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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부모와 정통윤리(사설)

    거의 모든 주부들에게 공통되는 감정이 있다. 『좌우지간 시자 들어간 식구는 싫다』는 것. 상당한 교육을 받은 여류가 반쯤 공식자리에서 이런 말도 했다. 『… 시어머니가 금덩어리를 이고 문앞에 온대도,그거 이고 도로 가시라고 하고 싶을 심경이다』라고. 억만금을 준대도 「시」자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며느리. 시부모 모시기 싫다고 아이들까지 데리고 동반자살을 꾀한 충북 제원군의 신모주부도 그런 며느리였던 모양이다. 사대독자인 남편을 보고 분가해 살기를 조르다가 아이들 남매에게까지 농약을 먹이고 자신도 치사량을 음독한 뒤 죽어 버린 그가 「오죽하면 죽을 결심을 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도 한다. 그러나 이 부인의 경우 그 죽음은 고민끝의 선택이기 보다는 앙심에서의 선택같은 인상을 받는다. 사대나 독자인 집안에 아들을 낳아주었는데도 그 공(?)을 인정하지 않고 시부모랑 사는 사슬에서 풀어주지 않는 남편과 시부모에게 보복하는 심경으로 아이들까지 데리고 떠나려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결과 그 부인은 자신이시부모와 견디기 보다 훨씬 불행할 여건을 자신의 자녀에게 안겨주고 말았다. 「효」란 우리가 지닌 아름다운 전통가치이고,전승시키기에 충분한 뜻을 가진 윤리관이다. 그러나 이것을 실천해야 할 주체에게는 부담스럽고 힘든 덕목이다. 힘든 것을 참는 힘이 거의 다 퇴화해 버린 오늘같은 시대에는 도저히 감내하기가 어려운 덕목인 것이다. 효가 아름다운 덕행이지만 실천하기에 쉽지 않으므로 옛날에는 종순하는 도리로 실천의 계율을 삼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고추당추 맵다지만 시집살이 당할소냐」 시어머니 구박에 목매 죽은 며느리의 혼이 화했다는 쑥국새전설따위가 얼마든지 생길만큼 고부간의 갈등은 역사가 깊다. 동서고금의 영원한 갈등의 관계가 바로 이 관계다. 오늘처럼 컬러TV가 벽지 방방곡곡에 보급되고,그 TV가 자고새면 연속극으로 광고로 날씬하고 매끈한 젊은 부부의 행복한 생활만 보여주고,공처가 남편과 화려한 아내의 젊은 부모밑에 토실토실하게 자라난 자녀만을 「세대」의 모델로 보여주는 형편에서 구질구질하고 귀찮은 시부모를모시고 희생하고 있기란 지겨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하나로 보면 이런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대다수가 공통으로 지닌 문제이므로 사회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농촌의 경우에는 노인모시는 문제가 도시보다 더 빈번하다. 그렇다면 주거양식을 개발하여 어른은 모시되 젊은이들끼리만 누리는 공간도 있는 우리에게 맞는 현대분위기의 집들을 보급한다든지 마을 공동체에서 함께 해결하는 지혜나 방법 등을 사회정책으로 모색해 주는 일도 중요하다. 특히 양로원의 인식이 절망적으로 부정적인 우리 사회를 감안하여 한국인의 심성에 부응하는 「노인의 집」을 연구하고 도시서부터 늘려가는 방법도 시급하다. 이런 일은 사회가 공동의 노력으로 마련해 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삶의 공동체가 화해하며 살아가는 기능이 우리에게서는 대단히 약하고 미숙하다. 현대적으로 변화된 예의나 도리,질서 등이 연구 모색되어 표본으로 제시될 수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정으로 잘만 다스리면 사랑하는 가족으로 묶여질 관계가 증오와갈등으로 찢기기만 하는 것은 전체의 불행이다.
  • 당 지도부 사임요구/러시아공서도 시위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소련 국토의 4분의 3에 달하며 모스크바의 직접통치를 받고있는 러시아공화국에서 최근 지역 공산당에 반발하는 시위가 빈발,일부 지역에서 지도부가 교체되는 등 그동안 주로 발트해 인접 및 남부 공화국들을 소요에 빠뜨려 온 반크렘린 물결이 점차 중앙으로 확산되고 있다. 소식통들은 모스크바 남쪽 볼고그라드시에서 당 제1서기를 비롯한 지역 공산당 핵심 인사들이 주택 분배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이들의 사임을 촉구하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따라 현지 공산당은 30일 임시 당대회를 소집,지탄을 받고 있는 인사를 퇴진시키고 새지도부를 구성하는 방안을 협의하기로 했다고 이들 소식통은 말했다. 볼고그라드 시위는 참가군중수나 구호의 강도 등에서 소련을 뒤흔들고 있는 남부 아제르바이잔 및 아르메니아 공화국 민족 분규에는 비교가 되지 않으나 관측통들은 크렘린이 직접 통치해 온 지역에서 반공산당 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공화국에서는 지난 수주사이 시베리아 소재 석유 요층 티유멘시 및 극동전략 요충 블라디보스토크 등에서도 현지 공산당을 규탄하는 시위가 발생,지도부가 교체됐으며 소련 제2도시 레닌그라드 또한 지역 당제1서기 보리스 지다스포프에 대한 사임 압력이 가중되는 등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으로 전해져 왔다.
