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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다변과 달변/진경호 논설위원

    ‘그간 잘 지내셨죠?’ 이 말을 따라해 보자. 한 1초쯤 걸릴까. 보통사람이면 이 정도 빠르기의 말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속도로 1시간30분동안을 계속한다고 생각해 보자. 몇 명이나 가능할까.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이 범주에 드는 모양이다. 지난 18일 언론사 정치부장 간담회에서 입증됐다. 오간 대화를 글자수로 정리하니 무려 4만 5224개였다고 한다. 질문을 빼고 4만자만 쳐도 노 대통령은 1분에 444자,1초에 7.4자를 말한 셈이다. 이런 빠르기로 노 대통령은 무려 1시간30분간 얘기를 이어갔다. 가공할 수준이다. 동서고금에 말 많은 지도자는 아주 많다. 햄릿형보다 다변가, 웅변가가 대부분이다. 피델 카스트로는 1955년 7월 망명지인 멕시코에서 이뤄진 체 게바라와의 첫 만남에서 “왜 여기 있느냐.”는 질문에 무려 4시간동안 장광설을 늘어놓았다고 한다.“그거 좋은 질문이오.”로 시작된 이 답변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모르겠으나 혁명에 대한 그의 열정을 짐작케 한다. 윈스턴 처칠과 플랭클린 루스벨트, 프랑수아 미테랑 등등 시대를 풍미한 지도자들도 저마다 유명한 다변가들이었다. 노 대통령의 다변(多辯)이 새삼 화제다. 집권 반환점을 맞아 정신없다 싶을 정도로 굵직한 화두를 연일 던지고 있다.25일엔 방송에까지 나왔다. 사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입성 전부터 언변이 좋은 정치인이었다. 말 잘하는 DJ도 말수로는 대적하기 힘들다고 봐야 한다.DJ와 달리 집권 후 말수가 늘어난 점도 차이다. 단순비교는 어렵겠지만 노 대통령이 취임 직전 대구의 공개토론회에서 한 말은 1만 6000자, 광주 토론회에서는 1만자였다. 지도자의 다변은 탓할 일이 아니다. 비전 제시라는 측면에서 덕목일 수도 있다. 문제는 무엇을 언제 어떻게 말하느냐다. 닉슨은 말을 잘했지만 케네디에게 졌다. 투박한 말투로 아는 만큼 쏟아내는 닉슨에 맞서 케네디는 부드러운 미소로 TV 너머 유권자들을 사로잡았다. 루스벨트가 지금껏 사랑받는 이유도 밤마다 라디오를 통해 전쟁의 상흔에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던, 도란도란한 목소리 때문이다. 임금의 말은 ‘윤음(綸音)’이라 했다. 비단처럼 귀하고 곱다는 뜻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들부터 듣기에 숨차다니, 좀 걱정스럽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낮은소리] 키 작은 사람들의 애환

