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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共통치일지’로 본 60년대](2)6·3사태 전말

    ‘20시 서울 일원에 비상계엄선포…방종 난동 참을대로 참다 사회질서 회복위해 단안’‘비상계엄 오기까지 학생 극한 데모…중앙청에 불덩이(화염병)던짐’ 박정희(朴正熙)정부의 통치일지는 64년 6·3사태를 파괴와 혼란의 위기 상황으로 기록했다.60년대 최대의 학생시위로 꼽히는 한일회담 반대 투쟁의 배경이나 원인을 유추할 수 있는 구절은 통치일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63년 12월 박 대통령 취임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실’에서 ‘대통령 비서실’로 작성기관이 바뀐 일지는 시위대의 일부 움직임을 간헐적으로 적고 있을 뿐이다.그것도 시위대의 과격성을 부각시키려는 듯 ‘탈취’‘점령’‘불덩이’ 등 극한 용어를 주로 사용했다. 일지에 드러난 6·3사태의 전조는 5월19일치 ‘서울대학에서 한일굴욕외교반대 성토대회’라는 기록에서 비롯된다. 20일 ‘서울대에서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성토대회’,‘데모학생 107명에 영장신청’에 이어 6월3일치 일지에는 ‘학생데모대 국회의사당 앞서 연좌’,‘학생데모대 파출소 세곳 파손…안암동 로타리에서 운반중인 가스탄 탈취’라고 적혀 있다.4일 ‘상황보고’란에는 ‘경관 848명 부상,학생 시민부상수는 미상.파출소 점거.시경 무기고 점령.군관용차 탈취’라고 당시 상황을 요약했다. 반면 정부의 지시사항이나 수습 대책,계엄령 선포 상황 등은 ‘설득’,‘단안’,‘불가피’ 등 여과된 표현을 써가며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했다.‘청와대서 단식데모하려던 학생대표 32명’을 ‘문교부장관이 중앙청에서 설득’(6월1일)했고,당시 정일권(丁一權) 총리는 ‘국회에서 비상계엄이 불가피하다고 보고’(11일)했다.학생시위에 체제전복 등 모종의 음모가 개입된 것 처럼 직·간접으로 언급한 점도 눈에 띈다. 5월26일치 ‘참고사항’에 ‘양 내무(楊燦宇),학생데모 배후에 정치인 간여있다고 언명’,6월3일 ‘기타’란에 ‘정부전복 등 선동하던 간첩 2명 체포’라고 적었다.3일 ‘주요업무’ 항목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가 ‘학생동태를 분석’한 사실을 적시했다. 5일 ‘주요정무’로 기록된 ‘양 내무,파괴로 쏠리는 군상을 막고 무기고지켜준 학생 28명,민간인 1명에게 감사장 수여’라는 대목에서는 당시 6·3사태를 둘러싼 정권 수뇌부의 시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앞서 63년 3월16일 당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군정연장 성명 직후 재야지도자의 시위 상황을 기록한 방식도 비슷하다.다만 시위 인사의 움직임을 주로 ‘국내외뉴스’란을 통해 ‘담담하게’ 실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재야정객 군정연장 반대 관철키로 진로를 결정’(3월19일),‘윤보선,허정 양씨 산책이라는 구실로 시청앞에 나타나 단독시위’(20일),‘재야인사들민주구국전선 결성선언대회 뒤이어 데모’(22일)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22일치 ‘국내외뉴스’란에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 한국사태에 언급,정정(政情)안정의 갈망과 민주정치 부활에 지대한 관심표명’,‘3군 지휘관회의 소집,3·16성명 절대지지와 군단결 해치는 언동 불용을 결의’ 등 친(親)정부 성향의 내·외신을 집중 부각시켰다.61년 쿠데타 직후처럼 일지 작성의 주요 기준은 여전히 ‘정권 안보’였다. 기동취재 소팀 박찬구기자 ckpark@
  • 공직비리 근절 당근·채찍 병행

    총리실이 공직기강을 다잡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15일 국무조정실 주재로전체 중앙행정기관,시·도 및 정부투자기관 감사관 회의를 개최했다.이 자리를 빌려 박태준(朴泰俊)총리는 공직기강 확립을 위한 특별지침을 내렸다.즉“국정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선 먼저 부패와 비능률이 제거되어야 한다”며 ‘공무원행동강령’ 마련을 지시한 것이다. 이는 그동안의 지속적 개혁 노력에도 불구,공직 비리가 뿌리뽑히지 않았다는 판단과 무관치 않다.국무조정실 등 관련 부처에서는 이와 관련,올해 3월말부터 4월초까지 부패방지추진대책 추진실태를 점검해다는 후문이다.그 결과 아직 잔존 부조리가 많이 남았다는 여론을 파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총리실은 공직기강 확립을 위해 ‘채찍’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보는 것같다.이날 갖가지 공무원 처우개선 방안 등 ‘당근’도 함께 제시된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박 총리는 공직자 사기진작책도 6월말까지 마련하라고 지시했다.다음은 공직기강 확립 단기 및 중장기 대책 요지. ■공직 사기진작 대책. ▲현재외청에서만 시행하고 있는 확대 시행 ▲공로휴가시 교육·훈련에 준하는 실비 지급 공무원 보수를 민간 중견기업과 대등한 수준으로 현실화 ▲시간외 근무수당 지급대상 및 적용시간 확대(복수직 서기관 포함,현행 최대75시간에서 85시간으로 확대 검토) ▲우수공무원에 대한 승진·승급 확대(각 기관별로 일정비율의 특별승진·승급 의무화 검토) ▲중·하위직 공무원의해외유학 지속확대 ▲민간기업체와의 인사교류 실시 ▲연공서열 위주의 목표관리제 운영개선■기강 확립 및 비리 근절대책. ▲반부패기본법 조속 입법 ▲공무원 행동강령 제정 ▲준비소홀로 시책추진이 지연되거나 대(對)국민 불신을 초래하는 행위에 대해 책임 규명,엄중 처벌▲민생관련 정책에 대해서는 현장확인 및 평가 후 신상필벌 강화 ▲무단결근 및 안전·보안시설 경비소홀 등 기초근무자세 해이에 대한 적발 및 처벌 강화 ▲근무시간중 주식거래 및 골프장 출입 엄금 ▲각종 공사에 대한 이권개입 등 구조적 지역토착적 비리에 대한 집중 감찰 및 처벌강화(5∼6월중 총리실 주관으로 공직기강 특별점검반 가동)구본영기자 kby7@
  • 정부,공무원 자녀의 대학등록금 전액지급 추진

    정부는 앞으로 공무원 처우개선을 위해 자녀의 대학 등록금을 가족 수당형태로 전액 지급하고 보수도 100인 이상 민간 중견기업과 대등한 수준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정부는 또 반부패기본법의 입법을 서두르는 한편 그 이전에 공정한 직무수행을 위한 ‘공무원 행동강령’을 제정하는 등 공직기강 확립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15일 최재욱(崔在旭)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중앙부처 및 시·도,정부투자기관 감사관회의를 열어 이같은 공무원 사기진작책과 공직자 기강확립대책을 전달했다. 정부는 현재 5급 이하 직급에 한해 지급하는 시간외 근무수당을 복수직 서기관(4급)까지 확대하고 하루 4시간씩 한달 최대 75시간까지 인정하던 시간외 근무를 85시간으로 늘릴 방침이다. 또 토요전일근무제 시행,휴가 확대 등 추가 예산이 필요없는 복지제도의 시행을 우선적으로 검토하는 한편 특별승진 및 승급 확대,중·하위직 공무원의 해외유학 확대 등 우수 공무원에 대한 다각적 사기진작책을 추진하기로 했다.정부는 이와 함께 복무기강점검을 강화,오는 6월까지 총리실 주관으로무단결근,근무시간중 주식거래 및 골프장 출입 등 기강해이는 물론 각종 공사 이권개입 등 지역토착 비리에 대한 특별 감찰을 실시키로 했다. 특히 정부 시책이 담당 공무원의 준비소홀로 지연돼 국민 불신을 초래할 경우 관련자를 엄중 문책하고 조달,교육,예산 등 국민들의 부패체감도가 높은취약분야를 대상으로 오는 10월까지 부패방지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구본영기자 kby7@
  • 정상회담 앞둔 北 표정

    북한은 6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민족대단결 원칙을 강조하면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업적’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는 12일 북측이 이번 정상회담을 김일성(金日成)통일유훈을 실현하려는 김 국방위원장의 결단으로 이뤄진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분석했다.남북한 및 해외에서도 김국방위원장을 ‘통일조국의 지도자’로 부각시키려는 시도라는 분석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같은 선전강화의 목적은 북한주민에 대한 통일기대감을 불어넣고 내부결속을 도모하는 한편 김정일의 이미지 제고 및 위상강화를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함께 대내외에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의 주도권과 북측 통일노선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도 덧붙였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4월 한달동안 ‘조국통일 3대헌장’등 북한의 통일노선에 대해 선전하는 등 지난달 10일 남북정상회담 개최발표 이후 홍보를대폭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언론매체들은 ‘남조선 노동운동가’ 등이 김국방위원장에 대해 ‘통일의태양’등의 표현을 쓰고 있다고 보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는 앞으로도 북측이 통일 3원칙,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 등에 대해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지지를 강조하면서, 친북해외단체를 중심으로한 지지운동을 벌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석우기자
