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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대표 뽑을 대의원지분이 쟁점/평민­민주 통합회담 어떻게 될까

    ◎민주,50대50주장… 평민선 난색/협상대표 상호불신 커 진전 어려울 듯 평민당이 야권통합협상을 위한 대표 5명을 구성한 데 이어 민주당(가칭)도 28일 평민당과의 통합협상을 위한 협상대표 5명을 선임함에 따라 평민ㆍ민주 양당은 금주중 첫번째 공식적인 협상의 자리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번 주초쯤 창단준비위를 열어 28일 야권통합추진특위(위원장 박찬종의원)에서 결정한 통합방안과 통합4대원칙을 당론으로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평민당측도 양당 대표의 협상에 앞서 일단 자당 대표모임을 갖고 민주당측이 제시한 통합방안등을 놓고 대응책을 논의할 것으로 보여 양당간의 첫협상은 주중쯤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야권통합특위에서 당대당통합의 기본원칙 아래 통합야당의 대표경선과 집단지도체제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통합방안과 ▲범민주세력 대동단결 ▲어느 일방의 지지기반의 상실이 없는 국민화해 바탕의 통합 ▲민주적 절차의 통합 ▲통합야당 조직과 운영에 있어서 완전히 합의된 통합 등의 4대원칙을 마련했다.「선창당 후통합」의 입장을 고수해 온 민주당이 이같은 통합방안과 원칙을 결정한 것은 지구당조직책 1차인선을 마쳐 창당작업이 어느 정도 진척됐다는 자체분석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구당조직책 인선작업에 몰두해 오던 민주당은 그동안 구야권총재들과 평민ㆍ민주 양당의 통합파의원들의 통합논의로 내외적으로 통합의 압력을 받아와 야권통합 분위기상으로는 수세에 몰렸던 게 사실이다. 민주당이 통합의 4대원칙 가운데 어느 일방의 지지기반 상실이 없도록 하는 국민화해 바탕의 통합원칙과 통합야당의 운영에 있어서 완전히 합의된 통합의 원칙을 명시한 것은 통합과정에서의 흡수통합은 절대로 용인하지 않으며 통합이후에도 「사실상」 흡수되지 않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당대당통합을 근간으로 당대표를 통합야당 전당대회에서 대의원을 통해 선출한다는 통합원칙은 평민ㆍ민주 어느쪽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어 쌍방이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고 하겠다. 통합협상의 관건은 당대표를 뽑을 대의원 비율등 지분문제에 있는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내심 김총재의 2선후퇴를 원하고 있으나 겉으로는 『김총재의 2선후퇴는 통합협상의 전제조건이 될 수는 없다』고 밝히고 있으며 『통합야당의 지분은 당대당 통합원칙에 따라 50대50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대해 평민당은 70대8의 의석비를 보더라도 50대50의 지분은 불가능하다는 기존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평민당내의 노승환국회부의장,이재근ㆍ이상수ㆍ이해찬의원 등 통합서명파 10여명도 28일 밤 회동을 갖고 당대당 통합의 원칙에는 공감하나 지분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지분문제는 이번주 양당대표 협상에서 최대 쟁점으로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협상대표회담은 양당간의 대표에 대한 상호불신감이 팽배해 있어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김원기총재특보를 단장으로 이재근ㆍ유준상ㆍ한광옥의원,한영수당무위원 등 5명으로 구성된 평민당대표에 대해 평민당 야권통합파의원들이 『진정한 통합의지를 반영시킨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반발하고 있으며 민주당측도 평민의 협상대표에 대해 「왕당파」로 몰아 붙이며 『당대당통합이 아닌 흡수통합의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민주당이 김정길의원을 단장으로 이철ㆍ노무현ㆍ장석화의원,장기욱 전의원을 협상대표로 선임하면서 『대표는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다』며 유연성을 보인 것도 평민당대표의 일부 교체에 대한 압력으로 풀이된다. 즉 평민당이 중도민주세력통합위원장인 최영근부총재를 단장으로 하고대표를 일부 교체한다면 민주당측도 박찬종통합추진위원장을 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양당이 협상대표를 새로이 구성,상호불신을 제거하지 않는 한 협상은 열리되 통합논의의 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4ㆍ3보선의 승리와 최근 여론조사결과에 고무되어 있는 민주당과 흡수통합의 의지를 갖고 있는 평민당이 협상에 어느 정도 성실히 임할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 통합협상 대표 민주,5명 선정

    민주당(가칭)은 28일 야권통합추진특위(위원장 박찬종의원)를 열고 평민당과의 통합협상에 나설 협상대표 5명을 선정했다. 협상대표는 김정길의원을 단장으로 위원에 이철ㆍ노무현ㆍ장석화의원,장기욱 전의원 등이다. 민주당은 이와함께 평민당과의 통합은 당대당 통합원칙 아래 통합야당의 대표는 경선으로 한다는 방안과 함께 새로운 당은 ▲완결된 통합 ▲민주적 절차 ▲국민화해 ▲범민주세력 대동단결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4대 원칙을 마련,다음주중 창당준비위의 인준을 거쳐 당론으로 확정하기로 했다. 이에따라 평민ㆍ민주 양당의 공식적인 통합협상은 다음주중 열릴 것으로 보인다.
  • 노동조합 설립신고서 상급단체 기재는 위헌/언노련,제청 신청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위원장 권영길)은 18일 노동조합을 설립할때 소속연합단체 명칭을 적도록 한 노동조합법 13조1항5호 등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서울고법에 냈다. 「언노련」은 이날 신청서에서 『노동부가 노동조합법 13조1항과 2항 등을 근거로 모든 노동조합이 한국노총및 산별노조연맹에 가입하도록 하고 설립신고서에 이들 상급단체를 기재하지 않으면 노조설립 신고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것은 헌법 제33조 근로자단결권과 제11조 평등권 등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 소 공산당 내분 심각/당 중앙위­청년동맹 상호비난 가열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소련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가 당중앙위공개장에 지지를 표명하며 급진개혁파들을 신랄히 공격한데 맞서 콤소몰(공산청년동맹)이 17일 당중앙위의 입장을 비난하고 나섬으로써 다시 한번 당의 분열상이 노출되고 있다. 한편 최근의 당내분과 관련해 비관영 통신사 포스트팩텀은 정치국원 바딤 메드베데프의 말을 인용,당중앙위는 공개장 발표에서 한걸음 더나아가 숙청을 요구하는 「비밀 결의안」도 채택했다고 보도함으로써 일대 숙청의 가능성도 엿보이고 있다. 프라우다지는 16일 1면 사설을 통해 당중앙위가 지난주 발표한 공개장은 당대회를 앞두고 당의 건전한 세력을 공고히 해 당을 단결시키는 강력한 조치를 취하려는데 있다고 말하고 급진개혁파들에게 차라리 당을 떠나라고 경고했었다. 이에 대해 미래의 핵심당원을 양성하는 콤소몰은 현재 진행중인 21차 대의원 대회에서 이 문제를 둘러싼 열연 논란을 벌인 끝에 17일 당중앙위의 공개장과 관련한 결의안을 채택하고 이 공개장을 『당내의 논의를 억압하려는 기도』라고 규탄했다. 한편 비관영 통신사 포스트팩텀은 정치국원 바딤 메드베데프가 콤소몰 대의원들에게 숙청을 요구하는 「비밀결의안」을 채택했음을 밝히며 이 결의안에서 『당을 분열시키는 분파운동 지도자』들에 대한 제재를 경고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 사립교 노조금지/간통죄 처벌규정/“합헌”ㆍ“위헌”뜨거운 논쟁

