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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대북 접경지에 퉁단 경제벨트

    中 대북 접경지에 퉁단 경제벨트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방북 이후 대북 접경지역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양상이다. 노골적으로 북한과의 경제무역 활성화를 거론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북지역 개발과 무역교류 확대를 통한 ‘북한 끌어안기’ 등 두 가지 노림수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국의 동북지역 가운데 대북 무역의 핵심도시인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과 지린(吉林)성 퉁화(通化)가 ‘퉁단(通丹) 경제벨트’로 집중개발된다. 340여㎞ 떨어진 두 도시와 주변 지역을 하나로 묶어 동북지역의 개방선도구로 지정, 대북 교류의 전진기지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복안이다. 압록강 하구의 단둥은 중국과 북한 교역 물자의 60% 정도가 통과하는 핵심 도시인 데다 백두산과 접한 퉁화는 지안(集安)을 통해 철광석 등 북한의 천연자원이 들어오는 관문이라는 점에서 두 도시가 하나의 경제벨트로 묶여 개발될 경우 시너지 효과가 적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의 반관영통신인 중국신문사는 단둥과 퉁화시 정부가 최근 개방선도구 개발협정에 서명했다고 27일 보도했다. 개발 계획도 구체화돼 나왔다. 우선 두 도시를 고속도로와 철로로 연결, 물류와 관광 및 자원교류를 대폭 확대함으로써 주변 지역을 아우르는 경제벨트를 형성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단둥과 퉁화간에는 왕복 2~4차선 지방도로만 연결돼 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퉁화에 대대적인 보세기지를 건설, 내륙의 수출항구로 집중 육성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단둥과 퉁화시 정부, 선양(沈陽) 철도국, 창춘(長春) 세관, 단둥 항구그룹, 퉁화철강 등이 ‘6자협력의정서’에 서명했다. 오는 2012년까지 4억 4000만위안(약 748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퉁화시 톈위린(田玉林) 대리시장은 “개방선도구 건설로 퉁화는 ‘내륙’에서 ‘연안’으로 변하게 됐다.”며 “동북지역 내륙 도시와 북한간의 무역교류가 대폭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달 초 원 총리 방북 때 북한과 중국간에 신압록강 대교 건설에 합의한 점을 감안하면 단둥의 대북교류도 더욱 활성화될 전망이다. 한편 퉁단경제벨트와는 별도로 지린성내 대북 접경지역인 난핑(南平)과 허룽(和龍)을 연결하는 철도 건설이 시작돼 주목된다. 연장 41.68㎞인 이 노선은 북한으로부터 들어오는 철광석 운반에 이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허룽은 2011년 완공을 목표로 부설 중인 헤이룽장(黑龍江)성 수이펀허(綏芬河)와 랴오닝성 다롄(大連)을 잇는 둥볜다오(東邊道) 철도의 연결도시 가운데 한 곳이다. stinger@seoul.co.kr
  • [김정일-원자바오 회동] 北 中우호 2차 핵실험前으로 복원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방북을 계기로 중국과 북한의 우호관계가 북한의 제2차 핵실험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된 양상이다. ●지난 5월 핵실험후 관계 악화 중국은 지난 5월 북한이 제2차 핵실험을 실시하자 강력한 비난과 함께 고위급 교류를 중단,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으며 북한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결의안에 찬성한 중국을 비난하는 등 북·중 관계는 전례없이 악화됐었다. 우호관계의 복원은 원 총리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극진한 환대가 방증한다. 김 위원장은 4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으로 직접 영접을 나간 데 이어 오후에는 함께 자신이 직접 각색을 지시한 북한판 ‘홍루몽’을 관람했다. 원 총리에게 활짝 웃으며 먼저 자리에 앉으라고 권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5일 오후에도 함께 집체극 아리랑을 관람한 뒤 단독으로 만나 북핵문제 등을 논의했으며 만찬도 함께했다. 이틀간 모두 다섯 차례나 한자리에 있었던 셈이다. 중국 측도 적극적으로 북한을 끌어안는 모습이다. 중국은 5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 원 총리 등 서열 1~3위 지도자 공동명의로 북한의 김 위원장 및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일 내각총리와 북·중수교 60주년 축하 서한을 주고받았다. ●김·원총리 5차례나 ‘한자리에’ 후 주석 등은 서한에서 “양국의 앞 세대 지도자들이 손을 맞잡고 만들어 키워낸 선린우호협력 관계를 중단없이 전진시키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대 규모의 방북단을 이끌고 있는 원 총리도 큼지막한 선물 보따리를 내놓았다. 북한 측과 ‘경제원조에 관한 교환문서’, ‘경제기술협력협정’, ‘교육기관간 교류협조 합의서’, ‘중국 관광단체의 조선관광 실현에 관한 양해문’ 등을 체결했다. 단둥의 랑터우항과 남신의주를 연결하는 새로운 압록강대교 건설 합의가 특히 눈에 띈다. 중국으로부터 매년 수십억달러 규모의 석유와 식량 등을 무상원조받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는 원조 규모 및 교역량 확대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당초 신압록강대교 건설은 동북지방 개발에 나선 중국 측이 몇년전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나 북한이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았었다. ●北도 中 지렛대 삼아 원조 기대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이 같은 양국 간 해빙무드와 관련, “중국 지도부가 몇달 동안 북한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지만 결국 끌어안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것 같다.”며 “북한과 미국의 직접대화 움직임 등 정세변화도 중요한 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북한 입장에서도 중국을 지렛대 삼아 미국을 움직이면서 중국의 원조를 챙기는 두가지 효과를 노렸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 총리는 방북 이틀째인 이날 오전 평남 회창군의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묘를 찾아 헌화함으로써 북측에 오랜 혈맹관계임을 상기시켰다. 평양 동쪽 90㎞ 거리에 있는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묘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 등 134명의 중국군 유해가 묻혀 있다. stinger@seoul.co.kr
  • 타이완 간 달라이 라마 조용한 행보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 측의 강력한 반대에도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30일 밤 예정대로 타이완에 도착했다. 달라이 라마의 타이완 방문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달라이 라마는 자신의 방문을 허가한 타이완 정부의 정치적 부담을 감안한 듯 기자회견과 강연회 등을 잇따라 취소했다.태풍 ‘모라꼿’의 최대 피해지역인 남부 가오슝(高雄)의 천쥐(陳菊) 시장 등 야당인 민진당 소속 자치단체장 7명의 초청으로 타이완을 방문한 달라이 라마는 4일까지 6일간 주로 타이완 남부지역에 머물며 추모법회 참석 등을 통해 이재민들을 위로할 계획이다. 중국은 달라이 라마 도착 직후 국무원 타이완판공실 명의로 “양안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내용의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장관급인 왕이(王毅) 타이완판공실 주임은 31일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서 열린 ‘타이완 주간’ 개막식 참석을 전격 취소함으로써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하지만 중국은 이날 예정대로 양안간 항공편을 정기노선으로 격상시켰고, 성명에서도 “민진당의 책동은 속셈이 따로 있다.”며 초청 주체인 민진당만 비난했을 뿐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언급하지 않았다. 마 총통을 비롯한 국민당 주요 간부들이 달라이 라마를 면담하지 않겠다고 밝힌 점을 감안, 현재의 양안관계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마 총통이 사전에 국민당 고위간부를 중국에 보내 충분한 양해를 구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stinger@seoul.co.kr
  • [유씨 석방 임박] 유씨 억류~석방 초읽기

