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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北核협상 경협과 병행을

    2003년 한해는 대북송금 특검법 수용,핵문제,6자회담 그리고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 등 정치·군사적으로 남북문제가 매우 혼란스러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간에 비정치적 분야인 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협력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종전에 비해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 정경분리가 성숙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더욱이 남북간에 지속적인 접촉과 협상을 통해 한국토지개발공사가 내년 봄 착공예정인 개성공단 시범단지와 별도로 현대아산은 1만평 규모의 시범단지를 또다시 조성한다고 한다.실제로 통일부 장관(월간 한국통일 2003년 11호)에 의하면,지난 5년 8개월간 남북간에 104회에 이르는 각급의 회담이 개최되고,인적 왕래가 5만명을 넘어섰으며,89년 연간 1872만달러로 시작된 남북교역도 연간 6억달러 규모로 성장했고,8000명의 이산가족들의 만남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사회와 국제사회 일각에는 남북간 교류협력 및 발전을 속으로 달가워하지 않는 저항세력이 있는 것 같다. 국내적으로는 북한불변론과 퍼주기론으로 대변되는일부 보수적 여론집단의 저항은 여전하다.국제적으로는 미,일,러,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이해는 매우 민감하다.중국은 통일한국을 의식해 이미 고구려,발해의 역사를 왜곡하기 시작했다.미국도 6·15 남북공동선언의 지나친 강조를 꺼려하는 것 같다.비근한 예로 지난 11월19일 YMCA 주최 비공개 간담회에서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는 핵문제 해결과 연관하여 대북경협 신중론을 강하게 폈다. 국내외적인 남북교류협력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논리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이 현실로 확인되고 있다.누가 뭐래도 남북이 이념을 초월하여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분야는 우선적으로 경제협력분야이다.남북경협은 북한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남한기업인과 남한경제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하다.한국토지개발공사는 개성공단에서 월 임금을 57.5달러(약 6만원)로 책정했다고 한다.그래서 일본 고이즈미 총리조차도 2002년 9월 일본인 납치문제에 만족할 만한 해결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방북해 북·일수교를 서둘러 북한시장을 개척하려고 안간힘을 쓴 것이다. 참여정부 들어 대북송금 특검법 수용으로 인해 금강산 관광을 비롯한 남북교류협력 자체에 종사하는 모든 인사를 일반 파렴치범으로 형사처벌하는 쪽으로 몰아가는 듯한 분위기는 남북경협추진에 치명적이었다.현대 정몽헌 회장의 자살은 그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지난 정부에서 대북사업을 비롯한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었다면 국민적 이해와 비판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본다.그러나 절차상 문제로 인해 남북정상회담과 금강산 관광 자체가 갖고 있는 민족적 대의라는 상징성과 남북한 경제발전이라는 민족적 실리를 백지화하거나 불온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아직도 우리사회 내부에 남북경협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하지 못하는 지도층이 많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특히 정치권이 남북문제를 당리당략 차원에서 정쟁화하여 남북경협 4대합의서의 국회비준동의를 2년 이상이나 지연시킨 것은 국민적 비판을 강하게 받아야 한다고 본다.물론 북한도 단기적이득에 급급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남한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완비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핵문제가 아무리 급하더라도 어차피 해결하는 데는 많은 시간을 요한다.과거처럼 남북문제를 양자택일로 보는 흑백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핵문제 해결 이전에는 경협추진을 유보해야 한다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못 된다.그러므로 핵문제와 경협문제는 반드시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그 이유는 북한의 핵카드가 근본적으로 북한의 에너지난 해결과 경제적 실리를 얻기 위한 몸부림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오히려 핵문제,남북경협 병행추진이 핵문제를 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장 희 한국외대 교수 국제법
  • 기고/고구려가 중국의 역사라니

    중국이 고구려의 역사를 자기들의 변방사로 편입하려 한다고 해서 우리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있다.중국의 주장이 부당하다고 말하기도 전에,솔직히,불쾌하고 불안하다.진짜 어느 정도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가,아니면 그들 특유의 막무가내식 소행인가. 중국은 유구한 역사 속에서 나름대로 앞선 문명을 갖추었던 나라다.근현대에는 서세동점의 소용돌이에서 서양의 총포 앞에 철저히 망가졌어도 한 세기 지나지 않아 다시 재기하는 데 상당한 성공도 거두고 있다.세계 경제대국 대열에 성큼 다가서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한편으로 중국은 이해하기 힘든 비문명적 행동을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자주 저지르는 것 같아 나로서는 수수께끼 국가다.공감하는 세계의 정세로는 50,60년대 전후해서는 식민국가들이 대거 독립하는 시기였는데 중국이 티베트를 공산식민화한 것은 이때다.얼마 전에는 티베트의 망명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민간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오려는 계획을 정부에 압력을 넣어 끝내 무산시켰다. 대만은 대만인들이 원해서 중국 본토에서 갈라선 것이고 지금도 다수의 대만주민은 중국과 합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이제는 국호도 중화민국이라고 하지 않고 대만공화국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한다.(이것은 미국과 소련 사이의 이해관계 속에서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갈라진 그리고 지금 남북 국민 대다수가 통일을 희망하는 남한과 북한의 분단과는 사정이 다르다.) 그럼에도 중국은 하나의 중국이 있을 뿐이라며 대만을 수시 위협하고 있다. 인권의 탄압과 유린의 측면에서도 중국은 자유세계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자국내의 정치 사회 종교 활동은 사사건건 제한되고 있다.법륜공의 활동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좋은 예다.2008년 북경올림픽개최는 중국의 인권개선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자유민주주의국가들이 인권상황을 비판하고 있다.게다가 중국당국은 목숨걸고 북한을 탈출한 망명자들을 실력으로 저지하여 북으로 되돌려보내는 비인도적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서해에서는 밤마다 수백 척의 중국 도적선박들이 우리 수역에 쳐들어와 남획과 약탈을 일삼고 있는데도 중국 정부는 모른 체 태연자약하다.어떻게 대명천지에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고기의 씨가 마르도록 쓸어가 이웃나라 어민의 생계를 위협하고서도 사과도 없고 대책도 내놓지 않는다. 그러더니 이제는 고구려가 중국역사라고 한다.수 양제를 무찌르고 당 태종을 쳐부순 것이 생생한 우리의 산 고구려역사인데 이거 정말로 느닷없고 뜬금없다.일본이 독도를 욕심내는 것보다 중국이 고구려를 강탈하려는 것이 내가 보기에는 열 배는 더 탐욕스러워 보인다. 북경대학의 한 강의실에서 한반도의 통일에 대한 찬반을 묻는 질문에 절대다수의 중국학생들이 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는 특파원의 글을 읽었다.나는 기득의 세대에는 기대가 없어도 새로운 세대에는 늘 희망을 건다.그것이 비단 반도 한국인만이 아니라 중국인이어도 일본인이어도 그렇다.그들로부터는 반도의 통일도 가능하고 세계평화의 대행진을 위한 아시아의 연대도 가능하다고 믿는다.그들은 미래의 자유와 평화를 향한 순수한 공존공영의 열정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중국이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중국은 자신을돌아볼 필요가 있다.문명국 중국이(문명국을 자부한다면)주변 국가들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그리고 전통적 이웃으로서 남북통일을 비롯한 한반도 제반 문제에 중국의 역할과 사명이 무엇인지도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주었으면 한다.그런데 우리 삼천리 금수강산의 아름다운 봄을 송두리째 앗아간 것도 중국이 보낸 황사라는 사실은 아는가. 황필홍 단국대 교수 명예논설위원
  • [박진환의 덩크슛] ‘명감독’의 시련

    필자가 프로농구 모비스의 최희암 감독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1990년 봄 대학대회 연세대-중앙대의 경기 때였다.경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세대 오성식(현 SK)의 세번째 반칙이 선언되자 당시 연세대 사령탑이던 최 감독은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거친 항의가 이어졌고 심판은 농구룰에 정해진 시간이 지나자 여지없이 연세대의 몰수게임 패를 선언했다.순간 최 감독은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당시 최 감독에게서 받은 첫 인상은 순진한 학자같다는 것이었다. 93년 무렵.태릉선수촌서 만난 그는 ‘용장’으로 변해 있었다.연세대를 이끌고 국가대표팀과 연습경기를 갖던 도중 최 감독이 갑자기 센터 서장훈(현 삼성)을 불러 세웠다.그리곤 보기 민망할 정도의 호된 질책을 했다.관중이 많지는 않았지만 공개된 자리였다. 94년 여름 대학대회가 열린 잠실학생체육관서 다시 만난 최 감독은 어느새 ‘여우’로 변신해 있었다.그는 서장훈의 미국유학이 결정돼 마침 그날 확정될 예정이던 국가대표팀 합류가 불가능하다는 정보를 슬그머니 흘려줬다.필자는 내심‘특종’이라고 쾌재를 불렀으나,최 감독은 그날 아침 이미 스포츠신문에 정보를 흘려 가판을 장식하고 있었다.‘언론 플레이’까지 익힌 셈이다.이 무렵 그는 성인농구를 평정하며 최고의 인기 감독으로 발돋움했다. 그는 프로농구 출범 당시 대표적인 반대론자였다.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프로농구 출범과 함께 그는 뒷전으로 밀렸다.그를 원하는 프로팀은 있었지만 5년이 지난 뒤에야 프로무대에 발을 내디뎠다. 02∼03시즌 그는 마침내 모비스의 지휘봉을 잡아 아마추어 최고감독이 과연 프로에서도 정상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라는 관심을 모았다.생각만큼 순탄치는 않았다.전체 1순위로 뽑은 외국인선수의 기량이 기대에 못미쳐 일찌감치 퇴출시키는 등 운도 따르지 않았고,대학시절과 같은 방법으로 선수들을 다룬다는 비판도 뒤따랐다.하지만 팀을 6강 플레이오프에 올려 놓으며 ‘명장’의 체면치레는 했다. 그러면서 03∼04시즌을 별렀다.프로 분위기도 제법 익혔고,“해볼 만하다.”는 자신감도 생겼다.이번 시즌으로 계약기간도 끝난다.내심 좋은 성적을 거둬 ‘몸값’도 올려 볼 참이었다.올시즌 개막전에서 첫 퇴장의 불명예를 감수하며 승부에 집착한 것도 이 때문이다.하지만 팀은 아직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명감독’의 ‘시련'은 언제쯤 끝날까. 월간 ‘점프볼’ 편집인 pjwk@jumpball.co.kr
  • [스포츠 라운지]K­리그 득점왕 김도훈

