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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張라인’ 사업 올스톱… 무역일꾼·주재원 불시검열 등 공포 확산

    ‘張라인’ 사업 올스톱… 무역일꾼·주재원 불시검열 등 공포 확산

    “요즘 단둥(丹東) 일대 (남한 방송을 볼 수 있는) 위성TV까지 모두 철거됐어요.” 북한의 ‘장성택 처형 사건’ 이후 북한 정세 불안이 확대되면서 중국의 북한 접경 지역인 단둥에도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소위 ‘장성택 라인’과 거래하던 사업이 전면 중단된 가운데 북한 무역 일꾼과 주재원들을 상대로 한 감시 등 경계 활동이 대폭 강화되면서 공포감마저 엄습하고 있다. 장성택 라인을 통해 철광석·석탄·수산업 분야 등에 투자했던 중국 기업들은 북측의 태도 변화로 사업이 ‘올스톱’ 상태에 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단둥에서 만난 한 중국인 사업가는 29일 “광산 개발 계약을 하고 자금은 물론 관련 장비까지 보내 놨는데 공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북한의 불가측성에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대북 사업가는 “장성택 처형 직후 북한과 거래하던 중국 회사들이 북에서 나온 사람들로부터 일제히 사찰을 당했다”고 말했다. 장성택 계열로 알려진 승리무역 소속 인력은 전원 북으로 소환된 것으로 전해졌다. 승리무역은 그동안 석탄 수출을 통해 국가가 급하게 필요로 하는 자금을 마련해 왔는데 현재 북한 당국이 해당 기업을 정비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장성택을 처형하면서 죄목에 “나라의 귀중한 자원인 석탄을 헐값으로 팔아버리는 매국 행위를 했다”고 적시한 바 있다. 한국 공산품을 북으로 들여가던 무역도 움츠러들었다. 단둥은 북·중 교역의 70% 이상이 이뤄지는 무역 중심지다. 10년 넘게 북 무역 일꾼을 상대로 생활용품을 팔아온 O상사 박모 사장은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보위부 사람들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북한 무역상들을 상대로 한 매출이 30% 이상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평상시엔 김치냉장고까지 가져가는 등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지만 분위기가 나쁠 땐 북 무역상들이 한국 제품을 가져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장성택 처형 이후 보위부의 감시가 강화되면서 단둥에 있는 북 무역 일꾼들과 주재원들은 극도로 몸을 사리고 있다. 한 교민은 “장성택 처형 이후 단둥에 증파된 보위부원이 일꾼 및 주재원 집에 불시에 들이닥쳐 검열하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남한 TV를 시청할 수 있는 안테나를 모두 철거했다”고 전했다. ‘사상교육’과 ‘호상(상호)감시’도 강화됐다. 그는 “지난 17일 김정일 사망 2주기를 전후로 북으로 불려 들어간 사람 중에는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야근 순찰과 경계를 대폭 강화했다고 중국 환구시보가 지난 28일 보도했다. 신문은 예년에 비해 야근 순찰 병력이 늘었고 국경 초소 안에 최소한 2명의 병사가 배치됐으며 10m 간격으로 순찰을 담당하는 병력도 생겼다고 전했다. 단둥의 한 교민은 “탈북자 검거조가 파견됐다는 소문도 파다하다”고 전했다. 중국군도 이 일대의 군사훈련을 강화했다. 앞서 관영 신화통신은 단둥에 주둔한 중국군이 지난 24일부터 군사 훈련에 돌입했다고 전했다. 반면 북·중 간 무역교류는 여전히 활발하다는 평이다. 현지 한 무역상은 “단둥~신의주를 잇는 압록강대교를 지나는 트럭들의 행렬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면서 “연초 김정은 생일(1월 8일), 김정일 생일(2월 16일), 김일성 생일(4월 15일) 등이 몰려 있어 앞으로도 생필품들이 계속 북한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세관의 통관 절차도 이전과 차이가 없다는 전언이다. 한 사업가는 “목록에 없는 물품을 수송차량 앞자리 등에 끼워 넣어도 중국 측 세관원들이 여전히 봐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편 북·중 경협을 상징하는 황금평 일대는 공장을 짓기 위한 기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발표와 달리 공사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중국 측 경계요원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북한군 초소에는 북한 군인 1명만 나와 있었다. 북한은 2011년 장성택 주도로 중국 측에 황금평 개발을 요구한 바 있다. 현지 한 교민은 “황금평 개발을 주도하던 장성택이 처형됐는데 공사가 제대로 이뤄지겠느냐”면서 “애초부터 황금평에 별 의욕이 없던 중국 입장에서는 오히려 잘 된 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단둥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주중 北 무역 일꾼 대거 귀국… 지재룡 대사는 정상 활동 중

    북한 장성택 처형 사건 전후로 중국과의 무역 거래 및 투자 유치를 위해 중국에 파견된 북한의 ‘무역 일꾼’들이 줄줄이 본국에 소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성택이 그동안 중국과의 경제협력에서 무역 및 투자 유치 사업에 관여해 왔다는 점에서 이른바 ‘장성택 라인’ 숙청 활동이 본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북·중 접경 지역의 한 대북 소식통은 15일 “선양(瀋陽), 단둥(丹東) 등지에서 활동하던 북한 무역 일꾼 상당수가 이번 주부터 급히 귀국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이른바 ‘장성택 라인’으로 분류되는 지재룡 주중 북한 대사는 베이징에서 정상적으로 활동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2주기를 앞두고 지난 12~13일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차례로 열린 영화 감상회와 재중 항일 혁명 투사들의 회고 모임에 지 대사가 대사관 관계자들과 함께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쪽에서는 지 대사의 건재를 북한의 북·중 관계 중시 신호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한편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생일에 맞춰 내년 1월 8일 북한에서 열리는 미국과 북한의 농구 경기 관람 상품이 약 100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베이징에 있는 북한 전문 여행사인 고려여행사가 경기 관람 티켓 12장을 판매하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北, 억류 국민 신원확인 통지문접수 거부

