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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인 서유석­가수 안혜경(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말한다:11)

    ◎현실비판·운동권 노래… 고난의 ‘언더’ 인생/가수·방송인 서유석/유신반대 ‘맷돌’ 공연중단 시련/심의 묶인 금지곡만 10여편/방송에서도 강한 정치풍자/‘윗분’에 밉보여 도중하차 가시밭길 “가는세월 그 누구가/잡을 수가 있나요/흘러가는 시냇물을/막을 수가 있나요/…/이내몸이 흙이돼도/내마음은 영원하리”(가는 세월). 70년대 텁텁한 목소리로 사회성짙은 노래를 부르던 청년문화의 기수 徐酉錫씨(53)의 대표곡이다. 가수와 방송인으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낸 徐씨의 체념한듯 하면서 굽히지 않는 의지가 담겨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徐씨가 부른 노래는 ‘가는 세월’ 말고도 창작곡만 70곡. 1985년 마지막 레코드 ‘뚝잘라 말해’를 발표할 때까지 낸 음반도 11집이나 된다. ‘타박네’‘파란많은 세상’‘세상은 요지경’‘대답은 없어라’ 등 심의에서 묶인 금지곡도 10여곡. 이가운데 녹음을 끝내놓고도 가사내용 때문에 레코드를 수거당했던 ‘마지막 노래’는 2년뒤 다른 가수가 불러 심의를 통과한 기막힌 사연을 담고 있다. 교통관련방송 프로그램 진행을 20년째 맡아 이젠 가수보다 방송인과 교통 전문가로 더 알려진 徐씨. 세월은 흘렀지만 사회성 짙은 ‘운동권 가수’로 찍힌뒤 극적으로 시작한 방송인 생활의 기억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성균관대 졸업무렵 학교앞 카페 ‘카사노바’에서 지배인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통금직전 具鳳書씨가 徐永春씨(86년 작고)등 연예인들과 함께 들러 徐씨의 노래를 청해 듣고 다음날 다시 TBC 쇼프로듀서와 함께 들러 徐씨를 소개했다. 그 다음날 곧바로 쇼쇼쇼에 출연한게 가수 생활의 시작이다. 그러다가 대학시절 핸드볼선수 경력을 살려 한동안 직장 핸드볼선수로 활약하며 안양예술인학교에서 묵고 있던 70년도 봄이었다. 신세계레코드사 작사가가 찾아왔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같이 본뒤 주제가 ‘어타임포어스(A time for us)’를 번안해 레코드를 취입하자고 했다. 쟁쟁한 가수들을 제치고 옴니버스 레코드 타이틀사진으로 실렸다. 노래가 히트하면서 방송국 프로듀서들이 ‘徐씨 모시기’ 경쟁에 나섰다. 이때는 매일 YWCA강당에서 ‘청개구리모임’을 갖던 시절. ‘청개구리’가 알려지면서 통기타 언더그라운드 계열 가수들이 모인게 바로 ‘맷돌’이다. 매주 수요일 명동 코리아나백화점 강당에서 자작곡 공연을 가졌는데 ‘군사독재반대’‘유신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14회 공연도중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들이닥쳐 끝이 났다. 그리고 73년 4월 TBC 심야 라디오프로 ‘밤을 잊은 그대에게’ 진행을 맡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해 가을 러스크 미국 국무장관이 제2차 한국군 월남파병 압력차 방한했을 때다. 방송도중 UPI 종군기자의 월남전 참전미군의 만행을 기록한 ‘추악한 미국인’을 죽죽 읽어내렸다. 즉각 중앙정보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잡으러 온다”는 말을 듣고 방송국 앞 목욕탕으로 도망,4일간 숨어 지냈다. 그리고 3년간 모든 활동이 철저하게 금지됐다. 그때 당국이 대마초사건을 핑계로 대중가수들을 줄줄이 묶어 들여 빈사상태에 빠진 연예계의 대안을 찾던중 徐씨를 대상으로 삼았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대전까지 내려와서 상경을 권유해 일단 서울로 올라왔다.그리고 당국의 통제를 시험해보기 위해 취입한 노래가 ‘가는 세월’이다. 그때 MBC 라디오에서 ‘정오의 희망곡’ 진행 제의가 들어왔다. 물론 당국의 입김이었다. 같은 방송 라디오프로 ‘안녕하십니까 서유석입니다’와 TV프로 ‘여의도1번지’를 맡아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77년 ‘푸른 신호등’을 맡아 진행한지 1년쯤 됐을 무렵 청와대로부터 진행자 교체지시가 떨어졌다. 프로 시작전 항상 정치판과 사회비리를 강도높게 비판한게 문제였다. 그후 동아방송으로 옮겨 ‘명랑 교차로’를 맡았다가 시사풍자 코너 ‘형님 이래도 됩니까’로 인해 79년 단명으로 끝났다. 81년 ‘푸른 신호등’을 맡았고 이후 지난 15대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때까지 이 프로를 진행했다. 15대 총선이 끝난뒤 지금까지 줄곧 교통방송 ‘출발서울대행진’을 맡고 있다. 교통관련 논문도 2편을 발표하고 (주)다물대표로 교통관련 기기를 2건이나 상품화하는 벤처사업가로 변신했다. “지난 70·8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통기타 가수들은 현실과 벗어난 노래를 부르기가 어색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만연한 부조리 부도덕을 보고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니 당연 제약이 많았고 음악계로서도 퇴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가수 안혜경/반체제로 옥고 아버지에 영향/성악도서 운동권 가수 변신/계엄령 속에서도 민중가요 배포/여성밴드 결성 ‘저항 노래’ 1970년대말부터 지금까지 대학가에서 변함없이 불리는 ‘민주’란 노래가 있다. 운동권 노래의 고전중 하나지만 정작 이 노래를 만든 이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5인조 여성 록밴드 ‘마고’를 이끌고 있는 安惠敬씨(41). 이화여대 성악과 재학시절 노래운동에 뛰어든뒤 노동·여성·환경과 관련한 메시지 강한 노래들을 쉼 없이 발표해오고 있는 개성파다. ‘까치길’‘민주’‘황혼’ 등 초기의 노래에서 우리 역사와 사회의 모순들을 담았다면 ‘커피카피 아가씨’‘일이 필요해’에선 여성 노동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또 ‘침묵의 봄’‘검은 민들레’ 등은 환경오염을 다룬 것이고 ‘평화공원’‘너희나라를 위해’등은 반전평화의 메시지가 강렬하다. 모두 현실비판과 역사의식이 흠씬 밴 자작곡이다. “70년대 사회 부조리와 부패에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던 아버님의 영향이 컸지요. 반체제적인 발언으로 옥고를 반복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당부는 제삶을 지탱하는 기둥입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수감중이던 아버지에게 음악대 진학의 꿈을 알렸고 “대중을 위한 진정한 예술인이 돼라”는 아버지의 편지글을 가슴에 깊이 새겼다. 성악과에 진학해 현실과 동떨어진 귀족적인 음악에 반발했고 자신이 할 일에 대해 고민하던중 金敏基씨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에 참여한 게 노래운동의 시초. 1학년때 사전 정보누출로 불발에 그친 집회때문에 줄곧 정보과 형사들의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레슨을 받으러 교수 집에 갈때도 항상 검은 색 짚차에 태워져 갈 정도였다. 졸업음악회 대신 혼자 작업한 노래 16곡을 담은 불법테이프를 만들어 선후배 동료들에게 돌렸다. ‘민주’도 여기에 실려 있다. 이 노래들이 자신도 모르게 대학 노래패들을 통해 퍼졌다. 80년도 대학 졸업후 바로 교사생활을시작했지만 노래 만들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TBC 방송국에서 ‘횃불’‘해방가’‘농민의 노래’ 등 민중가요 20곡을 숨죽이며 녹음해 배포했는데 이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청계천 복사가계에서 복사한 테이프 20여개를 돌렸고 임진각에 가서 통일을 생각하며 이 테이프 1개를 던졌다. 온산 여천공단의 오염실태를 고발한 마당극 ‘청산리 벽폐수야’ 금지도 잊지못할 일. 공연윤리위원회에 심의를 냈는데 전면 공연금지 지시가 떨어졌다. 결국 워크샵 형식을 가장해 서울 아현동 애오개소극장에서 4회공연을 어렵게 가졌다. 87년부터는 여성 환경 시민단체와 연계해 대학 교회무대와 소극장 운동을 벌였다. 92년 첫 공식 음반 ‘여성 환경 노래’를 출반했는데 이때도 노래 ‘평화공원에서’가 탈락됐다. 그리고 95년 2집 음반부터는 비교적 편한 음악을 택해 실었다고 한다. 지난해 여성5인조 록밴드 ‘마고’를 조직해 전국을 다니고 있고 지난 91년 결성된 ‘여성문화예술’에도 기획위원을 맡아 문화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솔로로 전국의 공연장을 다니며 공연을 병행한다. 성악과 출신이면서 운동권 가수로 방향을 잡았고 일부러 고전악기를 배웠다는 安씨. 1남1녀의 자녀를 둔 주부 가수지만 남자들만의 영역이란 편견을 깨기 위해 베이스 기타를 배워 그룹 마고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고집센 여성이다. 앞으로 계획이 무엇이냐는 질문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원하는 것에 달려들 것”이란 말로 대신했다.
  • “체벌보다 부담을 줘라”/신지용 교수에 들어본 자녀지도 요령