    “내년 봄 쯤엔 장가 가야죠.” 지난 16일 막을 내린 프로축구 K-리그에서 짜릿한 막판 뒤집기로 3년만에 토종 득점왕을 되찾으며 올해를 최고의 해로 장식한 김도훈은 여전히 바빴다. ●“내년 봄에 늦장가 갑니다” K-리그를 마친 뒤 48시간 만에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 차출돼 18일 불가리아와의 A매치에 출전했고,21일 개막한 FA컵대회에 대비해 다시 경기도 용인의 구단 합숙소에서 훈련중이다.좀체 짬을 내기 어려운 빡빡한 일정의 그를 만난 건 연습 시작 30분전이었다. 구단 합숙소에서 어렵사리 만난 그에게 구구절절이 얘기를 풀어 헤치는 것이 번거로울 것만 같아 대뜸 언제쯤 국수를 먹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사실 지금까지 축구만 생각하고 뛰느라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었지만 이제는 서서히 인연 보따리를 풀 생각”이라며 “내년 봄쯤엔 결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물론 있죠.하지만 밝힐 수는 없어요.그 때 가면 알게 될 것”이라며 입을 꾹 다문다. “연습시간 5분 지각에 100만원 벌금”이라는 그의 ‘협박성 재촉’에 시간을 재면서도 물을 건 물어야 했다. 축구 말고도 다른 운동에도 관심이 있을 것 같았다.경기가 없는 날엔 골프를 친다는 그는 8년 전에 입문했으며,지금은 80대 초반 정도 친단다.“싱글까지는 아직 멀었어요.”라면서도 컨디션이 좋으면 드라이버 샷이 300야드는 훌쩍 넘는다고 자랑한다.한때는 당구도 즐겨 쳤는데 한참 쉰 탓에 요즘엔 200점 놓는 것도 무리란다. 물론 골프 동반자는 선배인 신태용 등 주로 팀 동료들이다.“예전엔 대부분 이겼는데 요즘은 지는 날이 더 많아요.내기로 돈 많이 퍼 줬어요.”라며 환하게 웃는다.화제를 돌려 극적으로 득점왕을 확정한 시즌 마지막 경기 때의 심정을 묻자 “전반에 1골을 보탠 뒤 하프타임 때 경쟁자인 마그노(전북)가 골을 넣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생겼다.후반 추가골 때는 (득점왕을)굳혔다는 확신이 생겼다.살얼음판 걷는 기분이었지만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은 결과였다.”고 말했다.일부에서 ‘용병과 토종의 자존심 대결’이라며 의미를 부여한데 대해서는 “어차피 그것도 하나의 이벤트다.심리적으로 부담도 됐지만 한편으론 도움도 됐다.”고 토로했다.그리곤 “국내리그에서 외국인선수에게 타이틀을 넘겨줄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 33세면 은퇴를 생각할 나이다.그는 “올해 같기만 한다면 은퇴는 아직 이른 것 아닌가.팀이 우승했고,별다른 부상없이 정규리그를 마쳤으니 내년 시즌을 치르고 난 다음 생각해 보겠다.”면서도 “하지만 그럴 일은 조만간은 없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은퇴 뒤엔 유럽서 지도자 연수 “은퇴 뒤에는 지도자의 길로 접어드는 게 순서라고 본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그러기 위해선 공부를 더 해야 겠지만 미국보다는 유럽쪽에서 축구 관련 분야를 두루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양아버지가 있다는 말이 사실이냐고 슬쩍 건드려 봤다.하지만 그는 “고향 통영에 계신 부모님 외에 양아버지처럼 모시는 분이 있다.”면서도 “고교 시절부터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인데 그 이상은 말 못한다.밝히지 말아 달라.”며 오히려 간곡히 부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올해는 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해다.득점왕은 마지막 순간까지 성원해준 팬들 덕에 가능했다.”며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 ■토종­용병 득점왕 경쟁사 지난 1983년 출범한 프로축구에서 토종과 용병이 득점왕을 놓고 혈전을 치른 것은 3∼4년 전부터다. 원년의 박윤기(유공·9골)와 이듬해 백종철(현대·6골) 등 토종들의 몫이던 득점왕 타이틀은 85년 태국 출신의 피아퐁(럭키금성)에게 돌아간다. 피아퐁은 21경기에서 12골을 넣어 이흥실(포철·10골),정해원(대우·7골) 등을 제치고 용병으로서는 최초로 타이틀을 움켜쥔다.피아퐁은 도움왕(6개)까지 거머쥐어 토종들을 주눅들게 했다. 하지만 이후 98년까지는 국내선수들의 독무대.94년 윤상철(LG)이 역대 최다인 24골로 생애 두번째(90년 포함) 영광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최상국(87년) 이기근(88·91년) 조긍연(89년·이상 포철) 임근재(92년·LG) 차상해(93년·포철) 노상래(95년·전남) 신태용(96년·천안) 김현석(97년) 유상철(98년·이상 울산) 등이 토종의 자존심을 지켰다. 99년 샤샤(수원)가 안정환(부산)에 2골 앞선 23골로 용병으로서는 14년만에 최고 골잡이에 오르며 토종과의 맞대결에 불을 지폈고,이후 대거 몰려든 브라질 출신들이 위세를 떨쳤다. 2000년 김도훈(15골)이 최용수(안양)를 1골차로 따돌리고 반격했지만 그것도 잠깐.이듬해에는 산드로(전북·17골)가 우성용(포항)의 추격을 뿌리치며 ‘삼바 특급’을 뽐냈고,지난해에는 에드밀손(전북·14골)이 뒤를 이었다.김도훈은 올 시즌 내내 마그노(전북)와 시소를 벌이다 마지막날 27·28호골을 터뜨려 1골차의 극적인 뒤집기에 성공했다.
  • “동료의 넋 업고 등정 계속됩니다”/내년 봄 히말라야 16좌 도전 엄홍길 씨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고 했던가.지난 14일 오후 의정부 호원동 도봉산 산행길 입구에 있는 ‘엄홍길 기념관’에서 만난 엄홍길(43)씨의 첫 인상은 너그러움이었다. 30년 동안 산을 타면서 생사의 기로에서 극한의 상황을 수없이 거쳐온 그지만 ‘한국 최고의 산악인’이라는 이름도 부끄러울 뿐이다.수천m 아래 히말라야 협곡으로 산 친구들을 10명이나 떠나보냈기 때문이다.히말라야의 칸첸중가와 얄룽캉 두 개의 봉을 오르는 데만 6명을 잃었다.그들이 잠들고 있는 히말라야 만년설을 밟으면서 그는 오르고 또 올랐다.그리고 다시 친구를 잃었다. ●캠프에 내려와서야 눈물 엄씨는 지난달 5일 해발 8400m의 히말라야 로체샤르봉 등반에서 박주훈(35),황선덕(27) 두 동료를 떠나보냈다.인터뷰 도중 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로체샤르봉 등반 시도는 두번째였다.2001년 봄에 네팔까지 갔다가 기상이 나빠 돌아오고 말았다. 지난 9월 초.다시 현지로 갔지만 진눈깨비가 계속 휘날리고 있었다.사고는 정상을 겨우 150m 눈앞에 두고 일어났다.엄씨 앞에서 올라가고 있던 박씨와 황씨가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을 때였다. “박씨와 황씨를 앞에 두고 주봉과 맞붙은 조그만 봉우리를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줄을 잡으라는 ‘앵커’라는 목소리가 앞에서 들려왔어요.순간 허리춤 고리에 걸려 있던 줄을 잡았지만 두꺼운 등산용 장갑을 다 망가뜨리며 빠져나갔고,두 대원은 3000m 아래 빙하 협곡으로 눈과 함께 떠내려갔습니다.” 엄씨는 “아무 생각없이 ‘내려가야지,살아야지.’를 되뇌며 산 중턱 캠프로 내려왔을 때에야 눈물이 북받쳤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산악계의 살아 있는 신화 엄씨는 도봉산을 고향이라고 생각한다.부모님은 지난 2000년까지 40년 가까이 도봉산 기슭에서 상점을 운영했다.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도봉산을 오르내렸다. 엄씨는 “도봉산은 나에게 산의 의미를 일깨워준 ‘모산(母山)’”이라고 말했다.중학교 2학년 때부터 도봉산 선인봉에서 바위타기를 시작한 엄씨는 고교 2학년 때 본격적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설악산,한라산 암벽·빙벽 등 ‘산악 코스’를 성년이 되기 전에 다 섭렵했다.해군특수부대에서 훈련받은 경험은 그에게 마라토너 황영조 선수보다 좋은 심폐기능을 선물했다. 처음 히말라야 정복에 나선 것은 25세인 지난 85년.세번의 시도 끝에 3년만에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의 꼭대기에 태극기를 꽂았다.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의 산악 등정 역사를 다시 썼다. 93년 초오유봉에서 시작,지난 2000년 해발 8611m의 K2를 마지막으로 히말라야 8000m 14좌 등정을 마쳤다.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이자 세계적으로 7번째다.지금까지도 히말라야 14좌를 등정한 사람이 11명에 불과하다. ●역경에 얻은 ‘히말라야의 탱크’ 별명 동료의 죽음은 별명이 ‘히말라야의 탱크’인 그를 늘 짓누른다.엄씨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분명치 않은 등반의 아픈 경험들을 모아 최근 ‘8000m의 희망과 고독’이라는 책을 펴냈다. 96년 안나푸르나봉 첫 등정에서 정상을 500m 앞두고 미끄러지는 네팔인 전문 산악족인 셰르파를 구하려다 오른쪽 발목이 으스러졌다.부러진 발목을 끌고 두 팔과 한 무릎으로 72시간 동안 수직의 빙벽을 기어 겨우 죽음으로부터 탈출했다.안나푸르나봉을 기억하기조차 싫은 이유는,네번을 실패하고 다섯번째 정복했지만 마지막 등정에서 자신보다 더 산을 사랑했던 서른여덟살의 여성대원 지현옥씨를 떠나보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탈 때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합니다.언제나 ‘죽음의 그림자’를 밟고 산을 오르는 셈입니다.” 생사의 영역을 넘나들며 그는 ‘산이 나고,내가 산’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엄씨는 “산을 타면서 인생을 배우고 삶을 터득하게 됐다.”면서 “전생에 내가 산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산이 받아줘야 사람이 죽음을 넘어 산을 오를 수 있다는 생각에 고행자와 같은 마음으로 산을 오르곤 한다.”고 했다. ●산을 더 이상 망쳐서는 안돼 20년에 가까운 ‘히말라야 생활’ 동안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특히 파상,믹마 등 네팔 셰르파들과는 형제처럼 지낸다.기회가 된다면 셰르파 유가족들을 도울 히말라야 문화재단을 만들 계획이다.히말라야 8000m 이상 봉우리를 5차례나 같이 오른스페인의 산악 영웅 후아니토 오아르자발은 오는 12월 자신을 위한 국가 기념행사에 엄씨를 초청해놓고 있다. 엄씨가 요즘 하는 걱정은 고향 같은 도봉산이 망가지는 것이다.산을 깎고 나무를 베어내는 비환경친화적인 개발이 삭막한 도시에서 커가는 아이들에게 메마른 정서만을 남겨줄 것이라고 걱정했다.물질문명 덕분에 생활은 편안해졌지만 결국 개발과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도리어 인간이 기계문명의 노예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산악인으로서 모든 명성을 얻었지만 그의 산행은 그치지 않는다. 내년 봄에는 8500m 높이의 얄룽캉봉에 도전한다.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이외에 얄룽캉봉과 로체샬봉을 등정하는 히말라야 8000m 16좌 등정을 완수하겠다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산을 오르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떠나보낸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기도 하다.힘이 있는 한 동료들의 혼을 업고 산을 오르겠다는 각오다.엄씨는 “산을 떠나는 것은 배신”이라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 ▲60년 경남 고성 출생 ▲62년 경기 의정부시 호원동도봉산 근처로 이사 ▲79년 의정부 양주고 졸업 ▲81년 해군 수중파괴타격대(UDT) 입대 ▲85년 첫 에베레스트 원정 실패 ▲88∼2000년 에베레스트(8848m),K2(8611m) 등 히말라야 8000m 이상 14좌 완등 ▲부인 이순래(33)씨와 1남1녀
  • [대한포럼] 119조원의 딜레마

    추수가 막 끝난 요즘 농촌에는 일가족 야반도주가 속출하고 있다.지난봄 영농자금을 받아 피땀 흘려 농사를 지었건만 추수를 해놓고 보니 인건비는커녕 빚 갚을 길조차 막막해서다.추수가 끝나기가 무섭게 빚독촉에 나선 농협이 야속하기만 하다.농협에 따르면 빚독촉에 시달리다 못해 밤 봇짐을 싸는 농가들이 단위조합별로 5∼10곳은 족히 될 것이라고 한다. 전국의 350만 농민들이 빚더미 위에 올라앉아 있다.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지난 1998년 이후 정부는 모두 6번의 농가부채 대책을 내놓았다.하지만 농가부채는 갈수록 늘고 있고,지난 2월 들어선 노무현 정부도 또 다른 부채 대책을 준비중이다.그러나 이번 조치로 빚을 털고 자립경영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농민들은 거의 없는 것 같다.그래서 성난 농민들이 19일 서울 여의도에서 대규모 농민시위에 나선다고 한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정부는 지난주 허겁지겁 초대형 ‘농정 로드맵’을 발표했다.향후 10년간 각종 농업 투융자 사업에 119조원을 투입한다는 내용이다.그동안 허송세월하다가 도하개발 어젠다(DDA)협상과 쌀 재협상으로 개방이 눈앞에 닥쳐서야 농민 달래기에 나서는 모습이 10년 전의 우루과이 라운드(UR) 때와 너무도 흡사하다.그때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우려된다.정부는 지난 10년간 농업에 무려 62조원을 쏟아부었다.그런데도 왜 농촌은 갈수록 피폐해지고,농민들은 빚에 억눌려 있어야 하는가? 정부는 농민 달래기에 급급한 나머지 119조원짜리 돈 보따리를 내놓기에 앞서 지난 10년의 농정 실패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반성해야 한다.그 실패의 원인은 아무리 농업 투자를 늘려도 농업의 생산성은 늘지만 농가소득 증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구조에 있다.수요 감소와 개방의 확대로 그냥 둬도 농산물 값이 하락할 판에 과잉생산을 유발해 가격폭락을 자초하기 때문이다.쌀이나 축산이나 유리온실 사업 등이 모두 증산일변도의 정책을 강행하다 실패한 예다. 필자는 한국농업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즉,관념적 농업보호론과 쌀 자급론만으로 잘사는 농촌,빚없는 농촌을 만들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350만 농가인구를 먹여 살리기에 농업은 너무도 작은 밥그릇이다.전체 인구중 농가인구는 7.5%인데 전체 소득중 농업소득은 4%도 안 된다.게다가 더 큰 문제는 한정된 시장으로 인해 농업투자를 늘려도 소득은 못 늘리고 부채만 키우는 결과를 낳고 있는 데 있다. 농촌에 투자하지 말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농가의 밥그릇을 키우려면 농업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일본 농가들은 전체 소득중 쌀에서 얻는 소득의 비율이 3%에 불과한데 우리는 이 비율이 33%나 된다.또 일본 농가들은 농외소득 비율이 87%나 되는데 우리는 50%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개방화 시대의 농정은 ‘농업 살리기냐,농민 살리기냐’의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농민의 살 길은 농외소득을 확대해 탈농재촌(脫農在村)을 유도하는 정책에서 찾아야 한다.그러려면 농정의 기본 방향을 농업에서 농촌·농민으로 전환해야 한다.산업 중심에서 지역·사람에 초점을 맞춘 정책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이를 위해 농림부의 이름을 ‘농업농촌부’로 바꾸는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더 욕심을 낸다면 유럽 국가들처럼 ‘농업농촌식품부’로 확대 개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가 다시 119조원의 돈 보따리를 농민들에게 내밀고 있다.그러나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빚쟁이를 만들어낼지 걱정이 앞선다.농민들에게 농가부채주의보를 울리고 싶다. 염 주 영 논설위원 yeomjs@
  • 1억 ↓급매물 전국서 우수수

