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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춘수시인 타계] 생애·작품세계

    [김춘수시인 타계] 생애·작품세계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온통 풀 냄새를 널어 놓고 복사꽃을 울려 놓고 복사꽃을 울려만 놓고, 환한 햇빛 속을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西風賦’ 전문) 한국시단의 큰어른 대여(大餘) 김춘수. 힘겨운 시절, 한국이라는 궁벽한 땅에서 태어나 그만큼 치열하게 또 자유자재로 시의 지평을 넓히며 ‘자신의 문학’‘자기 시대의 문학’을 윤기나게 일군 이가 다시 있을까. ●모더니즘 경도된 시절에 상징주의 수용 그는 1948년 처녀시집 ‘구름과 장미’를 내면서 시인의 삶을 시작한 이래 2002년 ‘쉰 한편의 비가’에 이르기까지 물경 40권의 시집과 시선집을 냈으며,‘시의 위상’ 등 시론집도 7권이나 펴낼 만큼 열정적으로 시를 보듬어 왔다. 초창기인 1950년대 무렵, 내로라하는 당대의 시인들이 하나같이 영미의 모더니즘에 경도된 그 시절에 그는 주저없이 릴케 류의 상징주의 시정신을 받아들여 우리 문단의 협소함을 극복하고자 한 한국 시문학의 선구자였다. 이 무렵 그가 지향한 문학적 이데올로기는 ‘절대 순수’였다. 이 시기에 발표된 그의 시를 두고 이승훈 한양대 교수는 “그는 투쟁보다 화해, 고통보다 안정, 탐구보다 신앙을 희원했다.”고 분석한다. 김 시인은 1922년 경남 통영의 만석꾼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청년기를 보냈다.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유학해 니혼(日本)대학 예술학과 3학년에 재학 중 중퇴했다. 언젠가 “기질적으로 항일운동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많이 좌절했다.”며 젊은 시절을 고백한 적이 있는 시인은 자기 반성의 한 자락인 양 평생 이데올로기가 배제된 ‘무의미의 시’를 썼다. 일본의 총독정치를 비판하다 7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퇴학당했던 경험이 이후 관념을 배제한 시들을 쓰는 데 결정적인 동기가 됐다. ●50년대 말부터 ‘무의미의 시’ 골격 구축 1946년 ‘애가’로 문단에 데뷔한 그의 시세계는 크게 4단계로 나뉜다. 1기는 ‘꽃’ ‘꽃을 위한 서시’ ‘나목과 시’ 같은 작품으로 대표되는 시기. 이 즈음 그는 존재의 의미에 천착해 치열한 탐색의 태도를 보였다. 이런 그의 모색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노래한 ‘꽃’에서 잘 나타난다. 2기는 50년대 말부터 드러난 서술적 이미지의 시세계. 이 시기에 그는 ‘타령조’‘부두에서’‘봄바다’ 등의 시편을 발표하며 김춘수 시세계의 큰 축인 ‘무의미의 시’의 골격을 구축해 냈다.‘날이 저물자/내 근골과 근골 사이/홈을 파고/거머리가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베꼬니아의/붉고 붉은 꽃잎이 지고 있었다.’(처용단장 제1부)는 시편에서 보듯 이 시기 그의 작품은 어쩌면 무상(無常)과도 맥이 닿는 무의미가 주조를 이룬다. 이어지는 3기는 탈(脫)이미지의 세계로,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기에 나타난다.‘불이 앗아간 것, 하늘이 앗아간 것, 개미와 살똥이 앗아간 것, 여자가 앗아가고 남자가 앗아간 것,/앗아간 것을 돌려다오‘(처용단장 제2부)에서 보듯 이미지 파괴와 실존성이 구체적인 리듬감으로 표출되고 있다.4기는 70년대 이후 80년대까지 이어지는 시기로 실존성의 극복과 담담한 성찰의 특성이 드러나는 시기다. ●우리 문단의 영원한 숙제 ‘김춘수 읽기’ 그러나 이런 축약으로 그의 시세계를 말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김춘수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하는 평자는 먼저 그의 엄청난 필력에 압도 당하고, 또 아무리 짧은 촌평이라도 함부로 다룰 수 없다는 사실에 당혹하게 된다.”는 이창민 고려대 교수의 지적처럼 그의 시세계는 섣부른 해석을 한사코 경계하는 까닭에 ‘김춘수 읽기’는 우리 문단의 미제로 남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문인으로서의 김춘수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다양한 문학적 편력을 훑지 않을 수 없다. 숱한 시집과 시론으로 우리나라 시세계의 여백을 채워온 그는 수필과 소설에도 열정을 쏟아 부었다. 지난 76년 첫 수필집 ‘빛 속의 그늘’ 이후 95년 ‘사마천을 기다리며’까지 여섯 권의 수필집을 문단에 봉헌했는가 하면,54년에 ‘유다의 유서’를 내는 등 지금까지 3권의 장·단편 소설을 내기도 했다. 5년 전 부인과 사별하고 경기도 분당 큰딸의 아파트 근처에 살았던 시인은 지난 8월 기도폐색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신작 시집 ‘달개비꽃’이 새달 중 출간될 예정이다. 거인이 훌쩍 자리를 비운 문단이 허허롭기 이를 데 없다. 그가 필생의 업으로 여겼던 ‘절대 순수’와 ‘인간의 참모습’에 대한 끝없는 향수는 ‘맑은 시인의 피’로 두고두고 세상의 가슴을 흐르지 않겠는가. 떠나간 시인의 느리고도 지치지 않았던 보행처럼….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논술이 술술]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유시민 지음

    [논술이 술술]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역사 이야기/유시민 지음

    최근 과거 청산과 관련,‘역사의 심판에 맡기겠다.’든가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 말이 단지 후대 역사가의 평가에 맡기겠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역사’는 단지 과거의 사건에 대한 기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쉼 없이 진행되고 있는 ‘인간의 삶’ 그 자체이며, 그 삶에 대한 가장 진지한 성찰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점에서 역사에 대한 진지한 자각과 인식은 우리의 삶을 좀더 알차게 꾸려가기 위한 전제일 것이다. 영국의 역사가 카(Carr)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기록과 서술로서의 역사’는 ‘역사가와 역사적 사실 사이의 대화’이자 ‘과거와 현재 사이의 대화’이며, 그와 동시에 ‘과거의 여러 사건과 점차 나타나게 될 미래의 여러 목적 사이의 대화’라고 했다. 인간은 과거의 일에 비추어 봄으로써 현재를 더 깊이 이해하고, 과거와 현재의 연장선 위에서 미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으며 또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역사는 과거를 대상으로 하되, 궁극적으로 현재의 삶과 미래의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역사를 주제로 하되, 과거의 사건에 대한 기록과 관련된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역사 그 자체를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돼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어렵고 무거울 수 있는 주제들을 우리가 흔히 지니고 있을 법한 소박한 의문들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역사 이해의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우리는 일상 생활 속에서 문득 역사와 관련된 의문이 떠오르는 경우가 있다. 문득 언젠가 겪은 일을 다시 되풀이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고, 아주 분한 일을 보거나 겪을 때면 ‘만약 그 때 이렇게 되었다면….’하는 생각이 떠오를 때도 있다. 그리고 역사의 심판이란 정말 있는 것인지,“이기면 충신이요 지면 역적”이라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그저 강자와 승자가 역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들 때도 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바로 이러한 궁금증에 대한 것들이다. 이 책은 ‘믿어서는 안 될 역사’를 시작으로 ‘신화에서 역사로’,‘과학으로서의 역사’,‘계급투쟁의 역사’,‘민족사의 발견’,‘역사에서의 우연과 필연’,‘영웅과 대중’,‘그래도 믿어야 할 역사’ 등 모두 8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들을 포괄하고 있다. 먼저 손이 가는 단락을 읽어도 좋지만,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으면 생각을 키우고 정리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 (unidream.co.kr) ■ 생각해보기 △역사책에 나온 이야기들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역사가와 역사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역사를 바라보는 데 ‘실증주의’와 ‘역사주의’는 각각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써보자. △민족주의 역사학의 의의와 한계에 대해서 써보자. △‘역사는 위인들의 전기’라는 영웅사관이 지닌 문제는 무엇인지 자신의 생각을 써보자.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친일파 청산과 과거 청산 등이 주요한 쟁점으로 나타나고 있다.‘역사 바로 세우기’가 왜 필요하며,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의 생각을 써보자. ■ 독서 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중2∼고3 -관련 교과:국사, 한국근현대사, 고등 사회, 윤리와 사상 -함께 읽어 볼 책:역사란 무엇인가(E.H. 카아), 역사에세이(정옥자), 세계사편력(네루) -관련 기출논제:이화여대 1996년 학년도 논술. 서울대 1995학년도 논술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2)순천만 갈대숲의 교훈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42)순천만 갈대숲의 교훈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아는가.“무진(霧津)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오면, 밤 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를 떠나고 없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같다.” ●사람과 동식물 공존하는 평화의 낙원 김승옥은 ‘무진기행’에서 무진의 안개를 그렇게 묘사했다. 소설 무대를 순천만에서 빌려온 이유를 알 만 하다. 만추(晩秋)의 마지막 순간에 찾아간 순천만의 아침도 온통 물안개에 젖어 있었다. 안개는 노천온천의 김처럼 연신 올라와서 카메라의 렌즈를 적셨다. 아침 6시50분. 해가 뜨려면 족히 30여분은 더 있어야 한다. 대대포구 선착장에서 배에 오른다. 모터의 굉음이 퍼지면서 물살을 가르자 오리떼가 갈대밭에서 물을 박차고 난다. 장관이다. 천연기념물 흑두루미가 사람을 경계하며 저만치 물러서 있다. 망원경이 아니라 육안으로도 얼마든지 새떼들이 잡힌다. 새떼들은 알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들처럼 자유롭게 나다닐 수 없으며 오로지 갯골로만 다닐 수 있음을. 갈대밭으로 배를 들이밀지 않는 한 한가롭게 자신들의 일에만 몰두할 뿐이다. 그래서 순천만의 일상은 사람과 동식물이 공존하는 ‘평화’ 그 자체다. 순천만이 이토록 ‘낙토’가 되기까지는 굴곡도 많았다. 시청부터 사태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보호습지 지정으로 재산권 불이익을 염려한 주민 반발도 뒤따랐다. 역시 세월이 필요했다. 수많은 이들이 순천만의 중요성을 국내외에 알렸다. 드디어 순천시의 결단이 내려졌다. 최덕림 주민과장은 ‘시민들도 서서히 중요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새만금이나 시화호 같은 실패작만 봐오다가 모처럼 순천만 같은 성공작을 만나는 것은 ‘기쁨’ 그 자체다. 세상에 더할 나위 없는 하구습지로 알려졌기에 신문, 방송은 물론이고 외국에서까지 찾아온다. 생태관도 만들었다. 대대포구 바로 옆에 갓 개관한 ‘순천만비지터센터’가 그것이다. 잠깐, 한마디 하고 넘어간다면, 그냥 순천만 ‘생태문화관’ 정도로 이름 지으면 될 것을 하필이면 비지터(visiter)란 말인가! 하여간 순천만은 뜨는 중이다. 충분히 뜰 만한 자격도 갖추고 있다. 생태보존의 본질적 측면에서 본다면야 이른바 생태관광조차도 허구에 지나지 않겠지만 이만한 정도의 평화를 확보해낸 것만 해도 대견할 뿐이다. ●갯벌 200만평 중 20여만평 정도가 갈대밭 순천만 갯벌은 줄잡아 200만평. 개략적으로 20여만평 정도가 갈대밭이다. 사람 손길이 닿지 않자 갈대밭은 나날이 늘어나는 추세다. 짝지어 사랑을 하고 가족을 꾸리는 새들, 새꼬막 맛 낙지 짱뚱어 갯지렁이 숭어 뱀장어 같은 주인공들이 번성한다. 갈대는 과다한 유기물질을 뽑아올려 나날이 건강한 펄지대로 정화, 갱신해 내고 있다. 1인당 5000원을 내면 대대포구에서 작은 유람선을 탈 수 있다. 왕복 30여분 뱃길, 선장은 이따금 배를 세우고 새소리를 듣게 한다. 바닷바람이 갈대에 부딪치면서 전투라도 벌이듯 사각거리는 소리는 직접 들어보지 않으면 그 묘미를 이해할 길이 없다. 유람선은 일단 성공적인 것 같다. 양동의 문화관광과장의 말로는 “주말에는 순번을 기다려야 탈 수 있다.”고 한다. 철새들도 유람선이 갯골로만 다닐 수 있음을 잘 아는지라 별로 겁을 내지 않는다. 새와 인간의 영역이 적절하게 균형잡혀 있다. 만의 생태계가 차츰 안정화되는 증거이리라. 허남채 비지터센터장을 길라잡이로 내세워 해룡면의 용머리산에 올랐다. 농로로 이어진 데다 간판도 없어 외부인이 홀로 찾기란 불가능하다. 얕은 산이기는해도 일단 정상에 오르면 일망무제다.“혼자 보기는 정말 아깝다.”고 했더니 “조만간 갈대밭에서 바로 넘어오는 환경친화적인 조망다리를 설치할 계획”이라고 귀띔한다. 순천만 관해의 으뜸 절경이니 시가 절로 나온다. 옛 시인들이 이런 풍경을 보면서 절경(絶境)보다 차라리 절창(絶唱)으로 표현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걸치자 칠면초가 한결 붉은빛으로 타든다. 일곱 색깔로 변한다고 하여 이름조차 칠면초라는데, 진홍빛 낙조 앞에서는 아예 단풍잎처럼 갯벌을 물들인다. 봄에는 갈대의 초록빛 새순이 햇솜같은 꽃과 대비를 이루며, 여름에는 초록의 섬처럼 무리지어 회갈색의 갯벌 위에서 피어난다. 가을 노란빛이 짙어져 가면서 눈발이라도 날리면 순천만의 사계는 한 바퀴를 돌아 다시 제자리에 다가서 있다. 바다에 물감을 풀어놓은 수채화라고나 할까. 통상적으로는 갈대밭 우거진 기수대를 순천만, 열려진 바다쪽은 여자만이라고 부른다. 지도에는 여자만으로 올라있으나 특별히 순천만을 떼내어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멀리 고흥반도가 펼쳐져서 여자만은 흡사 호수 같은 인상이다. 옛 사람들은 여자만 내의 여자도 주변에서 잡은 고기를 싣고서 순천만을 거쳐 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대대포구는 물산이 넘쳐 흘렀다. 그들은 짚줄로 엮은 전통어법 ‘방’으로 고기를 잡아들였다. 근자에까지 남아 있는 전통어법으로는 ‘덤장’과 ‘발’을 꼽을 수 있거니와 지금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물 깊은 곳에는 길게 덤장을 설치하여 봄·여름에는 칠게, 가을에는 민물장어를 잡는다. 비교적 얕은 내만 쪽으로는 V자형의 발을 설치하여 숭어 새우 문절어 등을 잡아낸다. 물이 썰면 낚시로 짱뚱어를 잡는다. 짱뚱어는 말뚝망둥어와 유사하다. 작은 갑각류나 규조류를 먹으면서 기수대에서 서식하는 짱둥어는 눈딱부리 머리꼴이 재미있게도 생겼다. 남도의 별미 짱뚱어탕으로 더 잘 알려졌지만, 짱뚱어야말로 갯벌의 주인공이다. 어느덧 겨울 냄새를 맡았는지 놈들은 모두 갯벌로 숨어들었다. ●강·바다 오가는 왕복성 어류의 천국 강과 바다를 오고 가는 왕복성 어류의 천국이기도 하다. 숭어나 뱀장어들이 그곳의 주인이다. 한때는 장어들이 갈대밭마다 그득 차서 시쳇말로 ‘물반 고기반’이었다. 수중보 따위를 막지 않아 어로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전주천과 더불어 관리를 잘하여 천의 오염도도 낮다. 국립수산과학원 남해수산연구소의 황선도 박사는 재미있는 비유를 들이댔다.“갯벌은 자동차로 치면 범퍼지요. 범퍼가 사라진다면 조금만 스쳐도 큰 상처가 나겠지요.” 육지와 바다의 점이적 완충지대로서 갯벌의 중요성은 온갖 생물종들의 보육장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그는 “만이 유치원이라면, 유치원이 잘 되어야지만 바깥 바다인 초등학교도 잘되겠지요.”란 비유법도 썼다. 수많은 사진작가들과 탐조객들이 몰려드는 모습을 보노라면 경관 가치를 새삼스레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간척하면 오로지 땅의 부가가치, 아니면 고작해야 어획물의 경제적 이득부터 계산하기 마련이고 여기에서 경관가치 계산법은 누락되기 십상이다. 만약에 지금의 순천만이 매립되어 아파트나 공단이 들어섰다면? 아름다움 자체가 사회적 재산이란 생각을 못하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도 돈을 제대로 모르거나 아니면 아름다움을 모르거나, 그도 아니면 둘 다 모르는 것 아닐까. 순천만의 교훈은 ‘불이(不二)’이다. 연기법에서 말하는 인간(正業)과 자연(依報)은 둘이 아니라 큰 생명체라고 하는 의정불이설(依正不二說)이 아니더라도, 어찌 바다와 강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랴. 갯벌에 의지해서 몸을 부대끼면서 살아가고 있는 짱뚱어라거나 갈대밭, 온갖 새들은 갯벌 그 자체와 떼어놓을 수가 없다. 하구 갯벌은 바다도 강도 아니고, 육지도 바다도 아니며, 모든 것이기도 하고 모든 것이 아니기도 하고, 인간이 발을 딛고 서 있을 만한 공간이기도 하고 전혀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불이이며, 아름다움 조차도 ‘경계의 미학’ 그 자체다. 경계는 늘 불안하고 조마조마하다. 그러나 경계는 그 긴장감으로 생명력을 잃지 않고 지켜낸다. 온갖 물고기와 패류, 조류, 심지어 순천만의 사람들까지도 생명으로 엮여 하나가 되고 있다. 갯고랑으로 노를 저어가는 유장한 물살만큼이나 순천만 사람들의 삶도 유장하다. 그래서일까. 순천만이 빚어내는 먹을거리들은 쩍쩍 입에 붙는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최선 높이 2m를 넘는 순천만 갈대숲은 더운 지방의 망그로브숲에 비견된다. 망그로브숲도 경계에 서 있다. 갯벌이 드러나고 숲의 뿌리도 드러난다. 물이 차고 빠지기를 거듭해 오면서 조간대의 삶을 살아오고 있다. 망그로브숲이 사라지자, 전 세계적으로 나무심기 운동이 벌어졌다. 숲 보존 비용보다 조성 비용이 훨씬 많이 먹힘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갈대밭이나 칠면초 등이 연출하는 아름다움을 인공으로 만든다면, 계산해볼 것도 없다.‘있을 때 잘하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독일 북해의 홀슈타인주에 있는 갯벌국립공원에서는 늘상 ‘문화적 경관’을 내세운다. 홀슈타인 갯벌의 새와 어민, 잡초류가 모두 동참하는 경관을 내세워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들에게 갯벌은 당연히 국립공원이다. 우리는 국립공원은커녕 ‘막느냐, 마느냐.’를 두고 멱살잡이가 한창이다. 갯벌에 입장료 내고 들어가라면, 한국의 시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실, 순천만도 조금은 위태로워 보인다. 생태보존정책 속에서도 조금씩 인공적으로 가꾸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욕구를 한사코 누르고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순천만의 미래를 담보하는 최선의 원칙이자 해답이 아닐까.
  • [문학이 머문 풍경] 망향의 恨 타오르는 영산강

