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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동맹외교」에 열올리는 평양(오늘의 북한)

    ◎내일 자카르타서 10차정상회의/한중수교 따른 동요 막으려 적극적/75년 가입… 제3세계에 경협제공 등 선심공세/냉전와해로 열기 시들… 북 대응 주목 비동맹국 정상들의 모임인 「비동맹정상회의」가 오는 9월1일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서 개최된다. 올해로 열번째를 맞는 이번 비동맹정상회의는 특히 북한 김정일의 참석설이 나돌아 회의 개막전부터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지난 14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은 인도네시아 현지 소식통을 인용,김정일이 김일성을 대신해 이 회의에 참석함으로써 김정일의 외교무대 공식데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김정일은 자신의 참석「서열」이 다른 나라 대통령이나 총리급보다 낮게 내정된데 불만, 최종 불참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자신의 국제사회 등장무대로는 격이 맞지 않는다는게 이유인듯. 김정일의 참석여부와 무관하게 북한이 비동맹회의에 기울이는 관심은 지대하다. 특히 동구 및 구소련 붕괴에 이은 한중수교라는 국제환경의 돌변은 향후 북한으로하여금 비동맹외교에 더욱 비중을 두게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이 한중수교에 따른 주민들의 동요나 이념의 누수를 비동맹정상회의에서의 반제국주의 이념강화를 통해 일시적이나마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이미 지난 17일 당기관지 노동신문 제10차 비동맹정상회의와 관련,강한 톤으로 비동맹운동의 지속적인 강화·발전을 촉구하는 글을 게재한 바 있다. 북한이 비동맹정상회의 회원국으로 가입한 것은 지난 75년 8월 페루 리마에서 열린 비동맹외상회의에서 였다. 6·25동란후 「진영외교」를 펼치던 북한은 70년대 들어 중립국가들을 상대로 한 「다변외교」로 노선을 전환했다. 이같은 북한외교방침의 변화는 중국의 유엔가입(71년),중·일국교정상화(72년)및 닉슨 미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이은 미중우호관계 형성등 국제적인 화해분위기 성숙이 그 동인으로 꼽혔었다. 북한은 비동맹회원국으로 가입한 이래 각 회의에서 한반도 문제를 지속적으로 상정,북한정책에 대한 지지확보에 주력해왔다. ▲주한미군철수 ▲유엔군 사령부(UNC)해체 ▲7·4성명에 기초한 한반도 통일안 지지 ▲핵무기 폐기 및 모든 전쟁수단제거등 북측의 주장들이 대부분인 한반도 관련「결의안」이 4차정상회의서부터 8차에 이르기까지 채택됐다. 북한은 9차 베오그라드회의 개막과 함께 진행된 집행부 구성에서 아시아 7개국·아프리카 5개국·남미 5개국등 23개국으로 구성된 부의장국에 피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들어 비동맹국가들이 부국과의 대결보다는 협조를,이념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선회하면서,또 한국의 국제적 지위가 크게 격상됨에 따라 비동맹회의서의 북한의 주장은 점차 설득력을 잃게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89년 9차 비동맹정상회의서 북한이 「한반도문제 결의안」초안에 대한 수정안조차 제출하지 못한데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올 상반기중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비동맹외교의 템포를 늦추지 않았다. 쿠바 라오스 시리아 캄보디아의 정부 대표단 및 국가수뇌를 초청하는 한편 김영남 외교부장의 인도네시아 비동맹조정위 각료회의 참가(5월 9일)및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순방등 방문외교를 펼친 것이 그 예. 지난해 망명한 전북한외교관 고영환씨는 『북한은 잠비아 모잠비크 세이셸 마다가스카르등 가난한 나라들을 상대로 이들 국가들이 계속 친북세력으로 남게하기 위해 경제지원을 포함,권력층의 장기집권을 위한 무기무상지원까지 해주고 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그는 또 향후 북한이 이같은 경협공세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비동맹그룹의 탄생기반이었던 냉전구조가 완전히 와해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비동맹정상회의가 갖는 의미와 비중은 점차 퇴색·약화되고 있는게 오늘의 현실이다. 대부분의 비동맹가입국들이 경제우선의 신국제질서속에서 각기 자국의 실리와 이해관계에 얽힌 현실을 중시하는 노선으로 방향전환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수교 이후 개방·개혁의 압력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과연 이번 회의에서 어떤 자세변화를 보일지가 궁금하다.
  • 서울­대북 일시적 냉각관계 예상

    ◎미·일 단교 선례로 미뤄본 한­대관계/민간교류 3∼4개월내 회복될듯/영사업무 곧 제한적수행 가능성 22일 한·중수교발표에 이어 대만정부가 한국과의 단교를 정식발표함으로써 아시아 반공의 최후 보루로 40여년간 유대를 돈독히 해온 한국과 대만의 관계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설정될 것인가가 새로운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대만정부는 자국인사의 한국 공식방문 중단및 한국산 수출품에 대한 반덤핑제소등 일련의 대한보복책을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져 당분간 양국관계의 냉각상태는 어쩔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상황일뿐 과거 대만이 일본 미국등과 단교했을때의 전례를 보면 앞으로 3∼4개월내에 양국의 기존관계가 「민간차원」이라는 전제하에 거의 그대로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일본등과의 단교를 경험한 대만인들은 한국과의 단교도 『올것이 왔다』는 분위기에서 가능한한 빠른 시일내에 민간경제교류창구가 개설되기를 바라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대만은 지난 1971년 유엔총회에서 상임이사국의지위에 있었음에도 중국의 가입과 함께 추방당해야 했으며 이어서 최대의 교역국이던 일본과 미국의 대중수교로 이들과 각각 72년과 78년에 단교했다.그러나 이들은 재빠르게 사실상의 외교공관이나 다름없는 민간기구를 설립,기존의 관계를 유지시켜온 만큼 그들의 대처방법은 앞으로 양국관계를 풀어나가는데 하나의 본보기가 될것으로 보인다. ▷대만­일본◁ 71년 미닉슨행정부 키신저국무장관의 이른바 핑퐁외교로 중국의 문호가 개방되자 72년9월29일 다나카일총리가 중국을 방문,양국 국교가 회복됐다.이에따라 대만은 같은날 일본과의 단교를 선언했으나 3개월후인 12월26일 양국은 「교류협회와 동아시아관계협회간의 상호 재외사무소 설치에 관한 합의」를 채택,각각 민간사무소를 설치했다. 이에따라 대만은 도쿄에 「동아시아관계협회」사무소를 개설,현직 대사급을 책임자로해 영사업무등 제한적인 외교업무를 해오고 있다.이 사무소의 직원들은 대부분이 현직 공무원이며 오사카등 3개지역에 지방사무소도 설치하고 있다.한편 일본은 타이베이에 「재단법인 교류협회」사무소를 설치하고 전직 대사급을 책임자로해 제한적인 영사업무를 수행하고 있다.직원은 은퇴하거나 휴직한 공무원들로 구성돼 있으며 카오슝에 지방사무소를 설치하고 있다. 이들은 무역·투자·기술협력등에 관한 각종 민간협정을 체결,각종 협력관계를 유지해오고 있으며 직원들에게는 외교특권은 불인정하고 있으나 상호주의 원칙하에 외교관에 준하는 대우를 부여해주고 있다. 또 단교시 대사관의 재산처리에 있어서 일본의 경우 중국이 도쿄의 대만대사관과 관저를 승계토록 했으며 대만은 타이베이에 있던 일본대사관을 교류협회가 임차사용하고 관저는 협회사무소장이 사용토록 했다. ▷대만­미국◁ 대만은 78년 12월16일 미·중수교(79년 1월1일)에 앞서 미국과의 단교를 선언했다.그후 대만은 79년 2월23일 행정원명령에 의해 워싱턴에 북미사무협조위원회(CCNAA)를 개설했으며 미국은 같은해 4월10일 통과된 대만관계법에 의해 타이베이에 미국재대협회(AIT)를 각각 설립했다. 이들 기구의 책임자는 모두 대사급으로 돼있고 대만측은 현직공무원이,미국측은 퇴직 또는 휴직공무원들이 직원들로 구성돼 있으며 사실상의 외교업무를 수행하고 있다.이들간에는 현재 문화교류·무역·항공·과학협력·어업협정등 30여개의 협정이 체결돼 있으며 CCNAA는 뉴욕등 11개소에 AIT는 카오슝 1개소에 각각 지방사무소를 설치하고 있다.이들은 또 「특권,면세및 면제협정」을 체결,상호간에 국제기구및 그 직원에 대우되는 동일한 대우를 해주고 있다. 또 대사관 재산처리에 있어서 미국은 단교후 미국대사관 재산을 대만정부에 매각했으며 대만은 단교직전 민간단체에 매각하고 대만관계법이 이를 인정함으로써 외교재산을 유지할 수 있었다.
  • 서울∼대북/비공식 외교채널 유지될듯/단교이후의 관계 어찌될까

