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다섯 생명
    2026-04-0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89
  • [공기업 취업 성공기] 신문 매일 읽고 면접·논술도 그룹학습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하며 다행스럽게도 4학년 때 무선설비기사, 정보통신기사 등 전공자격증 2개를 땄다. 6개월 동안 어학연수도 갔다 왔지만 영어성적은 형편없었다. 때문에 취업의 필수요건이 된 토익을 위해 졸업한 뒤 7개월 동안 공부를 하면서 공기업 준비를 시작했다. 대학 입시 때보다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다. 잠도 4∼5시간밖에 자지 않았다. 2004년들어 공기업 첫 합동공채가 시작됐다.‘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오는구나.’라는 생각에 지원하니 세 군데서 서류전형에 합격했다는 통지가 왔다. 결국 한국공항공사 필기와 1차 면접 시험에 붙었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해에만 최종 면접에서 다섯 번이나 떨어졌다. 한때 낙향도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도전해보자. 충분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가.’라고 자위했다. 반드시 실력으로 입사하겠다는 오기까지 발동했다. 2005년 두 번째 합동공채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공항공사에서 신입을 또 뽑았다. 서류전형과 필기, 인적성 검사는 별 문제없이 통과했다.1·2차 면접도 자신감있게 마쳤다. 결국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친구들도 잘 안 만나고 ‘잠수함’을 탔던 2년 동안의 준비 기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감격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 쓰는 말이다. 나폴레옹의 말처럼 ‘불가능은 소심한 자의 환상이요, 비겁한 자의 도피처’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하루하루 정진하다 보면 꿈은 이루어진다. 공사 입사의 개인적인 요령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으려 한다. 여느 시험과 마찬가지로 공사 입사 시험도 정보가 생명이다. 면접과 논술 스터디 그룹을 적극적으로 활용, 다양한 입사 정보를 끊임없이 얻어야 한다. 시사 상식도 매우 중요하다. 신문을 매일 읽고 상식책을 끼고 사는 것은 기본이다. 두 달마다 나오는 상식책도 챙기면 좋다. 한 두번 떨어졌다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 경쟁률이 몇 백대 1이라도 결국 들어가느냐, 못 들어가느냐의 문제다.2대1인 셈이다. 내가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가장 큰 힘이 된다. 고다영 한국공항공사 항로시설본부
  • [설연휴 영화]

    ●미지와의 조우(XTM 오전 10시45분)대부분 영화에서 외계인은 적 또는 침입자로 다뤄진다. 억눌린 사회 분위기에 대한 두려움이 반영된 탓이라고 한다. 특히 사상의 광풍이 몰아쳤던 1950∼60년대에 그랬다. 허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작품에서는 외계 생명체가 우호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미지와의 조우’와 ‘이티’(1982)가 대표적이다. 물론 최근 개봉한 H.G. 웰스 소설 원작의 ‘우주전쟁’(2005)은 예외. 그러나 이 작품에서도 외계인 겉모습은 그다지 괴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인류와 외계인과의 첫 만남에서 의사소통 도구가 ‘음악’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 감독의 영원한 동지 존 윌리엄스의 음악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같은 해 개봉한 ‘스타워즈’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SF 걸작이다. 프랑스 누벨바그 대표 감독 프랑소와 트뤼포가 특별출연한다. 세계 곳곳에서 미확인 비행물체(UFO)의 흔적들이 발견된다. 미국 인디애나주에 살고 있는 로이(리처드 드레퓌스)와 질리안(멜린다 딜런)은 우연히 UFO를 목격한다. 로리는 이후 UFO 기사를 모으고,UFO를 기다리는 등 이상행동을 한다. 이 때문에 직장도 잃고, 가족도 잃는다. 질리안은 섬광물체에 아들을 뺏긴다. 라콤 박사(프랑수아 트뤼포)가 이끄는 세계 과학자들은 외계인과 교신할 수 있는 음악 코드를 개발하고, 정부는 외계인과 접촉을 시도하려고 와이오밍주 사막에 기지를 설치한다. 이 기지의 존재감에 이끌린 로니와 질리안은 군인들의 봉쇄망을 뚫고 그 곳에 가려고 하는데….1977년작.138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범죄의 재구성(SBS 오후 11시55분) 제목처럼 관객들에게 범죄의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이후 경찰 시선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해 나간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고, 다중 분할 화면을 사용하는 등 현란한 편집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한국형 범죄 스릴러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데뷔작이었던 ‘범죄의 재구성’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최동훈 감독은 조승우 백윤식 등과 손잡고 허영만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 ‘타짜’를 준비하고 있다. 사기꾼 최창혁(박신양)은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한국은행을 털 심산으로 사기꾼들의 대부 김 선생(백윤식) 등 사기 전문가 다섯 명을 모은다. 삐걱거리는 팀워크 속에서도 결국 한국은행에서 50억 원을 인출하는데 성공하지만 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된다. 차 반장(천호진)은 김 선생의 동거녀 서인경(염정아)을 추적하기 시작하는데….2004년작.116분.
  • 과메기 고장 호미곶 포항

    과메기 고장 호미곶 포항

    포항과 구룡포는 동해안 중에서도 가장 먼저 해돋이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파란 하늘과 출렁이는 쪽빛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겨울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세상 시름이 씻은 듯 사라지고 제철을 맞은 과메기의 고소함에 입 또한 즐겁다. 주머니가 가볍다고 망설일 필요없다. 포항과 구룡포의 파란 바다는 세상 모든 이의 것이며 과메기 또한 1만원 내외로 ‘딱’ 우리 수준이다. 또한 미리 예약만 하면 무료인 포스코 역사박물관, 등대박물관 등 아이들의 산교육장으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 포항이다. 자, 이 겨울에는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더욱 가까워진 포항으로 나들이하면 어떨까. 글 포항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겨울 호미곶 포항 나들이 “과메기 하면 구룡포 과메기지요. 한번 먹어보이소.”라며 초장을 듬뿍 찍어 내미는 마음씨 좋은 할머니,“불포화 지방산과 단백질이 많고 숙취해소에 그만입니다. 소주 한 잔과 같이 먹어도 술이 취하지 않아요.”라는 김승식(45·대구 서구)씨. 요즘 고소하고 쫀득쫀득한 맛이 끝내주는 과메기가 한창이다. 마른 김에 파, 배추를 놓고 초장을 듬뿍 찍은 과메기 한점 올리면 그 맛이야 어찌 말로 표현하겠는가. 여기에 소주 한잔과 맘에 맞는 사람들이 있다면 무조건 ‘고’다. # 겨울의 진객, 과메기 과메기의 고향이라는 경북 포항 구룡포 바닷가 양지바른 곳이면 어김없이 과메기가 걸려 있다. 구룡포에서 처할머니의 대를 이어 50년째 과메기 덕장을 운영하는 일출과메기(054-284-7555)의 장영수(53)사장은 “예전에는 청어를 꼰 새끼에 끼워 부엌의 살창에 걸어 두었다가 밥을 지을 때 솔가지의 연기가 빠져 나가는 살창에 걸어 두면 외풍으로 자연스럽게 얼었다 녹았다 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며 먹었다.”면서 “1960년대 이후엔 포항 앞바다에서 청어가 잡히지 않아 꽁치를 대신 쓴다.”고 한다. 또한 부엌의 살창이 아니라 해풍이 잘 드는 바닷가에서 과메기 말리는 틀인 ‘대차’에 걸어 얼렸다가 말린다. 요즘은 말리는 방식에 따라 ‘찌거리’와 ‘역거리’로 부른다. 역거리는 꽁치를 통째로 말리는 것을 일컫고, 배를 갈라 뼈와 내장을 추려내고 말리는 것은 찌거리라 부른다. 요즘은 먹기가 편한 찌거리가 주를 이룬다. 과메기는 자연에 노출된 상태이기 때문에 위생이 무척 중요하다. 도로 옆에는 차가 뿜어내는 매연과 먼지때문에 별로 좋지않다. 그래서 일출과메기 덕장은 야트막한 야산에 구룡포가 내다보이는 공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솔향이 나는 맛난 과메기를 만들기 위해 죽염과 솔잎액 엑기스를 뿌려 비린 맛을 없고 예전 맛이 살아 있어 인기란다. 또 과메기를 맛있게 먹으려면 덕장에서 주문해서 먹는 것이 가격도 싸고 좋다. 보통 3일 이내에 과메기를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는데 보통 음식점에서는 유통기한을 지키지 않아 쫄깃하고 고소한 맛을 느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일출과메기로 전화하면 택배로 다음날이면 과메기를 받아 볼 수 있다. 가격도 싸다. 찌거리는 20마리 기준으로 8000원선이다. 또 포항시내 웬만한 음식점에선 과메기를 내놓고 있다. 그 중에서도 토박이들은 옛 삼성생명 자리, 남빈동 하나은행 뒷골목의 해구식당(054-247-5801)을 최고로 친다. 주인 지영자씨가 31년 동안 꽁치 과메기만 팔아 왔다.“아들이 죽천쪽에서 식당에 쓸만 큼만 과메기를 말리고 저와 동생이 주방을 담당하고 있으니 다른 식당들 비해 음식에 정성을 쏟는 것은 당연지사지요. 그래서 손님들이 많이 찾는 것 같아요.” 해구식당으로 전화주문을 하면 초장과 야채, 과메기를 바로 먹을 수 있게 포장해 신속하게 택배로 보내준다.1만 3000원. 이밖에 동국대병원 맞은편의 ‘다락방’(054-283-1915)과 그 인근에 소문난 ‘막창 과메기’(054-275-6410)도 유명하다. # 이것도 맛보세요. 포항에선 물회와 고래고기도 유명하다. 물회는 예전부터 포항 앞바다에서 고기가 너무 많이 올라와 뱃사람들이 젓가락질 할 시간이 없어 고추장에 비벼 먹던 것에서 유래됐다. 포항시청옆 선린병원 건너편에 있는 오대양물회식당(054-244-7164)이 맛있다. 이곳 물회는 다른 지방과 다르다. 신선한 광어나 도다리 등 생선과 야채를 고추장에 비빈 다음 기호에 맞게 물을 넣고 먹는다.“이렇게 해야 생선에 양념이 맛있게 배어 진짜 물회의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라고 사장 박정출(42)씨가 강조한다. 커다란 물회 한 그릇, 매운탕, 밥식혜 등 간단한 밑반찬과 함께 나오는 물회밥이 1만 1000원. 또 고속버스터미널 후문쪽의 ‘코리아물회’(054-274-0574)와 죽도시장 가는 길목의 ‘새포항물회’(054-241-2087)도 들를 만한 곳이다. 고래고기는 포항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별미지만 처음 먹는 사람들은 고래 특유의 향 때문에 좀 거북스럽다. 죽도시장 안쪽의 ‘할매고래집’(054-241-6283)과 옆집의 ‘왕고래집’(054-247-2552)은 고래육회와 수육이 유명하다. # 서울에선 여기가 맛있어요 서울 수서구 일원동 먹자골목(삼성병원 맞은편)에 옥이 이모(02-459-9339)는 제대로 된 과메기를 먹을 수 있는 곳. 주인의 고향이 구룡포여서 친척들이 보내주는 질 좋은 과메기를 사용한다. 또한 포항산 돌문어는 입에서 살살녹는 맛이 그만이다. 돌에 붙어사는 돌문어는 포항 구룡포앞 20㎞정도의 청정 해역에서만 잡을 수 있는 구룡포의 특산물. 서울 광교의 조흥은행 본점 뒷골목에 있는 ‘광교과메기’(02-720-6075)도 유명하다.1992년부터 단 한차례도 메뉴판에 손을 대지 않아 가격이 그대로인 집이다. 과메기를 비롯 생굴, 고갈비가 5000원. 고래고기 2만원이다. 강남구 역삼동의 ‘고래불’(02-556-3677), 충무로 중구청 부근에 ‘영덕회식당’(02-2267-0942)도 맛있다. ■ 지친발길 적셔주는 하얀포말…떠도는 일상 정박시키는 항구 ‘포항’이 여행지로 각광을 받은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얼핏 호미곶의 해맞이 광장만이 유명하지만 구석구석 살펴보면 볼 것도 먹을 것도 많은 곳이 포항이다. # 겨울 바다에서 세상 시름을 잊고 포항에서 구룡포로 향하는 925번 국도에 들어서면 세상 시름이 잠시 잊혀진다. 굽이굽이 돌아서서 옆을 보면 파란 얼굴을 내밀며 끝없이 따라오는 겨울 하늘, 낯선 이방인의 방문에 화가 나서일까 거친 숨을 뱉어내듯 끝없이 출렁이는 파도, 그 위를 맴도는 한 무리의 갈매기들. 감성이 메말라 버린 40대 아저씨의 입에서도 ‘아∼ 아름답다.’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2차선 국도의 옆에 차를 잠시 세웠다. 그러고는 차가운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았다. 가슴이 시원해진다. 다섯시간이 넘는 운전으로 인한 피로가 한꺼번에 싹 날아간다. 무섭게 밀려오는 파도는 끝내 하얀 거품을 이루며 사라지고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이 한적한 마을에는 어김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인생들이 있었다. 다만 도시에 사는 사람에겐 너무나 낯선 풍경일 뿐. 추위는 잊혀진 지 오래다. 그냥 이대로가 좋다고나 할까. 바다와 멀어졌다가는 다시 만나고, 만났다가 헤어지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한 시간여 달리자 호미곶 해맞이 공원이 나온다. 우리나라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가 7번 국도였지만 지금은 공사로 인해 예전의 아름다운 맛이 없어져 아쉬웠는데 포항에서 구룡포로 향하는 925번 도로야말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해안 드라이브 코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우리나라에서 해가 제일 먼저 뜨는 곳 호미곶(虎尾串)이란 조선의 풍수지리학자 남사고(南師古)가 쓴 ‘동해산수비록’에서 한반도는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모양으로 백두산은 코, 이곳을 꼬리에 해당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로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해가 뜬다고 하여 항상 1월1일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또한 ‘상생의 손’이라는 8m가 넘는 거대한 손이 버티고 있다. 오른손은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왼손은 바다에서 육지를 바라보고 있다. 말로만 들었을 때와는 다르게 그 거대함에 몸도 마음도 압도 당한다. 육지의 손 밑에는 사시사철 꺼지지 않는 성화대 불씨 등도 볼 만하다. 또 바다에 있는 왼손 사이로 아침 태양이 떠오른다고 새벽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인기 장소다. 호미곶의 명물 국립 등대박물관(www.lighthouse-museum.or.kr,054-284-4857)은 우리 마음의 안식처로, 그리움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우리나라 등대의 역사와 변천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문 박물관이다. 예전 등대원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등대원 생활관을 비롯해 등대 유물관, 등대 과학관, 배들의 변천과정과 바다지도인 해도 제작에 관한 자료 등이 전시된 해양수산관, 등대원의 하루와 등대의 역사를 주제로 만든 영상물 ‘아름다운 등대’를 감상할 수 있는 영상실 등이 있다. 또한 야외에는 전망대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등대들의 축소 모형을 전시하는 테마 공원 등 다양한 전시물도 아이들에게 인기다. 입장료도 저렴하다. 아이들은 무료, 어른은 700원. 미리 신청하면 1시간 30분가량 안내 도우미의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개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 여기도 좋아요. 포항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포항제철 ‘포스코’다. 도대체 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제철소 견학과 한국 철강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포철 역사관 견학은 아이들과 함께라면 꼭 들러야 할 곳. 제철소 견학은 설 연휴, 추석 연휴를 제외한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 오후 2시. 하루에 두번. 또 역사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볼 수 있으며 일요일이나 공휴일은 휴관이다. 두 곳 모두 견학 희망일을 기준으로 최소 3일전까지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다.www.posco.co.kr나 (054)220-7720. 비용은 무료. 또 포항의 심장과 같은 죽도시장도 둘러볼 만하다.
  •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당선작] 블랙홀/김미정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당선작] 블랙홀/김미정

