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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아있는 인형/게이비 우드 지음

    인간은 일찍이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인형을 만들어 왔다.고대 조각상 ‘빌렌도르프의 비너스’가 다산을 기원한 것이었다면,기형적 체형의 바비 인형은 완벽한 외모를 추구하려는 현대 여성의 이상을 반영한다.인형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 안에 끊임없이 생명을 불어 넣으려 했다.합리적 인간관을 주장한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조차도 어린 나이에 죽은 자신의 딸과 똑같이 생긴 ‘살아있는 인형’을 만들어 그것을 자신의 딸로 여겼다.데카르트는 다섯 살에 죽은 딸 프랑신을 잊지 못해 시계태엽과 금속 조각으로 딸의 안드로이드(인간 모양의 로봇)를 만들었다. ‘살아있는 인형’(게이비 우드 지음,김정주 옳김,이제이북스 펴냄)은 이같은 ‘살아있는’ 인형을 만들고자 했던 사람들의 욕망과 그들의 발명품에 관해 이야기한다.영국 ‘옵서버’지의 기자인 저자는 18세기 프랑스 발명가 자크 드 보캉송이 발명한 플루트를 연주하는 자동인형과 배설하는 기계오리,헝가리의 볼프강 폰 켐펠렌이 창조한 체스 두는 자동인형,에디슨이 축음기를 이용해 만든 ‘말하는 인형’등 인간을 닮은 인형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켐펠렌의 체스 두는 자동인형에서 비롯된 인공지능이란 개념은 영화로 그대로 이어졌다.‘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블레이드 러너’‘로보캅’‘웨스트 월드’‘터미네이터’‘AI’ 등은 모두 살아있는 인형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반영한 작품이다.인간은 과연 자신과 똑같은 인형을 창조할 수 있을까.답은 부정적이다.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이자 인간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감정’을 인공적으로 불어넣을 순 없기 때문이다.미국 MIT 연구팀이 만든 인간형 로봇 ‘키스멧’은 감정을 표현할 순 있지만 감정을 경험하진 못한다. MIT나 일본 와세다대학의 다카니시 로봇연구소 등 많은 인공지능 연구소들은 다종다양한 로봇을 만들어내고 있다.그런 로봇이 인간의 영역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그러나 안드로이드를 다룬 많은 영화들이 보여주듯,인간형 로봇과 함께 사는 우리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로봇은 늘 불안한 매혹의 대상이다.이 책은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끊임없이 묻는다.1만5000원. 김종면기자˝
  • [오픈코리아-소통하는사회를만들자](3부)개방압력 파도 슬기롭게 극복을(상)”

    올해 우리나라의 농업과 농촌이 중대한 기로에 섰다.쌀을 포함한 농산물이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때보다 더 큰 폭의 시장개방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10년의 농정실패를 교훈삼아 향후 10년의 농정방향을 정해야 할 시점이다.농림부장관을 지낸 김성훈(金成勳·65)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대표를 권혁찬 경제부장이 만나 개방파고를 헤쳐 나갈 ‘지혜’를 들어봤다. 최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국회비준을 받았습니다만,난항이 컸습니다.보고 느끼신 점이라면. -한·칠레 FTA는 태어나서는 안 될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그러니 진통과 갈등이 클 수밖에 없었지요.일찍이 YS(김영삼)정권 때 계륵(鷄肋)이라며 칠레와의 FTA를 폐기했었습니다.그러다 단순히 칠레가 지구 남반구에 있어 우리 농업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판단으로 추진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칠레가 차지하는 비중은 0.2%에 불과하지만 돌(Dole) 등 다국적 기업이 대형 농장을 좌지우지하는 과일수출 강국입니다.그런데 양국 전문가들의 공동연구도 생략된 채 통상교섭본부에서 강하게 밀어붙인 것입니다. FTA는 지리적으로 가깝거나 무역에서 상호 보완적인 나라끼리 맺는 것이 관례입니다. 이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합니다.우리나라는 대폭적인 관세감축 또는 ‘영세화(零稅化)’가 목적인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어젠다(DDA) 농업협상을 앞둔 시점에서 1000여개 품목에 대해 무관세를 약속했기 때문에 DDA 협상에서도 똑같이 약속해야 합니다.잘못된 파트너를 선택한 정책의 실패라 할 수 있습니다. 농업시장 개방이 대세 아닙니까. -93년 UR 타결과 95년 WTO 가입으로 우리나라 농업시장은 이미 개방됐습니다.DDA 협상에선 정부보조금과 관세를 완전히 철폐하느냐 또는 대폭 삭감하느냐 여부가 당면과제입니다.우리나라가 나라별 식량사정과 농업기반 조건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일괄적인 철폐에 합의하면 농지가격이 중국 등에 비해 10배 이상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도저히 농업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지난해 기준 26.9%에 불과합니다.또 논농사는 단순히 10조원이 조금 넘는 상품(쌀)의 생산에 그치지 않습니다.홍수방지,지하수 함양,청정산소 공급,국토의 균형발전,경관 유지,전통문화 보전,식량안보 등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공익적 기능(NTC)이 있습니다.이를 일부만 돈으로 환산해도 23조원이 넘는 혜택을 국민에게 무상 제공하고 있는 셈입니다.우리 국민이 즐겨먹는 중·단립종 자포니카 쌀은 생산지가 미국 캘리포니아와 중국 동북3성,호주 등 일부 국가에 불과합니다.이들의 수출여력은 우리 국민 쌀 수요의 4분의1도 안됩니다.우리의 쌀 산업이 한꺼번에 무너지면 아무리 비싼 값을 주어도 절대 수요량 확보가 어렵습니다. 쌀 재협상에서 관세화 또는 관세화 유예에 대해 논란이 있습니다만. -올해 쌀 재협상에선 현재 4%인 MMA(최소시장개방) 물량을 몇%로 더 늘려주느냐의 ‘관세화 유예’논의만 있을 뿐 별 대안은 없습니다.일본 등이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는 관세화를 선택했으나 우리와는 처지가 다릅니다.일본은 UR 협상때 미리 값싼 수입쌀을 조금 수입하는 발빠른 조치를 통해 99년 관세화로 돌아설 때 1300%의 고(高)관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었습니다.2000년 타이완도 660%의 높은 관세벽을 인정받아 자국 쌀을 보호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우리 정부는 그렇게 대처하지 못해 이제 340% 수준을 유지하기도 어렵게 됐습니다.따라서 관세화 유예의 조건을 얼마나 유리하게 얻어낼지에 협상전략을 집중해야 합니다.일본의 특례(1300% 관세 인정)에서 보듯 관세화 유예협상에서 미국의 의사결정 시스템을 꿰뚫어 미국 쌀 업계에 로비를 하고,해당 의원들을 우군으로 확보하는 초동 전략이 중요합니다.중국이라는 새 변수에 대해서도 중국식 ‘콴시(關係)’를 근거로 ‘주고받기식’ 전략이 필요합니다. UR 이후 농정의 잘못된 점은. -98년 농림부장관으로 취임했을 때 농촌경제는 일반기업의 사업장 폐쇄나 은행의 대량실직 사태와 비교해도 그 이상의 참상이었습니다.부실기업과 은행은 150조원의 공적자금을 수혈받았지만 빚더미에 눌린 농촌은 방치됐습니다.62조원의 구조개선 및 농특자금은 농가 자부담액 등을 제외하면 40조원도 채 안되는데,그 대부분이 융자형태여서 고스란히 부채로 남았습니다.농가부채는 정책실패의 결과였습니다.아쉬운 점은 공적자금 투입을 농가부채에 적용하지 못한 것입니다.재정사정도 어려웠지만 농업대책이 우선 순위에서 밀려 있었던 것입니다.부채소각(탕감)에 대해 ‘도덕적 해이’라는 여론몰이 탓도 있었습니다.문제는 또 있습니다.농산물 관련 국제통상협상을 외교채널에서 총괄함으로써 농림부의 과장(부이사관급)이 중국과의 마늘협상,한·칠레 FTA 등에서 교섭팀의 말석을 겨우 차지하고 있습니다.비전문기관의 일방적인 교섭논리에 떠밀려 다닐 수밖에 없지요.수세적 통상외교에서는 품목별로 전문성을 띤 개별 정부부처에 교섭권을 분산시켜 대응해야 합니다. 농업·농촌을 실질적으로 살릴 수 있는 방안으로 무엇이 있을까요. -첫째로 농업경쟁력 증대를 가격과 비용,규모화 측면에서만 접근하면 십중팔구 실패하게 된다는 점입니다.쌀은 생산비 중 44%가 땅값(토지용역비)입니다.이는 미국·중국의 10배가 넘고 호주에 비하면 20배가 넘는 금액입니다.캘리포니아 쌀의 생산비와 비교하면 우리 쌀이 3.9배쯤 생산비가 높지만 토지용역비를 뺀 생산비만 따지면 1.8배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땅값은 장기적으로 내리도록 유도하되 그 대가로 직불제와 가격보상,그리고 농업·농외 소득기회의 확대가 필요합니다. 둘째,범국가적으로 친환경유기농업을 대대적으로 육성·지원해야 합니다.환경 생태계를 살리고 국민건강을 지키며,우리 농축산물이 차별성을 갖는 길입니다.셋째,소득안전망을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보강해야 합니다.농촌의 교육,의료,보건,복지,정보화 정책을 범정부 차원에서 통합 지원해야 합니다.농촌을 살기 좋고 쾌적한 삶의 터전으로 가꿔야 합니다.선진국은 도시와 농촌의 인프라에 별 차이가 없도록 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넷째,농가부채 문제는 옥석을 구분해 정책실패에서 비롯된 부분은 부실기업과 마찬가지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혁명적 조치가 필요합니다.일찍이 다산 정약용 선생이 진언한 바와 같이 농사를 일반상업과 같이 수지가 맞도록 후하게 키워야(厚農)하고,공업처럼 편리하게 해야(便農) 하며,농민을 사회적으로 다양한 공익기능 수행의 대가로 존중받게(上農)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 농협개혁 문제가 논란인데요. -자주 불거지는 농협문제는 농정실패의 부산물입니다.농림부가 해야 할 일을 농협에 떠맡겨 생긴 일이지요.감시·감독 기능을 소홀히 해서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들입니다.농협개혁은 선출직인 지역농협 조합장이나 중앙회장에게 맡길 성질이 아닙니다.정부가 개혁을 주도해야 합니다.선출직은 악역을 맡지 못합니다.유통 중심의 품목별 조직을 육성하고 도·군지부 등 군더더기 중앙회 조직은 축소·폐지해야 합니다.지역농협에 책임운영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도시자본의 농촌 유치정책은 방향이 제대로 됐다고 보십니까. -모든 선진국은 예외없이 농지의 공익적 기능을 보전하고 있습니다.그에 따라 농민의 사적재산 사용권이 억제(가격하락)되는 대가로 정부는 과감한 소득보상 직접지불을 하고 있습니다.미국 농민은 소득의 45%,유럽연합(EU)은 60%가 정부 직접보상의 결과입니다.농지전용은 억제돼야 합니다.이미 대도시 근교의 농지 70%가 도시민에 의해 불법·편법으로 소유돼 투기대상이 돼 있는 마당에 더 많은 도시민의 투기를 불러들이면 천추의 한을 남길 것입니다.현행 농지제도(농업진흥지역)가 마치 경제활성화의 걸림돌인 것처럼 주장한다면 이는 고의적으로 농업포기를 강요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FTA 후속대책도 중요하지만 농가소득 창출에 장애가 되는 규제들을 과감히 풀어야 합니다.농민들이 된장,고추장,간장,순대,편육 등을 만들어 팔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왜 국세청이 조선총독부 시절부터 갖고 있던 주세법을 틀어쥐고 있습니까.주류에 붙는 세금이 비싸다 보니 알코올 40도짜리 민속주가 밸런타인 양주보다 비싸게 팔리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민속주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외국에서는 ‘홈 메이드’ 치즈나 잼이 제일 비쌉니다.우리는 식품위생법에 걸려 농민들이 된장·고추장을 만들어 팔 수 없습니다. 평소 정책 수혜자와 피해자의 형평성을 강조하셨는데.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회주의를 극복하고 보편적 제도로 정착한 데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J R 히크의 ‘보상의 원칙’과 존 롤스의 ‘최약자 보호원칙’이 경제·사회 정책의 기조를 이루어 왔기 때문입니다. 어떤 한 정책에서 수혜자와 피해자가 함께 발생하면 정부가 나서 그 혜택을 고루 공유할 수 있도록 형평성과 보상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우리 사회에는 승자에 대한 찬사와 대책은 있어도 패자와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합니다. 국토대청소 운동을 제안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얼마 전 대통령이 주재하는 ‘일자리 창출’ 경제지도자회의에 경실련 대표로 참석했습니다.그 자리에서 단기대책에 더해 후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범국가적인 공공사업을 제안했습니다.1930년대 미국의 테네시강유역개발공사(TVA) 등을 예로 들었습니다.쓰레기로 썩어가는 바다와 하천,저수지 등을 대청소하는 공공근로사업을 전개해 일자리도 만들고 깨끗한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주자는 뜻입니다. 정리 김경운기자 kkwoon@˝
  • [모래 파동] 바닷모래 채취 영향

