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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막 1주앞” 관람객 하루 20만 몰려(엑스포이모저모)

    ◎국내전시관 내년 4월 재개관키로/파견공무원·도우미 복귀·취업 관심 93일간 장정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막바지 호흡조절에 들어간 대전엑스포.4명중 1명꼴로 다녀간 엑스포지만 관람을 미뤄온 사람들에게는 남은 7일동안의 효과적인 관람요령과 전시관 관람사정 등이,관람한 사람들에게는 엑스포조직위 파견직원의 복귀여부및 도우미들의 사후관리 등이 궁금증을 더해줄 때이다. 관람대기자들은 먼저 엑스포가 막을 내려도 국제전시구역및 국내 임시전시관만 철거될 뿐 인기를 끄는 대부분의 국내전시관은 그대로 남아 과학공원으로 조성돼 내년 4월 다시 문을 연다는 것을 기억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이번에 철거되는 전시관은 국제관및 한국후지쯔관,한국아이비엠관,주거환경관,조폐문화관 등이고 미래항공관,롯데환타지월드 등은 장소를 옮겨 다시 문을 연다.따라서 관람스케줄은 국제관·국내 임시전시관·각종 문화행사 등으로 짜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국제관을 중점적으로 공략하는 것이 효과적이지만 때로는 국제관도 1시간씩 기다리기 일쑤여서 문제는 간단치 않다.디자인계통은 스위스·이탈리아관을,관광은 뉴질랜드·호주·말레이시아관등 자기가 좋아하는 2∼3개 주제를 정하는 선택적 관람이 만족을 얻을수 있다. 또 빼놓을수 없는 항목이 각종 문화행사이다.누구나 손쉽게 볼수 있는 문화행사로는 갑천의 워터스크린쇼,엑스포회장을 돌며 벌어지는 거리의 볼거리공연등.매일 국제전시관내외,대공연장,놀이마당,엑스포극장 등에서 상오10시30분부터 하오6시까지 열리는 국제민속한마당,국내외 정상급 가수들의 공연 등도 눈여겨봄직하다. 폐막일이 1주일앞으로 다가오면서 엑스포조직위에 파견돼온 직원들사이에 완전한 원대복귀가 이뤄질지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파견근무직원은 총무처·총리실·경제기획원·과기처등 64개 정부기관 3백74명,한국은행·주택공사·도로공사등 36개 공공기관 98명등 1백개 기관 모두 4백75명.이중 정부기관의 경우 차관급에 해당하는 1급이상 3명,2∼3급 13명,4급 37명,5급 1백18명,6급이하 2백4명이고 공공기관은 국장급 3명,부장 8명,과장 13명,대리 74명등이다.조직위측은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치러온 노고를 감안,신분상 불이익이 없게 8·10월 두차례에 걸쳐 총무처에 공문을 보내는등 분주하게 활동하고 있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엑스포조직위는 11월14일,11월말,12월말,내년 2월7일등 4단계로 나눠 파견자들이 빠져나감으로써 해체될 전망이다. 이와함께 조직위 도우미및 기업체들의 진행도우미인 컴패니언들의 사후관리도 주목거리.물론「사후에 보장받을수 없다」는 항목에 힘주어 도장은 찍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생각도 달라지게 마련이다.약2천명(도우미5백88명·컴패니언1천5백명)중 대학재학생을 제외한 1천5백여명이 취업을 원하고 있다.그런데 사후행로는 험난하기만 하다.기업의 채용추천의뢰가 들어온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채용하겠다고 나선 곳은 대한항공 단 한곳 뿐.대한항공은 매년 봄·가을로 뽑아오던 스튜어디스채용을 이번에는 1백∼2백명선에서 도우미와 컴패니언들만으로 충원할 예정이다. 엑스포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한가지 골칫거리는 우리나라의 고질병중의 하나인 (VIP)대우를 요구하며 우선입장을 원하는 관람객들이 턱없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7일을 남긴 시점에서 입장객이 연일 20만명을 육박하는 가운데 우선입장객들이 개장초보다 2∼7배이상 몰려 가뜩이나 열악한 관람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롯데환타지월드의 경우 1일 관람객수 6천5백명중 우선입장객이 개장초 1백여명에서 6백∼7백명으로 늘어났다.
  • 옛총독부 먼저 헐면 문화재 탈나는가/손보기(일요일 아침에)

    구총독부 건물을 헐자는 데에는 우리 모두가 뜻을 같이한다.「우리의 문화유산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그뜻인즉 『다시는 만들 수 없는 귀중한 민족의 유산이고 훼손의 위험이 큰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우리는 한마디로 푸대접을 해왔다』고 반성하고 있다.국립박물관을 새로 지은 다음 옮기자는 말이다. 돌이켜 생각해보자.우리는 세계 최초의 목판인쇄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대해서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석가탑 도굴이 실패한 뒤 탑을 보수하려고 문화재위원의 감독아래 전문업자가 옥개석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우지직하면서 도르래 받침기둥이 부러졌다.이보다 앞서 위험하니 기둥을 바꿔야 한다는 충고를 물리치고 그대로 들던 가운데 부러졌다.삭아빠진 전주를 썼던 것이다.『국보 부시는 저놈들』하는 소리와 더불어 당사자들은 간곳이 없다.그 뒤에도 보존을 잘못해서 완전했던 세계의 보물이 크게 상했다. ○빗물 새는 총독부청사 우리는 이러한 악몽을 잊지 않고 있다.박물관의 문화재를 옮긴다면 이같은 일이라도 일어날듯이 생각하는 것이 지금의 우리 국립박물관 전문가들이 마치 썩은 전주를 가지고 문화재를 옮길 것같이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국립박물관 직원들은 여러번 이사를 하였기에 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생각도 들겠지만 그분들은 한편으로 분하게 여길지도 모른다.석가탑의 비극을 일으킬수 있는 사람들이 국립박물관의 지금의 직원들이라고 지레 생각한다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방분산 검토해볼만 사실 국립박물관에서는 해마다 1천점 쯤의 귀중한 유물을 해외 전시를 위해 내보내고 있다.일본으로는 아직 보고서도 내지 않은 유물들을 보내서 전시한 일도 있었다고 들었다.일본까지 문화재를 보내는 마당에 국내에서 옮긴다는 것이 많은 유물을 「훼손시킨다」고 곧바로 생각한다.요사이 심화회는 일진회를 연상시킨다.우리나라의 장관을 지낸 분도 회원으로 들어있다고 한다.일본의 영향을 받았는지 총독부 건물을 다치는 것을 걱정하는 분들이 계시다고 한다. 유물이 지금보다 나은 자리를 찾아 가야 한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하루도 국립박물관을 닫을 수는 없다는 그 누구의 말도 맞는 말이다.옛 총독부 건물에 영원히 두고 옮겨서는 안된다는 말도 아닐 것이다.사실이지 여름이면 빗물이 스며들기도 하는 이건물을 4백80억원이나 들여서 수리했는데도 더 보수해 나가야 하는 형편이다. 현재 소장 문화재의 보존은 이상황에서도 완벽한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지금 지방에 7개의 국립박물관이 있다.그 총건평은 1만5천6백87평이요,전시면적은 3천8백59평이다.현 총독부건물 전시면적은 3천81평이다.지방 국립박물관의 전시실의 절반만을 이용하여 국립박물관의 지방출토문화재를 옮겨서 진열하는 것도 생각해봄직하다. 해마다 특별전시를 위해 중앙박물관의 유물이 지방으로 옮겨지는 것도 1천점을 웃돌고 있다.옮기는 것이 그같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신문제이다.그같이 위험하다면 지방 전시는 그만두고 총독부 건물안에 잘 쌓아두고 온도 습도 공기 정화와 보존처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날마다 검사 분석하여야 할 것이다.과연 이같은 일을 지금 총독부 건물안에서는 하고 있다는 말인가.정부의 예산 뒷받침은 되어 있단 말인가. 문화재를 아끼자는 생각을 할수 있게된 현실을 기뻐해야 한다.그러나 경복궁을 부수고 총독부건물이 지어져 우리민족의 문화를 말살하고 우리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있는 것은 잠시 잊고 있다.왜냐하면 석가탑의 비극 죄악이 지금의 새한국에 찾아올 수도 있다는 우려때문일까.국립박물관 직원들,그리고 정부를 믿지못하고 있는지. ○새건물 짓는데 20∼50년 새로운 새 한국의 박물관을 지어서 꾸미려면 적어도 20년,30년,또는 50년은 걸려야 한다.지은 다음에 옮기겠다는 생각은 2∼3년,또는 5년쯤 걸려서 할 수 있다는 데서 나온 것이리라.이번에 완공된 서울대박물관이 8년이 넘게 걸렸다.총독부건물은 수명이 그리 길게 남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비가 들이치고 천장에 구멍이 나고 이를 깁고 때우고 하다가 한 두곳이 무너질 수도 있다.겉으로 보기에 말짱한 것같다고 국립박물관의 유물 보존 상태가 완벽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전문가는 있는가. 48년만에 정부가 민족정기를 찾고 올바른 사업을 하려는데 개인의 영예를 위한 것이라고 몰아만 가야 할 것인가.우리의 훌륭한 박물관을 지어서 겨레의 긍지를 심고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모처럼의 기회를 잃고 후회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기초질서와 청결의 민주주의(사설)

    최근들어 사회기강과 질서의 해이현상이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다.공직사회의 근무자세에서부터 공중도덕·교통질서에 이르기까지 심각히 우려할 단계에 이르고 있음도 사실이다. 유원지와 공원 곳곳엔 무허가음식점들이 들어서 성업중이고 나들이객들은 자연환경을 닥치는대로 훼손하기 일쑤다.도심지 거리라고 예외는 아니다.시민들이 마구 버린 휴지와 껌·침·담배꽁초가 즐비하다.버스정류장에서의 승하차질서 역시 실종된 지 이미 오래다.가는 곳마다 보이는 것은 추한 모습뿐이다.한마디로 청결과 기초질서가 손상되고 흐트러져 있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고속도로는 말할 것도 없고 국도나 지방도로에서까지 운행질서와 규칙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도로마다 심한 몸살을 앓는다.과속과 난폭운전에 차선위반과 갓길운행이 예사로 빚어지며 도로주변은 온갖 쓰레기로 마치 오물장을 방불케 한다.그러나 단속의 손길은 거의 미치지 않고 있다. 교통규칙을 지키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아야 함은 사회생활에 있어서 기본규범이다.작은 질서이되 기초질서인 것이다.이를 거리낌없이 외면하며 위반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시민의식이 여전히 후진국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더 큰 문제는 그런 일을 하고도 아무런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래가지고야 민주주의를 논하고 선진시민의식을 말할 수 없다.모두가 다시한번 자신을 되돌아보고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사회기강이 이렇게 해이해 있는 한 선진국으로의 발돋움은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아무리 경제가 발전하고 생활수준이 높아진다 해도 이 정도의 시민의식으로는 아무것도 될 수가 없다. 정부는 다음달초부터 사회기강확립차원의 국토대청결운동과 함께 기초생활질서 문란행위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설 방침이라고 한다.흐트러진 국민의식을 가다듬는다는 측면에서도 한번 해봄직한 일이다.작은 질서조차 지키지 못한다면 국가법질서의 확립은 처음부터 바랄 수가 없는 것이다.대통령도 여러 차례 강조하고 지적한 바 작은 질서와 청결은 곧 민주주의의 기초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그런 점에서 기초질서의식과 청결의식이야말로 민주시민이 갖춰야 할 첫번째 자질이다. 당국의 단속과 규제로서만 기초질서와 공중도덕이 지켜진다면 그 또한 민주시민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그러니 이제 시민의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물론 그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모두가 함께 살고 더불어 번영하기 위해선 초기단계의 단속과 규제를 감내해야 하고 의식개혁의 어려움도 겪어야 한다.
  • 신창악 오페라 「소녀심청」/원로작곡가 김동진씨(인터뷰)