  • 올시즌 LPGA 예상밖 슬럼프

    지난해 미 여자프로골프(LPGA) 6승을 합작하며 여자골프의 중흥기를 열었던한국여자선수들이 올시즌 하나같이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골프여왕’으로 칭송되는 박세리(23).98년 LPGA 메이저대회 2승을 포함 4승을 올렸고 지난해에도 4승을 거둬 세계 정상권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올시즌은 7차례 출전해 두차례만 톱10에 진입했고 나머지 경기는 모두 오버파로 부진,20∼50위권을 맴돌았다. 반면 박세리,애니카 소렌스탐과 3강체제를 구축하던 캐리 웹은 벌써 시즌 4승을 거뒀다. 박세리는 그러나 7일 귀국 인터뷰에서 초반부진에 대해 담담한 태도를 보였고 12일 용인 레이크사이드CC에서 열릴 아스트라컵 한국여자오픈에서 잊었던우승맛을 되찾겠다고 공언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단신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기량을 보여준 ‘땅콩’ 김미현(23)은9차례 출전에 두번의 톱10(6위,7위) 진입이라는 무난한 성적을 거뒀다.그러나 김미현은 무리한 스윙과 휴식없는 강행군으로 지난달 말 어깨부상을 당해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비록 전문의 진단결과 완치판정을 받고 20일 본격적인 투어에 나설 예정이지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전미 아마추어 랭킹1위,미국 아마추어 4대 메이저대회 석권에 빛나는 박지은(21)은 올시즌 9차례 출전해 다케후지클래식에서 7위에 오르긴 했지만 두번씩이나 컷오프에서 탈락하는 등 저조한 기록을 내고있다. 박지은은 “5월말에 시작되는 아마추어 시즌에 익숙해져 있어 아직 제 스윙감을 찾지 못했다”며 부진이유를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그녀가 박세리,김미현이 98,99시즌 연속 신인왕에 오른것을 의식해 조급증을 내고있다고 분석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해야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미현은 20일 미 오하이오주 비버크리크의 노스CC에서 열리는 퍼스타LPGA클래식에 출전하고 박지은은 12일 테네시주 프랭클린의 레전드클럽에서 열릴일렉트로룩스USA챔피언십에서 명예회복을 노린다. 류길상기자 ukelvin@
  • [대한시론] 집단무의식과 망국병

    일본은 고대 이래 정복과 개척의 역사를 이어왔으며,천황이 모두를 지배한다는 이른바 팔굉일우(八紘一宇)의 정신으로 새롭게 정복한 무리들을 노예화했었다.일본인의 무의식에는 정복당하는 자는 악이며 그들을 억압하는 것을정의로 여기는 가치관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이따금씩 터지는 일본고관들의 망언은 선거구민의 집단무의식을 자극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그것이폭발한 것이 1923년 관동대지진이었고 오직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7,000명 정도가 삽과 몽둥이로 무참히 학살당했다. 지난달 도쿄시장 이시하라는 일본 자위대 제1사단 창설 기념식의 축사에서그때의 만행을 미화하며 앞으로 그런 상황이 되면 다시 그럴 것이라는 발언으로 우리를 격분시켰다. 조직화된 대중의 집단무의식은 때로는 악에 의해 조작되기도 하며 매우 부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수년전 히틀러가 아리안 민족우수론으로 독일인의 집단무의식을 자극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C.융은 ‘오딘(Odin)’에서 타민족에 대한 차별이 결국 유럽 전역에 피의 강풍으로 인류적 대재난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언했었다.독일인의 집단무의식에는조상 대대로 이어온 피에 물든 ‘오딘’의 신화가 상징하는 대학살의 충동이잠재하고 있었으며 역사는 유태인 600만명 학살 등으로 그의 예언이 사실이었음을 입증했다. 차별과 오만은 악의 씨앗이며 역사 이래 타부족,타민족을 차별하면서 만행의 정당화 구실이 돼왔다.최근 한미간에 물의를 빚어낸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도 미국인의 한국인에 대한 멸시,차별이 근본원인이었을 것이다.역사적 만행에 대한 비판과 반성의 정도에서 그 나라 문명의 발달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자기나라 군대가 저지른 만행을 전세계에 고발한 미국 언론인이 표창받았음은 미국인의 역사의식이 그만큼 성숙함을 보여준다. 한편 우리는 많은 비극적 사건을 겪으면서도 스스로에게 잠재하는 왜곡된집단무의식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한번도 없었다.제주 4·3사건의 근본원인은 섬 주민을 멸시하는 의식이었고 거창사건의 비극은 산간벽지의 사람에 대한 군경의 오만 때문이었을 것이다.국군창설 초기 군대에서 일제 군대가 하던 것과 같이 민간인을 지방인으로 호칭하고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72년 대선 당시 공화당의 중진 이효상은 ‘신라 천년의 영광을 위해 경상도사람은 경상도 사람에게 투표합시다’라며 지역차별의 불씨를 지폈다.이 발언은 ‘조조’로 불리던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선거전략상 지방간 감정대립공작을 실시하는 시기와 일치하며,계산된 정치공작이었음을 능히 짐작케 한다(청와대비서실,중앙일보 출판부). 하지만 그들은 엄청난 결과가 올 것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융의 예지를 지닌 사람이었다면 그 후에 일어난 5·18 광주학살은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집단무의식에 몸을 맡길 때는 도취감을 수반하여 양심을 마비시키고,“자기가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성경,누가복음)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일본 극우파는 계속 망언을 되풀이하여 일본인의 단결을 호소하는 가운데한국 내에서의 차별발언을 비웃고 있다.그런데 우리의 경우,일부 정치인은기회가 있을 때마다 특정지역에 내려가 고의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겨 국민간에 적대심을 계속 확대 재생산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다.종교,교육,법과 언론 등은 추상적인 애국론 보다는 지역차별의 요인을 하나씩 청산하는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특히 현 한국 호적법의 기본틀은 근대화 이후 일본이 제정한 호적법을 기초로 하고 있다.그것은 일종의 노예문서로서 식민지화된 한국인을 차별하기 위한 것이었다.전 세계에서 호적제도가 남아있는 곳은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과 대만 뿐이다(호적이 만드는 차별,佐藤文明 저,일본 현대서관 발행).초등학교에서부터 반(反)차별 교육을 실시하여 차별식 발언이나 행동을 규제하는법제도도 마련되어야 한다.한국인의 집단무의식에 내재하는 왜곡된 의식의퇴치가 통일을 위한 첫걸음인 것이다. 金 容 雲 한양대 명예교수·수학
  • [격동의 남북관계 반세기](2)7·4 남북공동성명

    지난 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남과 북 당국이 분단 이후 만들어낸 첫 공식 합의문서였다.공동성명을 통해 천명된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이라는 3개항은 이후 전개된 남북 대화와 합의의 기본원칙으로 자리잡았다. ◆시대적 배경/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계속된 동서진영의 냉전은 1970년대에접어들며 변화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해빙 분위기는 한반도에도 전해져남·북 당국은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당시 남한의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3선에 성공한 뒤였다.또북한의 김일성(金日成·당시 수상)주석은 김정일(金正日)로의 후계 구도를모색하고 있었다.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뒤 남북은 다시 대화를 중단하고 대결의 상태로돌아갔으며, 남북 양측 지도자의 내부 독재가 공고화되었다.의도적이든 아니든,7·4남북공동성명이 결과적으로는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집권과 김일성의김정일 후계 구도 확립에 이용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추진 과정/ 1971년 11월20일 판문점에서 대한적십자사와 북한적십자사의 실무대표가 11차례에 걸쳐 비밀접촉을 했다.그 결과 이후락(李厚洛)중앙정보부장과 김영주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간 회담이 합의됐다.