    해안선 유실의 가장 큰 원인은 바닷모래 채취다.바다 속에는 바다산으로 일컫는 사퇴(砂堆)가 있고,해안가에는 모래언덕인 사구(砂丘)가 있다.바닷모래는 주로 사퇴 위에서 채취된다. 사퇴와 사구는 해양 생태계의 보고.사퇴와 사구는 바람과 파도를 따라 모래를 서로 주고 받으며 자정작용을 한다.여름철에 태풍이 불면 사구의 모래가 해수면으로 이동한다.바다로 들어온 모래 속에는 유기물이 풍부하다. 사구는 빗물을 머금고 있어 각종 생물들의 생활 터전이 된다.충남 태안 신두리 사구에 멸종위기의 금개구리와 표범장지뱀,무자치,갯메꽃 등 다양한 생물이 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대규모 모래 채취로 사구와 사퇴가 사라져 해수욕장이 제기능을 잃고 어류 산란장이 파괴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바닷모래 채취로 전남의 한 해역(길이 80㎞ 폭 10㎞)은 평균 수심이 5∼35m에서 20∼50m로 깊어졌다.이 때문에 새우 등 먹이사슬이 파괴돼 병치·꽃게·농어·민어 등 어족자원이 고갈됐다.도내 827개 섬과 그 주변 해안선 1730㎞,해수욕장 78㎞도 침식됐다. 2001년 전남 신안·진도·해남군 앞바다에 나간 바닷모래 허가량은 1395만㎥이지만 실제로는 이 허가량의 10배 이상 채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1992년부터 10년간 신안군이 바닷모래 채취를 허가하고 받은 지방세는 166억원에 그친 반면 유·무형의 손실 가치는 수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잇따르고 있는 해일피해를 막으려면 사구가 제대로 관리돼야 하고 바닷모래 채취를 엄금,사구 형성에 도움을 주는 바닷속 사퇴를 보존해야 한다. 충남 보령시 고대도 앞바다에서 바닷모래 채취가 중단된 이후 주변 해수욕장에 모래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보고가 있다.반면 일본 히로시마(廣島)현은 1965년부터 바닷모래를 1억 5000만㎥를 반출하면서 먹이생물인 새우가 사라져 현 전체에서 어류의 43.2%가 줄어든 것으로 보고돼 생태계에 미치는 바닷모래의 가치를 일깨웠다. 목포 남기창기자 kcnam@˝
  • [길섶에서] 글쓰기란/김인철 논설위원

    “시를 지을 때 전연 고사를 인용하지 않고 음풍영월(吟風詠月)이나 하고,장기 두고 술 마시는 이야기를 가지고 운이나 맞추어 시라고 지어놓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서너 집밖에 안 되는 마을에 사는 선비의 시에 지나지 않는다.” 다산 정약용의 가르침은 현재진행형이다.그의 글은 20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타성에 젖어 원고지 빈칸이나 채우는 후학들의 게으름을 추상같이 꾸짖는다.그는 그러나 “고사를 인용한답시고 걸핏하면 중국의 고사를 인용하고 있으니 이 또한 품격이 떨어지는 일”이라고 못박으며 삼국사기나 고려사 국조보감 징비록 연려실기술 등 우리나라의 책을 읽고 활용하라고 충고한다. 다산은 나아가 전남 강진 유배지에서 큰 아들 학연에게 보낸 편지에서 글의 본령을 명쾌하게 정의한다.“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니요,시대를 아파하고 시속을 분개하는 것이 아니면 시가 아니며,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하고 미운 것을 밉다고 하고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는 것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이면 시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김인철 논설위원˝
  • [씨줄날줄] 비만 치수/이상일 논설위원

    “몸무게가 늘었는데도 같은 사이즈의 옷을 입는다.”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의류회사들이 옷사이즈를 왜곡한 사례를 지적한 바 있다.자신의 몸이 불었는데도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환상에 영합하려고 기업들이 같은 사이즈의 옷을 점점 더 크게 만든다는 것이다.허리가 굵어져도 34인치 옷을 계속 입을 수 있는 이유다.따라서 인터넷에서 사이즈만 보고 옷을 주문하다가는 낭패 보기 쉽다. 사이즈에 관한 교묘한 용어도 등장한다.여성의 경우 ‘작은(petite)’‘보통(regular)’과 달리 ‘미시(missy)’는 초대형을 뜻한다.미국에서 ‘제로(0)사이즈’는 뚱보 여성이 입는 옷이라던가.남성들의 양복 구분에서 ‘중간(medium)’이나 ‘초대형(extra large)’의 구체적인 수치를 알기는 어렵다.다만 남자들은 다소 큰 옷을 입어 살이 덜 찐 것으로 보이려는 경향이 있다. 확실히 비만을 풍만함과 넉넉함,건강과 다산 가능성으로 치켜세우던 때는 지났다.오스트리아 빈 의과대학원의 마틴 보라섹 교수 등은 남성이 선호하는 여성스타일도 변화했다고 말했다.플레이보이 잡지 모델만 해도 가슴이 큰 ‘마릴린 먼로’에서 마른 스타일의 슈퍼모델 ‘에바 헤르지고바’로 바뀌었다는 것이다.비만은 미련함이나 ‘값싼 음식을 소비하는 하층계급의 증거’에다 병(病)으로까지 비하되는 시대다.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이 최근 발표한 체형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50대 남녀 2명 중 1명이 비만이며 사무직 남성과,생산직 여성이 상대적으로 뚱뚱해진 것으로 나타났다.또 전체 평균 키는 1979년보다 3∼6㎝ 커졌지만 몸무게는 8∼11kg,허리둘레는 8∼11㎝ 늘었다.기술표준원이 1년전 발표한 20대 미혼여성의 표준 체형도 비슷한 양상이다.키 162㎝,가슴 82㎝,허리 66㎝,엉덩이 둘레 90㎝로 지난 1986년보다 키와 다리가 각각 7㎝와 8㎝가 길어진 반면 엉덩이와 허리는 굵어졌다.젊은 여성의 70%가 자신의 체형에 불만을 갖고 있으며 보다 마른 몸을 표준형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어디 젊은 여성뿐인가.그러니 운동과 마라톤 열풍이 불고 몸짱 아줌마까지 뜨는 것이리라.제대로 다이어트나 운동을 하면 괜찮다.의류회사들의 비만치수 사기에 놀아나거나 살 빼려고 가짜 약을 먹어 몸을 망치지나 말 일이다. 이상일 논설위원˝
  • 역사 속의 매춘부들/니키 로버츠 지음