    [유씨 석방 임박] 유씨 억류~석방 초읽기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 석방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유씨의 악몽은 지난 3월30일 시작됐다. 통일부 등에 따르면 그날 오전 유씨는 북측 개성공업지구 출입국 사업부로부터 방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유씨가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른 현대아산 관계자, 개성공단 관리위원회 남측 관계자도 출입국 사업부에 도착했다. 북측 관계자는 “유씨는 북한 정치 체제를 비난하고 북측 종업원을 변질 타락시켰으며 탈북 책동 등의 행동을 했기 때문에 관련 규정(남북간 출입·체류 합의서)에 따라 단속·조사한다.”고 미리 준비한 통지문을 일방적으로 읽어 나갔다. 그뒤 북측 관계자들은 유씨를 데리고 사라졌다. 북측은 이날 오전 11시50분쯤 통일부에 북한 개성공업지구 출입국 사업부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 이같은 내용을 통보했다. 정부는 북측에 유씨를 즉각 석방할 것과 변호인의 도움을 받게 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북측은 거부로 일관했다. 북한이 장거리 로켓 ‘광명성 2호’를 발사하고 제2차 핵실험 등을 하면서 남북관계가 더 냉랭해지자 유씨의 석방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북한 제재,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등이 이어지면서 남북은 평행선을 달렸다. 정부는 지난 4월21일 통일부 김영탁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 문무홍 개성공단관리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꾸려 현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남북 현안 대화를 개성공단에서 하면서 유씨 석방을 촉구했다. 북측은 “소관이 아니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뒤 세 차례의 남북 당국자간 실무회담에서도 서로의 입장차만을 확인했다. 북측은 지난 5월15일에는 유씨에 대해 “현대아산 직원의 모자를 쓰고 들어와 우리를 반대하는 불순한 적대행위를 일삼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는 내용의 통지문을 남측에 보냈다. 간첩혐의 적용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상황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정부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현대그룹은 유씨 석방을 위해 중국 베이징, 단둥 등에서 서예택 관광경협본부장 등을 중심으로 유씨 문제 해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북측 인사와 물밑접촉을 해 왔다. 현대아산 측은 유씨를 풀어주면 컨소시엄 형태의 인도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다른 단체들과 매칭펀드 형식의 인도 지원안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북측에 제시했다. 이 제안에 북측은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도 제2차 핵실험 이후 제한했던 민간인 방북을 승인하고 민간단체 대북 지원을 결정하는 등 유화적인 메시지를 북측에 보냈다. 지난 5일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 여기자 2명이 141일 만에 석방되면서 유씨 문제도 급물살을 탔다. 지난 4일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6주기 추모행사를 위해 금강산을 찾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이종혁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은 “유씨 문제가 긍정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뉴스&분석] 北억류 유씨 8·15前 석방 ‘실마리’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 억류된 여기자 2명과 함께 귀국함에 따라 북한에 억류 중인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의 석방문제에 관심이 더 쏠리고 있다. 6일로 140일째 억류 중인 유씨의 석방문제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기류가 보인다. 6일 대북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이종혁 부위원장이 지난 4일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6주기 행사를 위해 금강산을 방문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게 “유씨 문제가 긍정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위원장이 ‘이례적으로’ 평양에서 금강산으로 내려와 추도식에 참석한 게 유씨 문제 때문이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4일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날이다. 정부와 현대그룹은 유씨 석방을 위해 ‘투트랙 전략’을 구사해 왔다. 정부는 3차례 남북 당국자간 실무 개성접촉을 통해 “유씨 석방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현대아산은 중국 단둥 등에서 유씨 해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북측 인사와 물밑접촉을 해왔다. 현대아산측은 유씨를 풀어주면 컨소시엄 형태의 인도적 지원이 가능하도록 다른 단체들과 매칭펀드 형식의 인도 지원안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북측에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안에 북측은 긍정적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직접 현금을 지원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북한은 현대아산측의 제안을 매력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는 게 대북소식통의 전언이다. 정부도 최근 북한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 2일 민간단체 대북 지원을 위해 남북협력기금 35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천해성 통일부 대변인이 6일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 차원의 노력은 물론 유씨가 현대아산의 근로자이기 때문에 사업자도 필요한 노력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것도 ‘투트랙 전략’과 맥을 같이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 때 “유씨와 최근 북한 경비정에 예인된 어선 ‘800연안호’ 선원을 석방하면 매우 전향적인 진전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북측 관리들에게 전달한 것도 유씨와 선원의 조기석방 가능성을 높여주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북측이 8·15 광복절 전에 유씨를 추방형식으로 석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늦어도 이달 안에는 유씨가 풀려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대북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측의 태도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북정책과 관련, 전향적인 메시지를 발표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남북관계가 개선될지 악화될지 광복절을 전후한 남북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디도스 테러 이후] 경찰 “6개국 서버 경유지로 사용 확인”