    ●블랙홀/김미정 등장인물 광식 정애 남자 가인 등을 들고 있는 아이 인철 그 밖의 배우들 각 에피소드들의 시간적 배경은 같다. 에피소드 1 전체 무대는 1,2층의 구조로 되어 있다.2층은 오랜 병원생활을 했음을 짐작하게 해 주는 병실의 내부가 있다. 병실에는 환자용 침대와 보호자용 침대가 있고 침대를 바라보며 유리창이 있다. 유리창 밖으로는 도시의 풍경이 보인다. 양끝으로는 줄을 연결해서 빨래를 걸어 놓았다. 한쪽에는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있고 그것은 병원 비상계단의 모습이다. 침대 옆에는 인공호흡기와 심장모니터기가 놓여져 있다.1층은 어느 산동네를 연상케 하는 배경들이 있고 계단의 정반대쪽에는 지하철 입구의 표시가 그려져 있다. 계단의 앞쪽으로는 벤치가 있고 그 벤치 옆에는 어느 노숙자가 놓고 간 듯한 신문지들과 소주병들이 나뒹군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 얼핏 들으면 기차소리와도 같은 규칙적인 소리.2층의 무대가 조금 밝아지면서 기차소리는 심장 모니터기의 소리로 바뀐다.2층의 무대가 완전히 밝아지면 모니터의 소리는 잦아들고 보호자용 침대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광식의 모습이 보인다. 유리창 밖에는 어깨에 끈을 매단 남자가 유리창을 닦는다. 유리창을 닦다가 소주를 꺼내어 마신다. 광식의 앞에는 먹던 중이었던 김치그릇과 밑반찬 그릇들 그리고 밥그릇이 있다. 나머지 두 침대는 비어있다. 광식:(입맛을 다시며)거 참 맛있겠네. 저 양반 저거 세상을 아는 양반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소주 한 병 사오는 건데.(혼잣말로)거 혼자만 잡숫지 말고 나눠 먹읍시다.(먹던 밥을 계속 먹는다.) 남자가 유리창을 두드리더니 소주병을 내민다. 광식:한 잔 주시게요?아이고 그럼 나야 고맙지요. 유리창 남자가 소주를 따르는 시늉을 한다. 광식이 술잔을 받는 시늉을 한다. 광식:(마시는 시늉)원샷! 캬! 안주는? 안주도 줘야지. 남자가 씩 웃는다. 광식:사람 참 싱겁소. 남자도 하!웃는 모양. 그러고는 유리창을 닦는다. 광식:하, 취한다.(침대의 이불을 젖히니 아이가 반듯이 누워 있다. 광식이 아이의 몸을 옆으로 돌려서 등을 문지른다)우리 딸입니다. 예쁘죠?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이 예수님 귀 빠진 날이래요. 뭐 대단한 양반인지는 몰라도 병원 전체가 들썩들썩 합니다. 우리 병실 환자들은 모두 외출을 나갑디다. 세상을 구원하신 독생자 그리스님인지 놈인지 덕분에 오랜만에 조용하고 좋수.(등을 문지르다가 손을 동그랗게 하고 두드린다.)하나요, 할머니가 지팡이 들고서 달달달, 둘이요, 두부장수 두부를 판다고 달달달, 셋이요, 새 각시가 빨래를 한다고 달달달. 광식이 부르는 노래의 반주와 함께 빨간 등을 든 여자아이가 등장해서 1층의 무대를 돌아다닌다. 아이가 작은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남자가 내려다보고 있다. 아이:(가만히 서서)아빠!일곱은 뭐라고 그랬죠? 남자가 뭔가를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들리지 않는다. 유리창을 두드린다. 광식이 쳐다본다. 남자가 손가락 일곱 개를 유리창에다 댄다. 광식:일곱이요. 일본 놈이 순찰을 돈다고 달달달! 아이:아!(아이가 다시 노래를 부르면서 무대를 돌아다니다가 퇴장한다.) 광식:(아이의 등에 베개를 대주고 이불을 덮어주면서 남자를 빤히 쳐다본다.)우리가 언제 한 번 본 적이 있죠?(유리창에 입김을 불어서 글씨를 쓴다.‘나 몰라요?’큰 소리로 입 모양이 보이게)초등학교 어디? 난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공주에서 살다가 중학교 올라가면서 서울로 이사 왔는데…. 고향이 공주?아닌가?아무튼 형씨 인상 한 번 좋수다. 어쩌다 이런 일…. 뭐 오해는 마슈. 위험하니까. 이런 일 하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잘 될 거요. 인상 보면 알지.(아이를 쳐다보며)우리 애는 십 년째 이러고 누워 있어요.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거든.(사이)원무과에서는 석 달에 한 번씩 청구서가 나옵니다. 일년 만에 집 날리고 벌써 팔 년 짼데 뭐가 남았겠습니까?지금은 월세 낼 돈도 없어서 병원에서 살아요. 뭐 그런 얘기를 밥 먹으면서 하냐고 그러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이게 현실인걸. 만날 울고 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그냥 하루하루 간신히 넘기는 거죠. 하루의 끝은 웃으면서 보내려고 해요. 그게 살아남는 방법이죠.(한숨을 쉬며)그래도 하루에도 몇 번씩 울화가 치밀어요.(조금 작은 소리로)이건 형씨한테만 하는 말인데요. 처음에는 살아준 것만으로도 고맙더니 딱 일년이 지나니까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길어야 삼년이겠지. 웃기죠?딱 일년 만에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걸 우리 마누라가 알면 난리 날 겁니다. 긴병에 효자 없죠?맞습니다. 부모라면 벌써 포기했을 겁니다. 자식이니까 붙들고 있는 겁니다.(큰소리로)진짜 나 몰라요?(한참의 사이 후 고개를 숙인다. 어깨를 들썩인다. 다시 한참의 사이를 두고 고개를 든다.)제길, 소주 한잔에 취했네. 다 잘 될 거요.(사이)그거 하면 하루 얼마나 줍 니까? 남자가 유리창에다 손가락을 대고는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를 세더니 칼을 꺼내어서 줄을 끊는다. 순식간에 남자가 사라진다. 광식:어?(광식은 잠시 아무 움직임이 없다가 주머니에서 전화를 찾는다.)씨!지가 왜 죽어. 죽을 놈이 누군데.(한참 만에 전화를 찾는다. 떨리는 목소리로)저 여기 13층인데요.(사이)네?병원(사이)한영병원요. 사람이 떨어졌어요.(사이)아니 안이 아니고 밖인데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누구냐면…유리창을 닦는 사람인데…. 인상이 좋고…. 어디서 많이 본 것도 같고…. 저 위 동네에 사는…. 헉!(갑자기 입을 막는다. 전화를 놓친다.) 광식이 정신없이 병실을 빠져나가 비상계단으로 내려간다. 머리를 벽에다 반복해서 박는다. 무언가 모를 괴로움에 몸부림을 친다. 그러다가 미친 듯이 웃는다. 한참 만에 다시 병실로 돌아온다. 아이를 바라보고 유리창 밖을 바라본다. 두 손바닥을 유리창에다 댄다. 이제부터는 모든 행동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아이의 호흡기 전원을 끈다. 호흡기 소리가 점점 잦아들다가 멈춘다. 침대 위 아이의 몸이 위로 한 번 뛰었다가 털썩 내려앉는다. 심장모니터의 박동소리가 완전히 멈춘다. 광식의 몸이 털썩 밑으로 내려간다. 무대가 서서히 어두워진다. 광식의 손바닥 자국이 드러난다. 소리:2005년 12월25일 서울의 모 병원에서는 인공호흡기를 달고 생명을 유지하던 15세 김모 양의 아버지가 아이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김모 씨는 병원 소각장에서 아이의 신발을 태우다가 붙들렸습니다. 김모 양은 지난 1998년 교통사고를 당해 그 이후로 계속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살아왔던 걸로 밝혀졌습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아이의 목숨마저 끊어버리게 된 김모 씨는 현재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씨의 다른 가족으로는 아이의 어머니 최모 씨와 8세의 아들이 있는 걸로 알려졌습니다. 김씨는 아내 최모 씨에 의해 경찰에 신고 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날 김모 양의 병실 밖에서는 병원의 유리창을 닦는 강모 씨의 추락사가 있었습니다. 강모 씨의 주머니에는 마시다 만 소주병이 있었고 리프트의 한 쪽에는 분골함으로 보이는 상 자에 하얀 재가 반쯤 들어 있었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아 한층 들뜬 분 위기의 한 쪽에는 이런 어두운…. 암전 에피소드 2 빗소리와 함께 무대가 밝아진다.2층 무대의 소품들은 여전하다. 정애가 지하철 입구를 통해 밀고 다니는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들고 등장하고는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그냥 그 자리에 선다.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어서 닦는다. 남자가 벤치에 앉아 있다가 정애가 있는 곳으로 온다. 정애:(남자를 힐끗 보더니)크리스마스에 눈이 안 오고 비가 오네요. 남자가 쭈그리고 앉는다. 정애도 쭈그리고 앉는다. 정애:(남자를 바라보며)묘한 기분이 들어요. 남자:…. 정애:(천천히 고개를 돌리며)나 좀 봐 주책이야. 남자가 담배를 피운다. 정애:(가방에서 칫솔을 꺼낸다. 혼잣말로 연습한다.)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학교에서나 공부하시느라 살림하시느라 일하시느라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으십니까. 오늘 제가 가지고 나온 물건은 여러분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해소시킬 수 있는 건강 칫솔입니다. 이 건강 칫솔은 아이에스오 9002 인준을 받은 칫솔모를 사용한 칫솔로서 여러분의 이와 잇몸의 구석구석까지 들어가서 찌꺼기와 치석을 제거해 줄 것입니다. 몇 달이 지나도 칫솔모가 상하지 않아 칫솔을 자주 바꾸실 필요가 없습니다.(남자를 쳐다보며)한영병원 1002호에 입원해 있는 가인이를 아시죠? 제 딸이에요. 남자:(그제서야 고개를 돌려서 정애를 본다) 정애:그동안 잘 지냈어요? 남자:…. 정애:당신, 많이 늙었네요. 남자:…. 정애:먹고 살만 하시면 칫솔 두 개만 사주세요.5천원이에요. 이 칫솔은 아이에스오 9002를 인정받았어요. 그게 뭔지 아시죠? 남자가 주머니에서 5천원을 꺼내서 정애에게 준다. 정애가 남자에게 칫솔을 준다. 정애:우리 가인이는 저 혼자 이빨도 못 닦아요. 그래서 칫솔도 필요 없죠.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무대 가운데로 간다. 뒤돌아서 정애를 바라본다. 남자:봉천동 산27번지에 사는 소영이는 어제 바다에 뿌려졌습니다. 며칠 전에 돌에 깔려서 죽었거든요. 그 아이도 이제 칫솔은 필요없을 겁니다. 정애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남자:가인이는 오래오래 살길 바랍니다. 정애가 남자에게 달려들어 옷을 잡고 흔든다. 남자와 정애의 몸싸움. 슬프고도 정열적인 음악이 흐른다. 얼핏 보면 두 사람이 춤을 추는 것 같다.2층 병실로 검은 옷을 입은 조폭이 등장한다. 쇠방망이를 들었다. 조폭:으메 씨벌, 병실 한 번 좋구마잉, 으메 씨벌, 돈 빌려준 놈은 지 엄니 병원비도 없어서 집구석에서 다 돌아가시게 생겼는디 돈 빌려간 놈은 지 자식을 번듯하니 이런 큰 병원에다 모셔두고 있어 잉?니들이 사람이여?개, 돼지만도 못한 것들 아녀 이것!씨발!(방망이를 한 번 내리친다) 정애:병원비가 없어서 사채를 썼어. 갚은 이자만으로도 원금을 까고도 남는데 이 새끼들이 이자가 한달만 밀려도 병실로 찾아오네. 아이의 아빠가 작업복을 입고 1층으로 등장한다. 같은 복장의 배우들이 방망이를 들었다. 광식:이 집은 재개발 지역 내에 있습니다. 나 난 이, 이렇게까지 하긴 싫어요. 어서 어서들 나가세요. 안, 안 그러면 가만 두지 않겠어. 어, 어서 나가!셋을 셀 거야. 하나!둘!씨발 나가요!셋!(방망이를 치켜든다.) 배우들이 같이 치켜든다. 남자:봉천동 산 27번지 재개발 지역. 거기서 살고 있는 사람들. 조폭:울 엄니도 몇 년째 똥오줌 받아내고 있다니까. 니 자식만 자식이고 울 엄니는 늙었응께 고만 돌아가시라 이거여 뭐여!잔말 말고 돈 내놔!안 그러면 자식이고 뭐고 없응께. 인철이가 피에로 분장을 하고 등장한다. 남자와 정애는 본격적으로 춤을 춘다. 광식:인철아!이 자식 여기 있었구나. 나 좀 살려주라!이게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난 못 하겠다. 내가 그 돈은 꼭 갚을게. 인철아. 나 좀 놔 주라. 내 이 손으로 우리 엄니같은 노인네 허리를 치고 머리를 잡고 집에다 불을 지르고 그랬다. 야!인철아!나 좀 ! 인철:아직 먹고 살 만한가 보구나, 니가. 알아서 해. 광식:야, 우리가 불알친구 아니냐. 이 자식아. 인철:어렵게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생각해. 자식을 생각하라고. 광식:인철아. 나 이제 이 짓 못하겠다. 나 좀 봐주라. 인철:야 이 자식아. 일할 사람은 많아. 너 당장 돈 갚을 수 있어? 광식:내가 벌어서 갚을게. 인철:오다가 떨어져서 말이야. 니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나도 곤란해져. 이쪽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 지는 알지? 광식:그래도 난, 난 못해. 인철:이 자식아. 그럼 돈을 가져와. 광식:으으으으으! 인철:쉽게 생각해. 아이의 호흡기 소리가 거칠어진다. 음악이 고조되면서 2층 병실의 조폭과 1층의 광식과 다른 배우들이 방망이를 휘두르고 정애와 남자가 무대를 빙글빙글 돈다. 배우들의 모습은 마치 무협영화의 한 장면 같다. 정애:있는데 안 주는 것 아닌데. 조폭:그려? 갚을 능력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지. 아줌니 아직 탱탱하구마잉. 남자:일곱 살 난 딸이 집 마당으로 뛰어들다가 돌에 깔려 죽었네. 정애:그럴게요, 그럴게요, 제가 가서 일해 드릴게요. 빚만큼 일해 드릴게요. 제발 가주세요. 조폭:오메, 이렇게 쉬운 길이 있었는데 괜히 힘써 부렀네. 현란한 조명이 무대 전체를 채우고 이어서 공사장의 먼지 같은 희뿌연 연기가 무대를 가득 메운다. 무대에 탬버린 소리가 울린다. 연기가 걷힌다. 화려한 옷을 입은 정애가 탬버린을 치고 있다. 정애는 노래를 부른다.2층의 유리창 밖으로 어깨에 끈을 매단 남자가 유골함에서 하얀 재를 허공에 뿌린다.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에피소드 3 웨딩마치 흐르면서 무대가 밝아지면 2층의 무대에는 하얀 천이 내려와져 있다. 무대의 곳곳에는 두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단들이 있고 단위에 사람들이 둘씩 앉아 있다. 그들은 모두 광식과 정애다. 첫번째 단 광식:오늘은 입질이 영 시원찮네. 정애:아이 재미없어. 광식:그러게 왜 따라왔어. 정애:집에 있어도 재미없어. 광식:그러셔?가인이는? 정애:아까부터 곯아 떨어졌어. 텐트 치고 잔다고 좋아하더니. 당신은 낚시가 그렇게 좋아? 광식:그러엄. 정애:우리보다도? 광식:그러엄. 정애:치, 그럼 왜 결혼했냐? 평생 혼자 낚시나 하고 살지. 광식:니가 결혼해 달라고 하도 쫓아 다녀서 할 수 없이 했다. 정애:뭐야?내가 언제? 광식:물고기 머리냐? 정애:하이구 그러셔?그래서, 그래서 후회해? 광식:글쎄에. 정애:이이가 정말.(광식을 꼬집는다.) 광식:아야!조용히해. 물고기들 다 도망간다. 정애:똑바로 말하란 말야.(또 꼬집는다.) 광식:아야. 왜 이래 마누라. 똑바로 말하면 잡아먹으려고? 정애:뭐야? 광식:하하하. 두번째 단 정애:방송국에서 우리 가인이를 찍어간대. 광식:그래?방송국에서 어떻게 알고? 정애:간호사들이 편지를 써 줬대. 광식:정말? 세번째 단의 배우들이 플래시를 터트린다. 정애: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광식:가끔씩 눈을 맞추고 울기도 합니다. 정애:가인아. 어서 일어나서 엄마랑 밖에 나가 놀아야지. 광식:(얼굴을 찌그러트리고 입을 크게 벌려서 운다.) 정애:그럴 땐 우리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요. 그럼 가인이가 곧 일어날 것 같아요. 광식:(정애의 등을 두드린다.)두 시간에 한 번씩 체위를 바꿔주고 등을 이렇게 두드려 줘야 합니다. 정애:가래도 뽑아줘야 하고요. 낮에는 어머니가 와 계시고 밤에는 우리가 교대로 하죠. 낮에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요. 정애와 광식의 역할을 바꾸어 정애가 광식의 등을 두드린다. 광식:가장 필요한 거는 역시…. 정애:(얼른)아이의 병원비를 석 달에 한 번씩 계산해야 해요. 셋째 단의 배우들이 플래시를 터트린다. 세번째 단 정애:밑 빠진 독에 물붓기지. 벌써 통장이 바닥났어. 광식:인수가 걱정이야. 정애:왜? 광식:장모님이 병원으로 데리고 왔어. 정애:그래서? 광식:데리고 가서 자장면을 사줬는데, 아이가 이상했어. 정애:이상해? 광식:자장면을 먹다가도 눈을 깜빡하고 얘기도 잘 하지 않고 그저 눈만 깜빡거렸어. 정애:하도 오랜만에 보니까 낯설어서 그랬겠지. 광식:그게 아니야. 정애:그럼, 아이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 광식:장모님이 그러는데 신경증 증세가 있대. 정애:뭐? 광식:우리가 잘 돌봐주지 못해서 그래. 태어나고 얼마 있지 않아 가인이가 그렇게 되고…. 아무리 장모님이 신경 써 줘도. 정애:그래서 엄마가 잘 못 돌봐서 그런단 거야? 광식:이 사람이!누가 그렇대? 정애:그럼 뭐야, 그럼 뭐냐고. 광식:으이구, 왜 억질 부려. 내가 뭐라고 했다고. 정애:몰라. 정말 미치겠다. 다른 배우들이 세번째 단을 쳐다본다. 네번째 단 광식:당신 저녁마다 어디를 나가는 거야. 정애:내가 말했잖아. 친구 식당일 도와준다고. 광식:당신 정말! 정애:어서 밥이나 먹어. 광식:…. 정애:유리창 닦는 아저씨가 죽었어. 광식:뭐? 정애:집이 재개발돼서 다 부숴지고 식구들이 다 뿔뿔이 흩어지고 그랬대. 광식:그래서, 죽었어? 정애:줄을 끊었어. 광식:다, 당신이 봤어? 정애:아니, 들었어. 깡패들이 와서 집을 다 부쉈대. 참 기분이 묘해. 그 아저씬 우리 가인이가 바깥세상을 잘 볼 수 있게 유리창을 깨끗하게 잘 닦아줬는데. 광식:…. 정애:불쌍하다. 그치?그런 거 보면 우리만 힘든 것도 아냐. 가인이는 이렇게 살아 있잖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도……. 광식: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 그게 어울리는 말이니? 정애:왜 이래?오늘?짜증이 컨셉트야? 광식:힘들겠다. 자기는. 정애:새삼스럽게 왜 이래. 광식:밤마다 춤추고 노래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 정애:뭐? 광식:…. 정애:어, 어떻게 알았어? 광식:더럽다. 정애:누가? 광식:내가. 정애: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당신이 사채만 안 썼어도. 광식:당신이 다른 남자들 앞에서 웃고 있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쏠려. 정애:그럼 가서 일억만 벌어와. 광식:제길! 정애:당신이 신체 포기각서도 썼다며. 콩팥하나 떼어줬는데 이번에는 뭘 주려고?눈?간?심장?그럼 우리 가인이는?당신이 죽으면 가인이도 죽어. 광식:개새끼들한테 돈을 빌리는 게 아니었어.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정애:허풍 떨지 마. 광식:뭐? 정애:어렵지 않아. 그냥 노래만 불러. 광식:거기가 그런 데냐?노래만 부르는 데냐고. 정애:정 못 믿겠으면 따라와서 보면 되잖아. 광식:꿈에도 생각 못했어. 당신이…. 정애:아까 어머니가 호박죽 끓여 오셨던데 먹을래? 광식:…. 정애:총각김치도 있어. 광식:개새끼. 정애:애 듣는 데서 왜 자꾸 욕을 하고 그래. 광식:듣긴 누가 듣는다고 그래. 병신이! 정애:(광식의 뺨을 친다.) 광식:인생이 억울하다. 정애:…. 광식:…. 정애:가인이가 다 들어. 세 단의 배우들이 일어나서 계단으로 올라가서 하얀 천을 내린다. 침대위의 아이가 호흡기를 단 채 침대에 앉아있다. 빨래가 매달려 있는 줄 사이에는 등이 여러 개 걸려 있다. 등이 하나둘씩 켜지면서 정애의 얼굴 몽환적이 된다. 무대에는 등의 불빛만이 있다. 정애:이상하지. 유리창 아저씨가 우리 병실 앞에서 하얀 재를 뿌리는 꿈을 꿨어. 그게 우리 가인이가 죽어서 태운 재 같아서 가슴이 저려 죽는 줄 알았어.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당신 얼굴이랑 똑같이 생긴 거야. 광식:그 사람. 자기 아이가, 무너지는 집에 깔려서 죽었어. 정애:어떻게 알아? 광식:나도 꿈을 꿨어. 둘이서 장난삼아 주거니 받거니 소주 한 잔 하는데 그 사람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 거야. 초등학교 동창인가 중학교 동창인가 물어보려는 참에 줄을 끊더라. 그러고 나니까 생각이 나는 거야. 죽은 그 아이를 많이 닮았더라. 내가 그 사람을 닮고 죽은 아이가 가인이를 닮고 ……. 정애:꿈을 꾸는 것 같다가 일어나보면 꿈이랑 별 차이가 없는 현실이 돌아와. 광식:내가 거기 있었어. 아이가 죽을 때 내가 거기 있었어. 죄책감 때문에 미칠 것 같다. 배우들이 등 앞에 서있다. 하나의 등에 하나의 광식과 정애. 두 사람이 조금 더 몽환적인 상태가 된다. 정애:지금도 꿈을 꾸는 것 같아. 광식:꿈에서 보면 우리의 머리맡에 등이 하나씩 걸려 있어. 정애:예쁘다. 광식:등이 하나씩 꺼져. 정애:슬프다. 배우들이 등을 차례로 끈다. 광식:가인이 머리위의 등은 아직 켜져 있어. 정애:다행이다. 광식:(두 팔을 천천히 들어올린다)나는 꺼진 내 등을 부여잡고 울어. 당신 등을 부여잡고 울어.(울음을 터트린다.) 정애:부모란 게 그런 거야. 자식이란 게 그런 거야. 광식:저기 아직 꺼지지 않았지만 많이 희미해진 등들이 있네. 정애:그건 누구의 등일까? 광식:인수. 정애:저게 우리 인수 등이야?어머, 정말 빨갛고 작은 등이네. 광식:그 아이, 그 아이 아빠. 정애:어쩜, 저렇게 예쁜 등을 가진 아이였어. 광식:(손을 원을 그리며 돌린다.)나는 가인이의 등을 꺼. 정애:어?그럼 안돼. 광식:천천히, 조금씩 심지를 줄여. 미안해. 정말 미안해. 배우가 가인이의 등을 끈다. 앉아있던 아이의 눈이 무섭게 커진다. 호흡을 거칠게 쉰다. 그러다 점점 잦아든다. 앉은 채로 숨을 멈춘다. 정애가 광식의 목을 조른다. 남아 있는 등들이 무대를 비춘다. 숨을 멈춘 가인의 눈이 등불처럼 떠져 있다. 암전. 에피소드 4 1층 무대의 한곳에 햇빛처럼 조명이 드리우고 광식이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있다. 광식의 그림자가 무대 전체에 비추어지면서 광식의 외로움이 극대화된다. 정애가 계단을 통해 내려와서 무대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간다. 소복을 입고 있다. 광식의 그림자에 정애의 모습이 겹친다. 정애:(허공에 손을 대본다.)크리스마스에 눈이 오면 뭐라고 그러지? 광식:메리 크리스마스. 정애:치, 화이트 크리스마스 아냐? 광식:알면서 왜 물어봐? 정애:어서 일어나서 이리로 와. 집에 가야지. 광식:왜 이래? 당신이 이쪽으로 와야 해. 병원으로 가는 길은 이쪽이야. 정애가 광식의 쪽으로 걸어오다가 멈춘다. 정애가 당황해하며 멈춰 서서 양쪽을 바라본다. 정애:어디로 가지?가인이가 죽었는데. 광식:(놀라며)무슨 소리야?가인이가 죽어? 정애:균에 감염이 돼서 열이 40도까지 올라갔어. 누가 때리지 않았어도 온몸에 멍이 들고 입과 항문으로 피가 줄줄 나왔어. 당신이 없는 동안에 가인이가 죽었어. 지금 가면 볼 수 있어. 광식:(가슴을 쥐어짜며)아! 정애:죽는 건 너무 순간이라 처음엔 나도 믿을 수가 없었어. 집으로 데려와서 씻기고 옷을 입히고 당신을 기다렸어. 오늘쯤 당신이 병원으로 올까봐 이리로 왔어. 광식:우리한테 집이 있었나? 정애:가인이를 보내려고 집을 구했어. 며칠동안만이라도 있을 수 있었어. 오늘 나가야 해. 주인이 죽은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걸 보고는 당장 나가라고 그러는데 며칠만 봐달라고 빌었어. 광식:난 꿈을 꾸는 것 같아. 정애:다른 병실 아이도 죽었어. 아이 아빠가 호흡기를 껐어. 뉴스에도 나왔어. 그 아이 아버지는 잡혀 갔어. 나도 꿈을 꾸는 것 같아. 아니 잘 모르겠어. 지난 8년이 꿈인지, 아니면 지금이 꿈인지. 광식이 운다. 그림자가 흐느낀다. 정애의 몸에 겹쳐져서 두 사람의 흐느낌이 된다. 광식:장례비는? 정애:아이 옷하고, 염할 것 하고, 화장터 가서 화장할 것 하고 집세 내고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무대 위를 비추는 조명이 시간이 흘러감을 알게 해준다. 그림자가 점점 작아진다. 광식:하나요, 할머니가 지팡이 들고서 달달달…. 정애:차내에 계시는 승객 여러분, 여기를 잠시 봐 주십시오. 우리가 흔히 쓰는 칫솔은 한달만 써도 칫솔모가 쉽게 닳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칫솔로는 치석까지 제거되지 않습니다. 광식:둘이요, 두부장수. 정애:여기 새로운 칫솔이 나왔습니다. 몇 달을 써도 칫솔모가 손상되지 않는 칫솔입니다. 이를 닦으면 부드러운 칫솔모가 이의 구석구석까지 파고 들어가 찌꺼기와 치석을 제거해 줍니다. 광식:낙원으로 갔니? 정애:이를 닦는 동안 여러분을 낙원으로 데리고 가줄 칫솔이 두개에 오천원입니다. 광식:정말 하루저녁이 꿈같다. 아이들이 죽고 어른들은 자살하고 마치 블랙홀에 빠진 것 같아. 정애:하얀 옷을 입어서 니 모습이 성모 마리아처럼 성스럽고 숨소리는 너무나 고요해서 세상의 모든 소음을 덮어주었어. 엄마는 꿈을 꾼다. 니가 등불을 들고 나타나 아빠를 위로해주고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선하게 해주는 꿈을……. 죽은 이들이 등불을 들고 등장한다. 자신의 영정사진을 들었다. 환하게 웃고 있다. 조명이 서서히 암전된다. ■ 당선소감 “수술후 벅찬 소식… ‘이런게 인생이구나’ 느껴” 갑자기 배에 기형종이 생겨 수술을 받게 되었고 수술 직후 당선 소식을 들었다. 통증과 전신마취 후의 몽롱함 속에서 들은 가슴 벅찬 소식이었다.‘이런 게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대전여민회’라는 여성운동단체의 연극 소모임 ‘돼지꿈’에서 활동을 해 왔다.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여성 문제를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을 하면서 ‘연극’이라는 것이 사람의 다친 마음을 치료해주고 닫힌 마음을 열어주는 최고의 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간호사로서 막연히 연극에 대한 동경만 가지고 있던 나를 연극판으로 이끌어주고 몇 년을 한결같이 믿어준 대전여민회의 언니와 동생들 그리고 진연 언니에게 가장 먼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나와 같이 몇 년을 울고 웃으며 연극을 했던 모든 돼지꿈 단원들과도 술 한 잔 하면서 기쁨을 나누고 싶다.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다. 단 몇 평의 무대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매력적인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김상열 교수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부모님, 대전대의 모든 교수님들과, 같이 스터디했던 동료들, 그밖에 작품을 열심히 읽어주고 평을 해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아 주었던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병마와 싸우고 있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위로의 말과 함께 개인이나 가족의 병이 아닌 사회의 병으로 인식해 같이 치료할 날을 바라며 당선 소감을 마친다. 김미정 ●약력 1971년 대전 출생 충남대학교 간호학과 졸업, 대전대 문예창작대학원 수료 대전여민회 문회위원장(연극모임 ‘돼지꿈’ 연출 및 극작 활동) ■ 심사평 “꿈·현실 넘나들며 존재의 불가사의 부각 돋보여” 신춘문예에도 유행은 있는가 보다. 올해 응모작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심사를 하면서 그 작품이 그 작품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다른 말로 하면 개성 있는 작품이 눈에 띄지 않았다는 말이다. 자의식과 관념이 과잉되어 작가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작품들, 고통의 아우성만 보여주고 고통의 근원을 성찰하지 않으려는 엄살과 감상(感傷)덩어리의 작품들, 무뇌아적 형식실험에 진부한 소재를 안이하게 결합한 작품들, 존재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내 보이려는 도살의 욕망은 보이나 존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나 깨달음은 보이지 않는 작품들 등. 개성이나 독창성의 기준을 떠나 극작의 기본기를 중심으로 작품을 선별하려고도 해보았으나 단편희곡이 지녀야 할 덕목을 지닌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소한 소재를 의미심장하게 구성해내는 능력, 압축적이면서 오랜 울림을 줄 수 있는 내공, 존재의 심연을 깊고 섬세하게 응시하는 통찰력을 지닌 신인을 만날 수 없었다. 정말 심사를 하는 입장에서 독창성보다 기본기에 충실한 신인을 기대했다. 그 이유는 대개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이 등단과 함께 사라져가는 경우가 너무나 허다하기 때문이다. 등단은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 시작과 동시에 끝을 내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미정의 작품과 박재원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거론되었다. 박재원의 희곡은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서라운드(surround), 다시 말해 삶의 조건에 대한 성찰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러나 형식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삶의 조건에 대한 중심인물의 대응이 자폐적이라는 지적 또한 면할 수 없었다. 김미정의 ‘블랙홀’은 공간, 인물, 사건의 혼재와 병치, 꿈과 현실의 넘나듦을 통해 존재의 불가사의한 면을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무엇보다 연극 공간의 활용과 극적 이미지의 연결이 돋보였고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와중에도 코믹함을 잃지 않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철리 김태웅
  • 뮤지컬 ‘프로듀서스’ 주연 송용태·김다현