    [낮은소리] 키 작은 사람들의 애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한다. 행복과 불행은 키가 큰 사람에게도, 작은 이들에게도 찾아드는 법이지만 마음 먹기는 다른 것 같다. 작은 키 때문에 비관하고 부모를 원망하는가 하면, 이같은 ‘단점’을 잘 이겨내 사회의 거울이 된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키가 크면서도 늘이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작은 키를 ‘사회적 장애’로 만들어버리는 주변의 시선, 매스컴과 계급사회 등 각종 시스템이 낳은 비뚤어진 세태 탓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책표지를 보고 책을 판단하지 않는 법’(Don’t judge a book by a cover)이라는 서양 격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작은 키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 또 ‘작지만 야무진 포부’와 훌륭하게 극복한 사례를 살펴 본다. “제 나이는 17세이고 몸무게 75㎏에 키 168㎝랍니다. 키가 작아서 고민입니다. 키를 늘일 수 있는지….” “미국 미시간주에서 대학을 마치고 공군에 입대하려 했는데…키 160.4㎝로 반올림 해도 161㎝가 안된다며 불합격 판정을 내리더군요. 정말이지 또 한번 죽고 싶었습니다.” 신체의 키와 관련된 기관·단체 등에 쏟아지는 질문 가운데에서 꼽아본 내용이다. 이와 유사한 걱정 섞인 하소연 사례가 유관단체에 많게는 하루 수십건씩이나 들어오기도 한다. 심지어 신장이 170㎝대이면서도 또래끼리 잘 비교하는 사춘기 청소년, 취업·결혼과 같은 중대사를 앞둔 사람들이 이런 걱정을 해오는 경우도 적잖다. 모두 키 순서로 줄을 세우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영웅상’ 탓이다. ●‘숏다리’-그들은 누구 “전 180㎝가 안되면 키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친구들은 모두 180㎝를 넘는다고요. 그 정도는 돼야 모델이나 탤런트를 할 수 있거든요.” 한 대학생이 쏟아낸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큰 키라고 여기고, 특히 160㎝에도 못미치는 사람이 들으면 그야말로 속터질 소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정도가 작은 키인가 하는 화두가 나올 법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키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굳이 따진다면 같은 나이에서 어떤 수준이냐를 살펴볼 수 있다. 키는 보통 계속 자라다가 고교에 입학할 나이인 17세 이후에는 멈추기 때문에, 그 이전엔 예측 가능한 신장과 17세의 평균신장을 잡아보면 된다. 우리나라 17세 청소년들의 평균 키는 남자 173.6㎝, 여자는 161㎝이다. 그러나 정형외과 측면에서 보면 ‘작은 키’란 또래 100명을 나란히 세웠을 때 작은 순서로 3번째 안에 들어갈 경우를 가리킨다. 키 순서로 출석번호를 매기는 학교의 현실도 작은 키를 탓하는 풍조에 한몫 거든다. 부산에 사는 K(21)씨는 “150㎝로 고교때 늘 1번을 달고 다녔다.”면서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공부해 이른바 명문대에 들어왔는데, 요즘 작은 키 때문에 고민이 커졌다.”고 귀띔했다. 저신장의 원인은 부모의 키가 작은 경우와 연골무형성증, 골형성부전증 등 뼈나 성장판 연골에 선천적으로 질환을 앓는 경우, 성장호르몬이나 갑상선호르몬 결핍, 만성신부전, 염색체 이상인 터너증후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반란’ 꿈꾸는 ‘다윗’ 고려대 서울구로병원 ‘키 크기 클리닉’의 송해룡(49) 박사는 작은 키의 원인과 관련,“부모의 키가 작은 가족력이 전체의 70∼80%”라면서 “이런 경우 결코 질환으로 볼 수 없다.”고 말한다.“나아가 비록 키가 작더라도 스스로 강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등 자기영역을 개척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인도 모르는 유전자 변형으로 보다 심각한 기형을 갖고 태어난 사람도 있는데, 키가 작다고 해서 자신조차 낮춰보는 것은 또 하나의 죄악이라는 설명이다. ‘한국 작은 키 모임’(LPK) 김동원(47·자영업) 회장의 사례를 보자. 이 모임은 키 150㎝ 이하인 남녀와 그들의 피붙이를 포함해 회원이 110가족,300여명에 이른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것이며, 지방에도 비슷한 규모의 모임이 있다. 김회장은 유전자 변형으로 키가 자라지 않는 둘째아들 승철(12·초등학교 6년·125㎝)군을 뒀다. ●“약자 보호해줘야 성숙한 사회” 그는 “회원들은 단지 일상생활에서 불편할 뿐 비정상인 것은 아니다.”면서 “제도권 교육체계 등 사회의 냉대 때문에 따돌림당하고 있다.”고 씁쓸해 했다. 극소수일지언정 약자들을 다수가 보호해줘야 성숙한 사회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과 아들이 겪은 일도 들려줬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교실배정 문제로 학교측과 다퉜단다. 체구가 자그마한 아들이 높은 곳을 오르내리기 힘들어해서다. 그러나 “왜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돼야 하느냐.”는 항의만 들었단다. 또 아이들끼리 하는 운동에 참여하면 교사까지 “너 때문에 졌다.”는 등의 핀잔이 쏟아졌다. 김회장은 요즘 자신들의 처지를 잘 아는 저신장 법학 전공자를 사회복지사로 고용, 교실 옷걸이와 책상을 비롯해 각종 시설의 높이를 아들처럼 작은 사람을 위해 낮추는 등 ‘인권 되찾기 투쟁’에 열중하고 있다. 글 사진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왜소증 극복할 수 없나 키가 눈에 띄게 작다고 다 환자는 아니다. 증(症)이란 말 때문에 잘못 알려졌지만 왜소증 가운데 질환 비율은 20∼30%뿐이다. 통상 남성의 경우 145㎝, 여성은 140㎝ 이하가 왜소증에 들어간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2500여명이 왜소증으로 추정된다. 보통 어린이는 연간 5㎝이상 자란다. 사춘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1년에 4㎝이하로 자라면 성장장애가 의심돼 상담을 받는 게 좋다. 부모에 비해 지나치게 작거나, 미리 자신의 키를 예측해 성인때 신장이 여아 150㎝, 남아 160㎝이하일 것 같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성인 때의 키를 예측하는 방법은 남성의 경우 (아버지의 키+어머니의 키)×0.5+6.5, 여성의 경우 (아버지의 키+어머니의 키)×0.5-6.5로 계산하면 나온다. 전문의들은 “성장 호르몬은 밤 11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평소에 비해 40배 이상 분비된다.”면서 “이 시간에 수면을 충분히 취하도록 도와줘야 키가 제대로 클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수영과 댄스, 배구, 농구, 조깅, 맨손체조 등 가벼운 운동을 하루 20∼30분씩 1주일에 5회이상 하면 좋다. 같은 이치로 몸을 쭉 펴주는 스트레칭도 권할 만하다. 몸무게로 인해 압박된 척추나 성장판에 적당한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평소 바른 자세를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 구부정한 자세로 컴퓨터나 TV를 장시간 가까이 하게 되면 원래 키 보다 작아보일 뿐만 아니라, 실제 척추가 비뚤어져 척추 질환의 위험도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키 작은 영웅들 작은 키 때문에 속타는 사람이 많지만, 잘 이겨내면 오히려 부러움을 살 수 있다는 점을 역사가 말해준다. ‘얼굴 예쁘고 재주도 있는데 키만 조금 더 컸더라면’이란 말에는 키가 작다는 이유로 깎아내리는 심리가 숨었다.‘역시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은 칭찬에 가깝다. 그래서 ‘슈퍼 땅콩’ ‘울트라 슈퍼 땅콩’ 등의 별칭으로 유명해진 이도 많다.‘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과도 통한다. 최근 세계 최고의 무대인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브리티시오픈 우승컵을 안은 장정(25)은 귀국 인사말에서 “제 키는 151(㎝)이 아니라 153(㎝)이랍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작은 키를 훌륭하게 극복하고, 이젠 자랑거리(?)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사실을, 세상에 그대로 보여준 대목이었다. 이어 ‘울트라 슈퍼 땅콩’이라는 별명을 ‘작은 거인’으로 바꿔 불러달라는 애교 섞인 말을 했다. 자신감이 배어 나온다. 장정이 그런 별명을 얻은 배경도 작은 키와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바로 같은 프로골퍼인 김미현(28)이 먼저 국제무대에 두각을 나타내면서 ‘슈퍼 땅콩’이란 별명을 선취(?)했기 때문에 엇비슷한 신장을 빗대고 수식어를 덧대 별명을 붙여준 것이다. 중국의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을 받는 덩샤오핑(鄧小平·1904∼77년)에게는 키 때문에 벌어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각국 수장들과 나란히 서서 대화를 할 때면 깔판을 딛고 마주 봤다고 한다. 1972년 미국 리처드 닉슨(1913∼94) 대통령과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갖던 때가 좋은 사례다. 하지만 그는 150㎝의 단구로 10억 인구의 중국은 물론, 지구촌을 호령했던 불세출의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프랑스 황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1769∼1821년) 역시 157㎝로 평균적인 서양인에 비해 ‘프티’(Petit·프랑스 말로 작다는 뜻)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때 유럽을 손안에 넣었던 작은 거인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스트립·베닝·팰트로 ‘워터게이트’ 영화 출연

    |로스앤젤레스 AFP 연합|할리우드 영화배우 메릴 스트립과 귀네스 팰트로, 아네트 베닝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새 영화에 출연한다고 영화전문지 데일리 버라이어티가 8일 보도했다. 올해 56세인 스트립은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존 미첼 법무장관의 부인 마사 미첼역을 맡았다. 마사 미첼은 당시 자신의 남편이 도청 관련 전화통화를 했다는 내용을 밥 우드워드 기자와 헬렌 토머스 UPI통신 기자에게 말해 유명세를 탔던 인물이다. 아네트 베닝은 토머스 기자역을 맡았으며 팰트로는 존 딘 당시 백악관 법률고문의 부인 모린 딘을 연기할 예정이다. 이밖에 베테랑 여배우 질 클레이버그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부인 팻 닉슨 역을 맡아 영화에 출연한다. 버라이어티는 이번 작품은 지난해 공연된 존 지터의 연극 ‘더티 트릭스’를 영화화한 것으로 인기 TV쇼 ‘닙/턱’을 만든 라이언 머피가 각본, 감독을 맡게 되며 제작은 파라마운트 영화사와 플랜 B 프로덕션이 맡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 [책꽂이]