    경찰청 사이버테러 대응센터에 설치된 ‘분산서비스 거부(DDoS) 테러’ 수사전담반이 해외 6개국에 분산된 6개의 서버가 DDoS 테러의 경유지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청은 중간 경유지가 해외에 있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범인 검거에 최소한 두 달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수사전담반 핵심 관계자는 12일 “현재까지 확보된 27대(1차 공격 9대, 2차 공격 13대, 3차 공격 5대 등)의 공격수행 PC를 분석하고 중간 경유지인 서버나 사이트에 대한 추가 확보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역추적을 통해 국내외 86개의 서버를 분석한 결과 이중 해외 6개국의 6대 서버에 실제 악성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것을 밝혀냈다.”고 밝혔다. 수사전담반은 이에 따라 수사요원 7명을 추가(총 31명)하고 해당국의 협조를 요청해 경유된 PC나 서버, 사이트 등의 실물 확보에 주력할 예정이다. 또다른 수사전담반 관계자는 “해당국의 협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범인 특정에만 최소한 두 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검찰은 13일 오후 서울중앙지검 청사에서 수사당국 관계자 등이 대거 참석하는 ‘사이버 공격범죄 수사대책회의’를 연다. 이번 회의에서는 DDoS 공격의 유력한 배후가 북한이라는 견해를 내놓은 국정원이 이런 판단을 내린 근거도 설명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수사반은 이번 사태를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사전담반 측은 “국정원이 중국 단둥을 주요 근거지로 지목했는데 이곳의 인터넷 여건을 감안할 때 지령이 내려졌다는 한 달 전부터 이처럼 방대한 작업을 해냈다고 보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中 해안선 1만8000㎞ 산업벨트화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이 1만 8000㎞ 해안선 전체를 마침내 산업벨트화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 1979년 광둥(廣東)성 선전을 경제특구로 지정하면서 시작된 ‘점’이 30년만에 결국 ‘선’으로 이어졌다.중국 국무원은 1일 상무회의를 열어 ‘랴오닝(遼寧) 연해벨트 발전계획’을 확정했다고 관영 신화통신 등이 2일 보도했다.랴오닝 연해벨트 발전계획에 따르면 북·중 국경도시인 단둥(丹東)을 비롯, 다롄(大連), 잉커우(營口), 진저우(錦州), 후루다오(葫蘆島) 등 랴오닝성의 주요 항구도시를 동북 지역의 대외창구로 집중 육성한다. 육성 산업은 ▲조선 ▲정유 ▲장비 제조 ▲농산물 가공 ▲첨단산업 등이다.실제 중국은 최근들어 해안지역의 주요 항구도시들을 연결하는 ‘선긋기’에 적극 나선 바 있다. 지난해 광시(廣西)좡족자치구의 베이부(北部)만 경제개발구 조성을 승인한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타이완(臺灣)과 마주보고 있는 푸젠(福建)성 해안을 ‘해협서안 경제개발구’로 지정했다. 상대적으로 낙후됐던 롄윈강(連雲港) 등 장쑤(江蘇)성 북부해안지역도 개발이 한창이다.기존의 상하이와 저장(浙江)성, 그리고 장쑤성 남부를 아우르는 창장(長江)삼각주 권역, 광둥(廣東)성과 홍콩·마카오를 잇는 주장(珠江)삼각주 권역, 그리고 산둥(山東)성과 톈진(天津)·허베이(河北)성 등을 묶은 보하이(勃海)만 경제권 등과 함께 동부 해안지역 전체가 하나의 산업벨트로 묶이게 됐다.중국은 충칭(重慶)과 쓰촨(四川)성을 서부대개발의 중심으로 삼으면서 산시(陝西), 간쑤(甘肅) 등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밝힌 상태여서 ‘점’에서 시작돼 완성된 ‘선’이 중국 전역을 뒤덮는 ‘면’으로 확대될 날도 멀지 않았다.stinger@seoul.co.kr
  • [北 군사적 타격 위협] 中 독자제재 가능성 높지 않아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중국은 북한이 2차 핵실험을 실시한 지난 25일 강력한 비난성명을 내놓은 이후 특별한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마자오쉬(馬朝旭) 대변인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의 입장을 북한에 직접 표명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 내용은 설명하지 않았다.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중국이 북한에 대해 독자적인 제재에 나설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핵실험 직후 최고위층 주재 회의에서 단계적 제재 방안 등을 논의했지만 마땅한 제재 수단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물론 이번 2차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분노 수위는 2006년 1차 핵실험 때보다 높은 것이 사실이다. 1차 핵실험 당시 2시간 전에 중국에 통보한 북한은 이번에는 30여분도 채 남겨두지 않고, 모호한 형식으로 통보해 중국 지도부의 분노를 샀다.중국이 당장 제재에 나선다면 북한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북한 경제는 석유의 90%, 소비재의 80%, 식량의 45% 정도를 중국에서 들여올 정도로 중국 의존도가 심각하다. 신의주와 마주보고 있는 단둥(丹東)의 송유관을 막거나 철도 운항을 중단하면 북한은 그대로 고립된다. 미국과 일본, 한국 등이 중국의 제재 참여를 요청하는 것도 이런 효과 때문이다.하지만 극단적인 제재는 중국으로서도 원치 않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경제난 심화에 따른 대량 탈북사태 발생 등이다. ‘통제할 수 없는 협조자’인 북한을 길들일 수 있는 방법을 갖고도 중국이 고민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27일 “중국은 북한에 대한 제재를 앞장서기보다는 보다 강력한 경고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유엔 안보리가 결정할 제재 수위를 막후 조정하는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stinger@seoul.co.kr
  • 정부 “베이징 北식당 출입 자제”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주중 한국대사관이 공관원은 물론 교민들을 상대로 베이징 시내 북한식당 등의 출입 자제를 권고했다. 외교통상부로부터 관련 내용을 지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27일 “북한의 로켓 발사 이후 남북관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어 신변안전 등의 차원에서 공관원들의 북한식당 출입을 자제토록 했다.”며 “교민들을 상대로도 계도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재 베이징에는 해당화, 옥류관 등 10여개의 북한식당이 성업 중이다. 북한식당 출입 자제 권고는 이들 식당이 북한의 외화벌이 창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판단도 일부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우리 정부는 중국의 단둥(丹東), 룽징(龍井), 투먼(圖們) 등 북·중 접경지역을 4단계의 여행위험 지역 경보 가운데 1단계인 여행유의 지역으로 지정했다. stinger@seoul.co.kr
  • 단둥 등 中 11곳 여행유의 지역으로

