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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젊음과 늙음

    지난 대통령 선거 이후 세대 문제가 지나치게 부각되고 있는 것 같다.세대 문제는 미국이라고 다를 바 없다. 43세인 케네디가 대통령에 입후보했을 때 닉슨은 케네디를 ‘경험없는 애송이’라고 몰아붙였다.케네디는 연설에서 “최근 빅뉴스는 야구왕 테드 윌리엄스가 나이 때문에 은퇴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이것은 경험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고 맞받아 쳤다.젊음이 이겼다. 먼데일은 줄곧 레이건의 고령을 문제삼고 늘어졌다.TV토론에서 먼데일이 “나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그러자 레이건은 “나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지 않겠다.”라고 답변했다.먼데일이 무슨 뜻이냐고 다그치자 레이건은 “당신이 너무 젊고 경험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응수했다.늙음이 이겼다. 젊음은 패기와 추진력이 있어 돋보이고,늙음은 경험과 지혜가 있어 믿음직스럽다.한때 젊지 않고서야 어찌 늙을 수 있겠는가. 김경홍 논설위원
  • 美기밀해제 문서 공개“닉슨, 베트남전때 비밀 核경보”

    (워싱턴 AP 연합)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소련을 위협,북베트남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1969년 10월쯤 전세계에 비밀 핵경보를 발령했던 것으로 최근 기밀해제된 문서들이 밝혔다. 그러나 ‘광인(狂人)전략’으로 명명된 미국의 이런 조치에 대해 소련은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으며,그 이유는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아마 (이 조치가)닉슨이 믿었던 것보다 영향력이 적었거나 전세계의 대다수국가들처럼 소련이 경보 발령 자체를 눈치채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다. 닉슨 정부가 추진한 ‘광인전략’은 북베트남에 군사압력을 가중시켜 궁극적으로 파리평화협상 테이블에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닉슨 대통령은 이 전략이 북베트남으로부터 더 많은 양보를 획득,결과적으로는 북베트남이 숙적인 남베트남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던 것으로 문서들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런 압력에도 불구하고 파리평화협상이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자 닉슨 행정부는 1969년 여름부터 핵경보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 올 가장 ‘썩은 정치인’ 클린턴부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미국 공직자 부패 감시기구인 ‘사법감시’(Judicial Watch)가 뽑은 ‘부패12인’(Dirty Dozen)의 선두를 나란히 차지했다. 보수적 시민단체인 ‘사법감시’는 클린턴 의원을 “반지를 찾기 위해 악의 세계로 자꾸만 내려오는 현대판 ‘골럼’(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탐욕스러운 도깨비)”으로,클린턴 전 대통령을 “‘천박한 8년’ 동안 섹스와 거짓말,범죄 연루로 백악관을 가득 채운 인물”로 묘사하면서 각각 1,2위에 선정했다. 힐러리는 “화이트워터 사건에서 연방수사국(FBI) 파일게이트,트래블게이트,200만달러의 불법 선거자금 모금에 이르기까지 온갖 악(惡)에 연루됐다.”는 평을 받았다. ‘사법감시’는 공화당 정치인과 기업인들에게도 비난의 화살을 늦추지 않았다. 2001년 스캔들로 사임한 루이스 프리 전 FBI국장은 “FBI 사상 가장 부패하고 무능한 국장”으로,찰스 로소티 전 국세청(IRS) 청장은 IRS를 “리처드닉슨조차 자랑스러워 할 정치무기”로 사용한 인물로 평가됐다.
  • [열린세상]미국 지식인들의 한숨

    “나는 이렇게 강한 나라의 ‘미국여자'인 것이 부끄럽다.허영에 대한 숭배도,매스컴도,무기도,할리우드 영화도,폭력도,타국의 문화를 무너뜨리는 대중문화도 모두 싫다. 이런 생각을 한 적도,말한 적도 없지만,이젠 차라리 스페인 여자나 이탈리아 여자가 되고 싶다.” 탁월한 비평가이자 소설가인 수전 손택이 얼마 전에한 말이다. 9·11 테러 사태 이후 미국 사회에는 한편으로는 애국주의 물결이,다른 한편으로는 이 ‘애국주의'의 맹목성에 저항하는 지식인들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지난 9월19일에는 4천명이 넘는 지식인,예술인,학자,종교인들이 부시의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선언문을 ‘뉴욕 타임스’에 싣기도 했다. 이들은 선과 악이란 이분법에 자리 잡은 복수심의 문화가 확산되는데 우려를 표시하고,부시 행정부가 “전미국인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말했다.작가 고어 비달,영화감독 로버트 알트만,배우 수전 서랜던,언어학자 노엄 촘스키 등이 여기에 서명했다.그렇지만 미국 사회에 대한 반응이 큰 것 같지는 않다. ‘미국 문화의 몰락’을 쓴 모리스 버만은 아찔한 수준으로 부시를 비판한다.“부시는 지적인 사람이 아니다.이분법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은 지적 능력이 형편없는 경우가 많다.부시는 카메라나 기자들 앞에 서 있을 수가 없다.문법적 실수 없이 연설 한번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그만큼 바보다.기껏 할 수 있는 일은 스크린을 읽는 일인데,이때 발음되는 영어만큼은 정확하다.” “부시 같은 사람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쳐다보지도 않는다.클린턴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그는 옥스퍼드를 다녔던 지적인 사람이었다.그러나 일반적으로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은 대단히 무식하다.그들은 지식인들에게 관심도 없다.” 버만은 최고급의 지식인 집단이 인구 다수와는괴리된 채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기에,미국 문화도,제국의 영광도 로마제국의 쇠락처럼 이제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버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는 여전히 굴러간다.그것을 굴리는한 축의 힘은 월스트리트이다.며칠 전 오닐이 재무장관에서 밀려났다.부시의 감세 정책을시큰둥하게 받아들였고,이라크 전비가 2천억 달러나 든다고 해서 대로를 샀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의 사람들도 오닐에게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함께 물러난 백악관 경제수석 보좌관 후임에는 아예 골드만 삭스의 전 회장이 영입됐다. 부시 행정부를 굴리는 또 다른 한 축은 애국주의에 힘입은 망각의 힘이다.얼마 전에 냉전기 미국의 대외정책을 좌지우지했던 헨리 키신저가 복귀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도 재직 시절에 저지른 인권관련 범죄로 피노체트처럼 기소를 당할까봐 중남미 여행마저 할 수 없었던 ‘도망자' 신세였다.유럽과 중남미의 인권단체들은 그에게 준 노벨평화상을 회수해야 한다는 캠페인마저 벌이고 있었다.닉슨과 포드 행정부 시절 국무장관과 국가안보 자문역을 역임했던 그는 캄보디아 비밀공습,칠레의 아옌데 정부 전복을 지휘했다.부시 대통령은 아마도 예방적 차원의 전격전에 익숙한 그에게 이라크 개전과 향후 중동 전략을 짜는 복잡한 계산을 맡긴 듯하다. 키신저 이전에도 망각의 덕을 본 사람들이 있다.이달 초 펜타곤 정보분야책임자로 임명된 존 포인덱스터 제독은 1980년대 이란-콘트라 스캔들의 핵심인물이었다.그는 미국 인질범을 풀어주는 대가로 무기를 판매한다는,레이건대통령 서명이 담긴 문서를 파기했다고 의회 청문회에서 인정했다.무기 판매 대금은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콘트라 게릴라 지원에 불법적으로 사용되었다.그의 부하였던 올리버 노스 대령은 문서파기죄로 기소되었지만,지금은 워싱턴 정가의 TV 토크쇼에 일급 출연자로 자주 나온다고 한다. 의회의 청문회를 방해한 죄로 기소되었던,레이건 정부의 엘리어트 에이브럼스 국무부 차관보도 국가안보위원회에 복귀했고,콘트라 지지 프로파간다를총지휘했던 오토 라이시도 국무부 차관보로 일찌감치 영입되었다. 그러니까 이란-콘트라 동문들은 거의 모두 백악관 요직에 기용된 것이다.국민적 망각의 힘에 밀려 그나마 멸종 위기에 있는 미국 지식인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만 간다. 이성형 세종연구소 초빙연구위원
  • 국정원 도청실 논란/한 ‘盧風잡기’ 첫 카드