    |유아·아동| ●거미 아난시(제럴드 맥더멋 글·그림, 윤인웅 옮김, 열린어린이 펴냄) 아프리카 민담 영웅인 거미 아난시의 모험담을 담은 그림책. 대담하고 선명한 아프리카 전통문양에서 따온 기하학적 그림이 강렬하다.3세 이상.8800원. ●첫째야, 세상에 너처럼 귀한 아이는 없단다(케빈 레만 글, 케민 레만Ⅱ 그림, 나명화 옮김, 상상북스 펴냄) “엄마는 나만 미워해!”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아이에게 꼭 읽어줄 만한 책. 곰돌이 3남매 얘기를 통해 각자 모두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첫째, 둘째, 막내 곰돌이가 각권의 주인공인 3권짜리 시리즈.6세 이상. 각권 8000원. |초등·청소년| ●갈치 사이소(도토리 글, 이영숙 그림, 보리 펴냄) 부산 자갈치 시장을 현장견학하는 듯한 다큐멘터리 그림책.30년 넘게 그곳에서 장사하는 할머니를 쫓아다니며 시장사람들과 각종 생선 등 새벽시장의 풍경들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코끝에 비릿한 바다냄새가 끼쳐오는 듯. 초등저학년.9500원. ●오줌싸개 지도(윤동주 지음, 이창건 엮음, 김민정·정현우 그림, 효리원 펴냄) 윤동주의 시편들 가운데 초등생 눈높이에 맞는 50편을 간추려 그림과 함께 실었다. 시마다 해설이 붙은데다 윤동주 시인의 일생과 연보도 곁들여져 이해하기가 쉽다. 초등생.8500원. |실용경제| ●제갈량 리더십(동팡원뤼 지음, 김효숙 옮김, 랜덤하우스중앙펴냄)상대방의 마음을 다스려 승리를 얻어낸 제갈량의 리더십에 관한 책. 상대방의 계략을 역이용해 상대방을 쓰러뜨리는 장계취계등 36가지의 전술이 삼국지 일화와 함께 전개된다. 책사 제갈량뿐 아니라 인간 제갈량이 어떻게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촉나라를 3국의 반열에 올려 놓았는지를 다루고 있다.1만 2000원. ●게으른 자가 부자가 되는 법(조 카보·리처드 길리 닉슨지음, 유영일 옮김, 월드북 펴냄)뼈 빠지게 일하지 않고도 부자 되는 길을 이야기한 책. 허약체질의 저자 조 카보는 파산 직전 상태에서 우편주문 판매, 홈쇼핑, 인터넷 마케팅 등에 뛰어들어 백만장자가 됐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는 비법을 터득한 것. 그는 게으르게 살면서 성공할 수 있는 철학과 비법을 담아냈다. 그후 리처드 길리 닉슨이 디지털시대에 맞게 내용을 업데이트했다. 1만 2000원. ●회사, 그만 뒀습니다.(다자와 다쿠야 지음, 황선종 옮김, 해냄 출판사 펴냄)이땅의 직장인들에게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선사하고 앞으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소중한 길잡이 책. 명함도 간판도 없이, 오직 내 힘으로 거친 세상에 부딪치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 퇴직전사 43인의 위풍당당한 인생승부 이야기가 펼쳐진다.9000원.
  • “취재원 보호되는 사회가 바람직”

    “신뢰할 만한 취재원이 평생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는 이달 초 발간된 ‘비밀스러운 남자-워터게이트 딥 스로트 이야기’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자사의 주디스 밀러 기자가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의 신분 누설사건의 제보자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원으로부터 수감 명령을 받은 6일(현지시간) 장문의 서평을 싣고 우드워드의 당시 심경과 취재원 보호에 대한 신념을 조명했다. 우드워드는 “위축된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앞으로 걸어 나와 이야기할 수 있으며 보호받을 수 있다고 믿는 사회가 바람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신념에 따라 우드워드는 지난달 마크 펠트 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 딥 스로트임을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책에선 진짜 딥 스로트가 누구인지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그리고 펠트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독자들의 궁금증을 완전히 풀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우드워드 기자는 누군가 대통령 집무실의 녹취 기록을 삭제했다는 엄청난 특종을 하게 된 것은 펠트의 제보 덕분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또 1976년 다른 사건 재판 중 펠트 전 부국장이 한 배심원으로부터 “당신이 딥 스로트냐.”는 질문을 받고 경악스러울 정도로 당황한 반응을 보여 법무부 직원 스탠리 포팅어가 펠트의 정체를 파악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펠트가 비밀 정보를 제공하게 된 것은 FBI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과 백악관에 대한 혐오, 에드가 후버 전 국장에 대한 충성심,‘게임’을 즐기는 취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우드워드는 또 딥 스로트의 신원을 신문사 내부에서 백악관에 흘리는 ‘첩자’가 있다는 심증을 가졌으며 이로 인해 백악관도 펠트의 정체를 거의 다 파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우드워드는 올해 91세의 펠트를 2년 전 만났을 때 치매 증세로 과거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했다고 전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연극·뮤지컬·영화등 넘나드는 ‘만능배우’ 오만석

    연극·뮤지컬·영화등 넘나드는 ‘만능배우’ 오만석

    “솔직히 이번 공연은 욕 먹을 각오가 돼 있습니다.”이게 무슨 소린가. 작품 홍보에 열을 올려도 모자랄 판에 주연배우가 이렇게 김을 빼놓다니. 새달 9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암살자들’(Assassins·연출 이동선)의 배우 오만석(30). 무슨 얘긴가 했더니 다작(多作)에 대한 스스로의 반성이었다.“‘겹치기 출연하더니 제대로 못할 줄 알았다.’는 관객들의 비난을 예상하고 있다.”며 쑥스러운 듯 웃는다. ●하루 세 배역 ‘살인적 스케줄´ 소화 그도 그럴 것이 지난 3년간 그는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지난해에는 연극, 뮤지컬, 영화 등 장르를 넘나들며 무려 7편의 작품에 출연했다. 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최근 한달간은 하루에 세 배역을 오가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냈다. 뮤지컬 ‘헤드윅’에 출연하면서 낮엔 ‘암살자들’ 연습에 참가하고, 틈틈이 시간을 쪼개 지난 16일 가극 ‘금강’의 평양 공연에도 다녀왔다. 다작의 폐해를 잘 알면서도 강행군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뭘까. 캐스팅 제의를 딱 잘라 거절하지 못하는 성품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배역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의식이 그를 잠시도 멈추지 않고 움직이도록 부추긴다. 물리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또 거기다 욕 먹을 각오까지 한 채 ‘암살자들’에 출연키로 한 것도 새뮤얼 비크란 인물에 끌렸기 때문이다.‘암살자들’은 뮤지컬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인 스티븐 손드하임의 정치풍자극으로, 역대 미국 대통령 암살범 9명이 등장한다. 비크는 1974년 닉슨 대통령 암살을 기도했던 인물로 특이하게도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채 무대에 선다.“딱 2번 등장하는데 나올 때마다 쉴새 없이 먹어대면서 혼자 떠들어야 해요. 극중 비중은 작지만 짧은 시간안에 암살범의 심리상태를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제겐 또 다른 도전이지요.” ●매번 색다른 연기 ‘찬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기생으로 재학 중이던 1999년 연극 ‘파우스트’로 프로 무대에 데뷔한 그는 매번 색다른 연기로 관객과 만났다. 연극 ‘이’에서는 연산군을 사랑하는 광대 공길로, 가극 ‘금강’에서는 가슴속에 뜨거운 열정을 간직한 청년 하늬로, 그리고 지난 26일 막내린 뮤지컬 ‘헤드윅’에서는 섬세한 내면을 간직한 트랜스젠더 연기로 관객의 감정선을 건드렸다.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드라마 ‘무인시대’, 영화 ‘라이어’등 만능 연기자로 한껏 기량을 펼치고 있다.“배우면 그냥 배우지 연극배우, 영화배우로 구분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그는 “어느 장르, 어느 역할이든 적응하고,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국립극단의 원로배우 장민호 선생을 가장 존경한다.“노령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대한 대단한 열정과 어린 후배들을 아끼는 마음을 본받고 싶다.”고 했다. ●무대열정으로 좌절·슬럼프 극복 데뷔 이후 탄탄대로를 달려온 듯한 그에게 좌절의 경험을 물었다.“매번 좌절하고, 매번 슬럼프에 빠져요. 공연을 앞두고는 늘 도망치고 싶은 생각뿐이에요.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왜 계속하느냐고요. 글쎄요. 도전하는 게 습관이 됐나 봐요.(웃음)” 고교시절 연극반 활동을 계기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된 그에게 ‘만약 배우가 안 됐더라면’이라는 가정을 던졌다. “체육교사요. 그리고 다시 태어난다면 축구선수가 되고 싶어요.” 0.5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날아온 대답. 역시 소문난 축구광답다.‘암살자들’공연은 7월31일까지.(02)556-8556.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최해국기자 seaworld@seoul.co.kr
  • [녹색공간]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현주 목사

