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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741)-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22)

    儒林(741)-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22)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22) 이튿날 아침. 두향과 여삼은 다시 안동을 출발하였다. 어차피 장례에는 참여할 형편이 못 되었으므로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제사를 지낼 심산이었다. 다행인 것은 선조가 특별히 영의정의 벼슬을 추증하고 국장으로 거행할 것을 어명으로 내렸으므로 퇴계의 장례는 의정예법에 따라 이듬해 3월 임오(壬午)일에야 거행되는 것이었다. 임오일이라면 이듬해 3월25일. 정확히 퇴계가 숨을 거둔 날로부터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맏아들 준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명을 따라서 임금에게 두 번이나 상소를 올려 국장을 사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선조는 단호히 이를 윤허하지 않았다. 선조는 봉명사신(奉命使臣)으로 승정원의 유홍(兪泓)을 직접 보내어 치제(致祭)케 함으로써 자신이 직접 회장(會葬)하지는 못하였지만 퇴계의 넋을 극진히 모셨던 것이다. 두향은 집으로 돌아오자 곧 초당에 궤연(筵)을 꾸몄다. 퇴계의 영위를 차리고 그 곁에 생전에 퇴계가 두향에게 정표로 써준 치마폭을 개어 놓았다. 두향은 그 신주 앞에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을 올리고 머리를 풀고 곡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두향은 거문고를 들고 궤연 앞에서 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퇴계와 헤어진 후 단 한번도 손에 들지 않았던 거문고였다. 지금도 남아 있는 묘비에 새겨져 있듯 두향은 거문고의 명인. 그러나 퇴계와 헤어진 후 두향은 의식적으로 거문고를 멀리하지 않았던가. “즐겁도다. 산 속에 숨어사는 삶은 큰 사람의 너그러운 모습일러라. 홀로 잠자고 홀로 말하니, 그 깊은 뜻 길이 잊지 말거라.” 두향이가 궤연 앞에서 거문고를 뜯으며 불렀던 노래는 공자가 편찬한 시경에 나오는 ‘고반(考槃)이란 시. 생전에 퇴계가 각별히 좋아하던 노래였다. 철저하게 산과 언덕, 그리고 물가에 숨어 사는 군자의 은둔생활을 찬미하고 있는 이 노래는 퇴계가 단양의 군수로 있을 무렵 강선대에서 함께 노래하고 듣던 애창곡이었으며, 실제로 퇴계는 단양 군수를 끝으로 고향으로 돌아가 서당을 짓고 자신의 손으로 ‘고반’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즐겁도다. 물가에 숨어 사는 삶은 큰 사람의 유연한 모습일러라. 홀로 잠자고 홀로 밤을 새우니, 그 즐거움 남에게 알려 무엇하리.” 어느덧 세월이 흘러 두향의 얼굴은 잔나비처럼 중늙은이의 모습으로 변하였으나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는 두향의 만가(輓歌)는 여전히 맑고 청아하였다. 퇴계를 위한 두향의 진혼곡은 이듬해 봄까지 계속되어 단 하루도 그침이 없었다고 한다.
  • “전세 없어 집산다”…소형 아파트값 연일 강세

    “전세 없어 집산다”…소형 아파트값 연일 강세

    서울 수도권 외곽 소형 평형 아파트값이 연일 강세를 이어가고 있어 실수요자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11·15대책’으로 시장은 전반적으로 진정국면에 접어들 기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서울 수도권 외곽지역을 중심으로 ‘전세수요 증가→전세 매물 품귀→전세가 상승→소형 매매수요 전환’의 악순환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소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전세난과 추격 매수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난→가격상승→매매강세 악순환 전세가격 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서울 수도권 일부 지역은 여전히 아파트값이 강세다. 매주 상승폭을 키워온 매매가 상승률이 11·15대책이 나온 지난 주를 기점으로 10주 만에 진정됐지만 오르는 곳도 많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주 중랑(0.65%→0.76%), 금천(0.08%→0.61%), 도봉(0.31%→0.46%), 광진(0.16%→0.39%), 구로구(0.33%→0.33%) 등 전세난을 일으킨 강북 지역은 전셋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전세가 상승률 평균(0.32%→0.19%)은 둔화됐지만 이들 지역은 예외다. 구리(0.12%→0.74%), 군포(0.17%→0.82%), 의정부(0.35%→0.75%) 등 수도권 외곽도 마찬가지다. 전세난이 해결되지 않는 지역은 매매가격도 강세다. 서울 매매가 상승률이 전 주보다 둔화(1.26%→0.77%)됐지만 노원(1.26%), 도봉(1.22%), 구로(1.17%,), 금천(1.08%), 중랑(0.97%), 광진(0.94%), 관악(0.89%), 동대문(0.88%), 강북(0.87%) 등 지역의 매매가는 서울 평균을 웃돈다. 특히 소형 평형 위주로 오른다. 지난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의 평형대별 상승률을 보면 20평대가 0.95%로 가장 높다.30평형대도 서울 평균(0.77%) 보다 높은 0.86%를 기록했다. 반면 40평대(0.66%)와 50평대(0.47%)의 경우 전체 평균을 밑돌았다. ●실수요자는 옥석구분 매수 바람직 소형 아파트값이 오른 것은 전세난에서 비롯됐다. 고분양가 논란과 불안심리가 더해지면서 예비 내집마련 수요자들이 매수세에 가담했다.2008년 청약가점제 실시에 따라 청약통장으로 내집마련이 불리해진 신혼부부 등 젊은 실수요층들도 내집 마련 대열에 끼어들고 있는 점도 수도권 외곽 지역 소형 평형 가격 상승을 이끌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내년 서울 수도권 입주 물량은 지난 2000년 이후 가장 적은 12만 8738가구다. 중소형만 높고 보면 올해 보다 20%(20006년 13만 783가구→2007년 10만 3495가구) 줄어든다. 정부가 2010년까지 분양한다는 신도시 공급도 입주까지 이어지려면 최소 5년은 걸린다. 이에 따라 내년 봄 이사철을 기점으로 다시 시장 불안이 가중될 것으로 점쳐지면서 전문가들은 당분간 소형 평형은 계속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2008년 시행될 청약가점제에서 득점력이 강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단 지금 사두고 향후 신도시 공급 물량이 나오면 청약통장을 통해 갈아타기를 시도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의해야 할 점도 많다. 신한은행 고준석 팀장은 “소형 아파트는 값이 올라도 대형 아파트만큼 오름폭이 크지 않아 실수요가 아닌 투자 가치로는 떨어진다.”면서 “작은 아파트를 살 때는 집값이 떨어져도 내림폭이 크지 않고 전세 수요가 많은 아파트를 골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북한강 상류 4개월째 흙탕물

    지난 여름 강원 북부지역의 집중호우로 발생한 흙탕물이 4개월째 수도권 상수원인 북한강 상류지역을 뒤덮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21일 강원도와 북한강상류 수계 자치단체들에 따르면 지난 7월 인제·양구 등 강원 북부지역에 집중된 폭우로 발생한 흙탕물이 소양강댐을 중심으로 사라지지 않고 있어 생태계 파괴는 물론 식수원도 위협하고 있다. 흙탕물은 특히 팔당호까지 이어져 수도권 상수원까지 오염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겨울철 수온변화로 대류현상이 발생하면서 최근 소양강댐에서는 흙탕물이 다시 수면 위로 역류하기 시작해 종전보다 더 짙은 황토물로 변했다. 소양강댐 아래 소양강정수장에서 수돗물을 공급하는 춘천시는 평상시 2NTU(탁도기준)에 불과했던 탁도가 집중호우 이후 70∼200NTU를 오르내리는 흙탕물을 받아 걸러 먹으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때 흙탕물 응집장치가 고장나 4만여 가구에 흙탕물을 공급했던 춘천시는 경보 시스템까지 구축하는 등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의암호와 팔당호 등 소양강댐 하류지역 댐에서도 흙탕물이 수개월째 이어지면서 어류들의 먹이가 되는 수초가 줄어들고 부영양화의 원인이 되는 인의 농도가 올라가고 있어 수중 생태계 파괴도 심각하다. 춘천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올 장마철 흙탕물이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내년 봄 소양강댐 지표수와 흙탕물이 모여 있는 중간층이 뒤집히는 역전현상이 발생할 경우 피해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환경부 등에 종합 대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춘천지역 20여개 시민사회단체들도 소양강댐 흙탕물과 여수로 안전사고에 대비해 지난 2일 ‘소양강댐안전 시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성의 있는 대책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정인숙(鄭仁淑)-그여자의 일생

