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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n&Out] 학교 내 종교 강요, 이대로 안 된다/류상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

    [In&Out] 학교 내 종교 강요, 이대로 안 된다/류상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

    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13년 전 우리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종교 관련 사건이 있었다. 서울 대광고 3학년생이자 학생회장이었던 강의석군이 교내 방송을 통해 “강요되는 예배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강군은 46일간에 걸친 단식투쟁 끝에 예배선택권을 얻어 냈지만 학교가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이 문제는 이듬해에 법정으로 갔다. 5년이 지난 2010년 4월 22일 최종 판결이 나왔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지 않고 강제로 종교교육을 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이 판결 이후 학생들에게 예배선택권을 준 기독교계 사립학교는 많지 않다.학교 내 종교 강요에 대한 대학생들의 저항은 강군 사건보다 앞선다. 1995년 숭실대 학생이 6학기 동안 채플(기독교 학교의 교내 예배의식) 이수를 졸업 요건으로 정한 학칙이 종교의 자유를 침범한 것이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결과는 학생의 패소로 끝났다. 2003년에는 이화여대에서 ‘채플반대모임’이 결성됐다. “신을 위해 기도할 권리만큼 기도하지 않을 자유도 있다.” “나는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 신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 당시 채플반대모임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들이다. 2003년 명지대, 2004년 연세대, 2006년 다시 숭실대에서 채플반대운동이 연이어 일어났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법적 소송은 모두 실패로 끝났다. 강의석군이 제기한 고교와는 달리 대학은 학생 스스로 학교를 선택해 입학했다는 이유에서다. 절대 강자인 학교와 약자인 학생 간의 불공정 계약이라는 학생들의 주장은 무시됐다. 대학생들의 채플반대운동은 2006년 숭실대 사건을 정점으로 가라앉은 분위기다. 학생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기독교 학교의 유연한 대응으로 학생들의 불만이 상당 부분 누그러졌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대학뿐 아니라 중·고교도 종전 경직된 의식에서 벗어나 저명 인사 초청 강연, 뮤지컬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 학생들의 거부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내용을 유연하게 바꾼다고 강제 참석제의 문제점이 사라지는 것일까? 기독교 학교 운영자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기독교는 절대자를 인격신으로 고백한다. 예배의식은 그 신과 소통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하느님에 대해 사랑을 고백하고 설교자를 통해 신의 음성을 듣는다.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결단도 예배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학생들의 기호에 맞춘 변형된 채플, 그대로 괜찮은 걸까. 예배의 중요 요소가 실종된 채 춤, 노래로 채워진 채플을 기독교 인격신은 어떤 마음으로 내려다보고 계실까. 어쩌면 그것이 기독교의 종교적 품위를 떨어뜨리고 하느님은 물론 경건해야 할 예배 자체까지 모독하는 건 아닐까. 기독교 학교의 정체성을 위해 꼭 필요하다면 희망 학생만 자율적으로 참여토록 해 제대로 격식을 갖춰 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미국 기독교 학교인 하버드대는 1986년 의무 채플을 중단했다. 일본의 대표적 기독교 학교 도시샤대학은 1960년대에 채플이 자율화됐다. 종교의 자유란 ‘종교를 선택할 자유’와 ‘종교를 거부할 자유’,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전할 자유’, ‘종교를 (합법적 범위 안에서) 교육할 자유’를 포함한다. 기독교 학교의 ‘종교교육을 할 권리’와 학생들의 ‘종교를 강요당하지 않을 자유’를 동시에 충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고교에선 대법원 판결대로 학생들에게 예배선택권을 주고, 대학에서는 필수 이수 과목인 채플을 선택 과목으로 바꾸는 것이다.
  • “여자 안중근, 어머니 유품인 책 보고 알아”

    “여자 안중근, 어머니 유품인 책 보고 알아”

    “1996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제게 책 한 권을 건네주시며 증조할머니가 독립 투쟁을 했던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분이 남자현 선생이라는 사실을요.”독립유공자 남자현 선생의 증손녀 강분옥(59)씨는 광복절을 닷새 앞둔 지난 1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니의 유품인 빛바랜 책 한 권을 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강씨의 증조할머니인 남 선생은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후 만주로 이주해 무장투쟁 운동을 지원하고 여성 계몽에 힘쓴 인물이다. 1933년 주만주국 일본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암살하기 위해 무기와 폭탄을 운반하다 체포됐으며, 같은 해 단식투쟁 끝에 순국했다. 남 선생의 외아들인 김성삼 선생도 어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만주에서 독립 투쟁을 벌였다. 광복 후 김 선생의 가족은 한국으로 귀환했지만 그의 딸 김경복씨는 외따로 중국에 남게 됐다. 김씨가 바로 강씨의 어머니다. 강씨는 “어머니가 글을 배우지 못하고 법률도 잘 몰라 남 선생이 한국에서 독립유공자로 인정을 받는지, 그 후손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서 “어머니는 한국 정부의 도움은 전혀 받지 못한 채 중국에서 당뇨로 고생하시다 쓸쓸히 돌아가셨다”며 눈물지었다. 강씨는 2009년 한국에 살던 남 선생 맏손자의 초청으로 한국 땅을 밟게 됐다. 강씨는 “처음에는 5년 만기 비자가 만료되면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한국이 중국보다 여러모로 살기가 좋아 국적을 얻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강씨는 2011년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특별귀화를 신청했고 이듬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강씨는 “증조할머니가 독립유공자라고 해서 후손인 저희가 정부에 손 내밀 생각은 없다”며 “올해 국적을 취득한 아들에게도 ‘이 좋은 나라에서 우리 힘으로 열심히 벌어서 잘 살아 보자’고 했다”고 강조했다. 강씨는 한국에 와서야 증조할머니가 대단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강씨는 “20여년 전 어머니께 책을 받았을 때도 증조할머니가 어떤 일을 했는지 잘 몰랐다”면서 “2014년 한국에서 남자현 선생 관련 특강을 들었는데 증조할머니가 ‘여자 안중근’이라 불리며 남자도 못할 일들을 해내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남 선생을 모티브로 한 영화 ‘암살’에 대해 “증조할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게 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고 밝혔다. 이어 강씨는 “우리 증조할머니뿐만 아니라 한국에는 독립 영웅이 많다”면서 “한국이 이들을 계속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후손들도 조상의 뜻을 이어 한국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국정농단 폭로’ 노승일, 광화문서 5일째 단식 농성

