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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리뷰] 빠른여자-느린남자의 ‘시차 로맨스’...‘마이 미씽 발렌타인’

    [영화리뷰] 빠른여자-느린남자의 ‘시차 로맨스’...‘마이 미씽 발렌타인’

    14일 개봉하는 대만 영화 ‘마이 미씽 발렌타인’(2020)은 기다리던 데이트를 앞두고 감쪽같이 사라진 밸런타인데이를 찾아 나선 여성과 비밀의 열쇠를 쥔 남성의 사랑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다. 단지 달콤한 사랑을 즐기는 전형적 ‘로코’에 그치지 않고, 시간에 대한 참신한 상상을 바탕으로 인생에서 잊어버린 소중한 것을 상기시키는 여운을 남긴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샤오치(리페이위 분)는 남들보다 모든 게 1초가 빠른 여자다. 샤오치는 사랑도 자신의 눈앞에서 빨리 지나가 버린 게 아닌가 생각하지만, 어느 날 공원에서 만난 ‘훈남’ 류원썬(저우췬다 분)과 사랑에 빠진다. 류원썬과 밸런타인데이 데이트 약속을 잡은 샤오치는 당일 아침 “어제가 밸런타인데이였다”는 말을 듣고 황당해한다. 하루를 통째로 잃은 샤오치는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고, 이 시점에서 주인공은 타이(류치안팅 분)로 바뀐다. 버스 운전기사인 타이는 샤오치와 대조적으로 모든 것이 1초 느린 남자다. 운전 도중 우연히 학창 시절 첫사랑이던 샤오치를 발견한다. 그러던 중 밸런타인데이 아침에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멈춰버리는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그는 샤오치와의 특별한 비밀을 지니게 된다.천위쉰 감독이 연출은 맡은 이 영화는 중화권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제57회 금마장에서 장편영화상, 감독상 등 주요 5개 부문을 석권했다. 엇갈리는 시간 안에 두 주인공을 배치하면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시차 로맨스’로 기존 로코와 차별점을 뒀다. 남들보다 빠른 샤오치가 하루를 통째로 잃어버리고, 남들보다 느렸던 타이가 24시간을 벌게 된다는 설정은 인생은 공평하다는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다른 속도로 인생을 살아오던 남녀 캐릭터를 엮는 이야기 구성이 치밀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무엇보다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여성이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여정을 애틋하게 표현해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도 현재 자신의 삶에서 잊고 지낸 것은 없는지 성찰할 기회를 준다. 영화 속 찰나의 순간을 담아내는 필름 카메라, 오래된 라디오, 시골 우체국 사서함, 사서함 속 첫사랑의 러브레터 등 아날로그적 요소들은 1980~1990년대의 아련한 향수와 추억을 일깨워 준다. 야자수가 아름다운 대만 농어촌의 목가적 풍경은 여행 본능을 자극한다. 다만 타이가 잊지 못할 첫사랑을 해변으로 데려가 함께 한 시간을 보여 주는 장면은 개인의 욕심 때문에 상대에게 원치 않는 추억을 만드는 게 아닌가,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카메라 속에 둘만의 추억을 담는 장면은 영화 ‘타이타닉’(1997)의 선상 위 포옹을 패러디한 장면으로 여겨지면서도 식상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상영시간 119분. 12세 관람가.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코로나도 막지못했다 사랑의온도 100도 조기 달성

    코로나도 막지못했다 사랑의온도 100도 조기 달성

    대구가 위기 속에도 ‘사랑의 온도’ 100도를 조기달성했다.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84억 9000만원을 목표로 2020년 12월 1일부터 시작 한 ‘희망2021 나눔캠페인’에서 2021년 1월 11일 현재 86억 7000여만원이 모금되어 사랑의온도 수은주가 100도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캠페인 시작단계에는 대구에서 몇 년째 연이어진 불경기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영향 등으로 모금여건이 그 어느 해 보다 어려워 모금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지난 해 보다 캠페인 기간을 10일 줄였고, 캠페인 목표액도 지난 해 목표인 100억 2000만원에서 84억 9000만원으로 하향조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대구시민들의 나눔DNA가 뜨겁게 타올랐다. 코로나19로 인해 소외된 이웃들의 삶이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대구시민과 기업들은 한 마음으로 사랑의 온도를 높여갔다. 화성산업(주)은 코로나19로 소외된 이웃들의 삶이 더 힘들 것이라고 생각 해 기부액을 지난 해 1억원에서 올 해 2억원으로 증액했다. DGB금융그룹, 삼익THK(주), 희성전자(주), 평화큰나무복지재단, ㈜서보, 태성전기(주), 이월드, 이랜드리테일 동아백화점 등의 기업이 지난 해에 이어 1억원 이상의 통 큰 기부를 이어갔다. 키다리 아저씨는 마지막 기부로 스스로 한 10년 간의 약속을 마무리하며 전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또 한해 내내 고사리 손에서 나온 동전을 모아온 유치원생들의 저금통, 건물 청소하시는 아주머니의 작은 정성, 손주들을 위해 아껴둔 어르신들의 쌈짓돈, 착한대구캠페인(착한일터, 착한가게, 착한가정, 착한시민)에 정기적으로 참여 해 주시는 많은 기부자들까지 각계각층의 성금이 답지했다. 김수학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은 “나눔 온도 100도 달성에 마음을 모아주신 기부자와 언론, 관계 공무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며 “이번 캠페인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나눔 정신이 깃든 대구시민들의 저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며 밝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한파야 반갑다’ 강추위속 강원 인제 명품 황태 익어간다

    ‘한파야 반갑다’ 강추위속 강원 인제 명품 황태 익어간다

    ‘한파야 반갑다’. 수년만에 찾아온 강추위 덕분에 강원 인제군 용대리 주민들은 품질 좋은 황태생산의 기대에 부풀었다. 인제군 용대리 주민들은 12일 연일 영하 20도를 밑도는 추위가 이어지면서 덕장에서 익어가는 2000만여 마리의 황태가 최고의 질 좋은 상품으로 익어간다고 반겼다. 최근 내린 눈과 함께 적당한 바람, 햇볕, 추위 등 황태 만들기에 최상의 기후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추위속에서도 20여곳의 덕장에 내걸린 명태를 돌보느라 한창 바쁜 시기를 맞고 있다. 60만~70만마리의 명태를 덕장에 걸었다는 다리골황태덕장의 김재식(62)대표는“지난 겨울에는 잦은 비와 온화한 날씨 등 이상기온으로 덕장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올 겨울에는 눈과 바람을 동반한 한파가 찾아와 품질 좋은 황태 생산이 기대 된다”고 추위를 반겼다. 지난 겨울에는 덕장에 걸어 놓은 명태가 제대로 얼지 않아 황태농사를 망쳤었다.용대리지역 황태작업은 해마다 3~4월에 명태 구입 작업에 들어가 11, 12월에 덕장에 걸어 이듬해 3~4월까지 겨울바람속에 얼었다 녹아다를 반복하며 익힌뒤 덕장에서 걷어 낸다. 이렇게 걷어낸 황태는 두드림 등 일일이 사람들의 손길을 거쳐 상품으로 생단된 뒤 시중에 판매 된다. 최근에는 자동화기기를 들여와 일손을 많이 덜었다. 용대리지역 덕장에는 지난 겨울 3000여만 마리의 황태가 걸렸으나 올해는 그보다 적은 2000여만 마리의 명태가 걸렸다. 코로나19로 판매 부진과 매출감소 걱정으로 생산량을 줄였다. 인제군농업기술센터 농정과 수산개발 최원준 주무관은 “어느해보다 좋은 자연조건으로 올겨울 황태는 최상의 품질을 기대해도 좋은듯하다”고 말했다. 인제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36년간 아이 119명 보듬은 최장기 위탁모 전옥례씨…서울 서대문구 ‘모범구민’ 표창

