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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484)-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6)

    儒林(484)-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6)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6) 화석정은 세종 25년(1443년) 율곡의 선조인 강평공(康平公) 이명신(李明晨)이 지은 것. 그 후 증조할아버지 이의석(李宜碩)에 의해서 증수되었으며, 이숙함(李淑 )은 이를 ‘화석정’이라 명명하였던 것이다. 8살의 율곡이 화석정 위에서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내고 강은 만리에 바람을 머금었도다(山吐孤輪月 江含萬里風)’와 같은 시를 지은 것은 율곡이 얼마나 원대한 이상을 갖고 있었는가를 드러내고 있음인 것이다. 그뿐인가. 10살 때 율곡은 외가인 오죽헌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때 율곡은 가족들과 함께 경포대에 들렀다가 주위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한 편의 부(賦)를 짓는다. 경포대가 세워진 것은 고려 충숙왕 13년(1326년). 율곡의 외가인 오죽헌에서 2㎞ 남짓한 거리에 있는 경포대는 서쪽으로는 호수를 굽어보고, 동쪽으로는 푸른 동해가 보이는 경승지로 그곳에서 10살의 율곡이 지어 오늘날 널리 알려진 문학작품의 하나인 ‘경포대부(鏡浦臺賦)’는 그 무렵 율곡의 독서 수준이 얼마나 높으며, 또 소년답지 않게 깊은 정신세계를 갖고 있었음을 가늠케 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율곡은 ‘경포대부’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이에 거문고를 울리고 옷을 벗으면 증점이 기수에서 목욕한 즐거움을 알게 되고 바람을 맞으며 술잔을 들면 희문이 세상을 근심하는 정이 가득해 온다.” 증점(曾點)은 공자의 제자로 특히 비파 연주에 뛰어난 명인이었다. 공자가 어느 날 제자들에게 각자의 포부를 물었을 때 다른 제자들은 모두 정치가가 되어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려 왕도 정치를 펴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때 증점은 비파를 연주하며 놀다가 늦게 참석하였는데, 공자가 ‘그대의 포부는 무엇이냐.’하고 묻자 증점은 서슴없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던 것이다. “늦은 봄날 친구들과 함께 강가(沂水)에 놀러가 목욕하고 바람을 쏘인 후 노래를 부르고 돌아오고 싶습니다.” 이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나도 증점과 함께하고 싶다.(吾與點也)” 그러므로 율곡이 지은 앞의 문장은 논어 ‘선진편’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한 것이고, 뒤의 문장은 송나라 재상이었던 범중엄(范仲淹)이 지은 ‘악양루기문(岳陽樓記文)’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이 기문을 지은 범중엄의 자는 희문(希文). 그는 중국 제일의 호수인 동정호(洞庭湖)에 있는 악양루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을 남긴다. “옛날의 인자들은 지위나 명예를 기뻐하거나 신세를 비관하지 않았다. 조정에서 높은 지위에 있을 때에는 오로지 백성의 노고를 우려하고, 조정에서 멀리 물러나 있을 때는 오로지 군주의 과실을 우려하였다. 나아가도 물러가도 항상 근심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언제 즐기느냐고 묻는다면 틀림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천하의 근심보다 앞서 근심하고, 천하의 즐김보다 나중에 즐긴다.(先天下之憂而憂,後天下之樂而樂)’”
  • [기업회생 주도한다-미다스의 손] 서울보증보험 정기홍사장

    [기업회생 주도한다-미다스의 손] 서울보증보험 정기홍사장

    지난 25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한국능률협회가 주최한 최고경영자(CEO)대상 조찬회가 열렸다. 이른 아침부터 크고 작은 기업의 CEO 350여명이 운집했다. 강연 인사는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과 정기홍 서울보증보험 사장 등 2명. 윤 위원장이 원고를 다 읽자 참석자들이 박수를 쳤다. 반면 정 사장이 원고없이 준비한 강연을 마치자 여기저기서 질문이 쏟아졌다.“도대체 경영 비결이 무엇입니까.”,“어떻게 서울보증이 짧은 기간에 큰돈 버는 회사로 회생했습니까.” ●한해 5000억원 순익 27일 정기홍 사장을 만나 경영성과 비결을 물어봤다. 그는 “CEO는 직원들이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성과달성의 동기만 주면 된다.”고 싱거운 대답을 하며 웃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대한보증보험과 한국보증보험이 통합, 서울보증보험으로 출범했다. 서울보증보험은 10조 2500억원의 공적자금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한해 5000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내며 ‘황금알을 낳는 기업’으로 변신했다. 혹독한 구조조정을 견디고,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수익사업을 과감하게 추진한 덕분이다. 지난 98년의 1조 1384억원의 적자는 2003년에 2435억원의 흑자로 반전된다.2004년 4월 정 사장이 취임한 뒤에는 연 순익이 5196억원이나 됐다. 손해율(보험료 대비 보험금의 비율)도 지난해 3월 63.2%에서 올 9월 26.0%로 낮아졌다. 건전성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지난 달에는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 S&P로부터 삼성전자,KT와 동급인 ‘A-(안정적)’ 등급을 받았다. 정 사장은 “세계 4번째 보증보험의 규모(보험료수입 83억달러)를 바탕으로 세계시장 진출을 위해선 높은 신용등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전임 사장이 힘들여 갈아놓은 밭에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두고 있을 뿐”이라며 공(功)을 박해춘(현 LG카드 사장·서울신문 11월23일 15면 보도) 전 사장과 나눴다. ●불모지에서 블루오션 발견 정 사장은 “유럽의 퇴락한 고성(古城)에 온 느낌이었다.”면서 “부실 회사를 맡게 되자 주변에선 축하보다 위로를 많이 했다.”고 취임 당시를 회고했다. 인원은 55.6% 줄고, 임금은 45% 삭감된 뒤라 직원들은 의욕을 잃고 무표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업무파악 후 ‘단순한 보증업무 말고 새로운 사업거리가 많았고, 회사에 인재도 많으니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요즘 말로 블루오션을 발견한 셈”이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감성경영’을 위해 전국 60개 지점을 돌며 직원들을 모두 만났다.‘회사 수익은 주주와 종업원, 고객이 나눈다.’는 원칙을 세웠다.‘인사청탁 대상자는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감원에 의한 비용절감보다 사기진작에 따른 이익증대 효과가 크다.’는 소신도 실천했다. 신용불량자 구제를 위해 시도한 ‘신원보증보험’은 1년 6개월만에 5만 3000여명에게 일자리를 주었다. 정 사장은 “다른 보험사들은 신불자를 외면했지만, 막상 믿음을 주니까 신불자들이 일반인보다 더 착실했다.”면서 “‘신원보증 덕분에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신불자들의 편지를 받고 내가 되레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신불자 보증보험의 손해율은 24%로 일반인(34%)보다 오히려 낮다. 지난해 8월에는 인터파크 등 우량업체가 발행하는 경품용 상품권에 지급보증을 하는 상품을 개발, 대박을 터뜨렸다.3개월만에 133억원을 벌어들였다. 신용이 낮은 중소기업에 대한 보증보험은 그의 취임후 46.1%나 늘었다. 상품대금신용보증·성능보증·역(逆)모기지신용 등도 공익성을 살리면서 동시에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삼성자동차 채권회수 원만히 해결 서울보증보험의 현안은 과거 삼성자동차에 물린 채권회수 소송이다. 정 사장은 “곧 삼성을 상대로 원금과 이자 2조 5000억원에 대한 소송을 내겠다.”면서 “원만하게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또 “서울보증은 국내 보증수요의 27.1%를 맡고 있어 결코 독점이 아니다.”라면서 “반대편 코트의 구석구석에 공을 밀어넣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시절 테니스 선수를 지냈다. 정 사장은 “공적자금은 차근차근 모두 갚아나갈 계획”이라며 “좋지 않은 근무 환경을 잘 참아주는 임직원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글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2005 프로축구] “우승 인터뷰는 내가 하게 될것”

    ‘만년 2위 탈출이냐, 역대 최단기간 우승이냐.’ 2005프로축구 K-리그 챔피언 탄생까지 딱 두 경기가 남았다. 홈 앤드 어웨이로 치러지는 챔피언결정전에 올라온 두 팀은 ‘만년 2위’ 울산과 창단 2년차 ‘막내 구단’ 인천이다. 첫 경기를 잡는 팀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만큼 27일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1차전에서 사실상 승부가 갈린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양팀 모두 배수진을 치며 총력전을 펴야 한다. 인천 장외룡 감독과 울산 김정남 감독은 25일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에서 미디어데이 기자회견을 갖고 필승을 다짐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K-리그에 데뷔한 인천은 시민구단으로서 열악한 재정, 부족한 인프라, 짧은 경력, 스타플레이어의 부재 등을 딛고 얻은 소중한 기회인 만큼 반드시 우승을 일궈내겠다는 각오다. 지금까지 역대 최단기간 우승은 지난 98년 삼성이 물량공세를 쏟아부으며 창단 3년 만에 우승을 이뤄낸 바 있다. 장외룡 감독은 “선수들의 자신감과 함께 협력 플레이 의지가 대단히 높다.”면서 “경기 당일 선수들이 울산의 약점을 물고 늘어질 것”이라고 필승 의지를 밝혔다. 반면 지난 96년 정규리그 우승 이후 10년 만에 정상에 도전하는 울산에는 그동안 2002년 아디다스컵과 정규리그 준우승,2003년 정규리그 준우승, 지난해 플레이오프 탈락 등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던 ‘만년 2위’라는 꼬리표를 떼내겠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김정남 감독은 “우리는 원정경기에 더욱 강한 만큼 심리적으로도 큰 부담이 없다.”면서 “마지막에는 나 혼자 (우승)인터뷰를 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내비쳤다.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올 겨울 스키장 패션

