성공했지만 4세트 상대의 게임을 한차례도 브레이크하지 못한 데 이어 5세트에서도 되살아난 페레로의 서비스에 밀려 32강의 문턱에서 눈물을 삼켰다.‘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노리던 프랑스오픈 챔피언 쥐스틴 에냉(세계 7위·벨기에)은 여자 단식 1회전에서 엘레니 다닐리두(76위·그리스)에게 1-2로 패해 첫 이변의 주인공이 됐다. 프랑스오픈 우승자로서 윔블던 1회전에서 탈락한 선수로는 지난 1962년 마거릿 스미스 이후 처음이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윔블던테니스] 이형택·조윤정 “오랜만이야 윔블던”

    “오랜만이야, 윔블던!” 한국 남녀 테니스의 간판 이형택(29)과 조윤정(26·이상 삼성증권)이 2년 만에 출전한 올잉글랜드 테니스코트에서 나란히 2회전에 진출했다. 세계 랭킹 68위의 이형택은 21일 영국 윔블던에서 벌어진 시즌 세번째 메이저대회인 윔블던테니스(총상금 185억원) 본선 남자 단식 1회전에서 ‘백전노장’ 토머스 엔크비스트(스웨덴)를 3-1로 물리치고 2회전에 진출했다. 이형택이 2회전에 진출한 것은 지난 2002년 이후 두번째. 지난해까지 통산 세 차례 윔블던에 출전했지만 그 해 유일하게 1회전을 통과했던 이형택은 3년 만에 2회전에 진출하는 감격을 맛봤다. 첫 세트를 먼저 잡은 이형택은 2세트를 타이브레이크 접전 끝에 내줬지만 3세트 엔크비스트가 더블폴트를 10개나 쏟아내며 자멸한 틈을 타 에이스 11개를 솎아내 승리했다. 2회전 상대는 통산 상대전적 1승1패를 기록중인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16위·스페인). 랭킹에선 뒤지지만 2003년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시드니대회에서 당시 4위이던 페레로를 꺾은 뒤 사상 첫 ATP 우승을 일궈낸 적이 있어 해 볼 만한 상대라는 평가다. 조윤정(86위)도 이날 여자 단식 1회전에서 아란차 파라 산토냐(82위·스페인)를 2-0으로 가볍게 일축하며 서전을 장식했다. 지난 2003년에 이어 두번째로 2회전에 진출한 조윤정은 카타리나 스레보트닉(57위·슬로베니아)과 경기마저 승리한다면 생애 첫 윔블던 단식 3회전에 진출하게 된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쌀협상 국회비준 저지 농민 총파업·단식농성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7개 농민단체로 구성된 ‘쌀 협상 국회비준 저지 비상대책위원회’는 20일 쌀협상 무효와 국회비준 저지를 위한 ‘농민 총파업’과 함께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날 농민 총파업은 전국 91개 시·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으며 농산물 도매시장·미곡종합처리장(RPC) 봉쇄투쟁, 농기계 적재시위 등에 3만여명의 농민들이 참가했다. 단식농성에는 전농 문경식 의장을 비롯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국농업기술자협회·한국가톨릭농민회·한국낙농육우협회·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국여성농업인중앙연합회 대표가 참여했다. 수입쌀 협상 백지화와 국회비준 저지를 외치는 성난 농심(農心)이 벼논을 갈아엎는 등 전국 곳곳에서 폭발했다. 이날 오전 전남 고흥군 풍양면 고옥리 이낙규(45)씨는 한 달 전에 모내기 한 논 1000여평을 자신의 트랙터로 갈아엎었다. 또 광주 광산구 삼도동(800여평)과 순천시 풍덕동(500여평), 경북 영주(400여평) 등지도 벼논 갈아엎기 시위가 이어졌다. 전북 장수군 농민회는 장계읍 망남리에서 농민 100여명이 모여 호박밭(400여평)을 갈아엎었다. 또한 경북 경산시 농민회 소속 농민들은 농협 경산시지부 앞에서 경운기 1대를 불태웠고, 전북 부안군 농민 200여명은 군청 앞에서 삽과 낫 등 농기구를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부산 농민회는 이날부터 농산물 출하를 거부해 상추·부추·오이 등 채소류의 공급 차질을 빚고 있다. 또 경북도 내 10여개 RPC에서는 쌀 출하를 중단, 농촌이 소용돌이에 휘말렸다.전국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안성 ‘미리내 성지’ 골프장 건설 무산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 성지’ 인근에 골프장을 건설하려던 계획이 천주교측의 반발로 백지화된다. 안성시는 16일 ㈜S개발이 지난 2월 양성면 미산리에 27홀 규모의 골프장을 짓기 위해 제출한 ‘도시계획 입안서’를 반려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시 관계자는 “골프장 건설계획에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신부들의 단식농성과 ‘릴레이 미사’ 등 천주교측의 반발이 거세 지역사회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천주교 수원교구측은 시의 반려 결정에 따라 17일 안성시청 앞에서 신자 1만여명과 함께 열기로 했던 촛불기도회를 무기한 연기했으나 ‘건설사측 의 반발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단식 농성은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골프장건립반대 비상대책위 서정용 위원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를 모신 미리내 성지 인근에 골프장이 들어서면 성역 훼손은 물론 종교활동도 심각하게 방해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대해 S업체는 “관련 법률에 준해서 절차적 문제없이 사업을 추진했는데 천주교 신자들의 반발이 심하다는 이유로 사업 신청을 반려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법적 대응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S개발은 지난 2002년 11월부터 양성면 미산리에 골프장 건립을 추진해 왔으며, 천주교측은 ‘성역 침해와 종교활동 방해’를 이유로 반발하고 있다. 