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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세기 新다빈치 프로젝트-통섭을 말하다] 음악가가 음향기기 만드는 ‘통섭의 시대’ 온다

    [21세기 新다빈치 프로젝트-통섭을 말하다] 음악가가 음향기기 만드는 ‘통섭의 시대’ 온다

    원효의 화엄사상 해설이나 조선 말기 실학자 최한기의 기(氣) 철학에서 주로 사용됐다. 정치적으로는 ‘총괄하여 관할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저서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재해석해 도입한 개념이다. 요즘 한국 지식사회의 최고 화두는 ‘통섭(統攝)’이다. 대학들은 앞다퉈 통섭을 표방한 학과를 설립하고, 석학들은 지식의 통합을 외치고 있다. 통섭이 ‘새로운 변화’의 상징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4년 전 일개 학설로 한국에 소개된 통섭은 이제 스쳐 지나가는 유행이 아닌, 우리 사회가 가야 하는 방향으로 대접받고 있는 셈이다. 통섭이 왜 국내 지식사회의 주제어로 떠올랐고, 그것은 왜 필요한 것일까. 통섭을 주장하는 많은 학자들은 통섭이 ‘한국적 특수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고등학교 때부터 문과, 이과의 구분에 익숙해진 한국 사람들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별개의 학문으로 생각한다. 서양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편의상의 학과 구분이 한국에서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리를 잡았고, 결국 그것은 유연하고 복합적인 사고를 갖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학자들은 인간과 기계, 우주, 생명공학 등 다양한 학문을 과학적 방법과 인문학적 방법으로 동시에 고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는 1933년부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교류가 시작됐고, 일본도 학문 전 분야를 아우르는 ‘슈퍼대학원’의 등장을 앞두고 있다. 물론 특수한 학과가 오히려 인기를 끌 정도로 ‘전문성’이 강조되는 한국사회에서 통섭을 논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노령화, 산업 변화의 가속화 등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통섭적 사고를 갖춘 인간상이 필요하다. 한 예로 평생 직업의 개념이 희박해지는 상황에서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직업을 찾기 위해 매번 새로운 자격증을 따고 공부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신 폭넓은 사고를 갖고, 뛰어난 적응력을 가진 사람을 키운다면 그만큼 새 길을 모색하고 목표를 세우는 데 유리할 수밖에 없다. 학자들이 ‘통섭형 사고 교육’을 어린 시절부터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통섭은 학문의 벽을 허무는 일에서 시작된다. 현재 한국의 대학사회는 같은 학과 교수들 사이에서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을 불문율처럼 여기고 있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없는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이같은 구분은 오히려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데 장애로 작용할 뿐이다. 특히 다른 학문에 대한 관심과 기본적인 개념의 이해는 전혀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개미를 연구하는 생물학자가 인간사회를 기본으로 연구하거나, 기계공학자 대신 음악 전공자가 음향기기를 만든다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미분방정식으로 경제를 예측하는 대신 자기공명영상을 도입해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의 뇌를 분석하기 시작했다.MIT에서는 사람이 전혀 등장하지 않은 채 전자기기가 오페라의 막을 올리고 공연을 한다. 여러 학문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아리스토텔레스 통섭의 원조 통섭은 인류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다.‘지식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했던 모든 노력을 통섭의 일환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각종 학문에 ‘광범위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지식의 경계가 없던 시절인 만큼 그의 관심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그 결과 수많은 분야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조’로 떠받들어진다. 박지원, 홍대용, 최한기 등 조선시대 후기 실학자들도 인문사회과학을 배워 자연과학에 적용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통섭의 역사에 기록될 만한 것으로 평가된다.200여년의 시간 차이는 있지만 서양의 다빈치와 조선의 정약용이 약속이나 한 듯 기중기(거중기)를 개발했다는 사실은 통섭적 사고가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환경과는 상관없이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통섭은 ‘자연을 흉내내는 일’에서 시작된다. 인간사회를 바꾼 수많은 도구와 아이디어가 자연에서 비롯됐다. 기업들은 동물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연구해 새로운 휴대전화를 만들기 위해 연구 중이다.‘현실에 존재하는 통섭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 MIT 미디어랩은 1985년 ‘함께 모여 상상의 나래를 펼치자.’는 소박한 목표로 시작됐지만, 매년 수백건 이상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내는 ‘상상력 공장’으로 발전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국내 연구 현주소 2005년 최재천 교수 등 윌슨의 ‘컨실리언스’를 번역 학문적 기반 아직 취약… 대학들 전면도입 움직 통섭의 개념이 국내 학계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과학철학자 장대익 박사와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 ‘컨실리언스(Consilience)’를 ‘통섭’이란 이름으로 번역, 출간한 2005년의 일이다. 퓰리처상을 두 차례나 받은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이자 생태학자인 윌슨은 개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로 섬 생물지리학과 사회생물학이라는 두 개의 학문을 개척했다. 윌슨이 주창한 컨실리언스는 르네상스 회귀로 집약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 모든 학문이 언젠가는 자연과학적인 방법론으로 통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컨실리언스는 19세기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이 처음 만들어냈다. 라틴어의 ‘컨실리에르(consiliere)’에서 파생된 것으로 추정된다.‘컨(con)’은 영어로 ‘함께’라는 뜻을,‘살리에르(salire)’는 ‘뛰어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결국 휴얼과 윌슨의 ‘컨실리언스’는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도출되는 결론들이 서로 일치하거나 정연한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최 교수와 장 박사는 컨실리언스에 대응하는 우리말을 찾기 위해 고심하다가 원효대사의 화엄 사상에서 통섭이라는 말을 찾아냈다. 그러나 이들의 통섭은 방법론과 지향점에서 윌슨 것과 다르다. 윌슨이 자연과학으로의 통합을 강조한 데 반해, 이들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동등한 위치에서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서 진행되는 통섭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학자들의 상당수가 무조건적인 생물학 중심의 학문적 통합보다는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자연과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 통섭이 ‘학문간의 벽을 허물자.’라는 정도의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그것의 정확한 의미나 지향점을 설명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은 취약하다. 올 초 서울대에서 열린 포럼에서는 “기계적으로 학과가 통합되는 것을 물리학적 통합, 두 학문이 새 학문을 만들어내는 것을 화학적 통합으로 정의한다면 통섭은 생물학적 결합으로 경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구체적 지향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 특히 가설과 학문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 중인 외국과 달리, 전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움직임은 다소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다. 인위적인 벽 허물기가 될 경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통섭의 시대’ 다시 주목받는 다빈치식 사고 통섭을 언급하는 학자들은 통섭형 인간의 표본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꼽는다. 다빈치식 사고는 끊임없는 지적 호기심과 경험을 통한 증명정신, 예리한 관찰과 섬세한 감각, 모호한 것까지 포용하는 묘사법, 과학과 예술의 조화, 건강한 육체와 정신, 그리고 한 가지 아이디어에 다양한 분야를 엮어내는 연결 습관 등으로 집약된다. 시대와 환경을 뛰어넘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인 셈이다. 과연 다빈치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사고방식이 그로 하여금 위대한 업적을 쌓게 만들었을까. 다빈치식 사고를 가진 수많은 사람을 키워 새로운 시각으로 현대를 바라보게 할 수는 없을까. 이탈리아 각지에 숨어 있는 다빈치의 발자취를 찾아, 왜 그가 지금 다시 주목받고 있는지를 짚어봤다. |빈치·피렌체·밀라노(이탈리아) 박건형특파원|이탈리아 밀라노에 자리잡은 오페라극장 라 스칼라 앞 광장. 거대한 성당 두오모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꼭 지나야 하는 이곳에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다. 동상 아래에 적혀 있는 ‘과학과 예술의 혁명가(AL Rinnovatore Delle Arti E Delle Scienze)’라는 문구는 다빈치를 설명해주는 가장 짧은 수식어이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로 추앙받는 다빈치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헌사다. ●거대한 박물관이 된 다빈치 고향 50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이탈리아 곳곳에는 다빈치가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다빈치는 이탈리아인들의 영웅이자 정신적 지주다. 수도 로마 공항의 공식 명칭은 ‘레오나르도다빈치공항’.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기차의 이름 역시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다. 공항 곳곳에 다빈치의 작품을 형성화한 조형물들과 그의 동상을 목격할 수 있다. 암흑의 중세를 벗어나 인문학의 부흥을 이끌어낸 르네상스의 핵심도시 피렌체를 지나 피사 방향으로 65㎞가량 떨어진 작은 마을 빈치에 도착했다. 나지막한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고, 사방 어느 곳에나 포도밭과 올리브 나무만이 가득한 특별할 것 없는 시골마을이 바로 다빈치의 고향이다. 마을 중심지의 가장 높은 곳에는 3m가 넘는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도’ 조형물이 다빈치의 고향임을 말해주고 있다. 다빈치는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의 이론에 따라 기하학적으로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원 안에 사람의 몸을 그렸다. 이 비례도의 원본은 베니스 박물관에 소장돼 있지만, 공개는 허용되지 않는다. 다빈치가 빈치에 살았던 기간은 태어난 이후 피렌체에서 베르키오의 도제로 들어가기 전까지 16∼17년간으로 알려져 있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그의 생가는 세 개의 방으로 이뤄져 있다. 집 내부에는 다빈치의 생애와 작품에 관한 글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지만, 실제로 다빈치의 흔적은 벽난로와 책상뿐이었다. 생가를 지키고 있는 빈치 시청의 알베르토 로카티는 “다빈치는 세르 피에로와 카테리나라는 하층계급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면서 “다빈치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다빈치의 왕성한 학구열이 어린 시절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반사작용이란 설도 있다.”고 소개했다. 마을의 중심지 폭이 채 500m밖에 되지 않는 조그만 빈치지만, 마을 전체가 거대한 다빈치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성당 옆에 자리잡은 다빈치 박물관에는 그가 설계한 물레와 기중기 등의 원리가 자세히 설명돼 있다. 다빈치 아이디어 박물관은 다빈치의 사고가 어떻게 형성됐으며 후세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체험관이다. 박물관 학예사인 세르지오 페오네는 “다빈치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사고가 다방면으로 발달해 있었다.”면서 “이 박물관의 첫 번째 전시물도 플라톤의 흉상”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빈치가 스케치한 작품을 실제로 만들어보는 작업이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잡고 있을 정도로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을 곳곳에 자리잡은 상점에서는 티셔츠나 엽서 등 흔한 기념품 대신 다빈치가 고안한 시계와 헬리콥터 모형 등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학문과 예술 꽃피운 피렌체, 밀라노 다빈치 연구자들은 그의 생애를 크게 제1차 피렌체 시대(1466∼1482), 제1차 밀라노 시대(1482∼1499), 제2차 피렌체 시대(1499∼1506), 제2차 밀라노 시대(1506∼1513), 그리고 로마ㆍ앙부아즈 시대(1513∼1519) 등 다섯 시기로 구분한다. 말년을 제외하면 그의 성과가 대부분 밀라노와 피렌체에서 이뤄진 셈이다.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에는 다빈치의 작품 중 가장 오래된 1473년의 데생이 걸려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빈치는 보티첼리, 크레디, 페루지노 등 베로키오 산하의 수많은 제자들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베로키오의 도제로 있는 동안 다빈치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매달리지 않고 건축, 도형 연구, 광학론, 원근법, 기하학, 자연과학, 음악 등을 폭넓게 익혔다. 이때 배운 원근법의 결실이 바로 1495∼1497년에 다빈치가 완성한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최후의 만찬’이다.15분에 단 25명의 관람객에게만 공개되는 이 불후의 거작은 성당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만큼 크고 장엄했다.‘최후의 만찬’ 전문 가이드인 실비아 솜바루는 “작품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미술사학자, 구조학자, 역사학자, 광학자 등 각 분야에 걸쳐 있다.”면서 “지금도 이 그림 연구로 연간 수십편의 논문이 쏟아져 나올 정도”라고 밝혔다. 성당 길 건너편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국립 과학기술박물관이 있다. 온통 과학에 관한 내용으로 꾸며진 박물관 전시물 중 다빈치가 고안한 각종 기계들이 단연 인기다. 피렌체 시내에도 다빈치의 기계를 실물 크기로 재구성해 전시·체험할 수 있도록 한 두 곳의 박물관이 있다. 두 도시의 대형 서점에는 다빈치 관련 서적들이 별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탄생 555주년을 맞았던 지난해에는 도시 전역이 다빈치 기념물로 꾸며지기도 했다. 빈치시의 다빈치 박물관장 알레산드로 베조시는 “다빈치의 지식은 대부분 직접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단계를 거쳤다.”고 소개했다. 이어 “다빈치가 ‘단순한 천재’였다면 그저 동경의 대상이자 신화적인 존재에 머물렀겠지만, 다빈치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각고의 노력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닮고 싶은 존재’ ‘배워야 할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kitsch@seoul.co.kr ■다빈치는 어떻게 만능학자가 되었을까 호기심·증명정신 겸비 ‘노력하는 천재’ 해부학자, 건축가, 식물학자, 도시계획가, 의상·무대디자이너, 요리사, 해학가, 엔지니어, 발명가, 지리학자, 지질학자, 수학자, 군사과학자, 음악가, 화가, 철학자, 물리학자, 이야기꾼…. 다빈치는 인간이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여러 분야에서 천재성을 발휘했던 인물이다. 이탈리아 전역은 물론, 프랑스와 영국에도 다빈치 박물관이 있고 대부분 진품을 최소한 한 가지 이상 소장하고 있다. 평생 그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얼마나 방대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가 탄생한지 55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다빈치는 지식인들이 꿈꾸는 ‘만능인’(Universal Man)의 표상으로 꼽힌다.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가 주창한 지능의 다양성에 대한 이론에 따르면 천재는 논리·수학(스티븐 호킹, 아이작 뉴턴), 언어(윌리엄 셰익스피어, 에밀리 디킨슨), 공간·기술(미켈란젤로), 음악(모차르트), 신체·운동감각(무하마드 알리), 사회적 대인관계(엘리자베스1세, 마하트마 간디), 자기 인식적 대인관계(틱낫한, 테레사 수녀) 등 일곱가지 척도 중 하나에서 특이성을 보인다. 그러나 다빈치는 일곱가지 분야에서 모두 천재성을 나타냈다. 고도로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현대 사회에서 다빈치가 다시 각광받는 것은 그가 거의 모든 학문에서 특이성을 보인 이유가 단순한 천재여서가 아니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노력하는 천재’였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실용주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해부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좀 더 정확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고, 물의 과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좀 더 좋은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유체역학에 대한 연구는 비행기 설계로 이어졌고, 노년에는 이 모든 기계의 원리를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근원을 찾기 위해 골몰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다빈치의 사고방식을 이해함으로써 교육법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마이클 겔브가 쓴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생각하기’는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교육서적 목록에 올라 있다. 겔브는 “다빈치가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다재다능하고 균형잡힌 인간, 예술과 과학 양쪽을 모두 편안하게 포용할 수 있는 인간을 이상형으로 삼았다.”면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폭넓은 지식을 쌓아야 하는 현대인에게 다빈치식 사고는 최적의 모델”이라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카사노바 “후회는 없다”

