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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사르코지와 셰이크 무하마드/ 함혜리 논설위원

    [서울광장] 사르코지와 셰이크 무하마드/ 함혜리 논설위원

    최근 국내 언론이 가장 관심 깊게 다룬 외국 지도자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셰이크 무하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두바이 지도자 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부통령이자 총리이다. 오는 12월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예정하고 있는터라 지난 6일 끝난 프랑스 대선 결과는 우리에게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방한했던 셰이크 무하마드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리더십으로 세계적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인물이다. 두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공통분모가 있다. 실용주의자라는 점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을 실용주의자로 부르는 것을 의아해할 수 있다. 이는 순전히 프랑스 대선 결과에 대한 국내 언론의 자의적 해석 탓이다. 사르코지 후보가 승리하자 국내 언론들은 다양한 해설기사들을 쏟아냈는데 한국적 시각에서 의미를 부여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일부는 프랑스가 영미식 시장경제주의와 친미를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분배를 포기하고 성장을 택한 것, 사회가 우경화되는 것, 좌파의 위기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우선 프랑스가 우경화하고 있다는 것은 프랑스의 역사를 모르고 하는 얘기다. 역사적으로 볼 때 프랑스에서 다수는 언제나 우파였다. 프랑스가 분배를 포기한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프랑스는 복지에 있어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중시하며 이는 우파든, 좌파든 한결같다. 실제로 사르코지는 선거유세 기간동안 단 한번도 복지제도를 줄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가 성장을 선택한 것은 분배할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다. 시라크가 이끌었던 지난 12년간 우파 정권이 지지부진했음에도 우파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사르코지가 제시한 비전이 현재 프랑스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유용하다고 국민들이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더 일하고, 더 벌자.”는 단순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각론으로는 감세와 주 35시간 근로제 재조정, 노동시장 유연화를 들었다. 반발을 불러일으킬 부분도 있겠지만 국민들은 그의 추진력에 신뢰를 보냈다. 미국에 대한 입장에서도 사르코지의 실용주의를 볼 수 있다.“미국은 이제 우정을 기대해도 좋다.”는 말을 했다고 그를 친미파로 봐서는 안 된다. 그는 미국의 힘을 인정할 뿐 친미는 아니다. 철저히 실용적인 차원에서 그 힘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는 유럽연합(EU)의 강화를 통해 ‘강한 프랑스’를 구현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UAE의 경제수도 두바이로 가보자. 두바이는 산유국이긴 하지만 국민총생산(GDP)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6%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1인당 소득은 3만달러가 넘고 연평균 성장률이 8%를 넘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두바이의 성공신화가 ▲정치 리더십과 개방외교 ▲중계무역 및 지식산업 거점 ▲대형개발프로젝트 ▲관광 및 이벤트 ▲공항 및 항만 등 5개 축을 중심으로 이뤄진다고 분석했다. 두바이의 최고경영자(CEO)로 불리는 셰이크 무하마드의 신조는 ‘마차(정치)가 말(경제)을 끌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의 실용정신은 미국과 군사협력 관계를 유지하며 서구 자본을 유치하는 개방외교에서 잘 드러난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은 사르코지와 셰이크 무하마드의 실용주의 리더십이 왜 이 시대에 각광받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친미와 반미, 좌와 우, 보수와 진보의 이념대결은 유행이 지나간 지 오래다. 세계 각국은 지금 실용주의에 주목하고 있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프렌치 리포트] (28) ‘솔리다리테’의 힘

    프랑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진보적 색채가 강하다. 프랑스 대혁명이나 68혁명에서 보듯이 프랑스는 기존의 사회 모순에 저항하며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생산해 낸 나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권을 중시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우선시한다. 프랑스 사회를 진보성향으로 만들면서, 민주주의가 꽃피게 만든 보편적 가치는 다름 아닌 ‘솔리다리테(solidarite)’ 정신이다.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연대(連帶)의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좀 어렵다. 시위 현장에서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단순한 명제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공동의 선(善)이나 인류애의 실천을 위해 함께 행동하며,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인도주의적 공동체 의식이라고 이해하는 게 옳다. 톨레랑스가 프랑스인들의 정신적 토양을 이루는 사회적 가치라면 솔리다리테는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사회적 동력이 된다. ●박애정신에서 파생된 솔리다리테 솔리다리테의 뿌리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3대 이념 중 하나인 박애(博愛)다. 박애란 인종적 편견이나 국가적 이기심을 버리고 인류 전체의 복지증진을 위해 전 인류가 평등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인권존중과 인류애까지 포괄한다. 박애정신은 프랑스 사람들에게 유전자처럼 심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혁명이 일어난 지 2세기가 넘었음에도 여전히 ‘솔리다리테’로 형질을 드러낸다. 지난해 연말 프랑스 사회를 뜨겁게 달군 ‘빨간 텐트 시위’는 솔리다리테의 힘과 프랑스인들의 박애주의를 다시 한번 입증한 사건이었다. 노숙자들의 고단한 삶을 가슴 아파하면서 이들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대우에 분노한 영화 제작자 장밥티스트 르그랑과 영화배우 오귀스탱 르그랑 형제는 몇몇 친구들과 ‘돈키호테의 아이들’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다.‘돈키호테의 아이들’은 사비 3200유로를 들여 텐트 100여개를 구입, 지난해 12월16일 아침부터 생마르탱 운하변에 텐트를 설치하고 노숙자들에게 개방했다. 경찰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노숙자들을 위한 텐트가 200여개로 불어나고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노숙자의 어려움을 직접 체험하려는 파리 시민들이 몰려들었고 텐트촌은 세계적인 화제의 장소가 됐다. 대선을 4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각 당의 대권 후보들이 텐트촌을 찾아 지원을 약속했다. 노숙자 정책이 정치쟁점으로 부각되면서 ‘돈키호테의 아이들’ 대표단은 사회연대 담당 각료인 카트린 보랭을 만나 ‘생마르탱 운하 헌장’을 건네며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주문했다. 이 문서는 노숙자들 주거 문제를 다루는 상시 기구를 개설하고 임시 수용시설 추가 설치 등을 요구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프랑스 정부는 ‘주거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내용의 법률을 제정했다. 지난 2월 하원을 통과한 새 법안에 따르면 2008년 말부터 정부는 노숙자, 빈곤 근로자, 아이들과 함께 소외된 편모들에게 거처를 제공할 의무를 지닌다. 적절한 거처를 제공받지 못한 사람들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또 공공 주택 제공 요구에 관한 대처가 비정상적으로 지체되는 경우도 2012년 1월부터는 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 주거권을, 교육받을 권리처럼 법적 기본 권리로 보장한 것은 유럽에서 스코틀랜드에 이어 두 번째다. 솔리다리테는 프랑스인들에게 아주 소중한 사회적 가치다. 프랑스가 무척 개인주의가 발달한 반면 인류애에 대한 인식이 개개인에게 강하게 각인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인류애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존경받는다. 노숙자 공동체 엠마우스를 창설한 ‘빈민의 아버지’ 피에르 신부가 국민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것도 사리사욕을 떠나 박애정신을 스스로 실천하며 한평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시라크 전 대통령에게 좀더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하라고 대놓고 쓴소리를 할 수 있었던 인물이다. 피에르 신부가 1949년 만든 엠마우스회는 현재 50여개국에 회원과 시설을 가진 국제적 단체가 됐다. 지난 1월 그가 94세를 일기로 서거했을 때 프랑스 온나라가 애도했다. ●인류애를 중시하는 사람들 솔리다리테를 얘기할 때 지금은 고인이 된 코미디언 콜리슈를 빼놓을 수 없다. 퉁퉁한 몸매에 약간 머리가 벗어져 외모가 보잘것없는 사람인데 프랑스인들 사이에는 인기가 있었고 심지어 그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많았다. 콜리슈는 방송·영화 출연과 음반 취입 등으로 다양한 연예 활동을 하면서 1985년 ‘마음의 식당’이라는 뜻의 ‘레스토 뒤 쾨르(Restos du Coeur)’ 운동을 시작했다. 이 운동은 일자리도 없고, 거처도 없이 떠도는 가난한 사람들이 최소한 더운 식사를 식탁에 앉아서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자는 것이다. 콜리슈는 가수, 영화배우, 코미디언 등 동료 연예인들을 규합해 콘서트를 열어 모금활동을 하는 등 활발하게 운동을 펴던 중 오토바이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음은 물론이다.‘레스토 뒤 쾨르’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둔 비종교적 구호단체다.2007년 현재 4만 80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67만명에게 7500만끼의 식사를 제공했다. ●외교정책 전면에 나선 인권정책 프랑스는 시민사회답게 수많은 비영리 단체와 구호단체, 협회들이 있다. 통계에 따르면 90만개의 구호단체나 협회가 있으며 매년 6만 5000개씩 새로 만들어진다. 전체 인구 4만 5000명에 불과한 앙굴렘이라는 도시에 2000개의 구호단체가 활동한다. 전체 노동력의 5%에 해당하는 130만명이 상근하고 있다니 고용효과도 크다. 최근 당선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인도주의 구호 활동가 베르나르 쿠슈네르를 외무장관에 임명했다.1971년 ‘국경없는 의사회(MSF)’를 창설한 인도주의 의사로 1997년 보건장관과 코소보 행정관을 역임했다. 좌파인사인 그를 영입해 외무장관에 임명했다는 것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가 인권 정책을 한층 강화할 것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lotus@seoul.co.kr
  • 佛 사르코지 바람 총선까지 갈까