    아파트 급매물 출하 현상이 서울 강남권에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팔려는 물건은 쌓이고 있지만 매도-매수자간 가격 괴리감이 커지면서 거래는 ‘올 스톱’됐다.서울은 물론 수도권과 지방 도시에서도 최고 1억원 이상 거품이 빠진 급매물이 나오는 등 주택시장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 이미 1억∼2억원 떨어진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1주일새 1000만∼2000만원씩 추가 하락했다.국세청 단속이 강화되면서 아예 문을 닫는 부동산중개업소도 늘고 있다. ●서울 급매물 증가, 가격하락 가속 팔자 매물은 계속 증가하는 반면 사자 주문은 거의 없다.10·29대책 발표 이후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은 매주 수천만원씩 떨어지고 있다. 서울 고덕동 아파트는 10·29대책 이전보다 호가 기준으로 1억원 정도 빠졌으나 사려는 사람이 없어 중개업소마다 급매물이 쌓였다.고덕 시영 17평형은 2억 9000만원짜리 매물이 나왔다.지난주보다 1000만원이 추가 하락,3억원선이 무너진 것이다. 고덕주공 2단지 18평형은 4억 6000만원,3단지 16평형은 3억 3000만∼3억 4000만원짜리급매물이 나오기 시작했다.10·29대책 직전에 견주어 1억∼1억 7000만원 정도 빠졌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31평형도 급매물이 계속 나오고 있다.지난주에 6억원대가 무너진 5억 9000만원짜리 매물이 등장하기도 했다.이 아파트 34평형은 8억원원을 호가하다가 최근 7억 1000만원 선으로 내렸다.개포주공1단지 13평형도 1주일새 1000만원이 추가 하락,4억 5000만원에 호가가 형성돼 있다.8억원을 웃돌았던 이 아파트 17평형은 호가가 7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서울 강북 주택시장도 침체 늪에 빠져들고 있다.거품이 많이 끼지 않아 하락폭은 강남보다 크지 않지만 거래가 끊기고 하향 안정세를 띠기는 마찬가지다.호가가 7억 5000만원까지 올랐던 목동7단지 35평형은 10·29대책 직후 7억원으로 떨어졌다가 다시 6억 8000만원대로 내려앉았다. 김치영 공인중개사는 “급매물이 증가하고 비수기가 겹쳐 내년 봄 이사철 이전까지는 가격 하락이 계속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급매물, 수도권·지방으로 확산 서울에 비해 하락세가 더뎠던 지방 아파트값도 본격적으로떨어지기 시작했다.6억원을 호가했던 용인 성복동 LG빌리지1차 53평형은 5억 3000만원대 급매물이 나왔다.분당 신도시 40평형대 아파트는 1000만∼2000만원 떨어졌고,4000만∼5000만원 빠진 급매물도 나오고 있다. 광명 철산주공,과천 원문주공,고양 원당주공 등 재건축 아파트값도 1000만∼2000만원 떨어지는 등 아파트값 하락이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방 도시 아파트값도 맥을 추지 못한다.행정수도 이전 기대감으로 값이 큰 폭으로 오른 대전 아파트값은 매수세 실종과 함께 가격 하락이 본격화됐다.호가가 3억 8000만원에 달했던 둔산동 한마루 37평형은 10·29대책 이후 6000만원 떨어졌고,만년동 강변 37평형도 4000만원 하락한 2억 6000만원짜리 급매물이 등장했다. 오진우 벤처부동산 사장은 “서울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지면서 여러 채를 갖고 있는 사람이 팔자 매물을 내놓는 바람에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다.”면서 “인기를 끌었던 노은2지구 분양권 거래도 뚝 끊겼다.”고 말했다. 부산·대구 아파트도 투기과열지구 지정 이후다주택 보유자들의 마음이 급해지면서 급매물을 내놓는 바람에 2000만∼3000만원 빠지는 등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류찬희기자 chani@
  • 경기 극과극 / 내수 ‘쩔쩔’ 수출 ‘펄펄’

    ‘떠받치는 수출,발목잡는 소비’ 우리 경제가 수출로 ‘연명’하고 있다.반도체·자동차 등 수출 물량이 늘면서 지난달 생산이 크게 늘었고,경상수지 흑자 규모도 23억달러로 50개월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반면 소비는 4년 9개월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내수와 수출의 양극화가 극명하다. 앞으로의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경기선행지수도 넉 달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마이너스로 꺾였다.그런데도 정부 당국자들은 올 4·4분기나 늦어도 내년 1분기에는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얘기만 되풀이하고 있다. ●수출에 의존한 절름발이 경제 한국은행이 29일 발표한 ‘9월 국제수지 동향(잠정)’에 따르면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23억 4900만달러로 전월(13억 9100만달러)보다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올해 경상수지 흑자규모는 한은 예상치(20억∼30억달러)를 훨씬 웃도는 10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수출이 강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수출 호조는 국내 생산도 크게 끌어올렸다.통계청이 같은 날 발표한 ‘9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산업생산은 지난 해 같은 달보다 6.6%나 증가했다.지난 6월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세다. 이에 힘입어 제조업 평균 가동률(78.7%)도 80%에 육박했다.반도체와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수출 출하량이 급증(14.3%)한 덕분이다.반도체를 제외하면 산업생산 증가율은 2.5%에 불과했다. ●멈춰선 ‘한 축’ 소비 수출과 더불어 경기의 양대 축인 소비는 좀체 살아날 기미가 없다.도·소매 판매액은 전년동월대비 3.0%가 줄어 7개월 연속 내리막길을 걸었다.감소폭도 지난 1998년 12월(-3.5%) 이후 4년 9개월만에 가장 크다.특히 백화점 판매액은 무려 14.0%나 급감했다. 10월 정기세일을 앞두고 소비자들이 구매를 늦춘 탓이 커 보인다.냉장고 등 내구 소비재 판매실적도 신통찮아 정부의 특별소비세 인하 조치를 무색케 했다. 설비투자 역시 감소세(2.3%)를 벗어나지 못했다.3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이던 경기선행지수 전년동월비도 하락세(전월대비 0.1%포인트)로 다시 돌아섰다. ●정부,“늦어도 내년 봄에는 경기 바닥치고 회복” 김민경(金民卿) 경제통계국장은 “경기선행지수가 꺾였지만 감소폭이 미미하고,설비투자도 감소세가 둔화되고 있어 경기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김 국장은 그러나 “자동차 파업 등 특수요인이 많아 정상적인 경기 판단이 어려운 데다 수출이라는 한 축만 돌아가고 있어 국면 전환을 기대하기는 아직 어렵다.”고 말했다.여전히 경기가 바닥을 다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렇다 할 대책은 내놓지 않은 채 낙관론만 펴고 있다.조윤제(趙潤濟)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29일 서울이코노미스트클럽 경영자 조찬회에서 “설비투자가 회복 준비단계에 있다.”면서 “국내 경제가 올해 4분기나 내년 1분기에 바닥을 치고 회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미현기자 hyun@
  • 집중기획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 / (하)중학교 들어가기 전에 엄마라고 부르겠다는 이은숙 양