    36년간 아이 119명 보듬은 최장기 위탁모 전옥례씨…서울 서대문구 ‘모범구민’ 표창

    “가정으로 입양돼 자라는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제 건강이 허락되는 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돌보고 싶습니다.” 국내 최장기 위탁모 전옥례(75)씨는 36년간 영유아 119명을 가정에서 양육하고 보호하는 봉사를 해왔다. 헌신적인 사랑으로 어린 생명을 돌봐온 공로를 인정받아 전씨는 지난 11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아동복지 모범구민 표창을 받았다. 서대문구에 따르면 전씨는 1984년 북가좌2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인근에 있는 동방사회복지회의 위탁모 활동을 알게 되면서 봉사를 시작했다. 위탁모 봉사는 부모나 가족이 키우지 못하는 36개월 미만 영유아를 양육하고 보호하는 활동이다. 이후로 지금까지 36년간 119명의 아이를 기르고 돌봤다. 전씨는 지난해 해외에 있다가 귀국한 자녀의 자가격리 기간을 전후한 1개월을 제외하고는 쉴새없이 위탁모 봉사를 해왔다.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맡은 경우도 있었다. 2008년에는 심부전과 기흉을 앓고 있던 미숙아를 정성껏 돌본 덕분에 많이 회복된 상태로 약사인 양부모에게 입양을 보냈다. 2018년에는 선천적으로 다리가 불편한 아이를 수술시킨 후 이듬해 건강한 상태로 양부모의 가정으로 보냈다. 또 입양되지 않은 발달장애아가 보육시설로 가게 되자 성인이 될 때까지 후원금을 보내기도 했다. 전씨에게 표창장을 수여한 문석진 서대문구 구청장은 “오랜 기간 아이들을 사랑과 정성으로 보살펴주셔서 감사하며 서대문구도 모든 아이 한 명 한 명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정 총리 “안정세냐 재확산이냐 이번주 결정”

    정 총리 “안정세냐 재확산이냐 이번주 결정”

    정세균 국무총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줄어드는 추세에 대해 “방심을 경계해야 한다. 추세를 이어 확실한 안정세로 갈 것인가, 아니면 경각심이 흐트러져 재확산의 늪에 빠질 것인가가 바로 이번 주에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총리는 1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지난 주말부터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한 모습”이라며 “이번 겨울 내내 모임과 만남을 스스로 자제하면서 협조해주고 계신 국민 한분 한분의 참여방역이 위기를 이겨내는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객관적인 지표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1주간 새롭게 발생한 집단감염이 직전 주보다 1/4이하로 줄었고, 감염재생산지수도 1 미만으로 내려왔다”고 설명했다. 정 총리는 “수도권의 의료대응 여력도 많이 회복됐다. 당장 쓸 수 있는 중환자 병상을 100개 이상 확보하고 있으며, 병상배정을 기다리며 하루 이상을 대기하는 환자가 9일째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밝혔다. 다만 정 총리는 “겨울철 대유행을 겪으며 유럽의 여러 나라는 다시 사회적 봉쇄조치에 들어갔고, 일본은 한 달 새 확진자가 10만명을 넘어서면서 긴급사태까지 선포한 상황이다. K-방역이 똑같은 우를 범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 총리는 “정부는 집단면역을 형성하기에 충분한 물량인 5600만명분의 백신을 도입하기로 계약했고, 다음 달부터 접종을 시작하기 위해 총력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백신을 맞더라도 면역이 얼마나 지속될 지 아직 알 수 없고, 안전성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접종에 속도를 내지 못하면 짧은 유효기간 때문에 백신을 그대로 폐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정부는 국민들께서 안심하고 백신을 접종하실 수 있도록 또 다른 플랫폼의 백신을 추가 도입하는 노력을 해왔고, 최근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계약이 확정되는 대로 국민 여러분께 소상히 보고드리겠다”고 전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안양시 최초 3급 승진 공무원 탄생…40년 복무 ‘최영인’ 실장 영예

    안양시 최초 3급 승진 공무원 탄생…40년 복무 ‘최영인’ 실장 영예

    경기 안양시에서 처음으로 3급 지방부이사관 내부 승진자가 탄생했다. 시는 기획경제실장 최영인 지방서기관을 지방부이사관으로 승진조치 했다고 12일 밝혔다. 9급 공무원으로 공직생활을 처음 시작한 최 실장은 40여년만에 3급 지방부이사관으로 승진하는 영예를 안았다. 4급 지방서기관 승진 3년만이다. 기초자치단체(인구 50만명 이상 100만명 미만)에 3급 직제를 허용, 대상 범위를 확대한 이후 안양시 최초다. 2019년 12월말 기준 전체 공무원 33만 7084명 중 3급은 398명이다. 이중 36~40년차는 102명에 불과하다. 3급 직제가 없어 2급 부단체장과 4급 실·국장 연결고리가 끊어져 있던 기초자치단체에 2017년 ‘지방자치단체의 행정기구와 정원기준 규정’ 개정으로 부단체장까지 갈 수 있는 계급 사다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3급 직제가 만들어졌을 당시만 해도 해당 기초자치단체에는 정작 승진 임용할 수 있는 대상자가 없었다. 인사 적체로 퇴직 임박해서야 4급으로 승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상자가 있어도 퇴직일이 얼마남지 않아 3급 승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3급 공무원으로 승진하는 데 필요한 소요 최저연수는 3년 이상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안양시에서는 3급 공무원으로 승진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대상자가 2명이 있었으나 시 내부 사정으로 승진하지 못한 채 퇴직했다. 최 실장은 “안양시 최초 3급 승진이라는 영예를 얻어 기쁘지만 그 무게감 때문에 부담감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남은 기간 시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후배에게 최초라는 명예에 부끄럽지 않게 공무원으로서 모범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안양시 개청 이래 처음으로 3급으로 승진한 최 실장은 1981년 당시 경기도 강화군에서 9급 공무원으로 39년 공직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1989년 평촌 신도시 조성으로 안양시 행정조직이 확대개편되면서 전입한 이후에도 30여년간 성실하고 청렴하게 공직자로서 소임을 다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18년 36년만에 4급 서기관으로 승진한 그는 도로교통사업소장을 거쳐 평생교육원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했다. 2020년 7월 기획경제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 7개월 만에 3급으로 승진했다. 오는 6월 퇴직을 앞뒀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김금숙의 만화경] 침착하기 인내하기 기다리기