    정부는 23일 중국 단둥시를 여행경보 1단계인 ‘여행유의’지역으로, 에콰도르·튀니지 일부 지역을 2단계인 ‘여행자제’지역으로 각각 새로 지정하는 등 17개국의 여행경보 단계를 신규 지정하거나 상향조정했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그동안 여행경보 지역에 해당되지 않았던 중국 동북 3성의 단둥·지안·보산·린쟝시, 콴뎬만족자치현, 창바이조선족자치현, 안두현, 화룽·룽징·투먼·훈춘시 등 11개 지역을 1단계인 ‘여행유의’지역에 포함시켰다. 외교부는 “북한과 중국 국경지대에서의 북한주민 탈북 등과 관련, 우리 국민의 사건·사고 연루 가능성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2단계 ‘여행자제’지역이었던 시르낙 등 터키 동부 국경 13개 지역과 아라우카 등 콜롬비아 9개 지역은 3단계인 ‘여행제한’지역으로 상향조정했다. 또 멕시코, 이란, 인도, 파나마 일부 지역도 1단계에서 2단계로 한 단계씩 상향조정됐고 이집트, 브라질 일부 지역도 1단계나 2단계로 확대 지정됐다. 방글라데시, 파푸아뉴기니 전지역은 1단계에서 2단계로 올라갔다. 그동안 지정되지 않았던 앙골라와 적도기니는 1단계로 새로 지정됐다. 니제르, 에콰도르, 튀니지 일부 지역은 2단계로 신규 지정됐다. 반면 짐바브웨는 정치상황이 다소 안정돼 1단계에서 해제됐다.정부는 3단계 ‘여행제한’지역을 방문한 여행자들이 휴대전화 국제로밍을 이용할 경우 이를 알리고 귀국을 권고하는 문자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달 말부터 여권 뒷면에 여행경보 안내문 스티커를 부착하며, 올해 말부터 여권 내 서명란 페이지에 안내문을 인쇄할 예정이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北, 美여기자 2명 억류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서울 김미경 김정은기자│ 중국에서 탈북자 문제를 취재하던 미국 기자 2명이 지난 17일 중국과 북한 국경 지역에서 북한군에 억류된 것으로 확인됐다. 탈북자 지원단체인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는 19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미국 케이블TV 커런트(Current) TV의 한국계 미국인인 유나 리(Euna Lee 왼쪽) 기자와 중국계인 로라 링(Laura Ling·오른쪽)기자가 지난 17일 오전 조선족 가이드 1명과 함께 두만강변 중국과 북한 국경에서 취재를 하다 북한군에 끌려갔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천 목사는 “미국 기자들이 11일 한국을 거쳐 13일 중국으로 들어갔으며 17일 오전 6시쯤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그들은 ‘중국 옌지 취재를 마쳤고 단둥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며 “그들에게 ‘북한과의 국경 지역으로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아마 의욕이 넘쳤던 것 같다.”고 말했다. 천 목사는 “같이 취재하던 촬영기자 1명은 피신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현재 연락이 두절된 상황”이라며 그도 역시 북측에 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천 목사는 최근 북한국경수비대가 몸값을 노리고 외지인들을 국경으로 ‘유인’해 끌고 간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커런트 TV는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회장으로 있는 방송사이다. 억류된 두 기자는 다큐멘터리프로그램인 ‘뱅가드’ 를 제작하던 중이었다. 정부 당국자도 이날 “2~3일 전 북·중 접경지대인 두만강 인근에서 미국 국적의 여기자 2명이 취재 도중 북한 당국에 억류돼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확인했다. 이들은 북한 당국 요원들의 제지 요청에도 촬영 등 취재활동을 계속하다 억류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사건 발생 직후 뉴욕과 베이징 채널을 통해 북측에 ‘조속한 석방’을 요청하고 있지만 북측은 아직까지 뚜렷한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FP통신은 이날 프레드 래시 국무부 대변인의 말을 인용, “(미 정부가) 중국 정부와 협력해 기자들이 억류된 장소와 신변 안전 등을 확인하고 있다.”며 “이미 북한 당국자와 접촉해 이번 사태에 대해 우려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kmkim@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봉중근 “경완이 형이 던지라는대로 던졌다” 예멘 교민 안전 초비상…10여명 귀국행 신입사원 통해 본 산업계 대학 평가
  • [서울광장] 징역12년 구형과 무죄 판결 사이/황성기 편집위원