  • 좌익 폭력세력 발본/노대통령,법무부 보고 받고 지시

    노태우대통령은 24일 상오 청와대에서 허형구법무부장관으로부터 올해 업무보고를 받고 지방의회선거등 선거일정 추진과 관련하여 사회기강이 해이되는 일이 없도록 각종 행정법규 위반등 범법행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공직자의 부조리와 직권남용을 엄히 다스려 공직사회의 기강을 확립토록 하라고 지시했다. 노대통령은 『아직 많은 국민들이 민생치안에 불안을 느끼고 있으므로 강ㆍ절도,조직폭력배 등 각종 범죄들에 모든 역량을 집결하여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체제전복을 기도하는 좌익폭력세력이 상존하고 있으므로 법무공무원은 이들 세력을 발본색원하여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책무와 국가사회발전의 안정기반을 확고히 다져달라』고 당부했다. 노대통령은 청소년 범죄와 관련,보호관찰제도를 활용하여 처벌보다는 선도에 주력토록 하고 재소자들에 대한 교육과 기술훈련을 강화,출소후에도 갱생보호사업 등을 통한 사후관리를 철저히 하는 재소자재범방지대책을 수립,시행토록 하라고 시달했다.
  • 실력이 떨어지는 중고생들(사설)

    교육의 효율을 높이고,효과적인 투자를 기하기 위해서는 가소성이 높은 어린 시기를 되도록 활용해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교육의 제도나 정책이 대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서 아래로 내려갈수록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방치상태에 있다. 학부형조차도 대학입시에만 매달려 긴장을 하기 때문에 정작 기초를 쌓고 기반을 다스려야 할 초급교육에 대해서는 소홀하다. 그 결과 초중고 과정에서 이수해야 할 우리 청소년의 지식교육이 아주 부실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많이 걱정스런 일이다. 이런 걱정을 한층 구체적으로 증명해보인 것이 90학년도 고입선발고사다. 74년 고교평준화 이후 성적이 가장 저조한 결과를 빚었다. 지난해보다 남학생의 경우 14점이 떨어지고 여학생은 13점이나 떨어진 것이다. 고입선발고사 결과만을 가지고 중학생의 학력 전체가 저하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출제방법이나 난이도 등에 따라 결과는 조금씩 차이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결과를 놓고 당국,교육전문가와 학교,교사들이 분석한 바에 의하면 평준화로 인한 부작용의 누적,문제의 상대적 난이도차이,경쟁률이 낮은 데 따른 긴장의 이완,전교조의 여파로 인한 지난해의 교육부실 등을 들고 있다. 특히 금년에 행한 고등정신능력을 요구하는 출제의 시도가 성적을 떨어뜨리게 했다는 심증이 강한 모양이다. 사지선다형의 객관식 시험에만 오래 적응해온 나머지 조금이라도 복잡한 문제는 손을 대지 않고 쉬운 것부터 하나라도 더 풀어야 한다는 요령에만 철저하게 길들어 있는 것이다. 이런 결과로 우리의 중고생들의 기초실력이 날로 퇴보한다면 첨단과학으로 판가름나는 미래의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잃는 결과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지난 몇년 사이에 우리 중고생들의 지식능력을 비관스럽게 볼 수밖에 없는 판정들이 여러번 나타났었다. 88년 고교에서의 수학특기자 중에서 국제경시대회에 출전시킬 학생들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그중의 27%가 0점을 받은 경우까지 있었다. 수학은 모든 학문의 바탕이면서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신빙도가 높은 기준교과이다. 노벨상을 수상할 과학자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10대 이전에 이미 기초과학 교육이 자리잡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도 국제경시에 내보낼 우리 학생들의 집단 선발결과가,「공개하기를 꺼릴 만큼」 하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일이다. 게다가 자라나는 젊은이가 조금 복잡한 문제는 포기하고,쉬운 것으로 점수만 높이면 유리하다는 생각으로 길들어지는 일은,미래사회에 부닥칠 끊임없는 도전과 그것에 응전하는 태도로서도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이와같은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고교평준화 시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학교와 학생간에 우열이나,차이는 있게 마련이고 그 능력에 따른 교육이 이루어져야 잘하는 사람은 더 잘하고 처진 사람은 북돋을 수 있다. 우열을 무시한 학습으로 전체를 하향평준화시켜온 부작용의 누적을 이제는 개선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우선은 모든 교육의 관심이 대학에만 치중되어 있어서 초중고 과정의 교육의 문제는 여전히 소홀하고 무신경한 상태에 있다는 사실에만이라도 시급한 인식이 있기를 촉구한다.
