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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통은 참행복 깨치는 통로

    인간은 끊임없이 더 많이 가지려 애를 쓰고 그 갈애의 과정에서 몸과 마음을 소모하기 마련. 가질수록 그 성취의 끝엔 또 다른 욕심이 생겨나곤 한다. 그래서 동서양의 많은 현자들은 그 소유와 욕망의 끈을 자르는 게 행복의 지름길이고 지금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그런 ‘내려놓고 버림’의 방하착(放下着)이 쉽지 않은 경계일 터. 그럼에도 이제 많은 사람들은 그 행복의 원천적인 바탕인 마음 다스리기에 골몰한다. ‘버리고 사는 연습’을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 야마구치의 쇼겐지, 세카가야구의 쓰쿠요미지 주지인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의 ‘마음 지키기 연습’(동네스케치 펴냄)은 바로 그 마음 바탕에 천착한 책이다. 지난 3월 일본 열도를 충격과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전대미문의 대지진을 모티프로 삼은 책. 스님은 역설적이게도 지진의 직격타를 받은 도호쿠 사람들이 일본 내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행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도호쿠 사람들은 느닷없이 닥친 커다란 상실과 피해를 통해 진정한 행복의 가치를 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고통은 우리의 마음을 되돌아보게 한다.” 스님은 힘겹고 괴로운 상황에서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 여유를 찾을 수 있는지를 조근조근 풀어나간다. 우선 도호쿠 사람들처럼 큰 재난을 겪은 후에 마음 다스리는 일을 ‘부처의 화살’에 비유해 눈길을 끈다. 석가모니의 말처럼 “화살이 누구의 것이고, 어떻게 생겼고, 어떤 활에서 발사됐는지 따지기보다 화살을 뽑아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미 생겨난 일을 한탄하거나 불평할게 아니라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잘 감시하자는 역설이다. 사람들은 행복이 아닌 쾌감만을 바라보며 질주하는 건 아닐까. 스님은 그 쾌감의 악순환에서 탈출하기 위해 평범한 일을 담담하게 반복하는 시간을 늘리라고 주문한다. 예를 들어 호흡하는 것, 음식을 천천히 씹어먹는 것,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처럼 소소한 활동을 반복해 진정한 행복을 찾으라는 것이다. “비록 시작이 위선일지라도 점점 거짓의 ‘위’(僞)를 줄여나가는 방법을 익히라.” 1만20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세계 최장수 개 ‘26년 9개월’ 끝으로 세상 떠나

    사람으로 치면 125세를 훌쩍 뛰어넘는 세계 최고령 개(犬) 푸스케가 세상을 떠났다. 일본 도치기현 사쿠라시에 사는 잡종 수컷인 푸스케가 지난 5일 오후 26년 9개월을 살다 갑작스럽게 숨을 거뒀다. 푸스케는 지난 1985년 3월 시바견과 잡종견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지난해 ‘살아있는 최고령 개’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세계적인 화제에 올랐다. 또 2008년에는 교통사고로 중상을 당해 수의사로부터 절망적인 통보를 받았으나 이를 극복하고 건강하게 살아남아 기적의 개로도 불렸다. 견주인 시노하라 유미코(42)는 “이날 오후 외출 후 귀가해 보니 집 밖에서 푸스케가 녹초가 된 모습이었다.” 며 “잠시 후 마치 플란다스의 개 처럼 편안하게 최후를 맞았다.”고 밝혔다. 이어 “매우 슬프지만 지금까지 건강하게 오래살아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떨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사설] 친서민 미소금융에 특혜·횡령이라니…

    현 정부의 대표적 친서민 지원사업인 미소금융이 비리로 수사대상이 됐다. 미소금융 복지사업자로 선정된 뉴라이트 계열 M포럼 대표가 서민대출용으로 받은 35억원 중 수억원을 횡령했고, 이 과정에서 미소금융 중앙재단 간부가 거액의 뒷돈을 받아 챙겼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 단체는 사업자 선정과정부터 특혜시비에 휘말렸다고 한다. 검찰이 서울에 있는 미소금융 중앙재단과 M포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를 소환조사했다.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소금융사업이 어떤 사업인가. 보증을 세우기는커녕, 신용도가 낮아 은행에서 돈 한푼 빌릴 수 없는 서민에게 무보증·무담보로 창업 및 운영자금을 빌려주는 자활사업이다. 낙담한 서민의 마지막 희망이자 생명줄인 셈이다. 이런 돈에 손을 댔다면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또 이 돈은 어떻게 마련됐는가. 서민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서민 돈인 은행 휴면계좌에서 빼간 돈이다. 대기업도 일부 보탰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부는 미소금융을 대표적인 친서민정책으로 자화자찬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현 정권의 대선행보에 길을 닦았던 뉴라이트 단체가 특혜시비 속에 복지사업자로 선정되고, 재단 간부에게 뇌물을 주고 수십억원을 받아가는 것을 보면 과연 서민한테 제대로 대출이 됐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진짜 서민용이었는지 검찰수사를 통해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특혜 논란이 불거졌던 뉴라이트 단체의 복지사업자 선정과정과 미소금융 운영사업 전반에 대한 보다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 미소금융 비리는 현 정부의 도덕성과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부정과 비리에 연루된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히 다스릴 필요가 있다. 엊그제 국제투명성기구가 우리나라 공공부문 청렴도를 지난해보다 낮게 발표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 늦기 전에 고삐를 쥐고 다잡아야 한다.
  • [연극리뷰] 사실주의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