    [김금숙의 만화경] 침착하기 인내하기 기다리기

    병원 약속은 오후 4시였다. 나는 집에서 오전 10시 반에 출발했다. 엄마가 도시에 살지 않았다면 아마 몇 달 동안 서울에 가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사는 일상이 계속된다. 하루 종일 몇 마디나 할까? 모국어조차도 잊어버릴 것 같다. 나이 든 엄마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것은 나의 시간을 멈추는 일이다. 나의 일상에 거리두기다. 나를 내려놓는 일이다. 작은 것에도 상처받고 걱정이 태산이 되는 엄마다. 말은 부드럽게 행동은 천천히 해야 한다. 나는 엄마의 엄마다. 엄마 집에 도착하니 12시였다. 동네 밥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엄마 손을 잡고 천천히 한 발짝씩 내딛는다. 내 걸음으로 5분이면 갈 것을 배에 배의 시간으로 걷는다. 엄마가 가는 길에 찐빵이나 좀 사 달라고 했다. 밥맛 없을 때 먹겠다고 했다. 엄마가 무얼 먹고 싶다거나 무얼 사 달라는 부탁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드물었다. 찐빵 집은 백반집 가기 전에 있었다. 그 옆으로 나란히 김치찌개집과 주꾸미집이 있었다. 찐빵집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났다. 특히 솥뚜껑을 열고 닫을 때 퍼지는 하얀 김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그 풍경을 좋아했다. 몽롱한 꿈 같기도 마술 같기도 했다. 추운 겨울에는 더욱 그랬다. 어릴 적에는 동네 곳곳에 만두와 찐빵집이 있었다. 어느 날 그것은 골목에서 사라졌다. 오랜 세월이 지나 추억처럼 다시 동네에 생겼다. 그것은 맛보다 그리움이었다. 그런데 멀리서도 보이던 찐빵집 김이 보이지 않았다. 수상했다. 의심은 가까이 갈수록 확신이 됐다. 찐빵집은 자취도 없었다. 김치찌개집도, 주꾸미집도 텅텅 비어 있었다. 의자 한 개도 남아 있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여러 일정이 취소될 때마다 아쉬웠다. 그래도 다음 기회가 있으려니 생각했다. 자주 가던 밥집들이 문을 닫은 모습을 보니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들은 오늘은 어떻게 버티며 내일은 무얼 먹고 사나?요즘 엄마는 더욱 밥을 못 드신다. 밀가루는 소화가 잘 안 된다. 매운 것도 짠 음식도 단 것도 너무 기름진 것도 좋지 않다. 고등어구이와 된장찌개를 시켰다. 생선 가시를 발라 앞접시에 담아 엄마 밥그릇 옆에 놓았다. 엄마는 안 먹는다며 앞접시를 밀쳤다. 된장찌개를 국자로 퍼서 담았다. 밥 수저를 몇 번 드는가 싶더니 놓았다. 밥공기 안에는 밥이 그대로였다. 내가 발라 드린 고등어도 손을 대지 않았다. “그렇게 드시니 당연히 힘이 없지.” 자꾸 더 드시라고 권해도 엄마는 밥맛이 없다고만 했다. 슈퍼에 들러 동태 한 마리를 사고 피망과 다른 야채를 샀다. 엄마 집에 가져다 놓고 나는 다시 나왔다. 동네 이비인후과와 내과에 들렀다. 평소에 엄마가 복용하는 약 리스트와 의뢰서를 받았다. 그걸 들고 다시 엄마 집으로 갔다. 오후 2시 반이었다. 나는 마루에 누웠다. 엄마는 병원 약속이 4시여도 최소 한 시간은 먼저 가서 기다려야 한다며 초조해했다. 나는 괜찮다고, 병원은 30분 안에 충분히 간다고 말했다. 엄마는 불안한 듯 자꾸 시간을 물어보았다. 나는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엄마는 말했다. “아이고 우리 딸, 잠도 못 자게 하네, 내가.” 엄마를 운전자 옆 좌석에 앉히고 안전벨트를 채운 후 시동을 걸었다. 병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3시 20분이었다. 주차장에서 병원 입구로 통하는 엘리베이터는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닫혀 있었다. 병원 입구에서 코로나 때문에 기입해야 하는 종이를 작성한 후 온도를 체크했다. 엄마 손을 잡고 담당 전문의가 있는 3층으로 갔다. 대기실 좌석에는 늙은 어머니나 아버지와 나이 든 자녀가 앉아 호출을 기다렸다. 엄마 차례가 됐다. 오후 5시를 훨씬 넘긴 시간이었다. 가장 빠른 약속은 한 달 후에나 잡을 수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검사를 해야 한다. 엄마가 더 늙지 말고 지금 같기만 하면 좋겠다. 우리에게 남은 생이 얼마나 될까? 먼저 왔다고 순서대로 가지는 않는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삶이라. 코로나로 인해 보았다. 2020년은 전 세계적으로 없는 사람들이 더욱 힘들었던 한 해였다. 2021년은 삶을 온전히 내 것으로 살기를, 조금 덜 힘들기를 우리 모두에게 바라 본다.
  • “오르간 민요, 국악 찬송… 어? 새롭네요”

    “오르간 민요, 국악 찬송… 어? 새롭네요”

