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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북이’ 1대보컬 수빈, 솔로가수 전격데뷔

    ‘거북이’ 1대보컬 수빈, 솔로가수 전격데뷔

    故 임성훈(터틀맨·38)의 사망으로 해체됐던 혼성그룹 ‘거북이’의 1대 여성 보컬 수빈이 솔로 가수로 전격 데뷔한다. 수빈의 소속사 측은 “거북이의 1대 보컬이었던 수빈이 7일 새 음원을 발표하고 타이틀 곡 ‘사랑은 봄처럼’으로 활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수빈은 2001년 거북이가 처음 결성 돼 ‘사계’로 인기몰이를 하던 당시의 메인 보컬. 수빈은 학업 문제로 인해 그룹에서 탈퇴를 선언했고 이후 빈자리에는 2대 보컬 금비가 투입 돼 활동했다. 수빈의 소속사 측은 “수빈은 ‘사계’ 활동 후 가요계를 떠나 학업에 열중하기로 마음을 먹어 가수 활동을 그만 두게 됐다.”고 설명하며 “이후 수빈의 결정에 따른 팬들의 아쉬움이 컸고 다시 솔로 가수로 복귀를 결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거북이 때와는 완전히 다른 창법과 실력으로 솔로 가수로 거듭난 수빈은 현재 많은 연습으로 자신만의 음악색을 찾았다.”며 “이번 앨범은 수빈의 장점을 가장 잘 부각할 수 있는 앨범을 만드는데 주력했다.”고 자신했다. 타이틀곡 ‘사랑은 봄처럼’은 24인조의 스트링과 실력파 세션들이 완성한 따뜻한 러브송. 씨야의 ‘사랑의 인사’, 에반의 ‘남자도 어쩔수없다’를 작사한 이지은과 김경호, 타이푼 등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필승이 프로듀싱을 맡았다. 수빈의 솔로 활동이 故 임성훈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끝내 지난해 9월 해체 소식을 전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그룹 ‘거북이’의 명예를 회복해 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사진 제공 = Garment 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고통이란 결국 소통하지 못할 때 생기죠”

    “고통이란 결국 소통하지 못할 때 생기죠”

    “기분이 묘하네요. 이상(李箱) 덕분에 문학에 들어섰고, 이상에 관한 소설을 써서 상을 받았는데, 이번에 이상의 이름이 걸린 상까지 받게 됐습니다. 진짜 감개가 무량합니다. 저에 대한 불안감을 떨치고, 당분간은 ‘나’라는 매개체를 믿고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33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소설가 김연수(39)씨는 새해가 열리자마자 전해들은 수상 소식에 ‘어리둥절함’이라는 표현을 수차례 쓰면서 얼떨떨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김씨의 대상 수상작은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 불면증을 겪고 있는 주인공이 서로 다른 유형의 고통을 겪는 인물들을 만나면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근원적인 고통에 천착한 작품이다.  6일 서울 태평로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씨는 “지난해 여름 자주 거리를 산책할 일이 있었고 이때 고통이 어디에서 오는지, 고통의 의미가 무엇인지 많은 생각을 했다.”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할 때 고통이 생긴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산책하는 기분’으로 나간 지난해 촛불집회에서의 느낌이 작품 속에 스며들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1993년 ‘작가세계’에서 시 부문으로 등단한 그는 1994년 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작가세계 문학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꾿빠이, 이상’,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달로 간 코미디언’ 등으로 각각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을 잇달아 수상했다. 이번에 이상문학상까지 받음으로써 굵직한 문학상은 대부분 휩쓴 셈이다.   그는 “큰 상은 그만큼 큰 칭찬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바깥에서 내 안으로 들어와 차곡차곡 쌓아뒀던 것이 ‘나’를 거쳐 어떻게 작품으로 풀려나올지 늘 불안하기만 했는데 앞으로 얼마간은 ‘나’를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이상문학상 선고(選稿)위원인 권영민 문학사상 주간은 “늘 새로운 서사 기법을 사용해 왔던 김연수는 이 작품에서도 다른 텍스트에서 자기 텍스트로 이야기를 끌어오는 ‘상호 텍스트적인 방식’과 함께 앞서 언급한 모티프를 다시 되받아오는 ‘거울기법’ 등 고도의 서사 전략을 사용했다.”면서 “소설의 미적 자율성에 대한 작가의 신념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씨는 올해 봄부터 ‘창작과 비평’에서 소설을 연재하기에 앞서 두 달에 걸쳐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다녀왔다. 가을쯤에는 장편소설도 내놓을 계획이다. ‘젊은 이야기꾼’이 쏟아내는 창작 활동에 거침이 없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책 너머 세상/신지영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책 너머 세상/신지영

    “너,이게 뭐니?” 엄마가 승민이에게 공책을 내밀며 물었다. “뭐긴 뭐야? 독후감 공책이지.” “그걸 누가 몰라서 물어? 내용을 왜 이렇게 썼느냐는 말이야.” 엄마가 짜증스레 공책 한쪽을 펼쳐 보였다. 플란다스의 개를 읽고……. 되게 슬펐다.무지 슬프다.내가 읽은 책 중에 1등으로 슬프다. “그렇게 독후감 쓰는 법을 알려 줬는데,다 귓등으로 들었니? 슬프다,슬프다 하면 읽는 사람 마음에 와 닿아? 뭐가 슬픈지 써야 할 것 아니야.” “그걸 꼭 써야 돼?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다 느낄 텐데,그냥 마음속에 담아두면 안 되는 거냐구.” “어디서 주워들은 말은 많아서,이제 겨우 사학년인 녀석이 요리조리 빠져나갈 궁리만 하니……,네 미래가 걱정이다,엄마는.” “걱정 마,엄마.난 괜찮을 거야.”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얼른 다시 안 써? 다시 쓸 때까지 컴퓨터 금지야.” 승민이는 터덜터덜 책상 앞에 가 앉았다. 며칠 전,엄마는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다. “책을 많이 읽으면 아는 게 많아져서 공부도 잘하게 되지.앞으로 엄마가 책 빌려다 놓을 테니까 일주일에 세 권씩 꼬박꼬박 읽어야 해.” 엄마는 승민이에게 독후감 공책을 사다 주었다.책을 읽을 때마다 독후감을 써서 검사 맡으라고 했다.엄마는 인터넷을 통해서 ‘독후감 쓰는 법’을 알아냈다.그걸 종이에 정성스레 적어서 승민이의 책상 앞에 떡하니 붙여 두었다. “꼭 저대로 써야 한단 말이야? 수학 문제 푸는 것도 아니고,재미없잖아.” 승민이는 고개를 홰홰 저었다.그러곤 침대에 발랑 드러누워 버렸다.두그르르 앞구르기를 했다.물구나무도 서 봤다.그러는 동안,상상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갑자기 승민이는 발딱 일어났다.쇠가 자석에 이끌리듯 책상 앞으로 가 앉았다. 승민이는 신나게 글을 써 내려갔다. 네로랑 파트라슈는 날개를 달고 천국으로 날아간다.그곳은 개들이 주인인 세상이다.거기에서는 네로가 파트라슈의 애완동물이다. 지구에서 개들을 못살게 굴던 주인들은 자기들이 한 나쁜 짓을 그대로 당한다.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개한테 옆차기를 하던 아저씨는 개한테 옆차기를 당한다.개에게 상한 음식을 먹이고 재미있어하던 아이는 상한 음식을 먹고 웩웩 토한다.네 발로 기어 다니며 우유 수레를 끄는 사람도 있다.그건 바로 파트라슈를 채찍으로 때렸던 첫 주인이다. “너 정말!” 엄마가 어느새 승민이의 곁에 와 있었다.엄마는 씨근거리며 공책을 집어 들더니 방바닥에 내팽개쳤다. “천국이 왜 나오고,네로가 애완동물이라는 건 또 무슨 소리야!” “뒷이야기를 상상해서 쓴 거야.플란다스의 개 제2탄.” “파트라슈 옆차기 하는 소리 하고 있네.읽고 나서의 느낌이랑 생각을 쓰랬지,누가 2탄 쓰랬어?” “이렇게 쓰니까 재미있어.” “넌 그게 문제야.그렇게 재미만 찾으니까 공부를 못하지.” 엄마가 한심하다는 눈길로 승민이를 보았다.승민이는 아랫입술을 배쭉 내밀었다. “안 되겠다.공책이랑 필통 들고 마루로 나와.” 엄마와 승민이는 밥상을 앞에 두고 나란히 앉았다.엄마는 밥상 위에 독후감 공책을 척 올려놓았다.승민이는 쭈뼛쭈뼛 연필을 쥐었다. “먼저 책을 읽게 된 동기를 쓰자.왜 이 책을 읽었지?” “엄마가 읽으라고 시켜서.” “좀 예쁘게 쓰자.‘엄마께서 권유하셔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하면 좋겠지?” 승민이는 엄마가 말한 대로 받아 적었다. “자,이제 주인공과 너 자신을 비교해 보자.어떤 점을 비교해 쓸까?” “음……네로는 유유 배달을 하지만,나는 우유를 배달시켜 먹는다.” “말장난하니? 그건 중요하지가 않아.” “음……네로한테는 여자친구가 있지만,나는 없다.네로처럼 여자한테 친절해야 누구를 사귈 수 있을 텐데…….나는 마음은 안 그런데 자꾸 쌀쌀맞게 굴고…….” “누가 그딴 거 쓰래? 그게 대체 왜 중요한 거냐고!” 엄마는 벌떡 일어나 발을 쾅 굴렀다. “내가 못 살아.대체 넌 누구를 닮아서 이러니?” 엄마가 털썩 주저앉았다.승민이는 고개를 숙인 채 숨을 죽였다. 얼마 동안,시계 초침 소리와 엄마의 가쁜 숨소리만 들렸다. “다시 해 보자.또 이상한 대답하면 혼날 줄 알아.” 엄마가 승민이 옆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네로는 할아버지 말 잘 들어,안 들어?” “잘 들을 걸.” “넌 엄마 말 잘 들어?” “그럴 때도 있고,아닐 때도 있지.” “어이구,그럴 때도 있으셔? 엄마 말이라고는 징그럽게 안 들으면서,무슨.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쓰면 되겠네.‘네로는 할아버지 말을 잘 듣는다.하지만 나는 엄마 말씀을 잘 듣지 않아 혼나곤 한다.’라고.” 승민이는 그대로 받아 적었다. “네로는 행복해,안 행복해?” 엄마가 물었다.승민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때도 있고,아닐 때도 있지.” “행복할 리가 있니? 고아인 데다가 가난하지,집에서 쫓겨나 어린 나이에 죽기까지 했는데.” 엄마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너는 행복해,안 행복해?” 엄마가 물었다.승민이는 또 고개를 갸웃거렸다. “때에 따라 달라.” “너는 행복한 거야.네가 뭐가 아쉬워? 아빠가 돈 벌어다 주지,엄마가 보살펴 주지.자,적어 봐.‘네로에 비하면 나는 참 행복한 아이다.나는 네로처럼 가난하지도 않고 엄마 아빠도 있다.’이런 식으로.” 승민이는 엄마가 말한 대로 받아 적었다.글씨가 자꾸 비뚤어졌다. “이제 너의 경험과 책의 내용을 비교해서 써 보자.” 승민이의 머릿속에 번뜩거리는 장면들.하얀 털이 몽실몽실한 강아지,똥 한 덩어리,악쓰며 강아지에게 다가가는 엄마,겁에 질려 뒷걸음질치는 강아지……. “몽몽이는 잘 있을까?” 승민이가 혼잣말처럼 말했다.엄마는 흠칫하더니 곧 태연한 얼굴을 했다. “그럼,잘 있지 않구.우리보다 훨씬 좋은 주인이 데려다가 키우고 있는 걸.좋은 사료 먹이고,좋은 옷 입히면서 말이야.” 엄마가 호들갑스레 말했다.승민이는 연필 끝을 입에 물고 잘근잘근 씹었다. “딴 말 하지 말고,쓰던 거나 계속 쓰자.책 내용 중에서 네 경험과 비교할 만한 걸 찾아보자는 말이야.아,그래.네로가 할아버지의 일을 도와 준 것처럼,너도 엄마 아빠를 도와 준 경험이 있지? 그것에 대해서 쓰면 되겠구나.” “차에 치였으면 어떡하지? 몽몽이는 밖에 많이 안 나가 봐서 차 피할 줄도 모르는데…….” “이상한 상상은 그만하고,여기 집중해.” 엄마의 말투에 짜증이 섞였다. “몽몽이,울고 있을지도 몰라.” “상식적으로 말이 되니? 개가 운다는 게…….” “진짜야! 몽몽이는 나 없을 때 외로워서 눈물을 흘렸단 말이야!학원 갔다 와서 보면 눈에 눈물이 꽉 차 있었다구.” 승민이가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는 연필을 책상에 팽개쳤다. “얘가 왜 이래? 버릇없이.연필 똑바로 안 쥐어?” 엄마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날카롭게 말했다. “엄마가 몽몽이를 갖다 버렸잖아.나한테 말도 안 하고…….” “버리긴 뭘 버려? 키워 준다는 집 있어서 데려다 놓았다니까.” “아빠가 그랬어.엄마랑 밤에 공원에 가서 놓고 왔다고.” 승민이가 엄마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엄마의 얼굴이 붉어졌다. “밤이지만 바람 쐬러 온 가족들이 많았어.개 좋아할 만한 네 또래 애들이 많았단 말이야.우리가 키우기 힘드니까 다른 집에서 잘 키우면 되겠다 싶었던 거야.” “처음에 몽몽이를 데려온 건 엄마잖아.버릴 거면 아예 데려오지를 말지.” 몽몽이는 승민이의 좋은 친구였다.성적이 좋지 않다고 엄마한테 혼났을 때,친구와 다투었을 때에도 몽몽이를 보면 마음이 풀렸다.몽몽이의 눈빛이 “힘내.”하고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승민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그렇게 성가실 줄 누가 알았니? 똥오줌도 못 가려,털 날려…….” “강아지는 원래 그래.엄마가 모른 거지.내가 돌봐주면 되는데,꼭 그래야만 했어?” “너 학교 가고 학원 가면 누가 돌보는데? 내가 다 뒤치다꺼리해야 하는 거 몰라서 그래? 엄마 힘든 건 생각 못하니?” “엄마보다,그깟 개 한 마리가 더 중요해?” 엄마가 덧붙였다.엄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승민이는 입을 꾹 다문 채 가만있었다.엄마는 승민이를 등지고 앉았다.그러곤 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잠시 후,승민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쓸 얘기 생각났어.” 엄마가 누그러진 얼굴로 돌아앉았다. “몽몽이 얘기를 쓸 거야.” 승민이가 말했다.엄마는 펄쩍 뛰었다. “아니,그걸 왜 써?” “책 내용이랑 비교할 수 있잖아.네로가 파트라슈를 키웠던 것처럼 나는 몽몽이를 키웠고…….파트라슈는 버려진 개였고 몽몽이도 버려졌고…….” “안 돼,다른 얘기를 써!” “싫어.” 엄마가 눈을 부라렸다.승민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필을 쥐었다. 나는 몽몽이라는 강아지를 키웠다. 엄마가 연필을 홱 낚아챘다. “너…….이런 식으로 해 봐.앞으로 영원히 컴퓨터 못 할 줄 알아.용돈도 없어!” 엄마가 윽박질렀다. “지워!” 엄마가 승민이에게 지우개를 건넸다. 승민이는 망설였다.그러다가 마침내 방금 쓴 문장을 지웠다.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져 공책에 번졌다. 나도 네로처럼 어른을 도운 적 있다.엄마가 아플 때 청소를 해서 칭찬을 들었고,아빠의 어깨도 주물러 드렸다.앞으로 나는 네로를 본받아 더욱 착한 아이가 되겠다.어른들 말씀도 언제나 잘 듣겠다.네로같이 불쌍한 아이를 만나면 도와주겠다. 방에 들어온 승민이는 공책을 함부로 내팽개쳤다.침대 위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들썼다.훌쩍훌쩍 울다가 잠이 들었다. 승민이는 낯선 길에 서 있었다.주위가 안개로 둘러싸인 듯 아슴푸레했다.저만치 앞에 몽몽이가 나타났다.몽몽이는 따라오라는 듯 승민이를 히뜩 보고는 곧장 달려갔다.승민이는 몽몽이를 따라 뛰었다. 어느 순간,몽몽이가 멈춰 섰다.‘개들의 천국’이라고 씌어 있는 팻말이 보였다. “와,내 상상이 진짜였구나!” 승민이가 감탄했다. “그렇지,여기에서는 너희가 우리의 애완동물이라구.” 몽몽이가 말했다.그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몽몽이가 팻말이 가리키는 길로 접어들었다.승민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따라갔다.조금씩 안개가 걷혔다.주위의 풍경이 똑바로 보였다.승민이가 서 있는 길에서,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각각 다른 풍경이 보였다. 동쪽은 봄이었다.연둣빛 들판이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었다.색색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개고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마음껏 들판을 뛰고 뒹굴었다.서쪽은 여름이었다.초록빛 풀들이 다보록한 가운데,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개헤엄을 치는 사람도 있었고,사람 헤엄을 치는 개도 있었다.남쪽은 가을이었다.사과,밤,홍시…….탐스러운 과일을 매단 나무들이 곳곳에 우부룩했다.바닥에도 과일이 수북했다.어떤 개들과 사람들은 사과 바다에서 허우적허우적 헤엄을 쳤다.또 어떤 개들과 사람들은 홍시를 공처럼 주고받으며 옷에 주황 물이 들도록 놀았다. “난 어디로 가야 돼?” 승민이가 몽몽이를 내려다보고 물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내 주인이니까.” “네 마음대로 해.여기서는 주인이 애완동물을 돌봐 주지 않아.뭘 시키는 법도 없어.자유롭게 놔 둘 뿐이지.” 어디로 갈까? 승민이는 즐거운 고민에 잠긴 채 북쪽을 보았다. 눈부시게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아이스크림 같은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폴짝폴짝 눈 속을 누비고 다니는 개들과 사람들…….언덕 위에는 승민이 엄마도 있었다.엄마는 배를 깔고 엎드리더니 미끄럼을 타고 내려왔다.엄마의 웃옷이며 바지에 눈이 닥지닥지 묻었다.엄마를 지켜보던 몽몽이가 멍멍 웃었다.엄마는 대답하듯 하하 웃었다.눈투성이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호모 리터니즈/진보경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호모 리터니즈/진보경