    올 겨울 스키장 패션

    스키장 패션은 따로 있다. 영하로 뚝 떨어진 날씨에서도 춥지 않아야 하고, 눈 위에 뒹굴어도 웬만해선 젖지 않아야 한다. 여기에 가볍고, 가능하면 얇은 게 좋다. 겨울 스포츠복에 필요한 기능성에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 장식성까지 가미된 것이 올해의 스키장 패션이다. # 터프한 여성, 세련된 남성 스노보드를 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스키장 패션의 주류는 보더 스타일이 됐다. 전통적인 타이트한 바지에 허리를 조인 점퍼 스타일에서 벗어나 품이 넓은 힙합패션을 중심으로 다양한 스타일로 변화하고 있다. 보드복을 넉넉한 힙합 스타일로 많이 입는 것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거나 회전, 점프 등의 트릭을 할 때 동작이 크기 때문이다. 트렌드는 여성적인 라인을 강조하더라도 보드복은 역시 활동성이 좋도록 여유있게 입는 것이 좋다. 스키복은 몸에 약간 달라붙는 스타일이 멋스럽다. 요즘 많이 타는 카빙 스키는 상체를 많이 낮춰타기 때문에 점퍼는 거치적거리지 않는 길이로 선택한다. 색상은 올 겨울시즌 주요 색상인 하얀색이나 검은색을 중심으로 빨강, 초록, 보라, 주홍 등을 포인트로 사용해 하얀 설원에서 눈에 띄는 패션을 추구한다. 파스텔 계열의 색상으로 세련된 스타일을 표현하기도 한다. 화려하고 귀여운 무늬로 유쾌한 겨울스포츠 패션을 완성한다. # 기능성을 잡아라 스키나 스노보드는 추운 날씨로 몸이 한창 긴장된 상태에서 운동을 하기 때문에 부상의 위험이 크다. 예쁘기만 한 스타일보다는 기능성을 충분히 갖추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눈 위에 앉는 경우가 많은 보드복은 적어도 1만㎜의 방수력이 필요하다. 카빙 스키가 주류를 이루면서 스키복의 방수력도 중요해지고 있다. 찬바람을 막아주는 방풍성, 운동으로 인한 땀을 신속히 배출해주는 투습성, 한파를 막아줄 수 있는 보온성의 기능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평상시에는 얇은 일상복으로 입을 수 있지만 내장 튜브로 공기를 주입해 보온성을 상승시키는 고어텍스의 에어밴티지도 스키·스노보드복에 많이 사용하는 소재다. 역동적인 스포츠를 위한 옷이니만큼 눈이 옷 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소매부분에 밴드처리를 하고, 모자나 바람막이 등을 탈·부착할 수 있도록 한 디자인도 많다. 리프트권을 매다는 고리나 고글, 휴대전화, 디지털카메라 등을 넣는 주머니를 만들어 실용성을 추구한다. # 어떤 제품들이 있을까 스키장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이 많다. 헤드의 ‘스위트 스노 라인’은 스키를 모티브로 한 귀여운 캐릭터를 활용해 재미있는 감각을 더했다. 검정색과 하얀색을 기본으로 한 화려한 원색으로 경쾌하다. 가볍고 보온성이 좋은 플리스 소재와 따뜻한 패딩, 모피로 기능성과 장식성을 갖췄다. ‘H2X’는 스키·보드 마니아를 위한 고기능성 전문 라인.2만㎜에 육박하는 방수력을 갖추고 더미작스·고어텍스 소재로 투습도를 향상시켜 몸 안의 땀을 신속하게 배출시킨다. 휠라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이탈리아 대표선수들이 입는 고기능성 스키복을 다양한 디자인으로 선보였다. 재킷과 바지 모두 2만㎜ 이상의 방수 기능을 갖고 있으며, 이중 봉재로 눈이 스며드는 것을 막았다. EXR는 모터 사이클룩에서 영감을 얻어 3D 입체 패턴 위에 큰 화이트 사선무늬로 스피드감을 표현한 스노보드복 ‘트랜스 캐포츠 스노보드 웨어’를 내놓았고, 나이키는 데님의 실용성을 살려 스키장뿐 아니라 일상복으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스키·스노보드복을 선보였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세련된 메이크업으로 멋내기 노련하게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는 모습도, 세련된 메이크업으로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것도 모두 스키장의 멋이다. 평소보다 약간 튀게 눈, 입술 등 한 곳에 포인트를 준 메이크업이 하얀 눈 위에서 더욱 예뻐보인다. 자외선 차단은 기본이다. ●피부는 찬 바람에 수분을 잃어 건조해지는 것을 우선 막아야 한다. 수분크림과 아이크림을 충분히 발라 피부 건조를 예방한다. 강력한 차단 효과가 있는 자외선 차단크림, 메이크업 베이스와 파운데이션을 사용해 이중 삼중으로 자외선을 차단한다. 두꺼운 화장은 활동량이 많은 스포츠를 할 때 땀 배출로 번지고, 피부 호흡을 막아 피부에 부담을 줄 수 있으므로 피한다. 평소보다 한 톤 밝게 파운데이션을 바른 후 파우더로 마무리해 얇게 바른다. ●눈에는 스키장 눈(雪)에 반사돼 반짝이는 펄 화이트를 바르는 것이 가장 예쁘다. 펄화이트 섀도 또는 실버 섀도를 눈두덩 전체에 엷게 발라준 후 눈 아래도 눈머리에서 눈꼬리까지 펴 바른다. 반짝거리는 실버 혹은 파스텔 계열 중 자신에게 어울리는 컬러를 선택해 포인트를 준다. ●입술은 스키장에서 고글을 쓰면 유일하게 보이는 부분이므로 포인트를 줄 수 있도록 한다. 선명한 빨간색보다는 생기있는 색상이 좋다. 브러시에 붉은 계열의 립스틱을 살짝 묻혀 깔끔하게 바른 후 펜슬로 라인을 정리한다. ●화장을 지울 때는 자외선 차단지수가 높은 제품들을 겹겹이 사용했으므로 클렌징크림이나 로션으로 색조화장을 지워내고, 클렌징폼으로 세안을 한다. 피부가 더욱 건조해지는 비누 세안은 가급적 피한다. 예민해진 피부에는 화장솜에 화장수를 적셔 간단한 팩을 하거나, 미백 전용 에센스를 사용해 강한 자외선으로 기미, 주근깨가 생기는 것을 예방한다. ■ 도움말 한국화장품 메이크업아티스트 이보배 ■ 눈여겨 볼만한 스키-스노보드 장비 장비가 편해야 스키와 스노보드가 편하고 즐겁다. 아무리 슬로프와 눈의 질이 좋아도 장비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레포츠를 즐기기 어렵다. 또한 장비는 스키와 스노보드 기술 습득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하다. 올해 스키·스노보드 장비의 트렌드는 편안함을 강조하는 것. 다루기 편하면서 부족한 힘과 기술을 장비가 커버할 수 있도록 기능을 강화했다. 스키·스노보드 장비의 새로운 트렌드와 함께 구입요령에 대해 알아봤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스키장비 구입요령 가장 중요한 부츠는 스키를 제어하는 핵심 장비로 잘못 구입하면 낭패를 보기 쉽다. 때문에 구입이 가장 어렵고 신중한 선택이 필요하다. 부츠는 상체가 약간 앞으로 쏠리게 설계돼 있는데 신고나서 걷기와 서기가 편해야 하며, 버클을 모두 채웠을 때 발과 발목을 잘 고정할 수 있는 것으로 구입해야 한다. 올해는 부츠가 동양인의 체질에 맞춰 볼의 폭이 넓어진 것이 특징이다. 플레이트는 자신의 신장과 체중, 기술수준을 고려해서 선택해야 한다. 플레이트는 길이가 길면 빨리 나가지만 회전이 어렵고, 짧으면 반대로 회전이 쉽지만 속도가 나지 않는다. 과거에는 자신의 신장보다 10∼15㎝ 가량 긴 것을 선택했으나 카빙열풍이 이어지면서 오히려 신장보다 초급은 10∼20㎝, 중상급은 5∼10㎝ 정도 짧은 것을 구입하는 추세다. 로시뇰이 올해 출시한 플레이트는 플레이트에 2개의 암(arm)을 박아 상급자는 힘과 성능을 강조하는 파워컨트롤, 중급은 적당한 힘을 뒷받침할 수 있는 풀드라이브 컨트롤, 초급은 편하고 쉽게 이지드라이브를 강조했다. 폴은 알루미늄보다는 카본 재질이 가벼워 폴체킹 스피드가 빠르다. ■ ’기능성+α’에 눈 익으면 더 좋지 # 스노보드 구입요령 스노보드는 예년에 비해 색상과 디자인의 변화가 있을 뿐 기술적인 변화는 그리 크지 않다. 때문에 어떤 스타일의 라이딩을 즐길 것인가를 고려하는 것이 관건이다. 스노보드는 다양하고 화려한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프리스타일 보드’와 회전과 대회전 등 레이스용으로 설계된 ‘알파인 보드’로 나뉘는데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 구입해야 한다. 테크 길이는 보통 120∼180㎝ 정도로 길이가 다양한데, 자신의 목에서 코끝 정도에 오는 것이 적당하다. 체중이 무거울수록 조금 길게 타는 것이 좋다. 부츠는 방수성과 보온성, 편안함을 고려해야 하며, 사용할수록 늘어나는 만큼 약간 조이는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경우에 따라 복숭아뼈 부분이 쓸려 즐거운 라이딩에 지장이 될 수 있으므로 매장 안에서 충분히 걸어보는 것이 좋다. 바인딩은 자주 신고 벗기 때문에 원터치(스텝인) 방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점프, 회전 등의 기술을 많이 구사하는 경우에 쉽게 벗겨져 위험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생각하고 구입하는 것이 좋다. 트릭을 많이 한다면 보드는 눈 위에 자주 앉거나 넘어지는 만큼 엉덩이 보호대와 무릎 보호대, 손목 보호대가 필수다. # 부츠성형 최근에는 기성 장비를 구입해 자신의 발에 맞추는 부츠성형 등 장비 튜닝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부츠는 스키어나 스노보더에게 가장 민감한 장비이지만 그동안 대부분은 ‘타다 보면 부츠가 늘어나 발에 맞춰진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고생을 감수했다. 하지만 마니아 층을 중심으로 부츠 성형이 확산되고 있다. 부츠성형은 과학적인 장비를 동원, 발의 압력과 형태(길이·폭), 보행 습관 등을 체크 한 뒤 이너부츠의 맞춤 깔창과 아웃셸을 늘리거나 줄여 스키어의 스타일에 맞게 부츠를 만들어 준다. 최근 들어 피제이튠과 프로암튠, 풋매니아, 주미태 등 전문숍이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업체는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들의 맞춤깔창을 제작하는 프랑스 시다스사의 ‘컨퍼머블’을 수입해 판매하는 피제이튠(pjtune.com). 가격은 20만원.(02)546-0232. # 스키가이드 장비구입 참고 각 브랜드의 최상급 장비들의 테스트 결과는 국내 최대 스키전문 채널인 스키가이드(skiguide.co.kr)를 참고하면 된다. 스키가이드는 지난 지난 17일 코엑스에서 열린 제 2회 국제동계스포츠박람회 주관 업체로 국내외 스키장 소식은 물론 스키장 정보와 함께 각종 스키 교육 동영상을 볼 수 있다. 또한 일본 스키장에서 최고의 점유율을 자랑하는 스키저널을 한국판을 인터넷으로 읽을 수 있으며, 스키용품과 교육 비디오·DVD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스키 질의 응답코너와 중고 장터도 마련돼 있다.(02)547-9056.
  • 儒林(482)-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4)

    儒林(482)-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4)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4) 율곡이 성주에서 강릉의 외갓집을 향해 집을 떠났을 때에는 아직 임꺽정의 난이 태동단계에 있었지만 온나라는 폭풍전야의 불길한 조짐으로 위태위태하고 아슬아슬한 위기감이 감돌고 있었던 질풍노도의 계절이었던 것이다. 율곡도 이 무렵의 자신을 스스로 미친 물결, 즉 광란(狂瀾)의 시대로 표현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미 율곡은 두 번이나 국가에서 시행하는 과거에 급제하고 있었다. 특히 13살의 어린나이로 소과시(小科試)의 진사 초시에 합격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어린나이에 생진과 초시에 합격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으므로 당시 승정원의 관리들은 율곡을 위시한 합격생들을 불러 미래의 동량이 될 만한 인물인지 살펴보았으나 뽐내는 다른 선비들과는 달리 어린 율곡은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3살 때부터 글을 읽기 시작하였던 신동이었고,10살 이전에 논어 등 유교의 기본경전을 비롯하여 좌전, 사기 등의 역사서로부터 노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독서에 빠져있어 소년답지 않은 정신세계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명종실록’은 율곡이 7세에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고 전하고 있고, 송시열은 율곡이 이미 10세 때 유교경전을 비롯하여 온갖 책을 독파하였다고 증언하고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율곡이 본격적으로 글을 배웠던 것은 1541년 중종 36년 6살의 나이로 어머니를 따라서 강릉의 외가를 떠나 한양의 본가인 수진방으로 온 이후부터였다. 이때부터 율곡은 어머니 신사임당으로부터 틈틈이 글을 배워서 벌써 문리가 통하였고, 사서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 율곡의 총명함은 4세 때에 이미 정평이 나 있어 고향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때 율곡은 스승으로부터 사략(史略)을 배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스승이 ‘제위왕초불치제후개래벌(齊威王初不治諸侯皆來伐)’이란 문장을 풀이하면서 실수로 ‘제후’의 ‘후’자 아래에다 구두점을 찍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문장의 뜻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된다. “제나라에 위왕이 처음에 제후들을 잘 다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제나라의 위왕이 여러 제후들을 직접 다스리는 결과가 되어 사실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제후’ 다음에 나오는 ‘개(皆)’의 주체가 불분명하게 되어 그 문장의 뜻이 애매모호해지는 것이다. 이때 4살의 율곡은 말없이 한동안 그 문장에 눈길을 두고 있다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개(皆)자가 제후의 밑에 있으니 문세(文勢)로 보면 마땅히 ‘불치’ 아래에서 구두점을 떼어야 합니다.” 율곡의 말대로 이 문장의 뜻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 된다. “제나라의 위왕이 처음에 정치를 잘못하여 다른 제후들이 함께 와서 정벌하였다.” 율곡의 주장대로라면 사실로 보나 문장의 의미로 보나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정답이 되어 버리는 것을 그제서야 확인한 스승은 자신의 무릎을 내리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전해 오고 있다. “옳거니, 네 말이 맞다. 이제 보니 내가 너의 스승이 아니라 네가 나의 스승이로구나.”
  • [기업회생 주도한다-미다스의 손] LG카드 박해춘 사장

    [기업회생 주도한다-미다스의 손] LG카드 박해춘 사장

    벼랑 끝에 몰렸다 살아난 기업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다 임직원들의 고통 분담이 1차적 요인이겠지만 그 배후에는 늘 뛰어난 최고경영자(CEO)가 있게 마련이다. 실패를 성공의 발판으로 삼고 위기를 기회로 돌린, 업계의 현대판 ‘미다스의 손’을 시리즈로 싣는다. 시간을 지난해 1월4일로 돌려보자.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는 금융기관장들의 신년하례회가 열렸다.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현 교육부총리)이 시중은행장들의 손을 꼭 잡으며 “LG카드 출자전환에 힘써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행장들의 반응은 썰렁했다. 시장에서 ‘사망선고’를 받은 LG카드에서 빨리 발을 빼는 게 상책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누가 부총리이고, 누가 행장인지 모를 기이한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1년10개월여가 지난 지금, 정부의 ‘회유’와 ‘읍소’로 출자전환에 참가했던 은행들은 ‘LG카드 대박’을 기대하고 있다. 주당 평균 3만 7000원에 출자전환한 주식이 4만 7000원을 훌쩍 넘겼다. 출자전환을 거부했던 은행들은 배가 아픈 눈치다. ●파산금융사의 ‘구원투수’ 나라 경제를 뒤흔들며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던 LG카드의 회생에는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8조원에 이르는 유동성 지원과 출자전환이 있었기에 기능했다. 그러나 박해춘(57) 사장이 ‘부활극’의 연출자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채권은행은 물론 LG카드 노조까지 “불도저 같은 박 사장이 아니었다면 현재의 LG카드는 있을 수 없었다.”고 평가한다. LG카드로 오기 전 그는 서울보증보험 사장이었다. 당시 20조원에 이르는 서울보증보험의 부실을 털어내며 ‘구조조정의 달인’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었다. 친정인 삼성그룹을 상대로 “삼성자동차 채권을 안 갚으면 이건희 회장 집을 압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채권단 중 유일하게 9433억원을 회수하기도 했다. 1998년 삼성화재에서 잘 나가던 박 사장을 서울보증보험으로 끌어 들인 것은 당시 금융감독원장이었던 이헌재씨였다. 부총리에 오른 이씨는 LG카드 사태 해결을 위한 ‘구원투수’로 다시 박 사장을 등판시켰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박 사장의 부임은 LG카드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였다.”면서 “서울보증보험 노조는 LG카드 노조에 ‘당신들은 이제 살게 됐다.’며 축하인사를 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적 구조조정이 아닌 시스템 구조조정 박 사장은 “사장으로 내정된 지난해 2월16일부터 한달간 LG카드의 문제점을 샅샅이 찾아냈고,3월15일 취임과 동시에 곧바로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의 취임 일성은 “인적 구성에 문제가 없는 만큼 인력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지만 시스템은 완전히 뜯어 고치겠다.”는 것이었다. LG카드의 가장 큰 문제는 채권 회수에 있었다. 연체율이 무려 34%나 돼 매월 수억원씩의 적자가 났다. 박 사장은 우선 본부 인력 대부분을 채권 회수팀으로 돌리고, 대대적인 추심 활동을 벌였다. 채무자들을 위협하거나 윽박질러 민원이 발생하면 가차없이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LG카드 직원들은 박 사장식 채권 회수를 ‘감동 추심’이라고 부른다. 박 사장은 ‘경제적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본부 관리조직 3개 부문을 1개로 축소하는 대신 채권·영업조직은 4개로 늘렸다. 서울보증보험에서 손발을 맞췄던 최강의 채권회수팀 10명을 데려오기도 했다. 신용관리 및 IT시스템 부문에는 오히려 투자를 강화해 고객들의 신용등급을 철저히 가려냈다. 그 결과 연체율은 업계 최저수준인 9%대로 떨어졌다. 우량고객 중심의 플래티늄카드는 취임 당시 1320장에서 지난 9월말 현재 51만장으로 늘었다. 카드 업계의 대표적인 ‘블루오션’ 시장인 공공기관 및 대학의 연구비카드 점유율은 무려 97%에 이른다. 지난해 9월 처음으로 176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LG카드는 올해 3·4분기까지 1조 1350억원의 흑자를 냈다. ●누가 사든 회사는 영원해야 매각을 앞둔 LG카드는 이제 많은 금융사들이 군침을 흘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회원수는 1000만명에 이르고 시가총액도 5조 6000억원을 넘어 선다. LG카드가 어디로 팔렸으면 좋겠냐는 질문을 던졌다. 박 사장은 입을 다물었다. 다만 “누가 사든, 회사명이 어떻게 바뀌든 LG카드는 최고의 카드사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사 회생에 기꺼이 몸을 던진 직원들의 열정까지 고스란히 받아 줄 수 있는 주인이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 사장은 매일 아침 6시30분부터 끊임없이 부하 직원들을 몰아세우는 ‘독종’이지만, 중풍에 걸린 처백부를 15년간 간병한 따뜻한 인간미도 잃지 않은 CEO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패션+α]