    카사노바 “후회는 없다”

    유명한「아나운서」를 사칭, 명함을 뿌리면서 한달동안 6명의 양가집 아가씨들을 떡주무르듯 요리한 한국판「카사노바」가 쇠고랑을 찼다. 멋진 연기로 재미를 톡톡이 본 화제의 주인공은 서울 K대학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서울의 모국군 방송국에서 6개월동안「아나운서」생활을 했다는「인텔리」백영남(白英南)(29·부산시 영도구 봉락동 134). 24일 사문서위조 동행사등 혐의로 부산중부에서 구속된 백씨는 그동안의 호사를 잊지못하겠다는듯 한달동안의 엽색행각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아나운서」라고만 하면 잘도 넘어가데요” 백씨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밥벌이를 못해 형집에서 신세를 지고있는 실업자. 매일 배를 깔고 누워서 하루 해를 보내던 그에게 잊지못할 추억은 지난 66년 서울의 모국군의 방송 「아나운서」로 재직할 때 수없이 따르던 아가씨들이었다. 그당시는 너무 순진해 점잖게 돌려 보내곤 했던 사실이 후회스럽기 짝이 없었다.『여자는 인기인에 약하다』는 착상은 이렇게해서 떠올랐다. 그는 우선 부산에서 가장 인기있는「아나운서」인 부산 M방송국 송모씨를 사칭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지난 8월10일 부산 동구 범일동 K인쇄소에서 큼직한 명함 1백장을 박았다. 그리고 다시 이틀후 신분증 까지 인쇄해냈다. 그에게 처음으로 걸려든 미끼는 충부동3가의 이름난 양장점의 「디자이너」김영숙양(21·가명 동래구 연산동). 대낮에 하릴없이 남포동거리를 헤매던 그에게 늘씬한 미녀가 지나쳤다. 정신이 번쩍 든 그는 드디어 시험할 때가 왔다고 그녀를 따르기 시작했다. M양장점으로 들어가는 것을 눈여겨본후 다음날 다시 M양장점앞에 숨어서 지켜봤다. 그녀가 M양장점 직원이라는것을 확인한후 작전을 세밀히 세웠다. 다음날 낮 1시쯤 한가한 시간을 틈타 그는 조용한 다방을 선택, M양장점에 전화를 걸었다. 『거기가 M양장점이죠?「미스」김 좀 바꿔주실까요? 』이씨보다는 김씨성이 더 흔해 김양이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김양이라면서 고운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그날 김양이 입고간 옷을 설명해 보이면서 그가 노린 여자임을 확인했다. M양장점에는 김양이 3명이나 됐지만 공교롭게도 백이 찾던 김양이 전화를 받았다. 그의 사기극은 처음부터 이렇게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는 점잖은 목소리로『나 N방송국 아나실장 송XX올시다.「미스」김을 전부터 잘알고 있읍니다. 한가한 시간이니 차라도 한잔- 』김양은 가슴이 철렁- 순간 한없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그 유명한 송XX「아나운서」가 「프로포즈」를 하다니… 이렇게해서 첫날「데이트」는 일사천리로 진행. 첫날 벌써 김양은 백에게 반해 밤12시가 되도록 쫓아 다녔단다. 그는 그날로 단숨에 손댈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여유를 두고 다음날을 기약했다. 다음날은 「데이트」장소를 해운대로 옮겼다. 북적대던 한여름이 지난 조용한 해변을 거닐면서 그는 사랑한다고 능청스럽게 김양의 손을 잡은 후 결혼해 달라고 점잖게「프로포즈」했다. 그날밤 해운대 「고고·클럽」에서 밤늦게까지 춤을춘후「호텔」로 직행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김양에게 자기 신분증과 명함을 내보인후 결혼할 몸이니 같이 잠자리에 들어도 괜찮다고 얼러 첫시험을 성공리에 끝맺었다. 다음날 행복해하는 김양에게 자기는 늘 「아나운서」실에서 녹음중이어서 전화해도 만날수없다고 연막을 친후 자기가 먼저 전화를 할테니 방송국에는 절대 전화하지 말라고 둘러댔다. 백은 그후 김양과 3번 만나 즐긴후 결혼비용조로 10만원을 우려낸 다음 자취를 감췄다. 다음으로 걸려든 여인은 동구 수정동 김단아양 (23·가명)과 박복순양(22·가명). 둘은 한동네사는 절친한 친구사이로 이를 똑같이 하루 사이로 백의 제물이 됐다. D대 3학년에 재학중인 이들은 지난 9월2일 시내 충무동 S다방에서 처음으로 백을 만났다. 한가하게 음악을 즐기고있는 이들에게 백이 나타나 명함을 건네면서「데이트」를 신청했다. 처음에는 둘이 같이 만났으나 며칠후 둘은 서로 질투끝에 싸운후 따로 따로 만나는 기회를 만들었다. 백은 둘을 차례로 유인한후 정복했다. 4번째 희생자는 부산진구 범천2동 김(金)영순양(24·가명). 명함을 보고 눈이 동그래진 김양은 그날로 자진해서 몸을 바쳤다. 그녀는 자기와 하룻밤을 즐긴 것을 평생의 영광으로 기억하겠다고 말하며 기분좋게 헤어졌단다. 지금도 자기눈에 삼삼한 여인은 5번째여인인 김(金)성희양(22·가명·동구 수정동)4번째 여인을 거친 다음날 시내 초량동 M식당에서 만나 김양은 백이 처음대한 순수한 숫처녀였다고. 그래서 그만큼 손보기도 좀 어려웠다. 처음만난지 일주일만이 었다니까 그에겐 좀 지리한 시간이었다. 부산(釜山) 아가씨 싫증나 대구(大邱)원정길에 덜컥 15일동안 무려 5명의 아가씨를 거쳐간 백은 이제 부산아가씨에 물렸다. 타지방을 원정갈 계획을 세웠다. 대구는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곳. 여섯번째의 박(朴)미숙양(22·가명·대구시 비산동)은 바로 대구행 고속「버스」내에서 사로잡혔다. 명함을 들여다보고는 홀딱 달라붙더라고. 그날로 대구에서 같이 하룻밤을 즐긴후 부산으로 내려왔다. 다음날 대구 박양집에 전화를 걸어 급한일로 대구 갈일이 있다고 마중을 나오게 했다. 바쁜 일정이기 때문에 낮엔 만날 수 없다고 능청을 떨고는 밤에 만난 박양에게 돈 5만원을 요구했다. 갑자기 회사일로 서울을 다녀와야 하는데 돈이 필요하다고 얼버무렸다. 2일후에 반드시 갚겠다고 약속하고는 박양의 통장에 모아둔 5만원을 빼앗아 부산에 내려왔다. 그의 꼬리는 그의 엽색행각 한달만인 23일 드디어 들통이 났다. 첫번째 여인인 김영숙양이 그동안 너무 소식이 없어 전화하지 말라는 백의 당부를 알면서도 방송국에 전화를 걸었다. 송「아나운서」와 통화가 됐다. 그러나 사람이 달랐다. 우연히 다음날 백이 김양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송「아나운서」와 대기하고 있던 형사들이 다방을 들어서는 백의 덜미를 낚아채 수갑을 채웠다. <부산(釜山)= 김성기(金成麒)기자> [선데이서울 71년 10월 3일호 제4권 39호 통권 제 156호]
  • 2년전 살해된 이복동생 추정 시체 발견

    강화도 모녀 납치ㆍ살해 사건의 피의자 하모(27)씨와 안모(26)씨가 2년 전 경기도 시흥에서 살해한 20대 여성의 시체가 발견됨에 따라 여죄가 드러나고 있다. 인천 강화경찰서는 13일 하씨 등으로부터 2006년 4월24일 밤 11시쯤 시흥시 정왕동에서 다방 종업원으로 일하던 하씨의 이복동생인 하모(당시 20세)양을 납치, 목졸라 살해한 뒤 시화호 근처에 암매장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이날 시화호에서 시화공단 방향 1㎞쯤 다리 밑에서 피해자로 추정되는 시체의 일부를 발견했다. 당시 하씨 등은 하양을 죽인 뒤 부친에게 전화를 걸어 “딸을 데리고 있으니 5000만원을 갖고 오라.”고 협박, 경찰이 약속 장소에 잠복했으나 하씨 등이 나타나지 않아 검거에 실패했다. 경찰은 이후 하양의 휴대전화 통화내역 조사 등을 통해 하씨 등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도 끝내 증거 불충분으로 풀어 주고 말았다. 하씨 등은 이번 모녀 납치·살해 과정에서도 “완전범죄를 위해 납치 모녀를 죽이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경찰은 하씨와 안씨 외에 이모(24)씨, 연모(26)씨 등 강화도 윤씨 모녀 납치·살해사건 피의자 4명을 강도살인 등 혐의로 구속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이웃청년에 당했다