    험하고 힘든 세상이지만 우리 주위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도 많다.이 사회를 대신해 아무런 연고도 없이 위탁아동을 친자식처럼 거두어 키우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12월5일은 설희의 생일 김미심(金美心·37·여·서울 구로구 구로5동)·오진석(吳眞錫·38·목사)씨 부부는 부모없는 아이 3명을 데려다 키우고 있다.외동딸 하나(7)양을 두고 있지만 갈 곳 없는 김설희(7·유아원)양,신재민(8·신구로초등 2년)·강현호(12·신구로초등 5년)군을 대리양육하는 이른바 위탁가정이다. 설희는 지난해 11월,재민이는 98년 봄,현호는 지난해 10월 각각 데려와 주민등록에 얹었다.다행히 친딸 하나와는 친남매처럼 잘 지낸다. 설희의 부모는 이혼 후 각각 재혼했다.갓난애 적 사진이 있지만 부모의 얼굴은 기억 속에 희미하다. “오늘 이모에게 야단을 맞았다.엄마·아빠와 함께 살던 때가 그립다.하루빨리 벗어나고 싶다.두 달만 참으면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했다.힘들어도 참아야지.” 어느 날 김씨는 우연히 현호의 일기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주위의 편견이 두려워 친딸보다 더 잘해줬는데….데리고 올 때를 생각하면 애가 이럴 수는 없는데….”잠깐이나마 후회스러운 마음이 스쳐갔다고 털어놓는다. 재민이는 조용한 성격이면서도 살갑게 다가온다고 했다.“엄마,설거지 도와드릴께요.”라고 말할 땐 가슴이 뭉클해 힘껏 안아주곤 한단다.처음엔 말도 붙이기 어려웠던 재민이는 초등학교 입학하고 나서 표정이 꽤 밝아져 김씨 부부의 마음을 홀가분하게 만들었다고 했다.고민을 덜어주려고 “이제부턴 엄마·아빠라고 불러라.”고 말한 뒤부터다.엄마·아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만족감을 얻었을 것이라고 김씨는 분석했다. 구로5동 강남교회 목사인 김씨의 남편 오씨는 “세 아이에게도 조부모 등 친인척이 있지만 이혼과 재혼을 거듭해 아이를 맡을 수 없는 가정”이라면서 “아이들 교육을 위해 성결대학에서 2년째 사회복지학 강의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가정위탁아동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중·장기 대책이 절실하다는 조언도 빠뜨리지 않았다.재민이는 아주 어릴 때 데리고와 어쩔수 없이 동사무소에 가정위탁아동으로 등록해 적은 돈이나마 지원받고 있다.그러나 설희와 현호는 언젠가 부모들이 데리러 올 것이라는 생각에 등록을 미루고 있다. 최근엔 마음을 바꿨다.자꾸 불안해져서다.아이들이 행여 뜻밖의 사고로 다치기라도 한다면 지금껏 쌓아온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뒷수습할 경제적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오씨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버티다 이마저 꽉 차는 바람에 얼마 전에는 교회 차량을 팔아 400만원을 마련했는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오는 12월5일은 설희의 생일.이들 ‘사랑의 여섯 가족’은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얘기꽃을 피울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중학교 졸업 전 엄마라 부르겠어요 유기봉(55·아산시 도고면 봉농리)씨는 부모없는 이은숙(15·아산 도고중 2년)양을 두 살 때부터 데려다 수양딸처럼 키우고 있다.유씨는 미혼인 막내 아들(28),은숙이와 한 집에 산다.아들 2명은 결혼해 분가했다. 유씨는 은숙이를 2살 때 만났다.13년 전,유씨집에 세들어 살던 은숙이 아버지는 30대 초반의 목수였다.한집에 1년쯤 같이 살았을 때 부부싸움 끝에 엄마가 은숙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다.은숙이에게 외할머니 집에서의 생활은 악몽으로 남아 있다.은숙이는 “나만 집에 남기고 매일 외출하는 외할머니와 엄마가 미웠다.”고 말했다.외할머니 집에 온 지 10여일 후 엄마는 재혼하고 은숙이는 아빠 집으로 보내졌다. 딸이 다시 돌아오고 부인이 재혼했다는 얘기를 들은 은숙이 아버지는 목수일마저 팽개치고 술로 세월을 보냈다.급기야 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간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당시 교통사고로 남편과 사별한 유씨는 초콜릿회사를 다니면서 어렵게 살았지만 은숙이를 받아들였다.졸지에 고아가 된 은숙이는 부모 없는 스트레스 탓인지 머리숱이 모두 빠지는 병을 앓았다.유씨는 매일 약을 사와 정성스럽게 돌봤다.그는 “너무 불쌍하고 속이 상해 은숙이를 부둥켜안고 울기도 숱하게 울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씨의 사랑 덕분에 은숙이는 밝게 자라주었다.성격이 밝아 친구가 많고 학교 성적도 좋은 편이다.은숙이는 아침 6시반에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수다를 떨며 등교한다.유씨는 “저것이 아니면 새벽 5시에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라며 애정어린 눈길을 보낸다. 유씨는 사춘기인 은숙이가 혹시 나쁜 길로 빠질까봐 걱정이다.어릴 적부터 친오빠처럼 은숙이를 챙겨준 유씨의 아들들도 요즘엔 신경을 더 쓴다.아주머니와 오빠들이 “아무 걱정 말고 공부만 신경써라.”라고 하지만 가끔은 부모없는 설움을 겪는다.은숙이는 “일부 친구 엄마가 ‘엄마없는 애’라고 깔봐 속상할 때가 많다.”고 했다. 유씨는 “남의 집 애를 3명이나 키웠지만 시집가니까 찾아오지도 않는다.”면서 “저것은 시집가면 찾아올라나 몰라.”라고 농담을 던졌다.은숙이는 “건축디자이너가 돼 남편,아줌마와 함께 살,잔디가 넓은 집을 짓고 싶다.지금은 부끄러워 아줌마를 엄마라고 못부르는데 중학교 졸업하기 전에 엄마라고 부르기로 다짐했다.”며 유씨의 손을 꼭 잡았다. 특별취재반 ■나현민 충남 가정위탁지원센터 팀장 “대화단절이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아이들에게는 가난 못지않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국복지재단 충남가정위탁지원센터 나현민(羅賢民·30) 팀장은 “조부모와의 세대차가 너무 커 할머니·할아버지에게 맡겨진 위탁아동들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데가 없다.”며 “고민을 숨기면서 지내서인지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아이가 많다.”고 말했다.핵가족시대여서 평소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살아오지 않은 점도 이런 현상을 부채질한다. 자녀를 규제하는 엄마·아빠가 없다 보니 절제력도 떨어진다.나 팀장은 “할머니·할아버지는 ‘어미·아비없이 크는 불쌍한 손자’로만 여겨 아이들에게 관대하다.”고 설명했다. 경제력 부재도 문제다.손자를 떠맡은 할머니·할아버지들은 대부분 남의 논밭을 부치거나 식당에 다니는 등 어렵게 살고 있다.위탁아동에 대한 지원이 현실화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가정위탁지원센터에 맡겨 위탁아동을 돌보게 하고 있으나 시·도당 3명의 월급만 지원해 손이 모자란다.”며 세대간 단절을 막으려면 부모 나이의 후견인을 둬 그들의 고민을 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또 읍·면사무소에서 가정봉사자를 파견,할머니·할아버지를 도와 위탁아동을 돌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 팀장은 “농어촌지역은 도시와 달리 친구 사이에 ‘왕따’가 심하지 않아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어린이들이 비행아동이 될 위험은 크지 않지만 농어촌도 가정해체가 가속화돼 위탁아동이 늘고 있는 만큼 사회적 관심과 보호가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가정위탁' 전문가 조언 전문가들은 가정위탁아동 문제에 대해 범정부 차원의 관심을 요구했다. 한국아동권리학회 이재연(李在然·53·여·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 회장은 “아동문제만은 아직 ‘인권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면서 “아동에 대한 정책의 방치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같은 약자층이지만 장애인,노인은 참정권 등을 통한 의사표시와 인권개선 요구가 가능하지만 아동에 대해서는 정부 등 사회적으로 보호의무가 있는 계층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현행 법률상 문제로는 협의이혼 때 양육자 지정 없이도 이혼이 가능하도록 한 허점을 꼽았다. 또 친부모 아닌 사람이 양육을 맡을 경우 ‘양육수당’의 현실화 등을 통해 정신적 부담에다 경제적 부담까지 떠안지 않도록 함으로써,아동이 정상적 여건 아래 자랄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단다. 이 회장은 “어릴 때부터 교육문제에 휘둘리는 등 우리 사회의 아동 방기(放棄)가 아동문제에 대한 무대책으로 이어지는 것”이라면서 “가정위탁아동 문제는 국가의 총체적인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세경(朴世鏡·32·여) 책임연구원도 “가정위탁아동이 좋은 환경에서 생활해도 모자랄 판인데 새 삶을 꾸려나갈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나라의 미래를 위해 나쁜 결과가 빚어진다.”면서 이 회장과 의견을 같이했다. 우선 정부가 ‘백년대계’ 차원에서 위탁가정을 대상으로 의료보험 혜택이나 교육비 지급 등 충분한 지원책이 따라야 한다고 덧붙였다.그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가정해체로 조부모가 친손자,손녀를 키울 경우 조부모에게 부모와똑같은 법률적 지위를 부여해 최상의 여건에서 결손아동을 보호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탁가정이 모여 경험을 공유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입양과는 달리 위탁받은 쪽이나 아동이 모두 친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함께 생활하는 게 보통이기 때문에 알맞은 관계설정이 절실하다는 점에서다.더 나아가서는 가정위탁아동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와 체계적인 연구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별취재반
  • 황장엽 방비 / 방미 초청한 수전 숄티 디펜스포럼 회장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대한매일은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미국방문을 초청한 디펜스포럼의 수전 숄티 회장과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황씨는 26일 미국을 방문,북한의 정세,인권문제 등에 대해 증언하고 행정부 및 의회 지도자들과 만날 예정이다.숄티 회장은 황씨가 미국에서 망명할 것이라는 소문은 황씨의 방문에 반대하는 세력이 만든 근거없는 낭설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다음은 일문일답. 황씨를 미국에 초청한 이유는. -우리는 전제정권으로부터 망명한 인사들을 미국으로 초청,연설을 들은 전례가 많다.한국이건 미국이건 자유 세계의 사람들은 망명 인사들의 증언을 듣지 않으면 전제정권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황씨는 자유를 위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으로 망명했다.우리는 그가 망명한 1997년 이래 그를 초청하려 했다.우리는 북한 정권을 다룰 최선의 방안이 무엇인지 그의 견해와 향후 전망을 듣고 싶다. 황씨의 방문은 북핵 해결을 위한 다자간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때에 이루어져 특히 관심을 모으는데. -북한의 실상에 관한 그의생각과 의견은 북핵 위기를 평화롭게 풀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상황을 개선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김정일 정권 아래서 불운하게 태어난 북한 사람들도 우리가 누리는 것과 똑같은 권리를 향유해야 한다.대량살상무기로 그들이 이웃국가를 위협하는 것이나 김정일 정권이 자기 국민들을 탄압하는 것은 다를 바가 없다.북핵 문제와 인권 문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문제다.우리는 인권문제가 북핵문제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황씨가 북한에 비판적인 증언을 할 경우 북핵사태를 외교적으로 풀려는 다자간 노력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생각지 않는가. -외교적 노력과는 별개로 진실을 숨기거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자유세계에 있는 사람들은 북한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건전한 논쟁을 계속해야 한다.북한정권을 가장 정확하고 세밀하게 알고 있는 그로부터 듣지 못한다면 누구로부터 북한의 실상을 알 수 있겠는가.황씨의 증언은 우리 후손들과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도 당연한 의무이다.북한에 관한 정보를 많이 들을수록 대북 결정에도 더 좋은결과가 나올 것이다. 황씨의 미국 망명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전혀 근거없는 낭설이다.그의 미국 방문을 무산시키려는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퍼뜨린 악의적인 소문이다.그의 방미를 허락한 한국 정부를 당황스럽게 하려는 의도도 깔려있다.망명 이래 황씨는 조국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보여줬고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증진에 그의 여생을 보내고 있다. 황씨가 김정일 정권과 관련된 폭탄급 정보를 갖고 있다고 보는가. -우리의 관심은 북한 정권에 있다.한국의 정책과 관련된 사항에는 언급할 수가 없다.우리는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이라면 모든 것을 듣고 싶다.그의 방문과 증언은 미국인뿐 아니라 미국 정부의 관료들에게 북한의 정보를 말해 줄 좋은 기회이다.그는 미국 정부가 북한에 관해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을 말할 것이다. 7박8일간의 일정 동안 일반에게 공개되는 회의는 디펜스포럼 주최의 1시간30분짜리 오찬 연설뿐이다.더 많은 연설 기회를 만들지 않은 이유는. -보안상의 문제 때문이다.물론 미국에 머무는 동안 그는 안전할 것이다.황씨의 안전을 위한 미국과 한국 정부의 회담은 아주 성공적이었고 두나라 모두 그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그러나 미 의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공개적인 회의를 개최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부각됐다.다른 행사도 준비했으나 이번 방문이 성공적으로 끝나기 위해 31일 연설로 만족했다. 황씨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는가. -백악관에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이뤄질 가능성은 적다.딕 체니 부통령 등 다른 고위직 관료들과의 면담은 계속 추진중이다. 미국에서의 다른 일정은. -안전문제 때문에 구체적인 일정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그러나 이번 방문이 황씨를 위한 생산적이고 의미있는 기간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이를 위해 국무부,국방부,국가안보회의(NSC)의 고위 관계자들과의 만남이 이뤄질 것이며 의회 지도자들도 면담할 것이다.현재로선 국무부의 존 볼턴 군축안보담당 차관과 제임스 켈리 동아태담당 차관보와의 회담이 확정된 것만 밝힐 수 있다. 황씨가 미국에서 머물겠다면 도와줄 용의가 있는가. -우리의 목적은 황씨의 첫 미국 방문이 성공적으로 끝나는 데 있다.체류기간 동안 그가 안전하고 생산적인 시간을 갖는 데 노력할 것이다.아마 내년 봄에 뉴욕이나 캘리포니아 방문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기회가 되면 다시 초청할 수도 있다.그러나 이번 방문에서 그의 일정이 연장될 것이라는 징후는 전혀 없다. 탈북자나 북한의 고위급 망명자들의 미국행을 계속 도울 것인가. -우리는 북한의 인권개선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것이다.상·하원에서도 탈북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북한자유법안’이 논의되고 있다.당초 초안과는 달라졌으나 다음달 중에는 상정될 것으로 안다. 탈북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중국이 열쇠를 쥐고 있다.한국과 중국의 공식적인 외교 통로로는 해결되기가 쉽지 않다.그보다는 세계 각국의 인권단체나 탈북 지원단체들이 계속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미국은 탈북자 문제에 어떤 정책을 취해야 하는가. -중국이 탈북자나 인도적 차원에서 일하는 단체들을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으로 대하지 않게 미국이 압력을 넣어야 한다.이어 중국이나북한의 접경지역에 북한 난민수용소를 설립하고 탈북자들이 난민지위를 얻을 수 있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탈북자들이 원하면 미국에 쉽게 올 수 있는 길도 열어줘야 한다. 북한의 내부붕괴 가능성은. -쉽지 않다.장기적으로는 모르지만 경제난 때문에 북한이 붕괴할 것 같지 않다.북한은 한국과 일본,미국 등으로부터 인도적 차원의 지원을 받고 있으나 정권유지 차원에서 악용하고 있다.김정일은 해외 은행계좌에 40억달러의 비자금을 갖고 있어 언제든지 정권유지를 위해 쓸 준비가 됐다.이 때문에 국제사회가 경제제재를 가하더라도 정권이 당장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다. mip@ 숄티 회장과 디펜스포럼 디펜스 포럼은 비영리 교육재단으로 안보와 외교,인권문제에 대한 각종 프로그램을 지원한다.1987년 설립된 이래 1996년부터 북한의 인권상황 등에 초점을 맞춰 탈북자들의 방미를 추진하고 있다.수전 숄티 회장은 현재 미 인권단체들과 연대해 국제적인 탈북자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숄티회장은 허드슨연구소의 마이클 호로비츠 국제종교자유연구소소장을 중심으로 독일인 의사 노르베르트 폴러첸 등과 함께 북한인권 지원활동의 3각축을 이루고 있다.
  • 가을속 영화 주인공 돼볼까/주말에 떠나는 드라마 & 영화 테마여행

    ‘다모 폐인’.얼마전에 끝난 드라마 다모에 푹 빠져서 말투마저 ‘∼하오’라는 다모체를 사용하는 열성팬들을 부르는 말이다. 다모 폐인들이 ‘주말에 떠나는 드라마&영화 테마여행’을 설명한다면 이렇게 하지 않을까.“행자들 보시오.채옥과 황보윤이 사주전 조사를 마치고 포도청으로 향하다 대결을 벌이던 곳을 보고 싶지 않으시오.여기 그 장소로 갈 수 있는 지도책이 나왔소.” 이 책에는 다모를 비롯해 ‘여름 향기’‘순수의 시대’‘가을 동화’ 등의 드라마와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를 비롯해 ‘황산벌’‘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친구’ 등의 영화 촬영장소들을 소개하고 있다. 아름다운 영상을 보여주었던 ‘봄날은 간다’에서 주인공이 강물소리를 녹음할 때 학교 밴드부가 사랑의 기쁨을 연주하던 곳은 강원도 정선군 북면 여량리의 아우라지이고 영화 ‘박하사탕’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던 철교 옆 동네가 충북 제천시에 있는 진소마을이라고 설명한다. 이곳은 도로 포장이 안돼 있고식당,가게도 없으며 휴대전화도 연결이 안되는 곳이라고 일러주는 등 실제 도움이 되는 여행정보도 꼼꼼히 챙기고 있다. 점점 깊어져가는 가을.가족,친구,연인과 함께 영화의 주인공이 돼보는 것을 어떨까. 로케이션 여행작가 김정수씨가 지었다.교학사.8800원. 김효섭기자 newworld@
  • [열린세상] 단풍의 계절은 다시오고

