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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잠 안 재우고 하루 13시간 노역… 구금기간 가혹행위”

    “中, 잠 안 재우고 하루 13시간 노역… 구금기간 가혹행위”

    중국에서 국가안전위해죄 혐의로 체포됐다 지난 20일 114일 만에 풀려난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49)씨는 25일 “중국으로부터 물리적 압박, 잠 안 재우기 등의 가혹 행위를 당했다.”면서 “이번 사건은 북한 보위부와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이날 서울 중구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국가안전보위부가 납치, 테러 대상으로 지목해 중국 공안 당국이 감시했던 동료를 만난 직후 잡혔다.”면서 구금과 북한 당국의 연관성을 주장했다. 그는 “중국 국가안전부가 체포 후 3~4일이 지나서야 내가 누군지 알았다는 점에서 북한이 나를 지목해 잡아 달라고 중국에 요청했던 것 같지는 않다.”면서 “그날 중국인, 한국인을 포함해 7∼10명이 동시에 붙잡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일각에서 제기한 고위급 인사를 기획 망명시키려다 잡혔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힌 뒤 “기본적으로 북한 인권에 대한 정보 조사, 탈북자 지원 활동을 했지만 중국에서 비슷한 활동을 한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에 구체적 활동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중국에서의 강제 구금 경위에 대해 “지난 3월 23일 베이징을 통해 중국으로 입국한 후 27일 다롄으로 이동했다.”면서 “같은 달 29일 오전 호텔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이동하는데 택시에 합승한 승객이 내린 후 국가안전부 요원들에게 검거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김씨는 검거 당일 다롄의 한 호텔에서 조사를 받고 다음 날 일찍 단둥시 국가안전국으로 이송돼 4월 28일까지 한달간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중국 측은 처음에 변호사 접견은 허용되지 않고 영사한테는 우리가 통보할 테니 기다리라고 말했다.”면서 “영사 접견 이후 답변하겠다고 말하고 18일간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구치소 생활에 대해서는 “하루 13시간씩 노역을 시켰으며 식사도 한끼에 팥 없는 찐빵 하나를 줬으나 속이 좋지 않아 다 먹지도 못했다.”고 열악한 인권 상황을 꼬집었다. 고문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부분은 다음에 밝히겠다.”며 언급을 피했다. 김씨는 또 “귀환 조건으로 중국 법률을 위반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구금 상태에서 당한 가혹 행위를 한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함구할 것을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 측의 가혹 행위가 있었다는 김씨의 주장에 대해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지난 6월 11일 김씨의 진술을 듣고 12일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를 불러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등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다.”면서 “중국 측은 조사 결과 그런 사실이 없다는 답변을 전달해 왔다.”고 밝혔다. 김미경·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中 구금 김영환씨 114일만에 귀국

    中 구금 김영환씨 114일만에 귀국

    북한 인권운동 중 지난 3월 중국 공안 당국에 체포된 김영환(49)씨 등 일행 4명이 20일 저녁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구금 114일 만으로, 중국 당국은 강제추방 형식을 취했다. 중국은 전날 이유를 알리지 않은 채 우리 정부에 강제추방 방침을 통보했고, 정부는 이날 오후 선양에서 김씨 일행의 신병을 인계받았다. 중국은 김씨 등에 대해 불기소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귀국 후 “석방을 위해 노력한 정부와 국민, 각계 인사와 동료, 가족에게 감사를 드린다. 어떤 탄압에도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씨 등은 귀국 후 관계당국의 건강 검진과 체포 경위 등을 조사받은 후 귀가했다. 강철서신의 저자로 1980년대 주사파 운동권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김씨는 지난 3월 29일 랴오닝성 다롄에서 일행들과 탈북자 관련 회의를 하다 중국 공안에 국가안전위해죄로 체포됐고, 단둥시 국가안전청에 구금돼 있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한국내 범법 중국인들과 딜?

    중국에 구금된 지 114일 만인 20일 추방형식으로 풀려나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김영환(49)씨와 일행 3명은 지난 3월 29일 랴오닝성 다롄에서 탈북자 관련 회의를 하던 중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김씨 등은 그동안 단둥시 국가안전청에 구금돼 있었다고 한다. 중국은 김씨 일행에게 최고 형량이 사형인 국가안전위해죄를 적용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여 왔다. 지난달 김씨 등 일행 4명에 대한 조사를 마친 중국은 기소 여부를 고심하다 최근 불기소 방침을 정하고 김씨 등을 추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가 구금된 이후 우리 정부는 모든 채널을 통해 조속한 석방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지난 4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한국 외교관들이 김씨 등과 영사 면담을 할수 있게 해준 것 외에는 변호인 접견도 금지한 채 엄중한 조사를 벌여 왔다. 이 때문에 한·중 간 외교마찰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였다. 이후에도 우리 측은 꾸준히 중국 측과 석방협상을 벌여 왔고 김씨의 석방이 임박했다는 소식은 지난달부터 간간이 들려왔다. 그러다 김씨의 석방이 결정적으로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한국을 방문했던 멍젠주 중국 공안부장이 지난 13일 김성환 외교통상부장관, 이명박 대통령을 잇따라 만나면서다. 멍 부장은 당시 이 대통령과 김 장관은 물론 법무부 장관,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 실세를 모두 만났다. 멍 부장은 당시 “김씨 등 4명에 대해 우리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감안해 최대한 조속히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김성환 장관의 요청에 대해 “한·중관계를 고려해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를 놓고 외교부 관계자는 “곧 잘될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놨고, 결국 일주일 뒤인 이날 오후 김씨 일행은 극적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게 됐다. 김영환씨의 석방을 위해 중국 측과 우리 측이 물밑에서 협상을 벌였으며, 멍 부장의 방한은 이를 마무리 짓는 최종 절차였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김씨 일행 4명이 석방되는 조건으로 한국에서 범법행위를 저지른 중국인 기결수 등 4~5명이 중국에 인도되는 내용의 딜(Deal)이 이뤄졌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얘기도 흘러나온다. 김씨 일행과 교환되는 중국인 대상으로는 지난 4월 한국해경에게 흉기를 휘두른 왕모(36)씨 등 2명과 지난 1월 주한 일본대사관에 화염병 4개를 던진 류모(38)씨 등의 이름이 거론된다. 류씨는 국내 사법당국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때문에 류씨 등 중국인 기결수 등이 김씨의 석방과 맞물려 범죄인 인도형식 등으로 중국으로 넘겨졌다는 것이다.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5월 안호영 외교부 1차관을 만나 11월 만기출소하는 류씨를 강제추방 형식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한 것도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 중국 어선의 서해 불법조업이나 탈북자 문제 등 한·중 간에 껄끄러운 현안도 김씨 문제와 관련한 ‘딜’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외교부 측은 “김씨 추방에 어떤 조건도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또 김씨 일행의 귀국이 성사된 것은 북한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김씨의 활동이 외부에 공개되는 것을 중국 측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김씨 등의) 추방에 조건이 있는지를 확인할 입장에 있지 않으며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중국 당국이 김씨를 기소하게 되면 김씨의 활동이 드러나게 되는데 중국도 이를 피하고 싶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종훈기자 artg@seoul.co.kr
  • “北, 중국에 근로자 4만명 파견”