    강화도 모녀 납치·살해사건은 보험금을 노린 이웃 청년들의 흉악한 범죄로 드러났다. 무서운 이웃 청년들은 2년 전에도 또 다른 여성 1명을 죽였다고 진술해 수사가 확대되고 있다. 인천 강화경찰서는 11일 강화군 송해면 하도리 윤복희(47)씨와 딸 김선영(16)양을 납치, 살해한 혐의로 안모(26)씨와 연모(26)·하모(27)·이모(24)씨 등 4명을 붙잡아 범행 일체를 자백받고,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용의자 4명은 강화지역 중학교 선후배 사이로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동네에 사는 윤씨 모녀를 범행대상으로 골랐다.”고 밝혔다.●사전 치밀하게 범행 준비 흔적 용의자 안씨 등 3명은 지난달 17일 아침 무쏘 승용차로 딸을 학교에 데려다준 뒤 귀가하는 윤씨를 납치했다. 이들은 곧바로 윤씨를 성폭행하고,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라고 협박했다. 윤씨가 “1억원을 직접 인출해 주겠다.”고 하자 딸을 학교에서 불러내도록 요구해 인질로 삼았다.박씨가 은행에 혼자 들어가는 동안 딸을 볼모로 해 신고를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어 하씨와 이씨는 오후 1시쯤 윤씨를 무쏘 차량에 태우고, 강화읍 K은행에서 현금 1억원을 인출했다. 이후 돈을 갖고 차로 이동하면서 윤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안씨는 조퇴한 윤씨의 딸을 자신의 쏘나타 차량에 태워 납치한 뒤 역시 목졸라 살해했다. 금품을 노린 납치범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모녀의 시체는 하점면 창후리 해안 인근 갈대밭에 버려졌다. 경찰은 나머지 용의자 연씨는 범행 모의에는 가담했지만 납치와 살해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114 문의 녹음테이프 단서 경찰은 피해 모녀가 살았던 강화군 송해면 하도리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하는 과정에서 용의 차량 소유자가 안씨라는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10일 오후 10시쯤 안씨를 경찰서로 임의동행해 범행을 추궁했으나 범행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사건 당일 안씨와 함께 있던 이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이렇게 자백을 받아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114에 기록된 범인들의 음성이 한몫했다. 경찰은 “용의자들이 증거를 안 남기려 주도면밀하게 움직였다.”면서 “하지만 윤씨 집에서 114에 전화를 걸어 딸 선영양의 학교 전화번호를 묻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남겼다.”고 말했다.●여전히 남는 의문점 하지만 윤씨가 납치된 상태에서 은행에서 돈을 찾았다는 경찰의 발표는 의문점을 남긴다. 윤씨가 은행에서 돈을 인출할 당시 직원들과 너무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받았다는 점이 납치 상태로 보기 힘든 점으로 지적된다. 또 용의자들이 윤씨 계좌에 있던 5억여원 가운데 1억원만 인출시킨 점도 석연찮다. 살인을 결심한 용의자들이 돈의 일부만 빼앗은 것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 대목이다. 이런 가운데 경찰은 검거된 안씨와 하씨가 2년 전에도 여성 1명을 살해한 혐의를 잡고 수사 중이다. 경찰은 “2006년 4월 강화도의 다방 여종업원 하모(19)씨를 납치, 살해한 뒤 경기도 시흥시 시화호 인근에 암매장했다는 진술을 추가로 확보해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경찰은 이들이 하씨의 시신을 암매장한 곳으로 지목한 경기도 시흥시 일대에서 수색을 벌이고 있다. 한편 경찰은 2006년 당시 하씨 실종사건 수사과정에서 안씨와 하씨를 조사했지만 혐의점을 잡지 못해 풀어줬던 것으로 알려졌다.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아고라서 토론” 남경필의 소신?

    “아고라서 토론” 남경필의 소신?

    “아고라 토론방으로 달려 가자. 그리고 그 속에서 놀자.”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이 11일 ‘촛불시위’의 진원지 역할을 했던 인터넷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비판적이라고 해서 기피할 게 아니라 오히려 인터넷 토론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는 촛불시위의 도화선 역할을 했던 아고라 토론방을 마치 ‘좌파 네티즌들의 수다방’ 정도로 치부하고, 인터넷 괴담을 유포한 네티즌들을 법으로만 다루려는 당내 기류와 정면 배치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남 의원은 지난번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을 향해 ‘2선 퇴진론’을 주장한 데 이어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FTA를 준비하자. 그리고 아고라에서 놀자.’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네티즌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면 제대로 국정운영을 하기 어렵다.”며 “우리는 ‘똑똑한 군중’이 노는 곳으로 찾아가 함께 놀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지난 6월 말, 아고라에는 한·미 FTA 반대 글이 메인화면을 차지한 적이 있다.”며 “당·정·청은 촛불의 불똥이 한·미 FTA에 옮겨 붙지 않도록 이론적·과학적·논리적으로 재무장한 뒤 네티즌들과 함께 토론하고, 공감대를 이끌어 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남성적 언어로 쓰고 노래한 ‘사랑’

    시인 성기완(41)에게는 시인 말고도 여러가지 ‘타이틀’이 더 따라다닌다. 그는 날카로운 문화평론가이자 음악을 선곡하는 라디오 DJ이면서 인디밴드(3호선 버터플라이)의 멤버로 홍대클럽에서 기타를 친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가 몸담고 있는 일은 크게 글쓰기와 음악 두 가지이다. 본래 시와 음악은 하나라고 했던가. 시인은 오래전부터 시와 음악의 결합을 시도해 오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성 시인은 이번에도 세번째 시집 ‘당신의 텍스트’(문학과지성사 펴냄)와 두번째 솔로 앨범 ‘당신의 노래’를 동시에 발표했다. 시는 노래가 되고, 노래는 시가 되는 궁극의 결합을 이루어낸 것. “당신의 텍스트는 나의 텍스트/나의 텍스트는 당신의 텍스트/당신의 텍스트는 텍스트의 나/나의 당신의 텍스트는 텍스트…”(‘당신의 텍스트 1-사랑하는 당신께’ 가운데) 시집 ‘당신의 텍스트’에는 표제작 연작시 11편을 포함, 모두 61편의 시가 실려 있다. 앨범에는 아홉 곡의 노래와 네 편의 낭송이 담겨 있다. 시와 노래의 모티프는 그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사랑과 연애이다. 그래서인지 평론가 이광호씨도 “그가 사랑이라니?”라며 낯설어했다. 특히 그의 사랑시는 여성 화자가 읊조리는 기존의 사랑시와 달리 남성화된 것이 특징. 하드코어적인 사랑의 담화가 이어진다.“너를 오랄하고 싶어/너의 빨간 암술을 헤치고/노란 수술을 빨고 싶어…”(‘꽃’ 가운데) 시인은 시집과 앨범이 서로 한 쌍이라고 규정했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도 “당신을 사용합니다./당신을 사랑합니다./사랑을 사용합니다./노래가 되었습니다.”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이고 있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오디세이 서울] (2) 소공로(상)

    [오디세이 서울] (2) 소공로(상)

    소공로는 일찍이 장안의 댄디(멋쟁이)들이 출몰하던 첨단의 거리였다. 총독부와 경성부청에 근무하는 일본인 관료들의 통근로였고, 중산모와 회중시계로 멋을 낸 모던보이들이 소파에 몸을 묻고 제임스 조이스와 예세닌을 논하던 식민지 살롱문화의 본산이었다. 소설가 박태원이 하루에 세번씩이나 드나들며 가배(커피)를 홀짝이던 다방도, 시인 박인환이 일본 패션잡지를 찢어들고 찾아가 홈스펀 양복을 맞춰입던 테일러 숍도 이곳에 있었다. 소공로가 댄디의 주무대로 자리잡은 것은 이곳이 조선은행으로 상징되는 경제권력과 총독부·경성부라는 식민통치의 심장부를 연결하는 직통 루트였다는 데서 연유한다. 1922년 일본 양복점 재벌이 정자옥(현 미도파백화점)을 설립한 뒤 이 일대는 남성 패션의 중심거리로 부상한다. 뒤이어 상공회의소와 기독청년회, 빅터 레코드사 등이 들어서고 철도호텔(현 조선호텔) 지척에 반도호텔이 건립되면서 ‘모데로노로지오’(考現學·현대를 탐구하는 학문)의 현장학습장으로, 첨단과 유행에 목마른 모던보이들을 불러모으게 된 것이다. 댄디의 시대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쳐 1970년대까지도 이어졌다. 물론 문인과 지식인들이 모여 앉아 문단사와 시국담을 나누던 맹아적 살롱문화의 거점은 명동으로 옮겨간 뒤였다. 궁핍한 예술가와 ‘먹물’들의 빈 자리는 재력있는 멋쟁이들이 채웠다. 이 시기 소공로는 맞춤양복의 메카였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양복점 한구석을 빌려 의상실을 개업한 것이 1962년이었다. 소공로와 명동 일대에만 내국인과 일본 관광객을 상대하는 크고 작은 양복점이 300여개나 됐다. 소공동 양복가로의 탄생 배경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1920년대 필동에 살며 소공로로 출퇴근하던 총독부 관리들을 상대로 일본인들이 점포를 내면서 시작됐다는 설이 우세하지만, 볼셰비키 정부의 박해를 피해 이주한 터키인들의 테일러 숍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기원이야 어찌됐든 소공동 상권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이 거리의 주인공은 당대 최고의 전문직으로 꼽히던 은행원과 고급 공무원, 그리고 소수의 선택받은 예술가들이었다. 이들은 세련된 라이프스타일과 고급스러운 몸치장으로 곤핍에 찌든 대중들과 스스로를 구별했고, 취향의 심미화를 통해 범속한 졸부들이 넘볼 수 없는 ‘그들만의 궁정’을 구축하려 했다. 천박한 세태에 대한 반감을 자의식적 저항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까닭에 이들의 ‘구별짓기’는 세기말 유럽을 풍미했던 댄디즘의 핵심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다만 ‘일상의 미학화’를 무기로 교양·예술과는 담을 쌓은 졸부집단을 향해 지독한 멸시와 혐오를 공공연히 표출함으로써, 문화와 취향의 영역마저 식민화하려던 경제권력의 공세에 저항한 공로만은 인정받을 만하다. 오로지 돈과 사익을 위해 들쥐처럼 내달리는, 이 만개한 속물의 전성시대에 소공로의 몰락과 댄디의 죽음은 그래서 더욱 서글프게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 사진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지방분양시장 살아나나

