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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민대통령의 시축/고두현 체육부 국장급기자(오늘의 눈)

    스탠드를 메웠던 7만7천명의 관중들과 TV로 지켜보던 안방관중들은 아마도 한결같이 안도의 큰숨을 내쉬며 박수를 쳤을 것이다. 1일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치러진 한국­카메룬의 축구 테스트매치에서 김영삼대통령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달려가 맵시있게 시축을 성공시켰다. 지난날 이나라를 다스렸던 박정희,전두환,노태우등 군인출신의 대통령은 모두 교육을 받을때 스포츠와 익숙했으므로 스포츠감각이 결코 무디지 않은 사람들이었고 스포츠에 대한 이해도 깊은 편이었다. 야구의 시구나 축구의 시축을 하면서도 대통령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지난 66년 중앙일보가 대통령컵고교야구를 창설했을때 당시의 박정희대통령이 서울운동장에 나와 시구를 했다. 그때 박대통령은 보기드물게 두차례의 시구를 했다.시구란 볼이 엉뚱한 방향으로 던져지더라도 구심이 「스트라이크」를 선언해서 끝내도록 되어있다. 첫번째 시구에서 박대통령의 시구는 포수의 미트에 빨려들어 갔는데도 정확한 스트라이크가 아니었다고 판단한 그는 「한번 더 던져보겠다」고 민준기구심에게 요청,야구사상 일찍이 없었던 두번째 시구를 던졌다. 두번째 시구에는 만족했는지 박대통령은 민구심에게 『이번것은 진짜 스트라이크였지?』라며 확인했단다. 이 이야기를 민구심으로부터 전해들은 기자는 「박대통령은 꽤 꼼꼼한 사람인가보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제2차대전중 미국의 루스벨트대통령이 사망하고 트루먼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승계하자 미국의 어린이들이 『야 이제는 우리대통령도 두발로 걷는다』고 함성을 질렀단다. 스포츠가 생활화되어 있는 미국의 어린이들에게 소아마비탓에 휠체어에만 앉아있었던 루스벨트대통령의 모습이 안쓰럽게 비쳤던 모양이다. 평소 조깅을 즐기고 어렸을 때에는 축구도 즐겼던 탓에 김대통령은 시축을 잘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어나가는 능력과 스포츠능력과의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겠지만 국민들 특히 청소년들은 스포츠를 생활화하고 건강한 대통령에게 친근감과 신뢰감을 갖게될것 같은 생각이 든다.
  • 25국서 핵·생화학무기 개발중

    ◎구소 핵물질 밀반출 근거 없어/러인 23% 범죄단 러 장악 믿어 【워싱턴 연합】 제임스 울시 미중앙정보국장은 29일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이 점점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오늘날 미국익에 적대적인 많은 국가를 포함,모두 25개국가들이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를 개발중이며 이중 일부국가들은 약간 떨어진 국가들까지 위협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들을 구입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울시국장은 이날 미변호사협회 연설에서 이같이 말하고 특히 북한과 이라크와 같은 국가들로부터 나올 수 있는 지역적 위협에 관해 결정적인 경고의 기간을 사전에 대통령과 그 보좌관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미정보기관들이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및 이라크와 같은 국가들은 미국과 그 우방국들이 가진것과는 전혀 다른 탈냉전시대의 관념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러시아의 범죄조직들이 핵무기와 화학무기들을 빼돌리고 있다는 보도가 나돌고 있는 것과 관련,『상당량의 무기급 핵물질이나 핵탄두가 구소련밖으로 밀반출된 것으로는 보지않는다』 고 밝혔다. 울시국장은 『우리는 방사능핵물질의 불법판매가능성을 매우 주시하고 있다』 면서 『무기급이 아닌 저급 핵물질이 도난당했다는 여러차례의 보도가 있었으나 대부분의 절도범들은 검거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러시아지역의 조직범죄단체들이 핵무기를 다루는 사람및 감시병을 매수할 수 있는 재력이 있고 또한 핵물질을 해외로 빼돌릴 수 있는 밀수망을 갖고 있기때문에 범죄조직의 개입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러시아 내무부 통계에 따르면 러시아에는 대략 5천7백개 범죄단체들이 있고 그중 2백개는 대규모 범죄조직이라고 설명하면서 『올해 3월 러시아의 도시지역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는 옐친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린다고 보는 응답자가 14%인반면 가장많은 23%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범죄단체라고 응답했다』고 러시아범죄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한편 샘 넌 미상원 국방위원장은 다른 나라의 범죄조직과 연결된 러시아내 범죄조직에 의해 핵확산 위협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내달쯤 국방위 소속위원들이전원 참여하는 청문회를 열어 이 문제를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 “선진 도성” 사비성(백제를 다시본다:12)

    ◎“2중의 방어벽”… 부소산성내에 왕궁 축조/오부관아행가는 산성 발치에 자리잡아/도로망·하수도등 도시체제 잘 갖춰/금동향로 출토지 능산리는 공방촌 추정 백제가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긴 것은 널리 알려진 대로 AD538년의 일이다.그러니까 사비성은 한성(서울)과 웅진(공주)을 거쳐 3번째 도읍으로 자리잡은 도성이다.오늘날 충남 부여군 부여읍 일대로 압축되고 있다. 사비성은 부소산성과 평지성이 연결되어 둘러쳐진 나성의 개념을 갖는다.부소산성을 제외한 나성은 현재의 부여시가지 주위를 에워싼 야산능선을 이용하여 축조되었다.그러면 사비성 안쪽에 해당하는 도성안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왕궁이 어디쯤에 자리 잡았고,왕의 명을 받들던 관아는 어느지역에 모여있었을까 하는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구명하기 위해서는 우선 부소산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않나 한다.테뫼식과 포곡형의 두 가지 축조방식이 복합한 이 산성은 부소산 위쪽 표고 1백6m를 중심으로 쌓아졌다.현재 행정구역상으로 부여읍 쌍북리,구아리,구교리,관북리에 걸쳐 위치한다.면적은 74만6천2백2㎡,성 둘레는 2천2백m에 이른다.부여 중심부에서 보면 북쪽에 있다.그리고 산성의 북쪽 끝이 백마강(금강)에 와닿는다. 이 산성의 형태는 군창지와 사비루 부근이 테뫼식을 이루었고,이들 테뫼식 산성을 연결하는 부분은 모두가 포곡형이다.산성 둘레에는 문자리(문지)가 여러곳에 남아있다.군창지 부근의 남문은 테뫼식 산성을 드나들도록 설계되었다.또 동문과 서문은 포곡형 산성,다시말하면 부소산성 성벽에다 낸 문이라 할 수 있다.이밖에 백마강 대안쪽에는 수구와 더불어 또다른 문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연구소가 지난 90년과 91년 동문자리를 발굴한 결과 포곡형 산성의 성벽은 판축을 기본으로 한 흙벽으로 밝혀졌다.그러나 흙벽 만으로 이루어진 성벽은 아니다.흙벽을 보호하기 위해 바깥에 돌을 쌓은 다음 안쪽에도 또 돌을 쌓고 흙벽을 한겹 더 덧붙였다.이를테면 돌­흙벽­돌­흙벽의 단면구조를 가진 견고한 성벽인 것이다.특히 판축과정에 1백20㎝ 간격으로 기둥을 세운뒤 진흙을 쌓아올렸다.그 기둥구멍은 30㎝나 되고 주춧돌까지 받쳐놓았다. 이 성벽 안쪽에는 돌을 깐 도보가 아래로 계속 연결되었다.너비 80㎝의 이 도보는 비가 올 때에 쓰였던 순시용도로로 보고있다.특히 도보 안쪽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다.금제관장식편을 비롯해 금동제용두장식 2점,금동제귀면장식,금동제방울이 그것이다.또 갈고리,양지창,낫,창,도끼와 같은 철제무구와 함께 격조높은 토기,석간,벼루,기와류가 출토되었다. 이들 출토품은 사비시대 왕이나 왕족과 관계되는 유물이다.그렇다면 부소산성 어딘가에는 왕의 상주거소가 있었을 것이다.아직은 왕궁유구나 이렇다 할 건물자리가 발견되지는 않았을지라도 사비도성을 호령한 백제의 중심축은 부소산성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왕실 관련유물 출토 그리고 지난 88년과 89년 현 부여문화재연구소 동쪽 부소산 입구 발굴과 결부해도 부소산성은 왕의 거소일 가능성이 있다.이 발굴에서는 부소산성을 향해 일직선상으로 쌓은 축대와 함께 그 축대 밑에서 축대와 병행한 석축의 배수구가 확인되었다.그리고 건물자리 5곳과 암반을 깎아서 만든 우물터를 발견한 바 있다.이들 유적을 부소산성 내에 왕궁이 존재했다는 입장에서 보면 부소산 발치의 축대와 배수구로 여겨진다. 현재의 부여문화재연구소(구국립부여박물관)는 부소산 기슭 남쪽 언덕에 있다.부여 시가지가 가장 가까운 자리다.조선시대 후기 관아이기도 하거니와 부근에 백제시대 석조유물이 산재되어 한때는 가장 유력한 왕궁자리로 추정되기도 했다.그래서 지난 82년 충남대가 이 지역 발굴에 나섰지만,그 성과는 현 부여문화재연구소 정문 앞에서 네모꼴 백제시대 연못자리 하나를 발견하는 것으로 그쳤다. 그이후 87년 네모꼴 연못자리 동쪽에서 도로유적을 확인했다.남북과 동서로 통하는 도로유적으로 도시계획에 의해 조성된 흔적을 역력히 보여주었다.남북도로의 너비는 10.7m,그 좌우 양쪽에는 너비 75㎝의 하수도 시설을 갖추었다.그리고 동서도로는 너비 4m로 밝혀졌다.이 일대가 바로 사비시대에 백제를 다스린 오부의 자리로 추정되는 지역이다.사비도성의 관아가라 할 수 있다. 사비도성에 살았던 사람들의삶은 가히 선진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왜냐하면 지난 92년 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백제시대 천왕사터로 전해진 옛 부여경찰서 자리를 발굴할 때 2중구조의 우물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위에 있는 샘터에서 일단 물을 받아 정수처리를 거친 뒤 밑의 샘으로 보내 물을 마시도록 한 시설로 보인다.윗 샘은 방형의 석축시설이고 아래 샘은 돌(하부)과 널빤지(상부)를 사용해서 만들었다.여기에서는 수막새기와와 토기류(사발과 동이),사람얼굴을 새긴 기와,방추차,곱돌제 거푸집 등이 출토되었다. 그러면서 사비성 사람들은 도성 안에서 불교를 가까이 대했다.나성 안에 있는 명찰 정림사와 천왕사에서 불심을 길렀던 것이다.그뿐이 아니라 군수리 절터나 동남리 절터와 같은 유적지에도 분명히 큰 절이 있었기 때문에 늘 부처를 섬길 수 있었다.또 중국의 양과 일본과의 관계가 밀접한 탓으로 외국문물을 쉽게 접했다.거기에 비옥한 옥토가 백제강역으로 완전히 편입되어 생활은 윤택했을 것이다. ○2중구조 우물 발굴 최근에 와서는 사비성이 더욱 부각될 수밖에 없는 큰일이 일어났다.지난해 연말의 금동용봉봉래산향로의 발굴이 그것인데,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그것도 역사적 사건이다.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비도성이어서 금동향로가 갖는 제조상의 기술적인 문제나 예술성에 대해서는 접어둔다.다만 금동향로를 발굴한 국립부여박물관 발표대로 출토지를 공방으로 추정한다면,능산리는 공방촌일 수도 있다.바꾸어 말해서 사비시대 백제왕국의 금속산업을 일으킨 지역이 곧 오늘의 부여읍 능산리라는 이야기다.능산리는 사비성의 나성 밖에 있. 이를를론 삼아 종합하면 사비시대 백제는 부소산성안에다 작은 규모의 건건성 밖에 있. 이를를론 삼아 종합하면 사비시대 백제는 부소산성안에다 작은 규모의 건분명히 나성 밖에 있었을 것이다.그리고 도성을 산성과 평지성인 나성을 연결시켜 축조한 점은 고구려 평양성과 더불어 우리 고대의 도성형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고구려의 평양성과 같은 나성/길이 1만3천자… 산성과 평지성으로 구성/사비성의 구조 사비성은 충남 부여군 부여읍 지역에 있었던 백제때의 도성이다.백제 도읍자체의 명칭으로 쓰이기도 한다.백제가 협소한 웅진(공주)을 버리고 넓은 평야를 포용한 땅에 보다 큰 도읍을 건설하기 위해 천도한 것은 AD538년(성왕16년)봄이다. 백제는 사비로의 천도를 국가체제 재정비의 시기로 삼았다.북서쪽으로 금강이 굽어 흐르는 가운데 동쪽으로는 산이 둘러쳐져 외적 방어에 더할나위 없는 조건을 갖추었다.도읍을 사비로 옮긴 까닭을 당시 일본과의 관계가 밀접했기 때문에 해상교통에 유리한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는 경향도 있다.어떻든 사비성은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1백30년간의 수도가 되었다. 사비도성은 산성으로서 부소산성과 평지성으로서의 나성으로 이루어졌다.부소산성은 부소산을 양쪽 머리가 낮게 감싸 두르고 백마강을 향해 초승달의 형태를 보여 반월성이라고도 불렀다.이밖에 사비성,소부리성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조선시대의 문헌에는 성터의 길이가 1만3천여자나 되며,치소가 그안에 있었다고 기술했다.치소는 왕궁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발굴결과를 토대로 하면 현재 부여시가지가 있는 나성안쪽은 사비시대에 도시체제를 어느정도 갖춘 것으로 보인다.이같은 가능성은 한성시대(BC18∼AD475년)백제의 도성인 서울 몽촌토성이 당시 구획정리가 된 도로망을 구축했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지난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몽촌토성을 올림픽공원으로 가꾸기 위해 발굴한 결과 조방이 뚜렷한 도성으로 밝혀졌다.그리고 웅진시대(AD475∼538년)의 백제왕궁도 공주 공산성안에 자리했던 여러가지 정황을 남기고 있다.
  • 전과자(외언내언)