안성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3)정감록과 혹세무민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23)정감록과 혹세무민

    ‘정감록’ 때문에 민중이 울었다. 정감록은 민중의 희망이었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정감록을 이용해 자기 한 몸의 안락과 치부(致富)를 꾀하는 못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정감록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지배층의 평가는 늘 부정적이었다.‘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것이다. 이런 평가는 지배층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잣대로 삼은 것이었다.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판단이 내려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 해도 상당수 민중이 정감록 때문에 재산을 잃거나 심지어 목숨을 앗기는 일도 심심치 않았다. ●백백교(白白敎)의 아전인수(我田引水) 일제시대 백백교 사건은 그야말로 혹세무민의 대표적인 사례다.1937년 백백교 간부 150여명이 집단살인사건으로 검거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조사 결과 핵심 간부 18명이 최소한 신도 314명을 살해한 사실이 확인됐다. 특히 이경득은 61회에 걸쳐 166명을 살해했고, 문봉조도 129명이나 되는 교인을 죽여 암매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의 백백교는 교단 이름부터 ‘정감록’을 빌렸다. 정감록에 보면 말세에 사람이 다 죽은 뒤 “사람의 종자를 양백(兩白)에서 구한다.”고 했다.‘양백’은 곧 백백(白白)으로 풀이된다. 백백교에서는 이 구절을 끌어다 구원을 받을 사람들은 오직 백백교도뿐이라고 내세웠다. 또 한 가지. 정감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라도운봉두류산(全羅道雲峰頭流山) 성인출어함양림중(聖人出於咸陽林中)”이란 대목이 있다. 글자 그대로는 “전라도 운봉에 두류산 즉, 지리산이요, 성인은 함양 땅 수풀 속에서 나온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백백교에선 색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앞부분은 “전(全)씨가 도(道)를 열(라)고 운(運)을 만(逢)난다.”고 보았다. 뒷부분은 성인이 출현하기로 예정된 ‘함양림’이란 장소를 백백교가 창시된 함(咸)경도 운림(林)면 마양(陽)리로 풀이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이쯤 되고 보면 정말 기발한 해석이었다. 나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억지 춘향이다. 그러나 20세기 초 많은 한국 사람들은 백백교 식의 정감록 해석을 환영했다. 그들은 도리어 기상천외한 해석에서 비결의 힘과 매력을 발견했다. 그만큼 순리대로 살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 ‘백백’이란 “한 가지 흰 것으로 천하를 희게 만들자(一之白將欲白之於 天下地).”는 구호를 요약한 것이기도 했다.‘흰 것’은 정감록에서 말하는 “계룡산 바위가 희어진다.”는 구절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흰 바위란 전통적으로 미륵을 상징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 가지 흰 것”은 정씨 진인이 출현할 시기이자 미륵부처나 다름없는 백백교의 교주를 가리켰다. 요컨대, 새 종교 백백교와 더불어 이 세상이 완전히 바뀐다는 선동적 믿음이 구호에 담겨 있었다. 백백교의 남자 신도들은 “백백백의의의적적적”이라는 주문을 줄곧 외워댔다. 그러면 무병장수하고 말세에 살아남는다고 했다. 그들은 말세에 서양은 불로 망하고, 동양은 물로 망한다고 했다. 불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본래 기독교 성경에 나와 있다. 그런 이유로 기독교의 본고장 서양은 불로 망한다고 보았다. 동쪽은 서쪽의 반대라 물에 약하다고 풀이했다. 중요한 점은 백백교를 믿는 사람만이 무사히 살아 남는다는 주장이었다. 교단 측은 신도들에게 일단 한국의 53개 성지에 들어가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다 말세의 심판이 닥치면 곧바로 금강산으로 들어가라 했다. 