    봄에는 꽃놀이,여름에는 해수욕,가을에는 단풍놀이,겨울에는 스키….우리나라는 계절따라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천혜의 자연 환경을 갖추고 있다. 봄과 가을철에는 따뜻한 이동성고기압의 영향을 주로 받아 맑은 날이 많고 기온의 일교차가 크다.여름철에는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의 영향으로 장마와 태풍·열대야 현상이 나타나고,겨울철에는 한랭한 시베리아고기압의 영향으로 동장군(冬將軍)과 함께 대설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가 중위도 대륙 동안(東岸)에 위치하여 사계절이 공존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자연의 축복이라 할 수 있다. 단풍의 계절이 왔다.단풍은 일종의 생리현상으로,보통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물든다.노란색은 기온이 떨어지면서 엽록소 합성이 중지되고 잎 속에 남아 있던 노란 색소,즉 카로틴과 크산토필이 드러나면서 나타나게 된다.붉은색은 나뭇잎 속의 붉은 색소인 안토시안이 생김으로써 붉은 색깔을 띠게 된다. 낙엽수 식물은 기온이 생육 최저온도인 섭씨 5도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단풍의 시작 시기는 9월 초순 이후 기온이 높고 낮음에 따라 크게 좌우되며,일반적으로 기온이 낮을수록 빨라진다.산 전체 높이로 보아 2할 가량이 물들었을 때를 첫 단풍이라 하며,8할 가량이 물들었을 때를 단풍 절정기라고 한다. 단풍은 지형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평지보다는 산지가,강수량이 많은 곳보다는 적은 곳이,음지보다는 양지 바른 곳이,그리고 기온의 일교차가 큰 곳에서 단풍 색깔이 아름답게 나타난다.단풍나무는 전 세계적으로 200여종이 분포하는데,우리나라에는 40여종이 있다. 우리나라 단풍은 설악산과 오대산 정상에서 시작되어 하루 약 25㎞씩 남하한다.단풍 시작 시기는 중부지방은 10월 초순,남부지방은 10월 중순이며,첫 단풍 시기에서 절정일까지는 보통 10∼15일 정도다. 우리나라 설악산의 평년 단풍 시기는,첫 단풍이 9월26일,절정이 10월16일이다.금강산은 해발고도가 1638m로 설악산(1708m)과 비슷하나 설악산 북서쪽 약 70㎞에 위치하고 있어 첫 단풍 시기가 설악산보다 2일 정도 빠르다.남부 내륙지방에 자리잡은 내장산은맑고 푸른 하늘 아래 기온의 일교차가 15도 정도로 커서 고운 단풍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산홍(山紅)·수홍(水紅)·인홍(人紅)을 이룬다. 최근 도시 인근 산은 공해와 사람들의 잦은 왕래로 나무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산불과 난(亂)개발 등으로 인해 죽어가는 괴목(槐木)의 모습은 말기 암환자처럼 느껴져 보기에도 딱하다. 천혜의 자연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난개발을 최소화하고,등산로의 휴식제 또는 등산로의 격년제 운영 등을 실시하면 어떨까 싶다.우리는 후손에게 아름다운 자연을 있는 모습 그대로 물려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올 8월과 9월 초순까지는 유난히 비 오는 날이 많아,일부에서는 올해 단풍 색깔이 곱지 않을 것으로 염려했었다.그러나 다행히 9월 중순부터 맑은 날이 계속되고 기온의 일교차가 커서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금강산과 설악산은 지금 단풍의 절정기다.그 외 중부지방은 이달 중순 초반,남부지방은 중순 후반이 첫 단풍시기로 평년과 큰 차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단풍은 산 아래까지 물들었을 때보다는 산 중턱 정도 내려왔을 때가 더욱 아름답고 단풍 특유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한번쯤 푸른 하늘과 단풍을 감상하면서 지루한 장마와 태풍이 할퀴고 간 자연환경을 되찾는 수해복구에 동참해보는 것은 어떨까. 안 명 환 기상청장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10)박경리-물질문명 시대, 생명의 가치 회복

    진영은 연기가 바람에 날려 없어지는 것을 언제까지나 쳐다보고 있었다.“내게는 다만 쓰라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무참히 죽어버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진영의 깎은 듯 고요한 얼굴 위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겨울 하늘은 매몰스럽게도 맑다.잡나무 가지에 얹힌 눈이 바람을 타고 진영의 외투 깃에 날아내리고 있었다.“그렇지,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다.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진영은 중얼거리며 잡나무를 휘여잡고 눈 쌓인 언덕을 내려오는 것이었다.-소설 ‘불신시대’중에서 혹시라도 선생을 그냥 찾아뵙는 것이 결례가 될 것 같아 근방에서 슈퍼마켓을 찾는데 퍽이나 외진 곳이라 그런지 갖추어 놓은 게 없다.선생은 당뇨가 있다고 했던가.단 것을 드시지 못한다니 무과당 음료수 박스를 사들고 결전의 준비라도 마친 양 용감하게 토지 문화관으로 들어섰다. 선생의 집 문턱이 높은 것은 어제 오늘 소문이 아닌데 미리 약속을 얻은 탓인지 선생은 무척 친절하게 일행을 받아주신다.감읍할 지경이다. ●생태계 문제가 오늘의 중심화두 “건강이 안 좋으시다고 들었는데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소설을 쓰시다 무리하신 것은 아닌지요.” “내가 ‘현대문학’ 잡지를 참 곤란하게 하고 있어요.‘나비야,청산 가자’ 연재를 시작해서 석 달,3회까지 연재했거든요.한 회 한 회 원고 분량이 많아서 3회까지 하니까 무척 힘들었어요.재작년에 넘어져서 다친 허리가,연재 시작하면서 더 안 좋았어요.절실하게 써보려 했는데.이걸 쓰면서 혈압이 200까지 올라갔어요.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요.결국 쉬고 있어요.독자들에게 제일 죄송해요.” “…….” 나는 선생의 무릎 위에 앉은 고양이를 바라보면서 선생의 다음 말씀을 기다린다. “몸이 그러니까 의욕이 없어지고,그러면서 내 존재가 뭔가,굉장히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새삼스럽게 문학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도 들고.” 선생을 만나는 자리에서 우연히 새로운 문학지 ‘숨소리’를 편집하고 계신 연세대학교의 최유찬 교수를 만나뵙게 되었다.두 분에게 번갈아 시선을 옮기는 나로 인해 설명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셨는지선생은 ‘숨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문학이라는 것도 인류 전체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생태계 없는 문학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지요.최유찬 선생에게 부탁 드려서 ‘숨소리’라는 책을 내는 까닭도 그런 데 있어요.지금 이 토지 문화관도 다른 분들은 다 문학관으로 오해하고 있어요.내가 문학을 하니까 문학관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나는 처음부터 그건 반대고 문화관으로 하자고 했어요. 생태계,환경이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요.생태계 문제가 오늘의 중심이 되어야 해요.거기에서 문학도 있고 모든 게 있을 수 있는 거죠.작년 초엔가,‘자연과 시인’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했을 때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시인 선생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서 선도가를 불러 달라,그런 의식을 가져 주셨으면 한다고 내가 당부를 드렸어요.예술가들이 그렇게 해야 되지 않을까요? 무슨 정치적인 문제 같은 것은 사람들 임의에 따라서 참여도 하고 안 할 수도 있지만 환경문제라는 건 예외가 있을 수가 없잖아요. 모든 사람들과 관련이 되니까.하다못해벌레 한 마리나 풀 한 포기도 다 관련이 있잖아요.지구의 생명을 받은 것은 다 의무가 있는 거지요.” “예전에 손수 농사를 지으시는 걸 보았습니다.여기로 옮기고 나서도 계속하고 계신지요.” “물론이에요.여기는 농사가 더 많아요.밑에 밭뙈기가 상당히 있고 산 안에도 밭이 있어요.여기로 와서는 농사가 더 절실한 게,작가들 와서 묵는 창작실에 부식을 대야 하니까요.전부 다 댈 수는 없지만 대체로 야채는 내가 농사지어 대고 있어요.금년에는 부토를 했는데 흙이 잘 안 맞아서 농사가 좀 시원찮게 됐어요.여기 와서도 농약과 화학 비료는 절대 안 쓰고 작으면 작은 대로 땅 힘을 기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기왕이면 작가들도 공기 좋고 풍경 좋은 데서 먹거리도 무공해로 먹는 게 좋지 않겠어요. 감자와 옥수수를 많이 하는데 올해는 옥수수와 배추를 실패하고.그래서 토마토,고추,상추 이런 것 좀 더 대고 했어요.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대줄 수 있을 것 같아요.또 자연적으로 나는 것들이 있거든요.두릅이라든지.산에 도라지도 많이 심어놨어요.더덕,취나물,이름도 모르는 다른 나물들도 많아요.봄에는 냉이나 두릅 등 계속 농사지은 걸 먹죠.” 선생의 말씀에는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리듬과 흥취가 있었다. 이 글을 쓰려니 며칠 전 멕시코의 칸쿤에서 농민운동가 이경해씨가 심장에 칼을 꽂고 자결하던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우리들은 모두 땅의 자식들인데 내가 무관심하던 사이에 농민들의 삶은 나날이 수척해지고 있었던 것이다.인터뷰를 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지만 선생의 말씀과 정신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배고플 때 다이아몬드나 화폐를 먹을 순 없어 “선생님께서 농사를 지으시는 것은 자연과 접촉을 유지하기 위한 작가적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한데요.” “그게 우리 삶의 본질 아니겠어요? 땅에서 가꿔서 우리가 존재한다는.농부를 찬양하는 말이 될지도 모르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보면 생산성이 아니고 전부 소비성이거든요.땅을 가꾼다는 것은 규모가 손바닥만 하더라도 거기에는 생산이 있어요.그건 뭐냐면,생산하지 않으면 살수 없는 땅의 본질적인 속성 때문이에요.지난번에 내가 여기 중·고등학교 캠프에 갔었어요.사실은 내가 어디 나가서 얘기를 잘 못해요.어지러워서.그래도 애들이니까 한마디 필요하겠다 싶어서 나가서 이야기를 했어요.첫마디는 예절에 대한 것이었어요.예절이라는 것은 휴머니즘이다,상대방을 배려하는 거다,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정제된 데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다.그리고 또 하나가 이것이에요.옛날 농부들이 말하기로 내 자식 목에 젖 넘어가는 소리하고 내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가 제일 좋다고 했는데,그것은 땅도 내 자식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땅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땅을 사랑하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기본이고 본질적인 거예요.지금 지구 온난화 현상도 있고 지구가 사막화되는 현상도 나타나는데,앞으로 곡식이 참 귀하게 되면 배고플 때 다이아몬드나 화폐를 먹고 배를 불리겠어요? 한줌의 쌀이 있어야만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거죠.그런데도 없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옛날 말로 사람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한다고,많은 분들이 그저 설마 설마하면서 남은 죽어도 나는 살아남겠지,내 당대에는 괜찮을 거야,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계신데,하지만 우리 자손들이 있잖아요. 프랑스에서는 이례적인 폭염으로 사람들이 죽고 스위스에서는 만년설이 몇년도에 가면 다 녹는다고 그래요.이거 다 녹으면 노아의 홍수 일어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도 그런 소식을 들으면서 남의 일 같이 생각들 하신단 말이에요.들으면 그때뿐이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단 말이에요.일반 대중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도자들부터 인식을 해야 되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끌고 나가야 할 지도자들이 일반 대중들보다 더 못해요.대중들은 절실히 인식하는데 지도자들은 표밭만 생각하니까.사람이 먹고 사는,곡식 나는 밭 생각은 안 하고 표밭만 생각하거든요.그렇게 생존하고 관계 없는 일이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존해야 할 일은 뒷전에 밀리고 어떤 때는 그런 일이 아무 것도 아닌 무관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거든요.” 나는 연방 머리를 끄덕일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가 시장을 가봅시다.둘러보면 직접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건보다도 없어도 되는 게 더 많아요.없어도 되는 게 더 많다는 것은 말도 못할 낭비예요.낭비하면 쓰레기가 나와요.낭비와 쓰레기 이중적인 문제지요.쓰레기는 뭡니까.숨통을 막는 거예요.새만금이나 시화호,이런 문제는 그렇게 야만적일 수 없는 일이에요.나 혼자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해요.몇 사람의 이득,화폐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학살하는 겁니까.그렇게 많은 생명을 학살하고 그것을 영구히 없애버리면 다시 재생을 할 수도 없는 거잖아요. 대한민국이 얼마나 야만국인가를 입증하는 것이죠.지금 있는 농지도 농사 안 짓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서 새만금,그걸 죽여서 농지를 만든다는 이런 모순이 어디 있어요.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내가 살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또 사람만 살자는 이야기도 아니에요.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이 다 살아야 해요.”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면 세상 일을 소상히 알고 계신데요.어떻게 이렇게 먼 곳 원주에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다 듣고 보시는지요?” “서울이 시골보다 더 좁아요.직장이라든지 아파트라든지 하는 공간은 넓어도 좁아요.나는 공간이 없으니까 산 보고 하늘 보고,그러니 알죠.” “옛날에는 물질이 없어서 고통을 겪었다면 요즘에는 오히려 물질이 더 많아져서 고통인 것 같습니다.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생명이란 가두지 않고 풀어주는 것 “그렇죠.모든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의 순환이거든요.순환이라는 것은,먹이사슬도 하나의 순환이지만 우리 한 개인으로 보아도 일을 하고 또 그렇게 해서 먹고 하면 이게 순환이거든요.그럼 일은 뭐냐? 이렇게 물을 수 있는데,증권 주식 한다고 앉아서 하루 종일 컴퓨터 보고 있는 것,그것도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그것은 엄격히 말해서 죽어 있는 일이지 살아있는 일이 아니에요.살아 있는 생명을 다스리는 일,그것이 일이에요.예술가도 생명이 주예요,사실은.문장 하나,상황 하나,인물 성격 하나,이게 살아 있어야 하거든요.정치라는 것도 살아있는 게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가야지 죽음의 방향으로 가면 안 되죠.이 시대엔 전쟁과 핵무기가 있어요.이건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에요.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모든 게 죽음으로 몰려가고 있어요.모두 다 잘 살려고 한다는데 과연 그게 잘 사는 건지 모르겠어요.농약 주고 화학비료 주고 해서 질적으로 망가진 음식을 먹는 게 잘 사는 건지……모든 걸 가둬 놓는 것…… 생명이라는 건 가두는 게 아니라 풀어주는 거예요.이런 제도 속에서 사람들이 생존한다는 게 정상일 수가 없죠. 농촌에도 얼마나 이상한 병들이 많은지 몰라요.농약 때문에 그러는지.지금 이런 상황의 먹거리가 절대 좋은 게 아니거든요.그런데도 잘 산다는 게 이게 전부 양(量)으로 말하는 거죠.사람이 원래 추구해야 하는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거든요.행복의 축이라는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에요.그런데 지금 질은 점점 나빠지고 마치 옛날의 그 질을 옆으로 펴다 보니까 얇아져서 그게 양이 된 거예요.어떤 면에서 보면 더 생겨나는 건 없어요.있는 것에서 얇아지면양이 늘어나는 거고 양이 좁아지면 질이 좋아지는 걸 보여주는 거고.” 나는 사투리 억양이 강한 선생의 말씀을 교정하는 지금의 내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선생의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은 앞으로 나갔다 뒤로 가고 중복되거나 건너 뛰면서도 살아 있는 생생한 감동이 있었다. “선생님 옛날의 초기 작품을 읽어보았습니다.창작집 ‘불신시대’,장편소설 ‘시장과 전장’…… 그런 작품들을 읽다 보면 선생님 작품의 여주인공이 아주 결백한 성격을 갖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그것은 마치 선생님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데요.”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기는 싫어요.결백하다기보다는 자유롭고 싶은 거죠.얽매이기 싫고.” 이하의 내 물음과 선생의 말씀은 생략이다.안타깝게도.그러나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그렇게 많이 서운해하지 않으셔도 된다.내가 여쭈어 본 것은 더 내밀한 선생의 과거며 인생살이 같은 것이었으니까.선생의 사상에 관한 것이 아니니까.그러나 나는 선생의 사상만큼이나 선생의 인생을사랑하는 것 같다.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다 듣고 기록하고 싶은 것은 나의 감상벽인지? 탐구벽인지?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작각 박경림 ●가혹한 운명 딛고 선 문학사 거봉 박경리는 1920년대가 낳은 가장 대표적인 한국의 작가이자 광복 후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높게 빛나는 설봉(雪峰)이다. 1927년 통영에서 출생,진주고녀를 졸업하고 잠시 후 결혼,황해도 연안에서 교사로 재직하기도 하였으며 1950년에 ‘계산’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다. 박경리를 오늘의 박경리로 만든 하나는 선생의 작중 인물만큼이나 결벽하고 의지적인 선생의 성품이며 다른 하나는 가혹한 운명이다.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남편을 잃고 이후 아들을 잃고 다시 생명의 위기를 넘기면서 여성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가혹한 고통은 선생 문학의 산실이다. 창작집 ‘불신시대’(1963)와 장편소설 ‘표류도’(1959),‘김약국의 딸들’(1962)‘시장과 전장’(1964),‘성녀와 마녀’(1967),‘파시’(1967) 등으로 이어지는 선생의 초기 소설은피폐하고 불순한 현실을 배경으로 결벽성 있고 의지가 강한 여성 주인공의 삶을 그려나가면서 운명과 맞서는 삶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1969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1995년에 이르기까지 5부작으로 완성을 본 대하소설 ‘토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선생의 대표작이자 한국소설의 한계를 시험하는 의지의 극점이다.세대를 누적하면서 생을 이어가고 새로운 생을 모색하는 ‘토지’의 인물들은 삶의 만화경이자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다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한다. 생명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같은 질문에 대해 인간은 속수무책의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피안의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박경리의 근본적인 사상은 모든 살아 있는 것의 근원인 우주를 향해 열려 있는 구경적 세계관이다.그것은 종교가 아니되 감히 종교와 ‘맞먹는’ 힘을 갖는다. ●시집에 담긴 또렷한 이미지 박경리 선생 댁은 몇 년 전에 찾아 뵈었을 때는 허허벌판 가운데 있었는데 이번에는 토지문화관 바로 옆에 있어 한결 찾기가 쉬웠다.그때 허허벌판 가운데 약간 둔덕진 곳에 덩그러니 서 있는 선생의 자택을 찾아갔을 때 나는 그것이 평생 외로운 삶을 살아온 선생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었다. 보통 사람들은 선생을 소설가로 생각하고 또 인정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시인으로서의 선생의 이미지가 또렷하다.나는 선생의 시의 애독자여서 몇 권 안 되는 선생의 시집을 새책방,헌책방에서 다 사보았고,그 간결한 어휘,담담한 어조,비약의 미(美),삶의 태도를 절절한 심정으로 내 것으로 만들었다.사상가이자 소설가인 박경리가 아니라 인간 박경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생의 시집을 읽어야 하리라. 몇 년 만에 뵙는 선생은 무척 힘들어 하셨지만 연세에 비해 정정하시다.예전보다 따뜻해 보이는 실내가 나로 하여금 안도감을 갖게 한다.나는 선생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의지적이고 결벽성이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타는 한 여인을 사랑하는가 보다.
  • 말못한 사랑 못내 그리워 저리 붉은가