    [연극리뷰] 사실주의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

    연극을 보고 있는데, 연극 특유의 과장됨이 보이지 않는다. 일본인들의 삶을 그렸지만, 동네 어귀에서 한두 번 지나쳤을 법한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사실주의 연극 ‘잠 못 드는 밤은 없다’(이하 ‘잠 못 드는’) 이야기다. ‘잠 못 드는’은 은퇴 이후 삶의 터전으로 고국이 아닌 말레이시아를 선택한 일본인들을 그렸다. 무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인을 위한 말레이시아 고지대의 호화로운 리조트 로비에 집중된다. 그래서 잡다한 장치는 필요 없다.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아픔을 가슴 속에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일본을 그리워하면서도 일본으로 돌아가길 원치 않는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로부터 이지메(집단 따돌림)를 당한 아픔을 안고 사는 지즈코(이영숙), 나비 수집을 좋아하는 그의 남편 고조(김학수), 전형적인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였지만 타국에선 일본 DVD 등을 구해 사람들에게 배달해 주는 미쓰루(박완규), 2차 세계대전 때 아버지를 잃고 조국 일본을 싫어하는 아키라(최용민)와 그의 딸 에미코(주인영), 중병에 걸렸지만 고국에 돌아가길 거부하는 겐이치(정재진)와 그의 아내 이쿠코(예수정), 이혼을 앞두고 기념여행에 나선 하야토(김주헌)와 마유미(유나미) 부부…. 등장인물들의 면면은 최근 일본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은퇴 이후 여유 있는 노후 생활을 즐기고자 물가가 싼 해외로 이주하는 ‘은퇴 이민’, 방이나 집 등 특정공간에 틀어박혀 있는 ‘히키코모리’, 히키코모리에 바깥이란 뜻의 ‘소토’(外)를 합성시킨 ‘소토코모리’(외국에 사는 히키코모리) 등이 극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같은 나라 사람들이 옹기종기 이국땅에 모여 살아가지만, 사실 이들의 소통은 조금씩 단절돼 있다. 그런 이들이 말레이시아의 원주민인 세노이족의 ‘꿈 해몽’을 자주 언급한다. 세노이족은 꿈을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을 알려준다. 상처를 안고 사는 등장인물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세노이족의 꿈 해몽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일본인이지만 고국을 거부하고 말레이시아를 선택한 이들, 그렇다고 말레이시아인도 아닌 이들에게 있어 꿈을 통제한다는 것은 흥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다스리고 싶은 소망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중년 배우들의 연기가 잔잔하면서도 가슴을 울린다.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대목에서도 중년 배우들의 맛깔스러운 연기력은 빛을 발한다. 31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3만원. (02)708-5001.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열린세상] 마음의 순리와 격물치지/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열린세상] 마음의 순리와 격물치지/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순리(順理)란 우주와 만물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 따른다는 말이다. 따라서 사는 것이 어렵고 힘겨울 때 마치 체념의 표현으로 순리대로 살자고 말한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순리는 마음 의지가 실종된 상태가 아니고 자기가 걸어가는 여정을 뒤돌아보고 벗어난 궤도를 끊임없이 수정하여 자기 본체를 완성하려는 마음작용이요, 삶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순리에 따라 살아야 하는 이유는 하늘의 뜻(性)에 따라 작거나 크거나 각자 해야 할 역할이 다르고 역할에 맞게 마음기운(品)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성품(性品)을 갖고 있으며 이것에 따를 수밖에 없는 운명적 삶의 순리를 밟아가고 있다. 마음이 순리를 따르지 않는다면 외면적으로 이미 자기 역할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몫을 만지고 있다는 것이고, 내면적으로는 맑았던 마음 기운마저도 탁해지면서 분별력이 떨어진 상태에 있음을 말한다. 역할에 맞게 마음(初心)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역할의 한계를 넘어서면 마음이 탐욕의 기운에 가려져 분별이 흐려짐으로써 판단을 그르치게 된다. 판단의 착오가 많으면 인생은 고통으로 얼룩진 채 미완성으로 남는다. 밥 먹을 때 쓰는 나무젓가락을 지붕 올리는 데 필요한 서까래로 사용하겠다는 집착이니 결코 좋은 결과가 나타날 수 없다. 순리에 맞게 산다면 바른 마음으로 바른 길을 걸어가니 자연스럽게 덕(德)을 얻을 수 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덕을 쌓는다면 우주·만물로 하여금 각자 하고 싶고 얻고자 하는 것을 모두 이룰 수 있음은 당연하다. 물론 역할에 따라 자기의 길을 가면서 얻어지는 것이니 결과는 각기 다르다. 노자는 만물을 이롭게 하고 아우르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순리를 닮자(上善若水)고 했고, 묵자는 하늘은 한결같이 세상의 모든 것을 이롭게 품고 보존하기 때문에 그 성품을 가지고 온 사람도 항상 서로를 존중하고 베풀며 유익하게 사는 길이 순리라고 설시한 이야기는 고단한 우리네 삶에 마음을 일으키는 지혜로 다가온다. 격물치지(格物致知)란 격물과 치지가 합쳐진 말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데 그 뜻을 살펴서 알면 몸을 다스려 세상을 편안하게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대학 경문(經文)편에 나온다. 만물의 이치와 순리는 각 사물의 역할이나 쓰임새 등을 살펴 지식이나 경험으로 인식하고 다시 인지된 지식 등을 마음 안에 들여놓고 분별의 창에 투과시켜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도 물질세계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역할에 따라 다른 기운의 형태로 격물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치지의 내용도 단순히 객관적으로 보이는 사물의 이치를 아는 것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의 역할과 기운을 내면적으로 성찰하여 어떤 것이 순리에 맞는지 선택하는 결심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신(修身)이 순리에 맞는 자기성찰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요즈음 2040세대들의 분노가 갈수록 심화되는 듯하다. 5060세대가 구박덩어리처럼 회자된다. 나라 잃은 슬픔과 6·25전쟁의 굶주림을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온갖 희생을 마다하지 않고 60여년 만에 기적을 일구어 놓았음에도 비난이 여간 만만치 않다. 역사 이래 지금처럼 경제적 번영을 구가한 사례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음에도 그렇다. 그들의 분노를 보면, 아무리 직업을 찾아도 구하기 어렵고 어쩌다 취업을 해도 돌아오는 보상은 적고 살인적인 경쟁을 통해 다수를 희생하고 살아남은 소수는 기득권을 독식하기 때문에 소통은 단절되었고 인정은 말라버려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진실로 맞는 주장이고 지금부터라도 머리를 맞대고 공동의 선(善)을 찾아야 한다. 하늘의 본래 마음자리(天心)가 모든 사람이 보람을 느끼며 행복하게 더불어 사는 데 있기 때문에 소수가 이익을 독점하는 사회는 순리에 역행하므로 반드시 망한다. 백성들의 마음이 천심이고 순리이니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만이 살 길임을 명심하자.
  • [기고] 백제 역사복원의 초심 잊지 말라/이종철 한성백제박물관 건립추진단장

    [기고] 백제 역사복원의 초심 잊지 말라/이종철 한성백제박물관 건립추진단장

    2002년 5월, 조선왕조의 서울 정도 600년을 계기로 서울역사박물관이 개관했다. 2012년은 백제가 서울에 도읍한 지 2030주년이 되는 해이고, 동시에 서울의 수도 역사가 1080년(백제 493년, 조선 519년, 대한민국 68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서울 정도 2030주년이라는 기념비적 시간의 역사 문화 타임캡슐을 우리는 내년 4월 문을 여는 한성백제박물관에 담으려고 한다. 서울은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의 시안(1198년)과 일본의 교토(1075년) 다음으로 수도 역사가 오래된 도시인데도 우리는 서울의 역사적 나이를 까맣게 모르거나 무관심하게 지내고 있다. 한국민의 대부분이 백제의 도읍 하면 두 번째와 세 번째 수도인 공주와 부여 지역만 떠올린다. 그러나 약 500년간 머물면서 백제역사의 3분의2 이상을 차지한 백제의 첫 번째 수도인 서울에는 송파, 강동 한강유역 일대에 풍납왕성과 고분공원의 보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동북아 역사전쟁에서 중국은 만주지역의 동북사성(헤이룽장성, 랴오닝성, 지린성, 북한) 공작을 하고 있고, 일본은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옛 고구려 지역 고분과 유적들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켜 고구려 역사를 중국지방사에 편입시키려고 하고 있다. 일본은 4~6세기 왜가 한반도 남부지역에 식민지를 세워 한반도의 일부를 다스렸다는 학설로 한일합병 정당성의 근거로 삼았고, 일본과 조선이 하나라는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주장하였다. 백제의 역사적 뿌리는 만주와 연결되고 일본 왕실의 혈통과 접목된다. 한성백제박물관은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허구와 침탈 의도에 대한 국제적 역사정의를 실현하고 연구하는 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 서울이 공주, 부여, 익산, 나주와 함께 유네스코 역사문화도시로 발돋움하는 데도 한성백제박물관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1988년 1만여 점의 서울고대사 유물이 발굴된 몽촌왕성과 2000년 3만여 점의 한성백제시대 유물이 나온 풍납왕성은 잃어버린 백제역사를 새로 복원할 소중한 자료들이다. 이를 계기로 2005년 5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의 한성백제박물관 건립 선포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고대해양문화 국가로서 중국의 요서까지 문화권으로 다스린 대백제 서사극의 조명이며, 민족 역사부활의 꿈이었다. 올림픽공원에 들어서는 한성백제박물관은 역사박물관, 몽촌왕성, 수혈전시관, 문화교육관을 아우르는 대지 14만 4000평에 수장고 820평을 포함한 건평 6800평 규모로 3만 6000점의 유물을 소장한 한국에서 세 번째로 큰 의미 있는 박물관이다. 그럼에도 행정안전부는 최근 한성백제박물관의 관장을 3급으로 해달라는 서울시의 요청을 4급으로 하향조정하여 박물관 조직의 승인을 거부하였다. 한성백제박물관의 관장이 과장 직위로 서울시의 인사, 예산, 행정시스템에서 생존할 수 있겠는가. 나아가 중국 베이징고궁박물관, 일본 교토·나라박물관장과 동등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겠는가. 또한 백제사, 고고학 전공 교수가 과장 자리로 관장의 책임을 맡겠는가. 한성백제박물관의 건립을 선포할 당시 잃어버린 백제역사 복원을 꿈꾸었던 정부에 초심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4) 전북 진안 천황사 전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54) 전북 진안 천황사 전나무