    ‘국정농단 폭로’ 노승일, 광화문서 5일째 단식 농성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폭로한 핵심 내부고발자 중 한 명인 노승일(41)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이 서울 광화문에서 5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노씨는 5일 “부당해고를 당한 비정규직 분들 농성에 힘을 보태고자 거리에 나오게 됐다”면서 “비정규직 폐지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까지 농성할 생각”이라고 5일 연합뉴스를 통해 밝혔다. 노씨가 농성을 결심한 것은 “삼성시계에서 부당해고를 당했다”면서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앞에서 장기농성 중인 김용희 씨를 지난달 만나면서다. 김 씨는 “단식투쟁으로 생을 마감하겠다”면서 48일째 단식 중이다. 노씨는 김 씨에게 “함께 살아서 건강하게 투쟁하자”면서 이달 1일부터 단식 농성에 동참했다. 시민들에게 김씨 문제를 알리기 위해 유동 인구가 많은 광화문광장 옆 세종로 소공원에 텐트를 쳤다. 공교롭게도 농성 이틀째인 2일 오전 종로구청이 정부청사 앞 해고 노동자들 장기농성 천막을 강제철거했다. 이 광경을 본 노씨는 비정규직 철폐 운동에 투신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노씨는 광화문 주변 곳곳에 설치된 해고·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장기농성 텐트들을 가리키며 “촛불로 가득 찼던 광화문광장에 아직 노동자들이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도록 시민들께서 관심을 두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씨는 최순실 일가의 은닉 재산을 추적하기 위해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수차례 독일을 방문하고 있다. 그는 “최순실 세력은 돈만 있으면 다시 정치세력으로 발돋움하려 들 것이므로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면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행위자의 재산조사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노씨는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유라가 왜 변호인단 만류에도 재판에 나가 모친과 삼성에 불리한 증언을 쏟아냈겠느냐”면서 “최순실 해외자금의 결정권자가 정유라로 돼 있으니까, 정유라를 불구속시켜서 독일 사업을 유지하는 게 최순실의 전략일 수 있다”고 했다. 과거 배드민턴 선수였던 노씨는 형편이 어려워 운동을 하지 못하는 청소년을 발굴·지원하는 사단법인 설립도 계획하고 있다. 사단법인 이름은 ‘대한청소년체육회’로 정했다. 그는 “이완영 의원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을 때 시민들이 모아주신 후원금 1억 3700만원이 종잣돈이 됐다”면서 “‘흙수저’ 아이들이 꿈을 이루는 세상이 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노씨의 장기적인 목표는 정치다. 그는 “주변에선 오해 살 것이라며 정치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는데, 내가 솔직한 거 빼면 시체 아니냐”며 웃었다. 노씨는 “20년 전 한국체대 총학생회장이 됐을 때부터 현실정치에 꿈이 있었다”면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치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정농단 폭로’ 노승일이 사흘째 노숙하며 단식 중인 이유

    ‘국정농단 폭로’ 노승일이 사흘째 노숙하며 단식 중인 이유

    “지금 큰일났네. 그러니까 고(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한테 정신 바짝차리고, 걔네들(JTBC)이 이게 완전 조작품이고, 얘네들(JTBC)이 이거를 저기 훔쳐가지고 이렇게 했다는 것을 몰아야 되고···.”지난해 12월 ‘최순실 게이트’ 국회 국정조사 5차 청문회에서 공개된 ‘최순실 통화 녹취’ 파일 일부 내용이다. 이 파일을 국회에 제공한 인물은 노승일(42) 전 K스포츠재단 부장. 한때 최씨의 측근으로 노 전 부장은 최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친분에 힘입어 국정을 농단한 실체들을 여러 차례 폭로한 인물이다. 이후에도 노 전 부장은 최씨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삼성그룹의 정유라씨 승마 지원 과정을 둘러싼 이해 관계자들의 주요 대화 내용들을 폭로했다. 그런 그가 이제는 거리에서 노숙하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시아경제는 지난 2일부터 노 전 부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 길바닥에 설치된 텐트에서 노숙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고 4일 보도했다. 노 전 부장은 “대한민국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거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 재판 증인으로 나갔을 때 삼성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부당 해고를 주장하면서 통의파출소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걸 알았다. 단식 25일째 친한 국회의원들과 함께 찾아갔는데 도저히 단식을 풀지 않겠다고 해서 내가 대신 단식 할 테니 중단하라고 했다. 그래서 단식농성을 들게 됐다”고 말했다고 아시아경제는 전했다. 하지만 노 전 부장이 단식에 나섰음에도 삼성 해고자는 이날까지 47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자신도 비정규직의 삶을 살았다고 회고했다. 보도에 따르면 노 전 부장은 “비정규직은 내가 해봤기 때문에 비정규직 법안은 폐지돼야 한다고 강하게 생각한 사람 중 하나였다”면서 “처음 사회에 나와서 증권회사에 들어갈 때 1년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1년마다 연장되는 식이었는데 한참 뒤에 연봉직되고 그 다음에 정규직까지 됐다”고 말했다. 노 전 부장은 국회에서 비정규직 철폐 법안이 발의돼야 단식을 풀겠다면서 앞으로도 비정규직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변화를 위해 행동할 계획이라고 전했다고 아시아경제는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서남대 폐교 반대 상경 시위

    교육부가 서남대를 폐교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자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서남대 소재지인 전북 남원지역 정치권과 사회단체 등 1700여명은 20일 서울 광화문광장과 교육부 앞에서 잇따라 대규모 집회를 열고 서남대 정상화 계획안의 수용을 촉구했다. 참석자들은 “서울시립대가 지역 요구를 최대한 반영해 농생명학과 등을 신설하고 공공보건의료 인력 양성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정상화 계획서를 제출했다”며 “이런 실현 가능한 정상화 방안이 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구 재단이 서남대 폐지와 학교법인 서남학원 해산 인가신청서를 제출해 문제 해결은 더욱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서남대 정상화 공동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은 이정린 남원시의원과 김철승 서남대 교수협의회장 등은 지난 14일부터 교육부 앞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 남원을 지역구로 둔 국민의당 이용호 의원 등 국회의원 34명도 지난 19일 서남대의 폐교 반대와 교육부의 특별 대책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현재 서남대를 인수할 재정기여자로 서울시립대와 삼육대가 추천됐으나 교육부는 두 대학의 재정기여 계획이 미흡하다고 판단해 두 차례 보완을 요구하는 등 폐교 절차를 밟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야구 하고 싶다” 단식투쟁 소년… ‘불멸의 야구왕’ 되다