    미국 대통령이 여러 차례 북한을 공격할 뜻이 없다고 말했는데도, 북한은 전쟁을 억제하기 위한 핵무기 개발을 멈추지 않겠다고 한다. 당신들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다지만, 두 나라 사이에 평화조약을 체결하기 전에는 그 약속을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요즘 분위기는 그동안 중단되었던 6자회담이 조만간 속개될 것 같은데 아무쪼록 잘 풀려서 피차간에 안해도 될 걱정이나 겨루기로 아까운 자원과 힘을 낭비하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지만, 전쟁을 하는 것이 탱크도 아니고 미사일도 아니고 결국은 사람일진대, 사람이 획기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한, 지금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같은 대립관계는 어떤 모양으로든 지구상에서 계속될 것이다. 맞서 겨루는 두 힘이 서로 비등할 경우에는 승부가 결판날 때까지 길고 지루한 싸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양쪽 모두에게 불행하고 난감한 일이다. 그런데 어느 한 쪽이 상대보다 월등하게 강할 경우, 아이들 말투로, 서로 게임이 안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그럴 때 강자에게 주어진 길은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든지 아니면 그냥 져주든지 둘 중에 하나다. 약자에게 주어진 길도 힘에 부쳐 지든지 아니면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항복하든지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강자가 힘으로 약자를 이기는 것은 당연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민망하고 남우세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헤비급 선수가 밴텀급 선수와 링에서 맞붙어 이겼다 치자. 그 승리가 과연 자랑스러운 일이겠는가? 사람이라면 창피해서 얼굴을 가리고 숨을 일이다. 이라크 전쟁이 벌어졌을 때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연합군을 이라크가 이길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상대로, 군복을 입은 부시 대통령이 직접 전장에 나타나 승리를 선언했지만, 진심으로 박수치며 그들의 승전을 축하해준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다. 힘 센 자가 저보다 약한 자를 눌러 이기는 것이 동물의 정글에서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조금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자랑스럽기는커녕 오히려 쑥스럽고 민망스러운 일이다. 사람이 동물은 아니잖은가? 따라서 힘센 자가 이기거나 약한 자가 지는 것은 네 가지 가능성 가운데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겠다. 약한 자가 자진해서 항복하는 것도, 피흘리는 전투를 모면한다는 점에서 그나마 낫다고 하겠지만, 승자에 대한 증오나 적개심이 여전히 그 속에 남아 있겠기에 별로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남은 한 가지 가능성은, 강자가 약자에게 져주는 것이다. 지는 것과 져주는 것은 하늘 땅만큼이나 다르다. 약자는 져줄 수 없다. 오직 강자만이 져줄 수 있다. 강자가 약자에게 짐짓 져주는 일이야말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근사하고 자랑스러운 행위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둘 사이는 다투기 전보다 훨씬 더 친밀해질 것이다. 여섯 나라가 모여서 해결코자 하는 문제는 결국 북·미간의 긴장관계다. 그리고 무력에 있어서 미국이 북한에 견주어 절대강자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이라도 닉슨이 키신저를 베이징에 보냈듯이 부시 대통령이 사람을 평양에 보내든지 아니면 직접 가서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 평화협정을 맺고 북한 인민의 생활수준을 높이는 데 필요한 모든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어떻게 될까? 6자회담은 싱겁게 끝나버리고 한반도에는 새로운 화해의 기운이 감돌 것이다. 강자가 약자에게 져주는 일은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맹자 말씀이, 늙은이를 위해 나뭇가지를 꺾는 일은 그렇게 안하는 것이지 그렇게 못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은 그렇게 안하는 것이지 못하는 게 아니다. 만일 그게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미국이 강자가 아니라는 결론이 남을 뿐이다. 이현주 목사
  • 닉슨·펠트家의 기연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지난 1974년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형 도널드의 손자가 이 사건의 ‘딥 스로트’ 마크 펠트 연방수사국(FBI) 전 부국장의 손자와 대학 동문으로 함께 강의를 들은 기연(奇緣)을 맺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헤이스팅스 법대 동문인 자렛 A 닉슨(28)과 다섯살 연하인 니콜라스 T 존스로 두 사람은 지난해 스페인어 강의를 함께 들으며 친해졌다고 신문은 전했다. 두 사람은 자렛이 태어났고 니콜라스가 여행을 즐겼던 코스타리카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고 자렛은 말했다. 자렛은 이런 인연으로 니콜라스를 이 대학 법률잡지에서 일하도록 추천하기도 했다. 자렛은 지난해 이 대학을 졸업한 뒤 현재 변호사 실무 교육을 받고 있고 니콜라스는 재학 중이다. 자렛은 니콜라스에 대해 “참 좋은 녀석”이라며 “우리는 절친한 친구 사이”라고 말했다. 신문은 두 사람이 그 전부터 서로의 할아버지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두 사람이 현대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심각하게 대립했던 할아버지들의 자손이란 점은 역설적이라고 지적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딥 스로트 정체 닉슨도 알았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이 워터게이트 사건 초기 이미 ‘딥 스로트’로 마크 펠트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을 의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음이 백악관 녹취록 확인 결과 드러났다고 CNN이 3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워터게이트 사건 후 4개월이 지난 1972년 8월19일 H R 핼더만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은 닉슨 대통령에게 “펠트 부국장이 맞을 것이다. 그는 FBI의 모든 정보에 아무런 제한없이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핼더만 실장은 이어 “우리가 그를 압박하면 그는 모든 것을 터뜨릴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에 대해 닉슨 대통령은 “펠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라고 되물었다. 이 사건으로 18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한 핼더만 실장은 존 딘 3세 백악관 법률고문이 펠트를 기소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핼더만 실장은 이어 “여러가지 수단을 취할 수 있지만 대통령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린 뒤 아이오와주로 전근 보내면 그만이지요.”라고 답했다. 닉슨 대통령은 “실장은 내가 그 자식을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지 알고 있을 텐데?”라고 반문했지만 이에 대한 핼더만 실장의 대답은 알아듣기 힘든 것으로 기록돼 있다. 또 다음해인 73년 2월28일 녹음된 대화에선 닉슨 대통령이 “펠트가 모든 것을 털어놓으면 어떻게 하지.”라고 딘 고문에게 자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에 대해 딘 고문은 “그는 그렇게 못할 겁니다.”라고 장담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딥 스로트/육철수 논설위원

