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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시각] 반면교사 삼아야 할 풍도/손원천 문화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반면교사 삼아야 할 풍도/손원천 문화부 부장급

    새삼스러운 얘기 하나 하자. 자연을 아끼자는 것이다. 요즘 얼마나 많은 이들이 환경보호를 위해 애쓰는데 웬 뜬금없는 소리냐고 힐난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서해에 풍도(豊島)라는 작은 섬이 있다. 행정구역상 경기도 안산시에 속한다. 승봉도와 대난지도 등 서해의 명승지와 인접한 섬으로, 주변에 수산자원이 풍부해 ‘풍(豊)도’라 불린다. 풍도가 뭍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데는 무엇보다 이른 봄 피어나는 야생화의 공이 크다.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 홀아비바람꽃 등이 양지바른 언덕에 많이 자란다. 이 섬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식물도 두 종이나 길러냈다. 풍도바람꽃과 풍도대극이다. 풍도가 ‘야생화의 천국’이라 불려 온 것도 그런 까닭이다. 하지만 그 탓에 섬이 몸살을 앓는 역설도 생겼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양탄자처럼 숲을 뒤덮었던 몇해 전과 달리, 최근엔 야생화 개체수가 확연히 줄었다. 사람의 발길이 뜸했던 숲 사이로 ‘번듯한’ 오솔길도 생겼다. 한 사람이 걸어 간 흔적을 따라 뒷사람이 걷고, 그러다 보니 길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주민들은 관광객들이 야생화를 뿌리째 캐 가기도 하고 꽃을 보호하는 낙엽도 흩어 버린다며 아우성이다. 급기야 안산시 측에서 섬을 야생화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꽃과 사람들 사이에 인위적인 장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너나없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가까운 거리에서 자연과 함께할 수 있었을 것을, 이젠 먼 발치에서 바라봐야 할 지경에 이르고 만 셈이다. 올해 초 방문한 충남 태안의 가의도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 섬 역시 야생화 많기로 은근히 입소문이 났다. 취재 중 만난 몇몇 섬 주민들은 신문에 홍보를 잘 해 많은 사람이 찾게 해달라고 하면서도, 섬에 야생화가 많으냐고 물으면 어김없이 “많긴 많은데….”라며 말수를 줄였다.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건 좋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발길에 섬 야생화들이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일들을 꼽자면 부지기수다. 특히 해마다 열리는 꽃축제장에서는 어김없이 볼썽사나운 일들이 빚어진다. 지난해 가을 전북 정읍시 산내면 매죽리의 옥정호 구절초 축제장에서 겪었던 일이다.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야트막한 동산에 소나무 군락지가 있고, 그 안에 구절초 꽃밭이 조성돼 있었다. 듣던 대로 휨새 좋은 소나무들과 어우러진 구절초 꽃밭의 자태는 장관이었다. 워낙 입소문을 탄 곳이어서 이른 아침부터 사진작가들이며 관광객들이 적지 않게 찾아 들었다. 그런데 인적 드문 축제장 한편에서 아주머니 몇분이 난간을 넘어 슬며시 꽃밭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철퍼덕 주저앉아 꽃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여리디여린 구절초로서야 그네들이 디딘 만큼 상처를 입을 수밖에. 이번엔 일단의 사진작가들이 꽃밭을 찾았다. 그들 역시 아무렇지 않게 난간을 넘어 성큼성큼 꽃밭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좀 더 자신이 원하는 구도를 잡기 위해서였을 터다. 도무지 거리낌 없는 행태에 부아가 치밀어 그렇게 마구 꽃밭에 들어가도 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던지고는 사진 찍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정말 꽃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던 걸까. 늘 그렇듯 말썽을 빚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다. 하지만 이런 일부의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 때문에 자연은 상처받고 신음한다. 한 블로거는 자신의 블로그에 ‘풍도 야생화의 비극’이란 글을 올려 “풍도 야생화 단지에 가면 늘 후회하고 꽃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고백했다. 풍도에 인위적인 장벽이 쳐진다고 상상해 보자. 흠집 내지 않고 꽃의 아름다움을 완상할 자신이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상식이 의심받는 것 같아 몹시 기분이 상하지 않을까. 요즘 자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높다. 하지만 여전히 상식이 미치지 않는 곳도 있다. 상처 입은 풍도를 보며 다시 한번 자연을 아끼는 마음을 다져야 할 때다. angler@seoul.co.kr
  • 무대 위 12년차 부부는 결혼 환상이 깨지고 파경을 맞지만… “실제 결혼생활은 달콤 그 자체죠”

    무대 위 12년차 부부는 결혼 환상이 깨지고 파경을 맞지만… “실제 결혼생활은 달콤 그 자체죠”

    뮤지컬 ‘아이다’와 ‘헤드윅’, ‘노트르담의 꼽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 굵직한 무대의 주연으로 열연한 배우 이석준. 그가 올 봄, 2개의 연극 작품으로 대중에게 말을 건다. 중년 부부의 삶과 애환을 다룬 연극 ‘디너’, 그리고 배우 예지원과 호흡을 맞추는 2인 음악극 ‘미드썸머’가 바로 그것. 19일 저녁 연극 ‘디너’가 공연되고 있는 서울 신촌의 ‘더 스테이지’ 극장에서 재치있는 배우 이석준을 만났다. 연극 ‘디너’는 12년차 부부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다. 결혼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현실의 바닥 끝까지 곤두박질치게 하는 냉정한 연극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석준은 ‘디너’에서 화가인 아내 ‘베스’와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항공사 예약팀장 ‘낸시’와 새로운 삶을 만들어 나가는 ‘탐’ 역을 맡았다. ●“추상미, 부인이자 소중한 친구” 인터뷰 당일, 부인인 배우 추상미가 저녁 8시 공연을 관람할 예정이라며 그는 긴장했다. “극 중 아내 베스와 싸우는 장면이 있어요. 실제 저희 부부도 자주 싸우거든요. 물론 제가 매번 지긴 하지만요(웃음). 근데 싸우는 장면에서 한두 번 저도 써봤던 대사들이 등장해요. 괜히 집에 가서 불편해 질까 봐 오늘은 수위를 낮춰 표현해 보려 합니다 (웃음).” 그의 아내 추상미는 이날 오후 8시 공연에 지인들과 함께 극장을 찾아 관람했다. 남편이 등장해 재치있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그녀는 크게 웃었다. 이석준·추상미 부부는 2003년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남녀 주인공으로 발탁돼 인연을 맺었다. 뮤지컬 헤드윅 무대에서 그는 추상미에게 드라마처럼 공개 청혼을 했고, 2007년 11월 5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디너’에선 부인과 갈등을 겪고 결국 파경에 이르지만, 실제 결혼생활은 ‘달콤’ 그 자체란다. “저희 부부는 상호보완적인 면이 많아요. 저는 무대 위에서 자의식이 강한 배우는 아니었죠. 근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공연 당시 그 친구가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상미씨를 통해 배우의 자존감과 자신감 등을 갖게 됐어요. 작품을 보는 눈의 폭도 넓어졌고요. 둘 다 예술적인 감성을 나누는 코드가 너무 똑같아요.” 연일 연극 연습에 매진하느라 피곤해 보이는 그였지만 아내 이야기가 나오자 눈빛이 달라진다. “제 아내가 공연을 하게 되면 함께 집에서 연습해요. 심지어 세트까지 만들죠. 전 나머지 극에 나오는 배역 모두를 소화해야 해요. 10명 이상 등장인물이 있는 작품이라면 전 거의 죽을 지경이죠. 저도 도움을 많이 받아요. 아내가 작품을 읽고 메시지를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하거든요. 저는 작품이 들어오면 먼저 아내에게 보여줘요. 서로 의지하고 받아주는…, 한발씩 더 나아가게 하는 소중한 제 친구이기도 해요.” 이들 부부는 최근 연출자와 배우로도 한 작품에서 호흡했다. 추상미가 연출을 맡고 이석준이 출연한 단편영화 ‘분장실’이 바로 그것. ‘분장실’은 최근 서울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이야기 쇼, 올 상반기 다시 무대에” 연극·뮤지컬 계에서 입담 좋은 배우를 꼽으라면 1위는 단연 ‘이석준’이다. 그는 2004년 4월부터 약 3년간 매주 월요일 뮤지컬 배우와 관객을 위한 100회의 뮤지컬 토크쇼, ‘뮤지컬 이야기 쇼 이석준과 함께’를 진행했다. 아직도 인터넷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당시 토크쇼의 영상을 보면 출연한 뮤지컬 배우들보다 이석준의 따뜻하고 재치있는 진행에 배를 움켜쥐고 여러 번 쓰러진다. “‘이야기 쇼’가 막을 내리고서 많은 분이 왜 시즌 2가 나오지 않느냐고 질문을 많이 했어요. 관객이 돈을 내지 않는 무대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제작비 협찬사를 구하는 등 작업이 길어지면서 시간이 오래 걸렸죠.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이야기 쇼’ 시즌 2를 할 생각이 없었어요. 근데 어떤 후배 배우가 ‘형, 왜 이야기쇼 안 해. 나 이야기 쇼 나가는 게 꿈이었어’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리고 관객들도 뮤지컬 작품 선택의 방향성을 이야기 쇼를 통해 많이 잡았다고 종종 이야기하시고요. 한번은 배우를 준비하는 후배 한명이 뮤지컬을 해보고 싶은데 정보를 구할 데가 없어 학교에서 이야기 쇼를 보고 친구들과 토론하곤 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사명감이 들더라고요. 시즌 2, 곧 돌아옵니다.” ●“우리나라 뮤지컬 만드는 게 꿈” 전액 무료로 ‘이야기 쇼’를 이끌어 가고 싶었다는 그. 하지만 적은 금액의 관람료를 받고 수익금은 그날 출연한 배우와 관객의 이름으로 기부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단다. 수익금에 대한 기부는 건드릴 수 없는 의지라고. 삼삼오오 모여 구성된 일반인 스태프들도 사비를 털어가면서까지 제작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물론, 진행자 이석준에게 돌아가는 수익은 단 1원도 없다. 착한 배우, 마음이 따뜻한 배우다. 뮤지컬 배우로 살아온 지 15년.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어느덧 고참 선배가 돼 버렸다며 웃었다. “저는 뮤지컬이 정말 좋아요. 무대를 너무 사랑하거든요. 제 꿈은 우리나라의 뮤지컬을 만드는 거예요. 우리의 뮤지컬이 세계에 팔려 나가는 걸 꼭 보고 싶어요. 그 과정 속에 ‘이야기 쇼’도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지금&여기] 2011년 봄날 ‘메멘토 모리’/박록삼 문화부 기자

