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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뭘 또 그렇게까지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뭘 또 그렇게까지

    2009년, ‘영화, 한국을 만나다’라는 프로젝트 아래 다섯 명의 감독이 다섯 도시로 떠났고, 완성된 다섯 편의 영화가 4월부터 매주 한 편씩 극장에서 선보인다. 윤태용의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개봉되는 작품이 전계수의 ‘뭘 또 그렇게까지’이다. 문승욱의 ‘시티 오브 크레인’, 김성호의 ‘그녀에게’, 배창호의 ‘여행’ 등도 곧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첫 주자인 ‘서울’이 투어가이드용 홍보영화에 머문 것과 달리, 춘천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뭘 또 그렇게까지’는 저예산영화의 한계를 참신한 아이디어로 푼 모범 사례로 평가받을 만하다. 화가인 찬우는 세미나 참석차 춘천으로 향한다. 충동적으로 기차에서 내린 그는 ‘김유정 문학촌’을 거닐다 누군가의 스케치를 본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 유정과 찬우는 예술과 철학을 주제 삼아 오후를 함께 보낸다. 유정에게 호감을 느낀 찬우는 슬쩍 접근을 시도해 보지만, 내내 잘 따르던 유정은 그의 꾐을 요리조리 잘 피한다. 그는 순진한 듯 영악한 여학생의 진심이 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전문가, 지식인, 인생의 선배로서 찬우는 배움의 한 과정을 마쳤다고, 스스로 옳다고 자만하는 인물이다. 그는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읽다 열차에 두고 내리는데, 나중에 유정과의 대화 도중 철학 입문서로 니체를 읽으라고 권한다. ‘생의 철학’인 니체의 사상을 죽은 문자의 형태로 대하던 그는 그나마 책을 두고 내리면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형편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말로써 타인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고, 마침내 착취하기를 기도함으로써 ‘인간적인 모순’을 적나라하게 표출하고 만다. 찬우가 ‘말로 떠드는’ 사람에 머문 반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세요.”라고 청하는 유정은 지혜로운 인간이다. 유정이 “니체는 고등학교 때 이미 다 읽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둘의 권력관계는 뒤집어지고, 영화는 재미를 넘어 흥미진진함을 얻는다. 니체가 말했던 바, 인간은 세 가지 단계-권위와 스승에 의존하는 단계, 거기서 벗어나 자유를 쟁취하는 단계, 독자적인 가치와 궁극적 목표에 헌신하는 단계- 를 거친다. 그리고 놀랍게도 영화라는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유정이라는 인물은 세 단계를 모두 통과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렇다고 해서 시시콜콜 지식을 전파하는 유의 영화일 거라고 속단하진 말길 바란다. ‘뭘 또 그렇게까지’는 단순한 구조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삶의 철학이 인간을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드는지 증명한다. 영화가 지식인을 풍자하거나 놀릴 마음이 없으니 찬우는 수치를 느낄 필요가 없으며, 악한 소설의 주인공과 다름없었던 그는 물론 관객 또한 생의 의지와 즐거움을 찬미하기에 이른다. 전대미문의 장르영화인 ‘삼거리극장’으로 데뷔한 전계수는 두 번째 작품에 임해 예상 밖의 노선을 선택했다. 이제 장르 뒤틀기와 이야기 꾸미기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여백과 대화와 질문으로 이번 영화를 채워 놓았다. 혹자는 홍상수의 영화와 비교할 법하지만, ‘뭘 또 그렇게까지’의 로드무비 스타일은 ‘길과 걸음에서 찾는 인생의 가치’라는 주제가 반영된 결과일 뿐, 쓸데없이 일상성을 영화에 끌어들인 건 아니다. 작품세계를 멋대로 규정하는 사람들을 향해 전계수는 멋진 한방을 날렸다. 영화평론가
  • 19세기에 출판돼 20세기 대표 사상서 된 사연

    19세기에 출판돼 20세기 대표 사상서 된 사연

    ‘꿈의 해석’의 출판연도는 1900년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출판된 것은 1899년 10월이고 서점에 진열된 것은 11월4일이다. 새로 시작되는 세기에 맞추려는 흥행심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출판업자의 이 거짓에는 예언적인 진실이 있다. 정신분석학의 신호탄인 ‘꿈의 해석’은 니체와 마르크스의 책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서가 되었다. 출판 후 몇 년 동안 ‘꿈의 해석’은 언론과 학계의 침묵 속에 내팽개쳐졌다. 그나마 입을 연 몇몇 학자들은 프로이트가 미신과 과학, 예술적 상상력과 과학적 이성을 혼동했다고 혹평했다. 고대 해몽술의 전통을 이어받은 프로이트의 꿈 해석은 주관적인 해석일 뿐 과학적인 진실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프로이트 자신이 꾼 꿈에 대한 해석이고 꿈 해석의 대상도 수면 중의 꿈 자체가 아니라 깨고 난 이후 망각과 왜곡으로 ‘오염된’ 기억내용일 뿐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분석 결과에 대한 사실 검증이 없다는 점에서 ‘꿈의 해석’은 과학서라기보다는 문학서에 가깝다. 프랑스어판은 책 제목을 ‘꿈의 과학(La Science des rves)’으로 달면서 정신분석학의 과학적 타당성을 인정해 주었지만, 오히려 프로이트 자신의 입장은 과학적 진실이야말로 객관적 진실이 아니라 공인된 해석이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프로이트는 해석 대상의 왜곡 가능성에 대해 오히려 그런 거짓 속에서 무의식의 진실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단지 ‘게임’일 뿐인 진실게임을 통해 진실을 말하거나 ‘농담’의 포장지로 싸서 사랑을 고백하는 경우처럼, 인간은 거짓말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는 특이한 존재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프로이트를 찾은 여자 동성애자가 있었는데, 얼마 후 그녀는 남자와 결혼하고 싶은 욕망을 담은 꿈을 꾸었다. 프로이트는 그녀의 꿈이 프로이트 자신을 속여 아버지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속임수임을 간파했다. 그러나 이런 거짓된 욕망의 꿈은 무의식 속에서 그녀가 자신에게 매혹된 프로이트를 자기 아버지와 동일화시키고 있으며 그녀의 동성애는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이성애적 욕망에 대한 도전 행위라는 진실을 드러낸 것이다. ‘꿈의 해석’은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는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연아키즈’ 김해진 ‘쑥쑥’

    ‘연아키즈’ 김해진 ‘쑥쑥’