    그리스 일곱 현인 가운데 한 명인 아테네의 입법가 솔론은 매춘을 영리 목적에 이용,최초로 공창제를 도입하고 그 수익으로 국가 재정을 충당한 인물이다.솔론의 여성관은 분명했다.여성은 아내 아니면 창녀였다.여성을 무력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에 기여한 것으로 말하면 장 자크 루소 또한 빠지지 않는다.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사상가 루소는 “남성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인 여성이 아이를 낳다 죽는 것은 영광”이라며 현모양처론을 펼쳤다.‘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이들도 각도를 달리 해 보면 전혀 다른 평가의 대상이다. ●`나쁜´ 창녀를 탄생시킨 건 위선적인 성도덕 ‘역사 속의 매춘부들’(니키 로버츠 지음,김지혜 옮김,책세상 펴냄)은 이런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성도덕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출발한다.영국의 소호에서 매춘부로 일한 경험이 있는 저자의 시각은 여러 면에서 전복적이다. 여성을 아내와 창녀로 나누는 것은 가부장제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일이다.기원전 2000년경 고대 수메르에서 아내와 창녀를 분리하는 법이 처음 생겼다.저자는 여성을 ‘착한’ 아내 대 ‘나쁜’ 창녀의 이분법으로 구분하게 된 데는 기독교의 위선적인 성도덕이 큰 구실을 했다고 주장한다.여성에게 현모양처를 강요하는 기독교의 금욕주의가 그 반대편에 ‘비정상적인’ 여인의 표상으로 매춘부를 만들어냄으로써 그들에게 불도장이 찍히게 했다는 것이다.구약의 선지자들은 매춘부를 고집 세고 도발적인 여성들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책은 매춘의 역사가 남성 중심의 기록임을 밝힌다.매춘의 기원을 고대문명의 ‘사원 매춘’에서 찾는 것은 저자 또한 기존의 역사가들과 다르지 않다.고대 가나안에선 종교적 매춘과 세속적 매춘이 모두 번성했다.고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원 가운데 하나로 이름 높았던 코린트의 아프로디테 사원은 1000명이 넘는 ‘신성한’ 창녀들을 거느렸다.히에로둘레라 불린 이들은 여신의 시녀로 간주된 매춘부 계급이었다. 저자가 여기서 문제 삼는 것은 그동안 여성 사제가 정치·경제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이 외면당해 왔다는 점이다.예컨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 왕이 매춘부를 겸한 여성 사제와 신성한 혼인을 치른 것은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의례였음에도 단순히 ‘다산 의식’으로 치부돼 왔다는 것이다. ●도시의 매춘은 왕궁의 시궁창과 같다 매춘 혹은 매춘부에 대한 이중적인 기준은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중세의 교회는 매춘을 금지하면서도 ‘필요악’으로 규정해 제한적으로 허용했다.중세 유럽의 스콜라 철학을 대표하는 이탈리아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회의 이런 태도를 다음과 같은 비유로 정당화했다.“도시의 매춘은 왕궁의 시궁창과 같다.시궁창을 없애버리면 궁에서는 더럽고 역겨운 냄새가 날 것이다.” 수많은 왕과 주교들은 성도덕이란 잣대를 매춘에 들이대는 한편 자신의 쾌락을 위해선 매춘부들을 궁 안으로 데려왔다. 19세기에 들어서는 매춘부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과학적으로’ 정당화되기도 했다.범죄인류학을 창시한 이탈리아의 법의학자 체사레 롬브로소는 매춘부들의 신체적 특징을 조사한 뒤 그들은 모두 좁은 이마와 비정상적인 코뼈,그리고 거대한 턱을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나아가 과학자들은 창녀가 고통에 둔감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창녀의 몸에 전기충격 실험을 하기도 했다.그러나 그들이 확인한 것은 매춘부들 역시 다른 여성과 마찬가지로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직업 전선에 나선 평범한 여성이라는 사실이다. ●매춘, 정당한 산업으로 인정해야 저자에 따르면 매춘부들은 사회의 통념과는 달리 자발적으로 매춘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그들은 성적 억압이 일상화된 가정을 떠나 자신의 성적 자율성을 되찾기 위해,혹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에 몸을 팔았다.그와 같은 맥락에서 매춘은 정당한 산업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자발적인 매춘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매춘에 도덕적 굴레를 씌워 게토로 몰아내는 것이야말로 남성과 여성 사이의 불평등한 지배구조를 영속화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2만 5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씨줄날줄] 셋째 아이

    열한 명의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병들고 지쳐 천수도 누리지 못하고 꺼져간 여인의 삶.‘산아제한운동’의 선구자 마거릿 생어의 신념은 이런 어머니의 가련한 임종을 지켜보며 비롯되었다.20세기 초부터 여성들에게 피임법을 보급하기 시작한 생어는 ‘풍속교란방지법’으로 기소되기도 하고 인구가 줄면 나치에 대항할 군인숫자가 줄어든다는 이유로 테러 위협을 받기도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을 권리를 쟁취하는 것만이 여성이 자기 몸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마침내 1952년 국제가족계획협회 초대 회장이 된 그녀는 1960년 산하 연구소를 통해 먹는 피임약을 개발함으로써 여성의 몸을 임신의 공포로부터 해방시켰다. 개발경제 시대 인구폭발의 우려 속에 전 세계로 번진 산아제한운동에서 한국이 최우등생으로 우뚝 선 것은 알려진 대로다.1960년대 초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기르자’에서 시작,1980년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한 자녀 갖기’운동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캠페인의 결과 이제는 인구 부족을걱정하게 된 것이다.2002년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아기는 49만 2000명,사상 최초로 5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가임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수(출산율)는 세계 최저 수준인 1.17명으로 이대로 가다간 국가 존립이 위태로울 지경이란 걱정이다.아이울음소리를 듣기 어렵다는 농촌 등 지자체는 다산왕 뽑기대회,출산수당 지급 등 갖가지 출산장려 정책수립이 한창이다.마침내 최고 인구를 자랑하는 서울시까지 이에 가세했다.셋째 아이 이상을 보육시설에 맡길 경우 보육비 전액을 지원해 주기로 한 것이다. 보육비 지원은 1회성 출산장려금보다는 훨씬 큰 효과를 낼 것이 분명하다.그러나 이런 지원 정책들만으로 출산율을 눈에 띄게 높일 수 있을까. 오늘날 출산 장려정책이 다분히 경제적 요청에서 비롯된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문제를 푸는 방법도 단순히 경제적이어야 할까.서울시의 ‘셋째 아이’정책을 보면서 생어를 떠올리는 이유이다.생어의 산아제한 운동은 여성을 ‘출산기계’쯤으로 보던 시대,여성의 인권 의식에서 시작되었다.이 시대에 다시 펴는 출산 관련정책이라면 생어의 시대보다 훨씬 총체적 접근이어야 하지 않을까.단순한 경제 지원책보다 정치,사회,교육 등 포괄적이고 실효성 있는,여성정책으로서의 출산 장려 정책을 기대해 본다. 신연숙 논설위원
  • 주말매거진 We/훌쩍 떠나볼까-땅끝