금강산엔 ‘피수궁’(물의 재난을 피하는 궁궐)이 있고 거기서 잠시 기다리면 백백교의 교주 대원님이 하강해 신도들을 이상향으로 인도한다는 것이었다. 백백교의 이상향은 동해의 섬이었다. 동해 바다 한 가운데 3000리나 되는 영주란 섬이 있다고 했다. 그 섬엔 봉황과 기린이 살고 불로초도 있다. 신선처럼 살고 싶은 백백교 신도는 누구나 그리로 인도된다. 그러나 만일 부귀영화를 한껏 누려보고 싶은 이라면 계룡산으로 안내된다. 백백교의 수장인 대원님이 새 세상의 왕이 되어 교단에 대한 공헌도에 따라 신도들에게 관직을 준다고 했다. 교단에 재산을 많이 헌납한 사람은 당연히 큰 벼슬을 받게 된다. 이런 감언이설로 백백교 지도층은 세상 삶에 지친 민중을 유혹했다. 백백교를 세운 이는 가난한 농부 전정운(全廷雲)이었다. 본래 동학교도였던 그는 1900년 평안남도 영변군 근산면 화현동에서 백도교(白道敎)란 간판을 걸었다. 얼마 뒤 그는 앞에서 설명한 이유로 교명을 백백교로 바꿨다. 그는 1904년 6월 사상 초유의 대홍수가 한국을 휩쓸어 말세가 된다면서 이상향에서 살고 싶으면 무조건 백백교에 입교하라고 선동했다. 물론 전정운의 예언은 빗나갔다. 그럼에도,1905년 강제로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지는 등 세상은 무척 어수선해졌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백백교의 거짓 예언을 뿌리치지 못했다. 교주 전정운이 늙어 죽자 아들 전해룡이 뒤를 이었다. 전해룡은 1923년 경기도 가평에 궁궐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교당을 지었다. 교단에 대한 일반의 신뢰를 높이려는 술책이었다. 그는 평소 단식을 잘했다.20일 동안 단식한 뒤에도 평소와 같은 기력을 과시해 신도들 사이에 신비감을 조장했다. 이 역시 28수라는 그의 허다한 고등 사기수법의 하나였다. 전해룡은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해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했다. 그뿐 아니었다. 만일 신도들의 자녀 가운데 아직 미혼인 여성이 있으면 성적 노예로 삼아 착취했다. 유부녀라 해도 용모가 아름다우면 마음껏 유린했다. 전해룡은 변태성욕자가 분명해 자기의 정사(情事) 장면을 숱한 여신도들이 지켜보게 했다. 그는 이를 신(神)의 행사라고 불렀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신도가 있으면 이상향에 보낸다며 산으로 끌고 가 남몰래 살해했다. 살인을 담당한 간부들은 벽력사(霹靂使)라는 명칭으로 부를 만큼 백백교 지도층은 집단광란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들의 살인극은 무려 14년간 지속됐다. 만일 교주 전해룡의 명령을 따르지 않거나, 교단을 배신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엿보이는 경우는 물론 간부나 첩이라도 태도가 변한 기색이 보이면 즉시 살해되었다. 또한 신도들은 재산을 전액 헌금하게 돼 있었는데, 이를 조금이라도 어길 경우 생매장 당했다. 엄청난 범죄행위에도 불구하고 백백교는 무사했다. 교단 간부들이 해마다 거액을 상납했기 때문에 일제 경찰은 눈을 감아준 것이었다. 그러다 1937년 우연한 일로 백백교의 비리가 세상에 폭로된다. 백백교 사건의 충격과 파장은 컸다. 소설가 박태원은 ‘금은탑(金銀塔)’이라는 제목으로 이를 소설화해 장안의 화제가 됐다. 이런 사건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일제시기 한국의 민중은 정치에 실의하고 생활에 궁핍했다. 근대 한국 민중의 불안한 사회심리를 이용해 우후죽순 격으로 뻗어난 것이 바로 백백교 따위의 악질적인 사이비 종교단체였다.1930년 6월 현재 정체불명의 그런 사이비 단체가 55개, 신도 수는 10여만명을 헤아렸다(동아일보 1930년 6월16일자 사설). 백백교 같은 사이비 종교단체는 암울한 시대배경 속에서 자라난 독버섯이었다. ●정감록을 이용한 재물 뺏기 ‘정감록’을 이용한 사기행각은 식민지 시기 사회 전반에 꽤 널리 퍼진 병리현상이었다.1930년께 김창하라는 사람은 ‘천병만마’(千兵萬馬·무수한 군대)를 격퇴할 해인(海印)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병통치약이라며 가짜 약을 판매하다가 검거됐다. 비슷한 무렵 경상북도 봉화군 내성면에 살던 경호창과 최성기는 태백산 기슭의 벽촌을 돌아다니면서 곧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보천교도 외에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 입교하라고 강요했다. 물론 입교 시에는 소정의 돈을 납입하게 돼 있었다. 경호창 등은 유언비어를 살포한 죄로 20일의 구류처분을 받았다(중앙일보 1932년 3월16일자). 이런 일은 식민지 사회에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비슷한 사건은 조선 후기에도 많았다.1826년(순조 26) 충청도 청주에서 정상채라는 사람이 붙들려 처벌을 받았다. 그는 여러 고장을 들락거리며 나이와 이름을 멋대로 속였다고 했다. 도술을 부린다고 거짓을 늘어놓고 ‘환묘문(幻妙門)’과 같은 도술 책을 친구에게 주어 타인의 물건을 빼앗게 했다. 마침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그것은 전주곡에 불과하며 진짜 난리는 얼마 뒤에 일어난다며 민심을 선동했다. 