    ‘포스트 김연아’ 김해진(13·과천중)이 트리글라프 트로피대회 노비스 부문(만 13세 이하)에서 우승했다. 김해진은 4일 슬로베니아 예세니체에서 끝난 대회 여자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53.39점에 예술점수(PCS) 41.04점을 합친 94.43점을 획득했다. 전날 쇼트프로그램 점수 49.68점을 합친 총점 144.11점으로 1위에 올랐다. 2위 미야하라 사토코(일본·129.15점)를 14.96점 차로 누른 압승이었다. 경험 삼아 출전한 첫 국제대회에서 김해진은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트리플 플립과 트리플 루프, 트리플 러츠-더블 토루프 콤비네이션 점프 등 고난도 점프들로 짜여진 프리스케이팅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김해진은 지난 1월 제64회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에 초등학생 신분으로 출전, 국가대표 곽민정(17·수리고)을 꺾고 시니어 여자싱글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받았다. 김해진은 트리플 악셀(공중 3회전 반) 점프를 제외한 5가지 트리플 점프(러츠·플립·루프·살코·토루프)를 실전에서 모두 구사하며 ‘김연아 키즈’의 대표로 나섰다. 올해 19회째를 맞는 트리글라프 트로피는 노비스와 주니어 선수들의 등용문 역할을 해온 권위 있는 대회다. 역대 우승자도 화려하다. ‘피겨퀸’ 김연아(20·고려대)가 2002년 제패했었고,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싱글 금메달 에반 라이사첵(미국)은 같은 해 주니어부에서 생애 첫 국제대회 정상에 선 바 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어긋난 사랑·남자의 배신·자살…오페라 속 여주인공 비운의 삶 왜?

    어긋난 사랑·남자의 배신·자살…오페라 속 여주인공 비운의 삶 왜?

    오페라에는 유독 비운의 여성들이 많다. 어긋난 사랑, 남자의 배신 등 다양한 이유로 여주인공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살해된다. 왜 그럴까. ●“그녀가 죽어야 관객이 운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루치아는 한 남자만 바라보는 순정파지만 주변의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푸치니 ‘나비부인’의 조초상은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자결한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와 ‘일 트로바토레’, 푸치니의 ‘라보엠’과 ‘토스카’, ‘마농 레스코’ 등도 유사하다. 대개 아름답고 순수한 청순가련형 여성들이다. 물론 비제의 ‘카르멘’은 팜므파탈로 기존 오페라의 여성상과 선을 긋지만, 어쨌든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다. ●19세기 오페라에 두드러져 이용숙 오페라 평론가는 “오페라는 소설과는 달리 무대 예술로 관객이 주인공에게 몰입하게 만들어야 한다.”면서 “여성의 죽음은 관객의 감동과 눈물을 끌어내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극적인 장면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물론 모든 오페라가 그렇지는 않다. 이런 경향은 19세기 오페라에 두드러진다. 17~18세기의 오페라가 영웅과 신화에 기초한 경우가 많았던 반면 19세기는 평범한 시민의 사랑을 전면에 내세웠다. ‘낭만주의’가 태동한 시기로 로맨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까닭이다. 특히 평범한 여성도 오페라 레퍼토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만큼 여권이 신장됐다는 시대적 반영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자결하거나 살해되는 식으로 비극을 맞이한다는 설정에서 알 수 있듯 ‘나약한 여성’이란 캐릭터가 당시 관중에게 설득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이 오페라들이 여권의 진보와 한계를 동시에 갖고 있다는 분석이다. ●비극적 여주인공 나오는 오페라 3편 눈길 이들 오페라 가운데 3편을 눈앞에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수지오페라단은 25일부터 나흘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나비부인’을 공연한다. 지난해 창단한 수지오페라단이 선보이는 첫 오페라 무대다. 공연 연출은 이탈리아 오페라 연출의 대가 안토니오 데 루치아가 맡았다. ‘조초상’은 소프라노 김영미, 파울라 로마노가 더블캐스팅됐다. 3만~30만원. (02)581-5404. 국립오페라단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도 준비돼 있다. 루치아 역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라노 신영옥이 나선다. 에드가르드는 테너 정호윤, 엔리코는 바리톤 우주호가 맡는다. 새달 19일과 21일, 23일, 25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연주한다. 1만~15만원. (02)586-5282. 서울오페라단이 선보이는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도 관객을 찾아간다. 사랑을 위해 도망을 다니다 여자 주인공이 목숨을 잃는다는 줄거리로 소프라노 김향란, 김은주, 박재연 등 국내 실력파 성악가들이 출연한다. 2만~12만원. (02)399-1783~6.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카프카의 삶

    카프카의 삶

    이름도 제대로 부여받지 못한 채 난데없는 판결 앞에 허우적대는 인물들.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작품 안에서 발산되는 엄격하고 고독한 기운 때문에 많은 독자들은 카프카가 깊은 사색 속에서 자족하는 쓸쓸한 작가 생활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1908년 보헤미아 왕국의 노동재해보험협회 직원이라는 그의 딱딱한 명함도 이런 이미지에 한 몫을 보탰을 듯하다. 하지만 카프카는 이방인이 아니었다. 성실한 직원으로 인정받았으며 동료들에게 신뢰를 받았다. 182㎝의 큰 키와 경쾌한 몸놀림으로 친구들과 함께 승마, 테니스, 수영과 같은 스포츠를 즐겼다. 카페와 거리에서 프라하의 지식인들과 함께 철학과 예술을 논하고 무정부주의적 색채를 띤 클럽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니체, 다윈, 보들레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 모든 인물들의 삶과 작업들이 카프카와 친구들의 토론 주제였다. 서로에 대한 깊은 배려와 진리를 향한 진지한 토론은 그가 평생을 머무른 프라하 생활에서 핵심이었다. 단 한 번도 결혼에 성공한 적 없었지만, 그는 모든 우정과 사랑이 글쓰기의 장애물이자 동력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완전히 인정했다. 고교 시절 절친인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을 보자. “너는 나에게 창문과도 같은 존재야. 그 창문을 통해 나는 밖을 내다볼 수 있지. 혼자서는 할 수 없어. 나는 키가 큰데도 창틀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지.” 그렇다. 친구란 세상으로 난 창문이다! 사랑과 우정이 갖는 미덕을 깊이 신뢰한 카프카는 사후에도 우정의 힘을 톡톡히 맛보았다. 친구 막스 브로트는 1935년 베를린에서 나치 정권 하에서 금지되고 있던 카프카 작품의 전집 편집을 시도했다. 위험을 감수한 그의 노력으로 1937년에 프라하에서는 최초로 그의 전기가 나올 수 있었다. 독일어 사전에는 ‘카프카적이다’(kafkaesque)라는 형용사가 있다. 그는 역사와 전쟁, 운명과 선택,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출구를 찾고 헤매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선물로 보낸 셈이다.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철학, 詩를 만나 노래하다