    한나라당은 29일 ‘국가정보원의 도청자료’를 폭로한 게 대통령선거 초반의 기선을 제압하는데 어느 정도 성과를 올린 것으로 보고 있다.대통령선거의 이슈를 선점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나라당이 국정원의 도청자료를 자세히 공개한 것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선거초반 싸움이 박빙인 상황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측면이 강하다.민주당측에서 기양건설,친일 의혹 등을제기하려는 첩보를 입수하고 선수를 쳤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또 노무현 후보와 이인제(李仁濟) 의원간의 관계를 더 악화시키려는 측면도 깔려 있다고 한다.일부에서는 이인제 의원에게 민주당 탈당 명분을 주려는게 아니냐는 분석까지 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날 이회창 후보와 서청원(徐淸源) 대표를 비롯한 주요당직자들이 나서 국정원의 도청의혹을 대선의 주요쟁점으로 부각시키려고 했다.이회창 후보는 예산에서 시작한 유세를 비롯해 가는 곳마다 국정원의 도청문제를 꺼냈다. 서 대표 주재로 당사에서 열린 선거전략회의에서 주요 당직자들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신건(辛建)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융단폭격을 퍼부었지만 결국은 노무현 후보를 흠집내는 게 최종 목표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서 대표는 “미국 닉슨 대통령은 30년 전 중앙정보국(CIA)의 도청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면서 “김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공격했다.그는 “노 후보는 김 대통령,민주당,박 비서실장,신 국정원장에 의해 만들어진 꼭두각시”라며 “공작으로 후보가 된 것이므로 사퇴하라.”고 소리를 높였다.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국민경선은 특정지역을 이용한 청와대와 민주당 권력실세들에 의한 대(對) 국민 사기극이었던 게 드러났다.”며 “이인제 의원은 국민경선이 사기극인지도 모르고 호남표를 걱정하고 있었다.”고 말했다.이규택(李揆澤) 총무도 “도청을 자행한 민주당 정권이 하는 게 낡은정치가 아니면 어떤 게 낡은 정치냐.”면서 “민주당 정권은 정치개혁을 논할 자격도 없다.”고 거들었다. 한나라당은 노 후보 개인에 대한 파일도 상당량 축적해놓았다고 한다.이 후보의 한 측근은 “민주당에서 네거티브로 나올 경우에 언제든지 맞대응할 자료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이 후보의 핵심 측근중에는 국정원의 도청자료보다는 노 후보에 초점을 둔 자료를 먼저 폭로하는 게 좋지 않으냐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곽태헌기자 tiger@
  • 79세 키신저 화려한 공직 복귀/9.11테러 사전탐지실패 조사특별위원장

    지난 세기 미국 외교정책을 이끈 거목인 헨리 키신저(79) 전 국무장관이 9·11 테러공격을 미리 탐지하지 못한 원인을 조사하게 될 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 화려하게 복귀했다.지난 1969년부터 77년까지 세계 외교무대를 누비다 퇴장한 지 25년만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의회와 테러 희생자 유족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27일특별위원회 구성법에 서명한 뒤 키신저 임명을 발표했다.위원회는 앞으로 1년 6개월동안 항공안전과 정보 등 각종 문제들을 조사해 테러가 일어나게 된 상황,향후 미국의 안보를 강화하는 방안 등을 종합 검토한다. 민주·공화 각각 5명씩 10명의 위원을 뽑는데 부위원장은 조지 미첼 전 상원의원이 임명됐다.부시 대통령은 “키신저 박사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공직자 중 한분”이라고 치켜세웠고 키신저는 “모든 사실을 밝혀낼 것이며대통령은 우리가 모든 사실에 접근할수 있도록 약속했다.”고 말했다. 키신저는 그동안 컨설팅 업체인 ‘키신저 어소시에이츠’회장으로 일하는한편 기업인 등을 상대로 한 강연 활동을 꾸준히해왔다. 하버드대에서 행정학을 가르치던 키신저는 존 F 케네디와 린든 존슨 대통령 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와 국무부 자문관으로 일하면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그를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소개한 인물은 뉴욕 주지사를 지냈던 고(故) 넬슨 록펠러였다.이혼 경력이 있던 그는 록펠러의 비서 낸시 맥기네스와 재혼했다. 키신저는 공화당이 집권한 70년대 닉슨과 제럴드 포드 정부에서 국무장관으로 일했다.키신저는 71년 닉슨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을 성사시켜 세계적인주목을 받았다.또 베트남전 종전협상을 주도한 공로로 미군 철군이 완료된 73년에는 베트남의 레둑토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는 등 세계 외교무대에 화려한 발자취를 남겼다. 임병선기자 bsnim@
  • 부시 “김정일을 혐오한다”

    “나는 김정일을 혐오(loathe)한다.” 지난 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가져온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했던 밥 우드워드(59) 워싱턴포스트 부국장의 새 책 ‘전쟁중인 부시(사진·Bush at War)’에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한 불신이 여과없이 드러나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6일 보도했다. 부시 행정부에 대한 분석서로 부시 대통령과의 4시간에 걸친 단독인터뷰와 100여명과의 면담,국가안보회의 내용등을 기초로 하고 있다.워싱턴포스트 16,17일자에 보도된 책 내용 요약. ◆“김정일 혐오한다.” 부시 대통령은 8월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진행된 우드워드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김정일을 혐오한다.북한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는 이 자에게 본능적으로 반발심을 갖고 있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북한을 침공할 의도가 없다고 밝혀온 부시 대통령은 우드워드와의 인터뷰에서는 현상 유지에 만족할 수 없다고 말했다.그는 “우리가 이 자를 전복하려한다면,재정적으로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에 너무 빨리움직일 필요가 없다고들 한다.”며 그러나 “자유를 신봉하고 삶의 조건을 개선시키려 애쓰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며 이분법적 사고를 강조했다. 인터뷰는 북한의 핵무기개발 착수 관련 정보를 입수,미 정부가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을 때 이뤄졌다. ◆백안관내 파워게임 전시내각에서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심한 의견충돌을 해왔다.파월은 9·11테러이후 백악관으로부터 TV출연금지 명령을 받았을 때를 “냉장고안에 들어가 있던 시절”이라고 할 정도로 심한 좌절을 느꼈다고 측근인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밝혔다.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은 럼즈펠드장관을 젖혀놓고 파월에게 직보하기도 했다고 아미티지 부장관은 전했다. 코너에 몰린 파월은 지난 3월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도움을 청했다.이후 파월은 매주 20∼30분씩 라이스 보좌관이 배석한 가운데 부시 대통령과 면담을 했다.이같은 면담의 결과는 이라크 정책을 둘러싼 파워게임에서 파월의 승리를 가져왔다.독자 군사행동을 주장해온 체니·럼즈펠드쪽에 기울어졌던 부시 대통령이 8월5일 저녁자리에서 국제사회의 지원없는 이라크 공격은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파월장관의 주장을 수용,유엔 결의안 제출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부시는 참모들간의 힘겨루기 와중에서 라이스 보좌관에서 의존했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미 중앙정보국이 반군에 제공한 7000만달러였다. 김균미기자
  • OCN, 대통령소재 영화 4편 특집방송

    영화채널 OCN은 16대 대통령 선거에 맞춰 새달 3일부터 24일까지 매주 일요일 오후10시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 4편을 특집방송한다. 11월 3일에는 앤서니 홉킨스,조안 앨런 주연의 95년작 ‘닉슨’이 방영된다.10일에는 대통령 암살 음모에 맞서 싸우는 경호원의 이야기를 그린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사선에서’가 전파를 탄다.17일에는 로버트 드니로,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정치풍자극 ‘왝 더 독’이,24일에는 빌 클린턴과 힐러리를 모델로 한 소설 원작의 ‘프라이머리 컬러스’가 각각 방영된다.