    ●불갑사·용천사등 사찰 주변에 많아 가을 산야의 진객은 단연 꽃무릇이 아닐까.무성했던 수풀이 점차 힘을 다하며 제 빛깔을 잃어갈 때 맑은 가을 하늘을 향해 이파리 하나 없이 빳빳하게 고개를 세운 꽃무릇은 튀고도 남음이 있다. 새파란 하늘빛에 대비되어서인지 유난히 새빨간 꽃무릇은 애틋하면서도 서러운 사랑의 아픔을 담고 있는 듯하다. 꽃무릇을 만나러 남녘으로 달렸다.전남 영광 불갑사,함평 용천사,전북 고창 선운사로. 왜 꽃무릇은 대개 절 주변에 사는 걸까? 아마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무릇의 특이한 생태 때문일 것이다.금욕을 실천하며 수행하는 스님에게 잘 어울리는 꽃이라고 여겨 사찰에서 심은 것이 주변으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수국이나 산수국,불두화,백당나무 등 사찰에 심은 꽃들이 대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식물들인 것을 보면 이같은 설명은 분명 일리가 있다.탱화를 그릴 때 꽃무릇 뿌리를 짜낸 즙을 바르면 좀이 슬지 않아 사찰 주변에 많이 심었다는 설도 있다. 불갑산 자락에 자리잡은 불갑사 가는 길.듬성듬성 난 억새며,떼지어 날아다니는 잠자리며,이미 가을색이 완연하다.사찰을 10여리 남겨놓고부터는 길가의 꽃무릇이 손님을 반긴다.코스모스 길에 익숙한 나들이객들에게 빨간 꽃무릇 길은 제법 이색적이다. ●상사병 스님의 애틋한 전설 간직 사찰 아래에 이르자 길 오른쪽 벌판이 온통 꽃무릇이다.안내판에 꽃무릇의 생태와 유래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 석산이라고도 불리는 꽃무릇은 일본 원산으로 관상용으로 들여왔다가 퍼진 가을꽃.가을에 핀 꽃이 모두 지면 그제야 초록 잎이 나서 이듬해 봄에 진다.잎과 꽃이 서로 볼 기회가 없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은 ‘상사화’(相思花)로 부르기도 하지만 진짜 상사화는 아니다. 연보랏빛 꽃이 피는 진짜 상사화는 대규모 자생지를 찾아보기 어렵다.상사화는 꽃무릇과 달리 여름에 잎이 모두 진후 가을에 꽃이 핀다.순서야 어떻든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꽃무릇도 상사화의 자격은 갖춘 셈이다.옛날 한 스님이 속세의 미인을 연모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어 묻힌 자리에서 피어났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불갑사 뒤 자그마한 저수지 왼편 산자락엔 꽃무릇이 붉은 물결을 이루고 있다.꽃무릇에 파묻혀 저수지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는 데이트족들의 표정에서 ‘소박한 행복’이 읽힌다. 불갑사 뒤쪽은 불갑산(525m)이다.군데군데 군락을 이룬 꽃무릇과 연꽃을 닮았다는 기암괴석 봉우리 ‘연실봉’이 아름답다.이곳에 서면 동쪽으로 무등산이,서쪽으로 서해 칠산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불갑산과 인접한 모악산(348m) 아래로는 함평 용천사가 자리잡고 있다.불갑사 주차장에서 차로 20분쯤 걸린다.용천사 아래의 꽃무릇은 양적으로는 불갑사의 꽃무릇보다 한 수 위.함평군이 조성한 공원 옆 산자락 40만여평이 온통 꽃무릇이다.멀리서 보면 산자락이 마치 불타는 듯하다.산자락엔 꽃무릇 사이로 산책로가 꾸며져 있다.산책로 중간중간 초가와 구름다리 등을 조성해놓아 아이들과 함께 가벼운 산행을 즐기기에 좋다.특히 산책로에서 붉은 물결 너머로 보이는 용천사의 자태가 그림같다. ●붉은 물결 너머 그림 같은 용천사 용천사는 신라 때 행은존자에 의해 창건된 사찰.사찰앞으로 흐르는 작은 천에서 용이 승천했다고 해 용천이라고 부르는데,용천사란 이름도 여기서 따왔다.사찰 건물은 모두 현대에 지은 것이라서 특별히 눈길을 끌 만한 것은 없다.다만 조선 숙종 때 만들었다는 대웅전 옆 석등이 고찰의 흔적을 말해준다. 전북 고창의 선운사 꽃무릇은 한 줌씩,한 아름씩 듬성듬성 꽃을 피운 것이 오히려 운치가 있다.선운사 입구에서부터 절 앞으로 흐르는 도솔천을 따라 도솔암까지 난 3㎞ 숲길엔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앉은 꽃무릇이 반갑게 손님을 맞는다.그래서 도솔암 가는 길은 마냥 정겹다.꼿꼿한 꽃대,둥글게 굽은 꽃잎,꽃입보다 두 배나 긴 황금빛 꽃술….길가에 솟아난 하나하나의 꽃무릇은 참 독특하고도 귀하게 생겼다. 도솔암 부근엔 수령 600년의 장사송이 있다.마치 암자의 미륵불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우산처럼 가지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 범상치 않게 보인다.나무 옆으로 진흥굴이 있는데,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왕비와 공주를 데리고 출가한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영광 함평 글·사진 임창용기자sdargon@ 가이드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영광IC에서 빠져 22번 국도를 타고 영광읍쪽으로 가야 한다.읍내를 지나 23번 국도로 갈아타고 10분쯤 가면 불갑사로 빠지는 군도가 나온다.군도를 따라 5분쯤 가면 오른쪽으로 불갑사 진입로가 보인다.용천사는 불갑사 들어간 길을 되짚어 나와 다시 23번 국도를 타고 함평 방향으로 가야 한다.5분쯤 가다가 나오는 838번 지방도를 갈아타고 조금만 가면 해보면 광암리에 이르러 용천사 진입로가 나온다. 선운사는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산IC에서 빠져 22번 국도를 타면 바로 닿는다. ●숙박 불갑사나 용천사 인근에서 묵으려면 함평군 해보면 금덕리 관광농원(061-323-3663)이 추천할 만하다.구계동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어 쾌적하면서도 넓다.방갈로와 낚시터도 갖추고 있으며,밤 줍기도 할 수 있다.요금은 방 크기에 따라 2만원부터 5만원까지. 선운사 인근엔 동방호텔(061-563-7070) 등 호텔과 전원산장민박(061-561-3120) 등 민박집이 많다. ●함평 해수찜 함평군 손불면 신흥마을은 해수찜으로 유명한 곳.함평해수찜은 1800년대부터 민간요법으로 널리 이용돼온 치료법이라고 한다.도자기 가마를 이용한 한증법을 발전시킨 것으로,해수(海水)탕에 유황 성분이 많은 돌과 삼못초 같은 약초를 넣고 소나무 장작으로 불을 때 데워진 물로 찜질을 한다. 온천과 약찜의 효능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어 피부염,산후통,신경통 등 만성질환에 치료효과가 뛰어나다는 것이 현지 주민들의 자랑이다.주포함평해수찜(061-322-9489),함평신흥해수찜(061-322-9487),신흥해수찜(061-322-9900) 등이 있다.입욕료 6000원.문의 함평군 문화관광과(061-320-3224),영광군 문화관광과(061-350-5224),고창군 문화관광과(063-560-2230). 식후경 영광의 첫째 먹거리는 뭐니뭐니해도 법성포에서 말린 굴비.법성포는 습도와 일조량,해풍이 조기를 말리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어 최상의 맛을 낸다고 알려져 있다.2년 이상 간수가 빠져 쓴맛이 없어진 소금으로 싱싱한 생조기를 정성껏 간을 해 15∼40시간 정도 재워두었다가 깨끗한 염수에 4∼5회 세척한 후 10∼20마리씩 짚으로 엮어 해변가에서 7∼14일 동안 말린다.법성포와 영광읍내엔 굴비를 중심으로한 한정식집이 많다.법성포 포구 바로 앞 ‘1번지식당’의 음식 맛이 유명하다.값은 1인 1만 5000원부터 3만원까지.1만 5000원짜리의 경우 굴비 구이와 조기 찌개를 중심으로 병어,갈치,전어 등 요즘 나는 생선 10여가지와 나물 무침 등을 포함해 30여가지의 반찬이 나온다.3만원짜리엔 굴비찜과 삼합,생선회,홍어회,자린고비,육회,갈비 등이 추가된다.(061)356-2268.영광읍내에선 동락식당(061-351-3363),한아름식당(353-7757)에 손님들이 몰리는 편이다.
  • 책/비야 비야 제비야