    중국이 최근 북한 노동자 4만명을 받아들이기로 북한과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신문은 16일 복수의 북한·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체제에서 처음으로 중국 동북부지방인 랴오닝성 단둥에 2만명, 지린성 투먼과 훈춘지구에 2만명 등 노동자 4만명을 파견하기로 중국과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럴 경우 중국에 파견되는 북한 노동자는 약 12만명에 이른다. 중국 기업은 북한에서 송출한 인력의 임금이 중국인들에 비해 훨씬 싸고 기숙사에서 단체 생활을 하기 때문에 관리하기가 편리해 북한 인력을 고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주로 의류나 정보기술(IT) 관련 공장, 건설 현장 등에서 단순 노동자로 투입된다. 급여는 월평균 170달러(약 19만 5000원)다. 약 5만명이 일하는 개성공단 노동자들은 110달러 정도를 받는다. 북한과 중국 간 정확한 계약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노동자의 월급 중 40~50%를 사회보장금 명목으로 공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12만명의 인력을 중국에 파견하면 연간 3억~4억 달러를 챙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호위총국 산하 기관에 있는 장성택(노동당 행정부장)의 친인척과 측근이 인력 송출을 주도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까지도 외부 문화의 정보 유입을 우려해 노동자 해외 송출을 최소한으로 유지해 왔지만 2010년 남북 교역 전면 중단 이후 외화난이 누적되자 중국에 노동자 파견을 늘리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소식통은 “북한 노동자가 개혁, 개방 후 중국의 발전 모습이나 시장 경제를 체험하는 것은 북한에 경제 개혁을 재촉하기 위한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박주선 체포 동의안’ 의원특권 포기 가늠대

    임기 시작 33일 만에 지각 개원한 19대 국회가 9일 본회의부터 본격적인 여야 간 신경전을 펼칠 전망이다. 여야는 무소속 박주선 의원 체포동의안에서부터 날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박 의원은 4·11 총선 민주통합당 모바일 경선 과정에서 선거인단을 불법 모집한 혐의로 기소돼 광주지법에서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국회 사무처는 9일 본회의에 체포동의안 접수를 보고할 계획이다.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은 국회 보고 시점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본회의에서 표결처리해야 한다.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는 2010년 9월 학교공금 횡령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민주당 강성종 의원에 이어 22개월여 만이다. 문제는 민주당 중진 출신인 박 의원에 대한 예우 여부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원내 수석부대표는 6일 만나 적법 절차에 따른 처리를 논의할 방침이다. 새누리당은 당 쇄신안의 하나로 불체포특권 포기를 내세운 만큼 체포동의 요구를 외면하기 힘든 처지다. 다만 야당 생활을 오래 지낸 무소속 의원에 대해 가혹한 처우라는 지적, 도주 우려가 없으면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불구속 상태로 놔둘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 점이 걸림돌이다.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퇴출을 위한 자격심사는 양당이 공동발의해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실제 처리 과정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지난 4일 “통진당의 제명 처리가 먼저”라고 방향을 선회한 탓이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도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 과정에서 구체적 혐의 입증이 완료돼야 윤리특위에서 제명안이 통과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13개월 넘게 끌어온 헌법재판관 공백 사태는 민주당이 5일 ‘조용환 재판관 카드’를 포기함에 따라 새 국면을 맞게 됐다. 민주당이 조 후보자 대신 소수 성향의 새 인물 물색에 들어간 가운데 대법관 청문회와 맞물려 사법부 공백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여야의 공감대는 같다. 18일 시작되는 대정부 질문에선 한·일 정보보호협정이 비판대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여당 내에서도 밀실 처리에 대한 파문이 커진 데다 청와대가 김태효 대외전략기획관 사임 처리 등 관련자 인책으로 꼬리 자르기를 하려 한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다. 한편 19대 국회 ‘1호 처리 법안’에 대한 관심이 몰리면서 9일 본회의에서 중국 단둥 국가안전청에 강제 구금된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씨 외 한국인 3명에 대한 ‘석방촉구 결의안’이 채택될지도 관심거리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지방시대] 단둥과 나진항, 그리고 인천/김민배 인천발전연구원장