    가을이 겨울의 무게에 짓눌렸다. 겨울이 짙은 안개를 몰고 전북 진안 운장산에 내려앉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에 밤안개가 짙어지자 지척도 분간할 수 없다. 스멀거리는 안개가 산을 넘는 나그네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수행처로서보다는 관광지로 더 잘 알려진 운일암 반일암이 자리한 아름다운 산이다. 고개를 넘으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한 그루의 전나무가 있다. 나무 앞에는 아늑한 암자, ‘남암’이 있는데, 가는 길이 쉽지 않다. 나무가 걸어온 세월도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게다. 그건 그를 만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할 일종의 통과의례겠다. 알싸하게 번지는 초겨울 안개를 거역할 수도 모면할 수도 없는 늦가을이다. 안개는 이른 아침까지 걷히지 않았다. 운장산 기슭에 자리한 천황사도 안개에 묻혀 고요하다. 절집에서 키우는 개 짖는 소리만 정겹다. 천황사 돌담 곁에 커다란 전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나무 앞에 돌로 새긴 보호수 안내판에는 이 나무의 높이를 35m라고 했지만, 실제 나무의 키는 그만큼 되지 않는다. 오래전에 줄기 윗부분이 큰바람에 부러져 나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리 작은 나무는 아니지만, 이 나무가 지금 찾아가는 나무는 아니다. 천연기념물 제495호인 진안 천황사 전나무는 천황사에서 다시 200m쯤 산길을 거슬러 올라 천황사의 산내 암자인 남암까지 가야 만날 수 있다. 먼 길은 아니지만, 길이 좁고 가팔라서, 자동차로 접근하기도 쉽지 않고, 걷기에도 제법 숨이 차오르는 산길이다. 나무는 그 길 끝에서 감동으로 만나게 된다. ●높이 35m 국내 최고 수준 나무 앞에는 허름한 암자가 한 채 놓였다. 여느 암자처럼 기와 지붕을 올린 것도 아니고, 그럴듯한 법당도 차려지지 않은 볼품없는 암자다. 여느 시골 집 살림채처럼 보이는 ‘남암’은 1000년 전에 스님들의 수행처로 세운 유서 깊은 암자다. 지금은 찾아오는 사람도 잦지 않아 외롭기 그지없는 작은 집일 뿐이다. 암자로 오르는 조붓한 길 옆의 비탈에 선 전나무는 융융한 기품의 곧은 줄기를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쳐 올렸다. 암자 외에는 별다른 건물도, 다른 나무가 곁에 없는 까닭에 존재감이 매우 두드러진다. 겨울의 무게가 실린 안개가 가지 끝에 걸렸다. 눈대중으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높다.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2008년의 정밀조사에 의하면 나무의 높이는 무려 35m나 된다. 사람 가슴 높이에서 잰 줄기의 둘레도 5m나 된다. 전나무는 원래 절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나무다. 나무의 곧은 자람이 마치 불심 깊은 스님의 지조와 절개를 닮았다는 뜻에서다. 천황사의 전나무도 400년 전 이 암자에서 용맹정진하던 스님이 온 땅에 불심이 널리 퍼져 평화로운 세상이 이뤄지기를 발원하며 심어 가꾼 나무라고 전한다. 추운 날씨에 잘 자라는 전나무는 우리나라의 높은 산지에서 만날 수 있는 그리 별난 나무가 아니다. 줄지어 숲을 이룬 전나무도 좋지만, 이 나무처럼 홀로 우뚝 섰을 때의 느낌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나무다. 그 많은 전나무 가운데 천황사 전나무는 규모에서나 생김새에서 우리나라의 모든 전나무를 대표할 만한 나무다. “나무 주위에 있던 작은 나무와 어지럽던 풀을 정리하고 나니, 깔끔하고 더 커 보이지요? 하지만 사람 눈에 들자고 저렇게 꾸밀 필요가 있나요? 누가 돌보지 않은 채 수백 년을 살아온 생명체잖아요. 그냥 놔눠도 잘 사는 게 나무 아니던가요?” 사람 들지 않는 암자에서 홀로 수행 중인 스님이 인기척을 느끼고 차 공양을 권하며 처음 내놓은 이야기다. 사람 눈으로 보기야 좋아진 건 분명하지만, 나무에게도 그게 좋을지는 모르겠다며 스님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진리는 뜻밖에도 쉽고 간단합니다. 사람도 나무도 다 그래요. 주어진 대로 편안하고 쉽게 사는 게 진리에 닿는 방법입니다. 자식 잘 키우겠다고, 지나치게 애면글면하면 안 되는 것처럼 나무도 사람 마음대로 이리저리 매만지면 안 됩니다.”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뒤, 보호구역 정리를 위해 곁에서 자라던 낮은 키의 나무들과 무성한 풀꽃들을 베어낸 게 탐탁지 않다는 생각이다. 나무는 그대로 두고, 주변을 정리하고 울타리를 친 것 외에 별다른 변화는 없지만, 스님의 귀에는 작은 생명의 아우성이 아쉬웠던 것이다. ●“사람이 뭐라하든 자신의 생을 살아” “키 작은 나무나 풀도 똑같은 생명체입니다. 함부로 베어내고 뽑아내도 되는 생명은 없어요. 사람 마음이 문제예요. 사람 마음 따라 자연의 뭇 생명을 마음대로 다스리려 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그럴 권리가 있기나 한가 몰라요.” 스님은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직후 이곳 남암에 들어와, 2년 넘게 마음 공부에 정진 중이라고 한다. 나무를 누가 심었는지, 나무에 얽힌 어떤 이야기가 전하는지도 아는 게 없단다. 굳이 그걸 헤집어 낼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제 이름은 알아 뭐 해요? 사람이나 나무나 마찬가지예요. 전나무라고 부르든 천연기념물이라고 부르든 나무는 처음 이곳에 뿌리를 내렸을 때처럼 자기의 생을 살아갈 뿐이지요.” 법명을 묻자, 스님은 손사래를 치며 나무처럼 이름보다는 마음으로 남는 게 좋다고만 대답한다. 차 공양을 마치고 앉은 자리에서 작별 인사를 올리고 방을 나섰다. 그 사이 높은 가지 끝에 걸렸던 초겨울 아침 안개가 걷혔다. 사람 손이 닿을 수 없는 높은 가지 끝에 충만한 생명이 안개처럼 습기처럼 마음 속으로 스며들었다. 글 사진 진안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gohkh@solsup.com >>> 가는길 전북 진안군 정천면 갈용리 산169-4. 호남고속국도와 통영대전고속국도를 동서로 잇는 익산장수고속국도의 진안나들목을 이용해서 진안군청까지 간다. 군청 동북쪽의 진안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400m쯤 간 뒤 상림천이라는 작은 개울을 건너 지방도로 795호선으로 10㎞ 가면 정천면소재지에 이른다. 정천휴게소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3.6㎞ 가면 천황사 입구가 나오는데, 여기에 ‘진안 천황사 전나무’ 입간판이 있다. 여기에서 좌회전하여 500m 가면 천황사가 나온다. 천황사 앞 개울을 건너 산길 200m를 오르면 나무가 있다.
  • [사설] 저승길 가로막는 부패사슬 뿌리 뽑아라

