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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지 목격담 ‘훈훈’… “검은색 모자 푹 눌러쓰고”

    수지 목격담 ‘훈훈’… “검은색 모자 푹 눌러쓰고”

    운전면허학원에서 수지를 봤다는 목격담이 공개돼 화제다. 3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나 수지랑 같은 운전학원 다닌다”는 제목으로 수지 목격담이 올라왔다. 글에는 “광진구 운전학원인데 수지가 기능연습하고 감. 수지보고 기사님들이 손주 주신다고 사인 엄청 요구하셨는데 수지가 웃으면서 다 해줌”이라며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검은색 모자 푹 눌러써도 예쁘더라. 역시 수지”라고 극찬했다. 이어 수지가 차량을 구매하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수지는 지난달 25일 부모님과 함께 강남 BMW 전시장을 방문해 미니쿠퍼 클럽맨을 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수지는 지난해 여름 서울 광진구의 한 운전면허 학원에서 수업을 들은 뒤 면허를 취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주, 우리는 티끌만큼만 알고 있다

    우주, 우리는 티끌만큼만 알고 있다

    4퍼센트 우주/리처드 파넥 지음/김혜원 옮김/시공사/384쪽/1만 9000원2000년간 우주에는 별만큼이나 비밀이 많다. 그런데 137억년의 역사를 지닌 우주의 비밀들은 아주 조금씩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2000년간 인류가 어떻게 우주를 연구해 왔는지 그 궤적을 되짚어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고대 천문학자들은 ‘외형 구현’의 형식을 빌려 우주의 모습을 상상했을 따름이다. 직접 우주에 올라가 살펴볼 수 없었던 만큼 철학과 수학, 신화를 버무려 그럴듯한 이야기를 꾸며 냈다. 기원전 4세기 플라톤은 기하학을 이용해 천체의 운동을 묘사하라고 학생들에게 일렀다. 에우독소스라는 학생은 27개의 투명한 동심구들을 차례로 포개 놓는 방식으로 놀라운 근사치를 뽑아냈다. 동심구들은 상호작용을 통해 별들의 운동을 늦추거나 빠르게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수정해 56개의 동심구들을 갖춘 구체적인 모형을 만들었다.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를 거쳐 우주의 ‘외형을 구현하는’ 새로운 방법들이 차례로 공식화됐다. 뉴턴, 케플러 등 수학자와 갈릴레이를 계승한 천문학자들이 하늘의 운동을 수십 개의 구가 아니라 중력이라는 단 한 개의 법칙으로 압축하는 데 공헌했다. 핼리, 허블 등 천문학자와 아인슈타인과 같은 물리학자는 빅뱅 이후 우주가 팽창하는 지, 멈춰 서 있는지를 놓고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1929년 허블이 우주가 팽창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내세워 정적인 우주를 주장했던 아인슈타인의 뒤통수를 친 것이 대표적이다. 1930년대 등장한 전파천문학은 새로운 우주의 모습을 여는 데 기름을 부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주의 실제 모습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새 책 ‘4퍼센트 우주’는 인간이 과학의 힘을 빌려 실제 볼 수 있는 우주는 0.5%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원소 주기율표를 통해 밝혀낸 것까지 합해도 고작 4%에 불과하다. 나머지 96%는 ‘암흑에너지’(73%), ‘암흑물질’(23%)로 불리는 미지의 물질이다. 여기서 말하는 암흑은 ‘검다’는 색깔을 뜻하지 않는다. 이 미지의 물질에 대한 탐구는 우주가 탄생한 지 10억년 내에 꾸려진 은하계가 우리가 알고 있던 수소, 헬륨, 탄소, 질소 등의 물질(원소)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는, 그러기에는 질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구심에서 비롯됐다. 전자파를 발산하지 않는 미지의 물질들은 몸을 숨긴 채 커다란 우주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2007년 ‘네이처’지에 실린 한 편의 논문은 이런 가설을 입증했다. 우주는 빠르게 팽창하고 있으며, 이렇게 우주가 가속 팽창하는 것은 물질들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에너지보다 큰 에너지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1년 미 UC버클리대의 솔 펄머터 교수와 존스 홉킨스대의 애덤 리스 교수, 호주국립대의 브라이언 슈밋 교수는 이 같은 연구의 결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책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에 대한 연구자들의 탐구 여정을 담았다. 과학자들이 앞선 과학자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고 이론을 어떻게 수정해 갔는지 훑는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⑧ 1950~60년대 : 파괴와 재건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The city lives by remembering)고 미국의 시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읊었지만, 서울은 600년 고도의 기억이 별로 없다. 마치 신흥도시 같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통에 불타고 약탈당했으며, 일제강점기 도읍에 대한 자취는 강제적으로 지워졌다. 조선총독부-경성시청-남산 조선 신궁을 상징 축선으로 하는 식민 도시로 치장됐다. 한국 전쟁통에 그나마 남은 것 대부분이 파괴됐다. 1960년대 이후 개발독재시대의 무지막지한 개발 광풍을 타고 또 한 번 뭉개졌다. 역사의 향기는 흩어졌다. 한강 이남으로 영역을 확대한 서울은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새로 건설된 신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대문 안에는 표지석만 어지럽게 남았을 뿐이다. 전쟁과 대사건은 도시를 재건한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폭격을 앞둔 맥아더는 “원래 도시란 천재지변이나 전쟁을 겪고 나면 그전에 비해 몇 곱절 더 크고 좋은 새 도시로 부흥된다. 미국이 재건을 도울 것이니 서울은 앞으로 이상적인 현대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실제 1644년 대화재로 도시의 80%가 타 버린 영국 런던은 옥스퍼드대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 교수에 의해 오늘의 런던으로 재건됐다. 일본 도쿄도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잿더미가 됐지만 탁월한 도시계획가 고토 신페이(後藤新平) 도쿄시장의 주도로 세계 도시계획 사상 유례가 없는 시가지 개조를 통해 새로 태어났다. 런던과 도쿄는 세계대전으로 또 한 번 타격을 입었지만, 옛 도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서울의 재건은 성공작일까? 서울을 역동적인 현대 도시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역사 도시로 평가하기엔 머쓱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은 꽤 혼란스럽다. 서울은 네 번 결정적인 상처를 입었다. 16세기 일본과 중국 군대에 의해 약탈당했으며, 근대 일제강점기엔 성곽을 허물고, 상징 축을 강제로 바꾸는 방법으로 도시 형태가 조작됐다. 한국전쟁기 유엔군과 한국군의 청야(淸野)작전(적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농작물이나 건물 등 지상에 있는 것들을 말끔히 없애는 작전)을 통해 철저하게 파괴됐다. 1960~70년대 우리 손으로 남은 문화재를 헐어서 치워 버렸다. 맥아더의 말처럼 기회는 있었다. 1952년 전후 복구 차원의 첫 도시계획안을 마련하면서 세종로 등 39개의 큰길을 확장하거나 신설하고, 광화문광장·서울시청광장·남대문광장 등 19개의 광장을 만드는 과감한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재정부족 등을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유럽의 오래된 도시처럼 구도심(사대문 안)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사대문 밖이나 강남 신시가지를 개발하겠다는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 없었다. 한국전쟁 이후 ‘광적’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서울 집중이 기회를 날려 버렸다. 집중을 막으려고 온갖 정책을 동원했지만 약효가 듣지 않았다. 해방 전후 100만명대였던 서울 인구는 1966년 380만명, 1970년 540만명을 넘어서더니 1990년 1000만명을 돌파해 버렸다. 수도 서울 행정은 집 지을 땅을 확보하고, 도로를 넓히고, 교통수단을 늘리고, 수돗물을 공급하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에 매달렸다. 만약 그때 인구의 서울 집중을 막을 수 있었더라면 서울은 한가롭게 전차가 다니며,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정겨운 기와집이 빼곡한 도시로 남았을 것이다. 한강과 북한산이 주는 자연의 세례를 맘껏 누리는, 풍광이 뛰어난 성곽 도시로 유지됐을 것이다. 1950년대 서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손정목 전 시립대 교수의 ‘서울도시계획이야기’를 기본으로 사대문 밖 풍경을 상상해 보자. 동쪽으로 동대문을 나서면 신설동 큰 길가까지 집이 들어 차 있지만, 바깥은 논밭 천지다. 신당동에 집이 드문드문했을 뿐 금호동·옥수동 일대는 산이었다. 왕십리를 지나 한양대 일대는 미나리꽝이었고 성동교의 나무다리가 삐꺽거렸다. 남쪽 한강대교에 이르는 동빙고동과 서빙고동 주민은 1000명 안팎이었고, 원효로 일대는 대부분 논밭이었다. 노량진, 상도동, 대방동, 영등포는 큰 길가조차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연출했다. 서쪽으로 신촌을 지나 마포 전차 종점을 벗어나면 벌거숭이 산과 논밭이 펼쳐졌다. 동북쪽은 미아리고개, 서북쪽은 독립문과 현저동이 경계였다. 지금의 강남·서초·송파·강동·강서·관악·구로·금천·도봉·노원·은평구 등은 모두 경기도였다. 서울의 고층 건물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최고층 건물은 지금의 롯데호텔 자리에 있던 8층짜리 반도호텔이었다. 이웃 조선호텔과 한국은행 모두 일제가 남긴 건물이었다. 1955년에 종로 사거리에 2층짜리 신신백화점이 신축됐고, 1957년 광화문 사거리와 을지로 1가에 3층짜리 국제극장과 5층짜리 개풍빌딩이 각각 들어섰다. 1958년 남대문에 7층짜리 그랜드호텔이 문을 열자 구경 인파가 몰렸다. 당시 서울 도심부의 평균 층 높이는 2층이 채 되지 않았다. 도심부를 고층화하려고 주요 간선도로변의 건물 높이를 3~5층 이상으로 정할 정도였다. ‘한강의 기적’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 약 20년간의 고도성장기를 일컫는다. 이 기간 서울은 경천동지할 변화를 겪는다. 서울의 공간 변화는 1966년부터 1980년까지 15년간 거의 이뤄졌다. 주택지·도로·상하수도·지하철 등 현대 서울의 하부구조가 이때 거의 갖춰졌다.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절대권력자의 ‘분부’를 이행한 김현옥·양택식·구자춘이라는 3명의 ‘충복’ 서울시장이 재직한 기간과 일치한다. 서울의 얼개는 박 대통령의 구상과 지시에 의해 거의 결정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안이 세워졌다. 서울의 균형 발전을 꾀하려고 사대문 안에 집중된 입법·사법·행정부의 기능을 분산시키려는 계획이 눈에 띈다. 입법부는 남서울(강남·서초구), 사법부는 영등포, 행정부는 용산 일대, 세종로 지역은 대통령 관저 및 직속기관 배치 지역으로 정했다. 지금 와서 보면 입법부와 사법부의 입지가 맞교환됐고, 서울시청이 용산으로 옮겨가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교통계획을 보면 서울역~청량리(1호선), 서소문~을지로~성동(2호선), 갈현동~종로2가~을지로2가~퇴계로~천호동(3호선), 우이동~종로4가~퇴계로~말죽거리(4호선) 등의 지하철 4개 노선 건설계획이 잡혀 있다. 10년 뒤 구자춘 시장에 의해 2호선이 을지로와 영등포~영동을 잇는 순환선으로 변경되는 등 엄청난 노선 변화가 일어났지만, 지하철 4개 노선에 대한 기본 구상이었다. 이 밖에 4개 순환선과 14개 방사선을 간선도로망으로 7개의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는 계획과 노면 전차는 철거하고 광화문 사거리와 시청 앞 광장에는 지하차도를 만들고, 시청 앞 광장 지하는 지하도시화한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도심 재개발과 강남·송파 등 남서울개발, 뚝섬·창동·망우 등 동서울개발, 불광·성산·김포·시흥지구의 서서울개발 등 신시가지개발 계획이 들어 있다. 1년 예산이 170억원에 불과한 서울시가 20년 앞을 내다보고 인구 500만명을 예상해 3235억원의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언론으로부터 ‘즉흥계획’ ‘실현성 없는 독단’ ‘재무계획 없는 무지개’ 등등 융단폭격을 맞았다. 그러나 격변의 15년 중 7년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기획관리실장 등을 지내며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한 손정목 전 교수는 “꿈도 환상도 아니었다. 최초의 기본계획이었다는 점, 도심부 재개발이니 고도지구, 미관지구 개념이 도입돼 일반에 공개됐다는 점, 70~80년대 전국 모든 도시가 수립한 도시계획의 모델이 됐다는 점 등에서 의미가 있다”고 회고했다. 불완전하나마 서울시 장기계획의 틀이 된 것이 사실이다. 일제 말기인 1940년부터 1965년까지 서울은 잠자는 도시였다. 1937년 중·일 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이 터져 건축자재를 구할 수 없었고, 한국전쟁이 이어지면서 건축 행위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건물이 목조건물 수명 30년을 다한 상태였다. 장충동, 신당동 일대와 남대문로, 충무로, 을지로 등 일본인 주거지에 정원이 딸린 일본식 저택과 주택이 밀집해 있었다. 가회동·명륜동·동숭동·북아현동 일대에는 한옥촌이 빼곡하게 형성돼 있었다. 마포, 왕십리, 동대문을 벗어난 지역은 논밭이었다. 사대문 안과 독립문, 신촌, 신설동, 돈암동, 신당동, 용산이 서울의 전부였다. 노면 전차 노선을 기준으로 보면 동쪽으로 청량리·왕십리, 남쪽으로 노량진·신길동·영등포, 서쪽으로 마포·신촌, 서북쪽으로 독립문, 동북쪽으로 돈암동 전차 종점까지가 서울이었다. 지방에서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의 주거인 무허가 판잣집이 도심에서 가까운 하천변이나 산비탈을 차지했다. 1966년 당시 13만여채의 판잣집이 서울 곳곳에 달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서울은 개발행 특급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의 폭풍전야였다. joo@seoul.co.kr
  • 대구 두류공원에서 치맥 한잔 할까요?