    [지방시대] 단둥과 나진항, 그리고 인천/김민배 인천발전연구원장

    단둥(丹東). 황금평과 신의주를 마주하고 있는 압록강변의 중국 도시다. 화보에서 보았던 압록강철교 건너에서는 북한 군인과 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학술행사에 참가한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62년 만에 고향 의주를 멀리서나마 보게 돼 뜻깊다는 건배사를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아차 싶었다. 그곳이 고인이 된 장인어른의 고향과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장인께서는 마지막에 고향산천을 보고 싶다고 했다. 64년 전 그가 떠났던 고향, 생전에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고향, 그러나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압록강을 두고 화려한 단둥과 초라한 북한은 너무나 대조되었다. 중국이 건설해 주고 있다는 신압록강철교를 보면서 생각했다. 남북한 주도의 협력과 평화통일, 그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5·24조치 이후 남북관계는 단절되고 있지만 북·중관계는 더 긴밀해지고 있다. 중국이 황금평과 위화도의 개발 프로젝트가 좌초되었다는 외신보도를 즉각 부인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황금평의 개발에는 문제가 있다. 퇴적토로 이루어진 황금평의 개발에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과 특구에 적용할 법률문제 등이 걸림돌이다. 그러나 중국이 4000억원에 달하는 공사비를 모두 대고, 2014년 개통 예정이라는 신압록강철교 사업은 상당히 진척되고 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인천시는 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하는 한·중 합작의 축구화 공장을 지난해 단둥에 세워 가동 중에 있다. 인천이 단둥에 관심을 갖는 것은 동북3성의 물류가 집산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인천항은 다롄과 칭다오, 양산항 등과 경쟁관계에 있다. 인천으로서는 단둥을 중심으로 한 동북3성의 물동량을 어떻게 연계할 것인가가 중대 관심사다. 그것이 없다면 인천항의 동북아 허브전략에 커다란 차질이 초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인천항의 위기는 나진항에서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을 가보니 ‘창지투’개발 전략으로 알려진 개발사업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훈춘(琿春)의 부동산가격이 크게 상승했다는 전언 속에는 옌볜지역의 위축에 대한 걱정도 내포되어 있었다. 고속철도와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훈춘에서 나진항까지는 30분 거리라고 한다. 나진항을 통해 중국의 상하이 이남지역으로 갈 곡식과 무연탄, 철광석 등의 물동량에 대한 경제성 검토를 끝냈다고 한다. 중국이 인천과 부산을 거치지 않고 동북3성의 물동량을 전 세계로 내보내는 물류 루트를 확보한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남북한 경제협력이 여러 차원에서 다시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남북한의 단절이 심어 놓은 불신을 회복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북·중 간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서해평화협력지대와 평화의 섬, 그리고 인천항의 물류 허브화 등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인천항만은 허브를 시도해 보지도 못한 채 나진항을 비롯한 중국항만에 그 자리를 내줄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시급히 인천항만의 허브화와 인천국제공항을 연계하는 새로운 국가물류 전략을 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이 서해와 동해의 물류를 선점해 가는 이 순간에도, 인천은 소모적인 인천공항 매각 논쟁에 휩싸여 있다. 그래서일까. 이 여름이 더 무덥게 느껴진다.
  • 경찰의 무리한 공안몰이?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이상호)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군사용 안테나 계측장비 등 미국 방산업체의 첨단 군사장비를 북한에 넘기려 한 대북사업가 김모(56)씨와 이모(74)씨를 국가보안법상 간첩예비·음모죄로 구속 기소했다고 21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7월 북·중 접경 지역인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서 북한 관계자로부터 미국 NSI사의 군사용 안테나 계측 장비와 고공 관측 레이더, 전파 교란장비, 전파탐지기, 비행기 시뮬레이션, 조종사 헬멧 등 군사기밀과 관련된 장비를 입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에 이씨는 동업자이자 과거 군납 경력이 있는 김씨에게 장비 입수를 요청했고, 김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항공사 기술연구소 출신의 지인을 통해 장비 구매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앞서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는 지난달 30일 이씨 등을 구속하면서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 간첩’ 혐의를 적용, “북한 공작원의 지령을 받아 GPS 전파 교란장비 등 우리 군의 첨단 기술을 북한에 넘겼을 것으로 추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은 조사결과 이씨 등이 해당 장비의 팸플릿만 넘겨받았을 뿐 실제로 장비나 기술을 입수하지 못했고, 북한 공작원의 신원조차 밝혀지지 않아 ‘간첩예비·음모죄’만 적용해 기소했다. 또 이씨가 ‘비전향 장기수’로 국내 고정간첩 가운데 최고위층이라는 경찰 측 설명과 달리 전향서를 쓰고 출소한 장기수였던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따라 경찰이 최근 정치권의 종북 논란을 이용, 무리한 ‘공안몰이’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서방 “中 도하훈련, 北난민 유출 대비”

    서방 “中 도하훈련, 北난민 유출 대비”

    북·중 접경 지역인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 압록강변에서 중국군이 도하 훈련을 하는 현장이 확인됐다. 지난 12일 오후 4시. 단둥시 북쪽으로 7~8㎞ 떨어진 강가에서 얼룩무늬 군복에 주황색 구명조끼를 착용한 중국군 100여명이 부교(浮橋)를 이용해 도하 훈련을 하고 있었다. 군인들은 6~7척의 소형 선박으로 길이 20~30m의 부교 10여개를 강 이쪽저쪽으로 이동시키며 유사시 인원과 장비가 강을 건널 수 있게 하는 임시교량 설치 훈련에 열중했다. 해당 지역은 중국 쪽 강가에서 강 건너 북한 신의주까지의 거리가 400~500m에 불과한 지점이다. 중국군의 훈련이 진행되던 시각에 강 맞은편 신의주 쪽 강가에는 정박 중인 북한 화물선 몇척이 눈에 띌 뿐 별다른 인원이나 장비의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단둥 주민들은 예전에도 중국군의 압록강 도하 훈련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밝혔다. 한 주민은 “오늘 훈련은 오전부터 진행됐는데 이전에도 중국군이 압록강에서 (오늘과) 같은 훈련을 하는 것을 두세 차례 봤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부교를 동원한 군인들의 압록강 도하 훈련은 대개 여름철에 실시된다.”고 전했다. 중국은 지난 2003년 9월 무장경찰이 맡던 북·중 국경지대 경비를 정규군인 인민해방군으로 이관했다. 이번 훈련은 훈련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는 지역에서 시행된 데다 주기적으로 이뤄졌다는 주민들의 증언 등으로 미뤄 중국군의 통상적인 훈련으로 보인다. 서방 일각에서는 북한에 새로운 지도체제가 들어선 시점에 실시된 훈련의 목적이 유사시 북한 난민 대량 유출과 관련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은 최근 “임시로 설치한 부교에서 벌이는 압록강 도하 훈련이 매년 6월 실시된다.”고 보도하면서 “훈련은 북한의 유사시를 상정한 것이고 만일의 사태가 벌어지면 중국군이 북한에 들어가 난민 유출을 막는 것이 목적”이라고 전했다. 단둥·도쿄 연합뉴스
  • 김영환씨 등 4명 면담 中 “조사 마무리 단계”

    김영환씨 등 4명 면담 中 “조사 마무리 단계”

