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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택연금의 한’ 詩에 담은 류샤

    “당신은 한 그루의 나무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뭇잎은요?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요. 계속 서 있으려면 힘들지 않나요? 그래도 서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늙고 멍청한 나무입니다. 그렇습니다.” 201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중국 인권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의 아내 류샤(劉霞)가 쓴 시 ‘무제’(無題)의 한 구절이다. 3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택연금 상태의 고통을 표현한 내용이다. 류샤의 가택연금 중단을 촉구해 온 인권단체인 독립중문필회가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류샤의 석방을 요구하며 방영한 5분 짜리 다큐멘터리 영상물 ‘창살밖의 아내’에서 그가 최근에 쓴 시 두 편과 그의 근황 등이 소개됐다고 홍콩 명보가 16일 보도했다. 독립중문필회 관계자는 류샤가 시를 쓰게 된 이유와 관련,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가 공안의 손을 거치며 당국에 대한 정례 보고 성격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류샤는 류샤오보 수감 직후인 2010년부터 자택인 베이징시 하이뎬(海淀)구 위위안탄(玉淵潭) 공원 부근 아파트에서 가택연금돼 있다. 복역 중인 남편을 한 달에 한 번 유리벽 너머로 15분가량 면회할 수 있으며, 가족 외의 외부인과는 접촉이 금지된 상태다. 외출은 물론 산보도 허락되지 않아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아파트 외곽에는 공안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다. 류샤오보는 2008년 중국의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08헌장’을 주도해 국가전복 선동죄 혐의로 2009년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8월에는 남동생 류후이(劉暉)까지 사기죄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아 정치적 보복을 당하고 있다는 평이 나왔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1960년대 뮤직비디오 발굴

    1960년대 뮤직비디오 발굴

    1960년대 버전의 ‘뮤직 비디오’가 발굴돼 화제다. 한국영상자료원은 한국 대중가요사를 다룬 김광수 감독의 1968년 기록영화 ‘가요 반세기’를 발굴해 15일 공개했다. ‘가요 반세기’는 1920년대부터 60년대 후반까지 한국대중음악의 이면사를 히트곡 중심으로 집약한 다큐멘터리로 신영문화영화사가 제작, 당시 국도극장에서 상영됐던 것이다. 이 영화는 그동안 필름이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고 신문 기사 등 일부 기록에서만 확인돼 왔다. 이번에 발굴된 영화는 배우 김진규의 진행으로 한국 가요사의 흐름을 정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황성 옛터’(남일해, 최영희), ‘타향살이’(고복수), ‘나그네 설움’(백년설), ‘신라의 달밤’(현인) 등 시대를 풍미한 한국 가요 25곡이 라이브 공연이나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삽입돼 있다. 특히 영화 제작 당시 이미 고인이었던 남인수와 이난영의 생전 영상이 눈길을 끈다. 영상자료원은 “2012년 8월 해당 영화 제작부장을 맡았던 박웅일씨가 필름을 갖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그를 설득해 영화를 수집했다. 이 영화는 60년대 최고의 가수들이 대거 출연할 뿐 아니라 이들을 깨끗한 컬러 화질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발굴된 영화는 복사본이 아닌 원본 필름으로 화질과 사운드가 모두 양호하다. 따라서 디지털화 작업을 거쳐 오는 5월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 KOFA에서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한편 영화 전문가들이 선정한 한국영화 최고의 작품 1위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와 유현목 감독의 ‘오발탄’(1961),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인 것으로 나타났다. 영상자료원은 이날 영화 학자와 영화계 종사자 등 전문가 62명이 선정한 한국영화 100선을 발표했다. 선정 범위는 현존 최고(最古)인 한국영화 ‘청춘의 십자로’(1934) 이후 2012년 연말 개봉한 장편영화까지다. 세 작품에 이어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1956)과 강대진 감독의 ‘마부’(1961)가 각각 4, 5위를 차지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청춘들의 배움·관계·시험·연애·돈·취업… 대학생 눈으로 본 ‘대학생 24시’

    청춘들의 배움·관계·시험·연애·돈·취업… 대학생 눈으로 본 ‘대학생 24시’

    초·중·고등학교 12년 과정의 입시 준비 전쟁을 겪고 대학생이 됐지만 학점과 취업이라는 장애물 앞에서 또다시 맹목적인 경쟁을 하는 대한민국 청춘들. 오는 20~29일 오후 9시 50분 총 6회에 걸쳐 방송되는 EBS ‘교육 대기획 6부작-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과 대학교육의 진짜 모습을 담는다. 20일과 27일 방송되는 ‘어메이징 데이’(1·4부) 편에서는 방송 최초로 전국 10개 대학교, 44명의 대학생 다큐멘터리스트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촬영해 대학생의 눈으로 대학생의 모습을 재조명한다. 대학생 다큐멘터리스트들은 배움, 관계, 시험, 연애, 돈, 취업 등 대학 생활의 6가지 이야기를 6개월간 기록했다. 고등학교의 연장이 된 질문 없는 강의실, 취업을 위해 관계를 단절하는 자발적 아웃사이더, 88만원 세대의 슬픈 자화상, 지방대생의 취업고민까지 대한민국 청춘들의 진솔한 자기 고백과 그 청춘들이 우리사회에 던지는 목소리를 담는다. 말 그대로 인재 전쟁, 취업 전쟁이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인재상은 없는 것일까. 21·22일 ‘인재의 탄생’(2·3부) 편에서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의 모호한 조건 때문에 절망에 빠진 취업준비생 5명이 6개월의 멘토링을 통해 진정한 인재상에 대해 깨닫고 변화하는 과정을 조명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인 서울대 법대 졸업생 김성령, 세계 유수의 젊은이가 모인 베이징대 재학생 김관우, 지방대의 한계에 스스로 갇혀버린 취업준비생 엄지아 등 5명의 청춘들이 주인공. 이들이 진정한 인재가 되어가는 6개월간의 여정은 치열하다. 조벽 교수를 필두로 여성 1호 헤드헌터 유순신, 인사 전문가 조미진 등 인사, 인재 분야 전문가들의 멘토링을 받으며 점점 달라지는 청춘들의 자화상을 돌아본다. 이들이 겪는 6개월간의 여정을 통해 이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인재의 기준도 제시된다. 28·29일 방송되는 ‘말문을 터라!’(5·6부) 편에서는 질문과 생각이 사라진 오늘날의 대학 강의실을 탐구하고, 말문을 트는 것을 시작으로 진정한 배움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작진은 ‘침묵의 강의실’을 ‘학문의 전당’으로 바꾸기 위해 말문을 여는 교수법을 적용하는 교수 3인의 독특한 수업현장을 들여다본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유라시아 루트를 가다] 백두산 육로관광의 꿈… 한반도 종단철도 연결된다면

    [유라시아 루트를 가다] 백두산 육로관광의 꿈… 한반도 종단철도 연결된다면

    지난 5일 강원 속초에서 러시아 하산의 자루비노항으로 향하는 ‘뉴블루오션호’의 한편에서는 러시안 가족 6명이 원형 테이블에 앉아 카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옆에서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다큐멘터리 촬영 실습을 떠나는 강원대 학생들이 러시아 관광객들과 한데 어울려 웃음꽃을 피웠다. 방에서 조용히 잠을 청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뉴블루오션호에 탄 승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17시간 항해의 지루함을 견뎌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새해를 맞아 색다른 관광상품 개발을 위해 백두산으로 향하던 김세광 백두여행사 대표는 “현재는 항공편을 제외하면 백두산 관광을 위해 배를 이용해야 하는데 러시아와 중국까지 경유하다 보니 시간이 하루 이상 걸린다”면서 “한반도 종단철도(TKR)가 연결되면 당일에 바로 북한 나진항까지 가서 차로 갈아타 백두산까지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백두산은 한 해 150만명이 찾을 정도로 한국인이라면 한 번 가보고 싶어하는 곳으로 열차가 운행되면 관광이 크게 활발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유라시아 철도 연결은 백두산 육로 관광시대의 개막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재는 ‘속초항~러시아 자루비노항~중국 지린(吉林)성 훈춘~백두산’과 같이 해상과 육로를 오가며 어렵게 다녀왔지만 유라시아 철도가 연결되면 ‘부산~북한 나진(항)~훈춘~백두산’으로 바뀌어 철도와 차량만으로 백두산까지 갈 수 있게 된다. ‘나진항~훈춘’을 연결하는 도로공사가 2012년 8월 완공돼 육로 관광에 기대를 갖게 한다. 도로의 완공으로 나진항에서 훈춘까지의 운행시간은 종전 90분에서 40분으로 절반 이상 단축됐다. 훈춘에서 백두산까지 4시간 정도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남한에서 북한 나진항까지 열차를 타고 도착한 후 5시간가량이면 백두산의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일주일에 3분 운동 효과有”(간헐적 단식 창시자)

