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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NYT 칼럼니스트 새파이어

    [부고] NYT 칼럼니스트 새파이어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NYT)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새파이어가 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80세. 언어에 대한 칼럼과 정치 비평으로 잘 알려진 그는 1973년 뉴욕타임스에 입사, 78년 논평 부문 퓰리처상을 받았다. 다음해인 79년부터 ‘언어에 대하여(On Language)’라는 칼럼을 쓰기 시작, 30년간 연재했다.뉴욕타임스 입사 전인 1968년에는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했다. 2006년에는 조지 W 부시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일반 시민에게 수여되는 최고의 상으로 꼽히는 자유 훈장을 받았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美공화당 확성기 vs 진보언론 대항마

    美공화당 확성기 vs 진보언론 대항마

    “폭스가 수백만명의 이해가 달려 있는 건강보험 개혁 문제를 다루지 않고 오락 프로그램을 방영한다면서요? 폭스 시청자들이 대통령 연설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건보 개혁 관련 상하 양원 합동 연설에 나섰던 지난 9일, 로버트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은 한 방송사에 대한 불만을 에둘러 표현했다. 대상은 폭스 TV. 폭스가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 시간에 ‘당신은 춤을 출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라는 오락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로 결정하자 작심하고 비판했다. 개혁 성향의 백악관과 보수 성향의 폭스의 신경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폭스의 반(反)개혁, 이유는? 미국이 ‘폭스뉴스 논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폭스는 설립 이후 줄곧 친 공화당-반 민주당 성향으로 도마에 올랐다. 2004년 대선 당시 앵커 네일 카부토가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알 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과 연계돼 있다.”고 주장, 민주당 의원들이 폭스에 대해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폭스의 보수 성향은 오바마 행정부 이후 두드러졌다. 건보개혁 문제를 비롯해 이민법 개정, 금융규제 등의 현안에 대해 비판의 날을 곧추세웠다. 진행자들은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원색적 표현도 서슴지 않는다. 라디오쇼 진행자 글렌 벡은 오바마를 일컬어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파시스트’, ‘인종차별주의자’로 표현할 정도다. 폭스가 친 공화당 성향을 보이는 이유는 경영구조를 보면 알 수 있다. 폭스뉴스의 모회사인 뉴스 코퍼레이션의 루퍼트 머독 회장은 공화당과 친분이 두텁다. 특히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돈독한 사이다. 폭스의 로저 에일리스 최고경영자(CEO)는 공화당 출신으로 닉슨과 레이건, 아버지 부시 등을 도와 대선 승리를 이끈 미디어 전문가다. 고위급 전·현직 인사가 공화당과 얽혀 있다. ●‘편파적 vs 균형보도’ 거센 논란 이런 폭스가 시청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지적이 많다. 미 계간지 ‘폴리티컬사이언스’가 2006년 이라크 전쟁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폭스 시청자들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잡지는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 명분이자 전쟁 뒤 거짓으로 밝혀진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 존재설’과 ‘사담 후세인-알 카에다의 연계설’에 대해 물었다. ‘미국이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는가?’라는 질문에 폭스 시청자 33%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ABC와 NBC, CNN 시청자는 19~20%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 ‘미국은 이라크의 후세인과 알 카에다가 연계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나?’라는 항목에는 폭스 시청자 67%가 ‘그렇다.’고 말한 반면 ABC 등 다른 방송의 시청자는 45~50%에 불과했다. ‘보도 공정과 정확함(FAIR)’ 등 미국 미디어 감시 단체들은 폭스뉴스의 이름을 ‘Faux News(짝퉁 뉴스)’ 등으로 빗대 꼬집기도 한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 칼럼니스트들도 ‘언론답지 않은 언론’이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폭스뉴스 측은 편향적이지 않다는 입장이다. 에일리스 CEO는 2004년 대선 당시 조지 W 부시 후보를 지나치게 지원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우리는 공화당도 비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실제 폭스뉴스는 부시 전 대통령이 젊을 때 음주운전으로 기소된 사실을 대선 나흘 전 단독 보도했다. 맨해튼 정책연구소의 브라이언 앤더슨 편집인은 “진보주의자들이 폭스에 좌절하는 것은 그들이 독점해 왔던 언론 매체를 폭스가 흔들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폭스의 영향으로 진보적 입장의 일부 매체들이 중도 우파적 입장을 취하기 시작하는 등 다양성이 높아진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열린세상] 욱일승천하는 중국과 우리의 미래/오영호 무역협회 상근 부회장

    [열린세상] 욱일승천하는 중국과 우리의 미래/오영호 무역협회 상근 부회장

    1972년 2월21일 아침. 마오쩌둥 중국 국가 주석은 아픈 몸을 이끌고 몇 달 만에 면도와 이발을 했다. 젓가락질을 연습하며 태평양을 건너오는 닉슨 미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냉전시대의 가장 중요한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당시 중국은 사면초가에 몰려 있었다. 1953년 스탈린 격하운동을 주도한 흐루시초프 체제가 등장한 이래 소련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고 1968년에는 우수리 강에서 무력충돌까지 일어났다. 1958년 야심차게 출발한 ‘대약진운동’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주적이 소련으로 바뀌면서 미국과의 제휴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됐고 결국 두 나라는 정상 간의 첫 만남이 있은 지 7년 만인 1979년 1월 공식 외교관계를 맺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러 오바마 정부 출범 원년인 올 7월 워싱턴에서 미·중 전략·경제대화가 개최됐다. 양국은 경제·외교·안보·환경 등 전 세계적 이슈에서 포괄적이고 긴밀한 협력에 합의해 ‘G2’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차이메리카’ 시대의 도래는 양국 수교 당시 구매력 기준 세계경제 비중에서 미국의 21.8%에 비해 5%에 불과하던 중국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음을 뜻한다. 2015년이 되면 중국의 경제비중은 미국의 17.4%와 비슷한 17.3%로 예상되고 있다. 더욱이 중국은 2조달러 이상의 외환과 8015억 달러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면서 미국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양국의 경제적 위상에 생긴 변화는 전략·경제대화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세계 소비시장이 되어 달라는 미국의 요청에 중국은 내수확대 방침을 밝혔다. 미국은 G20 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중국의 활동을 적극 지원키로 했다. 미국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세웠던 위안화 환율 문제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 정부의 이런 유연한 태도는 미국 기업들에서도 똑같이 감지됐다. 얼마 전 제너럴일렉트릭(GE)이 각국의 유망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미국으로 초청해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은 40분간 행해진 기조연설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 할애하는 등 유독 ‘중국’을 강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GE가 생각하는 세계화는 전 세계를 상대로 단지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수요자를 찾아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가장 큰 시장으로 중국을 지목하고 수처리 설비, 의료기기 등 중국이 최우선적으로 필요로 하는 품목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세계 최강대국을 이끄는 오바마 정부와 세계 최고의 기업 GE가 보는 지금의 중국은 분명하다. 세계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가이고, 주변국과의 연대로 경제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은 타이완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등을 통해 ‘차이완 경제’의 개막을 앞당기려는 노력을 배가하고 있다. 내년에 출범할 중·아세안 자유무역지대는 19억명의 인구와 국내총생산(GDP) 6조달러의 경제력을 포괄하는 방대한 규모로 상품의 90% 이상이 무관세로 교역된다. 한국·일본과 밀접한 교역관계를 맺으면서 3국간 거래규모가 나날이 커져가고 있다. 산업혁명 이전, 세계 최고를 자부하던 중국은 근대세계의 열망과 요구를 외면한 대가로 대륙을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으로 내주어야 했다. 그러나 1816년 중국을 ‘잠자는 사자’에 비유해 “일단 깨어나면 세계가 진동하리라.”던 나폴레옹의 예언을 입증이라도 하듯 지금 중국은 개혁·개방을 앞세워 포효를 시작했고 질주를 거듭하는 중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를 보이고 있는 중국경제와 그 영향력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는 우리의 입장 또한 명확하다. 중국을 바로 보는 시대적 안목을 갖고 미래한국을 결정지을 국가전략을 설계하는 일이다. 그 뒤에는 중국이라는 ‘사자’의 등에 올라타는 일만 남았다. 오영호 무역협회 상근 부회장
  • [특별기고-김대중 전대통령 영전에 부쳐] ‘대화의 힘’ 믿은 뼛속깊은 휴머니스트