    정인숙(鄭仁淑)-그여자의 일생

    3월 17일 밤 11시30분께. 서울 강변3로서 울린 3발의 총성은 죽은 정인숙(鄭仁淑)양의 신원이 밝혀짐에 따라 뜻밖의 파문을 몰고 왔다. 저명인사들과의 접촉이 잦았으며 아버지의 이름이 밝혀지지않은 3살짜리 어린애를 가진 처녀 엄마라고해서 이러쿵 저러쿵 파다한 후문을 일으킨 것. 타고 난 미모 하나로 밤의 요화로 군림, 각계 실력자들과 어지러운 관계를 가졌던 정인숙(鄭仁淑)양. 45구경 권총탄환 2개로 26세의 나이로 비명에 숨져야했던 그녀의 「짧고도 긴 생애」는 어떤 것이었을까? 다음은 가족 ·친구들의 말을 바탕으로 한 「정본(正本) 정인숙전(鄭仁淑)傳).」 옛 이름은 정금지(鄭金枝). 해방되던 해인 1945년 2월 13일 대구시 남산동 681의 2에서 전 대구부시장을 지낸 정도환(鄭道換)씨(65)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인숙(仁淑)양의 아버지 정(鄭)씨는 12살 때 일가 중 후손이 없었던 정남수(鄭南洙)씨의 양자로 입양했다. 그러나 입양한 해에 양부 정남수씨가 돌아가자 정(鄭)씨는 호주상속을 받아 바로 그해 11월 인숙양의 어머니인 전(全)씨(61)와 결혼했다. 당시 정씨가 살던 곳은 경북(慶北) 김천(金泉)군 (금릉군) 개영(開寧)면. 정(鄭)씨 일가는 해방되기 전 해까지 줄곧 이 곳에서 살며 슬하에 4형제를 두었다. 이 4형제 중 4남이 바로 인숙양 살해혐의를 받고 있는 종욱(宗旭)씨다. 생전 인숙양이 주장하던 것처럼 「뼈대있는 집안」은 아니었다는 게 김천(金泉)일대 주민들의 말이다. 정씨는 행정관리로 출발, 대구(大邱)부시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자수성가형. 인숙(仁淑)양의 출생에 관해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즉 아들만 넷을 둔 정씨의 부인은 어떻게든 딸을 보고 싶어 절에 다니며 『딸자식 하나만 낳게 해달라』고 불공을 드렸다는 것. 과연 불공의 효험이 있었던지 45년 정씨의 아내 전씨는 딸 자식을 낳았다. 그것도 인숙양 하나가 아닌 딸 쌍동이였다. 그래서 바라던 딸을 한꺼번에 둘이나 얻게 되자 「금이야 옥이야」기르며 이름조차 금지(金枝)·옥지(玉枝)로 지어주었다. 아들 4형제의 막내딸로 태어난 금지·옥지 두 쌍동이는 온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며 자라났다. 그러나 생후 1년 반만에 옥지는 죽고 금지만 살아 남게 되었다. 옥지가 죽은 다음해 정씨는 자식을 또 보았으나 이번 역시 아들. 그래서 금지의 외동딸의 위치는 변함이 없었고 그녀를 아끼는 일가의 귀여움을 독차지. 특히 어머니 전씨가 금지를 위하는 것은 딴 가족들보다 더 심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귀여움을 받으며 자라난 인숙(仁淑)양이 자존심 강하고 오만한 성격을 갖게 된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인숙(仁淑)양이 대구(大邱)서 국민학교 다닐 시절 인숙(仁淑)양에게 몸종이랄 수 있는 여자아이하나를 따로 두었다. 학교 갈때 따라가는가 하면 세수할때, 밥먹을때 등 노상 인숙(仁淑)양의 옆에 붙어 잔심부름과 시중을 들게 했다. 인숙(仁淑)의 성격은 더욱 오만해 졌다. 인숙(仁淑)양의 윗 오빠 네 사람은 이런 인숙(仁淑)양을 가리켜 『어머니가 너무 쟤만 위해 주니까 계집애가 버릇이 나빠진다』며 불평, 이따금 여동생 인숙(仁淑)에게 기합을 주었으나 그때마다 인숙(仁淑)양을 감싸고 도는 어머니 때문에 인숙(仁淑)양의 성격을 끝내 뜯어 고치지 못했다는 둘째오빠 종구(宗九)씨의 말이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인숙(仁淑)양은 대구(大邱) S여중에 진학했다. 이 때 아버지 정(鄭)씨는 경북(慶北)도청의 고급 관리로 집안형편이 넉넉할 때였다. 인숙(仁淑)양의 오만한 성격은 더욱 심해지고 이에 따라 오빠들과의 의는 점점 나빠졌다. 호랑이같은 오빠 4명이 인숙(仁淑)양이 조금만 늦게 귀가해도 때리고 꾸지람하기 일쑤. 이래서 정(鄭)씨집은 오만한 인숙(仁淑)양의 기를 꺾으려는 오빠 4명과 인숙(仁淑)을 편들어 주는 어머니 전(全)씨와 인숙의 두 패로 갈리게까지 되었다. 대구 S여고시절 인숙(仁淑)양의 학교성적은 중 이하. 그러나 영어실력만은 대단해 이때부터 이미 외국손님이 오면 안내역을 맡곤 했다. 인숙(仁淑)양이 영어에 능하게 된 데는 오빠들의 도움이 컸다. 현재 일본「도꾜」 의 「아까사끼」서 전기 부속품상을 하고 있는 큰오빠 종원(宗源)씨나 H무역의 대표로 현재 「인도네시아」에 있는 세째오빠 종인(宗仁)씨가 모두 영어라면 귀신. 이런 오빠 밑에서 익힌 인숙(仁淑)양의 영어실력이 뒷날 요정 「선운각」 에서 외국인들에게 술을 따르며 쓰이게 될 줄이야. S여고에 남은 인숙(仁淑)양의 학적부를 들추어보면 『명랑하고 성실하나 안일하고 책임감이 없다』고 되어있다. 인숙(仁淑)양이 S여중 3학년에 올라갔을 때 4·19가 터졌다. 대구 부시장으로 있던 아버지 정(鄭)씨가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자 가세는 기울기 시작. 이 때무터 인숙(仁淑)양의 집 살림은 어머니 전(全)씨가 계 등으로 꾸려 나갔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실직은 인숙(仁淑)양에게도 심한 충격을 주었다. 낭비벽 심하고 화려했던 인숙(仁淑)양의 생활은 집안 형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쪼들리기 시작했다. 살고 있던 대구(大邱) 남산(南山)동 집을 팔고 삼덕(三德)동으로 이사, 집 규모를 줄여야 하는 등 집안형편이 어려워지면서부터 인숙(仁淑)양의 성격도 비뚤어지기 시작. 62년 S여고를 졸업한 인숙(仁淑)양은 E大 영문과에 진학하겠다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 서울엔 인숙(仁淑)양의 세째오빠 종인(宗仁)씨가 S 무역에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응시했던 E大 영문과 입시에서 인숙(仁淑)양은 깨끗이 낙방. 세째 오빠 종인(宗仁)씨가 주는 돈으로 M초급대학에 입학했으나 등록금만 내고 학교에는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의 실직, E大 낙방 등의 겹친 불운은 콧대 센 아가씨 인숙(仁淑)양의 자존심을 꺾어놓기에 충분했다. 집안의 외동딸로 귀여움을 독차지 하며 자라온 인숙(仁淑)양이 두차례에 겹친 좌절끝에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라곤 태어날 때부터의 타고난 미모뿐. 콧대 꺾인 방년 19세의 아가씨 인숙(仁淑)양은 마지막 남은 재산인 미모를 마음껏 이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당시로선 요정의 「호스테스」란 생각지도 못했고 『나 정도의 얼굴이면 영화배우가 될 수 있지 않느냐?』하는것. 그래서 인숙(仁淑)양은 등록한 M여대엔 나가지도 않고 서울 충무로 영화가를 기웃거렸다. 이 때 만난 사람이 「시나리오」작가인 장(張) 모씨. 당시 장(張)씨는 KBS에 『태양은 늙지 않는다』란 연속극을 집필하고 있었는데 인숙(仁淑)양은 친구들을 만나면 자주 『우리 애인은 유명한 작가야』하며 뽐냈다. 張씨 자신도 張씨가 인숙(仁淑)양의 첫 애인이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콧대꺾였던 인숙(仁淑)양의 자존심은 유명작가를 애인으로 둠으로써 어느 정도 보상을 받은듯 했다는게 그녀 친구들의 이야기다. 당시 인숙(仁淑)양은 친구를 만날 때마다 張씨를 자랑했다고. 인숙(仁淑)양은 1년남짓 장(張)씨와 동거생활을 하기도 했다. 친구들에겐 『장(張)씨와 약혼한 사이며 곧 영화에도 출연하게 될 것』이라고 비치기도했다. 장(張)씨와 동거할 때도 인숙(仁淑)양의 타고난 사치벽은 버리지 못했다. 이래서 이따금 장(張)씨와 말다툼을 하고 장(張)씨 집을 뛰쳐나온 인숙(仁淑)양은 친구들 집을 찾아 하룻밤씩 자고 가기도. 그러면서 옛날 외동딸로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던 것을 잊지 못해 어떻게든 상처입은 자존심을 되살리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 때 인숙(仁淑)양이 알게 된 것이 지금 신촌(新村)모처에서 비밀요정을 경영하고 있는 K「마담」. K 「마담」은 한때 배우 윤(尹)모씨와 동거, 「패션·모델」생활도 한적이 있는 멋장이 「마담」으로 인숙(仁淑)양은 K 「마담」의 소개로 「디자이너」조(趙)모씨를 통해 「패션·모델」로 몇차례 나서기도 했다. 인숙(仁淑)양과 K 「마담」의 관계는 그뒤 줄곧 계속되어 K 「마담」이 경영하는 한남(漢南)동 비밀요정에 인숙(仁淑)양은 1급 「호스테스」로 나갔었다. 인숙(仁淑)양은 몇차례 「패션·모델」로 나가는 한편 동거하던 장(張)씨의 소개로 S영화사와 접촉이 되어 2,3편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신촌(新村), 수유리등을 전전하며 하숙생활을 하던 인숙(仁淑)양과 장(張)씨의 동거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숙(仁淑)양의 타고난 허영과 장(張)씨의 사업실패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은 원인이 되었다. 결혼까지 생각했던 두 사람의 사이는 동거 1년만에 끝장을 보고 말았다. 그러나 장(張)씨가 인숙(仁淑)양으로선 첫 남자였던 만큼 장(張)씨를 향한 인숙(仁淑)양의 마음은 어지간히 강했었다. 피살되기 한달전 인숙(仁淑)양을 만난 한 친구는 『여러가지로 골치 아픈 일이 많아 못 살겠다』면서 『그래도 장(張)씨가 제일 잊혀지지 않고 그립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장(張)씨와 헤어진 인숙(仁淑)양이 다음에 발 디딘 곳이 바로 요정 선운각(仙雲閣). 타고 난 미모와 영어실력이 그녀를 선운각(仙雲閣)의 1급 「호스테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선운각(仙雲閣)에서 인숙(仁淑)양이 만난 사람이 바로 A씨. 미남이자 이름이 알려져 있는 A씨라 인숙(仁淑)양의 허영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A씨를 만나면서부터 인숙(仁淑)양은 저명 인사들의 노리개감으로 전락, 밤의 꽃으로서의 진면목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A씨와 인숙(仁淑)양의 관계는 석달남짓 계속되었다는게 당시 인숙(仁淑)양 동료들의 이야기다. A씨를 알게 될 때 인숙(仁淑)양을 가운데 두고 A씨와 역시 A씨만한 실력자 B씨가 한달 남짓 열띤 각축전을 벌였다는 소문도 있다. 그 뒤 인숙(仁淑)양은 선운각(仙雲閣)을 떠나 활동무대를 비밀요정으로 옮겼다. 전부터 아는 K 「마담」이 경영해 오던 한남(漢南)동 비밀요정을 주무대로 2류급 여배우들을 잘 불러내는 것으로 소문난 S 「마담」집등에 단골로 불려 다녔다. 그러나 비밀요정 「호스테스」로 나가는 동안에도 인숙(仁淑)양은 콧대가 높아 반드시 「마담」들에게 그 날 참석자들을 알아보고 웬만한 이름이 아니면 응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밤이면 이름있는 사람들과 접하는 인숙(仁淑)양은 낮이면 필동2가에 자리잡은 집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지냈다. 어렸을 적부터 인숙(仁淑)양 편이었던 어머니 전(全)씨는 남편 정(鄭)씨가 일가를 이끌고 서울로 올라와도 남편집에서 살지 않고 인숙(仁淑)양과 단둘이 살며 딸의 뒷바라지를 해 주었다. 필동에서 살때 인숙(仁淑)양은 아들(3)을 낳았다. 인숙(仁淑)양의 가족들은 그 아이가 인숙(仁淑)양의 아이가 아니고 인숙(仁淑) 양의 배다른 동생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①가족 주장대로 배다른 동생이며 대구(大邱)서 낳아 서울로 데려다 길렀다면 최소한 5살은 되었어야 하는데 3살이라는 점 ②배 다른 동생이라면 미국 갈때 굳이 인숙(仁淑) 양이 아기를 함께 데리고 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등을 보면 인숙(仁淑) 양의 아이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럼 이 아이의 아버지는 누구일까? 시체해부에서도 드러났듯이 인숙(仁淑) 양은 임신중절 수술을 받은바 있다. 더우기 비밀요정가에선 「호스테스」가 아이를 낳는 것은 「터부」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숙(仁淑)양이 아기를 낳았을 때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 충분한 이유란 사후보장. 처녀(?)가 호적에도 올리지 못할 아기를 낳을땐 어딘가 굳게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란건 틀림없는 일이다. 워낙 남자관계가 복잡한 인숙(仁淑)양이라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냐 하는 것은 인숙(仁淑)양 자신만이 알 일이지만 항간에선 일본에서 요정을 경영하고 있는 갑(甲)씨, 을(乙)씨, 병(丙)씨등 알만한 이름들이 나돌고 있다. 그러나 인숙(仁淑)양이 아이를 낳은 후부턴 『내 말 한마디면 안되는 일 없다』혹은 『 서교동집도 아기 아빠가 사준 거야』등의 말을 한 것으로 보아 세사람중 한사람일것이라는 소문. 68년 12월 30일자로 발급된 수속서류 없는 회수여권 MA 10647이 발급된 경위만 하더라고 웬만한 실력자가 아니고선 어림도 없는 일이란 것. 어쨌든 아기를 낳은 인숙(仁淑)양의 주변은 전보다 눈에 띄게 달라졌다. 우선 본거지인 비밀요정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68년 8월엔 싯가 7백만원이 넘는 단층 석조주택을 사 서교동으로 이사했다. 평소 친하던 K 「마담」 이외엔 좀체로 그녀를 만날 수 가 없었다. 비밀요정 대신 「타워 · 호텔」, 「사보이 · 호텔」, 반도 ·조선 「아케이드」에 자주 나타났다. 69년 봄 일본에 다녀온 인숙(仁淑)양은 그해 5월에 K 「마담」의 소개로 한남동 조(趙)모씨로 부터 문제의 「코로나」를 사들였다. 이 때 부터 인숙(仁淑)양은 다시 남성편력을 시작했다. 이번엔 전과는 달리 주로 돈 잘쓰는 사람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재일교포인 갑(甲)씨 등 적지않은 사람들이 인숙(仁淑)양을 거쳐 갔다. 아마도 『 아이를 낳고 보니 무엇보다 돈 걱정이 앞섰던것 같다』는게 인숙(仁淑)양을 아는 친구와 「마담」족의 중론이다. 지난 69년 10월 10일 인숙(仁淑)양은 아기를 데리고 미국행을 했다. 이 때 인숙(仁淑)양이 친구에게 밝히기론 『 잠시 골치아픈 일이 있어 외국에 나갔다 와야겠다』는 것. 인숙(仁淑)양은 미국서 석달 있다가 되돌아 왔다. 1월21일 다시 돌아온 인숙(仁淑)양의 주변은 의문투성이뿐. 『 곧 미국에 갈테니 차를 팔아야 겠다』는가 하면 『 돈 달라는 사람 많아 귀찮아 죽겠다』고 하기도 했고 한때는 『 이젠 미국 안갈래』하기도 했다. 사건당일만 해도 자동차매매업소에 나타나 「시보레」6기통 짜리 흥정을 했다는데 미국에 갈 생각이었다면 한국에서 차를 바꿀 이유가 없다. 이래서 그녀의 주변에서 『 미국에 가 있으라』는 「그이」의 요구와 이를 선뜻 응낙치 않은 인숙(仁淑)양의 태도에 이번 사건의 수수께끼가 숨어 있지않나 보기도 했다. 어쨌든 3월 17일밤 11시 20분 한강변에 울린 3발의 총성으로 한때의 요화(妖花)정인숙(鄭仁淑)양은 비명에 갔다. 아빠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홀로 남겨 놓은채. [선데이서울 70년 3월 29일호 제3권 13호 통권 제 78호]
  • [진화하는 일본농업] ‘日농업 부흥 선두주자’ 니가타市 르포