    ◎헌재심판대에 오른 쟁점법 지상중계 「전교조」와 관련,그동안 많은 논란을 벌여온 교원의 노동운동을 금지한 사립학교법 제55조 및 제58조1항4호의 위헌법률심판사건과 형법제241조의 간통죄는 헌법상 행복추구권등에 위배된다는 헌법소원사건에 대한 변론이 16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이날 변론에는 정원식문교부장관등 관계ㆍ학계ㆍ법조계인사 10여명이 참가,열띤 찬반공방을 벌였다. 헌법재판소가 사립학교법 제55조 등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릴 경우 이 조항에 의해 해직된 사립학교 교사들이 모두 복직되고 교원노조의 합법성 여부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돼 각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조항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각급 법원에서 모두 88건이나 위헌법률심판을 해주도록 제청하고 있으나 서울민사지법 합의42부(박용상 부장판사)는 최근 이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위헌제청신청 자체를 기각,법원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간통죄의 경우도 여성계ㆍ학계ㆍ법조계에서 그동안 끊임없는 논란을 벌여온데다 헌법재판소의 결정과는 별도로 법무부가 폐지를 추진하고 있어 이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결정이 주목되고 있다. 이날 변론에서 공방을 벌인 이들 두 문제에 대한 합헌ㆍ위헌 양론을 간추려 소개한다. ◎사립학교법/「집단목적」위한 학생이용은 부당 합헌론/노동권 부정은 기본권의 본질 침해 위헌론 ▷합헌론◁ ▲정원식 문교부장관=사립학교는 국ㆍ공립학교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감독권아래 있으며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보통교육의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공교육기관이다. 이법 55조는 사립학교교원의 법적지위를 공립학교교원과 동등하게 취급하기 위한 조문이다. 사립학교교원의 자격 및 직무가 국ㆍ공립교원과 같으므로 이들에게 노동권을 인정하는 것은 헌법 제11조(평등권)에 어긋난다. ▲강린제 동북고교장=「교원노조」는 목표달성을 위해 학생을 선동ㆍ의식화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등 나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주장하는 「참교육」의 실체는 「민중교육론」을 바탕으로 한 편향된 의식화교육일 뿐이다. 학교는 선동ㆍ선전의 장소가 되어서도 안되며 사회운동이나 정치운동의 장소도 아니다. 학생들에게 보편타당성이 없는 편견이나 사상을 주입하는 것은 제자를 병들게 하는 것일 뿐이다. ▲김상철 변호사=우리나라 중등교육에서 사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45.3%나 되는 등 사학의 공교육적기능의 원활한 수행이 강조되고 있다. 사립학교교원도 임용주체만 다를뿐 임무ㆍ자격ㆍ보수ㆍ신분보장의 면에서 헌법상의 공무원에 해당한다. 교원의 교육의 자유는 공교육체계와 국가입법에 의한 교육제도 및 정책의 틀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이상규 변호사=경제적지위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노동기본권에 대한 제한을 국ㆍ공립학교 교원과 같도록 규정하는 55조만을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립학교교원의 권익보장의 기초가 사회적 책무의 효과적 수행에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사립학교 교원에게 노동기본권을 인정하는 것은 국ㆍ공립학교 교원 및 학생들에게 차별을 받게하는 것으로 불평등한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위헌론◁ ▲양건 한양대교수=58조의 「노동운동」이라는 규정자체가 교원면직사유로서는 지나치게 막연하기 때문에 위헌이다. 헌법 제33조는 근로자의 노동3권 제한은 「공무원」과 「주요방위산업체종사자」에 대해서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밖에 다른 근로자는 제한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교원의 단체행동권 제한은 이론이 있을수 있으나 사회경제적 지위의 향상을 위해 자유롭게 단결할 권리조차 침해하는 것은 명백히 위헌이다. ▲임종률 숭실대교수=헌법 제37조3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음에도 사립학교법은 노동3권자체를 전면부인하고 있어 헌법에 어긋난다. 직무의 공공성을 근거로 단결권까지 부정할 수 있다면 지하철공사 근로자의 단결권까지 부정할 수 있는 것처럼 사립학교 교원의 직무가 공익성을 띠고 있다는 이유로 단결권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근로자가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해서는 안되고 재산권보호에 부응해야 한다는 이유로 근로자의 노동3권을 전면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사립학교 교원이 국민의 교육을 받을 권리에 부응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노동3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수호 「교원노조」 부위원장=교사를 새로 임용할 때 기부금을 받는 행위,결혼을 앞둔 여교사에게 사표를 강요하는 행위등 사립학교 교사의 신분을 위협하는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교원에게 노동3권을 부여해야 한다. 사립학교 교원은 의무는 공무원과 같으면서도 피고용자로서의 권리는 더 많이 박탈당해 이를 위해서도 노동3권은 인정돼야 한다. ◎형법 간통죄/일부일처제의 건전혼인생활 보호 합헌론/예민한 사생활…국가통제는 안될말 위헌론 ▷합헌론◁ ◇박윤흔 경희대교수=간통죄가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하나 헌법규정은 자유스러운 성적행동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한 것이지 간통에 있어서의 성적행위까지 보장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간통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 추세와 국민의 의식변화에 따라야 한다고 하나 아직 우리 국민의 대부분은 간통을 비범죄행위로 받아들일 만큼 의식이 바뀐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간통죄가 위헌이 아니라고 해서 계속 존치시켜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입법론이나 형사정책적으로 존치여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간통죄가 헌법 제12조(신체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주장은 간통죄를 형법에 규정하고 있는 것이 헌법상의 다른 조항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따로 거론할 필요가 없다. ◇박정근 중앙대교수=헌법 제10조에서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이 보장된다면 「자기결정권」도 존중되어야 한다. 혼인을 자기결정으로 한 배우자들은 성적성실의무도 부담한 것으로 해석해야하므로 이를 서로 지켜야 할 것이다. 간통죄는 국가가 개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참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게 하는 것이며 참된 성적인 행복을 추구하도록 보장한 것이다. 간통행위는 실제로 축첩ㆍ중혼하는 것으로 일부일처제를 침해하는 것이다. 국가가 간통죄를 처벌하는 것은 바로 일부일처제를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개인의 존엄과 남녀평등에 기초한 혼인과 가족생활의 보장을 규정한 헌법 제36조에도 합치된다. ▷위헌론◁ ◇용태영 변호사=혼인은 이성사이의 동거계약과 자녀생산계약이 혼합된 일종의 복합계약이므로 형법이 아닌 다른 법률로 다스릴 수 있다. 간통은 개인적인 혼인감정에 의해 처리되는 당사자처분주의에 속하는 것이어서 국가의 형벌권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전광석 한림대교수=형벌의 목적과 그 객관성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 사회윤리의 유지자체가 형벌의 목적이 될 수 없다. 간통행위가 사회윤리에 반하는 것은 사실이나 사회질서가 심각한 위위기에 빠질 정도는 아니며 개인의 성적생활의 한 단면이 될 뿐이다. 따라서 간통은 형법이 아닌 개인관계를 규율하는 민법상의 혼인관계규정에 의해 규율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즉 민법상 간통행위를 이혼의 사유로 하고 손해배상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충분히 표현되고 있다. ◇박은정 이화여대교수=간통죄는 형법이라는 최후수단이 고소인 개인의 사적인 감정에 좌우되는 점,간통죄의 추적수사 및 소송절차에서 피고인 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에게 인격적인 손상을 주는등 피해를 준다고 볼 때 부분적으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 그러나 개인의성적자유추구권은 그것에 피해를 입는 다른 가치가 있는 이상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제한됨이 마땅하며 따라서 간통죄가 전체적으로는 헌법정신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 사생활영역의 자유권은 정치ㆍ사회ㆍ경제의 전반적인 자유와 보조가 맞아야 하므로 성적자유와 권리만이 유달리 보호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앞으로 우리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간통죄의 위헌성은 더 커질 것이며 지금 이를 무효화시키기에는 현실적인 저항이 너무 크다할 것이다.
  • 한반도통일에 대한 소련의 입장 세미나 요지