    얼마전 미국의 「3스트라이크 아웃법」이 화제가 됐었다.캘리포니아주정부가 야구의 「스리 스트라이크 아웃」규칙을 본떠 만든 법률이 그것.두차례이상 중죄를 저지른 범인이 또다시 중죄를 범할 경우 25년동안 집행유예를 허용하지 않고 종신형에 처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상습누범자의 사회복귀를 위한 교정은 무의미하고 흉악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위해서는 「격리수용」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데서 이법률이 채택됐다.전과자문제의 심각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우리의 경우 조선시대에도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었다고 경국대전은 전한다.절도를 3차례 한 자와 재범자는 모두 교수형에 처해 사회와 격리시켰던 것이다.이같이 예나 지금이나 또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과자들이 말썽이 되어온 것을 알 수 있다.지난 1일 발효된 「성폭력 특별법」이 성폭행 피의자를 중형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도 성폭력범죄가 그만큼 많아 사회문제화돼 있기 때문이다.중형으로 다스리지 않고서는 성범죄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그 전과자범죄가 해마다 급증하고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전과자대책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나 심각한 상황으로 서둘러야한다는 것이다.전국교도소의 기결수 가운데 60%가 전과자이고 누범비율은 80년 27.5%에서 90년 45.1%로 급격한 상승세다.이처럼 많은 범죄가 전과자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데도 대책은 형벌및 보호감호처분 이외에는 뾰족한 게 없다는 데서 문제가 된다. 이래서는 안된다.우리가 미국의 「3스트라이크 아웃법」을 도입할 수 없다면 교화행정을 꾸준히 필 수 밖에 달리 방법이없다고 본다.교정분야에 집중투자가 있어야한다.교정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우선 문제다.교정전문가에 대한 처우가 좋아야하고 교정행정이 과학적이고 체계적이어야한다.또 현행 보호감호제도 운영의 개선이 있어야하겠다.수형자를 보다 세분화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범법행위를 미리 막는 노력 못지않게 재발을 방지하는 전사회적인 조치가 절실한 때이다.
  • 소리꾼의 묘약/송혜진(굄돌)

    「똥물」을 마셔야 명창이 되나? 판소리 명창들과 대담을 하다보면 수업기에 혹독한 연습으로 사경을 헤매다 이걸 마시고서야 생명과 「소리」를 함께 얻은 얘기가 적지 않다.「똥물」이 의학적으로 어떤 효능이 있는지는 둘째치고라도 판소리 명창들 사이에서 「묘약」대접을 받고 있음은 사실이다.그런데다가 이 「묘약」마시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운 이색적인 경험인지라 사람들의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한다.며칠전 판소리계의 중견 여류명창 한분을 만난 자리에서도 어김없이 이 「묘약」얘기가 나왔다.그런데 평소 흥미거리로 등장하곤 하던 이 화제가 이날 만큼은 내게 색다른 가르침을 주었다.똥물을 묘약으로 만들어 마시는 과정이 엄숙한 통과의례같았기 때문이다. 그 여류명창이 정용민명창께 사사하던 시절 스승은 제자들의 목이 걱정될 때면 이따금 이 약을 주었다.물론 이것은 그저 뒷간에서 아무렇게나 떠오는 것이 아니었다.스승은 약을 만들기 위해서 우선 깨끗한 대나무를 베어다 농사에 쓸 거름을 만드는 인분 저장고에 담가 놓았다.며칠이 지나면 싱싱하고 촘촘한 대나무 결은 인분의 불순물을 모두 걸러내고 「묘약」을 흠뻑 빨아들이게 되는데,이쯤 되면 스승은 제자들을 모두 불러모아 일렬로 앉혔다.그리고는 가을 은행잎보다 더 샛노란 「묘약」을 소줏잔에 한잔씩 따르고,그 옆에는 입가심할 생강 한쪽을 놓아 주고는 혹 제자들이 이 귀한 「약」을 쏟아버리지나 않을까 회초리를 들고 제자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감독했다.물론 냄새나 맛은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이 지독한 것이었지만 대부분의 명창 후보생들은 좋은 「소리」에 대한 일념으로 눈을 질끈 감고 초월해야만 했다. 어찌 이것이 단순히 「목」을 위해 나누어준 약이었을까? 추측컨대 노 스승은 제자들에게 이 「묘약」마시는 과정을 거치게 하면서 소리 수업 이상의 의미를 주었던 것은 아닐까.인생의 「희로애락애오욕」을 소리로 불러 청중들을 울리고 웃겨야 하는 판소리가 그저 「소리」로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러고 보면 이 묘약은 혹독한 소리연습으로 상한 육체에 주는 것이라기보다는 「묘약」의 맛보다 더 쓰디쓴 소리인생을 극복해 나가는데 꼭 필요한 「정신」을 다스리는 약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 농민의 공동노력(일본농업 탐방:25)

    ◎UR대응 「신농정 플랜」 92년 수립/“개방” 결정되자 농민도 시위대신 “공부”/“일본쌀 맛있고 안전” 국민적 믿음 확고… 수입쌀 발붙일 틈 안줘 한국과 일본의 쌀농업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도전을 받고 있다.그것은 쌀시장의 개방이라는 힘겨운 도전이다.세계무역의 새로운 틀인 우루과이 라운드(UR)에 따라 굳게 닫혀있던 쌀시장이 95년부터 부분적으로 개방되게 된 것이다. ○대규모 항의 시위 UR협상의 마지막 순간이었던 지난해 12월14일 새벽 4시.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당시 일본총리는 결연한 자세로 TV앞에 나타났다.그는 『단장의 아픔으로 일본의 쌀시장부분개방을 결단했다』고 말했다.일본농업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그는 『오늘의 결단이 일본의 장래를 위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평가할 날이 반드시 올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총리의 쌀시장개방발표 중계를 끝낸 TV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슬픔·분노로 가득찬 농민들의 얼굴을 비추었다.그들은 끝까지 쌀시장개방을 반대하리라고 기대했던 사회당앞에서 밤을 새우며 반대시위를 하고 있던 농민들이었다.그전에도 도쿄에서는 1만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쌀시장개방 반대집회가 여러차례 열렸다. 일본의 쌀시장개방은 이렇게 농민들의 분노와 아픔을 동반하며 결정됐다.그러나 일단 UR가 타결되자 대부분의 일본농민들은 그들의 분노를 안으로 삭이며 이를 미래의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에너지로 전환시키려는 지혜를 모으고 있다.그들은 UR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는 쌀시장개방을 막기위해 시위도 하고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강력히 촉구하기도 했다.그러나 쌀시장의 개방이 결정되자 그들은 항의시위 대신 앞으로의 대책을 준비하는 데 모든 힘을 쏟고 있다. 쌀시장개방 발표 50여일후인 지난 2월초.일본의 북부 아오모리현으로부터 32명의 농민들이 도쿄옆 지바현에 있는 인바누마 토지개량지구를 방문했다.인바누마 토지개량지구는 바람직한 미래농업의 모델로 상정되고 있는 농지의 대규모화가 실현된 「실험농장」이다.농장을 둘러본 몬젠 히로미(48)씨는 『농지의 대규모화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공부하기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밝혔다. 그는 『쌀시장개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농지의 대규모화등 새로운 농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인바누마 토지개량지구의 가네사카 다스쿠 이사는 『전국 각지로부터 많은 견학자들이 온다』고 밝혔다. 그러나 쌀시장개방 결정에 대한 농협의 반발은 한동안 강했다.농협은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정부의 「쌀생산제한 정책」에 협조했으나 앞으로는 협조하지 않겠다고 반발했다.일본정부는 쌀재고가 많아지면 농협을 통해 각지역별로 쌀재배면적을 제한,쌀생산량을 조정해왔다.농협은 또 가공용 쌀재배를 거부하기로 했다. 농협과 정부의 대립은 지난 2월1일 절정에 달했다.농협지도자들이 이날 UR이후의 농업대책을 설명하기위해 도쿄에 있는 농협중앙회를 찾은 하타 에이지로 농림수산상의 방문을 거부한 것이다.하타장관은 그냥 돌아가지 않을수 없었다. ○「미래농업」 견학 그러나 농협과 정부의 대결은 지난 2월16일 도요다 하카루 도치기현농협중앙회장이 전국농협중앙회 새회장으로 내정되고 농림수산차관이 바뀌며 풀리기 시작했다.농협은 이날 정부의 쌀생산제한 정책을 거부하기로 한 방침을 철회하고 가공용쌀 생산도 농민들 판단에 맡기기로 결정했다.그러나 단순히 인물교체 때문에 대립상태가 끝난 것은 아니다.그 이면에는 지금은 서로 싸울 때가 아니라 UR를 이겨내기위해 힘을 합칠 때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농협과 정부는 다시 머리를 맞대고 농업대책을 논의하고 있다.정부는 당초보다 늦어진 오는 7월 1차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정부는 쌀시장개방 발표후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긴급 농업농촌대책본부」를 설치했다.정부는 정부대로,농협은 농협대로 쌀시장개방 대책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UR대책은 사실 지난 92년6월에 이미 만들어졌다.「새로운 식료·농업·농촌 정책의 방향」.「신농정 플랜」이라고 불리는 이는 앞으로 10년간 일본농업의 기본방향을 제시하고 있다.2000년 본격적인 쌀시장개방에 대비한 농업개혁이라 할수 있다. ○개방 불가피 공감 일본은 이같이 농업시장을 개방하지 않을수 없음을 알고 대책을 준비했다.그러나 쌀시장개방 결정은 호소카와총리의 대단한 결단이었다.호소카와총리가 개방을 결단한 지난해 12월14일에는 일본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사회당과 국회앞에서는 농민과 농협,시민단체들의 시위가 계속됐고 과연 사회당이 종래의 반대입장을 바꾸고 찬성할수 있을지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일단 쌀시장개방이 결정되자 항의시위는 사라지고 일본은 다시 평온한 일상생활로 돌아왔다.많은 농민들은 쌀시장개방은 반대하지만 세계적인 무역대국인 일본으로서는 어쩔수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쌀시장개방 결정이후 일본의 가장 큰 변화는 쌀소동이었다.일본인들은 쌀을 사기위해 쌀가게 앞에 줄을 섰다.일본은 지난해 전후 최악의 흉년으로 쌀이 모자라 쌀을 수입하고 있다.일본의 쌀소동은 쌀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흉년으로 생산량이 줄어든 일본쌀을 서로 먼저 사려하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일본인들은 일본쌀이 가장 맛있고 안전하다고 믿고 있다.일본의 연구소·농협등은 실제로 맛있는 쌀을만들기위해 생명공학등을 이용,경쟁적으로 품종개발에 나서고 있다.일본쌀 선호관념은 쌀시장이 개방되더라도 일본 농민들을 살릴 수 있는 가장 믿을 만한 대책의 하나라 할수 있다.일본농민들은 UR에 대응하기위해 지금 시위 대신 농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 GR/2년뒤 협상착수 97년께 협정탄생(WTO체제)