    ●아디다스는 최근 서울 청담동 디자이너 이미지에서 ‘오리지널스 2005년 봄·여름 컬렉션’을 열었다. 독일에서 공수한 1960년대식 버스를 이용해 진행된 이번 패션쇼에는 2006년 독일월드컵 기념 의상과 하이테크 러닝슈즈,NBA 선수였던 피트 매러비치를 기념한 의상 등을 다채롭게 선보였다. ●송학(www.isonghak.co.kr)은 두피 청결, 비듬 제거 등에 좋은 ‘오색황토 두피케어 샴푸’를 출시했다. 매실, 창포, 가시오가피 추출물 등이 들어있어 머리카락을 건강하게 지켜준다. 회사 홈페이지와 Hmall 우리닷컴 롯데닷컴 신세계몰 등에서 구입 가능.300㎖ 1만 8000원. ●아라미스 랩시리즈가 한국 웹사이트(www.labseries.co.kr)를 열었다. 홈페이지에서는 브랜드 히스토리와 제품군, 스킨케어법, 신제품 사용법, 매장 안내 등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5)조선 정조 北道 원수 주형채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5)조선 정조 北道 원수 주형채

    정조9년(1785) 봄이었다. 그 무렵 서울에서는 천주교인 수십 명이 오늘날의 명동천주교회를 결성했고, 그것이 문제가 돼 이른바 을사박해가 일어났다. 마침 전국적인 지하조직망을 가진 것으로 조사된 또 한 번의 ‘정감록’ 사건까지 발생해 세상인심이 뒤숭숭했다. 결국 정감록 사건의 주모자 몇은 사형을 받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주형채(朱炯采)라는 평민지식인이 끼어 있었다. 당시 심문 기록에는 주형채에 관한 단편적인 정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실로 구슬을 꿰듯 주워 모아보면 주형채의 일생은 역사상 이름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조선후기의 허다한 평민지식인 또는 술사들의 삶을 대변한다. 더욱이 그들은 체제에 저항한 일부 양반들과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했다. 그런 점에서 주형채의 삶은 더욱 관심을 끈다. ●주형채의 ‘범죄행위’ 정감록 사건의 또 다른 주범인 문양해는 동지 주형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함경도 영흥이 고향인데 향악선생(香嶽 속명은 김정 또는 김호)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흉악한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편지에 쓰인 흉악한 구절을 문양해는 자기의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며, 예를 든다.“하늘이 내리는 재앙과 시국의 변천이 이와 같으니 이제 진인(眞人)이 마땅히 나와야 할 것이고, 우리들은 사람들을 모아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을 반정(反正)을 일으켜야 할 것입니다.” 향악선생은 이 편지를 상자 속에 깊이 감추어 두었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언젠가 향악선생이 외출한 틈을 타서 평소 호기심이 많았던 문양해는 몰래 편지를 꺼내 보았다고 했다. 문제의 편지가 지리산에 도착한 것은 아마 사건 발생 한 해 전인 정조8년 정월로 짐작되는데, 주형채가 하필 왜 그 시점에 이런 편지를 보내왔는지 문양해는 까닭을 모르겠다고 했다. 주형채가 향악선생과 교제를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이었다. 적어도 사건 발생 15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했다. 주형채는 얼굴 생김이 괴상하고 못났지만 눈빛이 날카롭게 번쩍여 사람을 쏘아보듯 하였다. 주형채와 향악선생 사이에는 오랫동안 편지가 오갔다. 지리산에서 함경도 영흥까지는 근 2000리나 되는 먼 길인데도 서로 소식을 전했던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 편지 심부름을 한 이는 혜준 스님이었다. 혜준은 오래 전 함경도의 어느 사찰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는 주형채와 친해졌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그 뒤로도 함경도를 자주 왕래하였다. 사건 당시 혜준은 경상도 하동에 있는 영원사에 몸을 담고 있었다. 향악과 ‘괴이한’ 편지를 주고받은 것 외에도 주형채는 여러 차례 불온 문서를 조작했다고 한다. 그는 “멀리 귀양가는 노래”를 지어 조정의 잘못을 비난하고 민심을 선동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주형채는 아니라고 끝까지 부정했다. 그 노래는 충신이 멀리 귀양 갈 때 지은 시라고 누군가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그저 베껴두었을 뿐, 다른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발뺌이 용이하지 않았다. 주형채는 장차 자기가 왕이 되겠다는 주장을 동지들 앞에서 서슴없이 했던 것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함경도의 평민지식인 주형채는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불순세력’과 연합해 조선왕조의 전복을 꾀했다.‘정감록’ 사건을 종결짓는 마지막 확정 판결의 일절은 이랬다.“이율, 양형, 문양해, 홍복영 등 여러 역적들이 반역을 음모해 여러 도에서 거사를 도모하면서 주형채를 북도의 원수로 정하였다. 그들이 서로 왕복하며 주도면밀하게 반역죄를 꾸민 사실은 여러 죄수들의 심문과정에서 샅샅이 드러났다. 대역부도(大逆不道)한 죄인들을 군율에 의거하여 한강 모래밭에서 효시(梟示)하라.”(실록, 정조 9년 3월22일 신미) ●천문과 점술의 대가 주형채 정감록 사건에서 “북도 원수”로 거론된 주형채에게는 사실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그의 이웃사람들은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아리송한 일이 생기면 주형채를 찾아갔다. 주형채의 집은 함경도와 평안도 두 도가 만나는 접경지대에 있어 양도의 사람들이 그를 따랐다. 주형채는 이를 테면 ‘만물박사’였으며, 여러모로 평민들의 교사역할을 담당했다. 정감록 사건이 발생하기 일년 전인 정조8년 12월 초7일부터 사흘 동안 별자리에 이상이 있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주형채에게 물어왔다. 당시 주형채가 관찰한 바로는 위성(危星), 실성(室星), 벽성(壁星) 앞에 20여 개의 별이 벽을 쌓고 늘어섰었다. 그 가운데 붉은 기운이 있어 상서롭지 못했다. 특히 여러 별 가운데서도 장군성(將軍星)과 태백성(太白星)이 서로 사흘 동안 싸우다 1도(度) 거리로 멀어졌다. 그 때 태백성이 어깨로 장군성을 부딪쳐 여러 번 이겼다 졌다 했는데, 이 모든 것이 흉한 조짐이었다. 주형채는 이같은 현상이 조선이나 중국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므로, 해로울 일이 조금도 없다고 주민들을 달랬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난리를 염려해 피란을 고려하고 있었지만 자기가 만류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조정의 심문관들은 주형채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관리들이 보기에 주형채는 민심을 선동해 피란행렬을 조장한 혐의가 짙었다. 실제로 그 무렵 함경도에는 남쪽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정감록’에 예언된 십승지가 모두 남쪽에 있는 관계로, 북도 사람들은 여차하면 남쪽으로 옮길 태세였다. 그들의 상당수는 이미 십승지를 찾아 이동을 시작했다. 주형채와 같은 평민지식인들은 이주운동에 음양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나 주형채는 관리들의 문제제기를 부정했다.“저는 주민들을 타일렀습니다.‘현명한 임금이 다스리는 시대에 어찌 피란가는 일이 있겠는가´ 라고 말입니다.” 평민 주형채는 본래 고향 사람 장진익에게서 글을 배웠다. 그의 스승은 사건 당시 이미 사망한 지 오래 되어 화를 면했다. 유교의 기본 경전은 물론이고 천문과 점술까지 통달한 주형채는 향악선생과 같은 도사는 물론이고 점술인들과도 친한 사이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형채는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철저히 함구했다.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제게는 제자나 동문생도 전혀 없었으며, 도사나 점술인은 원래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주형채는 의리가 무척 강했던 사람이며, 의지가 대단했다. 그러나 사건을 수사한 조정의 입장에서 보면, 주형채는 대단한 악질이었다.“주형채는 본래 흉악하고 요사스러운 놈으로 천문 역법과 점술, 둔갑술 등 갖은 술수를 써서 백성들을 속이고 인심을 선동하는 것을 일삼았다. 몰래 역적이 될 마음을 먹고 밤낮으로 기회를 엿보았으며, 스스로 ‘대장’이라 떠들기도 하고, 혹은 ‘도원수’라고 칭했다. 더러는 10만의 군사를 모을 수 있다고 했고, 혹은 영흥(永興)의 군사용 창고를 접수하겠다고 하였다. 심지어는 제가 세울 나라의 국호를 제(齊)나라라고까지 했다. 놈은 마음속으로 이것도 작다고 생각했던지 중국 황제를 만나 추천을 받아 자기가 임금이 될 거라고 했다. 또한 꿈의 해몽을 빙자해 신하로서는 감히 꺼낼 수도 없는 말을 멋대로 지껄인 편지가 남아 있다. 지극히 흉악한 죄상이 지금까지 압수된 문서 중에 이미 역력히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은 자기 죄를 한마디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이 조정의 판단이었다. 평민지식인 주형채의 생각으로는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 때의 부정 불의한 세상이요, 조정이었다. 자기와 자기 동료들은 아무런 죄도 없었다. 따라서 썩어빠진 관리들이나 임금 앞에서 죄를 인정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살점이 떨어지는 혹독한 고문을 묵묵히 견디면서 주형채는 단 한마디도 잘못을 빌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사태의 책임을 전가하지 않았다. ●주형채가 지하조직에 편입된 계기 ‘정감록’ 역모사건의 소용돌이에 주형채가 휩쓸리게 된 것은 물론 그가 지하조직에 가담했기 때문이다. 그가 지하조직에 가입하게 된 데는 몇 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째, 주형채는 이 사건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문양해 일가와 인연이 깊었다. 문양해의 삼촌 문광도는 함경도 문천에서 잠시 감목관(監牧官 목장업무를 담당하는 관리)을 지낸 적이 있었다. 그 때 그곳을 여행하던 주형채가 천문에 관한 일로 문광도와 토론을 벌였고, 이를 계기로 여러 문씨들을 사귀게 되었다. 문씨 일가는 충청도 공주의 평민으로 학식이 뛰어났다. 그들은 홍국영의 가까운 친족 홍낙순이 충청감사가 되었을 때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홍 감사가 충청도 감영(監營)에 계실 때 많은 은혜를 입었고, 감사께서 저희 집에 찾아오셔서 만났습니다.” 문양해의 아버지의 진술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평민 문광도 역시 홍낙순의 후원으로 감목관 벼슬을 얻은 게 틀림없다. 주형채는 이런 문광도와 서로 기맥이 통하게 됨으로써 장차 문양해 및 홍복영(홍낙순의 아들)과 뜻을 같이 하게 되었다. 둘째, 정감록 사건의 또 다른 주역 양형과도 깊이 사귀게 되었다는 점이다. 주형채의 사촌 주형로는 이미 양형을 알고 지냈다. 주형로(일명 주형일)는 사건 당시 충청도 단양에 머물고 있었다. 양형은 주형로를 통해 주형채란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자기 친척 문광도에게서 주형채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전해 듣게 되자 호기심이 발동했다. 양형과 주형채는 서로 연락해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사이는 곧 절친한 관계로 발전했다. 양형은 서울 입동에 사는 중인이었다. 낮은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글재주가 출중했던 그는 서울의 양반 홍복영 및 이율과도 매우 친한 사이였다. 정조 초년, 홍복영은 충청감사로 임명된 아버지 홍낙순을 따라 공주에 내려가 있었다. 그 때 의약에 관한 일로 홍낙순은 고민을 하던 중 양형이 의술에 밝다는 소문을 듣고 불러 상의한 적이 있었다. 양형의 처방이 적중했던지 의술을 매개로 그들은 서로 친해졌다. 홍낙순 일가가 서울로 돌아온 뒤 양형과 홍씨들은 더욱 가까워졌다. 홍복영은 양형의 살림이 어려울 때 도와주기도 했다. 그들은 때때로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나중에 함께 공모해 하동에 지하조직의 거점을 마련했다. 양형과 가까워진 주형채 역시 이 조직에 포섭된 것은 물론이었다. 셋째, 주형채와 홍복영은 끝까지 그 점을 부인했지만, 주형채는 여러 해 전부터 홍복영 일가와 알고 지냈다고 봐야 한다. 홍복영의 삼촌 홍낙빈은 주형채와 친밀해 편지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정조 5년(1781) 세도정치가 홍국영이 실각하자 가까운 친척 홍낙빈도 함경도 갑산으로 유배되었다. 그 때부터 주형채는 홍씨 일가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 다들 왕조의 전복을 꾀하였다. 위에서 살핀 몇 가지 경로를 통해 주형채는 ‘정감록’ 사건의 주역들과 마음을 합친 것으로 생각된다. 주형채와 양형, 문양해, 홍복영 등이 지하조직을 형성해 나간 과정을 살펴보면 뜻밖에도 두 가지 사실이 부각된다. 하나는 18세기 조선사회에서 중인 또는 평민 지식인들이 끊임없이 지리적으로 이동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주형채처럼 고향을 지키고 사는 경우에도 자주 이웃 지방을 여행해 사교범위를 확장하고 있었다. 둘째, 평민 또는 중인 지식인들은 계층을 뛰어넘어 양반들을 사귀는 데 열심이었고, 양반들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하층지식인들과 접촉하였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조선시대 양반들은 같은 신분층에 속하는 식자들만 사귀었을 것으로 짐작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완전히 달랐다. 양반과 평민지식인들은 그것이 비록 평교(平交 평등한 교제)는 아니었다 해도 인생의 다양한 국면에서 서로 만났던 것이다. ●주형채가 속한 전국규모의 지하조직 주형채는 조직의 상층부를 상당히 잘 알고 있었으나 하부구조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대다수의 조직원들은 지하조직의 일부를 알고 있었을 뿐이다. 이 조직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던 지도층 인사는 문양해 정도였다. 문양해는 심문을 받는 과정에서 지하조직의 얼개를 비교적 자세히 설명한 적이 있다. 북도의 원수는 주형채였지만 그 밑에 여러 명의 두목이 활동했다. 함경도 안변에는 조상호와 유덕휘가, 그리고 강원도 통천에는 유경일이 대도독(大都督)이라 불렸다. 고성의 칠송정에 사는 권생만 역시 대도독으로 통했다. 그들은 일단 유사시 지역사령관으로 능력을 발휘할 참이었다. 이들 가운데서도 특히 유경일과 권생만은 지리산의 향악선생과 가끔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문양해는 사건 발생 2년 전에 그들이 향악선생에게 편지를 보낸 사실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밖에 황해도 봉산에 있는 이형윤과 황주에 사는 정몽로도 해서지방의 괴수로 손꼽혔다. 고위간부는 아니었지만 평안도 곽산에 살던 박필현도 이 조직의 일원이었다. 주형채 등의 명단은 지리산 거점에 보관 돼 있던 두루마리에 모두 적혀 있었다 한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서울 사는 양반들도 이 지하조직에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앞에서도 이름이 언급된 이율과 홍복영이었다. 진사 이율은 한양 이현에 살았는데 홍씨 일문에 보낸 편지에서,“이 세상을 보지 아니 할 때는 언제입니까? 제 뜻을 온 세상에 널리 펴지 못하게 된다면, 한탄한들 무엇 하겠습니까?”라며 반역의 뜻을 비쳤다. 서소문 밖에 살던 진사 정래정과 정래익도 지리산의 향악선생에게 편지를 보내 조정을 비방하였다.“우리가 비록 재주가 없고 불민하지만 거사하는 날에는 조영흥(趙永興 이름은 미상)이나 주공(朱公 주형채)의 부하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여기서 보듯 주형채는 조직 내에서 상당한 실력자로 인식되었다. 물론 지하조직을 총괄한 이는 향악선생이었고, 그를 측근에서 보좌한 이가 문양해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향악선생이 끝내 체포되지 않은 가운데 이 사건은 종결된다. 어쩌면 향악선생이란 인물 자체가 허구였을 수가 있다. 문양해가 가공의 향악선생 노릇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문양해야말로 실은 지하조직의 괴수였던 셈이다. 문양해는 문장에 능한 미혼의 노총각으로 비승비속의 도사였다. 지하조직에서는 충청도출신 인사들의 참여도가 높은 편이었다. 특히 공주지방 사람들이 많이 포함돼 있었으며, 내포지방의 양반들도 여러 명이 관여했다. 조직의 실질적인 우두머리 문양해 일족이 공주 출신이었던 데다, 조직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한 홍복영의 아버지 홍낙순이 충청감사를 역임한 것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공주 효포 출신의 권우는 지하조직에 적극 가담했다. 그는 향악선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선생님의 재간은 천고에 뛰어납니다. 제게 아들이 하나 있는데 마땅히 보내서 글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훗날 거사할 기일을 정확히 알려주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이밖에 공주의 상대장리에 사는 진규도 향악선생과 함께 흉악한 묘책과 비밀스러운 계책을 짰다고 한다. 공주 유구역의 홍정유, 한산의 정탁 3형제, 태안의 조수정과 조수인 형제, 역시 태안에 사는 가명정(賈命正) 등도 조직에 합류했다. 당진의 조두진, 서홍기, 한제만, 대흥의 이인치도 관련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전라 경상 양도의 참여도는 무척 낮았다. 전라도 광양의 오성겸과 이춘홍이 군비 조달에 기여하기로 내정되어 있었을 뿐이다. 특히 경상도 쪽은 조직원이 아예 전무했다. 그것은 이 지하조직이 노론 출신의 홍국영 잔당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남인의 세력근거지인 경상도 인사들은 이 조직을 외면했던 것이다. 국가전복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가졌으면서도 이 조직은 다분히 종교적인 색채가 짙었다. 하필 그 거점을 지리산에 둔 것은 안전은 물론 신비스러운 성격을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이 조직의 실체는 문양해의 진술을 통해 어느 정도 밝혀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비밀스러운 조직이었던 만큼, 그리고 심문과정에서 마지못해 털어 놓은 이야기란 점에서 불충분한 점이 적지 않다. ●동학의 원조 지하조직에 가담한 사람은 다양했다. 이율과 홍복영 등 실세한 양반이 한 축을 이뤘다면, 지하조직의 운영을 직접 담당한 실질적인 주도층은 중인 이하의 평민지식인들이었다. 주형채, 양형 및 문양해가 바로 그들이었다. 이 사건은 이미 18세기 후반에 정치 종교적인 성격을 띤 전국규모의 민중운동이 준비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실례다. 이런 운동 경험은 지속적으로 축적되어갔다. 그 결과,19세기 말 동학이 대두하자 각지의 농민은 순식간에 동학의 기치 아래 모여들어 거대조직을 만들어냈다. 빗방울이 바로 바다에 이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인 빗물은 어디엔가 웅덩이를 이룬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우리땅을 살리자] (6) 하천이 되살아난다