그러면서 정상채는 진인이 이미 섬에 와 있다고 황당한 말을 꾸미는 한편 진인의 당에 가입하려면 이름을 직접 서명하라고 사람들을 졸라댔다. 뿐만 아니라 섬에 있는 진인의 군대에 군복을 지어 입힌다며 군자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모은 돈을 그가 착복했음은 물론이다. 정상채의 동료 박형서도 비슷한 혐의로 체포돼 사형을 받았다. 주된 죄목은 남의 재물을 속여서 빼앗고 ‘흉언(凶言)’ 즉 거짓 소문과 예언을 지어내 인심을 소란케 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전쟁이 박두했다는 둥, 해도(海島)에 진인이 있다는 둥 거짓 예언을 퍼뜨리며 자기가 살길을 아노라 했다(실록·순조 26년 10월27일 을해). 비슷한 예는 정말 많았다. 박형서나 정상채 같은 사람들을 변호하는 입장에서는 그들은 조선왕조를 전복시키기 위해 군자금을 마련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변호인들은 왕조사회의 한계와 모순을 지적하면서 ‘범인들’이야말로 실은 ‘혁명아’였다고 강변하겠지만, 과연 그랬을까? 남의 호주머니를 털어 마련한 군자금을 생활비와 용돈으로 소비한 사람들이 과연 혁명아일지 의문이다. 그들이 말한 진인은 결국 환상적인 존재였을 뿐이다. 그들에게 금품을 건네준 사람들의 기대는 처음부터 어긋났다. 한마디로 그들은 사기꾼이었다. ●홍경래의 난 그런데 어떤 경우엔 도무지 이것이 ‘혹세무민’인지, 사기행각인지 또는 진정한 의미로 민중의 투쟁이었는지를 잘라 말하기가 어렵다. 결코 백백교와 동렬에 놓일 성질은 아니지만 경계 짓기의 어려움을 확인하기 위해 홍경래의 난을 예로 들어 보겠다. 결코 홍경래 난을 매도하려는 뜻은 아니란 점을 다시 강조한다. 홍경래 난은 1811년(순조 11) 12월18일 시작됐다. 반란군은 순식간에 청천강 이북을 장악했다. 그러나 전열을 재정비한 관군의 반격을 받고 곧 정주성에 갇혀 버렸다. 정주성 싸움은 이듬해 4월19일까지 제법 오래 계속됐지만, 결국 관군의 승리로 끝났다. 장기간 싸움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반란군 측은 여러 차례 격문을 내걸었다. 격문엔 정감록이 예언한 정진인(鄭眞人)도 언급됐다. 서북 사람들에 대한 차별대우를 철폐하라, 세도정권의 가렴주구는 악행이라는 등 그 시대 서북 사람들의 고민과 희망도 모습을 드러냈다. 참고로 정감록과 관련된 부분만 발췌하면 대개 이런 식이었다. “지금 나이 어린 국왕과 주위의 간악한 무리들 때문에 나라가 어지럽다. 그런데 다행히도 세상을 건질 성인이 청북 선천 검산 일월봉 아래 군왕포 위 가야동 홍의도에서 탄생하셨다. 성인은 나서부터 비범하신데 평안도 지역은 성인의 고향이라 직접 손을 대지 못하시고 우리들에게 명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하셨다.” 정감록이 예언한 새 왕조의 창건자가 이미 홍경래의 곁에 와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로써 반란이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인식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격문을 짓게 한 홍경래 자신은 각종 병서(兵書)와 술서(術書), 특히 ‘정감록’에 조예가 깊었다고 한다. 그는 풍수지리에도 능통해 전국을 유람했다고도 전한다. 홍경래 일당은 정감록에 의지하는 바가 컸다. 그런 까닭이겠지만 난이 실패로 돌아간 다음에도 사람들은 정감록과 해도 진인에 대해 더욱더 이야기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홍경래가 아직 살아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홍경래 난은 무려 10년 동안 사전에 준비됐다고 했다. 조직적인 반란이었던 셈이다. 풍수 전문가 홍경래를 비롯해 우군칙, 김사용, 김창시 등 유랑지식인 또는 몰락 양반들이 반란군의 지도부를 구성했다. 그들은 중국과 무역을 통해 벼락부자가 된 이희저의 가산 다복동의 사저를 거점으로 삼아 평안도 각지의 부자들과 연합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운산에 광산을 열어 빈농과 유이민 등을 모아 훗날 군사로 동원했다. 이 당시는 청나라와 국경무역이 활발했을 때라 평안도 출신 가운데는 이희저의 경우처럼 대상인이 된 이들도 적지 않았다. 수요에 맞춰 평안도엔 유기(鍮器) 등 수공업이 발달했으며 광산 개발도 상당히 활발한 편이었다. 홍경래 일파는 이런 시대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이 기회에 서북지역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서울로 진격해 일거에 정권을 장악하려 했다. 연구자들이 지적하듯 홍경래를 지지한 계층은 민중이라기보다는 평안도 각지의 부호들이었다. 좌수와 별감을 비롯한 향임(鄕任·행정보조집단)과 별장(別將)과 천총 등 무임(武任·군사 및 치안담당자) 가운데 재산이 넉넉한 사람들이 홍경래를 후원했다. 민중의 지지는 정주성을 지킬 때 엿보이는 정도였다고 한다. 본래 유랑지식인이었던 홍경래나 자칭 제갈공명이라 불렀던 우군칙은 반란을 모의하는 과정에서부터 갖은 방법으로 부자인 이희저를 포섭하는 데 주력했다. 결과적으로 이희저는 반란에 필요한 자금 조달을 책임지게 됐으며, 비슷한 처지에 있던 평안도 유지들을 후원자로 끌어들인다. 