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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길로 가면…여름잊고 심신 살찌우고

    이길로 가면…여름잊고 심신 살찌우고

    서울 근교 산으로 숲속여행을 떠나보자. 싱그러운 나무 향기에 취해 야생화와 곤충, 새들을 관찰하다 보면 아이들은 금세 숲속을 탐험하는 재미에 빠져든다. 서울시와 각 자치구는 매주 일요일에 자연탐방 프로그램 ‘숲속 여행’을 서울 근교 산 17곳에서 운영한다. 탐방코스에는 전문 숲 해설가가 동행한다. 코스가 완만해 가족 나들이에 제격이다. 참가비는 없지만 인기가 많아 인터넷 예약(san.seoul.go.kr)을 서둘러야 한다. 지난주 강남지역의 산에 이어 이번 주에는 앵봉산, 안산, 인왕산, 남산, 개운산, 오패산, 초안산, 아차산, 봉화산, 수락산 등 강북지역 10곳을 소개한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앵봉산 꾀꼬리가 많아 앵봉(鶯峯)이란 이름을 얻었다. 해발 230m로 높지 않지만 정상 인근은 경사가 급한 편이다. 온대림 숲의 마지막 천이단계에서 나타나는 서어나무를 비롯한 100여종의 수종과 각종 초본류, 지의류, 버섯 같은 균류가 살고 있다. 다양한 식물 덕에 곤충과 조류, 다람쥐, 청설모 등 야생동물이 터전을 잡았다. 특히 천연기념물 제323호인 황조롱과 맹금류인 말똥가리도 관찰되고 있다. ●탐방코스 3호선 구파발역 4번출구에서 만나 출발한다.7단계로 나뉘어 국수나무, 도토리, 아까시나무, 진달래, 소나무, 팥배나무, 서어나무 등 다양한 수종을 만난다. 정상에 자리한 서어나무 군락지에는 서울에서 보기 힘든 서어나무와 작살나무, 담쟁이덩굴, 물갬나무, 다릅나무 등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3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넷째주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1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서오릉은 사적 제198호로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다. 창릉 익릉 명릉 홍릉으로 구성돼 있는데 구리시의 공구릉 다음가는 조선왕실의 왕릉이다. 주변에는 먹을거리도 풍부하다. 통일로변에 위치한 구파발 인공폭포는 통일로의 이정표로 상징적인 공간이라 유명하다. ●가는길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내려 4번출구로 나오면 집결지가 보인다. 버스는 7023,7723,7724,7731∼5,9703,9709,9710∼2번 등이 오간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강동구청 공원녹지과(350-1395). ■ 안산 무악(毋岳)이라고도 부른다. 산의 모양이 말안장, 즉 길마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쪽에 있는 현저동에서 홍제동을 넘는 고개를 길마재, 즉 안현이라고 했다. 안산은 인왕산에서 서쪽으로 비스듬히 뻗어 무악재를 이루고 솟은 산이다. 해발 295.9m. 조선왕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무악은 궁궐의 주산으로 주목받았다. ●탐방코스 서대문구청에서 출발한 탐방팀은 연흥약수터에서 안산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받는다. 조선시대 기록인 ‘용재총화’에는 무악재 주변에 밤나무와 소나무가 무성했다고 하나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1960년대에 난립한 무허가 집을 철거하고,1970년대부터 인공 수림을 조성하여 지금은 메타세쿼이어, 왕벚나무, 산수유, 모감주나무, 소나무, 당단풍나무, 잣나무 등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자연림으로 보존된 북쪽 비탈에는 진달래, 물오리나무, 노린재나무, 산초나무, 산벚나무 등이 드문드문 자리잡았다. 꿩, 메추라기, 박새, 딱따구리 등도 자주 눈에 띈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3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 넷째 일요일에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안산 정상의 무악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 13호)는 평안도와 황해도의 육로 봉화를 남산봉수대로 최종 보고하던 곳이다. 연희동에 있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2003년 7월에 개원했다.1층은 인간과 자연관,2층은 생명진화관,3층은 지구환경관으로 구성돼 있다. 서대문형무소도 독특한 볼거리다.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연 이후 우리의 항일 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른 곳이다.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홍제역 3번출구에서 7713,7738,7739번 버스를 타고 서대문구청 앞에 도착. 탐방신청 및 문의는 서대문구청 공원녹지과(330-1395) ■ 인왕산 해발 338.2m. 화강암으로 이뤄져 암반이 유난히 노출된 것이 특징이다. 북악산이나 남산보다 산세가 웅장하고 풍치가 아름답다. 광복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외곽을 둘러싸고 있던 산이었는데, 서울이 팽창하면서 중심부로 들어왔다. 인왕산에는 실제 사물과 닮은 기묘한 괴석들이 많다. 둥근 모자 모양의 모자바위, 돼지가 코를 들고 있는 듯한 돼지 바위 등이 유명하다. 산을 오르며 바위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탐방코스 사직공원에서 출발해 단군성전, 황학정, 쉼터, 약수터를 돌아온다. 바위산이라 중턱 이상에는 수목이 별로 없지만, 산등성이에는 때죽나무, 국수나무, 팥배나무, 소나무 등이 오밀조밀 들어차 있다. 쉼터에 앉아 각종 나무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야생 조수와 계곡생태계 등을 배운다. 코스는 총연장 2㎞로 2시간 정도 걸린다. 둘째 넷째주 일요일에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국사당(서울시 중요민속자료 제28호)은 서울을 수호하는 신당으로 무학동 인왕산 기슭에 있다. 원래는 남산 정상에 있다가 1925년 현 위치로 이전됐다. 일본인들이 남산 기슭에 신사인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더 높은 곳에 국사당이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이전을 강요당했다. 선바위(서울시 중요민속자료 제4호)는 인왕산 서쪽 기슭에 있는 두 개의 거석이다. 마치 중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 같다고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의 상이라거나,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는 전설이 있다. 자식 없는 사람이 바위에 빌면 효험이 있다고 전해진다.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내려 사직공원까지 도보로 5분 걸린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종로구청 공원녹지관(731-1459). ■ 남산 해발 265m로 서울의 중심부에 자리한 서울의 상징이다. 본래 이름은 인경산이었으나 조선왕조 태조가 1394년 도읍지를 개성에서 서울로 옮긴 뒤 궁궐 남쪽에 있다고 해 자연스럽게 남산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풍수지리상 남주작, 안산에 해당하는 중요한 산으로 태조는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지금의 팔각정 자리에 국사당을 세웠다. 서울시가 1991년부터 ‘남산 제모습 가꾸기’사업을 실시하여 훼손된 시설물을 철거한 후 야외식물원, 한옥마을 등을 조성했다. ●탐방코스 남산전시관에서 출발하는 탐방코스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양생화단지, 팔도소나무림, 야외식물원, 숲속길, 서울성곽, 봉수대 등 숲속여행의 총 결정판이라 부를 만한다. 애국가 2절에 나오는 것처럼 ‘철갑을 두른 듯’ 소나무가 울창했던 곳이지만, 일제 시대와 광복 이후 크게 훼손돼 지금은 아까시나무와 신갈나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행히도 소나무 탐방로가 있어 아쉬움을 달랜다. 코스는 총 연장 4㎞로 3시간 정도 걸린다. 첫째 셋째 일요일, 둘째 넷째 토요일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1975년에 설치된 서울 N타워(옛 남산타워)는 방송송신탑이다. 최근 리모델링을 끝내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안중근 의사의 유품과 유물이 전시된 안중근의사기념관(771-4195)과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몸으로 막은 충신들을 기리는 장충단비가 놓인 장충공원도 구경할 만하다. 남산골 한옥마을에는 물이 흐르는 골짜기에 정자를 짓고, 전통한옥 5채를 옮겨 놓아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가는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4호선 서울역·회현역에서 15분 걸어가면 전시관 뒤편 맨발보드 앞에 야외식물원이 나온다. 이곳이 집결지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남산공원관리사무소(753-7060∼2). ■ 개운산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열었다.’는 뜻을 담은 개운사라는 절이 있는 곳이어서 개운산이라고 부른다. 동쪽으로는 정릉천과 월곡산이, 서쪽으로는 성북천과 북악산이 뻗어 있다. 두 물줄기는 용두동에서 만나 청계천에 합류한다. 성북구 중심에 위치한 자연산지형 공원이어서 쾌적한 주거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탐방코스 “대화 없이 힘들게 하는 산행은 어린 두 딸에게 무리지만, 숲 해설가 선생님과 더불어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산책을 하듯 탐방을 마쳤습니다. 집에서 가까워 탐방 후에는 개운산을 둘러보며 휴일 오후를 보냈습니다.” 개운산을 다녀온 정옥씨 가족이 홈페이지에 남긴 글이다. 도심에 있어 수목이 울창하지 않지만, 산책로와 자연생태학습장이 잘 조성돼 있어 가족나들이에 제격이다. 때죽나무, 산딸나무, 국수나무 등 수목과 복수초, 비비추, 옥잠화 등 초화류를 자연학습장에 심어 놓았다. 산책로 주변에는 활엽수림과 침엽수림이 자리하고, 민들레, 제비꽃, 복수초 등이 자란다. 코스는 총 연장 1.5㎞로 약 3시간 소요된다. 첫째, 셋째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서울성곽(사적 제10호)은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 석축 성곽. 높이 40척(12m)의 돌로 쌓았고 둘레가 5만 9500척으로 서울 장안을 지키던 울타리다. 돌 틈에 노송이 뿌리를 내리고, 이끼와 넝쿨이 뒤덮여 있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성락원(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78호)은 조선 말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던 것을 의친왕 이강이 별궁으로 사용하다가 그의 아들 이건이 살았다고 한다.6만여 평의 저택에는 소나무·참나무·다래나무·등나무 등 우리 고유의 조경수가 연못가와 산비탈에 우거져 있고 암벽과 폭포, 수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가는 길 지하철 4호선 길음역 2번출구에서 도보로 5분 걸으면 집결지인 개운초등학교를 만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성북구청 공원녹지과 920-3395∼7. ■ 초안산 도봉구 창동, 노원구 월계동에 자리한다. 해발 114.1m로 아담하다. 이곳에는 1000여기에 달하는 조선시대 무덤이 밀집해 있다. 흔히 ‘내시묘’라 부르는데 실제로는 내시의 무덤와 더불어 단장이 잘된 이름 있는 문중의 선산도 있다. 조선시대 ‘공동묘지’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전쟁 때 국군이 이곳에 ‘청동 저지선’을 치고 북한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여 지금도 당시의 방공호가 곳곳에 남아 있다. ●탐방코스 창골어린이공원에서 출발해 초안산 정상에 도착한 뒤 궁인 분묘군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주요 수종은 참나무류이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식생으로 보이지만 노박덩굴, 노린재, 누리장, 물푸레, 참싸리, 굴참, 산사, 산초, 오리, 단풍, 소나무, 상수리 등 다양한 수종이 자라고 있다. 생태육교에선 생태계의 파괴와 복원에 관한 설명이 이어져 자연보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갖는다. 코스는 총 연장 2㎞로 소요시간은 약 2시간. 둘째·넷째주 일요일에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초안산은 생태육교와 약수터 4곳, 배드민턴장 3곳, 인조잔디 축구장 1곳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방학사거리에 있는 방학사계광장에는 환경조형물과 분수 등 수경시설을 만들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조선시대 제10대 임금인 연산군(1476∼1506)과 왕비였던 거창군부인 신씨의 묘가 주변에 있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녹천역 2번 출구로 나와 주공 4단지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창골어린이공원, 만남의 광장을 찾을 수 있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도봉구청 공원녹지과 2289-1396. ■ 아차산 해발 300m로 서울과 구리시에 걸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그러나 산 위에 서면 서울시를 둘러싼 모든 산과 시가지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굽이치는 한강의 푸른 물과 강변의 풍광이 장관이다. 삼국시대 전략 요충지로, 특히 고구려 온달장군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학문적 고증과 상관없이 주민들은 온달장군이 신라에 빼앗긴 한강유역을 되찾고자 이곳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고 믿는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차산에는 ‘온달샘’이란 약수터와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고 전해지는 지름 3m의 거대한 공기돌 바위가 있다. ●탐방코스 만남의 광장에서 출발해 생태공원, 소나무숲, 목본·초본식물 관찰대를 거쳐 아차산성에 도착하는 코스다. 총 연장 2㎞로 약 3시간 걸린다. 아차산은 화강암으로 이뤄져 주요 수종은 소나무다. 동부와 북부 산지에는 상수리나무가 많지만, 산의 높이가 낮아 다양한 나무의 경관보다는 아까시나무·물오리나무 등 인공림이 대부분이다. 대체로 멧비둘기·박새·붉은머리오목눈이·뻐꾸기 등이 관찰되고 천연기념물인 새매와 소쩍새도 볼 수 있다. 한여름 숲속에선 참매미의 울음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첫째·셋째주 일요일 오전 10시 집결지에서 탐방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주변 볼거리 워커힐 호텔 뒤편에 자리한 아차산성(사적 제234호)은 백제의 유산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 책계왕(286년) 때 쌓은 성으로 삼국시대에는 중요한 요새였다. 용마폭포공원에 자리한 용마폭포는 청룡폭과 백마폭포 등 세 갈래 폭포줄기로 구분된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가는 길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1번출구로 나와 광장중학교 방향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만남의 광장과 만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광진구청 공원녹지과(450-1395). ■ 봉화산 중랑구 상봉동, 중화동, 묵동, 신내동에 접해 있으며 일명 ‘봉우재’라고 불린다.1963년에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에서 서울시에 편입됐다. 봉화산이란 이름만으로도 봉화와 관련이 있는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북쪽의 한이산(汗伊山)으로부터 연락을 받아 남산으로 전달하는 아차산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봉수대 모형은 1994년 11월7일에 설치됐다. 해발 160m로 평지에 돌출된 독립구릉지역이다. 동쪽에 아차산 주능선을 제외하고는 북쪽으로 불암산과 도봉산, 양주 일대까지 조망할 수 있다. 서쪽과 남쪽으로도 높은 산이 없어 한강 이남까지 보인다. ●탐방코스 중랑구청에서 출발해 소나무 숲을 지나 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15호)에 오른다. 중랑구 전경을 조망한 뒤 참나무숲을 거쳐 초본류 관찰대로 돌아오는 코스다. 총연장 1.5㎞로 길이가 짧고 산이 높지 않아 산책로로 그만이다. 주요 수종은 소나무지만, 태릉중학교로 내려가는 길에는 잣나무 군락이 조성돼 있다. 팥배나무, 국수나무 관찰대가 있고, 박새, 직바구리, 어치 등 텃새가 서식한다. 첫째·셋째주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주변 볼거리 아차산봉수대(서울시 기념물 제15호)는 조선시대 통신 시설이면서 군사 시설이다. 평시에는 횃불 한 번, 적이 나타나면 횃불 두 번, 적이 가까이 오면 횃불 세 번, 지경을 침범하면 횃불 네 번, 적과 접전하면 다섯 번의 횃불을 올렸다.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불을 올린다. 정상에서 약간 남쪽에 봉화산 도당인 산신각이 있다. 이곳은 400년 전에 주민들이 도당굿과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 34호로 주민의 안녕과 결속을 위하고 대동의식을 고취시킨 마을 굿이다. 지금도 매년 음력 3월3일(삼월 삼짇날) 도당제를 지낸다. ●가는 길 지하철 1호선 신이문역이나 지하철 6호선 봉화산역에서 내려 지선버스 1223,2216번을 타고 중량구청 앞에 내린다. 구청 뒤 공원이 집결지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중랑구청 공원녹지과(490-3395). ■ 오패산 강북구 미아동과 번동, 성북구 장위동, 월곡동에 위치해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자연이 잘 보존된 편이다. 일명 빡빡산·벽오산·매봉짜 등으로 불린다. 남북으로 뻗어 동쪽으로 속칭 공주릉과 드림랜드를, 남쪽으로 동덕여대를 품고 있다. 해발 123m 오패산과 115m 봉우리,135m 벽오산 봉우리로 이루어져 나지막한 구릉지 형태다. 산기슭에는 예부터 자두나무가 많이 자생해 봄이 되면 수려한 꽃이 만발한다. 특히 수정 등 보석이 많이 나오고, 맞은편 초안산은 명당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고려의 중신들이 자주 다녀갔단다. ●탐방코스 강북구민운동장을 출발해 제1코스,2코스로 나뉜다.1코스는 벌리약수터, 대왕참나무숲, 복자기나무길, 꽃샘길, 참나무숲을 거쳐 정자와 율곡놀이터로 이어진다.2코스는 벌리약수터에서 군수나무 군락지, 야생화단지, 기념식수지, 소나무숲을 거쳐 정자에 닿는다. 아까시나무, 소나무, 참나무류, 팥배나무, 산벚나무 등 중부지방 자연상태의 수림에다 자작나무, 잣나무, 산딸나무 등을 꾸준히 식재해 숲이 울창하다. 산이 낮아 계곡은 없지만, 약수터가 있어 탐방객들이 즐겨 이용한다. 첫째·셋째주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주변 볼거리 1987년에 개장한 드림랜드는 수영장, 골프연습장과 같은 운동시설과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다. 구민운동장은 각종 체육·문화행사를 개최하는 장소. 지난 4월 조깅트랙을 설치했다. 강북문화정보센터는 지하1층, 지상 4층 규모로 2001년 5월에 문을 열었다. 열람실, 정보실, 시청각실, 문화교실 등을 개방한다. ●가는길 지하철 4호선 수유역 3번출구로 나와 마을버스 9번이나 11번을 타고 10분 정도 가다 집결지인 강북구민운동장에 내린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강북구청 공원녹지과(901-2386). ■ 수락산 북쪽으로 불암산과 연결되고, 노원구 상계동과 경기도 의정부시,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해발 637m로 높은 편이다. 수락산 능선의 암봉이 서울을 향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어 태조 이성계는 서울의 수호산이라 불렀다. ●탐방코스 임간휴게소에서 출발해 냇가와 향토꽃 전시장, 아까시나무숲, 명상의 숲, 숲속 길을 거쳐 바위 밑 샘터에 도착한다. 총 연장 3㎞로 다소 길다. 소요시간은 약 3시간. 향토꽃 전시장에서 야생화를 관찰하고, 꽃과 곤충의 관계를 살펴본다. 아까시나무 숲에선 흙 나무냄새 산림욕 보물찾기 등 숲속 체험거리가 가득하다. 숲속길이 나오면 청진기로 나무 소리를 듣고, 샘터에선 약수를 마신다. 대부분 돌산으로 화강암 암벽이 노출돼 있지만, 산세가 험하지 않다. 수락계곡과 노원골 일대 11㎞ 산책로는 산림욕하기에 좋은 곳이다. 둘째·넷째 일요일에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주변 볼거리 수락산 유원지는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에 있는 계곡 일대로 웅장한 석벽과 기암괴석이 많고 계곡이 수려하다. 예로부터 시인, 묵객이 즐겨 찾았다. 노원구 상계동에서 남양주시 별내면으로 넘어가는 덕릉고개에는 경기도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된 선조의 생부 덕흥부원군의 묘, 일명 덕릉이 자리한다. 수락산 중턱 남쪽 기슭에는 박세당이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해 중창한 석림사가 있다. 그 옆에는 박세당의 묘소와 영정각이 있다. 김시습은 1455년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수락산에 숨어들었다. 박세당은 숙종 때 정쟁에 혐오를 느껴 관직을 포기하고 이곳에 은둔해 농사를 지으며 제자를 길렀다. ●가는길 지하철 7호선 수락산역 2번출구로 나와 도보로 10분 걸어 집결지인 수락산 입구에 도착한다. 탐방신청 및 문의는 노원구청 공원녹지과(950-3896).
  • [’서울신문 102년-갈등넘어 소통으로/대담] “다이내믹과 질서의 융합이 우리 문화의 힘”