이어 72년 5월2일부터 3박4일간 이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주석,김영주 조직지도부장과 각각 두차례 회담했다. 김영주를 대신한 박성철 제2부수상이 5월29일부터 서울을 방문,박정희 대통령과 한 차례,이후락 부장과 두차례의 회담을 가졌다.그 결과 7월4일 ‘7·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고,남북조절위원회가 발족됐다. ◆내용/ 7·4남북공동성명은 모두 7개항으로 구성돼 있다.제1항에서는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원칙을,제2항에서는 긴장상태 완화와 신뢰 분위기 조성을,제3항에서는 제반교류 실시를 천명하고 있다.제4장에서는남북적십자회담 성사를 위한 협조,제5장에서는 상설직통전화 설치,제6장은남북조절위원회 구성,운영의 합의를 명시했고,제7장에서는 합의사항의 성실한 이행을 다짐했다. ◆이행/ 7·4남북공동성명은 남북한의 분단사를 통일사로 바꾸는 전환의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됐으나,발표되는 순간부터 성명문안에 대한 해석상의 의견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양측은 통일 3원칙에 관한 해석상의 이견에도 불구하고 11월30일 각 5인의 대표로 구성되는 남북조절위원회 본회의를 정식으로 발족시켰다. 이에 따라 세차례에 걸쳐 남북조절위 본회의가 개최됐으나 73년 8월28일 북한이 중단을 일방 선언함으로써 아무런 성과없이 끝나고 말았다. 이도운기자 dawn@. *7·4 남북 공동성명 발표 당시 주역들 뭘하나. 7·4 남북 공동성명 발표 당시 남북의 주역들은 저마다 굴곡많은 삶의 궤적을 그려가고 있다. 공동성명의 막후 연출자였던 당시 남북의 정상들은 모두 유명을 달리했다. 박정희(朴正熙) 전대통령은 지난 79년 김재규 전중정부장의 총탄세례로 서거했다.북한의 김일성(金日成) 주석(합의 당시는 수상)도 지난 94년 심장마비로 근 반세기에 걸친 장기집권에 마침표를 찍었다. 남측 조절위원장으로 스포라이트를 받았던 이후락(李厚洛) 당시 중정부장은일체의 언론접촉도 피한 채 경기 광주에서 도자기를 구우며 은둔생활중이다.73년 ‘DJ(현 김대중대통령) 도쿄 납치극’ 배후조종 혐의로 해임당한 뒤한때 재기하기도 했으나 80년 ‘서울의 봄’ 이후 다시 추락했다. 조절위 북측 공동위원장이었던 김영주(金英柱)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은 한때후계 반열에도 올랐으나, 끝내 친조카인 현 김정일국방위원장에게 밀렸다.98년 김정일국방위원장이 공식 1인자에 등극하면서 2선으로 후퇴했다.최고인민회의 10기 제1차회의에서 신설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명예부위원장이라는명목상의 감투만 쓰고 있다.김영주를 대리해 서울에 왔던 박성철 제2부수상도 명예부위원장이다. 지지부진한 남북적십자회담의 와중에 북한 차석대표 김덕현의 소맷자락을끌어 “따로 조용히 얘기하자”며 당국간 비밀회담을 이끌어냈던 정홍진씨도일선에서 물러났다.현재 송원장학재단이사장으로 육영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또 다른 조절위 남측 대표의 일원이었던 강인덕(康仁德) 당시 중정9국장은현재 일본에 체류중이다.‘국민의 정부’ 초대 통일부장관으로 대북 포용정책의 안정화에 기여했으나,부인이 옷로비사건에 휘말리면서 물러나 일본세이가쿠인(聖學院)대학에서 조용히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다. 공동성명 합의과정에 참여했던 북측의 대화 1세대들도 대부분 일선에서 퇴역한 상태다.이 중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으로 대표단의 일원이었던 류장식은 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된 이후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조절위 북측대변인이었던 전금철(全今哲)만이 지난 98년 베이징 남북차관급 비료회담의북측 대표로 건재를 과시했었다. 구본영기자 kby7@. *재조명 받는 '통일 3대원칙'.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앞두고 7·4공동성명에 발표된 ‘자주,평화,민족적 대단결’ 등 남북통일 3대원칙이 재조명받고 있다. 베이징 비공개 접촉에서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면서 꼬리표를 달았기 때문이다.즉 남과 북이 ‘역사적인 7·4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재확인한다’고 합의한 것이다. 이에 앞서 91년 합의된 남북기본합의서 전문에도 3대 원칙이 언급됐다.그러나 남북이 항상 그 정신에 따라 관계개선에탄력을 붙여온 것은 아니다.3원칙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면서 사사건건 대립한적이 더 많았다. 이는 3원칙 자체가 대단히 포괄적 개념이라는 점에 기인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평화통일을 위한 파트너이면서 동시에 체제경쟁의 대상이라는 남북관계의 이중성 때문이었다. 이를 테면 3원칙 중 ‘자주’에 대해서는 북측은 외세배격 논리로 연결시켜왔다. 즉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말은 북측은 이미 자주를 이뤘으니,이제 남한에서 미군을 철수해야 하다는 식으로 논리를 비약시켜 왔다. 북측이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3대 원칙을 달리 해석,회담을 유리하게 이끄는 지렛대로 삼을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그러나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의 그러한 의도조차 타고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본영기자
  • 에이즈 전세계 확산 비상/ 감염자 급증…지구촌 위협

    *감염실태와 대처현황. 아프리카단결기구(OAU) 50개 회원국 보건장관들은 오는 7∼9일 부르키나파소 수도 와가두구에서 에이즈 대책회의를 열어 이 문제에 대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공동대처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총 3,340만명으로 추산되는 전세계 에이즈바이러스(HIV) 감염자중 70% 가량이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국제기구들은추정하고 있다. 1983년 미국에서 첫 보고된 뒤 20여년 만에 에이즈는 아프리카,남아시아 등곳곳에서 지구촌 주민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최악의 질병으로 창궐하고있다. 에이즈의 위험이 임계치에 이르자 국제사회도 여기저기서 유례없는 경고 사이렌을 울려대고 있다. 1월의 유엔 안보리회의에서 앨 고어 미국부통령의 발의에 따라 에이즈는 유엔 창설 이래 보건문제로는 최초로 안보리 안건으로 상정됐다.고어 부통령은 이 자리에서 에이즈 확산방지를 위해 예정액의 두배가 넘는 2억 5,000여만달러 예산을 책정하겠다고 공언했다.4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례총회는 에이즈를 세계경제성장의 장애물로 꼽고 확산방지를 위한 무제한의 자금지원 원칙을 확인했다. 미행정부는 에이즈가 특히 저개발지역에서 국가 전복,민족전쟁 촉발,자유시장경제 마비를 가져와 국가안보를 위협할수 있다고 규정,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동원한 대책마련에 나섰다. 1996년 세계은행-세계보건기구(WHO)는 에이즈 사망자가 2006년 170만명으로최고치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으나 지난해 이미 26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90년 1,000만명이던 보균자 역시 98년 3,340만명으로 기하급수적 증가추세다. 특히 위생시설이 형편없고 보건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이 속수무책 강타당하고 있다.최악의 천형지대인 아프리카 동남부는 성인의 10∼26%가보균자로 추산되고 있다.이에 따라 고아가 급증하고 GDP가 10∼20% 감소하는등 극도의 사회불안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아·태지역은 에이즈가 뒤늦게 출현했으나 어느 지역보다 가파른 확산속도로 위협중이다.최근 1∼2년새 인도,중국 등에서만 500만명 이상의 에이즈 감염자가 보고된 가운데 2010년 무렵이면 보균자 누계가 아프리카를 능가하리라는 전망이다. 러시아에서는 에이즈 양성반응자가 2000년말 100만명,2년만에 두배가 될것으로 예측돼 보건관계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에이즈가 지구촌 개발시계를 10년이상 거꾸로 돌리고 있음에도 국제사회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가장 심각한 것이 예산문제. 에이즈 퇴치를 위해 매년 10∼30억달러씩 필요하지만 실제 투입비용은 1∼2억 달러 안팎에 그치고 있다.교육을 통한 성생활 개선과 AZT 등 복합치료약보급으로 90년대 중반 이래 주춤하는 듯했던 미주,서유럽 등의 에이즈 증가율도 내성을 갖춘 HIV 등 변종의 등장으로 도전에 직면했다. 올초 미 중앙정보국은 낙관적으로 봐도 향후 10년간 에이즈 확산세를 막을수 없으며 향후에도 국제사회가 힘겨운 사투를 벌여야 하리라는 우울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손정숙기자 jssohn@. *아프리카 실태. 아프리카에서 에이즈(AIDS)는 이제 질병이 아니라 비상사태를 선포할 만큼국가의 존폐를 위협하는 존재로 떠올랐다. 