그런 점에서 홍경래 난은 일부 유랑지식인과 상층부 인사들이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홍경래 등은 서북지방의 숙원이던 지역차별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했고, 그 점에 있어 해당지역 민중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만했다. 하지만 일반 민중과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평안도의 부호들이 반군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한 점으로 보아 실상은 평안도 지배층의 정치적 이해를 반영하는 반란이었다. 실제로도 격문을 분석해 보면 소농과 빈농 등 하층민의 요구를 반영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1894년의 동학농민운동과는 천양지차가 있다. 만일 이 점을 확대 해석한다면 홍경래의 난은 평안도 지배층이 중앙정부를 상대로 한 싸움이었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홍경래 등이 자주 거론한 ‘정진인의 출현’은 민중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민중을 동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조선왕조의 입장에서 보면, 홍경래 난은 두말할 나위 없이 ‘혹세무민’이었다. 왕조의 입장은 그렇다 해도 반란이 실패로 끝난 뒤 한때 홍경래 일파를 적극 지지했던 평안도의 부자들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한마디로 판단하기는 참 어려운 문제다.‘사물은 하나지만 해석은 구구하다.’라 했던 어느 역사가의 주장이 문득 뇌리에 떠오른다. 홍경래의 난은 복잡했다 해두자. 어쨌거나 틀림없는 한 가지 사실은 때로 정감록은 민중에게 고난과 아픔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시대가 어려울 때일수록 그런 경향이 심했다. 이 점을 인식한 듯 근세의 종교지도자 소태산은 이렇게 말했다.“근래의 인심을 보면 사술(邪術)로 대도를 조롱하는 무리와 모략으로 정의를 비방하는 무리들이 세상에 가득하여, 각기 제가 무슨 큰 능력이나 있는 듯이 야단을 치고 다니나니, 이것이 이른바 낮도깨비니라. 그러나 시대가 더욱 밝아짐을 따라 이러한 무리는 발 붙일 곳을 얻지 못한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새로운 세기, 새로운 미술관展

    ‘미술관을 보러 오세요.’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국내에서 해외 유명 미술관 순례를 할 수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등 세계 유수 미술관 25개의 면모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다음달 21일까지 열리는 ‘새로운 세기, 새로운 미술관전’이 바로 그곳. 이들 25개 미술관은 지난 10년간 새로 건립하거나 증축하면서 새롭게 탄생된 미술관들이다. 미술관의 소장품뿐만 아니라 미술관 건물 자체가 볼거리를 제공할 정도로 미술관 건축에서 의미있는 ‘작품’들이다. 특히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전시회다. 이번 전시회는 이들 미술관을 실제로 가본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400여점의 사진, 드로잉, 설계도, 모형등을 보여준다. 일반인들에게 설계도는 다소 전문적인 만큼 목재, 유리, 거울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미술관 모형은 미술관 내부 공간까지 자세하게 볼 수 있도록 잘 만들어졌다.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흐르는 강 위편에 있는 좁은 바위턱을 따라 자신의 몸체를 굽이치듯 드리우고 있는데 내부로 들어가기 전 독특한 건물 외양에서부터 ‘악 소리’를 내게 한다. 안에서 보면 반짝거리는 동굴이고 밖에서 보면 금속제 산맥의 느낌을 준다. 멕시코 전통 가옥에서 영감을 얻어 지어진 멕시코 몬테레이 현대미술관은 관람객이 작품 감상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지어졌다. 격자무늬 지붕, 동글동글한 조약돌이 깔린 핑크빛 테라스 자체가 예술이다. 오래된 개인 대저택이 화려한 변신을 한 미국 샌디에이고 현대미술관은 현대적인 삶과 전통적인 우아함이 어우러진 건축으로 독특한 로비가 압권이다. 삼성미술관 리움의 건축가 3명중의 1명이자 서울대 미술관 설계에 참여한 렘 쿨하우스의 독일 예술미디어 센터도 눈에 띈다. 철도역 반대편 좁고 길다란 철도트랙 작업이 진행되던 지역을 그는 새로운 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키며 건물의 철학성을 보여준다. 미국 워싱턴주 벨뷰 미술관은 2층 익스플로어 갤러리가 이채롭다. 이 갤러리는 보통보다 2배 높은데 중앙의 계단식 경사로를 올라가면 3층이 아닌 2.5층이 나온다. 한 전시 공간이 두개의 갤러리, 세개의 갤러리로 확장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강승완 학예연구관은 “이 전시회는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미국, 독일 등 9개국에서 순회전시를 마치고 최근 일본에서는 5개 도시에서 전시했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며 “미술관은 단순히 예술작품을 수렴하는 장소가 아니라 문화와 건축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공간”이라고 강조했다.(02)2188-6063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코리아오픈탁구 남자단식 ‘짠물탁구’ 오상은 우승

