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단둥
    2026-06-10
    검색기록 지우기
  • 녹음
    2026-06-10
    검색기록 지우기
  • 민음사
    2026-06-10
    검색기록 지우기
  • 혜인
    2026-06-10
    검색기록 지우기
  • 친딸
    2026-06-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22
  • ‘짝퉁 김정일’ 문방구 주인, 금강산 찾아가서…

    ‘짝퉁 김정일’ 문방구 주인, 금강산 찾아가서…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과 닮게 태어나 별난 인생길을 걷는 경우가 있다. 특히 유명 인사와 닮은꼴은 더욱 그렇다. 2008년 11월 4일, 하루 종일 초조하게 TV를 지켜보던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가 결정되는 순간 거리로 뛰쳐나갔다. 공원에 몰려 있는 군중을 향해 스피커를 잡았다. 그를 본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오바마! 오바마! 오바마!’ 하지만 그의 이름은 대역배우 레지 브라운(30)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서 그의 삶도 바뀌기 시작했다. 각종 행사 출연과 광고모델 섭외가 이어졌다. 말 그대로 ‘인생역전’이었다.  지난 15일 영국 BBC 방송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가장 슬퍼한 사람은 그와 똑같은 외모로 화제가 됐던 한국의 대역배우 김영식(61)씨’라고 보도했다. 방송은 또 ‘김 위원장의 사망 당시 인민군 병사들이 슬픔을 이기지 못해 주저앉고 일부 여성들은 실신하기까지 했지만 누구도 김씨의 슬픔에 미치지 못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접했을 때 마치 나 자신의 일부가 죽은 것처럼 엄청난 공허감을 느꼈다.’는 김씨의 소감을 덧붙여 눈길을 끌었다. 그럴 것이 김씨는 툭 튀어나온 배와 군턱의 얼굴, 큰 안경 등 김 위원장을 쏙 빼닮은 외모 때문에 영화와 CF 등에서 김 위원장의 대역을 맡으면서 부수입을 올렸기 때문이다.  사실 김씨는 국내보다 해외 언론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06년 6월 27일 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3면 머리기사에 김씨에 대한 얘기를 실었다. ‘서울에서 인쇄업을 하는 김씨는 자신의 옷장에서 김정일의 상징인 옅은 보라색 안경과 쑥색 정장, 검은 색 단화를 따로 보관할 정도로 김정일과 유사한 자신의 외모를 당당하게 여긴다.’는 내용과 함께 ‘김정일과 닮은꼴로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 다음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감사한다.’고 전했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이 2000년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한 이후 김씨가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2006년 11월 15일 로이터 TV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을 감행하면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닮은 사람이 한국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화제의 주인공은 56살 김영식씨로 김정일을 닮은 외모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김정일 역을 맡아 출연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방송은 또 ‘김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친애하는 지도자로 불리고 있으며 김정일을 닮기 위해 몸무게를 더 늘리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 밖에도 김씨는 독일 공영방송 ARD(2007년 3월 22일) 등을 비롯해 호주 ABC, 미국 CNN과 뉴욕타임스, 일본 니혼 TV와 후지 TV, 알자지라 잉글리시 TV 등에서 소개됐다. 특히 김씨는 2005년 중동지역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를 닮은 사람과 함께 초콜릿 광고에 출연하면서 아랍권에까지 이름을 알렸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그의 인기는 어느 정도일까. 1995년 김씨는 한 일간지에 난 광고를 보고 오디션에 응모해 120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김진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김정일 역을 맡으면서 영화배우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그는 KBS와 MBC, SBS 등 방송3사의 교양프로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지금은 영화배우협회 자문위원과 국방부 홍보영화위원장 등의 직함으로 김정일 위원장 역에 단골로 출연해 오고 있다. 다음 달에는 첫 음반을 내면서 본격적인 가수활동까지 할 예정이다.  지난 17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위치한 문구점(상폐 및 판촉물 제작)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30년째 점포를 운영해 오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김씨는 김 위원장이 즐겨 입던 쑥색 인민복 차림에다 특유의 김정일식 박수를 치며 “내레 김정일 위원장입네다.”라고 웃으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먼저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어떻게 달라졌느냐고 묻자 “여기저기서 우려의 전화가 많이 걸려 온다.”면서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꼭 제 자신이 죽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대역 부업이 물거품이 될까 봐 걱정”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대역은 죽은 다음에 더 유명해지는 것 아니냐고 위로의 말을 건넸더니 역시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로이터에서 취재했던 기자한테 전화가 왔는데 ‘(실제 주인공이)죽어야 뜬다.’고 합디다. 또 영국 BBC 방송에서는 그렇게 보도하더군요. 유명인사 대역을 전문 조달하는 업체의 운영자 프란체스크 맥더프 밸리의 말을 빌려 ‘정치인 대역은 실제 인물이 죽은 뒤 그를 조명하는 역사물로 인해 역할이 많아진다’며 예를 들어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사망했을 때 그를 닮은 대역들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다고 말입네다. 실제로 해외 연예계에서는 슈퍼스타들이 사망한 후 대역들이 더 많은 일거리를 얻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죠. 마이클 잭슨이나 이소룡 대역이라든가 뭐. 이번 달만 하더라도 생방송에 세 번 출연했습네다.”  곱슬머리에다 검은 선글라스의 표정이 인상적일 만큼 김 위원장을 쏙 빼닮았다. 파마한 머리냐고 물었더니 “원래부터 곱슬머리였지만 김 위원장 머리 스타일로 3개월에 한 번씩 파마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또 김 위원장이 즐겨 입는 옷은 세 벌 정도 있는데 소공동 양복점에서 30만원씩 주고 맞춘 특수복이라고 설명했다. 고(故) 앙드레 김한테 옷을 맞추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는 얘기도 곁들인다. 이어 “선글라스와 금테 안경이 다섯 개, 키높이 검정 구두만 4켤레 있고 가장 신경쓰는 것은 헤어스타일”이라면서 “주민들이 김 위원장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살 좀 빼라는 얘길 가끔 해 그럴 때마다 헬스도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 빼닮아 생긴 에피소드도 많다. 김씨는 최근 중국 단둥에서 걸려 온 전화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여보시라요, 거기 거북사(문구점 이름) 김영식 맞습네까.”  “네, 어디시라요?”  “여기 신의주 옆에 있는 단둥입네다. TV에 너무 멋있게 나와서 전화했습니데다. 중국 인터넷에 난리가 났습네다.”  김씨는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혹시 저쪽 편(북한 당국)에서 걸려온 전화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본능적으로 하게 된다.”면서 “이젠 자신의 이름이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어서 그다지 걱정은 안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일화 한 토막.  “노인들을 위한 행사장이었습네다. 어떤 할아버지가 다가와 ‘북으로 가실 거죠. 우리 이제 통일 좀 시켜 주세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북에서 진짜 내려온 줄 알고 자기집 식당으로 모시겠다고 하더군요. 장소가 북방한계선(NLL) 인근 지역이었는데 북쪽을 향해 손짓을 해서 그런지 더욱 김 위원장으로 믿었던 것 같습네다(웃음).”  2008년 5월22일부터 2박3일 금강산 일정도 기억해 낸다. 가는 길에 남한의 안내원들은 북한 사람들에게는 명함을 주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북한에서는 일반인이 김정일 위원장과 닮았다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 김씨를 처음 본 북한사람들은 김정일 위원장과 닮은 것을 인정하면서도 “감히 위대하신 장군님과 비교하다니 무례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해 난처했던 경험이 있다.  김씨는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다. 25세 되던 해 결혼과 동시에 서울로 올라와 장위3동에서 살았다. 동갑내기 아내와 슬하에 1남2녀를 둔 김씨는 상패·판촉물 및 명함·도장 전문점인 ‘거북사’를 운영하면서 소박한 가정을 이뤘다. ‘짝퉁 김정일’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은 1990년 초.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거울을 보면서 김 위원장을 생각했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김정일 역할을 할 사람을 찾는다는 신문 광고를 보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6·25전쟁은 남침… 중공군 참전은 마오쩌둥 전략”