    변사 시신을 놓고 장례식장 업주와 경찰관, 소방관, 병원 직원, 상조업체 간의 얽히고설킨 부패사슬이 통째로 드러났다. 변사자 신고가 112나 119 상황실에 접수되면 장례식장 업주에게 즉각 알려주고 건당 20만~30만원의 사례비를 챙겼다고 한다. 장례식장 업주가 이들에게 찔러 준 뒷돈은 다름 아닌 상조업체에서 뜯은 리베이트였다. 하이에나처럼 변사자의 시신에 달려들어 유족의 장례비용을 나눠먹은 것이다. 돈에 눈이 먼 장례식장 업주나 상조업체는 그렇다 해도 저런 자들이 과연 경찰관·소방관인지 의심스럽다. 공직자가 어디 할 것이 없어서 ‘시신장사’를 한단 말인가. 이들이 은밀하게 뒷돈을 챙길 때 장례비용은 쑥쑥 올라갔다. 이번에 적발된 장례식장 업주는 상복이나 영구차, 영정사진, 제단 꽃장식, 유골함을 대는 장례업체한테서 20% 넘는 리베이트를 받아 이 중 일부를 “시신이 있다.”고 알려준 이들에게 건넸다. 달라는 대로 줄 수밖에 없는 유족들은 부패사슬의 먹이가 됐다. 그런데 검찰은 받은 돈이 소액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기소하지 않고 해당 기관에 비위사실만 통보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받은 검은 돈이 비록 소액일지는 모르지만 유족들을 등친 이들의 행위는 돈을 떠나 사회적으로 끼친 폐혜가 가볍지 않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이미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결코 솜방망이 처벌로 끝낼 일은 아니라고 본다. 엄히 다스려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장례식장 비리는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장례식장 업주-경찰·소방관, 병원 직원-상조업체’의 공생관계로 짜여진 부패사슬이 드러나기는 처음이다. 서울 영등포경찰서 관내만의 문제도 아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틀린 지적이 아니라고 본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장례식장의 구조적 비리와 먹이사슬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거품이 잔뜩 낀 장례비용도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끓어오르는 화 어떻게 다스리지?

    끝 없는 탐욕과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의 탐진치(貪瞋痴)는 불교에서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세 가지의 근본적인 번뇌로 경계한다. 이른바 삼독(三毒)이다. 그중에서도 화와 성냄의 진은 나를 해치고 남을 어려운 지경에 빠뜨리는 해악으로 여겨진다. 그러면 그 화는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베트남 출신의 승려이자 평화운동가인 틱 낫한 스님의 ‘화해’(불광출판사 펴냄)는 진을 다스리는 방법을 천착한 책이다. 인간은 누구나 무의식 속에 고통의 씨앗인 화를 품고 있고 그 화는 비슷한 환경에 처할 때마다 폭발하게 된다. 그 화는 먼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자손들에게 이어지게 되는 만큼 내 안의 화를 다스리게 된다면 과거와 미래의 화까지 모두 다스릴 수 있고 그것이 나와 남이 모두 평화롭게 사는 지름길이라고 스님은 말한다. 스님이 책에서 줄곧 강조하는 화의 치유법은 회피와 도망이 아니라 정면으로 부딪쳐 평화를 얻는 수행의 권유이다. 무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고통의 씨앗을 ‘내 안에 다섯 살짜리 아이’로 보고 도닥거리며 어루만지는 나와의 싸움이다. 그 싸움은 지금 내가 하는 모든 행위를 온전하게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는 만큼 내 몸과 움직임을 제대로 보기 위해 호흡에 충실하라고 스님은 권한다. 들숨 날숨을 통해 우리 몸과 몸 속의 작은 세포며 그 세포에 담긴 화의 근원까지 볼 수 있는 일상에서의 쉬운 수행이다. 부모미생(父母未生)의 나는 어떤 존재이고 어디로 가는가. 내 안의 ‘다섯 살짜리’ 아이는 바로 그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일 수 있다는 심리 처방. “불교는 하나지만 그 시대, 그 지역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다가가야 한다.”는 스님의 소신과 철학 그대로 책은 어렵지 않은 평이한 언어의 긴 묶음이다. 무엇보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혼돈의 상태에서 빠져나와 마치 밖에서 구경하듯 우리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때 달빛처럼 은은한 미소가 번진다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화해의 방식. 그래서 단박에 알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수행 양식, 즉 한 번의 호흡과 한 번의 고요한 발걸음을 통해 평화를 건져내자는 메시지의 은은한 전달이 특이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세상 최고의 의사이자 최고의 심리치료사는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스님은 결국 이렇게 말한다. “고통을 변화시키려면 그것과 싸워서도 안 되고 그것을 없애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저 깨어 있음의 빛으로 고통을 씻어주라.” 1만 30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경찰, 김진숙 소환시기 저울질…사법처리 후폭풍 예고

    한진중공업 파업 사태는 극적으로 해결됐지만 크레인 농성자와 희망버스 행사 참가자 등에 대한 사법 처리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사법기관이 노사에서 합의한 형사상 고소, 고발 취하와 관계없이 명백한 범법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하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부산지검 관계자는 10일 “업무방해와 집시법 위반 등은 친고죄가 아니므로 고소 여부와 관계없이 법에 따라 엄하게 다스릴 수밖에 없다.”면서 “다만 노사 합의나 고소 취하 등은 사법 처리 수위를 정할 때 참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은 309일간 고공 농성을 벌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과 크레인에서 동조 농성을 벌인 문철상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장 등 4명에 대한 소환 조사에 들어갈 계획이다. 김 위원 등에 대해서는 이미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김 위원은 이날 동아대병원에서 정밀진단 소견을 받고 입원했다. 결과가 나오는 11일 경찰 조사 일정이 결정될 전망이다. 검경은 또 부산에서 진행된 1, 2, 3, 5차 희망버스 행사에서 불법 시위를 벌인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257명과 출석 요구를 해놓은 136명에 대한 사법 처리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부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만화시장 이끄는 건 힘있는 장편”

    “만화시장 이끄는 건 힘있는 장편”

    ‘식객’ 이후 8년 만에 나온 거장의 선택은 칭기즈 칸이었다. 3년간 12권으로 완간 예정인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월드김영사 펴냄) 1, 2권을 낸 허영만(64) 화백이 8일 기자들과 만났다.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의 정복자 칭기즈 칸을 주인공으로 한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는 현재 신문과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연재 중이다. 허 화백은 “칭기즈 칸은 많이 아는 얘기지만 요즘 세상 사는데도 도움되는 얘기인 데다 중간에 다른 이야기를 끼워넣을 여지가 많아 힘이 떨어지기 전에 해보자 싶어 시작했다.”며 “4만명 전투라면 적어도 100명 이상의 사람과 화살을 그려넣어야 하는데, 굉장히 힘들다. 앞으로 사극은 안 할 생각”이라며 웃음 지었다. 허 화백이 이야기를 구상하고 데생을 하면 문하생 3명이 인물, 색깔 등을 나눠서 그리지만 항상 밤늦게까지 작업을 해야 한단다. 그는 “칭기즈 칸이 마누라도 놔두고 도망칠 정도로 비겁한 면도 있었고 그래서 뒷일을 만들 수 있지 않았나 한다.”며 “자신보다는 큰 미래를 보는 사람이었기에 넓은 영토를 다스릴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평소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꼼꼼한 취재를 하기로 유명한 허 화백은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를 그리려고 몽골에도 3번 다녀왔다. 게르(이동식 집)에서 자보고 싶다고 하자 가이드가 예약도 없이 초원으로 데려가 무척 걱정했는데 낯선 이를 재워줘서 몽골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님에게 아내를 빌려 주는 몽골의 옛 풍습을 체험하는 ‘호사’는 못 누렸다고 덧붙였다. 산악인 고(故) 박영석 대장과 막역한 사이인 허 화백은 기자간담회를 시작하면서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고 운을 뗐다. 장례식 기간에는 만화에 인물은 없고 배경만 등장해 출판사에서 “만화가 읽는 맛이 있어야 한다.”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식객’에 이어 두 번째로 인터넷에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 허 화백은 “댓글은 안 본다.”며 “소소하게 지나치는 한마디가 비수로 와서 꽂힐 수 있고 줄거리에 잠재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인터넷 연재에 관해 “신문사의 원고료만으로는 살림을 꾸릴 수 없다.”고 밝혔다. 만화잡지가 거의 사라진 한국 만화의 상황에 대해서는 “초기에 작가들이 원고를 인터넷에 뿌리면서 만화는 공짜란 인식이 퍼졌다.”며 “정부 지원으로 근본적 문제 해결은 안 된다. 답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만화 시장을 이끄는 것은 힘있는 장편이라고 강조하는 거장은 그 모범을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사설] 썩은 내 진동하는 농어촌공사 부패관행