    北, 억류 국민 신원확인 통지문접수 거부

    정부가 북한이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주장한 우리 국민의 석방을 위해 정면돌파에 나섰다. 그 동안 정부는 통일부 대변인 정례브리핑 등을 통해 우리 국민의 신원 확인을 북한에 간접적으로 요구해왔으나 지난 22일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기점으로 전략을 바꿔 25일부터 대북통지문을 통한 공식 입장 전달을 시도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26일 “어제에 이어 오늘(26일) 대한적십자사 총재 명의의 대북통지문을 북한 적십자회로 발송하려 했으나 북측이 접수하지 않고 있다”면서 “북한이 계속 통지문 수령을 거부한다면 국제기구를 통한 신원확인 압박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북한 통일전선부 등 대남 사업부서가 통지문 수령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북통지문에는 “북측이 여러 차례에 걸친 우리측의 신원 확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답변을 주지 않고 있는 것은 인도주의에 정면 반하는 처사이자, 우리 국민에 대한 강제적인 억류로밖에 볼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 당국자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억류된 국민의 신원을 확인하고 궁극적으로 송환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게 정부의 의지”라고 밝혔다. 북한이 체포한 우리 국민은 중국 단둥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김정욱(50)씨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부는 북한이 신원확인을 해줄 때까지 자체적으로 파악한 정보사항을 대외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한편 북한은 이날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산하 통행·통신·통관(3통)분과위원회를 29일 개최하자는 우리 정부의 제의에 동의해왔다. 남북이 3통 분과위 개최에 합의함에 따라 연내 개성공단 제도개선의 핵심 문제인 3통 문제 해결이 가능할지 주목된다. 3통을 제외한 출입체류, 국제경쟁력, 투자보호·관리운영 등 3개 분과위 회의는 지난 13~14일 개최됐지만, 3통 분과위는 북한이 보류해 지난 9월 13일 이후 한 번도 열리지 못했다. 정부는 북한이 적극 협조할 경우 연내를 목표로 전자출입체계(RFID)와 인터넷 설비를 개성공단에 설치하기 위해 실무적 준비를 진행 중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정부, 北에 ‘억류 우리 국민’ 신원확인 요구

    정부는 북한이 “남쪽 정보원 ‘첩자’를 체포해 조사 중”이라고 주장한 것과 관련, 11일 북한 측에 구체적인 신원 확인을 요구했다. 김의도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관계기관은 사실무근,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이미 밝힌 바 있다”면서도 “다만 북한이 우리 국민을 체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만큼 구체적 신원사항을 확인해 줄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억류 중인 우리 측 인사의 신원과 관련, 일각에서는 중국 단둥(丹東) 일대에서 선교활동을 해온 ‘50대 김모 목사’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탈북난민인권협회 김용화 회장은 “김 목사가 평양의 지하 교인들을 만나겠다며 지난 9월 22일 여행객으로 위장해 북한에 들어간 뒤 연락이 두절됐다”고 밝혔다. 정부는 관련 사실을 확인 중이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단서를 잡지는 못했다. 북한은 이날도 노동신문을 통해 “남한 당국이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유도하고 지원하는 ‘반공화국 모략 소동’을 일으키고 있다”며 “주모자, 공범자들을 모조리 엄벌에 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대해 김 대변인은 “우리 국민들에 대해 물리적 위해 운운하는 위협적 언동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WCC 총회 ‘평화열차’ 북한 통과 사실상 무산

     오는 30일 부산에서 개막될 세계교회협의회(WCC) 제10차 총회의 핵심 이벤트로 관심을 모았던 ‘평화열차’의 북한 관통이 사실상 무산됐다. 따라서 ‘평화열차’는 독일 베를린을 출발해 러시아 모스크바∼이르쿠츠크∼중국 베이징∼단둥 구간까지만 운행하고 참석자들이 배편으로 인천을 거쳐 서울∼부산 구간을 이어 갈 전망이다.  3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에 따르면 지난달 22∼25일 올라브 퓍세 트베이트 총무를 비롯한 WCC 본부 관계자들이 방북해 북한 당국 및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 핵심 인사들과 WCC 평화열차의 북한 통과 문제를 협의했으나 허가를 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WCC 한국준비위는 8일 일단 평화열차를 출발시키기로 결정했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한국 관계자 60명을 포함한 세계 각국 기독교 관계자 120명을 태운 열차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해 28일 부산에 도착한다.  당초 평화열차는 베이징을 거쳐 북한 접경도시 단둥까지 간 뒤 압록강철교를 건너 북한 땅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평양, 개성, 서울을 거쳐 부산까지 달림으로써 분단 이후 처음으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관통해 세계 각국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한다는 게 이번 WCC 10차 총회에 앞서 추진해 온 평화열차의 목표였다. WCC와 WCC 한국준비위는 그동안 각국을 돌며 평화열차 홍보와 지원 요청을 계속해 왔으며 미국, 러시아, 중국 당국과 교회 측으로부터 적극적인 동참과 협조를 약속받았다.  이와 관련해 NCCK 관계자는 “오는 14∼15일 WCC 관계자들이 북한 조그련 측과 다시 만나 평화열차의 평양 통과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경색된 남북 관계를 볼 때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평화열차의 아름다운 여정이 미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한편 WCC 방북단은 지난달 평양 방문 직후 스위스 제네바에서 WCC 한국준비위 관계자들에게 방북 결과를 보고하면서 “북한 조그련 관계자들이 WCC 부산 총회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며 “특히 내년 3월 제네바에서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주요 국가들이 중심이 돼 열리는 아시아평화포럼에 북한이 회원국으로 참여키로 약속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시론] 완공 임박한 신압록강대교와 북중 경협의 미래/임을출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시론] 완공 임박한 신압록강대교와 북중 경협의 미래/임을출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북한 신의주 건너편에 자리잡은 중국의 단둥(丹東)시는 작은 어촌 마을이었으나 20세기 초입에 일찌감치 개항돼 일본 제국주의의 대륙 진출 관문으로서 빠르게 발전하였다. 그렇지만 남북 분단과 냉전의 지속은 단둥을 고립된 변경도시, 나아가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남게 만들었고, 이에 따라 단둥은 개혁·개방의 단물을 가장 늦게 맛보아야 했다. 상대적으로 개발이 늦었지만 단둥은 이제 더 이상 변방의 소도시가 아니다. 중국 동북 지방의 물류 및 산업도시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단둥은 지경학적으로 남북한과 소통하고 협력하지 않으면 발전의 한계가 있는 것도 현실이다. 궁극적으로 남북한과 육로와 철로 등으로 통해야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둥의 향후 발전은 북한의 개방 속도와 폭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둥 기업들은 광물자원이나 농수산물 수입처로서만 북한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각종 중국산 제품의 판매 시장으로서도 주목하고 있다. 최근 개막한 제9차 평양 가을철 국제상품전람회에 단둥을 포함한 랴오닝(遼寧)성 내 중국 기업들이 대거 참석한 점 등이 이를 부분적으로 입증한다. 중국 자동차 비야디(BYD)를 판매하는 ‘단둥유룡수출입유한공사’ 관계자는 “최근 평양 시민의 차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가 유심히 볼 대목은 지금 북·중 간에 한창 추진 중인 신압록강대교 건설과 황금평경제특구 개발 움직임이다. 특히 현지에서 바라본 신압록강대교의 건설 모습은 향후 북·중 경협의 빠른 확대발전 가능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올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이 경제 제재에 동참하면서 일시적으로 북·중 간 미묘한 긴장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나, 적어도 신압록강대교 건설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은 듯했다. 또한 현지 교역상들과의 인터뷰에 근거하면 북·중교역 규모도 예년 수준은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교역 거점인 평안북도 신의주 남부와 랴오닝성 단둥 랑터우(頭) 신도시를 연결하는 신압록강대교 건설 작업은 현재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이미 완공된 대교 주탑의 높이는 140여m에 이르고, 현재 일부 단절된 구간만 상판을 조립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신압록강대교는 18억 위안(약 3300억원)의 건설비용 전액을 중국이 부담해 기존 압록강 철교에서 8㎞ 정도 하류 지점에 건설되고 있다. 이 대교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황금평경제특구도 일부 언론을 통해 중국이 대북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 물론 기존 논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 가고 있었고, 대규모 건설 장비 등이 이동되는 장면이 포착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개발이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황금평 입구에 ‘황금평경제구’라는 표지석을 비롯해 세관과 보안시설·관리실이 세워졌고, 순찰용 도로가 건설되었으며, 일부 전력망의 설치도 이뤄진 듯하다. 비핵화가 진전되지 않고,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가 여전한 상황에서 중국만이 홀로 ‘속도위반’을 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목격한 북·중 접경도시 단둥의 눈부신 발전과 더불어 마치 무언가를 집어삼킬 듯이 북한을 향해 뻗친 신압록강대교의 위압적인 자태는 향후 북한의 개혁·개방 진전 등 적절한 조건만 충족되면 북·중 간에 획기적인 물적, 인적 왕래가 이뤄질 수 있음을 전망케 한다. 총연장 3.026㎞의 신압록강대교는 내년 7~9월쯤 완공될 예정이다.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을 자신들의 한 성(省)으로 편입시키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단둥 기업인의 목소리가 ‘비약’에 머물길 바라면서도 눈앞에 펼쳐진 지지부진한 남북관계와 북·중 경협에 대한 우리의 전략 부재가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 김정은 발언집 중국서 출간