    ◎또 하나의 도전 「환경 장벽」/미·EU 등 전담기구 설치… 발빠른 준비/대체에너지 개발·산업고도화 서둘러야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의 종결을 선언하기 위한 UR 각료회의가 개막된 지난 12일 모로코 마라케시의 풀만호텔. 개회식과 함께 호텔 2층 로비에서는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엘그린 사무국장의 무역과 환경에 관한 공식 브리핑이 진행됐다.UR의 후속 라운드인 그린 라운드(GR)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마라케시 회의는 「UR의 완성」을 선언하는 회의이면서도,한편으론 새로운 다자협상을 도출하기 위한「다른 하나의 시발」을 의미한다.2차대전 이후 세계 교역질서를 다스려 온 GATT가 WTO(세계무역기구)에 자리를 내주면서 WTO 역시 미래의 주인공인 GR를 잉태했다. 환경문제는 각종 국제회의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현안이다.공식 다자협상으로 격상되지는 않았지만 UN(국제연합)과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등 국제기구에서 부단히 논의해 왔다. 물론 GATT에서도 논의가 있었다.지난 71년 무역·환경에 관한 작업반이설치됐으나 상품과 서비스의 자유화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을 따름이다.무역과 환경문제가 본격화된 것은 80년대 중반 이후 몬트리올 의정서를 필두로 각종 국제환경협약이 나오면서 부터이다. 오존층 파괴물질인 CFC(일명 프레온가스)의 감축을 목적으로 한 몬트리올 의정서와,유해한 폐기물의 수출입 금지를 골자로 하는 바젤협약,화석연료 사용을 억제하기 위한 기후변화협약,야생동식물 보호협약 등이 잇따라 모습을 보이며 국제문제로 부각됐다. 여기에 선진국의 환경규제 강화정책이 불을 붙였다.미국은 90년 대기정화법에서 자동차 베기가스 기준 등 대기 오염원에 대한 규제강화와 함께 교역 상대국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도록 명문화했다.92년엔 야생동식물의 불법 거래국과의 무역을 규제할 수 있는 법안까지 마련했다.EU(유럽연합)도 자신들의 환경기준에 못 미치는 제품의 수입을 일방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선진국의 환경규제는 환경보호라는 명분을 업고 있지만,실은 개도국의 값싼 상품의 수입을 막아 자국 상품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환경규제가 적은 개도국에서는 오염방지 시설에 대한 투자를 덜 해도 되므로 그만큼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따라서 환경규제가 강화될 수록 개도국의 경쟁력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에도 불구,지구환경 보호와 삶의 질이라는 명분에 밀려 그린 라운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마라케시 회의에서 무역환경 위원회 설치를 골자로 한 「무역과 환경에 관한 각료결정」이 확정됨으로써 그린 라운드는 보다 명확해졌다. 그린 라운드의 출범과 별개로 선진국들은 환경규제 입법을 서두르고 규제조치도 강화,새로운 다자규범의 압력수단으로 활용할 전망이다.미국이 최근 무역대표부(USTR)에 무역·환경정책 자문위원회를 설치하기로 결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무역환경위원회」 설치를 계기로 환경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이 위원회와 국제기구와의 협조체제도 강화될 전망이다. 그린 라운드의 가속화는 환경 상계관세 부과 등으로 기업의 비용이 높아지는 결과를 초래한다.개도국일 수록 영향이 클 수 밖에 없다.물론 산업구조 조정이 촉진되는 긍정적 측면이 없는 건 아니다.그린 라운드에 대비,국내 산업의 충격을 최소화해 나가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한 셈이다. 환경관련 기술투자를 늘려 CFC 대체 물질 개발 등 기술개발에 나서야 하며,철강이나 시멘트처럼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의 시설과 공정을개선하는 방안도 절실하다.대체 에너지 개발과 자원 재활용의 촉진,환경을 중시하는 경영의 확산도 서둘러야 할 일이다. 다자규범화에 대비한 협상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그린 라운드가 차기 다자 라운드로 부상할 것이 확실시되지만 다행히 시간은 있는 편이다.무역환경 위원회는 앞으로 2년에 걸쳐 환경문제를 연구·검토한 뒤 각료회의에 넘기게 된다.다자간 규범으로 정착되기까지는 3년가량이 남았다.차분하게 대비하는 지혜가 요구된다.
  • 시장개방 무한경쟁시대 돌입/마라케시 각료회의 결산(WTO체제)

    ◎가트 막내려… 적자생존 새질서 시동/새 다자협상 선진국주도로 가시화 【마라케시=권혁찬특파원】 마라케시 UR각료회의는 15일 「UR종결」을 선고하고,「WTO의 출생」을 공식 선언했다. 협상참가국 모두가 UR종결을 선언하는 최종 의정서에 서명함으로써 2차대전 이후 세계교역을 규율해 온 GATT는 「발전적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GATT를 대신해 세계 교역을 다스릴 국제무역기구(WTO)의 출범을 위한 각국의 비준절차만 남아 있다. 각국의 비준추이를 봐야 겠지만 현 분위기로 보아 WTO는 내년 1월1일부터 출범할 공산이 크다.미국과 EU(유럽연합),일본 등 주요국들이 1월을 목표로 비준을 서두르기 때문이다.당초 협상국들이 구체적인 발효시기를 연내 각료회의를 다시 열어 결정키로 했지만 이번 마라케시 회의를 통해 내년 1월 발효를 낙관하게 했다. 따라서 협상참여국들은 빠르면 내년 초부터 WTO 협정에 약속한 대로 관세인하나 농산물 수입 등 개방약속을 지켜야 한다.시장개방도 상품 뿐 아니라 서비스,지적재산권까지 확대됨으로써 세계는 보다 진전된 교역자유화 시대에 접어들게 됐다. 마라케시 회의는 7년 반을 끌어온 UR의 확실한 이행을 담보한 회의였다.그러나 한편으론 환경·노동 등 새로운 다자과제를 이슈화함으로써 하나의 시발점이 됐다. 환경문제를 다룰 그린 라운드는 마라케시 회의에서 WTO산하 「무역환경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다자테이블에 올려질 채비를 마쳤다.노동·경쟁정책과 같은 다른 이슈들도 기조연설과 대표회담 등을 통해 활발히 개진됐다. 구체적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WTO 준비위원회가 아동노동·죄수노동 등 노동문제를 추가 검토과제로 삼기로 함으로써 향후 다자논의가 GR(그린 라운드)­BR(블루 라운드·노동)로 가닥을 잡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인도 말레이시아·싱가포르·중국 등 중진국과 개도국들이 환경과 노동문제의 다자화에 강력 반발하고 있지만 UR협상이 개도국 생각과 달리 미국과 EU 등 선진국 주도로 전개됐던 점을 생각하면 뉴 라운드 역시 UR의 전철을 따를 것이 분명하다.그러나 뉴 라운드가 구체화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UR협상은 전체적으로 볼 때 「이익만큼 손해가 있는」 제로섬이 아닌,「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플러스 섬」이다.GATT 추정을 보면 UR타결은 10년 뒤 약 2천3백억달러의 소득증대와 7천4백50억달러의 교역증대를 협상참가국에 가져다 준다.우리나라의 경우 WTO협정 발효로 연 4억∼15억달러 가량 무역수지가 개선된다는 분석(한국개발연구원,대외경제정책연구원,산업연구원 등)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UR는 시장개방을 통한 무한경쟁 시대를 예고한다.기업을 지원해 온 정책보조 등 정부지원책은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고,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지 않고는 살아남기 힘들게 됐다. 마라케시 회의로 WTO의 돛은 올려졌다.우리 앞에 「교역증대」와 「지구촌의 낙오자」라는 두가지 선택이 놓인 셈이다. ◎마라케시 선언 요지 ◇세계무역기구(WTO)의 창설이 보다 공정하고 개방된 다자간 무역체제가 가동되기를 바라는 전세계적인 열망을 반영,새로운 경제협력의 시대를 열것임을 선언한다. ◇무역자율화와 UR협상을 통해 마련된 규정들이 국제무역환경을 점진적으로 개방해나갈 것이라고 믿으며 어떠한 보호주의 압력에도 강력히 맞설 결의가 돼 있음을 밝혀둔다. ◇WTO 가입이 효력을 발생할때까지 UR협상결과를 훼손하거나 역효과를 발생할수 있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무역·금융·재정 분야의 각국 정책이 보다 긴밀해지도록 WTO,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간의 협력을 확대하는등 노력한다. ◇협상과정에서 많은 개도국들이 주요한 경제개혁및 자율적인 무역자유화 조치를 취한데 주목한다. ◇협상을 통해 개발도상국들에 보다 유리한 대우를 부여하는 규정들이 구체화됐으며 저개발국가들을 위한 이같은 규정의 실행이 매우 중요하다고 인정하면서 이들 국가의 무역,투자기회 확대지원을 계속한다. ◇각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의 기술원조를 확대하기위해 관세무역 일반협정(가트)과 WTO의 권한능력을 강화해야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UR 최종의정서 서명과 각료회담의 부속 결정사항의 채택으로 가트 체제가 WTO체제로 전환되기 시작했음을 선포한다. ◇특히 WTO협정의 효력발생을 위한 준비위원회를구성하고 WTO협정이 비준을 거쳐 95년 1월1일 또는 그 시점이 지난후 가능한 이른 시일내에 효력을 발생할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완료하기로 다짐한다. ◇최종의정서가 채택,서명되고 WTO 협정절차가 시작됨에 따라 무역협상위원회의 임무가 끝나고 UR도 공식적으로 종결됐음을 선언한다. ◎각료회의 이모저모/모로코 반대로 최종의정서·협정문 분리 서명/브리튼,EU­APEC간 대화채널 구축 희망 ◎…서덜랜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사무총장은 당초 UR협상의 종결을 선언하는 최종 의정서와 WTO(세계무역기구) 협정문을 하나로 묶어 마라케시 회의에서 서명토록 할 계획이었으나 모로코 정부가 『협상결과를 담은 협정문까지 서명할 경우 참석국가가 적어진다』며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두가지로 나누어 서명키로 했다는 후문. 서덜랜드 안을 따를 경우 각국 대표들이 서명시 느끼게 될 부담을 덜어주고,UR협상 종결과 이의 이행을 촉구하는 선언적 성격의 최종 의정서에 모두 서명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 인도는 WTO가 UR협상 결과의이행에 전념해야 함에도 WTO의 권능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제를 도입하는데 우려를 표명.말레이시아도 『노동문제는 국제노동기구에서 처리하는 게 바람직하며,환경보호를 이유로 한 일방적 무역제한 조치는 억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중국도 『환경과 사회문제를 무역과 연계하려는 시도를 우려한다』며 『UR협상에 개도국의 이해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만큼 앞으로 개도국에 대한 특별 우대조치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 ◎…레온 브리턴 EU(유럽연합) 집행위원은 김철수 상공자원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자동차 시장 등 통상현안 외에 『EU가 아·태경제협력체(APEC)과 대화채널을 구축하고 싶다』며 한국의 지지를 요청.브리턴 위원은 WTO협정의 비준과 관련,『EU의회의 승인과 각 회원국의 비준절차가 남았으나 지난 해 11월 EU 이사회에서 통과돼 95년 1월까지 비준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며 우리의 비준전망을 묻기도.이에 김장관은 『WTO협정이 계획된 시기에 발효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변. ◎…마라케시 회의에 참석 중인 선준영 외무부 제2차관보는 기자간담회에서 「우리 정부의 협상력이 약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에 대해 『미국이나 EU(유럽연합)에 비해 약했을 지 모르나 각 부처가 우수한 전문가를 총 동원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결과였다』고 평가.그는 『마라케시 회의에서 환경과 노동문제 등 새로운 이슈들이 많이 제기됐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선진국은 앞으로 인권문제와 인구조절까지 무역과 연계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WTO체제 향후 스케줄 □1994년=▲국내 비준절차 완료 ▲국내 관련법령 개정 ▲무역및 산업관련제도의 개편,보완 ▲UR협정문 발효 위한 각료회의 개최 □1995년=▲UR협정 정식 발효▲세계무역기구(WTO)출범 ▲각국 관세화(시장개방)개시 ▲각국 관세율 인하개시 ▲1단계 다자간섬유협정(MFA)의 WTO복귀:섬유쿼터 철폐율 12% ▲쌀 최소시장접근허용 1%(물량 5만1307t) ▲보리·옥수수·고구마·감자·콩 관세화 ▲고추·마늘·참깨·양파 수입자유화 ▲쇠고기 수입쿼터 확대(43.6% 관세적용) □1996년=▲선진국,지적재산권규정에 따른 제도보완 시행 ▲선진국,무역관련투자제한 폐지완료 ▲블루프린트(2단계)에 따른 추가금융 자율화의 시장개방 □1997년=▲선진국,금지보조금·협정위반보조금 축소완료 ▲42개 중앙행정기관의 물품구매·서비스및 시도의 서비스·건설시장개방 ▲돼지고기·닭고기·감귤·오렌지주스 전면개방 □1998년=▲개도국,지적재산권 규정일치 완료 ▲2단계 MFA의 WTO복귀:철폐율 17% ▲통일 원산지규칙 시행 □1998년=▲개도국,투자관련제한조치 폐지완료 ▲기존 세이프가드및 회색지대(수출자율규제·시장질서 유지협정)철폐완료 ▲선진국,관세양허 추진완료(무세화·관세조화 포함) □2000년=▲쌀 최소시장접근비율 2%로 상승(물량 10만2614t) ▲개도국,수출보조금 축소 또는 완료 ▲3단계 MFA의 WTO복귀:쿼터철폐율 18% ▲개도국,관세양허 추진완료 □2001년=▲쇠고기 전면개방 □2004년=▲쌀 최소시장비율 4%(물량 20만5228t),쌀 관세화에 대한 재협상 ▲개도국,농산물 보조금 13.3%감축 완료 □2005년=▲MFA의 WTO완전 복귀
  • WTO체제 출범선언/UR각료회의 폐막