    [우리땅을 살리자] (6) 하천이 되살아난다

    하천의 복원은 환경 차원을 넘어 문화·역사·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청계천을 통해 학습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뉴욕에서 허리케인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나비효과’를 연상시키듯 청계천 복원은 다른 지방에도 하천복원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그러나 이미 하천 상태계를 복원해 친수위락 공간 및 축제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지방단체들도 적지 않다. 비록 청계천처럼 화려한 조명을 받지는 못했지만 복원 노력을 통해 지역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생활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수달이 찾아온 대구 신천 대구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총길이 12.4㎞의 신천. 얼마 전 수성교 부근에서 천연기념물인 수달이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환경 전문가는 물론 대구 시민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수질이 좋아지면서 1급수에서만 산다는 꺽지를 비롯, 잉어 붕어 등이 심심치 않게 발견됐지만 수달까지 서식할 줄은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천복원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신천은 10년 전만해도 생활하수와 공장폐수가 흘러드는 시궁창에 지나지 않았다. 수질의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이 10㎎/ℓ를 훨씬 웃돌아 하천 근처에 가기조차 힘들 정도였다. 하천 살리기에 나선 대구시는 우선 신천에 유입되는 오폐수 차단을 위해 신천에 오폐수 차집관로를 설치했다. 특히 건천(마른천)에 충분한 물을 공급해 주기 위해 121억원을 투입해 송수관로 9.1㎞를 설치했다. 신천 하류에 있는 신천하수처리장에서 정화후 방류하는 물을 하루에 10만t씩 상류로 끌어 올려 신천을 평균 수심 70㎝,365일 물이 흐르는 하천으로 바꿔 놓았다. 신천에 맑은 물이 다시 흐르면서 그동안 자취를 감췄던 물고기들이 돌아오는 등 생태계가 복원되기 시작했다. 잉어, 붕어, 참붕어, 참몰개, 메기, 피라미, 갈겨비, 가물치 등 8종의 어류가 서식하고 고방오리, 청둥오리, 황조롱이, 왜가리 등 18종의 조류가 찾아오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연하천으로 거듭난 신천 수변공간은 평일 1만명, 휴일 2만∼3만여명의 시민들이 신천 둔치에서 산책이나 운동을 즐기는 등 웰빙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청계천 복원의 모델이 된 온천천 청계천 복원 사업의 모델이 부산 온천천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부산시 금정·동래·연제 등 3개구에 걸쳐 있는 총길이 14㎞의 온천천은 미꾸라지와 피라미는 물론 청정지역에 산다는 숭어까지 뛰놀 정도로 수질이 깨끗하다. 하지만 6∼7년전만해도 악취가 진동해 사람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던 곳이었다. 연제구는 98년 11월 온천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되살리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 99년초부터 복원 사업에 들어갔다. 거제동 세병교에서 연산동 안락교까지 2.6㎞에 걸쳐 시민공원도 만들었다. 온천천 정비를 통해 수질개선은 물론이고 하천 범람문제까지 해결했다. 인근 지자체들이 하천복원에 참여토록 하는 촉매역할도 했다. ●구달박사 안양천 극찬 침팬지 연구의 효시이자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인 제인 구달(여·71) 박사가 지난해 11월9일 경기도 안양천 지류 학의천을 찾았다. 구달 박사는 당시 “오염됐다가 복원된 안양천을 보고 싶어 왔다.”며 “자연생태계가 복원되면서 물고기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학의천은 70년대만해도 BOD농도가 60㎎/ℓ가 넘을 정도로 전국에서 가장 오염이 심한 하천이었으나 상류에 하수종말처리장을 설치하고 꾸준한 정화활동을 펼친 덕분에 물고기가 살고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생태계가 복원됐다. 경기도 성남시가 지난 2000년부터 생태하천 정비사업을 벌이고 있는 탄천 지천인 분당천과 여수천, 동막천도 수질이 하루가 다르게 개선되고 있다. 지난 달 전국체전 조정과 카누 경기가 열린 울산 태화강도 수년전만해도 공장폐수와 생활오수로 악취가 진동하고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등 공해 도시의 대명사로 불렸다. 그러나 10여년에 걸친 생태계 복원사업으로 수질이 1∼2급수를 유지하게 됐다. 지난 8월에는 1만여명이 참가하는 ‘제1회 태화강 전국수영대회’가 열렸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청계천 효과? 청계천 복원을 계기로 지방자치단체들이 하천복원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청계천 복원사업이 성공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하천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복개구간을 자연하천으로 복원해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과천시는 지난 94년 주차공간 확보를 위해 복개한 양재천에 대한 복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과천주유소∼새서울교회 사이 697m 양재천에 덮인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하천 양옆에 산책로, 여울 등을 만들게 된다. 모두 142억원이 투입되며 내년 말 완공 예정이다. 영산강 지천인 광주천도 자연형 하천으로의 복원사업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광주시는 동구 용연동 상류 지점∼서구 유덕동 영산강 합류지점 20.15㎞ 구간에 대한 복원공사를 지난해 착수했으며 오는 2009년 완공 예정이다. 시는 모두 600억원을 들여 호안 콘크리트 옹벽과 둔치에 건설된 천변주차장을 철거하고 있다. 또 천변과 바닥에 부들 등 수생식물을 심고, 징검다리를 놓는 등 개발 전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상류쪽 물을 끌어 올려 건천인 광주천을 항상 물이 흐르는 ‘살아 있는 하천’으로 만들 계획이다. 경기도 수원시는 도심 한복판을 흐르는 수원천 복개구간을 오는 2007년까지 완전복원해 시민의 품에 돌려주기로 했다. 지난 1994년 복개한 수원천의 지동교∼매교 사이 790m를 철거한다. 대전시도 1974년 대전천을 복개해 건립된 홍명상가와 동방 마트를 철거한 뒤 자연친화적 생태하천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전문가제언“ 메마른 정서에도 물길 터줄것” 하천에는 물을 이용하는 이수(利水) 기능, 물을 다스리는 치수(治水) 기능 이외에 환경 기능이 있다. 이·치수는 공학적 기능(engineering function)인 반면에, 환경은 자연적 기능(natural function)이다. 196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하천의 이수 기능의 극대화를 가져왔고, 동시에 토지 이용의 고밀화는 하천의 치수 기능의 확대를 가져왔다. 이에 따라 하천의 이·치수 기능은 적극적으로 확대된 반면에 환경 기능은 상대적으로 위축, 저하되고 나아가 일부 하천에서는 소멸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경제수준이 어느 정도 높아지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면서 잃어버린 환경에 대한 보전, 복원의 관심이 높아졌다. 이는 특히 과밀화된 도시에서 친수성 하천 공간에 대한 시민들의 욕구에서 시작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시작된 사업이 이른바 ‘하천환경개선사업’ 또는 ‘하천환경정비사업’이다. 하천환경개선사업은 하천의 환경 기능을 보전·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하천사업이라 할 수 있다. 하천환경의 개선 또는 정비에서 한 발 더 나간 개념이 이른바 하천복원이다. 삶의 질은 사회의 물질적 풍요나 기능적 효율성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사회의 경제적·문화적 건전성은 물론 대기 물 토양 등 환경의 건전성이 요구된다. 하천이나 호소는 지역 환경의 주요 구성 요소로서, 특히 자연성이 약한 도시에서는 귀중한 자연 환경의 일부이다. 따라서 훼손된 하천을 원래의 자연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지역 사회의 자연 환경의 보전, 복원, 창출이라는 면에서는 물론 우리의 잃어버린 정서를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것이다. 또한 하천복원은 산 들 호수 해안 섬과 같은 다른 자연환경의 복원 중에서 가장 급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다. 하천복원은 자연복원의 시금석이다. 이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하천복원사업은 지역을 흐르는 하천을 복원해 지역 주민들과 하천 동식물이 공존하는 생태계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는 하천공원화사업과는 차별된다. 이러한 사업의 계획, 설계, 시공, 유지관리 모든 단계에서 지역주민들의 직·간접적인 참여가 기본이다. 이 점에서 하천복원사업은 이·치수 기능을 향상시키는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하천사업과 궤를 달리한다. 김창완 건설기술硏 수석연구원 공학박사
  • [데스크시각] 거꾸로 가는 전교조/ 손성진 사회부 부장급