    ◎단절상태 계속땐 양국모두 불리/미·일도 법인형태 통해 교류 지속 한국과 중국간의 정식국교수립이 결정된 가운데 대만과의 외교마찰이 우려되는 등 우리나라와 대만관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1일 외무부와 중국관리들로부터 한중수교가 확인되자 대만측은 즉각 『한국과의 단교할 태세가 되어 있다』는 등 강경자세를 보이는가 하면 『한국과의 경제관계를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지난20일에는 김수기 주한대만대사가 급거 귀국함으로써 양국관계는 급속히 냉각되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한국이 중국과 수교한다는 것 자체는 곧 대만과의 단교를 뜻하는 것으로 외교가에서는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각각 지난 79년1월과 72년9월 중국과 수교하자 대만이 이들 나라와 단교를 선언한 예에서 잘 나타난다. 이는 중국이 다른 나라와 수교할 때 상대국에 요구하는 것이 바로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간주하는 1국2체제 개념이며,반면 대만으로서는 이를 인정해 중국과 수교하는 나라를 용인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지난 72년 일본이 중국과 수교할 때에도 대만은 중국영토의 일부임이 받아들여졌고 닉슨·포드·카터 3행정부를 통해 이루어진 미·중국수교 때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의 유일한 정부」라는 내용이 양국수교 성명서에 포함됐다. 따라서 한중수교에도 중국은 반드시 이점을 전제로 할 것이며 이는 곧 대만과의 단교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주목할만한 점은 중국과 수교하는 상대국들은 수교때 대만과의 단교를 언급하지 않는 반면 대만이 먼저 단교를 선언하고 나온다는 점이다. 어쨌든 중국과의 수교는 곧 대만과의 단교결과를 가져오며 기존 대만과의 관계는 전면 재개편됨에따라 양국관계에서 특히 경제적인 손실이 예상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교상 전혀 등지고 지내는 상태가 계속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같은 관측은 미국과 일본이 단교뒤에도 곧바로 비공식외교관계를 계속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지정학적 관계에서 한국과 대만이 등을 돌린다는 것은 양국 모두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78년12월 대만과단교후에 4개월만에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재대협회 대북사무소를 설치,대사급퇴직공무원의 책임하에 사실상 외교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일본 역시 72년9월 단교뒤 재단법인 교류협회 대북사무소를 설치해 사실상의 영사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대만도 미일에 각각 북미사무협조위원회와 아동관계협회 동경사무소 등을 설치,무역투자·문화교류·과학협력 등 분야에서의 각종 협정을 맺고 교류를 계속해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과 대만 사이에도 단교라는 외교상 절차는 밟겠지만 어떤 형태·명칭이든간에 이같은 비공식 외교채널은 유지될 것이 확실시 된다. 단지 그동안 대만과 한국은 다같이 반공의 이념을 채택하고 끈끈한 외교적 유대를 유지해왔던 만큼 단교로 인한 양국국민들 사이에 생겨날 「마음의 상처」가 어느 정도 빨리 치유될지는 미지수로 남아있다.
  • 페로사무실 도청 의혹… 미 정가 발칵

    ◎부시 함정에 빠뜨리기위한 음모 추정/FBI서 용의자 확보… 수사착수키로 【워싱턴 AFP 연합】 미 연방수사국(FBI)은 누군가가 부시대통령을 워터게이트식의 추문에 빠뜨려 그의 재선운동을 망칠 목적으로 무소속 대통령후보였던 로스 페로의 사무실 전화기에 도청장치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라고 워싱턴 포스트지가 14일 보도했다. FBI의 한 수사요원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부시대통령의 댈라스지역 선거운동 담당자인 올리버 오버웨터씨가 FBI에 이같은 의혹을 제기해 왔다고 전했다. 오버웨터씨는 워싱턴 포스트에 이달들어 스코트 바네스라는 이름의 사람과 다른 한명이 그의 사무실에 찾아와 페로의 통화내용을 녹음한 테이프와 다른 문서들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했으나 그들을 그냥 돌려보냈다고 밝히고 그들에게는 그러한 행위가 범법행위라고 경고했다고 덧붙였다. 오버웨터씨는 이들이 어쩌면 부시의 선거운동을 리처드 닉슨 전대통령의 사임을 가져온 워터게이트 사건과같은 추문에 휘말리게 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들 두명중 스코트 바네스라는 사람은 자신이 페로의 통화내용을 비밀녹음하는 대가로 2천5백달러를 제의받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 「이」,PLO접촉 합법화 추진/법안 10월 의회 상정

    ◎중동평화 새 전기 기대/아라파트도 “환영” 표시 【예루살렘·워싱턴 로이터 연합】 이스라엘은 그간 금지해온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의 접촉을 합법화하는 획기적인 법안을 마련중이라고 고위 관리들이 9일 밝혔다. 이에 대해 야세르 아라파트 PLO의장은 환영의 뜻을 표시하면서 예루살렘측이 PLO와 직접 접촉하는 등 보다 더 양보토록 촉구했다. 또한 리처드 닉슨 전미대통령도 이날 워싱턴을 방문중인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총리와 만난후 중동평화 정착을 향한 『기회의 창이 처음으로 열렸다』고 강조하는 등 오는 24일 재개될 예정인 평화회담을 앞두고 중동평화 전망이 전례없이 밝아졌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9일 이탈리아의 일 메사게로지와 가진 회견에서 대PLO접촉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오는 10월 의회에 상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요시 베일린 이스라엘 외무차관도 이스라엘 방송과의 회견에서 페레스장관의 발언을 확인하면서 현재 관련 법안이 마련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지난 86년 PLO를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면서 자국인의 접촉을 금하는 법을 제정한 바있다. 아라파트 의장은 9일 튀니스에서 로이터통신과 가진 회견을 통해 이스라엘측의 대PLO접촉 합법화움직임에 대해 『올바른 방향을 향한 발걸음』이라고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그는 그러나 이스라엘이 대PLO 직접 접촉에 나서지 않을 경우 이같은 조치가 「단순한 선전」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면서 예루살렘측에 보다 더 양보토록 촉구했다.
  • “미,20년전 오키나와 반환/유사시 핵반입 전제”/요미우리서 보도

    【도쿄 연합】 미국이 오키나와(충승)를 일본에 반환할 당시에 「유사시 핵의 저장과 통과」를 전제 조건으로 한 사실이 최근 미정부의 공식문서에서 밝혀졌다고 요미우리(독매)신문이 12일 워싱턴발로 보도했다. 닉슨 전미대통령이 1969년 오키나와 반환을 최종적으로 결단한 미 정부의 공식문서 「국가안전보장 결정 메모랜덤(NSDM) 13호」는 미측의 기본 방침으로서 ▲72년반환에 합의를 목표로 한다▲한반도·대만·베트남 정세등과 관련해 기지의 최대한 자유사용을 목표로 한다 ▲교섭의 최종 단계에서 대통령은 핵철거를 고려하지만 긴급시에 핵의 저장·통과권을 유지한다고 명기 하고 있다.
  • 외언내언