    “일주일에 3분 운동 효과有”(간헐적 단식 창시자)

    ‘간헐적 단식’의 유행을 만든 영국 BBC 다큐멘터리 진행자인 마이클 모슬리(Michael Mosley)가 최근 “하루 단 1분 운동만으로도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13일자 보도에 따르면, 의학박사이자 BBC 프로듀서인 모슬리는 각각 60대, 74세에 사망한 조부와 아버지의 예를 들며 “오래 살지 못하는 가족력 때문에 운동과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흡연과 과음을 절대 하지 않으며,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건강을 유지하려 애써왔다. 특히 그는 HIT(High Intensity Training)라 부르는 고강도 운동이 장시간을 투자하는 운동보다 훨씬 효과가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운동은 숙면을 취하게 해주고 암 발병률을 낮춰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운동을 많이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라면서 “특히 바쁜 현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HIT에 매혹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영국 러프버러대학교의 생물학자인 제이미 티몬스 박사의 말을 인용해 일주일에 단 3분 운동만으로도 당의 흡수를 막는 등 신체 활성화에 도움이 되며, 심장이나 폐가 더 많은 산소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슬리 박사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운동 전 혈압 및 혈당검사를 한 뒤 하루에 한번 ‘전속력으로 사이클링’을 1분 간 실시했고, 이를 일주일에 3번, 4주간 지속했다. 한달동안 운동에 총 12분을 투자한 뒤 다시 혈당 및 혈압검사를 한 결과, 체내 인슐린 수치가 이전보다 정상수치에 가깝게 변했으며, 혈당 조절을 돕는 인슐린 감수성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1분 안에 자신의 에너지 90%이상을 사용해 심장박동수를 분당 150까지 올리는 것이 중요하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일주일에 3번 이상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선천성 조로증’ 美 청년 17세를 일기로 끝내 사망

    ‘선천성 조로증’ 美 청년 17세를 일기로 끝내 사망

    실제 나이보다 너무 빨리 늙어 가는 희귀성 질환인 ‘선천성 조로증’과 힘겹게 싸워왔던 미국 청년이 끝내 1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12일(현지시각) 일제히 보도했다. 미국 ‘선천성조로증연구재단’은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폭스보로우 지역에 거주하는 샘 번스(17)가 지난 10일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연구재단은 1999년 번스의 부모가 자식의 희귀 질환의 원인과 치료법을 연구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번스는 더구나 다음날인 11일 열리는 미식프로축구(NFL) 플레이오프 게임에서 자신의 지역을 대표하는 뉴잉글랜드 페트리어트 팀의 명예 주장을 맡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지역 사회에 더욱 크나큰 슬픔을 몰아오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번스는 17년 동안의 힘든 투병 과정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적극적인 삶과 활동을 보여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바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그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실제 당시 고교생이었던 번스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이 내용을 보고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아무리 큰 도전이 몰려와도 우리는 극복할 수 있으며 행복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에 행복한 삶을 위해 모든 것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해 주위를 다시 한 번 감동시킨 바 있다. ‘선천성조로증연구재단’에 따르면 이 희귀한 조로증을 앓고 있는 환자가 지구 상에 100명 정도 있다. 이들 환자의 나이는 8개월에서 20세 정도로 파악되고 있으며 대부분 환자들이 생존하는 평균 수명은 13세에 불과하다고 언론들은 전했다. 사진= 17세를 일기로 끝내 사망한 샘 번스 (유튜브 캡처) 다니엘 김 미국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후지이 미나 수영복 자태, 비키니 보다 섹시해 ‘줄리엔강 반응?’

    후지이 미나 수영복 자태, 비키니 보다 섹시해 ‘줄리엔강 반응?’

    후지이 미나가 수영복 입은 모습을 공개했다. 11일 오전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 일본인 배우 후지이 미나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후지이 미나는 수영복을 입고 등장했다. 자신이 촬영중인 tvN 일일 시트콤 ‘감자별 2014QR3’에서 수영장 신이 등장하기 때문. 특히 후지이 미나는 청초와 섹시를 오가는 수영복 자태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날 후지이 미나는 수영을 못해 걱정이라면서도, 상대배우 줄리엔 강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촬영을 끝마쳤다. 줄리엔 강은 “미나 씨를 보면 내가 한국 활동 처음 시작할 때처럼 힘들 거라는 것을 느끼니까 도와주고 싶다. 우리 둘 다 외국인이니까 한국에서 배우 활동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며 돈독한 동료애를 드러냈다. 후지이 미나 수영복 자태를 접한 네티즌은 “후지이 미나..몸매 예술이다”, “후지이 미나 이렇게 예뻤나?”, “후지이 미나..줄리엔 강 사심이 보이는 데”, “후지이 미나..청순하거나 섹시하거나”등 반응을 보였다. 사진 = MBC (후지이 미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필리핀서 온 ‘기타소년’ 종인이의 한국 적응기

    필리핀서 온 ‘기타소년’ 종인이의 한국 적응기

    서울 중구에 위치한 서울다솜학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다문화 대안고등학교다. 서로 다른 국적, 언어, 문화를 지닌 아이들이 꿈을 키워 간다. 2010년 가족과 함께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종인이는 다솜학교 2학년 1반에 재학 중이다. 수줍음이 많고 말수가 적지만, 알고 보면 학교 최고의 기타리스트다. 음악으로 소통하는 종인이는 다문화 친구들과 함께 공연 ‘차라리 공부가 쉬웠어요’의 막을 올린다. 8일 오후 8시 20분 EBS에서 방영되는 다큐멘터리 ‘다문화 사랑’은 기타 소년 종인이와 삼형제의 한국 적응기를 따라간다. 종인이는 한국어를 잘 모르는 데다 말수도 적어 한국 적응이 쉽지 않았다. 일반 중학교에 다닐 때는 의도치 않은 오해로 인해 상처받는 일도 많았다. 종인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몇 마디 사과가 전부였다. 그러다 다솜학교에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친구들을 만났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소통의 어려움이 있기는 매한가지. 저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기 때문이다. 종인이와 학교 친구들은 ‘음악’으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음악을 통해 서로 이해할 수 있음을 배웠다. 지난달 26일 서울 마포구의 한 공연장은 다솜학교 학생들로 붐볐다. CJ문화재단과 다솜학교가 함께 준비한 ‘차라리 공부가 쉬웠어요’ 공연이 열리는 날이었다. 인디 뮤지션들이 재능 기부로 다솜학교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몇 개월 동안 준비한 공연의 막이 오르기 직전이다. 종인이가 속해 있는 다솜학교 밴드 ‘팝 펑크 트레디션’의 멤버들도 긴장한 모습으로 공연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종인이는 공연 직전 리허설 무대에서 실수를 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막이 오르고 박수와 함성 속에 첫 번째 팀의 공연이 시작됐다. 앞선 몇 팀의 공연이 끝나고 드디어 ‘팝 펑크 트레디션’의 순서가 다가왔다. 종인이와 둘째 종욱이, 막내 종수는 부모님을 따라 낯선 타국의 생활을 시작했을 때 서로에게 가장 큰 의지가 된 형제들이다. 아직 한국말이 익숙지 않은 탓에 삼형제의 대화에는 한국어, 영어, 필리핀어가 뒤섞여 있다. 이런 삼형제가 한자리에 있으면서도 꼼짝없이 한국말만 해야 하는 시간이 있다. 바로 할아버지의 사자성어 교육 시간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것도 벅찬 삼형제에게 한문을 배우기란 고역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할아버지의 불호령이 무서워 또박또박 할아버지의 질문에 곧잘 대답한다. EBS ‘다문화 사랑’은 때로는 친구 같은 종인, 종욱, 종수 삼형제의 한국 생활 적응기를 들여다본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색을 보는 자 욕망을 보리라