    살면서 뜻대로 되지 않는 건 성공만이 아니다. 때론 쫄딱 망하는 것도 맘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적어도 뮤지컬 ‘프로듀서스(The producers)’의 사기꾼 콤비 맥스와 레오에겐 그렇다. 한때 잘나가던 흥행술사였으나 지금은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제작자 맥스와 소심한 회계사 레오. 둘은 일부러 공연을 망하게 해서 투자금을 챙겨 달아날 계획을 짜고 말도 안 되는 작품을 올리지만 뜻밖에 대박을 터트리면서 오히려 곤란을 겪는다. 브로드웨이 최신 흥행작 ‘프로듀서스’는 이처럼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속사포 같은 입담과 코믹 댄스, 예측 불허의 반전 등으로 관객의 배꼽을 쥐게 하는 하이 코미디물이다. 내년 1월13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올리는 라이선스 공연에서 각각 맥스와 레오를 맡은 배우 송용태(53)와 김다현(25)은 “배우들끼리 웃느라 연습을 제대로 못할 정도로 재밌는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연기 경력 30년인 송용태나 이제 막 2년을 넘긴 김다현, 둘 모두에게 이 작품은 기회이자 도전이다.1977년 서울시립가무단(현 서울시뮤지컬단)에 입단해 서울예술단 예술감독을 지낸 송용태는 중후한 외모와 이미지 덕에 ‘시집가는 날’의 맹진사,‘태풍’의 알론조왕,‘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헤롯왕 등 묵직한 역할을 주로 맡아왔다.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아 답답해하던 차에 운좋게 이 작품을 만났다.”는 그는 “완전히 망가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지만 연습하는 과정에서 내 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기쁨 또한 아주 크다.”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베테랑 연기자이지만 처음 해보는 정통 코미디 연기가 아직 몸에 익지 않아 힘든 점도 적지 않다.“코미디는 타이밍이 생명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김다현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페임’‘사랑은 비를 타고’‘헤드윅’에 이어 이번이 다섯번째 뮤지컬 무대다. 순수한 베르테르에서 강렬한 헤드윅까지 짧은 경력에 비해 다양한 작품을 소화했다. 그는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것에 끌린다. 연기자로서 가능한 여러가지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어 코미디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고교때부터 뮤지컬배우가 꿈이었다는 그는 대학로에서 소문난 열정파 배우다. 작품 성패의 관건은 맥스와 레오의 콤비 연기.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아는 두 사람은 30년 가까운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이미 찰떡 궁합을 자랑한다. 서로에게 비친 이들의 모습은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참 사랑스러운 후배”(송용태)“청년 못지않은 열정을 지닌 닮고 싶은 선배”(김다현)다. 맥스와 레오를 ‘귀여운 사기꾼’이라고 표현한 두 사람은 “유쾌한 사기행각으로 관객들의 스트레스를 확 풀어주겠다.”고 공언했다.2월14일까지.(02)501-7888.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책꽂이]

    ●프로메테우스(갈리나 I. 세레브랴코바 지음, 김석희 옮김, 들녘 펴냄)‘자본론’의 저자인 칼 마르크스의 생애를 담은 대하소설.16년 전 출간된 초판을 보완한 개정판이다. 마르크스와 더불어 고뇌하고 경쟁했던 실존 인물들과 작가가 상상력으로 빚어낸 가공의 인물들을 통해 19세기 유럽의 격동적인 사회상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전 7권, 각권 1만원.●수탉(고진하 지음, 민음사 펴냄)‘얼음수도원’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다섯번째 시집. 담벼락 아래 민들레에게서 ‘한해살이 생의 심연’을 발견하고, 우듬지 끝이 휘어진 나무에게서 모진 ‘생의 욕망’을 바라보는 등 자연에서 찾아낸 생명의 다양한 모습을 노래했다.7000원.●언젠가 내가 돌아오면(전경린 지음, 이룸 펴냄) 지난 여름 독일 외무성 초청으로 뮌스터 근처 예술인촌에 머물렀던 저자가 소설 ‘황진이’ 이후 1년 만에 내놓은 신작. 도덕과 규범, 제도를 거스르는 불륜의 사랑을 통해 삶의 숨은 진실을 성찰한다.9500원.●3번 출구(표명희 지음, 창비 펴냄)2001년 ‘창작과 비평’ 신인소설상으로 등단한 저자의 첫 소설집. 삶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눈앞의 이기심이나 엉뚱한 자기 표현으로 장벽 안에 갇히는 인물 등 우리 사회 여성들의 문제를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소설 8편이 실렸다.9500원.●수상한 식모들(박진규 지음, 문학동네 펴냄)올해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단군신화 속 곰이 신의 뜻을 따른 대가로 여성의 시조가 됐다면, 호랑이는 신에게 복종하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여자가 된 짐승이라는 설정에서 출발해 호랑이의 후예들인 ‘호랑아낙’들의 활약상을 그린 유쾌하고 황당한 역사소설.9500원.●시인 박물관(손현숙·우찬제 글·김신용 사진, 현암사 펴냄)‘꽃’의 김춘수에서 ‘햇빛 속에 호랑이’의 최정례까지 한국 현대시에 방점을 찍은 시인 58인을 엄선해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과 짧은 산문을 함께 묶었다.‘현대시학’ 연재물에 문학평론가 우찬제의 시인론을 덧붙였다.1만 8000원.
  • [숫자로 본 2005 스포츠] (5) 신비의 5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5’는 신비의 숫자였다. 사람의 한 손 손가락 수가 다섯개이고 당시 알려진 행성의 수가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 등 다섯개였다. 게다가 대개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맺는 식물의 꽃잎이 다섯장이라는 사실에서 그들은 ‘5’가 생명을 주는 숫자라고 여겼다. 올 한 해 스포츠에서 신비의 숫자 ‘5’와 인연을 맺은 선수들이 있다. ●한국인 최초 NBA 무대 서다 한국농구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이 지난 1월8일 있었다.223㎝의 장신 센터 하승진(20·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이 이날 포틀랜드에서 열린 마이애미 히트전에서 자신의 등번호 ‘5번’을 달고 종료 1분11초를 남기고 교체 출장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프로농구(NBA) 코트에 발을 내디딘 것. 비록 아무 기록도 남기지 못했고 팀도 졌지만, 한국인에겐 불가능하리라던 빅리그 무대에 서게 된 것만으로 충분했다. 하승진은 이후 04∼05시즌에 18경기를 더 나와 평균 1.4점 0.9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올시즌에도 8경기에서 2.1점 2.0리바운드로 ‘빅리그급’ 기량을 키워갔다. ●리버풀, 기적같은 유럽 챔프 등극 지난 5월26일 터키 아타튀르크 스타디움은 붉게 물들었다. 붉은 유니폼을 차려입은 프리미어리그 명문 리버풀이 이날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이탈리아 명문 AC밀란에 마법같은 역전극을 펼치며 챔피언 트로피에 입을 맞춘 것. 리버풀은 이날 전반에만 AC밀란에 3골을 내줬다. 하지만 후반 9분부터 5분 동안 기적같은 3골을 몰아치며 동점을 이룬 뒤,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예지 두덱의 눈부신 선방에 힘입어 3-2로 승리, 우승했다. 이로써 리버풀은 1984년 이후 21년 만이자 통산 ‘5번째’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푸홀스,4전5기 끝에 리그 MVP 지난달 16일에는 미국프로야구에서 ‘5’와 관련된 소식이 날아들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천재’ 1루수 앨버트 푸홀스(25)가 4전‘5기’끝에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MVP) 자리에 오른 것. 푸홀스는 올시즌 타율 .330,41홈런,117타점 등 트리플크라운급 활약에다 출루율과 장타율, 득점과 볼넷 등 공격 전부문에서 상위권에 들어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위협적인 타자’임을 뽐냈다. 그는 2001년 메이저리그 데뷔 첫 해부터 타율 .329 30홈런 130타점을 올렸지만 같은해 한시즌 최다 홈런(73개)을 갈아치운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밀려 MVP 투표에서 2위에 그친 뒤, 지난해까지 4년 연속으로 본즈의 그늘에서 눈물을 흩뿌려왔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적막/박남준 지음