    ◎아이 잘못 부모 기분따라 질책 안돼/양육원칙 세우고 융통성 발휘해야 최근 생활고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사건이 세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IMF한파에 오죽 했으면 그랬을까싶은 일말의 동정도 없지 않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자식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 반인륜적인 행위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 전반적인 사회분위기였다. 한림의대 강동성심병원 申智容 교수(소아청소년정신과)는 “이처럼 극단적인 경우는 드물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에는 아동학대의 성향이 퍼져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부모의 잦은 폭력으로 정신과 전문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는 아동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아동학대란 소아청소년 정신과의 진단명으로 선진국에서는 진단기준이 명확하게 확립돼있다.단 한차례라도 심하게 아이를 구타하거나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면 아동학대의 가해자가 된다. 하지만 가부장중심으로 효가 강조되는 우리 사회에서는 아이는 부모의 부속품처럼 여겨지는 측면이 없지 않다. “내 자식 내 마음대로하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식이다.외국에서 볼 수 없는 부모자녀 동반자살이 우리나라에서 드물지 않은 것이 이런 사실을 입증해준다. 申교수는 “병원을 찾는 아동들 가운데는 오랜 시간 치료를 필요로 하거나 인격발달이나 행동조절에 지장을 주는 경우도 있다”며 “병원까지 오지 않더라도 엄격한 아동학대 기준을 적용한다면 우리나라 부모중 상당수가 아동학대자”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든 절대 아이를 때려서는 안될까.그보다는 자녀양육에 있어서 원칙을 세우고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즉 아이의 잘못을 부모 자신의 기분상태에 따라 질책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이 큰 잘못을 했더라도 심하게 맞으면 감정이 앞서게돼 자신의 잘못을 돌아볼 겨를이 없거나 맞았기 때문에 이제는 괜찮다는 식으로 넘어가게 된다.아이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바로 체벌하기보다는 아이에게 은근히 부담을 줌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 보게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교육이라는 것이다.
  • 조계종 이미지 통합작업 곧 결실

    ◎종교계 첫 시도… 로고·문장·전용색 개발/타종단·무속인 등 종단명칭 사용에 제동 대한불교 조계종은 21세기의 포교전략으로 종단의 문장(마크)과 서체(로고타입),전용색을 개발하는 등 CI(이미지통합)작업에 나섰다. 지금까지 특정 종교단체나 사찰,교회등에서 심볼,마크,로고타입 등을 만든적은 있지만 종단 전체를 대상으로한 본격적인 CI작업 추진은 종교계에서는 조계종이 처음이다. 조계종이 이같은 CI작업에 나선 것은 기업 및 사회단체 등에서 이 작업이 경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다 3년전부터 초파일 ‘부처님오신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던 캐릭터 ‘아기부처님’과 ‘동자승’등이 불교계 안팎에서 호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불교계에선 지금까지 卍자나 연꽃,법륜 등을 불교의 상징으로 많이 사용해왔지만 불교계 다른 종단은 물론 무속이나 신흥종교까지 이용하고 있어 조계종단의 독특한 상징체계가 개발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여기에는 상표등록을 통해 종단 미등록 사찰이 조계종 명칭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8월 발의된 CI계획안은 올해 예산안에 반영된 후 본격적으로 추진돼왔으며 이달 안으로 대상업체를 선정,10월초 시안을 만든 뒤 종단 내의 의견 수렴을 거쳐 11월에 확정될 예정이다. 현재 디자인 개발업체로 ‘부처님 오신 날’봉축행사 캐릭터를 개발했던 단이슬기획,동국대 100주년 기념사업과 BBS·btn 디자인 등을 맡았던 안그라픽스 등 4∼5개 업체가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장과 서체,전용색이 개발되면 사찰안내 표지와 현판,종단 깃발 등은 물론 각종 서식류와 포장지,신도카드,직원명찰,차량,배지 등에 다양하게 응용,사용할 방침이다. CI작업 실무를 맡고있는 총무원 총무부 이상규 과장(부처님오신 날 봉축위원회 간사)은 “CI작업을 통해 ▲중앙 종무기관과 본·말사,승려와 신도간의 소속감 및 일체감 강화 ▲종무행정의 효율성과 종단의 지도력 강화 ▲타종단및 타종교와의 차별성 확보 ▲불교의 선진성 부각 등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내면서 “비불교인도 금방 불교를 떠올릴 수 있고 종단의 종지인 선(禪)불교적 성격과 미래상을 나타낼 수 있는 상징마크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 연극연출가 孫振策(이세기의 인물탐구:177)

    ◎‘전통의 창조적 파괴’ 마당극 지킴이/“지금 우리의 삶 즐겁게” 마당정신 올곧이/‘서울말뚝이’ ‘오장군…’ 등 숱한 화제작 양산/우리 연극의 세계화 끊임없는 연구·정진 동양철학의 태두로 일컬어지는 도올 김용옥 박사는 연극연출가 孫振策을 향해 ‘항상 공부하는 손진책이 불후의 명작을 만들고야 말 것은 믿어 의심할 바 없다’고 단언해왔다. 한국학과 관련하여 지금까지도 친밀한 교분을 잇고 있는 도올은 지난 86년 손진책이 자신의 극단을 창단할 때 극단 이름‘미추(美醜)’를 지어주었다. 큰 ‘대(大)’위에 양(羊)을 쓰는 미(美)자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양’,추(醜)역시 ‘술병을 놓고 춤춘다’는 ‘제의식과 놀이’의 의미가 함축되어 이름에서부터 흥겨운 마당놀이가 물씬 풍겨나는 분위기다. 창단 선언문에서 손진책은 ‘마당은 인간의 보편성을 전제로 한 우리 고유의 삶의 양식이자 주객이 일체가 되는 영원한 역동성, 인습을 타파하는 새로운 전통’이라고 역설했다. 따라서 미추의 연극정신은 ‘마당정신’이며 ‘마당’이란 시간적으로 ‘지금’,공간적으로는 ‘여기’, 즉 지금 이곳에 살고있는 우리의 삶을 보다 적극적으로 ‘즐겁게’ 유도한다는 의지다. 예를 들어 현대극에다 우리 가락과 몸짓을 집어넣고 고전과 현대, 서양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을 접목하여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인간다운 삶을 엮어내기 위해 전통을 창작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아래 전통에 바탕을 두지않고는 우리 문화가 세계무대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그는 ‘전통의 창조적 파괴’에 끈질기게 천착해온 셈이다. 그래서 소재도 시대의 아픔을 정면에 내세우면서도 그 바탕에는 언제나 우리의 한맺힌 소리와 흥청의 몸짓이 곁들여진다. 그의 공연양식에 대해 연극계 일각에서는 ‘전통의 왜곡’이라고 공격하는 이들도 있지만 ‘치열한 자기개혁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전통’이 그가 고집하는 이상적인 영역이다. ○극단명 ‘미추’,김용옥이 지어 초기엔 극단 산하의 연출부에서 수습시절을 보내다가 73년 원로연출가 허규씨를 만나 극단 민예를창단,다음해 ‘서울 말뚝이’를 첫 연출로 그는 ‘배비장전’‘꼭두각시 놀음’‘한네의 승천’‘허생전’등 일련의 전통극의 현대화로 자신의 연극세계를 확고하게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80년 MBC 후원으로 ‘마당놀이’를 시작했을 때도 멍석을 깔고 탈춤을 추는 복고풍에 그치지 않고 일상적인 삶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 땅 이 광장에서 형식과 고정관념의 틀을 깬 오늘의 춤, 오늘의 문제에 집요하게 파고들어 발전을 모색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지킴이’‘오장군의 발톱’‘신이국기(新二國記)’‘영웅만들기’‘시간의 그림자’‘남사당의 하늘’등이 그 예이며 이러한 민족적 기상을 살린 연극으로 북유럽과 러시아 동남아 미국등 해외무대에 진출, 그때마다 흥행이나 작품성에서 호평을 받았을뿐 아니라 해마다 중요 연극상을 휩쓸기도 했다. ○민족연극 해외서 더 호평 그동안 90여편의 작품을 만들면서 그는 작품의 ‘완성도’에 치중하여 1년에 한 작품만을 고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신념은 ‘문화는 흐르는 물과도 같아서 들어오는 것을막을 수도 없고 또는 수세적인 자세도 문화발전에 도움이 안된다’는 주의다. 국내는 물론 바깥으로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무엇을 내놔야 부끄럽지 않은 경쟁력을 지니면서 이겨낼 수 있을까를 연구하여 연극의 문학성과 해학성, 예술성을 치밀하게 복합시키기도 한다. 관객은 물론 그의 작품을 신뢰하게 되고 그가 연출한 어떤 작품을 보아도 실망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손진책은 언제봐도 변하지 않는 미청년의 모습이다. 천재성을 번뜩이지도 않고 난삽한 논쟁에 휘말리지도 않는다. 조용한 편이지만 자신의 입지를 밝히기위해선 노력과 정열을 아끼지 않고 눈앞의 현실을 직시한다. 경북 영주에서 사업을 하던 孫秉吳씨와 黃鳳漢씨의 8남매중 넷째이자 장남, 위로 누나셋중 큰누나인 손정숙은 서양화가이고 셋째누나인 손봉숙은 한국정치연구소장이다. 서울에서 대광고에 다닐 때는 연극무대가 있는 명동에 드나들었고 한 때는 클래식음악, 다시 그림그리기에 몰두하다가 아서 밀러에 심취하면서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연극의 길로들어섰다. 대학시절에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전국을 누비면서 남사당의 마지막 꼭두패인 남운용옹을 비롯 동해안 별신굿의 김영달,한국 가면연구회의 이근성씨등 전통연희의 장인들을 만나 봉산탈춤과 양주별산대를 전수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가족은 75년 극단 민예시절에 연출자와 연기자 사이로 만난 金星女와의 사이에 남매. 김성녀는 창과 춤솜씨가 뛰어난 중견배우다. 배고프고 외롭던 연극초창기에 그는 극단 민예의 아현동과 이대앞 대현동 시절을 거쳤고 지난 90년이후 장흥부근인 경기도 양주군 백석에 그의 오랜 염원이던 300석규모의 ‘미추산장’을 개관했다. 아무의 제재도 받지 않는 자신의 연극을 만들면서 연극 워크숍과 공연은 물론 연극학교도 열 계획이다. 그와 예술적 교감을 형성하고 있는 국악작곡가 박범훈은 ‘손진책은 가무악(歌舞樂)이 함께하는 우리 토착예술의 정수를 아는 사람’이며 만약 고향 영주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면 아마도 농토를 지키는 멋진 지킴이가 됐을 거라고 조언한다. ○전통연회 장인들에 전수 그의 연극은 처음부터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향해 줄기차게 질주해 왔으며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해도 일목요연한 발전만으로 모든 파란은 침몰된 상태다. 그가 얼마나 학구파인가는 그가 연습실을 옮길 때마다 가지고 다니던 수천여권의 연극대본과 연극학 한국학 국악 철학관련 서적들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우리 사회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은 성직자와 같은 각오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험로(險路)다. 그러나 도올의 단언대로 그는 ‘남사당의 하늘’‘시간의 그림자’같은 주옥편을 탄생시켰고 이제는 사방이 확 트인 자연속에서 불멸(不滅)의 명작을 잉태하기 위한 흥과 정취,긴 신명을 도저하게 펼쳐나가게 될 것이다. ◎그의 길 ▲1947년 경북 영주출생 ▲1970년 서라벌예대 연극과 졸업 ▲1967년 극단 산하 연출부입단 ▲1973년 극단 민예극장 창단동인 ▲1974년 ‘서울말뚝이’ 연출데뷔 ▲1881­현재 마당놀이 ‘허생전’‘‘이춘풍전’등 서울및 지방공연중 ▲1982년 런던로열셰익스피어극단연수 1982­86년 극단민예극장 대표▲1986년 극단 미추창단대표, 국제극예술협회(ITI)한국본부이사 ▲1987년 극단 미추창단기념공연 ‘지킴이’연출, 국악관현악단 지도위원 ▲1989년 ‘심청전’ 유고공연 ▲1990년 ‘아리랑’ 소련순회공연 ▲1992년 태평양국제연극제 참가 ▲1993­현재 LG복지재단주최 전국고교순회 마당극 ‘이춘풍전’등 공연 ▲1994­현재 국제극예술협회한국본부 부회장, ‘심청전’ 미국순회공연 ▲1995년 ‘춘향전’ 미국순회공연 ▲1996년 오늘의 작가전­최인훈 연극제 및 베세토국제연극제 ‘봄이 오면 산에 들에’참가 ▲1997년 세계연극제 국내공식초청작 ‘오장군의 발톱’공연 참가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신인연출상(75년) 한국백상예술대상 작품상(86년) 서울연극제연출상(87년) 예술평론가제정 ‘최우수예술가’선정(87년) 한국백상예술대상 대상·작품상·연출상(88·89·91·93년)
  • 6·29 빅뱅 5개銀 퇴출­은행권 파장