    가타리, 들뢰즈, 비트겐슈타인, 아도르노, 하이데거… 무슨 글을 읽을 때 잘 나가다가도 이런 현대 철학자의 이름들이 들먹여지면 괜히 주눅이 든다. 가까이 두고 읽고 싶지만 해석은커녕 옆 사람에게 그 의미를 전달하기도 어려워 자칫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잘난 체한다는 말만 들을까 두렵다. 철학이 그러하듯 시(詩) 또한 마찬가지다. 좋은 것도 같은데 읽다 보면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재미있게 철학 접하기, 감동하며 시 읽기를 도와줄 책이다.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강신주 지음, 동녘 펴냄)은 21명의 현대 철학자와 현대 시인이 두 사람씩 꼭 손을 붙잡고 등장한다. 일종의 철학 입문서이자 시의 고갱이를 일깨워 준다. 그동안 신문, 잡지에서 영화 평론, 문학 평론, 정치 비평 등을 관심있게 읽고싶은 우리를 난처하게 만들며 표류하게 하곤 했던 철학의 개념들을 전면으로 끄집어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글을 읽다가 불쑥불쑥 등장하는 ‘타자론’이니 ‘다중’이니 ‘부정 변증법’이니 하는 알쏭달쏭한 개념들은 인문학의 바다로 떠난 항해를 지루하게 만들거나 중도에 접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난해한 철학 개념의 설명을 도와주는 것은 시(詩)다. 철학은 물론 시조차 어려운데 이 둘을 붙여놓다니, 하고 난감해하는 찰나 ‘시 읽는 철학자’ 강신주는 말한다. “걱정하지 말라.” 철학에 시를 덧붙였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시인 기형도가 만나 ‘언어의 뼈’에 대해 생동감 있게 사유하도록 하고,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라는 시로 당대를 선구했던 유하와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접목시켜 자본주의의 소비문화에 대해 성찰하게 도와준다. 또한 ‘꽃’의 시인 김춘수의 또 다른 작품 ‘어둠’을 통해 난해하기만 했던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을 좀더 생동감있게 설명한다. ‘니체와 황동규’는 망각의 지혜를, ‘사르트르와 최영미’는 애무와 섹스의 비밀을, ‘바디우와 황지우’는 사랑의 존재론적 숙명을, ‘네그리와 박노해’는 민중이 아닌 다중(多衆)의 개념을 친절하게 풀어내고 있다. ‘아렌트와 김남주’가 만나서 ‘영혼없는 관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덧붙임은 물론이다. 저자는 “21명의 철학자와 시인들이 소개하는 모든 봉우리를 다 좋아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면서 “우리의 삶을 성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한두 봉우리만을 확인하더라도 큰 수확이 될 것”이라고 철학, 그리고 시 읽기의 의의를 설명한다. 따라 읽다 보면 ‘철학적 시읽기’이자 ‘시로 철학 읽기’임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학에 갓 들어간 새내기들의 인문학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1만 6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나로호 발사실패 규명 못한채 최종 결론

    나로호 발사실패 규명 못한채 최종 결론

    현 시점에서 나로호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이슈는 1차 발사가 ‘성공’인지 ‘실패’인지 여부다. 나로호 사업이 우주선진국인 러시아와 최대 3회 발사, 2회 성공조건으로 계약이 이뤄져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1차 발사의 성공여부는 3차발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사안이다. 국제 관례로 보면 위성 발사체의 성공은 위성의 정상궤도 진입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다면 나로호 1차 발사는 명백한 ‘실패’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내년 3차발사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게 우리측 입장이다. 하지만 나로호 사업에서 1단 발사체를 제공하는 러시아의 생각은 다르다. 러시아는 위성의 정상궤도 진입이 ‘성공조건’이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성공을 못했다고 해서 실패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들이 제작한 1단 발사체의 기능상 문제는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우리가 1차 실패를 이유로 들어 3차 발사를 러시아에 요구할 권리는 있지만 러시아 측이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의무는 없다는 게 발사 책임자인 조광래 발사체연구본부장의 설명이다. 또 다른 관계자들도 아무리 우리가 3차발사를 하겠다고 주장해도 이익이 없는 러시아 측으로서는 당연히 해 줄 리가 없다고 보고 있다. ●발사 성공여부 러측과 이견 그런데 교과부와 항우연은 이 같은 3차발사 여부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다. “아직 논의해 보지 못했다.”, “2차발사 준비를 얘기해야지 3차 발사 사항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며 질문을 회피했다. 또 발사 성공 여부는 러시아와 국내의 발사체 전문가들로 구성된 ‘실패조사위원회(FRB)’가 결정할 몫이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이같이 교과부와 항우연 관계자들이 나로호 성공여부에 대해 논의하기를 꺼려하는 이유는 2차발사를 앞두고 괜히 러시아를 자극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처럼 우리는 1차 발사의 명백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한 번의 발사기회를 도둑맞게 될 상황에서도 러시아의 눈치만 보고 있다. 게다가 나로호의 실패 원인도 명확하게 도출되지 않았다. 나로호 발사 실패 사흘 뒤인 2009년 8월28일 꾸려진 조사위에서는 그동안 페어링 전문조사TF를 구성해 30여회의 시스템 시험과 시뮬레이션 등을 거친 뒤 ‘기계적 결함’과 나로호 내부의 ‘방전 가능성’ 등 두가지를 발사실패 원인으로 압축하고 조사를 매듭지었다. 이인 조사위원장은 8일 최종 발표를 통해 원인을 밝혀내는 데 ‘한계’가 있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우주에서 페어링이 분리되는 그 상황과 동일한 조건을 지상에서 재현해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분석이 힘들다는 것이다. 당시 데이터 분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현재 도출된 페어링 미분리 원인 역시 나로호 발사 당시 폭발로 인한 진동이 감지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두 가지 가능성 이외 다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지상시험에서 30회, 모사 방전시험 380회를 했고 데이터 5200건을 분석했다며 나름대로 근거를 들었다. ●작년 美토러스호 사고와 유사 나로호가 전송해 온 수만가지 데이터와 나로호에 장착된 영상정보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실패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것은 우주에서 벌어진 ‘사고’라는 점 때문이다. 자동차 사고는 실물이 있기 때문에 현장검증을 통해 사고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사고발생 당시를 목격하지 못했어도 자동차의 실물이 현장에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전문가들은 사고 당시의 상황을 추측할 수 있다. 원인 도출도 가능하다. 하지만 나로호의 페어링 미분리는 우주에서 발생한 사고여서 지상에서 우주와 똑같은 조건과 속도를 재현하지 않는 한 명확한 원인규명은 사실상 힘들다는 것이 조사위 설명이다. 지난해 2월 페어링 미분리로 발사에 실패한 미국의 ‘토러스XL호’ 역시 4가지의 실패원인을 남긴 채 마무리 된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미완의 조사 결과는 나로호의 2차 발사에 앙금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조사위가 페어링의 기계적 결함이나 전기방전 이외 다른 가능성에 대해 일축하고 있지만 이 두가지 가능성 역시 조사위의 ‘추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로호 2차 발사는 빠르면 3개월 뒤인 5월로 예정돼 있다. 조광래 발사체연구본부장은 “페어링 문제에 대한 보강작업 실행계획을 수립해 조속히 완료하고 다음달 말쯤이나 4월 초쯤 러시아로부터 1단 추진체가 들어오는 대로 나로호 2차발사 준비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1단 발사체를 제작하는 러시아 흐루니체프사는 현재 국내에 반입될 1단 발사체에 대한 막바지 기능을 점검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기술로 제작된 2단 발사체도 최종 점검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데스크 시각] 검찰, 자신을 수사하는 게 개혁/이기철 사회부 차장