    언론사들은 독자나 취재원의 제보에 일정 부분 의존한다. 신문의 경우 자체 안내전화란에 반드시 제보전화 번호를 표기해 24시간 제보를 기다린다. 제보는 특종으로 이어지거나 사회적 파장이 큰 경우가 많아 언론사마다 접수통로를 마련해 놓고 요긴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의혹으로 포장된 채 영원히 묻혀버릴 뻔했던 대사건들도 이런 제보의 과정을 거쳐 진실이 밝혀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제보 사실이 조직이나 사회, 국가의 이익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한다면 언론의 존재 의의와 역할은 더욱 빛날 것이다. 제보자가 공직자이거나 특정조직의 일원일 경우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제보내용이 조직부패와 관련된 것이든 국가안보나 이익과 직결되는 사안이든 으레 위에서 제보자 색출지시가 내려오기 때문이다. 두어달 전 외교통상부에서는 ‘동북아균형자론’과 관련한 혼선과 비판보도를 싸고 제보자를 찾기 위해 과장급 이상 간부를 대상으로 조사를 벌인 게 대표적 사례다. 지금 미국에서는 1974년 닉슨 대통령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의 제보자가 얼굴을 드러내 떠들썩하다. 익명으로 극비에 제보했다는 뜻에서 이 사건의 취재기자는 그를 ‘딥 스로트(Deep Throat)’라고 불렀는데, 놀랍게도 미국연방수사국(FBI)의 제2인자였던 마크 펠트(91)였다. 워터게이트는 1972년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닉슨 대통령과 민주당 맥거번 후보의 대선 과정에서 닉슨측이 민주당의 선거본부를 도청한 사건이다. 단순절도로 지나칠 뻔했던 이 사건은 펠트가 워싱턴포스트에 그 엄청난 흑막을 알림으로써 재선의 닉슨을 사임시키며 일대 정치적 파장을 몰고 왔다. 취재기자였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에게는 퓰리처상을 안겼다. 워터게이트의 딥 스로트에 대해서는 취재기자와 편집국장 등 4명만이 알고 있었을 뿐 신문 발행인조차 몰랐다니 30년이 넘도록 취재원을 보호한 그들의 인내력도 대단한 셈이다. 그러나 제보사실을 공개하기까지 펠트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긴 세월동안 자부심과 자책의 감정을 오가며 ‘스스로의 감옥’에서 살아왔다고 실토하는 걸 보면…. 정보기관에서 일한 사람이면 직무수행 중 얻은 정보를 무덤까지 갖고 간다지만, 그는 현직에 있을 때 부도덕한 권력을 용기있게 고발했다. 그런데도 영웅이니 배신자니 평가가 엇갈리는 현실은 정치적 이해가 너무 깊었던 탓일까.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헤이그 비서실장·키신저 장관 오해 벗어

    30여년이 걸렸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결정적 실마리를 워싱턴포스트에 제보한 ‘딥 스로트’로 지목받아온 많은 인물들이 의심과 억측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는 30여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이들 중 일부는 상원 청문회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일 것이라고 화살을 돌렸고 몇몇은 우드워드 기자 등이 제보자 사망 후에 신원을 공개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죽음으로써 비로소 결백을 입증하기도 했다. 백악관 공보 담당이었던 론 지글러는 여러 음모 이론가들에 의해 지목됐으나 2003년 사망 후에도 워싱턴포스트측이 가만히 있어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윌리엄 콜비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1996년 눈을 감음으로써 자신에게 쏟아진 의심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우드워드 기자 등이 딥 스로트가 술과 담배를 즐긴다고 얘기하는 바람에 알렉산더 헤이그(사진 왼쪽) 전 비서실장까지 덩달아 주변으로부터 의심받았다. 닉슨의 연설문 담당이었던 패트릭 뷰캐넌 전 상원의원도 존 딘 3세 백악관 법률고문이 지난 73년 상원 청문회에서 자신을 지목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그는 이날 NBC 방송에 출연, 닉슨 행정부에 타격을 가한 기자들과 공모한 “배반자”라고 펠트를 직설적으로 비난했다.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오른쪽)도 도청 사건에 연루돼 수감됐던 존 에리크먼 수석 비서관으로부터 지목받고 진땀을 흘려야 했다. 또 CIA 국장이었던 아버지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과 간부였던 코드 마이어,FBI 간부였던 패트릭 그레이와 찰스 베이츠, 로버트 쿤켈, 닉슨의 보좌관이었던 데이비드 거겐 등도 진짜 제보자가 확인됨으로써 마음의 짐을 벗게 됐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민주당 사무실 도청… 닉슨대통령 사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워터게이트 사건’은 지난 1972년 6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 재선 캠프의 비밀 공작팀이 워싱턴 북서부 워터게이트 빌딩에 자리잡은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사무실에 몰래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된 사건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주거침입 미수 사건으로 시작됐지만, 이 사건과 관련된 권력 핵심층의 음모가 드러나면서 2년 후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대통령 사임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 닉슨 재선 캠프에서 재정을 담당했던 고든 리디 전 연방수사국(FBI) 직원이 25만달러를 받고 민주당 사무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 했으며, 대통령의 핵심 보좌관들이 도청사건에 연루된 사실이 백악관 내의 통치자료 녹음설비를 통해 드러나게 됐다. 이 사건으로 공화당 정부의 선거방해, 정치헌금 부정, 수뢰, 탈세 등이 드러났고 닉슨 전 대통령 본인도 무마공작에 나섰던 사실이 폭로됐다. 결국 74년 8월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대통령 탄핵결의안이 가결되자 닉슨 전 대통령은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힐러리 클린턴 뉴욕주 상원의원이 당시 민주당측의 탄핵 추진을 위한 법률인단에서 활약했다. dawn@seoul.co.kr
  • 워터게이트 제보자는 펠트