    중국 국가안전청에 의해 국가안전위해죄 혐의로 두 달 반 넘게 구금 중인 ‘강철서신’의 저자인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49)씨 등 4명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이들에 대한 영사 면담도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주중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지난달 말 한 차례 영사 면담을 했던 김씨를 포함해 유재길(44)·강신삼(42)·이상용(32)씨 등 4명에 대해 이날 주중 선양(瀋陽) 총영사관의 영사들이 각각 1명씩 면담을 실시했다. 김씨를 제외한 유씨 등 3명은 ‘본인들이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그동안 접견이 거부돼 왔으나 이들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면담이 이뤄졌다. 대사관 관계자는 이들의 건강과 관련해 “일단 외관상 큰 문제점은 관찰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이들에 대해 최근 중국 측이 우리 영사관에 ‘현 단계의 조사가 마무리 단계’라고 통보해 왔다. 이들은 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아 왔으며 검찰로 넘겨질지는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로 넘겨지지 않을 경우 방면돼 출국 조치가 내려지거나 일정 기간의 행정구류를 거쳐 강제 추방 형식으로 출국 조치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 당국이 국가안전청 조사 결과를 검찰에 넘겨 기소 절차를 밟을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배제할 수 없다. 한편 김씨 등의 가족들은 이날 중국 정부에 가족 면담을 신청하는 내용의 탄원서를 이명박 대통령 앞으로 제출했다고 ‘북한인권운동가 김영환 석방대책위원회’ 측이 밝혔다. 김씨는 지난 3월 29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에서 중국 국가안전청에 체포돼 단둥으로 이송, 구금 중이다. 나머지 3명도 비슷한 시기에 중국 당국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4명은 중국에서 북한 인권·민주화운동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씨줄날줄] ‘생고무표’ 만리장성/구본영 논설위원

    “달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는 지구상 유일 인공 구조물” 만리장성의 어마어마한 규모를 표현한 수사다. 몇 년 전까지 중국 여행 사이트와 교재에도 실렸다던, 중국식 과장법의 백미다. 중국 최초의 우주인 양리웨이가 “안 보인다.”고 진실을 알릴 때까지 통용되던 현대판 ‘신화’였다. 중국 당국이 만리장성의 길이를 또 크게 늘렸다. 중국 국가문물국 측은 “2007년부터 진행한 조사 결과 만리장성의 총길이가 2만 1196.18㎞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중국 당국은 2000년대 중반까지 6300㎞라고 하더니 2009년 이미 8851㎞로 늘려 발표한 바 있다. 중국 거리 단위로 10리는 5㎞이기 때문에 그제 발표 내용대로라면 이제 만리장성은 4만리 장성으로 고쳐 불러야 할 판이다. 중국 당국은 유적 조사와 측량의 결과라며 이번에 기존 장성의 끝단을 좌우로 잡아당겨 길이를 늘렸다. 장성의 동쪽 끝은 지린(吉林)성과 헤이룽장(黑龍江)성까지 확장했다. 그 의도는 뻔하다. 옛 고구려와 발해가 지은 성까지 만리장성의 한 자락이라고 강변하려는 것이다. 중국 측은 2009년에는 장성의 동쪽 기점이 랴오닝(遼寧)성 단둥시 북쪽의 박작(泊灼)성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에도 고구려식 우물터가 발견된 고증을 무시하고 역사를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황허 문명의 발상지 중국이 인류 문명사에 끼친 공적은 누가 뭐래도 부인하기 어렵다. 나침반·화약·종이 등 고대 세계 3대 발명품을 내놓은 나라가 아닌가. 이민족에게 중원을 내줄 때도 많았지만, 인구의 대다수를 점하는 한족이 갖고 있는 중화(中華) 자부심의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재청에 해당하는 중국 국가문물국의 행보는 문화 혹은 문명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 보인다. 마오쩌둥 치하의 ‘문화혁명’도 이름과 달리 인민을 도탄에 빠뜨린 야만적 사건이었다. 1966∼1976년 홍위병의 광기 속에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고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이후 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택하면서 현대 중국은 비로소 긍정적 역사 발전을 일궈 왔다. 하지만 동북공정이니 서북공정이니 하는 역사 왜곡은 문명사의 물길을 다시 거꾸로 돌리는 행위일 게다. 탄성계수 100% 생고무처럼 만리장성의 길이를 늘린다고 역사의 진실이 달라지겠는가. 중국 당국은 “역사는 두번 되풀이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소극(笑劇)으로”라는 속설을 음미했으면 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고구려 성까지 만리장성으로 덮어씌워서야…”

    “고구려 성까지 만리장성으로 덮어씌워서야…”