    [데스크 시각] 검찰, 자신을 수사하는 게 개혁/이기철 사회부 차장

    검사가 과연 한 식구인 검사를 수사해 단죄할 수 있을까? 형식상으로 가능은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게 키워드로 떠오른 검찰개혁의 방향이다. 지난해 5월, 엄청난 충격파를 던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 서울중앙지검은 최근 노 전 대통령의 피의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고발된 이인규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등 수사팀 전원에 대해 ‘죄가 안됨’ 또는 무혐의로 판단해 기소하지 않았다. 당시 홍만표 수사기획관이 브리핑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피의사실을 공표한 것과 노 전 대통령 딸의 미국 주택구입 사실 등이 피의사실 공표에 해당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가 목적이어서 수사의 필요성도 없다고 봐 불기소 처분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내린 결론을 요약하면 범죄 혐의가 일부 발견됐지만 ‘죄가 되지 않는다.’ 이를 두고 법조계는 물론 일반인들의 비판이 거세다. ‘1억원대 명품시계’ 발언과 같은 피의자의 인격을 모욕적으로 훼손하는 피의사실 공표까지 법이 허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발표한 날, 모임에서 만났던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 사건의 경우) 국민의 알 권리와 피의자 인권보호의 균형이 전혀 맞지 않았다.”며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잃은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참석자는 “이미 예상했던 결론”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검찰 스스로 법이 규정한 피의사실 공표죄를 쓸모없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형법 제126조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가 그 직무를 통해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른 변호사는 “검찰이 자신의 피의사실 공표에 대해 처벌하지 않는다면 피의사실 공표죄는 이미 사문화된 조항”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1억원대 명품시계 건을 누설한 ‘나쁜 빨대’는 찾아내지도 못했다. 검찰은 나쁜 빨대를 찾아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제대로 설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런 비판에 대해 검찰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공표한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므로 죄가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검찰의 자의적 설명일 뿐이다. 죄가 되고 안 되고는 검찰이 예단할 것이 아니라 법정에서 가리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검찰이 검찰을 상대로 한 이같은 고소·고발 사건이 2008년 475건이었고, 지난해 상반기까지 158건이었다. 그러나 단 한 건도 기소하지 않았다. 이런 데서 검찰에 대한 불신의 싹이 튼다. 일반인들이 색안경을 쓰고 검찰 수사를 ‘해석’하고, 정치인들은 철저하게 이를 활용한다. 지난 연말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꼭 그렇다. 검찰 불신은 일반인에게서만 그치는 게 아니다. 검찰 사정을 잘 아는 변호사 역시 대체로 검찰을 믿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유선호·우윤근 의원 등의 설문조사 결과, 변호사 76.1%가 검찰 수사관행이 부적절하며, 68.9%는 피의자에 대한 검찰의 태도가 비인간적인 경우 많다고 답했다. 검찰도 잘못할 수 있다. 이를 검찰도 인정해야 한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을 닮는다.”는 니체의 말처럼 검찰이 사회의 거악( 巨惡 )과 싸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악을 닮는다. 검찰의 오류를 좀 더 엄정한 시각에서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국민을 위해서다. 수사권을 경찰에 나누는 것이나 고위 공직자 비리수사처 신설을 검찰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다. 검찰은 조직이 아니라 공익의 대표자가 돼야 한다. 수사권을 독점한 검찰이 수사하지 않으면 어떤 기관도 수사할 수가 없다. 또 재판에 부칠지 말지를 결정하는 기소권도 검찰이 독점하고 있다. 지금 한국 검찰은 슈퍼맨과 같은 무소불위의 조직이다. 검찰엔 ‘크립톤’과 같은 약점도 없다. 이러니 암만 포청천 같은 검찰이라도 팔이 안으로 굽듯, 제식구를 감쌀 수밖에 없다. chuli@seoul.co.kr
  • 거장들의 오페라, 발레로 풀어낸다

    오페라 선율과 정통 클래식 발레가 만난 오페라발레 ‘뮤즈’가 21~22일 오후 8시 서울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예술극장에서 펼쳐진다. 이번 공연은 김선희 한예종 교수의 안무로 도니체티, 벨리니, 마스네 등 오페라 거장들의 친숙한 음악 10곡을 아름다운 발레로 풀어낸다. 지난 6월 뉴욕 국제무용 콩쿠르에서 동상을 차지한 발레리나 이용정이 벨리니의 ‘노르마’ 가운데 ‘정결한 여신’을 독무로 선보이고, 발레리노 김명규와 김윤식은 마스네의 ‘베르테르’ 중 ‘왜 나를 깨우는가, 봄바람이여!’에 맞춰 춤을 춘다.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현웅과 유니버설발레단의 주역 이광민은 도니체티의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흘리는 눈물’을 성숙한 몸짓으로 표현한다. 공연 마지막에는 출연자 전원이 존 윌리엄스의 영화 ‘나 홀로 집에’에 삽입된 크리스마스 캐롤에 맞춰 춤을 선보인다. 작품 사이사이에는 안무자가 무대에 올라 발레의 탄생과 역사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발레 토크 토크(Ballet Talk Talk)’ 시간도 마련된다. 무료. (02)3216-1185.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셰익스피어는 인종차별 작가?