    워터게이트 제보자는 펠트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지난 1974년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냈던 ‘워터게이트’ 사건의 비밀 제보자(딥 스로트·Deep Throat)는 마크 펠트 전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펠트 전 부국장의 가족은 31일(현지시간) 대중잡지 ‘베니티 페어’가 이같은 내용의 기사를 게재하자 이를 인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워터게이트 사건을 취재했던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칼 번스타인 기자도 신문 인터넷판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펠트는 워터게이트 사건 취재에 엄청난 도움을 주었다.”고 밝히고 “그러나 다른 많은 소식통들과 관리들도 수백건의 관련 기사에서 우리를 도왔다.”고 말했다. 두 기자와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의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이었던 벤저민 브래들리는 제보자가 죽을 때까지 그의 신원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약속해왔지만 잡지 보도에 이어 가족들까지 성명을 통해 시인하자 침묵을 깨기로 결정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밝혔다. ●에드거 후버의 심복 펠트는 48년간 FBI 국장을 지내며 워싱턴 정가에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에드거 후버의 심복이었다. 펠트는 닉슨이 재임 중이던 70년대초부터 FBI 부국장을 지냈다. 72년 후버가 갑자기 사망하자 펠트를 포함한 FBI 수뇌부는 정보를 잘 아는 내부 인사가 국장 자리를 승계할 것으로 믿었다. 또 펠트도 차기 FBI 국장이 되려는 희망을 갖고 있었으나 닉슨 전 대통령은 그 자리에 패트릭 그레이 법무부 차관보를 임명했다는 것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후버의 사망 직후 발생했다. 우드워드는 백악관과 FBI가 긴장 관계에 있던 시점에 펠트가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브래들리 전 편집국장은 펠트가 FBI의 ‘넘버 2’라는 점에서 정보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밝혔다. 현재 91세인 펠트는 캘리포니아주 샌타로자에 살고 있다. 지난 1999년에는 자신이 문제의 제보자로 지목되자 부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2002년 한 친구에게 자신이 딥 스로트임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영웅이냐 누설자냐? 변호사이며 펠트 전 부국장의 친구인 존 오코너가 베니티 페어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펠트는 처음에는 워터게이트와 관련한 자신의 과거를 밝히는 것이 어느 정도 불명예스럽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펠트는 언젠가 아들인 마크 펠트 주니어에게 “(딥 스로트가 되는 것이)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정보를 누구에게든 흘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펠트의 손자인 닉 존스가 읽은 가족 성명은 “가족들은 나의 할아버지인 마크 펠트 시니어가 그의 나라를 끔찍한 부정에서 구하기 위해 큰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의무 이상의 일을 한 위대한 미국의 영웅이라고 믿는다.”면서 “우리는 모두 이 나라가 그를 그런 식으로 보기를 진지하게 희망한다.”고 말했다. 성명은 이어 “할아버지는 친구인 우드워드 기자와 함께 딥 스로트의 역할을 한 것이 명예롭게 존중받고 있는 데 대해 기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펠트가 정의를 위한 동기보다는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제보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영웅시하는데 문제를 제기했다. 1970년대초 유명한 포르노영화의 제목인 ‘딥 스로트’의 이름을 딴 이 제보자의 존재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이 쓴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이라는 책에서 처음 알려졌다. dawn@seoul.co.kr
  • 美의회 보복관세 나설수도

    미국 정부는 위안화 평가절상을 강력하게 촉구하면서도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당초 예상과 달리 환율조작국 지정 여부는 6개월 뒤로 미뤄졌고, 시장에서 제기된 조기절상설은 일단 수그러들게 됐다. 또 점진적인 위안화 절상 방안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부시 행정부가 미 의회와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력한 제재를 요구하는 의회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한편으로는 외압에 극도로 민감한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수준의 보고서를 내놨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를 ‘미묘한 댄스’라고 표현했다. 미국은 중국과의 현안 가운데 환율·인권·타이완 문제에서는 중국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반면 북핵문제에서는 중국의 도움을 요구하고 있고, 반미 노선을 드러내는 국가들의 움직임에 중국이 동조하지 않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같은 복잡한 상황에서 절묘한 균형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워싱턴 닉슨센터의 중국 담당자인 데이빗 램턴은 “미국이 환율문제를 지나치게 밀어붙인다면 중국은 다른 현안에서 미국을 도우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중국섬유제품 쿼터제 부활이라는 강경책을 내놓은 미 정부가 위안화 절상 문제까지 일방적으로 압박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관측된다. 또 실제로 위안화가 절상되더라도 미국이 얼마나 실익을 거둘지도 미지수다.HSBC의 스테픈 킹은 “미국 전체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만이기 때문에 위안화 가치가 25% 절상돼도 미 무역수지 개선에 별 도움이 안 될 것”으로 지적했다. 그렇다고 정부로서는 미 의회와 업계의 반발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미 의회는 중국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 부과 등 법안을 마련해 놓고 있으며, 정부에 실질적인 대중국 제재방안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제조업계와 노동단체들은 위안화 고정환율제 때문에 적자가 커지면서 일자리도 줄어들고 있다는 불평을 늘어놓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과의 ‘조용한 외교’를 포기하고 위안화 제도 개선 시한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미 행정부의 이같은 태도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미 국제경제연구소(IIE)의 중국 전문가 모리스 골드스타인은 “정부의 조치가 불만스러운 의회는 보복관세 부과를 추진할 것이고, 중국은 중국대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표현을 외압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며 “이번 보고서가 위안화 절상을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고 꼬집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이승만, 북진통일 좌절에 눈물”

    |로스앤젤레스 연합|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72년 역사적인 중국 방문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중국 총리에게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국전 당시 북진 통일이 좌절되자 자신앞에서 눈물을 흘린 일화를 이야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6일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1972년 미ㆍ중 화해의 한국 아이러니’ 논문으로 박사 학위(국제정치)를 받은 국내소장 정치학자 김태완(37)씨는 지난 2003년 5월30일자로 비밀해제된 미 국립문서보관소의 닉슨-저우언라이 베이징 회담 기록을 인용, 이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1972년 2월23일 오후 2시부터 4시간 동안 베이징 영빈관에서 열린 이 회담에서 닉슨은 한반도 평화통일 방안을 묻던 저우언라이의 질문에 “부통령이었던 지난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미국은 북진에 동의하지 않으며, 한국이 단독으로 북진을 고집한다면 이를 돕지 않겠다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의지를 전하자 이승만 전 대통령이 눈물을 흘린 것을 기억한다.”며 “한국인들, 남과 북 둘다 감성적이며 충동적인 국민들”이라고 말했다. 저우언라이는 “문제는 남북한이 서로 접촉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대화촉진을 주장했고, 닉슨도 “적십자 회담이나 정치적 접촉 같은 것”을 예로 들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이와 함께 이 회담에서 저우언라이는 중국과 북한이 백두산 천지를 양분했음을 미국에 구체적으로 처음 설명했다고 말했다.
  • [데스크시각] 빛을 감추고 힘은 길러야/구본영 정치부장