    [특별기고-김대중 전대통령 영전에 부쳐] ‘대화의 힘’ 믿은 뼛속깊은 휴머니스트

    그는 ‘대화의 힘’을 신봉했다. 뼛속깊이 민주주의자였다. 정치의 정도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집단을 향해 대화와 설득으로 합의와 타협을 이루는 과정이라 했다. ‘공산국가를 향한 억압과 고립화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오로지 개방과 대화만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다.’라고 흔들림없이 믿었다. 역사발전은 이를 실증하고 있다. 철의 장막, ‘중공’의 빗장을 열게 한 것은 닉슨이 먼저 찾아가 대화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을 감옥으로 몰아 넣고 생명을 위협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7·7선언’을, 그 대화의 자세를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그는 납치와 투옥, 감시와 연금 등으로 자신을 모질게 탄압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여러 차례 대화를 시도했다. 그는 독재정권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그들과의 ‘적대적 경쟁’이 아니라 ‘형제적 경쟁’을 원했다. 상대방을 파멸시키는 경쟁이 아니라 경쟁자가 함께 성장할 수 있기를 원했다. 늘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통행을 갈구했다. 감옥 안에서도 그랬다. 그는 추위를 몹시 타는 체질이었다. 그런데도 머리맡의 물그릇이 얼어 터지는 혹한의 감옥에서도 그는 결코 독재자를 증오하지 않았다. 대신 한달에 한 장만 주어지는 봉함엽서에 깨알 같은 작은 글씨로 가족과 대화를 시도했다. 엽서 주소란까지 촘촘히 메운 사연은 그가 참으로 자잘하고 섬세한 여성적 심성을 가진 남성임을 보여 준다. 이 ‘양성적’인간은 놀랍게도 영하의 감옥에서 오히려 진정한 화해와 용서의 경지에 닿는다. 증오와 복수가 아니라 오래도록 참고 기다리는 사랑의 기술을 터득한다. ‘대화지상주의자’인 그는 1980년대에 택할 수밖에 없었던 ‘장외투쟁’을 싫어했다. 그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사랑했다. 대의정치가 맺은 국민과 대표자 간의 계약과 신의를 존중하고자 했다. 그래서 재임기간에는 거부권을 한번도 행사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으로는 너무도 부당했지만 국회의 결정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것 역시 그의 오랜 인내의 결실이다. 그는 북한이 거부하는 조선일보 기자의 방북취재와 김일성 주석이 잠들어 있는 금수산궁전 참배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평양으로 향했다. 그는 오히려 평생 동안 자신을 음해하고 괴롭힌 보수신문의 취재허가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공했다. 누구 못지않은 빼어난 논리와 달변을 갖춘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양에 머무는 내내 북한 지도부의 말을 ‘경청’하기만 했다. 그는 극도로 자신의 말을 아꼈다. 대화를 위한 선결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인여천(事人如天)’을 좌우명처럼 여겼다. 친지들에게 자주 붓글씨로 써주었다. ‘때로 잘못 판단하기도 하고 흑색선전에 현혹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이외에는 믿을 대상이 없었던’ 그는 오로지 국민의 힘에 철저히 의지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사면복권되었을 때 그는 국민에 대한 그의 무한신뢰를 확인했다.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는 ‘가난은 나라가 구제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자본주의 정글에서 소외되고 뒤처지는 이들이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고 믿었다. ‘기초생활보장제’는 간난신고를 거듭했다. 재원도 부족하고 일각에서는 이념공세를 퍼부었다. 그는 굽히지 않았다. 이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는 굶거나 헐벗는 이들은 없다. 휴머니스트인 지도자의 힘은 그래서 존귀하다. 그는 ‘가난은 나라도 구제못한다.’는 왕조의 수준을 ‘공화국’으로 변환시켰다. 이러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두고 군사정권이 조작하고 유포한 거짓들이 아직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더 기다려야 할까? 만인을 잠시 속일 수 있고, 소수를 오래 속일 수 있지만 만인을 영원히 속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믿자. 한 시대 대중의 소망을 현실에서 구현하는 이를 두고 우리는 영웅이라 부른다. 김대중, 그는 진정 민주주의와 평화를 꿈꾸는 우리들의 캡틴이었다. 실로 너무 멀고도 험한 길을 외롭게 걸어온 당신. 이제 더는 음해와 핍박이 없는 하늘에서 부디 평안을 누리소서.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상임위원
  • [열린세상] 국가조직과 인력 충원의 문민화/성낙인 서울대 법학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열린세상] 국가조직과 인력 충원의 문민화/성낙인 서울대 법학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1987년 헌법체제 아래서 다섯 명의 직선 대통령이 배출되면서 국가와 사회의 문민화가 진척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국가조직 곳곳에서 기득권에 안주하는 특정 전문가집단의 독식현상은 여전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즉시 전광석화와 같이 군 내부의 최대 사조직인 하나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했다. 군사정부의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최고 권력자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장관을 비롯한 핵심 요직은 전현직 장군들의 독무대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 시절에 6년간 재임한 도널드 럼즈펠드와 그 후임인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모두 문민 출신이다. 게이츠는 정권교체 이후에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정부에서 국방장관으로 계속 재임한다. 외교부도 장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관료가 직업외교관 일색이다. 선진국에서는 직업외교관 출신이 아니라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가장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인물로 충원한다.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비롯해 주요국 대사는 오히려 비외교관 출신으로 충원된다. 동종번식이 계속되는 한 핑퐁 외교를 통하여 중국을 개방시킨 닉슨 대통령 시절의 헨리 키신저 같은 훌륭한 외교관이 배출되기 어렵다. 법조계의 배타적 독식현상은 더욱 심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판사출신의 젊은 강금실 변호사를 법무장관으로 전격 발탁했다. 검사들의 저항에 부딪치자 전무후무한 ‘대통령과 평검사의 대화’가 TV를 통해서 생중계됐다. 그 이후의 ‘검사스럽다’는 유행어에서 드러나듯이 노회한 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에게 열정만 앞선 젊은 검사들이 참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실험은 단명으로 끝났다. 법무부의 상층조직은 현직 검사의 독점 공간이다. 그 인적 구성에 관한 한 대검찰청과 차이가 없다. 오히려 검찰의 전위조직이나 마찬가지다. 검사는 현장에서 수사를 지휘해야 한다. 대신 법무부는 인권, 범죄예방, 교정, 법교육 같은 고유한 법무행정을 담당해야 한다. 1년이 멀다 하고 단행되는 검찰의 인사이동에 휘둘려 법무행정의 안정적 수행은 불가능하다. 대법원도 마찬가지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 법원행정처장을 법원장 출신이긴 하지만 비법관으로 임명한 바 있다. 하지만 후임은 종전대로 현직 대법관이 겸임한다. 법원행정처의 핵심 요직도 온통 법관으로 보임되어 있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법원행정처는 법원행정 전문가로 충원돼야 한다. 법관은 재판이 그의 소명이다. 그런데 심지어 법관이 해외주재 대사관 소속 또는 국회사무처 소속으로 파견 근무도 한다. 이는 법관이라는 특수한 신분에 본질적으로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헌법적 가치인 사법부의 독립 중에서도 핵심적 요구사항인 법관의 인적 독립에도 어긋난다. 국방부는 장군, 외교부는 외교관, 법무부는 검사, 대법원은 판사 출신이 행정의 수장으로 있으면 우선은 현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가행정은 기관이기주의에 매몰될 것이다. 물론 외부인사가 관료조직에 휘둘려 업무파악도 제대로 못한 상황에서 물러나고 마는 문제도 있다. 하지만 1년이 멀다하고 갈아치우는 장관직의 소모품화를 청산하고 장관이 실질적으로 업무를 파악하고 기관을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장관직의 안정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국가의 존립이유와 직결되는 국민의 신체와 재산을 보전하고 국가안보를 책임지며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핵심적인 국가기관은 이제 문민화돼야 한다. 정부의 다른 부처에는 각종 직역의 다양한 인재들이 수장에 취임하고 핵심보직도 차지하지만 유독 이들 부처만은 여전히 장군, 외교관, 검사, 판사의 철옹성이다. 민주화 이후에 정권교체와 정부교체가 일상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지도자의 정치철학을 제대로 담보할 수 있는 인사들이 책임 있는 지위에서 국정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성낙인 서울대 법학교수·한국법학교수회장
  • 워터게이트 호텔 새 주인은