    온통 회색빛으로 덮인 듯한 지난 한 해, 그보다 훨씬 나아질 거란 희망을 다채로운 파이프 오르간 선율로 꿈꾼다. 그 바탕엔 마음을 다스리는 듯 잔잔하고도 묵직한 국악기 소리가 깔려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과 국내 대표 오르가니스트 신동일 연세대 교수는 오는 2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국악관현악시리즈Ⅲ ‘대립과 조화: 콘체르토’를 공연하며 동서양의 조화를 그려 낸다. 신 교수는 지난 6일 전화 인터뷰에서 “파이프 오르간과 한국 전통악기의 조화에 대해선 이미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5년 전쯤 러시아에서 동서양 파이프 악기인 오르간과 생황의 앙상블을 처음 시도하고 뜨거운 반응을 확인한 뒤 생황 연주자 김효영과 몇 차례 무대를 이어 가기도 했다. 이후 김성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의 제안으로 지난해 1월 신년음악회에서 국악관현악과 첫 호흡을 맞췄다. 그러나 관현악곡에 오르간이 사용된 정도에 그치자 김 감독이 “내년에 다시 하자”고 한 농담이 실제 무대로 이뤄졌다. 국내에서 자주 접하기는 어려운 악기인 파이프 오르간은 악기 하나로 오케스트라 선율을 낼 수 있어 ‘악기의 왕’으로도 불린다. “많은 사람이 교회나 성당, 미디어에서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들을 때는 주로 장엄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느끼지만 실제 파이프 오르간은 다른 솔로 악기가 낼 수 없는 훨씬 다양한 음량과 음색을 낸다”고 신 교수는 말했다. 이어 “국악기들은 서양악기에 비해선 발전이 더딘 면이 있어 국악관현악을 들으면 옛날의 향기가 그대로 짙게 남아 있는 듯하다”면서 “대위법과 화성을 구사할 수 있는 오르간과 호흡을 맞추면 동서양 색채를 적절하게 느낄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특히 이번 공연에선 국악관현악단과 함께 작곡가 김성기에게 위촉한 ‘삽화 속에’를 초연한다. 우리 전통 민요와 그레고리안 성가, 찬송가 선율 등이 어우러져 있어 여러 가지 선율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신 교수도 “모든 목표를 잃은 듯했던” 지난해보다 나은 새해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안식년을 맞아 아프리카 의료 선교 활동에도 동참해 봉사활동을 하고 프랑스 파리에 둥지를 틀자마자 코로나19가 확산했다. 다시 짐을 챙겨 귀국한 그는 지난해 5월 28일 무관중 온라인 콘서트라는 특별한 무대를 꾸몄다. 출연료도 받지 않았다. “그동안 음악활동을 하며 받은 게 많으니 보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회상했다. 오는 9월에는 한국에서 처음 국제오르간콩쿠르도 열린다. 일본 무사시노·도쿄 국제오르간콩쿠르, 상하이국제오르간콩쿠르 등처럼 우리도 세계적인 규모의 콩쿠르를 열 수 있는 무대를 갖췄지만 지난해 코로나19로 첫 대회가 1년 연기됐다. 14명의 본선 진출자 가운데 4명이 한국인이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신 교수는 “좋은 연주자들 페스티벌처럼 많은 사람이 오르간 연주를 듣고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인간이 미안해”…숨진 코끼리에 박힌 40여발의 총알

    “인간이 미안해”…숨진 코끼리에 박힌 40여발의 총알

    눈 아래·코 속 등 곳곳 박혀…“총 너무 많이 맞아 포악해진 듯” 태국에서 최근 숨진 코끼리의 몸에서 40여발 이상의 총탄이 발견됐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11일 일간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남부 쁘라추업 키리칸주(州)의 꾸이부리 국립공원에서 전날 수컷 코끼리 한 마리가 치료를 받던 도중 숨졌다. 올해 20~25살로 추정되는 이 코끼리의 몸무게는 3t 가량이다. 이 코끼리는 지난해 12월10일 한 마을 인근에서 다친 채 발견됐다. 당시 이 코끼리는 매우 포악한 상태여서 진정제를 맞은 뒤 치료를 위해 국립공원으로 옮겨졌다. 수의사들이 정성을 다해 치료했지만 이 코끼리는 결국 한 달 만에 목숨을 잃었다. 이후 경찰은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코끼리 사체를 검사했다. 그 결과, 총알이 코끼리 사체 곳곳에 40발 이상 박힌 채 발견됐다. 이 총알은 다양한 화기에서 발사된 것으로 보인다. 총알은 오른쪽 눈 아래에도 코 속, 그리고 왼쪽 앞다리의 뼈에도 박혀 있었다고 전해졌다. 공원 관계자들은 이 코끼리가 여러 차례 사람들로부터 총을 맞으면서 성질이 포학하게 변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를 접한 네티즌은 “인간이 미안해”, “얼마나 아팠을까…”, “편히 쉬렴”, “너무 안타깝다”, “도대체 왜 그럴까”, “나도 인간이지만 인간이 싫다”등 반응을 보였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새해를 여는 파이프 오르간 선율… “동서양 조화로 더 다채롭게”

    새해를 여는 파이프 오르간 선율… “동서양 조화로 더 다채롭게”

    온통 회색빛으로 덮인 듯한 지난 한 해, 그보다 훨씬 나아질 거란 희망을 다채로운 파이프 오르간 선율로 꿈꾼다. 그 바탕엔 마음을 다스리는 듯 잔잔하고도 묵직한 국악기 소리가 깔려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과 국내 대표 오르가니스트 신동일 연세대 교수는 오는 2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국악관현악시리즈Ⅲ ‘대립과 조화: 콘체르토’를 공연하며 동서양의 조화를 그려 낸다. 신 교수는 지난 6일 전화 인터뷰에서 “파이프 오르간과 한국 전통악기의 조화에 대해선 이미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5년 전쯤 러시아에서 동서양 파이프 악기인 오르간과 생황의 앙상블을 처음 시도하고 뜨거운 반응을 확인한 뒤 생황 연주자 김효영과 몇 차례 무대를 이어 가기도 했다. 이후 김성진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의 제안으로 지난해 1월 신년음악회에서 국악관현악과 첫 호흡을 맞췄다. 그러나 관현악곡에 오르간이 사용된 정도에 그치자 김 감독이 “내년에 다시 하자”고 한 농담이 실제 무대로 이뤄졌다. 국내에서 자주 접하기는 어려운 악기인 파이프 오르간은 악기 하나로 오케스트라 선율을 낼 수 있어 ‘악기의 왕’으로도 불린다. “많은 사람이 교회나 성당, 미디어에서 파이프 오르간 소리를 들을 때는 주로 장엄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느끼지만 실제 파이프 오르간은 다른 솔로 악기가 낼 수 없는 훨씬 다양한 음량과 음색을 낸다”고 신 교수는 말했다. 이어 “국악기들은 서양악기에 비해선 발전이 더딘 면이 있어 국악관현악을 들으면 옛날의 향기가 그대로 짙게 남아 있는 듯하다”면서 “대위법과 화성을 구사할 수 있는 오르간과 호흡을 맞추면 동서양 색채를 적절하게 느낄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선 국악관현악단과 함께 작곡가 김성기에게 위촉한 ‘삽화 속에‘를 초연한다. 우리 전통 민요와 그레고리안 성가, 찬송가 선율 등이 어우러져 있어 여러 가지 선율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신 교수도 “모든 목표를 잃은 듯했던” 지난해보다 나은 새해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 안식년을 맞아 아프리카 의료 선교 활동에도 동참해 봉사활동을 하고 프랑스 파리에 둥지를 틀자마자 코로나19가 확산했다. 다시 짐을 챙겨 귀국한 그는 지난해 5월 28일 무관중 온라인 콘서트라는 특별한 무대를 꾸몄다. 출연료도 받지 않았다. “그동안 음악활동을 하며 받은 게 많으니 보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회상했다. 오는 9월에는 한국에서 처음 국제오르간콩쿠르도 열린다. 일본 무사시노·도쿄 국제오르간콩쿠르, 상하이국제오르간콩쿠르 등처럼 우리도 세계적인 규모의 콩쿠르를 열 수 있는 무대를 갖췄지만 지난해 코로나19로 첫 대회가 1년 연기됐다. 14명의 본선 진출자 가운데 4명이 한국인이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신 교수는 “좋은 연주자들 페스티벌처럼 많은 사람이 오르간 연주를 듣고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오르간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과 방법을 늘 고민한다”는 신 교수는 올해도 어린이 공연을 비롯해 더욱 다양한 무대와 공간에서 오르간 선율을 나눌 계획이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포토] 한파가 만든 그림 같은 풍경