유엔 안보리가 올초 에이즈 문제를 의제로채택한 것도 아프리카 에이즈는지구촌 안보를 위협하는 공적(公敵)이라는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세계에서 에이즈로 사망한 260여만명 가운데 85% 가량인 220여만명이 아프리카에서 사망했다.지난해 새롭게 에이즈에 감염된 560여만명중 67%인 380만명도 아프리카 지역 국민들이다. 전문가들은 사하라 사막 이남 국가들의 평균 수명이 5∼10년쯤 뒤에는 59세에서 45세로 단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특히 짐바브웨·보츠와나·나미비아·잠비아·케냐·탄자니아의 사정은 더욱 심각해 평균수명이 절반으로 떨어질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 통계청도 10년 뒤에는 사하라 사막 이남의 국가에서 7,100만명이 에이즈로 사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중세시대 전유럽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페스트 사망자의 3배에 이르는 수치다. 이같은 사정에도 아프리카 국가들의 에이즈 대처능력은 제로에 가깝다.에이즈 책임자를 비전문가로 채용하는가 하면 에이즈의 효과적인 억제제인 ‘AZT’의 사용을 금지하는 나라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에이즈가 확산되는 이유를 행정력 부재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근본적인 이유는 빈곤과 무지에 있다.또 아프리카 국가의 매춘부중 90%가 에이즈 감염자임에도 성(性)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을 꺼리는 것도 에이즈 확산의 또다른 요인이다. 아프리카가 에이즈를 퇴치하는 데 들이는 비용은 1억6,500만달러에 불과하다.물론 이 비용은 서방선진국에서 전액 기부된다.하지만 아프리카 에이즈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올초 제임스 울펜손 세계은행 총재가지적했듯 매년 23억달러 이상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결국 전세계가 아프리카 에이즈 문제에 관심을 갖고 전폭적인 지원을 하지않는다면 앞으로 새천년에 거는 부푼 희망은 공염불이 될 수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 [격동의 남북관계 반세기](1)남북기본합의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간의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대한매일은 1945년 분단 이후 현재까지 중요한 남북관계 일화와 사건들을 특별기획으로 연재한다.이번 특집은 남과 북의양측 당국이 대화와 협력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고,또 어떤 이유로 그같은 노력이 좌절됐는가를 반추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1992년 2월 19일 오전 10시 평양의 인민문화궁전. 남북한의 TV와 라디오가 생방송하는 가운데 정원식(鄭元植)국무총리를 비롯한 남측대표와 연형묵(延亨默) 정무원 총리를 비롯한 북측대표가 남북기본합의서 발효행사를 시작했다. [민족사적 의미] 수행원들의 기립박수 속에 발효절차를 마친 정 총리는 흥분된 목소리로 “오늘은 우리 민족사에서 참으로 뜻깊은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감격을 표시했다.연 총리도 “최근 시베리아 고기압은 낮아지고 우리민족의 통일열기는 높아진다”고 시대의 변화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이날로 남과 북은 분단 반세기만에 평화공존의 틀을 마련한 것이다. 다음 날남측 언론은 기본합의서 발효사실을 대서특필했다.그러나 어찌된일인지 북측은 남북의 공동발표문과 대변인의 기자회견 내용만 간략히 보도했다.그리고 기본합의서 발효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남측에서도 북한의핵 개발의혹이 점차 실체적인 위협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역사적 배경] 1990년을 전후해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했다.동·서독의 통일,소비에트연방의 해체 등 국제정세에 엄청난 변화가 이어졌다.세계적인 대변혁의 물결은 지구촌의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도 밀려왔다. 북한은 국제환경의 급변속에서 외교적 고립을 탈피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이와함께 심각한 경제난에 따른 체제붕괴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이념적·폐쇄적 노선을 포기하고 개방·개혁의 실용주의노선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남측도 시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했다.88년2월 취임한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은 4월21일 열린 첫 기자회견에서 “임기중에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을이룩할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천명한 뒤 ‘북방정책’을 추진했다.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와 수교가 잇따랐고,91년에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가입했으며 한-러,한-중 수교도 이뤄졌다.그 시점에 남은 것은 남과 북 두 당사자간의 관계개선 뿐이었다. [추진 과정] 1988년 12월28일 강영훈(姜英勳)국무총리가 북한의 연형묵(延亨默)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총리회담을 제의했다.이에 대해 연 총리는 다음해1월16 남북 고위급 정치·군사회담을 갖자고 제의했다.남북은 90년 9월부터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7차례의 고위급 회담을 이어갔다.91년 12월10일부터 14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제5차 고위급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합의돼 양측총리가 서명했다. 92년 2월18일부터 21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6차 고위급회담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됐다. [내용상 함축] 남북기본합의서는 서문과 4장 25조의 본문으로 구성돼 있다. 서문에서는 남북한이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본문에는 남북화해를 위한 실천과제와 불가침 약속,군축문제가 담겨있다.군축대상인 대량살상무기에는 화학·생물학무기와 핵무기도 포함하는 것으로남북간에 합의됐다. 또 경제교류와 협력,인적 왕래,교통로와 우편·통신의 재연결,통신교류의비밀보장과 관련한 규정도 담겨있다.남과 북 사이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교류 방안이 다 들어있는 셈이다. [북측의 불이행] 북한은 1992년 11월 5일부터 개최키로 합의한 분야별 공동위원회 제1차 회의에 참석을 거부한 이래 기본합의서 이행과 당국간 대화를기피했다.93년 1월 북한 핵 문제가 터지면서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은 물론 남북관계 전체가 사실상 중단됐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까지 남북기본합의서를 부정하는 입장은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측 이행노력] 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실천을 임기중 시행할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하고 있다.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와 8·15 경축사 등여러 계기를 통해 북한측에 남북기본합의서 이행을 촉구하고 이를 위해 분야별 공동위원회 가동과 특사교환을 제의한 바 있다. 이도운기자 dawn@. * 기본합의서 법적 성격…민족 특수관계 규율 문서. 남북기본합의서는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를 규율하는 문서이다. 기본합의서는 서문에서 남북관계를 국가간 관계가 아닌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했다.따라서 국가간의 조약이라고 할 수는 없다.다만 서문과 조문의 배열,발효의 절차,권리와 의무에 관한 규정,정부대표가 서명한 점 등은국가간 조약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같은 기본합의서의 이중적 성격 때문에 합의서의 국회동의 필요 여부,국내법과의 저촉 등과 관련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92년 당시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이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한 뒤 국회에 인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은 정부가 국가간 문서가 아니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 서명후 최고인민회의 동의를 거쳤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98년 7월26일 서울고법 특별7부(재판장 李根雄 부장판사)는 “남북기본합의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남북기본합의서는 합의사항에 대한 체결 주체의 준수·이행을 명백히 요구하고 있다.