    한국농어촌공사의 부패사슬이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에 적발됐다. 임직원이 상습적으로 국민의 혈세를 횡령해 상부에 상납하고 룸살롱 술값과 골프비용으로 흥청망청 썼다고 한다. 김포지사의 한 직원은 룸살롱비를 기부금으로 편법처리해 연말에 수백만원의 세액공제까지 받았다고 하니 그 뻔뻔함에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총리실에 적발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올 들어 세번째라는 사실이다. 배짱이 좋은 건지 공직자이기를 포기한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다. 박재순 사장은 농어촌공사 홈페이지 CEO 인사말에서 공사는 한 세기 동안 농어촌 지역 발전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수행해 왔으며, 오늘도 농어촌의 경쟁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고 자화자찬했다. 농어민의 행복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고 고객감동경영으로 사랑과 신뢰를 받는 국민 공기업이 되겠다고 다짐도 했다. 얼굴이 두꺼워도 정도 문제지 이런 짓을 하고도 어찌 농어민한테 낯을 들 수 있겠는가. 아랫사람도 아랫사람이지만 썩어빠진 고위층의 행태는 모럴 해저드의 극치를 보여준다. 부하직원의 부패를 준엄하게 꾸짖고 법대로 처리해도 모자랄 판에 부하들에게서 상납받고, 거기에 더하여 법인카드깡까지 해서 돈을 빼돌렸다니 정말이지 부패의 끝을 모르겠다. 옛날 같으면 거열형(裂刑)에 처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하겠다. 우리는 농어촌공사의 부패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본다. 이런 공직자들이 어디 농어촌공사뿐이겠는가. 그동안에도 공기업 및 정부 산하기관의 부정과 부패가 심심치 않게 노출됐다. 혈세를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공직자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 산하기관에 대한 철저하고 대대적인 감사를 통해 비리의 싹을 뿌리 뽑아야 한다. 이번에 적발된 농어촌공사 임직원도 일벌백계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
  • [부고]

    ●유태전(전 대한병원협회장)씨 부친상 6일 영등포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2)2631-2299 ●김두겸(울산 남구청장)씨 모친상 7일 울산시민전문장례식장, 발인 9일 오전 9시 (052)226-5440∼2 ●유전하(풍산건설 사장)심하(서울남부구치소 계장)씨 모친상 송득범(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장)씨 장모상 7일 삼상서울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2)3410-6915 ●김형수(전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씨 모친상 이석(산은캐피탈 대리)이환(스마일게이트)씨 조모상 6일 인천 중앙길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32)471-6361 ●한명란(한국은행 전산정보국 과장)명석(자영업)명욱(자영업·대한태권도협회 강서지구 부회장)씨 모친상 서범용(한국지엠 부장)신형철(티엠산업개발 관리이사)씨 장모상 6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9일 오전 6시 (02)2227-7556 ●김익환(고려대 생명과학대학 교수)씨 부친상 7일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10-4407-3447 ●이왕익(삼성미래전략실 상무)진희(아이앤브이플러스 과장)씨 부친상 박혜원(대치중 교사)씨 시부상 최영근(삼성토탈 과장)씨 장인상 6일 대구전문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7시 (053)965-7201 ●여운상(변호사)씨 부인상 홍구(전 한양대 부총장)준구(한국항공대학교 총장)씨 모친상 강경호(다스주식회사 대표이사)박대원(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씨 장모상 7일 강남세브란스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30분 (02)2019-4001 ●정정수(충북대 축산학과 교수)씨 모친상 6일 경북대병원, 발인 9일 오전 8시 (053)200-6144 ●정현효(한국얀센 이사)씨 부친상 7일 영남대병원, 발인 9일 오전 6시 (053)620-4242 ●정원동(경북신용보증재단 포항지점장)원화(대구지방법원 영덕지원)씨 모친상 이달희(한나라당 대구시당 사무처장)씨 시모상 7일 대구 가톨릭병원, 발인 9일 오전 7시 (053)655-4501
  • [김문이 만난사람] 故 박영석 대장 영원한 절친·선배 엄홍길씨