    대구 두류공원에서 치맥 한잔 할까요?

    대구는 치킨의 본고장이다. ‘교촌치킨’, ‘땅땅치킨’, ‘호식이 두 마리치킨’, ‘멕시카나’, ‘처갓집 양념통닭’, ‘스모프’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치킨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대구에서 창업한 토종 업체이다. 이들 업체 중 교촌, 호식이 두마리, 땅땅치킨, 멕시카나 등 4곳이 전국 상위 30개 프랜차이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같이 대구가 치킨 프랜차이즈의 산실이 된 것은 양계업의 발달 때문이다. 대구와 인근 경북에는 양계장들이 많다. 이들 양계장은 치열한 생존경쟁을 통해 좋은 품질의 닭고기를 시중에 내놓는다. 이런 닭고기를 앞세워 대구의 치킨프랜차이즈들이 전국을 호령하고 있는 것이다. 치맥페스티벌이 오는 18일부터 21일까지 4일간 대구 두류공원보조경기장에서 열린다. 치킨의 ‘치’와 맥주의 ‘맥’을 뜻하는 축제다. 18개 치킨 프랜차이즈와 2개 맥주회사 등 모두 23개 업체가 참가하고 80여개 부스가 설치된다. 대구시는 전국에서 1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몰려올 것으로 예상한다. 18일 오후 7시 전유성씨가 대표로 있는 철가방극단의 ‘닭 위령제’로 행사가 시작된다. 이어 화려한 개막공연댄스동아리 배틀, 대구·경북 대학밴드 대행진, 힙합DAY, 취중진담 프러포즈 등이 이어진다. 또 치킨요리 경연대회와 치킨과 맥주 시음행사를 비롯해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와 함께 국내 인기가수 10여팀이 참여하는 치맥 힙합 & 폭 콘서트는 물론 대북공연, 남사당줄타기, 봉산탈춤 등 지역전통문화 공연, 게릴라 콘서트, 아줌마 팔씨름대회, 어린이 댄스대회, 코스프레 경연대회, 길거리 마술 등도 마련돼 있다. 참가 업체들도 할인판매와 경품제공 등으로 축제분위기를 끌어올릴 계획이다. 지역프랜차이즈인 치킨에너지㈜는 치맥페스티벌 참가를 기념해 행사 기간 동안 행사장 부스에서는 물론 가맹점에서도 1만 5000원짜리 메뉴를 5000원에 할인 판매한다. 치킨주문 시 페스티벌 초대권도 증정한다. 땅땅치킨은 경품으로 ‘BMW 미니쿠페’ 자동차를 내걸었다. 응모권은 땅땅치킨 전국 매장에서 받을 수 있으며 치맥축제장에서도 응모할 수 있다. 이 행사는 무료이며 맥주와 치킨을 무료로 시음, 시식할 수 있다. 교촌치킨은 10t의 시식용 닭을 준비한다. 일부 메인무대에서 진행되는 공연은 지정좌석제이므로 초대권이 필요하다. 초대권은 각 참가 업체들로부터 받을 수 있다. 치맥을 즐길 수 없는 청소년과 어린이들을 위해 별도로 치킨과 콜라 파티를 열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치킨의 본고장인 대구에서 전국에서 처음으로 치맥페스티벌이 열린다”면서 “앞으로 이 페스티벌이 대구를 대표하는 행사가 되도록 다양한 지원을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엔저 업은 토요타 ‘저가 도발’ 본격화