    [’서울신문 102년-갈등넘어 소통으로/대담] “다이내믹과 질서의 융합이 우리 문화의 힘”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젊음과 나이듦으로 나눠지거나 첨단과 ‘구닥다리’로, 또는 혼돈과 질서로 분열되고 있다. 그래서 둘 중에 하나를 꼭 선택해야 할 것 같다.‘다이내믹 코리아’와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함께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김지하(65) 시인과 허운나(58) 한국정보통신대 총장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했을 때 문화적 파괴력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문리대 선후배 사이지만, 김 시인과 허 총장은 이날 처음 만났다. 어색한 분위기를 월드컵 얘기로 풀었다. 역시나 이들은 한국팀의 선전만큼이나 장외의 에너지에 관심을 보였다. ▶허운나 총장 스위스전에서 우리가 진 뒤 텔레비전 화면에 ‘축구는 오늘…죽었다’라는 문구가 나왔다. 우리팀이 더이상 나아갈 데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흥과 신명이 죽었다는 말이다. 전국에 분출하던 신명이 그만 폭삭 가라앉았다는 말이다. ▶김지하 시인 2002년에 월드컵 축제라는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지만, 지식인 사이에서는 ‘히스테리다’‘파시즘적이다’‘일회적이다’라는 말이 나왔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특히 이탈리아전에서의 ‘어게인 1966’이라는 카드섹션이 예뻤다. 북한이 이긴 경기를 어게인하자는 생각은 조직된 지도그룹이 이끌어서 나오는 게 아니니 환원주의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자기조직화 원리에서 발로된 역동적 균형은 1999년 시애틀에서 있었던 반WTO 시민시위와 닮았다. 인터넷을 보고 수천명이 자유무역과 선진국, 신자유주의에 반대해 모였지만 아무도 이 모임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2002년 탄생한 ‘대∼한민국’이라는 구호가 유목민적인 3박과 농경적인 2박의 결합에서 나왔다면,2006년의 꼭짓점 댄스는 4박자 일변도였다. 전체적으로도 자발적인 게 아니라 기업들이 만든 뻔한 프레임의 선전공세에 밀린 느낌이다.2002년 월드컵 축제의 에너지는 이후 촛불로 다시 왔는데, 지식인이 끼어들어서 반미 데모를 했다. 젊은이들은 반미는 아니라고 갈라섰고,2006년의 어색함은 이 갈라섬에서부터 비롯됐다. 이분법적인 반미야말로 아날로그적인 사고이다. (탐색이 끝나고 선후배 사이의 대화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속성 자체를 향해 파고 들었다.) ▶허 총장 우리는 디지털에 관한 한 인프라를 가장 잘 만들어 놓은 나라다. 이를 이용해 메시지를 만들 수 있는 기반도 가졌다. 영화·드라마·게임·애니메이션 모두 우리는 최고다.2006년 전세계로 퍼진 거리의 전광판 응원에서 우리는 세계를 리드했다. 그런데 2006년의 기운은 약간 달랐다는 점을 부정할 수가 없다. 신명을 아날로그적 콘텐츠라고 하고 이 환희나 흥분을 실어나르는 것을 디지털이라고 하면 신명이 컸기 때문에 2002년의 축제가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는 이번 2006년에는 신명의 농도가 묽었다고 본다. ▶김 시인 2002년에는 적어도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지향을 갖고 있었다. 나는 유비쿼터스 단계에 가면 분열된 가치체계가 반드시 결합할 것이라고 보고, 이를 ‘디지털아날로그’‘디지털에코’라고 불렀다. 이 분야에서 ‘다이내믹 코리아’의 역동적 이미지와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질서의 이미지를 함께 갖고 있는 우리는 빠를 수밖에 없다.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가 융합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면,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지향적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허 총장 두 개의 상반된 이미지를 한 나라가 갖고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특히 최근 여러 나라를 둘러보며 한국만큼 다이내믹한 나라가 없다고 생각했다. ●유비쿼터스 단계되면 분열된 가치 결합 ▶김 시인 디지털은 뇌의 모방이기 때문에 이중성을 갖고 있다. 서로 반대되는 게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이중분열의 숨은 차원에 생명의 영적 차원이 있다. 아날로그의 차원이다. 결국 디지털이 치유의 방법이 되려면 아날로그가 필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김 시인은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분열한 게 아니라, 예전과는 다른 형태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 총장은 이렇게 조화를 이룬 우리 문화가 나라 바깥에서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지 목격담을 털어놓았다.) ▶김 시인 1879년에 충청도 지방에서 김일부라는 사람이 한국주역인 정역을 발표하며, 율여(律呂) 개념을 뒤집은 여율(呂律) 개념을 제시한다. 여(呂)는 여성·아이들·시끄러운 것·혼돈·역동성을 뜻한다. 율(律)은 남성·질서·이성을 말한다. 지금은 여의 무게가 더 커지고 있다. 균형이라는 건 기우뚱거리는 데서 나온다. 왼쪽으로 기울어질 수도 있고, 오른쪽으로 기울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쪽이 없어지거나 정복당하는 것은 균형이 아니다. 월드컵 때는 혼란이 앞서고 질서가 뒤를 이었을 뿐 어떤 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허 총장 균형이라는 말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득세하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 가능성이 한류로 상징되는 문화 부문에서 실현되고 있다. 바깥에서 한류를 목격했는데, 가슴이 뛰었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에도 한류가 있다는 건 보기 전에는 믿기지 않는다. 직접 가서 보니 하루에 다섯번씩 기도하는 이슬람국인 이집트나 알제리에서도 저녁이 되면 사람들이 한국 드라마를 본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추구하는 아랍에서는 가을동화나 겨울연가가 인기지만, 나라별로 한류에 대한 이미지는 다르다. 예를 들면 베트남에서는 한국의 엄청난 파워, 흥이랄까 다이내미즘 때문에 국가발전이 빠른 것에 대해 존경심을 표시한다. ▶김 시인 미국 할리우드 아트디렉터인 제인 케이건은 한류 기술체계도 디지털로 변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쪽으로 말을 달리며 서쪽으로 활을 쏘는 고려 무사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다이내믹 코리아와 모닝캄의 상반된 이미지가 상호 긴장을 주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우리 안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2005년도 문화산업 총매출액이 63조원이다.2003년부터 두해 동안 이 분야는 22.8% 성장했다. 다른 7대 동력산업의 성장률을 합쳐도 3.3% 정도다. 그런데 정부의 문화정책 관련 예산 비율은 역주행을 하고 있다. (환갑을 앞둔 후배와 환갑을 훌쩍 넘은 선배는 디지털 세대의 문화에 관심을 떼지 못했다. 자신들의 전성기였던 산업화 시대에 느끼지 못한 가능성이 이제 열리고 있다는 기쁨 때문이다.) ▶김 시인 28살 먹은 여성에게 자신의 세대를 뭐라고 부르고 싶으냐고 묻자 ‘밀실 네트워크 세대’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인터뷰를 봤다. 자기네들은 전부 ‘방콕’이라는 것이다. 외로운 사람들이 디지털·컴퓨터로 모인다. 그런데 10명만 모였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수백명·수천명·수십만명이 뜨는 것이다. ●개인화된 디지털 문화 토털세계 통해 세상과 소통 ▶허 총장 디지털 문화의 많은 부분이 ‘방콕‘(방에 틀어박힘) 상태로 개인화되고 있지만, 동호회 문화가 생기고 싸이월드를 통해 개인의 토털세계가 형성돼 세상과 소통하게 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에 대한 담론이 처음 나오고 10여년이 흘렀다. 디지털 세대에 대한 애정은 어느덧 애증이 돼 있었다. 시인은 디지털 세대가 스타일을 찾기를 바랐다.) ▶김 시인 아날로그 스타일을 무시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때 6·25 전쟁이 나서 400만명이 죽었다. 연좌제에 걸려 고생한 사람은 셀 수가 없다. 그 지독한 난리를 겪고도 웬만한 집들은 거지가 가면 불러서 밥을, 그것도 밥상에 차려서 줬다. 그게 우리의 민심이고 스타일이었다. 이제 그 아날로그 스타일은 무너졌고, 디지털 세대는 자기의 스타일을 아직 못 만들었다. 이 세대가 월드컵 같은 경험을 통해 그 스타일을 세우는 게 반갑다. 조선왕조실록을 번역해서 인터넷에 올려 놓으면 그 안에서 부인네들 30여명이 계를 한다고 대신들이 임금에게 고자질하는 대목을 찾아내는 게 젊은 세대들이다. 한류 탐구자들에 의해, 디지털 세대에 의해 어떤 영화 시나리오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이 나올까.‘왕의 남자’도 결국 실록의 한 줄에서 출발한 게 아닌가. 아날로그를 ‘꼰대’ 취급할 게 아니다. 배우려고 들어야 한다. ▶허 총장 이집트에 가보니 문화를 뜻하는 컬처(culture)라는 말에 네트워킹을 합성해 ‘컬넷’이라는 것을 구축해 놓았다.180도 반구형 화면에 파라오 가면부터 파피루스까지 유적들이 열거된다. 파피루스를 선택해 글자 하나를 건드리면 그에 관한 이야기와 기록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게 디지털을 이용한 문화의 재구성이고, 이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깊다. 심미적인 것 자체가 상품이 되고 눈길을 끌어야 살아남는 ‘어텐션 이코노미’의 시대가 되지 않았나. ▶김 시인 다이내믹한 디지털과 질서의 아날로그는 함께 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의 중도가 나타날 때가 됐다. 지식인들은 월드컵 현상이 나타나면 재해석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젊은이들은 아날로그를 무조건 꼰대 취급만 할 게 아니다. 배우려고 들어야 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생산적인 방향에서 겨냥하고, 새로운 문화정책과 방향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다이내미즘과 질서의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는 우리는 이미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소통을 이룬 경험이 있으니, 그것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정리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정선민 MVP “음~ 다섯번째”

    ‘바스켓 여왕이 돌아왔다.’ 정선민(32·국민은행)은 언제나 정상의 자리에 있었지만 지난 2003년 11월 국민은행으로 이적한 뒤 한번도 팀 우승을 이끌지 못했다.‘정선민이 있는 팀은 우승할 수 없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하지만 정선민은 올 여름리그에서 국민은행의 우승을 견인했고 한동안 남의 몫처럼 여겼던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마저 4년여 만에 거머쥐었다. 정선민은 1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발표된 기자단 투표 결과, 총 69표 가운데 30표를 얻어 팀 동료 마리아 스테파노바(25표)를 제치고 통산 5번째 MVP의 영예를 안았다.MVP 5회 수상은 정선민만이 거둔 독보적인 기록. 은퇴한 정은순과 변연하(삼성)가 3차례로 뒤를 잇고 있다. 정선민은 정규리그 14경기에서 평균 12.9점에 리바운드 4.9개, 어시스트 3.5개를 기록했다. 정선민은 “노장 선수의 중요함을 느낀 대회였다. 다른 팀의 전주원이나 김영옥 등 고참들과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고 원숙한 소감을 밝혔다. ‘러시안특급’ 스테파노바는 득점(24.3점)과 리바운드(18.3개), 블록슛(4.1개)에서 3관왕을 차지한 것은 물론 외국인 선수상과 베스트5에도 뽑혀 MVP를 놓친 아쉬움을 달랬다. 또 여자프로농구 사상 처음으로 덩크슛을 성공시켜 특별상을 받았다.‘초보 사령탑’ 최병식 국민은행 감독은 데뷔 첫해 지도상을 받았다. 이밖에 베스트5에는 전주원(신한은행)과 정선민, 변연하(삼성생명), 김정은(신세계)이 선정됐다. 또 이연화(신한은행)는 우수후보선수상, 이종애(삼성생명)는 우수수비선수상을 받았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녹색공간] 물 한잔의 행복/김판기 용인대 산업환경보건학과 교수

    예쁜 아이들이 맑고 깨끗한 개울에서 물장난을 치며 웃고 떠드는 내용의 공익광고를 가끔씩 본다. 물은 마심으로 갈증해소를, 뿌림으로 깨끗함을, 흐름으로 즐거움을, 다시 비가 되어 내림으로 생명력을 선사하는 완전한 존재이다. 옛말에 돈을 물쓰듯 한다는 말이 있다. 물은 헤프게 쓸 수 있었던 대표적인 물건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물이 돈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수자원 쟁탈을 위한 전쟁이 날 것이라는 미래학자의 예측도 있다. 1960년대 말까지만 해도 마을 앞 개울물을 길어다 먹는 집들이 제법 있었을 것이다. 어느 틈엔가 그 개울물은 물항아리를 채우는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더이상 멱감는 아이와, 소금쟁이, 물방개를 찾아볼 수 없는 개울이 되었다. 낙동강을 시작으로 팔당을 비롯한 상수원의 수질이 점차 악화되고, 주변의 개발로 오염원이 늘어간다는 보도에 국민들은 불안해졌다. 굳이 실험실에서 분석하지 않더라도 물이 죽어가고, 생태계가 달라지는, 눈에 보이는 변화를 누군들 모를 리 없다. 최근 우리가 먹다 버린, 그래서 환경중으로 흘러 들어간 의약품이 먹는 물에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해열진통제, 강심제, 위궤양 치료제, 정신신경치료제, 심장병치료제, 설파제 등이 우리나라 하천에서 검출되고 있고, 이들 환경의약품에 의한 독성 및 위해성의 우려를 낳게 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약이 아닌 한잔의 물을 처방하는 의사가 코믹하게 그려진 외국 만화가 문제의 심각성을 희화화하고 있다. 게다가 어떤 의약품은 내분비 교란의 가능성도 있음을 학술 논문을 통하여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건강한 사람이 원치 않는 의약품을 항상 복용하게 되는 결과가 나타나는데, 의약품 칵테일을 마심으로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독성영향은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되는 경우보다 다섯 혹은 열(10)이 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환경부에서 환경의약품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금년부터 환경의약품오염 용역연구사업을 선정하여 조사하고 있다니 그 결과가 기대된다. 수일 전 강의를 위하여 서울시 상수도연구소를 방문하였다. 아리수(서울 수돗물의 이름)를 병에 담아 제공하고 있었다.2006년 서울시 수도사업특별회계 예산이 8000억원을 넘고 있고, 환경부의 하수도 수질관리 예산이 1조 8000억원에 달하고 있다. 아리수 수질검사 성적이 매우 우수함에도 전반적인 수돗물에 대한 인식은 크게 나아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수돗물에 대한 국민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미지의 유해물질의 오염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리라 본다. 과거와 달리 국민의 요구는 날로 높아져 현재 55개 검사항목으로도 부족하고, 더욱 높은 수준의 음용수 수질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설과 인력, 궁극적으로 예산이 늘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더구나 모든 국민이 만족할 만한, 믿을 수 있는 수돗물을 되찾는 일이 검사와 관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일부 국가기관의 노력만으로 이루어 질 수 없음은 자명하다. 선진외국이 시행하고 있는 것처럼 200여 검사항목을 추가하는 일만으로 수돗물에 대한 인식이 개선될 수 있을까? 깨끗한 물 한잔의 행복은 우리 모두의 몫이고, 이 행복을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 사람도 우리 모두여야 하듯이, 환경의약품에 대한 국민 모두의 인식제고가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육과 홍보, 제도적 뒷받침, 관계기관의 협조 또한 절실하다. 일부 환경단체의 폐의약품 수거운동이 애처롭기만 한데, 환경의약품의 오염을 방지하는 해법을 놓고 오염배출자인 이익단체 간에 또 다른 이익확보를 위한 논리의 하나로 환경의약품 문제가 논의되고 있음이 안타깝다. 물 한잔의 행복을 위해 모르는 게 약이 아닌, 물 한잔이 행복약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아직도 환경의약품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는 오염배출자와 의약품 생산과 유통을 관리하는 기관들의 관심의 폭이 유연해지기를 기대해본다. 김판기 용인대 산업환경보건학과 교수
  • [금융상품 백화점]

    ●하나은행 신꿈나무 적금 하나은행은 셋째 자녀가 적금에 가입하면 0.3%포인트의 우대 금리를 제공하고 온라인교육서비스까지 가능한 어린이퓨전상품인 ‘신꿈나무 적금’을 판매하고 있다. 이 상품은 영어교실, 골프강좌 등 무료 온라인 교육서비스까지 제공하는 퓨전상품으로 18세 이하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다. 최소 가입금액은 5만원 이상이며 만기 3년으로 금리는 연 3.9%이다. 셋째 자녀 가입시는 우대금리가 지급되므로 4.2%가 적용된다.5만원 이상 자동이체 때는 성장단계에 따른 보험을 무료로 가입해주며, 적금가입시에 가입자가 지정한 대학에 입학하면 축하금리 2%를 더 준다.   ●ING생명, 무배당 All-Round 다이렉트 보험 정기보험에 상해보험의 보장을 결합한 텔레마케팅 전용상품이다. 재해로 인한 사망시에는 일반 사망 보험금의 3배에 해당하는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 보험료 납입이 끝난 뒤 처음 돌아오는 계약 해당일에 이미 낸 보험료의 50%를 건강관리자금으로 지급하고 만기 때 나머지 주보험료를 환급한다. 연간 납입보험료는 최대 1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중요 질병에 대한 특약을 강화, 입원특약·질병입원특약·암진단특약·암수술입원특약 등 각종 특약을 고객의 필요에 맞게 고를 수 있다. 만 15∼55세면 가입할 수 있다.   ●현대증권, 히어로 노블레스 펀드 현대증권의 간판 펀드인 ‘노블레스 주식투자신탁’은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국내 기업들에 집중 투자하는 펀드다. 지난해 10월17일 402억원 규모로 설정됐고 선풍적 인기로 지난 2월 120억원 상당의 2호가 설정됐다. 그동안 고수익을 달성하고 상환된 테마형 노블레스 펀드의 후속이다. 자산의 50%는 국내외 시장에 경쟁력을 갖췄거나 신제품 개발 등의 호재를 가진 기업들에, 나머지 50%는 시장상황에 따라 유망 우량종목에 각각 투자한다. 우량주는 주식수급 차원에서 품귀현상으로 인한 강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생명,‘사랑의 손’ 광고 론칭 대한생명은 5월 공익광고에 버금가는 ‘사랑의 손’ TV광고를 선보였다.‘당신의 내일과 함께(With Your Tomorrow)’라는 슬로건과 함께 평범한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광고다.“넘어질 것을 두려워 마라. 다른 세상도 주저하지 마라. 어른이 되는 것도 겁내지 마라. 잊지 마라, 너를 위한 따뜻한 손길이 곁에 있음을”이란 내레이션과 함께 성장해가는 딸의 모습을 단계적으로 보여주면서 장면마다 딸의 곁에서 잡아주고 보살펴주는 아버지의 믿음직한 ‘손’을 부각시켰다. 결혼식장에서 딸의 눈물을 닦아주는 장면으로 광고를 마무리했다.   ●현대캐피탈 오토플랜 중고차 보장서비스 현대캐피탈은 오토플랜 중고차 할부 고객에게 5개월·5000㎞의 중고차 보장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 3개월·5000㎞까지 제공해 주던 기간을 5월부터 더욱 확대했다. 중고차 할부 이용고객 모두에게 무상으로 제공되는 이 서비스는 보증기간 동안 구입 차량의 엔진이나 미션, 타이밍벨트에 결함이 생기면 수리 또는 교환해 준다. 이 같은 보장서비스는 건설교통부의 품질보증 의무기간 (30일·2000㎞)보다 다섯 배 가량 더 많은 것으로, 할부금 범위 내에서는 수리금액과 횟수에 상관없이 무제한 보장해 준다.
  • 금융권 월드컵 마케팅 100% 활용법

    금융권 월드컵 마케팅 100% 활용법

    독일 월드컵이 성큼 다가오면서 금융회사들의 ‘월드컵 마케팅’도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은행들은 고금리 상품을 내놓는가 하면 추첨을 통해 독일행 비행기 티켓도 제공한다. 카드사와 보험사도 포인트와 경품을 주는 마케팅에 속속 가세하고 있다. 자신이 이용하는 금융회사를 통해 보다 알차게 응원할 수 있고, 재테크까지 덤으로 챙길 수 있는 기회가 널린 셈이다. ●대표팀 성적에 따라 금리 쑥쑥 축구국가대표팀 후원사인 하나은행은 요즘 거의 매일 월드컵 관련 상품과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오필승코리아예·적금’‘태극펀드’‘월드컵 특판예금’ 등을 내놓았고, 매주 금요일마다 영업점 직원들은 붉은색 응원 티셔츠를 입고 고객을 맞이한다. 서울 을지로 본점에는 한국축구 100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료와 독일월드컵 출전 32개국 대표팀 유니폼 등을 전시하는 ‘풋볼빌리지’를 차렸다. 우리은행은 이달 말까지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후원사인 야후와 함께 ‘우리은행이 대한민국을 응원합니다.’ 2차 이벤트를 열어 독일 왕복항공권(10명),LCD-TV(10명), 디지털카메라(50명), 박지성 티셔츠(3만명)를 추첨을 통해 제공한다. 대표팀의 성적(16강·8강 4.5%,4강 7%, 우승 10%)에 따라 추가 금리를 주는 6개월짜리 ‘아이러브 박지성 정기예금’과 박 선수가 득점할 때마다 0.2%포인트의 금리가 가산되는 ‘아이러브 박지성 정기적금’도 판매한다. 외환은행은 이영표 선수가 골 또는 어시스트를 기록할 때 마다 200명을 추첨해 1%포인트의 보너스 금리를 지급하고, 지수연동예금과 별도로 정기예금에 추가 가입할 때 5.4%의 확정금리를 주는 ‘이영표 축구사랑예금’을 이달 말까지 판매한다. 신한은행은 글로벌카드 신청 고객을 대상으로 한국이 첫승,16강,8강,4강 진출시 추첨을 통해 에어컨 등의 경품을 준다. ●승패 맞히면 카드 포인트가 와르르 롯데카드는 한국팀의 예선 3경기 결과 맞히기 게임을 통해 푸조자동차, 롯데포인트 최고 1684배 적립 혜택을 제공하고, 경기 당일 고객들을 롯데시네마로 초청해 단체 응원전을 진행한다. 삼성카드는 2002년 월드컵 감동의 순간을 재현한 ‘포인트맨 영광의 세리머니’ 광고를 제작하고, 고객이 마음에 드는 1가지를 선택해 응모하면 파브 40인치 TV, 보너스 포인트 10만점 등을 제공한다. 신한카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카드’ 고객을 상대로 한국의 예선전 점수와 우승, 준우승국을 맞히는 이벤트를 실시해 최고 100만포인트를 쌓아주기로 했다. 현대카드는 아드보카트 감독의 캐리커처가 새겨진 아드보카트 스페셜 에디션 카드를 발급하며, 차를 살 때 최고 200만원까지 할인해주는 행사를 벌인다. LG카드는 전 회원을 대상으로 첫 골을 넣은 한국 선수, 한국 예선 3경기 가운데 1경기 스코어,1골 이상 넣은 한국 선수, 한국 최종 성적, 우승팀 등 다섯 문제를 풀어서 응모하면 정답자에게 42인치 LCD TV 등을 준다.KB카드도 한국팀 예선 성적 등의 퀴즈를 맞힌 고객에게 총 6018만원을 배분하는 ‘월드컵 예언자를 찾아라’ 이벤트와 한국팀 4강 진출시 유럽여행 경비 500만원과 포인트 2000만점을 제공하는 행사를 실시한다. ●보험사도 경품 쏟아내 삼성생명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홍명보 코치와 함께하는 축구 응원관’을 개관하고 홍 코치의 사진과 기념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금호생명은 다음달 10일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보험 상담을 받는 540명을 추첨, 축구공과 붉은색 티셔츠를 선물한다. 알리안츠생명은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북측 광장에 독일 월드컵 개막전 경기장인 알리안츠 아레나를 10분의1 규모로 축소한 경기장을 개장했다. 교보생명은 ‘2006 교보서포터스 저축보험’ 가입자 64명에게 월드컵 관람권을 제공키로 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부처님 오신날, 김천 청암사에서 욕심을 비우다