    -양영지 글 ‘비야 비야 제비야’(양영지 글,이상윤 그림,영림카디널 펴냄)는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인 제비를 통해 자연스럽게 생태환경에 눈뜨게 하는 동화책이다. 이른 봄,동남아에서 제주도를 거쳐 한반도 내륙까지 올라오는 제비들의 여정을 좇아가는 과정에 코끝 찡한 감동이 담겨있다.꿈에 부풀어 그리운 고향인 당산나무골을 찾아온 제비가족 쥬비네는 크게 실망하고 만다. 송충이와 노랑쐐기 나방을 잡아먹던 큰 소나무나 개암나무는 예전 그대로인데,개발에 밀려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쥬비의 가슴이 미어지는 건 그 때문만이 아니다.장래를 약속한 여자친구 제비 삐치의 행방까지 묘연해졌다.삐치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형제 제비들은 하나둘 행복한 짝짓기를 하고 있는데…. 쥬비와 삐치가 새 보금자리를 꾸미는 데에도 생태이야기가 생생하게 녹아 있다.침에 잘 섞은 진흙으로 부지런히 둥지를 만드는 과정 등은 신기하고 재미있다.그러나 농약 묻은 콩을 먹다가 부리가 녹아버린 참새,온종일 지어놓은 제비집이 사람의 손에 어이없이망가지는 대목 등에서는 제법 깊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새끼를 친 쥬비와 삐치 부부가 다시 강남으로 먼 길을 떠나는 이야기까지,책은 훈훈한 한편의 가족사를 들춰보는 감동을 덤으로 선사한다.7500원. 황수정기자 sjh@
  • 三 國 志 창극으로 재탄생

    중국 후한조 말기에 황건적의 난으로 천하가 어지럽자 촉나라의 유비는 관우·장비와 형제의 예를 맺는다(도원결의).제갈공명이 천하에 둘도 없는 현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유비는 모사로 초빙하려고 관우·장비와 찾아가나 두번이나 헛걸음친다.세번째 청한 끝에(삼고초려) 제갈공명을 맞이하니 위·촉·오 세 나라의 정립시대가 열린다. 위나라의 조조는 강남을 평정하고자 백만대군을 이끌고 나서는데 신출귀몰한 공명은 불과 삼천명의 군사로 선봉부대를 무찌른다.이어 조자룡은 유비의 장자 이두를 품에 안고 조조의 백만대군 속을 뚫고 나오고,장비는 장판교에 단기로 버티고 서서 천둥같은 호령으로 겁에 질린 조조군을 물리친다.한편 공명은 오나라로 건너가 손권과 주유에게 조조와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이도록 유도한다.드디어 벌어진 적벽강 싸움에서 주유는 공명이 동남풍을 빌어준 덕택에 조조의 백만대군을 불화살로 공격하여(火攻) 전멸시킨다.관우는 화용도에 매복하여 도주하는 조조를 사로잡지만,옛 은공을 상기시키며 목숨을 구걸하는 조조를 살려보낸다. ●판소리 ‘적벽가' 29일부터 국립극장 무대에 “도원이 어디인고 한나라의 탁현이라,누상촌 봄이 들어 붉은 안개 빚어나고… 세 사람이 손을 잡고 의맹(義盟)을 정하는데… 의형제는 한 날 한 시에 죽기로써… 도원결의를 이루었구나.” 판소리 ‘적벽가’의 도입부다.그대로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대목이다.이 ‘적벽가’를 국립창극단이 ‘삼국지 적벽가’라는 이름으로 29일부터 10월5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올린다.최근 다시 불고 있다는 ‘삼국지 열풍’의 덕을 보겠다는 작명(作名)일 것이다.물론 ‘적벽가’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일깨워주겠다는 충정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삼국지’는 우리 국민 가운데 읽은 사람이 읽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을 지도 모른다.‘삼국지’에서도 삼고초려,장판교싸움,주유진영,남병산,주유흉계,연환계,적벽대전,오림산곡,만세유전 등 재미있다는 10개 장면만 들어낸 것이 ‘적벽가’다.그런데도 ‘적벽가’가 아직 제대로 한번 창극화된 적이 없다는 사실부터가 놀랍다. ●힘찬 남성소리·장대한 스케일… 공연 어려워 1985년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단순히 역할을 나눈 분창(分唱)형식으로 공연했고,지난해 ‘전통 창극 다섯바탕뎐’에서 30분짜리 도막 창극으로 무대에 오른 것이 전부라고 한다. 무엇보다 영웅호걸들의 이야기인 만큼 판소리 다섯 바탕 가운데 가장 호방하고 힘찬 남성적 소리가 ‘적벽가’다.기교보다는 힘과 무게·깊이가 한꺼번에 필요한 ‘서슬’이 있는 소리를 소화하기 어려워 완창 무대도 최근에야 조금씩 선을 보이고 있다. 주연급 역량을 지닌 남성 소리꾼이 여럿 있어야 하지만,현실은 남성 소리꾼 자체가 많지 않다.나아가 극의 대부분이 전쟁 장면이어서 장대한 스케일을 요구한다.적벽대전부터가 수백척씩의 배가 적벽강에서 맞붙는 장면으로,무대화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그런 만큼 국립창극단이 ‘삼국지 적벽가’를 무대에 올리는 것도 역량의 축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적벽가’는 송광록-송우룡-송만갑을 거쳐 박봉술로 이어진 동편제와 박유전-정응민-정권진으로 이어진 강산제,유성준에서 나온 정광수 바디 서편제와 정춘풍-박기홍-조학진을 거친 박동진 중고제 등이 대표적이다. ●옛말투 많아 현대 정서에 맞게 손질 이 가운데 박봉술이 이어받은 ‘송판 적벽가’는 소리가 곧고 박진감이 넘치는 등 원형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삼국지 적벽가’는 이 송판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1989년 타계한 박봉술 명창은 국립창극단에서 소리를 가르치면서 김경숙 명창에게 ‘적벽가’를 물려주었는데,이번 공연도 김 명창이 지도하고 있다. 여기에 정회천·조영규·박성환으로 이루어진 편극위원회는 사대부들이 즐겨 찾았다는 ‘적벽가’는 한자와 옛말투가 많아 소리를 다치지 않는 범위안에서 오늘의 정서에 맞도록 고쳤다.3시간 30분이 걸리는 시간도 도창(導唱)을 없애는 등 2시간으로 줄였다. 연출은 김홍승이다.오페라연출가로 유명하지만,국악고등학교 출신으로 음악적 뿌리는 우리 것이다.유비는 최영길,완전히 성격이 다른 제갈량과 장비를 김학용과 우지영이 번갈아 맡는 것도 관심거리.조조에는 왕기석과 그의 제자인 젊은 소리꾼 남상일이,관우에는 주승현과 윤석안이 각각 더블 캐스팅됐다.조자룡은 1985년에도 같은 역할을 맡았던 윤충일이 다시 맡는다.공연시간은 평일 오후 7시30분,주말과 공휴일 오후 4시.(02)2274-3507∼8. 서동철기자 dcsuh@
  • 美동부 허리케인 ‘상륙’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미국 동부 해안 도시들이 강풍과 폭우에 대비하는 가운데 최고 13.5m의 파도를 동반한 허리케인 이사벨이 18일 오전(한국시간 18일 밤) 노스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주의 해안에 상륙했다.앞서 연방재해당국은 동부 연안과 저지대 내륙지방 주민 30만명에게 긴급 소개령을 내렸다. 이사벨은 노스캐롤라이나주 케이프 해테라스 남남동쪽 450.5㎞ 해상에서 시속 169㎞의 강풍을 동반한 채 시속 22.5㎞로 북북서진,이날 해안을 강타했다.이사벨은 특히 대다수의 허리케인이 해안을 따라 북상했던 것과 달리 내륙을 관통할 것으로 예상돼 더욱 큰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국립기상청은 앞서 최고 풍속이 시속 168㎞인 2급 이사벨이 18일 아침 노스캐롤라이나에 상륙,워싱턴 서쪽의 버지니아를 거쳐 북쪽을 지나갈 것이며 영향권은 뉴저지와 남쪽의 사우스캐롤라이나에까지 광범위하게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시속 256㎞인 5급에서 2급으로 둔화되기 했으나 체사피크만을 거치면서 내륙성 열대폭풍으로 다시 세력이 강해지기 때문에 재난의 위협은 결코 줄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특히 봄과 여름 동안 워싱턴 일대의 잦은 비로 땅이 더이상 비를 흡수할 여력이 없어 약간의 폭우에도 침수와 포토맥강 등의 범람이 우려된다.기상청은 5∼10㎝의 비만 내려도 범람할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 예상되는 강우량은 20㎝가 넘는다고 밝혔다. 때문에 워싱턴 등 미 동부지역의 기능이 일시 마비됐다.이사벨의 영향권에 있는 대부분의 주와 시들은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연방정부는 18일(현지시간) 하루동안 일을 하지 않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앞서 17일 저녁 허리케인을 피해 메릴랜드 캠프 데이비드 별장으로 피신했다.대통령 전용기 ‘에어 포스 원’을 비롯한 군용기와 군함들은 영향권에서 벗어난 안전지대로 이동했으며, 기지 내 군인 가족들에는 전원 소개명령이 내려졌다. 대부분의 학교들은 18일 또는 19일까지 문을 닫았으며 워싱턴 일대의 지하철인 메트로와 시가 운영하는 버스도 아침부터 운행을 중단했다. 메트로 당국은 돌풍이 불 경우 지하철 선로에 승객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항공기의 이착륙과 동부지역의 철도운행도 하루 동안 멈췄다. 마크 워너 버지니아 주지사는 수십년만의 ‘최악의 폭풍’이라며 17일 저녁부터 18일까지 외출을 삼갈 것을 권유했다.비상사태가 선포된 노스캐롤라이나,메릴랜드,버지니아,웨스트 버지니아,델러웨어,워싱턴시 등은 나중에 연방정부로부터 구제자금을 우선 지원받을 수 있으며 주 방위군을 피해지역에 긴급 배치할 수 있다. mip@
  • 최승희 뮤지컬로 춤으로 34년만에 되살아나다

    춤 하나로 살면서 온갖 영욕을 누렸고 죽어서는 신화가 된 인물,최승희.‘전설의 무희’로 불리는 월북 무용가 최승희(1911∼1969)를 조명한 공연 두 편이 나란히 무대에 올라 눈길을 끈다.극단 미추의 뮤지컬 ‘최승희’(26일∼10월12일,예술의전당 토월극장)와 재일교포 무용가 백향주의 무용공연 ‘최승희의 신화를 넘어’(24일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28일 국립국악원 예악당).뮤지컬과 춤 공연에서 최승희 역을 맡은 배우 김성녀(52)와 무용가 백향주(27)를 만나 공연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다. ●뮤지컬 ‘최승희’- 인간 최승희의 삶과 예술 포스터용으로 찍은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반듯한 이목구비며,기품있는 포즈가 영락없는 자료사진 속 최승희다.“전부터 ‘최승희 닮았다.’는 말을 적잖이 들었어요.언젠가는 최승희 역을 맡으리라 기대했는데 이제야 꿈을 이루었네요.” 밝히길 쑥스러워했지만,김성녀는 이 작품을 위해 무려 7㎏을 감량하는 열의를 보였다. 극단 미추 대표 손진책 연출가와 김성녀 부부가 최승희 소재의 작품을 구상한 것은 14년 전.1988년 월북 예술가에 대한 정부의 해금 조치 이후 최승희의 존재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찌감치 뮤지컬 제작을 염두에 두었고 그때부터 자료를 수집하며 차근차근 작품을 준비해왔다. “최승희의 삶 자체가 아주 드라마틱하잖아요.‘천재무용가’ 칭송을 받을 만큼 탁월한 춤꾼이었지만 이념과 사상에 휩쓸려 친일무용가의 오명을 썼고,결국엔 남북 모두로부터 버림받아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불운의 인물이지요.” 뮤지컬은 최승희에 덧씌워진 전설과 환상의 베일을 벗겨내고 오직 춤만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그의 숙명적인 삶에 초점을 맞춘다.역사적인 인물을 형상화할 때 흔히 범하기 쉬운 ‘미화’의 유혹에서 벗어나 최승희의 이기적이고 독선적인 측면도 묘사한다.뮤지컬이지만 음악 비중을 줄이고,무대를 최소화한 대신 풍부한 영상활용으로 깔끔하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살릴 계획이다. 그는 “연습을 할수록 최승희의 삶이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예술가로서 가정보다 일을 앞세우고,제자에게 엄격한 모습 등 삶의 방식과 성격면에서 자신과 비슷한 점을 보았다는 설명이다. 아무리 무용가가 아닌 인간 최승희에 조명을 맞추더라도 극중 춤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하지만 그는 무리한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아무리 노력한들 최승희의 춤을 어떻게 똑같이 해내겠어요.할 수 있는 만큼만 최선을 다해 보여줄 생각입니다.” 극중 최승희의 대표작 ‘보살춤’ ‘노사공’ ‘에아라노야’ 등 핵심 부분만 선보일 계획이다. “마지막 부분에 최승희가 육성으로 남긴 자작곡을 부르는 장면이 있어요.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최승희의 체취가 느껴져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배우 김성녀의 얼굴에 최승희의 모습이 겹쳐보였다.(02)747-5161. ●무용 ‘최승희의 신화를 넘어’- 춤으로 재현한 최승희 지난 봄 백향주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 입학했다는 소식은 무용계에 화제가 됐다.두살 때부터 무용가인 아버지 백홍천으로부터 클래식 발레와 조선민족무용을 배우기 시작해 25년 넘게 춤을 췄고,‘최승희의 환생’이라는 찬사까지 받고 있는 그가 뒤늦게 배움의 길로다시 들어섰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기 때문이다. “저에겐 당연한 선택이에요.지금으로선 남북한의 춤을 체계적으로 비교연구할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는데 한국무용을 모르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재일동포인 백향주는 9살 때부터 평양을 드나들며 무용공부를 시작했고,11살 때는 김일성 주석 앞에서 단독공연을 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이듬해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입학해 무용가 엘리트 양성과정을 밟다가 16살 때 국비장학생으로 중국 유학을 떠났다.1991년 최승희의 수제자인 전 국립만수대 예술단 무용가 김해춘으로부터 최승희 춤을 배운 뒤 ‘최승희의 부활’이란 격찬을 받았다.국내에서는 1998년 처음 춤을 선보여 많은 화제를 뿌렸다. 이번 공연은 네번째 한국 무대이자 2년만의 단독 공연.‘최승희의 신화를 넘어’라는 부제는,그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명확히 보여준다.“제 춤을 오로지 최승희의 재현으로만 대하는 분들을 보면 섭섭해요.물론 칭찬이란 걸 알지만 제 춤은 어디까지나 저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것이지,누구를 흉내내는 건 아니니까요.” 최승희의 춤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위에 백향주의 색깔과 느낌이 묻어나는 그만의 춤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뜻이다.그는 또 특정 국가나 민족을 대변하는 예술가로 머물기를 거부한다.한반도를 뛰어넘어 동북아를 대표하는 무용가가 되겠다는 야심이 만만치 않다.이번 공연에는 우조춤,무당춤,관음보살무와 영춘장고춤,중국 태족춤인 공작새춤 등 독무 5개를 선보인다.한층 깊어진 그의 내면이 최승희의 춤사위를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된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최승희 연구가인 정병호 중앙대 명예교수를 만나러 간다며 자리를 터는 그에게선,최승희의 그림자 대신 무용가 백향주의 향기가 오롯이 느껴졌다.(02)3464-4998. 글 이순녀기자 coral@ 사진 이언탁기자 utl@
  • [나의 건강보감]한국개그 원조 전유성