    “야구 하고 싶다” 단식투쟁 소년… ‘불멸의 야구왕’ 되다

    한국 프로야구는 올 시즌 아쉬운 작별을 앞두고 있다. 1995년 데뷔해 ‘국민타자’로 사랑을 듬뿍 받았던 이승엽(41·삼성)이 23년에 걸친 프로생활을 마무리한다. 팬들 사이에서는 은퇴식 날 대구 라이온즈파크가 ‘눈물바다’로 변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돈다. KBO와 삼성 구단은 각각 올스타전과 정규시즌 중 ‘전설’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이벤트를 마련한다. 야구로 친다면 9회말 2아웃으로 경기 종료 직전을 맞이한 이승엽의 야구 인생을 돌아봤다.●“마지막 시즌, 유니폼 벗는날까지 최선” 이승엽은 23일 은퇴 시즌 소감을 묻자 담담한 모습이었다. “떠밀려서 하는 게 아닌 선택해서 떠날 수 있는 마지막 시점이라 은퇴를 결심했다. 1~2년만이라도 더 뛰어달라는 팬들의 요청엔 감사하지만 흔들리지 않는다. 현재 시즌 중이라 경기, 타석에만 집중하고 있다. 은퇴식을 치르는 순간엔 ‘정말 끝났구나’ 생각할 것 같다. 새 삶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도 섞일 것이다. 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 아쉽다. 팬들과 팀이 바라는 홈런 타자의 모습으로, 유니폼을 벗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다.” 전설의 시작은 소년 이승엽의 단식 투쟁이었다. 11세 때이던 1986년 초등학교 4학년 이승엽은 아버지 이춘광(74)씨에게 밥을 안 먹겠노라 선언했다. 당시 교내 멀리던지기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이승엽에게 들어온 ‘야구팀에서 뛰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아버지가 “야구 하다 실패하면 건달이 되지 않겠나”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승엽에게 바람(?)을 불어 넣은 대구 중앙초 신용석 야구부장도 한 달쯤 집을 드나들며 아버지를 설득했다. 이씨는 결국 막내아들의 단식투쟁과 신 부장의 끈덕짐에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이씨는 훗날 “승엽이가 그 어린 나이에도 ‘후회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허락해주니 곧바로 야구를 하러 뛰어갔다”고 당시를 회고했다.●데뷔 3년차때 최연소 홈런왕에 오르다 8년 뒤인 1994년 삼성과 한양대는 140㎞대의 빠른 볼과 빼어난 타격 솜씨까지 갖춘 경북고 3학년 이승엽을 놓고 스카우트 전쟁을 벌였다. 연고지 구단인 삼성은 오랜 시간 공을 들였으나 이춘광씨는 “고교 때 팔꿈치를 다칠 정도로 혹사를 당한 아들이 프로에 가면 더 큰 탈이 날 것 같다”며 대학 진학을 권했다. 이승엽은 이미 지극정성으로 챙겨주는 이문한 삼성 스카우트 덕분에 삼성 쪽으로 기울었지만 아버지의 엄명을 거역하기엔 아주 착한 아들이었다. 이후 고교 졸업 전 한양대 가을 캠프를 경험하며 ‘한양인’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승엽은 대학 생활에 회의를 느껴 200점 만점의 수능시험을 고의로 망쳐 37.5점을 받았다. 당시 교육부는 체육특기생도 기초학력을 갖춰야 한다며 최소한 40점 이상을 받아야만 특기자 입학 자격을 줬는데 여기에 미달한 것이다. 한양대는 이승엽을 붙잡기 위해 관계자를 수능 시험장까지 동행시키며 철통 수비에 나섰지만 결국 승자는 삼성이었다.삼성에 입단하자마자 받은 왼쪽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이 이승엽은 물론 한국 야구 운명을 바꿔놓았다. 이승엽은 수개월간 공을 잡을 수 없지만 배팅은 가능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당시 우용득 삼성 감독과 박승호 타격 코치는 이승엽이 타격에 뛰어나다고 판단해 설득 작업에 나섰다. 박 코치의 회유에 이승엽은 “내 꿈은 투수다”며 거절했다. 그러나 끈질긴 설득 끝에 이승엽은 “재활을 마칠 때까지만 타자로 한번 나서보겠다”며 마지못해 승낙했다. 팔이 다 나으면 곧장 투수로 복귀하겠다는 말이었다. 데뷔 첫해에 이승엽은 평균 타율 .285, 13홈런, 73타점으로 훌륭한 성적을 냈다. 우용득 전 감독은 “팔이 다 나았을 때 ‘승엽아, 어떻게 할래’라고 물으니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타자 하겠습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백인천 전 삼성 감독의 지도로 ‘외다리 타법’을 익힌 이승엽은 데뷔 3년차인 1997년 32개 아치를 그리며 최연소(21세) 홈런왕에 올랐다. 이듬해에도 초반부터 홈런을 차곡차곡 쌓으며 무난히 홈런왕을 차지하나 싶었지만 타이론 우즈(42개·OB)보다 4개가 부족해 타이틀을 내줬다.●2003년 ‘56홈런’ 亞 신기록을 세우다 KBO리그에서 외국인 선수를 도입한 첫해에 우즈가 장종훈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41개)을 넘긴 것이다. 구겨진 자존심에 자극을 받은 이승엽은 1999년 54홈런을 달성하며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당시 IMF 사태로 힘든 시기를 보냈던 국민들은 두 거포의 홈런 대결을 보며 잠시나마 시름을 잊곤 했다. 4년 뒤인 2003년 이승엽은 56개의 홈런을 생산하며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세웠다. 이승엽이 54홈런을 넘기는 순간부터 삼성 경기가 열리는 날에는 외야석이 이승엽의 공을 잡으려는 야구팬으로 바글바글했다. 팬들은 잠자리채나 대형 글러브를 들고 나와 역사적 기념구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이승엽의 아시아신기록 56호 홈런볼을 주운 행운의 주인공은 이벤트 대행업체 직원 두 명이었다. 이들은 “여러 사람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며 공을 구단에 기증했다. 이승엽의 대기록은 아쉽게도 2013년 일본프로야구 야쿠르트의 블라디미르 발렌틴(60홈런·네덜란드)에 의해 깨졌다. ●미국 대신 택한 일본… 시련을 맛보다 승승장구하던 이승엽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2000년 한국프로야구 선수협의회가 창립되는 과정에서 온갖 마음고생을 겪었다. 당시 선수협 창단 움직임에 대응해 KBO가 주도자인 송진우, 양준혁, 마해영, 심정수, 박충식, 최태원 등을 방출시키며 갈등을 키웠다. 삼성과 현대를 제외한 6개 구단 선수들은 KBO 결정에 반발하며 집단으로 선수협에 가입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팬들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이승엽이 선수협에 가입하지 않은 점을 비난하며 ‘안티 이승엽 사이트’를 만들었다. 삼성 모그룹 내에 노조가 없기 때문에 쉽사리 가입 결정을 내릴 수 없었던 이승엽은 심적 고통을 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승엽은 2001년 1월 기자회견을 열고 “선배가 있고, 팬이 존재하기에 내가 야구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선수협 가입을 선언했다. 이후 정부 중재로 선수협과 구단이 극적 합의를 도출해 선수협 파동도 1년여 만에 막을 내렸다. 비시즌 동안 큰 홍역을 치른 이승엽은 2011년 시즌에서 당시 데뷔 이래 최저인 타율 .276을 기록했다. 미국 진출을 고민하던 이승엽은 2004년 결국 일본행을 택했다. 일본 진출 첫해 롯데 마린스에서 홈런 14개에 그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듬해 곧바로 30홈런을 치며 자기 페이스를 되찾았다. 당시 마린스 코치였던 김성근 전 감독의 지도에 따라 매일 500번씩 타격 연습을 했다. 2006년엔 일본 최고 인기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그해 4번 타자로 뛰면서 41개 홈런을 쌓으며 전성기를 보냈다. 이듬해에도 30홈런을 쳤지만 이후 성적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하위 타순을 맴돌다 2군에도 자주 내려갔다. 결국 방출 통보를 받고 2011년 오릭스로 옮겼지만 여전히 부진하자 일본생활을 정리하게 된다. ●2012년 국내 복귀… 전설이 부활하다 고국으로 돌아온 이승엽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복귀 첫해인 2012년 21개의 홈런을 쳤고,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를 꿰찼다. 이듬해에는 13홈런으로 주춤했지만 2014년 32홈런, 2015년 26홈런, 2016년 27홈런으로 ‘왜 이승엽인가’를 보란 듯 증명했다. 2013년 6월에는 352호 홈런으로 KBO리그 개인 통산 기록을 갈아치웠고, 2015년 6월에는 통산 400호째 대포를 쏘아 올렸다. 올해에는 KBO 통산 최다 득점·최다 루타 신기록도 경신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한국당 김정재 “안경환건 계속 집요하게…오늘은 조국 조지는 날”

    한국당 김정재 “안경환건 계속 집요하게…오늘은 조국 조지는 날”