    나는 빈 칸에 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한다.‘해당 정보와 일치하는 아이디는 다음과 같습니다.jeonghyuns**’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끝 두 자리는 별표로 표시한다는 설명이 붙지만 나머지 철자는 뻔하다.정현수.그러니까 숨겨진 두 글자는 알파벳 ‘oo’인 셈이다.화면 상단의 비밀번호 찾기로 들어간다.아이디와 이름,주민등록번호,휴대전화 인증번호를 차례로 채운다.마지막으로 새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창이 뜬다.정현수의 보안장치는 너무 허술했다.현실과 가상으로 나누어진 그의 공간.탐사 삼 일째,잠입은 성공적이다. 첫째 날은 집 안을 둘러보고 청소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불청객을 가장 먼저 맞이한 건 냄새였다.숙성이라고 해야 할까,부패라고 해야 할까.여러 소(素)들이 섞여 오랜 시간 묵은 냄새.증발된 삶의 흔적들이 좁은 공간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고여 있었다.음식 냄새,담배 냄새,가구 냄새,하수구 냄새…….그리고 그의 체취.좀 더 강한 냄새부터 잔향까지.모두가 뒤섞여 도무지 구분되지 않는,냄새들의 저장소.금세 두통이 도졌다.발코니로 다가가 창을 열었다.앞 동은 층고가 낮고 뒤쪽은 야트막한 산이 배경인 아파트의 21층.벌거벗고 집안을 활보해도 될 만큼 자유로운 높이에 그는 살고 있었다.발밑으로 솜뭉치 같은 먼지들이 풀풀거렸다.청소기를 돌리고 썩은 음식들을 내다 버렸다.자정이 넘은 시각,음식물 쓰레기통 뚜껑을 여는 남자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둘째 날은 늦잠을 잤다.퀴퀴한 냄새가 배어 있는 그의 침구 속에서,나는 배가 고파 눈을 떴다.냉장고 안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곤 생수 두 통뿐이었다.주방 수납장에서 라면 몇 봉지를 발견했다.계란도 단무지도 김치도 없이,끓인 라면을 뚜껑에 덜어 두 끼를 때웠다.정현수의 휴대전화를 충전해 전원을 켰다.다행히 잠금 설정은 되어있지 않았다.전화번호 저장함은 텅 비어 있었다.통화목록도 모두 지워져 아무런 기록도 남아있지 않았다. 수신함에 읽지 않은 메일 수백여 통이 쌓여 있다.나는 잠깐 망설인다.메일들을 클릭하는 순간 벌어질 수 있는 일에 대해.스팸메일이야 그렇다 쳐도,수신 확인은 그의 실존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가 되지 않겠는가.어쩌면 나에겐 그것이 더 나은 일인지도 모른다.우선 광고메일들을 체크해 휴지통으로 보낸다.발신자가 백화점이나 은행,식당,웹사이트 등의 상호로 표시되거나 제목에 ‘대출’,‘오빠’,‘신제품’ 같은 키워드가 포함되어 있으면 무조건 삭제한다.그러고 나니 순수한 의도와 목적을 가진 듯한 메일 여섯 통이 남는다.지난달에 수신된 두 통은 결혼식과 돌잔치 안내가 제목으로 올라와 있고,한 통은 ‘형 잘 지내요?’로 안부를 전하는 메시지다.네 번째 메일의 제목은 ‘수정 관련사항입니다’,발신인은 ‘한강병원’이다.언뜻 봐선 그의 사적인 일에 관한 내용인 듯싶다.정현수는 유부남이었을까.내용을 살펴본다.안녕하세요.한강병원 원무과 김 대리입니다.제작해 주신 홈페이지에 오류가 발생하여 문의 드립니다.추가로 수정을 원하는 부분도 상세하게 적어두었으니 첨부파일을 참고하세요.비용 관련 협의는 전화로 했으면 합니다.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발신인이 ‘리쉬케쉬’인 메일 두 통을 놓고 고민한다.리쉬케쉬는 실명일까,닉네임일까.‘제목 없음’이 제목인 이 메일은 광고일까,아닐까.얼핏 대부업체 상호 같은 느낌도 든다.인터넷 새 창을 열어 검색어를 입력한다. 요가와 명상의 도시 리쉬케쉬.갠지스 강의 상류에 위치한 히말라야의 관문이다.힌두교인의 성지이므로 이곳에서 푸자를 하고 꽃접시를 띄워 보내며 소원을 빌기도 한다.요가의 본고장이라 수많은 아쉬람과 요가선생들이 있고,비틀스가 구루(guru) ‘마하리쉬 마헤쉬’를 찾아와 머무르면서 더욱 유명해진 도시.장기간 요가와 명상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에게 최적의 장소이며 금주와 채식의 고장.술은 어디서도 구할 수 없고 100% 채식을 하므로 이곳에서는 달걀조차 먹을 수 없다……. 수행자의 도시에서 온 메일.역시 판단하기가 어렵다.어쩌면 그가 가입한 인터넷 카페나 동호회의 이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가입한 카페 목록을 열어본다.삼십대 중반의 남자라면 대부분 가입했음직한 성격의 카페들이 주르륵,여섯 개가 뜬다.등산,음악,사진,재테크,여행 그리고 마지막으로 CEO클럽.정현수의 직함은 대표이사였다.회사명은 ‘펨토테크놀로지’.첫째 날,그의 명함에 찍힌 회사 전화번호를 눌러보았다.결번이었다.명함 우측 상단엔 ‘네트워크 솔루션’이라는 단어가 인쇄돼 있었다.회사 도메인을 주소창에 입력했다.웹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떴다.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을 닫게 된 그 회사의 CEO가 정현수였다.한강병원에서 발주를 받은 건 회사를 폐업하기 전이었을까,아니면 이후일까.그가 되기 위해선 그를 완벽히 알아내야 한다.나는 리쉬케쉬에서 온 메일을 열어보기로 결심한다. 수신날짜가 8월 5일인 첫 번째 메일은 사진 한 장과 두 줄의 메시지가 전부였다. 내가 지금 이곳에 머무는 이유에 대해 잊으려고 노력 중이야.마음이 편안해지고 있어.요즘 사귄 새 친구를 소개할게. 허름한 골목길,얼룩소 한 마리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는 사진.소의 턱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물인지 침인지 모르겠다. 두 번째 메일은 내용 없이 인물 사진만 첨부돼 있다.통통한 체형에 단발머리인 여자는 무표정하다.그렇지만 딱딱하게 굳지 않은,오히려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다.아마도 발신인의 사진 같다.두 통의 메일로는 아무것도 추측할 수가 없다.그녀는 정현수와 어떤 관계일까.수신된 날짜는 10월 17일.내가 그를 발견하기 하루 전에 도착한 것이다. 마른 낙엽을 수북이 덮고 그는 얌전히 엎드려 있었다. 평일 오후의 등산로는 한산했다.매표소 앞 매점에서 김밥과 라면을 사먹고 네 시쯤 오르기 시작한 산행이었다.중년부부 두 쌍과 젊은 여자 한 명,대학생으로 보이는 일행 대여섯 명 정도가 그날 마주친 사람 전부였다.어디서 넘어왔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모두 하산 길이었다.조용한 산길에서 서로 말없이 길을 터주며 걸음을 재촉했다.깔딱고개를 지날 땐 평소보다 심하게 헉헉거렸다.지난밤 과도하게 마신 술과 담배 때문이었다.계곡을 치고 올라온 지 한 시간이 지났다.정상이 눈앞에 보였다.숨이 턱까지 차올랐다.마지막에 사람을 가장 고통스럽게 담금질하는 건 산행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조금 있으면 해가 질 시간이었다.산속의 어둠은 모든 것을 까마득하게 지워버린다.주변은 물론,시야에서 사라진 길 위에 서있는 내 모습 까지도.검은 하늘과 더 짙은 능선의 경계만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야간산행을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당혹감을 넘어 두려움으로 온몸을 굳게 만드는 어둠.나는 산속의 어둠쯤 두렵지 않았다.거의 매일 오르내린 덕분에 눈 감고도 헤칠 수 있는 길이었다.호흡은 가빠도 마음은 더없이 고요했다.등산객 이외의 어떤 것으로도 나를 판단하지 않는 산.그곳에 있을 때 나는 가장 자유롭고 평등했다. 물든 단풍은 정상 근처에서만 볼 수 있었다.발밑에선 낙엽들이 사각,소리를 내며 부서졌다.가을은 아직 오지 않고 가뭄이 세상을 바짝바짝 말리고 있었다.나는 용변 볼 장소를 찾아 길을 등졌다.널찍한 바위 뒤편에 쭈그리고 앉아보았다.굽이진 길 위로 하산하는 일행이 보였다.소변이야 대충 돌아서서 금방 끝낼 수 있지만 엉덩이를 까고 앉아야 하는 일은 더 은밀한 장소여야 했다.아래쪽은 급경사였다.다른 길을 찾아볼 여유는 없었다.나는 내리막 경사를 따라 미끄러지듯 뛰었다.이 정도면 됐다 싶은 곳에 바지를 내리고 앉았다.어느새 파리들이 다가와 윙윙거렸다. 발끝으로 낙엽을 모아 용변을 덮었다.역시 어제 마신 술 때문인지 냄새가 심했다.시큼하고 들큼하고 구렸다.손가락으로 코를 싸쥐고 발로 계속 낙엽을 찼다.사위는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대충 정리를 끝내고 비탈길을 오르던 나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누가 불러 세운 것 같기도,알 수 없는 신호를 받은 것 같기도 했다.내가 앉아있던 주변을 몇 발짝 떨어진 곳에서 내려다봤다.불룩하게 솟은 무언가가 보였다.바위도 아니고 흙도 아니었다.나는 슬금슬금 내려가 다시 그 자리에 섰다.그리고 가까이 다가가 그것을 유심히 살폈다.수북한 낙엽 사이로 푸른 옷자락이 보였다.손바닥으로 낙엽을 헤쳤다.역한 냄새가 훅 끼쳤다.푸른 상의에 검은 바지 차림의 누군가가 엎드려 있었다.그의 등에 손바닥을 댔다.차가웠다.이봐요.나는 푸른 옷의 오른팔을 들춰보았다.표피가 터질듯 부풀어 오른 파리 유충들과 딱정벌레 무리가 굼실거리고 있었다. 요동치는 마음과 달리 나는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불현듯 오한이 들고 온몸이 떨려왔다.나는 망설였다.그냥 모른 척 되돌아가고 싶었다.후들거리는 발이 붙박인 듯 움직이지 않았다.휴대전화를 꺼내 ‘119’를 눌렀다.깊은 계곡 안이라 통화불능이었다.조금 높은 곳으로 올라가 통화를 시도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조금만 기다려요.그 말은 오히려 나를 안심시키는 효과가 있었다.천천히 몸을 움직여 일을 진행했다.구조대원들이 발견하기 쉽도록 그를 덮은 흙과 나뭇가지,낙엽들을 옆으로 치웠다.벌레들이 놀란 듯 꼬물거렸다.파리들이 머리 위를 맴돌았다.냄새 때문에라도 더는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현장 정리를 마치고 돌아서려던 그때,또다시 무언가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그의 바지 뒷주머니 위로 반쯤 삐어져 나온 지갑. 나는 침착하게 등산장갑을 손에 꼈다. 어차피 이 사람에겐 소용없는 물건 아닌가.발견한 구조대원이 유족들을 수소문해 돌려줄 수도 있겠지.하지만 나와 같은 누군가가 이것을 먼저 발견한다면…….장갑 낀 손으로 지갑을 빼냈다.몇 장의 카드와 신분증,현금은 십만 원도 채 안 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내 의도와 상관없이 유예된 삶에서 벗어날 방도를 궁리 중이었다.좀 더 잘살기 위해 선택한 길인데 어쩌다 보니 한가운데 갇혀버린 채 덜컥 문이 닫혔다.세상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사람들 또한 그랬다.서른 살 넘은 무직자인 나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어릴 적 친구들뿐.누구도 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나는 이제껏 그 흔한 연애조차 못 해봤다.더 나은 모습으로 더 좋은 상대를 골라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현재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수식어는 없었고 그런 내가 적응할 수 있는 집단이나 장소 역시 없었다.하지만 그건 명백히 내 잘못이 아니다.나는 열심히 노력해 왔다.단 한 번도 샛길로 빠져보지 않은 그야말로 모범생이었다.그렇다 해도 나를 그럴듯하게 돋보일 수식어가 없는 한,내 삶은 유예 중인 거였다.이제 와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전면적인 궤도 수정을 하기엔 너무 늦었다.벌써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내집마련을 목전에 두고 있는 또래들을 보면 더욱 극심한 절망감에 빠졌다.그렇다면 어떻게 바꿀 것인가.오던 길 계속 가는 것도 불안하고 새 길을 찾아내는 것 역시 자신 없다.나는 내 인생의 판을 새로 짜고 싶었다.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갑에서 현금 대신 신분증을 꺼냈다.아이 손바닥만 한 작은 플라스틱 판 안에 그의 정보가 고스란히 들어있었다.이름은 정현수.나와 동성(同性)이고 나보다 한 살이 많다.뿔테 안경에 회색 스웨터 차림의 증명사진 속 그는 나이보다 조금 더 늙어 보였다.주소지는 서울의 남쪽 신도시에 위치한 아파트……. 순간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이제껏 한 번도 품어보지 못한 생각이,그야말로 섬광처럼 떠올랐다.나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댔다.아니다.그것은 전부를 버려야 가능해지는 일이다.지금까지의 나,나의 생활,인간관계,과거 행적까지 모두. 그럴 수 있겠는가. 모든 일은 순식간에 처리됐다.‘그럴 수 있겠는가’에 대한 결단은 내리지 못한 채였다.나는 내 지갑의 신분증을 꺼내 그의 것과 맞바꿨다.신용카드 한 장과 그의 명함도 몇 장 챙겼다.현금은 건드리지 않았다.주머니에 지갑을 원래대로 꽂아두었다.오른쪽 앞주머니를 더듬어 휴대전화와 열쇠꾸러미까지 갈취했다.딱딱한 그의 골격이 손가락에 닿았다.헤친 낙엽과 흙을 다시 그의 몸 위에 덮었다.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깜깜한 그곳을 어떻게 등지고 하산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가을밤,산중의 바람은 차가웠다.땀에 젖은 바지가 다리에 자꾸 휘감겼다.어지러워 더 이상 걸을 수 없어 주저앉았다.멀리서 매점 불빛이 반짝였다.내 삶을 최초로 이탈하는 순간이었다. 두 통의 메일로 봐선 정현수와의 관계를 가늠하기가 어렵다.현재 인도에 머물고 있는 여자는 두 달 간격으로 소식을 전해왔다.그것도 너무나 간략하게.여자의 이전 소식을 알 수 있을까 싶어 메일 보관함을 뒤졌다.정현수가 따로 보관 중인 메일은 없었다.휴지통마저 텅 비어 있었다.그는 관리가 철저하고 주변정리가 깔끔한 사람이었다. 컴퓨터에 저장된 자료들은 폴더 별로 분리되어 탐사하기가 수월했다.‘사진방’ 폴더를 클릭한다.날짜 및 장소별로 지정된 폴더 안에 인물 사진은 그의 독사진 몇 장뿐이다.나머지는 모두 풍경사진.내친김에 앨범을 찾아보기로 한다.서랍과 책꽂이,장식장,심지어 다용도실까지 뒤졌지만 그 흔한 졸업앨범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그는 누구일까.나는 갑자기 불안해진다.그를 빌리기로 결심한 이후 가장 걱정되는 점이 그의 인간관계였다.휴대전화에 저장된 이름과 통화목록이 하나도 없다는 것에 용기를 내지 않았던가.그러니 오히려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그래도 설마 했지만 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최소한의 관계인 가족조차도.모든 인연에 무관한 그의 삶이 어쩌면 의도에 의한 것은 아닐까,궁금해진다. 사흘간의 탐사 끝에 비로소 나는 그가 되어 사는 일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아파트 정문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아 상가 식당에서 백반을 사먹었다.식사 후엔 동네 주변을 산책했다.나는 정현수 대신,아니 정현수가 되어 거리를 쏘다녔다.그의 옷은 내게 헐렁했다.살을 좀 찌워야 하지 않을까,나는 잠시 고민했다.키는 더 늘일 수 없으니 소매와 바짓단을 줄여야 할 것이다.거대한 체구와는 다르게 정현수는 심플한 취향을 가졌다.살림살이 역시 단출했다.옷장,침대,컴퓨터 책상,주방가구.거실엔 한쪽 벽을 책장으로 채웠을 뿐 마땅히 갖춰야 할 티브이와 소파가 없다.드문드문 꽂혀 있는 책들은 대부분 IT와 경영관련 서적이고 간간이 ‘줄리아나의 리더쉽’,‘협상의 원포인트 레슨’ 같은 처세 관련 책들이 눈에 띈다.옷장 서랍 밑바닥에 통장 대여섯 개가 나란히 깔려 있었다.모든 공과금은 정해진 날짜에 자동이체로 빠져나갔다.그는 통장마다 맨 앞 장 귀퉁이에 연필로 비밀번호 네 자리를 적어두었다.잔고는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관계없음’으로 인한 정현수의 삶은 외로웠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익숙한 내게는 무척 다행한 일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아버지는 내가 중학생이던 때 엄마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엄마는 늘 내게 말했다.명심해라.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걸.아버지와 결혼할 당시 엄마는 항공사 승무원 시험 최종합격을 앞두고 있었다.사랑에 빠져있던 엄마는 결혼을 선택했고 그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어긋난 거라고.그때 내가 승무원의 길을 택했더라면…….평생을 잊지 못할 아쉬운 선택에 엄마는 탄식했다.그건 모르는 일이죠.그 길에서 또 어떤 일이 엄마를 어긋나게 했을지.어쩌면 지금보다 더 참혹했을 수도 있어요.나는 혼자 중얼거렸다.알밤을 맞을 일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잘못된 선택으로 자신의 고귀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믿는 일이,원래 주어진 참혹한 삶을 인정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였다. 졸업 후 여기저기서 취업 제의가 들어왔다.금융권의 계약직 사원으로 취직한 동기들이 앞다퉈 나를 데려가려고 나섰다.나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이년째 낙방 중이었다.마음만 먹으면 중소기업 정규직 자리도 널려 있었다.서른이 넘도록 용돈을 타 쓰는 일이 괴로웠던 나는 솔깃했다.하지만 엄마가 고집을 부렸다.출발점이 어디냐에 따라 네 인생이 달라지는 법이야.지금 그렇게 아무 곳에나 들어가면 너는 평생 그 좁은 바닥에서 푸드덕거리다 끝날 게다.어려워도 더 넓고 깊은 물에 뛰어들어야 해.나중에 후회 없으려면 엄마 말 잘 들어라.그렇게 삼 년이 더 흘렀다.취업문은 좁아졌고 동기들은 제 밥줄 잡고 있기도 힘겨워했다.