    [문학이 머문 풍경] 망향의 恨 타오르는 영산강

    소설가 문순태(文淳太·63)는 고향이 없다? 전라도 전체가 그의 고향인지도 모른다. 그는 일제 말기인 1941년 영산강 상류인 전남 담양군 남면 구산리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다. 무등산 자락과 광주호로 이어지는 산골 마을이다. 평화롭던 마을은 한국전쟁과 함께 폐허로 변해 버린다. 봄이면 지천에 진달래가 만발하고 실개천 너머로 아지랭이가 피어 올랐었다.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51년 정부군은 ‘빨치산’ 토벌을 이유로 이 마을 일대 모든 집들을 불태워 버렸다. 당시 어린 작가는 그 광경을 똑똑히 지켜봤다. 정부는 아무런 보상도, 마땅한 설명도 없이 ‘공비토벌’이란 이유만 내세웠다. 그의 가족들은 고향을 뒤로하고 유랑에 나선다. 그 바람에 그는 화순, 광주, 신안 비금도 등 전남 곳곳을 떠돌며 어린시절을 보낸다. 어릴적 경험이나 환경이 그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다. 그러나 그런 정서와 기억이 그의 작품 곳곳에 짙게 묻어난다. 토속적인 향수와 한(恨)을 주된 정조(情調)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편협한 지역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이 땅에서 뼈를 묻은 무지렁이 민초들의 삶과 투쟁이 곧 역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장편소설 ‘타오르는 강’의 머리말에서 “진정한 의미의 산 역사는 민중(民衆)이 그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성댐 수몰민의 삶을 통해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촌과 도시빈민 문제를 다룬 ‘징소리’나 ‘흑산도 갈매기’‘걸어서 하늘까지’등의 소설도 그런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타오르는 강’은 구한말 영산포 일대에 정착한 민중들의 삶을 그린 그의 대표작. 영산강은 노령산맥 골짜기인 담양군 용면에서 서남해 끝자락인 목포에 이르는 120여㎞의 물골을 만들며 흐른다. 상류의 황룡강, 극락강, 지석강 등 3대 강을 따라 장성, 담양, 광주, 나주가 위치하고 그 아래 쪽으로 함평, 영암, 무안, 목포가 이어진다. 하구언이 축조되기 이전인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고깃배가 영산포 선창까지 오갔다. 영산포는 동학혁명 직전의 무능한 탐관오리들이 세곡(稅穀)을 한양의 경창(京倉)으로 실어 나르는 물류 중심지였다. 일제 때는 기름진 호남평야에서 나는 곡식을 일본으로 빼가는 ‘수탈의 관문’으로 자리잡았다. 소설 ‘타오르는 강’은 1886년 노비 세습제가 폐지되면서 종문서를 받아들고 영산강을 건너는 웅보와 대불이 형제 이야기로 시작된다. 나주의 양 진사네에서 대대로 종살이를 해온 이들 형제는 구진나루를 건너 ‘새끼내’ 제방 너머에 터를 잡는다. 새끼내는 봉황∼왕곡∼영산포에 이르는 영산강의 작은 지천이다. 지금의 나주시 이창동 정량·진포·운곡리 일대가 ‘새끼내 마을’이다. 웅보와 대불이 형제는 노비에서 풀려난 사람들을 모아 새끼내 일대에 마을을 일궈 나간다. 그들은 이곳 주변에 물둑을 쌓고 황무지를 개간한다. 형 웅보는 새로운 고향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그러나 동생 대불이는 상전이었던 양 진사를 도와 인근 영산포 선창에서 세곡 운반을 감독하는 목대잡이 노릇을 한다. 양 진사의 계략에 속은 줄 뒤늦게 깨달은 대불이는 장성 입암산으로 들어가 동학교도가 된다. 그는 동학군이 되어 귀향한 뒤 마을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소중한 땅을 빼앗아간 박 초시네 집을 습격하고 한을 푼다. 그러나 관군의 반격으로 동학군은 퇴각하고 새끼내 마을 사람들도 보복이 두려워 애써 일군 고향 마을을 불태우고 강변 따라 갓 개항한 목포항으로 떠난다. 다시 고향에 돌아올 꿈을 안은 채… 이는 특정시대, 특정 공간에서 일어난 일만은 아니다. 근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대부분 사람들의 선대가 겪었던 일이다. 새끼내 마을에서 만난 김판길(82) 할아버지는 “일제때 징용에 끌려갔다가 귀향했으나 살길이 막막해 선창가에 나가 짐꾼 등 막노동으로 살아 왔다.”며 “강 양안의 구릉이나 산지에 선대의 뼈가 묻혀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지역 신문기자로 일하던 70년대 초에 나주의 한 종가집을 취재하다가 노비들의 삶을 만난다. 그는 여기에 나주의 이른바 ‘궁삼면 사건’을 보태 소설의 소재로 삼았다. 이 사건은 1886년부터 3년에 걸친 대한(大旱) 때 지금의 다시·왕곡·세지 등 3개면 주민들이 폐농하고 유리걸식하며 각지를 떠돌면서 비롯된다. 이들이 귀향해보니 그동안 밀린 세금이라며 조정에서 농토를 빼앗아 가버리고, 이 사건은 농민운동의 발단이 된다. 죽음과 고통과 수탈의 현장이었던 영산강은 그대로 흐르고 있다. 자유인으로 변신한 노비들이 강 건너 황무지와 개산(새끼내 마을에 자리한 산으로 개가 엎드려 있는 형상)을 바라보며 ‘낙원’을 꿈꿨던 구진포 나루에는 지금도 고깃배가 떠있다. 홍어와 젓갈 등 수산물과 곡물을 실어나르던 영산포 선창의 흔적도 선명하다. 강은 상류 댐들과 하구언 축조로 수량이 줄면서 거친 모래자갈을 앙상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 그 당시와 다를 뿐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클릭 세상속으로] ‘술꾼’ 나르는 억척 여성들

    [클릭 세상속으로] ‘술꾼’ 나르는 억척 여성들

    주말인 지난 20일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각. 서울 거리는 한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라디오에서 낯익은 노래가 흘러나오자 그녀가 흥얼거린다.‘쿵짝 쿵짝 쿵짜라 쿵짝∼’하는 유행가의 가사마냥 한 구절 한 고비마다 인생의 운전대를 이리 꺾고 저리 꺾었을 ‘봉천동 문 여사’, 아니 ‘문 기사’는 오늘도 서울의 밤거리를 내달린다. 고1과 고3 두 아들의 엄마인 문정희(49·가명)씨는 ‘여성 대리 운전사’이다. 신문 광고를 보고 찾아간 업체에 면접까지 보고 채용된 ‘직원’이다. 일은 고되지만 수입이 좋은 편이어서 두달째 운전대를 잡고 있다. ●여성 대리운전 계속 늘어 3000∼4000명 한국대리운전협회 등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대리운전자는 12만∼15만명으로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여성 대리운전자는 3% 정도인 3000∼4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여기에 ‘여성 전용’대리운전 업체도 수도권에서만 1년새 10여곳이나 생겨났다. 강남 논현동에 있는 S업체 사장 장모(44)씨는 “보증을 잘못 선 현직 은행 지점장의 사모님도 있다.”고 귀띔했다. 장씨는 30∼40대 여성이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은 우리 사회에서 운전면허만 있으면 특별한 기술을 요구하지 않고 출퇴근도 자유로운 것이 이 일의 매력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여성 운전자의 절반은 주부이다. 남편이 직장을 잃거나 계약직으로 밀려난 뒤 나선 맹렬 아줌마들인 것이다. ●현직 은행지점장 부인도 운전대 잡아 기자를 올림픽 공원 앞에서 신림사거리까지 데려다 준 문씨는 학습지 교사로 10여년을 일하다 피부관리실을 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불황 탓에 100만원의 월세를 내기도 힘이 들었다. 지금 그녀는 ‘투잡스’족이다. 낮에는 화장품 방문판매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대리운전을 한다. 평일은 3∼4건, 주말엔 5∼6건으로 한달 수입은 150만∼200만원. 친정 어머니가 걱정을 많이 하지만, 두 아들은 고생한다는 말도 없다며 섭섭해한다. 19일 밤 광화문에서 방배동까지 대리운전한 김수진(34·가명)씨는 미혼이다. 그녀 역시 낮에는 웨딩플래너로 일한다. 지난 8월 대리운전을 시작했지만 벌써 중견급이다. 한달도 못돼 그만두는 사람이 절반을 넘는 탓이다. ●과속·난폭운전 싫어하는 분이 고객 여성 대리운전자를 찾는 고객은 남성이 90%를 차지한다. 여성 기사는 요금이 2만원으로 남성보다 5000원이 더 비싸지만 인기가 좋다. 문씨는 “남성 기사들이 과속이나 난폭운전을 일삼는다는 인식이 많아 여성 기사를 선호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그렇지만 남자 손님들의 이상한 시선은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는 “남자 손님은 10명 중 1명 꼴로 ‘커피라도 한잔 하자.’며 은근히 유혹하곤 한다.”고 털어놓았다. 김씨는 “의외로 남자들은 사업하다 망한 얘기부터 바람 핀 얘기, 부인 몰래 다시 만난 옛사랑 이야기도 서슴없이 털어 놓는다.”면서 “그 와중에도 내가 첫사랑과 닮았다며 작업성 멘트를 날리는 고객이 있었다.”고 혀를 찼다. 고객은 연예인부터 의사, 대기업 중역, 회사원, 부동산업자까지 우리 사회의 구성원을 망라한다. 최근에는 불황 탓인지 값비싼 술집이 많은 강남보다는 강북이나 서울 외곽지역에서 대리운전을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 술기운에 얽힌 세상사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 문씨는 고급 외제차의 주인을 강남의 한 고급주택가에 내려줬다가 멋쩍은 경험을 했다.“왜, 남의 집 앞에 차를 세우느냐.”는 집주인과 손님 사이에 싸움이 붙은 것. 대리운전자에게까지 쓸데없는 ‘허세’를 보이려다 망신을 당한 셈이었다. ●“어설픈 부자들이나 외제차 몰아요” 실제로 밤마다 운전대를 잡는 이들에게는 고객의 등급도 배기량에 따라 나뉜다. 외제차와 그랜저급, 그리고 소나타 이하. 여성 대리운전 기사들은 뜻밖에 “최상급 손님은 의외로 그랜저급”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씨는 “어설픈 부자들이나 외제차를 타지 정말 최상층의 부자나 사회 지도층 인사는 그랜저 정도의 승용차를 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문씨는 “외제차 타는 부자들은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고 총평했다. 외제차 주인들은 대리운전기사들은 꿈꾸기 어려운 고급 음식점과 술집, 해외 골프여행을 화제로 올리며 “당신도 시간나면 가보라.”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요금으로 3만원을 내밀었더니 “잘못 주셨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봉천동 문 여사와 내년 봄 성수기가 되면 본업에만 충실하겠다는 웨딩플래너 김씨. 이들은 오늘 밤에도 ‘술통’을 ‘배달’하며 내일을 꿈꾼다. 홍희경 박지윤기자 saloo@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안성의 요리 명가

