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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8민중대회/요구는 ‘과격’ 질서는 ‘만점’

    ◎여의도 한강둔치서… 새정부 출범후 최대 집회/“재벌 해체” “부패정치인 재산 몰수” 큰목소리/경찰과 충돌없어 성숙한 집회문화 과시 9일 하오 여의도 한강둔치에서 열린 ‘98 민중대회’는 참가 인원와 단체면에서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 최대 규모의 집회다.민주노총 전교조 참여연대 등 60개 시민사회단체의 회원 2만5,000여명이 참석했다.행사를 주최한 단체들은 집회에 7만여명이 참석했다고 주장했다. 요구와 주문도 다양했다.10대 요구안에는 ‘IMF를 불러들인 경제파탄 책임자 처벌’에서부터 ‘민주열사 특별법 제정’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현안들이 망라됐다.주된 기류는 사회적 개혁이 미진하다는 것이었다.“정부가 요구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오는 12월 중순에 제2차 민중대회를 전국 동시다발적으로 치르겠다”는 경고의 메시지도 나왔다. 참가자들은 다소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키며 다른 단체의 주장을 진지한 모습으로 경청하고 박수를 보냈다.행사를 전후해 경찰과의 충돌도 없었다. 첫번째 기조연설자로 나선 민주노총 李甲用 위원장은 “60만 조합원은 불평등한 IMF협약 폐기를 통한 경제주권회복과 경제파탄의 주범인 재벌해체,부패관료·정치인 재산몰수 등을 위해 앞장 서겠다”고 말했다. 전국농민회 총연맹 李수금의장은 “농산물 저가격정책과 농산물 수입개방 등 정부의 잘못된 농정으로 농민들은 IMF위기에서 더욱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정부는 농가부채 해결과 농축산물 가격보장 및 소득보장 등 농가파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빈민운동연합준비위원회 梁연수위원장은 “실업대란으로 노점상과 노숙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소외된 빈민들에 대한 정책은 거의 없다”면서 “관료들이 군림하고 재벌 위주의 정책을 펴는 것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오는 11일 총파업을 결의한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노조원 1,200여명은 “사납금제도는 시민에게 불친절하고 난폭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밖에 없었던 제도였다”면서 “택시기사에게 안정된 작업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월급제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들은 200여명의 대표자지문이 찍힌 플래카드 들고 나와 단결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사전행사로 전국교사대회를 개최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올바른 교육개혁’과 ‘교육노조 법제화’ ‘인간화교육’ 등을 촉구했다. 이들은 개회사를 통해 “교육환경 개선없이 경제논리에 의해 차등보수제, 수습교사제,정년단축 등을 도입하는 정책은 학교 교육을 더욱 황폐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대회장 소식과 연설내용,현장모습은 인터넷 진보네트워크센터의 홈페이지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 됐다.
  • 정부출연硏 경영마인드 결여/매킨지社 경영진단 결과

    ◎고객지향성·연구과제 등에 문제 과학기술부는 6일 세계적인 평가업체인 매킨지사에 용역을 줘 실시한 출연연구기관에 대한 경영진단 결과를 발표했다.대상 연구기관은 과학기술연구원,화학연구소,원자력연구소,기계연구원,생명공학연구소,항공우주연구소 등 6개이다. 진단결과 이들 연구소들은 주고객은 산업계인데도 응용개발연구 및 산업계에 대한 기술지원에 중점을 두고 있어 고객지향성과 연구영역 설정 및 연구과제 선정,평가절차상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인력채용관리와 연구수행에 있어 기업가정신이 결여된 점도 지적받았다. 매킨지는 미국 과학정보재단(SCI)게재 논문수,연구원 1인당 미국특허건수 및 로열티·라이선싱 수입 등 기존자료에 의한 연구성과는 미국 NASA,BNL 등 5개 벤치마킹 기관에 비해 뒤지지 않지만 연구의 질을 따져 보면 현저하게 뒤처진다고 보고했다. 매킨지는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고객지향성을 강화하고 중기적으로는 새로운 연구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얼굴없는 노동자시인 박노해:하(금지문화금지인생이제야말한다:13)

    ◎암울한 ‘불의 시대’ 지나 이제는 감싸고 흐르는 ‘물의 시대’ 같은 느낌/약한자들 고통과 슬픔 외면못해 뛰어든 노동운동/이념에 갇혔던 ‘사노맹’ 합리적 진보운동 밑거름 기대/정직한 성찰과 반성만이 희망의 미래 열어갈것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핵심간부로 활동하다 91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 지난 8·15특사로 석방된 박노해씨(40·본명 朴基平).시골출신의 노동자로 시작해 급진 이데올로기의 핵으로 활약하다 사형구형까지 받아 7년간 격리된 뒤 준법서약서를 쓰고 다시 햇빛을 보게 된 인물이다.출감직후부터 줄곧 서울과 지방을 오르내리며 강연 등으로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노해씨를 만나 보았다. ­91년 구속될 때와 요즘 분위기의 차이는. ▲당시가 어두운 시절 불덩어리처럼 자기 몸을 던지는 ‘불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열정을 내면화시켜 물처럼 흘러가는 ‘물의 시대’같은 느낌이 든다. ­처녀시집 ‘노동의 새벽’에 실린 글들은 언제 쓴 것인가. ▲선린상고 야간 시절 체험한 공장의 불쌍한 삶과 군제대 후 함께 부대끼던 공장과 버스회사 동료들의 짓눌린 모습들을 가식없이 담은 것들이다.작업장과 기숙사 구석에서 작업장 일지 등에 적어놓은 것들이었다. ­시집 ‘노동의 새벽’을 자평한다면. ▲시대적 서정과 비전이 문학적 형태로 충분히 제시됐다고 본다.사회의 모순들을 그냥 넘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 현장 분위기를 솔직하게 담았다. ­어린시절 작가가 꿈이었다는데 노동운동에 뛰어든 결정적 계기는. ▲어렸을 때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싶었다.그러나 서울에 온 후 공장에 다니면서 계속되는 특근·철야잔업에서 동료들이 손을 잘리는 급박한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다.이때부터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 서기로 했다.노동운동 아닌 노동운동부터 시작한 셈이다. -얼굴없는 시인으로 집필활동에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나만의 책상,나만의 펜을 가져보는 것이 소원이었다.단 한순간도 편안히 앉아서 글을 써본 적이 없다.원고 전달때도 항상 숨을 죽이며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 ­85년 서노련(서울노동운동연합)에 가입한뒤엔 급진 노동운동가로 바뀌고 노동해방문학에선 정치적인 색채까지 보이는데… ▲주는대로 받고 시키는대로 일하는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열망이 사회적 실천으로 나타날 때였다.모순은 갈수록 첨예해지면서 분신과 구속 시위 등 항쟁의 기운이 고조되고 사람이 불에타 죽는 상황에서 시만 쓴다는 것이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명을 부인하다 신동아 90년 12월호에 자전수기를 보내 신원을 밝힌 이유는. ▲86년 5·3인천사태로 구속된 金모씨가 조사과정에서 내 본명을 실토했다.수사기관에서 전담반까지 구성해 추적하는 상황에서 동료 노동자들이 박노해로 몰려 희생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수사기관에서 이미 신원을 파악하고 있는데다 더이상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판단,이름을 밝혔다. ­사노맹의 핵심사상은 무엇이었나. ▲사노맹은 80년 당시 군사독재하에서 민주주의 민족통일 그리고 노동자의 인간적인 삶을 위한 노동해방을 온몸을 다바쳐서 밀고 나갔던 80년대 시대 정신의 절정이었고 시대의 최전선에서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사노맹의 실패 원인은. ▲시대변화에 너무 늦었고 실천과정에서 너무 조급한 게 한계였다.급진 사회주의에 갖혀 당시 정권을 여전히 군사독재로 규정한 채 변화를 보지 못했다. ­지금 사노맹에 대한 생각은. ▲사노맹 사건은 500명이 구속되고 형량도 2,000년이 넘는 가혹한 희생을 치렀다.그동안 침묵 절필 삭발정진을 통해 책임을 지려했다.사노맹 관련자들 이 삶의 모범을 통해 극좌이념에 치우친 후배들을 진정하고 합리적인 진보운동으로 이끌어 가는 훌륭한 일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93년 옥중시집 ‘참된 시작’은 어떻게 나왔나. ▲91년도 대법원 상고 이유서를 쓸때 이미 창비(창작과비평사)에 원고가 넘어가 있었다.진보운동 쪽에서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아 조금 늦춘 것이다. 극우보수와 진보 양쪽으로부터 모두 돌멩이를 맞았다.합리적 진보쪽에선 올바른 변화라는 평을 얻었다. ­‘참된 시작’에서 사상 갈등과 자기반성이 두드러지는데 그 배경은. ▲분단과 군사독재라는 절대폭압의 조건 속에선 작은 권리 하나를 위해서도 목숨을 걸지 않으면 불가능했다.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붙든 게 사회주의였다.70∼80년대 짐승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으로 살려내기 위해 야수처럼 싸웠다.그러나 사회주의 붕괴를 정직하게 받아들였고 그 결과를 국민 앞에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93년 6월호 ‘사회평론’지에 낸 유홍준 교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서평에선 진보진영의 반성을 주장했는데… ▲철저하고 정직한 자기성찰과 책임 없이는 미래의 민주개혁과 진보적 운동이 불가능하다.새로운 진보이념과 비전,운동이 필요하다고 보고 목숨걸고 참구(參究)해 나가자고 한 것이다. ­계획된 작품은. ▲내년 여름쯤 이 시대의 역할과 비전에 대한 생각을 담은 산문집을 낼 계획이다.올 겨울엔 6년만에 세번째 시집을 발간할 예정이다.자본주의와 사회주의,동양사상과 서구사상,사회적 실천과 내적 영성(靈性) 등 양극대립을 모두 담을 생각이다. ◎격별의 글들/“그래 결국은 사람만이 희망이다”/처절한 노동현장 ‘시다의 꿈’/강렬한 저항·분노 ‘노동의 새벽’/격랑뒤의 깨달음 ‘사람만이…’ ‘시다의 꿈’(83년 시동인지 ‘시와경제’에 발표)에서 ‘사람만이 살길이다’(97년 해냄刊)까지­. ‘얼굴없는 노동자 시인’으로 활동하다 사노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던 박노해씨의 글들은 험난했던 역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증언들이다. 박노해란 이름을 처음 알린 ‘시다의 꿈’은 노동현장의 비극성을 그나마 우회적으로 들이민 처녀시였다.“…/떨려오는 온몸을 소름치며/가위질 망치질로 다짐질하는/아직은 시다/미싱을 타고 미싱을 타고/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하나로 연결하고 싶은/시다의 꿈으로/…”. 박노해를 ‘한국문학을 관통하는 80년대 최고의 문제작가’로 자리매김한 시집 ‘노동의 새벽’은 훨씬 거칠어진다.“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기어코 깨뜨려 솟구칠/거칠은 땀방울 피눈물속에/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새벽쓰린 가슴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붓는다/노동자의 햇새벽이/솟아오를 때까지”(노동의 새벽)“올 어린이날만은/안사람과 아들놈 손목잡고/어린이대공원이라도 가야겠다며/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손목이 날아갔다”모두 열악한 작업조건과 억눌린 사람들의 직설적인 고발이다. 그러나 옥중시 ‘참된 시작’과 지난해 발표한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살길이다’에선 사상의 갈등과 반성,그리고 새 생활에의 의지가 강하게 담겨있어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감마저 갖게 된다.“뜻과 주장은 좋으나 나타나는건 앙상하고/노동해방 계급투쟁 당파성 혁명적 관점…/거 제껴두자니 아깝고 먹자니 뼈만 걸리는/꼭 닭갈비와 같은 존재/지금 우리 마치 닭갈비 같은 처지는 아닌가/…”(참된시작중 닭갈비)“희망찬 사람은 그자신이 희망이다/길찾는 사람은 그자신이 새길이다/참좋은 사람은 그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사람속에 들어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사람만이 희망이다중 다시) 감옥에서 500여편의 작품을 구상했다는 박씨.얼굴없는 노동자 시인에서 이젠 만날수 있는 시인으로 바뀌어 새 작품을 구상중이다.80년대 노동계와 시단을 뒤흔들었던 박씨의 새 작품들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 경제청문회 9일부터 한달간/2與,野 불응땐 단독개최 결의키로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5일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金鍾泌 총리 주재로 국정협의회를 열고 “경제청문회와 방송청문회를 대정부 질의가 끝난 19일부터 1개월 예정으로 개최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고 鄭東泳 대변인이 전했다. 경제청문회를 위해 양당은 합동으로 팀을 구성,내실 있는 청문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기로 하고 방송청문회는 국회 차원이 아닌 위원회 청문회로 개최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이 불응할 경우 여당 단독으로 청문회 개최를 위한 결의안을 채택하기로 했다. 양당은 또 이날 회의에서 정치인과 경제인이 단결하면 조속한 시일 내에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조만간 경제부처 장관과 양당 정책팀이 참여하는 당정협의를 갖고 수출진흥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 민주열사 열전:14/신흥정밀 사원 朴永鎭(정직한 역사 되찾기)