  • 중국에 안경테공장 50% 합작투자 건설/마이다스광학

    ㈜마이다스광학공업이 국내 안경업계 최초로 중국에 안경테 합작공장을 건설한다. 마이다스광학은 지난해 11월 중국 산동성 공예품진출구공사측과 안경테 합작공장건설에 최종 합의,계약을 체결하고 지난해 12월29일 상공부로부터 대중국투자사업 승인을 받았다.
  • 외언내언

    마리온 배리 워싱턴시장이 전격 체포되어 기소될 것으로 알려진다. 마약복용 10년 소문의 꼬리가 현장에서 잡혀버린 것. 이 소식에 오버랩되는 사람이 있다. 파나마의 노리에가 장군. 「마약밀매혐의」로 미국의 법정에 선다는 것이 아니던가. ◆마약문제로 남의 나라 사람까지 잡아간 미국이었는데 수도의 행정 책임자가 마약복용자였다니. 대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더구나 그는 지난 79년 시장으로 당선된 이래 3기째 연임해올 만큼 「신망받는 수도의 얼굴」. 그의 정치 생명이 끝나는 것은 범법자이니까 그렇다 치자. 「마약전쟁」을 선언한 미국의 꼴은 무엇인가. ◆그렇잖아도 워싱턴은 「살인 수도」 랭킹 1위. 지난 가을 FBI(연방수사국)가 발표한 바에 따를 때 88년의 워싱턴 살인율은 10만명당 59.5명이었다. 그같은 비율은 런던의 28배,마드리드의 32배,도쿄의 24배에 이르는 숫자. 올해 들어서도 하루 1.5명꼴이 넘게 살인이 발생한다. 그 살인이 대부분 마약과 관계된다. 마약 시장이 다스리는 곳이니 당연하잖으냐는 말이 나오게도 돼 있다. 그는 며칠 전의 기자회견에서 마약 단속에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했다. 그 「성과」로 자기 자신이 체포된 것인가. 연기가 뛰어난 위선자였구나 싶다. ◆남의 윗자리에 앉을 수 있는 요건으로서 요구되는 것은 높은 도덕성. 그래서 정치의 요체에 대해 묻는 계강자에게 「정자정야」(정치는 정이다)라고 답한 공자는 다시 덧붙이지 않던가. 『정경인 당신이 바르게 처신한다면 누가 감히 부정하겠습니까』 하고. 마르코스가 왜 망했던가. 차우셰스쿠 부부는 왜 죽어야만 했던가. 부도덕한 2중인격이 언제까지고 감추어지리라 생각했던 배리씨의 처지가 가여워진다. ◆그가 흑인이기에 혹 사시적인 견해가 따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밀카메라에 잡혀버린 그는 흑인들의 선망하는 눈길에 재를 뿌린 셈. 그쪽의 허물이 더 크다고 할 수도 있겠다.
  • “임금인상,생산성 범위내로” 노대통령 지시

    노태우대통령은 19일 상오 서울 구로동 한국수출산업공단에서 최영철노동부장관으로부터 올해 업무계획을 보고받고 『금년도 임금인상은 생산성 범위내에서 이루어지도록 지도하고 무엇보다 임금문제가 조기에 타결되어 산업사회가 안정 속에 정상조업을 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노대통령은 또 지금의 경제난국을 이겨내기 위해 노동부 전직원은 산업평화정착과 임금안정을 급선무로 인식해야 할 것이라며 『불법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지도ㆍ조정하고 불법행위에 대해선 노사를 불문하고 엄정히 다스려 법질서를 확립하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특히 경제구조가 바뀌고 수출증가세가 둔화됨에 따라 고용감소가 나타나 실업문제가 우려된다고 지적,『중장기대책을 수립하여 시행하도록 하고 공단지역 등의 필요한 인력을 수시로 파악하여 공급체제를 갖추며 기능인력 양성을 확대토록 하라』고 아울러 지시했다.