    전교조가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는 것은 참 아이로니컬하다. 교원평가제는 분명 개혁적 방안인데 개혁적 교사단체라고 자부하는 전교조가 반대하고 있는 것은 뜻밖이다. 교원평가제 반대파에 맞서 싸우는 게 우리가 예상한 전교조의 모습이었다.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는 것은 조합원의 이익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익을 지키려다 이율배반에 빠진 게 현재의 전교조다. 개혁을 부르짖다 스스로 개혁의 도마에 오르자 수구적 태도로 돌변한 꼴이다. 전교조는 거꾸로 가고 있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 세력의 이기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전교조는 교원평가를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보는데, 지나친 비약이다. 개인 평가와 경쟁이 곧바로 구조조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교원평가제를 구조조정의 수단이라고 치자. 경영 위기에 빠졌을 때 구조조정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이다. 외환위기 당시 많은 기업들은 근로자를 해고하는 아픔을 감수한 끝에 살아남지 않았나. 전교조의 주장대로 지금은 교육의 위기 상황이다. 학급당 학생수가 50명을 넘고 교사들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교육은 계속 팽창하고 있다. 어떤 학생들은 학원에서 밤늦도록 공부하고 학교에서는 잠을 잔다. 학생들을 바르게 가르치고 이끌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매로 다스리고 싶어도 체벌금지 규정이 가로막는다. 공교육의 정상화는 아직 멀기만 하다. 정작 전교조가 해야 할 일은 이렇게 비뚤어진 교육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교원평가제는 교사들을 몰아내기보다는 경쟁을 통해서 교육의 위기를 돌파해보자는 뜻으로 보여진다. 기업체는 물론이고 일반 공직사회에서도 경쟁과 평가의 개념은 도입된 지 오래다.5급 사무관이 팀장이 되어서 윗직급을 부리고 있다. 능력을 정당하게 평가해서 그에 맞는 인사를 하는 것은 많은 조직에서 일반화됐다. 다면평가와 평가의 수치화, 성과급·연봉제를 반대하는 것은 계속 ‘온실 속의 철밥통’으로 남겠다는 옹고집과 다름없다. 툭하면 연가투쟁을 하려는 것도 교사의 본분에 어긋난다. 교사는 교육자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고 품위를 잃지 않는 태도가 요구된다. 거리로 뛰쳐나온 교사들의 모습은 볼썽사납다. 교실에서 배움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거리의 선생님들을 곱게 볼 리 없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신뢰는 그로해서 한꺼번에 무너진다. 교원평가제는 이념과 상관없다. 적어도 이번 사안에서만큼은, 보혁 논쟁을 끌어들여서는 곤란하다. 이른바 ‘보수꼴통’이 전교조를 공격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이념적 편가르기와 다름없다. 욕하는 보수보다 침묵하는 진보가 더 밉다. 전교조 교사들이 지난 10여년 동안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낸 성과들에 학부모들은 한편으로 박수를 보냈다. 촌지를 근절하는 데 앞장서고 폭력 학생들의 선도에도 애를 썼다. 교육의 기회균등과 학벌주의 타파와 같은 주장에는 많은 사람이 뜻을 같이하고 있다. 전교조 교사들의 이런 노력은 모르는 바 아니다. 그렇지만 전교조는 점점 외면받고 있다.2003년 3월 9만 416명까지 증가한 조합원은 2년만에 8만 4400명으로 줄었다. 가입률은 17%에 지나지 않는다. 순수한 생각으로 전교조 초기부터 참여했던 교사들의 이탈도 눈에 띈다. 전교조가 외면당하는 것은 점점 강해지는 이념성 탓이다. 이념의 전장(戰場)은 정치권만으로 충분하다. 국민 대다수는 이념 논쟁을 지겨워한다. 학교가 이념의 마당이 되는 것을 부모들은 원치 않는다. 학교는 보편적 가치를 가르치는 곳이다. 이념은 강요할 게 아니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교사들의 몫이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은 교육 소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나쁘다고만 가르치는 것은 일방적인 주입이다. 미국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가르쳐서 학생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이끌어 줘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더 시급한 문제들이 많다. 사교육에 기대지 않도록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일이 첫째다. 십년전과 똑같은 교안을 들고 가르치는 무사안일주의를 깨뜨려야 한다. 평가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www.eduhope.net. 전교조의 홈페이지 주소다. 교육(education)에 희망(hope)을 주자는 뜻일 게다.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지 않도록 해야겠다. 손성진 사회부 부장급 sonsj@seoul.co.kr
  • 조선시대 전통 복식부기 있었다

    조선시대 전통 복식부기 있었다

    복식부기법이 없었더라면?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그랬다면 ‘콜럼버스 항해→신대륙 발견→은(銀)의 유럽 대량유입→서양의 발흥’이라는 연쇄고리가 이어지지 못했을 수도 있다. 콜럼버스의 탐험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회계의 투명성. 당시 탐험을 빙자한 사기가 워낙 많았던 탓에 돈 떼일까봐 망설이던 투자자들에게 그는 복식부기를 쓰면 속일 수 없다고 설득해 탐험비용을 타냈다. 이 때문인지 서양은 ‘회계’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져왔다. 막스 베버는 복식부기를 통한 회계의 투명성을 서구사회와 비서구사회를 나누는 기준으로 쓰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러기만 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전성호 비교연구실장은 11일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에서 주최하는 ‘유교와 경영’ 학술대회에서 ‘우리 복식부기법도 그에 못지 않았을 뿐 아니라 외려 더 우수했다고도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전 실장은 미리 배포된 발제문에서 문자의 역사가 곧 회계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문자가 필요해서 생긴 것이라면, 그 필요성은 ‘헤아리는 것’에서 시작했다는 것이고, 헤아린다는 것은 곧 ‘문명’을 뜻한다는 설명이다. 그렇기에 서구에만 특출나게 회계가 있었다기보다, 그 어느 곳이던 문명권이 있었다면 어떤 형태로든 회계가 발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 실제 해독이 어려운 수메르문명의 문자도 회계의 원리로 보면 의외로 쉽게 풀리는 경우도 많고,8세기 이슬람 문화권에는 무려 14가지 항목으로 된 회계절차가 있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에서는? 당연히 있었다. 여기서 주의깊게 볼 것은 중국과 한국의 언어가 다르다는 사실이다. 문자의 역사가 곧 회계의 역사라면 중국과 한국의 회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전 실장은 한자를 이용해 표기했던 ‘이두(吏讀)’에 주목한다. 전통 회계장부를 보면 한자로 적되 우리식으로 읽었던 이두로 쓰인 용어가 많은데,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회계법이 독자적으로 발달해왔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구체적으로 17세기부터 300여년 동안 계속 기록되어온 전남 영암 남평 문씨 문중의 대동계 회계장부 ‘용하기(用下記)’에 쓰인 이두를 분석한다.‘계’다 보니 수입과 지출이 명확하게 기록되어야 하고, 또 누구나 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필요성은 더 커진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秩(질)자와 作(작)자. 벼를 다듬어 쌓아놓은 형상을 본뜬 秩자는 물품이름 뒤에마다 붙이는 글자다. 전 실장은 “회계의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물품을 의인화하는 현대회계기법과 똑같다.”는 점을 지적한다.作은 이두발음으로는 ‘질’로 읽는다. 요즘으로 치자면 재고조사와 대차대조표를 만드는 데 쓰인 단어다. 전 실장은 발음이 秩과 같아서 맞춰 쓴게 아닌가라고 추측한다. 이게 장부에 기입되는 방식을 보면 놀랍다. 예를 들면 ‘조질전(租作錢)’은 ‘벼질한 돈’인데 ‘조질(租秩)’에서는 나가고,‘전질(錢秩)’에는 들어온 것으로 장부에 기입된다. 즉, 벼를 걷어 팔았고 그 대가로 돈 얼마를 받았다는 기록이 남되 이중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또 재고조사(反作·반질)로 장부기록과 맞지 않는 부분은 ‘축(縮)’이라 해서, 요즘으로 치면 자연감소분으로 처리했다. 전 실장은 이런 예를 들면서 “회계학자들과 국문학자들간 공동연구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개인문집 등에 회계 관련 기록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여기에 쓰인 용어 대부분이 이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이를 비교·분석만 해내도 회계사나 경제사뿐 아니라 문자사에서도 획기적인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동시에 전통 회계 용어도 되살리자고 제안했다. 단적인 예로 ‘부기법(簿記法)’은 일본 메이지시대 용어인데 그보다는 우리 전통 표현인 치부법(治簿法 혹은 置簿法)이 더 낫다고 봤다.‘부기’가 단순히 장부에 적는다는 뜻이라면,‘치부’는 장부를 다스리고 똑바르게 한다는 뜻으로 회계의 본래적 의미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儒林(472)-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8)

    儒林(472)-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8)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8) 순자는 ‘사람의 본성이 태어날 때부터 악하여 본성이 선하다는 것은 거짓’이므로 반드시 ‘스승과 법도에 따른 교화와 예의의 교도’가 있어야 하는데, 그 교화와 교도의 수단이 바로 ‘법(法)’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순자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법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굽은 나무는 반드시 댈 나무를 대고 쪄서 바로잡은 뒤에라야 곧아지며, 무딘 쇠는 반드시 숫돌에 간 뒤에야만 날카로워지듯이 지금 사람의 본성이 악한 것은 반드시 스승과 법도의 가르침이 있은 뒤에야 다스려지는 것이다.” 이렇게 포문을 연 순자는 마침내 맹자를 향해 정조준하여 직격탄을 날린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맹자는 ‘사람이 배우는 것은 그의 본성이 선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을 제대로 알지 못해 본성과 작위의 구분을 잘 살피지 못한 때문이다. 본성이란 하늘로부터 타고난 것이어서 배워서 행하게 될 수 없는 것이며,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예의란 성인이 만들어 낸 것이어서 배우면 행할 수 있는 것이며, 노력하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배워서 행할 수 없고 노력해 이루어질 수 없는데도 사람에게 있는 것은 본성이라 하고, 배우면 행할 수 있고 노력하면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람에게 있는 것을 작위라 한다. 이것이 본성과 작위의 구분이다. 지금 사람의 본성으로 눈은 볼 수가 있고 귀는 들을 수가 있다. 모든 볼 수 있는 시력은 눈을 떠나지 않으며, 들을 수 있는 청력은 귀를 떠나지 않는다. 눈은 시력이 있고 귀는 청력이 있는데, 이것은 배워서 될 수가 없는 것들이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은 선한데, 모두 그 본성을 잃기 때문에 악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것은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본성대로 내버려두면 그의 절박함이 떠나고 그의 자질도 떠나 버려 선한 것을 반드시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이로써 본다면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 분명하다.” 우선 순자는 맹자의 사단설의 모순을 통렬히 비판한다. 맹자는 사람은 누구나 선천적 도덕적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 도덕적 능력이 바로 남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과 부끄러워하며 죄를 미워하는 수오지심과 남을 섬기고 사양하는 공경지심과 옳고그름을 가리는 시비지심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순자는 그러한 사단은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도덕능력이 아니라 반드시 스승과 법도의 가르침에 의해서 고쳐지는 후천적 작위라는 것이었다. 작위(作爲). 이는 순자가 주창한 ‘성악지설’의 골수이다. 사람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선한 것이라는 맹자의 주장은 ‘양심(良心)’에서부터 기인된 것이지만 사람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것이라는 순자의 주장은 ‘본능(本能)’에서부터 기인된 것이었다. 이 본능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소리와 좋은 빛깔을 추구하는 욕망으로, 이를 절제하고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작위라는 것이 순자의 학설이었던 것이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정신건강 전령사’ 나선 임웅균 예술종합학교 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정신건강 전령사’ 나선 임웅균 예술종합학교 교수