    지방분양시장 살아나나

    ‘반짝 증상인가 회복의 신호탄인가.’최근 충남 천안·아산 지역 아파트 분양에 예상외의 인파가 몰리면서 침체에 빠진 분양시장이 회복조짐을 보이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부산, 대구 등 대도시에서도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미분양이 팔리고 있어 이런 분석에 힘을 더하고 있다. 하지만 천안 지역의 아파트 분양 호조는 국지적인 현상일 뿐 본격적인 회복국면으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지적이 만만찮다. ●천안 동일하이빌 127㎡ 108대1 8일 금융결제원 및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날 충남 천안시 쌍용동 동일토건의 동일하이빌 935가구(특별공급분 25가구 제외) 1순위 청약에서 6841명이 접수해 평균 7.31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특히 127.14㎡ 22가구에는 2386명이 몰려 108대1의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전체 10개 평형 가운데 4개 평형이 미달되기는 했지만 분양경기 침체를 감안하면 높은 청약률이라는 평가다. 앞서 7일 충남 아산신도시 와이 시티(Y-city) 1순위 청약에서는 1439가구 모집에 6944명이 신청해 평균 4.8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10가구를 공급한 218㎡는 482명이 신청해 48.2대1의 최고 경쟁률을 기록했다. 앞서 우미건설이 천안 청수지구에서 분양한 ‘우미린(724가구)’에는 2300여명이 청약했다. 이들 지역의 신규분양이 선전한 것은 이들 아파트의 분양가가 3.3㎡당 750만∼850만원대로 주변시세(불당지구의 경우 1000만원 안팎)나 앞서 이 지역에서 분양한 아파트(900만∼1200만원)보다 싼 데다 전매가 가능하다는 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부산·울산 등에서 미분양 다소 팔려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도 조금씩 소진될 기미를 보인다는 게 주택업계의 얘기이다. 한 주택업체의 분양 담당자는 “우리 회사의 경우 부산에서 한 달에 5가구가량 팔리던 미분양 주택이 6월에는 20여가구가 팔렸다.”면서 “울산에서도 107㎡ 등 중형대 위주로 매수세가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미분양 주택은 대부분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미분양대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주택이지만 팔려나가는 것은 실수요자들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라고 그는 분석했다. ●“회복국면으로 보기엔 무리” 최근 충청권의 아파트 분양이 호조를 보이고, 지방의 미분양 구매 수요가 다소 늘었다고 해서 이를 분양시장의 회복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최근의 청약열기에는 다소의 거품도 있고, 지방의 미분양 물량 소진은 매수세의 회복으로 보기엔 그 수치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천안·아산지역의 경우 일부 아파트에는 전매제한을 받지 않으면서 가수요 세력이 붙은 것으로 알려졌다.‘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이 가세했다는 소문도 나돈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사장은 “지역적으로 수도권과 가까운 데다 전매제한 등의 규제가 덜한 편이어서 천안·아산에 청약인파가 몰린 것 같다.”면서 “일부 가수요가 작용한 측면도 있어서 분양시장의 회복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고, 당분간 침체는 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책꽂이]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지음, 이상원 옮김, 에코의서재 펴냄) 낡은 일상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영감의 원천은 ‘놀이’. 놀이를 통한 창조과정을 예술, 철학, 종교 등 다방면을 넘나들며 탐구했다.1만 2000원.●미친 별 아래 집(다이앤 애커먼 지음, 강혜정 옮김, 미래인 펴냄) 2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 동물원장 부부가 레지스탕스 활동가와 유대인들을 숨겨준 실화를 소설형식으로 재구성한 역사 논픽션.1만 5000원.●빌더버그 클럽(다니엘 에스툴린 지음, 김수진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서구사회를 움직이는 엘리트 100여명의 비밀모임 ‘빌더버그 클럽’의 실체를 엿보고, 그들이 어떻게 대중을 전체주의에 현혹되게 만드는 지 음모를 짚었다.1만 5000원.●버리는 기술(다쓰미 나기사 지음, 김대환 옮김, 이레 펴냄) 물건을 못 버리는 습벽이 있는 사람에게 유용할 책. 못 버리고 쌓아두는 심리에서부터 어떻게, 얼마나, 언제, 누가 버리면 좋은지 ‘버림의 테크닉’을 소개.1만 1000원.●네박자, 둥지 그리고 봉선화 연정(김동찬 지음, 진한M&B 펴냄) 수많은 히트곡을 띄운 작사가 김동찬이 한국대중가요계를 풍미한 트롯가요 500여곡의 가사를 정리, 의미를 돌아봤다.‘뽕짝’가사 뒤의 숨겨진 얘기도 흥미롭다.1만 4000원.●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안철수연구소 사람들 지음, 김영사 펴냄) 회사 내부 구성원들이 조직변화 과정에서 느낀 어려움과 긍지, 조직생활에서 얻은 교훈 등에 대해 쓴 글 모음. 글로벌 통합 보안 기업으로 성장한 안철수연구소의 실체를 엿본다.1만 3000원.●행복의 역사(대린 맥마흔 지음, 윤인숙 옮김, 살림 펴냄)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쾌락과 고통을 불러왔는지 고찰했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에서부터 오늘날까지 행복의 상징도 다양했다.3만원.●독도 라이더가 간다(김영빈 지음, 샘터 펴냄) 독도사랑이 지극한 4명의 20대 젊은이들이 함께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구촌을 돌며 ‘독도는 한국땅’임을 ‘홍보’한 여정을 기록했다. 지은이는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생.1만 2000원.●허허실실 조기유학(조재우 지음, 한울 펴냄) 영어광풍 시대에 조기유학의 장밋빛 미래만 상상하는 학부모들에게 얻는 것만큼 잃는 것도 많다고 제언한다. 조기유학의 ‘허’와 ‘실’에 관한 모든 것.1만 4000원.●거꾸로 가는 물고기(진춰다오 지음, 허유영 옮김, 신원 펴냄) 남들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인터넷의 힘을 빌리되, 우뇌를 이용할 것. 유명인사들의 역발상 사례를 통해 성공 지름길을 귀띔.9500원.●인플루언서 마케팅(혼다 데쓰야 지음, 정선우 옮김, 경영정신 펴냄) ‘인플루언서(influencer)’란 웹2.0 시대에 온·오프라인에서 막강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 일본에서 성공한 인플루언서 마케팅의 사례들을 모았다.1만원.
  • [시론] 경제난국, 삼각파도 이기려면/최공필 우리금융지주 전무·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시론] 경제난국, 삼각파도 이기려면/최공필 우리금융지주 전무·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전례없는 유가충격으로 우리 경제는 성장전략을 구사하기도 전에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한 노력을 강요당하고 있다. 최근 인플레이션은 신(新)브레튼우즈 체제하에서 기본적인 달러페그(달러화 연동) 환율체제로 수출위주의 성장을 이끌어냈던 국가들에 대한 체납고지서이다. 즉,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차원의 조정 과정에서 필요한 금리와 환율조정이 지연되면서 초래된 결과이다. 과거의 충격과는 달리 중국 등 신흥 거대시장이 주도하는 수요 요인의 관리를 위한 세계적 정책공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표류하는 선박처럼 세계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징후와 자산버블의 붕괴충격에 직면해 있다. 스태그플레이션과 자산버블붕괴의 양날위에서 위험스러운 항해를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특히 비슷한 여건하에서 국가단위 대응의 타당성이 저하되면서 신흥시장이 겪게 되는 충격은 전례없이 크게 나타나고 있다. 내수시장이 취약한 신흥시장의 경우 금융정책의 유효성이 저하되었고 재정정책도 양극화가 심화되어 공감대를 찾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세계화의 격랑속에 생존기반을 위협받고 있는 서민중산층은 더욱 힘든 상황이다. 이래저래 개방에 따라 충격에 대한 노출은 커진 데 비해 대응여력은 크게 약화된 상태이다. 그러니 시장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위기 우려의 실체는 환경변화를 이겨낼 만한 우리의 능력에 대한 시장 믿음의 저하이다. 대외여건 변화에 대한 인식이나 내부적 대응능력에 이미 이상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쇠고기파동은 국제적으로 매우 심각해진 상황을 애써 외면해도 좋다는 현실에 대한 시각차를 반영한다. 이러다 우리 경제는 무방비상태에서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우리가 취하는 일련의 대응이 냉정하게 평가되는 거대 시장에서의 신뢰 상실은 기초여건에 관계없이 언제든 나쁜 균형을 불러올 수 있다. 하반기 우리의 주변여건은 물가, 성장, 내수, 고용지표의 동반악화를 의미한다. 더욱이 위험기피적 금융부문의 대응은 금리인상을 포함하여 축소조정 과정을 강화시키게 된다. 따라서 취약부문의 악화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따라서 재정부문의 선별적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 민간주체들의 의욕이 저하되고 금융이 움츠러든 곳에 재정의 우선적 역할을 통해 재기의 발판을 다져가야 한다. 각종 개발계획에 대한 현실적 차원의 재검토가 조기에 가시화되어야 한다. 사회간접자본의 확충과 비교역재 부문의 개방전략은 우리경제의 구조적 약점인 내수 낙후부문의 생산성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 어려운 기초여건을 재도약의 기회로 활용하는 전략적 사고가 국익증진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우리의 고용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경쟁력이다. 수시로 변하는 환경에서 고용안정의 기반을 민간 스스로 다져갈 수 있도록 시장흐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당장 요구되는 가격변수의 안정노력은 단기 고통을 덜 수 있지만 결국 자원배분상의 왜곡을 심화시켜 우리의 미래성장 동력을 약화시킬 뿐이다. 향후 스태그플레이션과 자산버블붕괴의 삼각파고가 우리경제를 삼키지 않도록 다방면에서 진취적이고 개방적 자세가 오히려 강조되어야 한다. 새로운 성장동인의 발굴과 글로벌 차원의 다변화된 진출전략은 가장 효과적이고 선제적인 위험관리 전략이다. 최공필 우리금융지주 전무·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고가차도 밑을 문화·휴식공간으로

    고가차도 밑을 문화·휴식공간으로

    도심 속 고가도로와 전철 교각 밑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쓰레기가 나뒹굴고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는 공간에 산책로와 벤치를 설치하고 소규모 공원 등을 꾸며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는 등 시민들의 문화·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기 수원시는 동수원 고가차도와 밤밭 고가차도 밑 공간에 최근 산책로와 소공원을 조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 효원·장안 지하차도의 안전지대와 교차로에는 녹지를 조성해 시목인 소나무를 심었고, 지하차도 입구와 내부 벽면에는 정조대왕의 능행차도인 반차도와 광교산 일출을 그렸다. 과선교 밑에 게이트볼장을 만들어 노인들의 생활체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의왕시는 내손동 갈미∼백운호수 도로변과 계원조형예술대학앞 서울외곽순화도로 하부공간에 ‘문화의 거리’를 조성했다. 갈미∼백운호수 도로 양옆 산사면과 공터 등에는 관람과 휴식을 겸할 수 있도록 조각공원, 야외공연장, 청소년광장, 테마 꽃길, 연못, 산책로 등을 만들었다. 또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하부공간에는 나무데크(나무로 깐 바닥)와 조경, 분수광장, 경관조명 등을 설치했다. 안산시는 도심을 통과하는 전철4호선 교각 밑 공간에서 각종 공공미술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버려진 전철 교각하부 문화공간으로 재생’이란 주제로 고잔역 주변 교각 밑에서 사진전·퍼포먼스·음악다방 등 각종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시는 또 고잔∼중앙역 1㎞ 구간에 협궤철로를 이용한 레일바이크(레일을 운행하는 자전거)를 만들고 비보이·사물놀이·농악 등 음악과 각종 미술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부천 상동신도시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하부공간에는 대규모 스포츠단지가 조성된다. 시는 75억원을 들여 고가도로 형태인 서울외곽고속도 부천 구간(3.2㎞) 중 아파트와 공원 등이 양쪽에 있는 1.7㎞의 하부 공간(면적 63만 5000여㎡)에 12개 종목의 운동장 등을 갖춘 체육공원을 꾸밀 계획이다. 조만간 실시설계에 들어가 늦어도 내년 초 공사에 착수,2010년 말 완공한다는 구상이다. 하부공간에는 풋살, 족구, 테니스, 배드민턴, 농구, 론볼,X-게임, 게이트볼, 야구연습장 등 12개 종목의 운동장뿐 아니라 조깅로와 휴게 광장, 식수대, 헬스기구, 공중화장실, 주차장, 전기·방송·통신시스템 등이 갖춰진다. 부천시 관계자는 “하부공간에 체육공원을 만들고 도로 밑 상판 콘크리이트와 철판, 교각 등의 표면에 컬러로 다양한 문양을 그려넣으면 산뜻해져 시민들의 체육·휴식공간으로 인기를 끌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깔깔깔]

    ●여자 1. 올림픽 경기에서 양궁으로 금메달을 딴 여자? 활기찬 여자 2. 변비로 심하게 고통받는 여자? 변심한 여자 3. 금세 울다가 다시 웃는 여자? 아까운 여자 4. 못 먹어도 고를 외치는 여자? 고고한 여자 5. 다방에 가면 꼭 창 없는 구석에 앉는 여자? 창피한 여자 6. 정말 끝내준 여자? 이혼한 여자●가엾은 고3 수험생 죽어라 공부만 하다 죽어 버린 고3 수험생이 염라대왕 앞으로 갔다. 염라대왕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참 네 운명도 가엾기 그지없구나. 자, 천국과 지옥이 있다. 천국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어디로 가고 싶으냐?” 그러자 고 3수험생이 화들짝 놀라며 하는 말, “어디가 미달이에요?”
  • “여자싫다는 남자봤수?”

    “여자싫다는 남자봤수?”