    【마라케시=권혁찬특파원】 UR(우루과이 라운드)협상의 종결과 WTO(세계무역기구)의 출범을 공식화한 마라케시 UR 각료회의가 15일(한국시간 16일 새벽)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됐다. 이로써 86년 9월 우루과이 「푼타 델 에스테」에서 시작된 UR협상이 7년 반의 대장정을 마쳤고,2차 대전후 세계 무역질서를 다스려온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도 WTO 체제로 대체되게 됐다.WTO는 내년 1월 1일 출범이 유력시된다. UR협상 참가국들은 이날 모로코 마라케시의 풀만호텔에서 속개된 본회의에서 UR종결을 선언하는 각료선언과 4개항의 각료결정을 채택하고 최종 의정서와 협상내용을 담은 WTO협정,정부조달협정 등 복수국가간 협정에 대한 서명식을 가졌다.한국의 수석대표인 김철수 상공자원부장관은 최종 의정서에 65번째로,정부조달 협정에 24번째로 서명했다.그러나 최종 의정서의 부속서로 공산품 및 농산물 개방내용이 담긴 WTO협정은 국회 동의를 받은 뒤 서명하기로 했다. 최종 의정서에는 회의에 참가한 1백13개국이 서명했다.그러나 WTO협정의 경우 우리나라를 비롯,미국 일본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15개국이 비준 이후로 서명을 연기했고,77개국은 비준조건부로 서명했다. 채택된 각료선언은 WTO 체제의 출범을 위해 「준비위원회」를 두고 WTO가 내년 1월 1일 또는 그 후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발효되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키로 했다.
  • 백제의 신화/무왕때부터 “왕은 용의 아들”(백제를 다시본다:11)

    ◎건국신화 없어 고구려·신라에 열등감/권위회복·단결위해 「용 설화」 만들어/능산리 금동용봉향로의 태자상 장식이 그 증거 우리나라 상고사중 한민족 중심인 단군조선,부여와 고구려에는 각기 고유하면서도 서로 맥이 통하는 신화가 있다.일정한 구조를 가진 꾸며낸 이야기인 설화에는 신화,전설과 민담이 포함된다.어떤 학자는 신화를 건국,씨족,마을과 무속의 네가지로 분류하기도 한다.한국의 신화에서는 신격을 타고난 인물이 범상을 벗어나 과업을 성취하거나 주인공의 원향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출생­성장­혼인­즉위­죽음의 통과의례에 대한 과정을 다룬 건국신화나 시조신화를 으뜸으로 쳐왔다.왕권을 신성화하고 있는 한국의 건국신화는 신화에서 벗어나 역사화된 것으로,그리고 전설이 역사적 믿음을 이념으로 삼은 신화와 전설의 복합체이다.신화는 민족적인 범위에서 전승된다고 한다.국가창건신화의 경우 국가가 바로 증거물에 해당하며,만일 신화에서 이와같은 증거물이 없다면 전승은 중지되거나 민담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삼국유사에 기록 「삼국유사」권제1기이 제2에 의하면,왕검조선은 상제인 환인의 서자인 환웅이 지상(신단수아래 신시)에 내려와 3.7일을 굴에서 지낸후 여자가 된 웅녀와 결혼해서 난 단군왕검이 아사달에서 나라를 엶으로써 생겨난다.그 해가 요제 즉위후 50년 경인년(실제는 정사)으로 기원전 2333년(동국통감에 의해 당고 무진년)에 해당한다.그는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 일컫고 이어서 백악산 아사달로 옮겨 1천5백년을 다스리다가,주 무왕(호왕) 기묘년(기원전 1122년)에 기자조선이 들어서매 장당경으로 옮기고 후일 아사달에 숨어 산신이 되었다.그의 나이는 1천9백8세였다 한다.최근 그의 무덤(소위 단군릉)이 평양근교 강동군 대박산기슭에서 발굴되었다고 북한의 고고학자들은 주장하고 있으나 무덤의 위치,연대,묘의 구조와 출토 유물 등에서 여러가지 모순점을 보인다. 북부여의 경우 해모수가 하늘에서 다섯마리의 용을 타고 내려옴으로써 나라가 이루어진다.그 해가 전한 선제 신작 3년으로 기원전 59년에 해당한다.그의 가계는 해부부(가엽원으로 도읍을 옮겨 동부여라함)­김왜(하늘이 점지한 개구리같은 어린이로,해부루의 수양아들이며 태자임)­대소에게로 세습된다.삼국유사 권1 동부여조에 의하면 이 나라는 왕망 15년,기원후 22년(고구려 3대 대무신왕5년)에 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그러나 부여는 346년 연왕 모용황에게 망하고,실제 고구려에 투항하는 494년까지 지속되고 있었다. 고구려의 건국자인 동명왕(주몽,성은 고)의 개국설화에는 대개 세가지가 전한다.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그는 북부여의 건국자인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와 용왕의 딸인 하백녀(유화)사이에 알로서 태어났는데(난생),그 해가 한 신작4년,기원전 58년이다.그리고 그는 해모수의 아들인 해부루와는 이모형제가 된다.그가 금와의 태자인 대소와 사이가 좋지 않아 졸본주(졸본부여,홀본 골성)로 가 나라를 세운다는 것이다. 이규보의 「동국리상국집」동명왕편에 의하면,그 해가 한 원제 12년으로,기원전 37년(최근 북한 학자들은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277년으로 잡고 있으며 그 이전단계를 「구려」로 보고 있다)이며 그의 나이 21세 때이다.그리고 기원전 19년에는 그가 부여에 있을때 예씨부인으로부터 얻은 아들로서,자기집 일곱모의 소나무 기둥 아래(칠령칠곡의 소나무위에 선 기둥)에서 부러진 칼을 찾아 온 유이(기원전 19∼기원후 18년)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백제의 건국자는 주몽의 셋째 아들인 온조(기원전 18∼기원후 28년)이다.그는 아버지인 주몽을 찾아 부여에서 내려온 유리왕자(고구려의 제2대왕)존재에 신분의 위협을 느껴 한 성제 홍가 3년(기원전 18년) 형인 비류와 함께 남하하여 하북위례성(현 중랑천근처이며 온조왕 14년,기원전 5년에 옮긴 하남위례성은 강동구에 위치한 몽촌토성으로 추정됨)에 도읍을 정하고,형인 비류는 미추홀(인천)에 근거를 삼는다.이들 형제는 삼국유사에 의하면 고구려의 건국자인 주몽의 아들로 되어 있으나,삼국사기 백제본기 별전(권23)에는 북부여의 둘째왕인 해부루의 서자인 우대의 아들로 나와 있다.이는 그의 어머니인 서소노가 처음 우태의 부인이었다가 나중 주몽에게 개가하기 때문이다. 이들 신화에서는조지훈과 이동환을 비롯한 이 관계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듯이 국조탄생설화,이주개국형,난생설화,개탁국가,중서자립국과 이모형제들이 공통된다.다시 말하여 단군조선­부여­고구려­백제는 같은 맥이나 한핏줄을 이루어 형성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최근 북한에서 이러한 맥을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정치적 정통성을 확립하고 정당화시키는데 이용하고 있다.그러나 백제의 건국자인 온조는 천손인 해모수,용왕의 딸인 하백녀(유화)의 신화적인 요소와,알에서 태어난 주몽의 탄생과 같은 난생설화가 없이 처음부터 주몽­서소노­우태라는 구체적이고 실존적인 인물들 사이에서 태어난다.그래서 백제에는 부여나 고구려다운 건국신화나 시조신화가 없다.이것이 백제가 어버이 나라인 고구려에 항상 열등의식을 지녀온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이점은 온조왕 원년에 동명왕묘를 세운 것이나,백제 13대 근초고왕(346∼375년)이 371년 평양으로 쳐들어가 고구려 16대 고국원왕(331∼371년)을 사살하지만 평양을 백제의 영토로 편입시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한성으로 되돌아 오는 점 등에서 이해된다. ○왕권 신성화 애써 그래서 백제의 왕실은 고구려왕실에 대한 열등감의 극복과 아울러 왕실의 정통성을 부여하려고 애를 써왔다.그것이 전설적인 신화보다는 용이 왕을 상징하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왕권의 탄생설화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인 것 같다. 중국과 한국에서 용은 물(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농경사회를 상징하는 왕이다.최근 부여 능산리에서 발견된 김동용봉봉래산향로의 뚜껑과 몸체에 표현된 도교와 불교적 문양과 용봉(또는 주작과 현무),연화문 가운데의 태자상의 장식등이 그러한 증거로 보여진다.이것은 후일 신화가 없어도 될 것 같은 고려나 조선도 「제왕운기」나 「용비어천가」를 만들어 건국의 정신적,이념적 틀을 꾸준히 보완해 나가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농경사회의 수신… 왕권 상징/부여 절터에서 용무늬 벽돌 출토/용의 의미 백제는 신화나 설화의 자료가 사실상 희박하다.특히 건국신화는 없다.우리 신화의 원전격이라 할 수 있는 「삼국유사」의 경우 고구려,신라,가락의 건국신화만을 다루었다.그러면서 신라 중심의 호국,인문신화에 치중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건국신화 말고는 무왕(?∼641년)과 관련한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온다.용이 등장하는 설화다.그 어머니가 서울 남쪽 못가에다 집을 짓고 살았는데,못 속의 용과 관계한 이후에 낳은 아들이 무왕이라는 것이다.용을 모티브로 한 숱한 「삼국유사」기록 가운데 하나인 이 무왕과 용에 대한 대목은 시사하는 바 크다. 용은 대체로 호교의 상징 내지는 호국의 상징으로 나타난다.이러한 사실을 상기하면 무왕은 호교와 호국 두 요소에 바로 연결된다.전북 익산 금마에 미륵사를 창건했고 부소산성과 마주하는 백마강 건너 울성산성 근처에 호국사찰 왕흥사를 완공시켰다.그는 금강 언덕의 바위에서 예불한 다음 배를 타고 건너가 법회에 친히 참석했다고 한다. 그는 추풍령을 넘어 낙동강 유역까지 진출,신라를 위협했다.사비성으로 천도한 이후 가장 막강한 군주로 문화를 꽃피우는 가운데 영토를 관리하는데도 주력했다.이렇게 보면위대하고 훌륭한 존재와 비교되는 용은 왕권이나 왕위를 상징할 수도 있다.그래서 「삼국유사」에 나오는 용과 무왕의 연관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난해 연말 사비시대 백제의 고토인 부여 능산리 출토품 김동용봉봉래산향로의 용은 왕권을 상징한 것으로 풀이된다. 더구나 뚜렷한 신화가 없는 백제가 사비시대에 창조한 신화적 요소가 용이라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그렇다면 용에는 백제인들의 융합을 위한 신성성이 내포된다.이는 역사와 관련을 가지면서 민족의 단합을 꾀하는 신화구성 원칙에 부합되는 것이기도 하다.
  • “왜왕 무는 백제의 무령왕”/원광대 소진철교수논문「상표문」서 주장