  • 루마니아 비밀경찰 재판 시작/군사법정 개설…“테러행위 엄벌”

    【부쿠레슈티 AP 로이터 연합】 루마니아 신정부는 전 독재자 차우셰스쿠 지지세력들이 자행했던 「테러행위」를 심판하기 위한 군사법정을 설치할 것을 지시했으며 8일 트란실바니아의 시비우시에서 비밀경찰 요원들에 대한 첫 심리가 개시됐다고 집권 구국전선측이 밝혔다. 구국전선 대변인 아우렐드라고스 문티아누는 이날 회견에서 과거 차우셰스쿠의 아들 니쿠가 다스렸던 시비우시에 첫번째 군사법정이 개설돼 「인민에 대적행위를 한 일단의 테러리스트들」이 재판에 회부됐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그러나 피고인들에게는 상소권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만 밝히고 재판에 부쳐질 인원수와 범죄혐의 등 구체적 상황은 언급하지 않았다.
  • 노대통령 “과거문제 종결” 담화(전문)

    우리는 지난 2년간 온통 과거 문제에 매달려 나라와 국민의 엄청난 역량을 소모해 왔습니다. 그동안 세계가 상전벽해의 격변을 거듭하는 속에서도 우리는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를 덮어둔 채 지난날의 일로 다툼을 지속해 왔습니다. 저는 국민여러분과 함께 사흘전 섣달 그믐날,전두환 전대통령이 국회에 나와 제5공화국 시대의 문제에 관해 증언하는 모습을 착잡한 심경으로 지켜보았습니다. 평화적으로 물러난 대통령을 국회증언대에 세우는 일은 혁명이 아닌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하는 어떤 다른 나라에도 그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여기까지 이르는데 있어 대통령으로 저 자신의 고통도 참으로 컸습니다. 40년의 짧은 기간에 그처럼 헌정사의 단절과 파란을 겪어야 했고,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 국민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온전한 전직 대통령을 가지지 못해 온 우리 현실에 더 뼈아픈 통한을 느꼈습니다. 1980년대의 마지막날 밤까지 지난 시대를 청산하는 진통으로 넘기면서 이제는 굴절없는 민주주의의 새 역사를 열어야 겠다는 결의로 1990년의 새벽을 맞았습니다. 제5공화국의 문제는 87년 대통령선거에서 가장 큰 쟁점이었고 선거를 통해 국민여러분이 이미 심판을 내린 문제입니다. 저를 대통령으로 선출해 주심으로써 이 문제의 처리에 관한 모든 책임을 이 사람 대통령에게 맡겼던 것입니다. 전임 대통령의 형제ㆍ친인척을 포함한 40여명이 구속되고 전두환 전임대통령은 재작년 11월,모든 것을 국민께 사과하고 강원도 산사로 떠나 그의 집안에 제사를 모실 사람도 없게 되었습니다. 국회는 수10회의 청문회와 국정감사를 통해 밝힐 것은 샅샅이 밝혔고 언론도 이 문제를 지나칠 만큼 다루었습니다. 이러고도 제5공화국의 문제는 여전히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우리의 전진을 붙들어 맸습니다. 정치적ㆍ사법적으로 일단 끝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 현실에서 저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한마음으로 무한히 참고 고통을 겪으며 국민적 합의를 구해왔습니다. 역사와 우리의 현실,대통령으로서의 시대적 사명과 인간적 고뇌 사이에서 저 자신 큰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과거 문제를 에워싼 이 갈등과 대립으로 인한 국민 여러분의 희생 또한 엄청난 것 이었습니다. 마침내 이 문제를 끝내기 위한 여야합의가 지난 12월15일 이루어졌습니다. 전임 대통령의 국회증언과 정호용의원ㆍ이희성씨의 공직사퇴가 이루어지면 지난 시대의 문제는 지난해 연말로 완전히 종결시키고 90년대를 맞아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치가 이루어 지도록 한다는 것이 저와 세 야당총재가 국민여러분께 드린 분명한 약속이었습니다. 이같은 일이 이루어진 이마당에 과거 문제는 이제 분명히 매듭지어야겠습니다. 국민여러분 가운데는 전임대통령의 증언내용이 미흡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전직 대통령에게 응분의 예우를 한다는 여야합의의 정신이 무시된 채 회의가 원만히 진행되지 못한 모습에 실망한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관용과 화해없이 민주주의를 할 수는 없습니다. 『제5공화국 아래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한 이제 전임 대통령에게더이상 무엇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일을 밝히고 가리는 데 아직 미진한 것이 있다면 이제 그것은 역사로 넘겨야 할 것입니다. 국정의 모든 책임을 진 대통령으로 제가 이제 모든 것을 떠맡고 누가 무어라고 해도 지난 시대의 시비는 여기서 분명히 종결지을 것입니다. 광주관계 보상,지방자치의 실시 등 그밖의 여야 합의사항은 정부와 여야가 협조하여 차질없이 실천할 것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제 다시 과거 문제가 우리 사회를 가르는 불씨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지난 2년간 모두를 얽매어온 과거 문제로부터 벗어나 우리가 맞고 있는 민생ㆍ경제문제를 과감히 해결해 나갈 것입니다. 법을 무시하는 어떠한 위법ㆍ불법행위도 예외없이 다스려 국민 모두가 편안하게 생활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할 것입니다. 우리 경제의 난국을 극복하는 데 온 국민의 의지와 역량을 모으도록 할 것입니다. 과거의 멍에로부터 벗어나 우리 앞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는 물론 국민 모두가 나서주셔야 겠습니다. 정치도 대타협의 정신을 살려국민이 바라는 바를 이루고 번영과 통일을 열어가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해야 할 것 입니다. 지난 시대와 같은 무리와 잘못은 이제 그 누구도 되풀이할 수 없습니다. 이 뼈저린 교훈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가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하게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는 길입니다. 국민여러분의 이해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 전 전대통령의 국회증언을 듣고/“「역사적인과」매듭,화해시대 열자”