    “6·25전쟁은 남침… 중공군 참전은 마오쩌둥 전략”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은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 아니다.” 중국 톈안먼 사태의 주역인 왕단(王丹)은 최근 타이완에서 펴낸 ‘중화인민공화국사’를 통해 6·25 전쟁 파병에 대한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자처했다. 그는 책에서 6·25 전쟁은 북한의 남침이었으며, 중공군 파병은 당시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신생 중국 공산당 정권 수호를 위해 전략적인 차원에서 밀어붙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중국 공산당 건국부터 톈안먼 사태 이후까지를 총 15장으로 정리했으며, 소련 자료를 바탕으로 6·25 전쟁을 연구한 역사학자 선즈화(沈志華)의 논문 등을 바탕으로 제2장 ‘조선전쟁’(朝鮮戰爭)에서 6·25 파병의 진실을 조명했다. 책은 중국 최대 종합사전 사해(辭海)를 인용해 중국인들이 6·25 전쟁에 대해 그릇된 이해를 갖고 있다고 진단했다. 공산당은 “미군이 한국의 6·25 내전 당시 연합군의 이름으로 중국과 북한의 접경 지역인 단둥(丹東)까지 밀고 들어왔으며, 중국군은 미국의 침략을 물리치고 민족의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사해는 적고 있지만 이는 일반적인 견해와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6·25에 대해 항미원조전쟁이란 이름을 고집하는 것도 북의 남침을 도운 데 대한 유엔의 비판을 피하고 미국의 무력 간섭을 부각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는 책에서 “전쟁은 김일성이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승낙을 얻은 뒤 도발한 명백한 남침”이라고 정의한 뒤 “미군의 발빠른 개입으로 전멸 위기에 처하자 같은 해 10월 중국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파병이 이뤄졌다.”고 기술했다. 그 중심에는 마오가 있었다. 그는 당시 공산당 정치국 회의에선 모두 난색을 표했고 지원을 약속했던 소련도 발을 뺐지만 마오가 파병을 고집했다고 적시했다. 마오는 총 5차례 전투 중 3차 전투에서 서울까지 점령하게 되면서 정전협정마저 거부할 정도로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특히 그는 마오가 민족주의 고취를 통한 공산정권의 안착을 위해 참전을 고집했다고 평했다. 실제로 당시 ‘항미원조 애국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전쟁 지원을 위한 모금 행사가 전국에서 성행할 만큼 국민을 결집하는 효과가 대단했다. 내적으로 공산당만이 외세에 맞설 수 있다는 메시지를, 외적으로는 강력한 군사 이미지를 전파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는 “중공은 한국전 참전으로 미군의 타이완 주둔을 초래해 통일의 기회를 놓쳤고, 국제적으로도 고립됐다.”면서 “통치자에게는 장점이 있지만 인민들에게는 재앙을 가져온 전쟁이었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北 김정은시대 선언] 셔터 소리에도 “누구냐 잡아라” 고성… 취재현장 첩보전 방불

    [北 김정은시대 선언] 셔터 소리에도 “누구냐 잡아라” 고성… 취재현장 첩보전 방불

    23일 중국 랴오닝 단둥 세관은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단둥에서 산 전기밥솥과 그릇·담요 세트, 국화꽃 화환 등을 양손 가득 든 북한 사람들이 세관에 일찌감치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발표 직후 중단됐던 북·중 간 물적·인적 교류가 거의 정상화돼 가고 있는 분위기다. 이날 오전 8시 30분쯤 단둥 세관 검문소 안에는 출입국 카드를 작성하는 북한 사람 20~30명이 눈에 띄었다. 50대 여성들이 가장 많았다. 장사꾼으로 보이는 이들은 검문대 앞에서 중국어로 말하는 여성 직원에게 짐 한 개당 30위안씩을 내고 짐표를 별도로 구입했다. 이들은 출입국 심사대를 통과한 뒤 북한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러 건너편으로 빠져 나갔다. 터질 듯한 포대자루, 배낭 이외에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전기밥솥과 담요 등 갖가지 생필품들이 손에 바리바리 들려 있었다. 이날 세관 주차장에는 식용유, 백설탕 등을 가득 실은 트럭들도 눈에 들어왔다. 트럭 기사는 “식용유가 족히 10t은 된다. 하얀 포대는 백설탕이다. 모두 북한으로 넘어가는 물자들”이라고 확인해 줬다. 중국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는 식품류 교역이 재개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때마침 북한 쪽에서 가스운반용 대형트럭 8~9대가 밀려 들어왔다. 인부들은 “빈 용기를 실은 트럭을 몰고 와 중국에서 액화가스를 채워 다시 넘어간다.”고 귀띔했다. 한편 이날도 단둥 시내에는 단둥 세관, 김정일 분향소, 변경 지역 등을 중심으로 외국 기자들의 취재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외국 기자와 중국 공안 간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기자도 이날 단둥 세관 건물 내에서 검역을 통과해 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촬영하려다 덜미를 잡혔다. 어느 나라에서건 세관 내 사진 촬영은 금지돼 있다. 들키지 않으려고 카메라를 가슴팍에 대고 셔터를 살짝 눌렀지만 셔터음까지 막지는 못했다. “누가 사진을 찍었다!” “어디냐?” “누구냐?”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전날에도 적지 않은 한국 기자들이 단둥 세관이나 단둥 기차역으로 들어오는 북한 사람들을 촬영하려다 공안으로부터 제지당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다. 중국 당국은 지금까지도 북·중 접경지역에서 외신기자들의 취재활동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지만 김 위원장 사망 이후 단속 강도가 한층 강화됐다. 한 소식통은 “국경지역 동태에 관한 기사가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역 안전부와 공안에 외신 동태를 집중 감시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전해줬다. 실제 일부 국내 방송사 소속 카메라맨들은 세관에 주차된 트럭들을 찍다 연행된 뒤 촬영한 내용들을 모두 지우고 난 뒤에야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전날 밤에는 외신기자들이 주로 머물고 있는 단둥 중롄(中聯)호텔로 공안들이 들이닥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동안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지우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jhj@seoul.co.kr
  • [김정일 사망 이후] 건설자재 등 北·中무역 활기… “내주 식료품도 정상화”