    [포토] 한파가 만든 그림 같은 풍경

    매서운 한파가 이어진 11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두물머리와 세미원을 이어주는 배다리 주변이 꽁꽁 얼어 있다. 2021.1.11 연합뉴스
  • 버팀목자금 6시간만에 67만명 신청…오늘 오후부터 입금 시작

    버팀목자금 6시간만에 67만명 신청…오늘 오후부터 입금 시작

    11일 오후 2시 기준 67만명 신청신청순으로 100만~300만원 지급이날 오후 1시부터 입금 ‘인증글’문자 못받았어도 일단 확인부터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소상공인을 위해 지급되는 버팀목자금(3차 재난지원금)에 신청 개시 6시간 만에 67만명이 몰렸다. 일찍 신청을 마친 소상공인은 이날 오후 1시 20분쯤부터 최대 300만원의 지원금을 받기 시작했다.11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기준으로 버팀목자금을 신청한 소상공인은 67만명이다. 전체 버팀목자금 대상자(276만명)의 24.3% 수준이다. 신청은 오전 8시부터 받기 시작했다. 이날은 사업자번호 끝자리가 홀수인 소상공인 143만명이 신청 대상이고, 끝자리가 짝수인 소상공인은 다음날인 1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일부턴 홀짝과 상관없이 모두 신청할 수 있다. 다만 지급은 신청순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빨리 입금받고 싶으면 서둘러 신청해야 한다. 이날 오전 일찍 신청한 소상공인은 오후 1시쯤부터 버팀목자금이 입금되기 시작했다. 소상공인 커뮤니티에도 버팀목자금을 받았다는 ‘인증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지원요건에 맞고 사업자번호 끝자리가 홀수인데도 이날 신청하라는 안내문자를 받지 못했더라도, 우선 중기부와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운영하는 홈페이지(버팀목자금.kr)에 들어가서 대상 여부를 확인하고 신청할 수 있다. 중기부 관계자는 “보안이 강화된 보안문자 특성상 시간당 15만건 발송 중으로, 오후 4시까지 발송 완료될 예정”이라며 “문자발송 오류는 아니며, 문자 기다리지 말고 직접 홈페이지에 접속해 신청 대상 여부를 확인하고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홈페에지를 통해 확인했는데도 대상자가 아니라는 알림이 뜬다면 오는 25일부터 신청하는 추가지급 대상자일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조만간 추가 공고를 통해 구체적인 일정을 알릴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24일 이후 정부와 지자체의 방역강화 조치로 집합금지·제한 대상이 된 소상공인은 각각 300만원과 200만원을 받는다. 지난해 매출액이 4억원 이하면서 2019년 매출액보다 감소한 영세 소상공인은 100만원을 받는다. 스키장 등 실외 겨울 스포츠시설과 그 부대업체, 숙박시설은 추가지급 대상자로 오는 25일 이후 받을 수 있다. 지난해 6~11월에 개업한 소상공인도 25일 이후에 받을 수 있다. 이전에 새희망자금을 받은 적이 없는 신규 신청자는 다음달 25일까지 국세청 부가가치세 신고를 한 뒤 매출 감소가 확인되면 오는 3월부터 받는다. 세종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폭설에 22㎞ 걸어서 출근한 스페인 의료진들 감동(영상)

    폭설에 22㎞ 걸어서 출근한 스페인 의료진들 감동(영상)

    스페인에 50년 만에 폭설이 내리면서 피해가 잇따르는 가운데, 수 십㎞의 눈길을 걸어 출근한 의료진들의 사연이 알려져 감동을 전했다. 영국 가디언 등 해외 언론의 10일 보도에 따르면 마드리드의 한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조무사 라울 알코호르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9일 폭설로 도로가 막히고 통근열차가 취소된 상황에서도 출근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수십㎝의 눈이 쌓인 도로를 걷고 또 걸었고, 무려 14㎞의 눈길을 2시간 28분간 이동한 끝에 간신히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출근을 강행한 것은 병원에서 퇴근하지 못한 채 일선을 지키고 있는 동료들 때문이었다. 그는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40㎝ 깊이의 눈과 쓰러진 나무들로 길이 매우 혼잡했다. 14㎞를 2시간 넘게 걸은 끝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면서 “퇴근도 하지 못한 채 24시간 이상 일하며 교대 근무자를 기다리는 동료들을 생각하면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현지의 또 다른 의료진 역시 의료시스템이 무너질 것을 염려한 끝에 걸어서 22㎞를 이동해 출근했다. 스키장에서나 볼법한 복장과 장비까지 동원한 간호사 2명은 컴컴한 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설을 뚫고 걷고 또 걸었다. 서로를 의지하며 출근길에 동행한 두 명의 간호사에게는 찬사가 쏟아졌다.마드리드의 알바로 산체스 박사 또한 도로에 폭설이 내려 자동차가 움직이지 못하자 자신이 일하는 병원까지 출근하기 위해 17km를 직접 걸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스페인 보건부장관은 이들의 사연을 전하며 “의료 종사자들의 이러한 모습은 헌신은 연대와 좋은 예”라고 격려했다. 스페인은 유럽에서도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큰 국가로 꼽힌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스페인 의료진은 수만 명에 달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다. 스페인의 누적 확진자수는 205만 명을 넘어섰고, 누적 사망자도 5만 명을 훌쩍 넘었다. 한편 폭설 피해가 큰 지역 중 하나인 마드리드시는 11일부터 이틀 동안 일선 초중고와 대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스페인 정부는 폭설이 내린 스페인 중부 지역에 군부대 트럭과 경찰차. 헬기 등을 투입해 코로나19 백신, 의료품, 식료품 등을 운송하기로 했다. 스페인 기상 당국은 앞으로도 며칠 동안 기온이 영하 10도 안팎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지적장애 아들 방망이로 때려 숨지게 한 친모…2심서 형량 늘어