    [서울광장] 징역12년 구형과 무죄 판결 사이/황성기 편집위원

    검찰이 액셀을 과도하게 밟았다. 간첩이란 증거가 불충분한데도 인신을 구속하고 기소부터 해놓고 증거를 모았다. 그 귀결은 무죄였다. 탈북자 김동순(64)씨. 지난해 9월 기소 때부터 “진짜 간첩이 맞냐?”는 의구심을 낳았던 사건이다. 18일 수원지방법원 310호 법정. 재판장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선고가 떨어지자 김씨는 지난 반년 미결수로 지낸 끔찍한 시간을 털어내듯 울먹인다. 지난해 촛불정국 직후 여간첩 사건이라고 발표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원정화(35)씨의 의붓아버지이다. 김씨 재판은 원씨와는 달리 이목을 끌지 못했다.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으며 방청권까지 나눠줬던 원씨 때와 비교하면 김씨의 재판은 방청석이 썰렁했던 잊혀진 간첩 사건이었다. 남에 있는 가족조차 간첩 친척이라는 눈길이 무서워 재판에 거의 오지 않았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본다면 김씨는 원씨 못지않은 간첩이다. 공작원 원씨에게 간첩 행위의 편의를 제공하고, 황장엽씨 거처를 알아내려 시도했고, 노동당 당원증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중국 단둥에 있는 북한대표부 부대표로 위장한 보위부 직원과 만났다는 게 기소 내용이다. 그에게는 국가보안법의 간첩, 잠입·탈출, 찬양·고무, 회합·통신, 편의제공이란 무시무시한 죄명이 적용됐다. 하지만 검찰이 내놓은 증거는 원씨 진술과 중국을 왕래한 행적, 조선노동당 당원증이 고작이었다. 김씨는 원씨가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자신이 공작원이라는 것을 계부가 알고 있었다는 딸의 진술이 거짓이라고 맞섰다. 유일한 직접 증거라 할 수 있는 당원증도 그가 훗날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글을 쓸 때 자료로 활용하려고 가지고 왔다고 했다. 당원증은 김씨 집을 압수수색할 당시부터 김일성 얼굴에 낙서가 돼 있는 상태였다. 진짜 간첩이라면 소지할 리가 없고 훼손하는 것은 더더욱 있을 수 없다는 다른 탈북자의 증언이 공판에서 채택됐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간접증거를 일절 인정하지 않았다. 선고를 한 차례 연기하면서 열렸던 변론재개에서도 재판부는 원씨와 김씨의 전화통화 감청 가운데 검찰에 유리한 발췌 기록이 탐탁지 않은 듯 감청내용 전부를 듣고 피고에게 진위를 물어보는 씁쓸한 광경도 있었다. 간첩 하나 만들고 낙인 찍긴 쉬워도 잘못 찍힌 낙인을 지우기는 어렵다. 지난달 법원은 ‘80년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 재심에서 29년이란 세월이 흘러서야 무죄로 돌렸다. 검찰은 민주화 이전 시절의 살벌한 공안 드라이브를 타려는 것일까. 검찰의 “국민의 보안의식이 해이해져”라는 논고처럼 최근 공안을 강화하는 데 2008년판 ‘가족 간첩단’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재판장이 판결에서 지적한 대로 “간첩이라는 대전제 하에” 짜맞추기 수사를 했다는 지적을 들을 만하다. 공안당국의 폭주에 손바닥을 맞췄던 과거 사법부 같았다면 분명 유죄 판결이 나왔을 것이라는 섬뜩한 상상도 해본다. 이 사건 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이 이렇게 무서운 줄 처음 알았다.”고 한다. 전가의 보도처럼 국보법을 빼든 검찰의 징역 12년 구형은 무죄로 매듭지어졌다. 검찰의 역주행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피고인 최후진술에서 “단 하루라도 인간답게 살려고 남에 왔다.”는 김씨. 탈북 2년 사이 지옥과 천당을 오가며 만신창이가 된 그는 도대체 어떻게 위로 받고 보상 받아야 하나. 황성기 편집위원 marry04@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2)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③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2) 포로들의 고통과 슬픔 ③