    ◎‘노동자가 주인되는 사회’ 외치며 분신/열악한 근무환경 맞서 사업장 조직강화 전력/과학적 노동운동에 헌신… 새로운 지평 열어 평화시장 노동자 全泰壹의 분신 자살은 ‘노동자의 인간선언’이었다. 그는 1970년 11월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의 보장을 요구하며 근로기준법 책을 껴안고 분신했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86년 3월17일 한 젊은 노동자가 또 다시 ‘근로기준법 준수’와 ‘노동자가 주인되는 사회’를 외치며 몸에 불을 붙였다. 전태일을 ‘한국의 예수’로 존경했던 27살의 朴永鎭이었다. 볼펜 생산업체인 신흥정밀에 몸담고 있던 그는 인간다운 삶에 더해 사회 주체로서의 노동자 권리를 선언한 뒤 분신,12시간만에 병원에서 숨졌다. 다음날 각 일간지 사회면에는 ‘임금인상 요구 농성 근로자 분신자살’이란 제목의 1단 짜리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1단 짜리 조그만 기사의 가치밖에 없는 그렇게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다.그의 죽음 뒤에는 노동자 권리를 위한 처절한 투쟁,노동운동의 경직성,경찰의 인권과 생명 경시 풍조 등 그당시 시대상황이 복합적으로 내재돼 있었다. 박영진은 농성 전 임금투쟁을 4·5월로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직역량이 미미해 싸움의 결과가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별 사업장의 실상보다는 공동보조의 중요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지역연대차원의 모임에서 3월17일의 공동투쟁이 결정됐다. 신흥정밀에서의 다른 활동가들도 이를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투쟁을 늦추어야 한다는 그는 주장을 접어야 했다. 3월17일의 공동투쟁 결정이 내려지자 그는 무모하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을 정리하고 투쟁의 승리를 위해 준비를 서둘렀다. 고위 관리사원 몰래 각 작업장을 돌며 싸움의 당위성을 설득하고 동료들을 조직화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러나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미리 결심하지는 않은 듯하다. 누구에게도 그런 뜻을 비치지 않았고,분신 3일전 회사 여공들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에도 그런 기미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쫓아온 경찰 불끄는 동료 제지 노조가 없던 상황에서 3월17일 박영진 등 30여명은 지역 연대모임의 결정에 따라 임금투쟁을 벌였다. 이들은 17일 낮 식당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다 옥상으로 쫓겨 올라갔다. 박영진은 이미 식당에서 난로 석유통을 머리에 들어부어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쫓아 올라온 구사대와 경찰에게 열을 셀 때까지 물러나지 않으면 분신하겠다고 외쳤다. 피를 토하듯 그의 입에서 숫자가 흘러나왔다. “하나,둘,셋,넷,…” 그러나 곤봉과 각목을 든 경찰과 관리직 사원들은 이를 조롱하듯이 다가왔다. 시간이 멎은 듯한 정적에 숫자를 세는 외침마저 묻혀버린 순간,뜨거운 불길이 눈부신 햇살을 태우며 허공에 치솟았다.깜짝 놀란 동료들은 옷을 벗어 불을 끄려 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들을 낚아챘다. 불에 타는 사람을 우선 구해야 할 경찰이 오히려 불을 끄는 사람들을 체포한 것이다. 박영진은 시뻘건 불길속에 엎어진 채 10여분간 방치됐다. 경찰의 행위는 독재권력의 정권유지 도구로 전락했던 일그러진 자화상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박영진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신문팔이,껌팔이,구두닦이 등 잡초같은 삶을 살았다. 노동운동에 눈을 뜬 것은 83년 검정고시를 위해 지역야학이던 ‘한얼야학’에 다니면서부터. ‘전환시대의 논리’‘나의 라임오렌지나무’‘노동법해설’‘미국노동운동사’등을 읽으며 점차 억눌렸던 것이 새로운 힘으로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충동을 느꼈다. 특히 ‘전태일평전’은 그가 검정고시냐,노동운동이냐를 놓고 갈등하게 만든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방위병 복무를 마치고 그는 84년 시흥에 있던 동도전자에 입사한다. 입사하는 날 쓴 일기에 ‘어머니,더많은 다른 부모와 형제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나혼자만의 이기를 위해 안일하게 행동한다면 돈 많이 가진 악덕기업주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이제 내 삶은 혼자만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사장의 갖가지 비열한 횡포에 항의해 회사를 나오고 만다. 조직적인 대응을 못하고 개인적 분노에 휩싸여 일을 그르쳤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3개월후 구로공단의 동일제강에 입사한다. 여기서 동기회 및 친목회,독서회 등을 조직해 노동조합 결성을 시도한다. 하지만 구청의 노조설립 신고서 접수 거부와 회사의 어용노조 기습 설립 등으로 또 한번 실패를 맛본다. ○하루 두세시간 자며 동료 설득 박영진이 85년 9월 들어간 신흥정밀은 근무환경이 열악했던 구로공단에서도 악명이 자자했다. 기본 근무시간을 9시간으로 정해 1시간을 공짜로 부려먹고 있었고,월급은 하루 평균 3,080원으로 월 10만원을 넘지 않았다. 월차수당, 특근·잔업수당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종업원들에게 하루 3시간 이상의 잔업을 강요했다. 그는 하루 두세시간 밖에 자지 않으면서 조직강화에 전력했다. 동료에 대한 애정과 의리는 보증수표였으며,이를 바탕으로 단결을 호소했다. 그러나 조직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치 않은 노동투쟁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고,지나치게 책임감이 강했던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소수의 주장을 존중하는 노동운동의 유연성만 있었어도,기업주가 작은 협상의 자세만 보였어도,정권이 생명 존중의 정신을 조금만 가졌어도,치열한 삶을 살아온 한 노동운동가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은 없지않았을까. 이봉우 전 구로노동연구소 소장은 “자기 견해와 다른 다수의 결정을 위해 목숨을 던진 조직적이고 의식적이었던 참노동자”라고 박영진을 평가했다. 또 “과학적 노동운동의 새벽을 열었던 첫 닭”이라며 그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약력 ▲1960년 충남 부여에서 박창호·이미선씨의 3남2녀중 장남으로 출생 ▲76년 서울 배문중 3년 중퇴 ▲79년 방위병 입대 ▲83년 한얼야학 입학 ▲84년 동일제강 입사 ▲85년 신흥정밀 입사 ▲86년 3월17일 분신 ◎노동운동의 흐름/신군부 폭압에 정치투쟁 전환 연대투쟁 나서/현장서 유리된 서노련 쇠퇴… 노조중심 정착 신군부 세력은 80년 5월17일 계엄의 전국 확대와 함께 그때까지 힘들게 자라왔던 우리 노동운동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70년대 노동운동을 주도했던 민주노조 관계자들은 노동운동의 대응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폭력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이들은 임금을 주 타깃으로 하던 ‘경제투쟁’의 한계를 절감하고 전 노동자를 정신적으로 묶을 수 있는 ‘정치투쟁’에 눈을 돌렸다. 쓰라린 패배를경험했던 학생운동가들도 노동현장을 토대로 하지 않은 민주화투쟁은 ‘사상누각’이라는 인식하에 노동야학과 위장취업의 형태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구로공단은 이러한 물줄기를 그대로 타고 있었다. 70·80년대 20여만명의 노동자를 두고 한국수출의 메카 역할을 했던 구로공단에서 85년 6월 공단내 10여개 사업장이 참여한 ‘구로동맹파업’이 있었는데 노동조합 연대투쟁의 형태를 띠었지만 노동운동 학습을 받은 지역활동가들 역할이 컸고 정치투쟁의 성격이 강했다. 동맹파업은 대우어패럴 노조위원장 구속이 도화선이 됐다. 구로동맹파업의 산물임을 자처하면서 ‘선도적 정치투쟁’을 주창한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이 85년 탄생,각종 가두·점거투쟁,지역연대투쟁을 주도해 나간다. 박영진이 분신했던 3·17투쟁은 이런 지역연대투쟁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는 노동자가 단순한 경제적 만족을 넘어 사회의 주체가 되는 노동운동을 주장했지만 그 바탕엔 현장노동자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그래서 현장의 조직역량이 약했던신흥정밀의 동조투쟁에 반대했던 것이다. 정치투쟁을 지나치게 중시했던 이러한 흐름은 86년 이후 쇠퇴기를 맞는다. 현장으로부터 유리된 활동가 중심의 조직활동이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서노련도 86년 5·3인천사태를 고비로 해소된다. 85·86년의 이런 쓰라린 아픔을 겪고 나서 노조를 중심으로 대중적 경제투쟁을 올바로 이끌어가는 가운데 노동자의 정치의식 고양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정치투쟁이 바람직하다는 관점이 자리잡게 됐다. ◎분신현장 동료 姜文英씨/당시 정권수호대 인명 경시/죽음 몰아붙이던 모습 충격 “충격이었어요. 永鎭의 독한 희생도 그랬지만 노동자 한 사람의 목숨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몰아붙이는 정권 수호대의 모습에 치가 떨렸습니다” 분신 당시 옥상에 함께 있던 姜文英씨(37·사업)의 말이다. 박영진은 그가 건네준 유인물에 불을 붙여 분신했다. “그냥 겁만 줄테니 걱정말라”는 말에 건네주었지만 아직도 자책과 아픔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는 점버를 벗어 불을 끄려다 경찰에 나꿔채여 5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지독한 사람이었지요. 항상 단결을 해야한다고 했어요. 구구절절히 옳았지만 부담을 느꼈어요. 그가 조직강화를 위해 제방에 왔을때 문을 잠그고 모른척하다가 밤새워 문앞에 서 있어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그로부터 배웠다”며 “다시는 그같은 사람을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는 姜씨. 그는 87년 박영진추모사업회 결성에 참여하다가 박영진의 여동생 현이씨(34)를 만나 결혼해 살고 있다.
  • 대한매일 역사성과 새 좌표 세미나­주제발표 내용