    ◎임원 인사태풍 “비켜갈수 없다”/조건부 승인 7개은행장 새달 상당수 교체/금감위서 문책 천명… 단명 경영진 ‘줄줄이’ 7월 중 은행권에 인사태풍이 불게 된다. 관심의 초점은 은행장이다. 29일 퇴출결정을 받은 5개 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조건부 승인을 받은 7개 은행장 대부분이 물갈이될 전망이다. 지난 2월 주총이 끝난 뒤 불과 5개월만에 단명하는 은행장이 속출할 것이란 관측이다. 금감위는 관치금융의 시비를 의식,의사표명을 자제해온 종래의 자세에서 한걸음 더 나가 사실상 직접적인 경영진 교체 압박을 넣고 있다. 이들 7개 은행에 다음달 말까지 내도록 요구한 추가 경영정상화계획서가 그렇다. 감자,인수합병 등 자구노력 가운데 대폭적인 경영진 교체 요구를 못박아 놓은 상태다. 퇴출은행을 발표한 이날은 수위를 좀더 높였다. 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은 경영진 교체의 범위와 수위에 대한 질문에 “대폭이라는 용어가 가지는 의미 정도의 수준”이라며 지극히 상식적인 답변만 내놓았다. 하지만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서는 “원칙적으로 은행장을 비롯한 전 경영진이 경영부실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고 적시했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은행장 교체는 이미 예견돼 온 사안이기는 하다. 지난 3월 金大中 대통령이 이에 대해 언급했다. 은행의 주총을 지켜본 뒤 “은행장 등 경영진 선임을 자율에 맡겼더니 은행의 부실에 책임있는 인물이 재선임되는 등 좋지 못한 결과가 나왔다”고 지적했었다. 평소 은행권의 자율인사를 강조해 왔지만 주총 결과뒤에 방향을 튼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은행권에서는 은행장 교체를 기정사실화 하고 있으며,다만 교체 시기와 폭만 관심사일 뿐이라는 반응이다.
  • 金 대통령 처조카 李亨澤씨/동화銀 퇴출로 실업자 전락

    구조조정의 가혹한 칼날은 ‘후광(後光)’도 비켜가지 않는다.金大中 대통령의 처조카인 동화은행의 李亨澤 이사대우(56)를 두고하는 말이다.지난해 대선 직전 당시 신한국당이 金 대통령의 평민당 총재 시절 비자금 수백억원을 관리해 왔다고 주장,곤욕을 치르기도 했던 李이사대우가 동화은행이 퇴출은행으로 판정되는 바람에 실직하게 됐다. 李 이사대우는 金대통령이 취임한 다음날인 지난 2월26일 열린 주총에서 임원으로 선임됐으나 4개월여만에 단명하는 비운을 맞게 됐다.李 이사대우는 그동안 동화은행이 퇴출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 세계기업과 한국기업의 흥망(崔澤滿 경제평론)

    대기업의 부침(浮沈)은 실로 무상하다. 레슬리 해나 런던정경대 교수가 저술한 세계기업사를 보면 혜성처럼 나타나 화려한 각광을 받다가 유성처럼 사라져간 거대기업이 많다. 지난 1912년 세계 100대 기업에 속했다가 95년까지 살아 남은 거대기업은 25%에 불과하다. 한국 대기업의 수명은 세계 거대기업보다 훨씬 짧다.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지난 65년 매출액 기준으로 100대 기업에 들었던 업체 가운데 지난주 퇴출한 기업을 포함,살아남은 기업은 불과 10여개에 불과하다. 세계 거대기업은 83년동안 생존율이 25%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33년동안 생존율이 10%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단명이다. 세계기업사를 보면 핵심역량 배양보다 독점추구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거대기업이 공통적으로 쇠퇴하는 경향을 보였다. 반면에 장기적으로 성공을 거둔 거대기업은 다른 기업과 구별되는 독특한 경영기법을 통해 역량을 키워 산업내 경쟁에서 우위를 지켜 온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문어발식 경영 단명 초래 한국 대기업의 침몰은 대부분 과다한 차입경영과 문어발식 경영이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주력기업의 핵심역량을 키우는데 힘쓰지 않고 주력기업이 부실한 계열사에 지급보증과 부당한 내부거래를 통해서 지원하다가 주력기업마저 부실화되어 마침내 그룹전체가 공중분해되는 비운을 맞는다. 또하나 한국 대기업의 생존율이 짧은 것은 대외적 환경변화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한데 있다. 동서간 냉전종식후 국제경제의 경우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세계화는 국경없는 경제전쟁을 의미한다. 지난 95년 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하면서 세계는 마침내 하나의 지구촌으로 변했다. 세계화를 위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미국기업은 정말로 뼈를 깎는 아픔속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미국의 최대 통신회사인 AT&T는 비메모리 부분에 손을 댔다가 실패작으로 판단이 나오자 과감히 매각했다. 전자사업분야에서 명성을 날렸던 웨스팅 하우스는 주력사업인 전자부문을 송두리째 팔아 버리고 방송사업을 주력사업으로 바꾸는 일대 혁신까지 단행했다. 미국기업의 구조조정을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컴퓨터부문에서 독보적 위치를 지키고 있는 IBM은 지난주 연간 매출 20억달러에 달하는 프린터사업부문을 매각키로 결정했다. 프린터 사업은 현재 흑자를 내고 있는데 미래의 전략형 사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는 것이다. 미국기업은 이미 7∼8년전부터 미래를 내다보고 구조조정을 착실히 진행,한때 일본기업에 뒤지고 있다는 비판을 말끔히 씻어 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지난 17일에야 55개 대기업을 퇴출키로 결정했다. 정부가 IMF로부터 긴급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기업과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정부당국과 채권은행이 수개월동안 작업 끝에 이들 기업을 퇴출시킨 것이다. ○자발적 구조조정 결단을 기업은 창업보다 수성(守成)이 더 어렵다고 한다. 한국 대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해서 부실기업과 경쟁력이 없는 기업을 매각 또는 청산절차를 통해서 정리해야 할 것이다. 경쟁력이 뒤진 기업은 국내 다른 기업에 넘기거나 외국기업에 매각하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 정부가 상위재벌간 빅딜(사업간 교환)을 하라고 한다고 해서 불평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21세기에는 기업의 생존연령이 더욱 단축될 것이다. 상위 재벌기업이라고 해서 지금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시장원리에 의해서 자연히 퇴출되는 비운을 맞게 될 것이다.
  • 민원인 편의·공무원 사기진작/전일근무제 왜 없애나