    [진화하는 일본농업] ‘日농업 부흥 선두주자’ 니가타市 르포

    |니가타 이춘규특파원|일본 농업이 진화하고 있다. 농민, 행정기관, 학계가 협력해 농업을 첨단화시키면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기업들도 쌀, 채소 등을 이용한 의약품이나 건강식품을 개발하며 첨단화를 후원하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 가장 긴 강을 끼고, 가장 넓은 평야를 거느린 혼슈 북쪽 니가타시는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시 정부와 농민, 관련기업 등이 함께 추진하는 식량, 바이오에너지 개발 등 농업진화의 현장을 가봤다. 일본 농업이 자유무역협정(FTA) 확산, 정부지원 축소로 더욱 위기에 몰리고 있다. 고령화로 후계자 부족도 심각하다. 휴경지도 늘고 있다. 이곳 농민과 농협, 관계당국 등은 ‘고부가가치 쌀의 개발’‘새 농업 비즈니스 창출’ 등으로 농업 진화를 앞당기고 있다. 니가타 농업의 진화는 농민과 우리 농협과 유사한 JA가 앞장서고 있다. 니가타시 시로네 지역은 농업 진화를 상징하는 곳이다. 전형적인 농촌지역인 이 곳 농민과 농협이 함께 위기 극복에 나섰다. ‘JA 시로네’가 운영하는 기업 조직인 ‘과일·꽃 시로네’는 당도와 크기가 압권인 ‘니다카’라는 배를 개발,8년 전부터 일본보다 3∼4배나 비싸게 한 개에 700∼900엔(약 7300원)을 받고 연간 10t을 타이완에 수출하고 있다. 부유층이 상대다. 타이완에 올해부터 복숭아도 항공편으로 수출했다. 러시아에도 지난해 12월부터 역시 3∼4배 바싸게 배를 수출하기 시작했지만 인기가 좋다. 최근 선박편으로도 러시아 수출을 개시, 경쟁력이 높아져 판매 확대를 기대한다. JA시로네의 나가사와 요시히로 계장에 따르면 타이완으로 배 수출을 시작하던 첫 2∼3년간은 시장조사 비용 등으로 정부보조가 있었다. 최근 현지 TV홍보비도 지원받았다. 배의 등급을 매기고 품질 관리를 맡아서 하는 ‘품질관리 전담공장’을 설립할 때 중앙 및 현 정부의 보조도 있었다. 과일·꽃 시로네측은 먹는 국화 ‘가키노모토’를 가을부터 봄까지 생산, 전국에 판매한다. 당초 ‘일왕가의 상징꽃’이란 거부감 때문에 판매에 고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각종 성인병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판매가 늘고 있다. 특히 시로네지역에서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보라색국화를 생산, 도쿄 등 전국에 판매한다.”고 나가사와 계장이 밝혔다. 가키노모토는 쓴맛을 없애, 특유의 맛을 내는 기술을 통해 백김치와 유사하게 만들어지며, 맛도 좋았다. 식용꽃으로도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니가타시는 산학공동연구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다.2005년말 니가타바이오리서치파크(주)를 설립, 인접한 니가타약과대학과 연계해 ‘니가타시 바이오리서치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니가타시의 바이오비즈니스 첨단기지이다. 이 바이오리서치센터에는 1층에 식품안전센터,2층에 관련기업 실험실,3층에 기능성음식 실험실 등이 마련됐다. 주목을 못받던 ‘쌀겨’에서 화학공업원료를 생산, 첨단의약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 이케가와 노부오 소장의 설명이다. 대량생산은 못하고, 실험생산하는 단계라고 한다. 센터에서는 케일의 변종인 푸티 베리를 이용, 항암작용이 있는 식물성 물질개발에도 전념하고 있었다. 혈당치나 인슐린분비를 억제하는 식품기능 연구도 진행중이며, 먹어도 혈당치가 올라가지 않는 쌀도 함께 개발하고 있다. 니시다 히로시 리서치센터 전임은 “전체 연구는 막 시작한 단계다. 생산성 높은 원료 식물의 지속적 생산이 중요하다.”면서 “따라서 생산 농민과의 협력도 연구 성공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센터는 포도주 추출물, 치즈폐기물 등을 이용한 천연 화장품과 방부제도 개발중이다. 특히 센터는 화장품 회사와 협력, 음식의 맛이나 품질을 해치지 않는 천연방부제도 집중 개발중이다. 천연물질 미용액은 조만간 출시될 예정이다. 이처럼 농업 진화를 위한 전반적인 정책수립과 여론수렴은 시 농업진흥과가 책임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3월 13개 시·정·촌이 합병되면서 농촌지역이 급격히 늘어,‘대농업도시’로 변하며 논 면적이 기초단체중에는 전국 1위인 점에 주목했다. 쌀을 각종 파생상품으로 진화시키는 노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쌀을 이용한 바이오에탄올 생산이 시도중이고, 일본과자나 청주의 주원료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물론 일본의 주식이다. 다카하시 유키오 농업진흥과장은 “쌀과 튤립 등 27개 농산물이 일본 1위 생산량을 자랑한다.”면서 “니가타시 농업의 과제는 ‘일본 농업’ 전체의 과제다. 경영규모가 작아 국제경쟁력이 떨어지고, 후계자도 부족해 일본 경영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카하시 과장은 “따라서 쌀과 각종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도전 가능한(경쟁력있는) 농업이 되도록 농지 정비에 정부와 현, 시가 일정정도 보조해 농민의 부담은 10∼30%에 그치도록 하고, 생산조정을 통해 쌀의 과잉생산을 예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진행에 따라 니가타 농업, 일본 농업은 한차례 더 홍역을 치를 수도 있다. 지금은 정부와 현, 시가 여러가지 면에서 농업과 농민을 지원하고 있지만,WTO협상 진행 여하에 따라서는 지원이 불가능해지는 상황 등이 올 수 있기 때문에, 협상추이를 주시하고 있다. taein@seoul.co.kr ■ 당뇨·신장병 치료용 ‘꿈의 밥’ 생산 |니가타 이춘규특파원|니가타시의 기업들도 쌀의 진화를 후원하고 있다.‘꿈의 밥’을 만들어 당뇨병과 신장병 치료용으로 판매하고 있는 ‘가메다 제과사’가 대표적인 기업이다. 가메다제과 와타나베 도시유키 쌀과학연구실장은 “신장이 나쁜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며 당뇨병·혈압 등의 성인병을 치료하기 위한 ‘첨단쌀’ 등 식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목표에 따라 쌀과학연구소는 단백질의 양을 크게 줄인 첨단쌀을 개발,‘꿈의 밥’을 만들어 만성신부전증 환자의 식이요법용 식품을 개발했다. 일본 환자 42만명의 10%가 이 회사의 꿈의 밥을 먹으면서 치료중이다. 증상이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효과가 입증됐기 때문이다. 꿈의 밥은 합병증으로 신장병이 걸리기 쉬운 일본내 740만명의 당뇨병 환자들에게도 권장되고 있다. 첨단쌀은 특수과정을 거쳐 보통 쌀보다 5분의1,10분의1,25분의1까지 단백질 양을 줄인 것이다.(회사측은 단백질을 줄이는 방법은 공개안함.) 이 회사는 아울러 환자들의 다양한 입맛과 치아건강 상태 등을 고려, 특수한 쌀죽과 볶음밥도 생산한다. 외출 환자를 위해 빵형태로 된 꿈의 밥도 만든다. 도쿄농업대학과 공동으로 식물성 유산균(김치가 몸에 좋은 유산균을 포함하는 원리도 참고)을 이용한 항암요구르트도 생산, 주목을 받고 있다. taein@seoul.co.kr ■ “日농업 국제경쟁력 뒤져 대개혁 피할수 없는 과제” |니가타 이춘규특파원|시노다 아키라 니가타 시장은 “4∼5년 뒤에는 세계의 식량사정이 크게 변해, 식량위기가 올 수 있다.”면서 “일본 농업의 대개혁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니가타시 농업의 특징은. -전원과 도시가 공존한다. 쌀 생산이 가장 중요하고, 일본의 대표적인 쌀인 ‘고시히카리’의 평판은 절대적이다. 여러 꽃 생산도 전국 1위이고, 야채·과일도 다채롭게 생산한다. 근교 농업이 성하다. ▶쌀을 이용한 바이오에탄올 생산은. -10년전까지 바이오에탄올 생산 조직이 있었다. 그다지 경제성이 좋지 않아 생산을 중단했다. 그런데 최근 휘발유 가격이 오르고, 혼다 자동차가 바이오차를 개발하며 다시 바이오 에탄올(휘발유 대용)이 주목받고 있다. 수확량이 매우 많은 쌀을 심고, 생산하는 방법을 다시 연구하는 단계다. 아직 시범단계이지만 내년도에는 큰 진전을 기대한다. ▶니가타 쌀을 북한에 지원하나. -니가타 시민 가운데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NGO)가 있다. 시 차원에서는 안하지만 민간 차원의 쌀 지원을 하고 있다. ▶일본 농업의 문제점은. -일본 농업은 국제경쟁력에서, 특히 가격면에서 못이긴다. 이게 큰 문제다. 일본의 식량자급률이 40%다. 일본의 안보면에서도 문제다. 중국도 식량수입국으로 변하는 등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싸고 맛있는 쌀과 바이오 에탄올을 대량으로 만드는 시대가 와야 한다. ▶농업보조금 지급 상황은. -내년도부터 정부가 농업을 크게 개혁할 것이다. 국가의 농업 지원이 크게 줄어든다. 현장에서 책임진 사람으로서 그게 머리 아프다. ▶농업분야의 외국인 노동자 상황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니가타시에는 쌀로 케이크와 빵을 만드는 공장에 브라질인 등 외국인 노동자가 일한다. ▶쌀 과잉생산 문제로 인한 휴경지는. -논 중에서 3분의 1정도가 보리, 과일 등으로 전작하거나 휴경한다.(니가타를 시찰할 때 휴경지가 많이 보였다.)경제성이 떨어지고, 노동력이 부족해서 휴경하는 곳이 많아 문제다. taei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정치·사극 명해설 성우 김종성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정치·사극 명해설 성우 김종성