    “안경환건 계속요. 집요하게. 오늘은 그냥 조국 조지면서 떠드는 날입니다.”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 김정재 의원이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자신의 보좌관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가 언론 카메라에 포착됐다.김 의원은 이 문자에 이어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연세대 명예교수)의 ‘한·미 합동군사훈련 축소’ 발언 등에 따른 파장을 겨냥, “문정인 무슬림인지 반미 생각을 가진 사람이 특보라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김 의원의 문자는 이날 오후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를 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경한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명 닷새 만에 자진사퇴한 뒤 야당은 조국 민정수석에게로 ‘인사검증 부실 검증’ 화살을 돌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민정수석실에서는 새로운 매뉴얼을 마련할 겨를이 없어 기존 박근혜 정부에서 사용하던 검증 방식대로 진행했다”고 부실 검증을 인정하면서 ‘인사추천위원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한편 같은 날 민경욱 한국당 의원은 “자유당은 국회 밖으로 나가 전원 삭발하고 장외단식 투쟁에 돌입하라. 의원직 전원 사퇴하고 노숙 단식투쟁을 해야 한다. 그래야 지지율도 폭등한다. 응원한다”는 문자에 “그 시점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상 바꿔온 비혼 여성들의 발자취

    세상 바꿔온 비혼 여성들의 발자취

    싱글 레이디스/레베카 트레이스터 지음/노지양 옮김/북스코프/504쪽/1만 8000원동서양을 막론하고 비혼 여성들이 좋은 평판을 누린 적이 없다. 여자가 결혼하지 않고 죽으면 ‘처녀귀신이 된다’는 속담이 있고 노처녀 혹은 독신녀는 성격 파탄자로 몰리거나 거의 죄악시됐다. 그러나 이제 어디 가서 그런 말을 했다가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상황이 바뀌었음을 통계가 입증한다. 한국 여성의 초혼 연령이 2015년에 30세를 찍었고 현재 20,30대 여성 중 57.7%가 비혼이다. 미국의 경우 2009년 기혼 여성 비율이 50% 이하로 떨어지자 인구 조사국에서는 ‘드라마 같은 역전’이라고 평가했다. ‘싱글 레이디스’는 이 같은 변화에 주목해 싱글 여성들의 실제 삶과 그들이 일으킨 정치·사회적 변화를 분석한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겸 작가인 저자는 이 책을 위해 100명 이상의 비혼 여성을 인터뷰했다. 저자는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에 결혼을 미루거나 피한 현대의 싱글 여성들이 어떻게 주체적으로 행동양식의 변화와 혁명을 이뤄냈는지를 살피는 과정에서 비혼과 만혼의 역사적 전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음을 알게 됐다고 밝힌다. 그리고 싱글 여성들이 사회 변혁기에 큰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다.서구사회에서 비혼 여성의 상징적 인물은 영국 튜더왕조의 마지막 군주 엘리자베스 1세(1533~1603) 여왕이다. 여왕에게는 여러 차례 혼담이 들어왔고 그중 중요한 국제동맹을 맺을 수 있는 제안도 있었지만 그녀는 “짐은 국가와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혼담을 들고 온 외국 대사에게는 “나는 남편이라는 주인을 두지 않은 한 여성으로서 여기에 있겠다”,“거지이면서 독신인 여성이 결혼한 여왕보다 낫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결혼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던 시대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성들은 독신으로 남은 경우가 많았다. 자매 작가 앤·에밀리 브론테, 시인 에밀리 디킨슨, 최초의 여의사인 엘리자베스·에밀리 블랙웰 자매,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그렇다. 1909년 미국 최초의 노동자 파업은 미혼에 우크라이나 이민자였던 클라라 렘리치가 앞장섰다. 미국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백악관 앞에서 단식투쟁을 했고 1919년 수정헌법 비준을 이끈 앨리스 폴과 루시 번스도 미혼이었다. 독립적인 여성들이 주도한 사회운동의 결과 수정헌법들이 미국헌법에 추가되고 이 수정헌법들이 미국 사회를 재탄생시켰다. 저자는 “의지로 독신을 고수한 여성은 결혼한 여성보다 훨씬 더 자신의 운명을 잘 개척할 수 있고 특별한 경우 역사에 발자취를 남길 수 있음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 싱글 여성들의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실제로 2012년 미국 대선에서 싱글 여성의 67%가 버락 오바마에게 몰표를 던져 백악관 재입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기혼 여성들은 공화당의 미트 롬니에게 더 많은 표를 줬다. 오늘날 대도시가 지닌 독특한 개성과 견고한 캐릭터는 도시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독립적인 삶을 즐기는 여성들이 만들어가고 있다. 2010년 뉴욕시 여성인구의 41.7%가 한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비혼이었다. 이는 2006년 38.7%에서 크게 상승한 것이다. 도시에 싱글 여성 거주자들이 많은 것은 만국 공통의 현상이다. 안전하고 익명성이 보장되고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싱글 여성의 수적인 증가는 선택권이 확장됐으며 필수의무가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말한다. “지난 몇 백년 동안 사회는 모든 여성을 이성애적 엄마 되기라는 단 하나의 고속도로로 밀어넣었다. 이제 셀 수 없이 많은 도로가 뚫렸고 노선이 생겼다. 사랑, 섹스, 동반자 관계, 부모 되기, 일, 우정 같은 요소들을 자기 식대로 조합해 각자의 속도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문화마당] 여성영화제를 기다린다/윤가은 영화감독

    [문화마당] 여성영화제를 기다린다/윤가은 영화감독

    며칠 전 시나리오 마감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인터넷의 바다를 항해하다 엄청나게 재밌는 글을 발견했다. 곧 열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관련 기사를 접한 한 네티즌이 소위 ‘남성들의 취향’을 물씬 반영한 ‘남성영화제’를 상상하여 기획한 글을 게시판에 올린 것이다. 그 영화제는 존 포드 감독전을 시작으로 우위썬, 마이클 만,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회고전을 지나 마틴 스코세이지와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리고 홍콩 누아르와 사무라이 영화 특별전 등에 이르기까지 자그마치 22회에 걸친 남성영화제 일정을 그려 보고 있었다.‘여성영화제가 열린다’는 소식에 ‘그럼 남성영화제는 왜 없어?’라는 반응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매년 새로운 절망을 안겨 준다. 하지만 최근엔 그보다 더 어이없는 반대파들을 상상하며 웃어넘길 여유가 생겨 기분이 좋았다. 어린이영화제에 대항하는 어른영화제는? 환경영화제와 상생하는 자연파괴영화제는 어떨까. 하지만 그 글에서 가장 웃음을 참을 수 없었던 부분은 이른바 무협, 서부극, 누아르, 스릴러, 범죄물 등의 특정 장르 작품들을 ‘남성 취향의 영화’라고 규정한 시선이었다. 이런 발상은 사실 좀 안쓰러운 부분도 있는데, 이런 시선이라면 TV를 갖고 싶어 단식투쟁을 하는 어린 형제나 딸을 시집 보내는 아버지의 상심 같은 걸 평생 이야기한 오즈 야스지로나, 사춘기 소녀 소년들의 은밀한 세계를 섬세하고 감각적으로 그려 온 이와이 슌지 같은 감독들의 작품은 절대 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한편 멜로와 로맨틱코미디를 좋아하는 내 남동생 같은 관객들은 얼마나 큰 소외감을 느낄 것인가. 이 모든 게 다 얼마나 큰 오해이고 착각인지. 올해로 벌써 19회를 맞이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여성의 시선으로 조망한 영화들을 발굴, 상영해 왔다. 장르도 다양하고, 이야기 또한 무궁무진하다. 때론 기존의 영화들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을 만나거나 나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목격하기도 한다. 특히 여성 관객으로서 그런 정도로 깊이 있는 이해와 내밀한 공감이 가능한 재밌는 영화들을 만난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기에 이렇듯 매년 여성영화제가 다시 찾아와 준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내게 여성영화제를 처음 소개해 준 분은 다름 아닌 엄마였다. 막 고등학생이 된 딸이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성화였으니, 말은 못 해도 걱정이 태산이셨을 것이다. 엄마는 당시 막 시작한 여성영화제에 후원 회원으로 등록했고 여성으로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렇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보러 다니셨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제에 다녀온 엄마가 잔뜩 흥분해 말했다. “나 오늘 진짜 멋진 영화 봤어. 이건 진짜 내 이야기야. 네가 이런 좋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거라면 더는 걱정 안 할 테니 마음껏 만들어.” 그 영화는 야네스 바르다 감독의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1)라는 프랑스 다큐멘터리였고, 이후 엄마는 영화를 더욱 사랑하며 영화의 힘을 믿는 진짜 영화팬이 됐다. 엄마의 강력 추천 이후 나 또한 매년 여성영화제를 찾아 매년 새로운 인생의 영화를 건져 올리고 있다. 여성의 삶을 새롭게 발견하고 응원하는 영화들이 가득한 이 영화제에 모두를 초대하고 싶다. 관객으로서 좋은 영화를 만날 때의 기쁨과 흥분을 함께 나누고 싶다.
  • 이스라엘 간 트럼프, 이- 팔 평화협상 재개 모색