엄마는 내가 큰 물에 몸을 던지는 일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그리고 나는 지금 첫 단추를 새것으로 갈아치웠다. 받은 편지에 대한 답신을 보낸다.기쁜 날 참석 못해 미안하다.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당분간 메일로만 연락이 가능할 것 같다.안부를 물어온 정현수의 후배에게도 마찬가지 내용이다.리쉬케쉬의 여자에게는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마지막으로 한강병원 김 대리에게 짧은 메시지를 적는다.보내주신 수정안 잘 받았습니다.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마감이 겹쳐 당장은 진행이 어렵습니다.조금만 말미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며칠 후에 전화 드릴게요. H은행 통장정리기 앞에서 한참을 기다린다.입출금 명세를 기록하는 기계음이 찌익 찍,지루하게 이어진다.다른 은행에 비해 시간이 길다.인쇄되는 내용이 많은 걸로 보아 이곳이 정현수의 주거래은행인 모양이다.답신을 보낸 다음날 전화가 걸려왔다.정현수의 휴대전화가 울리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받아야 하나,말아야 하나.벨소리는 길게 이어졌고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잠시 후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한강병원 김 대리입니다.유지보수비 외에 수정비용을 따로 지불해드려야 할까요.도통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응답을 하지 않으면 또 전화가 걸려올지도 몰랐다.나는 간단히 답신을 보냈다.그건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투입구에서 빠져나온 통장을 받아 살핀다.한강병원으로부터 매달 일정금액이 입금되고 있었다.김 대리가 말한 유지보수비,프로그램에 대한 사후관리비쯤 되는 것인가.그러잖아도 잔고가 떨어져 걱정하던 참이었다. 전화벨이 울린다.발신번호를 확인하고 수신버튼을 누른다.네,정현수입니다.나는 또박또박,이름을 밝혔다.웹마스터 P가 인사말도 없이 웅얼거린다. “요청하신 작업은 사흘이면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아,예.그렇게 처리해 주세요.” “결제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지갑에서 정현수의 신용카드를 꺼내 일련번호 열여섯 자리를 불러준다. 홈페이지 수정작업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정현수의 실력까지 덮어쓸 순 없었으니까.김 대리에게 답신을 보낸 후 컴퓨터에서 ‘한강병원’ 폴더를 찾아냈다.나로서는 알 수 없는 파일들만 수두룩했다.집에서 가까운 홈페이지 제작업체를 찾아가 기존 프로그램의 수정과 보완이 가능한지를 물었다.담당자는 원본 파일들을 가져오라고 했다.집으로 돌아와 저장장치에 파일을 복사했다.그리고 어제 그것들을 P에게 건네주고 왔다. 지하철 역 입구에 서서 잠시 고민한다.오늘 저녁으론 무얼 먹을까.내가 살던 집 근처엔 할머니 혼자 삼십 년 넘게 꾸려온 순댓국집이 있다.좁은 공간에 테이블 여섯 개가 전부여도 끼니때가 되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맛 소문이 났다.요즘 자꾸 그 맛이 당긴다.정현수의 집으로 가는 길과 순댓국집으로 가는 길은 서로 반대 방향이다.어떻게 할까.주변을 무심히 둘러본다.길 건너 환한 불빛,‘병천○○순대’ 체인점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횡단보도 쪽으로 몸을 돌려 걷는다.어쩌면 할머니 순대를 다시 먹을 수 없을 거라 생각하니 조금 우울해진다.내 안에 축적된 기호와 습성들을 완전히 지울 방법은 없을까.나는,정현수니까. 온라인 원격교육 사이트에 로그인한다.첨삭해야 할 리포트가 다섯 개 올라와 있다.통신교육업체의 수강생들이 문제지를 풀어 올리면 그것을 채점하는 일이 나의 몫이다.각 과정별로 교재는 무료로 제공된다.나는 그 교재를 읽고 함께 제공된 답안지를 참고삼아 점수를 매긴다.의뢰일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완료하면 되는 일이다.딱히 어렵거나 촉박하지도 않다.외부활동 없이 집에서 책을 읽고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된다.대신 보수는 적다.리포트 한 건당 삼천 원.그럭저럭 웬만큼만 하면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을 것 같다. 며칠 동안 인터넷 취업사이트를 돌며 일을 찾았다.남은 잔고와 한강병원에서 입금되는 유지보수비로는 관리비와 공과금 납부도 빠듯했기 때문이다.앞으로 생존에 관한 문제는 스스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정현수의 떡고물을 축내려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니까.결과물을 보고 김 대리는 아주 만족해했다.이번에는 그의 전화를 피하지 않았다.윗선에서 따로 비용지불은 어렵다고 합니다.대신 제가 술 한 잔 사도록 하죠. 수강생의 이름을 클릭하고 점수 칸을 채운다.참고가 될 만한 사항은 교재에서 발췌해 따로 코멘트를 달기도 한다.객관식과 주관식 문항에 꼼꼼히 답을 단 사람들에게서 성실한 삶의 태도가 느껴진다.대부분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다.교재 내용은 직장 내 소통과 개인적인 성공에 관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회사 내에서 상사가 지켜야 할 점,동료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설득과 대화의 심리학…….틈틈이 다른 일자리를 더 알아봐야겠다.언제까지나 방구석에 처박혀 지낼 수만은 없다.정현수의 전공과 이력이라면 부족함은 없을 것이다.그러기 위해선 공부도 많이 해야 하겠지.새로운 영역을 배우는 일,마음이 설렌다.그리고 상황이 된다면,아니 무엇보다 먼저,연애를 하고 싶다. “선배님,오랜만입니다.” 몸집이 작고 다부진 체구의 남자가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나는 한강병원 로비의 회전문을 등지고 서 있었다.김 대리와 만나기로 약속을 정해놓고 전전긍긍했다.지난번 빚진 거 갚아야죠.정 선배님 얼굴도 보고 싶고,한 잔 사겠습니다.처음엔 핑계를 대며 몇 번 거절했다.서슴없이 ‘선배’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그가 정현수의 어느 시절 후배인지,그저 의례적으로 사용하는 호칭일 뿐인지,알아낼 방법이 없었다.하지만 무작정 미루고 있는 것도 불안했다.세 번째 전화를 받았을 때 어쩔 수 없이 수락을 한 거였다.나는 최대한 정현수처럼 보이도록 치장했다.사진 속 그의 것과 비슷한 뿔테안경을 구입했다.옷장에서 가장 낡은 옷을 골랐다.낡은 것은 오래 묵었다는 증거 외에 그만큼 애용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두툼한 회색 니트를 꺼내 입었다.키높이 구두를 신었더니 바짓단을 접지 않아도 되었다. “작년 봄 제작 회의 때 뵙고 이번이 두 번째네요.살이 좀 빠지신 것 같습니다.제가 기억하는 선배님 첫 인상은 꽤나 듬직한 체격이었는데요.허허.” 당혹스런 속내와 달리,나는 머쓱하게 웃었다.불판 위에서 고기가 지글거리며 익어간다.김 대리가 잔을 든다. “과묵한 건 여전하시네요.” 선후배 사이긴 해도 두 번째 만남이라고 하니 저쪽도 어색한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취기가 오르면서 분위기는 조금 부드러워졌다.티브이에서 저녁뉴스가 방영되고 있지만 취객들의 소음에 뒤섞여 내용은 알아들을 수 없다.화면과 자막을 흘끔거린다.불콰해진 김 대리는 말이 많아졌다.이 나라 국민치고 내일이 불안하지 않은 사람 없습니다.침체의 늪에 이제 막 첫발이 빠졌을 뿐인데요,자신이 어떤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요.저희 병원도 감원의 칼바람이 언제 휘몰아칠지 몰라 매일 살얼음판입니다.나는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에게 동조와 연민이 담긴 눈길을 보냈다.따끈한 온돌 방바닥에 엉덩이를 지지며 우리는 조금씩 노곤해졌다. “그런데,신 선배는 아직 연락 없어요?” 우물거리던 입놀림을 멈추고 그를 건너다본다.기어이 우려하고 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그는 정현수와 사적인 관계였다.둘의 공통분모,신 선배라니. “아직…….” “참,세상 일 알 수 없고 믿을 놈 아무리 없다 해도 어떻게 신 선배가 그럴 수 있어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이쯤에서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야 할까.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면 곤란한데. “정 선배님이야,회사 일로 알게 됐지만 신 선배하고 저는 수업도 같이 듣고 꽤 가까웠거든요.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고요.” 그가 고기와 술을 추가로 주문하고 담배연기를 후,뱉으며 말을 잇는다. “선배님 많이 드세요.형수님 소식도 들었습니다.지난여름 동문 모임에서요.어딘가로 떠나셨다면서요…….혼자서 얼마나 힘드세요.” 나는 점점 궁금해진다.신 선배라는 사람은 정현수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정현수의 아내는 누구이며 어떤 이유로 그에게서 떠난 걸까.혹시 리쉬케쉬의 여자일까.이대로 묵묵히 김 대리의 말을 듣고 있어도 괜찮으리라.아마 정현수였더라도,지금의 분위기에선 그랬을 것이다.그의 몸이 시계추처럼 좌우로 흔들린다. “이게 다 신 선배 때문 아닌가요?그 사람 절대 용서하지 마세요.동업자이기 전에 둘도 없는 친구였다고 들었습니다.자기 혼자 잘살자고 그런 짓을 하다니요.결국 경쟁사만 좋은 일 시키고,회사 문 닫고,자기는 도망쳐버리고,친구도 잃고,이게 뭐예요.어떻게 정 선배한테 그럴 수 있냐고요…….” 풀썩,김 대리가 옆으로 쓰러진다.불판 위에선 까맣게 눌어붙은 고기조각이 오그라들고 있다. 김 대리의 말을 정리해 보면 신 아무개와 정현수는 절친한 친구이며 동업자였다.그런데 신씨가 정현수를 배신하고 회사를 닫게 만들었다.이후 정현수의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났다. 만취해 그대로 잠이 든 그를 힘겹게 깨워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선배님 잘살아요.김 대리가 눈을 꿈뻑이며 중얼거렸다.나는 그의 등을 두어 번 다독이고 택시를 잡았다. 메일함을 연다.리쉬케쉬에서 메일이 도착했다.‘회귀’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삶의 의미를,내가 사는 이유를 찾아내고 싶어 떠나온 지 벌써 이 년이 지났어.나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지만 그것이 내가 찾아낸 정답이라면 당신은 아마 웃을 테지?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살아야겠어.다시 나로 돌아가 내 삶을 찾는 것이 방법일 거야.이곳에서의 삶도 그곳과 별반 다르지 않더라.사람 사는 모습은 엇비슷하고 어디에 머물든,어떻게 살든,나는 그저 나일 뿐이더라고…….당신 많이 보고 싶다. 여자의 도착 예정일은 11월 28일이라고 했다.앞으로 일주일 후면 그녀는 정현수를 찾아 이곳에 올 것이다.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연은 무엇일까.나는 그녀를 맞이해야 할까,피해야 할까.그렇게 되면 나의 일생일대 프로젝트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가 다른 삶을 원했던 이유는 현실에 대한 불만족 때문이었다.나는 무능한 사회부적응자였으니까.새로운 길을 찾아볼 수도 있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기가 어려웠다.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모두 접고 다른 일을 시작하기에 나는 너무 많이 와버렸기 때문에.한 번만 더,이번엔 되겠지.미련을 쉽게 접을 수 없었다.모든 것을 내 손으로 허물어야 하는 일이 아직은 자신 없다.그곳으로 돌아가 다시 내가 된다면 똑같은 고민과 패배감에 휩싸여 매일 산에 오르는 일만 반복할지 모른다.나는,나로 사는 것이 두렵다. 서가에 꽂힌 책들을 멍하니 바라본다.우측 선반 맨 위,낯익은 제목이 시야에 들어온다.만년수험생으로 타 분야 서적을 읽을 시간이 없던 내게 친구 녀석이 선물해줬던 책.‘잠깐 머문 곳도 내게는 고향’이라는 인상적인 구절이 떠오른다.의자를 놓고 올라가 그것을 꺼내든다.툭.발밑으로 무언가 떨어져 내린다.누런 서류봉투가 반으로 접혀 있다.도톰하다.책을 내려놓고 봉투 안의 내용물을 꺼낸다. 모두 같은 장소에서 찍힌 수십 장의 사진이다.리쉬케쉬의 여자와 정현수.새하얀 예복을 입은 그들은 행복해 보인다.그와 그녀가 공유했던 삶의 윤곽…….봉투와 책을 원래 있던 자리에 꽂아두고 쫓기듯 도망치듯 나는 밖으로 뛰쳐나온다.정현수 당신,고작 이런 거였어?그를 빌리기로 작정했던 순간 내가 바라던 상황은 이런 게 아니었다.적어도 나보다 나은 인생일 거라 믿었는데…….이런 삶을 나더러 어떻게 살아내라고.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뒷산을 오르고,다시 내려와 걷는다.인도를 따라 무작정 뛰고 헉헉대며 걷다가 호흡이 잦아들면 다시 뛴다.어느 방향이든 상관없다.지극히 외롭고 무거운 그의 삶을 벗어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정현수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을지 모르겠다.그의 죽음은 우연한 사고였을까.어쨌든 그는 실족하지 말았어야 했다.그렇게 마침표를 찍은 삶을 내가 이어 사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이것은 무늬만 다른 삶 외에 어떤 뜻이 있는가.지금의 삶이 차곡차곡 쌓여 미래가 되고 어느 지점쯤에 다다르면 나는 또 새 판을 짜고 싶어질까. 리쉬케쉬의 여자처럼 나도,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옷장 안 깊숙이 넣어두었던 등산복을 꺼내 입는다.두꺼워진 허리에 바지 지퍼가 올라가지 않는다.허리띠 버클을 조정해 간신히 채운다.배낭을 메고 그의 신분증과 휴대전화,신용카드와 명함,열쇠꾸러미를 주머니에 넣는다.현금카드,통장,그동안 사용하던 물품들은 모두 제자리에 돌려놓았다.마지막으로 현관에 서서 집안을 둘러본다.돌아온 그의 여자가 낯선 흔적을 발견할 수 없길 바라며. 어둑해진 산길을 천천히 오른다.사각거리던 낙엽들이 어느덧 수북이 쌓여 발목을 푹신하게 감싼다.오랜만의 산행이라서일까,무거워진 몸 때문일까.걸음이 쉽지 않다.리쉬케쉬의 편지 내용이 떠오른다.다시 나로 돌아가 내 삶을 찾는 것이 방법일 거야.나는 그저 나일 뿐이더라고.새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남의 인생을 덮어쓰는 일,그것은 결국 누구의 삶도 아니었다.과거를 버려둔 채 현재의 나를 바꿀 수는 없는 거였다.그런데 길이 낯설다.그날 내려왔던 그대로 마른 계곡을 따라 길을 잡았는데 이쯤 나타나야 할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하산 길 이정표를 지나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였는데. 이정표 지점부터 다시 시작한다.부쩍 떨어진 기온에 으슬으슬 한기가 든다.그를 다시 만나야 하는 일이 내키진 않지만 내 자리로 돌아가려면 이곳을 꼭 거쳐야 한다.빌린 물건을 돌려주고 맡긴 내 물건도 되찾아야 하니까.이제 회계사 시험공부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다.다시 나로 돌아가 모든 것을 엎고 새 삶을 시작할 것이다.조만간 납골당의 엄마에게 인사드리러 가야겠다.발걸음이 빨라진다.계곡 깊이 내려앉은 어둠에 더 이상 앞을 분간하기가 힘들다.랜턴을 켠다.십여 미터 전방에 그날의 바위가 보인다.나도 모르게 진저리를 친다. 바위 뒤를 돌아 내려선다.낙엽더미에 무릎이 푹,빠진다.벌레도 냄새도 거의 사라졌다.춥고 건조한 초겨울의 바람 덕분이리라.발견 당시 유충들의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던 정현수.죽음 이후의 삶은 이곳에서 더 의미 있고 유용했을지 모르겠다.장갑을 끼고 낙엽을 헤집는다.정확한 지점이 어딘지 헷갈린다.앉아 있던 자리 주변을 몇 군데 파헤친다.다시 몇 걸음 옮겨본다.일어서서 발로 바닥을 굴러본다.어느 지점쯤,돌출된 나무뿌리를 밟은 듯 딱딱한 느낌.자리에 앉는다.장갑 낀 손으로 그곳을 더듬어 굴곡을 살핀다.머리끝까지 소름이 돋는다.잘 있었어요…….나도 모르게 울컥,감정이 솟는다. 수분이 빠져나간 그의 둔부는 아래로 쑥 꺼져 있다.지갑이 꽂힌 자리만 조금 도드라질 뿐.나는 챙겨온 정현수의 물건들을 하나씩 꺼낸다.먼저 휴대전화와 열쇠꾸러미를 그의 바지 앞주머니에 밀어 넣는다.어쩐지 이전보다 헐렁해진 느낌이다.뒷주머니에서 지갑을 빼낸다.휴대전화의 감촉이 손끝에 와 닿는다.채우고 흐르던 내용물이 사라지고 지지대만 남은 그의 몸.갑자기 누군가 머리칼을 잡아챈 듯 정수리에 극심한 통증이 인다.떨리는 손으로 지갑을 펼쳐 신분증을 교환한다.꽂혀있던 내 것을 꺼내고 가져온 그의 것을 쑤셔 넣는다.그리고 재빨리 지갑을 원래 있던 자리에 꽂아둔다. 모든 것은 끝났다.이제 나는 돌아가 내 삶의 새 판을 짤 것이다.그럼,잘 있어요.인사를 마치고 신분증을 내 지갑에 꽂는다.그런데 뭔가 이상하다.손끝에서 느껴지는 낯선 이물감.신분증을 다시 꺼낸다.바닥에 두었던 랜턴을 집어 그것을 비추어 본다.경련으로 요동치는 내 손바닥 위의 이것은……,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그의 주머니에 있던,내가 꺼낸 신분증에 기록된 낯선 사진과 정보.이름 한재우.주민등록번호 690125……. 무릎이 꺾인 듯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그의 지갑에 넣어두었던 내 신분증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정현수가 보관하고 있어야 마땅할 내 물건.대체 누가 나와 똑같은 짓거리를 한 걸까.여기 이렇게 얌전히 엎드려 있는 이 사람은……,누구인가!나는 거칠게 그를 뒤집어 가슴팍을 움켜 일으킨다. 손에 들린 파란 등산복 밑으로 우수수,무언가 떨어져 내린다.
  • “독도 지킴이가 아파요… 독도가 울어요”