    ◎“판소리에 서양발성법 접목시켜 창안”/29일부터 김자경오페라단이 무대에 올려 『만족스런 연주가 됐으면 좋겠어요.아직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그렇지만 이렇게 자꾸 공연하다보면 신창악도 자리가 잡히겠지요』 오페라「소녀심청」을 무대에 올리게 된 원로작곡가 김동진씨(81)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몇년이나 미루어졌던 공연이 이루어져 기쁘다』면서 대뜸 「신창락」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다.김자경오페라단이 29일부터 11월1일까지 서울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할 「소녀심청」은 바로 김씨가 창안한 신창악으로 불리는 오페라이다. 『신창악은 판소리의 정신과 창법의 멋을 발전시켜 서양음악의 기법과 발성법으로 노래할수 있도록 한 거예요.전통음악을 깊이 연구한 바탕에서 다양한 서구의 기법을 응용해야만 만인이 공감할수있는 세계성 있는 작품이 될것이라는 생각에서 50년째 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소녀심청」의 원제는 「심청전」이다.지난 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으로 초연된뒤 이번이 두번째 공연.김씨는 그러나 이번 공연을 사실상의초연으로 생각하고 있다. 『당시 연주는 제음악이 아니었어요.행사를 준비하던 관쪽의 요구에 쫓겨 제대로 공연되지 못했습니다.그러니 제대로 된 신창악 오페라를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할수 있어요』 김씨는 당초 이 공연에 지휘자로 직접 나설 계획이었다.그러나 연습이 시작된 지난 7월부터 거의 매일 연습장에 나가 출연진에게 신창악을 가르치느라 지금은 무척 피로한 상태. 때문에 주위에서는 그가 무대에 서는 것을 적극적으로 말리고 있다. 『소리꾼은 목이 망가지면 북을 잡지않습니까.신창악의 지휘자는 판소리의 고수같은 역할이라고나 할까요.지휘자가 아닌 북잽이라는 생각으로 몸 상태를 봐서 다섯차례 공연중에 한번 쯤은 지휘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김씨는 잘 알려진대로 국민적 애창곡인 「가고파」의 작곡자.이밖에 「봄이오면」「창문을 열면」「님의 노래」등 1백여곡의 가곡과 여러개의 교성곡등을 남겼다.평남 안주 출신인 그는 해방뒤 현재 북한 「국립교향악단」의 모체인 평양 중앙교향악단을 창설해 지휘하다 숙청되어 6·25때 월남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다. 『지난 봄 두번째 신창악 오페라 「춘향전」을 완성했어요.이제 새로운 작품을 쓰기보다는 「심청전」과 「춘향전」을 통해 신창악을 제대로 보급하는데 힘쓸 작정입니다.그리고 나면 평생 쓴 제 작품을 정리해 펴내려고 합니다.제 작곡인생을 마무리하는 작업이라고나 할까요』 김씨에게 『만약 「심청전」과 자신의 표현대로 「서양음악을 모방」한 「가고파」가운데 후세에 한곡만 남겨야 한다면 어떤 곡을 고르겠느냐』고 다소 허황한 질문을 던졌다.그러자 그는 『세상사람들이 좋아한다면 「가고파」도 좋은 노래가 아니냐』면서도 『그래도 한곡만 골라야 한다면 당연히 「심청전」』이라고 다짐하듯 말했다.노작곡가의 우리음악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 캐나다:중(세계의 개혁현장:17)

    ◎경쟁력 높이기 「반품제로 운동」/한글소프트웨어 개발 한국공략 캐나다는 오는 「10·25총선」을 앞두고 주요 정당간에 TV논쟁이 한창 열기를 뿜고 있다.지난 84년이후 계속 집권하고 있는 진보보수당은 자칫 정권을 내놓게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선거일을 10여일 앞두고 실시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현재 제1야당인 자유당이 38%의 지지를 획득하고 있는 반면 캠벨총리가 이끌고 있는 집권 진보보수당은 26%의 지지만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2백95석의 하원의석 가운데 단 1석만을 갖고 있는 극보수주의 색채의 개혁당이 20%의 지지를 받는 이변을 나타내고 있고 43석의 의석을 갖고 있는 좌파정당인 신민주당은 2%선으로 급락하는 등 캐나다 정치권의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선거의 쟁점들은 모두가 캐나다의 경제를 어떻게 살려나가고 고실업과 엄청난 재정적자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것인가에 집중돼 있다.이를 위해 가장 우선순위를 두어야할 과제는 바로 국제경쟁력의 강화라는데 많은 경제전문가들은 견해를 같이하고 있다. 캐나다상공회의소의 통상개발국장인 아이먼 야시니박사는 캐나다가 당면하고 있는 5개의 경제문제를 우선순위별로 들어달라는 질문에 제일 먼저 국제경쟁력의 제고를 들었다. 야시니박사는 『과거 공산주의 동구국가를 포함,전세계가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고 자유무역지대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선 무엇보다 상품의 국제경쟁력 확보가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지난 91년에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데 이어 금년엔 캐나다·미국·멕시코 3국간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돼 의회의 비준까지 끝났고 총독의 상징적인 재가만 남겨둔 상태다.이는 곧 경제적 국경이 없어지는 것이며 캐나다산업이 국제경쟁력을 제고하지 않고서는 경제가 전진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90년부터 시작된 불황의 여파로 91년 2월부터 10% 이상의 고실업률을 나타내기 시작한 뒤 작년에는 평균 11.3%의 실업률을 기록했고 9월 현재 11.2%를 나타내고 있다.이같은 실업의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캐나다의 대외경쟁력 상실에 따른 산업구조개편으로 발생된 구조적 실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국제경쟁력의 제고는 더욱 중요할 수 밖에 없다.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방안은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고 임금의 수준을 적정선에서 억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그리고 노사가 협력,회사 자체를 구하는 것이 우선 무엇보다 중요하다. 항공기 부품납품공장인 캐나다 서부의 밴쿠버 소재 PWA회사는 미국 항공기산업의 불황으로 지난 91년부터 폐업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이 회사에 근무해온 6천여 근로자들은 지난 18개월동안 임금의 삭감을 통해 이 회사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2억달러의 자본을 축적했다. ◎“일자리 지키자” 노조서 임금깍기/「국제경쟁력 제고」 총선 주쟁점 이로 말미암아 이 회사 경영진들은 모기업인 아메리카 에어라인의 포트워스 소재 AMR공장 경영진과의 재협상을 통해 기업도 살리고 종업원의 일자리도 확보할 수 있었다. 요즘 캐나다에서는 이와같은 노사협력의 새로운 모델이 확산돼가고 있다.즉 과거처럼 경영진과 노동조합이 정면대결하는 식이 아니라 경영진과 노동조합이 함께 머리를 싸매고 필요할 경우 임금인상이 아니라 임금삭감을 통해서라도 회사를 구해 일자리를 확보해야겠다는 인식이 일반화되고 있는 것이다. 오타와의 싱크탱크인 캐나다 컨퍼런스원의 캐롤라인 팔쿠어경영연구소부소장은 『경영진과 노동조합간의 그같은 협력현상은 최근들어 크게 늘어나고 있다』면서 『토론토 인근의 크라이슬러 미니밴 캐나다공장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고 말했다. 캐나다의 10개주 가운데 경제력이 가장 큰 온타리오주의 체스터빌에 있는 스위스 네슬레커피회사 캐나다공장의 경우도 최근의 노동현장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이 회사는 북미 4개공장(캐나다1,미국2,멕시코1개)가운데 일부를 폐쇄,보다 임금이 싼 곳으로 공장을 이동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이에따라 작년 봄 캐나다공장의 문을 닫았다.당시 이 공장 노동자들은 물론 전국의 노조지도자들이 몰려들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반대하며 네슬레사를 규탄하는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당시 6주간의 공장폐쇄가 계속되는 가운데 노사는 재협상을 통해 임금체계를노동생산성에 따라 재조정키로 합의하고 공장문을 다시 열었다.주40시간의 노동시간을 넘지 않는 이상 주말작업을 하더라도 초과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등 새로운 노사협약이 체결됐다. 캐나다 근로자들이 멕시코의 저임금 근로자들에게 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생산성을 향상시키거나 아니면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임금수준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노사간의 이러한 새로운 협력이 일자리를 유지시키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캐나다가 보다 근본적인 국제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산업구조의 개편,직업재훈련,생산성향상이 뒤따라야 한다는데 경제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팔쿠어부소장은 캐나다의 국제 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목재·광물 등 1차 산업의 천연자원의존에서 벗어나 통신·정보·생명공학 등 하이테크산업쪽으로 더 전환해나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 연구원의 경제예측및 분석담당 부소장인 브라이언 홀란박사는 『캐나다의 국제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재훈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면서 이와함께 철저한 시장조사,경영합리화가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공회의소의 야시니박사는 최근 몬트리올의 한 스웨터공장과 퀘벡의 전자회사 아시아콤을 예로 들면서 생산성의 향상을 강조했다.그는 스웨터공장은 새로운 기계도입 등 시설확충과 자동화를 통해 지금까지 4∼5%였던 소비자들의 반품률을 0%로 떨어뜨렸고 전자회사는 모니터의 스크린분리 화면기술과 한자·한글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아시아권에 수출을 크게 신장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 책임행정구현의 교훈삼도록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의 책임을 물어 교통부장관과 해운항만청장이 경질되고 내각이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심기일전의 결의를 다짐했다.우리는 정부의 이러한 조치가 3백명 내외의 희생자를 낸 이번 사고수습의 마무리가 아니라 다시는 이런 일이 정말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실질적인 해결노력의 첫걸음이 되어야한다고 믿는다. 지난 8개월간 이런 대형사고로 희생된 인명은 4백여명을 넘는다.세차례의 사고 모두 안전소홀,적당주의,무사안일이 부른 원시적 인재였다.철도및 항공기 사고등 두차례 사고후에도 근본적인 대책은 나온게 없다. 우리사회의 후진성은 해항청뿐 아니라 사망한 선장을 지명수배한 검찰,성급한 오보를 밀고 나간 언론,인양된 사고선박을 침몰케한 대책본부 등 어느 한 분야만의 일이 아니다.민관의 총체적 낙후성과 전사회적 방만성이 위험수준에 이르렀다는 적신호다.이제 차분히 진단과 처방,실천에 국민 모두의 각성과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점에서 정부가 민심수습차원의 상징적 개각카드대신 책임행정 구현의 문채 인사에서 접근한 것은 실질적인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행정의 몫에서부터 풀어가겠다는 당연한 선택이다.일부 다른 부처의 장관까지 경질대상으로 하는 것은 내각의 안정을 깨고 문제의 초점을 흐릴뿐 올바른 해결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통관계 행정의 새로운 책임자들은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철도 항공 해운 운영체계의 근원적 정비와 근본대책을 마련해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문제의 심각함에 비추어보면 지극히 작은 부분일 수밖에 없다.아무리 돈을 투자하고 사람을 갈아도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실효가 없다.먼저 행정이 달라져야 하고 언론이 함께 달라져야하고 그리고 국민 모두가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행정만해도 가장 큰 병폐가 언론이 다루지 않으면 흐지부지 잊어버리는 망각증이다.이번만큼은 보지않는 구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을 떼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통령이 아무리 안전을 강조해도 그때 뿐이 되고 만다.장관들이 기업체의 회장처럼 아예 일주일에 몇번씩은 현장으로 출근해봄직도 하다.선진국의 내실을 갖추려면 먼저 문제를 끝까지 잡고 늘어지는 치열함과 과학적 조직적 접근자세가 있어야 한다.채임행정이 바로 그런 것이다. 아울러 종합적 안목에서 모든 법규와 관행 의식의 선진화를 위한 특별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다.그중에서도 부끄러운 국민성으로까지 고착되고 있는 후진의식을 바꿔야 한다.관계장관의 문책은 공동체의 안전문제를 사회운영의 큰 우선순위로 끌어올려 정부와 사회의 모든 역량을 모으는 의식개혁 운동의 계기가 되어야 할줄로 안다.
  • 가을,상실의 순간/김정란 시인·상지대교수(굄돌)

    다시 가을이 온다.내 마음속에서는 조그마한 짐승이 우우 하고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한다.그것은 아주 움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른 짐승인데,가을이 되면 비로소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그것은 이제 제 철을 만났다는듯이 눈을 반짝인다.언제였던가,나는 그렇게 썼었다.『가을은 언제나 그곳에 있다.가을이 겨울과 봄과 여름을 거쳐 우리에게 돌아온것이 아니라,우리가 겨울과 봄과 여름동안 헤매다니다가 가을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가을은 그렇게 나에게 어떤 원초적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이 계절은 누구에게나 조금씩 어떤 귀환,본질로의 회귀,그리고 삶의 근원적인 상실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모든것은 일년의 성장을 끝마감하고 열매를,한해살이의 싸움과 환희와 인내의 결과물을 세계앞에 고요히 내민다.그러나 그 열매맺음은,이제 얼마나 임박한 조락의 징후 앞에 내맡겨져 있는가.그래,그렇게 살아갈 수만 있다면.힘껏,나의 삶의 장소에서 삶이 삶이 되게하는 모든 요건들에 성실하게 대답한 뒤,그리고 조용히 스러지는 것. 가을이 영감을 불어넣는 상실에 대한 자각은 어쩌면 거의 선험적인 것인지도 모른다.너무나 명랑하고 끝내주는 유희인간인 우리 둘째놈은 가끔 엉뚱한 시를 써서 어른들을 놀래키는데,이 놈이 다섯살때 글씨도 쓸 줄 몰라서(요즘 아이들은 서너살이면 한글을 다 깨우치는 모양이니까) 아줌마에게 「구술」시킨 시가 이랬다. 「가을입니다/나뭇잎이 하나둘씩 떨어져요/떨어지는 나뭇잎을 보고 멍멍이가 컹컹 짖어요/멍멍이는 가을이 무섭지도 않은가봐요」 분석을 하려고 덤벼든다면 이「시」에 등장하는 가을­낙엽­멍멍이­공포는 완벽하게 설명된다.어린아이들이 쓴 시는 때로 어른들이 쓴 시보다도 더욱더 완벽한 상징적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그애들은 전략적으로 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가짜 이미지들이 끼어들지 않는다.내가 놀랐던 것은,어째서 저 어린 놈이 가을을 「무섭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었다.저 명랑한 영혼의 무엇이 벌써 가을에 드러나는 삶의 결핍의 징후를 알아차리게 만든 것일까.그리고 아이는 왜 그것을 「무섭다고」 느낀 것일까. 지혜로운영혼은 환희보다도 우울의 징후에 민감하다.상실의 순간에 비로소 삶은 숨겼던 신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사는게 즐거워 죽겠어서,오 껍데기만을,화려한 껍데기만을 쫓아 달려가는 어떤 경박한 정신들에게 그런 막연하고 모호한 깊이에 관한 이야기는 씨도 먹히지 않을는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 피아니스트 백낙호씨(이세기의 인물탐구:38)