    지적장애 아들 방망이로 때려 숨지게 한 친모…2심서 형량 늘어

    지적장애 아들을 화장실에 가두고 굶기다가 급기야 둔기로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친모가 항소심에서 더 무거운 형을 받았다. 대전고법 형사1부(부장 이준명)는 피해자 어머니 A(46)씨의 상해치사 등 혐의 사건 항소심에서 A씨에게 징역 14년을 선고했다. A씨의 아들 C(당시 20세)씨는 2019년 12월 17일 저녁 대전 중구 집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에 옮겨졌으나 숨졌다. C씨의 얼굴엔 멍이 있었고, 팔과 다리 등 온몸에서도 상처가 발견됐다. 피부 가장 깊숙이 있는 피하 조직에서도 수십 차례 맞아야 나타나는 출혈 흔적이 발견됐다. 수사 결과 지적장애 3급이었던 C씨는 수시로 개 목줄이나 목욕수건 등으로 손을 뒤로 묶인 채 화장실에 갇혀 밥도 먹지 못했다. 심지어 빨랫방망이로 구타당하기까지 했다. 길이 30㎝가량의 통나무 빨랫방망이는 ‘소리가 크고 아픈 것으로 사라’는 B씨의 지시로 A씨가 직접 구매한 것이었다. 구타는 2019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 반복된 것으로 조사됐다. C씨는 숨지기 6일 전부터 자주 다니던 장애인 복지시설에도 나가지 못했다. 이 시기 화장실 감금과 폭행이 집중된 것으로 검찰은 판단했다. 방바닥에 쓰러진 피해자는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아 악취를 풍기던 화장실에 감금됐다. 검찰은 지적장애 기질을 보이는 친모 A씨가 활동지원사 B씨에게 과도하게 의존한 점이나 B씨가 피해자 일상에 적잖게 관여했던 정황으로 미뤄 두 사람이 공동범행을 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당시 A씨와 B씨는 “훈계 목적으로 그랬다”고 변명했다. 1심 법원은 활동지원사 B씨의 죄책이 더 크다고 보고 징역 17년을 선고했고, 지적장애 기질을 보인 친모 A씨에게는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이후 A씨와 B씨는 ‘형량이 너무 무겁다’는 취지로, 반대로 검찰은 ‘형량이 가볍다’는 취지로 항소했다. 이에 2심 재판부는 친모 A씨의 1심 형량이 너무 가볍다는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화장실에 갇힌 피해자가 수돗물도 마시지 못하게 밸브를 잠그는 등 고문에 가까운 학대를 했다”면서 “전문가 감정 등을 고려할 때 사물 변별력이 떨어질 정도로 A씨에게 정신적 장애가 있었다고 보긴 어려운 만큼 검사 항소에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활동지원사 B씨의 항소는 기각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김경영 서울시의원, ‘대한안마사협회’로부터 감사패 수상

    김경영 서울시의원, ‘대한안마사협회’로부터 감사패 수상

    서울특별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김경영 의원(더불어민주당, 서초구 제2선거구)이 지난 8일 대한안마사협회 사무실에서 서울시 시각장애인 안마원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안마사협회로부터 감사패를 수상했다. 대한안마사협회는 “서울시 안마바우처 사업 기준 개정에 주요한 역할을 하여 시각장애인 안마원 경영 정상화에 기여한 공로가 크므로 제50주년 창립기념일을 기념하여 회원들의 감사한 마음을 담아 감사패를 드린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김 의원은 장애인 복지 증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장애인 당사자와 현장 종사자들과 직접 소통하여 서울시 정책 개선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연구용역 수행과 서울시 시각장애인 안마바우처 사업 예산을 확보하는 등 장애인 일자리 정책 활성화와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 의원은 “서울시 장애인 정책 중에서도 소외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작은 도움을 드릴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라며 “코로나19로 큰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향후 새로운 일자리 연계 방안 마련을 위해 더욱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통령 신년사…與 “국정동반자로서 최선” 野 “동문서답 신년사”

    대통령 신년사…與 “국정동반자로서 최선” 野 “동문서답 신년사”

    여야는 11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운영 동반자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지만, 야당은 대통령이 이날 제시한 비전이 실현될 수 있을지 의심된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국정 동반자로서 최선 다할 것”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서면 논평에서 “민주당은 국정운영 동반자로서 다 함께 잘 사는 대한민국을 위해 정부와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은 ‘10대 입법과제’를 꼼꼼하게 살피고 착실하게 이행해 나가겠다”며 “혁신성장과 신산업 육성을 위한 경제 입법과 기업의 새로운 활력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2050 탄소 중립으로 기후변화에 적극대응하고 ‘그린뉴딜’을 추진해나갈 것”이라며 “‘그린뉴딜기본법’과 ‘녹색금융지원특별법’등으로 탄소 중립을 적극 뒷받침하겠다”고도 했다.국민의힘 “동문서답 신년사…터널의 끝 안 보여” 국민의힘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에 대해 “눈 감고 귀 닫은 동문서답”이라고 혹평했다. 배준영 대변인은 논평에서 “국민의 목소리에 충실히 귀 기울여달라. K방역 신화에 대한 맹신, 북한에 대한 짝사랑도 이제는 접을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최형두 원내대변인은 “세상과 민심, 정세변화에 눈 감고 귀 닫은 신년회견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이제는 드디어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한 것을 두고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동문서답”이라며 “‘백신의 봄’을 기다리는 국민들은 여전히 어두운 터널 속에 있다”고 말했다. 안혜진 국민의당 대변인도 “기교가 넘치고 내용은 현란하나 전혀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 일색”이라며 “국민들은 대통령의 말뿐인 위로보다 모든 국민을 향한 포용력, 국가를 바로 세울 리더십, 지혜로운 국가 행정력을 원한다”고 말했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과 의지는 대체로 동의하나 구체적인 핀셋 처방은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신년사에는 노동 존중 대한민국을 천명한 문재인 대통령의 초심과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매우 아쉽다”고 지적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부친 장례 후 참변, 임산부와 2살 딸의 미소…추락 인니 여객기 사연