    “독도 지킴이가 아파요… 독도가 울어요”

    독도의 유일한 상주민이자 이장인 김성도(68·울릉군 독도리 산20번지)씨가 뇌졸중 투병 중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그의 향후 독도 상주 여부와 활동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0일 대구 동산병원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7일 독도 서도 어업인 숙소에서 물을 마신 뒤 구토 증세와 호흡 곤란 증세를 보여 경북도소방본부 헬기의 도움으로 동산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왼쪽 뇌경색 진단을 받았다.김씨는 이후 이 병원에 입원해 신경과 약물치료 등을 받은 뒤 24일 만인 이날 퇴원했다.김씨는 현재 의식을 회복해 걷는 데는 큰 지장이 없으나 음식물을 삼키지 못해 콧줄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고 있다. 김주민 담당의사는 “뇌경색이 많이 호전된 상태이지만 고령인 탓에 회복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김씨는 퇴원 후 당분간 경북 울진에 사는 딸 경화(39)씨 집에 머물면서 통원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향후 그의 독도 생활 여부에 대해 담당의사는 “앞으로 2~3개월간은 절대 안정이 필요하며 치료가 불가피하다.”며 “이후 어느 정도 안정세에 접어들면 독도에서의 간단한 생활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씨가 1991년 아내 김신렬(69)씨와 함께 독도로 주민등록을 옮겨 상주한 뒤 왕성하게 펼쳐온 독도사랑 활동은 당분간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또 김씨의 독도 연안에서의 어로 활동도 힘들 것으로 보인다.딸 경화씨는 “아버지께서 당분간 뭍에서 치료와 안정을 취한 뒤 내년 봄쯤에 다시 어머니와 함께 독도로 들어가 생활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씨는 1965년 3월 독도에 거주한 첫 주민 고 최종덕씨와 함께 1970년대부터 독도에서 전복 등 수산물을 채취하며 생활하다 1987년 최씨가 지병으로 숨지자 1991년 주소를 아예 독도로 옮기고 앞바다를 텃밭 삼아 생활해 왔다. 현재 독도에 주민등록을 둔 사람은 김씨 부부와 여류시인 편부경(53),독도 등대지기 허원신(41)씨 등 4명이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연말특집 ‘뮤뱅’, 2008 음악방송 ‘시청률 신기록’ 갱신

    연말특집 ‘뮤뱅’, 2008 음악방송 ‘시청률 신기록’ 갱신

    KBS 2TV ‘뮤직뱅크’가 올해 지상파 3사 음악방송 사상 최고 시청률을 갱신했다. 시청률 조사기관 TNS미디어코리아(전국기준·27일 발표)에 따르면 지난 26일, 연말결산 특집으로 꾸며진 ‘뮤직뱅크’(연출 정희섭·진행 유세윤 서인영)는 10.8%로 올해 음악방송 시청률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MBC ‘음악중심’, SBS ‘인기가요’, KBS 2TV ‘뮤직뱅크’는 각 지상파 방송을 대표하는 음악방송으로 2008년 한해 동안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방송은 지난 11월30일 방송된 ‘인기가요’였다. ’인기가요’는 이날 10.3%(전국기준)의 기록을 세웠었지만 ‘뮤직뱅크’가 0.5% 높은 수치로 다시 ‘음악방송 왕좌’ 자리를 꿰차게 됐다. 그간 각 지상파 음악프로그램의 평균 시청률은 4~5%에 그쳤던 것이 사실이다. 뮤직뱅크의 경우, 지난 봄 연출자 및 프로그램 개편이 이뤄지기 전 최저 시청률은 약 2%까지 하락했었다. 전국 시청률에 있어 0.1%의 고저가 실제 시청자 집계상으로는 큰 폭의 변화임을 감안해 볼 때에, 이번 ‘뮤직뱅크’의 약 11%대 기록은 당분간 깨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방송된 ‘뮤직뱅크’ 연말 결산 특집에서는 올 한해 1월 부터 12월까지 월간 K-차트 우승자였던 가수(그룹)들이 총 충동, 그 중 음반1위·시청률 선호도 1위에 오른 동방신기가 전체 집계 점수 1위로 ‘2008년 K-차트 MVP’로 선정됐다. 또 주얼리는 정규 5집 히트곡 ‘원 모어 타임’으로 모바일 1위를 차지했으며, 올해 ‘노바디(Nobody)’, ‘소핫(So hot)’으로 가장 많은 음원 판매 기록을 남긴 원더걸스가 ‘2008년 K-차트 음원 1위’의 영예를 안았다. 2008년의 마지막이자 연말특집으로 기획된 방송인만큼 이날 ‘뮤직뱅크’는 대규모 시상식 못지 않은 다채로운 ‘스페셜 무대’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국내 대표 걸그룹 소녀시대 태연, 원더걸스 선예, 브라운아이드걸스 가인, 씨야의 남규리가 팝그룹 ‘푸시캣돌스’ 무대를 재현했으며 비는 ‘I DO’(아이 두)와 ‘Rainism’(레이니즘)을 연이어 열창하는 미니 콘서트를 마련했다. 또 하반기 발라드 열풍의 두 남녀 주인공 김종국과 백지영은 각각 히트곡인 ‘어제보다 오늘 더’와 ‘총 맞은 것처럼’을 바꿔 불러 색다른 묘미를 선사했다. 이밖에 빅뱅, 원더걸스, 소녀시대, MC몽, 주얼리, 닥터피쉬 등 올 한해를 빛낸 가수들의 화려하고 이색적인 무대 구성은 ‘10%대 돌파’의 쾌거를 거둔 이유로 분석되고 있다.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올 노벨문학상 수상 르 클레지오 본지에 미발표 시 게재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는 1960년대 이후 새로운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이다.프랑스에 머물기보다 해외를 떠도는 시간이 많은 ‘유목민 작가’로도 유명한 그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2001년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찾은 그는 한국 문학과 영화에도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지난해 9월부터 1년 동안은 아예 이화여대에서 ‘현대 프랑스 문학비평’을 강의하기도 했다.그가 한국에 머물면서 친분을 쌓은 송기정 이화여대 불문과 교수를 통해 서울신문에 한국에 대한 상념을 담은 미발표시를 보내왔다.송 교수의 번역과 해설을 담아 싣는다. ■동양,서양 (역사-몽환 시)/르 클레지오 시속 사십 킬로미터의 바람이 부는 만 이천 미터 고도 위를 시속 팔백칠십 마일의 속도로 달려 네 시간 만에 빙하지역의 다리를 건너 하얀 호수,숲 툰드라를 지나왔다 그곳은 뷔름 빙하작용이 있었던 약 이만 육천 년 전부터 수천 년 동안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많은 사람들 남자들 여자들 어린아이들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지나간 곳이다 새싹이 돋아나고 월귤나무가 덤불숲을 뒤덮는 봄이 오면 그들은 태양이 떠오르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매일 아침 짐을 꾸렸다 마른 잎으로 만든 바구니에 양식거리 육포를 넣고 영원히 꺼지지 않을 불씨 버들 광주리 속에 꼭꼭 숨겼다 노인들은 등에다 부싯돌을 비끄러맸다 순록의 가죽으로 만든 요람 속에서 아이들은 칭얼거렸다 옅은 안개가 계곡에 보송보송한 바람을 가져다주고 풀밭 위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이끼 낀 돌멩이 위로 물은 졸졸 흘렀다 거리의 개들은 새벽이 오는 것을 기다리다 못해 짖어대 고 밤사이 늑대에 물린 친구를 애도하며 컹컹대곤 했다 여인들, 창과 도끼로 무장한 여인들이 사슴을 쫓아 자작나무 사시나무 숲 사이를 달리면 쫓기던 사슴은 강가에 쓰러져 죽음을 기다린다 날카로운 창으로 무장한 남자들은 곰, 그리고 부채 모양의 뿔이 달린 사슴을 사냥한다 저녁이면 언덕 위 숲 속 빈 터에 힘줄을 엮어 만든 텐트 속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잠이 든다 아마도 그들은 노래를 불렀겠지 할머니는 아이들을 재우느라 옛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한 여인이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오두막집 모양의 그녀의 긴 옷자락 조개껍질로 장식한 그녀의 머리카락은 어깨 위에서 출렁 거렸다 날카로운 그녀의 목소리가 망자들의 혼령을 부르거나 곧 태어날 아이들에게 길을 열어주기도 하였다 여인들은 산파의 도움을 받으며 강가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러고 나서 곧바로 일어나 두 발로 걸어갔다 그들과 함께 과거는 잊혀졌다 욘이라 불리던 용은 이름을 바꾸어 구름의 뱀,믹스코아틀, 날개 달린 뱀,쿠쿨칸이라 불릴 것이다 그들과 함께 네 가지 색깔도 북쪽의 흰색,남쪽의 노란색, 서쪽의 검은색,동쪽의 붉은색, 그리고 중앙에는,맞아,옥색이지 오늘날 동과 서를 잇는 다리는 잊혀졌다 비행기는 만 이천 미터의 높이에서 유배의 길 위를 날아간다 아메리카는 또 하나의 다른 대륙 동양, 서양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자신들이 길의 방향을 뒤집었음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얼굴에 담긴 평화의 메시지를 읽어내지 못한다 저 먼 곳,뉴멕시코에서 떠나기 전,비행기 타기 바로 전날, 슈퍼마켓의 주차장에서 나는 어떤 나바시 인디언의 자동차를 보았다 그 차의 번호판 위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나는 한국을 기억한다” ■ 송기정 이대 교수의 시 해설 물질문명 이전 원초적 삶에 대한 그리움 ‘역사-몽환 시’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는 르 클레지오가 뉴멕시코를 떠나 한국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 느꼈던 상념을 그린 것이다.그는 2005년 대산재단이 주최한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다.포럼 이외의 모든 일정을 마다하고 호텔로 들어가 이 시를 지었다.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날,슈퍼마켓에서 본 나바시 인디언의 ‘나는 한국을 기억한다.’는 글귀가 그로 하여금 이 시를 쓰게 했던 것이다.한국과 뉴멕시코….아주 먼 두 나라,아무 인연도 없어 보이는 한국인과 나바시 인디언….그 인디언은 왜 한국을 기억하고 싶은 것일까. 작가는 비행기를 타고 시속 870마일의 속도로 달려 산을 넘고,물을 건너고,빙하지역을 넘어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날아왔다.그러나 수천 년 전 우리의 조상들은 배를 타고 노를 저어 그리고 두 다리로 걸어가며 수천 마일,수만 마일의 여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봄이 오면 바구니에 양식을 넣고,꺼지지 않는 불씨를 소중히 간직하고서 태양이 떠오르는 곳을 향해 먼 길을 떠나곤 했던 것이다.무장한 여인들은 사슴을 쫓아 숲 속을 달리고 남자들은 사나운 짐승들을 사냥했다.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텐트 속에서 노래 부르며 잠드는 사람들,망자의 혼을 부르고 새로 태어나는 아이를 축복하기 위해 춤을 추는 무녀,강가에서 아이를 낳는 여인네들….이 시에는 아메리카 인디언들과의 교류를 통해 그들의 정신을 배움으로써 삶의 ‘다른 가치’를 추구한 작가 르 클레지오의 면모가 두드러진다.원시문명에 대한 애정,신화적 세계로의 회귀,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꿈꾸는 동시에 자연의 생명력을 예찬한 르 클레지오는 이 시에서도 현대 물질문명 이전의 원초적인 삶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다. 아시아에 살던 사람들,아메리카에 살던 사람들,유럽에 살던 사람들,그리고 아프리카에 살던 사람들….수천 년 전 지구 곳곳에 살았던 인류의 삶은 서로 다르지 않다. 동양,서양의 개념은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것일 뿐,인간은 하나이다.그러나 과거는 잊혀지고,동과 서는 대립한다.수천 년 전 우리 조상들의 얼굴이 간직한 평화를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읽지 못한다.동과 서를 잇는 다리,지금은 잊혀진 그 다리를 다시 복원할 수는 없는 것일까.
  • 서울신문 선정 10대뉴스 1위 “또 다시 구조조정”

    서울신문 선정 10대뉴스 1위 “또 다시 구조조정”