    부처님 오신날, 김천 청암사에서 욕심을 비우다

    비구니 도량 김천 청암사의 아침 ‘모든 것이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라’어둠이 있어야 빛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세상의 빛을 위해 그늘에서, 어둠에서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이 있는 도량에 가면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있던 분노와 응어리가 저절로 녹아든다. 오색 연등이 파란 5월의 하늘을 수놓고 있는 이맘때 우리가 사찰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구니 도량으로 알려진 경북 청암사의 아침을 느껴본다. 부처님 오신 날인 사월초파일. 불자건 아니건 초파일에는 인근 사찰을 한번쯤은 찾아보는 게 우리의 습관일 것이다. 경북 김천은 직지사를 비롯해 청암사, 수도암, 신흥사, 봉곡사, 계림사 등 유명한 사찰들이 많은 고장이다. 그 중에서도 비구니 사찰로 알려진 청암사를 찾았다. 애틋한 사연과 아름다운 절의 모습이 초파일에 들러보기에 제격이다. 또한 청암사에서 수도산(불령산) 정상을 향해 50분 정도 걸으면 만날 수 있는 수도암 또한 고즈넉한 사찰이다. 경북 김천에서 단아하고 조용한 사찰을 여행을 떠나보자. 글 사진 김천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셀수 없이 많은 별들이 까만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새벽 3시. 파르라니 깎은 머리, 앳된 얼굴의 스님이 “똑똑똑∼”청아한 목탁 소리로 모두가 잠들어 있는 고요를 깨운다. 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 수 겹의 나뭇결이 아름다운 선방에 하나 둘씩 불이 밝혀진다. 청암사의 새벽은 늘 그렇듯 이렇게 시작한다. 새벽 별이 아직도 가득한 지금, 잠의 수렁에 빠져있는 속세의 인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들의 하루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칠흑같은 어둠을 몰아낸다. 고요한 산사의 밤을 깨우는 종소리와 함께 단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는 누구인가를 찾고자 하는,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위한 염원을 담은 비구니들의 구성진 법문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계곡에 피어오르는 새벽 안개처럼 기분이 가라앉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비구니들이 모여 용맹정진하는 청암사를 찾았다. # 나를 찾아가는 길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 쓸쓸한 낯이 옛날 같이 늙었다. /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백석의 ‘여승’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의 경계에 우뚝 솟은 수도산(불령산·1317m) 깊은 자락에 자리잡은 청암사. 아름드리 나무들이 즐비한 계곡을 승용차로 한참을 달렸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서 인지 파란 이끼를 가득 머금은 바위들, 깨끗하다 못해 존재의 유무를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투명한 계곡물, 파란 하늘을 모두 가려버린 잣나무와 소나무.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지저귀는 새들과 풀벌레만이 낯선 이방인을 반기고 있었다. 아∼ 여기가 말로만 듣던 ‘불령동천(佛靈洞天)’이다. 깊은 계곡의 적막한 숲길을 쓸쓸하게 걸어가는 비구니의 모습에 한지에 먹물이 번져나가듯 뜻모를 애틋함이 가슴을 적신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두 볼에 흐르는 고운 선에서 느껴지는 구도자의 기품에 속인 손은 합장으로 변하고 이내 고개가 숙여진다. “스님, 청암사는 더 가야합니까.”,“어찌 깊은 산중에서 절을 찾으십니까. 마음이 있다면 바로 앞에 있을 겁니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있단 말인가, 잘못 왔단 이야긴가.10여분을 더 걸으니 일주문이 저기 눈에 보인다. 맞게 오기는 온 것 같다. 소박하다 못해 초라한 듯한 일주문에 들어섰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갑자기 밝아지며 거짓말처럼 봄햇살을 쏟아낸다. 옛 대갓집 마당처럼 정갈하게 빗질된 절 마당에서 청암사의 정갈함이 느껴진다. # 끈질기게 이어온 청암사 청암사는 신라 헌안왕 3년(859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조선 인조 25년(1647년)때 큰 화재로 절이 완전히 불타버린 것을 다시 재건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130여년 뒤인 정조 6년(1782년) 다시 불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때도 바로 다시 세웠다. 그 뒤 점차 쇠락해 가던 청암사가 새로워지는 것은 광무 1년(1897년). 대운(大雲)스님이 8년에 걸쳐 청암사를 모두 보수하고 극락전을 새로 지으며 청암사는 제2의 중흥기를 맞았다. 참 어이없게도 보수를 끝낸 지 6년만인 1911년 9월 다시 원인 모를 화재로 또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대운스님은 1912년 봄에 청암사를 다시 세웠다. 그때의 모습이 지금 청암사다. 조선 영조 때 대강백(불교계의 대학자이자 원로를 일컫는 말)인 회암 정혜 스님 이후 우리나라 불교의 정신적인 가르침이 가득한 도량으로 자리잡았고 근세에는 박한영 스님뿐 아니라 많은 학승들이 거쳐간 사찰이다. 한 번 화재에 거의 모든 절은 생명을 다하는데 청암사는 다섯 번이나 화마가 할퀴고 지나갔음에도 아직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 아름답고 소박한 비구니 도량 청암사는 예로부터 ‘여인’들과 인연이 꽤 많은 절이기도 하다. 숙종의 둘째 왕비인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무고로 폐서인이 되었을 때 청암사 보광전에서 기도를 드렸고 그 인연으로 왕실의 후원을 받았으며 조선 말기까지 상궁들이 내려와 신앙생활을 하기도 했었다. 또한 청암사 계곡 바위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는 ‘최송설당’. 그녀 또한 청암사와 깊은 인연이 있는 여인이다. 대운스님이 청암사를 두 차례에 걸쳐 보수할 때 대시주(大施主)가 바로 그녀였다. 김천 출신으로 영친왕의 보모상궁이었던 그녀는 영친왕의 생모인 엄비와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많은 재산을 얻었다. 대운스님은 그녀를 통해 많은 궁녀들의 시주를 얻을 수 있었기에 짧은 기간에 큰 사찰을 두 차례나 지을 수 있었다. 이런 인연 때문이었을까. 청암사에 1987년 비구니 승가대학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비구니들의 도량이 된 것이다. 지금은 130여명의 비구니들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오직 불심을 위해 수련하는 소박하고 정갈한 사찰이다. # 자연이 곧 절이고 절이 곧 자연이라 청암사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두 구역으로 나뉜다. 계곡 북쪽의 낮은 곳에 남향으로 자리잡은 대웅전과 그 남쪽 언덕 위의 보광전이다. 대웅전에서 보광전으로 가는 길은 마치 잘 가꾸어진 정원을 걷는 기분이다. 홍매화가 예쁜 얼굴로 반기는 오솔길, 길섶에 핀 이름 모를 야생화, 이끼 가득한 돌로 정성스레 쌓은 돌담, 무엇인가 생명을 느끼게 하는 텃밭 등 어느 사대부가의 고택을 연상케 한다. 무엇인가 커다랗고 웅장함으로 인간을 짓누르는 건물이 하나도 없다. 고만고만하며 단청을 입히지 않아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건물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이렇게 자연과 함께 숨쉬며 살 수있을까. “절에 들어서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편안해야지. 파헤치고 잘라내고 절을 만들면 뭐해. 우린 그저 우리가 있는 그대로, 자연 그대로를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제일이야.”라는 지형스님. 정말 그랬다. 절이라기 보다는 편안한 마음의 안식처가 청암사였다. # 세상의 때를 씻어내는 청암사에서 계곡을 따라 수도산 정상으로 수도암을 찾아 떠났다. 따사로운 햇살에 민소매 셔츠만을 입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헉헉’거리기를 20여분. 수도산 줄기의 8부 능선을 지나자 가야산의 북쪽이 한눈에 들어오며 시야가 탁 트인다. 시원한 봄바람에 땀을 식히고 청암계 표지석에서 서쪽으로 20분을 지나자 드디어 수도암이 눈에 들어온다. 대적광전 앞에 섰다. 내 발 아래로 세상이 굽어보인다. 문이 활짝 열린 대적광전의 거대한 석불은 인자한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석굴암의 석불보다 80㎝ 정도 작은 비로자나불좌상은 가늘게 뜬 눈으로 부질없는 욕심으로 가득한 인간들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수도암은 수도산 8부 능선인 해발 1080m에 세워진 암자로 청암사와 같이 헌안왕 3년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은 보물 제307호, 약광전의 ‘석불좌상’은 보물 제296호, 그 앞에 자리잡고 있는 ‘삼층석탑’ 한 쌍 역시 보물 제297호로 지정된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암자이다. 이렇듯 청암사와 수도암에 갈 때는 속세의 것을 버리고 바람에 날리는 옷깃마저 여미는 마음으로 돌아 보면 가슴 한가득 풍성함과 편안함을 품고 나올 수 있을 것이다.
  • 사형수 5명, 지관스님 수계 제자 됐다

    “죄라고 하는 정체는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 한번 잘못 일으키면 죄를 짓고, 좋은 마음 일으키면 복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부처님오신날(5일)을 앞두고 1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사형수들을 위한 수계법회를 열었다. 현직 조계종 총무원장이 사형수들에게 직접 계(戒)를 주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지관 스님은 모두 5명의 사형수에게 일일이 법명을 지어주면서 재가 신도들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인 오계(五戒ㆍ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마라, 훔치지 마라, 음란한 짓을 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술 마시지 마라)를 내렸다. 이어 사형수들에게 참회 연비(燃臂ㆍ향으로 팔을 태우는 의례)를 한 뒤 수계증과 108염주를 주었다.지관 스님의 수계 제자가 된 이들의 법명은 각각 덕륜(德輪), 정광(淨光), 수월(修月), 법수(法水), 정암(正岩). 살인 또는 강도살인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사람들이다. 지관 스님은 “연비를 하는 것은 몸에 고통을 주어 자신이 지은 죄를 참회하기 위한 것이고, 그 다음은 마음 속으로 반성을 한다.”면서 “이렇게 몸과 마음으로 참회하는 순간 큰 죄, 작은 죄가 다 녹아 없어진다.”고 수계법회의 의미를 설명했다. 지관 스님은 지난 3월 사형제 폐지에 서명하면서 “우리는 법과 제도의 미명 아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박탈하는 사형을 ‘제도적 살인’으로 규정한다.”면서 “어떠한 경우라도 가장 존엄한 생명을 빼앗는 사형을 폐지하고 종신형의 입법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행사에는 지관 스님을 비롯해 주호영(한나라당) 국회 법사위원, 김문수 한나라당 경기도지사 예비후보,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지원 스님, 호법부장 도진 스님, 불교인권위원회 위원장 진관 스님, 이형구 의왕시장 등 사부대중 약 80명이 참석했다.연합뉴스
  • [마이너리티 리포트] (10) 110일째 복직투쟁 비정규직

    [마이너리티 리포트] (10) 110일째 복직투쟁 비정규직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함소란. 쉰두살 먹은 해고 노동자이자 스물네살 딸을 둔 엄마랍니다.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 14명과 올 1월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별 다섯개짜리 호텔에서 해고된 뒤 110일째 복직투쟁을 벌이고 있답니다. 하지만 호텔측은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지요. 저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에 맞춰 지어진 이 호텔에 그해 8월 하우스키퍼로 입사했습니다. 서류, 면접, 영어책 읽기 등 까다로운 공채시험을 통과한 정규사원이었죠. 호텔이 문을 연 지 한달 만에 들어왔으니 창립 멤버와 다를 바 없었고요. 하우스키퍼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500여개 객실을 나눠서 청소와 정리정돈을 해야 합니다. 맡은 객실을 모두 청소하려면 정해진 시간보다 두세 시간 더 일하기 일쑤인 데다 손님이 원하는 시간에 맞춰야 해서 점심은 정말 밥먹듯이 걸러야 했죠. 위장병을 앓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어요. 객실 이불과 카펫을 청소하며 나오는 먼지에 기관지염과 알레르기도 달고 살았습니다. 해고된 지 석달 만에 제 몸무게가 10㎏이나 불어난 것을 보면 호텔 일이 힘들긴 힘들었던 모양이에요. 하지만 기본급에 상여금 900%, 봉사료와 각종 수당 등을 합치면 14년차이던 2001년 연봉이 2700만원이나 되었죠. 병원을 자주 찾는 여든 된 친정 아버지와 그보다 두살 적은 어머니를 봉양하며 딸을 지방 미술대학으로 유학보냈고 97년엔 수원에 6800만원짜리 24평 아파트도 장만했습니다. 남편과는 88년 헤어졌지요. ●힘든 노동, 그 대가가 비정규직 전환 칼바람이 불어온 건 2001년 12월이었습니다. 갑자기 호텔에 명예퇴직 희망자를 받는다는 공고문이 나붙었습니다. 신청자가 아무도 없자 사측은 하우스키퍼들을 1순위로 정해두고 퇴직을 강요하기 시작했지요. 하우스키퍼를 시작으로 8차까지 단계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거라면서 아웃소싱업체를 통해 계속 일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호텔 인사담당자는 노동조합이 뭔지도 모른 채 묵묵히 일만 해온 우리를 호출기로 한명씩 불러 “다른 사람들도 다 명예퇴직서에 서명했다. 결국 못 배겨낼 테니 빨리 결단을 내리라.”고 협박을 하더군요. 청소하는 객실에 찾아와 이것저것 트집을 잡으며 서명하지 않으면 퇴직금도 못 받을 것이라고 위협하는 데에는 당할 길이 없더군요. 결국 같은 해 12월31일부로 하우스키퍼들은 용역회사 소속으로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우습게도 용역회사는 우리를 비정규직으로 만들기 위해 호텔측이 전직 인사부장을 앞세워 급조한 용역업체였습니다. ●줄어든 수입에 신용불량 일보직전까지 추가 구조조정은 없었습니다. 외려 남아 있는 직원들은 단체협상을 통해 기본급과 상여금 인상 혜택을 받더군요. 반면 우리는 연봉이 1500만원 수준으로 확 줄었습니다. 아줌마들이 모여 있는 하우스키퍼들만 만만하게 보였나 봅니다.50명가량이 모여 2002년 6월 전국여성노동조합에 가입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노조원에 대한 각종 불이익이 이어졌습니다. 청결 상태에 대한 사소한 트집은 물론이고 우리와 말이라도 한마디 나눈 비노조원은 따로 불러 호통치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하나둘 노조를 떠나 15명만 남게 됐죠. 2004년 재계약 당시 연봉은 또다시 1300만원으로 떨어졌습니다. 줄어든 수입에 살림은 갈수록 어려워져 갔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친척이 빌려간 돈을 돌려주지 않았고, 저 또한 폐결핵으로 보건소를 다니느라 자주 결근하게 돼 조금씩 빚이 늘어났습니다. 카드 네 개를 돌려막아 봤지만 소용없이 신용불량자 일보 직전까지 갔습니다. 어쩔 수 없이 살던 집을 7500만원에 전세 주고 3000만원짜리 전세로 옮겼습니다.4500만원은 고스란히 빚갚는 데 썼습니다. ●노동부 불법파견 판정에 호텔 ‘콧방귀´ 2004년 5월 노동부에서 사측의 고용 행태에 대해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을 내려 다음달 5일까지 호텔측이 저희를 직접 고용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호텔측은 콧방귀만 끼고 있고 검찰은 현재까지 호텔측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호텔은 지난해 말 용역회사와의 재계약을 거부하면서 우리를 거리로 내몰았습니다. 가만히 있을 순 없습니다.15명 모두 생명력 강한 우리네 엄마들이니까요.‘붉은 엄마들의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복직과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나이에 새로운 일을 찾기도 어려운 엄마들이기에 메아리 없는 외침이라도 내지르고 있답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기간제 노동자 ‘사용사유 제한’ 최대쟁점 이달 임시국회에서 처리키로 돼 있는 비정규직 법안의 쟁점은 무엇일까. 비정규직 법안으로 묶어서 불리는 법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과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두개다. 지난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고 21일 법제사법위원회,24일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쟁점은 두 가지다. 먼저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사유 제한이다. 사용사유 제한은 기업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닌데도 비정규직 형태로 고용하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정부안은 사용사유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다. 그 대신 비정규직 고용계약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한 뒤 이를 초과하면 자동으로 ‘무기(無期)계약’으로 전환되도록 했다. 하지만 무기계약 전환이 곧바로 정규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어서 애매하다. 정부 관계자는 “당장 사용사유를 제한하면 형편이 안되는 중소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무더기로 해고하는 사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는 출산과 육아, 질병과 부상, 휴직과 파견 등 10가지로 사유를 한정하자고 주장한다. 정부안대로라면 사측이 2년 계약이 끝나고 계약을 갱신하지 않은 채 다른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편법을 쓰더라도 이를 막을 수 없어 비정규직 양산이 계속될 것이란 얘기다. 파견노동자 보호 관련 조치도 쟁점이다. 정부안은 합법적인 파견기간이 끝나거나 불법파견으로 판정되면 사측이 해당 노동자에 대해 고용의무를 지도록 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계약기간이 끝나거나 불법파견으로 판정되면 자동적으로 사측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게 되는 고용의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솜방망이 처벌이 ‘불법파견’ 조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 파견근로가 ‘조자룡 헌칼 쓰듯’ 쓰이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제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불법 파견근로에는 위장도급과 불법파견이 있다. 위장도급은 기업에서 노동자를 채용하면서 직접 근로계약을 하지 않고 용역업체를 통해 도급계약을 한 뒤 자기 회사에서 파견 형식으로 일하도록 하는 것이다. 기업은 노동자에 대해 법률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어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고 복리후생도 책임지지 않는다. 불법파견은 기업이 파견근로가 허용되는 26개 이외의 업종에서 파견 노동자를 사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불법 파견근로를 제대로 제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실장은 “불법파견 판정을 받으면 당연히 사측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하는데 이행하지 않아도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 검찰도 기소를 망설이는 데다 기소해도 법원에선 고용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내리는 등 불법파견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측은 개정 법률에서 제재 수준을 높였다고 해명했다. 노동부 비정규직대책팀 김인곤 팀장은 “이제까지는 제재 수위가 약해 불법파견을 제대로 막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개정안에선 기존의 1년 이하 징역과 1000만원 이하 벌금 규정을 3년 이하 징역과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제재 수단을 강화했기 때문에 불법파견 방지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다시 찾은 청계천의 봄