    |파리 이종수특파원|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내세운 ‘변화’가 총선으로 이어질까. 새달 10,17일 치르는 프랑스 총선의 공식 선거운동이 21일 시작됐다. 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은 안정된 개혁을 위해서는 과반 의석 확보가 필수적이라 보고 총력전을 펴고 있다. 야당인 사회당은 대선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이번 총선은 사르코지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변화에 힘이 실릴지를 가늠할 잣대여서 주목된다. 이날 발표된 TNS-소프레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40%가 UMP후보에 투표하겠다고 밝혔다. 사회당 후보를 찍겠다는 응답자는 28%였다. 또 UMP나 정책 연대세력이 전체 의석인 577석의 절반을 넘는 365∼415석을 확보할 것이라는 응답이 많았다. 사회당이나 정책 연대세력의 예상 의석수는 137∼153석으로 나타났다. 한편 대선에서 중도파 바람을 몰고온 프랑수아 바이루 후보가 창당한 민주운동(MODEM)은 2∼10석을 확보할 것이라는 응답이 많아 중도파 돌풍이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vielee@seoul.co.kr
  • 김정환 펜싱 사브르 국제대회 첫 金

    무심코 복용한 수면제 탓에 도핑테스트 양성 반응이 나와 선수 자격을 정지당하는 아픔을 겪었던 김정환(24·경륜운영본부)이 한국 펜싱 남자 사브르 사상 처음으로 국제대회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세계 41위 김정환은 21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개최된 월드컵 A급 대회(개인전만 치르는 대회)인 보우오디요프스키 사브르대회 결승에서 세계 8위인 니콜라스 림바흐(독일)를 15-13으로 꺾고 우승했다. 한국 펜싱은 이로써 국제 대회에서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했던 남자 사브르 정상에 올랐다.32강에서 세계 1위 솔트 넴칙(헝가리)을 15-14로 꺾고 파란을 일으킨 김정환은 4강에서도 세계 7위 미하이 코발류(루마니아)를 15-14로 제치고 결승에 진출했다. 특히 지난 3월 불가리아 그랑프리 대회에서도 동메달을 따내 2008년 베이징올림픽 전망을 밝게 했다. 상대 몸통이나 전신을 향해 찌르기만 할 수 있는 플뢰레, 에페와 달리 사브르는 칼끝과 칼날, 칼등을 모두 사용해 찌르기, 자르기, 베기를 하는 종목. 유럽의 텃세가 가장 심하다. 아시아 강국으로 꼽히는 중국도 유럽에 가면 성적을 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한국 펜싱은 이 종목에 대한 투자와 노력으로 결실을 보게 된 것. 김정환은 한국체대 4학년 때인 2005년 SK텔레콤 국제그랑프리에서 사브르 1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하지만 대회를 앞두고 긴장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해 수면제를 복용했던 게 탈이 났다. 수면제에 이뇨제가 포함된 탓에 도핑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고 국제펜싱협회(FIE)는 메달 박탈과 1년간 선수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로 인해 도하아시안게임에도 나서지 못했으나 지난 2월 선발전 1위로 대표팀에 복귀했다. 그를 고교 때부터 지도한 서범석 경륜운영본부 펜싱팀 감독은 “김정환은 순간적인 판단이 빨라 올림픽에서도 충분히 통할 재목”이라면서 “원우영 오은석 등과 함께 베이징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라시다 다티 프랑스 새 법무장관

    |파리 이종수특파원|‘화장품 판매원, 간호조무사에서 법무장관까지.’ 라시다 다티(42) 프랑스 신임 법무장관의 ‘인생역정’이 화제다. 그녀는 지난 18일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단행한 ‘1기 내각’에서 프랑스 제5공화국에서 이민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장관, 그것도 내각 서열 7위의 법무 장관에 임명돼 눈길을 끌었다. 특히 그녀가 가난한 집안 환경탓에 고학으로 열정적으로 학업을 이어가면서 남다른 성취 욕구로 자수성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잔잔한 감동을 불러모으고 있다. 그녀는 1965년 11월27일 프랑스 동부 소도시 샬롱-시르-사온에서 모로코 노동자 출신의 아버지와 알제리인 문맹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넉넉하지 않은 수입으로 영세민용 임대아파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2남매 가운데 둘째로 태어난 그녀는 공부에만 전념할 수 없어 ‘주경야독’을 해야 했다.14세때는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화장품 판매원을 하기도 했다.16세부터 18세까지는 밤에 간호조무사로 일하면서 공부했다. 당시 그녀가 일했던 생-마리 병원의 간부인 샹탈 로베르는 “1980년대 중반쯤 우리 병원에서 일을 했는데 여름방학 때는 거의 매일 일하다시피했다.”며 “자기에게 엄격하고 성공할만한 자질이 보였는데 법무장관이 돼 자랑스럽다.”고 회고했다. 다티 장관의 삶은 1986년 알뱅 샬랑동 당시 법무장관을 만나면서 큰 전환기를 맞았다. 주 프랑스 알제리 대사관에서 열린 만찬에서 샬랑동 장관을 만난 그녀는 “일자리를 좀 구해달라.”고 당차게 부탁했다.20여년 뒤 법무장관이 될 ‘재목’을 알아봤을까? 다티의 사연을 들은 샬랑동 장관은 다음날 식사를 대접하며 정유회사인 엘프 아키텐느사에 추천서를 써주고 직접 전화까지 했다. 샬랑동 장관의 도움으로 그럴듯한 회사에 처음 취업하게 된 그녀는 3년 동안 회계원으로 일하며 디종의 부르고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이어 석사를 마친 뒤 마트라 통신사에 입사해 회계사로 전문성을 키워갔다. 이어 사주인 장 뤼 라가르데르의 눈에 띄어 영국의 유럽재건개발은행에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국제적 경험을 쌓았다. 내친 김에 1997년 2년 과정의 국립사법학교에 입학해 영역을 넓혔다. 이어 보비니 지방법원 연수생을 거쳐 아미앵 고등법원 재판소 판사, 에브리 법원 검사 등을 거쳤다. 매사에 적극적이었던 그녀는 사르코지가 내무장관 시절에도 “함께 일을 하고 싶다.”고 편지를 보냈다. 두 차례나 답장이 없었지만 세번째 편지를 보내 사르코지의 허락을 받아냈을 정도로 집념이 강했다. 마침내 2002년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2007년 1월엔 사르코지 후보의 공동대변인으로 활약했다. 법무장관 임명 소식을 듣고 “굉장한 순간이고 내겐 큰 영예”라고 일성을 터뜨린 그녀는 “대통령이 보여준 기대에 부응, 프랑스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vielee@seoul.co.kr
  • 佛 사르코지 1기 내각 출범