  • 리처드 헬름스 前CIA국장 사망

    (워싱턴 AP 연합) 린든 B 존슨과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역임했던 리처드 M 헬름스가 22일 저녁 자택에서 사망했다.89세. 조지 테닛 CIA국장은 성명에서 “미국은 위대한 애국자를 잃었다.미국의 남녀 정보종사자들은 한분의 위대한 스승이며 진정한 친구를 잃었다.”고 말했다. 1913년 3월30일생인 헬름스는 유나이티드 프레스(UP)의 풋내기 기자로 아돌프 히틀러를 인터뷰하는 등 자질을 인정받으며 프랑스어,독일어 등 탁월한 외국어 실력 덕분에 2차대전중 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OSS)에 첫 발을 디디며 스파이 세계에 입문했다.
  • [씨줄날줄] 지미 카터

    올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1976년 대통령선거 당시 막판까지 ‘지미 누구?’라는 말을 사방에서 들어야 했고,1981년 1월 백악관을 나설 때는 반 세기 만의 첫 재선 실패 현직대통령(직접선출)이란 명찰을 달고 있어야 했다.대통령제를 창출하고 대통령학을 고도로 발달시킨 미국에서 카터는 실패한 대통령의 명백한 사례로 연구되어 왔다.그로부터 21년 뒤 카터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뜻밖의 부상이나 권토중래가 아니다.어느 곳보다 퇴임 대통령에 대한 관심이 많은 미국에서 10년 전쯤부터 카터를 ‘가장 성공한 퇴임 대통령’으로 눈여겨 보는 학자와 국민들이 수두룩했다. 이같은 ‘후 명성’은 오로지 카터 전 대통령 스스로의 작품이다. 닉슨까지 살아 있을 때도 카터는 닉슨,포드,레이건,부시 등을 제치고 가장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전임 대통령이었다.이유는,현직 때 얻지 못한 인기를 뒤늦게 얻고 싶어서,같은 당 출신의 후배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서 카터가 언론과 국민에게 어필하는 일을 만든 것이 아니라,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그 일을 진정으로 하다 보니 언론이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고,국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카터 전 대통령의 ‘하고 싶은 일’은 국제 분쟁의 평화적 해결,그리고 못사는 사람을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다.이것은 재선 실패 5년 후 대외활동을 재개하면서 급조한 것이 아니라 조지아 주지사,대통령 직을 수행할 때부터 분명히 드러난 카터의 성향이자 지향이다.정치가,대통령 가운데 가장 파랗고,맑은 눈을 가진 그를 두고 목사가 될 양반이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아냥이 지금도 이어지지만,카터는 정치력보다는 신념의 힘이 넘치는 정치가다.본인 스스로 일반 대중에 강한 인상을 주는 정치가의 ‘마력적’ 리더십에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데,정치가 카터를 통해 우리는 정치에서의 신념과 리더십의 조화,혹은 부조화의 문제를 본다. 그러나 리더십의 마력은 정치력이 쇠할 때 사라지지만 신념의 힘은 정치판을 초월한다.이것이 카터 전 대통령이 노벨상을 타게 된 이유다.몇달 전 정치적 천성이 몇십 배 앞선 클린턴 전 대통령의 몇백만 달러 방송 스카우트설이 2단짜리 뉴스가 됐을 때 뉴욕타임스와 타임은 카터의 쿠바 방문을 커버스토리로 실었던 것이다. 김재영 논설위원 kjykjy@
  • 美 언론출판재벌 월터 애넌버그 사망

    미국의 전직 출판재벌이자 자선사업가인 월터 애넌버그가 2일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펜실베이니아대 애넌버그 커뮤니케이션 학과의 캐슬린 홀 제이미슨 학장은 이날 “애넌버그가 폐렴 합병증으로 필라델피아 윈우드 교외의 자택에서 숨졌다.”고 밝혔다. 출판업자인 아버지로부터 출판사 2개 등을 상속받은 애넌버그는 트라이앵글 출판사를 설립,‘TV 가이드’와 ‘세븐틴’ 등을 창간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애넌버그는 생전에 수십억 달러의 재산을 자선사업과 대학 언론학과에 기부했으며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10억 달러 상당의 예술품도 박물관에 기증했다.특히 그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 이래 미 대통령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1969년에는 외교 경력이 일천하다는 논란 속에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에 의해 영국 주재 미 대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필라델피아 AP연합
  • ‘텍사스 백악관’ 오픈, 부시 한달간 고향서 휴가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백악관이 다시 한달간 ‘개점휴업’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 2일부터 사실상의 여름 휴가에 들어갔다.주말을 메인주 가족 별장에서 보내고 5일 피츠버그와 워싱턴에 잠깐 머문 뒤 6일 텍사스 크로퍼드 자신의 목장으로 향한다.워싱턴으로의 복귀 예정일은 노동절인 9월2일을 전후해서다. 피츠버그에서는 지하 갱도에 갇혔다 구조된 광부들을 만난다.워싱턴에서의 1박은 정기 건강검진을 받고 의회에서 통과된 ‘무역신속법안’에 서명하기 위해서다.지난해에도 비슷한 기간 백악관을 비웠다.당시 8월4일부터 9월3일까지 휴가일정을 잡았으나 최장기 휴가를 보낸다는 언론의 비아냥에 직면,8월27일 워싱턴에 돌아왔다.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2일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휴가 중에도 전국을 방문,국정을 살필 것이라고 강조했다. 13일 텍사스 와코에서 열리는 경제지도자들과의 포럼을 포함,미시시피 등 중서부 11개주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주로 선거자금 모금행사 등 정치일정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도 중순부터 크로퍼드 목장에 합류한다. 부시 대통령은 화상회의를 통해 안보 브리핑을 받으며 외국 지도자들과도 만날 예정이다.미 언론들도 고까운 시각만은 아니다.의회와 맞물려 돌아가는 워싱턴 정가에서 백악관과 의회가 함께 휴가를 보내는 것은 관례이기 때문이다.하원은 지난달 29일부터,상원은 2일부터 9월2일까지 휴회에 들어갔다.역대 대통령 가운데 리처드 닉슨은 30일,로널드 레이건은 28일씩 여름 휴가를 즐겼다.백악관에 ‘대통령은 휴가중’이라는 팻말이 걸려도 국정 공백은 없다.틈틈이 장관들이 휴가를 떠나도 백악관과 국무부 등의 브리핑은 예정대로 이뤄진다. 지난해 뉴욕타임스는 대통령의 휴가를 ‘재택근무’에 빗대,‘서부 백악관’이 성공한 이유를 8가지로 꼽았다. 첨단 통신장비가 갖춰진 현실에서 보스가 꼭 현장에 갈 필요는 없으며 목장에 있더라도 대통령의 일하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mip@