    [뒷골목 맛세상] 안성의 요리 명가

    경부고속도로 안성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시내로 향하다 보면 중앙대학교 안성 캠퍼스 정문과 나란히 안성맞춤 박물관이 나온다. 박물관에는 바로 ‘안성맞춤’이란 단어를 고유명사에서 보통명사로 바뀌게 한 안성유기의 역사며 제작방법에서부터 수저와 그릇 같은 반상기, 제기, 불구(佛具), 징이며 꽹과리 같은 악기에 이르기까지 각종 유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흔히 놋쇠라고 부르는 유기는 만드는 기법에 따라 방짜유기와 주물유기로 나누어지는데, 나로서는 놋쇠를 불에 달구어 일일이 메질을 되풀이하며 얇게 늘려 형태를 잡아가는 기법으로 만들어진 방짜유기에 예사롭지 않은 관심이 갔다. 하나하나 손으로 빚어낸 섬세하면서도 정교한 모양도 모양이지만, 어딘가 보이지 않는 깊은 공간에서 새나오는 것 같은 은은하면서도 황홀한 빛은 흡사 무슨 향기로운 생명이라도 깃들어 있는 것처럼 여겨져 자칫 바라보기마저 외경스러운 기분이었다. 그럴지도 몰랐다. 소위 많은 명품들이 그렇듯이 안성유기 또한 그것을 만든 이들의 장인정신(匠人精神)이 낱낱의 작품 속에서 하나의 생명체로 아직까지 살아 숨쉬고 있을지도 몰랐다. 안성에서 살아 숨쉬는 장인정신은 비단 유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번 맛세상에서 만난 요리에서도 어렵잖게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대저 요리에 있어서 장인정신이란 무엇인가. 요리 하나 하나에 자신의 생명까지 불어넣을 정도로 몰두하여 마침내 자신의 삶과 요리가 기꺼이 한 몸이 되는 경지가 아니랴. 장자(莊子)의 양생주(養生主)에는 ‘포정’의 이야기가 나온다. 포정은 숙수 혹은 주방장 같은 요리사를 일컫는 말로, 옛날에는 직업으로 이름을 삼는 일이 흔했다. 포정이 양나라 혜왕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는데, 그 손을 놀리는 것이나 어깨로 받치는 것이나 발로 딛는 것이나 무릎을 굽히는 것이나 쓱쓱 칼질하는 품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흐름마저 음률에 맞지 않은 것이 없었다. 문혜군이 그 재주를 감탄하자 포정이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입니다. 도는 재주에 앞서지요. 처음 제가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은 소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3년이 지난 뒤에는 소가 보이지 않았고, 지금은 오직 마음으로 일할 뿐 눈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곧 손발이나 눈 따위 감각기관은 멈춰버리고 마음만이 작용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소 몸뚱이의 자연스러운 이치를 따릅니다. 뼈와 살이 붙어있는 큰 틈바구니를 젖힐 때나 뼈마디가 이어져 있는 큰 구멍에 칼을 넣는 일들은 모두 자연의 이치를 따라 갈라갑니다. 그래서 제 재주는 뼈와 살이 맺힌 곳에서도 아직 한번도 칼이 다치지 않도록 하지요. 하물며 큰 뼈에 부딪치는 일이 있겠습니까. 솜씨 있는 포정은 일년에 한번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살을 베기 때문이요, 보통 포정은 한 달에 한 번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뼈에 부딪혀 칼을 부러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칼은 이제 19년이나 지났고 잡은 소의 수가 수천 마리에 이르는 데도, 칼날이 지금 막 새로 숫돌에 간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저의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이 있는 곳에 집어넣기 때문에, 넓고 넓어 칼날을 휘둘러도 반드시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19년이나 지난 칼인데도 막 숫돌에서 새로 간 것 같지요. 그러나 지금도 막상 뼈와 심줄이 한데 얽힌 곳을 만났을 때는 저도 그 다루기 어려움을 알고 두려워하며 조심합니다. 눈길을 집중하고 몸놀림을 천천히 하며 칼놀림 또한 매우 미묘하게 합니다. 마침내 뼈와 살이 쩍 갈라지면 마치 흙덩이가 땅에 철썩 떨어지는 것 같은데, 그때에야 저는 흐뭇한 마음으로 칼을 닦아 품에 간직합니다.” 문혜군은 무릎을 치며 감탄한다.“훌륭하구나! 포정의 말을 듣고 나는 비로소 양생법을 깨우쳤도다!” ‘안일옥’(031-675-2486)은 옛날의 안성장에서부터 비롯하여 80년이 넘게 소위 쇠전머리 장국밥의 입맛을 대물림해오는 3대 전통의 명가다. 예부터 안성장은 유기뿐만이 아니라 소를 사고파는 우시장 또한 유명하여 전국에서 다섯 번째 안에 드는 큰 장으로 발전되었는데, 바로 안성장에서 떠돌이 장돌뱅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장국밥이 안일옥에서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작고한 1대의 이성례에서 비롯하여 2대의 이양귀비(87세),3대의 우미경(42세)에 이르면서, 요리에 몰두하여 마침내 자신의 삶과 요리가 기꺼이 한 몸이 되는 도의 경지는 더욱 깊어졌으리라. 한 가지에만 전념하여 80년,3대를 이어간다는 것은 안으로 흐르는 장인정신이 없이는 전혀 불가능할 터이다. 벌써 아흔에 가까운 이양귀비 할머니는 더 이상 식당일에 관여하지 않지만,3대의 우미경은 날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주방에서 손수 요리를 다루고 있다. 어찌 며느리 우미경뿐이랴. 이양귀비의 3남 6녀의 자녀들은 이미 작고한 장남 김종선이 송탄에 안일옥 분점을 낸 것을 필두로,2남 김종안이 도기동 쇠전머리에 새집을 지어 장터국밥집을 열 준비를 하고 있고,3남 김종열이 안일옥 본점을 맡고 있다. 4녀 김종숙이 평택에,5녀 김종금은 안일옥 본관 바로 옆에 별관을 열어 약간 색다른 메뉴로 보신탕이며 삼계탕을 선보이고 있다. 이만하면 가히 요리만으로 명가다운 집안을 이룬 셈이다. 이중에서 3남이면서도 안일옥의 전통을 내리 이어받은 김종열은 아내 우미경을 도와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일찍이 중앙대학교 식품영양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거기에서 외식산업경영에 대한 강의를 하기도 하는 둥, 경험과 학문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아직 중학생인 아들 김형우를 시흥에 있는 조리과학고등학교에 입학시켜, 미리부터 4대를 이을 준비도 하고 있다. 안일옥의 메뉴는 일찍이 쇠전머리 장국밥에서 발전하여, 해장국(4000원)부터 설렁탕(5000원), 곰탕(5000원), 내장곰탕(5500원), 갈비탕(5500원), 꼬리곰탕(1만원), 도가니탕(1만원), 족탕(1만 2000원), 안성맞춤우탕(1만 5000원), 소머리수육(1만 5000원), 도가니수육(2만원), 모듬수육(2만 5000원), 꼬리수육(3만 5000원), 족수육(4만원)으로 다양하여졌다. 만일 모처럼 외식에 나섰거나 몸이 허약해서 보양식을 찾는 중이라면 약간 무리하다 싶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꺼이 안성맞춤우탕을 권하겠다. 안일옥에서 특별히 만들어낸 메뉴인 안성맞춤우탕에는 한 그릇 가득히 우족을 위시해서 꼬리, 도가니, 갈비, 소머리고기가 다양하게 들어 있는데, 맛도 맛이지만 양 또한 넘쳐나서 비싸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우정집’(031-675-4029)은 냉면전문집이다. 그리고 과연 냉면전문집답게 메뉴는 냉면과 비빔냉면 딱 둘뿐이다. 흔히 냉면과 함께 팔기 마련인 수육마저도 없으며 소주나 맥주 같은 주류도 없이 다만 냉면뿐인 것이다. 혹시 종교적인 이유에서 술을 팔지 않는 것인가 하고 물어보았더니, 술을 팔다 보면 술꾼들 때문에 냉면이 좋아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에게 누가 될까 싶어서 팔지 않는다는 단순한 대답이었다. 수육의 경우는 자칫 수육을 그날 팔지 않으면 냉장고에 넣어 보관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다음날은 수육의 고유한 맛을 잃어버릴 터이고, 그런 수육을 차마 손님들에게 내놓을 수가 없어서 아예 포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우정집의 주인 배석윤은 황해도 출신으로 갓 스물 무렵에 서울 수표동의 유명한 음식점 경희장의 주방에서 요리사로서의 첫 수업을 쌓아 경력 40년이 훌쩍 넘은 소위 요리의 장인이다. 그이가 안성에 터를 잡은 것은 1968년 당시 미화장이라는 안성에서 가장 큰 음식점 주방장으로 내려오면서부터였다. 미화장이 없어지자 그이는 바로 미화장 앞에 터를 잡아 1975년에 냉면전문집을 열었다. 그런 그이가 요즈음 들어 애오라지 하는 일이란 전혀 자신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 일이다. 그이는 나와의 인터뷰마저도 아내 복경순과 이미 대학의 외식산업과를 나와 전문요리사가 되어있는 아들 배승태에게 맞긴 채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듯이 우정집은 이미 경기도 지정업소며 모범업소로 선발되었지만 어디에도 인정서 따위는 보이지 않고, 붙은 것은 냉면과 비빔냉면 각각 5000원이라고 적힌 메뉴판이 전부였다. 우정집에서 생각 없이 냉면을 먹다 말고, 나는 자칫 입에 문 냉면 몇 올마저도 목구멍으로 흘려 넘기기가 불현듯 외경스러운 기분이었다. 세상에 이런 이도 있는 것일까. 전문요리사출신인 아들마저 아버지의 길은 옆에서 보아내기만 해도 너무 고달프고 힘들어 도저히 뒤따르지 못하겠다며 그만 포기하고만 길을 걷는 이. 길이 깊어지다 못해 이제는 애오라지 자신을 세상에서 숨기려 드는 이. 그렇게 장인정신 깊어지면 안으로 갈무리되어 어디론가 또 다른 공간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일까. 그리하여 어느 날 눈 밝은 이를 만나면 은은하면서도 황홀한 빛을 내어 무슨 향기로운 생명체로 다시 새나오는 것일까. 안성교육청 앞에 숨어있는 ‘향교식당’(031-675-4288)이라는 4000원짜리 가정식백반집도 나로서는 장인정신이 빛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 집은 기실 안성 부근에 작업실이 있는 내가 일주일에 한번 꼴로 들르는 단골집이다. 어떤 날은 향교식당의 백반을 먹다 말고 자칫 심약해진 나머지 눈물마저 글썽일 때가 없지 않다. 나를 그렇듯 심약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도 반찬 하나하나에 스며있는 이 집 주인의 선의(善意)이다. 누군가는 한갓 가정식백반에서 장인정신 운운하는 나를 너무 싸구려라며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하는 수 없다. 구태여 한 마디 변명하자면, 손님에 대한 선의가 없이 어떻게 장인정신이 우러날 수 있으랴, 되물을 수밖에. 시어머니 오은자와 며느리 서강열이 사이좋게 솜씨를 내는 향교식당 4000원짜리 백반의 반찬은 가짓수가 무려 16가지가 된다. 돼지불고기, 꽁치조림, 청국장찌개, 고추버섯볶음, 소고기장졸임, 미역쌈, 무장아찌, 시금치, 오이소박이, 어묵볶음, 오이노각, 김, 깻잎장아찌, 멸치땅콩볶음, 콩나물, 깍두기…. 반찬들의 어느 하나 고부의 정성이며 선의가 깃들지 않은 것이 없지만, 김같이 사소한 것도 쉽게 사서 쓰는 일이 없이 일일이 품을 팔아 들기름에 구워내는 식이다. 뿐이랴, 부족하면 얼마든지 더 시켜서 양껏 밥을 먹고 나면, 한 양푼 가득히 갓 끓여낸 누룽지탕을 다시 가져다준다. ● 설렁탕 역사는 수백년 설렁탕이 조선시대 선농단과 왕실소유 토지인 직전에서 해마다 봄이면 거행된 왕의 친경행사에서 유래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친경행사에서 왕이 선농제라는 일종의 풍년제를 올린 후 제사에 쓴 소를 재료로, 문무백관이며 인근의 백성들까지 두루 나눠먹게 하기 위하여 솥 가득히 끓여낸 음식이 바로 설렁탕이라는 식이다. 이 설렁탕은 원래 선농탕이 변한 것이다. 이후 민간에서는 요리법이 차츰 발달하여, 우선 사골을 넣고 10시간 정도 끓인 다음에 소머리, 양지고기를 넣고 다시 3시간 정도 끓여서 고기만을 건져낸 다음에 부위별로 썰어내고, 뼈는 다시 푹 고아서 손님에게 내게 되었다. 설렁탕에 반해 곰탕은 사골 같은 뼈는 쓰지 않고 주로 내장 위조로 푹 고아서 말 그대로 곰탕을 만들어낸다. 해장국은 선지에 우거지를 넣어서 고아낸다.
  • 칙칙폭폭 하루여행 어때요