    한국에선「플레이·보이」자격 조건으로「능란한 춤솜씨」는 필수불가결 한데「스텝」한번 밟아본 일이 없는 국민학교 졸업의 34살짜리 법률상의 총각이 저 유명한「카사노바」경이 무색하게 닥치는대로 엽색 행각을 다니다 들통났다.「여자에 관한한 묻지말라」는 이「챔피언·플레이·보이」의 수법은 어떤 것일까. 13살때 “짝사랑” 여학생 꾀다가 정학당해 대전(大田)경찰서 조사계에서는 비교적 말쑥하게 차린 30대 청년이『남자로 태어나 여자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느냐』는 말을 서두로, 묻기전에 자진하여 자기의 과거를 전부 털어놓은 진풍경이 벌어졌다. 취조경찰관들은 일손을 멈추고 흥미진진한 그의「여성편력」에 시간가는줄 몰랐을정도. 이야기의 장본인은 전북 고창(全北 高敞)군 심원면에서 태어나 겨우 국민학교만을 졸업하고 전국을 무대로 엽색행각을 해오다 지난 7월 최종열(崔鍾烈)여인(32·대전시 석교동)으로부터 사기혐의로 피소, 대전경찰서에 구속돼 취조를 받고있는 현종무(玄鍾武·34·주거부정)라는 사나이. 현은 가난한 농촌의 집안에 태어나 11살에서야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7~8살의 어린이들과 책상을 맞대고 공부를 하던 당시 현은 어린 여학생을 어쩐지 좋아했고, 13살땐 같은 반 여학생을 변소로 끌고 다니다 정학까지 당했을만큼 성적으로 조숙했다는 것. 졸업때인 17살 당시는 술에 취하여 여학생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것이 일과였었다고. 이렇게 일찌기 난봉꾼 소질을 보인 그는 농사 일에는 전혀 취미가 없어 빈둥거리다가 국민학교를 나온 2년후인 19살때 육군에 지원입대했다. 그러나 선천적인(?) 호색가로 태어났던지 현의 여성편력은 엄격한 병영 생활에서도 고쳐지지 않았던 모양. 직업군인으로 들어가 2년만에 중사계급장을 달게된 그는 부대근방의 처녀, 과부들에 손을 뻗치기 시작해 닥치는대로 정력을 발휘, 군대생활 12년동안「결혼빙자 간음 및 근무이탈」로 계급의 강등은 물론 5회에 걸쳐 군부대영창을 출입한 혁혁한 기록을 남기고 4년전 제대했다는 것. 고향에 돌아온 현은 농사일이 죽기보다 더 싫었다. 생각다못한 그는 군에 있을때 여인들을 꾀어본 화려한 과거를 밑천으로 새로운「여자낚기작전」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농사는 싫고 여자는 좋고 당한 여인도 “테크닉” 인정 군대생활에서 마련한 양복을 다려입고「트렁크」에 간단한 필수품을 챙긴채 서울로 무작정 올라갔다. 몇푼안되는 돈도 하숙비로 써버리고 거리로 나서야할 딱한 처지에 놓였던 67년5월 어느날, 우연히도 길거리에서 군에 있을때 사귀었던 이(李)모여인(31·서울종로구 권농동)을 만났다. 현에게는 먹기좋은 먹이를 만난셈. 능란한 화술로 이여인을 꾀고 달랜 현씨는 하숙을 옮겼고, 세관에 취직한다는 명목으로 여러차례에 걸쳐 무려 50여만원을 우려내는데 성공했다. 이 돈을 군자금으로 다방,「바」「카바레」등을 돌면서 여인사냥에 가장 분주할 무렵인 68년9월, 이같은 사실을 눈치챈 이여인이 혼인빙자간음 및 사기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서울형사지법은 6개월징역실형을 선고했다. 형기를 마치고 출감한 현은 무대를 지방으로 옮기기로 하고 부산(釜山), 대구(大邱)를 거쳐 70년10월 대전에 도착, 시내 석교동 최여인집 인근에 하숙방을 정했다. 대상을 찾던 작년12월 중순께 옆집에 살고있는 최여인이 인삼을 팔아 제법 돈도 많이 갖고 있으며 과부라는 것을 알게되자 접근하기 시작했다.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철학을 갖고있는 현의 달콤한 속삭임은 최여인의 마음을 돌리는데 어려움이 없었고, 대전역앞 S하숙에서 첫날밤을 보내게 됐다. 5년동안 과부로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지못한 최여인은 현의 뛰어난 성적 기교에 완전히 녹았다. 경찰의 참고인 진술에서 최여인은 『손끝 발끝까지 마디마디 짜릿한 쾌감으로 밤 가는줄 몰랐다』고 고백, 현의 뛰어난「섹스·테크닉」을 입증. 『결혼하자』는 꾐에 빠져 그녀는 하루가 멀다하고 현을 만나 대전시 중동 무허가하숙집등을 전전하면서 성의 향락을 만끽하고있던 어느날 밤이불속에서 묘한 말이 나왔다. 하룻밤에 2여인을 상대 “후회않는다”며 기고만장 현은 그녀를 포옹하면서『내가 잘못했소』하고 말문을 열기 시작, 고향에는 자기가 10년전에 결혼한 아내가 있다고 말하고 아내와는 결혼당시부터 정이 없어 서로가 이혼하기로 완전합의를 봤는데 자기처럼 불행한 사람이 없을거라고 그럴싸하게 과거를 설명해 내려갔다. 고향에 있는 아내와는 중매결혼이어서 부모들이 이혼을 결사반대, 결국 직장도 버리고 집을 나왔는데 이혼수속을 할 비용이 없으니 1만5천원만 주면 이혼을 하고 최여인과의 혼인신고를 올리겠다는 것이 그 내용. 최여인은 현의 그럴싸한 꾐에 선뜻 가방속에서 1만5천원을 내줬다. 돈을 받아든 현은 다음날부터 역앞 S다방 Y양과 P다방 K양등 두 아가씨를 사귀기 시작했고 서울 H여대 K양(20)도 알게 됐다. 숱한 여자들을 상대하다보니 얄팍한 연애자금이 달리게된 현은 최여인에게 이혼수속비로 2만원을 더 뜯어 냈다. 다시 이 돈으로 3여인을 섭렵, 어떤땐 하룻밤에 한꺼번에 2명의 여인을 상대하는 아슬아슬한 곡예을 계속하기도 했다. 또 며칠이 안가 빈호주머니가 된 현은 K양에게 비슷한 수법으로 돈을 우려내기 시작했고, 지난 5월10일 다시 최여인에게 놀고만 있을 수 없어 세무서에 취직을 하기로 했는데 술대접해야 되겠다고 2만원을 받아 갔다. 2만원으로 3일동안 흠뻑「섹스·파티」를 즐긴 현은 최여인에게 D세무서에 취직이 돼 3개월간 교육을 받아야하는데 교육을 받으려면 9만원은 있어야 되겠다고 요구했다. 인삼장사 밑천을 톡톡털어 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7월말께 대전역앞을 우연히 지나가던 최여인은 현이 어여쁜「미니」차림의 아가씨와 다정하게 걸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당장에 쓰러질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현이 갈만한 곳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지 5일만에 대전시 원동 무허가 하숙집에서 Y모양(23)과 함께 잠을 자는 그를 찾아냈고, 다짜고짜 그의 멱살을 잡아 대전경찰서로 끌고와 고소를 하게된 것. 그러나 현은 여인의 돈을 뜯어 여자를 사귀어온 자기의 과거를 하나도 숨김없이 털어 놓으며, 오히려「걸·헌팅」솜씨를 자랑이라도 하려는듯 후회의 빛이없다. <대전=김앙섭(金昻燮)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9월 12일호 제4권 36호 통권 제 153호]
  • 다이어반지와 교장과 돈

