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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설… 설… 풀리지 않은 4대의혹

    기아차 광주공장 채용비리 수사가 장기화할 조짐인 가운데 ‘의혹’들만 커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오는 설 명절 이전에 수사가 마무리되기는 힘들 것 같다.”며 장기화를 예상했다. 이런 가운데 노조의 채용비리 개입 여부, 유력인사 청탁 등 각종 설(說)만이 난무하고 있다. ●정모 노조 지부장의 단독범행인가 검찰은 정씨가 채용 추천을 대가로 돈을 받은 것은 시인했으나 ‘단독 범행임’을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에 20%가량 할당된 계약직 사원을 채용하면서 한 명당 1000만∼2000만원만 받았다 하더라도 전체 액수는 수십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런 거액을 노조 간부 한두 사람이 착복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예금계좌 추적 등을 통해 일부가 본부노조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으로 흘러 들어간 게 확인될 경우 그 파장은 엄청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소하리 공장에서 열린 대의원대회 때도 ‘채용비리 진상규명’이 안건으로 올랐던 것으로 확인돼 본조의 ‘묵인’여부도 밝혀내야 할 부분이다. 노조의 도덕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유력인사 등 ‘청탁리스트’는 없는가 이달 초 사직한 이 회사 윤모 인사담당 이사는 25일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사직서 쓸 때 회사 관련 비밀이 누출될 경우 우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서명했기 때문에 그 부분은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리스트’가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미 이 지역 국회의원과 지방의원·검경·행정기관 간부 등은 “지역주민과 친인척 등으로부터 수십건씩의 기아차 취업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회사 임직원은 돈을 받지 않았나 검찰은 이번 사건을 ‘노사 합작품’으로 보고 있다. 부적격 합격자 399명 모두가 노조나 외부 청탁으로 입사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 당시 인사라인에 있던 회사 고위 간부 조사와 채용 관련 서류 검토 등을 거치면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취업 대기자 및 브로커 개입 여부 김모씨는 “지난해 초 노조 간부를 만나 아들 취업 청탁과 함께 6000만원을 줬다.”고 주장했고, 그 간부로부터 “‘취업 부탁한 사람이 밀려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취업 희망자로부터 500만∼5000만원을 받은 브로커 2명을 적발하기도 했다. 광주 최치봉 박경호기자 cbchoi@seoul.co.kr
  • 기아車 노조지부장 1억8000만원 수뢰확인

    기아車 노조지부장 1억8000만원 수뢰확인

    검찰은 24일 출두한 기아차 노조 광주지부장 정모(44)씨를 상대로 인사비리 규모와 노·사측의 개입 여부 등을 캐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인사비리가 정씨의 단독범행이 아닌 광주지부나 노조본부의 관련 여부가 드러날 경우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광주지검 수사전담반(반장 이광형 형사2부장)은 이날 “기아차 광주지부장 정 모씨의 금융계좌뿐만 아니라 관련 혐의가 있는 노·사에 대해서도 원칙대로 조사한다.”고 수사 원칙을 밝혔다. 검찰은 광명 소하리 노조본부 간부들에 대해서도 참고인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혀 정 지부장과의 인사비리 관련성 혐의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또한 2002년 이후 광주공장 생산계약직원들의 입사경위에 대해서도 관련서류를 확인중이다. ●광주시 고위관계자도 청탁의혹 검찰은 “정씨가 지난해 기아차 광주공장 생산계약직 채용 때 입사희망자 부모 등 8명으로부터 현금 1억 8000만원을 직접 받아 친동생에게 건네줬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밤늦게 정씨에 대해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지난해 광주공장에 생산계약직으로 들어온 김모(32)씨는 이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5월 노조 광주지부 간부의 조카에게 1300만원을 줬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발언은 광주지부 노조간부들의 인사비리 개입설을 방증하는 것이어서 수사 확대가 불가피해졌다. 광주시 고위 관계자가 청탁을 받고 근로자 2명을 기아차 광주공장에 취직시켜 줬다는 일부의 진술에 대해, 광주시 관계자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한편 부산지검 동부지청 형사3부는 이날 돈을 받고 다른 사업장에 노무원 등으로 취업시켜 준 부산항운노조 모 냉동창고 반장 정모(49)씨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현대차도 채용비리 의혹 기아차 채용비리 불똥이 울산의 현대자동차로 튀는 분위기다. 이 회사 노동조합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지난 23일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봄 현대차에서는 노조간부와 회사 인사담당, 브로커가 50여명의 신입사원으로부터 3000만원씩 15억원을 받았다.”는 글이 올랐다. 또 ‘평조합원’은 “한 사람 입사시키는데 3000만원이 든다는 게 사실이다.”라고 적었다. 이에 대해 노·사는 모두 근거없는 유언비어라고 일축했다. 부산 김정한·광주 남기창·울산 강원식기자 jhkim@seoul.co.kr
  • 육여사, 문세광 총에 안맞았다? ‘미스터리’

    육여사, 문세광 총에 안맞았다? ‘미스터리’

    1974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발생한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으로 한국과 일본간 외교관계가 수교 10년 만에 단절 일보직전에까지 치달았던 당시 상황이,20일 공개된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관련 외교문서에서 확인됐다. 이는 사건 공동정범에 대한 일본측의 수사 부진과 조총련에 대한 조치 문제가 첨예한 갈등요인으로 작용한 때문이며, 한국 정부는 일본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미국에 협조를 요청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중재에 나선 미국은 “한·일 관계가 깨지면 한국 방위도 어렵다.”고 경고, 한국이 물러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난 30년간 ‘문세광 사건’을 둘러싼 갖가지 의혹은 이날 공개된 총 15권 3030쪽짜리 관련 외교문서에서도 밝혀지지 않아 실체적 진실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흉탄 미스터리 ●경호원 오발설등 의혹 여전 모든 암살사건이 음모설을 동반하듯 ‘박정희 대통령 저격시도’에도 몇가지 의문점이 사건 당시부터 제기돼 왔다. 핵심 의혹은 ‘수사당국의 발표대로 정말로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이 쏜 총탄에 숨진 게 맞나.’란 점이다. 20일 공개된 관련 기록에도 이런 의혹을 일거에 해소시켜줄 만한 확실한 내용이 따로 없어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의혹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사건 직후 현장검증을 하고 수사본부 요원으로 참여한 실무자가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시경 감식계장이었던 이건우(99년 작고)씨는 89년 월간지 ‘다리’와의 인터뷰에서 “육 여사는 절대로 문세광 총탄에 죽지 않았으며, 사건이 숱하게 은폐되고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수사발표에 따르면, 현장에 울린 총성은 모두 7발. 문세광은 5발이 장착되는 ‘스미스 앤드 웨슨’ 권총을 사용했고 범행 후 1발이 권총에 남아 있어 총 4발을 쏜 것으로 결론났다. ●육여사 쓰러진 자세도 논란 견해차는 문세광이 쏜 탄착지점에 있다. 수사발표는 ‘1탄→실수로 자신의 허벅지 관통,2탄→연단 좌측,3탄→불발,4탄→육 여사,5탄→연단 뒷면의 태극기’다. 반면 이씨의 주장은 ‘1탄→오발,2탄→연단,3탄→태극기,4탄→천장’이다. 수사당국은 경호원의 총탄 중 2발이 천장과 합창단원 장봉화양을 맞혔다고 발표했으나, 이씨는 장양뿐 아니라 육 여사도 문세광의 총에 맞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호원의 오발 또는 ‘제3의 저격수’가 있었다는 얘기다. 이씨는 특히 “현장검증도 하기 전에 청와대 경호실에서 핵심 증거물인 탄두를 수거해 갔다. 육 여사를 숨지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나 밝힐 수 없다.”고까지 말했다. 육 여사가 쓰러진 자세도 의혹을 더하는 부분이다. 육 여사는 관객석에서 봤을 때 연단의 우측에 앉아 있었다. 문세광이 행사장 좌측 뒤에서 앞으로 뛰어가며 쐈기 때문에 총탄을 맞은 육 여사의 머리는 우측으로 넘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저격 후 육 여사의 머리는 좌측으로 젖혀져 있었다. 문세광이 권총과 실탄을 휴대하고도 김포공항을 통해 무난히 입국할 수 있었던 점, 출입비표도 없이 권총까지 소지하고 경호가 삼엄한 행사장에 버젓이 입장한 것도 의혹을 남긴다. 행사 당일 청와대 경호과장이 이례적으로 검문 완화 지시를 내렸고, 행사장 로비에서 문세광이 경호계장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는 미확인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단교 직전까지 ●美 “한일관계 깨지면 안돼” 중재 한국은 당시 ‘북한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의해 문세광을 포섭한 조총련의 조직적 범행’으로 발표했지만 일본은 ‘문세광과 조총련의 직접적인 관련 증거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최종 판단, 양국은 서로 다른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아울러 이번 문건의 사실관계는 검찰수사결과를 토대로 하고 있어 단독범행 여부부터 제3의 저격설, 김대중 납치사건과의 관련설 등 사건에 대한 여러 의혹을 규명하는 데도 별도움을 주지 못했다. 다만 문세광 사형집행 이후 일본이 문세광 수사본부를 해체한 데 대해 한국 정부가 이의를 제기하자, 일본은 김대중 사건 수사본부 해체를 언급해 두 사건 수습과정이 전혀 무관치는 않다는 추론을 가능케 했다. ●서승 형제 간첩사건 문서등도 공개 한편 박정희 대통령은 그해 9월19일 특사로 파견된 시이나 에쓰사부로 당시 자민당 부총재와 만난 자리에서 “과연 일본 정부가 우리를 우방으로 생각하고 있느냐. 일본이 끝내 이런 태도로 나온다면 우리는 일본을 우방으로 인정할 수 없지 않느냐.”며 격노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외교부가 공개한 문서는 이밖에도 육영수 여사 장례식 관련 2건, 재일본한국인 서승·서준식 형제 간첩사건, 재사할린 동포 귀환교섭, 포드 미국 대통령의 방한, 재일교민 북한송환 등 총 27건,11만여쪽에 달한다. 이지운 구혜영기자 jj@seoul.co.kr
  • “열심히 살려는 불쌍한 사람을 왜…” 유족 오열