    셰익스피어는 인종차별 작가?

    르네상스(Renaissance)-학문·예술의 재생, 부흥. ‘르네상스는 14~16세기 그리스·로마 문화와 사상을 부흥시키려는 문화예술적 움직임을 일컫는다. ‘신(神)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화가 시작됐으며, 중세의 종언이자 근대의 시발점이 되는 운동’이라고 학교는 가르친다. 박홍규 영남대 법학과 교수에 따르면 이는 절반의 정답이자 절반의 무지(無知)에 가깝다. 박 교수는 ‘르네상스는 중세와 달리 자유-자치-자연을 추구해 유토피아를 꿈꿨으나, 유럽 중심, 인간 중심에 매몰되면서 제국주의와 자연정복으로 타락한 14~16세기의 서양 문명’으로 정의하며 기존의 르네상스관(觀)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르네상스의 본질은 현상적으로 드러난 고대의 문예 부흥이 아니라 ‘인간 시대의 시작’이라고 규정했다. ●“르네상스시대는 고대 문예부흥 아닌 인간시대의 시작” 박 교수가 최근 펴낸 ‘인간시대 르네상스’(필맥 펴냄)는 그 시대의 주요 인물 20명에 대한 평가가 이어진다. 평가 정도가 아니라 그에 의해 르네상스 인물들은 전복되거나 해체되고, 재조명된다. 모든 평가의 준거가 됨과 동시에 르네상스로부터 근본적으로 복원하고자하는 것은 그가 내세우는 ‘삼자(三自)주의’로 귀결한다. 즉, 자유(自由)로운 개인, 자치(自治)하는 사회, 자연(自然)스러운 세계다. 예컨대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이른바 ‘르네상스 3대 미술가’로 꼽히는 라파엘로는 아예 평가에서 제외했다.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등을 그리고 ‘다비드’, ‘피에타’ 등을 조각한 미켈란젤로는 교황청 등의 권력을 거부하고 개인의 자유를 추구한 르네상스인으로 재조명된다. 에라스무스는 ‘우신예찬’을 썼고 종교개혁에 앞장선 인물로 세계사 시간에 배웠다. 하지만 이 책은 이탈리아를 둘러본 뒤 낭비와 타락에 젖은 모습에 실망해서 가볍게 쓴 소품에 불과한 점을 밝힌다. 원제도 ‘우신예찬’이 아닌 ‘바보자찬’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는 평까지 덧붙인다. 에라스무스를 ‘휴머니스트들의 왕’이자 ‘인류공동체 사상의 상징’이라고 부르며 칭송한다. 특히 에라스무스의 새로운 면모는 또 다른 저서 ‘평화의 탄핵’에서 빛을 발한다. 그는 ‘전 세계는 공동의 조국’임을 선언한다. 그는 유럽 전체를 조국으로 삼은 최초의 유럽인이자 세계시민이라고 명명한다. 유럽연합(EU)이 20년 전부터 유럽의 점진적 통합을 추진하는 일환으로 나라별 학생 교환 사업인 ‘에라스무스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의 사상적 유구함을 확인할 수 있다.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 역시 박홍규라는 프리즘을 거치며 새롭게 해석된다. 2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에 등장하는 동키호테를 박 교수는 “동키호테 같다는 소리를 들을 각오”로 ‘반체제 아나키스트’라고 과감히 명명한다. 설령 망상에 젖었을지라도 물질주의 탐닉을 거부하고 고귀한 정신주의를 구현하려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는 설명이다. ●에라스무스, 마키아벨리 등 르네상스 시대 주요인물 20명 재평가 이러한 인물의 재평가는 권모술수의 상징 마키아벨리를 ‘만드라골라’라는 위대한 희극을 쓴 극작가로서의 면모와 함께 귀족에 대항한 민중사상가로 부각시켰다. 또한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는 이탈리아 바깥에 있던 탓인지 그동안 르네상스 시대 문인으로 분류되지 않는 경향도 있었으나 그를 ‘마지막 르네상스인’으로 포함시킴과 동시에 ‘인종 차별주의와 제국주의에 갇힌 작가’로 규정한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 차별, ‘오셀로’의 흑인 차별, ‘폭풍우’의 제국주의적 관념 등을 대단히 불편해한다. 박 교수는 “우리 시대에도 개혁이 필요하다면 르네상스를 살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주의법학연구회 회장을 지내고 여러 학술 저서를 갖고 있는 법학자이지만 모리스, 고흐, 카프카, 니체 등의 평전을 쓰며 두터운 인문학적 소양을 확인시켜준 ‘한국의 르네상스인’이자 ‘또다른 에라스무스주의자’이기도 하다. 2만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정제된 시어… 풋풋한 손그림…