    칙칙폭폭 하루여행 어때요

    1970,80년대 대학생들의 꿈과 낭만을 가득 실어날랐던 경춘, 경의선 완행열차. 지금은 도심 외곽까지 아파트들이 들어차면서 그때 만큼의 정취를 느끼기는 어렵다. 그래도 여유로운 차내 분위기, 차창 밖에서 정겹게 손짓하는 듯한 강변 풍광 등 열차여행의 묘미는 여전히 살아있다. 잠시나마 수능 준비에 지친 몸과 마음을 편안히 맡기기엔 역시 열차여행이 제격이다. 수도권 주변 하루 코스로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열차여행 명소들을 소개한다. #경춘선 서울∼춘천 구간에 있던 18개 역에 모두 섰던 비둘기호 열차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통일호도 지난봄 운행을 멈췄다. 지금은 세련된 외모의 무궁화호가 쾌적하게 손님들을 나른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춘천행 첫차는 새벽 5시25분, 춘천발 막차는 밤 10시20분에 있다. 경춘선을 따라 기차역 주변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한다. ●대성리역(031-584-0616) 경춘선이 북한강과 만나기 시작하는 곳. 여기부터 강을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끼고 달리는 경춘선 열차여행의 묘미가 시작된다. 대성리역 일대는 대학생들의 대표적인 MT명소다. 수려한 강변 풍광과 함께 운치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많아 한나절 정도의 시간을 내 머리를 식히기엔 그만이다. 대성리역에서 걸어서 5분쯤 가면 대성리 국민관광지가 있다.8만여평의 넓은 터에 산책로, 족구장 등을 갖춰놓고 있다. 입장료 1000원.031-584-0088. ●청평역(031-584-0012) 대성리역에서 청평역에 이르는 구간은 경춘선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청평호를 중심으로 수려한 북한강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여기에 강 건너 화야산의 경치까지 더해 차창에 고정된 눈길을 어지럽힌다. 청평역에서 버스로 20분 이내에 축령산, 화야산 등이 있어 등산을 즐겨도 좋다. 또 영화 ‘편지’가 촬영된 ‘아침고요수목원’(031-584-6703)도 가까이 있다. ●가평역(031-582-7788) 이곳에 내리는 이의 절반은 남이섬(031-582-2181)에 가는 사람이다. 역에서 버스를 타고 10분이면 선착장에 도착한다. 남이섬은 지금 낙엽천지다. 섬 입구의 잣나무숲을 제외하면 대부분 낙엽수인데, 섬 어딜 가나 낙엽이 수북이 쌓인 오솔길을 걸으며 늦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널찍하게 펼쳐진 잔디밭에선 다양한 게임과 운동을 해도 좋고, 자전거(1시간 5000원)를 빌려 숲길을 내달려도 좋다.‘옛날 벤또 도시락’(4000원)’,‘양푼비빔밥’(2인분 8000원) 등 70,80년대의 재미있는 먹을거리도 맛볼 수 있다. 인근 명지산은 고목들과 기암괴석이 빚어내는 풍광이 제법 수려하다. 단풍이 져 좀 아쉽기는 해도 늦가을 산행에 부족함이 없다. 용이 승천하면서 아홉굽이 그림을 빚어냈다는 용추구곡과 청정계곡인 적목용소 등도 볼 만하다. ●강촌역(033-261-7788) 강촌은 예나 지금이나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MT명소. 언제 가도 젊음이 넘실댄다. 강의 북쪽으로는 삼악산, 남으로 봉화산이 병풍처럼 드리우고 있어 주변 풍광도 수려하다. 강촌역에서 4㎞쯤 가면 구곡폭포로 유명한 봉화산 자락에 들어서게 된다. 아홉굽이 물줄기가 아홉가지 소리를 낸다는 구곡폭포를 거쳐 분지마을인 문배마을과 연계하는 한나절 등반코스로 훌륭하다. 잣나무숲 사이로 등반로가 잘 다져져 있다. 문배마을엔 10여가구의 농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데 집에서 직접 만든 손두부가 별미다. ●춘천역(033-255-6551) 춘천에선 소양호를 찾아 호반의 늦가을 정취를 느껴보고 유명한 춘천 닭갈비를 맛보는 것으로 스케줄을 짜면 된다. 소양호는 역에서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가야 한다. 소양호에선 호반 건너편 청평사로 유람선이 다닌다. 간 김에 배를 타고 건너 청평사에 다녀오면 뱃길여행에 가벼운 등산까지 겸해 일정을 더욱 알차게 할 수 있다. 입장료와 도선료 포함 5000원. 닭갈비를 먹고 싶으면 시청앞 명동골목을 찾는 게 좋다. 이 골목엔 모두 20여개의 닭갈비집이 빼곡하게 들어서 영업중.1인분에 6000∼7000원. #경의선 일산신도시가 들어서기 전 경의선은 경춘선 못지않게 낭만이 가득한 곳이었다. 지금은 일산은 물론 금촌, 문산까지 선로 주변으로 아파트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예전의 정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문산을 지나 임진각역까지 가다 보면 열차여행의 재미를 쏠쏠히 맛볼 수 있다. 임진각은 한국전쟁의 상흔이 아직 가득한 안보관광지. 지하 1층, 지상 3층의 임진각 안보통일관에는 북한의 생활상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와 화보들이 전시돼 있다. 야외에는 6ㆍ25때 사용된 군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다.‘철마는 달리고 싶다’(철도 종단점)라는 팻말을 단 증기 기관차가 비장한 여운을 남긴다. 하루 3번 임진강역에서 도라산역까지 기차를 타고 도라전망대와 제3땅굴을 둘러보는 연계관광코스를 이용해도 좋다. 어른 기준 1만 1200원. 문의 도라산평화공원관리사업소(031-940-8342), 임진각관광안내소(031-953-4744), 임진강 역(031-954-1074). 경기도가 슬로푸드(SLOW FOOD) 마을로 지정한 파주 장단콩마을에도 가보자.700여개의 장독대를 볼 수 있고, 그 자리에서 된장 등을 손가락으로 찍어먹는 맛이 기막히다. 3월부터 임진각 관광지와 연계한 체험거리 ‘임진강 황포돛배’는 적성면 두지리 선착장을 출발해 고랑포 여울목까지 갔다가 되돌아온다. 두지리에서 자장리까지의 붉은 수직적벽이 볼 만하다. 조선시대의 주요 운송 수단을 체험하는 이 코스는 약 6km로 40분 쯤 걸린다. 승선료는 8000원. 임진각에서 버스로 출발해 화석정, 장파리, 김신조침투로, 경순왕릉, 고랑포구 등을 거쳐 두지리 선착장까지의 육로관광까지 포함한 패키지는 1만 7000원.㈜DMZ관광(031-958-2558). ■칙칙폭폭 이벤트 즐겨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관광전용열차를 이용하면 열차여행의 묘미를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 철도청과 롯데관광이 합작해 설립한 KTX관광레저㈜(02-393-3100)에서 관광전용열차를 운용중이다. 관광전용열차는 우선 3곳에서 운행된다.‘라이브 카페와 함께하는 환상의 서울야경 순환열차’는 서울역을 출발해 교외선을 타고 일영을 거쳐 의정부와 청량리, 서빙고 등 경원선을 돌아 다시 서울역에 도착하는 2시간30분코스. 차창 바깥으로 펼쳐진 야경 감상과 함께 라이브연주와 댄스, 마술 등 다양한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요금은 대인 2만 9000원, 소인 2만 6000원. ‘정선 관광전용열차’는 매주 일요일 아침 8시10분 청량리역을 출발한다. 역시 차내에서 라이브콘서트와 레크리에이션,DJ쇼 등이 진행된다. 아라리촌, 약초시장, 화암동굴, 화암8경 등을 돌아보는 1코스 요금은 5만 9000원, 정선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유람열차를 타고 아우라지 등을 돌아보는 2코스는 5만 8000원이다. ‘정동진 해돋이 열차’는 무박2일 일정으로 운행된다. 매주 금요일밤 10시22분 청량리역을 출발, 새벽 5시10분 정동진역에 도착한다. 해돋이를 본후 남설악 주전골, 오색약수, 주문진 어시장 등을 돌아보고 밤 10시13분 청량리역으로 돌아온다. 차내에선 클래식공연, 개그매직콘서트 등이 진행된다. 요금 7만 8000원. 철도청이 마련한 ‘대부도 황금 해넘이 라이브공연열차’도 이용할 만하다.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 의정부역을 출발, 청량리역(11시30분), 영등포역(12시)에서 예약자를 태워 전철 4호선 안산역 다음에 나오는 신길온천역에 내려 연계버스를 타고 대부도까지 간다. 대부도에선 해넘이 감상과 함께 굴따기 체험, 망둥이 낚시, 시화방조제 인라인스케이트 타기 등을 즐길 수 있다. 대하 및 굴 구이, 바지락칼국수, 대부도 포도주 등 먹을거리도 풍부하다. 관광을 마친 후 열차는 영등포(오후 8시43분), 청량리(9시15분)를 거쳐 의정부에 9시50분 도착한다. 요금은 어른 1만 7000원, 어린이 1만 5000원. 식사는 개별 부담이다. ■놀이공원·극장가 할인이벤트 ●놀이공원에서 롯데월드는 2004년도 수능 수험표를 지참한 수험생에게는 11월 한달동안 롯데월드 주·야 자유이용권을 30% 특별 할인한다. 또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진다. 인기가수와 함께하는 ‘수능 특집 공개방송’을 비롯해, 젊음의 열기를 맘껏 펼칠 수 있는 ‘도원경 록 콘서트’와 인기만화가 김수정씨와 제자들이 펼치는 ‘만화작품전’, 고객참여로 진행하는 ‘황금종을 잡아라’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www.lotteworld.com,(02)411-2000. 서울랜드는 수험생들이 눈사람 마을 여행과 놀이기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할인행사를 한다. 12월31일까지 수험표나 고3학생증을 지참한 학생은 서울랜드 자유이용권을 50% 할인가격,1만 1000원에 이용할 수 있고 가장 인기있는 놀이기구 서울랜드 스카이엑스도 5000원 할인해 스트레스를 날려준다.(02)504-0011,www.seoulland.co.kr 에버랜드는 오는 30일까지 SKT 멤버십카드와 2004년 수능 수험표를 제출하는 학생들에게 자유이용권을 1만원에 주는 파격할인행사를 실시한다.www.everland.com,(031)320-5000. 63빌딩은 오는 30일까지 수능시험을 끝낸 수험생들을 위한 ‘63수능잔치’를 연다. 특별할인과 수족관 체험행사, 수험생 특별메뉴 제공 등 다양한 이벤트로 구성되었다. 수험표를 지참한 학생들에게 63층 전망대, 수족관, 아이맥스영화관 등 63빌딩 내 관람시설을 이용하는 수험생들에게 최고 30% 할인혜택을 준다. 특히 수험번호 중 숫자 63이 있으면 50%까지 할인해 준다. 수험생 및 학생들에게 최근 유망직업으로 떠오른 아쿠아리스트에 대해 간접 경험해볼 수 있는 ‘일일아쿠아체험’프로그램도 진행한다.(02)789-5663, www.63.co.kr 오는 26일 일산 호수공원에 오픈하는 테마파크 산타킹덤은 12월10일까지 수능 수험생에게 30% 할인한다. 단 본인 확인 가능한 신분증과 수능 수험표를 지참해야한다.1588-3955. ●외식업체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맛있는 음식을 저렴하게 먹어보자.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는 21일까지 SK텔레콤의 수험생 모바일쿠폰과 수험표를 갖고 온 고객에게 에피타이저 메뉴를 무료 제공한다. 30일 수험표를 갖고 베니건스를 방문하면 컨트리 치킨 샐러드, 몬테 크리스토, 치킨 퀘사딜라 등을 무료로 먹을 수 있다.TGI프라이데이스 역시 수능 접수증·수험표를 제시한 당사자에게는 식사를 절반값에 주고 100% 당첨 즉석복권을 제공하는 행사를 30일까지 진행한다. 빕스는 21일까지 수험표를 보여주면 멤버십카드를 발급하고 10% 할인해 주며,스카이락은 탄산음료를 무료로 제공한다. ●극장가에서 보고싶었던 영화를 보는 것도 좋겠다.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는 수험표를 제시하면 영화관람료 1000원을 깎아준다.CGV는 23일까지, 롯데시네마·메가박스는 30일까지. CGV는 12월15일까지 영화 3편을 보고 홈페이지에 수험번호를 입력하면 5명을 선정, 뉴질랜드 여행을 보내주는 ‘시네마원정대’이벤트도 함께 준비했다. 롯데시네마는 20∼21일 플라스틱 기왓장을 격파한 수험생에게 깨진 기왓장 개수에 따라 티켓, 팝콘 등 경품을 제공한다. 메가박스도 행사기간동안 수험생을 대상으로 카메라,DVD플레이어를 경품으로 주는 이벤트를 연다. 또 티켓링크는 21일까지 ‘여선생 VS 여제자’,‘모터싸이클 다이어리’,‘나비효과’ 등을 예매한 수험생에게 추첨을 통해 DVD플레이어,MP3플레이어, 영화티켓 등을 준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어린이대공원 “불황은 없다”

    어린이 대공원 유료 입장객수가 꾸준히 증가해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은 지난 14일 올해 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유료 입장객이 183만명을 기록, 연말에는 2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고 17일 밝혔다. 이같은 수치는 최근 5년동안 입장객수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다. 지난 2000년 유료 입장객 수는 172만명,2001년 185만 4000명으로 증가세였으나 2002년에는 167만 9000명으로 줄어들었다. 이후 2003년 183만 6000명으로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 유료 입장객수가 증가한 것은 공원관리에 경영마인드를 도입했기 때문. 지난해 10월 공단은 국내 대표적인 놀이공원에서 영업·마케팅을 담당해온 이원효(51)씨를 운영센터소장으로 영입했다. 이 소장은 어린이대공원과 서울대공원을 맡아 볼거리가 풍부한 시민공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지난 2003년 38일동안 67만 9000명이 찾던 ‘봄꽃축제 야간개장’ 프로그램을 일부 보강해 지난해에는 58일동안 91만 7000명으로 늘렸다. 여기에다 ‘에코스쿨’ 등 학습프로그램을 내실있게 꾸몄으며,‘이색 낙타타기’,‘중국문화대축제’유치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마련했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인기연재 ‘김영희 이혼클리닉’ 책으로 나와