    ◎국난때 정론 편 대표적 민족지 오는 11일 ‘대한매일’로 역사적인 새 출발을 하는 서울신문이 3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대한매일의 역사성과 새 좌표’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갖고 그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했다. 이날 발제자들은 대한매일신보가 창간 당시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한 국운을 바로잡기 위해 항일구국의 기치를 드높였던 민족정론지였다고 평가하고 오늘날 또 다른 국난기를 맞아 그 같은 정신의 부활은 시의적절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특히 새로운 천년,새 세기의 지평에서 공익언론·구국언론으로서 대한매일의 부활은 1세기 전 선각자들이 이루지 못했던 꿈과 도전을 실현시킬 계기가 될 것임을 전망했다. 이날 발표된 ‘대한매일신보 창간 당시의 민족운동과 시대적 상황’(신용하),‘대한매일신보의 논조와 민족 독립운동’(정진석), ‘대한매일의 정체성과 새 좌표’(김삼웅) 세 편을 요약 소개한다. ◎창간 당시 시대적 상황/애국세력 신민회 본부 사내에 설치/국채보상 일어나자 전국적 캠페인/愼鏞廈 서울대 교수·사회학 구한말 ‘을사5조약’의 늑결(勒結)로 외교권 등 국권을 상실한 뒤 가장 과감하게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한 신문이 ‘大韓每日申報’(대한매일신보·이하 대한매일)였음은 학계의 연구에 의해 잘 알려졌다. 그 요인과 조건을,외국인 명의로 발행돼 일제의 탄압과 검열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왔다. 이런 외적 조건은 일면에 불과한 것이어서 대한매일이 과감한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할 수 있던 내적 조건을 밝힐 필요가 있다. ○과감하게 언론구국운동 전개 대한매일은 영국인 裵說을 사장으로 고용추대하고 梁起鐸은 총무가 되어 합작으로 1904년 7월18일 창간했다. 원래 대한제국 정부가 한국의 처지와 한국정부의 주장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영어를 사용한 신문의 필요성을 절감,궁내부 예식원 관리인 양기탁 등이 배설을 고용해 창간했다. 예식원 영어통역관인 양기탁은 고종의 내탕금과 李容翊·閔泳煥 등의 자금지원을 받아 신문사 시설을 설치하고 런던 데일리 크로니클지 임시통신원 배설을 사장으로 고용해 신문을 창간했다. 따라서 대한매일은 양기탁의 주도로 창간됐으며,양기탁은 ‘총무’로서 신문사의 편집과 업무를 총괄했다. 대한매일이 가장 과감하게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하게 된 내적 조건의 특징은 신민회(新民會)가 창립돼 그 본부를 대한매일 안에다 둔 사실과 직접 관련돼 있다. 신민회는 1907년 4월 초 다섯가지 애국세력이 연합해 창립했는데 그 첫째가 대한매일 집단이다. 양기탁이 총무로,申采浩가 주필로,張道斌(일시 주필)玉觀彬 李章薰 梁寅鐸 金演昶 兪致兼 李晩稙 등이 기자로,林蚩正 姜文秀 등이 회계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신민회 창립 직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이밖에 서울 상동교회,구한국 무관 출신,민족자본가,미주(美洲)에 있는 공립협회(共立協會)등이 참여했다. 신민회에서는 특히 대한매일이 그 핵심세력이 되었다. 신민회 총감독(당수 또는 회장)이 양기탁이었고 본부를 대한매일 내에 두었다. 장도빈은 주도회원에 신민회 청년단체인 청년학우회 간부였다. 신민회 조직을 발의한 것은 안창호 중심의 공립협회였으나 미주에서는 효과가없으니 본국에서 설립해야 한다고 판단해 안창호를 파견했다. 안창호는 1907년 2월 귀국 즉시 대한매일로 양기탁을 찾아갔고 두달 후 다시 만나 신민회를 비밀결사체로 조직하기로 합의했다. 신민회 창립 제의는 안창호가 냈으나 창립은 양기탁 중심으로 되었다. 당시 그는 애국계몽운동의 유력한 지도자로서 국내 애국인사들과 긴밀한 유대를 가졌을 뿐아니라 민중에게서도 큰 존경을 받았다. 아울러 양기탁이 신민회 총감독으로 추대된 것은 그가 대표하는 대한매일의 조직과 세력이 중시됐기 때문이다. 신민회는 전국에 지국을 가진 대한매일을 중핵으로 하여 단기간에 비교적 용이하게 지방지회를 설치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신민회 본부는 대한매일에 있었고 대한매일 영업국장인 임치정과 직원 김홍서가 비밀사무를 보았다. ○安昌浩 중심 신민회 조직 발의 1909년 대한매일의 지사 숫자는 51곳으로 일제가 후에 파악한 신민회 지회 세력과 분포가 거의 일치한다. 신민회는 국권회복이라는 목적의 실행방법으로 ‘신문·잡지·서적의 간행’을 최우선으로 설정했는데 창립 후 독자적으로 신문을 간행하지는 않았다. 대한매일이 신민회의 기관지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이는 장도빈,일제 관원,독립운동가의 자료들에서 확인된다. 대한매일이 신민회 기관지로 전화한 1907년 4월 이후 논설·편집·보도는 매우 열렬하고 전투적으로 되었다. 일제는 1908년 4월 ‘신문지법’을 개정해 외국인 명의 신문이 가진 특권을 모두 없앴으며 대한매일을 해체하려고 배설·양기탁을 고소·구속했다. 그럼에도 대한매일은 굴복함 없이 더욱 적극적으로 의병운동을 지원했다. 이는 대한매일 종사자들이 굳게 단결,신민회 노선에 따른 과감한 언론구국투쟁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대한매일의 민족운동에서의 애국적 전통은 21세기를 맞이하는 오늘 우리 한국 신문에서도 면면히 계승·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논조와 독립운동/李 침략 본격화 맞서 대항논리 제공/직필 논설 통해 항일의병투쟁 고무/鄭晋錫 한국외대 교수·정책과학대학원장 대한매일신보는 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부터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까지 나라 안팎의 정세가 몹시 복잡하던 시기에 발행된 대표적인 민족지였다. 일본과 영국은 대한매일이 창간된 때로부터 한일합방까지 대한매일을 외교적인 현안문제로 다루었다. 따라서 대한매일은 언론사,독립운동사,한국문제에 관한 영·일 양국의 외교사,국제사법사 등의 핵심이 되는 연구과제이다. ○한일합방때까지 6년간 발행 대한매일의 항일 언론이 한국의 언론사와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요약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주목할 것은 이 신문의 발행시기다. 이 신문은 러일전쟁이 일어난 직후부터 한일합방이 공포되던 날까지 약 6년 동안 발행되었다. 이 시기는 일본이 러일전쟁을 기점으로 한반도에서의 독점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침략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하던 때였다. 대한매일은 이와 같은 민족사적 전환기에 발간되면서 항일운동의 논리를 제공했고 항일운동을 확산시키는 동시에 한국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이었다. 둘째 대한매일의 외교사적인 중요성이다. 이 신문에는 한국 영국 일본 세나라의 각기 다른 입장이 한반도의정치적 문제와 연관되어 미묘하게 얽혀 있었다. 이 신문은 소유주가 영국인이었으나 한국의 황실과 민족진영이 뒷받침하고 있었으며 논조는 항일이었다. 일본 입장에서 볼 때는 이 신문이 침략정책에 가장 큰 장애요인이었다. 일본은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裵說을 한국으로부터 추방하거나 신문을 발행하지 못하게 만들려 했고 그 교섭 상대국은 영국이었다. 영·일간 교섭 과정에서 외교정책,사법 절차상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야기되었음은 물론이다. 셋째 이 신문은 한반도문제에 있어 영국과 일본의 기본적인 입장과 양측의 외교정책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들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영국이 영일동맹으로 맺어진 우호관계라는 점을 내세워 일본의 대한정책을 방해하는 영국 시민 배설에 대해 만족할 만한 제재를 가해달라고 요구했다. 