    ◎“남북한 「평화협정」 체결이 우선과제”/낭비적 군비경쟁 지양,군축협상부터 시작을/평화공존속 민주화 거쳐 점진적통일 이뤄야 한양대 중소연구소와 소련의 과학아카데미 극동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제3차 한소학술회의가 16,17일 양일간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렸다. 이번 회의에는 극동연구소 소속의 소련학자 8명과 국내학자 다수가 참석해 「한소관계의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토의를 벌였다. 다음은 소련극동연구소 한국책임자인 유리 오그네프씨가 발표한 「한반도통일에 대한 소련입장」이란 제하의 논문 요지이다. 현재의 국제정세는 한반도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유리한쪽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는 미소양국을 포함,주변국가들에게도 공히 도움을 줄 것이다. 소련은 한반도의 통일 문제가 외부의 간섭없이 남북한국민의 뜻에 따라 실현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남북한이 상호 적대관계를 종식,한반도에 안정과 평화가 유지되는 것이 통일의 전제조건이라고 보고있다. 남한과 북한은 장기간 분단되어온 그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사회ㆍ경제ㆍ이념ㆍ문화적인 측면에서 서로 상이하며 대외 정치적 정향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에는 우리가 승인을 하든 안하든 두개의 한국(Two Koreas)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현재의 국제환경하에서는 미ㆍ일ㆍ소ㆍ중이 한반도를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국가로 통일시키기는 불가능하다. 또한 한국동란과 같이 한반도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는 새로운 국제분쟁만을 낳을 뿐이다. 남북한은 일찍이 지난 72년 자주ㆍ평화ㆍ민족대단결의 통일3원칙에 합의했지만 그 방법에 대해선 상호 시각을 달리하고 있다. 북한은 고려연방제를 통일문제해결에 가장 적합한 방안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먼저 상징적 통합을 이룬뒤 점진적으로 완전한 단일주권국가로의 통일을 이루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태우대통령은 지난 88년 유엔연설에서 동북아 평화번영을 위한 6개국(미ㆍ일ㆍ중ㆍ소와 남북한)회담을 제의했다. 이는 소련의 입장과 일치하며 다른 국가들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 89년 9월에는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제의,완전한 통합에 이르기 위한 공동영역의 마련을 제안했다. 그러나 북한은 유감스럽게도 자신들이 주장한 고려연방제와 일맥상통한 이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물론 남북통일이나 40년간 지속된 적대관계 종식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질 수는 없지만 북한이 통일이라는 명분 때문에 그들의 이념인 「주체사상」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통일을 위해선 40년간의 대결구조가 우선 사라져야 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남북간의 대화와 관계정상화가 더욱 요청되는 것이다. 남한과 북한은 공히 오는 8월15일 남북분단 45주년을 맞아 재통일을 위한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에 대한 상호인식의 전환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남한의 군사독재 정권이 없어지고 사회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 한반도의 남쪽상황은 북한이 주장하던 그러한 여건이 조성됐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상황은 전혀 변화가 없다. 또 남한은 북한이 개방만 하면 북의 사회주의체제가 몰락한 것으로 보는데 이는 단순한 희망사항일 뿐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40년 이상 안정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남한의 생각처럼 북한이 쉽게 와해되지 않듯 북한의 생각처럼 남한에서의 미군철수가 통일의 전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시 말해 한반도의 통일문제는 조만간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문제에 있어 양당사자간 제1과제는 군사충돌의 방지다. 다시 말해 평화공존외에는 어떠한 대안도 없다. 평화공존이란 전쟁방지뿐만 아니라 민주화ㆍ비군사화ㆍ인도주의적 관계회복을 통한 건설적 협력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소련의 대한국외교기조도 이런 기틀위에서 진행될 것이다. 군사ㆍ정치대결의 청산,상호불신과 적대관계의 제거를 통한 진정한 긴장완화정착을 위해 소련은 노력할 것이다. 또 한반도의 통일은 민주적 과정을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낭비적인 군비경쟁의 지양을 위해 남북 상호간의 군축협상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이는 한반도의 통일이 무력수단이 아닌 정치적 수단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이기도 하다. 소련은 한반도의 긴장ㆍ대치국면을 해소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가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다. 소련의 입장에서는 정전협정을 평화조약체결,불가침선언으로 대체하는 것이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중요한 요인이라고 본다. 이러한 것이 이루어지면 남북한ㆍ미국ㆍ기타 국가들은 외교ㆍ무역ㆍ관광등 여러 분야에서 관계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며 특히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은 남북한의 폭넓은 접촉 뿐만아니라 중국ㆍ소련의 대남한의 관계강화에 도움을 줄 것이다. 또 이러한 「교차 데탕트」는 아태지역의 통합에도 기여할 것이다. 한반도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적 요인중에서 미국과 소련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련의 영향력은 미국에 비해 제한되어 있다. 소련은 많은 경우 단지 한반도의 군사적 화해와 평화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관심을 불러일으킬뿐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주변국들의 상호협력을 위한 가능한 수단으로 남북한과 관련국가들이 참여하는 국제회의를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국제회의는 우선 한반도의 무력분쟁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미ㆍ소ㆍ중국 기타 국가들은 남북한의 무력 불사용협정의 보증자로서 유엔감독하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십년동안 대결의 장이었던 유럽이 현재 「유럽공동의 집」을 짓고 있는 것처럼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있어서도 「아시아 공동의 집」 건설이 가능할 것이다.
  • 신강공산당 간부/“안정위협” 첫 경고

    【북경 AFP 연합】 중국 최서부에 위치한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공산당 간부들은 13일 중-소 접경 지역에서 회교도들의 반란이 보도된지 수일만에 국경지역의 안정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 경고했다. 신강 위구르 자치구 공산당위원회의 한 부서기는 이날 연설을 통해 국가는 국가적 단결을 위협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소위 「전횡적 기능」을 강화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주로 회교도들이 살고 있는 이 지역의모든 사회단체에 안정과 단결을 수호하고 국경지역 안정을 보장해 줄 것을 당부했다. 신강 위구르 자치구 6명의 당부서기중 한 사람인 그의 이번 경고는 이 지역에서 민족 소요사태가 있었다는 보도가 나온 후 이 지역의 고위 당간부로부터 나온 첫번째 논평이다.
  • 헝가리총선 「민주포럼」 승리/2차결선 투표

    ◎3백86석중 1백65석 차지 【부다페스트 AFP 로이터 연합】 헝가리 선관위는 9일 지난달 및 8일(결선투표) 두차례에 걸쳐 실시된 이 나라 공산화 후 첫 자유총선에서 온건보수노선의 헝가리 민주포럼(MDF)이 42.7%의 지지로 3백86개 의석중 모두 1백65석을 확보했다고 잠정 집계,결과를 발표했다. 지난달 25일 실시된 1차 투표에서 MDF에 비해 불과 2.34% 포인트 떨어지는 21.39%의 지지를 얻어 세를 과시한 바 있는 자유민주동맹(SZDSZ)은 유권자의 2차 심판에서 예상외로 부진을 보여 모두 합쳐 92석(23.83%)을 얻는데 그친 것으로 발표됐다. 의회 전체의석 3백86석중 1백25개 의석이 결정된 지난달 25일의 1차 투표에서는 MDF가 24.73%의 지지로 40석을 얻었으며 SZDSZ는 득표율 21.39%로 34석을 확보하는 팽팽한 세 대결을 보인바 있다. 한편 총선 2차 투표에서 압승한 헝가리 민주포럼은 이날 중도우파 연정구성을 위한 협상에 들어갔다. 요제프 안탈은 총선결과에 언급,『이는 지난 1947년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 헝가리 인민이 누렸던 것과 같은 중도파의균형잡힌 정책으로 복귀하라는 국민의 명백한 뜻』이라고 말하고 헝가리 인민은 민족적 가치인 기독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나타냈다고 강조했다. ◎급진적 변화보다 안정속 개혁 선택 (해설) 8일 실시된 헝가리 총선결과 중도우파인 민주포럼(MDF)이 예상외의 압승을 거둠에 따라 공산정권수립 이후 최초로 비공산연정을 이끌어 갈 총리의 자리는 MDF의 지도자 요제프안탈(58)에게 돌아가게 됐다. 민주포럼이 1차선거때(3월25일)의 라이벌인 자유민주동맹(SZDSZ)에 대한 근소한 우세에서 벗어나 2차 선거에서 완승을 하게 된 것은 헝가리 국민들이 급진적인 변화 보다는 점진적인 변화를 선택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민주포럼은 시장경제로의 이행,헝가리의 EC(유럽공동체)가입 등에 관해서는 자유민주동맹과 입장을 같이 하고 있으나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해 헝가리식의 개혁을 줄곧 주장해 온 터. 민주포럼은 이번 총선에서 ▲정부의 경제정책통제를 인정하고 ▲급속한 국영기업의 민영화 반대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급진적인 시장경제 도입등 경제개혁에 뒤따르게 될 인플레와 실업을 두려워 하고 있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안탈은 전후 헝가리 부흥부장관을 지낸 반나치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지난 56년 헝가리 민주화운동때까지 의학사를 연구해온 학자. 젬멜바이스 의학사 박물관소장이기도 한 안탈은 과묵하며 온건한 성품의 소유자. 안탈은 민주포럼의 승리가 확정된 후 『이번 선거의 승자는 모든 헝가리인』이라고 밝혀 헝가리인들의 단결을 호소했으나 연정구성이 순탄하게 이뤄질지는 미지수. 민주포럼과 연정을 구성하기로 한 독립소지주당 내부에도 자유민주동맹을 지지하는 세력이 만만치 않아 연정이 이뤄지더라도 기반이 취약할 수 밖에 없는데다 2백10억달러의 외채,연20%의 인플레,기업도산,실업 등 경제문제가 커다란 짐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곽태헌기자〉
  • 「단일체제」 카드로 불협화 일단락/민자내분 조기수습 국면의 배경