단순한 정치선언이나 강령과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기본합의서는 남북한 당국이 의지를갖고 실천하면 ‘민족의 장전(章典)’이 될 수 있다. 이도운기자. [기고] 남북정상회담과 '기본합의서' 남북기본합의서가 발효(1992.2.19)된지 8년 4개월만에 그 정치적 실천을 담보하는 정상회의가 6월 12∼14일 평양에서 열린다. 남북기본합의서가 화해,교류·협력,불가침 이행을 약속한 현상확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면,남북정상회담은 현상확인적 요소와 함께 현상변경적 요소도 담아야 한다. 남한의 역대정부(노태우,김영삼,최근 김대중)들이 내놓은 통일방안의 공통점은 통일을 과정으로 보고 국가연합적 성격을 가진 ‘남북연합’이라는 중간단계를 둔 점이다.그 이유는 동서독과 달리 상호 무력충돌을 가졌고,50년이상 장기간의 분단으로 인한 이질화와 깊은 상호 불신 때문이다. 북한측도 1960년초 부터 고려연방제를 내놓았지만 1988년 이래 점차적으로통일의 점차적인 완성을 강조하면서 내용적으로는 남한의 남북연합에 매우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특히 1991년 김일성 신년사는 제도적 국가적 통일을 후 세대에 미룬다고 함으로써 국가연합적 성격의 통일방안을 명백히 하고 있다.이것은 남북한 양통일방안이 상호 수렴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이러한 점에서,정상회담이 이루어진다면 양 정상들은 남북연합이라는 가시적인 통일 청사진을 합의하여 발표해야 할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남북연합의 헌장-통일헌법과의 관계는 3단계 통일방안으로설명이 가능하다.남북기본합의서가 화해협력단계의 법적 기초(1단계)라면,남북연합 헌장은 남북연합의 법적 기초(2단계)이고,통일헌법은 1민족 1국가 통일국가의 법적기초(3단계)라고 할수 있다. 따라서 남북기본합의서는 평화를 강조한다면,남북정상회의는 기본합의서의실천과 동시에 통일에 대한 큰 그림도 합의하는 현상변경적 결단을 내려야할 것이다.남북기본합의서가 평화에 대한 총론을 규정했다면 남북 정상회의는 평화를 실천하는 보다 구체적인 각론적 내용을 합의해야 한다.1992년 남북기본합의서가 탄생한 것은 남북한의 정치적 동기가 공통적으로 강했다.남한은 북방정책의 한건 주의의 일환으로,북한은 동구권 붕괴이후 정치·외교적 체제위기의극복을 위한 국면전환용으로 남북기본합의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남북한의 동기야 어떻든 남북기본합의서의 합의 내용은 최초로 공식적인 민족의 화해,협력과 평화 장전의 문서이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7·4 공동성명의 3대 원칙을 천명한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해 그 법적 성격과 실천을 둘러싸고 쌍방간에 많은 공방이 있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쌍방 모두 그 동안 그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정치적실천의지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쌍방 당국은 이제 지난 과오를 겸허하게 민족과 양쪽 국민 앞에 인정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남북정상은 향후 모든 민족문제는 남북기본합의서를 기초로 풀어가겠다는정치적 결단과 그에 따른 구체적 실천조치를 재다짐해야 한다. 한 예로 쌍방은 기본합의서 제15조의 민족내부거래를 세계무역기구(WTO)를포함한 국제기구에서 공인받기 위해 유엔헌장 102조에 따라 유엔 사무처에등록함은 물론,4개 분과위원회와 5개 공동위원회의 조속한 가동에 합의하기를 바란다.이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계기로 쌍방은 사문화된 기본합의서의정신 복원과 그 실천성을 살려서 한반도에 평화의 불씨를 다시 지펴야 할 것이다.그래서 한국전쟁 50년이 되는 2000년 그리고 6·25라는 동족 상쟁의 이미지를 가진 6월이 이제 평화와 희망를 잉태하는 해와 달로 바꿔지기를 바란다. 이장희 한국외대교수·국제법
  • [기고] 과거 아픔 딛고 미래향한 협력을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 TV연속극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학생들은 한국 탤런트의 사진을 들고 다니면서 한국 젊은이들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을 흉내내고,대학 한국학과는 지원자가 급증하고 있다.젊은 여성들은 한국 화장품을제일 좋아하고 한국남자와 결혼하고 싶어 한다.사회지도층은 한국제 TV로 우리 연속극을 보면서 농업사회가 어떻게 첨단공업사회로 변모해 가는지,시장경제를 발전시키면서 전통문화는 어떻게 보존하는지를 배운다. 한국 기업들은 30억달러 거액을 투자해 베트남의 공업화를 앞장서 지원하고있는데 모두가 베트남 근로자들의 우수성에 탄복한다. 여행용 가방 제조업체는 근로자들이 워낙 우수하고 성실해 불량품 발생률이 0.01% 이하(세계기록)다.베트남은 조선강국으로 성장할 잠재력도 매우 커 우리 업체가 지원하고있다. 우리는 수교이후 매년 12억달러 정도의 무역흑자를 내 개인소득이 350달러수준인 국가에서 기대이상으로 큰 경제적 이득을 보고 있다. 베트남 지도자들은 전쟁으로 통일을 이루면서 감당할 수 없는 피해와 엄청난 대가를 치뤘다고 고백하며,한반도에서는 절대로 전쟁을 피해 평화적으로통일해야 한다고 우정어린 조언을 해주고 있다. 베트남인과 한국인은 강대국에 시달리면서 험난한 길을 걸어온 역사적 공통점에 서로 친근감을 느낀다.그들은 이념대립이 첨예했던 때 남부월남을 지원했던 우리와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서로에게 이롭지 못하므로,아픔은모두 덮고 미래를 바라보며 우의와 협력을 다져나가자고 제의하고 있다. 우리뿐 아니라 과거 전쟁 상대국인 미국,프랑스,일본,중국,캄보디아에 대해서도 똑같은 입장이다.베트남인들의 전향적인 생각과 ‘도이머이(개혁)정책’덕분에 10년만에 국민 절반이 굶주리던 상황에서 베트남은 세계 제2의 쌀 수출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우리는 베트남이 피폐해진 경제를 되살리고 굶주림과 빈곤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도록 성심껏 돕고 있다.많은 우리 기업들이 베트남에 투자하고 10만명근로자들을 국제수준으로 훈련시켜 베트남 수출산업을 일으켰다.한국 정부도EDCF(대외경제협력기금)자금 1억2,000만달러를 투입해 발전소,상수도,도로,백신공장 건설을 지원했다. 베트남 국민 80%는 농촌에 살고있고,그중 15%는 극빈층이다.그래서 베트남정부는 빈곤타파와 도시와 농촌간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작년에 농촌개발모델 중 가장 성공적인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도입했다.우리 정부는 베트남의낙후된 공업고등학교 세곳에 1,000만달러어치의 첨단학습 기자재를 지원해컴퓨터,자동차,전기,에어컨 기술자를 양성하도록 도왔다.의료기기 제공,무의촌지역 병원건설같은 인도적 지원사업을 벌이면서,첨단과학기술 분야도 지원하고 있다. 한국군이 주둔했던 베트남 중부의 퀴년,냐짱(나트랑)지역에서는 전문학교지원(250만달러),중학교 건립,소규모 병원건설,태권도 체육관 건립을 지원했다.현대가 조선소를 건립한 냐쨩지역은 중공업 중심지로 부상해 경제 붐을일으키고 있다.중부지역은 전쟁의 피해가 제일 컸고,가장 빈곤한 지역인데다홍수피해마저 잦은 지역이므로 교육,직업훈련,의료분야 지원을 계속한다는것이 정부의 기본 방침이다.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다.징기스칸 시절 막강 몽골대군을 물리친유일한 민족인 베트남인들은 오늘도 놀라운 단결력을 과시하고 있으며, 유달리 자존심과 긍지가 강하다.그들은 최근 우리 지도자와 정부,기업들이 베트남에 대해 진실한 마음으로 지원해주는데 대해 감명을 받는다.우리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도 꾸준히 경제협력을 계속하고 기업도 투자활동을 하는데 대해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우리 기업에서 베트남 근로자들이 중·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도록 도와주고 직장에서는 한국인이나 베트남인 가리지 않고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경조사 때는 모두가 기쁨과 슬픔을 나눠주는데 대해 고마워한다.공장 인근지역의불우이웃에게 온정의 손길을 뻗쳐주는 것을 보고나서 과거의 의심을 모두떨쳐버리고 한국인을 진정한 친구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베트남인들은 진정 한국과 베트남이 제일 가까운 친구가 되길 소망하고 있다.그들은 소득이 낮다고 자기들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제발 보이지 말아달라고 청한다.요즘 서울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는 ‘외국근로자돕기운동’은우리가 앞으로 국내외에서 계속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조원일 외교안보硏 연구위원 前베트남대사.