    1974년 닉슨 전 미 대통령을 끌어내린 역사적 현장,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호텔이 21일(현지시간) 경매에 부쳐진다. 이 호텔 이름 덕분에 이후 각종 정치적 부정 스캔들에는 ‘게이트’란 단어가 이정표처럼 붙어왔다.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칼 번스타인 기자의 특종 보도로 세간에 알려진 호텔의 입찰 후보자 중에는 런던 호텔 체인과 두바이의 최고급 호텔그룹인 주메이라도 포함돼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이날 보도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꾀하려던 비밀공작반은 당시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가 설치돼 있던 워터게이트 호텔에 들어가 고장난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 체포됐다. 여기에 닉슨이 직접 개입됐다는 증거 테이프가 나오면서 닉슨은 미 역사상 최초로 임기 중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다. 251개 객실을 갖춘 워터게이트 호텔은 경영 악화로 2년전 문을 닫았다. 현재 소유주인 ‘모뉴먼트 릴티’는 5년전 4500만달러(약 560억원)에 이 건물을 매입,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 애썼으나 실패했다. 은행 부채를 갚지 못해 결국 경매에 나오게 된 이 12층짜리 호텔에 세계 각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경매를 진행할 알렉스쿠퍼 경매회사측은 정확한 최저가와 입찰자 명단을 밝히지 않았으나 경매에 참여하려면 일단 100만달러의 예치금을 내야 한다고 전했다. 개장에 드는 비용은 1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요즘 같은 ‘경기 악천후’에 선뜻 1억달러를 제시할 입찰자가 나올지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미국 신뢰의 목소리 하늘로 떠나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의 ‘전설적인 방송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가 17일(현지시간) 뉴욕 자택에서 사망했다. 92세. ‘크롱카이트=미국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통할 정도로 1962년부터 1981년까지 CBS TV의 메인 뉴스 앵커였던 그는 객관적인 뉴스 진행으로 미국 국민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았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등 주요 사건 다뤄 크롱카이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통신사 기자로 노르망디상륙작전 등을 취재한 것을 시작으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암살,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 암살,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1960년 민권운동,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사임을 몰고 온 워터게이트사건, 베트남전쟁, 아폴로호 달 착륙, 이란 주재 미대사관 인질 사태 등 미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다룬 미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크롱카이트는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신문에 밀려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던 TV를 방송 저널리즘으로 발돋움시키는 데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 CBS는 1962년 신문 기사를 전달하는 수준에 그쳤던 저녁 메인 뉴스를 15분에서 30분으로 확대하고, 앵커맨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 뉴스를 방송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발전, 정착시켰다. 미 국민들은 크롱카이트가 진행하는 저녁 뉴스를 통해 세상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았고, 그가 전하는 뉴스를 있는 그대로 믿었을 정도로 크롱카이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특히 1968년 미국이 베트남에서 수렁에 빠졌다는 그의 지적은 베트남전 여론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16년 미주리에서 태어난 크롱카이트는 고등학생 때부터 학보사 편집자로 활약했다. 텍사스대학을 중퇴한 뒤 여러 언론사를 거쳐 1950년 기자로 CBS에 입사했다. ●20년간 CBS 메인 뉴스 진행 이후 20년간 ‘CBS 이브닝 뉴스’를 진행하며 방송 뉴스의 새 장을 썼고, 언론 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도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1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메달’을 받았으며 피바디상 등 주요 언론상을 수상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이 ‘아이콘’을 잃었다.”면서 “크롱카이트는 수십년간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목소리였다.”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kmkim@seoul.co.kr
  • 아폴로 달착륙은 거짓?…음모론 10가지 논란

    아폴로 달착륙은 거짓?…음모론 10가지 논란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은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인류 최초로 첫발자국을 남겼다. 올해는 인류가 달에 발을 내디딘지 40주년 되는 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아폴로의 달착륙이 ‘역사적인 거짓’이라는 음모론을 믿는다. 최근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그동안 제기된 대표적인 음모론 10개를 정리해 보도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 10가지 이유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달에 성조기를 꽃는 역사적인 장면. 성조기가 바람에 날리듯 흔들리고 있다. 달에는 공기가 없는데도 말이다. 2. 아폴로 우주인이 찍은 사진들에 별이 없다. 3. 달착륙선이 찍은 달의 표면에 달분화구가 보이지 않는다. 4.달착륙선의 무게는 17t이나 달표면에 아무런 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잠시후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5.달표면에는 습기도 대기도 없다. 중력은 지구의 6분의 1. 그런데 닐 암스트롱이 남긴 발자국은 너무 선명하다. 6.달착륙선이 이륙하는 순간, 아무런 로켓발사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이륙했을까? 7.달표면에서 움직이는 우주인의 모습은 지구에서 촬영한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보여주는 것과 동일하다. 8. 달착륙선의 우주인들은 생존할 수 없다. 지구를 감싸는 반 알렌 방사능띠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9.아폴로 우주선이 가져온 월석은 남극에서 채취한 암석과 동일하다. 10. 총 6섯번의 달착륙은 모두 러시아와 냉전시대였던 닉슨정권 하에서 이루어졌다. 그후로 40년 동안 어느 정권도 달착륙을 시도 하지 않는 이유는? 기술은 40년 전에 비해 월등히 발전했는데도 말이다. 사진=텔레그래프 서울뉴스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형태(hytekim@gmail.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지방시대] 명품길 조성 신중해야/박창호 부산도시공사 감사

    [지방시대] 명품길 조성 신중해야/박창호 부산도시공사 감사

    우리 경제는 아직 낙관론을 펴기에 이르다고 한다. 그래서 현실의 삶은 팍팍하고 여유를 부릴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이럴 때일수록 낭만과 자유분방함은 시대의 낡은 스펙트럼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은 낭만을 즐겼다고 한다. 그는 평생 초사(楚辭·중국 고전문학)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1934년 홍군이 9600㎞의 험산과 장강을 건널 때 늘 초사를 곁에 두었다. 1972년 중국을 방문한 닉슨 미국 대통령에게 준 선물도 초사였다. 혁명이론 대가의 ‘초사 사랑’이 놀랍다. 초사는 한(漢)나라 유향(劉向·BC 77~BC 6년)이 시인 굴원(屈原)의 작품 등을 모은 것이다. 최근 지역 언론이 바람을 일으킨 ‘명품 길 걷기’ 캠페인은 궁극적으로 인간성 회복운동이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생태환경을 만들자는 소박한 취지다. 길을 걸으며 자유분방한 사유의 힘과 삶의 열정을 숙성시키자는데 누군들 공감하지 않을 리 있겠는가. 요즘 마음먹고 해안길을 걸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마냥 걷기만 해도 ‘웰빙 삶’을 담보하는 청정 에너지원이 될 것 같잖은가. 더구나 곳곳에 펼쳐진 시네마스코프식 해안, 부산 송도와 다대포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장군산. 두송반도 숲길, 장엄한 낙조로 화장한 낙동강 델타의 정취를 뒤엎을 수 있는 도시가 부산을 빼고 어디 그리 흔하랴. 그동안 왜 이런 천혜의 해변 길을 걸어보지 못했을까.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생태 환경에 몰입하는 것이 생명 사랑인 것을…. 부산시가 즉각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를 선언해 화답한 것은 적절하다. 해안길 강변길 오솔길 등 118곳을 만들고, 꼬불꼬불한 해안선 306㎞를 연결하겠다는 것 등의 정책은 생태 환경도시 조성의 의지로 읽힌다. 도시계획차원의 중장기 프로젝트와 조례를 만들고,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기구 발족 등 챙기고 다듬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매사가 의욕만 넘쳐 서두르면 그르친다. ‘명품 길’이 두부 모 자르듯 획일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별로 반갑잖다. 설사 그렇게 빨리 만들어진 ‘명품 길’이 겉보기에 멋들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명품 길’을 만드는 것은 능률과 실적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행정기관의 독주보다 다양한 의견을 경청, 수렴함으로써 열린 마음을 모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많은 시민이 필요성을 절감하고 자발적으로 동참할 때 운동의 순도는 높아지고 밀도는 단단해지기 마련이다. 환경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이미 많은 대가를 치르며, 소중한 경험을 했다. 찬반론이 엇갈리지만, 천성산 터널공사와 관련된 도롱뇽 소송과 지율 스님 단식사건은 큰 진통을 주었다. 잘잘못을 떠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올 10월 개통되는 명지대교(가칭)는 철새 도래지를 우회하는 U자형 다리다. 스피드와 능률을 추구해야 할 다리가 강을 똑바로 건너지 못하고 U자형이라니 이런 비효율이 없다는 주장은 얼핏 보아 옳다. 하지만, 인간이 막대한 공사비와 공기를 더 들이며 철새에게 양보했다는 점은 역사에 남을 일이다. “다리가 반드시 직선일 필요가 없고, 생태계 보전을 위해 돌아갈 수도 있다.”는 당시 부산시 환경책임자의 주장은 유연한 사고와 낭만적 역발상의 소산이 아니겠는가. 예전에 우리는 마을에 신작로를 내면 먼저 고사를 지냈다. 행여 사고가 날세라 제물을 차리고 길의 신께 안전을 빌었다. 지금 명품 길 조성을 앞두고 고사를 지내자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정책을 시행할 때는 몸을 낮추고 귀를 열어 시민과 자연의 소리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박창호 부산도시공사 감사
  • 오바마 새달 15일 ML 올스타전 시구