    연쇄살인범 유영철에 대한 경찰수사가 서울 서남부지역 살인사건 등 다른 미제 살인사건과의 연관성을 캐는 데 집중되고 있다. ●태연히 노점상 살해 재연 경찰은 19일 유를 데리고 지난 4월 노점상 안모(44)씨 살인사건의 현장검증에 나섰다. 남색 상·하의에 노란 비옷을 걸치고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유는 황학동 S아파트 부근의 한 약국 앞과 살해 장소인 서울 신수동 자신의 오피스텔 인근 주차장,시신을 버린 인천 월미도 부근 등에서 범행을 재연했다. 그는 흉기 등으로 20여 차례나 안씨를 찌르는 상황과 인천시 중구 북성동 한 주차장에서 안씨의 양 손목을 자르는 장면,월미도 ‘문화의 거리’ 앞바다에 이를 버리는 장면을 재연하면서 시종일관 태연한 모습이었다.승합차 운전석 뒷좌석 시트 밑에 둔 시신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경찰은 그러나 절단한 양 손목을 버렸다는 월미도 앞 바다를 뒤졌지만 찾아내지 못했다. 현장검증에는 안씨의 부인 노모(42)씨와 남동생(43) 등 유가족이 나와 오열했다.이들은 “왜 죽였냐.마스크 벗어.이 나쁜 놈아.”,“왜 열심히 살려는 불쌍한 사람을 택했냐.”며 울음을 터트렸다.부인 노씨는 “사건 당일인 14일 남편이 ‘장사가 잘 안되니 인근에서 노점하는 사람과 만나고 오겠다.’고 한 것이 마지막 통화였다.”고 말했다.노씨는 “몸집이 큰 남편의 피살 소식을 듣고 단독범행이 아닌 공범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다.”면서 “시동생이 용의자로 지목돼 고초를 치르는 등 지난 2개월 동안 집안이 파탄났다.”고 울부짖었다. ●서울 서남부지역 범행과의 패턴 비교에 초점 경찰은 유가 서울 서남부지역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에 연루됐는지를 추궁하는 한편 유의 ‘살인 패턴’을 서울 서남부지역 범죄와 비교,유사성과 차이점을 집중 분석하고 있다. 우선 유는 살해한 부유층 노인의 자택에 있던 거액의 금품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본인은 부유층과 여성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연쇄살인을 저질렀다고 강변하지만,사회적 약자인 안씨 살해가 밝혀짐에 따라 범행동기를 납득할 수 없는 ‘무동기 범죄’인 점이 확인된 셈이다. 유가 경찰관을 사칭해 금품을 뜯으려다 ‘가짜’인 점이 들통났거나,안씨의 반항을 받고 무참하게 살해했을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범행 수법에서도 희생자가 숨을 거둘 때까지 흉기나 둔기를 쉴 새 없이 내리치거나 시신을 토막내는 잔혹성은 다른 사건과 똑같았다. 지난 4∼5월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잇따라 발생한 살인사건도 ‘무차별’,‘잔혹성’이라는 점에서는 일부 유사점을 보인다. 하지만 유가 직접 제작한 쇠망치를 주로 범행에 사용했다는 점에서 흉기를 사용한 서남부 사건과는 수법이나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유가 당초 서울 서남부 사건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이미 진범이 붙잡힌 사건까지 본인이 저질렀다고 주장한 대목도 석연치 않다.경찰은 “유영철의 진술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구체적인 확인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안동환·인천 김효섭기자 sunstory@seoul.co.kr
  • “열심히 살려는 불쌍한 사람을 왜…” 유족 오열

    연쇄살인범 유영철에 대한 경찰수사가 서울 서남부지역 살인사건 등 다른 미제 살인사건과의 연관성을 캐는 데 집중되고 있다. ●태연히 노점상 살해 재연 경찰은 19일 유를 데리고 지난 4월 노점상 안모(44)씨 살인사건의 현장검증에 나섰다. 남색 상·하의에 노란 비옷을 걸치고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유는 황학동 S아파트 부근의 한 약국 앞과 살해 장소인 서울 신수동 자신의 오피스텔 인근 주차장,시신을 버린 인천 월미도 부근 등에서 범행을 재연했다. 그는 흉기 등으로 20여 차례나 안씨를 찌르는 상황과 인천시 중구 북성동 한 주차장에서 안씨의 양 손목을 자르는 장면,월미도 ‘문화의 거리’ 앞바다에 이를 버리는 장면을 재연하면서 시종일관 태연한 모습이었다.승합차 운전석 뒷좌석 시트 밑에 둔 시신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경찰은 그러나 절단한 양 손목을 버렸다는 월미도 앞 바다를 뒤졌지만 찾아내지 못했다. 현장검증에는 안씨의 부인 노모(42)씨와 남동생(43) 등 유가족이 나와 오열했다.이들은 “왜 죽였냐.마스크 벗어.이 나쁜 놈아.”,“왜 열심히 살려는 불쌍한 사람을 택했냐.”며 울음을 터트렸다.부인 노씨는 “사건 당일인 14일 남편이 ‘장사가 잘 안되니 인근에서 노점하는 사람과 만나고 오겠다.’고 한 것이 마지막 통화였다.”고 말했다.노씨는 “몸집이 큰 남편의 피살 소식을 듣고 단독범행이 아닌 공범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다.”면서 “시동생이 용의자로 지목돼 고초를 치르는 등 지난 2개월 동안 집안이 파탄났다.”고 울부짖었다. ●서울 서남부지역 범행과의 패턴 비교에 초점 경찰은 유가 서울 서남부지역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에 연루됐는지를 추궁하는 한편 유의 ‘살인 패턴’을 서울 서남부지역 범죄와 비교,유사성과 차이점을 집중 분석하고 있다. 우선 유는 살해한 부유층 노인의 자택에 있던 거액의 금품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본인은 부유층과 여성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연쇄살인을 저질렀다고 강변하지만,사회적 약자인 안씨 살해가 밝혀짐에 따라 범행동기를 납득할 수 없는 ‘무동기 범죄’인 점이 확인된 셈이다. 유가 경찰관을 사칭해 금품을 뜯으려다 ‘가짜’인 점이 들통났거나,안씨의 반항을 받고 무참하게 살해했을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범행 수법에서도 희생자가 숨을 거둘 때까지 흉기나 둔기를 쉴 새 없이 내리치거나 시신을 토막내는 잔혹성은 다른 사건과 똑같았다. 지난 4∼5월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잇따라 발생한 살인사건도 ‘무차별’,‘잔혹성’이라는 점에서는 일부 유사점을 보인다. 하지만 유가 직접 제작한 쇠망치를 주로 범행에 사용했다는 점에서 흉기를 사용한 서남부 사건과는 수법이나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유가 당초 서울 서남부 사건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이미 진범이 붙잡힌 사건까지 본인이 저질렀다고 주장한 대목도 석연치 않다.경찰은 “유영철의 진술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구체적인 확인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안동환·인천 김효섭기자 sunstory@seoul.co.kr
  • [희대의 증오살인 충격] 10개월간 범인 그림자도 못밟았다