    중국이 6000㎞에 이르는 만리장성을 2만㎞에 이르는 삼만리장성으로 확대했다는 소식에 학계는 술렁이고 있다. 이 문제를 두고 7일 김운회 동양대 교수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배운 고조선은 가짜다’(역사의아침 펴냄), ‘대쥬신을 찾아서 1·2’(해냄 펴냄), ‘삼국지 바로 읽기’(삼인 펴냄) 등을 내면서 국수주의에 치우치지 않고 고대사를 연구해 왔다는 평을 받아 왔다. ●“한반도까지 중국땅이라 말하려 무리수” →먼저 만리장성이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가. -대개 진시황이 흉노족을 막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명나라 때인 15~16세기에 대대적으로 고쳐진 것이다. 명 태조 주원장의 건국이념이 “오랑캐를 몰아내고 한족의 부흥을 이룩한다.”(驅逐胡虜恢復中華)였다. 한나라 이후 북방유목민의 지배를 받다가 이제야 한족 정권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런 명나라가 만리장성에 손댔기 때문에 당연히 만리장성은 한족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기네 땅이다. 일부는 기존 만리장성을 고치고, 여기다 험한 산세나 암벽을 이용해 장책(長柵), 변장(邊牆), 변문(邊門)을 추가로 만들었다. 이는 기존 만리장성에다 현재의 랴오닝성(遼寧省)을 연결한 것이다. 그러니까 한족은 만리장성 이남과 요동반도 정도만 자기네 땅이라고 본 것이다. →만리장성이 삼만리장성으로 불어나는 과정은 어떠했나. -2000년대 중반까지 만리장성의 총길이가 6000㎞이고 동쪽 끝은 베이징 인근 산해관(山海關)이라는 데 아무 이의가 없었다. 근거를 들라면 사기(史記)를 비롯해 수많은 자료가 있다. 그런데 중국은 2009년 랴오닝성 단둥지역, 그러니까 압록강 하구의 박작성(泊灼城)을 호산장성(虎山長城)으로 둔갑시켰다. 이 성은 당나라 침입을 막기 위해 고구려가 쌓은 성이다. 648년 당 태종의 침입에도 함락되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성쌓기 방식이나 출토유물이나 고구려식 우물 등으로 봐서도 분명히 고구려성이었다. 그런데 2004년부터 호산장성을 복구한답시고 고구려 유물을 훼손하고 고구려산성 위에다 중국식 만리장성을 덮어씌워 버렸다. 거기다 한족의 조상인 황제 동상까지 세웠다. 정말 웃기는 것은 중국은 이 성이 명나라 때 여진족을 물리치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우기는데, 실제 성의 구조를 보면 각종 수비시설이 남쪽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다. 여진족을 견제하려고 했다면 북쪽에 수비시설이 몰려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렇게 무리수를 두는 것은 요동반도를 넘어 만주, 압록강 일대는 물론 한반도 북부까지 모두 자기네들 땅이라 말하고 싶어서다. ●“개라 부르더니… 중화민족이라 우겨” →우리 고대 사학계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사실 중국보다 우리 책임이 더 크다. 한족이 북방유목민을 분열시키기 위해 지어낸 주장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예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가령 삼국사기를 보면 말갈족이 지금의 서울·경기지역에 거주했음이 드러난다. 그런데도 우리는 말갈하면 무슨 미개한 북방 오랑캐 취급을 한다. 조선시대 소중화에서 벗어나질 못해서다. 우리 고대사는 시베리아-몽골-만주-한반도로 이어지는 유목민의 역사다. 서쪽으로는 전연과 북위, 동쪽으론 고구려와 백제, 신라까지 모두 이어진다. 이런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싸움은 점점 어려워진다. →중국도 학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법도 한데 왜 이러는 건가. -만리장성의 강력한 상징성을 활용해 현재 정치적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한번 되돌이켜 생각해 보자. 역사적으로 한족과 사이(四夷)를 구분한 뒤 물과 기름 같다는 둥, 절대 융합될 수 없다는 둥 해온 것은 그들 자신이다. 한족은 한국인을 아예 예맥(濊貊)이라 불렀다. 똥고양이다. 다른 민족들도 개, 돼지, 승냥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개, 돼지, 승냥이도 중화민족이라고 우긴다.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끼워 맞추는 것이다. ●“동북아재단, 북방사 연구자 위주 개편을” →대응방법이 있을까. -동북공정이라고 법석을 떨지만 사실 이 문제는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당시 중국 중등 교과서를 보면 타이완, 한국, 필리핀을 회복해야 할 영토로 명시해 뒀다. 이제 비로소 그 실체가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동북아역사재단을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일본과의 문제가 독도 문제 정도라면,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 역사 자체를 말살하는 작업이다. 어느 것이 더 시급한가. 북방사 연구자 중심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여기다 중국의 역사전쟁은 한국뿐 아니라 주변 민족 모두를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들과의 연합같은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中, 이번엔 만리장성으로 역사 왜곡?

    중국 당국이 만리장성 길이를 기존보다 두 배가 훌쩍 넘는 규모로 늘려 발표했다. 지금은 중국 영토인 옛 고구려, 발해 지역이 원래부터 중화 민족의 통치권에 속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근거 축적용 역사 왜곡 공정이란 비판이 나온다. 6일 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광명일보(光明日報)에 따르면 국가문물국(한국의 문화재청에 해당)은 2007년부터 진행한 고고학 조사 결과 역대 만리장성의 총길이가 2만 1196.18㎞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지난 5일 발표했다. 만리장성이 중국의 가장 서쪽인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에서 시작해 동쪽 끝이자 과거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이던 지린(吉林)성과 헤이룽장(黑龍江)성까지 연결되는 15개 성·시·자치구에서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만리장성의 동단은 베이징 인근의 허베이(河北)성 산하이관(山海關)이라는 것이 정설이었으나 이번 발표로 중국 모든 북부 지역에 만리장성이 존재했다는 일각의 주장이 공식화된 것이다. 중국은 앞서 2006년 국무원 명의로 ‘(만리)장성 보호조례’를 제정하면서 만리장성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작업에 착수했으며 이후 만리장성을 동·서로 확장하는 데 주력했다. 예컨대 2009년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의 고구려성인 박작성(泊灼城)이 만리장성의 일부로 확인됐다면서 박작성에 ‘만리장성 동단기점’(萬里長城 東端起點)이란 대형 표지판을 세우고 박작성이 고구려 유적지라는 기존의 관광 안내문을 모두 없앴다. 또 고구려의 발원지인 백두산 근처 지린성 퉁화(通化)현에서 진(秦)나라 때 것으로 추정되는 만리장성 유적이 발굴됐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GPS 교란장치 北에 넘겨…北 전파도발 관련성 조사

    북한 대남 공작기구의 지령을 받고 첨단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전파교란장치 등 군사기술을 수집한 비전향 장기수 출신 무역회사 대표 등 3명이 공안 당국에 검거됐다. 서울경찰청 보안부는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와 공조해 북한의 지령을 받아 GPS 전파 교란장치 등 국내 첨단 군사기술을 수집한 이모(74)씨와 김모(55)씨 등 2명을 국가보안법(간첩)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30일 밝혔다. 또 전직 레이더제조업체 대표 정모(61)씨를 같은 혐의로 입건, 조사하고 있다. 이씨와 김씨는 지난해 7월 북·중 접경지역인 중국 단둥(丹東)에서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첨단 군사기술 수집 지령을 받는 등 간첩활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정씨에게 접근해 GPS 기술을 빼낸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뉴질랜드 교포로 알려졌다. 이씨는 지난 1972년 2월 간첩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1990년 2월 가석방 출소한 비전향 장기수 출신이라고 공안 당국 관계자는 전했다. 공안 당국은 이씨 등이 GPS 전파 교란장치 등의 군사기술을 실제 북한에 넘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하고 있다. 북한 측은 이와 관련, 부인했지만 공안 당국은 지난달 말부터 16일동안 우리 측 영공과 해상에 시도한 GPS 전파교란 공격과의 관련성을 조사 중이다. 공안 당국은 또 이들이 탄도미사일 위치추적 안테나(NSI 4.0)와 고공 관측 레이더 기술 등을 추가로 확보해 북한에 빼돌렸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지난 25일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 이번 사건을 송치했으며, 검찰은 이씨 외에 또 다른 관련 업체가 기술을 유출한 정황을 포착, 수사를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주중 北대사 “中어선 나포 모른다”