    중국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담화(談話·발언)가 책으로 출간됐다. 10일 관영 통신사인 중국신문사 등에 따르면 출판사 단둥(丹東)룽산(龍山)인쇄창은 김 제1위원장의 담화인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의 요구에 맞게 국토관리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가져오자’를 단행본 형태로 번역, 출간했다. 북한에서 ‘노작’(作)으로 불리는 이 담화는 김 제1위원장이 지난해 4월 당, 국가경제기관, 근로단체 책임 일꾼들을 모아 놓고 발표한 것으로 평양시를 화려하고 웅장한 세계적인 도시로 꾸미는 등 국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나가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국에서 김 제1위원장의 저작이 번역 출간된 것은 처음이다. 이 책은 극히 소량만 인쇄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중국의 일반적인 온·오프라인 서점에서는 구입할 수 없다. 중국 언론들은 전에도 김 제1위원장의 책 출간 소식을 보도한 바 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당신의 책]

    사상이 필요하다:다른 세상을 꿈꾸는 정치적 기본기(김세균 외 8인 지음, 글항아리 펴냄) 지난 2월 정년 퇴임한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명예교수가 정치적 교우들을 초청해 함께 기획했던 마지막 학부 강의인 ‘정치와 정치이념’의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강내희, 손호철, 심광현, 조희연, 우희종, 이도흠, 하승수, 홍세화가 참여했다. 336쪽. 1만 5000원. 국제법과 함께 읽는 독도현대사(정재민 지음, 나남 펴냄) 외교부 독도법률자문관으로 활동한 정재민 판사가 계속되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억지 주장을 국제법을 토대로 거시적인 관점에서 분석했다. 220쪽. 1만 2000원. 일본의 조선학교(김지연 사진, 눈빛 펴냄) 3·11 일본 대지진 후 도호쿠와 후쿠시마의 조선학교 모습을 담은 사진집. 일본 내에서 정규학교로 인정받지 못한 탓에 보수 비용을 지원받지 못하고 기숙사를 임시 교실로 꾸려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학교 풍경이 130여장의 사진에 담겼다. 280쪽. 1만 7000원. 국경을 걷다(황재옥 지음, 서해문집 펴냄) 북한 전문가인 저자가 전직 통일부 장관 등 4명의 지인과 함께 압록강 하구 단둥에서 두만강 하구 팡촨까지 1376.5㎞를 답사한 8박 9일간의 기록. 북한의 민낯과 빠르게 변화하는 북한과 중국의 교류 현황, 국경선 주변 주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르포 형식으로 풀어썼다. 256쪽. 1만 5000원. 선택(미하일 고르바초프 지음, 이기동 옮김, 프리뷰 펴냄) 동서냉전 체제를 종식시켰다는 찬사와 소련의 해체를 초래한 배신자라는 극단의 평가를 받고 있는 전 소련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자서전. 정치인으로서의 회고록이기 이전에 부인 라이사와의 만남과 사랑, 가족에 대한 헌신을 고백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440쪽. 2만 1000원. 겟 리얼(일레인 글레이저 지음, 최봉실 옮김, 마티 펴냄) BBC에서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하는 저자가 기득권층의 이데올로기 조작 과정을 폭로한 책. 환경을 고민하는 척하는 다국적 석유기업, 정해진 대본에 따라 녹화·편집되는 리얼리티쇼, 은밀하게 가짜 시민운동을 조직하는 억만장자 등의 예를 살펴본다. 304쪽. 1만 6000원. 파는 것이 인간이다(다니엘 핑크 지음, 김명철 옮김, 청림 펴냄) ‘새로운 미래가 온다’ ‘드라이브’를 쓴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는 “지금은 누구나 세일즈하는 시대이며, 광의의 판매 활동이 생존과 개인적 행복을 가름하는 중요한 가치”라고 주장한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세일즈를 어떻게 인지하고 활용할지에 대한 제언을 담고 있다. 312쪽. 1만 6000원. 일상을 바꾼 발명품의 매혹적인 이야기(위르겐 브뤼크 지음, 이미옥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일상에서 흔히 쓰는 물건들에 얽힌 뒷이야기를 모았다. 노트북, 현금자동지급기, 미끄럼틀, 종이컵, 껌, 비누, 토스터 등 다양한 물건의 탄생 배경이 간결하게 소개된다. 388쪽. 2만 3000원. 난 방학에 국제활동 다녀왔다(서울시립청소년문화교류센터 엮음, 도어즈 펴냄) 중학생부터 대학생까지 19명의 청춘들이 세계 16개국에서 각양각색의 주제로 펼친 국제활동의 생생한 경험담. 국제활동 희망자들을 위한 전문가의 조언을 부록으로 실어 실용도를 높였다. 264쪽. 1만 3000원. 공부하는 힘(황농문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몰입전문가인 홍농문 서울대 교수가 공부를 어떤 다른 목표를 위한 도구나 수단이 아닌, 그 자체를 통해 행복을 느끼고 자아실현을 이루게 하는 몰입학습법을 소개한다. 288쪽. 1만 4000원. 문명의 교류와 충돌:문명사의 열여섯 장면(성해영 외 지음, 한길사 펴냄) 서울대 인문학 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의 ‘문명공동연구’ 시리즈의 하나로, 이질적인 문명들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만남의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404쪽. 1만 8000원.
  • [정전협정 60년] (7) 한반도 분단을 보는 외국의 시각(상)