    엔저 업은 토요타 ‘저가 도발’ 본격화

    일본 토요타가 ‘엔저 효과’를 등에 업고 저가 전략으로 현대자동차의 안방인 한국시장 공략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의 주력 차종과 비슷한 신차를 선보이며 가격을 확 낮춘 것이다. 이는 글로벌 맞수로 떠오르는 현대차의 안방에서 승기를 잡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현대차도 ‘착한 가격’ 정책과 대리점의 쇼룸화, 각종 고급 서비스 제공 등 맞불 놓기에 나섰다. 토요타는 14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신형 ‘라브4’(RAV4)의 2륜구동 모델을 3240만원, 4륜구동은 3790만원으로 정했다. 디자인과 엔진, 편의사양을 다 바꾼 신차임에도 현대차의 SUV ‘싼타페’(2802만∼3637만원)와 가격 차이가 없다. 오히려 라브4는 풀옵션에 3년 동안 엔진오일과 각종 소모품을 교환해 줘 싼타페보다 더욱 싸다고 할 수 있다. 또 프리우스의 가격을 2830만원(기본형 기준)까지 내렸다. 이는 현대차 ‘쏘나타 하이브리드’의 최저 트립(2865원)보다 35만원 싼 가격이다. 최근 주력 모델인 2013년식 ‘캠리’도 파격적으로 가격을 300만원 내렸다. 타이어공기압 모니터링 장치(TPMS)가 기본으로 장착된 2500㏄ 캠리의 최고급 트립을 3070만원에 파는 적극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배기량 기준으로 동급인 현대차의 ‘HG그랜저240’(3012만원)과 기아차의 ‘K7 2.4 GDI’(3179만원)와 비교해도 비슷한 수준이거나 오히려 더 싼 가격이다. 국산차는 내비게이션 등 각종 옵션과 3년간 소모품 교체 비용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캠리’와의 실질적인 가격 차는 훨씬 크다. 이처럼 토요타가 라이벌인 현대차의 안방 시장에서 ‘저가공세’를 펼치는 데에는 한국을 중요한 전략 시장의 하나로 보고 당장 수익보다는 경쟁차의 근거지를 잠식하려는 본사의 전략도 깔렸다. 한국토요타가 2011~2012년에 적자를 내면서도 수백억원의 본사 지원을 받으면서까지 저(低) 마진을 고수한 적이 있다. 캠리 등 전략 차종의 광고에는 김태희와 장동건 등 톱 탤런트를 쓰고 사회공헌활동에도 연간 수억원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차는 안방 수성을 위해 수입차와 비교 시승회로 차량의 우수성 알리기에 나섰다. 도곡동 지점 등 전국 9개 수입차 비교시승센터에서 쏘나타와 토요타 캠리, 벨로스터와 BMW 미니쿠퍼, 제네시스와 벤츠E300 등 동급 차종을 비교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수입차 거점 지역에 최고급 서비스 마인드와 기술로 무장한 전문가와 차별화된 자동차 쇼룸을 운영한다. 수입차의 아킬레스건인 정비 서비스를 겨냥,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여성전용 서비스센터인 ‘블루미(美)’와 고객의 집까지 정비된 차량을 보내주는 홈비포(Home-Before) 등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독일과 일본 등 수입차의 공략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前복싱 세계챔피언 日서 상해 혐의로 체포

    前복싱 세계챔피언 日서 상해 혐의로 체포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을 지낸 재일동포 3세 홍창수(39)씨가 사소한 시비로 주먹을 휘둘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24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홍씨는 지난 22일 효고현 미타시 노상에서 주유소 손님 A(24)씨와 주유소 점장(53)의 얼굴 등을 주먹 등으로 때린 혐의(상해)를 받고 있다. 홍씨는 가족을 태우고 차를 몰고 가던 중 주유소에서 나온 A씨의 차가 갑자기 앞쪽에 끼어들자 이같이 반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씨는 경찰에서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은 탓에 뒷자리에 앉아있던 딸(2)이 앞좌석에 부딪혔기 때문에 화가 났다”며 “두 사람에게 나쁜 짓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딸이 앞좌석 시트에 부딪힌 뒤 바닥에 떨어져 울음을 터뜨리자 흥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0년 세계복싱평의회(WBC) 슈퍼플라이급 타이틀전에서 판정승을 거둔 뒤 8차 방어에 성공하는 등 통산 32승 3패 1무의 전적을 남겼다. 프로 복서로 활동할 때만 해도 조선적(일본 법률상 무국적)을 지녔으며 북한으로부터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지만 2007년 은퇴 직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2009년부터 오사카 코리아타운인 쓰루하시에서 야키니쿠(일본식 불고기)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한·일 정체성 넘어… 소외된 자를 향한 위로

    한·일 정체성 넘어… 소외된 자를 향한 위로

    “정의신 연출가는 한국인입니까, 일본인입니까.” 연극인들이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이다. 그에게는 ‘재일한국인’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른다. ‘야키니쿠 드래곤’(2008)을 비롯해서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2012), ‘나에게 불의 전차를’(2012)까지, 그의 대표작들은 일본과 한국을 함께 품고 있다. 답을 찾아보자면 극 배경과 인물의 흐름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겠다. ‘야키니쿠 드래곤’은 일본 오사카에서 곱창집을 하는 용길이네 가족을 비췄고, ‘봄의 노래는’은 일제강점기 전라도 외딴섬에서 이발소를 하는 홍길이를 그렸다. ‘…불의 전차를’은 1924년 경성, 남사당패와 일본인 교사의 우정을 이야기한다. 점점 한국으로 흘러온다. 그러니 한국인이라고 해도 좋을까. 서울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하는 그의 신작 ‘푸른배 이야기’를 보면 조금은 생각이 정리된다. 일단 일본을 걷어냈다. 모티브는 야마모토 슈고로의 소설 ‘아오베카 모노가타리’이지만, 온전히 한국화했다. 소설의 배경은 지바현 우라야스시의 가난한 어촌이다. 도쿄 디즈니랜드가 들어서면서 예전의 소박한 풍경을 잃었다. 연극은 이곳을 인천 남촌도림동으로 옮겼다. 송도 국제도시 개발의 영향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는 현상이 닮았다. 극장에 들어서면 남루한 삶이 엿보인다. 무대 한가운데에 넓은 대청을 펼쳤고, 양쪽에 빨래들이 서너줄씩 널려있다. “조개와 김, 낚시터로 알려져” 있고, “북쪽은 논밭, 서쪽은 바다, 동쪽은 소래강, 그리고 남쪽은 ‘백만 평 앞바다’라고 불리는 광활한 갯벌이 펼쳐”진 어촌이다. 30년 전 여기서 3년 정도 살았던 ‘나’가 다시 이곳을 찾아 그때를 떠올리는 것이 연극의 큰 줄기다. ‘나’가 기억을 더듬으면서, 웃음을 팔고 음탕한 말을 뱉는 뚝방집 여인들, 담배와 술을 얻어먹고 망가진 파란 배를 파는 뻔뻔한 칠복 할아버지, 부모에게 버림받고 동생을 돌보는 소녀 말순이, 매일 도박판을 벌이고 투닥거리는 부부,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낡은배 하나 갖고 홀로 사는 늙은 선장 등 인물들의 호졸근한 삶이 옴니버스처럼 펼쳐진다. 이들은 애처롭고 무식하면서 과격하지만, 그 이면에는 순수함과 소박함이 있다. 옹심에게 이용당하는 춘식이는 옹심이의 처지를 유일하게 이해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계속 세상에서 상처를 받아왔어요. …그래서 선생님, 어쩔 수 없어요. 뭐라 할 수 없어요.” 이런 식이다. 작품은 일인다역과 다인일역을 넘나든다. 해설자 역할을 하는 ‘나’가 여럿이다. 서상원, 박수영, 김문식, 이철희가 돌아가면서 ‘나’를 연기한다. 상황마다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다. 김정영, 장정애, 송태영 등 배우 14명이 40여명 역할을 해내지만 정신 사납다거나 번잡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속도감 있는 대사와 움직임으로 140분(중간휴식 포함)을 지루하지 않게 끌고 간다. 연극은 수미쌍관 구조다. 사람들이 마을에 대해 주거니 받거니 설명하면서 기념촬영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같은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연극처럼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정 연출은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 ‘푸른배 이야기’를 보면 질문은 무의미해진다. 그의 정체성이 아니라, 그가 연극을 통해 전달하려는, 기억과 역사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위로가 더 큰 의미를 던진다. 공연은 오는 24일까지.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식당 성공… 직원 1500명 금융그룹 경영