    [김문이 만난사람] 故 박영석 대장 영원한 절친·선배 엄홍길씨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 끝자락이다. 그랬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해 차마 떨치고 가버렸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다. 그것도 악몽이었으면 말이다. 꼭 올 것만 같았던 그가 진짜 오지 않았다. 그토록 기다렸건만, 같이 술이나 한잔 기울이려고 애타도록 기다렸건만, 그마저도 거부하고 끝내 가버렸다. 어이 할거나. 에라 산에 가서 살풀이나 실컷 할까. 막걸리 몇 사발 들이켜면서…. 그것도 성이 안 찰 듯싶다. 그냥 울어버리자. 그리고 소리치자 ‘에이 나쁜 놈, 영석아.’라고. 그랬더니 한참 후 돌고 돌아 온 메아리가 답했다. “형 또 올게.” 산악인 엄홍길(51)씨. 지난 1일 새벽 엄씨는 인천국제공항에 나가서 영원한 절친이자 후배인 고 박영석 대장의 아들 성우를 붙잡았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못했다. 멍하고 가슴이 울컥했기 때문이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줄 몰랐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생각했다. ‘한 많은 안나푸르나’가 가슴을 마구 짓눌렀다.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 새삼 떠올랐다. 그러다가 성우에게 “힘내라. 용기를 잃지 마라.”고 겨우 말했다. 지난 3일 오전 영결식 때도 그랬다. 아버지처럼 굳세게 살아 달라고. 박 대장은 평소 ‘왜 산에 오르는가.’라는 질문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라는 말을 곧잘 했다. 박 대장을 비롯한 강기석, 신동민 대원의 합동 영결식은 국내 처음 ‘산악인 장’으로 엄숙히 치러졌다. ●크레바스는 눈 덮인 함정… 깊이도 수백미터 영결식에 앞서 서울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엄홍길 휴먼재단’ 사무실에서 엄씨를 만났다. 영결식 준비 등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눈의 초점마저 잃었다. 어떤 기분일까. “인생이란, 삶이란,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동안 히말라야를 등반하면서 많은 사고도 겪었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인간의 존재도 많이 생각했지만 너무나 허무합니다. 꿈속의 일이었길 바랐는데 결국은 생시인가요.”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봤다. 허무하게 가버린 세 살 아래 ‘녀석’에 대한 그리움에 눈가를 훔쳤다. 차디찬 안나푸르나 빙벽 크레바스에 갇혔을 녀석을 또다시 떠올렸다. 얼마나 추울까…. 상념에 잠겼다. 추억을 더듬었다. 수많은 세월들을 떠올렸다. 겨우 정신을 차리는가 싶었을 때 얼른 박 대장과의 추억에 대해 물었다. “1989년 겨울인가요. 제가 네팔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할 때였어요. 박 대장이 히말라야 첫 등정을 위해 네팔에 찾아왔습니다. 저는 이미 히말라야를 등정하고 난 뒤여서 그곳 사정과 네팔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터였지요. 식량 구입은 어떻게 하고 셰르파는 어떻게 구하는지 등을 가르쳐 주었지요. 같이 술도 한잔 하고 금방 친해졌습니다. 결국 박 대장은 그때 히말라야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하산한 뒤에 다시 만났지요. (등정에 성공한 뒤)얼마나 고마웠던지, 그저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했습니다.” 엄씨는 다시 창밖을 응시했다. 안나푸르나의 허공을 보는 듯 고뇌에 찬 눈빛이었다. 아마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또 한번 떠올리는 듯싶었다. 다시 물었다. 한국에서는 둘이 어떻게 지냈느냐고. “한국에 들어와서도 둘이 그림자처럼 같이 다녔습니다. ‘영석아 이리 와봐.’라고 하면서 주말이면 우리집에서 놀기도 하고 그랬지요. 또 박 대장의 집에 가서 같이 자기도 했습니다. (박 대장의)부모님이나 제수씨도 가족처럼 잘 대해줬어요. 정말 한 식구처럼 지냈습니다. 1991년에는 박 대장과 배승렬 선배 그리고 저 3명이 오지트레킹 전문 여행사도 차려 함께 일을 했습니다. 의기투합이 잘 됐습니다. 그러다가 1994년 히말라야 원정을 같이 했지요. 안나푸르나를 두 번 그렇게 함께 등반했습니다.” 엄씨는 안나푸르나 얘기가 나오자 지금도 가끔 꿈에 나올 만큼 회한이 서린 곳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4전5기 끝에 등정에 성공했다. 1997년 세 번째 도전에서 혈육 같은 셰르파 나티가 크레바스에 빠져 목숨을 잃었고 1998년엔 마지막 캠프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상황에서 발목이 180도 돌아가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이때 산악인들은 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그는 도봉산을 오르내리며 기적처럼 부상을 극복했다. 1999년 봄 다섯 번째 도전에서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했지만 하산하던 중 후배인 지현옥(당시 40세)씨와 셰르파가 함께 실종되고 말았다. 이 사실을 듣고 엄씨는 며칠 동안 목놓아 피눈물을 흘렸다. 엄씨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때가 생각나는지 눈가를 훔쳤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개인적으로 사고란 사고는 안나푸르나에서 죄다 겪었습니다. 눈물이란 눈물도 다 안나푸르나에서 흘렸지요. 동료 3명을 잃은 곳도 안나푸르나입니다.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정양근 선배도 1984년 겨울 안나푸르나에서 죽었습니다.” 이런 까닭에 엄씨는 어느 날 문득 안나푸르나가 생각나면 혼자 술을 마시거나 산에 올라 마음을 다스리기 일쑤다. 그에게 박 대장이 실종된 크레바스가 어떤 곳인지 물었다. ●일몰 전 무조건 하산… 여벌 옷 꼭 배낭에 “일종의 함정입니다. 위에는 눈이 덮여 있어 분간을 못 합니다. 그렇게 눈 위를 걷다가 어느 순간 푹 빠져버립니다. 깊고 깊어서 찾기가 힘들어요. 빙하벽, 그러니까 얼음벽 사이의 큰 구덩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곳에 빠지면 몇백미터씩 한없이 빨려들어가는 무시무시한 곳이지요.” 엄씨는 지난 2007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이상 16좌를 완등한 기록을 갖고 있다. 이를 기념해 휴머니즘과 자연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자 ‘엄홍길 휴먼재단’을 설립했다. 아울러 2009년부터 네팔 지역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현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해 학교를 짓기 시작했다. 팡보채와 타루프 등 지금까지 2개 지역에 휴먼스쿨을 세웠으며 현재 석가모니 탄생지인 룸비니에 세 번째 학교를 짓고 있다. 1년에 두 개씩 모두 16개 학교를 건립할 계획이다. 늦어도 2020년 이전엔 16개의 휴먼스쿨이 생긴다. “현재 첫 번째 학교에서는 45명, 두 번째 학교에서는 200여명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면 학생들이 달려 나와 ‘엄싸부, 엄싸부’라고 하면서 아주 반갑게 맞이해 줍니다.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워낙 열악한 곳이라 학용품이며 시설물 등을 모두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히말라야를 처음 등정하면서 산신(山神)과 주고받은 숙명의 약속이라고 했다. 당시 그는 “나를 (산에서)살려 보내 주신다면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우는 데 일생을 바치겠나이다.”라고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결국 신의 가호 아래 세계 최초로 16좌를 완등한 뒤 네팔의 어린이들을 가슴으로 품기 시작했던 것이다. 화제를 바꿨다. 엄씨는 다음 주말 시각장애인들과 가을산행을 할 예정이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행사를 갖는다. 이 또한 휴먼산행의 일종이다. 앞으로의 삶도 대부분을 ‘휴먼’에 방점을 찍겠단다. 엄씨는 어쩌면 산신령에 가깝다. 다들 꺼려하고 두려워하는 히말라야 16좌를 완등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게 가을 산행을 위한 ‘원 포인트 레슨’을 부탁했다. “해가 짧아졌습니다. 일몰 전에는 무조건 내려와야 합니다. 기후변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배낭에는 여벌의 옷을 반드시 챙겨야 합니다. 낮은 산이라도 등산을 하다 보면 땀에 젖게 되니 체온유지에 신경을 써야 하지요. 또한 등산하기 전에는 반드시 30분 정도 워밍업을 해야 합니다. 숨고르기를 해야 돼요.” ●스틱은 산 오를 땐 짧게 내려올 땐 길게 또한 무작정 오르지 말고 산을 사랑하고 속삭이라고 하면서 “알파인 스틱 두 개를 사용해 오를 때는 짧게, 내려올 때는 조금 길게 하면 덜 힘들고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엄씨는 요즘 정해진 휴먼산행과 더불어 BTN 불교TV의 토크쇼 MC를 맡아 특유의 말솜씨를 뽐내고 있다. 각종 단체 등에 강연을 나가는 등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유가족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다 잘될 겁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는 다시 창밖을 응시했다. 가을 단풍이 뚝뚝 떨어진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엄홍길 대장은… 1960년에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다. 1979년 의정부 양주고를 나왔으며 2006년 한국외국어대에서 중국어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에서 체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해군 특수부대 UDT 출신이다. 1985년부터 히말라야 등정을 시작한 뒤 2000년 아시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에 이어 2007년 세계 최초로 8000m급 16좌 완등에 성공한 산악인이다. 현재 엄홍길휴먼재단(상임 이사)을 만들어 네팔 사람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으며, 가난한 네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기 위해 16개의 희망학교를 짓고 있다. 강연과 토크쇼 MC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동안 쓴 책으로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 ‘꿈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라’, ‘오직 희망만을 말하라’ 등이 있다. 상명대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기상청 홍보대사 등 여러 단체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그는 평소 산에 오르는 것에 대해 ‘정복’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산이 정상을 잠시 빌려 주는 것일 뿐 사람이 어떻게 자연을 정복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자신이 산에 올라간 것도 산이 자신을 받아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 ‘스타워즈’ 광팬, 장난감 망가뜨린 부인 살해

    ▶원문 및 사진 보러가기 영화 ‘스타워즈’ 광팬인 영국 남성이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장난감을 망가뜨린 부인을 목 졸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일간 텔레그래프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영국 그레이터맨체스터 주에 사는 리키 라 터치(30)는 지난 4월 태국인 부인인 폰필라이 스리스로이(28)를 자택 침실에서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3일 프리스턴 형사법정에 섰다. 터치는 “사건 당일 부인이 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해 부부싸움을 했다. 이 과정에서 부인이 내가 어릴 적부터 모은 다스베이더와 루크 스카이워커 등 ‘스타워즈’ 캐릭터 수집품을 함부로 망가뜨리는 데 격분해 목 졸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범행을 저지른 뒤 터치는 근처 어머니 집으로 달려가 살해사실을 고백한 뒤 자수했다. 경찰이 사건현장인 집에 도착했을 때 싸늘한 사체로 변한 스리스로이는 이불과 베개에 덮인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터치는 최고 종신형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터치는 살해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의도한 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아끼는 장난감이 눈앞에서 망가지는 걸 본 뒤 이성을 잃었다. 의식이 돌아왔을 땐 내가 이미 부인을 목 조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두 사람은 터치가 2001년 태국 방콕을 여행하다가 처음 만난 뒤 국경을 넘어 사랑을 키웠다. 2003년 터치가 태국으로 건너가 결혼을 했고 2006년부터 영국에서 결혼생활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K팝 첫 남미 공연