    카터 전미대통령은 가장 훌륭한 「전직」대통령으로 미국인들의 대접과 사랑을 받고 있다.착하고 선한 일을 찾아 때로는 집없는 사람들의 목수로 일을 돕고 아프리카 오지의 질병퇴치봉사로 나날을 보내는 등 어떤면에서 그는 백악관 생활을 더 나은일과 나날을 향한 발판으로 삼는 듯 하다고 평한 사람도 있다.◆닉슨 전대통령은 비록 워터게이트사건으로 탄핵을 받아 백악관을 쫓겨나 한떼 조울증으로 폐인이 되는 듯했으나 용기와 지혜로 고통을 극복,자신이 경험한 정치적 식견과 지혜를 담은 글을 쓰고 책(1999년의 전쟁없는 승리)등을 내는등 맹활약을 통해 그는 지금 가장 존경받을만한 높은 정치적 식견과 경륜을 가진 외교평론가로 평가를 받아 때로 백악관의 자문요청을 받기도 한다.◆이제 소련의 「전직」도 숙청당해 행방이 묘연해 지는 시대를 지나 고로바초프 전대통령이 서방매체에 칼럼을 통해 지구가족의 입장에서 스탈린치하에서 겪은 체험을 반체제 아닌 그 당의 황태자였던 입장에서 객관적인 안목의 글을 쓰게 됐다는 사실은 지구가족의 장래를위해 참으로 다행한 일로 생각된다.◆물론 골프(포드 전대통령)를 치며 자적하는 사람도 있고 전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자신의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해 강연과 회견,세미나 등으로 동분서주(대처전영국수상·브란트 전서독수상)하는 「전직」도 있다.모두가 전직의 흐뭇한 모습들이다.◆「전직」의 지혜로운 모습은 전직의 경험으로 그 사회와 국가 인류를 위해 조용한 봉사나 공헌 아니면 자적하는 자세에 있다는 점에 새삼 생각이 미친다.
  • 부시에 큰 상처준 첫 예선(사설)

    미국대통령선거 뉴햄프셔주예비선거의 결과가 충격을 주고 있다.현직대통령인 부시후보에 도전한 정치무명의 보수파 칼럼니스트출신 부캐넌후보가 40%이상 득표라는 예상외의 선전을 한 것이다.부시대통령의 재선가도에 먹구름이 드리우게 되었으며 금년 미대통령선거의 혼전을 예고하는 사건이라 할만하다.미국내외에 미치게될 파장을 우려케 하는 결과이기도 하다. 뉴햄프셔예비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면 11월의 본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52년이래 미국대통령선거의 징크스였다.때문에 각 후보들은 이 예비선거의 승리를 위해 신경을 쓰고 많은 노력을 경주하곤 했다.이번 예선을 앞두고 부시대통령도 3차례나 유세에 나서는등 총력전을 전개하다시피 했다.불경기와 실업사태속의 인기 폭락에도 불구하고 현직 대통령의 이점을 살린 부시가 2대1정도의 차이 내지는 60%이상의 득표로 간단히 이길 것으로 자신하고 있었다.그것이 10%의 차이도 안되는 신승으로 끝난 것이다.부시진영의 실망처럼 『이것은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며 매우 심각한 일』인 것이다.미국선거에선 외교적 업적보다 유권자의 주머니사정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다시한번 증명된 셈이다.닉슨과 포드전대통령의 스피치 라이터도 지낸바 있는 부캐넌 후보가 내걸고 있는 구호는 「아메리카 퍼스트」(내정최우선주의)다.구소련의 소멸이후 미국에겐 안보상의 적이 없어졌으며 결과적으로 그동안의 국제적 과잉개입에 대한 반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걸프전의 승리보다 더 중요한것이 경기회복과 일자리라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으며 부캐넌은 이에 동조하면서 부시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 이번 예선결과는 공화당을 지지하는 전통적 보수계 유권자들의 반부시 내지는 대부시불만의 의사표시라고도 할 수 있다.이번 신승과 그로인해 앞으로 예상되는 고전에도 불구하고 8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부시의 후보재지명이 거부되는 사태는 없겠지만 민주당후보와의 본선은 크게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미국매스컴은 미국민 일반의 불만을 「신대통령대망론」과 결부시키기 시작하고 있다.인물난의 민주당도 이번 예선에서 도토리키재기식 경선끝에 선두의 송가스와 클린턴 후보가 혼전을 벌인 것으로 나타났다.그러나 부시를 보다 위협하는 것은 제3의 후보가능성이다.출마의 압력을 받고 있는 뉴욕주지사 쿠오모나 록펠러상원의원 게파트하원 원내총무 등 중량급중의 누군가가 나서면 문제는 심각할 것이다.부시의 이번 약세는 그 가능성을 높인 셈이다. 결국 이번 뉴햄프셔예선 결과는 11월3일의 미대통령선거가 보다 불확실하고 혼돈스러워질 것임을 예고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재선좌절과 12년만의 민주당대통령 출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만든 셈이다.그리고 선거의 쟁점이 경제문제로 압축될 것이며 선거기간 중에는 물론 누가 대통령이 되든 일본을 비롯 우리에 대한 미국의 시장개방압력도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미국의 고립주의 내지는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심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이런 것들이 몰고올 변화의 파장이 걱정된다.현명한 대응을 미리 미리 생각하는 지혜가 있어야 하겠다.
  • 미 대통령선거 막오르다(공화·민주서 누가 뛰나:3)

    ◎공화 2·민주 5명 “숨가쁜 레이스”/부캐넌,「보수깃발」 내세워 부시 맹추격/공화/클린턴·송가스·하킨등 “엎치락 뒤치락”/민주 지난 10일의 민주당 아이오와 코커스(주당원대회)를 기점으로 불이 붙은 미국 대통령선거전은 이제 오는 7월과 8월로 예정돼있는 민주·공화 양당의 전당대회에서 후보지명을 따내기 위한 각당 주자들의 숨가쁜 레이스로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당초 공화당에서는 부시의 독주가 예상됐었으나 최근 그의 인기가 바닥세를 보이고 있고 민주당의 후보지망자들도 뚜렷한 선두주자 없이 엎치락뒤치락하는 혼전양상을 연출함으로써 유권자들의 관심은 양당 후보자의 윤곽이 드러날 오는 18일의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 쏠리고 있다.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는 현재 공화당 26명,민주당 36명,자유당 1명등 총 63명이 등록,사상 최대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선거운동조차 하지않는 이름뿐인 후보가 대부분으로 실제경합자는 공화당에서는 12일 출마를 공식선언한 현대통령인 조지 부시와 칼럼니스트인 패트릭 부캐넌,민주당에서는 빌 클린턴 아칸소주지사,보브 케리 상원의원,톰 하킨 상원의원,제리 브라운 전캘리포니아주지사,폴 송가스 전상원의원등 5명으로 압축된다.백악관을 향해 뛰고있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공화당◁ ◆조지 부시(68)=현직 대통령(41대).예일대출신으로 일찍 텍사스에 내려가 석유사업으로 대성한 보기드문 행운아.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후 연방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진출,유엔대사·초대 북경연락사무소장·CIA(중앙정보국)국장을 거쳐 레이건대통령 밑에서 8년동안 부통령을 역임했다. 부통령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미역사상 몇안되는 인물중 한사람이다.걸프전과 냉전의 최후승리자로 한때는 지지도가 90%를 넘어서기도 했으나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최근엔 인기도가 30%대까지 내려가 재선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패트릭 부캐넌(54)=신문기자출신 칼럼니스트.닉슨,포드,레이건등 공화당소속 대통령때는 백악관에 들어가 주로 연설문작성작업을 돕기도 했던 철저히 보수적인 인물이다. CNN­TV 해설가로 활약하면서 부시의 정책이 덜 보수적이란이유로 그를 맹비난해 왔으며 낙태,대외원조 반대등 고립주의정책을 내세우고 있다.비판은 하나 설득력있는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말의 폭력자」란 평을 받고 있다. ▷민주당◁ ◆빌 클린턴(46)=현재 아칸소주지사.조지타운대,영국 옥스퍼드대,예일법대를 거쳐 변호사가 된후 아칸소주검찰총장,79∼81년 주지사,83년 지사에 재선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만고만한 후보들중 선두를 달려왔으나 섹스 스캔들,월남전 병역기피혐의 등이 드러나 고전중.정책은 비교적 보수성향. ◆제리 브라운(54)=75∼83년 캘리포니아주지사를 지냈으며 76년과 80년 연이어 대통령후보지명전에 나섰으나 그때마다 지미 카터후보에게 패배.버클리대와 예일대출신으로 주지사를 역임한 아버지의 후광으로 일찍 정계에 진출했으나 80년대들어 활동이 미미한 편. ◆톰 하킨(54)=아이오와주출신 상원의원.연방 하원의원을 거쳐 상원에 진출했으며 현재 상원 민주당부총무. 탄광노동자인 아버지와 유고 이민1세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릴때 소아마비증세로 불우한 젊은시절을 보냈다.이런 배경때문인지 성향이 진보적이며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다. ◆폴 송가스(51)=78∼84년 매사추세츠주출신 상원의원.현재는 주고등교육평의회 의장직을 맡고 있다.다트머트대·예일법대등 세칭 아이비리그출신 변호사로 검찰총장보를 역임했다. 교육·환경·사회문제등에 비교적 구체적 접근을 하고있는 점이 강점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데다 건강때문에 정계은퇴(84년)를 했던 경험이 약점이다. ◆보브 케리(49)=83∼87년 네브래스카주지사를 거쳐 현재는 연방 상원의원.베트남전때 해군으로 참전,오른쪽 다리를 잃었으며 82년까지 식당업을 하다 정계에 투신,오늘에 이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걸프전때 끝까지 미국의 무력개입을 반대할 만큼 진보적 성향이다.전쟁영웅,자전적 사업가,무명에서 일약 주지사당선등 너무나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으나 정책대안이 없다는게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 공항 환영행사뒤 바로 국립묘지 참배/부시 내한 첫날 이모저모