    이스라엘 간 트럼프, 이- 팔 평화협상 재개 모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22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방문에 나섰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음을 과시할 예정이나 이스라엘이 분쟁 지역인 예루살렘에 대해 항구적인 주권을 주장하고 나서 이번 순방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에어포스원을 타고 도착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내외는 물론 레우벤 리블린 대통령 등 주요 정부 인사가 모두 국제공항 활주로에 나가 에어포스원에서 내린 트럼프 내외를 영접했다.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중동) 지역과 그 국민에게 안전과 안정, 평화를 가져올 드문 기회를 얻게 됐다”며 중동권 지도자들이 평화 구축에 동참해 줄 것을 촉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을 방문해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만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에게 평화회담 재개를 위한 신뢰 구축 조치에 나서도록 압박할 것으로 알려졌다. 네타냐후 총리는 21일 동예루살렘 점령 50주년 기념 축제에서 연설을 통해 “예루살렘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언제나 이스라엘의 수도라는 점을 전 세계를 향해 분명히 밝혀 두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스라엘 방문에 앞서 먼저 이곳을 답사했던 미국 관료가 “통곡의 벽은 이스라엘 영토가 아니라 이스라엘 점령지 안에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한 대응이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체를 동서로 분리할 수 없는 영구적인 수도로 간주하는 반면 팔레스타인은 현재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동예루살렘을 장차 세울 독립국가의 수도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팔레스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 중인 팔레스타인 재소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벌이는 단식투쟁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킬 예정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데스크 시각] 나와 당신의 가치를 지켜줄, 오늘/최여경 사회부 차장

    [데스크 시각] 나와 당신의 가치를 지켜줄, 오늘/최여경 사회부 차장

    9년하고도 5개월 전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아마 우리는 몇 가지 단어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녹조라테, 큰빗이끼벌레, 불도저정부, 명박산성, 종일편파방송?. 아마도 도심 개발 과정에서 철거민 6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한 용산참사나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며 중고생 1만명이 두 달 동안 서울 청계광장에 모여야 했던 촛불집회를 모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소통하는 대한민국’을 외친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불통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집권 첫해 치열하게 독재정권과 싸우며 민주주의를 외쳤던 6·10민주항쟁 기념일에 청와대 주변과 광화문광장에 컨테이너 박스로 ‘명박산성’을 쌓았다.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혈세 22조원을 쏟아부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여름마다 금강 공주보와 백제보에선 지독한 녹조를 겪고, 환경유해 생물이 심각하게 증가했다. 그때 선택이 달랐다면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과 상하이임시정부 정통성 부정, 4·19혁명 폄하 등 역사 왜곡을 시도하려는 세력도 등장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공정 보도와 거리가 먼 ‘종일편파방송’이라는 말도 존재하지 않고, 워치독(감시견)이 아닌 랩독(애완견), ‘기레기’라는 비아냥을 얻는 언론을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혹 4년하고도 5개월 전, 그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지난겨울을 어떻게 보냈을까. 주말마다 차디찬 바닥에서 촛불을 쬐는 대신 따뜻한 실내에서 가족, 친구를 만나면서 가는 한 해를 아쉬워하지 않았을까. 대통령 집권 이듬해 벌어진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슬픔에 빠질 일은 피할 수 있었을까. 참사를 피할 수 없었다 치자. 적어도 304명의 희생을 두고 “지겹다”거나 “그만하라”고 매몰차게 입을 막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먹는 파렴치한 행태를 볼 일은 없지 않았을까.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확산으로 ‘감염자 186명, 사망 38명’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조류인플루엔자(AI) 발발 석 달 만에 닭과 오리 3300만 마리를 살처분하고 피해 수습에 수천억원을 쓰는 허망한 일을, 겪지 않아도 됐을까. 역대 최고의 1분기 15~29세 청년실업률(10.8%), 1433조원 국가부채와 1344조원 가계빚,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인 노인빈곤율(63.3%)과 자살률(10만명당 25.8명)이 조금은 떨어졌을까. 전 정권에서 호시탐탐 역사왜곡 기회를 찾던 세력들이 국정 역사 교과서 발간을 시도할 수도, 피해자들이 생생 증언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한·일 간 밀실합의로 처리할 수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국민 합의는커녕 국민 설명도 하지 않은 채 경북 상주에 자리잡을 수도 없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40년 지기 평범한 주부’에게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넘기는 미증유의 국정 농단을 맞닥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역사는 ‘만약에’라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 과거를 바꾸면 현재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시간여행의 역설’은 상상일 뿐이다. 그래도 자꾸 ‘만약에’를 떠올리는 이유가 있다.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아쉬울 때, 반면교사 삼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와 민주주의 진일보 아니던가. 그래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선택할 수 있는 오늘이 더없이 의미 있는 것이다. 사람이 중심인 나라, 내 능력이 미래의 희망이 될 수 있는 든든한 나라, 노동이 당당한 나라, 변질되지 않은 자유가 보장된 나라, 무엇이든 좋다. 나서자. 오늘 우리가 가야 할 곳으로 가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나와 당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cyk@seoul.co.kr
  • 中여행객 대만에 정치적 망명 요구