    정제된 시어… 풋풋한 손그림…

    꼬박 일흔이 된 시인의 손은 가늘고 길다. 세월의 켜가 쌓이기는커녕 제대로 옹이지지도 않았다. 그 손이 가시덤불처럼 복잡한 철학의 가치를 몇 줄의 시어로 말끔하게 정리해 낸다. 여전히 지극한 아름다움에 더해 풋풋한 그림까지 함께 담아서. 노시인 정현종이 시선집 ‘섬’(열림원 펴냄)을 냈다. ‘시인의 그림이 있는 시선집’이라는 기획출판 시리즈의 첫 번째다. 시집 자체가 스타일리스트들의 예술 작품이다. 하드커버에는 네덜란드산 클로스(책의 장정에 쓰는 헝겊)를 썼고, 본문 곳곳에는 니체가 쓰던 원고지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왔고, 시인의 만년필 육필 원고가 함께 곁들여졌다. 여기에 시인이 직접 그린 파블로 네루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니체 등의 초상화와 서툴지만 공들인 여러 그림이 펼쳐진다. 심미를 지향하는 이들에게 시뿐 아니라 책 자체가 예술작품이 될 수 있음을 고스란히 증명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싶다’(‘섬’ 전문)를 비롯해 ‘환합니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등 정현종 시어의 고졸하면서도 간결한 아름다움이야 이미 정평이 나있는 것이지만 정현종의 그림이라니. 책장 맨 처음에 나오는 손 그림(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왼손을 펴들고 연신 치어다보며 스케치북 위에 진땀을 뻘뻘 흘렸을 시인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허나 맨 마지막에 있는 파랑새는 꽤 정교하게 그려졌으며, 이후 깃을 쳐 날아오른 뒤 책의 나머지 페이지 사이사이를 자유롭게 날아들고 있는 것을 보니 역시 스타일리스트들의 작품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해준다. 1990년대 초반에 썼지만 전혀 군더더기 없이 미학적 완결성이 뛰어난 ‘좋은 풍경’과 같은 정현종 시의 정수 33편을 한꺼번에 보는 즐거움도 물론이다. 문학평론가 오생근(서울대 불문과)교수는 발문에서 “그는 자유를 추구하는 시인”이라면서 “시를 읽으면서 자유의 숨결을 호흡할 수 있고 날아오를 수 있는 비상의 의지를 느끼는 독자는 행복하다.”고 평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시기하느냐? 고로 존재한다!

    오스트리아 작가 알렉산더 로다 로다(1872~1945)는 시기심에 대해 “남의 불행을 고소해할 기회가 부족한 까닭에 생겨난 분노”라고 정의했다. 남의 불행을 보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드러낼 경우 경박하거나 예의 없다는 나쁜 평판을 받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대중적인 즐거움이라는 것이다. 간혹 이것을 12~18세기까지의 많은 신학자들은 ‘천국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라고도 했다. 천국으로 간 소수의 사람들은 믿음을 저버린 자들이 지옥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고소해한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시기심-나는 시기하지 않는다’(이미옥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는 독문학자이자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연구소 소장인 롤프 하우블이 자신의 경험과 심리치료를 바탕으로 쓴 책이다. 시기심이라는 인간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고, 심리·사회·문학·종교·신화·광고 등 여러 측면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서술한 일종의 ‘시기심 종합백과사전’이다. 저자 하우블은 사람들에게 “시기심을 느끼냐?”고 물어보면 대다수가 “나는 시기하지 않는다.”고 답하지만, 이것은 위선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남의 재산을 탐하지 말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서양문화는 다른 방향으로 갔을 것이라 말한다. 늘 시기하면서 스스로 시기한다는 인식조차 못한 채 생활하고 있는데, 저자는 시기심이야말로 인류의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감정으로 사회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하고, 파괴의 근원이 된다고 말한다. 흔히 시기심은 자신과 비슷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비교하며 느낀다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자신은 제자리걸음인데 후배나 부하 직원들이 앞서 나갈 때, 자신의 한창 때를 떠올리는 젊음과 아름다움·아이디어를 발산하는 젊은이를 만났을 때, 동정심을 베풀던 대상이 성공할 때에도 나타난다. 세대 간의 갈등이나 형제 간의 갈등도 시기심의 표현이다. 궁정악사였던 살리에리가 자신보다 6살 연하에 보잘 것 없는 지위의 ‘천재’ 모차르트를 시기하거나, 신에게 더 사랑받은 동생 아벨을 시기와 질투심 때문에 죽여버리는 카인처럼 말이다. 상업광고도 사람들의 시기심을 부추겨 구매를 촉진시킨다. 시기심의 일종인 고소해하는 심리에 대해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그의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이런 마음은 사람들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에 있을 때, 즉 근심이나 시기심·고통을 느낄 때 생겨난다.”고 말했다. 즉, 남의 불행을 보면서 자기의 불행을 가볍게 여길 뿐만 아니라, 자신이 불행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안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기심 때문에 사회가 더 어려워지기도 한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은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평등하면 할수록 평등에 대한 욕구는 더욱 채워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저자에 따르면 시기심을 없앨 수는 없다. 다만 사람들의 시기심을 유발하는 유무형의 자산들(돈, 명예, 지위, 능력 등)이 불법적으로 형성됐을 경우 사람들은 시기심을 공평한 분배를 위한 투쟁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시기심이 살아 있는 한 절차의 공정성을 통해 깨끗한 부와 명예의 형성이 필요한 이유다. 1만 65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나로호 발사] 러 “1단 발사체 작동… 부분적 성공”

    │도쿄 박홍기·베이징 박홍환 특파원·서울 이종수기자│나로호가 발사에는 성공하고 마지막 목표 궤도 진입에 실패한 데 대해 러시아 등 외국 언론도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나로호 발사체를 제작한 러시아의 흐루니체프사 직원 등은 긴장 속에 발사 과정을 지켜본 뒤 아쉬움을 나타냈다. 알렉산드르 보로비요프 러시아 연방우주청 대변인은 25일 “목표지점을 벗어나긴 했지만 우주 궤도 도달에는 성공했다.”면서 “첫 시도치고는 굉장한 성공인데 이런 경우를 ‘부분적 성공’이라고 부른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 우주 로켓 기술의 전설인 세르게이 코롤료프도 수차례 실패를 경험했다.”면서 “한국 과학자들이 또 힘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 책임론을 의식한 듯 “(러시아가 개발한) 1단계 발사체는 매우 성공적으로 작동했다.”고 주장한 뒤 “이번 발사 결과에 대해 우리는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려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일본 언론도 나로호 발사부터 궤도진입 실패에 이르는 과정을 자세히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한국 첫 위성 로켓, 궤도 진입 실패’라는 제목과 함께 “세계에서 10번째 자체 기술로 로켓과 위성을 쏘아올린 국가에 들어가지 못하게 됐다.”고 전했다. 한편 관영 중국중앙방송(CCTV)은 나로호 발사 시간인 한국시간 오후 5시 뉴스채널을 통해 발사 실황을 10여분간 생중계했다. 중국 언론들은 “위성을 정상궤도에 진입시키지 못함으로써 한국의 우주강국 꿈은 큰 손상을 입게 됐다.”고 보도했다.hkpark@seoul.co.kr
  • [씨줄날줄] DJ와 TV 53년/진경호 논설위원