    ◎민정계,“「중대결심」선언하면 자해” 설득/민주계요구 수용… 회동은 모양갖추기/민주게,당내소외 벗고 야당기질 발휘 잦을듯 김영삼최고위원의 공개적인 불만표시로 내분양상을 보였던 민자당내의 계파간 갈등은 민정계의 신속한 수습안제시에 따라 「단발성」으로 마무리될 조짐이다. 8일 밤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이 상도동 김최고위원의 자택을 방문,김최고위원과 단독면담을 가진끝에 노태우대통령과 김최고위원의 청와대회동을 갖기로 한 것은 민정계의 민주계에 대한 설득작업이 어느정도 결실을 거뒀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민정ㆍ민주 양계파의 수뇌부급인사들은 7일 김최고위원의 청와대 당직자 회의 불참이후 다양한 막후접촉을 갖고 전당대회후 당의 지도체제를 형식상으로는 집단지도체제이나 대표최고위원에게 당무통할권을 줌으로써 사실상의 단일지도체제로 정비키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사태해결의 결정적 고비가 지나간뒤 이뤄진 노실장의 상도동방문 및 11일 하오,또는 12일 있을 예정인 노ㆍ김청와대회동은문제매듭의 마지막 수순이며 내분표면화로 야기됐던 당내외의 파문을 다분히 의식한 의전절차라고 할 수 있다. 조기수습이 가능케 된 가장 큰 원인은 당지도체제문제등과 관련한 민주계의 요구를 적극 수용한 때문으로 전해지고 있다. ○단발성으로 끝날 전망 ○…민정계가 조기 수습에 나선 것은 우선 김최고위원이 10일 부산으로 출발하며 11일에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어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만약 11일까지 김최고위원의 불만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그로서도 기자회견을 통해 「중요한 결심」의 일단을 밝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이럴 경우 민자당내분은 보다 심각하고 해결이 어려워지는 국면에 접어들어 갈 가능성이 컸다. 이와함께 통상적으로 사회불안이 1년중 가장 고조되는 봄 정국을 앞두고 당외에서 가해질 각종 「도전」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우선은 당의 단합이 중요하다는 거시적 판단도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또 민자당내분이 최근 보선에서 나타난 민심의 이반을 가속화시키지 않겠느냐는 우려는 계파를 초월해 당전체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김최고위원에게 당무통할권을 준다는 것도 당헌의 관계조항을 「대표최고위원은 당을 대표하고 당무를 통할한다」는 요지의 내용으로 바꾸는 것일 뿐 이로인해 당내 최대계파인 민정계의 세가 삭감되거나 민주계가 당운영을 주도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고려됐음직하다. 김최고위원이 당운영권을 가진다고 할지라도 민주계에서 주장하는 개혁에 대해서는 공화계가 민정계를 능가하는 생리적 거부감을 보이고 있고 당의 최고의결기구인 당무회의 위원구성비율에서 민정계가 과반수를 확보하고 있는 점때문에 그의 「전횡」은 불가능할 것 같다. 민정계는 당헌개정소위의 절충과정에서 총재인 노대통령이 대표최고위원에게 중요당무에 관한 협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하는등 그외의 제도적 견제장치 마련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박장관 위세 꺾일 듯 ○…김최고위원의 청와대당직자회의 불참이라는 강수처방으로 그동안 당운영에서 소외되고 김최고위원의 방소활동에서 보여진 박철언정무1장관의 「일탈」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민주계는 상황이 급전되면서 만족할 만한 수준의 해결이 이뤄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7일 김최고위원의 대리역인 고위측근과 민정계최고위층과의 7일 청와대 당직자회의직후 면담을 통해 「상황호전」의 청색신호를 감지한 민주계는 8일부터는 김최고위원의 당무집행거부가 갖는 의미를 축소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민주계측은 7일 청와대당직자회의후 민정계와 청와대측의 핵심간부들로 구성된 대책회의에서 일부의 「강력한 대응」 주장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한 당사자인 박장관등의 중재로 자신들의 요구가 상당부분 수용됐음을 청와대측으로부터 통보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계측은 이번 파동으로 인해 통합후 자신들의 위상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계보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동시에 김최고위원의 「정치력」을 당내외에 과시할 수 있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민주계소식통에 의하면 김최고위원이 말했던 「중요한 결심」의 구체적 내용은 노대통령에게 커다란 정치적 부담이되는 모종의 행동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소식통은 『사태가 악화됐을 경우 노대통령은 야당총재로서의 김영삼씨보다 현재의 김최고위원을 대하기가 더욱 거북스럽게 됐을 확률이 높았다』고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계도 이같은 「제2탄」을 터뜨릴 경우 민자당전체가 입게되는 피해의 규모가 엄청나고 자신들도 아무런 득이 없는 일종의 자해행위밖에 안된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기수습을 내심 강력히 희망해 왔다. 민주계가 민정계에서 제시한 수습안이 단지 환부의 거죽만을 덮어주는,즉 선언적 의미밖에 없음을 잘 알면서도 선뜻 받아들인 것은 파국에 대한 두려움을 민정계 못지않게 갖고 있음을 반증한다 할 수 있다. 민주계는 이번 파동을 통해 앞으로 자신들이 당내에서의 입지를 넓혀나가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보고 야당기질을 적극 발휘해 가며 각종현안문제 해결에 대처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계가 막후접촉등을 통해 제시했던 불만의 내용은 ▲민자당의 개혁의지 부족 ▲박철언장관의 독주 ▲당운영에서의 민주계 소외 등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같은 다양한 불만에도 불구하고 민주계가 지도체제에서의 「양보」로 만족하는 것은 개혁의지 부족이나 당운영에서의 소외 등은 지도체제문제 해소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박정무장관에 대한 견제도 비록 2선으로 물러나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기세를 꺾는데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불만에 대한 한가지 양보만으로 수습의 길이 보이는 보다 큰 배경은 불만표출이 여러가지 표면적인 것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장래입지에 대한 불안이 주요인이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민정계도 안도의 한숨 ○…김최고위원의 청와대회의 불참사태에 대해 원인제공자인 박철언정무장관과 김최고위원 모두를 비난했던 민정계는 최고위층의 조속한 단안으로 사태가 수습국면을 맞은 것에 대해 안도하는 표정이다. 민정계는 김최고위원의 「무례」가 겨냥하고 있는 장단기목표의 괴리로 인해 처방전 마련이 쉽지 않다는 데 인식을 같이해 왔다. 특히 김최고위원의 반발이 지극히 공개적인 형식을 취함으로써 노태우대통령의 처방전 마련에 대한 운신폭이 지극히 좁다는 점을 우려해 왔다. 김최고위원의 불참사태를 놓고 민정계는 두가지의 대책을 비교ㆍ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첫째는 타깃이 된 박정무장관을 2선으로 돌리는 방법이고 두번째는 막후절충을 통해 인사조치없이 김최고위원측을 무마한다는 쪽이었다. 박정무장관의 독주는 민정계를 사분오열시키는 주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따라서 민정계 평의원들의 인식은 박정무장관을 차제에 2선으로 후퇴시키면서 김최고위원의 「야당성행위」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반박하는 정공법의 사용이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기울었던 편이다. 그러나 박정무장관의 2선퇴진은 ▲김최고위원의 공개적인 불만표시에 노대통령이 굴복하는 형식이 됨으로써 통치권손상을 가져오게 된다는 점과 ▲박장관에 대한 노대통령의 의존과 신임이 워낙 두터운 점 등이 고려돼 막후절충을 통해 지도체제문제를 양보하는 방안이 수습책으로 채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막후접촉을통한 수습에도 불구하고 박정무장관의 활동영역은 그 이전보다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민정계의원들이 이번 사태로 민정계의 결속방안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점과 결속을 위한 전단계조치로 박정무장관의 2선후퇴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청와대회의 불참의 여진이 없어지는 전당대회 전후를 맞취 2선후퇴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키 어렵다. 박정무장관은 지금까지 ▲당무에 있어서의 노대통령대리인 ▲북방정책에 관한 정부책임자 ▲정부정책입안ㆍ집행에 있어서의 노대통령 핵심측근이라는 3∼4가지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이번 사태로 박정무장관은 노대통령대리인으로서 당무에 간여했던 역할을 일단 자제하거나 노대통령으로부터 자제를 요구당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김최고위원이 방소에서 돌아와 노대통령에게 박정무장관과의 불편을 호소한 이후 박장관은 이미 민정계조직강화특위위원에서 물러났고 또한 본인 스스로도 7일 밤 사석에서『당분간 조용히 지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민정계는 결과적이지만 김최고위원이 이번 청와대 불참을 통해 자신의 정치스타일의 일면을 내보여 민정계에 대비할 시간을 준 것이 다행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최고위원이 민정계의 단결을 결과적으로 촉구한 셈이며 단결의 장애물이었던 박장관의 위세를 꺾어준 것도 민정계에 마이너스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은 민자당내 각계파들이 내부결속을 강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모든 당무가 대권경쟁의 연장선상에서 협상되고 처리될 가능성도 커졌다. 결과적으로 민자당은 창당전당대회도 하기전 계파간 밀월관계를 끝내고 공개ㆍ비공개경쟁시대로 돌입하게 된 셈이다. 민정계는 보선패배로 내각제개헌 가능성이 적어진 데 이어 이번 사태로 계파간 경쟁이 공개화됨으로써 당장 「차기준비」에 착수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김영만ㆍ김교준기자〉
  • 중국,반부르주아투쟁 강화/전인대폐막 결의안