    [김정일 사망 이후] 건설자재 등 北·中무역 활기… “내주 식료품도 정상화”

    “어제에 이어 오늘도 북한에서 철광석이 중국으로 들어왔어요. 아직 이쪽(중국)에서 북측으로 건너간 식품류는 없어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다소 주춤했던 북·중 무역이 활기를 띠고 있다.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중단되는 듯했던 북·중 무역이 지난 20일 일부 재개 이후 점차 회복 속도를 높여 가고 있다. 김 위원장 사망 발표 이틀째인 20일 오후부터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건설자재를 중심으로 무역이 부분 재개된 데 이어 21일부터는 북한에서도 철광석 등 물자가 중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둥 지역의 한 중국 무역상은 22일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어제 북한 측으로부터 의류 공급 요청이 처음 들어왔다.”면서 “애도 기간이 끝나는 29일 이후부터는 식품 등 생필품 무역도 정상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단둥은 북·중 무역의 중심지로, 북한은 단둥을 통해 주로 철강 등 건설자재를 수입하고 있다. 쌀을 비롯한 식품류와 의류, 가전제품 등도 주요 수입물품이다. 이날 오전에도 물품을 가득 실은 대형 트럭들이 잇따라 단둥 해관(세관)에서 압록강철교를 넘어 신의주로 넘어갔다. 21일에는 북한이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50여대의 건설용 신형 트럭들이 줄을 지어 단둥 해관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됐다. 해관 관계자는 “김 위원장 사망 발표 이후 하루이틀 정도 교역 물량이 줄었던 것이지 북·중 무역이 완전히 중단됐던 적은 없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중국에 거주하는 북한 무역상들에게도 차질 없는 업무 수행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북 무역상은 “‘조문을 위해 귀국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침이 있었다고 한다.”면서 “북·중 무역은 곧 모두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21일 오후 4시 23분 단둥에 도착할 예정이던 평양발 베이징행 국제열차도 1시간가량 연착되긴 했지만 정상적으로 운행됐다. 승객들은 대부분 중국인이었지만 북한 사람들도 일부 탑승하고 있었다. 열차를 통해 단둥에 도착한 한 중국인은 “주민들이 슬픔에서 벗어나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북한 쪽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중국은 김 위원장 장례식 이후 북한에 대한 식량 원조를 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북 소식통은 “중국이 곧 대규모의 식량을 제공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그간의 관례대로 이에 대해 공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에도 북한에 30여만t의 식량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이 이날부터 한국과 일본 등 외신기자들의 국경지역 취재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 주목된다. 안전부와 공안(경찰)이 합동으로 기자들의 숙소를 찾아와 취재목적 등을 꼬치꼬치 캐묻는가 하면 주민들에 대한 인터뷰나 사진촬영 등을 제한했다. 지린성 투먼 등에서는 일부 한국 기자들이 공안에 연행됐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한 소식통은 “중국 내 북한 주민들과의 충돌이나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보도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jhj@seoul.co.kr
  • [김정일 사망 이후] 日언론 “김정일, 17일 새벽 1시 평양 인근 별장서 사망”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시점과 장소 등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국내 안팎에서 꼬리를 물고 있다. 북한에 대한 정보 자체가 제한적인 데다 국가정보원 등 관계 당국도 조심스러운 반응이어서 의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북한 조선중앙TV는 김 위원장이 지난 17일 오전 8시 30분 달리는 야전열차 안에서 급병으로 서거했다고 19일 발표했다. 일본 아사히TV는 그러나 22일 김 위원장이 17일 새벽 평양 교외 별장에서 숨졌다고 주장했다. 아사히TV는 북·중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 김 위원장이 17일 새벽 1시쯤 평양에서 40㎞ 떨어진 별장 집무실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숨지기 직전 경호원에게 물을 달라고 한 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고 방송은 전했다. 앞서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송영선 미래희망연대 의원은 22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중국 쪽 정보를 근거로 볼 때 위원장은 16일 오후 8시에 사망했고, 중국에는 이 사실을 18일 오후 8시에 통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 의원은 네 가지 근거도 제시했다. 그는 “첫째 북한이 17일 오전 8시 30분 이후 52시간이 지나 발표한 특별보도를 보면 업적을 부각시키기 위해 열차 안에서 사망했다는 것을 강조했다.”면서 “둘째 김 위원장은 야행성인데 아침에 그렇게 시찰에 나설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셋째 김 위원장이 15일 대형마트에 갔다 온 뒤로 16일 동선은 전혀 안 잡힌다.”면서 “넷째 어느 시점에 발표하는 게 치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지도 고민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도 ‘16일 사망설’을 제기했다. 박 의원은 “16일 백두산 인근에서 완전 무장한 인민군이 이동하는 것이 관측됐고, 15∼16일 이틀 동안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 3대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면서 “김 위원장이 17일 열차에서 숨졌다는 것은 100% 거짓”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베이징에 주재하는 북한 대사도 17일 오전 11시 단둥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갔다. 김 위원장이 17일 오전 8시 30분에 사망했고, 2시간 30분 뒤에 연락을 받고 북한으로 들어갔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김 위원장은 적어도 16일에 사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원세훈 국정원장은 지난 2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북한 방송 발표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면서 김 위원장 사망 관련 의혹에 불씨를 댕겼다. 탈북자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는 단순한 의혹 제기 수준을 넘어 음모론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러한 주장들이 일정 부분 사실일 경우 북한이 의도적으로 사망 당시의 정황을 왜곡했다는 얘기가 되며, 그 배경에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가장 유력한 이유로는 김 위원장이 야전열차 안에서 숨을 거뒀다고 밝히면서 ‘순직 지도자’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암살이나 돌연사 등 북한이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는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북한이 기존 발표를 스스로 번복하지 않는 이상 어느 것 하나 증명하기 쉽지 않은 만큼 지금으로서는 단지 설에 그칠 수밖에 없다. 장세훈·정서린기자 shjang@seoul.co.kr
  • [김정일 사망 이후] 北주민들 억지 울음?