때문에 영국 정부 자체에서도 이 문제의 처리에 고심했다. 처음에는 영국과 일본이 다같이 배설을 한국의 법률과 일본의 군율 등으로 간단히 처리해 보려 했지만 결국은 영국의 재판에 회부하게 되었다. 다섯째 한국민족운동사에서 본 대한매일의 중요성이다. 이 신문은 소유주가 영국인이었으므로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았다. 이로 인해 일본의 한국 침략정책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고 한국 국민들의 저항운동을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었다. 많은 의병들이 이 신문의 영향을 받아 무장항일투쟁에 가담했으므로 이 신문은 한국 민족독립운동의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었다. ○독립운동의 정신적 구심점 여섯째 언론사에 있어서의 중요성이다. 이 신문은 발행되고 있던 기간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최대의 민족지였다는 점만으로도 연구의 필요성은 크다. 발행부수도 당시로서는 최고였지만 국한문 한글 영문의 3종을 동시에 발행한 신문은 한국 언론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대한매일이 벌인 국권수호운동은 1차적으로는 지면을 통해 전개되었다. 대한매일은 일본 침략을 규탄하고 항일무장 의병투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면서 한국 언론사에 가장 빛나는 항일 언론의 역사를 기록했다. 대한매일은 항일의 필봉만으로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니었다. 국채보상운동이 온나라에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던 때에 의연금을 수합하는 총본부격인 국채보상의연금총합소가 되었고 梁起鐸 朴殷植 申采浩 등은 논설로 일제 침략에 항거하는 한편 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하여 항일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 의병들의 무장항일투쟁도 대한매일의 논조에 고무된 바 컸다. 대한매일은 한국 언론사의 주류를 형성하는 위치를 차지한다. 이 신문이 세운 민족 언론의 전통은 일제 치하를 거쳐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 내려오고 있다. 대한매일은 결국 한일합방 직전에 일본측으로 넘어가 합방 후에는 총독부의 기관지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대한매일 발행 당시의 언론사뿐만 아니라 일제시대 언론 연구에도 그 선행연구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정체성과 새 좌표/굴종과 오욕의 역사 치열하게 자성/원래 출발선으로 다시 돌아가 국난극복·21세기의 비전 제시 노력/金三雄 본사 주필 그릇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국민적 목소리가 ‘국민의 정부’가 탄생하면서 거세게 일어났다. 지난 반세기 동안 구조화된 적폐들을 청산하자고 정권교체라는 시민혁명을 이룬 국민 절대다수의 요청에 따라 가장 추한 모습을 지닌 우리 언론을 바로잡자는 언론정화운동과 언론개혁시민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이는 역사의 기승전결 법칙을 교과서적으로 무섭게 반영한 결과라고 본다. 서울신문이 제호를 변경하면서 출생의 뿌리를 찾고 그 정신을 새로이 하면서 새 출발의 전기를 확립하려는 의지는 바로 기승전결의 역사법칙이라 할 것이다. 서울신문은 이러한 역사발전의 전기로,국운이 기로에 처한 1900년대 초의 절망적인 시대 상황에서 민족의 긍지를 일깨우고 자주의 주권회복 기치를 높이 들었던 ‘대한매일신보’의 제호를 회복함으로써 우리가 처한 국난을 이기고 새로운 천년의 21세기에 앞장서고자 한다. 제호 변경은 서울신문이 단순히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이었다는 인연만으로 막연히 옛이름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백색독재와 군사독재정권의 홍보지로서 본의 아니게 걸어왔던 갖가지 형태의 굴종과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원래의 출발점이었던 대한매일신보의 제호를계승함으로써 구국활동·개화운동·애국정신·민족사상·독립정신을 이어받는 제2창간의 역사적 동기를 부여코자 하는 것이다. 서울신문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대한매일신보는 당대의 대표급 애국지사들이 참여하여 만든 민족지였다. 신문 경영의 주체는 배설이지만 실질적 신문 제작은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장도빈 등 민족사상이 투철한 항일 언론투사인 우리 선각자들이 맡았다. 당시 대한매일신보는 항일운동의 선봉에 선 구국활동의 전위였다.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이 한반도의 영구 식민지화를 꾀하려는 책동임을 지적하면서 그 부당성을 널리 폭로하고,의병 항거를 대서특필했다. 일진회의 합병 주장을 사흘에 걸쳐 통박하고,황성신문과 공동 보조를 취하면서 민족지의 방향을 주도했다. 정간 2회,압수 45회라는 일제의 폭압적 상황 아래서 고종황제의 퇴위 기도를 폭로,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국채보상운동의 실질적 본부 역할을 한 것을 비롯,항일구국운동의 총본산으로서 시대적 사명에 충실했다.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격때는 이들이 반포한 격문을실었으며 군대해산 조치에 저항하여 일제를 통렬히 비난했다. 국권 상실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도 그 정신을 상실하게 되었다. 일제는 1910년 8월29일 한일병합과 함께 눈엣가시와 같았던 대한매일신보를 탈취하여 ‘매일신보’라는 총독부 기관지로 만들었다. 강압에 의한 합병조약이나 을사조약이 원천적으로 불법이기 때문에 무효이듯이 대한매일신보의 강탈도 원천 무효인 것이다. 제작을 처음부터 도맡았던 총무 양기탁은 이 신문의 발행인 명의가 친일 인사로 바뀐 그날부터 자신은 이 신문에서 손을 떼었다는 광고를 게재하고 신문사를 떠났다는 사실에서도 대한매일신보사가 매일신보로 이어질 수 없음을 역사에 밝혀준다. 양기탁 선생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지사들이 매일신보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서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결코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일 수가 없으며, 따라서 새롭게 태어나는 대한매일에서 그 지령을 승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새 대한매일은 대한매일신보의 지령 1651호와 서울신문의 지령을 합산하여 승계하고,창간기념일은대한매일 재창간일인 11월11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서울신문의 제호 변경과 뿌리찾기는 서울신문이란 한 언론사의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굴종과 오욕의 역사로 점철된 현대 한국 언론계가 반성,회개하며 거듭나고 기회를 마련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모든 언론이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되새겨 21세기 참언론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대한매일은 ‘대한매일의 다짐’을 통해 다음의 4가지를 지향하고자 한다. 첫째,공공이익을 앞세우는 신문. 둘째,국민복지에 앞장서는 신문. 셋째,민족화합을 앞당기는 신문. 넷째,2000년대에 앞서가는 신문. 대한매일은 1세기 전 대한매일신보가 실천하고자 했으나 미처 이루지 못한 꿈과 비전을 새로운 시대,변화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국가이성(國家理性)’으로 집약,표현하고자 한다.
  • 노총 “제2교원노조 설립”/15일 결의대회… 전교조와 양분될 듯