    [희대의 증오살인 충격] 10개월간 범인 그림자도 못밟았다

    희대의 연쇄살인마가 10개월 가까이 서울 전역을 누비며 19명의 무고한 시민을 참혹하게 살해했지만 경찰의 수사망은 범인의 용의주도함을 따르지 못했다.관할 경찰서에서는 11명의 부녀자가 실종된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고,검거한 뒤에도 감시를 소홀히 해 범인이 12시간동안 도주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유영철이 처음 강남구 신사동에서 노교수 부부를 살해한 뒤 두 달 동안 삼성동 노파 살인사건,구기동 일가족 살인사건,혜화동 노인살해 및 방화사건 등 부유층을 노린 살인사건이 잇따르자 경찰은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고 공조체제를 구축해왔다. 처음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 B상표 신발의 족적을 단서로 동일범임을 확신,신용카드에 나타난 신발 구입자들의 명단을 토대로 수사를 벌였다.유영철은 경찰에서 “족적을 남겼을까 마음에 걸려 범행 뒤 신발을 잘게 잘라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진술했다.경찰이 수개월동안 매달린 족적은 결국 무용지물이었다. 경찰은 또 신사동 살인사건에 쓰여진 흉기가 2가지인 점을 들어 공범을 염두에 두었으나 이 역시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운 유영철의 단독범행이었음이 밝혀졌다.구기동 살인사건 이후에는 정신병자의 소행을 염두에 두고 최근 3년 정신병력이 있는 24만명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였다.하지만 유영철은 1995년 정신질환 치료를 받아 역시 수사망을 빠져나갔다.결정적 증거였던 혜화동 살인사건 현장 근처에서 찍힌 폐쇄회로(CC)TV 화면 역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지역에서 모두 34만 회선의 통신을 검색했다.사건 지역에서 범행시간대에 통화를 한 사람들을 4배수로 추려,모두 804명을 용의선상에 올리기도 했다.그러나 유영철은 포함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간혹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렸을 때도 유영철은 의도적으로 간질발작을 일으켜 빠져나갔다.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러워하는 유영철을 보고 경찰은 여러차례 그냥 보내주었다.유영철은 지난 15일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을 때에도 간질발작을 3차례나 일으키는 시늉을 한 끝에 경찰이 수갑을 풀어주자 3층에서 1층으로 뛰어내려가 달아났다.이때 유영철은 자살할 마음을 먹고 수면제 360알을 구입하기도 했다.그가 12시간만에 다시 붙잡히지 않았으면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이 영영 미궁으로 빠져들 뻔했다. 유영철은 지난 3월부터 출장마사지업소와 전화방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자신의 원룸으로 불러들여 잔인하게 살해한 뒤 시체를 토막내 야산에 버리기를 11차례나 반복했으나 관할서는 피해자들의 실종사실도 파악하지 못했다.경찰은 “피해자들이 대부분 가족과도 연락을 하지 않고 혼자 살며 불법적인 윤락에 종사하는 여성들이라 주변에서도 신고를 꺼려했다.”고 설명했다.한편 지난 1일 살해된 김모(25·여)씨를 잘 아는 박모(46)씨에 따르면 김씨의 친구는 김씨의 납치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박씨는 “김씨의 어머니와 어제 통화를 했는데 지난달 말쯤 김씨의 친구가 ‘납치당했다.’는 김씨의 전화를 받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희대의 증오살인 충격] 다섯가지 의문점

    [희대의 증오살인 충격] 다섯가지 의문점

    19명을 무참히 살해한 유영철의 범행이 속속 밝혀지고 있지만 여전히 의문점은 남아 있다. 무엇보다 노인들을 상대로 연쇄살인을 저지른 이유가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아무리 부유층에 대한 복수가 목적이었다지만 현장에 있던 거액의 금품을 그대로 둔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신사동 노교수 부부 살인사건 때는 2층에 1만원권 7400만원이 있었으며,투명한 보석함에 든 사파이어·다이아몬드 등 귀금속과 현금 280만원도 그대로 있었다.삼성동 노파 살인사건 때도 안방에서 현금 135만원과 100만원짜리 수표 3장이 손도 대지 않은 채 발견됐다. 경찰은 “금품을 훔치다 증거가 남을 것을 우려해 손을 대지 않은 것 같다.”면서 “개인 원한에 의한 면식범의 소행으로 가장,수사에 혼선을 빚기 위해 금품을 그대로 놓아두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범행현장에서 쉽게 챙길 수 있는 거액을 모른 체한 유영철이 생활자금을 어떻게 조달했는지도 의문이다.경찰관을 사칭,윤락업주 등으로부터 수십만원씩을 뜯어내며 원룸의 월세 35만원을 충당했다지만 설득력은 별로 없다.보도방에서 알게 된 여성과 동거할 때는 그 여성이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해도,그 이후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또 당초 여성 출장 마사지사를 감금·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됐을 때 “여자를 납치한 일은 없고 노인들은 많이 죽였다.사건이 20여개쯤 된다.”며 묻지도 않은 말을 순순히 털어놓은 것도 의문이다. 유영철의 주장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단독범행이었는지도 석연치 않다.지난해 10월 사전답사까지 하며 치밀한 계획을 세워 구기동 일가족 3명을 살인한 점 등 범행의 흉포화와 대담성으로 미뤄볼때 공범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경찰은 “공범이 있으면 발각될 가능성이 있어 혼자 저질렀다.”는 유영철의 진술과 현장검증에서의 정황을 종합해 일단 단독 범행으로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추가 범죄 여부다.유영철은 인천 월미도 노점상 살인사건을 비롯,적어도 두 건 이상의 살인을 더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인천 사건은 상당부분 진술이 확보돼 가능성이 높아 19일 현장검증 직후 공식발표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부산에서도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하지만,유영철과 하루이틀 같이 지낸 한두 명의 피해자가 보도방에 ‘함께 부산에 간다.’고 둘러댄 진술이 와전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조사 초기 진술 등을 토대로 ‘피해자가 26명에 이른다.’는 설까지 흘러나오는 점은 경찰이 확인해야 할 대목이다. 한편 경찰은 서울 서남부에서 일어난 일련의 살인사건과 연관되었는지에는 “유영철이 아직 이들 사건에는 구체적 진술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범행 수법 등이 다르기는 하지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효용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희대의 증오살인 충격] 10개월 엽기살인행각