  • 노무현후보·일부언론 ‘충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주자인 노무현(盧武鉉) 고문의 발언을 놓고 노 고문과 일부 언론의 대립각이 갈수록 첨예해지고있다. 특히 노 후보가 6일 인천지역 경선유세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등 공세적으로 나오자 해당 언론사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등 양측간 전면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전면전 양상으로 번져. 노 후보는 이날 “일부 신문들은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나의 확고한 지지입장과 언론사 소유지분 상한제 견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나머지 틈만 나면 나를 괴롭혀 왔다.”면서 일부 언론의 보도태도에 대해 “정도를 벗어난 공격”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그러나 노 후보가 전날 인천경선 연설에서 “동아일보사가언론사 소유지분 상한제를 포기하라고 강요했다.”는 취지로 말한 것에 대해 동아일보사측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어떤 형태로든 소유지분 제한방침을 포기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면서 “포기를 강요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했다. ◆“언론과 대립각 부담”. 이에 대해 노 후보는경선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소유지분 상한제 정책과 관련해 압력으로 느껴질 만한 행위가 있었으나,명확하게 일시·장소·사람을 거명하고 적시할 사안은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또 다른 각이 서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이에 앞서 조선일보사는 인천경선 직후 “조선일보측은 (소유지분 제한에 관한 노 후보의 견해를) 한번도 물어본 적이 없다.”며 “구체적인 취재 내역을 7일 정오까지 알려 달라.”고 노 후보측에 요구했다. ◆일부견해 잘못 시인도. 이와 관련,노 후보측 유종필(柳鍾珌) 특보는 “조선일보가소유지분 상한제 주장을 포기하라는 압력을 넣거나 질문을한 적이 없다.”면서 “조선일보는 이번 ‘언론발언’ 사건과 관련,허위과대 보도에 해당되지만 (노 후보의 말이) 소유지분 견해 부분에 대해서도 해당되는 것처럼 들렸다면 조선일보에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이종락기자. ■경북경선 ‘언론공방’. 7일 민주당 경북경선에서 노무현(盧武鉉)·이인제(李仁濟)후보는 ‘동아일보 폐간’ 및 ‘언론 국유화’ 발언 여부를둘러싼 노 후보의 언론관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노후보측은 이날 ‘최근 언론 관련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발표,이 후보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포항 공방] 이 후보는 “미국의 제퍼슨 대통령은 신문 없는 정부를 선택하느냐,정부 없는 신문을 선택하느냐에 대해 신문을 선택했다.”면서 “우리 당 후보 가운데 언론과의 전쟁,중요신문의 국유화,특정신문의 폐간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이 사람이 대통령이 될 때 이 나라가 어디로 가겠는가. ”라며 노 후보를 집중 비난했다. 이 후보는 “(지난해 8월 문제의 식사자리에 있었던) 5명의 기자 가운데 3명의 일치된 진술을 받아놨다.”면서 “노 후보는 이 자리에서 진실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몰아붙였다.그는 미국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거짓말을해 대통령직을 중도사임한 것을 거론한 뒤 “거짓말한 게 더 큰 문제”라고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노 후보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 “내가 집권할 경우 언론사로서의 특권을 누리기 힘들어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이런 식으로 나를 공격하고 있다.”면서 “나는 그동안 언론으로부터도 철저하게 검증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노 후보는 또 “이 후보가 근거없는 사실에 기초해 한없이저를 모함하고 한나라당과 조선일보가 입맞춰 흔들어대서 정말 힘든데 이렇게 마구 흔들어대면 어떻게 방어하겠느냐.”고 공세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노 후보 공식입장] 노 후보측은 공식 입장을 발표,“나는민주주의와 시장경제,언론의 자유를 신봉하는 사람”이라면서 “특정신문 국유화나 폐간은 어떤 독재자라도 불가능한일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하고 신문사 국유화나 폐간은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기자들의 정보보고는 과장,생략,단순화되는 특성이있어 신뢰성이나 근거가 미약한 만큼 도저히 기사화될 수 없다.”면서 “당내 경쟁자가 이를 악용,왜곡·과장하고 일부신문이 대서특필하는 것은 정도를 벗어난 무책임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노 후보는 또 “일부 신문은 나의 언론사 세무조사 지지와소유지분제한 입장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괴롭혀 왔다.”면서 “언론은 정치권력 창출과정에서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난간섭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그러면서 “일부신문의 부당한 압력과 공격에 정정당당히 맞서겠다.”고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노 후보측 유종필(柳鍾珌) 공보특보는 지난해 8월 식사자리에 함께 있던 한 기자의 진술을 토대로 “노 후보가 ‘동아일보 폐간’이라는 언급을 직접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종락기자
  • 美 ‘정당헌금’ 부분금지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미 상원은 20일(현지시간) 미국의선거자금 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상원 통과 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법안은 오는 11월6일부터 발효될 예정이다. 일명 셰이즈-미핸 법안으로 불리는 이 개혁법안이 통과됨에 따라 앞으로 개인과 기업,단체가 정당에 대해 무제한적으로 낼 수 있었던 일명 ‘소프트 머니’ 기부가 금지된다. 법안은 소프트 머니를 금지하는 대신 하원 및 상원 후보들에게 할 수 있는 개인의 헌금 상한을 선거당 1000달러에서 2000달러로 인상했다. 또 노조,기업,이익단체들은 선거 개시 60일 전부터(예비선거는 30일 전)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비방하는 쟁점 광고를 할 수 없다. 법안이 시행되면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정치자금제도 사상 가장 큰 변화로 기록될 전망이다.당시 리처드닉슨 대통령이 물러난 뒤 의회는 정치자금 남용을 막기 위해 선거자금을 공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그러나 정당에대한 무제한적소프트 머니 기부는 정경유착의 불씨가 됐을 뿐 아니라 ‘돈 선거’ 문화를 초래했다. 2000년 대선에서 공화·민주 양당은 각각 5억달러 이상의소프트 머니를 모금했다. 