    주중 북한 대사관이 중국 선박 3척과 선원 29명이 북한에 억류돼 거액의 몸값을 요구받고 있는 것과 관련, ‘우리도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해 중국을 당황케 하고 있다. 주중 북한 대사관 측은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계열 환구시보와의 통화에서 “우리도 이번 사건을 중국 인터넷을 통해 접했으며 잘 알지 못한다.”고 확인했다고 이 신문이 18일 보도했다. 이는 전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이번 사안을 단순한 ‘어업 사건’으로 규정한 뒤 “관련 채널을 통해 북측과 긴밀한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힌 것과 배치된다. 그럼에도 중국은 이번 사건으로 북·중 관계가 악화될 것을 우려해 차분한 대응으로 일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북한에 비우호적인 장롄구이 중앙당교 교수는 “중국 외교부가 북·중 관계의 대국(大局)을 고려해 평화 협상과 물밑 교섭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것은 신중하게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피닉스TV가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중국 단둥(丹東) 지역의 조직폭력배와 일부 북한 군인들의 공동 소행이란 설도 나온다. 독자 외화벌이 차원에서 일부 군인들이 저지른 돌발 행동이어서 북측도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배를 납치당한 선주 쑨차이후이(孫財輝)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원들이 납치되기 전 무선에 ‘북 군함이 다가와 총을 겨눴다’는 말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법제만보도 목격자의 말을 인용해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북 군함에 중국어로 말하고 사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편 이들을 억류 중인 납치범들은 당초 석방 조건으로 몸값 120만 위안(약 2억 2000만원)을 요구했다가 90만 위안으로 낮췄으며 제시했던 입금 기일인 17일이 지난 이날 다시 270만 위안으로 올렸다고 피닉스TV가 보도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크고 시원하게 그린 우리 민족의 신바람

    크고 시원하게 그린 우리 민족의 신바람

    “이렇게 그리기 시작한 지 한 4~5년 됐을 겁니다. 주변의 젊은 친구들에게 보여주니 아주 좋다고 그래요. 저로서는 더 좋지요. 허허허.” 이태길(71) 작가는 오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작가의 작품 주제는 ‘축제’다. 다 함께 어울려 몸짓을 풀어내는 장면을 담았다. 1990년대에 만주와 압록강을 더듬어본 것이 계기가 됐다. “1990년 초부터였을 거예요. 중국 창바이현에서 단둥을 거쳐 만주와 압록강변을 따라 고구려와 발해 문화를 탐방한 적이 있어요. 한 열 번은 다녀온 것 같아요. 그때 고구려벽화를 통해서 우리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를 알 수 있었지요.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다가 ‘축제’를 화두로 잡은 겁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동작은 강강술래와 농악의 군무를 닮아 있다. 우리 민족의 신명을, 신바람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주로 대작으로 시원하게 그려냈다. 전통적이고 민족적이다. 그런데 최근 작에서는 작품 경향상의 변화가 눈에 띈다. 예전에는 뚜렷한 구상의 느낌이 강했다면 최근 작들은 조금 더 추상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물은 추상에 가까울 정도로 간략해지고 동작도 단순해지는 대신 등장하는 숫자는 무척 많이 늘었다. 추상성으로 극대화한 작품의 경우에는 사람이 아니라 문자들이 춤추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둥그렇게 모여 춤을 추던 구도 역시 유지되고는 있지만 많이 흐트러졌다. 작가는 “우리 겨레가 겪어온 고통과 고독, 갈등과 좌절을 이런 작품들을 통해 씻겨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02)720-5114.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북·중 체육교류 다시 문 열렸다

    지난 2일 오후 중국 런민(人民)대학교 실내 체육관인 스지관(世紀館)은 북한과 중국의 여자배구 친선 경기를 응원하는 수천 관중의 함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지난 2010년 6월 이후 2년 만에 다시 베이징을 찾은 평양여자배구단은 머리 하나가 더 크고 체격도 좋은 중국 선수들에 맞서 선전했으나 3대1로 패했다. ●장웅 IOC위원, 평양女배구단과 방중 김정은 체제 이후 북한과 중국 사이의 체육 교류가 재개됐다. 김정일 사후 3개월만에 북한 체육성 제1부상인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겸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는 처음으로 북한 여자배구선수단과 함께 베이징을 방문, 양국 간 체육 친선 교류를 재가동했다. 북한의 평양여자배구단은 베이징시와 체육 교류 합의에 따라 이날 오후 런민대에서 칭화(淸華)대 등 3개 대학 선수들로 구성된 베이징시대학연합여자배구단과 친선 경기를 가졌다. 19인으로 구성된 평양여자배구단은 14~22세로 이뤄진 프로팀으로 지난달 28일 단둥(丹東)을 경유해 베이징에 도착했다. 오는 20일까지 중국에 머물며 다른 지역 선수들과 친선 경기를 갖는다. 장 부상은 평양외국어대학 출신으로 대외적으로 스포츠 외교를 책임지고 있는 국제통이다. 오스트리아를 거쳐 베이징으로 들어온 장 부상은 런민대 천위루(陳雨露) 총장(차관급)과 면담한 뒤 선수들을 격려하고 경기 시작 전날인 지난 1일 베이징을 떠났다. ●20일까지 경기… 레슬링팀도 방중 계획 북한과 중국은 거의 매년 종목별로 돌아가며 친선 경기를 갖지만 김정은 체제 이후 양국 간 체육 교류는 이번 여자배구 경기가 처음이다. 양국 간 체육 친선 교류가 재개됨에 따라 조만간 북한의 레슬링팀도 중국을 찾을 계획이다. 체육단 총책임자인 리만정 단장은 “이번 친선 경기는 그동안 해 왔던 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수준으로 특별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애써 이번 방중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주변의 시선을 경계했다. 리 단장은 “현재 배구단의 최대 목표는 오는 4월15일로 예정된 태양절(김일성 생일) 100주년 기념식에 맞춰 열리는 전국체육축전”이라고 말했다. 태양절 100주년에는 전국체육축전뿐 아니라 전국예술축전, 전국상품전시회 등 각종 행사가 동시다발로 열린다고 덧붙였다. 이 단장은 1990년 남북통일축구 당시 대표선수 자격으로, 2006년 부산아시안게임 때에는 북한 축구대표팀의 총감독으로 한국을 다녀간 바 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남북합작 축구화 나왔다