  • 전북대 강준만교수 계간 ‘인물과 사상’서 심층 분석

    최근 김성재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이 모 주간지와 인터뷰한 내용을 두고 말들이 많다.김 수석은 지난 4·13총선과 관련,“영남과 호남의 단결을 같은맥락에서 보고,양쪽에서 싹쓸이를 한다고 양비론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면서 “소수의 단결은 정의지만,다수의 단결은 불의”라고 했다.곧이어 여당 대변인은 비난성명과 함께 김 수석의 교체를 촉구했다.각 신문들도 일제히포문을 열었다.지역감정의 망령이 다시 도질 우려마저 낳고 있다. 거침없는 글쓰기와 실명비판으로 ‘성역과 금기에 도전’해온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최근 계간지 ‘인물과 사상’ 14호에서 지역감정 문제를 정면으로다뤘다. 우선 이번 호를 아우르는 머리말의 제목 ‘지역감정 예찬론’이 인상적이다.한마디로 패러디다.그는 “이번 총선결과를 두고 ‘국민의 절묘한선택’이라며 언론과 지식인은 민의를 잘 헤아리라고 정치권,특히 김대중정권에 호통을 쳐대기 시작했다”며 “그렇다면 ‘지역감정 망국론’이 아니라‘지역감정 예찬론’이 아닌가”라고 묻고 있다.나아가 그는 이제 ‘지역감정 망국론’을 과감히 쓰레기통에 내던질 때가 됐다고 단언한다.그간의 ‘지역감정 망국론’은 존재하지도 않는 허깨비와의 싸움,즉 허공에 대고 주먹을휘두른 격이라는 것이다. 물론 강 교수의 ‘지역감정 예찬론’이 지역감정을 예찬하자는 건 아니다. 그나름대로는 타파책이다.지역감정을 생산해내는 적(敵)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야만 헛발질을 멈추고 급소를 가격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그는 지역감정을 생산·조장하는 5적으로 ▲국민의 일상적 정실주의 ▲수구기득권 세력의 분할지배주의 ▲언론의 상업주의 ▲개혁세력의 보신주의 ▲호남차별을 외면하는 근본주의를 들고 있다.학술적 접근보다는 현상적 접근방식인 셈이다. 5적의 첫번째가 ‘정실주의’, 즉 연고주의라는 지적은 낯선 게 아니다.애향심과 지역감정을 구분하는 잣대는 바로 ‘정실주의’의 유무라는 것.한국인의 일상적 삶은 모든 것이 ‘줄’에 의해 돌아가고 이를 따라가는데 정권교체 이후 영남인들이 분노한 가장 큰 이유는 권력의 ‘줄’의 단절,파괴 때문이라고 한다.강교수는 “한국의 정실주의 문화에서 지역감정은 ‘감정’의문제인 동시에 경제적 이해득실과 연결돼 있다”고 지적한다. ‘수구기득권 세력의 분할지배’는 기존 지역감정의 지속,내지 강화를 도모하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5적에 올랐다.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한 후 일부 신문들은 이구동성으로 ‘지역감정 해결’을 주문했는데 이는 역대정권들이 저질러온 기존 ‘호남차별’정책의 고수를 요구한 것이라고 강 교수는 해석한다. 한나라당과 일부 신문이 현정권의 인사정책을 두고 ‘호남 독식론’을 주장하다가 반론에 부딪히면 슬그머니 ‘알맹이 독식론’,‘껍데기 안배론’을내놓은 것이 그 예라고 말한다.특히 언론은 한쪽에선 ‘지역감정은 망국병’이라고 외치면서 다른 한쪽에선 ‘지역감정은 현실’이라며 지역감정을 부추겨 왔다고 지적한다.한마디로 언론은 영남 대 호남의 비율이 65대 29인 현실에서 65에 영합하는 ‘시장논리’를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의 ‘호남차별을 외면하는 근본주의’도 5적 반열에올랐다.‘호남은 변혁의 기수로서의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지역주의 투표를먼저 그만둬야 한다’는 식의 ‘호남차별’심리에 있어서는 진보·보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강 교수는 분석했다. 강 교수는 이같이 장황한 설명끝에 의외의 간결한 결론을 맺는다.그는 “순진하다 못해 어리석은 냄새가 풀풀나는 제안”이라고 전제한 뒤 “‘반DJ정서’를 극복하고 영남인들에게도 설득력을 가지려면 김 대통령이 스스로 ‘김대중 죽이기’를 해야한다”고 고언했다.이제 ‘희망’의 공은 김 대통령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다. 정운현기자 jwh59@
  • [취재수첩] 정책수석 질책한 金대통령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에게 신중한 언행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지난 27일 한광옥(韓光玉)비서실장으로부터 최근 모 주간지와의 인터뷰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김성재(金聖在)정책기획수석에 관한 보고를 받고 난 뒤다. 김 수석은 16대 총선결과를 ‘소수(호남)의 단결은 정의지만,다수(영남)의단결은 불의’라는 뉘앙스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김 수석은 ‘남성에 대해 여성이 단결하고,사측에 대해 노동자가 뭉치고,백인에 대해 흑인들이평등을 주장하는 차원’이라는 전제를 거두절미(去頭截尾)했다고 항변했지만,파문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형세다.김 수석이 미묘한 때 오해를 살 만한얘기를 하기도 했으나 지역정서는 이 시대에 그만큼 민감한 문제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포항 출신인 김 수석은 ‘영남 65석 가운데 64석 한나라당 후보 당선’이몹시 야속했을지도 모른다.취임 후 영남지역에 쏟은 김 대통령의 열정을 누구보다 지근에서 지켜본,그리고 각종 정책적 지원을 기획한 그로서는 ‘총선 후 입술이 부르튼’ 대통령을뵙기가 민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개인적인 차원이다.신발 끈을 동여매고 다시 추스리는 게 그의 몫이지 공개적 비판은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의 영역이 아니다. 김 대통령이 한 실장에게 “지역감정은 국가적으로 대단히 불행한 현상으로 국민 모두가 되돌아보고 고민하며 해결할 사안”이라고 조심스레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김 대통령은 총선이 끝난 뒤 “영남에서 최소한 1∼2석은 얻을 줄 알았다”고 소회(所懷)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그의 심중이 어떠한 가를 헤아릴 수 있는 언급이다. 김 대통령은 김 수석의 인터뷰 파문을 보고서 언젠가 얘기한 ‘나는 고생할 팔자’를 다시금 곱씹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양승현 정치팀 차장 yangbak@
  • 남북 정상회담 2차 준비접촉/ 논의내용과 전망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간의 남북 정상회담의 ‘모양’이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남북 양측은 27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2차 준비접촉에서 정상회담 의제와 절차 등에 대부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정상회담 예비접촉이큰 이견없이 굴러가는 것 자체가 남북관계의 진전일 수도 있다. 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과 우리측 수석대표인 양영식(梁榮植)통일부차관은 이날 준비접촉이 끝난 뒤 “다음달 3일 열리는 3차 접촉을 관심있게 지켜봐 달라”고 거듭 강조해 실무협상이 사실상 타결됐음을 시사했다.3차 접촉에서는 양측이 의제및 절차와 관련한 합의문을 작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남북은 일단 의전과 경호,통신,보도,대표단 규모 등 절차와 관련해서는 지난 94년 당시 김영삼(金泳三)대통령과 김일성(金日成)주석간의 정상회담을준비하는 과정에서 합의된 내용을 대체로 준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양영식 차관이 밝힌 것처럼 ‘사이버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상황에 따른 절차문제’가 추가됐다. 고위 당국자는 이에 대해 “대통령이 움직이기 때문에 청와대와의 직통 교신 문제 등이 검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방송 관계자들은 정상회담의위성 생중계나 컴퓨터 통신시스템 사용 등과 관련한 문제일 것으로 예측한다. 의제와 관련해서는 크고 작은 이견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다.우리측은 이산가족 상봉,경협 등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선언을 통해 밝힌 4개항을 그대로북측에 제시했다. 북한측도 7·4남북공동성명의 원칙인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을 주요 의제로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측은 이와 함께 주한미군 철수,국가보안법 철폐 등 우리측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문제를 계속 의제에 포함시켜야 한다는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규 장관은 “3차 접촉에서 의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4차 접촉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그러나 시간관계상 실무접촉이 그이상 연장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남북은 실무선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전에 의제를 정하지 않고 정상회담에 일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것으로 알려졌다. 3차 접촉에서 의제와 절차가 합의되면 남북은 의전·경호·통신·보도 등분야별 실무 준비에 들어간다.다음달 안에 우리측 의전 및 경호팀 선발대가평양에 파견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도운기자 dawn@