    1956년 우리 정치에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 청년 김대중(DJ)의 정계 입문과 TV 방송의 개막이다. 전남 목포에서 제3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한 DJ는 2년 뒤인 그 해 장면 박사의 민주당에 입당, 정치무대에 발을 디뎠다. 한편에선 대한방송주식회사가 처음 미국과 동일한 방식으로 흑백TV 방송을 시작했다. 연설의 달인 DJ의 정치인생과 대중정치 확산의 첨병 TV시대가 함께 시작된 점이 아이러니하다. 젊은 시절 화려한 언술과 준수한 용모를 자랑하던 DJ 앞에 펼쳐진 TV시대는 분명 그에게 행운이었다고 하겠다. ‘정치인에게 있어서 인류는 도구(tools)와 적(enemies) 두 부류뿐’이라고 한 니체의 말에 견줘볼 때 적어도 DJ에게 TV는 많은 도구를 확보할 유용한 수단이었던 셈이다. TV가 일반화되지 않은 1960년대까지 정치인의 도구가 ‘군중’이었다면, 70년대부터는 TV를 매개로 한 ‘대중’이 정치인의 도구였고, 숱한 명언을 남긴 DJ는 바로 백사장 군중정치시대의 막내이자, TV 대중정치시대의 맏형 격이라 하겠다. 가는 곳마다 구름처럼 몰려든 수십만명 앞에서 사자후를 토해내던 71년 7대 대선, 그리고 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자택연금에서 풀려나면서 정치지도자 반열에 우뚝 선 그의 모습이 TV에 비칠 때 대중은 열광했고, 군부세력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정치 동갑내기 DJ와 TV는 1997년 15대 대선 때 기어코 일을 냈다. 대선 역사상 처음 선보인 TV 후보토론회에서 그는 고난의 삶을 이겨낸 여유로운 유머와 화술로 라이벌 이회창·이인제 두 후보를 눌렀고, TV는 DJ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DJ의 영면과 더불어 TV와 함께했던 대중정치시대도 기울고 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로 무장한 대중은 더 이상 TV를 통해 세상을 읽던 과거의 그들이 아니다. DJ의 명연설 대신 미네르바가 세상을 흔들고, ‘아고라’에서 의기투합한 스마트몹(smart mobs), ‘똑똑한 군중’들이 서울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세상이 됐다. 정보화시대를 맞아 신직접민주주의가 도래하면서 대의정치는 설 땅을 잃고, 10년 뒤면 할 일을 잃은 국회의원이 아예 자취를 감출지도 모른다는 게 미래학자 박영숙 유엔미래포럼 대표의 말이다. 저무는 건 3김(金)만이 아니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모닝 브리핑] 러 “나로호 연소시험 이상없어… 14~16일 발사”

    교육과학기술부는 10일 러시아 측으로부터 나로호 1단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확인 받았고, 곧바로 나로호 발사 일정 협의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지난 7일 교과부는 러시아 흐루니체프사로부터 “나로 연소시험에서 발생한 기술적 이슈는 발사에 이상이 없는 단순한 측정 센서 오류였다. 14~16일 발사가 가능하다.”는 내용의 서한을 팩스로 받았다. 하지만 교과부는 이번 만큼은 성급하게 일정 확정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연소시험에 참여한 관련기관 모두가 나로 발사에 이상이 없다는 공식적인 확인을 해줄 것을 러시아에 요구했다. 그 공식적 확인이 10일 전해진 것이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나로호엔진 러 ‘실험용’ 의혹

    지난달 30일 러시아에서 이뤄진 연소시험의 엔진이 나로호 엔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나로호의 엔진을 개발한 러시아 에네르고마시(Energomash)사는 지난 3일 홈페이지(www.npoenergomash.ru)를 통해 “지난달 30일 개발중인 발사체 앙가라 엔진인 RD-191의 연소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연소시간은 233초를 기록했으며, 데이터 분석이 끝나면 2차 연소시험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로호와 러시아 발사체 앙가라의 연소시험일이 공교롭게도 30일로 겹친 것이다. RD-191은 러시아의 흐루니체프사가 2011년 개발을 목표로 하는 자국 발사체 ‘앙가라’의 엔진이다. 반면 나로호의 엔진은 RD-191보다 추력을 낮춘 변형 모델인 RD-151이다. 흐루니체프사와 에네르고마시사의 홈페이지 확인 결과 30일 당일 연소시험은 1번 있었고, 실험 모델은 RD-191이었다. 즉, 30일 러시아에서 이뤄진 연소시험은 나로호의 엔진이 아닌 앙가라의 엔진일 수 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나로호의 추력은 170t인 데 반해 30일 흐루니체프사가 시험한 모델의 추력은 196t이었다는 것도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에 대해 교과부는 “30일 나로호 엔진인 RD-151로 연소시험을 한 것이 맞다. 196t은 최대 추력을 표현한 것이다.”라면서 “러시아는 엔진이 같은 앙가라계열이기 때문에 RD-191로 표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 말이 맞다면 나로호 엔진인 RD-151은 러시아가 개발중인 ‘실험용’인 셈이 된다. 러시아는 “30일 연소시험한 RD-191이 ‘개발중’이며 앞으로 2차 연소시험을 할 것”이라고 밝혔고, 게다가 이 모델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발사된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과부는 “러시아와 연소시험을 1번 하기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추가적인 시험은 없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이런 의혹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측이 기술적 문제가 발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측정 오류였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러시아 측으로부터 8월14~16일 발사를 제안 받았다.”고 밝혔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사설] 기술자립 중요성 일깨운 나로호 발사 연기

    11일로 예정된 한국 첫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Ⅰ) 발사가 또 늦춰졌다. 나로호 1단 추진체를 공동개발하고 있는 러시아 측이 기술적 문제를 내세우며 시간이 필요하다고 통보해 온 탓이다. 나로호 발사는 2002년 8월 개발사업에 착수한 이후 지금까지 모두 여섯 차례나 연기됐다. 나로호 발사가 이처럼 러시아 측의 ‘횡포’에 가까운 일방 통보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것은 우주발사체 핵심 기술의 주도권을 러시아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 한·러시아 우주기술협력협정에 따라 위성발사체 공동 개발이 본격화됐지만 러시아 측은 1단 로켓 기술은 미사일 발사 기술과 동일하다는 이유로 일체의 기술 이전을 거부하고 있다. 기술 약소국의 설움을 톡톡히 겪고 있는 셈이다.나로호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개발비만 5025억원이 들어간 초대형 연구개발사업이다. 국가적 자존심이 걸린 사업이 이번에 또 러시아 측의 “기다리라.”는 한마디 팩스 한 통에 지연되고 말았다. 그동안 나로호 발사 연기는 모두 러시아 측이 기술 이전을 거부하거나 부품 조달에 차질이 생겨 빚어진 것이다. 러시아 흐루니체프사가 개발한 나로호 1단 로켓에는 액체연료가 주입된다. 로켓이 추력을 얻으려면 액체를 초고압으로 집어넣어 주는 기술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국내 위성발사체 분야의 액체 엔진 기술은 선진국의 60∼70% 수준으로 본다. 우리의 첫 우주발사체 사업 성공의 열쇠가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데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주강국 진입은 기술자립에 달렸다.
  • 나로호 광복절께 발사할듯