    미국프로야구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팬으로 유명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새달 15일(한국시간) 세인트루이스 부시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올스타전 시구를 한다고 메이저리그 홈페이지와 AP통신 등이 24일 밝혔다. 미 대통령의 올스타전 시구는 존 F 케네디(1962년 워싱턴), 리처드 닉슨(1970년 워싱턴), 제럴드 포드(1978년 샌디에이고)에 이어 네 번째. 올스타전에 참석하는 것은 일곱 번째다. 1937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최초로 올스타전을 찾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4월 메이저리그 개막전 시구를 제안받았지만 유럽 순방 등으로 일정이 맞지 않아 고사했다.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빠지기 쉬운 통계의 함정

    빠지기 쉬운 통계의 함정

    ‘당신은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가.’ 와 ‘대통령은 상원조사위원회에 출두해야 하는가?’ 는 똑같은 의미였다. 그러나 이 중 ‘워터게이트 사건’의 당사자 닉슨 전 대통령을 불명예 퇴진시킨 질문은 후자였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인 갤럽이 미국인들에게 첫 번째 질문을 던지자, 대부분의 국민들이 반대했다. ‘면죄부’를 받은 듯 닉슨 대통령은 이 설문조사 결과를 수개월 동안 기자들 코앞에서 깃발처럼 흔들었다. 그러나 처음 질문에는 결정적인 하자가 있었다. 대부분의 미국 국민이 ‘탄핵(Impeachment)’이란 단어를 몰랐다는 것. 그래서 갤럽은 질문을 바꿔 다시 여론조사를 했다. 그 뜻은 첫 번째 질문과 완전히 똑같았지만 왠지 처벌수위가 완화된 느낌이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찬성했고, 미국 의회는 탄핵 절차에 들어갔다. 두 번째 질문이 닉슨 대통령의 자발적 사임을 이끌어 낸 역사적인 질문이었다. ●데이터 분식·데이터 성형수술 등 통계의 이면 여론조사에서 이처럼 질문지의 내용을 살짝 손만봐도 결과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 바로 독일 도르트문트 공대 통계학과 교수 발터 크래머가 쓴 ‘벌거벗은 통계’(염정용 옮김, 이순 펴냄)다. 이 책은 여론조사뿐만 아니라 각종 숫자와 데이터를 가지고 만들어진 통계가 어떻게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잘못된 행동을 이끄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적나라하다는 표현이 너무 미약하게 느껴질 정도다. 크래머 교수는 미국의 저명한 통계학자 대럴 후프가 쓴 ‘통계로 거짓말하는 방법(1954년)’을 읽고 여기서 영감을 받아 1991년 이 책을 완성했다. 그 뒤로 일약 지식인들의 통계 교양서로 자리잡으면서 이 책은 ‘아마존 통계경영학 부문 스테디 셀러’로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사실 통계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 현대인의 상식이다. 영국 수상을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오죽하면 “거짓말은 세 종류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말했을까. 그러나 이 새빨간 거짓말보다 더한 거짓말인 통계가 경제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등 온갖 곳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통계를 믿을 수 없다고 평소 신념으로 가지고 있던 독자라도 신문에 실린 주식폭등 그래프를 보고 쌈짓돈을 만지작거리고, 유권자들은 사표(死票)방지 심리 때문에 여론조사에서 당선권으로 나타난 정당후보에게 투표를 하게 된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라는 산술평균값에 현혹돼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을 놓치게 된다. 통계는 복잡한 계산이나 숫자들을 피해 빠르고 쉽게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고안된 학문인데 통계 때문에 헷갈리고 조작의 피해를 당한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통계를 활용하는 정부나 기업, 광고주들은 분식회계와 맞먹는 수준으로 ‘데이터 분식’행위를 하고, ‘데이터 성형수술’도 서슴지 않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은 좁고도 험하다. 특히 좌파, 우파, 중도파 모두 선의의 목적을 위해 통계가 조작될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도 인식의 걸림돌이다. 이럴 때 15장으로 구성된 ‘벌거벗은 통계’가 길이요, 생명줄이 되는 것이다. 몇가지 사례를 보여주겠다. 성경에서 아담은 930살, 그의 아들 셋은 912살까지 살았다고 써 있다. 믿을 수 있을까. 저자는 이것이 ‘정교한 수치가 진실’이라는 환상 때문에 또한 ‘두루뭉술하면 성의없다고 느낄 것’이라는 우려가 겹쳐져 나타난 숫자라고 설명한다. 심지어 영국의 신학자는 천지창조의 시점을 ‘기원전 4004년 10월21일 일요일 오전 9시’라고 정밀하게 계산해냈는데, 요즘 이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레슨1. 너무 구체적이고 정교한 숫자는 믿지 말라. 농부 1명이 소 40마리를 가지고 있고, 농부 9명은 소 ‘0마리’를 가지고 있다면 농부들은 몇마리의 소를 가지고 있는가. 통계에서 나타나는 최빈값은 ‘0마리’이고 중간값도 ‘0마리’인데, 산술평균은 4마리나 된다. 산술평균 4마리는 흔히 인용되는 숫자인데, 이것은 의미있는 실체적 진실인가? 아니다. 산술평균은 심각한 불평등을 은폐시키는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의 규모로 전세계 국가를 줄세우기 하는 ‘국민 총생산의 신화’도 평균값의 함정에 해당한다. 레슨 2. 산술적 평균, 평균값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가파른 그래프에 현혹되지 말아라 표본조사가 잘못될 경우 통계 자체가 완전히 틀릴 수 있다.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리터러리 다이제스트’는 1000만명, 갤럽은 단지 5만명의 표본으로 조사해 다이제스트는 공화당 후보가, 갤럽은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것을 예측했다. 결과는 갤럽의 승리였고, ‘뉴딜’로 유명한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됐다. 다이제스트의 표본은 일반인들이 아니라, 정기구독자들로, 자동차, 사교클럽 소속들이었다. 그래프를 볼 때 가파른 화살표나 등락만 살펴보지 말고, 가로축과 세로축의 단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래프의 세로축이 ‘0’부터 시작된 것인지 아니면 뚝 잘라내서 가파른 기울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가로축도 마찬가지다. 가로축이 좁을수록 그래프는 가파르게 된다. 특히 주식시장에서 가파른 그래프란 주식가격의 폭등이나 폭락을 의미하는데, 투자자들을 정신적 공황상태로 몰아가는 나쁜 그래프가 된다. 마지막으로 영국 여성은 평생동안 2.9명의 남자와 섹스를 하는 반면 영국 남성은 여성파트너가 11명이나 된다. 이런 결과는 왜 나올까. 여성은 성문제와 관련해 내숭을 떨고 남자들은 자신의 남성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축소했거나 부풀렸을 가능성이 있다. 책은 300페이지가 채 안 된다. 1만 1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단절과 반목의 정치풍토 끊자](3)퇴임한 선진국 지도자들은