    다이어반지와 교장과 돈

    K고교장 김예환(金禮桓)씨(47)와 Y여중 교장 백신숙(白信淑)씨(40) 부부가 8만$짜리(한화로 3천2백만원) 밀수「다이어」를 사들였다가 들통이 났다. 부부 모두 일류를 자랑하는 명문대학의 출신에다가 교육자요 저명한 종교인의 자손들. 이 믿을 수 없는 사건이 터지자 벌집을 쑤신듯 화제가 비등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김씨의 학교에서 일했던 전 K중고교 일부 직원들은『올것이 왔다』는 주장들. 김씨 부부가 돈을 번 이야기, 학교운영에 얽힌 이야기등 한창 시끄럽다. 왜 그럴까? 귀따가운 그「내막」의 소리를 들어본다. 젊어 너무 고생한 때문에 돈에 대한「콤플렉스」탓도 『그분이 워낙 젊어서 고생했기때문에 사실은 돈에 대한 어떤「콤플렉스」가 있었는지도 모르죠』 8월27일 정오께 K고교 서무과장 민우성씨의 말이다. 『교장선생부인이 오래전 15만원짜리「다이어」반지를 산일이 있는데 그걸 몇달만에 50만원을 받고 판 일이 있었답니다. 어느 사람치고 이런 엄청난 장사에 반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어요? 그게 조금씩 단계를 올리다보니 이번과 같은 결과가 됐답니다. 저도 전연 몰랐는데 어제(8월26일)구치소에 가서 교장선생님께 듣고 알게 됐어요』하며 혀를 차고 개탄한다. 김씨의 본적은 서울서대문(西大問)구 만리(萬里)동2가 231의 7호. 현주소는 같은 동네인 만리동2가 239의 7호로 되어있다. 소위 KS「마크」라는 K고교와 S법대를 졸업한 수재. K고교 설립자인 그의 아버지를 따라 대학을 졸업하기 전부터 교직원으로 근무했다. K고교는 1974년6월24일 재단법인으로 인가났는데 그전까지는 감리교의 성경학교에 불과한 미인가 학원. 설립자 K씨가 성경학교를 인수하면서 각계의 찬조금을 기금으로 재단법인 인가를 얻어 냈다는 것이다. 이때만해도 김씨네 가족은 생활이 궁핍하여 남의집 셋방살이로 전전했다는 것. 더구나 6·25동란으로 석조 건물인 8개 교실이 완파되면서 수복후 이들 김씨 부자가 겪은 고생은 참담했다는 얘기다. 1959년 중학교 30학급 고등학교 18학급등으로 학급증설 인가를 받게 되면서 규모가 잡히고 3천명을 수용할수있다는 대강당까지 준공을 보았다. 60년 1월13일 중학교 주간 24학급, 야간 15학급, 고등학교 주간 15학급, 야간 12학급등 총 66학급 3천4백여명이라는「매머드」학교로 인가를 보면서 비대화했고, 이해 10월1일 설립자가 정년퇴직하자 아들인 김예환씨가 교장으로 취임했다. 『교장선생님은 가령 결재올리는 종이도 빈칸이 없게 아껴쓰게 하고, 빈칸이 있으면 절반으로 줄여 쓰게 했어요. 심지어 가정에서 사모님에게 절대로 월급을 송두리째 주시는 법이 없읍니다. 한꺼번에 주면 다 써버린다고 주급으로 2만원씩 쓰게할 정도로 근검·절약했어요』 민(閔)씨의 자랑이다. 그러나 이러한 김씨의 근검·절약은 그의 생활규모에 비해 도무지 납득할수 없는 의문을 자아내주기도 한다. 변소에도 전화·TV 놓고 교원 퇴직금 제대로 안줘 K학교 남쪽에 붙어있는 울창한 숲속의 저택이 교장사택. 대지가 줄잡아 3백평이상.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한 2층이지만 건물안에 들어가면 사정이 다르다. 『검사생활중에 그런 집은 처음 봤어요. 김씨를 잡고, 보석을 판 홍(洪)여인을 잡기위해 3일동안이나 그 집에서 잠복했죠. 방마다 아래윗층할것없이 TV와「에어콘」이 있어요. 전화도 물론 각방마다 있고 심지어 변소에도 TV와 전화가 있어요. 덕분에 시원한 휴가(?)를 즐긴셈이지만 그 호사스러움에 깜짝 놀랐어요. 그리고 묘한게 아래윗층 방마다 집밖으로 통하는 문이 달려 있어요. 어느 방에 있거나 즉시 집밖으로 나올수 있는 이상한 집이었읍니다』 서울지검 25호 김유후(金有厚)검사의 수사후일담이다. 저택의 그 호화스러움에 값하는 것이 또 있다. 김예환씨는 1개월이 멀다하고 자가용 승용차를 갈아치우는 별난 성격이라는 얘기. 지금은 최신형「비크」를 비롯, 3대의 자가용을 갖고 있다는 것. 이밖에도 그에게는 부산(釜山)근처의 별장과 제주(濟州)도의 별장을 비롯, 서울시 중(中)구명(明)동2가47의 청보(靑保)「빌딩」과 서대문 모처에도「빌딩」이 있고 경기(京畿)도 여주군 능서(陵西)면 매유리336 일대의 광대한 대지가 그의 소유로 알려졌다. K중고교의 총건평 3천4백20평에 1백5개 교실, 이에 맞먹는 Y여중·상고와 W국민학교등 9개학교가 있으니까 그의 재산과 재단의 자산은 수억대를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돈과 재산에 대한 그의 집념은 거의 광적인 것입니다. 가령 교원에 대한 퇴직금이 그 예이지요. 그는 교원을 취직시킬때 묘한 각서를 받는데 그 내용은「학기도중에 사직하게되면 퇴직금을 절반만 지급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년이상 근무하는 교원도 그만 두게될때는 공교롭게도 학기 도중을 택하게 합니다. 퇴직금을 반밖에 받을 수 없게 하고 그나마 아직까지 그걸 제대로 받아본 교원이 없는걸로 압니다.』 퇴직교사인 N씨의 말. N씨는 다시 잇는다. 『2년전 설립자가 죽자 동상을 교정에 세우게 됐죠. 이 동상기금으로 1학급당 5만원씩, 교사1인당 1만원씩 거두었읍니다. K학교「그룹」전체가 총1백30 학급이니까 5만원씩 거두었으면 6백50만원 됩니다. 그리고 1백30학급에 담임선생만 교직원수로 치면 1백30명에 1만원씩 거두어 1백30만원, 총합계 7백80만원이란 막대한 돈이 되죠. 요즘 동상 제작비가 그럴싸한 것은 3~4백만원쯤 되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습니까? 당장에 4~5백만원을 벌었겠죠. 이게 말썽이 나서 시교육위로부터 되돌려 주라는 행정지시를 받았어요. 그러나 하지도 않은「보충수업」을 했다고 하고선 그걸 선생들에게 지급한양 꾸미고 돈의 행방은 감감무소식이 됐죠. 이런 식으로 돈을 벌었어요. 워낙 법이론에 밝아 갖은 구실로 빠져 나갔죠』 법이론 밝아 구실 잘붙여 밀수품 아니란 각서 받고 전직 K고교 교사였던 U씨는 말했다. 『이런말은 우스운 얘기지만 그 학교를 그만두는 선생들이 교장의 갖은 비행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서 돈을 받아낸 일이 있지요. 김모선생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그분은 생물담당으로 있었죠. 어느날 교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가 차마 못볼 장면을 목격했어요. 이렇게 자기가 저지른 비행을 무마하고자 상당한 금품을 자진해서 협상조로 지불하면 그 선생들은 퇴직금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게 됩니다』 교장의 비행에 분개한 전직 M모교사는 교장의 비행을 낱낱이 적은 유인물을 만들어 뿌리려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는 것. 『제가 만든 유인물의 모든 사실을 교장은 낱낱이 시인하고, 용서를 빌었읍니다. 2년전 종로2가 어느 다방에서였죠. 나는 그가 준엄한 양심의 심판을 받고 돌아서서 참다운 교육자가 되기를 바랐읍니다. 이번에 만약 무혐의로 풀려 나온다든가하면 저는 다시 칼을 뽑아 이땅의 썩어빠진 교육계를 각성시키도록 하겠읍니다』 M씨의 강경한 발언이다. 『교장실 금고에서 밀수「다이어」가 쏟아진 것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읍니다. 그러나 교장님은 그걸 산 일은 없고 사모님이 피서갈때 보석을 저택에 두면 위험하다고 해서 금고에 보관 했던 것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김씨를 변호하던 서무과장 민씨는 끝으로 김씨가『죄없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앞뒤가 맞지않는 말을 하기도했다. 『교장선생님이 밀수범 홍여인으로부터「다이어」를 살때「다이어반지는 절대로 밀수품이 아니며 문제가 생기면 책임진다」는 각석를 받아 놨답니다. 그 각서도 검찰에 압수당했는데요, 변호사들은 밀수품이 아니라는 각서를 받아놓았으니까 무죄로 풀려날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안심이 좀 되긴 합니다만…』 [선데이서울 71년 9월 5일호 제4권 35호 통권 제 152호]
  • 남편유혹 삼가라 다방기물 와지끈

    자매는 용감했다(?) 24일 인천경찰은 남편이 자주가는 다방「마담」집을 찾아가 쑥밭으로 만든 자매를 입건. 인천시 한모씨(30)는 평소 남편이 자주 가는 S다방 「마담」이모여인(28)을 의심해왔는데, 23일 남편이 아무 소식없이 안들어오자 다음날 자매가 합세하여 S 다방으로 돌격. 다짜고짜 이 「마담」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매질은 물론 전화기 냉장고 등 35만원 어치의 기물을 때려 부수었던 것. -기운없는 다방「마담」어디 살겠나. [선데이서울 71년 9월 5일호 제4권 35호 통권 제 152호]
  • [진실TALK] 신동, ‘부쩍 자란’ 그를 만나다 ①

    [진실TALK] 신동, ‘부쩍 자란’ 그를 만나다 ①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이하 슈주)의 멤버 신동. 첫 데뷔 당시 그의 존재는 소위 말해 ‘이질감’이었다. ‘꽃 미남’과는 거리가 먼 외모와 크지도 않은 키와 살집이 있는 몸매의 그는 다소 동떨어진 존재 그 자체였다. 2005년 데뷔 당시 한 버라이어티 쇼에서 “저는 때려도 괜찮아요. 멤버들 중 가장 팬이 없거든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데뷔 3년차 신동은 슈주 활동 외에도 MBC ‘뽀뽀뽀 아이조아’, 케이블 채널 M.net ‘DJ 풋사과 사운드’, MBC FM ‘신동 김신영의 심심타파’ 등 MC는 물론 지난 4월 종영된 KBS 2TV 드라마 ‘싱글파파는 열애 중’에도 출연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진실 톡’ 첫 회에서는 슈주의 멤버 신동이 아닌 인간 신동희를 만나 보았다. 최근 슈주 활동이 뜸한데 어떻게 지냈죠? 밤에는 라디오 DJ를 하고 낮에는 잠만 자고 있어요. 많이 잘 때는 하루 12시간도 잤으니…많이 자면 좋아질 줄 알았던 피부가 안 좋아졌어요. (웃음) 아! 얼마 전에 멤버들과 릴레이 마라톤을 했는데 그때까진 살이 빠졌는데 지금은 또 찌고 있죠. 친구들과 밤에 치킨 먹고 아침에 삼겹살 먹고 그래요. 하하. 슈주를 떠나 이렇게 만난 건 처음인데. 그렇네요. 사실 개인 활동할 때는 편한 게 미용실 부분이에요. 13명이 할 때는 멤버 전체가 2시간이 걸렸어요. 저는 빨리 끝나는 편이라 30분 만에 메이크업과 헤어를 끝내고 줄창 기다렸거든요. 단점이라면 참 외로워요 혼자 다해야 하는 것이 힘들죠. ‘뽀뽀뽀’를 오랜 기간 진행하고 있는데 어때요? (뽀뽀뽀를 맡을 당시)처음엔 무척 부담됐어요. 내가 어려서 보고 자라던 건데 “잘 할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해를 주지는 않을까?”는 생각이 들었죠. 벌써 1년 2개월을 하고 있는데 점점 애정이 생겨요. 편해지고. 라디오 DJ도 하던데? 좋아요. 개인적인 이야긴데, 우리 어머니 꿈이 제가 라디오 DJ를 하는 거였어요. 어머니가 평소 청소하실 때나 밥하실 때 라디오를 틀고 하시거든요. 제가 라디오를 하는 시간이 자정부터 새벽 2시까진데 하루도 안 빼놓고 들으세요. 또 다른 좋은 점은 많은 분들의 사연을 직접 들을 수 있어서에요. 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소통한다는 것 그게 매력 아닐까요? 어떻게 춤과 노래를 하게 됐어요? 초등학교 때 친구들을 사귀려고 시작했어요. 전학을 갔는데 당시 H.O.T가 유행했거든요. 그래서 저도 같이 동아리를 하려고 했고 나름 오디션도 봤죠. 중학교 때는 제 방에 전신 거울이 있었는데 거울을 볼 때마다 웨이브를 연습했어요. 그러다 절 가르쳐 준 친구들보다 더 잘하게 됐죠. 나름 자신도 있었어요. 경기도에서 댄스 경연 대회 우승도 하고 그랬거든요. 하지만 고등학교 때 전국 대회에 가서 예선 탈락했죠. 그래도 포기한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춤을 정복해보자’는 생각에 발레, 댄스 스포츠를 배우다 지금의 기획사에 들어가게 됐죠. 참 많은 가수가 데뷔하고 경쟁이 심한데, 어떻게 생각해요? 무섭죠. 모든 무대, 방송이 긴장 되요. 많은 분들이 제 외모만 보고 “넌 버라이어티 잘 할거다”고 하시는데 제가 의외로 소심하고 낯을 가려요. 실제로 데뷔 초에 버라이어티를 나가면 “한마디라도 더 해야지”, “더 주목 받아야지”하는 강박관념에 시달렸어요. 지금도 모든 무대가 무서워요. 라디오도 경쟁이고 제가 진행을 못해서 “청취율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어요. 극복해 나가야죠. 데뷔 3년째인데 지금까지 가장 어려웠던 시기가 있다면? 데뷔 음반 나오기 전이죠. 많은 가수들이 겪는 것이지만 데뷔 날짜가 취소되는 일이 많았어요. 친구들에게 “나 음반 나온다”고 자랑 많이 했거든요. 그럴 때 마다 욕 좀 먹었어요. 하하. 2편에 계속 서울신문NTN 김경민 기자 star@seoul.co.kr / 사진=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누나 동생하더니 몽땅 바친 유부녀