    부친 장례 후 참변, 임산부와 2살 딸의 미소…추락 인니 여객기 사연

    추락한 인도네시아 여객기 탑승객들의 기구한 사연이 전해졌다. CNN은 9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앞바다에서 실종된 스리위자야항공 여객기 희생자들의 이륙 전 상황을 전했다. 이날 오후 2시 40분쯤, 자카르타 외곽 수카르노하타 공항에서 출발한 스리위자야항공 여객기가 이륙 4분 만에 실종됐다. 사고 당시 여객기는 관제탑에 아무런 비상 신호를 보내지 않았고, 연락 두절 직전 60초 동안 1만 피트 이상 급강하했다. 추락 여객기에는 성인 40명과 어린이 7명, 유아 3명 등 승객 50명을 포함해 모두 62명이 탑승해 있었다.부친 장례 후 돌아가는 길…코로나 검사로 뒤바뀐 운명 무하마드 누르콜리파툴 아민과 아구스 미나르니 부부 역시 사고기에 타고 있었다. 이들 부부는 자카르타 포노로고에서 아버지 장례식을 치르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유가족에 따르면 애초 사고기가 아닌 남에어라는 다른 항공사 여객기를 타고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공항에서 발이 묶여 항공편이 변경됐다. 유가족은 “예정대로면 남에어 여객기를 타고 5일 돌아갔어야 했다. 하지만 공항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느라 출발이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예약한 비행기가 바로 사고기인 스리위자야항공 여객기였다고 덧붙였다.임산부와 2살 딸, 8살 조카까지 일가족 참변 임신 4개월의 라티 인다니아는 2살 딸, 8살 조카를 데리고 비행기에 올랐다 참변을 당했다. 자카르타로 들어갈 당시 수리위자바항공 여객기에서 찍은 사진 속 인다니아는 다가올 비극은 알지 못한 채 아이들과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수마트라섬 출신 리즈키 와위디(26) 인다 할리마 푸트리(26) 부부, 그리고 7살 난 아들 아르카나 나디프 와위디도 이번 사고로 희생됐다. 와위디 할머니와 사촌 등 일가족 5명이 모두 실종 상태다. 요하네스 수헤르디(30)는 자카르타에서 출장을 마치고 보르네오섬 폰티아낙 자택으로 돌아가던 길에 사고를 당했다. 아내 수실라와티 분가릴리아(32)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남편의 마지막 메시지가 아픈 아들을 꼭 병원에 데려가 보라는 말이었다”고 오열했다. 5살짜리 아들이 아버지 언제 집에 오시느냐고 계속 묻는다며 슬퍼했다.인도네시아 국가수색구조청은 현재 여객기가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점에 잠수부를 투입하고 집중 수색 중이다. 현장에서는 여객기 파편과 신체 일부, 옷가지 등 유류품이 속속 발견되고 있다. 사고 당시 굉음을 들은 어부들도 비행기 동체 파편과 청바지, 머리카락 등을 발견해 수색 당국에 인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 당국은 실종 직전까지 아무런 구조 신호도 보태지 않은 여객기의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 블랙박스 회수에 주력하고 있다.스리위자야항공은 자카르타에 본사를 두고 19대의 여객기를 운용하는 저비용항공사이다. B737-500 기종인 사고기는 1994년 5월 처음 등록돼 26년간 운항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매체들은 ‘여객기 노후’를 사고원인 중 하나로 의심하고 있으나 스리위자야항공 측은 여객기 상태가 양호했다고 주장한다. 항공사 책임자는 “이륙이 예정보다 30분 늦어졌지만 이는 폭우 때문이지 기체에는 이상이 없었고, 기체 상태도 양호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보잉사는 “추락 사고와 관련해 스리위자야항공과 접촉 중이며 그들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며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군대 갈래요” 코로나에 치솟는 군 입대 인기…모집병 지원율 또 경신

    “군대 갈래요” 코로나에 치솟는 군 입대 인기…모집병 지원율 또 경신

    공군 모집병 1534명 지원에 1만명 이상 지원…지원율 7.3대 1한 달 만에 기록 최고지원률 경신인기 많은 차량 운전은 9.2대 1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이 아이러니하게도 군 입대 경쟁을 낳고 있다. 비싼 학비를 내고 대학교 원격수업을 듣는 대신 훈련소 입영을 선택하는 청년이 많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취업이 어려운 상황도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11일 병무청에 따르면 올해 4월 입영하는 공군 모집병(일반기술·전문기술병 분야)에는 1534명 선발에 1만 1244명이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율은 7.3대 1을 기록했다. 특히 지원자 사이에 인기가 많은 직종인 일반과 차량운전은 각각 8.3대 1과 9.2대 1의 높은 지원율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일반기술·전문기술병 지원율 4.9대 1과 비교했을 때 크게 상승한 것이다. 공군병은 지난달 모집(올해 3월 입영 예정)에도 1만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려 화제가 됐었다. 당시 일반기술·전문기술병 지원율은 7.1대 1을 기록해 2017년 이후 가장 높았는데, 불과 한달 만에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해군·해병대 모집병 선발도 4대 1 넘어 지원율 2배 껑충 해군 및 해병대 모집병 선발에도 예년보다 더 많은 지원자가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4월 입영하는 해군 일반기술·전문기술병은 지원율 4.4대 1을, 4월 입영하는 해병대 일반기술·전문기술병은 지원율 4.7대 1을 각각 기록했다. 지난해 3월 훈련소에 입영한 해군병(일반기술·전문기술병) 지원율이 2.3대 1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1년 사이에 지원자가 2배 가까이 껑충 늘어난 셈이다. 육군 모집병 가운데 모집인원이 가장 많은 기술행정병의 올해 4월 입영 지원율은 4.9대 1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 지원율(3.8대 1)보다 높았다. 육·해·공군 및 해병대 모집병 선발은 통상 제대 후 대학교에 바로 복학할 수 있는 1~4월 입영에 지원자가 몰리는 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높아진 입영 경쟁은 코로나19 재확산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 내년에도 정상적인 학업·취업활동이 어려워 보이자 캠퍼스 생활 대신 입대를 선택한 청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헌혈·봉사활동, 가산점 얻으려 필수로 입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헌혈과 봉사활동은 지원자 사이에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각군은 모집병 선발에 헌혈 회수, 봉사활동 시간 등을 가산점으로 배정하는데, 이 점수를 확보해야 1차 서류전형에 합격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서류전형에 합격하더라도 2차 면접전형이 기다리고 있다. 면접에서는 면접태도, 표현력, 정신력·의지력, 성품, 학교생활 등을 평가한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씨줄날줄] 반다르아바스/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반다르아바스/서동철 논설위원