    |파리 이종수특파원|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신임 대통령의 1기 내각이 18일(현지시간) 출범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전날 프랑수아 피용 총리를 임명한 데 이어 이날 알랭 쥐페 전 총리를 수석장관격인 ‘국가 장관’ 타이틀과 함께 환경 및 지속적 개발·정비 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15명의 장관 인사를 단행했다.7명은 사전 예고한 대로 미셸 알리오 마리 내무·해외영토 장관 등 여성 인사 몫으로 할당했다. 또 대통령 비서실장에 클로드 게앙, 신설한 미국식 외교보좌관직에 장다비드 르비트 주미 프랑스 대사를 임명했다. 이번 인사의 특징은 내각의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한 것이다.16개 부서의 업무를 재편해 15개 부서로 묶었고 장관 밑에 있던 부장관격인 13명의 ‘담당 장관’을 없앴다. 이에 따라 각료회의 참가 인원이 줄어 정책결정 과정이 단축되고 대통령이 직접 국정을 관장할 여지가 많아졌다. 또 부처간 업무를 조정하던 ‘국가 비서관’을 10여명선으로 유지해오다 4명으로 대폭 줄인 것도 정책 결정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한편 대선 과정에 사르코지를 적극 지지한 쥐페 전 총리에게 국가장관 자격을 준 것이나 대선 출마를 포기하고 자신을 지지한 알리오 마리를 핵심 수저인 내무 장관에 임명한 것은 친정 체제를 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측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회당 인사를 임명함으로써 ‘통합 정치’ 이미지도 제고했다. 이를 위해 사르코지는 지난 주말 사회당 소속 전직 장관 3명을 비롯, 야당 인사들을 잇따라 만나 입각을 제안했다. 그 가운데 상징성이 큰 베르나르 쿠슈네르를 외무·유럽담당장관에 임명했다.‘국경없는 의사회’를 창설한 그는 인도주의 활동가로 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인사다. 또 사회당 인사를 내각에 임명함으로써 대외적으로는 ‘통합 의지’를 과시하는 한편 사회당의 내분을 유도하는 간접 효과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사회당은 쿠슈네르 입각설이 돌면서부터 ‘배신자’ 등 극한 표현을 쓰면서 반발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제1서기는 “행동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며 입각할 경우 탈당할 것을 시사하는 발언도 했다. 또 “사르코지와 잘 해보시오.”라며 꼬집었다. 다음은 내각 명단.▲경제·재무·고용 장루이 보를루 ▲이민·국가정체성 브리스 오르트푀 ▲법무 라시다 다티 ▲노동·연대 크사비에 베르트랑 ▲교육 크사비에 다르코 ▲고등교육·연구 발레리 페크레스 ▲국방 에르베 모랭 ▲보건·스포츠 로젤린 바셸로 나르캥 ▲주택 크리스틴 부탱 ▲농수산 크리스틴 라가르드 ▲문화 및 정부 대변인 크리스틴 알바넬 ▲예산 에릭 뵈르트vielee@seoul.co.kr
  • [씨줄날줄] 강한 유럽론/함혜리 논설위원

    요즘처럼 유럽에 활기가 넘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유럽연합(EU)은 로마조약 체결 50주년을 맞아 27개 회원국의 세계 최대 경제공동체로 성장했다. 경제성장률도 지난해 2.9%로 6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유로화는 강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생산성은 증가하고 있다. 그 동력은 EU를 주도해 온 세나라, 즉 독일·프랑스·영국 지도자들의 세대교체와 이에 따른 긍정적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라고 본다. 유럽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영국 중심의 친미와 프랑스·독일 중심의 반미로 양분됐다. 부시 미 대통령을 지지하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에 대해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맞섰다.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던 이들이 모두 물러났다. 반목의 시대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신 ‘강한 유럽론’을 중심으로 유럽이 다시 뭉치고 있다.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지난 16일 취임식 직후 베를린으로 날아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만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드골과 아데나워에서 시작된 프랑스와 독일의 끈끈한 우호관계는 미테랑-콜, 시라크-슈뢰더로 이어졌다. 사르코지-메르켈이 그 뒤를 이은 셈이다.52살 동갑내기인 두 정상은 공통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우호를 강조한다. 아주 실용적인 이유에서의 친미노선이다. 이들은 특히 ‘강한 유럽’의 건설에 공감한다. 두 정상은 첫 회담에서 강한 유럽의 건설을 위해 유럽헌법의 부활이 시급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메르켈과 사르코지가 의기투합하면서 지난 2005년 5월 프랑스의 비토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EU헌법 부활 논의는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블레어 총리의 뒤를 이을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관심사다. 분명 블레어 총리와는 다를 것이다. 유럽의 언론은 메르켈-사르코지-브라운-바로수 EU집행위원장의 라인업을 일컬어 ‘드림팀’이라고 부른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EU회원국 국민들 대부분은 EU가 미래에 더욱 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강한 유럽을 위해 이들이 어떤 활약을 펴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佛 새총리에 ‘개혁파’ 피용

    |파리 이종수특파원|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신임 대통령은 17일 개혁 성향의 우파 정치인 프랑수아 피용(53)을 새 총리로 임명했다. 집권 대중운동연합(UMP) 소속 상원의원인 피용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대선 선거운동을 이끌었다. 연금제도와 주 35시간 근로제 개편 등을 추진한 경험이 있는 피용은 사르코지 측근 가운데 좌파로부터의 거부감이 가장 적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자신의 노동개혁과 복지법안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유화적인 인물을 총리에 기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피용은 한때 기자가 되려고 AFP통신사에서 견습생활을 했다. 하지만 곧 정계로 진로를 바꿔 중서부 사르트에서 하원 의원으로 본격적인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2002년 장피에르 라파랭 총리 밑에서 사회문제 장관을 맡으며 경제 분야 개혁 정책을 폈고,2004년 교육장관 때는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의 개혁을 추진하다 반발에 부딪혔다.2005년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안이 부결된 뒤 총리의 퇴진과 함께 경질되자 사르코지 캠프에 합류했다. 영국 웨일스 출신의 부인 페넬로프 카트린 피용(51)과의 사이에 다섯 남매를 두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총리 임명에 이어 18일 새 내각 구성을 발표할 예정이다.15개 각료직 중 7∼8개 자리를 여성 인사로 채우고 주요 자리에 야당 인사를 과감하게 기용할 것으로 예상된다.vielee@seoul.co.kr
  • “佛이여 단결하라” 시라크 TV 고별연설

    |파리 이종수특파원|“내일, 저는 국민을 대신해 니콜라 사르코지 신임 대통령에게 제 권한을 넘겨줍니다.” 자크 시라크(75)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저녁 8시 퇴임 고별 연설을 끝으로 12년 동안의 ‘엘리제궁 생활’을 마감했다. 전국 TV·라디오로 생중계된 이날 연설에서 시라크 대통령은 만감이 교차한 듯한 표정으로 소회를 털어놓았다. 먼저 “조국의 미래에 대한 큰 신념과 자부심을 갖고 업무를 수행했다.”고 말문을 연 뒤 특유의 또박또박한 어조로 감성을 실어 5분 동안의 연설을 이어갔다. 짙은 회색 정장에 줄무늬 넥타이를 맨 그는 특히 ‘단결과 연대’를 몇 차례 강조했다.“국가는 가족”이라고 말한 뒤 “항상 단결하고 연대감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물론 우리는 근본적으로 다양하고 인식과 시각의 차이가 있지만 대화와 타협을 추구해야 한다.”면서 “단결과 실천 속에서 프랑스는 발전과 번영의 전범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vielee@seoul.co.kr
  • 프랑스 ‘사르코지 시대’ 막 올랐다