    한국노총은 교원노조 법제화 방안이 합의됨에 따라 기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는 별도로 제2교원노조를 설립키로 했다고 3일 밝혔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교원의 근로조건 개선을 목표로 전문단체 보다는 교원노조를 설립키로 했다”면서 “교총 소속 교사들이 대거 가입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국노총은 오는 15일 서울 여의도 둔치에서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교원노조 결성을 결의할 방침이다. 한국노총이 제2교원노조 설립을 추진함에 따라 내년 7월쯤 출범 예정인 교원노조는 전교조와 제2교원노조로 양분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전교조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전교조와 한국교총이 단체의 이해관계를 떠나 교육개혁 실천을 위해 내년 7월 출범할 교원노조로 단결하자”고 제안했다.
  • 교원노조의 법제화(사설)

    합법적인 교원노조의 등장이 가시화됐다.교원노조 법제화를 위한 쟁점사항들이 노사정위원회에서 타결됨에 따라 가칭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안’이 곧 정기국회에 상정될 전망이다.이 법이 제정되면 내년 7월부터 교원의 노조 결성이 인정되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설립 10년만에 제도권에 편입된다. 교원노조의 합법화는 金大中 대통령의 선거공약으로 지난 2월 노사정위에서 기본적인 합의를 이루었던 사항이라 이같은 결과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그러나 지난 89년 전교조가 출범한 후 우리 교육계와 사회가 심각한 갈등을 겪었던 점을 돌이켜보면 교원노조 법제화의 실현에 한걸음 다가선 것은 큰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제2건국의 전제조건인 교육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물론 교원노조의 법제화는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듯 당분간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교원노조 특별법이 제정되면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및 단체협약체결권이 인정돼 예산·법령·조례 등에 의해 규정되는 내용과 정치활동을 제외하고 모든 노조활동이 가능해진다.교사들을 단순히 노동자로 보지 않는 사회적 통념이 아직 강한 상황에서 교원노조 활동은 파열음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또 교사의 근로조건 등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은 교원노조가,교원정책에 관한 사항은 전문직 교원단체가 맡는 2원화 방안에 따라 기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전교조가 각각 핵분열·이합집산을 일으켜 여러개의 복수노조와 전문직 교원단체가 난립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집회·결사의 자유에 따른 교원단체의 복수화와 교원노조 허용은 세계적 흐름으로 이에 반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복수의 교원단체가 갈등과 대립을 지양하고 화합과 협조로 교육현장의 문제점 해결에 앞장선다면 오히려 교육개혁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교총과 전교조가 행여라도 서로 힘겨루기에 몰두해 교육계를 분열로 몰아가고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어느쪽도 국민적 지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당국 또한 예상되는 부작용을 면밀히 검토해 대책을 마련해야 할것이다.일부 만족스럽지 못한 점이 있다 해도 교원노조의 합법화가 노사정 합의속에 이루어지는 만큼 일단 제도의 틀을 만들고 부족한 점은 향후 개선해 가는 대타협의 성숙한 자세로 국회 입법과정이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 남북 경협 새 시대­의미와 전망

    ◎北 최고권력 민간경협 공식 인정/경제난 절박 반영­정부 對北 햇볕정책 결실/‘당국배제’ 전략 유지속 다른 사업도 적극성 띨듯 북한 金正日 국방위원장이 현대그룹 鄭周永 명예회장을 ‘접견’한 사실은 큰 ‘사건’임에 틀림없다. 金正日이 오랜 ‘은둔통치’를 마감했다는 점에서만이 아니다. 그가 북한권력의 전면에 나섬으로써 남북관계의 큰 흐름이 바뀔 공산이 커진 것이다. 우선 그가 지난 9월 국방위원장 취임후 첫 면담 외부인사로 鄭회장을 선택한 사실부터 의미심장하다. 폐쇄적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집해온 북한 최고지도자가 공식 권력승계 직후 남쪽 재벌총수를 만난 까닭이다. 때문에 이번 면담은 金大中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가 일관성있게 추진해온 대북 포용정책의 결실로도 해석된다. 정경분리와 창구다원화를 통한 남북 교류협력에 북측이 결과적으로 호응했다는 점에서다. 이는 역으로 북한의 경제사정이 그만큼 절박함을 뜻한다. 남한과의 경협 과정에서 예상되는 체제동요를 감수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이미 국제사회에서 ‘파산선고’를 받다시피한 북한경제로선 남한 자본유치가 외길 수순인 셈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전면적 남북 관계개선에 나설 가능성은 적다는 관측이다. 우리측의 경협 확대 제의에 어쩔 수없이 손뼉을 마주쳐 왔지만 ‘당국 배제’ 전략은 불변이라는 얘기다. 고(故) 金日成 주석은 생전에 ‘모기장을 치고 개방하겠다’고 속내를 내비친 바 있다. 독일 녹색당 대변인을 만난 자리에서였다. 요컨대 ‘벌레’(자유주의 사조와 남한실정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는 것은 한사코 막겠다는 뜻이었다. 북한이 철조망을 친 채 시도하는 금강산관광사업도 그의 유훈이다. 그러나 金日成류(流)의 ‘제한적 개방노선’은 골격은 유지되겠지만 보다 과감해질 개연성이 높다. 金正日이 현대측의 다른 경협사업에도 적극성을 보이고 있음이 이를 말해준다. 물론 북한은 당분간 말로는 여전히 ‘사회주의 강성대국’과 ‘先軍(선군)정치’ 구호를 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전민족대단결’이라는 金日成의 교시를 내세워 남한 기업들과 합작을 모색할 것으로예상된다. 그같은 이중적인 태도는 장기적으로 북한사회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동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金正日과 鄭회장의 만남은 세계사의 대세가 개방과 개혁임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
  • 공무원 직장협의회 허용/기관별 설립…6급이하 가입 가능/내년부터

    ◎사실상 단결권 인정… 경찰·교원은 불허 내년 1월부터 전국의 6급 이하 하위직 40여만 공무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공무원 직장협의회가 본격적으로 설립될 전망이다. 행정자치부는 20일 공무원 직장협의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안을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11월9일까지 입법예고한 뒤 차관회의등을 거쳐 내년 1월1일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안에 따르면 공무원 직장협의회는 기관장이 4급 공무원 이상인 기관단위별로 설립할 수 있게 된다. 현재 4급 공무원 이상이 기관장인 기관은 2,000개다. 행정자치부의 경우,본부 및 정부청사관리소,정부 기록보존소 등 14개 기관이 있다. 그러나 직장협의회간 연합협의회를 둘 수 없으며 소방·경찰·교원 등 특정직 공무원은 협의회에 가입할 수 없다. 협의회 운영에 필요한 업무는 정규 근무 시간 외에 해야하며 협의회 업무를 전담하는 상근 공무원은 인정하지 않는다. 협의회를 설립하고자 하는 공무원은 설립취지,설립총회 개최일시·장소,설립준비 대표자 등이 기재된 안내문을 소속 공무원들이 볼 수 있는 장소에 7일 이상 게시해야 한다. 협의회와 기관장은 해마다 2차례 정기회의를 갖도록 했다. 행자부의 한 관계자는 “협의회는 노동조합처럼 노동 3권을 갖지는 못하나 사실상 단결권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하위직 공무원들의 권익향상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 정부조직 일부 손질 추진/연말∼내년 2월 17개 부처 조직 진단

    ◎경제부총리·공보처 부활 등 공론화 예상 정부는 연말부터 내년 2월까지 재정경제·외교통상부 등 17개 중앙부처에 대한 조직진단을 실시,그 결과에 따라 새정부 출범때 개편한 정부조직을 일부 손질할 방침이라고 18일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가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를 위해 정부측에서는 행정자치부와 기획예산위로 민·관합동진단팀을 구성하기로 했다”고 말하고 “민간측 용역팀도 구성하기 위해 한국생산성본부 등 기관 선정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진단에서는 정부기능 체계의 합리성과 새 조직체계의 운영성과,그리고 기구 및 인력의 적정선 등을 중점 점검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외교통상부에 편입된 통상교섭본부의 효율성을 비롯해 ▲경제부총리의 부활 필요성 ▲공보처 기능 부활 ▲내무부와 총무처 통합의 적정성 ▲정부예산 기능의 독립여부 등이 공론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관계자는 또 “당초 이번 정기국회때 기획예산위와 예산청을 통합하려고 했으나 계획을 바꿔 정부조직 진단결과가 나온 뒤 다른 정부조직개편과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면서 “그러나 중앙인사위 설치안은 처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항공부품시장 기린아 한국로스트왁스(경쟁력으로 승부 건다:2)