    대만을 여행하던 중국 여행객이 정치적 망명을 요청해 중국과 대만이 모두 고민에 빠졌다. 17일 대만 연합보에 따르면 중국 산둥성 출신의 남성 장샹중(48)이 지난 13일 단체여행 도중 일행에서 빠져나와 돌연 망명을 요구했다. 대만은 그동안 망명을 요청한 중국인 중에서 극심한 탄압을 받는 파룬궁 교도나 반체제 인사가 아니면 중국으로 돌려보내거나 불법 체류를 묵인하는 수준에서 봉합해 왔다. 그러나 장씨의 상황은 좀 애매하다. 그가 2013년 공직자 재산 공개를 요구하는 ‘신공민운동’에 참가해 투옥된 경험이 있긴 하지만 중국이 특별히 관리하는 반체제 인사는 아니다. 신용카드 사기 전과도 있다. 그러나 장씨는 “옥중에서 인권운동가 석방을 위해 단식투쟁을 벌였으며 교도소 측의 학대로 눈이 멀었다”며 정치적 망명을 받아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는 최근 중국이 대만의 인권운동가 리밍저를 불법 구금하는 사태를 보면서 망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연관성도 없다. 대만 이민국은 “정치적 망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씨의 망명을 허용할 근거법이 아직 없다. 대만 입법원은 지난해 7월 정치적 박해로 인한 난민을 수용하는 난민법 초안을 1차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법이 공포되려면 3차 심의까지 거쳐야 한다. 공표 이후에도 유예기간 1년이 지나야 시행된다. 대만은 지금까지 ‘양안 인민관계 조례’를 근거로 중국으로 돌려보내면 생명이 위태로울 것으로 보이는 이들에게만 장기 체류를 허용해 왔다. 대만이 장씨에게 망명 또는 난민의 지위를 인정하면 중국의 반발이 클 것으로 보인다. 유사 사례가 속출하면 양안 관계가 더 꼬여 대만으로서는 장씨 신병 처리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중국도 고민스럽다. 관영 환구시보는 “잡범 수준에 불과한 사람을 정치적 망명객으로 받아들이는 건 대만의 자유”라며 태연한 척했다. 그러나 장씨처럼 여행 도중 망명하는 사람이 늘면 중국이 선전해 온 체제 우월성은 빛을 잃게 된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박 前대통령 소환조사] 노태우 “죄송” 전두환 “협조않겠다” 故 노무현 “면목 없어”

    박근혜 전 대통령에 앞서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수사를 받은 세 명의 전직 대통령이 조사에 임하는 태도는 각자의 성격만큼이나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기업체 등으로부터 2600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1995년 11월 1일 헌정 사상 처음 검찰에 소환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별다른 저항 없이 조사에 응했다. 그는 그날 오전 9시 45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도착한 뒤 취재진의 거듭된 요청에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라는 한마디를 남긴 채 조사실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조사가 시작되자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며 혐의를 대부분 부인했다. 조사는 다음날 새벽 2시까지 16시간가량 이어졌다. 식사는 ‘연희동’ 측에서 준비해온 일식 도시락으로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후 2주 뒤인 15일 재소환돼 2차 조사를 받았고, 법원은 이틑날 오전 7시쯤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는 서울구치소로 떠나기 전 대검 앞에서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 후배들에게 물려주길 간절히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반란수괴 혐의로 1995년 12월 2일 검찰 조사가 예정됐지만 서울 연희동 자택 앞에서 “검찰의 소환 및 어떤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골목 성명’을 발표한 뒤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향했다. 검찰은 곧바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이튿날 새벽 전 전 대통령을 강제로 압송한 뒤 안양교도소에 수감했다. 전 전 대통령은 이후 ‘단식투쟁’에 돌입했다가 건강이 나빠져 경찰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30일 오후 1시 20분 대검찰청에 도착해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당초 검찰은 자택인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대검찰청까지 360㎞나 떨어져 있어 헬기로 이동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를 거부하고 리무진 버스를 타고 5시간 17분 걸려 조사를 받으러 왔다. 그는 청사 앞에 마련된 포토라인에 멈춰선 뒤 “면목 없는 일이죠”라는 말을 남긴 채 바로 조사실로 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담배 한 개비를 피운 뒤 조사에 임했고, 저녁은 근처 식당에서 공수해온 1만 3000원짜리 특 곰탕으로 해결했다. 검찰은 뇌물공여자로 지목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의 대질조사를 요청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거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10시간가량 조사를 받은 뒤, 3시간 남짓 피의자 신문조서를 검토하고 이튿날 새벽 2시 10분쯤 서명 날인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시의원이 침대에 지폐 펼쳐놓고 돈자랑 한 이유는?

    시의원이 침대에 지폐 펼쳐놓고 돈자랑 한 이유는?

    의정비 삭감에 줄기차게 반대하는 시의원이 '돈자랑 사진'을 공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아르헨티나 지방도시 마르티레스의 시의원 우고 카브레라는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진 1장을 올렸다. 얇은 이불로 살짝 하체만 가리고 침대에 누워 있는 그의 옆에는 지폐가 잔뜩 깔려 있다. 그러면서 그는 사진에 "더하기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세어봐. 나, 돈 없는 사람 아니야"라는 설명을 붙였다. 이런 돈자랑을 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재정 형편이 어려운 마르티레스는 올해부터 긴축에 들어갔다. 시의원에게 지급되는 의정비(세비)와 활동비도 대폭 축소됐다. 카브레라는 의정비와 활동비가 깎인 데 반발하며 1월부터 투쟁에 돌입했다. 여러 차례 단식투쟁을 벌이는가 하면 1월엔 시의회당 앞에서 몸을 쇠사슬에 묶고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 정치적 생명을 걸면서까지 그가 결사적으로 긴축에 반대하는 건 생활고(?) 때문. 카브레라는 "세비를 받아도 1달을 살기 힘들다. 월말까지 생활하는 데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일견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카브레라에겐 자식 17명이 있다. 아직 키워내야 할 자식이 많아 생활비가 많이 든다는 말이 억지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시의원이 돈만 밝힌다는 비난은 끊이지 않았다. 카브레라가 돈자랑(?) 사진을 공개한 건 이런 비난에 대한 반박이다. 재산이 아주 없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돌출적인 사진 공개는 역풍을 맞았다. 그가 속한 급진당의 고위관계자는 "사진의 조작 여부를 확인하지 않아 입장을 밝히기가 곤라하다"면서도 "짐작컨대 카브레라가 심리적으로 정상이 아닌 건 분명한 것 같다"고 비꼬았다. 임석훈 남미통신원 juanlimmx@naver.com
  • 역도요정 이성경, 경수진 챙기는 남주혁에 질투폭발 “현 여친 앞에서 뭐하는 짓이야”

    역도요정 이성경, 경수진 챙기는 남주혁에 질투폭발 “현 여친 앞에서 뭐하는 짓이야”