    ◎김정휴 구룡사주지 경오년 찬란한 햇빛과 더불어 대망의 90년대 첫 아침이 밝았다. 따지고 보면 새날과 헌날이 따로 있겠는가­. 한 생각 속에 무량한 세계가 있고 그 한량없는 세계 역시 마음 속에서 되풀이된다. 우리는 역사의 발빠른 변화는 체험하면서도 일념만년거 섭리를 깨닫지 못하며 살고 있다. 한 생각 속에 만년이 지나듯이 21세기 역사의 첫 장을 여는 새 아침에 희망과 새로운 결의로 자기혁신의 첫 출범을 할지언정 지난 역사에 머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일념돈탕제의 정신이 필요하다. 과거의 모든 죄업과 행위를 한 생각으로 버리고 제거하는 자세를 가질 때 90년대의 희망찬 설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몇 시간 전만 해도 과거청산을 위해 전임대통령이 국회에서 역사적 증언을 했고 이로 인해 5공 당시 통치권으로 야기되었던 모든 문제는 만족하지는 못하지마는 80년대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국회 양 특위가 사전에 작성한 질문에 전임대통령은 답변을 했다. 그러나 국민이 기대했던 만큼 진실규명에 미흡했고 논란이 없다고 할 수 없으나 이 문제를 재론하여 추궁하기보다는 국가발전을 위해 역사적 교훈으로 남겨두어 다시는 이러한 정치적 부도덕성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5공 당시 정치적 부도덕성에 협조한 다수 정치인들을 비롯해 언론들은 이런 역사적 비리를 보고도 진실을 규명치 않은 점을 뼈 아프게 자성해야 할 것이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그럴듯한 말에 있는 것이 아니고,이웃을 더불어 감싸고 진실을 말할 때 이루어진다. 옛말에도 위정자가 국민 앞에 부끄러워할 줄 알고 자기 허물을 뉘우칠 때 올바른 정치는 이루어진다고 했다. 권력형 비리와 광주사태,12ㆍ7법란으로 인해 많은 국민이 상처를 입고 있지만 이제 역사적 인과를 매듭짓고 용서와 화해의 시대를 열어 참다운 인간화시대를 조성해야 되겠다. 역사는 언제나 인과를 되풀이 한다. 역사적 인과와 업보가 있었기 때문에 전임대통령이 자신의 통치행위에 대해서 국회에서 증언을 했고,그 업보에 의해 백담사로 은둔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80년대의 역사적 인과를 더 이상 되풀이 해서는 안될 것이다. 비록 국민이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원한을 갖고 있더라도 이 세상의 원한은 원한에 의해 해결되지 않는다. 덕행으로 원한을 갚을 때 만이 인과는 마무리된다. 이제 관찰해인의 인욕정신을 새 아침에 가져야 하겠다. 우리를 해롭게 하는 자들의 악행을 참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질 때 만이 과거집착에서 벗어나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적 가해자는 참회로써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참회란 지은 허물을 뉘우쳐 다시 범하지 않겠다는 맹세이다. 만약 인욕과 참회로써 지난날 역사를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역사는 퇴보하고 말 것이다. 정치란 대화와 타협의 기술이며,대립과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대립과 반목을 일삼아 왔지 계층간의 갈등을 좁히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해왔다. 90년대 당면한 과제 가운데 시급한 현안문제는 정치와 사회안정이다. 정치적 안정 없이는 사회발전과 경제성장도 기약할 수 없다. 지금 인류는 새로운 역사의 변혁을 맞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변혁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할 때 지난날 우리가 체험했던 혼란은 되풀이 될 것이다. 우리가 맞는 90년대는 한국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결정적 시기가 될 것이다. 정치민주화는 말할 것도 없이 경제ㆍ사회의 성숙과 남북간의 관계개선에 있어서도 90년대는 우리에게 전진과 후퇴,성장과 실패를 가름하는 결단의 10년으로 봐야 한다. 20세기를 10년 남겨놓고 21세기를 열어가는 세계사는 「혁명의 시대」「자본의 시대」 등 대변화의 시대로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변혁은 첫째 인간화에 있으며 사회를 민주적으로 재편성 하는 데 있다. 인간정신을 병들게 하는 폭력ㆍ마약ㆍ사치와 향락을 추방하고 고통과 슬픔을 같이 나누어야 하는 요익중생의 공동체를 우리는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90년대는 인간의 자유와 정의가 사회 속에 구현되고 중생을 유익케 하기 위해서는 위정자는 국민을 진실로써 다스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고 실천하기는 실로 어렵다. 전임 대통령의 증언을 통해 나타났듯이 진실을 말하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모두 느꼈을 것이다. 그렇다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진실이 은폐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역사는 스스로 진실을 증언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전임대통령의 국회증언을 부끄러운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 자유스러워지는 진실의 지혜를 찾아 보자.