    ◎세계수준 기술력이 ‘전천후 무기’/수출­터빈 블레이드 등 생산.P&W와 1,000만불 계약.올해부터 GE에도 납품/매출­올 100억… 25% 늘려.총기류제조까지 섭렵 전세계 항공기엔진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미국의 프랫 앤드 휘트니(P&W)사는 오는 12월부터 터빈 블레이드 등 핵심부품을 한국로스트왁스로부터 공급받는다.2000년대 초까지 1,000만달러 규모의 장기계약이다. 항공기 부품을 수출하려면 현지 정부 허가는 물론,극히 까다로운 4∼5단계의 기술승인을 거쳐야 한다.웬만한 기술력으로는 엄두도 못낸다.한국로스트왁스(사장 張世豊·61)가 세계 항공부품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주목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P&W 외에 미 제너럴일렉트릭(GE)에도 지난 7월부터 물건을 대고 있다. 항공부품 외에 자동차,선박,전자제품,총기류의 부품을 생산하는 이 회사의 기술력은 IMF시대에 더욱 빛난다.주조기술 공법인 니켈·코발트 합금의 다결정기술을 양산화했고 보다 진보된 일방향 응고기술과 단결정기술의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항공부품은 가격경쟁력이통하지 않는 상품이다.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어 아무리 값이 싸도 품질이 뛰어나지 않으면 안된다.한국로스트왁스가 성공의 전기를 마련한 것은 89년.張사장이 항공기 부품쪽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부터였다.중국 등 후발 개도국의 값싼 제품이 치고 올라옴에 따라 고부가가치 제품의 개발이 시급했던 것. 그러나 당시 49%의 지분을 갖고 있던 일본 합작사는 “미쓰비시 등 쟁쟁한 일본 기업도 큰 재미를 못보는 사업”이라며 강력 반발했다.결국 이 회사는 값싼 노동력을 찾아 중국으로 갔다가 몇해전 부도로 문을 닫았다. 로스트왁스의 기술개발 과정은 험난했다.미 국방부가 항공 관련기술의 해외 이전을 규제하고 있었고 PCC나 하우멧(Howmet) 등 선발업체들도 기술이전에 전혀 뜻이 없었다.자체 연구를 통해 근근이 기술을 익혀가던 차에 기회가 온 것은 94년.공군 전투력 증강사업으로 F16 전투기가 들어오면서 미국측과 엔진 정밀주조분야의 기술협력이 가능해졌다.총기류 부품을 납품하고 있던 한국로스트왁스는 쉽게 사업자로 선정됐다. 매출액의10∼15%가 연구개발에 들어갔다.그 결과가 P&W,GE,록히드 마틴,보잉,에어버스,벨 헬리콥터 등의 국제인증이다.회사의 명성은 지난해 6월 프랑스 파리에어쇼에 터빈 블레이드 등을 내놓으면서 한껏 높아졌다.파리에어쇼에 태극기가 꽂힌 것은 이때가 처음. 올 매출목표는 100억원.지난해보다 25% 늘려잡았다.납품을 위한 마무리 인증절차를 남긴 것이 많아 내년 전망은 더욱 밝다.張사장은 일요일을 빼고는 매일 공장에서 직원들과 숙식을 함께 한다.
  • 金 대통령 국군의 날 연설문

    ◎“과학軍 육성 미래위협 대처”/정예군으로 거듭 나려는 국방개혁 노력 높이 평가 온 국민의 축복 속에 맞이한 ‘건군 50주년’을 경축하며,국군장병 여러분의 노고를 진심으로 치하하는 바입니다. 아울러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치신 애국선열과 전몰장병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 군은 1948년 창군 당시 소총 하나 만들지 못했던 여건 속에서도 조국수호의 의지 하나만으로 6·25전쟁의 국가위기를 극복하는데 이바지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전차와 전투기,그리고 함정을 비롯한 대부분의 주요 무기들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도처에서 세계평화유지군(PKO) 활동에까지 참여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세계적 강군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50년간 군이 이룩한 이러한 공헌을 나는 매우 자랑스럽고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정부수립 50년과 창군 반세기를 맞은 올해,‘국민의 정부’가 출범하게 된 것은 우리 군에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50년간 군이 흘린 피와 땀을 바탕으로 새로운 21세기를 준비하는 출발점에 서 있습니다. 오늘날 상호협력과 공동의 이익추구라는 국제사회의 새로운 조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안보환경은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북한은 계속되는 침투사건에서 보듯이 무력적화통일이라는 대남전략을 변함없이 고수하면서,대량살상무기 확산을 방지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을 외면한채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대립과 긴장을 계속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해줄 강력한 안보능력의 확립은 절대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자주적 국방태세를 강화하고,다른 한편으로는 동맹국가와의 안보협력에 주력하여 북한의 침략기도를 좌절시켜야 하겠습니다. 당면한 경제적 국난을 극복하는 일도 안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경제는 튼튼한 안보가 뒷받침될 때만이 유지되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나는 국가방위를 책임진 군의 최고통수권자로서 우리 군의 국가방위능력을 더 한층 강화하여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며,불행히 침략이 있을 때에도 초전에 이를 분쇄하는 만반의 자세를 갖출 것입니다. 나는 국민의 안전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데 우리 군과 함께 신명을 다바쳐 나의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점을 굳게 다짐하는 바입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의 만전의 안보태세를 위한 몇가지 방향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튼튼한 안보를 위해서 민과 군이 하나가 되어 총력안보태세를 갖추어야겠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민과 군이 하나가 되어 조국을 구했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의 그런 자랑스러운 사례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현대전은 전후방이 따로 없는 총력전으로서 국가안보에 관한 한,민과 군이 다를 수 없는 시대입니다. 조국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민과 군의 단결과 협력을 더 한층 견고히 해야 합니다. 둘째는 명실상부한 ‘강력한 군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군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적으로 엄정한 중립을 지켜야 하고,모든 연고를 떠난 공정한 인사를 통해 화합과 단결을 이룩해야 합니다. 엄격한 신상필벌로 군의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하며,장병의 복지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나는 군의 중립과 공정한 인사,신상필벌과 복지향상을 통하여 우리 국군을 세계 최정예의 강군으로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를 피력하는 바입니다. 셋째는 우리 국군은 첨단과학기술의 시대에 걸맞은,앞서가는 군으로서 정보·과학군이 되어야 합니다. 다가오는 미래의 전쟁은 바로 정보전쟁,과학전쟁,기술전쟁이 될 것입니다. 미래의 안보위협에 적극 대처하고,국방운영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높여가기 위해서는 과학화되고 정보화된 국방력을 구축해나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넷째는 확고한 ‘한·미연합방위체제’를 바탕으로 주변국들과의 안보협력을 더한층 강화해나가야 합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동북아지역,나아가 세계의 평화와도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강력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한·미연합방위체제를 강화하고 일본과의 협조도 추진하면서,중국·러시아와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간의진정한 관계개선도 확고한 안보태세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안보태세를 바탕으로 지금 ‘국민의 정부’는 지난 50년간 지속되어온 남북한 대결의 시대로부터,굳건한 안보를 바탕으로 남북간의 평화와 화해,그리고 협력의 시대를 열어나가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북한의 무력도발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며,동시에 북한에 대한 흡수통일을 배제하고,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을 실현하겠다’는 대북정책의 3대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우리의 대북정책은 지금 전세계가 이를 지지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에 큰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같은 3대 원칙이 명시한 ‘정경분리의 원칙’에 따라 우선 남북간의 경제교류와 협력,그리고 문화 등 가능한 모든 교류를 꾸준히 추진해 나가고자 합니다. 얼마전 북한에 새로운 지도자가 등장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북한이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함께 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북 당국자간의 대화가 조속히 재개되고 남북기본합의서가 성실히 이행되기를 희망합니다.우리는 지금 당면한 국난을 극복하고 민족의 재도약을 이룩하기 위한 ‘제2의 건국’을 목표로 삼아,온 국민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국민의 저력으로 국운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제2의 건국’운동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국정철학을 기초로 21세기 세계 일류국가를 지향하는 국가혁신작업입니다. 이를 위해 지금 우리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방분야의 개혁 또한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군도 21세기의 안보환경에 부응하여 더 한층 강력한 군대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제2의 창군’ 정신으로 과감한 자기 개혁을 달성해야 합니다. 나는 국방개혁 추진을 통해 선진 정예강군으로,정보·과학군으로,그리고 경제군으로 다시 태어나려는 우리 군의 노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오늘 나는 늠름한 국군장병 여러분의 사기충천한 모습을 통해 끝없이 뻗어나갈 조국의 미래를 바라보면서,나의 한없는 믿음과 사랑을 다시한번 여러분에게 보내는 바입니다.
  • 경영진단 全부처로 확대/민간참여 새달부터