    인기연재 ‘김영희 이혼클리닉’ 책으로 나와

    ‘100점짜리 남편,100점짜리 아내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찾을 수 없다.51점에 만족하며 100점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결혼이다.’ 서울신문에 이혼 등 가정문제 상담 칼럼인 김영희 이혼클리닉 ‘만남, 사랑 그리고 헤어짐’을 연재하고 있는 서울가정법원 김영희 조정위원이 그동안 상담한 글과 자신의 결혼생활 등을 묶어 15일 책으로 펴냈다. 책 이름은 칼럼 제목과 같은 ‘만남, 사랑 그리고 헤어짐’(행복한책가게 펴냄)이다. 지난 1월 14일부터 매주 수요일 게재된 김 위원의 상담 칼럼은 지난 10일 43회째가 실렸다. 결혼 생활의 위기를 맞은 부부들이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 사연을 올리면 김 위원이 상담을 해주는 형식이다. 김 위원의 칼럼은 기혼자는 물론 미혼자 사이에서도 ‘행복한 결혼과 건강한 이혼은 어떤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며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은 친구와 바람난 남편 때문에 괴로워하는 가정주부, 아내의 혼전동거를 알고 방황하는 회사원 등을 상담한 내용(1부),8년 동안 조정위원으로 지켜본 이혼의 허와 실(2부), 행복한 부부로 살기 위한 결혼생활 7계명(3부)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하루 400여쌍의 이혼 부부들이 어디로 가나.’‘80%가 후회한다는 이혼’ 등 이혼 후 삶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그는 ‘이혼 후 더 험한 세상이 기다리기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결혼생활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걸 후회한다.’며 이혼이 불행도, 행복도 아닌 새로운 도전이며, 출발지라고 말한다. 김 위원은 이 책에서 ‘이혼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라며 이혼의 위기를 겪었던 자신의 인생도 소개한다. 결혼 생활 38년 동안 365일 가운데 360일을 이혼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는 43년전 대학 신입생 때 서울행 기차에서 남편을 만났다. 5년 후 친정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문기자인 남편과 결혼했다. 술을 좋아한 남편은 맨 정신으로 집에 들어오는 날이 없었다. 술값, 밥값을 제한 월급봉투는 빈봉투인 때가 부지기수였다. 세 자녀를 데리고 모진 세월을 이겨낸 그는 남편은 나무, 나는 함박눈이 되어 이제 찬란한 ‘눈꽃 사랑’을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김 위원은 ‘인생에는 꽃피는 봄도 있지만 천둥 번개 휘몰아치는 여름도 있고 낙엽 지는 가을도 있다. 인생의 사계절을 함께한 부부만이 한겨울에 숨 막힐 듯 피어나는 눈꽃 사랑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행복한 결혼생활의 덕목은 의외로 간단, 명료하다. 부부는 누구보다 예의를 갖춰야할 사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것이다. 혀끝을 조심하고, 상대의 단점을 고치려 들지 말며, 자기 허물을 인정하고 먼저 사과해야 하는 게 부부라고 했다. 김 위원은 책 판매로 얻는 수익은 이혼으로 인한 결손 가정의 자녀들을 돕는데 쓰고 싶다고 밝혔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베세토연극제 폐막작 초청 ‘메데이아‘ 연출 박재완씨

    그리스 비극을 우리 전통의 몸짓과 소리로 형상화한 극단 가변의 ‘메데이아 컴플렉스’(각색 조현아, 연출 박재완)가 제11회 베세토연극제의 폐막작으로 초청돼 오는 20·21일 이틀간 일본 도쿄 와세다대학 특별상설무대에서 공연된다. 베세토연극제는 아시아의 연극교류를 위해 한·중·일 삼국이 매년 번갈아 주최하는 행사로, 올해는 지난 8월14일부터 오는 23일까지 도가, 돗토리, 시즈오카, 도쿄 등 일본 4개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메데이아 컴플렉스’는 지난해 봄 국립극장 희랍극 페스티벌에서 초연했고, 그해 밀양연극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했다. 사랑했던 남자로부터 비참하게 버림받은 한 여인의 처절한 복수극을 연극의 본질적인 요소인 ‘움직임’과 ‘소리’에 천착해 재구성한 작품. 폐막작으로 선정된 배경에 대해 박재완 연출가는 “연극만이 갖는 원형성을 회복하자는 연극제의 주제의식과 맞아떨어진 때문인 것 같다.”고 풀이했다. 대사를 가능한 한 줄이고, 대신 언어 이전의 일상적인 소리에 리듬을 가미해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방법을 택했다. 몸짓도 우리 전통춤의 기본인 호흡과 역동성을 중심으로 정중동의 미감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는 “초연 때 돈이 없어서 무대에 신경을 못쓰고, 배우에 집중했던 것인데 오히려 더 좋은 결과를 낳았다.”며 웃었다. “변심한 남편의 사랑을 되찾는 데 실패한 여자의 분노와 좌절이라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우리 식의 움직임과 리듬안에서 어떻게 충돌하고 변형되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는 게 연출자의 의도. 이번 일본 공연에는 개성파 연기자인 손병호와 조영진이 각각 크레온과 이아손으로 열연하고, 밀양연극제에서 여자연기상을 수상한 이선정이 메데이아로 다시 무대에 오른다. 내년 3월 대학로에서 공연할 계획이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대구가 낳은 민족시인 이상화

    [문학이 머문 풍경]대구가 낳은 민족시인 이상화

    “태백산이 높솟고 낙동강 내다른 곳에/오는 세기 앞잡이들 손에 손을 잡았다/높은 내 이상 굳은 나의 의지로 나가자 나가 아 나가자.”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대륜고등학교에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노래한 민족시인 이상화의 정신이 도도히 살아 있다. 상화는 한때 대륜고의 전신인 대남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이 학교의 교가도 작사했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굴종을 강요받았던 암울했던 현실을 넘어 언젠가 봄을 맞이할 미래 세대에 대한 상화의 투자였다. 상화는 이 교가가 문제되어 사직을 하고 교가 부르기도 한때 중단됐었다. 하지만 일제의 만행을 비웃기라도 하듯 상화가 지은 교가는 긴 세월을 넘어 오늘도 달구벌에 울려 퍼지고 있다. ●주먹이라도 굵어야 한다 상화는 1901년 음력 4월5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열다섯살 때인 1915년 대구를 떠나 경성 중앙중학교에 입학해 3년을 마치고 다시 대구에 내려온다.1919년 3·1운동 대구거사 모임에 참여하지만 거사 직전에 일제에 발각돼 검거망을 피해 서울로 탈출한다. 프랑스 유학을 꿈꾸며 일본으로 건너갔던 상화는 관동대지진이 일어나자 귀국,1927년께 대구로 다시 낙향했지만 일본 관헌에 의해 구금되는 등 고초를 겪는다. 1933년 강사자격증을 취득한 상화는 교남학교에 들어가 교육사업에 전념하게 된다. 이곳에서 영어와 작문을 강의하면서 뜻밖에 과외활동으로 권투부를 만들었다. 대구에서는 최초로 권투부를 만들면서 상화는 ‘나라 빼앗긴 피압박 민족은 주먹이라도 굵어야 한다.’는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그러나 그가 작사한 교가가 문제되어 학교를 사직, 미래 세대에 대한 상화의 투자는 미완성으로 끝났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일제는 시인에게 시를 쓸 수 없도록 강제했지만 상화는 시를 쓰며 저항했다.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하늘 푸른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중략)그러나 지금은-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비록 나라는 빼앗겼지만 민족혼을 일깨워줄 봄은 결코 빼앗길 수 없다는 강렬한 저항의 메시지가 담겼다. 교남학교를 사직한 상화는 현재 대구시 계산동에 남아있는 고택으로 이사와 문학에 열중하지만 1943년 위암진단을 받는다. 결국 그해 4월25일 그토록 간절히 기다렸던 봄을 보지 못한 채 타계했다.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뒷산 경주 이씨 가족묘지에 묻힌 상화는 아마 오늘도 못다 부른 조국의 노래를 계속하고 있으리라. ●시민이 지켜낸 상화 고택 대구시 중구 계산동 2가에 자리한 상화 고택은 상화가 타계한 1943년까지 2년6개월간 마지막 창작의 불꽃을 사른 곳이다. 생가인 서문로 12번지 일대는 개발로 흔적없이 사라졌고, 계산동 고택에는 상화의 체취가 유일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이곳을 관통하는 도로 개설이 계획되면서 상화 고택이 헐릴 위기에 처하자 시민들이 항의하고 나섰다.2002년 8월 대구지역 문화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 보존운동본부’를 결성, 시민 40만여명의 서명을 받아냈다. 또 군인공제회가 상화 고택 바로 옆에 26층 규모의 주상복합건물을 계획하자 보존운동본부는 상화 고택 보존에 제약이 따른다며 반대운동에 들어갔다. 공제회측은 운동본부의 의견을 존중해 상화 고택을 매입해 보존키로 하고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고택을 사들였고 내년 초 대구시에 기부채납할 예정이다. 보존운동본부 윤순영(52·여·분도예술기획대표) 공동상임대표는 “사라질 뻔했던 상화 고택을 시민들이 지켜냈다.”면서 “앞으로 고택 보존을 넘어 상화 고택을 대구문화의 중심으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상화의 시비는 1948년 대구 달성공원에 세워졌는데 국내 최초의 시비다. 시비 앞면에는 ‘나의 침실로’ 일부가 새겨져 있다. 1995년 대구 두류공원 인물동산에는 상화의 동상이 세워졌다. 친일 과거사 청산문제로 시끄러운 요즘 상화가 살아 있다면 뭐라고 했을까. 빼앗긴 들은 되찾았지만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고 노래했을까.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동북부 웰빙거점 뚝섬이 뜬다

    동북부 웰빙거점 뚝섬이 뜬다

    서울 동북부의 ‘웰빙’공간으로 뚝섬이 뜨고 있다. 행정구역상 성동구 성수동인 뚝섬은 천혜의 자연과 편리한 교통시설, 강남으로의 뛰어난 접근성 등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조성 중인 35만평 규모의 서울숲이 완공되면 강과 숲이 만들어내는 최적의 자연친화적 공간이 연출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중랑천 건너 바로 뒤편으로는 해발 81m 응봉산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뚝섬은 말 그대로 ‘배산임수’지형이다. 여기에 현재의 지하철 2호선 뚝섬역과 성수역,7호선 건대입구역과 뚝섬유원지역 외에도 2008년 지하철 분당선(왕십리∼분당)이 이곳을 통과할 예정이다. 서울시는 뚝섬을 ‘준강남권 주거타운’으로 개발해 강남 수요를 흡수한다는 복안이다. ●4개 구역으로 나눠 개발 서울시는 지난 9월 ‘뚝섬 역세권 개발계획’을 마련해 성동구 성수동 뚝섬 경마장부지 2만 5000여평을 4개 특별계획구역으로 나눠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시는 4개 구역 중 성동구민체육센터 등 체육시설이 있는 2구역을 제외한 1·3·4구역을 내년 1월중 최고입찰가 방식으로 공개매각한다고 밝혔다. 공개매각 방침은 오는 12월 시의회의 승인을 받으면 내년 초 매각절차에 돌입하게 된다. 토지가 매각되면 시행자선정과 토지세부개발계획 마련,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 교통영향평가 등을 거쳐 이르면 내년 6월쯤 착공된다. 서울시가 마련한 개발계획안에 따르면 제1구역 5272평에는 공연장, 관람장, 전시장 등 문화집회시설과 학원, 도서관, 아동·노인복지시설 등 오피스텔을 제외한 업무시설을 지을수 있다. 장례식장, 위락시설, 창고시설, 자동차관련시설 등은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다.3구역 5597평에는 문화집회시설 가운데 900평(3000㎡) 이상의 공연장과 대형마트, 체육관, 업무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4구역에는 회의장, 산업전시장, 관광호텔도 지을 수 있게 된다. 한편 분당선 성수역 조성에 맞춰 역세권과 연계한 지하철 진입광장도 2곳 만들어진다. 시는 지하철 2호선 뚝섬역과 분당선 뚝섬역을 지상으로 잇는 환승통로(470m)를 마련하고 서울 숲 진입도로와 진입광장(보행가로공원)도 신설하기로 했다. 공개매각에서 제외된 제2구역 2063평은 서울시가 직접 나서 리모델링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숲 큰 기대 시 관계자는 “뚝섬 개발계획 지역에는 주상복합, 업무용 빌딩은 지을 수 있지만 전층을 공동주택으로 사용하는 아파트나 아파트형 공장 등은 건설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웰빙’주거공간으로서 뚝섬의 몸값을 높여주는 것은 현재 조성중인 35만평 규모의 ‘서울숲’. 서울숲 조성사업은 지난해 봄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5000여 시민들과 52개 기업의 후원으로 2만 8000여평에 8만 6000여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서울시는 ‘서울숲’ 조성에 2483억원의 사업비를 책정했다. ‘서울숲’ 35만평이 내년 5월 완공되면 뚝섬은 숲과 물(한강·중랑천)로 둘러싸인 최적의 주거공간으로 태어나게 된다. 성동구는 이 같은 뚝섬의 변신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다. 성동구는 뚝섬이 동북권 준강남 지역으로 개발될 경우 구세를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평가하고 있다. 이미 서울시 전체 아파트값이 하락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뚝섬을 중심으로 한 성수동 주변 아파트 강변건영, 강변임광, 동아그린, 롯데캐슬파크, 아이파크, 쌍용, 우방, 중앙하이츠 등은 값이 떨어지지 않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성동구 관계자는 “시가 추진하는 뚝섬개발 계획과 더불어 우리구에서도 ‘성동장기발전 종합계획’을 준비중”이라면서 “청계천복원공사, 왕십리 뉴타운 사업과 더불어 뚝섬개발이 완료되면 성동구가 서울에서 가장 주목받는 자치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뚝섬의 유래 뚝섬은 한자로 뚝도(纛島·독도)라고 쓰며 ‘살곶이벌’이라고도 불린다. ‘뚝섬’과 이곳의 옛이름인 ‘살곶이벌’에 대해서는 몇 가지 유래가 있다. 태종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동생들을 주살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함흥에 가 있던 태조 이성계가 다시 서울로 돌아온다. 부왕을 맞을 준비를 하던 태종은 이곳에다 큰 차일을 치면서 굵고 높은 기둥을 세우는데 도착한 태조가 별안간 활을 쏘자 급히 기둥을 안고 피하였고 화살이 기둥에 꽂혔다. 이후 ‘화살이 살벌하게 꽂혔다.’는 의미로 ‘살곶이벌’로 불렸다는 것. 또 다른 유래로는 이곳이 태조 때부터 임금의 사냥 장소여서 태조∼성종 때까지 백여년 동안 임금이 직접 나와서 사냥한 것이 151회다. 임금이 나오면 그 상징인 독기(纛旗)를 꽂았으므로 이곳을 ‘독도(纛島)’라고 불렀다. 이것이 변해 ‘뚝섬’ 혹은 ‘뚝도’라 부르게 된 것이다. 또한 이곳에서 군사들이 활솜씨를 겨루는 등 무예를 사열하던 곳이므로 ‘살꽂이벌’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 출처 서울 六百年史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서울 숲’ 어떻게 가꾸나 뚝섬 개발의 핵심인 35만평 ‘서울숲’조성사업은 서울시와 ‘서울 그린트러스트’(www.sgt.or.kr)가 함께하고 있다. ‘서울 그린트러스트’는 숲을 가꾸고 지키는 운동을 펼쳐온 사단법인 ‘생명의 숲 국민운동’이 지난해 3월 서울시와 서울 그린트러스트 운동 공동추진 협약식을 맺고 탄생한 단체. 서울시와 시민단체가 파트너십을 맺어 서울의 녹지 조성 사업을 공동으로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자는 것이 설립취지. 서울의 생활녹지 면적은 1인당 4.52㎡(1.5평)로 국제식량농업기구(FAO)가 제시하는 도시 1인당 최소 생활녹지면적 9㎡(3평)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문국현(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이사장은 “시민들이 조성하고 가꾸는 ‘시민의 숲’개념은 서구에서는 낯선 개념이 아니다.”면서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예로 들었다. 그는 “뚝섬의 ‘서울숲’은 우리가 구상하는 5대 거점 녹지 중 하나”라면서 “용산 미군기지를 포함한 5대 거점 녹지가 완성되면 서울의 녹지율은 8.6%에서 30% 이상으로 높아진다.”고 말했다. 서울 그린트러스트 운동에는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뚝섬을 비롯해 앞으로 조성될 ‘서울 숲’ 사업에 참가하고 싶은 기업이나 단체는 최소 100평 단위로 기부금을 낼 수 있다. 기부금 액수는 100평당 1500만원으로 최대 1만평까지 가능하다.100평에는 큰 소나무를 기준으로 약 6∼8그루의 나무를 심을 수 있다. 조성될 숲에는 기부자의 이름을 새긴 기념 표지석과 벤치를 설치할 예정이다. 일반인들은 매월 5000원만 납부하면 일반 회원이 돼 ‘생활녹지 1000만평 늘리기 운동’에 동참할 수 있다. 또 숲 조성에 기여하고 싶으면 1계좌당 1만원의 회비를 내면 된다. 그린서울 회원은 ‘서울 그린비전 2020’을 실현할 장기 계획에 동참할 회원으로서 1계좌당 10만원의 회비를 내면 된다.(02)742-7432.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누드 브리핑-市 간부 ‘과욕’이 빚은 오보 해프닝 “왜 서울시라는 명칭을 기사에 넣지 않았습니까. 잘못된 보도예요.” 지난달 27일 이른 아침 서울시청 기자회견장은 난데없이 아수라장이 됐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시정연)이 발간한 ‘서울연구 포커스’라는 간행물에 나온 통계분석 기사와 관련해서다. R팀장은 통신사 등 몇몇 언론을 통해 보도된 ‘서울의 정체성에 대한 조사’ 결과를 놓고 특정 언론사 기자에게 따져물었다.“기초자료가 우리 부서에서 나간 사실을 아느냐.”“시정개발연구원은 서울시 산하기관이라는 점을 아느냐.”면서 “서울시 자료를 분석한 것인데 ‘서울시’를 인용하지 않고 시정연만 언급했으니 잘못됐다.”며 시정(是正)을 요구했다. 기사는 ‘시민 가운데 할아버지 때부터 서울에서 살아온 토박이는 6.5%에 그쳤지만 10명 가운데 6명은 서울을 고향으로 느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과정에서 R팀장으로부터 큰 소리가 나와 일순간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오보’라는 R팀장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의아심만 불러일으켰다. 소란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다른 간부가 급히 달려와 뜯어말려 ‘사태’는 일단 가라앉는 듯했다. 해당 언론사와 시 언론과장이 곧 경위설명을 하면서 “오보라는 주장을 들고나왔는데, 이는 어이없는 것”이라는 해명이 마이크를 통해 기자실에 울려퍼졌다. 해프닝을 전해들은 이춘식 정무부시장이 재발방지 약속을 하면서 기자들의 양해를 구해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업무 성과를 내보이려는 중간 간부의 과욕’은 많은 사람들을 씁쓸하게 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가평의 자연과 맛