    당시 포로들을 속환해 오는 방식은 몸값을 누가 마련하느냐에 따라 크게 사속(私贖)과 공속(公贖)으로 나눠지고 있었다.사속이란 일반 사민(士民)들이 스스로 마련한 몸값을 갖고 심양에 들어가 혈육을 데려오는 방식이었다.공속은 국가가 몸값을 대고 포로들을 데려오는 것이었다.어느 경우든 포로를 팔아 한 밑천 챙기려는 청인들의 탐욕,조선의 고관들이나 재력을 갖춘 사람들의 무절제 때문에 속환가(贖還價)는 날이 갈수록 치솟았다.거기에 속환 과정에서 부정과 비리까지 더해지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속환은 그저 ‘남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또 속환을 통해 돌아오는 사람들은 또 다른 고통과 마주해야 했다.이래저래 포로들의 고통은 끝이 없었다. ●속환의 문제점과 허박(許博)의 절규 몸값을 마련할 수 없는 사민들의 입장에서는 공속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었다.하지만 공속의 대상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전란 직후,국가의 재정 형편이 여의치 않았던 상황에서 조정은 공속의 대상자를 종실(宗室),인조를 호종(扈從)했거나 남한산성을 지키던 군사들,그리고 그들의 가족들로 제한했다.종실은 왕실의 피붙이이기에 가장 우선적인 속환 대상이 되었고,남한산성을 지키던 군사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국가 유공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국가가 몸값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공속의 대상자도 아니고,비싼 속환가를 마련하기도 어려웠던 사람들은 결국 속환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심양으로 달려갔지만 폭등해 버린 속환가 때문에 혈육을 눈앞에 두고 돌아서야 했던 사람들,아예 속환가를 마련할 방도가 없어 압록강 너머의 만주 땅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처참한 장면이었다. 속환 자체가 사실상 무역으로 변질되면서 갖은 부작용과 부정 행위도 같이 일어났다.상인들 가운데는 심양을 왕래하며 ‘사람 장사’를 하는 자들이 있었다.청인으로부터 포로를 싼값에 사서 조선에 돌아온 뒤,포로의 연고자에게 비싼 값으로 되파는 방식이었다. 실종된 혈육을 가진 사람들의 애끓는 심정을 악용하여 뇌물을 챙기는 관원들도 나타났다.당시 조정은 심양에 억류된 포로들의 명단을 청 측으로부터 넘겨받아 이른바 ‘피로인성책(被擄人成冊)’을 만들었다.실종된 가족들의 생사를 알지 못해 발을 구르던 사람들에게는 ‘성책’을 열람하는 것이야말로 속환을 위한 첫걸음인 셈이었다.하지만 당시 비변사에 보관되어 있던 ‘성책’을 열람하는 과정에서 관련 당상(堂上)이나 서리들이 뇌물을 받아 문제가 되었다.곤경에 처한 불행한 사람들을 등치는 파렴치한 행위였다. 이런저런 요인들 때문에 속환을 통해 포로들을 데려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누구보다 속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예조좌랑 허박(許博)은 1637년 9월,인조에게 만언소(萬言疏)를 올렸다.글자 수가 1만자에 이르는 장문의 상소였다.그는 인조에게 속환을 전담하는 기구와 관원으로 속환도감(贖還都監)과 속환사(贖還使)를 설치하라고 촉구했다.그는 몸값 마련을 위한 방책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속환가로 충당되는 은을 마련하기 위해 은광(銀鑛)을 개발하고,벼슬아치들과 일반 백성들에게 속환의 절박성을 설명하여 성금을 거두라고 건의했다.허박은 또한 왕실과 조정이 절용(節用)에 솔선하고,속환 과정의 부정과 비리를 제거하고,속환가를 엄격히 제한하라고 촉구했다.그는 나라의 가용 재원을 총동원하여 속환에 나서라고 촉구하고,그렇지 않을 경우 백성들의 원망이 극에 이르고 그것이 궁극에는 조정을 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하지만 허박이 제시한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은 수용되지 못했다. ●속환은 시들해지고,청의 압박은 강화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의 속환 대책은 점차 흐지부지되어 갔다.속환은 이제 ‘개인의 문제’가 되었다.조선 조정이 속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오히려 청 측에서 먼저 속환을 종용하는 경우도 나타났다.1641년(인조 19) 6월,용골대(龍骨大)는 심관(瀋館)의 조선 관리들에게 자신의 곤궁한 경제적 사정을 이야기한 뒤,자신이 데리고 있던 열 살 아이를 속환하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속환 문제를 포함하여 포로들에 대한 조선 조정의 관심이 점차 시들해지고 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청은 도망해 온 포로(주회인)들을 송환하라는 압박을 멈추지 않았다.병자호란 당시 워낙 많은 수의 포로가 잡혀갔기 때문에 주회인의 수도 크게 증가해 있는 상태였다.청은 때로는 심양의 소현세자에게,때로는 직접 서울로 사신을 보내 주회인들을 잡아 보내라고 협박했다. 정묘호란 무렵,조선 조정은 ‘부모 된 자로서 고향을 찾아 도망쳐 온 자를 차마 잡아 보낼 수 없다.’는 인정론(人情論)을 들어 청측의 요구를 무마하고자 했다.하지만 병자호란 이후에는 이 같은 인정론이 통하지 않았다.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인조를 입조(入朝)시킨다.’고 하거나 ‘애초 산성에서 나올 때 왕을 교체하려 했는데,그러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 는 등의 풍문을 흘려 인조를 직접 압박했다. 인조와 조정은 청의 압박에 바짝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각 지방의 수령들에게 주회인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부작용이 속출했다.수령들 가운데는 책임을 때우기 위해 주회인이 아닌 사람까지 마구잡이로 붙잡아들이는 자가 있었다.도망친 주회인 대신 가족을 잡아들이기도 했다.붙잡힌 주회인들 가운데는 청으로의 압송을 기다리며 몇 년씩 감옥에서 고통을 겪는 자들도 있었다. 당연히 민심이 흉흉해졌다.1641년(인조 19),유례 없는 대한재(大旱災)가 일어나자 백성들 사이에서는 ‘포로들을 도로 붙잡아 보내 하늘이 노했다.’는 수군거림이 나타나고 있었다. ●귀환 과정의 고통 청으로 끌려간 포로들 가운데 속환 또는 도망을 통해 조선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사람들은 분명 행운아였다.하지만 그 ‘행운’도 잠시일 뿐 그들의 고통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우선 도망이나 속환을 통해 조선으로 귀환하는 과정 자체가 고통의 연속이었다.도망자들은 낮에는 산 속 등지에 숨어 있다가 주로 밤을 이용하여 이동했다.당장 이동하는 도중에 굶어 죽을 위험성이 대단히 높았다.또 산 속에서 맹수를 만나 희생되는 경우도 있었다. 어렵사리 심양부터 진강(鎭江-오늘날의 단둥·丹東)에 이르는 만주 지역을 통과하더라도,압록강변에 이르면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변방 관리들은 청의 힐책을 우려하여 주회인들의 도강을 허용하지 않았다. 입국이 막힌 주회인들이 강물에 뛰어들거나 목을 매어 죽는 경우가 속출했다.1642년 2월,정언(正言) 하진(河?)은 ‘창성(昌城)과 삭주(朔州)의 압록강 줄기 위아래에 백골이 널려 있고,그것을 보고 들은 사람들 가운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들이 없다.’며 참혹한 실상을 증언한 바 있다. ‘합법적인’ 속환인들의 사정도 주회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그들 또한 만주를 통과하고,압록강을 건너 서울로 오는 도중 아사할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었다.이동하는 도중 식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도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이 때문에 1637년 윤4월,조정에서는 미곡을 통원보(通遠堡) 서편으로 운송하여 속환인들에게 공급하자는 대책이 제시된 바 있다.또 조선에서도 속환인들이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를 따져 적당한 곳에 진제장(賑濟場)을 세워 구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성 포로들 가운데는 귀환 도중 납치되는 경우도 있었다.그 때문에 조정은 1637년 2월,포로들이 지나는 연로와 나루터 등지에 병력을 배치하고,사족 부녀들을 잡아가는 자들을 붙잡아 효시(梟示)하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다.하지만 아사와 납치의 위험성 등 갖은 난관을 무릅쓰고 귀향에 성공한 여성 포로들에게는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그것은 다름 아닌 ‘실절(失節)한 여자’라는 비판과 매도였다.병자호란 당시 포로들의 삶은 시종일관 참혹한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이용원 칼럼] 북한 붕괴, 그 최악의 시나리오

    [이용원 칼럼] 북한 붕괴, 그 최악의 시나리오

    20××년 어느날, 동해에 떠오른 태양이 만주벌의 어둠을 채 밀어내기도 전이었다. 압록강변 단둥(丹東)시에 대기하던 중국군 O사단은 우렁찬 구호와 함께 다리를 건너 북한 땅으로 진격했다. 국경 초소를 지키는 북한군 장병 중에는 진군을 가로막으려는 시늉조차 하는 자가 없었다. 중국군은 사전계획대로 북한의 주요 도시를 거점 삼아 점령했고, 평양에는 곧 괴뢰정부가 들어섰다. 괴뢰정부 수반은 취임 직후 “조선이 내부 분열로 제국주의자들의 침략 위협에 노출된 위기 상황에서 사회주의 형제국인 중국이 우리를 보호해준 데 감사한다.”는 담화를 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와병 끝에 세상을 떠나자 사분오열을 거듭하던 북한 권력층은 노골적인 권력투쟁에 들어갔다. 가뜩이나 어렵던 경제 사정은 더욱 악화해 굶어죽은 시신이 들판에 널렸고 탈북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한국과 미국 등은 북한 사태를 예의주시했지만 중국군의 전격적인 북한 ‘진출’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10년 후, 북한 땅의 학생들은 “북한은 원래 중국 땅이며 북한 역사는 중국사의 일부”라고 배운다. 어른들 중에도 “우리가 중국인이 되기 전에 굶어죽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이제 어느 가정에나 보급된 대형 TV 앞에 앉은 ‘옛 조선 인민’은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초강대국인 그들의 조국 중국에 자부심을 느낀다. 지난 9월 이후 김정일 위원장의 중병설이 계속 이어지면서 김정일 사후 북한의 운명에 관한 각종 시나리오가 등장하고 있다. 그 시나리오들은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어도 큰 흐름에서는 비슷하다. 김 위원장 생전에 후계구도를 안착시킬 시간 여유가 없는 한 지배층 내부의 권력투쟁 발생은 불가피하며 결국 몰락의 수순을 밟으리라는 것이다. 북한은 분단 이후 60여년 동안 ‘유일한 지도자 동지’ 두 명이 대를 이어 통치해 온,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전체주의 국가이다. 그런 나라에서 지도자 동지가 사라졌는데 후계자(집단)가 전임자와 같은 권위·권한을 갖고 개혁·개방을 강력하게 추진, 부강한 국가를 재건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북한이 국가 체제를 더이상 유지하기 힘든 상태에 빠졌을 때 주민들과 권력층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한국과 손을 잡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에 기대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 체제가 무너지면 자연스럽게 통일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북한은 중국에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북한정권 수립 이후 가장 많이, 또 꾸준히 경제원조를 했으며 6·25때는 함께 피를 흘린 혈맹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사회주의 형제국’이다. 게다가 중국 국적을 갖고 상대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조선족이라는 역할모델도 있다. 중국에 통합되더라도 거부감이 적을 수밖에 없다. 반면 한국은 한겨레 국가이기는 하나 여전히 주적이요, 그 배후에는 ‘원쑤’인 ‘미제’가 도사리고 있다. 앞으로 몇년이 남북이 통일될지, 북한이 중국에 넘어갈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세월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정부건 민간 차원이건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열게 하고 동족의식을 북돋우는 행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북한이 붕괴해 중국에 귀속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는 길은 그것뿐이다. 수석 논설위원 ywyi@seoul.co.kr
  • 日언론 “北 도로보수 돈없어 트럭 통행금지”