    시인은 전주 모악산에서 10년 넘게 홀로 지냈다. 마을에서 족히 15분을 걸어들어가야 하는 깊은 산속의 외딴 집을 시인은 ‘무덤같은 집’이라고 불렀다.“어둡고 습한 기운 탓에 시마저도 습해지더라.”는 시인은 2년 전 하루 종일 따뜻한 햇볕이 드는 경남 하동의 지리산 자락 악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여전히 혼자다.‘밥상머리 맞은편/내 뼈를 발라 살점을 얹어줄 사람의/늘 비어있던 자리는 달라지지 않았다’(‘이사, 악양’중) 시인 박남준(48)이 모악산의 습기와 지리산의 온기 속에서 건져올린 시들을 묶은 신작 시집 ‘적막’(창비)을 펴냈다.‘다만 흘러가는 것들을 듣는다’이후 5년 만이다. 등단 경력 21년에 이제 다섯번째 시집이니 ‘전업시인’치고는 꽤 과작이다. 시집 출간을 계기로 모처럼 서울 나들이에 나선 시인은 “일년에 열두어편밖에 쓰질 못한다. 그러다보니 책 한권을 묶는 데 평균 5년이 걸린다.”며 웃었다. 제목 이야기부터 묻지 않을 수 없었다.“지금까지는 적막하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적막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음놓고 적막을 이야기할 수 있을 때 하자는 마음으로 사십대 끄트머리에 서둘러 책을 냈습니다.” ‘눈 덮인 숲에 있었다/어쩔 수 없구나 겨울을 건너는 몸이 자주 주저앉는다/…/흰빛에 갇힌 것들/언제나 길은 세상의 모든 곳으로 이어져왔으나/들끓는 길 밖에 몸을 부린 지 오래/쪽문의 창에 비틀거리듯 해가 지고 있다”(‘적막’중) 시인은 최근 몇년간 다양한 경험들을 했다. 난생 처음 외국에도 나가봤다. 네이멍구 사막을 비롯해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터키, 중국 실크로드 등을 다녀왔고,8500리 길에 이르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했다. 시인은 “더 나이가 들면 못해볼 일들을 원없이 해봤다. 그 경험들이 이번 시집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이후 20년 넘게 홀로 지내며 자연 속에 은거하는 시인의 삶은 안빈낙도 그 자체다.15평 텃밭에 철마다 채소를 심어 자급자족한다는 시인은 “그렇게 바라던 시집이 나왔다는 전갈을 받고도 무를 뽑아서 동치미를 담그느라 상경을 하루 미뤘다.”며 웃었다. 한달에 한번 ‘비린 것’이 먹고 싶을 때 고등어나 갈치를 사러 장에 나가는 것 말고는 돈 들어갈 일이 거의 없으니 한달 생활비는 많아야 20만원을 넘지 않는다. 저금통장에 든 돈은 200만원. 세상 떠날 때를 대비한 돈이다. 그 이상의 돈이 들어오면 복지시설에 기부한다. 수행자처럼 홀로 지내는 것에 익숙한 시인이지만 여든이 넘은 노모에 대한 죄스러움은 어쩌지 못한다.‘어째서 당최 기별이 없다냐/에미는 이렇게 보고 싶은데/어디 갔어 내 아들아/…/전화기 속에서 징징거리는 늙은 여자가 걸어나온다. 눈시울 훔치며 전화를 했던가’(‘전화’중) “사람들은 적막하고, 권태로운 걸 두려워합니다. 속도감에 취해 사는 현대인들이 한번쯤은 적막감을 느껴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이 사통팔달, 한국 제일의 목에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줍시다.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이곳에 와서 책을 서서 보려면 서서 보고, 기대서 보려면 기대서 보고, 앉아서 보려면 앉아서 보고, 베껴 가려면 베껴 가고, 반나절 보고 가려면 반나절 보고, 하루종일 보고 싶으면 하루종일 보고, 그리고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고 사지 않아도 되고, 사고 싶으면 사 들고 가도 좋습니다.”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는 ‘대산(大山) 신용호’라는 평전에서 당시 세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싸라기 땅인 종로 1가 1번지 교보빌딩 지하에 교보문고를 세운 일에 대해 이같은 논리로 동의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한국의 미래를 모토로 만든 교육보험에도 청소년들의 지적 수준과 나라의 성장은 비례한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창업 이념도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이다. ●독립운동 집안에서 태어난 다섯째 아들 신 창립자는 1917년 8월 전남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솔안 마을에서 부친 신예범 선생과 모친 유매순 여사의 6남 중 5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며 잦은 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가장 노릇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곱살 때는 폐병에 걸려 죽는다는 선고도 받았다. 열살 즈음 병이 나았지만 학교를 가진 못했다. 형편이 어려운 데다 형들이 각종 애국 운동으로 집안을 돌보지 않아 어린 마음에도 그가 살림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는 대신 ‘책속에 길이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밤에는 책을 읽었다. 동생의 책은 물론 주변에 보이는 책은 닥치는 대로 가져다 보았다. 겨울엔 잠과 싸우기 위해 방에 불도 때지 않고 책을 읽다 동상에 걸리기 일쑤였다. 당시 ‘천일독서’를 목표로 각종 위인전, 철학서, 고전, 사서를 섭렵했다. 비록 학교 문턱에는 가지 못했지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독서철학으로 스스로 내실을 다졌다. 함께 교보생명 창업을 도운 막내 동생 신용희(83) 전 회장을 제외하고 다른 형제들은 대부분 애국운동에 몸담았다. 큰형인 고 신용국옹은 일제시대에 항일운동을, 광복 후에는 청년 노동운동을 했다. 그 큰아들인 신동재씨가 2000년까지 교보의 부동산관리 전문 자회사인 교보리얼코의 회장을 지냈다. 둘째 형 고 신용율씨도 항일운동에 몸담았으며, 그의 둘째 아들 신평재(67)씨가 현재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일은행 상무로 재직하다 1991년 제의를 받고 교보생명 사장 등을 역임했다. 셋째 형 신용원옹은 도쿄 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항일음악가로 활동하다 납북했다. 넷째 형 고 신용복옹은 일제 당시 조선생명지사장을 지냈다. 막내 동생 신용희 전 회장은 목포상고를 나와 산업은행에서 일하다 한국전쟁 이후 줄곧 신 창립자를 도와 함께 일했다.1967년 교보생명 창립 이후에는 30년간 교보에 몸담으며 부사장, 회장 등을 지냈다. 그의 아들인 신인재(39) 보드웰 인베스트먼트 사장(8%)과 함께 교보생명 지분을 13.25% 갖고 있다. 신 사장은 고 신 창립자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은 큰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신 사장은 최근 이동통신사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코스닥 상장업체 무선인터넷솔루션 회사인 필링크의 대표이사 직함도 얻게 됐다. ●교육열을 사업으로 연결한 기지…교육보험의 탄생 문학가를 꿈꿨지만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사업에 뜻을 세웠다. 약관이 되던 해에 서울로 갔고 이어 1936년 중국에서 양곡 수송 사업을 벌였지만 광복과 함께 10년간 닦은 기반을 버리고 빈손으로 귀국했다.1946년. 귀국후 첫 사업으로 전북 군산에 ‘민주문화사’란 출판사를 냈으나 외상 책값이 회수되지 않아 간판을 내렸다. 그렇게 몇 차례 사업에 실패한 뒤 문득 중국에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논 한 뙈기 없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강한 교육열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무형원자재인 것이다.‘생·로·병·사’중 유일하게 보험이 빠져 있는 ‘생’ 부문에 교육보험을 끼워넣어 상품화하기로 했다. 당시 보험에 대한 인식은 형편 없었다. 일제시대 보험은 수탈 방식이자 보신(保身) 방편이었다. 더욱이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도 미치지 못해 보험에 들 여유가 없었다.1954년 정부가 보험업을 재개시켰으나 기존 생명보험 회사들이 대부분 휴면상태에 있을 만큼 보험업은 쑥대밭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험난해서인지 국민의 80%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그의 재기가 번뜩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찾아가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보험을 들면 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설득한 것이다. 창업 당시에는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지 못했다.1958년 종로1가 60번지 2층짜리 건물에서 직원 46명과 함께 먼저 ‘태양생명보험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교육보험이란 업종상 생명보험으로 분류돼 상호에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을 수 없었다. 교육열을 자원으로 만든 상품이었고 당시 생명보험에 대한 인식도 열악해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포기하지 않았다.1958년 1월 창업한 뒤 관계 공무원을 끊임없이 설득, 같은 해 7월 상호변경 승인을 얻어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을 출범시켰다. ●슬하 2남2녀의 혼맥 1943년. 중국에서 한창 양곡수송 사업을 크게 벌이던 신 창립자는 당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급히 귀국했다. 도착해 보니 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으로 그를 맞아주셨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일 모레가 네 장가가는 날이다.”는 아버지의 한마디. 결혼을 시키려고 거짓 소식을 보낸 것이다. 당시 남자 26세는 혼기를 놓친 나이였지만 그는 벌인 사업 때문에 아직 결혼할 때가 아니라고 여겼다. 도망칠 마음까지 먹었다고 고백하며 배려를 바랐으나 아버지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눕는 바람에 결혼식을 치렀다. 부인 유순이(81)씨는 당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년제 전수학교까지 마친 명문가 출신 규수. 사업에 전력을 쏟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남편을 탓하지 않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 묵묵히 2남2녀를 길러냈다. 자녀들의 혼사도 그와 비슷하다.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 모두 중매 결혼이다. 명문 대가와의 정략 결혼은 눈에 띄지 않는다. 큰딸 신영애(56)씨는 전 서울대학교 의과대 의학과 마취과학교실 교수 함병문(58)씨와의 사이에 현진(32), 지훈(31), 세훈(25) 등 2남 1녀를 두었다. 신영애씨는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지분 평가로 지난 2004년부터 단번에 350억원대 자산을 보유, 연말마다 언론에서 선정하는 여성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둘째 딸 신경애(54)씨는 법조인에게 시집가 1남1녀를 낳았다. 남편 박용상(61)씨는 서울대 법대에서 박사까지 마친 뒤 사법시험에 합격,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활약한 뒤 방송위원회 위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국회 공직자윤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변호사박용상법률사무소를 운영중이다. 박용상씨의 큰형 용설씨는 내외빌딩관리㈜ 대표, 동생 용삼씨는 내외엔지니어링 대표다. 고 신 창립자의 자리를 이어받은 큰 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은 부인 정혜원(48) 봄빛여성재단 이사장과의 사이에 중하(24)·중현(22)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인 신 회장은 불혹이던 지난 1993년 교보에 발을 들여놓은 뒤 현재 직계 중 유일하게 교보에서 일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왔다. 막내 신문재(44)씨는 이정숙(44)씨와의 사이에 딸 혜진(18)을 두고 있다. 형제들 중 유일한 연애 결혼이다. 미국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91년부터 2005년 8월까지 광화문 교보문고내 문구 액세서리 음반 팬시용품 등을 판매하는 400여평 매장의 문보장을 비롯해 전국 6개 교보문보장을 운영해 왔다. 교보문고가 직접 문보장을 운영하기 위해 신씨로부터 지난 8월 문보장 사업권을 회수했다. 현재 새 사업을 구상중이다. ●지독한 완벽주의와 파격 인사 고 신용호 창립자는 지독하다 싶을 만큼 완벽하고 집요하다는 평을 받는다. 땅을 고를 때도 좋은 날, 궂은 날, 비온 다음날 등 두루 살피는 완벽주의자다.77년 명예회장,85년 창립자 등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1990년대 후반까지 신입사원 면접에 직접 들어왔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나도 실적이 저조해 본사 부장, 실장, 중역까지 나서 손을 들라고 권하자 그들을 나가게 한 뒤 ‘급료는 후불로 주겠다.’는 광고를 통해 간부 사원을 다시 구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된다. 창업 10년 만인 1967년 회장으로 물러난 뒤 2000년 아들 신창재씨가 교보생명 회장에 취임하기까지 33년간 무려 사장이 19번이나 바뀌었다. 평균 수명이 1.7년이었다. 경영 안정을 위해 최고경영진을 쉽게 바꾸지 않는 업계의 관행과는 다른 것이다. 교보의 임원 인사는 상식을 뛰어넘어 기발하고 파격적이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신창재 회장의 인사 스타일도 재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02년 5월 취임한 장형덕 대표이사 사장의 경우 사장직을 폐지하는 형식으로 취임 10개월 만에 퇴임시켰다. 단일 지도체제가 더 효과적이라며 사장을 없애고 대신 부사장 3명을 임명해 집단경영체제로 개편했던 것. 그때부터 ‘대표이사 회장’ 밑에 ‘대표이사 사장’ 없이 ‘대표이사 부사장’ 체제로 가고 있다. 이어 지난 2004년 2월 박성규 부사장을 선임,‘집단경영체제’는 다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맨손으로 생나무를 뚫어라’ 고 신용호 창립자는 ‘죽고 나면 손해’란 보험에 대한 당시 인식을 바꾸는데 초점을 맞춰 교육보험 1호인 ‘진학보험’을 세계 처음 내놓았다. 죽어야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부모가 돈을 적립해 자녀가 초·중·고등학교를 진학할 때마다 학자금을 주는 상품이다. 먼저 단체들을 공략했다. 군인 단체 저축성 보험인 일명 ‘화랑계약’을 고안했다. 잦은 군의 이동에 탈락계약이 늘어 성과는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군 이동에도 추적·관리되는 시스템을 도입,1967년 육군과 170억원의 단체 계약을 맺었다. 파죽지세로 해군·한전 등 대형 단체들과 꾸준히 계약하는 개가를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판매 창구도 강화했다. 종로기독청년회관(YMCA)에서 대학생을 모아 보험강좌를 실시한 것을 계기로 대학지부를 설치, 대학생도 판매 채널로 끌어들였다. 지방유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기관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상품에도 그의 기지가 엿보인다. 암 상품은 그가 처음 개발했다.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성인병도 하나씩 보험상품으로 만들었다. 보험업계 전산화 발상을 추진한 최초의 인물도 바로 그였다.1974년 학자금 선지급 업무를 처음 전산화했고 “컴퓨터를 모르면 간부가 될 수 없다.”며 전 사원을 상대로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인증제’도 실시했다. 그가 인생을 이야기할 때 전반은 ‘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는 과정’이고 후반은 ‘생나무 뚫는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인 과정’이라 비유했다. 인생은 장애의 연속이지만 강한 정신력만 있다면 아무리 높고 힘든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다는 게 그만의 철학이다. 이같은 열성과 집념으로 1958년 당시 6대 생보사 중 막둥이로 태어난 교보생명은 창립 5년 만에 보유계약 56억원으로 업계 3위,1964년엔 보유계약 100억원 돌파로 업계 2위에 오른 뒤 1967년 설립 9년 만에 업계 정상에 섰다.‘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인생의 다른 한 축…교보문고 교육 보험은 대세가 아니었다.80년 들어 경제성장과 함께 늘어나는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시절이 오면서 보험만으로 교육비를 해결할 수 없게 됐다. 변하는 고객 욕구에 따라 양로보험, 종합보장생활보험 등 일반 생명보험 상품의 비중이 커졌다. 교육보험만으로 경쟁력이 떨어지자 1995년 ‘교보생명’으로 사명을 바꾸었다. 삼성생명의 약진으로 교보는 1974년부터 업계 1위에서 2위로 밀려났다. 자산이 늘어나면서 관련 계열사도 속속 설립했으나 모두 보험으로 맡긴 고객의 돈을 운용하기 위한 금융 계열사였다. 부동산관리 전문회사인 교보리얼코(1979), 교보증권(1994) 등 총 9개 자회사를 세우면서 교보를 오늘날 35조원 규모의 금융 자본으로 성장시켰다. 그 중 금융과 동떨어진 업종이 하나 있다. 바로 교보문고(1980)다. 교육을 통한 민족부흥을 창업 이념으로 삼고 있는 만큼 따지고 보면 업종의 본질은 같다는 설명이다. 1980년 종로 1가 1번지에 사옥 교보빌딩이 세워지자 그는 지하에 서점 설립을 제안했다. 온갖 연줄을 동원하며 지하아케이드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던 때였다. 간부들은 채산성이 약하다며 서점이 들어서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냈고, 손해가 나면 보험회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당시 허가관청인 재무부도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 회사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다면 이 자리에는 당연히 으리으리한 고급상가를 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값진 땅에 책방을 크게 열어 청소년과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토록 한다면 그 효과가 어느 정도나 될지 상상해 보시오.” 손해가 나더라도 청소년의 정신역량을 키우는 일인 만큼 자신이 떠맡겠다고 설득했다.1985년에는 일반 독자뿐 아니라 학자들을 위해 80만종의 세계 논문도 공급했다. 지방사옥이 세워질 때마다 학생과 시민들이 교보문고 지점 설치를 요구했을 정도다. 대전, 성남, 대구, 부산, 부천, 강남 등에 속속 지점을 열었다.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를 찾는 고객 수는 일평균 4만 5000여명, 연간 1500만명에 달한다. 삶의 두 축이 교보생명과 교보문고라고 지적했을 정도로 애착도 컸다. 그러나 말년을 맞아 또다시 병마가 찾아 왔다.77세가 되던 1993년. 회사 정기건강 검진에서 간 기능에 석연치 않은 증후가 발견됐다. 담도암이었다. 의사들은 그에게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기운 있을 때 여행을 다녀오라는 처방을 내렸다. 사형 선고였던 셈이다. 그는 암과 싸우며 여생을 보내느니 살든 죽든 결판을 내겠다고 마음먹고 불가능하다는 담도암 수술을 감행했다. 수술후 그는 중환자실에서 목에 구멍을 뚫고 2개월이나 암흑 속에서 지내야 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뒤 재활물리치료 반년 만에 골프장에 다시 나갈 수 있었다. 근력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90년대 후반까지 업무를 보고받는 등 경영에 관여했다. 그러나 8년 뒤 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몸이 약해졌다. 결국 2003년 9월 19일 오후 6시1분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86세였다. jhj@seoul.co.kr ■ 신창재회장과 정혜원 여사 “내조만 하며 살아온 탓에 사회공헌 사업은 꿈도 꿔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제의로 사회공헌 사업을 시작하게 됐지요. 내조와 아이들 뒷바라지에도 벅차지만 소명으로 여기며 열심히 하고 있어요.”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의 부인 정혜원(48)씨는 요즘 사회활동에 바쁘다. 그는 남편과 두 아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해온 전업 주부였다. 남편 신 회장으로부터 사회공헌 사업을 해보라는 제의를 받고 2004년 4월 성매매 피해여성 보호단체를 지원하는 봄빛여성재단을 창립,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순전히 남편 신 회장의 사재로 시작한 사회공헌 사업이다. 서울 종로구 적선동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면서도 아이들이 완전히 홀로서기할 때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며 걱정이 많다. 그는 한사코 취재를 거부했다. 사회 활동은 하고 있지만 언론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인 그는 소탈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으로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을 받는다. 중매를 통해 남편을 만났다고 밝혔다. 평범한 집안에서 데려온 며느리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고 신용호 창립자의 수수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남편 신 회장이 양복도 맞추러 갈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다고 했다. 실제로 신 회장은 아버지의 유업인 교보문고와 교보생명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아버지만큼 골프를 좋아하지만 교보로 옮긴 이후 거의 필드에 나가지 못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교보생명은 지난 2000년 5월 신 회장 취임과 함께 ‘질´경쟁을 선언하면서 업계 2위에서 3위로 밀려난 뒤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교보문고는 교보생명이 증자해 전자책 등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지식문화 전문회사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출판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다 보니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교보문고는 현재 부채비율이 416%로 은행으로부터 신규 여신이 어려운 처지다. 교보생명은 기존 주주가 여력이 없어 제3자 배정 방식으로 5000억원을 증자할 계획이다. 다른 생보사보다 상대적으로 지급여력비율(160%)이 낮다. 자기자본 확대가 이유다. 그러나 2대 주주인 자산관리공사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문제다. 자산관리공사 소유·관리지분(41.26%)의 가치가 희석되지 않는 상태에서 잘 팔릴 수 있도록 협조해야 증자에 동의한다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업계는 신 회장이 과연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교보생명의 한 임원은 신 회장에 대해 “아버지를 닮은 완벽주의자”라고 말했다. 경기고,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로 살아오다 불혹이던 지난 1993년 아버지 고 신용호 창립자의 뜻에 따라 그간 배운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으로 교보생명에 발을 들여놓았다.1996년 11월 교보생명 부회장,2000년 5월 교보생명 회장으로 취임한 뒤 변화와 혁신을 기치로 삼고 전력 질주 중이다. 박성규 교보생명 부사장은 “과연 의사 출신이 기업을 어떻게 경영할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를 보면 답이 나온다.”고 전했다. 의사 출신답게 깊은 통찰력과 분석력을 갖춘 데다 책을 많이 읽는 덕분에 멀리, 넓게 보는 안목이 있다고 평가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난쏘공’ 27년째 생명력