모금된 돈은 특정 후보의 선거에쓰이는 폐단마저 생겨났다. 현행법상 기업이나 단체는 후보에게 돈을 직접 줄 수 없는데도 소프트 머니를 통해 특정 후보와의 연결고리를 은밀히 만들어나간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같은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의회는 10년 전부터 정치자금 개혁법안을 추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1992년 선거자금을 제한하려는 법안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좌절됐다.1994년에는 상하 양원에서 개혁법안을 마련했으나 의회내 최종 조율에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1995년 존 매케인(공화·애리조나),러셀 페인골드(민주·위스콘신) 상원의원이 정치자금 개혁을 다시 주창했고 하원에서도 크리스토퍼 셰이즈(공화·코네티컷),마틴 미핸(민주·매사추세츠) 의원이 가세했다.이로부터 친 기업성향인 공화당은 반대,민주당은 찬성하는 공방이 7년간 계속됐다. 그러다지난해 12월 에너지 기업 엔론의 파산이 소프트마니를 금지토록 하는 계기가 됐다.회계장부 조작으로 적자를 숨기며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양당에 수천만달러의 자금을 뿌린 사실은 정경유착의 폐해와 정치헌금에 대한 거부감으로 이어졌다. 급기야 폐기 일보 직전까지 몰렸던 하원의 ‘셰이즈-미핸’ 법안은 지난달 찬성 240,반대 189로 부활됐다.상원에서도 찬성 60,반대 40으로 가결됐다.이로써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절할 초석은 마련됐지만 시행까지는 논란이 예상된다.공화당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미 상공회의소와 각종 단체들은 위헌의 소지가 크다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 공화당 미치 매코널 상원의원은 대법원까지 소송을 끌고가겠다고 말했다. mip@ ■美법안 발의 누가 주도. 미국 정치사에 획을 긋는 선거자금법 개혁을 이끌어낸 존매케인(65·애리조나) 공화당 상원의원은 20일 상원 표결직후 할 말을 잃었다. 7년간의 험난했던 항로를 마친 그는“정부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자금법 개정에 반대해온 공화당 소속이면서 기업과 돈의 영향력으로부터 의회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에 철저했던 그는 당내에서 ‘이단자’로 평가받고있다. 해군 조종사로 60년대말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전투기가격추당해 5년간 전쟁포로 생활을 한 그는 기성 정치인들과는 구분되는 솔직담대하고 ‘깨끗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2000년 대선 때 공화당 후보 자리를 놓고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붙어 선거자금법 개혁 등을 내세워 초반 ‘매케인돌풍’을 일으켰다. 선거자금법 개정안의 공동 발의자인 러셀 페인골드(48·위스콘신) 민주당 상원의원도 인기에 영합하는 않는 소신파다.페인골드 의원은 이날 “이 법안이 통과됐다고 하루아침에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의혹이 기적처럼 사라지지는 않는다.하지만 이 법안은 옳은 길로 가는 매우중요한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상원 법사위 헌법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다.정치 헌금자들이 의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우려해왔으며 의원들의지역구를 위한 선심성 법안에 반대해왔다. 지난해 10월테러퇴치법안 표결에서 기본권 보호와 자유 수호에 어긋난다며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져 관심을 끌었다. 이밖에 하원의 마틴 미핸(민주·매사추세츠) 의원과 크리스토퍼 셰이즈 (공화·코네티컷)의원의 공이 컸다. 김균미기자 kmkim@ ■美정치 어떤 변화. 선거자금 개혁법안이 미국의 정치 판도에 어떠한 변화를몰고올지 문답으로 알아보자. [정당정치에 미치는 영향] 중앙당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반면 기부자당 연간 1만달러까지 받을 수 있는 주 및 지방당의 영향력은 증대할 것으로 보인다.후보자들에 대한 의회·당 지도부의 입김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전망.각 정당은앞으로 소액 기부자를 찾아나서야 할 형편이 돼 풀뿌리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결국 정당의 힘이 강해질 전망이다. [어느 당이 유리한가] 하드 머니의 개인한도를 1000달러에서 2000달러로 올려 초기에는 공화당이 유리하다.하지만노조의 지지를 받는 민주당 또한 강한 풀뿌리 조직력이 있어 하드 머니 모금에 불리하지만은 않다. [이익단체의 입장] 전국총기협회,미국시민자유연맹 등은쟁점광고 제약이 정치적 사안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며 강력 반대.그러나 법안 옹호 단체들은 기업과 큰 손 기부자들의 돈이 자신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유리하다는 입장. [부시 대통령의 경우] 선거자금 모금의 귀재인 부시 대통령이 가장 큰 수혜자라는 시각이 지배적.2000년 예비선거에서 당의 도움없이 개인적으로 1억 1300만달러의 선거자금을 모았다.2004년 차기선거때 부시는 정당 지도자로서는최초로 최대 규모의 개인기금 모금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표현의 자유 침해인가] 법안 반대론자들은 소프트 머니금지와 선거 막바지 쟁점광고 제한이 언론의 자유를 명시한 제1수정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그러나 법안 지지자들은 하드 머니를 사용하고 광고비 내역만 밝힌다면 단체와 개인이 쟁점광고를 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반박. 박상숙기자 alex@ ◈美 선거자금법 개정 일지. ■1980년대 중반= 공화·민주 선거자금법 개정 놓고 격돌. ■1992년= 조지 부시 대통령,선거자금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1995년= 존 매케인(공화)·러셀 페인골드(민주) 상원의원새 선거자금법 개정안 공동 발의,크리스토퍼 셰이즈(민주)·마틴 미핸(공화) 하원의원 가세. ■1996년 11월= 빌 클린턴 대통령 선거자금법 개혁 제안,양당 선거자금법 개정 협상 개시에 합의. ■1997년초= 매케인·페인골드 의원,발의한 개정안 내용을소프트머니 금지 및 선거 쟁점 지원 광고 제한으로 수정. ■1997.10.7= 상원,선거자금법 개정 논의 여부 부결로 개정작업 봉쇄.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자금법 개정 최대 쟁점 부상. ■2001.4.2= 상원,선거자금법 개정안 59대 41로 통과. ■2001.7.12= 하원,선거자금법 개정안 논의에 대해 반대 228찬성 203으로 처리 잠정중단. ■2001년 12월= 엔론 파산.선거자금법 개정 논의 가속화. ■2002.2.14= 하원,셰이스-미핸 공동 발의한 선거자금법 개정안 240대 189로 통과. ■2002.3.20= 상원,60대 40으로 선거자금법 개정안 통과. ■2002.11.6= 선거자금법 개정안 발효.