    [희대의 증오살인 충격] 10개월 엽기살인행각

    서울 도심을 누비며 10개월 동안 부유층 노인과 여성 출장마사지사 등 19명을 살해한 유영철(34)의 잔혹한 살인극은 범행 대상과 장소가 시기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전반기 고급주택가에 침입해 ‘부유층 노인’을 연쇄살해한 그는 후반기 ‘성매매 여성’을 자신의 원룸으로 유인해 잇따라 살해한다. 유영철은 2003년 9∼11월에는 부유층 노인만을 겨냥,무차별 범행에 나섰다.그러나 그의 살인 목표물은 11월 이후 올 3월까지 4개월 동안의 공백기에 크게 바뀐다.이달까지 전화방 도우미·출장마사지사 등 성매매 여성 11명을 살해하는 끔찍한 범행을 이어갔다. 유영철은 살인을 저지르는 틈틈이 직접 위조한 경찰관 신분증으로 윤락업주 등을 협박,생활비를 마련하면서 자신의 원룸에서 구상한 ‘살인 아이디어’를 실행했다. ●연쇄살인 ‘1막’ 부유층 노인 지난해 9월11일 전주교도소에서 출소한 유영철은 같은 달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사는 모 대학 명예교수 이모(73)씨 부부에게 5㎏짜리 쇠망치를 내리쳐 숨지게 함으로써 ‘희대의 살인극’을 시작했다.그는 10월9일 종로구 구기동 주차관리원 고모(61) 씨의 단독주택에 침입,고씨의 어머니 강모(85)씨,부인 이모(60)씨,아들(35) 등 일가족 3명을 같은 둔기로 살해한데 이어 같은 달 16일에는 강남구 삼성동의 단독주택에서 유모(69·여)씨를 죽였다.유영철은 11월 종로구 혜화동 110여평 규모의 2층 단독주택에 들어가 집주인 김모(86)씨와 파출부 배모(53·여)씨를 살해하고 불을 질렀다. ●연쇄살인 ‘2막’ 성매매 여성 부자들에게 깊은 증오심을 보였던 유영철은 같은 해 11월 전화방에서 만난 20대 여성과 교제하면서 ‘공백기’를 갖는다.청혼까지 했던 그는 전과자에다 이혼남이라는 과거가 들통나자 헤어졌다.유는 경찰 조사에서 “‘돈을 벌고 뭐라도 할테니 제발 만나달라.’고 간청했지만 일방적으로 절교를 당하자 여성에 대한 증오심이 커졌다.”고 진술했다.수감생활을 하던 2002년 5월 전 부인 황모씨의 소송 제기로 이혼당한 그는 황씨의 직업이었던 출장안마사와 여성 혐오감이 복합적인 범행동기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영철은 지난 3월 권모(24·여) 씨를 자신의 원룸으로 유인해 둔기로 내리치고 시체를 토막낸 뒤 암매장함으로써 마사지사를 대상으로 한 살인행각을 시작했다.그는 욕실에서 머리를 감는 등 무방비 상태에 있는 여성 마사지사들을 둔기로 내리쳤다.검거되기까지 유영철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11명이다.경찰 관계자는 “출장마사지사들은 이직이 잦아 갑자기 연락을 끊어도 업주들은 적극적으로 실종신고를 하지 않았고,본인들도 신분 노출을 극도로 꺼려 신고를 하려 해도 본명 등을 몰라 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철저히 사전 계획된 범행 경찰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된 유영철의 단독범행으로 심증을 굳히고 잇다.칼과 직접 제작한 쇠망치,장갑 등을 준비한 점,단독 범행이라는 자백과 공범이라고 할 만한 별다른 주변 인물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유영철의 범행은 출장마사지사가 잇따라 사라진 것을 수상히 여긴 한 보도방 업주의 제보로 꼬리가 잡혔다.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보도방에서 7월 1,3,9,13일 잇따라 4명의 여성이 사라진 것.그는 이를 이상하게 여긴 업주의 신고를 받은 경찰에 15일 긴급체포됐지만 달아났다. 그는 마포에 사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13만원으로 수면제 360알을 구입,영종도로 가려다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렸다.그는 경찰에서 “자살하려고 수면제를 샀다.”고 진술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부천 초등생 2명 살해사건/“차타고 가는것 봤다” 목격자 신병확보… 주변 탐문 ‘짧은 머리·청바지’ 긴급수배