    ◎음악혼 불사르는 건반의 마술사/풍부한 예술감각·정상의 기량으로 청중 매료/연주회 2백여회… 베토벤곡 “환상적 해석” 평가 「스위스 루체른호에서 달빛을 받고 일렁거리는 조각배」. 이는 베토벤 월광소나타를 듣고 19세기 유럽시인들이 평한 찬사다. 한번 귀기울이기 시작하면 그곳에 흠뻑 빠지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현란한 음의 희롱과 꿈결같은 멜로디,우울과 불안과 기대와 사랑에 눈먼 쓰라림을 극복하려는 듯 4분의 4박자 프레스토는 걷잡을 수 없는 파도처럼 몸부림친다. 피아노의 거장 프란츠 리스트는 「사람의 혼을 조용히 일깨우는 아다지오 소수테누토와 격정의 프레스토 사이에서 행복감을 노래하는 제2악장」을 향해 가라앉은 분위기의 리타르단도와 점점 거세지는 크레센도의 「두개의 심연속에 놓여진 꽃」 또는 이 둘 사이의 「금빛 가교」에 비유하기도 했다. 백락호의 「월광」은 좀 더 영롱하다.처음엔 구름을 헤치고 활짝 드러낸 얼굴처럼 눈이 부시리 만큼 한점 티없이 휘황찬란하다.절제된 감정과 은은하고 환상적인 녹턴(야상곡)의 분위기는 듣는 이의 가슴을 진주 타래로 꾸며준다.그러다가 차츰 음 하나하나가 생동감있게 연결되고 종장으로 치닫는 속도가 거세지면서 달빛은 산산조각 분쇄되어 폭우로 퍼붓는다. ○확신에 찬 두들김 그의 연주는 어느 경우에도 애매하다든가 모호한 감은 찾아볼 수 없다.간혹 화창한 봄날의 청람같은 무드가 느껴지는가 하면 확신을 가지고 두들기는 건반은 청중에게 안심과 안도를 안겨준다. 음악평론가 이강숙씨는 그의 베토벤 연주는 「음악의 혼을 불러일으키는 듯한 화성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남다르다」고 말한다.음악적 진실에 과장이 없고 음악의 상을 명확하게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그의 연주는 그만큼 설득력이 강하다.한치의 오차없이 음색의 변화에 깊이 파고들어 곡의 완성과 함께 벅찬 감동과 품위있는 여운이 깃들어 있다. 그가 연주하지 않은 피아노곡은 거의 없다.모차르트에서 베토벤,베버와 슈베르트 멘델스존 쇼팽 차이코프스키 스크리아빈에 이르기까지 지난 45년간 그가 애정과 정성을 쏟지않은 곡은 없다고 할 수 있다.그중에서도 베토벤과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해석은 「환상적 경지」란 평을 듣고 있다. 「노워크 아워」지의 에드워드 버가미니나 그와 두차례나 협연한 바 있는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벌 세노프스키도 「어느 한 대목에도 허점이 없이 면밀한 주의력과 힘찬 핑거레이션」에 감탄한 바 있다. 대부분의 연주가들이 그런 것처럼 그도 5살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서울 가회동에서 의학박사 백태성씨(고)와 조은희여사(86)사이의 5남4녀중 장남으로 출생.외과의사인 부친은 플루트를 직접 연주하고 집안은 언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 그는 병원에서 큰 수술이 있으면 시술하는 것을 눈여겨 보기도 했지만 폴란드의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파데레프스키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월광에 호소하는 듯한 천상의 소리와 엘먼의 달콤하고 매력적인 바이올린 선율에 매료되어 장차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부친은 의사가 되기를 원했으나 장남이 음악에 심취하자 파데레프스키가 빈의 거장 레세티츠키 밑에서 피아노를 사사하던 이야기,베를린파리 런던 뉴욕에 진출하여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가 되기까지의 입지전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때부터 단 한번의 회의나 갈등없이 그는 음악의 길로만 똑바로 걸어왔다고 말한다.『음악은 이미 숙명이며 나의 생애였기 때문에』 그는 어떤 곡에도 당황하지 않는다.수많은 평자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처럼 「확신에 찬 두들김」으로 청중의 가슴을 정확하게 두들길 뿐이다. ○음악을 숙명으로 75년 대구 영남대가 강당을 새로 짓고 그를 초청했을때 연주회가 시작되자마자 불이 나간 적이 있었다.그날의 첫 곡은 슈만 피아노 협주곡 2번. 빠른 템포의 알레그로 비바체로 힘찬 화음에 이어 제1테마가 나타나기도 전에 불이 나간 바람에 장래가 술렁거리는 중에도 그는 아름다운 안단티노에서 스케르초와 프레스토까지 17분의 연주를 완벽하게 끝냈다.물론 다음곡 다음곡에서도 불이 들어오지 않아 촛불이 출렁거리는 속에서 연주를 진행해나갔고 어느때보다 뜨거운 박수를 받았으나 그는 「연주자를 믿는 청중의 태도」에 박수를 되돌렸다. 지난해 런던 비숍스게이트홀에서의 피아노 독주도 마찬가지다.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연주중에 어디선가 벌이 날아들어 아무리 피아노를 두들겨도 그의 왼쪽 손등에서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다.벌에 쏘일 경우 손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오로지 연주에만 몰두했다.청중은 이를 알리 없었고 그의 매니저인 찰스 핀치씨만이 이 사실을 알고 발을 동동 굴렀다.그리고 그의 끈질김과 인내심과 암보에 감탄했다. 백낙호씨는 온화하고 겸허하다.정중하고 진솔한 성격으로 좀체 희비의 높낮이를 드러내지 않는다.다만 음악에서만은 좀더 공부하고 싶은 갈망에 목말라 했으나 유학의 길은 손에 닿지 않았다. 부친은 개성에서 경북등 도립병원으로 전전하는 월급쟁이에 불과했고 형제가 많은데 외국유학까지 가겠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뜻하지 않은 행운이 날아들었다.당시 미국대사관부영사이자 아마추어 첼리스트였던 마이클 베이츠가 그의 독주회에서 베토벤 「비창」과 「열정」을 듣고는 예일대 장학생으로 추천해준 것이다. 베토벤은 이처럼그와 인연이 깊다.후에 빈 교향악단의 지휘자 쿨트 뵈스와도 바로 「월광」연주가 계기가 되어 「황제」협연이 이루어졌다.그는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53년 예일대에서 1학년부터 다시 시작했다.그러나 크나이젤 하계 음악학교에서 아튀르 발삼교수를 만나 사사하고 예일대 관현악단과 협연을 하게 되기까지 그는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해야만 했다. 낮에는 학교공부와 시간강사 피아노조교로,밤에는 접시닦이와 청소 아르바이트 그리고 새벽엔 연습등 예일에서의 6년은 인생의 전환이 될만큼 슬픔·고뇌·가난으로 점철되었고 비로소 뉴욕 줄리어드로 진출하면서 그의 앞길에 연분홍빛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첫번째 행운은 음악도의 선망인 에델마커스교수에게 지휘법·실내악·피아노문헌을 공부한 일이고 폴 주코프스키와의 줄리어드정기연주 협연,타운홀 WQXR(뉴욕FM)방송국에서의 독주회,그리고 잊지못할 일은 정명화·경화자매의 줄리어드 입시때 피아노반주를 맡은 일,루빈스타인·리히터·하이페츠연주와 뵈링의 마지막 「토스카」를 본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행운은 이어져 모교인 서울대가 그를 교수로 불러들였고 귀국독주회에서 특유의 베토벤 「열정」소나타 바하 「파르티타」 쇼팽·스크리아빈·드뷔시를 고루 선보여 유한철·박용구·김형주등 국내 평자들로부터 「진실한 예술성」 「세련된 의지」 「맑은 쾌감」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의 탁월한 테크닉」등의 화려한 평에 휩싸였다. 그해 KBS의 인기아나운서이던 이정희씨를 만나 결혼,1남2녀가 모두 빈음대 졸업후 음악가가 된 것도 행운의 하나다(장녀 혜영씨는 KBS 교향악단 제1바이올리니스트,차녀 혜선씨는 뉴서울 필하모니 첼리스트,아들 정엽씨는 빈음대서 피아노 전공후 연구과정중). 그는 요즘도 새벽5시에 일어나서 예일대 줄리어드 음대시절과 똑같이 연습에 임하고 있다.75년이후 런던 심포니 매니저인 찰스 핀치씨와 계약되어 동남아·유럽연주 스케줄을 짜기 때문에 그는 교수와 연주활동을 적절하게 누릴 수 있게 되었다.따라서 하루 2시간씩의 매일 연습으로 해외연주 서울 지방연주 협연 등에 대비하고 있다.음악없이 어떻게 살 수있었을까.그는 피와 살과 그를 구성하는 세포하나까지도 음악으로 이루어졌음을 부인하지 않는다.입속에서 한소절의 허밍만으로도 벌써 몸속에 희열과 의욕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낀다. ○7년만에 독주회 91년 학교와 연주외에 모처럼 IMC(국제음악협의회)한국대표로 참여,지난 제25차 총회에서 동양권에서는 처음으로 임기 6년의 집행위원에 피선되었고 한달에 한번씩 예일대 재경 동문회 조찬에 나가는 정도.술은 맥주 한두잔에 애연가.선배인 전봉초,동료 이남수씨 등과 전람회장,연주회장 등에 얼굴을 내밀기도 한다. 그는 수많은 지방연주 해외연주 협연등 2백여회의 연주에도 불구하고 지난봄 호암아트홀서 7년만의 서울 독주회를 개최,그날의 「월광」소나타는 세월이 갈수록 영롱함과 격정이 진하여 피아노의 칸타빌레는 한층 우아하고 리타르단도와 크레센도는 정열의 다이내믹스로 절정을 이루었다. 마침내 그의 월광은 산산조각으로 분산되었고 청중도 연주자도 달빛의 폭우에 흠뻑 젖어 한동안 침묵에서 헤어 나올줄을 몰랐다.내년이면 대학교수 정년,그의 예술의 열정시대가 아마도 그때부터 막을 올리게 됨을 예고하고 있었다. □연보 ▲1929년 서울 출생 ▲1946년 개성 송도중 졸업 ▲1946년 서울대음대 입학 ▲1949년 서울대 음대관현악단 협연으로 「신인연주회」데뷔 ▲1950년 6월24일 백낙호 피아노 독주회(서울시공관) ▲1950년 해군교향악단 입단 ▲1952년 서울대 음대 졸업(김원복 윤기선사사) ▲1953년 서울대 강사·도미 ▲1957년 예일대 음대 졸업(예일대교향악단협연) 아튀르 발삼 사사 ▲1958년 예일대 음대대학원 졸업·예일대 강사·에델마커스 갈라미안 사사 ▲1962년 줄리어드 음대 연구과수료·줄리어드 정기연주회협연 ▲1962년 뉴욕 타운홀에서 피아노 독주회 ▲1963년 귀국 서울대 음대 재직 ▲1963년 서울시공관서 귀국독주회 ▲1964년 KBS교향악단과 협연(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 ▲1972년 대북 시립교향악단과 협연 ▲1972년 싱가포르에서 피아노 독주회 ▲1975년 빈교향악단과 협연,쿨트 뵈스지휘 ▲1975년 하와이대학서 피아노 독주회 ▲1976년 방콕서 피아노 독주회 ▲1977년 빈교향악단과 협연·서울시향협연(홍콩 시민회관)·말레이시아시향 협연(콸라룸푸르)·국향협연(국립극장) ▲1978년 방콕·싱가포르 피아노 독주·일본 도쿄교향악단 협연 ▲1979년 하와이대학서 피아노 독주회 ▲1980년 빈 교향악단과 협연·핀란드시향협연(81년)·미시간에서 피아노 독주회(82년)·빈교향악단·핀란드교향악단·서울시향협연(84년)·영국 아바딘 음악제서 서울대음대교향악단과 연주(85년)·KBS교향악단과 서울 수원 부산 인천 연주·대전 협연(87년)등 협연·해외독주등 2백여회 ▲1987년 서울대 음대 학장·LA심포니·춘천시향협연·이탈리아 우르비노 하기 국제대학초빙교수(88년)·KBS교향악단과 데뷔 40주년기념 연주회(89년)·이탈리아 페사로 하기음악제초빙교수(90년) ▲1992년 영국 런던 비숍스게이트홀서 피아노독주회및 런던음악제 초빙 교수 ▲1993년 3월 서울 호암아트홀서 피아노독주회및 부산 대구 대전서 독주회 서울대 음대 교수·IMC(국제음악협의회)한국대표(91년이후)한국음악협회 부이사장·한국 피아노 학회 회장·IMC 집행위원 대한민국 문화예술상·80년 올해의 음악상(음협제정)·「월간음악」상·영창음악상·예술대상(예총)
  • 29일 추석귀성 “고속도 피하라”/전국 지방·국도 이용안내