    땅끝선착장(갈두항) 옆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에 올랐다.족히 1㎞는 될듯한 가파른 길.잘 정돈돼 있지만 쉼없이 올라가니 제법 숨이 차다.전망대 아래 계단 옆의 예쁘장한 화강암 조각에 새긴 고은 시인의 ‘땅끝’이란 시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땅끝에/왔습니다./살아온 날들도/함께 왔습니다./저녁/파도 소리에/동백꽃 집니다.’ 지난 한 해.가슴속 뭉쳐있던 응어리 풀어내 땅끝 앞바다에 모두 흘려보내고,희망의 새해를 맞자는 의미가 아닐까. 여명속 땅끝 앞바다는 회색빛이 돈다.멀리 흑일도와 백일도,그 뒤의 동화도,소화도가 어렴풋이 거무스름한 윤곽을 드러낸다.하늘이 서서히 붉어진다.그러나 일출의 장관을 고대하던 이들의 기대와 달리,홍시빛 해는 살짝 얼굴을 내밀기가 무섭게 하늘을 덮은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다.꼭 해가 거꾸로 지는 것 같다. 다음 행선지는 삼산면 두륜산 자락에 자리잡은 천년고찰 대흥사.고즈넉한 산사를 거닐며 새해의 희망을 구체화해보자.땅끝마을에서 승용차로 30분쯤 걸렸다. 대흥사는 백제 무령왕 14년 신라승려인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본래 대찰은 아니었으나 조선 선조때 서산대사의 가사와 발우를 받은 뒤 사세가 번창해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를 배출하며 선교 양종의 대도량으로 자리잡았다.당시 서산대사는 금강산에서 입적하면서 제자인 사명당에게 ‘재난이 미치지 않고 오래도록 더럽혀지지 않을 곳’이라며 해남 대흥사에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두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사찰 왼쪽 구역에 자리잡은 대웅전을 시작으로,지붕과 건물의 맵씨가 경쾌한 천불전,선조가 서산대사의 공을 기려 사액을 내린 표충사를 둘러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표충사 뒤편 굵직한 감나무에 진홍빛 홍시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나무 아래서 올려다보니 새파란 하늘 한가득 홍시가 박혀 있는 것 같다.새들이 겨우내 먹을 양식거리를 남겨놓은 모양이다.산사의 넉넉함이 느껴진다. 감나무에서 눈을 떼니 주장자를 어깨에 걸친 스님 좌상이 앞을 막는다.한국 차에 관한 명저 ‘동다송’(東茶頌)을 쓴 ‘한국의 다성(茶聖)’ 초의선사(1786∼1866)의 동상이다.선사는 대흥사에서 수행하며 한국차의 정신과 맛을 중흥시켰다. 바다가 가깝고 안개가 자주끼는 대흥사 주변은 좋은 차가 자라기 알맞은 기후 환경을 갖춘 덕택에 다성(茶聖)까지 배출한 한국차의 성지가 됐다. 이곳에서 차 이야기를 하자면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이 빠질 수 없다.선생이 ‘다산’이란 호를 얻은 것도 해남 바로 옆 동네인 강진땅에서 보낸 귀양살이를 할 때다.그는 도암면 만덕리에 다산초당을 지어 기거하며 만덕산 아래 백련사의 혜장 스님(1772∼1881)에게 차를 배우고 호도 받았다.초당에서 다산은 추사 김정희,초의선사와 교우하며 수많은 명저를 남겼다. 강진군 도암면의 다산초당은 대흥사에서 30분쯤 걸렸다.다산유물관 앞 주차장에서 산 중턱에 자리한 초당까지는 800m 정도. 동백나무와 소나무,낙엽송이 빽빽하게 들어선 길을 15분쯤 걸어 올라가니 단아하고 소박한 초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산은 18년간 이곳에 머물면서 목민심서,흠흠신서,경세유표 등 500여권의 저서를 집필했다.초당 왼쪽으로는 제자들의 거처인 서암(西庵)이,오른쪽으로는 다산이 첫 거처로 초막을 짓고 집필에 열중했던 동암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몇걸음을 옮겨 산등성이에 서니 강진만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가족이 그리울 때면 다산이 찾던 곳으로,지금은 강진군이 천일각이란 정자를 세워놓았다. 천일각과 동암 사이 오솔길 입구에 ‘백련사 800m’란 작은 표지판이 하나 서 있다.다산 선생과 혜장 스님이 교우를 위해 수시로 오가던 길.부지런히 걸으니 10여분 만에 백련사에 닿는다. 대흥사와 달리 자그마한 산사다.제법 큰 불사가 진행되고 있는 듯,여기저기 펼쳐진 공사 때문에 어수선하다.절 아래와 좌우로 동백숲이 울창하다. 백련사 동백숲은 고창 선운사 못지 않은 동백 명소.지난 며칠간 강추위가 이어진 탓인지 동백꽃이 드문드문 피어 있다.백년사는 신라 말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절 아래 강진만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선다원’(禪茶苑)이란 찻집이 자리잡고 있다. 작설차나 솔잎차도 내고,다기(茶器)도 판매한다.따사로운 햇살이 유리를 통해 실내로 가득 퍼진다.차탁(茶卓) 앞 방석 위에 정좌하고 앉아 솔잎차를 시켰다. 차와 함께 생감과 떡·강정을 내오는데,출출한 나들이객에게 간식으로 그만이다.찻값은 3000원.은은한 정취의 산사 찻집에서 향긋한 솔향을 마시며 멀리 강진만을 내려본다.새해를 맞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해남·강진 글·사진 임창용기자 sdragon@ 어떻게 가나요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목포IC에서 빠져 2번 국도,13번 국도,813번 지방도를 차례로 갈아타면 해남 땅끝마을에 닿는다.서울서 승용차로 6시간 정도 걸린다.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나주IC에서 빠져 13번 국도를 타고 영암을 지나 2번,18번 국도,813번 지방도를 차례로 타야 한다. 승용차를 몰고가지 않으면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해남시외버스터미널(061-534-0881)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간 뒤,일반버스를 타고 땅끝마을이나 대흥사로 가면 된다. 광주에서 땅끝까지 운행되는 버스도 수시로 있다.해남군 문화관광과(061-532-8942),강진군 문화관광과(061-433-4116). ●숙박 땅끝마을에 라메르관광모텔(061-534-8686),비치모텔(061-534-1033),땅끝민박(061-533-6389) 등 여관과 민박이 많다.대흥사 아래에도 기와집 형식의 전통여관인 유선여관(061-534-6005),두륜각(061-535-0080) 등 여관이 꽤 있다. ●달마산과 미황사 시간이 허락된다면 해남 남단의 달마산(489m) 및 그 아래 자리잡은 미황사에 가보자.달마산은 해남군 남단에 치우쳐 긴 암릉으로 솟은 산. 백두산에서 시작된 백두대간은 설악,태백을 지나 두륜산,대둔산을 넘어 내려오다가 13번 국도가 지나는 닭골재에 이르러 잠시 주춤한 뒤 급격한 암릉으로 변화하는데,바로 달마산이다. 이 암릉은 달마산 정상(불썬봉)을 거쳐 도솔봉을 지나 땅끝전망대가 서 있는 갈두산에서 그 기세를 갈무리한다. 병풍처럼 두른 달마산 암릉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사찰이 미황사다.신라 경덕왕 8년(749년) 인도에서 경전과 불상을 실은 돌배가 사자포구(지금의 갈두항)에 닿자 의존 스님이 향도 100명과 함께 그것을 소의 등에 싣고 가다가 소가 지쳐 멈춘 곳에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반도 가장 남쪽에 자리잡은 절로,이 때문에 불교의 남방 유입설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절 마당에 서면 고색창연한 절집 뒤로 송곳같은 암릉이 병풍처럼 둘러친 풍광이 볼 만하다.미황사~불썬봉 왕복코스가 가장 짧은 코스로 2시간 30분쯤 걸린다. ●해남·강진 맛기행 패키지 해남 땅끝마을∼대흥사∼강진 다산초당∼백련사∼영랑생가∼완도 코스로 짜여진 코스로,해남 용굴해물탕,강진 명동식당의 한정식,완도 산호정의 해물 한정식,목포 호산회관의 갈낙탕 등을 맛볼 수 있다.특급호텔인 목포관광호텔 및 완도 씨사이드호텔에서 묵는 2박3일 코스가 29만원.옛돌여행 (02)-2266-0220. ●꼭 맛보세요 강진은 한정식,해남은 해물탕이 유명하다.우선 강진군 군동면 호계리 강진공설운동장 앞의 ‘청자골 종가집’(061-433-1100)은 품위와 맛을 함께 갖춘 명가로 인정받는 집. 돼지고기 편육,데친 꼬막,더덕 양념구이,붕어찜,전어회,산낙지,참숭어알,홍어찜 등 온갖 요리와,손수 담가 지하 저온 창고에 보관한다는 돈배,토하 등 각종 젓갈,2년 정도 숙성시킨다는 묵은 김치 등이 더해진다. 광주에서 전통한옥 한 채를 고스란히 옮겨와 4년간 지었다는 식당은 특히 맛과 함께 옛 사대부의 풍류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잘 어울린다.4인상 기준 8만원,10만원,15만원짜리가 있다. 강진읍 남성리의 ‘해태식당’(061-434-2486)은 다양한 요리에다가 겨울철엔 메생이국이 별미로 나와 손님을 끈다.강렬한 맛은 최대한 없애고 담백한 고유의 맛을 내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이밖에 강진읍 터미널 옆의 ‘명동식당’(061-434-2147),강진읍 남성리의 ‘흥진식당’(434-3031)이 음식 잘하기로 꼽히는 집이다. 음식은 1인 기준으로 1만 5000∼3만원.음식 가짓수가 많아 1인,2인상은 차리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므로 미리 확인해 보아야 한다. 해남읍 수협 인근의 ‘용궁해물탕’(061-536-2860)은 이미 명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곳. 서울과 부산에도 분점이 생겼지만 역시 해남 원조의 맛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이들이 많다.주인 황점이씨는 손수 새벽 2시에 일어나 목포,완도 등 스무군데가 넘는 수산 시장을 누비며 신선한 재료를 구입한다. 무와 멸치를 2시간쯤 푹 고아낸 육수에 꽃게,새우,낙지,조개 등 10가지 이상의 해산물을 넣고 끓인다.해물에서 우러나는 시원한 맛을 살리기 위해 된장과 조미료는 절대 넣지 않는다고. 냄비별로 3만원(2인분),4만원(3∼4인분),5만원(5∼6인분)짜리가 있다.
  • 주말매거진 We/‘세찬’ 맛있게 먹고 복 많이 받으세요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모든 사람의 소망이리라.새해를 맞이하는 신년 음식은 행복을 기원하고 힘겨움과 고난을 훌훌 털어낼 수 있는 마음의 치료약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일까? 신년을 맞는 각국의 음식들도 한해의 시작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정성이 묻어난 음식들이 눈에 띈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은 우리의 설날격.신년 아침에 먹는 생선은 ‘위(魚)’라 부르는데 더 부유한 생활을 소망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고 ‘녠가오'(설떡)나 ‘탕위안'(찹쌀떡)을 즐기며 건강과 복을 기원한다.일본의 신년 음식인 ‘오세치’는 풍요와 다산 그리고 길조를 기원하는 음식이다.일본식 떡국인 ‘오조니'는 액운을 털어내면서 새해의 희망을 담는다는 뜻으로 먹는다. 이탈리아의 경우 새해의 소망을 기원하는 의미의 ‘잠포네’(돼지족 요리) 요리가 대표적이고,태국의 ‘카텅파으’는 남자들이 한 해의 농사를 무사히 이루어준 조상님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찹쌀떡과 닭요리를 만들어 바친다. 달콤하기 그지없는 디저트 ‘스위트'를 즐기는 인도인,날 생선에 여러 야채들을 섞어 만든 ‘위쌍'을 즐기는 싱가포르 사람들….국적·문화·종교가 달라도 자신이 믿는 신에게 한 해의 복과 소망을 기원하며 감사의 마음을 음식에 담는 것은 모두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설날 음식을 ‘세찬’이라고 하는데 간단히 즐길수 있는 떡국상부터 고기적,조과,각색 과일 등등 조상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어른께 세배도 하고,덕담도 들으면서 한해를 시작하는데 있어 필요한 마음가짐까지 추슬러보는 상차림인 것이다. 한 해의 평안을 기원하는 흰떡국은 순백의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 나가듯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마음과 열정으로 한해를 시작하라는 기원이 담겨져 있다.이렇듯 신년음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희망을 기원하는 첫 음식인 것이다. 2004년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든든한 맛의 창고가 세워지면 좋겠다.살기 위해 먹는 것이든,먹기 위해 사는 것이든,우리에게 삶의 활력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것은 바로 음식이다.자신이 소망하는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 주고고난과 역경속에 지쳐있는 당신에게 위안과 용기를 전해줄 수 있는 것 또한 음식이 될 수 있다. 새로운 한해,신년 음식에 내가 바라는 것은 그 음식을 함께 나누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 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나눌수록 좋고,많을수록 좋은 ‘덕담’을 나누며 한해의 복을 기원하며 말이다.“여러분,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정신우 푸드스타일리스트
  • 해병대도 이라크 파병

    ‘귀신 잡는 해병’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해병대와 육군의 정예 특공부대도 특수전사령부(특전사)와 함께 이라크에 파병돼 자체 경계 및 치안유지 활동을 맡을 전망이다.국방부 관계자는 4일 “이라크 현지에서의 원활한 경계 및 치안유지 업무를 위해 해병대와 특공부대 병력의 파견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우선 해병대는 한국군 사단사령부의 직할부대로 편성돼 사령부 경비를 맡는 한편 관할지역에서 테러공격과 같은 돌발상황이 생길 경우 기동타격대로 투입돼 초동 진압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전해졌다.규모는 1개 중대(100명∼130명) 정도가 될 전망이다. 해병대(청룡부대)는 1965년 10월 전투부대로는 최초로 베트남에 파병돼 6년 5개월간 168회 작전에 참가,대대급 소규모 전투만 15만번을 치르면서 적군 9619명을 사살했고,687명을 포로로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특히 6·25 당시 경남 통영상륙작전을 통해 인민군 600여명을 사살한 것을 두고 미 뉴욕타임스 기자가 ‘귀신 잡는 해병’이란 제목의 기사를 쓰면서 더 유명해졌다. 이후 2002년2월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한국군 다산·동의부대에 장병 26명을 배속시켜 경계임무를 맡도록 했는데,이번 파병이 이뤄지면 베트남전 참전 이후 최대 규모의 해병대 파병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육군 특공부대의 경우 군 사령부나 군단 특공연대 가운데 1개 대대급 규모(500여명)를 파병부대로 편성해 특전사와 함께 지역안전 확보와 자체경계 지원부대로 운용할 계획이다.1983년 북한군 특수부대의 후방 침투에 대비하기 위해 창설된 이 부대는 평소 소요진압 및 공수훈련,헬기 레펠,유격훈련 등을 통해 고도로 단련돼 지형과 기후에 관계없이 뛰어난 기동력을 갖고 전천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정예부대다.창설 후 21년간 해외파병 경험은 없다. 육군 관계자는 “파병부대 구성에는 부대원의 동질성과 유사성이 중요한 만큼 특전사와 특공부대는 여단급의 경계지원부대에 함께 편성되고,해병대는 사령부 직할대에 배속돼 자체경계를 맡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특전사는 당초보다 줄어든 1000여명으로 편성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가 2월 임시국회에서 국군부대의 이라크 추가파병 동의안을 처리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파병 일정이 자칫 4월 말을 넘길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동의안이 통과돼도 병력선발과 부대편성 7주,교육훈련 5주,현지이동 4주 등 파병까지 4개월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
  • ‘다산학술상’ 대상에 김상홍 교수