    다시 찾은 청계천의 봄

    청계천에 성(性)이 있다면 아마도 ‘여성’일 것이다. 청계천에는 어머니의 품속과 같은 포근함과 넉넉함이 살아 있다. 또 크고 웅장하지는 않지만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여성미도 느낄 수 있다. 청계천 복원 이후 처음 맞는 봄. 청계천에 화사한 봄 옷을 입혀 놓고 보니 영락없는 ‘봄 처녀’의 자태를 닮았다. 수줍은 듯 하얀 꽃향기를 뿜어내는 조팝나무와 연분홍 진달래, 노란 개나리, 조만간 꽃망울을 터뜨릴 노랑꽃창포 등에서도 ‘여심’(女心)이 느껴진다. 그녀는 품속에서 수많은 꽃과 나무와 풀과 곤충과 새들이 어우러져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한다. 어려웠던 지난 시절 서민들과 희로애락도 함께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넉넉함을 잊지 못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그 곳에는 역사가 있고, 추억이 있고, 생명이 있고, 문화가 있고, 삶이 있다. 주변의 ‘맛과 멋과 쉼’에도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30년만에 찾아 온 청계천의 봄. 가족들에게는 봄나들이 명소로, 주머니가 가벼운 연인들에게는 데이트 코스로 이보다 좋은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길이 5.84㎞. 나이 7개월 20일. 새롭게 태어난 청계천, 그녀의 봄 속으로 들어가 봤다. 글 조현석 기자 hyun68@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걸어서 한바퀴 30년 만에 찾아온 청계천의 봄 풍경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컷던 것일까. 아니면 콘크리트로 뒤덮인 청계고가를 넘어다니던 학창시절 읽었던 박태준의 ‘천변풍경’의 잔영들이 갑자기 되살아난 것일까. 청계천을 찾기도 전에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청계천변에 모여 살았던 서민들의 모습들도 머릿속을 맴돌았다. ‘판자촌이 늘어섰던 개천변의 모습과 아낙네들이 수다를 떨던 빨래터, 개천변에 모여살던 민 주사와 한약국집 가족, 이쁜이, 점룡이, 여급 하나코’. 이런 상상에 빠져 지난 14일 봄의 새싹이 움트고 있는 청계천을 찾았다. 봄을 만끽하기에는 이른 느낌이었지만 그 곳에는 봄이 있었다. 조팝나무에 하얀 눈송이가 달려 있고, 진달래는 제철을 만났다. 개나리 꽃은 잎사귀에 둘러싸여 내년 봄을 기약한다. 창포와 버들가지에도 봄이 가득하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습과 오리가 자맥질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롭다.30년 만에 되찾은 청계천의 봄 풍경이다. #10:00-청계광장 출발 청계천 시작지점인 ‘청계광장’(청계1경)을 내려와 모전교를 출발했다. 천변은 번잡하던 도로 위와는 전혀 딴 세상이 펼쳐졌다. 개천은 지상에서 불과 2∼3m 아래지만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의 시끄러운 소음 대신 물 흐르는 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상쾌하게 파고드는 공기도 지상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모전교는 청계천 22개 다리 중 첫 다리로 근처에 과일을 팔던 모전(毛廛·과일가게)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가장 먼저 만난 곳은 다리 아래 ‘팔석담’. 팔도의 화합과 정기를 담은 이 곳에서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수거된 동전은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한다고 하니 소원도 빌고, 좋은 일도 할 겸 과감하게 500원짜리 동전을 꺼내 물속에 던졌다.‘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동전을 줍는 행위는 절도죄에 해당한다. 던질 수는 있지만 줍지는 말아야 한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청계천의 석교인 ‘광통교’(청계 2경) 아래를 지나자 완연한 봄 세상이다. 버들가지에서는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돋아나고, 천변에 줄지어 늘어선 창포가 푸르름을 자랑한다. 인공미가 물씬 풍기던 지난해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청계천의 돌과 나무, 꽃 모두는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로 자연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청계천의 새역사를 써 갈 꽃과 나무는 따사로운 봄볕에 새싹을 틔우고 있었다. 광통교는 청계천 다리중 가장 큰 다리로 원래는 광교 사거리에 있었지만 1958년 복개공사로 땅속에 묻혔다가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10시20분-광교∼관수교 물의 흐름이 걷는 속도보다 빠르다. 봄을 즐기며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는 탓도 있지만 유속이 어른의 빠른걸음 정도다. 그러나 강바닥에 군데군데 떨어져 있는 오물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광교 다리를 지나 ‘정조반차도’(청계 3경)에 이르렀다. 정조가 모친의 회갑을 기념해 아버지 사도세자 무덤이 있던 화성(현재 수원)에 행차하는 모습으로 김홍도 등 당대 최고의 화원들이 합작해 그린 작품이다. 규모는 폭 2.4m, 길이 192m에 이르는 거대한 도자벽화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자벽화라고 한다. 자원봉사자가 반차도의 내용을 설명해 준다. 장통교를 지나자 ‘삼각동 워터 스크린’이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이어 삼일교를 지나 수표교터에 도착했다. 수표교는 청계천을 복개할 때 장춘단 공원으로 옮겨졌고 이 곳에는 터만 남아 있다. 청계천의 수심을 측정하는 곳이라는 뜻에서 수표(水標)라는 이름이 붙었다. #10:40-관수교∼나래교 관수교에 이르자 개천 바닥에 녹색 그물들이 눈에 들어온다.‘뭘까?’라는 궁금증을 품기도 전에 자원봉사자들이 먼저와 다가와 “물고기들의 쉼터”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꽃이며 나무들의 이름을 물어봤다. “하얀 꽃을 예쁘게 피운 것이 장미과 조팝나무고, 붉은 것은 진달래, 개천변의 파란 풀들은 창포”라며 자세하게 설명해 줬다. 관수교를 지나자 시원한 ‘고사분수’의 물줄기가 개천에서 하늘로 솟구친다. 새벽다리에 이르자 물흐름이 느려진다. 곳곳에 물고기 산란장이 많다. 개천 위의 돌다리를 건너 다니며 개천 속을 들여보기로 했다. 바닥에는 푸른 이끼들이 끼어 있고, 한무리의 송사리떼가 노닌다. 개천 바닥의 흙색과 닮아 한참을 들여다봐야 송사리떼를 찾을 수 있다. 엄마와 봄 나들이를 나온 아이는 “엄마, 송사리가 어디 있어, 안 보여.”라며 칭얼댄다. 엄마의 손끝을 한참 들여다본 뒤에야 “야, 물고기가 많다.”며 즐거워했다. #11:00-나래교∼오간수교 출발한 지 벌써 한 시간이 흘렀다. 청계광장에서 나래교까지는 2.5㎞ 남짓. 산책이 즐거운 탓인지 전혀 지루하지 않다. 버들다리를 지나자 천변 담장을 타고 담쟁이덩굴이 올라간다. 시골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다. 개나리도 반갑게 반긴다. 오리 한 마리가 물위를 거닐며 먹이를 찾느라 여념없다. 먹이를 발견한 오리는 자맥질을 한다.“아이고 몇 마리 없는 물고기 다 잡아먹네…”라며 지나가던 한 할머니의 한숨 섞인 탄성도 들린다. 청계천 산책에 동행한 동료가 복원 전과 복원 직후의 청계천은 전혀 다른 느낌이라고 거든다. 버들다리를 지나자 ‘패턴천변’(청계 4경)에 이르자 인간과 자연의 상생을 주제로 제작됐다는 ‘문화의 벽’과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 올리는 패턴 분수, 그리고 그 주위로 조성된 수변 무대가 발길을 사로잡았다. 엄마 손을 잡고 돌다리를 건너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 소리가 정겹게 들려와 산책길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준다. #11:20-오간수교∼비우당교 오간수교 아래에는 오간수문터의 옛모습이 걸려 있다. 도성안의 물줄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지점에 있었던 다섯개의 수문이다. 다리 아래에 청계천에서 빨래하는 아낙네와 그 앞에서 멱을 감는 아이들의 흑백 사진은 어린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다산교를 지나자 흑백사진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빨래터’(청계 5경)에 도착했다. 시멘트로 만든 대여섯개의 빨래판은 추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하다. 빨래터는 소설 천변풍경이 시작되는 곳. ‘…간간이 부는 천변 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 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들 시립지는 않은 모양이다’ 인근에 즐비하게 늘어선 판자촌 사이로 빨간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빨래 방망이를 겨드랑이에 끼고 아이들을 데리고 청계천을 찾던 사람들의 모습들이 오버랩된다. 인근 다리 아래에 당시 천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몇 점의 사진이 걸려 있다. #11:50분-비우당교∼두물다리 점점 다리가 아파 온다. 쉬지 않고 걸은 탓이다. 밤이면 물줄기와 형형색색의 조명이 아름답다는 ‘리듬 벽천’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맞은편에는 소망의 벽(청계 6경)이 눈에 들어온다.2만여개의 예쁜 타일에 시민들의 소망이 적혀 있다. 선생님을 따라 봄 나들이를 온 유치원생들의 재잘거림이 정겹다. 길게 줄지어 가는 산책을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 아이들이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럽다. 벽에서 시원스레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하늘물터’(청계 7경)의 터널분수. 마치 커다란 물줄기 사이를 지나는 듯하다. 바람에 물이 날려 옷을 젖을 수 있어 안경을 썼거나 카메라를 지닌 사람은 돌다리를 건너 반대편으로 피해 가는 것이 좋다. 밤에는 화려한 조명과 어우러져 매혹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개천 가운데 우뚝 솟은 3개의 거대한 기둥이 눈길을 끈다.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청계고가도로의 교각으로 후대에 청계천 복원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일부러 남겨둔 것이라고 한다. #12:20-두물다리 도착 ‘구경 한번 잘했다∼.’무학교와 두물다리를 지나 청계천이 끝나는 청계문화관에 이르렀다.2시간 남짓을 걸어서야 5.8㎞의 산책로 끝에 이르렀다. 너무 빨리 걸은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하류로 내려갈수록 볼거리와 화려함은 덜 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더욱 정겹다. 체력과 시간이 허락한다면 이곳에서 다시 청계광장까지 거슬러 산책을 즐기는 것도 좋다. 고산자교를 지나면 청계천에서 가장 자연적이고 생태적인 ‘버들습지’(청계 8경)을 만난다. 어류, 양서류, 조류 등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고, 주변에 갯버들과 매자기, 꽃창포 등 수생식물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힘에 부치는 사람은 두물다리 위로 올라와 ‘청계천문화관’에 들러 청계천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본 뒤 버스를 타고 돌아가면 된다. 두물다리 위에 있는 성북상수도사업소(청계주차장) 앞에 가면 노란색 1번 버스를 타면 청계광장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노선은 이곳에서 청계8가∼평화시장∼세운상가∼청계 3가∼종로3가∼무교동까지다. 버스는 30∼35분 간격이며, 요금은 현금 550원, 카드 500원이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숨은 맛집 완연한 봄이다. 청계천에도 이곳 저곳을 거니는 시민들이 부쩍 늘었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친구끼리…. 청계천엔 수경시설과 금붕어, 청둥오리, 꽃, 전태일 동상까지 많은 볼 거리가 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청계천 주변을 둘러보면 먹을거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그렇지만 성큼 발길이 옮겨지지 않는다. 눈여겨 보면 청계천 주변의 뒷 골목엔 숨은 맛집들이 적지 않다. 한 장소에서 고집스럽게 단일 메뉴만을 수십년 동안 만든 요리사도 많다. 빠르게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청계천의 맛집을 소개한다. ●북한토속음식 청계천 광장 인근에 북한 토속음식을 맛있게 하는 집이 있다. ‘리북손만두’(776-7350)사장 박혜숙(65)씨는 평양 태생으로 한국전쟁 때 남하해 그동안 줄곧 북한 음식을 했다. 청계천 인근 지금의 장소에서 시작한 지는 17년. 이 가게의 주요 메뉴는 리북손만두와 김치마리밥, 빈대떡, 제육보쌈 등이다. 특히 리북손만두가 맛있다. 김치마리밥은 김치국물에 찬 밥을 말아먹는 북한에선 한겨울 음식. 하지만 손님들은 주로 여름에 이 음식을 찾는다. 빈대떡은 평양식 빈대떡이다. 제육보쌈은 일반적인 보쌈과 달리 삽겹살로 한다. 보통 목살로 하는 경우가 많다. 돼지고기는 북한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 맛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가격은 만둣국과 접시만두는 7000원, 김치마리밥은 6000원, 빈대떡은 1만 2000원. ●70년 이상 추어탕만 파는집 1972년 남북조절위 제3차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북한의 박성철 대표는 “지금도 무교동 그 자리에 용금옥이 있는거요?”라고 물어 용금옥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용금옥(777-1689)은 전통을 사랑한다. 용금옥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찾는 사람들도 전통을 사랑한다. 아무리 장사가 잘 돼도 사장은 함부로 객장을 넓히려 들지 않고 젊은 시절에 친구들과 추어탕 한 그릇에 소주를 기울이던 손님들은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옛모습 그대로인 이곳을 ‘마음의 고향’인양 찾는다. 위치도 무교동 골목길을 헤매야만 찾을 수 있는 그 자리 그대로이다. 용금옥은 1932년 홍기녀(작고)씨가 열었다. 현재 3대째인 신동민(45)씨가 9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다. 전라북도 부안에서 정기적으로 올라오는 미꾸라지들은 살아있는 것으로 소금에 씻어 얼른 뚝배기 육수 속으로 집어넣기 때문에 연하고 신선하다. 미꾸라지를 넣기 전에 느타리와 목이, 표고버섯, 두부, 양파, 유부 등 갖은 양념이 먼저 육수에 들어간다. 고춧가루를 듬뿍 쳐 내놓는다. 가격은 8000원. ●피아노로 프러포즈를 미리 피아노를 배우지 못 한 걸 후회하는 남성들이 더러 있다. 피아노 프러포즈만큼 낭만적인 게 있을까. 하지만 피아노 프로포즈를 할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해 고민이라면 청계천 장통교에서 종로쪽에 자리잡고 있는 티포투(735-5437)를 추천한다. 홍차와 우롱차, 커피 등을 파는 차 전문점 티포투의 2∼3층엔 피아노가 있다. 간혹 실력을 뽐내는 손님이 더러 있다고 한다. 또한 매주 두 차례 오후 9시 하프 공연도 잡혀 있다. 일정은 매주 월요일 저녁 때 나온다. 티포투는 메뉴를 선택하기 전 찻잎이 담긴 작은 샘플병에서 향을 먼저 맡아보고 원하는 차를 고를 수 있다. 4층은 공연장으로 쓰인다. 극단들이 종종 대관해 공연을 한다. 티포투는 인테리어가 전반적으로 부드러워 여성들이 선호한다. 차 가격은 6000∼8000원 ●주문진산 골뱅이 수표교에서 나와 중부경찰서 앞에 오면 골뱅이 집이 10여개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집은 풍남원조골뱅이(2265-2336).1971년 이원희(81)씨가 시작,1981년 방종숙(50)씨가 시집을 온 뒤 요리를 맡고 남편 송병희(54)씨가 운영하고 있다. 무엇보다 좋은 재료를 쓴다. 골뱅이는 주문진산으로 육질이 두툼하면서도 부드러운 게 비결이다. 송씨는 “일반적으로 골뱅이는 북한산을 써 딱딱한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주문진산을 써 많은 손님들이 온다.”고 말했다. 이 집은 모든 게 푸짐하다. 대접에 골뱅이 무침이 산처럼 쌓여 나온다. 반찬으로 나오는 계란말이도 풍성하다. 또한 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인심도 좋다. 골뱅이는 산지에서 잡아 냉동 전 바로 가공된다. 따라서 산 채로 운반되는 것보다 위생적이고 영양 상태도 오래 간다. 젓가락에 돌돌 말아 먹는 맛도 별미. 가격 1만 9000원. ●굴보쌈집 골목 청계천의 관수교에서 나와 서울극장 뒷골목에 가면 굴보쌈집이 6∼7개 있다. 이곳에서 10년 이상 굴보쌈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는 가게들이있다. 또한 대부분 맛이 좋기로 언론에도 소개된 만큼 믿을만하다. 손님이 많이 찾는 가게 가운데 한 곳이 전주집. 돼지고기와 김치를 말아 김치보쌈을 만들고 여기에 굴을 올리면 굴보쌈이 된다. 맛은 달콤해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함께 나오는 국도 맛이 일품이다. 가격은 굴보쌈 큰 게 2만 5000원. 중간 크기는 2만원. 정식은 1만원이다. ●대한민국 원조 함흥냉면 동네마다 함흥냉면 가게가 있다. 함흥냉면을 안 먹어본 사람은 드물다. 함흥냉면 가게는 많지만 원조는 오로지 하나. 바로 ‘함흥곰보냉면’(2267-6922). 한국전쟁 때 함흥에서 온 곰보부부가 여기서 냉면집을 시작했다. 당시엔 가게는 없었고 길 구석에 탁자를 놓고 장사를 했다고 한다. 부부는 둘 다 얼굴에 천연두 흉터가 많았고 사람들은 “곰보네 냉면 먹으러 가자.”면서 찾았다고 한다. 그 뒤 이들 부부는 수십년 동안 8명의 주방장에게 요리법을 전수했다고 한다. 현재 모든 함흥냉면 집은 모두 이들 주방장한테 전수받은 것. 부부는 장사가 잘 돼 1968년 가게를 열었고 1987년 배정지(63)씨가 인수,3층 건물에 260석을 갖춘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함흥냉면 특유의 새콤달콤한 양념장 맛이 난다. 육수는 누린내가 완전히 제거됐다. 회냉면은 가장 인기다. 물·회·비빔냉면 모두 6000원. ●4계절 문전성시인 닭집 동대문 종합시장 뒷골목엔 1년 동안 손님이 끊이지 않는 가게가 있다. 바로 진할매원조닭집(2275-9666). 진옥화 할머니는 25년 동안 여기서 오로지 한 메뉴 닭한마리만을 고집했다. 닭이 통째로 대야에 담겨 나온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손님들은 집게와 가위로 닭을 자른다. 대야 안엔 대파와 큰 감자도 있다. 아무리 가위질이 서툴러도 종업원들은 절대 돕지 않는다. 종업원들과 눈 한 번 마주치기 힘들다. 닭은 자란지 35일쯤 된 것으로 냉동하지 않은 걸 쓴다. 영계이기 때문에 부드럽고 맛이 담백하다. 김치도 고랭지 배추만을 쓰며 3일 이상 된 것은 없다. 닭을 모두 건져먹으면 국수를 넣고 국수 대신 흰떡을 넣어 먹어도 된다. 닭한마리 가격은 1만 2000원. ●원할머니 보쌈집 본가 김보배(84)씨가 1965년 청계천 8가에 허름한 판잣집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사위인 박천희(49)씨가 1991년 맡아 운영한 뒤 현재 프랜차이즈점으로 커졌는데 원래 본가는 바로 이곳이다. 많은 프랜차이즈점마다 맛이 조금씩 다른데 이종구 홍보과장은 “본가 맛이 가장 좋다.”고 말한다. 개성식 보쌈으로 보쌈김치의 매콤한 맛을 줄이고 담백한 맛을 높였다. 해산물을 많이 넣는다. 현재 유명한 보쌈 프랜차이즈점이 이곳에서 배웠다는 설이 있다. 한 손님은 “36년 동안 왔다.”면서 “맛에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손긍익씨도 “서울에서 맛을 본 뒤 잊을 수 없어 대구에서 다시 와 먹는다.”고 말했다. ●황학동 곱창골목 연탄불로 곱창을 구우면 기름이 쭉 빠지고 잘 익는다고 한다. 철판에 곱창을 굽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연탄불로 곱창을 굽는 음식점이 모인 골목이 있다. 청계천 황학교에서 황학동 사거리로 가면 곱창 골목이 모여 있다. 대부분 음식점은 10년을 훌쩍 넘는 기간 동안 곱창을 팔았다. 1991년까진 이곳은 곱창을 파는 포장마차가 많았다. 당시엔 심야단속이 있었는데 몰래 장사를 했다고 한다. 당시 정부가 포장마차 규제 정책을 펴면서 하나 둘씩 구멍가게로 전환을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업소 주인들은 손님들이 요즘도 곱창을 밖에서 먹는 걸 좋아한다고 전했다. 날이 더워지면 손님들이 밖에서 먹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가격은 가게마다 좀 다르지만 연탄불 곱창은 9000원. 야채곱창은 8000원이다. 원조왕곱창은 유일하게 4년 전부터 메뉴에 껍데기를 추가했다고 한다. 껍데기는 다이어트와 피부미용에 좋다고 한다. 글 사진 박지윤기자 jypark@seoul.co.kr ■ 어떻게 변했나 ‘청계천은 어떻게 변해 왔을까?’청계천 하류 끝지점인 성동구 마장동에 위치한 ‘청계천문화관’에 가면 이런 궁금증을 한꺼번에 풀어준다. 청계천 물길을 상징하는 긴 유리 튜브 형태의 건물에는 한국전쟁 전후 혼돈과 가난을 담아냈던 청계천의 삶에서부터 도심을 관통했던 청계고가의 모습 등 복원공사로 현재의 모습을 갖출 때까지의 역사를 볼 수 있다. 청계천문화관은 오전 9시부터 밤 10까지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상설전시장은 무료로 개방된다. 건물 외벽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4층 전시장에 올라가자 상설 전시관이 나타난다. 관람은 4층에서부터 시작되는데 관람 동선을 따라 관람하면 자연스럽게 1층으로 내려올 수 있다. ●“엄마, 정말로 저렇게 끔찍한 집에서 살았어?” 가장 먼저 만난 곳은 6·25 한국전쟁 전후인 1950년대 청계천의 모습. 청계천 복개관에 들어서자 개천변으로 늘어선 판잣집의 모형과 영상물이 반겼다. 마치 성냥곽을 붙여 놓은 듯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과 난간에 내걸린 빨래, 천변을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당시 서민들의 어려웠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모형물 뒤로 대형 스크린에서는 청계천의 실제 모습이 담긴 영상물이 연신 돌아간다. 관람하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어떻게 저런 집에서 살았을까’하는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 있다. 김인숙(42·동작구 사당동)씨는 함께 온 딸아이가 “엄마, 어떻게 저런 집에 사람이 살아?”라고 묻자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다 저렇게 어렵게 사셨단다.”라고 얼버무린다. ●주변 찍은 대형 항공사진 바닥 ‘장식´ 코너를 돌자 어두컴컴한 터널이 눈에 들어왔다.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깜깜하다.‘이게 뭘까.’라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니 청계천 복원 전 복개도로 아래 지하를 체험하는 곳이란다.1967년 복개 공사로 인해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청계천 아래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5∼6m 정도의 길이에 불과하지만 마치 어두컴컴한 복개도로 아래 지하로 들어온 듯했다. 이어 10㎞에 이르는 복원공사를 어떻게 진행했는지를 그래픽 패널과 영상, 모형을 통해 볼 수 있다. 또 돌아온 청계천 코너에 들어서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청계천의 모습을 애니메이션 동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다. 3층에는 청계천 주변을 촬영한 대형 항공사진이 바닥에 깔려 있어 하늘에서 청계천을 내려다 보는 느낌을 준다. 2층에서는 조선시대의 청계천 모습도 가늠할 수 있다. 조선시대 청계천의 본류와 지천, 청계천에 얽힌 역대 왕들의 이야기,17·18·19세기 청계천 고지도 등 다양한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또 청계천 복개 논의가 시작됐던 일제시대의 관련자료도 볼 수 있다. 태조과 태종, 영조, 정조로 분장한 배우들이 영상을 통해 청계천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전달한다. ‘청계천 투어’코너에서는 청계광장∼신답철교까지 복원된 청계천의 모든 구간을 영상으로 관람할 수 있다. ●잠시 쉬며 합성사진 찍어 볼까 인공 연못과 인터넷 시설을 갖춘 휴식코너인 ‘에코 청계천’의 ‘포토존’은 인기 코너. 청계천 다리를 배경으로 자신의 모습을 합성해 찍을 수 있다. 사진은 곧바로 프린트를 해주며 1장당 1000원이다. 1층 기획전시실에서는 23일까지 1970년대 청계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노무라 할아버지의 청계천 이야기’ 사진전이 열린다. 사진전에서는 1968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청계천 하류 판자촌에서 구호활동을 했던 일본인 사회운동가 노무라 모토유키(野村基之·75)가 기증한 사진과 스크랩북, 한국지도 등 826점의 자료가 전시된다. 사진에 등장하는 지역은 현재 성동구 마장동과 사근동, 용답동, 송정동 일대로 청계천 하류의 모습과 판자촌 거주민들의 삶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다. ●“옛날엔 저 구정물에서 수영도 했다네” 사진전은 세 가지 테마로 나뉘어지는데,‘청계천의 하류 스케치’에서는 1970년대 청계천 하류에 늘어서 있는 판자촌의 모습을,‘판자촌의 하루’에서는 군복 염색과 벽에 폐휴지를 붙이는 모습 등 판자촌 거주민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마지막 테마인 ‘어린 회상과 증언’에서는 당시 노무라의 어린 자녀들이 판자촌에서 느낀 감회를 적은 글을 사진과 함께 정리한 스크랩북이 전시된다. 관람료는 무료. 사진전을 꼼꼼하게 관람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50∼70대가 대부분이다. 옛날 청계천 인근에 살았다는 한 70대 관람객은 한 사진을 가리킨 뒤 “옛날에는 저기에서 수영도 하고 그랬어. 우리 집은 저기 저쪽이야.”라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문의는 569-0696.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쇼핑·풍물시장 제일평화시장(2252-3633)은 ‘오전에 밀라노 컬렉션에서 소개된 옷이 저녁에 제일평화에 걸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명품을 본뜬 옷들이 시시각각 선보인다.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직장 여성들이 많이 찾는다. 평화시장(2265-3531)은 중년 여성복, 스포츠 용품, 아동복, 운동복, 양말, 모자 등이 두루 있는 가장 큰 도매 시장 중 하나다. 신평화시장(2253-0714) 1층에는 속옷 가게들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2000∼3000원대부터 유명브랜드까지 다양하다. 동평화시장(2238-1833)은 국내 유명 브랜드 위주의 덤핑 매장이 많다. 동대문의 다른 의류 상가에서도 이곳에서 물건을 떼어 갈 정도로 소매 시장이 잘 형성돼 있다. 남평화시장(2237-0622) 지하 1층·1층은 가방을,2·3층은 청바지를 전문으로 취급한다. 청평화시장(2252-8036)은 가격이 싼 재고 상품들이 많다. 동대문종합시장(2262-0114)은 연면적 2만평으로 1970년 개장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단일 시장으로 기록됐다. 원단류, 의류 부자재, 침구·커튼, 생활용품, 액세서리 등을 취급하는 우리나라 대표 원자재 시장. 인테리어 소품을 직접 만드는 등 아기자기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동대문신발상가에는 1000개가 넘는 신발 도매상이 모여있다.A동은 운동화,B·C동은 숙녀화를 주로 취급한다. 물론 신사화도 있다.광희시장(2238-4352)은 가죽·모피 전문 상가로 일본인 관광객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성수기에는 시중가보다 40∼50% 싸고, 비수기에는 여기서 10% 더 싸다. 광장시장(2267-0291)은 한복, 주단, 직물, 폐백용품, 나전칠기, 제수용품을 판다. 덕운상가(2252-5835) 지하1층에는 벨트·가방·지갑 등 피혁 제품 도매 상가가 모여 있다. 아동복이 품질도 괜찮다.우노꼬레(2250-7829)에는 남성복 매장이 많다. 청대문(옛 프레야타운·2048-2000)은 30대 이상 여성복들이 많다. 광장시장(275-3674)은 1905년 7월 5일 대한제국 한성부 개설허가를 받아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근대적 시장.2층은 일본·홍콩 등에서 들여온 구제 의류가 많다.‘빈티지 룩’을 연출할 수 있는 구제의류가 잘 갖춰져 있다. 독특한 디자인과 1만∼2만원의 저렴한 가격. 한복, 침구, 의류, 나전칠기 등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지만 최근에는 빈티지 패션을 이끌고있다. 밀리오레(3393-0001)는 두산타워와 함께 동대문 패션몰 전성시대를 이끈 곳. 두산타워에 비해 의류 디자인이 평범하지만 가격이 저렴하다. 꼭대기층 식당가에서는 동대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식당 아주머니들의 ‘호객행위’만 아니라면 분위기도 괜찮은 편이다. 두산타워(3398-3333)는 상인의 30%가 공장·하청 공장을 소유한 디자이너 출신일 정도로 감각적인 디자인의 의류가 많다. 대신 값도 다소 비싸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교환·환불도 가능하지만 현금아니면 잘 안깎아줘 동대문에서도 원칙적으로 교환·환불까지 할 수 있다. 상인들이 환불을 거부하면 상가측 상담센터나 상인연합회 등에 문의하면 도와준다. 가능한 한 현금을 가져가는 것이 좋다. 대부분의 가게들은 원칙적으로 신용카드는 받지만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면 가격을 깎아주지 않는다. 설사 가격을 흥정한 뒤라도 신용카드를 내밀면 원래 가격을 받으려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평화시장 등은 소매시장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낮에 문을 닫는다. 시장별로 운영시간을 확인해보고 가야 한다. ■ 만원이면 즐기는 ‘보물찾기’ 동대문 풍물시장 ‘추억여행’ “탱크 말고는 다 있어요.” 낡은 구두, 곰방대, 화폐, 중고 바이올린골동품, 헌옷,LP판, 중고 가전, 성인용비디오까지.동대문 풍물시장(2238-4709)은 그야말로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어야 할 건 없는 벼룩시장이다. 가로 2m, 세로 1.2m의 좌판 1000개가 모여 있다.2003년 청계천 복원 공사가 시작되자 청계천·황학동 일대 노점상이 동대문야구장 자리에 터를 잡았다. 입소문이 나서인지 평일에도 손님들이 제법 많다. 물건 가격은 대부분 1만원 이하.‘보물찾기’하는 기분으로 물건을 골라보자. 물건값을 흥정하는 재미도 있다. 물론 시장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시장 체험이, 어른들에게는 추억으로 떠나는 여행이 될 것이다. 시장 한쪽에 마련된 먹자골목에서는 튀김·어묵·잔치국수 등으로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다. 상인들이 저마다 문 열고 닫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지만, 대개 오전 8∼9에 장사를 시작해 오후 6∼7시면 문을 닫는다. ■ 서점·극장가 반디앤루니스(종로타워점·2198-3000)는 가장 최근 지어진 서점. 교보·영풍문고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실내에 의자가 많아서 서점에 있는 책들을 몇시간이고 볼 수 있다. 특히 바닥에는 카페트가 깔려 있다. 서가 사이에서 카페트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진 손님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재즈 등 조용하면서도 감미로운 음악이 적당한 크기로 흘러나온다. 서점 입구에는 계단이 있어서 쉬어가기 좋으며, 간이무대에서는 간간이 문화공연이 열린다. 교보문고(광화문점·1544-1900)는 명실공히 업계 1위 서점인만큼 책이 가장 많다. 저자와의 팬사인회도 수시로 열린다. 음반판매점(핫트랙)은 웬만한 음반 전문점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음반들을 구비해놓고 있다. 문구점 역시 문구백화점으로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규모가 크다. 아기자기한 디자인의 문구·소품들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유명한 만큼 붐비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영풍문고(종로점·399-5600)는 청계천을 걷다가 광교에서 빠져나오면 바로 보인다. 지하 매장에는 커피 전문점, 아이스크림점, 샌드위치점이 있어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다. 미국의 대형 서점인 반즈 앤 노블 한편에서 스타벅스가 성장한 것을 떠오르게 한다. 북스리브로(을지점·757-8100)는 영풍문고에서 명동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다. 다른 대형 서점에 비해 아담하지만 서점 곳곳에 4인용 테이블을 마련,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국내 최대 규모(100평)의 만화책 전문매장이 있다. 대형 서점으로서는 유일하게 와인가게도 갖췄다.OK캐시백과 연계돼 있어 적립금 할인혜택이 15%나 되는 점도 장점이다. 청계천을 떠올리면 헌책방 거리를 빠뜨릴 수 없다. 청계천6가 평화시장 대로변(버들다리∼오간수교)에 있다. 한참 잘 나가던 1970년대에는 200여곳이나 됐지만 지금은 40여곳 정도 남아 있다.3평 안팎 되는 가게에 책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다. 책 고르기는 힘들지만, 괜찮은 책을 발견할 때면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마냥 신난다. 가격은 정가의 절반 정도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영화관·공연장 옹기종기 마니아들 발길 북적북적 관수교 북쪽 방향으로 ‘원조 개봉관 삼총사’인 서울극장·단성사·피카디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1907년 개장해 국내 최고(最古) 영화관으로 기록된 단성사(764-3745),1958년 개관한 피카디리(3676-7942)는 지난해 리모델링을 했다. 시설은 깔끔하지만 예전 극장의 낭만은 사라졌다. 영화 ‘접속’에서 주인공이 서로를 기다리던 피카디리 극장 앞 커피숍도 사라졌다. 삼일교 북쪽(인사동) 방향으로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 ‘극장전’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시네코아(2285-2090)가 있다. 여기서 더 걸어가면 예술영화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741-9782)가 연인들을 기다린다. 옛 허리우드 극장 자리의 아트선재센터에 있던 시네마 테크 전용관을 옮겨왔다. 삼일교 남쪽(명동) 방향에는 개봉작과 단편영화를 두루 볼 수 있는 중앙시네마(776-8866)가 있다. 직진하면 우리나라 소극장 공연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삼일로 창고극장(319-8020)도 보인다.1975년 개관해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멘트를 펴바른 담벼락 아래로 연극인들의 추억들이 느껴진다. 작가들을 위한 전시공간도 있다. 광교를 기준으로 명동을 바라보면 애비뉴엘 건물에 롯데시네마(1644-8855)와 아바타 건물에 명동 CGV(1544-1122)가 있다. 마전교를 건너 종로쪽으로는 연강홀(708-5001)이, 지하철 2호선 동대문운동장역과 신당역 사이에는 충무아트홀(2230-6600)이 있다. 모두 뮤지컬·연극·클래식 등이 펼쳐지는 종합 공연장이다. 동대문 시장의 청대문(옛 프레야타운) 건물에는 MMC(2268-01111)가 있다. 씨네큐브 광화문(2002-7770)은 청계광장에서 충정로 방향 쪽의 흥국생명 지하에 있다. 예술영화 전용관. 건물 외관에서 ‘망치를 들고 있는 사람’이 반긴다. 로비에도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지하에 푸드코트가 갖춰져 있다. 로비에서 팝콘을 팔지 않아 영화 관람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다. ■ 버들치·조팝나무 “날 보러 와요” ‘반갑다. 봄!’ 30년만에 찾아온 청계천의 봄을 가장 반기는 이들은 아마도 청계천의 나무와 꽃들과 물고기, 철새 등일 것이다. 콘크리트 더미에 떠밀려 도시를 등졌던 이들은 화사한 청계천의 봄을 만끽하고 있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심은 100여종의 나무와 꽃 이외에 바람을 타고 천변에 날아든 156종의 식물들이 청계천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인다. 맑은 물 아래에는 각종 물고기가, 수면 위에는 긴 겨울을 지낸 새들이 날아와 따스한 봄볕을 즐긴다. ●봄꽃들의 현란한 꽃잔치 요즘 청계천에 가면 조팝나무에 하얀 꽃들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여기에 활짝 핀 빨간 진달래와 영산홍, 노란 개나리가 관람객을 맞는다. 키 1∼2m의 조팝나무는 꽃 핀 모양이 튀긴 좁쌀을 붙인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조팝나무라 불린다. 어린 순을 나물로 먹기도 한다. 조만간 청계천 가로변 5.5㎞구간에서는 900여그루의 이팝나무와 물가에 심은 노랑 꽃창포가 만개해 장관을 이룰 전망이다. 지난 연말 루미나리에 축제 때 화려한 전등이 내걸렸던 이팝나무들은 파란 잎과 하얀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다. 물가에 심어진 백합목 붓꽃과 식물인 노랑 꽃창포의 꽃망울이 개천을 화려하게 장식할 전망이다. 담쟁이덩굴들은 가로변 담장을 타고 오른다. 덩굴손에 흡착근이 있어 담벽이나 암벽에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아 회색빛 담장을 푸르게 바꾸어 놓는다. 마장2교에서 용답육교에는 매화거리가 330m 조성돼 있으며, 시점부에서 새벽다리 사이에서는 산수유와 산철쭉, 자산홍, 개나리를 볼 수 있다. 고산자교에서 신답철교 사이의 사과나무와 감나무도 이달 말부터 꽃망울을 터뜨린다. 하류인 고산자교 일대에는 바람을 타고 온 이름 모를 풀들의 현란한 잔치가 벌어졌다. 마디풀과 고들빼기 등 종수는 156종에 이르지만 일반인들이 이름을 알기란 쉽지 않다. 식물 중에는 다른 식물들에 해를 끼치는 위해식물들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돼지풀과 서양등록나무 등은 사람들에게 알레르기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청둥오리등 동물 160여종 관찰 청계천은 정수된 한강물과 지하수가 흐르는 2급수 자연하천으로 1급수 어종인 버들치와 2급수 어종인 붕어, 참붕어, 메기 등 다양한 어종들이 살고 있다. 모전교에서 다산교까지 3.26㎞구간에 물고기 인공산란장 5개소와 물고기 쉼터인 거석 16개소, 거석수제 16개소, 목재방틀 20개소가 설치돼 있다. 이것들은 물고기들이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올 때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고 홍수 때에는 물고기들의 피난처로 쓰이게 된다. 버들치는 몸길이 8∼15㎝로 몸 한가운데 황갈색 세로띠가 있다. 몸은 길고 옆으로 납작하며, 주둥이가 길고 위턱 끝에서 앞쪽으로 튀어나온 육질돌기가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송사리는 몸길이가 5㎝정도로 몸은 가늘고 길며 옆으로 납작하다. 몸빛깔은 담회갈색을 띤다. 이 밖에 하류에 가면 메기와 잉어, 피라미, 미꾸라지, 갈견이, 버들치, 돌고기 등도 볼 수 있다. 찾아드는 철새들도 다양하다. 지난해 청계천에서는 황조롱이와 고방오리, 중대백로, 왜가리 등 34종의 조류를 포함해 족제비등 동물 160여종이 관찰됐다.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청둥오리. 몸길이는 50∼60㎝로 수컷은 머리와 목이 광택 있는 짙은 녹색이고 암컷은 갈색 얼룩이 있다. 집오리의 원종이기도 하다. 청계천관리센터 윤소원과장은 “청계천에는 다양한 동·식물들 서식처로 많은 생태가 점차 복원되고 있다.”면서 “이달 말부터 복원 뒤 처음 찾아온 봄 식물 등에 대한 모니터링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지역 명물’ 多 있네! ‘지방 명물들이 다모였네’ 청계천에는 전국 지방자치단체로부터 기증받은 나무와 꽃들이 심어져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북 상주시와 충북 충주시 등 12개 자치단체에서는 각 지역을 상징하는 나무와 꽃을 청계천에 기증했다. ‘곶감’으로 널리 알려진 상주시는 감나무 90그루를 기증, 신답펌프장∼마장 2교 제방에 심었고,‘사과’의 고장 충주시는 사과나무 120그루를 고산자교∼신답철교 제방에 심었다.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의 명소 충남 천안시는 능수버들 16그루를 다산교 하류 빨래터 양측 둔치에 심었으며, 창녕군은 청계천·중랑천 합류지점 호안습지에 갈대 3만포기를 기증했다. 경북 영주시는 산철쭉 5400그루를 오간수교간 둔치에, 경기 포천시는 구절초 2만포기를 살곶이공원 둔치에,‘대나무의 고장’ 전남 담양군은 대나무 260그루를,‘매화의 본고장’경남 하동군은 매화나무 250그루를 신답철교∼용답육교에 각각 심었다. 경북 성주군은 노랑꽃창포 39종 8430그루포기를 지난 15일 기증, 신답철교 하류 생태교육장 부근에 심었으며, 충남 부여군은 이달 말 차집관거∼세월교에 연꽃 300평을 기증할 예정이다. 이밖에 황학교 하류 소망의 벽 주변에 있는 돌하르방은 제주도에서 기증한 것이며, 두물다리 아래에 있는 경관석은 남해군에서 기증한 것이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주차장·화장실 못찾아 불편하셨죠? 청계천을 찾을 땐 미리 주변 편의시설을 확인해두면 편리하다. 특히 화장실과 주차시설은 출발하기 전에 반드시 알아놓자. ●공영 주차장을 이용하라 청계천과 인접한 무료 주차시설은 거의 없다. 멀리 떨어진 공영 주차장이나 주변 건물의 부설 주차장, 사설 주차장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 도심이다 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다. 한국관광공사 옆 노상주차장은 무료인데 자리가 9개 뿐이라 서둘러야 한다. 서울신문사 등 부설주차장은 24시간 운영하며 최초 30분은 2000원, 초과 10분당 1000원을 받는다. 오히려 성동구 마장동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주변에 주차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시설관리공단, 성북수도사업소, 동대문우체국 등이 모두 무료이기 때문이다. 청계천 주차장도 10분당 350원에 불과하다. ●무인 자동화화장실을 찾아라 청계천을 거닐다 보면 화장실 찾기가 녹록지 않다. 청계천변에서 올라와 표지판을 살펴보면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이 지정한 화장실이 눈에 띈다. 공단과 협약을 맺은 곳이라 화장실 이용을 거부하면 신고할 수 있다. 건물에 들어가기 껄끄러우면 무인 자동화화장실을 이용하자. 삼일빌딩, 한국전력변전소, 구 홍보관, 황학교, 고산자교, 성북천 등 7곳에 설치돼 있다. 이용료는 10분당 100원. 남녀공용이란 점이 불편하다. ●청계천 순환버스를 타자 청계광장에서 의욕적으로 출발해도 동대문운동장을 지날 때면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청계천 순환 2층버스를 이용하면 관광이 한결 편안하다. 다음달 4일부터 하루 5차례씩 왕복 14.6㎞를 오간다. 원하는 곳에 내려 구경하고, 다음 버스를 이용해 이동할 수 있다.2층에 앉으면 청계천 물길도 보인다. 관광 안내원이 청계천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차내에서 관광영상을 보여줄 계획이다. 요금은 3000∼5000원선이 될 전망이다. 장애인을 위해 휠체어를 비치하고 있다. 청계광장 안내소와 청계천 2가 안내센터, 오간수교 등 3곳이다. 청계천 편의시설은 청계천 종합안내도(cheonggye.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분수에서 한밤중의 정사