    ○…부시미대통령은 5일 하오3시30분 전용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사흘동안의 공식일정을 시작. 부시대통령일행이 탄 전용기가 서울공항에 도착하자 장선섭외무부의전장과 그레그 주한미대사가 기내영접. 쥐색코트차림의 부시대통령은 바바라여사와 함께 21발의 예포가 울리는 가운데 트랩을 내려와 미리 나와있던 정원식국무총리에게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 부시대통령내외는 이어 차가운 날씨속에 환영나온 이상옥외무장관,한봉수상공장관,현홍주주미대사,주한미대사관·미8군관계자들과 반갑게 악수를 나눈뒤 미대통령 전용승용차에 올라 동작동 국립묘지를 향해 출발. 이날 부시대통령의 서울공항도착행사는 공식환영행사가 6일 청와대에서 열리기 때문에 정총리를 비롯한 우리측 영접인사와 미측관계자등 20여명만이 참석,특별한 환영식이 없이 7분만에 끝났다. 이에따라 일반 환영객 참석은 물론 꽃다발증정등 일체의 행사도 생략. ○…부시대통령은 하오4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도착,귀빈실에 잠시 머문뒤 4시5분쯤 현충탑에서 강명석국립묘지관리소장의 집례로 헌화하고 분향. 부시대통령은 이어 방명록에 서명한뒤 승용차편으로 청와대로 출발. ○…노태우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부시대통령과 1시간여동안 테니스를 친뒤 관저에서 비공식만찬을 주재.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의 테니스시합은 지난해 7월 백악관에서의 시합에 이어 2번째. 그러나 이날의 청와대일정은 미국측의 요청에 따라 비공개. ◎한미 정상회담 일지 ▷6공이후◁ ▲88.10.20=노태우대통령­레이건대통령회담(워싱턴) ▲89.2.27=노대통령­부시대통령(서울) ▲89.10.17=노대통령­부시대통령(워싱턴) ▲90.6.6=노대통령­부시대통령(워싱턴) ▲91.7.2=노대통령­부시대통령(워싱턴) ▲91.9.23=노대통령­부시대통령(뉴욕) ▲92.1.6=노대통령­부시대통령(서울) ▷6공이전◁ ▲52.12.2=이승만대통령­아이젠하워대통령당선자(서울) ▲54.7.30=이승만대통령­아이젠하워대통령(워싱턴) ▲60.6.20=허정국무총리­아이젠하워대통령(서울) ▲61.11.14=박정희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케네디대통령(워싱턴) ▲65.5.18=박정희대통령­존슨대통령(워싱턴) ▲66.11.2=박대통령­존슨대통령(서울) ▲68.4.17=박대통령­존슨대통령(호놀룰루) ▲69.8.22=박대통령­닉슨대통령(샌프란시스코) ▲74.11.22=박대통령­포드대통령(서울) ▲79.7.1=박대통령­카터대통령(서울) ▲81.2.2=전두환대통령­레이건대통령(워싱턴) ▲83.11.14=전대통령­레이건대통령(서울) ▲85.4.26=전대통령­레이건대통령(워싱턴)
  • 외언내언

    분명 그것은 기쁜 소식이다.반기고 환영하며 흥분해야 할 소식이다.그런데도 마음 놓고 기뻐만해지지 않는것은 무슨 연유에서 일까.「유보된 기쁨」의 이상한 감정을 느낀다.◆그동안 경험해온 남·북대화의 역사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남·북대화가 처음 시작된 것은 71년의 일.닉슨독트린등으로 동아시아정세가 유동기로 접어들던 시기였다.1천만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어주기 위한 우리의 제의에 북한이 호응해 이루어진 남·북적십자회담이 남·북대화의 효시였다.◆이와 병행된 남·북정부당국자간의 비밀교환 방문을 거친 7·4공동성명에 흥분했던 기억이 새롭다.그러나 20여년의 1백90여차례 대화의 역사는 희망보다 실망을 더 많이 안겨주는 것이었다.이산가족교환방문 실현의 성과가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월남패망때등 북한의 일방적 필요에 따라 중단되기도 하고 재개되기도 하는 대화에 우리는 그저 일희일비할 수 밖에 없었다.◆작년 9월 최초의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을때만 해도 그것이 오래갈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얼마 안되었다.다섯차례나 교환된 것만해도 대견 스러운데 이번에는 「화해·교류및 불가침」에 관한 합의까지 이루어졌다.영문을 몰라하는 기분이 안들겠는가.◆그리고 하는 말들이 다.『김일성이 궁하긴 궁한 모양이야』,『어지간히 급한 모양이지』,『이번 대표단은 딴사람처럼 순했다던데』.50억달러 전후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일본의 경협자금을 빨리받아 가려는 속셈 때문이라는 해설이 그럴듯 하다.그러나 동구·소련 돌아가는 것도 봤고 중국의 실상도 아는터.전술·전략·통일전선 그 다 부질없는 일,이제 민족의 장래를 생각할 때도 되기는 했는데 글쎄 좀더 두고 볼 수 밖에.
  • 부시/재선가도에 먹구름/NYT등 여론조사서 인기도 51%로 급락

    ◎취임이래 최악… “경제정책 지지” 24%뿐/정부내 불화도 악재… 공화캠프 전전긍긍 걸프전의 완승으로 하늘을 찌를듯 했던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의 인기가 최근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부시대통령의 인기급락은 주로 국내의 어려워진 경제형편 때문인데 최근엔 수누누 백악관비서실장과 정부내 불협화음까지 겹쳐 내년의 재선을 낙관할 수 만도 없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26일 발표된 뉴욕 타임스지와 CBS방송이 공동조사한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부시의 지지율이 불과 51%로 한달여 전인 10월 조사때보다 무려 16%포인트나 떨어졌다. 이 조사는 또 현재 투표를 한다고 가정하고 부시 공화당후보와 민주당의 어떤 후보중 누구에게 표를 찍겠느냐는 설문도 주었는데 부시지지가 39%,민주당후보에게 투표하겠다는 사람이 37%나 됐다.특히 부시는 30∼44세의 중년층과 연수입 3만∼5만달러 수준의 중산층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지역적으로는 서부로 갈수록 인기가 떨어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부시진영은 이런 결과가 그렇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보고있다.바로 전임 로널드 레이건대통령재직시 한때 인기가 53%까지 하락했으나 실제로 월터 먼데일 민주당후보와의 싸움에서는 50개주중 49주에서 승리했고,닉슨대통령때도 1971년 여름 인기가 48%까지 내려갔으나 18개월후 선거결과는 조지 맥거번후보에 압승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부시진영이 낙관만 할 형편이 아니라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최근 다른 여론조사의 결과만 보아도 74%가 현재의 경제상태를 「상당히 나쁘다」로 본반면 「그런대로 괜찮다」고 본 사람은 24%에 불과했다.
  • 한자리에 모인 미 다섯 대통령