    “이단으로 출발해 정통을 지향하고, 정통이 되는 순간 다시 새로운 이단을 지향한다. 조금 생소하죠?” 최윤 아프로파이낸셜그룹 회장은 좌우명을 소개하며 멋쩍어했다.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찾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란다. 최 회장이 곧잘 하는 말 중의 하나는 “사채는 성악설(性惡設)에서, 소비자금융은 성선설(性善設)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돈을 안 갚는 ‘나쁜 사람’에게 올가미를 씌워 사업기회를 잡는 게 사채다. 하지만 소비자금융의 관점에서 고객은 돈 갚을 능력은 있는데 복잡한 대출 절차를 싫어하는 ‘좋은 사람’이다. 따라서 소비자금융은 일종의 서비스업이란 것이다. 흔히 제도권 금융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람을 대부업체의 고객으로 여기는 세간의 통념과는 다소 다른 접근이다. 그는 “장사꾼 마인드에서 비롯된 생각”이라며 웃었다. 일본 나고야에서 나고 자란 최 회장은 재일교포 출신으로 공직이나 기업 진출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나고야학원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바로 장사를 시작했다. 중3 때부터 대학생이라고 속이고 건설 현장에서 막노동을 했다. 고3 때부터는 아예 친구들과 하청업자로 나서 모은 돈에 대출금을 얹어 투자했다. ‘신라관’이란 상호의 세련된 매장에서 일본인들이 은근히 얕잡아보던 야키니쿠(내장 등을 섞은 한국식 불고기)를 파는 역발상으로 대성공을 거뒀다. 한때 지점이 60개였을 정도다. 지금도 도쿄 ‘신라관’은 성업 중이다. 2000년 한국에서 벤처캐피털에 투자했다가 쓴맛을 본 최 회장은 2002년 한국에 대부업법이 생기자 본격적으로 고국에 진출, 지금의 아프로파이낸셜그룹을 키워냈다. 러시앤캐시, 미즈사랑, 원캐싱 등 7개 계열사에 딸린 직원 수만 1500명이 넘는다. 2004년 5개월 동안 노조 파업 사태를 겪는 등 마음고생도 많이 했지만, 파업 뒤 퇴사한 직원들이 부실채권 정리 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한 일은 유명하다. 2009년에는 우리사주조합 창립자금 100억원도 무상출연했다. 1990년대 후반 재일교포들에게 ‘나고야의 태양’이었던 선동열 기아 타이거즈 감독과 절친하다. 덕분에 농아인야구, 하키, 배구 등 스포츠팀 지원에 관심이 많고, 장학재단 운영에도 열심이다. 미혼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일제 강점기, 국경 뛰어넘은 그들의 우정처럼…”

    “일제 강점기, 국경 뛰어넘은 그들의 우정처럼…”

    “일본 활동이 많아서 한국어를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아~, 정말 너무 바빠요. ‘무릎팍 도사’요? 어제는 5시간 녹화했어요. 일본에서는 방송 녹화를 1~2시간밖에 안 하거든요. 피곤했지만 재미있었어요.” 28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만난 구사나기 쓰요시(39)는 일본식 억양이 섞인, 꽤나 유창한 한국말로 인터뷰에 응했다. 일본 최고의 그룹 스마프(SMAP) 멤버이자 배우로,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 초난강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스타다. 전날 MBC ‘무릎팍도사’ 녹화가 새벽 3시까지 이어졌는 데도 전혀 피곤한 기색이 없다. “강호동씨는 웃는 얼굴이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프로그램에서 고민을 말해야 한다기에 그냥 농담으로 ‘여자친구가 없는 것’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다른 얘기를 할 걸 후회했죠. 조금 외롭기는 하지만 너무 바빠서 사귈 시간이 없어요.” 녹화에 대한 수다가 끊이질 않는다. 고작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위해 오전 7시에 일어나 메이크업을 하고 의상을 골랐다니, 역시 22년째 일본 연예계에서 정상을 유지하는 스타답다. 그가 한국을 찾은 것은 30일부터 새달 3일까지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활약하는 재일교포 연극인 정의신(56)의 신작으로, 100년 전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에서 한국 예술·문화를 위해 국경과 신분을 넘어 우정을 나눈 남자들을 그렸다. 구사나기는 일본어 교사 나오키로, 차승원은 그와 우정을 나누는 남사당패 꼭두쇠 순우로 각각 나온다. 히로스에 료코, 카가와 테루유키, 김응수 등 한·일 대표 배우들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한국말과 일본말이 어우러진 연극은 일본에서 지난해 11월과 12월 도쿄 아카사카 ACT시어터와 오사카 우메다 예술극장에 올랐다. 첫 회 매진을 시작으로 38회 공연을 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작품을 고를 때 함께 작업하고 싶은 사람인지 많이 따지는 편인데, 정의신 감독이 바로 그런 사람”이라면서 “그의 연극 ‘야키니쿠 드래곤’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제안이 들어왔을 때 덥석 잡았다”고 말했다. 그의 눈에 비친 정 감독은 “정열적이고 재미있으면서도 엄하고 깊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OK사인을 쉽게 주지 않는단다. “쉬려고 하면 그때 꼭 다시 하라고 해서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아침밥을 먹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배우 차승원에 대해 묻자 대뜸 “사랑해요”란다. “연기도 정말 잘하고, 감성이 풍부한 배우라서 인간적으로 존경한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한국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진심을 알아주고 있죠. 그래서인지 나오키와 순우의 우정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나오는 거예요. 연습을 이어갈 수가 없을 정도였죠.” 작품 속에는 일제강점기 문화말살과 양민학살, 일본군 탈영 등 제법 묵직한 얘기가 등장한다. “내용도, 포스터도 진지해 보이지만 무겁진 않다”는 그는 “연극을 보면서 끊임없이 웃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대표적 친한파 스타로 꼽히는 그는 지금도 일본 신문에 한국 관련 칼럼을 쓴다. 한국말 교재를 내고 소설을 번역하기도 했다. “다시 한국에서 활동할 계획이 없느냐”고 묻자 “오늘부터”라고 즉답했다. “한국에 존경하는 배우들이 많아 정말 활동하고 싶다”는 그는 “이병헌, 최민식, 송강호, 한석규를 모두 좋아한다. 특히 송강호가 나온 영화는 전부 좋다. 송강호와 함께 연기하는 게 ‘목표’”라면서 한국 배우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과학자들이 수행해온 진짜 과학의 역사