    “평양주민들이 거짓으로 울었다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김일성 주석 사망 때와 달리) 냉정을 되찾는 시간이 빨랐고 평양과 지방의 온도차가 확연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민간단체 관계자가 전한 현지 분위기는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와는 차이를 보였다. 이 관계자가 평양을 떠날 때까지 마주친 호텔 종업원과 안내원, 비행기 승무원 등은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다. 하지만 평양시내 분위기는 의외로 차분했다. 주민들은 동요했으나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특이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 조선중앙TV가 방영한 평양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평양 출신의 탈북자 민모(30)씨는 “중학교에 다닐 때 김 주석이 사망했는데 대부분의 평양시민이 땅을 치며 통곡했다.”면서 “당시 주변에선 통곡하는 소리 때문에 귀가 먹먹했다.”고 전했다. 민씨는 최근 김 위원장 사망 발표 직후 TV를 통해 본 평양 분위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는 “평양시민들이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것처럼 보였다.”면서 “통곡소리도 너무 작아 진짜 사망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고 말했다. 21일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발표 뒤 북한 주민의 분위기가 예전과 달라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전문가들조차 북한 주민들이 억지로 슬픔을 연출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평가했다. 당이 나서 기업과 농장, 학교별로 분향소를 설치하고 추모 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점도 그렇다. 배경에는 김 주석과 김 위원장을 모두 겪은 북한 주민들의 자연스러운 감정이 깔려있다는 분석이다. 김 주석이 북 주민에게 나름대로 존경스러운 지도자였던 반면 김 위원장은 경제난과 부도덕한 사생활 탓에 거부감을 줬다는 것이다. 김 주석 통치기는 북한 경제의 성장기로, 적어도 주민들이 식량문제로 고통받다가 대규모 탈북을 감행하는 일도 없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 통치 때는 지도층에 대한 불신이 증폭됐다. 김 위원장의 권력 장악 이후 무리한 국제행사 개최와 식량난, 폭압정치가 겹치면서부터다. 청진 출신의 탈북자 송모(57)씨는 “일제강점기를 경험했던 노인들이 ‘수백만명이 굶어 죽은 김정일 시대는 일제강점기보다 열악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도 방송 인터뷰에서 “‘빨리 죽길 잘했다’라는데 이게 북한의 민심”이라고 주장했다. 평양과 지방의 온도차도 열악해진 경제 상황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공대 교수를 지낸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는 “평양 시민은 그래도 잘살지 않느냐.”면서 “그런 사람들이니까 슬프고, 카메라까지 들이대면 그 슬픔을 표현하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에 있는 1500만 북한 주민은 배급을 제대로 타지 못하고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표정이 다르다. 지역에 따라서 계층 간, 세대 간에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과의 접경지역인 단둥에서도 “조문 귀국 인파가 몰리고 있지만 김 주석 사망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적은 편”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김정일 사망 이후] 단둥 한인회 vs 중국인 ‘김정은체제 두 시각’

    “강대국 눈치를 보느라 도발은 하지 못할 것이다. 북한을 상대로 한 단둥의 무역은 계속된다.” “애도 기간 중인데 무력 수단을 동원할 생각을 하면 되겠나?” 21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지역에서 만난 주민들은 국적을 막론하고 향후 북한의 앞날을 안정적으로 점쳤다. 단둥은 북한의 대중 무역액의 85%가 집중되는 곳으로 북한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는 무역상들이 모여 있다. 단둥 한인회 소속 무역업자 이모씨는 “북한 내에는 김정은에 대해 ‘어린 애송이가 과연 우리를 먹여 살릴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많고 외부에서는 권력투쟁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북한은 경제적으로 절박한 상태여서 경제 활동의 고삐를 늦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평상시대로 하던 일을 하라’는 지령(지침)이 있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고 덧붙였다. 다른 한인회 관계자도 “현재 애도 기간 중인데도 건설자재 등 일부 물자가 북한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을 보면 북한 내부 사정에 대해 그렇게 비관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면서 “체제가 안정될 때까지는 경기가 다소 침체될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애도 기간만 끝나도 원래 모습을 회복할 것”이라고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반면 중국인들은 북한의 앞날이 안정적이라는 데에는 동감하면서도 미국과 한국의 무력통일 시도 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다분히 중국 정부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방직 무역상을 하는 중국인 인씨는 “단둥에는 (중국)군 경비가 강화된 것도 없고 모든 게 평상시와 같다. 북쪽도 일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국상 중인 나라에 무력 수단을 사용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예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른 중국인 비씨도 “지금은 주변국들이 북한의 체제 안정을 도와줘야 할 때인 만큼 행여라도 자극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서로를 곤란에 빠트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단둥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김정일 사망 이후] 新압록대교 공사 잰걸음·세관 분주… “北·中경협 차질없다”

    [김정일 사망 이후] 新압록대교 공사 잰걸음·세관 분주… “北·中경협 차질없다”