    [지금&여기] 2011년 봄날 ‘메멘토 모리’/박록삼 문화부 기자

    늘 그렇다. 봄은 잔인하다. 1960년 4월의 봄이 그랬고, 1980년 서울·광주 등 도처의 봄이 그랬다. 1991년 봄날도 마찬가지였다. 모란이 지듯 자고 일어나면 젊은이들이 제 목숨을 바닥에 뚝뚝 내려놓았다. 많은 서러운 죽음이 있었고, 잔혹한 죽임이 있었다. 쉬 지워내기 어려울 만치 혹독했다. 시대의 봄날뿐 아니라 개인에게도 그러했다. 최근 자서전 ‘스님은 사춘기’를 펴낸 봉은사 전 주지 명진 스님도 여섯살에 여읜 어머니와 네살 터울 동생의 군대 사고사 기억이 공교롭게도 모두 어느 봄날의 것임을 고백한다. 올해 봄도 어느 시절의 봄날 못지않게 잔인하다. 모든 장애와 우려, 반발을 무릅쓰고 속도전을 펼치는 4대강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계속 죽어 나가고 있다. 지난 18일 금강6공구에서 ‘굴착기사 김씨’가 25t 덤프트럭에 깔려 숨졌다. 저녁 7시 야간작업 중이었다. 이틀 앞서서는 낙단보 공사현장에서 인부 하씨와 김씨가 콘크리트가 무너져 숨졌다. 역시 전날 야간공사 때 부은 콘크리트가 채 마르지 않은 곳에서 일하다 빚어진 사고였다. 4대강과 함께 묻혀 버린 19명 중 11명이 올해 봄날을 전후해서 떠났다. 삼성전자에서 하루 10~15시간씩 일하며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대 젊은이는 회사 측의 사과 한마디를 받으려고 지난 15일까지 무려 97일 동안 냉동고에 누워 있어야 했다. 우리의 봄날을 더욱 우울하게 만든 카이스트 학생 4명, 교수 1명의 죽음은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다시 명진 스님의 책 얘기다. 그는 돌이켜보니 죽음의 기억이야말로 자신의 출가와 공부, 수행을 지탱시켜준 힘이자 불보살(佛菩薩)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살아남은 자가 죽음으로부터 배운 소중한 가르침이다. 방사능이 한반도로 오네 마네 하며 막연한 공포가 감도는 올해 봄날에도 키 낮은 제비꽃은 보랏빛 움을 틔웠고, 연분홍 앵두꽃, 벚꽃은 속절없이 제 멋을 뽐내며 난분분히 휘날리고 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 다른 겸손한 생명을 틔우기 위해서는. youngtan@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8) 부여 백강마을 ‘부여동매’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8) 부여 백강마을 ‘부여동매’

    매화만큼 옛 선비들의 사랑을 받은 나무도 없다. 고즈넉한 선비의 정원 귀퉁이에 홀로 은은한 향기를 자아내며 피어 있는 매화는 특히 겨울에서 봄으로 옮겨 가는 길목에서 화사한 꽃을 피운다. 선비들은 한겨울에 눈 속에서 고아한 자태로 피어나는 매화의 결기가 세상사에 휘둘리지 않고 오롯이 제 길을 가는 선비를 닮았다고 보았다. 은근하게 배어나는 매화 향기는 사락사락 책 갈피 넘기는 소리만 살아 있는 극단적 고요 속에서 더 짙게 느낄 수 있다. 옛 사람들이 매화 향기를 귀로 들어야 제격이라며 문향(聞香)이라는 말을 지어낸 것도 그래서다. ●볼모로 잡혀 갔던 청나라서 몰래 들여와 적막감이 감돌 만큼 나른한 봄날 오후 충남 부여 규암면 진변리 백강마을의 깊은 침묵을 깨뜨린 건 은은한 향을 담고 화사한 꽃을 피운 한 그루의 매화나무였다. 마을회관 옆집에 사는 김영갑(83) 노인이 매화 꽃의 봄노래를 한 수 거들고 나섰다. “400년 전 병자호란이 났을 때, 인조의 세 아들인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인평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갔어. 그때 그들이 붙잡혀 간 곳은 압록강보다 더 북쪽인 심양이었지.” 김 노인은 나무를 바라보며 400년 전 조선의 역사부터 아주 느릿하게 풀어 놓았다. “심양은 오줌을 누면 오줌발이 그대로 얼어붙을 만큼 엄청나게 추운 곳이야. 선비 중에 백강 이경여 선생이 왕족을 수행하기 위해 심양까지 갔지. 선생이 어느 날 그 추운 곳에서 환하게 핀 꽃을 본 거야. 얼마나 놀라웠겠어. 이 양반이 나뭇가지를 한뼘만큼씩 꺾어서 몰래 들여와 여기에 심었지. 그중에 두 그루는 빨간 꽃이 피는 홍매고, 한 그루는 하얀 꽃이 피는 백매였어.” ‘부여동매’라는 고유명사로 부르는 백강마을의 매화나무는 그러나 그만큼 오래돼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50년 정도 돼 보이는 나무인데, 일제 침략기에 천연기념물 제105호로 지정됐던 나무라고 한다. 나무의 나이와 나무에 얽힌 이야기의 연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세 그루의 매화나무가 잘 자랐어. 워낙 추운 지방에서 꽃을 피우던 나무여서 여기에서도 추운 겨울에 꽃을 잘 피웠지. 한데 그중에 두 그루의 홍매는 오래전에 죽었고, 백매 한 그루만 남게 됐어.” 이야기가 길어지자 노인은 아예 길가로 이어진 밭 둔덕에 주저앉아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마을 정신적 중심에 놓인 한 그루 나무 김 노인의 말 끝에는 나무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이 마을 선조에 대한 자부심까지 가득 묻어 있다. 노인은 자신의 10대조 할아버지가 조선 중기의 예학자인 김장생 선생인데, 매화나무를 이 자리에 심은 백강 이경여 선생은 김장생의 아들인 김집 선생 때에 이르러 사돈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매화나무 바로 뒤편으로 보이는 부산서원은 이경여 선생이 벼슬에서 물러나 손수 세우고, 후학을 양성하던 마을의 정신적 중심이다. 지금은 이경여 선생과 사돈 간인 김집 선생을 함께 배향하고 있다.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마을은 백강마을로 불린다. 매화는 예로부터 선비 정신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부여동매는 조선 중기에 우의정 영의정을 모두 지낸 이경여 선생이 특별히 애지중지하며 키운 까닭에 마을 사람들에게는 보물처럼 여겨질 뿐 아니라 선비 마을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마을의 극진한 보호 덕에 일제 침략기까지만 해도 이 나무는 나라 안에서 가장 훌륭한 매화나무로 자랐다. 일본인들까지도 이 나무의 아름다움에 감탄해 천연기념물로 지정했고, 나무 앞에 ‘조선의 동매’라고 새긴 돌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그때 세운 비석에 새겨진 글씨들은 세월의 바람에 깎여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로 남아 있다. 최근 그 곁에 새로 ‘부여동매’라는 글씨를 선명하게 새긴 새 비석을 세웠고, 부여군에서는 나무의 내력을 담은 큼지막한 안내판을 놓았다. “저 안내판에는 이경여 선생이 심은 나무가 불에 타 죽고 나서 한참 지난 뒤에 죽은 나무의 뿌리에서 새로 싹이 나서 이만큼 자랐다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야. 불에 타 죽은 나무에서 어떻게 새 싹이 돋겠는가. 지금 저 나무는 40년 전에 규암면장을 지낸 이가 새로 갖다 심은 거야. 그러니까 겨울에 꽃을 안 피우고, 이렇게 따뜻한 봄에 꽃을 피우는 거지.” 부여동매는 해마다 동지 즈음에 하얀 꽃을 피우고, 이듬해 봄이 되면 다시 또 한 차례 꽃을 피웠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 나무는 겨울에 꽃을 피우지 않고 봄에만 꽃을 피운다. ●천년의 향을 담고 오랜 세월을 살아 나무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무척 건강하고 우람했다고 한다. 둘로 나눠지며 자란 줄기 중 하나에는 그네를 매 뛸 만큼 단단했다는 것이다. 동매가 쇠약해지고 죽음에 들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전한다. 우선 김 노인은 “나무가 하도 좋아서 일본 사람들이 너도나도 꺾어 가는 바람에 약해졌다가 나중에는 아예 불을 질러 죽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른 이야기로는 일본인들이 물러간 직후 홍수가 들었고, 마을 앞 백마강이 나무를 덮쳐 죽게 됐다고도 한다.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건만 나무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는 알 수 없다. 하지만 400년 전의 역사를 안고 살아 왔던 매화나무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대를 이어 가는 애정만큼은 분명했다. 김 노인이 앉아 있는 밭 둔덕 위로 상큼한 봄 내음을 가득 담은 매화꽃 바람이 건듯 불어 온다. 한 그루의 매화나무는 지금의 김 노인처럼 이 자리에 주저앉아 우리 역사의 한 토막을 서리서리 풀어낼 것이다. 하얗게 센 노인의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드는 봄바람에 1000년의 향이 담겼다. 글 사진 부여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옴부즈맨 칼럼] 올 4월은 카이스트에 잔인한 달/강청완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부 4년

    [옴부즈맨 칼럼] 올 4월은 카이스트에 잔인한 달/강청완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부 4년

    ‘카이스트’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실제 카이스트를 무대로 재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였다. 머리 좋고 인물 좋고 인간적이기까지 한 수재들의 이야기는 많은 공감과 흥미를 자아냈다. 일요일마다 드라마를 즐겨 보며 대학생활에 대한 로망을 키워가던 기억이 난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카이스트 학생들의 평범한 고민에 대한 이야기다. 최고의 수재들이 모였지만 20대 초반 젊은 대학생들의 이야기인 만큼 다양한 고민과 아픔이 극 중에 그려진다. 공부는 잘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마음 여는 것이 어려운 여주인공, 주위의 지나친 기대가 부담스러운 1등, 공부에만 전념해 목표를 이뤘지만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 대한 일화는 지금 돌아봐도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드라마가 종영된 지 10년도 더 지났기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잊은 것 같다. 다만, 언론에 보도된 요즘 카이스트 학생은 ‘국민의 세금으로 공부하기 때문에 더욱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학생들일 뿐이었다. 서울신문도 발 빠르게 이번 사태를 보도했다. 문제가 이슈화된 지 며칠 후인 4월 9일 보도된 ‘카이스트의 슬픈 봄’ 기획기사는 카이스트 내의 분위기를 잘 전해 주었다. 학교 관계자와 다양한 학생들 인터뷰도 내부 구성원들의 견해차를 선명히 알게 했다. 다양한 취재원으로 기사 내용의 넓이와 깊이가 더해진 좋은 보도였다고 생각한다. 이어진 12일 자 2~3면에 걸쳐 다뤄진 ‘카이스트 어디로’에서는 카이스트 출신 동문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형식의 기사가 참신했다. 서울신문은 2주 남짓한 기간에 카이스트 관련 기사를 40꼭지가 넘게 지면에 보도했다. 그만큼 이번 사태가 우리 사회 전체에 주는 파문이 컸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가 남 얘기만 같지 않은 대학생의 처지에서 볼 때 기성 언론 및 서울신문의 보도에는 몇 가지 아쉬움이 있다. 보도의 양과 질에 대한 것이 아닌,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것이다. 사태가 커지면서 여론의 화살과 언론의 관심은 서남표 총장의 개혁과 이를 둘러싼 움직임으로 쏠렸다. 무리한 서남표식 개혁이 희생을 불러일으켰다는 비판도 있고 이에 대한 반박도 있다. 서울신문 역시 두 차례 사설을 통해 이에 대한 견해를 밝힌 바 있다. 개혁과정에서 나온 부작용은 보완하되(9일 자 27면) 경쟁을 골자로 하는 개혁은 계속해야 한다는(14일 자 30면) 것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카이스트의 ‘개혁’ 문제를 둘러싼 찬성과 반대의 문제로만 비치게 하는 시각에는 핵심이 빠져 있다. 논란의 와중에서 이번에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관심이 그것이다. 아직 한달도 채 되지 않았다. 어린 학생들의 죽음을 뒤로하고 개혁과 경쟁의 문제로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고인들은 경쟁의 낙오자, 실패자쯤으로만 그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누구도 경쟁을 나쁘다고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번에 죽은 학생들이 서남표식 개혁정책에 반대한다며 소리치며 투신한 것이 아니다. 모두가 각자 나름의 이유와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죽음을 택하기 전까지 사무치도록 외롭고 괴로운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들의 옆에는 누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차등등록금제와 영어강의제 폐지를 고민하기 전에 더 크고 무거운 고민거리가 있었다고 본다. 사회 전체가 함께 아파하고 고민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자살률 세계 1위의 나라다. 죽고 싶어 하는 국민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라는 소리다. 내년 3월이면 자살방지법이 발효된다. 법의 취지는 자살을 막자는 것뿐 아니라 자살에 무덤덤해진 사회에 생명존중의 가치를 다시 환기시키자는 것이다. 자살의 피해자들을 단순히 낙오자나 희생자로만 보는 시각은 곤란하다. 그런 의미에서 3월 30일 자 서울신문 칼럼 ‘위험사회 대책이 필요하다’는 이성규 서울시립대 교수의 육성은 새길 만하다.
  • [구제역 후폭풍 위기의 축산농] “종돈값 폭등·이웃들 반대… 돼지 다시 기를 수 있을지…”