    우리가 과학의 역사를 말할 때, 과연 냉정한 이성으로 사실과 진리를 발견해온 역사로만 기술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그러지 않다는 대답이 나온다. 이유를 물어본다. 과학의 역사에 있어서 사실의 추적과 이론의 발전만이 아니라 이론과 실험의 오류, 퇴행, 답보가 도사리고 있으며 이러한 모든 것들은 다시 열정, 상상력, 감정, 감수성, 욕망, 경쟁심, 심지어 편견을 가진 과학자라는 존재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학자라는 말은 언제 어떻게 탄생했을까. 자연을 탐구하는 학문으로서 과학의 전통은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한테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근대 과학의 역사는 16세기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 천문학을 시발점으로 일어난 ‘과학혁명’ 이후로부터 기술돼 있다. 과학혁명 이후 유럽의 과학은 18세기 계몽사조와 관계를 맺으며 발전했다. 19세기에는 생물학의 과학혁명이라 할 만큼 다윈의 진화론이 제창됐고 과학자의 전문 직업화와 과학의 제도화 또한 급속히 진행됐다. 이런 과정 속에 1831년에 과학자(scientist)라는 말이 처음 나왔으며 20세기에는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으로 새로운 시공 개념을 창안해 물리학 혁명을 일으켰다. 신간 ‘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 역사’(홍성욱 지음, 책세상 펴냄)는 한 장의 그림에서 출발한다. 르네상스기에 활동한 이탈리아 엔지니어 아고스티노 라멜리의 ‘책바퀴’(독서기계)라는 그림이다. 그 속에 있는 독서기계가 당시 실제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월이 지나 198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그 기계가 처음 선보였다. 르네상스기에 그려진 한 장의 그림이 현대의 과학기술로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드의 손에 의해 실현된 것이다. 저자는 이 그림 한 장을 계기로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이미지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자연스럽게 예술로 확장시켜 나가면서 예술과 기술, 과학과 미학, 그리고 모든 것에 담긴 인간적인 요소들을 융합한 11편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따라서 과학과 관련됐거나 또는 과학에서 사용해온 이미지 자료들, 다시 말해 회화, 조각작품뿐만 아니라 과학자들이 펴낸 책의 표지 그림, 권두화, 스케치 등을 매개로 한 과학의 역사를 새롭게 독해하고 있다. 몸과 감정을 가진 과학자들이 수행해온 진짜 과학이 생생한 역사, 그리고 문화와 예술의 맥락으로 읽는 인문적·융합적 과학사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1만5000원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낮에는 보험사기 밤에는 호스트바

    밤에는 강남 호스트바 남성 도우미, 낮에는 교통사고 보험사기범으로 활동해 온 일당이 경찰에 무더기로 잡혔다. 서울경찰청은 10일 강남구 논현동, 청담동 등에서 법규위반 차량을 상대로 일부러 교통사고를 내고서 수억원대 보험금을 타낸 쌍둥이 송모(28)씨 형제 등 85명을 사기 혐의로 입건했다. 이들은 호스트들을 승합차에 태우고 음주운전이나 신호위반을 하는 차량에 고의로 접촉사고를 낸 뒤 탑승자 모두 통증을 호소하는 등의 수법을 썼다. 2010년 10월 17일 오전 4시쯤 청담동에서 박모(30)씨의 미니쿠퍼 승용차에 고의로 접촉사고를 낸 후 “음주운전 사실을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합의금으로 현금 495만원을 빼앗았다. 당시 탑승하지도 않은 호스트 5명을 가짜 환자로 위장해 보험금 1034만원도 타냈다. 또 올해 9월 5일 오전에는 청담동 학동사거리에서 고의로 가로수와 충돌해 탑승자 6명 전원이 통원치료를 받아 427만원을 타내기도 했다. 이들 형제 중 형은 2010년 11월 19일 오후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에서 자신이 몰던 중고 BMW 승용차를 고의로 불태워 보험사로부터 5650만원을 받아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 같은 수법으로 2008년 8월부터 지난 9월까지 9개 보험사에서 총 47회에 걸쳐 보험금 5억여원을 타 냈다. 이들은 반복되는 사고를 의심해 보험금 지급을 미루는 보험사 직원에겐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어 괴롭혀주겠다.”고 협박해 합의를 유도했다. 이렇게 뜯어낸 보험금 중 80% 이상은 송씨 형제가 챙겼다. 형제는 챙긴 돈으로 BMW 등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호화생활을 누렸다. 도우미들은 보험사기에 강제로 동원됐지만 일자리를 잃을까 봐 항변조차 못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송씨 형제가 호스트를 알선한 호스트바까지 수사를 확대하고 병원의 공조 행위가 있었는지 추가로 수사할 방침이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장애인 인적자원 개발체계를 정립해야/정윤기 행정안전부 정보기반정책관

    [옴부즈맨 칼럼] 장애인 인적자원 개발체계를 정립해야/정윤기 행정안전부 정보기반정책관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여행 도중 어느 빌딩에 들러 로비의 안내 데스크로 다가갔다. 앉아 있던 미국인이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 가만히 보니 시각장애인이었다. 볼 수는 없었지만 사람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는 들을 수 있었기에 먼저 말을 걸어 온 것이다. 필자는 용건을 말했고 그는 친절하게 설명한 뒤 책상 위 서류함에서 팸플릿을 꺼내 건넸다. 서류함의 칸칸마다 점자로 표시돼 있어 시각장애인도 팸플릿을 찾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설명을 다 들은 뒤 인사말을 건네고는 유쾌한 기분으로 걸어 나왔다. 신체적 장애가 있더라도 적합한 일만 주어지면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이 사례는 장애인에 관해 내게 코페르니쿠스적인 인식 전환을 던진 계기가 됐다. 서울신문 11월 8일자 ‘장애인 고용 중장기 계획이 없다’는 기사가 눈길을 끌었다. 장애인 의무고용의 경과와 실적 및 미래 전망을 점검하고 올해로 끝나는 중장기 계획의 후속 대책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잘 정리됐다. 다만, 장애인 고용률 유지를 위해 정부가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양적 고용률 위주로 접근하기보다 장애인 채용정책 가운데 간과되고 있는 제도적 사항을 심도 있게 다루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장애인 고용정책은 장애인 정책 중에서도 핵심이다. 정부에서는 장애인 고용의 중요성을 감안, 1989년부터 공무원 공채시험에 ‘장애인 구분모집 제도’를 도입해 장애인 쿼터를 배정했다. 1990년부터는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장애인을 2% 이상(현재 3% 이상) 채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아쉬운 점도 있다. 발령될 기관이나 보직이 정해지지 않은 채 채용하는 공채 특성 탓에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른 업무 부여와는 괴리가 있었다. 모든 수험생은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공개경쟁 원칙을 장애인에게도 적용하다 보니 필기시험 시간 연장 또는 점자 문제지를 제공해 달라는 등 장애인의 요구도 있었다. 또 장애가 덜한 경증장애인의 합격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2008년도부터는 중증장애인만을 대상으로 별도의 경력채용시험을 치르고 있다. 목표를 할당하는 공채시험과 달리 중증장애인을 실제로 채용하려는 개별 기관을 조사해 채용인원을 확정하고 근무예정 부서와 담당할 일까지 채용공고를 통해 미리 공개하고 있다. 또 필기시험 대신 서류전형을 통해 경력이나 학위·자격증을 확인한 뒤 면접시험만 치르고 있다. 공채 외에도 장애인이 공무원이 될 수 있는 길을 더 열어놓은 것이다. 그래도 조금 아쉬움은 남는다. 장애 유형과 정도에 따라 적합한 직무를 부여하려면 현재의 중증장애인 채용제도는 좀 더 개선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예를 들면, 현재의 방식은 담당직무만 공고하기 때문에 다양한 유형의 중증장애인이 원서를 제출하지만 특정 유형의 장애인에게는 그 업무가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담당직무의 특성, 그 특성에 맞춰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신체능력에 관한 사항은 지원자가 미리 알 수 있도록 공고단계에서부터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정부 부문부터 중증장애인이 감당할 수 있는 일자리와 일자리별로 필수적인 신체 능력 요건을 조사하고 그에 맞춰 채용방식과 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 쿼터나 중증장애인 별도 채용이 필요없을 정도로 장애인의 능력에 관한 인식이 변화하고 채용과정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정하게 경쟁하는 것이 궁극적 지향점일 것이다. 장애인 고용정책은 일자리 몇 개를 창출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이 비장애인처럼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장애 유형과 정도에 맞춰 일자리를 매칭시키는 인력개발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이다. 이는 장애인 채용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이므로 중장기 계획에 의해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서울신문의 다음 기사에서는 이 부분까지 깊이 있게 다루기를 기대한다.
  • 文·安 대통령 특권 포기·경제 민주화 ‘닮은꼴’