    [단절과 반목의 정치풍토 끊자](3)퇴임한 선진국 지도자들은

    대통령제인 미국과 프랑스, 의원내각제인 일본, 나름대로의 정치 구조 속에서 전직 지도자들은 활동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들은 사회로, 전직 총리들은 의회로 복귀, 지도자 때 쌓은 경험을 환원하는 데 힘쓰고 있다. 국민들도 정치적 이념을 떠난 전직 지도자들의 이같은 행보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면서 격려와 도움을 아끼지 않고 있다. ■ 미국 - 대통령 도서관 지어 지역문화 중심으로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미국 대통령들은 현직에서 물러나면 고향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거나 사회봉사활동에 전념하는 경우가 많다. 미 대통령들이 퇴임을 준비하면서 예외없이 추진하는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의 이름을 붙인 도서관 겸 기념관 건립 계획이다. 자서전 집필을 통해 자신의 임기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퇴임 후 주요 활동이다. ●카터, 아이티 분쟁 막아 노벨평화상 미국 대통령 도서관 겸 기념관 건립은 제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시작됐다. 현재 11개 대통령 기념관이 설립돼 있다. 올초 퇴임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도서관 겸 기념관 건립이 완성되면 12개로 늘어난다. 제31대 대통령인 허버트 후버는 뒤늦게 1962년 고향인 아이오와주 웨스트브랜치에 개관했고, 후버 대통령 이후 자신의 이름을 단 기념 도서관이 없는 대통령은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리처드 닉슨 대통령 한 명이다. 대통령 기념 도서관에는 대통령 재임 시절뿐 아니라 다른 공직에 있을 때 작성됐거나 개인적으로 수집했던 모든 자료들과 서적들이 전시돼 있다. 자료들은 일반인 및 학자들이 자유롭게 열람, 연구하도록 공개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외에 일반인들을 위한 각종 행사와 교육프로그램들을 운영, 역사의 산현장이자 지역사회의 사회문화 중심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한다. 전직 대통령들은 관심 분야에 따라 연구소를 설립,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사회 및 전 세계를 위한 사회봉사활동으로 퇴임 후 제2의 인생을 사는 전직 대통령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들 수 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해비탯 운동을 시작했고 1982년 설립한 카터센터는 국제적인 사회봉사기구로 성장해 세계 30여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남북문제의 중재자로 나서는가 하면 아이티 무력충돌을 막는 등 국제적 분쟁해결사로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클린턴, 기후변화·교육·빈곤퇴치 앞장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역시 재임기간 못지않게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클린턴 재단’을 설립, 매년 전 세계 전·현직 국가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하는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CGI)’ 회의를 개최해 기후변화, 교육, 보건, 빈곤퇴치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한다. 얼마 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의해 아이티특사로 임명됐고, 수년전 인도네시아 쓰나미 때에도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과 함께 피해현장을 직접 찾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했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퇴임 후 고향에서 일반 시민으로서의 삶을 향유하는 동시에 활발한 강연활동 및 사회봉사활동으로 경험과 지식을 자연스럽게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kmkim@seoul.co.kr ■ 프랑스 - 前대통령에 ‘살아있는 국가문화재’ 배려 │파리 이종수특파원│‘예우받으며 국가 원로로 활동’ 프랑스는 다양성의 나라라는 특징에 걸맞게 전직 대통령의 삶도 다양하다. 그러나 대부분 후임 대통령의 예우를 받으며 자신의 국정 경험을 최대로 살려서 활동했거나 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시라크, 정적 미테랑에 ‘전임 예우’ 전형적인 사례가 자크 시라크와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의 관계. 널리 알려진 대로 두 사람은 평생의 정적이었다. 시라크는 미테랑에게 두번이나 대선에서 패배한 아픔을 갖고 있다. 그러나 후임 대통령 시라크는 프랑스 제5공화국 최장수 대통령이었던 미테랑을 따뜻하게 대했다. 미테랑이 이전에 살던 파리7구의 아파트로 돌아가자 시라크는 에펠탑 근처에 전직 대통령 사무실을 마련해 줬다. “국가의 살아있는 문화재로 전 대통령이 사무실에서 여생을 보내며 회고록을 쓰는 등 후세에 교훈을 남기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배려한 것. 이에 힘입어 미테랑은 전립선 암을 앓으면서도 프랑스는 물론 국제사회의 평화와 인권을 위해 활동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현 대통령과 시라크의 관계도 엇비슷하다. 시라크가 자신의 후임 대통령 후보로 사르코지 대신 도미니크 드 빌팽 당시 총리를 지지하면서 관계가 냉랭했다. 그러나 사르코지 역시 시라크에게 ‘전임 예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국무총리, 파리 시장, 대통령 등 33년 동안 공직생활을 한 시라크는 크고 작은 스캔들에 휘말렸다. 결국 대통령으로서의 면책 특권이 끝난 뒤 2007년 파리시장 시절의 공금 횡령 사건과 관련해 법원의 출석 명령을 받았다. 제5공화국 전임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맛본 불명예였다. 그러나 이 역시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게 아니라 참고인 자격으로 조용히 조사받았다. ●청백리 드골은 평화로운 시골 집으로 이런 전직 대통령에 대한 배려에 힘입어 프랑스의 전직 대통령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활동했다. 재직 중 파리에 아파트도 한채 마련하지 못할 정도로 청렴했던 샤를 드골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시골 집으로 내려가 평화롭게 살았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은 퇴임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당연직인 헌법위원직을 마다하고 더 많은 정치적 자유를 위해 지역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해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낙선후 헌법위원으로 일하면서 최근엔 악화된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는 등 국가 원로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있다. 시라크 전 대통령도 자신의 이름을 딴 공익 재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74%로부터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으로 꼽히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vielee@seoul.co.kr ■ 일본 - 총리직 물러나면 평의원으로 의정활동 │도쿄 박홍기특파원│일본의 총리들은 총리직에서 물러나면 국회로 돌아간다. 의원으로서 의정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총리 재직 전보다 경험이 많은 탓에 활동에 더 적극적이다. 의원내각제의 특징이다. ●다나카, ‘록히드사건’으로 유죄판결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최근 총리 재임 시절 힘썼던 행정 및 공무원개혁에,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는 아프리카 끌어안기에, 아베 신조 전 총리는 납치문제 등 안보 문제에 비중을 두고 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가이후 도시키 전 총리 등은 정계은퇴를 했지만 정치 원로의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전직 총리들은 별다른 탈 없이 의원으로서 자기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따져보면 일본의 정치구조는 ‘일본식’이다. 자민당의 장기집권에서 비롯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금권정치’로 불린다. 돈과 떼어놓고서는 정치를 말할 수 없는 이유에서다. 실제 ‘정치와 돈’은 고질적인 문제다. 업계나 단체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족(族)의원’들이 존재할 정도다. 총리도 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1955년 자민당 출범 이래 역대 총리 가운데 검은 돈에 연루돼 사법처리된 인물은 다나카 가쿠에이(1972년 7월∼74년 12월) 단 한명이다. 총리 때 직권을 남용, 정치자금을 모은 의혹을 받고 사퇴했다. 또 총리 재직 때 전일본항공(ANA)에 압력을 행사, 록히드사의 비행기를 매입토록 한 뒤 200만달러의 뇌물을 챙긴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1976년 8월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유죄판결까지 받았다. 이른바 ‘록히드사건’이다. 민주당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의 국제담당 비서로 근무했던 김숙현 도호쿠대 조교수는 “자민당은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94년 6월∼96년 1월) 기간을 빼고는 줄곧 집권해 왔다. 즉 총리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 자민당의 정치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며 자민당 체제에서의 ‘안전판론’을 지적했다. 니시노 준야 게이오대 조교수는 “총리의 권한이 대통령제에 비해 약하다. 당론이 우선할 수밖에 없다. 당의 견제에 제약도 적잖다.”고 강조했다. ●당론이 우선… 총리 권한행사 제약 일본의 경우 관료들의 텃세가 강한 탓에 총리나 각료가 바뀌어도 정책의 흔들림이 거의 없다. 정책의 일관성을 갖는 이유다. 자민당은 관료의 힘을 의식, 정치가 주도하는 행정을 만들기 위해 공무원 개혁을 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총리들은 내각의 지지율에 따라 임기가 결정되는 경향이 짙지만 ‘자민당의 안전판’ 속에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국회로의 복귀가 수월하다. hkpark@seoul.co.kr
  • 미국 현대 미술계 비하인드 스토리