    다산 정약용 선생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고,다산학 연구자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다산학술상’의 학술대상 수상자로 김상홍(金相洪·사진·59) 단국대 한문교육학과 교수가 선정됐다. 2000년 제정된 다산학술문화재단(이사장 정해창)은 27일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 난초홀에서 제4회 다산학술상 시상식을 열고 김 교수에게 상을 준다. 재단측은 “김 교수가 다산 문학을 지속적으로 연구해 한국문학사에서 다산 문학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다산이 5000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라는 위당 정인보 선생의 말씀에 따라 지난 30년 동안 다산학에 매달렸는데 상까지 받게 돼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박지연기자
  • 美 쇠고기 수입금지/맥도널드 주가 급락 美축산업계 “확산 막아라” 비상

    미 농무부와 쇠고기산업 종사자들은 이번 광우병 파동이 80년·90년대 유럽을 강타한 경우처럼 확산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또 지난 5월 캐나다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뒤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이 중단되고 고기를 중심으로 한 식이요법으로 확장일로에 있던 쇠고기 산업의 성장세가 멈추게 될 것이라고 아쉬워하고 있다. 이들은 일단 소비자들을 안심시키는 작업에 돌입했다.햄버거 체인인 맥도널드는 광우병 파동 직후 “문제의 고기생산업자와 맥도널드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발표했다.농무부 관계자들은 미국의 식품공급 체계는 안전하다고 강조하고 있다.광우병 소가 발견된 워싱턴주 메이플턴 인근 농장들은 격리작업에 들어갔다고 덧붙였다.미국축우조합도 쇠고기 수입국가들에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도는 매우 낮다며 수입을 중단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금융시장은 반대로 움직였다.광우병 뉴스가 발표된 23일(현지시간) 저녁 뉴욕증권거래소의 시간외거래에서 맥도널드 주가는 종가인 25달러 28센트에서 1달러 이상 떨어진 24달러 20센트에 거래됐다.또 시카고상업거래소에서 소의 주요 사료인 옥수수와 콩의 가격이 급락했다. 시장전문가들은 이번 광우병 파동으로 외식산업계는 주가 하락 외에도 급격한 판매감소도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비자들도 동요하고 있다.소비자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있는 소비자보고서를 매달 펴내는 소비자연합은 당국에 더 많은 소를 검사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전경하기자 lark3@
  • 국내 파장/조류독감 이어 ‘광우병 공포’

    조류독감 파동으로 닭과 오리고기 소비가 뚝 끊어진 가운데 소비자들은 쇠고기마저 마음대로 먹기 어려운 형편에 놓였다.특히 국내에서 수입하는 식용 쇠고기의 68.2%가 이번에 광우병 우려가 제기된 미국산이어서 관련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입쇠고기의 68%가 미국산 24일 농림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쇠고기 공급물량은 45만 7700t으로 이 가운데 69.4%(31만 2000t)가 수입산이다.여기에 햄 등과 같은 외국산육류의 가공식품까지 합치면 우리나라 소비자는 육류의 절대 소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올들어 11월 말까지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는 22만 9785t으로 금액으로는 8억 1439만달러어치가 수입됐다.이밖에 호주산이 7만 2324t(1억 8053만달러),뉴질랜드산이 2만 6713t(6559만달러)이다.지난 2001년 광우병이 발생,한때 수입이 금지됐던 캐나다산도 8003t(2049만달러)이 들어왔다.정부는 광우병,구제역 등 치명적인 가축질병 파동을 피하기 위해 수입선 다변화 노력을 기울였으나 국내의 육류소비가 해마다 5% 이상증가하면서 아직까지 미국산에 절대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쇠고기 수입액 규모에서 우리나라는 이탈리아,미국,러시아에 이어 세계 4위 수입국이다. ●관련업계 불똥 이날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발견 사실이 전해지면서 대형 할인점 등 유통업체는 즉각적으로 매장 재배치에 착수했다.쇠고기뿐만 아니라 그동안 판매장 재배치를 미루던 닭고기와 오리고기에 대해서도 판매장을 축소 또는 폐쇄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마트는 이날 오후부터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주문을 전면 중단하고 한우와 호주산 쇠고기의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또 전체 수입 쇠고기 판매량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매장 판매를 중단했다.홈플러스도 미국산 쇠고기의 주문을 중단하고,매장에서 전량 철수시키는 대신 한우와 돼지고기 판매전략을 대대적으로 펴기로 했다.롯데마트는 25일 일주일 판매분량의 호주산 쇠고기 40t을 긴급투입하기로 하고 호주 현지에서 추진중인 자체 소사육 농장 마련에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외식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TGI프라이데이스는 스테이크 등 쇠고기를 넣은 메뉴에 미국산 쇠고기 대신에 호주산 쇠고기를 사용키로 했다고 밝혔다.베니건스 등은 판매점 밖에 호주산 쇠고기만 사용한다는 점을 홍보하기로 했으며,맥도널드측은 “처음부터 호주산 쇠고기와 태국산 닭고기를 공급받고 있어 안전하다.”고 홍보했다. 미국에서 광우병 파동이 예상 밖으로 장기화되면 국내 피혁시장도 위협을 받게 된다.피혁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세계 피혁시장이 미국산 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만큼 미국 현지에서 자국산 가죽의 판매를 중단한다면 한 해 수출액이 13억달러에 달하는 국내 가죽제품 생산에 상당한 차질이 우려된다.”고 말했다.아울러 소의 골분 및 추출물이 원료로 들어가는 수입화장품과 의약품,식품 첨가물과 가공식품 등도 된서리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김경운기자 kkwoon@
  • 책/역사인물 초상화 대사전

    초상화를 두고 우리나라 옛 사람들은 “털끝 하나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一毫不似便是他人).”라며 극도의 사실성을 드러내려 했다.한편으로는 정확하게만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주인공이 품었던 뜻을 드러내는 사의(寫意)와 정신세계를 느끼게 하는 전신(傳神)을 강조하기도 했다. ‘역사인물초상화대사전’(현암사 펴냄)은 이런 선인들의 초상화를 한데 모은 자료집이다.신라의 최치원과 고려의 정몽주,조선의 태조 이성계에서 한말 이용익에 이르는 역사인물의 초상 269점을 담았다.맹인재 문화재위원과 유희경 복식문화연구원장,김미자 서울여대 교수 등 전문가들의 해설도 실었다. ‘역사인물…’은 지난 1972년 탐구당에서 나온 ‘한국명인초상대감(韓國名人肖像大鑑)의 증보판에 해당한다.대표집필자인 이강칠 전 군사박물관장은 1968년 일본에서 덴리(天理)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 ‘명인초상화첩’을 열람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는 여기에 실린 201점의 초상화 가운데 중복된 것과 제문이나 발문이 없는 것을 뺀 118점을 추렸다.소식이 알려지자추가수록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았고,이 과정에서 70여점의 국보급 초상화가 새로 발굴되어 실렸다. ‘역사인물…’은 탐구당 한정본 이후 발굴된 실학자 다산 정약용과 화가 최북의 초상화 등 60여점을 새로 반영했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지원군 장수 이여송의 초상화도 새로 수록했는데,우리나라에 귀화한 후손들의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역사인물…’은 그러나 복식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미술사의 관점에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방향이 다를 수 있겠다.10만원. 서동철기자 dcsuh@
  • 작가 정동주씨가 들려주는 작품방향/“응달에 가려진 역사의 진실 찾아낼 것”