    ◎두마리 토끼 다놓쳐 ‘3년 단명’/분위기 흩어져 失效/근무자 화투치다 적발도/관리비·에너지 낭비만 정부 모 부처 어느 과의 토요일 하오.직원들이 절반쯤 근무 중이지만 업무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지난주 토요일에 근무한 과장이 이번주에는 집에서 쉬기 때문이다. 다른 과에는 여직원 1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남자 직원들은 숙직실에 모여 화투를 치고 있는 탓이다. 이는 지난해 감사원이 토요전일근무제 시행 실태를 감사한 결과 적발된 내용들이다.국민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공무원 사기진작을 위해 도입한 이 제도가 당초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까닭에 李壽成 국무총리 시절과 지난 연말 대통령직 인수위 업무 때 폐지가 검토됐다.마침내 이 제도가 시행 3년만에 사실상 폐지된다. 공무원들은 이 제도가 비현실적이라고 진작 지적해왔다.중앙부처에서는 IMF시대를 맞아 매주 토요일 과장들이 출근하자 직원들도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반면 대다수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난 연말부터 슬그머니 시행을 중단했다. 국민에게 주는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국가경쟁력도 낮아지고 근검절약과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게 토요전일근무제 폐지의 이유이다.건물관리비와 에너지 절약도 제도 폐지의 부수적인 효과로 기대된다.
  • 우노 前 日 총리 사망

    【도쿄=姜錫珍 특파원】 일본의 우노 소스케(宇野宗佑) 전 총리가 19일 입원중인 시가현 모리야마시의 한 병원에서 폐암으로 별세했다.향년 75세. 우노 전총리는 89년 다케시타내각이 리쿠르트 스캔들로 총사임하자 총리직을 이어받아 제75대 일본총리로 취임했다. 그러나 그는 취임 직후의 참의원 선거 패배책임과 여성 스캔들 등으로 69일만에 물러나 역대 4번째 단명 총리로 그치고 말았다.
  • 고종즉위 40년(秘錄 南柯夢:10)

    ◎외채위기에도 팔도 名妓·악공불러 “지화자…”/세자탄신과 번갈아 요란한 경축행사/극심한 가뭄에 굶주린 백성 줄 이었지만 덕수궁서 잔치상받은 3천여 내직관료/함포고복 속에 “堯임금 시절보다 좋은 세상” 1902년은 지금의 IMF사태에 버금갈만한 대한제국 위기의 해였다.국가의 연간 총세입이 7백50만원에 지나지 않았지난 대포 몇문 사들이는데 20만원이 나들였다.그러니 외채는 늘어나고 돈값은 날로 폭락해 갔다.전라,경상,충청 등 3남에서 거둬들인 토지세 전액이 일본 외채를 갚는데 들어갔다 할 정도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이럴 때 큰 행사날이 돌아왔다.고종 즉위 40주년 경축대회가 그것이다.고종의 나이도 바로 이 해에 50을 맞았다.일찍이 조선왕조로서는 이렇게 경사스런 일이 없었다.거기다 세자의 탄신일까지 겹쳐서 부자간에 번갈아 생일잔치를 벌여야만 했다.먼저 세자(순종)의 탄신일 경축행사 광경을 살펴보자. ○50주년 생일잔치 겸해 “음정월을 지나 중춘(仲春) 2월 9일이 오니 세자(명성황후 소생)의 탄신일이다.많은 영재들을 뽑는과거시험을 치르게 됐으니 이를 경과(慶科)라 했다.그래서 그날 팔도의 유생들이 과거보러 상경을 했는데,황상(皇上) 부자분께서는 친히 창경궁의 춘당대(春塘台)에 납시어 합격자를 가리셨다.그러나지난 갑오년(1894년) 경장(更張) 이후로 모든 과거가 폐지되다 보니 경연(經筵)에서 임금께 강의하던 유학은 낡은 학문이 되어 비웃음받는 처지가 되었다.대신 일본과 태서(泰西=유럽)에서 들어온 신학문이 교과목이 되어 마치 국학처럼 우대를 받았다.이러한 시국을 당하여 아관박대(갓 쓰고띠 두른) 차림을 한 선비들은 적막공산에서 썩어버리고 대신 높은 모자에 단장 짚고 뽐내는 들뜬 놈들이 세상에 가득찼으니 선왕이 남긴 정신문화는 영원히 끊어져 없어지고 시세를 타는 서양 풍조만 날마다 급하게 불어닥쳤다.” 세자도 나이 28세.어엿한 청년이 되었고 모후인 명성황후가 비명에 돌아가신 뒤라 고종은 세자의 생일잔치를 성대하게 치르고 싶어했다.옛날같으면 과거시험을 치러 선비들의 사기를 북돋아주었을 터이지만 개화바람에 폐지돼버렸으니 다만 먹고마시고 춤추는 잔치만 요란하였다. ○“5백칸 마당 장막 치고” “지금 춘궁(春宮·세자)의 탄신일을 맞이하여 다만 기생의 노래와 춤으로 요란할 뿐이다.9일 탄신일을 맞아 상감께서는 궁내부에 분부하시기를 관명전(觀明殿) 앞뜰에 장전(張殿·임금이 앉도록 임시로 꾸민 자리)을 베풀고우구청(雨具廳)으로 이름하라 하셨는데 5백여칸이나 되는 마당에 기름먹인 장막을 치고 그 안에 나무판자를 깔았다.그 위에는 비단 무늬를 그린 담요를 깔았다.한가운데 전등을 매달아놓았는데 큰 전등은 해와 달같이 둥글었고 작은 것은 별과 같이 촘촘히 반짝거렸다.” 세자의 생일찬치는 그다지 큰 규모가 아니었으나 고종의 즉위 40주년 경축잔치는 어마어마했다.고종이 26대 임금인데 22대 순조부터 내리 4대에 걸쳐 모두가 단명,재위 40년에 향년 50년을 채운 분이 없었다.22대 정조는 재위 24년에 수(壽)는 49세였고,23대 순조는 34년에 45세,24대 헌종은 더욱 짧아 15년에 23세,25대 철종도 14년에 불과 33세였다.따라서 당시의 정부는 고종즉위 40주년 경축행사를 성대하게 치를 수밖에 없었다. 나라는 외채 때문에 빛더미에 올라 오늘 내일 하는 지경인데,엄청난 예산을 들여 잔치를 벌이고 외국사신을 초청하고,그 때문에 새로 영빈관을 짓고,광화문 네거리에 비각을 세웠다.광화문 비각에는 이런 글이 새겨있다.‘신민의 간절한 소망에 부응하여 원구(圓丘)에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제위에 오른 뒤 천하를 소유할 칭호를 대한이라 하고 연호로 광무라 하였다’. 이 얼마나 좋은 글귀인가.대한이 천하를 소유하고 무(武)에 빛났다 하여연호를 광무라 했다는 것이다.그러나 현실은 글귀와는 한참 동떨어져 있었다.1897년에 조선왕조가 허울좋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여 겉으로는 면모를 일신한 것처럼 보였으나 6년만인 1902년(광무 6년) 마침내 외채위기를 맞게 되고2년뒤 러일전쟁 발발,그리고 을사조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해마다 대소조(大小朝·고종과 세자) 두분의 탄신일에는 팔도의 명기(名妓)들을 뽑아올려 무대 위에서 노래와 춤을 추는데 이것을 진연이라 불렀다.궁궐 뜰에는 기이하고 아름다운 화초가 사시장철 봄경치를 방불케 했다.장막 앞에 선 악공과 선녀도 일대의 기관(奇觀)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이해 극심한 흉년에다 호열자가 만연하여 모든 행사가 다음해로 연기되었다.잇따른 가뭄과 기근,거기다가 유행병까지 만연하였으니 민심이 흉흉했다.사람들은 모두 정감록에 귀를 기울였다.정감록에는 공공연히 ‘이씨가 망하고 정씨가 흥한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그러나 그것도 모르고 궁궐의 잔치는 성황을 이루었다. ○유행병 만연 인심 흉흉 “이해 7월 25일은 고종황제께서 탄신하신 날이다.함녕전 앞뜰에 또 한번장전을 설치하였는데 한결같이 관명전의 앞뜰에 설치했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기생이 노래하고 춤을 추고 악공이 북을 치고 피리를 불기를 한결같이 세자의 탄신때와 같이 하였다.상을 겹겹이 차릴 필요가 없었으나 고기를 산처럼 쌓아놓고 포는 숲처럼 준비하였으며(肉山脯林) 술도 샘처럼 차려 잔치를 즐기니(酒泉需雲) 보통 때의 수라상에 비하면 10배가 넘는 가지수였다.또 상에 진열한 것으로 논하면 주척(周尺)으로 1척 이상 높이 진열하였다.내직 3천명의 관료에게 균일하게 지급하여 주어 함께 먹게 하니 흡사 함께떼지어 강에서 물을 먹는 것과도 같았다.각자가 배를 채우되 한 사람도 모퉁이에 돌아 앉아 탄식하는 자가 없었으니 위대하도다,왕의 덕이여. 옛날 요임금 시절에 한사람의 백성이 굶주리면 임금이 말하기를‘내가 배고픈 것이다’라고 했으니 오늘로 보면 모두 잔뜩 먹고 배를 두드리니(含哺鼓腹) 한 사람도 굶주린 자가 없는 것이다.요임금 시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다.” ○서울­옷 전라­음식 사치 3천명의 중앙 공무원들이 덕수궁 뜰에 앉아 잔치상을 받아 먹었으니 나라는 먹고 마시는 가운데 망해가고 있었다.시골에서는 극심한 가뭄으로 못먹고 굶어죽는 사람이 줄을 잇고 있었지만 서울의 덕수궁 밖을 보면 일부 부유층이 외제 비단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자고로 서울은 옷사치,전라도는 음식 사치,경상도는 집 사치로 유명했으나 1902년에는 서울의 옷사치를 빼놓고는 먹고 죽을래도 먹을 것이 없고 집을 지을래도 지을 돈이 없었다. “흥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기쁨이 극에 달하면 서러움이 오게 마련이다.돌연 인천 감리 하상기(河相冀)로부터 월미도가 일본인 손에 들어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주지육림 속에 빠져 있을때 인천의 월미도가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 주례를 서면서/이은웅 충남대 전기과 교수(굄돌)