    ◎엑스포 겹쳐 대전부근 체증 극심 예상/서울∼천안/영등포∼평택 1번국도 이용 “무난”/호남방면/조치원서 대전우회 「36번」 활용을/수도권 IC 7곳 통제 등 도로정보 출발전 숙지해야 이번 추석 연휴때 귀향하는 차량이용자들은 28일 정오부터 29일 새벽2시 사이와 29일 상오7시부터 자정까지를 피해야 극심한 정체현상을 덜 겪을 것으로 보인다.한국도로공사가 추석을 앞두고 최근 서울시민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귀향객들은 이 시간대에 가장 많이 몰릴 것으로 예측됐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절연휴(29일∼10월3일)에는 지난해보다 50%가량이 늘어난 2천6백여만명이 이동할 것으로 보이며 탈서울인구만도 3백30여만명에 달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차량이 경부·중부등 고속도로에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차량이용 귀향객들은 교통정보에 귀를 기울이고 고속도로등에 수시로 고지되는 교통소통상태를 파악하는 요령으로 극심한 정체를 파해야 하겠다. 특히 손수운전자들은 고속도로 이외의 이면도로나 국도등을 잘 이용만 한다면 수시간씩의 정체를 덜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미리 갈 길을 점검한 뒤 떠나는 것도 한 요령일 것이다. 이번 추석연휴에는 또 대전EXPO행사와 겹치기 때문에 대전을 중심으로 한 각 도로의 사정은 다른 때보다 더 정체될 것임을 미리 예상해야 하겠다. 이에대비 차량이용자들은 고속도로 교통종합상황실(02­253­0404·0342­48­0404)과 고속도로 자동안내전화(전국동일 700­2030)를 자주 이용,교통상황을 체크해 운행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정체에 대비한 국도를 알아본다. ▷서울→천안구간◁ 경부고속도로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미리 어느정도의 정체는 예상해야 할 것이다. 올해는 톨게이트까지의 진입로가 4차선으로 확장됐다고 하지만 어느 일부구간의 확장만으로는 이미 몰려드는 교통량을 소화하지 못하는 상태이므로 정체가 예상된다는 판단에서 이다. 서울에서 천안까지는 서울∼부산구간의 약4분의1거리에 해당하는데 고속도로이용차량의 70%이상이 몰리는 구간. 이 구간까지는 서울 영등포에서 안양을 거쳐 북수원IC∼수원∼오산∼평택등으로 이어져 천안에 이르는 1번 국도 이용이 고속도로보다는 수월할 전망이다. 이 구간(다른 국도도 마찬가지)에는 물론 신호등도 있고 보행자횡단보도도 있어 중간중간 정차해야하는 곳이 많으나 극심한 고속도로의 정체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전구간◁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대전에 이르는 국도로는 17번국도가 있다. 서울에서 가려면 양재동쪽에서 성남을 거쳐 용인∼양지∼진천∼청주로 갈수 있으며 성남∼용인구간은 45번국도,용인∼청주구간은 17번국도이다. ▷인천→천안구간◁ 인천지역을 비롯한 경기도 서부지역에서 출발하려는 차량이 천안부근까지 가기위한 국도로 이용해 봄직한 길이다. 인천에서 42번국도를 타고 안산을 거쳐 반월∼수원구간이나 북수원IC∼수원구간을 이용,다시 1번국도로 접어들어 오산∼평택∼천안에 이르는 길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안산→새물구간◁ 서울 서부지역과 경기 서부지역에서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원주 등 강원도 쪽으로 가기 위한 국도로 안산에서 42번 국도를이용,수원까지 간뒤 수원IC∼용인∼이천∼여주∼원주로 가는 길이다.원주∼새말구간으로 연장,영동 쪽으로 가는 구간으로 이용할 수 있다. ▷서울→새말구간◁ 앞서와 같은 방향이나 수원쪽을 안 거치고 영동쪽으로 가는 길이다. 서울∼와부∼횡성∼새말구간의 국도6번도로를 이용,영동쪽으로 갈 수 있다. ▷대전EXPO지역 우회도로◁ 서울등 중부지역에서 힘들게 충청지방까지 갔다가 대전의 EXPO지역에 이르러 정체돼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는 청주와 서청주IC에서 조치원으로 빠져나와 아래쪽인 종천∼유성으로 우회하는 1번국도와 36번국도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이 국도를 이용,호남선으로 접어든다면 전남북지방쪽 길도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경부·중부고속도로를 피해 충청지방까지 가는 요령들이었으나 이미 고속도로를 이용한 차량이 정체를 피해 고속도로를 빠져나가려 한다면 앞서 말한 국도와 연결되는 분기점을 잘 이용하면 된다. 천안부근까지 이른 차량들은 다음 요령을 잘 유의하면 수월할 듯. ▷천안→호남구간◁천안IC에서 1번국도로 나와 행정∼조치원∼유성∼논산으로 가는 방향과 행정에서 23번국도로 공주∼논산으로 가는 방향 등이다. 지금까지 서울·수도권지역에서 출발하는 귀성차량들이 유의해 이용할 국도 등을 알아봤다. 한편 고속도로 이용차량들은 이번 추석연휴기간에 잠원·반포·서초·천안·청원IC등 경부고속도로의 5곳과 중부고속도로의 광주·곤지암등 2곳은 IC로 진입할 수 없다. 경찰청과 도로공사가 고속도로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통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의 양재·판교·옥천·남이IC와 중부고속도로의 상일·하일·하남·증평·서청주IC는 소통이 가능하다. 또 이 가운데 서초IC는 진입시 갓길에 한해서만 부분적으로 진입이 허용된다. 고속·시외버스들은 IC의 진입이 모두 허용되지만 8t이상 화물차량은 경부고속도로 서울∼천안간 하행선 운행이 전면 금지된다. 고속도로 통행과 관련,한국도로공사는 서울과 동서울 톨게이트에 모두 5개소의 버스전용 요금정산소를 설치,만성 적체를 줄일 방침이며 고속도로 주요지점에 구급차 60대와 견인차등 구난차 1백20여대를 배치,운영케 된다.
  • 이신우/작품집 출간·패션쇼 준비/이영희/파리서 한복 80여점 전시

    ○…국내 정상급 디자어너 이신우씨가 「오리지널 리」브랜드 창립25주년을 맞아 자서전과 작품집출판을 비롯,전시회·패션쇼등 다채로운 행사를 펼친다. 68년 디자이너로 입문,현재「오리지널 리」·「영우」·「쏘씨에」·「이신우 옴므」·「이신우 컬렉션」등 5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이씨는 올 3월에 이어 오는 10월13일 프랑스파리 프레타포르테(기성복)컬렉션에 두번째 참가하는 등 국내외에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올 봄 한복디자이너에서 양장디자이너로 변신,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 데뷔한 디자이너 이영희씨는 10월 15일 면·마·실크를 소재로 한복의 소박하고 투박한 이미지를 강조한 작품 80여점을 파리의 패션전문가들에게 다시 선보인다.
  • 연극연출가 유덕형(이세기의 인물탐구:36)