    日언론 “北 도로보수 돈없어 트럭 통행금지”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이 파손된 도로를 보수할 돈이 없어 ‘트럭의 통행금지’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내렸다고 일본 언론이 밝혔다. 일본의 유력 일간지 마이니치신문은 “북한이 지난달 말부터 도로보전을 명목으로 일부 구간에 대해 트럭 통행금지 조치를 내렸다.”고 26일 보도했다. 이번 조치는 평안남도 신의주에서 평양을 연결하는 간선도로 일대에 내려진 것으로 도로가 파손돼도 이를 보수할 돈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의주는 압록강을 사이로 중국 랴오닝성 단둥과 접한 북중무역의 거점도시이고 해당 도로는 외국에서 들어온 물자 등이 평양으로 수송될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요도로이다. 이에 대해 북한의 한 관계자는 “이 도로의 경우 자연재해 등으로 많은 곳이 함몰됐지만 정부와 지방의 재정파탄으로 보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주행 시 매우 위험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조치에 대해 신의주를 중심으로 무역을 하고 있는 북한과 중국 관계자들은 “운송효율을 저하시키는 후진적인 경제정책이라며 비난을 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사진=tabibbs.com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철 기자 kibou@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죽기 전에 조국 한국으로 꼭 돌아가고파”

    한국전쟁 때 중국 영해에서 첩보활동을 벌이다 생포된 한국인 ‘켈로부대원’이 중국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푸순(撫順)에 거주하는 장근주(77)씨는 자신이 1951년 7월 미 극동군사령부 예하 13개 켈로(KLO)부대 중 하나였던 호염(湖鹽)부대에 입대해 활동하다 중국군에 체포됐던 북파공작원 출신이라고 밝혔다. ●첩보활동 벌이다 체포… 中서 14년 복역 장씨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국군이 원산에 상륙한 직후 흥남에서 아버지(사망) 및 남동생(현재 서울 거주)과 함께 남포를 거쳐 황해도 초도(椒島)에서 피란생활을 하던 중 1951년 7월 첩보부대에 입대했다. 그는 바로 평안북도 회도(灰島)로 이동됐으며 그곳을 거점으로 중국과 북한 등을 상대로 첩보활동을 벌였다. 장씨는 이어 상부의 명령에 따라 1952년 9월13일 동료 공작원 5명과 함께 선박을 타고 중국측 영해로 이동해 첩보수집 활동을 벌이다 이틀 뒤 중국 경비정과 어선 등에 발각돼 교전을 벌이던 중 생포돼 지금의 단둥(丹東)으로 압송됐다. 장씨는 1952년 9월10일 중국 영해를 2차례 침범해 중국과 북한 어선 등 선박 11척에 총격을 가하고 선원 1명을 부상시킨 혐의로 랴오닝성고급인민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의 확정판결을 받고 14년을 복역한 뒤 1965년 10월9일 감형, 석방됐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1992년 10월까지 푸순감옥공장에서 목수로 근무했다. ●조선족과 결혼… 5년전 신장암 판정 장씨는 1967년 조선족 교포인 곽달선(69)씨와 결혼해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5년 전 신장암 판정을 받고 현재 자택에서 치료를 받으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장씨는 “한국을 위해 입대했던 만큼 죽기 전에 꼭 한국 국적을 회복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선양 연합뉴스
  • 대한통운 글로벌 물류기업 가속화