    카타르시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온다. 억압된 영혼이 자유로워져 순간적인 쾌감을 준다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 이른바 ‘천(天)의 목소리’라고 한다. 정확한 발음과 깔끔하고 박력있는 목소리로 오감을 자극해 카타르시스를 팍팍 선사한다. 또한 ‘제1공화국’에서 ‘제3공화국’에 이르기까지 격동의 세월을 생생하게 전달, 정치극을 한 차원 높이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도 ‘격동 50년’(MBC라디오)을 18년째 진행해오면서 청취자들의 귀를 역사의 현장으로 쏘옥 빠뜨린다. ●‘천의 목소리´로 안방극장에 생생한 해설 전달 어디 이뿐이랴. 얼마전 끝난 인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비롯, 요즘 주말에 상영되는 ‘연개소문’(SBS-TV) 등의 대하사극과 오락 프로그램 ‘스펀지’(KBS-2TV)에서 감칠맛나는 해설로 우리의 오감을 흥미진진하게 건드린다. 특히 딱딱할 것 같은 웬만한 다큐멘터리와 교양 프로그램에서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시청자들을 편안하게 끌어당긴다. 성우 김종성(63)씨. 주말 저녁이면 목소리로 늘 만날 수 있는 친숙한 아저씨다. 현역으로 활동하는 ‘얼굴 없는 배우’ 가운데 소위 ‘가장 잘 나가는’ 성우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964년에 데뷔, 올해로 42년째이자 나이 60대 중반을 바라보는 원로이지만 여전히 열정적인 활약으로 ‘성우계의 살아 있는 역사’로 통한다. 지난 16일 오후, 가을의 끝자락을 아쉬워하듯 쓸쓸하게 낙엽이 흩날리는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김씨를 만났다. 처음에는 “해줄 말도 없는데다 얼굴 없는 배우가 얼굴을 내밀어선 무엇하느냐.”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김씨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주 동안(童顔)이었다. 소설가 조정래씨와 시인 박제천씨가 동국대 국문과 동기이고 탤런트 김무생씨와는 동갑이라는 점에서도 얼른 비교가 된다. 젊어진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욕심도 없고 술, 담배도 안 한다.”며 빙그레 웃을 뿐이다. 나이보다 젊어 황당했던 일도 당연히 있을 터. 주차장에서 50대 경비 아저씨한테 “젊은 사람이 왜 그래?”하는 식의 야단을 자주 듣는가 하면 한 살 아래인 부인과 동행할 때 누나 동생 사이로 오해를 받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너무 젊게 보여 수염을 길렀더니 오히려 ‘젊음의 끼’로 여겨 낭패(?)를 당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어려서는 노숙했고 나이들어서는 젊게 보인다고 하니 얼마나 복받은 삶일까 부러워진다. 김씨의 본명은 김기호, 아명(兒名)이 ‘종성’이다. 성우로 데뷔할 때 ‘금(金)종소리’라는 뜻에서 ‘鍾聲’으로 쓴 것이 인연이 돼 지금까지 김종성(金鍾聲)으로 쓰고 있다.‘두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로 유명한 라디오 스타 김기덕씨가 친동생이다. “원래 성우가 된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어요. 먹고 살기 위해 대학 다닐 때 방송대본을 쓰게 되면서 엉뚱하게 성우의 세계로 빠진 셈이지요.” ●동아방송 사태로 실직 아픔… 복덕방 운영도 가난한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가문에 대한 강박관념과 살림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래서 대학 3학년때 입주 아르바이트 등 여러가지를 했지만 신통치 않아 방송국을 노크했다. 당시 MBC 라디오 제작2부장이었던 김범석씨를 만나 방송대본을 건네자 “성우가 낫지 않겠느냐.”며 성우학원 등록을 권유받았다. 이때가 1963년 6월. 그래서 서울 종로5가에 있는 한국예술학원에 두달 동안 다녔다. 그해 10월 동아방송 성우시험에 응시했으나 낙방, 적잖은 고민을 했고, 결국 이듬해 4월 TBC가 개국하면서 성우시험 공채 1기에 합격했다. 이와 관련, 김범석씨는 “당시 한국예술원에서 성우강의를 했는데 김종성씨는 성우에 자질을 크게 보였다.”면서 “지금도 방송해설 분야에서 나름대로 독특한 장르를 개척했고 또한 그 분야를 순수하게 잘 이끌어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성우의 길은 생각만큼 순탄치 않았다. 초창기 TBC 시절, 구조조정 등으로 노사분규가 발생했고 함께 입사한 동료 15명 중 7명이 퇴사하는 아픔도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난다. 부인은 당진 출신으로 TBC에서 2년,MBC에서 3년 성우생활을 하다가 1970년 결혼하면서 성우활동을 그만두었다. “동아방송 사태가 나자 실직했지요.1976년부터 1979년까지 서울 잠실에서 3년동안 가나안 복덕방을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돈 되는 걸 도무지 맞추질 못하는 거예요. 오죽했으면 주위에서 ‘반대로만 하면 된다.’고 할 정도였지요.” 이때 MBC에서 ‘그림자’ 방송을 담당하는 PD한테 연락을 받고 다시 복귀했다. 아울러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동아방송에서 ‘정계야화’라는 정치드라마를 맡으면서 사실상 본격적인 성우생활이 시작된다. 하지만 신군부에 의해 방송국이 통합되면서 또 한번의 시련을 겪으면서 KBS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현재 극단 산울림대표의 임영웅씨가 만든 ‘인물 한국사’의 해설을 맡으면서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그가 지금의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 ‘격동 50년’을 하게 된 것은 지난 1988년 4월1일에 시작된 ‘격동 30년’에서 비롯된다. 이에 대해 김씨는 “배우 사정이나 시국 분위기 등으로 처음에는 두달만 하자고 한 것이 벌써 18년이나 됐다.”면서 ‘전설따라 삼천리’보다 더 오래 장수한 유일한 라디오 드라마가 됐다고 의미 부여를 했다. “소리나 언어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지요. 사전대로 하면 안 맞습니다. 대중들이 가장 아름답게 여기는 언어와 억양을 구사해야 친숙해집니다. 물론 잘못된 대중언어는 골라내지요. 그게 제가 40년 넘게 성우생활을 해온 고집이기도 합니다.” ●“말이란 형식미가 아니라 자연미여야” 가끔 후배들을 만나면 “성우는 언어학자가 아니다. 자유롭게 리얼하게 표현하면 된다.”고 당부한다. 또 작품의 성격을 잘 이해해야 올바른 배역과 해설을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씨 자신도 드라마든 다큐프로이든 항상 대본부터 꼼꼼히 읽는 습관을 가졌다. 목소리가 원래 좋았느냐고 묻자 “어렸을 때 부모님이 ‘옥루몽’이며 ‘삼국지’를 읽는 모습을 자주 봤다.”면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누나들이 갖다 준 ‘무정’ 등의 소설책을 많이 읽었다고 대답했다. 또 성우생활을 하면서 AFKN방송의 해설을 눈여겨보면서 미래의 호흡과 템포를 익혔다고 부연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언젠가는’ 할 때 대부분 한꺼번에 읽지만 ‘우리는/언젠가는’식으로 호흡의 길이를 나름대로 정했다.“말이란 형식미가 아니라 자연미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술, 담배 안한 것도 맑은 소리를 제대로 서비스하기 위해 결단했던 것.”이라며 웃는다. “물러나는 것을 늘 생각합니다. 짧게는 2년 후 그만두려고 합니다. 후배들이 한 600여명이 있지만 영상매체의 발달로 성우라는 직업이 사양길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새로운 무대를 개척해야지요. 지금까지 방송의 배려로 살았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매년 몇백대1로 성우 지망생은 늘고 있거든요.” 김씨는 이에 대비해 몇년 전부터 ‘오디오북’을 준비해오고 있다. 이미 ‘백범일지’‘고전12마당’‘단편문학50권’ 등을 녹음했다. 앞으로는 후배들과 함께 특수효과를 넣은 오디오북 1000권 제작을 목표로 이에 전념할 계획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나 후배 성우들도 품위있게 은퇴를 하려면 이러한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김씨는 ‘불멸의 이순신’을 끝내면서 시청자들이 주는 상을 받았다. 네티즌들은 카페를 만들어 김씨의 나이를 의식해서인지 “후계자는 없나요.” 등의 많은 애정과 안타까움을 표시한다.“글쎄요. 제가 하라는 대로 하면 후배들이 돈을 벌 수 없다며 기피한다.”며 멋쩍게 웃는다. km@seoul.co.kr
  • 고덕 주공 16평 호가 2000만원↓

    ‘11·15대책’이 나온지 5일 만에 집값이 일단 잡히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주택시장에서 사자 주문이 줄어들고 추격 매수세가 약해져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부동산중개업계는 아파트값이 단기간 폭등한 데 따른 경계심리 확산과 공급 확대에 따른 집값 안정이 예상되면서 묻지마 사재기가 주춤해졌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거래 부진은 내년 봄 이사철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호가 오름세 꺾이고 거래 중단 수도권 전역에서 아파트값 폭등세가 일단 진정됐다. 대책이 나오기 전 하루가 다르게 호가가 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시장은 차분해졌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재건축 대상 아파트값은 대책 발표 후 호가 올리기 경쟁이 사라지고 약세로 돌아섰다. 개포 주공 13평형 아파트는 가구당 1000만∼2000만원 호가가 떨어졌다. 고덕 주공2단지 16평형은 7억원에서 6억 8000만원으로 내렸다.이병헌 대모산공인중개사 사무소 사장은 “이번 대책이 급등한 아파트값을 한꺼번에 끌어내리지는 못할 것”이라며 “그러나 일단 추격 매수를 잡고 가격 오름세를 꺾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고 전했다. 강북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대문구 독립문 일대 아파트는 대책 이전까지만 해도 사자 주문이 밀려드는 데 비해 팔자 물건이 없어 부르는 게 값이었지만 대책 이후부터는 널뛰기 오름세가 잡혔다. 김정선 삼호공인중개사 사장은 “잇단 수요 억제 대책이 나오면서 단기간 폭등한 집값에 경고 사인이 켜졌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눈에 나타나는 집값 하락 현상은 아직 감지되지 않는다.”고 말했다.●내년 봄 이사철 전셋값 안정이 분수령 더 오르기를 기다리며 버티기에 들어갔던 팔자 매물이 일부 나왔지만 거래는 끊기다시피 했다. 이번 대책에 재건축 규제 완화가 포함되지 않아 추가 집값 상승 여력이 없다고 판단한 강남 일부 재건축 아파트 주민들이 조심스럽게 매물을 내놓는 경우도 있지만 수요자들은 선뜻 달려들지 않고 있다. 아직은 집주인들이 관망세인데다 수요자들도 더 이상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눈치만 보고 있다. 하지만 집값이 멈칫거리다가 다시 강세를 띨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전문가들은 내년 봄 이사철 전셋값 안정이 주택시장 안정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일단 매매 가격 오름세가 진정됐기 때문에 전셋값만 잡는다면 추가 상승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김태호 부동산랜드 사장은 “내년 봄 이사철에는 2년 전 전세시장이 안정될 때 나왔던 전셋집 계약 갱신 시기와 맞물려 집주인들이 보증금을 올리거나 월세로 바꿔 내놓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봄 이사철 전셋값 폭등을 막는 정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겨울이 있는 열대

    겨울이 있는 열대

    글 황두진 건축가 유난히 덥고 비가 많이 왔던 여름이 막 지났다. 우리나라 가을 특유의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고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쌀쌀하기조차 하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비가 온 지도 한참 되어 오히려 농부들은 가을 가뭄을 걱정해야 할 듯하다. 비 피해가 심했던 강원도, 전라도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날씨에 대해서 다시 심드렁해졌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건축가가 고민해야 하는 수많은 것들 중에 기후는 아주 기본적인 것에 해당한다. 열대 지방의 건축과 한대 지방의 건축이 다른 것은 문화적인 배경 이전에 기후의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시대가 좀 달라졌다. 기후의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고, 또 무엇보다 그것을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더우면 에어컨 돌리고 추우면 보일러 켜는 것이 너무 당연한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결과 어떻게 하면 건물을 기후에 맞게 현명하게 지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그다지 큰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그야말로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겨울에도 실내에서 반팔, 반바지를 입고 사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그런 태도가 과연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이것은 단순히 에너지의 소비에 국한된 문제만은 아니다. 점차로 비와 관련된 문제가 심각해져 가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한반도에 비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오고 있다. 처음 몇 년간은 그저 예년에 비해 비가 좀 더 오나보다 했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이것이 절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것이 점차 명확해진다. 그러면서 여름은 정말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덥고 습하다. 게다가 점차로 봄과 가을이 짧아지니 결국 우리에게는 여름과 겨울만 남는 셈이다. 그래서 이렇게 변화는 한반도의 기후를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결국 ‘겨울이 있는 열대(tropical with winters)’가 되는 셈이다. 매우 극단적인 기후 조건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건축가들, 특히 기후 문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민감한 건축들에게 이것은 큰 도전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건물들은 다양한 종류의 기후 조건과 이전보다 더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다. 더위와 추위는 기본이고 이제 비가 전혀 새로운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우리나라 여름의 강우량, 특히 순간 강우량은 동남아시아 열대 지방에 비해서도 오히려 더 높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전에 비해 빗물을 효과적으로 흘려보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배수를 위한 파이프의 직경을 키우고 건물에서 방출된 물이 어떻게 배수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습도는 또 다른 적이다. 기온만으로 보면 우리나라보다 더운 나라들은 많다. 남부 유럽은 여름에 종종 40도가 넘는다. 그러나 막상 가보면 그런대로 견딜 만한데 그 이유는 습도가 낮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나라의 여름은 갈수록 견디기 어려워진다. 물론 일본이나 홍콩, 대만 등에 비하면 나은 편이지만 한여름, 특히 장마 중에는 정말 모든 것이 불편하고, 심지어 불쾌하기조차 하다. 그래서 저마다 에어컨을 돌리고 그러면 실외 기온에서 나오는 열이 도시의 건물들 사이에 갇혀 이른바 열섬 현상을 일으킨다. 그래서 밤이 와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갈수록 늘어난다. 기후적 악순환이 계속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후 문제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의외로 가까운 곳에 해답, 적어도 훌륭한 참고자료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한옥이다. 한옥은 오랜 시간 동안 한반도의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어 온 집단창작물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자연적, 인문적 환경에 잘 적응해온 결과물이다. 비록 여러 가지 단점이 있고 오늘날 보편적 주거로서의 명맥이 매우 빈약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배울 것이 많고 가치가 있는 건축이다. 특히 장마가 지루하게 계속되는 한여름, 깊게 뻗은 처마가 비를 막아주고 열어젖힌 분합문을 통해 그나마 약간의 바람이 살랑거리는 것을 느낄 때면 도대체 이 시대에 무엇이 과연 첨단 건축인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처마가 전혀 없어 비가 오면 창을 열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실내 습도가 더욱 올라가 결국 에어컨을 돌릴 수밖에 없는 현대식 건물에서 지내다 보면 그런 생각이 더욱 들게 된다. 어쩌면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것조차도 변해 가는 한반도의 기후 덕인지 모른다.     월간 <삶과꿈> 2006.11 구독문의:02-319-3791
  • [함혜리기자의 프렌치 리포트] (5) ‘학벌’ 신분사회