    文·安 대통령 특권 포기·경제 민주화 ‘닮은꼴’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11일 공약을 발표했다. 문 후보는 일자리 혁명과 복지국가 등 5대 핵심 분야를 24개 부문으로 나눈 실천 공약을, 안 후보는 문제가 아니라 답을 주는 정치, 개인과 기업이 함께 성공하는 경제 등 7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25개 정책 과제와 171개의 정책 약속을 내놨다. 안 후보는 여기에 850여개의 실천 과제까지 포함해 440쪽에 이르는 공약집을 냈다. ‘가치와 철학이 하나 되는 단일화’를 선언한 두 후보는 공약에서도 상당 부분 비슷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 개혁에서는 기득권과 특권 포기가 공통점이다. 문 후보는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겠다면서 책임총리제와 정당책임정치를, 안 후보는 대통령의 권한 축소와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임명직을 10분의1로 축소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거의 비슷한 안을 내놨다. 다만 문 후보는 재벌의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도 3년 안에 해소해 출자총액제도 재도입 등을 강조한 반면 안 후보는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는 기업의 자율적 이행 정도를 보고 강제 이행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출자총액제도도 반대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정년 연장도 공통점이다. 정년에 대해 문 후보는 2015년 민간 기업의 법정 정년 60세 도입을, 안 후보도 정년 60세 연장 법제화를 하겠다고 밝혔다. 지방 분권도 강조하고 있다. 문 후보는 명실상부한 분권 국가 건설을 목표로 지역 공공기관이 지역 학교 졸업생을 30% 이상 채용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지방 국공립대, 로스쿨 등에도 지역 출신 할당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도 지역 고용 할당제, 균형적 고용법, 차별 금지법을 만들고 재정을 지방정부에 적극적으로 넘기는 재정 분권도 추진하겠고 약속했다. 한편 문 후보는 이날 양복 상의를 벗은 채 무선 마이크를 이용해 스티브 잡스 식 프레젠테이션으로 정책 발표를 진행했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코페르니쿠스, 가상 인물 ‘복동이’까지 등장시켜 쉽고 친숙하게 정책을 소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정책 발표에 재원대책이 빠진 것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비판적 평가가 이어졌다. 문 후보의 ‘증세’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조세부담률을 높이겠다고만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높이겠다고 하는 것인지 구체적이지 않아 알 수가 없다.”고 평가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재원마련이라는 목표보다 그 목표를 어떻게 실현해 낼지 그 수단이 중요하다.”고 전제, “증세가 서민들을 위한 목적이라 할지라도 ‘먹고살기 힘들다’는 목소리에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 후보가 내놓은 정책의 경우 재원 방안이 빠진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책 실현을 위한 재원조달 방안부터 제시해야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면서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올해보다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정부 세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대선 후보들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서울광장] 기준치에 관한 불편한 진실/노주석 논설위원

    [서울광장] 기준치에 관한 불편한 진실/노주석 논설위원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농심 너구리 라면을 전량 회수토록 명령했다고 한다. 식약청은 지난 6월 문제가 된 제품의 수프에 1급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기준치 넘게 들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도 쉬쉬하고 넘어갔다가 폭로와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뒤늦게 조치를 취했다. 이번에도 식약청은 “검출량이 인체에 해로운 수준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먹였다. 일만 터지면 어김없이 이 말을 되새김질한다. 이때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것이 기준치이다. 기준치 미만이어서 유해 여부를 가릴 수 없다는 식이다. 여기서 우리는 유해물질이 나와도 기준치 이하면 안전한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또 기준치의 근거는 무엇이며, 제대로 정해졌는지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된다. 국가 기준치에 대한 불신 풍조는 오래됐다. 이번 ‘벤조피렌 라면’처럼 정부가 오락가락하는 사이에 불신은 증폭되기 마련이다. 사실 기준치와 관련된 세간의 핫이슈는 세슘(Cs)이다. 기준치를 둘러싼 시시비비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여파로 세슘으로 옮아붙은 지 오래다. 요 며칠 사이 후쿠시마 주변지역에서 생산된 쌀과 소고기, 메밀, 버섯 등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세슘이 속속 검출되면서 ‘세슘의 먹구름’이 현해탄을 건너 한반도 상공에 드리우기 시작한 느낌이다. 식품위생법의 식품공전상 세슘의 허용기준치는 1㎏당 370베크렐(㏃)이다. 소비자단체들은 이 기준치가 1993년 이전 허용기준에 따라 만들어졌으므로 최소 5배 이상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장대로라면 74㏃이 된다. 여기에 안전계수 10을 부여해 7.4㏃이 적절한 취급기준이며, 어린이와 영유아는 절반을 적용해 3.5㏃을 적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실제 먹거리에 깐깐한 30만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국내 최대 생활협동조합인 한살림연합이 국가기준보다 최대 92배 낮은 세슘 기준치를 마련한 것은 기준치에 관한 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생협단체는 세슘에 관한 독자기준치를 어른 8㏃, 영유아 4㏃로 정했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독일의 권고기준과 같은 수준이다. 다른 소비자 단체들도 자체적인 독자 기준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기준치를 ‘무조건’ 따르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소비자가 공감하지 않는 국가 기준치는 기준치로서의 효력을 사실상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의 기준치 잣대를 곧이곧대로 들이대다간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시대에 뒤처진 기준치는 소비자뿐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업체나 법을 집행하는 정부기관까지 피해자로 만들 수 있다. 얼마 전 서울시는 국내 시판 분유의 방사능 검사를 실시하면서 식품위생법에서 정한 식품공전과 식약청장의 지침을 어겼다. 고의로 어겼다기보다 ‘미비한’ 기준치의 함정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일동후디스 분유에서 0.6㏃의 세슘이 검출되자 ‘방사능 기준에 적합할 경우에는 적합판정만 한다.’라는 규정과 달리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는 과실을 범한 것이다. 이 밖에도 서울시는 검사요청 요건을 준수하지 않는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기준치 강화를 모색해 소비자의 먹거리 불안증을 해소하기보다 불안감에 편승해 한 건 올리려다 홍역을 치르게 된 셈이다. 법 집행기관이 앞장서서 불안감을 조장한 것은 사려 깊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방사성물질은 물론 식품과 관련된 모든 유해물질의 기준치를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도록 재정비할 때가 됐다. 국가 기준치가 느슨한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만큼 시대변화에 따라야 한다. ‘국가 기준’과 ‘소비자 심리기준’이 다르면 국론이 분열되고, 국력을 소진시킨다. 대다수가 공감하는 ‘안심 기준’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완벽한 기준을 제시하거나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이 근원적으로 불가능한데도 소비자의 불안심리를 부추기는 ‘기준치 포퓰리즘’은 사라져야 한다. joo@seoul.co.kr
  • [오늘의 눈] 서울시 행정정보 공유 결국 ‘空約’?/강국진 사회2부 기자