    대한통운 글로벌 물류기업 가속화

    대한통운이 새 둥지를 찾아 종합 물류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날개를 달았다. 지난 4월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로 편입된 뒤 같은 그룹 소속사인 항공·타이어·건설과 연계를 통해 시너지효과가 예상되고 있다. 법정관리 7년 동안 뼈를 깎는 노력으로 영업흑자를 내 모범적인 법정관리 탈출 회사로도 꼽힌다. ●1930년 창립 한국 물류산업 역사 대한통운은 1930년 창립 이래 국가 물류산업을 지켜왔다. 그래서 대한통운의 역사는 한국 경제개발의 역사이고 물류산업의 역사이다. 대한통운 창립기념일인 11월15일이 물류의 날로 지정됐을 정도다. 국내 최대 종합 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남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인프라와 78년간 쌓아온 전문 운송 노하우다.40개 지점,23개 항만하역장,200개 창고·물류센터 등 거미줄처럼 연결된 완벽한 인프라를 갖췄다. 여기에 트럭·크레인·특수 중장비 1만 6500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장비를 대부분 직영해 언제 어디서라도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네트워크와 장비를 일시에 가동하면 일반화물 2만 9000t, 컨테이너 10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를 운송할 수 있다. 항만하역과 육상운송부분은 경쟁 상대가 없을 정도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물동량도 늘어났다. 해외건설 진출이 늘면서 각종 자재와 장비를 실어나르는 일도 맡았다. 지난해에는 택배사업도 1위를 차지했다. 연간 실어나른 택배 물량은 1억 2242만상자다. 가로, 세로, 높이가 30㎝씩인 상자를 기준으로 하면 지구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양이다. 올해 택배배달 목표는 2억상자다. ●법정관리 속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 잘나가던 대한통운도 2000년 최대 위기를 맞았다. 동아건설과 함께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컨소시엄으로 참여, 지급보증을 섰던 것이 족쇄가 됐다. 동아건설이 워크아웃 대상으로 지정되면서 대한통운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동아건설은 대한통운을 팔아 동아건설의 빚을 갚으려고 했다. 대한통운만 삼키면 국내 물류시장에서 패권을 차지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매각 결정만 기다리며 군침을 흘리는 기업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직원들의 ‘매각 결사반대’ 다짐으로 다른 기업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리비아 정부가 대한통운에 공사 중단에 따른 손해배상금 13억달러를 요구하자 결정적인 위기를 맞기도 했다. 리비아 공사를 독자적으로 인수해 완공하고 예비완공증명을 요청했다. 그래야 법정관리에서 벗어나 독자경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비아 정부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예비완공증명을 내주지 않았다. 이국동 사장은 2005년 7월 취임하자마자 리비아로 날아가 가우드 대수로관리청 장관과 담판을 짓고 그해 12월 예비완공증명을 얻는 데 성공했다.50년 하자보수 보증도 1년으로 단축했다. 연말쯤에는 공사 최종 완공증명을 받아낼 것으로 보고 있다. 임직원들이 뭉쳐 동아건설을 대신해 1조원 가까이 빚을 갚고도 100%대의 양호한 부채비율을 유지했다. 법정관리로 신규투자를 하지 못했지만 1위 물류기업이라는 자존심과 노력으로 매출이 늘고 영업이익을 냈다. 지난해에는 매출 1조 6100억원, 영업이익 880억원의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신성장 동력을 찾고 그룹 계열사와 시너지 효과를 키워 2010년에는 매출 3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항공·건설·타이어와 연계 시너지효과 지난 4월1일 7년간의 암흑의 터널을 빠져나와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새 둥지를 틀었다. 국제 물류기업으로 다시 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같은 계열사인 대우건설·금호건설과는 전국에 보유하고 있는 땅과 국내외 항만 및 터미널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첫 사업으로 대전 문평동 메가허브터미널(6만 1500㎡)을 짓는다. 국내외 건설현장 및 발전소 기자재 운송, 해외수출 기자재 운송 및 통관업무 대행도 맡는다. 금호석유화학·금호타이어가 생산하는 제품의 국내외 운송 일감도 많다. 아시아나항공의 항공화물도 실어나를 예정이다. 대우건설과 함께 추가 발주될 리비아 대수로, 농수로 공사 수주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해외에 나가있는 그룹 계열사의 130여개 현지 법인 및 생산 거점과도 연계해 세계적인 물류 네트워크를 갖출 계획이다. 미국, 중국, 베트남 등 현지 물류 거점 기지를 늘려가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운 동력도 찾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대북 물류사업이다. 최초로 대북지원쌀 육로운송을 무사히 마쳤고 대북 민간물자 물류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철도·해상 운송 루트도 개척하고 있다. 경의선, 경원선과 나진 하산을 연결하는 철도 물류사업도 추진 중이다. 북한 주요항 항만하역 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중국에 이달 안으로 중국 삼진유한공사, 한국철도공사 등과 합영회사인 삼통물류유한공사를 설립해 단둥∼신의주 철도 화차 임대사업을 시작한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대한통운 대북 물류사업 진출

    대한통운 대북 물류사업 진출

    대한통운이 대북 물류사업을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 이국동 대한통운 사장은 20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북측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등과 협의해 대북 민간물자 수송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한통운은 지난해 평양 대마방직과 합작해 대북 내륙운송사업을 추진하다가 북핵문제가 불거지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대북 화물 물류뿐 아니라 대북 철도·해상 물류사업도 추진키로 했다. 이 사장은 “경의선과 경원선을 이용, 북한의 나진·하산을 연결하는 철도 물류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관련 기관과 협의하고 있다.”며 “대북 해상 물자수송을 활성화하고 장기적으로 북한 주요항 항만하역 사업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대한통운은 대북 직접 진출에 앞서 이달 중 중국 삼진유한공사, 한국철도공사 등과 합영회사인 삼통물류유한공사를 설립해 단둥∼신의주 철도 화차 임대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 사장은 “해외 사업을 키워 2010년에는 매출 3조원을 달성해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우뚝 서겠다.”고 밝혔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中최신전투기 北접경 배치”

    “중국이 제4세대 전투기 수호이(SU)-27을 북한 접경지역에 전진배치했다.” 중국 군사애호가들이 최근 수호이(SU)-27의 북한 접경지역 배치를 주장하고 나섰다. 수호이-27은 현재 한·미 공군의 주력인 F-15 전투기의 대응 기종이다. 고속 비행 중 속도를 줄여 동체를 직각으로 세우는 이른바 ‘코브라기동’이 가능하다. 기동 능력만 보자면 F-15보다 낫다는 평가다.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기능도 갖추고 있다. 중국 중화망(中華網), 텅쉰(騰迅), 신랑(新浪) 등 각 포털사이트 군사게시판에는 중국이 최근 북한 접경지역인 단둥(丹東)의 한 공군사단에 수호이-27 기종을 배치했다는 내용의 글이 지난 7일부터 일제히 올라오고 있다. 군사전문가들은 ‘수호이-27 단둥배치설’에 대해 “일단 개연성이 높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에 비해 우위를 보이고 있는 한·미공군력에 대한 견제책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中, 北기업 위안화결제 허용 日언론 보도

    |도쿄 박홍기특파원|중국이 자국과 무역하는 북한 기업에 대해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도록 중국 내 계좌개설을 인정하는 새 결제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과 외환관리국이 새로운 북한무역결제 규정을 마련, 북한과 국경 무역이 활발한 단둥(丹東)시와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등의 금융기관에 통보했다. 중국이 특정국가를 대상으로 위안화 결제제도를 마련하기는 극히 이례적이다. 특히 지난 2006년 10월 북핵 실험 이후 발효된 송금과 계좌개설에 대한 경제제재를 사실상 완환한 조치로 분석되고 있다.h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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