    K팝 첫 남미 공연

    포미닛, 비스트, 지나 등 큐브엔터테인먼트(이하 큐브) 소속 가수들이 K팝 가수로는 처음으로 남미에서 공연한다. 큐브는 2일 “포미닛, 비스트, 지나가 12월 13일 브라질 상파울루 공연장 ‘에스파코 다스 아메리카스’에서 ‘유나이티드 큐브 콘서트 인 브라질’이라는 타이틀로 합동 공연을 펼친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은 CJ E&M의 글로벌 콘서트 브랜드 ‘엠라이브’의 일환으로 남미에서 열리는 한국 가수들의 첫 콘서트다. 이 글로벌 콘서트에는 FNC뮤직 등 국내 6대 음반기획사가 참여하며 소속 가수들은 세계 각지에서 콘서트를 통해 K팝 시장을 개척하게 된다. 큐브 가수들은 브라질 공연에서 ‘상상이 현실로 보여지는 무대’라는 콘셉트로 파워풀한 가창력과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열린세상] 사람의 향기와 지우현불초(智愚賢不肖)/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열린세상] 사람의 향기와 지우현불초(智愚賢不肖)/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향기는 주로 꽃에서 나오는 좋은 냄새를 말한다. 어떤 사람에게 향기가 있다면 지혜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표현이다. 지혜롭게 살려면 올바른 양심이 있어야 한다. 양심은 항상 맑은 상태의 마음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결심을 하여도 선택의 결과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아니하여 시시비비가 없다. 정확한 분별력으로 시행착오 없이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모두가 원하는 가치관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처음 가지고 온 맑은 마음이 해가 거듭될수록 탁해지고 분별력이 흐트러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육신이 만들어내는 식신(識神)이 마음을 탁하게 하거나 평온함을 흔들기 때문이다. 식신은 육신이 갖는 집착의 기운(氣)인데 넋 또는 백(魄)이라고 말하며 마음(理)과 함께 사람을 지배한다. 동양의학에서는 부모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육신 중 오장(간, 심장, 폐, 비장, 신장)과 오관(눈, 코, 귀, 혀, 몸)의 계속적인 상호작용에 의하여 몸에 축적되는 모든 경험과 지각을 식신이라고 말한다. 식신은 후천적으로 지수화풍토(地水火風土)의 영향을 받아 육신의 기질을 만들고 동시에 오욕(재물·식·성·명예·수면욕)이라는 골칫덩어리를 낳으며 다시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 등 칠정의 감정을 생산하기도 한다. 향기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식신을 다스릴 수 있거나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이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과 식신 중 어느 것이 우선하는 기운인가에 대하여 과거부터 많은 성현들이 고심했지만 마음(理)은 역할이 있어 육신을 한시적으로 차용하고 있기 때문에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식신(氣)을 지배하거나 타협할 수밖에 없다. 두 개의 기운 간에는 통신망처럼 항상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줄이 있는데 이것을 혼 줄이라고 부른다. 혼 줄을 놓았다고 한다면 마음과 육신이 분리된 상태이니 사람이 사망한 것을 뜻한다. 혼 줄의 통제권은 마음이 주관한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함에 있어 그 사람의 본심이 무엇인가를 파악하고자 한다면 혼 줄이 마음에 의하여 제어되는지를 따져보는 일이다. 불교에서 마음을 비우고자 하는 것과 기독교에서 믿음을 갖자는 것은 마음이 확신을 갖고 혼 줄을 통제하면서 식신을 억제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누군가 마음의 혼 줄을 식신에게 지배당해도 좋다고 한다면 이미 그것은 사람 모습을 포기한 것이리라. 지우현불초(智愚賢不肖)란 사람에 대한 표현으로 지우와 현불초가 합쳐진 단어다. 지우는 마음이 맑고 탁함에 따라, 결심한 결과가 얼마나 올바른가에 따라 구분하는 지혜로움이나 어리석음을 의미한다. 현불초는 부모 또는 주위 환경으로부터 받은 육신의 행위능력 여부에 따라 차이를 두는 유능함이나 무능함을 뜻한다. 모든 사람의 마음은 세상에 오면서 하늘의 뜻(性)을 받들어 자기역할에 맞도록 스스로 현불초를 선택하게 된다. 현불초는 마음이 결정했기 때문에 식신과 함께 마음이 다스릴 수 있는 혼 줄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마음먹기에 따라 현불초는 후천적으로 다스리며 바꿀 수 있으니 부모의 탓이라고 원망하는 어리석음은 버려야 한다. 필자는 얼마 전 TV에서 신체장애가 무척 심한 부부가 파지를 주워서 생계를 유지하는 눈물 겨운 삶을 이어가면서 역시 장애가 있는 어린 아들의 재활치료를 위해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지만 다시 만나서 같이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그리움을 미뤄놓고 각자의 일을 다하는 모습을 보았다. 행복해질 것이라는 마음의 확신이 어떻게 불초의 장애와 원망, 식신의 욕심까지도 극복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아무리 박수를 보내도 부족한 위대한 마음 혼 줄의 아름다운 승리라고 할 것이다. 문득 탐욕의 식신에 찌들어 자기 몫을 간수하기에 급급한 소수의 기득권자들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에 분노하는 백성들의 마음 상처가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저 울분은 얼마나 많은 시간 속에서 무엇으로 보상받을 것인가? 누구를 탓하여 나를 좀먹는 식신을 출현시킬 필요는 없다. 고통이 크고 심각하다면 반드시 백성을 걱정하고 미래를 근심하는 천심을 가진 향기 있는 기운이 오고 있음이다. 희망의 혼 줄을 놓지 말자.
  • “인삼공사 농구단, 아듀”

    “인삼공사 농구단, 아듀”

    지난 30일 SK를 대파한 KGC인삼공사 이상범 감독은 “오늘은 무조건 이겨야 했다.”고 말했다. “목숨 내놓고 2년간 리빌딩할 때 쓴 소주를 마시며 날 잡아준 김호겸 국장이 떠난다. ‘멘토’에게 마지막 선물로 승리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큰 눈이 촉촉해졌다. 인삼공사의 ‘제갈공명’ 김호겸(47) 사무국장이 농구단을 떠난다. 11월 1일 자로 본사 홍보부장으로 발령받았다. 갑작스러운 일이다. 김 국장은 2000년 골드뱅크(현 KT) 사무국장을 시작으로 코리아텐더-SBS-KT&G-인삼공사까지 12시즌간 농구판을 누빈 ‘터줏대감’이다. 코리아텐더의 ‘헝그리 4강신화’(2002~03시즌)와 SBS(현 인삼공사)의 ‘15연승 행진’(2004~05시즌) 등 굵직한 순간을 일궜다. 야심차게 진행한 ‘리빌딩’도 김 국장 공이 컸다. ‘도박’이라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에이스 주희정(SK)을 유망주 김태술과 바꿨고 양희종, 김일두, 김태술을 모두 입대시키는 초강수를 띄웠다. 운까지 따라 박찬희, 이정현, 오세근이라는 ‘톱 루키’를 품에 안으며 올 시즌 최강의 라인업을 구축했다. 사표를 품고 다니며 전전긍긍했던 지난 두 시즌. “리빌딩이 되긴 되는 거냐, 다 때려치우자.”고 푸념하는 이 감독을 잡아준 이도 김 국장이었다. 당장의 성적에 연연하기보다는 멀리 보고 감독의 마음을 다독여줬다. 농구인끼리도 감히 하기 힘든 든든한 내조였다. 아직 초반이지만 인삼공사는 올 시즌 공동 2위(5승3패)로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쉽게도 영광을 누릴 시기에, 열매를 따먹을 시기에 김 국장은 농구단을 떠난다. 10월의 마지막 날 농구단 사무실에서 짐을 싸던 김 국장은 “농구는 내 삶”이라며 서운해했다. 10년 넘게 지켜 온 ‘프런트 철학’을 들을 때는 경건해졌다. 김 국장은 “프로라고 하면 다들 돈으로 생각하는데 사람 사는 건 그런 게 아니다. 마지막 힘은 실탄(돈)으로 안 된다. 사람 마음을 다스리는 건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다.”고 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귀에 ‘쏙쏙’ 쉽게 풀어 쓴 동의보감