    [함혜리기자의 프렌치 리포트] (5) ‘학벌’ 신분사회

    프랑스에 대해 우리가 정확하지 못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가 사회 시스템이다. 자유·평등·박애를 국시(國是)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모두가 차별없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모든 사람이 균등한 기회를 누리는 평등한 사회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프랑스는 철저한 신분사회다.21세기에 인도도 아니고, 사회민주주의의 본산인 프랑스를 ‘신분 사회’라고 단정하는 것에 반박할 사람도 많겠지만 실상이 그렇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의 지도층을 구성하고, 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이 중간층을 구성한다. 그 아래는 사회 안전망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노약자와 극빈층, 그리고 외국의 이민자들로 구성된다. ●능력만큼 대접받는다 프랑스 사회를 특징짓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메리토크라시(meritocratie)’다. 대혁명 이후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부(富)와 특권을 일부 계층이 세습하는 데 대해 많은 비판이 오갔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합의가 바로 능력에 따라 보상을 받도록 한다는 메리토크라시였다. 사람의 능력을 어떻게 판가름할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을 것이나 프랑스에서는 학력을 가장 공평한 기준으로 간주한다. 개인의 성취도를 학력으로 평가하고, 공부 잘해서 좋은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다른 나라와 큰 차이가 없다. 프랑스의 엘리트 시스템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은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들을 소수 정예로 선발해 가르치고 훈련시켜 등용한다는 점이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각 분야의 엘리트들을 배출하는 고등 교육기관이 그랑제콜(Grands Ecoles)이다. 프랑스의 고등교육 체계는 아주 독특하고 복잡한데 영미식 고등교육제도에 견줘 가장 큰 차별성을 보이는 부분이다. 프랑스의 그랑제콜들은 대부분 대혁명 이후인 18∼19세기 세워졌다. 인문계, 자연계 구분없이 전 분야에 걸쳐 공·사립 학교가 전국에 수백 군데 분산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인문계의 고등사범학교(ENS)와 이공계의 에콜폴리테크니크(X)는 최고의 수재들만이 입학할 수 있는 명문 중의 명문이다. 200년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자존심’ 에콜폴리테크니크의 엘리자베드 크레퐁 부총장은 “프랑스의 고등교육은 사회를 이끌어갈 고급 엘리트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그랑제콜과 대중적인 고등교육을 위한 일반 대학으로 이분화된 것이 특징”이라며 “대학과 그랑제콜은 기본적으로 지원 자격, 선발 방법, 교육 방법이 다르고 졸업 후의 역할도 큰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전문화·서열화된 학벌 카스트 일반 대학은 대학입학 자격 시험(바칼로레아)만으로 무시험 진학하는 데 반해 그랑제콜은 국가가 실시하는 시험(콩쿠르)을 거쳐야만 입학이 허용된다. 선발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바칼로레아 후 2∼3년간의 그랑제콜 준비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준비 과정은 전국 480개 고등학교에 설치된 그랑제콜 준비반(CPGE)에서 이뤄지는데 이곳 역시 고교 2년 말 학교성적이 5∼10%에 들어야 한다. 이들은 최하 4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그랑제콜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출세가 보장된다. ENS나 에콜폴리테크니크 같은 국립 그랑제콜의 경우 학생들에게 월급까지 주며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시킨다. 졸업생들은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로 대접받으며 많은 특권을 누린다. 졸업과 동시에 주요 부처의 관료로 임명돼 중요한 정책을 입안하거나, 국·민영 기업체의 간부로 스카우트돼 곧바로 현장에 투입된다. 학교 순위에 따라 연봉도 다르다. 이공계 최고의 명문 에콜폴리테크니크 출신의 첫해 연봉은 3만 8000유로(4700만원 정도), 상공계 최고의 명문 고등상과대학(HEC) 졸업자 초봉은 4만유로(5000만원) 정도다. 이들 학교의 졸업 학위는 일반 대학의 석·박사 학위와는 다르다. 대학 졸업장은 고등학교 졸업장 정도로 보면 된다. 프랑스에서는 대학을 나와봐야 번듯한 직장을 구할 수 없다. 대학의 박사학위도 그랑제콜 졸업장과는 비교가 안 된다. 프랑스의 그랑제콜 졸업장은 우리나라의 고시 합격증과 비슷한 수준이다. 평생을 좌우하는 명함이나 다름없다. 그랑제콜 졸업생들이 행정부로 진출하는 경우 이들은 각각 출신 학교별로 특수한 관료집단을 형성한다. 각 특수 관료집단은 고유의 호봉체계와 승진규정을 갖고 요직을 독식한다. 이들은 정·재계와 연결되어 정치인이 되거나 장·차관이 되고, 혹은 대기업의 사장이 된다. 해당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특수 관료집단에 편입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사회갈등 유발? 프랑스인들 대부분은 그랑제콜 출신들은 평등한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남들보다 훌륭한 능력을 보였으며, 이들 선발된 인재가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최근 들어 많이 바뀌고 있다. 소수의 엘리트교육에만 치중하다 보니 대학 수준이 형편없이 떨어져 교육불균형을 초래한다는 비판과 함께 지나친 학연 중시와 파벌조성, 그리고 사회 저변과의 큰 괴리 등 문제점도 지적된다. 최근 들어서는 학력에 의한 ‘부의 세습’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그랑제콜 출신의 자녀들이 공부를 잘해서 다시 그랑제콜에 가고, 또 그 자손이 그랑제콜을 나오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트 시스템이 프랑스를 서유럽의 중심국가로 만들고, 눈부신 성장을 이루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한경쟁의 글로벌 시스템에서 조금씩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lotus@seoul.co.kr ■ 국립행정학교 ENA는 프랑스의 국립행정학교(ENA)는 정치행정 엘리트의 산실이다.2차대전 직후인 1945년 당시 드골 총리가 프랑스의 행정 인재를 발굴해 훈련시킨다는 취지로 만들었다. 국립정치학교(시앙스포)나 고등사범(ENS) 등 그랑제콜 출신 학생들이 다시 경쟁시험을 거쳐 들어간다. 일반직 공무원으로 일정기간 이상 근무한 사람, 유럽연합(EU) 회원국의 공무원, 일반 기업체의 관리들에게도 일정 비율 입학을 허용하고 있다. 외국인 공무원들을 위해 13개월간의 단기 연수과정도 마련돼 있다. 학생들은 27개월 동안의 집중 교육을 받는데 이 중 11개월은 지방 행정원에서,2개월은 기업에서 연수한다. 특이한 점은 교육기간 중 성적에 따라 발령부처가 달라진다는 것. 때문에 정·재계 진출의 기회가 많고 중요한 정책을 관장하는 부처에 배속돼 출세가도를 달리기 위해서는 시험합격 이후에도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NA는 지난 60년간 5585명을 배출했으며 이 중 4551명이 아직도 활동 중이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이 학교 출신이며 알랭 쥐페 전 총리, 도미니크 드 빌팽 현 총리 등 최근 10명의 총리 가운데 7명이 이 학교를 나왔다.2007년 대권에 도전하는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과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당수 부부는 드 빌팽 총리와 ENA 동기생들이다. 통상적으로 정부 각료의 35∼50%가 ENA 졸업생으로 채워지며 현재의 각료 31명 중에서도 8명이 ENA 출신이다. 유능한 행정관료를 배출한 것은 사실이지만 폐쇄적인 엘리트주의는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 된다. 지난봄의 정적 음해사건(클리어스트림스캔들)과 관련,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은 “ENA 출신의 폐쇄성은 정책의 불투명성을 증가시켰으며 밀실정치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 “절망의 산을 토막내 희망의 이정표 세우자”

    “절망의 산을 토막내 희망의 이정표 세우자”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절망의 산을 토막내 희망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습니다.”(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연설 중) “모든 이의 존엄과 인간됨이 존중받고 미국의 약속이 누구에게도 부인되지 않는 날이 오도록 우리는 계속 힘써야 합니다.”(조지 W 부시 대통령) “인간의 마음이 진짜 싸움터로 변할 때 시민 불복종은 자살폭탄보다 훨씬 큰 호소력을 갖습니다.”(빌 클린턴 전 대통령) 흉탄에 스러진 지 38년이 지나서야 평생을 민권운동에 헌신한 그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관의 첫 삽이 떠졌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의 기념관인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관 기공식이 워싱턴DC 한복판에 있는 내셔널몰에서 13일(현지시간) 성대히 열렸다고 CNN이 전했다. 주요 방송들은 이를 생중계했고 뉴욕, 휴스턴 등 주요 도시에선 추모 행사와 콘서트가 잇따랐다. 이날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는 쌀쌀한 날씨에도 5000여명이 “한 위대한 인간을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부시 대통령) 기념관 기공식을 지켜 보았다. 생전의 그와 함께 투쟁했던 앤드루 영·제시 잭슨 목사,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차기 대선 출마가 유력한 바락 오바마(민주·일리노이주) 상원의원 등이 눈에 띄었다. 암살 40주기인 2008년 봄 완공 예정인 기념관은 포토맥 강변의 링컨 기념관과 인공호수 건너편의 제퍼슨 기념관을 일직선으로 연결할 때 한 가운데인 호숫가에 들어선다. 유명한 워싱턴 기념비에서 남서쪽 방향이며 한국전쟁기념관 바로 뒤쪽이다. 이곳은 1963년 ‘직업과 자유를 위한 평화대행진’을 마친 킹 목사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 중 하나로 꼽히는 ‘나에겐’을 외쳤던 바로 그 장소다. 부시 대통령은 “알맞은 장소에 기념관이 들어서게 돼 미국의 약속을 선언한 이들, 이를 지키려 노력한 이들의 힘을 하나로 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96년 기념관 건립안에 서명했던 클린턴 전 대통령은 “그가 있음으로 해서 더 정의롭고 품위로워진 수많은 미국인들의 가슴과 마음에 기념관이 뿌리를 내릴 것”이라고 역설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총 공사비 1억달러(약 940억원) 가운데 6500만달러는 의료기기업체 토미 힐핑거, 제너럴 모터스 등 대기업과 수많은 개인들로부터 모금됐다. 영화제작자 조지 루카스, 전직 국무장관들인 콜린 파월·잭 발렌티 등도 참여했다고 영국 BBC는 소개했다. 필라델피아에 사는 캐롤린 잭슨은 18세때 사람들 틈에 끼어 ‘나에겐’ 연설을 들었다며 “킹 목사 때문에 내셔널몰에 발을 다시 들이게 될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감격했다. 그녀는 “시민권 투쟁에 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화제의 작가를 찾아서] 아라리오 전속작가 권오상