  • 金聖在수석 인터뷰 싸고 설전

    26일 청와대 김성재(金聖在)정책기획수석의 주간조선 인터뷰 내용을 놓고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대변인과 김수석 사이에 설전(舌戰)이 오갔다. 김수석이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마이노리티(소수)의 단결은 정의적이고,머조리티(다수)의 단결은 불의적이라고 말한 대목이 발단이 됐다.이와 관련,한나라당 권대변인은 “소수(호남)의 단결은 정의지만 다수(영남)의 단결은불의”라고 해석하고 “지역감정을 치유하려는 국민 모두의 노력을 청와대핵심참모가 앞장서 짓밟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이어 “궤변을 통한 교묘한 지역감정 조장 발언으로 마치 과거 독일 나치시대 히틀러의 선전상이었던 괴벨스를 보는 듯 하다”고 꼬집었다.이에 대해 김수석은 “내가 여러가지 관점에서 얘기했는데 주간조선측이 거두절미 한 채 제목을 뽑고,기사도한 가지 사례만 소개해 오해를 불러 일으킨 것 같다”고 해명했다.그는 “역사의식으로 봐야 지역문제도 보인다”면서 “호남이 40년동안 차별받아온 것을 지키기 위해 뭉쳤던 것이며 호남 싹쓸이와 영남 싹쓸이를 동일선상에서보면 안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수석이 전한 인터뷰 내용. “나는 우리 사회에서 지역주의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호남의 단결과 영남의 단결을 같은 맥락에서 보고 양쪽에서 싹쓸이를 한다고 양비론으로 보고 있는 것은 문제다.예를 들어 흑인의단결과 백인의 단결은 다른 것이고,노동자와 기업주의 단결도 다른 것이다. 또한 여성의 단결과 남성의 단결도 다르다.그렇기 때문에 노동자의 단결은법으로 보호하고,기업주의 단결은 법으로 제한한다.이런 역사적인 측면에서볼 때 마이노리티의 단결은 정의적이고,머조리티의 단결은 불의적인 것이라말할 수 있다”오풍연기자 poongynn@
  • 軍장성 정기인사 안팎

    24일 단행된 군 장성 22명에 대한 정기 인사의 핵심은 철저한 지역안배다. 상대적으로 호남출신이 ‘역차별’당한 흔적이 눈에 띈다. 육군 군단장급 승진자 4명은 출신지가 모두 다르다.충북(조영호),경남(양우천),경북(김창호),전북(류해근) 1명씩 안배됐다.군단장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김봉철(金奉哲·육사26기) 국방부 동원국장은 지역(전남 완도)때문에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단장 9명과 임기제 진급자 1명 등 소장 진급자 10명도 경북 3명,서울 2명,전북 2명,경남·충남·충북이 1명씩 포함됐다.전남출신은 없다. 국방부도 “학연,지연,혈연은 물론 일체의 청탁을 배제하고 화합과 단결을위해 균형있게 선발했다”며 지역과 출신군이 주요 변수였음을 확인했다. 이번 인사로 육군은 지난해 10월 1차 진급한 육사 26기 3명이 군단장급 대열에 합류,전력의 주류를 형성했다.이와 함께 학군 7기(조영호)를 중장으로진급시켜 군단장으로 보임해 학군을 배려했다.학군은 군단장 1명,사단장 1명을 배출하고,3사 2기 출신 1명이 소장으로 진급했다. 해군의중장급 이상 4명에 대한 ‘보직 맞바꾸기’ 인사에서도 지역 균형의흔적이 역력하다. 장정길 참모차장과 송근호 작전사령관이 서울,김무웅 합참인사군수본부장이 경남,서영길 해사교장이 경북 출신이다. 소장 3명이 중장으로 승진한 공군도 박성국 합참차장(서울),이한호 참모차장(부산),주창성 공사교장(대전)으로 균형을 잡았다. 육군이 합참의 핵심 요직 중 하나인 전략기획본부장직을 차지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한직으로 여겨지는 합참차장을 공군에,인사군수본부장을 해군에 떠넘긴 것은 3군 균형 인사란 측면에서 ‘옥에 티’로 지적된다.이 때문에 인사 후유증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노주석기자 joo@
  • 부실 지방공기업 첫 제재

    부실 지방공기업에 대한 첫 문책성 제재조치가 내려졌다. 행정자치부는 24일 서울 강북구도시관리공단 등 4개 부실 지방공기업에 대한 경영진단결과를 발표하고 이사장 해임과 민간위탁,인력 감축 등 경영개선명령을 내렸다. 행자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이같은 조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해당 자치단체장이나 임직원에 대해 형사고발하거나 징계조치를 명하는 등 강력한 추가 제재조치를 내릴 방침이다. 이번에 제재조치를 받은 서울 강북구도시관리공단은 사업의 정체성이 없는등 공단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것으로 경영진단 결과 나타났다.행자부는 이 책임을 물어 서울 강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을 해임하고파견 공무원을 모두 복귀시킨 뒤 공단직원 전원을 공개경쟁을 통해 채용토록 했으며 주민생활서비스업으로 하고 있는 ‘먹깨비 보급사업’은 민간에 이관토록 했다. 또 수원의료원은 경영정상화를 위해 오는 9월까지 인건비 비율을 전국 의료원 평균수준으로 하향조정하고 간호사 단일호봉제를 직급별 호봉제로 전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경영을 민간에 위탁하도록 지시했다. 행자부는 이밖에 강원도개발공사에 대해 성과급 중지와 사업범위 축소 명령을 내렸으며 안동시상수도사업에 대해서는 99명 인원 가운데 30명의 인력을감축하도록 하고 원가절감을 위한 종합대책과 조직개편안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지방공기업 경영진단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재영(金在榮)행자부 차관은 이와 관련,“지난해 1월 지방공기업법이 개정된 이후 처음으로 경영을진단했다”면서 “앞으로도 정부는 경영성과가 높고 공공성을 제고시킨 공기업에 대해서는 인세티브를 부여하되 경영이 부실한 공기업에 대해서는 과감한 경영혁신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편 행자부는 지난해 총 109개 지방공기업을 대상으로 경영진단을 실시한결과 경영성과가 가장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은 4개 공기업에 대한 정밀조사를 벌여 제재조치를 발표했다. 홍성추기자 sch8@
  • ‘비공개’ 뭘 논의 했을까

    22일 비공개로 진행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첫 준비접촉에서 무슨 이야기들이 오고 갔을까.남북간 ‘비공개 약속’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되진않았지만 남북정상회담의 정신을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양측 대표들이 많은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측 대표단은 기조발언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의 의제를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의 실현 등의 3개항의 포괄적 원칙을 제시한것으로 알려졌다.‘3·9 베를린 선언’을 바탕으로 남북 경협을 통한 북한경제회복 지원과 한반도 냉전종식,이산가족 문제를 포함한 인도적 사안 등을중심으로 정상회담을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했다는 후문이다. 구체적으로 북한 농업구조 개선과 사회간접자본(SOC) 지원 등의 남북경협과이산가족의 생사확인·서신교환·상봉 등 이산가족 문제 해결이 남북정상회담의 주요의제가 돼야 한다는 우리측 설명이 있었다는 관측이다.특히 의전,경호,통신 분야의 남북실무접촉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대해 북측은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한 구체적사항은 내놓지 않은 채 남북정상회담이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문제 해결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강조하는‘원칙론’에 충실했다는 후문이다. 북측 기조발언도 한반도 문제를 남북한이 해결해야 한다는 자주적 입장과 7·4 공동성명서의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정신을 바탕으로 정상회담이 진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반면 주한미군 철수 등의민감한 사안은 가급적 피하면서 회담에 임했다는 전언이다. 이와함께 양측 대표들은 91년에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존중하고이를 성실히 이행하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도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알려졌다. 오일만기자 oilman@