    분수에서 한밤중의 정사

    映畵街이얘기저얘기-金洙容(김수용)감독 우리들은 항상 선의의 피해자이다. 작품 하나를 놓고 두 감독을 저울질하는 제작자나, 배역 하나에 두 배우가 걸려들어 본의아닌 경합을 하게 되고 끝내는「라이벌」의식이 노골화 되어 동료사이의 정을 끊어놓는다. 빼앗긴 쪽은 빼앗은 자를 저주하지만 체면상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상황은 쉽게 역전이 되기도 한다. 대개의 경우 여자주연을 선정할 때 우선 세아가씨의 이름이 후보자로 동시에 대두되며 그들의 이름은 南貞妊(남정임) 文姬(문희) 尹靜姬(윤정희)양이다. 도매금으로 물망에 올랐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끄러지는 두사람은 항상 의미없는 피해자가 된다. 이것은 쏟아지는 작품에 비해서 숫적으로나 질적으로 부족 하기만한 「톱·스타」들의 유명세이며 한국영화계의 피할 수없는 악순환이기도 하다. 항상 여주인공 선정에서 톱스타 文姬·尹靜姬경합 「엘리자베드·테일러」와 「소피아·로렌」정도의 개성 차이가 있다면 몰라도 文姬와 尹靜姬 두 여우를 놓고 볼때 그들 사이엔 별로 큰 차이가 없다. 차이가 없다는 것을 선의로 해석하면 두 사람의 연기의 폭이 넓고 유사형이란 뜻이 되겠지만 이것은 배우로서는 결코 장점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현대에 있어서 배우의 생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것은 강렬한 개성이라고 대답해야 옳을 것이다. 아무리 잘 생기고 예뻐도 그 용모에 개성이 깃들지 않았으면 배우의 자격은 없다. 결코 미남이라고 말할 수없는「장·폴·베르몽드」나 「스티브·매퀸」의 줏가가 높은 것도 개성 제일주의를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정연희의 장편 『石女』를 「스크린」에 옮기게 되었을 때 그 주인공으로 두 아가씨가 예외 없이 물망에 오르게되었고 文姬양으로 낙착될 때까지 제작자와 감독 사이에 적지 않은 의견 충돌이 있었다. 이러한 뒷 이야기를 듣고도 못들은 체 하며 「카메라」앞에서 태연히 연기를 해야하는 장본인의 마음도 약간은 괴롭겠지만 배역의 경합이 심하면 심할수록 열연의 도는 뜨겁게 마련이다. 사랑의 환상적인 의식도 영화에선 실제로 찍어야 그날밤 J공원 분수를 밤새도록 내뿜게 하고 그 솟구치는 물줄기 속에서 정사장면을 촬영하게 되었다. 쉴새없이 폭발하는 수압(水壓)과 열띤 사랑의 유희…. 나는 오래 전부터 그러한 영상세계에 흥미를 갖고 있었으며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던차라 서슴지 않고「카메라」를 그 곳에 세우게 된 것이다. 성격차이와 정신적인 학대속에서도 가정이란 굴레를 오히려 자신의 오만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방책으로 삼고 있는「인텔리」가정주부 文姬의 밀회장소…사나이 申星一은 긴 침묵을 깔고 뜨거운 눈빛으로 여인을 뇌쇄시키려 든다. 여인은 견디기 힘든 시선을 피해 분수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나이의 뜨거운 애무에 몸부림치는 자신의 모습을 의식의 눈으로 보게되는 것이다. 말이나 글로는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가 있지만 은막의 언어란 좀체로 간단하지가 못하다. 분수속에서 애무하는 장면이 있으면 배우가 실지로 물속에 몸을 잠그고 그 숱한 물줄기를 다 맞아야 한다. 이런때 文姬양 만큼 고분 고분하게 감독의 말을 들어주는 여우도 흔치 않다. 『옷을 어떻게 할까?』 『또 불려 가게요』 요즈음 음란물 단속의 여파는 확실히 우리들의 작업장에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나는 남녀 배우들 앞에 옷을 하나도 벗지않고 정사「신」을 연기할 수있도록 미리 연구한 도표를 내놓았다. 여배우의「클로즈·업」된 얼굴 둘과 남배우의 大寫(대사)된 손두「커트」, 그리고 남녀의 전신 한 장면으로 구분된 그림을 연결하는 것이다. 침대위에서 옷을 입고 뒹굴었다면 보는 사람의 빈축을 사기 안성마춤이겠지만 야외 나무 그늘이나 풀밭이라면 그래도 용서받을 수가 잇을 것같다. 보는 사람에겐 시원하기만한 분수지만 그 힘센 물줄기를 통째로 맞아가며 애무하는 연기를 해낸다는 것은 분명히 커다란 육체적인 고통이 따르게 된다.「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文姬는 쉴새없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申星一의 뜨거운 호흡에 말려드는 동작은 계속되었고 감독이「카메라」를 멈출 때까지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참고삼아 여기 그 장면 하나 하나를 설명해 보자. 먼저「카메라」를 뒤로한 男과 女는 서로 얽혀 쓰러진다. 두번째는 남자의「클로즈·업」 된 손을 따르는「카메라」. 그 손이 여인의 허리에서 옷속으로 등을 향해 뻗어가고 다시 서서히 앞 가슴 쪽으로 옮겨진다. 세번째 그림은 여인의 충격적인 얼굴에서 특히 눈언저리를 크게 잡는다. 네번째는 다시 남자의 손. 이번 손은 목에서부터 서서히「블라우스」의 단추를 풀게 되고 그 손은 다시 배꼽아래로 뻗는다. 다섯번 째는 여인의 얼굴이 대사되고 특히 윤기있는 입언저리를 「클로즈·업」 한다. 이러한 장면들이 차례로 찍히는 동안 모름지기「섹스」나 음탕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옷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카메라」에 포착된 곳만 움직임을 갖기 때문에 도무지 정사의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촬영이 끝났을때 여배우의 양쪽 귀에선 물이 주르르 흘러 나왔다. 그리고 그녀의 눈은 빨갛게 충혈 돼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곤히 잠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한밤중 물속에 잠겨 본의 아닌 뜨거운 정사를 연기하는 여배우의 얼굴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면서도 끝내 배역을 얻지 못한 또 한사람의 얼굴이 눈앞에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톱·스타」들은 본의건 본의가 아니건 항상 경합속에서 살아야 하고 차가운「라이벌」 의 눈초리를 참아 넘길 수 있는 무딘 신경이 또한 필요한 것이다. [ 선데이서울 69년 8/24 제2권 34호 통권 제48호 ]
  • [요리조리 명사와 함께] 국순당 배중호사장