    ◎실험·전위적 무대로 연극계에 선풍/갈등­대립 이원성 강조… 살아있는 예술 추구/70년대 「알라망」「초분」으로 국제적 명성얻어/“작품마다 충격과 감동” 호평… 81년 「산씻김」이후 긴 침묵 서울예전 학장실에는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은빛쇳조각으로 만든 해와 달과 별과 지구모형이 문을 열고 닫을때마다 미세하게 움직인다.아마도 외부공간에 설치되어 있었다면 햇빛따라,구름따라 좀더 현란한 변화를 보였을지도 모른다.또는 모빌의 움직임에서 금속성의 차가운 음향이 들렸을지도 모른다.그러나 모빌은 실내공간에 고요히 고정되어 절제된 미동만으로 색다른 소우주를 형성해내고 있다.이것이 바로 유덕형연극의 내면세계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 모빌은 물론 오리지널은 아니다.미국에서 본 칼더의 작품을 그가 본떠서 만들어 걸어놓은 것이다. 그는 남산을 배경으로 한 창을 등지고 앉아 태양을 둘러싼 행성의 움직임을 때때로 조용히 응시하고 있다.뭔가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모색하려는 기미다.그러나 그의 의중을 꿰뚫어 알 사람은 그곳에는 한사람도 없다. 60년대말 한국 연극계에 회오리를 몰고온 그는 70년대와 80년대를 잇는 10여년 참으로 많은 감동과 충격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그리고 그의 행적을 논할 때마다 「새로움」이라든가 「최초」 또는 「충격」은 그를 둘러싼 당연한 수식어가 돼버렸다. ○젊은 연출가에 찬사 첫번째 충격은 해럴드 핀터의 「생일파티」다.이 연극에서 그는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온 다른 연극과는 달리 무대전체가 싱싱하게 살아움직이는 생동감을 살렸다.사이키델릭 조명과 숨가쁘게 전개되는 율동,그가 연극에서 추구해마지않던 이원성의 문제가 여기서도 제기되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연극의 재미를 고조시켜 나갔다.이른바 물질문명과 기계문명,황금만능주의 속에서 한 인간이 무기력하게 세뇌당하는 과정을 입체추상으로 그리고 있다.관객 또한 연극의 화려함을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매스컴도 한국연극계의 거목인 동랑의 2세로서가 아니라 한 재능있는 젊은 연출가의 지적탐험과 실험정신에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냈다.그러나 보수주의와 리얼리즘 연극을 고수하려는 일부 계층의 부정적인 시각이 교차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빛과 소리와 움직임의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초분」에 이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또한번 센세이셔널한 화제를 뿌렸다. 「초분」의 첫번째 공연은 극도로 제한된 극한상황에서도 무대의 확대가능성,무대조작의 자유분방함이 시도되었고 질서와 혼란이라는 대립개념을 앞세워 주술적인 대사와 침묵,행동 또는 움직임과 정지에 대한 실험이 변증법적으로 이어졌다.해탈과 열반,샤머니즘과 토테미즘,다양한 색깔의 조명은 시각연극,움직이는 연극,살아있는 회화의 무대를 한층 강조해주었다. 이번에도 평자와 각 매스컴이 「초분」호평 일변도였으나 그의 부친인 동랑은 전혀 이와 의견을 달리했다. 『너는 관객을 친구로 생각지 않는다.너무나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려는 것은 관객을 모독하는 일이다』 그러면서도 아들의 철저한 실험정신을 내심 사랑한 그는 『겪어야 할 아픔이라면 철저하게 겪으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다. 그는 다음해인74년 이 연극을 가지고 뉴욕공연길에 올랐다. 여전히 갈등대립의 이원적 요소를 강조하면서 한국공연에서의 모던댄스를 고도로 절제된 동양무술로 바꾸고 음과 양 제의적 동작과 시적 무대만으로 한국어를 모르는 미국인의 가슴을 일시에 움직였다. ○연극의 새방향 제시 세계적 연극이론가인 그로토프스키와 로열셰익스피어 극단 연출가 피터 부룩은 『새로운 연극이 찾고 있는 방향을 성공적으로 제시』했음을 명쾌하게 호평했다.이 뉴욕공연중 그가 그처럼 존경하던 부친의 타계소식에 접했고 그는 끝내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단지 『연극인이면 언제나 무대에 남으라』던 부친의 평소 소신대로 그는 그시간에 무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다음해 세번째 「초분」을 공연했다.이번에는 관객의 지적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초분」이 지닌 무수한 대립의 감정을 미련없이 깨뜨려버렸다. 예를 들어 조명도 흑과 백의 콘트라스트로,의상도 흑백,선·리듬·시간과 공간·무게의 모든 다이내믹스까지도 철저히 파괴해버렸다.앞의 두 공연을 미련없이 무효로 돌려버리게 됐을때 그는 비로소 성숙을 느꼈다.아마도 연륜과 체험의 대가없이는 다다를 수 없는 깨달음일 것이다.이제 일반관객도 그의 실험극들에 대해 좀더 친근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는 시종 「충격」과 「실험정신」 「전위정신」이 깃든,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완벽주의와 예술지상주의를 꾀하려는 자세로 작품에 임한다.아마도 신들린 상태가 아니라면 감히 누구도 꿈꾸지 못했을 다양한 시도를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밀어붙인 것같다. 충격도 그렇지만 그는 수많은 「최초」를 기록하고 있다.69년 미국에서 돌아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연출작품발표회」를 가진 것과 2년후 필리핀 마닐라 카링거 앙상블극단 초청으로 「알라망」연출,국제극예술협회(ITI) 명예회장 로자몬드 길더여사로부터 『이 연극은 피터 부룩도 질투할만하다』는 세계무대에서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73년 ITI 모스크바총회때 한국대표로는 처음 공식참가하게 되자 그는 한때 세계적인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소련 입국소식은 국내 주요신문들의 1면을 장식했고귀국후엔 각신문에다 소련방문기와 소련에서 찍어온 사진을 연재했다. ○동낭선생의 큰 아들 그는 우리 연극사에서 비중있는 위치인 동낭 유치진선생과 희곡작가인 심재순여사의 3남매중 장남.누나부부도(유인형·안민수씨)도 연극연출가다. 한때는 과학문명시대에 대비한다는 자세로 연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했으나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아 영문과로 다시 전과,음악·발레·그림·사진찍기에 집착했고 미국 유학시절에는 무대장치를 만드는 아르바이트로 학교에 다녔다.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외에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영상연극의 기수인 로버트 윌슨.브루클린음대 아카데미서 막올린 「요시프 스탈린 생애와 시대」는 저녁 7시에서 다음날 아침 7시까지 이어진 12시간짜리 공연으로 시각적·청각적 공간,어느 순간에도 보이는 것,들리는 것으로 일관된 특이한 무대로 감명받았다. 연극에서는 그가 아무리 한국전통을 강조할 때라도 언제나 실험적·전위적이란 말이 따라다니게 마련이며 그것은 아마도 「창조하는 자」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자」라는 최대의 찬사일 것이다.그럼에도 그는 이번이 마지막 작품이라는 각오로 작품에 임하고 작품이 끝날 때마다 바닥이 보이는 듯한 절망감에 빠진다. 그의 연출에서의 이원성처럼 그는 성격·처세·취미에서 이중구조 내지 복합삼각주와도 같은 형태를 띤다. 헌칠하고 깨끗한 외모에 만년청년같은 모습,지금도 블루진과 하얀 터틀넥에 골덴자켓이 어울리고 마음에 드는 토론이나 의견을 말할 때는 점점더 목소리가 고조되어 온힘으로 말하고 한번 입을 다물면 말을 잃은 소년처럼 우울한 구석을 비치기도 한다.이따금 「크레믈린」이란 별명을 듣지만 일상생활이나 예술에서 미혹이나 현혹은 없다.예의가 바르고 지적이며 낯가림이 심한 편. 미국유학시절 트리니티대에서 만난 부인 제니스 유도 본래는 아동극 연출가.그와는 문화·풍속·민족 모든 것이 다른 이질이란 점에 호감을 느꼈고 그는 신비한 것,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좋아한다. 연대신방과를 나온 아들 태균(23)은 뉴욕대서 연극연출,딸 미아(20)는 브라운대서 오페라연출을 공부하고 있다. 사람은 두가지일을 똑같이 잘할 수 없다는 결론 때문에 그는 「산씻김」이후 긴 침묵을 지키면서 아시안게임·88서울올림픽·대전엑스포등 행사와 여러 연극의 조명에만 손댈뿐 아직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은 칼더의 모빌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러나 지금 그는 학교라는 연극을 연출하고 있다.그곳에 있는 학생과 교수들이 그에겐 등장인물이고 스태프다.학교의 프로그램 모두가 극중사건이다.정말 학교마당에선 옆에 있는 사람은 아랑곳없이 대사연습에 열중한 학생들과 밤낮없이 왁자지껄하다.더구나 예술전문대 학장이란 문화운동을 할 수 있는 자리다.미국에서 종족음악 강의를 하겠다고 국악을 소재로 한 작곡을 부탁해오면 사람을 부르고 중매를 서기도 한다. ○무대 조명에만 손대 그런중에도 작품에 대한 집착은 핵심에 도사려 있다. 인간이 변하면 얼마나 변하나,극단적인 이상주의 추구는 어디까지인가,예술에서의 완성은 있는가.결국 그가 추구하는 것은 살아 움직이는 회화의 세계,그러나 내용·색깔·동작·대사 모든 것을 절제하고 생략한 맨 마지막 정점.그의 예술의 끝은 태양을 응시하던 카뮈의 요나처럼 어쩌면 무대위에 「점」하나를 찍는 일일지도 모른다. ▷연보◁ ▲1938년 1월 서울출생 ▲1962년 연세대 영문학과 졸업 ▲1966년 미 트리니티대 대학원 연극학과 졸업 ▲1968년 미 예일대 연극대학원 박사과정 ▲1963년 미 댈라스 연극센터연구단원(체호프 「세자매」,셰익스피어 「코미디 오브 에러스」연출) ▲1966년 캐나다·미국연극계 시찰 ▲1967년 미국교육연극연합회(AETA)회원,뉴욕 레인즈 무대미술제작요원,엘비 「작은앨리스」,포드 「빨간인디언」,오스본 「성난 얼굴로 돌아보다」연출,마이클 케인 「라생문」연출·장치·의상·조명(댈라스시어터 센터서 4개월장기공연) ▲1969년 극단드라마센터 상임연출가 ▲1970년 서울연극학교교장 ▲1971년 국제극예술협회(ITI)런던총회 한국대표참석 및 필리핀 연극제참가 ▲1973년 ITI 모스크바총회 한국대표참석 및 제3분과 이란연극제참가 ▲1974년 서울예술전문학교 교장 ▲1976년 ITI 베네수엘라 총회 한국대표참석 및 유엔주최 「환경의 해」세미나 및 페스티벌,캐나다밴쿠버회의 참석 ▲1977년 유엔주최 「세계어린이의 해」 기념행사 준비위원국 뉴욕회의 한국대표 ▲1979·81년 제3세계 연극연구소(TWITAS)뉴욕회의 운영위원회 참석 ▲1969년 유덕형 연출작품발표회,김종달작 「갈색 머리카락」,브르크작 「낯선 사나이」,유치진작 「자아비판」등 연출(드라마센터),윤대성작 「미친 동물의 역사」(70년),해럴드 핀터작 「생일파티」(70년),필리핀 마닐라 카링거 앙상블극단 「알라망(Alhamang)」연출(71년),동랑레퍼토리 오태석작 「초분」(73·74년 뉴욕·75년 서울),오태석작 「태」(74년),유치진작 「마의 태자」(75년),동랑레퍼토리 미국 및 유럽 순회공연(77년),최인훈작 「봄이 오면 산에 들에」(80년),이현화작 「산씻김」(81년)등 연출,연세대 개교 100주년 기념공연 「한여름밤의 꿈」(85년),동랑청소년극단 윤대성작 「방황하는 별들」(85년)「꿈꾸는 별들」(86년),오닐작 「밤으로의 긴 여로」(88년),88예술단창단공연 오태석작 「새불」등 조명. 서울세종문화회관 운영위원,국제극예술협회(ITI)한국본부부위원장,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AESTE)한국본부이사,예술의 전당 건립추진위원회 위원,한국방송공사 자문위원,서울올림픽조직위 문화식전국장,서울올림픽 폐회식 제작단장,대전엑스포 전문위원 현재 서울예술전문대학장 동아연극상,서울신문 문화대상,마닐라시장 문화표창상,한국연극 영화예술상,중앙문화대상
  • 머뭇거림 없는 물갈이혁명/우홍제(데스크시각)

    이제 우리 국민들은 공직자 재산공개와 관련,많은 사실들을 매우 명확히 알수 있게 됐다. 우선 한 나라의 경제를 망치고 정치 사회적 윤리기반을 무너뜨리는 투기를 선도하면서 인플레를 부추긴 자들의 숨겨진 실상을 낱낱이 확인했다.또 고위공직자들인 이들이 과연 어떤 마음가짐으로 국가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했는지도,더불어 앞으로 어떻게 할것인지도 어렵잖게 가늠할수 있게 됐다.더이상 선양이란 낱말이 어울리지 않게되어 앞으로 정치활동에서 손을 떼야만 할 인사들이 누구인지도 알게 됐다. ○투기범 상층부에 부동산 투기꾼들이 대거 적발되고 거액의 세금이 추징되는 소란이 수십번 있어 왔지만 그래도 투기심리가 생생하게 살아 있었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됐다.그린벨트 규제 완화설은 공직자들의 소유분이 많아서 기회만 있으면 튀어 나온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지도층 엘리트답게 재산증식3분법에 따라 부동산 예금·증권으로 부를 축적했을 것이고 이번 재산공개때 예금 증권이 적은 것은 가·차명등으로 교묘히 위장 분산시켰을것이란 짐작도 쉽게 할수 있는게 요즘 분위기다.역시 신고규모가 적었지만 값비싼 보석류가 많을 것이란 점도 생각못할사람이 없다. 우리는 그동안 투기란 말이 나올때마다 「동네 북」격으로 주로 재벌기업을 질타했다. 기술개발등의 확대 발전적 투자는 뒷전으로 미루고 부동산 등의 투기에 열을 올렸음을 매도했다.투기와 관련된 이들의 비리는 구체적인 숫자로 자주 밝혀졌던 바이다. 그러나 지난 봄에 이은 이번 재산공개로 정·관·경의 상위계층이 부패의 공범자임은 거듭 확인된 셈이다. 모든 분야에 있어 발전의 가장 큰 장애가 되는 병목(Bottleneck)은 병의 아래가 아니라 언제나 상층부에 있음은 깨끗한 사회건설을 위해 잊혀져선 안될 경구일 것이다. 이런 항변을 하는 사회정서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비록 부도덕한 방법을 쓰거나 직위를 이용해서 치부했다 치더라도 어느 누가 이들에게 선뜻 돌을 던질만큼 투기와 축재를 외면하고 살았는가.때문에 넓게 보면 누구나가 다 부패의 무리에 속하는게 아닌가 하는 셈이다. ○「모두 부패」의 함정소년이 던지는 돌과 개구리의 이솝우화에 빗대어 재산공개파동의 조기종료를 강조하는 견해도 적지 않다. 그렇지만 많이 가진자들이 거액의 뭉칫돈으로 투기열풍을 일으킬 때 가난한 서민이 몇푼 안되는 부동산 매입에 참여했다고 이를 부정축재의 공범행위로 서슴없이 몰아 붙일수 있을까. 그것은 차라리 없는자 적게 가진자들이 상대적 빈곤감·박탈감에서 벗어나고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자신감을 얻기 위한 애처로운 몸부림으로 이해되는게 보다 정확한 시각일 게다. 이같은 맥락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새 문민정부가 정·관계의 대대적이고 근본적인 물갈이혁명을 추진함에 있어 조금도 머뭇거릴게 없는 것으로 본다고 해도 지나친 얘기는 아닐 것이다. 물론 정화조치에 따른 정치·행정부문의 공백현상이 우려되긴 하지만 먼 국가장래의 득실을 고려하면 그러한 현상은 일시적인 금단증세일 뿐이다.이러한 증세가 완전치유될 때 일반국민들은 기꺼이 마음속으로부터 새 정부의 개혁에 동참할 것은 두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어떤 국가사회가 부정부패의 오랜 껍질을 깨고 깨끗하게 새 모습을 갖출수 있는 기회는 매우 드문 사실을 세계 역사는 잘 말해준다.○기득층 대난설 유포 그런 관점에서 실명제와 재산공개라는 2대혁명적 장치를 어렵사리 확립한 신한국시대는 깨끗한사회 조성노력을 단회성으로 끝낼수는 도저히 없는 일이며 이같은 장치의 역동작용을 항구적으로 유지시킴으로써 화석처럼 마비된 공직사회의 윤리감각을 확연히 일깨워야 할 것이다. 실명제·재산공개에 따른 부의 영향을 확대해석하면서 그럴듯한 대란설까지 들먹이는 기득권계층의 목소리 때문에 개혁의 강도가 낮아지거나 그 속도가 늦춰질 수는 없다. 이들 계층은 언제나 변화이전의 상태로 복귀하려는 속성과 과거 즐거웠던 시절이 다시 오리란 환상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 여류명창 성창순씨(이세기의 인물탐구:35)