    나로호 1단 추진체 연소시험이 오는 7월30일 러시아에서 실시될 예정이다. 이로써 나로호 최종 발사일도 8월이 돼야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4일 나로호 1단 제작을 담당하는 러시아 흐루니체프사로부터 1단 연소시험을 30일 수행하겠다는 내용의 서신을 받았다고 밝혔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으로 발송된 서신에는 “연소시험에 참여하는 러시아 관계자들이 연소시험 날짜를 30일로 정한다는 데 서명했고, 러시아 연방우주청도 이 사실을 승인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교과부는 30일 나로호 1단 추진체의 연소시험이 완료되면 시험결과 분석을 거쳐 8월 첫째주쯤 러시아와 나로호 발사 일정을 협의할 예정이다. 총 조립 후 발사까지 약 10일이 걸리는 것을 감안, 나로호는 다음달 15일 광복절 전후에 발사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중현 교과부 제2차관은 “광복절 전후에 발사할 것으로 보이지만, 무엇보다 안전하게 발사하는 게 우선”이라면서 “문제가 생긴다면 훨씬 뒤로 미뤄 10월 추석에 맞춰 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모닝 브리핑] 나로호 발사 새달초로 연기

    나로호 발사가 8월초로 연기될 전망이다. 16일 교육과학기술부는 러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나로호 1단의 연료 연소시험에서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해 발사 연기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로써 나로호는 당초 예정이었던 30일 발사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교과부는 흐루니체프사와 연소시험이 끝나는 대로 발사일정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교과부 유국희 우주개발과장은 “아직 기술적인 결함에 대해 자세한 내용 파악이 안 됐다.”면서 “발사가 어느 정도 지연될지도 미지수다.”고 말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열린세상] ‘니체’와 ‘나체’ 그리고 ‘사다함의 매화’/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열린세상] ‘니체’와 ‘나체’ 그리고 ‘사다함의 매화’/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시중에 이런 유머가 있다. 전직 대통령들과 이명박 대통령이 함께한 자리에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를 쓴 저자가 누구인가를 물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눈을 지그시 감고 한참을 생각한 후에 ‘니체’라고 대답하자, 노태우 전 대통령은 그것을 커닝하여 ‘나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점잖지 않게 나체가 뭐냐.”라고 하면서 ‘누드’라고 말하였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우리말을 써야지” 하면서 ‘벌거숭이’라고 답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망설이고 있을 때, 도올 김용옥이 나서서 이런 경우에는 여러 사람들이 말한 것이 정답이라고 했다. 사실적 진리의 측면에서 보면 니체가 정답이다. 그러나 지록위마(指鹿爲馬)를 말한 승상 조고(趙高)와 같은 절대 권력자나, 혹은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다수결의 원칙에서 보면 나체 시리즈가 정답으로 취해질 수도 있다. 조고의 경우처럼 강요된 거짓 진리는 권력이 해체되면서 효력이 상실되지만, 스스로 거짓 진리를 옳다고 믿을 경우에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 전까지는 고치기가 쉽지 않다. 한때 유럽인들은 몽골군을 동방의 ‘사제왕 요한’의 군대로 오인한 적이 있었다. 이슬람 세력이 강성해지면서 1146년에 예루살렘 왕국의 동북방 도시 에데사(현 터키 동남부 우르파)가 초토화되고, 4만명 이상의 기독교 주민들이 희생되면서부터 유럽인들은 동방의 사제왕 요한이 이슬람의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구제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91년 후인 1236년, 칭기즈칸의 셋째아들로서 제2대 칸에 오른 오코타이는 자신의 조카 바투에게 유럽 침공을 명하였다. 바투의 12만 몽골군은 1240년에 러시아 전역을 장악했으며, 이듬해에는 폴란드와 독일의 연합군 2만명을 괴멸하고 헝가리 전역을 초토화하였다. 사제왕 요한에 대한 유럽인들의 근거 없는 신앙은 몽골군이 이슬람의 유럽 침공을 저지할 원군이라고 착각하게 함으로써 치명적인 피해를 불러왔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이 같은 치명적 오해들이 준동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의 원폭과 미사일 발사 실험 비용의 출처를 밝히려는 정부를 비난하고, 수일간 계속되었던 사이버 테러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된 북한을 비호하고 나섰다. 금강산 관광객이 총살되고 개성공단 관계자가 체포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남북경색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 돌리고 있다. 선거에 의하여 합법적으로 성립된 정부의 정책기조를 야권에서 전면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반하는 처사이다. 선거에서 패배한 정치인들은 집권한 후에 자신들의 포부를 펼치면 될 것이다. 야권, 특히 민주당은 현 정부의 주요 공약을 모조리 폐기하고, 우리 사회를 민주와 독재, 좌파와 우파의 대결장으로 재단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부터 대의민주정치의 근간에 충실하고 국회의 담론 규칙을 존중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은 약(藥)과 독(毒)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모든 주장에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도(道)와 덕(德)과 법(法)을 말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좌도(左道)나 우도(右道) 한쪽에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극단을 피하여 좋은 것을 취하고 나쁜 것을 삭이며 새로운 것을 창조함으로써 가장 현명한 선택에 이르고자 하는 중도(中道)나 중용(中庸)의 길은 그만큼 험난하다. 사제왕 요한과 같은 허구는 기망(欺妄)을 초래하는 유사종교적 코드일 뿐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이 권력유지의 비법으로 삼고 있는 ‘사다함의 매화’와 같은 요술상자도 부질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오직 성실하게 논의하고 이성적으로 타협하고 정성을 다하여 설득한 후에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투표에 부치는 방식으로 정치일정을 진행시켜야 한다. ‘니체’가 ‘나체’가 되더라도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학자와 언론의 몫이고, 잘못된 것을 선거로써 바로잡는 것은 국민들의 몫이다. 김진 울산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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