    색을 보는 자 욕망을 보리라

    인간은 오감 중에서도 시각을 통해 87%의 정보를 얻는다. 인간이 색을 보고 만들고 사용하는 모든 과정에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이 담겨 있다. 오는 10일 밤 10시부터 4주 연속 동시간대에 방송되는 KBS 4부작 다큐멘터리 ‘색, 네 개의 욕망’은 빛의 3원색인 빨강, 초록, 파랑과 하양이라는 네 가지 색으로 인간의 내밀한 욕망을 들여다본다. 30개국을 돌며 촬영한 이 작품은 제작 기간 2년에 제작비 10억원이 투입됐다. 네 가지 색은 각각 불멸, 소유, 구원, 탐미로 연결된다. 10일 방송되는 제1편 ‘블루-구원의 기도’ 편에서는 파랑이라는 한 가지 색을 바라보는 네 가지 삶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람들은 하늘의 색인 파랑을 신의 영역으로 여겼다. 인간은 그 경계에서 늘 파랑을 탐해 왔다. 파랑을 만드는 남자, 캐는 남자, 쫓는 남자 그리고 파랑을 본 적 없는 시각 장애인까지, 네 사람의 시선과 서로 다른 인생을 통해 인간에게 진정한 구원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17일 방송되는 제2편 ‘레드-불멸의 마법’ 편에서는 무한의 에너지를 뜻하는 빨강을 조명한다. 인류는 노쇠한 육신에 빨강을 바르며 젊음이 돌아오길 기원했고 사람이 죽으면 시체와 무덤을 빨갛게 칠하고 부활의 마법을 걸었다. 빨강은 영원히 살고자 하는 인류가 스스로에게 거는 불멸의 마법이었다. 사냥을 나가기 전 자신들은 물론 사냥개의 온몸에 붉은색을 칠하는 파푸아뉴기니 야파르 부족, 신에게 기도하거나 결혼을 할 때 이마 한가운데에 붉은 점을 찍는 네팔의 결혼식을 살펴본다. 24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제3편 ‘그린-소유의 괴물’ 편에서는 생명과 안식을 상징하는 초록색을 살펴본다. 중세 유럽에서 악마는 초록색이었다. 오늘날의 헐크, 프랑켄슈타인처럼 인간이 만들어 낸 많은 괴물들은 초록빛을 하고 있다. 초록은 자연 상태에서는 흔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들면 인체에 치명적인 색으로 돌변한다. 인류가 발견한 최초의 방사성물질인 라듐은 어둠 속에서 초록으로 빛난다. 초록색 카멜레온이 저주의 상징으로 통하는 마다가스카르, 해마다 5월 초에 초록의 생명력을 만끽하는 축제인 영국의 ‘잭 더 그린’을 찾아가 본다. 31일 밤 방송되는 제4편 ‘화이트-탐미의 가면’에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순결함과 선량함을 상징하는 흰색을 조명한다. 조선의 미인은 눈자위, 치아, 살결이 하얘야 했고 중세 유럽에선 남성들조차 가발을 쓰고 밀가루를 뿌렸다. 하양은 때로 진실을 감추고 왜곡한다.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무명 배냇저고리를 입고 삶을 시작한 인간은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 가면을 벗고 다시 처음의 그 순수했던 하양으로 돌아간다. 하양은 진실이 담겨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처녀성 경매 입찰가 4억 넘어...결혼 제안도 받아

    처녀성 경매 입찰가 4억 넘어...결혼 제안도 받아

    자신의 ‘처녀성’을 온라인 경매에 부쳐 논란을 일으킨 브라질 출신 여대생이 아랍의 한 부호에게 결혼 제안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호주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카타리나 미글리오리니(21)는 최근 미국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처녀성 경매 마감을 내년 2월 12일(현지시간)로 연장했다”고 밝혔다. 숱한 논란을 뿌린 미글리오리니의 처녀성 경매는 지난해 9월 처음 시작됐다. 당시 미글리오리니는 한 온라인 경매사이트에 자신의 ‘처녀성’을 경매에 부쳐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이 과정은 호주의 다큐멘터리 감독인 저스틴 시실리가 생생히 담아 영상으로 판매할 계획이었다. 보도 이후 이 경매에는 실제로 수많은 남성들이 몰려들어 한 일본인이 78만 달러(약 8억원)에 그녀와의 ‘하룻밤’을 낙찰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 들려온 소식들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미글리오리니는 “애초 계약조건은 하룻밤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판매 대금의 20%와 경매비 전액을 받기로 했다” 면서 “감독은 여행 경비는 물론 단 한푼도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 일본인은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인 것 같다” 면서 “난 이 사건의 피해자이며 감독이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이 경매는 한바탕 소동으로 끝났으나 지난달 그녀가 재차 한 웹사이트를 통해 처녀성을 경매하면서 다시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번에 다시 미글리오리니가 뉴스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이 경매에 ‘군침’을 흘리는 전세계 수많은 남성들이 참가했기 때문이다. 미글리오리니는 “경매 마감일을 연장한 것은 참가자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랍의 한 부호가 결혼 제안을 해왔기 때문” 이라면서 “이 제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기 위해 날짜를 더 연장했다”고 말했다. 해당 아랍 부호는 미글리오리니에게 150만달러를 줄테니 경매를 그만두라고까지 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이어 “현재까지 최고 입찰가격은 44만 달러(약 4억 6000만원)”라면서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남자에게 내 처녀성을 팔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사이비’ 2013 올해의 독립영화에

    ‘사이비’ 2013 올해의 독립영화에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사이비’가 ‘2013 올해의 독립영화’에 선정됐다. 한국독립영화협회는 김이창 감독의 ‘수련’, 정윤석 감독의 ‘논픽션 다이어리’ 등 추천작 10편을 심의한 결과, ‘사이비’를 올해의 독립영화로 결정했다고 1일 밝혔다. 협회는 “‘사이비’가 뿌리 깊은 사회문제에서 출발해 나약한 현대인의 본질을 냉혹하리만큼 철저히 파헤쳤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연 감독의 데뷔작 ‘돼지의 왕’도 지난 2011년 ‘올해의 독립영화’에 뽑힌 바 있다. 올해의 독립영화인에는 부산을 중심으로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오지필름과 고(故) 이성규 감독이 공동 선정됐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2014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길을 잃다/이태영