    ◎동·서편제 통달한 판소리의 달인/혼신 다한 소리인생 40년… “한 서린 득음” 정평/빼어난 성조·변화무쌍한 음색에 관객 매료/서예·국악기에도 깊은 조예… 「심청가」로 인간문화재에 성창순은 본래 강산제 「심청가」로 인간문화재가 된 여류명창의 한사람이다.음이 낮고 처절한 「심청가」는 전곡이 지나치게 구성지고 구슬퍼서 극장공연 첫날에는 소리하는 이들이 기피하는 곡이기도 하다.그러나 일명 서편제로 불리는 성창순 「심청가」는 4시간반의 완창을 변화무쌍하고도 맛갈지게 구사하여 지루감을 없앤 것이 특징이다. 부친 심봉사를 그리워하며 심황후가 기러기편에 편지쓰는 대목에서 「한자쓰고 눈물짓고 두자쓰고 한숨쉴제 눈물이 먼저 떨어져 글자마다 수묵이 되어」는 이조가곡과도 같은 우아미와 품격을 지녀 독특한 성음이 빼어난 것으로 손꼽힌다. 애절한 계면조뿐아니라 흥부가중에서 「놀부심술타령」 「제비로정기」 「왼갖비단타령」등 숨막히게 전개되는 자진몰이 휘몰이 속에다 우람지고 담대한 가락을 얹어 「달기가 승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흥·청의 심맥 고수 그는 판소리는 넘어가는 가락과 내뽑는 목청에 흥과 청을 담아 판소리의 심맥인 「흥청거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정신을 지키고 있다.그래서 그의 무대는 언제 어디서나 흥취가 넘치고 그의 연희는 유유하고 자적하다. 최근 몇년간은 남도락에 심취하여 지난봄 국악대공연에서는 느린 육자배기에다 잦은 중몰이장단,개구리타령으로 절정을 이루더니 흥타령에서 축 늘어진 후 진도아리랑으로 활기를 되찾는 신명나는 한마당을 펼쳤었다. 「사람이 살면은 몇백년을 살드란 말이냐 죽음에 들어서 남녀노소가 있느냐 살아생전에 객기로 맘대로 놀아볼거나」 가사의 끝이 「거나」나 「구나」로 끝나는 육자배기는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곡이면서도 잘 부르려면 가장 어려운 곡으로 「그의 육자배기는 늦은 진양조장단에 한이 듬뿍 배어 멋으로 일렁이는 유장한 가락이 일품」이라는 것이 황병익교수(이대)의 말이다. 지난 6월에는 KBS홀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관현악과 판소리 「춘향가」의 협연을 갖기도 했다. 이「춘향가」관현악곡은 작곡가 김희조씨가 성창순명창과의 협연을 위해 8개월간에 걸쳐 재구성하여 편곡한 것으로 생소한 관현악연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황하거나 머뭇거리는 기색없이 마치 수만군을 거느린 여중호걸처럼 2시간30분의 완창을 당당한 풍모로 이끌어나갔다. 한복차림에 쥘부채,고수 한사람의 북장단에 의존하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판소리의 색다른 멋과 음악적 변화를 보인 역시 돋보인 무대로 지적된다. 북반주에 맞춘 판소리공연에서는 즉흥적인 「아니리」와 「발림」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지만 엄격한 제한을 받게 되는 관현악연주에도 그는 대로를 가로지르는 곧고 시원한 통큰소리,익살과 애조와 애원의 성음치레로 관객의 흥겨움을 흥청망청 당겨주었다. 타고난 재능과 기량이 번뜩이는 재인과는 달리 그는 끈질긴 노력과 집념으로 자신을 발전시키고 운명을 개척해온 입지전적인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한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해내고야 말며 「죽으면 죽었지 2등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오기와 배짱이 그것이다. ○예향 광주서 출생 그의 판소리 입문부터가 말못할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는 지나가는 길손도 단가 한마디씩은 부른다는 전남의 예향 광주에서 태어났다.부친은 권번에서 북을 가르치던 명고수 성원목씨.어릴때부터 북장단을 즐기고 동네 굿구경에 날저무는 줄 모를만큼 예살(예살)이 거센 편이었으나 부친은 이를 극구 말려 걸핏하면 매맞기 일쑤,집안에 갇히기가 일쑤였다.그렇다고 해서 중간에 포기하거나 기죽을 그가 아니었다.오히려 부친에게 『나는 소리를 배우겠소,그렇지 않으면 집을 나가든지.어쨌든 시집이나 가서 고생하는 여자는 되지 않을 거요』하고 맞섰다.그리고 몇날을 울며불며 밥을 굶고 몸져눕자 「딸자식 하나 없는 셈치고」 부친이 져주었고 광주 북동에 있는 소리선생에게 소리를 배우게 해주었다. 그러나 이번엔 선생이 『저아이는 소리에는 소질이 없으니 잘 키워서 시집이나 보내라』고 했다.대경실색을 할 일이었으나 그는 내색없이 『소질이 없기는 왜 없어.두고보라지,내가 못해낼 줄 알고?』 이러고 학교를 때려치우고는김연수창극단에 입단해버렸다.그때 나이 15세.그러나 여기서도 소질을 인정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그시절에 만난 오정숙·박옥진은 스승으로부터 장래성을 인정받고 있는 유망주로 죽어도 남에게 뒤질 수 없는 그의 심경은 못내 참담하기만 했다. 『두고보자.지금은 너희가 나보다 나은 줄 알지만 여기서 물러날 내가 아니다』 그들의 소리연습을 엿보면서 그는 한편으로는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악기라면 다소 자신이 있었다.어릴때부터 부친의 북장단이 귀에 익어 어떤 악기도 낯설거나 불편하지 않았다.가야금·거문고·칠현금을 배우는 동안에도 그는 소리한번 제대로 배우고 말겠다는 집념을 떨치지 못했다.그렇게 4년을 보내고 5·16직후 국극단이 해산해버리자 서울로 올라왔다. 단성사근처 와룡동에 정착하여 박초월씨에게 거문고를 배우다가 소문으로만 듣고 있던 만정 김소희씨의 문하에서 동편제소리인 강산풍월과 심청가 바디를 넘겨받는 과정에서 생전처음 『갈고 닦으면 좀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칭찬을 들었다.그후 김소희씨의 권유로 보성소리를 배우기 위해 전남 보성군 회천면 도강재에 있는 정응민선생을 찾아나섰다.보성소리는 판소리 서편제중 전남 보성을 중심으로 연고를 맺고 있는 소리꾼들만의 소리제로 우조·평조·덜렁제·경두름제의 다양한 음색과 감칠맛이 특색이었다. 율포해수욕장에서 인적없는 여우고개를 넘어야 하는 30리길 산골,밥상을 갖다놓으면 물이 줄줄 흘러내릴만큼 바닥이 기울어지는 누추한 단칸방에서 그는 그를 구제하는 소리의 진수에 빠져 모진 고생을 감내하는 뼈저린 과정을 거쳤다.하루 15시간에서 어느때는 18시간,삭신이 늘어지고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듯했으나 불에 구운 왕소금으로 부운 목을 달래면서 그는 오로지 소리에만 매달렸다. 눈속에 발이 푹푹 빠지는 혹독한 겨울,여름내내 4개월동안 긴장마가 계속되는 궂은 날씨에도 기울어진 방에 앉아 목청을 뽑던 고된 수련과 공력은 이제는 그의 일생일대 아름다운 추억일 수밖에 없다.그로 인해 박유전∼정응민∼그의 아드님인 정권진으로 이어지는 보성소리계보에 4대째로 「소리호적」을 올리게 되었고 그는 부친이 소리를 배우지 못하게 했을 때처럼 또다시 두다리를 뻗고 대성통곡 했다.이번엔 남들이 듣고 있는 명인·명창 칭호가 그에게도 무관하지 않다는 감동과 기쁨의 눈물이었다. 보성에서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대꼬챙이처럼 말라서 이번엔 하성이 나오지 않았다.숨돌릴 사이도 없이 그는 곧바로 환갑이 다된 박록주선생을 모시고 안양에 있는 삼막사로 들어갔다.쇠약해질대로 쇠약해 있었으나 몸속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오히려 힘이 되었다. 스승은 『명랑하게 불러라.소리는 미련해야만 한다.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그리고 인분을 먹어야만 낼 수 있다는 소리를 너는 네 집념과 오기로 백일만에 끌어냈다고 말했다.그는 마침내 한스럽고도 깊고 장려한 그러나 구슬처럼 청명한 소리를 얻어내고야 만 것이다.진양조 여섯박자를 능란하게 엮어낼 수 있게 되자 그는 「적벽가」에 나오는 한문의 뜻을 알기 위해 이번엔 우전 신호렬선생에게 서예와 한문을 배웠다.마음이 밝아지자 눈도 밝아지는 듯했다. ○청명한 소리 얻어 68년부터 명창대회에 나가기 시작하여 수많은 해외공연,75년 남원 춘향제때는 우산을 쓴 관중들이 빽빽이 늘어선 마당 한가운데로 나가 심청가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소리에 자신이 취해 빗소리도 관중의 술렁거림도 들리지 않았었다.그리고 내게서 빠져나간 소리가 관객의 가슴속에 전달됐다가 다시 내몸속으로 들어오는 자유자재로운 차원을 경험할 수 있었다.이른바 「소리가 앵기면서」 솟구치는 환희가 분류처럼 가슴 한복판을 꿰뚫듯이 흘러내렸다. 이제 동편제 서편제의 갈래를 성큼 뛰어넘어 모든 난관을 딛고 일어선 초월의 경지,요즘은 소리속에 온자한 깊이가 배어들고 있는 시기다.더구나 지난해 4월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결혼한 부군 양명환씨가 모든 뒷바라지를 책임지고 있어 마음 편하게 「소리」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그가 이루고 싶은대로 모든 소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그는 명창 칭호에 손색이 없는 반듯한 예술가의 단행을 평생 지키고 싶은 또하나의 소원을 지니고 있다. ▷연보◁ ▲1934년 1월10일 전남 광주출생 ▲1950년 광주여고1년때 김연수 창극단입단,조선국극단등 여성국극단에서 창극 활동 ▲1955년 공기남선생에게 「심청가」2년 사사,한만갑제 거문고 김난주씨에게 사사,강태홍제 가야금 원옥화씨에게 사사,춤광대 김영철씨에게 칠현금 사사 ▲1961년 만정 김소희씨에게 「심청가」「흥보가」3년간 사사 ▲1964년 전남 보성 정응민씨에게 강산제 판소리(박유전판)「심청가」「춘향가」「수궁가」사사 ▲1965년 박록주씨에게 안양 삼막사에서 백일공부 ▲1965년부터 우전 신호렬씨에게 한문과 서예 사사 ▲1968년 신인서예전 서예부 특선,제17회 국전 서예부 입선,국악협회 주최 명창대회 「춘향가」로 세종상 ▲1969년 김소희씨와 일본 교포위문공연 ▲1975년 일본 오사카에서 판소리「흥보가」「민요」공연,유럽지역 순회공연(파리∼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1977년 「심청가」완창(4시간30분) 서울시민회관별관 ▲1979년 「춘향가」완창(5시간30분) 세종문화회관대강당 ▲1980년 일본 와세다대학서 「심청가」공연 ▲1981년 제1회 대한민국 국악제에서 「심청가」완창공연 ▲1984년 신재효100주년기념공연 「춘향가」공연(국립극장 대극장) ▲1985년 「춘향가」전판공연(국립극장대극장),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 후보자 지정·국악협회 이사 ▲1988년 「심청가」 서독 쾰른음대 초청공연 ▲1990년이후 해마다 국악대공연 ▲1991년 강산제 판소리「심청가」로 인간문화재 지정,미국 카네기홀에서 「심청가」「춘향가」공연 ▲1992년 「심청가」완창(국립극장)과 예술의 전당 야외음악당 공연,일본 도쿄서「심청가」공연,대한민국 국악제 독창,사단법인 새한전통예술보존회 설립·이사장취임 ▲1993년5월 호주 브리즈번 세계음악제에 한국대표로 출연,6월 KBS국악관현악단과 「춘향가」완창공연,부산문화극장에서 판소리 5마당 큰잔치 「심청가」공연,7월 새한전통예술 보존회 설립기념 「민족예술국악대공연」 ▲1977년부터 국악고·추계예술대·단국대·전남대 출강 KBS 제1회 국악대상 수상·국악부문 방송대상 수상 「춘향가」「심청가」「흥보가」(오아시스레코드사 출반)
  • 인간띠 잇기(외언내언)

    발트3국 하면 2차대전 직전 독소밀약으로 옛소련에 병합되었다가 고르바초프개혁후 그 옛소련으로부터 제일먼저 분리독립한 나라들로 유명하다.이들이 동원한 가장 중요한 의사표시 수단의 하나가 인간사슬 시위운동 이었다.2백만의 시민이 나서서 3국의 수도를 잇는 6백㎞의 인간사슬을 만들어 분리독립의 비원을 옛소련과 세계에 과시했던 것이다. 89년의 일이며 인간사슬 시위의 효시다.반공과 독립의 목적달성을 위해 고안된 비폭력 평화시위의 방법이었다.그것이 최근엔 반전과 환경보호등의 평화시위 수단으로 널리 애용되게 되었다. 지난봄 우리나라에도 상륙해 남산의 자연을 지키기위한 최초의 인간사슬 시위가 있었다.환경과 자연보호의 인간사슬이었다.누구에게라기보다 스스로 다짐하는 뜻깊은 평화시위였다. 그 인간사슬이 15일 광복 48주년을 맞아 우리의 민족적 비원인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다시 형성된다.속박의 인상을 주는 「사슬」이란 용어대신 연결과 통일의 협력을 상징하는 「띠」라는 말을 사용한 「인간의 띠」운동 인 것이다.한국기독교협의회가 주축이 된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남북 인간띠 잇기대회 본부」(공동대회장 최희섭목사등 5명)가 주관하고 있다. 처음엔 남측이 독립문에서 판문점까지 그리고 북측이 개성에서 판문점까지를 잇는 남북통일의 인간띠를 만들자는 것이었으나 북측의 거부로 우리만 독립문에서 임진각까지 48㎞ 구간을 연결하게 된것이다.5만2천여 시민의 자발적 참여가 예상되고 있는데 역시 아쉬운 것은 북한의 불참이다.북한의 정치선동 행사인 범민족대회와 함께 열자는 트집이다. 자유·평화·인권을 상징하는 인간의 띠 운동이 정말 필요한 곳은 탄압과 속박의 땅 북한이라 생각하는데….남북의 통일인간띠가 한라산에서 서울과 평양 그리고 백두산으로 이어지는 그날은 언제쯤일까.안타까울 뿐이다.
  • 엑스포 개막에 부쳐/우리의 내일이 거기 있기에…(특별기고)