    [요리조리 명사와 함께] 국순당 배중호사장

    냉면, 고추장찌개 등 자신이 좋아하는음식을 직접 요리해내는 국순당 배중호 사장. 퇴근 길 살며시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요리를 같이 하잔다. 웬만한 주부들도 감히 엄두 못 내는 두부와 청국장 만들기에 도전한 지는 이미 오래. 서울 강남구 삼성동 회사 본사 1층에 자리잡은 주점 ‘백세주 마을’에는 그의 요리 열정과 정성이 녹아 있다. 술을 빚는 정성으로 요리도 한다는 그에게 술과 요리는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화두’로 자리잡았다. 술 빚는 것과 요리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전통주 백세주를 생산하는 국순당 배중호(53) 사장은 이같은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정성’을 꼽는다. 배 사장의 요리에 대한 열정은 누구도 못말릴 정도로 철철 넘쳐난다.‘요리’ 말만 나오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들…. 배 사장의 서울 도곡동 자택을 찾았다. 아들과 딸은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어 부인 석용호(50)씨와 함께부부가 알콩달콩 살고 있다. 배 사장 부부가 환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이했다. 청바지에 연둣빛 티셔츠를 걸쳐 입고 앞치마를 두른 배 사장한테 봄 냄새가 물씬 풍긴다. 글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맛있는 음식의 비결은 정성 그가 즐겨 하는 요리는 냉면. 주부들이 들으면 으악할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냉면은 이틀에 걸쳐 작업한 대작. 회사 경영으로 바쁘다 보니 냉면 만들기 하루 전날 퇴근해 우선 육수와 고명으로 쓸 오이지와 배를 절여 놓는다. 이어 다음날 냉면을 삶아낸다. “냉면 맛의 생명은 육수예요. 닭고기, 멸치·다시마, 양지머리, 동치미 국물, 열무김치 등 다섯가지로 냉면 국물을 만들어 냅니다. 이들을 오묘하게 잘 배합해야 맛이 제대로 나오죠.” 가끔 보는 TV의 요리 프로그램은 그의 요리 열정을 부추기는 촉매제. 요리사 빅마마 이정혜씨가 닭가슴살을 이용, 김밥을 맛있게 만드는 것을 보면 직접 실습을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지난 주말 친구 부부와의 청계산 등산에서는 자신이 만든 닭가슴살 김밥으로 박수갈채를 받았다.“제 친구가 저보고 오래 살라고 해요. 맛있는 것 계속 얻어 먹으려고요.” 멸치·다시마로 국물을 내고 감자·호박·파 등을 넣고 고추장을 푼, 깔끔한 맛의 고추장찌개와 샐러드도 잘하는 메뉴. # 요리하면 부엌살림이 훤해져요 “하고 싶은 것은 너무 많은데 시간이 없어 못한다.”는 그에게 그 중 가장 하고 싶은 요리가 뭔지 물어봤다. 깔끔한 이북식 한식과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는 사찰음식을 배워보고 싶단다. 또 부인이 좋아하는 탕수육도 만들어 볼 계획이다. 그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요리를 주로 만들었는데 앞으로 부인을 위한 요리를 만들겠다는 애처가다. 이미 인터넷을 뒤져 레시피 등을 다 챙겨 놓았으니 반은 시작한 셈. 탕수육 얘기가 나오자 부인 석씨의 표정이 환해졌다. 석씨도 “나중에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면 남편에게 멋진 주방을 만들어줄 생각”이라고 화답한다. 요리사 남편의 보조로 음식 재료를 챙겨주며 수발을 드는 것은 부인 석씨의 몫.“보통 주부들은 양념 간장 만들 때 쪽파가 없으면 대파를 쓰잖아요. 남편은 절대 그런 법 없어요. 고등어 구이를 할 때도 프라이팬에 굽지 않고 꼭 그릴에 구워요. 기름이 빠져야 맛있다면서요.” 퇴근길 부인에게 살짝 전화해 “검은 콩 담가놔.”라고 말한 뒤 맛있는 콩국수를 삶아주는 남편. 냉장고 안에 어떤 채소·과일이 들어 있는지, 조리 기구는 어디 있는지 부엌 살림에도 훤하다.“그래도 집사람한테 가끔 혼나요. 요리를 잘 하는 것도 좋지만 깨끗하게 정리하면서 해야 한다고요.” 회사에서 늘 ‘도전정신’을 강조하는 배 사장은 요리에도 그대로 적용시킨다. 전복스테이크, 청국장 만들기 등 해보고 싶은 요리는 어렵더라도 끝까지 다 시도해 본다. 취미가 요리이다 보니 그는 해외여행을 할 때도 온도계, 게 먹는 기구 등 다양한 주방기구를 사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아들도 가게에서 바비큐 양념 그릇 같은 것을 보면 “아빠한테 꼭 필요한 것”이라며 사들고 온다. # 백세주 마을 더 키워야죠 요리에 대한 열정은 3년 전 서울 삼성동 본사 1층에 있는 주점 ‘백세주 마을’의 탄생으로 이어졌음은 당연한 듯했다. 몸에 좋은 건강술을 빚어내고, 그에 어울리는 음식을 개발하는 일에 열정을 가졌음은 물론이다. “구기자 등 백세주에 들어가는 12가지 한약재가 어떤 순서로 들어가는지, 또 양을 얼마나 넣는지, 시간을 얼마나 하는지에 따라 술맛이 완전히 달라져요.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제 맛이 나옵니다.” 미각, 후각이 뛰어나다 보니 그는 국순당 강원도 횡성 공장에 들어서면 냄새만 맡아도 ‘술 발효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척척 알아낸다. 백세주 마을에 가면 보쌈 돼지고기가 잘 삶아졌는지 등도 꼼꼼하게 챙긴다. 지난 2월 출시된 신제품 전통주 ‘별’도 그런 그의 미각과 정성으로 만들어졌다. 알코올 도수 14도인 기존의 백세주 제품을 16.5도로 높였는데 현재 당초 예상 월 매출 10억원의 2배 매출을 보이며 순항하고 있다. 현재 서울 시내 5개 점인 ‘백세주 마을’을 올해 안에 신촌, 구로점까지 7개점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최근 서울 전통 양반 음식의 과학화 등 전통 식문화를 복원, 계승하는 데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제품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성이 들어가면 소비자들이 먼저 알아 봅니다.” ■ 배사장의 맛 자랑 국순당 배중호 사장은 타고난 미각, 후각에 열정까지 두루 갖췄으니 요리사의 자질은 다 갖춘 셈. 술을 즐겨하지는 않지만 가끔 비 오는 날 부인과 함께 백세주 한 잔 기울이는 낭만도 있다. 담백한 맛이 일품인 그의 음식은 술 안주로도 적격. 보쌈 고기를 묵은지에 싸서 한번 더 쪄낸 묵은지말이보쌈 재료:돼지고기(삼겹살), 된장, 주박, 양파, 대파, 마늘, 묵은지, 깻잎지 만드는 법:(1)된장, 주박, 양파, 대파, 마늘을 잘 풀어 한번 끓여준다.(2)돼지고기는 보쌈용으로 두껍게 준비해,(1)에 넣어 다시 끓인다.(3)묵은지는 삶으면서 묵은지의 간을 조절한다.(4)삶은 돼지고기를 묵은지와 깻잎지를 이용해 먹기 좋은 크기로 말아준다.(5)찜기에서 한번 쪄낸다. 해물 계란탕 재료:육수(대파, 양파, 멸치, 다시마, 마늘), 바지락살, 홍합살, 소라살, 새우살, 양파, 당근, 양송이버섯, 쑥갓, 계란, 전분 만드는 법:(1)대파, 양파, 멸치, 다시마를 넣고 끓여 육수를 만든 후 건더기를 건져내고 소금, 마늘로 밑간을 한다.(2)바지락살, 홍합살, 소라살, 새우살, 양파, 당근, 양송이버섯을 준비,(1)의 육수를 넣어 끓인다.(3)(2)가 끓어 오르면 저으면서 계란을 잘 풀어준다.(4)(3)에 전분물(전분:물=1:1)을 천천히 풀어주면서 걸쭉한 농도로 만들어준다.(5)양송이버섯을 넣고 참기름을 두른 후 쑥갓으로 마무리한다. 주꾸미와 홍합, 버섯이 들어간 해물떡볶음 재료:가래떡, 조랑떡, 쫄면, 느타리버섯, 깻잎, 대파, 주꾸미, 홍합, 고추장, 고춧가루, 설탕 만드는 법:(1)느타리버섯은 찢어서 준비하고, 깻잎은 4등분하고, 대파는 어슷썰기로 준비한다.(2)물 100㏄가 끓으면 가래떡, 조랑떡, 쫄면을 넣고 살짝 익힌 후 주꾸미, 홍합을 넣고 끓인다.(3)양념(고추장:고춧가루= 2:1)을 풀고 설탕과 소금으로 밑간을 한다.(4)재료가 익으면 느타리버섯, 깻잎, 대파를 넣고 30초 정도 익혀 그릇에 담아낸다. 게살 샐러드 재료:게살, 양상추, 하얀 양배추, 보라색 양배추, 무순, 방울토마토, 샐러리, 참깨소스 만드는 법:(1)양배추, 보라색 양배추는 잘게 채썬다.(2)양상추는 찢어서 찬물에 담가 보관한다.(3)게살은 잘게 찢어서 준비한다.(4)샐러리는 껍질을 벗긴 후 얇게 어슷 썰어 둔다.(5)양상추, 양배추로 모양을 만든 후 맛살을 위에 뿌려준 후 소스를 뿌린다.(6)참깨소스 위에 빨간 양배추, 무순, 방울토마토로 모양을 만든다. 배중호씨는 ▲1953년 대구 출생 ▲78년 연세대학교 생화학과 졸업 ▲78년 롯데상사 무역부 입사 ▲80년 10월 ㈜배한산업(국순당 전신) 부설연구소장 ▲93년∼현재 ㈜국순당 대표이사 ▲2001년∼현재 한국 전통식품 best5 선발대회 대통령상 수상(농림부 주관) 등 다수 수상
  • [재테크 칼럼] 노후 연금은 연금다워야

    노후를 대비한 연금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연금은 연금다워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지난 1일부터 새로운 ‘제5회 경험생명률표’가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보험 가입자의 생존·사망률에 대한 관찰을 통해 다섯번째로 만든 통계다. 대체로 수명이 더 늘어난 점을 반영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학기술의 발달 등으로 수명은 늘기 마련이다. 따라서 불입액이 일정하다면, 수명이 늘어날수록 매월 받을 연금액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난달 31일까지 가입한 사람은, 수명이 상대적으로 짧아 연평균 연금액이 많은 ‘제4회 경험생명률표’의 적용을 받고,4월 이후 가입자는 연평균 연금액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연금에 가입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금은 시간이 갈수록 비싸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금 연금상품을 고를 때 꼭 확인할 점이 있다. 보험상품에 ‘연금’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가를 확인하자. 종신보험의 ‘연금전환’, 변액유니버셜보험의 ‘연금예시’ 등은 연금과 달라도 많이 다르다. 지금 가입한 연금은 앞서 언급한 ‘제4회표’를 적용받지만 연금전환 등은 훗날 연금이 필요한 시점에 등장하게 될 ‘제36회표’쯤을 적용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노후를 위해 100% 연금 목적으로 자금이 필요한 분들은 연금이라는 이름이 붙은 상품에 가입하는 게 바람직하다. 생명보험사의 연금 상품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손해보험사나 은행 등의 ‘연금신탁´ 등은 미리 정해진 기간(5·10·15년 등) 등에만 연금을 지급한다.‘오래 사는 위험´을 대비한 것이 연금의 기본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면 생보사의 연금을 권하고 싶다. 기본에 충실한 연금을 권하면서도 연금이라는 이름 앞에 ‘변액’이 붙은 변액연금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생각이 든다. 현재 연금에 적용하는 금리(4.7∼4.2%)로는 ‘7년간의 사업비’를 공제하고 나면 원금 보전에도 빠듯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투자 개념을 덧붙인 변액연금에 관심이 쏠린다. 더욱이 납입원금 보장, 납입 유예, 투자비율 제한, 펀드 변경, 신규펀드 추가 설정, 중도 인출, 약관 대출 등 각종 고객보호장치들을 감안하면 변액연금이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느낀다. 손석우 KFG㈜ 스타지점 부지점장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5년째 소나무사랑 전파 전영우 국민대교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15년째 소나무사랑 전파 전영우 국민대교수

    기품이 당당하다. 스스로 길지(吉地)에서 생기와 절개를 묵묵히 뿌리내린다. 천년 세월, 어떤 모진 비바람도 견딘다.‘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그랬다. 거친 우리 민족사를 도도히 지켜왔다. 문득 성삼문의 시조가 생각난다.‘이 몸이 죽어 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봉래산(蓬萊山)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 태종실록(1411년)이다.‘(서울)남산과 태평로 북쪽 산지에 경기도 출신 장정 3000여명을 동원해 20일동안 100만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 한양을 도읍지로 정한 직후였다. 정조실록에도 ‘경기도 화성에 도읍을 정하기 위해 소나무를 많이 심었다.’는 기록이 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지난 3월25일 서울 국민대 114호 강의실. 전국 각지의 남녀노소 70여명이 조촐하게 모였다. 강원도 원주, 전남 광주 등 멀리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 이날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소나무 교실’을 열었던 것. 사라져가는 소나무에 대한 관심을 새삼 고취시키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첫째 소나무 앞에서 경배를 드리고, 둘째 소나무를 가까이서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져서도 보고, 셋째 나무 주위를 천천히 돌면서도 보고, 넷째 앉아서도 누워서도 엎드린 자세로도 보고, 다섯째 오관을 활짝 열고 눈과 귀와 코와 입과 손끝으로도 접하며….” 소나무 박사로 유명한 전영우(55·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의 흥미진진한 강의에 참석자들은 숨소리조차 조용해진다. 이들은 1회용컵에 흙을 넣고 직접 소나무씨앗을 심어보는 소중한 경험까지 했다. 모처럼 ‘소나무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3주후면 싹이 틉니다. 돌아가서 식구들끼리 직접 심어보세요. 서로 비교를 해보는 겁니다. 어느정도 자라면 할아버지나 부모님 산소에 옮겨 심어 100년을 키워보세요. 집안과 가문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이날 참석자들은 처음 만져보는 대관령 금강소나무의 씨앗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머리를 연방 끄덕인다. 늘 가까이 있는 소나무였지만 이날처럼 새삼 소나무의 중요성을 느껴보긴 처음이다.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 오는 15일에도 ‘소나무교실’을 한 차례 더 열기로 했다. 이 소식이 알려져 식목일 하루 뒤인 6일 배재대학교에서 ‘소나무야 놀자’라는 주제로 초청특강을 한다. “소나무는 한민족의 문명발달에 숨은 원동력입니다. 소나무 없이 궁궐을 비롯한 옛 건축물의 축조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지요. 왜적을 무찌른 거북선과 전함은 물론이고 쌀과 소금을 실어날랐던 조운선도 모두 소나무로 만들었습니다. 세계에 자랑하는 조선백자도 영사라고 불리는 소나무 장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오죽하면 ‘소나무와 함께 태어나고, 소나무 속에서 살다가 뒷산 솔밭에 묻힌다.’고 했을까요.” 하기야 소나무로 만든 집, 가구와 농기구, 관재로 사용하는 송판을 생각하면 금방 와닿는다. 우리 문화를 ‘소나무 문화’로 얘기하는 것도, 오늘날 산업사회에서 여전히 소나무를 사랑하는 이유도 소나무가 바로 한국인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문화코드이기 때문이라고 전 교수는 강조한다. 이처럼 소나무가 생명문화 유산의 상징임에도 언제부터인가 소나무는 우리와 점점 멀어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요즘 식목일조차 소나무를 심는 사람이 있을까요.”라고 반문한 뒤,50년전 우리 국토 산림면적의 60%가 소나무숲으로 덮였으나 지금은 25%에 불과하단다. 지난 10년동안만 서울 면적의 4.2배에 달하는 소나무숲이 사라졌다는 것. 이유에 대해서는 농촌인구의 감소와 재선충, 산불 등의 자연적인 요인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관심’이라고 강조한다. 적어도 애국가에 나오는 ‘소나무’가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어 “우리 사회가 갈기갈기 찢겨져 있다. 소나무는 단절된 관계를 복원시켜주는 치유제 역할을 한다.”고 전제한 뒤,“우리나라 남녀노소는 나무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으며 나무 이야기의 종착점은 결국 소나무로 귀결되기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소나무 한그루가 집값보다 비싼 것도 있다.”고 귀띔하면서 이번 식목일에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소나무 한그루만이라도 심어볼 것을 권유한다. 방법을 물었더니 산림조합중앙회에서 2년생 묘목을 한그루당 200∼500원을 주고 구입하면 된다고 했다. 이처럼 전 교수의 소나무 사랑은 각별하다. 올해로 15년째 소나무 사랑 전도에 나서고 있는 것.1992년 ‘숲과 문화연구회’를 처음 결성, 숲문화 연구에 물꼬를 텄다.99년에는 국내 최초 숲 해설가 양성교육을 실시했다. 이후 전국 각지의 숲 해설가 단체가 100여곳으로 늘어났다.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던, 천지사방에 널려 있는 숲이 문화산업의 소중한 출처가 된다는 인식을 깨우쳤다. 또한 국내 많은 산림학과 교수가 있지만 전국 방방곡곡의 소나무숲을 찾아다니며 직접 촬영과 취재를 통해 사진도록(한국의 명품 소나무,2005년)을 발간한 경우는 전 교수가 거의 유일하다. 아울러 지난해 제정된 ‘산림문화 휴양에 관한 법률’ 역시 전 교수의 숨은 공로로 이루어졌다. 현재 국회에서 발의되는 ‘소나무를 국목(國木)으로 정하자’는 관련법 제정 주장도 전 교수의 발품에서 비롯된다. 외국의 경우 국목이나 국화(國花)를 법으로 지정한 곳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관심조차 없다는 것. 예를 들어 사탕단풍나무(캐나다), 배화나무(러시아), 반야나무(인도), 올리브나무(이스라엘) 등 각 나라별로 법을 제정, 국목으로 삼고 있다. 전 교수는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바로 앞에도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예를 들면서 조선시대에는 소나무를 병들게 하면 나라가 위태롭다고 해 소나무를 숭배했으며 임금이 죽은 뒤에도 능 주변에 소나무를 심어 영혼을 지켜주는 나무로 여겼다고 했다. 고려가 송도(松都)에, 태조가 한양에 도읍지를 정해 소나무를 심게 한 것도 천년왕국을 기리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이밖에도 시민을 위한 녹색체험, 자녀와 함께 숲 찾아가기, 숲속의 작은 음악회, 시 낭송회, 숲속 문화제, 사진전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소나무와 함께 살아오고 있다. 이러는 동안 ‘산림문화’‘숲과 한국문화’‘우리가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 등 10여권의 저서를 펴냈다.2년전에는 ‘솔바람모임’을 결성, 틈만 나면 전국의 소나무숲을 찾아간다. 여기에는 엄호열 시사일본어사 사장, 박희진 시인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홈페이지를 통해 ‘소나무 살리기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 매월 소식지 1000부씩을 발간, 회원들에게 발송한다. 전 교수는 몇해 전 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소나무와 호흡을 하는 동안 완치됐다. 오히려 같은 연배보다 훨씬 젊다는 인사까지 받을 정도.“수술환자가 숲을 바라보면 훨씬 빨리 치유된다는 얘기가 있다.”며 활짝 웃는다. 전 교수는 요즘 독특한 강의방법으로 인기를 모은다. 예를 들어 교양과목 수강생들에게 교정의 나무 한 그루를 임의로 선정하게 한 후 3개월동안 나무와 대화를 나눈 소감을 써내라고 한다. 처음에는 다들 의아해 했지만 녹색 생명체인 나무와의 소통으로 자연·생명·친화본능을 일깨우게 했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또한 이번 학기부터 북한산 등산과목(자연학습)을 신설했다. 국민대를 출발하는 8자형 코스를 개발한 뒤 요소요소에 번호를 매겨 현장의 소감을 과제물로 제출토록 했다. 어느 지점에 가면 몇년생 소나무, 산수유 등이 있으니 보고 느낀 소감을 발표하는 것이다. “소나무는 이 땅의 풍토와 절묘하게 결합해 한국인의 정신과 정서를 살찌우는 자양분이 됐지요. 하루빨리 국목으로 지정해 자손만대에 이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오는 6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국제 산림문화 세미나에 참석, 우리나라 소나무의 우수성을 알릴 예정이다. 전 교수의 연구실에는 ‘독자청청(獨自靑靑)이라는 글귀가 걸려 있다. 한 서예가가 ‘소나무 같은’ 전 교수를 위해 써 준 것이라고 했다. 주말매거진 We팀장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51년 경남 마산 출생 ▲70년 마산고 졸업 ▲78년 고려대 임학과 졸업, 동대학 석사(81년) ▲84년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석사, 동대학 박사(87년) ▲88년∼현재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삼림대 학장, 도서관장, 전산정보원장 역임 ▲92∼02년 숲과 문화연구회 결성, 발행인, 편집인, 대표 역임 ▲96년∼현재 재단법인 동숭학술재단 사무국장 ▲98∼02년 생명의 숲 운영위원, 공동운영위원장, 이사 역임 ▲99년 국내 최초 숲 해설가 양성교육 실시, 숲 해설가 협회 공동대표(04) 역임 ▲04년∼현재 한국녹색문화재단 이사, 한국산지보전협회 이사, 솔바람 모임 대표 ▲05년 소나무 지키기 국민연대 공동대표 ■ 상훈 홍조근정훈장(04) ■ 저서 산림문화론(국민대학교 출판부,97), 숲과 한국문화(수문출판사,99), 나무와 숲이 있었네(학고재,99),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현암사,04), 숲과 문화(북스힐,05), 한국의 명품 소나무(시사일본어사,05)외 다수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이야기] (1)’한국 천주교의 얼굴’ 명동성당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이야기] (1)’한국 천주교의 얼굴’ 명동성당

    1898년 서울 목멱 자락인 종현(鐘峴)에 우뚝 세워진 ‘한국 천주교의 얼굴’ 명동성당(중구 명동 2가1, 사적 제258호).60대 후반을 넘긴 세대에겐 지금도 ‘언덕 위의 뾰족집’으로 통한다.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45년 해방 후부터였고 원래 이름은 당시의 지명을 딴 ‘종현성당’.1900년 이전 세워진 건물 중 가장 크고 잘 보존된 것이면서 가장 순수한 고딕양식의 이 성당은 ‘뾰족집’이란 별명에 걸맞게 전형적인 고딕양식을 띠고 있다. 고딕은 신성로마제국이 쇠퇴하면서 로마교황의 권력이 증대하고 그리스도교가 융성하던 12세기 프랑스에서 완성된 건축양식. 교회의 승리를 과시하기 위한 앙천(仰天)의 구조가 특징이다. 명동성당 역시 경사지 구릉의 산봉우리를 깎은 정상부에 자리잡아 주변을 내려다보고 있고 진입로와 성당의 높이가 약 13m의 고도차를 가져 확연히 드러나는 위용을 갖추고 있다. 뾰족한 아치와 궁륭천장, 기둥에 의해 구획되는 6칸의 회중석 공간과 교차부, 두 칸의 익랑(翼廊), 두 칸의 성단(聖壇) 구조의 삼랑(三廊)식 라틴십자형 내부공간이 고딕양식의 전형이라면 단순한 외관과 견고한 벽체의 구조체계와 공법은 로마네스크 양식에 가깝다. 대부분의 중세 유럽 성당이 서쪽 입구를 둔 동서배치였던 데 비해 정북에서 30.5도 서쪽으로 기울어진 북북서쪽 입구를 가진 남북배치형태는 파격이다. 규모는 건축면적 427.14평, 연면적 612.65평에 외곽길이 68.25m, 외곽 폭 29.02m, 건물높이 23.48m, 종탑높이 46.70m. 그런데 명동성당은 왜 하필 이곳에 세워졌을까. 그것은 성당을 건립한 선교사들이 당시 높은 곳에 교회를 세우는 전통을 고집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바로 인근 명례방이 한국 최초의 순교자를 낸 천주교회의 태동지임을 의식해서였다. 흔히 한국천주교의 특징은 ‘박해와 순교로 점철된 자생적 신앙’으로 요약된다. 한국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이 청나라에서 영세를 받고 귀국한게 1784년. 한국천주교는 이 해를 원년으로 삼는다. 이승훈은 현재의 명동 부근인 수표교 근방 이벽의 집에서 세례를 베풀고 신앙공동체를 탄생시켰다. 이 신앙공동체가 성장해 당시 명동일대인 명례방의 역관 김범우의 집에서 비밀리에 신앙집회가 열렸지만, 집회가 발각되어 김범우는 형벌과 고문끝에 1786년 한국 최초의 순교자가 된다. 이후 100여년간 한국 천주교는 신도 1만여명과 성직자 10여명이 순교하는 고초를 겪었다. 명동성당이 세워진 종현(鐘峴)은 이처럼 한국 최초 교회의 발상지이며 최초의 순교자였던 김범우의 집이 있던 명례방 옆 언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조정에서는 성당터에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성당터가 조선왕궁을 내려다보고 있고 특히 조선조 임금들의 영정을 모신 영희전의 주산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정과의 부지 소유권 분쟁이 오랫동안 계속됐지만 결국 교회가 토지소유권을 인정받아 성당 건립이 이루어지게 됐다. 이 사건은 천주교를 적대적으로 대했던 정부가 차꼬를 푼 신호탄이었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많은 종교시설들이 들어서게 된다. 1898년 축성후 다섯차례의 보수공사를 거쳤으며 지금은 외벽공사가 한창이다. 성당 내에는 제구, 가구를 포함하여 많은 고정구조물이 있는데 성당 축성과 함께 마련된 대리석 주제대와 벽돌조의 부제대, 성상과 14처 등을 제외한 모든 게 완공 이후 제작 설치됐다.1920년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 성성 25주년 기념으로 제작 설치된 강대부분은 해체되어 독서대와 목조제단으로 조립되어 사용되고 있다. 닫집은 강대와 같이 철거되어 주교좌 상부에 설치되었다. 파이프 오르간 역시 뮈텔 주교의 주교성성 25주년을 기념하여 전국의 신자들이 모금한 성금 2만원으로 설치됐지만 미국제 전자식 파이프오르간으로 대체된 뒤 현재의 독일 보슈사 파이프 오르간으로 재설치되었다. 복자제대와 79위 복자상본은 1925년 복자시복 때 시설된 것이다. 건립 당초의 14처는 1963년 무렵 다른 작품으로 교체되었으며 원래의 것은 수유리성당에 보관되고 있다. 바닥도 원래 마루바닥에 의자가 없었지만 1950년대 말 장궤의자가 도입되었다. 일제강점기와 정부수립, 전란기를 거치며 현대사의 중심 공간 역할을 했던 명동성당은 1960년대 후반부터 군사정권에 맞선 ‘해방구’가 되어 1987년 군사정권의 종말까지 ‘민주화의 성지’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명동성당은 다시 태어나려 한다. 서울대교구를 중심으로 한 사제들 사이에 “본연의 신앙 터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고 주변의 문화시설을 아우르는 문화특구 지정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천주교 대구대교구 이창영(45·가톨릭신문사사장) 신부는 “한국 천주교의 심장이랄 수 있는 명동성당은 교회의 의도와는 다르게 정치·사회적으로 이용된 경우가 많다.”며 “현대사회에서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기 위해 초기 교회의 신앙을 바탕으로 생명존중과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 명동성당은 어떻게 건립됐나 최초의 순교자를 낸 명례방을 중심으로 창설된 이 땅의 신앙공동체는 처음 북경교구에 소속됐다가 1831년 로마교황청에 의해 조선교구로 설정됐고 교황청은 파리외방전교회로 하여금 이 신설교구의 전교를 맡겼다. 제7대 조선교구장 블랑 주교가 성당 부지매입에 나섰고 1887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비준된 뒤 언덕을 깎아 내는 정지작업이 시작됐다. 조정과의 부지 소유권 분쟁에 휘말려 기공식은 1892년 5월8일에 가서야 있게 된다.6년간에 걸친 공사 비용은 성당 축성 직후의 독립신문 등 기사를 볼 때 당시 돈으로 약 6만달러가 소요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비는 부지 매수비용을 포함해 대부분 파리외방전교회의 재정지원에 의한 것이었으나 신도들의 노력봉사와 성금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벽돌은 대부분 조선 정부에서 기와를 굽고 있던, 진흙땅이 있던 용산 한강통 연와소에서 제작해 조달했고 벽돌공과 미장이 목수는 청나라에서 초빙했다. 완공까지에는 인부들의 잇딴 사상과 자금난에, 블랑주교와 설계자인 코스트 신부의 사망까지 겹쳐 수차례 공사가 중단되는 어려움을 겪었다.1890년부터 1932년까지 제8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가 기록한 일기에선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읽혀진다. 마침내 성당이 위용을 드러낸 것은 1898년 5월29일. 주한외교사절과 조선 정부의 고위관리들, 재한 프랑스 선교사들, 한국 신부들과 신자등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엄한 축성식이 열렸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글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책꽂이]