    북한과 중국 경제협력의 상징인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의 신압록강대교 건설 현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나흘째를 맞은 21일에도 분주한 모습이다. 칼바람 속에서도 기중기 등 건설 중장비들이 굉음을 내며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공사장 인부들도 잰걸음으로 신압록강대교 건설을 위해 마련된 부교 위를 바삐 오가고 있었다. 신압록강대교는 ‘혈맹관계’를 과시하는 북한과 중국이 단둥 랑터우(頭)에서 신의주 신도시까지 연결하는 다리로, 지난해 말 착공했다. 공사구간은 교량 3㎞를 포함해 양국 진입로 등 모두 12.7㎞에 이른다. 공사장 인부 추모씨는 “신압록강대교는 원래 중국이 전액을 출자해서 만드는 다리인데다 이쪽 지역은 원래부터 중국인 인부들 중심으로 공사가 이뤄져 왔다.”면서 “(김정일 위원장 사망에도 불구하고)공사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이 임대해 개발하기로 한 단둥 인근 황금평 가공무역지구는 여전히 논밭으로 남아 휑뎅그렁했다. 이 때문에 단둥에서는 향후 북·중 경제협력 사업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김 위원장이 사망한 만큼 더 이상 나빠질 악재는 없다는 견해와 내부 체제 안정이 가시화될 때까지는 침체에 빠질 것이란 시각이 교차한다. 그러나 북·중 경협 전망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단둥 류경(柳京)호텔 21층에 있는 북한 선양영사관 단둥지부 김정일 분향소에서 만난 한 북한 주민은 향후 ‘북·중경협도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일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다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런 때에 (북·중 간)무슨 무역이 이뤄지겠느냐. (애도기간이) 끝나야 한다.”며 현재 중단 상태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날 영사관 내 김정일 분향소에는 귀국하지 않은 북한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분향소에서는 영사관 직원 2명이 조문객들의 얼굴을 일일이 영상 카메라에 담았으며, 조문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는 반드시 방명록에 이름을 남길 것도 요청했다. 북한 정부가 운영하는 식당들이 영업을 중단한 가운데 이날 오전 9시쯤 평양고려식당 여성 종업원 20여명이 서로 팔짱을 낀 채 식당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뒤쫓아가 보니 식당 문에는 ‘영업하지 않습니다’라는 안내글이 여전히 적혀 있었다. 식당 문 너머로 검은 목티를 입은 여종업원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29일 이후부터 정상 영업하니 그때 오라.”고 말했다. 단둥 세관은 전날보다 한결 분주해졌다. 트럭들이 줄을 이어 세관을 거쳐 속속 중조우의교를 통해 압록강을 건넜다. 중국 세관 측 관계자는 “일부에서 북한으로 물자가 운반되는 길이 봉쇄됐다는 말이 있다.”고 묻자 “지금 세관을 빠져 나가는 차들이 다 조선 쪽으로 가는 차들이다.”고 되받았다. 이날 새벽 5시 40분쯤에도 화물열차가 압록강을 건너 북한 신의주로 들어갔다. 일각에서는 이를 놓고 북측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신호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jhj@seoul.co.kr
  • 평양 귀국령? 단둥거주 北주민 20%도 못 돌아가

    평양 귀국령? 단둥거주 北주민 20%도 못 돌아가

    “평양 귀국령이오? 북한 사람들 단둥에 아직 많이 남아 있어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이 공개된 지 이틀째인 20일 이른 아침부터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와 북한 신의주 경제특구를 잇는 조중우의교(朝中友宜橋) 철교 위로 열차, 승합차, 버스 등이 분주히 오갔다. 일부 차량 안에는 조문에 쓰이는 화환이 보였고, 귀국길에 오른 북한 주민들은 저마다 국화꽃을 들고 있었다. 북한과 중국을 이어주는 최대 연결 통로로 압록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는 평상시 교역 차량과 사람들의 통행으로 분주하다.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날 오후부터 세관이 이 다리를 폐쇄했다고 알려졌지만 이날 저녁까지 다리 위로 간간이 차들이 다니는 모습이 포착됐다. 단둥 세관 안에서 만난 중국인 트럭 기사 리모는 “오전만 하더라도 (세관으로) 차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 대기하거나 돌아갔다.”면서 “식료품 공산품 등 생활용품을 실은 차량은 통행 금지됐지만 철판 등 주요 물자들을 실은 차들은 다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많은 북한 사람들이 단둥에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인회 관계자는 “단둥 지역에 북한 사람들이 최소 2500명이 상주하고 있는데 귀국한 사람은 500여명도 채 안 된다.”면서 “한꺼번에 다 돌려보낼 교통 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공무원과 무역상사의 간부급들과 그 가족 정도만 돌아갔지 일반 직원들은 대부분 남아 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양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황모씨도 “북한 쪽 이야기를 들어 보니 ‘평상시대로 하던 일을 하라’는 지령(시)이 내려왔다고 했다. 하루 일을 못하면 경제적으로 손해가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애도를 위해 소비 활동만 중단됐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평소 북한 사람들이 일상용품 등을 도매하러 찾는다는 단둥 얼징(二經)거리는 인적이 드물었다. 상점들은 손님이 없어 퇴근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일찍 문을 닫고 있다. 용천종합상사 이수성 사장은 “어제부터 손님이 뚝 끊겼다.”면서 “국상인 만큼 일상용품을 사러 다니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분위기를 전했다. 압록강 위로 운항하던 유람선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400m 거리에 있는 건너편 신의주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지만 역시 사람들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강변을 따라 들어선 공장의 굴뚝들에서는 연기 한 줄기 피어오르지 않았고, 낡은 중장비들만 덩그러니 멈춰서 있었다. 단둥 지역 한식당 가운데 북한 정부가 운영하는 식당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송도원이란 간판이 붙은 북한 식당에 들어서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나와 묻지도 않고 손을 저었다. 혹시나 싶어 모터보트를 타고 신의주 지역을 둘러보았다. 마을 곳곳마다 조기가 게양된 모습이 눈에 띄었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함정에서 경비 근무를 서는 북한 군인들의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체제 변화에 대한 불안감으로 북한 주민들이 잇따라 북한을 빠져나오는 등의 돌발상황에 대비해 중국쪽에서도 경계태세를 강화했다는 얘기가 나돌았지만 확인할 수는 없었다. 이 지역에서 무역업을 한다는 중국인 인모는 “밖에선 안 보이지만 공안과 정보부 사람들이 건물 안에서 주시하고 있다.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할 때에도 공안들이 숨어서 정찰한다.”고 말했다. 압록강의 접경도시 단둥에는 정중동 속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jhj@seoul.co.kr
  • 인천·경기 대북교류사업 차질 우려