    어린이날인 5일, 푸르러가는 5월의 하늘을 보며 지난 4월 중순 제주도의 짙푸른 봄 바다를 새삼 떠올린다. 성산포의 유채꽃과 눈이 시리게 맑은 물은 보름도 더 지난 지금도 눈시울에 찍혀있다.‘상생정치와 언론’이라는 주제로 열린 관훈클럽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의 기억이다. 그러나 제주도의 풍광보다 더 선연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화두가 있다.“한국적 정치풍토에서 상생(相生)이란 가당치 않다.”는 원로 언론인들의 빗발치는 이의제기였다. 세미나 분위기야 시종 화기애애했다. 주제발표를 한 정세균, 강재섭 두 여야 원내대표는 워낙 우리 정치판에서 합리적이고 유연한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어차피 다툴 수밖에 없는 여야 관계라면 페어플레이 속에서 상쟁(相爭)이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게 다수 참석자들의 속마음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갖가지 정쟁과 입씨름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이 육군3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을 편 이후의 날선 공방이 대표적이다. 동북아 균형자론에 비판적인 이들은 “중·일 대결이나 미·중 충돌이 발생했을 때 한국이 중재역을 맡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비현실성을 지적한다. 한·미·일의 남방3각과 북·중·러의 북방3각이라는 냉전구도에서 탈피하려는 취지도 한·미 동맹의 포기나, 반미로 비쳐질 경우 또 다른 화를 부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이 남북통일 문제 등에서 한국 편에 설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 자칫 게도 놓치고 구럭도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같은 비판이 꼬리를 물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측이 동북아 균형자론이 한·미동맹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공식 해명하고 나섰다. 중·미간이 아닌, 중·일 분쟁시 중재역을 하겠다는 취지였다.“동북아 균형자론은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중견국가의 위상에 맞는 ‘평화의 균형자역’을 맡겠다는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민주주의 역량, 의제설정 능력, 문화 역량 등 이른바 ‘소프트파워’(연성국력)를 통해 추구하겠다는 부연설명이었다. NSC의 복잡한 설명이 아니더라도 기자는 동북아 균형자론이 결국엔 한국이 지향해야 할 큰 비전일 수 있다고 본다. 언젠가는 강대국들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판 자체를 주도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만 그 비전이 공허한 수사에 그치지 않으려면 그만한 역량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얼마전 원로인 강원룡 목사도 동북아 균형자론은 통일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고언했다. 역사 속에서도 국제 관계에서 외교적 슬로건에 앞서 내실을 다지고 국력을 키우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뼈저린 교훈을 읽을 수 있다. 중국이 오늘의 미국에 비견될 초강대국격이던 시절 명·청 교체기를 맞자 조선에선 청에 대한 화친론과 주전론이 맞섰지만 어느 길도 자의로 선택할 수 없었다. 끝내 주전론을 고집했다면 사직과 백성의 공멸을 뜻하는 옥쇄외에 달리 길이 없었을 터였다. 마지못해 택한 화친론도 인조가 청태종을 향해 얼어붙은 맨땅에 머리를 찧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절을 하고 머리를 땅에 세번 부딪기를 세번 반복)’하는, 삼전도의 치욕으로 이어진다. 중국 여성의 전통 의상 중 치파오(旗袍)가 있다. 허리 아래로 옆이 터져 허벅지살이 허옇게 드러나는, 아름답지만 퍽 도발적인 옷이다.1972년 죽의 장막을 헤치고 미·중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을 찾았을 때다. 누군가 부인 패티 여사에게 치파오를 본 소감을 묻자 이렇게 응수했다.“중국 인구가 이렇게 많은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고. 패티 여사, 아니 미국은 당시 이미 인구 10억이 넘는 ‘공룡’ 중국의 잠재력을 예감했던 셈이다. 그러나 정작 중국의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은 ‘빛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는’ 대외전략, 즉 ‘도광양회’(光養晦)정책을 선택, 힘을 대외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현 시점에선 주변국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동북아의 균형자’가 아닌 ‘평화의 중재자’정도의 겸손한 수사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에 앞서 집권 3년차인 청와대가 해야 할 더 시급한 과제는 여야간, 세대간, 계층간 이해다툼을 조정하는 ‘내치의 균형자’를 자임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를 통해 우리의 단합된 힘부터 길러야 평화의 중재자역을 제대로 할 수 있다는 뜻에서다. 구본영 정치부장 kby7@seoul.co.kr
  • [씨줄날줄] 크리켓 외교/육철수 논설위원

    1971년 3월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열린 제3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훗날 지구촌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올 역사적 대사건을 잉태하고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문화혁명 후 처음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한 중국선수단은 대회가 끝날 즈음 미국선수단에 은밀히 친선경기 초청장을 내밀었다. 중국의 호의적 의도를 재빠르게 눈치챈 미국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며칠 뒤 베이징에 탁구선수단을 파견했다. 친선경기를 계기로 이듬해 닉슨 미국 대통령은 베이징으로 날아가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을 만나고 역사적인 수교를 결정한다.2.7g짜리 탁구공이 세계의 판도를 바꿔 놓은, 그 유명한 ‘핑퐁외교’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스포츠는 이처럼 인류평화와 국가간 선린증진에 크게 공헌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전쟁이 터지기도 했음은 불행한 일이다.1969년 7월 중앙아메리카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전쟁은 양국 축구경기에서 촉발됐다. 인접한 두 나라는 난민문제 때문에 서로 감정이 좋지 않던 차에 축구경기 도중 응원단끼리 난투극이 벌어졌고, 이내 전쟁으로 확산돼 스포츠 사상 ‘축구전쟁’이라는 오점을 남겼다. 마침 인도와 파키스탄이 50년간 앙숙관계를 접고 평화를 모색하고 있어 주목된다.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지난 주말 “양국간 크리켓 경기를 보고 싶다.”며 인도를 전격 방문했는데, 이를 두고 ‘크리켓 외교’라고 한다.‘공명정대하다’는 뜻이 담겨 신사들의 스포츠라 불리는 크리켓은 야구와 비슷하다. 영연방 국가에서 인기 있으며,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도 국기(國技)나 다름없다. 두 나라의 크리켓 경기가 열렸다 하면 경기장은 충성심과 애국심의 경연장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들 나라에서 크리켓은 스포츠라기보다는 민족주의의 상징이요, 정치적 도구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크리켓은 또 인도-파키스탄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두 나라의 크리켓 경기가 열리지 않으면 서로 토라져 있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크리켓 경기관람을 구실로 인도를 찾았으나 실은 싱 인도총리도 만나 군사적 화해와 경제협력에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양국간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겠지만 스포츠를 매개로 세계평화를 위한 또 하나의 초석이 다져졌으면 좋겠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MLB] BK, 친청팀 상대 호투…구대성은 2경기연속 부진