    ◎LA 레이건기념도서관 개관식서 웃으며 만나 로스앤젤레스 북서쪽 시미 벨리의 숲이 우거진 언덕에서 4일 낮 거행된 로널드 레이건 미 제40대 대통령 기념도서관 개관식은 단순한 테이프 커팅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 5명이 자리를 함께 하기는 미역사상으로도 이번이 처음이라지만,한국에서 반목·적대하는 전현직 대통령 관계만을 보아온 기자에게는 신기하고 부럽게만 느껴졌다. 이들은 재임중 후견인으로서 후계자를 돕기도 했고 경쟁자로서 서로 싸우기도 했다.또한 한사람의 행운은 다른 사람의 불행이기도 했으며 한사람의 승리는 다른 사람의 패배를 뜻하기도 했다. 연단에 부인과 함께 나란히 앉은 다섯 대통령 가운데 제37대 리처드 닉슨과 다음의 제럴드 포드는 78세,지미 카터는 67세,레이건은 80세,그리고 현재의 제41대 조지 부시는 67세로서 모두가 미국정치의 연륜과 활기를 읽게 하는 원로요 노익장들이다.특히 이날의 주인공 레이건에게 1980년 선거에서 고배를 든 카터는 아프리카의 잠비아에서 선거감시 임무를 수행하던중 급거 귀국,행사에 참석해 많은 눈길을 끌었다. 부시대통령이 축사를 통해 전임자들의 치적을 열거할 때 장내에선 환호와 박수로 호응했고 전임자들은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부시는 닉슨을 가리켜 『국내에선 개혁자였고 국외에선 평화의 개척자였다』고 칭송했고 포드에게는 그의 의욕과 인품에 찬사를 보냈다.카터에 대해서는 평화와 인권을 위한 그의 헌신적인 노력에 경의를 표했다.그는 레이건에 언급,『보수주의의 물결을 선도한 정치적 선각자였으며 그의 강력한 군비증강 정책이 미국인들에게 걸프전의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고 찬양하며 그의 밑에서 보낸 부통령 생활 8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간 헌금 5천7백만달러를 들여서 지은 레이건 도서관은 지금까지 건설된 미국의 대통령 기념도서관 10개소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하다.거기엔 5천5백만건의 문서가 소장돼 있고 백악관의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가 실물 크기로 재현됐으며 3t짜리 베를린장벽이 냉전의 유물로 전시돼 있다. 그러나 레이건 도서관은 이러한 외형이나소장품 보다도 한자리에 모인 5명의 전현직 대통령을 통해 반목이 아닌 화합,단절이 아닌 축적의 건강한 미국정치를 리얼하게 보여줌으로써 개관 첫날부터 전 세계에 깊은 인상을 심었다.
  • “북한 핵 저지”/가중되는 워싱턴의 「다국적 압력」

    ◎사찰·수교 연계등 소·일·중과 긴밀대응/의회·언론의 강경론 업고 평양측 죄어 김일성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대북한 강력 제재론이 워싱턴에서 점차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한국으로부터의 미 핵무기 완전철수 선언이 평양의 핵사찰 거부 구실을 제거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무너지면서 나타난 새로운 역기류다. 작년가을 미하원 동아태소위(위원장 스티븐 솔라즈 의원)가 한반도 핵문제에 관한 청문회를 개최했을 때만 해도 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핵시설을 파괴하기 위한 군사공격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펄쩍 뛰면서 평양과의 관계개선 등 유화책을 통한 핵개발 저지를 부시 행정부에 촉구했다. 그러나 김일성의 핵무기 보유 집념이 확연히 드러난 올 가을엔 온건론 보다도 강경 제재론이 크게 부상하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 10월23일 미상원 청문회에서 나온 제임스 슐레진저 전미국방장관의 대북한 군사행동 지지 발언은 이러한 강경론의 대표적인 사례다.월남전 당시 닉슨 행정부의 국방장관을 역임한 슐레진저는 김일성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북한에 대해 경제제재와 군사조치등 강력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그는 특히 북한처럼 속임수를 쓰는 못된 나라가 핵무기 개발을 강행할 경우 결국 군사적 선제조치를 통해 핵무기 개발을 중단시킬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주목을 끌었다. 수일후 상원의 조셉 바이든 의원(민주)도 미국의 핵무기 철수 제안만으론 북한의 핵폭탄 개발을 봉쇄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전제,세계적인 대북한 경제제재를 촉구하며 북한과 같은 못된 나라에 대해서는 무력사용의 논의가 정당화 될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에앞서 유엔의 이라크 핵개발조사단장인 데이비드 케이는 핵무기개발을 추구하고 있는 북한,시리아등에 의한 핵확산을 막기 위해 유엔 헌장에 명문화돼 있는 사찰 조항을 발동시킬 필요가 있다며 북한 등에 대한 강제 핵사찰을 역설했다.유엔헌장 7조에 의하면 특정 국가의 핵무기 개발 계획에 대해 안보이가 국제평화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규정할 경우 유엔산하기구인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사찰을 시행할 수 있도록돼있다. 한반도문제에 정통한 솔라즈의원은 한 세미나에서 북한이 핵무기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경우 이는 주한미군 감축일정 조정에 주요 요소가 되어야 한다며 주한미군 감축과 북한 핵사찰의 연계를 주장했다. 또한 시사평론가 짐 호글랜드는 지난달 24일 워싱턴 포스트지에 게재된 「북한 핵폭탄 저지」라는 칼럼에서 『새롭고 더욱 강력한 형태의 강압외교만이 영변의 굴뚝에서 핵 연기가 피어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며 북한에 대한 강대국들의 경제적·정치적 압력을 촉구했다.그는 『김일성 독재정권의 핵무기 개발위협에 국제사회가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탈냉전시대의 강압외교를 구체화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며 『지금 강대국들은 지구촌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영향력의 규범과 수단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미국정부도 일부 의원과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강경대응을 장기적 관점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그러나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미국이 지금 북한에 대해 경제적·군사적 강경조치를 강구하고 있다는 것은올바른 분석이 아니다. 미국무부의 리처드 솔로몬 동아태담당차관보는 북한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대응책을 한마디로 「다자적 해결노력」이라고 표현했다.그는 이러한 노력의 실례로 IAEA를 통한 노력,미국의 대북한교역 금지 지속,일본의 대북한 수교 선행조건으로서의 핵사찰 수용 요구,중소를 통한 영향력 행사등을 들었다. 이러한 다국적인 외교 노력이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경우 마지막 수단으로 유엔을 통한 강제 핵사찰이나 경제적·군사적 강압책을 강구하겠다는 것이 워싱턴의 전략이다. 현재 IAEA의 핵사찰을 거부하고 있는 나라는 북한을 비롯해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브라질등 약20개국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이 가운데 오직 북한만을 상대로 강제사찰이나 경제제재를 실시하려면 이에 걸맞는 명분 축적이 있어야 한다.극단적으로 본다면 지금은 그런 단계가 아닌가 싶다.
  • 옐친,그는 누구인가/소 권부의 실세로 떠오른 “풍운아”