    [정전협정 60년] (7) 한반도 분단을 보는 외국의 시각(상)

    ■미국·중국의 입장 美 ‘中 견제 전초기지’ vs 中 ‘대미 완충지대’… 전략적 인식 심화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조야(朝野)를 막론하고 한반도 분단의 조속한 종식과 평화적 통일을 바란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연방하원의 여야 의원들이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한반도 평화·통일 기원 결의안’을 발의한 것이 단적인 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한반도 통일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국익에 부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통일 한국’은 친미적이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통일 한국’이 친(親)중국 성향으로 기울 것이란 우려가 제기될 경우 한반도 통일에 대한 미국의 자세는 소극적으로 변할 개연성이 크다. 현실주의 이론의 대가인 미국 시카고대학의 존 미어셰이머 교수는 2011년 한 세미나에서 “그동안 급속한 국력 신장을 이룬 중국이 향후 수십년간 더욱 힘을 키워 미국을 능가할 정도가 된다면 한국은 중국에 편승해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급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는 것을 동아시아 정책의 기조로 설정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에 공을 들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지리적으로 중국에 매우 근접해 있는 한국이야말로 대(對)중국 견제의 전초기지로 삼기에 더할 나위 없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이 틈만 나면 한·미 동맹을 “린치핀”(linchpin·핵심)으로 부르며 중요성을 부여하는 배경에는 이런 계산법이 작용한다. 한반도가 통일되면 북한발 위협이 사라지면서 미국의 한반도 방위 부담이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과거에는 많았지만 최근 중국의 국력이 급신장하면서 이런 전망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한반도 방위 역량을 유지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중국과의 갈등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이 ‘한국전쟁’ 하면 떠올리는 것은 ‘미군의 북한 침략’이다. 중국의 대표 백과사전 격인 사해(辭海)에는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과 관련해 “한국에 내전이 일어나자 미군이 북을 침략하고 나아가 중국 변경인 단둥(丹東)까지 치고 올라온 탓에 중국이 전쟁에 참여해 나라를 지키고 북한을 도와 미국을 물리쳤다”고 미화한다. 중국에서도 김일성의 남침설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다. 화둥(華東)대학 역사학과 선즈화(沈志華) 교수는 러시아 비밀 문서를 토대로 한 연구를 바탕으로 꾸준히 남침설을 제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2010년 환구시보 영문판에서 “스탈린이 1950년 4월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허락했고, 그해 5월 중국 베이징에서 마오쩌둥(毛澤東)으로부터 미군이 개입하면 중국이 돕겠다는 승락을 받았다”며 남침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주류 역사관은 아직도 북침이다. 일부 개혁파 지식인들은 “중국의 참전 결정은 마오가 소련과 밀착해 국내 정권 기반 강화 수단으로 삼기 위해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당국의 인식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참전 결정은 마오가 내린 것이고 마오는 중국의 국부여서 마오에 대한 부정은 곧 중국 공산당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전문가들은 한·중 관계가 어느 때보다 좋지만 당국이 아직은 한국전쟁에 대한 시각은 물론 한반도에 대한 근본적인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역사학자 장리판(章立凡)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핵은 중국에도 위협 요소여서 중국이 북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이고 미국과 협력하면 북한 문제는 바로 해결된다”면서 “다만 이 경우 미군의 도움으로 남한 주도의 통일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중국은 여전히 완충지대로서의 북한을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한반도 분단 해결에는 장애물이 많다”고 내다봤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러시아·일본의 시각 러 “北, 중·러 감정골 이용 땐 분단 상황 지속” 1948년 한반도 분단은 냉전의 산물이었다. 미국과 함께 냉전의 한 축을 이뤘던 소련(현 러시아)은 영토 접경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막을 ‘완충지대’가 필요했다. 홍완석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소장은 “소련은 영토가 크기 때문에 항상 완충지대를 만든다. 유럽의 핀란드, 중앙아시아의 몽골이 대표적이다. 북한도 그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소련은 38선 이북을 동아시아에서 사회주의의 보루로 삼았지만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소련이 갖고 있던 영향력의 우위는 서서히 중국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북한 문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소련은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을 차단하려고 북한 정권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전쟁 즈음만 해도 북한 지도부가 혁명적 이상주의를 어느 정도 유지했기 때문에 러시아의 시각에서 북한의 남침은 침략이 아닌 해방전쟁이었다”며 한국전쟁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설명한다. 그러나 중국이 사회주의 진영에서 러시아의 패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면서 중국과 소련 간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북한이 이를 잘 활용하면서 분단이 계속 이어지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을 끝내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역할이 남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기계형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연구교수는 “러시아는 한국이 통일되는 게 동북아의 안정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통일 한국이 중국과 일본을 견제할 수도 있는 등 한국의 통일이 러시아의 장기적인 이익과도 일치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분단의 ‘당사자’였다면 일본은 ‘수혜자’였다. 분단이 고착화된 결정적 계기 중 하나인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일본을 한국전쟁의 병참기지로 만들고 싶었던 미국의 입장 때문이다. 미국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일본과 서둘러 맺었고, 이를 통해 패전국 일본은 정치적으로 ‘정상 국가화’ 됐다. 김민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일본의 정치인들은 이런 점을 대놓고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요인이 일본에 혜택을 줬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하) 참전 군인들 인터뷰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하) 참전 군인들 인터뷰