    [구제역 후폭풍 위기의 축산농] “종돈값 폭등·이웃들 반대… 돼지 다시 기를 수 있을지…”

    7만 4900㎡의 터에 7개 농가의 축사가 들어선 곳인데 적막감만 흘렀다. 4개월 전만 해도 돼지 1만 6000마리의 울음소리가 가득했을 곳인데 개 짖는 소리만 요란했다. 이동 제한이 풀려 다시 삶의 터전을 찾은 농장주들이 굴착기로 마당을 정리하거나 돈사를 청소하고 페인트칠을 다시 하고 있었다. 직원이나 외국인 근로자들을 내보낸 뒤라서인지 대부분 주인 부부가 일하고 있었다. 농장주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돌려 버렸다. 말도 꺼내지 못할 정도였다. A 농장주는 들머리에 들어서는 기자에게 손사래부터 쳤다. “나가라고 했잖아요!” 경북 안동시 와룡면의 S축산단지. 구제역의 첫 발생지로 알려진 곳이라 농장주들의 쌀쌀한 반응은 짐작했지만 생각보다 심했다. 지친 표정이 역력한 B 농장주는 “재입식 준비는 하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렸다. 재입식은 돈사에 가축을 다시 들이는 일인데 농장주들은 50%만 지급된 매몰 보상금 때문에 재입식 계획조차 세우지 못하고 있다. 구제역으로 씨수퇘지(種豚) 90만 마리 가운데 30만 마리가 매몰되면서 50만~60만원 하던 가격이 90만원까지 올라 나머지 보상금을 손에 쥐더라도 전에 키우던 돼지 숫자를 채우기 어렵게 됐다. 모돈(母豚·새끼를 낳은 경험이 있는 돼지)과 후보돈(새끼를 처음 낳게 될 100㎏급 암퇘지) 역시 구제역 이전의 곱절인 100만원까지 올라 농민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C 농장주는 “수십년 가꿔 온 재산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정부는 외면하고 이웃들은 손가락질하고….”라면서 혀를 찼다. 이웃 서현리 주민들이 연판장을 돌려 이참에 단지를 폐쇄하라고 안동시에 압력을 넣고 있어서다. 시에선 60억~70억원을 들여 매입한 뒤 단지를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언론에 밝혔지만 농장주들은 가구당 6억~7억원 갖고는 “턱도 없다.”고 맞서고 있다. 시 관계자와 농장주들은 지난달 말에 만났으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고 그 뒤 아무런 접촉도 없었다고 했다. 서현리 주민들은 “냄새가 나고 파리떼가 들끓어 불편을 겪고 있다. 또 4㎞밖에 떨어지지 않은 안동호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양돈단지를 폐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 농장주는 “여기도 먹을 게 천지인데 왜 마을까지 날아가겠나? 늘 서풍이 불어 냄새가 날아가지도 않는다. 말이 안 되는 얘기”라며 화를 냈다. 재입식을 막겠다는 데 대해서도 “대한민국에 법도 없는가?”라고 쏘아붙였다. 서현축산단지에서 35㎞ 떨어진 영주시 갈산리 S양돈단지도 마찬가지다. 1만 3000마리가 매몰 처분됐다. 농장장은 취재를 요청하는 기자에게 “안 돼요.”란 말만 10여 차례 되풀이했다. 이웃 주민들은 “집회를 열어 재입식을 막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10㎞쯤 떨어진 곳에서 개인 농장을 운영하는 조모씨는 “돈사는 정리했지만 재입식 결심은 못 했다. 올해는 쉬고 내년 봄에나 해 볼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주민들 움직임에 적잖이 신경을 쓰는 눈치다. 구제역 피해를 본 도처에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지난 15일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의 16개 마을의 주민들은 돼지 3만 7000마리를 매몰 처분한 S영농조합의 폐쇄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안흥면 번영회는 “영농조합이 상수원 보호구역에 있는 데다 매몰지의 침출수 유출로 불편함이 가중될 것”이라며 재입식을 막겠다고 했다. 원주시 문막읍 궁촌리에서 다담농장을 운영하는 정태봉씨는 돈사를 청소하고 안팎의 바닥에 석회 가루를 뿌려 재입식 준비를 마쳤다. 양돈협회 원주지부장이기도 한 정씨는 “강원도에서 재입식 신청은 2건뿐이고 원주에선 1건도 없다.”면서 “경기도 이천에선 먼지까지 지적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걱정이 된다. 하지만 불합격해도 다른 회원들에게 도움이 될 테니 먼저 받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검사 합격 뒤 30일을 기다렸다가 재입식해야 하는 규정도 문제다. 이미 구제역이 사상 최악의 피해를 준 마당에 뭘 또 그렇게 기다려야 하는지 묻고 싶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동·영주·원주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딸과 문인들이 전하는 박완서의 삶과 문학

    그의 나이 20세 때 맞은 봄은 참 아름다웠다. 섬섬옥수로 그러쥔 서울대학교 합격증은 그의 우월감과 선민의식을 한껏 부채질했다. 방년의 처녀에게 세상의 모든 가능성이란 죄다 자신의 손 안에 있는 듯했다. 요즘과 달리 다소 늦게 입학식을 치른 뒤 사나흘쯤 강의를 들었을 때다. 한국전쟁이 터졌다. 전쟁통에 그는 오빠를 잃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읜 그에게 열살 터울의 오빠는 아버지와 다름없었을 터. 그와 가족들은 한순간에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얼개를 떠올리면 알기 쉽다. 메마르고 궁핍한 삶을 살던 그는 미8군 피엑스(PX)에 점원으로 취직했다. 그가 배속된 곳은 초상화부. PX를 찾은 미군을 꼬드겨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돈을 받는 게 그의 일이었다. 자괴감과 자포자기 속에서도 가늘게나마 우월의식의 끝자락을 놓지 않던 그가 일용 잡부나 다름없던 화가들과 친하게 지냈을 리 만무하다. 고용 화가들 사이에서 ‘막돼먹은 계집애’처럼 행세하던 그는 어느날 자신의 인생을 확 바꾼 화가와 조우한다. 박수근 화백이다. 박수근과 동병상련 비슷한 연민의 교류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던 그는 박수근의 죽음을 계기로 전기(傳記)를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불우했던 한 화가의 삶을 증언하고 싶었던 것. 그런데 전기를 쓰면서도 불쑥불쑥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그때부터 그는 논픽션을 단념하고 픽션의 길로 돌아섰다. 지난 1월 타계한 소설가 박완서의 처녀작 ‘나목’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최근 출간된 ‘모든 것에 따뜻함이 숨어 있다’(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박완서의 삶과 문학을 담담하게 되짚어 본다. 1992년 출간된 ‘박완서 문학앨범’과 절판된 이 책을 2002년 다시 펴낸 ‘우리 시대의 소설가 박완서를 찾아서’를 바탕으로 새롭게 꾸몄다. 고인의 산문 ‘나에게 소설은 무엇인가’와 ‘해산바가지’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을 비롯해 맏딸 호원숙씨와 김영현, 권명아, 김병익 등 동료 문인들의 글이 담겨 있다. 원숙씨는 새로 실은 글 ‘따뜻함이 깃들기를’을 통해 아차산 자락에 있는 구리시 아치울 집에서의 기억을 되새긴다. 집에 손님이 오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메뉴를 짜서 건네고, 마당에 앉아 잡초를 솎아내던 어머니의 모습을 그린다. 소설가 김영현은 고향인 개성 땅 인근의 파주 교하리에 문학관을 짓자는 청에 고개를 흔들며 “작가는 죽고 나면 작품으로만 남으면 된다.”던 고인의 대답을 전한다. 책에 담긴 생전 고인의 사진들을 보는 느낌도 각별하다. 1만 4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실천문학·문학과지성사 신임대표 문학계 희망을 말하다

    실천문학·문학과지성사 신임대표 문학계 희망을 말하다

    봄은 왔건만 문학의 봄은 여전히 아득하다. 몇 년 전부터 제기된 ‘근대 문학의 종언’이라는 담론에서 허우적대다가 그마저도 흐지부지된 채 위기와 침체를 일상으로 여기며 지내는 형국이다. 한국 문학계를 대표하는 출판사들이 최근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대표들을 바꿨다. 드러나는 모양새는 조금씩 다르다. 실천문학이 과감한 세대교체로 젊은 얼굴을 골랐다면 문학과지성사는 묵직한 중량감의 인물을 택했다. 새 얼굴을 각각 만나 한국 문학의 미래와 최고경영자(CEO)로서의 포부를 묻고 들었다. 지향점은 같았다. 문학이 우리네 삶의 희망을 복원해 낼 수 있다는 믿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유쾌한 진보 위해 세대교체 필요” 손택수 실천문학 대표 서울 망원동 사무실에서 만난 손택수(왼쪽·41) 실천문학 신임대표는 그저 평온했다. ‘초짜 사장’으로서 과도한 자신감도, 애써 속내를 감추려는 지나친 겸손함도 없었다. 이미 기획위원, 기획실장, 편집주간으로 6년 동안 실천문학의 복판에서 일해왔기에 달라질 바가 없는 탓이다. 대신 그는 다른 이유로 분주했다. 문학계에서 실종되다시피 한 담론을 복원해내야 하고, 진보의 가치가 결코 진부하지 않음을 입증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함께 떠맡을 젊은 작가들을 찾느라 삼고초려 중이다. “실천문학은 어느 개인의 출판사가 아닙니다. 1980년대 치열했던 사회 인식에서 출발해 공공의 꿈으로 만든 한국 진보문학의 공동체입니다. 문학으로 실천하고, 실천을 문학화할 수 있는 공동체를 다시 복원해야죠.” 실천문학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존의 열망을 이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세대와 손을 잡아야 한다. 지극히 이율배반적이다. 손 대표가 분명히 선을 긋는 곳은 ‘지루하고 진부한 리얼리즘’이다. 그는 “신나고 유쾌하고 늘 꿈틀거리는 새로운 상상력과 리얼리즘을 만나게 하고 싶다.”고 잘라 말했다. 덧붙였다. “진보의 가치와 진보의 문학을 얘기하면서 진부한 틀과 내용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그는 “이를 위해 세대교체는 불가피하다.”고 했다.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인 윤지관(57) 덕성여대 교수, 이은봉(57)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과 함께할 나머지 이사 2명을 젊은 작가들로 채울 예정이다. 또한 편집위원과 기획위원의 면면도 확 바뀐다. 공석이 된 편집주간도 필요하다. 목표는 하나다. 확 젊어진 실천문학을 위해서다. 손 대표는 “좌우 경계를 뛰어넘어 젊고 패기만만한 작가와 평론가들이 전면에 나서게 될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사뭇 비장하다. ‘유쾌한 리얼리즘’을 얘기하면서도 비장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위기의식은 충분하다. 1980년 만들어진 실천문학은 그동안 문학을 통한 사회 운동의 최전선에 있었다.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폐간 위기에 몰리기도 했고, 필화사건으로 대표가 구속되기도 하는 등 시련도 컸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주요 논의 지점마다 실천문학이 있었다는 자부심은 꼬박 30년의 시간을 한결같이 그 자리에 서 있게 했다. 그는 “자본의 논리에 의해 문단 주변부로 비켜나 있는 작가들을 실천문학이 기꺼이 껴안을 것”이라면서 “다양한 진보의 프리즘과 연대하여 문학의 담론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공유하는 한편, 정치사회적 담론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뭘 하더라도 문제는 돈이다. 그동안 실천문학이 버틸 수 있는 힘은 시집 ‘접시꽃 당신’, ‘체 게바라 평전’,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 ‘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뜸했다. 실천문학은 이달 중 사무실을 옮긴다. 같은 서울 망원동이긴 하지만 조금이나마 긴축할 수 있게 공간을 좁혀 인근으로 이사한다. 대표이사 월급도 대폭 낮췄다. 1억 5000만원 증자 계획도 진행한다. 손 대표는 “본질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실천문학이 새롭게 출발해야 할 지점이 바로 청빈과 내핍이기 때문”이라면서 “도덕적 순결성을 무기 삼아 빚에 허덕이는 실천문학의 경영을 정상화하고 문학 전체의 적극적인 변화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갓 40대에 접어든 젊은 시인을 대표이사로 선임한, 소액주주 111명 소설가, 시인, 평론가들 전체의 뜻이기도 하다.
  • [카이스트의 슬픈 봄] “학생 90%가 경쟁 이겨내… 
10%위해 개혁 포기해야 하나”