  • 전두환 전 대통령 국회증언 속기록

    ◎“「6ㆍ29선언」 배경 훗날에 밝힐 터”/「항공사 2원화」 따라 「제2민항」을 인가/언론통폐합,지금은 수긍 어려운 면도 ○이ㆍ장 어음사기사건 이 사건들은 이미 모두 철저한 수사와 재판이 끝났으며 그 과정에서 진상이 상세히 밝혀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철희ㆍ장영자사건이 정치자금과 연관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것인데,꿈에도 없었던 일입니다. 도대체 이철희ㆍ장영자 이 두사람과는 일면식조차 없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해둡니다. 그리고 명성그룹의 해체가 본인이 세무사찰을 시킴으로써 이루어졌다는 주장의 사실여부를 물으셨으나,명성그룹은 명성사건 발생과 함께 대표자가 구속되고 대부분의 자산이 적법절차를 거쳐 처리됨으로써 자동적으로 해체된 것이지 세무사찰로 해체된 것은 아니었으며 본인이 세무사찰을 지시한바 없습니다. ○제2 민항 인가 제2 민항문제가 제기된 것은 제5공화국 초기부터 국제교역의 증대와 해외여행자율화 시책으로 항공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87년초부터 교통부에서 실무검토에 착수,그해 11월 항공사 2원화 방침을 보고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운송업 경험이 풍부하고 자본력이 견실한 호남지역 기업 중에서 대상업체를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고 검토한 교통부가 이미 85년경부터 항공운수사업을 추진하고,87년부터 한국공항터미널 주식회사의 일부를 인수하는 등 항공 전문업체로서의 본격적인 발돋움을 하고 있는 금호그룹에 제2 민항 설립을 허가해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장관을 통해 건의해서 이를 재가하였습니다. 재가 시기가 본인의 퇴임 직전에 이루어진 점에 대해 의혹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동 인가문제는 87년초부터 계속 검토되어 왔던 것으로 오히려 늦게 결정된 것으로 생각하며 본인의 재임중에 시작된 일이어서 재임중에 종결짓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서 재가를 하게 된 것입니다. ▷원전ㆍ노스럽 의혹◁ 원전 11,12호기 도입과 관련한 시공업자의 로비설은 경쟁탈락 회사와 관련이 있다고 보여지며 원전 낙찰과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원전 선정은 동력자원부와 한국전력의 주관하에 관계전문가 1백50여명으로 구성된 입찰 평가팀이 다양한 조건을 비교검토한 결과 조건이 가장 유리하여 선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군 주력항공기 선정사업은 공군의 전투력 향상과 항공산업 육성의 측면에서 지난 83년부터 추진되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제너럴 다이내믹스사의 F­16과 노스럽사의 F­20이 경합하게 되었는 바,정부는 공동생산의 경제적ㆍ기술적 실익을 확보하기 위해 국내생산업체를 선정하여 미국업체와 공동생산 타당성 여부를 검토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84년 10월 수원,85년 5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F­20기가 시험비행과정중 추락하는 등 사고가 있어 노스럽사가 F­20의 개발을 중단함에 따라 정부는 F­20을 검토대상기종에서 제외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로비자금 운운하며 의혹이 있었는 바 이는 본인 또는 정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던 일입니다. ▷골프장 인가◁ 내인가 골프장 중 일부 기업이 성금ㆍ기금 등을 낸 것이 바로 특혜가 아니냐 하는 의혹이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이해부족에서 오는 낭설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내인가라는 것은 행정의 합목적적인 수행을 위해 쓰고있는 행정관행인 것입니다. 골프장 내인가 권한은 교통부장관에게 있으며 대통령에게는 사전 또는 사후에 보고하는 것입니다. ○「기부」가 오해불러 일부 골프장 인가 과정에서 수십억대의 금액이 사례비조로 오고 갔다는 주장에 대하여 말씀드린다면 골프장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고려해서 공익과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도록 조건을 달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조건은 지역별로 공익시설을 건설토록 하거나 장학금 또는 장학기금을 내도록 하거나 총 골프장 건설소요자금의 10%이상을 국민관광지 조성에 쓰거나 그에 상응하는 기금을 내도록 한 것이 잘못 이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골프장을 설립한 기업중에는 새마을 성금 등 공익법인에 기부한 사례도 있고 지방자치단체의 회관설립기금을 기부한 기업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부행위가 정치자금과 관련된 것으로 잘못 인식된 것이 아닌가 보고 있으며 정치자금 수수는 없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삼청교육ㆍ언론통폐합◁ 삼청교육은 상습적이고 조직적인 폭력ㆍ공갈ㆍ사기ㆍ마약ㆍ인신매매 등 각종 사회악을 제거하여 사회기강을 확립함으로써 국가적 위기상황을 극복하려는 시국수습대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던 것입니다. 