    [뒷골목 맛세상] 가평의 자연과 맛

    경춘선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남양주에서 가평으로 접어드는 어름에 ‘어서 오세요. 자연을 가슴에 담아가는 가평’이라는 선전문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 아름다운 문구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덜컥, 하고 가슴에 걸리는 느낌이었다. 자연을 가슴에 담아가라고?하기는 가평이야말로 산과 물 같은 자연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고장임에 틀림없다. 군내를 관통하여 흐르는 북한강과 그 강이 군데군데 빚어놓은 청평호반이며 남이섬, 그리고 대성관광지 같은 절경들, 거기에 어울려 함께 이어지는 유명산과 운악산, 축령산, 명지산 등의 장려한 산자락들은 얼마든지 둘러보아도 결코 싫증나지 않는 풍광이다. 그러나 내 가슴에 덜컥, 걸린 자연은 그러한 풍광들보다는 그 뒤에 숨어있는 또 다른 자연이었다. 일찍이 노자는 세상살이의 지혜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말하였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자면 ‘꾸밈이 없이 저절로 그러하게’이다. 그 무위자연에 노자는 덧붙인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살아가는 일을 물 흐르는 것처럼 해라. 아아, 단 한번이라도 나는 자신의 삶을 ‘꾸밈이 없이 저절로 그러하게’ 놓아둔 적이 있으며,‘물 흐르는 것처럼’ 흘려준 적이 있으랴. 계절마저도 가을이 깊어지고 어느 날 아침에 하얗게 무서리가 내린 끝에 저마다 제 빛깔이며 향기를 뽐내던 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시든 대만 남긴 채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렇듯 무릇 생명 있는 것들의 마지막이란 시들어 말라붙다 못해 앙상한 형해(形骸)만으로 바둥대다가 끝내는 거친 시간의 바람 속으로 한 줌 먼지가 되어 사라지게 마련일 터이다. 불과 엊그제까지도 불붙듯 온 산에 붉고 혹은 노랗던 단풍들마저 낙엽이 되어 하릴없이 산야에 뒹굴고, 거기에 추수를 끝낸 빈 들판들도 덧없이 적막감에 싸인 채 보는 이의 눈을 시리게 한다. 언뜻 돌이키면 늙는다는 것은 저렇듯 적막한 늦가을의 풍경과 다름 없다. 비단 사추기(思秋期)의 여인만이 아니라, 자신의 살아낸 삶 속에서 무엇 하나 손에 잡히는 것 없이 허방을 짚는 듯한 이에게는 늙어서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길이란 더더욱 적막하고 허무한 풍경이나 다름 없을 터이다. 그리하여 화려한 빛깔과 향기 대신에 시든 대로만 남은 저 많은 생명들 또한 자신의 삶처럼 처연하다 못해 추하게마저 여겨질지도 모른다. 만일 그대 또한 자신의 살아낸 삶이 처연하다 못해 추하게마저 여겨진다면,‘가슴에 자연을 담아가라’는 가평의 여행길에 나서기를 권하고 싶다. 가평에서도 운악산 가는 어름에 있는 ‘꽃무지풀무지’(031-585-4875)라는 야생 수목원에 들르기를 권하고 싶다. 그리하여 한나절을 좋이 늦가을의 햇살 아래 수목원 여기저기 한가롭게 거닐기를 권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누가 알랴. 번쩍 그대의 눈이 열려 그대가 전혀 몰랐던 그대의 자연을 만나게 될지. 원래 꽃무더기 풀무더기라는 뜻인 ‘꽃무지풀무지’에는 지난 계절 내내 야생 수목원을 원색으로 한껏 장식했을 온갖 야생화들의 빛깔이며 향기는 더 이상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대신 수목원 가득히 펼쳐져 있는 것은 저마다 천명을 다하고 시들어 버린 꽃대들만이 지난 화려했던 시절의 증거처럼 남아서 잿빛 풍경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수생식물원을 지나고, 습지원을 지나고, 향기, 붓꽃, 나리원을 지나, 산채원이며 덩굴식물원을 지나도 그대를 기다리는 것은 역시 잿빛 풍경뿐이다. 어거지로 찾아낸다면 수목원 가장 위쪽 그늘진 곳에 숨어있는 국화원의 한 쪽에서 쑥부쟁이 몇 다발만이 애잔하게 보랏빛 잔명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야생 수목원의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대가 위안을 받을 만한 풍경은 없다. 동자꽃, 노인장대, 맥문동, 제비꽃, 은방울꽃, 둥글레, 용담, 앵초, 금불초, 초롱꽃, 비비초, 애기기린초, 금강초롱, 말나리, 하늘나리, 참나리, 털중나리, 꼬리풀, 금낭화, 노루삼, 산작약, 마타리, 패랭이, 구절초, 해국, 울릉국화, 한라구절초, 모싯대…. 그 모든 야생화들은 이제 한낱 푯말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뿐인가. 수목원의 뭇 야생화들은 정말이지 그대에게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않고 잿빛 풍경 속으로 속절없이 사라진 것뿐일까. 아니리라. 결코 그것뿐만은 아니리라. 그대가 흡사 자신의 처연한 삶이라도 어루만지듯 푯말과 함께 남아있는 야생화들의 시든 꽃대를 어루만지는 순간, 그대는 벼락처럼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시든 꽃대는 결코 시든 꽃대로만 끝나지 않는다. 시든 꽃대는 시든 꽃대대로 그 안에 길을 열고 있다. 그리하여 그대가 시든 꽃대가 안에 열린 길을 따라 어디론가 들어가게 된다면, 그대는 마침내 그대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연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만일 그대가 그대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연만 만나게 된다면, 그대는 다시 한번 깨닫게 될 터이다. 늙는 것처럼 아름다운 일은 없다, 늙어서 그대 또한 시든 꽃대가 되면, 그때에서야 그대는 비로소 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알게 될 터이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야말로 모든 생명의 현상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일이다.은방울꽃의 시든 꽃잎 안으로 들어가 보라. 안으로 들어가 보면 바로 거기에는 다가올 어느 봄날 아침에 그다지도 화려하고 향기롭게 피어날 수천수만의 새로운 은방울꽃들을 만나게 되리라. 하늘나리의 시든 대 속으로 들어가 보라. 거기에는 이미 내년 봄에 새로운 줄기로 살아날 수천수만의 하늘나리들이 더없이 아름답고 신비한 모습으로 벌써부터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아아, 늙어서 시들어진다는 것이야말로, 그리하여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그리하여 오래 잊었던 자신의 자연을 만나고, 마침내 ‘꾸밈이 없이 저절로 그러한’ 지혜의 물을 만나서 비단 그대만이 아닌, 모든 생명 있는 것들과 함께 영원한 강이 되어 흘러간다면, 어떠한 늙음이며 죽음이 더 이상 그대를 홀로 적막하게 하랴. 세상살이라는 것을 그대와 나는 자칫 저마다 가득히 채워야만 할 무슨 항아리 같은 것으로만 여겨오지는 않았을까. 그리하여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그대와 나는 애오라지 항아리를 채우는 일에만 애면글면하지는 않았을까. 남보다 더 많이, 남보다 더 넓게, 남보다 더 가득히…. 그것이 결국은 밑이 빠져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라는 것조차도 모른 채.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마저도 잃어버리고 흡사 무슨 굶어죽은 아귀라도 씌인 것처럼 헛된 일에만 매달려 아등바등 하지는 않았을까. 아아, 무릇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비운 다음에야 비로소 더욱 가득히 채워진다는 것을 그대와 나는 왜 몰랐던 것일까. ‘꽃무지풀무지’는 11월 중순경까지는 문을 연다. 비록 겉보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적막하고 처연한 잿빛 풍경일 터이지만, 그 잿빛 풍경 안에서 만일 그대가 그대의 또 다른 자연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벌써 그대의 가을 여행은 온몸 가득히 충만해지리라. ‘꽃무지풀무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운악산 등산로 입구가 있고, 거기에 손두부집들이 올망졸망 촌락을 이루며 몰려있다. 그 중에서 할머니손두부가 유명하지만 어느 집을 들어가도 늦가을의 허기를 채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따끈한 손두부(5000원)에 묵은 김치를 가닥으로 싸먹는 맛도 일품이지만, 거기에 가평의 명산품 잣막걸리를 한 잔 곁들이면, 꽃무지풀무지에서 이미 충만해져온 그대에게 더 이상 무엇이 부족하랴. 손두부 이외에도 순두부(3000원), 두부버섯전골(1만 2000원), 순두부백반(5000원) 등이 있다. 꽃무지풀무지에서 포천으로 가는 길목에는 현리에 국수호박을 전문으로 하는 시골마당(031-585-2309)이 있다. 이 국수호박은 호박을 국수로 만든 것이 아니라 호박 자체가 삶으면 국수처럼 줄줄이 면발이 되어 나오는 것으로, 여기에 양념장만 곁들이면 그대로 요리가 되는 100% 천연국수인 셈이다. 물국수호박과 비빔국수호박이 각각 5000원인데, 가평을 지나다가 출출하다 싶으면 한 그릇 뚝딱 먹어치우는 재미가 그야말로 별미일 터이다. 그대가 좀 더 가을 여행을 만끽하고 싶다면, 이번에는 신청평대교를 건너 유명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설악면의 들풀(031-585-4322)을 찾을 것을 권하고 싶다. 블루베리 스파랜드라는 온천으로 가는 쪽에 여유롭게 자리 잡고 있는 들풀은 된장이며 청국장을 직접 담가서 팔기도 하고 요리로도 만들어내는 청국장 전문집이다. 들풀은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사람 키를 두 세배는 훌쩍 넘을 것 같은 콩 낟가리를 쌓아놓아 벌써부터 왠지 마음이 푸근해져오는 기분인데, 주인이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것이다. 콩 낟가리를 지나면 이내 항아리가 30,40개가 넘는 커다란 장독대에 다다르는데, 해마다 된장과 청국장 제조용으로 100여 가마씩 사용하고 있다. 들풀의 김용옥씨와 김안나씨 부부는 함께 주방일도 하고 서빙도 하면서, 주로 콩요리를 위주로 한 1만원짜리 정식을 한 상 차려낸다. 청국장찌개, 된장찌개, 생청국장, 두부부침, 된장부치미에 황태구이, 더덕구이, 잡채, 들풀무침 그리고 깻잎장아찌, 더덕장아찌, 황태장아찌에 각종 나물이 곁들여져 한 상 가득히 채우고 있다. 한 상 중에서도 특별한 맛을 내는 것은 생청국장으로, 고스란히 생으로 먹게 내온 것이다. 밑에 깻잎이나 머위, 상추, 김 등을 깔아 한 잎에 싸 먹게 되어있는데, 생청국장 위에 고명으로 얹은 보랏빛 오디가 주인의 살가운 마음씨를 엿보게 한다. 흔히 청국장이라면 아무리 몸에 좋다고 해도 우선 그 역한 냄새 때문에 먹는 것 자체가 고역스러운데, 여기에서는 매실을 넣고 검정콩가루를 섞어 발효시키는 비법으로 냄새를 해결한 것이다. ■ 된장찌개에 마늘은 ‘NO’ 들풀에서는 요리와 함께 청국장과 된장도 직접 판매한다. 청국장은 800g에 1만원, 된장은 3년 숙성된 것만으로 파는데,1㎏에 1만 5000원이다. 부부는 청국장과 된장을 팔기에 앞서 먼저 청국장이며 된장을 보다 맛있게 끓이는 법을 친절하게 일러주는데, 이들의 말에 따르자면 절대로 마늘을 넣지 말 일이다. 청국장에 무, 호박, 대파, 신김치, 양파, 청양고추, 두부를 준비해서 우선 무, 호박, 양파, 대파는 썰고, 신김치는 속을 털고 썰어서 꼭 짠 뒤 기름에 살짝 볶는다. 여기에 황태나 멸치를 우려낸 육수를 붓고 두부와 청양고추를 넣은 다음에 청국장을 알맹이 그대로 넣어서 걸쭉하게 끓이는데, 채소만 익었다 싶으면 금방 불을 끈다. 청국장은 유산균이나 비피더스균처럼 장을 깨끗이 하는 작용과 면역력을 키우는 효과가 있는데 자칫 오래 끓이면 이런 좋은 효소와 균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된장찌개 역시 마늘을 넣지 않고 청국장에 들어가는 재료 외에 감자와 표고버섯을 곁들이는데, 된장을 체에 걸러 풀어서 청국장보다 2배 정도의 시간을 들여 푹 끓여내는 식이다.
  • [이집이 맛있대]창원 ‘진주꼬리곰집’