    |실용| ●사람은 왜 만족을 모르는가(로리 애슈너 등 지음, 조영희 옮김, 에코의 서재 펴냄)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만성불만족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의 주요 증상을 목표 앞에서 주저앉는 자포자기 우울증, 상대의 결점을 참지 못하는 완벽주의, 자신을 늘 ‘베푸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희생양 콤플렉스, 남을 믿지 못하는 강박적 자기의존증, 행복한 순간에도 다가올 불행을 염려하는 기분저하증, 어떤 일을 해도 따분함을 느끼고 새로운 일을 찾아 헤매는 증상, 끊임없이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비교 콤플렉스 등 7가지로 나눠 진단.1만 800원. ●인생의 동반자들(제인 비더 지음, 박웅희 옮김, 바움 펴냄) 장애인을 돕는 동반견에 얽힌 감동실화. 동반견은 장애인들의 생명유지장치로 100가지가 넘는 명령을 수행할 수 있다. 국내에선 삼성SDI 도우미견 훈련센터, 이삭도우미개학교 등에서 육성하고 있다. 동반견은 ‘선(禪)의 달인’ 같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매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기 때문이다. 한마리의 개가 수렁에 빠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 잃어버린 자신감과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고 든든한 버팀목이 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감동적이다.9800원. ●새뮤얼 스마일즈의 검약론(새뮤얼 스마일즈 지음, 이은정 옮김,21세기북스 펴냄) ‘스마일즈의 4대 복음’으로 불리는 ‘자조론’‘인격론’‘검약론’‘의무론’ 시리즈 중 셋째권.19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의사인 저자가 말하는 검약은 돈을 쓰되 제대로 쓰는 것이다. 저자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는 영국의 성직자 에드워드 데니슨의 말을 인용, 미래를 위한 검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1만 5000원. ●사무실 삼국지(창얼 지음, 김지연 옮김, 럭스미디어 펴냄) 유비는 전투기술은 손권보다, 인재를 부리는 면에서는 조조보다 못했지만 촉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인재를 알아보고 채용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유비는 도원결의로 관우와 장비를 얻었고 삼고초려로 제갈량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 조운과 황충에게는 중책을 맡김으로써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게 했다. 이 다섯 명의 걸출한 인재를 얻었기에 유비는 천하를 삼분할 수 있었다. 책은 ‘삼국지’ 속의 지혜와 처세술을 빌리라고 조언한다.1만 2000원. ●황금보트(타고르 지음, 마 디얀 프라풀라 옮김, 작은이야기 펴냄) ‘기탄잘리’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도 시인 타고르의 대표적인 단편 우화들을 묶었다. 일의 효율성을 비판하고 느림의 미학을 깨우쳐 주는 ‘실수로 일 중독자의 낙원에 보내진 남자’, 질투심에 사로잡힌 왕의 깨달음을 통해 ‘이긴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쳐 주는 ‘왕의 머리에 걸린 현상금’등 묘한 여운이 담긴 33편의 이야기가 담겼다.9800원.
  • [한승원 토굴살이] 도깨비 때문에 잠을 설친다

    [한승원 토굴살이] 도깨비 때문에 잠을 설친다

    도깨비 생각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한다. 새만금 바다 사건(나는 그것을 ‘사업’이라고 말하지 않고, 바다에 대하여 무지한 우중이 일으킨 ‘사건’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도깨비적인 데가 있다. 유년 시절, 할아버지에게서 도깨비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께서 꼭두새벽에 고기잡이 하러 나가는데 키 장대 같은 도깨비가 씨름을 하자고 덤비어, 도깨비는 왼쪽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놈의 왼 다리를 걸어 넘어뜨려 가지고 사장나무 밑동에다가 친친 동여 묶어놓고 낮에 가보았더니 닳아진 몽당 빗자루였다는 이야기, 어느날 밤에 천관산 모퉁이 한 굽이를 떼어다가 바다 한가운데에다 동글동글한 섬 다섯 개를 만들어 놓더니 며칠 뒷날 밤에 두 개만 남겨 놓고 셋을 들어다가 다시 천관산 ‘도둑마끔’ 끄트머리에다 붙여놓은 이야기. “어째서 도깨비는 왼쪽 다리가 약하대요?”내가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대답했다.“강한 체하고 허풍을 치는 것들은 다 왼쪽에 큰 약점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도깨비들은 왜 무단히 산을 떼어다가 섬을 만들기도 하고, 그것을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 가기도 한대요?” “힘이 넘쳐나는 도깨비 무리들은 마땅하게 할 일이 없으면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고 죽이곤 하니께, 무리를 거느린 대장이 없는 일을 만들어서라도 시킨단다. 도깨비들은 그렇게 어떤 일인가를 부지런히 해야만, 천만 길 땅 속에 있는 도깨비 대국의 두목이, 아하, 내 부하들이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구나, 하며 황금과 먹을 것을 듬뿍 보내준단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일제 때 일본인들이 전라북도 군산 모퉁이에서 상하이까지를 막아 농토로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도깨비들의 괴력을 생각했다. 얼마 전부터 내내 불가사의 그 자체였던 도깨비의 괴력을 인간의 광기로 풀이하기 시작했다. 그 공식으로 헤아린다면, 광활한 새만금 바다 물막이 공사는 도깨비적인 사건과 다름없다. 국가의 어떤 일인가를 맡아 하는 ‘공사’들은 국가 발전을 위하여 거듭거듭 어떤 사업인가를 구상하고 기획해야 하고, 정부로부터 그에 따른 예산을 끌어다 사용하지 않으면 자기들의 밥줄이 떨어진다. 그들은 자기네 직원들이 무슨 일인가를 하여 봉급을 받고 살아야 하므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없으면 들판 한 복판에 산을 옮겨 놓기라도 하고, 그것을 다시 허물어다가 바다를 메우기라도 해야 한다.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나라의 국가적인 거대 사업은 대개 도깨비(愚衆·우중)적인 데가 있다. 정치인들이 몰표를 얻기 위하여 도깨비적인 공약을 일삼는 까닭이다. 새만금 사건은 애초에 한 대통령 후보가 전라북도 표를 모으기 위해 그곳을 농토로 만들어주겠다고 한 공약으로 비롯되었지만, 이제 한반도 안의 옥토들을 휴경하게 하고 보상을 해주는 판국이므로, 그 땅을 공장 부지나 관광용지 따위로 용도 변경하여 또 무슨 일인가를 거듭 벌여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우주의 생명에 대한 공부를 깊이 한 사람들이 예언한 바와 같이, 그들은 새만금의 방죽을 결국 ‘시화 호수’처럼 썩은 물이 고이게 만들어 놓게 될 것이고, 얼마쯤 뒤, 흉측한 냄새 풍기는 죽은 물을 되살리는 묘책은 역시 바닷물이 들어오게 하는 길뿐이라고 하면서 수문을 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새만금 방조제를 둘러막느라고 몇 개의 산이 지도상에서 사라졌는가. 시퍼런 새만금 바다를 육지로 변하게 하려면 몇십 개의 산이 사라져야 할까. 앞으로 몇십 년 동안 몇십조 원을 더 거기 처넣어야 할까. 이 세상을 끔찍스럽게 바꾸어가는 것은, 늙바탕에 들어 악마에게 영혼을 저당 잡힌 대가로 무지막지한 권능을 가지게 된 파우스트가 개발 사건을 광적으로 벌여간 것과 똑같은 도깨비적인 행위와 시행착오의 살상이다.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환그룹-최종환 명예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환그룹-최종환 명예회장家

    올해로 건설 외길 60주년을 맞는 삼환기업은 현재 남아 있는 유일한 1세대 건설기업이다. 대림산업·삼환기업·삼부토건 3개사만 명맥을 잇고 있지만 창업주가 살아 있는 곳은 삼환뿐이다. 대부분의 건설기업은 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전후에 부도가 나 좌초됐다. 삼환에 대한 평가는 극단으로 갈린다.70∼80년대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빌딩을 지은 주인공이자 중동에 처음 진출해 중동 붐을 일으킨 기업이지만, 최근엔 80년대에 비해 해외 수주액이 급감하는 등 예전보다 인지도가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부침이 심한 건설업계에서 꾸준한 수익성을 유지하며 ‘환갑’의 값진 전통을 이어간다는 데 이견이 없다. 삼환은 올해 창업 60년을 맞아 국내외로 외형을 확장, 건설 명가로서 제2의 도약을 꾀하고 있다. ●창업 60년 맞아 제2의 르네상스 꿈꾸는 삼환 삼환기업은 올해를 제2 해외 르네상스의 원년으로 삼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공항 확장공사 입찰에서 최저가를 써 1순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계약을 협의 중이다. 건축비가 지난해 삼환기업 해외 매출(600억원)의 4배 규모인 2500억원이다. 해외유전 사업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연 100억원대 수익을 올린 마리브 유전 투자에 이어, 지분투자(4.9%)로 참여한 베트남 가스전 개발사업이 올해 하반기부터 수익을 낸다. 이밖에 지분투자(1.6%)를 한 예멘 마리브 LNG 개발사업도 오는 2009년부터 수익을 낼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3조원대 규모의 대우건설 인수전에도 참여, 건설기업 전통 명맥을 잇기 위해 전력을 쏟고 있다. 창립자인 최종환(82) 삼환그룹 명예회장은 1924년 12월29일 최상림씨와 김림자씨의 5남2녀 중 4남으로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다. 종로의 종(鍾)자에 돌림자인 환(煥)자를 붙여 지은 이름이다. 양반이 광화문 중심에서 사대문 밖으로 쫓겨나 사는 것을 몰락으로 여기던 시절이었다. 사대부 출신인 그의 집안은 가세가 기울면서 광화문 중심에서 다동으로, 이어 효자동, 종로4·5가 등으로 밀려났고 그는 종로 4가에서 태어났다.‘종환’이란 이름에는 사대문 안은 벗어나지 않았다는 안도의 뜻이 담겨 있다는 회고다. 훗날(1980년) 창덕궁이 내려다 보이는 종로구 운니동에 20층 규모의 삼환사옥을 세운 것을 두고 그가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제 점령기에 초등학교(어의보통학교·현 효제초등학교)를 다닌 그는 글재주가 뛰어나 졸업할 때까지 각종 작문 대회에서 1등을 휩쓸었지만 학업에 뜻을 두진 못했다. 열 살이 되던 해에 궁핍한 살림에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일찌감치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건설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그의 형들과의 연관이 깊다. 큰 형인 고 명환씨와 둘째 형인 고 영환씨가 졸업 이후 수도·난방공사 자재를 생산·시공하는 스기야마 제작소에 들어갔는 데 회사에서 쓰다 남은 자투리 파이프를 집에 가져와 가공, 다시 납품하는 식으로 돈을 벌면서 1933년 경동기계제작소를 설립했다. 그는 어의보통학교에 이어 2년제 경성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한 뒤 18세가 되던 1940년 형들의 회사인 경동에 합류했다. ●약관의 나이에 창업…미군 공사로 국내 기반 삼환은 설립 이후 60년대 초반까지 줄곧 주한미군에서 수주한 공사에 전념했다.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국 공병대에서 크고 작은 공사를 발주했는데 토목·수도·난방 등 업종별로 공사를 따로 주지 않고 한 업체에 모든 공사를 맡기는 식이었다. 그는 경동기계제작소안에 공사부를 설립해 영업부장으로 뛰며 미군 공사를 수주했다. 한발 더 나아가 하청업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물 한 살이던 1946년 3월15일 오늘의 삼환그룹 효시인 삼환기업공사를 설립했다. 큰 형과 둘째 형, 그리고 최 명예회장 삼형제가 합심해 만든 회사란 뜻에서 지은 이름이지만 실질적인 소유주나 최고경영자는 최 명예회장이다. 회사 설립후 8개월 동안 이룬 공사실적만 총 26건 130만원이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1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액수다.1948년 가을 을지로 2가 119번지 53호를 매입해 신사옥도 마련했다. 1949년에 착공한 강원도 영월 등 7개 광산지역의 미국인 광산기술자용 주택공사는 당시 업계의 부러움을 산 초대형 공사였다.1950년 6·25로 공사는 중단됐고 건물은 불에 타버렸지만 이 공사는 훗날 새옹지마격으로 그에게 전쟁 이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주는 계기가 됐다. 서울 수복후 미군 공사 관계자는 그를 반도호텔(현 롯데호텔)로 불러내 큰 궤짝 하나를 내놓았는데 그 속에는 당시 2000만원이 들어 있었다. 불에 타버려 흔적조차 사라진 건물의 공사비를 뒤늦게 받은 것이다. 주식회사로 전환한 것은 전란 이후 1952년 9월의 일이다. 서울 수복후 전후 복구공사에 힙입어 사세를 키워나가던 중 삼환은 당시 주주 10명이 총 주식 2만주를 발행하면서 주식회사가 됐다. 그 중 최 회장이 1만주, 둘째 형 영환씨가 5000주, 큰 형 명환씨가 500주를 가졌다. ●국내 ‘중동 붐’ 조성…횃불신화로 국제 명성 쌓아 1961년 ‘5·16’은 새 전기를 가져왔다. 수의계약으로 이뤄지던 관급공사가 경제개발계획과 함께 신문에 종종 입찰공고가 나는 일이 생겼고 삼환은 국내 주요 공사를 맡는 ‘건설 명가’로 부상하기 시작했다.5·16 이후 삼환이 따낸 최초의 관급 공사는 1962년 발주한 서울 광진구 광장동 워커힐 호텔이다. 이어 경부·호남·영동·남해·동해고속도로 등 각종 토목 공사에 참여했고, 국립극장, 삼일빌딩, 조선·프라자·신라 호텔, 지금은 사라진 남산외인아파트, 여의도 전경련 회관, 국립묘지 현충탑, 포항제철(현 포스코) 공장 등을 지으며 주택·오피스빌딩·토목·플랜트 등 각 분야에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삼환은 국내사업에 만족하지 않았다. 해외진출 가능성을 계속 탐색하던 최 명예회장은 1963년 월남 사이공(호찌민)에 지사를 설립하면서 첫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정국 혼란으로 4개월 만에 철수했지만 이후 196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한국 업체 최초로 지사를 설립한 데 이어 1973년 국내 업계 최초로 중동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했다. 삼환은 사우디에서 네번 연거푸 고배를 마신 뒤 다섯번째 카이바∼알울라고속도로(175㎞) 입찰에서 2400만달러 규모의 공사를 따내며 국내 중동 진출 1호 기업이 됐다. 완공 때까지 3년간 자재 공급난, 종교 문제 등 시행 착오로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이어 사우디 최대 규모인 제다시(市) 전체를 뜯어고치는 미화사업을 맡으면서 행운을 잡았다. 미화공사를 메카순례기간 전까지 끝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횃불을 켜놓고 야간공사를 강행하던 것을 파이잘 국왕이 보고 감동을 받은 것이다. 이를 계기로 삼환은 6000만달러 규모의 대형 공사를 수의계약하게 됐고 ‘횃불신화’라는 말을 남기며 국내 건설업체의 중동 진출 붐을 조성하는 등 명성을 널리 알리는 개가를 올렸다. ●해외 프론티어의 꿈…정체된 90년대 80년대 들어서는 해외시장에 더 집중했다.1978년 미수교국이던 예맨에 진출했고 이를 계기로 1984년 북예맨 마리브 유전개발에 참여하면서 원유사업을 시작했다. 이어 요르단, 파푸아 뉴기니아, 알래스카, 방글라데시, 사할린 등 시장을 개척했다. 국내 기술을 해외에 알리기 위해 국제 모임에 적극 참여,1982년 아시아 서태평양 건설연합회인 아이포카(IFAWPCA) 5대 회장에 추대됐고 재임시절 세계건설인대회도 제창했다.1990년대 들어서는 회사 일 보다 민간 외교에 시간을 쏟았다.1992년 한·소 경제협력회 2대 회장으로 선임됐고 재차 연임됐다. 러시아의 정치·경제 여건이 성숙되지 않아 성과를 이루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아 있다. 이런 탓에 90년대 들어 삼환의 해외 실적은 급감했다. 건설협회에 따르면 삼환의 해외공사 수주액은 1982년 당시 5억 8834만 8000달러(한화 6000억원)였지만 10년 후인 1992년에는 10분의1 수준인 624만 4000달러에 그쳤다. 국내 건설 업계의 주요 테마인 아파트 실적도 많지 않다.90년대 후반부터 업계가 경쟁적으로 환상을 담은 아파트 브랜드와 광고에 집중하며 수주전에 열을 올릴 때에도 삼환은 아파트 광고를 하지 않았다. 최 명예회장은 오히려 당시 시류에 대해 자서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를 통해 “안쓰럽다.”는 평을 내놓았을 뿐이다. 한 때 9개에 달하던 계열사는 현재 6개로 정리됐다. 키친아트로 유명한 양식기 제조업체 경동산업(60년)과 코카콜라 등 청량음료 제조업체인 우성식품(69년)은 모두 1990년대 말 정리됐다. 태양관광(관광·77년)은 삼환엔지니어링(기술용역·76년)에 통합돼 삼환기술개발이 됐지만 설계 업무는 거의 하지 않고 관광업도 계열사 직원 출장을 위한 발권 업무 정도만 한다. 이밖에 우성개발(67년), 삼환까뮤(78년), 삼환종합기계(79년), 신민상호신용금고(78년), 회현상사(78년) 등은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건설 명가로서의 국내 입지와 안정적인 매출은 줄곧 유지하고 있다. 건설 계열사를 가진 한화그룹의 1000억원대 대한생명 리모델링 공사를 지난해 수주했고,2007년 준공되는 건축비 595억원 규모의 팬택계열 서울 상암동 R&D센터도 짓고 있다. 삼환기업은 2005년 기준 매출 6612억원, 당기순이익 5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종합 수주액은 1조 5000억원 규모다. 삼환그릅 기준 2005년 매출은 1조 1000억원, 당기순익은 650억원이다. ●교사 부인과 1남1녀의 단촐한 가정 1947년 봄. 삼환기업공사의 30대 청년 사장으로 뛰면서 당시 숙명여학교 교사이던 고 채광영 여사와 2년여 열애 끝에 1949년 4월 결혼했다. 최 명예회장은 부인을 만났을 당시 “‘아!이 여자다.’라는 느낌이 퍼뜩 들어 프러포즈를 했다.”고 언론을 통해 회고한 바 있다. 부인 채씨는 그를 홀로 남겨둔 채 1999년 노환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부인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가업을 승계한 외아들 최용권(56) 회장은 동갑내기로 고 한정대 전 대한페인트잉크(DPI) 회장의 3녀인 봉주(56)씨와 1974년 결혼해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미 보스턴대를 나온 용권씨는 미 유학중 같은 유학생 신분이던 봉주씨를 만나 결혼했다.1975년 삼환기업 기획조정실장으로 입사해 8년 만인 1982년 32세 나이에 삼환기업 사장에 취임했다. 이어 삼환이 창립 50주년을 맞은 1996년 9월 회장으로 등극,2세 경영 체제를 굳혔다. 선친인 최종환 명예회장은 ‘바늘로 찌를 구멍’은 있어 보였던 데 비해 최용권 회장은 ‘찌를 구멍’조차 없는 사람이란 평이 임원들 사이에서 나온다. 최 명예회장의 손녀이자 최용권 회장의 장녀 영윤(31)씨는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의 며느리가 됐다. 이 회장의 3남 해창(35)씨와 1999년 3월 결혼하면서 국내 두 전통 건설기업은 사돈관계를 맺게 된 것. 대림의 창업주인 고 이재준 선대 회장과 최 명예회장은 건설 1세대로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해창씨는 현재 대림산업 계열사인 종합물류회사 대림H&L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아는 사람 소개로 만나 2년여 교제끝에 결혼했다. 다른 손녀·손자들은 아직 모두 학생이다. 장손주 최제욱(29)씨는 예일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고, 최지연(26)씨는 세계 최고의 미술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RSID에서 공부 중이다. 막내 최동욱(22)씨도 콜롬비아대에서 학부 과정을 밟고 있다. ●형제들과의 인연…삼환에 친인척 1명도 남아 있지 않아 삼환은 인척들의 경영 참여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없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우지만 친·인척이 맡았던 경동산업과 우성식품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그리고 지금은 친·인척 중 단 한 명도 삼환에 적을 두는 이가 없다. 맏형 고 최명환씨는 6·25 당시 자신이 설립한 삼환기업의 모체인 경동기계가 잿더미로 변하자 동생 최 회장과 함께 삼환기업공사를 설립한 뒤 주주와 이사로 활동했다. 그의 아들인 동국대 출신의 용근(67)씨는 계열사인 우성식품 이사, 삼환기업 사장 등을 맡다가 1996년 삼환까뮤 사장직을 끝으로 삼환을 떠났다. 둘째 형인 고 최영환씨는 국내 최초 강관회사인 한국강관의 3인 발기인으로 참여하면서 삼환을 떠났는데 한국강관의 부회장까지 맡은 바 있다. 이대 영문과를 졸업한 그의 차녀 계자(64)씨는 18대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낸 권숙일씨와 결혼했다. 장남 용재(56)씨는 1993년 삼환의 계열사로 지금은 사라진 키친아트 등 양식기를 제조했던 경동산업의 사장을 맡은 바 있다. 차남 용진(53)씨는 ㈜유창 사장으로 삼환과는 무관한 사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셋째 형 고 최경환씨는 1958년 삼환의 관계사로 설립된 양식기 제조업체인 경동산업의 대표이사 회장을 지냈다. 이 회사가 정리되기 직전인 1999년까지 재직했다. 그의 아들 최용철(60)씨도 이 회사 대표이사 부회장을 지냈다. 경동산업은 인건비 상승과 경쟁 심화로 자금난을 겪다 94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0년 다시 법정관리 퇴출 명령을 받으면서 정리됐다. 그의 장녀 최형인(57)씨는 한양대 인문과학대 연극영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고 최경환씨의 사위이자 최형인씨의 남편이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이끌어온 이윤우(60) 삼성전자 기술총괄부회장이다. 막내 동생인 최정환(73)씨는 삼환이 코카콜라 부산·경남지역 판매권을 가진 우성식품을 1969년 창립하면서 이 회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연간 매출 1300억원대로 한 때 부산지역 대표 식품회사로 명성이 높았지만 방만경영과 과다 부채를 이유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최정환씨는 형인 최 명예회장으로부터 1997년 4월 경질됐다. 이 회사는 1997년 코카콜라 부문을 매각한 뒤 같은해 말 부도처리됐다. 최정환 전 회장은 서울대 상대, 산업은행을 거쳐 1968년 삼환에 입사했다. 이 회사 사장을 지낸 최정환 회장의 장남 최용석(47)씨는 회사가 문을 닫은 뒤 새천년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활동하는 등 한 때 정치에 뜻을 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리하고 지성산업 대표이사로 재직 중이다. 장녀 영혜(45)씨는 건설부 장관, 상공부 장관을 지낸 고 장예준씨의 차남 동욱(48)씨와 결혼했다. jhj@seoul.co.kr ■ 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형님-아우’ “아, 이리도 황망히 가셨습니까? 아직도 회장님이 하셔야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데 무얼 그리 급히 가셨습니까? 여든 여섯의 춘추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경제의 영원한 등불로 언제나 함께하시기를 기도했는데 이리 가시니 이별의 안타까움과 아픔이 너무도 시리게 느껴집니다. 정주영 회장님.” 최종환 명예회장은 2001년 3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타계한 직후 당시 서울신문을 통해 이같은 조사를 남긴 바 있다. 두 사람은 생시에 형님-동생으로 서로를 부르며 경쟁보다는 조언을 구하고, 돕고 의지하는 형님과 아우로서의 정이 돈독했다. 그는 건설 1세대 중에서도 특히 고 정 명예회장, 고 이재준 대림산업 명예회장, 그리고 조정구 삼부토건 명예회장을 존경하면서도 가깝게 지낸 인물로 꼽았다. 자서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없이’에서 고 정 명예회장에 대해 “타고난 능력과 자질 이외에 뛰어난 판단력과 결단력, 저돌적인 돌파력에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평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경련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최 명예회장에게 부회장을 역임토록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최 명예회장에게 처음 소개시켜준 사람도 고 정 명예회장이라고 덧붙였다. 고 조정구 삼부토건 회장에 대해서는 “나는 상대방의 잘못이 보이면 즉석에서 쏘아대는 성격이지만 그 분은 어떤 경우에도 참고 있다가 나중에 조용한 목소리로 상대방이 스스로 깨닫도록 설명해 주는 등 깊은 인내의 미덕을 갖춘 분”이라고 회고했다. 고 조 회장이 건설협회 회장을 맡을 때 최 명예회장은 이사로 그를 도왔다. 최 명예회장은 이들과 함께 황무지나 다름없던 이 땅에서 건설업을 일궈냈다. 그러나 지금은 마지막 남은 건설 1세대로 원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 가회동 자택에서 지내고 있으며, 건강이 예전같지 않다. 수십년간 매일 30분씩 해온 ‘대나무 밟기’를 건강 비결로 소개했던 그였지만 요즘은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1996년 아들에게 모든 경영을 물려주고도 일주일에 최소한 사흘은 회사에 나왔지만 올들어선 일주일에 병원가는 날 하루 정도만 오전에 회사에 들른다. 평상시처럼 직원들과 지하 구내 식당을 찾는 등 검소한 모습은 그대로라는 평이다. ■ ’60년전통’ 삼환을 만든 사람들 삼환이 60년 건설 명가의 전통을 지켜올 수 있었던 데에는 전문경영인들의 공이 컸다는 평이다. 최종환 명예회장이 꼽는 최고의 CEO는 경성공업학교(현 경기공고) 출신의 고 이창호 사장이다. 부사장직으로 순직한 뒤 사장으로 추서됐고, 최 명예회장으로부터 ‘고락을 함께한 벗’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 명예회장은 지난 1977년 회사장으로 치러진 고 이 사장의 영결식 조사에서 “지금 내 오른팔이 떨어져 피가 흐르고 여며드는 것만 같은 아픔이 밀어 닥치는군요. 그러나 당신의 유지를 받들어 나는 기어코 우리 삼환을 세계 속의 삼환으로 만들고야 말겠습니다.”라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격무로 일관하다 신병을 갖게 되어 휴양을 하다가도 중동 현장으로 달려가는 등 투철한 사명감은 지금도 귀감이 되고 있다. 그가 사망한 이듬해에는 ‘회사를 위해 노력한 사원에게는 응분의 보상이 꼭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연금제도와 사원주택단지조성사업이 시작되기도 했다. 전동진(74) 사장도 삼환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CEO중 한 사람이다.1975년 월남이 패망할 당시 월남지사장으로 근무하던 중 하청업자 공사대금 지불 등 잔무 처리를 위해 남아 있다 8개월간 공산 치하에 억류된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1968년 육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삼환기업 중기부 과장으로 입사한 이후 1996년까지 삼환기업·삼환엔지니어링·삼환까뮤 등 계열사 사장을 두루 역임했다. 지금은 삼환의 육영재단인 우성문화재단에서 이사로 재직중이다. 행정고시 출신의 최석원(75) 고문은 내무부 치안본부장, 노동청장, 부산시장, 건설부 차관 등을 역임한 뒤 삼환의 해외사업이 꽃을 피우던 1982년 사장대우 상임고문으로 영입됐다. 지금도 우성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노년까지 삼환과의 인연을 지키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나도 뜨거운눈물 있어요”