    ■윌리엄 웨버 ‘한국전 미군참전용사 기념재단’ 회장 “참전 증인들 사라져가 안타까워” “세월이 흐름에 따라 생존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한국전쟁에 대해 가장 직접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우리가 모두 사라져 버리면 한국전쟁이 미국인의 의식에서 완전히 실종될 것만 같아 걱정입니다.” 인생 거의 전부가 ‘한국전쟁의 역사’인 노병(老兵)은 자신의 사후(死後)에 한국전쟁의 역사가 겪게 될 운명을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었다. 한국전 정전 6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이 만난 윌리엄 웨버(87·예비역 대령) ‘한국전 미군 참전용사 기념재단’ 회장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전 참전용사다. 해마다 6월 25일이 다가오면 그는 언론들의 1순위 인터뷰 대상이 된다.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한쪽 팔과 다리를 잃은 그의 외모 때문만이 아니다. 그 누구보다 한국전쟁을 기억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일에 대한 열성이 그를 특별하게 하고 있다. 그는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기념비 옆에 서 있는 19명의 미군 병사 조각상 가운데 하나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지난 5월에는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웨버 회장은 1943년 17살의 나이에 직업 군인으로 미 육군에 입대해 2차대전에 참전했다. 이어 1950년 8월 육군 187 공수 낙하산부대 소속 대위로 인천 상륙작전과 함께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서울 수복 후 그는 평양 등 북한 내 요충지 곳곳에서 벌어진 전투에 참여해 승전보를 울렸다. 하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중부전선까지 밀린 그는 1951년 1월 격전지 강원도 원주에서 북한군의 수류탄에 오른쪽 팔꿈치 아래와 오른쪽 무릎 아래를 잃고 말았다. 이 부상으로 그는 전선과 이별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열린 북핵 문제 관련 세미나에 의족에 의지한 몸을 이끌고 나타난 그에게 ‘20대 젊은 나이에 소중한 팔다리를 잃은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유감스럽지 않다. 한국전에서 정규군으로 복무한 것은 내게 무한한 영광”이라며 마치 젊은 현역 군인처럼 우렁차게 답했다. 정전 60주년을 맞는 소회를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 60년간 또 다른 전쟁이 없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전용사들이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앞으로 15년 뒤에는 정전 75주년 기념식이 열린 텐데 그때는 극소수의 참전용사만 살아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우리 참전용사들끼리 하곤 한다. 왜냐면 지금 가장 어린 참전용사가 80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전쟁은 ‘알려지지 않은 전쟁’에서 ‘잊혀진 전쟁’이 돼 가고 있는데 앞으로 완전히 미국 역사에서 실종될까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2차대전에 참전해 일본군과 싸울 때만 해도 한국과 중국, 일본 사람은 모두 똑같은 줄 알았지만 1950년 한국 땅에 처음 왔을 때 한국인은 일본인과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서 “그런 한국인들을 위해 싸운 것은 더없이 가치 있는 일이자 영광, 특권이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 정부가 참전용사들에게 충분히 보답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건 말할 필요도 없다. 진심을 다해 끊임없이 미국에 감사를 표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밖에 없다”고 했다. ‘다시 한국전이 일어난다면 참전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 1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당연히 참전할 것이다. 그건 물어볼 필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다 할 것이다. 바로 1950년에 나는 그렇게 했다”고 답했다. 웨버 회장에게 한국전은 박제된 역사가 아니다. 90세를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그는 미국에서 ‘한국전 알리기’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는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에 있는 한국전 기념비 옆에 미군과 카투사 전사자들의 이름을 모두 새긴 ‘한국전 추모벽’ 건립을 위해 백방으로 뛰는 중이다. 2002년 참전 이후 5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이후 올해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한국행을 계획하고 있는 웨버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원주를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글 사진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중국인민지원군 출신 자빙수 전 中인민공안대 교수 “美의 침략 언론보도 믿고 참전” “한국전은 중국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다)로 표현한다. 이 말과 같이 한국전은 중국이 미국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북한을 도와 목숨 바쳐 싸운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남북이 분단됐는데 한국전쟁 정전일인 7월 27일이면 항미원조 승리 운운하며 자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중국 인민지원군 출신의 자빙수(査秉樞·81) 전 중국인민공안대 교수는 매년 7월 27일을 ‘한반도정전기념일’로 고쳐 불러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5일 베이징 무시디(木?地) 자택에서 만난 그는 “세월이 지나면서 언론 등을 통해 한국전쟁은 북침이 아닌 남침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하지만 중국 인민지원군은 미군이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탓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자 전 교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49년 신중국 건국과 함께 자원 입대했다. 타이완을 수복해 통일을 이루려는 국가정책에 따라 인민해방군 25군 75사 소속으로 푸젠(福建)성 최전방에 배치됐다. 그러나 이듬해인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이후 미군이 단둥(丹東) 변경을 폭격했다는 등 미군의 침략에 초점이 맞춰진 언론 보도로 미국이 타이완 국민당 정부를 도와 중국을 칠 것이란 위기감이 고조됐다. 부대 전환 배치를 신청해 한국전에 참여한 데는 이 같은 국내 분위기가 작용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전투로는 1952년 7월 13일부터 14일 동안 강원도 상감령 동북쪽 남대천에서 벌어진 ‘금성(城) 반격전’을 꼽았다. 중국 입장에서는 원래 북의 땅에 침입한 미군을 물리쳤다는 의미에서 이 전투를 반격전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 전투만 버텨 내면 미국과 정전협정을 체결해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고 회고했다. 미군을 상대로 중국 인민지원군 25만여명이 참가한 이 전투에서 그는 오른쪽 다리와 허리를 다쳤다. 그는 정전 이후에도 북한 재건 사업에 투입되며 1953년 10월부터 황해남도로 배치돼 1년간 고 유옥례씨 집에서 지냈다. 당시 14세이던 유씨의 딸 김영희로부터 조선인민군진군가, 조선국가, 아리랑, 봄노래, 샘물터의 노래, 푸른 하늘의 노래 등 27개의 북한 노래를 배웠다. 한국 노랫말을 중국어로 표기해 적어 둔 노래 연습장과 유씨 가족의 사진을 보며 지금도 그 시절을 회상한다. 영희씨와 주고받은 100여통의 편지도 간직하고 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은 탓에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두 나라 언어로 적어 가며 수십년간 소통의 끈을 이어 갔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오라버니’라는 문구 등 편지 내용 곳곳에 깊은 우의가 배어 있다. 문화대혁명 등의 시기를 제외하고 영희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줄곧 연락을 주고받았다. 의료품, 식료품, 의류 등을 북에 보내 주기도 했다. 그는 “중국은 참전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만약 참전하지 않았더라면 남북은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외세의 개입 없이 남북이 자체적으로 통일하도록 돕는 것이 중국이 (한국에) 진 빚을 갚는 일”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 부회장 김완기씨 “조국의 전쟁 소식에 태극기 혈서 쓰고 참전” 1950년 6월 25일. 22살의 청년은 아침을 먹으며 라디오를 듣다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소식을 접한다. 현해탄 건너 조국에 전쟁이 발발했다는 것이다. “어쩌다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들이대게 됐나”라는 참담한 심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던 청년은 개전 3일 만에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전을 결심한다. 그후 63년이 속절없이 흘렀고, 청년의 얼굴엔 주름살이 내려 앉았다. 재일학도의용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김완기(85)씨를 지난 3일 만났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김씨는 12살 때인 1940년 공부를 하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큰아버지가 있는 구마모토현으로 갔다. 대학에 진학해 엘리트가 되라는 부모님의 바람과 달리 광복 이후 진학을 포기하고 민단 소속으로 조직 활동에 앞장섰다. 전쟁이 터지자 김씨를 포함한 642명의 재일학도의용군은 태극기에 혈서로 참전 의사를 밝히고 조국으로 향했다. 미군 부대에 배치돼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을 시작으로 김씨는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고막이 터져 육군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함께 배를 타고 참전한 친구들을 그곳에서 만났는데 동상 때문에 손발이 잘린 전우들이 수두룩했다”고 김씨는 회고했다. 미군의 순환배치 방침에 따라 1·4 후퇴 즈음인 1951년 1월 일본으로 복귀한 김씨는 “이대로 그만둘 수는 없다”며 다시 입대를 자원했다. 100여명이 지원해 58명이 국군에 재입대하게 됐고, 김씨는 1952년 6월까지 전선에 머물렀다. 이후 김씨는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일본 정부가 “허락 없이 참전했고 일본 거주도 불확실하다”며 입국을 막았다. 결국 부산 소림사에서 재일학도의용대(현 재일학도의용군 동지회의 전신)를 만든 뒤 정전 후인 1953년에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탑골공원 뒤편에 사무실을 꾸렸다. 그곳을 본적으로 등록하고 1961년까지는 수용대기소에서 생활했다. 국내 안착도 일본 귀환도 아닌 애매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 사이 일본에 있던 김씨의 가족은 전쟁통에 모두 유명을 달리했고, 공주에 남아 있는 가족들도 정전 이후에야 겨우 연락이 닿았다. 현재 동지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씨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국민들이 학도의용군의 존재를 모르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부는 종전 후 10년 뒤인 1963년에야 일본에 안치돼 있던 전사자 53명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했고, 1968년 재일학도의용군을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글 사진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파주 통일동산에 남북 합작 성당