    ◎“천안문진압은 사회주의의 승리” 【북경 AP 연합】 중국의 국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제7기 3차회의가 4일 홍콩 특별행정구 기본법을 비롯,중외합작경영기업법 수정안 등을 통과시키고 15일간의 회의를 폐막했다. 2천7백명의 대표들이 참석한 전인대는 이날 홍콩이 다시 중국의 통치를 받게되는 오는 97년 7월부터 홍콩에 적용될 홍콩 특별행정구기본법을 찬성 2천6백60,반대16,기권 37표로 채택 했으며 대중국 투자 외국기업에 대한 보호조치 강화를 내용으로 하는 중외합작경영기업법 수정안도 통과시켰다. 전인대회의는 또 중국은 중국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겠다고 이붕총리가 지난 3월20일 개막식날 발표한 정부 공작보고와 5번째 연속의 적자 예산안을 인준했다. 전인대는 회기 마지막날인 이날 중국의 근대화 추진과정에서 정치ㆍ사회적 안정은 무엇보다 중요 하다고 밝힌 이붕총리의 정부 공작보고를 적극 지지하면서 지난해는 사회주의의 정의를 더욱 실현시킨 「역사적 승리」였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결의안은 사회민주주의를 고양하는 한편 국민의 안전,민족단결,애국심 고취 등을 위해 가일층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부르주아 자유주의」또는 서구적 사고방식에 대한 투쟁은 지속돼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지난해 북경 유혈사태에 대한 어떠한 질문이나 동구권 또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주화 개혁을 본받아야 한다는 등의 제안은 전혀 나오지 않은 반면 전인대 만리의장이 제출한 모든 건의안은 절대다수의 지지속에 통과 되었다.
  •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 취임사 요지

    ◎“아시아­유럽에 「평화공동체」 건설/소 영토밖선 무력사용하지 않겠다” ▲나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정책만이 소련과 같은 국가가 전체주의적 관료주의체제에서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주의 국가라는 질적으로 새로운 국가로 이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주요한 업적은 민주주의와 글라스노스트(개방)이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개방은 체르노빌 원전사건,아르메니아 사태,자연재해 그리고 세계시장의 급격한 침체등 여러가지 악조건으로 인해 어려움도 겪었다. 그러나 우리의 투자정책에 있어 실수로 인한 손해는 조금도 없다. 대형손해 재난은 인종분규 과정에서 심지어 이 분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의 관리들의 직무태만으로 인해 발생했다. 변화에 있어 가장 큰 장벽은 경직된 사고방식이다. 나는 그늘에 가려져 있는 반페레스트로이카 세력들의 방해적ㆍ파괴적 책동에 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상황의 극적인 요소,문제의 복잡성과 이례성,사회의 혼란상태를 인식한다. 그러나 나는 당황할 이유는 없다고 보며 더구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변경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우리는 보다 급격한 경제개혁을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우리는 경제개혁을 수행해 나가는데 있어 각종 우려와 번거로움을 제거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의 독점을 폐기하기 위한 법률을 시급히 통과시켜야 한다. 또한 경쟁력을 가진 시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국가는 경제과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믿을만한 수단을 보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업이윤과 개인소득에 대한 합리적인 세제와 소련 국영은행에 의한 금융관리와 통제,경제의 실제상황에 상응하는 이자율 등이 책정되어야 한다. ▲나는 이제 대통령으로서 점증하는 민족주의 및 국수주의 경향에 맞서 싸울 것이며 이 나라의 통합을 위해 힘쓸 것임을 다시한번 확인한다. 나는 실생활과 우리 연방의 개발 필요성,그리고 국민 개개인에 상응하는 새로운 연방협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시급하다고 본다. ▲새로운 연방협정은 각 공화국의 특수한 상황과 가능성을 고려해 다양하게 손질돼야 한다. 연방헌법에 보장된각 공화국의 주권과 연방탈퇴를 포함한 자결권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최고회의는 빠른 시일내에 연방탈퇴문제를 검토,법으로 규정해야 한다. 대통령과 연방회의가 최고회의와 함께 이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냉전은 종식되었지만 군사적 대결은 아직 극복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에 우선이 주어져야 하며 대통령의 활동중 필수적인 요소는 이성적인 충분성과 새로운 군사 독트린,그리고 군대에 대한 우려의 원칙에 입각한 국가방위정책의 향도역을 하는 것이 돼야 한다. 군대에 대한 광범위한 개혁조치를 시행할 것이며 우리나라는 앞으로 공격을 받지 않는한 의회의 승인없이 우리의 영토밖에서 군대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워싱턴에서 있게 될 부시 미국대통령과의 회담을 위해 미소관계의 개선을 위한 새로운 조치는 물론 세계정치의 긍정적 흐름을 통합하기 위한 양국의 중요한 기여 등의 주요한 결정이 준비되고 있다. ▲독일문제도 특별한 중요성을 가진다. 이 문제는 오늘날 유럽정치에 있어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통일을 향한 독일인들의 천부적 권리를 인식하는 것은 독일영토로부터 발생하는 전쟁의 위험을 완전히,그리고 영원히 배제하는 것을 의미해야 한다. 4개전승국의 권리,국경불가침,통일독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입불허,2차대전의 결과에 기초한 평화조약의 필요성등 기타 문제는 모두 이 문제에서 파생한다. ▲대통령의 권한행사와 관련된 모든 것에 있어 나는 인민과 그들의 의사ㆍ도덕성ㆍ지혜ㆍ지성ㆍ상식에 의존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려운 시대를 겪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단결하면 이 난관은 극복될 수 있다. 우리는 두려움과 낙담을 불식하고 우리의 위대한 힘과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소련 인민과 소련내 모든 기타 인민들은 그들의 모국을 소생시킬 것이며 페레스트로이카와 사회주의적 혁신의 길을 통해 그 임무를 기필코 달성할 것이다. ▲아시아­태평양문제에 관해 말하면 나는 지난번 블라디보스토크와 크라스노야르스크 연설에서 발표한 모든 제안을 실행할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에 평화적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유럽­아시아 전대륙을 하나의 안전체제로 통합하는 것이 될 것이다
  • 강택민의 「평양나들이」 2박3일