    “나도 뜨거운눈물 있어요”

    제15회 「아시아」영화제는 金芝美란 한 인생에게 커다란 「쇼크」를 준 인간발견의 잔치이기도 했다. 6월 15일 金浦공항을 떠날 때 웃음짓던 얼굴엔 지금 오히려 눈물이 스며있음은 웬일일까. 離婚과 주연여배우상-이 「아이러니컬」한 고개위에서 그녀의 심정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곳 「마닐라」灣에 면한 「호텔·필리피나스」의 한 방에서 그녀는 끝없이 울었다. 다시 밖으로 뛰어나가 넘실거리는 파도에 하소연을 해야만 했다. 「나는 여자예요」- 여자 金芝美의 전부를 내놓는 고해성사, 국내에선 차마 털어놓지 못한 얘기를 낮선 땅에서 그녀는 거리낌 없이 옮겨 놓았다. 저는 애를 낳을 수 없는 여자예요. 그 동안 저는 일곱아이를 길렀읍니다. 옛남편 洪性麒 감독과의 사이에 난 딸 경림. 얼마전 이혼한 최무룡감독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 딸 하나, 그리고 최감독과 姜孝實씨와의 사이에 난 아들 하나, 딸 셋-이렇게 모두 일곱 아이를 길렀읍니다. 이 가운데 제 뱃속에서 낳은 아이가 셋이었읍니다. 그러나 그중 단 하나의 아들을 저는 3년전에 잃었읍니다. 신문, 잡지에도 기사가 났읍니다만 이 아이를 非命에 잃고 전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아픈 가슴 때문에 저는 애를 못낳겠다는 뜻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제가 낳은 제일 마지막 아이 「밍크」 가 태어난지 이틀만에 斷産手術을 했읍니다. 의사의 말씀이 産後에 곧 수술하는 것이 좋다고 하더군요. 그때 생각엔 최감독이나 저나 똑같이 젊은 터에 아이를 안가질 수도 없고, 그 보다도 아이만 자꾸 낳아서 가슴을 멍들게 하는 것보다는…정말 눈물겨운 「가족계획」을 결행한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 이런 부끄러운 얘기를 왜 하는지 아세요? 세상은 저를 너무나 몰라주었읍니다. 저에게도 演技아닌 뜨거운 눈물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모르는게 아닙니다. 여자는 역시 한 남자를 섬기고 백년해로 해야 사람 대접을 받게 마련인가 봅니다. 그러나 이곳 「마닐라」 에 와보니 사람들의 인사말씀이 달랐읍니다. 영화제에 참가한 각국대표들이 어느새 제 이혼 소식을 들었는지 얼마나 행복하냐, 축하한다느니 하고 엉뚱한 인사를 하잖아요, 글쎄. 정말 전 가슴이 아팠읍니다. 그러나 主演女優賞 수상 결정의 기쁜 소식이 시상식 훨씬 이전에 제 귀에 들려왔을때 전 정말 눈물이 솟아났읍니다. 10년 동안 數億의 재산이 1년 동안에 다 사라지는가 했더니 하느님은 그 값을 치러주셨읍니다. 연기자에게 이보다 더한 보수가 어디 있겠읍니까. 그이가 이혼이란 말을 먼저 꺼내고 세상에 공표까지 한 것도 바로 저의 연기자로서의 생명과 값어치를 존중했기 때문이 아니겠읍니까. 그이는 이렇게도 저를 아껴 주셨고 앞으로도 보살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세상에선 이혼은 연극이다. 각본이었었다…하고 오해를 한 분도 있었다니 정말 섭섭한 일입니다. 저에겐 정말 이번 「아시아」영화제 主演賞을 처음 탔다는 것이 아마 이렇게 제가슴을 때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것에 실패한 저에게도 한가지 용기-演技者로서의 精進은 충분히 充電 이 된 이 순간입니다. 「아시아」 영화제를 핑계로 國外로 도망을 했다느니, 1년 쯤 안돌아 올 것이라느니 하는 억측을 씻어버리기 위해서도 전 하루 빨리 돌아가고 싶습니다. 예정을 앞당겨서라도 어서 여러분앞에 나타나야겠읍니다. 그이와의 다짐, 저를 아껴주시는 「팬」여러분과의 약속 그대로 이혼수속을 밟겠읍니다. 조용히 친정으로 돌아가겠읍니다. 서울 수유리에 있는 집에서 친정 어머니와 친형제 그리고 내 귀여운 딸 「밍크」와 함께 살겠읍니다. 연기는 보다 정열적으로 하는 대신 인생만은 사뭇 조용히 살고 싶습니다. 또 한가지 소문이 있다죠. 저희가 이혼을 한다니까 저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어처구니 없는 얘기 말입니다. 그것도 「저명인사」란 단서까지 붙었다니 건방진 얘기지만 제가 아는 「저명인사」가 어디 한 두분입니까. 어떤 「저명인사」는 정말 저희 부부의 영화제작사업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너무나 애를 쓰셨읍니다. 한창 이혼 소문이 나돌 때도 저는 그 분을 자주 만나서 얘기를 나누었읍니다. 이런 사연들이 혹시 곡해를 가져온지도 모르겠읍니다. 여기 함께 와있는 신문기자분들이 이젠 또 누구에게 시집가겠느냐, 열렬한 「프로포즈」를 받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고 짓궂게들 물어봅니다. 제가 데리고 있진 않지만 제몸에서 낳은 첫딸 아이가 내년이면 중학교에 들어갑니다…. 이 말씀으로 제 愚答을 대신 했답니다. 정말이지 金芝美는 연애선수, 이혼선수로만 이름 적히고 싶지 않습니다. 제 나이가 있지 않습니까. 연기자로서의 생명을 지탱하는 것이 더 급하다는 저의 거짓없는 고백이에요. 이름을 대서 죄송합니다만 7년전 姜孝實씨가 그렇게 과격한 방법을 취하지 않았던들 저와 崔감독 과의 결혼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3년전 제 아이 상면이가 횡액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그이와의 관계가 이보다는 더 오래 갔을는지도 모릅니다. 강효실씨의 아이는 다섯살때까지 유모를 두고 상면이만은 돌이 지나자 유모를 떼버린 것도 제가 여자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또한 3년전 斷産수술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오늘의 저는 또 달라졌을는지 모릅니다. 왜 이런 일들이 되씹어 지는 것일까요? 역시 저는 여자입니다. 洪감독도, 강효실씨도, 崔감독도, 모두 잘되시기를 비는 마음 뿐입니다. 모진 팔자를 탓하기 전에 더 열심히 여자가 되고 더 빛나게 연기자가 되겠읍니다. 이젠 그만 울겠읍니다. 이번 「아시아」영화제 女優主演賞수상을 축하해주셔요. 1969년 6월 20일 「마닐라」에서 金芝美 올림 [ 선데이서울 69년 6/29 제2권 26호 통권 제40호 ]
  • [실전논술] 바람직한 법을 만드려면…

    ● 다음은 ‘한비자´에서 발췌한 글이다. 이 글에 나타난 오기와 상앙의 법 제정과 시행에서의 문제점을 밝히고, 이와 관련하여 현대 사회에서 바람직한 법을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무왕이 죽고 문왕(文王)이 즉위했다. 화씨는 두 발이 잘려 왕궁으로 갈 수 없었으므로 돌모양으로 된 옥덩어리(璞玉)를 가슴에 품고 매일같이 초산의 기슭에서 엎드려 울었다. 사흘 낮 사흘 밤을 계속 울고 나자, 눈물은 마르고 눈에서 피가 흘렀다. 이 때 문왕이 이 소문을 듣고 사신을 보내어 까닭을 묻게 했다. “이 세상에는 죄를 범하여 발을 잘리는 형을 받은 자가 많은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슬프게 울고 있는가?” 화씨는 대답했다. “나는 다리가 잘린 것이 원통해서 우는 것은 아닙니다. 이 보석이 그저 돌덩이 취급을 당하고, 정직한 사람이 거짓말쟁이가 되었으므로 그것이 슬퍼서 우는 것입니다.” 문왕은 즉시 옥인에게 그 박옥을 갈아서 감정을 하게 하니 과연 그것은 희귀한 보옥(寶玉)이었다. 이로부터 그 보석은 그의 이름을 따서 화씨의 옥, 즉 ‘화씨(和氏)의 벽(壁)’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옥은 당시의 진나라 왕이,“바라건대 열다섯 성으로 그것과 바꾸고 싶다.”고 제안했을 정도로 유명한 옥이 되었다. 원래 보옥이란 것은 목구멍에서 손이 내밀어질 정도로 임금이 탐내는 것이다. 또한 화씨가 헌상한 박옥(璞玉)이 설사 보석이 아니었더라도, 임금으로서는 아무런 손해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화씨가 두 발을 잘리운 다음에야 그 구슬돌이 보석이란 것을 인정받게 되었다. 임금이 탐내는 보석조차도 그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임금에게 있어 법술(法術)의 경우를 살펴보면 화씨의 벽처럼 시급히 갖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렇게 임금은 법술을 펴는 것을 급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신하들이나 백성들이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그릇되어도 금지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법술을 주창하는 신하나 사람이 아직 임금에게 주지 않은 것은 다만 그가 법술이라는 구슬들(보옥)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임금이 법술을 쓰게 되면 대신은 국정을 제 마음대로 못하고, 측근은 임금의 위엄을 빌릴 수 없게 된다. 법이 나라에 행해지면 떠돌이 백성 따위는 모습을 감추어 마침내는 모든 백성들이 농사일로 돌아가게 되며, 전쟁이 있을 때면 싸움터에 나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법술은 신하에게는 세력을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게 하고,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생명을 요구하기도 하기 때문에 둘 다에게 재난이 되기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임금이 대신들의 반대와 백성들의 비난을 물리치면서까지 법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법을 주창하는 어떤 신하가 설사 목숨을 걸고 의견을 말해 보았자 그 법술이 임금에게 채택될 희망은 없다. 다음과 같은 사례가 그와 같은 경우를 잘 말해 준다. 옛날 오기(吳起)는 초의 도왕(悼王)에게 초나라의 풍속을 혁신할 것을 건의했다. “대신은 지나치게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영지를 가진 신하는 너무 많습니다. 이대로 가면 그들이 위로는 국왕의 권력을 침범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나라는 가난해지고 군사는 약해질 뿐입니다. 영지를 가진 신하에게는 손자 삼대만으로 그 작록을 반환시키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모든 관리들의 봉급을 깎고, 불필요한 벼슬을 폐지시키고 그 녹을 선발되어 훈련받은 사병들에게 돌려야 되옵니다.” 도왕은 이 말을 실천하였으나 불과 1년 만에 죽고 말았다. 도왕이 죽자 평소에 오기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지만 임금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꼼짝 않고 있던 구귀족들이 들고 일어나 오기를 손과 발을 잘라 피살하였다. 오기의 법을 시행하였을 때는 국력이 튼튼하고 나라도 안정되었으나, 오기가 죽자 초나라의 토지는 줄어 버리고 나라는 어지럽게 되었다. 상앙은 진의 효공(孝公)에게 정치의 요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다섯 집과 열 집을 한 조로 만들어, 서로가 서로의 잘못을 고발하여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합니다. 문학이니 역사니 하는 책들을 불살라 버리고 법령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대신들의 청원을 듣지 말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백성이 집을 떠나 벼슬을 찾아 다니는 것을 금지하고, 변이 있을 때 병역(兵役)에 종사하는 농민을 표창해야 합니다.” 효공이 상앙의 말을 듣고 이를 실행하자, 얼마 안 가서 임금의 지위는 매우 높아져 안정되었고, 나라는 풍족하여 군사가 강하게 되었다. 그러나 효공이 팔 년 뒤에 죽자 너무나 가혹한 법령에 숨이 막히던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상앙은 곧바로 거열형(車裂刑)을 받고 죽었다. 다시 말하면 초나라 오기가 말한 정책을 폐지한 것만으로도 외환에 위협당하고 내란에 시달렸다. 진나라는 상앙이 말한 법을 실행하였으므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따라서 두 사람이 한 말은 모두 정당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나라에서는 오기를 죽여 손발을 끊고, 진나라에서는 상앙을 수레로 찢어 죽이고 만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오늘날 세상은 당시의 진나라, 초나라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대신은 세력을 뻗고 있고, 백성들은 전쟁과 난에 익숙해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임금은 초의 도왕이나 진의 효공과는 달리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래 가지고는 오기나 상앙의 재판(再版)이 되고 말 위험을 무릅써 가면서 법을 말할 사람이 나올 리 없다. 이 어지러운 세상을 평정할 패왕(覇王)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문의 분석 한비는 중국 전국 시대 말기의 사상가이자 한의 왕족으로 젊어서 순자에게서 배워서 뒷날 법가(法家)의 사상을 대성하였다.‘한비자´에서 발췌한 주어진 제시문은 지배층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 법의 제정과 지나치게 강한 법과 불필요한 법의 제정은 실패하게 된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한비자´는 공자의 덕치주의를 비판하고 법치주의를 내세운다. 그는 도덕보다 법률을 중시했기 때문에 법 제정 역시 엄격하고 공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법 제정에 있어서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이 글은 법 제정이 실패할 수 있는 두 가지 경우를 보여 주고 있다. 첫째, 오기의 경우는 어느 한 쪽(지배층)에게 불리한 법을 제정함으로써 실패를 하였으며 둘째, 상앙의 경우는 일반 백성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게 법을 적용하였고, 또 왕권 강화만을 위해 백성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불필요한 법을 제정함으로써 실패하였다. 법을 시행하게 되면 비록 나라가 부강하게 되고 국민이 잘 살게 될 수는 있지만 저항을 받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이 법을 제정하는 데 있어 실패한 원인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출제 의도와 생각하기 주어진 제시문은 오기와 상앙의 법 제정이 실패한 원인을 밝히고 있다. 먼저 오기가 법을 제정한 것이 실패한 원인은 신하들의 권력가로서의 위치를 약화시켰고, 모든 관리들의 봉급을 깎았고, 벼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줄였고, 영지를 가진 신하의 기득권을 포기하게 함으로써 기득권 계층인 특권 계층에 불리한 법을 제정함으로써 그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상앙이 법을 제정한 것이 실패한 원인은 백성들에게 생명을 요구하기도 하였고, 서로가 서로의 잘못을 고발하여 연대 책임을 지도록 하여 백성들을 지나치게 감시하였고, 백성들의 지적 욕구를 막았고, 신하들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백성들의 참정권을 제한하여 일반 백성들에게 너무 가혹하거나 빈틈이 없어 그들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또 특정 법규가 정의에 반하는 법을 제정하였기 때문에 백성들의 저항을 받게 됨으로써 실패하게 되었다. 단순히 두 사례에 나타난 특수한 경우를 밝히는 것은 자칫 다른 길로 논술을 이끌 수 있다. 분석을 한 뒤에 분석한 것을 문제점으로 삼아 자기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법 제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하여야 한다. 바람직한 법 제정에 대해서는 앞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의 구체적인 해결책이 되어도 되고, 더 크게 일반화시켜 논의를 전개해도 된다. 어쨌든 앞에서 분석한 내용과 자기의 견해를 펴는 것이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문제는 먼저 주어진 제시문에 나타나 있는 사례를 분석하여 법 제정이 실패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찾아내야만 다음 단계의 논의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분석을 할 때에는 발문에서 전제하고 있는 법과 관련지어 언급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평소 사회, 정치, 경제 등에 대해서 배울 때 나름대로 정리해 두어야 하는 문제이다. 또 이와 관련된 문제로는 자유와 정의, 평등 등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개념을 염두에 두고 생각을 심화시켜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어떻게 쓸까 주어진 논제인 현대 사회에서 바람직한 법의 제정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제시문에 비추어 생각해보면, 논술문의 주제를 국민들의 저항을 받지 않는 법 제정을 위한 노력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법을 제정할 때는 그것이 다수의 행복이나 질서 유지에 필요한 것인가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논지를 펼치되 지나치게 피상적인 내용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먼저 서론은 법의 제정과 그에 관한 국민의 저항에 관해서 언급하며 글을 시작하면 자연스럽다. 올바른 사회 질서와 정의를 위해 법은 필요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에 반한다고 생각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법을 준수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음을 밝히는 내용 정도가 적당하다. 본론의 첫 번째 단락에서는 주어진 제시문에 나타난 오기와 상앙의 법 제정이 실패한 원인을 들면 좋다. 그 둘이 제정했던 법은 모두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옳았다고 할 수 있으나, 지나치게 특정한 계층에 불리한 법을 제정하거나, 일반 백성들에게 너무 가혹하게 제정했기에 백성들의 저항을 받았다는 내용을 제시문의 요약과 분석으로 얻어낼 수 있다. 이어서 본론의 두 번째 단락에서는 앞서 제시한 실패의 원인을 근거로 법을 제정하는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주면 된다. 국민 전체의 이익에 반하거나 필요 없는 법은 제정해선 안 되며, 법이 비록 몇몇 특권층에 불리하게 제정되어 저항을 받더라도 이의 시행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논지를 펼치면 좋다. 법을 제정할 때에는 법의 본래 취지를 살려 어느 단체의 이익이나 저항에 급급해하지 말고 국민 전체의 이익에 합당하는가를 염두에 두고 제정해야 함을 제시해주면 좋다. 본론의 마지막 단락에서는 다수의 행복과 질서 유지를 위한 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하면 자연스럽게 본론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 법을 제정할 때 따져 보아야 할 것들, 즉 그것이 다수의 행복이나 질서 유지에 필요한 것이지, 운용할 때에는 현실에 맞는지 등에 대한 사항을 언급하면 더 좋은 논술문이 될 수 있다.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는 법 제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국민적 감시 기능을 강조하면 나름대로 훌륭한 논술문을 작성할 수 있다. 특히 이 부분은 피상적인 내용에 그치기 쉬우므로 공청회나 시민 법률 감시단과 같은 제도적 장치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면 더욱 훌륭한 논술문이 될 것이다. 이석록 서울 메가스터디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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