  • 키신저 前 美국무 “美, 초강국 향한 中노력 막지말라”

    [워싱턴 AFP DPA 연합] 미국은 초강대국이 되려는 중국의노력을 막는 대신 인류의 이익을 위해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고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5일(현지시간)말했다. 1970년대 초 당시 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으로 중국을 극비 방문했던 키신저 박사는 미·중 관계의 초석인 ‘상하이(上海) 공동 코뮈니케’발표 30주년을 기념,이날 워싱턴의 내셔널 프레스 클럽에서 행한연설에서 이같이 말했다. 키신저 박사는 “중국이 현재의 성장률을 계속 유지한다면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면서 미국은 중국이 더욱 강력해질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또“세상에 오직 하나의 초강대국만이 영구히 존재할 수는없다.미국은 자신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속성의 일부를 다른 나라가 얻지 못하도록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키신저 박사는 이어 미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자국의 일부 보수 정치인들이,타이완의경제적 번영과 민주주의 발전을 거론하며 미국이 타이완을더욱 공개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오히려 “타이완의 번영과 민주주의가 ‘하나의 중국’정책의 성공을 입증하는 것”이라면서 “미국은 이 정책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中·美관계 30년/ 71년 핑퐁외교로 출발 30년동안 부침의 연속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21일은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죽(竹)의 장막’이던 중국을방문한 지 꼭 30년 되는 날.1972년 이날 당시 닉슨 대통령은 헨리 키신저 보좌관과 함께 비밀리에 베이징을 방문,굳게 닫혀진 미·중관계의 빗장을 열었다.1971년 ‘핑퐁 외교’로 시작돼 79년 역사적인 중·미 수교를 이룩한 뒤에도 수없이 부침을 거듭한 중·미관계 30년을 정리해 본다. ▲1971년=미 탁구대표팀 중국 방문,핑퐁 외교 ▲1972년 2월=닉슨 대통령,키신저와 방중.상하이 코뮈니케 발표 ▲1975년 12월=제럴드 포드 미 대통령 방중 ▲1978년 12월=중·미 수교 코뮈니케(2차 공동성명)발표 ▲1979년 1월=중·미 수교.미·타이완 단교 ▲1984년 4월=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방중 ▲1985년 7월=리셴녠(李先念) 국가주석 중국 국가 원수로 최초로 방미 ▲1989년 6월=6·4톈안먼 사태로미,대중 제재 ▲1997년 10월=장쩌민 주석 방미,중·미 공동성명 ▲1998년 6월=클린턴 대통령 방중 ▲2001년 4월=하이난다오(海南島)상공에서 미 해군 정찰기 중국군기와 충돌 후 하이난다오 비상착륙 후 승무원 억류.
  • 中 부시영접 ‘정성’ 타이완 ‘착잡’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중국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베이징 방문에 ‘지극 정성’을 쏟고 있다.부시 대통령의방중은 가장 예우 수준이 낮은 실무방문(Working Visit)임에도 불구,공식방문(Official Visit)을 넘어 최고의 예우를해주는 국빈방문(State Visit)에 버금가는 대접을 준비하는등 환영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톈안먼(天安門)광장 앞 창안(長安)대로에 성조기를 내걸지않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98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국빈방문과 비슷한 수준의 예우를 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통상 국빈방문 때 톈안먼광장 옆의 런민다후이탕(人民大會堂) 앞에서 행하던 인민해방군 열병 대신 그 규모를 줄여 런민다후이탕 내에서 인민해방군 열병을 진행할예정이다. 단기간 체류하다가 지나가는 형태의 단순한 실무방문은 인민해방군 열병식을 하지 않는 것이 외교상 관례다.특히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은 21일 오전 정상회담과 저녁의 공식 환영만찬,22일 비공식 오찬 등 3차례나 부시 대통령과만날 예정이다.다른 외국 원수의 실무방문에는 한차례의 조찬이나 오찬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환영 분위기를 띄우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도 두드러진다. 양국간 민감한 사안인 인권 및 종교 문제 등에 대해 매우관대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간첩죄로 금고 1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티베트 출신의 미국 음악가 가왕 초펠이 20일 석방된데 이어,중국 정부에 의해 사교로 규정된 파룬궁(法輪功)의 탄압에 항의하는 문서를 발표해 10년 이상의 중형 선고가 예정된 칭화(淸華)대생 6명에 대한 선고 공판도 연기됐다.모두 부시 대통령의 방중을 배려한 것이다. 중국 언론들도 ‘환영 분위기 몰이’에 가세했다.신화통신(新華通訊)과 인민일보(人民日報),중국 중앙방송(CC-TV) 등은 연일 79년 국교 정상화 이후 23년 동안 양국간 교역량이무려 32배나 급증하는 등 중·미관계가 급속도로 발전하고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부시 대통령의 방중에 ‘정성’을 쏟는 것은현대화를 통해 초강국을 지향하는 중국으로서는 미국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정치·경제적으로 미국과의 우호관계를 유지하는것이 초강국에 이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30년 전인 72년의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세계의 강대국으로발돋움한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khkim@
  • 日“부시 경기부양 요구할까”긴장

    [도쿄 황성기특파원] 미국 대통령의 일본 공식방문은 전후 6번째로 1998년 11월 빌 클린턴 대통령 이후 3년 3개월만이다.부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취임 후 각각 1년,10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번으로 회담만 네번째가 될 만큼 자주 만났다. 일본 당국은 17일 경찰 1만 8000명을 동원,만일의 사태에대비해 대대적인 경계에 나섰다. 경찰청은 부시 대통령의방일에 즈음,반미 국제 테러조직과 국내 과격파에 의한 게릴라식 테러에 대비하고 있다.하네다(羽田)공항에서는 폭발물 설치에 대비,여객터미널에 있는 휴지통을 모두 치웠다. 도쿄 주재 미국 대사관 부근에서는 이날 400여명이 모여미군기지 철수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군사작전 중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미국대사관에서 약 4㎞ 떨어진 에비수 공원에집결,“전쟁 중지” “오키나와 주둔 미군기지 철수” 등의 구호가 적힌 깃발을 흔들며 평화 시위를 벌였다.환경관련 비정부기구(NGO) 회원 50여명도 미국대사관 밖에서미국의 교토의정서 대안 제시에 항의하는시위를 벌였다. 17일 오후 일본에 도착한 부시 대통령은 공항에서 환영식을 마친 뒤 시내 주일 미국대사관저로 직행,하워드 베이커대사 등과 비공식 만찬을 갖는 것으로 첫날 일정을 마쳤다. 부시 대통령은 18일 저녁 영빈관에서의 성대한 만찬이 아닌 시내 ‘선술집’에서 조촐한 식사를 할 가능성이 높은것으로 알려졌다.보통 술집을 택한 것은 서민적 분위기를맛보고 싶다는 부시 대통령의 뜻에 따른 것으로,부시 대통령의 부인 로라 여사를 비롯한 극소수 인원의 참석만 허용될 것으로 전해졌다. 고이즈미 총리는 18일 부시 대통령의 도쿄 메이지(明治)신궁 참배 때 정교(政敎) 분리라는 헌법 정신을 감안,본전에는 동행하지 않기로 했다.고이즈미 총리는 신궁 경내에서 열리는 기마(騎馬) 활쏘기 시범인 ‘야부사메(流鏑馬)’만 부시 대통령과 함께 관람하기로 했다. 한편 일본 정부와 여당·경제계는 부시 대통령이 일본 경제와 관련,어떤 발언을 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미국은 일본 경제의 위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는 미국·유럽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들어 신속한 경제회복 대책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일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인 대북정책과 관련,일본은미국과 이견이 없음을 강조했다.