    ◎중국ㆍ북한,“사회주의 공동보조”재확인/북,「등소평식 권력승계」지지 요청한듯/「한ㆍ중 경제교류」엔 미묘한 입장차이/「한반도」문제 집중논의… 중국의 유연한 대한관 표출 강택민 중국공산당총서기의 북한방문은 지난해 11월 김일성의 비밀북경방문에 대한 의례적인 답방의 형식을 띤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강택민총서기와 김일성과의 3차례에 걸친 공식회담에도 불구하고 회담에 따른 구체적인 합의사항이 공개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이제까지 알려진 내외신보도를 종합할때 강총서기와 김일성은 이번 만남에서 ▲공산권의 변혁에 따른 공동대처방안 ▲한ㆍ중국관계를 비롯한 한반도문제 ▲북한의 권력세습문제 등을 거론한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특히 15일 첫 회담후 열린 강택민총서기의 방북환영리셉션에서 김일성이 『제국주의를 반대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공동위업수행에서 중국인민과 어깨걸고 함께 싸워나갈 것』임을 역설하고,강총서기 역시 『추호의 동요도 없이 사회주의 노선을 따라 나갈 것』을 강조함으로써 중국과 북한은 소련 및 동구공산국가들의 개혁과 관계없이 정치개혁을 거부하는 한편 아시아적 사회주의노선을 공동으로 구축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통일 연수원 윤병익교수는 『강총서기와 김일성의 이같은 발언은 북한과 중국이 소련ㆍ동구에 이어 아시아의 몽고에까지 파급된 정치개혁을 거부한다는 기존입장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중국ㆍ북한ㆍ베트남이 연계해 아시아형공산주의를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며 그러나 이는 중국이 대외개방정책과 경제체제개혁을 거부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 뿐아니라 북한역시 84년 합영법도입이래 시도해온 경제적 대외개방정책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도흥렬교수(충북대)는 『북한이 50만명의 주민을 동원, 대대적인 환영행사를 펼치면서 강총서기를 최고의 국빈대접을 한 것은 북한이 소련이나 동구의 개방압력에 독자적으로 대응하기에는 힘의 한계에 도달했음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진단하고 김일성은 강총서기와의 이번 회담에서 중국과의동지적 유대를 일층 강화,외부의 압력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의도에 따른 계획적 개방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고 이런 측면에서 이번 회담은 소기의 목적을 거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도교수는 『김일성이 2차회담에서 강총서기에게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작업에 관해 설명하고 당과 정부가 경제건설을 더욱 강력히 추진할 것을 밝힌 것은 개혁을 하되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하면서 「우리식대로 하겠다」는 자신의 방침을 전달하고 이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강총서기가 김정일에 대한 권력세습을 승인하는 대가로 양국간의 단결과 우호를 가일층 강화하는 문제가 중점 논의됐을 것』이라는 홍콩의 성도일보의 보도와 강총서기가 자신의 방문목적을 김일성이외의 다른 당지도자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사실,김정일과 강의 만남이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 등을 들어 강총서기의 이번 방문이 김정일세습체제에 대한 중국의 보증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는 프랑스 르몽드지의논평에도 불구하고 이를 입증할 만한 구체적인 사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어 이문제가 어느정도 비중을 두고 다뤄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도흥렬교수는 『북한이 당총비서와 국가주석직을 하나의 개념으로 보는 기존의 수령론을 필요에 따라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할때 김정일의 4월 승계설은 설득력이 있으며 그럴 경우 현재 중국에 편향되어 있는 김일성이 등소평식의 권력승계 모델을 뒤따르려 할 것이고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 그 의사를 강총서기에게 전달하고 이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을 것으로 분석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병익교수는 『북한이 처한 여러가지 상황이나 서구 정치학적인 시각에서 볼때 김정일의 권력승계설이 설득력은 있으나 이를 단언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나 근거가 없다』며 이번 강택민의 방북회담에서 김일성­김정일권력승계문제가 과연 논의됐는지 속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택민총서기의 방북중 한ㆍ중관계등 한반도문제는 예상대로 심도있게 거론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제까지 드러난 것을보면 중국은 북한에 대해 한국과 정치적인 교류,더 나아가 국교수립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한 것으로 보이나 경제교류 등의 문제에 있어서는 미묘한 입장차이를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강택민은 주한미군철수,남ㆍ북한과 미국과의 3자회담지지등 북한의 통일방안에 적극적인 동의를 표명했으나 김일성의 『남조선인민은 반미ㆍ자주화ㆍ반파시스트투쟁을 용감히 전개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고 북한의 고려연방제통일방안에 대해서도 『북한의 많은 합리적 주장과 제안을 지지한다』고 우회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유연한 대한관을 표명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김창순씨(북한연구소이사장)는 강총서기가 밝힌 3자회담개최촉구,주한미군철수주장 등은 중국이나 북한으로 봐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그가 북한 및 대만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2개의 한국을 인정하는 선까지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면서도 오는 10월 북경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한국과 경제ㆍ문화ㆍ체육 등의 교류를 강화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성을설명하고 이의 양해를 구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고르바초프,소 초대 대통령 취임/개혁가속… 경제긴급조치 강구

    ◎탈소운동 막게… 연방주권 강화촉구/“군부도 수술,의회승인없인 파병안해” 【모스크바 로이터 AP AFP 연합】 강력한 권한을 지닌 소련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15일 자신에게 주어진 광범위한 힘을 이용,민족분규 및 경제난제를 극복하고 개혁을 더욱 가속화하겠다고 다짐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인민대회에서 비밀투표로 진행된 초대대통령 선거결과,찬성 1천3백29,반대 4백95로 당선된후 대의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단상위에 올라 바로 취임선서를 가졌다. 그는 당선확정발표가 난뒤 단상위로 안내돼 붉은 장정의 소련헌법책위에 손을 얹고 『나는 인민을 위해 충실히 봉사하며 헌법을 엄격히 준수하고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며 나에게 부과된 소련 대통령직이라는 숭고한 의무를 완수할 것을 엄숙히 서약합니다』라는 취임선서문을 낭독,소련역사상 최초의 대통령직에 취임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어 인민대회에서 행한 대통령직 수락연설을 통해 『보다 급속한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추진해야 함이 분명하다』면서 『나는 무엇보다도 이같은 목적을 위해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사용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이어 『변화에 대한 가장 큰 장애는 경직된 사고』라고 지적하고 소련의 경제난국을 극복하기위해선 긴급조치가 필요하며 변화를 더욱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령의 권한을 사용할 것임을 시사했다. 고르바초프는 경제분야에 언급,보다 급속한 경제개혁과 독점의 폐기를 지지한다고 밝히고 인플레 퇴치에 노력하는 한편 예산을 삭감할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또 군사부문의 개혁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대통령직을 사용,군부에 대해 광범위한 개혁조치를 실행할 것이라고 밝히는 한편 소련은 앞으로 공격을 받지않는 한의회의 승인없이 소련영토밖에서 자국 군대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또 점증하는 민족주의 및 국수주의 경향에 맞서 싸울것이며 국가가 분열되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강조,『현재 문제를 일으키려하는 기도가 있으며 심지어는 내전을 거론하는자도 있다』며 『나는 대통령으로서 국가의 단결과 아울러 연방공화국의 정치·경제적주권부여에 관한 조치를 강화할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십년에 걸친 소련의 관례를 따르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독재자가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 “주체사상에 회의” 민단전향 러시(흔들리는 조총련:상)