    ◎우랄산촌서 염소와 잠자던 빈농의 아들/“촌티난다” 괄시하던 서방,이젠 악수 공세 불멸의 무쇠인 양 하던 소련 공산당이 오늘은 한낱 바람 앞의 촛불 신세이다.그리고 무쇠를 종이장처럼 태워버릴 수 있는 이 바람은 소련 정치무대의 「풍운예」인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서부터 불어오고 있다. 옐친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인 티가 너무 나」국제정치의 지도자들로부터 깔보임을 당했지만 품성과 행동 하나하나가 러시아인의 전형인 그에 의해 세계 코뮤니즘의 원조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것이다. 6피트4인치의 거구로서 옐친은 그가 방문한 서방 정치인들로부터 먼저 『어느방이든 옐친이 들어오면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쳐다보게 된다』는 평을 받곤 했다.그러나 이 인물평은 곧 『육체적인 위압감에 그칠 뿐 카리스마적 위세로 곧장 연결된다고까진 볼 수 없다』는 평가절하로 이어졌다.부시 미대통령은 자신보다 훨씬 풍모상으로 위세당당한 옐친을 『촐랑대는 라이트급』이라고 깎아내린 바 있었다. 그러나 쿠데타 기간동안 옐친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했던 서방지도자들은 서둘러 자신의 옛 평가를 실수로 인정하고 있다.옐친을 이단시했던 소련 보수정치인 뿐 아니라 한다하는 서방정치인들도 고르바초프에게만 집중 투자한 탓에 편향된 시각을 갖게 됐다고 자인하는 것이다.진취적인 서방정치인들마저 「신중하지 못한」태도로 여겨진 옐친의 모습은 어릴 때부터 드러난 천성이라고 할수 있다. 우랄산맥의 한촌 부트코에서 태어난 옐친은 공동주택 오두막집에서 다섯형제,염소 한마리와 같이 한방을 쓰는 가난한 어린시절을 거쳤으며 2차 세계대전 와중인 10살때 길가에 떨어진 수류탄을 만져보다 수류탄이 폭발,왼손 검지와 장지를 잘리는 사고를 겪기도 했다.잘못했다고 생각되면 이를 꼭 지적하고야 마는 열혈적 성격과 웅변에의 뛰어난 소질을 일찍부터 발휘,12살때 졸업식장에서 교장선생을 사디스트라고 일갈한 덕분에 식장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모험심이 강한 옐친은 우랄기술대를 졸업하기 전인 52년 전국일주 무전여행에 나섰다.표 살 돈이 없어 기차꼭대기에 몰래 올라가는 무임승차가 태반이었으며 집없는 사람들과 헛간에서 살을 마주대고 잠을 자는 일정의 연속이었는데 석탄푸기·육군대령에게 수학을 가르치기등으로 음식값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고르비의 개혁 노선이 발진된 이래 옐친만큼 진보적인 정치성향과 일맥상통하는 자유주의적이고 개방적인 행동거지를 실천해 보인 소련정치가는 없었다.서방정치가들마저 기존 소련정치인의 틀에서 벗어난 이 러시아 개혁주의자를 전적으로 포용하지 못해 『꾀많은 러시아농부가 「개혁」의 어릿광대짓을 하고 있다』는 식의 험담을 서슴치 않았다. 89년 첫 미국 방문때는 흐트러진 백발에다 제스처가 큰 옐친을 두고 일부 미국 언론들은 「술주정뱅이」라고 꼬집기도 했다.닉슨 전 미국대통령만이 고르비가 두뇌에 호소하는 지도자라면 옐친은 상대의 가슴에 와 닿는 지도자라고 칭찬했을 뿐이었다. 옐친은 쿠데타 발생직후 자신의 청사앞에 포진했던 탱크위에 올라 반쿠데타의 사자후를 터뜨렸었다.당시 탱크병은 이 청하지 않은 손님을 거부하는 대신 자신의 얼굴을 가렸으며 이때 옐친이뛰어 오른 것은 일개 소련제 탱크가 아니라 전세계인의 가슴인 것이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5