    [2014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길을 잃다/이태영

    소니가 앞뒤로 몸을 흔든다. 몸을 숙일 때마다 등의‘보호외국인’이란 흰 글자가 형광등 불빛에 번쩍거렸다. 흔들림은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나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하필 근무 첫날부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여자 보호실에는 그녀와 나 단 둘뿐이었다. 입술이 바싹 타들어 갔다. 위급한 일이 생기면 당직실로 연락하라고 이 반장은 말했었다. 소니가 요란하게 몸을 떨더니 구역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당직실 내선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은 갔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이 반장은 밤새 직원이 당직실에서 대기하고 있을 거라 했었는데,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망연히 소니만 바라봤다. 소니는 비린내를 맡은 임산부처럼 헛구역질을 해댔다. 붉게 충혈된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소니가 말했다. “언니, 제발, 소니 물 줘.” 소니의 일그러진 입가에서 침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눌한 소니의 말투는 어딘가 모르게 우스꽝스러웠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던 소니도 영문을 모른 채 나를 따라 웃었다. 보호소를 안내해주던 이 반장은 말했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소니한테 물어보라고. 저래 보여도 사무소에서만큼은 나보다 선임이니깐.” 이 반장은 소니를 가리키면서도 내 쪽을 흘끔거렸다. 철장 안의 소니보다 나를 더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살아오며 항상 마주쳐야 했던 눈빛이었기에 새삼스럽진 않았지만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라면 많은 혼혈을 봤을 텐데. 마치 외국인을 처음 본 사람처럼 계속해서 곁눈으로 슬그머니 흘겨봤다. 아마도 같이 일하는 사람 중 혼혈은 처음인 것 같았다. 나는 이 반장이 가리키고 있는 소니를 쳐다봤다. 내 옅은 커피색 피부보다 소니의 피부는 희었다. 소니의 피부는 한국인들이 살색이라 부르는 옅은 귤색에 가까웠다. 나는 종이컵에 물을 따르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소니가 언니, 하며 나를 불렀다. 그녀는 한 아름 크기의 원을 손으로 그렸다. 나는 그녀의 뜻을 이해했지만 왜 그렇게 많은 물이 필요한지 이해되지 않았다. 소니가 다시 헛구역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화장실로 가 빨간 고무 대야에 물을 받아왔다. 대야 한가득 담긴 물을 본 소니는 구역질을 멈췄다. 소니는 대야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수면 위를 내려다봤다.‘후훕 후훕’소니의 날숨과 들숨소리가 보호실에 울려 퍼졌다. 한참을 내려다보던 소니가 천천히 자신의 얼굴을 대야에 담갔다. 넘쳐난 물이 바닥을 적셨다. 정수리까지 잠기자 찰랑대며 흘러넘쳤던 물결이 잠잠해졌다. 소니의 숨소리가 사라지자 보호소는 파도가 멈춘 바닷가처럼 고요해졌다. 오직 들리는 소리라고는 얕은 내 숨소리뿐이었다. 소니의 앞머리가 흘러내렸다. 수면 위로 소금쟁이 발자국 같은 작은 물결이 일렁였다. 얼마나 지난 걸까.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가라앉은 지 오래였고 숨 쉬는 것도 잊은 듯 소니는 미동조차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닐까, 마음이 초조해졌다. 철창을 열려는데 소니가 대야에서 고개를 들었다. 물방울들이 그녀의 얼굴에서 뚝뚝 떨어졌다. 소니가 소매로 얼굴을 훔치며 말했다. “소니 땅 멀미했다. 이젠 괜찮다.” 땅 멀미? 배를 오래 탄 선원들이 뭍에 올라오면 멀미를 한다고 하던데, 그걸 말하는 건가. 소니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같은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끼리도 온전히 자기 뜻을 전달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소니는 지금 외국어를 구사하고 있지 않은가. 쇠창살에 기대앉은 소니가 말했다. “소니는 바다에 살았다. 발, 땅에 안 디뎠다.” 물방울이 소니의 이마에서 볼을 타고 턱까지 흘러내렸다. 채 마르지 않은 물방울의 궤적을 따라 형광등 불빛이 반사됐다. 소니가 손바닥으로 얼굴의 물기를 훔치며 말했다. “소니 여러 여름 전, 바다 떠났다.” 그녀는 땅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올라선 땅은 흔들렸다. 바다에서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울렁거림을 겪어야 했다. 바다를 떠나야 했던 이유를 그녀가 설명했지만 어눌한 발음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흔들리지 않는 땅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한국까지 흘러들어왔다. 하지만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공장에서도, 쪽방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매 순간 속은 메슥거렸다. 나는 며칠 전 봤었던 한 다큐멘터리를 떠올렸다. 바다에서 생활하는 소수종족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바다 집시라 불리는 그들은 육지에 올라오면 오히려 멀미를 느낀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온난화와 주변 국가의 압력 때문에 땅에 정착해야만 했다. 그들은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나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엄마가 동생을 낳다 죽었다고 했다. 나는 엄마의 얼굴도, 목소리도 심지어 그녀의 국적조차도 알지 못했다. 그저 내 피부색을 보며 다큐멘터리에 나온 저들처럼 바다와 강렬한 해가 있는 지역 출신이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소니의 피부색은 그들이나 나보다 옅었다. 지하층 계단에는 해가 들지 않았다. 등이 나간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집주인은 갈아주지 않고 있었다. 흐릿한 빛에 의지해 현관문을 열었다. 안은 말라버린 우물 속처럼 컴컴했다. 벽을 더듬자 콘크리트의 냉기가 손끝에 스며들었다. 스위치를 찾지 못한 나는 어둠 속에서 신발을 벗어야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채 몇 걸음 떼지도 못한 채 균형을 잃고 넘어져 버렸다. 무릎과 정강이로 둔탁한 통증이 밀려왔다. 찔끔 오줌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퀴퀴한 지린내가 밀려왔다. 나는 팬티를 갈아입을 생각도 않은 채 그대로 침대까지 기어가 누웠다. 첫 밤샘근무였고 한밤중에 소동까지, 피로에 찌든 몸은 솜사탕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눈을 떴다. 얼마나 잔 걸까? 알 수 없었다. 방은 여전히 어두웠다. 나는 습관적으로 손을 들어 눈가를 만졌다. 다행히 손끝에 느껴지는 물기는 없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채 마르지 않은 눈물 자국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눈에 무슨 이상이 생긴 줄 알았다. 그러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꿈을 꾸며 눈물을 흘린다는 걸. 무슨 꿈인지는 알지 못했다. 마치 교통사고 후의 기억상실증처럼 꿈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깨어날 때마다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허기가 엄습해왔다. 더듬거리며 일어나 방에 불을 켰다. 시계를 보니 벌써 한밤중이었다. 통증처럼 허기가 밀려왔다. 라면 두 개를 끓였다. 밥까지 말아 먹고 나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다 먹고 난 냄비를 싱크대에 놓았다. 수도꼭지를 틀자 빈 냄비 속으로 물이 쏟아졌다. 냄비 속 옅어진 갈색 국물이 거품을 내며 소용돌이쳤다. 밥풀 하나가 위태롭게 흔들리다 넘쳐나는 물을 따라 개수대로 흘러갔다. 땅멀미를 한다는 소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갑자기 몸이 붕 떠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멀미할 때처럼 속이 울렁였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동생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나는 메시지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다.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울렁임은 더욱 심해졌다. 배를 채우면 이 메스꺼움이 좀 가라앉지 않을까. 찬장에서 감자칩을 꺼내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었다. 제대로 씹지도 않고 삼키듯이 넘겼지만 메스꺼움은 쉬이 달래지지 않았다. 보호실 철문이 열리고 이 반장과 함께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이런 곳이 처음인지 창살 안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어린이 팔뚝만 한 쇠봉이 한 뼘 간격으로 세워진 창살 안에는 다양한 피부색의 여자 외국인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그녀들은 마루 형식으로 된 바닥에 국적별로 삼삼오오 앉아 있었다. 소니만이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은 채 구석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사무소 직원이 아닌 듯 남자는 관복을 입지 않고 있었다. 검은색 쟈켓에 베이지색 면바지, 그리고 특징 없는 인상은 길에서 흔히 마주치는 사십대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이 반장이 소니를 조사실로 호출했다. 남자는 조사실로 들어갔다. 둘은 삼십 분 정도 조사실에 있었다. 가끔 소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는 다른 웃음이었다. 끈적끈적하니 교태가 묻어있는 웃음이었다. 조사실에서 나온 남자는 한쪽 입꼬리를 어그러뜨렸다. 황당하다는 웃음 같기도, 싱겁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남자와는 다르게 뒤따라 나오는 소니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남자는 이 반장에게 짧게 말을 전한 후 돌아갔다. 나는 이 반장에게 다가갔다. 저분은 누구예요, 라는 내 물음에 이 반장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비밀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로 순순히 돌아갔다. 내 태도에 이 반장은 당황한 듯싶었다. 쩝쩝 소리를 내며 입맛을 다시더니 슬며시 다가와 물었다. “소니가 진짜 이름일까?” 나는 그제야 이 반장이 비밀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다는 걸 눈치챘다. 나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최대한 지어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잘 직시하지 못했다. 나의 피부색을 처음 본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표정이 굳는다. 그리고는 바로 꼬인 가방끈을 고쳐 매듯 낯을 바꾼다. 마치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이. 어떤 반감이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냥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그 표정을 본 나로서는 더는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이 반장은 혀를 내밀어 입술에 침을 묻히고는 말했다. “당연히 진짜 이름 아니지. 소니 들어봤잖아. 워크맨 만드는 전자회사” 작년 겨울, 한 베트남인이 여고생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 사건은 십분 정도 모 포털 사이트 검색어 톱을 차지했다. 첫눈이 오기 전날 대대적인 불법 체류 외국인 단속이 벌어졌다. 그날 밤 노래방을 덮친 경찰은 손님의 노래에 맞춰 탬버린을 치고 있는 소니를 붙잡았다. 경찰서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녀는 첫눈을 맞으며 출입국관리사무소로 넘겨졌다. 그녀의 지문과 일치하는 한국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넘겨진 불법 체류 외국인들은 사무소 내에 있는 보호실에 임시로 수감된다. 제일 먼저 그들의 국적을 확인하는데 가끔 추방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국적을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소니는 아예 한국어를 모르는 척했다. 여러 언어의 통역사들이 말을 걸어봤지만, 그녀는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았다. 