    |파리 이종수특파원|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가 16일(현지 시간) 오전 11시 관저인 엘리제 궁에 입성하면서 5년 임기의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했다. 취임식은 전통에 따라 신·구 대통령의 만남에 이어 간단하게 진행됐다.●시라크와 40여분 비공개 환담퇴임하는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10시58분 엘리제궁 입구에 나와 신임 사르코지 대통령을 영접했다. 두 사람은 바로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 비공개로 40분여 대화했다. 그 과정에 사르코지는 시라크로부터 핵무기고 비밀코드를 넘겨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사르코지는 시라크와 악수를 한 뒤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엘리제궁의 주인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엘리제궁으로 돌아온 사르코지는 장 루이 드브레 헌법위원장의 취임 선언에 이어 대통령 훈장을 받은 뒤 서명했다. 사르코지는 환영객 앞에서 국가 원수 자격으로 처음 연설했다. 그는 “국민이 나에게 통치권을 위임했기에 그 신뢰에 부응하고 면밀히 수행할 것”이라며 “국제 경쟁 시대에서 변화에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순간 앵발리드에서는 21발의 축포가 발사됐다.●엘리제궁 앞 도로 환영 인파 이날 취임식에는 사르코지의 가족과 친구, 전날 사퇴서를 제출한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 의회 지도자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한편 이날 취임식에는 외신 기자 200여명이 몰려 취재에 열을 올렸다. 또 엘리제궁 앞 도로에는 시민 500여명이 신·구 대통령이 지나갈 때 손을 흔들며 반겼다. 한편 대선 결선투표 불참으로 화제가 된 새 영부인 세실리아는 이날 소매가 없는 진주빛 원피스를 입고 5명의 자녀들과 함께 환영객을 맞았다. 사르코지는 취임식 뒤 개선문의 무명용사 묘를 참배한 뒤 샹 젤리제 거리의 샤를 드 골 장군 동상에 헌화했다. 가는 도중 사르코지는 환영 인파에게 다가가 악수를 하며 화답했다. 이어 파리 서쪽 외곽 불로뉴 숲으로 가서 2차 세계대전 때 학생 저항군이 독일군에 처형당한 장소를 방문했다.●피용 총리 임명… 내각 인선은 미뤄 사르코지는 공식 취임 행사가 끝난 뒤 바로 독일로 날아가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어 15명의 내각 인선 구상에 돌입했다. 애초 17일 내각 인사를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사회당 소속 전직 장관 등의 임명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느라 프랑수아 피용 전 교육장관만 총리로 임명하고 나머지 장관 인선은 미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측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회당 리오넬 조스팽 총리 시절 보건장관을 지낸 베르나르 쿠슈네를 외무장관에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 일간 르 피가로는 14일 내각 인선과 관련 “경제·고용 전략장관에 장-루이 보를루 현 고용·연대 장관, 국방장관에 에르베 모랭, 문화장관에 크리스틴 알바넬 등이 임명될 예정”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퇴임한 시라크 부부는 모로코로 휴가를 다녀온 뒤 센 강 주변의 아파트에 임시로 머물다 거처가 마련되면 이사할 예정이다.vielee@seoul.co.kr
  • [월드이슈] 토니블레어 ‘제3의 길’ 10년 평가

    [월드이슈] 토니블레어 ‘제3의 길’ 10년 평가

    |파리 이종수특파원|블레어는 가도 ‘블레어리즘’은 남는다? 영국 언론들은 지난 10일 공식 사임 의사를 밝힌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10년’에 대해 이라크 파병으로 빛이 바랬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블레어리즘’이라고 불리는 그의 10년은 영국은 물론 유럽 대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노동당 개혁에서 시작해 영국, 잠자던 유럽 대륙을 깨운 블레어리즘이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집중 분석해 봤다. “어떤 정권이든 실수를 하지만 ‘제3의 길’은 성공했다.” 토니 블레어가 선택한 ‘제3의 길’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 런던 정경대 교수는 지난 9일 프랑스 일간 르 몽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단정했다. 이어 그는 “신노동당은 중도 좌파로서 사회적 정의와 경제번영을 결합시키는 개혁 프로젝트를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경제를 가장 중시한 모델” 블레어가 추진한 ‘제3의 길’은 시장 경제와 유럽의 전통적인 복지국가 모델을 결합한 것이다. 경제발전 없이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무력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블레어리즘은 경제 특히 공공서비스 분야 확충에 주력했다. 공공분야의 투자를 대폭 늘려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45.4%까지 늘렸다. 그 결과 10년 동안 7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고 취업률을 75%대까지 끌어 올렸다. 특히 교육·보건 분야에서만 각각 30만,22만 4000여개의 일자리를 만들었다.JP모건 체이스 은행의 경제분석가 말콤 바는 “영국의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공공 서비스를 확충했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는 다양한 거시경제 수치에서 잘 드러난다.10년동안 경제성장률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그가 집권한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연평균 2.8%에 이르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 전망치는 3.25%다. 또 블레어시대 출범 직후인 1998년에 7.5%였던 실업률도 10년동안 4∼5%대로 내렸다. 인플레이션율도 2.6%에서 지난해 2.2%로 내렸다. 경제성장률과 인플레이션율은 선진7개국(G7) 가운데 가장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의 발전상은 프랑스와 견줘보면 극명해진다. 프랑스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1%였다. 그나마 최근 들어 나아진 것이다. 실업률도 8.3%에 이른다. ●‘잠자던 유럽’을 깨우다 블레어가 주창한 ‘제3의 길’은 프랑스와 독일 등 ‘낡은 대륙’ 유럽을 흔들었다. 그의 등장 이후 시장경제 혹은 영국과 미국식 발전 모델을 추진하려는 국가들이 늘어났다. EU 순회의장국인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미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새 대통령도 후보시절 공공연하게 ‘영·미식 발전 모델’을 주창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 후보측도 “사회당이 지향할 성공모델은 블레어 총리가 이끈 노동당의 변화과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블레어는 또 유럽 통합에도 역동성을 불어넣었다. 그는 “유럽연합(EU)은 영국의 미래와 불가분의 관계”라고 주장하면서 2005년 크로아티아와 터키의 EU 가입 협상을 추진하는 등 유럽 통합에 박차를 가했다. 나아가 주제 마누엘 바로수 EU집행위원장과 함께 EU의 주축이던 프랑스와 독일을 변방으로 몰아내면서 대륙 통합과 시장경제 도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독일 사민당의 유럽의회 의원인 엘마르 브로크는 “블레어는 유로존 가입과 EU헌법 채택에 주저했지만 유럽통합에는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vielee@seoul.co.kr ■ 교육·빈곤퇴치 등 ‘삶의 질’ 대폭 개선 |파리 이종수특파원|블레어리즘 10년은 영국 사회의 여러 분야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블레어가 비록 ‘이라크 파병’이라는 암초를 만나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국내 분야로 눈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10년 사이에 영국 국민들이 체감하는 변화로 공공 서비스를 꼽은 뒤 구체적으로 ▲교육 ▲보건 ▲빈곤퇴치 분야에서 삶의 질이 대폭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공교육 강화…아동문맹률 41%→21%로 이에 따르면 블레어가 비중을 둔 ‘빈곤과의 싸움’은 두가지 축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세금공제 정책 등으로 53%의 빈곤층이 혜택을 봤다. 또 세제시스템 개혁으로 어린이 3명 가운데 1명꼴이었던 빈곤 아동이 현재 60만명 이하로 줄었다. 다른 축은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지원 확대다. 특히 ‘슈어 스타트’(빈곤 아동 구제정책)을 내걸고 3500여곳의 아동센터를 중심으로 아동 보육·건강·조기교육에 박차를 가했다. 22만여명의 인력을 늘려 공교육 강화에 나섰다. 급식여건 개선, 스포츠·문화 활동 등 방과후 수업 강화로 사립학교 의존율이 낮아졌다. 읽고 쓰기, 간단한 계산을 할 수 있는 아동 비율도 59%에서 79%로 늘어났다. 병원·학교 환경도 크게 나아졌다.10년 전에는 환자나 학생들은 지붕이 낡은 건물, 심지어 2차대전때 지은 건물에서 진료를 받거나 수업을 했다. 그러나 대부분 새 건물로 단장됐다. ●보건환경등 공공서비스도 눈부신 발전 이에 힘입어 국민들이 체감하는 공공서비스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공립 병원에 30만여명의 고용을 늘리면서 보건환경을 대폭 개선했다. 통계에 따르면 10년 전에는 공립 병원에서 한번 수술을 받으려면 6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국민이 28만 3800여명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199명으로 급감했다. 이에 따라 사립병원을 찾는 횟수도 줄어들고 사보험 가입 비율도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암·심장병으로 인한 사망률도 크게 줄었다. 부수적으로 공무원의 위상과 처우도 많이 나아졌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국민 70% 이상이 교사를 지망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또 노동시간 유연화, 유급 출산휴직제 등으로 여성 근로조건도 대폭 개선됐다. 블레어가 도입한 최저임금제의 혜택도 대부분 여성에게 돌아갔다. 이밖에 19세기 수준의 철도 사고 비율도 획기적으로 나아졌다는 분석이다. vielee@seoul.co.kr ■ ‘포스트 블레어’ 경제기조 안바뀔듯 |파리 이종수특파원|토니 블레어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국제 무대에서 주목받은 사람이 후임 총리로 유력한 고든 브라운(57) 재무장관이다. 그가 다음달 24일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차기 당수로 선출돼 총리가 될 경우 어떤 점에서 블레어리즘과 만나고 어디에서 갈라질지 주목된다. 현재까지 나온 유럽 언론의 전망을 종합하면 전반적으로 ‘브라운 시대’는 블레어리즘의 연장선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주된 이유는 그가 블레어의 ‘정치적 동지’로서 블레어리즘을 자리잡게 만든 주역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잉글랜드 은행 독립이다. 그는 “정치 논리에서 벗어나 경제 논리에 맞게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잉글랜드 은행을 밀어붙였다. 경제정책에 이어 외교정책도 블레어 시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브라운은 최근 좌파인 파비앙 소사이어트가 마련한 정견 발표장에서 “미국과 유럽의 가교 역할을 한 블레어 총리의 정책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약간 비판적이던 이전 입장에서 한걸음 물러나 “자유와 기회균등, 특히 개인의 자유라는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항상 강력하면서도 특별한 관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블레어의 지지율 추락을 가져온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도 “상황이 급변하고 있는 데다 지금도 이라크 정부와 국민이 주둔을 원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영국 주둔군을 철수하면 ‘잘못된 행동’”이라고 밝혀 블레어와 비슷한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서방과 갈등을 빚고 있는 이란 핵문제에 대해서는 국제적 협력과 조율을 통해 풀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다국간 공동정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북아일랜드식 해법’을 내놓았다. 두 국가를 모두 인정하면서 경제개발 지원을 통해 평화를 정착시킨다는 복안이다. vielee@seoul.co.kr
  • 사르코지 ‘야당 끌어안기’ 나서나