    ■국내 ●주가 폭락·환율 급등… 구조조정 확산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경기도 직격탄을 맞았다.원·달러 환율이 한때 달러당 1500원을 돌파했고 주가·펀드는 반토막 났으며 부동산 거래는 실종됐다.손실을 비관한 투자자와 증권사 직원의 자살 소식이 잇따르고 극심한 돈가뭄 속에 부도 기업이 속출했다.급기야 4분기(10~12월) 마이너스(-) 성장이 확실시돼 ‘외환위기보다 더한 위기’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구조조정이 확산되면서 대량실업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명박정부 출범… 국회 與大野小로 ‘실용과 변화’를 화두로 내세운 이명박 정부는 제2의 한강의 기적이란 국민적 여망을 안고 지난 2월 출범했다.10년 만의 정권교체는 진보에서 보수로의 ‘권력이동’이었지만 예기치 못한 쇠고기 파동과 세계적 경제위기를 맞았다.이어진 18대 총선에서도 한나라당은 과반 의석을 넘기는 153석을,민주당은 81석을 각각 얻어 ‘여대야소’의 정치 지형이 이뤄졌다.여야는 전·현직 정권의 책임 공방과 예산안 처리 등 1년 내내 대립했다. ●촛불집회로 번진 미국산 쇠고기 파동 4월17일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고 30일 PD수첩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보도하자 5월2일 첫 촛불집회가 시작됐다.중·고등학생이 시작한 촛불집회는 주부·직장인 등 전국민으로 확대됐고,대통령이 두 번씩이나 사과했다.경찰의 강경진압과 폭력시위로 평화집회가 얼룩지기도 했다.또한 정부의 협상력 부재와 소통의 부재가 얼마나 큰 민심의 분노를 살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 남북관계 급랭 지난 3월 개성 남북경협사무소 우리측 직원들이 추방당한데 이어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측 초병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남북 관계는 위기에 봉착했다.우리측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금강산 관광을 중단했다.북측은 개성관광을 중단시키는 등 남북교류에 냉기류가 형성됐다.8월 하순부터 불거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과 북한 군부의 영향력 강화로 한반도 정세는 더 불안정해졌다. ●국보 1호 숭례문 70대노인 방화로 소실 2월10일 오후 8시50분 국보 제1호 숭례문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불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이튿날 새벽 시민들은 석조기단과 1층 일부만 남긴 채 처참하게 변해 버린 숭례문의 모습에 가슴을 쳐야 했다.사회에 불만을 품은 70대 노인의 방화라지만,국가와 국민 모두의 문화재에 대한 안전 불감증이 빚어낸 예견된 재앙이었다.지금 우리의 문화재는 안전한가.다시 한번 자문해 봐야 할 시점이다. ●이건희 회장 21년만에 경영일선 퇴진 “아직 갈길이 멀고 할 일도 많아 아쉬움이 크지만 지난 날의 허물은 모두 제가 떠안고 가겠습니다.”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4월22일 기자회견을 갖고 경영 일선에서 퇴진했다.1987년 그룹 회장에 오른 지 21년 만이다.외신들도 이 회장의 퇴진사실을 긴급 타전할 정도로 큰 뉴스였다.이후 삼성그룹에는 전략기획실 해체 등 그룹 경영 전반에 걸친 혁신을 가져오게 하는 계기가 됐다. ●최진실·안재환씨 등 연예인 잇단 자살 ‘국민의 연인’이었던 최진실씨가 10월2일 서울 잠원동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그녀는 거액의 빚에 몰린 탤런트 안재환씨가 자살한 이후 그가 빌려 쓴 사채에 연루됐다는 악성 루머 때문에 괴로워한 것으로 알려졌다.그녀의 죽음으로 인터넷 ‘악플’에 대한 자성이 이어졌다.이후 트랜스젠더 연예인 장채원과 모델 김지후,그룹 엠스트리트의 이서현 등이 잇따라 자살해 충격을 줬다. ●노건평씨 구속… 참여정부 인사들 곤욕 새 정권에서 참여정부 인사들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청와대는 지난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기록을 무단 반출했다고 밝혔고,노 전 대통령은 반발했다.결국 검찰 고발에까지 이르렀다.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씨는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에 개입,30억원을 받은 혐의로 12월4일 구속됐다.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정대근 전 농협회장 등 다른 측근들에 대한 수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日교과서 독도 영유권 명기… 한·일 갈등 일본 문부과학성이 지난 7월 일본 중학교 사회과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의 자국 영유권 명기를 발표하면서 한·일간 독도 영유권 논쟁이 되풀이됐다.정부는 강력 항의하고 주일대사를 소환하는 등 한·일 관계는 냉기류에 빠졌다.정부는 실효적 지배 강화 등 대책을 쏟아내기도 했다.또 미국 지명위원회(BGN)가 독도를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변경했다가 원상회복하는 과정에서 독도 영유권 문제가 한·미간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국제 ●미국발 금융 위기… 글로벌 경제 한파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을 한 9월 이후 최대 증권사인 메릴린치가 매각되는 등 미국발(發) 금융 쓰나미가 지구촌을 덮쳤다.세계 증권시장의 동반 폭락 등 전례없이 위축되는 경제상황에 각국은 앞다퉈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고 있으나 효과는 미미하다.민간은행 국유화 등 국가의 적극적 시장개입은 향후 자본주의와 세계화가 과거와는 다른 양태로 전개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오바마,미국 사상 첫 흑인대통령 당선 미국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공화당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누르고 11월4일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탄생했다.8년 만에 집권한 민주당은 상·하원 선거에서도 압승했다.경제 부흥 및 국제적 역할 확대 등의 중대 과제를 짊어진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과정의 라이벌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에,로버트 게이츠 현 국방장관을 유임하는 등 파격적 인사정책을 펴고 있다. ●中 유제품서 멜라민… 지구촌 먹거리 공포 9월 분유 등 중국산 유제품이 함유된 식품에서 공업용 화학물질인 멜라민이 검출되면서 전 세계가 먹거리 공포에 휩싸였다.유제품의 단백질량을 조작하기 위해 멜라민을 넣은 ‘버려진 양심’으로 중국에서 유아 6명이 사망하고 5만여명이 신장결석으로 입원했다.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은 물론 미국도 검출 기준을 만들었다.‘멜라민 분유’를 만든 중국업체 중 하나인 싼루(三鹿)사는 파산했다. ●147달러→30달러대… 국제유가 ‘극과 극’ 2008년 국제유가는 극과 극을 달렸다.수급 불균형,국제 투기자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난 7월 배럴당 147달러까지 치솟았다.‘제3의 오일쇼크’를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하지만 9월 미국발 글로벌 경제위기로 4년 만에 30달러대까지 곤두박질쳤다.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내년 1월부터 하루 220만배럴을 감산하기로 결정하는 비상처방을 내렸지만,유가는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13억 中華의 힘’ 보여준 베이징올림픽 8월8일 개막된 2008 베이징올림픽은 중국 개혁개방 30년의 저력을 보여줬다.세계 204개국 1만여명이 참가한 이번 올림픽에는 장이머우 감독의 성대한 개막식과 마이클 펠프스의 수영 8관왕 신화,우샤인 볼트의 단거리 3관왕 등 전례없이 화려한 ‘기록’들이 쏟아졌다.하지만 대회 직전 불거진 티베트 독립 시위와 성화봉송 폭력사태,전 세계 반중 시위,대기오염,획일적 통제 등으로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소말리아 해적 준동… 유엔,소탕작전 결의 첨단장비와 지략을 갖춘 해적은 대담했다.올해 소말리아 연안에서 조사된 피해사례만 94건,납치된 배는 70여척에 달한다.이들이 몸값으로 챙긴 금액만 1억달러.11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형 유조선 ‘시리우스 스타’ 납치소식은 해적퇴치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을 크게 고취시켰다.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소말리아 해적 소탕작전을 육상으로 확대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중국 쓰촨성 대지진… 7만여명 사망·실종 중국 쓰촨(四川))성에서 5월12일 리히터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7만여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수십만명의 사상자가 속출하는 대참사가 빚어졌다.중국 정부는 재난복구 및 인명 구조를 위해 14만명에 이르는 군 병력을 투입했으며,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복구현장을 진두지휘했다.극한 상황에서 연일 쏟아져 나온 감동의 스토리들과 주변국들의 구호활동은 전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태국 反정부 시위… 7년여만에 정권교체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영향력이 여전했던 태국에서 11월 반(反) 탁신 시위대가 정부 청사와 공항을 점거하는 등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결국 7년6개월 만에 정권이 교체됐다.지난 2년여간 태국은 총리가 다섯번이나 바뀌는 등 극심한 혼란을 거듭했으나,영국 태생에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아피싯 웨차치와 민주당 대표가 총리에 오르면서 혼미했던 정국은 일단 진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유럽 물리학연구소 ‘빅뱅’ 재현 실험 139억년 전 우주탄생의 순간을 재현하기 위한 기념비적 실험이 9월 실시됐다.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제네바와 프랑스 국경지대 지하 100m에 길이 27㎞의 원형터널과 대형강입자충돌기(LHC)를 설치,수소 양성자 광선을 충돌시켜 소규모 ‘빅뱅 재현 실험’을 했다.실험은 이틀째에 발생한 변압기 고장에 이어 액체 헬륨 유출 사고로 중단됐고,내년 봄 재개될 전망이다. ●미얀마 덮친 사이클론… 14만명 인명피해 5월 초대형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미얀마를 강타해 모두 14만여명이 사망 또는 실종됐으며,49억달러(약 6조 6000억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미얀마 군사정부는 재난 발생 당시 이재민 구호보다 정권유지에 급급해 국제사회의 구호 손길을 뿌리치고 통제에 나서 피해는 더욱 가중됐다.아직까지 240만명에 이르는 이재민 대부분이 구호 지원을 받지 못한 채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 ‘여자 다섯 남자 넷’ 그들의 4계절… ‘Big4 콘서트’

    ‘여자 다섯 남자 넷’ 그들의 4계절… ‘Big4 콘서트’

    2008년을 가장 바쁘게 보낸 가수 브라운아이드걸스 SG워너비 이수영 윤건 등이 한자리에 모였다. 올해로 4번째 맞는 ‘빅4 콘서트’가 24, 25일 양일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 대서양 홀에서 열렸다. 매년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가수 4팀이 모여 합동공연을 하는 이 콘서트의 올해 주인공들은 뛰어난 가창력과 열정을 담아 5000여명의 관객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 4계절 컨셉…지난 겨울 봄 여름 가을 이날 공연은 감미로운 목소리로 여심을 사로잡는 윤건의 무대로 시작됐다. 직접 피아노를 치며 ‘벌써 1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더욱 애절하게 들려왔다. 이어 후배가수 정인과 ‘홍대 앞에 눈이 내리면’을 함께 불러 선후배의 우정을 실감케 하기도 했다. 스프레이 눈을 직접 뿌리며 노래를 부른 윤건은 “눈이 안 올 줄 알고 스프레이 눈을 준비했다. 콘서트 전 문방구에서 사왔다.”며 재치 있게 말문을 열었다. 이어 ‘가려진 시간 사이로’ ‘너 때문에’ 등과 내년 발매 예정인 신곡 ‘Stay’를 부르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노래 중간중간 흐르는 바이올린 선율은 그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전했다. 윤건의 바통을 받아 뛰어난 가창력과 입담을 자랑하는 이수영이 무대에 올랐다. 베일에 가려진 채 ‘I Believe’를 첫 곡으로 선사한 그녀는 베일이 거치자 “이제 흉한 모습 보여드리겠다.”며 기다란 레드 드레스를 위로 올리고 계단을 내려왔다. 동시에 관객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위에서 노래 부르니 불편했다.”며 관객석을 둘러본 이수영은 “이 의상이 장쯔이 씨가 입었던 의상인데 내가 입으니 더 아름다운 것 같다.”며 폭소를 자아냈다. 특히 4팀의 가수는 지난 겨울 봄 여름 가을을 테마로 콘서트를 진행했다. 윤건은 지난 겨울을 이수영은 봄 등을 연출했다. 이수영은 “내가 봄이다. 내 노래는 발라드가 많은데 봄에 우울한 노래 들으면 좋다.”며 다시 한번 관객에게 큰 웃음을 전했다. 한참 관객을 웃게 만든 그녀는 멜로디만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감정에 푹 빠져 노래를 불렀다. 그녀의 말대로 ‘굴비 엮듯이’ 히트곡 ‘그리고 사랑해’ ‘이런 여자’ ‘라라라’ ‘꿈에’ 등을 부르며 공연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날 세 번째 주인공인 브라운아이드걸스는 막내답게 깜찍하고 발랄한 분위기로 콘서트를 이끌어 갔다. 무대에 서자마자 그들은 “모두 다 일어나세요~”라며 관객의 호응을 끌어냈다. 브라운아이드걸스와 관객은 하나되어 ‘어쩌다’를 큰소리로 외쳤다. 첫 곡을 마치고 한 명씩 멤버 소개를 하며 “빅4 콘서트에 서는 게 소원이었다. 훌륭한 선배들과 같은 무대에서 노래 부를 수 있어 영광이다.”며 소감을 밝혔다. ‘Hold The Line’ ‘다가와서’ ‘L.O.V.E’ 등을 부른 브라운아이드걸스는 “2008년은 우리에게 정말 뜻 깊은 한해다. 골든디스크상도 받았다.”며 감격했다. 마지막 무대는 호소력 짙은 음색을 자랑하는 SG 워너비가 장식했다. 수 십 명의 가수지망생 성가대원들과 함께 노래한 그들의 무대는 웅장함이 전해졌다. ‘살다가’ ‘첫눈’ 등을 부른 후, “첫 회부터 꾸준히 이 콘서트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기존 곡을 편곡해서 불렀다.”고 말했다. # ‘빅4’는 특별한 것이 있다 이날 콘서트의 게스트로 참여한 다비치는 영화 ‘드림걸즈’의 ‘Listen’을 불러 크리스마스 이브를 장식했다. 한편 피아니스트 장세용의 연주로 이수영이 ‘광화문 연가’를 불러 더욱 색다르게 감상할 수 있었다. 콘서트가 마무리로 들어서자 브라운아이드걸스가 촛불이 켜진 케이크를 들고 ‘메리크리스마스’를 외쳤다. 윤건을 제외한 전 출연자가 나와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을 부르며 콘서트는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관객들도 다함께 노래를 부르며 크리스마스 밤을 맞았다. 한편 이날 ‘빅4 콘서트’는 8시에 시작 예정이었으나 15분 지난 후 시작해 소란을 빚기도 했다. 서울신문NTN 이현경 기자 steady101@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기후변화와 건강 첫 연계 연구 나선 장재연 교수

    기후변화와 건강 첫 연계 연구 나선 장재연 교수

    한국에서 기후변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처음 연구한 학자는 아주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의 장재연 교수다.장 교수는 지난 2003년 환경부로부터 ‘한반도 기후변화 영향평가 및 적응 프로그램 마련’이라는 프로젝트를 위탁받아 연구를 시작했다.장 교수는 이후 국내외에서 관련 연구를 계속해 왔으며 지난달에는 의료계와 학계,업계,관계 등의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기후변화 건강포럼’도 창립했다.장 교수로부터 기후변화가 한국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들어봤다. →한국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국제기구의 통계로 볼 때 한국은 자연재해가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다.한국,타이완,일본은 태풍이 지나가는 경로라서 재해가 많다는 것이다.또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1년 내의 기후 변동 폭이 매우 크다.적도 지방에서 기온이 1도가 올라가면 중위권 온대지방에서는 그 이상 상승한다고 한다.이와 함께 사회적 대응 능력도 요인이다.1990년대 초반에 후진국 질병을 다 막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나타나고 있다.대응역량이 완벽하지 못했던 것이다. →기후변화로 건강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계층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특히 취약하다.온실가스 배출은 주로 선진국에서 하고 피해는 후진국이 입는다는 말도 있지만 나라 안에서도 사정이 비슷하다.폭염이 오면 독거노인과 저소득층이 어려워진다.중산층 가정에서는 에어컨을 틀면 문제가 없지만….또 전염병은 시골에서 농사 짓는 분들이 많이 걸린다.온실가스 배출의 책임은 적고 피해는 많은 셈이다.따라서 정의나 복지의 측면에서 정부가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의료계에서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1995년 미국 시카고에서 폭염으로 많은 사람이 사망하면서 폭염과 사망의 관계를 분석하는 논문들이 처음 나왔고,이후 폭염을 기후변화와 연관시키는 연구도 시작됐다.폭염이나 재해,질병의 증가 등을 개별적인 사안으로 보지 않고 기후변화라는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을 넘어선 뒤다. →한국에서 기후변화와 건강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언제인가? -2003년에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협의가 본격화되자 우리 정부에서도 협상을 위해 건강과 관련한 영향평가를 시작했다.그러나 그런 분야에 관심이나 경험을 가진 전문가가 아무도 없었다.그래서 환경부가 나에게 그 과제를 의뢰했다.내가 환경,보건 분야의 정책 기획을 여러번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그 과제를 처음 시작할 때는 영향이 있을까 했다.그러나 분야별로 조사를 하다 보니까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일관성 있는 결과가 나왔다. →기후변화에 개개인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폭염,전염병,재해로 인한 건강 피해는 나라 전체적인 문제여서 개개인의 문제로 풀어내기는 어렵다.다만 그런 피해들을 피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좋겠다.얼마 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국제 학회에 참석했는데 큰 지진이 발생했다.그런데 현지 참석자들이 당황하지 않고 질서있게 빠져나가더라.나중에 알고 보니 지진이 날 때 어떻게 해야 한다는 교육을 다들 받았다고 한다.그 나라에서는 지진이 날 때 사망하는 이유를 모두 분석했다고 한다.이를 근거로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이다.외국에는 폭염이나 홍수 등의 재해가 올 때 개인이나 가족,그리고 지자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세한 가이드라인이 나와 있다.우리도 그런 것을 만들어 적극 홍보해야 한다고 본다. →기후변화와 건강 분야에서는 어떤 비즈니스 기회가 있을까? -정부가 기후변화와 건강과 관련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관련 교육 프로그램이나 매체가 필요하게 된다.전염병 예방 백신을 개발하면 수출도 할 수 있다.또 폭염을 예고할 수 있는 예측모델이나 소프트웨어도 나올 수 있다. 정책이 잘 만들어지면 산업은 따라가게 된다. 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8) 홀로 있는 기녀의 속마음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8) 홀로 있는 기녀의 속마음