    초등생 피살사건을 수사중인 경기도 부천남부경찰서는 1일 용의선을 숨진 윤군 등을 산으로 데려갔다는 성인남자로 좁히고 주변인물 수사에 주력하고 있다. 경찰은 가톨릭대 부근에서 윤군 등이 한 성인남자를 뒤따라갔다는 목격자 김모(11)군의 진술과 시체 등에서 동일한 발자국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 면식범에 의한 단독범행으로 보고 있다.수사 관계자는 “아는 사이가 아니고서는 늦은 밤에 덩치가 큰 아이 둘을 산 정상까지 강제로 데려가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인근 편의점 등 폐쇄회로TV 분석 김군은 경찰조사와 최면수사에서 “가톨릭대 부근에서 윤군 등이 키 170㎝에 짧은 머리를 하고 검정색 점퍼와 청바지를 입은 남자를 1m거리를 두고 따라갔다.”고 동일하게 진술했다. 경찰은 또 지난달 25일 경찰에게 “윤군 등이 실종된 날 오후 9시쯤 쏘나타 차량에 실려가는 것을 보았다.”고 제보한 또 다른 목격자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어 이 사건과의 연관성 여부를 캐고 있다.경찰은 진술 직후 잠적한 이 목격자의 신병을 1일 밤 늦게 확보해 진술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경찰은 이와 함께 윤군 등이 사는 소사동 연립주택에서 최후 목격장소인 가톨릭대 정문까지 1.2㎞구간의 예상 이동로 주변상가와 주민들을 상대로 추가 목격자를 찾고 있다. 또 이 일대 쓰레기투기장과 편의점에 설치된 폐쇄회로TV 분석작업을 벌이는 한편 최종 목격시간인 지난달 14일 오후 9시45분을 전후한 3시간 동안의 이동로 주변에서의 휴대전화 사용자를 조사중이다. 앞서 지난달 3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윤군 등에 대한 부검을 실시한 결과 모두 직접사인이 교살(경부압박질식사)이며,범인이 등 뒤에서 임군의 목도리로 2명을 차례로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사망시간 실종당일 추정 국과수는 윤군의 위에서 실종 당일 저녁식사로 먹은 부침개가 나온 점 등으로 미뤄 실종 당일 숨졌으며,사망 시간은 오후 10시 이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윤군 등의 시체에서 강제추행이나 심한 폭행을 당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윤군과 임군 모두 등 부위에 같은 문양의 흙 묻은 운동화 발자국이 발견된 것은범인이 뒤에서 목을 조르면서 힘을 가하기 위해 등을 밟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윤군 등의 장례는 이날 오전 부천 기독제일병원 장례식장에 치러졌으며,시신은 인천시립공원묘지 화장장에서 화장됐다. 부천 김학준기자 kimhj@ 실종시간등 달라… ‘엉터리 경찰자료' 경찰이 부천초등생 살해사건을 수사하면서 발표한 각종 자료가 엉터리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경찰은 윤군 등이 실종 당일 오후 9시쯤 집을 나가 9시23분 집에 전화를 건 뒤 9시45분쯤 가톨릭대 앞에서 친구 김모군에 의해 최종 목격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이들은 오후 8시 전에 집을 나가 8시26분에 전화를 걸었고,8시 55분쯤 집 앞에서 노는 것이 윤군 아버지에 의해 목격되었다.따라서 윤 군 등은 오후 9시 이후에나 가톨릭대쪽으로 갔다는 추정이 가능하다.경찰은 “수사 초기에 혼선이 일었다.”고 해명했지만 윤군 등이 지난달 14일 실종돼 수사가 보름 이상 지속된 점을 감안할 때 이해하기 어렵다. 또 경찰은 윤군 등의 집에서 가톨릭대 정문앞까지 직선거리로 1.2㎞,시신이 발견된 춘덕산까지 2.5㎞라고 발표했다.하지만 실제로 집에서 가톨릭대까지는 길을 따라가도 700여m에 불과했고 시신 발견 지점까지는 1.5㎞ 남짓이었다.따라서 집∼가톨릭대,가톨릭대∼춘덕산까지 각각 20∼30분씩 소요된다는 경찰 분석과는 달리 각각 10여분씩에 불과했다.따라서 윤군 등이 면식범으로 추정되는 범인과 함께 20여분 만에 피살 현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경찰이 시신 발견 뒤 내놓은 약도는 더욱 가관이다.약도에는 춘덕산이 가톨릭대 뒤편 왼쪽에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으나 실제 춘덕산은 정반대 방향인 가톨릭대 뒤편 오른쪽에 있다.경찰이 약도에서 춘덕산으로 지목한 산은 주민들에 의해 ‘보은산’으로 불리는 산이다.최소한 현장이나 가보고 약도를 그렸는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경찰은 날이 저물어가는 1일 오후 5시쯤 의경들을 춘덕산으로 급파했지만 초동수사의 잘못을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부천 김학준기자
  • 미국의 ‘영원한 대통령’ 존슨이 암살 배후인가?/ JFK 내일 40주기… 미스터리 규명 열기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미국인들은 왜 케네디를 잊지 못하는가?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이 암살된 지 22일로 40주기가 되지만 그의 ‘신화’는 꺼지지 않고 있다.미국인들은 아직도 그를 ‘나의 대통령’이라 부르며 미스터리로 남은 암살의 원인규명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인 10명 중 7명이 그의 죽음을 ‘음모의 결과’로 생각하며 그가 지금이라도 대통령에 출마한다면 당선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미 역사상 가장 젊은 43세의 나이로 대통령에 취임해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을 보여준 케네디 대통령의 삶은 사후에도 계속되는 듯하다. ●식지 않는 신화 ‘긴급뉴스:J.F.K. 암살’‘누가 케네디를 죽였는가?’‘미국을 바꾼 날’‘끝나지 않은 사건’….미 ABC,NBC,PBS,폭스 등 공중파 방송과 CNN,MSNBC,히스토리 채널 등 케이블 TV가 마련한 케네디 특집 기획물의 제목들이다.15일부터 저녁 8시 황금 시간대에 맞춰 1∼2시간씩 1주 내내 방영하고 있다. ABC 방송은 당시의 정황을 재구성한 결과 케네디 암살이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을 내렸다.그러나 폭스 TV는 두번째 총격을 가한 ‘제2의 암살범’이 있었으나 검시 후 밝혀진 케네디의 ‘비밀 병력(病歷)’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케네디가 때문에 증거가 유실됐다고 보도했다. 히스토리 채널은 현 백악관 대변인인 스콧 매클레렌의 아버지이자 존슨 전 대통령의 법률 고문이었던 바 매클레렌의 저서 ‘피와 돈,그리고 권력:존슨이 케네디를 어떻게 살해했는가?’에 근거,존슨 전 대통령을 케네디 암살의 배후로 지목했다. ●새롭게 부각되는 음모론 쿠바 위기 등을 넘기면서 케네디 대통령은 존슨의 도움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됐다.더욱이 정부청사 내 자판기 사업과 관련한 비리에 직접 개입된 존슨 부통령이 최후 수단으로 케네디 암살이라는 극약처방을 택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보스턴대 역사교수이자 케네디 전기작가인 로버트 달렉은 히스토리 채널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보여줬던 자신감은 현재의 미국인들에게도 커다란 감동을 주고 있다.”며 “46세에 암살당했으나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는 희망과 더 좋은 미래를 다짐하는 젊고 패기에 찬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그의 정책은 인기에 영합한 미완성 작품에 불과했다든가 결혼 이후에도 지속된 여성 편력에 대한 비난이다.그럼에도 당시 언론은 성 스캔들을 폭로하기보다 그를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mip@
  • ‘공범’ 못밝혀 의혹 여전

    경기 포천 영북농협 총기강도 사건은 지난달 11일 발생한지 24일 만인 4일군·경 합동수사본부가 현장검증을 마침에 따라 단독범행으로 사실상 수사가 종결됐다. 범인 전모(31) 상사의 현장검증은 이날 오후 범행장소인 영북면 운천리 운천농협 등지에서 실시됐다. 전 상사는 현장검증에서 철원군 동송읍 청송회관내 개인 캐비닛 사물함에서 K1소총을 꺼내 산정호수 부근 낭유리 고개로 이동해 공포탄 1발을 시험발사하고,농협을 턴 후 유류품을 대회산리 헬기장에 버리고 귀대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순순히 재연했다. 한편 합수부는 이날 전 상사에 대한 국방과학연구소의 7차례에 걸친 거짓말탐지기 검사에서 공범 주장은 음성으로,범행 모의는 일부 양성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합수부는 이에 대해 “공범 가담여부를 계속 수사하겠다.”고 밝혔지만 광범위한 목격자·용의자 수사와 유류품 분석,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한 수사에서도 나타나지 않은 공범의 존재를 확인할 증인이나 물증이 추가로 나오기는 어려운 상태다. 군 당국은 ‘전 상사 단독소행’으로결론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사건 자체는 수많은 의혹을 남긴 채 잊혀질 가능성이 커졌다. 첫번째 의혹은 세밀한 몽타주까지 작성할 만큼 확실해 보이는 범행현장의 공범 목격자 4∼5명의 진술이 결국 무시됐다는 점이다. 또 은행강도라는 사건의 특성상 대낮에 공범도 없이 실탄을 난사하고 연막탄을 터뜨리는 전 상사의 ‘람보식’ 범행이 단독으로 가능했겠느냐는 의문이다. 군은 수사 초기부터 경찰이 범행 하루 전으로 확인한 총기반출 시점을 범행당일로 발표하고,전 상사에 대한 확실한 혐의점을 제기한 경찰의 제보를 무시해 범인 조기 검거 시기를 스스로 놓쳤다. 이와 함께 범행 후 전 상사 동료 부사관의 알리바이 조작 가담도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가 7시간 만에 뒤집는 등 ‘감추기·줄이기식’ 태도로 일관,공범을 밝히기 위한 수사의지를 의심케 했다. 포천 한만교기자 mghann@
  • 총기강도 공범 ‘오리무중’ 용의자3명 혐의점 못찾아

    사건발생 20일째를 맞은 경기도 포천 영북농협 총기강도사건 수사가 난관에 빠졌다. 유력한 용의자였던 부사관 3명에게서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 못한 가운데 강탈한 돈의 사용처가 밝혀져 혼선을 빚으며 단독범행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군·경 합동수사본부는 31일 공범 여부를 추적하기 위해 범행에 사용한 가방에서 추출한 DNA는 용의자인 부사관 한 명의 DNA와 다른 것이라고 밝혔다. 포천 한만교기자 mghann@
  • 北도발 경고 묵살설 쟁점/ ‘15글자’에 도발징후 정말 있었나