    누나 동생하더니 몽땅 바친 유부녀

    젊은 정부와 그 애인에게 『다시는 괴롭히지 않는다』는 각서를 써주고 20만원을 받아든 30대 여인은 엉엉 통곡했다. 남편과 자식들을 버리고 이웃 하숙방 학생과 사랑에 빠졌던 중년여인-돈도 마음도 몸도 다 바친 사랑이었으나 끝내 그 젊은 임은 마음에서 영원히 떠나 버리고 만 것. 밀회 거듭할수록 20살위 남편이 싫어져 용산구 후암동에서 왕(王)모씨(55)의 아내이며 4남매의 어머니로 남부럽지 않게 살던 홍팔자(洪八子)여인(35·가명·서대문구 북가좌동)에게 비극이 싹튼 것은 66년 3월 15일. 홍여인을「누나」라고 부르며 따르던 이웃의 하숙생 S대학 법학과 3학년 남정식(南正植)씨(30·가명·성북구 상계동)를 알면서 부터였다. 『따르릉 따르릉』 어느날 막 설겆이를 끝내고 막 방에 들어서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아, 여보세요』 『난데요, 누난 지금 뭘하고 있수?』 『뭘하긴 그냥 이렇게 앉아있는 거지』 『집에서 그렇게 죽치고 앉아있지 말고 나하고 오늘 극장구경이나 하며 바람이나 쐬.어젯밤 누나가 우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마음 아팠는데…』 홍여인은 순간 어젯밤 남편과 싸움을 한 사실을「미스터」남이 알고있는 것이 쑥스럽기도 했지만 잠을 한숨도 못잤다며 격려를 해줄 때는 왈칵 눈물이 솟구쳤다. 『그럴까. 어디서 만날까?』 『「아카데미」 극장옆 S다방에서』 찰칵하고 전화는 끊겼다. 여느때면 청계천 1가에서 구두상점을 하는 남편의 곁에서 함께 장사를 하며 일을 도와야 할 낮12시. 홍여인은 영화관에서 구경을 하고 나와 「미스터」남과 함께 우이동 S산장에서 점심을 했다. 『누나 아무리 돈도 좋지만 그 늙은 영감장이하고 어떻게 같이 살아?』 『어떡허니, 어린것들도 있고……』 「미스터」남은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를 통해 홍여인의 처지를 낱낱히 들어 알고 있었다. 홍여인의 남편은 청계천에서 구두상을 하는 왕모씨. 이북에 처자식을 두고 단신월남한 왕씨는 20살아래인 홍여인과 10년전 재혼, 아들셋 딸하나를 낳고 중류 이상의 생활을 했다.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한뒤 영등포에 있는 T방직 여공생활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홍여인은 이웃아낙네의 소개로 왕씨와 결혼을 했던 것. 그러나 남편은 주벽이 심한데다 성격이 거칠어 툭하면 때렸다. 홍여인은 또한 남편구실을 제대로 못하는 영감 때문에 마음이 늘 들뜬 가운데 성(性)의 쾌락을 갈망했다. 『누나 자기 팔자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어떤 결심을 해봐』 (어떤 결심?) ”이래선 안돼” 뉘우치면서 2년동안을 불타는 매일 홍여인은 대꾸를 할 기력을 잃고 있었다. 홍여인의 파르르 떨리는 손목을 「미스터」남이 잡았다. <이래서는 안돼> 홍여인은 마음속으로 다짐했으나 어느새 욕정에 들뜬 30대여인의 육체는 젊은 총각의 품속에서 활활 타고 있었다. 산장의 역사가 이루어진 뒤부터 두사람은 남편몰래 자주 만났다. 지금까지 남편에게서 느끼지 못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애틋함을 「미스터」남에게서 느낀 홍여인은 남편과의 잠자리가 오히려 지긋지긋해졌다. 홍여인은 남편이 가게로 나가면 으례「미스터」남의 하숙방에 들어가 놀았다. 남들이 눈치챌까봐 주인마나님을 끌고들어가 함께 화투놀이를 했다. 홍여인은 이럴 때마다 남편과 자식들에게 못할 일을 하고 있구나, 다시는 그를 만나지 말아야지, 하고 뉘우치기도 했단다. 그러나 달아오르는 육체는 「미스터」남 없이는 살 수 없었던 것. 홍여인은 제구실을 못하는 남편에게 신경질을 부렸다. 『뭐 이런 남자가 있어!』 남편은 늙어버린 자신의 육체를 탓하며 한숨만 쉬었다. 홍여인은 그럴적마다 「미스터」남을 불러내 일류「호텔」과 여관 등으로 끌고 다니며 육체의 향연을 벌였다. 『「미스터」남 내가 집을 뛰쳐나오면 나를 받아 주겠어?』 『원 별소리를 다 하는군.이혼만 하고 나오면 당신의 행복은 내가 책임을 질테야』 『정말?』 홍여인은 「미스터」남을 왈칵 껴안기 일쑤. 이런 생활을 2년. 이들의 비밀도 오래가지 않았다. 7월초순 어스름 저녁. 서울 청량리역 앞길을 거닐던 이들은 남편 왕씨의 눈에 띄었다. 끝내 이혼하고 새살림을 왕씨는 부인과「데이트」를 하는 장본인이 이웃에 사는 대학생이라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본체 만체 집으로 돌아와 홍여인에게 다그쳤다. 『당신 왜 그녀석 하고 다니지?』 『같이 다니면 어때요?』 찰싹, 남편 왕씨는 홍여인의 뺨을 갈겼다. 『남자 구실도 못하는 주제에 때리긴 왜 때려요』 『뭐라고? 저런 년이』 이 싸움은 10년동안 동거해온 두 부부를 갈라놓는 계기가 됐다. 남편 왕씨는 돈 50만원을 홍여인에게 주고 합의 이혼을 했다. 집에서 나온 홍여인은 뛸것만 같은 흥분속에 홍제동에다 15만원짜리 전셋방을 얻어 「미스터」남과 새살림을 차렸다. 대학을 졸업한 「미스터」남은 직장을 얻지못해 1년 남짓 홍여인에게 더부살이를 했다. 날로 식어간 그이의 마음 알고보니 약혼녀 버젓이 그래도 홍여인은 생전 처음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것같아 즐거웠다. 홍여인은 1년동안 두번이나 아기를 가졌다. 그럴 때마다 「미스터」남은 경제적인 이유를 내세워 아기를 떼게했다. 또 혼인신고를 조르는 홍여인에게 조급하게 서두를 것보다 자리를 잡고난뒤 친구들 앞에서 떳떳이 식을 올리자고 했다. 그러나 홍여인은 「미스터」남이 자꾸만 자기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홍여인은 「미스터」남의 마음을 붙잡아 둘 궁리를 했다. 홍여인은 「미스터」남에게 돈 50만원을 줘「메리야스」공장을 차리게 했다. 새 양복도 철따라 마춰입혔다. 그러나 경험없이 시작한「메리야스」공장은 6개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미스터」남은 술을 마시고 들어올 때가 많았고 외박이 잦아졌다. 처음에는 사업에 실패한 좌절감을 달래려니하고 생각도 했으나 「미스터」남의 태도는 점점 이상했다. 지난 16일 참다못해 홍여인은 「미스터」남의 뒤를 밟았다. 설마하고 내친 발걸음이었으나 이날 하오 2시께. 「미스터」남은 후암동 어느집에 들러 아가씨를 데리고 나와 팔짱을 끼고 남산공원쪽으로 걸어간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앞이 캄캄했다. 그 아가씨가 벌써부터 「미스터」남이 사귀어 오다 약혼한 김(金)모양(24)이라는 것을 안 것은 그 후의 일. 이것이 남편 자식을 버린 중년여인이 다다른 사랑의 종막이었다. <안태석(安泰錫) 기자> [선데이서울 71년 8월 29일호 제4권 34호 통권 제 151호]
  • 맥주만 마시고 가버린 여우들아

    맥주만 마시고 가버린 여우들아

    피서객들이 돌아간 텅빈 바닷가엔 파도소리만 가득할 뿐. 수많은 발자국들이 찍힌 모래톱을 파도가 밀려와 지우면서 남기고 간 사연들을 씻어내고 있다. 눈부신 태양과 젊음과 낭만이 넘치던 바다. 피서지에서 생긴 사연들을 대천(大川)해수욕장 어느 대학생「티·룸」의 낙서판을 통해 모아본다. 5천명이 스쳐간 다방에 갖가지 사연 담은 책5권 3년전부터 『젊은이들의 광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대천(大川)에 「비치」다방을 시작했다는 이희조(李喜朝)(외대(外大)3년)은 텅빈 바닷가를 내다보며 올해「피서지에서 생긴일」들을 들려준다. 그러면서 아무렇게나 철한 두툼한 낙서책 5권을 내준다. 늦장마 덕분에 별로 재미를 못보았다는 올해 대천해수욕장 경기지만 그래도 5천여명의 젊은이들이 거쳐갔다는 「비치」다방에 그들이 남기고간 낙서사연들. 8절 백지위에 「사인·펜」「볼·펜」「매직·펜」만년필, 심지어는 연필까지 동원해서 끄적여 놓은 글과 그림들. 『이것들(낙서)을 보는 재미에 혼자 남고 말았읍니다. 이제 슬슬 나도 짐을 꾸려야겠읍니다. 올 여름 대천얘기는 이속에 다 들어있으니 읽어보십시오』 「비치」다방 주인겸 「마담」겸 「플레이어」인 이(李)군의 얼굴에 아쉬움이 어리는 것 같다. 즐겁게 놀기 전에 우선 네주머니부터 살펴봐라, 멍청아! 아마도 이 친구는 천방지축 모르고 놀다가 보니 예정일보다 훨씬 일찍 빈주머니가 됐던 모양. 뒤에 오는 후배들을 위해 선배로서 충고하고있다. 그러나 이 선배님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은 후래자(後來者)가 있었던 모양이다. 형님말쌈이 옳은 줄 미처 몰랐읍니다. 멍청한 놈 셋이서 돈 털리고 알거지가 돼서 쫓겨 갑니다. -20·얼간이 3형제 얼간이 노릇 하고 간 친구가 이들 뿐만은 물론 아니었던 모양. 공갈조의 구애문(求愛文)도 있고 “왔노라 즐겼노라 가노라” 올해는 대천(大川)이 소천(小川)으로 변했구나. 멍만들고가는 사나이. 빈주머니를 달고 갈곳을 몰라하는 서글픈「캥거루」신세여! 오늘 가버린 세 마리 여우들. 어제 밤새 맥주 사줄 때는 한마디 언질도 없더니… 덕분에 중량급에서 초경량급으로 전락한 초라한 내 지갑. 즐거워야 할 피서지가 이상과 같이 주로「경제적」인 타격으로 우울하게 변해버린 경우도 많지만 색다른 이유 때문에 울고 간「케이스」도 많다. 살갗을 태우러 왔다가 마음만 태우고 가다. 제발 하느님이시여 이 못난 놈에게도 「걸·프렌드」라는「프레센트」를! 사람 환장하겄는디, 우짤고. 이 머스마들은 속 없이「코피」만 마시고 있을 참인가베. 바다에 오면 마음이 넓어지는 법. 소위「깡」을 부려보고 싶은 용기가 남녀 누구에게서나 절로 우러나오는가 보다. E大생이 난생 처음 술을 마셨어요. 알딸딸합니다. 그이와 나는 3일 전에 만났어요. 다음날 「키스」할 뻔 했어요. 오늘 난 어떻게 해야 좋겠어요? 너는 뭐냐? 나는 나다. -배짱 네것이 내것이고 내것도 내 것이다. -도둑놈 구애(求愛)작전도 가지가지. 그럴싸하게 자화상을 「스케치」한 옆에다 친절하게 숙소 약도와 함께 서울집 전화번호까지 적어놓은 세심파가 있는가 하면, 단도직입적으로 자기에게 오라는 식의 반 공갈조의 협박구애문까지 있다. 새나라의 처녀들은 일찍 시집갑니다. 아직까지 「쥔 없는 몸」은 옆 「덴뿌라」집으로 연락바랍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질 좋은 「물건」다수 입하! 선착순. 빈털터리 한탄·우울한 푸념도 곳곳에 <찾습니다> 바닷가에서「척추」뼈 한개 잃었읍니다. 찾아주시는 분에겐 「갈비」뼈 한개 드리겠읍니다. 여관 207호실로 <자술서> 주소: ○○호텔 A특호실 성명 : 멀거니 (내가 항상 눈을 멀건히 뜨고 있어서 친구가 지어준 아호임) 상기 본인은 너무 외로와서 24일 밤12시부터 1시까지 고성, 괴성등으로 이름모를 처음만난 또한 친구와 주민(특히여자)들의 마음을 싱숭생숭「메이크」했기에 자술합니다. 현재 괴로움의 감옥에 갇힌 몸이오니 부드러운 구원의 손길을 목말라 합니다. 낙서를 해놓은 걸 보면 대개 그 사람의 인품은 물론 직업까지도 알수있다고 한다. 학생이라면 전공하는 학과를 통해 세상을 풀이해보려는 본능이 있는가 보다. 제길! H₂O + NaCl + MgCl₂ …나+자외선=깜둥이+쓰리고+아프고… -서을공대 하필이면 비오는 날 태어난 죄로 소금을 빚어야 했고, 하필이면 해뜨는 날 태어나서「아이스케키」장수가 됐고, 하필이면 빚갚는 날 태어나서 거지가 됐고, 하필이면 구름 낀 날 태어나서 대천에서 우울해야하는 인과관계. -J대 철학과 K생 5권의 낙서집 가운데서 가장 통쾌하며 시원한 낙서는「하니발」의 명언을 이용한『왔노라! 즐겼노라! 가노라!』였다. <대천에서 공영명(公英明)기자> [선데이서울 71년 8월 29일호 제4권 34호 통권 제 151호]
  • [여성&남성] ‘드라마·영화 속 그들처럼’ …남녀들의 로망