    한국인치고 ‘동의보감’ 모르는 이는 없을 거다. 무수한 건강보조식품 광고와 수많은 한의학적 처방들을 통해 보고 또 들었다. 그런데 정작 동의보감이 다루고 있는 게 뭐냐고 물으면 답변이 궁색해진다. 가장 대중적인 유산인 동의보감이 한국인의 일상과 동떨어져 ‘고전의학’ 텍스트의 하나로 전락한 셈이다. 이는 곧 귀에 쏙 들어오도록 동의보감을 쉽게 풀어 쓴 책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견줘 고미숙 고전평론가가 지은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그린비 펴냄)는 참 쉽다. 보다 정확히는 쉬워지려고 노력했다. 예컨대 이런 거다. 저자는 허준의 시각을 빌려 요즘 ‘잘나가는’ 댄스 가수들의 건강을 염려한다. 동의보감에서 소리를 잘 다스리기 위해 제시한 생활 규칙, ‘첫째, 해가 진 뒤엔 말을 하지 말라. 둘째, 식사할 때도 말하지 말라. 셋째, 누운 채로 말하지 말라. 넷째, 길을 걸을 때 말하지 말라.’ 등을 이들이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의 지적이 시작된다. “예전 기생들은 가무(歌舞)를 익히되 ‘가’와 ‘무’를 동시에 하지는 않았다. 가창을 할 때는 다소곳이 앉아 소리에 집중했고, 춤을 출 때는 오직 춤만 췄다. 그런데 요즘 댄스 가수들은 춤과 노래를 동시에 한다. 그것도 아주 과격하게 근육과 뼈를 움직이는 춤이 대부분이다.” ●아이돌 춤·노래 함께 하는 것 건강엔 안 좋아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왜 소리를 잘 다스려야 하는 거지? 안 그러면 어떻게 되나? 소리의 이상징후는 몸의 생리적 이상과 맞물려 있다. 쉽게 말해 목소리는 사람의 오장육부 상태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즉, 가무를 ‘격하게’ 함께 하면 심장과 폐, 비위에 많은 무리가 갈 수 있다는 거다. 저자는 줄곧 이런 방식으로 병과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책의 핵심은 분명하다. “먼저 자신의 몸을 잘 알고, 그 뒤 자기 삶의 치유자가 되라.”는 거다. 나의 몸은 ‘나’ 외에도 온갖 병원체와 질병들이 동거하는 공간이다. 당연히 살아가면서 온갖 병을 앓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는 몸이 아프면 어느 병원 무슨 과에 가서 진찰받을 것인가만 생각한 뒤 이후의 과정은 전문가에게 맡겨 버린다. 자신의 병이 뭔지 알기 귀찮고, 무섭고, 짜증난다. 그저 후딱 처방받으면 고쳐지겠거니 생각하고 만다. ●병 치료에 급급하기보다 일상 돌아봐야 이 지점에서 저자의 지적이 이어진다. “이것은 삶의 정말 중요한 부분을 남의 손에 넘기는 것과 같다. 병을 재빨리 치워버려야 할 어떤 것으로만 보는 데서 벗어나 왜 이런 병이 오는지, 이것으로 내 감정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건강해지기 위해 내가 꾸려야 할 일상은 어떤 것인지, 보고 느끼고 공부해야 한다.” 이 말은 곧 동의보감이 세상에 나온 이유와 정확히 일치한다. 1만 79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김병일 사람과 향기] 세 칸 반짜리 도산서당이 주는 의미

    [김병일 사람과 향기] 세 칸 반짜리 도산서당이 주는 의미

    올해는 도산서당이 창건된 지 4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과 학술강연회 등이 경북 안동과 서울에서 잇달아 열리고 있다. 도산서당은 퇴계 선생이 말년에 고향인 도산에 은거한 후 학문과 제자 양성에 전념하기 위해 손수 설계하여 지은 공간이다. 돌아가신 4년 뒤(1574년)에 건립된 도산서원의 모태가 된 곳으로, 평생을 ‘경’(敬)의 태도로 일관하며 ‘학자’ 이전에 ‘사람’을 길렀던 선생의 생전 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유서 깊은 장소이다. 도산서당은 정면 3칸 반, 측면 1칸의 규모로, 방과 부엌 각 하나에 한 칸 반짜리 마루가 곁들여 있는 소박한 구조이다. 마루도 처음에는 한 칸이었으나 뒤에 한 제자가 반 칸을 더 늘린 것이라 하니 그 단출함은 어디 비할 바가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작은 공간에서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보내면서 퇴계 선생이 남긴 삶의 향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짙어지는 느낌이다. 오늘 우리가 450년 전 지어진 이 조그마한 서당을 기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선생은 아들과 손자에게 늘 자상하였으나 타인을 대하는 태도는 엄격하게 가르쳤다. 도산으로 내려온 후, 당시 서울에 살던 맏손부가 잇따라 출산하여 돌이 갓 지난 맏증손자가 젖이 부족한 일이 생겼다. 그러자 출산한 지 한두 달 된 시골집 하녀를 유모로 보낼 것을 손자가 부탁하였다. 선생은 하녀를 보내면 그녀가 낳은 아이는 어떻게 되겠느냐며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남의 아이를 죽여 내 자식을 살리겠다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이며, 이는 네가 배운 성인의 가르침에도 어긋나지 않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유모를 데려가지 못하자 결국 몇 달 후 맏증손자는 불행히 죽고 말았지만, 내 자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가치는 모든 생명은 한결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이라는 점을 가르친 것이다. 제자(간재 이덕홍)가 남긴 기록 가운데는 이런 일화도 전한다. 선생에게 시냇가에서 10여리 떨어진 논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이 논이 계단식 지형의 맨 위에 있었던 모양이다. 이에 따라 이곳에 물을 대면 그 아래 있는 다른 사람의 논들은 물을 대기 어려웠다. 이를 안 선생은 논을 아예 밭으로 바꾸어 버렸다. 49년 아래인 만년 제자(산천재 이함형)가 평소 부부 금실 문제로 고민하자 타이른 이야기도 곱씹을 만하다. 제자의 고민을 알던 선생은 집으로 돌아가는 제자의 봇짐에 편지를 하나 넣어 보냈다. 자신을 예로 들며 어린 제자를 이렇게 타일렀다. 나는 두 번 결혼하였으나 돌이켜보면 후회가 많다. 젊어 결혼한 첫째 부인은 공부하느라 소홀하였는 데다 그마저 둘째아이를 출산하다 사별하는 불운을 겪었다. 둘째 부인은 정신장애를 앓아 결혼 생활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그렇다고 내친다고는 한 번도 생각지 않았다. 부부관계는 인륜의 근본인데 이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공부를 하겠으며, 또 공부를 한들 어떻게 다른 사람과 자식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 그런데 이 편지가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49살이나 어린 제자에게는 깍듯이 ‘공’(公)이라는 호칭을 붙이고 정작 자신을 지칭할 때는 ‘황’(滉)이라며 이름을 썼다는 점이다. 요즘으로 치면 제자는 ‘님’이라 부르고 자신에 대해서는 ‘저’라는 호칭을 쓴 셈이다. 자기를 낮추는 겸손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이에 감복한 제자 내외는 이후 금실을 회복하였고, 선생이 돌아가신 후에는 3년 동안 흰옷을 입고 상주처럼 지냈다. 우리가 퇴계 선생을 지금도 존모하는 이유는 학문이 높아서만이 아니다. 이런 일화들에서 보듯이, ‘사람다움’을 추구하던 선생의 삶은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여전히 많은 가르침을 준다. 그 가르침은 흐트러진 우리의 삶을 이끄는 소중한 자양분이다. 이것이 퇴계학 연구가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 20여개국에서 활발히 진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 칸 반의 조그만 공간에 스며 있는 향기가 갈수록 짙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 만추의 도산서당에 들러 삶의 한 위대한 멘토의 자취를 느껴 보기를 권한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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