    [이집이 맛있대]창원 ‘진주꼬리곰집’

    경남 창원시 용호동 ‘진주꼬리곰집’은 구수한 국물 맛과 돌솥밥이 일품이다. 밤·대추·완두콩 등을 넣은 쌀밥이 고객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옛맛을 그대로 간직한 비결은 주인 노준섭(57)씨의 불 조절. 아무나 쉽게 흉내내지 못한다. 노씨는 “곰탕 특유의 맛을 내기 위해서 고기외에는 다른 재료를 넣지 않는다.”면서 “곰탕의 맛은 질 좋은 고기와 불 조절, 그리고 손맛에 달려 있다.”고 자랑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집의 국물에서는 잡냄새가 나지 않는다. 사골을 12시간 정도 푹 삶아 어느 정도 국물이 우러나면 다시 약한 불에 5∼6시간을 더 우려낸다. 이때 주인의 솜씨가 발휘되는 것이다. 여기에 쇠꼬리를 넣고 다시 3∼4시간 정도 끓이면 꼬리곰탕이 되고, 무릎뼈를 넣으면 도가니탕이 된다. 구수한 국물과 갓 지어낸 하얀 쌀밥에 싱싱한 굴을 넣은 배추김치와 깍두기, 부추 생조림 등이 어울린 맛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 식사가 아니라 즐거움이다. 그리고 밑반찬으로 나오는 주꾸미 무침도 빼놓을 수 없는 별미. 물좋은 주꾸미를 적당히 삶아 갖은 양념에 버무려 내는 것으로 식사 전에 간단히 곁들이는 소주 안주로 그만이다. 점심시간이면 예약없이 이런 즐거움을 맛보기 어렵다. 안주인 김종현(53)씨가 만드는 계절별 밑반찬도 고객들의 구미를 자극한다. 봄에는 취나물과 미나리·도라지 나물이 나오고, 여름에는 푸른 채소와 버섯볶음, 가을·겨울에는 생굴 무침과 생선조림 등을 내놓는다. 노씨는 지난 84년 직장생활을 걷어 치우고 곰국 솥에 불을 지폈다.50년 이상 곰국을 끓였다는 한씨 할머니(90년 작고)의 식당에서 1년간 허드렛일을 하면서 비법을 전수받았다. 처음 진주서 개업, 맛을 인정받은 후 지난 94년 창원으로 옮겨왔다. 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결혼이야기]김병수(28·페어차일드 코리아 반도체) 이윤영(28·주부)

    [결혼이야기]김병수(28·페어차일드 코리아 반도체) 이윤영(28·주부)

    1996년에 처음 만났습니다. 둘 다 대학 신입생이었을 때였죠. 저는 재수를 했고 아내는 다른 대학을 다니다 다시 들어온 탓에 둘다 늦깎이였습니다. 한 해 차이지만 왠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들어온 친구들과는 우리 둘 다 서먹했죠. 이런 공통점 때문인지 우리는 어렵지 않게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생일이 빨라 한 해 빨리 학교에 들어간 아내를 저는 ‘누나’라고 부르며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울렸습니다.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뒤에 알고 보니 ‘누나’는 초등학교 선배이기도 해서 더욱 더 친해질 수 있었죠. 하지만 이때까지 제가 느꼈던 감정은 그저 마음씨 착하게 주위 사람들을 잘 챙겨주는 그냥 ‘친누나’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단지 가랑비에 옷이 젖듯 시간이 지날수록 ‘누나’는 단순한 친구라기보다는 제가 아껴주고 보호해 주어야 할 상대가 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만남은 잠시 시간을 접어둬야만 했습니다. 조심스레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감정이 싹틀 무렵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대학으로 가기로 결심하고 아내와 같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즐거웠던 추억들을 마음 속에 담아둔 채 돌아설 수밖에 없었죠. 결국 다른 학교에 입학한 저는 또 새로운 학교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기 위해 애썼고 각자의 생활에 바쁜 관계로 그 뒤 2년동안 우리는 서로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정신차려 보니 저는 입영열차 창문에 비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죠. 대부분의 예비역은 아시겠지만 군에 가면 정신없는 훈련 생활만 있는 것은 아니지요. 시간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의 짬이 나도 자기 인생을 천천히 돌아보는 기회를 자주 갖게 된답니다. 저도 제 아내와 1996년 봄에 함께했던 3개월 동안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를 알 수 있었고, 당시 느꼈던 감정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역한 직후 전 바로 제 아내의 연락처를 수소문했습니다.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녀의 연락처는 제 마음을 태웠죠. 결국 2년이 흐른 2002년이 되어서야 그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그녀에게 프러포즈했고 2년 뒤 우리는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의 사랑을 은은한 국화향에 비교하고 싶습니다. 오랜시간 신중하게 함께한 우리의 사랑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은은한 국화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이 축하해 주시고 예쁘게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공간을 빌려 결혼식에 와주신 모든 분들께 우선 감사의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김병수(28·페어차일드 코리아 반도체) 이윤영(28·주부)
  • 이공연 놓치면 후회

    이공연 놓치면 후회

    ●마누엘 바루에코 기타 리사이틀 살아있는 클래식 기타계의 신화 마누엘 바루에코가 5일 오후 8시 호암아트홀에서 내한 연주회를 갖는다. 바루에코는 바흐부터 비틀스까지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벽을 넘나들며 다양한 음악적 교류를 시도한 기타리스트로 이번이 세번째 내한공연이다. 쿠바 출신으로 미국 피바디 음악원에서 기타 수업을 받았고,1974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데뷔 연주회를 가졌다. 초기에는 클래식 아티스트로서 정규 코스를 밟아갔지만,2000년대에 들어 장르의 경계를 허물기 시작했다. 스티브 모스, 알 디 메올라와 프로젝트 음반을 발표했고, 비틀스의 곡을 편곡한 음반, 재즈곡 모음집 등을 선보였다. 최근엔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협연한 음반도 내놓았다. 2년만에 다시 한국을 찾은 이번 무대에서는 클래식의 고전 스카를라티에서부터 바이스의 기타 모음곡, 그라나도스의 스페인 무곡 등을 선사한다. 피아졸라의 탱고와 재즈 아티스트 칙 코리아의 곡까지 아우르며 또 다른 클래식 기타의 세계를 들려줄 예정.3만∼5만원.1544-1555. ●브르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브르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7일 오후 3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체코 중동부 도시 브르노의 대표적 교향악단인 브르노 필은 1956년 브르노 라디오방송 오케스트라를 창단하면서 공식적인 역사가 시작됐다. 브르노 국제음악제와 ‘프라하의 봄’ 등 체코의 대표적 축제에 해마다 정기적으로 참가했으며 지금까지 유럽 전역과 미국, 일본, 남미 등에서 순회공연을 가졌다. 레오슈 스바로프스키(프라하 오페라단 음악감독)가 지휘하는 이번 공연에서는 스메타나의 ‘승리의 교향곡’,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 등 체코 작곡가들의 작품과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할 예정. 피아니스트 박종훈이 협연자로 나선다. 한국도요타자동차가 문화마케팅의 일환으로 주최하는 무대로, 공연 수익금은 연말 전국 5개 병원에서 열리게 될 병원콘서트에 사용된다.2만∼6만원.(02)720-3933.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김포 한번 날아볼까

    김포 한번 날아볼까

    ‘인천 뜨는데 김포도 한번 날아보자.’ 수도권 서북부지역의 핵심 주거지인 경기도 김포에서 아파트 분양이 줄을 잇고 있다. 내년 봄까지 이곳에서 분양 예정인 아파트는 무려 6100여가구나 된다.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결정으로 수도권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주택업체들은 분양물량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있다. 대부분 서울과 가까운 곳에 지어질 예정이어서 서울 서북부지역 거주자들이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11월 신곡지구 동시분양 김포 서남권 택지개발지구인 신곡 지구를 포함한 인근에서 이달부터 내년 초까지 6100여가구가 공급된다. 신곡지구에서 동일하이빌(220가구), 청도건설(232가구), 동부건설(294가구) 등 3개 업체가 이달 중 746가구를 동시분양에서 공급한다.12월에는 신명종합건설이 김포 장기동에서 885가구를 분양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현대건설이 김포시 고촌면 신곡리 수기지구에서 2655가구를 공급한다. 비슷한 시기에 동익건설이 김포시 장기동 297의1에서 1146가구를 분양한다. 대아건설도 고촌면 신곡리 산 90 일대에서 523가구를 내년 중 분양할 계획이다. ●서울 강서·양천구 수요 기대 김포에는 건설교통부가 장기리 일대에 480만평 규모의 신도시를 건설키로 했었다. 그러나 올 상반기 신도시 규모를 156만평으로 줄였다. 다시 규모를 확대한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당초 계획만큼 늘어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번에 공급되는 아파트는 신도시에 들어가는 아파트는 아니다. 다만, 신곡리는 김포공항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차로 5∼10분 걸린다. 신곡지구는 모두 3만 9000여평규모로 토지구획정리가 조기에 마무리돼 사업추진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인근에서 현대건설이 분양 예정인 신곡리 수기지구도 택지지구 못지않은 대단지여서 많은 관심이 예상된다. 신곡지구 인근은 교통편이 좋은 편이다. 인천공항철도와 9호선 연장선, 도시고속화도로, 김포신도시로 이어지는 경전철 등과 연계된다. 업계에서는 신곡지구가 행정구역상 김포시에 해당되지만 사실상 서울생활권으로 김포시 자체 수요는 물론 서울 강서구나 양천구 주민들의 수요도 기대하고 있다. ●평당 분양가는 750만원 안팎 수도권 남부나 북부지역과 달리 김포는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소외된 곳 가운데 하나였다. 김포공항이 있는데다 휴전선과 가깝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입지만으로 보면 김포는 일산에 견줘 뒤질 게 전혀 없는 여건을 갖췄다. 거리상으로는 일산보다 서울 접근성이 더 뛰어나다. 김포공항이 다양한 용도로 개발되고 있는 점도 다시 각광을 받는 이유다. 문제는 분양가다. 대략 평당 750만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주택업체들의 택지매입 가격이 비교적 높았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시내 김포공항 주변 집값은 평당 850만∼900만원대. 김포시내의 기존 아파트는 평당 평균 700만∼750만원선이다. 부동산전문가들은 “평당 750만원선이라면 다소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입주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청약 가치는 충분하다.”고 진단했다. 내집마련정보사 김영진 사장은 “김포는 그동안 신규 분양이 없고 교통의 요지인 점을 감안하면 수요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4)18년만의 시화호 외출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4)18년만의 시화호 외출