    ‘난쏘공’ 27년째 생명력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도입부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1970년대 고도성장 신화의 그늘에서 신음하는 도시 빈민의 삶을 조명한 조세희(63) 작가의 연작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이 200쇄를 넘겼다.1978년 초판 발행 이후 27년간 87만부가 팔려나갔다. 나오자마자 100만부를 훌쩍 넘기는 책들이 적지 않은 요즘이지만 ‘난쏘공’의 이 숫자는 지난 30년간 앞만 보고 숨가쁘게 달려온 우리 사회의 이면을 돌아보게 하는 의미있는 기록이다. 1일 낮, 조세희 작가를 만난 곳은 서울 대학로의 한 음식점이었다.200쇄 돌파를 자축하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때마침 대학로는 시위 도중 사망한 농민 전용철씨를 추모하고, 쌀 협상 비준을 반대하는 농민대회로 소란스러웠다.“내가 산 세월의 흔적을 가장 가까이에서 담아내고싶어서” 요즘도 카메라를 들고 온갖 시위 현장을 빠짐없이 다닌다는 작가는 바깥 상황에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40대 아버지가 중학생 아이에게 ‘난쏘공’을 사줬더니 책을 읽고 나서 ‘아빠, 이 소설 옛날 이야기가 아니네.’라고 했다는 얘길 들었다. 내가 책을 쓸 때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아이들이 이제 이 책의 독자다. 어쩌면 그건 욕이다. 그만큼 이 시대가 여전히 어두운 상황에 놓여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는 “좋은 작품을 쓸 자신이 없어” 곧 작가 되기를 포기했다. 작가가 아닌 직장인이 되어 70년대를 살던 그는 재개발지역에서 강제철거현장을 직접 목격한뒤, 이를 토대로 1975년 ‘칼날’을 발표했고, 이후 12편의 난장이 연작을 펴냈다. 그는 “초판때 문학평론가 김현이 ‘그 책 좋아,8000부는 나갈 거야.’라고 하기에 농담 삼아 ‘3년간 혼신을 다했는데 고작 그거야.’라고 대꾸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200쇄까지 찍을 줄은 몰랐다.”고 감회를 밝혔다.“‘난쏘공’은 별게 아니다. 힘들게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일 뿐”이라는 그는 “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사는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랑이야기여서 30년의 생명력을 가진 게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우리 사회가 벼랑끝으로 몰리고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쓴 ‘난쏘공’은 그가 ‘벼랑끝에 세운 위험표시 팻말’이었다. 하지만 30년이 흐른 지금도 그는 절박감을 느낀다고 했다.“전체가 노력하지 않으면 힘든 시간은 계속될 것이다.” 그는 ‘난쏘공’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쓴 ‘하얀 저고리’의 출간을 몇년째 미루고 있다.“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 못내고 있다.”고 설명한 그는 “(책을)내긴 낼 것이다. 죽은 뒤에라도 꼭 내겠다.”며 웃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韓·中 정상회담 이모저모

    “한국민들이 많이 기다렸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16일 다섯번째 만나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이례적으로 반겼다. 노 대통령은 회담 전 “중국 국가 주석으로서는 두번째 한국방문이다.10년 만이다.”면서 후 주석의 방한 의미를 부각시켰다. 이어 “양국관계는 누가 뭐라고 설명할 필요 없이 아주 좋은 상태”라면서 “후 주석의 방한이 한 단계 더 긴밀히 발전시킬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후 주석은 “7년 만에 다시 한국을 방문하게 돼 특별히 친근감이 든다.”고 화답했다. 후 주석은 부주석이던 1998년 5월 방한한 적이 있다. 정상회담은 보통 1시간 안팎이 걸리는데 이날 회담은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중국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면서 “회담은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후 주석 초청 국빈 만찬에서도 칭하이∼티베트 철도 완공과 두번째 유인우주선 발사성공 등을 들면서 “각하의 지도력과 중국 국민의 저력 덕분이라 생각하면서 깊은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만찬에는 국내 재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등 13명의 재벌 총수들이 참석했다. 김재철 무역협회장, 오상봉 산업연구원장, 이태용 대우인터내셔널 사장, 김희용 동양물산기업 회장, 이원태 금호산업 고속사업부 사장, 양흥준 LG생명과학 대표, 이건수 동아일렉콤 회장, 정귀래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 등도 참석했다. 노 대통령 주최 국빈 오·만찬에 재계 인사들이 참석하고 있지만 이날은 재계 인사의 규모가 유달리 컸다. 만찬에는 중국에서 한류를 이끌고 있는 문화·스포츠계 인사들도 참석했다.‘중화권 한류스타’로 꼽히는 가수 겸 탤런트 장나라(중국문화 홍보대사), 탤런트 송일국(중국문화 홍보대사)과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패션쇼를 열었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참석했다. 만찬에는 한방 전복 갈비찜을 비롯한 한식이 김치·백김치 등과 함께 식탁에 올랐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임영숙칼럼] ‘여우를 찾습니다’

    [임영숙칼럼] ‘여우를 찾습니다’

    사슴가족과 마주쳤습니다. 산자락을 끼고 도는 시골길을 자동차로 달리던 중이었습니다. 사슴이 출몰하니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설치된 길이었습니다. 저만큼 앞서 사슴이 길을 건너는 것을 보며 자동차를 세웠습니다. 어미 사슴을 따라 새끼 사슴 세마리가 길을 건너 해 저문 들판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우리 일행이 관찰 당하는 쪽이 되고 말았습니다. 새끼 사슴이 모두 길을 건넌 것을 확인한 어미 사슴이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한동안 쳐다 보는 것이었습니다. 경북 의성군 중앙고속도로에서 멧돼지 새끼 다섯마리가 자동차에 치여 숨졌다는 보도를 보고 10여년전 미국 동부 지역에서 겪은 일이 떠 올랐습니다. 멧돼지 새끼들과 충돌한 자동차 운전자는 얼마나 놀랐을까요. 차량통행이 적어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입니다. 그러나 사람과 야생동물이 그런식으로 마주치게 된 것이 안타깝습니다. 지난 1년동안 지리산 일대 4개 도로에서만 차량사고로 죽은 야생동물이 3000마리에 가깝다지요. 길을 너무 많이 만들고 야생동물이 지나갈 수 있는 생태통로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탓이랍니다. 최근 한달사이 네번씩이나 벌어진 서울의 멧돼지 출현소동도 그렇습니다. 분명 도심의 멧돼지는 문명속의 야만입니다. 아파트 주차장까지 휘젓고 다닌 멧돼지가 놀라움을 넘어 공포감을 안겨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더라도 인간이 길 잃은 멧돼지를 잡는데 ‘이토록 서툴어서야’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10월 환경운동단체 생명의 숲이 마련한 ‘양구 생태기행’에 참여했습니다. 소양호 선착장에 내리자 ‘여우를 찾습니다’라는 플래카드가 길가에 걸려 있었습니다. 작년 봄 죽은 여우 한마리가 양구에서 발견됐답니다. 지리산에서 여우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지 26년만이었습니다. 이에 양구의 환경단체 산사모(산양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여우 찾기에 나선 것입니다. 여우가 살아 있을 것으로 확신한 양구군은 천연기념물인 산양 증식에 이어 여우 증식사업을 벌일 계획이랍니다. 양구는 자연생태계의 보물창고로 불리는 비무장지대(DMZ)와 민통선 면적이 전체의 7분의1을 차지하는 곳입니다. 역사적으로는 고통스러운 민족의 상처를 안고 있지만 생태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 금강산 가는 길목에 자리한, 천연기념물 열목어의 최대서식지 두타연에서 우리 일행은 말을 잃었습니다. 인적이 드문 새벽녘 두타연 계곡에서 산양과 사향노루, 여우와 고라니가 노니는 모습도 상상해 보았습니다. 땅속에 묻힌 지뢰 때문에 50여년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숲속엔 이미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스라소니, 표범과 반달가슴곰이 살아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내금강에서 발원해 파로호로 흘러들어가는 수입천은 요즘은 보기 힘든, 하천의 원래 모습을 간직한 아름다운 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양구군의 야생동물 피해 대책이었습니다.3년전부터 야생동물로 피해를 입은 농가에 3000만원의 예산을 책정해서 전액 보상해주고 있답니다. 예산 범위를 넘어선 피해농가엔 전기철책선을 설치해 주고요. 양구에서처럼 사람과 야생이 공존할 수는 없을까요? 사실 멧돼지 소동은 우리 생태환경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헐벗은 민둥산을 50년만에 울창한 숲으로 바꾸었듯이 DMZ와 민통선 지역을 앞으로 50년동안 고스란히 보존할 수는 없을까요? 생물종다양성, 유전자원이 국력인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논설고문 ysi@seoul.co.kr
  • [28일 TV 하이라이트]

    ●시네마천국(EBS 밤 12시)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사람이 어젯밤 나와 이메일을 주고받던 그 사람이라면? 영화 ‘유브 갓 메일’은 이런 상상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도 원작이 있었으니, 주인공들이 이메일 대신 편지로 사랑을 나누던 1940년 작이 그것. 그렇다면 편지에서 이메일이 되기까지, 이들의 사랑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대국민 약속 물은 생명이다(SBS 오후 5시30분)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들의 반대로 건설에 어려움을 겪거나, 건설되어 있는 기존 댐들 또한 오염이나 생태계 파괴의 이유로 해체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5월 감사원의 타당성 재검토 권고 이후 대안이 검토되고 있는 한탄강댐과, 심각한 부영양화로 해체논란이 일고 있는 의암댐 문제를 짚어본다.   ●박주현의 시사 업 클로스(YTN 오후 3시5분) 참여정부 출범 이후 부패 척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부패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또 국가청렴도를 높이기 위해서 정부는 물론 공직자, 시민사회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이런 주제를 두고 정성진 국가청렴위원장, 강성구 국제투명성기구 한국본부 사무총장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본다.   ●꼭 한번 만나고 싶다(MBC 오후 7시20분) 가난 때문에 헤어진 다섯째를 찾는 최옥순씨 오남매. 어렵게 살림을 꾸려온 부모는 막내딸이 유복한 집에서 남부럽지 않게 자라길 바라며 눈물을 삼킨 채 아이를 보낼 결심을 하게 된다. 이름조차 지어주지 못해 더욱 미안하다는 옥순씨 남매.30년 전 어쩔 수 없이 보내야 했던 그리운 막내를 만날 수 있을까?   ●HD역사스페셜(KBS1 오후 10시) 충북 진천의 길상사. 이곳에서 김유신을 기려 올리는 제사 때 통상 왕에게만 행해지는 4배가 올려진다. 또 강릉 화부산사에 있는 김유신의 영정은 신라 금관을 쓰고 있어 분명한 왕의 모습이다. 이는 김유신이 죽은 지 160년 만에 흥무대왕에 추존됐기 때문이다. 김유신, 그는 어떻게 왕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사랑과 전쟁(KBS2 오후 11시5분) 주말부부인 원길과 미경. 일하느라 바쁜 남편 때문에 미경은 하루 하루가 지루하다. 동창회 날 오랜만에 만난 친구 설희의 완전히 달라진 모습에 의아해 하던 미경은 설희에게 스폰서가 있음을 알게 된다. 미경은 친구를 통해 스폰서카페에 가입을하고, 일주일에 세 번 만나주는 조건으로 엄청난 돈을 받는데….
  • 儒林(462)-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8)

    儒林(462)-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8)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38) 맹자가 주장한 ‘본연의 마음(本然之心)’ 속에 들어있는 ‘배우지 않고도 아는 양능(良能)’과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양지(良知)’와 ‘인의와 충절을 행하고 선을 즐거워하며 게으르지 않는 양귀(良貴)’는 서양철학에서 나타나는 ‘양심’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양심(良心). ‘함께 알다’를 의미하는 라틴어의 conscientia에서 파생된 conscience. 한 개인이 자기 자신의 행위, 의도, 성격의 도덕적 의미를 올바르고 선하게 유지해야 된다는 의무감과 관련지어 파악하는 전인격적인 도덕의식. 중세철학에서는 선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악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갖고 있는 도덕의식을 양심이라 일컬었으며, 주로 기독교의 프로테스탄티즘에 의해서 계승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양심은 기독교뿐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에서도 그 존재를 인정하는데, 예를 들면 고대 이집트인들은 ‘양심이 인도를 벗어나면 반드시 두려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양심의 명령을 어기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하였으며, 힌두교 신자들은 양심을 ‘우리 내부에 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신’으로 생각하고 있어, 이를 어겨서는 안 된다고 행동지침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맹자가 양능과 양지, 그리고 양귀, 즉 ‘양심론’을 주장하였던 것은 묵자의 ‘겸애론’의 모순점을 지적하기 위함이었다. 맹자는 굳이 묵자처럼 머리꼭대기에서부터 발꿈치의 털까지 다 닳아 없어질 만큼 사람을 두루 사랑하고, 사람을 두루 이롭게 하기 위해서 분골쇄신하지 않아도 심즉리(心卽理), 즉 인간의 심성 속에는 이성이 있는데, 이 이성이 바로 인간이면 누구나 본연적으로 갖고 있는 배우지 않고도, 생각하지 않고도 사람의 생명 속에 내재되어 있는 선천적인 선의 뿌리인 선근(善根:양심)이며, 바로 이러한 선한 마음이 ‘성선지설’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맹자는 그 유명한 사단론을 정립하게 된다. 사단지심(四端之心). 이는 맹자의 핵심사상인 성선지설의 골수로서 맹자에 의하면 이 사단은 모든 인간이면 다 가지고 있는 일종의 선천적인 도덕적 능력인 것이다. 맹자는 이 사단지심에서 성선설이 드러난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공경지심(恭敬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다. 측은지심은 인(仁)이요, 수오지심은 의(義)이며, 공경지심은 예(禮)이고, 시비지심은 지(智)이다. 인의예지가 외부에서 나에게 녹아드는 것이 아니요, 내가 본래부터 갖고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구하면 얻고 버리면 잃는다. 사단지심을 얻거나 혹은 잃어서 선과 악의 거리가 서로 두 배가 되고, 다섯 배가 되어 계산할 수 없는 정도가 되는 것은 이러한 재질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시경(詩經)에 ‘하늘이 백성을 내시니 사물이 있으면 법칙이 있다. 사람들은 떳떳한 본성을 갖고 있어서 아름다운 덕을 좋아한다.’라고 했는데, 공자는 ‘이 시를 지은 사람은 사람의 본성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물이 있으면 반드시 법칙이 있으니, 사람은 떳떳한 본성을 갖고 있으므로 선한 덕을 좋아하는 것이다.…”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4)조선찻사발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14)조선찻사발