    사르코지 ‘야당 끌어안기’ 나서나

    |파리 이종수특파원|‘야당 끌어안기냐? 분열 유도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가 21일 매듭지을 ‘1기 내각’ 구성을 위해 사회당 소속 전직 장관 등 4명을 잇달아 만나 장관직을 제의하거나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사회당이 강력 반발하고 사르코지측 인사들도 불만을 표시하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다. 사르코지는 당선 이후 조각에 대해 ‘개방원칙’을 강조해 왔다. 사르코지는 14일(현지시간) 저녁 베르나르 쿠슈네르 전 보건장관을 직접 만나 외무장관직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론에서는 쿠슈네르가 최근 몇 차례 장관직을 제안받았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국경없는 의사회’를 창설한 쿠슈네르는 1988년 사회당 내각에 참여했고, 리오넬 조스팽 총리 밑에서 보건장관을 지낸 조스팽 내각의 상징적 인물이다. 르몽드는 이날 “사르코지 당선자가 조스팽 총리 시절 교육장관을 지낸 클로드 알레그르를 비롯,11일에는 외무장관을 지낸 위베르 제드린 ‘프랑수아 미테랑 연구소’ 소장, 미테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안 로베르죵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이밖에 조스팽 총리 시절 부국장을 역임한 피에르주에도 만났다. 이에 사르코지는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사르코지의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입각 가능성이 알려지자 사회당은 발끈했다. 새달 10일,17일 총선을 앞두고 사회당의 전력 약화를 노린 전략으로 풀이하는 분위기다.12일 파리에서 열린 사회당 총회에서 세골렌 루아얄의 동거 파트너이자 제1서기인 프랑수아 올랑드는 “그동안 말하거나 행동한 것에 충실하려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며 “(이들이)사르코지 정책에 반대해온 사회당의 일원으로서 앞으로 사회당에 계속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며 입각하려면 탈당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했다. vielee@seoul.co.kr
  • 佛 기사 사전검열 논란

    |파리 이종수특파원|프랑스 차기 퍼스트레이디인 세실리아 사르코지가 자신의 대선 결선투표 불참을 밝힌 기사의 ‘사전 검열’ 파문에 휩싸였다. 일간 리베라시옹지 기자 출신들이 만든 웹 사이트 ‘뤼 89’는 13일(이하 현지시간) “세실리아가 지난 6일 남편 니콜라 사르코지의 운명을 결정하는 대선 결선투표에 참가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고 지적한 뒤 “일요신문 르 주르날 뒤망슈(JDD) 기자들이 이를 취재한 뒤 신문에 보도하려 했으나 사주의 압력으로 기사가 누락됐다.”고 밝혔다.JDD 사주인 아르노 라가르데르가 사르코지 대통령 당선자의 친구임을 들어 기사 ‘검열 논란’ 의혹을 제기했다. ‘뤼 89’는 이어 “JDD 기자들이 사르코지 부부가 선거 당일 어떻게 보냈는지를 취재하다가 세실리아가 속한 투표인 명부를 보고 투표 불참 사실을 발견했다.”고 전했다.또 자크 에스페랑디외 JDD편집국장이 12일 기자들에게 세실리아에 이 사실을 알릴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답변을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에스페랑디외 편집국장은 “개인의 사생활에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해 기사를 보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그러나 ‘뤼 89’는 “사르코지의 측근들이 이번 파문에 개입됐다.”며 구체적으로 대선 캠프의 언론 책임자인 클로드 게옹 대변인과 프랑크 루브리에를 거명했다. 지난해 8월에도 ‘세실리아 염문설’을 게재한 주간 파리마치 편집장이 사르코지와 친한 사주 압력으로 좌천당한 적이 있어 이번 ‘사전 검열’ 파문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당시 파리마치는 세실리아가 7개월 동안 광기이벤트 전문가인 리샤르 아티아스와 뉴욕과 파리를 오가며 휴가를 함께 보낸 사실을 보도하면서 표지에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사진을 게재해 화제가 됐다.vielee@seoul.co.kr
  • 나달, 클레이코트 76연승