    흔히 고음(高音)을 잘 내는 사람을 ‘신이 내린 목소리’에 비유한다. 테너에게 고음은 생명 그 자체다. 또 고음을 위해 생명을 걸기도 한다. 세계적 태너도 고음 앞에 무릎을 꿇는 경우도 많고, 고음에 도전하다 죽는 경우도 더러 있다. 테너 임웅균(51)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성악가로 정상에 오를 때까지 죽을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 대학시절 찬송가의 높은 ‘라’음을 내다가 숨이 콱 막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심청전’ 연습 도중 ‘농부가’에서 또한번 아찔한 경험을 했다. 임 교수는 요즘에도 여전히 고음을 낸다. 공연장에서는 물론 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에도 그렇다. 특히 학생들에게 야단칠 때면 음악원 전체가 쩌렁쩌렁 울린다. 주위에서 “성악가는 목소리를 아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목소리를 강철처럼 단련시키고 싶어 그런다며 오히려 목소리를 더 높인다. 지난 주 음악원 연구실에서 임 교수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는 소문대로 쩌렁쩌렁했다. 때로는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펄쩍펄쩍 신나서 뛰기도 했다. 임 교수는 최근 서울시로부터 ‘정신건강 지킴이’로 위촉돼 정신건강 전령사로 또다른 역할에 나섰다.“나의 건강은 가족의 건강이며 나아가 한민족의 건강이 아니냐.”면서 노래로 정신건강을 지키고 알리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가치있는 일이라며 크게 웃는다. 이어 대뜸 “내가 (국회)출마하면 어떻겠소, 할 일이 꼭 있거든요.”라는 생뚱맞은 질문을 던진다. 대답할 겨를도 없이 “전국 60개도시에 사랑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청소년과 미혼모를 위한 재활프로그램, 즉 세계 최고의 휴먼센터를 설립하는 거지요.”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퇴학당하기 일보 직전에 휴먼센터에서 보름 동안 재활프로그램을 거쳐 퇴학여부를 결정하자는 것. 이를 위해 매년 18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계산도 끝냈다고 했다. 자기 적성과 자아를 파악한 사람은 결코 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휴먼센터가 이 역할을 충분히 해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우리나라는 교과목이 너무 많아요. 학생들 가방이 그렇게 무거운데도 어디 노벨상 하나 제대로 나오나요.6,7개 과목으로 팍 줄여야 해요. 그리고 책가방을 왜 들고 다닙니까. 책은 학교에 보관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CD로 공부하면 돼요. 왜 그 흔한 CD 제작을 안하는 것인지 답답해요.” 임 교수는 정계나 재계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장소를 불문하고 ‘입바른 소리’를 잘 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피가 끓는 다혈질의 사나이기에 정 안되면 국회진출이라도 해서 그런 일을 꼭 이루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공연장 밖에서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돕는 일.3년전부터 학교폭력대책 국민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아 ‘사랑의 공책 보내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유명 인사들과 연예인들의 캐리커처와 메시지를 담은 공책 5만부를 소년 소녀 가장이나 결식아동들에게 보내 용기를 북돋워 주고 있다. 또 2년 전에는 어린이날이 공휴일에서 제외된다는 얘기가 나오자 68개 어린이단체 공동대표의 자격으로 국무총리실에 찾아가 다짜고짜 담판을 지어 원점으로 되돌리게 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오른손 문화에서 양손문화로 바뀌어집니다.30대 이상은 대부분 오른손을 쓰지만 지금의 청소년과 20대는 양손을 쓰거든요. 컴퓨터 자판도 그렇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도 다 양손으로 휙휙 날리잖아요. 그래서 지금의 청소년은 어느 때보다 정말 중요합니다.” 임 교수는 또 유학시절 유상근 전 명지대 이사장의 장학금으로 공부를 했다는 사실을 회고한 뒤, 한 사람의 투자로 이렇게 성악가와 교수로 성장해 수많은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있지 않으냐고 자신했다. 따라서 재벌들은 우리 사회의 불우이웃과 청소년들을 위해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재벌들은 따지고 보면 농민과 서민들이 물건을 사 주니까 재벌이 된 거 아니냐면서 우리 농산물이 무너지면 암 발생 등 만병의 근원이 생기기 때문에 농촌 지원에도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차원에서 농민들에게 무이자로 대출해 주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도 있다고 했다. 한참만에야 음악얘기가 나왔다. 인간은 음악과 스포츠 두가지만 있으면 살 수 있다면서 “발가벗은 목욕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아세요? 작곡 시 노래 무용 등 네가지뿐입니다.”고 했다. 시나 무용도 음악이 있어야 하고 무용 역시 결국은 체육이 아니냐는 것. 예로부터 음악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기에 사람은 음악을 들어야 과격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밀양아리랑을 멋들어지게 부를 때 하얀손수건을 꺼내는 이유를 물었다.“다윗창법을 쓰지요. 다윗은 노래로 신과 대화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목소리가 어린이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어린이들은 고음에서도 또박또박 소리를 내면서 목이 잘 쉬지 않지요. 그래서 아 이게 바로 벨칸토구나 하는 것을 알았지요.”라고 했다. 임 교수의 성악적 자질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 숙대 성악과에 입학 등록을 한 어머니는 임신을 하는 바람에 수학을 포기했고, 이때 낳은 아이가 바로 임 교수. 아버지는 일본 규슈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해 고교 교사로 있었으나 여섯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업에 뛰어들었다 곧 실패했다. 임 교수는 가난한 살림에 피아노를 배울 수도 없었고 음악성적도 별로였다. 초등학교 5학년 음악시간때 너무 크게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선생님한테 뺨을 맞았다. 음악점수는 ‘양’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도 그랬다. 중2때 음악선생님한테 “성악을 하지 않으면 안될, 기가 막히게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고 칭찬을 받았다. 이후 ‘고성방가’하는 버릇이 생겼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울 뚝섬 동네 밖에서 노래를 부르면 마을 사람들이 ‘웅균이가 온다.’고 했다. 학창시절 공부실력은 별로였다. 경기중학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고교 역시 1,2차에 거푸 떨어져 대구로 내려갔다가 우여곡절끝에 명지고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돼서야 비로소 성적이 상위권으로 올랐다. 고3때 육사를 지원, 군인이 되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만류와 음악선생님의 권유로 성악을 하게 됐다. 7개월 동안 집중적인 레슨끝에 연세대 성악과에 수석 합격했다. 대학때에는 문화촌 달동네에 살면서 클래식을 연주하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머니의 치료비를 충당했다. 물로 배를 채우고 무대에 오르기 일쑤였다. 결국 달동네 생활 3개월 만에 장티푸스에 걸린 것. 병원비가 없어 작은형의 대영백과사전을 가져다 팔아 겨우 해결했다.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3년 동안 화곡고 음악선생으로 있다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고음의 벽을 뚫고 음악적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돈이 없어 궁리 끝에 유관순 기념관에서 독창회를 열었다.370만원을 벌었다. 그 돈으로 급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부인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다. 세계적인 성악가를 배출한 오시모 아카데미에서 2년간 공부했다. 기라성 같은 테너와 소프라노의 음반을 구해다 틀어놓고 달달 외우다시피 했다. 최대한 흉내를 내면서 발성을 연구했다. 또 마리아 칼라스의 뮤직코치로 유명했던 안토니오 토니니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루치아노 콩쿠르에 참가했을 때 심사위원인 파바로티로부터 “목소리가 굉장히 고급스럽다.”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다. 85년 11월 귀국, 서울 마포의 한 아파트에서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5만원으로 시작했다. 이듬해 3월 연세대 강사로 채용됐고,1년 뒤 ‘KBS콘서트홀’이라는 프로에 단골로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임 교수를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열린 음악회’.93년 10월 첫 출연하면서 ‘두만강’‘타향살이’‘밀양아리랑’ 등 클래식과 대중가요, 민요를 오가며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지식인이 침묵을 지키는 경우는 두가지, 즉 완전한 낙원이거나 아니면 아무 희망이 없는 사회일 때 그렇지요. 하지만 둘 다 아니라면 웅변이 곧 금입니다.” 요즘에는 실학과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공부한다. 이유에 대해 역사는 말 잘하는 사람을 예의 주시해 왔으며 실사구시 차원에서 하고 있다고 껄껄 웃는다.“임진왜란때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 6만,7만명을 끌고 갔는데 돌아온 것은 6000여명밖에 안돼요. 나머지는 외국의 노예로 다 팔아 넘겼어요.” ■ 그가 걸어온 길 ▲1955년 서울 출생 ▲75년 명지고 졸업 ▲75년 연세대 성악과 수석 입학 ▲79년 연세대 성악과 학사졸업 ▲79∼81년 군입대 ▲81년 화곡고 음악교사 ▲83년 이탈리아 유학, 산타체칠리아 국립음악원과 오시모 아카데미에서 수학(석사) ▲85년 귀국 ▲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성악과 부교수, 성악과 과장 역임 ▲2002년 5월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 공동대표 ▲2005년 10월 서울시 정신건강 지킴이 위촉 ▲그외 로마 밀라노 등 이탈리아 17개 도시, 뉴욕 워싱턴 애틀랜타 등 미국 19개 도시 순회연주. 오페라 ‘사랑의 묘악’ 등 국내 30여회 공연 ■ 주요 상훈 만토바 국제콩쿠르 2위, 비오티 국제콩쿠르 메리토상, 제22회 한국방송대상 성악가상(95년), 저축의 날 대통령 표창(2000년) ■ 음반 선경 한국가곡 4,5집(CD), 독집음반 사랑하는 마음(99년), 태너 임웅균의 클래식 가요(2001년) km@seoul.co.kr
  • 儒林(471)-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7)

    儒林(471)-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7)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 (47) 순자는 이처럼 ‘좋은 법이 있어도 어지러워지는 일은 있으나 군자가 있으면서도 어지러워진다는 말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들어본 일이 없다.(故有良法而亂者有之矣 有君子而亂者自古及今未嘗聞也)’라는 결론을 통해 ‘좋은 법(良法)’보다는 ‘좋은 사람(君子)’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유가의 테두리를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순자는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법(法)’을 매우 중요시하였던 특징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예의법정(禮儀法正)을 강조하는 순자는 세상은 군자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것이 최선이지만 어차피 군자가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불가하므로 인간이 만든 법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차선이라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하였던 현실적 사상가였던 것이다. 순자는 ‘군도(君道)’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법은 다스림의 시작이고, 군자는 법의 근원이다.(法者治之端也 君子者法之原也)” 따라서 국가에는 다스림의 기준이 되는 법이 반드시 있어야 되며, 형벌을 엄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법의 중시가 그의 제자인 한비자에게서 극도로 발전해 법가를 이루었으며, 시황제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였던 순자의 제자 이사는 시황제가 말더듬이 한비자를 총애하자 참언하여 독살시키는 한편 한비자의 법가를 한층 더 심화시켜 ‘형명법술(刑名法術)’을 주로 하는 철혈통치를 단행함으로써 중국역사상 최고의 악인으로 낙인찍혀 그 자신은 물론 스승인 순자까지도 이단자로 몰아버리는 우를 범하였던 것이다. 순자가 이렇듯 맹자와 더불어 유가의 정통을 이은 대사상가였으나 이단자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은 공자의 주관적이고 이상적인 형이상학을 계승한 맹자에 대해 준엄한 비판을 가하면서 특히 맹자가 부르짖었던 ‘성선지설’에 직격탄을 날렸기 때문이었다. 순자는 맹자와 달리 ‘사람의 본성은 태어날 때부터 악하다.’는 ‘성악지설(性惡之說)’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순자는 ‘성악(性惡)편’의 첫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니 그것이 선하다고 하는 것은 거짓이다.(人之性惡 其善者僞也) 지금 사람들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좋아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쟁탈이 생기고, 사양함이 없어진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질투하고 미워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남을 해치고 상하게 하는 일이 생기며, 충성과 믿음이 없어진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귀와 눈이 욕망이 있어 아름다운 소리와 빛깔을 좋아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지나친 혼란이 생기고, 예의와 아름다운 형식이 없어진다. 그러니 사람의 본성을 따르고 사람의 감정을 좇는다면 반드시 다투고 뺏게 되어 분수를 어기고, 이치를 어지럽히게 되어 난폭함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스승과 법도에 따른 교화와 예의와 법도가 있어야 하며, 그런 뒤에야 서로 사양하게 되고 아름다운 형식을 갖게 되어 다스림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 분명하며, 그것이 선하다는 것은 거짓이다.
  • 儒林(470)-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6)