    [화제의 작가를 찾아서] 아라리오 전속작가 권오상

    “비판도 동조도, 뒤집기도 아닙니다. 단지 내가 발딛고 있는 곳을 제대로 보여주려고 할 뿐이죠.” 권오상(32)의 이 말은 한편으로는 의아하게, 다른 한편으로는 신선하게 다가왔다.‘보기’보다 ‘읽기’ 내지는 ‘해독하기’가 요구되는 요즘 미술에서 비판과 뒤집기가 없다면 무엇이 남을까 하고 의아스러우면서도 기계적으로 남발되는 듯한 패러디와 뒤집기에 대한 부정이 오히려 새로웠다. ●‘데오도란트´ ‘플랫´ 연작으로 부상 권오상은 대학시절부터 ‘데오도란트’란 사진조각 연작으로 미술계에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후 명품 브랜드의 화려한 이미지들을 차용한 ‘플랫’연작, 세계 초고가의 슈퍼카나 오토바이를 조각화한 ‘The Sculpture’ 연작 등 현대 자본주의의 고도 소비문화의 단면을 드러내는 작업을 시도해왔다.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 인근의 허름한 건물 2층에 자리잡은 그의 작업실엔 이같은 현대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이미지들로 가득했다. 각종 잡지에서 오린 사진 이미지들과 이를 바탕으로 이것저것 실험적으로 제작해보고 있는 조각 습작들. 홍익대 조소과 출신인 그가 이토록 사진에 매달리는 이유는 뭘까.“좋아하기 때문이죠. 고등학교(예고)때부터 조각을 전공하고, 성적도 제일 잘 나왔기 때문에 대학에서도 조각을 했지만, 실은 사진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진을 이용한 조각을 하게 됐고요.” 트레이드 마크인 ‘데오도란트’는 그가 직접 찍은 인물 사진을 오리거나 찢어붙여 만든 인물 조각이다. 전통적 조각 재료인 청동이나 돌 등 둔중한 재료 대신 종이를 씀으로써 경쾌하고 산뜻한 현대적 감성을 담는다. 하지만 완성된 인물은 완벽한 사진 이미지와 달리 갈라지고 왜곡되기 마련이다. 작가는 이같은 작품이 “완벽을 추구하고 가장하지만, 실은 불완전한 인간존재의 모습을 닮았다.”고 한다. ‘플랫’ 시리즈는 오랜 기간 그가 한 명품 잡지에서 오린 화장품이나 시계, 보석 사진들을 철사 등을 이용해 세워놓고 이를 다시 촬영해낸 작품이다. 오린 사진을 이용한 정물화인 셈. 결과적으로 사진이지만, 작가는 오히려 조각으로 보아달라고 한다. 진짜 명품들을 촬영한 것 같지만 실은 오려진 광고사진이라는 사실에서 소비문화에 대한 비꼬기가 읽혀지기도 하는데, 작가는 이런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단지 ‘현재의 드러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 ●내년 봄 中 베이징서 개인전 권오상은 공격적 작품 수집과 전시, 작가 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는 아라리오 갤러리의 전속작가다. 파격적인 지원으로 화제를 불러모았던 아라리오 전속작가 중 첫번째 주자로 지난 3월 1개월간 천안 아라리오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내년 봄엔 중국 베이징 아라리오에서 개인전을 가질 예정. 요즘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 데오도란트와 플랫 연작을 잠시 쉬면서 다양한 기법을 시도해보고 있다. 내년 베이징 전시를 시작으로 해외 진출을 본격화할 그가 어떤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프렌치 리포트] (4) ‘느림의 미학’에 멍드는 경제

    [함혜리 기자의 프렌치 리포트] (4) ‘느림의 미학’에 멍드는 경제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 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한다.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피에르 상소는 자신의 저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이런 파스칼의 말로 시작한다. 그는 느림을 삶의 활력이자,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한 방편으로 소개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야 했던 현대인들에게 상소가 제시한 느림의 철학은 얼마나 신선하게 다가왔던가. 그런데 프랑스 땅에서 프랑스인들과 부딪치며 살아보니 그 느림이란 것이 절대 그런 게 아니었다. 절대 서두르지 않는 그들의 느림보 근성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분통이 터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느림의 미학’을 예찬하는 그들의 나태함 때문에 프랑스는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시간은 돈이 아니다.” 우리는 ‘시간은 돈’이라고 들어왔다. 실제로 그렇다. 많은 기업들이 시간을 절약해 주는 사업으로 돈을 벌고 있다. 서비스업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내가 할 일을 남이 시간을 내서 대신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에게 시간은 돈이 아니다. 그들은 전혀 바쁘지 않다.“오늘 안 되면 내일 하면 되고, 이번 주에 안 되면 다음 주에 하면 되는데 무슨 걱정이냐?”는 식이다. 프랑스인들은 경쟁에 익숙하지 않다.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걱정할 게 별로 없다. 프랑스는 그동안 국가가 복지를 책임지고, 기업은 노동자를 평생 고용하는 사회경제모델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더구나 토지는 비옥하고, 조상들이 남겨놓은 풍부한 문화유산 덕분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돈이 들어온다. 좁은 땅덩어리에 부존자원은 거의 없고, 인구는 엄청나게 많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풍요를 누린다. 부족할 것 없는 나라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부럽다. 그런데 이 ‘여유’가 ‘느림’이 되어 돌아올 때 느끼는 불편함은 우리처럼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가 된다. 상점이나 식당에서도 바빠서 재촉하는 사람은 일부러 외면한다. 관공서의 공무부터 진료, 사소한 수리, 애프터서비스까지 무슨 일이든지 약속을 잡아야 한다. 심지어 약속을 잡기 위해 약속을 잡는 경우도 있다. 약속 날짜는 짧게는 1주일 뒤, 길게는 3개월 뒤로 잡히는 수도 있다. 빠른 서비스를 생명으로 하는 DHL도 프랑스 땅에만 오면 속도계가 고장난다. 한국에서 하루면 충분한 인터넷 개설이 프랑스에서는 3주 이상 걸린다. 정말 운이 없으면 느림 때문에 중요한 순간에 낭패를 본다. 지난 여름 명문대 시리즈 취재를 위해 독일 출장을 갔던 때의 일이다. 북역에서 TGV를 타고 쾰른까지 갔다가, 그곳에서 뒤셀도르프로 가서 저녁 7시에 인터뷰를 하고, 다시 밤기차를 타고 아헨으로 갈 계획이었다. 그 다음날은 아헨공대에서 방문과 인터뷰 약속이 줄줄이 잡혀 있었다. 그런데 택시를 잘못 탄 바람에 2분 늦게 역에 도착해서 기차를 놓쳤다. 길이 텅비어 있는데도 택시 기사가 시속 50㎞ 이상을 달리지 않았던 탓이다. 그날 나는 2분 때문에 10여만원을 주고 표를 새로 사야 했고, 다음 기차를 타기 위해 3시간을 역에서 기다렸으며,7시 인터뷰 약속을 취소해야 했다. ●프랑스병(病)은 깊어가는데 느리지만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측면도 있다. 프랑스인들은 졸속이라는 것을 모른다. 길을 닦을 때나, 건물을 지을 때도 수백년 뒤를 바라본다. 이런 점은 우리가 분명히 배워야 할 대목이다. 하지만 사회 전체가 느리게 돌아가는 것은 큰 문제다. 속도가 경쟁력인 정보화 시대엔 더욱 그렇다. 글로벌화된 경쟁체제 아래에서 프랑스는 경쟁력을 잃고 있다. 사회당 정부는 1990년대 말 실업대책의 하나로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던 35시간 근무제가 급여삭감없이 적용되면서 프랑스인들의 연간 총 근무시간은 1568시간으로 줄었다. 유럽 평균 1697시간에 비해 129시간이 적은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5주간의 유급 정기휴가를 갖는데, 주 35시간이 된 이후엔 실질적으로 평균 3주일이 더 늘었다. 열심히 일한 뒤에 재충전을 위해 휴식을 취하는 게 아니라, 쉬다가 가끔 일하러 나가는 셈이 된다. 쉬다보면 자꾸 쉬고 싶어지는 법. 경쟁에 익숙하지 않고 여유를 즐기는 프랑스인들에게 35시간 근무제는 근로의욕만 상실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한 기업인은 “프랑스병의 가장 심각한 증상은 일하기 싫어하는 풍조이며, 주 35시간 근무제 도입 후 증세가 더 깊어졌다.”고 개탄했다. 프랑스는 근무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짧은데다 노동시장은 어느 나라보다 경직돼 있다. 고용주가 정당한 이유로 해고해도 노동자가 소송을 하면 75%는 승소할 정도로 법이 노동자 편이다.“근로자 한 명을 해고하는 것이 이혼하는 것보다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 노동시장이 이렇게 경직되다 보니 프랑스 회사에서는 정규직 근로자 뽑기를 꺼린다. 높은 실업률이 여간해서 해소되지 않는 이유다. 위기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에서 지난 봄 큰 문제가 됐던 최초고용계약제(CPE)는 이런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해 보자는 의도에서 시도된 것이었다. 하지만 학생들과 노조의 반대로 도입은 무산됐다. 프랑스는 최근 주 35시간 근무제를 사실상 폐지하고 노동시간을 최대 49시간까지 노사가 조정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했다. 이 역시 노동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lotus@seoul.co.kr ■ 프랑스 경제의 현주소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프랑스의 국제적 위상은 여전히 화려하다.2005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2조 1250억달러로 미국, 일본, 독일, 영국에 이어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다. 독일 영국과 함께 세계 최대의 단일시장인 유럽연합(EU)을 이끌어가는 중심국가이기도 하다. 해외 직접투자에서도 프랑스는 해외투자비율(개별 국가투자/세계총투자) 13.5%로 미국(16.1%) 다음으로 많다. 교역규모는 2005년 기준 9555억달러로 세계 5위의 교역국이다. 기계, 운송장비, 농산품, 소비재 등이 중심이 된 수출 규모는 4592억달러로 세계 5위, 수입은 4958억달러로 세계 6위다. 세계 100대 기업 중 토탈, 카르푸, 비방디, 푸조시트로앵, 국영전기공사, 르노, 생고뱅 등 10개가 프랑스 기업이다. 이같은 화려한 외형에도 불구하고 고유가와 기록적인 무역적자,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경기가 수년째 침체 국면을 못 벗어나고 있다. 특히 복지와 분배에 우선을 둔 경제정책에 따른 과도한 국가재정 부담은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한다.GDP 중 국가채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 현재 54%나 된다. 프랑스는 재정적자를 GDP대비 3% 범위에서 운영해야 하는 EU의 안정·성장협약을 3년 연속 위반했다. 재정부담이 큰 사회보장제도의 개혁과 함께 예산동결, 공무원수 감축, 주요 기업의 정부보유 지분 매각 등 재정적자 축소정책을 추진하고 공기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으나 저항이 만만치 않다. 다행히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호전된 덕분에 2005년을 고비로 차츰 회복되는 분위기다.2005년 1.4%에 그쳤던 경제성장률은 2006년 상반기 1.9%를 기록했고 민간소비 및 설비투자 회복 등 실물경제의 완만한 회복세 속에 올해 성장 목표치 2∼2.5%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 2005년 초 10%를 초과했던 실업률도 경제상황이 개선되면서 올해 7월에는 8.9%로 낮아졌다.
  • [대기자칼럼] 일본 문화재 ‘신비’ 마케팅/ 신연숙 문화담당 대기자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전 개관 1주년을 맞았지만 시민들은 물론 외국인들의 마음을 끌어당기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박물관 측은 하루 평균 관람객 8923명이 2004년의 5235명보다는 훨씬 많다고 자위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사이 ‘주5일제 실시’라는 커다란 변수를 감안한다면 그리 자랑할 일도 아니다. 늘어난 휴일과 현장학습 강화로 가만히 앉아 끌어들인 관람객이 상당할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 전통문화 보존·공개방식 부러워 이에 반해 지난주 일본 간사이 지방에서 목격한 일본인들의 철저한 전통문화 보존과 공개방식은 첫눈에도 매우 부럽고 효과가 있다고 느껴졌다. 이를테면 교토의 기온거리는 광대한 지역에 전통 목조가옥들이 완벽하게 보존돼 금세라도 어느 길모퉁이에서 게이샤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생동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유서깊은 한옥들이 하룻밤새 철거되어 공사판으로 돌변하는 서울 북촌과는 대조적이다. 방문하는 문화유적 어디든지 관람객들이 문화재를 떠받들고 경의를 표하는 것 또한 예사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피상적인 관찰일 수도 있지만, 많은 곳에서 공통적으로 문화재를 신비화해 관람객들의 흥미를 끌고, 여운을 더해주는 전략을 치밀하게 구사한 결과인 듯 느껴졌다. # 쇼토쿠 태자상 관람 인파 먼저 고구려 담징의 금당벽화와 백제 관음상으로 국내에도 유명한 나라의 호류지 절.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한 이곳은 마침 유메도노(夢殿) 안에 봉안된 쇼토쿠 태자상을 공개하고 있었다. 이것은 불심이 깊은 쇼토쿠태자가 구세관음으로 환생한 것을 녹나무에 조각한 목조불상이다. 백제가 전해줬다는 설도 있는데 비불(秘佛)이라 하여 평소에는 공개하지 않고 1년에 두 번, 봄 가을에 보름씩만 공개한다. 우연히 방문시기가 맞아떨어져 불상을 접할 수 있었지만 일본인들은 전국 각지에서 이 기간을 기다려 인파를 이룬다고 했다. # 교토 다실에 신비로움 더해 다음으로 교토에 있는 다도(茶道)의 종가 우라센케 곤니치안.350년 된 목조건물과 아담한 정원, 소박한 다실 등이 종종 외부에 공개되지만 창시자 센리큐의 실물대형 목조상만은 신비에 묻어둔다. 여러 다실을 관람하다 건물 가장 뒤쪽 부분에 이르니 안내자가 미닫이문 안쪽을 가리키며 “센리큐의 목조상을 모신 이곳은 청소를 하는 사람 외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도는 일종의 정신수양 방법으로 발전했는데, 이곳에서는 고요함에 신비로움까지 더하니 여운이 더욱 길게 느껴졌다. 이어서 나라국립박물관의 제58회 정창원전. 정창원은 원래 도다이지 절에 달린 창고였지만 756년 일본 쇼무 ‘천황’이 죽자 ‘황후’가 남편의 유물 600점을 부처에게 바침으로써, 그때부터 나라의 보물창고의 역할을 하게 된 곳이다. 일본은 물론, 신라, 당, 실크로드를 거쳐 온 페르시아 유물까지 수만점이 완벽하게 보존돼 고대의 생활상을 전해준다. 나라국립박물관은 1년에 ‘딱 한 번’ 유물점검 기간을 이용해 4주간의 전시회를 연다. 공개되는 유물은 다시 보려면 최소한 10년은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일반인은 물론 전문·아마추어 연구자들까지 일제히 이곳으로 몰려들게 된다는 것이다. 기자는 1시간 동안 줄을 선 끝에 입장할 수 있었으나 요미우리 신문이 발행한 정창원전 특별호 등 유인물이 많아 지루함을 덜 수 있었던 것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 우리 박물관에 관람객 이어졌으면 지난주는 ‘문화의날’이 낀 일본의 연휴였다. 문화재 전시에도 이젠 마케팅이 필요하다.‘신비마케팅’‘연휴마케팅’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 우리도 어느 연휴, 지방에 있는 국립박물관이 인파에 묻히는 시절이 왔으면 좋겠다. 신연숙 문화담당 대기자 yshin@seoul.co.kr
  • [09일 TV 하이라이트]