    공학의 기초가 수리적이고 논리적이라서 공학도는 매사에 간단명료하며 직선적이기 쉽다.또 학문의 특성상 다독보다는 정독을 필요로 해 책을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독서량이 그리 많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생활을 하면서 참여하는 모임에서 한마디해야 하면 언변이 부족함을 느낀다.특히 인간만이 하는 결혼의식을 주관하는 주례를 설 때 풍부한 학식과 훌륭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고 그때마다 공학한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음을 실감한다. 어쨋든 주례사는 신부·신랑의 결혼생활에 금과옥조가 될 수 있어야 한다.필자는,훌륭한 주례사를 못하더라도 새로 탄생하는 가정의 행복을 빌어주고 그 증인이 되고자 노력한다.따라서 주례서기 전날에는 술을 마시지 않으며 당일은 아침 일찍 목욕하고 내복을 갈아입는 등 심신을 깨끗이 하고서 신랑신부에게 결혼생활에 도움이 될만한 주례사를 준비한다. 같은 내용이라도 강하고 날카롭거나 부정적인 표현·어휘는 피하고 부드럽고도 원만하며 긍정적인 표현과어휘를 사용하려고 노력한다.그리고 신랑신부가 ‘듣기 좋은 말’‘듣고 싶은 말’에 더해 ‘들어서 도움이 되는 말’을 포함한다. 이처럼 주례사 준비에,주례서기에 정성을 다하는 까닭은 인생의 새출발을 알리는 결혼식이 그만큼 중요한 의례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주례를 설 때마다 마음이 흐뭇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정작 의미가 깊어야 할 예식은 어느덧 뒤켠으로 밀리고 사진찍기나 ‘기발한’이벤트를 갖는 등 부수적인 행사가 갈수록 기승을 부려서이다. 주례사가 아무리 뛰어나도 주례는 의식을 주관하는 사람일 뿐이다.결혼식을 더욱 의미깊게 만드는 일에는 주인인 신랑신부와 가족친지들이 앞장서야 한다.
  • 시인 김상옥(이세기의 인물탐구:160)

    ◎시·서·화 3절의 시조문학 거두/글자 한자한자마다 ‘도자기의 자해’ 닮은 품격/조춘·옥적·백자부 등 명편 중고교과서에 실려 ‘무거운/덧문을 열고/뜨락을 한참 내다본다/ 이 아침/매연 속에/목련꽃 차츰 벙글어/ 사노라/때묻은 눈에도/봄은 이처럼 부신가!’(조춘) 초정 김상옥 시인의 시는 어느 시를 읽어도 절조를 울리지만 그중에서도 중고 교과서에 실린 ‘조춘’‘옥적’‘백자부’등은 ‘시상의 간명한 처리,아무나 생각할 수 없는 사고의 반전,멋들어진 은유와 섬세한 언어구사’로 더이상의 시를 생각할수 없게 만드는 명편들이다.마치 적설에 파묻힌 보석이 눈이 녹자 자태를 드러내듯이 말속에 숨겨진 온오와 시적 함축은 글자 한자한자마다가 옥구슬처럼 영롱하다.성격도 그렇다.그의 눈에 거슬리고 싫으면 싫은 것이다.이를 두고 소설가 김동리는 ‘인은 곧 문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결곡하고 강개한 인품은 족히시에 반영되어있다’고 평한 바 있다. ○초판 1천부 모든 매진 ‘완벽을 기하려는 영악(영오)한 조사와 중속을 떠난 고매한 시혼은 우리문단의 한 이채’로써 ‘전통적 정서나 시인의 인식은 시대가 흐르거나 나이가 들어도 그 광채는 시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자신의 시작에 대해 얼마나 까다롭게 선별하는가는 지난 89년 고희기념시집인 ‘향기남은 가을’을 낼 때 시집 8권과 그동안 써두었던 1천여편중에서 103편을 고른 것만봐도 알수 있다.‘이미 활자화된 것은 어쩔수 없지만 그냥 써두었던 것’중에서 시집 30권에 해당하는 엄청난 분량을 며칠동안이고 찢어버린 것이다.그리고 시집의 서문에다 ‘세상에 시는 넘치도록 흔하지만 정작 시는 드물다’고 자탄하고 ‘한 구절이라도 후일 남을 수만 있다면참으로 분외의 보람이겠다’는 겸양은 후학들의 문학에 대한 자세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경고가 아닐수 없다. 그의 인생역정은 ‘사환에서 점원, 연독이 자욱하던 시골인쇄소의 인쇄공과 도장장이’에 이르기까지 안해본 일이라곤 없다.해방직후 출판된 그의 첫번째 시집 ‘초적’은 편집 교정 문선 조판에서 인쇄 장정의 전과정을 손수해냈고 초판 1천부는 즉시 매진되어 고서점에서도 구할수 없는 희귀본으로 유명하다.고향에서 오랫동안 중고교교사로 봉직하다가 60년초에 서울에 올라와 골동상인 아자방을 경영한 것은 실은 ‘서화 골동을 감식하고 부자도 못한다는 연적 콜렉션’에 가까이 하려는 의도였으며 실제로 그의 서와 전각실력은 의재필선에 이르는 경지다. ○한때 고향서 중고교사로 지난 70년초 신세계미술관초청 ‘시·서·화전 이후 일본 교토초청 전시등 10여차례의 전람회를 가진바 있고 미술평론가 이경성씨와 그의 작품을 구입했던 작가 박완서씨는 ‘이것은 단지 문학의 여기가 아니라’고 감탄을 멈추지 않았다.이른바 ‘시·서·화 삼절’로 지칭되는 그의 글과 그림은 고루한 화풍에서 벗어나 진취적인 파격성과 독창성,소쇄한 여백처리로 도자의 품격을 흐트리지 않는다.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일화로는 지난 74년 당시 국립박물관장이던 최순우씨의 초청으로 ‘시와 도자’에 관한 특강에서 ‘시는 언어로 빚은 도자기라면 도자는 흙으로 빚은 시’라는 말을 남겼고 이는 지금까지도 ‘도자’나‘시’를 말할 때마다언제나 인용되는 명구다.그는 참으로 시를 사랑하고도 자를 사랑한다.‘일호의 작위도 없는 우리 고도를 나의 시로써 시못지않게 사랑’하여‘나의 치아보다 먼저 이빠진 항아리에게 순금의 의치를 만들어 끼워주는’ 자세이고 시에서도 ‘이빠진 자욱이 눈에 띠면’ 이만하면 되겠다고 마음에 찰 때까지 몇밤을 지새워 퇴고를 거듭한다. 초정은 경남 충무시에서 기호 김덕홍씨와 진수아씨 사이의 6녀1남중막내로 태어난 귀하디 귀한 외독자이다.6세때부터 동네에 있던 한문서당 송호재에서 수강하여 최연소자로서 ‘괴’를 받았고 일찍이 ‘동필’소리를 들었으며 역시 소년시절인 17세에 문단에 등단후 그가 18세때 쓴 ‘청자부’를 읽은 가람은 ‘글이 너무 절정에 올라가 있어 이런 글을 쓰면 단명하다’고 걱정스러워할 정도였다. ‘우기를 머금은 달무리/시정은 까마득하다//맵시든 어떤 품위든/아예 가까이 오지말라//이 적막/범할수 없어 꽃도 차마 못꽂는다’한평생을 그가 사랑해 마지않은 ‘백자’처럼 살아온 초정은 최근에는 금아 피천득과 만나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이따금 인사동에 나가 그가 좋아하는 골동품을 보는 기쁨이 낙이다.그런중에도 그가 보여주는 최근의 시는 누에고치에서 청명한 비단실이 뽑혀오르듯이 ‘밤마다 밤이 이슥토록/묵을 갈다가/벼루에 흥건히 괴는 먹물/먹물은 갑자기 선지빛으로 변한다/사람은 해치지도 않았는데/지울수 없는 선지빛은 온 가슴을 번져난다’고 노래부른다. ○한국시조사의 한획 그어 이미 ‘시’니 ‘시조’니 하는 경계에 묶여있지 않은 ‘무위자연인’으로서 그는 ‘시인의 말은 오직 시일뿐’이라는 것이며 ‘속세의만사는 한낱 군소리에 지나지 않다’는 말로 자신의 삶을 압축해 보인다.부인 김정자씨와의 사이에 3남매,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용산구 이태원동청화아파트에서 자녀들은 출가하고 부부만이 살고 있다. 그의 제자이던 시인 박재삼은 생전에 ‘스승의 시는 도자에 그려진 한송이 백매와 같다’고 찬사해 마지않았다. ‘기막힌 위치에 자리잡고있어 한치도 움직일수 없이 완벽하다’는 것이 이유다.평자들로부터 ‘가람·노산을 뛰어넘어 한국시조사의 한 획을 그어놓은 시조시인’으로 받들어진 것도 이러한 과정에서 얻어진 곡진한 결과일 것이다. 그의 시적 자존심은 사우세풍을 지나 ‘예술 속으로 뚫고 들어간 사람’이라는 찬사와 함께이 시대 고고특절한 품성을 지닌 존재로서 언제까지나 찬연히 빛나게 될 것이다. □연보 ▲1920년 경남충무출생 ▲1926년 한문서당 송호재 수강 ▲1930∼35년 진산 이찬근 완선 김지옥 노제 장춘식사사 ▲1936년 시지 ‘아’동인 ▲1937년 시지 ‘맥’ 동인 ▲1938년 문예지 ‘문장’·동아일보에 시·시조·동요 추천,당선 ▲1945년 해방기념제전 시부 장원,삼천포문화동지회 창립,통영문협회원 ▲1946∼62년 중학교교사 봉직 ▲1947년 시조집 ‘초적’(수향서헌)출간 ▲1948년 시집 ‘고원의 곡’(성문사)출간 ▲1952년 문교부편수국 자문위원 ▲1954년 충무공 시비건립,통영문협재건,‘참새’지 복간 ▲1972년 일본 경도에서 서화화전개최,서울·부산·대구·대전·마산등 개인전 10여 차례 ▲1973년 삼행시집 ‘삼행시’출간▲1974년 국립중앙박물관초청 ‘이조도자’에 관한 특별강연 ▲1977년 육필 몰자귀비 건립 ▲1986년 산청에 시비건립 ▲1989년 고희기념시집 ‘향기남은 가을’(상서각)출간 시집 ‘이단의 시’(49년)·‘의상’(53년)·‘목석의 노래’(56년)‘묵을 갈다가’(80년), 동시집‘석류꽃’ (52년)·‘꽃속에 묻힌집’(58년) 산문집‘시와 도자’(75년)등 12권 제1회 중앙시조대상·제1회 노산문학상·제2회 충무시 문화상 등
  • 미는 아시아 경제난 극복의 동반자/폴 브래켄(지구촌 칼럼)