    “건강하게 사는 법이 뭐냐고요?”“세상 안달복달 살아봐야 결과는 비슷하거든요.그럴 바에야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재밌게 살아야지요.이보다 더 건강한 건강법이 있으면 말해 주세요.” 개그맨 전유성(54).사람들은 그에게 ‘원조’라거나 ‘대부’라며,효시와 중심을 뜻하는 수사를 즐겨 붙이곤 한다.‘개그(gag)’라는 새 장르를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하고 개척한 주인공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증이자 예우인 셈이다. ●하고 싶은 것 하며 재미있게 살기 “워낙 대책없이 여행을 떠나곤 하다보니 사람들은 내게 역마살(煞)이 끼었다고도 하는데,그렇든 말든 그것은 온전한 내 자유로움이기도 하고 내 발언이기도 합니다.거창하게 계획 세우고,준비하고 그런 것도 없어요.마음이 동(動)하면 떠나니까요.”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보며 “참 재밌게 산다.”고 부러워하곤 한다.그의 ‘준비되지 않은 일탈’이 항상 그에게서 ‘뜻밖’이나 ‘의외’의 무엇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대리만족을 주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점도 없진 않을 거예요.연예인이라는직업이 힘들고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밖에서는 한사코 화려하게 분식된 모습만 보고,그게 전부라고 여기려고 하거든요.그러나 생각해 보세요.대중들의 취향처럼 민감하고 감각적인 것도 없어요.항상 그 점을 고민하는 개그맨에게 창조적인 에너지의 고갈은 곧 몰락이지 않겠어요?그래서 다른 어떤 직업보다 재충전의 필요성이 절실한 곳이 바로 개그계라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겁니다.” 그래선지 그는 좀 헐렁해 보인다는 세간의 인식과 달리 자신의 영역에서는 조그만 구멍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한다.그가 여행을 통해 마음의 짐과 번민을 털어버린다든가,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든가,아니면 육체적 건강을 다지는 것도 사실은 가장 그답게 자신의 일에 천착하는 방법이다.키 178㎝에 73㎏의 체중이지만 그의 몸에서 얼핏 건강성을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그에게 “건강하냐?”고 묻자,“건강해 보이느냐?”고 되묻는다.“딱히 안 좋거나 아픈데는 없어요.원래 이런저런 병치레는 안하는 체질인데,그렇다고 여행 말고는 대놓고 하는 운동도 없어요.예전에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 같은 걸 타보긴 했지만 그거 1∼2주에서 한두달을 못넘기겠더라고요.그런데 여행은 달라요.나를 나답게 하는 운동이자 도락은 여행이라고 여기는데,이건 나서면 걸어야 하고 생각해야 하거든요.그 때문에 여행에 탐닉하는지도 모르겠어요.특히나 제 여행은 많이 걷는 고행이죠.” 이렇듯 그의 여행은 ‘걸음의 건강론’에 뿌리를 잇대고 있다. “평생 운동을 한가지도 안하고 건강하게 사는 비결을 꼭 남기고 싶다.”면서도 여행의 건강성을 부인하지 않는 그는 계획이나 기대조차 없는 ‘무심한 여행’에 나서보라고 주문한다.“최근에 경기도 안성엘 다녀왔어요.터미널에서 가장 빨리 떠나는 차를 타고 보니 안성행이더라고요.거기서 밤새 산을 타 순대로 유명한 병천으로 갔지요.잠은 불켜진 아무 곳에서나 잡니다.다음날 아내를 올려 보내고 혼자 다시 목천까지 흘러 가다가 돌아왔어요.” 그의 여행은 매양 이런 식이다.지리산 천왕봉을 향해 출발했는데 나중에 경남 사천의 신수도라는 섬에 닿아 있더라며 허허 웃는다. ●건강, 남과 비교하지 말기이런 그에게 여행은 또다른 삶이다.“아,하느님이 여행 기간을 삶에서 까주질 안잖아요? 그러니 여행을 여행으로만 여기면 너무 아깝죠.” 그런 탓에 그의 여행은 늘 진지하다.지금도 그는 여행을 여행이라고 하지 않고 “살러 간다.”고 한다.“여행 잘하는 비결은 철저하게 그곳 생활에 녹아드는 겁니다.난 그래요.짐 풀면 ‘쓰레빠’ 끌고 주민들 따라 천렵도 하고,들일도 합니다.같이 사는 거지요.” 이러니 격식이나 계획이 필요없달 수밖에.재작년 일본 여행이 그랬고,올해 인도 여행도 그랬다.일단 여행길에 나서면 철저하게 집을 잊는다.서울에 도착해서 “나 왔어.”하고 전화 한통 하는 게 전부다. 인도 여행에선 뭘 얻었느냐고 묻자 “아무것도…”라고 했다.걷기만 했다고 했다.올해로 연예계 데뷔 35년.훌쩍 쉰을 넘긴 나이에도 그가 “지금까지 주사 한대 맞은 적이 없다.”고 할 만큼 강골인 것은 순전히 다리품 팔아 얻은 것이다.“일상적으로 걷는 습관을 들이면 차가 오히려 불편해요.종종 마포대교를 걸어서 건너는데,사람이라곤 나 혼자거든요.그땐 내가 마포대교 주인입니다.걸어서 얻을 수 있는 ‘뽀나스’인 셈이지요.” ●금연에 술은 ‘주정' 안할만큼만 마시기 “이제 개그 방송에 나가는 일은 피하고 싶어요.일부 방송의 개그에 대한 몰이해가 못마땅하기도 하고 또 뒤에서 후배들 길잡이 역할을 할 연배도 됐고요.” 그렇다고 그가 마냥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개그를 꼭 방송에서만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직접 극본을 공모하고,신인을 뽑아 가르치며 준비중인 게 ‘방송개그’가 아닌 ‘무대개그’예요.또 내년 봄쯤에는 주문형 맞춤코미디도 선을 보일 겁니다.뭐냐구요?간단해요.예컨대 정육점하시는 분이 ‘10분 동안 나를 일곱번만 웃겨달라.’고 하면 찾아가서 웃겨주는 겁니다.‘코미디도 자장면처럼 배달됩니다.’하는 컨셉트지요.” 이런 그의 그칠 줄 모르는 창작열과 기발함을 두고 한 출판인은 ‘뚜껑을 열지 않으면 폭발하는 천재성’이라고 했다. 담배는 끊은지 10년쯤 됐고 술은 ‘절대’ 주정하지 않을 만큼 마시는 그의 또다른 건강법은 음식을 가리지 않는 것.이런 그에게서 듣는 건강론은 그답게 자주적이다.“중요한 것은 자신의 건강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겁니다.자꾸 비교하다 보면 정상적인 사람도 이런 생각 들지 않겠어요? 정말 내게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강성남기자 snk@ ■전유성의 여행건강론 “여행은 일상에서의 탈출입니다.요즘처럼 막막한 세상에 이런 일탈의 묘미조차 못 느낀다면 사는 일이 얼마나 답답하고 지겹겠어요?” 그가 말하는 여행론은 다리품을 팔아서 머리를 비우고 가슴을 채우는 작업이다.물론 전제는 심신의 건강이다.그래서 그는 여행을 ‘즐거운 고행’이라고 말한다.“체질적으로 머리를 비우는데 익숙한 편입니다.고민이나 불쾌감 등을 속에 담아두지 않아요.그러지 않으면 창조적인 작업이 방해를 받기 때문이죠.대신 가슴에 사람들을 많이 담으려고 노력합니다.” 그의 여행은 너무나 자유분방해 룰이라는 걸 찾을 수 없다.“사전 준비요?하죠.예를 들어 목적이 있는 해외 여행의 경우 준비 안하면 안되죠.그런데 준비라는 게 물품이나 장비인 경우가 많고,여행의 내용을 미리 틀에 집어넣지는 않습니다.그건 순전히 내 의지대로 하는 겁니다.” 이처럼 대개의 경우 그의 여행은 즉흥적이고 돌발적이다.계획도 없고,준비도 없고,그래서 기약도 없는 그런 여행이다.“전유성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은 연예계에서 묵은 말이다.특히나 차가 되레 불편하다고 할 정도니 그의 걷는 여행에 대한 집착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한번은 스님과 동행해 덕유산에서 나오는데 서너시간을 걸어도 덕유산을 못 벗어나는 거예요.지루하다고 혼잣말을 했다가 ‘선방에서 평생을 지내는 중도 지루하다는 얘기를 안하는데…’라는 스님의 핀잔을 듣고는 그후 무슨 일을 해도 지루하게 여기지 않게 됐어요.여행의 소득이지요.” 그런 그가 말하는 여행의 이점은 많다.현실을 다른 자리에서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 그렇고,속 끓이는 스트레스도 어렵잖게 털어낼 수 있다.보고 듣는 모든 것이 창조의 소스가 되고,다리 붓도록 걷는 일은 건강을 위한 투자다.한양대병원 신경정신과 김석현 교수는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는 여행과 달리 전유성씨처럼 훌쩍 떠나는 여행은 그런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 스트레스를 털고 발상의 원천을 새롭게 하는데 좋을 것”이라며 “특히 연예인 등 업무적 부담이 큰 직업인의 경우 많이 걷는 여행이 정신적 에너지를 충전하고 육체적 건강을 다지는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jeshim@
  • 김기덕감독 인터뷰/“도올이 출연 거절… 겨울장면 직접 도전”

    김기덕(43) 감독에게 ‘봄 여름…’은 9번째 작품이다.지난 96년 ‘악어’로 데뷔해 ‘파란대문’‘섬’‘나쁜 남자’‘해안선’ 등 문제적 영화들로 평단을 소란스럽게 만들어온 감독은 “스스로 자유로워지고 싶어 만든 미완의 영화”라고 새 작품을 소개했다. “이번 영화는 감독의 의도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미완성의 영화라고 굳이 말하는 것은,내 의도 50%에 관객 각자의 고유한 감정 50%가 합해져야 제대로 감상이 될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궁금한 사항.왜 직접 출연하게 됐느냐고 묻자 “도올 김용옥씨,배우 안성기씨에게 부탁했다가 거절당했다.”면서 “‘겨울편’ 촬영을 더 미룰 수가 없어 직접 도전했다.(극중 대사는 없다.)”고 웃었다.“한겨울에 웃옷을 벗은 채 맷돌과 반가사유상을 메고 산꼭대기에 올라가는 ‘고행’장면도 그래서 속편히 찍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순제작비 10억원짜리 저예산 영화.그러나 사계절을 화면에 담아야 했기에 촬영에 들인 공력은 대단했다.지난해 5월부터 봄 장면 촬영을 시작해 얼추 1년이 지난 올 3월 다시 봄 장면을 찍는 것으로 촬영을 끝냈다.경북 청송군 주왕산의 연못 ‘주산지’에다 30t짜리 암자세트를 만들어 띄우는 데만 3억 5000만원을 들였다.부유하는 암자를 만든 데 대해서는 “물위에서 시시각각 동서남북이 바뀌는 암자는 변화무쌍한 인생의 이미지와 닮은꼴”이라고 설명했다. 인생을 놓고 그라고 무슨 수로 단답형 정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그의 다음 작품은 창녀딸을 둔 아버지 이야기(‘사마리아’).요즘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려 있다. 황수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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