    김정일의 사망이 그동안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추진해 온 대북교류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과 북한 정권이 안정될 때까지 대북사업이 교착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분석이 엇갈린다. 인천시는 전임 안상수 시장 시절부터 북한과의 문화·체육 교류를 의욕적으로 추진해 왔다. 안 전 시장은 2005년 평양을 방문해 아시안게임을 인천·평양이 공동유치할 것을 제안하는 등 대북교류를 진두지휘했다. 이러한 기조는 지난해 7월 송영길 시장이 취임한 이후 더욱 강화됐다. 진보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송 시장의 확고한 평화공존 대북관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시는 지난해 천안함 사태에 따른 5·24조치로 정부 차원의 남북교류 사업이 전면 중단된 와중에도 각종 대북사업을 추진해 왔다. 시민구단인 인천유나이티드가 지난 2월 중국 쿤밍에서 남북한 유소년축구팀이 참가하는 ‘인천평화컵 유소년축구대회’를 개최토록 지원한 데 이어, 지난 5∼7월에는 2억원을 들여 북한에 말라리아 방역물품을 지원했다. 지난달에는 중국 단둥시에 북한 근로자들을 고용하는 한·중합작 축구화공장을 준공했다. 인천시는 2005년 ‘남북교류협력조례’를 제정한 뒤 지난해까지 해마다 10억∼40억원씩 100억원의 기금을 조성, 대북사업을 펼쳐 왔다. 경기도는 올해 14개 대북사업에 60억원을 편성하고 말라리아 공동방역과 영·유아 지원 등에 13억원을 집행했다. 도는 내년도 대북사업에도 60억원을 편성하고 법정 전염병 등 의료지원, 산림병충해 방제, 사회문화체육교류 등 3개 사업을 새로 추가했다. 2002년부터 시작된 경기도 대북 지원사업은 북한의 무력도발 때마다 지원 규모가 줄기는 했지만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김정일 사망으로 이들 사업은 상당 기간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인천시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남북단일팀 구성 등을 추진해 왔지만 북한이 안정을 찾을 때까지는 대북 채널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송용욱 경기도 남북협력담당은 “대북사업 대부분 민간단체를 통해 진행하고 지자체가 기금으로 사업비를 지원하는 방식이기에 때문에 당장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효은 인천시 남북교류협력팀장은 “현재로서는 김정일 사망이 남북교류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단하기 어렵다.”며 “사태를 주시하며 대북사업의 연속성을 잃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철·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中 지도부 ‘조용’… 병력 2000명 국경지대 배치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신의주와 마주 보고 있는 중국 랴오닝성 단둥(丹東) 지역은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에도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경지역에 대한 중국이나 북한 측의 경계 강화 움직임도 없다고 한 소식통은 전했다. 하지만 홍콩의 RTHK방송은 홍콩 인권민주주의 정보센터를 인용, 북한에서 대량 탈북사태가 발생할 것에 대비해 중국 인민해방군 병력 2000여명이 지린성 훈춘(琿春)과 투먼(圖們) 등 북·중 국경지대에 배치됐다고 보도했다. 단둥의 한 교민은 “김 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면서 “세관도 평상시와 똑같이 문을 열어 물건을 실은 트럭들이 드나들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20일부터 당분간 단둥 세관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중국에 대한 사전통보 여부가 주목되는 가운데 한 대북소식통은 “중국 지도부에서도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고 말해 북한이 중국에 김 위원장 사망 사실을 발표 전에 통보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발표 직전에야 통보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중국의 북한인 사회는 사실상 패닉 상태에 빠졌다. 베이징 차오양구 외교단지에 있는 북한대사관은 이날 오전 11시 40분(현지시간)쯤 인공기를 한 폭 내려 조기를 게양했다. 침통한 표정의 대사관 관계자 3명이 건물 옥상에 올라가 인공기와 연결된 줄을 잡고 인공기를 천천히 끌어내렸다. 한 젊은 북한여성은 눈물을 흘리며 대사관을 나와 걸어가기도 했다. 북한 대사관 주변에는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듣고 찾아온 외신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베이징 내 10여곳의 북한식당은 이날 일제히 영업을 중단했다. 한국인들이 밀집해 생활하는 차오양구 왕징(望京)의 북한식당 ‘대성산관’은 점심영업 준비를 하다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을 전달받고 내부 등을 모두 끈 채 손님들을 돌려보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인천, 남북 화해 물꼬트기 앞장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피격사건 이후 남북교류사업이 전면 중단된 가운데 인천시가 남북관계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10일 인천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6개 대북지원단체와 함께 북한 어린이와 임산부, 노인 등을 위한 식료품, 옷, 의약품 등의 생활필수품을 지원했다. 정부의 5·24조치로 지자체 차원의 대북교류사업이 중단된 이후 첫 지원이었다. 송영길 시장이 5·24조치에도 불구하고 정부 측에 북한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역설한 결과였다. 하지만 지원품이 북한의 고아원과 양로원, 장애인학교 등에 전달되던 중 그해 11월 연평도 피격사건이 발생하자 지원이 중단됐다. 당초 시와 대북지원단체는 2011년 3월까지 24억원 상당의 생필품을 북한에 지원하기로 협약을 맺은 터였다. 시는 협약대로 지난 5∼7월 말라리아 예방약과 방충망 등 방역물품 2억원어치를 전달했다. 강화지역 말라리아 환자의 70%가 북한에서 온 모기로 인해 감염되는 점 등을 들어 통일부를 설득했다. 물품은 강화도와 가까운 해주시와 강령군 등 황해남도 7개 지역에 전달됐다. 이 밖에 시는 다양한 방식으로 남북 간 화해를 꾀하고 있다. 올해 2월에는 송 시장이 구단주로 있는 프로축구팀 ‘인천유나이티드’가 중국 쿤밍(昆明)시에서 남북유소년이 참가하는 ‘인천평화컵 유소년 축구대회’를 열었다. 지난 7일에는 이 축구팀이 중국 단둥(丹東)시에 북한 근로자들을 고용하는 한·중 합작 축구화 공장을 준공해 국내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하는 남북경협 모델을 선보였다. 이미 개성공단 진출 희망 기업들을 대상으로 ‘남북경협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인천시는 지난달에는 또 10·4남북정상선언 기념식과 국제학술회의를 열어 한반도 평화체제의 미래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인천시는 2005년 ‘남북교류협력 조례’를 제정한 이후 지난해까지 100억원의 기금을 조성, 대북교류사업을 벌여 왔으며 현재 40억원의 남북교류협력기금이 남아 있다. 송 시장은 “현재로선 지자체가 직접 재원을 투입하는 물품지원사업은 승인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남북한 평화정착에 밑거름이 되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인천utd, 中서 축구화 생산… 단둥서 北근로자 고용키로