    [카이스트의 슬픈 봄] “학생 90%가 경쟁 이겨내… 10%위해 개혁 포기해야 하나”

    “차등등록금제는 폐지하겠지만 그렇게 되면 국민은 손해다. 카이스트는 학생들뿐 아니라 세금 내는 국민을 위해 학생들을 교육한다. 경쟁이 학생들에게는 불만일 수 있지만 경쟁력 있는 학생을 많이 배출하면 국민에게 이익 아닌가.” 8일 박희경 카이스트 기획처장은 작심한 듯 말을 쏟아냈다. 박 처장은 “90% 이상의 학생들은 경쟁을 잘 이겨내 좋은 결과를 낸다. 그렇다면 그 90%를 위해 교육해야 하나, 아니면 나머지 10%를 위해 교육해야 하나.”라고 반문하며 “국민이 원하는 것과 학생들이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 공부를 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국민의 바람이고 카이스트가 서남표 총장을 모셔온 이유”라고 강조했다. 최근 서남표 총장이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고 한 말이 떠올랐다. 박 처장은 이어 “카이스트는 학생들의 경쟁을 통해 세계 50위권 대학이 됐으며, 앞으로의 노력이 세계 10위권 대학 진입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해 카이스트 학생들의 성적분포를 보면 A학점 이상을 받은 학생이 3713명으로 전체 7513명 중 49%, B학점 3135명(42%), C학점은 462명(6%), D학점 78명(1%), F학점 125명(2%) 등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 스터디를 의뢰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원인을 밝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MIT, 스탠퍼드 등에서 나온 자살 연구서를 보고 있는데, 역시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한다. →차등등록금제가 문제라는 일부 지적이 있는데. -사실 이건 등록금의 문제가 아니라 장학금의 문제다. 등록금을 원래 내야 하는데 학교가 장학금을 더 주고 있었던 거다.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장학금을 똑같이 주면 그게 더 문제 아니겠는가.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들이 요구하니 차등등록금제는 폐지할 것이다. 물론 지금도 돈을 받을 때 좋은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공부도 더 하게 할 수 있고, 국민의 세금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공부 안 하는 학생을 위해 세금을 계속 써야 하는 건 납세자의 입장에서 보면 불합리하다. →경쟁이 너무 심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학생들 생각과 달리 지금 부과하는 숙제는 외국 대학 수준이다. 그 정도도 안 하고 어떻게 일류 대학이 되나. 또 학교는 학생들이 경쟁력을 갖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초·중·고 때의 생각에만 갇혀 있으면 안 된다. 예전 1~2등이 꼴찌도 할 수 있다. 경쟁이 왜 나쁜가. 세계 1등을 하자면서 이 정도 경쟁도 못하면 어떻게 하나. 사실 교수도 힘들고, 학생도 힘들다. 지금 일부 학생들이 하자는 대로 하면 교수나 학생 모두 편하겠지만, 그러면 국민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경쟁을 줄일 수는 없다. 다만 경쟁을 유지하면서 다른 쪽으로 풀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나. →다른 쪽으로 어떻게 푼다는 것인가. -상담사 고용과 정기적인 지도교수 상담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C학점 이하 학생 10%를 위해 지금의 차등등록금제 같은 서남표식 개혁정책을 바꾸기는 어렵다. 국민의 입장에서도 봐야 한다. 경쟁력 있는 학생을 키워 내면 인류를 위한 기술을 개발한다. 이런 학생들을 키워 내는 것이 카이스트가 할 일이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제시한 커리큘럼 말고 다른 경쟁력 방안도 있다고 말한다. -뭐가 있겠나. 학기 중에 조금씩 외부 활동 하는 걸로 무슨 경쟁력을 얻을 수 있겠나. 우리는 학기를 2월에 시작한다. 여름방학을 3개월로 하기 위해서다. 인턴이나 외부 활동, 자신의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준다. 단 학기 중에는 공부만 하라는 것이다. 이게 효율적이다. 기숙사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 두루 경험하라고 방학 때는 기숙사 이용을 제한하고 있고, 졸업 안 하고 계속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들 때문에 재수강도 제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입학사정관제로 선발한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하는데. -학생들 성적을 보면 일반계고 학생의 75%가 과학고와 별 차이가 없거나 더 잘한다. 25% 학생들… 그들은 어쩔 수 없다. 예외다. 그 학생들을 위해 교육수준을 낮추는 것은 답이 아니다. 미국 대학도 입학사정관제로 뽑은 학생들의 중도 탈락률이 20~30%나 된다. 입학사정관제가 원래 그렇다. 입학사정관제로 뽑은 학생들도 끝까지 가야 한다고 하는 압력에 굴복하면 한국 교육의 퇴보다. 지금은 카이스트식 교육을 강화해야 할 때다. 대학만 들어가면 쉽게 가려는 학생들의 졸업을 책임져 주는 게 대학이 할 일이 아니다. →그래도 잇따른 자살은 문제다. 어떻게 해결할 건가. -앞으로 한달이 문제다. 자살 사건이 있고 나서는 냄비처럼 부글부글한다. 하지만 한달이 지나면 문제를 보다 이성적으로 따질 수 있을 것이다. 카이스트의 사명에 대해, 또 왜 우리가 서남표를 모셔 왔나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 카이스트는 세계 50위 정도의 대학에 불과하다. 10위권에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이 갈림길이다. 대전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카이스트의 슬픈 봄] “장짤 당해도 친구엔 비밀”

    [카이스트의 슬픈 봄] “장짤 당해도 친구엔 비밀”

    ‘장짤’. 장학금 잘림의 의미를 담고 있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은어다. 장짤은 학생들에게 극도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장짤 피하려고 미친 듯이 공부했어요. 그래도 부담은 되네요. 다들 공부 잘하는데 까딱하면 나락으로 떨어지거든요.” 서울의 일반계고 출신인 강모(20)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장짤당하면 낙오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친구들한테 말도 못한다.”고 말했다. ●“열등생 낙인 찍힐까 두려워” 카이스트 학생들은 명목상 기성회비와 수업료를 내는데 수업료는 학점 4.3 만점에 3.0을 넘으면 면제다. 기성회비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3.3이 기준이었지만 올해는 이 기준이 완화돼 2.95를 넘지 못하면 기성회비 157만원을 내야 한다. 기성회비가 한국장학재단에서 나오는 이공계 국가장학금을 받는 것으로 대체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성회비를 내는 것을 카이스트 학생들은 패널티를 당하는 것으로 생각해 ‘장짤’이라는 은어로 부르고 있다. 또 두번 장짤을 당하면 영구장짤(완전히 장학금이 잘리는 것)이라고 부르는데 영구장짤이 바로 학생들에게 ‘차등 등록금제’ 못지않은 골칫거리다. 돈을 낸다는 부담감도 있지만 자칫 공부 못하는 열등생으로 찍히기 때문이다. ●“두번 장짤이면 영구장짤” 생명과학과 임모(20)씨는 지난 학기 이미 한번 장짤을 당해 올해는 어떡하든 장짤을 면해야 한다는 각오다. 그러면서 “장짤을 당한 것은 친구들한테도 말한 적 없다.”면서 “절대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했다. 말투에 영구장짤에 대한 ‘공포’가 묻어났다. 기계과 3학년 최모(21·여)씨도 지난해 1학기 때 한번 장짤을 당했다. 과학고 출신인 최씨는 “한번 장짤을 당해서인지 언젠가 다시 장짤을 당할까 봐 걱정이 크다.”면서 “상향평준화된 곳에서 한눈 팔면 바로 뒤처진다.”고 말했다. 화학과 3학년 이모(20)씨는 “가만히 둬도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들밖에 안 모였는데 꼭 이런 식으로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전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카이스트의 슬픈 봄] “필수 이수과목·평가방법 
학생에 따라 다르게 할 것”

    [카이스트의 슬픈 봄] “필수 이수과목·평가방법 학생에 따라 다르게 할 것”