    [MLB] BK, 친청팀 상대 호투…구대성은 2경기연속 부진

    유서깊은 미국프로야구에서도 가장 오래된 ‘보스턴의 명물’ 펜웨이파크(1912년∼)에선 12일 홈개막전 행사로 지난해 86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념하는 챔피언반지가 선수들에게 전달됐다. ‘절대반지’의 힘이었을까. 보스턴은 너클볼 투수 팀 웨이크필드의 호투에 힘입어 ‘앙숙’ 뉴욕 양키스를 8-1로 대파했다. 뉴욕 원정에서 1승2패로 밀렸던 보스턴은 이로써 시즌 상대전적 2승2패로 균형을 이뤘다. 웨이크필드는 3회까지 안타를 하나도 허용하지 않는 등 7이닝을 5안타 1실점으로 틀어막아 홈팬들을 열광시켰다. 현존 최고의 너클볼러인 웨이클필드는 지난 2003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올스타 타선의 양키스를 상대로 2승을 거두는 등 줄곧 ‘천적’으로 군림해 왔다. 반면 양키스의 마이크 무시나는 1시간 이상 계속된 ‘지루한’ 식전행사에 지친 탓인지 5이닝 동안 7실점으로 무너졌다. 보스턴은 2회말 웨이크필드의 전담포수인 덕 미라벨리가 그린몬스터를 훌쩍 넘기는 선제 투런홈런을 쏘아올려 기선을 제압했다.3회에도 1사 만루에서 케빈 밀라의 2타점 적시타로 4-0으로 달아난 보스턴은 4회말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에러로 얻은 찬스에서 트롯 닉슨의 2타점 적시 2루타와 매니 라미레스의 안타가 봇물처럼 터지면서 7-1로 달아나 일찌감치 승부를 갈랐다. 한편 김병현(26·콜로라도 로키스)은 이날 뱅크원볼파크에서 열린 친정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 0-2로 끌려가던 7회말 두 번째 투수로 등판,1이닝을 무실점으로 처리했다. 김병현은 볼넷 2개와 보크로 2사 1·2루 위기를 자초했지만 퀸튼 매크레켄을 1루 땅볼로 막아 무실점으로 마무리지었다. 시즌 방어율은 1.80으로 떨어졌다. 구대성(36·뉴욕 메츠)은 셰이스타디움에서 벌어진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홈개막전에서 3-3으로 팽팽히 맞선 8회 무사 3루에 구원등판했지만 대타 호세 비스카이노에게 좌월 2루타를 맞아 역전을 허용했다. 방어율은 0.00으로 유지했지만 2경기 연속 앞선 투수가 남겨놓은 주자의 득점을 허용해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MLB] ‘빅유닛’ 존슨 보스턴 격침

    4일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메이저리그 개막전이 열린 양키스타디움에는 홈팬들의 희망사항을 담은 플래카드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86년 만에 한번 가지고 우쭐대지 마라.’‘다음 우승은 2090년.’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3승 뒤 4연패로 무너지면서 보스턴이 86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거머쥐는데 제물이 됐던 양키스팬들로서는 두 번 다시 악몽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뜻일 터. 앙숙끼리의 대결로 관심을 모은 ‘세기의 개막전’에서 양키스가 ‘빅유닛’ 랜디 존슨의 깔끔한 호투와 마쓰이 히데키의 맹타에 힘입어 보스턴을 9-2로 대파하고 산뜻한 출발을 했다.162경기 가운데 1승을 거뒀을 뿐이지만, 양키스로서는 지난해 치욕적인 4연패의 악몽을 어느 정도 씻어낸 셈이다. 양키스가 지난 스토브리그에서 2년간 3200만달러의 거금을 들여 ‘우승청부사’로 영입한 존슨(41)은 정규리그 첫 등판에서 6이닝 동안 5안타 1실점만을 허용하며 동갑내기 왼손투수 데이비드 웰스에게 완승을 거뒀다. 지난 2003년까지 양키스 마운드의 주축투수였던 웰스는 4와 3분의1이닝 동안 10안타의 뭇매를 맞고 4실점을 허용해 고개를 떨궜다. 팽팽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경기는 초반부터 양키스의 일방적인 흐름으로 진행됐다.2회 1점씩 주고받은 두 팀의 승부가 갈린 것은 3회말. 양키스는 선두타자 데릭 지터의 2루타에 이어 게리 셰필드가 왼쪽 깊숙한 2루타를 터뜨려 2-1, 역전에 성공했다. 후속타자 루벤 시에라의 유격수 땅볼 때 3루까지 진루한 셰필드는 마쓰이의 우전안타로 홈을 밟아 추가득점을 올렸다. 이어지는 타석에서 호르헤 포사다에게 내야안타를 내주면서 갑작스러운 난조에 빠진 웰스는 제이슨 지암비에게 몸에 맞는 볼을 던져 만루의 위기를 자초한 뒤 보크까지 저질러 1점을 더 내주며 일순간에 무너졌다. 기선을 제압한 양키스는 6회말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시에라의 적시타로 2점을 보탠 뒤 8회 마쓰이의 투런 홈런 등으로 3점을 추가,9-1까지 달아나 사실상 승부를 갈랐다. 보스턴은 9회초 마지막 공격에서 트롯 닉슨의 희생 플라이로 1점을 만회하는 데 그쳤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日 3·16도발] “액션 빠진 반쪽 독트린”

    국가안전보장회의가 발표한 ‘신 한·일 독트린’에 대해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들은 대체로 환영한다는 의견을 표현하면서도 구체적인 행동지침이 결여된 것이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외국어대 이장희 교수는 “독도 영유권 방어에 적극 나서겠다는 것과 역사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피해자 문제를 개별 차원에서 지원하겠다는 두 가지 큰 흐름은 환영한다.”면서도 “현안에 대해 어떤 기구와 법제를 만들어 대처해 나가겠다는 구체적인 행동지침이 나오지 않는 등 정부가 아직도 조심스러운 입장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시마네현 조례안을 폐기하지 않거나 또다시 영공을 침해하면 주일대사를 소환한다는 등의 내용을 간접적으로라도 표현하면서 이번에야말로 강한 목소리를 냈어야했다.”며 아쉬워했다. 평화네트워크 이준규 운영위원은 “때늦은 감은 있지만 대체로 이번 독트린은 일본의 보수 우경화에 대한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와 학계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일본과 과거 문제를 청산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앞으로 구체적인 행동지침이 지속적으로 천명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상지대 정대화 교수도 “독도 침탈이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한 것으로 본다는 기본 인식을 천명하는 등 정부가 예상외로 강경한 입장을 표명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앞으로 좀더 구체적이고 다각도의 측면에서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조세열 사무총장은 “일본에 대한 과거 정부의 우유부단한 태도와는 달리 확고하고 증진된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등 이번 독트린은 일종의 정책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면서 “독도문제를 단순한 영토문제가 아니라 ‘식민지 침탈의 정당화’라고 보면서 과거사 문제로 확대시키는 부분과 위안부 등 피해자의 개별적 문제로 다루겠다는 점을 평가할 만하다.”고 밝혔다. 이번 기조 발표가 독트린으로 볼 수없을 만큼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양승함 교수는 “한 국가가 발표하는 독트린이라는 것은 몇 가지 중대사태가 일어났을 때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대응하겠다.’는 식으로 정부의 행동원칙을 구체적으로 천명하는 것인데 이번 발표는 독트린이라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양 교수는 “‘동독과 관계를 맺는 국가와는 단교하겠다.’는 1957년 당시 서독의 할슈타인 독트린이나 ‘미국은 베트남전쟁과 같이 직접적·군사적인 또는 정치적인 과잉개입을 하지 않는다.’는 1970년 미국의 닉슨독트린을 보면 이번 독트린과 차이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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