  • 판문점 남북접촉 이모저모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첫 준비접촉은 22일 오전 10시 판문점 남측지역‘평화의 집’에서 1시간20여분 동안 열렸다.판문점은 이따금 보슬비가내리는 흐린 날씨였으나 남측지역인 자유의 집과 통일각 사이에 위치한 언덕에는 진달래,산수유 등이 만개해 분위기를 돋웠다.회담장 테이블에는 남북교류·협력을 상징하는 남북공동 제작의‘한마음’담배가 놓여 눈길을 끌었다. ◆남북 대표단 도착=우리측 양영식(梁榮植)통일부차관 등 남측대표단은 22일 오전 9시15분 회담장인 판문점 평화의 집에 도착.양 수석대표는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역사적인 회담의 길을 평탄하게 닦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짤막하게 언급.양 수석대표 등 대표단은 평화의 집 도착 직후 회담장옆에 있는 남측대표단 대기실로 직행.양 수석대표는 이어“북측 김령성 단장 등 북측대표단은 남북 기본합의서를 산출하는 데 관여하는 등 회담 성사에역할을 했던 인물”이라며“남북이 순차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회담을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이어 9시48분쯤 북측 대표단장인 김령성 수석대표와 최성익 대표,권민 대표 등 일행이 중립국감시위원회(중감위)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냈다.김 수석대표는 하얀 줄무늬가 위아래로 있는 검정색 더블버튼의 양복을 입고 있었고 흰색 와이셔츠에 노란 바탕에 검은 6각 무늬가 있는넥타이를 매 의상에 신경을 쓴 듯한 모습. ◆대표단 상봉=9시53분쯤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만난 양측 대표들은 남북 평화 구축의 첫 발을 내딛는 굳은 악수를 교환.김 수석대표가 “반갑습니다”라고 간단한 인사를 건네자 양 수석대표는“10개월 만에 대표들을 다시 만나 반갑다”면서 지난해 6월 베이징에서 만났던 기억을 되새기며 환영의 뜻을표명. 양 수석대표는 인사말을 통해“날씨가 덥지도,쌀쌀하지도 않아 하늘도 이번 준비접촉을 축복하는 것 같다”고 말하자 김 수석대표는“어제 온 비는 곡우비로 농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새 천년 첫 봄은 북남관계의 양천가절”이라고 화답. 한편 회담에 앞선 신임장 교환에서 남측대표단은 박재규 통일부장관 명의의,북측대표단은 김용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위원장 명의의 신임장을교환. 김 수석대표는 자유의 집을 통해 평화의 집으로 이동하며“쌀쌀한 날씨가곧 풀어질 겁니다”라며 밝은 미소.그는 준비접촉이 몇차례 진행될 것으로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쌍방의 뜻이 모이면 인차(곧) 타결되겠죠”라고 간단하게 언급. 김 수석대표는 평화의 집으로 이동하는 내내 말을 아끼며 다소 상기된 표정.그는“북남 최고위급회담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면 자연스럽게 모든 게 풀릴것”이라며 6월에 열릴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 ◆회담장 표정=회담장에 마주 앉은 양측 수석대표는 ‘상부의 뜻’을 은근히 강조하며 약간의 신경전을 벌여 눈길.김 수석대표는“4월은 위대한 수령이전민족 대단결 10대 강령,김정일 위원장도 민족 대단결 5대 방침을 발표한달”이라고 주장.양 수석대표도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선언을 언급하며 결실을 볼 수 있는 회담을 강조. 1차 준비접촉이 끝난 후 남측의 양 수석대표와 북측의 김 단장은 웃음 띤얼굴로 악수를 하며 헤어졌다.양측 대표는 악수를 할 때도 웃는 얼굴로“2차회담때 봅시다”라고 말했다.북측대표단은 회담 중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에 우리 측이 마련한 우산을 쓰고 자유의 집을 통해 북측으로 돌아갔다. ◆회담장 주변=판문점은 남북 당국자들로 완연히 활기를 띠는 분위기.내외신 기자 등 100여명이 열띤 취재 경쟁을 벌여 남북 정상회담이 국내외적으로뜨거운 관심을 끌고 있음을 반영.통일각과 판문점 중감위 군사정전위 회의실 사이 통로 등엔 북측 경비병들이 양쪽으로 3명씩 배치된 것을 제외하곤 대체로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 한편 북측대표단 일행은 수행원과 취재기자단을 포함해 모두 29명.한 기자는“북측 주민의 기대가 크다”며“남측이 잘하면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말했다.한 관리는 정상회담 개최 합의문에서 ‘정상회담’ 대신 ‘북남 최고급회담’이라고 표현한 것과 관련,“북조선 국가수반은 여전히 김일성 주석”이라며 “김정일 동지는 국가수반이 아니기 때문에 합의서에 겸허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 金대통령 남북정상회담 적극성원 당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22일 오전 서울 88체육관에서 열린 새마을운동 30주년 기념식에 참석,새마을운동중앙회가 북한농촌 재건에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김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은 그동안의 경험과 열정으로 미뤄볼 때 북한의 농촌을 살리는 데도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반목하고 적대해온 분단 55년을 생각할 때 참으로민족사의 대경사가 아닐 수 없다”면서 “온 국민이 화합하고 대동단결해아낌없이 성원할 수 있도록 새마을지도자들도 적극 협력해 달라”고 강조했다.남북간 교류협력의 하나로 새마을운동의 ‘대북(對北)수출’을 구상하고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이는 또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이후 교류협력에 대한 김대통령의 생각이다각적이고 광범위하게 걸쳐져 있음을 의미한다. 박준영(朴晙瑩)대변인은 “정상회담에서 남북 교류·협력을 위한 큰 틀이규정되면 협력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교류·협력이 활발하게 추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새마을운동을 포함한 광범위한 대북 특수(特需)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다. 김대통령의 구상에 새마을운동중앙회측도 ‘새천년 새마을운동선언’을 채택,북한농촌 재건 지원운동을 전개할 것임을 다짐했다.특히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본부’가 추진중인 총 600만평 규모의 영농협력에 새마을도 황해 사리원과 평양에 60만평을 맡을 예정이어서 조만간 가시권에 진입할 가능성이높다. 기념식에는 강문규(姜汶奎)새마을운동중앙회장과 최인기(崔仁基)행정자치부장관을 비롯,새마을운동 관계자 3,400여명이 참석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50-60년대 한국미술의 한단면-한국은행 소장품展

    한국은행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이 기획전을 통해 처음으로 일반에 선보였다.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6월12일)로 창립 50주년을 맞는 한국은행과 공동으로 덕수궁 분관에서 열고 있는 ‘한국근대미술의 한 단면-한국은행 소장품을 중심으로’전이 그 자리다. 6월 20일까지. 이 전시에는 김인승의 ‘봄의 가락’을 비롯해 박상옥의 ‘한국은행’,김은호의 ‘풍악추명’,박항섭의 ‘포도원의 하루’,심형구의 ‘수변’,,변관식의 ‘비폭 앞의 암자’,이상범의 ‘야산귀로’,허백련의 ‘어형초제’,박승무의 ‘청강어락’,장우성의 ‘신황’등 모두 72점이 나와 있다. 한국은행 본점과 16개 지점이 갖고 있는 1,800여점 가운데 작품성이 뛰어난것들만을 골라 뽑아 공개한 것이다.이와 관련,전시를 주관한 최은주 덕수궁분관장은 “미술품 수집가가 적었던 1950∼60년대에는 은행이 미술품 수집에 나섰다”며 “당시에는 국전을 치르고 나면 정부에서 주요 미술품의 매입을권유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시작중 백미는 봄을 기다리는 설렘과 희망을 첼로 연주가와 감상자인 청년군상의 초상에 빗대어 형상화한 김인승의 ‘봄의 가락’(1942).구도의 치밀함과 인체의 해부학적 묘사,세심한 채색 등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또 박상옥의 ‘한국은행’(1959)은 한국은행 주변풍경은 물론 삼각산과 인왕산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해 당시의 정황을 보여주며,김은호의 ‘풍악추명’(1958)은 비단결처럼 흘러내리는 금강산의 폭포와 화려한 단풍이 인상적인 채색 산수화다. 이번 한국은행 소장품전은 공공기관 미술품 콜렉션의 첫 대중적 외화(外化)작업이란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나아가 미술품을 소장한 다른 공공기관에게도 그동안의 미술품 소장정책을 되돌아보고 체계적인 보존·관리정책을 펴게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김종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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