    ‘역도요정’ 이성경이 전 여자친구 경수진을 챙기는 남주혁의 모습에 질투가 폭발했다. 28일 방송된 MBC 수목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극본 양희승 김수진/연출 오현종 남성우) 13회는 시청률 6.5%(TNMS, 전국 기준)를 기록해 자체 최고 시청률을 달성했다. 무엇보다 이날 방송에서는 막 사랑을 시작한 이성경(김복주 역)과 남주혁(정준형 역) 커플이 남주혁의 전 연인이자 이성경의 룸메이트인 경수진(송시호 역)을 병문안하는 에피소드로 눈길을 끌었다. 앞서 경수진은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상황. 남주혁은 경수진이 위기의 순간에 걸었던 전화를 못 받은 죄책감으로 병원을 찾았고, 경수진은 “아닌 거 알면서 오기 부렸어 내가. 진짜 미안해”라고 그동안 남주혁에게 매달렸던 일들을 사과하며 “이제 진짜 친구하자. 앞으로 잘 부탁한다”며 악수를 청했다. 더욱이 이성경이 룸메이트를 잘 챙기지 못한 미안함에 병실을 찾으면서, 셋이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된 상태. 그 자리에서 남주혁은 경수진의 꽃가루 알레르기를 걱정해주고, 춥다는 경수진의 옷을 입혀주는 등 보호자처럼 챙기는 모습으로 이성경의 질투에 불을 붙였다. 또한 병실에서 나와 이성경과 함께 어묵을 먹으러 간 후에도 경수진의 전화를 받느라 한참동안 자리를 비워 결국 이성경을 폭발하게 했다. 이성경은 화가 난 이유를 밝히지 못한 채 남주혁과 실랑이를 벌였고, 토라진 채 가버리며 “현 여친 앞에서 전 여친하고 뭐하는 짓이야 그게. 사귄 티를 그렇게 내야돼 진짜? 아. 내가 유치해서 티도 못 내겠고 진짜”라며 답답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주혁은 그런 이성경을 바라보며““화 난거 맞구만, 뭐 때문에 저래 저거. 김복주 그렇게 안 봤는데 천상 여자네”라고 소리치며 홀로 갑갑함을 삼켰다. 그런가하면 이성경은 역도부 코치의 복직을 요구하는 피켓시위와 단식투쟁에 나서 갖은 고초를 겪었던 터. 남주혁은 고집부리며 고생하는 이성경의 발에 핫팩을 붙여주고 자신의 외투와 목도리를 벗어 이성경에게 입혀주며 “몸 사리면서 해, 제발”이라는 한 마디를 남겨 이성경의 분노를 단숨에 녹아내리게 했다. 이후 남주혁의 외투를 돌려주려 만난 자리에서 이성경은 “전 여친한테 진짜 무지하게 자상하더라 너?”라며 질투하게 된 사연을 솔직히 털어놨다. 그런 이성경의 모습이 귀엽다는 듯 사과한 남주혁은 “너도 앞으론 그냥 티내. 그래야 내가 알지. 우린 다 얘기하자. 서운한 거, 힘든 거, 쪽팔린 거까지”라며 둘 사이 소중한 맹세를 전하는 모습으로 사랑싸움을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한편 ‘역도요정 김복주’ 14회는 29일 ‘2016 MBC 방송연예대상’ 생중계로 인해 결방한다. 내년 1월 4일 수요일 밤 10시 방송된다. 사진=MBC ‘역도요정 김복주’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빛 못 본 독립·예술영화, 관객과 만난다

    빛 못 본 독립·예술영화, 관객과 만난다

    독립·예술영화 상영관 필름포럼이 저예산·예술 외화 앙코르전 ‘늦어도 11월에는’을 연다. 3회째로 올해 국내 개봉한 예술 및 독립, 저예산 상업영화 중 충분한 기회를 얻지 못한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마련됐다. 30일부터 12월 6일까지 진행되는 기획전에는 ‘독재자를 죽여라’를 비롯해 모두 29편이 상영 목록에 올랐다. 미개봉작인 ‘독재자를 죽여라’는 지난해 국내에 들어와 올해 1월 등급 분류를 받았지만 아직 스크린에 걸리지 못한 작품이다. 1930~1961년 도미니카공화국 독재자로 군림했던 라파엘 트루히요 암살 사건의 실화를 그렸다. 역시 실화를 다룬 ‘트럼보’는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들끓었던 국내 상황과 겹쳐지는 작품이라 눈에 띈다. 매카시즘 광풍이 불어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11개의 가명을 사용해 몰래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로마의 휴일’ 등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두 차례나 받았던 할리우드의 천재 시나리오 작가 돌턴 트럼보를 조명했다.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하는 ‘트루스’도 상영 목록에 올랐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병역 비리 의혹을 보도하는 과정을 그린다. 무인비행기 드론을 통해 테러리스트들을 사살하는 임무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과 고뇌를 그린 ‘아이 인 더 스카이’도 다시 상영 기회를 얻었다.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투옥된 뒤 신념을 지키고자 단식투쟁을 하다 숨진 보비 샌즈의 삶을 그린 ‘헝거’도 함께한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스크린 독과점이 심하다 보니 상영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하고 개봉 사실조차 알리지 못한 채 잊혀지는 수작이 너무 많다”면서 “그런 작품들을 대중에게 알리고 영화 다양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마련한 기획전”이라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씨줄날줄] ‘촛불혁명’/박건승 논설위원

    [씨줄날줄] ‘촛불혁명’/박건승 논설위원

    시위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그 주역은 최고 국립교육기관 성균관의 유생이었다. 조정의 부당한 처사나 이단을 비판하는 것이 주된 소재였다. 유생들은 현안이 생기면 요즘의 학생회와 비슷한 ‘재회’라는 것을 열어 논의했고, 과반수가 안건에 동의하면 행동으로 옮겼다. 대표자가 글을 짓고 모든 유생들이 서명했다. 그런 뒤 지금의 서울 명륜동 성균관에서 궁궐까지 길을 청소하게 하고 상가를 철수시킨 뒤 글을 들고 조정으로 향했다. 대궐 앞에 열 지어 앉아 임금의 답변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임금이 청을 거절하면 수업 거부와 단식투쟁에 나섰다. 집단 휴학인 셈이다. 세종이 궐 안에 절을 세우자 유생들이 시위를 벌였다는 기록도 있다. 성균관 유생들의 시위는 96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1980년대 군부독재 시절 시위의 관통어는 돌과 방패, 최루탄, 페퍼포그, ‘닭장차’ 등이었다. 시위가 얼마나 격렬했던지 급기야 닭장차 앞에는 ‘무석무탄(無石無彈), 인즉인(忍卽仁)’-돌 안 던지면 최루탄 안 쏜다. 참는 자는 어지니리-이 적힌 입간판까지 등장했다. ‘귀학귀군’(歸學歸軍)-학교로 돌아가면 경찰이 철수하겠다-이 나온 것도 80년대 중반 호헌공방의 격랑 속에서였다. 학생들은 즉각 ‘무탄무석’(최루탄 안 쏘면 돌 안 던진다), ‘귀군귀학’(경찰이 철수하면 학교로 돌아간다)으로 맞섰다. 우리 집회문화의 물줄기를 결정적으로 돌려놓은 것은 촛불시위다. 촛불은 희생과 결집, 희망, 기원의 의미를 함축한다. 그래서 촛불시위에서는 비폭력성과 질서, 평화를 표방한다.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미선·효순 사건이 도화선이 된 촛불시위는 엊그제 100만 민심을 결집해 내며 집회문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법원이 광화문 전 차로와 청와대 인근 행진을 허용한 것도 촛불 평화시위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게다. 촛불시위가 풍자와 해학이 가득 찬, 그리고 자유롭게 참여하고 자유롭게 형식을 만들어 가는 시민축제가 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광화문 대로에 노래·춤·공연 축제가 펼쳐지고, 권력에 항거하는 내용의 플래시몹이 선보이고…. 100만 민심이 ‘촛불 파도타기’를 하고, 그곳에 단두대와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부적, 그리고 오방낭에 승마복까지…. 촛불 민초들의 얼굴엔 자신감과 자부심이 넘쳤다. 오늘날 시위의 문법은 공감과 평화다. 무력과 폭력이 아니다. 투쟁만의 공간이 아닌 누구나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자유롭게 펼 수 있는 자리다. 100만 촛불 속의 가족 모습과 교복 차림의 중고생, 젊은 연인, 휠체어 탄 장애인, ‘혼참러’(나홀로 시위 참여자)들이 그걸 보여 주지 않았는가. 똑똑한 시민들의 당당하면서도 질서 있는 분노의 외침, 그런 우리 ‘촛불’들이 자랑스럽다. 박건승 논설위원 ksp@seoul.co.kr
  • 뭉친 새누리, 파행 책임론은 부담… 저력 더민주, 丁의장 논란에 불편… 몸값 국민의당, 기회주의 비판도