    미국 현대 미술계 비하인드 스토리

    1900년대 중반 미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는 현대미술 컬렉션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1935년 시카고에 최초의 모던아트 갤러리를 열었던 캐서린 쿠(1904~1994)가 1943년 큐레이터로 영입돼 현대회화와 조각품을 담당하게 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몸통 전체에 석고 깁스를 하고 수십년을 살았던 쿠는 현대미술에 대해 좋은 선구안을 가진 사려 깊은 큐레이터로 신체적인 열세를 인내하고 극복할 만큼 놀라운 열정을 가진 여자였다. ‘예술가를 말하다’(캐서린 쿠 지음, 에이비스 버먼 편집·완성, 김영준 옮김, 아트북스 펴냄)는 20세기 중반 미국 현대 미술의 태동기에 활동한 전설적인 큐레이터의 전기이면서도 그 시대의 예술가들과의 만남, 컬렉터들의 작품을 유치하기 위한 노력, 큐레이터와 이사진의 갈등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는 미술 전문서적이다. 쿠는 시카고미술관을 20세기 중반의 흐름에 발맞춰 나가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시카고의 보수적인 성향이 반영된 미술관 이사진은 이런 노력을 방해했다. 미술관 이사진은 윌렘 데 쿠닝의 초기 걸작 ‘발굴’이 선물로 들어오자 ‘10년 동안 전시를 하지 않겠다.’는 계약조건을 달으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 작품을 놓치기도 했다. 1955년에 쿠가 잭슨 폴락의 대작 ‘회색빛 무지개’를 사들이자 ‘시카고 트리뷴’에서는 ‘쿠쿠(쿠를 빗대)는 떠나야 한다’는 헤드라인 아래 작품 매입이 시카고를 덮친 재앙이라고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마크 토비의 1953년 작 ‘8월의 가장자리’는 이사진이 작품구입을 미적거리는 통에 결국 뉴욕 현대미술관에 팔려가기도 했다. 쿠는 미술기사로 정부와 갈등을 빚기도 한다. 1972년 보스턴 미술관의 중국미술 컬렉션 재설치 기념전시를 ‘새터데이 리뷰’에 실었다. 그 전시에는 닉슨 대통령 부부가 중국을 방문해 구입한 중국 물병 2점이 나왔다. 문제는 이 물병이 관광상품이었다는 것이다. 쿠는 지체없이 “대통령을 수행했던 그 많은 사람들 중 예술에 대한 지식이 있는 측근이 없었던 것이냐. 정치적 위상이 높은 소유자가 내놓았다고 명망 있는 미술관마저 그렇게 평범한 물건들을 두고 비굴한 태도를 취해야 하느냐?”고 일갈했다. 그 기사는 통신사를 통해 전국으로 퍼졌고, 쿠는 그 뒤로 수년 동안 알 카포네의 회계장부 압수수색 수준의 혹독한 회계감사를 받아야 했다. 러시아 작가인 칸딘스키의 작품을 몰라본 경매사의 무지로 거저 줍다시피 한 적도 있다. 1937년 1월 소리 소문 없이 열린 경매는 선구적인 아트 컬렉터 제롬 에디의 컬렉션. 경매사는 ‘틴판스키 작품’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독일 무르나우에 있는 교회를 담은 1909년 표현주의 작품을 쿠는 각각 20달러와 5달러에 살 수 있었다. 미술관 큐레이터로서 좋은 컬렉터의 작품을 기증받기 위한 노력은 처절했다. 가장 뼈아픈 경험은 아렌스버그의 컬렉션. 아렌스버그는 현대미술가인 마르셀 뒤샹의 조언을 받아 엄청난 현대회화, 조각 컬렉션을 가졌다. 여러 경쟁자를 제치고 쿠는 아렌스버그로부터 시카고 미술관에서의 전시회 허락을 받았다. 쿠는 기증이 눈앞에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렌스버그가 전시에 동의한 것은 단 한 푼의 비용도 부담하지 않은 채 전문적으로 펴낸 도록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도록이 기증의 교섭력을 높이기 때문이다. 도록이 손에 떨어지자 아렌스버그는 더이상 쿠를 만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워싱턴 DC의 내셔널갤러리에 작품을 기증한 체스터 데일의 경우는 시카고 미술관에 10년간 컬렉션을 무상 임대해 줬다. 컬렉션의 가치는 높아졌다. 내셔널갤러리가 생존 작가의 작품은 전시할 수 없다는 규정을 바꾸자 데일은 시카고 미술관에서 작품을 회수했다. 쿠는 또 헛물을 켠 셈이다. 쿠는 전 세계 순회전시와 같은 블록버스터급 해외전시도 대단히 싫어했다. 작품에 씻을 수 없는 훼손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북회귀선’의 작가 헨리 밀러가 화랑에서 그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했던 일화, 토마스 만이 현대미술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끌끌 차던 일화 등도 생생하고 재밌다. 시카고미술관이 소장한 최고의 걸작, 신인상파 화가인 조르주 쇠라의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의 표면을 세척한 뒤 오른쪽 위 구석에서 쇠라와 그의 정부로 추정되는 여인의 모습을 발견한 것은 당시 큐레이터였던 쿠로서는 평생 못 잊을 감동과 경이로움이었다고 술회한다. 이 과정에서 쿠는 쇠라가 형식주의적 화가가 아닌 피 끓는 젊은 사내임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캐서린 쿠가 사망한 지 10년이 더 지난 2006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됐다. 쿠가 원고를 4분의3 정도 썼을 무렵 사망했기 때문에 쿠가 생전에 뒷일을 부탁한 미술사학자 에이비스 버먼이 쿠의 초고를 바탕으로 사망하기 전인 1982년의 인터뷰와 그녀가 남긴 편지, 메모와 기록들을 뒤져가며 나머지를 채웠다. 1만 5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사우나 외교/노주석 논설위원

    1971년 4월10일 일본 나고야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미국 탁구선수단 일행이 중국 베이징을 전격 방문,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듬해 닉슨 대통령이 방중, ‘상하이성명’을 통해 양국의 적대관계를 청산했다. 무게 2.5g에 불과한 탁구공이 20년 넘게 막혀 있던 ‘죽(竹)의 장막’을 무너뜨렸다.그 유명한 ‘핑퐁외교’의 탄생이다.   정상외교, 다자간외교, 동맹외교, 중립외교 등 다양한 이름의 외교 종류가 있지만 딱딱한 용어일 뿐이다. 오히려 언론이 만들어낸 핑퐁외교처럼 특정형태로 나타나는 외교현상이 흥미를 자아낸다. 미국의 ‘달러외교’, 한국의 ‘북방외교’, 대만의 ‘탄성외교’ 등이 대표적이다.   옛 소련의 문화 아이콘으로 다차(개인별장)와 사우나, 보드카를 들 수 있다. 이 중 ‘다차외교’는 러시아의 전매특허이다. 1994년 옐친 대통령의 초대를 받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도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다차영접을 받았다. 미국 부시 전 대통령이 텍사스 클리퍼드 목장으로 가까운 정상을 초대한 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사우나시설을 갖춘 호화판 다차는 극소수이고, 서민용 다차에는 사우나가 없다. 사우나는 우리의 룸살롱처럼 별개의 접객시설로 발전했다. 응접실과 사우나 독, 샤워시설, 여러 가지 형태의 욕조, 당구대와 가라오케, 침실 등이 겸비돼 있다. 1991년 옛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물론 독립국가연합 소속국 대부분이 사우나문화를 애용하고 있다. 남성세계의 모든 비즈니스가 이곳에서 이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제 중앙아시아 방문길에 오른 이명박 대통령에게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종신 대통령이 대통령 별장에 마련된 전통 사우나에서 함께 목욕을 하자고 제의했다. 옛 종주국이던 푸틴 대통령 등 몇몇 정상에게만 행해졌던 최고수준의 의전이다. 카자흐스탄은 서유럽만 한 크기의 국토 면적과 세계 7위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자원대국이다. 두 정상이 발가벗고 허심탄회하게 ‘사우나외교’를 펼치는 모습이 상상만해도 흥겹다. 양국이 모두 윈윈하는 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천사와 악마’, 전작 ‘다빈치 코드’ 넘을까