    “앞으로 소통을 강화하겠습니다.” 서남표 총장은 네 번째 학생이 자살한 이튿날인 8일 오후 8시 대전 유성구 구성동 카이스트 창의관 터만홀에서 열린 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좋은 의도에서 제도를 만들었지만 많은 사람이 만족하지 않고 불만이 많았다. 소통의 문제가 있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학생들은 ‘징벌적 수업료’ 폐지 방침을 재확인받은 뒤 그동안의 정책을 재검토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었고 이에 서 총장은 시대가 계속 변하는 만큼 지금의 정책이 영구히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다양한 의견을 들어 수정할 것은 개선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특히 전 과목 영어강의로 인한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조교들이 별도로 학생을 지도하는 보완책을 내놓았으며,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입학한다는 점을 고려, 학생에 따라 필수이수 과목과 평가방법을 달리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모 학생이 “학생 4명이 목숨을 끊었는데 총장 사과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서 총장은 “참담한 심정을 금치 못한다.”며 “다시 돌이킬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고 싶다.”고 말해 직접적인 사과는 회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학생은 “다른 학교에 비해 각종 위원회의 학생 참여 비율이 적다.”고 지적하자 서 총장은 “학교 운영은 교학부총장이 수렴해 학생 참여 비율을 잘 모르지만 가능하면 등록금 위원회에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서 총장은 “학생이 학교에 오래 다니는 것은 좋지 않다. 신지식은 스스로 할 때 배운다. 가능하면 밖에 나가서, 독립해서 만들어야 한다.”고 차등등록금제를 도입한 배경을 설명했다. 물리학과 박사 과정 학생이 “리더로서 총장을 인정하지만 교육자로서 철학이 없다.”고 비판한 데 따른 답변이다. 서 총장은 “이런 철학은 미국에서 고학할 때 배웠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에서 일주일에 25시간 일하고 84달러를 받았다. 경험은 교실에서 배우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일부 학생은 “총장 혼자서 말한다. 더 이상 들을 말이 없어서 나왔다.”면서 간담회 중간에 나오기도 했다. 400여명의 학생이 참석한 이날 간담회는 ‘공개’를 주장하는 총학생회와 ‘비공개’를 고집하는 학교 측이 옥신각신해 파행을 겪었다. 간담회 예정시간보다 1시간이 넘어 나타난 서 총장은 “오늘은 가족끼리 허심탄회하게 말하고 싶다. 집안사람끼리 할 얘기도 있다.”며 “가족이 아닌 분은 나가 달라.”고 요구했다. 학생들도 동조하면서 기자들은 밖으로 쫓겨났다. 앞서 이병찬(23·수리과학과 4년)씨가 창의관 앞에서 서 총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서 총장의 개혁정책은 실패했다.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카이스트 캠퍼스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학생들이 운동하고 수업을 들으러 바삐 발걸음을 재촉하는 등 겉으로 드러난 학교 분위기는 여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학생들 대부분은 기자가 묻는 말에 답변을 피했다. 생명과 학생 김모(21)씨는 “학생 간에는 되도록 자살사건 얘기를 안 꺼내려고 한다.”고 전했다. 학교 측은 차등등록금제를 폐지한다고 발표했지만 일부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자거나 혼자 공부하는 학생이 많다. 교수들도 부담스러워한다.”고 100% 영어수업에 불만을 터뜨렸다. 한 2학년 학생은 “전공은 전문용어가 많고 설명이 어려워 한국어로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그걸 영어로 하다 보니 흥미가 크게 떨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3학년 여학생 정모(19)씨는 “차등등록금제나 전과목 영어수업보다 힘들고 지칠 때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며 “경쟁을 탓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이 학생은 “학교나 총학생회 모두 진짜 자살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4학년 학생은 “이걸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언제 또 터질지 모르고… 무척 불안하고 걱정된다.”고 말해 어두운 학교 분위기를 반영했다. 학교측은 11, 12일 휴강하고 교수들과 학생들이 학교문제에 대한 토론을 가진 뒤 12일 총장과 학생간의 간담회를 다시 열기로 했다. 한편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서 “카이스트 학생이 네 명 자살한 후에야 서 총장은 ‘차등수업료제’ 폐지를 발표했다.”며 “학생을 ‘공부 기계’로 만들려고 수업료로 위협하며 비극을 낳게 한 장본인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밝혔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백두산 화산 연구 20년 윤성효 교수 
 “백두산 폭발땐 아이슬란드 1500배 위력”

    백두산 화산 연구 20년 윤성효 교수 “백두산 폭발땐 아이슬란드 1500배 위력”

    애국가 첫 소절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이는 동해물이 마르지도 않을뿐더러 백두산 또한 없어지지 않기에 영원히 우리나라를 사랑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 활화산인 백두산이 대폭발을 일으킨다면 어떻게 될까. 애국가를 손질해야 하나.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 폭발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요즘 백두산 화산 문제가 자주 화제에 오르내리고 있다. 북한에서 이례적으로 남측 학자들과 백두산 화산 연구를 하자고 제의해 올 정도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관심은 크게 세 가지다. 백두산 화산이 폭발하느냐는 것과 만약 한다면 언제 어느 정도의 폭발성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모든 것이 불명확하다. 하여 백두산 신령한테 몇 가지만 물어보자. “신령님, 백두산이 폭발하는가요.” “그럼, 하지.” “왜요.” “산 밑이 점점 뜨거워지는데 안 할 수가 없어.” “언제가 될까요.” “학자들은 화산학적으로 100년 이내라고 하는 것 같아.” “폭발하면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가요.” “그건 옛날의 기록을 한번 뒤져 봐.”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1668년과 1702년에 함경도 경성, 부령 지역에 화산재가 비처럼 내려 3㎝ 정도 쌓였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20년 동안 백두산 화산연구에만 몰두해 온 부산대 윤성효(54·지구과학교육과) 교수를 만나 들어봤다. “당시 기록을 보면 그 분화의 양이 ‘화산폭발 지수 5’에 해당하는 규모로 아이슬란드의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폭발 지수보다 10배에 해당하는 수준입니다. 이 정도면 천지의 20억t 물이 쏟아져 항공대란은 물론 강진으로 인해 제주도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지요. 또 역사상 최대의 화산 분화사건으로 기록되는 1000년 전의 폭발적인 대분화(100~150㎦ 정도. 화산폭발 지수 7 이상)가 다시 발생하면 아이슬란드의 화산폭발의 1000~1500배에 해당하며 이때에는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과거 백두산 화산폭발로 생긴 분출물의 일부가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지역에서도 발견되고 있지요.” 대폭발의 경우 양강도와 함경도 지역은 화산재가 수m 두께로 쌓일 것이며 지역 대부분이 초토화될 것으로 윤 교수는 예상했다. 또한 식수 오염(산성비), 식생 파괴, 식생 고사 등은 물론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화산 이류(泥流)가 발생해 제방을 파괴하고 강 주변의 경작지 및 주택가를 황폐화시킬 것이 불보듯 뻔하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현재 백두산의 상태는 어느 정도일까. 윤 교수는 “백두산은 활동적인 활화산으로 언젠가는 분화할 것이 확실하다. 지하 마그마방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고 있다.”면서 분화 가능성의 징후를 다음과 같이 나열한다. 첫째, 최근 들어 천지 바로 지하 2~5㎞ 하부의 화산 지진 증가(2003년 월 250회). 둘째, 백두산 천지 주변 외륜산 일부 암반 붕괴와 균열 발생(2003년). 셋째, 백두산 천지 칼데라 주변의 암석 절리(틈새)를 따라 화산 가스 분출로 주변 일부 수목이 고사. 넷째, 2002년 8월부터 2003년 8월까지 위성위치정보시스템(GPS)을 이용해 백두산 천지 주변 지형의 연간 이동 속도를 관측한 결과 약 45~50㎜로 활발. 다섯째, 천지 주변 온천수의 수온(최대 섭씨 83도)과 가스 성분(헬륨, 수소 등) 증가. 여섯째, 지진파토모그래피에 의해 천지 지하 10~12㎞ 지점에 규장질 마그마방 존재 확인 등이다. “백두산은 현재 지구상에서 존재하는 가장 위협적인 화산 중의 하나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특히 천지 지하 규장질 마그마방 내에는 엄청난 양의 용존 고압가스가 있으며, 이 마그마가 지표로 상승해 깊이가 얕아지고 임계조건을 넘으면 일시에 대폭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우려됩니다. 게다가 천지에 담긴 20억t의 물이 지하 암반 틈새를 따라 지하 마그마와 만나는 경우 수증기와 화산재를 뿜어내는 초대형 화산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지요.” 윤 교수는 또한 이럴 경우 백두산 반경 약 100㎞ 내에는 산사태와 대규모의 산불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발해의 멸망도 화산활동에 기인했을까. “발해의 멸망은 926년이고, 백두산 화산폭발은 936년의 일이니까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요. 다만 폭발 이전부터 이미 분화 전조 현상 등 화산활동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에 따른 지각변동이 생기면서 재해가 발생하니까 백성들의 마음이 떠났겠지요. 아무튼 그 무렵 발해 유민들이 고려에 대거 유입되면서 요나라가 무혈입성한 것이 아닙니까.” 그 다음 궁금증. 백두산 화산활동으로 인해 주변의 수많은 나무가 고사했고 뱀 떼가 출현했다는 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뱀 떼 출현은 2010년 봄과 가을에 두번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 만주 쪽에 사는 청나라 후손들이 중국 남방에서 사육된 뱀을 사다가 누르하치가 태어난 백두산 북서쪽에 일시에 방생한 것입니다. 당시 방생한 뱀들이 야생에 적응하지 못해 먹을 것을 찾아 도로 쪽으로 기어나온 것이 관광객들에게 발견됐고 국내 한 언론이 화산의 전조현상이 아니냐고 추측보도하면서 그런 얘기가 확 퍼졌습니다.” 우리나라 불교인들은 방생할 때 주로 물고기로 하지만 중국인들은 뱀을 용처럼 여겨 방생하는 관습이 있다. 중국인들 중에서도 특히 청나라의 후손들은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부르며 민족의 영산으로 여겨 방생지로 자주 선택하는 데서 발생한 해프닝이라는 설명이다. 나무가 고사한 것과 관련해 윤 교수는 “2004년에 천지 주변의 많은 나무가 말라죽었는데 처음에는 병충해를 원인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분석해 보니 당시 단층 절리를 따라 흘러나온 화산가스(이산화탄소)에 의해 질식사한 것으로 판명됐다.”고 말했다. 백두산의 높이를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2744m가 아닌 2750m라고 주장한다는 것에 대해 윤 교수는 “만주지역의 지각변동과 화산활동으로 산이 융기돼 어느정도 높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화산폭발은 언제쯤 일어나게 될까. 일부 언론에서는 2014년에 폭발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 보도는 잘못됐습니다. 기상청 세미나에서 한 질문자가 ‘2014년에 백두산 화산이 폭발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제게 물어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화산학적으로 봤을 때 100년 이내의 가까운 장래라고 대답했는데 그렇게 보도가 나가더군요. 화산폭발이 꼭 언제다 하고 못 박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과학적으로 접근하면서 계속 모니터링을 하고, 최소 일주일 전에 예측이 가능하도록 해 대피명령을 내리고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관건이지요. 남북한이 공동으로 계속 연구해 나가면 예측의 가능성은 좀 더 정확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남북한의 공동연구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한 국가 안보적 차원뿐만 아니라 백두산의 지질, 자연환경, 생태계 연구와 같은 학문적 차원과 중국의 동북공정에 의한 고구려, 발해역사 왜곡을 막아 백두대간을 올바로 세우는 민족정립의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백두산에 대한 포괄적인 연구를 위해 지질, 생물, 역사, 물리탐사공학 등을 포함하는 최정예 학술연구단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화산 전문가 양성 또한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당장 연구할 과제는 천지 지하의 마그마 양을 파악하고, 마그마의 이동 방향과 속도, 깊이 등을 알아내는 것이라고 윤 교수는 말했다. 그가 백두산 화산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년 전. 부산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교수로 임용된 지 얼마 안 된 1990년이었다. 이 무렵에 논문 ‘화산구조 칼데라’를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독일에서 국제 화산학회가 열렸는데, 백두산에 대한 논문이 하나 있더라고요. 그런데 논문을 쓴 사람이 일본학자였어요. 우리 민족의 영산으로 여겨지는 백두산 논문을 일본인이 썼다는 생각에 자존심이 좀 상했습니다.” 이때부터 백두산 화산연구로 방향을 잡은 윤 교수는 이듬해 옌볜의 지질학자와 함께 백두산에 처음 올랐다. “산에 오르는 순간 살아 있는 화산임을 단번에 알았습니다. 분화구를 보면서 여러번 화산활동을 했구나 하는 점과 과거에 폭발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알게 됐지요. 지진이 끊임없이 일어난 흔적도 있었고 온천물도 계속 뜨거워지고 있다는 것도 직접 느꼈습니다.” 이후 매년 시간만 나면 백두산에 갔다. 1996년에는 중국에 교환 연구원으로 가서 백두산에서 아예 살다시피 했다. 그는 연구하면 할수록 ‘백두산은 1만년 전부터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젊은 화산’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중국인들은 처음에 ‘백두산이 활화산’이라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1996년 당시 중국에서 국제지질학회 회의가 열렸고 서양 학자들도 백두산을 답사했지요. 그들이 위험한 화산이라고 하자 그때서야 중국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중국은 1999년 ‘천지화산관측소’를 세우는 등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1000년 전의 백두산 대폭발이 인간이 역사를 기록한 이래 최대였다는 점도 밝혀졌다. 그 이전까지 유사 이래 최대 화산 폭발은 1815년의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폭발로 화산재가 지구 전체를 떠돌아 유럽에 미니 빙하기와 대기근을 몰고 오기도 했다. 그는 백두산과 천지에 대한 연구 열의로 한때 중국에서 간첩이란 오해를 받아 일주일 동안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고초가 그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일본과 뉴질랜드 등을 다니면서 칼데라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백두산에 대해서는 국제 공동연구가 시급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다시 말하지만 대폭발이 일어나면 북한 함경도는 화산재로, 백두산의 중국 쪽은 홍수로 초토화되며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에는 화산재가 함박눈처럼 내리게 됩니다. 분화 경험이 풍부하고 첨단 연구실적을 가진 일본의 도호쿠대학, 실제적으로 ‘천지화산관측소’를 운영하는 중국 국가지진국 활화산연구센터, 그리고 러시아와 북한의 핵심연구자들과 함께 협력교류를 통한 백두산 연구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윤성효 교수는 경남 함안 출생인 그는 1976년 부산 중앙고를 나와 부산대 사범대를 졸업(1980년)했다.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사(1982)와 박사(1987년) 과정을 마쳤다. 1989년 부터 지금까지 부산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로 몸담고 있다. 현재 사단법인 제주화산학연구소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백두산 대폭발의 날’(해맞이, 2010년) 등이 있다.
  • 한강 따라 봄나들이 가자···서울시 코스별 명소 소개