    새해가 아시아의 경제위기로 시작되고 있다.미국의 일반 국민들은 이러한 새로운 사태 발전의 중요성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미 주식시장의 호황이 이런 아시아의 문제로부터 관심을 빼앗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워싱턴의 정책 입안자들과 월가의 기업가들은 아시아의 문제가 미국에 심각한 문제를 의미할 수 있다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 ○IMF 본래 목적 퇴색 경제적 측면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대한 지원은 수년간에 걸쳐 이루어질 변화를 강요하는 ‘성곽을 부수는 철퇴’로 보여진다.외국인 소유의 증가,특정분야에 있어서의 발빠른 규제 완화,그리고 경제 주요 부분에 있어서의 외국자본 참여의 대폭 허용은 모두 새 국제정치 질서속에서 나타난 본보기들이다. IMF는 40년대 설립될 당시 국제수지에 문제가 있는 국가들이 돈을 빌려 수많은 근로자들을 강제로 일자리에서 쫓아내지 않고도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고안된 기구였다.국제수지 문제는 당시도 경제전체에 불안을 가져올 잠재력을 지닌 재정 불균형의 문제였다.IMF는 이를 막기위해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이런 기능을 더 이상 하지 않고 있다.대신 IMF의 자금은 경제재건을 위한 기회로 보이게 됐다.국제수지의 위기는 한 국가에 광범위한 경제재건을 강요하는 기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논리는 아주 간단명료하다.어느 국가가 IMF를 필요로 하게 되면 그 나라는 취약한 협상위치에 놓이게 됨으로써 IMF의 요구사항을 거절하지 못한다는데 있다.이는 금융 불안정을 제한하려는 IMF의 당초 목적과 엄청나게 반하는 것이다.지금은 IMF가 실업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변화를 촉진하기 위해 불안정을 이용하게까지 됐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 워싱턴에는 또다른 우려가 한국과 여타 아시아 국가들의 문제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다.미국이 이들의 경제위기를 도와야 한다는데 분개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최근 수년 동안 워싱턴은 경제에 있어 미국의 주요한 국제적 역할은 새로이 산업화하는 국가들을 책임 있는 행동하도록 하여 서구체제로 통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이런 관점에서 시장개방 및 전통적 개념의 자유무역을 수용하기 위해 경제체제를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한국·말레이시아·태국에서의 국가적 저항을 극복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미의 지원 반대 여론 많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아시아 국가들의 문제가 새로운 과제로 워싱턴에서 논의되기 시작하고 있다.하지만 아시아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있어 미국은 지도자가 아니라 동반자라는 사실이 중요하다.이 때문에 미국은 IMF의 대출 지원에 개입하고 있다.이것이 아시아 국가들에게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미 지도자들에게 인식되고 있다.서울·방콕,그리고 콸라룸푸르가 아시아 시장에 대한 미국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서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검증되지 않은 것은 IMF의 자유화 조건에 부과하는 미 기업들의 극단적인 요구를 워싱턴이 지원하는 방법이다.워싱턴은 중국이라는 세계 최대규모의 경제를 구제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미국이 놓여질 수 있다는 악몽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한국·태국,그리고 다른 국가에 대한 미국의정책은 중국에게 보내는 신호다.중국은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을 때 세계경제 체제로부터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자신의 심대한 경제적 중요성을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중국의 곤경은 방관 못해 워싱턴이 중국을 구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될 것이다.문제의 크기에 있어서도 한국을 위해 모아진 5백70억달러의 패키지보다 훨씬 클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확실한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심하게 갈려 있다.공화당은 자신들의 기업 지지자들이 중국의 거대한 시장에 관심을 높이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에 대해 회의적이다. 중국을 돕는 것은 70년대 소련에 대출을 해준 것만큼 논쟁적이 될 수 있다.그렇다면 워싱턴의 선택은 어떤 것이 될 것인가.중국이 곤경에 처해 있을때 버둥거리게 내버려 두는 것은 외교정책상 재앙일 수 있다.중국으로 하여금 최근에 이룩한 발전을 씻어내는 비민주적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또한 이란·파키스탄 같은 국가에 무기판매를 촉진할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어느때보다 외교정책과 경제정책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이뤄질 것이다.소련이 존재했던 냉전시대에 모스크바의 세계경제로부터의 고립은 외교와 경제의 관계가 느슨했음을 뜻했다.그러나 오늘날 외교와 경제의 관계는 더욱 강해지고 있으며 미래에는 더할 것이다. 동아시아 사태는 중국·인도·러시아 같은 국가들이 한꺼번에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들 때 더 큰 미래의 문제에 대한 선례를 설정하는데 이용되고 있다.이같은 메시지는 한국과 말레이시아 등 동아시아의 조그만 국가들에게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지 몰라도 이들 국가에 대한 정책은 더 큰 이웃 나라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 화법(후보 프리즘)

