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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 열도 뒤흔드는 「이토망」 사건

    ◎연루된 재일교포 허영중씨 사법처리 주목/허씨 앞세워 그림 557억엔어치 구입/투자사,경영위기 맞자 모든 책임 전가/“한인 차별처사”… 교포들 반발 「허영중」­. 지금 일본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이름이다. 지난해 연말 이래 근 6개월 동안 그의 이름은 거의 빠짐없이 TV·신문지상에 등장했다. 쇼와(소화) 일왕이 폐병하여 죽을때까지를 제외해 놓고 단일사건으로 이처럼 집중 보도되는 것도 그 예가 흔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재일교포 실업인이다. 그에게는 「간사이(관서)경제계의 대부」 또는 「지하경제계의 마술사」 등의 닉네임도 붙어 있다. 그와 관련된 사건을 일본 언론계는 「이토망(이등만)사건,또는 「스미토모(주우)은행 부정융자사건」이라고 부른다. 이 사건에 대해 일본 신문들은 복잡한 도식까지 그려가며 설명하고 있으나 그 개요는 간단 명료하다. 이 사건의 당사자는 3명이다. 일본 은행의 간판격인 스미토모은행,종합상사인 이토망,그리고 60여 개의 기업군을 거느린 허영중 회장이다. 스미토모 은행과 허 회장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다만 스미토모은행은 자신이 관리하는 이토망의 주력은행으로서 약 1조1천8백억엔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과잉융자해 주고 있다. 이토망과 허 회장은 그림 비즈니스를 공동으로 추진했다는 경위가 있다. 지난해 2월 수립된 공동사업 계획안에 따르면 그림조달 자금은 이토망이 대고 그림의 매입·수집은 허씨 측이 맡되 자금규모는 5백억엔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 그림사업의 진행과정에서 이토망은 허 회장의 산하기업인 관서 신문·관서커뮤니티·부국산업 3사를 통해 회화 2백19점 5백57억엔어치를 구입했다. 그러나 이토망측은 지난해 6월부터 과잉 부동산투기,방만한 경영으로 인하여 위기에 몰리게 되자 이것은 그림의 매매가 아니고 허씨에 대한 대출금으로 융자해 준 것이라고 주장,매매에 관한 합의해약서를 작성하고 허씨의 어음을 받아냈다. 이토망이 경영위기에 몰리자 당황해진 것은 융자금회수가 어렵게 된 스미토모은행측이었다. 은행측은 이토망에 압력을 넣어 이자를 포함한 허씨의 채무 6백25억엔을 전부 반제토록 작용했다. 이와 함께이토망측은 허씨에 대해 그림의 감정평가서를 엉터리로 붙였고 적정가액의 3∼4배를 받음으로써 회사에 3백88억엔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 등을 이유로 들어 검찰에 특별배임과 사문서위조·동행사 등 혐의로 이토망의 전 상무 이토스에미쓰(이등수영광)씨와 함께 고소했다. 따라서 이 사건은 지난 4월10일·20일자의 총계 2백억엔 어음부도 사건과 겹쳐 형사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당사자 사이의 단순한 민·형사 사건이 아니다. 이것은 재일교포 실업인에 대한 일본 각계의 차별의식의 발로로 빚어진 것이다. 허씨가 일본인이었던들 이런 사태에 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리라는 것이 오사카 지역 재일한국인 기업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스미토모은행이 이토망에 1조원이 넘는 부실대출을 해준 책임은 금융자본에 의한 토지투기를 조장했던 은행자신의 「이익지상주의」에 있는 것이며,이소다 이치로(기전일랑) 전 회장을 비롯한 당시 경영진에 있는 것이다. 