    뭉친 새누리, 파행 책임론은 부담… 저력 더민주, 丁의장 논란에 불편… 몸값 국민의당, 기회주의 비판도

    지난달 24일 새벽 야당의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단독 처리로 촉발된 새누리당 국정감사 거부 사태가 3일 ‘10일 천하’로 막을 내렸다. 여야 모두에 깊은 상처가 남았지만 ‘손익계산서’를 따져 보면 정치적 이득 또한 적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보수 결집… 새누리 지지율 2.9%P 상승 새누리당은 이번 대치 국면에서 모처럼 당의 결집을 일궈 냈다는 자체 평가를 내렸다. 일부 비주류 의원이 국감 복귀를 주장하며 이탈하기도 했지만 ‘자중지란’을 우려해 수위를 조절하면서 어느 정도는 내부 단속이 된 것으로 보인다. 외부 갈등으로 인해 내부 결속이 다져지자 보수 지지층이 결집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리얼미터가 이날 발표한 정당 지지도에서 새누리당은 전주에 비해 2.9% 포인트 상승한 33.0%를 기록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1.3% 포인트 하락한 28.8%, 국민의당은 0.3% 포인트 하락한 13.9%로 집계됐다. 또 정세균 국회의장이 의장석에서 한 ‘맨입’ 발언을 연결고리로 의장의 중립 의무 위반을 문제 삼으며 국회법 개정을 위한 동력도 얻어냈다. ●이정현 대표 단식은 득보다 실 그러나 1주일간 국감을 파행시켰다는 책임론은 적지 않은 부담이다. 새누리당이 지난 2일 전격 국감 복귀를 선언한 것도 국감을 ‘보이콧’한 데 따른 여론 악화가 결정적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현 대표의 7일간 단식투쟁도 득보다 실이 많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여권 관계자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태가 ‘최후의 투쟁 수단’인 단식을 통해 해결할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는 게 중론”이라고 말했다. 더민주는 국민의당을 설득해 해임건의안을 단독으로 처리하며 제1야당의 저력을 과시했다는 점이 이득으로 풀이된다. 새누리당이 투쟁에 나선 동안 국감을 단독으로 진행하고 민생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수권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 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정 의장의 친정 정당인 만큼 정 의장에게 제기된 가족의 ‘황제 쇼핑’ 의혹과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더민주는 이날 새누리당의 국회의장 중립성 보장을 위한 국회법 개정안 추진 요청을 거부하긴 했지만 반박 논리가 마땅치 않아 이와 관련한 수세적 입장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은 제3당으로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톡톡히 하며 높은 점수를 따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 말미에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정 의장의 사과를 압박하는 등 새누리당과 더민주 사이에서의 ‘정치적 줄타기’가 지나치게 기회주의적으로 인식된다는 점은 실점 요인으로 평가된다. ●丁 “쾌유 빈다” 李 “국민들께 죄송” 한편 정 의장은 이날 단식 중단 후 병원에 입원한 이 대표를 문병해 “조속히 쾌유하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이 대표는 병상에서 김성원 대변인을 통해 “국감에 참여하지 못해 아무 조건 없이 국민들께 죄송하게 생각하고 사과드린다. 하루빨리 털고 일어나 국정 현안과 민생을 챙기도록 더욱 열심히 뛰겠다”는 대국민 메시지를 밝혔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사드 성주골프장 확정] 김천시 “14만 시민 철저히 무시” 원불교계 “단호히 대응”

    한·미 군 당국이 30일 사드 배치 최종 부지로 경북 성주군 초전면 롯데스카이힐 골프장(성주골프장)을 확정하자 성주와 김천지역 여론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성주 성산포대에서 성주군 내 제3 후보지로 변경을 요청했던 성주군는 대체로 수용하는 분위기인 반면 성주골프장과 인접한 김천시는 반발하고 나섰다.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은 이날 성주군을 방문, 김항곤 군수와 배재만 군의회 의장 등에게 “시뮬레이션 결과 성주골프장이 가장 뛰어난 것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김 군수는 이를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반대하는 군민을 고려, 공식 의견을 내놓지 않기로 했다. 황인무 국방부 차관도 김관용 경북도지사를 찾아가 그동안 경과를 설명했다. 하지만 국방부의 김천시 설명회는 무산됐다.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 관계자 30여명이 “성주골프장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며 박보생 시장이 단식투쟁 중인 김천시청 2층 회의실을 걸어 잠근 채 면담을 막았기 때문이다. 김천시는 성주골프장이 농소면·남면과 불과 1~5㎞ 거리로 가까운 데다 레이더가 김천 쪽을 향하게 돼 전자파 피해 지역이 될 수 있다며 반발해 왔다. 박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시민들 생존권과 생활권 보장을 위해 사드에 반대하는 세력과 공동으로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성주골프장 사드 배치반대 김천투쟁위원회도 “14만 김천시민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사드 반대 세력과 연대해 한반도 평화와 사드 배치를 반드시 막아내겠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원불교의 반발도 거세진다. 성주골프장 남쪽 3㎞ 지점에 원불교 성주성지가 있다. 원불교 성주성지수호 비상대책위원회도 기자회견을 갖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사무여한(死無餘恨)의 법인정신으로 정부의 부당한 결정에 맞서 가장 단호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천·성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정세균 ‘짜장면 인증샷’에 뿔난 새누리 “이정현 단식 중인데..”

    정세균 ‘짜장면 인증샷’에 뿔난 새누리 “이정현 단식 중인데..”

    정세균 국회의장실 인스타그램 계정(@gyunvely_413)에 정의장이 짜장면을 먹는 모습이 올라온 것과 관련, 새누리당이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현재 삭제된 이 게시물에는 정의장이 지인들과 짜장면으로 식사를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인친(인스타 친구들) 응원댓글 보려고 할배안경까지 착용한 균블리. 많은 분들의 응원 감사합니다”라는 소개글이 적혀 있다. 30일 뉴시스에 따르면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집권여당 대표가 5일째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데 짜장면 먹는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게 이해가 안간다”며 “대인적인 풍모를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장우 최고위원 또한 “여당 대표가 의회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단식을 하고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국회의장이 만약 짜장면을 먹었다면 국민들이 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고 동조했다. 의장실 관계자는 “사진 속 식당은 국회 인근 중국 음식점이다. 오늘 찍은 사진이 아니고,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게재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한편 정세균 국회의장은 SNS 이용자들과 자주 소통해왔다. 인스타그램에는 국회의장이 된 후 세균맨 인형 선물을 받고 활짝 웃는 사진 등 친근한 일상이 자주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평소 활발한 인스타그램 소통으로 ‘종로 사랑꾼’, ‘균크러쉬’ 등의 새로운 별명도 얻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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