    기생을 한 번 클로즈업 시켜 보자.그러면 신윤복의 ‘전모를 쓴 기생’(그림 1)처럼 된다.이 여인이 기생인 것은 머리에 쓴 모자를 보고 알 수 있다.이 둥글고 누런 모자를 ‘전모’라고 부른다.전모의 용도는 햇볕을 가리는 것이다.예나 지금이나 여성은 피부 관리에 지극한 정성을 들인다.오늘날 생산되는 엄청난 종류의 화장품은 기본적으로 여성의 피부를 어린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직사광선은 피부를 거칠게 하는 주범이다.전모는 곧 얼굴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햇볕 가리는 ‘전모’ 기생 외엔 거의 안써 그런데 풍속화를 보면 꼭 기생만이 이 모자를 쓰고 다닐까?조선시대 여성들은 남편이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하면,그 아내는 외출 때 유옥교,곧 지붕이 있는 가마를 탈 수 있는 것이다.앞서 기생이 단풍놀이를 떠나는 신윤복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그때 그 기생은 뚜껑이 없는 가마,즉 가마바탕을 타고 있었다.가마바탕은 햇볕을 차단하지 못한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는 사람들의 의복이나 장신구까지도 간섭하고 있었다.예컨대 상민 부녀자는 비단옷에다 금은주옥으로 만든 장신구로 자신을 치장할 수 없었다.그것이 법이었다.기생만은 이 제한에서 예외여서 사치스런 옷과 장신구로 자신을 꾸밀 수 있었다.하지만 기생에게 유옥교만은 허락되지 않았다.이 때문에 외출할 때 햇볕으로부터 얼굴을 가리기 위한 도구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곧 전모가 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사실 옛 풍속화를 보면 기생 외에는 전모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물론 의녀도 전모를 쓰지만,의녀가 곧 기생이었으니,그게 그거다.  이 기생이 전모 아래 쓴 것은,가리마다.이번 기회에 가리마에 대해 좀 더 소상히 알아보자.유득공은 ‘경도잡지’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의원,혜민서에는 의녀가 있다.또 공조와 상의원에는 침선비가 있다.모두 관동 지방과 삼남(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 뽑아 올린 기생들이다.잔치가 있을 때는 이들을 불러다가 노래하고 춤추게 한다.내의원 의녀는 검은 비단의 가리마를 머리에 쓰고 나머지는 검은 베의 가리를 쓴다.가리마는 우리나라 말로 하자면 ‘가리는 물건’이다.그 모양은 편지봉투처럼 생겨서 머리를 덮을 수 있다.”    가리마는 편지봉투처럼 생겨 머리를 덮을 수 있다고 했으니,아마도 이것은 기생의 가발,곧 가체(加髢, 다리머리)를 덮어서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재미있는 것은 원래 내의원의 의녀는 가리마를 비단으로 만들게 했으니,내의원 기녀를 옥당기생이라 해서 가장 높은 축으로 친 사정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그림을 보자.‘전모를 쓴 기생’에서 기생이 입은 저고리는 소매의 끝동만 흰 색이고 나머지 동정과 깃,고름은 모두 자줏빛 천으로 댄 반회장 차림이다.치마를 올려서 끈으로 질끈 묶어 바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신발은 붉은 가죽신이다.다른 유별난 장신구는 없지만 젊고 무언가 새치름한 표정이 사람의 시선을 끈다.  이 그림은 범상해 보이지만,당시의 맥락으로는 결코 범상하지 않다.배경을 일체 없애서 여성만 도드라지게 만들었는데,이렇게 여성의 표정까지 잡아내면서 여성의 모습을 클로즈업 하는 것은 전에 없던 것이다.그림 오른쪽에 ‘전인미발가위기(前人未發可謂奇)’라 적혀 있는데,‘예전 사람들이 그린 적이 없는 것을 그렸으니,기이하게 여길 만하다.’는 뜻이다.한국 회화의 역사에서 여성을 전면에 클로즈업 시키는 것,그리고 그 여성이 기녀라는 사실은 놀라운 사건이다.   ●신분제에 의해 강요된 신신한 삶 역시 신윤복의 작품인 그림(2) ‘연못가의 기생’을 보자.그림의 아래쪽은 연못이다.연잎이 너푼너푼 하고 활짝 핀 연꽃 한 송이,그리고 그림의 중앙 부분에는 아직 봉우리로 있는 연꽃 둘이 있다.연못이 연못인 것은 연꽃이 있어서 연못이다.연꽃이 없어도 연못이라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정약용은 ‘아언각비’서 비판했지만,이 그림의 연못은 연꽃이 있는 명실상부한 연못이다.여자는 마루 끝에 홀로 앉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무엇인가 주시하고 있다.조용한 한낮이다.여자의 옷차림은 수수하다.그림(1)의 기생처럼 외출 중이 아니기에 수수한 차림으로 있는 것이다.여자는 왼손에는 장죽을,오른손에는 생황을 쥐고 있다.문득 찾는 이 없는 조용한 한낮에 무료하여 생황을 꺼내 한바탕 불었다.여자의 왼손 바로 위에 약간 튀어나오게 그린 것이 생황의 취구(吹口)다.생황을 불고 나니,담배 생각이 난다.하여,장죽을 물었던 것이다.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기생은 찾아오는 손님이 없는 날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냈을까?기생은 한가로울 때가 있었을 것인가?한가하다면 무엇을 하는가?또 기생은 평소 자신의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아직 얻지 못했다.정말이지 장죽으로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내뱉은 뒤 저 기생은 어떤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것일까?  혹 그것은 자신에게 강요된 직업에 대한 싫증이 아닐까?기생이란 직업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신분제에 의해 강제된 것이다.기생의 업은 남자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니,기생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 아니다.기생은 오직 강제에 의해 타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살아야 하는 타율적 존재다.흔히 기생이라 하면 아름답고 호사스럽고 잘 생긴 남성과의 로맨스를 떠올리지만,그것은 현대인의 생각,특히 남자의 생각일 뿐이다.기생은 어떤 한 남자와 가정을 꾸리고 살 수 없다.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져야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지만,일반적으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어떤 남자와도 영원히 삶을 함께 할 수 없는 데서 오는 괴로움은 엄청나게 컸다.기생의 삶은 실로 신산(辛酸)했던 것이다. ●기생의 내면 엿볼 수 있는 가사 ‘청루별곡’  기생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청루별곡(靑樓別曲)’이란 가사가 있다.청루는 기방이니,곧 기방 기생의 심사를 노래한 것이다.일부분을 읽어보자.“이팔청춘 이 내 몸이 나비 눈에 꽃이로다/한궁(漢宮)에 비연(飛燕)이오,초대(楚臺)의 신녀(神女)로다/ 함양(咸陽)의 유협객과 오릉(五陵)의 귀공자로/가무를 수작하니,천금이 일소(一笑)로다.”여자는 자신을 한나라와 초나라의 전설적인 미인에 견주며 협객과 귀공자와 어울려 놀았던 세월을 회고한다.그러던 중 사랑하는 정인(情人)이 생긴다.“마음 안에 풍류랑을 황혼 가약 굳이 맺고/연리지(連理枝)에 천년 기약 운우몽(雲雨夢)이 잦았어라/은하수 오작교에 견우랑이 건너는 듯/앵무배에 자하주를 월하에 흘려 부어/금루의(金縷衣) 한곡조로 나 잡고 님 권하니/부용장(芙蓉帳) 비취금(翡翠衾)에 봄도 깊고 밤도 짧다.”봄날 정인과 함께 보내는 밤은 짧기만 하다.사랑은 깊어져서 용천검 같은 날카로운 보검으로도 끊을 수 없고,시뻘건 화로불로도 태울 수가 없다.해서 “공명도 허사이오,부귀도 꿈밖이라/굶고 <먹고,먹고 굶고,떠나 살지 마쟀더니.”라고 하면서 세상의 부귀공명을 모두 초개처럼 여기고 굶든지 먹든지 오직 헤어지지 말자고 약속한다.하지만 조물주가 시기를 하는지 귀신이 장난을 치는지,“금석 같이 굳은 맹세,구름 같이 흩어진다.”남자는 떠나고 소식이 영원히 끊어진다.이후 ‘청루별곡’은 남자를 기다리지만,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여성의 고통을 길게 노래한다.“보고지고 님의 거동 듣고지고 님의 소리/전생에 무삼 죄로 우리 양인 생겨나서/천리에 걸어두고 주야상사(晝夜相思) 그리는고?/박명(薄命)한 이내 인생 이별할 제 왜 살았노?”하지만 한 번 떠난 정인은 돌아오지 않고 여자는 “금생에 그리던 님을 후생에나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청루별곡’과 비슷한 내용의 가사는 여럿 전한다.작품이 그리고 있는 기생의 삶과 내면이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나는 늘 ‘연못가의 기생’을 볼 때마다 홀로 있는 기생의 속생각이 궁금했고,또 ‘청루별곡’ 기생의 하소연이 떠오르곤 하였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내 책을 말한다] 인구 20%가 죽은 기후 대재앙

    [내 책을 말한다] 인구 20%가 죽은 기후 대재앙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며 500년 동안 대기근이 자주 발생했음을 발견했다.사회를 뿌리째 뒤흔들 만큼 강력한 대기근도 있었다. 특히 17세기에는 이상기후로 인한 잦은 대기근으로 심각한 위기 상태에 빠졌다.이에 대한 연구가 미진해 대기근과 기후변화가 경제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알아보고자 했다.특히 최근 급격한 기후변화에 전 지구적 관심이 높아졌음을 알고 집필을 서둘렀다. ‘대기근,조선을 덮치다’(푸른역사 펴냄)는 조선 역사상,5000년 민족사상 가장 큰 규모의 대기근인 ‘경신 대기근’(1670~1671년, 현종 11~12년)을 다룬 것이다.‘경신 대기근’이라는 현미경으로 17세기 사회를 들여본 셈이다.그래서 당시 자연재해 현황을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대기근의 참혹함과 민심 동향,조정의 대책도 자세히 검토했다. 서리,우박으로 인한 이상저온 기후에 가뭄,홍수,태풍,병충해까지 겹쳐 유례없는 농작물 피해를 입었다.식량고갈 사태로 수많은 사람들이 굶고,유랑하고,도적질을 하고,살상을 하고,아이를 버리고,반란을 꿈꾸고 그리고 죽어 갔다. 무려 조선인구 510만명 가운데 100만명 가까이 죽었다.대기근이 절정에 오른 1671년 봄·여름철에 굶주린 사람은 당시 인구의 20~30%를 상회했다. 전염병과 가축병의 창궐로 민생은 파탄이 났고 사회는 불안의 늪에 빠졌다. 근거없는 괴담이 난무하는 상태에서 서인과 남인으로 나눠진 정치권은 기근 해결 방안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다.당시 청나라 건국 이후 명나라 부흥운동으로 불안한 동아시아 정세는 조선의 대기근 극복에 걸림돌이 되었다. 청의 병사 요청설,명 잔당의 조선 침입설 등으로 불안했다.조선조정은 국고가 바닥난 상태에서 군량비축곡을 방출했고,공명첩(신분 매매)을 남발했으며,각종 세금을 감면했다.그 과정에서 서인 정국이 실무형 남인에게 넘어갔고,현종 또한 건강을 챙기지 못하여 단명의 길로 들어서고 숙종이 즉위한다. 여기에만 그치지 않고 17세기 일련의 대기근이 전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시론적이나마 밝혀보고자 했다.17세기는 ‘소빙기’라고 불릴 만큼 극심한 이상기후로 기근이 끊이지 않아 위기가 일상인 시대였지만 위기 뒤에 기회도 있었다. 위기와 기회는 기후변화가 남긴 대재앙이자 ‘블루 오션’이었다.정부는 수습책 마련에 100년의 세월을 보냈지만,그 노력은 결실을 보고 18세기 영·정조 시대에는 안정을 되찾으며 다시 번영을 누렸다. 이 책의 의의는 기후사를 한국사 연구에 본격적으로 도입했다는 점,경제란을 두려워하면서 자연재해에 무관심한 지구 온난화 시대의 우리에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에 대비하도록 한다는 점, 정치사와 연기대기사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의 지식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학문의 영역을 한뼘 늘린 셈이다.100년 만에 찾아왔다는 경제위기 속에서 미국의 정권 교체기에 우리 정부가 어떻게 정책을 펴야 할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1만 6000원 김덕진 광주교대 역사학 교수
  • “봄이 왔으면 국보법이란 겨울외투 벗어야”

    “봄이 왔으면 국보법이란 겨울외투 벗어야”

     1일로 국가보안법이 생긴 지 60년이 됐다.그동안(1961년~2008년 2월) 1만 40 00여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됐다.‘반(反)국가활동’이라는 애매모호한 규정에 들어맞는 죄목은 많았다.이들 중에는 체포영장도 없이 끌려나와 죽도록 얻어맞고,불법구금을 당하고,있지도 않은 자백을 강요받은 사람도 있다.‘야생초 편지’의 저자로 유명한 황대권(53)씨도 이들 중 한 명이다. 황씨는 뉴욕에서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하던 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반국가 및 간첩 활동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미국에서 북한공작원에게 포섭돼 간첩이 된 후 국내에 들어와 극렬 학생에게 공작금을 줬다는 혐의였다. 남산 안기부 지하실에서 60일간의 고문이 이어진 후,30살 청년이 44살 중년이 될 때까지 13년 2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스스로 국가보안법의 피해자인 황씨는 “남·북의 집권자들이 정권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정당성이 없는 국보법이 오늘날까지도 계속된다는 게 답답할 따름이다.”고 했다.  황씨는 “세계 어디나 돌아다닐 수 있는 요즘같은 세상에 특정 국가에 대해서만은 접근도 안되고 얘기를 해서도 안 된다는건 구시대적 발상이다. 이미 폐지 시기가 한참 지난 국보법이 아직도 살아있는 것은 이 체제에 기대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사회의 주류이기 때문이다.국가보안법 아래서 60년을 산 것은 마치 겨울에 외투를 입고 있다가 그 속에서 따뜻하고 안전했던 기억 때문에 봄이 와도 벗기 싫어하는 심리와 같다.”고 말하며 국보법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황씨는 현재 생태운동을 하고 있다.생사를 넘나드는 독방 생활에서 맞닥뜨린 야생초,사마귀,파리,개미 등을 보며 생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그가 2001년 생태공동체운동센터 소장이 되고 2002년 ‘야생초 편지’라는 책을 내게 된 계기다.그런 그가 말하는 국보법 폐지의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다.“국보법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같은 이유를 들 거다.하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국보법은 정권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기 위한 경우가 더 많았다.진짜로 국민의 생명이 걱정된다면 형법 제8조로도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다.”  황씨와 입장을 같이 하는 사람들도 많다.지난 11월30일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는 6278명의 서명이 담긴 성명서를 내고 ‘이제 야만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했다. 단체는 ‘반공이란 명분 앞에 국가보안법이 지배하는 야만의 시대에 인간의 양심,자유,민주주의는 유린될 수밖에 없었다.’면서 ‘유엔으로부터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를 거듭 받아왔음에도 정부와 국회는 국가보안법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국제앰네스티도 같은날 성명을 내 ‘반국가행위와 간첩행위가 구체적으로 정의되지도 않고 표현 및 집회의 자유를 행사하는 사람들에게 임의적으로 적용되고 있다.’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혹은 근본적 개정을 권고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이현우 행복만발 소감 “딸기야 사랑한다!”

    이현우 행복만발 소감 “딸기야 사랑한다!”

    가수 이현우(42)가 13살 연하 새신부를 맞아 ‘노총각 딱지’를 떼는 행복한 심정을 밝혔다. 이현우는 27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엘리제홀에서 공식적으로 결혼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현우와 평생을 함께 할 주인공은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큐레이터로 활동 중인 이 모씨(29). 지난해 한 지인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미술 전공’이란 공통 코드에 힙입어 자연스레 친해졌으며 올 여름부터 본격적인 교제를 시작, 지난 10월 양가 상견례를 마치고 내년 2월 21일 결혼 날짜를 확정지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현우는 뒤늦은 결혼 소식에 시종일관 기쁨에 찬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했다. 다음은 결혼을 앞둔 이현우와의 일문일답. - 지금 소감이 어떤가? ▲ 일단 굉장히 기쁘고 얼떨떨하다. 처음 느껴 본 기분이라 두렵기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많은 관심에 감사드린다. - 왜 (기자회견에) 혼자 나왔는가? ▲ 사실 동행해서 함께 인사 드리는게 예의인데 평생을 평범하고 조용하게 살아온 사람이라 노출되는 것에 대해 힘들어 할 것 같았다. 신랑 되는 입장에서 고려해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혼자 나오게 된데 이해를 부탁드린다. -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 ▲ 프리랜서 큐레이터로 전시 기획하는 친구다. 외국계나 국내 아티스트들의 그림을 전시한다. 건강미 넘치는 스타일이다. 나와는 13살 차이가 난다. (웃음) - 신부를 어떻게 만나게 됐나? ▲ 처음에는 전시 관련 일 때문에 만났다. 나 역시 미술을 전공했고 늘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다. 어느 날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작품을 출품하면 어떠냐는 제의를 받게 됐고 그 친구가 전시 기획을 담당하게 되면서 만나게 됐다. 다른 일정과 겹쳐서 전시회는 성사되지 못했지만 좋은 만남을 얻었다. - ‘이 사람 이다’고 느끼게 된 계기는? ▲ 이전에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갈 때면 ‘야 한잔하자’는 친구가 있으면 함께 어울리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언젠가부터 그렇지가 않더라. 그냥 이 친구가 보고싶고 더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아 지금까지와 다른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문득 전화를 걸어 ‘마치 바다에서 표류하는 듯 방황하던 나를 잡아줘서 고마워’라고 마음을 내비쳤다. - 프로포즈는 어떻게 했는가? ▲ 아직 못했다. 계획이 있었는데 언론에 알려지며 결혼발표를 먼저 하게 돼 엉망진창이 된 감이 있다. 청혼은 했다. - 청혼은 어떻게 했는가? ▲ 꼬치 집에서 소주 한잔 하며 ‘결혼해 달라’고 말했다. - 첫 키스는 언제 어디서 했는가? ▲ 지난 봄, 어중간한 사이일 때 차안에서 했다. - 느낌은 어땠는가? ▲ 다들 아시잖냐.(웃음) 굉장히 달콤하고 천국이 있다면 이런 분위기 일 것 같았다. 키스 보다 키스 하기 전 두근거리고 떨리는 두근거림이 더 기억에 남는다. - 신부를 부르는 애칭이 있는가? ▲ 그 친구는 나를 ‘자기’ 라고 부르고, 나는 이름을 부르거나 ‘딸기’ 라고 부른다. (야유가 쏟아지자) 죄송하다. 그 친구가 딸기를 좋아한다. 우리끼리 있을 때만 부르겠다.(웃음) - 2세 계획은? ▲ 워낙 아이를 좋아해 되도록 빨리 낳고 싶다. 3명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 사람과 의논 후 정하겠다. 적어도 2명 이상을 생각하고 있다. 외동은 외롭다고 생각한다. 내게 조카가 많은데 ‘정신 못차리는 삼촌’으로 통했었다. 하물며 조카들도 그렇게 사랑스럽고 좋은데 내 아이라면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아이를 가지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던데 빨리 그 세상을 맛보고 싶다. - 개인적으로 결혼 준비를 하고 있나? ▲ 등산을 하는 등 몸 만들기에 돌입했다. - 신부와 장모님, 장인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 신부는 ‘멋지고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이다. 장모님께 그런 사람을 허락해 주신데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매일매일 웃게 만들어 드리겠다고 약속하겠다. 정말 아름답고 예쁘게 잘 살겠다. 그리고 딸기야(신부 예칭), 오빠 큰 실수 없이 기자회견 잘 마쳤다. 사랑해!(웃음)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 / 사진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태현 다시 모래판으로