    [오늘의 눈] 서울시 행정정보 공유 결국 ‘空約’?/강국진 사회2부 기자

    행정정보공유와 기록관리 혁신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공약이자 핵심 사업이다. 박 시장은 지난 1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이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의록 공개와 실국장 결재문서 공개 방침, 정보공개정책과 신설 등 박 시장이 내놓은 큰 그림에 비해 실제 굴러 가는 수준은 그에 한참 못 미친다는 우려가 터져 나온다. 최근 서울시 학술용역심의위원회에서는 서울기록원 건립을 위한 연구용역이 준비부족을 이유로 보류되는 일이 벌어졌다. 서울기록원은 기록물관리법에 따라 박 시장이 설립 추진을 지시했던 사안이었지만 첫 단추부터 꼬인 셈이다. 그러자 주무부서에선 조직담당관실 소관 포괄예산으로 연구용역을 수행하는 편법을 동원하려 했다. 12일 박 시장이 주재한 예산안 검토회의에서 외부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거론했다. 그러자 박 시장은 “시스템이 정보공개 중요성만큼 안 받쳐 준다.”고 지적했고, 그제서야 행정국에선 부랴부랴 예산과와 협의해 연구용역비를 최대한 확보하겠다고 나섰다. 정보공개정책과를 신설한 것에 비해 실질적인 인력충원이 없는 것도 도마에 오른다. 정보공개정책과는 기존 총무과 2개팀과 정보화기획단 2개팀을 합하고 새로 1개 팀을 신설해 5개팀으로 이뤄져 있다. 하지만 연간 200만건 가까운 기록물을 생산하는 서울시 기록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기록연구사는 2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기록연구사를 신규로 한 명 채용할 예정이고 출산휴가 중인 한 명이 내년 3월 복귀하는 게 다행이다. 지난 8월 20일 시에서는 ‘열린시정 2.0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정보공개정책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현재 편성 중인 내년도 예산안에서는 ‘열린시정 2.0’을 위한 실질적인 예산증액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는 평가가 터져 나온다. 당시 시에서는 “내년에는 실국장, 내후년에는 과장 결재문서까지 모두 시민들과 공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를 위한 ‘결재문서 공개시스템 구축’ 등 예산은 당초 9억원가량 편성됐다가 논의과정에서 1억원 가까이 감액됐다. 정보공유를 위한 허브가 될 것이라던 정보소통광장 관련 예산도 당초 1억 6000만원이었다가 4000만원가량 감액됐다. 시 홈페이지 고도화 예산이 19억원인 것에 비하면 얼마나 찬밥 신세인지 드러난다. betulo@seoul.co.kr
  • 씨앤앰 ‘마이 캐치온’ 출시 행사

    케이블TV 방송사 씨앤앰은 캐치온과 함께 디지털케이블TV 가입자를 대상으로 N스크린 서비스(하나의 콘텐츠를 스마트폰·PC·스마트TV·태블릿PC·자동차 등 다양한 디지털 정보기기에서 공유)인 ‘마이 캐치온’ 출시 기념 이벤트를 오는 31일까지 실시한다. ‘마이 캐치온’에 가입한 고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1등 1명에게 BMW 미니쿠퍼 SE를, 2등 10명에게 뉴 아이패드 16G WiFi를, 3등 100명에게 젠 하이저 이어폰을 준다. 신규 가입자는 캐치온 VOD 가입 후 ‘마이 캐치온’ 홈페이지에서 인증을 거치면 자동 응모된다. 기존 캐치온 VOD 가입자는 ‘마이 캐치온’ 홈페이지에서 가입 인증 시 자동 응모된다. 당첨자는 11월 15일 씨앤앰(www.cnm.co.kr)과 캐치온(http://catchon.interest.me)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다.
  • 명왕성, 위성이 무려 5개… 태양계 9행성 지위 되찾나

    명왕성, 위성이 무려 5개… 태양계 9행성 지위 되찾나

    태양계에는 몇 개의 행성이 있을까. 이 같은 질문을 받으면 누구나 저절로 머릿속에서 ‘수·금·지·화·목·토·천·해’라는 문구를 떠올리며 세어 보게 마련이다. 현재 태양계의 행성은 모두 8개. 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이 아직은 어색할 수 있다. 입버릇처럼 ‘해’ 다음에 따라나오던 ‘명’, 곧 명왕성을 애써 지워야하기 때문이다. 태양계의 행성이 9개에서 8개로 줄어든 것은 2006년 8월이었다. 지구와 동등한 자격을 잃고 왜행성(왜소행성·dwarf planet)으로 격하된 명왕성의 현재 공식 명칭은 ‘소행성134340’이다. ●새롭게 조망받는 ‘쫓겨난 행성’ 명왕성이 다시 천문학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항공우주국(NASA)이 지난 12일 “허블우주망원경이 명왕성 주위를 돌고 있는 또 하나의 위성을 발견했다.”고 밝히면서다. 달보다 작고, 행성 지위에서 쫓겨난 명왕성이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무려 5개의 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성·금성은 위성조차 없고, 지구는 하나, 화성은 두 개에 불과한데 말이다. 과학전문 뉴사이언티스트는 “명왕성의 다섯 번째 위성은 명왕성의 지위 격하를 둘러싼 논란에 신선한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죽음의 신 ‘플루토’(Pluto)에서 따온 이름만큼이나 명왕성의 운명은 기구했다. 1930년 2월 18일, 23살의 천문대 조수 클라이드 톰보가 미국 애리조나주의 로웰천문대 망원경을 통해 처음으로 명왕성을 발견했다. 명왕성의 발견은 천문학계의 놀라움이자 기쁨이었다. 천문학자들은 명왕성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행성X’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프톨레마이오스가 태양계 별의 족보를 정리한 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까지 150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태양계의 별은 태양을 포함해 7개뿐이었다. 천지개벽으로 여겨졌던 지동설조차도 별의 숫자가 아닌 중심축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옮기는 데 머물렀다. 그러나 망원경의 발달로 1781년 3월 영국의 윌리엄 허셜이 천왕성을 발견하면서 이 같은 상식이 무참히 깨졌다. 허셜이 천왕성을 발견한 뒤 물리학자들은 뉴턴 물리학을 기반으로 천왕성의 궤도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망원경으로 관찰한 천왕성은 뉴턴의 공식을 완벽하게 따르지 않았다. 프랑스의 위르뱅 르베리에는 천왕성 외부에 또 다른 행성이 있어 천왕성의 궤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고 위치를 계산해 1846년 베를린 천문대의 요한 갈레에게 보냈다. 편지를 받은 그날 밤 갈레는 르베리에가 지목한 장소에서 정확히 새로운 행성, 해왕성을 찾아냈다. 명왕성의 발견 역시 해왕성의 궤도가 계산대로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시작됐다. 1890년 퍼시벌 로웰은 애리조나주 플래그스태프에 천문대를 세우고 해왕성 이외에 천왕성의 궤도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행성 즉, ‘행성X’를 찾고자 했다. 논점을 이탈하는 얘기지만 천문학자이자 외교관, 실업가였던 로웰은 한국 역사에도 등장한다. 1876년 일본을 찾았다가 조선의 첫 미국 사절단의 통역을 맡았다. 오랫동안 한국을 뜻한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로웰이 조선을 다녀간 뒤 쓴 책의 제목이다. 로웰은 노월(越)이라는 한국 이름을 갖고 있었으며, 고종의 사진을 처음으로 찍어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로웰이 예언하고, 그토록 찾고자 했던 행성은 그가 사망한 지 15년 뒤에야 발견됐다. 톰보가 발견한 행성은 11세 소녀 베네티아 버니의 제안에 따라 미지의 영역인 태양계의 끝에 있다는 의미로 플루토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공교롭게도 첫 두 글자 P와 L는 퍼시벌 로웰의 이니셜이기도 하다. ●뉴호라이즌스호의 2015년이 기대되는 이유 명왕성 발견 당시 아마추어 천문학자에 불과했던 톰보는 일생 동안 혜성 하나와 초은하단 하나, 성단 6개, 소행성 750개를 발견했다. 1992년 NASA는 톰보에게 명왕성을 탐사하기 위한 위성 ‘뉴호라이즌스’호 탐사계획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했다. 1997년 세상을 떠난 톰보는 결말을 보지 못했다. 대신 2006년 1월 발사된 뉴호라이즌스호에는 톰보의 유골이 실렸다. 톰보는 2015년 7월 명왕성에 도착할 예정이다. 반세기 넘게 태양계의 막내로 인정받았던 명왕성의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 태양계에서 소행성을 비롯한 미확인 천체들이 잇따라 발견되면서부터다. 명왕성과 비슷한 크기의 소행성들이 여럿 등장하자 국제천문연맹(IAU)은 이들을 모두 행성으로 인정할 것인지(당시 발견된 것들을 모두 포함하면 태양계의 위성은 12개로 늘어날 예정이었다), 아니면 명왕성을 행성에서 제외할 것인지에 대한 의논을 시작했다. 논의 끝에 2006년 8월 24일 IAU 총회는 ‘태양 주위를 돌아야 한다.’ ‘충분히 큰 질량을 가져 자체 중력 때문에 둥글어야 한다.’ ‘자신의 공전궤도면에서 가장 지배적이고 강력한 존재여야 한다.’라는 행성의 세 가지 정의를 발표했다. 지름이 지구의 5분의1, 질량이 500분의1에 불과한 명왕성은 앞의 두 조건은 충족하지만 세 번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명왕성의 궤도는 찌그러져 있어 공전 중에 해왕성보다 더 태양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자신의 위성인 카론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다. 이 때문에 명왕성은 왜행성으로 격하되면서 행성으로서의 지위를 잃고 말았다. 그해 미국에서는 몰락을 뜻하는 신조어인 ‘그 친구 명왕성 됐어.’(He’s plutoed)라는 문장이 올해의 문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76년간의 믿음, 그것도 과학적 사실이 변하는 것은 그만큼 전 세계에 충격이었다. 명왕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꼬마 행성인 명왕성의 위성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하나가 추가되면서 5개로 늘었고, 명왕성이 에리스와 쌍둥이별이라는 주장도 있다. 뉴사이언티스트는 “뉴호라이즌스호가 명왕성에 가까이 가면 얼마나 많은 위성이 새롭게 밝혀질지 모른다.”면서 “명왕성에 다시 행성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새로운 근거가 마련되기를 많은 학자들이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명왕성은 행성일 당시 유일하게 미국에서 발견한 행성으로, 미국 천문학계의 자존심이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밤하늘의 문을 열다’의 1호 민간천문대 대표 이세영