    인천 연고 프로축구단 ‘인천유나이티드’가 중국 단둥(丹東)에 한·중 합작공장을 세우고 북한 근로자를 고용해 축구화를 생산하는 사업에 나섰다. 인천utd는 7일 단둥시에서 구단주인 송영길 인천시장과 단둥시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축구화공장 준공식을 열었다. 한국인 기술자와 북한 근로자 20여명이 연간 최대 3만 켤레의 축구화를 생산할 계획이다. 1만 켤레는 프로, 2만 켤레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보급용으로 제작한다. 한·중 합작 법인인 윈난시광(雲南西光) 무역유한공사가 공장을 운영한다. 인천utd는 자본금의 73%인 5억원을 투자했다. 인천utd는 단둥 공장 제품을 브랜드화해 올해 말이나 내년 초부터 국내와 중국 현지에서 판매할 방침이다. 일부는 북한 유소년과 성인 대표팀에 기증하고, 북측은 축구화 금액에 상응하는 현물을 공장 운영에 내놓게 된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LH, 北 나선·황금평 작년 8월 현장실사 했다”

    북한과 중국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황금평과 나진·선봉(나선) 개발사업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적극적으로 참여를 검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LH가 직접 현지를 방문해 실사를 담당했다는 야당 측 주장이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측면 지원에 나섰던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20일 경기 성남시 LH본사에서 진행된 국회 국토해양위 국정감사에서 확인됐다. 민주당 유선호·백재현 의원 등은 오전 질의에서 지난해 8월 북·중 접경지역에서 LH 관계자들이 황금평과 나선 개발계획을 조사했다고 밝히면서 당시 현장 기록과 법인카드 사용 지출 내역서 등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LH 측은 이에 대해 “지난해 8월, 3명의 직원이 단둥과 훈춘 등을 방문해 중국 관계자를 만나 황금평과 나선 개발계획 사업성을 검토한 바 있다.”면서도 “북측 인사는 접촉한 적이 없고 사업성이 떨어지고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계획을 접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측 초청으로 갔고 북측 인사를 만나지 않아 통일부 사전 신고 대상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LH는 국내에서 다수의 국가공단과 산업단지, 신도시 등을 건설해 왔고 북한 개성공단 부지 조성에도 참여했었다. 하지만 지난해 8월은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한 경제협력이 거의 중단된 시기로 정부 산하 공기업이 황금평과 나선 개발에 뛰어드는 것은 정부의 결단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지적이다. LH의 황금평 투자 등에 대해 정부는 그동안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해 왔다. 황금평과 나선 개발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각국의 관심을 끌어온 사업이다. 통신·통행·통관 등 이른바 ‘3통’이 유연해지고 중국이 사업을 간접 보장해 개성공단 공동개발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대북 선교사 단둥서 돌연 사망

    북·중 접경지역인 중국 랴오닝성 단둥(丹東)에서 대북 선교활동을 하던 김모(46)씨가 지난달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9일 주선양(瀋陽) 한국총영사관 등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달 21일 오후 7시 30분쯤(현지시간) 단둥 시내 한 백화점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다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현지에서 실시된 1차 부검에서 독극물 등 이물질은 검출되지 않았고,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중국 공안 측이 유족들에게 정밀부검을 제안했지만 유족들은 조용한 마무리를 원하며 거부했다. 유족들은 지난 2일 시신을 화장한 뒤 귀국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김정일 귀국길 중국行… 최고위층 만날까

    김정일 귀국길 중국行… 최고위층 만날까

    러시아를 방문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통과하는 귀국 노선을 택했다. 러시아 극동지방을 경유했던 방문길보다 1500㎞ 이상 귀국길이 짧아졌다. 김 위원장을 태운 특별열차는 25일 오후 6시쯤(현지시간) 베이징~모스크바 국제열차 노선의 중국 측 접경인 네이멍구자치구 만저우리(滿州里)를 통과해 남하하고 있다. 특별열차는 헤이룽장성 하얼빈~지린성 창춘~랴오닝성 선양~단둥~북한 신의주 노선이나 하얼빈~무단장~투먼~북한 남양 노선을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26일 오후쯤에야 귀국 여부를 알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중국을 통과하는 귀국길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또다시 장시간 기차여행을 하기에는 건강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번 방러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미·일에 대응하는 북·중·러 3각동맹의 견고함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한편 러시아 측과의 합의 내용을 중국 측과 공유함으로써 한·미·일을 상대로 6자회담 재개를 압박하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중국을 통과하는 귀국 노선에 대해서는 중국 측과 사전협의가 있었을 것”이라며 즉흥적인 선택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방러 계획 수립과정에서 이미 논의가 있었다는 얘기로 중국을 통과하는 여정에 한반도 관련 인사가 수행하며 방러 결과 등을 접할 수도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특별열차가 만저우리역에 20여분간 정차했을 때 환영행사가 열렸고,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고위관계자가 탑승해 수행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단순 통과가 아니라면 하얼빈이나 창춘에서 정차한 뒤 중국 최고지도부와 회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목적이 무엇이든 김 위원장은 지난해 5월 이후 1년 3개월동안 모두 4차례나 중국을 방문한 셈이어서 돈독한 북·중관계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계기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재래시장 1㎞ 이내 SSM 못 들어선다