    이태현 다시 모래판으로

    ‘4각의 링’에서 방황하던 ‘모래판의 황태자‘가 새달 1일부터 다시 샅바를 잡는다.  이태현(32)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JC컴퍼니는 26일 “이태현이 격투기 선수 생활을 접고 모래판에 복귀한다.고향팀인 구미시청에서 새달부터 본격 씨름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태현은 “격투기를 해 보니 1~2년으로 될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대구에 있는) 가족들과 떨어져 일본에서 생활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면서 “중간에 잘못된 길(격투기)에 들어섰지만 고향이자 집 같은 곳(씨름)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맺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이어 “이도 저도 안 풀리는 상황에서 제일 처음 씨름을 가르쳐 주신 초등학교 은사님(김종화 구미시청 감독)의 권유를 받았다.3개월 전부터 고민하다가 결국 결단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이태현은 “물론 겁도 난다.옛날 기량이 나온다면 천만다행이지만 그동안 전혀 (씨름을) 안했기 때문에 실력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당장은 현역 정상급 선수들에게 밀릴지도 모르지만 기왕 다시 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처음이란 마음으로 노력한다면 잘 할 자신은 있다.”고 말했다.  이태현은 지난 2006년 씨름판을 떠날 당시 소속팀 현대씨름단에 최초 계약금의 두 배인 위약금 8000만원을 물고 나온 상황이어서 복귀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2년여의 공백에 나이도 만만치 않지만 계약조건은 여전히 현역 최고 대우.계약기간 1년에 계약금과 연봉을 합쳐 1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태현은 1993년 민속씨름에 데뷔해 세 번의 천하장사와 12번의 지역장사,18번의 백두장사를 차지하면서 이만기에 이어 모래판의 제왕으로 군림했다.2006년 7월 은퇴를 선언하고 일본 종합격투기 프라이드FC와 계약을 했지만,평생을 모래판에 살아온 그에게 ‘4각의 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지난 6월 알리스타 오브레임(네덜란드)에게 패배를 당하기까지 종합격투기 전적 1승2패.  선수생활의 기로에서 고민하던 때 구미초등학교 은사인 김종화 감독이 모래판 복귀를 권했다.선뜻 결정하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현역 선수를 상대로 ‘테스트’를 했다.10번 맞붙었지만 모두 이태현의 승리.가장 무거운 청룡급(105㎏)에서 현역으로 활동 중인 친구 황규연(33·현대삼호중공업) 역시 이태현에게 용기를 불어 넣었다.  이태현은 “현재 이만기 선배와 (백두장사) 타이기록인데 그 기록을 넘어서고 싶다.무엇보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꽃가마를 타고 싶다.”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2년여의 공백을 감안할 때 이태현의 복귀시기는 내년 봄 이후가 될 전망이다.스타의 출현에 목마른 모래판에 이태현의 복귀가 단비가 될지 궁금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이춘규 선임기자 글로벌 뷰] 美·日 가계 허리띠 졸라맨다

     미국발 경제위기가 지구촌 전체로 확대·심화되면서 선진국 소비자들도 고급제품 소비를 확 줄이는 등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특히 엔고(円高)를 향유하며 상대적 안전지대로 인식되던 일본의 소비자들도 비명이 높아지고 있다.   각종 조사 결과 미국 소비자들은 올 연말 구매를 줄일 것으로 나타났다.전미소매연맹의 지난달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 이상이 연말에 할인매장에서 저가쇼핑을 할 계획이라고 답했다.시장조사업체 아메리카 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가 신용카드 사용을 줄일 것이라고 답했다.3분의1은 파산업체의 땡처리 상품을 구입하겠다고 밝혔다.지난달 발표된 딜로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과반이 내년에 경기가 더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응답자 열명 중 여섯명은 연말소비를 줄이겠다고 답했다.  일본 소비자들도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렌고종합연구소 최근 조사에서 일본인 80.8%가 ‘경기가 1년전보다 악화됐다.’고,55.8%는 ‘1년 뒤는 현재보다 악화될 것’이라고 답하며 소비삭감 뜻을 밝혔다.겨울보너스를 줄이겠다는 기업도 늘어나며 여행,레저,외식 등 불요불급한 비용은 절약하는 기류다.자동차 대신 오토바이 출퇴근족도 늘었다.  일본 고급 소나 복 등 고급식품 소비가 우선 타격을 받고 있다.고급 쇠고기 도매가격은 도쿄시장에서 1㎏에 1800~2000엔대로 전년 동기에 비해 10%정도 싸졌다.양식 복의 경우도 10월초 1㎏당 4000엔을 넘었지만,경제위기 심화로 수요가 줄어 이달 중순 주산지 도매가가 3000엔대 중반으로 떨어졌다.머스크멜론 매출도 20% 정도 줄었다.  닛케이신문은 이에 대해 “고급식품은 경기의 영향을 받기 쉽다.고베산 일본소 경매가는 1990년대 전반까지는 급등했으나 (장기불황에 따라) 그후 추락했다.2002년 (경기회복과 함께) 재상승했으나 현재는 하락 추세다.”라고 풀이했다. 소비가 위축되면서 디플레이션이 다시 올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되자 해법을 놓고 충돌이 일고 있다.일본 정부는 내수 확대를 위해 재계에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노동단체인 렌고도 “임금을 올려 외부충격에 약한 수출의존형에서 내수주도형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한다.하지만 재계는 “비상사태다.내년봄엔 거리에 실업자가 넘쳐날 것”이라고 경고하는 상황이다. taein@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읽기] (98) 인조, 백성에 사죄하다

    [병자호란 다시읽기] (98) 인조, 백성에 사죄하다

    전란은 끝났지만 인조 정권 앞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당장 도성 안팎에 버려져 있는 시신들을 치우고, 하나 둘씩 모여드는 생존자들을 구휼(救恤)하는 문제가 시급했다. 또 전쟁을 불러오고, 임금으로 하여금 일찍이 없던 치욕을 겪게 만들었던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것도 현안으로 떠올랐다. 당장 척화신들의 ‘경거망동’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하지만 척화신들을 처벌하는 것만으로 흉흉한 민심을 달랠 수는 없었다. 백성들은 청군에게 죽고, 붙잡혀 끌려가고, 삶의 터전까지 잃어버렸다. 그들의 아픔과 분노를 다독이려면 결국 인조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화약이 맺어지고 인조가 환궁한 직후 조정의 분위기는 미묘했다. 우선 무신들의 기세가 등등해졌다. 병조판서 신경진(申景 )은 회의석상에서 문관들을 매도했다.“쥐새끼 같은 자들이 나라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다.”며 목청을 높였다.‘쥐새끼 같은 자들’이란 문관들, 그 가운데서도 척화신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구굉(具宏) 또한 척화신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인조의 인척이자 반정공신이기도 했던 그는 “윤황(尹煌)이 척화(斥和)를 주장하여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 그의 목을 베어야만 한다”고 일갈했다. 일찍이 정묘호란 당시부터 후금(청)과의 화친 시도를 ‘적에게 항복하는 것’이라며 맹렬히 비난했던 윤황을 정조준했던 것이다. 나만갑은 ‘기세가 오른 무인들이 문신들을 종이나 하인들처럼 여기고, 남한산성에서 내려온 것이 마치 무슨 중흥의 계기나 된 것처럼 여긴다.’고 귀경 직후의 조정 분위기를 적었다. ●벼랑 끝으로 몰린 척화신들 호전될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 위기 상황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점차 답답한 현실에 짜증을 내게 되고 편안한 것을 찾기 마련이다. 더욱이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병사들을 이끌고 산성의 방어를 담당했던 무신들이 보기에 문신들, 그 가운데서도 척화신들은 목소리만 컸을 뿐, 성을 방어하거나 나라를 지키는 데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라고 생각할 만도 했다. 이미 1637년 1월, 지친 병사들 사이에서 ‘척화신을 묶어 보내라.’는 시위가 일어난 바 있었다. 추위와 기아에 시달리던 그들에게는 거창한 대의명분보다는 당장 따뜻한 밥 한 그릇과 편안한 잠자리가 더 절실했다. 그럼에도 ‘전원 옥쇄(玉碎)를 각오하고 결사 항전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던 척화신들의 주장이야말로 비현실적이고 우활(迂闊)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항복이 다만 ‘시간 문제’가 되고, 청이 전쟁의 책임을 척화신들에게 돌리고 그들을 묶어 보내지 않으면 항복을 받아줄 수 없다고 주장하는 판에 척화신들의 결사 항전 주장은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조가 항복했던 직후, 도성의 민심은 척화파에게 부정적이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도성으로 돌아온 백성들 앞에 보이는 것은 시체가 나뒹굴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처참한 모습뿐이었다. 절망 속에 눈에 핏발이 설 수밖에 없었던 그들은 자신들을 유린한 청군에 대한 적개심과 아울러 대의명분을 앞세운 척화신들의 ‘경거망동’ 때문에 자신들의 삶이 망가졌다는 원망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2월19일 김류, 홍서봉, 이성구, 신경진, 최명길 등 대신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나라를 그르친 사람들의 죄를 따지는’ 자리였다. 윤황, 이일상(李一相), 유황(兪榥), 홍전(洪 ), 조경(趙絅), 유계(兪棨) 등 척화신들의 ‘과오’가 도마 위에 올랐다. 논의 결과를 보고받은 뒤, 인조는 이들 모두의 관작을 삭탈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조경은 문외출송(門外黜送), 윤황·유황·홍전·유계 등은 유배, 이일상은 가장 무거운 절도(絶島) 정배의 명령을 받았다. 척화신 대부분을 조정에서 쫓아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바야흐로 척화신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었다. ●인조, 백성 원성에 위기감 척화신들을 처벌했지만 인조 또한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2월8일, 심양으로 끌려가는 소현세자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서 인조는 한 노파의 원망 섞인 통곡 소리를 들었다.‘여러 해를 두고 강화도를 수리하여 백성들을 의지하게 했는데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더냐. 나라의 책임을 맡은 자들이 날마다 술 마시는 것을 일삼아 백성들을 모두 죽게 했으니 이것이 누구 탓인가? 자식 넷과 남편이 모두 죽고 다만 이 몸만 남았다. 하늘이여, 하늘이여. 어찌 이런 원통한 일이 있단 말인가.’ 가족을 모두 잃은 노파의 한탄은 사실 인조를 향한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이번 전란 때문에 삶이 망가진 모든 백성들의 원망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인조는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2월19일 인조는 내외의 군인과 백성들에게 내리는 교유문(敎諭文)을 발표했다. ‘덕이 부족한 내가 대위(大位)에 있은 지 15년에 오직 대의(大義)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뜻밖의 화를 만나 외로운 성에서 포위 당한 채 봄을 맞았다. 나는 지금 해진 갖옷을 입고 거친 밥을 먹는 것이 일반 천민과 다름이 없고, 자식을 사랑하고 돌보는 마음은 천성인데 나는 지금 두 아들과 두 며느리를 모두 북쪽으로 떠나보냈다. 돌아보건대 백성을 기르는 자리에 있으면서 나 한 사람의 죄 때문에 모든 백성에게 화를 끼쳤다. 군사들은 전장의 원혼(魂)이 되게 했고, 죄 없는 백성들은 모두 포로가 되게 하여, 아비는 자식을 보호하지 못하고 지아비는 지어미를 보호하지 못하게 하여 가슴을 치고 하늘에 호소하게 하였다. 백성의 부모가 되어 이 책임을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 이 때문에 고통과 괴로움을 머금고 오장이 에는 듯하여 뜬눈으로 밤을 새운다.’ 솔직하고 처절한 내용이다.‘나의 죄’ 운운하면서 전란 발생과 백성들의 고통이 모두 자신 때문에 빚어진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이렇게 스스로를 낮추고 백성들에게 머리를 숙인 국왕은 일찍이 없었다. 인조는 그러면서 백성들에게 다짐했다.‘이제 묵은 폐단과 가혹한 정치를 모두 없애며, 사당(私黨)을 없애고 공도(公道)를 회복하며, 농사에 힘써 남은 백성들을 보전하려 한다. 그대 팔도의 신민들은 지난날의 잘못 때문에 나를 버리지 말고, 상하 합심하여 어려움을 널리 구제할지어다.’ 이제 잘 해보겠으니 도와달라는 당부이자 호소였다. ●의심받는 인조의 진정성 처절해 보이기까지 하는 ‘사과 성명’을 읽으면 인조는 분명 병자호란을 계기로 대오각성한 듯이 보인다. 하지만 성명 발표 전후 인조가 취한 조처들을 보면 그리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으로부터 강화도로 들어갈 수 있는 시간 여유를 빼앗고, 엄청난 수의 백성들을 죽거나 포로가 되게 했던 장수들에게 군율 적용을 기피하려 했던 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1637년 2월 삼사 신료들은, 특히 죄가 무거운 김자점·김경징·장신 등에게 엄격한 군율을 적용하라고 촉구했다. 종사를 위태롭게 하고 수많은 생령들을 죽거나 끌려가게 만들었느니 복주(伏誅)해야만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인조는 김경징과 장신에게 극형을 내리는 것을 꺼려했다. 신료들의 채근에 ‘김경징이 거느린 군사는 매우 적었고, 장신은 조수(潮水) 때문에 배를 통제할 수 없었다.’며 두 사람을 비호했다. 강화도를 방어할 준비를 내팽개쳤고, 함께 싸우자는 부하들의 호소도 묵살하고 달아났던 두 사람의 실제 행적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현실과 동떨어진 상황 인식이었다. 인조는,‘제대로 정죄(定罪)하지 않으면 종묘사직의 영혼을 위로할 수 없고 신인(神人)의 분노를 풀 수 없다.’는 신료들의 거듭된 요청에 밀려 마지못해 두 사람을 사형에 처했다. 하지만 김자점은 끝내 유배형에 그치고 말았다. 김경징과 김자점이 모두 인조를 왕위에 올려놓는 데 앞장섰던 공신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인조의 태도가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을 비호하려 했던 인조의 자세는 ‘사당을 없애고 공도를 회복하겠다.’던 교유문의 먹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나왔다는 점에서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것이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무화과 年 2차례 수확 성공

    전남 영암 등 서남해안 지역이 주산지인 무화과를 연간 2차례 수확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됐다. 전남도 농업기술원 과수연구소는 18일 ‘웰빙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무화과 2기작 기술개발에 성공, 농가 보급에 나섰다고 밝혔다. 농업기술원 연구팀은 비닐하우스 안에서 무화과를 재배해 지난 9월 중순 1차 수확을 마친 뒤 가지 자르기 작업을 통해 새로운 가지에서 열매를 맺는 데 성공했다. 여름철~가을철 수확이 끝난 뒤 다시 열매를 맺어 이듬해 3~5월 2차 수확이 가능해진다. 특히 봄철은 단경기라서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만큼 농가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현재 영암군 삼호면 이모(44)씨가 무화과 2기작 재배기술을 이전받아 재배하고 있으며, 내년 봄 10a당 5000만원의 소득이 기대된다. 이는 2006년 기준 10a당 소득이 가장 높았던 시설오이가 1357만원, 무화과 관행 재배 335만원, 쌀 47만 9000원 등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이 재배법은 겨울철 난방비가 많이 드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농업기술원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태양열을 저장한 축열 물주머니와 지하수를 이용한 수막재배 방법 등을 통해 겨울밤 온도를 무화과 생육에 적합한 15~17도로 유지하는 방법도 고안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뉴욕 문화 키워드 따라잡기