    ◎16개청 포함… 정부조직개편 반영/충남도·천안시·연기군·서울 강남구 시범실시 정부기능의 재조정을 위한 종합적인 경영진단이 17개 전 부처 및 산하 16개 외청(外廳)으로 확대돼 실시된다.당초 중앙행정부처는 산업자원부와 보건복지부만이 진단 대상이었다. 지방자치단체는 예정대로 충청남도와 천안시·연기군 및 서울 강남구에서 시범실시한다. 행정자치부와 기획예산위원회는 10월부터 내년 2월까지 경영진단 작업을 벌여 새로운 행정환경 조성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키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정부는 특히 이번 경영진단 결과를 토대로 중앙부처와 자치단체에 대한 과감한 기능조정 및 조직개편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경영진단은 ▲외교·안보분야(통일·외교통상·국방부) ▲일반행정분야(법무·행정자치부,법제처,국무조정실) ▲교육·문화분야(교육·문화관광부) ▲경제정책조정분야(재정경제부,공정위,금감위,기획예산위) 등 2∼4개 부처가 그룹 단위로 나뉘어 실시된다. 주요 진단내용은 유사·중복기능 및 보강·확대기능 분석과 민영화·기업화·상업화 기능 발굴,적정 기구 및 인력규모 산정,효율성 평가지표 개발,정부경영혁신의 법제화·제도화 방안,중소기업 지원체계 평가와 재설계 등이다. 정부는 진단기관을 회계법인과 민간경제연구소,사단법인,출연연구기관 등을 대상으로 지명경쟁입찰 방식으로 선정해 공정성을 높일 방침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획예산위는 각 부처가 제2차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면서 “이번 진단결과는 추가 조직감축을 위한 객관성있는 기초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 각계 원로 10인의 시국제언/개혁·司正 철저하고 신속하게

    ◎부패척결은 지속돼야/개혁대상 겸허히 반성/제도 마련 적극 나서야 정국이 혼란스럽다. 여당은 한나라당의 국세청 불법자금 모금사건을 ‘세금도둑질’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검찰은 정치권 사정(司正)작업을 계속중이다. 야당은 장외집회와 지역감정 호소를 통해 검찰의 사정을 중단하라는 압박을 넣고 있다. 이에 더해 일부 언론은 “정부의 사정활동이 경제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무엇이 우리가 갈 길인가. 방향을 제대로 정해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어떤 국가적 혼란이 올지 알 수 없다. 서울신문은 각계 지도급 원로 10인에게 현 국정상황과 관련한 긴급제언을 구해 보았다. 대부분 정치권 사정은 강력히 지속되어야 한다는 견해였다. 지역감정 촉발에 대한 우려도 많았다. 경제를 걱정하는 소리도 있었으나 어디까지나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원로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가나다순) ▲姜元龍 목사=우리는 지금 흥망의 기로에 서있다. IMF를 벗어나는 문제만이 아니라 수백만에 이르는 실업자 대책,지역·노사간의 갈등해소 등을 해결해야 한다. 현재의 우리 상황은 ‘암’초기단계라고 볼 수 있다. 암은 초기에 수술하면 회복할 수 있으나 늦어지면 치유의 길이 막힌다. 오늘의 개혁은 의사의 수술과 같기 때문에 시간을 끌거나 일부만 잘라내는 식은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정과 개혁은 철저하고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암’을 의사 혼자 힘으로 치유할 수 없듯이 개혁작업은 밑으로부터 올라오는 힘으로 해야 한다. 과거 개혁시도가 실패한 것은 하향식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흐르는 더러운 물을 퍼내는 식이 아니고 그 밑으로 샘터를 파야 한다. ▲金容雲 한양대 명예교수=지금의 경제위기는 국세청 정치자금 모금 등 사회전반에 걸친 부정부패에서 비롯됐다. 지금 경제가 어렵다고 개혁을 후퇴시키자는 것은 그러한 요소를 그대로 남긴 채 경제를 살리자는 모순된 주장이다. 병의 요인을 없애야 치료가 가능하듯 고름투성이의 사회전반에 대한 개혁없이는 경제살리기는 불가능하다. 경제위기를 이유로 지금의 개혁을 거부하는 것은 기득권 세력들이자신들이 지금까지 부당하게 누려온 것들을 조금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정치논리로 모든 문제를 넘기려는 작태는 이제 지양돼야 한다. 특히 안기부의 북풍공작,국세청의 정치자금 모금,권력의 부정융자압력 등은 힘의 논리로 국가기관의 사유화를 시도한 것으로 이같은 잘못된 관행을 고치기 위해서도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 ◎“정치권비리 이번 기회에 근절”/‘표적’ 운운은 개혁 발목잡기/언론 기득권층 옹호 말아야/국민이해·지지 바탕 추진을 ▲金鍾林 흥사단이사장=개혁은 어떠한 아픔이 있더라도 반드시 해야한다. 정치권 일각에서 주장하는 야당파괴 공작이 아니라 정치권 비리를 이번 기회에 완전하게 뿌리뽑자는 것이다. 정치개혁을 하지 않을 경우 경제회복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IMF 위기도 정경유착 때문에 초래됐다. 따라서 정치권 비리를 척결하자는 사정은 이러한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야권의 ‘표적사정’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구여권 세력들이 자신들의 ‘몸보신’을 위한 방패막이로사용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 같다. 부정부패 척결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비리정치인 수사에 정치권이 개입하는 것은 개혁의 발목을 잡는 행위가 될수도 있다. 하지만 사정당국도 국민들에게 야권탄압으로 비춰지지 않도록 해야한다. ▲朴殷秀 변호사(대구시 장애인복지위원회 위원장)=최근 사정의 대상이 된 한 정치인의 항변은 우리 사회의 현 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내가 왜 개혁 대상인가’. 이 항변에는 오만이 보인다. 국가가 위기에 처한 이 시점에 개혁의 대상에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사정을 주도하는 검찰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 개혁의 대상임을 겸허하게 인정하면서 법치의 완성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며 사정에 나서야 한다. 겸손하며 고뇌하는 모습으로 사정에 임해주기를 바란다. 부정부패방지법 제정 등 제도적 장치마련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국민이 공감하며 지킬 수 있는 법률의 내용정비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徐英勳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상임대표=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선택으로 정권교체를 이룩한 정권이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근절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야 정치권 사정이 시작된다는 것은 만시지탄이 없지 않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정이 국민을 불안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난,민생고 등 중첩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야를 초월한 동참과 협력에 의한 거국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국민적 단결이 요청되는 만큼 당위성을 띤 사정이라 해도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밑바탕으로 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정작업은 부정행위의 경중에 따라 일벌백계로 엄정 신속하게 결말을 짓고 하루속히 정국을 안정시키고 여야를 초월하여 국난극복에 힘을 합치기 바란다. ▲卨兆 스님=역대 정권의 사정이 정치권에 집중된 것은 그만큼 부정이 많다는 증거다. 정치인에게 영향력이 없다면 누가 정치자금을 흔쾌히 내겠는가. 또 대가성이 없다고 하지만 누가 믿겠는가. 국민들은 부정부패가 오늘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믿고 있다. 지도층이 자신이 저지른 부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 국가기강이 해이해진다.희망이 있는 사회 건설을 위해서도 사정과 개혁은 지속되어야 한다. 공직자의 불안감을 해소한다는 이유 등으로 사정과 개혁을 적당히 마무리하는 것은 더 큰 병소(病巢)를 만드는 것이다. 언론이 기득권층의 이해득실에 좌우되면 국민을 오도하는 것은 물론 국가와 민족의 미래까지도 오도하게 된다. ▲申鉉碻 전 총리=근본적으로는 사회를 맑게 바로잡기 위해서 사정을 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의 개혁이다. 어떤 사회라도 맑은 사회가 근본이 돼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국가 전체로 보아 급한 것은 경제이다. 사정은 해야 하지만 경제가 어려운 상황인 만큼 경제에 힘을 한데 모으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경제를 살려나가야 한다.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사정을 해야 경제에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일률적으로 언제는 사정을 해도 되고 언제는 하면 안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는 경제에 집중해야 한다. 악습을 하루 아침에 다 고칠수는 없다. ▲李御寧 이화여대 석학교수=어떤 이유에서든 개혁의 고삐를 늦추어서는 안된다. 다만 개혁의 대상과 시점이 문제이다. 현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는 과거청산과 과거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에 주안점을 두고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부패의 원인을 찾아내 도려낸다는 점에선 개혁의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본다. 그러나 개혁에 총력을 모아야 할 부분은 과거가 아니고 현재와 미래임을 간과해선 안된다. 개혁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도 악과 부패가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너무 중증을 앓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치우치면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질 염려가 있다. 모든 국민의 여망대로 개혁이 성과를 거두려면 범위와 시점을 정해 모든 사람이 동참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게 중요하다. ▲趙永植 경희학원장=해방이후 정권교체를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개혁다운 개혁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과거 정부주도의 개혁이 ‘용두사미’로 끝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반개혁세력들의 조직적인 저항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러한 개혁저항세력에 일부 언론이 힘을 실어준 것도 사실이다. 개혁을 폄하하고 개혁의도를 흠집냄으로써 자신들이 누려온 기득권을 지켜왔다. 국민의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 개혁은 지금까지와의 개혁과 비교해 나름대로의 순수성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지금은 언론과 국민이 정부의 개혁추진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개혁이 사회구석 곳곳에 퍼지기 위해서는 점진적 사회평화운동이 필요하다. ▲許平吉 부산대 교수회장=어느 정권이나 그 정권에 주어진 고유한 사명이 있다. 우리 국민은 정부수립이후 50년만에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해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켰다. 국민은 金大中 정권이 사회전반에 대한 일대 개혁을 통해 우리 사회가 21세기에 대도약을 준비하라는 역사적 과제를 부여했다. 국민의 정부가 ‘제2의 건국’ 기치를 높이 든 것은 곧 국민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부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사회 곳곳에 뿌리깊은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여 정의가 살아 숨쉬게 해야한다. 개혁작업이 지속적이고 철처하게 이루어져 사회정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개혁작업에 국민의 동참이 있어야 한다. 언론매체는 기득권세력의 이해에서 벗어 개혁작업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 교원노조 단결권·교섭권 인정/단협체결권·행동권은 제한키로/노동부