    “눈 뜨고 바라보니/꽃은 보이지 않고/물오른 이파리도 없구나/바닷가 모래밭에 자리잡은/고즈넉한 초가 한 채/가을 밤 몽롱한/불빛 아래 있구나” 모든 것이 일탈해버린 가을바다는 고즈넉하다 못해 추사의 세한도처럼 담백하기도 하며 쓸쓸하기까지 하다. 달도 별도 잠든 가을밤 바닷가 한 귀퉁이를 틀어쥐고 사는 열평 남짓한 초가집에서 홀로 차를 마시는 것은 완전한 자유인의 경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청복(淸福)이다. 일본의 다성(茶聖)은 센리휴다. 그가 이른바 ‘와비즈키’ 다도의 완성인 초암의 아름다운 정경을 한편의 광막한 시로 읊고 있다.‘와비즈키’의 정체성은 평범한 다도를 추구하는 데 있다. 평범, 불균형, 자연, 탈속, 정적인 것이 바로 와비즈키 정신이 추구하는 것이다. 그보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평범하면서도 범속한 찻자리와 차도구들이다. 과거 명·청대에도 그랬듯이 차문화의 저변확대는 과도한 문화적 사치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황금의 찻잔’으로 차를 마신다든지, 좋은 차를 감별하기 위해 차를 겨루는 ‘투다’ 등 다양한 문화적 변형들을 초래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차인들의 찻자리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제대로 된 찻자리를 꾸미기 위해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이 넘는 차 도구들을 갖추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에서 건너오는 자사호 같은 경우는 수백만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비싼 다구가 능사가 아니라 차를 제대로 우려낼 수 있는 적절한 분위기와 품격을 갖춘 것이 차를 즐기는 차인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센리큐는 이같은 차인들의 문화적 사치에 대해 이렇게 충고했다.“다구가 좋은지 나쁜지 또는 새것인지 헌것인지를 따지는 것은 장사꾼들이나 하는 짓이요, 차의 도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깨진 발우에라도 차를 마실 수 있소.”라며 다구의 좋고 나쁨을 질문하는 차인을 경책한 경우도 있다. 차인의 찻자리는 담백하고 검소해야 한다.‘조선의 찻사발’(이도다완)은 이같은 진실한 차인의 세계를 잘 담아내고 있다. 조선의 찻사발은 사찰에서 공양할 때 쓰는 발우를 닮았다. 발우는 우주의 생명을 담는 그릇으로 깨달음을 상징하는 ‘화현’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찻사발의 미학은 바로 공존과 상생의 미학을 담고 있는 검박함에 있다. 꾸미지 않는 아름다움, 누구나 손에 붙잡고 밥이면 밥, 나물이면 나물, 차면 차, 그 어떤 생명의 공양들을 담아도 못나지 않는 우주적인 ‘화엄’의 미학이 깃들어 있는 것이 바로 ‘조선찻사발’이다.‘조선찻사발’의 미학은 먼저 미완성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절묘함에 있다. 서툴고 투박한, 그리고 다급해서 미처 갈무리를 짓지 못한 것 같은 미완성의 완벽함에 있다. 그러나 그 미완성 속에는 ‘완성’보다 더 완벽한 미학들이 깃들어 있다. 굽의 당당함, 그릇표면에 자연스럽게 그려진 자연을 닮은 문양, 온유한 색감, 가벼움과 높은 굽, 끊임없는 색의 변화와 따뜻한 촉감 등은 그 어떤 찻사발도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것이다. 조선찻사발이 일본의 국보로, 세계적인 명물이 된데는 참으로 드라마틱한 역사가 한몫을 했다.‘기자에몬이도’로 불리는 조선찻사발 이야기를 해보자. 기자에몬은 원래 다케다라는 성을 가진 오사카 상인의 이름이었다. 차를 무척 좋아했던 기자에몬은 조선의 찻사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마구잡이로 수집, 가문의 가보로 아낄 정도로 소중하게 다뤘다. 그 기자에몬이 수집한 찻사발이 17세기초 혼다다요시에게 헌납되고, 고오리야마의 나카무라 소에추를 거쳐 1775년 푸마이에게 넘어갔다. 기자에몬이도를 아낀 푸마이는 죽으면서 유언을 남겼다.“이 사발은 천하의 명물이다. 오랫동안 소중하게 보관하라.” 그러나 푸마이의 아들 게탄은 그같은 유언을 어기고 1818년 교토의 대덕사 분원인 고호안에 기증을 하고 만다. 게탄이 기자에몬이도를 기증한 이유는 단순했다. 기자에몬이도가 액운을 불러온다는 것이었다. 그 기자에몬이도는 그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일본의 차인들뿐만 아니라 세계 차인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조선찻사발이 일본의 국보가 되고 최고의 다완으로 불리게 된 것은 바로 그 어떤 것으로 흉내낼 수 없는 자연적인 아름다움 때문이다. 물레를 돌리는 도공의 손에서 당당하고 즉흥적이면서도 질박한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품고 있는 것은 오직 조선찻사발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치 온 우주를 품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하는 찻사발은 차인들에게 몽환적인 꿈같이 아련하게 다가오는 신기루 같은 것이다. 마치 봄날 아지랑이를 몰고오며 꽃의 향내를 피워내는 나비와 벌같이, 때로는 가까이 할수록 멀어져만 가는, 사랑하는 여인의 향내와 같은 끝없는 설렘만 던져주는 존재와 같다. 명품 찻사발은 그런 점에서 차인들의 오랜 꿈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자신의 차 살림살이와 부합되는 명품찻사발은 어떻게 골라야 될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불이다. 첫째, 가능하다면 장작가마로 구워진 찻사발을 구하는 것이다. 찻사발의 생명은 ‘요변’이다. 가마에서 타는 장작불로 인해 화학적 결합으로 나타나는 도자기의 자연발색을 요변이라고 하는데 가마내의 기압, 습도, 장작의 두께, 포개짐 등 인간이 도저히 통제하기 불가능한 변수에서 생겨나는 자연적 결과물이다. 그 다음은 바로 ‘흙맛’이다. 옛날부터 도자기를 굽는 명인들은 질 좋은 흙을 찾아 전국의 산야를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명인들은 자신만의 흙을 고집하며 그 흙맛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다음은 차색과 찻사발에 관한 것이다. 차인들은 흔히 좋은 찻상이나 좋은 찻사발을 가지면 아름답고 품격있게 찻물을 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찻상이나 찻사발에 깃들인 찻물은 그 차 도구에 형용할 수 없는 기품을 선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명품 찻사발에는 숨어있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찻잔을 떠받치고 있는 ‘굽’이다. 찻사발을 고즈넉하게 떠받치고 있는 굽은 싱그러운 말차의 향을 들이켠 후 그 찻잔을 뒤집어 보면 잘 알 수 있다. 장인들은 찻잔의 자연미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굽깎기에 최선을 다한다. 찻사발의 굽에서 장인의 진정한 솜씨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명품찻사발은 가볍다. 외관에서 보면 명품찻사발은 매우 무겁게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그 찻잔을 들어보면 마치 종이를 들거나 바짝 마른 나무조각을 드는 것처럼 매우 가볍다. 일본에서 가장 먼저 국보급으로 지정된 조선찻사발의 무게는 고작 360g정도라고 한다. 참으로 종잇장처럼 가벼운 것이 바로 명품 찻사발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찻잔속에 스미는 차색의 아름다움만 가지고 명품의 찻사발을 선별하는 품평회가 있을 정도다. 차로 인해 변하지 않는 찻사발은 그러므로 죽은 찻사발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찻사발이 명품 찻사발이 되는 것은 바로 찻사발을 사용하는 차인의 심미안과 인격에 의해 결정된다. 명인의 손길과 가마속의 불꽃으로 점화되는 요변을 통해 완성된 명품은 그 찻사발을 사용하는 차인의 차품에 의해 최종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경우든 차의 완성은 바로 인격의 완성에 있다. 먼저 물을 끓여 차를 집어넣고 적당히 우러난뒤 마시는 차인의 행위는 그 사람의 마음자리가 어디에 있는가에 완성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느날 센리큐를 따르던 차인이 물었다.“스님 진정한 다도의 비밀은 어디에 있습니까.” 센리큐는 그 차인을 한참동안 바라보다 다음과 같은 답을 했다.“그대는 불을 지펴 물을 적당한 온도로 끓이고 차가 적당한 맛이 우러나도록 우려라. 그대는 다옥에 꽃과 나무를 마련하여 마치 그것들이 자라고 있는 것처럼 하라. 그리고 여름에는 선선하다는 암시를 주고 겨울에는 따뜻하다는 암시를 주라. 이밖에 다른 비밀은 없다.” 이 얼마나 명쾌한 대답인가. 차는 바로 일상속에서 거칠 대로 거칠어진 우리의 영혼을 쉬게 해주는 것이다.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삶과 함께하는 것이 바로 차인 것이다. 그리고 그 차는 바로 나를 제외한 소외된 자들에게 열려있는 따뜻한 나눔의 영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지암 암주 ■ 日 3대 명품찻잔 ‘쓰쓰이쓰쓰’ 고려청자와 함께 세계적인 도자기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바로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이도다완’이다. 일본 차인들 사이에서는 ‘신물’(神物)로 여겨지는 ‘이도다완’은 진주 웅천지역 등에서 생산된 조선막사발이다. 그 조선막사발을 우리는 ‘조선찻사발’로 부르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 사발 장인들과 차인들 사이에서 새롭게 그 가치를 지닌 이름으로 재평가하자는 움직임에서 나온 것이다.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최근 막을 내린 ‘불멸의 이순신’에 나오는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본 차인들은 ‘이도’를 찻사발의 으뜸으로 친다. 그밖의 찻사발에는 등급이 없는 것을 볼 때 조선찻사발의 위대함에 일본인들이 붙이는 찬사는 참으로 대단한 것이기도 하다. 조선찻사발 이야기중 일본천하 3대 이도다완으로 불리는 ‘쓰쓰이쓰쓰’ 찻사발 이야기를 해보자.‘쓰쓰이쓰쓰’ 찻사발은 비파색을 기본바탕으로 두터운 기벽, 은은한 물레자국, 태산을 짓누른 듯한 중후함, 크고 작은 빙렬의 아름다움 등 완벽한 명품다완이라고 평가받고 있다.‘쓰쓰이쓰쓰’라는 유래는 일본 전국시대 가장 큰 사건중 하나인 ‘혼노우지의 변’이다.‘혼노우지의 변’은 당시 가장 강력한 ‘쇼군’이었던 오다노부가나를 아케치 미쓰히데가 암살하는 사건을 말한다. 당시 쓰쓰이쓰쓰는 오다노부가나를 죽인 영주의 통치하에 살고 있던 이도요시 히로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었다. 이도요시 히로는 당시 야마토고오리야마성의 성주 쓰쓰이케이의 부하였다. 주군의 원수를 갚으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 유명한 야마사키 전투에서 승리하며 전국의 패자로 떠오를 수 있었다. 도요토미의 승리를 본 쓰쓰이케이는 자신의 목숨과 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부하인 이도요시 히로가 소장하고 있던 ‘이도다완’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헌납했다. 자신의 비천한 출신을 차도를 통해 극복하려고 했던 도요토미에게는 최고의 선물이었던 셈이다. 그 선물로 인해 쓰쓰이케이는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그 조선 찻사발의 이름을 ‘쓰쓰이이도’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쓰쓰이쓰쓰이도’라는 이름은 그 다음에 붙여지게 된다. 도요토미는 ‘쓰쓰이이도’를 천하제일의 찻사발이라고 극찬하며 아꼈다. 그러던 어느날 차를 시중들던 시동이 실수로 쓰쓰이이도를 떨어뜨려 다섯조각을 내고 말았다. 쓰쓰이이도를 아깝게 여긴 도요토미는 당시 자신의 차두였던 일본의 다성 센리큐에게 수리를 맡겼다. 센리큐는 그 다완을 이틀에 걸쳐 수리했다. 그리고 그 다완의 우주적인 심미감에 사로잡힌 센리큐는 도요토미도 모르게 찻사발에 차 한잔을 했다. 그러나 그같은 사실을 도요토미에게 들켜 엄청난 분노를 사게 됐다. 센리큐에게 수리된 쓰쓰이이도는 일본말로 다섯조각의 이도라는 뜻으로 ‘쓰쓰이쓰쓰이도’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쓰쓰이쓰쓰이도 찻사발은 현재 일본의 보물로 지정되어 가나자와현의 사가에 소장되어 있다.
  • 사막에서 길을 묻다