    이번 대선은 어느때보다 후보들의 ‘입’에 유권자들의 이목이 쏠려 있다.특히 미디어 선거전에서 후보들의 화법도 선거결과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나라당/법관출신 논리정연 법관출신인 이회창 후보는 삼단논법이 몸에 뱄다.때문에 1대1 면담이나 소규모 회의에서 이후보의 주장은 논리정연하고 힘이 있다.설득력과 호소력도 충분하다는 평이다.그러나 일반 유권자들을 상대로 본격 거리유세전에 들어선뒤 이후보는 쉽고 부담없는 화법을 구사할 것을 여러차례 건의받았다.그래서인지 최근 거리유세에서는 ‘뜸들이는’ 일없이 직설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었다.특히 TV합동토론에서는 문장을 짧게 끊어 결론부터 제시하는 방식을 사용한다.일상 대화에서는 주로 많이 듣고 조금 얘기하는 성격이다.상대에게 웃음을 자아내는 농담도 곧잘 한다. ◎국민회의/삼단논법식의 대화 김대중 후보는 평소 논리적 화법을 구사하다는 평을 듣는다.무슨 소재든 간에 전후 내지 인과 관계를 따져 삼단논법식으로 대화를 풀어나간다는 것이다.그러나 대화방식이 “첫째…,둘째…”하는 식의 설명조로 흐르기 십상이다.때문에 제한시간내에 핵심을 전해야 하는 TV토론 등에서는 이따금 손해를 보기도 한다. 모임의 인사말은 흔히 “사랑하고 존경하는 여러분”으로 시작한다.한때 기분이 고조되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자유가 꽃처럼 만발하고…”이라는 어투도 즐겨 사용했다. ◎국민신당/서론없이 간단명료 대화상대에 따라 다르지만 이인제 후보는 대체로 서론이 없다.직설적이다.용건을 간단히 말하는 스타일이다. 자세도 꼿꼿하다.키가 작은 탓에 어릴 적부터 가슴을 펴고 다니던 자세가 굳어진 결과라고 한다.아쉬운 소리를 할 때 조차 이런 ‘당당한 ‘자세를 보인다.때문에 오만하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이를 보완하기 위해 두 손을 앞으로 잘 모은다. 대화도중 언짢을때는 팔짱을 끼고 시선을 돌리는 것도 특징이다.가끔 ‘허허’하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뒤로 젖히는 때도 있다.곤란하거나 당혹스러워 한다고 보면 된다.
  • 기회의 환상/미 정치학자 존 슈왈즈(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경제는 일정틀안서 움직여야” 역설/경제와 도덕적 기준 효과적으로 접목 시도/“근면한 일꾼은 존경 받는 자리 찾는다” 강조 아리조나대학 정치학자인 존 슈왈즈는 저서 ‘기회의 환상’에서 정확하고 수긍가는 경제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찾고 있다.그는 이 저서에서 우리 생활의 목표가 얼마나 뒤쳐져 있는가를 재는 도구로서 경제학을 이용한다.그는 효과적으로 경제와 도덕적 기준을 접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한때 미국경제학회 의장을 지낸 그가 하는 시도에 대해 로버트 헤일부르너 같은 경제학자들은 박수를 보낸다. 그는 오늘날 부유한 생활을 뽐내는 미국의 경제학자들에 대해 정의와 도덕에 대해 말해보도록 한다면 대부분 안절부절하게 될 것이며 경제가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가에 대해 묻는다면 대개 그 대화의 내용은 경제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로 초점이 바뀔 것이라고 지적한다.그리고 토론은 도덕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에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도덕이 무엇이냐에 맞춰진다고 본다.좀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의 경제이론이 국민들을 잘살게 해주는‘번영’을 어떻게 규정해놓고 있는가가 관심의 초점이 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근대 경제이론을 내놓은 학자들은 경제의 목적을 잘 알았다.그것은 아담스미스가 국부론에 써놓았듯이 노동의 대가에 대해 좋은 보수가 주어져야 하며 노동자들은 적극적이고 부지런해야 하며 재빨라야 한다고 돼있다.또한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임금의 수준이 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 경제학자들은 지금 근로자들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와 목표치에 대한 구별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그리고 우리는 경제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알 필요가 있다.그러나 어떤 지렛대를 움직여야 경제가 성장하는 가를 안다는 것은 우리가 살고 기거하고 싶은 사회를 가꾸는 것과는 다른것이며 경제학자들은 그런 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고 비평한다. 분명하게도 슈왈즈의 경제학에는 맹점이 있다.몇몇은 이 책에서 그가 제시한 10여개의 전제에 대해 공박할 것이다.그러나 공박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접근법이다.그는 경제는 반드시 일정틀안에서 움직여야한다고 주장한다.그틀은 명확해야 하지만 대중이 말하는 인플레이션,실업,기술,생산성,시장,임금 등과 같은 것으로 말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적고 있다. ‘기회의 환상’은 간단명료하고 읽어나가기 쉽게 쓰인 에세이라고 말할수 있다.그가 한 주장에 대해 기술적인 측면으로 살펴보려는 지엽적인 시도를 한다면 3개의 부록과 50쪽이 넘는 참조를 보면 포기하게 될 것이다.그는최선의 도덕적 목표를 모든 장에 부연해놓고 있다.“현재 우리를 단합하게 해주는 것은 현재와 과거를 묶어주기도 한다”고 적은 그는 참고 일하는 모든 근면한 일꾼은 존경받는 자리를 찾을수 있다”고 강조한다. 다른 측면을 보면 만일 제임스 매디슨이나 다른 우리의 국부들이 오늘에 나타난다면 그들은 “경제적 독립과 발전이 모든 시민들에게 골고루 혜택을 미치는 기회라는 교훈을 국가가 어떻게 깨닫을 것인가”라고 물을 것이라고 그는 가정한다. 그것은 한 개인의 가치가 시장에서 얼마나 할 것인가를 측정하는 또 다른 개념이기도 하다.슈왈즈의 평등한 기회가치 기준에 의해국가는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직업을 부여하고 생활을 영위할 충분한 일거리를 제공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그것은 바로 미국의 전통이기도 하다고 그는 적고 있다.노동은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그대로 방치돼서는 안되며 노동은 다른 사람에 대한 기여를 측정하는 결정적인 척도이어서도 안된다는 말도 한다. 경제학에 대해 말하자면 슈왈즈는 “미국의 숨겨진 성공:공공정책의 20년 평가”라는 책을 쓰기도 했으며,토마스 볼기와 함께 “잊혀진 미국”이란 책에서 50년대 이후 미국은 비록 급격한 경제성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이같은 시각은 매우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측면이 있지만 그 기저에는 미국의 전형적인 4인가족에게는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영위하기 위해 일년에 2만7천달러의 소득이 필요하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이런 측정치를 밑도는 수준의 인구는 약 1천6백만명에 이른다고 그는 지적하면서 미국은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노력을 기울이도록 약자의 편에서 부국 미국을 비평하고 있다. 원제 Illusion Of Chances.WW 노턴 & 컴퍼니.237쪽.23.95달러.
  • 대한성공회 신임 관구장 정철범 대주교

    ◎“영·미처럼 여성사제도 배출”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교회도 개혁해야 합니다.특히 평신도가 교회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겠습니다.또 영국과 미국교회처럼 대한성공회에서도 여성사제를 배출할 계획입니다” 지난 27·28일 서울 중구 정동 서울주교좌 성당에서 열린 대한성공회 정기관구의회에서 제4대 관구장에 선출된 정철범 대주교(57)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장래 구상을 밝혔다. 정대주교는 “교회가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며 “한국기독교도 이제 성숙한 단계에 접어들어 사회의 그늘진 곳을 보살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성공회가 운영하고 있는 나눔의 집 부설의 가출청소년을 위한 쉼터를 청소년센터로 확대하고 내년에 강화도에 국내 최대규모의 장애인직업학교를 건립하겠다”고 말했다. 대한성공회 관구회의는 평신도 집사제도 도입과 교단명칭 변경은 부결시켰으나 100여년 계속 사용해온 기도문과 각종 예배절차를 개정하는 등 시대의 흐름에 맞는 헌장을 개정했다.지난 1889년 영국에서 들어온 대한성공회는 현재 전국에 80여교회에 5만3천여명의 교인이 있다. 정대주교는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71년부터 성공회 사제생활을 시작,동대문교회와 대학로교회를 거쳐 대한기독교서회 이사장,성공회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했다.
  • 오인환 공보처 최장수 기록

    ◎4년7개월9일 재직… 홍종철 전 문공 앞질러/정부수립후 처음 대통령과 임기 같이할듯 오인환 공보처 장관이 5일로 역대 공보처장관 가운데 최장수를 기록하게 됐다.공보처의 전신인 문공부 장관을 포함해 가장 오래 재직했던 사람은 홍종철씨.홍 전 장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시절 64년 9월2일부터 69년 4월10일까지 4년7개월8일 동안 장관직을 맡았다. 오장관은 지난 93년 2월26일부터 재임해 5일로 4년7개월9일 근무를 기록했다.오장관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문민정부 출범이후 김영삼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할 유일한 장관에다 48년 정부수립 이후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한 최초의 장관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문민정부에서 30차례의 개각을 거치면서 119명의 장관 가운데 유일무이하게 김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하게 되는 오장관에게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그의 경질을 주장하는 측들도 있었으나 김대통령은 오장관을 ‘문민정부의 상징’으로 삼고자 유임시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만큼 김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는 얘기다. 신임과 장수의비결은 탁월한 업무처리 능력과 소신있는 일 처리 등이 꼽힌다.지역민방과 케이블TV 허가 등의 과정에서 전혀 잡음없이 끝낸 점은 대표적인 사례이다.다른 정권같았으면 최단명 장관으로 끝났을수 있었던 일을 그는 무리없이 해냈고 이때문에 국회 야당의원들조차 ‘소신장관’으로 부르고 있다. 오장관의 최장수 공보처장관 신기록은 최후까지 개혁을 추진하는 장관이라는 상징성에서 더 큰 의미를 찾을수 있을 것 같다.
  • 사세확장·다각화가 단명재촉(쓰러지는 왕국에서 배운다:8)

    ◎경기예측 빗나가 70년 성업 ‘모래성’/‘대기업 꿈’ 진로 건설·유통업 진출 ‘악수’/기아 특수강 골치… 덕산도 결국 ‘빚잔치’ 기아그룹의 경영난은 기아특수강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원인의 절반이다.9천2백4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연간 72만t을 생산하는 세계 굴지의 업체를 꿈꾸었던 기아특수강은 엄청난 차입금 때문에 그룹 전체를 병들게 한 원인균으로 전락하고 말았다.현대와 대우의 기아특수강 공동경영이 확정된 뒤 이종대 기아경제연구소 사장은 “계열사 중에서도 기아특수강은 처리가 가장 절망적이었다”고 실토했다.빚더미에 앉은 기업을 사들일 기업도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지난 90년 군산공장 착수 당시만해도 유망 업종으로서 기아그룹 사세 확장의 선두주자역을 맡았던 기아특수강이 그룹 전체의 발목을 잡을 줄은 김선홍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 누구도 예견치 못했다. 성장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모한 사세확장과 사업다각화.매출 확대 경쟁에서 비롯된 무턱댄 몸 부풀리기가 경영 부실을 부르고 있다.광활한 영토를 호령했다가 멸망의 종국을 맞은 고대 제국의 교훈은 오늘 우리 기업의 현실에도 그대로 통한다.통치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토 확장은 패망을 부를 뿐이다.사업 확장은 기업가의 꿈이지만 장래를 정확히 예측치 않는 꿈의 실현은 도산을 재촉한다. 70년 역사를 자랑하는 주류 그룹 진로가 쇠락의 길을 걷게 된 배후에는 경기를 예측치 않은 사업다각화와 사세확장이 깔려 있다.80년대 후반 진로는 주류업에 지나치게 의존한 그룹 구조를 바꾸기 위해 건설과 유통업 등에 발을 들여놓았다.부실기업을 사들여 대기업으로 정상화시킬 전략이었다.그것이 그룹의 건강을 해친 ‘병균’이 되고 말았다. 진로그룹 김영진 이사는 “그룹이 어려워진 원인은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건설과 유통 때문”이라면서 “80년대 말부터 사업을 확장하면서 불경기를 예측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90년 법정관리 상태에 있던 세림개발이라는 중소 업체를 인수해 설립한 진로건설은 덩지를 키우기 위해 출혈 수주를 마다하지 않았다. 황시봉 (주)진로 상무는 맥주사업 진출에 대해“주류기업으로서 맥주사업 진출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전제한 뒤 “다만 진출 당시는 맥주업이 이렇게 나빠질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매년 15%씩이나 성장하던 맥주 시장이 최근 감소로 돌아서고 만 것이다.4천억원의 투자금액을 조기 회수할 수 있을 만큼 경기가 따라 주지 못해 적자가 누적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89년부터 6년여 동안 31개 계열사로 문어발식 확장을 한 덕산그룹의 몰락은 무리한 사업다각화의 종말을 보여주는 전형이다.시멘트에서 시작,중공업 유화 금융 언론까지 발을 뻗친 덕산의 일시적 영화는 1천억원의 빚으로 잔치를 연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았다. 사세 확장을 위해 설립한 계열사의 부실은 경영 실적이 좋은 주력사까지 위험하게 만든다.채무보증 때문이다.아무리 영업이 잘되는 주력사라도 수천억원대의 빚보증에는 견딜 재간이 없다.기아자동차와 (주)진로의 경영은 흑자를 낼만큼 좋다.이 두 회사는 사업확장을 위해 인수한 부실 계열사로 인해 똑같은 처지에 놓여있다.주류 순매출 1위 기업으로 현금회전율이 좋은 (주)진로가 최근 부도 위기를 겨우 넘긴 것도 채무보증 탓이다.정확한 미래 시장에 대한 예측이 없는 무리한 사업확장은 기업의 단명을 재촉할 뿐이다.
  • 이회창 후보가 해야할 일(이동화 칼럼)