모르는 척 연기를 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협조하지 않는 한 그녀의 모국어가 무엇인지 알 방법은 없었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직원들은 굉장히 난감해했다. 직원들은 소니의 소지품을 확인했다. 수거된 소지품에서 신원의 단서를 찾아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많은 것들을 품에 지니고 다닌다. 신분증부터 휴대폰, 수첩, 메모 등. 그러나 그녀의 소지품이라고는‘SQNY’라고 로고가 박힌 짝퉁 휴대용 라디오뿐이었다. 나중에 그녀가 한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은 발각되었지만, 그녀의 국적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녀는 절대 신원의 실마리가 될 이야기나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해 겨울 마지막 눈이 녹았지만, 여전히 아무도 그녀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심문에 잘 대답하다가도 신분이 노출될 만한 질문이 들어오면 입을 다물거나 딴소리를 해댔다. 그 엉뚱한 말들 때문이었을까, 심문했던 직원들 중 몇은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녀는 정신병원에 보내져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각국 대사관에 그녀의 사진이 포함된 협조문도 보내졌다. 미친 것은 아니라는 의사의 소견과 자기네 국민이 아니라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몇몇 국가는 아예 회신조차 하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출입국 관리 사무소의 보호실은 외국인 보호소로 이송되기 전, 하루나 이틀 정도 임시 수용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골치 아플 것을 눈치챈 외국인 보호소는 신원이 확인될 때까지 절대 받을 수 없다고 못을 박아 버렸다. 이름이 없으니 불편함을 느낀 직원 하나가 그녀를 소니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도 그 이름이 맘에 들었는지 자신을 소니라 소개했다. 이야기를 듣던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근무 첫날 그녀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이 반장에게 했다. 소니가 바다에서 왔다는 내 말에 이 반장은 껄껄대며 웃었다. “소니는 신입이 오면 꼭 한 번씩 골탕을 먹이더라고. 내가 말해 줬어야 했는데 미안해. 그냥 맘 편하게 신고식이었다고 생각하도록 해.” 이 반장은 은근히 흐뭇해하는 눈치였다. 어리둥절해하는 나에게 이 반장은 말했다. “나도 올 초 여기 사무소로 발령받아 왔을 때 감쪽같이 속았다고. 소니가 자기는 동생한테 이름을 빼앗겼다는 거야.” 소니는 자신이 일 가구 일 자녀 정책을 펴는 중국에서 태어났다고, 이 반장에게 말했었다. 소니의 아버지는 아들을 원했다. 첫아이가 소니이자 벌금을 낼 형편이 못 됐던 그녀의 아버지는 앞으로 태어날 남동생을 위해 그녀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그녀에겐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대신 미리 지어 놨던 남자 이름, 남동생에게 주어질 이름으로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그마저도 곧 태어난 남동생이 가져가 버렸다. 그녀는 이름도 없고 서류상으로도 태어나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소니의 비밀을 알게 된 이 반장은 그녀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런데 다 거짓말이었어. 중국대사관에 동생 이름을 문의해 봤더니 그런 자는 없다는 거야.” 소니의 말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이상하게도 먹먹해진 내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내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진 것 같았다. 나는 만난 적 없는 엄마와 기억나지 않는 꿈을 떠올렸다. “아마도 소니는 여기서 두 번째 겨울은 나지 못할 것 같아.” 이 반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모르게 눈이 커졌나 보다. 내 반응에 이 반장은 신이 났는지 다시 목소리가 커졌다. 아직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윗분들이 그녀를 풀어주려 한다고 했다. 어차피 더는 그녀의 신원을 알아낼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까지 가둬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혹시 간첩이 아닐까 ’누군가 농담처럼 했던 말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방금 전 소니를 조사했던 남자는 이를 규명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남자가 지었던 표정으로 봐서 그녀는 간첩이 아닌 게 분명했다. 창살 사이로 소니를 바라봤다. 분명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그녀는 시치미를 뚝 떼고 티브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두터운 쌍꺼풀에 불거진 광대뼈, 두꺼운 입술 위로 큼지막하게 자리한 뭉툭한 코. 아무리 뜯어 봐도 어디 사람인지 헤아리기 어려웠다. 속으로 삼키듯 소니를 발음해 봤다.‘SONY’라는 글자를 전 세계 사람 모두 소니라고 발음한다는 기사를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똥별 같은 느낌을 주는 소니라는 어감은 소비자들의 거부감을 최소화한다고 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그녀와 잘 어울리는 이름 같았다. 비록 ‘SQNY’라 적힌 그녀의 라디오는 짝퉁이지만. 핸드폰 벨소리에 눈을 떴다. 팔을 뻗어 보려 했지만,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야간근무를 시작한 후부터 낮에는 앓는 사람처럼 곯아떨어져 버렸다. 벨소리는 곧 끊어졌다. 다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동생에게서 부재중 전화와 함께 문자가 와 있었다. ‘어머니 제사 때는 집에 올 거지?’ 동생의 문자를 다 읽은 나는 그대로 이불 위로 쓰러졌다. 가만히 천장을 응시하며 꿈을 기억해 내려 노력했다.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어머니의 추억처럼 꿈은 기억나지 않았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냉장고 문을 열자 어제 먹다 남긴 치킨이 보였다. 차가운 치킨을 데우지도 않고 먹기 시작했다. 살코기는 푸석댔고 닭 껍질은 질겼다. 차가울 뿐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그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기계적으로 씹을 뿐이었다. 접시 위의 치킨은 모두 없어졌지만, 허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온전한 것을 찾아 수북이 쌓인 닭 뼈 사이를 뒤적였다. 손에 닭 목이 걸려 올라왔다. 튀김가루가 다 떨어져 앙상해진 닭 목을 통째로 씹었다. ‘빠드득’ 입안에서 뭔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손가락을 입속에 집어넣었다. 어금니가 심하게 흔들렸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입 밖으로 삐죽거리며 새어 나왔다. 엄마의 제사는 연극 같았다. 나는 엄마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에게서 도망친 엄마는 불법 체류 외국인이 되어 아직도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엄마를 만나고 싶었다. 만나 물어보고 싶었다. ‘왜 나를 낳았는지, 왜 고향으로 가지 않고 이곳에 남았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하지만 나는 엄마를 찾지 않았다. 대신 단속에 걸린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보호실로 들어올 때마다, 엄마 또래의 외국인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얼굴을 모른다. 마치 쏘기 직전의 활처럼 소니와 나이지리아 여자는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어제 들어온 금발의 우즈베키스탄 아가씨는 커다란 눈망울로 둘의 눈치만 살폈다. 나는 슬며시 수화기를 들어 이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들어온 지 일주일이 넘었다. 벌써 외국인 보호소로 넘어갔어야 했는데 난민신청 문제로 이송이 지연되고 있었다. 소니는 그동안 보호실의 터줏대감처럼 행동했었다. 워낙 오래 있었고 기가 셌기 때문에 처음 들어온 외국인들은 그녀에게 한 수 접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 여자는 자신의 덩치를 믿고 그녀를 무시했다. 아슬아슬했던 둘 사이가 결국 터지려 하고 있었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소니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다. 금이 그어져 있는 건 아니었지만, 소니의 영역은 티브이 맞은편 창가 아래였다. 사람들은 아무리 보호실이 붐벼도 그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고 직원들도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었다.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다른 수감자들과는 달리 소니는 너무나 편안한 얼굴로 그곳에서 티브이를 보거나 낮잠을 청했다. 소니가 나이지리아 여자에게 먼저 주먹을 날렸다. 소니의 주먹이 정확히 나이지리아 여자의 얼굴을 때렸지만, 나이지리아 여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나이지리아 여자가 성큼 달려들어 소니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검은 표범을 연상시키는 그녀는 보통의 남자보다 몸무게도 더 나갔으며 몸도 더 우람했다. 작은 키에 마른 편인 소니는 금방이라도 찢길 듯 위태로워 보였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소니의 머리를 흔들어 대며 괴성을 질러댔다. 그 기세에 우즈베키스탄 아가씨는 구석으로 도망쳤고 철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나도 멈칫했다. 아직 이 반장은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잠깐 망설였지만 뭉치로 뽑혀 휘날리는 소니의 머리카락을 보자, 큰일 나겠다 싶었다. 무작정 안으로 뛰어들어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파리를 쫓듯 팔을 휘젓자 나는 그대로 날아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틈에 소니는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깨물었다. 나이지리아 여자가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소니의 머리카락을 잡아끌었다. 얼마나 세게 당기는지 소니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고 눈초리는 찢어질 듯 하늘을 향해 치켜 올라갔다. 하지만 소니는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을 두 손으로 꽉 쥐고는 놓아주지 않는다. 흰자위로 금이 가듯 붉은 실핏줄이 섬뜩하게 번져 갔다. 이 반장이 도착했을 때 나이지리아 여자는 제발 놓아 달라며 울고 있었다. 나와 이 반장, 우즈베키스탄 아가씨가 달려들어 겨우 소니를 떼어 놓을 수 있었다. 소니의 입은 거품과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나이지리아 여자의 팔뚝은 처참하게 살점이 뜯겨 있었다. 소니는 분이 안 풀리는지 몇 번이고 이를 드러내며 나이지리아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보고를 받은 김 실장이 달려왔다. 나이지리아 여자는 병원으로 이송됐고 김 실장은 입을 굳게 다물고 소니를 한참 동안 노려봤다. 다음 날 아침, 퇴근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반장이 들어왔다. “같이 병원 좀 가줘야겠는데.” 이 반장은 소니와 나를 차에 태우고 인근 정신병원으로 향했다. 어제 싸움을 보고 김 실장이 특별 지시를 내린 모양이었다. 여자 수감자가 외출할 때는 반드시 여직원이 동행해야 했다. 소니는 차창 밖으로 거리의 사람들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오랜만의 외출이어선지 살짝 들뜬 것처럼 보였다. 이른 아침인데도 병원 대기실에는 사람이 많았다. 여러 번 왔었는지 이 반장은 간호사와 아는 척을 했다. 대기 순번을 보니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접수를 마친 이 반장은 의자에 앉아 신문을 펴들었다. 느긋한 그의 모습을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 지금쯤이면 거의 집에 도착했을 시간인데. 당장 쓰러질 것같이 피곤했다. 핸드폰 벨소리가 고요한 대기실에 울렸다. 이 반장이 황급히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밖으로 나갔다. 