    최후를 목격하는 일처럼 불행한 경우가 있을까. 낡은 사진첩과 답사노트를 뒤지면서 시계바늘을 18년 전으로 되돌려본다. 시화호가 망가지기 직전을 목격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시에 찍었던 사진을 사회적으로 공개할 의무감을 느낀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틈만 나면 시화호에 가서 살았다. 당시에는 시화호란 명칭도 없었고 그저 화성이나 안산 앞바다로 일명 ‘반월만’이었다. 물론 갯벌을 둘러싼 환경운동이나 갯벌환경에 관한 인식조차 공론화되지 않던 시절.1987년 6월10일, 역사적인 시화호 방조제공사가 시작되었다. 엄습해오는 예감이라고나 할까. 시화호 내의 음도나 형도, 어도, 아니면 화성의 송산면이나 서신면, 우정면 등의 마을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면서 민중생활사의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흔적없이 사라진 계명산 봉화대 저울섬이라 불렀던 형도는 물이 썰면 송산면 독지리 쪽에서 30여분만에 쉽게 걸어들어갈 수 있었다. 독지리 사람들은 봄에는 가무락·동죽·대합·피조개·소라·낙지를 잡고, 여름에는 맛, 가을에는 낙지·쭈꾸미 등을 채취하였다. 물고기는 숭어·농어·민어·새우·꽃게·전어를 잡았다.1988년, 독지리 사람들은 보상 문제에 골몰하였다. 오래 살아온 1등급은 호당 900여만원, 분가한 이들은 2등급으로 호당 850만원, 심지어 최저 100만원 정도를 받는 이도 있었다. 배 보상도 이루어져 작은 배는 서신면의 용두리, 궁평리 쪽으로 팔려나갔으며, 큰 배는 소래포구로 팔렸다. 형도에는 30여가구 120여명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낙지와 바지락·굴·피조개·숭어, 새우, 농어 등을 잡았다. 본디 어부들의 살막만 있던 무인도였는데 기미년(1919) 만세운동으로 쫓겨온 이들이 정착하여 어업에 종사하다가 한국전쟁 이후에 피란민이 밀려들어와 마을이 커졌다. 형도 복판의 계명산을 허물어 바지선으로 돌을 실어날라 방조제를 막았다. 그래서 형도 동쪽 해변에는 중동에서 퇴직한 중장비들이 대체 일감을 찾아 빼꼭하게 들어차 있었다. 계명산 정상을 올라가니 봉화를 올리던 석축봉화대가 완형으로 보존되어 있었다. 계명산을 신성한 신으로 모시고 있었으며, 봉화대 밑에는 바위가 겹쳐진 동굴이 있어 이 역시 신성시되었다. 마고할매가 쌓은 봉화대라고 했다. 동굴은 비단실 열꾸러미를 넣어도 바닥이 닿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고 했다. 호기심이 동하여 동전을 던져보았더니 실제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관해기’를 쓰기 위하여 다시 찾았을 때, 동굴도 없어졌으며 봉화대도 사라졌다. 쉽게 말하여, 문화유산을 깔아뭉갠 것. 음도는 형도와 달라 지명유래처럼 소가 누워 있듯 나지막한 섬이다. 파평 윤씨가 사화 때 역적으로 몰려서 낙향하여 개척한 섬으로 알려져 있다. 인구밀도가 높아서 160여명이 살고 있었으며 어업이 주종이었다. 섬 북쪽 선착장에서 뱃길로 안산시 사리포구쪽으로 빠지거나 화성의 독지리와 고정리 사이에 위치한 목섬을 거쳐서 걸어들어갔다. 형도 가는 길과 달리 음도는 멀어서 무려 한 시간여를 걸었다. 물 때를 잘못 맞추면 걸어가다가 조류에 휩쓸려 죽는 이도 많았던 섬이다. 갯벌을 걸어가면서 굴따는 ‘자세’로 지천으로 널린 굴을 까먹으면서 지루함을 달랬다. 음도 사람들은 섬 정상의 숲속에 소당이라 부르는 신당을 모셨다. 조기잡이의 신인 임경업 장군, 각시, 소댕애기씨, 말구중 등 무속신을 모시고 있었다. 선착장 갯가에는 당나무가 서있고 바위가 쌓인 곳은 군웅당이라고 했다. 고정리 쪽 갯가의 돌출바위는 각시당(일명 나락부리당)이라 불렀다. 밀물 때는 보이지 않고 썰물에만 모양이 나타나는 각시당은 갯벌 복판에 서있어 갯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지켜준다고 하였다.18년 뒤의 음도에도 여전히 신당 건물은 숲속에 남아 있다. 우거진 가시덤불을 헤치고 다시금 신당문을 여니 그림들은 간곳이 없다. 찾아온 길손에게 낙지를 거저 주면서 연신 술잔을 권하던 어민들도 사라지고 쥐죽은 듯 고요하다. 옛사람들이 일부 살기는 하지만 예전의 떠들썩함은 찾을 길이 없다. 초등학교를 찾아가니 아직도 건물은 의연한데 주인 잃은 그네는 줄이 끊어진 채로 시간이 멈춰섰다. 마산포에서 걸어들어가던 어도는 음도나 형도와 달리 당시에도 시멘트 포장이었다. 마산포구에는 횟집이 번성하고 있었고 물이 나면 쉽게 어도로 들어갔다. 포도밭을 지나 언덕배기를 내려가면 어도 가는 길목의 해변 초입에 해안초소가 있고 터주가리처럼 생긴 신당이 바위 위에 모셔져 있었다. 고포리의 마산포는 반월만의 어업전진기지로서 형도·어도·선감도·탄도·불도와 연계되었다. 일제시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인천 가는 연락선이 대부도와 영흥도를 거쳐서 다녔다. 따라서 대부도 사람들은 마산포를 거쳐서 사강장을 보았으며, 이곳의 생활권도 뱃길로 인천과 서울로 이어졌다. 이제 대부도와 영흥도는 시화호로 연결되어 4차선 도로로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고포리 어촌계는 당시에 224호에 도합 1000여명에 달하는 조합원을 거느리는 대단위 조직이었다. 고포리의 굴은 알이 작은 대신에 맛이 뛰어났다. 갯벌에서는 맛이 지천으로 잡히고 있었고, 봄·가을에는 숭어, 여름에는 농어, 그 외에 꽃게와 게장용 박하지가 많이 잡혔다. 오랜만에 찾아가본 시화호는 정말이지 예전이 아니었다. 상전벽해는 이를두고 말함이렷다.‘남양인천’으로 불릴 정도로 큰 외항이었던 비봉면 유포리(일명 버들무지)는 예전에는 남양관아로 연결되던 중요한 포구였다.1960년대까지는 조기잡이 중선배가 있어 연근해어업을 다녔다. 가리맛의 주생산지였으나 건너편에 반월공단이 들어서면서 어업은 일찍이 막을 내렸다. 우정면 호곡리를 들어서니 예전에 없던 어시장이 들어섰다. 호곡리는 범아지라 불렀으며 바닷가를 백년거지라 했다.‘백년을 거처할 수 있는 좋은 곳’이라는 뜻. 범아지의 바닷가로 돌출한 산에는 당할머니를 모시고 있었다. 그런데 백년거지는커녕 화옹호에 가려졌다. 수산물이 어획되지 않는 동네에 웬 어시장일까. 거개가 수입산이나 외지에서 들여온다는 솔직한 답변이다. ●물고기 쫓겨난 시화호는 사막일 뿐 물새가 노닐던 해변이 갈대밭으로 덮이면서 아예 ‘우음도 갈대축제, 갈대보러 오세요’ 그런 글이 인터넷에 떠있다. 해초 대신에 갈대라! 문전옥답인 바다밭은 갈대밭으로 변하고, 아직도 죽은 조개껍질들이 하얗게 뒤덮고 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갯벌에 관한 한 한국사회의 인식은 지난 20여년간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이다. 시화호 출신 해양생태학자로서 국회로 진출한 제종길 의원은,“갯벌문제는 간단히 보면 해양생태 보존과 개발론의 싸움이지만, 지역감정은 물론이고 지역정치를 포함한 한국사회의 총체적 문제점들이 모조리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새만금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고 시화호도 끝나지 않았다. 시화호가 미완의 장인데 바로 코밑에서 화옹호를 기어이 막았다. 세인들은 간척의 문제점은 인정하면서도 갯벌문제만 나오면 이제는 지겨워한다.‘듣기 좋은 노래도 자주 들으면 지겹다.’(歌曲雖艶 恒廳斯厭)는데 불길한 예언만 쏟아져나오니 아무리 취지가 좋은들 약발이 덜 먹힌다. 간척론자들은 호재를 부른다. 결코 사회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자원공사를 비롯한 간척주도집단의 ‘밥벌이’를 위해서 간척이 계속되고 있다는 주장은 대단히 설득력 있다. 문제점 투성이인지라 종합성적이 낙제점 이하인데도 책임을 지는 이는 아무도 없다. 잘못한 이들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불감증사회’답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나름대로 생태계가 되살아나고 물고기도 돌아오고 심지어 돌고래까지 돌아오고 있다는 밑도끝도 없는 낭설이 진실처럼 떠돌기도 한다. 시화호에서 돌아오기 전, 예전에 늘 드나들던 송산면 옛바닷가로 나갔다. 갯벌로 가던 언덕배기를 넘자 한가로운 오솔길 대신에 신작로가 나타났고 조개를 캐던 갯벌터에 농구골대도 들어섰다. 배는 사라지고 연습용 경비행기들이 마중한다. 물고기가 부려지던 선착장은 흉물스럽게 콘크리트더미만을 남기고 있고 죽어버린 따개비만이 ‘여기가 예전에는 잘나가던 포구였소.’라는 무언의 항거를 하는 듯하다. 물고기가 쫓겨난 시화호는 사막일 뿐이다. 해수유통이 되면서 한결 나아졌고, 온갖 철새들이 몰려오고, 옛갯벌은 갈대밭이 되어 야생동물의 보고로 변하고 있으며, 공룡알들이 발견되었다고 아우성이지만 어찌 이토록 무정하게 ‘무단가출’했던 오염된 바다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으랴. 해결책은? ‘무식과격’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동안 투자한 그 모든 것이 아깝더라도 눈 딱감고 방조제를 허무는 길 뿐이다. ●새만금 운명도 시화호의 전철 못벗어날듯 오랜만의 시화호 외출에서 느낀 소감이 이러하니, 현재 진행되는 새만금의 운명 역시 시화호의 전철에서 한치도 못 벗어날 것 같다. 과거를 거울 삼아 오늘의 현실에 살리자는 감고계금(鑑古戒金)의 전범이 시화호일진대, 새만금은 시화호에서 충분히 배웠음에도 아직도 수업료가 부족한 것일까. 성호 이익은 ‘관가에 일이 없으면 촌동네도 조용하다.’(公府無事 村巷方安)고 하였다. 관청에서 불필요한 간척 같은 일을 벌이지 않으면 살 만하다는 뜻이거니와,‘지도가 바뀐다.’‘5000만평 땅을 건지다.’ 등등으로 국민을 현혹하면서 8000억원 이상의 돈을 들이고도 건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국민대사기극’, 시화호에 해당되는 말이 아닌가싶다.
  • [서울광장] 평양의 봄?/이기동 논설위원

    [서울광장] 평양의 봄?/이기동 논설위원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던 1989년 겨울, 동유럽 변혁의 현장에서였다. 베를린 바르샤바 부다페스트를 거쳐 프라하시내 중심가 광장에서 북한 유학생들을 만났다. 공산정권이 사라진 뒤 반체제 지도자 바츨라프 하벨은 국민영웅이었고, 대통령 선거전은 이미 그를 환호하는 축제의 자리가 됐다. 축제인파속에 그들은 가장 남루한 이방인이었다. 호텔까지 따라온 그들과 나눈 긴 대화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제발 자신들의 본국 송환을 막아달라고 그들은 애원했다. 여권은 북한대사관에 일괄보관중이고, 그들을 데려갈 고위간부가 이미 도착해 있다고 했다. 그들이 송환위기에 처했다는 기사까지 썼지만 도움은 못 됐다. 프라하를 떠난 이틀 뒤, 그들의 강제송환 뉴스를 들었다. 이번 달 시행에 들어간 미국의 ‘북한인권법 2004’는 한마디로 북한판 동유럽 변혁을 꿈꿔온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그 꿈은 북한내부의 반체제 세력을 지원하고, 주민들의 민주의식을 키워나가면 체제는 결국 안에서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 최종 과녁은 민주화를 통한 체제붕괴, 다시 말해 ‘평양의 봄’이다. 미국 민주주의기금(NED)은 레이건행정부가 전세계 민주화촉진을 위해 만든 것이다. 동유럽 변혁의 뒤에는 미중앙정보국(CIA)의 비밀공작과 함께 이 기금의 반체제 지원이 있었다.NED 관련인사들은 김정일정권을 바꾸지 않고서 북한의 인권개선은 기대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이들은 인권문제를 제쳐두고 대북지원을 고집하는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을 무너져가는 집의 본채를 외면한 채, 그 옆에 간이천막을 계속 지어주는 정책쯤으로 폄하한다. 간이천막이 아니라 무너지는 본채를 수리해 주는 게 진정으로 북한을 돕는 길이라고 이들은 생각한다. 차기 미국대통령이 누가 되든 인권법은 예정대로 시행될 것이다. 동유럽 이후 또 한번 역사적 실험이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셈이다. 북한의 미래와 관련, 전문가들은 흔히 외부폭발(explosion), 내부폭발(implosion), 연착륙, 현상유지의 4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북한 스스로 개혁정책을 추진하여 연착륙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권법이 상정하는 시나리오는 내부폭발이다. 주민들의 불만이 지금처럼 쌓여가면 불원간 그것이 폭발, 권력공백 상태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조만간 ‘자유 아시아 라디오’‘미국의 소리방송’이 하루 12시간씩 전파를 쏘아대고, 북한주민들은 고무풍선에 실려 뿌려지는 수천, 수만대의 트랜지스터라디오를 통해 바깥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어쩌면 89년 겨울 프라하에서 만난 유학생들이 ‘사미즈다트(지하유인물)’를 만들어 돌리고, 동베를린 라이프치히광장 월요시위 같은 민주화 시위를 시작할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정부가 베이징교외에 숨어지내는 탈북자들을 체포하며 전례없이 강경대응을 펴고 있는 것은 인권법이 몰고올 가공할 후폭풍의 위력을 감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들이 조만간 대량탈북의 첫번째 정거장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중국은 미국정부와 한국정부에 경고를 보내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미 의회의 인권법통과에 항의하는 서한을 미국대사관에 전달하고 부시행정부의 인권공세를 비난하는 데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겠지만, 그것이 북한의 내부폭발까지 막아주는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역시 좋은 출발점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권이 인류의 공통언어라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면,‘평양의 봄’도 외부세력이 아니라 차라리 북한정권 스스로 만들어가도록 우리가 돕는 게 낫다. 정부의 북한인권 정책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가 됐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 [데스크 시각] ‘노 프로블럼’과 용서/황진선 문화부장

    얼마 전, 야근 중 한 동료가 다가와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생각할 것도 없이 달라이 라마의 ‘용서’를 들었다.‘용서야말로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큰 수행’이라는 내용도 덧붙였다. 내 말끝에 그는 “며칠 전에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음악방송 진행자가 ‘노 프로블럼(No problem) 명상법’을 소개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라.”며 “그 후 언짢은 일이 있을 때마다 ‘노 프로블럼’이라고 되뇌었더니 마음이 평온해지더라.”는 체험담까지 소개했다. 나도 모르는 새 그런 명상의 필요성을 느낀 것일까.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뒤졌더니 ‘노 프로블럼 명상법’이 떠있었다. 시인 류시화가 1997년과 2000년에 낸 인도여행기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과 ‘지구별 여행자’에서 처음 소개했다는 이 명상법의 요지는 이렇다.“인도를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노 프로블럼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가 닥쳐도 그들은 노 프로블럼이라고 말한다. 돈이 없어도 노 프로블럼이고, 자전거가 펑크 나도 노 프로블럼이며,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어도 이미 살아났으니 노 프로블럼이다. 삶에서 잃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떤 경우에도 ‘난 이러이러한 것을 잃었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그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말하라.” 문득,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바로 이 ‘노 프로블럼’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우리는 지금 이분법적인 사고와 편가르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나는 선이고 너는 악이다.’라는 이기적 독단이 곳곳에 넘쳐난다. 주의·주장이나 이해가 다른 사람에 대한 적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저주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거나 욕설 퍼붓기도 예사다. 최근,1년여 동안 라디오에서 아침 생방송 ‘안녕하십니까 강지원입니다’를 진행했던 강지원 변호사는 지난 16일 방송을 그만두면서 우리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당파성을 들었다. 총선과 대통령 탄핵사태, 수도이전 문제 등을 다루면서 출연자들이 마치 적과 싸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고 술회했다. 남에게 개혁하라기 전에 내 안의 당파성부터 줄여나가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달라이 라마는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행복이 최대 목표이지만, 행복에 이르는 가장 큰 장애물은 미움과 질투와 원한의 감정’이라며 ‘그 장애물을 뛰어넘는 유일한 길이 용서에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용서가 쉬운 일은 아니다. 부당하게 나를 핍박하고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감정의 골이 쉽사리 지워질까. 다시 달라이 라마의 말을 듣자.“만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 사람에게 나쁜 감정을 키워간다면, 단지 내 자신의 마음의 평화만 깨질 뿐입니다.…자유를 찾기 위한 투쟁도 분노나 증오의 감정 대신 진정으로 용서하는 마음을 갖고 한다면 우리는 그 투쟁을 더 효과적으로 펼쳐 나갈 수 있습니다.” 용서로 평화를 얻고, 거기에서 힘을 구해야 한다는 요지다. 데즈먼드 투투 주교의 용서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나의 인격은 당신의 인격에서 나옵니다.…용서는 실제로 자신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최상의 길입니다.” 그날 밤, 그 동료는 ‘봄바람처럼 남을 대하고 자신에게는 서릿발처럼 냉정하라(春風接人 秋霜之己).’는 명심보감 글귀까지 내게 건네고 갔다.‘노 프로블럼’과 용서, 그리고 ‘춘풍접인’의 자구가 가슴을 후비는 나날이다. 황진선 문화부장 jshw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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