    ●글로벌 코리안(YTN 오전10시35분) 10년 동안 5배나 커진 뉴욕 부근 한인동포 경제권을 들여다봤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와 은행업계에 따르면 동포은행은 10년새 3∼7배까지 성장했다. 맨해튼·뉴저지 지역의 고급 콘도회사들은 한인들에 대한 마케팅에 열 올리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한인시장에 뛰어 든 것이다.   ●사랑의 공부방(EBS 오후8시) 이번 주 꿈 주인공은 목포 성덕지역아동센터 김경아양. 간경화로 고생하는 아버지를 위해 김양은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다. 김양을 도와줄 사람은 최고의 가창력을 자랑하는 가수 진주. 진주의 가르침을 받은 경아는 다시 한번 자신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연인(SBS 오후 9시55분) 미주는 강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당황한다. 유진은 마음 없이 몸만 오지 말라고 화를 내지만 강재는 일축한다. 윤목사는 고아원에 압류딱지가 붙자 난감해 한다. 강재에게 왜 땅을 사지 않느냐며 따지는 미주는 강재가 괴한의 칼을 맞고 쓰러지자 당황한다. 상택은 의사인 미주에게 응급치료를 요청한다.   ●거침없이 하이킥(MBC 오후8시20분) 해미에게 치이고, 순재에게 무시당해 서러운 문희는 그나마 개성댁 덕에 산다. 개성댁하고 남편·며느리 흉을 보면 십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 듯 시원해서다. 그러던 어느날, 몸매·마음씨 어느 하나 빠질 것 없는 퀸카 유미가 등장한다. 삭막한 민호의 인생에도 봄이 오는가.   ●해피투게더 프렌즈(KBS2 오후11시5분) 개그맨에 이어 MC로 활동하고 있는 이휘재와 그룹 ‘신화’의 전진이 출연한다. 이휘재는 ‘이바람’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어릴 적부터 뛰어난 ‘작업능력’을 보였다는 친구들의 폭로에 당황한다. 남자다움의 대명사 전진은 의외로 어릴 적에는 소심대마왕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열아홉 순정(KBS1 오후8시25분) 국화는 헤어지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명혜에게 매달린다. 프레젠테이션을 성공적으로 마친 윤후는 제주도에서 열리는 ‘텔레콤 아시아 2006 대회’ 티켓을 거머쥐게 된다. 국화는 윤후가 하는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이 창피하다며 미안하다고 말한다.
  • 儒林(727)-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8)

    儒林(727)-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8)

    제6부 理氣互發說 제3장 君子有終(8) 퇴계가 얼마나 서적을 사랑하고 독서하는 즐거움을 맛보았던가는 61세 때 도산정사에서 읊은 ‘산당야기(山堂夜起)’란 시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산은 텅 비고 온 집이 고요하고 밤이 차갑더니 서리 기운 높으니라.(山空一室靜 夜寒霜氣高) 외로운 베개 위에 잠 못 이루니 일어나 정좌하고 옷깃을 바루노라.(孤枕不能寐 起坐整襟袍) 늙은 눈 부벼 뜨고 가는 글자 보려 하니 짧은 등경 촛불 켜고 여러 차례 돋우네.(老眼看細字 短煩屢挑) 글이라 그 가운데에 참된 맛 심어 있어 살찌고 배부름이 고기보다 낫더구나.(書中有眞味 沃勝珍)” 살찌고 배부르니 고기보다 더 나았던 글. 그 가운데 참된 맛이 심어 있던 서적. 마침내 퇴계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서적들을 애 제자 이덕홍이 맡아 주도록 당부하였던 것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선생님. 제가 잘 보관하겠습니다.” 침통한 얼굴로 이덕홍이 말을 하자 퇴계는 손을 들어 벽 한 구석을 가리켰다. 뭔가 말을 하려 하였으나 기진하여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이덕홍은 스승이 가리킨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지팡이가 놓여 있었다. 청려장(靑藜杖). 퇴계가 평소에 사용하던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 평소 산책을 즐겨하였던 퇴계는 책을 읽다 지치면 청려장을 끌고 서당의 이곳저곳을 소요하였던 것이다. 지금도 유물각에 남아 전시되고 있던 지팡이는 명아주 풀의 줄기들을 잘라낸 옹이가 울퉁불퉁하게 매듭지어져 있어 품격을 더하고 손에 들어도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볍고 단단한 지팡이였다. 순간 이덕홍은 스승의 심중을 헤아릴 수 있었다. 이제 다시는 일어서서 지팡이를 짚고 산책할 수 없는 퇴계로서는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그 지팡이를 만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스승의 심사를 알아챈 이덕홍은 청려장을 끌어다가 퇴계의 손에 쥐어 주었다.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올까 싶게도 퇴계의 손이 지팡이를 힘껏 감아쥐었다. “빨리 쾌차하십시오, 선생님.”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덕홍이 말하였다. “청려장을 드시고 절우사 뜰에서 백설처럼 피어난 봄 매화꽃을 보시옵소서.” 순간 퇴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형언할 수 없는 깡마르고 수척한 얼굴이었지만 그 얼굴에 황홀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실제로 찬란한 봄이 찾아와서 절우사(節友社) 뜨락 앞에 백설처럼 피어난 매화꽃을 바라보는 듯한 환희의 얼굴이었다. 꿈이라도 꾸고 계시는 것일까, 하고 이덕홍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퇴계의 손에서 지팡이가 스르르 굴러 떨어졌다. 이덕홍은 지팡이를 다시 벽 구석에 세워 놓으며 뒷걸음으로 완락재를 물러나왔다. 방 앞에는 많은 제자들이 이덕홍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던가. 병세는 좀 어떠하신가.” 그 순간 이덕홍은 이를 악물고 숨죽여 울기 시작하였다.
  • “역경은 없다” 휠체어 회장님

    “역경은 없다” 휠체어 회장님

    지난달 31일 전북 완주군의 건축자재회사 ㈜대우기업 생산공장. 시계가 정확히 오후 5시를 가리키자 휠체어를 탄 중년 신사가 공장을 이곳저곳 살핀다. 유명한 ‘시계 회장님’의 순찰시간이다. 직원들이 바짝 긴장한다. 대우기업 김달수(54) 회장이다. 불의의 사고로 얻은 장애를 딛고 직원 120명과 함께 연간 12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가다. 그는 전신마비 1급 장애인이다. 가슴 아래론 감각이 없다. 물을 끼얹어도 차가운지를 모르고 꼬집어도 아픈지를 모른다. 어깨와 팔만으로 겨우 휠체어를 움직일 정도다. 심장과 폐 근육이 약해 오래 얘기하면 턱 아래까지 숨이 찬다. 세상이 규정한 그의 한계다. “작은 회사도 아닌데 불편이 많으시겠다.”고 하자 “사람이 몸으로 사나요. 머리와 의지로 사는 거죠.”라는 답이 돌아온다. 찰나였다.1987년 7월12일 오후 6시. 오토바이를 타고 전남 여수의 아파트 현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도로가 푹 꺼져 있는 것을 보고 급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뒤따라오던 차가 몸을 덮쳤다. 하늘로 붕 떴다가 떨어진 몸은 병원에서 깨어난 후에도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목뼈 4∼5번 사이가 어긋나면서 신경을 건드렸다. 하얀 침대 시트 위로 배설물이 쏟아져 나오자 간호사가 치우는데 태어나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직원 6명이 전부였지만 탄탄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회사(도장업체)도 흔들렸다. 업계에선 “사업가 김달수는 죽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럴수록 더 이를 악물었다. 휠체어 타는 연습부터 하며 근력을 키웠다. 이듬해 봄 현장에 돌아왔다. 오전 7시부터 모든 공사현장을 돌아보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공사수주를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을 오갔고 매일매일 자정이 퇴근시간이었다. 주문업체와 현장 직원들까지 만족한 페인트칠도 자기 눈에 허술함이 보이면 수천만원을 들여서 벗겨내고 다시 칠했다. 입소문이 돌며 곳곳에서 주문이 쏟아졌다. 결국 95년 대지 9700평, 건물 3000평인 가구공장을 인수했고 이후 다각도로 사업을 확장해갔다. 매일 오전 10시와 11시30분, 오후 5시가 되면 1분의 오차도 없이 공장을 돌아보는 그를 직원들은 ‘시계 회장님’이라고 부른다. 김씨는 2일 한국교통장애인협회가 개최하는 2006 장애극복재활증진대회에서 ‘장애인재활상’을 받는다. 하지만 스스로는 한 번도 장애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장애인 등록도 사고 후 16년이 지나서야 했을 정도다.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격리되려고 하는 일부 장애인들을 그래서 이해하기 힘들다. 장애인을 돕기 위해 서른명 정도에게 공장일을 주겠다고 했지만 단 한 명을 빼곤 모두 고개를 저었다.“사고가 부족한 정신지체 장애도 아니고 신체 일부가 불편한 건 장애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몸은 생각을 움직여주는 도구일 뿐이지요. 모자란 장애인 복지시스템만 탓하기 이전에 스스로 일어서려는 노력이 먼저 아닐까요.” 그의 곁에는 20년간 대소변 수발부터 운전까지 ‘분신’처럼 함께해준 아내 박정옥(47)씨가 있었다. 글 완주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누가 만들었나”… ‘제작진 브랜드’ 시대