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관방부장관은 17일 후지TV에 출연,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악의 축’이라고 지목한 데 대해 “북·미관계와 북·일관계는 다르지만 일본도 기본인식은 같다.”고 말했다. 한편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 소식통들을 인용,고이즈미 총리가 정상회담에서 1970·80년대에 북한 요원들에게 납치된 일본인 문제 해결을 위한 도움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marry01@ ■세계 언론 반응“부시 3國 순방 기대半 우려半”.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의 일본·한국·중국 3국 순방이동북아 지역안정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세계 언론은 기대와 불안감을 동시에 나타냈다. 각국 주요 언론들은 부시의 이번 아시아 순방을 아우르는화두는 ‘테러와의 전쟁’이라고 지적했다.그동안 혼선이있는 것으로 비춰졌던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악의 축’ 발언으로 불편해진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어떤 메시지를 발표할지도 큰 관심사라고 지적했다. 9·11테러 이전까지만해도 유럽 언론들로부터 ‘외교의 문외한’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부시 대통령이 대테러전쟁의연장선장에서 북한 문제를 놓고 한·중·일 등으로부터 원하는 ‘협조’를 얻어낼 지도 관심사다.많은 언론들은 북한에 대한 경고발언 수위가 완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LA타임스 등 미국의 언론은 부시의 아시아 3국 방문을 주요 기사로 비중있게 다뤘다. 워싱턴포스트는 16일자 ‘아시아에 대한 메시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부시 대통령이 이번 한국방문을 통해 대북정책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신문은 부시 행정부는▲북한과 무조건 협상에 응할 준비가 돼 있는지, 아니면 군사력 감축 등에 한해 협상을 할 것인지 ▲관심이 북한의 경제개방을 회유하는 데 있는지,아니면 미사일 수출 규제에만있는지 ▲북한에 대한 경수로를 제공키로 한 기본합의를 이행할 것인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16일 부시 대통령이 이번 순방중 한국과 일본에서 매우 어려운 상황을 잘 헤쳐나가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신문은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이 레임덕 상태인김대중 대통령에게 정치적·개인적으로 타격을 주었고 전통적으로 긴밀한 두 동맹국 사이에 긴장을 고조시켰다고 지적했다. LA타임스는 15일 ‘부시의 아시아 줄타기’라는 사설에서부시 대통령이 중국에 대해 북한이 남북대화 및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대화를 재개하도록 압력을 넣어줄 것을 촉구해야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럽·아시아] 영국의 BBC방송은 부시 대통령이 한·미·일 3국 동맹관계 강화를 강조할 것으로 보도했다.한국과의주요 의제는 역시 북한문제가 되겠지만 ‘악의 축' 발언을둘러싸고 최근 미묘해진 한·미 관계를 고려해 대북관련 발언 수위는 완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부시의 ‘악의 축’ 발언으로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미국과 한국·일본 등 3국이 불협화음을내고 있으며 이는 동북아 지역안정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콩과 타이완 언론들은 부시의 방문에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는 신중한 입장이다.홍콩 일간 명보는 17일 부시 대통령의 공식방문으로 미·중 관계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해선 안되며 타이완 문제 등을 둘러싼 이견부각으로 관계가 오히려 악화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균미기자 kmkim@ ■'부시 뜻 뭘까' 눈치보는 中.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베이징(北京) 정가의 움직임이 부산하다.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설날) 연휴기간이 끝나지않았지만,1972년 2월21일 마오쩌둥(毛澤東) 주석과 리처드닉슨 미국 대통령과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에 맞춰 이뤄지는조지 W 부시 대통령 중국 방문을 맞기 위한 막바지 준비에여념이 없는 것이다. 중국이 가장 신경을 쓰는 부문은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의제.강국을 지향하는 중국의 현대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협력이 절실한 탓이다.중국 정부가 부시 대통령의 방중 의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순방에 앞서 가진 기자회견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때문에 중국은 부시 대통령이 강조한 테러와의 전쟁에대한 공동협력과 한반도 문제를 비롯해 이견의 차가 큰 인권 및 종교의 자유 문제 등에 대한 논리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이중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공동협력과 한반도 평화 문제,중국의 세계무역기구 가입(WTO) 이후 경제협력 등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양국은 대테러 대책을 협의하는 전문부서 설치를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중국과 미국이 합의한 대테러대책 협의 전문부서는 테러조직의 자금원을 차단하는 금융부서와수사 협력을 논의하는 사법부서를 설치할 예정이며,사법부서는 3월 첫 회담을 열 계획이다.대테러 대책과 맞물려 있는 미 연방수사국(FBI)의 베이징 사무소 개설 문제에도 합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측은 그동안 인권·종교 등 민감한 중국 내 정보수집을 꺼려 FBI 사무소 개설에 소극적이었으나,테러사건 이후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 조직이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의 분리·독립주의자들이 연계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국간에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급속도로 진전됐다. 그러나 인권과 종교문제에 대해서는 현격한 입장 차이를 보여 부담으로작용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시위를 벌인 외국인 파룬궁(法輪功) 수련자 59명이 강제추방되거나 구금돼 있는 상황을중시, 이 문제를 거론,강력히 항의할 것임을 단단히 벼르고있다. khkim@
  • 부시 美대통령 3국순방 中·日입장

    ◆中-민감한 문제 언급 피할듯. 21∼22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베이징(北京) 방문은 지난 1972년 2월21일 리처드 닉슨미 대통령이 마오쩌둥(毛澤東) 중국 공산당 주석과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개최한 지 꼭 30년만에 이뤄지는 것이다. 특히 중국과 미국은 지난해 4월 발생한 군용기 충돌사건을원만히 해결한데 이어,9·11테러사건 이후 반테러전쟁에 대해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는 등 이번 정상회담을 앞둔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호전돼 있어 양국관계의 새로운 진전도 기대된다. 따라서 중·미 정상회담에서 거론될 주요 의제는 타이완 문제·인권 문제 등 양국의 민감한 사안보다 ▲한반도 평화를위한 중·미간의 협력관계 모색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따른 후속조치 등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게 베이징 소식통들의 분석이다.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도 지난 5일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한반도 평화와 안정유지 등과같은 사안들에 대해 양국은 공동의 이익을 갖고 있어 중국과 미국은 이에 대해 대화할 수 있고 건설적인 결과를 가져올수 있다.”