    ◎개로왕의 아들로 20년간 왜국 통치후 환국/무가 송 순제에 보낸 「상표문」 보면 사실 입증/“천황계라는 일측 통설은 근거없는 억지 주장” 백제 무령왕은 10대의 어린나이에 「무」라는 이름으로 위왕의 자리에 오른뒤 적어도 20년동안 위국을 다스렸으며 그뒤 환국해 백제왕에 즉위했다는 연구가 나왔다.소진철원광대교수(정치사상)는 이같은 연구결과를 15일 한국 프레스센터에서 한일문화교류기금주최로 열리는 「제30차 한일문화강좌」에서 발표한다. 소교수는 「김석명문을 통해서 본 백제 무령왕의 세계」라는 주제로 두편의 논문을 발표할 예정.그는 이가운데 「위왕 무의 상표문(478년)을 보고」에서 「왜왕 무」를 비롯한 5세기 「위오왕」이 천황계라는 일본측 「통설」을 『합리적인 근거나 이론의 제기가 없는 무리한 주장』이라고 전면 반박하고 『무가 송 순제에게 보낸 「상표문」으로 볼때 무는 무령왕』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측은 무를 「일본서기」에 나오는 웅략천황으로 비정한다.소교수는 그러나 「서기」에 웅략은 458년에 즉위했다고적혔으나 이 해는 무의 선왕인 흥의 즉위보다 앞서는등 일본측의 이른바 「통설」은 근거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무가 직접 써 송 순제에게 478년 보낸 「상표문」은 위기에 처한 백제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 것.소교수는 「상표문」을 쓴 사람은 백제의 불운이 곧 자신의 불운으로 이어지는 백제와의 일체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일 수밖에 없다고 추정했다.그는 이어 「상표문」에는 「자신의 부형이 갑자기 죽었고…이제 망부의 유지에 따라 적(고구려)의 강토를 무찌르겠다」라는 내용이 담겨있는데 이무렵 왜나 백제에서 있었던 왕과 왕자의 갑작스런 죽음은 백제 개로왕의 비참한 최후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 의하면 475년 겨울 고구려대군의 7일간에 걸친 공세로 창례성이 무너지고 개로왕과 대비,그리고 왕자가 아차성에서 무참히 살해됐다.무가 「상표문」에서 말한 「아버지와 형의 죽음」은 바로 개로왕과 왕자의 비참한 최후를 말한다는 것.무는 바로 개로왕의 아들로 뒤에 무령왕이 된 사마군이라는 주장이다.「송서」에 의하면 송 순제는 478년에 무가 자청한 「안동대장군·위국왕」,20년후인 502년에는 양 무제가 「정동대장군·위국왕」이라는 관호를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이는 무의 왜왕 재위가 적어도 20년이상 지속되었다는 증거로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 각각 501년 및 502년으로 적힌 사마왕,즉 무령왕의 백제환국 기록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 소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또 사마왕이 461년 「각라도」에서 탄생하고 502년 환국전까지 왜국에 있었다는 「일본서기」의 기록도 사마왕이 위왕위에 있었던 것으로 보았다. 소교수는 사마왕이 523년 서거한뒤 갖게 된 무령왕이라는 시호도 기골이 장대하고 성품이 인자해 붙여진 무라는 왜왕 재위시절의 이름과 521년 양제로부터 제수된 「녕동대장군·백제왕」의 머릿글자를 따서 지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소교수는 이날 함께 발표한 「칠지도 명문의 새로운 해석」에서도 백제왕이 하사한 「칠지도」(일본 나라현 석상신궁소장)를 받은 후왕 「위왕 지」 역시 무를 비롯한 「위오왕」의 자손,즉 백제왕의후손으로 해석하고 있다.
  • 지바현 인바누마 토지개량지구(일본농업탐방:22)

    ◎최소비용으로 최고의 쌀 생산 실험/단위경작지 일평균의 70배… 헬기 직파/모든 영농 기계화… 미보다 시간 적게 들여 더 많이 생산 세계에서 가장 싼 비용으로 쌀을 생산할 수는 없을까.도쿄옆 지바현에 있는 인바누마 토지개량지구의 대규모 농경지에서는 쌀시장 개방후에도 일본농업이 살아 남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맛있고 생산비가 적은 쌀농사의 영농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인바누마 토지개량지구는 지바현 사쿠라시에 있는 호수 인바호를 중심으로 그주변에 넓게 펼쳐진 농경지다.도쿄 우에노역에서 전철로 80분.대규모화가 이루어진 거대한 농경지에는 UR를 이겨내겠다는 일본농업의 의지가 심어져 있다. ○농경지 대규모화 가장 넓은 구획은 길이 3백75m 너비 2백m로 7.5㏊.단위 면적으로 일본에서 가장 넓은 농경지다.그 바로 옆에 있는 구획은 7.2㏊.인바호를 메워 만든 이 농경지는 일본 평균단위 논넓이의 70배이상이나 된다. 『일본의 쌀농업이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농지의 대규모화를 통해 생산비를 낮추는 길밖에 없다』 지난 40여년간 농지대규모화를 추진해온 가네사카 다스크 인바누마 토지개량지구 이사(75)의 일본농업혁명론이다. 가네사카이사는 제2차대전의 종전과 함께 농업에 종사하며 농지대규모화를 추진해왔다.그는 여러필지로 나누어져 있던 농경지를 한데 묶고 인바호 간척사업등을 통해 대규모 농지를 만든후 땅주인들로 구성되는 농업법인을 만들었다.농사는 대부분 전업농가에 위탁하여 짓고 있다.인바누마지구에는 지금도 대규모화작업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용·배수로 땅에 묻어 그러나 단순히 농지의 대규모화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효율적인 과학영농을 위해 철저한 계산을 하고 있다.일본에서 단위논으로는 가장 넓은 7.5㏊ 농경지의 땅높이 편차는 보통 농지정리지역의 절반이하인 플러스·마이너스 2㎝에 불과하다.활주로 건설에 사용되는 「레이저 콘트롤」 불도저를 이용하여 이같이 평평한 농지를 만들었다.『항공파종,기계화 영농의 효율화를 위해서는 편차가 거의 없는 평평한 농지가 필요하다』고 가네사카이사는 강조한다. 그러나 이같이넓은 농지에 반드시 필요한 용·배수로는 보이지 않는다.파이프를 이용한 자동식 용·배수로는 모두 땅속에 묻혀 있다.용·배수로가 땅속으로 들어가면 그만큼 경지면적이 넓어지고 논두렁도 필요없게 된다.꼭 필요한 논두렁도 보통논두렁의 절반이하인 15㎝로 낮추고 그것도 경사형으로 만들어 트랙터등 농기계가 자유로이 다른 논으로 이동할수 있도록 만들었다. 농지의 이러한 대규모화를 바탕으로 지난해부터 세계에서 가장 싼 생산비용의 쌀농사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경작지중 10㏊에 헬기를 이용,논에다 직접 볍씨를 뿌리고 모든 작업을 기계화하는 기계화영농을 실험하고 있다.10a당 파종에서 수확까지 걸리는 시간은 41분.미국의 평균 1시간보다 짧았으며 모내기방식의 일본농업에 드는 평균 45시간보다는 65배이상이나 시간이 단축됐다. ○올해 항공파종 확대 쌀농사에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것은 모내기다.가네사카이사는 이때문에 일본도 모내기방식에서 직파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그는 『직파를 할 경우 농업에 드는 시간을 미국보다 단축시킬 수 있고 단위생산량도 미국보다 많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싼 쌀농업은 이제 꿈이 아니라 현실로 입증되고 있다』고 자신한다.그는 올해부터 항공기 파종을 더욱 확대할 예정이다. 가네사카이사에게는 그러나 아직 실현되지 않은 꿈이 하나 있다.그것은 하이테크 농업기계센터의 설립이다.밤동안에도 논을 갈수 있는 로봇이 운전하는 트랙터와 센서로 작동할 수 있는 콤바인등을 만들기 위해서이다.로봇 트랙터등은 현재 일본에서 실험 운전중이다.그의 마지막 꿈이 실현될 날도 그리 멀지않은 느낌이다. 인바누마 토지개량지구는 일본 미래농업의 모델이다.일본각지 뿐만 아니라 한국등 외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개량지구사무실 2층에는 모델농업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강당이 마련돼 있다.가네사카이사는 대형 비디오가 갖추어진 강당에서 일본농업혁명론을 정열적으로 강의하고 있다. ○영농로봇 제작 추진 일본정부가 지난 92년 발표한 「새로운 식료·농업·농촌정책의 방향」이라는 이른바 「신농정」의 핵심도 농지의 대규모화다.신농정은 1가구당 농지규모를 10∼20㏊로 확대하고 생산비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일본은 이러한 대단위 「개별경영체」 15만개와 몇개의 부락으로 구성되는 「조직경영체」 2만개를 2000년까지 만들어 전체 농업의 80%를 담당하게 할 계획이다. 그러나 농지의 대규모화는 그렇게 간단치가 않다.일본은 그동안 여러번 대규모화정책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그것은 일본인들의 토지에 대한 강한 애착과 토지의 생산성이 높기 때문이다.일본농가는 토지의 생산성이 높아 영세규모로도 생활이 가능하며 급격한 공업화과정에서 토지는 투기의 대상이 되며 자산성이 높아졌다. 토지에 대한 이러한 사회·문화적 배경 때문에 대규모화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그러나 쌀시장이 개방된 이상 농지의 대규모화와 맛의 고급화등으로 국제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일본의 쌀농업은 파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대규모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쌀시장개방은 일본농업의 시련임에 틀림없다.그러나 가네사카이사는 『지금이 일본농업을 개혁할 절호의 기회』라고 말한다.일본정부도 농가전체를 지원하는 지금까지의 방식에서 대규모화를 통해 농업에 의욕을 갖고 도전하는 전문농가에 대한 지원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농업에 뜻이 있는 농가를 중점 지원하겠다는 전략이다.일본은 쌀시장개방이라는 도전을 이같이 농업을 더욱 발전시키는 농업혁명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 ’94 전통문화축제 7일 화려한 팡파르/내고장 향토문화제 꽃피운다

    ◎진해군항제 시작으로 11월까지 전국 7곳서/정인원 3천명 참가… 전토예술 세계화 역점/의상·소도구등 2만점 동원… 예산 총4억원 투입/서울신문사·금성 공동주최 「94 향토문화축제 지원사업」의 첫번째 결실인 「충무공 승전행차행렬」이 오는 7일 군항제가 열리는 경남 진해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올해로 5회를 맞는 「향토문화축제 지원사업」은 서울신문사와 금성사가 우리의 전통축제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고 지역문화를 육성하기 위해 지난 90년부터 시작한 것.KBS의 후원아래 회를 거듭할수록 지역민의 폭넓은 호응을 얻고있는 이 축제는 이제는 전국 각 지역 향토문화제의 대표적 행사로 뿌리를 내렸다.올해는 특히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지역축제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방침으로,행사진행도 단순행차행렬 일변도에서 벗어나 가·무·낙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지는 역동적인 무대를 꾸미는데 역점을 둘 예정이어서 한층 관심을 모은다. ○「축제예술」이 진행 올해는 전국의 대표적인 향토문화제 기간중 각 지역의 특색과 전통이 담긴 일곱차례의 축제행사를 펼친다.이벤트전문기획사인 「축제예술」(대표 허규)이 연출·진행을 맡은 이번 행사에는 4억여원이 투입됐으며 출연할 총인원은 3천여명,의상·소도구·장비등 예상 소요물품도 2만점에 이르는 등 완벽을 기해 어느해보다 알찬 축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주최측은 전통축제행렬을 해당지역의 역사적·문화적 특성을 살린 축제로 발전시켜나가기 위해 현지의 민속놀이및 민요와의 연관성을 고려,내용을 재구성했다.또 각 지역의 문화예술인·향토사가등 지역문화 담당자들과의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축제의 완성도를 높인 것도 올해의 특징.이밖에 지역주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향토문화제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지난해에 이어 지역유지등 현지주민과 관계저명인사등을 중심인물로 출연케 할 예정이다. 전국을 신명난 축제의 마당으로 만들게 될 이번 행사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본다. ▷진해 군항제◁ 충무공의 기개가 어린 충절의 고장 진해에서 벚꽃 만발한 가운데 펼쳐질 군항제가 7일 우렁찬 팡파르를 울린다. 올해로 32회를 맞는 군항제는 이충무공호국정신선양회가 주최하는 종합향토예술제.「충무공승전행차」는 경축식이 열리는 진해 공설운동장에서 필승로∼충무공시비∼진해역을 거쳐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2·5㎞구간에서 펼쳐진다. 경축식은 충무공의 안골포해전 승리를 알리는 파발마가 폭죽과 연막탄이 터지는 가운데 식장으로 달려 들어오며 시작된다.이어 충무공이 취타대의 주악속에 입장하면 최초의 승리를 알리는 장계가 낭송되고 승전무와 검무·사물놀이등 축하공연이 펼쳐진다.경축식이 끝나면 사물놀이패와 충무공의 영정을 앞세운 승전행차행렬이 출발한다.행렬에는 거북선과 판옥선이 등장해 충무공의 기개를 드높인다.또 시내중심가에서는 축포속에 판굿을 벌이는등 풍성한 볼거리를 마련,주민과 관광객들의 적극적인 참여하에 축제분위기의 절정을 이뤄낸다는 계획이다. ▷진도 영등제◁ 전남 진도군 회동마을 신비의 바닷길 현장에서 「영등살놀이」가 다채롭게 펼쳐진다.25·26일 이틀간 진행될 이번 공연은 전남 진도지방에 전해내려오는 「영등살」에 얽힌 설화와 이 지방의 민속예술을 축제극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25일 영등제의 시작을 알리는 고유제에 이어 흥겨운 신뱃노래 연주속에 서울가무악예술단의 신장기춤이 펼쳐진다.본행사날인 26일에는 길놀이와 씻김굿을 통해 「영등살」설화의 주인공인 「뽕할머니」를 모셔오고 진도의 풍속에 따라 재액을 쫓고 바다의 수호신을 맞아들이는 무속의식도 선보인다.한편 영등살은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마을 사이 2.8㎞에 이르는 바다가 매년 음력 3월초 간만의 차로 바닷길을 이루는 현상으로 외국에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으로 잘 알려져있다. ▷남원 춘향제◁ ○국악의 문화상품화 판소리의 고향인 남원고을에서 열리는 춘향제는 정절의 상징인 춘향의 얼을 부각시키고 한국여인의 아름다움을 드날리기 위해 춘향문화선양회가 마련한 향토축제.64회의 연륜을 자랑하는 행사답게 실속있는 내용으로 꾸며진다.5월18일 광한루 특설무대에서 펼쳐질 「춘향전」(이몽룡 타령)은 올해가 국악의 해인 만큼 「국악의 문화상품화」에 무게중심을 둔 것이 특징.이에 따라 단순한 행렬위주의행사 대신 인간문화재 박동진·오정숙·은희진·박후성씨등 국내 정상급 명창들이 대거 참여,지금은 사라진 협율사창극을 재현해내는 이색무대로 꾸민다.이번에 선보일 춘향전은 구한말 전문창극단체인 협률사에서 공연되었던 창극을 오늘에 다시 본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부여 백제문화제◁ 올해로 40회를 맞는 백제문화제가 오는 10월2일 백제의 고도인 부여 구드레공원에서 열린다.「백제의 영광」을 내세운 이번 행사에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58호인 줄타기와 경서도 소리를 위주로 꾸민다.축제의 압권은 환상적인 울림이 돋보이는 가무악 「다스림」공연.특히 이 춤무대는 백제선현의 원혼을 달래고 인간의 화합과 전진을 다짐하는 내용의 검무가 물결처럼 이어지는 장관을 연출해낼 예정이어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경주 신라문화제◁ 오는 10월9일로 예정된 신라문화제는 신라문화선양회가 찬란했던 신라의 문화를 보전·계승하기 위해 주관하는 향토축제.국악대제전·미술대전·궁도대회등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된다.이번 문화제에서도 「태종무열왕 행차행렬」을 재현한다.삼국통일의 기틀을 다진 태종무열왕을 중심으로 김유신장군과 화랑의 행렬을 편성,민족의 숙원인 통일의 사명감을 고취시킨다는 방침.태종무열왕을 앞세운 행렬은 취타대·농악대등을 포함,4백여명으로 편성할 예정이다. ▷충주 우륵문화제◁ ○충효사상 재조명 신라의 악사 우륵을 기리는 우륵문화제는 올해 24회로 오는 10월12일 충주 공설운동장과 시내일원에서 열릴예정이다.이번에 마련된 「임경업장군 출진행렬」은 금나라와 싸우기 위해 전장에 나서는 임경업 장군의 장렬한 모습을 행렬로 재현한 것.안으로는 이괄의 난을 평정하고 밖으로는 왜적을 물리치려던 장군의 기개와 국난극복 의지·충효사상을 재조명한다는 것이 기획의도다.장군을 모시는 청신과정을 통해 장군의 혼을 받드는 제의식이 서두를 장식한다.이어 태껸시연등으로 흥을 돋우며 취타·화관무등 군사들의 사기를 돋우는 위안잔치가 벌어진다.행렬은 공설운동장에서 시작,시청∼제1·2로터리를 거쳐 중앙공원에 이르는 3㎞구간에서 펼쳐진다. ▷진주 개천예술제◁개천예술제는 경상남도가 해마다 거도적으로 벌이는 종합예술제이다.오는 11월4일 선보일 「김시민 목사행렬」은 진주성을 죽음으로 지킨 선현들의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고 진주의 역사적 이미지를 고양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김시민 목사를 중심으로 민·관·군이 한덩어리가 되어 왜적을 물리친 사실을 행렬화한다.특히 이번 행렬은 진주 검무 및 진주 오광대·쾌지나칭칭나네 민요와 민속연희등 특징적인 군무의장형식을 도입해 「고수사전지계」의 투철한 정신을 살린 것이 특징. 전도와 취타대·대고·목사 및 군사·의병·민속연희단의 순으로 진행되며 모두 4백여명이 호흡을 맞춘다.
  • 4월… 마음속 겨울을 털어내자(박갑천칼럼)