    ◎북 「경비」조달·충성강요로 이탈 가속화/재일동포 68만중 한때 45만가입,위세떨쳐 최근한국의 위상변화 따라 20만으로 “위축” 소련·동구를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의 개혁·개방물결은 마침내 재일조총련 사회에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지금껏 북한체제를 아무런 비판없이 옹호해온 조총련계 동포들중 일부 인사들이 「김일성독재타도」를 내세워 궐기대회까지 준비하고 있어서 조총련 조직은 물론 북한체제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크게 주목되고 있다. 변혁기운이 감도는 조총련의 어제와 오늘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재일 한인 사회에는 38선과도 같은 무형의 분계선이 있다. 민단과 조총련이라는 두 조직의 대립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한반도가 남북한으로 갈라진 「45년 분단사」의 연장선상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의 패전으로 귀결된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은 조국의 해방과 본국으로의 귀국을 갈망하고 있던 재일한국인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기쁨이었다. 이때까지 일본에 살고 있던 2백30여만명의 한국인 대부분은 해방조국에 돌아 갔으나 60여만명은 여러가지 사정으로 일본에 계속 남게 되었다. 이러한 들뜬 분위기 속에서도 냉철하게 사태를 주시하던 일단의 재일 한인들은 1945년 8월20일 도쿄에서 「재유조선인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그 중심인물은 이해삼·권혁주·권일 등이었다. 이후 22일에는 시부야(삽곡)에서 구니모토 다케요시(방본무의·한국명은 미상)를 중심으로 「재일조선동포귀국 지도위원회」가,이타바시(판교)에서는 최학림을 중심으로 「재일조선인대책위원회」,또간다「신전)의 YMCA에서는 「재일본조선인 거류연맹」등이 각각 결성됐다 그러나 이들 단체는 해방된 조국이 미소의 분할점령으로 인하여 남북이 분단된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되자 대동단결을 부르짖고 좌우사상과 신앙등 일체를 초월하여 하나의 대표적 민족단체로 뭉치자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 결실이 1945년 10월15일 도쿄에서 일본각지의 준비위원회 대표 5천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결성된 「재일조선인연맹」(조연)이었다. 조연의 당초 결성목적은 정치적 색채가전혀 없는 재일 한인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재일한인들을 위한 대표적인 조직이었던 조련은 이후 급격하게 좌경화되고 만다. 조련의 집행부가 이처럼 일본공산당소속 한인들의 장악하에 놓이게 되면서부터 이 조직은 일본공산당 외인부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으며 「한신(판신)교육사건」 「메이데이 투쟁」등 크고 작은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이처럼 민단과 일경·점령군을 상대로 충돌을 빚어 오던 조련은 1949년 9월8일 일본정부로부터 전격적인 해산통고를 받는다. 조련간판은 내리지 않을 수 없었으며 재산을 몰수당한데 이어 조련계 학교마저 폐쇄되었다. 조련으로서는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이에따라 조련중앙은 해산통고를 받은 즉시 또다시 「조선인민해방연맹사무소」라는 간판을 급조해 붙였다. 한편 조련의 고문이던 김천해는 해산취소를 제소했으나 행정소송의 방도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달리 구원의 길을 찾지 못하게 되자 이들은 지하로 잠복했다. 조련의 지하간부들은 국제공산주의 노선을 따를수 있는 새로운 조선인단체협의회를 만들려던 중 한국동란이 일어나자 비상체제로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민전)을 결성하였다. 한편으로는 조련계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조국방위위원회」(조방위)를 조직,미일안보조약반대·한일회담분쇄운동등을 전개했다. 이러한 시기에 일본공산당은 53년7월 구조련의 주도권을 민전이 장악하도록 사주했다. 이에따라 민전노선을 고수하려는 ............와 북한지지파로 나누어 지게되었다. 그뒤 민전과 조방위를 해산,「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조직이결성되었으며 이것이 반민족적인 폭력조직체로 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에는 약 67만8천명의 재일동포가 있다. 이들 가운데 41만명이 민단계이며 조총련계는 20여만명으로 집계된다. 나머지 6만8천여명은 그 어느 쪽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조총련계 한인 숫자는 한때 45만명에 이른 때도 있었으나 최근들어 급격히 감소,지금은 민단계와 조총련계가 역전현상을 보인다. 그것은 한국의 경제적 발전,국제적 지위의 상승에 따라 전향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또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이 생필품및 국가운영 경상비의 조달을 위해 조총련계 사업가들에게 무리한 자금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도 그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금은 많이 완화되긴 했으나 일본에서의 민단계와 조청련계 사이의 벽은 아직 높다. 이것은 남북이 통일되어야만 완전히 없어질 마음의 경계선인 것이다. 〈도쿄〓강수웅 특파원〉
  • 몽고 자유노조,공당이탈 시사/노조기관지/독립적인 새조직 형성주장

    【울란바토르 로이터 AP 연합 특약】 몽고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몽고자유노조는 14일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고있는 집권공산당(인민혁명당)과의 밀접한 관계에서 벗어날 것을 시사,몽고정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몽고 자유노조기관지인 「노동」은 이날 자유노조중앙위원회가 『새롭고 독립적이며 단결된 자유로운 조직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밝힌 성명을 게재했다. 「노동」은 『우리는 외부의 간섭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노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곳의 외교관과 관리들은 이같은 자유노조의 주장은 몽고 공산당에 중요한 타격을 입히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 외무부관리는 『대부분의 노동자를 포함하는 노동조직은 강력한 세력이며 이것은 오랫동안 공산당의 지지세력이었다』고 밝혔다. 한 외교관은 『이는 당의 권력기반이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또 다른 징조』라고 말했다. 한편 몽고 공산당은 민주화와 개혁의 일환으로 당내의 행정요원을 반으로 줄일 계획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14일 밝혀졌다. 한 정부관리는 『당의 행정조직은 국가안의 국가와 같은 존재』라고 말한뒤 『국가로부터 상당한 재원을 받고있는 이 기구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몽고의 야당들은 이날 그동안 그들이 주장해왔던 임시의회 구성을 철회했다. 야당대표들은 『우리는 새로운 헌법초안을 만들기 위한 위원회를 구성키로 동의했다』고 밝혔다. 한편 12일부터 시작된 몽고중앙위는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인구 3백70만중 리투아니아인 80%/오늘의 리투아니아

    ◎단결력 강해 발트3국 독립운동 선도 탈소 독립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있는 리투아니아의 역사는 이웃 강대국인 독일ㆍ러시아의 침략에 대한 저항으로 점철되어 있으며 중세에는 독일의 정복에 저항,폴란드와 연맹하여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기도 했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4세기에는 현재 백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는 영토를 상당히 장악,통일된 군주국을 형성시켜 나갔으며 14세기에는 중세유럽의 대표적 제국의 하나로까지 성장했었다. 그러나 리투아니아는 1796년 러시아에 의해 대부분 점령당하는 비운을 맛보아야 했으며 제1차세계대전중인 1915년 9월부터 전쟁말기까지 독일의 발굽아래 지냈다. 독일군이 철수한뒤 리투아니아는 1918년 2월 독립을 선포,독립국가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1939년 8월23일 히틀러­스탈린의 독소밀약으로 다음해 라트비아,에스토니아 등과 함께 소연방으로 합병되는 등 끝없는 약소국의 한을 안고 살아왔다. 리투아니아공화국은 3백70만 국민가운데 리투아니아인들이 80%를 차지,소연방내의 다른공화국보다 응집력이 강해 단결이잘 되고 있다. 리투아니아공화국내에서 소수집단인 러시아(9%),폴란드(8%),백러시아(2%)인들은 공업분야에 종사하고 있어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는 리투아니아인들과 대조를 보이고 있으며 마찰 또한 빚고 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스탈린치하에서 다른 소수민족들과 마찬가지로 강제 이주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지난 41년 지식인 3만명을 포함,4만5천명의 리투아니아인들이 처형되거나 시베리아로 추방된것을 비롯,49년까지 모두 30여만명이 반당분자라는 누명으로 조국을 떠났다. 소련내 리투아니아인들은 3백40만명 정도로 11위를 기록하고 있다. 19세기말부터 리투아니아인들의 해외이주가 본격화되어 미국과 유럽등지에 약 2백만의 리투아니아인들이 조국의 반소ㆍ민족주의운동을 돕고있다. 리투아니아인들의 동질성을 높여주는 또다른 요인은 언어와 종교로,88년 10월 리투아니아의회는 리투아니아어를 공용어로 지정했으며 리투아니아인들은 대부분 카톨릭을 신봉하고 있다. 리투아니아공화국의 영토는 6만5천㎢로 한국의 충정남북도ㆍ전라남북도ㆍ경상남북도를 합한 면적보다 약간 작다. 주산업은 조선ㆍ화학ㆍ제지ㆍ전자ㆍ직물 등이며 감자ㆍ사탕무ㆍ육류 등이 주요 농산물이다.
  • 중요 법안 처리 앞둔 양당 의원총회 이모저모