    “러시아 작가 솔제니친은 그의 작품에 슬라브인의 고통만을 주로 담아냈습니다.소수민족의 아픔은 감춰져 있지요.러시아의 한인들,즉 ‘고려사람’들은 극도의 고통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러시아 사대주의’ 노선으로 함몰해 들어갔습니다.마치 일제시대 친일로 목숨을 이어간 사람들처럼…” 작가 정동주씨는 95년 러시아 한인들의 신산한 삶을 다룬 책 ‘카레이스키,또 하나의 민족사’를 펴내며 이렇게 쓸쓸한 심경을 토로한 적이 있다.1930년대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한 한인들의 운명이란 그야말로 시베리아 곳곳에 나뒹구는 자작나무 잎새 같은 것이었다. 작가는 서울신문에 연재할 ‘달빛의 역사,문화의 새벽’을 이야기하면서 10여년전 러시아 한인 취재 때의 심정을 들려줬다.글쓰기라면 두려움이 없을 법한 그이지만 이번 연재에 임하는 각오는 그만큼 비장하고 가슴이 설렌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의 대중적 독서풍토에서 두드러진 현상을 꼽는다면 아마 신화와 팬터지의 유행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특히 그리스 로마신화가 널리 읽히면서 어린 학생들도 창과 방패를 든 아테나 여신이나 강력무쌍한 영웅 헤라클레스 같은 신화 속 주인공들의 구체적인 형상을 그릴 수 있을 정도이지요.하지만 그 태곳적 서양의 신화가 ‘지금,여기’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달빛에 물들어가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눈을 떠야 합니다.” 예컨대 운주사 천불천탑의 의미를 새겨보기보다는 그리스 파르테논의 폐허에서 낭만을 찾으려는 태도가 앞선다면 그것이 문화사대주의요 정신적 식민주의가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그가 앞 뒤 꽉 막힌 문화적 국수주의자의 기미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우리 것,옛 것에 대한 맹목적인 향수야말로 곧 잊혀질 추억에 불과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는 따뜻한 체온과 숨결이 남아 있는 숨겨진 역사의 현장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정사(正史)에서 부정하는 혹은 아예 치지도외하는 것이지만 시공간을 뛰어넘어 한국인들에게 영향을 끼쳐온 유산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역사적 진실’이 아닐까요.진실은 발굴돼야 합니다.” 그는 때로는 야사(野史)가정사보다 진솔함을 믿는 편이다.우리는 흔히 야사를 풍속이나 전설,유언비어 쯤으로 여기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 않다.정사의 결함을 보완하고 오류를 시정해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정사보다 당대의 시대상을 더 잘 반영하기도 한다.정사의 눈가림 탓에 흔적도 없이 사장돼 버린 역사의 순간들을 작가는 진실에 육박하는 힘찬 글로 퍼올린다.그러면 고증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나는 학문적 엄정성을 생명으로 하는 학자가 아닙니다.하지만 혹시라도 고증 노력을 소홀히 해 실감의 부피를 줄이는 그런 어리석음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입니다.낭만적 거짓이 역사의 진실을 가릴 수는 없으니까요.나름의 ‘비장의 자료’들이 축적돼 있습니다.‘달빛의 역사,문화의 새벽’을 통해 보다 많은 독자들이 역사적 상상력의 지평을 넓히고 사유의 깊이를 더했으면 합니다.” ●‘인간해방'에 관심… 백정들 민권운동 조명 작가의 관심사라면 무엇보다 대하소설 ‘백정’‘민적’ 등의 작품을 통해 보여줬듯이 뿌리깊은 신분차별의 극복 문제다.역사의 바깥으로 쫓겨나 서성이거나 웅크리고 있다가 이내 잊혀져버리는 이름 없는 존재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은 사뭇 눈물겹다.댓가지로 만든 패랭이를 쓰고 짚신을 신은 채 초가에서 살며 짐승을 잡거나 버들고리를 만들어 팔던 사람들,비단옷을 입어서도 말을 타서도 디새집에 살아서도 안됐던 사람들,호적도 없고 아예 인구에서조차 제외됐던 사람들.이들이 다름아닌 백정이다.“백정은 우리 봉건역사의 최대 희생자입니다.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은 곧 민권운동이었고 근대적 사회변혁운동의 원천이었습니다.백정으로 상징되는 신분차별을 극복하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가치입니다.여성에 대한 성차별,지역차별,학력차별 등 인간에 의한 인간의 온갖 차별은 모두 선민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지요.” 작가는 이번 연재를 통해 1923년 일제하에서 일어난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인 진주 형평사운동을 다시 한번 조명할 작정이다.“형평사 창립을 주도한 진보적 백정 출신 장지필과 양반출신 강상호라는 두 인물이 벌인 진보와 보수의 이념대립은 한국 사회사상사의 흐름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습니다.한국 사회운동의 원류가 된 셈이지요.” 작가는 ‘백정문학’ 연구에 몰두하면서 역사의 응달에 가린 인물들의 공적을 찾아내는 가외의 소득도 올렸다.초기 기독교 선교사에서 거의 잊혀진 미국인 선교사 새뮤얼 무어 목사에 관한 자료를 접하게 된 것이 그 한 예다.“무어 목사에 의해 기독교에 입문한 백정 박성춘은 1898년 조선의 백정을 대표해 종로 만민공동회에 참석,감동적인 연설을 합니다.지금의 인사동인 개장수골의 한 교회에서 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인권해방운동을 주도한 것도 백정계급이지요. 순수한 기독교 정신이 이러한 운동의 씨앗이 됐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달빛의 역사,문화의 새벽’에서 새롭게 다뤄진다.물론 한국인권해방운동사라는 관점에서다. ‘달빛의 역사,문화의 새벽’의 알맹이를 빚어내는 또 하나의 질료는 불교다.작가의 불교적 사유의 도저함은 최근 출간한 ‘부처,통곡하다’라는 책을 통해서도 어렵잖게 확인할 수 있다.새벽 세시 반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산과 들판,바닷가에서 기도를 올리며 청정수행에 드는그는 불교신자라기보다는 차라리 불교생활실천자라고 하는 표현이 옳다.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는 훼손된 불상을 볼 때마다 내 가슴에서는 의혹의 불길이 솟습니다.조선왕조 오백년이 배불(排佛)의 시대요 억불(抑佛)의 시대였으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쉽게 생각한다면 역사에 정말 무책임한 일이지요.나는 작가적 상상력으로 글을 쓰는 소설가이지만 모든 현상을 실증적인 눈으로 읽으려고 노력하는 쪽입니다.” ‘달빛의 역사,문화의 새벽’에는 과연 어떤 불교 이야기가 담길까.“운주사 천불천탑의 비밀은 오묘한 문양에 있습니다.더이상 탑에 새겨진 문양의 의미를 풀지 못한 채 신비의 영역에 가둬둘 수는 없어요.” 작가는 지금 그 무늬의 숨겨진 뜻을 풀어내기 위해 천불천탑과 절절한 밀어를 나누고 있다.“천불천탑의 비밀이 드러날 ‘달빛의 역사,문화의 새벽’의 첫 편은 거대한 논쟁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우리 생활문화 뿌리 찾는데도 애정 듬뿍 작가는 자신의 주된 관심사인 ‘인간의 해방’ 문제 못지않게 우리 생활문화의 뿌리를찾는 일에도 애정의 눈길을 보낸다.대표적인 것이 한국의 ‘차살림',찻그릇의 미학 같은 주제다.“한국 차살림에는 정체성이 결여돼 있다.”고 말하는 작가는 일본에서 역수입돼 형식에만 신경을 쓰거나,중화주의에 짓눌려 스스로 중국 차에 종속돼 온 우리의 차문화를 무척이나 안타까워한다.“우리 차의 본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일본의 다도와 그 원류인 한국의 차살림을 비교해보는 것은 그런 점에서도 매우 긴요한 일이지요.” 그는 “차예절은 기교나 기술이 아닌 정신의 깊이에서 비롯된다.”는 견해도 덧붙였다.‘달빛의 역사,문화의 새벽’은 한국 차살림의 중흥조인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의 ‘동다송’,조선 전기 문신인 점필재 김종직이 함양 군수로 일할 때 차밭을 만들어 농민의 다세(茶稅) 부담을 덜어준 이야기 등을 다룬다. 국인의 혼과 한,그리고 정체성에 관한 작가의 관심은 넓고 깊다.그는 마당극 운동을 하다가 82년 ‘농투산이의 노래’라는 시집을 내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해 전국 순회공연까지 펼친 민족극 ‘진양살풀이’는 80년대 마당극운동의 이정표가 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그런가 하면 미술평론가로도 이름을 날렸다.특히 우리 민족색채인 오방색에 관한 연구는 유명하다.그래서인지 그가 좋아하는 화가는 강렬한 색채의 내고(乃古) 박생광이다. “박생광의 ‘동학 전봉준’이나 ‘무당’ 같은 작품에서는 왠지 민족의 자신감과 희망을 느끼게 됩니다.”“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으며,전통을 떠난 민족예술은 없다.”는 내고의 예술관과 그의 문학관은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우리 조상의 얼굴은 곧 인디언의 얼굴 작가는 요즘 새 연재물 집필을 앞두고 “한국의 ‘원주민’,즉 원래의 우리 얼굴을 되찾아야 한다.”는 말을 유난히 자주 한다.“고대 한국인들의 삶과 사고방식,습속은 인디언의 그것과 너무도 닮았다.”며 “인디언의 얼굴은 곧 우리 조상의 얼굴”이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자신의 장시 ‘순례자’에 문명비판시라는 평을 달아준 영문학자 김우창 교수를 인생의 멘토로 삼고 있다는 그는 일찍이 김 교수가 자신에게 ‘인디언학’을 공부해보도록권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작가가 쓰고자하는 ‘달빛의 역사,문화의 새벽’은 인디언에 관한 기록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매혹적일 수밖에 없다.주류에서 비껴난 ‘달빛의 역사’를 통해서만 우리는 작가가 강조하듯 ‘인간해방’이라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달빛의 역사,문화의 새벽’은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있는 에세이로 벌써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김종면기자 jmkim@
  • [나의 건강보감]조정래 작가