    한강 따라 봄나들이 가자···서울시 코스별 명소 소개

     서울시 한강사업본부는 4~5월 한강을 따라 즐길 수 있는 봄나들이길 4개 구간을 8일 소개했다.  한강은 이때쯤이면 올봄 팬지, 비올라, 라일락, 데이지, 프리뮬라, 금잔화, 수선화, 제라늄, 메리골드, 페츄니아, 수호초, 바늘꽃 등 20여종의 꽃들로 뒤덮인다. 자녀와 연인, 친구들과 함께 한강공원 곳곳에 피어있는 꽃들을 찾아보는 것도 도심속의 즐거움이다.    ▲제1코스(망원 성산대교~마포대교 구간)=유채길 따라 절두산성지 역사의 발자취까지  서울시가 추천한 첫 번째 구간은 망원 성산대교~마포대교간 코스다. 망원한강공원 수영장 뒤에 조성된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따라 마포대교까지 약 5km의 곧게 뻗은 길이 이어진다. 강바람을 맞으며 호젓하게 걸으며 봄을 느끼기에 좋다.  마포구청역 7번 출구에서 조금만 걸어 나오면 야트막한 지천인 홍제천을 만날 수 있는데 한강 하류 쪽에서는 난지한강공원을, 상류 쪽으로는 1.6km 남짓한 마사토 길이 이어진다.  봄바람과 강바람을 맞으며 당산철교를 지나치면 예부터 경관이 빼어나 뱃놀이 명소로 널리 알려진 양화진나루터를 만날 수 있고, 고개를 들면 위에서 한강을 굽어 내려 보는 절두산성지가 눈에 들어온다.  절두산성지는 병인년 천주교 박해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순교박물관에서 흥선대원군과 천주교와의 관계, 유물 및 문헌자료, 김대건 신부에서부터 지난해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의 흔적까지 만나볼 수 있다.  다시 강변 쪽 산책로로 내려와 마포 쪽으로 걸음을 재촉하다 보면 서강대교 너머 오솔길을 따라 호젓하게 걸어볼 수 있다.  제1코스에서는 양화대교 남북단 유채꽃, 안양천합수부~가양대교까지 이어지는 자산홍, 조팝나무, 성산대교~양화대교 금계국, 난지한강공원 갈대바람길 주변 유채꽃을 만날 수 있다.    ▲제2코스(서울숲~광진교)=5월엔 뚝섬한강공원을 가득 채울 라일락향 기대  서울숲에서 한강을 향해 연결된 구름다리를 건너면 탁 트인 한강변 성수대교 하류에 도착한다. 상류 쪽으로는 마치 고속도로처럼 뻗어있는 1.5km 정도의 산책로가 있고, 청담대교 쪽으로 걷다보면 뚝섬 한강공원을 만날 수 있다.  청담대교 하부 널찍한 공간에 조성된 뚝섬한강공원에는 음악분수, 해치미로, 사계절 다목적 수영장 등 다채로운 시설물이 있다.  뚝섬한강공원의 명물로 손꼽히는 음악분수는 탁 트인 광장 너머로 한강의 경관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공간적 특성을 살려 조성됐다. 경쾌한 선율에 맞춰 춤추는 물줄기는 시민들에게 편안한 휴식과 재미난 볼거리를 제공한다.  다시 강변을 따라 상류 쪽으로 걸음을 내디디면 잠실 철교 하부 마사토 길과 목재데크 길이 시작된다. 시원하게 한강을 가로지르는 윈드서핑과 자전거도로 위를 스쳐지나가는 가족, 연인들이 전하는 즐거운 여유와 휴식을 함께 느낄 수 있다.  한강대교와 함께 한강에서 가장 오래된 교량이라는 역사를 가진 광진교(2003년 새단장)로 올라서면 교량상부 보행로를 걸어 교량하부 전망대로 갈 수 있다. 외국에서도 흔히 찾아보기 어려운 교량 하부 전망대 ‘리버뷰 8번가’에서는 매달 색다른 공연과 전시가 운영되고 있으므로 풍성한 문화생활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제2코스에서는 뚝섬한강공원 자벌레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라일락을 찾아 향긋한 라일락향에 취해보는 것도 좋을 듯. 라일락은 5월이면 그 향을 공원에 퍼트릴 예정이다.  향기나는 공원에서 행복에 취할 수 있도록 서울시는 뚝섬한강공원 외에도 반포한강공원 달빛광장 주변, 여의도한강공원 이벤트광장~물빛광장, 난지한강공원 물놀이장 주변에 라일락꽃을 집중 식재해 곧 시민들을 만날 계획이다.  ▲제3코스(잠실운동장~암사)=노란유채, 보랏빛 부채붓꽃 오색길 따라 산책도, 자전거도 즐거워  잠실운동장을 나와 호안 측 산책로를 따라 한강 상류 방향으로 들어서면 잠실대교 하류 어도를 거쳐 마사토 길이 시원하게 조성된 광나루 공원을 만날 수 있으며, 광진교 하부에 다다르면 최근 개장된 광나루 자전거공원이 넓게 펼쳐져 있다.  잠실대교 하부에 한강 물고기가 수중보를 넘어 상류로 올라갈 수 있도록 조성된 ‘어도’의 수중 잠망경을 통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다시 상류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성내천을 건너 광나루한강공원 오솔길을 따라 이동해 보자.  광진교 하부에 이르면 최근 개장된 광나루 자전거공원에 눈에 들어오는데 레일 자전거, BMX, 이색자전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자전거공원을 뒤로 하고 상류를 향해 걷다보면 마지막으로 암사생태공원을 만날 수 있는데 매달어린이 가족들이 즐기기에 좋은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다.  3코스에서는 영동대교~성수대교 구간에서 자산홍, 조팝나무, 광나루 올림픽대교 남단, 천호대교~올림픽대교 구간에서 노란빛 유채꽃, 보랏빛 부채붓꽃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제4코스(반포 서래섬 유채꽃밭)=올해엔 청유채까지 색다른 모습 선보여  잠원~반포~이촌한강공원 구간 중 봄철 최고 인기구간은 반포한강공원 서래섬 유채밭. 5월초 한강 물결 한켠을 노란색 유채로 가득 채우는 서래섬은 매년 봄마다 시민들의 큰 사랑을 받는 한강의 대표 명소다.  올해 ‘한강 서래섬 유채꽃 축제’는 5월5~10일 개최될 예정이다. 올해는 반포 서래섬과 더불어 이촌 거북선나루터 주변에서 한강에선 처음 선보이는 청유채를 만나게 될 예정이다. 노란빛과는 다른 청빛 유채의 모습은 어떨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잠원 동호대교 남단에는 5~6월 보리밭이 펼쳐질 예정이라 오색꽃의 향연 속에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예정이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6) 영암 월곡리 느티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6) 영암 월곡리 느티나무