    ◎새로운 도약의 목표 설정하는 자리로 대전에 사는 나에겐 93대전엑스포는 파헤쳐진 길들과 뿌리를 드러내고 시드는 가로수들,때를 가리지 않는 교통체증,흙을 한껏 싣고 마구 달리는 트럭들 따위 짜증나는 일들로 먼저 다가왔다.개장까지 남은 날들을 알리는 전광판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짜증은 「이렇게 벌여놓은 공사들이 그대까지?」라는 걱정에 밀려났다. 대중매체들은 준비가 예정대로 되어간다고 보도했지만 어수선한 행사장을 지날 때마다 걱정은 되살아났다.그래서 개장을 한주일 앞두고 행사장을 찾았을 때 나는 먼저 마무리작업들을 하는 사람들에게 제때에 끝낼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늘 거의없어 문제 잘 되어간다는 대답을 듣고 한결 느긋해진 마음으로 둘러본 행사장의 첫인상은 좀 실망스러웠다.공사가 덜 끝나서 어수선하다는 사정도 있었을 것이고 텔레비전의 화면을 통해 본 세상은 현실보다 훨씬 깔끔하고 환상적이어서 나도 모르게 기대가 컸던 까닭도 있었을 것이다.그러나 실제로 부족한 점들도 적지 않았다.전시관들은 대체로 겉모습이 속에 든 것들보다 나았다.전시관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따로 노는 듯했다. 관객들의 처지에서 살피면서 시설을 마련하려고 애쓴 자취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그늘이 거의 없다는 것이 당장 큰 문제였다.단체관람을 와서 팔월의 뙤약볕 아래 여러 시간을 보낼 학생들을 생각하면 끔찍했다).무엇보다도 마음 한구석에 늘 얹혀 있던 걱정 하나가 현실로 나타났으니 국제박람회여서 행사장의 중심인데도 국제관은 초라했다.앞선 사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음이 이내 눈에 띄어서 특히 서운했다. 그러나 부족한 점들을 꼽으면서도 나는 알고 있었다.그것들이 준비할 시간이 워낙 짧았다는 사정에서 나왔음을,그래서 기일을 맞춘 것 자체가 큰 성취임을.게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맞는 행사는 얼마나 품이 많이 들고 어려운가. ○어린이프로 많아 그 사이에도 국민학교 4학년인 딸아이는 연방 탄성을 내면서 처음 보는 프로그램들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녀석이 눈썰미가 있어서 나는 어떻게 하는지 짐작하기도 어려운 프로그램들과 기구들을 제법 구슬리는 것을 보고선 기분이 문득 좋아졌다.그러고보니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이 아이들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아이들을 위해서 만든 것들도 많았다.엑스포의 주제가 미래의 모습이므로 미래의 무대에서 활동할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많다는 것은 무척 흐뭇했다. 그러나 우리의 미래는 그런 단편적 프로그램들에 나온 모습들을 한데 모으면 저절로 모습을 갖추고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우리는 어떤 사회를 바라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을 때 비로소 구체적 모습을 갖춘다. 시민들의 눈길이 미래를 향한 자리이므로 엑스포는 그런 물음을 던지기 좋은 곳이다.바로 그것이 1893년에 콜럼버스의 아메리카대륙 재발견 4백주년을 기려 시카고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미국 역사가 헨리 애덤스가 생각한 것이다.이제는 고전이 된 자서전 「헨리 애덤스의 교육」에서 그는 『시카고는 1893년에 처음으로 미국 사람들, 그들이 어디로 달려가는지 아느냐는 물음을 던졌다』라고 썼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그런 물음을 던질 수 있었던 기회는 88서울올림픽이었다.시민들의 희망과 도덕심이 한껏 고양되었던 그때 우리가 그런 물음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음은 어느 모로 보나 성공적이었던 그 행사가 우리 사회에 별다른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는 사실이 아프게 일깨워준다. ○서울평화상이 상징 돌아다보면 우리는 그때 열린 사회를 지향해야 했음이 또렷이 드러난다.그러나 우리는 그런 목표를 찾지 못했고 시민들의 한껏 고양된 도덕적 에너지는 스러졌다.시민들의 동의 없이 정부가 급작스레 만들어서 뚜렷한 성격조차 찾지 못한 채 표류하다가 끝내 사라지게 된 서울평화상이 그 사실을 상징한다. 이제 우리에겐 그런 물음을 던질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국제화와 정보화가 중요한 경향인 현대에서 여러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배우고 즐기는 국제박람회보다 그런 일에 더 나은 자리가 어디 있을까. 게다가 지난 봄에 도덕적 권위를 가진 정권이 들어서면서 사회의 지속적 발전에 필요한 조건들 가운데 이전엔 채워지지 못한 중요한 조건 하나가 채워졌다.이처럼 좋은 기회를 맞아 우리가 그런 물음을 던지지 못한다면,아마도 이번 엑스포도 서울 올림픽처럼 우리 사회에 별다른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이다. 아주 짧은 기간에 마련해서 천만명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에게 배우고 즐길 자리를 내놓는 것은 대단한 성취다.그러나 이번 엑스포가 그런 성취만으로 끝나고,우리가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말로 아까운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 앞날 험난한 새 내각(호소카와 새 일본:2)

    ◎“한지붕밑 8당”… 정책조율 힘들듯/“중대사태 발생땐 혼란 초래” 지적/정치지도력·정권유지는 미지수 ○자민시대 막내려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총리.일본정치사의 한 페이지가 새로 넘겨지고 있다.일본정치의 자민당 단독지배 시대가 38년만에 막을 내리고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고 있다. 일본정치는 이제 신세대 지도자인 「호소카와 총리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호소카와 일본신당대표는 제79대 총리에 취임한다.50번째 총리이자 비자민계로는 38년만에 처음이 된다.국회선출절차가 남아 있어 정식취임은 6일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호소카와의 등장은 한마디로 일본정치의 대전환을 상징하는 것이다.호소카와는 일본신당을 창당한지 불과 1년2개월만에 총리에 오르게 된다.일본정치구조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올해 55세인 호소카와가 일본의 최고 지도자로 등장하는 것은 원로 지도자들에 의한 일본 전후정치의 종언을 의미한다.야당으로 전락한 자민당도 50대의 고노 요헤이(하야양평)를 새 총재로 선출함으로써 일본정치는 이제 명실공히 뉴 리더에 의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이같은 세대교체로 일본정치의 역학구조도 크게 바뀌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시작은 동시에 혼란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그래서 전환기에 등장하게 되는 호소카와정권은 많은 불안요소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호소카와정부는 의회민주주의 역사상 거의 예가 없는 8개당파가 한 지붕밑에 모인 연립정권이다.각당의 이념과 정책,체질도 다르다.이들은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며 각당의 정책과 이념의 차이는 미해결의 장으로 남겨둔채 연립정권을 탄생시키고 있다.때문에 걸프전과 같은 중대사태가 발생할 경우 혼란이 일어나 적절히 대응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연립정권의 유일한 접착제는 정치개혁이다.이에따라 호소카와정권은 정치개혁을 위한 잠정정권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일부 정치평론가들은 정치개혁을 끝낸후 연내나 내년 봄쯤 국회해산·총선이 다시 실시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한다. ○예산 2번쯤 편성 그러나 잠정정권론에 대한반대론도 만만치 않다.바로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신생당 대표간사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오자와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연립정권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그는 지난 1일 『호소카와내각으로 예산을 2번쯤 편성하고 싶다』는 의미있는 말을 했다.적어도 내년말까지는 호소카와내각을 존속시키겠다는 시사인 것이다.호소카와정부는 잠정정권이 아닌 본격정권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본격정권 시나리오의 표면적 이유는 국민들의 동요를 막겠다는 것이다.그러나 그 이면에는 정치적 계산도 깔려 있다.자민당의 정권탈환 가능성을 줄이고 정권의 책임을 보다 오랫동안 공유함으로써 현실적인 정책으로의 전환을 통해 각당의 정책차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오자와의 「2대정당론」정계재편을 위한 환경정리라 할 수 있다. 호소카와정부가 잠정정권으로 끝날지,아니면 본격정권으로 안정을 유지할지는 호소카와의 정치지도력과 함께 미지수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강력한 미래의 일본을 구상하고 있는 뉴 리더들이 일본정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호소카와총리는 『오늘은 역사적인 날이다』라고 말했다.그의 말대로 일본정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 “이젠 고국품서 편히 쉬소서”/임정요인 5위 상해서 돌아오던 날