    해마다 봄은 꽃샘바람 속을 헤집고 온다.올 3월의 꽃샘바람은 유난히도 많았다.비록 햇살은 다사로워졌다 해도 선늙은이 얼어죽게 한다는 그 바늘끝같이 파고드는 바람결.이제 4월로 접어들었으니 명지바람으로 바뀌어 갈것이다.산과 들의 내음이 달라지고 색깔 또한 날이 다르게 변한다. 봄은 우리에게 다가올 때마다 어김이 없이 영혼과 육신의 관계를 가르쳐 온다.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하다.영원한 생명으로서의 영혼 위에 가시적인 육신으로서의 잎과 꽃을 입혀주어 오는 것이 아닌가.인생도 그 초목의 삶과 죽음에 다름없음을 봄은 증언한다.누리의 부활을 보이면서 우리의 생명도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소리없는 강론이다.거기 귀기울일 수 있어야겠다. 추운 겨울이었을수록 봄은 더욱더 위대해진다.추위를 느낀 그만큼 봄의 햇살이 주는 의미를 알게 될것이기 때문이다.추위를 모른다면 다스움의 참뜻도 모른다.그것은 어려움을 모를때 행복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쓴맛의 고비를 몇번이고 넘겨야 단맛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그뿐이 아니다.사람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람됨의 그릇을 키운다.세상사는 눈길을 더 원숙하고 풍요롭게 만든다.그런 가시밭길을 거친 사람이 이루어 놓은 것이라야 바탕과 뼈대가 튼실한 법이다. 이와같은 인생의 기미를 두고 「맹자」(맹자:고자하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하늘이 장차 대임을 맡기려고 할때는 반드시 그 심지를 괴롭히고 그 근골을 수고롭게 하며 그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들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게 하여서 그들이 해야할 일과는 어긋나게 만드는데 그것은 성질을 참아서 해내지 못하던 일을 더많이 할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봄의 의미는 그러한 시련을 안긴 겨울의 위상을 곱씹어 보는데에도 있다고 할것이다. 부드러움이 능히 강함을 제압한다(유능제강)는 노자의 이치를 깨단하게 하는 것이 봄이기도 하다.설한풍의 겨울을 물리치는 것은 그보다더사나운 힘으로 맞서는 존재가 아니다.달보드레한 햇살을 더불고 오는,계절의요녀와도같은 봄이아닌가.꽃을 피우면서 산골짝물을 노래하게 하는 그가녀린손길이다.봄은 그렇게 화의 미덕을 가르친다.그러면서 계절이 바뀌어도 마음속에는 3백65일을 두고 봄을간직해야 한다고 속삭인다. 너나할것 없이 마음속의 겨울을 말끔히 털어내야겠다.커튼을 걷고서 해맑은 햇살을 받아들이자.새로운 삶의 생명을 점지하는 그 다사로운 햇살을.기지개를 켜자.위대한 봄을 호흡하자.위대한 봄으로들 만들어 나가자.
  • 북녘도 연애결혼 확산/성개방 풍조만연… 처녀임신·간통 빈발

    북한에서도 최근 자유연애 및 성개방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북한에선 지난 70년대까지만 해도 중매결혼이 주류를 이뤘다.80년대 들어 점차 연애결혼이 증가하기 시작,최근 평양 등 대도시에서는 북한의 젊은 남녀들이 연애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눈에 띄고 있는 등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외통신에 따르면 이같은 세태로 인해 임신이나 간통사건이 빈발,사회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심지어 일부 여성들의 경우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일부러 「부화사건」(간통사건)을 조작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즉 북한당국이 간통을 중벌로 다스리는 것을 이용,일부 여성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들과 의도적으로 동침하거나 소문을 퍼뜨려 결혼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연애풍조가 확산되면서 아직 결혼 적령기도 아닌 10대나 20대 초반의 청소년층에서 반지 교환과 문신 새기기가 열병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남녀 학생들간에 정분의 표시로 주고 받는 반지는 값비싼 도금반지보다 주화의 가운데 부분을 도려내거나 동파이프를잘라서 직접 다듬어 만든 사제품이 주로 이용된다.또 학교내 불량서클에 가입한 경우 남학생은 손등에 별 모양이나 여자나체를,여학생은 몸에 꽃이나 남학생의 얼굴을 새겨 장래를 약속하며 결속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최근 연애결혼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가운데 경제난이 가중되자 배우자 선택기준도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과거에는 성분이 좋은 국가안전보위부나 사회안전부 등과 같은 권력기관 종사자가 인기였으나 요즈음엔 남녀 공히 경제적 능력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특히 당고위간부가 아닌 일반주민들 사이엔 외교관·무역회사직원·선원·운전사 등이 배우자감으로 선호되고 있다.이들 직종이 외화나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생필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데다 뇌물이나 부수입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백제인의 불교신앙(백제를 다시본다:8)