    신새벽 바람에서도 꽃향기가 완연히 느껴지는 봄이다. 봄 소식 재우치는 마음이 깊어서인지, 이 즈음엔 후각보다 시각이 먼저 봄이 왔음을 알아챈다. 길가에 늘어선 개나리가 드러낸 노란 꽃잎은 물론이고, 겨우내 덮여 있던 뽀얀 솜털의 껍데기를 젖히고 순백의 빛깔을 드러낸 목련 꽃의 속살을 바라볼라치면 몸도 마음도 어느새 화창한 봄이 된다. 나무에도 연초록의 새잎이 앙증맞게 돋아났다. 언제 겨울이었는가 싶을 만큼 봄은 화들짝 다가온다. 더구나 지난겨울의 혹독한 시련 뒤에 맞이하는 봄이어서 더 갑작스럽고 반갑다. ●지난겨울부터 천천히 봄마중 준비 그러나 나무는 봄을 화들짝 불러오지 않았다. 겨울부터 나무는 꽃봉오리를 피웠고, 이른 봄 꽃샘바람이 사나워도 물을 끌어올려 가지 끝까지 수굿이 실어 날랐다. 나무가 차근차근 흘려보내 온 시간의 흐름을 사람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나무의 시간은 대관절 얼마나 느린 걸까. 수백, 수천년을 살아가는 나무의 시간을 고작 100년도 살지 못하는 사람이 알아채는 건 애당초 불가능한지 모른다. 같은 종류의 나무라 해도 나이에 따라,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시간의 속도가 현저하게 다르다. 늙고 오래된 나무를 스쳐가는 시간은 유난히 느리다. 가을에 드는 단풍의 속도가 늦을 뿐 아니라, 봄에 새잎 나고 꽃 피는 시기도 더디기만 하다. 작은 나무들이 지어내는 봄의 아우성과 달리 큰 나무들에 머무는 침묵은 여전히 겨울처럼 견고하다. 전남 영암군 군서면 월곡리 느티나무도 아직 새잎을 피워내지 않았다. 뿌리 부근의 땅에는 이미 이름 모를 작은 풀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돋아나, 초록 카펫을 이뤘지만 나무 줄기와 가지는 여전히 잿빛 겨울이다. 물 오른 나무 줄기의 빛깔만 어렴풋이 바뀌었을 뿐이다. 면사무소 옆 도로변에 우뚝 서 있는 월곡리 느티나무는 키가 23m나 되는 매우 큰 나무다. 아파트 건물 한층의 높이를 대략 3m 쯤으로 볼 때, 무려 8층에 가까운 높이다. 펼쳐진 가지는 그보다 더 크다. 남북으로 25m, 동서 방향으로는 무려 29m나 된다. 굵직한 줄기는 사람 키보다 조금 높은 부분에서 11개의 크고 작은 가지로 나눠지며 넓게 뻗었다. 동쪽으로 뻗은 굵직한 줄기들은 아예 땅으로 내려앉을 기세다. 지지대를 받쳤지만, 굵은 가지 하나는 세월에 지친 몸을 땅바닥에 살그머니 내려놓았다. 이만큼 육중한 몸으로 새잎을 피워 올리려면, 아직 더 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시간이 남긴 상처를 온몸으로 껴안아 500년 넘게 살았으리라 짐작되는 이 나무는 줄기 곳곳에 세월의 상처를 여실히 새겨두었다. 가운데에서 솟구쳐 오른 줄기는 오래전에 썩어 문드러져서, 더 썩지 않도록 충전재로 옛 모습을 만들어 세웠다. 부러진 줄기의 흔적도 여러 곳이다. 또 뿌리와 맞닿은 줄기에도 충전재로 메운 커다란 구멍이 눈에 들어온다. 시간이 할퀴어 낸 상처를 나무는 느릿느릿 스스로 치유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사람들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먼저 치료해 주었다. 줄기에는 금줄이 둘러쳐져 있고, 그 앞에는 ‘당산제단’이라는 한자 글씨가 선명한 제단이 놓여 있다. 사람의 극진한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는 이 나무는 마을에 평화와 안녕을 지켜주는 수호목이자 당산목이라는 증거다. 월곡리 느티나무는 마을 개구쟁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으며, 마을의 대소사를 상의하기 위해 모이던 마을의 정자였다. 1982년에 천연기념물 제283호로 지정되면서 나무 주변에 울타리를 쳐서 옛날처럼 개구쟁이들이 함부로 기어오를 수는 없게 됐지만, 여전히 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쉼터이자 마을의 중심이다. 면사무소가 바로 옆에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사람과 나무 사이에 흐르는 시간의 차이 서성이며, 느릿하게 흘러가는 나무의 시간을 가늠하던 즈음,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빠르게 달리던 오토바이 한대가 나무 옆 등나무 쉼터로 들어와 멈췄다. 나무의 규모에 놀란 표정으로 가지 끝에 눈길을 고정한 채 헬멧을 벗어 핸들 위에 걸쳐 놓고, 서른 즈음의 젊은 사내가 나무 곁으로 다가섰다. “서울에서 오는 중이에요. 지나가다가 큰 나무가 눈에 띄길래 잠시 멈춘 거죠. 이 나무 정말 크네요. 대체 몇년이나 살아야 이만큼 크나 모르겠네요. 정말 대단하군요.”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가는 중이라는 사내도 거대한 크기의 나무에 스쳐가는 시간의 흐름이 궁금했던 게다. 조금이라도 더 빠른 시간을 즐기려는 오토바이의 사내와 더없이 느린 시간을 살아가는 나무의 해후다. 묘한 조화다. 체코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소설 ‘느림’에서 오토바이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은 오직 현재의 순간에만 집중할 뿐이라며 그는 “과거와 미래로부터 단절된 한 조각의 시간에 매달린다.”고 했다. 연속되는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다는 이야기다. 이른 아침부터 일상에서 벗어난 시간의 조각에 매달려 온 오토바이의 사내는 모든 시간의 흔적을 몸 안에 박아넣고 500년을 살아온 나무 앞에서 일상적 시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늙은 느티나무 곁을 흐르는 느린 시간의 흐름 위에 자신이 끄집어낸 시간의 조각들을 하나 둘 끼워 맞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참을 머물던 사내가 다시 오토바이의 굉음을 울리며 떠났다. 그는 다시 나무의 느릿한 시간에서 벗어나 한 조각의 빠른 시간에 매달렸다. 느티나무의 시간은 여전히 봄날 오후처럼 나른하게 흐른다. 오토바이가 떠나고 다시 고요해진 느티나무 그늘에 들어섰다. 사람의 마을에 평화를 지켜주는 시간의 속도는 얼마쯤이어야 할지를 느티나무에게 물었다. 대답 없는 나무는 천천히 봄 바람만 살랑 불러왔다. 글 사진 영암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6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1 오전 7시 50분) ‘만화가’에서 ‘맛객’이라는 또 다른 이름표를 갖게 된 용철씨. 제철에 나는 자연의 식재료를 찾는 동안 맛을 통해 인생의 행복도 찾았다. 행복한 맛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은 용철씨. 그에게는 다큐멘터리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꿈이 있다. 맛있는 인생을 찾아 길을 떠나는 용철씨를 따라가 본다. ●수목드라마 가시나무새(KBS2 밤 9시 55분) 유경은 한별을 보고도 제 딸임을 알지 못하고, 정은은 유경에게 한별을 빼앗길까 전전긍긍한다. 한편 영화감독이 되어 유경과 함께 일하게 된 강우는 보조 출연자가 된 정은을 발견하고 달려간다. 하지만 그동안 정은과 영조가 함께 살았다는 사실을 안 뒤 분노하고, 사업가로 성공한 영조는 정은에게 같이 살자고 프러포즈한다. ●당신 참 예쁘다(MBC 오전 7시 50분) 유랑은 임신테스트기에서 선명한 두줄을 확인하고 절망에 빠진다. 급한 마음에 강수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강수와 만나 실랑이를 벌이다가 차 사고가 난다. 병원에서 임신 사실을 확인한 유랑은 강수에게 아기 아빠를 찾아달라고 부탁하고, 한편 유랑의 엄마 순이는 유랑의 방에서 초음파 사진을 보고 기절초풍하는데…. ●꾸러기 탐구생활(SBS 오후 4시 30분) 분명 작품은 하나인데 보이는 그림은 둘이다. 오른쪽, 왼쪽 시선을 따라 변신하는 그림의 정체는 뭘까. 또 벽에 걸린 달력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이 평범한 달력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압력과 진동, 소리의 관계도를 탐구생활대장 진지희양과 해결사 이혜인, 그리고 김유빈, 최한솔, 윤선정 등 다섯꾸러기들과 함께한다. ●유아독존(EBS 밤 8시) 충북 청원의 산속 깊숙이 자리한 한 마을에 특별한 종이가 있다고 한다. 과연 그 종이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벤 나무를 삶는 것부터 말리고 빻는 과정까지, 유아독존 아이들이 정성을 다해 한지 뜨기에 나섰다. 온종일 들로 산으로 한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아이들. 정성이 가득 담긴 한지 탄생의 순간을 유아독존과 함께한다. ●나는 전설이다(OBS 밤 11시) 개그계 환상의 명콤비 최양락과 이봉원이 OBS의 봄 개편에 따라 신설된 ‘나는 전설이다’ 프로그램에서 토크쇼 MC로 다시 만났다. 중장년층을 위한 신개념 토크쇼로 전설적인 스타들을 초대하여 살벌한 토크 대결을 펼칠 예정이다. 프로그램의 첫 게스트로는 60년대 은막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엄앵란과 가요계의 여왕 현미가 출연한다.
  • 권진원, 햇살 가득한 봄 ‘분홍 자전거’ 타고 5년 만에 짠~

    권진원, 햇살 가득한 봄 ‘분홍 자전거’ 타고 5년 만에 짠~

    ‘살다 보면’, ‘해피 버스데이 투 유’(Happy birthday to you)를 부른 가수 권진원(45)이 ‘분홍 자전거’를 타고 5년 만에 대중 앞에 다시 섰다. 7집 앨범 ‘멜로디와 수채화’를 내놓은 것이다. 타이틀 곡인 ‘분홍 자전거’는 종전 히트곡 ‘해피 버스데이 투 유’를 연상시킨다. 그만큼 경쾌하고 예쁜 동화 속의 한 장면 같다. 햇볕이 한결 따뜻해진 지난달 31일 서울 태평로의 한 카페에서 권진원을 만났다. “일곱 번째 앨범이니 이젠 담담해질 때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요. 5년이란 긴 시간 끝에 준비한 앨범이라 더 그런가 봐요. 브로콜리너마저 등 후배 가수들이 트위터에 제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남기는 걸 보면 뿌듯하기도 해요.” ●대학생 딸 생각하며 만든 ‘예쁜 걸음마’ 얼굴에 행복한 표정이 가득하다. 권진원은 1985년 강변가요제로 데뷔했다. 1988~1991년 노래를찾는사람들에서 활동하다가 1992년 솔로 1집 ‘북녘 파랑새’를 내면서 홀로서기를 선언했다. 올해는 솔로로 데뷔한 지 딱 20년 되는 해다. 그래서인지 7집 앨범은 ‘봄날’ 느낌을 물씬 풍긴다. 악기 구성은 단출하고 노래는 대부분 3분을 넘기지 않는다. 권진원 특유의 힘 있고 깊이 있는 음색도 여전하다. 군더더기 없는 노래들이 한폭의 깔끔한 수채화를 만들어낸다. ‘멜로디와 수채화’라는 앨범 제목이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10곡의 자작곡 가운데 2곡은 보컬 없는 반주곡이다. 그중 ‘예쁜 걸음마’는 대학생 딸을 생각하며 만들었단다. “지금은 대학생인 딸아이가 돌을 갓 지나서 걸을 때가 떠오르더라고요. 정말 예뻤거든요. ‘이리 온’ 하면 뒤뚱거리며 걸어오는 게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그때를 생각하며 멜로디를 만들었습니다.” ●세곡 노랫말 남편이 쓰고… “부부는 일심동체” 남편(유기환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교수)이 앨범 작업에 참여한 것도 흥미롭다. ‘멜로디와 수채화’ ‘첫사랑’ ‘분홍자전거’ 세곡의 노랫말을 유 교수가 썼다. “부부가 일심동체이긴 한가 봐요.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아는지라 자연스럽게 곡 작업을 함께 하게 됐어요.” 권진원은 지난해부터 대학 강단에도 서고 있다.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교수다. 제자들은 새 앨범이 나오자마자 “교수님, 자랑스러워요.”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며 든든한 팬을 자처한다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음악 작업의 연장선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노동이란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늘 즐겁고 몰입하게 됩니다.” 한국 포크록의 대표 주자답게 최근의 ‘세시봉 열풍’에 대해서도 반색했다. “이야기가 많이 담긴 포크 음악이 재조명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게 반가워요. 다만, 잠깐의 열풍이 아닌 지속적인 사랑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후배들도 포크 음악을 계속 지켜줬으면 좋겠고요.” 그는 오는 5월 ‘친정’ 같은 대학로 학전 무대에서 단독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봄날 피곤한 엄마