간호사들만 이리저리 바삐 움직일 뿐 대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멍하니 티브이만 들여다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밖으로 나간 이 반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들어올 때만 해도 어스레했었는데 어느새 대기실은 햇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슬슬 데워지기 시작한 볕은 커피 잔의 온기처럼 따스했다. 머리가 무거워지며 눈꺼풀이 스르륵 감겨 왔다. 고개를 흔들어 봤지만 집요하게 따라 붙는 졸음을 물리치기엔 역부족이었다. 슬쩍 소니를 쳐다봤다. 소니도 대기실의 다른 이들처럼 아침드라마에 넋을 놓고 있었다. 열중했는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주먹 쥔 손이 스르륵 풀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나는 사막에 있었다. 작은 모래 구릉들이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었다. 나 이외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제일 높아 보이는 모래 구릉으로 올라갔다. 주변을 살펴봤지만, 예상대로 모래벌판 외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소리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질척이는 모래 속에서 한참을 달렸지만, 소리의 주인은 찾을 수 없었다. 기진맥진해진 나는 멈춰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남자의 목소리, 여자의 목소리, 격양된 노인의 언성과 가는 아이의 음성, 사투리도 들려왔고 처음 들어보는 외국어도 있었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무력감에 빠져 주저앉는데 저 멀리 누군가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히잡 같은 스카프를 머리에 둘렀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녀를 쫓았지만, 그녀와의 거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그녀에게서 멀어져 갔다. 나는 두려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여보세요!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제발 알려주세요.’ 그녀가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녀가 바로 엄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눈을 떠 보니 간호사가 보였다. “괜찮으세요?” 손을 들어 눈가로 가져갔다. 축축한 물기가 만져졌다. 나는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 냈다. 간호사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환자분 어디 가셨어요? 진료실로 들어오시라는데.” 옆을 보니 소니가 앉아 있어야 할 의자가 비어 있었다. 뒤통수가 서늘해지며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대기했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뒷줄에 새로 온 이들이 보였다. 화장실로 달려가 봤지만, 소니는 없었다. 사람들에게 소니를 봤는지 물어봤지만 모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며 목이 탁 막혀 왔다. 그때 문이 열리며 이 반장이 들어왔다. 나는 울상을 지으며 소니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자초지종이라고 할 것도 없는 내 이야기를 들은 이 반장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도 이 반장을 쫓아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 반장의 모습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소니는 어디로 간 걸까. 소니에 대해서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뿐, 어디로 갔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마치 고장 난 라디오처럼 수많은 목소리와 거리의 소음들이 한꺼번에 귀로 파고들었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귀를 틀어막았다. 그런 내 모습이 이상했던지 지나가던 사람들은 흘끔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문득 스쳐 가는 한 여자의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의 옆모습은 소니와 닮아 보였다. 황급히 그녀의 어깨를 잡아챘다. 안경을 쓴 여자가 무슨 일이냐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소니는 안경을 쓰지 않았다. 여자에게 사과한 후 무턱대고 앞으로 걸어갔다. 정류장이 보였다. 버스가 멈춰 서자 소니와 닮은 여자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나는 누구를 쫓아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가방을 멘 여자를 따라갔다. 한참을 쫓는데 여자가 핸드폰을 꺼냈다. 이번에도 소니가 아니었다. 여자의 한국말은 너무나도 유창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반장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출입국 관리 사무소로 돌아갈까. 그러고 보니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었다. 택시를 잡기 위해 팔을 들어 올리는데 옅은 커피색 피부의 손등이 보였다. 보호소 철장 안에 이런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은 많았다.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도망쳐 나온 게 내가 아닐까.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거리를 가득 메운 간판들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일그러진 간판의 글자들은 처음 보는 외국어처럼 낯설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증명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여기 이곳의 내가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빈 석상처럼 그대로 서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던 걸까, 핸드폰이 울렸다. 이 반장에게 온 전화였다. 그는 소니를 찾았으니 집으로 퇴근하라 했다. 소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침한 표정으로 자신의 영역에 앉아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내 기분은 가을비처럼 오락가락했다. 도망친 것에 대해 화가 나기도 했고 돌아와 준 것에 대해 고맙기도 했다. 소니는 도망친 지 네 시간여 만에 자기 발로 사무실에 돌아왔다. 직원들은 그녀가 어디를 갔다 온 건지 몸이 달 정도로 궁금해했다. 하지만 소니는 일언반구 말하지 않았다. 며칠 후 이 반장이 비디오테이프를 가져왔다. 병원 근처 지하철역의 개찰구와 그 앞 대합실을 찍은 CCTV 영상이었다. 하단의 숫자는 소니가 도망친 날의 아침을 가리키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 반장이 ‘저기다. 저기’라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한 사람을 가리켰다. 화면 끝에서 소니가 걸어오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아홉 시 삼십 분이었다. 병원에서 역까지는 걸어서 십분 정도 거리였다. 내가 졸자마자 도망친 게 분명했다. 그녀는 대합실에 설치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지나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하단의 숫자가 열두 시를 넘었지만, 여전히 그녀는 일어서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가지도 눈길을 보내지도 않았다. 이 반장이 비아냥거렸다. “돈이 없으니 아무 데도 못 가네.”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아는 소니는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사람을 속여서라도 갈 사람이었다. 이 반장은 의심스러운 장면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며 한 번 더 비디오를 틀었다. 사람들은 빠르게 화면을 스쳐 지나갔고 의자에 앉은 소니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반장과 나는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소니의 도주 사실이 외부로 새어 나갈까 봐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그 사건 이후에도 소니는 예전과 다름없이 행동했다. 새로 들어온 외국인들에게 텃세를 부렸고 자신의 영역에 누워 드라마를 봤다. 그렇게 소니가 또다시 겨울을 보호소에서 날 줄 알았다. 하지만 첫눈 예보가 있던 날 소니의 석방이 통보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소니는 거품을 물고 뒤로 나자빠졌다. 그래도 통하지 않자 자신의 몸에 자해를 했다. 결국, 소니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하지만 윗사람들은 단호했다. 그런 소동을 부렸음에도 다음 날로 석방이 미뤄졌을 뿐이었다. 새로 온 소장은 골치 아픈 문제를 빨리 치우고 싶어 했다. 이 반장은 병원에서 돌아온 소니를 잘 감시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첫날처럼 보호실에는 나와 소니 둘만이 남았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다른 수감자들은 일찌감치 외국인 보호소로 보내 버렸다. 취침시간이 지났는데도 소니는 자리에 눕지 않았다. 불을 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답을 바라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톤으로 소니가 말했다. “소니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지하철역을 말하는 건가,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소니가 말했다. “사람들은 걸을 때 참 무서운 얼굴을 한다. 그런 얼굴로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소니는 고개를 돌려 나의 눈을 바라봤다. 소니의 눈동자는 마치 갓난아기의 눈처럼 샛말갰다. 사람들의 머리와 어깨 위로 흰 얼룩 같은 눈송이가 쌓이고 있었다. 어제 내릴 거라던 첫눈은 오늘 아침에야 내리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인파 속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소니는 예정대로 오늘 아침 석방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불법체류 외국인들이 이송되어 왔기 때문에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소니가 더는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소니는 어디로 간 걸까. 마치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다. 거리에는 눈이 쌓여 가고 있었다. 나는 소니의 발자국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벌써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에 의해 어지럽혀 있었다. 무작정 소니의 흔적이라 짐작되는 발자국을 따라갔다. 눈바람이 날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발자국들은 뭉개졌다. 나는 발자국을 놓쳤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봤다. 역 앞이었다. 나는 역으로 들어갔다. 출근하는 사람들로 역은 붐볐다. 부딪히지 않게 나는 어깨를 움츠려야 했다. 그때, 왠지 낯이 익은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도망친 소니가 앉았던 지하철역의 의자였다. 나는 그 의자로 가 앉았다. 소니의 말대로 사람들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빠르게 내 앞을 지나쳐 갔다.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나는 누구에게라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지우개로 지워지듯 오고 가는 사람들은 점점 옅어져 갔다. 결국, 신기루처럼 모두 사라져 버렸고 역에는 나 홀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소리들은 그대로였다. 사람들의 말소리와 주변 소음은 오히려 증폭되어 귓전을 때렸다. 전차가 진입하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전차는 A시 공단역으로 갈 것이다. 엄마는 A시 공단역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아버지에게서 온 전화였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소니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끝>
  • 거대 고래와 ‘바로 앞’서 눈 마주친 다이버