    사막에서 길을 묻다

    우리는 달렸다. 타클라마칸, 그 죽음의 사막을 향해. 자갈길을 가로지르고 강을 건너 5000여 ㎞를 내달렸다.‘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살고 싶지 않은 자와 미친 자가 아니면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는 그 사막을 향해. 그러나 15박16일을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달려 간 그 사막 입구에는 ‘황량한 사막은 있어도 황량한 인생은 없다’, 그렇게 씌어 있었다. 붉은 글씨로. 아, 아 그렇지! 황, 량, 한 인생, 은 없지…. 마치 달려오던 가속도를 어쩌지 못해서인 듯, 온 몸이 앞으로 울컥 쏠렸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섰다. 등골에서 짜르르 전류가 흐르는 듯하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가 홀린 듯 이 먼 길을 내달아 온 것은 이런 글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막을 꿈꿔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삶의 고비마다 언뜻언뜻 떠오르는 낯익은 영상이었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날카로운 햇살이 온 몸에 쏟아진다. 마른 먼지가 콧속을 파고들며 숨을 막고, 입안에선 으적으적 모래가 씹힌다. 갈증은 이미 오래전에 통증으로 바뀌었고, 모래밭은 펄보다 더 힘겹다.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나름대로 비장하다. 그러나 나는 이 장면에서 한껏 더 상상력을 부풀려 본다. 마침내는 햇살에 바래고 모래먼지에 찌든 내 신발 코 끝에, 죽은 자의 늑골이 아른아른 겹쳐 보일 때까지. 그런 극한점에 맞서보고 싶었다. 이 여행에 대한 제의를 받은 건 7월 초였다.8박9일 일정의 실크로드 패키지 여행을 준비하던 내게, 여행자들이 한국에서 가져간 지프를 직접 몰아 중국 대륙을 횡단한다는 프로그램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사막에서의 야영이라니! 앞뒤 생각 없이 큰소리로 “네!”해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처음부터 28일 전 일정을 참가해야 한다고 했다면 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사나흘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니고, 열흘도 아니고. 난 그렇게 오랫동안 내가 없는 우리 집을, 학교를, 나를 둘러 싼 크고 작은 일상들을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전 일정은 한 달쯤 되나 봐요. 하지만 그걸 다 따라 다닐 수 있으시겠어요. 앞 뒤 자르고 한 8박9일 정도면 어떠세요?” 그렇게 시작했지만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일정은 길어졌다. “근데 한 보름은 되어야 그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으시겠어요?” “보름이나 이십일이나…. 근데 이런 여행 쉽지 않거든요.” “따로 돌아오실 비행기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네요.” “29일 날 도착한다고 각오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말을 들었을 때, 난 이미 말라리아와 장티푸스 주사를 맞았고, 짧은 반바지에서 겨울 점퍼까지를 꾸려 짐을 싸둔 다음이었다. 가슴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었다. 심호흡을 한 뒤 대답했다. “좋아요.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며 내가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엄살기 가득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여행은 톈진항에서 배를 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현장법사가 불전을 구하기 위해 간 길, 바리데기 공주가 죽은 자를 살릴 샘물을 구하기 위해 지나간 길, 고선지 장군이 서역 정벌을 위해 나선 길, 실크로드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건,‘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가 지나간 길, 실크를 비롯한 동서양의 온갖 것들이 교류한 이 길…. 이 길을 다섯 대의 지프가 달린다는 것이다. 오프로드를 포함해서 하루 몇백㎞를 달리고 또 달리다가,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서, 바다만큼 큰 호수를 만나면 호숫가에서 야영을 한다는 것이다. 멋지다. 하룻밤을 배에서 자면서 톈진에 도착한 다음, 베이징, 타이위안, 시안, 란저우, 우웨이, 금창, 바단지린 사막, 가우대, 청수, 주취안, 둔황, 하미, 투르판, 우루무치, 쿠얼러를 빠르게 지나쳐 마침내 타클라마칸 사막에 닿았다. 인천항을 떠난 지 열엿새 만이었다. 그러나 타클라마칸은 예전의 타클라마칸이 아니었다. 사막 한가운데로 잘 닦인 아스팔트가 서늘할 만큼 시원스레 뚫려 있고, 몇㎞ 간격으로 물탱크를 포함한 대피소가 줄지어 있었다. 그 옛날, 나는 새도 통과하지 못한다는 그 타클라마칸은 이미 아니었다. 그러나 여전히 녹록지 않은 타클라마칸은 카라부란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 옛날 죽음의 모래바람이라 불리던 카라부란이다. 타클라마칸에 진입했다는 흥분을 가까스로 가라앉히며 사막 깊숙이 자리를 잡고 서둘러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모래 바람이 일었다. 처음엔 코펠이 뚜르르 굴렀다. 뒤이어 텐트가 뿌리 뽑힌 풀단처럼 힘없이 날아가 버렸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흙탕물에 빠진 것처럼 시야가 흐려졌다. 서둘러 지프에 달려 올라가 문을 닫았다. 설마 지프는 안 날아가겠지.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다. 나는 눈을 감았다. 솩, 쉬르르 차창에 부딪치는 모래바람의 소리가 여전했다. 대개 중국쪽 실크로드의 시작을 서안이라고 본다.1000여년 동안 중국의 수도였던 도시. 장안이라는 옛 이름을 가진 이 도시는, 농사짓는 것보다 농사짓다 발견한 유물을 내다 파는 것이 더 낫다는 고도이다. 서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죽은 진시왕의 잔영이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왕.13세의 어린 나이에 진왕에 즉위하였으며 39세에 중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통일 국가를 세운 사람.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스스로를 ‘태황의 황과 오제 제’를 따서 황제라고 칭하고, 자신을 시황제라 부르게 명 한 사람. 그는 선남선녀를 골라 불로장생할 선약을 구해오라는 전대미문의 특명을 내리고, 또 한편으로는 즉위하자마자 죽을 때까지, 자신의 묘가 될 지하궁전을 팠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이 무덤은 ‘관은 동으로 주조했고 무덤 내부에는 각종 보석으로 궁전과 누각의 모형을 세웠다. 수은으로 바다와 강을 흐르게 했고 천장에는 진주를 아로 새긴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들어 달았다.’고 전해진다.30만명이 석 달 동안 왕릉에 보물을 실어 날랐다 한다. 그는 또 죽은 다음에 자신을 지킬 군사들을 만들어 도열시켰다. 보병, 전차대, 포대로 이루어진 신장 180m안팎의 실물크기 흙 인형 수천명으로 지하군단을 만들어 자신의 능에서 1.5㎞ 떨어진 거리에 배치해 두었다.1호 갱에 약 6000명,2호 갱에 약2000면 3호 갱에 68명의 테라코타 병사가 사열해 있다. 결국 그는 여러 형태의 ‘영생’을 준비한 것이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그 넓은 대륙을 통일한 젊은 왕에게 아쉽고 그리운 것이 그 영화를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영생뿐, 더 무엇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것들을 만든 진시황의 백성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그의 나라는 3대 15년 만에(항우에게)멸망하였다. 문자, 도량형, 화폐를 통일하고, 그 시절에 전국적인 도로망을 거미줄처럼 짜고, 운하를 파고 만리장성을 쌓고 아방궁을 짓는 등 어마어마한 일을 해낸 이 황제와 관련된 유적은 그러나 아직 다 발굴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가이드는 그때와 공기가 달라 유물이 상할 염려가 있고, 무덤 안에 함정이 많고 엄청난 양의 수은이 있어 위험하며, 후손들이 먹고 살 관광 자원을 남겨주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고, 한쪽으로는 기술이 부족해서 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에 관한 미확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예전에, 중국을 방문한 일본 총리가 그 유적 발굴을 제안했다 한다. 일본의 기술력을 제공할 테니 발굴한 보물의 3분의1을 달라고. 주석이 껄껄 웃으며 ‘이 안에 든 보물이면 네 나라 전부를 살 수도 있을 거다.’고 대답했단다. 그 조상에 그 후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벌컥, 차문이 열리면서 남대장이 소리쳤다. “바람 없어졌어요. 나오세요!” 어느새 눈앞에는 사막의 밤이 펼쳐져 있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별이 튕겨져 나올 듯 반짝였다. ‘돌아올 수 없는 곳’이 어디 타클라마칸뿐일까. 때때로 살고 싶지 않고 미칠 듯한 기분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 사막에 발을 내디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량한 인생은 없다.’는 믿음으로. 죽음의 카라부란은 멈췄고, 모래는 아직 따뜻했다. 그리고 사막의 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신비로웠다. ●글쓴이 이윤희 교수는 동화작가, 문학박사,‘아침햇살’발행인. 인천재능대 아동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작품집으로는 ‘네가 하늘이다’‘꿈꾸는 호랑이 우화’를 비롯한 철학동화시리즈 18권 등이 있다. ■ 무선통신, 날아오다 2004년8월2일 11시, 인천항 실크로드 오버랜드 원정대는 8월2일 오전 11시에 인천항 제2부두에 집결했다. 출발 인원은 총 12명, 한국인 10명과 터키인 2명이었으며, 중국에서 터키인 1명과 중국인 5명이 합류할 예정이다. 거추장스럽고 부피스러운 짐은 이미 지프에 실어 앞서 보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배에 올랐다. 순조로운 출항이다. 8월3일 13시. 천톈항 서둘러 천톈항 출구에 섰다. 까마득한 멀리에는 인천을, 가까이에는 25시간 동안 우리를 싣고 온 여객선 진천 페리를 등 뒤에 둔 채다. “와!” 거기, 중화인민공화국 천진항 광장에, 먼저 도착한 차들이 늠름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5대였다.4+4 SILKROAD EXPEDITION.TRANS TACLAMAKAN.ROK 스티커 글씨가 도드라졌다. 눈이 부셨다. 그리고 비로소 가슴이 뛰었다. ‘아아, 드디어 시작이다! 이동거리 1만㎞를 훌쩍 넘는 28일간의 여행. 우리차로 실크로드를 달린다! 중국을 횡단한다!’ 나는 사뭇 뛰었다. 지프를 향해. ★중국의 4대미인은 누구?(답? 곳곳에 숨어있어요^^) 8월3일 15시, 베이징을 향해 우리차가 달린다. 중국 고속도로를 시속 100㎞로. 창문을 모두 열어 젖혔다. 나,58년 개띠. 오프로드 여행 경험 전혀 없음. 대학교수. 유부녀…. 그러나 그 순간 이 모든 것을 잊었다.‘우리는 간다, 하늘도 부른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살은 유리처럼 투명했고, 살짝 따가웠다. 승차 배치도 진행차:다이장(중국측 여행사 사장), 도용(현지 가이드). 살인미소(중국인 정비사). 여성스태프 1호차: 남대장(38·오버랜드 대표), 나(유니), 비니(34·스태프, 통역). 진피디(29·스태프, 영상담당)·2호차:한·최 안젤라 부부(47,45·사업가)·3호차:최 노익장(67·독일 국적의 CEO), 김원장(50·복지시설 운영)·4호차:임 흑기사 부자(51,29·사업가, 대학생)·5호차:하칸(29·터키인 사업가)등 터키인 일행 ●답(1) 그녀의 자태에 꽃이 부끄러워 스스로 잎을 말아 올렸다는 양귀비(수화·羞花) 8월4일 14시, 베이징 베이징에서 합류하기로 한 터키인 일행 하나가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그를 기다리는 사이, 캔맥주가 돌았다. 남대장:수도자가 고행을 하는 마음으로 이런 여행을 합니다. 일종의 종교 의식이지요. 한·최 안젤라 부부:모험이잖아요. 꿈꾸는 듯한. 임 흑기사 부자: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최 노익장:중국을 횡단이라, 정말 멋지잖습니까? 더구나 내 차로 직접 운전을 하는데! 김원장:새로운 패턴의 여행이라서요. 하칸:어린 시절부터 실크로드를 꿈꿔 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그 꿈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가슴이 뜁니다. 그들의 얼굴이 발그레해진 것이 캔 맥주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맥주를 홀짝거리며 서유기를 생각했다. 불전을 구하러, 혹은 죽은 자를 살릴 생명수를 구하러 이 길을 지났을 삼장법사와 바리데기 공주를 생각했다. 그리고 수많은 상인과 기술자와 병사와 예술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빌었다. 그들의 꿈과 사랑이 먼먼 후손인 내게도 자지러지도록 생생하게 전해지기를. 그리하여 그로인해 내 삶이 얼마간 풍요롭고 따스해지기를. 브라보! 우리는 다시한번 맥주 캔을 맞부딪쳤다. ●답(2) 그녀가 강변에 서서 강물을 바라보니 그 아름다움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물속에 가라앉았다는 서시(침어·沈魚) 8월5일 14시, 시안 가는 길 그러나 정말 쉽지 않았다. 온갖 것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느닷없이 나타나는 ‘공사중’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사실 이것은 그렇다 칠 일이 아니다.‘공사중’이 너무 많았다. 아니 중국 전역이 ‘공사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곳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더구나 그들은 지나는 차량에 대해서는 아무 배려가 없었다. 아무런 안내나 대안 제시도 없이 길 전체를 막아버린 곳도 몇 군데 있었다.‘우리는 지금 공사를 하고 있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가라’는 식이었다.)곳곳에서 만나는 비포장도로도 또 그렇다 치자.(왜냐하면 땅이 너무 넓어서 포장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데 할 말이 별로 없으니까.)그러나 포장도로도 비포장 못지않게 차를 널뛰기하게 만든다는 것은 좀 그랬다. 자세히 보니 아스팔트가 바퀴 자국을 따라 깊게 패었다. 과적 차량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과적을 하지 않은 트럭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정말 어마어마한 물동량이 움직이고 있었다!(하긴 우리 팀도 과적을 했다. 우리는 짐에 치여 쪼그리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28일간의 긴 여행’,‘사막에서의 야영’이라는 점에 모두들 긴장한 탓이었다.) 먼지와 매연도 문제였다. 그리고 따끔거릴 만큼 지독한 햇살과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높은 온도, 장거리 주행 등이 엔진을 과열시켰다. 우리는 심통 난 아이 달래듯 차를 달래가며 몰았다. 그래도 어떤 차는 가끔씩 푸쿠쿡, 키다닥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속력을 떨어뜨렸다. 아슬아슬했다. 8월6일 15시, 화청지 마침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온갖 사치를 즐기며 장안과 화청지를 오가며 세월을 보내곤 했다는 설명을 듣고 있는데, 터키인 일행의 사고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 이틀 다른 곳을 들렀다가 합류하기로 한 사람들이다. 교통사고. 정비 불량과 과속으로 인한 전복 사고란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지만 일행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제 막 본격적인 시작인데…. 게다가 그중에는 터키의 ‘정주영’이 섞여 있단다. 선박회사를 17개인가 갖고 있고, 보험회사를 또 몇 개 갖고 있고 그리고…. 그런 사람이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려다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믿기 어려웠다. 터키엔 여행사가 없나?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중국 서쪽, 우리가 흔히 ‘서역’이라고 부르는 그곳이 터키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와 연변 조선족과의 관계와 비슷한. 그래서 터키인들은 그쪽 지방을 여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터키인들이 그들, 소수민족을 부추겨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예를 들자면 독립운동 같은, 중국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동의할 수 없는)을 할까봐 여행을 허가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한국인들 틈에 슬쩍 끼어서 그곳을 가려 했는데 그만 사고가 난 것이었다. 첫 번째 대형 사고였다. 8월7일 10시 40분, 란저우 가는 길 막히는 길을 가까스로 통과해 주유소에 도착했다.“날씨까지 꾀죄죄하네요.”기름을 넣고 있는 차들 뒤에서 고개 돌리기를 하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데, 아들 흑기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랬다. 하늘빛은 칙칙하고 우리는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이심전심일까?안젤라의 남편 한씨가 장난기를 발동시켰다. 기름을 넣고 있는 자기 차 보닛에 검은 색 보드마커로 ‘갑시다, 실크로드!’라고 휘갈겨 썼다. 그러고는 부인 안젤라에게 펜대를 넘겼다. 안젤라는 ‘타클라마칸을 향해서!’ 썼다. 모두 신났다. 최 노익장은 당신 차 이마에 해골표시를 그려 넣었다. 남대장은 인천에서 출발하여, 다시 인천까지 오는 전 일정을 차에 뺑뺑 돌아가며 써 넣었다. 나는 자꾸만 꾸르륵거리는 차 콧잔등에 ‘잘 달려라, 착하지. 말썽피지 말고!’라고 썼다. 그리고 슬그머니 쓰다듬어 주었다. 8월9일 12시, 무위 ●답(3) 그녀가 비파를 연주하니 기러기가 그 용모를 보느라 날갯짓하는 것도 잊고 땅에 떨어져 버렸다는 왕소군(낙안·落雁) 8월9일 12시, 무위 그러나 차는 여전히 불안 불안했다. 한 팀은 차를 정비하고, 나머지 한 팀은 장을 본 후 점심을 먹었다. 양갈비찜이 나왔다. 찌그러진 넓적한 양은그릇에 큼지막한 살덩이가 붙은 양 갈비 한 개가 담겨있는 것이, 꼭 개밥 같았다. 저녁에 있을 사막에서의 야영을 위해 준비한 음식들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8월10일 12시30분, 바단지린 사막 야영을 잘 끝내고 사막을 빠져나오려는데, 갑자기 2호차 꽁무니에서 검은 연기가 쿨룩쿨룩 쏟아졌다. 또 다른 대형 사고였다. 엔진은 정지했고,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고장난 차는 1호차가 견인해서 정비소로 가고, 나머지는 사막에서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늘 한점 없는 땡볕아래 햇살은 점점 강해지고, 끼니때가 되었는데도 식당은 멀디 멀었다. 우리는 임시 휴게소를 만들었다. 남은 차 둘을 나란히 대고 , 그 위에 텐트를 덮어 그늘을 만들어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라면을 끓이고 커피를 탔다. “죽인다, 커피향!” 우리는 애써 큰소리로 웃어댔다. ●답(4) 그녀의 미모가 너무 아름다워 달도 구름 뒤에 숨었다는 초선(폐월·閉月) 8월11일 20시, 가욕관에서 둔황으로 결국 그들 차 두 대는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는 차 3대에 짐을 포개고 또 포갠 뒤, 그 사이에 끼어 앉았다. 그리고 일정을 그대로 진행했다.2m앞이 안 보이는 먼지 길 양옆에 아스라한 낭떠러지가 이어져도, 문을 꼭 닫은 차안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기침이 컥컥 나올 만큼 독한 ‘원조황사’가 길을 막아도, 그대로 뚫고 달렸다. 생명 보험을 하나 더 들어놓고 올걸! 나는 콩 튀듯 탕탕 거리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해를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나아가는 길, 해는 지지도 못하고 저녁 8시가 넘는 시각에도 낮처럼 환하다. 8월12일 17시, 명사산 아름답다. 달밤이면 모래가 우는 소리를 낸다는 산. 해질녘, 그 산을 낙타를 타고 오른다. 출렁출렁, 낙타의 발걸음에 따라 내 몸이 흔들린다. 방울소리도 흔들린다. 8월13일 18시, 하미 주위에 있는 산들이 온통 시커멓다. 철성분이 많아 그렇단다. 그 산 사이에 난 협곡을 달리고 달려 신장 자치주에 닿았다. 무섭게 바람이 불었다. 이 근처는 사철 그렇게 바람이 많은 곳이라고.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투르판은 ‘불의 땅’ 외에도 ‘바람의 창고’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20시에 하미과로 유명한 하미에 도착해 저녁 대신 과일로 허기를 채웠다. 배가 봉긋해졌다. 8월14일 18시, 투르판 위구르족 민속쇼를 관람했다. 남대장이 모종의 작업을 한 덕분에 나도 위구르족 아가씨로 분장하고 공연에 잠깐 끼어들었다. 위구르의 전통 악기 소리는 맑고 탱글탱글했다. 우거진 포도 넝쿨 아래서, 붉은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면서, 나는 잠시 먼 이국의 여인이 되는 꿈을 꾸었다. 한여름, 축제의 밤은 열기를 더해갔다. 8월15일 11시, 우루무치 포도 농원에 갔다. 위구르 말로 ‘아름다운 목장’ 이라는 뜻을 가진 우루무치는 커다란 오아시스 도시다. 야자수가 두어 그루 있는, 우리가 오아시스라고 하면 흔히 머리에 떠올리는 그런 고즈넉한 풍경이 아니라 포도나무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20∼30종은 넘어 보이는 건포도가 신기했다. 노랑색, 황금색 외에도 송이째 말린 건포도, 씨가 씹히는 건포도, 달콤한 것, 약간 시큼한 것…. 나는 번개처럼 건포도를 한 짐 싸서 챙겼다.‘아줌마’라 흉을 봐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독하게 맘을 먹었다. 맛보여주고 싶은 고국의 ‘동포’들이 목에 걸리고 눈에 밟혀 어쩔 수 없었다. ■ 지프로 오지를 달리고 싶다면 챌린지 전문탐험 기획사인 ㈜오버랜드 엔터테이먼트(www.overland.co.kr)는 자신의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실크로드 등 세계 오지를 탐험하는 이색적인 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오버랜드를 운영하는 남기환(38)대표는 1999년 런던∼서울 단독횡단과 2002년 유라시아 횡단팀을 이끈 오지탐험 전문가. 그는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지프를 타고 황량한 들판과 거친 사막, 별이 쏟아지는 초원에서 야영을 즐기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 개척하고 있다. 주요 상품은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까지 이어지는 ‘트랜스 타클라마칸’,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끼고 도는 ‘트랜스 히말라야’, 중국 성도에서 티벳까지 찝차을 이용 ‘천장공로 하늘여행’ 등 다양한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오지 캠핑 상품도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국내 산간벽지를 찾아 다니며 캠핑과 야영을 즐기는 1박 2일,2박 3일 오지여행도 정기적으로 진행된다. 비용은 일정에 따라 다른 만큼 오버랜드(02-522-0228)에 직접 문의하면 된다.
  • [녹색공간] 유기농 산업 이렇게 방치할 것인가/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우리나라에서는 친환경농업이라는 용어로 부르지만 국제적으로는 유기농(organic)이라고 부르는 이 특별한 농업활동이 2002년 유엔 국제기구 중의 하나인 세계농업기구(FAO) 보고서 이후로 세상에서 가장 관심 받는 산업 중의 하나가 되었다. 2004년 FAO와 국제유기농협회가 공동으로 펴낸 현황 보고서는 현재까지는 국제적으로 어떻게 상황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려주는 가장 공식적인 보고서 중의 하나이다. 이 보고서의 수치들을 잠깐 살펴보면, 지구상의 나라가 유기농에 대해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한 상황들을 좀 알 수 있다. 전체 재배면적 중 유기농의 면적이 가장 높은 리히텐슈타인을 제외하면, 스위스의 10%를 최고로 프랑스의 1.7%까지 유럽 국가들이 주로 상위에 자리잡고 있다. 유기농 10대 강국에 해당하는 이탈리아, 덴마크, 스웨덴, 영국들이 이 앞에 자리잡고 있다. 이 나라들은 5∼6년전에 유기농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룬 나라들이다. 그 다음 구간은 칠레의 1.7%를 시작으로 브라질 0.24%, 멕시코 0.2%, 그리고 쿠바의 0.16%등 0.1% 대의 나라들이 나타난다. 값싼 노동력과 정부의 기술개발이 결합된 국가들이 이 0.1%에서 1% 내외 구간에 존재한다. 오랫동안 한국 농업의 모델이었던 일본이 이 0.1% 구간에 놓여 있다. 유기농이 아직 0.1%에 도달하지 못한 나라들로 내려가면 베트남의 0.08%를 시작으로, 잠비아 레바논 등 전형적인 공업국가형 후진국 그룹이 나타난다. 중국은 0.06%, 한국은 0.05%로 필리핀, 피지 등과 함께 최후진 그룹에 속해있다. 물론 작년의 변화가 반영되지 않았고, 가톨릭농민회 등 심훈의 상록수의 후예들이 생명운동으로 진행한 인증받지 않은 진짜 한국의 유기농들이 통계에 빠져 있어 이렇게 낮게 나타난 것이겠지만, 유엔의 통계는 냉정하게 한국의 상황을 보여준다. 그럼 유엔이 이해하고 있는 한국의 유기농 농가는 얼마가 될까? 전 세계 46만 정도의 유기농가 중에서 한국은 1237 농가가 유기농 농가로 2004년에 파악되고 있다.6㏊의 대규모 화학농을 짓는 농가 7만가구를 남겨놓고 나머지 농가는 농업에서 철수시키고, 나머지 땅은 도시민의 투기용 용지로 돌리겠다는 정부의 농업·농촌 종합계획이 발표되었던 2004년 2월 한국의 상황은 베트남 그룹에 속한 유기농 후진국일 뿐인 것이다. 유기농은 정의상 노동집약적이며 지식집약적인 산업이다. 유럽 국가들은 장기적으로 30% 이상의 경작비율을 유기농으로 전환하여 사회적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인간사회의 영원한 산업인 식품산업의 지식기반을 강화하기로 대체적인 사회적 합의를 마쳤으며,EU 위원회 차원에서 사회 프로그램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런데 올해 추곡수매마저 공식적으로 없앤 우리나라의 경우 화학농은 20% 정도의 가격 하락을 겪고 있고, 동시에 유기농은 친환경농가의 9000가마를 비롯해 모두 1만 5000가마가 판매처를 찾지 못하고 창고에서 썩어나갈 상황이다. 가격보조에 물량보조 그리고 생활보조까지 지급하는 EU의 상황과 비교하면 기본적인 학교급식과 군대급식 그리고 생활보조 등 기본적인 사회적 수급마저 등 돌리는 정부의 대책은 너무 안이하다.100개 회원국 중 한국은 정확히 뒤에서 16등인데, 유기농 전환을 EU 농업 구조조정과 사회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유럽국가와 비교하면 한국이 너무 경쟁력이 없다는 탄식이 이해가 간다. 이 경우에는 농민이 경쟁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가 경쟁력이 없는 것이다. 브라질도 우리나라의 다섯 배인 0.24%이다. 유엔과 OECD 통계를 보기 시작한 지난 15년 동안 우리나라가 이렇게 세계 꼴찌 그룹에 속한 건 정말 처음 봤다. 이것이 우리나라 농업정책의 국제 등수인 것 같다.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 족상보는 미모의 전직여교사