    오상은(KT&G·세계 15위)이 국내 최정상임을 재확인했다. 오상은은 12일 순천 팔마체육관에서 열린 코리아오픈탁구 남자단식 결승에서 팀 후배 임재현에게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4-0으로 잠재우는 ‘짠물 탁구’로 우승컵을 차지했다. 준우승을 차지한 임재현은 4강에서 세계 11위 베르너 쉴라거(오스트리아)를 꺾으며 돌풍의 주역으로 떠올랐으나 오상은의 벽을 넘기에는 실력의 부족을 느껴야 했다. 국내 랭킹 1위이자 올해 세계선수권 단식 동메달리스트인 오상은은 사실상 결승전이나 다름없던 4강 길목에서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승민(삼성생명·세계 7위)을 만나 4-1로 승리하며 국내 최강자임을 과시했다. 오상은은 유승민의 위력적인 드라이브 공격에 말려 세트스코어 1-1 동점을 허용했으나 듀스 접전이 펼쳐진 3세트를 20-18로 따내 승부의 물꼬를 돌린 뒤 4,5세트도 모두 빼앗아 결승행 티켓을 얻었다. 한편 유승민은 이정우(농심삼다수)와 짝을 맞춘 복식 결승에서 김태훈(삼성생명)-조지훈(농심삼다수)조를 4-0으로 제압,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부에서는 아테네올림픽 단식 동메달리스트 김경아가 리자웨이(싱가포르·세계 8위)와 풀세트 접전 끝에 4-3 극적인 역전승으로 우승컵에 입을 맞췄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양정고 에베레스트원정대 귀국

    양정고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3월 에베레스트(8848m) 도전에 나선 양정고 에베레스트원정대가 지난달 30일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고 무사히 하산,8일 오전 귀국했다. 공항에서 간단한 환영행사를 가진 원정대는 곧바로 양정고로 이동해 재학생과 교직원, 동문들이 모인 가운데 해단식을 치렀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대한축구협회 이회택 기술위원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대한축구협회 이회택 기술위원장

    ‘축구, 그분이 오셨다.’ 우선 2006독일월드컵 본선진출 여부가 곧 판가름난다. 네덜란드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도 이달에 열린다.3년전 한반도를 뒤흔든 ‘6월의 함성’이 다시 들려온다. 축구는 가장 스펙터클한 스포츠다. 감동과 환희, 좌절과 한숨…. 남녀노소를 동시에 한곳으로 집중시키는 거대한 응집력은 차라리 신화요, 전설이다. 누가 태극전사의 내달림을 보면서 웃고 울고, 마음 졸이지 않을 수 있으랴. ●축구인생 50년 ‘그라운드 풍운아’ 추억의 방송멘트가 있다.“고국에 계신 동포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메르데카배 축구대회가 열리는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입니다.” 1970년대초였다. 농촌의 여름밤,TV는 물론 라디오조차 귀했기에 저녁밥 일찍 먹고 서둘러 라디오가 있는 이웃집으로 속속 모인다. 이어 중계방송이 시작되고 아나운서의 “슛, 아깝습니다. 슈∼웃, 골인!”하는 목소리에 탄식과 환호가 교차한다. 상상속에서 슛동작을 흉내내는 모습은 저마다의 흥분이요, 잊지 못할 추억거리였다. 맞다. 그때의 우상이었다. 아시아의 표범, 그라운드의 풍운아로 표현된다. 네살 때 아버지가 월북해 ‘고아’나 다름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버려진 깡통과 길가의 돌멩이들을 속절없이 걷어차기 일쑤였다. 파란과 곡절의 축구인생 50년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회택(60)씨.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맡아 대표팀의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다. 그를 만났다. 키 173㎝, 짧은 머리에 어깨가 딱 벌어져 다부진 체격, 왕년의 스트라이커를 연상하는 데 어렵지 않았다. 특유의 무뚝뚝한 표정 역시 그대로였다. 독일월드컵 본선진출을 장담한 그는 먼저 한국축구에 대해 “월드컵 4강에 오른 팀이다. 다만 월드컵 4강 당시 수비수 3명, 즉 홍명보 최진철 김태영 가운데 한 명이라도 남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박주영 골결정력·패싱·순발력 3박자 겸비 공격라인에 대해서는 “박지성 차두리는 힘과 스피드가 좋아졌고, 안정환도 부상에서 회복됐다. 최근에는 박주영까지 가세했다. 경쟁이 아주 치열해졌다.”고 분석했다. 특히 박지성의 경우 공수에 걸쳐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패싱기술이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박주영을 가리켜 골 결정력, 패싱력, 순발력 등 3박자를 모두 갖춘 선수라고 치켜세웠다. 