    서해교전 조짐 묵살 의혹과 관련,김동신(金東信) 전 국방장관,정형진(丁亨鎭·육군 준장) 정보융합처장,5679부대 한철용(韓哲鏞·육군 소장) 부대장의 주장은 몇 가지 부분에서 크게 어긋난다.이에 따라 이번 군 수뇌부 묵살 의혹을 둘러싸고 밝혀져야 할 의문점들은 다음과 같이 좁혀지고 있다. 첫째,김 전 장관이 6월13일 작성된 5679부대 보고서 중 북측 도발을 경고하는 내용을 삭제하도록 직접 지시를 내렸는지 여부다. 김 전 장관은 “정형진 정보융합처장이 단순침범 가능성 등 4가지 가능성을 보고,확실하게 정리해 다시 보고할 것을 지시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정형진 처장도 지난 4일 국감에서 이같이 밝혔다.그러나 한 소장은 “김 전 장관이 정형진 처장에게 직접 5679부대 감청보고 일부를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며,7월18일에 쓰여진 5679부대 윤영삼 대령의 경위서를 언론에 공개했다. 한 소장에 따르면,5679부대는 보고서에서 이틀 연속된 북 경비정의 북방한계선(NLL) 침범 의도에 대해 ▲북한 해군의 전투검열 판정 ▲월드컵 및 국회의원 재·보선과 관련한 한국내 긴장고조 ▲우리 해군작전활동 탐지 등 3가지 가능성을 제시했다.김 전 장관이 이 가운데 두번째,세번째 항목을 삭제할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 대령은 “경위서가 거짓은 아니지만 한 소장의 지시에 따라 작성된 것”이라고 밝혀,경위서가 한 소장 주장의 결정적 증거가 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또한 경위서가 작성된 7월18일에 사흘 앞서 기무사로부터 정보지원문제로 조사를 받아,신변의 위협을 느낀 한 소장이 미리 윤 대령에게 경위서를 작성하도록 시켰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둘째,5679부대가 6월27일 포착해 보고한 내용이 확실한 북측 도발을 예고하는 것이었는지 여부다. 5679부대가 이날 포착한 북측 교신은 세가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한 소장은 “이 가운데 북측 무력도발을 결정적으로 암시하는 감청내용을 정보융합처에 보고했으나 묵살됐다.”고 주장했다.그러나 국방부와 기무사는 “오히려 한 소장이 보고하지 않은 나머지 감청내용이 북측 도발을 예고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셋째,6월13일자보고서를 받은 김 전 장관이 정형진 처장에게 보고내용을 정리할 것을 지시한 진짜 이유이다. 국방부 정보융합처는 각 부대에서 보고된 정보를 말 그대로 ‘융합’해 중요내용만 국방장관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정형진 처장이 5679부대 보고내용을 김 전 장관에게 올리기로 판단할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따라서 김 전 장관이 정 처장에게 보고내용을 정리할 것을 지시한 경위를 해명할 수 있으려면 더욱 설득력있는 이유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한 소장은 이날 언론에 공개한 비망록에서도 “정보본부가 국방부 공식입장과는 달리 서해교전 닷새 뒤인 7월4일 ‘서해교전은 경비정의 우발적인 단독범행’이라고 주장,미군측과 마찰을 빚었다.”고 밝혔다.그는 특히 “정보본부가 이같은 주장을 계속 하기에 추가적 자료 2건을 갖고 반박했더니 (정보본부장이)버럭 화를 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앞서 국방부는 서해교전 당일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의도적인 도발”이라고 공식 입장을 발표했었다. 오석영기자 palbati@
  • 전국무대 300여회 떼강도 교도소동기등 7명 구속

    경기도 분당경찰서는 27일 행동강령까지 만들어놓고 전국을 무대로 수백여차례에 강도행각을 벌여온 걸쳐 박모(24)씨 등 7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달아난 박모(29)씨를 수배했다. 경찰에 따르면 동네 선·후배 및 교도소 동기 사이인 박씨 등은 지난 2000년 5월부터 지난달 중순까지 서울 강남을 포함해 분당,대전,광주,포항 등지의 아파트단지를 돌며 혼자 오가는 부녀자들과 빈집을 대상으로 300여차례에 걸쳐 모두 12억여원의 금품을 빼앗거나 훔친 혐의다. 경찰 조사결과 박씨 등은 지난 2000년초 ‘경찰에 적발되면 어떤 일이 있어도 단독범행이라고 진술한다.’ ‘지방원정시 합숙을 원칙으로 한다.’는 등의 행동강령을 만들어놓고 장소 물색책,행동책 등으로 역할을 분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
  • 극우파 정치폭력 유럽 암운

    유럽에 부는 극우 바람이 심상치 않다.정치 지도자 암살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졌던 현대 유럽 정치사에서 네덜란드의 극우파 정치인 핌 포르투완의 암살에 이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암살 기도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국수주의의 확산과 함께 정치폭력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전조가 아니냐는 우려마저 일고 있다. 유럽이 잇단 정치폭력과 극우파들의 급부상으로 긴장한 가운데 게르하르트슈뢰더 독일 총리는 오는 9월 총선에서 미국식 신자유주의 및 극우파와의 투쟁을 선거쟁점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잇단 암살 시도에 놀란 유럽- 지난 5월 포르투완 암살사건 때만 해도 ‘설마’했던 유럽인들은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에 대한 암살 기도 사건이 터지자 피의 보복을 부르는 정치폭력의 시작을 예고하는 것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신나치단체 소속인 막심 브뤼네리(25)는 14일 파리 중심가 샹젤리제에서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을 맞아 무개차를 타고 군대를 사열하던 시라크 대통령을 향해 소총을 발사했다.다행히 구경나온 사람들의 저지로 암살기도는 무산됐고 용의자는 현장에서 체포됐다.프랑스 국가원수에 대한 암살 기도는 1962년 한 극우단체(OAS)가 샤를르 드골 전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 이후 40년만의 일이다. 프랑스 경찰은 브뤼네리가 “대통령을 죽이고 자살하려 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그는 스킨헤드족과 관련된 신나치 학생운동조직인 GUD의 일원으로 전과기록과 함께 정신병력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시라크 대통령에 대한 암살 기도 사건 직후 이탈리아와 영국 등 유럽 각국정상들은 우려를 표시했다. 이번 사건의 배경에 대해서는 조직적인 암살 기도보다는 브뤼네리의 우발적 단독범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이 우세하다.하지만 프랑스 관리들은 ‘암살 미수사건’으로 몰아붙이고 있다.프랑스 한 고위관리는 “단순 사고가 아니며 국민전선(NF)보다 더 극우 성향인 인물이 대통령의 목숨을 노리고 저지른 공격”이라고 주장했다.대선을 계기로 거세게 일고 있는 극우바람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독일,반신자유주의·반극우파 선거쟁점화- 슈뢰더 독일 총리는 14일 일간데어 타게스슈피겔과의 회견에서 “유럽은 현대적 경제정책과 거리가 먼 신자유주의에 대항해야 한다.”면서 시민사회와 공동체의 필요에 부응하는 유럽의 사회적 특성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또 유럽 주요 국가들에서 극우파가 부상함으로써 유럽의 기본 이념이 파괴될 수 있는 위험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EU가 논의해야 한다며 독일은 신자유주의와 극우파에 대항하는 보루가 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이 두 문제가 오는 9월 총선의 쟁점이 될 것이며 이를 통해서만 사민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균미기자 kmkim@
  • “AA기 폭파미수 공범 있는듯”