    ‘천사와 악마’, 전작 ‘다빈치 코드’ 넘을까

    ●과학 vs 종교… 14일 개봉 과학과 종교의 대결을 그려 일찌감치 화제가 된 영화 ‘천사와 악마’가 14일 드디어 개봉된다. 원작은 작가 댄 브라운이 ‘다빈치 코드’에 앞서 쓴 소설이다. ‘다빈치 코드’보다 영화화는 늦게 됐지만, 사실상 전편인 셈. 영화 ‘다빈치 코드’(2006년)는 소설에 못 미치는 완성도로 혹평을 받은 만큼 ‘천사와 악마’가 어떤 평가를 거둘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 하버드대 종교기호학 교수는 교황청의 의뢰를 받고 의문의 사건을 수사한다. 그 사건이란 교황 선거인 ‘콘클라베’ 직전 유력한 교황 후보 4명이 납치되고 교황청에 일루미나티를 상징하는 앰비그램이 나타난 것. 일루미나티는 가톨릭 교회의 탄압에 의해 사멸된 18세기 과학자들의 결사대로 500년 만에 부활한다. 이들은 교황 후보들을 한 시간에 한 명씩 살해하고 CERN(유럽 핵원자 공동 연구소)에서 탈취한 반물질(빅뱅 실험을 통해 개발된 강력한 에너지원)로 바티칸을 폭파할 것이라고 위협한다. 랭던은 CERN의 물리학자 비토리아(아예렛 주어)와 함께 로마와 바티칸 곳곳에 숨겨진 단서와 암호들을 해독하며 일루미나티를 추적해 나간다. ●“흥미진진한 오락물” vs “답답한 추적물” 영화 ‘천사와 악마’가 처음 입에 오른 건 ‘종교이미지 왜곡’, ‘신성모독’ 논란 때문이었다. 교황청이 계몽 과학자들을 탄압하고 사제가 살인의뢰자로 등장하는 설정 등에 가톨릭계는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에 대해 주연을 맡은 톰 행크스가 “추리극일 뿐”이라 주장한 데 이어 론 하워드 감독도 “바티칸 교황청이 이탈리아 당국에 압력을 넣어 현지 촬영을 방해했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전작 ‘다빈치 코드’ 역시 예수의 자손이 현존한다는 암시 때문에 가톨릭과 기독교의 반발을 산 적이 있다. ‘천사와 악마’가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뒤 종교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픽션으로서 가능한 정도”라는 반응이 우세하다. 평가는 오히려 극적 성과면에서 엇갈리는 모습이다. “흥미진진한 오락영화”라는 평에서부터 “황당하고 답답한 추적물”이라는 평까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공통된 지적이 있다면 원작보다 긴장감이 덜하고 추리적 요소가 허술하다는 대목이다. 반대로 화려한 볼거리와 영상미에는 모두들 엄지손가락을 꼽고 있다. ●제작비 1억 3000만달러 투입… 화려한 볼거리 로마와 바티칸을 공들여 담아낸 화면은 1억 3000만달러의 제작비가 헛되지 않다고 할 만하다. 시스티나 성당, 산 피에트로 성당, 나보나 광장,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성당 등 주요 명소들을 눈앞에 보듯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광장, 판테온 앞 로톤다 광장 등 일부 장소는 로케이션 촬영으로 찍은 것이지만 대부분은 제작진에 의해 재현된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세트장이다. 일례로 새 교황 선출식이 진행되는 곳인 시스티나 성당은 바닥 모자이크, 벽화 등 모든 것을 현장 사진과 자료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구현해낸 것이다. 건축물과 예술 작품의 주요 소재인 대리석도 실제 대리석이 아닌 무늬를 그대로 본뜬 벽지다. ‘천사와 악마’ 홍보사인 ‘영화인’측은 “로마 바티칸이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인 만큼 촬영 허가 받기가 쉽지 않았던 데다 복잡한 동선, 거친 액션 장면 등의 촬영을 위해 실제보다 큰 규모의 장소가 필요했기 때문에 세트 촬영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뷰티풀 마인드’로 2002년 아카데미 감독상을 거머쥐었던 론 하워드 감독은 ‘다빈치 코드’, ‘프로스트 vs 닉슨’ 등 최신작의 면모에서 볼 수 있듯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놓치지 않는 감독으로 입지를 넓혀가는 모습이다. ‘천사와 악마’에 대한 반응은 분분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는 징검다리 돌 하나를 더 놓는 격이 될 것이란 점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15세 이상 관람가.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금본위제 부활 경제위기 해결사 될까

    엘도라도, 황금의 시대가 펼쳐질 것인가. 1944년 이후로 전세계의 기축통화로 역할을 해온 달러가 미국발 경제위기로 신뢰를 잃어가는 상황에서 금본위제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정책금리를 0%까지 낮추면서 무제한적으로 달러를 찍어내는 바람에 단기간에 물가가 급등하는 하이포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에선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골드’ (네이션 루이스 지음, 이은주 옮김, 에버리치 홀딩스 펴냄)도 ‘달러를 버리고 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의 기본은 ‘낮은 세금과 안정된 통화’인데 달러가 지위를 잃은 만큼 금을 기준으로 각국이 찍어낼 통화의 양을 결정하는 금본위제로의 복귀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경제예측기관과 투자회사에서 전략가로 일한 지은이는 과거 금본위제에서 진정한 세계화가 이루어졌고, 수세기 동안 경제적 호황이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도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부담이 가장 적다고 설명한다. 이를 테면 1492년 이후 세계의 금 공급량은 연간 5% 이상 증가하지 않았고, 심지어 1850년 골드러시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1910년부터 연평균 생산증가량이 2%를 유지하기 있기 때문에, 금을 기준으로 통화를 찍어낸다면 물가상승분을 초과하는 통화증발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덧붙인다. 미국정부가 달러의 금태환을 포기한 것은 닉슨 정부 때인 1971년이다. 미국은 루즈벨트 대통령 때부터 거의 30년 동안 온스당 금의 가치를 35달러로 고정시켜놓았다. 그런데 금의 수요가 증가해 금 값은 날로 올라가고 미국의 베트남 전쟁과 무역적자 등으로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자,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려댄 프랑스 정부는 자신들이 소유한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했다. 감당한 능력이 안된 미국 정부가 ‘BJR(배째라)’로 나간 것이 1944년 성립된 브레턴우즈 체제의 파기 원인이다. BC 7세기에 나타났고, 로마제국과 20세기 초반의 유럽국가들이 유지하고자 했던 금본위제가 망가지는 이유는 늘 똑같다. 경제활동이 활발한 시기에는 필요한 돈의 양도 급팽창하지만 금 보유량은 따라가지 못한다. 신용 거품이 꺼지는 상황에서도 위기를 봉합하기 위해 충분한 통화 공급이 불가피한데, 하지만 금을 기준으로 한다면 돈을 찍어낼 수 없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도 각국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풀어쓴 통화를 회수해 자국의 금보유량과 맞추려다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과거와 똑같은 금본위제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지만, G7회의에서는 미국 정부가 맘대로 달러를 찍지 못하게 금과 연동시키자고 한다. 또다른 목소리도 있다. 프랑스 석학인 자크 아탈리 등이 달러 대신 전세계 통화를 만들자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기축통화를 보유해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이득을 보고 있는 미국이 받아들여야 가능한다. 독자들은 금본위제로 회귀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통해, 통화의 ABC를 알고 통화 때문에 벌어지는 경제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으면 될 것 같다. 2만 8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열린세상] 전략적 한·미동맹의 현주소/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전략적 한·미동맹의 현주소/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1952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방한한 뒤 지난주 런던에서 열린 G20 세계금융정상회의까지,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이 만난 횟수는 50회 정도이다. 한국·미국에서건, 아니면 이번과 같이 제3국에서 만난 것이건 다 합한 것이다. 정상회동은 대부분 양국 대통령의 취임 초기에 이루어지거나 한국 대통령이 먼저 미국을 방문했다는 특징이 있다. 정상회동은 한국의 위상과 양국관계의 수준을 대변해 준다. 1961년 11월 국가재건회의 의장 박정희는 미국을 방문해 케네디를 만났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시커먼 선글라스를 걸친 채 케네디가 묻지도 않은 베트남 파병을 제안했다. 5·16 이후 반 년도 지나기 전 이루어진 박 의장의 방미는 자신의 좌익 경력에 대한 의심을 씻고 쿠데타 성공을 보장받고자 서두른 것으로 풀이되곤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케네디에게 패배한 닉슨이 개인 자격으로 방한했을 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동원 당시 외무장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1968년 대통령선거에서 화려하게 재기한 닉슨은 1969년 취임 뒤 열린 정상회동 참석차 방미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국측 환영 인사를 공항에 내보내지 않았다. 그에 따르면 닉슨은 제 별장에 박 대통령 일행이 들어올 때까지 아무도 기다리지 않게 했다. 당연히 오찬도 만찬도 없었고 답방도 없었다. 전두환 대통령은 1981년 취임 1주일 만에 레이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는 특별한 능력을 발휘했다. 취임식 후 정상회동으로는 가장 빨랐던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도 취임 첫 해인 1988년 10월에 미국을 찾아 레이건 대통령과 만났다. 같이 보수적인 정상 사이의 회동은 상대적으로 더 발빠르게 진행된 듯하다. 1993년 7월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반년 만에 클린턴 대통령의 방한을 성사시켰다. 김대중 대통령도 취임 첫해인 1998년 6월에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되자 다시 2001년 3월 방미하여 부시 대통령을 만났다. 이때 부시는 김 대통령을 ‘디스 맨’이라 불렀다. 한·미 사이에 대북 정책으로 인한 이견 때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2003년 5월 취임한 지 얼마 안 되어 부시를 만나러 방미했다. 역시 북한문제로 갈등관계에 있던 부시는 노 대통령을 ‘이지 맨’이라 칭했다. 이 방문에서 노 대통령은 “만약 53년 전에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구설에 시달렸다. 2008년 2월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은 그해 4월부터 11월 사이 아주 짧은 기간에 임기 말인 부시 대통령을 무려 네 차례나 만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창조적 실용외교’라는 기치 아래 한·미동맹을 과거보다 발전된 전략적인 동맹 수준으로 격상시켰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2009년 1월에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과 이 대통령의 시작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첫 정상회동이, 런던에서 일과 동반되어 진행된다는 점에서 실용이라면 실용일 수 있다. 하지만 과거 이 대통령과 부시 사이에 형성된 긴밀하고 애틋한 관계가 이어지지 않는 듯하다. 게다가 이 대통령이 추구하던 전략적인 한·미동맹이 공허해졌다. 북한이 미사일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발표한 한국 정부가 무색하게 미국측은 미사일이 아니라 우주발사체 실험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을 서두르고 있는데 미국무역대표부 대표지명자는 현상태대로라면 한·미 FTA가 통과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아예 한·미 FTA에서 자동차 교역 문제가 핵심 이슈라며 재협상 요구를 분명히 했다. 목하 오바마는 금융규제를 강화하고 무역관계를 재정비 중인데 이 대통령이 외국 유력신문에 대놓고 무역장벽을 쌓는 나라 이름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동맹이 어떤 경로를 밟을지 지켜보게 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책꽂이]