삼청교육은 당시 사회혼란을 틈타 난무하고 있던 고질적인 상습범들에 대하여 예방적 차원에서 특별교육을 통해 교정함으로써 민생안정을 도모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들 사회악이 국민에게 많은 피해를 주고 불안을 조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법치주의의 맹점을 이용하거나 법망을 교묘히 피해나감으로써 통상적 방법으로는 다스리기 어려웠기 때문에 성실한 대다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불가피하게 추진된 것입니다. 당시 사회안정을 시급히 회복시킨다는 목적에서 이러한 계획을 추진하다 보니 시행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바,이 점은 매우 유감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해에 있었던 공직자 정화조치는 이권개입 등 부패공직자,공사생활에서 지탄받는 자 등을 정리함으로써 공직기강을 바로 잡아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대상자 선정은 사정기관의 자료와 각 부처별 대내외 첩보와 여론수집을 통해 엄밀히 심사토록 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정실,또는 개인적감정에 의해 처리된 사례도 없지않았다고 봅니다. 이점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 입니다. 언론인 해직조치 또한 사회각계 정화조치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 대상은 각 언론사에서 자율적으로 선정하는 형식을 취했으나 실제적으로는 계엄당국의 언론관계 담당관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언론통폐합은 건전언론을 육성한다는 차원에서 그 전부터 몇차례 건의를 받은 바 있었습니다. 본인은 당시 언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견지했으나 결국 80년 11월 언론통폐합 계획을 승인하게 되었습니다. 되돌아 보건데 당시 언론계에는 소위 「사이비기자」 「사이비언론」 등 문제점과 폐단이 적지않아 이러한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 충격적 조치가 불가피 하다는 견해가 많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오늘의 시각에서 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을 것이지만 당시에는 꼭 필요한 것으로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부정축재 환수◁ 그 외에 80년 당시 있었던 일로서 10ㆍ26 이후 사건수사 과정에서 청와대 비서실에서 발견된 자금문제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습니다. 총 9억6천만원중 2억원은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에게,5천만원은 노재현 당시 국방부장관에게 주어 이를 활용토록 하고 1억원은 당시 계엄사령관의 승인을 받아 합동수사본부의 수사비로 사용하였으며 나머지는 유족에게 전달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정축재 환수 재산처리는 적법절차에 의하여 농어촌후계자 육성기금으로 활용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헌납액에 차이가 있는 것은 환수재산중 일부는 현금이 아닌 서화 토지 등 실물자산으로서 이에 대한 평가액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0ㆍ27불교 법난◁ 소위 10ㆍ27 불교법난으로 알려진 불교계에 대한 정화는 사회전반에 대한 정화조치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특정 종교에 대한 탄압으로 비추어진 점에 대해서는 매우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 다만 이일은 정화조치의 일환이기는 하나 본인의 대통령 취임후 몹시 바쁜 기간이었으므로 중대한 사안인데도 집행기관을 자세히 챙기지 못한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정치자금◁ 70년대에는 집권당 간부 중심으로 정치자금을 조달,관리함으로써 정치권의 부패가 여론화 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취임초부터 깨끗한 정치를 위해 나름대로의 의욕을 가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재임기간중에 집권당이 깨끗한 정치를 구현하는데 앞장서도록 강조해 왔으며 그 결과 재임기간중에 당의 고위 간부중에서 정치자금과 관련된 물의가 거의 없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본인은 기업 또는 개인으로부터 정치자금을 기부 받은 바 있으나 국고보조 확대,선관위 기탁금,후원회를 통한 모금,당원의 당비 납부 등 외부로부터 정치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필요성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정기적 지원 없었다 실제로 민정당 창당시부터 자립정당을 표방하여 평소 당 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당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했으며 필요한 자금을 가끔 지원한 적이 있으나 그 금액은 생각하는 것만큼 큰 규모가 아니었으며 본인이 정기적으로 일정액을 지원한 사실은 없습니다. 질의 내용중에 양대 선거와 관련한 자금 문제도 있으나 어느 당을 막론하고 선거때 선거자금을 모금하고 지원을 받아온 것은 비밀일 수도 없는 공지의 사실인 것입니다. 