    [보스턴·런던·워싱턴 AFP AP 연합] 신발 밑창에 숨긴폭발물로 아메리칸항공(AA)63편을 폭파하려다 미수에 그친사건은 영국 국적의 리처드 C 리드(28)의 단독범행이 아닌것으로 보인다고 미국의 보스턴 글로브가 25일 보도했다. 글로브는 익명의 매사추세츠주 정부 관리 말을 인용,리드가 신고있던 검정색 가죽 농구화에 대한 1차 시험 결과 도화선으로 알려진 로프와 같은 물질 뿐 아니라 각각 포장된소량의 폭발물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신문은 농구화 밑창은 폭발물을 넣을 수 있도록 내부에 구멍이 뚫려있고 각각에 도화선 구멍이 만들어져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편 영국의 더타임스는 26일 리드가 영국 국민이며 경범죄로 복역하다 감옥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했고 9·11테러와관련해 미국에서 기소된 용의자 자카리아스 무사위(33)와같은 이슬람 사원에 다녔다고 보도했다. 무사위는 오사마빈 라덴이 이끄는 테러조직 알 카에다 요원이다.신문은 이슬람 사원 관계자 말을 인용,리드가 무사위를 만났을 가능성이 있으며 리드 혼자 신발폭탄을 고안해내지는 못했을것이라고 밝혀 배후세력이 있음을 강력 시사했다. 미 수사요원들은 아직까지 리드가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 혹은 다른 테러집단과의 연계 가능성을 밝혀내진못했다고 글로브가 전했다. 리드는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단독범 혹은 공범 여부에따라 최고 징역 20년형과 그에 상당한 벌금을 선고받게 된다.
  • 검찰·법원 ‘총풍’ 갈등

    임창열(林昌烈) 경기도지사에 대한 무죄 선고를 놓고 설전을 벌였던 검찰과 법원이 ‘총풍사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무력시위 요청 사전 모의’ 부분을 인정하지 않은것을 놓고 다시 갈등을 빚고 있다. 총풍사건 공판에 참여했던 서울지검 공안1부 이영만(李靈蔓) 검사는 16일 검찰 통신망에 ‘상고를 제기하면서’라는제목으로 A4용지 6쪽 분량의 장문의 글을 올려 항소심 판결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이 검사는 우선 “총풍 3인방으로 알려진 오정은(吳靜恩)·장석중(張錫重)·한성기(韓成基)씨가 모의했다는 것은 한씨의 진술과 전화통화기록,메모지 등 수많은 증거가 있다”면서 “모의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법정에서 일방적으로 부인하는 진술밖에 없는데도 법원이 한씨의 단독범행으로 단정한 것은 증거에 따라 재판하라는 법의 규정에 반하는 것”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이 검사는 “국기문란범죄와 관련된 피고인을 모두 집행유예로 석방한다면 어떠한 범죄인을 실형에 처해야 하는가”라고 물은 뒤 “한씨의 돌출 행동적인 단독범행이라 한다면최소한 한씨에 대해서는 실형이 선고됐어야 했다”고 밝혔다. 법원이 충분한 기록 검토를 하지 않았다는 불만도 제기했다.“1심 재판부는 2년여에 걸친 심리 끝에 피고인들의 무력시위 요청 및 모의 사실을 인정했다”면서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가 1개월만에 5차례 심리한 뒤 ‘모의 부분’을배척했으므로 심리가 충분히 이뤄졌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검찰이 요구한 대로 심리를 했기 때문에 심리가 부족했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판단은 법원이 하는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장택동 조태성기자 taecks@
  • 3차 이산상봉/ 납북 KAL機 기장 유병하씨 아들 한민씨의 기대

    “납북된 지 3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꼬박꼬박 날아오는 아버지 이름의 투표용지를 보면 눈물이 납니다” 69년 납북된 대한항공 YS 11기의 기장 유병하(柳炳夏·당시37세)씨의 맏아들 한민(漢旻·42·무역업·서울 중계동)씨는 26일 생사 여부도 알 수 없는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이렇게 표현했다.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그는 “‘태권도검은 띠를 따면 자전거를 사주마’던 인자한 아버지가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오실 듯하다”고 되뇌었다. 그는 “같은 비행기에 탔던 성경희씨가 32년만에 어머니를만나는 모습에 희망을 갖게 됐다”면서도 “7·4 남북 공동성명이 발표되고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듯하다가도 냉전으로돌아가는 일이 하도 많아 실망에도 익숙해졌다”고 애써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 했다. 한민씨 어머니 엄영희(嚴永喜·67)씨는 “남편이 납북된 뒤5년 동안은 날마다 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하며 울면서 날을샜다”면서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소망을 밝혔다. 전영우기자 anselmus@. *미귀환 납북자 가족표정. “근황이라도 알아보려고 백방으로 뛰었지만 알 수가 없었습니다.하지만 꼭 살아있어 다시 만나리라고 믿습니다” 제3차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진 26일 51년 만의 만남 한켠에서 애타게 가족들을 그리는 이들이 있다.69년 12월 11일 KAL기 납북사건으로 생이별한 남편과 형,아버지와 딸의 얼굴을 가슴 속에서나 볼 수밖에 없었던 미귀환자들의 가족이다. KAL기 납북사건 이후 귀환하지 못한 12명의 미귀환자 가족들은 지난 70년대 초반까지는 성경희씨 아버지를 주축으로‘납북 KAL 미귀환자 가족회’를 구성해 귀환을 위한 활발한활동을 벌였다.정부에 탄원도 해봤지만 오히려 해외출장을가거나,취직을 하는 데 ‘납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해야만 했다. 사회적 불이익을 감당하지 못한 납북자 가족들은 하나 둘흩어지기 시작했고,미귀환자 가족회 모임도 흐지부지됐다.이들 모임에서 고문을 맡고 있는 김봉욱씨(58·개인사업)도 당시 납북된 다섯째 형 김봉주씨(62·당시 지방MBC 기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정부에서 근황을 알 수 있을텐데,납북자의 생존여부라도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여경기자 kid@. *KAL機 납북사건이란. 납북사건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이 지난 69년12월에 발생한 대한항공(KAL) 여객기 YS-11편 피랍사건이다. 강릉을 출발해 서울로 돌아오던 KAL기가 승무원·승객 등 51명을 태운 채 기수를 북으로 돌려 함경남도 함흥과 원산 중간에 위치한 선덕비행장에 착륙했다. 당시 수사당국은 강릉발 서울행 KAL기가 북한에 의해 피랍됐고,승객으로 탑승하고 있었던 고정간첩 조창희(趙昶熙·당시 42세)씨가 단독범행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70년 2월 KAL기 탑승자 51명 중 39명이 ‘돌아오지 않는다리’를 통해 귀환했다. 최여경기자@
  • [의열 독립투쟁] (9)장진홍 의사