    거대 고래와 ‘바로 앞’서 눈 마주친 다이버

    거대한 고래와 바로 앞에서 눈을 마주친 스쿠버다이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29일 자 보도에 따르면 최근 독일 베테랑 다이버 라인하르트 민트가 속한 수중 촬영팀이 잠수 도중 우연히 마주친 보리고래에 접근, 동료 촬영작가 카이 마테스가 그 모습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포르투갈 서쪽 북대서양에 있는 포르투갈령 아조레스 제도에서 향유고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한 수중 촬영 도중 이처럼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수염고래과에 속하는 보리고래는 지구 상에서 대왕고래, 큰고래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고래로, 다른 종보다 유난히 몸이 날씬해 정어리고래 혹은 멸치고래로도 불리며, 시속 65km에 달하는 속도로 헤엄칠 수 있어 지구 상에서 가장 빠른 고래 중 하나로 알려졌다. 그 같은 고래와의 우연한 만남에 대해 그 잠수부는 특별하고 흥미진진했다고 말한다. 그는 “바다에서 가장 빠르고 커다란 고래와 만나고 가까이 갈 수 있는 것은 흔히 일어나는 상황이 아니다”면서 “당신이 운이 좋아 그중 하나를 볼 수 있더라도 가까이 접근하는 것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난 직접 그의 눈을 보기 위해 다가갔었고 그의 모습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데일리메일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처녀성 경매’ 여대생 “입찰 폭주…5억원 육박”

    ‘처녀성 경매’ 여대생 “입찰 폭주…5억원 육박”

    자신의 ‘처녀성’을 온라인 경매에 부쳐 논란을 일으킨 브라질 출신 여대생이 아랍의 한 부호에게 결혼 제안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호주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카타리나 미글리오리니(21)는 최근 미국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처녀성 경매 마감을 내년 2월 12일(현지시간)로 연장했다”고 밝혔다. 숱한 논란을 뿌린 미글리오리니의 처녀성 경매는 지난해 9월 처음 시작됐다. 당시 미글리오리니는 한 온라인 경매사이트에 자신의 ‘처녀성’을 경매에 부쳐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이 과정은 호주의 다큐멘터리 감독인 저스틴 시실리가 생생히 담아 영상으로 판매할 계획이었다. 보도이후 이 경매에는 실제로 수많은 남성들이 몰려들어 한 일본인이 78만 달러(약 8억원)에 그녀와의 ‘하룻밤’을 낙찰받았다. 그러나 그 이후 들려온 소식들도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미글리오리니는 “애초 계약조건은 하룻밤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판매 대금의 20%와 경매비 전액을 받기로 했다” 면서 “감독은 여행 경비는 물론 단 한푼도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이 일본인은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인 것 같다” 면서 “난 이 사건의 피해자이며 감독이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이 경매는 한바탕 소동으로 끝났으나 지난달 그녀가 재차 한 웹사이트를 통해 처녀성을 경매하면서 다시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번에 다시 미글리오리니가 뉴스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이 경매에 ‘군침’을 흘리는 전세계 수많은 남성들이 참가했기 때문이다. 미글리오리니는 “경매 마감일을 연장한 것은 참가자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아랍의 한 부호가 결혼 제안을 해왔기 때문” 이라면서 “이 제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기 위해 날짜를 더 연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까지 최고 입찰가격은 44만 달러(약 4억 6000만원)”라면서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남자에게 내 처녀성을 팔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독있는 ‘복어’ 먹고 ‘헤롱헤롱’…돌고래 포착

    독있는 ‘복어’ 먹고 ‘헤롱헤롱’…돌고래 포착

    치명적 독이 있는 복어를 먹은 돌고래의 모습이 포착돼 관심을 끌고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영국방송 BBC는 돌고래의 생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시리즈 ‘돌고래’(Dolphins)를 공개했다. 특수제작된 물고기로 변장한 로봇으로 촬영된 이 영상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사상 처음으로 복어를 먹는 돌고래의 모습이 촬영된 것이다. 복어는 청산가리의 10배가 넘는 테트로도톡신이라는 맹독을 가진 어류로 독 부위를 제거하지 않고 먹으면 치사율이 최대 80%에 이를만큼 치명적이다. 놀라운 사실은 머리 좋기로 소문난 똑똑한 돌고래들은 복어를 ‘제대로 요리해’ 먹을 줄 안다는 것. ‘돌고래’ 다큐멘터리 PD이자 동물학자 롭 필리는 “돌고래들은 일반 먹이들과 다르게 복어만큼은 부위별로 찢어먹는다” 면서 “이같은 과정을 통해 독먹는 것을 방지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상에는 한 어린 돌고래가 복어를 통째로 씹어먹는 모습도 담겼다. 이후 이 돌고래는 수면 위로 올라가 마치 거울 속 자신 모습에 취한듯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롭 필리는 “이 돌고래는 독이 무엇인지 알기위해 고의적으로 복어를 먹고 실험한 것 처럼 보였다” 면서 “이번 촬영을 통해 확실히 돌고래는 복어를 어떻게 다루는지 잘 알고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동방신기’ 다큐 DVD 27일 출시

    그룹 동방신기의 다큐멘터리 DVD ‘TVXQ! 캐치 미(Catch Me)-프로덕션 노트’가 27일 출시된다. 2장으로 구성된 DVD에는 지난해 9월 발표된 동방신기 정규 6집 ‘캐치 미’의 녹음, 안무 연습, 뮤직비디오 촬영, 컴백 무대 등 전체적인 앨범 제작 과정과 활동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이 담겼다. DVD는 26일 경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동방신기 단독 콘서트 ‘타임 슬립’(Time Slip) 현장에서 선판매된다.
  • 일제·전쟁속 나환자 사랑에 헌신한 목자의 삶

