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매일 신춘문예 희곡부문 당선작(3)
12.웃어요,하!하!하!웃어봐요.
성당에서 결혼 축하 곡이 흐른다.
해우,미라 눈감은 채 무릎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한다.
해우:지난주에 나이 든 신랑 신부가 결혼했어.한동안 왜 안 왔니?몸살났다구?미라:결혼 축하 곡 지겨워졌어.다신 안 와.
해우:언젠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다며.
미라:내가 하고 싶은 게 뭔 줄 알았어.
해우:(기뻐서)잘됐다.뭔데?미라:모델.
해우:(고개 갸우뚱)모델?미라:어,누드모델.
해우:(눈뜨고 놀란 얼굴로)농담 마.
미라:사람들 눈을 끌고싶어.
해우:(미라의 손을 붙잡고 흔들며)미쳤어!미라:비록 엄만 사람들 눈에 들어차지 않는 인생을 살지만 난 달라.내가 부끄럽다면 헤어지자.
해우:(미라의 손을 세차게 흔들며)여태 기도한 건 뭐야!뭘 위해 기도한 거냐구!미라:(눈감은 채)날 위해.
해우:널 위한 게 이래?미라:이 거야.
결혼식 때 쓰인 풍선이 해우와 미라의 머리에 내려앉는다.해우,신경질적으로풍선 쳐서 날려보낸다.
해우:(안타까워서)미라야.
미라:거울처럼 빛나는 인생을 만들겠어.
해우:난 너 예전의 모습이 좋아.
미라:기도하는내 모습만 본 니가 바보같다.난 더 이상 어둠세상에서 제자리걸음따윈 안 해.이건 마지막 기도야.
해우:미쳤어?정신차려.
미라:내가 빛 받을 수 있는 건 그것 뿐이야.
해우:눈 떠!창녀 같은 년이 될 거면서 뭘 위해 기도해!(미라 세차게 흔들고)눈 떠!미라:돈 많이 벌어서 너 같은 고아들 잘해줘라.
해우:(미라 머리를 치며)눈 떠!미라:(눈뜨고)이제 세상이 똑바로 보인다.
해우:미라야….
미라:너도 똑바로 봐.기도는 소원을 이루기 위한 게 아냐.또다른 세상을 보는 것일 뿐이지.앞으로 우리 시간낭비 말자.
해우:엄마가 또 널 거울 앞에 세워두고 꿈을 정해준 거니!미라:처음으로 내가 생각해 낸 꿈이야.
결혼 축하 곡 뒤로 이어지는 즐거운 사람들의 함성.
13.거미줄 뜯어먹기초코파이 아줌마:(해우 보고)손은 와 그렇노?해희:성당에도 안가고 집에만 있는 너 수상해.
해우:성당가면 미라 꼴보기 싫다고 난리더니 잘됐잖아.
해희:아니,그건….하도 잘난 척 하고 깝죽대니까.
초코파이 아줌마:병원은 가본 기가?잘못하면 상처 곪는데이.
해우:새벽까지 오토바이 타고 대학로 달렸어.거기 어린 계집애 많잖아.
해희:(해우 이마 툭 건드리고)넌 다 컸니?해우:(오토바이 손잡이 잡는 시늉하고 인상쓴다)태워달라고 서로 난리치길래 중삐리 계집애 태우고 미친 듯이 최고속력으로 달렸어.미라도 세상도 지 맘대론데 나라고 못할 게 뭐야?그러다가 트럭이 오길래 피하려다 박살났지 뭐.
걔는 아스팔트에 얼굴,가슴이 다 갈렸어.가슴 한쪽은 나가떨어졌을걸.
해희:(인상 찌푸리고)으-.
해우:걔가 피범벅돼서 아스팔트에 뒹구는데 난 놀라서 도망쳤어.팔목도 그때 다친거야.살이 나가서 뼈가 보여.흉칙해서 붕대 감은 거구.
해희:병원은?태우:가면 잡혀.자세히는 모르겠는데 경찰이 내 옆모습 정도는 확실히 찍었을 꺼란 말야.
초코파이 아줌마:아푸겄다.
해희:(인상쓰고)뼈가 갈렸다는데.(해우 등 후려치며)그렇다고 가스를 불어?해우:다른 세상에 들어가고 싶었어.
해희:(흥분해서)가스불면 니가 생각한 세상이 진짜가 돼!해우:당분간 밖에 안나갈테니 구박하지 마.
잠시해희:(마음을 가라앉히고 초코파이 아줌마에게)동생이 지금 연기하는 거예요.심통을 잘 부리거든요.전요,발레리나가 되는 게 꿈이예요.
해우:누나가?살찐 몸으로 무슨.(깜박 잊고 붕대감긴 손으로 태희의 아랫배를 툭 친다.금방 미간을 찌푸리고)아-야.