    1927년 10월18일 11시20분경 대구시 중앙통에 위치한 조선은행 대구지점에허름한 옷차림의 한 청년이 나타났다.청년은 곧바로 창구 앞으로 다가가 들고온 보자기를 풀어 네개의 상자 가운데 한 개를 창구로 내밀면서 창구의 직원에게 “이것은 벌꿀인데 우리 여관에 든 손님이 지점장님께 전해달라고 한선물입니다”고 디밀었다. 군대에서 포병대 근무경력이 있는 창구직원 요시무라(吉村)는 상자에서 화약냄새가 나는 것을 느끼고 급히 상자를 열었다.아니나 다를까!상자 안에는도화선에 불이 붙은 폭탄이 들어있었다.깜짝놀란 요시무라는 도화선을 끊고청년으로부터 보자기를 빼앗아 다급하게 나머지 상자를 열었다. 연락을 받고 황급히 달려온 10여명의 순사들이 도화선을 끊으려고 하였으나이미 때는 늦었다. 곧이어 폭탄 하나가 터짐과 동시에 뒤이어 두개의 폭탄이 연속적으로 굉음을 내면서 폭발하며 천지를 뒤흔들었다.이것이 저 유명한장진홍(張鎭弘)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이다.폭탄을 전한 청년은장의사가 심부름을 보낸 덕흥여관 종업원 박노선(朴魯宣)으로 이 사건과 별다른 관련은 없다. 장의사는 1895년 6월6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문림리에서 아버지 장성욱(張聖旭)과 어머니 순천(順天) 김씨 사이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본관은인동(仁同),호는 창려(滄旅).장의사는 어려서부터 담력이 크고 의협심이 강했다.칠곡소재 인명학교(仁明學校)를 졸업하고 1914년 조선보병대에 입대해군사지식을 배운 장의사는 1916년 고향에서 대한광복회에 가입했으나 일경의감시가 심해 1918년 만주로 망명했다. 동지인 이국필(李國弼)과 함께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로 건너가 조선인 청년 100여명을 규합해 군사훈련을 실시했으나 1917년 러시아혁명의 여파와 일본군의 시베리아출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귀국하였다.1919년 3·1 의거가 일어나자 장의사는 일제의 만행을 세계 여론에 호소하기 위하여 동생 진환(鎭煥)으로부터 600원을 받아 전국 각지를 돌며 일제의 만행사실들을 조사,수집하였다.이 해 7월 미국 군함이 인천항에 입항하자 장의사는 경북출신조선인 하사관 김상철(金相哲)에게 이를 영문으로 번역,세계 각국에 배포해줄 것을 부탁했다. 한편 장의사는 일제 통치기관에 폭탄을 투척,일제의 만행을 응징키로 결심하고 대한광복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지 이내성에게서 일본인 무정부주의자이자 폭탄제조 전문가인 호리키리 시게미쯔로(堀切茂三郞)를 소개받아 폭탄제조법을 배웠다. 1927년 8월에 직접 제조한 폭탄의 성능실험을 마친 장의사는 동지들과 경북도청·경북 경찰부·조선은행 대구지점·식산은행 등에 폭탄을 투척하기로하고 10월16일 폭탄 여섯개를 제조했다.이튿날 6개의 폭탄 가운데 5개를 가지고 대구로 향한 장의사는 조선은행에서 가까운 덕흥여관에 숙소를 정하였다.18일 오전 10시40분 장의사는 여관의 사환을 불러 “이것은 조선꿀인데조선은행·도청·식산은행·경찰부 순서로 배달해달라”고 부탁하였던 것이다. 이어 11시40분경 조선은행 대구지점에서 굉음과 함께 폭탄이 터져 일본인순사 4명과 은행원 1명,행인 1명 등 모두 6명이 부상을 입고 조선은행 대구지점 유리창 60여장이 깨졌다.그 순간 두루마기 차림에 파나마모자를쓰고네 대의 금니를 한 모습으로 변장하고 있던 장의사는 말쑥한 양복 차림에 흰 운동화로 갈아신고 상주에서 안동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다부원고개를 넘고 있었다. 사건 직후 일본경찰은 철저한 보도통제 속에 범인색출에 나섰으나 단서조차 잡지 못하였다.일본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지자 장의사는 일본으로 건너가 막내동생 의환(義煥)에게 몸을 의탁하고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히로시마(廣島)등을 왕래하며 1년반 동안을 지냈다. 한편 이 사건의 수사가 미궁으로 빠져들 무렵 엿장수로 변장,장의사 고향집 부근에서 탐문수사를 벌이던 한 형사가 장의사가 오사카에서 안경공장을 경영하는 동생집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일본경찰은 조선인 여자첩자를 오사카로 파견,장의사 동생부부에게 접근하여 마침내 장의사가 2층에 숨어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1929년 2월14일 밤 동생 장의환의 안경공장에서는 술자리가 벌어졌다.일본경찰에 매수된 한 조선인 첩자가 안경 1만5,000개를 산다며 계약금조로 30원을 내놓은 것이었다.오랜만에 목돈이 생긴 장의환이 벌인 술자리에는 조선인첩자를 포함해 김해중으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하던 장의사도 참석하였다. 술이 몇 순배 돌면서 취기가 무르익자 갑자기 일본경찰이 들이닥쳤다.장의사는 순간적으로 일어나면서 전등을 손으로 쳐서 깨뜨리고 창문으로 뛰어내렸으나 아래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형사들마저 피할 수는 없었다. 현장에서 체포돼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장의사는 단독범행을 주장하며 심문하는 일경에게 “일본이 조선을 해방시켜주지 않으면,너희 일본도 망할 날이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취조하던 조선인경찰에게는 “나의 죽은 혼이라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라고 호통을 쳤다. 대구고등법원에서 사형언도가 확정된 장의사는 사형이 집행되기 전날인 1930년 7월31일 옥중에서 자결 순국하였다.장의사의 순국소식이 옥중에 퍼지자재소자들은 ‘조선독립만세’,‘장진홍만세’를 외쳤고 이에 당황한 교도소측은 서둘러 장 의사의 사인이 뇌일혈이라고 발표하였다. [김순석 독립기념관 전시부 연구원] *장진홍 의사 후손들 근황 장진홍 의사는 후손으로아들,딸 각각 3형제를 두었는데 아들은 모두 어려운 형편 속에 살고 있다.세아들 가운데 장남만 보통학교 4년 중퇴를 했을 뿐나머지 두 아들은 모두 무학자이다. 96년 83세로 작고한 장남 형옥(衡玉)씨는 생전에 부친 장의사의 기념사업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나 경제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별다른 성과는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차남 형술(衡述·81)씨는 구미시 옥계동에 살고 있는데 연로해서 현재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다.또 대구에 살고 있는 3남 형태(衡泰·73)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행상 이발소를 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장남 형옥씨는 7남3녀를 두었는데 현재 8명이 생존해 있다.장손 상규(相圭·63)씨는 칠곡에서 전자제품 하청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IMF 사태 후 모기업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연쇄부도를 맞아서 살고 있는 집마저 근저당이 설정된 상태. 장의사의 후손 가운데 그나마 그럭저럭 살고 있는 사람은 세 딸이 고작이다.세 딸 가운데 위로 두 딸은 모두 작고하였고 현재 막내딸 형필(衡必·70)씨만 구미에서 살고 있다. 현재 장의사 추모단체나 기념사업회는 특별히 구성된 것이 없고 낙동강 기슭에 서있는 추모비 하나가 고작이다.장의사는 62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추서받았으며 묘소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128번)에 마련돼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주가조작’ 수사 확대냐 마무리냐

    검찰의 현대전자 주가조작사건 수사가 핵심인물인 김형벽(金炯璧) 현대중공업 회장,박세용(朴世勇) 현대상선 회장,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 회장 등의잇따른 소환으로 급피치를 올리고 있다. 특히 검찰이 그룹 차원의 주가조작 개입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현대그룹 정몽헌(鄭夢憲) 회장의 소환을 적극 검토함으로써 수사가 정씨 일가로 확대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지난주까지 현대그룹 임원들에 대한 조사에서 “이 회장이 현대전자주가조작을 위해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으로부터 2,100여억원의 자금지원을요청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대증권이 보유하고 있던현대전자 주식도 팔아 400여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사실도 확인해 놓은 상태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 회장의 사법처리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이 회장의 사법처리가 증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일부 여론이나 청와대 관계자의‘경제사정 감안’ 발언은 검찰 수사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그러나 정 회장의 소환 조사에는 그다지무게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검찰 관계자는 5일 “이 회장이 그룹의 경영정책을 담당하는 경영전략팀 임원에게 현대전자 주가조작에 자금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사실이 있다”면서 “이는 이 회장이 현대증권의 경영을 호전시키기 위해 개인적으로 저지른 범죄일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라고 밝혔다. 향후 수사의 최대 관심사는 정씨 일가의 주가조작 개입 여부다.이 회장을소환 조사하면 ‘몸통’격인 정 회장의 지시 또는 공모 여부를 밝혀낼 수 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혐의가 드러날 경우 현대그룹에 대한 전면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금까지의 수사결과를 종합해 볼 때 이 회장의 단독범행일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2,100억원이 넘는 거액의 계열사 자금동원을 이 회장 선에서 처리할 수 있었는지에는 여전히 의문을 갖고 있다. 따라서 검찰의 수사는 오는 8일 소환되는 이 회장을 상대로 ‘윗선’의 주가조작 개입 여부를 밝혀내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종결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보인다. 주병철기자 bc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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