    ◎성왕이래 융성… 불국정토건설 희구/미륵신앙 대유행… 미륵사는 그 중심/6세기 불경·불상 이미 국제적 수준 「백제에는 승려와 사탑이 매우 많다」.주서의 이 기록처럼 백제에는 불교가 성했고,당시 사람들의 생활은 불교신앙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다.풍진세상 살면서도 때묻지 않는 연꽃의 그 맑은 마음 배우기를 희망했다.그리고 미륵불이 출현하는 아름다운 불국토를 희구하면서,불전에 향을 사르는 공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그들이 꿈꾸던 행복은 서산마애불의 따뜻하고 평화로운 웃음같은 것이기도 했다.불국은 향기로 가득한 나라다.계의 향기,삼매의 향기,그리고 해탈의 향기가 가득 피어나기를 불전에 기원하던 백제인의 염원은 최근에 출토된 아름다운 향로에도 스며있다.백제의 향로가 그토록 아름다운 것은,또 그 작은 향로에 사람과 동물이 함께 있고,음악이 또 거기에 있음은,자신을 향기롭게 닦고 세상을 향기롭게 꾸미려던 진실된 마음의 발로이기도 한 것이다. ○향로에도 불심스며 백제는 한강 유역에 도읍하고 있던 4세기 후반에 이미 불교를수용한다.그러나 웅진시대를 지나 사비로 천도할 무렵까지의 기록은 거의 없다.다만 성왕 이후의 기록이 약간 전할 뿐이다.사비시대라 할지라도 불교에 관한 기록이 적고 유물과 유적 또한 흔치 않다.그나마 단편적인 자료가 남아 이 시기 백제불교가 국제적 수준의 문화를 소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엿보게 한다.백제 구법승의 발길은 중국은 물론이고 멀리 인도에까지 미쳤다.사비성에는 인도의 패달다삼장이 겸익을 따라와서 율부번역에 참여했다.선신니등 일본의 구법유학승이 와서 백제불교를 배웠다.사신과 구법승의 중국 내왕을 통해서 부지런히 선진의 문화를 수용했고,동시에 신라 및 일본 등지로 그들의 불교문화를 전파했다. 겸익이 인도의 구법유학에서 돌아온 것은 성왕 4년(526년)이다.왕은 그를 흥륜사에 살게하고 28명의 고승과 함께 역경에 종사토록했다.율부 72권이 번역되자 담욱과 혜인이 율소 36권을 저술한다.겸익의 인도 유학과 율부의 번역은 백제불교의 폭과 역량이 국제적인 것이었음을 일러준다.백제불교는 계율을 중시했다.율부의 번역과 주석이 그 대표적 사례다.이밖에도 법왕은 살생을 금하고 민가에서 기르는 매를 놓아주며 고기잡고 사냥하는 도구를 불사르라는 명을 내릴 정도였다.법왕이 살생을 금한 것은 불교의 윤리를 국민의 생활 속에 심어주려는 노력의 하나로 풀이될수 있다.이 세상에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없다.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도 자신은 더없이 소중하다.불살생은 자비를 적극적 실천하는 일이다.우리의 일상생활을 제멋대로 방치해둔채,새로운 인생의 행로나 역사는 열리지 않는다.계의 정신은 나쁜 행위를 막고 대신 훌륭한 일은 권장하는데 본래의 뜻이 있다.백제불교가 계율을 중시했던 것도 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 ○겸익,인도 불교유학 미륵사,미륵불광사 등의 사찰이 세워졌던 백제사회에는 미륵신앙이 유행하고 있었다.AD634년에 낙성된 미륵사는 백제 미륵신앙의 중심 사원이다.전륜성왕의 이념을 구현하고자 했던 백제 왕실의 원찰이기도 했다.이 절의 창건연기설화에서 용화산 아래의 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했다고 한 것으로 보면 미륵사는 미륵하생신앙을 토대로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할때 이 세상은 낙토로 변하고 나라는 깨끗이 잘 정돈되어 온갖 재난은 사라진다고 했다.그리고 사람들은 평화로운 삶을 살 것으로 믿었다.미륵신앙은 유토피아적 이상세계에 대한 동경과 희구라는 특징을 지닌다. ○전륜성왕의 이념 구현 그러나 미륵불의 세상은 사람들의 노력과 공덕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된다.미륵신앙은 희망의 신앙이거니와 끊임없는 정진의 신앙이기도 하다.아무튼 백제인들은 불국토의 건설을 꿈꾸었고,그것은 미륵사의 창건으로 표출되었다.경전은 미륵불이 이 세상에 출현할때 샹카라는 전륜성왕이 등장하여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린다고 기록하고 있다.이같은 내용을 감안하면 백제 왕실의 미륵사 창건은 정치적 의도를 담았다고 하겠다.그것은 불교적 정치이념인 전륜성왕사상을 실현하려는 것이었다.전륜성왕은 무력이나 힘에 의한 지배자가 아니라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려서 천하를 통일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였다.왕실에서는 전륜성왕사상을 빌려서 왕권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없지 않았겠지만 전륜성왕의 이념을 현실 정치에 구현하려 했던 욕구 또한 강했던 것이다. 백제의 승려들에게는 법사·율사·선사·주사 등의 호칭이 사용되었다.불교의 여러 분야중에서 어느 하나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승려가 있었던 것이다.경전은 거의 대부분이 유통되었겠지만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으로 열반경·법화경·유마경·반약심경 등이 있다.그리고 천대학이나 삼론학에 조예가 있는 고승도 있었다.현광은 위덕왕때 진나라에서 남악 혜사로부터 법화경을 배우고 법화삼매를 증득했다.귀국 후에는 웅천에서 교화했다고 한다.그는 중국에서도 명성을 떨쳤고 귀국 도중에는 용궁에 초청받아 설법했다는 설화가 전할만큼 유명했다.혜현은 수덕사에서 법화경과 삼론을 강의했고 일본으로 건너간 관륵도 삼론학에 밝았다.의영이 약사본원경소와 유가론의림을 저술했다고 하지만 전하는 것이 없다. ○일 아스카문화에 기여 백제에는 대통사·왕흥사·미륵사 등의 큰 절이 있었다.최근의 발굴로 그 규모가 밝혀진 익산의 미륵사는 삼국 중에서도 가장 큰 절이었다.신라에서는 선덕녀왕때에 황용사에 9층탑을 건립하고자 하여 백제의 기술자 아비지를 초청해간 일이 있다.이는 백제의 건축 기술이 신라에 비해서 앞서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많은 백제의 고승·기술자 등이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아스카문화를 일으키는데 기여했다. 일본 고대국가의 정비에 정신적 이념을 제공한 것도 물론 백제다.성왕30년(552년)에는 일본에 본격적으로 불교를 전했다.위덕왕 24년(577년)에는 경론과 율사와 선사 등을 보냈다. AD588년에는 불사리와 사문과 화공 등이 건너갔는가 하면 AD595년에 도일한 혜총은 쇼토쿠태자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던가.AD602년에 일본으로 간 관륵은 최초의 승정이 되기도 했다. 백제가 신라에 무력으로 병합된 이후인 신문왕때에 국로가 되었던 경흥이 백제의 웅천주 출신이었음은 주목할만 하다.그는 유식학의 대가로 당시의 대표적 고승이었다.이처럼 융성했던 백제불교는 통일신라의 새로운 불교발전에도 공헌했다.삼국은 오랜 분열과 대립으로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많은 이질적인 것이 있었지만 불교라는 공통의 문화가 존재했기 때문에 민족 융합이 가능했다.우리 민족문화속에 살아 숨쉬는 백제 불교문화의 향기는 최근에 발견된 향로에서 아직도 풍기고 있다. ◎백제불교의 역사/384년 동진서 전래… 일에 전파/사비시대 정림사·금강사 등 많은 사찰 건립 백제불교에 관한 기록은 신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이는 「삼국사기」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삼국사기」는 AD384년 백제에 처음 불교가 들어왔다고 기록했을뿐 그 이후 성왕 19년(AD541년)까지 불교관계 기사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있다. 그러나 성왕 19년에 불교기사가 다시 등장한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한 대목이다.그 해는 「삼국사기」기록대로라면 불교전래 1백57년이 되는 해이고,시기적으로는 사비천도 직후에 해당한다.그렇다면 성왕 때부터 불교가 융성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실제 사비시대에 백제불교가 대단히 번창했다는 사실은 근래 부여일대에서 발굴된 절터에서도 확인되었다. 군수리절터를 비롯,동남리절터,정림사절터,김강사절터 등이 그 대표적 발굴사례다.그리고 부여에서 멀리 않은 익산 미륵사절터는 발굴결과 사비시대 최대의 가람으로 밝혀졌다.이밖에 사비시대 백제고토에 해당하는 지역에 많은 절터가 산재해 있다.또 도기가마와 기와가마에서도 불상과 연꽃무늬기와,연꽃무늬상자형벽돌 등의 불교관련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백제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것은 침류왕 원년(AD384년)이다.백제는 침류왕 원년 7월에 동진에 사신을 보냈기 때문에 백제에 처음 불법을 전한 호승 마라난타는 귀국길에 오른 백제사신과 함께 왔을 것으로 보고있다.그리고 나서 오랫동안 불교관계기사가 나오지 않지만,사비시대가 개막되면서 백제불교는 국제화하는 양상을 띠게된다.구법승들이 중국은 물론 서역까지 진출하는가 하면,일본의 구법승들은 백제를 찾았던 것이다. 삼국 가운데 최초로 일본에 불교를 전파한 나라는 백제다.그 시기는 AD552년이다.고구려보다 32년 먼저 일본에 불교를 전파한 백제불교에 관한 기록은 일본쪽에 더 많이남아있다.
  • 새 정치환경 적응전략 찾기 골몰/민자의원·지구당위장 연수 이모저모

    ◎당개편안 설문조사·귀향활동 논의/“물갈이 대상될까” 일부선 노심초사 9일 하오부터 1박2일동안의 일정으로 실시된 민자당의 의원·지구당위원장 연수는 정치관계법의 타결에 따라 달라질 정치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전략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참석자들의 주된 관심사는 앞으로 자신들의 처지가 어떻게 될 것이냐는 점이었다.지난 8일 발표된 10개 지구당의 조직책인선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이를 대폭 물갈이의 신호탄으로 인식하고 행여 자신도 교체대상에 포함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도 역력했다. ○…이번 연수는 지구당의 대폭 축소방침등 민자당의 조직개편에 대한 의원들의 의견을 수렴,최종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됐다. 아울러 우루과이라운드협정 타결에 따른 농어촌대책을 강구하는등 산적한 현안을 앞의로의 귀향활동과 연관지어 논의. 김종필대표는 인사말에서 미국의 슈퍼301조 부활과 관련해 『미국이 포탄을 장전하고 사정권안에 들어와 사격하기 위해 포신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다』는 말로 미국의 개방압력을 설명. 김대표는 이어 『우리가 미국의 포 사정거리에 들어가면 포탄세례를 받을 것』이라면서 『집권당이 이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기 위해 국민과 정부,국회와 정부사이의 매개역할을 충실히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 김대표는 『UR를 포함해 나라 다스리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그 뜻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피력. 김대표는 정치평론가인 베르네의 말을 인용해 『정부는 배의 돗대요,국민은 바다이고 국가는 배다』라고 전제,『여기서 키를 잡는 것은 대통령이며 우리가 잘 보필해야 집권당 국회의원의 도리』라고 역설. 한편 이날 연수를 앞두고 당지도부는 이같은 행사때는 으레 지급했던 3백만∼5백만원의 「오리발」을 이번에도 줄 것이냐는 문제를 놓고 고심했다는 후문.그러나 김영삼대통령의 정치자금단절선언에 따라 중단한 관행이니만큼 부활하지 않기로 결론. ○…이어 최재욱1부총장은 당조직개편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설명한뒤 참석자들을 상대로 개편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 최부총장은 공직선거및 선거부정방지법과 관련,『지금까지 지구당당직자인 당원만이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으나 앞으로 자원봉사제도를 두어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설명. 최부총장은 『지금까지는 지구당마다 가능한한 당원을 많이 두도록 독려,그 수가 평균 3천명에 이르렀지만 이제는 의무적인 관리요원만 두면 7백50∼8백명선으로 줄어들어 선거비용이 경감될 것』이라고 전망. 37만여명의 반책제도와 9만1천여명의 투표구책제도를 폐지해 4단계조직을 2단계로 감축한다는 설명.대신 읍·면·동책인 3천5백여명의 협의회장및 10만여명의 이·통책인 관리장등이 지구당조직의 근간이 된다는 것.그러나 청년및 여성,홍보등 분과위윈회에 대한 처리는 지구당위원장의 자유재량에 맡기겠다는 방침. ○…최부총장은 지구당운영모델을 발표한 뒤 참석자들의 반응에 신경이 쓰이는 듯 『대체적으로 변화된 정치환경에 적합한 것으로 평가해 주는 것같다』고 말하고 『일부에서는 모든 지구당조직을 없애고 후원회만 남기자는 의견까지 있다』고 소개.최부총장은 전날 발표된 사고지구당 조직책선정과 관련,『당실무선에서 원안을 작성한 뒤 여기저기서 다른 이름들을 거론하기도 해 한때 당황했다』면서 『그러나 결국은 당의 조직은 당이 알아서 하라는 김영삼총재의 당부에 따라 원안대로 결정된 것』이라고 강조. ○…이날 연수에 대해 민주계측은 『새로운 정치를 해 나가는데 대단히 유익한 자리』라고 극찬한 반면 민정,공화계 일부에서는 『문민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군대식 교육』이라고 비아냥. 민정계의 한 인사는 『세계 어느나라에서 국회의원들을 같은 옷을 입혀놓고 획일적인 교육을 하는 나라가 있느냐』고 불만을 토로하고 『중앙당이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라고 연수의 의미를 격하. ○…최양부 청와대농수산수석은 「UR대처방안」이라는 주제강연에서 『연간소득이 16조원에 불과한 농민들에게 유통·가공수입 25조원을 얹어줄 수 있도록 획기적 육성책이 필요하다』고 언급. 농어촌문제와 관련해 농촌출신 의원들은 폭설피해대책과 전업농의 농지구입자금확대등을 주문하며 높은 관심을보였으나 도시지역 의원들은 무료한 듯 잡담을 나누는등 대조.
  • 중국에 고급승용차 갖기 붐/개방화이후 「마이카시대」로

    ◎할부판매 실시… 자동차수입관세 절반 낮춰/북경시대 운전교습소 1백70곳으로 늘어 「번쩍번쩍 빛나는 승용차로 북경시내를 쏜살같이 질주한다」 개방화의 물결이 밀어닥친 이후 중국인들의 눈을 가장 휘둥그래지게 만든 것은 자동차다.사회주의체제 중국에서 자기 차를 갖는다는 것은 최근까지도 여전히 「꿈」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재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는 중국에서 이꿈이 점차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이른바 「마이 카」붐이 급속히 일고있는 것이다.이는 수개월치 월급과 배급표를 내고 자전거를 사는데 만족해야 했던 중국인들이 경제성장으로 더 많은 돈을 손에 쥐게 되면서 무엇보다 자동차에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혁명 당시부터 자동차 소유를 꿈꿔왔던 리 샤오화씨(43)는 81년 북경주재 리비아 외교관으로부터 일제 중고 도요타를 구입,드디어 「마이 카」꿈을 실현했다.내친김에 그는 지난해 봄 중국에서는 최초로 세계 최고급의 이탈리아제 스포츠카 페라리를 구입했다.13만4천8백88달러짜리 이 스포츠카를 구입한덕분에 리씨는 자동차 전문잡지에 표지모델로 등장하기도 했다. 리씨는 『이제 중국에서도 자가용이 생활수준의 척도가 되고 있으며 신분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이 되고있다』고 말한다.농부에서 부동산개발업자로 직업을 바꾼뒤 백만장자가 된 리씨는 2대의 메르세데스 벤츠와 부인이 운전하는 빨간색 마쓰다 스포츠카를 포함,현재 7대의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리씨처럼 일찍이 「마이 카」의 꿈을 이루는 것은 아직은 특별한 경우에 속한다.저임금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아직까지 높은 세금때문에 페라리나 롤스로이스같은 고급차는 고사하고 삐걱거리는 러시아제 고물차 라다스조차 구입하기 힘든 형편이다. 심지어 모택동의 외손자 왕샤오즈(21)도 중국관영 차이나 데일리지와의 인터뷰에서 『자동차를 갖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며 『현재 대학생으로 차를 살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동차 그림을 그리고 이론을 배우거나 부속품을 수집하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그러나 최근 중국에서는 일반인들도 자동차를가질 수있는 몇가지 청신호가 나타났다.중국에서는 최초로 지난 1월부터 중국남부 광동지방에서 자동차 할부판매를 시작한 것이다.목돈을 구하기 어려운 일반인들에게는 대단한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이와함께 중국정부는 새해 첫날부터 자동차구입에 필요한 행정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또 현행 2백20%에 달하던 자동차 수입관세도 절반인 1백10%로 줄어 자동차판매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이에따라 운전을 배우려는 사람도 덩달아 늘어 10년전만 해도 북경시내 몇군데에 불과했던 운전교습소가 최근 1백70여곳 이상으로 증가했다. 92년 10월말 현재 중국에는 70여만대의 승용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있다.1년에 1천만대의 차가 판매되는 미국에 비하면 아직 보잘것 없는 수치지만 중국은 지난 10년동안 자동차 판매숫자가 계속 2배이상씩 늘고있다.이런 추세로 가면 세계에서 가장 거래가 활발한 자동차시장으로 꾸준히 부상하고 있는 중국에서도 조만간 「오너 드라이버」시대가 도래하리라는 것은 쉽게 점칠수 있다.
  • “「팀훈련」중지해도 안보지장없다”/김대통령 기자회견 일문일답/요지