    ‘왼손잡이 천재’ 라파엘 나달(세계2위)이 클레이코트 76연승을 달리며 특정 코트 연승 신기록을 세웠다. 나달은 13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벌어진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마스터스시리즈 단식 4강전에서 러시아의 니콜라이 다비덴코(4위)를 2-1로 힘겹게 따돌리고 결승에 진출했다. 클레이코트에서만 76연승 행진을 벌인 나달은 이로써 ‘코트의 악동’ 존 매켄로(미국)가 보유 중이던 특정 코트 연승 기록의 새 주인공이 됐다. 매켄로는 지난 1983년 9월부터 1985년 4월까지 실내 카펫코트에서 75연승을 기록했었다. 나달은 “신기록을 세워 좋지만 그보다 결승에 오른 게 더 기쁘다.”며 혈전 끝에 낚아챈 귀중한 승리를 더 높게 자평했다. 나달은 호주오픈 준우승자 페르난도 곤살레스(6위·칠레)를 상대로 대회 3연패를 저울질한다. 한편 이번 대회 3회전에서 와일드 카드로 출전한 필리포 볼란드리(53위·이탈리아)에게 패해 탈락한 페더러는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로체 코치와 결별하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고 밝혔다.2005년 호주오픈부터 2년 반 동안 손발을 맞춰온 파트너. 이반 랜들과 패트릭 라프터 등 최고 선수들을 지도했던 실력파 지도자로 페더러와 호흡을 이루면서 여섯번이나 매이저대회 타이틀을 합작했다. 올해 전반기에만 4패를 안은 데다 최근 4차례 연속 우승권과는 거리가 먼 성적에 그친 페더러로서는 이번의 결정은 변화에 대한 필요성을 깊이 자각한 조치로 풀이된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특파원 칼럼] 佛 대선에 대해 알고 싶은 두세가지/이종수 파리 특파원

    프랑스 대통령선거가 끝났다. 아직 후유증이 가시지는 않았다. 니콜라 사르코지 당선자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3번째 대선에 패배한 사회당은 내분 조짐마저 보인다. 이번 대선은 내부 경선 기간을 포함하면 6개월 장정이었다. 참신한 이미지의 세골렌 루아얄의 부상, 사르코지와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갈등, 중도파 프랑수아 바이루의 돌풍…. 이처럼 극적 반전이 많아 볼 만한 드라마였다. 기자는 그 과정에서 권력의지의 ‘닮음’도 확인했지만 한국 대선 시스템과의 ‘차이’도 목도했다. 그래서 한국 맥락에서는 이해 안되는, 오해를 할 수 있는 점을 짚어보고 싶어졌다. 먼저, 사르코지 승리의 함의. 사르코지가 이겼다고 프랑스 사회가 우경화됐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혹은 프랑스 사회가 미국·영국식으로 빠르게 변할 것이라는 걱정도 들린다. 과연 그럴까. 기자가 보기에 사르코지는 철저한 실용주의 정치인이다. 정치인의 실용은 ‘표’다. 그런 그가 갑작스럽게 사회를 오른쪽으로 기울게 하거나 표나게 친미를 외칠 수 있을까. 자신의 정책이 좌파의 반대에 부딪치면 그가 개혁하려는 좌파적이며, ‘프랑스적인 것’의 하나인 광범위한 공공 서비스도 유지될 지 모른다. 국익에 어긋날 때는 미국과 각을 세울 수도 있다. 게다가 비록 패배했지만 사회당 루아얄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 47%를 무시하지 못한다. 실제 그의 승리는 철저한 표 계산에 힘입었다.‘함께 살자’는 공동체적 정신만으로는 세계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고 불안해하는 유권자들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변화’를 내세웠다. 그리고 공약 하나하나에 ‘구체적 리더십’을 실었다. 필요할 경우 중도파나 극우파 유권자를 향한 공약도 제시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비전 제시다. 결선투표 직전 열린 루아얄과의 TV토론을 보자. 그녀는 주도권을 잡으려 톤을 높였지만 추상적이었다. 반면 사르코지는 강경 이미지를 불식시키려 수세적 모습을 보이되 구체적 수치로 조목조목 반박했다. 결과는 뻔했다. 구체성이 결여된 루아얄의 이미지 정치는 졌다. 둘째, 극우파와 노동자의 친화력. 극우파 후보 장-마리 르펜은 1차투표에서 10.44%의 득표율로 2002년 대선에 비해 추락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지지는 높았다. 그의 득표 가운데 28%가 노동자다. 다른 후보에 견줘 높다. 루아얄 지지층의 21%, 사르코지 20%, 프랑수아 바이루 17%가 노동자의 표였다. 르펜은 1차투표 직전 TV에 출연,“20년전부터 공산당은 노동자와 유리됐다.”며 “이제 내가 그들의 대변자”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 역시 노동자들의 표심을 읽었다. 그의 표적은 이민 와서 정착한 노동자이거나 백인 노동자다. 대부분이 유럽 확대로 외국인 노동자가 새로 들어와 일자리가 줄어들까 두려워한다. 르펜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그 결과 1995년,2002년 대선에서도 르펜에게 가장 환호한 계층이 노동자들이다. 마지막으로 결선투표의 함의. 한국과 달리 프랑스 대선은 절대 과반 득표자를 뽑는다.1차투표에서 한 후보가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결선투표를 치른다. 다음달의 총선방식도 같다. 샤를 드골은 1965년 첫 직선제 대선 당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의 권위는 의회의 다수파에 대칭하면서도 이를 초월하는 개념”이라며 ‘대통령의 다수 개념’을 제안한다. 물론 결선투표 비용은 적지 않다. 그러나 감수할 만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대통령은 ‘정당성’과 ‘권위’를 지닌다. 뒤집어 보면 이는 고스란히 유권자의 책임으로 돌아온다. 당신들 절반 이상이 인정했으니 믿고 따라오라는…. 덧붙여 질문 하나. 프랑스 대선의 함의가 한국 대선 국면에 어떻게 비칠까. 예를 들어 결선투표를 도입하면 지역감정 해소에 도움이 될까, 아니면 결선투표 기권율이 높아질까. 이종수 파리 특파원 vielee@seoul.co.kr
  • [프렌치 리포트] (27) 나폴레옹·드골 그리고 사르코지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단번에 떠오르는 인물이 나폴레옹과 드골이다. 프랑스 어디를 가나 이들 두 사람의 거대한 그림자를 피할 길이 없다. 그만큼 나폴레옹과 드골은 프랑스 근·현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프랑스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혼란과 격동의 시대였기에 두 인물의 지도력은 더욱 빛을 발했을지 모른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대혁명 이후 혼란의 와중에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제도 전반에서 근대국가로서 프랑스의 기틀을 다졌다. 샤를르 드골(1890∼1970)은 2차 대전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10년 만에 기적적으로 일으키고 프랑스를 독일과 맞먹는 공업대국으로 만들었으며 유럽통합의 주역이 됐다. 지나치게 강한 자아(自我),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한 탓에 부정적인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투철한 국가관과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은 ‘강력하고 위대한’ 프랑스를 건설하는 원동력이 됐다. ●나폴레옹이 없었다면? 1840년 12월15일 아침,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나폴레옹의 유해가 개선문을 지나 샹젤리제와 콩코드 광장을 거쳐 앵발리드(상이군인병원이라는 뜻) 앞 마당에 도착했다.10만명의 파리 시민들이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은 지 19년 만에 파리에 돌아온 영웅 나폴레옹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나폴레옹의 유해는 그의 유언대로 센강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앵발리드 지하에 안치됐다. 나폴레옹처럼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뛰어난 재략과 강력한 의지로 정상에 오른 전쟁영웅이지만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터로 내 몬 침략자이자 독재군주였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어찌됐건 그는 52년의 짧은 생애 동안 프랑스 역사에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200년 전 나폴레옹이 만든 많은 제도들이 아직까지 프랑스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그는 전국을 현(縣)이라고 불리는 98개의 행정단위로 나누었다. 오늘날까지 존속하는 이 행정단위는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시켰으며 행정능률을 배가시켰다. 그는 또 수백년간 이어져온 방대하고 모순된 구법전과 법률을 재정비해 간결명료한 최초의 근대적 민법인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했다. 세습 귀족제의 폐지, 상속권의 평등, 인종차별 철폐, 결혼과 이혼의 자유 등을 규정한 이 법전은 나폴레옹 원정군에 의해 전 유럽에 퍼져 근대 유럽국가들의 법전편찬에 본보기가 됐다. 그는 국립 프랑스 은행을 설치하고, 전국에 세무소를 설치해 국가 재정을 확보했다. 근대적인 교육제도를 만든 것도 나폴레옹이었다. 프랑스 역사상 그만큼 프랑스를 변화시킨 인물은 없었다. 파리의 모습도 바꿔놓았다. 그는 파리를 통치의 중심지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범 도시로 만들기로 작정하고 새로운 거리, 웅장한 건물, 분수대 등을 짓도록 했다. 그 중 하나가 파리의 상징물이 된 개선문이다.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1804년 위대한 프랑스 군대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명령을 내려 세워진 것이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비슷한 외관의 마들렌 성당도 프랑스군의 영광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콩코드 광장에 우뚝 선 오벨리스크는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고, 그 뒤편의 방돔광장에 있는 청동제 원기둥은 오스테를리츠 전투에서 노획한 1200대의 대포를 녹여 만든 것이다. 루브르가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시대의 유물들을 갖춘 세계적인 박물관으로서 위상을 갖게 된 것도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및 이집트 원정 덕분이다. 프랑스에서 파리를 빼놓을 수 없듯이 나폴레옹 없이 프랑스 근대사를 논할 수 없을 정도다. ●‘프랑스의 마지막 거인’ 드골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의 승리로 프랑스는 자유를 되찾았지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웠다. 전쟁 중 영국에서 반(反)나치 항전을 지휘한 드골은 국민의 열렬한 환영 속에 귀국해 임시정부의 수반이 됐다.1946년 제 4공화국이 들어서고 전후 산업화가 시작됐으나 정쟁(政爭)이 그치지 않았다. 보다 강력한 중앙정부가 필요하다는 자신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드골은 스스럼없이 물러났다. 제 4공화국이 붕괴되기 직전 드골은 ‘조국의 구원자’로서 당당하게 복귀했다. 강력한 대통령제에 입각한 제 5공화국을 출범시키면서 1958년 12월 대통령에 취임한 드골은 알제리를 비롯해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식민지들을 평화적으로 독립시킴으로써 식민지 문제를 해결했다. 프랑스의 정신을 진작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한 그는 “위대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지 않는 프랑스는 일찍이 한번도 참된 프랑스였던 적이 없다.”며 국민들에게 ‘앞으로!’를 외쳤다. 강력한 중앙집권제와 효과적인 경제·사회 모델, 독자적인 외교정책이 어우러지면서 프랑스의 정치와 경제는 급속하게 안정됐다. 드골은 아데나워 독일 수상과 함께 독·불협력 시대를 정착시키고, 반미 자주외교를 펼치면서 핵무기 개발과 군수산업 개발에 전력했다.“우리의 운명은 기계가 결정한다.”는 평소의 신념대로 첨단 항공우주기술, 초고속열차(TGV), 컴퓨터산업 개발에 집중했다. 그 결과 프랑스는 1967년 영국을 제치고 세계 5대 산업국이 됐다. 그러나 학생과 노동자들이 합세해 일으킨 68혁명 여파로 1969년 4월 대통령에서 물러났다. 1970년 11월 드골은 세상을 떠났지만 영향력은 여전하다. 프랑스는 아직까지 제 5공화국 헌법으로 통치되고 있으며 시라크를 비롯해 그의 정신을 이어받은 우파출신들이 집권층을 장악하고 있다. 국가관이 투철하고 능력이 있는 직업공무원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드골이 설립한 국립행정학교(ENA) 출신 엘리트들이 국정을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샤를 드골 국제공항, 파리 중심가의 샤를 드골 에트왈 광장, 핵잠수함 샤를드골 호 등 그의 이름을 붙여 ‘마지막 거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역사는 흐른다. 최근 프랑스 전체를 뜨겁게 달궜던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집권 중도우파정당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가 5공화국 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경제난과 높은 실업률, 세계화, 유럽연합의 확장, 이민 2·3세들의 통합문제 등으로 프랑스는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변화를 갈망하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사르코지가 과연 ‘구원자’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反 사르코지’ 시위… 집권당 건물에 화염병