    봄날 피곤한 엄마

    주부 최모(59)씨는 두어달 전부터 마치 독감에 걸린 것처럼 열이 오르고 극심한 피로감에 시달렸다. 하루 10시간이 넘게 잠을 자도 피로가 가시질 않아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족들 성화에 못 이겨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지만 뚜렷한 원인이 나오지 않아 더 답답했다. 결국 병원을 서너곳이나 전전한 끝에 만성피로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최씨는 “좋다는 음식도 먹고 잠도 푹 자 봤지만 피로가 풀리지 않아 병원을 찾았는데, 만성피로증후군으로 진단됐다.”면서 “남편에게 ‘너무 피곤하다’고 말했다가 ‘너무 많이 쉬어서 생긴 병’이라는 구박만 들었다.”고 토로했다. 남성보다 여성, 특히 40대 이상 여성 가운데 만성피로증후군 환자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만성피로증후군은 기운이 없어 일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피곤한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질환이다. 증상은 휴식으로 회복되지 않는 심한 피로감이 기본이다. 여기에 통증과 기억력 장애, 집중력 저하, 수면 장애, 호흡 곤란 등이 다양하게 더해진다. 원인이 뚜렷하지 않아 급성질환으로 의심하는 환자도 많다. 1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5년간 만성피로증후군에 대한 심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여성 환자는 15만 1735명, 남성 환자는 10만 2289명으로 여성이 무려 48%나 많았다. 특히 40대 여성이 3만 1150명으로 남녀 연령대 가운데 가장 환자가 많아 눈길을 끌었다. 남성이 여성보다 환자가 많은 연령대는 10대 이하뿐이었다. 40세 이상 중년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환자 수가 53%나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3월부터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해 6월에 최고 수준에 달했다가 8월부터는 다시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40대 이상의 여성들에게 생기는 만성피로는 ‘집안일’, ‘육아’와 관련돼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든 생활을 하다 보면 쉬어도 피로가 가시지 않는 만성피로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심한 다이어트와 불규칙한 식사로 인한 영양 결핍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날이 풀리는 3월을 전후해서는 신체가 새 계절에 적응하느라 더욱 쉽게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춘곤증이 장기간 지속되면 만성피로증후군으로 발전할 수 있다. 김미영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만성피로증후군을 가졌다면 하루 일과 중에서 피곤한 시간과 힘든 시간대를 파악해 가장 적합한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하고, 통증은 전문의 치료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씨줄날줄] 편서풍/우득정 수석논설위원

    그제 2기 임기를 시작한 최고령 장관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요즘 ‘노소화합’(少和合)과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용어를 자주 들먹인다. 경륜과 패기가 조화를 이루는 상생의 사회로 가자면 서로 상대방의 위치에서 헤아려 보자는 뜻일 게다. 최 위원장은 ‘적도’를 의미하는 남미의 에콰도르를 방문했을 때 그곳 관리들의 안내로 적도박물관을 방문했다고 한다. 거기에는 2m 간격을 두고 물이 흐르는 수도꼭지가 두개 달려 있는데 남쪽 꼭지에서는 시계 방향으로, 북쪽 꼭지에서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화단에 물을 뿌린단다. 지구의 자전으로 생기는 전향력(轉向力)에 따라 바람의 방향이 반대쪽으로 분다는 증거다. 최 위원장은 서로 손을 내밀면 맞닿을 수 있는 지점에서도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입장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한다. 그후 최 위원장은 국회에서 야당 의원의 공세에 직면할 때면 역지사지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린다고 털어놓았다. 지구의 자전으로 열대고압대에서는 무역풍이, 중위도에서는 편서풍이,극부근에서는 편동풍이 규칙적인 바람의 띠를 형성하고 있다. 지난해 4월 14일 아이슬란드 남부에 위치한 에이야파알라외쿨 화산이 폭발하자 불과 2~3일 만에 전 유럽이 화산재로 뒤덮이면서 사상 최악의 항공대란을 겪은 것은 편서풍 때문이다. 봄이면 우리나라를 찾는 불청객 황사도 편서풍을 타고 날아든다. 서쪽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면 곧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다. 일본 동부지역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전시설이 파괴되면서 편서풍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기상청은 일본의 방사성물질이 편서풍을 타고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우리나라까지 도달하자면 빨라야 내일이나 모레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지난 23일 방사성 물질 제논이 강원도에서 처음 검출된 데 이어 그제 전국 12개 지방측정소에서 극미량의 방사성 요오드도 검출됐다. 그러자 방사성 물질 이동경로를 둘러싸고 논란이 분분하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후쿠시마 원전 방사성 물질이 올겨울 한파를 몰고 온 북극기류를 타고 러시아 캄차카반도와 알래스카를 경유, 북극지방을 돌아 시베리아를 거쳐 한반도로 유입됐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프랑스 기상청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예측했던 경로다. 하지만 일본의 대재앙을 보면 예측도 모두 부질없는 말씨름인 것 같다. 우득정 수석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새 봄 충무로 ‘착한 영화’ 가 뜬다

    새 봄 충무로 ‘착한 영화’ 가 뜬다

    불안하고 뒤숭숭한 국내외 정세 탓일까, 여전히 옷깃을 여미게 하는 차가운 날씨 탓일까. 새 봄, 충무로에 대중의 감성을 치유하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치유 영화’(힐링 무비)가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자극적인 막장 코드나 눈길을 끄는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휴먼 스토리를 앞세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는 ‘착한 영화’들이 관객과의 소통을 기다리고 있다. ●상반기 줄줄이 개봉 대기 ‘치유 영화’의 선두주자는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이다.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4위 자리를 지켰다. 네 노인들의 순애보를 주제로 인간의 삶과 사랑을 성찰한 이 작품은 개봉 2주 차까지 고전해 흥행 실패가 예상됐으나 뒤늦게 “감동적”이라는 관객의 입소문을 무섭게 타면서 누적 관객 수 100만명을 돌파했다. 올 상반기 영화계 최대 이변으로 꼽힐 정도다. 지난 24일 개봉한 판타지 영화 ‘로맨틱 헤븐’도 천국을 소재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극 중 천국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곳으로 평화로운 치유 공간으로 설정돼 있다. 영화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연인을 떠나 보내야 하는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진정한 사랑과 행복에 대해 되묻는다. 다음 달 21일 선보이는 민규동 감독의 신작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갑자기 닥친 엄마의 죽음 앞에서 갈등하고 반목하던 가족이 서로 치유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그렸다. 노희경 작가의 동명 드라마를 원작으로 배종옥, 김갑수, 김지영, 유준상, 서영희, 류덕환 등의 연기파 배우들이 가슴 절절한 가족애를 이야기한다. ‘과속스캔들’ 강형철 감독의 신작으로 주목받는 ‘써니’(5월 개봉 예정)도 40대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휴먼 드라마다. 시한부 삶을 살게 된 한 여인이 과거 7공주파였던 친구들과 25년 만에 다시 모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되찾아 가는 여정을 유쾌하게 그린다. 유호정, 진희경, 홍진희, 이연경 등 쟁쟁한 중견 배우들이 호흡을 맞춘다. 2011년판 ‘치유 영화’의 특징은 억지로 관객에게 눈물을 강요하는 최루성 신파가 아니라 탄탄한 줄거리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적절한 코미디에 촘촘히 짜인 구성은 기본이고, 다양한 연령대의 연기파 배우들을 포진시켜 관객층을 넓히고 감동을 배가시킨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연출한 추창민 감독은 “비록 노인들의 이야기지만, 대사나 음향, 편집 등 영화적으로는 젊은 감각을 살려 최대한 현대적이고 지루하지 않게 다가가려고 노력했던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흥행 비결을 풀이했다. ●‘치유 영화’ 바람, 왜? 영화 관계자들은 ‘착한 영화’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대중들이 막장 TV 드라마나 스릴러 영화의 자극적인 코드에 식상함을 느끼는 데다 동일본 대지진 등 자연 참사로 인한 공포와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소외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대를 사랑합니다’와 ‘로맨틱 헤븐’에 출연한 원로 배우 이순재는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인간적인 정에 더욱 목말라하고 위로받고 싶어 하기 마련”이라면서 “가족애와 인간애야말로 세대를 초월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는 불변의 소재”라고 말했다. 감독들도 각박한 세상 속에서 관객이 영화를 통해 각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감정을 순화시키기를 바랐다고 입을 모은다. 민규동 감독은 “어떤 교훈을 주기보다는 관객이 스스로 각자의 위치에서 삶과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위로를 받기 바란다.”고 말했다. ‘로맨틱 헤븐’의 장진 감독도 “편하고 나쁜 마음이 없어지는 공간인 천국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고 싶었고,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한번쯤 생각해보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배급사인 NEW(넥스트엔터테인먼트월드)의 박준경 한국영화팀 차장은 “최근 일본 지진 등 생사가 엇갈리는 자연 재해를 목격하면서 현실을 되돌아보고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한 작품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면서 “사회 전반적으로도 실컷 울거나 웃음으로써 감정을 치유하는 카타르시스용 영화가 올 상반기 극장가를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황사는 피하는 게 최선

    황사는 피하는 게 최선

    다시 황사가 몰려오고 있다. 지난 19일 올해 첫 황사주의보가 발령된 이후 연일 황사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황사는 크기가 1∼10㎛에 불과한 미세입자다. 머리카락 한 올의 굵기가 대략 10㎛이니 황사가 얼마나 미세입자인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미세한 황사 입자는 코나 목의 점막, 폐 등에 깊숙이 침투, 호흡기 질환 등 갖가지 문제를 만든다. 물론 피부에도 해롭다. 황사에 섞여 있는 2㎛ 이하의 알루미늄·카드뮴·구리·납 등의 중금속이 모공으로 침투해 피부염을 유발한다. 특히 황사에 포함된 크롬과 니켈 등 금속 성분은 알레르기성 접촉성 피부염의 가장 흔한 원인이다. 봄이 되어 피지 분비량이 늘어나는 황사철에는 피부에 황사먼지가 뒤섞여 부작용을 유발, 여드름 환자도 크게 늘어난다. 따라서 황사철에는 세안을 꼼꼼히 해 먼지와 노폐물을 제거하고 충분한 보습을 해줘야 한다. 가장 좋은 대책은 황사를 피하는 것이다. 외출이나 실외운동을 삼가고, 창문을 잘 닫으며, 가습기를 이용해 실내 습도를 50% 정도로 유지하면 황사 입자를 바닥에 떨어뜨릴 수 있다. 외기 환기보다 공기청정기를 가동하는 것이 당연히 좋다. 빨래를 실내에서 말리면 황사에 노출되는 것도 막고 실내 가습에도 도움이 된다. 특히 만성 호흡기질환자나 어린이·노약자는 외출을 삼가야 한다. 부득이 외출할 때는 먼지가 잘 달라붙는 니트류나 올이 성긴 직물류 대신 올이 촘촘한 천으로 된 옷을 고르는 게 낫다. 또 황사 노출을 줄이려면 마스크나 고글, 모자 등을 착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마스크는 미세먼지를 걸러주는 특수 마스크가 좋지만 보통 마스크도 먼지를 어느 정도 먼지를 걸러주는 효과가 있다. 실외활동 중에는 평소보다 자주 물을 마시도록 한다. 입이나 호흡기 점막에 수분을 충분히 공급하면 오염물질을 잘 희석시키기 때문이다. 물을 많이 마시면 호흡기를 통해 흡입한 황사 속 미세먼지와 중금속을 쉽게 소변으로 배출할 수 있다. 또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다면 황사주의보 기간에 알레르기 반응을 억제하는 약물을 예방적으로 사용해 콧물과 코막힘, 재채기 등의 증상을 줄이는 것도 좋다. 외출 후에는 겉옷과 모자·마스크 등을 한번 털어서 황사입자가 실내로 유입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귀가해서는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고 식염수로 코와 목을 세정하도록 한다. 황사가 지나간 뒤에는 실내 환기를 해 줘야 한다. 맞바람이 통하도록 앞뒤 창문을 활짝 열고 20분 이상 환기를 하면 실내 공기를 완전히 바꿀 수 있다. 또 물걸레로 구석구석 쌓인 먼지를 닦아내도록 한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도움말 하나이비인후과병원 이용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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