    ◎패트리어트미사일 구매계획 전혀 없어/야당대표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만날것/공공료인상 자제·제2이통문제 정부관여 안해 김영삼대통령이 25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내외신기자들과 가진 일문일답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해 김일성북한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질 용의는 없는지요.아울러 핵관련 정보들을 가능한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여러 통로를 통해 듣고,보고받은 정보를 종합할 때 북한이 확실하게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증거는 발견할 수 없습니다.다만 북한이 핵개발을 늦추지 않고 계속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북한은 결국 IAEA(국제원자력기구)사찰을 받게 될 것이고 남북대화와 특사교환도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김주석과의 정상회담은 북한의 핵개발 저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 추진하겠습니다. ­핵투명성이 보장되기 전이라도 특사교환등을 통해 정상회담이 가능합니까.또 이 제안의 배경과 정상회담의 시기에 대해 밝혀주십시오. ▲특사교환은 북한이 제안했고 그 전제는 정상회담을 하자는것이었습니다.특사교환은 내가 가장 믿는 사람과 김주석이 가장 믿는 사람이 만나 이를 논의하자는 것입니다.우리는 제일 목표인 핵문제 해결을 위해 긴시간 줄다리기를 해 왔습니다.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전술적으로 강한 면도 있었고,때로는 부드러운 면도 있었습니다.북한핵개발 저지문제에 대해 고뇌를 거듭해 왔습니다. ­김일성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는 통일문제를 비롯한 남북경제협력 방안등을 뭉쳐서 논의할 것인가요. ▲핵문제는 물론 모든 문제들을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남북한 공존공영과 생존에 대해,그리고 통일및 경제협력문제는 물론 깊은 얘기들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패트리어트미사일의 배치문제를 놓고 얘기가 많은 이유는 무엇이며 팀스피리트훈련을 중단하더라도 한반도안보에는 별 문제가 없는지요. ▲정확하지 않은 언론들이 많습니다.일부에서 한국이 패트리어트미사일을 사려한다고 하지만 계획이 전혀 없습니다.한­미 양국은 이 미사일을 한국에 가져오는 시기에 대해 긴밀히 협의하고 있습니다.그러나 패트리어트미사일은 공격용이 아닌 순수 방어용이므로 북한도 전혀 신경쓸 문제가 아닙니다. 팀스피리트훈련 중단문제는 IAEA사찰과 남북한의 충실한 대화가 충족된다면 조건부 중지를 발표할 것이며 한국방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그러나 그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을 때에는 재개할 것입니다. ­90%에 이르던 대통령의 지지도가 최근 60%대로 낮아졌다는 얘기도 있는데 원인은 뭐라고 보십니까. ▲우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솔직히 너무 지지율이 높아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이는 정상이 아니며 낮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따라서 만족스럽고 이제 편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30년동안의 폐습 때문이지만 대형사고와 낙동강 식수오염,물가문제등이 지지도를 낮추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 같아요. ­물가,UR,환경등으로 국민이 개혁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데 개혁의 우선순위와 프로그램을 밝혀주십시오. ▲문민독재니 1인통치니 하는 얘기가 있는데 참 이상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합니다.물가문제는 대단히 죄송스럽게 생각하며 억제에 총력을 기울이겠습니다.물가불안은 지난해 냉해로 인상된 농산물 값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입니다.과소비가 유행하고 매석행위를 하고 있는데 모두 협력해야지요. UR와 관련,농어촌을 위해 42조원말고도 1년에 목적세 1조5천억원을 지원,구조개선을 할 것입니다.순위는 어느 것이 급하고 중요한가의 차원에서 노력하겠습니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직접 챙겨 정치가 무력화됐다는 지적이 있는데요.여야영수회담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취임한지 10년은 지난 것 같습니다.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있는 이상 직접 챙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전에 언급했듯이 누구로부터 한푼도 받지 않겠으며 절대로 이권에 개입하지 않을 것입니다.우리당의 당무,국회운영 등은 김종필대표에게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또 야당대표는 언제라도 만날 수 있으며 이에 인색하지 않겠습니다. ­민영화계획은 어떠하며 제2이동통신사업에 재벌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관료들의 결정에 따를 생각은 없으신지요. ▲민영화계획은 정부가 개혁차원에서 대담하게 추진해 나갈 것이며 재벌과는 관련이 없습니다.제2이통문제는 일본에서도 경단연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했듯이 정부는 초연한 입장에 설 것입니다. ­새로운 정치세대의 육성및 후계자 구도와 함께 정계개편과 내각제에 대한 소신은 어떠합니까. ▲앞으로 개혁적,진취적 인물이 정계에 많이 진출하기 바랍니다.후계자문제는 너무 성급하므로 천천히 생각합시다.정계개편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인위적으로 될 수도 없습니다.내각제는 분단상황에서 절대 불행한 일만 있을 뿐이므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호소카와 일본총리가 경주에서 『대통령중심제가 좋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고 한 말을 그대로 소개하겠습니다. ­지방자치단체장선거가 벌써 혼탁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있는데 대처방안과 함께 바람직한 행정구역및 정부기구 개편방안을 밝혀주십시오. ▲행정력을 총동원해 선거부정을 엄격히 다스리겠으며 현재 엄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행정구역개편은 국회에서 결정할 문제입니다. ­물가정책이 간접규제에서 직접규제로 바뀌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연내물가 6%선 억제는 가능한지요. ▲물가는 가장 중요한 과제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국민의 절대적인 협조가 필요합니다.부당한 가격 인상에 대한 일부 세무조사는 당연한 것입니다.공공요금 인상은 물가에 지장을 주는 부문에는 자제하겠으며 경영합리화를 통해 인상요인을 흡수할 것입니다. ­땅값과 금리,임금이 오르는데 대한 대책은 무엇입니까. ▲땅값,금리는 지난해에 상당히 억제됐다고 생각하며 올해도 적당히 하지는 않겠습니다.또 근로자들도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는 분위기가 있습니다.지난해 공무원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임금을 동결함으로써 1조3천억원을 중소기업에 지원했고 금융실명제에 따른 어려운 사정을 감안해 2조2천억원을 지원했습니다.역대 어느 정부도 그런 대담한 지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국제화에 따른 경쟁심화등 단기적인 어려움을 감수하고 노동관련법과 제도를 개혁할 용의가 있으신지요. ▲우리 시장도 열렸지만 남의 시장이 더 크게 열렸으므로 세계제일의 품질을 만들어 경쟁에 이겨야 합니다.장단기적으로 우리에게 결코불리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노동관계법의 개정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금융,서비스분야에 대한 선진국의 개방압력 대처방안은 무엇이며 우루과이 라운드협정비준과 관련한 야당과 농민의 반발을 어떻게 설득할 생각인가요. ▲완전히 고립된 나라로 갈 것인가,세계와 미래로 나갈 것인가의 양자택일을 한 것입니다.결코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농민들도 상당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일본문화개방문제와 러시아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문제에 따라서는 신중히 개방방법과 시기를 검토해야 합니다.다음달 일본과 중국을 방문하는데 인접국인 일본·중국·러시아 3국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러시아에서 망명요청을 한 북한 주민들에 대해서는 자세한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그러나 대부분 여권이 없는 무국적자들로 국제법상 문제도 있지만 인도적이고 인권적 입장에서 전향적으로 다뤄나갈 생각입니다. ­정부의 경제운영철학이 최근 재벌중심으로 바뀌고 구체적 목표가 없이 막연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지금 만큼 중소기업을 중시한 적이 없습니다.또 정부의 구체적 목표가 없다는 지적은 잘못된 것입니다.정부는 금년 경제성장률을 6%로 정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나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시장을 개방한다고 하지만 외국투자가들은 정부가 가격통제를 하고 주식시장에도 개입하고 있다는 느끼고 있는데요. ▲앞으로 외국인이 한국에서 사업하는데 가장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도록 개방할 것입니다.정부가 개입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친 오해이며 이제 그런 단계가 아닙니다. ­연두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변화의 징후가 보인다고 했는데 그동안 변화의 징후가 확대됐는지요. ▲북한의 변화징후를 모두 공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지난해까지 IAEA사찰을 절대 받지 않겠다던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고 며칠내 비자를 발급할 것이라는 것을 IAEA와 미국에 통보한 사실을 상기해 주십시오.이것만으로도 북한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교평준화 폐지,대학입시제 개선,외국어·영재교육등 교육개혁구상을 밝혀주십시오. ▲교육에 있어서는 우리 뿐 아니라 선진국도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복안이 있으나 교육개혁위와 충분히 협의,토론하고 교육부장관과도 협의해 최선의 방안을 강구하겠습니다. ­중국방문 때 전전자교환기(TD)·자동차·항공산업·교류등의 현안은 어떻게 타결될 것으로 봅니까.의전상 중국대표가 방한할 차례라는 얘기도 있는데요. ▲지난번 APEC 때 한­중정상회담에서도 협의했지만 지금 전망을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중국이 한국 대통령에게 초청장을 보낸 적은 없었지만 저는 공식초청장을 받아 국빈자격으로 갑니다.또 국가의 이익이 된다면 저는 세일즈맨으로 어디든지 갈 것입니다.
  • “남북정상 우선 만나자”/김 대통령 제의

    ◎핵·경협·통일 포괄논의 용의/물가불안 국민에 매우 죄송/정계개편·내각제개헌 없다/취임한돌 회견 김영삼대통령은 25일 『북한의 핵개발 저지에 도움이 된다면 김일성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취임 한돌을 맞아 청와대 춘추관에서 전국에 TV와 라디오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기자회견을 갖고 『남북한의 특사교환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남북한정상회담을 위해 하자는 것』이라면서 『정상회담을 하게되면 핵문제만이 아니고 경제협력,통일문제등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의 이날 남북한정상회담 용의표명은 북한의 핵투명성이 보장된 뒤에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지금까지의 정부방침을 크게 수정한 것이어서 북한측의 반응이 주목되고 있다. 북한측은 지난해 5월 남북특사교환을 제의하면서 정상회담도 제의했었기 때문에 김대통령의 이번 정상회담추진 제안에 긍정적으로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청와대관계자는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현재까지의 모든 국내외 정보를 종합해볼 때 북한이 확실하게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증거는 발견할수 없었다』고 말하고 『그러나 북한이 핵개발을 절대 포기하거나 늦추지 않고 있으며 핵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과 남북한의 충실한 대화가 충족되면 한국정부에서 조건부로 팀스피리트훈련의 중지를 발표할 것』이라면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남북간 진실한 대화의 길을 선택한다면 공존공영 차원에서 우리의 기술과 자본을 토대로 제조업과 농업·건설·에너지 분야에서 남북경제공동개발을 서두를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주한미군배치와 관련,『한·미간에 긴밀한 협의가 진행중이나 공격용이 아니고 순수 방어용이기 때문에 북한이 전혀 신경쓸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한국정부는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구매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정계개편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인위적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부인하고 『내각제로의 개헌은 우리 현실에서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문제로 내각제를 하면 남북분단 상황에서 불행한 일이 생길수도 있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내각제개헌 가능성을 일축했다. 김대통령은 『민자당은 김종필대표가 전권을 갖고 국회문제 등을 책임지고 이끌어갈 것』이라고 말하고 『야당대표와 만나는데 인색할 생각은 없으며 필요하다면 언제나 만날수 있는 일』이라고 밝혀 민주당의 이기택대표와 여야영수회담 가능성을 시사했다.후계구도에 대해서는 『개혁적이고 진취적이며 애국적인 사람들이 정계에 많이 진출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히고 『그러나 현시점에서 후계자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물가문제에 대해 『국민들에게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하며 정부는 앞으로 공공요금 인상요인을 경영합리화를 통해 흡수토록 하는등 물가를 억제하는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면서 『국민들도 같이 협력해 매점매석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김대통령은 『개혁차원에서 공기업의 민영화를대담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지방자치선거와 관련,『깨끗한 선거를 위해 행정력을 총동원해 선거부정을 엄격히 다스리겠으며 현재 엄밀한 조사가 진행중』이라고 사전선거운동에 강력대처할 것임을 밝혔다. 김대통령은 『일부 공직자가 복지불동으로 무사안일과 기회주의에 사로잡혀 있어 공직사회의 변화와 활력은 더이상 늦출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고 공직기강 확립을 촉구한 뒤 『방만한 기구와 기능은 과감히 줄이고 쓸데없는 행정규제는 단호히 철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근로자들의 임금요구 자제를 통한 노사관계 안정을 강조하면서 『땅값과 금리,임금의 동반상승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어느 경우든 불로소득을 올리거나 땅값이 오르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노동관계법 개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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