    儒林(470)-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6)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6) 이러한 공자의 하늘에 대한 신앙은 ‘논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도 없게 된다.(獲罪於天 無所禱也)’란 구절에서부터 공자가 위나라 영공의 부인이며 음탕하기로 유명한 남자를 만나보았을 때 자로가 불평하자 공자는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기 위해서 하늘에 두고 다음과 같은 맹세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내게 잘못이 있었다면 하늘이 버리실 것이다. 하늘이 버리실 것이다.” 이는 공자가 가장 사랑하였던 제자 안연이 죽었을 때 ‘아아,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나, 하늘이 나를 망치는구나.’하고 두 번이나 애통해 한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순자는 공자의 이러한 하늘에 대한 형이상학을 완전히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 내려오는 일식·월식이 생기거나 혜성이 나타나고, 이상한 기후변화가 생기면 모든 사람들이 옳지 못한 일을 해 경고하는 뜻으로 일으키는 하늘의 징조라는 전통사상까지 부정하였다. 그래서 순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식과 월식이 생기고, 철에 맞지 않는 비바람이 일고, 이상한 기운이 나타나는 것은 어느 세상에서나 늘 있었던 일이다.…별이 떨어지고, 나무가 우는 소리를 내는 것은 천하의 변화이자 음양의 변화로 드물게 생기는 일이다. 이상하게 여기는 것은 괜찮지만 이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분리시킨 순자의 혁명적 사상은 긍정적인 사회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그것은 사마천이 쓴 기록처럼 ‘무당·점쟁이에 현혹되어 길흉화복을 믿는’ 미신행위에 결정타를 날릴 수 있었다. 왜냐하면 무당이나 점쟁이 같은 미신들은 맹목적으로 하늘의 권위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순자는 ‘하늘에는 일정한 도가 있고, 땅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으니, 따라서 하늘이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사람이 하늘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순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늘과 땅은 군자를 낳았고, 군자는 하늘과 땅을 다스린다.” 순자의 가르침대로라면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군자는 일정한 법칙에 따라 땅을 다스리고 백성들을 다스려야 하는데, 이 일정한 법칙이 바로 법(法)인 것이다. 법은 인간끼리 만든 약속이며, 계율이며, 다스리는 기준이며, 조화하는 법칙인 것이다. 따라서 순자는 법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소청을 처리하는 대원칙은 선한 일을 가지고 온 자는 예로써 대접하고, 선하지 못한 일을 가지고 온 자는 형벌로써 대접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잘 분별하면 어진 이와 못난 이가 섞이지 않게 되고, 옳고 그름이 혼돈되지 않는 것이다.…그러므로 공평하다는 것은 일을 하는 기준이 되고, 알맞게 조화된다는 것은 일을 하는 법칙이 된다. 법에 있는 일들은 법에 따라 처리하고, 법에 없는 일들은 전의 일들을 비추어 결정하면 소청은 바르게 처리될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법이 있어도 어지러워지는 일은 있으나 군자가 있으면서도 어지러워진다는 말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들어본 일이 없다. 옛말에 ‘다스림은 군자에게서 나오고 혼란은 소인에게서 생겨난다.(治生乎君子 亂生乎小人)’고 한 것은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 [씨줄날줄] ‘톨레랑스 제로’/ 이목희 논설위원

    1990년대 중반 당시 루돌프 줄리아니 미국 뉴욕시장은 ‘깨진 유리창 이론’을 중시했다. 사회학자 제임스 윌슨, 조지 켈링이 내놓은 주장이었다. 건물 유리창 하나가 깨진 사건을 방치하면 불량배들이 다른 유리창을 잇달아 깬다는 것이다. 이어 페인트 낙서가 뒤덮이고 그 지역 전체가 슬럼으로 변한다는 범죄발생이론이다. 줄리아니는 사소한 범죄를 일벌백계로 다스려 치안을 강화해 나갔다. 이른바 ‘톨레랑스 제로’(무관용주의) 정책이다. 톨레랑스의 나라 프랑스가 뒤늦게 줄리아니를 모방했다. 대표적 우익지도자 니콜라 사르코지가 2002년 내무장관에 취임한 후 범죄자를 향해 ‘톨레랑스 제로’를 외쳤다.1차 범죄와의 전쟁에서 성과를 거둔 그의 인기는 치솟았다. 올 6월 내무장관으로 다시 기용된 사르코지는 차기 대권후보 인기도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사르코지가 지금 시험대에 올랐다. 파리 교외에서 발생한 소요사태가 10여일째 계속되면서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아프리카계 소년 2명이 경찰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가 감전사하면서 사태는 시작됐다. 과잉단속 논란이 일었지만 사르코지는 “인간쓰레기와 건달들을 청소해버리겠다.”는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다민족 국가의 대표격이다. 로마, 갈리아, 프랑크, 노르만 등 라틴·게르만족이 혼합되어 주류가 만들어졌다. 아직 켈트, 알자스·로렌, 플라망족 등은 독자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인종 포용과 함께 프랑스대혁명을 거치면서 ‘자유·평등·박애’의 선도국가가 되었다. 냉전시대 동서 양진영의 망명객, 심지어 독재자들도 프랑스는 너그럽게 받아줬다. 사르코지는 톨레랑스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다른 종교, 인종, 이념을 가진 이들의 권리와 처지를 용인·이해하는 것이 톨레랑스다. 차별없이 섞여 사는 지혜인 셈이다. 근래 부쩍 늘어난 무슬림 이민자들이 차별대우를 심각하게 느낀다면 톨레랑스의 작동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근본의 톨레랑스가 깨지는 상황에서 방화·폭동의 범죄 요소만 부각시켜 ‘톨레랑스 제로’라고 위협해선 안 된다. 이민자·외국인취업자 갈등은 한국을 포함, 대부분 국가들에도 발등의 불이다. 프랑스가 과거의 톨레랑스를 회복, 모범사례를 만들어내길 바란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儒林(469)-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5)

    儒林(469)-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5)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45) 이사(李斯). 그는 진나라의 재상으로 시황제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였던 일등공신이었다. 그는 천하를 통일한 후에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하였고, 시황제가 죽은 후 환관 조고(趙高)와 공모하여 막내아들 호해(胡亥)를 황제로 옹립하는 한편 태자 부소(扶蘇)를 자살케 한 간신이었다. 통일 국가 진나라의 15년의 짧은 수명은 전적으로 승상 이사에 대한 책임으로 중국의 역사는 이사를 절대적 악인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 자신이 순자로부터 유학을 배웠으면서도 유학자들을 구덩이에 산 채로 매장한 분서갱유 사건은 이사를 ‘용서받지 못할 사람(the Untouchable)’의 불가촉 악인으로 규정하고 그의 스승인 순자마저 이단아로 몰기에 충분한 구실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사는 순자로부터 학문을 배웠으나 그 자신은 유가보다는 법가(法家)에 가까웠다. 법가(法家:Legalism). 중국 고대철학의 한 학파로서 전국시대에 노예들의 끊임없는 폭동과 신흥봉건지주계급의 발흥으로 인하여 기존의 유가적 예치(禮治)가 점점 붕괴되어 효력을 상실하자 엄격한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자는 법치사상이 등장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법가였던 것이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법가를 부르짖은 한비자(韓非子)와 인간의 모든 활동은 통치자와 국가권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오직 국가의 강력한 통제와 황제에 대한 절대복종을 통해서만 사회적 화합을 이룰 수 있으니, 엄격하게 상벌을 내리는 법률체계로서 통일제국 진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철혈(鐵血)정책을 쓴 이사 모두 순자의 제자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한비자나 가혹하게 이 정책을 실행함으로써 진나라를 15년 만에 멸망시켜 영원히 중국에서 법가 철학을 불신 받게 한 악역의 대명사, 이사라는 제자가 순자에게서 나온 것은 결코 돌연변이는 아니었다. 오히려 청출어람(靑出於藍)이었다. 우선 순자는 공자, 맹자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유가에서 하늘이 사람들의 도덕적인 권위의 기초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부정하였다.‘하늘은 사람 위에서 자연과 함께 이 세상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섭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노자와 장자도 다르지 않아 이들 도가 역시 사람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국 사람들은 자연과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하늘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순자는 하늘과 사람의 관계를 분리시켰다. 자연에는 자연의 법칙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법칙이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순자는 하늘에는 자각과 뜻이 있어 착하고 악함에 따라 사람들에게 복을 내리기도 하고, 화를 내리기도 한다는 기존의 하늘에 대한 신앙을 전적으로 부정하였다. 순자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하고 있다. “하늘은 만물을 생성하게는 하지만 만물을 분별하지는 못하며, 땅은 사람들을 그 위에 살아가게는 하지만 사람들을 다스리지는 못한다.” 이는 스승 공자의 가르침과는 정반대의 사상이었다. 공자는 ‘중용(中庸)’에서 ‘정성이란 하늘의 도요, 정성되게 사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라고 말함으로써 하늘이야말로 이 우주만물의 지배자이며, 올바른 도의 근원으로서 사람들의 도덕적 행위의 원천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 [여연 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16) 차와 건강