    [여성&남성] ‘드라마·영화 속 그들처럼’ …남녀들의 로망

    누구나 가끔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한다. 특히 일상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게 영화·드라마 주인공의 극적인 삶은 너무도 매력적이다. 자신을 괴롭혀왔던 직장 상사에게 시원하게 복수하고 사표를 던지는 ‘싱글즈’의 동미(사진 오른쪽·엄정화)는 모든 커리어 우먼이 꿈꾸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또 자신에게 닥쳐온 불행을 이겨내고 진정한 자유를 찾는 ‘글레디에이터’의 막시무스(러셀 크로)는 이 시대 고개숙인 남자들의 우상이다. 이 시대 젊은 남녀가 닮고 싶은 드라마·영화 속 주인공들은 누구이며, 왜 그들에게 열광하는가. 남녀들의 로망을 따라가 보자. ●美드라마 ‘프렌즈´ 레이첼 스타일 굿~ 직장인 김모(25·여)씨는 미국드라마 프렌즈에 나오는 레이첼(제니퍼 애니스톤)을 볼 때마다 그녀의 패션스타일이 너무 부러워 참을 수 없다. 깔끔한 세미정장 스타일에 세련된 머리스타일을 볼 때마다 김씨는 레이첼의 스타일을 따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보았던 프렌즈 속 인물 중에 레이첼이 가장 사랑스러웠어요. 저도 그녀처럼 하면 아름다운 여자가 될 거라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그래서 김씨는 레이첼의 패션 스타일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공부했다. 레이첼만의 스타일인 ‘베이직하고 깔끔하면서도 세련된 스타일’을 표현하기 위해 베이직한 스타일의 옷만 구입한다. 또 긴 생머리의 레이첼 헤어스타일을 표현하기 위해 그녀는 머리를 기르는 중이다. 회사원 이모(28·여)씨는 영화 ‘싸움’에 나온 배우 김태희를 보고 “어떻게 저럴 수 있지?”라며 부러움에 치를 떨었다.‘싸움’은 ‘외모의 지존’으로 불리는 김태희가 ‘망가진’ 이미지를 내세워 흥행을 도모한 영화였다.“원래 배우는 예뻐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죠. 예쁜 데다 연기력까지 갖춘다면 어떤 역할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이씨는 영화를 보는 내내 스토리에 몰입할 수 없었다. 상대 배우인 설경구와의 자동차 추격전과 빗속 난투 등 곳곳에서 헝클어지고 처참한 모습을 보이는 데도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무 완벽한 얼굴이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는구나라고 느끼는 순간 배우로서 김태희는 별로 맘에 안들게 됐지만, 부러움은 그대로 남았죠.” ●영화 ‘너는 내 운명´ 같은 사랑을 꿈꾸며… 회사원 정모(31)씨는 최근 본 ‘어웨이 프롬 허(Away from her)’라는 캐나다 영화를 보고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 두 주인공을 부러워했다. 영화는 45년을 함께 산 부부에 대한 얘기였다. 알츠하이머를 앓게 된 부인이 정신이 뚜렷한 상태에서 스스로 치료시설에 들어가 살겠다고 하고, 남편은 안타깝지만 보내고 만다. 하지만 격리 한 달 뒤 부인은 남편의 존재를 잊고 시설에서 만난 새로운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남편은 전혀 부인을 원망하지 않는다. 또 시설에서 돌아가게 된 부인의 새 남편 집으로 찾아가 다시 시설로 들어가달라고 부탁한다는 얘기다. “그렇게 사랑을 받고, 한 사람을 그토록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사람, 평생 만나기 힘들지 않나요.” 회사원 유모(34)씨는 얼마 전 회사에 새로 들어온 여사원에게 관심이 생겼다. 간혹 그녀가 일하는 자리 근처를 지나면 얼굴을 마주치게 되는데, 그녀의 눈웃음은 정말 매력적이다. 유씨는 그녀와 눈인사를 할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하지만 그녀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었다.“그녀가 정말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걸까, 아니면 의례적인 인사일까?” 유씨는 답답한 마음에 가슴만 졸이고 있다. 유씨는 ‘왓 위민 원트 (What women want)’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인 멜 깁슨이 여자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진 것이 정말 부러웠다. 무엇보다 그녀의 속마음을 알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총각 김모(36·직장인)씨는 3년 전부터 영화나 드라마에서 순정을 바쳐 사랑의 결실을 맺는 남자 주인공들이 부럽다. 아직도 2005년 개봉돼 화제를 모았던 영화 ‘너는 내 운명’의 김석중(사진 왼쪽·황정민)을 종종 떠올리곤 한다. 서른여섯 살 노총각 석중이 운명의 여인 전은하(전도연)를 알게 된 뒤부터 시종일관 지고지순한 사랑을 바치는 데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석중은 여자의 집안이나 재력은 물론 다방 종업원이라는 직업도 상관치 않았다. 심지어 은하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것마저도 개의치 않았다. 오직 사랑 하나에 ‘올인’한다. 김씨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걸 알고 놀랐다.”면서 “석중은 세속에 찌든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준 인물”이라고 말했다. “요즘 남녀는 소위 알아주는 학벌에 든든한 직업, 짱짱한 집안을 선호하죠. 저도 잠시 그랬어요. 하지만 영화 속 석중을 만난 뒤로는 오직 ‘사랑’ 하나에 모든 걸 헌신하는 순수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드라마 ‘스포트라이트´ 주인공처럼… 공기업에 다니는 홍모(27·여)씨는 직장 생활에 만족하지 못해 늘 일탈을 꿈꾼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기업에 취직했지만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고 상사에게 시달리는 것도 이젠 신물이 날 지경이다. 홍씨는 기회만 되면 회사를 탈출하겠다는 생각뿐이지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는 것도 아니다. 회사 업무가 마음에 들지 않다보니, 열정을 가지고 일하기 힘들고 업무성과도 좋을 리 없다. 하루하루가 무미건조한 홍씨는 요즘 ‘스포트라이트’라는 드라마에 빠져 있다. 기자 생활을 그려낸 드라마이긴 하지만, 그 속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히 소화하면서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이는 ‘바이스’ 김보경이 그렇게 멋있게 보일 수가 없다. 물론 이런 홍씨에게 기자 친구는 “드라마라서 그렇게 나오는 거지 실제 기자는 인간답지 못한 생활의 연속”이라고 충고한다. 하지만 홍씨에겐 그런 힘든 일상마저 선망의 대상이다. “드라마에서 바이스가 후배기자들한테 지시하는 모습을 보면 여자가 봐도 정말 멋있어요. 물론 기자생활이 힘들다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한 번은 꼭 해보고 싶은 일이죠.” 방송기자가 희망인 대학생 윤모(22·여)씨는 요즘 ‘스포트라이트’의 서우진(손예진)을 볼 때마다 부러울 따름이다. 윤씨는 서우진의 모습이 몇 년 후 자신의 모습이길 고대한다. 윤씨는 서우진이 마이크를 들고 카메라 앞에서 리포팅을 하는 모습을 보면 한없이 부럽다는 생각만 든다. 오태석(지진희) 캡에게 엄청나게 ‘깨지는’ 서우진을 볼 때도 부럽다. 윤씨는 마구 혼나더라도 기자라는 이름만 갖게 되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어릴 때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드라마 속 서우진이 한없이 부러운 이유는 단 하나, 제가 꿈꾸는 방송기자가 그녀의 직업이니까요.” ●영화 ‘섹스 앤 더 시티´ 속 그녀들은 나의 로망 의류업계에 종사하는 이모(29·여)씨의 선망의 대상은 최근 개봉한 영화 ‘섹스 앤 더 시티’ 속의 주인공들이다. 이씨는 칼럼니스트이자 뉴욕 스타일의 대명사인 ‘캐리’, 화끈하고 열정적인 ‘사만다’, 이지적이고 시원시원한 ‘미란다’, 사랑스럽고 우아한 ‘샬롯’ 등 4명의 여성들이 발산하는 매력에 푹 빠졌다. 특히 그들의 패션은 직업을 떠나 같은 여자로서도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옷, 구두, 가방에 각종 액세서리까지 명품으로 한껏 멋을 부리는 등 외모를 가꾸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그녀들의 삶이 보세점을 전전하며 가장 싼 가격의 물건을 구입하는 자신과 너무나 대비됐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기죽지 않는다. 이씨도 언젠가는 영화 속 그녀들처럼 멋진 삶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영화 속 그녀들처럼 사는 건 엄두를 못내요. 지금은 대리만족 수준이지만 저도 어엿한 커리어우먼인 만큼 실력을 쌓아간다면 머지않아 그녀들처럼 살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확신해요.” 회사원 임모(31·여)씨는 ‘금발이 너무해’라는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엘르 우즈’를 부러워한다. 그녀는 금발이고 예쁘지만 공부도 잘하고 능력도 출중한 인물로 그려진다. 임씨는 물론 팔방미인인 그녀가 부럽지만 실제로는 ‘금발은 멍청하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회사에서는 얼굴이 반반(?)하면 ‘꽃’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임씨는 “능력으로 인정받고 싶지만 상관과 손님 접대를 통해 일을 맡았다고 할까봐 욕심나는 일을 하기 위해 상관에게 어필하는 것도 그만두곤 하죠.”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좋아하는 네일아트와 공주풍의 긴머리도 포기하고 무채색 정장에 심플한 귀걸이 정도만 하고 다닌다. “우즈처럼 멋지게 꾸며도 최고의 변호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요즘 대학에 가도 외모와 상관없이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구태의연한 사고를 갖고 있는 직원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답답해요.” 회사원 김모(33)씨는 평소 ‘포레스트 검프’를 가장 부러워한다. 직장과 가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럴 때면, 소장하고 있는 ‘포레스트 검프’를 다시 보곤 한다. 아무 것도 몰라도 달리면서 세상의 모든 근심을 던져버리는 검프를 보며 김씨는 위안을 받는다. 검프는 남들이 애걸복걸하는 출세조차 신경쓰지 않고 멋대로 살아간다. 검프는 대리진급을 앞두고 동료와 서로 경쟁을 벌이는 김씨에게 잠시나마 유쾌한 상상을 가능케 해준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채 사랑뿐만 아니라 삶의 목표를 이루는 검프가 너무나 부럽습니다. 사실 세상은 늘 동료를 험담하고, 상사에게 아부하고, 후배에게 잘난 척하는 자에게 성공을 부여하지 않나요?” 사건팀 zangzak@seoul.co.kr
  • 구로구, 부동산 중개업자 명찰착용제 실시

    구로구가 전국 처음으로 부동산 중개업자 ‘명찰착용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5일 구로구에 따르면 오는 9월부터 지역의 모든 부동산중개업소의 공인중개사는 본인 사진이 부착된 명찰을 착용해야 한다. 이는 뉴타운식 광역개발을 앞두고 투기를 조장하는 미자격 업소들의 등장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명찰착용제가 투기 조장을 위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빌려 ‘떴다방’식 영업 행위를 하는 무자격 중개업자들의 출현을 막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또 업무 보조원들의 중개행위도 방지할 수 있다. 업무 보조원들은 중개 행위를 할 수 없음에도 실제 많은 중개업소의 업무 보조원들이 공인중개사처럼 중개 행위를 하고 있다. 구로구는 오는 8월까지 모든 중개업자들에게 명찰 신청을 받아 신분증을 제작해 곧바로 시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9월 명찰착용제를 행정 명령으로 시달할 방침이다. 행정명령을 어기면 1개월의 업무정지 처분을 내린다. 김상기 부동산정보과장은 “‘중개업소에 들어가면 누구랑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고 보조원들의 과장된 언행으로 판단이 흐려질 때가 있다.’는 민원이 많았다.”면서 “명찰을 착용함으로써 공인중개사와 보조원을 명확히 구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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