    족상보는 미모의 전직여교사

      확대경을 손에 쥔 손이 창백하리만큼 새하얗다. 곱상한 얼굴, 미인형이다. 서울 서대문구 한구석의 담뱃갑만한 골상소(骨相所) 내실. 젊은 여류역학자는 골상도 수상도 아닌, 바로 족상(足相)에 심취해 있다.『구정 원단(元旦)엔 족상을 봅시다』신종 족상소의 열띤 개점사(開店辭) - . 대학나온 젊고 예쁜 미망인이 냄새나는 발도 주무르며 『발은 나무에 있어 뿌리와 같은 것입니다. 몸을 받치고 또 걸어다닐 수 있도록 버팀으로써 막중한 소임을 맡고 있죠. 골상(骨相)과 수상(手相)에 못지 않게 발의 형태는 그 삶의 운명을 점치는 하나의 예시적, 영감적 존재로서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임경산(林景山)(여·35) 족상가는 열을 올린다. 미모 - 서른 다섯의 젊은 미망인. 대학 출신에다 전직이 여학교 교사라는 좀 별난 이력서가 이 여자「관상장이」를 감싸고 있다. 전문이 골상과 수상인데 이번에 업종을 하나 더 추가, 족상업을 차렸다. 서대문에서 아현동으로 이르는 큰 길목, 옛「코리어·호텔」옆 후미진 자리에 자리잡은 임경산 골상소. 손님이 많다. 양말을 벗고 알몸뚱이(?)가 된 발을 내맡긴다. 확대경이 발의 구석구석을 답사하고 나면 미녀 족상가는 이윽고 발을 주무르기 시작한다. 발의 경도(硬度), 두께, 전체 모양 등을 샅샅이 검열하는 것이다. 『수상이나 족상은 허망한 미신이 아닙니다. 확고한 통계적 학문이에요. 파란만장한 인생항로에 있어 시기의 성쇠라든지, 직업의 적부, 또는 선천적 능력의 대소 같은 게 없을 수 없잖아요? 여기에 태국,「프랑스」, 독일, 일본 같은 데서 오히려 성행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족상을「통계적 학문」에다 얽어 맨다. 수상이 초·중·말의 유년법(流年法)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반해 족상은 영구불멸의「대활(大活)」이 제1의. 수상이「가변(可變)」이라면 족상은「불변(不變)」인데 그 기저(基底)가 있다고 했다. 임경산씨가 역학을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나서부터였다. 향리인 충북의 D시에 사숙하던 스님이 한 분 있었는데 자신의 운명이 스님의 예언과 너무나 일치되어 버린데 감명, 재혼 대신 역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 이제는 사주·골상·수상에다 족상까지 섭렵하여 명실공히 역학계의「명인좌(名人座)」에 올랐다고 자부할 정도. 발바닥에 털 있으면 귀인상이요 사마귀 있으면 큰 무사감 사람의 발엔 방향(芳香)이 있다. 특히 도시 남성의 그것은 말할 수없이 썩은 향내를 종횡무진 풍기고 있다. 그 냄새나는 발에 내밀히 감춰져 있는 운명과 신비의 의미를 발굴해내는 작업이 족상이란 이름의 역술(易術). 옛날 중국의 안녹산(安祿山)은 두 발바닥에 사마귀가 있었다. 얼마 전에 작고한 국군 창설의 유공자인 K장군 발바닥에도 큰 사마귀가 있었다. 족상에서 사마귀는 무장(武將)운. 발바닥에 털이 나면 대귀(大貴)상인데 중국 한문제(漢文帝)가 그랬다. 족상에서 옛 중국의 실존인물들이 예거되는 것을 보니 그것의 역사는 수상과 함께 꽤 오래된 모양. 임경산씨는 69년을「족상보는 해」로 스스로 설정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골상과 수상만이 일반에 광범히 뿌리박고 있었는데 골상은 기실 족상이 뒤따라야 진면목이라는 것. 『발금은 거짓이 없어요. 있는 그대로의 운명과 성질을 무언중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족상이야 말로 진실의 학문이지요』 족상은 보통 족형(足形)과 족문(足紋)으로 이루어진다. 수상이 생명, 두뇌, 감정, 운명, 태양, 재운, 건강, 방종, 인기, 수경(手頸), 총애, 피로, 장해, 화성(火星), 영향, 희망, 원조, 금성(金星), 자녀, 직감 등 21선의 수장(手掌)선에서 출발하고 있는데 비하면 족상은 그「폼」이 간단한 셈. 발은 방정하게 생기고 두터우며 길고 보드라운 것이 길상(吉相)이다. 무늬가 글자 모양으로 된 것, 사마귀가 있는 것, 빛깔이 윤택한 것 등은 모두 좋은 상이며 반대로 짧고 작은 것, 얇거나 거친 것, 단단한 것, 무늬가 없는 것 등이 천상(賤相)으로 평가되고 있다. 『옛날 이태백은 발바닥에 거북무늬가 있었다고 합니다. 거북무늬나 비단무늬 같은 것은 다 길상이지요. 탐스러운 꽃무늬도 좋은 것으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골상소 개업 10년 만에 족상소를 개설한 이「여류」의「족상관」은 자신과 신념으로 싸여 있다. 자신의 족상은 백발백중이라고 기염. 입시「시즌」과 구정을 맞아 임경산 골상소는 그야말로 초만원, 족상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금년은 천대만 받던 발이 햇빛을 보게 되는「족권신장의 해」가 될지도 모르겠다. 발의 두께 4치 넘으면 거부(巨富)상이요 발가락이 길면 어진 사람 ◇ 족형의 판단 ① 발의 두께가 네 치(4寸)를 넘으면 거부의 격이다. ② 발가락이 가늘고 길면 충량하고 어질다. ③ 발가락이 고르고 단정한 것은 호걸이며 현인의 상. ④ 남자가 오리다리 같으면 평생 어리석고 천하며 여자가 오리다리이면 남의 첩이나 종노릇을 한다. ⑤ 발이 커도 얇거나 발바닥이 평평한 것은 비천하다. ⑥ 귀인의 발은 작아도 두텁고 비천한 사람의 발은 커도 얇다. ⑦ 발바닥 아래로 거북이 들어갈만하면 부귀를 얻는다. ◇ 족문의 판단 ① 발바닥에 꽃무늬가 있으면 재산을 많이 모은다. ② 발바닥에 거북무늬나 비단에 수놓은 무늬 같은 것이 있으면 다 좋은 상이다. ③ 열 발가락이 모두 둥근 무늬면 성격이 야비하다. ④ 발바닥에 무늬가 많으면 크게 자손이 번창한다. 무늬가 전혀 없으면 가난하다. ⑤ 발바닥의 십자(十字)문, 금(禽)문, 인형(人形)문, 도형(刀形)문은 모두 고관대부의 격이다. ⑥ 열 발가락에 모두 무늬가 없으면 파재(破財)가 많다. ⑦ 발가락 여덟 개에 소라무늬가 있는 것은 부귀할 격이다. 그러나 열 발가락이 모두 소라무늬면 오히려 성품이 야비할 상이다. [ 선데이서울 69년 2/16 제2권 7호 통권 제21호 ]
  • [토요일 아침에]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80/20법칙이 있다.100여년 전 경제학자인 파레토가 소득과 부의 관계를 연구하다가 어느 때 어느 나라든지 전체 부의 80을 20의 사람이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회자된 법칙이다. 기업의 경우 20의 제품이 전체 이익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전체 고객 중 핵심 고객 20이 이익의 80 이상을 차지한다는 이론이다. 한 국가사회가 움직이는 원리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한 국가, 사회를 움직이는 20에 속하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 성공하여야 한다. 이런 신화에 쫓기는 현대인은 너무 바쁘다.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힘쓰고 애쓰며 일에만 몰두한다. 그런 소망이 얼마나 간절하던지 조그만 난관과 부딪쳐도 곧 허물어진다. 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황금새장’에 갇혀 빠져 나오지 못한다. 이제는 기독교의 고전이 된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의 저자인 고든 맥도널드는 이런 모습을 ‘쫓겨 다니는 사람들의 8가지 특징’으로 요약한다.21세기, 디지털 4차원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쫓겨 다니는 사람들은 첫째, 오직 성취함으로써만 만족을 얻는다. 둘째, 성취의 표상들에 집착한다. 권력이라는 개념을 늘 의식하고 그것을 휘두르기 위해 소유하려고 애쓴다. 셋째, 절제되지 않은 팽창욕에 사로잡혀 있다. 넷째, 전인적인 인격에는 관심이 없다. 다섯째,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서툴고 미숙하다. 탁월한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칭송 받기는 하나 타인의 정신건강과 전인적 성장에는 무관심하다. 여섯째, 지나치게 경쟁적이어서 모든 일을 승과 패를 가르는 게임으로 본다. 일곱째, 반대나 불신에 부딪히면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격렬한 분노를 가지고 있다. 여덟째, 대개 비정상적으로 바쁘다. 바쁘다는 평판을 성공과 자신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증표로 생각한다. 한 배에 두 부류의 사람이 탔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그들이 누구인지 분간되지 않는다. 그러나 거센 풍랑이 일어 파선 직전에 이르면 상황이 급변한다. 죽음이 코앞에 넘실거린다는 생각이 들자 배 속에는 극단적인 두 부류의 모습이 나타난다. 한쪽은 태연자약이요, 겁에 질린 한쪽은 야단법석이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셨다. 뒤따라 제자들도 배에 올랐다. 그때 거센 풍랑이 일었다. 배가 파도에 뒤덮일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급기야 예수님을 깨우며 “죽게 되었나이다.”며 울부짖었다. 예수님께서 일어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자 사위가 고요해졌다. 기이히 여긴 제자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도대체 이 분이 누구인데 바람과 파도까지 순종하는가?”하며 수군거렸다. 흙먼지 풀풀 날리며 마을버스가 시골길을 달린다.‘덜컹, 덜컹’ 조금이라도 파인 길을 지날 때마다 차창이 흔들리며 신음한다. 자세히 보면 모든 창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다. 완전히 버스에 밀착된 창은 흔들리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틈이 나거나 간격이 벌어진 창은 ‘덜컹’하며 요란하게 흔들린다. 같은 이치이다. 태연자약한 쪽이나 예수님은 흔들리는 배에 완전히 자기를 맡겼으므로 흔들리지 않는 것이요, 야단법석인 쪽이나 제자들은 흔들리는 배에 자신을 일치시키지 못했으므로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매사에 열심을 내지만, 그래서 쫓겨 다니듯 살았지만 사실은 ‘야단법석’인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꾸짖으셨다. 지나치게 분주한, 그래서 황금새장에 갇혀 내 안에 거하신 주님과 온전하게 밀착되지 못하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꾸짖으신 것이다.“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천체를 세밀하게 관찰하기 위해 천문학자는 번잡한 도시를 떠난다. 아파트의 형광등, 가로등, 시가지의 네온사인…. 잡다한 빛이 밤을 어지럽히는 도시에서는 별을 헤아리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듯 분주함, 즉 ‘황금새장’에서 뛰쳐나와 마음을 지키는 것, 이것이 현대인의 실존적 불안,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다.‘내 안에 거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비결이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하용조 온누리교회 담임목사
  • 포기했던 남성 복원할 수 있습니다

    포기했던 남성 복원할 수 있습니다

      대학병원 비뇨기과는 고장난 비뇨기들의「메카」다. 수줍음 속에 하루에도 수백 명의「고장난 행렬」이 이 의학의 비경(秘境)을 순례한다. 비뇨기과는「생식기과」를 애써 좀 점잖게 표현한 것. 질환이 많기론 생식기 분야가 다른 병과보다 더하다. 남성 불임증과 정관복원수술이 우리 임상의학계에서 하나의「이슈」로 등장한 것은 불과 4, 5년 전부터의 일. 잃어버린「남성」을 찾는「인간복원공사」의「해머」소리는 따라서 수술실 속의「메스」소리일 수도 있다. 불임증 환자는 여자쪽이 더 많고, 정관수술 받기는 30만 명 우리나라 불임부부는 전체 가임부부의 10%. 이중 60%가 여자쪽에, 40%가 남자쪽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 최근의 통계로 밝혀졌다. 임신하는 데는 보통 ①생식가능연령의 부부여야 하고 ②부부 동서기간이 정상임신 분만성립에 충분해야 하며 ③임신 가능한 성행위가 반복되어야 하고 ④임신 중에 중절수술 같은 것을 하지 않아야 하는 등의 몇 가지 의학적 조건이 따른다. 이런 조건하에서 만 3년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산치 못하면 비로소 그 부부는 불임부부로 규정되는 것이다. 62년부터 가족계획사업이 활기를 띤 이래 지금까지 약 30만 명의 남성이 정관절제수술을 받았다.「불임환자」를 자원하는 현대판 내시족이 미국에서는 연간 4만 5천명, 인도에서는 180만 명으로 불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들이 보다 더 절박한 이유로「남성복권(復權)」을 원할 경우 시행되는 수술이「바소바소스토미」라는 이름의 정관문합(吻合)술. 바로 남성복원공사의 큰 역사(役事)다. 정관수술했으나 사정 달라져, 기능복원 원하는 사람도 □ 정관복원수술 남자의 생식기는 두 개의 큰 공장에 비유할 수 있다. 하나는 고환이라는 공장이며 여기서는 정자와 남성「호르몬」이 생산된다. 다른 하나는 부성기라는 공장이며 여기서는 정자의 젖이 되는 정액이 생산된다. 남성「호르몬」은 혈관을 통해 온 몸에 순환되어 남성으로서의 특성을 유지케 하며 정자는 정관이라는 수송로를 통해 창고에 운반되었다가 때가 오면 생명의 생산공장인 여성 생식기에 사정된다. 이와 같이 고환이라는 공장에서 정자가 만들어지는 데는 약 2개월이 걸리고 창고까지 수송되는 데는 자기 크기의 10만 배나 되는 7m의 거리를 20일 전후 걸려 운반되며 창고에서 생명 생산공장에 사정되는 데는 약 10초가 걸린다. 이때 이 세 가지의 통로를 전부 차단하면 거세(去勢)술이 되고 정자의 수송로인 정관만을 차단하면 남자 불임술인 정관절제술이 되는 것이다. 정관절제술을 받은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최근엔 부득이한 사정으로 정자의 통로를 다시 이어달라는 사람들이 대학병원 비뇨기과로 몰려들고 있다. 서울대병원서 복원수술 받은 사람, 5명은 다시 아들딸 낳아 즉 ①자녀의 사망 등으로 아기가 다시 필요하게 되었을 때 ②심경의 변화로 자녀가 현재 이상 더 필요하게 되었을 때 ③경제적 사정의 호전 또는 주위 환경의 변화가 왔을 때 ④재혼했을 때 ⑤정신적 장애가 심할 때, 보통 의사들은 정관복원수술을 감행한다. 지금까지 서울대학병원에서 실시한 정관문합수술은 모두 52례(例). 이중 정자가 출현한 성례는 36례로 밝혀졌으며, 5례가 자녀를 다시 출산하는 행운을 누렸다.「남성복권」이 문자 그대로 실현된 셈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관문합수술은 지난 64년 서울대학병원 비뇨기과에서 실시되었다. 최초의 수술자인 최수명(가명·42)씨는 1남 2녀를 거느린 가장. 가족계획의 수단으로 정관절제를 했는데 외아들이 갑자기 병으로 죽었다. 면밀한 사전 검사를 거친 뒤 복원수술을 실시, 이듬해에 남자 아이를 분만했다. 국수올 만큼 가는 절단된 정관을 다시 잇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여기에 소모되는 재료들은 우리나라에서 쉽게 얻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난점이 있다. 남자불임증 환자도 늘어가는 경향, 11년 동안 10배 이상으로 정관복원수술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요즘은 절제수술을 할 때 미리 복원에 편리하도록 처리하는 방법이 이용되고 있다는 것. 각종 사고사(死)가 늘어남에 따라 복원수술을 해야 할「케이스」는 점차로 많아지고 있으며 그 성공률도 거의 세계수준만큼 높아져가고 있다고 서울의대 비뇨기과 교실에서는 밝히고 있다. ◇ 남성불임증 남성불임증 환자는 1955년의 경우 전체 비뇨기과 외래환자 중에서 1.72%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러던 것이 연차적으로 증가추세를 보여 60년엔 3.7%, 65년엔 18%로 늘었으며 66년엔 22%를 나타내어 55년에 비해 10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이와 같은 남자불임증 환자의 증가경향은 일반적으로 남자불임증에 대한 사회적 계몽, 사회적 인습에서 탈피하려는 남성측의 자각, 경제적 생활수준의 향상 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체 불임부부의 40%나 되는 남자불임증의 원인은 - 첫째, 정자형성기능에 장애가 생겨서 오는 조정(造精)기능장애. 둘째, 정자수송로에 폐색이 있어 생기는 수정(輸精)기능장애. 셋째, 정액성분에 이상이 있는 활정(活精)기능장애. 넷째, 사정기능에 장애가 있어 생기는 사정기능장애 등으로 대변된다. 가장 많은 것이 조정기능장애이며 원인불명도 전체의 30%나 되고 있다. 정액검사별로는 무정자증이 47.15%, 정자 감소증이 35.26%이며 정상 및 기타가 16.81%로 나타나고 있다. 요즘 갑자기 남성 불임증이 격증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 중요한 것은 각종 성병 후유증으로 오는 것과 직업, 기호품 과잉섭취에서 오는 것 등이 있다. 용접공·벤진·납(鉛)다루는 사람에 출산기능 잃는 사람 많아 고열 하에서 전기 용접이나 기타의 일을 오래하는 사람, 유기물질,「벤진」,「톨루엔」, 납 등을 취급하는 직장에 있는 사람들 중에는 고환기능의 파괴로 불임증에 걸리거나 유산을 경험하게 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그밖에 남자불임증을 유발하는 기호품으로는 - ▲ 담배 =「니코틴」은 배아상피에 파괴를 가져오고 정자의 운동성을 약화시킨다. 동물실험에서는「니코틴」의 투여로 임신율이 2분의 1로 낮아졌다. 사람에서도 하루에 20개비 이상의 담배는 임신에 해롭다. 준가임남자 188명 중 76명이 과도한 끽연을 하고 있었음이 보고되었다. ▲ 코피 = 하루에 20잔 이상의「코피」를 마시면 전립선 기타 정로(精路)에 자극을 주고 긴장, 과로를 일으켜서 임신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게 된다. ▲ 알코올 =「알코올」만성중독은 다른 종류의 중독 때와 같이 세정(細精)관에 퇴행성 변화를 일으키고 흔히 음위(陰萎)가 된다. 이와는 반대로 적당량의 음주는 최음제가 되고 때로 조루증이나 냉감증 부인의 치료목적에서도 효과를 본다. 근래 의학계에서 주목을 끌고 있는 남성불임증 가운데 면역성 불임증이란 게 있다. 부부가 비정상 성교인 음경흡철증으로 남자의 정액을 빨아먹음으로써 부인이「알레르기」가 생기고 불임이 된 예, 성교결과 질이나 자궁 등의 성기 점막에서 정액 성분이 흡수되어 항체가 생긴 결과 불임이 된 예 등이 보고되고 있다. 최경만(가명·54)씨는 전통사회에서 자란 소위 양반집 자손. 20세 때 결혼한 부인에게 애가 없었다. 그로부터 얻은 첩이 모두 다섯 명, 하나같이 이들도 임신을 못했다. 50이 넘어서야 자신에 결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대학병원 비뇨기과를 찾았다. 정액검사 결과 정자 감소증으로 판명되었다. 불임증 극복엔 집에서 노력할 일도, 배란기 등 택해 조절해야 남자불임증의 치료는 원인불명이 30%나 된다는 점에서 어려운 때가 많다. 보통 일반요법, 내분비요법, 조사(照射)요법, 외과요법 및 인공수정 등으로 나뉘는데 어느 것이나 면밀한 검사와 인내로써 치료에 임해야 성공률이 높다. 일반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치료법으로는 - ▲ 방사조절 = 임신능력이 낮은 남자는 5일 이상 금욕했다가 부인의 배란기를 찾아서 24시간 이내에 2회 이상 집중 성교한다. 가급적 부부의 극치감을 일치시키는 게 좋다. ▲ 성교체위 = 성교가 끝나고 음경을 발거(拔去)하기 전에 부인은 양다리를 가슴쪽으로 구부려 정액이 후질궁륭부(後膣穹窿部)에 괴어 유실되지 않도록 하고 20분간은 기침, 대소(大笑), 재채기 등을 하지 않는다. ▲ 수욕(水浴) = 온도자극 및 기계적 자극을 일으킬 목적으로 각종 좌욕, 세척을 온수 혹은 냉수로 하여 성 중추나 성기에 자극을 가한다. ▲ 최음제 = 발기중추를 자극하고 성기의 충혈 및 그의 흥분을 도모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서울대학병원의 경우 월 평균 30건의 남성불임증 환자가 찾아오고 있는데 이들은 진보된 현대의학의 혜택으로 놀랄만한 성과를 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관복원수술도 한층 호전된 외과기술의 덕분으로 그 성공률이 날로 높아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자료제공 = 이희영(李熙永)교수(서울의대 비뇨기과) [ 선데이서울 69년 2/9 제2권 제6호 통권 제20호 ]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