    교원노조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은 인정하되 단체협약체결권과 단체행동권은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金元培 노동부 노정국장은 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노사정위원회 주최로 열린 ‘교원노조 결성,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金국장은 “현행 헌법 및 공무원·교원 관련법에서 교원의 지위 및 근무조건 등을 명문화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은 인정하되 단체협약체결권과 단체행동권은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 “대화구걸 않겠다” 퇴로 차단/한나라 의원총회

    ◎“29일 서울집회 길을 메우자” 기염/여의도∼대구간 ‘고속도로 투어’ 계획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李會昌 총재)“29일 서울역 집회에 당운(黨運)을 걸어 남대문까지 길을 메우자”(辛卿植 사무총장)23일 국회 본청 146호실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는 출정식(出征式)을 방불케 했다. 朴熺太 총무는 “대화를 거부하는 여당에게 대화를 구걸하지 않겠다”며 퇴로를 차단했다.李富榮 야당파괴저지 투쟁위원장은 “대구·서울대회는 추석 연휴 국민 대이동 때 여론전을 결판 짓는 계기”라며 협조를 당부했다.李총재는 “여권이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강경 분위기를 이끌었다.26,29일로 예정된 대구와 서울 집회에 당력을 모으려는 의도다. 집회 명칭도 ‘야당파괴 저지와 5대 실정(失政)규탄대회’로 정했다.▲대량실업 ▲의회정치 파괴 ▲민생파탄 ▲지역편중인사 ▲대북(對北)정책 실패등을 ‘5대 실정’으로 꼽았다. 대구집회 때는 여의도에서 집회 장소인 대구 두류공원까지 버스로 이동한다.‘고속도로 투어’로 민심을 공략하겠다는 생각이다.이날 소속 의원 30여명으로 발족한 ‘민주수호 유세단’도 거리유세를 통해 장외 집회를 측면 지원한다. 특히 소속 의원들은 집회 경비로 100만원씩 세비(歲費)에서 갹출키로 했다.辛총장이 “당의 부채가 191억여원에 이른다”며 십시일반(十匙一飯)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의원총회에서는 여권을 규탄하는 발언도 쏟아졌다.金潤煥 전 부총재는 신상발언을 통해 “검찰이 문제삼은 자금은 92년 총선 당시 순수하게 받은 정치자금”이라며 “3金정치가 청산되지 않는 한 제도권에서 민주화 투쟁을 해온 본인을 구(舊)정치인의 상징으로 평가할 수 없다.정치자금이 문제 된다면 (3金씨는)40여년 동안 무슨 돈으로 정치를 했느냐”라고 되물었다. 林仁培 의원은 “현 정권은 ‘대중(大衆)독재’로 사정만 계속하고 있다.대동단결해 현 정권을 몰아내야 한다”고 말했다.申榮國 의원은 검찰이 金전부총재의 92년 비리 혐의를 문제삼은 것을 빗대 “환자가 분·초를 다투는데 응급실 의사가 유리창만 닦는 병원은 끝난 병원”이라며 “그것도 동쪽 유리창만10장 정도 닦고,6년 동안 닦지 않은 유리창을 이제와서 닦는 형국”이라고 주장했다.
  • “비상사태… 당운 건 일전 불사”/한나라,중진 소환에 강력 반발

    ◎비대위 첫회의 黨 중진 대거 참석/“의원직 총사퇴” 강경발언 쏟아져 한나라당은 李基澤 전 총재권한대행과 金重緯 전 정책위의장,李富榮 야당파괴저지투쟁위원장의 검찰 소환에 대해 당운을 걸고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각오다. 당의 골간을 이룬 핵심 지도부의 심장에 비수(匕首)를 겨눈 것은 당 전체에 칼을 들이댄거나 마찬가지라며 발끈하고 있다.한마디로 ‘비상사태’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정상적인 당 체제로는 여권의 탄압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 16일 하오 2시 ‘비상대책회의’를 구성하고 첫 회의를 가졌다.회의에는 李會昌 총재를 비롯,黃珞周·金守漢 전 국회의장,李전대행,金潤煥·金德龍·辛相佑 전 부총재,徐廷和 전당대회의장,당 3역,崔秉烈 당개혁특위원장,李야당파괴저지투쟁위원장 등 중진들이 참여했다. 趙淳 명예총재는 선약을 이유로,李漢東 전 부총재는 외유중이어서 나오지 못했다. 金命潤·李重載·權翊鉉 당 상임고문도 17일부터 이 회의에 참여한다. 첫 회의에서는 오는 21일 열기로 한 전국위원회를 잠정 연기키로 했으며 의원직을 던져야 한다는 ‘초강경발언’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또 李총재는 끝을 보는 자세로 단식까지 불사하겠다는 뜻을 피력,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참석자들 역시 李총재를 중심으로 당이 일치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이와 함께 검찰권의 남용을 집중 공격했다.검찰이 야당파괴 수단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으며,확인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흘려 엄청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피의사실 공표가중처벌법”을 곧 만들어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이 법에는 언론도 당사자들에 대한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내용을 그대로 여과 없이 보도하면 공범관계에 있으므로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당분간 여야 총무 접촉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이날 상오 로만 헤어초크 독일 대통령의 국회 방문 때 국회의장실에서 국민회의 韓和甲 총무를 만나고 온 朴熺太 총무는 “이제 총무가 설 땅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총무선에서 타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여야가 영수회담을 통해 경색정국을 푸는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 阿 6개국 정상,콩고共 휴전 합의/반군지도자 “합의 이행 거부”

    【빅토리아폭포(짐바브웨) AFP 연합】 아프리카 6개국 정상들은 8일 콩고민주공화국(DRC)에서 적대 행위를 즉각 중지하기로 합의했다고 아프리카단결기구(OAU)의 살림 아흐메드 살림 사무총장이 발표했다. 휴전은 이날 하오 6시(한국시간 9일 상오 1시)에 발효된다고 아나스타세 가사나 르완다 외무장관이 밝혔다. 휴전안에는 로랑 카빌라 DRC 대통령과 DRC를 지원해온 앙골라,짐바브웨 및 나미비아 정상들과 반군측을 지원해 온 우간다, 르완다 대통령들이 합의했다. 그러나 휴전 발표에 앞서 반군 지도자 비지마 카라하는 휴전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회의장을 떠났다.
  • 野,“우리 대응에 잘못된건 없나”

    ◎의총서 자기반성과 내부 추스르기 나서/“뭉치는 길밖에…” 李 총재 “십자가 질터” 사정(司正)한파 속에 한나라당에서 자성론이 일고 있다. 내부 분열과 전략 부재,지도력 미흡 등으로 여권의 ‘야당파괴공작’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왔다는 것이다. 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였다. 자기 비판과 내부 추스르기를 통해 대여(對與)투쟁 의지를 강화하려는 속내다. 權五乙 의원은 “과거 집권경험 운운하며 야당으로서 운신의 폭을 스스로 제한했다”고 전제,“국회 농성이나 규탄대회는 물론 거리 시위와 지도부 단식 농성도 감행해야 한다”며 과감한 체질개선을 요구했다. 그는 특히 “당중진들이 적극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申榮國 의원은 “이를 악물고 싸움에 임해야 할 때”라고 전열 재정비를 촉구했다. 孟亨奎 의원도 “주인이 식욕에 따라 하나씩 잡아 먹는 닭장 속의 닭신세”라며 “총재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길 밖에 없다”고 가세했다. 朴寬用 의원은 “우리 당이 제대로 전쟁을 치를 단결된 모습을 갖추고 있느냐”라고 반문하며 “인선에 관한 잡음이나 사사로운 불만을 누르고 한나라당의 깃발아래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내부 결속을 다그쳤다. 李在昌 의원은 지도부를 겨냥,“여권이 왜 우리를 우습게 보는지를 냉철히 반성해야 한다”며 “제 팔을 자르는 희생적인 지도력을 발휘해 달라”고 지적했다. 동아건설 수뢰 혐의를 받고 있는 白南治 의원은 신상발언을 통해 “대가성 없는 순수한 자금”이라고 해명한 뒤 “당에서 대선자금과 개인 비리 사안을 분리 대응하려는 것은 잘못”이라며 서운함을 표시했다. 앞서 李會昌 총재는 일부 비판적 분위기를 감안,인사말을 통해 “당을 지키기 위해 앞장 서서 십자가를 지겠다”며 유난히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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