    국회는 23일 본회의를 열고 유통산업발전법·관세특례법 등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의 이행·지원 법안을 포함해 74개 안건을 의결했다. 해군에 넘어갔던 해병대의 인사·예산권을 강화하고 상륙작전권을 부활시키는 내용의 국군조직법 및 군인사법 개정안 등도 통과됐다.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은 FTA 발효로 인한 재래시장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업형 슈퍼마켓(SSM) 입점 제한 범위를 현재 ‘500m 이내’에서 ‘1㎞ 이내’로 넓히고, 법안의 일몰 시한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렸다. 관세특례법은 일정 물량을 초과해 수입되는 농산물에 대해 특별 긴급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했고, 저작권법은 저작권 보호기간을 저작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했다. 국회 농림수산식품위도 전체회의에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한·EU FTA 발효로 농축산물의 5년 평균가격이 기준가 대비 85% 미만으로 떨어지면 차액의 90%를 직불금 형태로 보전하도록 했다. ●행안위 “모든 수사 표현 부적절” 국회 행정안전위는 사법제도개혁특별위가 지난 20일 의결한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안과 관련, “형소법 개정안 196조 1항의 ‘모든 수사’라는 표현은 부적절하고, 3항에서 구체적 수사지휘 사항을 법무부령에 위임하도록 한 것은 대통령령으로 고쳐야 한다.”는 의견서를 채택해 법제사법위원회에 넘겼다. 행안위에 출석한 조현오 경찰청장은 ‘모든 수사’에 내사가 포함되는지에 대해 “이때까지도 내사는 경찰이 독자적으로 해 왔다. 검찰이 새로 내사를 지휘하면 못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野 “황금평에 투자 실사단 보내” 국회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이윤석 의원은 북한과 중국의 황금평 개발사업과 관련, “우리 정부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황금평 지구에 투자할 의향을 갖고 신의주와 단둥에 실사단을 보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현인택 통일부장관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한나라당 정옥임 의원은 “중국군이 북한 급변 사태 때 남포와 원산을 잇는 대동강 이북지역에서 치안을 유지해 북한 주민들의 동북3성 유입을 막는다는 ‘병아리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들어본 바) 없다.”고 밝혔다. 한편 김 장관은 민항기 오인 사격과 관련,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홍성규·강주리기자 cool@seoul.co.kr
  • 北·中 압록강 첫 합동순찰 밀무역·탈북자 단속한 듯

    북한과 중국이 지난 15일 압록강에서 처음으로 합동 순찰활동을 벌였다. 중국에서 3척, 북한에서 2척의 선박이 참여한 이번 순찰은 랴오닝성 단둥(丹東)의 중조우의교(압록강철교)와 서해쪽 중국 다둥(大東)항 사이 압록강 유역 구간에서 진행됐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16일 보도했다. 통신은 북한과 중국 해사 당국 간에 지난 4월 ‘조중(북중) 해사관리 압록강 유역 협력 협정’이 체결돼 합동순찰이 정례화됐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압록강 합동순찰이 북·중 밀무역 단속과 탈북자 적발 등의 목적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고려항공, 평양~상하이 직항노선 새달 1일 개통

    북한 평양과 중국 상하이(上海) 간 직항노선이 다음 달 1일 개통된다. 북한 고려항공은 14일 AFP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오는 7월1일부터 일주일에 두 차례 상하이 푸둥과 평양 순안공항을 연결하는 직항 노선을 운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상하이~평양 노선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운항되며 첫날 항공편은 이미 전석 매진됐다고 중국 언론매체인 항저우망(杭州網)이 전했다. 이 노선이 개통되면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항공노선은 현재 베이징~평양, 선양~평양에 이어 세 개가 된다. 열차로는 단둥~평양 노선이 하나 있다. 북한은 이 노선을 통해 소득 수준이 높은 상하이 등 중국 남부에 사는 중국인들의 북한 관광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시작된 상하이∼북한 단체관광은 천안함 사건이 터지면서 중단됐으나 7월 직항노선 개설과 함께 재개된다. 상하이에서 출발해 평양, 개성, 묘향산과 금강산 등을 둘러보는 관광 상품 가격은 4박5일 기준으로 5399~5999위안(약 90만∼100만원)으로 책정됐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美, 독재국가 비밀 침투 ‘스텔스넷’ 띄운다

    美, 독재국가 비밀 침투 ‘스텔스넷’ 띄운다

    독재국가들이 반체제 인사의 인터넷이나 이동전화를 검열·차단하는 데 대응하기 위해 미국이 ‘스텔스 네트워크’ 시스템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적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처럼 국가 통신망을 거치지 않는 비밀 무선 네트워크를 중동권역 등의 권위주의 국가 내에 구축해 반정부 세력의 활동을 돕겠다는 취지다. 북한에도 이 시스템을 적용할 가능성이 있어 주목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 같은 ‘그림자 인터넷·이동통신망’ 구축 계획을 세웠고 국무부 등이 주축이 돼 이를 추진 중이라고 13일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이번 구상의 핵심은 미국이 독재국가 안에 ‘여행가방 속 인터넷’(IIS)이라고 불리는 무선 인터넷망을 몰래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해당국 국민들이 자국의 국가 통신망에 접속하지 않고도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돕겠다는 취지다. IIS 개념에 따르면 이웃국으로부터 국경을 은밀히 넘어 독재국으로 흘러간 무선 네트워크는 특수 소프트웨어의 도움으로 중앙제어장치를 거치지 않고 개별 컴퓨터나 휴대전화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한다. 즉 음성메시지와 전화, 이메일 등이 국가의 인터넷망을 거치지 않고 ‘작은 기지국’ 역할을 하는 개별 이동통신기기 사이에서 오고 갈 수 있다는 얘기다. 독립적 전화망 구축도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 과제다. 미국은 이미 5000만 달러(약 542억 9000만원)를 투입해 아프가니스탄에 ‘그림자 휴대전화 시스템’을 구축하고 활용 중이다. 탈레반이 아프간 내 정부 통신망을 공격해 차단하려고 애쓰지만 이 통신 체계 덕분에 미군은 효과적으로 ‘방해 작전’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IS 시스템 등이 구축되면 이란과 리비아, 시리아 등 대표적 반미·권위주의 국가의 반정부 인사들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돼 활발한 여론전을 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은 수십년간 ‘미국의 소리’(VOA) 방송을 중국 등에 흘려보내 선전전을 벌였지만 이번 계획은 완전히 독자적인 소통로를 열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IIS 기술은 북한에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뉴욕타임스가 입수한 미 외교 전문에 따르면 2009년 5월 김씨 성을 가진 한 탈북자가 선양의 미 영사관 관계자에게 “중국 단둥에서 휴대전화로 국경을 넘어 통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IIS 기술이 얼마든 북한에서 활용될 수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다만 권위주의 국가들이 IIS 시스템을 정밀 감시해 반정부 인사를 색출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 국무부는 앞서 아랍권의 재스민 혁명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각종 정보기술(IT)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북아프리카 및 중동권의 소통 창구를 보호하기 위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