    [여연 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16) 차와 건강

    찬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 벌써 겨울이 오고 있다. 산사에도 인적이 드문 드문 해진다. 봄 여름 가을을 지낸 퇴비들을 차나무들에 뿌려준다. 이른바 겨울을 튼튼하게 날 수 있는 방한복 같은 것이다. 생명을 가꾸는 행위는 매우 어렵고 순수한 일이다. 과학적인 실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벼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그 튼실한 알맹이를 안으로 키워내고 과일나무는 주인의 흥얼거리는 즐거운 콧노래를 들으며 맛있는 과즙을 생산해내는 것이다. 생명을 가꾸는 일은 헌신과 자비를 통한 완벽한 동화(同化)를 이룰 때 가능하다. 나를 버리고 이해요구를 버린 따스한 손길은 그 생명을 완전한 아름다움으로 자라게 하는 최고의 비약이다. 차나무도 마찬가지다. 차농사꾼들의 헌신적인 손길을 통해 그 파릇 파릇한 연두색 찻잎들과 우주의 생명을 숨쉬게 하는 색·향·미를 담은 완벽한 나무로 자라나는 것이다. 차나무뿐만 아니다. 모든 것은 바로 생명이다. 그 생명을 가꾸고 길러내는 사람들의 손길은 마치 부처의 마음처럼 늘 평안하다. 요즘 들어 부쩍 차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웰빙이니 헬스니 현대인들이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서 차 관련 건강상품들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차의 자본화는 이제 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것 같다. 차의 대중화와 생활화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차와 건강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차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 중에 가장 신령스러운 생명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중국에서는 차의 효능을 알고 약재로 사용해 오고 있다.4000년 전부터 들차를 채집하였다가 끓여 그 차즙으로 병을 치료하였다고 전하며, 후에 차를 마시면 건강에 좋다는 것을 발견하여 차츰 약재로 사용하게 되었다. 차가 만병을 다스리는 약이라는 말은 당나라 진장기(陳莊器)의 ‘본초습유(本草拾遺)’에서 기원되었다. 이 책에서는 “…제약(諸藥)은 각병지약(各病之藥)이지만 차는 만병지약(萬病之藥)”이라고 하여 차의 효능을 강조하였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차나무의 성질은 조금은 차고 그 맛은 달고 쓰면서 독이 없는 식물이다. 그 성질이 쓰고 차서 기운을 내리게 하고, 체한 음식을 소화시켜 주고, 아울러 머리와 눈을 맑게 하고 소변을 잘 통하게 한다. 또한 소갈증(消渴症)을 멈추게 하며, 잠을 적게 해주며, 화상 입은 데에 독을 없애준다.”고 하였다. 오늘날에도 많은 나라에서 찻잎을 실험재료로 하여 많은 인력과 물력을 투입해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차의 여러 가지 뛰어난 효능이 속속 밝혀지고 있어 차가 만병지약임을 입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세계의 다양한 음식을 조사한 결과 장년과 노년층에 가장 좋은 음식 중 하나로 차를 꼽았다. 차는 방사성 원소를 흡수하여 배설하게 하고, 사람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보충하여 장수를 돕는 놀라운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찻잎에는 단백질, 지방, 비타민, 그리고 탄닌(폴리페놀), 카페인 등 300여종의 성분이 포함되어있으며, 생리기능을 조절하고, 다양한 약리 작용을 발휘한다고 한다. 찻잎의 카페인 성분은 일종의 혈관확장제로써 호흡을 빠르게 하고 맥박을 바르게 하면서도 혈압은 올라가지 않도록 한다. 또한 신장을 자극하며, 강심(强心), 건위(健胃), 이뇨해독 작용도 한다. 또한 카페인과 탄닌의 협동 작용으로 인체 내에 콜레스테롤이 많아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며 탄닌은 혈관에서 피를 잘 통하게 한다. 특히, 차의 효과는 성인에게 더욱 좋다. 장년이 되면 쉽게 몸이 비대해지는데, 이는 심장혈관병, 당뇨병, 장암 등 각종 성인별을 초래한다. 날씬해지기 위한 가장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은 차를 마시는 것이다. 운동하기 전에 차를 마시면 에너지원으로써의 지방이 우선적으로 연소되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그만이다. 차 성분 중에 카테킨이 지방 분해 효소의 작용을 도와 기름진 음식을 먹은 후에 차를 마시면 매우 효과적이다. 최근 환경오염으로 인한 알레르기성 질환이 많아지면서 차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차의 알레르기 억제 작용이 일본 시즈오카 현립대학의 스기야마 박사팀에 의해 밝혀져 주목을 끌고 있다. 이들 연구팀은 알레르기 반응에 관여하는 항체를 쥐에 실험할 때, 차를 투여한 후 항원을 주사할 경우 알레르기 억제 효과가 탁월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차는 정신을 분발시키고 피로를 제거하며 항균작용이 탁월해 지친 심신과 스트레스로 인해 야기되는 현대인의 각종 질병에 뛰어난 효과를 발휘한다. 한 연구보고에 의하면 위장 중에 1∼3%의 탄닌이 있다면 방사성 물질인 스트롬튬의 30∼40%를 체외로 배출할 수 있다고 한다. 또 탄닌은 담배에 들어있는 니코틴과 결합하기 때문에 몸에 흡수되지 않고 체외로 배출된다. 이밖에도 수은이나, 납, 카드뮴, 구리 등 중금속과도 결합해 각종 공해로 체내에 축적된 유해성 중금속의 해독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자연환경 오염이 심하고, 생태균형이 파괴된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차를 상용하면 더욱 좋은 것이다. 차와 건강의 연관성 중 잘못 알려진 것이 있다. 바로 차는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같은 우려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차는 어린이들의 발육이나 건강에 매우 필요한 것 중 하나다. 생후 5개월 이후에는 간에서 카페인의 분해속도가 성인과 같아지기 때문에 차를 마시는 것이 전혀 해롭지 않은 것이다. 찻잎에는 어린이들의 성장 발육에 필요한 페놀류의 연생물, 카페인 비타민 단백질 당류와 방향물, 그리고 아연 불소등의 유익한 미량원소를 포함하고 있어 적당하게 마신다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차는 또한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에게 면역력을 키워주는 역할도 한다. 어린이들은 면역력이 약한 관계로 배탈이 자주나고 식중독에 자주 걸린다. 녹차의 카테킨 성분은 식중독을 예방하고 설사를 멈추게 하므로 배탈이 나기 쉬운 여름에 차를 마시게 하는 것은 매우 좋은 담방약 중 하나다. 차는 또 어린이들의 충치를 예방하기도 한다. 사탕이나 초컬릿 등 당류의 섭취가 유난히 많은 현대의 어린이들에게 불소함량이 풍부한 차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차의 권장량은 하루 2∼3잔 정도다. 어린아이가 차를 너무 많이 마시면 체내 수분이 증가할 뿐만 아니라 수면시간이 줄어들어 많은 영양분을 소모, 성장발육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가 누구에게나 좋을 수는 없다. 임산부나 위가 약한 사람, 몸이 냉한 사람, 불면증환자, 저혈압환자 등은 과한 차의 음용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차는 정신을 건강하게 하고 육체의 피로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산업화로 인해 공해가 심한 도시생활에서 차는 정신과 육체를 편안하게 하는 평화로운 인도자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요즘들어 불어닥치고 있는 차의 자본화는 심각한 수준이다. 화장품에서부터 베개 속옷까지 무한정 넓혀지고 있는 차의 상품화는 마치 차가 인간의 모든 건강을 책임질 수 있는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차의 정신은 사라지고, 오직 인간의 육체적 이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많은 상품 중 하나처럼 자리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차는 인간이 마시는 기호음료를 뛰어넘어 인간의 육신과 정신을 담아낸 고귀한 생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차를 통해 우리는 현재와 과거 미래의 삶을 좀더 풍요롭고 따스하게 가꾸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차를 통해 인간과 인간뿐만 아니라 각종 문명과도 평화롭게 조우해야 한다. 일상을 사는 나를 발견하며 내안에 내재해 있는 욕심을 버리고 집착하지 않는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차인 것이다. 큰 빌딩속에 기계부품처럼 앉아 자신의 삶을 소진해서는 안 된다. 사무실 책상위에 일인용 다구와 차를 준비한 후 가볍게 차 한잔을 하자. 그럼 자신안에서부터 알 수 없는 행복이 솟아오를 것이다. 일지암 암주 ■ 반야병차와 떡차의 전설 지금은 열반했지만 근현대 선지식 중 한 분인 큰 스님이 있다. 송광사에서 주석하면서 크게 선법을 펴신 구산 큰스님이다. 구산스님은 열반할 때까지 손수 자신의 일상사를 챙기며 용맹정진하신 분으로도 유명하다. 구산스님이 제일 좋아했던 차는 바로 떡차였다. 구산스님은 저녁공양 전 작은 암자에 손수 불을 넣으셨다. 당시는 구들방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불을 넣어주어야 했다. 저녁공양 시간이 되면 구산스님은 작은 철주전자를 아궁이 숯불위에 놓고 갔다. 그리고 저녁공양을 한후 펄펄 끓어넘치는 철주전자를 방에 들여와 찻잔에 내어 마셨다. 구산스님이 마셨던 것은 바로 발효차인 떡차였다. 철주전자에 맑은 청수를 넣은 후 떡차 한덩이리를 넣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공양이 끝난 후 펄펄 끓어넘치는 떡차 한잔으로 건강을 지켰던 것이다. 일지암에서는 우리 고유의 차로 불리는 떡차를 생산하고 있다. 이른바 반야병차가 그것이다. 민간에서는 옛날부터 떡차를 긴급한 환자에게 쓰는 담방약으로 썼다. 배가 아픈 어린이, 이빨이 아픈 노인 그리고 배탈환자에게 우리 조상들은 초가집 시렁에 줄을 매달아 걸어놓은 떡차를 쑥 빼서 달여 마시게 했다. 신기하게도 떡차는 큰 효험이 있었다. 떡차는 이른바 발효차이다. 콩을 띄워 메주를 만들 듯이 떡차도 찻잎을 띄워 충분히 발효시킨 뒤 건조한다. 발효차는 평상시 차로써뿐만 아니라 감기를 앓거나 몸이 부실한 사람들에게 큰 효험을 발휘한다. 일지암과 초의차문화연구원에서는 몇 해 전부터 초의스님이 말씀하셨던 반야병차를 조금씩 생산하고 있다. 반야병차는 여름철에는 차게, 겨울에는 뜨겁게 마셔도 된다. 발효된 차이기 때문에 찻물의 온도에 상관없이 언제나 마셔도 되는 것이다.‘돈차’라고 불리는 우리 고유의 발효차는 현대인들의 삶속에서도 건강을 지키는 지킴이 역할을 할 수 있는 좋은 차다. 중국에는 몽정차 백로차 보이차 등 약효의 효험이 있는 차들이 매우 많다. 반야병차 역시 마찬가지다. 떡차로 불리는 반야병차는 약리적인 효능이 높다는 중국의 품격높은 명차들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 많은 차인들이 떡차의 완벽한 복원을 위해 애쓰고 있다. 차와 일상의 삶을 연결한 떡차는 옛날 우리 차인들의 마음을 그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민중들의 일상속에서 숨쉬며 우리의 건강을 챙겨온 떡차는 조만간 우리 곁을 지키는 ‘차 건강지킴이’로 태어날 것으로 보인다.
  • [기고] 농촌사랑은 후세 위한 사회보험/이상영 농협유통 대표이사

    인간 생활의 필수요건으로 ‘의식주’를 꼽는다. 순서로는 입는 것을 제일 먼저 꼽지만, 중요도로 따지자면 음식이 제일 먼저 와야 맞다. 처음부터 먹는 것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동양적인 예의상 안 맞기 때문일 게다.‘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듯이 먹는 것은 생존 자체를 의미한다. 기원전 유럽을 제패하고 천년의 찬란한 로마시대를 연 로마인의 두개골을 분석한 어느 학자의 연구결과가 흥미를 끈다. 로마시대 사람은 수돗물을 생활화했다. 이 수돗물은 납으로 만든 파이프로 공급되었기 때문에 로마인은 평생을 두고 물에 스며든 납을 음용할 수밖에 없었다. 납은 우리 몸에 축적되면 신경세포를 마비시켜 정신착란을 일으키게 하는 성분이 들어있다고 한다. 로마의 마지막 황제 네로가 로마시를 불바다로 만든 원인도 이 납성분과 연관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다. 그런데 요즘 중국산 김치·장어와 같은 농수산물에서 납 성분이 검출되어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산모가 출산을 하자마자 찬물에 샤워를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출산한 산모에게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몸을 다스리며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하게 하고 절대로 차가운 물을 만지지 못하게 한다. 만약 우리 나라 산모가 찬물에 목욕을 한다면 평생 뼈마디가 쑤셔서 운신하기가 힘이 들 게다. 이것은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와 뼈의 구조가 조상 대대로 우리 기후와 풍토, 우리 음식에 친화되어 내려왔기 때문이다. 신토불이(身土不二).‘우리 몸에는 역시 우리 농산물이 제격’이라는 이 말의 뜻은 우리의 올바른 식생활과 건강한 삶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던져 주고 있다. 요즘 농촌은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끊어지고 빈집이 늘고 장가 못 가는 노총각이 많다. 농협중앙회가 주관하고 있는 도시 농협이 농촌 농협을 돕는 무이자 자금지원 행사장에서 농촌지역 조합장의 답사가 계속해서 머리에 맴돈다. 강원도 원주 신림농협의 경우 관내 인구가 4000여명인데 지난해 신림면에서 출생신고는 단 3건이었다고 한다. 한 명은 조합장 자신의 손자이고, 또 한 명은 이웃집 손녀인데 금년 들어 자기집 손자와 이웃집 손녀는 원주시내와 서울로 이사를 가 버려서 앞으로 7년 뒤에 원주시 신림면의 신림초등학교는 폐교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전망된단다. 도시민이 쉴 곳이며 우리 농산물 공급의 진원지가 공허한 폐허가 된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삭막할까. 이를 방치하고 싶지 않다면 정부가 국민이 낸 세금으로 막대한 자금과 예산을 투자해서 관리해야 할 것이다. 농민이 살면서 우리 먹을거리를 지키고 환경을 유지하는 비용과 농민이 살지 않고 국가가 예산을 투입해서 관리하는 비용, 이 둘 중 어느 것이 효율적이고 비용이 적게 들 것인가. 오늘의 농촌돕기운동은 후세를 위한 사회보험적 성격에서 바라봐야 할 과제다. 농산물 시장 개방과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 속에 안전한 우리 먹을거리 생산지인 농촌을 지키기 위한 국민 모두의 지혜가 요구되고 있다. 이상영 농협유통 대표이사
  • [儒林 속 한자이야기] (95) 中庸(중용)

    儒林 (460)에는 ‘中庸’(가운데 중/떳떳할 용)이 나오는데, 이 말은 ‘(1)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아니한, 떳떳하며 변함이 없는 상태나 정도 (2)재능이 보통인 사람 (3)아리스토텔레스의 德論(덕론)의 중심 개념으로 理性(이성)으로 欲望(욕망)을 통제하고,智見(지견)에 의하여 과대와 과소가 아닌 올바른 중간을 정하는 것’을 뜻한다. ‘中’자에 관해서는 ‘바람의 방향을 측정하기 위해 장대의 가운데 부분에 달아놓은 얇은 판’‘해(日)의 변형’‘軍營(군영)의 중앙에 세운 깃발의 형상’과 같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用例(용례)에는 ‘中途(중도:일이 진행되어 가는 동안),胸中(흉중: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 등이 있다. ‘庸’자는 ‘庚(경)’과 ‘用(용)’이 합쳐진 形聲字(형성자)인데 鐘(종)이나 절구공이 등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다, 집어들다, 사용하다의 뜻을 나타낸다. 또 轉(전)하여 ‘일정하게 변치 않는다’는 뜻을 나타내며,假借(가차)하여,反語(반어)인 ‘어찌’라는 뜻으로도 쓰인다.用例에는 ‘附庸(부용:독립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하여 살아가는 일),庸劣(용렬:사람이 변변하지 못하고 졸렬함),徵用(징용:전시 사변 등 비상사태에, 국가의 권력으로 국민을 강제적으로 일정한 업무에 종사시키는 일)’등이 있다. 中庸의 ‘中’은 치우치지 않고(不偏不倚:불편불의),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으며(無過不及:무과불급),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태(喜怒哀樂之未發:희로애락지미발)를 뜻하고,‘庸’은 변함없음(平常:평상 혹은 不易:불역)을 뜻한다. 역사 속에서 中庸의 原則(원칙)을 제대로 실천한 이들은 成功街道(성공가도)를 달렸고, 중용을 저버린 이들은 悲慘(비참)한 最後(최후)를 맞았다. 측근들의 추대로 황제 자리에 오른 송 태조 趙匡胤(조광윤)은 끝까지 중용을 지키며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 자신이 유리한 지위에 있을 때 언제나 불리한 처지로 전락할 때에 대비해야 한다는 處世(처세)를 몸소 보여준 越王(월왕)의 참모 범여 또한 중용을 성공적으로 실천한 인물이었다. 범여는 월나라가 列國(열국)의 覇權(패권)을 거머쥐면서 上將軍(상장군)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부귀와 영화를 떨쳐버리고 초야에 묻혀 전재산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준 逸話(일화)는 示唆(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면 평범한 장사치에서 진나라를 좌지우지한 여불위(呂不韋)는 탐욕을 버리지 못해 결국 秦始皇(진시황)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또 中庸을 행하면서도 融通性(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해 실패한 王安石(왕안석) 같은 이도 있다.漢(한)나라 文帝(문제) 때, 조정에서 廷尉(정위) 벼슬에 이른 장석(張釋)은 담당 사건을 公平(공평)하게 처결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어느 날, 도둑이 한 高祖(고조)의 사당에서 玉環(옥환:제기의 일종)을 훔친 자가 逮捕(체포)되었다.文帝(문제)는 그 도둑의 九族(구족)까지 멸하도록 했으나, 장석은 당사자만 사형에 처하자고 했다. 문제가 크게 노하자 이렇게 답하였다.“형벌은 輕重(경중)을 가려야 합니다. 지금 저자의 행위로 인해 九族까지 멸한다면, 어떤 어리석은 자가 高祖의 陵(능)을 盜掘(도굴)할 경우 어떤 벌로 다스려야 합니까?” 이에 문제는 장석의 判決(판결)에 同議(동의)하였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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