    어김없이 그는 두알의 가래를 쥐고 있었다.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앞 찻집 다솔에서 담소를 나눈 4시간 내내 그는 양 손을 번갈아가며 가래를 굴렸다.‘까락까락’거리는 맑은 가래 소리가 어쩌면 목어(木魚)가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같았고,또 어찌 들으면 훈풍에 실려와 졸음의 끝에 닿는 풍경소리와도 같았다.호두를 닮은 바로 이 두알의 가래에 그의 문학적 열정과 고통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한참 ‘아리랑’을 집필할 때,사단이 벌어졌다.일단 작심하면 좌고우면하는 법없이 외길로 내달아 끝을 보는 성미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글을 써나갔다.그러나 그게 문제였다.너무 무리하게 글쓰기에 매달리는 바람에 그만 오른팔 관절이 어긋나고 만 것.“처음엔 어깨 관절 부위가 아프더니 이내 어깨며 팔,손등까지 마비되는 거에요.글 쓸 일이 태산인데,큰일났다 싶더라구요.그래서 한의원을 찾아 침도 맞고 했지만 완치가 안돼요.그랬는데 한의사가 제게 이걸 권해요.‘설마…’하고 시작했는데,세상에 가래 주무르는 게 내 글쓰기의 구원이 될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그날 이후,그는 손에서 가래를 놓지 않는다.처음 손에 쥐어 7년쯤 주물렀던 가래 두알은 전북 김제의 ‘아리랑 문학관’에 전시돼 있고,지금 것은 연전 전남 장흥의 독자가 선물한 것이다. ●7년 주물렀던 ‘가래' 아리랑 문학관 전시 작가 조정래(61).문단에서는 그를 두고 ‘한국문학의 정신이자 지조’라고들 말한다.그만큼 외롭고 치열하게 그가 숨쉬는 시공(時空)을 싸워서 헤쳐왔으며,이렇게 일군 그의 문학이 도저(到底)하고 웅숭깊어 정치가,역사가도 이루지 못한 우람한 산 하나를 빚어 놓아서다.어두운 시대,금기의 빗장을 벗겨 낸 ‘태백산맥’이 그렇고 ‘아리랑’과 ‘한강’이 그렇다. 그러나 이런 성취가 거저 주어졌을까.지난 83년 ‘태백산맥’의 집필을 시작해 지난해 ‘한강’을 마무리할 때까지 22년동안 물경 5만장이 넘는 원고지를 오로지 육필로 빼곡하게 메웠다.오죽했으면 집필실을 ‘글감옥’이라고 불렀으며,당초 그가 맘먹은 글편을 마무리한 뒤에는 “이제야 20년 글감옥에서 출옥했다.”고 토로했을까.그만큼 글쓰기는심신을 갉아대는 버거운 중노동이었다.“태백산맥의 원고를 모두 쌓아놓고 사진을 찍을 때 자꾸만 눈물이 쏟아졌다.”는 그의 말은,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룬 성취감이기도 하겠거니와 영혼의 고독과 육체의 고통을 한꺼번에 이겨낸 한 인간의 눈물겨운 고백 아니겠는가. 그 스물 두해 동안 그는 상상을 절하는 갖가지 직업병과 싸워야 했다.글을 써내야 하는 오른 어깨가 통째로 마비되는 아픔이 가장 치명적이었지만 위궤양과 기침병,둔부의 종기도 그의 ‘장정(長征)’을 위협한 장애였다.이 가운데 위궤양은 지난 90년 취재여행중 중국에서 병증이 나타나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거치는 동안 줄곧 그를 괴롭혔다.“의사 말이 글 쓰는 동안에는 못고칠 병이랍디다.아니나 다를까 아리랑을 끝낼 때까지 다섯 번이나 도졌는데,나중에 담배 끊고,섭생을 잘해 이겨냈죠.” ●글쓰기 22년… 위궤양·기침병·종기 시달려 기침병도 그를 옭아맨 고통이었다.의사의 진단은 ‘누적된 과로’가 원인이었는데,기침 때문에 자리에 누울 수도 없었다.“지금도 기침에는공포감을 갖고 있어요.소설 연재는 시작됐는데,밤잠을 못이루는 고통을 생각해 보세요.두어달 소파에서 앉은 잠을 잤지요.지금 이만큼 나아진 것도 천행입니다.”게다가 둔부의 종기도 그의 발목을 거머쥐었다.“공중에 선반을 매달아 놓고 서서 글을 썼다는 다산의 고백이 이해가 됩디다.결국 하나가 말썽을 부렸는데,나중엔 하는 수 없어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 수술을 받았어요.”이처럼 왜곡된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일방 끊임없이 자신을 위해하려고 드는 병마와도 싸워야 했던 그의 건강이 가래 만으로 담보될 리가 없다.가래와 함께 그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는 맨손 체조로 참담한 병마를 떨칠 수 있었다.대하소설 ‘태백산맥’은 이런 산고를 겪으며 태어났다. 그를 얘기하자면 산도 빼놓을 수 없다.요즘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산을 오른다.주로 집이 있는 분당에서 출발해 너댓 시간 산을 타 남한산성의 정상에 오른다.아내 김초혜 시인과 함께 산을 타며 자분자분 세상일을 얘기하는 일은 즐거운 도락이다.때로는 집 근처 야트막한 야산을 타며 명상에 빠지기도 한다.이런 시간이 정신을 추스리는 충전의 짬이기도 하지만 산의 굴곡을 따라 오르내리는 일은 건강에도 그만이다.‘태백산맥’ 이래 지리산에 들면 혼령과 정담이라도 나눌 것같은 그가 아닌가.아니나 다를까 그는 산중에서도 지리산을 으뜸으로 쳤다.“지리산은 좋은 산이에요.살이 깊어 뼈가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깊고 따뜻하죠.산,특히 지리산에 드는 일은 인내가 필요합니다.천왕봉에서 노고단까지 4박5일은 걸어야 하는데 견딤을 투자하지 않으면 깊은 맛을 못느끼거든요.” ●매일 맨손체조·등산도 ‘병마 떨치기' 일조 역사(役事)를 치르는 동안 참혹한 심신의 피폐를 겪었지만 그는 지금 흔한 성인병조차 모르고 살 만큼 건강하다고 했다.그러나 정작 부러운 것은 그의 몸보다 정신이었다.“우리 민족의 정신건강이 걱정입니다.병폐야 많지만,영어 배우라며 자녀들 내모는 사람들 보면서 광태(狂態)를 느껴요.이거 문화적 식민을 자처하는 일입니다.민족의 얼인 나랏말 제쳐두고 그렇게 해서 좀 잘되면 뭐하고,좀 잘살면 뭐합니까.슬프기도 하고 위기감도 느껴요.” 노고가 끝나지 않았을까.다시 태어나도 ‘글예술’을 하겠노라는 그는 문신처럼 손끝에 밴 여적(餘滴)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대하소설은 못써요.지금 준비중인 연작소설은 사회주의 몰락의 저변을 파헤친 것인데,우선 실천문학 겨울호에 상당한 분량이 실릴 겁니다.”그래도 세상은 희망이다.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공평을 상징하는 여신 ‘아스트라이아’의 천칭으로 이 시대를 저울질하는 그가 있으므로. 심재억기자 jeshim@ ■‘가래' 건강법 호두처럼 생겼지만 씨알이 크고 굴곡이 깊은 과실이 가래다.그 가래를 주물러 병고를 덜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조정래 작가는 지금도 자는 시간 말고는 손에서 가래를 놓지 않는다.양손으로 가래를 굴리다가 때로는 뾰족한 가래 머리로 손바닥이나 발바닥의 경혈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는 “이걸로 내 어깨를 지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손바닥에 우리 몸 전체의 경락이 모여 있고,특히 손가락 끝의 감각기관은 뇌와 바로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우리가 향유하는 문명이라는 것도 기실은손이 이룬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했다. 여기에다 맨손 체조도 그의 일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하루 중 아침과 점심 후,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세번씩 한 동작을 두번 되풀이해 맨손체조를 하는데,하찮게 여겨 대충 하려고 들지 말고 정성을 쏟아 해보세요.시간이야 5분에 불과하지만 금세 더운 땀이 몸에 뱁니다.”그의 맨손체조는 예전 학교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필요한 몇몇 동작을 더한 것이다.“한창 태백산맥 집필할 때,어깻죽지에 통증이 왔어요.마치 등판이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깨지는 듯한 고통이었어요.두드리고 주물러도 안돼요.그때 맨손체조를 시작했는데,불과 열흘 만에 변화를 느꼈어요.”그렇게 어깨 통증을 이겨낸 뒤 하루도 체조를 거르지 않는다.외국 여행중 비라도 내릴 양이면 호텔 현관에서라도 체조를 했다. 까다롭지는 않지만 섭생에도 ‘조정래식’이 있다.야채,된장쌈밥과 매운탕과 구이 등 생선음식을 즐기며,밥은 작은 한 공기가 정량인 소식이다. 대신 육식은 일주일에 1번 정도 먹을 뿐이다.이 원칙을 20년이나 지켜왔다.‘태백산맥’을 집필할 때까지는 커피도 꽤 마셨지만 지금은 녹차가 그 자리를 대신해 하루에 12∼13잔씩 마신다.술도 두주불사였으나 역시 ‘태백산맥’ 집필에 들면서 주색잡기를 금기사항으로 규정,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부터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도원아이한의원 이정언 원장은 “손은 동맥과 정맥이 교차할 뿐 아니라 경혈이 많아 가래나 둥근 공을 자주 주무를 경우 혈행을 개선할 뿐 아니라 경혈을 자극해 운기(運氣)를 돕기 때문에 작가 등 팔을 많이 쓰는 직업인에게 맞는 운동법”이라고 조언했다. 심재억기자
  • 메트로 플러스 / 교통표지판 막는 가로수 정비

    중구(구청장 김동일)는 간판과 교통표지판 등을 가리는 가로수의 가지치기 작업을 실시한다.대상은 을지로·퇴계로·다산로,왕십리길 등 24개 노선의 가로수 11종 7400여그루다.내년 2월까지 을지로와 퇴계로 구간의 350여그루를 대상으로 가지치기를 끝낸 뒤 2005년까지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2260-1822.
  • 美 수입철강 관세 폐지/WP “EU등 보복관세 방지”

    |워싱턴 백문일특파원|미국이 지난해 3월 수입철강에 부과한 관세(세이프 가드)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일 보도했다.워싱턴포스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언제 발표할지는 분명치 않으나 이번 주 안에 발표될 가능성이 높다고 백악관 관계자와 행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밝혔다. 신문에 따르면 부시 대통령의 측근들은 유럽연합(EU)의 보복관세로 이어지는 무역전쟁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철강관세를 유지하면 EU는 플로리다산 오렌지 주스와 밀감류,모터사이클,농기계,섬유 등 22억달러어치의 미국산 수입품에 15일부터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부시 행정부는 EU를 만족시키는 선에서 부분적인 철강관세의 폐지를 검토했으나 기술적으로 가능할 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의 측근들은 내년 대선에서 펜실베이니아,웨스트 버지니아,오하이오 등 철강산업 지역에서의 유권자 상실을 신중히 고려했으나 관세를 유지하면 경제에 더 많은 고통과 혼란을 줄 것이라는 의견 일치가 부시 행정부 내부에서 이뤄졌다. 미 무역대표부(USTR)의 로버트 졸릭 대표는 “세이프가드는 이미 철강산업을 도왔으며 그들에게 기회를 줬다.”고 말해,경제팀은 철강관세 폐지를 부시 대통령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은 미 철강회사들에 관세를 한꺼번에 폐지하는 대신 단계적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건의하도록 요청했으나 부시 대통령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mip@
  • 茶 “마시는게 아니라 수행입니다”한국차 문화운동 펼쳐온 여연 스님