    남북합작 축구화 나왔다

    남한의 기술과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해 중국 단둥(丹東)에서 생산된 축구화가 오는 11일 인천에서 처음으로 선보인다. 2일 인천시와 시민프로축구단 인천유나이티드에 따르면 11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 개막경기 때 경기장 입구에 판매부스를 마련, 단둥 남북협력 축구화 공장에서 만들어진 ‘아리스포츠 축구화’ 1000켤레를 판매할 예정이다. 인천유나이티드는 지난해 11월 중국 단둥에 한·중 합작법인인 윈난시광(雲南西光) 무역유한공사를 설립, 25명의 북한 근로자를 채용해 수제 축구화를 생산해 왔다. 인천유나이티드는 이 공장에 자본금의 73%인 5억원을 지분투자했다. 축구화 판매가격은 시중 수제 축구화 가격의 절반 수준인 13만원(이니셜 넣으면 18만원)이다. 추가로 나올 보급형 축구화는 6만∼7만원 선인데, 판매가 본격화되는 이달 중순부터 인천유나이티드에서 단체주문 형식으로 판매한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얼룩진 승부의 세계] 해외 승부조작 스캔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프로스포츠를 즐기는 미국이지만 지난 수십년간 승부 조작 스캔들이 터진 적은 없다. 승부 조작 사건을 엄벌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1920년 9월 화이트삭스의 스타플레이어 조 잭슨을 비롯해 8명의 선수가 도박사들로부터 각각 당시 돈으로 10만 달러를 받고 고의로 져주었다는 혐의로 기소됐고 그들에게는 화이트삭스가 아닌 ‘블랙삭스’라는 오명이 붙었다. 이들 8명은 메이저리그(MLB)에서 제명됐고, 야구계에서 영원히 추방됐다. 1989년 MLB 사상 최다 안타 보유자인 피트 로즈가 자신이 감독을 맡고 있는 신시내티 레즈의 경기를 놓고 도박을 한 사건도 있었다. 재판 결과 그는 승부조작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도박을 걸었다는 이유만으로 야구계에서 영구 추방됐고 명예의 전당에도 오르지 못했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국기인 스모에서 승부 조작 사건이 터져 홍역을 치렀다. 선수와 사범 25명이 돈을 받고 일부러 경기에 져주는 ‘야오초’ 사건에 연루돼 스모계에서 강제 퇴출됐다. 지난해 봄철과 여름철 경기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3년 만에 연속 중단됐다. 스모를 단독 중계해 왔던 NHK도 방송을 중지해 스모협회는 중계권 수입 8억엔 등 30억엔(약 426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프로야구에서도 1960년대 말 야쿠자와 연관된 선수들이 승부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 퇴출됐다. 중국 내 축구 승부 조작 사건은 비일비재하다.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의 중급인민법원은 지난 15일 중국 최초의 월드컵 심판인 루쥔(陸俊)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하는 등 뇌물 수수로 기소된 축구 심판 4명에게 3년 6개월 이상의 중형을 선고했다. 도쿄 이종락·워싱턴 김상연·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rlee@seoul.co.kr
  • 中단둥 ‘방북 관광’ 재개

    북한 신의주 접경 지역인 중국 단둥(丹東)에서 출발하는 북한관광이 지난달 초부터 재개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단둥중국국제여행사 측은 3일 “지난달 10일부터 단둥에서 북한 평양이나 신의주로 가는 관광이 재개됐다.”고 밝혔다. 조선족 매체 인터넷 요녕신문(遼寧新聞)도 이날 “북한 관광을 취급하는 단둥국제여행사가 지난달 26일 3박 4일 일정의 북한 관광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북한 관광을 재개했다.”고 보도했다. 단둥에서 북한 관광이 재개된 것은 지난해 12월 1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서 애도 기간이 정해져 대북 관광이 끊긴 지 한 달 만이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김정일 대역배우’ 김영식씨 “김정일 따라 나도 지는 줄 알았는데… 더 떴습네다”