    파주 통일동산에 남북 합작 성당

    옛 북녘 교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한 남북 합작의 ‘참회와 속죄의 성당’이 경기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통일동산에 세워졌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20 04년부터 건립을 추진해 첫 삽을 뜬지 7년 만의 일이다.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계는 오는 25일 오후 2시 통일동산에서 이 성당 봉헌식을 성대하게 갖는다. 1996년 천주교 신자들 모임인 천주교한민족복음화추진본부가 성당 부지를 매입한 게 이 성당의 시초. 천주교한민족복음화추진본부로부터 성당 건립을 지정 위탁받은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침묵의 교회’로 남게 된 북한 교회를 기억하겠다는 뜻을 세워 2006년 착공했다. 남북화해와 일치에 대한 국민적 합의 기반을 확대하고 분단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 해소를 위한 기도운동을 독려하는 터전으로 삼자며 첫 삽을 떴지만 관할 교구 이전과 자금난 등의 어려움으로 공사가 수차례 지연되는 곡절 끝에 마침내 완공을 보게 됐다. ‘참회와 속죄의 성당’은 남북 화해의 의미를 곳곳에 담고 있는 게 가장 큰 특징. 1926년 지어진 평안북도 신의주 진사동성당의 외형과 함경남도 덕원에 있던 성 베네딕도 수도원 대성당의 내부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 성당 제대 위 모자이크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및 남북 대표성인 8위’는 북한 최고의 기량을 갖춘 평양 만수대창작사의 벽화창작단 공훈작가 7명이 2007년 중국 단둥에서 40일간 밤잠을 설쳐가며 제작한 것. 예수를 중심으로 유정률 정하상 김대건 우세영 고순이 김효임 김효주 성인을 좌우에 배치했다. 유정률은 평양, 우세영과 고순이는 황해도 출신 순교 성인이다. 모자이크 밑그림은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가 러시아 성당 모자이크를 참조해 그려 보냈고, 인터넷으로 매일 작업상황을 확인하며 수정·보완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성당 옆에는 지하 1층, 지상 3층의 ‘민족화해센터’가 건립 중이어서 눈길을 끈다. 장기적인 차원의 통일사목을 위한 공간으로, 평양 외곽에 있던 메리놀외방선교회 본부 건물 모습을 본떴다. 한편 25일 열릴 봉헌미사는 전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이 주례하고,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와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대주교 등이 공동 집전한다. 사제단 150여명과 김문수 경기지사를 비롯해 15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남북 화해모드… 지자체 교류사업 기지개

    남북 화해모드… 지자체 교류사업 기지개

    남북 간 대화 물꼬가 트이면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남북교류사업도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펴고 있다. 10일 각 지자체에 따르면 중단된 지자체 차원의 경제·문화·스포츠 등의 남북교류사업을 적극 실시하기로 했다. 서울시는 12∼13일 서울에서 남북당국회담이 열리는 등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해빙기에 접어들면서 정지 상태였던 남북교류사업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시는 올해 초 문화·체육분야 교류, 환경분야 협력, 보건·의료 지원, 영유아 등 취약계층 지원, 재난재해 구호 등 6개 분야에 걸쳐 남북교류협력사업 계획을 세운 바 있다. 특히 경평축구대회와 서울시향 평양 공연이 포함된 문화·체육분야 교류는 박원순 시장이 임기 내 달성하려고 욕심(?)을 내는 중점사업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부의 협상 추이에 따라 할 역할이 있다면 적극 추진할 의지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올해 평양 의학과학원 종양연구소 등 북측의 낙후 의료시설에 대한 의료장비, 의료용 소모품, 의약품 및 기자재 등 지원에 10억원, 경평축구대회와 시향 평양공연 추진비 10억원, 북측의 영유아나 노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빵, 우유, 옥수수, 밀가루 지원액 15억원, 육묘용 비닐 박막과 농자재 지원 5억원 등 45억원의 관련 예산을 편성한 바 있다. 하지만 북핵 문제 등으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집행엔 엄두도 내지 못했다. 2004년부터 조성한 기금은 189억원이다. 인천시는 개성공단 폐쇄 등 모든 남북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도 중국 단둥(丹東)에 북한 근로자 28명을 고용해 축구화 공장을 운영함으로써 남북협력의 끈을 이어 왔다. 시는 중·장기적으로 강화군 교동도에 남북이 함께하는 평화산업단지를 조성, 개성공단 문제점을 보완하는 제2개성공단 성격의 경제협력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인천-개성-해주 3각 클러스터의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조성 추진, 서해를 평화와 번영의 바다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항과 유사하다. 아울러 임산부·영유아 지원과 산림녹화 등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방침이다. 인도적 사업은 2005년부터 해마다 실시했으나 2011년 5∼7월 말라리아 공동방역을 실시한 게 마지막이었다. 인천시 관계자는 “2005년 남북교류협력조례를 제정한 뒤 120억원의 기금을 모아 85억원을 집행했다”며 “인도적 차원의 지원은 당장 추진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스포츠 교류도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인다. 인천시는 오는 10월 인천에서 열리는 전국체전에 북한 참관단이 참여하는 방안과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참여를 위해 노력해 왔다. 광주시는 2015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남북 단일팀 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기도도 준비해 온 교류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도는 올해 남북교류협력사업비 67억원을 편성하고도 남북경색 탓에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도는 지난해 중단된 말라리아 남북 공동방역, 결핵치료 지원, 영유아 등 취약계층 지원사업을 우선 추진하고 개풍양묘장 지원, 농축산 협력도 재개할 계획이다. 특히 2008년 시작된 말라리아 남북공동 방역 사업의 경우 매년 6~9월이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시기임을 감안, 북측과 협의한 후 빠른 시일 내 추진할 방침이다. 도는 개성 한옥 보존 등 문화교류사업도 재개하기로 했다. 개성 일대 고려시대 유적이 오는 16~27일 캄보디아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회의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가능성이 크다. 제주도는 1999년부터 2010년까지 지속되다가 중단된 ‘감귤 북한 보내기’ 사업을 다시 펴기로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으로 운송비 등을 지원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운송비 지원을 거부해 중단됐다. 전남도도 평양 비닐온실과 콩 발효식품공장 건립 등의 대북사업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도는 2008년부터 남북교류협력기금을 모아 2011년 목표액 10억원을 채우자 50억원으로 늘려잡는 등 대북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전국종합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중국인들 北 육로관광 다시 활기