    반다르아바스는 호르무즈해협 북단에 자리잡은 이란의 군사·무역항이다. 페르시아제국의 다리우스 1세(BC 522~486)가 인도로 출정한 항구가 이곳이다. 이후 해양 실크로드의 서쪽 거점 항구로 고대 한반도와의 교섭 통로 역할도 했을 것이다. 이란이 공해상에서 나포한 한국케미호를 이렇듯 유서 깊은 역사 도시에 억류하고 있다니 더욱 안타깝다. 이란의 해상 교역은 반다르아바스를 중심으로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그 동쪽 중심지는 중국의 광저우였다. 페르시아만에서 오늘날의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일대를 거쳐 중국으로 가는 바닷길은 7세기 무렵부터 활성화됐다. 오만 정부는 1981년 다우선이라는 이름의 상선을 재현해 이 바닷길을 재현하기도 했다. 이란은 당대 오만과 함께 해상무역을 주도했다. 중국 승려 의정(635~713)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에도 페르시아어를 쓰는 이란 상인 ‘포세’와 아랍어를 쓰는 이란 상인 ‘타시’의 존재가 보인다. 의정은 바닷길로 광저우를 떠나 수마트라와 팔렘방을 거쳐 인도에 갔고 귀로에도 말레이반도와 인도네시아를 거쳤다. ‘대당서역구법고승전’은 인도로 구법의 길을 찾아나선 스님들의 전기다. 의정이 다룬 구법승 가운데는 신라 승려 9인과 고구려 승려 1인도 들어 있다. TV 프로그램으로 소개되기도 했던 이란의 ‘쿠시나메’ 설화도 흥미롭다. 사산왕조 페르시아가 아랍의 침입으로 651년 멸망하자 민족 영웅을 다룬 페르시아 대서사시가 유행하는데 ‘쿠시나메’도 그 가운데 하나다. 사산왕조 왕자인 압틴은 중국을 거쳐 바실라로 망명해 그곳 공주 파라랑과 결혼한다. 두 사람은 이란으로 돌아갔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파리둔이 아랍으로부터 왕위를 다시 찾아온다는 스토리다. 여기서 바실라는 신라, 파라랑은 신라의 공주라는 것이다. 압틴과 파라랑이 신라에서 14개월의 항해 끝에 돌아간 항구도 당연히 반다스아바스였을 것이다. ‘아바스의 항구’라는 뜻의 반다르아바스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은 1614년이다. 아바스 1세(1587~1629)가 캄바라우라 불리던 이 항구를 포르투갈로부터 탈환하고 붙였다. 아바스 1세는 페르시아제국 이후 1000년 만에 이란인의 국가를 세운 사파비 왕조(1502~1736)의 부흥 군주다. 그는 수도를 타브리즈에서 육상 실크로드의 서쪽 거점인 이스파한으로 옮기기도 했다. 실크로드의 동쪽 끝이 신라라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어 가는 것 같다. 이스파한이 ‘세계의 절반’으로 불린 것도 육상 실크로드는 물론 해양 실크로드를 거쳐 반다르아바스로 들어온 문물이 한데 모인 국제도시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허백윤의 아니리] 음악가들의 시간

    [허백윤의 아니리] 음악가들의 시간

    플루티스트 최나경은 지난 1일 대만 타이베이 내셔널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신년음악회 연주를 앞두고 지난해 말 대만에 입국했다. 2주간 자가격리에 들어간 사이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가 발견되는 등 코로나19가 다시 심상치 않은 확산세를 보이자 대만 정부는 외국인들의 경우 입국한 지 3주가 지나야 공공장소에 갈 수 있도록 했다. 음악회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었던 그는 결국 1월 1일 무대에 서지 못하고, 자가격리 후 지난해 12월 30일 귀국했다. 한국에 돌아와 그는 다섯 번째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그는 지난해에만 여덟 차례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았다. 한 해 동안 예정됐던 약 70회에 달하는 공연은 취소되거나 미뤄졌다.코로나19로 모든 사람이 그렇듯 음악가들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대는 줄줄이 사라졌고 어쩌다 기회가 주어지면 그 한 차례를 위해 감수해야 할 일이 많았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도 지난 열두 달 가운데 두 달을 자가격리로 보냈다.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도 맡고 있어 4월과 6월, 8월, 11월 서울시향 정기 연주회마다 미국에서 들어와 격리 기간을 가진 것이다. 서울시향 단원들도 두세 차례, 또는 그 이상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20일 공연을 위해선 출연진 65명을 비롯해 무대를 준비하는 스태프까지 전부 사전 검사를 받았다. 매년 대미를 장식했던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실내악 버전으로 축소하면서까지 지킨 무대는 콘서트홀 안에 들어갈 전원이 음성 판정을 받고서야 확정됐고, 무관중으로 온라인 중계됐다. 공연 당일 수석객원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의 회색 마스크는 땀에 젖어 검게 변했고, 국립합창단 단원들과 소프라노 박혜상 등 성악가 4명은 KF94 마스크를 쓰고 노래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한 공연을 3월에서 9월로, 9월에서 12월로, 12월에서 이달로 무려 세 차례나 미뤘다.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도 불리던 그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은 2020년 후기 피아노 소나타로 관객들과 만나려고 했지만 코로나19가 확산되는 시기와 겹쳐 버렸다.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무대를 준비했던 그는 번번이 다음을 기약해야 했고, 11일 그토록 기다리던 관객들과 마주한다. 그러나 슬픈 시간만은 아니다. 늘 함께했던 무대에 서기 위해 감내해야 할 여러 고충이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희석된다. 무대를 갖지 못하는 이들에겐 그저 부러운 경험담이기도 하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연주자들은 어떠한 어려움을 감수하고라도 무대에 오를 수만 있다면 행운인 상황”이라면서 “그마저도 극소수, 유명 연주자들에게만 무대 기회가 주어져 ‘부익부 빈익빈’과 같은 현상이 매우 심해졌다”고 말했다. 하루 몇 시간씩 연습하면서도 공연이 취소될지 몰라 온전히 집중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부터 갑작스럽게 계획이 뒤엎어지는 데 대한 불안감, 줄어드는 통장 잔고의 압박. 이 어두운 시간들은 민간 예술단체, 소규모 기획사, 수많은 연주자에게 훨씬 짙게 드리웠지만 정작 이들의 어려움은 듣는 것조차 쉽지 않다. 최근 미국 뉴욕에선 ‘Save NYC Musicians’ 캠페인이 이어진다. 링컨센터와 카네기홀은 물론 브로드웨이, 재즈바, 교회 등에서 연주하던 음악가들이 극장 문이 닫히며 겪게 된 생활고를 알리고 기부를 받고 있다. 목소리를 낸 음악가들의 사연을 통해 세계 곳곳 무대를 잃은 연주자들의 상황을 그저 가늠해 볼 뿐이다. 음악가들에게 무대는 존재의 이유 그 자체다. 평생 일구고 다져 온 시간을 확인받는 순간이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닦는 과정이다. 음악이 곧 직업인 그들에게 무대는 경제활동 공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음악가들은 일터가 사라지는 고충을 애써 말하지 않는다.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 확산세 속에서 무대를 언급하는 건 일종의 사치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다만 음악과 음악가들의 역할에 관심을 호소할 뿐이다. “이런 때일수록 음악이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는 음악가들의 공통된 말 속엔 그들이 차마 말하지 못한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려운 시간들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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