    ◎「도끼만행」은 월남전뒤 “미 의지 시험용”/운명의 날 8·18… 4분만에 미군 2명 살해/참모회의중 일보… 스틸웰장군에 “귀환 급전”/북측 병사 30여명,「가지치기 현장」 포위… “의도적 도전” 내가 다시 한국에 근무하게 된것은 1976년 봄 소장으로 주한유엔군사령부의 참모장을 맡게 되면서였다.이 직책은 주한미군 참모장과 미8군 부사령관등을 겸하며 또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의 수석대표도 맡았다.나는 대장이 된 스틸웰사령관과 다시 만나게 된것이 기뻤다. 7월1일 아내 메리와 함께 김포공항에 도착,용산 유엔군사령부까지 가는 동안 놀랍게 발전된 서울의 스카이라인을 보며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그러나 이도시의 불과 25마일 북방에 싸늘한 긴장이 감도는 DMZ(비무장지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할때 한국은 평화롭다고만 할수 없었다. ○군 배치 공격형으로 그당시 판문점에는 긴장이 높아가고 있었다.75년 베트남전쟁이 끝난후 김일성은 군대의 현대화 및 증강에 박차를 가했으며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부대배치를 방어형에서 공격형으로 전환시켜 놓고 있었다.이 사실의 발견은 당시 정보활동의 개가로 평가되고 있다.베트남이 붕괴되기 전까지는 CIA나 DIA(미국방정보처)의 사진분석가들이 인도차이나에만 매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북한관련 정찰사진이나 위성사진들이 제대로 분석되지 않은채 그대로 쌓여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정보기관들은 남북한이 비슷한 군사력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된 70년도의 평가를 아직도 그대로 채택하고 있었다.미국은 그같은 정보판단하에 닉슨독트린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갑자기 7사단을 철수시켰으며 북한은 72년부터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러나 74년 민간 정보분석가들에 의해 북한이 엄청난 양의 철강과 콘크리트를 생산,불명확한 군사목적에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다음해부터 북한의 군사적 능력과 의도에 관한 조사가 국가안전국 특수조사팀의 일원인 베트남참전 보병장교 출신 민간인 존 암스트롱에 의해 행해졌다. 14개월간의 연구끝에 그는 북한의 군사력이 70년의 평가보다 80%이상 증강됐고 대부분이 DMZ 부근에 전진배치돼 있음을 밝혀냈다. 이같은 북한군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유엔군사령부는 76년말 김일성이 남침배치를 완료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이는 복잡한 국내문제와 외채압박등 경제난으로 전쟁도발은 어려울 것이라는 CIA보고와는 정반대 견해였다. 남침용 땅굴이 처음 발견된 것은 74년 11월로 그후 연달아 발견된 땅굴들은 북한의 침략의도를 보다 명백히 해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특히 내가 부임하기 수개월전부터 북한군은 한국군 순찰대에 사격을 가해오고 부비트랩을 설치하는등 DMZ에서의 도발을 한층 강화시켜오고 있었다.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내에서도 북한경비병들의 도발 횟수가 늘고 있었다.우리정보기관들은 이를 지난 50년전쟁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침략을 위한 구실로 삼으려는 것으로 평가했다. ○“새 침략구실 노린듯” 북한군들이 저지른 대표적인 잔악한 도발이 부임후 두달이 채못돼 8월18일 아침 판문점에서 발생했다.JSA에서 북쪽을 연결하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까이에 높이12m 가량의 무성한 포플러가 있었는데 유엔군측 경비초소의 시야를 가려 가지를 칠 필요가 있었다.이날 북측에 사전통보를 하고 10명의 경비병과 도끼 사다리 톱등 작업도구를 든 5명의 작업단이 2.5t트럭을 타고 현장으로 들어갔다.아더 보니파스대위와 마크 바레트중위가 그들을 인솔했으며 한국군 김문환대위는 통역장교로 동행했다.적에 의한 만일의 사태에 대비,20명의 신속대응군이 JSA 바로 안쪽 제2경비초소 옆에 배치돼 있었다. 상오 10시30분 작업단은 두개의 사다리를 나무에 걸쳐놓고 작업을 시작했다.5분정도 지난후 북측트럭 한대가 오더니 장교2명과 사병9병이 내렸다. 인솔자 박철중위는 JSA에 오래 근무했으며 성질이 고약하기로 이름나 있었다.박철이 자꾸 작업을 간섭하더니 20분쯤 후에는 보니파스에게 작업중지를 요청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작업은 계속됐다.이어 북측 경비병 10명이 트럭을 타고 추가로 왔으며 근처 경비초소에서 6명이 더와 모두 30여명의 북측병사들이 작업장일대를 포위한 형상이 되자 박은 가지 하나라도 더자르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해 왔다. 보니파스가 작업계속의사를다시 명확히 하는 순간 박이 『죽여!』라고 외치며 보니파스를 세게 걷어차 수로로 쓰러뜨렸다.이것을 신호로 북측병사들은 주머니에서 쇠파이프와 곤봉등을 꺼냈으며 작업중이던 도끼도 빼앗아 주로 장교와 하사관을 공격했다.보니파스는 수로바닥에 쓰러진채 발길질과 쇠파이프를 피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그때 한 북측병사가 도끼로 그의 머리를 내려 찍자 그자리에서 바로 죽고 말았다.바레트중위는 공격을 피해 트럭쪽으로 뛰었으나 뒤따라온 6명의 북한병사들에 의해 역시 도끼와 쇠파이프등으로 두들겨 맞아 피투성이가 된채 쓰러졌다.신속대응군이 도착했을때는 북한군은 이미 돌아오지 않는 다리 건너편으로 달아난 후였다.정확히 4분동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신속 대응 군 힘못써 키티호크기지의 당직장교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은 것은 참모회의 중이었다.나는 우선 사령부 지하벙커에 있는 「월 룸」(전쟁지휘소)으로 갔다.그러나 사령관 스틸웰대장은 일본자위대의 초청으로 교토를 방문중이었고 부사령관 존 번 공군중장은 월례 연습비행을 위해 서해쪽으로 출격중이었다.리처드 스나이더주한미대사도 업무협의차 워싱턴에 가있었다.또 한미1군단사령관 존 쿠시맨중장은 의정부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유엔군사령부의 최고 선임자였다. 몇분후 보다 상세한 보고가 올라왔다.보니파스대위와 바레트중위가 살해당했고 수명의 경비병이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이것은 분명 우리가 예측하고 있던 공산당의 의도적 도발이 틀림없었다.나는 즉시 주한미공군사령관 돈 피트만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스틸웰장군 귀환을 위한 비행기 급파와 연습비행중인 번중장에게도 급거귀환 연락을 하도록 지시했다.그다음 의정부의 쿠시맨중장에게 판문점의 상황을 보고하고 전투준비태세를 위한 데프콘 등급을 의논했다. 데프콘은 가장 약한 상태인 5등급에서 1등급까지 있는데 한국에서는 보통때도 데프콘4 상태였다.그러나 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명백한 군사적 움직임이 수반돼야하기 때문에 적의 공격적인 대응을 예상해야했다.마침 스틸웰장군과 통화가 되어 그문제를 상의했다.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이번 사태에 대한우리의 대응은 보다 확고해야했다.분명히 북한측이 우리를 테스트하려 할것이기 때문이었다.또 그해는 선거의 해로 조지아주지사 지미 카터가 베트남전의 실패로 궁지에 몰린 제리 포드대통령에게 강력히 도전하고 있었다. 북한은 포드가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하리라는 계산에서 도박을 걸어온 것이었다.앞으로 48시간내에 한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새로운 도발에 대해 전쟁을 개시하느냐,그대로 주저앉느냐를 선택해야 했다. 『좋소』 마침내 사령관의 대답이 떨어졌다.『당신이 펜타곤과 한국군측 그리고 우방국에 상세히 상황을 설명하시오. 정전위원회를 내일 열도록 요청하고 모든 부대는 데프콘3에 대비,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전부대원이 영내대기토록 하시오』 즉시 참모회의를 소집,우리의 대응계획인 OPLAN 작성에 바쁠때 서울의 미대사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마침 이날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열린 비동맹회의 기조연설에서 북한측대표 김정일이 이날 아침의 사건을 미군장교들의 인솔하에 저질러진 북한군에 대한 이유없는 공격이라고 설명하고 비동맹회의가 미국의 행위를 비난하는 동시에 유엔사령부의 해체와 한국으로부터 미군의 철수를 주장,쿠바의 열렬한 지지로 이 결의안이 통과됐다는 것이었다. 이날밤 김포공항에 도착한 스틸웰사령관에게 나는 세가지 대응책을 보고했다.
  • 최혜국 지위 박탈땐 미에 중국시장 폐쇄/인민일보 경고

    【북경 로이터 연합】 중국은 13일 미국이 중국에 대한 최혜국(MFN)지위를 박탈할 경우 중국이 대외 개방을 하기 이전의 양국 관계로 돌아갈 위험도 감수해야 할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이날 논평기사를 통해 최혜국 지위에 관해 전례없이 강한 어조로 이같이 말하고 미국이 중국에 대한 최혜국 지위를 보류한다면 11억 인구의 중국 시장은 미국에 대해 폐쇄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신문은 『중국은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지만 최악의 사태에도 대비하고 있다』고 말한 뒤 『최악의 사태라 해도 중·미 양국이 외교관계를 수립한 해(79년) 이전의 상황,아니면 닉슨 전 미대통령이 미국 행정수반으로서는 최초로 중국을 방문한 해인 지난 72년 이전의 상황보다 나쁠 리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공학도 출신 소 급진개혁파의 대부/러시아공 첫 민선대통령 옐친

    ◎고르바초프 천거로 85년 중앙정치무대 등장/당 지도부실정 비난으로 파문… 한때 은둔생활 「농부의 아들」 보리스 옐친(60)이 마침내 소련 러시아공화국의 첫 직선 대통령이 되었다. 러시아 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6·12 자유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옐친은 한마디로 급진개혁파의 대부이다. 지난 85년 중앙정치무대에 등장한 옐친은 급진개혁정책만이 정체된 소련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옐친은 89년 미국을 방문한 후 『미국은 장미빛 낙원이자 노동자 천국』이며 『공산주의란 공허한 이상』에 불과하다고 말해 강한 「자본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소련의 보수파 언론과 서방언론으로부터 독선적 지도자라든가 시골뜨기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옐친은 이번 선거를 통해 많은 러시아인의 「새로운 희망」으로 등장했다. 옐친은 시베리아의 스베르들 로프스크시 근처 브트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렸을 때 싸움을 하다 마차바퀴에 얼굴을 부딪쳐 코를 다쳤으며 2차대전중 수류탄을 분해하다 폭발,왼손의 엄지와 검지가 잘려나가기도 했다. 우랄공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옐친은 고집이 세고 퉁명스러운 면도 없지 않으나 국민과의 직접대화를 통해 국민들을 설득시키는 대중정치가로서의 기반을 확고히하고 있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도 『옐친은 가슴에 와닿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고르바초프가 두뇌에 호소하는 지도자라면 옐친은 상대를 감동시키는 지도자라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와 대조적이며 만만치 않은 정적이기도 한 옐친은 사실 고르바초프에 의해 등용되었다. 옐친과 고르바초프의 운명적 만남은 지난 70년대 옐친이 고향인 스베르들로프스크 당서기로 재임할 때 이루어졌다. 옐친은 85년 고르바초프에 의해 모스크바시 당서기로 임명되면서 중앙정치무대에 등장했다. 옐친은 고르바초프의 후원 아래 86년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그는 87년 공산당혁명 7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열린 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개혁부진 책임이 크렘린 제2인자이며 이데올로기담당정치국원인 리가초프에게 있다고 비난,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의 당지도부에 대한 거침없는 비난은 보수파의 반발을 불렀고 그는 마침내 정치국에서 축출되었다. 정치국에서 밀려난 옐친은 한동안 「은둔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는 89년 3월에 실시된 인민대표회의 대의원선거 때 모스크바시에서 89%의 압도적 지지를 얻으며 대의원으로 선출돼 화려한 정치적 재기에 성공했다. 90년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에 선출됐던 옐친이 이번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그의 정치적 위상은 크게 격상되었다. 비록 1개 공화국 대통령이지만 러시아공화국이 소련 전체면적의 4분의3,인구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지하자원 등을 가지고 있는 등 소련의 노른자위이기 때문에 그의 대통령 당선은 소련 정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그는 정적이면서도 미묘한 공존관계에 있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대해 민선대통령이라는 정통성을 확보하게 됐다. 그러나 개혁에 따른 계층간의 갈등과 불만,경제난국 타개 등 그의 앞에 가로놓여 있는 어려움도 많다. 소련이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은 옐친을 소련의 또다른 「실패한 메시아」로 만들지도 모른다.
  • 한·미 정상회담 일지