    지난달 10일 전면 중단된 중국인들의 북한 관광이 최근 활기를 띠고 있다. 항공편을 이용한 북한 관광만이 일부 제한적으로 운영돼 오다 육로 관광으로 급속히 확산되는 양상이다. 북한 관광이 전면 재개됐다고 보기에는 이르지만, 한반도 긴장 상태가 완화됐다고 판단한 중국 정부가 일단 빗장을 푼 것으로 보인다. 17일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전날 두만강 유역의 지린(吉林)성 옌볜(延邊) 지역 여행사들이 북한 관광 상품 판매를 다시 시작했고, 북·중 접경 지역인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의 일부 여행사는 기차를 타고 북한에 들어가 평양, 묘향산, 개성 등지를 둘러보는 육로관광 예약 접수를 최근 재개했다. 핵무력·경제건설 병진 노선에 따라 외화벌이에 전력을 쏟고 있는 북한 당국은 관광 사업에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서양인들에게 한 차례도 개방하지 않았던 신의주 관광까지 허용해 눈길을 끌었다. 신의주를 자유무역도시로 개발하기 위해 중국뿐만 아니라 제3국의 공업·상업 자본까지 끌어들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오는 7월 22일부터는 북한의 대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이 예정돼 있어 외국의 북한 전문 여행사들이 관광객을 모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도 군 관련 활동을 대폭 줄이고 경제시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北, 개성공단 근로자 中에 고용 요청”

    북한이 중국 측에 개성공단 철수 근로자를 고용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신문은 9일 익명의 ‘중국 당국자’ 말을 인용해 북한의 지방 고위 관계자가 지난 4월 중순 중국 단둥(丹東)시를 방문해 중국에 파견하는 북한 근로자를 늘릴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때 개성공단에서 철수한 숙련 근로자를 보낼 곳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지만 중국 측이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신문은 북한 측이 개성공단의 사실상 폐쇄 상태가 장기화될 것이라고 보고 새로운 외화벌이 장소를 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했다. 중국 정부가 북한의 요청을 거절한 것은 지난 2월 북한의 핵실험 후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에 따른 것임은 물론 북한을 지원했을 경우 국제사회의 반발 등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북한은 평양, 신의주 등지에서 모집한 근로자를 일단 귀향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생각나눔] 남북문제 출구 인천에서 열리나

    지자체 차원의 교류가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틀 수 있을까. 송영길 인천시장의 남북교류사업 강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8일 인천시에 따르면 ‘제2 개성공단’ 격인 강화교동평화산업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인천발전연구원 등 8개 기관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데 이어, 임산부·영유아 지원과 공동방역 등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저돌적으로 나서고 있다. 남북 대화론자인 송 시장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것이다. 시는 말라리아 공동 방역과 농·산림업 분야 남북교류 사업을 강화하고자 세부 계획을 마련했다. 교류사업의 필요성을 환기시키고 위기가 풀릴 때를 대비해 두자는 취지다. 시는 이들 사업을 2005년부터 추진해 왔으나 2010년 5·24조치 이후는 한 차례만 진행했다. 이들 사업 가운데 실현 가능성이 크거나 북한의 민생문제와 관련된 것은 적극 모색한다는 것이다. 특히 말라리아 공동방역은 해주 등 황해도 지역의 모기가 접경지인 인천 강화군 등으로 날아와 피해를 주기 때문에 남북에 모두 필요한 사업이다. 북한 산림녹화사업의 경우 인천에 유치한 녹색기후기금(GCF)을 통해 관련 국제기구와 협력하면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인천은 2011년부터 중국 단둥에 북한 근로자들을 고용해 축구화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한때 이 사업마저도 위태로웠으나 현재 북한 근로자 28명이 정상 근무하고 있다. 강화교동평화산업단지는 강화군 교동면 3.45㎢에 인천시가 공장을 설립하고, 북한이 근로자를 파견해 운영한다는 구상으로 단계별로 추진된다. 현재로서는 실현성이 크지 않지만 시는 중·장기적으로 정부협의 등 평화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기초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인천시의 ‘드라이브’에는 긍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정치·군사적인 측면의 부하가 걸린 정부보다는 문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자자체가 방역사업, 산림녹화 등 부담 적고 실용적인 측면의 교류를 진행함으로써 경색된 남북 문제의 출구를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허종식 인천시 대변인은 “정부 방침이 강경하더라도 지자체는 유연하게 북한과 접촉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정부에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한반도 기류 변화] “장쩌민이 김정일에 개성공단 만들라 조언”

    개성공단 설립 과정에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 등 중국의 제3세대 지도부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주중 대사를 지낸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은 최근 펴낸 저서 ‘김하중의 중국이야기’ 제2편에서 남북 공단을 개성에 설립할 것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조언한 사람이 장쩌민 전 주석이라고 소개했다. 김 전 대사는 “김 위원장이 방중(2000년 5월 29~31일) 당시 장쩌민 주석과 주룽지(朱鎔基) 총리 등 중국 지도자 7명을 모두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중국 측이 ‘한국 기업들의 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그들이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며, 그렇게 하려면 (공단 부지로)38선 부근 지역의 개성을 선정하라’고 권고했다”고 전했다. 중국 측의 조언을 들은 김 위원장은 “매우 일리가 있다”며 2000년 8월 9일 정몽헌 현대 회장 등을 북한으로 불러 개성을 공단후보지로 전격 제안했다. 중국 방문 전까지 김 위원장은 공단 후보지로 중국 단둥(丹東)과 인접한 신의주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현대 측은 서울·인천과 공단개발을 연계하기 위해 가까운 황해남도 해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김정일-정몽헌 만남에 배석했던 참석자들은 생각지도 못했던 김 위원장의 제안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개성은 북한군 주력부대가 위치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워질 뻔한 공단 부지 협상은 김 위원장이 먼저 파격적인 제안을 내놓으면서 성사될 수 있었다. 김 전 대사는 “개성공단이 설립된 다음 중국 측이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김 위원장에 대한 중국 측 조언의 결과로 생각한다고 한국 측에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위장 탈북 ‘주부간첩’이 정보 넘겨 한국 정보요원 北보위부에 체포