또 이토망의 경영부실 책임은 스미토모은행 상무로서 기업관리를 위해 파견됐던 가와무라 요시히꼬(하촌양언) 전 사장 등이 져야 마땅하다. 14일 상오 오사카에서 기자와 만난 허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달 말쯤이나 6월초순경 나는 구속될 것입니다. 3개월에서 6개월쯤 구치소에서 살겠지요. 그러나 절대로 유죄는 안될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사건의 핵심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실은 하나이며 사실은 사실대로 밝혀질 것입니다. 사필귀정입니다. 내가 구속되는 것은 검찰이 을러멘 주먹을 여론에 따라 내리쳐야 하는데 그 대상은 재일한국인인 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본 간사이(관서)지방의 「거물」이다. 그의 재산이 자신의 표현대로 「수천억엔」 쯤 있어서도 아니고,일본 정·재계의 이름있는 실력자의 후광을 업고 있는 「야쿠자」 출신이어서도 아니다. 현재는 오사카 국제페리의 사주라는 대표직함을 갖고 있으며 미술품에 조예가 깊다. 그가 거물이라고 느껴졌던 것은 『오늘은 한번 뿐이고 그것이 전 생애이다. 그것의 축적이 바로 인생이다』라고 말하는 그의 인생관과 큰 승부를 노리는 훌륭한 정신의 한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 「5·7운동」과 과기대통령/조남진 과학부 부장급(오늘의 눈)

    과학기술계에 「5·7」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5」란 정부가 2001년까지 총 GNP의 5%를 과학기술에 투자한다는 것이고 「7」은 2000년까지 선진7개국 수준에 달하는 과학기술 보유국이 돼야 함을 뜻하는 숫자이다. 과학의 달을 마지막 보내는 4월30일 노태우 대통령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과학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 참석,국가과학기술 청사진을 밝히는 한편 선진 7개국으로 가야 할 국가목표를 새삼 천명했다. 이날 노 대통령은 『과학기술 투자가 2001년까지 5%에 이르도록 한다면 정부투자액은 얼마나 잡고 있는가』 『선진7개국으로 가려면 현재의 인력·투자로 가능한가,가능한 분야를 먼저 도출해야 하는 게 아닌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 우리 힘만으로 가능한가. 한반도내외 모든 당사국이 참여해야 하는 게 아닌가』 등 첨예한 질문에 대해 핵심을 피해 아쉬움을 남겼다. 구체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면 『제조업 경쟁력 제고대책을 확정,95년까지 9백19개 과제를 개발하고 이를 위해 1조5천억원을 조성해 투입하며 연구개발 업적을 남긴과학기술 유공자에게 연금을 주어 노후생활을 보장하겠다. 또 과학기술 확보를 위해 외국과학자도 유치하며 서울대 등 전국 주요 이공대의 정원을 내년부터 연 4천명씩 증원하겠다』는 것으로 산업기술·생산기술을 우선 염두에 두는 듯했다. 그럼에도 간담회에 참석한 과학자들은 대통령이 과학관련 주제만으로 토론을 해준 것을 고맙게 여겼다. 그리고 「경제대통령」 「스포츠대통령」 등으로 불린 대통령이 과거에 있었듯 「과학기술대통령」이 되어줄 것을 주문했다. 영국의 대처 전 총리가 과학·교육부 장관으로 과학이 배경이었지만 대부분 국가의 정치가들이 과학과 관련이 없다. 그러나 과학기술도,투자도 낙후된 우리의 입장에서는 지도자의 열정이 과학기술의 중요한 「촉매」 역할을 한다고 볼 때 과학기술 대통령이라는 닉네임을 원하는 지도자를 갖게 된다는 점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민주화시대·북방외교시대를 열고 이제 취약한 과학기술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노 대통령은 어떤 솜씨를 펼 것인가 주목된다.