    여당인 신한국당의 대통령후보경선에서 압도적 표차로 승리해 기세를 올리던 이회창 대표가 전당대회후 며칠도 안돼 당 안팎에서 협공을 당하는 등 난처한 지경에 빠졌다는 보도다.언론은 이를 ‘내우외환’으로 표현하고 있다. ○탕평책 써 반이 포용해야 ‘내우’라는 것은 대선후보경선에 참여했다가 낙마한 일부 경쟁자들이 결과승복약속에 개의치 않고 이상한 언행으로 당의 분위기를 흐리고있음을 지적한 것이다.이수성 고문이 야당대통령후보인 김대중 국민회의·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차례로 방문하더니 미국에 가서는 ‘호남대통령론’을 내비치는 등 갈피를 잡을수 없는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이한동 고문 역시 김종필 총재와 박태준씨를 만나 ‘보수냄새’를 풍기고 다니는가 하면 이인제 경기도지사도 ‘국민후보’로의 출마가능성을 흘리는 등 당초의 정치적 약속과는 다른 언행으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런 행동들은 국민의 상식과 여론에 배치되는 것으로 큰힘을 얻기에는 무리가 있다.또 당직개편이나 차후 논공행상을 앞두고 위상을높이려는 작전일수도 있다.따라서 이후보로서는 국민과 함께 한다는 의식을 늘 가지면서도 당의 단합에 배전의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여러사람이 “큰공을 세웠다”고 기를 쓰고 달려드는 상황속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겠지만 탕평책을 써 당내 반이세력 다수를 포용해야 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외환이다.야당은 대쪽이미지를 가진 이대표의 도덕성에 공격목표를 두고 두아들의 병역문제를 우선 들고나온 것으로 보인다.공교롭게도 두아들 모두 같은 이유로 병역면제가 되었기 때문에 화살을 피하기가 쉽지않다.야당은 돈문제 등 제2·제3탄을 준비중이라는 설이 정가에 파다하다. 잘못 대응했다가는 큰일을 그르칠수 있다.국민을 상대한다는 겸허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나아가 국민이 관심을 갖고있는 부분에 더 큰힘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그것은 바로 정책승부다.클린턴 미국대통령이 그보다 더한 개인적 스캔들이 있음에도 비전과 정책,특히 경제회생의 성공으로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풍부한 인력과 정책자료 특히 여당은 정책을 다룰 풍부한 인력과 정책자료를 갖고 있다.그러나 이의 활용이 과거에는 아주 미흡했다.관권과 금권만이 프리미엄인양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제는 다르다.오히려 정책이 가장 큰 프리미엄이 될 수 있다.아니,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대표가 해야할 일들이 있다.첫째 정책파트를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감투달라고 모여드는 당내인사는 물론 줄서기를 한다는 각계인사의정책적 능력을 파악해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일석이조가 될 수 있다.나아가 광범위하게 인재를 찾아 정책적 힘을 빌리는 일도 빠뜨릴수 없다.이렇게 해서 비전과 희망을 주는 정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며 국민이 공감토록 보다 세밀하고 실감나는 각론까지 구비해야 할 것이다. ○단명장관 양산 실이 많다 둘째 김영삼 대통령이 현재의 정책적 어려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적극 돕는 것이 필요하다.여권의 힘이 급속히 이동해서 김대통령의 정권마무리가 잘 안된다면 그 피해는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게 마련이다.그렇기때문에 당직개편은 당연히 이대표가 주도해야 되겠지만 정부개편에는 간여치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특별한 사유없이 단명장관을 양산하는 것은 정권말 정책수행에 혼선만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셋째 깨끗한 선거를 위한 정치개혁에 능동적으로 나서야 한다.어제 끝난 임시국회에서 타결되어야 했던 정치개혁입법은 여야의 이해가 엇갈려 심의특위조차 구성치 못한채 끝났다.국회나 정치권이 이를 못한다면 정부입법을 요청하거나 각계인사로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안을 만들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만 하다.시간이 없으니 국민여망에 부응하는 적극적 자세를 보여줘야 할때다. 이대표는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밝힌대로 세대교체,지역성 타파 등 강점이 있고 안정희구세력을 흡수할 수 있는 여당프리미엄도 갖고 있다.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여기에 훌륭한 비전과 정책으로 날개를 달아야 할 것이다.
  • 품질·아이디어·마케팅/히트상품 3박자 “눈에 띄네”

    ◎우수한 품질 반짝이는 아이디어 참신한 마케팅 히트상품의 요건은 무엇일까.히트상품의 3대 요건은 ‘우수한 품질’‘반짝이는 아이디어’‘효과적인 마케팅’이다.대개 이 3가지 요건이 어우러져야 제대로 된 히트상품이 탄생한다.세가지를 완벽하게 갖추기는 어렵다.10개의 상품이 시장에 나오면 히트할 수 있는 상품은 하나나 둘이 될까말까다.빛도 보지 못한채 단명으로 일생을 마감하는 상품들도 수두룩하다.‘히트상품이 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기 만큼 어렵다’는 말도 한다.과장일지 몰라도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상품의 품질은 최상급이다.소비자들의 선택에 의한 검증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히트상품은 품질향상을 위한 끊임 없는 노력의 결실이다.상품 전문가들은 히트상품이 되기 위한 1차 조건은 품질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아이디어가 아무리 좋아도 품질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면 아이디어를 헛되게 만들 뿐이다.품질이 나쁜 제품을 기발한 판촉전략으로 소비자에게 파는 것은 고객을 속이는 행위다.제품을더 많이 팔기 위한 경쟁사와의 선의의 경쟁에 의해 품질은 지속적으로 향상된다. 서울신문이 선정한 히트상품 중에서는 특히 뛰어난 품질이 고객들에게 어필한 제품들이 많다.냉장실과 냉동실에 냉각기를 따로 설치한 삼성전자의 ‘독립만세 냉장고’나 깨끗한 음질과 어디서나 잘 터지는 휴대폰을 선언한 LG정보통신의 ‘디지털 휴대폰 프리웨이’ 자동차의 성능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 대우자동차의 ‘누비라’ 완벽한 정수 기능에 한발 다가선 청호나이스의 ‘나이스 냉콜 정수기’ 등은 품질로 히트상품을 성취한 대표 상품으로 꼽힌다. 만도기계의 김치 숙성고인 ‘위니아 딤채’ 대현의 음식물 탈수기 ‘짜식이’ 선경제약의 붙이는 관절염 치료제 ‘트라스트’ 국민카드의 ‘패스카드’ 대동주택의 ‘황토방 아파트’ 해태음료의 ‘갈아만든 배’ 등은 돋보이는 아이디어로 히트상품을 만들어낸 경우다. 고객들에게 상품을 제대로 알리기 위한 마케팅 수단은 차별화된 광고와 판촉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최근 선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고급맥주는참신한 마케팅이 돋보인다. 조선맥주의 ‘하이트엑스필’은 젊은이 취향에 맞추어 고급 오토바이를 명동과 대학로,신촌,압구정동 등으로 몰고 다니며 시음회를 펼쳐 신세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진로쿠어스의 ‘레드락’은 레드락 음악회를 포함한 페스티벌을 열어 시선을 끌었다.이에 맞서 OB의 ‘카프리’는 ‘랄랄라 댄스 콘테스트’와 같은 이벤트로 젊은층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기억에 오래 남는 참신한 광고야 말로 소비자들이 그 상품을 고르게 이끄는 가장 좋은 수단임에 틀림없다.여름철을 맞아 눈길을 끄는 음료광고들이 많다.톱스타 채시라를 등장시킨 동원산업의 음료 ‘해조미인’ 광고는 시선을 모은다.채시라의 표정연기와 걱정하는 듯한 대사를 통해 우리 몸도 공해로 오염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는 점이 어필하고 있다.해조류에서 추출한 알긴산이 함유된 음료가 체내에 축적된 중금속을 씻어내린다는 내용의 이 광고는 효능을 충분히 전달해 효과를 얻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광고로 히트상품에 등극했다고 볼 수 있는 상품으로는 LG전자의‘바이오 에어컨’ SK텔레콤의 ‘디지털 011 이동전화’ 대우자동차의 ‘라노스’ 조선맥주의 ‘하이트맥주’ 등을 들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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