해희:(금이 가서 까만 테이프로 길게 붙어놓은 거울 앞에 서서 단발머리를귀 뒤로 넘긴다.거울이 작아서 정작 몸은 보이지 않고 얼굴만 보인다)이 정도면 날씬하지.(까치발)초코파이 아줌마:(해희 뒤에 서서 까치발하고 거울 보려고 애쓰며)발레리나가 뭐꼬?요로콤 추는 거 맞제?해희,초코파이 아줌마.손을 잡아가면서 신나게 춤춘다.둘의 머리가 전구에닿는다.
방을 빙빙 도는 전구빛.
해우:정신없어.
해희,초코파이 아줌마.까르르 웃으면서 더 신이 난 얼굴로 춤춘다.
해우:누나까지 돈 거야!해희,초코파이 아줌마.느린 동작으로 춤춘다.웃음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크다.
해우:시끄러!초코파이 아줌마:(어지러운 듯 벽을 붙잡고)해희야,동상이 신경질 났나부다.
(해우의 손을 잡고 빙빙 돌며)심심나?니도 해봐라.
해우:(손을 뿌리치며)아직 덜 미쳤군.
해희:(벽치고 돌면서)연탄불갈아야 되는데.
해우:(방문 열고 나간다)해희,초코파이 아줌마.방바닥에 주저앉아 빙빙 도는 전구 올려다본다.
차차 제자리를 찾는 전구.
초코파이 아줌마:동상은?해희:(어지러워 눈감고)햇빛 훔치러.
초코파이:덥은디.창문 열자.
해희:금방 추워져요.그리고 창은 없어요.
초코파이 아줌마:만들자.
해희:예?초코파이 아줌마:색깔 나는 거 없나?해희:(서랍을 뒤져 크레파스 한 자루를 꺼내들고 웃음)해희,초코파이 아줌마,크레파스로 벽에 네모를 크게 그린다.먼지 묻은 아이보리색 커텐,발 밑에 있다.
해우:(투덜거리며 들어와)이 방은 불이 너무 잘 죽어,숯 피웠어.(해희 보고)근데 벽에다 웬 낙서야?한 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해희:(선 굵게 그으면서)뭐 하는 것 같니?해우:변태새끼가 알면 우릴 죽이려고 들 걸.
해희:주인아저씨가 무슨 수로 알겠어?벽면 반쪽이 창문으로 둔갑했다.
해희:어때?그럴싸하지?망치 가져와 봐.
해우:못 박게?해희:커텐 달아야지.
해우:칫.
탕!탕!탕!해우의 못질.
해희,크레파스로 그린 창에 커텐 단다.
해희:속이 확 트이는 것 같다.
해우:칫.
잠시전구를 반 만 돌려서 약하게 켜놓고 자는 세 사람.
해희:(웅크리고 끙끙댄다)어-해우,초코파이 아줌마.머리가 아파 미간을 찌푸린다.
해희:(몸 뒤척이고)으으…해우:(입맛 다시고 머리맡에 있는 주전자,더듬거리며 집어들고 흔들며)언제다 마신 거야.가스도 없을텐데.(일어서서 전구불 환하게 켠다)해우 머리에 부딪친 전구빛,온 방을 심하게 돈다.
해희:으으….
해우:누나,어디 아퍼?이게 무슨 냄새야?아,머리야.(초코파이 아줌마를 흔들어 깨우며)일어나 봐요!초코파이 아줌마:(일어서려다 넘어지고)무신 냄새고?연탄깨스 아이가?해우:(해희 흔들어 깨우며)누,누나!정신 차려 봐.
해희:(눈 겨우 뜨고)몽롱한 기분 괜찮네.니가 왜 가스 부는지 알겠어.나도잠시 나마 창고 같은 지하 방 잊고싶다.꿈속에서 엄마도 봤어.초코파이 아줌마처럼 엄마마음도 참 따뜻해.
해우:정신차려.
해희:갑갑해.창 열어.우리 방에도 창문 있잖아.찬바람 쐬고 싶어.
해우:헛소리 마.
초코파이 아줌마:(비틀비틀 창가로 걸어가 커텐을 젖히려다가 넘어진다.주저앉아 벽에기대어)아이고,대갈박아….
해우:(해희를 일으켜 앉히며)병원 가자.(자물쇠 빼서 던지며)이 따위가 누날지켜줄 것 같애!해희:괜찮대두.너 잡히면 안되잖아.자물쇠 채우는 건 더 싫어.
초코파이 아줌마:(귀 틀어막고 크게 하품,몽롱한 얼굴로 머리 흔들며)대갈박 아퍼 죽겠데이.
해우:(해희 일으킨다)해희:해우야,난 우리 인간들 가슴에 맑은 창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좀 전에 내 가슴에 유리창이 달린 걸 봤어.창은 아주 컸어.
흔들리던 전구,차츰 제자리를 찾다가 어둠.
창문 틈으로 빛 들어오고 커텐,바람에 휘날린다.
바람,점점 강해질 때 천천히 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