    ▲52년 12월2∼5일=아이젠하워 대통령당선자 방한,이승만 대통령과 회담. ▲54년 7월25일∼8월13일=이승만 대통령 방미,아이젠하워 대통령과 회담. 공동성명발표 (7월30일). ▲60년 6월19∼20일=아이젠하워 대통령 방한,허정 국무총리와 회담. 공동성명발표(6월20일) ▲61년 11월11∼25일=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방미,케네디 대통령과 회담. 공동성명발표(11월14일). ▲65년 5월16∼26일=박정희 대통령 방미,존슨 대통령과 회담. 공동성명발표(5월18일) ▲66년 10월31일∼11월2일=존슨 대통령 방한,박정희 대통령과 회담. 공동성명발표(11월2일). ▲68년 4월17일∼20일=박정희 대통령 방미,존슨 대통령과 회담(호놀룰루). 공동성명발표(4월17일). ▲69년 8월20일∼23일=박정희 대통령 방미,닉슨 대통령과 회담(샌프란시스코). 공동성명발표(8월22일). ▲74년 11월22일∼23일=포드 대통령 방한,박정희 대통령과 회담. 공동성명발표(11월22일). ▲79년 6월30일∼7월1일=카터 대통령 방한,박정희 대통령과 회담. 공동성명발표(7월1일) ▲81년 1월28일∼2월7일=전두환 대통령 방미,레이건 대통령과 회담. 공동성명발표(2월2일) ▲83년 11월12∼14일=레이건 대통령 방한,전두환 대통령과 회담. 공동성명발표(11월14일). ▲85년 4월24∼29일=전두환 대통령 방미,레이건 대통령과 회담. 신문발표문 발표(4월26일). ▲88년 10월20일=노태우 대통령 방미,레이건 대통령과 회담.(워싱턴 방문전 유엔총회 연설). ▲89년 2월27일=부시 대통령 방한,노태우 대통령과 회담. ▲89년 10월15일∼20일=노태우 대통령 방미,부시 대통령과 회담.(10월18일 상·하 양원 합동회의 연설). ▲90년 6월3∼8일=노태우 대통령 방미,부시 대통령과 회담. ▲91년 6월29일∼7월3일=노태우 대통령 방미,부시 대통령과 회담.
  • 냉전종식 후 목소리 커진 이해집단들/워싱턴=김호준(특파원코너)

    ◎미의 대아정책 「5대세력」이 좌우/반공·대소봉쇄등 일치된 목표 상실/사업가·통상피해자·아주계 시민·펜타곤·외교전략가 얽혀/압도적 파워 부재… 미묘한 상호작용 워싱턴의 대아시아정책 결정과정엔 미국내 각종 구성요소간의 복잡하고 미묘한 상호작용이 교차한다. 이 요소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지만 어느 것도 다른 편을 압도할 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과거 40년 동안 미국의 대아정책 입안은 적과 백을 가리는 정도의 단순한 작업이었다. 지난 40년대말부터 70년대초까지,즉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이 북경정부와 화해할 때까지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정책은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하는 것이었다. 그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까지 미국의 대아정책의 초점은 소련군사력에 대한 대응으로 좁혀졌다. 냉전이 종식된 지금 아시아엔 과거의 반공이나 소련에 대한 두려움처럼 미국의 정책은 한곳으로 몰아갈 만한 강력한 표상이 없다. 때문에 미 정부와 의회는 아시아정책과 관련된 이해집단에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인상을 종종 주고 있다. 지금 미국의 대아시아정책을 이해하는 데 다음 「5대 세력」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 ▷사업가들◁ 아시아에 미국산 곡물·식품·항공기·우주산업 및 화학제품 등을 수출하는 미 회사와 아시아제품,즉 중국산 섬유와 신발,일본 및 한국산 비디오카세트와 자동차를 수입·판매하는 미상사들이 이에 속한다. 이들의 뒤에는 통상서비스를 제공하는 변호사·금융인·중개상·컨설턴트 등이 줄지어 서있다. 컬럼비아 영화사를 일본 마쓰시타(송하)사가 인수하도록 중재하고 8백만달러의 소개료를 받은 변호사이자 전 민주당 전국위원장을 역임한 로버트 스트라우스씨 같은 사람은 이들 사업가들의 대변자라고 할 수 있다. ▷통상피해자들△ 아시아의 경쟁자들 때문에 피해를 입은 미국의 강철·자동차산업·섬유 및 신발제조업자들이 그들이다. 일본·한국 및 그리고 다른 아시아 제조업체에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노동자와 노동조합 간부들도 이에 속한다. 민간부문에선 3대 자동차 메이커의 하나인 크라이슬러사의 리 아이아코카 회장이 이 피해그룹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다. 또 의회에선 하원 민주당 총무 리처드 게파트 의원과 상원의 칼 레빈 의원(민주)이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에 영향을 미칠 만큼 숫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만만치 않게 된 것은 불과 근년의 일이다. 80년대에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인구와 경제력이 눈에 띄게 증대하자 아시아계가 후원하는 단체들의 영향력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미 하원 외교위 아태소위 위원장인 스티븐 솔라즈 의원(민주·뉴욕)은 지난 10년 간 아시아계 미국인 1만8천명으로부터 1백60만달러의 정치자금을 모금했다. 그는 헌금자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의 아태소위 위원장직을 이용,대만·한국·필리핀 등에 민주화 압력을 가했다. 89년의 천안문사태 이후 4만명 이상의 유학생을 비롯한 미국내 중국인들은 북경의 인권개선을 요구하는 강력한 압력집단이 되었다. 또한 최근에 미국내 베트남인들은 부시 행정부에 대해 베트남에 민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하노이 공산정권과의 관계를 정상화해서는 안 된다는경고를 보냈다. 플로리다의 강경파 쿠바인들이 수십 년 간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듯이 캘리포니아의 베트남인들도 언젠가는 미국의 아시아정책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펜타곤◁ 미국의 군사 전략가들이 잊지 않고 있는 제2차대전의 교훈 가운데 하나는 미군의 전진배치,즉 해외주둔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펜타곤이 한국 일본 필리핀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정책에 대한 펜타곤의 영향력은 한·일·북 3개국 이외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신탁통치령인 팔라우서도의 경우 공식적으로 미 국무부의 후견 아래 있으나 팔라우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장차 이곳에 군사시설을 건설하려는 펜타곤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있다. 향후 10년간 어떤 변화가 오건 미국은 아시아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전투 능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펜타곤의 입장이다. ▷외교전략가들◁ 펜타곤 관리들이 아시아지도를 응시하면서 전쟁 발발시 미국의 병참에 관해 걱정하고 있다면 외교전략가들은 좀 추상적이긴 하나 세계를 상대로 장기를 두고 있다. 전략가로 널리 알려진 리처드 닉슨과 그의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미중관계를 정상화한 후 소련에 대한 외교적 지렛대로 「차이나 카드」를 썼다. 그러나 냉전 종식과 더불어 닉슨과 키신저는 중국과의 전략적 유대에 관해 다른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북경정부와의 관계증진은 강대국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는 일본에 대한 평형추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다른 전략가들은 『일본은 미국을 위협하는 세력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중국이야말로 신뢰할 수 없고 예측하기 어려운 동반자』라는 경계론을 펴고 있다. 탈냉전시대의 새로운 조정 국면을 맞아 지금 미국의 전략가들 사이에 일치되고 있는 견해는 미국이 아시아에서 「안정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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