    “누가 만들었나”… ‘제작진 브랜드’ 시대

    요즘 TV 드라마에 눈에 띄는 트렌드가 있다. 톱스타의 출연 여부에 못지않게 ‘제작진 브랜드’가 중시되고 있으며, 국내보다는 해외시장을 겨냥한 제작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경향은 방송사가 아닌 외주제작사들이 드라마의 흥행 경쟁을 벌이면서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배우보다 제작진 더 눈길 지난달 27일 서울 목동 SBS 홀에서 열린 드라마 ‘연인’ 제작발표회. 주인공들인 이서진·김정은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연인’ 제작사인 케이드림의 신우철 감독과 김은숙 작가였다. 이들 콤비는 화제의 드라마 ‘파리의 연인’‘프라하의 연인’에 이어 연인 시리즈 3탄을 오랜만에 들고 나왔다. 케이드림 김동경 대표는 “신우철·김은숙 콤비가 다시 손잡은 만큼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 멜로드라마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3일부터 방송되는 KBS 월화드라마 ‘눈의 여왕’은 현빈·성유리 주연 못지않게 ‘겨울연가’‘가을동화’ 등 계절시리즈로 유명한 윤석호 감독의 윤스칼라가 제작, 관심이 쏠린다.KBS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이형민 감독이 윤스칼라로 옮긴 뒤 만드는 첫 작품이라서 ‘…사랑한다’와 계절시리즈가 어떻게 접목될 것인지 주목된다. MBC 주말드라마 ‘환상의 커플’에서 환상의 커플은 주연 한예슬·오지호가 아닌, 톡톡 튀는 감각의 홍정은·홍미란 자매 작가일 듯 싶다. 이들 자매는 ‘쾌걸춘향’‘마이걸’에 이어 독특한 캐릭터와 상황 설정으로 시청률 상승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또 MBC 수목드라마 ‘여우야 뭐하니’도 주인공 고현정·천정명과 함께 ‘내 이름은 김삼순’의 김도우 작가의 수위를 넘나드는 대본이 흥행 요인으로 분석된다. 에릭·한지민의 재기작인 SBS 수목드라마 ‘무적의 낙하산요원’도 ‘달콤한 스파이’‘신입사원’ 등을 쓴 LK제작단의 막강 콤비인 이선미·김기호 작가의 작품이다. 이와 함께 히트작 제조기 김정수 작가의 MBC ‘누나’, 눈물샘 자극의 1인자인 문영남 작가의 KBS ‘소문난 칠공주’, 곽영범 감독·김수현 작가 콤비의 SBS ‘사랑과 야망’ 등도 저마다 제작진 브랜드를 내세워 주말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방송계 관계자는 “미니시리즈에서는 특히 배우보다는 감독이, 감독보다는 작가 파워가 더 세다는 말이 있다.”면서 “감독·작가 브랜드에 걸맞은 작품들이 계속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로 나가야 산다” 드라마가 한류의 최전방에 서있는 만큼, 기획단계부터 해외시장을 겨냥하는 작품들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 히트한 뒤 해외로 눈돌리면 이미 늦다는 분석이 작용한 것이다. 아예 해외 로케이션 중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먼저 제작발표회를 갖는 경우도 있다.20일 첫 전파를 타는 SBS 월화드라마 ‘눈꽃’은 지난달 16일 일본 미야자키에서 이종수 감독과 김희애·이재룡·김기범·고아라 등 출연진이 참석한 가운데 제작발표회를 열었다. 제작사 삼화프로덕션의 신현택 대표는 “한·일 드라마 교류를 위해 ‘눈꽃’이 내년 봄쯤 일본에 방영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9월부터 중국 하이난다오에서 촬영한 SBS ‘연인’도 하이난다오 현지에서 아시아 6개국 매체를 상대로 제작발표회를 갖고, 한류 열풍을 확인했다. 이와 함께 18일 첫 방송되는 SBS 주말드라마 ‘게임의 여왕’과 KBS ‘눈의 여왕’도 뉴질랜드 등지에서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하는 등 해외시장을 공략한다. 방송계 관계자는 “해외 진출을 위해 외주사들이 글로벌 홍보대행사와 함께 일하거나 제작 스케일을 키우기 위해 외부 펀드를 끌어들이는 추세”라면서 “방송사와 외주사가 나누는 판권도 기존 7대 3에서 6대 4,5대 5까지 조정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美 기준금리 5.25% 또 동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25일(현지시간) 기준금리인 연방기금 금리를 5.25%로 다시 동결했다. FRB는 이날 금리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어 연방 기금 금리를 이처럼 동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FOMC는 2004년 이후 지난 6월까지 17차례에 걸쳐 연방기금 금리를 잇달아 올렸으나 지난 8월 이후 이번까지 세차례 회의에서 거듭 동결 조치를 취했다. FOMC는 성명에서 미국 경제의 성장세가 부동산시장 냉각 등의 영향으로 올 들어 둔화되긴 했지만 향후 적절한 수준의 팽창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핵심물가 상승 압력이 가중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너지가격 오름세가 꺾이고 잇따른 금리인상 정책이 효과를 나타내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압박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했다. 한편 미국의 부동산경기 침체가 두드러진 가운데 지난 9월 중 집값이 사상 최대 폭의 하락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미 부동산중개사협회(NAR)는 9월 중 매매된 미국 내 기존 단독주택의 중간 가격은 21만 9800달러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5% 하락했다고 25일 밝혔다. 이 같은 단독주택 가격 하락 폭은 지난 1969년 이후 거의 40여 만에 가장 큰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9월 중 기존주택 판매건수도 1.9% 줄어들어 드는 등 6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부동산 경기 부진이 앞으로도 수개월간 더 지속될 가능성이 커 내년 봄까지는 집값이 반등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함혜리기자 lotus@seoul.co.kr
  • 공사강행 방침에 유가족 ‘오열’

    9·11 테러 현장에서 재건 공사를 벌이던 중 새로운 유해가 속속 발견돼 논란이 일고 있다. 희생자들의 유해를 전면 재발굴해야 한다는 유족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23일(현지시간)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끝나지 않은 ‘9·11 악몽’ 세계무역센터(WTC)가 무너진 뉴욕 맨해튼의 ‘그라운드 제로’에서 유해가 발견된 것은 지난 19일. 인근의 한 맨홀에서 80여점의 뼛조각과 인체 파편이 나온 데 이어 시 항만당국이 며칠 동안 추가로 주변 맨홀과 지하 파이프 등을 수색한 결과 18점을 새로 수거했다. 팔과 다리 뼈처럼 일부는 제법 컸다. 블룸버그 시장은 그러나 “수색은 충분했으며 우리는 이제 미래를 위해 ‘건설해야’ 한다.”며 공사 중단 불가의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몇몇 장소가 제대로 수색되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면서도 “당시 수색 범위를 감안하면 일부 누락은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다. 시장의 발표 직후 굴착기가 다시 움직이자 현장에 모여든 유족들은 좌절감을 토로하며 시장 면담을 요구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9·11 희생자는 2749명이지만 아직도 아무런 유해도 나오지 않은 사람이 1150명이나 된다. 이들의 유가족은 뼈 한 조각 없이 장례를 치러야 했다. 쌍둥이 빌딩 95층에서 당시 26세의 아들을 잃고 최근 일부 유해를 찾은 다이앤 호닝은 “유해에도 소유권이 있다.”면서 “그들은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했다.●“5년 전 수색작업 너무 서둘렀다” 처음부터 유해 발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2001년 현장을 지휘했던 전직 경찰 존 매카들은 AP통신에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서 “시가 너무 서두른다고 몇몇 관리들이 경고했지만 묵살됐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당시 수색작업은 오직 얼마나 빨리 이뤄지느냐에 매몰돼 있었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뉴욕시 건설국은 150만t 분량의 잔해를 정해진 예산과 시간 안에 처리해 칭찬받았다. 하지만 에드 스카일러 부시장은 소방당국이 작업을 이끌었고 건설국은 협조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소방국 대변인은 이날 “소방국 직원들이 건설국에 저항했었다는 보도는 과장된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AP가 입수한 메모는 ‘건설국이 2002년 봄에 소방국의 반대로 발굴 종료가 늦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뉴욕시는 맨홀과 상하수도, 송전선 등 수색이 미진했던 지하공간 12개 지점을 재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면 재발굴은 그 자체 비용과 재건 공사의 지연에 따른 손실이 너무 크다는 입장이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울긋불긋 단풍 왜 생길까

    울긋불긋 곱게 물든 단풍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계절이다. 가을 산에 오르면 물감을 뒤집어쓴 듯 빨갛고 노란색 나뭇잎들이 투명한 가을 햇살에 반짝여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가을이 되면 푸르던 산은 왜 알록달록한 옷으로 갈아입고 잎사귀를 떨구는 것일까. 나무는 어떻게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가 있을까. ●기온 낮아지면 식물도 월동 준비 단풍이란 나뭇잎이 평소와 다른 색깔을 띠는 것을 말한다. 나뭇잎은 보통 엽록소를 지녀 녹색을 띤다. 엽록소가 태양 광선을 받아 녹색 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엽록소가 없어진다면 잎은 붉은색, 노란색 등 다른 색깔로 바뀌면서 단풍이 되는 것이다. 단풍의 색깔은 잎 속에 다양한 색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을철이 돼 기온이 낮아지면 나무도 ‘월동’ 준비를 한다. 나뭇잎과 가지 사이에 ‘떨켜(분리층)’를 만들어 나뭇잎을 떨어뜨리려 한다. 엽록소와 단백질 등을 이듬해에 쓰기 위해 줄기나 뿌리 쪽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이다. 때문에 떨켜가 만들어지면 나뭇잎은 뿌리에서 충분한 물과 영양을 공급받지 못한다. 또한 잎에서는 계속 광합성 작용이 일어나지만 엽록소가 줄기 등으로 이동, 잎의 엽록소는 점차 줄게 된다. 반면 잎속에 숨어있던 노란색이나 주황색 색소인 크산토필과 카로틴이 드러나면서 노란색이나 주황색으로 잎이 옷을 갈아입는다. 붉은색의 단풍은 안토시아닌 계통의 색소 때문이다.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영양분은 기온이 떨어지면 줄기 등으로의 이동이 느려진다. 이 영양분은 잎에서 점차 붉은색의 안토시안 색소로 변한다. 안토시안 색소는 일교차가 큰 가을철일수록 잘 만들어진다. ●낙엽은 봄을 준비하는 과정 떨켜는 단순히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잎이 떨어진 자리를 메워 수분이 증발하거나 미생물이 침입하는 것을 막아준다. 식물이 광합성으로 새로운 잎을 만들려면 태양 광선 이외에도 질소, 수소, 탄소 등의 영양분이 필요하다. 이 가운데 탄소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에서, 수소는 뿌리가 빨아들이는 물에서 구한다. 하지만 질소와 다른 영양분은 구하기가 힘들어 줄기 등에 쌓아뒀다가 이듬해 봄에 다시 사용한다. 결국 질소와 영양분들이 나뭇잎으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나무는 일부러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게다가 칼슘이나 규소 등 불필요한 영양분을 잎에 저장했다가 낙엽으로 배출하는 역할도 한다. 은행나무나 단풍나무는 늦가을에 떨켜를 만들어 잎을 떨어뜨린다. 반면 떡갈나무나 밤나무 등은 떨켜를 만들지 않는다. 이들 나무는 원산지가 열대지방 등 더운 지역이기 때문에 떨켜를 만들어 영양분을 축적하는 시스템이 없다. 그래서 이들 나무는 한겨울에도 누렇게 변한 잎을 줄기에 매달고 봄을 기다린다. ●식물은 어떻게 계절을 알까 토종 식물들은 계절 변화에 맞춰 꽃을 피우고 단풍을 만들며 낙엽을 지게 한다. 하지만 계절에 상관 없이 늘 푸르른 열대지방의 식물들은 추운 곳에 두면 이내 죽고 만다. 식물은 기온의 변화보다 밤과 낮의 길이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다. 잎은 광합성을 하기 때문에 태양 광선이 존재하는 낮과 그렇지 않은 밤의 길이를 잴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낮과 밤의 길이가 1년을 주기로 일정하게 변화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남홍길·유종상 박사 연구팀은 “홍채나 조리개처럼 식물에서도 흡수된 빛의 양을 필요에 맞게 적절히 조절하는 고도로 정교한 생화학적 조절 메커니즘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식물내에는 빛의 정보를 조절하는 유전자 ‘PAPP5’가 있는데, 이 유전자가 빛의 양이나 밝기를 관리해 세포 활동이 최적의 상태로 유지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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