여기에 이천수와 설기현이 들어오면 경쟁은 정말 가열된다고 부연했다. 송종국 선수를 거론하면서 “(송 선수가)사경을 헤매는 것처럼 슬럼프에 빠져 있어 정말 아쉽다. 빨리 회복해 이들과 경쟁대열에 합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본프레레 감독의 전술과 리더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히딩크 감독도 처음에는 욕을 먹었다. 결국 월드컵 4강에 올려놨다. 선수들도 죽어라 뛰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기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선수들은 자만심에 차 있고, 상대국가들은 우리나라를 반드시 꺾으려고 한다. 수비수를 더욱 보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현실속에서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승부세계에서는 이기는 방법밖에 없다. 응집력과 투지가 관건이다.” 화제를 돌렸다. 현역시절인 70년대와 지금의 축구를 비교해달라고 했다.“당시에는 태클을 잘 하는 선수, 개인돌파가 좋은 선수 등 개인기술이 특징이었지만 지금은 체력과 체격이 아주 좋아졌다.”면서 “그때만 해도 잔디구장에서 축구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지금은 운동장 사정도 매우 좋아졌다.”고 말했다. 게다가 요즘에는 4-4-2,3-4-3 등 포메이션이 다양하고 국제정보에도 밝지만 그때는 전술과 정보가 보잘 것 없었다고 회고했다. ●67년 중앙정보부서 징발 ‘양지팀’ 창단 #에피소드 1.67년 2월. 이회택은 연세대 입학을 일주일을 앞두고 축구부원들과 동계훈련 중이었다. 검은 지프 한 대가 훈련장에 도착했다. 한 사내가 내리더니 “이회택이 이리 나와.”라고 했다. 사내는 중앙정보부 감찰실의 임경옥씨. 당시 ‘중정’은 누구도 거역 못할 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이회택이 사내와 함께 도착한 곳은 이문동 중정 본부. 사연은 이러했다. 북한이 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강호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오르자 박정희 대통령이 크게 충격받았다. 김형욱 중정부장이 팔을 걷어붙였다. 축구깨나 한다는 사람들을 모두 징발했다. 감독 최정민, 골기퍼 이세연, 이회택 김호 김정남 김삼락 등 이른바 ‘양지팀’이 곧바로 조직됐다. 김 부장은 팀 창단식 때 이들을 불러모아 “모든 것을 지원해 줄 테니 빛을 보도록 만전을 기해달라.”고 훈시했다. 아울러 팀에서 뛰는 동안 군복무를 인정해주고 매달 2만원씩(쌀 한 가마니 4000원) 월급을 약속받았다. 잔디구장과 기숙사도 제공됐다. 갑작스러운 호강이 오히려 술과 도박을 가깝게 했다. 전적도 보잘것없었다.68년 5월 바그다드에서 열린 세계군인선수권대회에서 3전3패의 수모를 당했다. 이씨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그전까지만 해도 축구가 인생의 전부였으나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양지팀 시절은 인생의 전환점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회고했다. ●메르데카배 내기건 교민 비기기 작전 주문 #에피소드 2.68년 여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메르데카배 축구대회에 참가했다. 양지멤버가 주축인 대표팀은 패전을 거듭해 5,6위전으로 밀려났다. 상대는 인도. 당시만 해도 교포들이 거의 없어 외교관 부인들이 김치를 들고 와 응원할 정도였다. 그런데 말레이시아 교포라는 사람이 찾아와 고참선배를 만나고 갔다. 잠시 후 고참선배는 이회택 등 공격수들만 불러 비기는 작전을 주문했다. 교포가 비기는 쪽으로 상당액의 돈을 걸었으며 그럴 경우 배당액의 절반을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것. 이회택은 말이 되느냐며 출전했다. 하지만 경기내내 그 말이 떠올라 혼란스러웠다. 영문을 모르는 수비수들은 몸을 날리며 열심히 뛰었다. 그날따라 이세연 골기퍼는 인도선수들의 슛을 잘도 막아냈다. 경기 종료 직전. 이회택은 상대의 공을 뺏어 김기복 선수한테 슬쩍 패스를 했더니 그냥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결과는 1대0으로 이겼다. 이씨는 국민가수 조용필씨와도 각별한 인연이 있다.72년 어느날 저녁. 서울 퇴계로의 라이온스 나이트클럽에서 기타 연주를 하는 조용필(보컬그룹 25시 멤버)과 처음 만났다. 이씨는 밴드를 무척 좋아했다. 이후 이씨는 조용필의 매니저 역할까지 했다. 잘 아는 킹레코드사의 박성배 사장에게 레코드 취입까지 부탁했다.‘돌아와요 부산항에’‘너무 짧아요’ 등을 이때 취입했다. 또 방송국 PD 등에게 연락해 조용필의 노래를 자주 내보내 줄 것을 부탁했다.‘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뒤에는 바로 이씨가 있었다. 이와 관련, 이씨는 “2년여전 조용필씨의 부인 장례식 때 만난 이후로 서로 바빠서 잘 안 만나게 된다.”면서 “언젠가 골프 라운드도 한번 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골프실력은 이븐파를 기록할 정도. ●한때 국민가수 조용필 매니저 역할도 축구인 이회택. 