    [저자와 차 한 잔] ‘밤하늘의 문을 열다’의 1호 민간천문대 대표 이세영

    여름밤은 은하수의 계절이다. 직녀와 견우가 빛나고 그 사이에 물 흐르듯 하늘을 가로지른 별의 무리, 그 위를 유유히 날아다니는 백조가 아름답다. 말 그대로 별들의 축제가 벌어진다. 여름에 볼 만한 별은 전갈의 심장인 안테레스와 직녀성이다. 특히 직녀는 1등성보다 더 밝은 0등성이다. 천구상의 좌표는 적위 38도인데 우리나라 서울의 위도가 37.5도이기에 바로 우리 머리 위에서 빛나고 있다. 아울러 여름에는 수평으로 별들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반짝반짝 빛난다. 이 반짝거림이 초여름 새벽에 피어 오르는 산 안개와 어우러지면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창출해 낸다. 이럴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쩍새 울음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뛰는 멋진 여름밤이다. 이런 내용으로 최근 ‘밤하늘의 문을 열다’(계명사 펴냄)라는 책을 낸 이세영(59)씨.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천문과 관계없는 세라믹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어느 날 문득 본 밤하늘에 매료돼 1997년 경기도 가평에 ‘코스모피아’라는 민간 천문대 1호를 열었다. 따라서 15년 동안 밤하늘을 본 경험을 토대로 책을 썼다. “20년 전이지요. 밤하늘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천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아울러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별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느꼈지요. 특히 초등학생은 더 그랬습니다. 이런 부분에 고민하다가 천문대를 생각하게 됐지요.” 이씨는 여름밤 별들에 대한 감상법을 잠시 소개한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직녀성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직녀성 왼쪽에는 백조의 꼬리별이 있지요. 다시 말해 직녀와 견우 사이에 은하수가 있고 그 사이를 백조가 날아다니는 것이지요. 생각만 해도 아주 멋진 광경이 아닙니까.” 이 책은 일반인들의 잘 모르는 천문상식, 특히 여름밤 별들의 움직임에 대해 궁금해하는 부분, 그리고 밤하늘의 어려운 주제를 나름대로 쉽게 풀어 썼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의 대표적인 별자리와 남반구 여행을 통해 경험한 새롭고 신기한 현상을 소개했다. 특히 ‘12’라는 숫자를 목성의 움직임과 연계하면서 그 뜻을 흥미롭게 푸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목성의 태양 공전주기 12년은 우리가 사용하는 12진법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내용이다. 기존의 천문 책에 있는 백과사전식 내용을 탈피해 화성과 지구 거리 측정 방법, 수성과 상대성 이론, 금성의 태양 통과, 화성과 탐사 로봇, 명왕성의 진짜 그럴듯한 퇴출 이유, 코페르니쿠스의 장례식 등은 이 책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는 천문대가 100여곳 있어요. 저의 천문대는 별과 1대1로 대화할 수 있는 곳입니다. 별과의 거리는 어떻고, 별의 생김새는 어떻고, 별이 얘기하고자 하는 모습은 어떻고 그런 것을 감상할 수 있지요. 책 내용도 그런 것입니다.” 별은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고 대화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책 안에는 천문학 박사인 염범석씨가 찍은 천체 사진이 다양하게 실려 있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연극·뮤지컬

    ●뮤지컬 ‘울지마 톤즈’ 7월 15일까지 서울 명륜동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 새천년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마을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에서 선교활동을 한 고 이태석 신부의 감동실화. 한 신부의 열정으로 내전과 가난으로 웃음을 잃어버린 아이들이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이 감동을 준다. 3만~7만원. 1661-1476. ●연극 ‘봄의 노래는 바다에 흐르고’ 12일부터 7월 1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연극 ‘아키니쿠 드래곤’의 정의신 작가가 신작으로 극단 미추와 남산예술센터가 함께한다. 광복 직전 1944년을 배경으로 한 이번 공연은 남도의 외딴섬에서 살아가는 ‘홍길이네 이발소’ 가족과 주둔 중인 군인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1만 5000~2만 5000원. (02)758-2150.
  • 존중하며 경쟁했던 갈릴레이·케플러

    존중하며 경쟁했던 갈릴레이·케플러

    400년 전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는 망원경을 가지고 하늘을 향한 창을 열었다. 1609년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9)는 ‘신(新)천문학’을 발간하고 태양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했다. 그렇다면 동시대를 살았던 두 인물의 관계는 어땠을까. EBS가 23일 밤 11시 10분에 방송하는 ‘다큐10+: 천문학계의 두 전설, 케플러와 갈릴레이’는 지금껏 거의 알려진 바가 없는 둘의 관계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과학과 철학, 종교의 구분이 모호했던 시대에 서로 존중하면서도 경쟁 관계에 있었던 둘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개신교도 케플러와 가톨릭교도 갈릴레이의 서신 왕래는 1590년대에 시작돼 1610년에 이르러 끝이 난다. 서로 주고받은 편지를 근거로 한 다큐멘터리는 두 학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케플러는 저서 ‘우주 구조의 신비’를 출판한 후 많은 천문학자에게 책을 보낸다. 파도바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갈릴레이가 책을 보고 케플러에게 감사 편지를 보내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된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신봉한다는 이유로 뜻이 맞은 두 사람은 서로 과학적 발견을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사이로 발전한다. 사회적 신분 상승과 명성에 대한 욕망이 컸던 갈릴레이는 자신이 제작한 망원경을 베네치아 정부에 헌정해 파도바대학의 종신교수가 됐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마리나 감바라는 여성과 만나 세 아이를 낳고는 책임지지 않은 비정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반면 케플러는 어릴 때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떠난 이후 가난에 시달리며 자란 탓에 평생 가난에 대한 공포를 떨치지 못했다. 목사가 되려고 튀빙겐대학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나 뜻하지 않게 수학 교사로 일하게 되면서 삶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사회적 신분 상승이나 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가 이룬 과학적 성과는 열거할 수도 없을 정도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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