    일제·전쟁속 나환자 사랑에 헌신한 목자의 삶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벌이고,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로 받아들이며,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나환자들을 돌보다 생을 마감한 사람. 손양원(1902~1950) 목사의 삶은 민족주의자나 성자, 나환자의 친구 등 어떤 수식어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의 삶의 폭과 깊이를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는 ‘사랑’이다. 좌우 경계를 넘어 오직 신의 편에 섰던 그는 한평생을 낮고 그늘진 곳에서 사랑을 베풀며 살았다. 그의 삶을 한 편의 동화와 다큐멘터리로 담아낸 성탄특집 프로그램이 방송된다. KBS 1TV에서 25일 밤 10시 방영되는 ‘죽음보다 강한 사랑 손양원’은 성자나 위인이 아닌 인간 손양원의 행적과 내면을 들여다본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만세운동을 이유로 다니던 중학교에서 쫓겨났다. 일본 도쿄의 중학교로 유학을 떠나 학업을 계속한 뒤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신학공부를 하면서 순례자와 같은 목회를 시작했다. 1926년 부산 감만동교회에서 나환자를 위한 삶을 꿈꿨으며,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나환자들이 있는 전남 여수 애양원에 부임했다. 나환자들의 상처에 입을 대고 고름을 빨아들이는, 가족들도 차마 할 수 없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몸을 낮췄다.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벌여 옥고를 치른 기간만 제외하고 순교하는 날까지 애양원의 나환자들과 함께했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에서 손 목사는 두 아들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아들들을 총으로 쏜 원수 청년을 위해 구명운동을 벌이고, 결국 그를 양자로 삼았다. 그리고 2년 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손 목사는 애양원의 나환자들을 두고 피란을 갈 수 없다며 교회에 남아 있다가 끝내 목숨을 잃었다. 그의 48년간의 짧은 삶은 그 자체가 용서와 사랑, 구원에 대한 대답이었다. 불과 60여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삶을 증언해 줄 이들 대부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여수 애양원에서 그에게 세례와 학습을 받은 나환자 노인, 손양원의 마지막 순교 상황을 목격한 유일한 증언자, 그의 두 아들이 여순사건으로 희생될 당시 목격자 등의 인터뷰를 담아냈다. 손 목사의 희생적인 삶은 숭고했으나, 그 딸의 가슴에는 깊은 상처로 남았다. 제작진은 그의 맏딸인 손동희씨의 회고록을 통해 가족이 감수해야 했던 말 못할 고통도 되짚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난치병 아내를 향한 남편의 특별한 사랑노래

    난치병 아내를 향한 남편의 특별한 사랑노래

    온 세상에 축복과 평화가 가득한 성탄절을 맞아 KBS는 24일 밤 10시 크리스마스 특집 휴먼 다큐멘터리 ‘당신이 선물입니다’를 방송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음향 엔지니어 현경석(43)씨의 가슴 따뜻한 사연을 소개한다. 현경석씨는 특별한 노래를 만들고 있다. 4년 전,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던 그는 지금까지 아내를 위해 노래를 만들고 있다. 그 노래에는 아내를 향한 그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한번 이혼의 아픔이 있었던 그는 교회에서 아내 변영진(40)씨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처음에는 무심했던 아내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끈질기게 구애했다. 그리고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그가 아내를 위해 만든 노래 ‘그대는 모르오’가 음원으로 출시되자 조금씩 음악관계자들 사이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유명 성악 그룹 ‘유엔젤 보이즈’가 공연하기도 했다. 요즘에는 그에게 노래를 불러달라는 요청이 생겼고 그는 오늘도 아내를 위해 무대에 오른다. 키 147㎝, 몸무게 33㎏인 현씨의 아내는 병원으로 향했다. 벌써 세 번째 수술. 염증이 장을 뚫고 나와 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 아내는 크론병에 베체트, 강직성 척추염까지 난치성 질환만 세 가지를 안고 있다. 서너 살 때부터 조금씩 아팠던 아내는 중학교에 다닐 때 난치성 질환이라는 확진을 받았다. 아내의 병은 면역질환인 까닭에 두 달에 한 번씩 면역억제제인 레미케이트를 맞아야 한다. 늘 염증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에게 생명과 같은 주사제지만, 이 주사제의 단점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쇼크다. 두 달 만에 병원을 찾은 그녀는 결국 쇼크에 빠지고 만다. 긴급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온 남편. 결혼 전부터 아내의 병을 알고 있었지만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굽히지 않았던 그다. 그런데 아내를 찾는 그의 발걸음이 더디다. 그는 시야가 남들의 10분의1밖에 되지 않는 망막색소변성증 환자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언제 시력을 잃을지 모르는 난치성 질환이다. 한달 만에 세 살배기 아들을 보는 날이 오자 부부는 설렌다. 아내의 수술 때문에 아들은 내내 어린이집 신세였다. 아들을 낳기 위해 면역억제제도 끊고 몸의 염증을 그대로 견뎌내야 했던 아내. 아들과 함께하는 오늘, 부부는 오늘 같은 날만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남편의 생일을 하루 앞두고 백화점으로 향한 아내는 고르고 골라 눈이 좋지 않은 남편을 위해 라이트가 켜지는 시계를 샀다. 가격은 5만원이지만, 5억짜리 시계보다 더 좋다고 말해주는 남편. 남편은 자신에게 가장 큰 선물은 아내가 건강하게 곁에 있어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삶의 등불 같은 그가 남긴 ‘진실한 말’

    삶의 등불 같은 그가 남긴 ‘진실한 말’

    넬슨 만델라 어록/넬슨 만델라 지음/윤길순 옮김/알에이치코리아/610쪽/2만 5000원 “삶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살았다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가 우리 삶의 의미를 결정할 것이다.” 지난 5일 타계한 넬슨 만델라가 2002년 민주화 동지인 월터 시술루의 아흔 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남긴 말이다. 만델라 자신의 삶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한평생 자유와 민주주의 투쟁에 헌신한 만델라는 27년 4개월의 수감 생활을 비롯한 파란만장한 인생의 경험에서 우러난 주옥같은 어록을 남겼고, 또 자신이 말한 그대로 행동한 인물이었다. 이 책은 그가 지난 63년 동안 연설문, 편지, 인터뷰 등에서 한 말 2000개를 317개의 주제어로 분류해 정리한 최초의 공인 어록집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지만 동시에 가장 많이 잘못 인용되는 만델라의 말들을 정확히 기록하기 위해 넬슨 만델라 메모리센터가 방대한 작업을 진행했다. 만델라의 삶과 사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주제는 ‘교도소’다. 그는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심히 걱정스러웠던 문제는 내가 성인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절대 성인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한 “옥살이가 도움이 된 게 있다면 고독의 정적을 통해 말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진실한 말이야말로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말을 남겼다. 죽음에 대한 만델라의 평소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발언도 주목된다. 그는 2006년 한 다큐멘터리에서 “‘세상에서 해야 할 의무를 다한 남자 여기 잠들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뿐이다”라고 말했다. 1999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에이즈, 아동 인권, 아프리카 기아 등 전 지구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만델라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지만 그가 남긴 말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등불처럼 앞길을 비출 것이다. 이순녀 기자 coral@seoul.co.kr
  • 로드먼, 19일 김정은 또 만나나

    전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19일 방북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만난다. 로드먼은 지난 2월과 9월에도 방북해 ‘농구광’으로 알려진 김정은과 개인적 친분을 쌓았지만, 장성택 전 국방위 부위원장의 처형 이후 북한의 정치적 긴장이 한껏 고조되는 상황에서 김정은과의 만남이 성사될지 안팎의 관심이 집중됐다. 로드먼은 17일 밤 중국 베이징에 도착해 19일 다큐멘터리 촬영팀과 함께 북한에 입국할 예정이다. 내년 1월 8일 김정은의 생일에 예정된 로드먼의 농구팀과 북한 농구팀의 친선 경기에 앞서 북한 선수들을 훈련시키기 위한 일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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