    ●세계적인 과학수사(콜린 에번스 지음, 김옥진 옮김, 가람기획 펴냄) 미국의 자유기고가가 현대의 범죄수사 기법을 한 단계 끌어올린 역사적인 범죄사건 100가지를 추렸다. 범죄심리분석(프로파일링), DNA 분석, 혈청학, 독극물학, 탄도학, 치의학, 성문(聲紋) 등 다양한 과학수사 기법을 활용해 해결한 각종 이야기들을 짜임새있게 풀어 냈다. 1만 5000원●나쁜 돈(케빈 필립스 지음, 이건 옮김, 다산북스 펴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던 벤저민 그리셤의 법칙을 일깨우며,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와 세계 경제의 위기는 나쁜 돈에서 시작됐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닉슨 전 대통령의 정치보좌관 출신으로 투기적 자금의 이동과 금융이 다른 산업을 희생시켰다는 점을 강조한다. 1만 5000원.●민중과 유토피아(조경달 지음, 허영란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재일사학자이자 조선근대사 연구자인 조경달 일본 지바대 교수가 1860년대 개항을 전후한 시기부터 일제 식민 지배의 막이 내릴 때까지 100년 동안의 민중운동을 추적했다. 2만 3000원.●몸 펴면 살고 굽으면 죽는다(몸살림운동 연구소 지음, 백산서당 펴냄) 병에서 벗어나려면 몸을 펴야 하기 때문에, 앉고, 서고, 걷고, 잠자고 할 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써놓았다. 허리가 굽으면 고혈압과 당뇨,허리디스크가, 등이 굽으면 고혈압이, 목이 굽으면 목디스크가 생긴다고 한다. 2만원.●1지망 인생(고철종 지음, 다산라이프 펴냄) 1지망에서 떨어지고 2지망에서 붙으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1지망에 대한 미련을 안고 살아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생은 선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택한 현실을 즐기고 가꾸어 나가는 행복에 주목했다. 1만 2000원.●허난, 우리는 요괴가 아니다(서명수 지음, 김&정 펴냄) 중국에 ‘허난런’은 허난(河南)에 사는 주민이나 허난이 고향인 사람을 말한다. 속을 잘 드러내지 않아 음융하고 나쁜 허난 사람들이란 의미가 담겼다. 기업과 국가에서 채용도 꺼리는 등의 무시와 차별이 비일비재하다. 1만 1000원.
  • [이춘규 선임기자 글로벌 뷰] 교묘해지는 보호무역 전쟁

    경제위기 심화와 함께 세계무역전쟁도 격해졌다. 지난해 가을 이후 세계무역이 순식간에 20~30%나 축소되면서다. 각국은 보호무역주의 회피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자국 산업 지원과 제품 구입 등 조용하고 교묘하게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무역장벽은 갈수록 높아간다. 최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와 유럽연합(EU) 특별정상회담에서도 보호무역주의를 회피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1차 정상회담에서도 보호무역주의 배격을 외쳤고, 다음달 2일 런던에서 열릴 2차 G20 정상회의에서도 같은 결론이 예상된다. 이처럼 각국이 공개적으로는 보호무역 배척을 외친다. 하지만 보호무역은 격해지고, 폐해는 심각하다. 경쟁적 보호무역은 무역규모를 축소시킨다. 무역이 축소되면 수출을 통한 경제회복이 안돼 국내총생산(GDP) 성장이 떨어진다. 그래서 무역전쟁의 유혹은 거세진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제프리 가든은 “무역전쟁 발발의 위험이 지금처럼 고조된 것은 닉슨 쇼크로 미국이 금과 달러의 교환을 정지시켜 세계가 변동환율로 이행한 1971년 이래 처음”이라고 평한다. 실제 보호무역주의는 강화됐다. 지난해 상반기 보호무역주의의 상징인 반덤핑 조사의 건수가 전세계에서 30% 이상 증가했다. 각국의 재정투입도 자국 산업 보호에 활용되고 있다. 외국인 고용을 제한하고, 공공사업에 철강·시멘트 등 자국산 자재를 활용하라는 ‘바이 아메리카’ 논란은 상징적이다. 무엇보다 통화의 평가절하 경쟁이 주목된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각국에서 보이지 않는 환율전쟁이 치열하다고 뉴스위크 등은 전한다. 아시아 지역이 GDP의 40% 정도를 수출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중국 정부가 위안화 가치 상승을 막는다는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의 취임 전 비판이 대표적이다. 한국도 환율변동에 민감하다. 대공황 때 미국이 방아쇠를 당긴 보호무역주의는 세계 상업거래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혔다. 상업거래가 줄어 경제성장이 막히자 무역 대결이 정치적 대결로 치달아 결국은 2차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각국이 인류평화를 위해, 글로벌 시각에서 보호무역 철폐나 완화에 더욱 힘을 써야 하는 이유다. taein@seoul.co.kr
  • [무슨 영화 볼까]

    ■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다큐멘터리/12세) 감독 안해룡 주연 송신도 재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송신도 할머니가 일본 시민들로 이뤄진 지원모임과 함께 10년간 진행한 재판 투쟁을 담고 있다.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는 소송은 2003년 대법원 판결까지 모두 패소로 끝났지만, 할머니는 “재판에는 졌지만, 내 마음은 지지 않았다.”고 외친다. 할머니와 지원모임이 쌓아올리는 믿음과 감동의 시간들에 울고 웃게 된다. 손수건 필수 지참. ■ 프로스트 vs 닉슨 (드라마/12세) 감독 론 하워드 주연 프랭크 란젤라·마이클 신 1977년 4월에 일어났던 실화를 영화화했다.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사임한 닉슨(프랭크 란젤라) 전직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다. 한물간 MC인 프로스트(마이클 신)는 뉴욕 방송국 복귀를 꿈꾸며 닉슨에게 인터뷰를 제의한다. 닉슨은 정치계 복귀 기회로 삼으려는 심산에서 인터뷰를 승낙한다. 에누리 없는 인생역전 게임. ■ 구세주2 (코미디/15세) 감독 황승재 주연 최성국·이영은 ‘구세주’(2006년)의 속편으로 포스터 카피는 이렇다. ‘안다 아무도 안기다린 거 하지만 우리는 만들었다 투!’ 택시회사 사장 2세인 정환(최성국)은 빈둥거리는 생활을 즐긴다. 이런 아들이 못마땅한 정환의 어머니는 그에게 택시기사를 해서 카드빚을 갚으라고 말한다. 택시를 몰던 정환은 어느 날 손님인 은지(이영은)와 티격태격 다투게 된다. 참신한 것은 오로지 카피 하나뿐. ■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드라마/18세) 감독 도리스 도리 주연 엘마 웨퍼·한넬로르 엘스너 트루디(한넬로르 엘스너)는 남편 루디(엘마 웨퍼)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 사실을 루디에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자식들의 집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먼저 숨을 거두는 쪽은 트루디다. 홀로 남게 된 루디는 생전 아내의 꿈을 찾아나선다. 영화 후에 남겨진 잔상들이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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