    |파리 이종수특파원|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당선자에 반발한 프랑스 소요 사태가 사흘째 이어지고 있다.8일(이하 현지시간) 파리 바스티유 광장에는 200∼300여명이 ‘파시스트 사르코’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남동부 도시 리옹에서는 집권당 건물이 화염병 공격을 당했다. 사르코지 당선자의 대학개혁 계획에 반발한 파리1대학 학생 500여명은 9일 휴업을 결의한 뒤 캠퍼스로 통하는 통로를 봉쇄했다. 이들은 강의가 중단됐다고 선언했다. 사르코지가 계획하는 개혁 방안은 입법을 통해 대학자치 확대, 직업교육 강화, 외부 자금 마련, 성적 불량학생 퇴출 등이다. 프랑수아 바루앵 내무장관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 사흘째 지속했다.”며 극좌파의 폭력 행위라고 비난했다. 바루앵 장관은 거리가 아닌 투표소에서 의견을 반영하라고 촉구했다. 제1야당인 사회당도 6월 총선을 앞두고 폭력 행위는 집권당만 이롭게 할 뿐이라며 폭력행위 중지를 요구했다. 한편 재벌 소유의 호화 요트에서 휴가를 즐겨 비판받고 있는 사르코지 당선자는 이날 몰타에서 자신은 납세자들의 돈을 쓰지 않았다며 “사과할 뜻이 없다.”고 밝혔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프랑스 억만장자인 볼로레 소유의 팔콘 제트기로 몰타에 갔다. 볼로레 소유의 12인승 요트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9일 파리로 복귀한 뒤 11일 당선 후 처음으로 외국 지도자인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만날 예정이다.vielee@seoul.co.kr
  • [변화 선택한 프랑스] (하) 변화하는 유럽-대미관계