    ◎여는 “동질성 확인” 야는 “강경파 무마”/“이젠 핵분열 아닌 융합을” 민자/“총사퇴 결행” 주장에 제동 평민 ▷민자당의총◁ ○…9일 상오 국회에서 열린 민자당 2차 의원총회는 회의시작 전 지난 6일 모임을 갖고 박철언정무1장관의 「독주」를 비난했던 민주계인사들을 중심으로 『의총에서 당지도노선을 신랄히 비판하겠다』는 예고가 나돌아 초반에는 상당히 긴장된 분위기. 그러나 막상 민자당 출범 후 의총 첫 토의에 들어가자 민주계의 황낙주의원,공화계의 구자춘 옥만호의원 등이 각종 법안처리에 있어 당의 개혁의지가 퇴색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야당이 반대할 경우 무리하게 법안을 통과시키지 말아달라』는 주문을 한 정도에서 일단락. 2시간10분여에 걸친 의총이 끝나자 박태준최고위원대행은 『오늘 의총을 보니 모두가 빠른 속도로 동질화되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이날 의총결과가 만족스러웠음을 피력. 박대행은 『거대여당이 되니 좋은 점이 많지만 모두가 참여하기 힘든 점등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일부 인사의 「소외감」을 상기한 뒤 『이제는 정치권이 핵분열이 아닌 융합을 할 때』라고 「단결」을 거듭 호소. ○…이날 의총에서 7명의 토론자중 가장 목소리를 높였던 인사는 민주계의 황낙주의원. 황의원은 『민자당이 아직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일부 평가도 있는데 이번 국회를 개혁의지 천명없이 이대로 끝낸다면 국민지지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면서 『국회운영이나 법안처리에 있어 민자당이 개혁의지를 분명히 보여야 한다』고 강조. 공군참모총장 출신인 공화계의 옥만호의원은 『국군조직법 개정안은 주한미군 문제와 연계될 수 있는 것이므로 충분히 시간을 갖고 논의하자』고 처리보류를 제의했고 민정계의 황병우,공화계의 구자춘의원은 『지방의회선거에서 정당공천배제를 법에 규정한 것은 자칫 정당무용론으로까지 비춰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지방의회선거에서 정당공천허용 문제와 함께 그 실시시기까지 재검토토록 요청. 이에 앞서 민정계의 이치호의원은 광주보상법 심의를 광주특위에서 법사위로 이전시킨 것에 대해 『광주특위는 국정감사조사법에따른 조사특위이므로 진상조사가 주임무이고 보상법제정은 권한 밖』이라고 주장. 회의말미 김동영총무는 『앞으로 원내대책은 세분의 최고위원과 당3역에 일임키로 하자』고 제의,참석자 모두가 동의함으로써 회의는 큰 잡음없이 종료. ▷평민당의총◁ ○…평민당은 이날 상오 국회에서 긴급의원총회를 열고 3당통합 이후 민자당이 개혁입법처리및 5공청산 후속조치 마련을 외면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강력히 성토하는 4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하는 한편 의원직총사퇴 결의안을 의결,국회에 제출. 약 2시간30분에 걸쳐 난상토론으로 진행된 이날 총회에서 문동환ㆍ박실ㆍ이해찬의원 등 15명의 발언자 대부분은 『13대국회가 종언을 고해야 할 때』라며 상임위 불참과 평민당의 독자적 의원직 사퇴 후 장외투쟁등 강경대응론을 개진. 그러나 3당통합 저지와 관련,단판승부가 아닌 장기적이고 단계적인 대응전략을 짜놓은 김대중총재등 지도부는 『민자당이 바라는 것이 우리가 성급히 극한투쟁을 벌이는 것』이라고 강경론을 제어하며 사퇴결의안만 내고 평민당만의 독자적 의원직 사퇴문제는 『시기가 아니다』며 당지도부에 일임을 요구. 이해찬의원은 『정치는 말과 행동이 같아야만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는다』면서 『의원직사퇴에 대한 우리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의원직사퇴와 동시에 상위에 불참하고 세비와 국고에서 지급되는 모든 경비의 수령을 거부하자』고 제안. 그러나 김총재는 『국민들 가운데는 안정이 깨지는 것을 싫어하는 쪽도 있다』 『언젠가 국민들이 평민당에게 국회를 뛰쳐나오라고 요구할 시점이 오면 그때 사퇴해야 한다』면서 현시점에서 독자적 사퇴 후 장외투쟁이 무모하다는 속마음을 드러낸 뒤 『우리만 사퇴하면 옳지 않은 사람에게 나라일을 모두 맡기는 결과』라며 의원직 총사퇴결의안을 채택하는 선에서 「예정」 된 결론을 유도.
  • 아프간쿠데타 배경과 전망/보수파,나지불라 개혁정책에 반기

    ◎권력암투 심화… 내전 장기화 가능성 아프간군부의 실력자인 샤 나와즈 타나이 국방장관이 주도한 6일의 쿠데타로 나지불라정권은 회교반군과의 전투와 함께 집권인민민주당내 반대파와 싸워야 하는 본격적인 내우외환에 직면하게 됐다. 타나이장관은 지난해 12월의 쿠데타를 포함,이번까지 모두 세차례의 쿠테타와 관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의 군부내 위치로 국방장관ㆍ정치국원 등의 요직을 지켜왔다. 그는 지난 78년 군사쿠데타를 성공시킨 주요인물로,1백만명이 희생된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한 나지불라의 반군에 대한 평화적인 접근에 반대,무력진압을 주장해왔다. 타나이장관은 강경보수노선을 추구하는 인민민주당의 할크(인민)파 지도자로 그동안 파르캄(깃발)파 총수인 나지불라와 노선상의 갈등을 빚어 왔다. 나지불라는 지난 79년 12월 소련군이 아프간을 침공,9년여만인 지난해 2월15일 완전 철수한 뒤 일반의 예상을 뒤엎고 아프간반군의 분열에 편승,저항을 막는 「선전」을 해왔다. 중산층의 지지를 받는 그는 아프간반군에 대한 화합조치로 세계의 여론을 호전시켜 왔으며 최근에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의 영향을 받아 개혁정책을 표방해 왔다. 이달에는 인민민주당 전당대회를 개최,자신이 구상해온 회교주의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새로운 강령을 채택할 준비를 하고 있었으나 타나이등 강경파는 이에 반발해왔다. 이번 쿠데타는 이같은 집권당내 분열이 수면위로 떠오른 결과이다. 여기에다 나지불라는 지난해 12월의 쿠데타와 관련,할크파 강경보수당원 및 군장성등 1백24명을 체포해 5일 이들에 대한 재판을 시작했으며 이에 타나이파가 위협을 느낀것이 거사의 지접적인 원인이 됐던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이번 쿠데타로 아프간사태는 한결 복잡해질 전망이다. 쿠데타가 집권당내의 분열에 그치지 않고 일부반군과 연계돼 가고 있기 때문. 현재 아프간 망명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또다른 일부 반군은 이번 쿠데타를 집권당내 분열로 간주,쿠데타에 동조치 않고 있으나 이들도 쿠데타로 인해 크게 고무될 가능성이 많아 내전이 다시 한번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점쳐지고있다. 아프간 정부는 타나이가 급진강경파 회교반군인 헤즈비 이슬라미의 지도자인 굴부딘 헤크마티야르와 공모,쿠데타를 일으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헤크마티야르파는 파키스탄에 근거를 두고있는 아프간 수니파 7개 회교반군 가운데 가장 과격하다. 일부 관측통은 나지불라가 이번의 쿠데타를 성공적으로 진압할 경우 집권 인민민주당내의 정치적 반대파들을 숙청하는 기회로 삼아 정국안정을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으나 쿠데타의 진압에 관계없이 나지불라의 지위는 위협을 받게 될 것 같다. 나지불라를 추종하는 비밀경찰 및 대통령수비대와 타나이의 영향권에 있는 군과의 대립,군내부의 분열 등으로 아프간정부의 단결이 현저히 약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 이러한 사실은 반대로 분열을 보이고 있는 아프간 반군들을 고무시켜 소강상태에 있는 아프간 내전을 한층격화시키는 하나의 동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 강택민 이달 방북때 대한 관계개선 통보/홍콩지 보도

    【홍콩 연합】 중국공산당 총서기 강택민은 이번 북한방문을 통해 김일성과 중국­북한간의 단결문제를 논의하는 한편 중국이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문제도 거론,대한 관계에 관한 중국의 입장을 북한측에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가 7일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북경발 특파원 기사에서 강택민은 북한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 소련의 개혁및 동구 공산정권의 몰락에 따른 중국과 북한의 관계강화문제를 논의하는 한편,북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한국과 관계를 개선해 나갈 것임을 북한측에 통보할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 티베트에 경계령/중국

    【북경 AFP 연합】 중국 정부는 1일 신강위글ㆍ티베트ㆍ내몽고자치구 등에서의 민족분규 확산을 우려,중국내 소수민족들간의 단결을 재차 요구했으나 민족분쟁 해결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연방주의 채택은 거부했다. 중국 국무원 산하 국가민족사무위원회의 이스마일 아마트 주임은 이날 관영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이들 중국내 소수민족들 사이에 일부 불안요소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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