    간첩에 의해 한국 정보기관의 정보원이 북한 보위부에 체포되는 등 대북 정보망이 일부 뚫린 사실이 법정에서 드러났다. 19일 수원지법 형사 11부(부장 윤강열)에 따르면 북한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던 A(43·여)씨는 2009년 가족의 생계를 위해 중국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중국으로 가기 위한 방편을 알아보던 A씨에게 같은 해 5월 평소 알고 지내던 보위부 직원이 쉽고 빠르게 중국에 보내주겠다며 간첩 활동을 제안했다. A씨는 제안을 수락하고 정보원 교육을 받은 뒤 2010년 10월 ‘대한민국 정보기관 연계망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보위부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그다음 달 평양을 출발했다. 중국 단둥에 도착한 A씨는 2011년 2월까지 중국 등지에서 활동하는 정보기관 요원들의 정보 등 한국의 대북 정보망을 탐지하고 수집해 보위부에 보고했다. 당시 A씨에 의해 대북 정보망 일부가 노출돼 한국을 위해 일하던 북한 국적 정보원 1명이 보위부에 체포되기도 했다. 또 A씨는 지난해 6월에는 국내에서 지령을 수행하기 위해 귀순을 요청,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A씨는 그러나 국가정보원 등의 조사 과정에서 위장 탈북 사실이 들통 나 보위부로부터 받은 국내에서의 지령 수행은 실패하고 간첩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수집해 전달한 정보에 의해 한국 정보기관의 정보원이 북한 보위부에 체포되는 등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했다”며 “이는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을 위협하는 매우 중대한 범죄”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주부로서 가족의 안위가 범행의 주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이고 신분이 드러나자 범행을 자백하고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을 고려했다”며 A씨에게 징역 4년, 자격정지 4년을 선고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한국전쟁자료를 日고미술상이 싹쓸이”

    “한국전쟁자료를 日고미술상이 싹쓸이”

    “이 사진을 보세요. 군복 입은 아이가 몇 살이나 된 것 같습니까.” 15일 만난 김영준(62)씨는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민군 아이의 사진을 가리켰다. 그는 “제가 갖고 있는 자료만 훑어봐도 전쟁이 얼마나 참혹하고 위험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알 수 있습니다”라면서 “한반도에 미사일 위협이 고조되는 지금 우리 민족이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시간여행’이라는 고미술상점의 대표인 김씨는 스스로를 한국전쟁 자료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민간인이라고 소개했다. 20년간 모아온 전쟁 자료만 해도 4000여 점에 달한다. 그는 오는 7월 27일 휴전협정 6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할 전시회 등을 기획 중이다. 당시 뿌려진 전단(삐라)이 2000장이다. 휴전협정이 진행될 당시(1951년 7월 10일~1953년 7월 27일) 대규모로 뿌려진 것들로 내용이 대부분 원색적이다. ‘원수는 미국놈’, ‘이승만 매국도당’과 같이 한·미 연합군을 비난하는 식이다. 자료 중 김씨가 가장 아끼는 건 한강 도강증(渡江證)과 피란민 증명서다. 당시 한강을 건너려면 미군 헌병사령부가 발급한 도강증이 필수였다. 피란민 증명서도 생명줄과 같았다. 김씨는 “지금 와서 보면 허름한 종이 한 장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생사의 증표와 같았다”면서 “이것보다 비싸게 산 자료가 많지만 가장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김씨는 전쟁둥이다. 자신의 수집 열정을 출생의 비밀에서 찾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개월 후인 1950년 겨울, 갓난아기인 그는 어머니 등에 업혀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나서 3년 후에야 고향인 서울 용산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김씨는 “전쟁둥이로 태어나서인지 무엇인가를 통해서라도 전쟁의 시대상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한국전쟁 자료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2011년 중국 단둥과 옌볜 지역에 한국전쟁 자료를 찾으러 갔는데 대부분 일본의 고미술상들이 싹쓸이해 갔다고 하더라고요. 경제적 가치 여부를 떠나 기록의 가치를 아는 일본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무서움을 느꼈습니다. 한국전쟁의 자료는 역사는 물론 비극을 막기 위한 교훈적 측면에서도 가치가 충분합니다. 젊은 세대들이 이런 점을 알았으면 합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中, 올해는 北 태양절 식량지원 안 했다”

    중국이 매년 북한의 최대 명절(태양절)인 김일성 주석 생일(4월 15일)을 즈음해 북한에 제공해 온 식량 지원을 올해는 하지 않았다고 일본 아사히신문 인터넷판이 14일 단둥(丹東)발로 보도했다. 신문은 중국 지방정부 당국자와 대북 무역에 종사하는 중국 무역상을 취재한 결과 이같이 밝혀졌다면서 북한이 최근 미사일 발사를 예고하는 등 역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데 대한 중국의 불만을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소개했다. 중국 정부는 이제까지 북한의 요구에 따라 김 주석 생일 전에 무역상으로부터 조달한 쌀과 옥수수를 북한에 지원해 왔다. 중국 지방정부 당국자는 “4월 선물(김 주석 생일맞이 지원)은 하지 않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모른다”고 밝혔다고 신문이 전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노동신문 “日 전쟁터로 바뀐다” 위협

    북한이 중거리 미사일 ‘무수단’을 발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확산되자 일본 열도가 초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일본의 NHK와 TBS 등 방송과 신문들은 10일 일본 열도 내 주요 도시에 대한 공격을 위협한 노동신문의 이날 자 논평을 주요 뉴스로 전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노동신문은 논평에서 “도쿄, 오사카, 요코하마, 나고야, 교토에는 전인구의 3분의 1 정도가 살고 있다”며 “ 열도 전체가 전쟁터로 바뀐다”고 위협했다. 노동신문은 이어 “일본에는 수많은 미군 핵기지와 원자력 관련 시설, 군사시설이 곳곳에 있다”며 “과거 입었던 원폭 피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재앙을 입을 것”이라고 언급해 일본 내 핵 시설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일본 정부는 경계태세를 강화했다. 오노데라 방위상은 배치 완료한 패트리엇 미사일 부대를 시찰했고, 경찰청은 지방 경찰청과 도쿄 경시청에 북한 미사일 관련 정보 수집을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면서 육로를 통한 중국인의 북한 단체관광이 10일부터 잠정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단둥의 한 여행사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관계 당국으로부터 한반도 정세와 관광객 안전을 고려해 북한 관광을 일시 중단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중국 여행사와 여행객들이 최근 조선반도(한반도) 정세의 긴장 사실을 이해함에 따라 자발적으로 여행 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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