    “차(茶)의 기본은 겸손과 덕행입니다.그런데 요즘은 정신은 사라진 채 달이고 마시는 기술과 형식에만 치우쳐 안타깝습니다. 고려 도공의 혼이 담기지 않은 요즘 청자가 ‘현대 자기’일 뿐 고려청자가 될 수 없듯이 우리 고유의 온전한 가치와 정신을 담지 못한 차는 한낱 음료수일 따름입니다.” ●“때묻지 않은 인성과 같은 차” 쌀쌀한 날씨이지만 산에는 여전히 푸른 빛이 휘돌아 대롱대롱 매달린 감 몇 개만이 유난히 붉은 기운을 퍼뜨리는 전남 해남 두륜산 자락.대흥사 대웅전을 지나 가파른 숲길을 40여분 남짓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다른 일지암에서 만난 암주 여연(57)스님은 초의선사(1786∼1866)의 동다송(東茶頌)을 거듭 읊었다. “예부터 차와 생활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초의선사는 차의 성품을,삿됨이 없어서 어떠한 욕심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때묻지 않은 본래의 원천같은 것으로 보았지요.” 여연 스님은 외래문화의 범람 속에 차만이라도 우리 민족문화의 건강한 주체성을 찾자는 차문화운동을 일관되게 펼쳐온 조계종 스님.한국의 다성(茶聖)으로 통하는 초의선사 장의순(張意恂)이 말년 40년을 보낸 한국 차의 성지 일지암을 13년간 변함없이 지켜오고 있다. 초의선사는 이곳에 머물면서 다산 정약용,완당 김정희 등 당대의 석학들과 차를 매개로 종교와 신분을 초월한 인연을 맺었으며 그 유명한 ‘동다송’‘다신전’같은 저술을 남겼다. 지금의 일지암은 차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지난 1978년 복원해 대흥사에 기증한 것으로,초의선사의 살림채였던 자우산방과 작은 법당,허름한 요사채를 갖추고 있다.“초의선사가 주창했던 ‘다선일미(茶禪一味)’는 비단 불교에 국한하지 않는 사상입니다.모든 주장과 사상은 궁극적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화합의 원칙을 강조한 셈이지요.요즘 각별히 새길 만한 이론입니다.” 흔히 불가에서 차는 스님들이 의례로 마시는 것이라지만 여연 스님에게 있어서 차는 수행은 물론 우리의 것을 사랑하기 위한 각별한 방편이었다.출가 동기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던 스님이 초의선사의 흔적이 남은 일지암을 택해 지키고 있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연세대 철학과재학시절 신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당시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였던 김흥호 목사의 공개강연을 듣고 인생행로를 바꾸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학자였던 김흥호 목사는 벽암록이며 노자·장자 같은 동양철학을 두루 꿴 석학이었습니다.하루 한가지 반찬에 한끼 밥만 먹는 1종식을 어기지 않는 도인이었지요.자신에 철저하면서 열린 생각을 가진 목사의 모습에서 새벽별같은 빛을 보았다고나 할까요.” 결국 졸업하던 해 가을 가출했으나 마음 둘 곳을 정하지 못한 채 태백산을 방황하다가 우연히 한 선방에서 만난 학승으로부터 해인사 이야기를 듣고 해인사로 출가,지난 연말 입적한 혜암 전 조계종 종정으로부터 사미계를 받았다(스님은 혜암 종정의 네번째 상좌).자유로운 삶을 원했던 스님은 해인사에서 만난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에게도 할 말을 주저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74년 본격적으로 ‘차' 입문 “인도 다람살라에서 공부하고 귀국한 때였지요.성철 스님을 만나,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한번에 500∼600명이 몰리지만 불법을 전할 잡지를만든다면 1만명이 볼 수 있지 않느냐고 간곡히 말씀을 드렸지요.” 그래서 창간된 게 월간 ‘해인’지다. 1974년 해인사 강단에서 차를 익히기 시작한 스님은 당시 한국 차의 거봉이었던 효당 스님 밑에서 본격적으로 차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1977년 전국 10개 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한국대학생차연합회를 결성한 주역이다. 이같은 이력을 눈여겨본 대흥사가 지난 90년 스님을 일지암 암주로 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80년대 중반 한때 재야운동에도 몸담았지만 당시 변혁세력이 해방신학이니 사회과학에 치우친 데 불만,대승불교승가회란 조직을 만들었다.이 조직은 나중에 정토불교승가회와 합쳐 지금 대표적인 불교 실천단체인 실천불교승가회가 됐다. “당시 대학가나 지식인 사회에 밀물처럼 밀려드는 서구문화에 아무 비판없이 빠져드는 세태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그에 맞선 대안으로 차 문화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지금 차 인구가 300만을 넘었다고 하지만 차를 제대로 알고 마시는 이가 얼마나 될지….” 일지암 앞 텃밭과 뒤뜰에서 직접 일구어 딴 찻잎으로 만들어낸 차에는 스님의 법명인 ‘여연차’라는 이름을 붙였다.‘여연차’는 불교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차’로 통한다.일지암을 찾는 도반이나 지인,뜨네기들에게 베푸는 스님의 차 인심도 넉넉하다. ●현대를 결합한 전통으로 계승 “이제 마시는 음료로서의 차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문화와 결합한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코드로서의 차를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물론 우리 차가 온전하게 계승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단순한 흉내내기를 넘어 역사적 검증이 필요합니다.” “‘신라차’‘고구려차’‘선차’ 등 각양각색의 이름을 지닌 차들이 난무하지만 사실상 깊이 들여다보면 내용없는 형식의 홍수일 뿐”이라는 스님은 그래서 지난 2000년 일지암을 중심으로 사단법인 ‘초의차문화연구원’을 발족시켜 초의선사의 전반적인 사상을 발굴하고 있다. 차에 관심이 많은 불교계,학계,언론계 인사 32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이달 중순 광주 ‘예술의 거리’에 번듯한 사무실을 마련할 예정이다. “현실을 직시하여 역사의질곡을 극복하려는 주체적인 노력이 없다면 관념의 유희에 매몰돼 참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스님은 “전통이란 그릇 속에 현대를 채워야 하며 우리 차도 같은 이유에서 발전시켜야 한다.”며 일지암을 지킬 것을 약속했다. 해남 일지암 글·사진 김성호기자 kimus@
  • 책 / 딸아 딸아 연지 딸아

    유안진 지음 문학동네 펴냄 “아랫녘 웃녘 새야/전주 고부 녹두새야/녹두밭에 앉지 마라/두류박 딱딱 우여.” 어린아이들의 입을 통해 널리 불려진 ‘녹두새’란 제목의 동요다.여기서 새는 민중이고 두류박은 두류산을 가리킨다.녹두새는 전봉준이 체구가 작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그리고 ‘딱딱 우여’는 날아가라는 뜻이다.전주라는 말에는 전봉준의 전씨가 왕이 되려한다는 의미도 담겼다.그렇게 볼 때 이 동요는 동학혁명을 일으킨 전봉준이 실패하기를 바라는 관변에서 만들어 퍼뜨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민요는 이처럼 시대상을 반영한다.그런가하면 갓난아이에게 들려주던 자장가,힘든 농사일 중에 부르던 노동요,장터의 각설이타령,세시풍속과 관련된 노래,재치 있는 말장난이 담긴 노래 등 그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하다. ‘딸아 딸아 연지 딸아’(유안진 지음,문학동네 펴냄)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저자(서울대 아동학과 교수)가 3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수집한 우리 노래 209편을 묶은 민요 모음집이다.저자는 민요를 내용에 따라 부녀자들이 불렀던 부요(婦謠)와 남정네들이 불렀던 속요,여자아이들의 동요와 남자아이들의 동요로 나눠 실었다.민요는 우리 삶의 모습만큼이나 다종다양하다.작사자나 작곡가가 따로 없고 소리꾼과 청중도 따로 없다.누군가 지어 부른 뒤 또 다른 사람이 저마다 사연을 보태어 부르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것이 민요다.저자는 “전래동요와 속요야말로 가장 짙고 야한 바탕색 그대로의 우리 말,우리 혼,우리 넋의 우리 문화”라고 말한다. 저자는 일찍이 우리 말과 민속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등 그가 쓴 장편소설이나 ‘월령가 쑥대머리’같은 시집도 모두 민속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저자의 민요 해석은 그런 민속학적 지식에 힘입어 한층 설득력을 더한다.부인들이 부르던 민요 ‘답교’의 한 토막.“정월 상원일에 달과 노는 소년들은/답교하고 노니는데/우리 임은 어딜 가고 답교할 줄 모르난고/이월 청명일에 나무마다 춘풍들고/잔디 잔디 속잎 나니 만물이 희락한데/우리 임은 어델 가고 춘기 든 줄 모르난고….” 답교는 정월 대보름날 밤에다리를 밟던 풍속으로,열두 다리를 밟으면 그 해의 액을 면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그러나 저자의 해석은 사뭇 독특하다.대낮에도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부녀자들이 달밤에 다리 위를 건너면서 산책하는 것이 허용·장려된 것은 달빛을 받아 출산력을 강화하고 다리 힘을 키워 건강한 아이들을 자주 임신·출산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나아가 달힘 마시기·달모래 찜질·그네뛰기·널뛰기·탑돌이 등도 부녀자들이 다산력을 얻기 위한 우리 민속이라는 견해를 편다. 민요를 대하면서 얻는 또다른 즐거움은 우리의 맛깔스러운 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고네기·달구·군디·딩겨·강생이·구무·번들개·거렁·다릉개·나승개….민요에는 듣기만 해도 정겨운 사투리와 옛 말들이 오롯이 남아 있다. “가자가자 감나무/오자오자 옻나무/대낮에도 밤나무/벌건 대낮 밤나무/등 밝혀라 등나무/시퍼래도 단풍나무/죽어서도 살구나무/회초리는 싸리나무/마당쓸어 뱁싸리나무/아무따나 모개나무/멍들었다 자두나무/귀신 쫓는 복숭나무/무덤 둘레 엄가시나무….” 어린 아이들이 한둘 또는 여럿이 선창과 후창으로 불렀던 ‘나무 노래’라는 전래 동요다.나무 이름 하나에도 수많은 이야기와 상징이 담겨 있다.여러 말을 이리저리 이어 붙여가며 유쾌한 말놀이를 즐겼던 옛 사람들의 재치와 상상은 지금 접해도 신선한 데가 있다. 우리 옛 노래 중에는 전란을 당해 특별히 지어 부른 ‘애국 민요’도 있었다.‘쾌지나 칭칭 나네’와 ‘강강수월래’가 대표적인 예다.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는 ‘강한 왜놈 오랑캐인 가등청정이 물을 건너 왔네’라는 뜻.임진·정유란을 겪으면서 왜의 침략을 받은 전라도 지방에서 봉홧불을 못 올리는 상황이 되자 이같은 노래를 불러 한양 조정에 침략을 알렸다고 한다.한편 경상도에서는 ‘쾌지나 칭칭 나네’를 불러 왜군의 침략을 알렸다.‘쾌지나 칭칭 나네’는 ‘왜장 청정(倭將 淸正) 나왔네.’라는 말을 변용한 것이다. 전래 부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시집살이의 고단함을 토설한 노래.“미나리는 사철이요/장다리는 한철이라/메꽃 같은 우리 딸이/시집 삼년 살고 나니/미나리꽃이 다 피었네.”‘미나리와 장다리’라는 이 민요는 원래 조선 숙종이 장희빈을 편애해 인현왕후를 폐서인시킨 내용을 담은 노래다.민씨 성을 가진 인현왕후를 미나리로,장희빈을 초여름에 꽃피는 무씨받이 장다리에 비유했다.인현왕후의 친정집 당파인 서인,그 중에서도 서포 김만중이 지어 아이들에게 퍼뜨린 동요라는 설도 있다.그러나 저자는 이 민요를 시집살이의 고달픔을 그린 노래로 본다.메꽃같이 튼실하게 어여뻤던 딸이 웃자란 미나리꽃 같이 초췌해진 데 대한 안쓰러움,장다리처럼 한 철뿐인 첩실에 대한 원망 등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우리와 함께 나고 자란 우리 민요가 오늘날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가는 현실은 무엇보다 안타까운 일이다.저자의 생각 또한 마찬가지다.“우리의 토종 민들레는 본래 하얀 꽃을 피웠습니다.그러나 외래종인 노란 민들레에 의해 도태당해 지금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지요.우리 민요 또한 그런 운명에 처한 것이 아닐까요.” 민요가 사라져가고 옛사람들의 상상력과 아름다운 말들이 고갈되어가는 현실이기에 이 책은더욱 적극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1만원. 김종면기자 j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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