    [한국의 미래-위기를 희망으로]뉴욕 문화 키워드 따라잡기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실시한 ‘2008년 문화향수 실태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가 열렸지만 아직도 우리 국민의 대표적 여가 활용 수단은 대부분 ‘텔레비전 시청’과 ‘집에서 쉬는 것’이다. 여가 시간에 예술 감상을 하는 비율은 평일 1.6%, 휴일 4.5%에 불과하다. 평균적인 한국인은 미술 전시회를 5년에 한 번, 클래식 공연과 오페라는 10년에 한 번 꼴로 찾는다. 무용 공연은 30년에 한 번 갈까말까할 정도다.‘한류’로 우리 문화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지만 문화적 토양은 아직도 척박하기만 하다. |뉴욕 박건형특파원|밤에도 낮처럼 거리를 밝히는 네온사인과 대형 광고판의 향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전세계 연예지망생이 몰려드는 곳.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의 첫 인상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다. 타임스퀘어를 따라 이어지는 브로드웨이 곳곳에는 ‘오페라의 유령’,‘시카고’,‘그리스’ 등 전세계인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초대형 뮤지컬들이 여전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러나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브로드웨이는 사상 최악의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브로드웨이를 구한 녹색마녀 브로드웨이의 불황은 전세계적인 금융위기 때문이 아니다.1900년 42번가에 빅토리아 극장이 문을 연 이후 시작된 브로드웨이의 역사는 실물경기보다는 히트작의 유무에 의해 움직였다. 관객 대부분이 문화를 향유하기 위한 관광객들이기 때문이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캣츠’,‘오페라의 유령’,‘에비타’ 등 신작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전세계에서 구름같은 관객이 몰려들었고 그 인기는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20년을 넘도록 이어졌다. 그러나 2001년 ‘맘마미아’ 이후 브로드웨이는 히트작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영프랑켄슈타인’,‘인어공주’ 등 기대작들은 혹평에 시달렸고, 관객점유율 급감이라는 시나리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헤어스프레이’,‘에비뉴Q’ 등 코미디물만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수준이다. 할인 티켓을 판매하는 TKTS에서 근무하는 크리스티나씨는 “좋은 좌석의 할인 티켓이 쏟아지다 보니 정가를 주고 사전예매하는 사람들은 아시아 지역에서 온 관광객들뿐”이라면서 “초여름의 토니상을 겨냥해 봄시즌에 새로 오픈한 공연들 중 일부는 적자만 보고 1년 안에 문을 닫는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불황에도 승승장구하는 작품은 있다.2003년 10월 초연된 이후 최고의 블록버스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위키드(Wicked)’가 공연되는 조지 거슈윈 극장 앞은 매일 오후 사람들로 북적인다. 매회 계속되는 매진 행렬 때문에 극장측이 실시하고 있는 ‘위키드 로터리’ 행사 때문이다. 공연 2시간 30분전이면 사람들이 각자 이름을 적어넣은 통을 돌려 20명에게 티켓 2장씩을 25달러에 판매하는 이벤트다. ●끊임없는 콘텐츠 재생산 위키드는 ‘서쪽의 사악한 녹색마녀(Wicked Witch of the West)’에 대한 얘기다. 마녀 엘파바는 태어날 때부터 온 몸이 녹색이었고, 강력한 마법력을 가졌다. 가족들의 사람을 못 받은 엘파바는 친구의 연인과 사랑에 빠지지만, 그의 마법을 사악하게 이용하려는 마법사의 음해로 세상에서 버림받고 서쪽의 나쁜 마녀로 각인된다. 엘파바가 극 중에서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곳은 ‘에메랄드 시티’, 나라의 이름은 ‘오즈’다. 다시 말해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의 새로운 변주곡인 셈이다. 공연의 타깃은 어린이부터 나이 든 노부부에 이르기까지 전연령을 망라한다. 연기를 내뿜는 거대한 용이나 녹색으로 가득 찬 무대조명도 경이롭지만 관객들은 도로시, 허수아비, 사자 등 무대에는 제대로 등장하지도 않는 추억의 파편들에 탄성을 지른다.‘파퓰러(popular)’,‘원더풀(wonderful)’ 등 따라부르기 쉬운 노래들도 이같은 인기에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미국 ABC의 인기드라마 ‘어글리 베티’에 등장하는 베티의 가족들은 끊임없이 파퓰러를 흥얼거린다. 드라마의 인기가 또다시 위키드에 영향을 미쳐 관객이 급증했음은 물론이다. 하나의 콘텐츠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은 위키드만의 얘기는 아니다. 브로드웨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작품들은 대부분 소설에서 시작돼 연극, 영화, 뮤지컬, 아동극까지 확대돼 왔다. 소설이 번역돼 읽히면서 줄거리 전체를 알고 있는 관객들은 언어의 문제에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라이언킹 속 동물이 무대 위에 구현되거나 오페라의 유령 속 샹들리에가 관객석을 따라 오르는 장면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브로드웨이에서 ‘점프’ 장기공연을 이끌고 있는 예감의 김민섭 실장은 “소설에 기반한 탄탄한 스토리를 무대에 접목하는 시스템은 영국 웨스트앤드와 브로드웨이 두 곳에서만 할 수 있는 방식”이라면서 “이들이 수백년 동안 축적해 온 콘텐츠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 한국산 콘텐츠의 브로드웨이 진출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브로드웨이보다 실험적인 공연이 올려지는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지금까지 장기공연에 성공했던 국산 공연은 ‘난타’와 ‘점프’ 등 두 개에 머물고 있다. 두 작품 모두 국내에서의 장기공연을 통해 노하우를 쌓았고, 현지 공연도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난타의 경우 1년 6개월 만에 공연을 접었고, 점프 역시 지난 7월까지 10개월여만 공연한 후 휴식기에 접어든 상태다. 김 실장은 “점프는 태권도라는 무술에 대한 외국인들의 호기심과 논버벌이라는 장르를 통해 언어의 장벽을 없앴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면서 “다만 스토리라인이나 음악 등 공연의 핵심적인 요소에서는 아직까지 보완할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kitsch@seoul.co.kr ■ 미드 ‘프렌즈’ 로고만 찍혀도 가격두배 껑충 |LA·오사카 박건형특파원|“이 컵 하나를 밖에서 사려면 5달러에서 10달러면 충분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인기 TV드라마 ‘프렌즈’ 로고가 찍혀 있으면 20달러를 훌쩍 뛰어넘죠. 단순히 프린트에 불과한 이 로고 하나가 최소한 10달러의 가치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미국 LA 할리우드에 자리잡은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 아치형의 지붕을 가진 거대한 스튜디오가 줄지어 있는 사이로 영화와 드라마 속에 등장했던 풍경들이 스쳐 지나간다. 안내를 맡은 홍보팀의 다니엘 마이어 팀장은 ‘문화 콘텐츠의 부가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90여년의 역사를 가진 워너브러더스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스튜디오 자체가 아닌 작품들이다. 카사블랑카, 더티해리, 폴리스아카데미부터 근래의 해리포터, 배트맨, 매트릭스 등으로 구성된 영화와 ER, 프렌즈로 이어지는 드라마 라인업은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 문화의 힘’을 과시하기에 충분하다. 스튜디오내 투어는 45달러라는 적지 않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할 만큼 인기가 높다.ER가 촬영되는 응급실 세트와 카사블랑카에서 등장했던 카페, 프렌즈에서 친구들이 모였던 ‘센트럴 퍽’ 등 실내 세트는 물론 ‘길모어 걸스’의 배경이 된 마을도 구경할 수 있다. 박물관에서는 매트릭스와 배트맨 등에 사용됐던 차량과 해리포터 의상 등이 관람객을 기다린다. 실제 촬영이 진행되는 곳인 만큼 유명 스타를 만나는 행운도 잡을 수 있다. 시트콤 ‘투앤드어하프맨’을 촬영하기 위해 스튜디오를 찾은 영화배우 찰리 신은 “촬영에 직접적인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를 비롯해 파라마운트, 소니콜롬비아 등 할리우드 근처에 자리잡은 스튜디오들이 콘텐츠의 풍부함을 과시하는데 힘쓰고 있다면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우드’는 보다 공격적이다. 거대한 테마파크인 스튜디오내에는 백투더퓨처, 터미네이터, 슈렉, 조스 등 실제 영화 속에 등장했던 장면들이 놀이기구로 재현돼 있다. 관광객들은 아낌없이 돈을 내고 최대한 많은 놀이기구를 즐기기 위해 뛰어다니느라 분주하다. 스튜디오 안내소의 엘레나 영씨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가장 직관적으로 영화를 비롯한 문화콘텐츠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면서 “관람객들 대다수가 할리우드 문화에 대해 더 높은 선호도를 갖게 됐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고 밝혔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미국식 문화는 아시아 지역에서 특히 탁월한 힘을 발휘한다. 할리우드를 찾는 중국 관광객이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고, 오사카의 유니버설 스튜디오나 도쿄 디즈니랜드도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경우 일본의 교토와 나라, 오사카로 이어지는 관광코스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하고 있으며 디즈니랜드 역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 관계자는 “대다수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미국식 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성공비결”이라면서 “일부 콘텐츠를 일본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거의 다 성공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반면 홍콩과 파리의 경우는 좀 다르다.2005년 9월 문을 연 홍콩 디즈니랜드의 경우에는 토종 해양공원인 ‘오션파크’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고,1992년 문을 연 파리 디즈니랜드는 폐쇄 직전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파리 디즈니랜드의 실패는 철학이 부족한 자국의 문화에 대한 강력한 자존심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내에서는 디즈니랜드 개장을 둘러싸고 미국 문화 침투에 대한 각계각층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이화여대 불문과 송기정 교수는 “프랑스인들은 직접적이고 침투에만 치중하는 미국 문화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을 갖고 있다.”면서 “다양한 문화를 찾는 프랑스식 문화와 미국 문화는 사실상 상극”이라고 말했다. kitsch@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30년만에 뮤지컬 ‘고교얄개’ 이승현

    [김문기자가 만난사람]30년만에 뮤지컬 ‘고교얄개’ 이승현

    인생을 정신없이 살다가 중년의 나이에 딱 어느 하루쯤이다. 20~30년 전의 ‘나’를 만나 데이트를 한다면? 당신은 과연 무슨 말부터 시작하고 어떻게 하루를 같이 지낼 거나. 무대 구석에 조명이 들어온다.40대 후반의 ‘나두수’가 등장한다.(객석을 향한 독백)참 세월이 빠르죠. 저도 여기까지 오는 데 한 30년은 넘게 걸린 것 같아요.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 하더니만 틀린 말이 아닌가 봐요. 바람이 차가워지면 사람이 추억에 잠기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옛날 생각나고, 몰려다니던 친구들, 옛날에 가던 빵집, 영화관이 떠오르고, 그리고 첫사랑. 영아, 오영아~ 나두수는 유재하의 ‘지난날’을 부른다.‘지난 옛일 모두 기쁨이라 하면서도~’ 이어 학창시절의 자신을 만난다. 젊은 두수: 어? 누구세요? 중년 두수: 나, 나두수다. 30년 후의 바로 너. 젊은 두수: 나라구요? (중년두수를 훑어본다) 야, 너 왜 이렇게 망가졌냐? 관리 좀 하지. 중년 두수: 너도 내 나이 돼 봐. 그게 쉽나. 그건 그렇고 이 자식이 왜 반말이야! 젊은 두수: 씨이, 아저씨가 나래매요. 자신한테 존댓말 쓰는 사람이 봤냐... 구요. 아무튼 그래서 대체 누구신대요? 중년 두수 : 내가 너라니까? 젊은 두수: 아 진짜 쪽 팔려, 아저씨가 나라는 증거를 대보시죠. 세월이 지난 중년의 ‘나’와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의 ‘나’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나’라는 증거가 쉬이 나올 리 만무하며 소통 또한 썩 잘 될까 걱정이다. 어쨌거나 둘이 지낸 하루가 어떠했을지는 작가적 상상에 맡겨보자. 여기에 등장하는 ‘중년 두수’가 바로 하이틴의 우상으로 한때를 풍미했던 배우 이승현(47)씨.1977년 영화 ‘고교얄개’ 를 비롯,24편의 얄개 시리즈에서 주인공 ‘얄개’를 맡아 1970년대 중·후반의 스크린을 휘어잡았다. 당시 5만 관객만 들어도 흥행성공이었지만 ‘고교얄개’는 무려 25만명이 넘을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런데도 얄개는 어느날 팬들의 곁을 홀연히 떠났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이름도 점점 잊혀져 갔다. 몇 번의 국내 컴백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그럴 때마다 이상한 소문만 무성했다. 이런 그가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뮤지컬 ‘돌아온 고교얄개’(주원성 연출·내년 1월4일까지)에서 중년의 두수가 되어 추억의 팬들과 다시 만나고 있다. 세월속에 쪼그라진 지금과 꿈 많던 학창시절의 ‘얄개’를 만나 회상하는 형식이어서 이 가을에 잔잔한 추억을 선사한다. 그는 다섯살 때 영화에 데뷔,20여년 동안 무려 40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주연만 100여편을 맡았다. 또 80여편의 드라마에도 출연했으니 웬만한 30대 후반 이상의 팬들은 왕년의 얄개 모습을 여전히 생생 스토리로 기억하고 있다. 현재에도 포털사이트에 얄개팬클럽 회원만 5000여명에 이른다. 서울 정동 이화여고100주년기념관에서 데뷔 40여년 만에 오랜 침묵을 깨고 뮤지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이씨를 만났다. ▶뮤지컬 무대에는 처음 서는 것으로 압니다. -맞습니다. 사실 늘 긴장이 됩니다. 한달 정도 연습을 했는데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과는 확연히 달라요. 미흡한 점이 많지만 노래와 대사 등이 버무려지는 뮤지컬 특유의 맛을 느끼고 있습니다. 웃음을 일궈내고 관객들한테 박수도 많이 받아 기분도 좋습니다. 또 지난날의 나였던 젊은 두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찡하고 그래요. ▶어떻게 뮤지컬을 하게 됐습니까. -제가 올 2월에 ‘잘될거야’라는 음반을 냈습니다. 이때 주위에서 뮤지컬을 한번 해보자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그러던 중 ‘진짜진짜 좋아해’를 만든 제작진에서 교복세대를 위한 추억의 우리 뮤지컬을 만들자는 취지로 ‘돌아온 고교얄개’를 준비했지요. ▶팬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객석을 꽉꽉 메워 주시니까 기분이 무척 좋아요. 왕년에 추억의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던 아줌마 아저씨는 물론 요즘의 젊은 연인들도 많이 오는 것 같아요. ▶하이틴의 우상으로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훌쩍 떠난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요. -그때 군사정권 시절이었지요. 가요계에는 금지곡이 많이 있었고 영화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검열도 심했고, 그때 제가 우상으로 너무 뜨니까 중앙정보부에서 은연 중 압박이 왔어요. 우상이라는 게 용납이 안 됐습니다. 특히 하이틴의 우상이라고 하니까 말이죠. 당연히 의욕이 꺾일 수밖에요. 그렇게 주춤하던 차에 서울에서 음식업을 하던 어머니의 사업이 실패하고 말았지요. 하루아침에 몰락하자 저는 영어공부나 하겠다며 달랑 3000달러만 갖고 캐나다로 혼자 떠났습니다.26살 때였지요. 캐나다 토론토에 도착한 그는 랭귀지스쿨을 마치고 영화역사를 공부하려고 토론토대학 1학기 과정을 다녔다. 하지만 돈이 쪼들리게 되자 공부를 포기하고 식당일이며 지렁이잡기 등 돈이 되는 일은 가리지 않았다. 사는 곳도 토론토에서 몬트리올과 캐나다 북부의 위니펙 등을 전전했다. 그렇게 7년, 어머니의 부름을 받고 1993년 10월에 귀국했다. 곧바로 어머니와 함께 필리핀으로 갔다.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공부를 했다. 그러던 1995년 필리핀 현지 목사의 소개로 유학 온 한국인 여성을 만나 결혼했다.2년 뒤 귀국한 그는 처가가 있는 대전에 살림을 차렸다. 마땅한 돈벌이가 없어 부인과 함께 만두가게를 열었다. 만두도 직접 만들고 배달도 했다. 1998년 어느날 옛고향인 서울 충무로를 찾았다.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을 잡고 충무로에서 여관을 하던 어머니 친구한테 놀러 갔다가 조긍하 감독의 눈에 띄어 영화에 첫 출연하면서 배우인생이 시작된 곳이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낯설었다. 다행히 지인을 만나면서 그렇게 원하던 영화 한 편을 찍게 됐다. 전무송, 박준규 등이 출연한 ‘블루스’에서 조폭 중간보스역을 맡았다. 하지만 흥행에 실패하면서 세인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다시 절망을 한 그는 대전에서 공중전화기와 감식초 판매일을 했다. 그러던 2001년 후배와 함께 영화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투자자를 잘못 만나는 바람에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이 무렵 부인과 이혼하는 아픔까지 겪었다. 술만 마시고 자살하려고 한강까지 갔다. 어린 아들과 어머니의 얼굴이 생각나 포기하고 돌아왔다. 마음을 다시 고쳐 먹은 그는 지방의 문화행사 등에 쫓아다니며 근근이 입에 풀칠을 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얄개는 울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KBS의 ‘인간극장’에 등장,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팬클럽과 ‘얄개 이승현 살리기 운동본부’까지 생긴 것도 이때였다. “올해는 다시 시작하는 해입니다.‘잘될 거야’라는 음반을 내자 방송출연도 이어지고 있고, 영화 출연제의도 들어오고, 공연중인 뮤지컬도 반응이 좋구요.” 내년 봄에는 TV 방송 드라마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그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만큼 앞으로는 진정한 프로의 모습으로 방송이든 영화든 닥치는 대로 하면서 팬들과 만나겠다.”고 했다. 아울러 ‘고교얄개’ 이상으로 대박을 터뜨릴 영화 한 편을 꼭 만들겠다고 했다.2대독자인 그는 슬하에 초등6년생의 아들을 두었다. 재결합한 부인과 함께 대전에서 산다. 영문학을 전공한 부인은 동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이승현은 누구 ▲1961년 서울 출생. ▲66년 조긍하 감독 ‘육체의 길’ 영화데뷔. ▲68년 동양방송 아역 탤런트 데뷔. ▲77년 ‘고교얄개’ 빅히트, 이후 24편의 얄개시리즈 주인공 출연. ▲80년 경복고 졸업. ▲82년 장안대 졸업. ▲86년 캐나다 출국.7년동안 토론토 몬트리올 위니펙 등에서 지냄. ▲93~97년 필리핀에서 신학공부 및 선교활동. ▲98년 귀국. 영화 ‘블루스’ 조연출연. ▲2008년 2월 음반 ‘잘될 거야’ 출반. ▲08년 11월 뮤지컬 ‘돌아온 고교얄개’ 출연 중. ●주요수상 청룡영화상(1972,73), 대종상특별상(73), 백상예술대상(74,75), 국무총리상(75)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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