    ◎공항서 봉영식후 국립묘지로/연도시민들 발길 멈추고 묵념 조국광복의 한을 안고 이역땅에서 눈을 감은 선열5위가 그토록 그리던 고국 하늘을 숨쉰 5일 온 국민들은 뜨거운 가슴으로 이들을 맞았다.1시간35분거리인 지척의 중국 상해에 이들을 두고 70여년동안 고국에 유택을 마련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간직해온 국민들은 고개숙여 선열의 가르침을 소중하게 간직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유해도착및 봉영식◁ 이날 상오11시34분 상해를 떠난 임정선열 5위의 유해는 하오1시6분 대한항공 KE6146 특별기편으로 서울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3군의장단의 도열을 받아 입국장을 빠져나온 유해 행렬은 수방사 군악대의 「고향의 봄」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국제선청사 귀빈주차장에 마련된 제단으로 옮겨졌다. 이날 봉영식은 영정과 유해가 임시분향소에 안치된 하오2시4분쯤부터 황인성국무총리등 정부관계자와 김승곤광복회회장,국가유공자,유가족등 2백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영사낭독,헌화,분향의 순으로 진행됐다. 봉영식을 지켜본 박은식선생의 며느리 최윤신씨(77)는 『목이 메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이제야 먼저간 남편(박시창·전 광복회장)의 소원을 푼것 같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또 노구를 이끌고 전주에서 올라온 김인전선생의 딸 김영영씨(89)는 말을 잘하지 못해 아들 최순팔씨(54)를 통해 『며칠을 울었는지 모른다.15살때 헤어지고 이렇게 죽기전에 유해나마 다시 만나뵙게 되어 말할수 없이 기쁘다』면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운구행렬◁ 봉영식을 마친 유해행렬은 하오2시25분쯤 16대의 군용지프와 버스 9대에 선열의 유해와 유족들이 나눠타고 경찰사이드카 20여대의 선도를 받으며 김포공항을 떠났다. 유해봉환행렬이 영등포네거리를 지나는동안 길가던 시민들은 손을 흔들며 경건한 마음으로 유해행렬을 맞았다. 노량진역 주변의 시민들도 노상에서 육교위등에서 잠시 멈춰 서 행렬을 바라보며 뒤늦게나마 유해가 돌아온 것을 다행스러워 했다. 또 시민들중 일부는 유해행렬이 지나는 동안 잠시 고개를 숙이고 묵념,선열들에 대한 추모의 뜻을 표시하기도 했다.▷국립묘지안치◁ 유해는 예정보다 10분 늦은 하오3시5분쯤 동작구 국립묘지 현충관에 도착했다. 5위의 영정과 훈장·유골함은 유가족,유관단체 관계자등이 엄숙히 지켜보는 가운데 도열병 15명에 의해 오른쪽부터 김인전·신규식·박은식·노백린·안태국선생의 순으로 현충관안에 마련된 영현봉안관으로 옮겨져 안치됐다. 이어 국회의원대표 장기욱의원과 이충길국가보훈처차장등 2명이 분향·참배하고 유족대표 20여명이 묵념을 올렸다. 백범 김구선생을 20여년동안 모시다 지난 3월 타계한 백강 조경환선생의 사촌계수인 김김이(74)·유남(69)자매는 하오2시쯤부터 영현봉안관앞에 나와 선열 5위의 봉안과정을 지켜보며 묵념을 올린뒤 『이번 영현봉안이 민족혼을 되살리는 계기가 돼야할 것』이라며 남다른 감회를 피력했다.
  • 남자현여사/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 선정/항일단체 결속 앞장선 「독립군의 어머니」/서로군정서가입,일제관리 독살 기도/투옥·부상동지들 정성껏 보살피기도/임종땐 평생 모은돈 「독립축하금」으로 희사 「독립군의 어머니」로 통했던 남자현여사는 1873년 12월7일 경북 안동군 일직면 일직동에서 영남의 석학인 부친 남정한씨의 3남매중 막내딸로 태어났다.19세에 경북 영양군 석보면 지경동에 사는 의성김씨 김영주에게 시집을 가 단란한 생활을 꾸렸으나 일제의 만행이 점차 극성을 부리자 남편 김씨는 1896년 여사에게 『나라가 망해 가는데 어찌 집에 홀로 있을 것인가』『지하에서 다시 보자』며 결사보국을 결심하고 의병활동에 나섰으나 곧 총탄에 맞아 전사한다. 남편의 전사소식을 들은 여사는 복수심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3대독자 유복자인 아들과 시모를 봉양하지 않을 수 없어 양잠을 하며 손수 명주를 짜 내다 팔아 가계를 이어 나갔다.여사 나이 46세에 일어난 1919년 3·1운동은 여사에게 남편의 원수 갚기를 결심하도록 만든다.항일 구국하는길만이 원한을 갚는 길임을 깨닫고 아들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중국 요녕성 통화현에 정착하게 된다.여사는 우선 그 곳에서 활동하는 비밀무장단체 서로군정서에 가입,군인들의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하면서 한편으로는 북만주일대의 농촌을 누비며 12개의 교회를 건립한다.여성계몽에도 힘써 10여개의 여자교육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망명생활 6년을 맞은 1925년에는 조선총독을 독살하기 위해 동료 한 명과 함께 국내에 잠입,거사를 추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망명지로 되돌아 가야 했다.마침 인근 길림주민회장인 이규동과 편강렬·양기탁등이 각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음을 알고 독립운동단체들을 믿아다니며 통합을 독려,상당한 성과를 거둔다. 1927년 봄 상해 임시정부 요인인 안창호선생이 길림 조양문 밖에서 나석주의사 추도회 겸 민족장래에 대한 강연회를 독립운동단체 간부·지방유지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하자 일제는 중국 헌병사령관을 협박,안선생등 3백명을 무차별 체포했다. 여사는 안선생뿐아니라 투옥중인 애국지사들이 보석으로 석방될 때까지 옥바라지를 정성껏 했다. 일제는 1931년 9월 소위 만주사변을 일으켜 여사의 망명지 요녕성뿐아니라 길림성에까지 침략의 손길을 뻗자 안선생과 함께 보석으로 풀려난 독립운동단체 핵심간부인 김동삼은 할 수 없이 길림성을 떠나 하얼빈의 한 애국지사 집에 묵고 있다가 일경에게 체포된다.아무도 김동삼과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여사는 그의 친척으로 위장,면회를 허가받고 연락책 역할을 거뜬히 해낸다.여사는 김동삼의 지시내용과 정보사항을 동지에게 전달하는 동시에 그가 국내에 호송될 때 빼돌릴 계획도 세웠으나 시간이 촉박한 바람에 일은 성사되지 못했다.그러나 여사의 슬기롭고 대담무쌍한 기질이 없었다면 감히 생각하지도 못할 계획이었던 것이다.여성다움도 잃지 않았던 여사는 항일운동중 병들고 상처받아 고생하는 애국청년들에게는 항상 고향의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운 손길로 위로·격려했다. 여사는 1932년 9월 국제연맹조사단이 침략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하얼빈에 파견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일제의 만행을 조사단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 왼쪽 약손가락 두마디를 잘라 흰 천에다 「조선독립원」이라는 혈서를 쓴뒤잘린 손가락마디와 함께 조사단에 전달했다.민족의 강인한 독립정신을 인식시키면서 간악한 일인들에게 속지 말도록 호소하기 위함이었다.여사의 항일정신은 날이 갈수록 더욱 강성해졌고 남편의 복수심은 꺼질 줄 몰랐다. 여사는 1933년 초 동료들과 소위 만주국 건국일인 3월1일에 주만주국 일본전권대사 부도 노부요시(무등신의)를 독살하기로 하고 그해 2월29일 거지로 변장,폭탄·권총 1정과 탄환등을 몸에 숨기고 하얼빈에서 장춘(당시는 신경)으로 가던 중 일영사관 형사에게 발각돼 붙잡히게 된다.일본군에게 전사당한 남편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편단심으로 14년간 동분서주하던 여사는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영어의 몸이 된다.여사는 잔악한 일경들의 고문을 6개월이나 버텨냈다. 여자의 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일경의 혹독한 고문을 이겨냈다. 여사는 그해 8월 마침내 죽기로 결심,옥중에서 15일동안의 단식투쟁을 벌인다.악독한 일경들도 여사의 강인한 저항에 두 손을 들고 여사를 석방했다.그러나 여사는 6개월에 걸친 옥중생활로 이미 죽은 몸이나 다름없었다.여사는 즉시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져 입원치료를 받고 하얼빈에 있는 여관에서 가료를 받았으나 옥중에서의 고문 후유증을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1933년 8월22일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여사는 임종을 맞을때까지도 항일의지를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유복자인 아들을 앞에 앉히고는 보따리를 풀어 중국화폐 2백48원을 내놓은 뒤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면 독립축하금으로 희사하라』고 당부했다.여사는 또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있다.독립운동은 정신으로 이루어 진다』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유족들은 여사의 뜻대로 1946년 3월1일 조국광복후 서울운동장에서 거행된 3·1절 기념식전에서 독립축하금으로 여사가 남긴 돈을 김구·이승만선생에게 전달한다. 정부는 여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마천마을 희생정신/겸양으로 더 빛나다

    ◎“할일 했을 뿐인데”… 찬사 “사절”/김대통령의 평가에 오히려 감사/흥분 가라앉히고 다시 논·밭일 열중 『사람으로서 할일을 했을 뿐인데…』 지난 26일 해남 아시아나 여객기 추락사고현장에 온몸으로 뛰어들어 생존자를 구조했던 해남 마천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는 것을 오히려 계면쩍어 했다. 「사랑의 실천」이니,「국민정신의 덕목」이니 하는 갖가지 화려한 찬사가 마천마을에 쏟아지고 있으나 그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논에서 김을 매던 주민 천용진씨(45)는 『대통령의 이처럼 아름다운 희생정신은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는 감사의 뜻이 오히려 고마울 뿐』이라며 『이번 사고로 부서진 마을식수원을 대신해 정수장을 마련해주고 마을 길을 포장해준다니 뭔가 빚을 지게된것만 같다』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44명의 생존자들을 죽음에서 건져낸 1백53명의 사람들이 살고있는 마천 마을은 봄이면 복숭아꽃 살구꽃피고 한여름이면 매미가 울어대는 평범한 산골마을이다. 10년전만 하더라도 마을 집이 1백호 가까이 되었지만 지금은 이농현상으로 47가구로 줄었고 빈집만도 10여채나 된다. 사고 4일째인 29일의 마천마을은 여느 산골마을처럼 차라리 적막하기까지 했다.마을 사람들은 태고적부터 해온대로 이날도 바로 66명의 목숨과 함께 산산조각 나버린 여객기가 떨어진 운거산과 마을사이에 널려진 논·밭에서 논두렁 풀을 깎고 담뱃잎 수확으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김영삼대통령이 직접 방문했다는 흥분도,사고소식을 듣고 생존자를 한사람이라도 더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실낱같은 길조차 없는 1㎞의 산길을 단숨에 내달았던 그날의 격렬함따위는 벌써 오래전일인듯 했다. 평화스런 산골마을에 끔찍한 참사가 있었다는 흔적은 임시 영안실이 설치됐던 마을 저편의 화원동국민학교에서 마지막 환경정리작업을 하는 군·경찰과 공무원 몇몇의 바쁜 발길에서나 애써 찾아 볼 수있을 뿐이었다. 이 마을 주민들이 사고이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사고 당일 현장에 달려갔던 어린이들이 밤이 되면 무서움을 전보다 더 탄다는 점. 추은숙씨(32·여)는 『아이들이 자면서 깜짝깜짝 놀라고 잘때는 예전과 달리 꼭 엄마·아빠와 함께 자려한다』고 귀띔해 준다. 동네 어른들이 『비행기가 떨어졌으니 사람들을 살리러 가자』고 나설때 멋모르고 앞서 달려나갔던 어린이들이 눈앞에 펼쳐진 참상의 잔영을 씻어내지 못하고 몸살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날 맨먼저 참사현장에 도착해 생존자를 업고나온 것은 어른들이 아니라 바로 마을 꼬마들이었다. 마천동네에서는 옛날 여객기 추락지점에 절터가 있다해서 절골로 통하는 사고현장은 이 동네의 식수원으로 사람들의 접근을 철저히 금하고 있었기 때문에 길이 전혀 없었다. 어른들은 낫과 삽으로 나무와 가시덤불을 치고 새롭게 길을 만들며 가느라 늦었지만 야산을 놀이터 삼아 뛰어놀던 어린이들은 다람쥐처럼 숲속을 빠져 나갔다. 어른들이 현장에 가까이 접근했을 때 어른들을 앞질러 내달았던 꼬마들은 벌써 자기 또래의 꼬마를 떠메고 내려오고 있었다고 부모들은 어린이들의 활약상을 무용담처럼 들려줬다. 그러나 막상 생존자들을 구할때는 멋모르고 용감했던 어린이들도 날이 어두워지며 밤이 되면 엄마·아빠품을 파고 들더라는 것. 이날 사고 첫 신고자 김현식씨(21)로부터 사고소식을 처음 듣고 뒷수습을 현장에서 지휘했던 이 마을 이장 김진석씨(60)는 『우리마을 사람들의 순박함은 그저 타고난 대로 이지만 부상자 운반을 위해 이웃들이 입었던 옷을 찢어 임시들것을 만들때는 「이장을 더 오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주민들의 희생정신을 고마워했다.
  • 일 정치구조 지각변동 돌입/비자민 연정구성 합의의 의미

    ◎자민­「선구」 연합시도 끝내 좌절/새달 특별국회서 새정권 탄생 일본정치의 자민당지배가 끝나고 비자민연립정부의 탄생이 확실해지고 있다.일본정치는 이에따라 정권교체라는 구조적 대전환을 하며 연립정부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연립정부 총리후보로는 하타 쓰토무 신생당당수와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일본신당대표가 유력시되고 있다.차세대지도자인 이들의 등장은 일본의 전후정치가 막을 내리고 차세대 지도자에 의한 새로운 일본정치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비자민연립정부의 구성은 일본정국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일본신당과 신당 사키가케 대표가 28일 신생,사회,공명,민사,사민련 등 비자민세력과의 회담에서 연립정권구성에 합의함에 따라 확실해졌다.비자민세력은 자민당보다 의석수가 많아 8월에 열리는 특별국회에서의 총리선출투표에서 승리,새로운 정권을 출범시킬 것으로 보인다. 일본신당과 신당 사키가케는 이에앞서 비자민5당과 마지막 문제로 남아있던 정책협조와 관련,「현정권의 제도와 정책을 계승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7당 정책담당자들은 일본신당 등이 연립정부참가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정책협조문제와 관련,27·28일 이틀동안 헌법,안보,자위대,한국정책,일·미관계 등 당면의 정책과제에 대해 광범위하게 논의했으며 문제의 사회당이 유연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합의에 도달했다.7당은 29일 당수회담을 갖고 비자민연립정부구성에 최종 합의한 후 이에따른 문제들도 협의할 예정이다. 자민당은 정권유지를 위해 일본신당 등이 제안한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 선거제도개혁을 서둘러 수용하는 등 마지막 「대역전」을 모색했으나 끝내 일본신당과 신당 사키가케의 협력을 얻는데 실패했다. 비자민연립정부의 출범은 지난 48년 아시타내각이후 45년만의 본격적인 연립정부의 탄생과 함께 38년간의 자민당 1당지배가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자민당정치는 전후 고도경제성장을 실현하며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발전시키는 등 큰 업적을 남겼으나 구조적 부패와 자기개혁실패로 야당으로 전락하고 있다. 비자민연립정부의 총리후보로는 하타 쓰토무 신생당당수와 호소카와 일본신당대표를 중심으로 조정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현 단계에서는 정권담당경험이 있는 하타당수가 유력시되고 있다.그러나 사회당과 신당 사키가케에 하타당수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있어 호소카와대표가 총리후보가 될 가능성도 있다. 비자민연립정부구성에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신생당 대표간사가 막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오자와는 일본신당 등의 협력을 얻기위해 적극적인 막후공작을 펼쳐왔다.그러나 비자민연립정권은 정책차이 등 불안한 요소가 많아 정권기반이 취약할 것으로 보이며 정치개혁을 위한 잠정정권의 성격이 강하다. 많은 정치평론가들은 내년봄 국회가 해산되고 총선이 다시 실시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비자민세력은 선거제도개혁과 다음 총선을 거치며 재집결될 것으로 보이며 자민당도 가토(가등)그룹의 일부 탈당에 이어 개혁파들이 이탈,재분열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정치는 7·18총선에서 자민당이 과반수의석 확보에 실패한데 이어 비자민연립정부에 의한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고 있다.자민당1당지배는 냉전대응형 정치구조로 어느 면에서는 바람직한 정치시스템이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냉전종식과 함께 자민당1당지배도 끝나고 있다.이제 일본은 국제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정치시스템 모색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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