고 밝혀,이같은 분석을 뒤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타이완문제·인권문제 등의 사안은 이들 두나라의민감하면서도 핵심 현안인 만큼 완전히 도외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쿵취안(孔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8일 정례 뉴스브리핑을 통해 “중·미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는타이완문제”라며 “미국 행정부에 ‘하나의 중국’ 정책을견지해 타이완 문제를 적절히 처리할 것을 요구하겠다.”고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욱이 중국은 인권문제가 쟁점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국내문제에 개입하고 있다고총공세를 펴고 있다.리펑(李鵬)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상무위원장은 10일 미국을 겨냥해 “중국은 인권문제를 이용,다른 나라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하며 인권이라는 미명하에 패권주의와 강권정치를 추구하는 데 단호히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hkim@ ◆日-햇볕정책 지지표명 예상. 18일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일본 경제회생 대책, 대북 정책 두 가지가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초미의 관심사인 대북 정책과 관련,NHK는 14일 두 정상은대량살상무기 개발의 감시를 강화하는 한편 한·미·일 3국이 긴밀히 협조해 북한과 국제사회의 대화를 끈기있게 촉구해 나간다는 방침을 확인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의 회담에서 ‘미국은 북한과 언제,어디서든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기존 입장을 재천명할 것으로 보인다.한반도긴장을 불러일으킨 ‘악의 축’ 발언을 3개국 순방 때에는되풀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한국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표명도 예상된다. 이런 미국측 입장은 대북 강경노선의 변화라기보다 일단 한·중·일 3국 정상의 의견을 들은 뒤 북한의 태도를 지켜보며 그 다음 수순을 밟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도 국회에 출석,“(일본 정부는)이라크든,이란이든,북한이든 대화의 문을 닫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미국측 입장을 전면적으로 지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일본의 디플레이션 대책과 구조개혁을 중심으로 한 경제회복 대책도 양국의 현안이다.고이즈미 정권 발족 이후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을 지지해 온 부시 대통령은 일본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조기 처리 등 신속하고 강력한 개혁을 고이즈미총리에게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같은 주문에 부실채권의 조기 해결,일본은행의 추가금융 완화 조치,부실은행에 대한 공적자금 재투입 검토 등이 담긴 종합적인 경제회생 대책을 부시 대통령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부시 대통령은 방일 기간중 도쿄의 메이지(明治)신궁을 참배하는 방향으로 일정을 조정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메이지 신궁 참배는 “일본의 전통 문화를 접하고 싶다.”는부시 대통령의 희망에 따른 것으로 고이즈미 총리도 동행할것으로 전해졌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세기의 게이트] (5)화이트워터·르윈스키 스캔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여성 스캔들로 궁지에 몰릴 때마다 힐러리는 공개석상에서 그에게 입맞춤을 했다. 남들이 뭐라하든 부부관계에 이상이 없음을 의도적으로 과시했다.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관계가 불거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언론은 이를 ‘매직 키스’라고 불렀다.그러나 힐러리가 ‘현모양처’였다기보다 자신이 개입된 이른바 ‘화이트워터’ 사건의 보호막으로 ‘대통령 남편’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사건은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아칸소주 검찰총장이었던 클린턴은 힐러리와 함께 주 북부지역의 휴양지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사업 제안자인 제임스 및 수잔 맥두걸 부부와 함께 화이트워터 부동산개발 회사를 차린다.맥두걸 부부는 1982년 저축대부회사를 인수,자금을 끌어모은다. 그러나 대부회사는 부실여신으로 1989년 파산하고 휴양지 개발도 자금난으로 1992년에 무산된다. 문제는 대부회사의 파산원인을 조사한 미 연방정리신탁공사(RTC)가 클린턴 부부를 불법 금융행위의 ‘잠재적 수익자’로 규정한 점이다.클린턴은1992년 대선 캠페인에서 휴양지개발계획의 실패로 4만달러의 손해를 봤다고 밝힌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 이후 대부회사가 땅투기에다 불법적인내부대출 등을 일삼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클린턴 부부가 도마위에 오른다.특히 변호사로 일하던 힐러리가 1985년에 대부회사의 법률자문을 맡아 재정상태에 이상이 없다는 해석을 내린 뒤 맥두걸이 클린턴에 5만달러의 정치자금을 제공한것과 관련,의혹 시비에 휘말린다. 아칸소주 주지사 시절인 1986년에는 클린턴이 한 금융기관에 압력을 넣어 화이트워터에 30만달러를 빌려주게 했다는의혹과 함께 화이트워터의 세금탈루 문제도 제기된다.설상가상으로 1993년 화이트워터의 세금환급 자료를 관리하던 빈센트 포스터 백악관 자문위원이 공원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경찰은 자살로 발표했으나 사망원인을 둘러싼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연방수사국(FBI) 수사에 앞서 백악관 관계자가먼저 포스터의 사무실을 뒤진 게 드러나 자료은폐 논란이 인다.힐러리와 함께 대부회사에 법률자문을 하던 웹스터 허벨법무차관보도 전격 사임,의혹은 증폭된다. 결국 1994년 특별검사로 임명된 케네스 스타가 화이트워터와 저축대부회사의 금융비리에 클린턴 부부가 연관됐는지,백악관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는지,힐러리가 위증을 했는지 등을 조사한다. 1998년 1월에는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관계에대한 클린턴의 위증까지 조사대상에 포함시킨다.스타 검사는 그해 9월 클린턴 탄핵보고서를 하원에 제출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탄핵을 이루지는 못한다.후임인 로버트 레이 특별검사는 2000년 9월 사건 종료를 선언한다. 화이트워터 사건은 금융비리에서 출발했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처럼 대통령의 부도덕성과 권력남용 여부에 수사의 초점이 모아졌다.그러나 관계자들의 증언은 입을 맞춘 듯 클린턴부부의 개입을 부인했으며 닉슨을 하야시킨 녹음테이프같은결정적 단서를 찾지 못해 6년간에 걸친 수사는 의혹만 남긴‘미완의 게이트’으로 막을 내렸다.다만 르윈스키 스캔들은 대통령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 앨 고어 부통령의 대선 캠페인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제임스 맥두걸은 금융사기죄로 복역중 심장마비로 숨졌고부인인 수잔 맥도걸은 증언을 거부,법정모독죄로 18개월간옥살이를 한 뒤 풀려났다.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던 힐러리는 대통령을 성 추문에서 지킨 현명한 아내로 부각돼 뉴욕주상원의원이 됐고 클린턴은 퇴임 후 대학 강사등으로 시간을보내고 있다. ■사건일지. ●1978년 클린턴 부부,맥두걸 부부와 화이트워터 부동산개발회사 설립. ●86년 화이트워터사 30만달러 대출에 클린턴 압력설. ●93년 1월 클린턴 대통령 취임 7월 백악관 자문위원 빈센트 포스터 자살. ●94년 8월 케네스 스타 화이트워터 특별검사로 임명됨. ●95년 8월 맥두걸 부부 기소. ●96년 1월 힐러리 대배심 증언. ●98년 1월 르윈스키 스캔들 돌출. ●2000년 9월 화이트워터 사건 무혐의 수사 종결.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m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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