    ‘김정일 대역배우’ 김영식씨 “김정일 따라 나도 지는 줄 알았는데… 더 떴습네다”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과 닮게 태어나 별난 인생길을 걷는 경우가 있다. 특히 유명 인사와 닮은꼴은 더욱 그렇다. 2008년 11월 4일, 하루 종일 초조하게 TV를 지켜보던 그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가 결정되는 순간 거리로 뛰쳐나갔다. 공원에 몰려 있는 군중을 향해 스피커를 잡았다. 그를 본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오바마! 오바마! 오바마!’ 하지만 그의 이름은 대역배우 레지 브라운(30)이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서 그의 삶도 바뀌기 시작했다. 각종 행사 출연과 광고모델 섭외가 이어졌다. 말 그대로 ‘인생역전’이었다. 지난 15일 영국 BBC 방송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가장 슬퍼한 사람은 그와 똑같은 외모로 화제가 됐던 한국의 대역배우 김영식(61)씨’라고 보도했다. 방송은 또 ‘김 위원장의 사망 당시 인민군 병사들이 슬픔을 이기지 못해 주저앉고 일부 여성들은 실신하기까지 했지만 누구도 김씨의 슬픔에 미치지 못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접했을 때 마치 나 자신의 일부가 죽은 것처럼 엄청난 공허감을 느꼈다.’는 김씨의 소감을 덧붙여 눈길을 끌었다. 그럴 것이 김씨는 툭 튀어나온 배와 군턱의 얼굴, 큰 안경 등 김 위원장을 쏙 빼닮은 외모 때문에 영화와 CF 등에서 김 위원장의 대역을 맡으면서 부수입을 올렸기 때문이다. ●해외 언론 “김씨, 김정일 사망에 엄청난 공허감” 사실 김씨는 국내보다 해외 언론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06년 6월 27일 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3면 머리기사에 김씨에 대한 얘기를 실었다. ‘서울에서 인쇄업을 하는 김씨는 자신의 옷장에서 김정일의 상징인 옅은 보라색 안경과 쑥색 정장, 검은 색 단화를 따로 보관할 정도로 김정일과 유사한 자신의 외모를 당당하게 여긴다.’는 내용과 함께 ‘김정일과 닮은꼴로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 다음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감사한다.’고 전했다. 이는 김 전 대통령이 2000년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한 이후 김씨가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2006년 11월 15일 로이터 TV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을 감행하면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닮은 사람이 한국 언론의 관심을 끌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화제의 주인공은 56살 김영식씨로 김정일을 닮은 외모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김정일 역을 맡아 출연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방송은 또 ‘김씨는 친구들 사이에서 친애하는 지도자로 불리고 있으며 김정일을 닮기 위해 몸무게를 더 늘리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 밖에도 김씨는 독일 공영방송 ARD(2007년 3월 22일) 등을 비롯해 호주 ABC, 미국 CNN과 뉴욕타임스, 일본 니혼 TV와 후지 TV, 알자지라 잉글리시 TV 등에서 소개됐다. 특히 김씨는 2005년 중동지역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를 닮은 사람과 함께 초콜릿 광고에 출연하면서 아랍권에까지 이름을 알렸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그의 인기는 어느 정도일까. 1995년 김씨는 한 일간지에 난 광고를 보고 오디션에 응모해 120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김진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김정일 역을 맡으면서 영화배우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그는 KBS와 MBC, SBS 등 방송3사의 교양프로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렸다. 지금은 영화배우협회 자문위원과 국방부 홍보영화위원장 등의 직함으로 김정일 위원장 역에 단골로 출연해 오고 있다. 다음 달에는 첫 음반을 내면서 본격적인 가수활동까지 할 예정이다. ●가게 들어서니 인민복 차림에 ‘김정일 제스처’ 지난 17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위치한 문구점(상폐 및 판촉물 제작)에서 김씨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30년째 점포를 운영해 오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김씨는 김 위원장이 즐겨 입던 쑥색 인민복 차림에다 특유의 김정일식 박수를 치며 “내레 김정일 위원장입네다.”라고 웃으면서 반갑게 맞이했다. 먼저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어떻게 달라졌느냐고 묻자 “여기저기서 우려의 전화가 많이 걸려 온다.”면서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을 접하면서 꼭 제 자신이 죽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대역 부업이 물거품이 될까 봐 걱정”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대역은 죽은 다음에 더 유명해지는 것 아니냐고 위로의 말을 건넸더니 역시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로이터에서 취재했던 기자한테 전화가 왔는데 ‘(실제 주인공이)죽어야 뜬다.’고 합디다. 또 영국 BBC 방송에서는 그렇게 보도하더군요. 유명인사 대역을 전문 조달하는 업체의 운영자 프란체스크 맥더프 밸리의 말을 빌려 ‘정치인 대역은 실제 인물이 죽은 뒤 그를 조명하는 역사물로 인해 역할이 많아진다’며 예를 들어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이 사망했을 때 그를 닮은 대역들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다고 말입네다. 실제로 해외 연예계에서는 슈퍼스타들이 사망한 후 대역들이 더 많은 일거리를 얻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죠. 마이클 잭슨이나 이소룡 대역이라든가 뭐…. 이번 달만 하더라도 생방송에 세 번 출연했습네다.” 곱슬머리에다 검은 선글라스의 표정이 인상적일 만큼 김 위원장을 쏙 빼닮았다. 파마한 머리냐고 물었더니 “원래부터 곱슬머리였지만 김 위원장 머리 스타일로 3개월에 한 번씩 파마를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또 김 위원장이 즐겨 입는 옷은 세 벌 정도 있는데 소공동 양복점에서 30만원씩 주고 맞춘 특수복이라고 설명했다. 고(故) 앙드레 김한테 옷을 맞추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쉽다는 얘기도 곁들인다. 이어 “선글라스와 금테 안경이 다섯 개, 키높이 검정 구두만 4켤레 있고 가장 신경쓰는 것은 헤어스타일”이라면서 “주민들이 김 위원장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살 좀 빼라는 얘길 가끔 해 그럴 때마다 헬스도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中 단둥서 전화와 “TV에 너무 멋있게 나왔다” 김 위원장과 빼닮아 생긴 에피소드도 많다. 김씨는 최근 중국 단둥에서 걸려 온 전화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여보시라요, 거기 거북사(문구점 이름) 김영식 맞습네까.” “네, 어디시라요?” “여기 신의주 옆에 있는 단둥입네다. TV에 너무 멋있게 나와서 전화했습니데다. 중국 인터넷에 난리가 났습네다.” 김씨는 이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혹시 저쪽 편(북한 당국)에서 걸려온 전화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본능적으로 하게 된다.”면서 “이젠 자신의 이름이 국제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어서 그다지 걱정은 안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일화 한 토막. “노인들을 위한 행사장이었습네다. 어떤 할아버지가 다가와 ‘북으로 가실 거죠. 우리 이제 통일 좀 시켜 주세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북에서 진짜 내려온 줄 알고 자기집 식당으로 모시겠다고 하더군요. 장소가 북방한계선(NLL) 인근 지역이었는데 북쪽을 향해 손짓을 해서 그런지 더욱 김 위원장으로 믿었던 것 같습네다(웃음).” 2008년 5월22일부터 2박3일 금강산 일정도 기억해 낸다. 가는 길에 남한의 안내원들은 북한 사람들에게는 명함을 주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북한에서는 일반인이 김정일 위원장과 닮았다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실제 김씨를 처음 본 북한사람들은 김정일 위원장과 닮은 것을 인정하면서도 “감히 위대하신 장군님과 비교하다니 무례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해 난처했던 경험이 있다. 김씨는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다. 25세 되던 해 결혼과 동시에 서울로 올라와 장위3동에서 살았다. 동갑내기 아내와 슬하에 1남2녀를 둔 김씨는 상패·판촉물 및 명함·도장 전문점인 ‘거북사’를 운영하면서 소박한 가정을 이뤘다. ‘짝퉁 김정일’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은 1990년 초.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거울을 보면서 김 위원장을 생각했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김정일 역할을 할 사람을 찾는다는 신문 광고를 보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k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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