  • “움직이는 노 총리”… 말단행정까지 점검

    ◎취임 한달… “조용한 변모”를 살펴보면/대독·의전총리 아닌 실무총리 자리잡아/거창한 구호보다 「보통문제」 해결을 강조 「강성내각」의 닉네임을 가져온 노재봉 국무총리가 26일로 취임 한달을 맞았다. 6공들어 총리의 위상이 이현재·강영훈 두 전총리를 지나며 5공때의 「대독총리」 「의전총리」 등 불명예를 씻고 「실무총리」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 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노총리의 집무 한달은 총리실을 비롯한 각 부처에 조용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같은 변화는 노총리가 지난 4일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청와대 비서실에서 해오던 부처간의 조정역할이나 정책지시를 이제부터는 총리실이 주관토록 하겠다』고 선언(?) 함으로써 예견됐었다. 자신이 대통령의 정치담당 특보와 비서실장을 역임하면서 국정전반에 관해 갖고 있던 문제의식들을 「정치권력의 비집권화」 「경제력의 비집중화」 「행정권한의 대폭 민간이양」 「국민정서함양」 등 4가지의 국정운영 지침으로 도출시킨 노총리가 경제팀의 정책방향에서부터 서울시의 말단 행정업무에까지 구체적으로 간여하고 있기 때문에 총리실 직원들은 전보다 훨씬 더 바빠졌다. 중대한 사안이 없을 경우 매주 월요일 상오에 한차례 소집되던 간부회의가 매일아침(8시45분)으로 정례화됐고 그밖에 수시로 담당관을 불러 지시 및 결과확인을 하는 것은 물론 관계장관이나 심지어 청와대 수석비서관을 부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는 것. 이 때문에 총리실 복도를 뛰어다니지 않는 직원은 거의 볼 수 없다. 직원들은 업무수첩을 새해 한달도 채못돼 벌써 반이상이나 썼다고 업무량 폭주를 호소(?) 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아진 총리실의 위상에 싫지 않은 표정들이다. 정치학자로서의 논리정연한 사고와 철저한 메모습관으로 노총리는 「한번 지시한 것은 절대로 잊지않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다. 지시를 하면서도 얘기중에도 즉석메모를 하고 자동차 안에서도 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메모를 하기때문에 밑에서도 빈틈없는 결과보고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보통문제 해결하는 실천내각」으로 불리기를 원하고 있는 노총리는 기본적으로 『어제의 사고와 지난 시대의 방식으로는 우리가 매일매일 새롭게 부딪히는 문제의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하에 「우리사회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정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의식에서부터 제도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거창한 구호나 공허한 결의보다는 실천적 행동에 역점을 두고 교육문제,주거,교통,환경 등 국민이 매일매일 부딪히는 「보통문제」들의 우선적 해결을 추구하고 국민생활에 불편을 주고 있는 생활관계법령들을 대폭 정비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총리의 국정운영 지침의 네번째 항목으로 들어있지만 노총리가 실제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국민정서함양」이다. 최근 강력사건 등 사회의 모든 문제들이 국민들의 정서환경의 피폐에서 오고 있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걸프사태의 와중에서도 지자제 상황실 설치를 독려하며 「보통문제」의 해결을 강조하고 있는 노총리의 한달을 보는 국민의 기대는 자못 크다.
  • “중국의 고르비”상해시장 주용기

    ◎외국인에 토지임대ㆍ주식거래 개방 추진/작년 상해시 수출 악조건속 50억불 달성 중국권력구조 개편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요직등용설이 붙어 다니는 상해시장 주용기가 지난 8일 홍콩을 방문,상해개방과 관련해서 활발한 외국인 투자유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조자양전당총서기에 이은 경제개방ㆍ개혁의 기수로 서방언론에 의해 「중국의 고르바초프」라는 닉네임을 얻고 있는 주는 지난해 중국경제가 전반적으로 악화된 가운데서도 상해의 수출실적을 50억달러로 끌어 올렸다. 이는 중국 전체수출의 8분의 1에 가까운 것. 주시장은 현재 등소평과 강택민당총서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상해시의 포동지구를 국제자유무역항으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12일 홍콩 부려화호텔등지에서 잇따라 개최된 상해경제발전세미나와 홍콩정청주최 만찬회에는 대부분 홍콩에 거주하는 실업가와 각계 대표등이 무려 1천여명이나 참석,중국내에서의 그의 비중을 실감케 했다. 주는 이날 아울러 가진 기자회견 등을 통해 『상해는 외국인에 대한 토지임대ㆍ주식거래ㆍ은행지점 설치를 비롯한 금융자유화를 완전 보장할 방침이며 자유무역항으로서 외국상사들이 재수출 업무를 취급케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84년이후 부분적으로 취급하기 시작한 주식거래를 연내 전면 자유화시켜 상해증권거래소를 국제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외국인에 대한 중국기업주식의 매매도 가능하게끔 관련법규를 개정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주에 따르면 상해는 앞으로 5년동안 내자와는 별도로 35억달러의 외자유치계획을 달성,국제적인 상업금융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며 이러한 상해의 발전계획은 북경정권의 개방ㆍ개혁 의지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그는 또 상해를 중점 개발할 경우 97년이후 홍콩의 기능과 역할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는 홍콩기업인들에게 『상해는 지난 30∼40년대의 옛 영광을 밑거름으로 국제경제무대를 향해 재도약하는 것일 뿐이며 중국당국의 홍콩발전 전략은 변함없이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시장은 지난해 6ㆍ4천안문사건발생 이후 홍콩을 방문한 최고 지위의 중국관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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