비록 키는 작았지만 빠른 몸놀림과 날카로운 슈팅과 드리블, 그리고 대담성을 가진 천부적인 골잡이였다. 김포가 고향인 그는 어릴 적 돼지 오줌보와 깡통 등으로 축구놀이를 즐겼다. 초등학생때는 동네 형의 손을 잡고 조기축구회에 나가기도 했다. 중3 때 축구를 좋아하는 학생끼리 축구부를 조직, 대회에 출전했다. 고등학교 진학은 축구부가 있는 한양공고에 먼저 원서를 냈다. 퇴짜맞았다. 빠르지만 기술이 없다는 이유에서. 마음을 돌려 얼른 영등포공고에 진학했다. 고교 2년 때였다.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전국고교 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첫시합은 부산상고였고 두번째는 광주상고. 연거푸 2골씩 넣어 이겼다. 축구신동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어 동북고로 스카우트됐다.65년 청소년대표에 이어 이듬해 국가대표에 뽑혔다.75년까지 10년 동안 한국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다. 이후 86년 프로리그의 포항 아톰스의 감독을 맡아 두 차례 우승을 이끌었다.90년 대표팀 감독으로 이탈리아월드컵 본선에 참가해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최고의 명예를 얻었다. 74년 결혼한 그는 결혼한 딸(사위는 농구선수)이 얼마전 손자를 낳아 할아버지가 됐다. 아들은 한양대 1학년에 다니다 해군복무 중이다. 부인은 현재 방이동에서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다. 북한에 살던 부친은 2년전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 1946년 경기 김포 출생 ▲ 65년 서울 동북고 졸업 ▲ 65년 청소년 국가대표팀 선수 ▲ 66∼76년 국가대표팀 선수 ▲ 69년 한양대 졸업 ▲ 83∼85년 한양대 감독 ▲ 86∼92년 포항제철 감독 ▲ 90년 이탈리아월드컵 대표팀 감독 ▲ 93∼2003년 대한축협회 이사 ▲ 2003년 전남드래곤즈 상임고문 ▲ 2004년∼현재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기술위원장
  • [프랑스오픈] 왼손천재 나달 프랑스오픈 정상

    ‘무서운 10대’ 라파엘 나달(19·스페인·세계5위)이 생애 처음 출전한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컵을 끌어안는 천재성을 드러냈다. 나달은 6일 파리 롤랑가로에서 벌어진 프랑스오픈테니스(총상금 637만유로) 남자단식 결승전에서 ‘저니맨’ 마리아노 푸에르타(아르헨티나·37위)에 3-1 역전승했다. 이로써 나달은 1982년 마츠 빌란더(스웨덴) 이후 23년만에 남자프로테니스(ATP) 대회 출전 첫해에 우승을 거둔 선수로 기록됐다. 또 1989년 마이클 창(미국·당시 19세) 이후 대회 최연소 챔피언으로 이름을 올렸다. 나달은 준결승에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를 3-1로 가볍게 제압, 진정한 챔피언임을 입증했다. 14세 때인 2001년 프로에 데뷔한 그는 이전 통산 6승 가운데 올시즌 클레이코트대회에서만 내리 5승을 따내며 ‘클레이코트의 신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10대의 나이에 랭킹 ‘톱10’에 초고속으로 진입한 나달은 이번 우승으로 토머스 무스터(오스트리아)-구스타보 쿠에르텐(브라질)의 계보를 잇는 ‘클레이코트의 황제’로 입지를 더욱 다졌다. 다섯살 때 삼촌의 권유로 처음 테니스라켓을 쥔 그는 183㎝,75㎏의 체격에 빠른 몸놀림과 야생마 같은 체력, 천부적인 스트로크를 지닌 데다 왼손잡이라는 장점까지 지녔다. 클레이코트에 능하지만 그의 천재성은 하드코트에서도 반짝인다. 지난 4월 초에는 하드코트 대회인 나스닥오픈 결승에서 타이브레이크를 거듭하다가 ‘황제’ 페더러에 아쉽게 2-3으로 패했고, 지난해 같은 대회 32강전에서는 2-0으로 완승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나달의 상승세가 잔디코트인 윔블던대회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프랑스오픈테니스대회] 이형택, 복식 8강 좌절

    이형택(29·삼성증권)이 단식 16강 진출 실패에 이어 복식에서도 8강 진출이 좌절됐다. 이형택은 2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오픈테니스대회(총상금 637만유로) 복식 16강전에서 한국계 케빈 김(미국)과 짝을 이뤄 아테네올림픽 단·복식 금메달리스트 듀오인 페르난도 곤살레스-니콜라스 마수(이상 칠레)조와 맞섰으나 0-2(2-6 2-6)로 패하고 말았다. 이형택-케빈 김은 이날 앞서 열린 32강전에서는 카롤 벡(슬로바키아)-야로슬라브 레빈스키(체코)조를 2-0(7-5 6-1)으로 완파하고 16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형택-케빈 김은 64강전에서 세계 최정상급의 마헤시 부파타이(인도)-토드 우드브릿지(호주)를 격파하는 등 파란을 일으키며 16강까지 진출, 메이저대회 최고 성적을 올렸다. 한편 2000년 US오픈 이후 메이저대회 2번째 16강 진출을 노렸던 이형택은 지난 28일 단식 32강전에서 스페인의 다비드 페레르(20번시드)에 0-3(3-6 1-6 5-7)으로 무릎을 꿇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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