후보자간의 과열경쟁과 유권자의 기대심리가 높은 우리의 선거풍토에서 본인은 정치자금에 대한 이상과 현실간의 괴리에 곤혹스러움을 느낀적이 한두번이 아니며 이러한 고충은 아마 모두가 비슷하였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자금의 내역에 대해서는 상당한 정도로 과장되게 알려진 측면이 없지않을 뿐 아니라 정치자금에 대한 논란은 자칫 정치불신만을 심화시킬 우려가 큰,매우 민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민정당 이외의 특정인에게 본인이 정치자금을 준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었으나 그러한 사실이 없었음을 분명히 밝히는 바입니다. 다른 나라의 경우,평화적으로 정권을 인계해 주고 나온 어떤 통치자도 정치자금의내역을 공개하여 왈가왈부하는 사례를 본적이 없습니다. 본인도 이 문제에 대해 입을 열기 싫다기 보다는 입을 열게 됨으로써 과거청산의 마무리가 아니라 청산의 새로운 시작이 되고 세기말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과거의 수렁에 빠져 헤어날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강제징집문제◁ 병역법상 대학생은 스스로가 원하면 졸업시까지 징집을 연기할 수 있지만 대학을 그만두거나 휴학하는 경우에는 그러한 연기혜택을 받을 수 없으므로 휴학한 대학생은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입대하여야 하며 의식화된 대학생이라 하여 예외일 수는 없다고 봅니다. 따라서 의식화된 대학생이 퇴학된 경우,징집에 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를 강제징집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입대한 사람들은 당연히 군부대에서 다른 병사들과 함께 똑같이 병영생활을 영위했을 것으로 생각되나,그중 몇명이 사망하자 사망사실 자체가 의혹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대통령인 본인이 병영내에서 사망자가 발생할때마다 보고받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당시 본인은 그러한 사실에 대하여 물은바가 없습니다. ▷관계기관 대책회의◁ 이른바 관계기관대책회의란 것은 공식적인 정부기구가 아니라 국가 중요 현안이나 업무내용이 여러부처와 관련되는 사안인 경우 관련부처의 책임자 또는 실무자들이 모여 주무부서 책임자 주관하에 서로 의견을 개진하고 대책을 협의하는 비상설회의로 운용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회의는 의결 또는 집행기구가 아니라 단순히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모임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회의는 참석 대상자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해당 안건과 관련있는 부처의 공무원들이 그때 그때 참석하는 것으로서 대통령이 회의소집을 지시하거나 참석자를 지정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평화의 댐 건설◁ 평화의 댐은 북한의 금강산 댐 건설에 따른 국가안보상의 위해를 예방하기 위한 시설이었으며 당시로서는 대응 댐 건설이 정부가 취할 수 있었던 최선의 대응방안이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84년 9월께 북한에서 북한강 상류에 80만㎾ 규모의 수력발전소를 건설한다는 사실이 노동신문ㆍ평양방송 등을 통해 수차 보도된 바 있어 저들이 공표한 발전용량을 근거로 저수량을 역산해 본 기술진의 검토결과 최대 저수량 2백억t에 달하는 초대형 댐을 건설하고 있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북측 대응 최선책 북한의 이러한 대규모 댐 건설은 하류에 있는 우리측의 수자원 및 발전량 감소를 초래함은 물론 인위적으로 파괴하거나 또는 자연붕되될 경우에 10여시간 후에는 수도권 일대가 대부분 수몰되는 등 우리 국민의 생존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며 특히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악랄한 반대와 방해공작을 펴오던 북한으로서는 무슨 일을 저지를 지도 모르는 위험하고 급박한 상황이었음은 국민 여러분도 상기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에서는 86년 10월께 수차례에 걸쳐 북한측에 국제관례를 무시한 금강산 댐 건설을 중지하도록 촉구하였으나 북한측이 이를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하여 86년 11월께 국가보위를 위한 자위 조치로서 수공을 방지할 수 있는 대응 댐을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국민들의 성금으로 건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평화의 댐은 당시 정부의 정보 판단에 따른 최선의 대응방안이었으며 정권유지 차원에서 금강산 댐의 위험성을 과장한 것이 절대로 아니었음을 분명히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이 기회에 분명히 말씀드린다면 우방이 제공해준 항공사진 등 여러가지 정보 자료에 비추어 이 댐은 88서울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하여 축소중이었음이 확실하며 그 뒤 북한이 댐 공사를 중단한 것은 우리가 평화의 댐을 축조함으로써 저들의 의도가 사전 봉쇄되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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