    |파리 이종수특파원|친미 성향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당선자의 등장으로 답보 상태인 유럽연합(EU) 개혁이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또 독일·프랑스·영국 모두 친미성향을 띠면서 EU와 미국이 소원했던 과거를 딛고 관계 회복의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그만큼 사르코지 당선자는 역대 프랑스 대통령과는 달리 미국·영국식 발전 모델을 지향했고 지나치게 ‘미국식’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유럽통합·개혁 논의 박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주제 마누엘 바로수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은 사르코지가 유럽개혁의 큰 축이 될 수 있다고 반겼다. 메르켈 총리는 그의 당선 확정 뒤 “EU의 핵심 주축으로서 독일·프랑스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르코지는 지난 2005년 프랑스가 국민투표로 EU헌법 비준을 거부함으로써 빚어진 EU 회원국과의 불편한 관계를 회복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사르코지의 첫 해외순방지로 EU본부가 있는 브뤼셀과 EU 순회의장국인 독일의 베를린이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르코지의 대안은 EU헌법 부활 대신에 ‘미니 조약’ 체결이다.EU 대통령 대신 상임 의장·외무장관직 신설, 이민문제 등에서 만장일치가 아닌 일부 회원국끼리 공동정책을 펼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게 골자다. 또 국민투표가 아닌 의회 비준만으로 발효될 수 있도록 했다. 영국을 비롯해 EU헌법 부활을 반대하는 국가들도 미니 조약에 찬성한다.EU헌법 부활을 추진해온 메르켈 총리도 조항 내용에서 양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절충안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걸림돌도 있다. 터키의 EU 가입 문제는 난항이 예상된다. 사르코지는 이에 반대하는 대신 터키-남유럽-북아프리카 모로코로 이어지는 ‘지중해 국가 연합체’를 통한 유대강화를 제안했다. 반면 영국은 터키 가입을 찬성하고 있다. ●‘신 3각체제’ 구축, 대미 관계 강화 사르코지 집권으로 영국·프랑스·독일 유럽의 이른바 ‘3두 마차’가 모두 미국에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서게 됐다.EU 순회의장국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이미 미국과 유럽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대서양 플랜’에 착수했다.‘포스트 블레어’가 누가 되더라도 영국의 친미기조는 변치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국익에 부합하는 실용주의적 정책 이른바 ‘선택적 친미’ 노선을 취할 가능성이 많다. 당선 직후 “지구온난화 방지에 주력할 것”이라며 “미국도 이 문제에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한 사례다. 또 국제 무대에서 프랑스의 위상을 높이려는 그의 계획은 이란 핵문제 등 중동문제를 놓고서도 미국과 이견을 보일 수 있다. vielee@seoul.co.kr ■ 술은 입에도 안대는 스포츠마니아 사르코지와 부시는 닮은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닮은꼴이라고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이 9일 보도했다. 신문은 프랑스와 미국 정상이 서로 비슷한 점이 많으며 이를 바탕으로 2차 세계대전 뒤 수십년 동안 불편했던 두 나라 관계가 크게 나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두 정상은 성격이 급하며 거친 표현을 쓰고, 자부심이 강한 점이 비슷하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사르코지는 내무부장관 재임 당시 소요사태와 관련, 시위 참가자들을 ‘폭도’로 규정해 큰 반발을 사는 등 종종 평지풍파를 일으키곤 했다.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점이나 스포츠 마니아인 점도 같다. 사르코지는 조깅을, 부시는 산악자전거 타기를 즐긴다. 미 행정부는 반미성향의 세골렌 루아얄 사회당후보 대신 친미성향의 사르코지가 당선된 것을 크게 반기고 있다. 토니 스노 미 백악관 대변인은 7일(현지시간) “프랑스와 협력을 강력히 기대한다. 의견차는 있지만, 큰 범위의 이슈를 함께 논의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사르코지 당선자도 대통령 수락연설에서 ‘미국 친구들’에게 “친구간에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면서도 “프랑스는 미국이 필요로 할 때 항상 곁에 있을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사르코지 당선자의 수석보좌관 데이비드 마르티농은 양국 정상간 당선 축하 전화통화에서 “두 정상이 매우 정답게 얘기를 나눴다.”면서 “사르코지 당선자가 대미관계 개선의지와 함께 (더 좋은 관계를 위한) 변화 필요성을 제기했으며 신뢰를 더 쌓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IHT는 부시 대통령이 그동안 유럽내 최대 협력자인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사임 임박 속에 사르코지의 등장을 반기고 있다고 소개했다. 두 정상은 다음달로 예정된 베를린 선진8개국(G8) 정상회담에서 처음 회동할 예정이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긴 점심·짧은 노동 시간 프랑스 특성 사라질수도” |파리 이종수특파원|긴 점심 시간, 짧은 노동시간, 방대한 양의 식사와 끝없는 수다…. 프랑스 하면 으레 떠오르는 생활 방식이다. 이런 ‘아름다운 프랑스’의 모습이 니콜라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9일(현지 시간) 사르코지 당선자가 국민들의 노동 패턴을 미국이나 영국처럼 더 많이, 더 빨리 그리고 효율성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변화시키려 한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에 따르면 프랑스는 징검다리 휴가를 비롯, 평소에도 휴일이 많다. 또 혁명기념일인 7월14일부터 9월까지 파리 시민들이 거의 도시를 떠날 정도로 휴가가 길다. 그러나 한편으로 프랑스는 사회보장제도 등 공공 서비스가 잘 발달돼 있다. 최빈곤층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 국가가 운영하는 유아원에 아이를 맡길 수 있고 중산층도 한달에 800유로(약 100만원)만 주면 아이 둘을 유아원에 맡기고 출근할 수 있는데, 이는 영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다. 덕분에 최근 프랑스는 유럽 최고의 출산율과 여성 노동력 비율을 자랑하게 됐다. 물론 공공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한 직접세 등 프랑스 국민들의 부담은 영국 국민보다 높다. 그러나 어쨌거나 프랑스가 이런 문명화된 공공 서비스 시스템을 시행한 것은 ‘자유·평등·박애’라는 혁명의 정신에 공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문은 사르코지가 이런 프랑스 고유의 미덕을 폐지하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여성 언론인 아네스 푸아리는 “사르코지의 당선을 제일 먼저 축하한 이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라는 사실은 걱정”이라며 “사르코지는 미국·영국을 복사하려고 한다.”고 비아냥거렸다. 이어 사르코지가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을 빗대 “목욕 물을 버리려다 아이를 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며 “사르코지가 추구하는 영·미 시스템 개혁은 프랑스인의 심미안, 식생활, 나아가 프랑스의 정신 등 모든 프랑스적 상징을 파괴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또 “당장에는 영·미식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이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길게 보면 더 나빠질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프랑스 사회를 빈부 계층으로 양분하면서 불평등하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vielee@seoul.co.kr
  • 사르코지 내각 구상차 몰타섬에?

    |파리 이종수특파원|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당선자가 프랑스를 떠나 휴식을 취하며 내각 인선을 구상하고 있다. 사르코지의 선거대책본부장인 클로드 게앙은 7일(현지시간) “당선자가 지중해 몰타에 머물고 있다고 보도됐지만 행선지에 대해선 함구령을 내렸다.”고만 밝혔다. 현재 새 총리로 유력한 인물은 사르코지 당선자의 최측근으로, 사회·교육 장관을 지낸 프랑수아 피용(53)이다. 현지 언론과 전문가들은 ‘피용 총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사르코지 당선자와 통화 중 “누가 차기 총리가 될 것이냐.”고 묻자 사르코지가 피용에게 휴대전화를 넘겨줬다고 보도했다. 연금 제도와 주 35시간 근로제 개편을 추진한 경험을 가진 피용은 사르코지측 인사들 중 좌파의 거부감이 가장 적은 인물로 꼽힌다. 사르코지가 자신의 노동개혁안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유화적인 측근을 총리에 임명할 것이란 전망이다. 법학을 전공한 피용은 한 때 AFP통신에서 수습 생활을 했고, 중서부 사르트에서 하원 의원으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지난 2002년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 밑에서 사회·교육장관을 맡았다.2005년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안이 부결된 후 시라크 대통령을 비난하며 사르코지 캠프에 합류했다. 이 밖에 장 루이-보를루(56) 고용장관, 여성 각료인 미셸 알리오-마리(60) 국방장관도 거론되고 있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자크 시라크 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16일에 대통령직을 인수하면서 후임 총리를 발표하고,6월 총선을 치를 임시 내각도 구성한다. vielee@seoul.co.kr
  • [佛 대통령 사르코지 당선] “니콜라 니콜라”연호하며 수천명 기쁨의 샹송

    |파리 이종수특파원|“10,9,8,…0, 니콜라 사르코지 53%” “와…삐이익, 쿵쿵” 6일 저녁 8시(현지시간) 프랑스 여당 대중운동연합(UMP) 당사가 있는 파리 8구 보에티 네거리. 당사 맞은편 건물에 걸린 대형전광판에서 출구조사 결과가 생중계되자 거리는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수천명의 사르코지 지지자들의 열광적 환호가 이어졌고 나팔소리, 경적소리 등이 터져나왔다. 곧이어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합창하면서 푸른 풍선이 하늘로 올라갔고 국기가 펄럭였다. 거리는 어느새 푸른색으로 변했다. 당사 앞은 8시 이전부터 승리를 예감한 수천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온 젊은 부부, 사르코지 선거운동 포스터를 새긴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 두 손을 꼭잡고 기뻐하는 노부부 등 모두가 신명난 표정이었다.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곳곳에서 샴페인·포도주를 터뜨리면서 기쁨을 나눴다. 이윽고 사르코지가 도착했다. 그가 당사 옆 가보 콘서트홀에 마련된 임시 무대에서 당선 사례를 했다. 이어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걸어나왔다. 지지자들은 손을 흔들며 “니콜라 니콜라”를 연호하면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열성당원이라고 소개한 생클레르(20)는 “다수 국민의 선택이다. 너무 기쁘다.”며 “미래에 대한 계획과 인물의 승리”라고 소감을 들려줬다. 옆에 있던 주부 카테린 뒤샹(48)은 들뜬 목소리로 “너무 행복하다.”고 말문을 연 뒤 “이제 변화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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